CONTENTS
Issue
61 INTERVIEW 정인하, 최욱, 최진석
21
와이드 COLUMN
76
미래 예측 | 이충기
CRITIQUE 01 | 김현섭 감각의 형식
28
이종건의 COMPASS 35
89
인문학(적) 건축? 건축 인문학?
CRITIQUE 02 | 박정현 세속적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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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삼의 PARA-DOXA 07 문제도 기회도 이 땅에 있다 : 한국 제1의 건축 전문 홍보 대행사를 향한 첫 걸음 | 김명규
Report 와이드 REPORT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 공모전 4
Work
<방.방.곳.곳.> vs. <성북구의 어떤 집>
최욱+최진석 ONE O ONE architects
37
Choi Wook + Choi Jinseok
젊은 건축가, 도시 한옥과
심사총평
대안적 주거 형식을 고민하다 50 청담동 근린생활시설 Cheongdam-dong Building
40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Hyundai Card Design Library
INTERVIEW
현대카드 영등포사옥 Hyundai Card Branch Office,
헤리티지 투모로우 <방.방.곳.곳.>
Yeongdeungpo
이희원+정은주
59
45
상상과 실재 | 정인하
INTERVIEW 헤리티지 스피릿 <성북구의 어떤 집> 윤진아
와이드 EYE 1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 Itami Jun: Architecture of the Wind 2014. 1.28~7.27
1
2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5전시실(건축 상설 전시실) 92 바람의 조형, 이타미 준과 유동룡의 경계에서 | 최우용
와이드 EYE 2
3
100 2014 아시아 건축도시연합 워크숍 참관기 | 정평진
<최소의 집> 두 번째 전시 건축가 3인의 주택 완공작과 전시 주제의 대안 모델을 동시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5 102
에 전시하는 장기 기획전 <최소의 집>이 오는 3월 25일부 터 4월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의 창의물류갤러리 ‘낳 이’에서 두 번째 전시를 가진다. 작년 가을에 열렸던 첫 번
조명환 | AMPHIBIOUS 조명환의 Amphibious Eye Project : 양서류가 바라본 도시 | 우신구
째 전시 참가자 임형남, 노은주(가온건축), 김희준(ANM), 정영한(스튜디오아키홀릭) 등 세 팀의 뒤를 이어 전시 주 제가 던지는 질문에 충실히 답하게 될 건축가는 고기웅 (OFFICE 53427), 장지훈(비온후), 정의엽(AND) 등으로 이들은 ‘최소’라는 주제에 대한 각자의 정의를 통해 새로운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6
주거 모델을 전시할 예정이다. 단, 현실적으로 구축 가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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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을 제시하고 폭넓은 대중과 만남의 기회를 모색하는 것
박재영 | 문화의 유전자 전통 건축
이 전제가 된다.
이밖에도 이 전시는 ‘숨어 있는 건축가 발굴’이라는 특별한 취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자신의 작업을 묵묵히 수행해 오고 있는 건축가들을 찾아냄으로써
112
보다 다양한 건축을 통해 본질적인 집의 가치에 더욱 가깝
사진 더하기 건축 17
게 접근해 가고자 하는 것이다.
나은중+유소래 이 시대의 이미지 The Images of our times 토마스 루프 II Thomas ruff II
특히 이번 전시는 올 7월 국내 최초로 문화 공간 외부에 실 제 크기의 집을 전시하는 특별전 <빈집 1:1>과 연계되어 있고, 전시 기간 내 주말(토,일) 오후 1시부터 집에 대한 궁 금증을 풀어 주는 참여 건축가들의 상담 시간이 신설되어 대중의 기대를 한층 고무시키고 있다. 마지막 전시까지 전
장지훈,비온후주택,사진 이인미 1. 정의엽,스킨스페이스,사진 김용관 2.
체 30여 명의 건축가가 참여하게 될 <최소의 집> 두 번째 전시의 진일보한 행보에 본지 또한 관심을 가져 본다.
고기웅,봉재리주택,사진 신경섭 3.
3
《간향 클럽, 미디어랩 & 커뮤니티》 GANYANG CLUB, Media Lab. & Community
《간향 미디어랩 Ganyang Media Lab.》 [와이드AR 발행단 publisher partners] 발행위원 박민철, 박유진, 오섬훈, 최원영, 황순우 대표 전진삼 [와이드AR 편집실 editorial board] 편집장 정귀원 편집위원 남수현, 박정현 사진편집위원 김재경, 박영채 전속사진가 남궁선, 진효숙 디자인 노희영, banhana project [와이드AR 유통관리대행 distribution agency] 서점 심상호, (주)호평BSA
《간향 클럽, 미디어랩 & 커뮤니티》
직판 박상영, 삼우문화사
GANYANG CLUB, Media Lab. & Community
[단행본 디자인 및 유통협력 book design & distribution partners] 디자인 심현일, 디자인 현 판매대행 박종호, 시공문화사
우리는
[제작협력 production partners]
건축가와 비평가 및 다방면 건축의 파트너들과 함께
코디네이터 김기현, spacetime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지방(locality), 지역(region), 진정성
인쇄, 출력 및 제본 강영숙, 서울문화인쇄(주)
(authenticity)”에 시선을 맞추고 “건축을 배우는 후배들에게 꿈을, 건축하
종이 홍성욱, 대림지업사
는 모든 이들에게 긍지를” 전하자는 목표 아래 이 땅에 필요한 건강한 건축 저널리즘을 구현함은 물론,
《간향 커뮤니티 Ganyang Community》
건축한다는 것만으로 반갑고 행복한 세상을 향해
[고문단 advisory group]
나아가고자 합니다.
명예고문 곽재환, 김정동, 박길룡, 우경국, 이상해, 임창복, 최동규 대표고문 임근배
우리는
고문 구영민, 김원식, 박승홍, 박철수, 이일훈, 이종건, 이충기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잡지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후원사 patrons]
월례 저녁 강의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대표 김연흥, 박달영, 승효상, 이백화, 이태규, 장윤규, 차영민, 최욱
건축가들의 이슈가 있는 파티 《ABCD파티》 《ICON디너》,
[협력 자문단 project partners]
건축역사이론비평의 연구자 및 예비 저자를 지원하는 《심원건축학술상》
《ABCD파티》 박인수, 장정제
내일의 건축저널리스트를 양성하는 《와이드AR 저널리즘스쿨》
《ACC클럽》 공철, 나은중, 김기중, 김동원, 김석곤, 김종수, 김태만,
신예비평가의 출현을 응원하는 《와이드AR 건축비평상》
박성형, 박준호, 신창훈, 안용대, 오동희, 이중용, 임형남, 정수진,
국내외 건축과 도시를 찾아 떠나는 현장 저널 《와이드AR 아키버스투어》
조경연, 조남호, 최창섭
색깔 있는 건축도서 출판 《BOOKS 간향》
《ICON디너》 권형표, 김정숙, 손도문, 손장원
건축인을 위한 《와이드AR 건축유리조형워크숍》
《NESⓌ건축영화스터디클럽》 강병국
건축의 인문 사회적 토양을 일구는 《와이드AR 아카데미하우스》
《School of the Archi-Bus(AB스쿨)》 곽동화, 오장연, 이승지, 황순우
인간·시간·공간의 이슈를 공부하는 《NESⓌ건축영화스터디클럽》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조용귀
인천 어린이·청소년 건축학교 《School of the Archi-Bus(AB스쿨)》
《심원건축학술상》 신정환
등의 연속된 프로젝트를
《와이드AR 건축비평상》 김영철, 함성호
독자적으로 또는 파트너들과 함께 수행해오고 있습니다.
《와이드AR 건축유리조형워크숍》 손승희 《와이드AR 아카데미하우스》 김정후, 김종헌, 김태일, 임지택, 전유창, 조택연, 최상기, 최춘웅 《와이드AR 아키버스투어》 김인현 《와이드AR 저널리즘스쿨》 구본준, 안철흥, 이정범 《와이드AR 저널리즘스쿨 기장클럽》 이지선, 이상민, 정지혜, 박지일
제6회 심원건축학술상
(2013~2014년도)
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s
당선작 고료 1천만 원! 신진 학자 및 예비 저술가들의 등용문, 심원건축학술상 네 번째 수상자가 4월 말에 가려집니다. ■ 심원건축학술상은
■ 공모요강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한 젊은 건축가를 통하여 건축
Ⓢ 당선작: 1편
의 세계를 이해하고 건축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된 기업가가
졸지에 유명을 달리한 건축가와의 인연을 회억하며 건축의
Ⓢ 최종 당선작 결정
인문적 토양을 배양하기 위하여 만든, 속 깊은 후원회가 심
상기 추천작 및 전회 추천작(최종 심사 진출작) 중에서
부상: 상패 및 고료 1천만 원과 단행본 출간
심사하여 1편을 선정함
원문화사업회(이사장 이태규, 이하 사업회)입니다. 사업회가 벌이는 첫 번째 후원사업인 《심원건축학술상》은 건축 역사와 이론, 건축미학과 비평 분야의 미래가 촉망되
Ⓢ 당선작 발표
는 유망한 신진학자 및 연구자의 저작지원프로그램으로 마
2014년 5월 15일
련되었습니다. 1년 이내 단행본으로 출판이 가능한 완성된
(<와이드AR> 2014년 5-6월호 지면 등)
연구 성과물로서 세상에 발표되지 않은 원고를 응모 받아 그 중 매년 1편의 당선작을 선정하며, 당선작에 대하여는
Ⓢ 시상식
단행본 출간과 저술지원비를 후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사업회는 1 , 2 , 4 차년도 사업을 통해 박성형의 『벽
Ⓢ 출판일정
전』, 서정일의 『소통의 도시_루이스 칸의 도시 건축
별도 공지 예정 당선작 발표일로부터 1년 이내
(1960∼1974)』, 이강민의 『도리 구조와 서까래 구조』를 당선작으로 선정하고, 출판한 바 있습니다.
Ⓢ 운영위원회
배형민, 안창모, 전봉희, 전진삼
Ⓢ 주최
심원문화사업회
Ⓢ 주관
심원건축학술상 운영위원회
Ⓢ 기획 및 출판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간향 미디어랩 & 커뮤니티
Ⓢ 후원
(주)엠에스 오토텍
Ⓢ 문의
070-7715-1960, 02-2235-1960
Designer Image | 이반건축 정선화 | 사진 문정식
(주)제효에서 지은 집 건축가 상상 속의 건물을 구현하다 | www.jehyo.com
7
g rgor u ee on ud n sd cs ac p ap primitive modern primitive modern
2014. 2014. 2. 28 fri 6. 29 sun 2. 28 fri 6. 29 sun
location. location. 31-18, bukchon-ro, 31-18, bukchon-ro, jongno-gu, seoul, korea jongno-gu, seoul, korea T +82 2700 2 3700 2700 T +2823700 ONE O ONE arch i t ehcts ONE O ONE arc itects www.101architects.com www.101architects.com
씨앤오건설
www.cnoenc.com
+
조병수 건축연구소
15년째 같이 만들어 갑니다.
Kiswire Museum, Busan
Photograph by 김도균
흐르는 물처럼 : 늘상 대지의 숨소리에 귀를 열고 드러내기보다는 오롯이 제자리를 지키며 건축의 소명을 다하는 건축사사무소가 되려 합니다. 상대방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다음은 없다 : 늘상 사용자의 입장에서 사유하고 실천하며 건축의 행복을 담아내는 건축사사무소가 되려
t. 032-822-7008
합니다.
f. 032-822-9008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올해로 9년차를 맞이한 땅집사향은 향후 2년여에 걸쳐 우
(약칭, 땅집사향)
가지고 <건축가 초청 강의 ‘시즌4’>로 그분들이 관심하는
홀수달은 선배 건축가들이 ‘Strong Architect’의 이름으로 초대되며
3월(제87차)과 4월(제88차)의 이야기손님과 주제의 방향은 아래와 같습니다.
짝수달은 후배 건축가들이 ‘Young Architect’의 이름으로 초대됩니다. [땅집사향_소개의 글]
리 건축의 선후배 건축가들을 가로지르는 기획을 건축의 주제를 듣고 묻는 시간으로 꾸립니다.
땅집사향은 2006년 10월 이래 매월 한차례, 세 번째 주 수요일 저녁에 개최되어 왔습니다. » 1차년도(2006~2007) 12회에 걸쳐 국내의 건축책의 저자들을, » 2차년도(2007~2008) 6회에 걸쳐 국내의 건축, 디자인, 미술 전문지 편집장 및 일간지 문화부 데스크들을, » 3차년도(2008~2009) 20회에 걸쳐 30대 중반~40대 초반에 걸친, 국내의 젊은 건축가들을 초청하여, 그들의 건축세계를 이해하는 시간 <나의 건축, 나의 세계>로 가진 바 있습니다. » 4차년도(2010)
2014년 3월 제87 차 Strong Architect
12회에 걸쳐, 3차년도의 연장선상에서 40대~50대의 중견건축가들을 초대하여
이야기손님 최동규(서인건축 대표)
‘시즌 2: POwer ARchitect_내 건축의 주제’를 기획한 바 있습니다.
일시
3월 12일(수) 7:30pm
장소
그림건축 안방마루
주제
공간의 유희
» 5차년도(2011~2012) 24회에 걸쳐 <건축가 초청강의 ‘시즌 3’>로 기획하여 차세대 건축을 리드할 젊은 건축가들을 초대, 그들이 현재 관심하고 있는 건축의 주제와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듣고 물었습니다. » 6차년도(2013~2014) 전반기 6회에 걸쳐 ‘건축기획’에 초점을 맞춘 6회의 강좌를 진행하여 이 분야의 연구자, 활동가, 행정가의 현장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후반기 6회에 걸쳐 <건축사진가열전>(시즌1)로 국내의 내로라하는 건축사진가를 초청하여 ‘이미지 건축의 거처’ 주제로 건축 사진의 세계를 접했습니다. [행사 당일 시간표] 7:30pm-9:30pm 발표 및 질의응답 9:30pm-10:30pm 뒷풀이
사전 예약제(네이버 카페 <와이드AR> 게시글에 신청)
2014년 4월 제88 차 Young Architect
[참가비]
이야기손님 강예린, 이치훈(SoA 공동대표)
5천원(현장 접수)
일시
4월 16일(수) 7:30pm
장소
그림건축 안방마루
주제
건축 외연의 탐색
[참가 신청방법]
|주관: 격월간 건축리포트<와이드>(약칭, 와이드AR) |주최: 그림건축, 간향 미디어랩 & 커뮤니티 |문의: 02-2231-3370, 02-2235-1960 *<땅집사향>의 지난 기록과 행사참여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카페 (카페명: 와이드AR, 카페주소: http://cafe.naver.com/aqlab)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간향 미디어랩 & 커뮤니티 <건축비평 총서> 제1탄 건축 없는 국가 이종건 비평집
이종건의 말·말·말 1장. 건축과 국가, 그리고 존재 여기서 내가 요청하는 것은, 우리 삶 속에 타자를 적극 불러들이는 것이다. 한 국적인 것에 대한 논의의 가능성은 그 때 비로소 희미하나마 새벽빛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198쪽 | 신국판 10,000원 판매대행_ 시공문화사 영업팀 02-3147-1212, 2323
2장.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건축 사회는 오랫동안 아키텍처의 세계를 접했고, 그래서 비스듬하게 그 언어를 체득하고 구사해왔다. 그런데 우리 건축 사회가 알고 구사하고 있다고 믿는 그 언어는, 토마스 한의 표현을 빌리자면 “변이/훼손”된 언어다. 3장. 건축 없는 국가 김효만의 건축은 극히 비현실적인 공간을 상상하도록 하는 공간, 혹은 그러한 공간적 감성마저 현실적인 토대에서 구축된다. 이것이야말로 서구 자본주의에 점령된 우리 사회에서 작업하는 우리가 따르고 지켜야 할 귀중한 덕목이 아닌
우리 건축 사회에 속한 이들은 누구나 알고 느끼듯,
가 싶다.
우리 건축의 문제는 늘 비평의 부재다. 비평 작업은
4장. 국가 없는 건축
그리고 비평가로 사는 것은 고달프고 외로울 뿐이다.
조민석은 문화 전쟁에서 벗어나 있다기보다 다른 형식의 문화 전쟁을 치르고
그런데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세상이
있다고 말하는 게 옳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배제된 모종의 무엇에 목
건축비평을 원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소리를 부여함으로써 기존의 방식으로 분할된 감각 혹은 감성을 재분배시키기 를 요구하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말이다.
더 이상 ‘비판성criticality’이 작동할 수 없는 사회가 아닌지 모르겠다. 비평의 공급이 아니라 비평의 수요를
해체주의 건축의 해체』, 『해방의 건축』, 『중심이탈의 나르시시즘』,
이종건 비평집
히 요구되는 곳에서마저, 비평이 늘 요청/초대받지 못했다.
경기대학교 교수. 저서로 『건축의 존재와 의미』, 『
를 말하는 것이다. 건축에 대한, 오늘날의 건축에 대한, 오늘
저자 이종건
건 아닌지 모르겠다. 더 이상 ‘비판성criticality’이 작동할 수 없는 사회가 아닌지 모르겠다. 비평의 공급이 아니라 비평의 수요
비평이 늘 요청/초대받지 못했다.
것은 고달프고 외로울 뿐이다. 그런데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세상이 건축비평을 원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
인식과 지식이 분명히 요구되는 곳에서마저,
우리 건축 사회에 속한 이들은 누구나 알고 느끼듯, 우리 건축의 문제는 늘 비평의 부재다. 비평 작업은 그리고 비평가로 사는
오늘날 우리 건축에 대한 좀 더 나은 안목과
날 우리 건축에 대한 좀 더 나은 안목과 인식과 지식이 분명
건축 없는 국가
말하는 것이다. 건축에 대한, 오늘날의 건축에 대한,
『텅 빈 충만』 등이 있고, 역서로 『기능과 형태』, 『추상과 감통』, 『차이들: 현대 건축의 지형들』, 『건축 텍토닉과 기술 니힐리즘』, 『건축과 철학: 건축과 탈식민주의 비판이론, 바바』 등이 있고, 작품으로 한국건축가협회 초대작가 전에 출품한 <삼가>가 있다.
간향 미디어랩 & 커뮤니티
<현대성의 위기와 건축의 파노라마> 탈 카미너 지음, 조순익 옮김, 스페이스타임, 2014 근간 예정
포스트모던 ‘다원주의’는 그간 총체적인 시각의 변증법적
하지만 카미너의 핵심 논제는 그 ‘실재’가 어디까지나 ‘이
역사 서술을 기피하며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파편화해
상’에 불과하며 자율적 건축과 실재의 건축이 모두 건축
왔다. 그에 반해 이 책은 총체성의 역사·이론가인 타푸
에서 ‘이상’이 중심을 이루는 증거들이라는 점이다. 따라
리와 제임슨의 책들에 못지않게 ‘큰 그림’으로서의 역사
서 이는 일상적 현실을 덧씌운 신자유주의적 실재의 이
서술을 표방한다. 즉 이 책은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
상을 드러내 그러한 건축적 수사법의 신화를 벗겨내려는
지의 최근 건축에 대한 역사를 정치·경제·사회·문화
작업이다. 곧 본서는 공허한 실재를 품은 현대성의 ‘위기’
적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엮어내는 변증법적 서술로서, 국
를 극복하고자 등장한 ‘이상’들의 이야기이며, 그 ‘위기’
내 건축 이론서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지 않는 ‘자율성’
와 ‘이상’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셈이다. 이는 비록 서구
과 ‘실재’를 주요 주제로 삼아 그간 서구 건축의 ‘학문 체
건축학의 이야기이지만, 이를 거울삼아 이렇게도 물을 수
계’에 영향력을 구가해 온 주요 인물들의 작업을 적절하
있으리라. 우리는 어떤 건축적 입장에 서 있는가? 그것은
게 위치시켜 인식의 지도를 그려내는 비상한 책이다.
이런 서구 건축의 수사법과 얼마나 겹치며, 또한 얼마나
저자는 이데올로기적 상부 구조가 바탕의 물적 토대와 중
독립적일 수 있을까? 혹여 우린 서구 건축으로부터의 ‘자
층적인 관계를 맺는다고 하면서도 경제적 토대에 최종심
율성’이라는, 혹은 신자유주의적 ‘실재’라는 또 하나의 ‘이
급을 둔 알튀세르와 상부 구조적인 ‘정신’을 강조한 베버
상’을 좇고 있는 건 아닐까?
의 관점을 종합하여 ‘이상들’의 변증법을 전개한다. 본래 변증법이 어떤 모순에 기초한다면 그의 변증법은 건축의 실존적 ‘간극’에 기초한다 할 수 있겠는데, 그것은 곧 ‘도 면’과 ‘건물’의 분리이자 ‘주체’와 ‘객체’의 분리다. 역사 적 아방가르드는 ‘주객분열’에 저항했고, 근대 건축은 ‘주 객분열’의 심화로 비판에 직면하며 건축의 ‘위기’로 이어 졌다. 이 와중에 7~80년대의 페이퍼 건축은 ‘건물’보다 ‘도면’을 파고들었고, 현대의 건설정보모델링(BIM) 기술 은 ‘드로잉’과 ‘빌딩’의 분열에 저항하는 효과를 낸다. 또 한 이러한 역사 서술은 1968년의 저항 운동이 탈산업사회 에 대한 저항이 아닌 산업사회, 즉 전후 복지 국가와 케인 스주의에 저항한 탈산업사회의 현상이었기에 신자유주의 로의 자연스런 사회 변화를 야기했다는 관점에 기초하며, 그러한 건축 외적 상황들은 주로 ‘위기’를 다루는 제1부에 서 다뤄진다. 제2부에서는 그런 위기의 돌파구로 등장한 ‘자율적’ 건축을 살펴보는데 칸트와 예술적 자율성에서부 터 카우프만과 로우, 로시, 그린버그, 아이젠만, 헤이스, 아도르노, 뷔르거 등의 자율성 개념이 거론되고, 제3부 에서는 르페브르와 일상 예술, 팀 텐, 벤추리, 츄미, 콜하 스, 그 이후의 네덜란드 건축가 세대 등이 내세운 실재 개 념들의 차이를 면밀히 살펴보면서 제1부에서 출발한 정반-합의 변증법을 완성한다.
NES Ⓦ 건축영화스터디클럽
주최: 간향 미디어랩 & 커뮤니티 주관: 와이드AR 후원: NES코리아(주)
NESⓌ건축영화스터디클럽 <시즌3>, 4월 13차 프로그램을 소개합니다.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 일정을 꼭 확인 바랍니다.
◇ 장소: 서울 마포구 서교동 399-13 NES사옥 3층, NES 영화사랑방
◆ 14th: 6월 2일(월) 7:00pm 상영작: 오브젝티파이드(Objectified)
◇ 강사: 강병국(본지 자문위원, WIDE건축 대표)
게리 허스트윗 감독, 2009
◇ 참석대상: 고정 게스트 20인 및 본지 독자와 후원회원 중
개관: 일상의 디자인에 관한 영화
사전 예약자 포함 총 30인 이내로 제한함
◆ 15th: 8월 11일(월) 7:00pm ● 사전 예약 방법: 네이버카페 <와이드AR> 게시판에 각 차수별 프로그램 예고 후 선착순 예약접수 *참가비 없음
상영작: 비주얼 어쿠스틱스(Visual Acoustics) 에릭 브릭커, 2008 개관: 세계적인 건축 사진작가 줄리어스 슐먼에 관한 다큐 멘터리
◇ 주요 프로그램
(*본 프로그램은 주최 측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음)
◆ 16th: 10월 6일(월) 7:00pm 상영작: 푸르이트 아이고(Pruit-Igoe)
◆ 12th: 2월 10일(월) 7:00pm 상영작: 마천루(Fountainhead) 킹 비더 감독, 1949
차드 프리드리히 감독, 2011 개관: 근대건축의 종지부를 찍는 역사적 사건을 다룬 건축 다큐멘터리
개관: 건축영화의 영원한 고전!!
◆ 17th: 12월 1일(월) 7:00pm ◆ 13th: 4월 7일(월) 7:00pm
상영작: 홀리루드 파일(The Holyrood File)
상영작: 레이크 하우스(Lake House)
스튜어트 그릭 감독, 2005
알레한드로 아그레스티 감독, 2006
개관: 스페인 건축가 Enric Miralles의 작품 스코틀랜드 의
개관: 전형적인 헐리웃 건축가 영화
사당 건축에 얽힌 정치적 마찰과 스캔들을 다룬 영화
Wide Issue | 와이드 이슈
I
S
S
U
E
와이드 COLUMN
미래 예측 이충기 본지 고문,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Issue
멀지 않은 미래 여기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건설된 에코도시 미르마(통일 후 옛 DMZ의 서해 부근에 세워진
21 와이드 COLUMN | 이충기
미래 예측
28 이종건의 COMPASS 35
인문학(적) 건축? 건축 인문학?
탄소제로, 쓰레기제로 도시). 나는 지금 서울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미르마의 최첨단 공동 주
와이드 COLUMN
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미르마 중심부에 위치한 제2사옥에서 서해안에 세울 에너지섬 프로 젝트를 진행 중이다.
32 전진삼의 PARA-DOXA 07
문제도 기회도 이 땅에 있다
: 한국 제1의 건축 전문
홍보 대행사를 향한 첫 걸음
김명규
07:00 기상, 샤워 시간에 맞추어 가뿐하게 눈이 떠진다. 이것은 기상 시간을 고려하여 온습도, 인체 리듬, 뇌파 를 조절하여 최상의 수면을 유지하게 하고 기상 시간까지 지켜 주는 잠옷과 바이오침대 덕 분이다. 샤워 후 거울 앞에 서면 자가 건강 진단기 SRA가 나의 몸 상태를 진단하고 진단 결과를 홀 로그램으로 띄운다. 나의 고질인 통풍 유발인자 요산 수치 관리를 위해 단백질 섭취를 줄이 라고 당부하고, 체지방 지수가 어제보다 높고 자기 전에 물을 먹어서 부종이 있다고 알려준 다. 이 시스템은 오늘 섭취해야 할 음식과 피해야 할 음식을 스마트폰으로 전송하여 식사 전 에 다시 알려 줄 것이다.
07:40 식사 식사는 조리용 3D프린터가 시간에 맞춰 미리 준비해 놓았다. 탄자니아AA 원두의 김이 모락 모락 나는 아메리카노와 따뜻한 사과파이, 토마토와 치즈, 발사믹소스를 곁들인 야채 샐러 드로 아침 식사를 한다. 작년에 새로 구입한 신형 3D프린터는 일류 쉐프 못지않은 만능 요 리사다. 미리 예약된 시스템에 의해 내가 주문하는 모든 요리를 만들어 낸다. 문제는 물이다. 우리나라도 물 부족 국가가 된 지 10년이 넘었다. 이젠 180리터 물 한병이 10,000원을 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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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최근 나의 프로젝트도 물과 에너지 문제 해결을 포함한 종합 프로젝트다. 매일 이 시간이면 빠짐없이 가족과의 홀로그램 통화가 연결된다. 웨어러블 컴퓨터와 사물 컴퓨터의 상용화로 태블릿 PC나 컴퓨터는 사라진 지 오래다.
08:00 뉴스 시청 뉴스를 시청하기 위해 스위치를 켠다. 홀로그램으로 멋진 캐스터가 출연하여 아침 뉴스를 전달하고 있다. 세계 뉴스로는 동남아와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국지적 물 전쟁이 심각한 국 면으로 접어들었고, 뉴델리에서 G3 국가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인도 인구 는 지금 15억으로 세계 최다 인구 국가가 되었으며, 그 동안 GDP 1위를 달리던 중국을 제치 고 IT분야를 필두로 눈부신 경제 발전을 하여 G1국가가 되었다. 사회 소식을 선택했더니 동 거만하고 결혼식을 올리지 않는 부부가 전 세계의 90%를 넘었다는 소식이 뜬다. 그리고 도 시화가 급격히 진행되어 세계 인구 90%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는 통계를 전하고 있 다. 국내 소식으로는 평균 수명이 100세를 넘고 치매 인구가 100만으로 급격히 늘어 1조 이 상의 예산 두뇌 강화 프로젝트가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뉴스는, 전력 공급망인 스마 트그리드가 완성되면서 여러 번 부도 위기를 넘기던 K전력기업이 결국 도산하였다는 소식 이다. 볼 일을 보기 위해 홀로그램 뉴스를 끄고 두루마리로 말려 있는 전자 신문을 들고 화 장실로 간다. 종이 신문이 사라진 지는 10년이 되었다. 그동안 대형 언론 기업이 줄줄이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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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했고 살아남은 미디어 기업은 인터넷 기반의 기업들이다.
08:30 일정 확인 출근을 위해 나노 소재의 속옷과 컴퓨터가 내장된 나노자켓과 바지로 갈아입는다. 나노 속 옷과 나노자켓 바지는 셀프크리닝이 되어 별도의 세탁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옷은 전체가 하 나의 컴퓨터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신체의 모든 부분과 전기적으로 감응하도록 장치되어 있 어서 온도 조절이 자동으로 되고 신체 맥박 호흡 등이 체크되어 기록된다. 녹음, 영상 등의 기록과 송출이 가능하며 소매 부분에 달린 휘어진 화면 컴퓨터를 통해 매일의 일정을 검토 하고 시간 계획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의 주요 일정으로는 에코도시 미르마의 중심가에 있 는 회사로 출근하여 10시에 평양 본사와 원격 화상 회의, 11시에 에너지섬 관련 브레인스토 밍, 오후 2시 미래 예측이라는 주제로 서울시립대 원격 특강, 4시에 서울로 출발 5시 친구 병문안 등이 있다. 집을 나서기 전, 가족과 떠날 달과 화성 주말 여행 계획에 필요한 준비물 확인을 위해 우주 전문 여행사 직원에게 영상 통화를 요청했다.
09:00 회사로 이동 8시 50분부터 아파트 현관 앞에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주차장에 있던 차량은 무인 시동과 현관 대기 명령으로 운전기사 없이 목적지만 입력하면 자동 운행이 가능하다. 20년 전에 차 량 충돌 자동 제어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자동차 사고가 급격히 감소하여 대부분의 보험회사 가 쇠락했다. 10년 전부터는 무인 승용차의 사용이 일반화되어 도로 표지판이 사라졌고, 이 제 곧 무인 비행기가 상용화된다고 한다. 무인 승용차는 첨단 컴퓨터가 내장되어 무인 운전 은 물론 최단 거리를 선택, 실시간으로 교통 상황을 파악하여 신호등 작동까지 연동시켜 운 행함으로써 30분 이상 단축을 시켰다. 모든 도로에 전기 장치가 깔려 있어 자동차가 달리면 서 자동적으로 충전이 된다. 이동 중 오늘 업무에 대해 회사 직원과 화상 회의를 하고 오후에 있을 브레인스토밍에 필요 한 회의 자료를 전송받는다. 무선 인터넷 속도가 빨라져 테라바이트 수준의 속도로 데이터 가 전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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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행 중 여행사에서 전화가 왔다. 소매에 부착된 스마트폰으로 영상 통화를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손목시계형 스마트폰이나 소매에 일체형으로 부착된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으나, 곧 체내에 이식하는 바이오폰의 상용 시대를 앞두고 있다.
09:40 회사 앞 현관으로 이동하는 중에 광고판 앞을 지나자 마이크로센서, 나노센서가 내장된 광고판이 지 금 내게 필요한 내일 여행의 물품을 소개한다. 보안 검색은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10년 전에 법으로 전 국민에게 아 이디칩을 체내에 내장하도록 한 결과다. 나의 이동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는 시스템이 엘리베이터를 1층에 대기시키고 기다리고 있다.
10:00 평양 본사와 원격 회의 우리 회사는 2031년 통일된 후 국가의 균형 발전 정책에 따라 본사를 서울에서 평양으로 옮 긴, 물/에너지 관련 기업이다. 난 이 회사의 에너지섬 관련 담당 중역이다. 전 세계의 기업 중 50% 이상이 에너지 및 기후 관련 회사로 바뀔 정도로 세계는 물, 에너지와 기후 등 환경 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
11:00 회사 업무 회의 최고의 두뇌를 자랑하는 개발 기획실 직원들의 브레인스토밍 시간이다. 직위 고하를 막론하
기후 변화, 물 부족 ,에너지 문제, 인구 과잉 등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준비되고 있다. 이 국가적 시범 사업은 성과에 따라 향후 해안 지방에 수백 개를 건설할 예정이다. 오늘 주제는 건설 건축 분야에서 검토해야 할 사항을 확인하고 공사 완성도, 공기 단축, 시공비 절약 등 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다. 한 직원이 잘못된 솔루션을 제시하고 장황하게 설명하자 브레인스토밍의 원칙을 깨고 상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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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각자 개인의 의견을 소신껏 밝힌다. 서해안 백령도 인근에 위치할 에너지섬 프로젝트는
자가 간섭을 한다. 할 수 없이 내가 가상텔레파시로 상급자에게 발언을 막지 말라고 전달한 다. 다른 사람에게 가상텔레파시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각 개인별 고유 주파수를 사용하고 눈빛을 마주쳐 감응하기 때문에 제3자에게는 나의 텔레 파시가 전달되지 않는다.
12:00 점심 점심을 먹기 위해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구내식당으로 이동한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내가 나노칩 광고판 앞을 지나가면 그동안의 식사 패턴을 분석하여 오늘 내가 먹으면 좋을 음식들을 추천하고 음식 코너를 알려 준다. 물론 식당 메뉴에 없을 경우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3D프린터로 주문 음식을 만들어 별도로 식사를 할 수 있다. 물값이 비싸기 때문에 식사 후 물을 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인 물병을 지참하는 것이 좋다. 대금 지불은 인체 내장칩으로 자동 계산이 된다. 현금 사용이 거의 없어지면서 지폐가 사라진 지는 오래 이고, 심지어 카드도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아직 카드 사용 인구가 5% 정도 남아 있지만 내년부터 카드 사용도 없어진다고 한다.
14:00 원격 강의 회사 영상 스튜디오에서 서울시립대 학생들을 위한 원격 특강을 3D영상으로 촬영하여 실시 간으로 중계한다. 나는 각종 사진 자료와 데이터들을 가상텔레파시와 음성 명령, 손짓 등으 로 홀로그램 영상을 허공에 띄우면서 20년 후의 미래에 대해 강의하고 토론한다. 학생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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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이 아닌 입체 영상 홀로그램으로 마치 내가 앞에서 강의하는 것처럼 느끼며 수강하게 된다. 이 강의는 오늘 이후 인터넷에 무료로 오픈, 제공된다. 이런 방식의 무료 오픈 강의는 10년 전부터 일반화되었다. 우리나라 대학은 15년 전 40만으로 정원을 대폭 감축한 이래 계속 정원이 줄어 2010년에 비해 학생수가 절반이 됐고, 결국 전국 대학의 50%가 문을 닫았다.
16:00 서울로 이동
17:00 강남 KS 병원 서울로 이동하여 수술을 한 친구의 병문안을 하였다. 무릎이 좋지 않아 인공 관절을 하고 있 던 친구가 줄기세포 이식으로 무릎 연골 재생 수술을 하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수술은 로 봇이 하고 있다. 수술의 정확도가 높고 재발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로봇 수술은 10년 전부 터 이미 보편화됐다. 지금은 전 인구의 50% 이상이 로봇 수술로 기계 장치를 몸에 달고 사 는 기계 인간이다. 최근에는 유전자 연구, 줄기세포 연구가 완성되어 인체의 노화나 질병으 로 인한 기능 쇠퇴를 극복하고 건강한 노후 시대의 길을 열게 되었다.
18:00 에코도시 미르마의 집으로 무인 자동차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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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대한민국 앞의 내용이 현실화되는 시기는 언제일까? 50년? 100년? 아니다. 2030년부터 실현 되어 2040년까지 완전히 상용화될 내용들이다. 그중에는 당장 내년부터 실현 가능 한 내용도 있다. 위의 내용은 제롬 글렌, 테드 고든, 엘리자베스 플로레스큐, 박영숙 등의 저자가 유엔미래회의의 보고서를 통해 예측한 2030년 및 2040년의 내용을 회 사원의 하루 생활에 대입하여 묘사한 것이다. 지금의 급격한 기술 발전이라면 2030 년 이전에 실현될 수 있는 내용들도 많이 있다. 급격한 변화와 새로운 문맹족 100년 전 부산에서 천리 길의 서울에 오려면 걸어서는 20일, 말을 타면 5일 이상이 소요되었다. 물론 먹고 자는 시간을 계산하면 한 달 혹은 열흘이 걸렸을 것이다. 구 한말인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어 이동 시간을 하루로 단축한 이래 이제 KTX 는 3시간으로 단축시켰고, 비행기로는 30분이면 갈 수 있게 되었다. 100년이 안되는 시간에 이동 시간은 1/200으로 축소되었다. 가보지 않고 앉아서 국내는 물론 세계의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파악할 수 있게 됐으며, 도서관에 가지 않아도 필 요한 내용을 모두 검색할 수 있게 되었다. 순간적 거리 이동이 무협지에나 나오는 꿈 같은 얘기라고 여겼던 시절로 치면 축지법도 이런 축지법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 학 자들은 지금의 기술이면 2040년경에는 생명체의 순간 이동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기도 하다. 컴퓨터 학자 피터 페스티(Peter Pesti)와 위키피디아, 퓨처타임라인 등은 이전부터 진 행되어 온 예측과 실현의 속도를 추적하고 짐작하여 흥미롭고 실감나는 연대표를 만 들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렇게 빨리 컴퓨터가 스마트하게 변신하여 우리의 손 아귀에 들어오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이제 우리는 3D프린터, 나노기술, 뇌공 학, 웨어러블컴퓨터 등 지금은 낯설지만 10년 후에는 상용화되고 익숙해질 용어들을 어렵지 않게 들으며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급격한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실현 시간의 예측은 속도를 헤아리기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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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급격한 변화와 발전은 미래 예측 학자들조차 빗나간 짐작 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문자 가독의 의미로 문맹이 사라질 것으로 판단하였으 나 새로운 측면에서의 문맹, 즉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관련 복합 기능에 적응이 안 되 는 새로운 문맹족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미래의 메가트렌드 미래학자들은 향후 10년을 주도할 메가트렌드로 창조 국가, 모바일커머스, 소셜미 디어, 지속가능한 도시, 기후 변화, 로봇, 맞춤 약제, 재능 전쟁, 지능 향상, 빅데이터, 3D프린터, 양자 컴퓨터 등을 들고 있다. 이에 따라 이미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고령화 와 의료 보건 산업, 교육 변혁, 일자리 만들기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나노, 바이오, 인 포, 코그노, 로봇, 양자 컴퓨터 등의 기술에 대한 집중 투자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 니다. 모바일 시장이 헬스, 게임, 화상 회의, 지불 수단, 학습 등의 기능을 담게 되어 시장 규모가 확장되고, 다양한 SNS가 개인은 물론 사회 문화를 변화시켜 똑똑한 소 비자들을 양산함으로써 미래 예측은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2030년까지 사라지는 10가지 한편 1966년에 설립, 80개국 25,000명의 전문가를 회원으로 보유하여 정보를 공유 하고 있는 세계미래회의는 2030년까지 사라질 10가지를 선정하여 발표하였다. 하나. EU가 사라진다. 역사, 문화, 이해관계가 다르며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국가들 둘. 공교육과 교실, 교수, 교사가 사라진다. 공장 형태의 학교에서 행해지던 공교육이 쇠퇴하고 개인적 맞춤형 민간 교육이 세분화되어 등장한다. 강의는 대부분 인터넷강 의로 진행되고 전통적 의미의 강단형 PPT 강의 수업은 대부분 사라진다. 기업체가 요구하는 맞춤형 인재 양성이 요구되어 일반적인 졸업장보다는 기술 역량 인증서가 취직에 더 큰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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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연합은 그 한계를 보이고 몰락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셋. 직장과 팀워크, 기업 이사회가 사라진다. 미래학자들은 2030년까지 20억 개의 일 자리가 없어지며 이는 사물 인터넷, 클라우드, 첨단 로봇, 무인 자동차, 차세대 유전 자 지도, 3D프린터, 석유 가스 탐사 신기술, 신재생 에너지 등의 12가지 신기술의 보 급에서 기인한다. 정기 근로자를 사무실에서 몰아내고 파트타임 근로자로 대체하면 서 팀워크가 사라지게 된다. 결국 근로자가 필요없는 1인 기업이 크게 늘어나는 것으 로 예측되고 있다. 넷. 3천 개의 언어와 문화가 사라진다. 인체 착용 컴퓨터의 출현은 언어의 소멸을 가속 화시키고 경제 이민 장벽이 소멸되고, 종교적 편견이 사라지거나 일부는 종교 자체가 소멸될 것으로 보인다. 음성 인식기, 통번역기기의 보급이 80%를 넘게 되면서 현재 6,000개 언어 중 1억 미만 인구의 사용 언어는 소멸되고 3,000개만 남을 것이다. 다섯. 의사와 병원, 손 수술이 사라진다. 자가 진단 의료 기술의 발달로 스마트폰과 클 라우드컴퓨팅에 연결된 센서로 혈액, 심전도, 호흡, 맥박 등을 체크하고 심장마비와 뇌졸중 전조를 진단함으로써 의사와 환자가 줄어들고 로봇이 수술을 대신하게 된다. 여섯. 종이가 사라진다. 책은 전자책으로 대체되고 현금과 카드는 전자 지불 시스템 완성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신문, 잡지 역시 소멸될 것이며 청구서와 홍보물을 제 외하고 편지와 우체통은 사라질 것으로 관측된다. 일곱. 익명성과 기다림, 사고 능력이 사라진다. 소셜네트워크 속에서의 익명성은 사 물 인터넷의 실현으로 기다림없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모든 사용 기록이 남게 되면서 익명의 삶은 불가능하게 된다. 미래에는 사물 인터넷, 웨어러블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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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 이식된 지식 도구들이 통합데이터마이닝 및 통계 분석 등을 통해 최선의 결정 을 해 주면서 인간의 자유 의지가 아닌 정보 판단 프로그램에 의지하게 된다. 이에 따라 터프츠 대학의 리사 구얼리티 박사는 미래 시대 사람들은 심사숙고하는 능력 을 잃어 버릴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여덟. 저녁 뉴스, 컴퓨터, 도로 표지판이 사라진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모든 뉴스는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있기 때문에 뉴스의 기본 채널은 소셜네트워크가 될 것이다. 또한 GPS기능이 차량 자체에 내장되어 사물 컴퓨터의 일부 기능으로 들어와 양방 향 통신 기능이 가능하게 되면서 무인 자동차 기술로 발전하게 되고 그 영향으로 도 로 표지판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폴 사포는 컴퓨터는 물론 스마트폰까지 소멸할 것 으로 예측하여 우리를 놀라게 한 바 있다. 데스크탑, 넷북, 테블릿 PC, 스마트폰으로 이어지는 컴퓨터의 진화와 소멸은 음성 인식 기능의 활성화로 스크린이 불필요해지 며, 결국 시계 형태나 옷의 형태로 몸에 착용하거나 인체에 이식하는 형식으로 진화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홉. 절도와 배심원이 사라진다. 향상된 보안 시스템과 사물 인터넷의 보급으로 거 의 모든 사물에 센서가 부착됨으로써 도난되더라도 추적 당하고 장물로 매매가 어 려워지게 되어 도둑이 소멸된다. 범죄 검증 기술의 발달로 재판관의 개인적 판단이 줄어들어 정확하고 편견 없는 판단이 내려지게 될 것이다. 열. 현재의 판매 및 유통 형태가 사라진다. 미래에는 혁신적인 저비용 유통 및 마케
와이드 COLUMN
팅으로 새로운 판매 채널이 발달하게 될 것이다. 오프라인 매장은 홍보 전시 기능을 담당하고 온라인 쇼핑몰과 같은 인터넷 유통으로 주로 판매가 이루어질 것이다. 아 울러 증강현실 기술로 데모숍도 집으로까지 연결이 가능해지고 3D프린터의 보급으 로 디자인과 재료만 구입하여 직접 제조할 수도 있게 된다. 미래의 건축 그렇다면, 이러한 2030, 2040 미래 사회의 건축적 변화는 어떤 것일까? 건축이 느리 며 보수적인 분야라 하더라도 사회상의 변화를 빨리 수용해야 하는 역할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2030년 미래의 건축 산업은 신축 물량의 감소로 침체가 계 속될 것이다. 그러나 주거는 1인 가구의 급격한 증가로 스마트한 기능의 소형 주거 가 대량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공급될 것이며, 나노튜브같은 신소재의 개발과 사 용으로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대기업들은 정규 근로자를 축소하고 시간 제 근로자를 채용하면서 사옥 기능이 축소될 전망이다. 즉 공실이 많아짐으로써 사 옥을 통폐합하고 새로운 용도로 리노베이션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학교 교육의 변화로 공장 형태의 학교가 거의 사라지게 되어 학교 건물 신축은 드물 게 될 것이다. 따라서 향후 10년간 도심 재생 차원의 복합 개발을 제외하고는 신축 건물의 설계 발주는 계속 줄어들게 될 것이며, 대부분 개보수 정도의 작은 건축 공 사가 주류를 이룰 것이다. 건축 공사는 건축 전문 로봇의 투입으로 대부분 공사를 로봇이 대신하게 됨으로써 공기 단축, 시공 정확도 등은 향상될 것이다. 따라서 2030년에는 현장의 인부가 대 부분 사라질 것이다. 건축 설계 납품은 종이가 아닌 디지털 자료로만 하게 되고 현 장의 기술자들 역시 종이 도면 없이 전자 도면이나 홀로그램으로 협의를 하고 시공 하게 될 것이다. 건물의 성능은 신재생 에너지를 사용하여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절 감하게 된다. 콘크리트와 철골 대신 나노튜브를 사용함으로써 화재, 방청, 무게, 변 형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등, 문제점이 크게 개선될 것이다. 절수 시스템으로 물이 없는 화장실을 도입하고 벽과 창호의 단열 성능은 신소재 사용으로 크게 향상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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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이다. 사물 인터넷 보급과 나노봇 기술인 클레이트로닉스의 개발로 물질을 자유 자재로 재구성하는 소비 제품과 제조업 혁명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아울러 건물의 모든 시설은 사물 컴퓨터화됨으로써 에너지 절약 등 유지 관리에 있어서도 획기적 인 시스템으로 역할을 할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은 친환경, 에너지, 기계 비용 등에 대 한 의무 규정으로 건축 비용의 급격한 상승을 초래할 것이며, 따라서 신축은 매우 어려워져질 것이다. 영화처럼 영화 <전격Z작전>의 무인 자동차, <스타트렉>의 순간이동과 양자 컴퓨터, <스타워즈> 의 홀로그램을 기억하는가? 이후에도 영화는 <토탈리콜>의 기억 조작, <터미네이터>의 액체 금속, <마이너리티리포트>의 생체 인식 기술, <엑스맨>의 텔레파시, <소스코드>의 뇌와 컴퓨터의 융합, <이퀄리브리엄>의 정신 질환 통제와 치료 등으로 진화하였다. 이 들 영화의 내용은 상상과 공상이 아니라 실현이 예견되는 과학으로 우리 앞에 성큼 다 가왔고, 2030년까지 실용화가 가능한 기술들이다. 우리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 은 모두 이루어진다는 말이 동시대에 진행형으로 증명되는 세상에 있다. 지금까지 미 국은 다른 나라보다 앞선 미래 예측으로 최강대국의 자리를 유지해 왔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니다. 이제 인터넷을 통한 정보 공유로 미래 예측은 전 세계적으로 폭넓게 공유되 었고, 최강대국의 위치도 머지않아 중국과 인도에 내놓게 될 것이 확실하다. 미래 예측 과 대응은 기업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 우리에게는 더욱 더 그러하다. 우리는
와이드 COLUMN
준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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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이종건의 COMPASS 35
인문학(적) 건축? 건축 인문학?
이종건의 COMPASS 35
이종건 본지 고문, 경기대학교 교수
인문학 열풍의 이유
Issue
“인문학에 대한 열풍이 가실 줄 모른다....지금 왜 인문학에 대한 갈망이 그렇게 강 해졌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한마디로 지금처럼 속물이지 않을 때의 지성과 감성을 안타깝게 그리워하는 것, 달리 말한다면 계속 속물로 타락하는 것에
21 와이드 COLUMN | 이충기
미래 예측
28 이종건의 COMPASS 35
대한 공포가 아니라면, 30대에서부터 50대까지의 내면을 지배하는 인문학 열풍은
전혀 이해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인문학 아이돌 스타 강신주가 쓴 글
32 전진삼의 PARA-DOXA 07
의 일부다. 철학자치고 사태의 진단이 참 낭만적이고 옹색하다. 인문학이 열풍의 수준까지 이 르게 된 데에는, 권력의 힘이 적지 않은, 아니 어쩌면 결정적이라 해야 할 역할을 했 기 때문인데, 언급조차 없다. 구체적으로 인문학 진흥이 창조 경제와 문화 융성의 핵심이라고 대통령이 강조한 것은, 현실적으로 결코 예삿일일 수 없기 때문이다(필 자가 얼마 전 쓴 한 강연회 원고는 이렇게 시작되는데, ‘인문학’이라는 말도 예외가 아니다: ‘창조경제’ 혹은 ‘융합’이라는 말만 접하면, 나는 현기증과 동시에 역겨움을 느낀다. 정부와 대학과 연구소 등 거의 모든 제도 속에 자리잡아 시시때때로 출현하 고, 자신의 고유한 뜻과 영역에 넘쳐, 마치 오직 범람하기 위해 범람하는 포로노물 처럼, 돈(주로 국민의 혈세)의 흐름을 타고 타 영역들을 무절제하게 침범하기 때문 이다. 같은 것이 도처에서 지나치게 빈번하게 출몰하고, 분수를 잃고 적재적소의 사 리를 망각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물을 다스리는 지혜 곧 격물치지가 실종된 소 치인데, ‘그것’이 새로운 세상을 여는 확실한 열쇠라는 정치권력의 착각/환상이 어 떤 무엇보다 탓이 크다). 내가 생각하는 또 다른 큰 이유는, 영화 관객 천만 돌파 현 상과 정확히 같은 것인데, 우리 사회에 깊이 잠식한 왕따/소외 불안 심리다. 수십 년 지속되어 온 이상 과밀 경쟁 상황에서 ‘남 보기에 그럴 듯하게 보이는’ 인간으로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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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건축? 건축 인문학?
문제도 기회도 이 땅에 있다
: 한국 제1의 건축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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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규
Wide Issue | 와이드 이슈
아내기 위해, 거의 모든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사회에 편입되려 애쓴다. 그런데 유교 와 군대 문화가 깊이 침윤된 수직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적어도 ‘그 들’(they)이 아는 것을 나도 알고, 그들이 하는 것을 나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홀로/달리 생각하고 홀로/달리 움직이는 줏대 있는 삶은, 특별한 직능이거 나 직업에 속하지 않고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욕망 훈련 부족도 큰 탓 이라 여긴다. 사회 참여, 출세, 자아실현 등의 욕구는 오직 항차의 자식들의 삶에 건 채, 마치 등에 잔뜩 짐을 진 채 가파른 산길 오르듯, 그래서 주변의 꽃들과 나무들 에 무심한 채 그저 다음 발 옮길 곳에만 온 신경을 세우듯, 가난을 뚫고 살아온 아버 지 세대, 그리고 마치 불로소득인양 찾아온 2만 불 시대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 실업이 사회 현상이 된 자아실현 기회가 애초부터 버거운 자식 세대, 이들은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응시하는 법도, 찾아나서는 법도, 배울 여유도, 기회도 부여받지 못 했다. 그러니 중심 없는 영혼은, 매체 속에 도드라지는 소수의 강력한 말과 행동 속 으로 빨려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각에서 보면 인문학 열풍은 필사적으로 ‘그들’이 되고자 하는 소외 공포의 발로일 뿐, 거기에 속물 타락 공포 따위는 추호도 없다. 인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곳곳에서 횡행하는 작금의 행태들과 거동들은 인문학 외양만 걸친, 그래서 인문학이라는 이름의 대중 마사지로서 그 자체가 이미 충분히 속물적 이기 때문이다(인문학의 요체인 철학은, 무엇보다도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해 철저히 비판할 수 있는 근원적 물음의 탐구로서 깊은 사색과 오랜 독서가 기본이다).
언젠가 건축이 인문학에 다가가 제 팔을 끼우는 ‘이상한’ 장면을 엿봤다. ‘인문학 (적) 건축’이라는 말은 ‘예술(적)인 회화’나 ‘미학(적)인 조각’이라는 말만큼이나 우 스꽝스럽다. ‘인문학(적) 건축’은 ‘건축’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구체적으로 ‘인문 학’이라는 용어를 굳이 써대며 건축을 풀어내는 희한한 사람들의 말과 글에는, ‘인 문학’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는 풀어낼 수 없는 모종의 무엇이 있는가? ‘인문학’이라
이종건의 COMPASS 35
인문학(적) 건축과 건축은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는 말로써만 말할 수 있는 건축적인 무엇이 있는가? 확실히 답하건대, 없다. 건축에 애써 접붙이 시키려 드는 ‘인문학’이라는 말은, 내 눈에는 작부의 화장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심지어 한발 더 나아가, ‘건축은 인문학’이라고 주창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문학만 공부하면 건축은 더 공부할 게 없다는 말인가? 주지하다 시피 건축은 여러 지식들의 통합체다. 지내력을 비롯한 역학에 대한 개념도 제대로 잡혀 있어야 하고, 재료의 물성도 알아야 하고(그래서 공학이기도 하다), 특히 척도 와 구축성의 감각은 체험이 아니고서는 얻을 수 없는 몸 지식이다(그래서 솜씨이기 도 하다). 건축은 그뿐 아니라, 인체 공학, 보건학, 경제/경영학이기도 한데, 이런 식 의 전개는 대학 새내기에게나 할 짓이니, 그만 접자. 다만 인문학과 건축의 억지 커 플링은 지구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굳이 방방곡곡 이 잡듯 뒤지면, 매사가 그렇듯, 어쩌면 한줌쯤 있을지도 모를) 참으로 희한한 장면이라는 점만 지적하자. 때론 인문학, 때론 공학 인문학과 건축의 이상한 억지 만남은, 한두 번은 볼 만했다. 서너 번쯤은 참을 만했 다. 그 후로는 참기도 힘들어 애써 외면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도가 지나쳐도 한참 을 지나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구역질이 날 지경에 이르렀다. 혹시 내가 지나 치게 민감한 것은 아닌지 역겨움의 뿌리를 살폈다. 앞서 언급한 내력과 그리 다르 지 않았다. 콩고물 좀 얻어먹겠다고, 간도 쓸개도 다 빼놓고, ‘있는 놈’에게, 센 놈에 게 들러붙는 꼬락서니가 비루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측은지심도 생겼다.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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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 배고팠으면, 얼마나 홀대 받았으면, 서러웠으면, 저리 할꼬 싶었다. 생존을 위 해서라면 몸이 아니라 영혼인들 못 팔겠는가? 순결(남성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이, 영혼(정신과 달리, 엄밀한 규정조차 불가능한 상상적 존재)이, 생명(순결과 영혼의 터)보다 소중하겠는가? 건축업자라는 말이 여전히 자연스럽듯, 우리 사회는 건축가 를 제대로 인식하지도, 그래서 정당하게 대접하지도 않았으니(서울 신청사 기공식 에 등장한 유걸 선생을 본 사람은 생생히 느꼈을 것이다), 가히 그럴 만도 할 일이 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는 누구인지’를 좀더 정확히 알려 나에 대한 오해를, 그로 인 해 입는 나의 불이익을 좀 덜어 볼 만할 일이다. 권불십년이라 했듯 열풍은, 특히 이 땅의 열풍은 몇 년 가는 법이 없다. 그러니 좀 참으면 될 일이긴 하다. 그렇지만 그만큼 당장의 역겨움을 마냥 누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지식인은 적어도 자신이 아는 바의 진실은 알려야 하는 책 무를 스스로 진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인문학이라는 말로 건축의 사 회적, 문화적 위상을 올리고자 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연구비를 위시한 각종 이 권이 더 유리하다는 이유나 여타 지극히 밥그릇 지키기 일환으로, ‘공학에 부속된 건축학’의 현실을 도외시하는, 대다수 학자들의 이중 잣대 처사는, 한 혀 두 말은, 도 대체 어떻게 생각할까. 공과대학 건축학과에 다니는 자식을 둔 부모는, 그리고 그 집안을 아는 사람들은, 건축이 인문학이라는 말을 술사의 책동쯤으로 듣지 않겠는 가? 게다가 시류와 유행에 반복적으로 영합함으로써 (자신뿐 아니라 그 장단에 춤
이종건의 COMPASS 35
추는 뭇 중심 없는 이들의) 소중한 생의 에너지가 오직 외양에 쏠림으로써, 그로 인 해 내면이 성장하지 못하는 문제는 또 어쩔 텐가?(젱크스의 포스트모더니즘에 어이 없이 휩쓸렸던 선배들을 생생히 기억한다.) 건축 인문학이 조선 시대의 문인 정신과 맞닿는 경우 모든 이의 ‘인문학’ 행각이 딱히 구걸만은 아닐 것이다(자기착각일 수도 있는데, 이 것은 다룰 만한 가치가 없으니 건너뛰자). 더러는 음지에 머문 자의 반동의 몸짓이 아니라 모종의 통찰에서 비롯된 정직한 소신의 발언일 가능성도 상당하다. 건축 인 문학 사태는, 이럴 경우 자못 심각해진다. (서구)세상에서 실행되어 온 바로서의 건 축(아름다움과 쓸모와 튼튼함 등 여러 차원의 문제들을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의 질 서로 통합하여 산출하는 작업)과 사뭇 다른, 그래서 독자적인 건축을 하겠다는 선전 포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은 조선 시대 문인 곧 지식인 정신과 맞닿는다. 조선 시대 문인에게 그림은, 밥벌이나 입신양명의 방편이 아니라 여흥으로 자신의 심중이나 사상을 표현하는 여기(餘技)의 대상이다. 그림을 직업으로 삼지 않는 까 닭에 그들의 그림 곧 문인화는, 서로 잘 아는 벗들이나 선생이나 제자 등 사이에서 주고받고 감상될 뿐 결코 팔거나 사거나 하는 법이 없다. 이러한 여기의 특성은 문 인화를 자칫 아마추어 수준에 붙박게 할 경향을 띤다. 게다가 형사(形似) 곧 사물의 외형 재현에 치중하는, 직업 화공들의 사실적인 공필화(工筆畵)에 반해, 사의(寫意) 곧 사물의 내적인 면의 표현을 추구하는 문인이 그린 그림들은 수묵과 담채를 주로 쓰는 까닭에 대개 간결하고 치졸해서 그 경향을 보강한다. 그런데 문인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러한 회화적 특성은, 서툰 기교 탓이 아니라 기교의 의도적 회피 때문 인데(심지어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처럼 필력이 도의 경지에 이르러도 치졸한 형상 이 기교를 지운다. 노자는 그것을 일러 대교약졸이라 했다), 그것은 그림에 대한 문 인들 특유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조선 시대의 핵심 지식인이었던 그들은 인간과 자 연, 삶과 세상 등에 대한 섭리를 깨닫지 않고서는, 그리하여 인격과 교양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서는, 높은 격조가 우러나는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믿었다. 학예(學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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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치를 추구한 그들은 더 높은 세계, 더 큰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정진했는데, 문인 화는 그것이 그림으로 드러나는 단 하나의 징표였을 뿐이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 건축을 인문학에 한정시키려는 몸짓은, 이 사태를 심각하게 접근하면, 자본의 시녀 로 전락한 작금의 건축적 상황을 생각컨대 무척 야심찬 기획이 아닐 수 없다. 조선 시대 문인 정신에 뿌리를 잇는다고 해서 여기(餘技)와 무전(無錢) 행위 따위를 따 져 묻는 것은 온당치 않다(세상이 이미 달라졌으니, 그래서 그 때의 지식인과 오늘 날의 지식인이 사는 삶의 형식이 다르니 말이다). 정작 따져 봐야 할 것은, 다시금 반복컨대 이것이다. 인문학(적)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그래서 만들어 내는 건축은, 지금 우리의 삶에 어떤 다른 가치를 생산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가치는, 건 축이라는 이름으로는 생산할 수 없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없거든, 이제 인 문학이라는 말 그만 쓰자.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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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삼의 PARA-DOXA 07
문제도 기회도 이 땅에 있다 : 한국 제1의 건축 전문 홍보 대행사를 향한 첫 걸음
전진삼의 PARA-DOXA 07
김명규 마실 대표, 본지 건축저널리즘스쿨 4기 수료
전진삼 注: 젊은이들의 도전 의지만큼 소중한 것이 있을까. 한국 제1의 건축 전문
Issue
홍보 대행사를 꿈꾸는 마실 김명규 대표와는 지난해 1년 와이드AR 저널리즘스쿨 4기 교육을 진행하며 만났다. 수강생인 그는 학생의 신분으로서 이미 사업체의 대 표를 역임하고 있었다. 그에게 저널리즘스쿨은 건축 홍보의 한 축을 감당하는 저널 의 기능을 이해하고, 자신의 사업체와 <와이드AR>의 협력 구조를 꾀하기 위한 준 비 기간이었던 셈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창조 관광 기업의 수혜자로 현실화하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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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예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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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건축? 건축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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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낸 그가 마침내 홍보 책자를 들고 편집실을 찾아왔다. 한국
문제도 기회도 이 땅에 있다
: 한국 제1의 건축 전문
건축의 해외 홍보를 사명으로 하는 마실은 정확한 정보의 구축, 데이터의 체계적 관
홍보 대행사를 향한 첫 걸음
김명규
리, 저작권의 활용과 보호 등을 기치로 내걸고 결코 만만치 않은 건축 홍보 시장에 등장한 것이다. 본지는 마실의 행보에 응원을 보내며, 현실적 문제로 인해 건축가 자신의 작업에 대한 국내외 홍보를 2선으로 밀어놓은 분들에게 이들의 정체를 소개 코자 한다. 해외에서 한국 건축의 인지도는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한 대답은 ‘국내에서 해외에 한국 건축을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와 긴밀히 연결된다. 2008년 건 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국내 건축 문화의 해외 홍보 방안 연구-출판・전시 분야를 중심으로’(조준배, 엄운진, 임현성 공동 연구)를 주제로 발표를 하였다. 이 연구에 서는 한국 건축 문화의 해외 홍보 활동 실태를 설명하고, 해외 홍보 사업의 추진 방 안을 제시하였다. 당시 이들이 제기한 해외 홍보 활동의 실태를 보면 상상 이상으로 미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6년이 지난 현재 한국 건축의 해외 홍보 활동에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으며, 추진 방안에 대한 성과는 있었을까? 결과를 먼저 말하자면,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 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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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 이보후퇴라고나 할까. 최근 이러한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극복하고자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보전진 하였지만, 실질적인 결과가 없어 이 보후퇴하게 된 격이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핵심은 정부의 지원과 정 책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건축계 내에서 한국 건축 해외 홍보 활동을 정부의 정책과 지원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건축계 내부에서의 자구적 움직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 건축을 해외에 알리는 일은 당장은 정부 정책이 활력소 역할을 하겠지만 지속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건축계 내부에서의 적극적인 활동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정부 지원에 의존한 해외 건축 홍보 필자는 석사 논문을 통해 국내 건축가의 해외 단체 전시 출품작에 대한 연구를 수행 한 바 있다. 이는 건축가들의 해외 활동의 유형인 전시, 출판, 강연, 공모전 수상, 웹 기반 홍보, 교류 사업 등의 여러 방법 중에서 전시, 그중에서도 단체 전시에 국한시 킨 극히 일부분의 해외 활동에 대한 연구라는 검증 대상의 물리적 한계를 안고 있었 지만, 분명한 것은 이 연구를 통해서 국내 건축가의 작품이 해외에서 충분히 경쟁력 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의 건축가가 2000년 이후 해외에 나가 전시한 횟수는 총 42건으로 이들 전시 는 대부분 2003년 이후의 기록이다. 2002년 이전에는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 참 외의 관심이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건축 분야에서도 적극적인 해외 홍보 붐이 일어 나기 시작하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 문예진흥기금의 문화 예술 국제 교류 지원 내역을 살 펴보면 총액 기준으로 2003년 대비 2006년에 무려 3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 났다. 이때 건축전시도 2003년 1회에서 2004년에 3회, 2006년 8회, 2008년 11회 를 개최할 정도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국내 경제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문예진흥기금도 2007년에 비해 2008년 이후에는 두 배
전진삼의 PARA-DOXA 07
여하는 정도였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과 한류열풍에 의해 한국 문화에 대한 해
이상 줄어들게 된다. 그와 함께 해외 전시 횟수도 현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하여 결국 2010년 3회, 2011년 2회, 2012년 1회로 2002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건축가들의 노력과 의지는 여전했지만 정부의 지원이 끊기게 되자 자연스럽게 해외 전시 활동도 줄어들게 된 것이다. 예상 밖의 성공적 해외 전시의 사례 이 기간 동안 개최된 전시들 중 일부는 해외 전시회에 대한 경험과 건축 전문 전시 큐레이터가 개입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우수한 전시가 많이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주 목되었다. 일부 전시는 현지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일회성 전시로 개최되었 던 전시가 순회전시로 바뀐 사례도 있는데, 결과적으로 2000년 이후 국내 건축가 2 명 이상이 참가한 여덟 번의 해외 단체 전시의 경우 장소를 옮겨 다니며 12개국, 16 개 도시, 19개 갤러리에서 전시를 가지게 된다. 순회전시는 특히 유럽에서 일어나는 데, 유럽은 문화적으로 선진화된 국가들이 인접해 있어 여러 나라를 돌며 지속적으 로 전시를 가지기에 좋은 조건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들 해외 단체 전시는 저마다 특색을 가지고 개최되었다. 분류해 보면 건축가 자신 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전시와 한국의 건축 문화를 알리기 위한 전시, 특정 프로젝트를 알리기 위한 전시, 초청을 통한 전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2003년에 열린 <Structuring Emptiness>전과 2010년에 열린 <New Trajectori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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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vergent Flux, Korea>전은 각각 펜실베이니아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한국 건 축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 결과를 전시하게 된 경우이다. 2003년 전시에는 승효상, 민현식이 초청되어 한국의 전통적 요소인 여백, 마당 등의 공간의 현대적 해석에 초 점을 맞추었다면, 2010년 전시에는 한국 건축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춰서 한옥에 대 한 재해석뿐만 아니라 다른 요소들도 소개하면서 29명의 건축가, 28개의 건축 작품 을 통해 한국 현대 건축의 다양성을 보여 주었다. 2005년에 열린 <PAJU BOOK CITY>전은 독일, 베를린 Aedes전시관에서 건축가 승효상 개인 전시와 함께 각각 East, West관에 전시를 가지게 되면서 파주출판도시 와 그에 포함된 건축물들을 소개하였다. 이후 파주출판도시 전시는 스페인 바르셀 로나, 오스트리아 그라츠, 인수부르크를 돌며 순회전시를 하게 되면서 총 113일간 전시를 가지게 된다. 200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MEGACITY NETWORK : Contemporary Korean Architecture>전은 독일 베를린, 에스토니아 탈린, 스페인 바르셀로나 를 거쳐 국내 귀국전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하였으며, 문화체육관광 부의 지속적 후원을 통해 2010년 <Emerging Voices in Contemporary Korean Architecture>전과 2011년 <New Horizon in Korean Architecture>전이 후속 전 시로 중국 상하이와 일본 요코하마에서 개최되었다. <MEGACITY NETWORK>
전진삼의 PARA-DOXA 07
전이 국내의 다양한 건축 성향을 보여주기 위해 아틀리에부터 대형 건축사무소의 완공작들을 보여 주었다면 2010년, 2011년 두 번의 후속 전시에서는 한국의 젊은 건축가를 중심으로 계획안을 포함해 완공작과 건축론 등을 적절히 엮어 전시를 개 최하였다. 이 전시가 계기가 되어 2012년엔 한일현대건축교류전으로 일본 건축가 와 함께 서울 토탈미술관에서 <같은 집 : 다른 집> 전시가 개최되었다. 2008년에 개최된 <S(e)OUL SCAPE>전은 <PAJU BOOK CITY>전 당시 큐레이 터를 담당하였던 건축가 김영준과 함께 동숭동을 기반으로 건축사 사무소를 운영하 던 정기용, 조성룡, 민현식, 승효상, 이종호를 포함하여 여섯 명의 건축가가 전시를 개최하였다. 이 전시는 이탈리아 피렌체를 시작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 네덜란드 로테르담, 슬로베니아 마리보르, 벨기에 브뤼셀, 스페인 마드리드를 돌며 5개국 6개 도시에 전시 기간만 200일로 장기간 순회전시를 개최하였다. 현지 강연, 출판으로 이어진 전시의 효과 전시회는 단순히 전시에서 그치지 않고 출판, 강연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단순 전시회 도록이 아닌 단행본으로 정식 출판되기도 하였다. 2007년 개최되어 2009년까지 168일간 순회 전시를 한 <MEGACITY NETWORK : Contemporary Korean Architecture>전은 영어와 독일어로 된 책을 출판하였으며, 2010년 개최 된 <New Trajectories : Convergent Flux, Korea>전은 영어로 된 책을 출판하였다. 2011년 개최된 <New Horizon in Korean Architecture>전은 영어와 한국어 병기 로 책을 출판하였다. 전시와 연계되어 건축가가 직접 현지에서 방문객, 현지 언론, 건축 관련 종사자들에 게 강연하면서 현지와 직접적인 소통을 하게 된 점도 수확이었다. 그 결과 한국 건 축이 해외에 홍보됨과 동시에 한국 건축 문화의 경쟁력 또한 급부상하는 결과를 낳 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한 번의 전시가 미치는 영향은 일회적인 게 아니라 지속적 으로 강력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앞에서 거론했지만 이들 주요한 해외 전시 대부 분의 경우 정부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는 점에서 민간 차원에서의 지속적인 한국 건 축 해외 홍보를 위한 장치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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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 와이드 이슈
마실, 한국 건축의 해외 홍보대행사 이에 마실은 온라인 매체를 통해 한국 건축을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홍보하기 위 해 기획·설립된 한국 건축의 해외 홍보 대행사를 자임한다. 처음에 마실은 국내외 관광객들의 국내 건축 여행 시 방문하는 동네의 배경과 건축 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한 효과적인 어플리케이션 작업을 기획하며 시작되 었다. 이 같은 내용으로 2013년 5월 한국관광공사의 창조관광기업으로 선정되면서 건축 여행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여행 경로는 흩어져 있는 점들을 하 나의 선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기본 개념은 명확했다고 자부했지만 막상 현실 세계 에서의 작업은 순탄치 못했다. 건축물 하나하나에 대한 정보가 손쉽게 모아지지 않 았던 것이다. 건축물에 대한 기본 자료는 물론, 사진 자료들을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모으기 시작했지만, 이내 한계가 드러났다. 결국 건축물 정보를 찾기 위해 국내 건 축물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들을 찾아보았지만, 거기서도 마땅한 정보를 찾을 수 가 없었다. 대한건축사협회나 한국건축가협회에서는 일부 건축 D/B를 가지고 있지만, 자유 로운 접근 및 가공이 불가능할 정도였고 내용적으로도 수준 이하의 자료가 대부분 이었다. 해외의 경우는 온라인을 통해 건축물의 기본 자료를 볼 수 있도록 되어 있 다. Archdaily, Architizer, MIMOA 등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건축물에 대한 정 보를 제공하고 각 회사의 어플리케이션의 기초 자료로 가공된다. 뿐만 아니라 타사 Trip 등에서 정보를 접근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홈페이지에는 한국의 건축물에 대 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건축물의 수는 다른 국가에 비해 현저하게 적다.(그림1) 또한 제공된 정보에는 많은 오류가 보였다. 위치 정보 기반의 어플리 케이션에서는 특정 지역에서 수십 개의 건축물이 등록되는 등 위치 정보 서비스 역 시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그림2) 해외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의 건 축물에 대한 정보를 얻는 사람들은 잘못된 정보를 접하게 되고, 해당 어플리케이션 을 사용하는 내국인들 역시도 잘못된 정보로 인해 오해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전진삼의 PARA-DOXA 07
의 FlipBoard, Google News Stand 등의 RSS기반이나 위치 정보를 활용한 Field
해외 유명 사이트와의 협력 체계 구축 해외 홍보의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출판과 전시가 있다. 부수적으로 행사, 강연, 건 축상 수상 등도 해외에 홍보하기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들은 효과가 입증된 방 1. 해외의 다른 도시들과 국내 건축물의 사이트 등록 건축물 숫자 비교
법일 수 있지만, 자금적인 문제로 인해 지속적으로 지원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최근엔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방법으로 홍보 활동을 하기 위해서 사무소별로 온라인 홍보 방법을 많이 택한다. 온라인의 경우 최근 네트워크의 발달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 기존 오프라인 잡지들도 온라인과 병행 하여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공간>지가 VMSpace를 개설하여 온라인과 오 프라인을 통해 소식과 기사를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과거 컴퓨터를 통해 인 터넷 접속이 가능했다면,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개인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이용하 여 더욱 활발하게 접근이 가능하다. 이로 인해 온라인의 활동이 오프라인에 비해 더
2. 해외 사이트에 서울시청에 등록된 42개의 건축물
욱 큰 효과를 갖고 있다. 따라서 마실은 해외 Archdaily, Architizer, MIMOA 등과 협력하여 한국 건축의 해외 홍보에 필요한 각종 절차를 편리하게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한다. 건축 전문 번역가가 번역 서비스를 하고, 편집 기자는 사진을 정리하며, 디자이너는 도면 을 그래픽화하는 작업을 돕는다. 생성·가공된 자료는 그때그때 해외 사이트에 업 로드될 뿐만 아니라 데이터 관리를 요청할 경우 건축가별 데이터 관리 서비스를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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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하려고 한다. 건축가별로 정리된 데이터들은 필요시 적재적소에 사용이 가능하 다. 모든 자료는 건축가의 최종 검토를 통해 이루어지고, 사용 목적에 맞게 사용되었 는지, 다른 곳에서 사용되어 저작권이 침해되지 않는지를 지속적으로 관리해 준다. 이러한 관리를 통해 건축가의 디자인 권리를 지킬 수 있다. 최신 데이터를 지속적으 로 유지하기 때문에 건축가의 개인 포트폴리오 출력용으로 활용도 가능하다. 매년 국내의 건축과 학생들과 건축 전문가 다수는 외국의 빼어난 유적과 현대 건축 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공간을 느끼기 위해 유럽으로, 미주로, 아시아로 여행을 떠 난다. 한편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 중에는 건축 전문가들도 부쩍 많아지고 있다. 그들 다수는 의례히 경복궁과 덕수궁, 창덕궁, 종묘를 보러 몰려다닌다. 그들의 발 길이 점차 이 땅의 주옥같은 근현대 건축으로 옮아가고 있다. 한국 건축가의 디자인 감각은 해외에서의 전시, 출판과 건축상 수상에서 보듯 매우 뛰어나다. 이제는 이를 정확하게 더 많이 알리기 위해 체계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마실은 그 첫발을 내딛으 려 한다. 이를 계기로 한국 제1의 건축 전문 홍보회사로서 이름을 알리고, 온라인을 넘어 출판, 전시, 강연 등의 오프라인으로 발전할 것을 염원한다. 마실로 인해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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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들의 해외 활동이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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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와이드 REPORT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 공모전 4
<방.방.곳.곳.> vs. <성북구의 어떤 집> 젊은 건축가, 도시 한옥과 대안적 주거 형식을 고민하다
‘한옥의 경계, 이 시대의 집합도시한옥’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설계 공모전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 4(Heritage Tomorrow Project 4)>의 수상작이 공개됐다. 서울시 성북구 동소문동2가 39~44, 56~60번지(총 11개 필지)를 대상지로 도시 한옥과 보편적 주거 형식에 대한 고민을 요구한 이번 공모전에서 1등 상(헤리티지 투모로우)은 이희 원+정은주 씨의 <방.방.곳.곳.>이, 2등 상(헤리티지 스피릿)은 윤진아 씨의 <성북구의 어떤 집>이 차지했으며, 이밖에도 4개 팀이 각각 헤리티지 챌린지 상을 수상했다. 본지 는 당선안들 중 도시 한옥의 존치 방식과 활용, 도시와의 맥락 등에서 차이를 보인 1등 안과 2등 안의 내용을 보다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도시 한옥과 대안적 주거 형식에 대한 젊은 건축가들의 생각을 엿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자료 제공/재단법인 아름지기
Report
37 와이드 REPORT
<방.방.곳.곳.> vs.
<성북구의 어떤 집>
젊은 건축가, 도시 한옥과
대안적 주거 형식을 고민하다
심사 총평
본질에 대한 탐구
92 와이드 EYE 1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
Itami Jun:
Architecture of the Wind
최우용
100 와이드 EYE 2
2014 아시아 건축도시연합
워크숍 참관기
ACAU Workshop
at University of Seoul
정평진
102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5
조명환 AMPHIBIOUS
107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6
박재영 문화의 유전자 전통 건축
112 사진 더하기 건축 16
이 시대의 이미지
The Images of our times
토마스 루프 II
Thomas ruff II
와이드 REPORT
김종규 심사위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건축가의 작업은 시간과 열정이 필요하고, 투자하는 시간만큼 작업을 통해 개인적으로 얻어 낼 수 있는 결과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아름지기 헤리티지 투모로우 현상 설계의 발제를 할 즈음, 학교에서 건축 수업을 마치고 새롭게 직업인으로서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이런 류의 현상 설계에서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은 무엇이고, 나를 포함한 이 시대 건축가들이 지향해야 할 건축의 방향은 무엇인지가 궁금했었다. 그것은 동시대의 너무나 많은 다양한 경향 속에서 우리의 젊은 세대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만들어 내고 있는 건축물들이 어떠한 가 치를 공유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물론 주어진 주제를 통해 이러한 보편성을 이해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되었지만, 적어도 고민의 초점이 어디에 맞추어져 있는가를 읽 어 볼 개연성은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래도 이번에 참여한 건축가들은 의미 없이 무리한 형태를 만들어 내는 모험을 하지 않았고, 또한 건축이 오브제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도시의 환경과 반응하는 상대적 관계 의 결과물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건축의 기본적인 요구에 충실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읽혀진다. 이러한 본질에 대한 탐구가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본질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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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발제문에서 보이는 이번 주제의 본질은 질문 그 자체에 있었다고 본다. 이는 이중의 의 미를 갖고 있는데, 첫째는 주제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개개인의 가치 부여와 관련된 것 으로 주어진 장소와 그 속에서 벌어져야 하는 생활의 보편적 기대치이다. 도시가 이루 어져 왔던 조건을 이해한다면 남겨진 도시 한옥과 다가구 형식이 혼재하는 상황은 새로 운 건축적 질서로 완벽히 치환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지속적인 진화가 이루어져 갈 것 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러한 시간 속에서 유지될 수 있는 삶의 정도를 볼 수 있어야 한 다. 그것은 화려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고 있음직한, 그러면서도 지속적인 변 화의 가능성을 보여 줄 수 있는 ‘시간의 건축’ 형식을 가져야 한다. 둘째는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새로움에 대한 욕구이다. 새로움이란 어마어마한 변 화를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며 우리의 작업이 관습에서 벗어나 그 경 계선을 조금이라도 넘어서려는 진정한 노력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건축의 진정 성이란 물리적인 것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관심에 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심사는 이러한 질문을 다루는 개개인의 가치와 태도가 건축 작업으로 정확 히 확인될 때 그 작업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진행되었다. 총평을 써 놓고 다시 한 번 스스로 생각해 보지만 내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한들 여 러분들이 고민해서 제시한 것 이상으로 만들어 낼 자신은 없다. 그만큼 많은 고민과 노
와이드 REPORT
력이 각각의 작업에 녹아 있으며 그것만으로도 이번 현상에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본 다. 참가해 주신 여러분께 고마움을 전한다.
딜레마적 현실과 상상력의 경계
박인석 초청 크리틱,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공모전 주제와 기획 의도는 그 자체로 딜레마다. 도시 한옥이 잔존하는 퇴락한 주거지 를 둘러싸고 이 사회가 고민하는 온갖 문제와 갈등을 날것으로 내던지고 있다. 도시 토 지가 요구하는 개발 밀도 문제(밀도의 경계), 한옥 보전 방식을 둘러싼 갈등(시간의 경 계), 외부 공간과의 관계라는 국면에서의 거주 양식상의 갈등(생활 방식의 경계), 그리 고 인구 구조 변화에 대한 주거 형식에서의 대응 필요성까지. 요약한다면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도시 토지의 개발 밀도 요구를 충족하며 보편적 주 거 형식으로 자리잡은 현실’에서 그것과는 다른 대안적 주거 형식의 제안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도시 한옥이라는 주거 유형에 대한 참조’와 ‘잔존 도시 한옥의 보전 방식에 대한 고민’을 요구 조건으로 덧붙인 것이다. 도시 한옥이 비록 도시의 밀도 요구에 적응하기 시작하며 생성된 주거 유형이라고는 하나 다세대/다가구 주택에 비해 턱없는 밀도 수준만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공모전이 제시하는 밀도, 참조, 보 전이라는 가치들은 동시에 성립하기 곤란한 문제다. 딜레마적 형국인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리를 둘러싼 모든 현실이 딜레마적이지 않은가. 어디에나 갈등하 는 가치들이 있기 마련이고 언제나 그 모두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마련 아닌가. 무릇 합 리적 해결안들이란 갈등 주체들을 절충하는 미봉책에 지나지 않기 마련 아니었던가. 혹 은 ‘현실성’이라는 이름 아래 한쪽 가치만을 편드는 일방적인 결정이 추진되기 마련 아 니었던가. 필요한 것은 오히려 딜레마적 현실의 전복을 요구하는 초현실적 상상력일 수 있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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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 잔존 한옥 주거지에 대한 ‘올바른’ 처방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개발 사업성, 혹은 현 실성이라는 관행적 가치와는 전혀 다른 가치를 거머잡으며 현실적 조건의 판도 자체를 바꾸어 버리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는 것 아닐까.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력이 현실과 만나는 지점은 바로 이러한 ‘조건 전복적’ 통로에서가 아닐까. 딜레마적 현실을 던지는 본 공모전이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런 ‘전복적 실천’이 아닐까. 본 공모전이 여느 공모전에 비해 가장 독특한 점은 심사위원장 1인이 관장하는 심사 방 식이다. ‘초청 크리틱’이라는 또 한 사람이 심사에 관여(?)하는 장치가 있긴 하지만 그 명칭의 어중간함이 말해 주듯이 심사는 전적으로 심사위원장의 몫일 뿐이다. 이번 심사 에서는 ‘초청 크리틱’ 역을 맡았던 본인이 심사 당일의 급작스런 개인 사정으로 심사에 ‘관여’조차 못했으니 더욱 그러하다. 어차피 ‘전복적 실천’은 개인의 몫이라는 점에서 본 공모전이 이러한 심사 방식을 택하 고 있는 것은 납득할 만한 일이다. 도시와 건축에 대한 젊은 건축가들의 새로운 태도를, 현실적 조건을 뛰어넘는 전복적 실천을 작품 형식으로 표명하기를 요청하는 데에 가장 적절한 형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헤리티지 투모로우 : 방.방.곳.곳.(이희원+정은주) 남쪽 필지 도시 한옥들 중 일부를 존치하여 공용 시설 공간으로 재구성하고 남은 대지 에 한옥 기본 모듈로 1인용 유니트와 3~4인용 유니트를 적층하여 충전함으로써 한옥이 내향적 마당 공간만을 외부 공간으로 남기는 전략으로 내부 공간 면적을 극대화하고 있 으며, 이를 통해 확보된 2층 데크면에서 한옥 지붕과 유니트 적층 매스가 병치된 거주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헤리티지 스피릿 :
와이드 REPORT
빚어내는 속성 보전 필요와 현실 프로그램적 요구에 절충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옥의
성북구의 어떤 집(윤진아) 대상지 전체를 재축하여 1층과 지하층에 주차장과 근린 생활 시설을 두고 그 상부에 주 거 공간을 한옥적 공간으로 계획한 안이다. 1층에는 공공에 열린 마당과 마루를 두어 골 목 동네에 대응하면서 한옥적 공간을 세심하게 재현한 상층부 동네로 이끌고 있다. 그 럼에도 도시 한옥의 가장 중요한 속성 중 하나인 개체(집)와 공공(골목)의 직접적 접속 을 잃어 버렸다는 약점이 온전히 극복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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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INTERVIEW
라 거주자들의 요구를 반영, 주거 환경의 개선을 위 한 건축적 고민과 제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역시 10년 가까이 서울에서 자취 생활을 해 왔 고, 1-2인 주거의 문제점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스스로 살고 싶은 집에 대한 그림 이기도 했습니다.
헤리티지 투모로우
방.방.곳.곳.
기존 도시 한옥을 선택적으로 존치시켰습니다. 그러
와이드 REPORT
한 결정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입까? 그리고 존치된 이희원+정은주
도시 한옥의 선택 기준은 무엇이었습니까?
이희원은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후, 미국
대지 내 소형 도시 한옥들은 1950~60년대의 서울의
뉴욕에 위치한 THE LIVING(더 리빙)에서 근무하
시대적 상황, 사회 구조적 요구가 반영된 주거 형태
였다. 2011년부터 서울에서 ‘Lifethings/삶것’이라
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가족 구성, 라이프스타일에는
는 조직의 팀장으로 재직 중이며, 핀란드 설계 공모
적합하지 않고, 또 그 때문에 기형적인 방식으로 변
(Selachius Museum), 파주작업실, 삼청동갤러리 등
형되고 낙후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집
의 건축물과 미국산호세에 ‘Idea Tree’ 등의 공공 예
합 도시 한옥이 가지고 있는 고즈넉한 골목길, 동네
술을 총괄하며 활동하고 있다. 건축가, DJ, VJ연합
의 풍경과 향수는 요즘의 삭막한 도시 주거 공간에
‘Project 123’(2013)에 참여하였으며, 서울시 공공시
숨통을 트여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
설물 디자인(2013) 동상 등을 수상하였다.
다. 또한 도시 한옥이 가진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탐
정은주는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였다.
구를 해 보고 싶기도 했고, 그런 실험들이 바탕이 되
졸업 후 건축사 사무소에서 실무를 쌓으며 기획부터
어야 도시 한옥의 지속 가능한 개발로 이어질 수 있
디자인, 섬세한 디테일과 시공의 엄격성을 기준 삼아
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두 사람은 2009~2012년 Exhibition Design and Theory Group ‘CHASM’, ‘Imago’, ‘진작’에 함께 참 여하였다. 또한 각자의 영역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건 축, 장소에 대한 감성, 도시와 환경에 대한 태도 등을 함께 이야기하고 배우는 것에 몰입하고 있다. 1-2인 주거 및 소형 가구의 제안은 대지 분석을 통한 결정으로 압니다. 대지의 현황과 함께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대지는 서울의 종로, 대학로 등 서울의 주요 도심지 와 여러 대학교에 인접해 있습니다. 따라서 젊은층
대상지 남서측 골목에서 바라본 풍경
의 1-2인 주거 및 소형 가구의 수요가 자연스럽게 발 생하는 지역일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비단 대상지 뿐만 아니라 좀더 넓게 서울이라는 도시, 그리고 오 늘날 도시의 주거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루어졌는데, 1-2인 가족의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그 에 따라 소형 아파트, 도시형 생활 주택(원룸) 등 1-2 인 주거의 공급 또한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지만, 소 통 공간의 부재, 열악한 주거 환경 등 적지 않은 문제 를 지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순히 1-2인 주거, 소형 주거의 수치적인 부족을 해소하기 위함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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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지 북동측 골목(시장입구)에서 바라본 풍경
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한옥과 1인 주거의 연결 고리를 찾는 과정에서 기존
반영한 한국의 주거 형태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이전
한옥을 선택적으로 존치, 철거했습니다. 한옥의 성격
에 가장 근원적인 주거 단위인 방에 대해서 생각해
을 공용 공간, 소통 공간으로 정의 내리면서, 다수의
보고자 했습니다.
주거 유니트가 한옥에 플러그-인 되는 방식으로 계 획을 시작했습니다. 공용 공간(한옥)과 각각의 사적
‘방’의 개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궁금
공간(주거 유니트) 간의 접점의 최대화 및 동선의 최
합니다.
소화, 공용 공간(한옥)과 사적 공간의 공간 구성 비율
우리는 도시 한옥, 아파트/다세대 주택, 소위 원룸으
을 고려할 때, 기존 도시 한옥 전체를 존치하는 것보
로 알려진 도시형 생활 주택의 방들이 가진 성격이
다는 선택적으로 존치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합리적
다르다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1950~60년대 가장 보
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존치된 도시 한옥의 선택 기준
편화된 주거 형태인 도시 한옥의 안방을 비롯한 방들
역시 공용 공간과 사적 주거 유니트의 밀도를 맞추려
은 취침, 식사, 가족의 단란, 접객, 생산 활동 및 여가
는 의도에 따른 것입니다.
활동 등 다양한 기능을 수용하는 다목적 공간으로서 공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사회 구조 및 가 족 구성원의 변화를 거치면서 아파트와 다세대 주택
개념을 설명해 주세요.
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아파트와 다세대 주택의 방
방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살거나 일을 하기 위하
의 배치와 공간 구성은 거의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데
여 벽 따위로 막아 만든 칸’입니다. 도시 한옥, 단독
거실과 주방, 식당이 분리되고, 각 방들의 기능이 뚜
주택, 아파트, 다세대 주택, 원룸 등 도시에 혼재된 다
렷하게 주어집니다. 도시 한옥의 다목적/다기능의 방
양한 주거 형태도 방과 방의 연결과 배치라는 공통분
이 거실, 식당, 부부의 방, 자녀 방, 침실, 서재 등으로
모를 가집니다. 결국 주거란 ‘방’의 다양한 방식의 집
분리되면서 각 방들은 공적인 기능이 약화되었고, 세
합체이며, 방은 주거의 최소 단위라 할 수 있습니다.
대 내 사적인 공간으로서의 방의 영역이 점차 확대되
우리는 도시 한옥에 대한 정의, 오늘날 한국 사회를
었습니다. 또한 1인 주거 형태의 방은 타인과의 소통
와이드 REPORT
전체적으로 ‘방’의 개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방’의
전체풍경
대상지 남측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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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인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대지 내 기존 도시 한옥을 유지하고, 이것을 1-2인 소 형 주거와 접합시키겠다는 원칙 안에서 우리가 제안 하고자 한 것은 한옥과 소형 주거, ‘각 방의 고유한 기 능의 회복’입니다.
‘방’의 재구성을 통한 새로운 ‘방’의 재구성을 통한 새로운 주거 주거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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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현황 개념1
변형되었고, 원래의 제 기능을 잃은 방들의 집합으로 인찍히고 말았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옥 자체만 을 리모델링하여 새로운 주거 형태를 제시하는 것은
도시와 주거의 연결고리로서의 ‘방’ 기존
제안
방 거실
거실
방
무의미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대신 한옥의 방들이 가 주거
도시
주거
도시
졌던 고유의 성격, 공적 영역으로서의 기능을 한옥에 부여하여 주거 내의 공용 공간, 소통의 공간, 여가 공
거실
방
도시
간으로 계획하고, 그 공간을 둘러싸는 사적 주거 영역 인 방(1~2인 주거 공간)을 배치하여 공적 공간과 사
와이드 REPORT
적 공간의 방들의 효율을 극대화시키고자 했습니다. 존치된 한옥과 더불어 새로 계획된 집에 대해 소개해
개념2
주세요. 배치 계획과 내외부 공간 구성 등이 궁금합 니다.
기본적으로 복층으로 계획된 유니트가 1층 한옥의
1층에서는 공용 공간, 소통 공간으로서의 한옥의 방-
공용 공간, 2층의 가로 공간과 만나는 단면적인 관계
거실, 식당, 주방, 서재, A/V룸, 손님방 등-들과 사적
가 재미있는 공간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단면
주거 공간으로서의 각 방들 간에 공간적 연계가 주로
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사적인 영역이 매개 공간이
이루어집니다. 총3개의 한옥을 품은 클러스터가 주
되기도 하고, 한옥의 안마당과 2층의 마당들은 물리
거를 이루고 있고 시장, 버스 정류장 등에 인접한 가
적 단절, 시선의 연결이 중첩되기도 합니다. 또, 2층
로변으로 근린 생활 시설 및 복지 시설을 배치했습
가로 공간을 걸으며 이웃 간의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
니다. 하나의 클러스터 내에서 개개인의 방이 주거의
질 수 있고, 한옥 지붕이 만드는 풍경을 색다른 관점
중심 공간인 한옥으로 연결되도록 계획했습니다. 각
에서 경험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각의 주거 공간에서 한옥과의 접점을 최대로 하고, 다양한 주거 방식을 포용할 수 있도록 각 주거 유니
도시(주변 환경)와 이 주거군의 맥락을 말씀해 주세요.
트를 2개 층에서 3개층으로 수직 확장, 변형하여 배
대상지에 처음 갔을 때, 도시 한옥의 집합으로 이루
치했습니다. 또, 포켓 스페이스를 통해 각 방의 채광
어진 가로 공간의 스케일이 아주 좋았습니다. 어릴
문제를 해결하고 개별적인 외부 공간을 확보하도록
적 누구나 한번쯤 친구들과 뛰어놀던 골목이 그대로
했습니다.
남아 있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그 기억 속의 풍경을
2층에는 주거 단지 전체를 아우르는 가로 공간을 만
해치지 않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목표이기도
들고 각 유니트에서 직접 출입하게끔 계획하여 거주
했습니다. 또한 그 길이 수직적으로 연장되어 2층 가
자 개개인과 도시 공간이 직접 맞닿을 수 있게 계획
로 공간까지 연결되고 각자의 집 앞에서도 골목의 풍
했습니다.
경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했습니다. 기존의 한옥과 다 세대 주택 간의 대립에서 오는 뚜렷한 경계를 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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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공을 들인 공간, 재미있는 공간이 있다면 소
고, 각 가로에 면한 도시적 스케일과도 조화를 이룰
개해 주세요.
수 있도록 입면을 계획했습니다. 또 한옥 골목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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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치면서 그 성격은 다세대 주택과 별반 다르지 않게 서의 도시 한옥은 도태되고 낙후된 거주 공간으로 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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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도시 한옥의 방들은 여전히 물리적으로 존재하 지만 가족 구성원의 변화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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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 공적인 성격이 완전히 부재하는, 철저하게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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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세대 주택으로 연장되는 방향으로 주거를 배치해 주
한 주거 새로운 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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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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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과 인접해 유동인구가 많은 가로변에는 근린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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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과 복지 시설을 배치해 단지 내 거주자뿐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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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단지를 주변 주거 지역과 연결시켰고, 대로 및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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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동네’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활기를 찾을 수 있 제안
현황
라 주변 거주민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동네’ 상
제안
도록 계획했습니다. 도시 한옥과 다가구 주택이 혼재하는 상황에서 누구 든 새로운 건축 질서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매스 프로세스(Mass Process)
결국은 느리지만 지속적인 진화를 기대할 수 밖에 없 는 상황일 텐데요. 계획을 하면서 그러한 지속적인 1. 신축되는 주거를 위한 녹지공간 계획. 2. 사이트 북측으로 주차장 계획.
대지경계선
존치 및 철거 존치된 한옥을 중심으로 ‘ㄱ’자의 클러스터 계획. 한옥+’ㄱ’클러스터 = 한지붕 공동체
유닛배치 시장과 면한 동측면 1개의 클러스터를 근.생시설로 계획하고, 그 외 3개의 클러스터를 주거와 관련된 시설로 계획.
에 부합하지 않은 주거 형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도시 한옥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정의 하는 매력적인 요소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최
수직변형 수평변형 1. 사이트 내.외부의 한옥과 대응하여 박공지붕 계획.
수평/수직변형
근 도시 한옥들이 게스트 하우스, 문화 시설로 용도 가 변경되어 이용되는 사례가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
1. 가족구성원에 따라 기본유닛(2개층)이 수직, 수평적으로 변형한다.
변형-1
변형-2
사이트 북측가로(도시가로)에 대응하는 유닛계획.
사이트 남측가로(한옥가로)에 대응하는 유닛계획.
다. 이런 변화 역시 도시 한옥이 진화하는 한 가지 모 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제시했던 도시 한옥의 공적 기능이 회복되는 방향으로의 변화이기 때문입 니다. 하지만 숙박 시설, 문화 시설 등 특정한 몇몇 프 로그램으로 제한되는 흐름 역시 지양해야 한다고 생 각합니다. 그것은 한옥을 단순히 게스트룸, 복지시설
배치도
와이드 REPORT
개념3
변화의 가능성을 고려했는지 궁금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도시 한옥은 오늘날 도시 생활 방식
기본유닛 = 2개층
건축가능면적
대지상황
1. 기존 한옥의 스케일과 모듈을 유닛에 적용. 2. 2개층 유닛은 1-2인 주거공간으로 구획한다. 3. 유닛의 주 출입은 2층을 원칙으로 한다.
이나 근린 생활 시설로 계획하지 않고 주거의 일부분 으로 치환시킨 이유이기도 합니다. 보다 다양한 방식 과 프로그램으로 도시 한옥이 지속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는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합니다. <건축 개요> 대지 위치 서울시 성북구 동소문동2가 39-44, 56-60번지 대지 면적 1,176m2 지역 지구 제3종 일반주거지역, 도시재생사업지구 용도
근린 생활 시설 및 다세대 주택
구조
철골조 및 목구조
층수
지상3층
건축 면적 940.54m2 연면적
1,384.02m2
건폐율
79.98%/용적률: 117.69%
주차 대수 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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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1층 평면도 1. 한옥을 중심으로 공용공간 형성되며 각각의 유닛(UNIT)에서 접근 가능하도록 계획. 2. 시장 및 도로의 접근성이 좋은 동측 가로변에 근.생시설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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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1. 카페 2. 노유자시설 3. 유아시설/놀이방 4. 수면실 5. 화장실 6. 소매점 7. 약국 8. 사무실 9. 체육시설 10. 응접실 11. 부엌 12. 거실/서재 13. 손님방/게스트룸 14. AV룸/ 세미나실
지상1층 평면도
2층 평면도 1. 각각의 유닛(UNIT)의 주 출입구 위치하도록 계획. 2. 2층 도시공간과 직접 연결되는 새로운 가로공간 형성. 3. 기존 한옥골목에 대응하는 박공지붕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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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REPORT
3
1
1. 카페 2. 빨래방 3. 작업실 4. 사무실
지상2층 평면도 3층 평면도 1. 3-4인 주거를 위한 유닛(UNIT)의 수직확장(도시가로스케일과 대응 하도록 북측 배치) 2. 테라스(외부공간) 계획.
지상3층 평면도
인접대지경계선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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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접대지경계선
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INTERVIEW
를 유지한 채 각 필지에 집을 짓는 방식으로는 주어 진 밀도를 수용하면서 삶의 편의와 풍성한 외부 공 간, 커뮤니티가 살아날 수 있는 집을 만들기엔 한계 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옥을 아주 들어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현재와 비 슷한 규모의 근린 생활 시설, 좁은 대지에 적합한 형 태의 주차장, 지역 사회의 어린이와 노인을 위한 시
헤리티지 스피릿
설, 어느 정도의 공지 등이 길에 닿아야 한다고 판단
성북구의 어떤 집
하여 1층 부분을 통합하여 위 내용들을 계획하였습니 다. 한옥은 옮겨 지을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상태가
윤진아
좋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옥들을 그 위로 올려 주거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와 서울대학교대학원 건축사 연
기능을 수용하고, 추가로 필요한 가구는 전통 한옥이
구실에서 공부했다. 정림건축, 구가도시건축에서 실
아닌 좀더 현대에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구법으로
무를 쌓았다. 현재는 무소속 건축가로 을지로의 건축
계획하였습니다. 계단을 오르면 거주민들(이웃)이
사무소 ‘공장’에서 작업 중에 있다.
공유하는 다소 사적인 외부 공간에 면해 집들이 위치 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개방된 길에 면한 것보다는 좀
대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더 편하게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대지에 가 보기 전에는 오래된 주거지에 한옥이 많이
했습니다.
남아 있고 하천이나 동소문 등 특별한 요소들도 있 한편으로는 그렇게 해서라도 남겨 놓을 만한 가치가
었는데 막상 가 보니까 추운 날씨 탓인지 삭막한 느
있는 한옥인가에 대한 의문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낌이 들어 살고 싶은 느낌이 드는 동네는 아니었습니
견해를 말씀해 주세요.
다. 몇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크게는 직교로 나누어
역사적 가치에 대한 것이라면 제 소견으로 간단히 존
진 동서 방향으로 긴 블럭의 필지-가로 조직과 집들
치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겠습니
이 길과 관계 맺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곳에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가로 체계가 단조롭고 공적으로 할애된 여유 공간이
땅에서는 의미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우리나
없어 풍경의 변화나 일상의 사건들을 담아낼 여지가
라의 주거지 개발 상황을 보면 일반화에 성공한 형태
적고, 다가구 주택은 밋밋한 형태에 기계적으로 생겨
의 집들이 맥락을 따지지 않고 무더기로 지어지곤 했
난 개구부로 입면이 구성되어 길과의 즐거운 관계를
습니다. 양적 팽창, 부동산 거래의 용이성 등 사회적인
상상하기 힘들고, 도시 한옥들은 대지의 외곽을 모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어떤 지역이 고유한 방식으로
채우고 있는데 길에 가까워서 그런지 모두 폐쇄적인
개발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한
입면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여름이 되어 문도 열
옥이 절대적 가치가 있어서 남겼다기보다는 이 대지
어 두고 화분도 내어놓고 하면 또 다른 느낌일 수 있
가 지닌 특성을 버리지 않고 수용하는 방법으로 한옥
겠지만, 기본적으로 이곳의 주거지는 풍성한 삶의 모
을 남겨 이 ‘곳’의 고유한 주거를 제안한 것입니다.
와이드 REPORT
고 해서 재미가 있는 느낌의 동네가 아닐까, 상상했
습을 담아내기엔 어려운 구조라고 생각했어요. 한옥과 더불어 새로 지은 11가구의 집에 대해 소개해 다섯 채의 한옥 지붕을 남겨 2층 한옥으로 재구성했
주세요. 배치 계획과 내부 공간 구성 등이 궁금합니다.
습니다.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부제를 다섯 개의 한옥과 한옥적 삶이 있는 집이라고
땅에 놓인 조건들을 버리지 않고 쓰는 것은 다양한
했는데요, 11개의 새로 지은 집들은 한옥을 닮아 보
주거지를 만들어 내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방법이 될
도록 했습니다. 그게 이 공모전의 주제와 맞겠다 싶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한옥을 남긴 이유가 되었습니
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 추가되는 집들이 기존의 집
다. 그리고 한옥은 옮겨서 짓는 것이 가능하기도 했
들을 자세히 보아 닮고 싶은 점들을 담아서 들어가면
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게 불가능했다면 또 다른
서로 어울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
방식을 생각해 내야 했겠지요. 한옥들이 기존의 위치
다. 닮고자 한 한옥의 좋은 점들은 구체적으로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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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와이드 REPORT
조감도
투시도
투시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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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열고 닫히고 연결되는 공간 구조, 걸터앉을 수 있는
약간의 눈길과 원한다면 발길을 허락하는 영역으로
마루 등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집까지 전통적인 한옥
하여 외부 공간들을 회색들로 분화하여 계획했습니
구조를 선택하는 것은 비용이나 의미 면에서 쉽게 납
다. 이런 부분들에서 다양하고도 자연스러운 소통이
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모든 집에 마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을 두자는 건 변함이 없었는데, 그랬을 때 16개의 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집 위에 집을 쌓아야 했기 때
도시(주변 환경)와 이 주거군이 이루는 맥락을 말씀
문에 어떤 집의 지붕은 위에 오는 집의 단단한 땅이
해 주세요.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콘크리트 구조
1층은 어린이, 노인 시설과 상업 시설, 놀이터, 선큰
를 채택하였고, 각 집의 마당과 면하는 면, 공간의 경
마당 등으로 할애한 외부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계가 되는 부분은 목가구조를 선택하여 현대적 구법
주변과 자연스러운 접촉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
을 통해 한옥에서 닮고 싶은 건축적 장치들을 담을
고 기존의 긴 블록에서 느꼈던 길의 단조로움 등의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시설 사이사이를 통하게 하여 골목길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시설과 골목을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주거
세요.
군은 위로 올렸는데요, 일부는 지상에서 1.8m 정도에
좀더 정성들였던 부분이라면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위치하도록 낮추었기 때문에 길과는 계단을 통해서
이름 붙이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일단 길에 면해서
단을 두고 연결되지만 아주 멀지는 않습니다. 거주민
두 개의 외부 공간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하나는 남
의 입장에서 봤을 때, 주거 공간은 낯선 사람이 오가
쪽에 위치해 지역과 함께 쓸 수 있는 어린이/노인시
는 길에서는 조금 거리를 두는 것이 안전한 느낌을
설 앞의 놀이터를 포함한 공지이고, 다른 하나는 북
줄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개인의 마당도
쪽에 지하 근린 상가 시설에 연결되는 선큰마당을 포
좀더 열어 둘 수 있고, 삶을 가꾸는 모습도 좀더 자연
함한 상업 시설들에 면한 공지입니다. 이 두 개의 공
스럽게 드러나 이웃에게도 훈훈한 주거지의 풍경을
지에서 각각의 집까지 가는 길들이 시작되는데, 기존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가구 주택처럼 오르는 동선을 계단실/복도화하지 않고 골목화하여 길게 늘이고 잇고 구부렸습니다. 대
한옥적 삶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 시대 한옥의
부분은 좁은 길로 하여 골목같은 아기자기함을 느끼
가치는 무엇일까요?
게 했지만, 어떤 곳은 넓혀 쉬어가거나 화분 등을 내
최근의 한옥에 대한 관심은 한쪽으로 치우친 삶의 균
어 놓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길에서 이웃집의 지
형을 찾고자 하는 작용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제시
붕이나 꽃과 나무, 창에서 스며 나오는 빛 등을 보거
한 한옥적 삶은 한옥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건축적 삶
나 우연히 마주치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의도
에 관한 이야기 입이다. 개발 주체와 사용 주체가 분
하였습니다.
리되어 있는 주거에 사는 대부분의 우리는 건조된 환
와이드 REPORT
특별히 공을 들인 공간, 재미있는 공간을 소개해 주
경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방식으로 현대 도시에 정 재구성한 외부 공간은 우리 주거의 마당 혹은 골목길 등과 같은 모습으로 어떤 위계를 갖는 듯합니다. 외 부 공간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기존의 대지 상황을 보면 직교하는 길에서 바로 대문 을 통해 집으로 들어가는 도시 한옥과 길에서 내부화 된 계단실을 통해 들어가는 다가구 주택이 있습니다. 공적인 외부 공간을 흰색 지역, 완전히 사적인 부분 을 흑색 구역이라고 한다면, 기존의 외부 공간은 흰 색과 검은색으로 경계선의 대비가 강한 구조입니다. 계획안에서는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되는 외부 공간, 거주민들에게 개방되는 외부 공간, 그리고 개인 영역 의 외부 공간이지만 경계가 확실하지 않아 이웃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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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REPORT
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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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착하고 있습니다. 건축물을 바꾸는 일은 전문가의 영 역이 되고 건축물의 형식도 대부분은 편리함을 목표 로 무난하게 진화하여 일상에 있어서 일반인들의 건 축적 행위라는 것은 가능한 것보다 훨씬 많이 제한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옥은 목가구로 틀을 짜고 그 안에 삶을 채웁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일반적 인 형식이 있긴 하지만, 가족 구성이나 필요에 의해 쉽게 바꿔 짓거나 덧붙일 수 있고, 건축물에 걸터앉 거나 오를 수 있고, 건축물을 열거나 닫아 공간의 성 격을 바꾸어 버릴 수 있는 등, 사용자의 삶과 건축이 배치개념
보다 자연스럽게 역동적으로 관계맺습니다. 계획안 에서는 한옥이 펼쳐낼 수 있는 삶, 즉 삶의 건축적 재 미들을 집의 곳곳에 조금이라도 담아보고자 하였습 니다. 도시 한옥과 다가구 주택이 혼재하는 상황에서 누구 든 새로운 건축적 질서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결국은 느리지만 지속적인 진화를 기대할 수 밖에 없 는 상황일 텐데요. 계획을 하면서 그러한 지속적인 결국 저는 급진적인 방법을 택한 셈입니다. 필지를 모두 합치고 하나의 단단한 구조물로 엮어 냈기 때문 에 때가 되면 모두를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하는 상황 을 맞이하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쉽죠. 다만 건축물의 일부를 목구조로 하여 유연한 경계를 만들
와이드 REPORT
변화의 가능성을 고려했는지 궁금합니다.
어 두었기 때문에 그 경계를 확장/축소하거나 그 경 계의 성격을 조정하는 등의 변화가 건축주에 의해서 능동적으로 일어날 수 있기를 기대했고, 이런 방식으 로 콘크리트의 수명이 다하기 전까지는 지속적인 변 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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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W
O
R
K
최욱+최진석 | ONE O ONE architects Choi Wook + Choi Jinseok
사진_남궁선 본지 전속 사진가
청담동 근린생활시설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현대카드 영등포사옥 Cheongdam-dong Building Hyundai Card Design Library Hyundai Card Branch Office, Yeongdeungpo
최욱
청담동 근린생활시설
Principal. 1963년생. 홍익대학교
대지 위치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85 대지 면적 459.6m 2
건축학과, 이탈리아 베네치아 건축대학 (dottore in arch.)에서 건축 설계 및
건축 면적 228.93m 2
이론을 공부하였고 macdowell colony
연면적 1,795.18m 2
(u.s.a.), Valparaiso foundation (spain)에
건폐율 49.81%
서 펠로우쉽을 받았다. 현재 ONE O ONE
용적률 249.98%
architects의 대표이다. 2006년 베니스
규모 지하 2층, 지상 6층
비엔날레, 2007년 선전-홍콩 비엔날레,
구조 철근 콘크리트조
2014년 파리 point-contrepoint 전시에
설계 담당 황선영, 김영수, 김상협, 용용식, 황희정, 이신아 설계 기간 2010.11~2011.09
초대받았으며, 대표작으로 학고재
갤러리, 두가헌, 현대카드 영등포 사옥, 그리고 2013 DFAA(Design For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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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욱+최진석 | ONE O ONE architects
Choi Wook + Choi Jinseok
대지 면적 555.1m 2
청담동 근린생활시설
연면적 541.55m 2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현대카드 영등포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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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과 실재/정인하
Award) 대상을 받은 현대카드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디자인 라이브러리 등이 있다.
대지 위치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 129-1
최진석 Partner. 1972년생.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건폐율 53.49% 용적률 93.3%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학과 예술전문사를 졸업하고 제8회 TSK
규모 지상 3층
fellowship award를 수상하였다.
구조 철근 콘크리트조, 철골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설계 담당 김영수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ONE O ONE
설계 기간 2012.02~2012.07
architects의 파트너로 작업 중이다.
대지 위치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동 4가 150 대지 면적 823.50m 2 건축 면적 493.49m 2 연면적 4,085.35m 2 건폐율 59.93% 용적률 353.40% 규모 지하 2층, 지상 7층 구조 철근 콘크리트조(Post-tension공법) 설계 담당 신애리, 이슬비, 조소은, 염주현, 박선형 설계 기간 2010.10~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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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INTERVIEW
최진석
정인하, 최욱, 최진석
76 CRITIQUE 01
현대카드 영등포사옥
최욱
Work
감각의 형식 | 김현섭
89 CRITIQUE 02
세속적 감각 | 박정현
Wide Work | 와이드 워크
청담동 근린생활시설 Cheongdam-dong Building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Hyundai Card Design Library
tects
현대카드 영등포사옥 Hyundai Card Branch Office, Yeongdeung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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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근린생활시설 Cheongdam-dong Building
서측 전경. 흰색 미장 면이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경. 시각적 정보가 넘치는 곳에 박공지붕을 가진 간단한 형태로 서 있다.
남서측 전경
북서측 전경
매끈한 흰색 미장 면은 오로지 움푹 파인 창으로 표정을 갖는다. 창이 깊이를 가지면서 생기는 면은 타일로 마감하여 같은 색이며서 다른 빛을 가지는 공간을 의도했다.
외부에서 바라본 1,2층 레스토랑
길가 코너에 위치한 레스토랑은 커튼월 마감으로 외부에서는 재미있는 그림을, 내부에서는 거리의 분주한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Wide Work | 와이드 워크
상상과 실재 정인하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최욱 건축의 독특함은 그의 풍부한 상상력에서 비롯된다.
은 건축 행위를 통해 새로운 물질성을 부여 받게 된다.
그의 상상 세계에는 외부로부터 투사된 여러 이미지들이 다층적으로 매달려 있고, 그들은 시공을 가로지르면서 그
건축가가 상상하는 허구의 세계는 현실 속에서 실현되는
의 내면에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경우에 따라 그들
과정에서 정교한 지적 체계를 통해 조절되고 통제된다. 건
은 상호 침투하며 계속해서 새로운 차이들을 불러 일으키
축이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생산적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기도 한다. 이런 상상 세계를 현실화시키는 것은 다양한 지
또 작동되기 때문에 이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최욱이 설
적, 문화적 상징들이다. 그들은 상상 세계로부터 해야 할
계한 건물들은 일견 감각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거기서
일을 제공받아 건축을 둘러싼 다양한 외적 조건들과 연결
등장하는 형태와 공간, 재료의 사용 등은 철저한 논리적 탐
시켜 준다. 최욱 건축이 비교적 편안하게 일상을 담아낼 수
구들을 거친 것이다. 그의 상징 세계에서 가장 예민하게 도
있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상징들 덕분이다. 그리고 최종적으
드라진 부분이 바로 바닥이다. 그것은 이태리에서 돌아와
로 다양한 재료들과 디테일들이 그의 건축에 물질적 감수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최욱이 새롭게 인식한 것이다.
성을 부여한다. 건축가는 재료들이 주는 느낌을 최대한 정
가장 중요한 계기는 한옥을 스스로 고쳐서 사무실로 사용
직하게 표현하고자 했고, 이들은 공간 속에서 함께 어우러
하면서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건축을 형식적인 체계가 아
져 명쾌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상상으로부터 상징,
닌, 실존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또 답사여행을 다니는
그리고 실재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그의 건축은 허구가 아
중에 고려 시대의 한 절터을 방문하는데, 거기서 바닥의 형
닌 현실적인 존재가 되고, 거기서 우리 시대의 중요한 물적
상이 건축의 본질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런
기반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인식은 그의 건축에서 중요한 전환을 의미했다.
최욱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부산의 오랜 동네는 그의 상상
바닥을 중심으로 건축을 바라 볼 경우 기존의 건축은 새롭
세계를 포착해 내는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바다 위로
게 정의될 수밖에 없다. 바닥은 벽체나 천정과는 전혀 다른
부유하는 섬들, 산등성에 포개져 있는 작은 집들, 계단들,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우선 그것은 땅 위에 놓여 있어
집들 사이로 보이는 원경들. 이들은 마치 원 풍경처럼 마음
땅의 형상을 그대로 새기게 된다. 한국의 전통건축에서 기
속 깊숙이 자리 잡으며, 그의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
단은 지형의 변화에 대응하며 계속해서 위치와 높이가 달
하고 있다. 이태리 유학과 여행을 통해 접한 다양한 체험들
라진다. 거기서 바닥은 땅과 일차적으로 맞닿으며 자연과
도 그의 상상 세계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팔라디오
건축을 매개한다. 또한 바닥은 내외부 구분없이 관통하며
빌라의 명료한 형태들, 스칼파 건축의 물질적 감수성, 고려
그것 위에 얹힌 모든 공간들을 동시에 포괄한다. 바닥을 놓
시대의 빈 절터 등. 이들은 성장한 후 습득된 것이어서 문
고 볼 때 내부와 외부는 동등한 위상을 가지지만 각기 다
화적 상징들과 결합할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이 외에도 우
르게 펼쳐진 양상들로 간주된다. 그들은 서로 독립된 별개
연한 깨달음을 통해 외부 세계가 내면화되기도 했다. 뉴잉
라기 보다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가진다. 이 점은 외부공
글랜드의 한 내밀한 오두막집에서 지내며 그는 공간에 대
간을 내부화하려 했던 서구 근대건축에서는 찾아 볼 수 없
한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된다. 또한 한옥 마당에서 내쬐는
는 것이다. 또한 바닥을 중심에 놓을 경우, 공간에서 경계
햇빛을 바라보면서 한국적 정감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일
의 의미가 매우 중요해진다. 과거 건축에서 공간을 결정했
시적인 환상과는 달리 이들은 실제 상황에 지속적으로 영
던 것은 주로 구축체계와 천정이었지만, 바닥을 중심에 놓
향을 미친다. 내면 깊숙이 침잠해 있다가 새로운 것을 찾아
을 경우 내 외부 사이의 경계가 그것을 결정한다. 전통적으
상상하는 순간 발현하는 것이다. 이런 기억의 구조들은 매
로 동아시아 건축은 내 외부 사이의 풍부한 전이공간을 가
우 다이나믹해서, 외부로부터 새로운 반응이 닿는 순간 솟
지고 있다. 그것은 애매한 경계를 통해 풍부한 공간적 효과
아나 생각의 흐름을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몰고 간다. 언뜻
들을 만들어냈다. 최욱 건축에서 이런 경계의 특징이 매우
보면 이들은 전혀 연관성이 없지만,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명료하게 드러난다. 필동의 CEO 라운지에서 내부와 외부
서로 접붙으며 독특한 허구적인 세계를 만들어내고, 그것
사이의 물질적 경계는 거의 소멸될 정도로 투명하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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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서 내부는 외부 조경의 일부로서 작용한다. 마찬가지로 현
그가 만든 공간 속에 들어서면 이런 차이들은 우리의 여러
대카드 도서관에서도 열람실과 마당 사이의 경계가 매우
감각기관을 통해 밀려온다. 그래서 그것은 논리적이기 보
투명한 유리벽으로 되어 있어, 사람들의 시선이 그 경계를
다는 실존적이다. 상상의 세계가 물질화되는 과정에서 건
넘어 마당을 향해 계속 확장되도록 했다. 현대카드 영등포
축은 감각을 통해 최종적으로 그 존재를 드러낸다.
사옥의 일 층 로비에서도 비슷한 바닥에 대한 인식을 드러 난다. 거기서 바닥은 건물 바깥으로 확장되어 도시적 맥락
최욱의 공간에서는 생소함과 편안함이 미묘하게 교차하
과 조우하게 된다. 바닥을 중심에 놓고 보면 그 동안 서구
면서 특별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특히 그의 건축에서 자주
건축을 지배해온 파사드와 형식체계는 오히려 부차적인
사용되는 투명한 유리창들과 정교한 창틀들, 금속 마감재
것이 되고, 그보다는 내부와 외부의 상관적 관계가 훨씬 중
는 대단히 기계적이고 익명적이어서, 보통의 경우 사람들
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은 그런 공간에서 편안하게 머물기 힘들다. 그렇지만 건축 가는 이런 생소함을 다양한 방식으로 순화시키고 있다. 이
바닥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은 현대건축의 다양한 지적 경
과정에서 재료들의 속성들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최
향들과 결합하며 확장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사실 건축사
욱의 공간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건축가가 아닌 재료 그
속에서 바닥이 오늘날처럼 각광받는 시기는 없었다. 그것
자체이다. 그들은 빛을 통해 스스로의 생명력을 가진다. 또
은 건물들이 놓이는 단순한 바탕에 불과했고, 이 때문에 거
한 건축가는 개구부의 크기와 위치를 가지고 빛의 각도와
기에 건축적 의지가 반영될 여지가 없었다. 그렇지만 현대
세기를 조절하여 내부에 음영을 최대한 없애려 했다. 그래
의 고밀화된 도시환경에서 건축과 대지를 통합적 관점에
서 그의 공간 속에 놓인 사물들은 입체감이 없이 부유한
서 바라볼 필요가 생겨났고, 그 과정에서 마당, 조경, 도시
다. 그렇지만 바닥과 벽체의 거칠고 강한 물질성은 부유하
적 맥락과 바닥과의 관계가 집중적으로 탐구되었다. 오늘
는 사물들을 계속해서 끌어 당긴다. 그의 공간에서 감지되
날 많은 서구 건축가들이 바닥의 의미를 새롭게 발전시킨
는 독특한 느낌은 빛과 물질 사이의 이런 상반된 상호 작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최욱은 이들과는 명확히
용 속에서 생겨난다.
다른 입장을 취한다. 즉, 한스 샤로운처럼 다양한 바닥들로 이루어진 내부 풍경을 만들거나, 렘 콜하스처럼 바닥을 수
우리 시대 건축 존재론은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다. 사회제
직적으로 누층화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의 건축에서 바닥
도의 산물로서, 은유적 형태로, 도시적 유형으로, 구축 체
은 주로 내 외부 사이의 관계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것은
계로서, 그리고 인공적인 조경으로서 건축을 바라보는 시
무엇보다 그의 생각이 한국의 전통건축에 기반하기 때문
각은 폭넓은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최욱이 생각하는 건축
이다. 오래된 전통 한옥들을 방문해보면, 둘러친 담장 내에
은 대단히 인문적인 것이다. 근본적으로 그것은 인간에 의
여러 채의 건물들이 들어서고, 그들은 마당들과 통합되어
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건조물이다. 이런 생각은 그의
‘바닥 위에 얹힌 다양한 풍경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소쇄
삶의 궤적을 통해 일관되게 나타난다. 그래서 그의 주요 건
원도>나 <오미동가도>와 같은 전통 그림들은 이 같은 공간
축개념들은 인간의 삶과 사유 사이의 어딘가 분포되어 있
적 특징을 잘 묘사하고 있다. 거기서 내부와 외부는 동등한
다. 때로는 그들 사이를 오가며, 때로는 어떤 하나에 집중
위상이지만, 서로 다른 양상으로 공존한다.
하며. 이 때문에 그의 건축을 탐구하다 보면 어느덧 건축가 가 인간 존재에 대해 깊이 통찰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건축에서 바닥이 중시될 경우, 그 위에 매달린 공간들은 각 기 다른 위상학적인 질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바닥은 장소와 지형에 따라 높낮이가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에 그 위의 얹 힌 공간 역시 그 위치에 따라 질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것 은 동질성과 반복성으로 특징지어지는 근대적인 공간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최욱 건축에서 이 점은 매우 특징적으 로 나타난다. 그의 건축에서는 하나의 대지 안에 여러 개의 독립된 건물들이 공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각기 다 른 공간적 성격을 가진다. 건축가는 벽과 창, 그리고 빛의 관계를 통해 그런 차이들을 명료하게 했다. 그로 인해 공간 적 느낌은 미세하지만 여러 단계로 미분화된 채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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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정인하, 최욱, 최진석 최욱 : 전시장에 들어갈 축소 모형인데 그라운드 바닥판
다. 넘버가 중요하고 시스템이 중요해서 체계적 적층의 이미
길이가 6미터예요.
지가 필요하지요. 바다 풍경과 기하학적 레이어의 겹침이 합
여기에 최고 3미터 높이의 모형이 세 개 들어가요. 모형이
쳐져 현대카드 사옥이 되었어요. 그리고 실내 사무 공간의 효
35분의 1인데 어렸을 적에 만들던 프라모델 스케일이에
율성을 위해 영등포 사옥의 경우, 양방향의 코어가 구조 역할
요. 스위스 건축가 발레리오 올지아티가 33분의 1 모형을
을 해서 실내에 기둥이 없습니다. 지금 설계 중인 20층 규모
만드는데, 그 스케일의 모형은 오피스도 주택에서 요구되
의 부산 사옥도 같은 개념을 공유합니다. 영등포 사옥하고 조
는 스케일의 디자인이 가능하게 하는 크기라고 합니다.
금 다른 것은 파사드 엔지니어링 설계를 프랑스 팀과 협업합 니다. 시공 비용과 엔지니어링의 효율을 적절하게 조절하기
정인하 : 현대카드 영등포 사옥에 처음에 들어갔을 때 주
위해서입니다.
변과 건물 내부의 관계가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1층 로비 에 앉아 있으면 공간적 느낌이 매우 좋았어요. 사실은 궁금
정인하 : 지금 어느 정도 진행이 됐어요?
한 게 그동안 개성이 강한 건물들을 설계하셨는데 이번엔 최욱 : 기본 설계와 디자인은 거의 완성 단계입니다. 우리 사
로 많이 다른데 그것을 어떻게 푸셨나요? 그것이 사실 많
무실에서 제일 눈여겨보는 것은 이런 부분이에요. 철원에 있
이 궁금했습니다.
는 고려시대 사찰 터의 기단을 보면 그 자체가 건축의 가장 중요한 부분처럼 보입니다. 공간의 성격과 자연의 관계를 섬
최욱 : 그렇게 읽혔다면 저희에게는 큰 칭찬입니다.
세한 레벨을 가진 기단이 잘 해결하고 있어요. 기단이 공간
건물의 파사드는 기업의 성격을 반영하지만 지속적으로
을 구획하는 단위가 되고, 마당도 되고, 건축의 일부도 되는
장소성을 만드는 대지와의 관계, 즉 저층부가 중요합니다.
데 기단이 가진 그 언어의 다양한 변용에 흥미를 가지고 있
일반적인 이야기지만 우리는 땅과 주변 상황을 이해하려
습니다.
WORK Interview
익명적인 오피스 빌딩이잖아요. 오피스 빌딩은 기능적으
합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주변과 우리 대지의 관계, 즉 단면의 연속적인 시퀀스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한국
정인하 : 그런데 이 기단이라든지, 바닥이라든지 하는 게 상
전통 건축은 그라운드의 단면과 기단이 공간의 성격과 크
당히 이차원적인 이야기잖아요. 처음에 기단에 대한 고민을
기 그리고 사람의 움직임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시작하면서 삼차원적인 공간이나 이런 것에 대한 생각을 함 께 가지나요?
정인하 : 중요한 말씀인 것 같습니다. 최욱 : 저는 안 그랬던 것 같아요. 우리 팀원들의 생각은 다를 최욱 : 그래서 저희는 저층부가 주변과 관계를 맺는 것에
수도 있지만….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건축적으로는 정교한 기단을
동양 전통 건축을 묘사한 요른 웃존의 스케치를 보면 기단과
만들려고 하죠.
지붕만 있어요. 30여 년 동안 그 드로잉은 저에게 강하게 남 아 있습니다. 유럽 건축은 파사드를 만드는 건축입니다. 바닥
정인하 : 건축주 입장에서는 설계할 때 외부 공간을 어떻
과 파사드의 논리적 연결을 요구하지요. 그러나 저에게 기단
게든 활용해서 내부 면적을 넓히려는 유혹이 계속 있었을
이라는 것은 삼차원을 만드는 바닥이 아닌 파사드와 분리된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바꾸게 하는 것도 굉장히 힘들 텐
다른 의미, 즉 장소 만들기입니다. 파사드는 상황에 따라, 요
데…. 건축주를 설득하는 방법이 있었나요?
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표정입니다.
최욱 : 명료하고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정인하 : 현대카드 영등포 사옥에 갔을 때 느낀 것이, 내부가
섬이 있는 바다 풍경을 잘라서 보여줍니다. 섬은 기단이 되
모던하고 현대적인 재료를 사용했지만 편안한 느낌이 든다는
고 하늘은 건물이 되는 셈이죠. 현대카드는 금융회사입니
것이었어요. 이게 어디서 나오는지 생각을 해봤는데 바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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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주는 안정감과 익명적인 재료들이 만나서 그런 느낌을 만
정인하 : 공간 속에서 형태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공간의
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깊이가 필요하지 않나요?
최욱 : 어떻게 보면 제가 생각했을 때 기단은 내부랑 외부
최욱 : 극단적인 예를 들어, 남쪽에 사각 기둥이 있으면 실
를 연계하는 연장선에 있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여타의 환
내의 기둥 면에 그림자가 생기잖아요. 그런 걸 가급적 없애
경을 슬쩍 같이 끌고 들어오니까 친숙함이 있는 것 같아요.
서 공간의 형태가 강하게 드러나는 걸 없애고 싶은 거예요. 내부 공간의 목표가, 형태가 아닌 필요한 기능을 담는 허체
정인하 : 또 다른 느낌으로 재료적인 측면에서 거친 느낌
라고 본다면 사실 그림자를 없애는 부분이 중요하고, 빛의
도 드는데, 그것이 투명한 재료들과 같이 맞물렸을 때 새로
퀄리티는 벽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창과 벽의 관계가 중
운 느낌을 만들어내지 않나 생각합니다.
요해서 그것으로 인해 디테일이 만들어집니다. 그다음엔 빛을 반사하거나 흡수하는 재료 문제인데 흙과 숯 같은 천
최욱 : 우리 사무실 식구들하고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연 재료는 한지처럼 빛을 흡수합니다. 페인트는 빛을 반사
철, 유리, 돌이 사실은 같은 재료잖아요? 엄마가 같잖아요.
하지요. 필요에 따라 재료를 달리 사용합니다.
WORK Interview
땅속 바위에서 나오거든요. 소위 말해서 철이라는 제품이 아니고, 유리라는 제품이 아니고, 돌이라는 제품이 아니라
정인하 : 사실 공간이 깊이가 없으면 부유하는 듯한 느낌
이들은 근본적인 속성이 같은데 이 근원을 어떻게 만나게
이 있거든요. 경우에 따라서는 공간이 들떠 보여서 그런 것
할 것인가 하는 것은 흥미로운 과제죠. 아마 현대카드 영등
이 불안한 느낌이 들고요. 그렇지만 그것이 주는 장점은 자
포 사옥이 편하게 느껴진 것은, 이른바 제품의 만남으로 읽
신의 어떤 소속감이랄까, 내가 어디에 있다는 느낌을 조금
히지 않았던 것이 이유 아닐까요? 그냥 돌, 유리, 철이 자기
은 덜어준다는 거예요.
네들 필요한 공간에 맞게끔 적당히 만나 있는 것이에요. 우 선 재료가 만나는 느낌이 자연스럽습니다. 또 하나는 기단
최욱 : 미니멀한 하얀 건축 있잖아요. 그런 공간은 신체가
이라는 것이 바깥에 있는 풍경과 분리되지 않고 연장되어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주긴 하거든요. 그런데 아까 사진에
들어오기 때문에 편할 수 있지요. 그다음은 상층부의 형태
서 본 통영 바다의 섬은 그 존재가 확실하잖아요. 그렇기
인데 어떤 형태를 만들려고 노력한 것은 아니에요. 다만 어
때문에 부유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안착되어 있다는 느낌
떤 요구의 성격에 맞게끔 의도를 가지고 수렴하되 자연을
이 들지요. 우리는 공간에서 그림자를 없애려고 하지만 대
만나게 만드는 거죠. 예를 들어서 현대카드 영등포 사옥 같
신 기단 부위의 재료를 굉장히 무겁게 써요. 그렇기 때문에
은 경우에는 빛이라는 요소가 사용됨으로써 파사드가 되었
조금 눌러주는 역할을 합니다. 20여 년 전부터 그라운드스
어요.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같은 경우는 중정이라
케이프(groundscape)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는 마당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게 하늘 빛깔이거든요. 그래서
풍경의 의미가 아닌 지표면의 유형과 무형의 모든 것을 포
저희가 핸드레일도 유리로 바꿨어요. 그러니까 하늘이 딱
용하는 포괄적인 개념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건축의 범위
보이는 거죠. 어떻게 보면 중정이 가져야 하는 속성을 갖고
를 확장한 것이고요. 기단은 저희가 사용하는 건축 언어 중
오기 위해서 건축 어휘를 조율하는 거예요.
하나입니다.
정인하 : 공간 속의 빛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어떤 방식
정인하 : 서구적인 의미에서 이런 그라운드스케이프를 설
으로 접근하나요? 건축의 스케일 차원인지, 아니면 재료가
명해본 적이 있으세요?
주는 물성인지, 궁금하네요.
가령 이탈리아 학자들한테 건축을 이렇게 설명하면, 그들 은 최욱 선생님이 생각하는 그런 방향으로 생각하지 않는
최욱 : 빛의 문제는 조금 복합적인 것 같습니다. 창을 통해
것 같아요.
서 풍경을 보지만 빛의 질은 벽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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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니다. 공간에 빛을 도입할 때 가급적이면 세 방향에서 들
최욱 : 일본이나 유럽 건축가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그라운
어가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그림자를 사실 없애버리
드스케이프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대지의 형
는 거죠. 그림자를 없애면 그 공간이 형태로 잘 안 읽혀요.
상을 건축에 옮겨온 형태 만드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고,
그림자가 형태를 만드는데 그림자가 없어지면 공간이 해
저희는 대지의 상황을 이해하고 건축과의 접점을 만드는
체되는 거죠.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Wide Work | 와이드 워크
정인하 : 제가 생각하기엔 한국 건축가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하는데, 지금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공간 내에 빛에 대
개념을 서구에 설명할 때 번역의 문제가 있어요. 저한테는
한 장치나 생각들이 공간의 질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이지요. 그래서 그라운드스케이프라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는 말을 쓸 경우 서구 건축가들은 렘 콜하스의 건축을 연 상할 것 같아서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번
최욱 : 그리고 재료의 무게 아닌가 싶어요.
역할 것인지가 굉장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정인하 : 아, 무게는 어느 정도? 사실 밀도가 굉장히 높은 최진석 : 저희는 건축을 할 때 외부보다는 내부에서 출발
공간도 있어요.
한 바깥과의 관계에 더 많은 신경을 써요.
밀폐된 상태에서 빛을 스포트라이트로 비출 경우에는 굉 장히 밀도가 높은 공간이 만들어지는데, 처음에 어느 정도
최욱 : 네, 저희의 건축을 보다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밀도감으로 설계하시나요? 사실 이것은 상당히 감각적인
언어가 필요함을 공감합니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은 사진
부분입니다.
찍기가 어려워요. 그 공간감과 시각적 감동이 사진에 잘 나 오질 않아요. 어쩌면 형태가 목적이 아닌 건축이기 때문에
최욱 : 무거움과 가벼움이 굉장히 중요해요. 경계에서 문
다른 방법으로 전통 건축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
의 무게와 열리는 방식은 몸의 체험과 행동을 만들기 때문
다. 그리고 내부에 들어가서 보면 공간의 성격이 확실하게
에 중요하죠. 그리고 공간의 긴장과 이완이 중요합니다. 저
보여요.
희는 밀도 높은 공간을 잘 안 만드는 것 같아요.
우선 빛의 퀄리티와 공간의 스케일감. 내부에서 바라보는 정인하 : 문이나 창과 같은 개구부를 활용해서 표현하려는
드러내고 있습니다. 내부에서 보면 건축의 성격이 보다 명
것은 어떤 것입니까?
확하게 이해됩니다. 최진석 소장의 말처럼 우리는 처음부 터 이 경계에 대해 생각합니다.미니멀한 건축에서 형태는
최욱 : 재료가 주는 건축적 느낌과 디테일의 완성도도 있
외벽의 일부이지만 우리의 경우 형태는 내부에서 바깥 세
지만 결국 몸이 느끼는 반응이 중요합니다. 경계 면에 몸은
계를 연결하는 경계이자 풍경을 만드는 중요한 수단이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리고 눈은 입체로 시각 정보를 받
든요. 풍경을 만든다는 것은 그림자를 컨트롤하고 디테일
아들이기 때문에 개구부의 크기나 위치는 세심한 조율이
의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부에서 요
필요합니다.
WORK Interview
창틀을 통한 마당, 차경, 원경은 공간의 목적을 뚜렷하게
구하는 형태나 기능이 사실 외부로 표출되는 거예요. 안에 서 밀려나는 거죠.
정인하 : 설계하시는 건물들의 도시적 상황이 굉장히 다르 잖아요. 북촌, 영등포, 청담동 등등. 또한 지금까지 주장하
정인하 : 최근 많은 한국 건축가들이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신 기단이라든지 그라운드에 관한 개념은 특별한 개성을
생각하면서 그것을 하나의 전체로서 바로 보는 경향이 있
가지는 저층의 건물 유형에 더욱 어울릴 것 같은데, 사실
는 것 같아요. 단지 내부와 외부의 관계를 엮어주는 방법이
오피스는 성격이 다를 것 같거든요. 현대적인 건물이고 누
건축가마다 조금은 다르달까. 최욱 선생님께서는 설계 과
가 어떻게 들어갈지, 임대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에서 어떤 단계로 어떻게 접근하시는지가 궁금합니다.
보다 익명적이고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오피스 설계하시면서 생각이 좀 바뀔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최욱 : 디자인 초기 작업부터 경계 부분의 문제는 중요한
생각하세요?
시작점입니다.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의 경우 첫 단 계에서부터 굉장히 중요한 것은 빛이었어요. 실내의 빛의
최욱 : 청담동은 시각적 정보가 워낙 많은 곳이라 단순한
퀄리티.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 최소한의 디테일. 경계는 외
건축물, 초등학생이 그릴 수 있을 듯한 단순한 건축물에 골
부 빛과의 최초의 접점입니다.
목길을 집어넣은 건축이에요. 영등포 사옥이나 디자인 라 이브러리의 경우도 저층부는 주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정인하 : 공감이 됩니다. 저번에 최욱 선생님 자택에서 물
있고 상층부는 독립적인 태도를 가집니다. 오피스의 로비
질적으로 좀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고 느껴졌거든요.
는 주변의 상황에 대응하여 확장 가능한 공공 공간의 성격
그게 아마 최욱 건축을 굉장히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을 띠지요. 설계 중인 현대카드 부산 사옥의 경우 주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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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업가로와 연장되도록 로비는 공연과 집회가 가능한 공간
을 조절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건물의 기능적인 측면을 해
으로 설계했습니다. 오피스 기준 층의 경우는 기둥을 없애
결하기 위해 재료와 구조를 계획하고 있어요. 그 두 가지
기 위해 노력했어요.
중간의 연결점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나요?
정인하 : 기둥이 없다는 것은 구조가 내부 공간에 방해되
최욱 : 최근 저희가 다수의 오피스 설계를 경험하게 되었
지 않도록 하는 것인가요?
습니다. 오피스에서 요구되는 보편적 합리성을 지닌 공간 과 유지 관리의 효율성 확보, 기업의 이미지 표출과 적절한
최욱 : 네. 구조와 설비 시스템이 가구 배치의 변화나 실배
공사비 등의 과제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키
치 구획에 방해되지 않도록 합니다. 또 하나, 공간의 형태
면서 의미 있는 건축적 과제를 완수한다는 것은 건축가에
를 만들기 위해서 빛을 양보하는 것은 가급적 피합니다.
게 많은 생각과 용기, 결단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현대 카드 영등포 사옥 같은 경우에도 퀄리티에 대한 일정한 타
정인하 : 건물 규모가 커지면서 느껴지는 스케일감은 어떤
협과 적절한 비용의 임계점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가요? 일본 건축가들을 보면, 작은 주택에서 시작해 규모가 확장
최진석 : 오피스에서는 이런 게 힘든 부분이었던 것 같아
되면서 잘 적응해서 나름대로 중요한 건물을 설계하는 건
요. 위에서부터 스트럭처가 로비까지 내려와야 하는데 저
축가도 있고, 또 그렇지 못한 건축가도 있는데요.
희가 신경을 제일 많이 쓰는 부분이 저층부거든요. 저층부
WORK Interview
가 구조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부분인데 저희에게 중요 최진석 : 저희는 커지면 더 크게 커지고, 작으면 좀 더 작
한 개념인 그라운드스케이프의 기단부를 형성해야 하기
아지는 느낌이 있거든요. 융통성이 있는 거죠. 통상적으로
때문에 (섬처럼 보이기 위해) 구조를 합리적으로 많이 변
건축가들이 작은 작업을 하다가 큰 작업을 하면 작은 작업
형했어요. 영등포 사옥 가보셨으면 상층부 두 개의 코어에
을 했던 선이 큰 작업까지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는
서 내려오는 구조의 육중함을 못 느끼셨을 거예요. 그걸 없
작은 작업을 할 때의 선보다 큰 작업을 할 때의 선이 커지
애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습니다.
긴 해요. 확실히…. 최욱 : 섬을 이야기했지만 낭만적인 기단이 아니라 정말 자 최욱 : 동감입니다. 우리 사무실 작업의 건축 언어가 뚜렷
연스럽게 보일 정도의 섬을 만들기 위해서 구조를 다 털어
하지 않다, 혹은 스타일이 없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저희
낸 거죠. 기능을 해결하고 이 건축물이 가져야 하는 기본적
에게는 스타일을 가진 일정한 건축 언어를 구사하는 것보
인 생각이 지켜지는 선에서 나머지는 굉장히 효율적으로
다는 상황을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한 요소예요. 이해된 상
손을 댄 거예요. 결과적으로 이 건물이 경제적 합리성을 지
황을 구축하는 방법을 만드는 거죠. 생각의 출발점이 그 정
녔기 때문에 오피스 건물로 성공했다고 볼 수 있죠.
도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스케일에서 오는 문제점은 별로
또 하나, 이 오피스는 층고가 굉장히 높아요. 에너지 문제로
없다고 보입니다.
만 보면 비효율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무 환경과 업무 집중도 및 창의력을 높이는 것을 감안하면 효과적입니다.
최진석 : 구조나 엔지니어링, 디테일에 대한 부분을 동시 에 해결하고자 합니다. 주택 같은 경우는 좀 다른 관점에서
정인하 : 건물 상층부에 있는 일반 사무실도 한번 가봤는
의 컨트롤이 필요하고, 오피스 같은 경우에는 다른 시스템
데 공간적 느낌이 나쁘지 않았어요. 일전에 삼성 서초동 사
으로 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있지요. 큰 건물일 경우에는 큰
옥을 가봤는데 건물 내부로 들어오는 빛이 거슬리더군요.
스케일의 관점이 요구되고, 작은 건물에서는 작은 스케일
그게 아마 착색 유리를 통해 투과되는 빛의 비율 때문인
적 사고가 필요한 것 같아요.
것 같고, 음영이 생겨서 느낌이 안 좋았던 것 같아요. 여기 서는 벽과 개구부는 어떤 관계를 가지나요?
정인하 : 제가 보기에는 오피스 빌딩의 설계에는 극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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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현대카드 영
최욱 :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가 촬영할 때 실내에 옷장
등포 사옥은 내부 공간이 더 풍요롭고 좋은 느낌을 가질
이 잡히는 장면이 있으면 배우들한테 옷 다림질을 시키거
수 있도록 한 것 같아요. 기능과 공간 사이를 왔다 갔다 하
나 옷을 잘 개어서 옷장에 넣게 만든다고 하지요. 저에게도
면서, 한쪽으로는 내부 공간의 퀄리티를 만들기 위해서 빛
그런 태도가 중요합니다. 통상적으로 저희는 굉장히 단단
Wide Work | 와이드 워크
한 벽을 만들어요. 청담동 근생의 경우 그 외벽은 페인트가
복되어 있는데, 전 이게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 패턴의
아니라 미장이거든요. 미장을 갈아낸 거예요. 어디까지 갈
규칙이 너무 정교해지면 기하학적인 그리드밖에 안 보이
아내냐 하면 도자기 초벌구이 정도의 질감이 나올 때까지,
게 됩니다. 건축물의 각 층과 이중 파사드를 지지하는 구조
그게 빛을 약간 반사도 하지만 흡수하는 느낌이 드는 정도
방식, 소방법을 준수하는 층간 디테일 등 몇 가지 원칙을
까지 갈아내요. 일반 페인트랑 느낌이 전혀 다르지요. 벽을
준수해서 금전출납부 같은 자연스러운 패턴을 만들어보는
만들 때 벽의 형태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걸 계속 갈
것이 출발이었어요.
아내면 사람의 손맛이 보이잖아요. 그게 빛을 반사하고 퀄 리티를 만들어내요. 현대카드 사옥 같은 경우는 이중 파사
최진석 : 수평 라인은 층간 때문에 생긴 기능적인 선이고.
드에 빛이 들어감으로써 그림자에 의해 파사드가 달라져
세로 라인은 종류가 세 개가 있어요. 각각 다른 형태를 지
요. 디자인 라이브러리 같은 경우는 저철분 유리를 사용했
녔지만 기능을 달리하는 기능적인 구조입니다.
기 때문에 경계 면이 투명해요. 거기는 도서관이기 때문에 항상 불이 켜져 있거든요. 그래서 저철분 유리를 통해서 항
정인하 : 측면의 수직 리브들의 간격은 어떻게 결정되었
상 내부가 보이게 한 거예요. 우리는 벽을 만들 적에 벽 자
나요?
체의 형태 문제가 아니라 그 벽이 가져야 하는 근원적인 최진석 : 제한된 비용에서 만들어지는 오피스 건물이라 측
이 존재감을 나타내야 하는지, 존재감을 거두어야 할지 고
면은 채광과 환기 등의 기능과 비용 등의 효율성을 많이
민하지요. 그림을 필요로 하는 벽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고려했고 간격은 90cm입니다. 문제는 리브의 깊이인데 건
이 아니라 이차원적인 평면이어야 하거든요. 이를 위해 걸
물의 전면성을 방해하지 않고 햇볕의 차폐 기능을 갖추기
레받이 디테일을 조절하거나 천장이랑 닫는 부분에 메지
위해 스터디를 하고 모형을 만들어 각도를 세심히 살폈습
를 전혀 없앤다거나 해서 그 벽이 가져야 하는 성격을 만
니다. 45도 정도 각도일 때 기능적인 부분이 잘 안 보이는
듭니다. 그 결과 저희가 만들어낸 벽면의 그림은 굉장히 파
데 더 멀리 가면 보이긴 보인다거나…. 그런 것들을 많이
워풀해져요. 화랑을 예로 들면 저희가 만들어낸 벽의 그림
신경 썼던 것 같아요.실내에서는 이 리브가 정면만 피하면
은 굉장히 잘 팔려요. 벽이 자신의 주제를 잘 파악하고 있
심리적인 차폐 기능과 빛의 산란을 유도해서 부드러운 빛
어서….
을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최진석 : 저희는 벽을 디자인할 때 벽 자체의 입면을 디자
정인하 : 현대카드 부산 사옥의 경우 층수가 높아지면 그
인한다기보다는 초기 단계에서 단면으로 이야기를 많이
런 디테일은 안 나오는 것 같은데, 어떤가요?
WORK Interview
속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실내 벽을 만들 때도 벽
합니다. 바닥, 벽, 천장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 간에서 통시적으로 다루죠. 오피스 디자인으로 들어갔을
최진석 : 가능합니다. 유리로 난간을 만드는 건데, 그게 고
때 새롭게 생기는 문제는 외피에 물리적인 벽이 사라지고
층 건물 옥상에도 되어 있잖아요. 원리는 간단해요. 난간을
유리가 주 소재로 등장하는데 유리가 굉장히 공포감이 있
심기 위해 15cm 정도를 묻어놓으면 난간이 위에서 150cm
다는 거예요. 반사가 되기도 하고, 투명하기도 하고…. 투
정도 나와 있어도 문제가 없는 거죠. 이 리브를 잡는 핀이
명 유리와 샌딩 유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무겁고 햇볕을 컨
10cm 정도만 들어가 있으면 70cm 정도 리브가 나와 있어
트롤하는 것이 아주 어렵습니다.
도 문제는 없습니다.
최욱 : 유리는 속성이 투명한 것이지 결국은 돌이에요.
정인하 : 사실은 오피스 빌딩 파사드에서 하나하나의 유닛 들이 구축적인 요소로 표현되느냐, 아니면 매끄러운 전체
정인하 : 이중 외피를 사용할 경우 그것이 건물 전체에 어
외피 속에 반복되는 부재의 일부로서 드러나느냐, 이것은
떤 이미지를 줄까 고민했을 것 같은데, 사실 오피스 빌딩에
오피스 빌딩의 전체 성격을 결정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합
서 파사드의 디테일이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니다. 그리고 다른 구조와 설비 같은 시스템도 파사드에 직 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욱 : 이중 파사드는 결국 디테일의 그림자가 외피에 맺 혀 입면에 투영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했습니다. 금
최욱 : 금융회사는 금고가 아닌 넘버의 시스템입니다. 직
전출납부 있잖아요. 그걸 보면 몇 개의 규칙들로 패턴이 반
설적으로 이야기하면 입면에 시스템의 이미지가 적층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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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자연이 주는 빛의 그림자가 변화하는 표정을 만든 것이 저
서 일관된 경향과 흐름을 찾아내려 합니다. 그게 맞는 것
희가 현대카드 사옥을 디자인하면서 만들어낸 이미지입니
인지 아닌지는 잘 증명이 안 돼서 좀 공허한 게 있죠. 그렇
다. 그리고 최진석 소장이 이야기한 기능의 문제, 빛의 문
지만 건축 이론은 역사와 좀 다릅니다. 역사상 이론가로
제, 소방, 구조 등의 공학적 문제 해결의 결과물인 거죠. 결
서 굉장히 좋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이 있는
과적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한 장식물이 아니기 때문에 안
데, 한 사람은 파울 셰어바르트(Paul Sheerbart)라는 독
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념을 잃어버리지
일의 철학자이고, 한 사람은 마티유 쇤마에커스(Mathieu
않으면서 오피스로서 일정 수준의 완성도를 갖춘 건축물
Schoenmaekers)라는 네덜란드의 이론가입니다. 셰어바
입니다.
르트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유리 건축이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고, 쇤마에커스는 이 세계가 본질적으로
최진석 : 어느 땅이라도 완전히 평면적이지는 않잖아요.
수직, 수평 그리고 세 가지 삼원색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몇 센티미터 차이가 나더라도 그 경계부의 에지(edge)를
확신했어요. 1920년대의 기하학적 질서를 가지는 모더니
어떻게 만나게 하느냐에 대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해야 했
즘의 건축 형태를 보면 두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알
어요. 현대카드 영등포 사옥도 평평하게 보이겠지만 80cm
수 있어요. 역사 속에 잘 다루어지지 않는데 사실 몬드리안
차이가 나요. 이것을 못 느끼게 하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이나 독일 표현주의자들이 자신의 언어를 발명한 것이 아
레벨을 조정했지요. 부산도 마찬가지고…. 부산은 더 많이
니라, 이 두 사람의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건축적으로 실험
차이가 납니다. 마찬가지로 디자인 라이브러리 같은 경우에
을 한 거예요. 여기서 건축가와 이론가의 역할을 잘 알 수
도 저희가 레벨을 많이 체크해요. 대지는 단단한 것이 아닌
있어요. 이론가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죠.
부드러운 것입니다. 다만 그 위의 기단은 단단한 것이지요.
그런 것을 보면 조금 역할은 다르지만 같이 협력해나가는
WORK Interview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인하 : 그런 노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결 과적으로 나온 형태와 공간을 보면 파사드의 정교함도 있
결론적으로 그라운드스케이프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만, 내부 공간이 특별한 느낌을 주거든요.
서구 이론가들을 초청해서 이야기를 나눴으면 해요. 거기 서 원오원에서 하는 작업과의 어떤 접점을 찾았으면 좋겠
최욱 : 건축가의 목표가 완성된 건축물에만 있는 것은 아
어요. 그렇게 접점을 찾다 보면, 그 개념을 보편적으로 이
니잖아요. 건축이 사고의 과정으로 생각과 생활 구조를 바
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대지나 외부 공간, 그라운
꿀 수 있어야 하고, 인문학적 담론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현
드는 보편적인 거죠. 보편적인데 그것을 어떻게 문화적으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탈리아 건축가 비토리오 그레고
로 해석하고 풀어나가느냐 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 있어
티가 이런 말을 했어요.
요. 서구에서도 여기에 굉장히 관심을 보이는 학자나 건축
“역사가 중요한 것은 알겠는데 역사라는 것은 거실이 아니
가들이 있으니까 그분들과 접점을 찾아보면 보편적인 차
라 복도와 같다. 복도를 통해서 밖을 나가보니 길을 잃은
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신세가 되었다.” 이 말이 위안이 되기는 하지만 한국성과
봅니다.
한국의 미학을 찾기 위해 긴 복도를 지났는데 완전히 복잡
인터뷰어 정인하 |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한 시장통에서 길을 잃은 것과 비슷한 기분입니다. 지적인 담론을 의도적으로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하 나는 우리 사무실의 최대 목표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인데 사람을 길러내려면 우리 스스로의 스타일 계승 문제가 아 니라 정제된 언어가 필요해요. 그게 없으면 커뮤니케이션 에 굉장한 시간 낭비를 불러오지요. 그래서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효율적인 도구로서 전달 가능한 지적 담론이 있는 책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정인하 : 건축 역사가가 하는 일은 건축가처럼 구체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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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죠. 하늘에 있는 별들을 보
요른 웃존의 스케치.
면서 별자리를 상상해보듯이, 여러 건축물들을 보고 거기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69, fifth edition), p.673
Giedion, Space, Time and Architecture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Hyundai Card Design Library
갤러리를 도서관으로 리노베이션한 작품이다. 중정 너머 2층에 올린 기존 한옥을 통해 주변 풍경이 보인다.
‘하늘과 땅, 그 사이의 움직임’을 컨셉트로 중정의 하늘을 살리기 저철분 유리를 사용하고 옥상부 핸드레일도 모두 유리로 바꾸었다.
리셉션과 라운지 기능의 1층은 맑은 경계면으로 마당과 내외부 구별 없는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집 속의 집’ 형태의 열람 공간
기오헌이란 이름의 3층 북룸(book room)
책장 디테일.
여러 개의 특색 있는 공간으로 나뉘어진 열람실. 오른쪽은 스터디 룸.
열람실. 철 계단은 이용자의 다음 행동을 주의 깊에 만든다. 원오원 건축의 디테일은 공간의 성격을 만드는 한편 공간 안에서의 인간 행동을 유도한다.
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CRITIQUE 01
김현섭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감각의 형식
감각 속으로의 부유, 형식으로의 접속 최욱의 건축은 감각적이다. “건축이란 감각으로 만들어진 삶의 이미지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근자의 작품집 <ONE O ONE architects>(2008)에서 그는, 이 첫 문장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에세이와 작품 이미지를 통해 자기 감각의 지평을 펼쳐 나간다. (계속해서 산개하는 그의 말을 포집한다면) 그 에게 건축이란 “시간과 함께 만들어지는 아우라”이기도 하고 “도그마를 제거한 소박한 진실”이기도 하며, 공간은 “형태가 아닌 감각으로 인지”된다. 그는 자기 작품을 굳이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 는다. 건물별로 디자인 개요가 부재한 것은 물론이요, 대개의 경우 도면도 동반되지 않아서 이 책자 만으로 각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크다. 그러나 최욱에게 그러한 ‘세속적’ 내용은 그다지 중 요하지 않은 듯싶다. 짧은 문장을 압도하는 세련된 사진들은 그의 건축의 감각적 단면을 증폭시킨다. 그가 창작하고 향유하는 건축의 감각적, 혹은 관능적 경험은 고급 와인이나 요리의 음미에 비견되기 도 한다. 그에게는 건축과 요리가 모두 “욕망의 시적 은유”에 다름 아닌데, 그의 건축 디테일은 요리 의 이미지처럼 한껏 클로즈업됨으로써 그 풍미를 배가시킬 때가 빈번하다. 하지만 최욱은 자신의 건축이 감각의 세계 속에 끝없이 부유하길 원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
WORK critique01
면 그는 자기 건축을 감각 속에 부유시키되, 동시에 일정한 논리 혹은 형식 가운데 접속시키고자 시 도한다. 자신의 감성적 측면을 부각시킨 세간의 평가에 대체로 수긍하면서도 그는 그렇지 않은 면 역 시 있음을 항변하는데, 그의 교육 배경도 그 주장을 일부 대변하는 인자일 테다. 최욱이 세계 건축 이 론의 선도지였던 베니스건축대학(IUAV)에서 1980년대 후반 유학했음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그리 고 그는 귀국 후 몇몇 매체에 이탈리아의 합리주의 전통이나 베니스의 건축 교육에 대해 소개하기 도 했다. 특히 배형민 등의 연구(‘1990년대 이후 건축 역사와 건축 설계 교육의 관계에 대한 연구’, 2011)가 보였듯 그는 콜린 로우의 형식주의적 전통 하에서 건축을 학습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팔라디오와 코르뷔지에의 빌라에 내재한 수학적 기율에 대한 훈련은 주목할 만한데, 타푸리 식의 난 해한 철학과 이론보다 로우나 아이젠만 식(그의 테라니 연구나 주택 시리즈의 형태 조작을 기억하 라)의 시각적 법칙이 상대적으로 따르기 용이했음은 최욱 스스로가 밝히는 사실이다. 그가 2000년대 전반 행했던 한옥 리노베이션 작업은 전통 건축의 목구조 체계 속에서도 그 형식 논리를 과감하게 침 범하여 변형시킨 감각적 창작물이다. 다시 말해 이는 최욱의 감각이 형식과 관계하며 산출한 결과로 서, (필연이라 할 수는 없으나) 베니스에서의 교육 배경과 서울 북촌의 현실적 조건이 교차하며 만들 어 낸 프레임을 통해 조망 가능한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감각의 형식으로서의 그라운드스케이프
김현섭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욱이 뿌리내리고자 하는 감각의 형식은 더욱 근원적인 것을 지향하고 있는 것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으로 보인다. 그는 이를 ‘그라운드스케이프(groundscape)’라 칭했다. 굳이 비교컨대, 랜드스케이프 가 먼발치에서 앞을 조망하는 (동양화로 치면 평원법(平遠法)적) 풍경이라면 그라운드스케이프는 바닥이나 기단에 집중하여 부감(俯瞰)하는 관점에 가까울 게다. 그는 그 의미를 확장하여 “장소 만들 기”라고도 말하고(정인하와의 대담, 2014.1.23), 더 나아가 “땅 위 유무형의 모든 것을 통칭”한다고 도 설명한다(필자와의 대담, 2014.2.28). 그런데 최욱이 이 개념을 풀어냄에 있어 30여 년 전(즉, 학 부생 시절이리라) 요른 웃존(Jorn Utzon)의 중국 주택 스케치에서 받은 인상이 여전함을 언급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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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 장학생으로 영국 셰필드대학교에서 근대건축사를 공부했으며, 동 대학에서 AHRC 박사후연구원으로 동서양 건축 교류에 대해 연구했다. 그간 일본 건설성 건축연구소와 핀란드 헬싱키 대학 및 알바 알토 아카데미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일했고, 2008년 모교인 고려대학교에 부임하여 건축
은 무척 흥미롭다. 웃존의 스케치는 그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필두로 하는) 자기 건축에서 기단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지금까지
(platform)이 갖는 중요성을 서술했던 글 ‘Platforms and Plateaus’(<Zodiac> 10, 1962)에 삽입했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영국, 핀란드,
던 여러 도판 중 하나로서, 기단 위로 지붕이 아무런 지지체 없이 떠있는 형상을 그린다. 여기에서 웃
논문과 평론을 출판했다.
이탈리아, 일본, 대만 등에 다양한
Wide Work | 와이드 워크
존은 기단으로 인한 건물의 “튼실함과 안정감(feeling of firmness and security)”을 강조함과 동시 에 “기단과 지붕의 관계가 지닌 일종의 매력(magic in the play between roof and platform)”을 묘 사했다. 최욱이 어떤 경로로 이 스케치를 접했는지는 불확실하나(기디온의 <공간, 시간, 건축>은 이 를 일본의 것으로 잘못 지목한다) 그는 이로부터 서양과 대비되는 동양 건축의 원리를 재전유(reappropriation)한다. 즉, 그에게 서양의 건축은 ‘파사드’ 건축으로서 지붕의 속성은 여기로 귀결되는 반면, 동양의 건축은 바닥과 기단으로부터 나오는 무엇이다. 따라서 최욱은 ‘바닥에 탐닉’하기로 마음 먹는다. 혹은 그렇게 생각해 온 것으로 ‘사후구축’한다. 그리고는 우리 건축의 선례 가운데 강원도 철 원의 고려 시대 절터를 찾아내어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기단은 자연과 건축 의 관계를 섬세히 조절할 뿐만 아니라, 공간 구획의 단위로서 마당이 되기도 하고 건축이 되기도 하 는 등 다양한 변용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요소이다. 이 같은 최욱의 그라운드스케이프 개념은 매혹적이다. 이로부터 전술한 바 ‘장소 만들기’가 시작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크게 과장한다면 그의 말대로, 감히 ‘땅 위 유무형의 모든’ 총체와의 관계마 저도 넘볼 것이다. 허나 그런 까닭에 이 개념은 여전히 모호하기도 하다. 그라운드스케이프는 바닥의 적층이 지시하는 물리적 영역과 사물의 근원이 되는 관념의 바닥 사이를 비스듬히 진동한다. 그리고 그 진동각 역시 상당히 감각적이다. 그렇다면 그라운드스케이프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최욱은 어떠한 전략적 방법론을 제시하는가? 이는 대체로 바닥 혹은 기단을 통한 내외부의 관계로 수렴되는 것 같 은데(내외부의 공간 전이는, 주지하듯 매우 근대주의적인 개념이다), 이것은 순차적으로 경계에 대 한 문제와 디테일의 문제로 옮아간다. 그가 말 그대로의 그라운드스케이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 은 변화무쌍한 바닥의 레이어들이 흐르고 충돌하고 적층된 두가헌(2004)의 마당에서였지만, 내외 마을을 조망하는 이 공간은 실내 라운지와 옥외 테라스를 통유리만으로 구분함으로써 둘 사이의 시 각적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냈다. 이곳에서 공간의 전이가 그토록 미끈할 수 있었던 것은 프레임 없는 유리의 투명성에 더해 외부의 바닥이 고스란히 내부로 흘러들어올 수 있었던 데에 기인한다. 이를 위 해 경계, 접점, 모서리의 디테일은 극도로 숨을 죽이고 정제되어야 했다. 미스의 디테일에 계시던 신 이 최욱에게도 강림하시다!
WORK critique01
부 바닥의 관계가 막힘없는 흐름으로 일체화된 곳은 필동의 CEO라운지(2008)라 하겠다. 남산 한옥
그런데 말이다, 최욱의 그라운드스케이프가 그에게 더욱 굳건한 형식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 전 략적 방법론이 그의 건축이 표상하는 사태 전체를 아울러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실제 그러한지는 아 직 의문으로 남는다. 이번에 발표하는 근작들을 보자. 현대카드 영등포사옥,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 러리, 청담동 근생 모두가 저층부 혹은 바닥에 대한 관심을 제각각 표출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현 대카드 영등포사옥은 섬 위에 구름이 떠 있는 이미지로부터 착안되어(우연인지 모르나 이는 웃존의 전술한 글에 삽도된, 바다 위로 구름이 피어오른 또 다른 스케치와 흡사하다) 저층부를 비우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투명한 유리벽으로 물성이 소거된 1층의 로비는 상부의 우윳빛 볼륨을 맑게 들 어올리는데, 대형의 무주 공간을 만들기 위한 구조적 해법은 코어와 빔의 날랜 합작으로 인한 성취이 다. 그리고 필동 CEO라운지에서처럼 바깥 정원과 로비 공간의 경계가 흐려진 것은 바닥이 단차 없이 내외부를 가로지르기 때문이며, 정교한 접합의 디테일이 그 연속성과 투명성을 담보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바닥과 내외부 공간의 관계는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중정에서도 거의 유사하게 반복된 다. 청담동 근생의 경우는 레스토랑을 담는 1~2층 프로그램의 특성상 바닥의 논리를 동일하게 설명 할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여전히 저층부를 상층부와 전혀 다른 태도로 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 부의 흰 벽과 대비되는 잿빛 타일을 보라. 그렇다. 반복컨대 최욱은 바닥과 저층부에 각별한 관심을 표했으며, 이를 자신의 그라운드스케이프 개념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땅 위의 모든 것을 포괄하겠다는 레토릭에도 불구하고, 그의 건축의 물리적 실체와 관념적 실체는 그라운드(바닥) 에서 멀어질수록 그라운드스케이프에서도 멀어지는 듯한데, 그의 건축이 집착했던 투명성과 디테일 의 관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그라운드스케이프의 실천적 방법론이 아우르지 못하는 몇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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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공통점을 이 작품들이 노출하고 있다면, 그 또한 최욱의 감각을 위한 중요한 형식이지 않겠나? 희고 단단한 벽, 그리고 원시 오두막의 원형 예컨대, 하얗고 단단한 벽면, 그리고 원시 오두막의 원형(archetype)을 연상시키는 단순한 박공지붕 은 바닥 못지않게 두드러진 최욱의 건축 어휘임에 틀림없다. 근대주의적 이미지를 물씬 풍기는 백색 벽면은 한옥에서든 양옥에서든 그의 초기작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출몰하는 요소로서, 전술한 세 작 품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현대카드 사옥과 라이브러리의 내벽, 청담동 근생의 외벽을 상기하자. 이를 단단하다 이름은 (물리적 경도는 물론이거니와) 명쾌하고도 절도 있게 꺾이고 연속되는 품새로 인함인데, 이로써 백색의 위엄은 더욱 부각된다. 여기에서 백색은 모든 때깔을 제거한 원점이자 영도 (degree zero)로서, 비약하자면 또 다른 그라운드의 의미를 덧입을 수 있다. 각종의 빛깔과 행위와 감 각이 투사되는 바탕으로서의 그라운드는 새로운 층위의 그라운드스케이프를 야기하지 않을까? 그러 고 보니 박공지붕의 주택 원형도 마찬가지이다. 온갖 잡것들을 소거하고 원초적 요소만으로 오두막 을 재창조한 18세기 로지에의 계몽주의적 원형으로부터 최욱의 이탈리아 풍토를 주름잡던 20세기 후반 알도 로시의 신합리주의적 원형에 이르기까지, 뾰족 지붕은 건축의 근원이자 바탕이었다. 승효 상의 ‘바닥’을 논술하며 배형민은 그의 건축이 엿보인 지붕의 소멸을 한국 현대 건축의 중대한 전환 점으로 지적했지만(<감각의 단면>, 2007), 전통 계승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최욱에게 지붕은 오히 려 건축의 근원을 향한 징표가 될 수도 있으리라. 청담동 근생의 옥상에 솟아오른 두 채의 하얀 집이 든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의 ‘집 속의 집’이든(독일 신합리주의자 오스발트 마티아스 웅거스의
WORK WORK critique01 1
프랑크푸르트 건축박물관(1983)에 등장했던 ‘집 속의 집’은 이곳뿐만 아니라 최욱의 사무실에서도 발견된다), 모두 건축의 그라운드로서의 원시 오두막적 원형에 다름 아니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사 용했던 이 유형학에 대해 논산여상 특별교실(2007)의 지면을 빌어 기록한다. “단순함은 원형의 기억 을 간직한다.” 이처럼 최욱의 감각은 다양한 기울기로 형식에 접속된다. 이는 스스로 설명했던 그라운드스케이프일 수도 있고, 자신의 언설로부터 배제된 여타 건축 특성이 함의하는 무의식의 논리일 수도 있다. 그러 나 분명한 것은 그가 이제, 한동안의 동면에서 벗어나, 그러한 형식을 찾아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다 는 사실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발걸음은 한국 현대 건축의 지형도 속에 착근(着根)하려는 그의 용기 있는 도전이기도 하다. 한국 건축의 계보 가운데 소수자로 자신을 갈무리하는 그는 우선 건축 보편의 기반에 뿌리를 두고자 하며, 이에 더해 우리 전통의 유전자 역시 탐색코자 한다. 바닥의 개념도 그러 하리라. 감각과 형식 사이에, 건축과 말 사이에 벌어진 틈새가 아직 녹록치 않지만 그 균열이 오히려 창조의 동력이 되길 바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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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영등포사옥 Hyundai Card Branch Office, Yeongdeungpo
바다 위 섬과 같은 기단과 하늘처럼 펼쳐지는 건축.
기능과 빛의 처리 문제, 건축물의 각 층과 이중 파사드를 지지하는 구조 방식, 소방법을 준수하는 층간 디테일 등 몇 가지 원칙을 준수하여 금천출납부와 같은 자연스러운 패턴을 만들었다.
유리를 잡는 수평 바와 물끊기를 위한 수평 바가 번갈아 가며 리듬감을 만든다. 측면의 수직 리브는 채광과 환기, 그리고 비용 등을 고려하여 간격을 결정했다.
1층 로비는 상층부 두 개의 코어에서 내려오는 구조의 육중함을 느끼지 못한다.
주출입구. 오래되고 익숙한 풍경이 로비로 고스란히 투영된다.
유리와 돌, 철 등 다소 무게감 있는 재료들이 솔직한 기법으로 사용됐다.
건물 바깥으로 확장된 바닥은 친숙한 풍경들에 연속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로비에 면한 정원
가구 배치나 실 배치 구획에 효율적인 내부 공간. 사무 환경과 업무 집중도 및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 천장을 높였다.
상황에 반응하고 기능을 담아내는 실내 공간. 공간의 형태를 강하게 드러내는 그림자를 가급적 없애려고 노력했다.
Wide Work | 와이드 워크
CRITIQUE 02
박정현 건축비평가, 도서출판 마티 편집장
세속적 감각
그라운드스케이프 두가헌, 학고재 등으로 한옥 전문 건축가로 불리던 7~8년 전 최욱은 말과 글로 자신의 생각을 적극 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후 그는 한동안 매체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무척 오랜만에 전시회와 잡지 를 통해 작업을 공개하고 자신의 사무실까지 오픈하면서 최욱은 ‘말’과 함께 돌아왔다. 화두로 ‘그라 운드스케이프(groundscape)’를 제시한 것이다. 랜드스케이프 건축이 유행하면서 도처에서 접미사 ‘-스케이프’를 붙인 단어가 들린다. 국내 건축가들 중에서도 최욱에 앞서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자신 의 건축을 설명한 이들이 있다. 조성룡은 4.3그룹 시절부터 풍경(landscape)을 이야기했고, 승효상 은 마당의 비움에서 출발해 컬처스케이프(culturescape)와 랜드스크립트(landscript)로 자신의 언어 를 확장해 오고 있다. 최욱의 그라운드스케이프는 비슷한 단어의 홍수 속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아야 한다. 우선 그라운드스케이프는 장소 특정적이려고 하지 않는다. 선배 세대와 달리 최욱은 땅 의 물리적, 역사적 흔적에 그리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청담동 근생과 현대카드 영등포사옥 모두 건물이 놓인 현장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만, 장소와 땅의 무게에 얽매이지 않는다. 청담동과 영등 포보다 역사의 더께가 더 무겁게 쌓인 삼청동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라운드스케이프는 주어진 땅과 대지의 논리, 역사와 영속성이 아니라 건축가가 관장하는 ‘바닥’의 논리다. 물론 대지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최욱의 우선 관심사는 건축 내부의 문제에 머무른다.
같은 내부 공간이라도
건축물 내부의 바닥을 어떻게 조율하고 조종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때문에 도시에서 건축을 바라볼
상업 시설과는 확연히 다른
때 (또는 건축물의 틈 사이로 도시를 바라볼 때)의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그라운드스케이프에서
주택에서는 그라운드스케이프가 더 다채롭게 전개될 수 있을
시선은 거의 언제나 실내에서 바깥으로 향한다. 공간을 구획하는 일차적인 요소가 바닥이니, 자연스
것이다. 하지만 공개된 작업이
레 내외부를 물리적으로 나누는 경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굳이 순서를
없으므로 이 글은 이번 호에
따지자면 건축가가 만든 바닥에서 출발해 주어진 대지와 외부를 고민하는 것이다. 바닥의 레벨과 재
소개된 세 건물에 국한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WORK critique 02
주1.
료의 차이로 공간을 나누고 정의하기 위해서 기둥은 최대한 억제되어야 한다. 리노베이션 작업이어 서 기둥을 없앨 수 없었던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제외하고 청담동 근생과 현대카드 영등포
주2. 정인하는 그라운드스케이프가
사옥에서 기둥이 완전히 사라진 이유다. 기둥과 슬라브의 무한 증식을 전제하는 도미노 프레임과 이
자연과 도시와 건축을 매개하는
를 변형시키고 비트는 알레한드로 자에라 폴로 류의 바닥론과는 거의 아무런 관계도 없는 셈이다. 벽
도구 역할을 한다고 해석한다.
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막아서 공간을 완전히 단절시켜 버리면, 이어지되 미묘하게 바뀌는 바닥이 눈
자연과 도시의 지면과 만나는 바닥이니, 이는 당연한 결과다.
에 쉽사리 띄지 않게 마련이다. 이를 피하는 방법으로 택한 전략이 마치 큰 전시실에 작은 공간을 나
그러므로 매개 자체가 아니라
누듯, 실내에 작은 방을 두는 것이다. 건축물 내에 또 다른 건축물을 둔 듯한 모습을 현대카드 영등포
어떤 효과를 낳는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정인하, ‘상상과 실재’, 본지 59p.
사옥의 업무 공간에서, 그리고 원오원 사옥의 일층 모형실에서 엿볼 수 있다.주1 여러 측면에서 그라 운드스케이프는 도시의 문제를 건축가가 껴안으려고 한 선배 건축가들과의 작업과 분명한 차이가 있 다.주2
박정현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AURI
기단
인문학포럼 논문 공모 대상, 제3회
최욱은 기단과 지붕으로 동양 건축을 설명하는 요른 웃존(Jorn Utzon)의 스케치에서 큰 영감을 얻
<와이드AR> 건축비평상을
었다고 말한다. 서구의 건축은 파사드와 바닥을 연결하는 논리를 추구하지만 자신의 바닥은 파사드
수상했다. “정체성과 시대의 우울”
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동서양의 건축을 바닥 대 파사드로 단칼에 구분하는 것이 흥미롭기는 하
등의 글을 발표했으며, 서울시립대, 홍익대, 단국대 등에 출강했다.
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라운드스케이프가 동양 건축과 만나는 지점을 찾아내 서구 건축과 다른
도서출판 마티의 편집장으로 일하며
가능성의 씨앗을 애써 찾아내는 것이 아니다. 설령 그런 잠재력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은 바닥으로
“1980-90년대 한국 현대건축의 담론 구성”을 주제로 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공간을 이야기하는 여러 다른 사례를 통해 최욱의 건축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대결 구도와 진영은 정체성이 드러나면 자연스레 짜여지는 것이니 말이다.
89
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존재감을 뽐내는 기단의 유무는 동서양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건축물의 성격에 달려 있다. 동서양 을 막론하고 세속적인 도시와 구분되는 건축물이 필요할 때 기단은 등장한다. 고대 그리스 신전의 기 단은 신이 거하는 영역을 일상의 공간과 구분하는 역할을 했다. 신역(神域, temenos)을 만듦으로써
Lefaivre, Classical Architecture: The Poetics of Order (Cambridge MA: MIT Press, 1986), p. 275.
축물 전체가 거대한 기단이라고 해도 좋을 멕시코 마야 문명의 건축을 기단(platform) 건축으로 언
주4.
급한다.주4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일상의 영역과는 다른 공간이 필요하면 기단이 생기게 마련이다. 또
Sigfried Giedion, Space, Time
을 빚고자 한 미스에게 기단은 단순한 기초나 바닥판 이상이었다. 미스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에 대 한 인상적인 해석을 남긴 호세 쿠에타글라스가 길에서 멍석을 펼쳐 놓고 인형극을 벌이는 인형사의 이야기를 언급하며 글을 시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주5 이 멍석 위에서 옷핀은 증기선이 되기도 하고 강아지로 변신하기도 한다. 얇은 멍석 한 장이 왁자지껄한 시장과 구분되는 연극의 장을 펼쳐 준다. 물론 최욱은 신역을 조성하지도 않고, 고요하고 균질한 수평면을 만들지도 않는다. 현대 건축사에 눈
and Architecture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98), p. 675; Jorn Utzon, “Platform and Plateaus” in Zordiac no 10 (Milano, 1962): www.arranz.net/web.archmag.com/2e/recy/recy1t.html에서 원문을 볼 수 있다. 주5.
밝은 이라면 바닥의 높이, 재료, 질감 등을 이용한 다채로운 내부 공간에서 아돌프 로스의 라움플란
Jose Quetaglas, “Fear of
(Raumplan)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내부에서 기능과 재료, 공간
Glass: Barcelona Pavilion,” in
을 분할하고 조합하는 평면 논리인 라움플란은 그라운드스케이프와 거리가 멀다. 어쩌면 우리는 풍 요로운 바닥과 파사드 부재의 예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배형민은 승효상 건축 의 바닥을 분석하면서 수백당의 “바닥은 풍부한 감각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건축의 질서를 구현하는
WORK critique 02
Alexander Tzonis and Liane
땅에 위계를 부여해 성과 속의 세계를 나누는 것이다.주3 웃존은 월대가 높이 솟은 중국의 궁이나 건
바닥면으로 공간을 지배하고자 했던 미스는 어떤가. 도시의 번잡함과 어지러움에서 벗어나 고요함
Architectureproduction (New York: Princeton Architectural Press, 1988), p. 123. 주6.
근거”라고 논한 바 있다.주6 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생활하는 좌식 문화와, 얇은 문만 열면 방이 마루와
배형민, <감각의 단면>
연결되고 대청은 마당으로 뻗어가는 한옥이라는 역사적 유전자가 한국 건축가들에게서 비슷하게 발
(동녘, 2007), 264쪽.
현되는 것일까? 감각 “자네는 이 와인에서 무얼 느꼈나?” “영원한 이별—” <신의 물방울> 2권 중에서 땅이나 장소와 친화력이 무척 높은 바닥에 근거한 건축을 들고 동서양 건축을 담론의 차원에서 비교 하는 순간, 한국 현대 건축의 지형도에서 최욱의 위치는 그의 선배 세대 쪽으로 편입될 위험이 크다. 세대론적, 미학적 입장차가 흐려지기 십상이다. 최욱의 건축은 4.3세대의 건축가들과는 분명 다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건축이 훨씬 더 감각적이다.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의 세밀하고 정교 하면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디테일, 이질적인 재료와 물성이 만나는 경계면이 뿜는 풍요로움은 한 국의 다른 건축가들의 작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젊은 건축가들에게서는. 최욱 건축이 누 리는 경제적 조건이 다른 이들과 다르기에 단순한 비교는 무의미하지만, 이런 건축물을 가능케 한 물 적 토대 못지않게 중요한 차이가 감각의 차이이다. 한때 감각은 신체를 가진 이라면 누구나 공유하는 것이기에 공통 감각(sensus communis)이란 이름으로 개별적 차이를 넘어서 보편성으로 나아가려는 시도도 있었다. 많은 건축가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현상학적 공간 역시 논리 이전의 감각을 통한 체 험의 보편성에 기대고 있다. 상대적 가치와 기질 등을 잠시 잊어 두고 존재의 보편성을 느끼게 해 주 는 체험을 갈망하는 것이다. 근대의 모든 편의 장치가 배제된 하이데거의 오두막에서 자연과 건축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시자(Alvaro Siza)의 수영장과 세라(Richard Serra)의 육중한 코르텐에 이르기 까지 강렬한 체험은 죽어 있는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고자 한다. 무어라 딱 꼬집어 말하기는 힘들지만 존재의 밑바닥을 들추는 숭고의 체험이야말로 근대 이후 미학의 근간이었다.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건축계가 현상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넓게는 근대 이후의 미학적 프로젝 트이자, 좁게는 지역주의의 윤리적 프로젝트였다. 이미지, 기능 중심의 건축을 피하고 ‘거주’를 꿈꾸 는 이들의 감각은 우리를 초월적 가치로 인도하려 한다. 이 가치는 비판(적 지역주의), 선비, 윤리, 진
90
주3.
Wide Work | 와이드 워크
정성, 때로는 반자본 등의 기표의 옷을 입고 등장한다. 최욱은 이 체험과 감각의 세계와 공유하는 바 가 없지 않지만, 분명 여기에서 떨어진 위치에 서 있다. 무엇보다 최욱의 감각은 세속적이다.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의 계단, 가구, 조명 등이 감각적 경 험을 통해 초월을 꿈꾸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감각을 배가하길 원한다. 시각은 촉각으로, 촉각은 청 각으로 이어진다. 질 좋은 위스키 잔이 시각, 후각, 촉각, 미각에 이르는 모든 감각을 일깨우고 개인의 기억과 추억까지 불러일으키듯이 말이다. 대중문화에서는 장인과 대가의 다다르기 힘든 경지를 그 리는 방법으로 감각의 증폭을 이야기한다. <신의 물방울>이나 <미스터 초밥왕> 같은 일본 만화에 서 와인과 초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오감은 물론이거니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일깨우고 심리적 트라우마까지 건드리고 치유한다. 만화적 과장이 있지만, 우리는 저런 감각의 세계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최욱은 뉴햄프셔 오두막에서 한 달 동안 머무르면서 어릴 적 살던 공간을 떠올리게 된 사연 을 이야기한다. 어렴풋한 기억의 단편만 떠오르다가 방을 가득 채우던 부산의 뱃고동 소리가 기억나 주7. 최욱, ‘한옥이야기’, <ONE O ONE architects> (서강총업출판사, 2008) 주8.
자 “공간은 사건과 인지된 감각을 통해 떠올랐다”고 술회한다.주7 이 예민한 감각의 세계가 거하는 곳 은 개인의 기억과 욕망, 그리고 감식안이다. 보편적이거나 집단적인 경험과 기억이 아니다. 똑같이 칼 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인용하지만, 마르코 폴로가 전하는 이야기를 집단과 장소의 기억으 로 새기는 이들과 달리 최욱은 개인의 기억과 욕망을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세라의 작품이 관객을 무
이는 공간 자체보다는 운영
장 해제시키는 것과 달리 최욱의 건축은 수준 높은 눈을 요구한다. 알아볼 수 있는 사람만 알아보는
방법 때문에 빚어지지만, 건축이
건축이다. 정치적 공정성이나 최근의 미학 정치적 입장에서 최욱의 건축이 감각적인 것의 배분을 고
이 운영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1층 출입구에서 2층으로 들어가는
착화한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학적 평등은 현실이 아니라 요청(imperative)으로만 존재한다. 오히려 지적해야 할 것은 디테일과 디자인을 물신화할 위험이다. 실제로 배타적이고 책을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예비
예술 작품처럼 대하는 현대카드 측의 운영 때문에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는 물신화의 냄새가
단계의 역할을 한다. 현대카드의 성공이 디자인과 명품 물신화에 따른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운영 방침일지도 모른다.
짙게 배어 있다. 책이 닳고 헤지고 찢어지고 분실될 위험이 제거된 도서관에서는 공간의 경험 역시 표백될 우려가 있다.주8 물신이 된 디자인은 오감을 펼쳐 놓기보다는 움츠러들게 한다. 간자키 시즈쿠(<신의 물방물>의 주인공)처럼 처음 맛본 와인에서 유년기에 어머니의 품안에서 느 꼈던 햇살과 향기를 떠올리는 이가 얼마나 있겠냐마는, 근사한 와인 한 잔의 경험은 많은 이들을 더 세련된 감각으로 이끌기에는 충분하다. 속물의 취미로 그칠 수도 있지만, 와인에 녹아든 자연, 역사,
WORK critique 02
계단까지의 화이트큐브는 물신의
문화, 그리고 인간의 노동에 관심을 기울이게 할 수도 있다. 어쩌면 한국 사회에 더 필요한 건축은 윤 리적 진지가 되어 각성을 촉구하는 근엄한 건축이 아니라, 더 좋은 공간을 욕망하게 만드는 세속적 건축일지 모른다.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것은 욕망하지 못하는 법이기에, 우리에게는 더 좋은 경험이 필요하다. 조형적 형태가 선사하는 낯선 분위기나, 적당함과 쾌적함을 넘어서 세심히 조탁된 공간은 얼마나 드문가. 초월에 물들지 않으면서 동시에 물신에도 빠지지 않고 세속적인 감각을 세심히 배려 하는 자리, 한국 현대 건축의 지형도에서 최욱이 차지하고 있는 (또는 점해야 할) 위상이다. 세대론으 로 보아도 진정성을 추구해 온 세대와 당장의 생존이 우선 과제인 세대 사이에 있다. 공적 담론의 장 으로 들어온 그라운드스케이프가 더 공공적인 건축물에서 펼쳐져 우리의 감각을 자극해 주길 기다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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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와이드 EYE 1
이타미 준: Itami Jun: 바람의 조형 Architecture of the Wind 2014. 1.28~7.27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5전시실 (건축 상설 전시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은 2014년 1월 28일부터 2014
최우용
년 7월 27일까지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전을 개최한다.
인천에서 태어나서 초·중·고등학교를
재일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 1937~2011)의 대규모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2005년
회고전인 이번 전시회는 일본에서의 1970년대 작업부터 말 년의 제주 프로젝트까지 40여 년에 걸친 그의 건축 세계를 아우르며, 2013년 미술관에 기증된 이타미 준의 아카이브와
모두 이곳에서 졸업했다. 동국대학교 (주)엄앤드이종합건축사사무소에 입사하여 현재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유럽방랑 건축 畵>와 <다시, 관계의 집으로>가 있다.
유족 소장품으로 구성됐다. 특히 이 전시는 2013년 <그림일 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전에 이은 두 번째 건축 상설 기 획전으로 주목을 모으고 있다.(편집자 주)
와이드 EYE 1
자료 제공/국립현대미술관
92
1982 온양미술관, 2부 소재의 탐색
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바람의 조형, 이타미 준과 유동룡의 경계에서 최우용 (주)엄앤드이종합건축사사무소 팀장, <다시, 관계의 집으로> 저자
맨해튼 시리즈, 1부 근원
“제 자신이 고유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Report
언젠가 누군가가 발견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현재는 고유성을 갖고 싶지 않습니다. 좀더 깊고 좀
37 와이드 REPORT
<방.방.곳.곳.> vs.
<성북구의 어떤 집>
젊은 건축가, 도시 한옥과
대안적 주거 형식을 고민하다
92 와이드 EYE 1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
Itami Jun:
Architecture of the Wind
최우용
100 와이드 EYE 2
2014 아시아 건축도시연합
워크숍 참관기
ACAU Workshop
at University of Seoul
정평진
102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5
조명환 AMPHIBIOUS
107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6
박재영 문화의 유전자 전통 건축
112 사진 더하기 건축 17
이 시대의 이미지
The Images of our times
토마스 루프 II
Thomas ruff II
와이드 EYE 1
1997년, 이타미 준은 어느 대담에서 말했다.
더 극한까지, 인습적인 것에 도전하며 창작하고 싶을 뿐입 니다. 차츰차츰 변화하고 싶습니다.” 이타미 준(伊丹潤, 한국명 유동룡)은 1937년 도쿄에서 태 어났고 2011년 도쿄에서 운명했다. 그는 평생을 한국 국적 으로 살았으며 이타미 준과 유동룡의 경계에서 성찰했다. 귀속되지 못하는 자, 날카로운 경계의 선 위에서 박경리의 <토지> 속에서 우리의 근현대사는 유장하게 흘 러간다. 25년에 걸쳐 연재된 장대한 소설은 원고지 4만여 장 속에서 6백여 명을 등장시키며 우리 질곡의 근현대사를 완성해 내고 있다. 긴 호흡 속에서 희로애락은 극적으로 노 정되지 아니하며, 실제 있었음직한 허구의 인물들을 통해 조용하고 섬세하게 떠오른다. < 토지> 는 이 땅에 뿌리박 힌 민중의 삶이 뿌리 뽑힌 채 떠돌아야 했던 표박(漂泊)의 삶을 길고 긴 호흡으로 그려 내고 있다. 구한말, 생존을 위 해 제 나라 안을 납작 엎드린 채 포복하듯 기어야 했던 삶 은 지난했고, 박박 기어도 살아 낼 수 없는 삶들은 제 나라 밖으로 떠밀리듯 밀려나야 했다. 이 국외를 떠도는 삶 또한 지난할 수밖에 없었다. <토지> 속 등장인물들이 바다 건 너 일본으로 건너갈 때, 어쩌면 유동룡의 부친은 그들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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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EYE 1
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끼어 있는 또 한 명의 이름 없는 등장인물이었을지 모른다.
1960년대 중후반의 일본 건축계는 일본 경제 활황을 맞아
천 년 전, 태조 왕건을 보필한 유금필은 평산유씨(平山庾
일대 도약의 기회를 마련했다. 일찍이 서구 근대 건축의 거
氏)의 시조가 되었다. 경남 거창 출신인 유동룡의 부친은
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브루노 타우트는 일본에 그들
천 년 전 인물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꼭 쥐고 일본으로 건
의 작품과 저작을 발표했고, 1959년 르 코르뷔지에는 도쿄
너갔다.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교포 1세대들
도심 한복판 우에노에 국립서양미술관을 설계했다. 르 코
그리고 유금필의 이름 없는 33대손은 식민지국의 열등 국
르뷔지에에게 사사한 마에카와 쿠니오(前川國男)는 스승
민으로 모진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야 했다. 그리고 유동룡
의 건축을 마주보는 곳에 스승의 어법으로 도쿄문화회관
은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심한 차별과 모진 학대 속
을 설계했으며, 단게 겐조(丹下健三)를 중심으로 하는 메
에서 성장한 재일교포 2세대들, 그리고 유금필의 34대손
타볼리즘 그룹은 국제 건축계에 일본 건축을 깊숙이 진입
유동룡에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숙명처럼 따라다녔다.
시키기 시작했다. 이후 마키 후미히코(槇文彦), 이소자키
그는 ‘이방인’이었으며, ‘일본에서는 조센징으로, 한국에서
아라타(磯崎新)로 이어지는 일본 건축계는 서양 대 동양
는 일본인’일 수밖에 없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
이란 의도적인 대립 구도 그리고 오리엔탈리즘적 열등의
할 때까지 한국 이름 유동룡으로 살았으며 조국에 대한 상
식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하며 그 스스로 국제 건축계
념 속에서 고뇌했다.
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유동룡은 1964년 무사시 공업대학 건축과를 졸업하고
이타미 준의 건축은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와 그
1968년 자신의 설계 사무실을 개소했다. 이때 그는 이타미
의 건축은 일본 건축계의 ‘중심’으로 편입될 수 없었다. 모
준(伊丹潤)이란 예명이자 필명을 작명한다. 오사카국제공
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새로운 건축 언어들의
항은 대부분 효고현 이타미시에 놓여 있어서 이타미공항
혼재 속에서 거대 담론으로 소용돌이치는 일본 건축계에
이고도 불리는데, 그의 예명 또는 필명 ‘이타미’는 공항 이
한국 국적의 이방인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많지 않았을
름에서 빌려온 것이다. 그에게 있어 ‘이타미’란 작명은 머
것이다. 더불어 이방인이란 태생적 고민을 안고 있었던 이
무르지 못하고 항상 떠남을 예비해야만 하는 이방인의 은
타미 준에게는 이 중심적 관성에 스스로 편입될 의지 또한
유였을지 모른다.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온전한 한국 건축가일 수 없었고 법적인 일본 건축가
이타미 준에게는, 그의 부친이 그러했던 것과는 달리, 천
일 수 없었다. 이 날카로운 경계의 선 위에서 그는 늘 자신
년 전 인물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기초하는 것은 아득하고
의 위치와 그가 만들어 나갈 건축의 자리를 더듬었다.
또 모호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를 비춰줄 보다 구체 적인 거울 이미지를 찾아 나섰다. 그래서 일본 속 한국 국
귀속하지 아니하는 자, 중심의 관성 밖에서
적의 이타미 준은 조선의 초가, 민화, 가구, 골동품 그리고
거울을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거울에 비친 상을 보기 위
한국 산하의 정서에 대해 편집증적으로 집착하였고, “사물
함인데, 그래서 내가 거울을 보는 이유는 거울에 비친 나
본래의 입장에 서서 자연을 한없이 동화시키는” 모노파(物
를 보기 위해서다. 라캉이 말하는 거울 단계에서 데카르트
派)와 의식을 공유하였으며, 서구 모더니즘에 대한 강박장
가 정초한 코기토(cogito:cogito ergo sum의 준말, 나는
애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 건축계와 불화하며 시대정신에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즉 ‘생각하는 내가 존재하
대한 비판적 사고와 생생한 만들기를 아울렀던 일본 건축
는 나’라는 근대적 주체 개념은 부정된다. 진정한 나를 알
계의 이단아 시라이 세이치(白井晟一)와 깊은 교류를 이
기 위해서는 ‘나’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객관적 시선으
어갔다.
로 타자로서의 나를 응시해야 한다. 구조주의 그리고 라캉
이타미 준의 건축은 교조적 모더니즘의 관성이나, 들불처
을 거치며 주체를 인식하는 틀은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
럼 일었던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풍요로운 관념과는 달
했다.
리 실체는 허약하고 빈약한 현대 건축의 궤적에서 비켜서
‘나’란 존재에 대한 고민,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숙명적인
있는데, 이는 중심의 관성 밖에서 고뇌한 이방인 또는 경계
고뇌 속에서 성찰한 이타미 준에게 코기토란 처음부터 성
인 이타미 준의 건축이 어떠한 모습으로 전개될지를 짐작
립 불가능한 개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자
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기를 비춰 볼 거울을 찾아야만 했다. 이타미 준은 그 거울
94
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려 했으며, 그 거울에 비친
바람의 조형을 향하여
여러 상(타자)들을 조합해 나가며 자신이 만들어 나갈 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타미 준:바람의 조형>전이 열리
축의 방향을 모색하려 했다.
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건축가 정기용에 이어 두 번째
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1992
각인의 탑, 3부 원시성의 추구
M 빌딩, 3부 원시성의 추구
와이드 EYE 1
1988
교회 스케치, 3부 원시성의 추구
먹의 공간 스케치, 3부 원시성의 추구
95
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IFEZ 4부 매개의 건축
학고재
와이드 EYE 1
4부 매개의 건축
서원 골프 클럽하우스 모형, 4부 매개의 건축
96
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와는 다르게 제3자 또는 제3의 나라에서 바라보는 이타미
생각하게 한다. 이타미 준은 일본 건축계에서 뿐만 아니라
준의 정체성은 비교적 명확했다.
한국 건축계에서도 이방인이었다. 그는 ‘일본에서는 조센
이타미 준의 전시는 6개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징으로, 한국에서는 일본인’일 수밖에 없었던, 어디에도 속
이타미 준의 ‘근원’을 말하고 있다. 그의 청년 시절부터 시
할 수 없는 소외된 건축가였다. 그러나 그는 양국의 배타적
작되었던 곽인식, 이우환, 세키네 노부오(關根神夫) 등을
분위기와는 달리 국제적으로는 (한국의 어느 건축가도 받
중심으로 하는 모노파와의 교우는 그의 건축적 성향과 불
아 본 적 없는) 극진한 환대를 받는 건축가였다. 프랑스 기
가분의 관계를 이룬다. 사물(物)의 근본 그리고 사물과 인
메미술관에서 건축가 최초의 개인전(2003)을 열었으며,
간 또는 사물과 세계 사이에서 발생되는 관계에 대한 모노
독일 아이데스갤러리에서 개인전(2004)을 가졌고 프랑스
파의 고민은 건축을 이루는 재료와 조형에 대한 이타미 준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수훈(2005)하였다. 그리고
의 고민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의 건축을 관통하는 돌,
2006년 김수근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말년인 2010년 일
흙, 금속, 유리, 나무 등 건축 재료에 대한 실험과 그것들이
본 최고 권위의 건축상인 무라노 도고상을 수상하였다. 한
이뤄 내는 조형에 대한 탐구는 모노파의 영향을 받았음이
국 그리고 일본에서의 상대적으로 뒤늦은 수상 (또는 인
분명해 보이는데, 그는 여러 재료들을 직접 만지고 또 만들
정)은 한국과 일본에 걸쳐 있지만 어느 곳에서도 힘겨울
면서 그 만들어진 것(조형)들이 어떻게 현상하게 될 것인
수밖에 없었던 그의 자리를 환기시키는 듯하다. 그래서 이
가를 계속해서 고민했다. 더불어 그가 보여 주었던 조선의
번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는 조선의 미와 한국적 정
건축과 마을들에 대한 천착 그리고 민화, 자기, 가구 등 고
서 그리고 자연의 서정에 탐닉했던 ‘일본의 한국 건축가’
미술품을 향한 ‘집념의 수집 정신’은 그가 찾고자 했던 미
이타미 준을 한국에 온전히 소개하는 장으로 의미 있어 보
의식의 본원과 건축적 지향점이 한국 문화의 틀 안에 놓여
인다. 참고로 ‘일본의 한국 건축가’는 2003년 프랑스 기메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1부는 이타미 준의 근원을 밝혀줄
미술관에서 열렸던 이타미 준 개인전의 타이틀이었다. 이
여러 아카이브를 통해 전시의 서막을 열고 있다.
타미 준의 태생적 정체성과 완성도 높은 건축 사이에서 한
2부에서 4부에 이르는 전시에서 이타미 준의 건축은 연대
국과 일본 양국이 보여 주었던 앰비밸런스(ambivalence)
기적으로 분류되어 ‘소재의 탐색’-‘원시성의 추구’-‘매개
와이드 EYE 1
건축 아카이브 작가로 이타미 준을 선택한 것은 많은 것을
1998 핀크스, 핀크스 골프클럽하우스, 5부 바람의 조형 97
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석 미술관, 5부 바람의 조형
수 미술관, 5부 바람의 조형
사진 김용관
사진 김용관
2009
와이드 EYE 1
하늘의 교회, 5부 바람의 조형
하늘의 교회(방주교회), 5부 바람의 조형 사진 김용관
98
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의 건축’ 순으로 흘러간다. 이 연대기적 분류의 당위성과
다니며 자지러지고, 한 노인은 늙음의 고요함으로 미술관
분류 결과의 정합성에는 다소의 의문이 생기지만, 건축계
내・외부를 조용히 거닐고 또 관조하며 사색한다. 감독은
내부와 외부를 아우르는 대중적 전시라는 측면에서 이타
‘사람의 온기, 생명을 작품 밑바탕에 두는’ 이타미 준의 건
미 준과 그의 건축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차선의
축을 정다운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전시는 완성도 높은 드로잉과 건축
6부에서 이타미 준의 딸이자 건축가 유이화는 이타미 준
모형으로 채워지는데, 특히 이타미 준의 드로잉은 그 하나
의 작업 공간을 재현해 놓았다. 이타미 준이 생전에 사용했
로 독립적인 작품일 수 있는 수준 높은 완결성을 보여 주
던 책상과 의자, 책과 문구류들을 포함해서 그가 수집했던
고 있으며 관람객의 시선을 압도하고 있다.
공예품과 현대 회화 등이 놓인 작가의 아틀리에는 인간 이
5부 ‘바람의 조형’은 이타미 준이 제주에서 작업했던 프로
타미 준의 온기를 전해 준다. 이 온기 속에서 이타미 준의
젝트들을 보여 준다. 그는 고희를 넘긴 나이에 제주에서 청
전시는 대미에 이른다.
년같이 정열적으로 일했는데, 이 시기 그의 건축은 원숙함 거울을 보며
판 위에서 가장 찬란해 보인다. 그는 억새로 뒤덮인 제주
이타미 준은 자기 자신을 온전한 주체로 만들어 줄 수 있
중산간의 허허로운 벌판 위에, 그림 같은 오브제로 자유로
는 거울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던가? 이 성공 여부에 대한
운 서정의 건축을 완성했다. 그가 제주에 남긴 호텔 그리고
대답은 오직 그만이 할 수 있을 듯한데, 이미 그는 망자의
미술관 연작은 포도와 초가 그리고 물과 바람과 돌을 통해
백골이 되어 부친의 고향인 거창과 그의 마음 속 고향인
은유와 직유로 넘실거리고, 방주교회는 그 하나가 통째로
제주에 반반씩 뿌려져 대답을 들을 길은 없어졌다.
알레고리를 구성하며 시적인 서사의 상상을 가능하게 해
그런데 어쩌면 그는, 일본의 한국 건축가이며 이방인이었
준다.
던 그는, 한국의 건축과 ‘모던 코리아’를 객관적 시선으로
5부 전시 공간 한 곳에서는 정다운 감독의 영상 ‘또 다른
심도 있게 응시한 첫 번째 한국 건축가였을지 모른다. 그의
물, 바람, 돌’이 상영된다. 제주 수・풍・석 미술관에는 사
건축이 한국 건축의 이름으로 세계에 회자되었던 이유는
시사철의 시간이 흘러가고 눈과 바람과 비가 흘러든다. 그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타미 준의 건축은 이 지점에서
속에서 한 아이는 어린 생명의 푸르름으로 미술관을 뛰어
우리에게 뒤돌아보라, 뒤돌아보라 하고 있다.
와이드 EYE 1
의 절정에 이른다. 이타미 준의 건축은 제주 무인지경의 벌
6부 이타미 준의 작업 공간
전시장 풍경
99
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와이드 EYE 2
2014 아시아 건축도시연합 워크숍 참관기 ACAU Workshop at University of Seoul 정평진 본지 인턴 기자
2014 아시아 건축도시연합(Asian Coalition for Architecture
1. 건물의 배치를 통해 아파트 건물 사이의 경관만을 취할
and Urbanism/이하 아카우, ACAU) 워크숍이 서울시립
수 있었던 기존 계획들과 달리 보존지구에서의 자연 경관
대학교 주관으로 지난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개최됐다.
을 고려한다.
ACAU는 아시아 건축도시의 논의를 위한 공동워크숍을
2. 보존 지구와 새로운 아파트 단지 사이의 완충 영역을 텃
개최하기 위해 결성된 연합이다. 2004년 서울시립대학교,
밭으로 이용함으로써 두 지역 간의 상호작용을 야기한다.
국립싱가포르대학교, 상해의 동제대학교, 홍콩대학교, 태
3. 완 충 영역에 면한 34개의 테라스 하우스를 통해 두 개의
국의 어셤션 등 5개 대학의 연합으로 출범하여 현재는 말 레이시아의 국립말레이대학교, 대만의 국립성공대학교가
와이드 EYE 2
후속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매해 하계나 동계 방학 중 일
다른 조직 사이의 균형을 형성한다. 4. 유치원, 공원 등 거주자의 공용 시설은 저층부로, 거주 영역은 고층부로 나누어 계획한다.
정 기간 동안 7개 대학의 건축, 도시, 조경, 관련 분야 학생
5. 환경적으로,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지역을 만들기 위해
들과 교수진이 한 도시에 모여 도시의 구체적인 현안을 놓
서 거주자가 옷 교환, 도시 농장, 카쉐어링 등 다양한 활
고, 해법을 제시하는 설계스튜디오와 세미나, 현장 답사 등
동에 참여할 수 있는 협동조합 조직을 위한 시설을 공급
을 통하여 아시아권 도시의 공감대 형성과 협력의 장를 넓
한다.
히는 프로그램이다.
한편 이민아는 백사마을이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인 만큼 이
이번 워크숍의 주제는 ‘POST-APATEU(중계동 백사마을
프로젝트가 갖는 의미가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전
을 대상으로 아파트 재개발 이후 시대의 대안 모색)’이다.
면 철거와 재건축이라는 지금까지의 재개발 과정과 달리 이
워크숍은 설계 스튜디오 운영과 특강 및 세미나, 현장 특강
프로젝트의 핵심은 남기고 보존할 대상을 결정하는 일이었
등으로 구성되었고 시립대학교 학부생 16명 및 건축학 전
으며, 심사숙고 끝에 ‘지형’, ‘집 터’, ‘길‘ 세 가지의 물리적 요
공 10여 명과 태국, 대만, 싱가폴 등 6개 나라 대학의 학생
소와 ‘기존 거주민들의 삶의 방식’이 보존 원칙으로 결정되
및 교수까지 총 100여 명이 참여했다. 22~23일 양일간 12
었다. 설명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에서의 ‘지형’은 자연적으
명의 국내・국외 학부생으로 이루어진 5개 연합스튜디오
로 형성된 지리적 형태가 아닌 인공적인 것을 의미했다. 골
가 운영되었으며, 그에 앞서 참가 학생들은 20-21일 진행
목길과 차로, 계단 등이 산등성이 위에 만들어졌으며 이것
된 승효상 이로재 대표의 백사마을 현장 특강과 송인호, 마
이 곧 백사마을의 고유한 특징이 된다. 터는 거주민들이 그
크 브로사 서울시립대 교수, 임재용(OCA), 이민아(협동
곳에 집을 짓기 위해 산등성이 위에 만든 땅을 의미한다. 모
원) 건축가의 특강 및 세미나에 참여했다.
든 집들이 어떠한 장비도 없이 수작업으로 완성되었고, 터 는 자연 지형에 따라 결정되고 형성되었으며, 골목길은 그
100
백사마을, 보존과 개발 사이
렇게 형성된 터에 따라서 만들어졌다. 터를 만드는 것이 가
21일 특강에서 임재용은 기존 도시 계획의 지구단위계획
장 우선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골목길은 매우 불규칙한 방향
에 따른 맹목적인 최대 용적률은 더이상 이윤을 담보하지
으로 만들어졌다. 이 또한 백사마을이 보존해야 할 독특한
못하며 아파트 단지의 주요 가치가 단지의 크기, 브랜드,
특징 중 하나이다. 한편, 거주민들은 길에 화분을 내어 놓고
교육 시설에서 자연친화적 전략과 치유, 경관, 커뮤니티 공
각종 식재를 심음으로써 이웃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중립적
간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와 같은 새
인 영역으로 길을 이용한다. 마지막 보존 대상은 기존 거주
로운 도시 패러다임의 가치를 수용하는 동시에 재개발 지
민들의 삶의 방식으로, 그 목표는 그들의 사회-경제적인 생
역이 기존의 영역과 조화를 이루게 하기 위한 다음과 같은
활 방식을 유지하는 데 있다. 이어서 이러한 원칙에 따라 ‘지
내용의 다섯 가지 전략이 소개되었다.
속가능성, 조직화, 공유, 차이’ 등 네 개의 키워드를 가진 다
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Team GA
음과 같은 내용의 마스터 플랜이 소개되었다. 1. 지형과 골목길, 사회적 관계는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위 한 요소이다. 2. 불규칙한 골목에 자동차와 보행자를 위한 순환 체계를 덧붙이고 넓은 골목은 커뮤니티 공간으로 보존한다.
Team NA
3. 일조량과 텃밭 그리고 세탁소, 공부방, 도서관, 노인들을 위한 양로원 등의 공공시설은 공유된다. 4. 차이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몸이 불편한 이 들은 골목길에서 가까운 집에서 살게 된다. 다섯 스튜디오의 작업 마지막날인 24일 금요일에는 이틀간 수행한 다섯 스튜디 오의 협동 작업 결과물에 대한 발표와 크리틱이 진행되었
Team DA
다. 다음은 각 팀의 설계안에 대한 간략한 소개이다. Team GA, ‘UP’PARTEU : 주민들에게 몇 가지의 계획 안을 소개하고 해당 지역의 관광을 통해 발생한 수익으로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을 개선해 나가는 방식을 제안하였다. Team NA, THREADING TERRAIN : 지상의 경관을 보존하는 동시에 부족한 시설과 공간을 확보하고 현대적 인 생활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거대한 지하 구조 물을 계획하고, 보존된 지상은 기존의 특징을 활용해 주거,
Report
상업, 다목적 시설 등으로 이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Team DA, DENSITY 300% : 접근성, 경관, 일조와 통풍,
37 와이드 REPORT
인프라 등의 보편적인 가치 기준의 불균등한 분포를 조사
<방.방.곳.곳.> vs.
<성북구의 어떤 집>
젊은 건축가, 도시 한옥과
한 후 모든 지역의 가치를 균등화하는 계획을 제안하였다.
대안적 주거 형식을 고민하다
Team RA, TOOLBOX : 길의 위계 설정을 통한 도로망
92 와이드 EYE 1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
Itami Jun:
Architecture of the Wind
최우용
개선과 가구 형태에 따라 모듈화된 주거 유형, 그리고 광 장, 공원, 다목적 공간, 상업 시설 등의 공공 공간이 5년마 다 점진적으로 개발되는 안을 계획하였다. Team MA, URBAN VILLAGE : 도시 조직에 침술로
100 와이드 EYE 2
2014 아시아 건축도시연합
워크숍 참관기
ACAU Workshop
at University of Seoul
정평진
102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5
조명환 AMPHIBIOUS
비유되는 작은 규모의 여러 가지 국지적인 개입들을 통해 촉매 작용을 일으킨다는 계획안을 제시했다. Team RA
이미지 건축의 거처 06
박재영 문화의 유전자 전통 건축
‘아파트 재개발 이후 시대의 대안 모색’이라는 워크숍의 주 제에 걸맞게 다섯 개 스튜디오의 설계안들은 특강에서 소 개된 것을 포함한 기존의 계획들과 많은 차이를 보여 주었
107 건축 사진가 열전 :
와이드 EYE 2
다. 한편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안들이 서로 공유 하고 있는 몇 가지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은 이
112 사진 더하기 건축 17
이 시대의 이미지
The Images of our times
토마스 루프 II
Thomas ruff II
번 워크숍의 가장 큰 수확 중 하나일 것이다. 워크숍 참가 자들의 공통된 경험이 훗날 아시아 건축, 도시에 필요한 훌 륭한 자산으로 남게 될 것을 기대한다. Team MA
101
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5
*이 글은 부산대학교 우신구 교수가 조명환의 사진 작업에 대해 쓴 글이다.
조명환 AMPHIBIOUS
히로시마
홍콩
베이징
102
파리
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조명환의 Amphibious Eye Project :
Report
양서류가 바라본 도시 37 와이드 REPORT
<방.방.곳.곳.> vs.
<성북구의 어떤 집>
젊은 건축가, 도시 한옥과
대안적 주거 형식을 고민하다
우신구 | 부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Amphibious living bridges the dynamic threshold
92 와이드 EYE 1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
Itami Jun:
Architecture of the Wind
최우용
between solid(st able) and liquid(ephemeral and indeterminate) landscapes. -Kelly Shannon 수륙(양서류)의 삶은 단단한(안정된) 경관과 유동적인(일
100 와이드 EYE 2
2014 아시아 건축도시연합
워크숍 참관기
ACAU Workshop
at University of Seoul
정평진
시적인 그리고 불확정적인) 경관 사이의 역동적 경계를 연 결한다.-켈리 샤논 여전히 물이 그리운 인간
102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5
모든 생명은 물에서 비롯되었다. 물속에서 아주 간단한 단
조명환 AMPHIBIOUS
백질이 기적적으로 합성되어 진화를 거듭하면서 복잡한
107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6
112 사진 더하기 건축 17
이 시대의 이미지
The Images of our times
토마스 루프 II
Thomas ruff II
생명체로 발전하였다. 부드럽고 유동적인 물은 생명체에
박재영 문화의 유전자 전통 건축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5
게는 풍요로운 자궁이었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물속 생 명체의 일부는 조금씩 조금씩 풍요로운 물을 떠나 수분이 없는 건조한 뭍으로 상륙하였다. 그 척박하고 메마른 땅에 서 생존하기 위해 육지 생명체는 물속 생명체보다 더욱 다 양한 방식으로 진화하였다. 일부는 뛰어다니고, 일부는 땅 속으로 들어갔고, 또 일부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긴 진화 이야기의 가장 큰 반전은 바로 인간이다. 인간 은 단단한 갑각,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다부진 다리나 날 개와 같은 신체 기관을 진화시키지 못했다. 살과 살을 맞 부딪히는 싸움에서 인간은 숱한 짐승들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진화라는 사각 격투기의 현장에서 도태되어 마땅해 보이 는 인간이 대신 진화시킨 것은 지적 능력이었다. 그들은 도 구를 사용하였고, 불을 피우며, 언어를 발전시켰고, 결국 뭍을 지배하는 거대한 문명을 건설하였다. 인간이 건설한 위대한 문명의 가장 뚜렷한 징표는 바로 도시이다. 하늘로 더욱 더 높이 솟아오르는 마천루의 뾰족한 첨탑은 긴 진화 의 정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물을 떠나 육지에 거주하고 있 는 인간도 물과의 끈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 것 같다. 산 업화가 진행된 지역 인구의 약 절반 정도가 해안으로부터 1km 이내에 거주하고, 전 세계 인구의 약 60% 가량이 해 안 지역에 거주하며, 인구 250만 명 이상의 세계 도시 중 3 분의 2가 하구역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세계의 20대 도시 중 13개가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물을 벗어나 뭍에서 위 대한 문명을 건설했지만, 인류는 여전히 물 근처에서 살고 있다. ‘물에 남은 생명’과 ‘뭍에 오른 생명’. 그 둘 사이에는 수억 년의 진화 과정이 개입되어 있지만 의외로 여전히 가
103
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마이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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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상하이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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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까운 거리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도시와 생명의 기원 혹은 종말을 바라보는 양서류의 시선 조명환의 사진은 그 가까운 거리에서 그 긴 진화 과정 의 시간적 간격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물과 뭍의 경계에 서 그 두 세계를 동시에 포착한다. 그는 몸과 카메라 렌즈 의 반쯤을 물에 담그고 두 세계를 함께 바라본다. 양서류 (Amphibian)의 시각이다. 양서류는 특이하다. 생의 전기
노르망디
는 아가미로 수중 호흡을 하면서 물에서 살고, 후반기는 허 파로 공기 호흡을 하면서 뭍에서 산다. 그의 짧은 생 속에 는 그 긴 진화 과정이 다 들어 있다. 바다 속에 남은 생명체 와 육지에 상륙한 생명체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가 바로 양 서류이다. 조명환의 사진 속에서 도시는 견고한 지반을 상실하고 물 위에 떠 있다. 물과 도시를 나누는 경계는 안정된 수평선이 아니라 언제나 출렁이고 흔들리는 유동적인 수면이다. 더 욱이 물과 뭍은 정확히 절반이 아니다. 때로는 물이 서서히 빠져나가면서 도시의 찬란하고 위풍당당한 모습이 빛 아 래에 드러나기도 한다. 또 때로는 타락하고 더러운 도시가 쓰나미같은 해일에 잠겨 마천루의 꼭대기만 겨우 남아 있 기도 하다. 물에 잠겨 사라지고 있는 소멸태의 도시, 물에서 조금씩 모 습을 드러내고 있는 생성태의 도시, 조명환의 사진 속에서 도시는 그 둘 사이의 불안정한 찰나이며 균형이다. 그 둘
싱가포르
사이를 오가는 불안정한 모습이 세계화, 지구화, 개방화, 신자유주의의 쓰나미 속에 아슬아슬하게 생존하고 있는 오늘날 도시가 처한 상황이기도 하다. 양서류 잠수복을 껴입고 개구리의 안구같은 카메라를 수 면에 띄워 놓고 세상의 바다를 부목(浮木)처럼 떠다니면 서 건져낸 조명환의 사진에서, 나는 도시와 생명의 기원을 본다. 동시에 도시와 생명의 종말을 본다.
베니스
샌프란시스코
106
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6
전통 건축을 주제로 사진 작업을 시작한 지 어언 20여년의
박재영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수많은 답사와 촬영 작업을 진행해
문화의 유전자 전통 건축
왔지만, 작업을 하면 할수록 전통 건축에 대한 의문만이 세 월의 겹만큼 쌓일 뿐이다. 그 의문을 기록하고 풀어가는 것 이 내 사진 작업의 과제라 생각하며 이 글을 시작한다. 흙담이 정겹고 창호지가 따수운 이유 한 지역의 전통문화는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보편 적 정서가 시간의 축적으로 자연스레 발생하는 결과물이 다. 그러기에 문화는 지역별로 특성을 가지는데, 그 대표적 인 것이 의식주(衣食住)이다. 옷 입은 겉모습으로 어느 민 족인지 구분이 가능하고 나라별로 음식 맛이 다르며 집의 형태가 다르지 않는가. 이 중에서 주에 해당하는 집은 지역의 자연 영향을 가장 많이 받으며 발달하여 왔다. 눈이 많은 지역은 뾰족한 지붕
승소고택, 자연재는 세월을 기록하는 능력이 있다.
Report
37 와이드 REPORT
<방.방.곳.곳.> vs.
<성북구의 어떤 집>
젊은 건축가, 도시 한옥과
대안적 주거 형식을 고민하다
92 와이드 EYE 1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
Itami Jun:
Architecture of the Wind
최우용
100 와이드 EYE 2
2014 아시아 건축도시연합
워크숍 참관기
ACAU Workshop
at University of Seoul
정평진
102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5
조명환 AMPHIBIOUS
107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6
박재영 문화의 유전자 전통 건축
112 사진 더하기 건축 17
이 시대의 이미지
The Images of our times
토마스 루프 II
Thomas ruff II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6
이, 습하고 물이 많은 지역은 누상 가옥이 발달한 것처럼. 자연은 물리적 환경만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정서 와 미적 감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전통 건축은 초기 엔 중국에서 건너왔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집의 형태가 이 땅의 자연을 닮아 갔다. 집이 자연을 닮아 간다는 것은 집 을 짓는 사람들의 미적 감성이 자연에서 영향을 받은 결과 일 것이다. 한옥 지붕이든 초가 지붕이든 지붕의 선들이 주변 산세들 과 거슬림 없이 조화를 이루는 것은, 자연을 벗삼은 이 땅 선조들의 미적 감성이 오랜 시간을 거치며 건물에 투영되 고, 대목장의 손에서 나온 감성이 기둥, 대들보, 서까래 등 부재 곳곳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전통 건축은 우 리 민족의 문화 유전자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문 화 유전자는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도 유전 되어 고택의 흙담에 정감이 가고, 은은한 창호지에 봄 햇살 같은 따스함을 느끼게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전통 건축은 선이다 전통 건축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어떤 이는 마당, 어떤 이는 채와 채, 만약 전문가라면 경계의 모호함 등의 다소 애매한 대답을 할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다. 물론 이러한 대 답들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와 같은 질문을 내게 던진다 면 나는 한마디로 ‘선’이라고 자신있게 답하겠다. 산과 중첩된 한옥의 지붕은 또 하나의 산능선이 된다는 것 에 영감을 받아 지붕 연작을 진행하였고, ‘지붕’이란 주제 로 두 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지금도 지붕 작업이 계속되 고 있으니 지붕의 선은 그만큼 나의 사진 작업에서 중요한 소재인 셈이다. 한복이 아름다운 것도 옷소매의 선과 치마의 주름진 선이
107
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있기에 아름답고, 전통 건축도 선이 있기에 아름다우며, 그 선의 표현이 바로 우리의 미적 정서이고 문화 유전자라고 생각한다. 문화의 차이가 민족을 구분하는 기준이라면, 중 국의 건축, 일본의 건축과 지붕선이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서로 다른 민족임을 충분히 증명하는 것 아니겠는가. 문화재 현장 이야기를 좀 해 보면, 도편수의 중요한 일 중 하나가 처마의 선을 결정하는 것인데, 그 과정은 서까래를 지붕 좌우측, 중앙에 띄엄띄엄 올리고 평고대라는 부재를 서까래에 고정하면서 처마곡을 잡는 것이다. 현장 용어로 는 “메기 잡는다”라고도 하는데, 이 메기 잡는 것만큼은 그 누구의 간섭도 불허하는 도편수만의 권한이자 큰 임무이 다. 그래서 실력 없는 목수가 집을 지으면 지붕의 선이 무 언가 어색하고 비례가 맞지 않아 집이 볼품이 없다. 상상의 공간 폐사지 문화재 답사의 끝은 폐사지란 말이 있다. 나의 문화재 답사 의 경우도 처음에는 가까운 고궁이나 고택에서 출발하여 사찰, 서원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나중에는 지방 구석구석 열심히 찾아 다니는 여정이었다. 그러다가 폐사지를 알게 되면서 또 다른 감동에 빠지게 됐다. 폐사지. 말 그대로 옛날에 절이 있었던 곳으로 어떠한 사정 으로 절 문을 닫았는지 사연이 명확하지 않고 추측만이 무 성한 곳이다. 아주 오래전에 문을 닫은 절터이니 가 봐야
외암리마을, 초가 지붕과 뒷산의 조화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별 볼 것은 없다. 번듯한 대웅전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랜 수행으로 삶을 해탈한 고승을 뵐 수도 없다. 그러나 그 무엇 하나 볼 것이 없다는 점이 폐사지의 매력이다. 농암종택 전경, 한옥의 지붕은 또 하나의 산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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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우복종가 솟을대문, 지붕의 선이 한복의 선 만큼이나 아름답다.
선교장 담장 쪽문, 담장의 선과 설경의 선은 전혀 어색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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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보원사지, 번창했던 절도 세월의 무게 앞에 무력하다는 것을 보원사지는 말해 준다.
법수사지, 해진 후 옅은 어둠이 내려앉은 폐사지는 상상의 나래를 펴는 공간이다.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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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기 전 새벽이나 해진 후 저녁에 옅은 어두움이 내려앉 은 스산한 폐사지에서 카메라를 세팅한 후 예견된 찰나의 순간을 기다리며, 아주 먼 옛날 스님의 불경 읊는 소리와 목탁 두드리는 소리를 상상하고, 버거운 삶의 무게를 잠시 나마 위안 받고자 공양미를 들고 일주문을 들어서는 아낙 의 모습을 상상한다. 이처럼 상상의 나래를 무한대로 확장 하는 즐거움을 주는 곳이 폐사지다. 그러나 이 무한한 상상 끝에 오는 것은 겸손이다. 지금의 우리가 그토록 욕망하는 것들이 결국 과거의 상상 기억으 로 남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꼬부랑 할머니의 정성어린 쌈짓돈이 불당의 초석이 되고 재력있는 불자의 큰 시주가 대들보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지극정성으로 지어져서 한때는 많은 불자들의 왕래로 북 적이던 사찰도 세월이란 힘 앞에 무기력하게 문을 닫을 수 밖에 없고, 몇 백년이 흐른 지금은 잡초 속에 탑의 옥계석 이나 불당의 기단석만이 나뒹굴 뿐이다. 이처럼 영화롭던 시절은 한낱 과거의 기억일 뿐 인간의 최대 정성이 집약되 어 지어진 종교 건물도 결국은 폐가로 남는다는 역사적 현 실 앞에서 삶의 겸손도 배우게 된다. 누구든 생각이 복잡할 때 새벽녘 폐사지를 한번 다녀오길 권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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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더하기 건축 17
이 시대의 이미지 The Images of our times
나은중+유소래 본지 자문 위원 NAMELESS 공동 대표
사진 더하기 건축 17
토마스 루프 II Thomas ruff II
Report
37 와이드 REPORT
3D-ma.r.s.09, 2013 Chromogenic print 255 × 185 cm
<방.방.곳.곳.> vs.
<성북구의 어떤 집>
젊은 건축가, 도시 한옥과
대안적 주거 형식을 고민하다
92 와이드 EYE 1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
Itami Jun:
Architecture of the Wind
최우용
100 와이드 EYE 2
본 연재의 15회 <건축의 이미지: 토마스 루프> (본지 36호)에서 확장된 의미의 사진 행위를 통해 건 축을 탐험하는 토마스 루프의 작업을 살펴보았다. 토마스 루프는 사진과 건축, 즉 이미 존재하는 것 들의 기록과 새로운 것을 구축하는 행위 사이의 경계를 흐리며 건축 사진의 다른 가능성을 탐구해 왔
2014 아시아 건축도시연합
워크숍 참관기
ACAU Workshop
at University of Seoul
정평진
102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5
다. 그에게 있어 구축과 재현의 관계는 과정과 결과의 인과 관계라기보다는 서로를 구축할 수 있는
상호적인 관계로서 이해될 수 있다.
107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6
토마스 루프의 사진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들은 건축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사진행위 전반에
조명환 AMPHIBIOUS
박재영 문화의 유전자 전통 건축
걸쳐 시도된다. 작가는 ‘이 시대의 이미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통해 이미지의 풍요 속
112 사진 더하기 건축 17
에서 간과되는 사진의 본성을 탐구한다. 이는 본다는 것의 의미를 넘어 이미지가 갖는 사회적이며 문
The Images of our times
토마스 루프 II
Thomas ruff II
화적인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의 질문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이미지
토마스 루프는 카메라를 사용하여 사진을 직접 찍기도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사진 아카이브를 사용 해 작품을 만든다. 그가 처음 사진 자료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과학적 사진에 관심을 가지면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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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 5.01 (16h 30m/-50°), 1989 260 × 188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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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처 05
거처 06
© Thomas Ruff & ESO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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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D 010 (nudes ez14),
사진 더하기 건축 17
1999 102 × 144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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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D 068 (nudes tos03), 2000 112 × 142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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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eg bo02, 2004
실용성으로 만들어진 기성품이라는
터이다. 10대부터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루프는 직접 밤하늘의 별을 촬영하고자 했으나 여러 기술 적인 제약에 직면한다. 자신의 기술적 장비로는 세부적인 천체 사진을 촬영할 수 없음을 깨닫고 천
그 최초의 목적을 떠나 다른
문 기관인 유럽남부관측소(ESO)에서 촬영한 이미지를 구입한다. 천체 망원경으로 촬영한 남반구의
의미를 부여하여 의미를 갖게
밤하늘을 포착한 1,000여 장의 사진을 자르고 확대하여 2m가 넘는 대형 사이즈로 인화한 <별, star,
하는 포괄적인 의미를 지칭한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989>연작은 그가 시도하는 확장된 사진 작업의 단적인 예이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신문 사
1887~1968)이 20세기 초
진 연작에서도 그는 신문에 인쇄되었던 이미지를 수집해 작품으로 제작함으로써 사진의 기능과 매스
Fountain이라 명명된 변기를 예술 작품으로 전시한 후 레디메이드(Ready-made)의 명칭이 미술 용어로 일반화되었다. 뒤샹의 레디메이드에 대한 개념은
미디어를 통한 이미지의 편재성을 탐구하였다. 사진기의 셔터를 누르는 행위에 얽매이기보다는 인쇄 매체를 비롯하여 인터넷에서 떠도는 익명의 사진 등 ‘ready-made’주1된 이미지들은 그의 작업에서 카 메라를 대체한 매개체가 된다.
전후 서구 미술, 특히 팝아트
토마스 루프의 사진에 대한 생각은 단지 기록적인 가치나 미학적인 관점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우
계열의 작가들과 개념 미술의
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수없이 많은 이미지들은 각기 다른 기능과 목적을 위해 생산되고, 소비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어 사라진다. 때로는 이미지를 통해 특정 사실이나 정보를 수용하여 그 가치를 공유하기도 하지만 하
주2.
루에도 수백, 수천 번 스쳐지나가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개개인의 자발적인 수용 의
픽셀(pixel) :
지와는 별개로 이미지의 대량 소비자가 된다. 토마스 루프는 현대인이 마주한 이러한 이미지의 속성
컴퓨터 디스플레이 또는 컴퓨터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는 최소 단위. 영어의 picture element를
사진 더하기 건축 17
주1. 레디메이드(Ready-made) :
을 사회적인 문맥에서 역설한다. 이를 위한 배경 공간은 정보의 대량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매개 체인 인터넷이다.
줄인 것으로 ‘화소’라고 번역된다. 모니터를 통해서 보는 모든 이미지는 실제로는 픽셀이라고 하는 매우 작은 사각형의 점들로 구성돼 있다.
그의 작업인 <누드, Nudes, 1999>에서 토마스 루프는 컴퓨터 이미지를 구성하는 픽셀주2로 이루어 진 추상적인 사진들을 실험하기 시작한다. 리서치 중에 그는 인터넷에서 마주친 불법 포르노 사진들
Jpeg와 같은 그래픽 프로세스를
이 대부분 저해상도의 72dpi 화소로, 자신이 연구해 오던 사진과 픽셀의 개연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통해 보여지는 이미지들은
발견한다. 또한 그것들이 불특정 다수에게 대량으로 소비되고 어느 시점에서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계속 확대해 보면 결국 정사각형 의 픽셀들로 이뤄져 있다.
우리 시대 이미지의 소비 행태를 포착한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수집한 포르노 이미지들을 그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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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에 사용하기로 하고 해상도가 낮은 포르노 사진을 확대한 후 디지털 기술을 통해 픽셀이 거의 보 이지 않도록 처리했다. 때로는 색상을 수정하기도 하고 불필요한 디테일을 지우기도 하였다. 그 결과 눈에 보이는 이미지들은 안개가 덮인 것처럼 흐려졌다. 인간의 신체가 표현하는 격한 욕정을 마치 회 화 같은 이미지로 변질시켜 우리 시대 만연된, 하지만 숨겨진 욕망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인터넷에 떠도는 포르노 사진의 거친 욕구는 모호해지고, 그들의 기능과 목적은 상쇄되어 아름다움을 가장한 누드 사진에 가까워진 것이다. 루프는 <Nudes, 1999>연작을 통해 인터넷에 떠도는 특정 이미지는 더 이상 현실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적 수단으로 전송되는 시각적 자극만을 표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무수히 많은 사진과 정보의 홍수인 인터넷상에서 더 이상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가 어려 워졌다. 루프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이러한 시각적 공허함을 드러내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또 다른 연작에는 <Jpegs, 2004-2005>가 있다. 토마스 루프는 원자 폭탄을 실험하 는 장면, 9.11 테러로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 캄보디아의 대량학살 현장의 장면 등 시대를 상징하는 동시에 너무나 익숙해진 상투적인 이미지를 인터넷에서 다운받았다. 작가는 다운받은 인터넷상의 작 은 사진을 거대한 스케일로 확대했다. 컴퓨터에서 보는 이미지의 최소 단위인 픽셀을 격자 패턴이 될 때까지 크기를 확대한 것이다. <누드, Nudes>연작이 이미지의 픽셀을 흐려 상업 이미지의 역설적 인 회화성을 드러냈다면, <Jpegs>연작에서는 이와 반대로 픽셀을 극대화해 우리의 시각이 어렴풋이 인지할 수 있는 구상과 추상의 경계 지점을 사진으로 만들었다. 흔히 모니터 화면상에 해상도가 맞지 않을 때 보여지는 일그러진 상태를 의도적으로 만든 것으로 픽셀이 확대되면서 원본 사진에서 볼 수
사진 더하기 건축 17
없었던, 예를 들어 전쟁을 기록한 사진에서 참혹함은 사라지고 어렴풋한 기억과 추상적인 형상만이 남아있게 된다. 특히 실제 대형프린트 사진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내용을 알 수 없는 추상으로 보 이지만 거리를 두고 시각을 변화시켜서 보면 그 형태와 사진에 담긴 내용을 해독할 수 있게 된다. 작 가는 전쟁의 장면들이나 사람에 의해 변형된 자연의 모습 이외에, 반대로 목가적이고 자연스러운 풍 경들 역시 이 연작에 포함시켰다. 이는 상반되는 장면들의 대비를 통해 이미지가 확대되었을 때 흐릿 하게 보이는 조작된 유사성을 더 극적으로 드러나게 하기 위함이다. 원자 폭탄이 터지는 순간 공기 의 응집과 거대한 폭포에서 발생하는 수증기의 응집은 이들이 일그러졌을 때 시각적 유사성을 지닌 다. 픽셀로 된 그리드 안에서는 모두 흰색의 부유하는 물체로 인지되며 이미지를 통한 참혹한 전쟁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 현실의 미디어가 담아내는 매개된 현실임을 알게 해 준다. 토마스 루프는 디지털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이미지를 수용하고 인지하는지에 대한 탐구를 통해 사진이 갖는 의미 를 다층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Nudes, 1999>, <Jpeg, 2004>연작과 건축 사진인 <l.m.v.d.r>등을 살펴보면 이미 만 들어진 이미지 아카이빙을 통해 작업을 완성했다는 것 외에 공통적으로 ‘흐리게 하기(Blurring)’의 유형을 볼 수 있다. ‘흐리기’는 표면에 드러난 사실을 숨기지만 때로는 이면에 감춰진 다른 진실을 드 러내기도 한다. 또한 각각의 프로젝트마다 그 흐리기의 방식에 차이는 있지만, 이 이미지들은 본래의 의미와 내용을 정확하게 식별하기 어려운 공통점이 있다. 이미지의 해체를 통해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한 결과물이 본질적으로 기록적 가치나 객관성을 가지는 현실이 아 니라는 것이다. 흐리는 방식은 자신이 담아내는 이미지가 현실 자체를 표방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2 차적 현실, 다시 말하면 이미지의 이미지임을 확인시켜 주는 장치인 것이다.주3
주3. “My images are not images of reality, but show a kind of
근작인 <Zycles, 2008-2009>, <포토그램, photogram, 2012>연작에서는 루프는 전통적인 사진에 대한 광범위한 접근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재현 방식을 만든다. 일반적으로 사진가가 현장을 둘러보 고, 손으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며 최종적으로 프린트의 결과물을 만들었다면 루프의 작업 과정은 전통적 방식을 포함한 기술과 정보 그리고 현대적 사고를 통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근작인 <Zycles, 2008-2009>은 여러 색의 선들로 구성된 사진으로 기존의 사진들을 사용한 것도, 직접 카메라 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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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reality, the image of the image.” -Thomas Ru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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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eg nt01
사진 더하기 건축 17
jpeg bb0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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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포토그램(photogram) : 카메라 없는 사진(cameraless
를 눌러 촬영한 것도 아닌 컴퓨터상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이다. 수학과 물리학 공식으로 만들어진 3차 원의 곡선들은 컴퓨터 랜더링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지로 생성되었다. 또한 <포토그램, photogram,
photography)이라 불린다.
2012>에서는 사진의 역사적인 의미와 함께 이 방식이 가지고 있는 기술적 한계를 극복한다. 포토그
인화지 위에 직접 물체를 놓고
램주4은 카메라 없는 사진으로 불리며 암실에서 인화지 위에 직접 물체를 놓고 빛에 노출시켜 만든 사
빛에 노출시켜 얻은 이미지를 일컫는다. 1920~30년대
진을 말한다. 이것은 실제의 모습이 아닌 추상적인 실루엣의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으로 암실에서 작
초현실주의 영향으로 사진
은 크기의 흑백 사진으로 제작할 수 있으며, 또한 복제가 불가능한 것 등 작업 방식에서 오는 불가피
매체의 한계를 실험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라즐로 모홀리-나기
한 한계들이 있다. 토마스 루프는 그가 직접 고안한 디지털 암실을 통해 포토그램의 특성을 이어나가
(Laszlo Moholy-Nagy, 1895-
면서도 기술적 제약을 극복한다. 루프는 이를 위해 가상의 3-D 디지털 암실에서 다양한 선과 형상들
1946), 만 레이(Man Ray, 1890-
을 임의로 삼차원상에 배치하고 투명성과 빛을 조절하며 기하학적인 구도를 만들었다. 컴퓨터 프로
1976), 크리스티안 쉐드(Christian Schad, 1894-1982) 등의 사진가
그램을 이용해 대상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해상도의 포토그램 이미지를 통해 대형 컬
위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러 사진으로 그 결과물을 인쇄할 수 있었다. 또한 포토그램이 가진 가장 큰 제약인 단 한 장만 얻을 수
전통적 사진과 구별되는, 추상적이면서도 동시에 매혹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의 일환으로 포토그램을 택했지만 기술적 한계가 있었다. 대부분 포토그램은
있던 사진을 디지털 과정을 통해 복제의 한계를 원천적으로 변화시켰다. 루프는 진보된 기술을 적극 적으로 수용하며 사진 매체의 역사적 의미와 한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토마스 루프는 사진을 시작한 1970년대 후반부터 실험적인 소재와 방식을 통해 사진을 만들고 있
엽서 혹은 노트 정도의 작은
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현대성에 기반한 사진적 모험이라기보다는 이 시대의 이미지 혹은 사진의
크기이다. 제작 전 사이즈를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이 시대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미리 정해야 하고 복제가
라는 질문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수많은 이미지와 정보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돌아보
불가능하다는 점 등 일반적인 사진과 다른 한계들이 있다.
게 한다.
‘사진 더하기 건축’은 진보된 현대 건축과 현대 사진이 만나는 지점에서 많은 건축인들이 근대적 사고의 틀로 건축 사진을 이해 하며 현실 재현이라는 사진의 태생적 가치 안으로 가둬 왔음에 의문을 품고, 건축과 사진의 새로운 관계와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해 왔다. 3년여의 연재를 통해서 바라본 16명의 현대 사진작가들과 그들의 작업은 각기 다른 관점과 해석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
사진 더하기 건축 17
연재를 마치며
고 있는 도시와 건축 그리고 장소를 바라보고 있다. 삼차원을 이차원의 종이 위에 투영하는 사진가의 직무는 언뜻 평면이라는 이차원적 생각을 삼차원의 실체로 구축하는 건축가의 그것과 반대된 특성을 보인다. 하지만 이 한계를 뛰어넘는 사진가들의 시도는 건축가의 구축에 대한 한정된 시선에 시사하는 바 가 크다. 하나의 건물을 만들기 위해 그것이 들어설 땅을 분석하고, 큰 의미에서 시대적이며 사회적인 관계들을 해석하는 건축가 의 직무는 쉽게 변하지 않을 건축의 무게이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해석의 차이에 따라 건축은 때로는 한없이 가벼 운, 그 반대로 한없이 무거운 실체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재해석되고 재발견될 수 있다는 믿음 하에 이 시대 새로운 건축 가의 역할을 상상하며 연재를 마무리한다. <연재 리스트> 1회 프롤로그: 유형학의 구축(Construction Typologies)/베른트 앤 힐라 베셔(Bernd and Hilla Becher) 2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Visible and Invisible)/히로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 3회 사진-행위(Photography-Act)/이명호(Myoung Ho Lee) 4회 진짜 vs 가짜(Real vs Fake)/토마스 데만트(Thomas Demand) 5회 자화상(Self Portraits)/루이스 람브리(Luisa Lambri) 6회 사진은 사진이 아니다(photograph is not a photograph)/백승우(Seung Woo Back) 7회 일상성과 비일상성(The ordinary and the extraordinary)/파울로 벤츄라(Paolo Ventura) 8회 결정적인 순간 그리고 건축(The Decisive Moment and Architecture)/이완 반 (Iwan Baan) 9회 구조적 직관(Structural Intuition)/헬렌 비넷(Helene Binet) 10회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아벨라르도 모렐(Abelardo Morell) 11회 도시와 욕망(Cities and desire)/마이클 울프(Michael Wolf) 12회 중도적 유토피아(Moderate Utopia)/바스 프린슨(Bas Princen) 13회 연속된 시간과 공간(Continuous Time and Space)/듀안 마이클(Duane Michals) 14회 서울 그리고 한강 해부학(Seoul and Han River Anatomy)/이득영(Duegyoung Lee) phg. 02, 2012 chromogenic print 240 × 185 cm
15회 건축의 이미지(The Images of Architecture)/토마스 루프I(Thomas Ruff I) 16회 마술적 리얼리즘(Magic Realism)/주상연(Sangyon Joo) 17회 에필로그: 이 시대의 이미지(The Images of Our Times)/토마스 루프II (Thomas Ruff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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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Report, bimonthly
통권 38호, 2014년 3-4월호, 격월간 2014년 3월 15일 발행, ISSN 1976-7412 2008년 1월 2일 창간 등록, 2008년 1월 15일 창간호(통권 1호) 발행 2011년 1월 19일 변경 등록, 마포 마-00047호 ⓦ 발행인 겸 편집인 전진삼 ⓦ 발행소 간향 미디어랩 Ganyang Media Lab. 주소|(121-816) 서울시 마포구 양화로 175, 909호 (동교동, 마젤란21오피스텔) 전화|02-2235-1960 팩스|02-2235-1968 독자지원서비스|070-7715-1960 홈페이지|http://cafe.naver.com/aqlab 네이버 카페명|와이드AR ⓦ 본지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 본지에 게재된 기사나 사진의 무단 전재 및 복사, 유포를 금합니다. ◆ 1권 가격: 10,000원 ◆ 연간구독료 ◆ 1년 구독: 55,000원 ◆ 2년 구독: 105,000원 ◆ 3년 구독: 150,000원 ⓦ 정기구독(국내 전용) 신청방법 안내 ◆ <구독자명(기증하실 경우 기증자명 포함)>, <배송지 주소>, <구독희망 시작월호 및 구독기간>, <핸드폰번호>, <이메일 주소>, <입금예정일>을 적으시어 ◆ <와이드AR> 공식 이메일: widear@naver.com ◆ 팩스: 02-2235-1968 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책은 입금 후 보내드리게 됩니다. 정기구독을 하시면, 전국 어디서나 편안하게 책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또한 당사가 독자대상으로 벌이는 각종 행사에 우선 초대됩니다. ◆ 무통장입금방법 ◇ 입금계좌: 국민은행, 491001-01-156370 [예금주: 전진삼(간향미디어랩)] ◇ 구독자와 입금자의 이름이 다를 경우, 꼭 상기 전화, 팩스, 이메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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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