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문화사업회 건축의 인문적 토양을 배양하기 위해 만든 후원회로서 지난 2008년 이래 건축역사와 이론, 건축 미학과 비평 분야의 전도유망한 신진 학자 및 저술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심원건축학술상> 을 제정하여 시행해오고 있습니다.
심원건축학술상 1년 이내 단행본으로 출판이 가능한 미발표 원고(심사 중이거나 심사를 마친 학위 논문 포함)와 사업년도 기준 2년 내 발행된 연구저작물 중에서 학술적이며 논쟁적 가치가 높은 응모작을 대상 으로 매년 1편의 수상작을 선정하여 시상 및 출판지원을 합니다.
심원건축학술상 학술총서 발간 지난 7년 간 총 4편의 수상작을 선정하여 『벽전』(박성형 지음, 제1회 수상작), 『소통의 도시』(서 정일 지음, 제2회 수상작), 『도리 구조와 서까래 구조』(이강민 지음, 제4회 수상작),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本町』(이연경 지음, 제6회 수상작)을 발간하였습니다.
● 심원건축학술상 1기 위원회: 배형민, 안창모, 전봉희, 전진삼 ● 심원건축학술상 2기 위원회: 김종헌, 박진호, 우동선, 함성호 ● 후원: ㈜엠에스오토텍
49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목차
2016.01-02
cover work
review
6
34
KIST 복합소재기술연구소(전북분원)
와이드 FOCUS
민현식 + 기오헌 | Min Hyunsik + Kiohun
“건축이 우습냐?” | 박인수
41
37
DIALOGUE
이종건의 COMPASS 46
특별한 공동체를 위한 특별한 건축 | 정귀원
휴먼 그리고 순수 | 이종건
45
39
CRITICISM
와이드 COLUMN
무제수필(無題隨筆) | 김미상
공동체를 상상하는 문학의 윤리 | 고영직
arcade
report 50 와이드 REPORT 1 한국건축예찬-땅의 깨달음 | 고충환
edge
57 와이드 REPORT 2
104
젊은 건축가들의 집단항거
와이드 EDGE
소규모 건축물의 설계와 감리 분리 수정 법안, 문제 많다! | 공을채
격하게 추천하는 병신년의 탐독서 | 전진삼 60 108 WIDE 건축영화공부방
와이드 REPORT 3 용적률 게임 | 정귀원 제15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예술감독에게 듣다
110 간향클럽 소개
62
111
젊은 건축가들의 ‘옆집’바라기 | 공을채
땅집사향(109-110) 112 판권
와이드 REPORT 4
AR)
제8회 심원건축학술상 당선작 발표 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s 심원문화사업회(이사장 이태규)는 제8차년도(2015~2016) 사업으로 공모한 제8회 심원건축학술상의 당선작을 다음과 같이 발표합니다.
당선작 근세 도시사 - 아키치明地와 다이치代地를 통해 본 에도江戶 수상자 이길훈 (40,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연구교수)
<심원문화사업회>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한 젊은 건축가를 통하여 건축의 세계를 이해하고 건축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된 기업가가 졸지에 유명을 달리한 건축가와의 인연을 회억하며 건축의 인문적 토양을 배양 하기 위하여 만든, 속 깊은 후원회가 심원문화사업회(이하 사업회)입니다. <심원건축학술상> 사업회가 벌이는 첫 번째 후원사업인 <심원건축학술상>은 건축 역사와 이론, 건축미학과 비평 분 야의 장래가 촉망되는 신진학자 및 연구자의 저작지원프로그램으로 마련되었습니다. 제7차년도 사업부터 미발표작(연구물) 뿐 아니라 단행본으로 출간된 발표작(저작물)에까지 응모작의 범주를 확장시켜 제시된 기간 내에 출판된 학술적 가치가 높은 도서를 경쟁에 가담시키고 있습니다. 그로 써 신진 연구자는 물론 건축학의 질 높은 연구서 저자들의 경쟁 의지를 북돋아 아카데미즘을 기반 으로 활약하는 교수사회의 학문적 성과를 진작하고, 경계하며, 심도 있는 연구 분위기를 조장하는 데에도 일정부분 기여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업회는 당해 응모작 가운데 매년 1편의 당선작 을 선정하며, 당선작에 대하여는 단행본 출간과 1천만 원의 저술지원비 등을 후원합니다. 그동안 박성형의 『벽전』(1회), 서정일의 『소통의 도시_루이스 칸과 미국현대도시건축』(2회), 이강 민의 『도리 구조와 서까래 구조』(4회), 이연경의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本町』(6회)를 당선작으로 선정하여 《심원건축학술상 총서》로 출판(시공문화사spacetime 발행)해오고 있습니다.
주최
심원문화사업회
심사위원회
김종헌, 박진호, 우동선, 함성호
기획 및 주관 《와이드AR》·간향클럽, 미디어랩 & 커뮤니티 후원
(주)엠에스오토텍
문의
070-7715-1960
49
그림字 11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2016.01-02 report
매듭
한 해의 마지막 날, 사람들은 새해 첫 새벽 처음으로 뜨는 해 를 보려고 밤을 도와 동해로 달려들 갑니다. 새해 첫 날 뜨는 해는 지난해의 마지막 날 떴던 해와 다르지 않을 텐데, 무슨
67 와이드 REPORT 5 노들섬, 음악을 매개로 한 문화 플랫폼을 향해 | 정귀원 70 와이드 REPORT 6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가 봅니다. 나름대로 새로운 시 작을 하고 싶은 것이지 싶습니다. 매해 첫 날에, 새로운 희망을 품고 설레는 가슴으로, 우리는 또 한 해를 새해 아침에 맞습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이 세상 속성일진대, 생각대로 살아보려고 그렇게 희망차게
재정비로 새롭게 시작하는 2015 건축명장 | 정귀원
한 해를 시작합니다. 지난해 운 좋게 기대 이상의 성취도 개
72
절하고 포기하며 또한 안간 힘을 다하며 한 해를 살아왔습니
와이드 REPORT 7
다. 첫날 품었던 새 희망과 새 힘이 소진되어갈 즈음 또 새로
어쩌다집@연남_작업일지 | 이진오
운 한 해가 시작됩니다. 다행입니다. 이루지 못한 일도 많지
중에는 있었겠지만, 생각지도 못한 많은 시련을 겪으며, 좌
만 그대로 매듭짓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에서 79 와이드 REPORT 8 한국의 건축사진가07 | 진효숙 드라마를 담는 건축사진 85 와이드 REPORT 9 한국의 건축사진가08 | 황효철 나의 태도를 말한다.
하나의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매듭은 끝이 아니라 정리입니다. 밧줄을 타고 위로 오를 때 매듭이 있으면 의지가 되어 힘이 되듯이, 언제가 끝일지 모 르는 삶에서 중간 중간의 매듭은, 만만치 않은 이 세상을 살 아가는 데에, 중간 중간에 큰 힘이 되고 새로운 동기를 만들 어줍니다. 이렇게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왔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하루하루는, 똑같은 해가 뜨는 날들이고 똑같 이 돌고 도는 세월이지만, 아쉬운 대로 모자라는 대로 그렇
91 와이드 REPORT 10 제6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 수상자 | 송종열
게 한 번씩 매듭을 짓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이 고마울 따름 입니다. 쉽지 않은 한 해를 살아내느라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어려웠 던 일들 매듭 한 번 짓고, 새해에 새 희망과 새 힘을 내어 다 시 일어서 나아갑시다. 글 | 임근배(간향클럽 대표 고문, 그림건축 대표)
cover work
06
KIST 복합소재기술연구소전북분원 민현식 + 기오헌 Min Hyunsik + Kiohun
WIDE Architecture Report 49
와이드AR no.49 | Wide AR no.49
전체 배치도
6
A 연구동
D 게스트하우스
G 폐수처리장
J 연결데크
B 행정동
E 경비실
H 정화조1
K 공장정비동
C 기숙사
F 위험물저장소
I 정화조2
COVER WORK
표지작 | COVER WORK 민현식 + 기오헌 Min Hyunsik + Kiohun
KIST
복합소재기술연구소전북분원
민현식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은하리 산706외 198필지
1946년 경남생. 서울대 건축과를 졸업한 후 해군시설장교, 공간연구소의
위치
김수근, 원도시건축연구소의 윤승중 문하에서 건축을 수련하고 실무를
지역・지구 계획관리지역, 문화재보존영향검토 대상지역
익혀왔으며 1989/90년에 런던의 AA건축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92년
용도
교육 및 연구시설 (연구소)
시작하였고, 1997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설립에 참여하였다.
대지 면적
281,755.00m 2 (85,230.89평)
마당 깊은 집, 봉천동 아파트, 동숭교회, 서울과 아산 및 중국
건축 면적
13,013.16m 2 (3,936.48 평)
칭다오 등에 일련의 (주)신도리코건물들, 국립국악중고등학교,
연면적
한국전통문화학교, 대전대학교 , KIST 복합소재연구소 등
29,103.01m 2 (8,803.66평)
건폐율
4.61% (법적기준 40%이하)
용적률
10.11% (법적기준 100%이하)
민현식건축연구소 기오헌(寄傲軒)을 설립하여 독자적인 건축활동을
연구교육시설, 파주출판도시설계,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 기본구상, 제주특별자치도 경관 및 관리계획, 수원화성역사문화도시 기본계획, 가고 싶은 섬-매물도 등 도시 관련 프로젝트 등의 작품과 작업들, 그리고 43건축가 그룹, 건미준(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등의 사회활동을 통해 “비움의 구축”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이 땅, 이 시대 건축과 도시의 새로운 이론을 구축하며, 그것의 건축적 실천에 몰두하고 있다. 43그룹 건축전, 96/2002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구림마을 흙의 축제 등 건축전에 참가하였으며,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초청 ‘비움의 구축’(민현식+승효상) 건축전, “S(e)oul-scape”(유럽순회전) 등을 가진바 있다. 『땅의 공간-땅의 형국을 추상화하는 작업』(미건사), 『비움의 구축』(동녁), 『건축에게 시대를 묻다-민현식의 한국현대건축읽기』(돌베개) 등 저서들이 있다.
진행 | 정귀원(본지 편집장) 사진 | 남궁선(본지 전속 사진가)
7
와이드AR no.49 | Wide AR no.49
연구동과 행정동 사이의 계단형 논의 형상은 최대한 보존하여 생태수로가 되도록 했다.
규모 연구동.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적절한 모듈의 단위공간이 양방향으로 집적된 형태이다.
A.연구동
지하 1층, 지상 3층
B.행정동
지상 3층
C.기숙사
지하 1층, 지상 4층
D.게스트하우스 지상 4층 최고높이 A.연구동
18.3m
B.행정동
16.4m
C.기숙사
16.8m
D.게스트하우스 16.8m J.연결통로
2.6m
K.공정장비동
18.3m
주거단지. 일인 거주자를 위한 원룸 유니트는 2개의 막대형으로 구성되며, 가족형 게스트하우스는 2동의 아파트형으로 구성되었다. 서쪽의 추동마을과 상보적 지역공동체를 도모하고 있기도 하다.
행정동. 연구동보다 보안이 느슨한 열린 대면공동체의 사회. 사용시간대와 가동률이 다 른 식당과 강당은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어 독자적 운영이 가능하다. 8
COVER WORK
징검다리를 건너며 물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대신 연결데크가 설치되었다.
행정동 강당 쪽에서 바라본 연구동.
외장재 A.연구동
노출 콘크리트, 벽돌치장쌓기, THK1.6 갈바륨강판, THK24 투명복층유리, THK12 투명강화유리, 샌드위치패널
B.행정동
노출 콘크리트, 벽돌치장쌓기, THK1.6 갈바륨강판, THK24 투명복층유리
C.기숙사
벽돌치장쌓기, THK22/24투명복층유리
D.게스트하우스 벽돌치장쌓기, THK22/24투명복층유리 K.공정장비동
유로폼 노출콘크리트, 폴리우레탄 패널, THK24 로이 투명복층유리
9
<행정동>
31
1.전시홀 2.의전실
32
3.소회의실 4.휴게실 5.녹지 6.대회의실
30
7.부조정실 8.중정 9.라운지 10.강당 11.창고 12.강당홀 13.무대부속실 14.하역 15.주차장
행정동 3층 평면도
16.전기실 17.기계실 18.하역장
27
19.중앙감시실/방재실
22
20.자전거 21.버스주차
10
29 3
22.분원장실 26
23.실장실 30
24.홀
25
23
12
24
25.외부데크 26.식당/다목적홀 27.귀빈실 28.조리실
28
29.음향조정실 30.공조실 28
31.사무실 32.문서고 33.실외기실 34.도로
행정동 2층 평면도
3 6 10
11
13
12
2
9 1 8
14 21
5
7
5
15
20
4
15 18
19
17
행정동 1층 평면도
16
행정동 동측 입면도
행정동 남측 입면도
행정동 북측 입면도
행정동 전면. 주거단지에서 시작된 산책로가 행정동 2층 브릿지를 통해 식당으로 이어진다.
31 23
25
26
1
9
6
29
10 9
11
행정동 단면도 1
33
30 26
28 18
34
1
행정동 단면도 3
27
6
와이드AR no.49 | Wide AR no.49
강당 무대 후면은 북측의 자연 풍광으로 열려 있다.
행정동 1층 전시홀에서 바라본 연구동. 행정동의 강당. 외부인의 출입, 상대적 가동률, 사용 시간대, 설비 효율 등을 고려하여 독립 운영이 가능하도록 계획되었다.
12
COVER WORK
연구동 전경. 거대해질 수 있는 연구시설의 매스를 분절시켜 주변 환경과 조화로운 경관을 형성하게 했다.
라운지에서 바라본 풍경.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의 좌우 입면 은 남쪽 연구실 모듈과 북쪽 실험실 모듈을 그대로 드러낸다.
모듈에 의해 일정한 패턴을 보여주는 외벽은 단위재의 크기가 작고 따뜻한 느낌의 벽돌로 마감했다. 또 지면과 만나는 부분은 거친 마감의 노출 콘크리트로 건물이 땅에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느낌을 주며, 옥상의 파라핏은 매끈한 노출 콘크리트를 적용, 하늘과 만나는 경계를 구성한다.
13
와이드AR no.49 | Wide AR no.49
<연구동> 2
1
2
1.연구실 2.실험실
1
2
3.하역장
1
2
1
2
1
2
1
2
1
2
1
2
1
2
1
1
2
1
2
2
2
1
17
17
1
6.기계실
2
1
4.라운지 5.다목적 강의실
2
1
1 1
17
1
7.내진동 실험실
1
1
11
8.내진동 연구실
2
9.항온항습기실
2
10.UPS실
2
11.아트리움 복도/라운지
2
2
1
2
1
12.전기실
2
1
2
1
2
1
2
1
2
1
2
1
1 1 1 1
2
13.창고
연구동 3층 평면도
14.샤워실/준비실 15.위험물 저장소 16.주차장 17.공조실 18.회의실
2
1
2
1
2
1
2
1
2
1
2
1
2
1
2
1
2
1
2
1
2
1
2
1
2
1
1
2
1
2
1
2
1 17
18
17
1
18
17
18
11 2
2
1
2
2
1
2 2
1
2
1 1
2
1
1
2
1
2
1
1
2
1
2
1
2
1
2
1
2
1
2
1
2
1
2
1
3
1
연구동 2층 평면도
6 15
15 13
13 12 14 3
10 16
16
11 2
1
2
1
2
1
2
1
8 7
7 9 7
연구동 1층 평면도
14
5 4
16
COVER WORK
연구동 남측 입면도
연구동 동측 입면도
연구동 서측 입면도
연구동 아트리움. 3개 동을 잇는 복도와 라운지. 아트리움 중간에 걸려 있는 라운지는 연구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다.
4 14
4
연구동 단면도 1
1
2
1
2
1
2
1
2
1
2
1
2
1
2
10
12
12
6
6
연구동 단면도 2
15
와이드AR no.49 | Wide AR no.49
16
COVER WORK
유리면 끝까지 뻗어 있는 복도는 연구동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구동의 아트리움은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여 반 외부, 반 내부의 중간적 환경을 이루고 있다. 대지 북쪽에서 흘러내려오는 계곡물이 집 안으로 들어와서 그대로 나간다. 17
와이드AR no.49 | Wide AR no.49
6
<기숙사 C동> 1
1.체력 단련실 2.공용거실/식당 3.공용취사실
2
4.DA(장비반입구) 5.전기실/통신실
7
3
6.휴게실 4
7.관리실
5
8.개실 9.개실(화장실) 10.필로티 11.공용화장실(남)
기숙사 C동 1층 평면도
기숙사 C동 2층 평면도
기숙사 C동 북측 입면도
기숙사 C동 남측 입면도
12.세탁/다림질실 13.기계실
기숙사 C동 단면도 1
8
9
8
9 10
11
12
6 4 13
기숙사 C동 단면도 2
18
기숙사 C동 단면도 3
COVER WORK
주거단지 전경. 출퇴근길이 자연을 향유하는 사색의 길이 되도록 하여 느림의 도시를 실현하고자 했다.
선택적 만남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집. 개실과 거실/체력단련실 등이 분리되어 있어 선택적으로 공용공간에 이르는 동선체계를 갖는다.
19
와이드AR no.49 | Wide AR no.49
7 3
7 4
5
5
4
3
9
2
10
2 6
7
1
6 8
8
2
8
7
1 2
7
7
게스트하우스 D동 1층 평면도
게스트하우스 D동 지하 1층 평면도
게스트하우스 D동 정면도
게스트하우스 D동 죄측면도
2
3
4
5
5
4
3
2
4
11
2
2
3
4
5
5
4
3
2
4
11
2
2
3
4
5
5
4
3
2
4
11
2
9
10
게스트하우스 D동 단면도 1
8
게스트하우스 D동 단면도 2
<게스트하우스 D동> 1.거실 2.침실 3.식당 4.주방 5.다용도실 6.현관 7.발코니 8.PIT/창고 9.PS 10.EPS 11.복도
가족형 장기체류 및 임시 체류를 위한 아파트형 게스트하우스. 20
arcade c4 Architecture Bridge c3 삼협종합건설 c2 디자인캠프문박 dmp 1 심원건축학술총서 3 심원문화사업회 22 이로재 23 제효건설 24 솔토지빈건축 25 ONE O ONE Architects 26 어반엑스건축 27 파트너스 28 인천광역시건축사회 29 건축의 덫 30 동양PC 31 유오스 32 운생동
WIDE Architecture Report 49
Boutique Hotel M | studiozt_ 김동원 | 사진_남궁선
(주)제효에서 지은 집 건축가 상상 속의 건물을 구현하다 | www.jehyo.com
솔토지빈건축 © 윤준환 구축적 공간체_광주아시아문화의전당
건축사는 모든 건축물의 설계와 공사감리를 수행하며, 조사 또는 감정, 유지관리, 에너지평가 등 업무를 할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이주형, 2013 도시건축사진공모전 대상작, 파동
나만의 특별한 생활공간 건축사와 함께 하세요!
회장
윤희경
부회장 이창호 이사
공만석, 류재경, 박창용, 손도문, 신중식, 이인경, 임재철, 장성수, 정영식, 최복규
감사
정재남, 조항진
사무국 인천광역시 남동구 석산로 159 (보인프라자 704호)
A Thousand City Plateaus Winner of International Idea Conpetition for urban regeneration of Jamsil Sports Complex
UnSangDong Architects
review
34 와이드 FOCUS “건축이 우습냐?” | 박인수 37 이종건의 COMPASS 46 휴먼 그리고 순수 | 이종건 39 와이드 COLUMN 공동체를 상상하는 문학의 윤리 | 고영직 41 표지작 DIALOGUE 특별한 공동체를 위한 특별한 건축 | 민현식 + 정귀원 45 표지작 CRITICISM 무제수필(無題隨筆) | 김미상
WIDE Architecture Report 49
와이드AR no.49 | Wide AR no.49
와이드 FOCUS
“건축이 우습냐?” 박인수 ㈜파크이즈 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사)새건축사협의회 부회장
1. 몇 해 전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이 실행되면서 많은 변화가
전을 가로막게 되며, 마지막으로는 건축을 5년이나 배우는
일어났다. 그중 하나가 많은 건축물의 발주가 ‘설계경기’ 방
학생들에겐 교육의 의미를 부정하게 되고, 건축보다는 공
식으로 바뀐 것이다. 그간 입찰, PQ(피큐), 턴키 등으로 발
기업 입사에 더 열중하게 만드는 청년 실업의 원인으로 작
주되던 건축물들이 설계경기를 통해 발주되기 시작했다.
동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서 살게 될 거주자들의 손
사실 설계경기로 모든 공공건축물을 발주한다는 것은 큰
해는 자명하게 발생되는 것이다.
사회적 비용을 들일 수 있지만, 건설과 기술위주 발주의 현 실을 감안할 때, 이런 변화 없이 공공건축물의 발주를 제대
2.
로 자리 잡게 하긴 매우 힘든 상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건축법에 의한 감리를 허가권자가 지정토록 하는 법률’이
박인수 | FOCUS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주2 이에 관한 법률로는 김태흠 의원 설계경기를 치르자면, 당연히 그 심사가 매우 중요한 과정
이 입법했던 건축법 개정안(2012)이 있고, 또 김상희 의원
이고, 때문에 상기 법률에서는 공공건축물 심사에 발주청
이 안전에 관한 다른 여러 조항과 함께 허가권자의 감리지
관련 임직원의 수를 30% 이내로 제한했다. 즉, 과반을 갖지
정 내용을 담은 개정안(2015)도 있다. 이 두 법안을 의결하
못하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는 사회에서 건축 전문가라고
는 국회 국토위에서는 이 법안의 의결을 위해 민간 관련 단
불릴 수 있는 사람들의 심사 발언권을 확보함과 동시에 발
체들이 합의를 해오도록 요청하였으나, 대한건축사협회와
주청의 이기적 판단을 제어하여,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고
한국건축가협회 그리고 새건축사협의회는 합의를 하지 못
자 하는 뜻이 있었다.
했다.주3 이때 국토부는 민간 협회들이 합의를 이루지 못한
또한 설계경기의 심사는 간단한 도서만을 갖고 지어질 건
다는 이유로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수정안의 내용은
물을 상상하고, 그 가치를 가늠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건축설계의 전문성이 부족한 유사 전문가들의 참여는 엄격 히 금지하는 게 국제적 통례이며, 만일 필요한 전문가들이 있다면 심사과정에 참여하여 의견을 피력하거나(결정권 없
주1. 김경협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의 2015년 국정감사에서 지난 5년간 LH공사 발 주 설계물량 6624억 원 중 절반이 넘는 3349억 원의 업무가 LH 퇴직자들이
음), 지침서를 작성할 때 필요한 요구를 포함하도록 배려하
재직하는 회사에 돌아갔다고 밝히고, 이에 대한 가장 중요한 이유로 설계심사
는 것이 일반적이다.
에서 LH직원 및 관련자들의 참여가 높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LH는 이에 대한 정확한 답변이 없이, 신진 및 2년간 LH일을 받지 못한 업체에게 신규발주의 30%를 배정한다고 하였고, 심사과정
하지만 토지주택공사의 경우, 지난
국정감사 주1에서
지적
하였듯, 심사위원 중 자사 직원과 관련 공무원 비율을 조정 하여 과반 이상의 심사위원을 ‘친親 LH’ 인원으로 구성하 여, 심사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했다.
을 투명하게 보여주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이런 태도로 볼 때, LH는 당분간 퇴직자들의 우대를 계속 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2. 본 잡지의 출간일 기준으로 이 문제가 어떻게 결론 나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 의 사실 관계를 위주로 기록한다.
이런 식의 진행은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게 되는데, 우선 참 여하였던 설계사무실들에는 손실과 좌절감을 안겨주게 되
주3.
고, 자질 있는 설계사무실들의 생존이 위협받게 되며, 두 번
대해 대한건축사협회와 합의하였으나, 설계자 감리분리만 진행되어, 합의를
째는 국내 공동주택의 품질과 새로운 주거 방식에 대한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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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축가협회는 ‘설계자 감리분리’와 ‘설계자 설계의도 구현’의 동시진행에 무효화한 바 있다. 반면, 새건축사협의회는 일절 합의를 한 바가 없었다.
WIDE REVIEW
상기 김태흠, 김상희 의원 발의안과 조삼모사朝三暮四의 변경
행정역량이 미치지 못하고, 또 지방의 특성상 지방 사협회
인데, 즉, 설계자로부터 감리자를 분리하여 허가권자가 ‘소
에서 이를 위탁받아 운영하려는 의도가 숨어있기 때문이
규모 건축물과 분양을 목적으로 하는 건축물’에 대해서 허
다. 따라서 이 입법은 과거 공정위의 판결을 무력화, 합법
가권자가 감리를 설계자 아닌 건축사에게 발주한다는 것이
화하고, 지속가능한 ‘먹거리’를 만들려는 의도가 선명하게
다. 이유는 모두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보인다.
다. 이 수정안은 어이없게도 국회의 국토소위를 통과하였
두 번째는 국토부의 수정안 제출이다. 국토부가 그렇게 필
고, 현재 법사위에서 논의 중이다. 이 법률이 통과되던, 안
요한 법이라면, 정정당당하게 ‘정부입법’이란 방식을 쓰면
되던, 설계자가 감리할 수 없는 문제는 지속할 것으로 생각
되는데, 사협회가 진행하는 ‘의원입법’에 숟가락을 더하는
한다.주4
꼴이 되고 말았다. 특히 민간단체들 간 의견조율이 되지 않 아 정체된 내용에 마치 ‘해결사’를 자처하며 수정안을 내 놓
이는 건축의 생산과정이 어떠해야 하며, 왜 우리는 이런 식
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수정안을 제출하
으로 건축물 생산과정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 없이,
게 되었을까? 궁금하기 그지없다. 먼저, 국토부의 설명대
건축의 생산과정을 마구 편집하려는 시도와 다름 없다. 현
로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설계자 감리를 금지한다면, 설계
재 진행되는 설계자 감리분리 법안에 대한 일련의 과정을
자들에겐 굴욕적이다. 그간 지어진 건물들은 어떻게 설명
보면서 두 가지를 지적해 보고자 한다.
할 것이며, 왜 지금까지 설계자들이 감리하는 것을 그냥 두
첫 번째는 ‘왜 대한건축사협회(이하 사협회)는 의원입법을
각은 너무도 순진하다. 다음으론, 이를 통해 그들이 말하는
통하여 설계자 감리분리 혹은 허가권자 감리지정을 추진하
‘안전’이 확보된다고 믿었다면, 정말 그렇다면, 한마디로 건
는가?’이다. 이는 공정위 판결문(2012년에도 있었고, 2015
축의 주무부처로서 상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년에도 있다)들이 명쾌하게 답변을 주고 있는데, 가장 최근
쉽게 감리하는 사람만 바꾸면 안전이 확보된다는 것인가?
의 판결을 보면 사협회의 지방협회(건축감리협의회) 9곳이
이 법이 통과되든 안 되든, 건축의 안전관련 문제는 계속 발
12억여 원의 과징금을 받게 되었다. 담합이라는 불공정 거
생할 것이고, 발생할 때 마다 건축의 생산과정은 편집될 것
래라는 것이다. 감리를 설계자로부터 분리하여, 해당 사협
이다.
회 회원들에게 일감을 나누어 주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금번에 국토위를 통과한 법률은 허가권자가 감리
3.
를 지정하는데, 왜 지방 사협회의 감리협의회가 감리를 나
설계란 용어는 많은 분야에서 쓰인다. 보험설계도 있고, 영
눠주게 되느냐? 란 질문이 가능하다. 이는 각 허가권자의
화를 보면 불순한 음모를 짜는 것도 ‘설계’라는 용어로 표현
박인수 | FOCUS
었는지 의문이다. 또한, 설계자들이 가만히 있을 것이란 생
되기도 한다. 이렇게 여러 설계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건축 물을 짓기 위해 하는 설계는 건축설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모든 설계들은 그 특성에 맞는 프로세스process를 갖고 있다. 주4. 건축사 중에는 설계를 수주할 수 없거나, 설계의 능력이 부족한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 분들의 생업은 결국 발주된 설계의 감리를 통해 유지될 수 있
건축도, 엔지니어링도, 보험설계도 모두 고유한 프로세스 를 갖고 있다.
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요청할 것이고, 수단을 가리지 않 고 요청될 것으로 생각한다.
건축설계의 프로세스는 계획, 중간, 실시설계로 구분되어 있고, 단계마다 하는 일이 다르고, 각 단계가 연계될 수 있 도록 되어 있다. 이는 국제적으로도 그렇고, 더 자세히 5단 계 등으로 나눈 국가들도 있으나, 크게 보면 이렇게 3단계 로 구분되어 있다. 엔지니어링 분야는 계획설계와 실시설 계, 2단계로 나누어지고, 국제적으로도 그러하다. 건축은 엔지니어링 설계와 달리 창작물이란 측면에서 계획 설계를 강조한다. 기존에 있던 것을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 라, 새로운 조건에 따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구체화하여 시각적으로 완성하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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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AR no.49 | Wide AR no.49
고, 이때부터 2단계 엔지니어링이 시작되는 것으로 이해하
경우가 참 많았다. 대부분 그들의 요청을 맞추어 가는 과정
는 것이 합당하다. 즉, 건축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가장
으로 진행되었지만, 한편으로 씁쓸한 기억이 많다. 물론 그
중요한 단계가 바로 계획설계 단계이고, 이 점이 엔니지어
들의 요청사항이나, 필요성에 대해 반대하려는 뜻은 없다.
링 설계와 대별되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행정상, 또 규정상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도 이견은 없다. 하 지만 중요하게 생각되는 점이 있다. 이 모든 행위의 주체는
이런 설계단계의 구분은 건축의 의미뿐 아니라, 변경과 수
설계자들이어야 하는데, 정작 기준을 만들 때, 설계자들이
정 등에 대해 대응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각 단계는 설계
능동적으로 참여하거나, 의견을 피력할 기회가 없다는 것
목표가 다르고, 정의하는 바가 달라, 각 단계에서 최선의 노
이다. 처음 진행하는 사람이라면, 배운 적도 없고, 들어본
력을 통해 결정되어야 다음 단계가 의미 있게 되는 구조이
적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 한 단계 안에서 수정되는 것은 용이하지만, 단계가 지나 서 조정하는 것은 여러 사람의 노력을 무산시킬 수 있기 때
건축학 교육이 5년제로 바뀌게 되면서, 교육과정에서 다양
문에 주의해야 한다.주5
한 방법이 제안되고 있다. 하지만 실무에 관한 내용은 매우
박인수 | FOCUS
부실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 이유는 실무의 문제들과 학교 그런데 국내에는 이런 건축설계과정(건축사업무로 정의되
가 분리되어있기 때문이다. 5년제 과정에 있는 1학기의 건
어 있다)을 무시한 대관업무 프로세스가 존재한다. ‘심의’,
축실무로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학교에선 건축감리와
‘허가’ 그리고 ‘사업승인’ 등으로 불리는 대관업무는 막대
시방서, 설계도서작성, 대관업무와 계약 등이 독립된 과목
한 도면 및 제출 자료를 요구하며, 허가권자와 행정담당자
으로 편성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기술적 과목이긴 하지
의 필요에 따라 알 수 없는 절차와 제출물을 추가로 주문하
만, 건축사업무에 포함된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목
고 있다. 이 절차들은 건축물의 국내 및 국제적 설계진행단
들이 개설 되면, 관련 전문가들이 자라날 토대가 되고, 학생
계인 계획, 중간, 실시설계의 각 단계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
들의 미래 준비에 더 도움이 되고, 현실에서 발생하는 다양
다. 즉, 건축물의 설계 진행단계와 달리 행정편의적인 단계
한 문제에 대한 해법과 개선안이 체계적으로 도출될 수 있
를 더 중요하게 실행하고 있는 현실이다. 건축의 계획, 중간,
을 것이며, 나아가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만들어내는
실시 설계를 정확히 지켜 설계의 안정적 진행이 확보되지
현재와 같은 상황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않은 인허가 절차는 건축을 함부로 대하게 되고, 이는 고스 란히 설계품질의 저하와 이용자들의 위험 부담으로 다가오
우리는 건축을 만들기 위한 사람들임을 보다 분명히 하고,
며, 이는 전반적으로 건축을 망가뜨리는 결과를 갖고 오게
건축을 진행하는데 또 그 품질을 높이고 발전시키는데 능
된다. 따라서 좋은 건물을 설계하기보다는 대관업무를 무사
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국회의
히 마치는 수준의 건물을 설계할 수밖엔 없는 실정이다.
원을 이용해서 편향되고, 이기적인 법률을 만드는 데서 벗 어나서, 또 공무원들의 면피성 업무를 지원하는 데서 탈피
4.
해서, 시민들을 위한 건축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연구,
필자는 그간 건축 현업에 종사해오면서, 함께 일하는 발주
개발해야 하는 전문 자격임을 다시 한 번 명심하여야 한다.
처, 허가청, 심의부서 등과 종종 갈등을 빚었다.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설계하는 입장에선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주5. 일반적으로 설계에서 설계변경은 계획, 중간, 실시설계 간 변경을 요하는 업무 를 말한다. 즉, 실시설계 중 중간이나 계획설계 내용을 변경한다면 이는 설계 변경에 해당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설계변경의 정의가 건축설계에 없어, 아무리 바꿔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되어 있다. 이는 매우 심각한 내용으 로 건축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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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VIEW
이종건의 COMPASS 46
휴먼 그리고 순수 이종건 본지 논설고문, 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교수
다. <플래닛 오션, 2012> <얀 베르트랑의 여행: 목마른 대 지, 2012> <숲과 인류의 미래, 2011> 등을 연출한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Yann Arthus-Bertrand의 다큐멘터리인데, 인종과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한 명씩 클로즈업 되어 나와 그저 잠시 (아마도 주어진 질문에 대한 답변의) 말을 하고, 등장인물들 사이사이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 전 부다. 편집이나 연출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 지극 히 간단하고 평범한 구성이지만, 보는 내내 어느 장면 하나 만감이 교차하지 않는 것이 없다. 클로즈업된, 나와 전혀 다
을미년이 하루 남았다. 국정원 해킹에 이어 비무장지대 지
몸을 둘러싼 옷을, 그/녀를 둘러싼 기운을 감지하는 것만으
뢰폭발, 메르스, 대한항공 땅콩회항, 성완종 리스트, 한국사
로 이미 다른 세상과 만나는 놀라운 경험이며, 그들이 뱉는
교과서 국정화, 대통령이 테러로 규정한 민중총궐기대회,
말들이, 지나치게 담담하고 정직한 까닭에, 참으로 무겁게
새천년민주당 분당,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 등 당장 머리에
다가온다. 살인과 사랑과 용서와 가난과 행복과 고통과 힘
떠오르는 것들만 열거해 봐도, 우리나라는 가히 ‘사건사고
겨움과 슬픔의 근원이, 그토록 인종이 달라도 놀랍도록 유
공화국’이라 불러 마땅할 만큼 불안정하고 위험하고 염려
사하다는 사실도 새삼 되새기는 진실이며, 등장인물들 사
스럽기 짝이 없다. 그런데, 공적인 사안들이 어찌 개인의 삶
이사이에 펼쳐지는 풍경도 숨막히게 아름답다. 아름다움이
과 무관하겠냐만, 엄정히 말해 그것들은 내가 살아온 올 한
란 역시 멀리 떨어져 보아야 나타난다는 진리 또한, 익히 아
해의 삶과 그리 상관없다. 메르스가 한창일 때도 그 이전과
는 바지만, 삶의 여러 층위를 다시금 상념하게 한다. ‘휴먼
한 치 다름없이 살았고, 박근혜 정부 들어 첫 본격 시위라
빙’이 아니라 ‘휴먼’으로 잡은 제목 또한 그러하다. 영어 인
할 만큼 대형집회가 열린 토요일에는, 사대문 부근의 차량
간 곧 ‘human being’은,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명사 ‘being’
통제 때문에 약간 늦어 강의차 부산행 기차를 제때 타지 못
앞에 붙은 형용사 ‘human’으로 인해 비로소 인간으로 성립
할 정도에 그쳤으며, 안철수가 비장한 얼굴과 목소리로 탈
한다. 인간의 본질이 꾸밈에 있다는 말이다. 벌거벗은 생명
퇴 선언한 일요일 아침에는, 평소처럼 집에서 느긋이 커피
인 조에zoe와 달리, 옷으로, 말로, 행동으로 꾸밈으로써 인간
를 마셨다. 물론 그것들이 터질 때마다 때로는 분노를, 때로
이 조에와 다른 생명bio으로 출현한다는 것이다.
는 울분을, 때로는 좌절과 절망감을, 때로는 슬픔과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그러한 부정의 감정들은 올해와 더불어 말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는 돈이 곧 꾸밈이다. 돈 없는 꾸
끔히 사라지기는커녕, 새 해의 또 다른 새로운 사건사고들
밈은 없다. 그런데 가난한 인간이 인간으로 사는 것이 불가
과 이리저리 겹치면서 불편하고 암울한 정조情調를 이어나
능하다면, 그곳은 과연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일까. 인간의
갈 것이다. 정치며, 경제며, 문화며, 교육이며, 윤리며, 어느
땅이라 할 수 있을까. 인간으로 출현하게 하는 꾸밈은 사랑
하나 멀쩡한 것 없으니, 간단없는 여파로 나의 영혼마저 빛
과 부끄러움일 터. 그로써 유지하는 존엄일 터. 그러하다면,
바랠까 걱정이다. 일상사가 회색 우울감에 젖을까 염려스
사랑과 부끄러움, 그러니까 우리의 내면이 돈의 식민지로
럽다. 그런데 아무리 바깥세상이 혼용무도(교수신문이 선
전락되지 않아야 그리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슬프게도
정한 올해의 사자성어인데, 세상이 어지럽고 도리가 제대
청년들이 꼽은 2015년 한 해 가장 큰 공감(언)어 ‘금수저,
로 행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논어의 천하무도天下無道에서
흙수저’와 두 번째 큰 공감(언)어 ‘헬조선’(송평인 동아일보
유래했다)라 한들, 이 성스러운 세밑 시간을 마냥 한탄과
논설위원은 “올해 한국을 대표하는 단어를 꼽아보라면 ‘-
비탄으로 흘려보낼 일은 아니다. 우리 일상 시간의 눈금들
포’ ‘헬-’을 꼽고 싶다”고 썼다)이 뜻하는 바인 ‘지옥처럼 전
이 기껏해야 인간의 공작에 불과하다 한들, 그래서 크로노
혀 희망 없는 계급사회 나라’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내면이
스는 전적으로 무의미라 한들, 그 의미를 붙잡지 않고서는
온전히 돈에 의해 식민화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1위와 2
‘인간으로’ 살 방도가 없다.
위뿐 아니라 7위까지 온통 그러하니, 어떤 토도 달 여지가
이종건 | COMPASS 46
른 인간의 얼굴을, 얼굴의 표정을, 눈빛을, 입술을, 피부를,
없다. 3위는 무급 또는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주 올 한 해 일어난 일들 여럿이 가슴에 남아있는데, 가장 가
적은 월급을 주며 청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행태를 뜻
깝게는 얼마 전에 본 영화 <휴먼, 2015>이 머릿속을 서성인
하는 ‘열정페이’, 4위는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연애,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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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AR no.49 | Wide AR no.49
주택 구입 등 많은 것을 포기한 세대를 뜻하는 ‘N포세대’, 5
모든 것을 정복한다amor vincit omnia는 명제가 참이라면, 아니
위는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에 하는 조언이나 충고 등을 비
순수한 사랑은 최고의 힘이라는 진술이 진실이라면, 우리
꼬는 말인 ‘노오력’, 6위는 일에 쫓겨 자유시간이 없는 사람
에게는 그 진실이 누락되어 있다는 뼈아픈 사실밖에 남아
또는 그런 현상을 뜻하는 ‘타임푸어’, 7위는 30대 이후의 자
있지 않다는 것, 그러므로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녀가 부모와 함께 거주하며 경제적 도움에 기대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회복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 순수
사람을 뜻하는 ‘빨대족’ 순이다.
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순수야말로 돈 계 급 속에 침몰된 우리 사회를 구원할 유일한 방편이 아닌가?
<휴먼>이 내 머리에서 떠나지 못하는 것은, 지금 곰곰이 생
2016년이 오기 전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서울대생은 이렇게
각해보니, 12월 18일 새벽에 자살한 한 서울대생 때문인
썼다. “20년이나 세상에 꺾이지 않고 살 수 있던 건 저와 제
듯하다. 생명과학부 재학 중이던 스무 살의 그는, 20여 분
주위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이종건 | COMPASS 46
전에 ‘제 유서를 퍼뜨려주세요’라는 제목의 유서를 페이스 북과 서울대 학생들 인터넷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 남긴
그런데 순수란 도대체 무엇인가? 어떤 것이 순수한 것인
후 옥탑방이 있는 신림동의 한 건물 옥상에서 투신했는데,
가? 내가 보기에 순수란, 본디 고유한 것을 지키고 수행하
거기서 그는 자신을 힘들게 만든 것은 “이 사회”라고, 그래
는 것에, 그러니까 존재하는 바의 그대로의 사물로 존재하
서 “제 자신과 세상에 대한 분노가 너무 큰 고통으로 다가
는 방식에,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행위 속에 놓여있는
옵니다. 이만 꺾일 때도 됐습니다”라고 썼다. 자신이 평생
무엇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행위로서 완결되고 소멸하는
추구했던 합리와 ‘세상의 합리’가 너무나 달라, 자신과 다
것이지, 그 바깥의 어떤 것을 목적으로 삼는 방편이 아닌데
른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했
실상은 그러하지 않은 까닭에, 혹은 그리 할 수 없는 까닭
다.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전두엽 색깔이 아닌 수저 색깔”
에, 우리는 그러한 사랑을 현실의 사랑과 구별시켜 ‘순수한’
인데, 자신은 “금전두엽”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라는 형용사로 꾸민다. 친절이나 용서나 정의를 포함한
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문장은 이러하다. “이곳저곳에 퍼
모든 덕, 모든 참, 모든 아름다움의 실천이 다 그렇다. 그런
뜨려 주세요... 육체는 죽어도 정신은 살고 싶습니다.” 세상
데 그러한 것은 꾸밈으로 나타나므로 벗겨낼 수 있는 빈껍
의 부조리를 견딜 수 없어 자신의 생명을 끊다니, 참 가슴
데기에 불과하다고, 따라서 그것 없이도 성립한다고 말하
아픈 일이다.
는 것은, 그러니까 순수를 비현실적 수사修辭라고 말하는 것 은, 마치 ‘휴먼’이라는 꾸밈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으로 성립
<영웅: 천하의 시작, 2002>, <황후화, 2006>, 그리고 2008
시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정확히
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진두지휘한, 명실상부한 중국
말해, 인간이 인간으로서 나타날 수 있는 것은 ‘휴먼’이라는
의 국민 영화감독 장예모의 <산사나무 아래, 2010>도 쉽사
꾸밈과 이어진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친절을, 부
리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 이전에 내어놓았던 스펙터
끄러움을, 심지어 인간적이라 부를 수 있는 모든 행위를 수
클하고 장대한 대작들과 믿을 수 없이 딴판인, 그야말로 순
행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것들의 순수성을 간직하는
수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그 영화는, 아이미의 실화 소설 <
데 있다. 그런데 순수성을 간직하는 일은, 특히 돈을 이념으
산사나무의 사랑>을 각색한 것인데, 문화대혁명을 배경으
로 삼는 이 세상에서는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행여 가능하
로 풋풋한 두 청춘이 긴장 속에 엮어가는 (첫)사랑 이야기
다면, 그것은 돈이 되는 순수성인 까닭에 이미 불순하다 해
가 간간히 소설의 지문을 삽입한 것 말고는 특별한 것 하나
야 마땅하다. 다시 말하건대, 순수는 오직 그 자체로서 완성
없고 수수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정말 그런데, 그렇게 범
되고 소멸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은
범한 순정 이야기가 출간되자마자 300만 부가 팔릴 정도
감히 그러한 불가능성을 대면하고 끌어안아야 가능하다고
로 힘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또 다시 새삼스럽게 놀라
할 수 있다. 건축도 예외일 수 없다. 우리가 건축을 할 수 있
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이제는 순수한 영혼이란 도대
는 것은, 건축 불가능성을 인식하고 수용할 때에라야 비로
체 우리 주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 되어버려 그
소 가능한데, 그렇지 않고서야 건축은 그저 돈벌이나 에고
렇지 않을까 싶다. 돈이 계급이 된 사회에 말 그대로 (극)귀
실현이나 기껏 제 자랑질 수단에 그친다. 인간의 내면을 돌
한rare 것이어서 (고)귀한precious 것이 아닐까 싶은데, 작년에
보고 지키는 예술이 그렇고, 철학이 그렇고, 문학이 그렇다.
나온 <순수의 시대, 2014>도 그렇다. <블라인드, 2011>의
인간을 꾸미는 것은 돈이 아니라 순수라는 것, 그것 이외에
안상훈 감독이 만든 영화인데, 거기서도 순정한 사랑은 이
인간을 구원하는 길을 나는 아직 모른다.
기적 욕망을 이기고, 심지어 죽음마저 끌어안는다. 사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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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VIEW
와이드 COLUMN
공동체를 상상하는 문학의 윤리 고영직 문학평론가
좋은 문학이 공동체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는 방식은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우리 사는 공동체가 어떻게 무너지고 있고, 공동체가 무너진 ‘이후’의 삶과 현실에 더 깊은 관심을 보낸다. 일군의 작가들이 보여주는 최근의 ‘좋은’ 한국문학이 추구하는 공동체의 생태학적 실상에 대한 정직한 작가적 탐색은 독자들의 깊은 신뢰를 얻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우리 사는 사회 공동체를 바꾸는 것은 자본주의가 유포하는 ‘정보’가 아니라 여전히 ‘이야기’의 힘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본문 중에서 편집자 임의 발췌)
우리 시대 이야기꾼 전성태의 소설 『낚시하는 소녀』
“소리들은 서로 몸을 섞지 않는다. 멀고 가깝고, 높고 낮고
(2011)는 구도심 변두리에 사는 가난한 모녀의 삶과 운명
간에 소리들은 저마다 고유하다. 붉은 물감에 노란 물감을
을 소설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작품 속 모녀가 사는 동네는
섞으면 주황이 되고, 파란 물감을 섞으면 보라가 되지만,
뉴타운 예정지로 선정된 지역으로서 이른바 개발 열풍이
소리는 섞여도 다른 소리가 되지 않는다”라는 문장들을 보
거세게 불고 있다. 그러나 작품 속 가난한 모녀는 “그저 가
라. 이 진술은 소설가 전성태가 구현한 득의의 문장들이라
늠할 수 없는 진창 같은 제 삶을 연민스럽게 응시”하며 자
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소리들은 서로 몸
기 앞의 생(生)을 살아가는 것조차 버거워한다. 작품 속 어
을 섞지 않는다”는 진술이야말로 우리 시대 좋은 문학이
머니는 모녀가 사는 집과 이웃한 모텔 샹그릴라에서 몸을
탐색한 리얼the real한 가난의 실상이라는 점을 어느 누가 부
팔며 생계를 꾸려가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소녀는 가훈을
인할 수 있겠는가.
라고 적어낸다. 한마디로 말해 『낚시하는 소녀』는 가난이
‘통각’을 깨우는 문학들
낳은 가난의 세습 문제를 문학적으로 뛰어나게 성찰하고
최근 한국문학 가운데 시든 소설이든 간에 좋은 문학은 공
있는 작품인 것이다.
히 바로 이러한 통각을 강력히 환기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작품 속 모녀의 가혹한 삶과 운명을 ‘생명’이라고 부를 수
것은 아마도 문학의 수행적 역능과 무관하지 않을 법하다.
있을까. 그렇지는 못할 것이다. 생명보다는 ‘생존’ 자체에
특히 한국시의 경우 2015년에 첫 시집을 출간한 신진 시인
더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 작품 속 모녀는 자연 상태의 벌
들의 시집이 유독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그 이유는 앞서
거벗은 생명을 의미하는 호모 사케르에 가까운 존재로 묘
언급한 문학의 수행적 힘과 깊은 관련이 있으리라고 생각
사되는 것에서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몸을
한다. 다음 시들을 보라.
고영직 | COLUMN
적어내라는 학교 숙제에 대해 스스로 “가까이, 더 가까이”
팔아 하루하루 생존해야 하는 어머니의 매춘 행위는 “닳고 닳은 늙은 꽃들” 신세가 되어버린 탓에 갈수록 ‘영업’에 적 잖은 차질을 빚고 있는가 하면, 매춘 행위를 아르바이트쯤
내 집은 왜 종점에 있나 늘
으로 여기는 모텔 샹그릴라 주인의 딸인 여학생의 등장으 로 인해 큰 지장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딸이 어
안간힘으로 바퀴를 굴려야 겨우 가닿는 꼭대기
머니의 매춘 행위를 알아차렸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럽다. 어머니가 “돌연 생이 너무나 부끄럽
그러니 모두 / 내게서 서둘러 하차하고 만 게 아닌가 _ 박소란 시 「주소」 전문
다”라고 읊조리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전성태의 『낚시하는 소녀』가 뛰어난 점은 소위 연민 마케 팅의 관점에서 작품 속 모녀를 묘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내가 운다
나는 이 점이야말로 이야기꾼 전성태의 성공적인 서사 전 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전성태의 소설을 읽고 나 면 내 몸을 깨우는 통각(痛覺, sense of pain)이 조금은 더 예민해졌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이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 는 예가 ‘소리’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라고 할 수 있으리라.
나는 아내보다 더 처량해져서 우는 아내를 본다 다음 생엔 돈 많이 벌어올게 아내가 빠르게 눈물을 닦는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음 생에는 집을 한 채 살 수 있을 거야. 아내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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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표현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인간관계의 재구축이 절실
다음 생에는 힘이 부칠 때 아프리카에 들러 모래를 한 줌 만져보자. 아내는 피식 웃는다. 이번 생에 니가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_ 안주철 시 「다음 생에 할 일들」 제1연
2015년에 첫 시집을 출간한 박소란과 안주철의 시는 각각 우리 사회의 어떤 실상에 대해 정직하게 응시한 결과물이 다. 박소란 시의 첫 행인 “내 집은 왜 종점에 있나”라는 표 현이 환기하는 것은 시의 화자든 시의 독자든 간에 우리네 삶이 어쩌면 ‘종점’으로 내몰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각이 라는 점은 너무나 분명하다. 우리 삶이 ‘종점’으로 내몰린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끝 행에 나오는 “하 차”라는 표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실재의 가난은 관계 의 결핍을 낳는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과 무관하지 않으리 라. 시의 제목이 ‘주소住所’인 것이 퍽 인상적이다. 다시 말 해 박소란 시는 독자들에게 당신의 삶이, 그리고 어쩌면 우 리들의 삶이, 어딘가에 정주定住하지 못하고 자꾸만 종점으 로, 종점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의식을 자각하게 하는 힘을 내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 법하다. 이 점에 관해서는 안주철 시가 지향하는 바 또한 크게 다 르지 않다. 안주철 시에 등장하는 가난한 젊은 부부는 “돈”
고영직 | COLUMN
때문에, “집” 때문에 “눈물”이 마르지 않을 날이 없는 상황 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삶은 고되고 질긴 노동을 해야 하 는 삶으로서 참된 의미에서 볼 때 ‘생명’으로서 삶을 살아 간다고 간주할 수 없는 노릇이다. 시에 등장하는 “아내” 가 “나”를 향해 “이번 생에 니가 죽을 수 있을 것 같아.”라 고 말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위의 표현이 세상의 온갖 ‘푸어poor’들의 리얼한 삶에 대해 은유하고 환기하는 연대 의 감정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안주철의 시는 비관적이지 않다. 그것은 바 로 “나”와 “아내”가 주고받는 대화에 등장하는 “이번 생” 과 “다음 생”에 대한 시적 아이러니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 다.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 상황 때문 에 절로 ‘웃음’이 피식 나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이 경험하 게 될 것이다. 이것이 안주철 시의 참된 매력이 아닐까 싶 다. 시인은 ‘다음 생’의 헛되고 헛된 기약보다는 ‘이번 생’ 에 죽지 않고 같이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환 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생태학은 건강한가 전성태의 소설 『낚시하는 소녀』를 비롯해 박소란과 안주철 의 첫시집이 포착한 우리 시대의 실상은 한마디로 말해 사 회생태학이 붕괴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사회생태학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점을 문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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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필요하다는 점을 강력히 환기한다. 이 점에서 우리 시대 의 좋은 문학은 최근의 핫이슈인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같은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으면서도 여느 정책보 고서보다 더 섬세한 방식으로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과 작 가적 책임감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문학 작품은 직접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구체적 현안들에 대해 지금 당장의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 는다. 문학적 상상력이 곧장 정치적 상상력으로 귀결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정치적 올바름이 곧장 미학적 아름다 움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과도 통한다고 감히 말 할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 ‘좋은 문학’은 우리 사는 공 동체에 대해 꾸준히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좋은 문학이 공동체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는 방식은 공동 체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우리 사 는 공동체가 어떻게 무너지고 있고, 공동체가 무너진 ‘이 후’의 삶과 현실에 더 깊은 관심을 보낸다. 다시 말해 사회 생태학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사회생 태학의 회복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철학자 펠릭스 가 타리 식으로 말하자면, “생태학의 함축적 의미는 자본주의 권력 구성체와 주체성 전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 (『세 가지 생태학』)이라고 할 수 있다. 펠릭스 가타리는 이처럼 환경, 사회관계, 인간 주체성이라는 세 가지 작용 영역의 생태학을 세 가지 생태학이라고 부르며 생태철학 ecosophie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탐색한 바 있다.
이 측면에서 볼 때, 전성태・박소란・안주철을 비롯해 일 군의 작가들이 보여주는 최근의 ‘좋은’ 한국문학이 추구하 는 공동체의 생태학적 실상에 대한 정직한 작가적 탐색은 독자들의 깊은 신뢰를 얻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우리 사 는 사회 공동체를 바꾸는 것은 자본주의가 유포하는 ‘정보’ 가 아니라 여전히 ‘이야기’의 힘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 하다. 앞서 언급한 안주철 시의 마지막 연에는 “다음 생엔 이번 생을 까맣게 잊게 해줄게”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나 는 위 표현은 지금 이곳을 의미하는 ‘이번 생’을 외면하자 는 것이 아니라, ‘이번 생’에는 ‘이번 생’의 삶을 위해 최선 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마땅하다고 생 각한다. 그것이 바로 ‘같이 살기’로서 가치를 외면하지 않 으려는 문학(예술)의 고유한 윤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 일을 의미하는 ‘다음 생’은 ‘이번 생’을 뜻하는 지금 이곳에 서 우리가 오늘 어떤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부르느냐에 달 려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삶이 지속되는 한, ‘노래’와 ‘이야기’가 멈추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WIDE REVIEW
표지작 DIALOGUE
특별한 공동체를 위한 특별한 건축 KIST 복합소재기술연구소 전북분원
초기안 모형
공모 단계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한 동네 에 단독주택과 아파트가 어우러져 있듯이 여기서도 그런 형태의 좋은 공동체가 되 었으면 했다. 그래서 연구소 주거단지의 아이들과 추동마을 아이들이 함께 다닐 수 있는 어린이집도 구상해 봤고 운동장, 테니스장을 인접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사회 가 좀 더 성숙되면 그런 식의 지역 공동체
초기 마스터플랜과 현재를 비교해 봤을 때 실현되지 않은 건물도 있는 것 같다. 공장형 실험동과 주거단지 일부 등이 빠 초기안에서
졌다. 보통 민간 공사의 경우 낙찰률을 감안하여 공사비를 산정하곤 하는데, 그것을 관공사에 적용한 게 문제가 됐다.
약 34만m2의 너른 땅 위에 세 개의 특별한 공동체가 펼쳐
관공사는 책정된 예산에 맞추면 된다. 난감한 상황이지만,
졌다. 서측 추동마을 쪽에서 진입하여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렇다고 건물의 질을 낮출 수 없으니까 대신 내용을 줄인
왼편으로 행정동과 만나게 된다. 이 행정동을 사이에 두고
것이다. KIST에서 이해를 해 줘서 가능한 일이었다.
민현식 + 정귀원 | DIALOGUE
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본다.
서쪽에 주거단지가, 동쪽에 연구동이 자리잡은 형국이다. 초기 계획에서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이 진입로이다. 원래는
특별한 공동체의 세 사회
남쪽에서 곧장 행정동으로 연결되는 길을 주진입로로 설정 하였다. 그런데, 그쪽으로 땅이 확보되지 않아 정문이 현재
라이프스타일과 기능적 요구조건에 따라 서로 다른 사회
의 위치로 바뀌게 되었다. 정문 위치가 변경된 것은 굉장히
성을 갖는 ‘특별한 공동체의 세 사회’를 제안했다. 그것은
큰 변화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다만 다소 번잡해진
곧 연구동, 행정동, 주거단지로서 각각 ‘배타적 대면공동
게 좀 아쉽다. 물론 직접 접촉되지 않게 계획되었으나 소위
체주1를 위한 사회적 응축기’(연구동), ‘열린 사회적 응축
주거 부분의 독립성이랄지, 그런 게 훼손된 부분이 있다. 주거단지와 인접한 추동마을이 하나의 지역 공동체로 얽히 기 바랐던 것으로 안다. 주거단지가 추동마을 쪽에 자리잡 은 이유이기도 하겠다.
주1. 대면공동체(對面共同體)는 구성원들 상호 간의 협동, 교류가 강조되는 공 동체로 농경사회, 혈연사회 등 전통사회의 전형적인 공동체.(KIST 복합소 재기술연구소 마스터플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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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정동), ‘선택적 공동체’(주거단지)로 규정되었다. 집
중요한 것은 동선이 사적공간에서 선택적으로 공용공간에
에 의해 새롭게 형성되는 사회적 관계를 살피는 것, 삶에
이르는 체계를 갖는다는 점이다. 동선의 끝에 공용공간을
대한 관찰과 애정이 없으면 어려운 작업이다.
두어 이 공간을 거치지 않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게 한 것 인데, 이로써 개인의 의지에 따라 선택적인 교류가 이루어
‘그 공동체의 삶이 그런 게 아니겠는가, 그랬으면 좋겠다’고
진다.
생각한 거다. 실제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진 모르겠 고…. KIST 전북분원 공동체는 크게 세 가지 특성으로 구
주거단지는 행정동 2층의 식당과 산책로로 직접 연결된다.
분된다. 우선 연구동은 24시간 작동되는 곳으로 연구자들
식당은 또한 행정동과 연구동을 잇는 연결통로 쪽 외부데
에게만 한정되는 배타적 사회이다. 외부인은 특별한 허가
크 계단으로도 출입이 가능하다. 자연스럽게 행정동은 주
없이 접근하면 안 되기 때문에 보안과 자족성이 필수 요건
거단지와 연구동의 매개 역할을 한다. 또 식당은 독립적 운
이다. 한편으로는 연구자들의 협동, 소통, 상호교류 등이 강
영이 가능하도록 사무동 공간과 분리되어 있고 동선도 별
조되는 현대 연구소의 특징에 따라 공용공간에서 연구실,
도로 계획되었다. 강당도 마찬가지다. 외부인의 출입, 상대
실험실에 이르는 내부 동선체계가 고안됐다. 행정동은 연
적 가동률, 사용 시간대, 설비 효율 등을 고려하여 독립 운
구동보다 보안이 느슨한 구역으로 외부인들이 가장 먼저
영이 가능하도록 계획되었다. 무엇보다도 이 강당의 압권
방문하는 곳이며, 주거단지는 주거생활의 프라이버시가 보
은 무대 후면의 유리벽이다.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관계자
장되고 개인 의지에 의해 선택적 만남과 교류가 이루어지
가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이기도 하다.
는 중재공동체주2 또는 접속공동체주3의 성격을 갖는 사회 이다.
강당 무대 뒤 벽이 북측의 자연 풍광으로 열려 있는데, KIST 전북분원의 자랑거리가 된 것을 알고 있다.(웃음) 별
1920년대 초반에 등장한 러시아 구축주의는 새로운 삶의
다른 인위적인 조경이나 장치 없이 자연그대로의 모습을
관계를 맺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담고 있어서 다행이다.
민현식 + 정귀원 | DIALOGUE
있었고, 이것을 사회적 응축기social condenser라고 불렀다. 여 기서 사회적 응축기는 같은 것을 의미하는가.
행정동은 다시 연결통로(브릿지)로 연구동과 이어진다. 연 구동은 긴 아트리움에 양쪽으로 날개가 각각 3개씩 매달려
어떤 뚜렷한 목표가 있는 집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특별
있는 형태이다. 연구 공간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채광이 유
한 공동체를 위해 특별하게 설계된 건축은 목적하는 공동
리한 남쪽에 연구실 존zone이,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는 북
체를 이루는 데 일조할 수 있다.
쪽에 실험실 존이 배치되었다. 마치 작은 픽셀과도 같은 실 험실/연구실 단위모듈이 집적되어 긴 날개를 형성하고, 아 트리움은 이 3개의 윙을 관통한다.
연구동, 행정동 그리고 주거단지 단위모듈은 연구팀의 구성에 따라 통합과 분할이 가능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우선 주거단지는 ‘선택적
오픈 플랜으로 구성되었다. 하나의 동이 독립된 연구소가
만남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집으로 사적공간(개실 및 단위
될 수도 있지만 더 작게는 단위모듈 한 개, 혹은 방 하나하
주호)과 공용공간(거실, 체력단련실 등)이 공간적으로 분
나가 독립된 세계일 수 있다. 연구원들은 독자적으로 연구
리되어 있다.
하거나 프로젝트에 따라 협동해서 일을 할 수도 있는데, 프 로젝트로 엮어질 때, 실은 연구원 한 사람이 하나의 연구소 가 될 수 있다. 나는 대학도 그랬으면 한다. 교수 개개인이
주2. 중재공동체(仲裁共同體)는 구성원들의 개성이 존중되고 개개인의 한시적
위들을 집적하는 방식으로 계획되었다. 단위들이 뭉쳐서
인 필요에 의해 한시적으로 조직되고 해체되는 공동체.(KIST 복합소재기
큰 단위를 만들고, 연구 프로젝트에 따라 팀 조직이 수시로
술연구소 마스터플랜 보고서) 주3. 접속공동체(接續共同體)는 특히 인터넷 등에 의해 접속되어 형성되는 공동 체.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공간적 시간적 제약이 극복되면서 출연되는 공동 체.(KIST 복합소재기술연구소 마스터플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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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학교였으면 하는 것이다. 아무튼 연구동은 그런 단
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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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적 환경, 통합적 공간_아트리움 아주 오래전 원도시에서 설계했던 포항제철연구소 역시 복 도를 두고 연구실과 실험실이 집적된 방식을 취했는데, 한 쪽에 커피를 마시면서 연구원들이 토론하거나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제공되었다. KIST 전북분원 연구동에서 아트 리움 중간에 걸려 있는 라운지가 그런 역할을 해주기를 기 대했다. 공식적인 컨퍼런스는 강의실 같은 큰 방에서 이루 어지고, 라운지에서는 언제든 좀 자유로운 토론이 일어났 으면 했다. 또 통합된 동선 계획으로 라운지에서 휴식을 취 하거나 모임을 갖는 연구원들과 아트리움 복도 혹은 브릿 지를 오고가는 연구원들의 시선이 마주칠 수 있도록 계획 하여 우연한 만남을 유도한 측면도 있다. 아트리움 서측에 세 개의 동을 잇는 복도는 남북측 유리면 끝까지 뻗어 있다. 남북으로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는 구조 라 생각했다. 초기 마스터플랜에 이미 연구동 증축이 고려되었다. 실제로 한 동 정도 더 증축하자는 이야기가 있다. 연구소 측이 설계
배치스케치
당시의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트리움 1층 유리창을 통해 주변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
실산 등에서 흘러내려오는 구릉지 형태의 산림이 분포하
다. 그런데, 이 아트리움 자체가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여
고, 능선을 중심으로 양측에 논, 습지, 구거 등으로 구성된 2
반 외부, 반 내부의 중간적 환경을 이루고 있다는 게 더욱
개의 골짜기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먼저 기존
인상 깊다.
지형 공간의 성격을 지속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비워져야 할 부분을 선행적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각 건물의 자리가
끝까지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부분이다. 대지 북쪽에서 흘
결정되었다.
러내려오는 계곡물이 집 안으로 들어와서 그대로 나가게
연구동과 행정동은 중앙 능선의 동측 골짜기에 위치한다.
했다. 한 번 필터링이 되긴 하지만…. 계곡이 마르면 펌핑
행정동은 중앙부 경사지에 배치하여 전체 연구단지의 지원
으로 다시 끌어올리기도 하는데, 물이 마르는 경우는 거의
이나 관리가 용이하도록 했고, 연구동은 상대적으로 폐쇄
없다. 한편으로는 아트리움의 습도와 온도를 자연적인 방
적인 곳에 위치시켜서 배타적 대면공동체를 이루도록 했
법으로 조절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수로 주변으로 심은 식
다. 또 이 두 건물 사이는 계단형 논의 형상을 최대한 보존
물이 딱히 마음에 들진 않지만,(웃음) 제안한 것이 성사되
하여 거대한 생태수로가 되도록 했다. 반면 주거영역은 중
어 좋다.
앙 능선 서쪽 골짜기에 배치되었는데, 이로써 거주자의 직
민현식 + 정귀원 | DIALOGUE
땅은 봉실산 자락 남향에 위치해 있다. 중앙부는 옥녀봉, 봉
장(연구소)과 주거가 공간적으로 분리되었다. 지적 비움intelligent void
2009년 7인의 건축가가 참여한 지명초청 설계경기에서 당 선된 안으로 알고 있다. 과감히 비워낸 게 참신하고 좋은
기존 구거溝渠를 활용한 수로는 행정동과 연구동 사이에서
인상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도 볼 수 있다. 기존 자연 조건을 최대한 보존하고 새로운 인공 환경이 그 속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처음부터 비움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여러 형태의 배치를
이 집의 장점이 아닌가 한다.
고민하다가, 능선 사이를 비워서 물을 흘려보내면 적어도 기존 생태를 교란시키지는 않을 거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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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건물을 연결하는 브릿지(연결데크)를 건너면서 필봉筆峯
을 보게 하고 싶진 않았다. 부연설명하면, 부석사나 해인사,
으로 보이는 산을 바라보는 게 나쁘지 않다.
개심사 같은 사찰건축은 지형으로 연출되는 시퀀스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집이다. 대웅전에 이르는 전체 과정에서 중생
비움의 끝에 있는 시각적 종착점이 필봉이다. 그런데, 처음
들은 끝없이 목적지로 나아가며 연출된 풍경과 마주한다.
부터 연결데크가 구상된 것은 아니다. 원래 의도는 징검다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반면, 이와 달리 서원건축은 계속 돌
리 정도만 둬서 자전거 이용자는 돌아가거나 도보자는 징
아보게 만든다. 풍경을 연출하기보다 편집하는 데 더 가깝
검다리를 건너는 것을 상상했다.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물
다. 연출이 의도를 강하게 담는다면, 편집은 각 요소들에 가
을 직접 만져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 맞
치를 둔다. 다시 말해 주변의 환경적인 요소를 엮어서 스토
지 않고 이동하기를 원했던 연구소 측에 의해 연결데크가
리를 만들거나, 관계를 적극적으로 맺어주거나 또는 관계
설치되었다. 결과만 봤을 때, 연결데크 설치에 크게 관여 못
를 소원하게 만들거나 하는 방식을 취한다. 종교가 가지는
한 게 아쉽다. 비용과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면 좀 하이테크
특성 때문에 불교와 유교의 풍경을 다루는 방식이 다른 것
한 것을 제안했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감리를 할 수 없었다
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자꾸만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좋다.
는 게 가장 결정적인 문제였지만…. 사실 이 연결데크 외에
돌아보게 한다는 것은 곧 자신을 성찰하는 태도를 가지게
행정동 캐노피 같은 것도 동일한 상황이다. 연구소이니 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큼 권위적인 집은 지양하자고 했으나 관철시키지 못했다. 언젠가는 떼어낼 날이 오지 않을까, 믿고 있다.(웃음)
모듈에 의해 일정한 패턴을 보여주는 외벽은 단위재의 크 기가 작고 따뜻한 느낌의 벽돌로 마감했다. 또 자칫 거대해
민현식 + 정귀원 | DIALOGUE
질 수 있는 연구시설의 매스는 분절시켰다. 인간적 스케일 풍경의 구두법, 풍경의 편집
의 지향은 삶의 배경이 되는 풍경과도 관련 있어 보인다.
“생활과 풍경의 구두법을 일치시켜 연구자들에게 장소의
건물을 적극적으로 분절시키고 쪼개는 일은 꼭 해야 할 일
공간적 즐거움과 생활의 리듬을 향유하는 느림의 도시를
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것들의 집적을 지향하는 것은 내 건
지향한다”고 했다. 단지 내 도로 또한 자동차보다 자전거
축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현상이다.
와 보행을 더 배려하고 있는데, 연구원들의 삶이 어떠하기 를 바랐는지 궁금하다.
서, 기오헌 소설을 한 편 썼다.(웃음) 연구원들이 아침에 연구실로 출 근하는 길을 상상해 보았다. 숙소에서 출발하여 산책로를 따라 언덕 넘어 행정동에 이르는 길, 행정동 2층 브릿지를 통과해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습지를 건너 연구 소에 이르는 과정, 이 과정을 즐기는 사람들이 꼭 있었으면 했다. 길에서 만나는 소소한 풍경과 직접 접촉하게 되는 자 연(연결데크로 몇몇 기회가 사라졌지만)…. 출퇴근길이 자 연을 향유하는 사색의 길이 되도록 하여 느림의 도시를 실 현하고자 했다. 건축이 자연환경에 새롭게 개입하여 삶의 풍경이 지속되는 연구소를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은 생활의 배경으 로서 담담하게 서 있는 듯하다. 풍경 또한 긴장감 있게 다 가오지 않는다. 극적으로 연출된 장면은 아니란 것이다. KIST 전북분원의 풍경은 소속 구성원들의 집단적 기억을 생산할 것이다. 나는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자연에 고정 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별로다. 그림을 감상하듯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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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KIST 복합소재기술연구소 마스터플랜 보고 정리 | 정귀원(본지 편집장)
WIDE REVIEW
표지작 CRITICISM
무제수필無題隨筆 주1 KIST 복합소재기술연구소 전북분원
민현식 선생을 만나며 절절하지 않은 것이면 굳이 질문을
고 주장되고 있다.주2 역사나 문화 등 인문학적 심층구조로
만들어 던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와의 대화는 비
서의 지문과 아울러 풍경을 연출하는 근간으로 옥녀봉, 봉
교적 적절한 양의 시간을 같이 하였음에도 내용은 꽤 단순,
실산 등 주변의 산과 물길, 전답, 녹지, 습지 등 지형으로 구
간결하였다. 건축물에 관한 대화는 전반적 프로세스와 건
성되는 산경山景, 수경水景을 적극 도입하고, 이에 부족함을
설 배경 등 일반적 설명을 듣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이어서
더하고 북돋우기 위해 인문적 환경인 건축을 통해 상보시
그를 향한 나의 매우 개인적이고 가벼운 질문으로써 이루
켜, 소위 풍수적 조화를 이루고 개량함으로써 건축적 풍경
어졌다. 예상하진 않았으나, 그에게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architectural landscape을 연출하고자 의도하고 있다.
생각되며 대중에겐 이미 잘 알려진 내용, 즉 자신은 칼비니
그가 언급하고 있는 영어 architectural landscape을 문
스트Calvinist라는
사실, 그리고 ‘이유 없는 결과는 없다’라는
자 그대로 직역하면 ‘건축적 조경’이란 말일진대, 그 의
주장을 머리에 담게 되었다. 그는 비록 어려운 글쓰기에 대
미와 용도에 있어 문자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아주 중요한
해 언급하면서도 어려운 내용의 글쓰기를 자제해 줄 것을
중의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음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권고하였다. 아마도 불필요하고 이유 없는 현학적인 수사
다. 흔히 홑말로 사용되며 조경을 가리키는 landscape의
의 놀음을 접하기 싫은 까닭일 게다.
어원은 독일어권의 Landschaft에서 찾으며, 이 말은 ‘땅 Land
만들기Shaffen’란 두 단어가 합쳐진 것이다. 반면 라틴
I.
어권에서는 조경을 pesaggio architecturale(I), paysage
KIST의 복합소재기술연구소(전북분원, 이하 KIST 전북분
architectural(F) 등으로 표기하는데 그 문자적 의미는 ‘건
원)는 개원된 지 이미 2년여 된 건물이다. 보기 드물게 너
축적 풍경’을 의미한다. 실제로 두 큰 언어권을 중심으로 정
른 대지에 자리잡은 연구소는 많은 점에서 이미 민현식 선
원, 공원, 조경 환경의 조성에 있어 창조 및 감독과 제어의
생이 설계한 신도리코 사옥을 떠올리게 하며 적잖은 내용
대상은 땅, 건축물 등으로 분리될 만큼 제각기 특별한 관심
이 공유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동일한 시각에서
이 집중되곤 한다. 이러한 점을 의식한다면 민현식의 의도
KIST 전북분원은 일견 합리주의 계통의 건축물로 다가온
는 땅의 조성, 지형의 변화를 최소화하고 보존을 포함하는
다. 기하학이 지배하는 평면과, 비교적 장식적 요소가 절제
행위로서 지형의 구축뿐만 아니라, 인문적 환경인 건축물
된 입면, 정돈된 비율의 매스와 텍스처, 그리고 브릿지를 비
을 통한 상보로써 조화를 이루고 개량하고자 함을 암시한
롯한 철골 구조물들은 기하학적인 모듈 시스템을 연상시킨
다는 것을 한층 더 강하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아
다. 기하학과 단순한 실루엣이 부여하는 명확한 형태의 건
울러 조경이나 주변 환경과 공간에 관한 한 좀 더 세밀하
김미상 | CRITICISM
김미상 O.A.S.학교장, 간향클럽 고문, 계간<<건축평단>> 편집위원
물은 손상되지 않고 잘 보존된, 유기적이고 어느 정도 혼돈 의 모습을 지니는 자연지형 위에 자리하고 있어 대지 및 주 변 환경에 더욱 대조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환경의 조성 은 지형-공간이 가지고 있는 조직을 보전함과 동시에 기존 환경에 개입되는 인문환경이 풍경과 공간을 서로 돕고 보 조하도록 편집하여 자연과 인문의 조화를 꾀한 까닭이다. 그런데, 땅은 단순한 물리적 실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 화와 역사가 새겨진 지문地文을 지닌 공간 구축의 바탕이라
주1. ‘무제수필’은 건축가 민현식의 의도, 그의 자세와 주장을 의식하고 만든, 그 를 향한 글 가운데 필자의 의도를 조금이라도 무화(無化)하고자 하는 의도 하에 붙인 제목이다. 이는 본 텍스트가 작품 창조자로서 건축가를 향한 작 은 존중물로 시도된 것이지, 그의 건축물 ‘KIST 복합소재기술연구소’를 은 유하거나 에둘러 가리키는 것은 아님을 의미한다. 주2. KIST 복합소재기술연구소 마스터플랜 보고서, 기오헌, 2012.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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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AR no.49 | Wide AR no.49
고 구체적인 배치와 풍경의 조성을 위해 조경의 구두법The
된 부분을 보충하는 보완물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
punctuation of landscape이
도입되고 있다. 건물군은 기능과 용
를 들어 민현식 선생을 비롯한 일군의 건축가들이 즐겨 예
도별로 클러스터링clustering되었고, 적절한 스케일로 나뉘어
로 든 자코메티의 조각은-그것이 지니는 외부 공간, 공간성
진 독립 건물들은 통로, 도로 등으로 연결되어 적당한 휴지
과의 관계에 대한 언급은 차치하고 조각적 오브제만을 대
단위와 간격으로써 장소가 지니는 공간적 즐거움과 생활
상으로 한다면-날씬한 형태에도 불구하고 충전적充塡的인
의 리듬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의도된 것은 시각적으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헨리 무어Henry Moore의 작품에서
로 강한 인상을 주는 특별한 풍경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
비워진 부분, 즉 보이드void는 작품에 통합되고 전체를 형성
려 일상의 풍경이 새롭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다.주3 또 선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경우 의도적 비움에 대한 선
생은 구태여 공간을 디자인하지 않고 오로지 관계화 상황
호가 수월히 발생한다. 건축에서도 이러한 연출이 이전부
을 디자인함으로써 “바닥을 밟고 공간으로 진입한다기보다
터 있어 왔다. 예를 들어 고전주의 건축에서 솔리드solid와
공간의 안으로 걸어 들어가 공간과 생활이 일체화되어 안
보이드void의 균형을 잡는 것, 벽체나 기단의 솔리드한 부분
정될 때까지 갈등 상황을 매 순간 만들어내고 있다”주4고 말
과 개구부 등 비워진 공간 등의 연출은 이에 비할 수 있을
한다. 그럼으로써 KIST 전북분원 내에서의 삶과 이동을 느
것이다. 그러한 논리적 전개 바탕에 더하여 선생은 비움의
림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그의 기본적 의도와 만나고 있다. 건
많은 부분을 동양철학, 그 중에서도 노자의 철학과 연관지
축가는 자신의 미학적 태도나 건축과 관련된 제 사항을 슬로우 라이프slow life와 연관 짓고 있는 것이다. 그가 평 소 주장하던 땅 읽기, 비움 등과 같은 개념과 미학적이자 철학의 언어는 구체적 삶과 건축적 리얼리티로 결정結晶 되고 있다. II. 김미상 | CRITICISM
민현식이 키워드로 삼고 있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비움’이다. 건축에서 비움은 공간, 그리고 3차원의 평 면인 터와 연결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전개하는 비움이란 목적론적 성격이 짙은 모더니즘의 기능주의, 그리고 거의 이데올로기화되거나 전제적 도 구가 되었던 합리주의 미학에 기저를 둔 방법론에 반 하고 있으며, 차갑고 냉철한 철학적 혹은 미학적 개념 보다는 다분히 절충적이고 문화·사회적 측면에서 접 근된다. 그리고 그가 견지하고 있는 비움을 다루는 태 도는 모더니즘의 특성인 규정적 공간에 대한 거부나 그에
어 말하곤 한다. 노자는 비움이 있으므로 채움의 의미가 있
대한 대안적 제안의 제시로 일관되고 있다. 근본적으로 비
는 것이며, 채움이 있음으로써 비움의 의미가 있음을 주장
움이란, 정확히 말하여 물리적으로 아무 것도 없음을 의미
한다. 즉 비움은 열린 가능성의 공간이자 능동적 해석과 재
하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물질의 부재가 아닌 개방된 간격
창조의 공간이다. 노자에 의하면 비움은 대상과 분리되지
틈interval,
비어있는 것으로서 사용 가능한 공간을 의미
않고 합일된 것이며, 비워둠으로 인하여 다양하고 자유로
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비움의 공간이란 물질을 내포하지
운 관계들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비움이란 단순히 없음이
않은 공간을 의미하며, 건축이나 조각과 같은 구축적 예술
아닌 다양한 관계의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관계는 서
에서 물질 혹은 질료적 내용의 부재는 작품의 일환이 되곤
양식 이분법적 대립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한다. 즉 절개되어 열렸거나 오목하게 속이 빈 공간은 충전
관계성, 또는 상보성相補性 등으로서 이해되는 것이다. 민현
혹은
식은 비움을 불확정성과 연결하고 있으며, 건축의 요소 중 주3.
마당을 그 대상으로 여긴다. 그리고 그는 비움을 만듦으로
ibid. p. 30.
써 표상중심주의적 건축을 극복하는 대안을 제안하고자 한
주4. ibid. p.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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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나 KIST 전북분원에서 개념으로서의 비움은 어느 정도 수긍될 점은 있지만, 전반적으로 적용되고 공감하기
WIDE REVIEW
엔 한계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즉 자연 및 환경, 그리고 단지
적 사유를 영유하고 현실화까지 연결을 추구하지만, 적어
와의 관계와 관련된 거대 스케일에서의 타당성을 제외하면,
도 KIST 전북분원에서는 그러한 연결을 멈추지 않을 수밖에
그리고 지세나 환경의 측면에서 이야기될 주제를 제외하면,
없는 것이다. 아마도 전체 규모에서의 외적 비움이 너무 컸으
단지와 건축적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조성된 비움의 공간, 그
며, 환경적으로 건축적으로 중간적 규모와 성격의 공간을 조
가 비움의 대표적 예로써 함께 예시하곤 하는 마당은 찾아보
성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채움에 불과함을 잘 인지하고 있었
기 어렵다. 아마도 KIST 전북분원에서 ‘마당’의 성격에 가장
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까운 건물 동과 동 사이의 비워진 공간은, 비움-마당이 마
그의 마스터플랜 보고서에서는 그가 언급하는 ‘마당’이 존재
련해야 할 창조적이고 불확정적인 성격에 할당된 공간이라
하지 않거나 언급되지 않고 있다. 아마도 실현 못한 기숙사의
기보다는 오로지 관조라는 확정적 목적을 위한, 건물로부터
일부를 포함하여 게스트 하우스, 행정동 등 일부의 부분에서
차단되고 보존되어 외부 공간의 하나로 남아 있으며 홀로 고
마당의 성격을 굳이 발견할 수도 있겠으나, 이는 전반적 분위
립되어 물리적으론 불통不通된 공간이 되어 버렸다는 느낌이
기에서 볼 때 매우 미약한 예, 여분적 사례에 그치고 만다.
훨씬 더 강하다. 그러한 상황이 일어나게 된 내적 이유는 다
외부의 파사드를 살펴보면 한층 더 흥미로운 사실이 부상
음과 같은 사항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된다. 파사드에 있어서 “지면과 만나는 부분은 거친 마감의
KIST 전북분원 마스터플랜 보고서는 비움에 관해 큰 스케
노출 콘크리트로 건물이 땅에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느낌을 주며, 옥상의 파라핏은 매끈한 노출 콘크리트를 적용, 하늘과 만나는 경계를 구성한다.”주6 이러한 구성은 르 네상스 시대 팔라초palazzo에서 볼 수 있었던, 그리고 후 에 르네상스식 고전주의 구성의 기본 전거가 되었던 입면과 그에 따른 공간구성을 떠올린다. 1층의 거친돌 쌓기rustication, 거실 공간 등이 있는 2층piano nobile, 최상 부의 다락방attic과 코니스cornice 마감은 고전주의 건축 따라 마감이나 장식, 디테일 등이 점점 더 정련되고 곱 게 마감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은 이 러한 규범화되어 있는 서양 건축의 역사적 특성을 의 식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논리적인 디자인을 이행하 다 보면 자연히 이끌리는 표피와 공간의 질적 위계와 배치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그런데 건
김미상 | CRITICISM
의 기본 어휘가 되었으며, 하부에서 상부로 올라감에
축 문화사의 측면에서 보자면, 여기서 외견상 합리주 의의 것으로 보이는 KIST 전북분원 건물이 전혀 그렇 일에서의 “지적 비움”을 언급하고 있다. 정신적 의미가 강
지 않은 특성을 지닌다는 점이 문제로 대두된다. 즉 이 건물
하게 풍기는 “지적 비움의 구축”으로 제목이 붙은 항목은
은 순수 미학적 관점에서 합리주의, 바꿔 말해 미학·철학
“기존 지형 공간의 성격을 지속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비
적 고전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듯하나 실지로는 양식적 측
워져야 할 부분을 선행적으로 규정하여 지형 변화를 최소
면, 형식적 측면에서의 고전주의적 성격이 강한 건물이 되
화하고, 주변 지역의 생태기능이 지속되도록 비움을 구축
어 버렸다는 것이다.
한다”주5고
규정한다. 내용을 상세히 들여다보고 궁구하
게다가 외벽 등 디테일의 연출은 선생이 의미심장하게 예
면, 끊임없이 솎아내고 긁어내 폐기하는 구체적 행위를 가
시한 예술가의 작품으로서 그의 예술적・건축적 시각, 더 나
리키는 것이 아닌 노자식
무위無爲,
허虛의
상태를 유지하고
아가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시각에 관해서도 효율적인 설명
자 지혜 또는 지적인 최소의 노력과 개입을 전제하는 것임
이 가능해진다. 그는 디테일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고 있는 그의 KIST 전북분원에서 ‘마당’의 조성은 현실적으로 이상적인,
주5.
아니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비움’ 대신 헐풋한 ‘채움’
ibid. p. 40.
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이미 많은 부분 구축되었거나 진 행 중이기에, 그는 아름다운 미학적 이념과 이상적인 철학
주6. ibid. p.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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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AR no.49 | Wide AR no.49
“오감으로 체득되는 공간을 만드는 일의 핵심에 ‘디테일’
었던 것이다. 그처럼 교란적이고 파괴적 연출수법에 더하
이 있다. 디테일의 일차적 기능은 재료와 재료, 공간과 공
여 그녀가 동양의 도교에 심취하여 영적인 것을 작품에 표
간을 순하게 이어 주는 것이지만, 정작 디테일은 상황과 시
현함으로써 타 미니멀리스들과는 달리 추상적 표현주의자
간 사이, 그것의 변화에 따라 빛·색깔·소리·냄새·촉감·맛
Abstracct Expressionist로 분류된 사실은 민현식의 건축과 예술을
등 우리의 감각을 측정하고 감지하게 하는 장치 자체로 동
향한 태도나 KIST 건물을 위한 의미심장한 참조가 될 것이다.
원되고, 보는 이의 심성이 그 대상의 변화와 행복하게 만나
KIST 전북분원의 외부 매스는 단순한 입방체로 순수 합리
게 하는 동기를 유발하는 틀이 된다. 디테일의 힘으로 공간
주의적 형태를 하고 있으나 철골 구조 프레임 내의 충전벽
과 공간 속에서 유영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그네스 마
은 벽돌로 이루어져 있다. 멀리서 가까이 갈수록 벽에 채용
틴Agnes Martin의 극추상의 미세함과 같아지기를 바란다.”주7
된 물질, 즉 재료의 종류를 확신하기 어렵고 거의 매끈한 벽
여기서 오감으로 체득되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관조로써
으로 느껴지던 벽은 어느 시점부터는 벽돌로 구축된 것임
인식되는 구태의연한 실존적 대상물로 구성되는 공간이 아
이 드러난다. 그리고 점차 벽돌과 줄눈의 디테일이 눈에 들
닌, 감촉적 경험tactile experience이 가능한 공간을 만드는 것임
어와 질감, 촉감, 얼룩, 색채 등 훨씬 더 다양하고 풍부한 성
을 강력하나 낭만적으로 암시하고 있으며, 그러한 경험을
상을 알 수 있게 되며, 물자체, 재료가 지니고 있던 원래의
극대화하는 핵심 관건으로 디테일을 들고 있다. 즉 가능한
금이나 흠뿐 아니라 얼룩 등 세월이 선사하는 여러 흔적 등
한 물자체의 감각적 특성을 최대한 잘 드러낼 수 있도록 하
을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이는 KIST 전북분원이 전체 큰 구
는 것이 디테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도에서는 합리주의적 성상을 지니지만, 내적 가치와 디테일
그가 언급하고 있는 미국의 여류 화가 A. 마틴의 회화에 대
의 측면에서는 순수성이나 단순성과는 상관없이 매우 복합
한 언급은, 아마도 어느 권위 있는 저자의 것을 채용한 것
적이고 복잡한 성격을 지님을 보여주는 한 측면이다. 그는
인지, 아니면 선생 자신의 신념에 따라 미세함과 극추상의
애초부터 이상적 합리주의에 동의하지 않는 태도를 지니고
것으로 소개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있었으며, 일견 합리주의적 형태와 방법론을 동원하고 있을
만들 소지가 많다. 더구나 그의 건축적 공간에서의 관계성
지언정 서양식 모더니즘에 근거하는 합리주의자는 아니다.
김미상 | CRITICISM
에 관한 논의는 추상에 대한 근원적 믿음을 요동치게 만든 다. 그가 언급하는 극추상이라면 더 이상 추상화할 것이 없 는, 동양식 개념을 빌자면, 완전의 상태, 혹은
III.
허虛의
복합적이고, 어찌 보면 동양식 사고에 대한 본능적 직관과
상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서양식 개념으론 군더더기가 하
이해가 훨씬 강한 민현식의 건축과 건축관은 문화적으로
나 없이 실존적 형태만을 제시함으로써 단 번의 눈길로도
아주 높은 가치를 갖는다. 뿐만 아니라 고정된 문화가 아닌
그 실체가 완전히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띠, 혹은
항상 변하고 전진하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그 자신뿐만
기하학적 형태로 환원되어 추상화된 형태를 화폭에 구현한
아니라 그와 유사한 행보를 걷고 있는 장년 건축가는 분명
A. 마틴의 회화에는
로스코Mark Rothko를
무無나
비롯한 다른 추상
우리나라 문화사의 흐름에서 경첩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고
화가, 미니멀 화가 등과는 달리 그 안에 다시 또 잘디잔 추
있다. 선생은 새로운 문을 여는 역동적 모멘트를 감당하고
상적 형태들이 가득차 있곤 하여 작품을 제대로 인식하려
있으며, 거대한 두 문화의 모퉁이를 연결하고 있다.
면 디테일을 확인해야 한다. 거기서는 형태들, 요소를 바라
그는 많은 부분에서 건축이나 예술에 관해 언급하며, 서양
보는 순간 그들이 지닌 잠재적 내적
설화narratives가
발화되
의 용어와 방식을 구사하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기 시작하여 추상성이 사라진다. 한마디로 그녀의 회화는
자 한다. 그토록 매우 훌륭한 태도임에도, 그에 대한 많은
이론상 적잖은 경험 조건이 수반되는 것으로, 외견상 그리
건축가들의 어긋나거나 부족한 이해로 인해 오용되고 있는
함과는 달리 진정한 극추상은 아니다. 추상의 의미와 개념
부분들이 드러나는 게 아쉽다. 이는 각자 개인의 책임이기
에 정통한 그녀 자신은 로스코의 작품을 가리켜 “0에 도달
도 하지만, 한 번에 채워질 수 없는 집단적 공유, 즉 사회적
하여 진리의
도道에
아무 것도 서 있을 수 없다”고 찬양하였
차원에서의 지적 합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기
다. 반면 그녀 자신의 작품은 그 내부에 선, 그리드, 얼룩 등
도 하다. 누가 되었든 때때로 책망의 화살을 즉각 겨누기에
으로 구성된 수많은 디테일을 지니고 있는, 유기적이고 다
는 숙고의 과정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는 현재 활동하고
원적이며 혼합적이자 표현주의적인 회화임을 인식하고 있
있는 건축가 중 가장 지적이고, 가장 많이 전진한 장년 건축 가의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주7. 민현식 Min Hyun Sik Architecture 1887-2012, 열화당, 2012.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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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50 와이드 REPORT 1 한국건축예찬-땅의 깨달음 | 고충환 57 와이드 REPORT 2 젊은 건축가들의 집단항거 소규모 건축물의 설계와 감리 분리 수정 법안, 문제 많다! | 공을채 60 와이드 REPORT 3 용적률 게임 제15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예술감독에게 듣다 | 정귀원 62 와이드 REPORT 4 젊은 건축가들의 ‘옆집’바라기 | 공을채 67 와이드 REPORT 5 노들섬, 음악을 매개로 한 문화 플랫폼을 향해 | 정귀원 70 와이드 REPORT 6 재정비로 새롭게 시작하는 2015 건축명장 | 정귀원 72 와이드 REPORT 7 어쩌다집@연남_작업일지 | 이진오 79 와이드 REPORT 8 한국의 건축사진가07 | 진효숙 드라마를 담는 건축사진 85 와이드 REPORT 9 한국의 건축사진가08 | 황효철 나의 태도를 말한다 91 와이드 REPORT 10 제6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 수상자 | 송종열
WIDE Architecture Report 49
와이드AR no.49 | Wide AR no.49
와이드 REPORT 1
한국건축예찬-땅의 깨달음
고충환 | REPORT 1
2015.11.19~ 2016.2.6, 삼성미술관 리움
50
김도균, 도산서원 전경
주명덕, 해인사가람풍경
고충환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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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처음으로 건축을 테마로 한 전시가 열렸다. 삼성문화재단 50주년 기념전시를 겸하면서, 동시에 한국 전통건축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조망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전시 를 위해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한국 전통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 10곳을 선정했다고 한다. 해인사, 불국사, 통도사, 그리고 선암사와 같은 사찰, 조선왕조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면서 유교의 가부장적 가치체계를 구현하고 있는 종묘, 창덕궁과 같은 궁궐, 수원화성과 같은 성곽, 조선 성리학의 유교적 이념을 구현하고 있는 도산서원, 한국형 정원의 전형으로 알려진 소쇄원, 그리고 전통적인 생활양 식과 건축양식이 비교적 잘 보존된 양동마을이 그곳이다. 선정된 장소를 보면 각각 불교로 대변되는 정신적인 관념, 유교로 대변되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관념, 궁궐과 성곽과 서원으로 대변되는 정치적인 관념, 정원으로 대변되는 자연적인 관념, 그리고 사대부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생활양식이 주요 키워드로 고려되었음을 알겠다. 다르게는 존재론적 인 문제(불교), 삶의 실천의 문제(유교), 권력의 문제(정치), 그리고 자연관(정원)과 생활사(사대 부)로 봐도 되겠다. 결국 이런 전통적인 가치관이 건축양식에 그대로 스며 있다고 전제하고, 이와 는 거꾸로 건축양식을 통해 이런 전통적인 가치관이 배어 나오게 하는 것에, 그럼으로써 어느 정도 는 그 자체가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일종의 문화적 자질 내지 유전자로 계승되고 있음을 주지시키 고 재확인시켜주는 것에 이번 전시의 목적이 있다. 결국 관건은 건축양식에 이런 전통적인 가치관이 실제로 어떻게 반영되고 구현되고 있느냐는 것 이고, 전시를 통해 이런 전통적인 가치관을 어떻게 재현하느냐는 것이다. 문제는 전통적인 가치관 자체는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인 것이란 점이다. 그래서 천지인이라는 상징체계가 필요했을 것이 다. 실재로도 전체전시를 이런 천지인이라는 상징체계에 맞춰 세 개의 카테고리로 나눴다. 그 세부 를 보면, 먼저 하늘(천)의 상징적 의미를 침묵과 장엄의 세계로 형용하고, 이를 종교적이고 정신적 인 세계관에 결부시켰다. 그리고 여기에 불교사찰과 궁궐건축 그리고 왕실의 사당인 종묘를 포함 념과 터의 경영에 결부시켰다. 그리고 여기에 궁궐건축과 성곽 그리고 관아건축을 포함시켰다. 그 리고 마지막으로 사람 사는 세상(인)과 관련해서 서원과 정원과 민가를 하나로 엮어 삶과 어울림 의 공간이 드러나게 했다. 그리고 여기에 도산서원과 소쇄원, 그리고 양동마을을 중심으로 사대부 와 서민의 삶과 공동체가 어우러진 한국 전통건축의 의미를 되새겨본다는 의도를 담았다. 각각 장 엄(혹은 형이상학)과 권력(혹은 정치)과 관계(혹은 매개) 문제로 환원되고 압축되는 경우로 볼 수
고충환 | REPORT 1
했다. 다음으로 땅(지)의 상징적 의미를 터의 경영과 질서의 세계로 형용하고, 지배 권력의 통치이
있겠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으로 치자면, 땅의 상징적 의미로 하여금 터의 경영과 질서의 세계를 형용하 게 했다는 점이다. 그 자체는 유교의 통치이념과 윤리관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터의 의미가 예사롭지가 않다. 여기서 터는 바탕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바탕은 존재의 바탕을 의미하는 생명으 로 소급되고, 동시에 인간의 바탕을 의미하는 도덕으로 확장된다. 그 자체가 생태학과 윤리학, 자연 과 인간학(혹은 인문학)을 아우르면서 넘나드는 것인데, 보통 집을 지을 때 먼저 터를 닦는다거나 터를 다진다는 표현의 이면에는 이런 실천논리가 상징적인 의미로 작동하고 있다. 하이데거는 언 어가 존재의 집이라고 했는데, 터에 대한 이런 전통적인 의미부여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지 않을 까 싶다. 전통건축에는 이처럼 본에 대한, 바탕에 대한, 근본에 대한 삶의 사유며 지혜가 깃들어 있 다. 전시주제에서조차 하늘과 사람을 제쳐놓고 굳이 땅의 상징적 의미를 강조한 것(땅의 깨달음) 과도 무관하지가 않을 것이다. 전시주최 측은 전통건축이 갖는 이런 상징적 의미를 주명덕(해인사와 양동마을), 배병우(선암사와 종묘), 구본창(통도사와 소쇄원), 김재경(수원화성), 서헌강(불국사), 김도균(도산서원) 6인의 사 진작가로 하여금 사진으로 기록하고 재해석하게 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11권의 사진집으로 출간 했다. 이번 전시의 주제가 건축(전통건축)이라고 한다면, 실제로 전시를 구현하는 미디어는 사진 인 셈이다. 그만큼 사진은 이번 전시에서 메인에 해당하는 주요 형식이고 매체다. 메인에 해당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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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궐도(전체)
(?) 단순한 사진전시가 아니라 전통건축을 찍은 사진으로 처음부터 기획된 전시며, 그런 만큼 다른 부수적인 형식장치들이 사진과 더불어서 하나로 어우러진다. 고충환 | REPORT 1
단순한 아카이브 전시가 아닌 만큼 사진작가들로 하여금 미학적 개입을 허용하고 열어 놓았을 것 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미학적 개입이 적극적으로 확인되지는 않는데, 처음부터 특정 건축물을 재 현하도록 한정 기획된 전시였고, 여기에 전통건축물 자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인덱스(사진의 자기 지시적 기호, 롤랑 바르트 식으론 문화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이미 결정화된 기호를 의미하는 스투디움)가 강해서 미학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아카이브 전시라면 모르나, 현대미술로는 좀 역부족인 면이 없지 않았나 싶다. 이를테면 부드러운 벨벳 같은 질감(배 병우), 마치 그 실체가 손에 잡힐 듯 두드러져 보이는 사물대상의 물성(주명덕), 건물 내부에서 외 부를 찍는, 그래서 원근감과 함께 흡사 무대를 보는 것 같은 시점설정(구본창), 그리고 땅의 시점에 맞춘 수평적인 사진과 같은 미학적 개입과 연출이 발견되지만, 이를 통해서 결국에는 한국 전통건 축의 아우라를 캐내고 재발견하는 정도에 머문다. 그래서 보기에 따라선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미 를 찾아서’와 같은 테마전시에나 어울릴 것 같은 전시가 되었다. 사진의 내용이며 수준보다 전시자 체의 개념과 관련된 문제이지 싶다. 이번 전시는 주제가 전통건축이고, 이를 구현하는 메인 형식이 사진이라고 했다. 전시주제가 건축 인 만큼 사진 이외에 이런저런 부수적인 형식장치들이 전시를 위해 도입되는데, 그중 두드러져 보 이는 것이 전통건축을 소재로 한 각종 고미술품이다. 이를테면 국보 제249호 동궐도, 경기감영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제작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동국대지도, 한성도, 김홍도의 규장각도, 그리고 이번 전시를 통해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한필교의 건축도 모음집인 숙천제아도 등이다. 이 가운데 특히 동궐도가 흥미로운데, 창덕궁과 창경궁을 조감도식으로 그린 그림으로서, 전통적 인 가옥이 목조인 탓에 혹 화재로 소실되더라도 원형 그대로 재건할 수 있게 했다. 요새 식으로 치 자면 건축 설계도면으로 보면 되겠다. 부감법으로 그린, 그래서 흡사 미궁 혹은 미로와도 같은 그 림이 권력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표상하는 것 같다. 권력의 표상성은 두 가지가 키워드인데, 하나 가 위계질서고, 다른 하나가 은폐다. 누가 권력의 주체인지 알리기 위해 권력의 주체는 자신을 중 심에다 설정하고, 그 중심을 중심으로 다른 주체들을 주변에다 배열하는 공간적 방식을 취한다.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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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천제아도_종묘서
고충환 | REPORT 1
규장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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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우, 장엄한 고요 경복궁과 육조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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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받은 공간에 따라 계급이 결정되는 공간의 위상학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권력은 어떻 게 행사되는지 모르게 행사돼야 한다. 말하자면 미로 같은 궁의 이면에는 자기를 숨기면서 드러내 는 권력이, 이중적이고 양가적인 권력이 작동하고 있다. 그렇게 동궐도는 중심성이 강한 구도(권력 의 주체를 상징하는)와 함께 복잡한 세부(권력의 은폐를 상징하는)를 포함하고 있는 단순명료한 구조(통치기술과 질서의식을 상징하는)를 가지고 있고, 이는 그대로 권력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권력의 메커니즘을 표상한다. 미셀 푸코는 정신이나 관념, 가치관과 실천논리와 같은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인 개념을 공간화 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중 중요한 것이 헤테로토피아 개념이다. 실제로 존재하지만 사 람들의 의식 속에서 지워졌거나, 일반적인 공간개념과는 사뭇 다른 의미기능을 담지 하는 공간개 념이다. 궁으로 대리되는 권력의 실체는 실제로 존재하지만, 정작 그 작동방식은 눈에 보이지가 않 는다. 그래서 동궐도로 표상되는 권력의 공간화에 대해서 권력의 헤테로토피아라고 부를 수도 있 을 것이다. 삼성미술관은 산하에 현대미술과 전통미술, 미술관과 박물관을 아우르고 있다. 그래서 현대미술 전시를 위해 고미술품을 도입할 수 있었고, 현대미술과 전통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하나로 아 우를 수가 있었다. 사실상 이런 경계 넘나들기 유형의 전시를 순수한 자력만으로 성사시킬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미술관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볼 수가 있겠다. 그 자체 삼성미술관의 장점이며 특징으로 보아 넘길 수도 있겠지만, 그 경우는 최근 현대미술의 전시행태와도 부합하는 면이 있어 서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이를테면 박물관 속 미술관 혹은 미술관 속 박물관의 개념을 매개로 전 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리고 그렇게 박물관을 현대미술의 한 부분으로 끌어들이는 전시 행태가 세계적인 추세랄 수 있고, 이로써 전통과 현대미술 공히 풍부한 자산을 가지고 있는 삼성미 술관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박물관 입장에서는 현대미술과의 교류를 통해 박물관을 활성화할 서, 그리고 그렇게 현대미술을 위한 또 다른 콘텐츠 개발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한 경우라 고 보인다. 모르긴 해도 오래된 미래, 이를테면 미래는 진즉에 태동되고 있었다고 보는 관념은 이 럴 때를 위해 예비된 경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1990년대 고증을 거쳐 제작한 경복궁과 육조거리 모형, 부석사 무량수전의 실물크기 모형, 양동마을 무첨당의 구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목조건축의 실물크기 모형의 유첨당(김봉렬)과
고충환 | REPORT 1
수 있고, 주제의식의 빈곤으로 허덕이는 현대미술의 입장에선 전통적인 문화를 재생산한다는 점에
같은 각종 전통건축모형이 전시를 뒷받침하면서 공간감과 현실감을 더했다. 그리고 여기에 각종 디지털 기술을 적용해 전시에 대한 이해를 돕고 전시 자체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를테면 우동선의 디지털아카이브 ‘근대를 기억한다’, 박종우의 ‘장엄한 고요’는 석굴암의 축조과정을 3D로 재현한 영상과 더불어, 전통목조건축의 배치를 영상으로 조작할 수 있게 했다. 특히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박종우가 제작한 3채널 영상작업 장엄한 고요는 종묘를 소재로 한 것으로서, 각각 종묘건축과 종 묘제례가 하나로 어우러지게 했다. 3면이 영상으로 둘러쳐진 방안에 들어서면 종묘로 대변되는 장 엄한 고요(아마도 종묘에 대한, 그리고 전통건축에 대한 감독의 작가적 해석을 함축하고 있을) 속 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실감을 자아낸다. 지금은 실감을 주지만(아마도 그 자체가 목적일 수도 있 을 것. 살이 떨리고 피가 동하는 공감으로 치자면 오히려 더 효과적일 수도 있을 것), 아마도 머잖 아 실제 현실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증강현실도 전시공학의 한 부분으로 서 도입되고 실현될 것이다. 정리를 하자면, 이번 전시는 사찰과 궁궐, 가람배치와 정원, 건축모형과 건축유물, 미술관과 박물 관, 현대미술과 고미술, 전통과 현대, 사진과 건축, 아날로그와 디지털, 불교와 유교와 같은, 때로는 형식적으로, 그리고 더러는 주제 내지 소재 면에서 상호간 이질적인 지점들을 하나로 아우르면서 넘나드는 융복합이나 융합형 전시를 표방한다. 그리고 표방처럼 표방이 현실화되는 현장이며 현실 을 눈으로도 확인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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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사실
그러나 전시를 둘러보는 내내 어떤 불편함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는데, 완벽한 것이 문제였다. 아 주 잘 포장된, 기술적으로도 완벽하게 구현된 무슨 전통건축박람회장을 관람하는 것 같았다. 그리 고 매끄러운 이해로 인도하는 첨단의 기술마저도 디지털 기술의 실험실이며 전시장을 방불케 했 다. 분명 감각을 파고드는 아우라가 있었지만, 전시라는 상품을 위한 아우라였지, 예술에서 유래한 아우라는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 이 전시가 아카이브라면 모를까, 현대미술 전시라는 생각이 들지 는 않았다. 심지어는 유일한 현대미술일 서도호의 천 작업마저 또 다른 건축모형(좀 더 감각적인) 으로 보였다. 전통을 현대적인 버전으로 재해석하고 재생산했다기보다는, 다만 재확인시켜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렇게 전통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시는 계몽주의에 머물러 있어 보 이고, 모더니즘의 연장처럼 보인다. 현대미술이 되기 위해선 낯설게 하기가 있어야 하고, 탈맥락과 재맥락의 실천이 있어야 한다. 전제 된 답안을 제시하고 친절하게 답안으로 인도하는 전시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길을 잃게 만드는 전시가 되어야 한다. 혹, 이 전시가 아카이브 전시를 표방한 것이라면 내용적으로 충실한, 전시 공 학적으로도 훌륭한, 그리고 꽤나 감각적인 전시였다고 생각한다. 본문 사진 제공 | 삼성미술관 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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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REPORT 2
젊은 건축가들의 집단 항거 소규모 건축물의 설계와 감리 분리 수정 법안, 문제 많다!
<건축법 제25조 수정안 소규모 건축물의 설계, 감리 분리 법안 반대 성명서>
1. 건축법 제25조 수정을 통해 허가권자가
수정안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의
권리는 이익구조가 우선이 아니다. 권리는
감리를 지정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는
증대를 야기하고, 신진건축사들의 기회를
상호간의 존중이며, 또 다른 자의적
건축주의 감리자 선택권을 제한하는
박탈하고 우수한 건축물의 생산을
책임의 무게이다.(김용관, 도큐멘텀
위헌적 개정이다.
가로막은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발행인)
2. 이 개정안은 이미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것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건축사의 모습을 더 이상
담합으로 판정하여, 9개
5. 건축법 제25조 개정안에 반대하며 본
볼 수 없는 나라에서 어떤 건축문화를
지방건축사회(건축감리회)에 대해
성명서를 발표하며 서명운동을 진행한다.
기대할 수 있는지 되묻습니다.(황두진,
12억 2천여 원을 추징한 사건을 다시
반대성명에 동참하는 건축인들은 경력의
황두진건축사사무소 소장)
합법화하기 위한 개정에 지나지 않는다.
고하와 상관없이 대한민국의 건축을
“설계한 건축사는 집짓는 공사현장에
3. 국토부는 민간단체들이 합의를 이루지
대표하는 건축사들과 교수, 학생, 언론인,
오지마라. 공무원이 지정한 사람이
못하였을 뿐 아니라 지방 건축사회가
건축주 등 건축문화에 관심이 있는 모든
감리를 해야 준공 해준다. 단, 그 돈은
공정위 직원을 매수하여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이며, 개정안이 완전 철회될 때까지
집주인이 내라” 납득이 됩니까?(우대성,
사건과 관련이 있는 본 수정안을
모든 노력을 동원할 것이다.
오퍼스건축사사무소 소장)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통과시킨 바,
6. 이러한 우리의 서명과 운동은 단순한
즉시 폐기하고 전반적인 논의를 다시
당사자의 권익보호를 위함이 아니라
시작하여야 한다.
우리사회의 건축문화를 바로잡기 위한
4. 이런 개정안을 입안한 국토부는
노력이다.
공을채 | REPORT 2
<건축가들의 외침>
건축업무의 주무부서로서 자질과 지식이 부족할 뿐 아니라, 무효한 법률의
10년 싸움, 도루아미타불 국토부가 추진 중인 건축법 제25조 개정안 내용 중 소규모 설계 감리 분리에 대해 반대 성명서를 발 표하기 위해 12월 21일 이례적인 젊은 건축인들의 대응모임이 이루어졌다. 국토부가 발표한 건축법 제25조의 개정 내용은 소규모 건축물(연면적 2,000m2이하) 및 분양을 목적으로 하는 건축물의 경 우에는 허가권자가 공사 감리자를 지정한다는 것이다. 이전에 의원 발의되어 계류 중이던 건축법 제 25조의 개정이 국토부에 의해 재차 발의되었다. 이는 현재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 법제사법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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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넘어간 상태에서 건축인들의 반대에 부딪혀 법사위 소위원회인 제2법사위로 내려온 상태이다. 건축법 제25조 개정안 반대와 제2법사위 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건축인들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모 여들었고, 서명운동은 3일도 채 안되어 1,500여 명을 훌쩍 넘었다. 설계·감리 분리 법안의 단초 지난 2012년, 김태흠 국회의원이 건축법 제25조 개정안을 발의, 국토소위에서 논의가 이어졌다. 한 국건축가협회와 국가건축정책위원회 등 일부 건축기관의 지속적인 반대로 국토소위에서는 관련된 건축 민간단체들끼리 이 사항에 대해 합의하길 권고했으나 협회 간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계류 중이었다.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 판교 환풍구 붕괴사건 등을 겪으며 국토부는 건물의 구조 안전 에 대한 법률 개정을 제안했고, 여기에 건축법 제25조에 대한 개정안도 포함했다. 국토부의 취지는 건축감리자를 허가권자가 지정함으로써 감리 대가의 적정 지급을 확보하고, 소규모 건축물(건축주 에 예속되어 감리가 실질적으로 어려움)과 분양건축물(준공 후 분양도면 불법으로 증개축)을 대상 으로 원설계자를 배제한 별도의 감리자를 허가권자가 선임하여 부실공사와 불법을 방지한다는 것 이다. 이 같은 취지에 대해 반대하는 측은 “먼저 설계 감리의 분리로는 부실의 은폐를 막을 수 없고 불법 건축물을 막을 수 없다. 부실공사는 충실한 설계도서의 작성 및 감리업무 강화규정 등으로 현 제도 를 활용하여 막을 수 있으며, 건축물에서 문제가 되는 불법은 거의 100% 준공 이후에 생기는 것이 다. 또한 허가권자가 감리자를 지정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력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어려 운 측면이 있어 대한건축사협회 등 민간 이익단체에 업무를 위탁할 가능성이 높다. 건축주가 자유롭 게 설계자를 선정하듯, 감리자를 선택하는 것은 계약 자유의 원칙상 당연한 것이다. 또한 설계와 감 리의 분리에 따라 건축주의 비용 부담이 증가되며, 자질과 수주능력이 부족한 건축사에게 일거리를 공을채 | REPORT 2
제공하는 방식이다”라며 반박했다. 국토부發, 개악의 끝 지난 12월 21일 건축인들의 건축법 제25조 개악 반대 대응운동에 대해 국토부는 “이번 개정규정의 적용 대상은 감리가 취약할 수 있는 ‘소규모 건축물’과 ‘분양하는 건축물’에 대하여 한정한 것으로 대부분 건축물의 감리는 변경이 없다. 소규모 건축물은 건설업 면허 없이 건축주가 직접 시공하는 것으로 공사를 감독하는 감리자를 건축주(=시공자)가 선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개선을 추진 중인 것이다. 분양하는 건축물은 향후 입주하는 수분양자가 중요하므로 공급자인 건축주가 감리자를 지 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보는 것으로, 주택법에 의한 사업계획승인 대상 아파트는 이미 허가 권자가 감리자를 지정하고 있다. 소규모 건축물과 분양하는 건축물의 구체적인 범위는 검토 중이며, 허가권자가 감리자를 지정할 때 원설계자도 지정할 수 있는 방안으로 세부시행규정이 마련될 것이 다. 이번 사안에 대하여 건축설계 단체 간 이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건축사법에 의한 법정 대표단 체인 건축사협회는 찬성하고 있으며, 2012년부터 법 개정을 지속적으로 요구 중에 있다. 감리제도 는 건축물의 안전을 위한 것으로 건축전문가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건축물을 실제 사용하는 국민들 의 안전이 우선되어 고려되어야 한다“라고 발표했다. 이번 취재를 통해 협회의 공식적인 입장을 듣기에는 곤란한 부분이 있었다. 협회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30일 발행된 《건축과사회》(새건축사협의회 발행)에서 윤혁경 대한건 축사협회 부회장이 작성한 내용을 토대로 건축사협회 내부 고위직의 입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그는 설계·감리 구분을 하려는 이유는 “외형적인 이유(명분)와 속내가 조금은 다를 수 있지만, 근 본적인 이유는 소위 집장사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본다. 소수의 건축주를 제외하고 대 부분 그 지역에 기반을 둔 집장사에게 공사를 의뢰하면서 설계자와 공사감리자 선정까지 일괄 도급 을 맡기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 구조에선 건축사는 당연히 집장사인 갑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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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종속관계에서 제대로 된 공사감리는 불가능하다”라고 분리 찬성의 입장을 표명하였다. 글의 말 미에서 “현재의 공사감리에 대한 정의, 설계의도 구현 또는 사후 설계관리에 대한 정의를 보다 명확 하게 규정지을 필요가 있다. 모호한 규정 때문에 각각의 자의적인 해석으로 인해 건축계가 분열되 고, 헛된 논쟁만을 일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젊은 건축가, 스타의 꿈을 접으시오! 1983년 소규모 건축물 설계·감리 분리 제도는 부실시공 방지 명목으로 약 10년간 한시적으로 시 행됐다. 소규모 건축물에서 설계자는 건축주가 선정하고 공사 감리자는 관할 구청이 감리 건축사들 가운데 등록순서대로 지정하는 제도였다. 그러나 부실 시공시 설계자와 감리자 간 책임 소재가 불 명확하고 부실시공 방지의 실효성도 떨어진다는 이유로 1994년 1월부로 폐지되었다. 상식적으로도 폐지되었던 법이 재론되는 것은 그 저의를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이미 시행하고 있는 공공건축의 설계·감리 분리법이 잘 이루 어지고 있는지, 원설계자의 건축의도에 맞게 건축물이 지어지고 있는지, 지어진 건축물의 문제는 없 는지, 불법의 원천은 어느 시점에 집중되어 있는지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아닐 수 없다. 과연 국 토부가 제시하고 있듯 국민의 안전과 불법을 막기 위한 방도가 건축법 제25조 개정만으로 가능한 것인지,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소규모 건축물의 설계와 감리를 통해 질적으로 담보된 건 축물로 국내외 건축판에 화려하게 진입하려드는 젊은 건축가들의 기회를 원천봉쇄하는 개악은 아 닌지 국토부는 신중한 접근을 해야 할 것이다.
공을채 | REPORT 2
글, 사진 | 공을채(본지 외래 기자)
건축법 25조 반대 건축인 공동대응 모임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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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REPORT 3
용적률 게임The FAR Game
정귀원 | REPORT 3
제15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예술감독에게 듣다
오는 5월 28일부터 11월 27일까지 열리는 2016년 제15회
예술감독 겸 큐레이터인 나를 포함, 신은기, 안기현, 김승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한국관 예술감독으로 서울시립
범, 정이삭(이상 어소시에이트 큐레이터), 정다은(어시스
대 건축학부 김성홍 교수가 선정됐다.
턴트 큐레이터 겸 사무국장) 등 6명이 주도적으로 움직인
지난해 7월 18일 베니스 비엔날레 재단은 알레한드로 아라
다. 이밖에 외부 자문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베나Alejandro Aravena를
주제가 ‘용적률 게임The FAR Game’이다. 소개해 달라.
이번 건축전의 총감독으로 선임하고,
그가 제시한 주제 ‘Reporting from the Front(전선에서 알
알레한드로 아라베나 총감독이 제시한 전체 주제, ‘전선에
리다)’에 따라 각 국가관에 전시 준비를 요청한 바 있다. 이
서 알리다Reporting from the Front’를 “한국건축의 전선은 무엇이
에 한국예술문화위원회는 베니스 비엔날레 커미셔너 선정
며 어디인가?”라고 되묻고 설정한 주제이다. 용적률은 지
위원회를 구성하고 베니스 비엔날레 재단의 변경된 국가관
난 50년간 대한민국의 건설과 건축의 숨은 동력이었으며,
운영 규정을 감안, 기존의 커미셔너 대신 전시를 전담하여
지금도 대다수의 건축가가 부딪치고 있으며, 앞으로 넘어
총괄할 예술감독을 공모를 통해 선발했다.(그동안 한국관
가야 할 전선이다. 용적률 게임은 도시 안의 공간적 불균형
의 운영 주체였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커미셔너로 참여
과 같은 거시적 현상에서부터 건축물의 표피와 깊이와 같
하게 된다)
은 미시적 현상에 이르기까지 다른 스케일에서 다양한 양
선정 기준은 계획안 서류 심사, 인터뷰 심사, 전시 계획안
상으로 나타나며, 우리 모두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프리젠테이션 그리고 전시 역량 등이 고려된 것으로 알려
한국관은 용적률 게임에 편승, 순응하는 사례부터, 창의적
졌다. 김성홍 교수는 2004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
동력으로 삼은 건축, 주목 받지 못하는 우리 주변의 소소한
한국관 부커미셔너, 2005년 한독 퍼블릭스페이스 포럼 기
실험과 실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형도를 분석적, 비평
획, 2007~2010년 메가시티 네트워크: 한국현대건축전 총
적, 창의적으로 보여주고, 이것이 시민의 삶에 어떤 기여를
괄 기획(프랑크푸르트, 베를린, 탈린, 바르셀로나, 과천 국
하고 있는지, 그 사회 문화적 함의를 이야기할 것이다. 따
립현대미술관) 등을 이력에 포함하고 있다. 예술감독으로
라서 이번 한국관 전시는 개별 건축가 혹은 작가의 작품을
선정된 김 교수는 짧은 시간 안에 한국관의 전시 및 관련
모은 전시가 아니라 큐레이팅 팀이 주제에 따라 재해석, 재
부대행사를 기획·진행하고, 국내외 예술계 인사들과 네트
구성한 결과물이 될 것이다.주1
워크를 형성하며, 국내외 전시 후원을 진행해야 한다. 이에
주제에 긍정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다.
본지는 그와의 일문일답을 통해 ‘김성홍호’의 순항을 중간
지금도 고민 중이긴 하지만, 부제가 ‘Constraints Sparking
점검해 본다.
Creativity, 제한이 창의성을 촉발한다’이다. 전시 내용은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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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중 전시물 대부분을 제작하고, 3월초에 1차 결과물
30개 정도의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에게 메일을 보냈다. 내
을 선박으로 부쳐야 하는 매우 짧은 일정이다. 많이 바쁘
용은 주제 해제를 통해 해당 작가의 작품을 전시 컨텐츠로
겠다.
사용하고 싶다는 것과, 도면과 사진 등 관련 자료 제공을
한국관의 주제가 정해졌고, 팀도 구성됐다. 큐레이팅 팀원
요청코자 한다는 것, 전시 콘텐츠 사용 동의를 구하고 싶다
들이 주제를 공유하고 과정을 즐기면서 준비하고 있다. 큰
는 것 등이다. 이후 작가가 승낙을 하면 세 문항의 질문서
어려움은 없다.
를 보낸다. 작품에 우리의 주제가 어떻게 녹아들어가 있는
조직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지, 즉 법과 제도, 대지, 건축물의 삼각관계가 어떻게 작동
WIDE REP0RT
했는지, 설계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용적률이 디자인에 어
사실 용적률 게임이란 주제 자체가 자칫하면 숫자로 채워
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업의 결과물이
진 굉장히 재미없는 전시가 될 수도 있다. 감흥을 주고 느
사회 문화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묻는 설문지다. 이
낌 있는 전시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를 바탕으로 작품을 분석, 해석, 편집하여 전시 내용이 재
총감독인 아라베나가 제시한 주제와는 어떻게 엮여지나.
구성될 예정이다.
아라베나가 던진 것은 이런 거다. 건축의 전선에서 건축가
내용만을 받는 것인가.
들이 전쟁을 하고 있는데, 그 전선을 확대하려면 (그래야
그렇다. 대신 작가의 약력과 작품은 2016년 한국관 전시장
힘이 생기므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리고 전선이 가진 굉
과 카탈로그(단행본)에 수록되고, ‘컨트리뷰터Contributors’로
장히 힘든 조건 속에서 불평하지 않고 디자인을 통해 변화
명기될 것이다.
를 이끌어내는, 그래서 우리 삶에 약간의 변화를 주고 있는
작품 선정 기준은 뭔가.
것은 무엇이냐, 그것이 알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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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말이 우리는 사회학자도 정치인도 아니고 디자이너다,
면적은 연면적 600m 에서 1,000m 정도로 중소규모 건물
따라서 우리는 오로지 디자인을 통해서 변화를 도모할 수
이다. 이미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을 통해 종종 언급된 아
있다, 디자인이 도구가 되어 이룰 수 있는 사회의 작은 변
파트는 포함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나의 관심 사항
화는 무엇이냐, 그런 전선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들려달라
인 격자형 도시 구조 속 2종 일반주거지역의 단독주택을
는 것이다. 금방 떠오르는 것이 아마도 해비타트나 도시 게
제외한 복합용도건물을 주로 골랐다.
릴라 운동 같은 것이고, 그게 정답일 수 있다. 실제로 지난
왜 2010년인가.
12월 베니스에서 열린 총감독과의 국가관 회의에서 많은
2010년 경계로 이전과 이후의 건축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라들이 레퓨지refuge와 관련된 것을 들고 나왔다. 그런데,
2000년 이후 많은 젊은 건축가들이 등장했고, 철저하게 경
나는 그게 대한민국의 전선일까, 의문을 갖고 있다. 물론
제적인 메커니즘으로 접근되는 시장에 뛰어들었다. 시장,
누군가의 전선일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에게 해당하는 전
곧 건축의 전선이 그들에게 요구한 것은 주어진 공사비로
선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2010년대 대한민국의 건축가
법적 용적률 200% 중 199.9%를 찾는 것, 그러면서도 건축
들, 특히 홀로서기 하는 젊은 건축가들이 부딪히는 전선이
주가 원하는 것을 거의 맞춰야 하는 것, 바로 용적률 게임
과연 집짓기일까? 나는 그보다 생존게임이 아닐까 생각한
이다.
다. 일단 생존게임을 통해서 만들어내야 하니까. 용적률 게
다른 나라에도 용적률 게임은 존재한다.
임을 선택한 이유이다.
차별성, 그것은 용적률 게임이 한국에서 어떤 사회문화적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은 올림픽이 아니다. 국가관마다 나
함의를 갖고 있는가의 문제이고, 인문학자의 혜안이나 부
름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장이 되는 게 더 중요할 것 같다.
동산 개발업자의 아이디어가 좀 필요한 부분이다. 사실 용
지난번에 이미 상도 받았으니,(웃음) 전체 주제 아래서 우리
적률 게임은 단순히 건축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5년 한국
가 생각하는 것을 강하게 얘기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밑바닥의 단면 하나를 자르는 것이라 생각한다.
용적률 게임은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전선이
그 밖의 콘텐츠는?
다. 많은 이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으면서 준비해 가겠지만,
용적률에 얽힌 여러 가지 실증적인 데이터를 조사하고 있
책임은 결국 내가 지는 것이다. 이 주제에 더 견고한 확신
다. 서울의 약 64만 동의 건물 중 30만 동 건물의 용적률,
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할 것이다. 물론 주제를 얼마
건폐율을 조사하고 있다. 그래서 서울의 평균 용적률이 얼
나 명쾌하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아라베나는
마인지,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연대별 용적률은 얼
‘explicit’라는 표현을 여러 번 썼다.)
마였는지 분석하려고 한다. 그것은 일종의 백 그라운드
예술감독의 색깔이 분명한 한국관의 전시를 기대하겠다.
정귀원 | REPORT 3
우리가 뽑은 건물은 2010년 이후 지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background가 될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전시로 보여주느냐가 중요하겠다. 용적률이란 게 건축과 도시에서 어떤 문제인가를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이터이다. 이것을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 큐레이팅 팀이 브레인스토밍하 고 있다. 전시장에 2분밖에 머물지 않는 관객을 위해 공간 을 잘 활용한 전시, 공간을 장악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구 상 중이다.
주1. 용적률 게임의 설명은 청탁 메일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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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AR no.49 | Wide AR no.49
와이드 REPORT 4
젊은 건축가들의 ‘옆집’바라기 ‘옆집탐구 2’, 2015.11.24~12.5, 갤러리 정미소
젊은 건축가 8팀의 건축적 생 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획전시 ‘옆집탐구 2’가 열렸다. 지난 해 11월 24일부터 12월 5일까 지 갤러리 정미소에서 한국건 축가협회 젊은건축가위원회 가 기획 주관하는 프로젝트로 써 진행됐다. 이기옥, 신창훈, 서승모 3인이 공동기획하고 전 회의 참여 건축가 김윤수, 박현 공을채 | REPORT 4
진, 신현보, 한정훈 4인이 코디 네이터로 가세했다. 자신의 건축 색깔을 찾기 위해 연구하고 분주히 움직이며 때론 헤매고 있는 젊 은 건축가들의 관심은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서로 관계하기 위한 기획전이다. ‘옆집탐구 2’의 의미는 다소 중의적 의미를 내포한다. 하나는 젊은 건축가들이 접근하기 쉬운 주택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와 집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더 넓은 의미로는 각 팀의 작업 공간, 철 학, 좋아하는 언어와 방식의 차이를 탐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각 팀은 건축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 지고, 실험적 프로젝트와 실존적 해석, 이상과 건축현장, 설치미술과 건축, 사진과 도시 등 다양한 색깔을 드러낸다.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내세우는 것이 아닌 젊은 건축가들의 다양한 관점들을 자 유롭게 병치시켜 서로 간의 다중적 현상을 제시하고 있다. 8팀의 건축가, 팀 작업의 색깔 이번 전시에 참여한 8팀의 건축가(팀)은 archihood WXY(강우현, 강영진), Studio Origin(김영아, 이강준), 사진작가 노경, MINIMAX ARCHITECTS(민서홍), 박천강×조남일 크로스 프로젝트 (박천강, 조남일), aoa architects(서재원, 이의행), 아틀리에 서연(조서연), 황 건축스튜디오(황선 우, 황선기)이다. 이들은 ‘집’이라는 주제에 집중하여 각자의 생각이나 작업을 보여주었다. <archihood WXY>는 ‘젊은 건축가의 작은 건축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의 젊은 건축가들이 접할 수 있는 작은 규모와 저예산의 프로젝트를 보여주었다. 이들은 기존의 건축가들에게 소외되었던 프로 젝트에 젊은 건축가만의 작은 아이디어를 더해 삶의 온기를 불어넣고자 했다. 작고 사소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조금만 신경 쓴다면 마을 혹은 도시, 사회가 조금씩 변하지 않을까 하는 건축가의 바 람을 두 주택 프로젝트를 통해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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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0RT
<Studio Origin>은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시대에 건축가로서 할 수 있 는 일은 무엇일까를 고민한 흔적들을 선보였다. 늘 당연하게 여겨왔던 개념에 대한 도전을 통해 건 축을 이루는 요소들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건축 언어로 제안했다. 종이에 무수히 그려지던 도면은 파라메트릭 디자인, 빌딩 인포메이션 모델링이란 형태로까지 변신했고, 하나의 이름 아래 방향성 있게 흐르던 건축 이념과 시대는 사방으로 자유롭게 흩어져 진화를 보여준다. <사진작가 노경>은 빠르게 변 화하는 도시에서 살고 있는 집 에 대한 의문을 사진을 통해 던졌다. 사진가로서 집을 피사 체로 바라보고, 기록을 통해 없 어지는 인천 논현동 재개발 단 지에서 남겨진 것과 거주의 환 경이 주어진 의미를 다시금 생 각하게 했다. 주거 공간에 사회 적 가치를 매기고 재개발 지역 이나 달동네와 같은 주택 밀집 지역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삶 의 흔적과 기억을 찾고자 했다. <MINIMAX ARCHITECTS> 축주의 생각에 해법을 찾아주는 것으로 직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가가 집에 대한 생각을 제시 하기 보다는 어떻게 작업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신의 방법론을 전시했다. 3년 동안 했던 작업들에 대해 설명하기 보다는 상태 그대로를 실제 주택의 70%로 줄인 부스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박천강×조남일 크로스 프로젝트>는 이화동 다세대 원룸 프로젝트를 통해 소유에 의한 안전성 대
공을채 | REPORT 4
는 건축가에게 있어서 집은 건
신 심리적 안전성을 제안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소유의 개념이 없는 원룸에 특색을 불어넣어 ‘내 집’이라고 인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창문이라는 건축적 요소를 사용했다. 창문은 다른 세계로 연결 될 수 있는 포털로써 하나의 벽에 무수히 많은 창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포털로 들어갈 수 있는 최 소한의 심리적 장치로 제공되었다. <aoa architects>는 유쾌하면서 력셔리한 색이라 생각되는 핑크색을 가지고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 면서 약간의 변화를 통해 나타나는 초현실적이며 기이한 감성들을 표현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집 은 건축주의 세세한 요구 사항과 일상생활에 필 요한 기능들이 잘 반영된 부분들의 단순 집합이 아니라 그것은 건축가의 ‘삶의 형식’, 방식에 대한 일종의 선언적 제안으로 설명했다. <아틀리에 서연>은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인 두 개 의 주택 프로젝트를 사진과 드로잉으로 보여주 었다. 지중해에 있는 전원주택과 인천청라지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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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AR no.49 | Wide AR no.49
개인주택이라는 상이한 대지가 건축에 어 떤 영향을 미치고 극단적인 차이를 드러내 는지, 또 공간에 있어서 어떤 공통점을 가 질 수 있는지 각 상황에서 가치를 이끌어 내는 방식을 도출했다. <황건축스튜디오>는 건축의 가장 직설적 인 의사소통의 요소인 드로잉을 통해 근작 들을 소개했다. 이들은 집이란 자신의 상
공을채 | REPORT 4
상력에 대한 현실이며 생각이 현실이 되는 인간의 가장 첫 번째 무대라고 설명한다. 이 시대의 젊은 건축가들의 특징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건축가라는 말이 건축계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분위기가 젊은 건축 가 입장에서는 좋은 것일 수도 있지만, 소규모 프로젝트 이외에 더 큰 프로젝트를 할 수 없다는 현 실과 마주해서는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런 젊은 건축가들의 몇 가지 특징들을 이번 전시를 통해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이들은 사무실을 공동으로 운영하거나 프로젝트를 통해 협업하는 작업 방식을 띠고 있다. 협 업의 분야는 건축뿐만 아니라 가구, 인테리어, 그래픽 디자이너, 조경가 등 다양했다. 이들은 협업 을 통해 경제적·심리적 부담감을 줄이고, 디자인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생각을 끌어낸다. 또 혼자 고민되는 부분을 같이 해결해 갈 수 있기 때문에 협업의 형태로 사무실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민서홍은 “직원은 한 명만 있지만, 1년에 8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협업을 통해 상당 부분 일의 부담을 덜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에 따라 계획설계 혹은 기본설계까지 만 진행하고 있다. 하청이나 외주 방식이 아닌 협업사무실과 처음부터 컨소시엄 협약을 맺기 때문 에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라며 협업의 장점을 설명했다. 그는 가구, 인테리어, 건축 등 다 양한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고, 실험적인 프로젝트들도 거뜬히 소화했다. 박 천강, 조남일의 경우도 각자 사무실을 운영하지만, 프로젝트에 따라 협업하고 있는 사무실의 한 예 시이다. 이들은 유연한 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형제 건축가인 황건축스 튜디오의 황선우는 “동생과 같이 일한다는 것은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 는 부분이 있고, 비슷한 취향이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무래도 혼자 사무실을 운영하는 경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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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0RT
는 의사결정에 있어 어려운 점이 많지만, 둘 혹은 셋이서 함께 하는 경우 의사결정과정에서 도움이 많이 된다.”며 협업의 장점에 대해 설명했다. 두 번째로 운영방식에 대한 시스템의 구축을 우선시하고 있었다. 시스템을 갖추고자 하는 것은 젊 은 건축가뿐 아니라 기성 건축가들도 마찬가지 문제이긴 하지만, 젊은 건축가들에게 보다 더 현실 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인터뷰에 응한 젊은 건축가 대부분은 직원을 두지 않고 혼자 혹은 둘이 서 운영을 하고 있었다. 직원을 둔다는 것은 인건비 등 고정비용의 증가로 젊은 건축가들이 당장 부담을 안게 되는 일이다 보니, 이들은 우선적으로 프로세스에 대한 시스템을 온전히 갖추고자 한 다. 프로젝트가 발생하여 외부의 협력이 필요할 경우에 어느 누가 개입해도 사무실로선 똑같은 성 과물을 낼 수 있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곧 시스템 구축의 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건축의 경계 확장이다. 일부 젊은 건축가들은 이미 건축의 경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 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인터뷰를 통해 만나본 건축가들은 대부분 건축의 경계가 없 다고 생각했다. 건축가의 역할과 경계에 대한 질문에 대해 그들은 “건축이 할 수 없는 일은 없으며, 다루는 매체가 다른 것뿐 건축가로서 할 수 있는 행위는 다양하다”며, “자신만의 틀을 만들고 그 안 에 안주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아쉬운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기대효과 그리고 미래 ‘옆집탐구’ 전시는 다른 건축단체에서 하는 일들보다 좀 더 현실적인 측면에서 젊은 건축가들을 응 원하고 있다. 기획자 신창훈은 “이 전시가 지향하는 바는 건축가들의 놀이터와 같은 걸 만드는 것 이다. 젊은 건축가들이 모여서 회의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커뮤니티 같은 느낌에서 전 가와 일반인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전시가 되었으면 했다. 건축가는 자신을 알릴 기회가 되고, 일반인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건축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리가 되었기를 희망했다. 상을 주는 방식 이 아니기 때문에, 자유롭게 의미들이 섞일 수 있다면 더 좋은 에너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것 이 효과를 보려면 이 전시는 지속하여야 마땅하다.”라며 전시의 연속성을 강조했다. 올해는 2014년 <시즌1>의 참여 작가들이 작가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부분에 있어
공을채 | REPORT 4
시까지 연계되는 상황이기를 의도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획자인 이기옥은 “이번 전시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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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AR no.49 | Wide AR no.49
코디네이터로 참여한 김윤수는 추천 방식의 작가선정에 있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작가에 대한 전체적인 방향성이나 그림이 없다 보니, 큐레이팅을 하는 부분에 있어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참여 작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었으며 역시나 전시의 지속성을 주문했다. 강영진은 “젊은 건축가를 이러한 형태로 지원해 주는 것은 좋은 것 같다. 하지만 올해는 홍보가 잘 되지 않았 던 것 같다. 그러한 부분은 조금 아쉽지만, 계속해서 전시가 이루어진다면, 젊은 건축가에게 촉매 제가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조남일은 “지금은 건축을 알릴 좋은 기회인 것 같다. 대중에게 노출 될 기회가 많아 대중이 원하는 건축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고, 전시를 통해 실험적인 건 축을 테스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전시를 일시적인 형태로 하는 것이 아닌, 지속적이며 건축가 스 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면 좋을 것 같다. 데이터 기반적인 주제를 가지고 깊 이 고민할 수 있는 플랫폼을 형성한다면 좋을 것 같다.”라며 지속 가능한 건축전시의 방향성에 대 해 설명했다. 젊은 건축가들에게 이목이 집중된 이 시기에 협회별로 각각의 방향성을 꾸준히 가지고 간다면, 조 금 더 탄탄한 건축계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일조할 것이 분명하다. 단순히 젊은 건축가를 발굴한다 는 의미에서 벗어나 실력 있고, 각자의 색을 가지고 있는 건축가를 발굴하여, 대중에게 노출시킬 수 있는 일은 건축 단체 등에서 잘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우려되는 바도 있다. 한 도시의 수장이 바뀌었을 때 정책노선의 변화로 일관성을 잃게 되는 것처럼 한 단체의 장이 교체될 때마다 다른 방 향성을 가지고 건축가들을 지원한다면 어느 하나 연속성 없이 중구난방으로 이루어지고, 협회를 찾는 젊은 건축가들은 줄어들게 되고 협회는 점차 노쇠화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두 해에 걸쳐 연속적으로 펼쳐진 ‘옆집탐구 1, 2’ 전시의 성과는 협회 차원에서도 깊이 있는 ‘탐구’로 전개될 필요성이 있고, 그로써 지속 가능한 전시로서 가치가 공명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 공을채 | REPORT 4
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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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진 제공 | 한국건축가협회 글 | 공을채(본지 외래기자)
WIDE REP0RT
와이드 REPORT 5
노들섬, 음악을 매개로 한 문화 플랫폼을 향해
음악, 노들을 풀고 엮다
BAND of NODEUL
지난 12월 노들섬 개발의 향방이 대중음악을 매개로 한
어번트랜스포머의 <밴드 오브 노들>은 음악, 문화예술, 생
복합문화기지 조성으로 가닥 잡혔다. 앞서 서울시는 1차
태/환경, 친환경, 상업, 뉴미디어, 개발모델 등 다양한 분
운영구상 공모를 통해 10개 팀을 선정하고(본지 통권 48
야가 함께 협업하고, 시민 누구든 언제나 찾아올 수 있는
호 기사 참조), 이들이 전원 참가하는 2차 운영계획・시
공간을 제안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강의 공공성 회복을
설구상 공모를 진행했다. 1차에서 제안된 안을 좀 더 구
다양한 활동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 플랫폼에서 찾고
체화시켜 실현 가능한 운영계획과 최종 운영자를 뽑기 위
자 한 점이 눈에 띈다. 그 중 음악은 하나의 큰 매개 요소
한 공모였다. 이는 시설을 먼저 조성하고 운영 방안을 사
로 작동한다. 음악은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고 소통할 수
후 결정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노들섬의 운영 방안
있으며 다른 문화를 포용하는 힘이 있다는 데서 착안된
수립 후 꼭 필요한 시설을 단계적으로 유치하겠다는 시
것이다. 당선팀은 이 음악을 중심으로 문화, 예술, 자연 등
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심사위원들은 한
의 이야기를 노들섬 위에 자연스럽게 펼쳐 놓았다.
정된 이용자들의 특별한 시설이기보다 시민 모두의 사랑
시설 운영권을 가진 어반트랜스포머는 8개의 전문집단으
을 받으면서도 경제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는 장소 만들기
로 구성된 컨소시엄이다. 노들이니셔티브(어반트랜스포
에 선정 기준을 두고, “다양한 사람들의 긴밀하고 지속적
머)를 중심으로 음악(한국음악 레이블산업협회), 문화예
인 노력을 담보하는 운영조직과 미래를 진취적으로 구상
술(프린지 네트워크), 자연(가톨릭 생태연대), 에너지(루
하고 실현하려는 도전적인 프로그램”을 선별하는 데 집
트 에너지), 상업(청년 장사꾼), 미디어(피키 캐스트), 공
중하였다. 그 결과 심사위원회는 “음악을 매개로 한 공공
유경제(유캔스타트)라는 전문분야가 뭉쳤다. 이들은 각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제시한 작품으로 … 운영 주체 부
각 노들뮤직, 노들문화기획, 노들 숲의 치유, 노들장터와
분에서 대규모 집단이 이끄는 것이 아닌 다양한 주체가
노들푸드, 노들에너지 자립섬, 노들이니셔티브, 노들전파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운영하는 전략이 높게 평가”(심사
꾼이라는 7개의 노들 프로그램을 만든다. 각 프로그램은
<BAND of
세부 프로그램 실행전략이 제안되었다. 이를테면 노들뮤
NODEUL>밴드 오브 노들을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하고, 뒤이
직은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거나 뮤
어 자생적 생태공원을 제시하였으나 대기업의 적극적인
지션을 발굴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노들장터와 노들
관여가 우려되었던 환경재단의 <사색꿈터 노들드림>을 2
푸드는 장터를 완성하고 스타트업 장사꾼의 실험무대 등
등작으로, 노들섬의 땅과 생태, 식물 중심으로 사람들을
을 계획하는 식이다. 물론 크라우드 펀딩, 시민리츠 등 새
모으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를 제시하여 좋은 평가
로운 개발 및 투자모델을 찾아내고 시도하며, 크라우드펀
를 받았으나 다소 평범한 제안 내용과 초기 운영의 어려
딩과 결합한 지분공유형 건물 등을 통해 플랫폼을 확장해
움이 지적되었던 티팟의 <원더가든 식물의 시대>를 3등작
나가는 일은 노들이니셔티브의 몫이다.
으로 결정했다. 특히 1등작으로 선정된 <밴드 오브 노들>
주목할 점은 프로그램의 능동적 실행 주체(8개의 전문집
에 대해서는 “노들섬이어야만 한다는 장소성이 다소 부족
단)가 이 다양한 프로그램과 활동들을 전부 완성하는 것
하지만,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예술이 발생한다면
이 아니라 시민 및 적극적 유저(아티스트, 기획사, 문화예
장소성 또한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무
술가, 상인과 요리사, 투자 및 후원 주체 등)와 서로 교류
게를 두었다. 제한적인 접근성을 고려하여 소규모의 집객
하며 완성해 나간다는 데 있다. 이 적극적 유저들은 노들
력을 가진 컨텐츠를 도입한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독
섬의 프로그램 실행을 함께하거나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창적인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심사평을 덧붙였다.
노들섬의 컨텐츠를 생산해 나가게 된다.
평 中)된
어반트랜스포머Urban Transformer팀의
정귀원 | REPORT 5
노들꿈섬 2차 운영계획・시설구상 공모 당선작으로 어반트랜스포머의 <밴드 오브 노들>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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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AR no.49 | Wide AR no.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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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략적인 공간 및 시설구상
인 시설 계획안이 생산될 수 있는 방향으로 공모 지침을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노들섬 내 건축 가능한 구역, 비오
조율 중이다. 어반트랜스포머 대표 김정빈 교수(서울시
톱, 하천 구역 등에 적절히 배치되고, 그것을 담아낼 시설
립대)는 이와 관련하여 “공연장, 음악도서관, 문화집합소,
들이 하나둘 단계적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당선안이 제안
장터, 다목적 홀 등 대략 연면적 9,800m2 규모의 시설에
한 주요 시설공간은 실내공연장(노들스테이지), 음악도
대한 세부 사항을 논의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건축 공모
서관(뮤직아카이브), 스타트업 창업 지원시설(노들문화
에서 어떻게 하면 캐스코 개념의 반영을 무리없이 이끌어
집합소), 콘텐츠 생산시설(노들스튜디오), 상업시설(노들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사실 건축 공모를 한다
거리&장터), 숙박시설(노들아트호텔) 등이며, 비시설공
는 것 자체가 1인 건축가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싶
은 야외무대 설치 공간(노들마당), 비오톱 구역(노들숲)
어요.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제안한 캐스코 방식은 공모
등이다.
전과 상충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함께 만들
이 가운데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노들거리와 장터에 권
어가는 시민의 섬’이라는 노들섬 개발의 애초 목적을 생
유된 캐스코CASCO 기법이다. 캐스코 기법은 사용자의 참
각한다면 반드시 관철시켜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로 완성되는 도시 공간 구성 기법으로, 기본 인프라와
현재 캐스코 방식의 비율을 어느 정도 할 것인지, 어떻게
공공공간은 공공에서 하고 세부적인 시설 조성은 사용자
지침을 세워야 의도가 잘 전달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가 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하면 공간 조성비 축소, 저
좀 더 다양하고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지를 논
렴한 임대가, 사용자의 개성이 반영된 공간 조성을 구현
의하고 있어요.” 캐스코의 경우 입주자가 공간 조성 투자
할 수 있고, 조성 공간에 대한 책임감을 끌어내어 사용자
금을 내고(대신 추후 3년 간 임대료는 축소) 건축가와 함
스스로의 공간 관리를 유도할 수 있다. 어반트랜스포머의
께 집을 짓게 되니 아무래도 공간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제안서는 문화집합소와 장터에 완성형 건물을 대상으로
수밖에 없을 것이란 게 부가적인 설명이다.
한 일반 임대상가 이외에 일정 부분 캐스코 방식의 상가
이밖에 어반트랜스포머 팀은 올해 3억 원의 예산 내에서
를 도입하여 청년, 시니어들의 스타트업에 의해 운영되는
노들섬에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다. 아마도 8개
실험적인 상가 조성을 포함하고 있다.
팀의 입장과 의견을 하나로 묶어내는 일마저 녹록치 않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각자 도시 안에서 할 수 없었
운영수행 계획
던 일을 함께 해 보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고, 무엇
<밴드 오브 노들>은 조성 및 운영에 대한 원칙과 전략
보다 이곳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에 밀려주1 예
을 토대로 올해 하반기까지 실시설계를 마치고 2017
술가와 아티스트들이 안정적인 작업을 이어가지 못하는
년-2018년 조성 공사(조성 예산 491억 원)를 거쳐 2018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므로 일단 긍정의 에너지가 더
년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어반트랜스포머의 최초 운
많아 보인다는 것이다. “도시에서는 스타터starter들이 쫓
영기간은 2018년-2021년까지 3년이며, 이 기간 동안 운
겨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스타트업 운영자가 더
영조직 및 유저그룹과 함께 <밴드 오브 노들> 프로그램
강자가 될 수 있어요. 이게 공공의 땅, 노들섬이니까 가능
을 운영하게 된다. 이후 재계약을 통해 장기 운영에 돌입
한 일이겠죠?”(김정빈)
정귀원 | REPORT 5
WIDE REP0RT
할 경우 추가시설 조성, 섬 내·외부 접근성 개선, 주변 지 역과의 연계 및 콘텐츠 개발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전망이
본문 자료 제공 | 서울시 공공개발센터
다. 특히 시설의 수익으로 운영해 나가면서 발생하는 초
글 | 정귀원(본지 편집장)
과 수익에 대해 노들 기금으로 전환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3차 공간·시설조성 공모 및 파일럿 프로그램 운영을 앞 두고 현재 당선팀인 어반트랜스포머는 서울시와 함께 3차 공 간·시설조성 공모 준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공
주1.
모 지침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문제들이 등장
“값싼 작업공간을 찾아 예술가들이 어떤 장소에 정착하고 그들의 활동을
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 이에 초기의 그림
통해 지역의 문화 가치가 상승하면, 개발자들이 들어와 이윤을 획득하는
이 흐려지는 것을 경계하면서 최대한 창의적이고 합리적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방식”_이기웅(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HK 연구교수)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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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AR no.49 | Wide AR no.49
와이드 REPORT 6
재정비로 새롭게 시작하는 2015 건축명장 신규 건설사 선정 및 기존 선정사 검토 후 유지, 탈락 방식으로 변경
출판기념회
㈜다짐
일시: 2015년 12월 9일 오후 5시
석장건설㈜
장소: 명동성당 내 「K’ARTS 명동 스튜디오」
㈜시스홈씨엔엘
㈜자담건설
한국건축가연합이 ㈜제이아키브건설
2012년 새건축사협의회와 한국건축가협회가 ‘한국건 축가연합’이란 이름으로 주관하는 ‘건축명장’ 시상제도 가 처음 시행되었다. 이 상은 매년 건축가들의 추천으 로 대기업 위주의 공사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실력 있는 우수 중소규모 건설사에 수여되는 상으로서, 좋은 시공사를 건축주나 건축가에게 소개하는 장, 또는 전국
추천하는 효상건설㈜
강산건설㈜
경민산업㈜
올해의
2014
우수건설사 기로건설
다산건설 엔지니어링㈜
공정건설㈜
유한회사 엔도건설
예간종합건설㈜
㈜예지인종합건설
㈜일공일룹
에 분포된 잘 알려지지 않은 양질의 시공사를 장려하는
㈜지디에이치
진건종합건설㈜
참건축
태백건설
주식회사 태인건설
주식회사 투고건설
㈜풍산우드홈
코아즈건설
2013
장치로 작동해 왔다. 주식회사 스튜가목 조건축연구소
실제로 건축가의 훌륭한 설계안이 시공사를 잘못 만나
정귀원 | REPORT 6
㈜씨스페이스건설
그 의도를 상실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과정에서 건축
씨앤오건설
주는 건축주대로, 건축가는 건축가대로 정신적 물질적
㈜이안알앤씨
손해를 보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는 건물 규모 가 작을수록, 건물 위치가 수도권 외 지역일수록 더 빈 번하다. 물론 잘못된 만남 이전에 설계자의 의도를 제
장학건설㈜
코렘시스
2012
대로 파악하여 설계도를 정확히 구현해 낼 수 있는 시 공사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대규모 건설사 위주의 국내 건설정책이 중소규모 건설사의 성장 을 가로막고 있는 형국이니, 시공사를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시공사의 무리한 저가 수주는 공사의 품질을 저하시키고 부실과 안전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 한국건축가연합이 책임감 있는 공사로 우수한 품질의 결과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온 중소규모 건설 사를 응원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믿을 만한 시공자를 선택하고 실력있는 파트너를 찾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좋은 시공을 변별할 수 있는 안목 제고提高나, 책임감과 기 술력을 보유한 중소규모 시공사들의 네트워크에 일조하는 사업은 건실한 건축시공문화 정착, 나아 가 국내 건축문화의 성숙에 기여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12년부터 3년 동안 한국건축가연합이 선발한 명장은 40여 업체에 달한다. 주관처의 자체 평가 에 따르면, 짧은 시간이지만 건축명장은 수적 성장을 통해 건축의 품질 향상에 일정정도 기여하고, 지역적 균형을 맞추는 데도 도움이 되어 왔다. 지난 12월 9일 오후 5시 K’ARTS 명동 스튜디오에서 2015 건축명장 시상식 및 출판기념회가 열 렸다. 그런데, 4회째 맞는 이번 건축명장의 운영 방식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이전 회까지는 신규 건축명장과 함께 기존 선정사들이 건축명장을 유지하는 방식이었으나, 2015년부터는 기존 선정사 에 대해 재평가를 거쳐 건축명장 유지 혹은 탈락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시상제도를 강화하였다. 이 러한 변화는 건축명장의 수적인 성장 이면에 내재되어 온 몇몇 문제점을 보완하고 재정비한 결과 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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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0RT
주관처에 따르면, 그동안 선정된 건축명장들 중 많은 수가 나름대로 품질을 유지하여 본 시상의 권 위를 지속적으로 이어왔지만 개중에는 폐업, 부도 등이 발생한 회사도 있었고, 더러는 초심을 잃어 버리고 공사 중에 건축주 혹은 건축가와 갈등을 빚는 업체도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몇몇 건축가들 은 건축명장을 통해 파트너가 된 시공사의 공사 품질에 이따금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이 상의 실질적 운영체인 건축명장운영위원회가 그동안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조정하여 신규 및 기존 건축명장 리스트를 매년 새롭게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또 개인 시공자를 선정 대상에 포함하던 것에서 최소한의 면허를 갖춘 업체로 그 기준을 변경하고, 기술력 파악을 위해 기술자 보 유와 건설업면허 관련 사항을 평가 항목에 포함시켰다. 이와 아울러 회사의 재정 건전성을 평가한 것은 선정 후 부도로 사라지는 업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홈페이지(http://masterbuilder.kr) 구축을 통해 보다 활발한 교류와 공론의 장을 마련한 2015 건 축명장은 건축가가 추천한 업체를 선정위원회에서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지역의 경우는 운영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연락하여 좋은 시공사를 파악하기도 하지만, 우선은 건축가연합 회원들 에게 신규 건축명장을 추천받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후보가 된 건설사는 소정의 양식과 필요 서류 들을 준비하여 지원서를 제출할 수 있고, 이로써 후보사들의 최종 리스트가 만들어진다. 이때 함께 일했던 건축가의 평가는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2015년 건축명장 선정위원회는 박인수(위원장), 임형남, 우대성, 정수진, 김주경, 이윤희(이상 위 원), 김용미(고문), 정성훈, 임선희(이상 진행) 등으로 구성되었고, 이들의 수고로 신규 12개 업체, 기존 17개 업체를 뽑았다. 새롭게 시작하는 건축명장의 선택으로 내년이 더욱 기대되는 업체들은 다음과 같다.
㈜일공일 룹, ㈜지디에이치, 진건종합건설㈜, 참건축, 태백건설, 주식회사 태인건설, 주식회사 투고 건설, ㈜풍산우드홈 2015 기존 명장 유지 17개 업체 : 기로건설㈜(2013), 다산건설엔지니어링㈜(2013), ㈜다짐 (2014), 석장건설㈜(2014), ㈜스튜가목조건축연구소(2012), ㈜시스홈씨엔엘(2014), ㈜씨스페이스
정귀원 | REPORT 6
2105 신규 선정 건축명장 12개 업체 : 강산건설㈜, 경민산업㈜, 공정건설㈜, 유한회사 엔도건설,
건설(2012), 씨앤오건설 주식회사(2012), 예간종합건설㈜(2013), ㈜예지인종합건설(2013), ㈜이안 알앤씨(2012), ㈜자담건설(2014), 장학건설㈜(2012), ㈜제이아키브건설(2014), ㈜코렘시스(2012), 코아즈건설㈜(2013), 효상건설㈜(2014) * ( ) 건축명장 선정 연도 본문 사진 제공 | 새건축사협의회 글 | 정귀원(본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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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AR no.49 | Wide AR no.49
와이드 REPORT 7
어쩌다집@연남_작업일지 주1 이진오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벽돌공장 옆의 네 세대가 함께 사는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홍익대학교와 ㈜위가건축에서 건축의 가치와 기본기를, D.P.J & Partners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는 건축가로서의 열정과 사고방식을 배웠다. 건국대학교, 홍익대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 설계스튜디오 강사다. (주)건축사사무소SAAI 의 공동대표로서 <양구백자박물관>, <이천SKMS연구소> (건축가협회상, WA Award), <봉천동 음악가의 집>(서울시건축상) 등을 통해 독립된 개별공간의 관계성에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의 <협력적 주거 공동체> 전시를 통해 새로운 사회적 가족과 대안적 주거를 토론하고 제안했다. 지금은 <어쩌다집@연남>에서 참한 이웃들과 함께 살고 있다.
주1. 이 글은 2015년 11월 10일(화) 인천 송도국제도시 트 라이볼에서 개최된 <ICON choice 010>에서의 발표 내용을 중심으로 필자가 재구성한 것이다.
이진오 | REPORT 7
주출입구 계단, 사진 조재용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자기 집을 직접 지어본 사람은 더욱 흔하지 않다. 건축가가 지은 집에 사는 사람은 귀하다. 나는 건축가가 지은 집에 산다. 그것도, 마음에 드는 동네 에서 결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바로 내가 그 건축가다. 어쩌다집은 나를 포함해 아홉 명의 집터와 여섯 명의 일터다. 다음은 인내심이 필요한 설계, 시공, 감리, 입주 과정과 지금도 계속되는 관계의 조율에 대하여 기록한 작업일지다.(필자 주) 결심 2014년 임태병 소장의 주도로 협동조합주택을 준비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집을 짓 는 일을 포기했다. 여러 사람이 모이다 보니 목표는 같았지만 이를 이루는 서로간의 사정이 달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대신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어쩌다가게@동교’를 꾸렸다. 이 공간을 운영 하기 위해 SAAI와는 별도로 건축기획, 관리회사인 ‘공무점’을 만들었다.) 여럿의 의견을 모으는 일이 어렵다면 한 사람이 주도해서 완성한 후에 쓰는 방법에 대한 규칙을 정 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함께 살기와 커뮤니티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아내가 집을 짓자고 먼저 제안 을 했다. 서교동 집의 전세금과 전세주고 있는 인천의 아파트를 손절매하고 나머지는 대출을 받으 면 될 것 같다고 했다. 대략의 일정과 자금계획을 세웠다. 역시 문제는 그 큰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다행히 대출금 리가 낮았고, 전체 사업의 금전적 흐름을 예상할 수 있는 파트너(SAAI 박인영 대표, 공무점 안군 서 대표)가 우리와 함께 하고 있었다. 예산을 마련하는 일은 아내가, 계획은 내가 맡았다. 건축비용 은 예산에 따라 계획적으로 조절할 수 있지만, 토지비용은 고정적이기 때문에 전체 예산과 동네 분 위기를 고려해 땅을 찾는 것이 우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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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0RT
작업일지 2013년 12월31일 토지계약
(대지 204.6m2, 10억4천만원에 구입)
2014년 4월15일
토지매입완료
5월8일
부지측량
5월21일
건축허가 득
공사예가 수령
7월28일
시공현설
8월25일
착공 (12월말 준공예정)
8월29,30일 입주설명회
11월9일
2015년 3월12일
기존 사진 철거 전
골조공사 완성 상량식 사용승인
4월20일
공사비 잔금지급
4월25일
집들이
땅, 돈 2013년 가을부터 상수동, 망원동, 서교동, 성산동, 망원동을 대상으로 땅을 찾았다. 땅값이 문제였 다. 마땅한 땅이 없었다. 부동산 말로는 2013년 여름을 기점으로 저금리 기조, 기존 홍대 상권의 확 장, 집짓기 열풍 등으로 이 지역의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땅값이 훌쩍 올랐다고 한다. 호가는 올라 가고 거래는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시간을 두고 나오는 땅의 위치와 가격, 법적조건을 검토하
이진오 | REPORT 7
부동산정보지도 대지매입검토
고, 가능성이 있는 곳은 방문해서 확인해 나가기 시작했다. 적당한 땅이 나와서 하루, 이틀 검토하 느라 시간을 보내고 망설이다 보면 팔리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다. 최종적으로 망원동과 연남동을 놓고 고민을 했다. 수치상으로는 망원동이 유리했지만 기존 어쩌다 가게와 연계성, 동네 분위기 등의 정서적인 면에서 지금의 연남동 대지로 결정했다. 2013년 12월 에 토지계약을 했다. 5월 말에 잔금을 치르고 바로 공사를 시작해서 늦은 가을에 입주할 계획을 세 웠다. 계획의 시작 150평 정도의 연면적에 최대한의 서비스 면적과 외부공간을 갖는 10세대의 집을 설계한다. 기획설 계의 원칙은 독립된 세대의 집합이면서 하나의 집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한다. 채광, 환기 등 집이 갖추어야 할 기본을 최우선으로 시장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1인 가구 중심의 공동주택의 유형을 만들기로 했다. 소위 집장사들이 복제할 수 있는 실용적인 집이라는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 하기로 했다. 적정 설계, 감리비 7,500만 원(공사예산 7억5천의 10%) 중 내가 일하는 몫을 제외하고, 사무실 이 윤을 없애고 4개월 만에 설계하고 6개월 동안 감리한다는 계획으로 직접비와 기획비용만을 계산하 여 4,000만 원에 아내와 설계계약을 했다.(불행하게도 작업 기간이 길어져서 사무실에 손해를 끼 치는 작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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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설계를 시작하면서 공무점과 1인 가구 프로그램에 경험이 있는 서울소셜스탠다드와 협업을 통해 시장분석과 프로그램 조합, 상세 자금계획을 세웠다. 대출금은 임대 세대를 주변의 같은 규모 보다 10만원 비싼 월세로 임대하여 유지하고, 우리가 투입한 금액으로 아내의 사무실과 자가 주거 의 월세가 없도록 하는 사업의 구조를 세웠다. 아내가 분주히 움직여 마련한 잔금을 치르고 온전히 땅을 소유하게 되었다. 6개월 동안에도 주변 땅값이 계속 올랐다. 지금은 이곳에 새로 땅을 사서 집 을 짓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위기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시공사가 법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산출한 개략공사비도 예상을 훌쩍 넘는다. 공용 창고와 커뮤니티 시설이 있는 지하층과 4층의 공 용목욕탕을 포기하고 보다 저렴한 재료와 디테일을 사용하기로 한다. 외부계단을 중심으로 2개동 4가지 평면형식의 8세대 주거와 1층 식당이 엮인 공간구조와 면적을 확정하고 구청에 허가를 접수했다. 지자체의 자치규정과 우리가 알고 있는 건축법이 충돌한다. 법
이진오 | REPORT 7
cashflow-초기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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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해석에도 의견차이가 있다. 허가 기간이 길어진다. 행정소송을 불사하고 원래의 설계를 고수하 기로 한다. 한 숨 쉬어가기로 했다. 이번 참에 신축이 어려운 이웃집과 건축협정을 통해서 함께 집 을 짓는 일을 도모했다. 공사비 부담을 줄이고 조금 넉넉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지구단위 계획의 제한조건과, 이웃집의 경제사정으로 이마저도 무산되었다. 기존 주택을 철거한 땅이 비어 있다. 씨앗이 날아와 여름 동안 꽃과 열매를 맺었다. 그 땅에서 깻잎과 토마토를 수확하면서 이를 보신 부모님이 생명력이 있는 땅이니 모두 잘 될 거라고 용기를 주셨다.
부모님과 아내
어머니
갈등 다. 함께 일해 온 시공사들의 견적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동네에서 잘 한다는 젊은 시공사와 함께 하기로 했다. 만들어온 집들이 눈에 차지는 않지만 생각이 바르고 의욕이 넘치는 팀이었고 무엇보 다 예산에 맞출 수 있는 견적을 제시했다. 드디어 2014년 8월 25일 공사를 시작한다. 설계만 할 때 는 몰랐는데 건축주가 해야 할 역할이 생각보다 많았다. 자금을 마련하고 각종 중간 비용을 납부하 는 것 외에도 건축가의 몫이라 생각했던 쓰임새를 결정하고 설계과정을 승인하는 일의 최종 승인
이진오 | REPORT 7
작업의 진심을 관청에 설명하고 불법개조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원안대로 건축허가를 받았
은 건축주의 몫이었다. 그 사이 아내와의 의견이 달라서 갈등하기도 하고 내가 건축주와 설계자의 역할을 병행하면서 사무실에서도 혼선이 생겼다. 이제는 나도 건축주의 역할을 맡고 주거건축을 전공한 파트너 김성준 소장이 가구를 포함한 단위세대 평면조정과 마감 재료선정을 하기로 한다. 설명회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살기 좋은 연남동에 집을 짓고 있습니다. 가게와 사무실, 원룸과 쉐어 하우스, 복층주거로 골목과 마당, 라운지를 공유하는 집입니다. 모이고 공유하면 일상이 더 재미있 고 풍요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어쩌다집’에 함께 살고 싶습니다.” 입주자 모집에 붙인 글이다. 8월 말 설명회에 지인들과 SNS를 통해 소식을 접한 30여 명이 모였다. 각자 원하는 주거형식과 희망 입주일을 기준으로 함께 살 사람들을 정했다. 건축가, 편집자, 디자이 너, 한의사를 직업으로 하는 3~40대의 결이 비슷한 사람들이다. 1층의 동네부엌은 어쩌다집 식구 들과 이웃주민을 연결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도시형 장터 마르쉐 출점팀에 제안을 해서 입점하기 로 했다. 원룸형의 경쟁률은 높은데, 의외로 면적이 넓고 가구가 제공되는 쉐어하우스에 입주하려 는 사람이 적었다. 모르는 사람과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이 아직은 익숙지 않은 것이다. 공유 주거는 당연히 임대료가 저렴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한 사람이 입주를 포기해서 11월 상량식은 쉐어하우스와 원룸 하나씩이 비워진 상태에서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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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오 | REPORT 7
서측 전경, 사진 조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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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식당 (영업 중), 사진 조재용
북측 전경, 사진 조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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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 용접공사 중 외단열 마감에 불이 붙어 일부를 태웠다. 좋은 징조인가? 초반에 잘 진행되던 공사가 겨울이 닥치고 마감공사 기간이 길어진다. 마감공사로 갈수록 작업자 의 거친 손이 거슬린다. 약속한 입주일인 1월 말에서 두 달을 더 기다려야 한다. 두 명은 호텔에서 지내고, 한 명은 장기 여행을 떠나고, 한 명은 부모님 댁에서 지내고, 나머지는 살던 집의 계약을 연 장한다. 사용승인이 나고 미흡한 공사를 마무리하고 구석구석을 손보기 한다. 별도 공사인 가구, 패 브릭, 조경공사 비용에 각종 세금도 만만치 않다. 지체보상금과 추가공사비를 놓고 시공사와의 정 산에 의견 조율이 쉽지 않았다. 공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아내 사무실은 입주를 하고 모두들 손보기 공사에 안정적인 영업과 안락한 휴식을 포기해야 했다. 입주자 모두가 2015년 4월25일, 한 날 한 시에 집들이를 했다. 제비다방 오상훈 소장의 소개로 ‘연 남동 덤앤더머’가 공연을 했다. 경찰이 두 번 출동했고, 150인 분의 식사가 동이 났다. 해피엔딩 인터넷 부동산에 빈 방을 올렸다. 십여 분이 다녀가시고 인연이 닿는 사람이 모두 채워졌다. 매달 반상회와 간헐적인 음주, 유희 모임 스마트폰을 매개로 소통한다. 식물과 동물을 함께 보살피고 고 민과 사건을 공유하면서 일상이 계속된다. 예상치 안에서 정확한 과정과 규칙을 지키고 있지만 서 로간의 이해가 없다면 깨지기 쉬운 대안 가족이 탄생했다. 결혼보다는 동거에 가까운 가족이다. 삶이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없듯이 집 또한 작품이 아니다. 내가 가진 재주로 아내를 기쁘게 할 줄 알 았던 일이 또 다시 고생을 겪게 만들었다. 그녀가 이 집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자료제공 | 건축사사무소SAAI 이진오 | REPORT 7
글 | 이진오(건축사사무소SAAI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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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REPORT 8 한국의 건축사진가 07 | 진효숙
드라마를 담는 건축사진
진효숙 도시와 집과 사람을 찍는 사진가. 도시와 건축 안에 사람의 향기와 감동의 마음을 담기 위해 고민한다. 새것만큼이나 낡고 황폐한 것이 주는 아름다움에 빠져있다. 책 작업으로 장림종·박진희 공저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의 사진작업을 맡았고, 송승훈·이일훈 공저 『제가 살고 싶은 집은』(‘잔서완석루’ 건축일기)에 사진가로 참여했다. 2012년 건축사진 작가들과 헤이리에서 단체전 '건축도시기행'전을 가졌고, 2014년 갤러리 스페이스 윌링앤딜링(Space Willing N Dealing)에서 제1회 개인전 'PRESENCE+ing'을 열었다. 《이상건축》, 《건축문화》, 《건축인poar》 등의 건축 잡지에 사진 작업을 실었으며, 현재는 본지 전속사진가이자 프리랜서 건축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다. ttlmania1@gmail.com
잔서완석루
진효숙 | REPORT 8
(건축연구소후리, 이일훈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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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부동 한옥
진효숙 | REPORT 8
(건축사사무소 효자동, 서승모 작)
횡성주택 (가온건축, 임형남+노은주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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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진을 일로 삼은 것의 큰 장점은 내가 살고 있는 환경과 공간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 면서 크게는 계절의 변화부터 작게는 하루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까지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만 보고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것들은 늘 내가 접하는 환경에 세심한 촉을 세워서 끊임없이 감지하고 있어야 알 수 있는 것 들이기에 가끔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나요?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제일 먼저 하는 대답 이기도 하다. 건축사진가로서 내가 생각하는 건축사진이란 지어진 건축물의 공간과 기능을 사진의 힘으로 대상 에 대한 간접체험과 이해를 하게 하는 역할을 하며 아름답게 담아내는 것이고, 이것을 수행하는 것 이 건축사진가의 역할이고 목표라고 생각해 왔다. 그럼에도 사진이 추구하는 목표 중 하나인 아름 답게 보여지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상을 왜, 어떻게 그래서 잘, 담아낼 수 있을 것인가가 늘 스스로에게 큰 과제였다. 건축물이라는 물적 공간을 촬영하는 것이란 단순히 정리된 공간을 보기 좋게 찍는 것이 전부가 아 니라는 고민이 계속 있어왔기 때문이다. 고민의 방법과 내용은 조금씩 변화했지만 지금 시점에서 내가 사진으로 추구하는 방향은 건축물이 라는 공간이 결국은 사람들이 좀 더 풍요롭고 편하게 살기 위해 만들어지기에 그런 느낌들을 어떻 게 하면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시작된 고민에 여러 가지 실험 을 해보며 작업을 진행해 왔다. 일하는 방식의 대략 순서를 생각해보면 의뢰받은 일을 시작할 때 촬영할 대상인 건축물을 마주하 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내가 찍어야 할 건축물에 대해 여러 가지 상상을 하는 것이다. 공간의 안과 밖에서 사람이, 가족이 살아가며 만들어내는 언어들과 몸짓들, 수많은 대화들, 그들의 안팎과 길을 오가며 느끼며 잠시 상상을 해본다.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이미지화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체적인 흐름을 고민하고 그 대상을 가장 잘 표현할 공간과 면과 부분을 찾는다. 가장 좋은 시간대에 가장 좋은 모습을 찾아 담는 것은 사진을 찍으면서 늘 신경 쓰는 부분이다. 그 흐름과 분위기를 정리했다면 이제 이야기를 이미지로 담을 차례다.
진효숙 | REPORT 8
행위들, 그래서 만들어 갈 다양한 이야기들, 그것들이 모여 어떤 무엇을 채워 가는지에 대해 집의
정동에 있는 프란체스코 성당안의 산 다미아노 카페(studio 01, 조재원 작)를 촬영했을 당시는 어 떤 사진을 왜, 어떻게 찍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한창일 때였다. 카페가 자리하고 있는 공간이 일 반적인 카페와는 달랐기에 촬영하기 전부터 어떤 식으로 이런 부분들을 표현해 볼까를 고민하고 있던 차에 그 카페를 기획하신 신부님이 마침 궁금하여 왔다며 방문하셨다.
정동 산다미아노 카페 (studio 01, 조재원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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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AR no.49 | Wide AR no.49
신부님을 본 순간 공간을 설명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모델이겠다 싶어 조심스레 카페의 모델로서 역할을 해주십사 여쭈어 보았더니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카페에 앉아있는 신부님의 모습을 담게 되었고 카페의 이름과 함께 공간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가 될 수 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되돌아보면 사진 작업의 방향성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않았던 그 이전의 시점에도 재밌겠다 싶어 오가는 사람들을 등장시키고 부족하다면 내가 등장하여 만들어낸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그 시점 이후부터 공간에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 사진들을 찍어야 겠다, 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나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고 아주 맘에 들어 많이 쓰는 사진 중에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집인 Floating L(studio 01, 조재원 작)의 사진은 주로 건축사진을 찍을 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촬영일 로 선택하게 되는 빛과 그림자가 선명히 구분되는 맑은 날이 아니었지만 봄비가 금방이라도 뿌릴 듯한 흐린 아침, 대지에서 떠 있는 이 집을 옥상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초록 귤밭을 바라보며 떠 있 는 집 너머 멀리 어슴푸레 바다가 보였고 봄날의 느낌과 너무 잘 어우러졌기에 카메라를 챙겨들고 다시 옥상으로 올라갔다. 촬영을 하다 보니 무언가 그 분위기에 그 어떤 요소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영감이 왔고 마침 집 안에 있던 건축가에게 요청하여 테라스의 툇마루에 앉아 있도록 하여 멀
진효숙 | REPORT 8
리 꿈을 꾸듯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 봄날의 떠 있는 집의 사진이 완성되었다.
제주 Floating L (studio 01, 조재원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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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효숙 | REPORT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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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613여관 (건축사사무소 효자동, 서승모 작)
2014년 말에 촬영한 남해의 613여관(건축사사무소 효자동, 서승모 작)의 경우에는 영업을 시작하 기 전에 촬영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일반적인 집이 아닌 고급 펜션으로서 다양한 사람들이 편하게 쉬고 즐기다 가기 위해 찾는 공간이기에 이미지로 어떻게 그런 공간의 모습을 설명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함께 그곳을 찾은 사무소 효자동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비록 자연스럽게 발생 한 상황은 아니지만 최대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이런 마음과 기분으로 머물고 쉬고 가길 바라는 상상을 했고 그 상상을 사진에 담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 쉽지 않은 나의 요구와 연출을 따라준 결 과는 대만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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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건축물을 촬영하면서 요즘 내가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황을 만나는 것을 원하지만 가능하지 않을 때는 가끔씩 의도적으로 연출하면서 그 공간 안에 작은 요소 하나가 들어가서 호기 심을 불러일으키고 그 호기심이 상상을 불러일으켜서 어떤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사진 을 찍으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늘 고민을 했던 것이 예전에는 상업건축 공간을 담으면서 내 개인적인 작업을 못하게 되 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는데 그런 고민을 하다가 깨달은 점은 내가 어차피 좋아하는 공간도 건축 적인 공간인데 굳이 상업적인 작업과 개인적인 작업을 구분하여 임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몇 년 전부터 그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건축가로부터 의뢰받은 공간을 촬영할 때 만약 어떤 영감을 받았고 이미지화할 수 있는 상황이 가 능하다면 나의 생각이 오롯이 담기는 작업도 진행하기도 한다. 심지어 때로는 그 결과물 중 일부를 건축가에게 줄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단순히 공간만 표현되어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공간 안에서 상상되는 이야기가 나의 사진에 보였으면 한다. 마음에 드는 공간, 분위기를 만나면 보다 적극적으로 내 생각도 넣으며 작 업한다. 역시 제일 좋은 소재는 사람이다. 그래서 가끔 공간에 사람을 넣는 연출을 하기도 하고 개 의치 않는다. 역시 공간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드라마가 내가 찍는 사진에 담겨서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공감하고 상상하고 감동마저 받는다면 금상첨화
진효숙 | REPORT 8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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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613여관 (건축사사무소 효자동, 서승모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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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REPORT 9 한국의 건축사진가 08 | 황효철 황효철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참여전시로 2011년 아트가 갤러리<Hugging:건축과 미술의 만남>전, 같은 해 <Fare_Well:국제다원예술 프로젝트>, 2012년 서울건축문화제 <동네 건축전 성북동>전, 2015년 젊은 건축가들의 런던전시 <Out of the ordinary>에서 JYA-RCHITECTS와 협업했으며 같은 해 국립현대미술관 <아키토피아>전에 참여했다. 개인전으로는 <보다>시리즈로 동네커피에서 2012년 11월, 2014년 11월 그리고 2015년 상설전시와 2013년 아트피스 <구성을 보다>를 전시했다.
황효철 | REPORT 9
나의 태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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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효철 | REPORT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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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사진을 담고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절실히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항상 사진쟁이는 사진으로 말하면 된다고 믿어 왔기에 머릿속에 맴도는 말들을 길 게 적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말이 두서없더라도 이해를 바라는 마음으로 적어 내려가고자 합 니다. 건축이란? 땅집사향 강연 후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건축사진을 하는 이에게는 중요한 질문이자 평생의 과제와 같아 정의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 질문은 저에게 항상 진행형으 로 남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우선 현재 사진을 하는 입장에서 말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생각하 는 건축이란? 점・선・면이라는 개념적 단어에서 출발하여 구체적이고 현실화되는 것 즉, 구축된 대 상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개념적인 것으로부터 출발해서 구 체화한 대상을 담는 것이 되겠다. 나의 시선 그럼 무엇을 볼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따라올 것입니다. 사진은 현실 속에서 대상과 일대일의 만남 입니다. 저의 이야기이니 작업을 통해서 가상의 현실을 만드는 것은 배제합니다. 그러면 이 대상과 제가 만나기 이전, 그러니까 건물이 태어나기 이전 상태를 한번 볼 필요가 있습 니다. 출발점은 건축가Architect의 상상을 통한 드로잉이 될 것이며, 이는 시간을 거쳐 도면화 즉, 구 체화할 것입니다. 아직은 땅에서 볼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는 상상을 구체화를 통해 실제화 단계 를 거치면 서서히 땅에 자리 잡게 됩니다. 그리고 완성이 됩니다. 이때 우리는 이 대상과 마주 볼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마주할 때 주변 환경 또한 많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여기에서 제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드로잉과 현실입니다. 사진에서는 이들이 분리되지 않고 함께 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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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사진에는 모두 담을 수 없는 사진의 성격 때문입니다. 제가 보고 있는 것은 건축 그 대상 자체입니다. 건축, 그 자체 위에 자체라는 말이 나왔으니 이제는 그것이 무엇인지 봐야겠습니다. 건축을 이루고 있는 기본요 소를 말하면 기둥, 보, 그리고 벽이 있습니다. 그리고 창과 문이 있으며 지붕이 있을 것이고 마당이 있고 데크Deck와 발코니Balcony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벽이나 창, 문에는 장식이 있습니다. 쉽 게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못 느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도 있지만 개념적인 것들은 읽어야하는 수고를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 면 맥락Context입니다. 어휘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다방향성일 수 있습니다. 건축에서의 관계를 말 할 때 흔히 콘텍스트를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 지를 보여줍니다. 일대일의 관계에서부터 주변으로 그리고 확장을 통해서 도시 전체의 모습을 이 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해석이 가능할 것입니다. 많은 어휘의 사용은 대상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되기도 하며 건축에서 사용하는 어휘들은 본 의미를 그대로 반영하기도 하고 다른 의미 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적어 내려오다 보니 꼭 학교 다닐 때 수업 내용을 정리하는 것 같지 만 저에게는 건축을 담는 시선에 있어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건축, 나의 시선 이제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바탕에는 제가 건축을 배워오며 자 연스럽게 자리 잡은 사고가 아닐까 봅니다. 이를 건축적 사고라 생각하며 시선을 이야기할때 중요 한 부분입니다. 대상에 대한 시선은 특수성과 자의성을 지닌다고 봅니다. 특수성은 건축적 사고를 축사진이며 대상은 당연히 건축물입니다. 사고를 통한 시선은 대상을 각각의 요소로 나누어서 보 기도 하며 짜임새를 통해서 보이는 형태와 공간을 파악합니다. 이는 대상 자체를 통해서 찾고 담아 내는 저의 시선입니다.
황효철 | REPORT 9
말하는 것이고 자의성은 제가 해석하는 것을 말합니다. 건축적 사고를 통한 대상을 담는 작업이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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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효철 | REPORT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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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를 통한 시선으로 담아진 사진 속에는 무엇을 담고 있는지 궁금할 수 있습니다. 흔히 보는 대 상을 너도 찍고 나도 담는데 무엇이 다를 것이냐고 질문할 수 있는 것이지요. 앞서 이야기한 사고 와 태도는 대상을 보는 것에 있어 일관성을 주게 됩니다. 건축사진 작업을 할 때 제가 주목하고 있 는 것은 반복됩니다. 즉, 저에게 주목 대상은 항상 건축입니다. 그리고 그 작업을 반복할수록 건축 사진의 완성도는 점점 깊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의 경우는 깊어지기 전에 새로운 대상물 예를 들어 인물사진 등으로 분야를 옮겨가게 됩니다. 이는 사진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경계하는 부 분일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것은 유혹적이겠지만 만약 자신의 방향성과 태도가 정해져 있다면 문 제가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누군가는 도태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 지만 그 질문은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어떤 방법론에 대한 물음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일관성 그리고 자신의 시선이라는 부분은 저에게는 글로 표현하기란 너무 어려운 부분입니다. 왜 냐하면 사진을 하는 사람은 사진으로 이야기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카메라는 도구 입니다. 연필 이나 조각칼, 망치, 컴퓨터, 요리칼 등 모든 작업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으로 말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저도 사진으로 말해야 합니다. 참고로 ‘제108차 땅집사향’에서 보여드렸던 사진들은 2015년 원서 동에 있는 동네커피에서 전시했던 작업입니다. 2015년 1월과 2월에 열었던 전시회 <패턴을 보다> 로 시작해서 <의자를 보다>, <間을 보다>, <교각을 보다>, <창덕궁을 보다>입니다. 이외에 저의 사 진을 볼 수 있는 곳은 아래 주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www.hyochel.com www.facebook.com/hwang.hyochel www.pinterest.com/hawing486 www.flickr.com/camerar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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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방법론 대부분 사람은 사진을 보고 나서 ‘방법론’에 대해 물어봅니다. 가장 일반적인 궁금증이기도 합니다. 과거 디지털카메라가 없었고 필름카메라가 주를 이루었던 시절에는 조리개 값, 셔터속도, 어느 브 랜드의 필름인지 또는 카메라 기종과 어떤 화각의 렌즈를 사용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루었 습니다. 요즘은 디지털카메라 세상이 되어서 ‘촬영 후 어떻게 포토샵을 했는가?’를 물어봅니다. 저 는 이런 방법론은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의 선택에 달려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어떤 사진을 담고 싶은지가 정해졌다면 그것에 맞는 방법론을 찾아내면 됩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방법이 나와 있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있으며 웹사이트에서는 어떤 식으로 하는지도 친절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을 보면 다양한 사진편집 앱을 설치하기 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쉽게 사진을 편집할 수 있고 일명 ‘예쁜 사진’을 만듭니다. 단 몇 분 만의 투 자로 사진을 보정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이런 방법론을 활용해 사용하다 보면 자 신만의 고유영역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자신만의 방법론’이자 자신의 시선을 찾아가 는 길이 아닐까 생각하며 사진작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 중 하나입니다. 사진, 도구에 대한 고민 사진을 담는 방법론을 말하다 보면 도구에 대한 궁금증도 함께 올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진은 사기다’라는 말을 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건축을 담을 때 건축물의 스케일Scale 때문에 대부분 광각렌즈로 촬영하게 됩니다. 그렇다 보니 눈으로 보는 것보다 사진에서는 더 넓게 그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을 다르게 생각해보면 렌즈가 가진 특 성 때문에 그런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분명히 사람의 눈과 카메라는 다릅니다. 사람의 눈은 움직임을 통해서 주변을 관찰하지만 카메라 고 있기에 눈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곧 도구를 이해하는 것 입니다. 사진을 잘 찍는 법을 물어본다면 도구를 이해하는 것이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시선과 건축적 사고 그리고 도구의 이해를 통한 작업을 써내려 왔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건축사진가와 상반될 것이라 여기고 건축가의 작업을 할 때의 태도를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습니
황효철 | REPORT 9
렌즈는 다양한 화각을 통해서 부분들을 프레임화합니다. 각각의 화각은 서로 다른 원근감을 지니
다. 개인 사진작업을 할 때야 제 방법대로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의뢰하는 사람이 있는 경우는 다르 지 않나?’라는 질문을 종종 받게 됩니다. 이 부분은 당연히 건축가의 의도와 개념을 읽어야 하기에 작업의 개입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건축적 사고를 통해 작업을 바라보면 그 속에 자리 잡은 개념과 요소가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읽어 내는 것이기에 나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담는다는 것은 건축가의 작업을 더욱더 정확히 볼 수 있으며, 그 속에 구현하고자 했던 형 태와 공간 그리고 질서를 사진을 통해서 보여줌으로써 건축가의 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 고 봅니다. 또한 저에게 건축가는 저의 사진에 컬렉터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참고로 저의 컬렉터들의 사이트를 남겨둡니다. 그곳에서 저의 사진을 보면 이글에 대한 사실여부를 한번쯤 드 려다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http://jyarchitects.com www.minworkshop.com http://www.utaa.co.kr 2011-2014 Copyright 황효철 http://wisearchitecture.com Y-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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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페이스북에 남겼던 글을 여기에 옮겨 놓으며 글을 마무리 합니다. 건축사진에 있어 주인공은 건축이다. 건축에 있어 주인공은 사람이다. - 현재 그렇게 본다. 작업 그게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닌 듯. 자신이 보는 것인지 어디서 본 것을 다시 보는 것인지 내가 보고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의 문을 가져야 한다. 질문은 자신에게 던지는 것이다. -작업을 한다는 것작업을 함에 있어 무서운 적은 세치 혀다. 보여준 다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뿐이다.
황효철 | REPORT 9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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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REPORT10
제6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 당선작 발표 본지는 꾸밈 건축평론상과 공간 건축평론신인상 및 와이드AR 건축비평상 수상자 들의 모임인 건축평론동우회(동인회장 김영철)와 손잡고 2010년 <와이드AR 건축 비평상>을 제정하여 신진 비평가의 발굴을 모색해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 건축평단의 재구축은 물론 건축과 사회와 여타 장르를 연결하는 통로 로서 건축비평의 가치를 공유하는 젊은 시각의 출현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세 번째 수상자의 등장을 축하하며 제6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의 당선작을 다음 과 같이 발표합니다.
Ⓦ 당선작
(단평론-1) 건축 작품,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단평론-2) 한국 건축비평의 무기력성: 현실진단과 과제
(주평론) 바우지움: 바우야! 바우야!
Ⓦ 수상자 송종열(46) Ⓦ 심사위원 이일훈(건축가, 건축평론동우회 동인) Ⓦ 시상식 2016년 2월 둘째 주(예정)
주최
간향클럽, 미디어랩&커뮤니티
주관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후원
건축평론동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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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AR no.49 | Wide AR no.49
심사평
「모순된 현실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저항코드로서의 건축」 비평(가)을 기대하며 이일훈 건축가, 건축평론동우회 동인
지방출장길에 편집인의 전화를 받았다. “와이드AR 건축비
나는 평소 말하고 쓰고 그리고 만드는 일(굳이 전문기술・예
평상 심사를 맡아 달라(피하고 싶었다). 응모자가 1인인데
술・학술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더 좋을)은 이야기를 만드는
(그게 뭐 어때서. 응모자 많고 내용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
것(짓)이라 여긴다. 어떤 이야기? 재미(내용)있는 이야기다.
데…), 거론되는 심사위원들은 모두 응모자와 직・간접의 인
바로 뻔해 보이는 곳(것)에서 뻔하지 않게 이야기 하는 것. 뻔
연・관계가 있어 주최측이 고민스럽다. 응모자와 아무 인연
하고 뻔할 내용을 다르게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새로
・관계가 없어 청을 드린다(아니, 응모자와 내가 아무 인연・
운 생각으로만 가능하다. 그것이 아이디어이고, 해석-재배
관계없음을 편집인이 어이 아는가). 장담한다. 당신이 모르는
치-이며, 개념이다. 새로움이 없으면 요란해도 들을 게 없고,
사람이다.” 이름이 적히지 않은 응모원고 세 편이 왔다.
젓가락이 가지 않는 성찬, 맞는 말일수록 졸음이 온다. 그런
이일훈 | 와이드AR 건축비평상
좌판에서 느끼는 식상함은 참으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비평 • (단평론-1) 건축 작품,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이야말로 (듣기 싫어도)들을만한 이야기이어야 한다. 응모자
• (단평론-2) 한국 건축비평의 무기력성: 현실진단과 과제
는 「비평의 위기」를 말하며 지난날의(오늘일 수도) 「가짜 논
• (주평론) 바우지움: 바우야! 바우야!
의」・「가짜 비평」과 「주례비평」을 집는다. 맞는 말에 한마디 를 보태면, 진부하지 않은 감동적인 주례사는 오로지 주례(비
‘단평론-1’은 「건축(비평)이란 무엇인가」를 물으며 「이를테
평가)의 몫이라는 점이다. 구린내 나는 주례사의 핑계를 혼례
면, 좋은 건축」을 묻(찾)고, ‘단평론-2’는 건축비평의 현실,
당사자에게 넘길 수는 없는 일. 오늘도 내일도 더 큰 문제는
나아가 이 사회에서의 건축(비평)-「건축가는 지식인인가?」
건축비평의 위기보다 건축의 위기이다. 건축이 죽으면-지어
를 계속 물어야 할-의 위상에 대해 말(묻고 답)하고, ‘주평
지는 건물의 물량이 줄어드는 것을 건축의 위기라고 여기는
론’은 강원도에 지어진-(건축가는)「줄곧 자연과 자연스러움
현실에서 이미 건축은 죽었는지도 모르지만- 건축비평도 같
을 말하지만, 그 자체가 부자연스」러운-한 미술관을 평한 것
이 죽을까. 아닐 것이다. 건축비평이 건축의 지평을 넓힐 수
이다. 모두 논리가 탄탄하고, 넓은 주제에서 구체적 대상으로
있다는 기대가 나만의 허무가 아니기를. 그 쓸쓸하고 황량하
옮아간 세 편의 구성(비평상에 응모할 의도였다면)이 좋다.
게 이는 건축의 바람을 기꺼이 맞기를…! 앞으로 자신의 건축
각 평문들에서 공히 보이는 비트겐슈타인-칸트-가라타니 고
이야기를 지어(고)갈 이름 모르는 논객을 환영한다.
진-벤야민-리차드 세넷-하버마스…등등의 말을 빌려옴에도 별 무리가 없지만, 비평・평론이란 아무도 하(찾)지 않은(는) 말(생각)을 찾(하)는 일이기에,「전통에 의지하든 그것을 내 쫓든, 춤을 추든 뻣뻣하게 서 있든, 소리를 지르든 침묵하든, 건축을 일종의 실천으로 다룰 수 있는 기초」를 개념삼고 나 아가 「비평가가 짊어지고 있어야 할 그물의 무게」를 인식하 고 있는 응모자의 자세에서 텍스트의 인용보다 더한 울림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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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응모 평문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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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 당선작(단평론)
한국 건축비평의 무기력성: 현실진단과 과제 송종열
“철학이니 역사니 하는 이론이나 비평...?!! 그런 것 없이도 잘 지내왔다.”
이 글은 건축계에 만연해 있는 건축비평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짚어보고, ‘개입 하는 사유’로서의 비평이 어떠한 측면에서 우리에게 절실한 것인지, 그리고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이 무엇인지를 검토하는 것이 목적이다. 글머리에 언급된 표현은,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 만, 실무를 하는 친구들과 건축을 화두로 밤늦도록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면 으레 들을 수 있을 만큼 흔한 평가이기도 하다. 생각건대 이 표현만큼 건축계 내에서, 그러니까 건축행위에 관여하는 사람끼리도 이론이나 비평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는 없을 것이다. 이 표현의 밑바탕에는 현실개선에 즉각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분야에 대한 배타적 인식과 불신이 짙게 깔려 있다. 이론・비평의 효용성에 대한 이 같은 의문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것을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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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보할 수 있는 방안과도 직결되는 문제라 할 수 있는] 비평이 시대적 요청에 응답할 수 있는 방법
순히 타 영역에 대한 배타적 태도에 불과한 것이라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일본이나 서구사회에서 이론・비평이 차지하는 위상이나 비중이 우리사회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만 생각해도 알 수 있 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와 같은 부정적 인식을 초래한 원인이 결국 우리 내부에 있다는 사실 을 가리킨다. 이 글의 제목, 「한국건축 비평: 현실진단과 과제」는 이러한 물음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더 나아가 한편으로 작금의 현실에 무엇이 문제인지 먼저 돌아보고, 그에 따른 대응으로 어 떤 목적을 갖고 행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건축계 내부에서도 여전히 깊은 오해를 받고 있는 이론가・비평가의 역할에 대한 소소한 해명이기도 하다. 이론・비평에 대한 부정과 비판은 대개 효용성, 그러니까 쓸모의 문제로 귀착된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데, 첫 번째는 지금까지 우리사회에서 이론・비평으로 수행 된 것들이 결국 ‘쓸모없는 것’으로 인식되었다는 것, 두 번째는 [부정적 인식은 차치하고라도] 이론 ・비평을 단순히 쓸모의 문제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자연스레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첫 번째는 이론・비평의 효용성에 의문을 초래한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고 두 번째 는 이론・비평을 단순히‘쓸모의 문제’로 평가하는 태도가 타당한가 하는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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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이론・비평의 위기 우선, 이론・비평이 효용이란 측면에서 이토록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이 던지는 과제는 설령 그와 같은 평가의 바탕에 깔려 있는 실증적인, 그로써 판단 범주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태도를 얼마간 핑계 삼는다 하더라도, “그런 것이 없어도…(된다)”라는 식으로 치닫는 부정적 반응에 대해서 한국 건축비평계는 깊이 숙고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실증주의적 입장에서 이론・비평의 역할을 평가하는 태도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와 같은 주장 속에는, 적어 도 이론・비평이 갖고 있는 한계를 짚어볼 수 있는 단초가 있다. 이를 테면, 이론・비평이 객관성 이 결여된 주관적 판단행위에 머물렀던 것, 그로써 어떠한 검증가능성도 논증의 확실성도 없는 발 언들을 양산해냈던 것, 그리고 (통찰이 결여된 이론은) ‘지금-여기’라는 현실 문제를 외면하고 현 학적인 태도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것 등등이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단순히 건축 내부의 문제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사회 전반에서 건축이 지녔던 입지를 스스로 축소하는 결과로 이어 졌다는 데 있다. 건축 비평이 위기에 처한,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해 스스로 위기를 자초한 원인은 무엇일까? 첫 번째 원인은 주관적 취미판단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테면, 취향을 근거로 하는 비평, 미식가적인 비평 이 그런 것들인데, 이들 비평이 가진 공통적인 특성은 엄격한 비평규범을 갖추거나 명료한 개념을 바탕으로 하기보다 건축가의 기질이나 개성, 그리고 독창성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방식이 무비판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김수근, 김중업 이후 한국 건축의 주류건축가들이 취해왔던 태도주1와 결코 무관치 않다. 말하자면 그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동원했던 〈건축예술가론〉은, 순수예술이나 순수문학이 그랬듯, 비평을 “그저 그런 설명으로” 전락시키는 결 송종열 | 와이드AR 건축비평상
과로 이어졌다. 이를 테면, 문학이 자율적인 개체로 다루어지면서 문학작품마다 자체의 유기적 성 격을 지니고 있다는 관념이 현실에 개입하고자 하는 모든 비평을 초토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작 가로서의 건축가론은 건축비평의 지반을 약화시켰던 것이다. 이런 비평태도는 벤야민Walter Benjamin 이‘가짜비평’주2이라 규정했던 것과 성격을 같이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건축이 건축가의 순수한 창작물이라는 인식은 건축(작품)은 분석대상이 아니라는 인식과 연관되어 있다. 또 그러한 사고를 갖춘 이들이 수행하는 건축비평은 반성을 거친 전략적 강령 대신 주관적 취미판단을 바탕 으로 한 것일 수밖에 없고, 그로써 “작품의 판단방식이나 기준이 독단적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주3 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된다. 문제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미적취향과 개인적인 요소를 벗어 나지 못하는 비평 방식은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비평만 을 양산해 낸다는 사실이다. 그로써 비평은 공적인 설 득력을 잃고 내부에서만 맴돌다, 의미를 부여할 만한
주1.
어떤 것도 생산하지 못한 채 결국 폐기되고 마는 양상
이들 중 상당수는 학자연하는 태도를 취했고, 비평가의 역할을 자임
을 되풀이 해왔던 것이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처럼 (주관적) 취미판단 을 바탕으로 하는 비평이 갖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극 복할 수 있을지, 간단하게나마 여기서, 그 방법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일차적으로는 비평의 토대를 약 화시켜왔던 요인을 피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말 하자면 미적 취향과 개인적 요소를 자제하고, 나름의 비평규범을 갖추고 명료한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비평 을 수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그렇게 수행된 비평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다시 검증하는 ‘비평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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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도 했다. 게다가 서로 얽혀있는 인맥관계로 인해, 이른바 ‘주례 비평’이 많았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주2. 벤야민이 1930년대 초 《위기와 비평(Krise und Kritik)》이란 제목의 잡지를 구상하면서 남겼던 '가짜 비평'이라는 제목의 메모에는 부르 주아 비평이“별난 인물, 기질, 독창성, 개성”에 대한 욕망에 봉사한 다고 적혀 있다. Walter Benjamin, Gesammelte Schriften, Ed. Rolf Tiedemann & Hermann Schweppenhäuser. Frankfurt: Suhrkamp, 1974, Vol Ⅵ, 참조. 주3. 이종건,「건축 작품과 판단」, 《건축평단》, 2015년 가을호, p.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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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비평 역시 비판대상(혹은 비판적 탐구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는 말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주례비평과 같은 가짜 비평을 걸러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비평 이 사회적으로 공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역사·이론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를 돌이켜보면, 비평에 대한 불신 못지않게 부정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인식은, 무엇보다 역사·이론이 (지금-여기에서) ‘현실적-실천적 대안’ 을 제시하지 못하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간혹‘뜬구름 잡는다’는 비아냥을 듣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처럼 이론가/역사가들이 (현실개선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뜬구름 잡듯) 현학적 태도로 일관한다든가 심지어 지적유희에만 매몰되어 있다는 비난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적으로 말해, 이는 이론적 자기성찰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말하자면 이론과 방법론의 부재, 그리고 통찰이 결여된 상태를 은폐하려는 태도와도 무관치 않다. 그 같은 태도는 직면한 문제에 대해 대안을 내놓기는커녕, 현실로부터 점점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는 상황 에 몰릴 수밖에 없고, 그것이 결국‘공허한 말무덤’이라는 비난을 자초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것 이다. 흔히 말하듯, 지식보부상에게 쏟아지는 비난도 그 원인을 따져보면 이와 다를 게 없다. 그렇다면, 역사·이론에 관여하는 이들은“이론적 성찰이 어떻게 실천적으로 적용가능한지”검토해 야 마땅하지 않은가? 이런 반성적 실천을 통해서만, 역사· 이론이 현실과의 접점을 넓힐 수 있고, 현실에 유의미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으며, 그로써 사회 안에서 스스로 존재이유를 확보하는 기반 을 마련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 까닭에, 이 분야의 연구자들이 실무영역을 접할 수 있는 기회 가 설령 부족하다해도, (현실구축이라는) 구체적인 영역으로의 넘나들기를 끊임없이 시도해야 마 땅하다. 이번 논의와 관련해 이러한 태도와 관심, 그리고 우리 건축의 현실을 한꺼번에 숙고해 볼 겠다. 그것은 리차드 세넷Richard Sennett이 제시했던 물질 의식material consciousness주4이라는 표현인데, 그가 말하고 자 하는 요지는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를 통해 (혹은
주4. Richard Sennett, 『The Craftsman』 (New Haven: Yale
그 도구를 갖고) 물질의식을 배양하자는 것이다. 우리
University Press, 2008). pp. 84-85
는 이 용어를 ‘물질과의 접촉을 통해 (혹은 물질을 만 짐으로써) 획득하게 되는 의식’ 정도로 이해할 수 있 을 것이다. 혹자는 여기서 『미디어의 이해』에서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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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는 의미 있는 용어를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야 하
(혹은 도구)를 인간 확장의 원리로 제시했던, 맥루한 Marshall McLuhan의
주장을 얼핏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
다. 세넷이 말하는 도구tools 역시 그러한 측면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번 논의와 관련해 우리 가 집중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물질의식〉이란 용어는‘사유와 실천적 도구의 연계’를 말한다는 점 이다. 기예craft가 사유thinking와 제작making을 통합하는 유용한 방법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세 넷의 주장 역시 그와 같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이 용어가 주는 아이 러니한 성격은 사유와 실천적 도구의 ‘연계’를 주장하는 만큼, 실상 (그와 같은 연계를 주장해야 할 정도로) [건축행위가 이루어지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사유 와 제작의 분리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문제는 그 둘의 간극이 여전히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이 문제라는 것을 누구라도 인지하고 있고,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역 사·이론이나 비평 그리고 실천적 구축행위가 어떤 식으로든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서 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상황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심지어 무관심(?)으로 비칠 만큼, 각 분야에 대한 ‘상호 무간섭’이라는 암묵적 동의는 그와 같은 간극을 결코 메울 수 없을 것이 라 보는 일종의 체념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런 담쌓기를 통해서 적어도 자신의 밥그릇만은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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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이기적 발상이 작동한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물질 의식〉이란 용어를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그것이 한편으로 우리 건축계의 벌어진 틈을 새삼 상기시 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로써 그 간극을 메우는 방법도 암시한다는 점 때문이다. 이를 테면, 물질의식이란 용어를 통해, 우리는 역사·이론 연구자들이 자칫 빠져들기 쉬운 현실단 절의 유혹을 경계하고, 이론적 성찰을 통해 실천적으로 적용가능한 방식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 도록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논박論駁없는 사회 역사·이론과 비평 영역에서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일들, 그러니까 허술한 담론과 그 안에서 벌 어지는 지적사기 그리고 되풀이되는 서열화! 이 모든 부정적 상황을 초래하는 원인은 다름 아닌 비 판적 수용태도의 결여, 곧 ‘논박論駁의 부재’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논박은, 포퍼K. Popper가 『추측과 논박Conjectures and Refutations』에서 과학적 발견의 논리로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을 든 바 있는, 정확히 그런 의미에서의 논박이다. 간단히 언급하자면, 그가 말한 과학(혹은 지식)의 방법론적 규칙은 “반 증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론은 늘 (어떤 문제에 대한 일시적 인 해결로서의) 잠정적인 이론tentative theory에 해당하고, 이 이론 역시 반증이라는 비판과정을 수용 해야 한다. 이때의 비판은 다름 아닌 오류를 제거하는error elimination 과정이다. 그로써 잠정적인 이론 은 (반박될 경우) 비판적으로 수정되면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과학은 시 행착오, 즉 ‘추측과 논박’을 통해서 진보하며 오직 끊임없는 반박을 잘 견뎌내는 이론만이 살아남 을 수 있다는 게 포퍼의 주장이다. 요컨대 논박의 부재는 곧 그러한 과정의 부재인 셈인데, 이것이 송종열 | 와이드AR 건축비평상
의미하는 바는 결국 그러한 검증의 과정이나 장치를 갖추지 못한 (지식)사회는 담론이 허술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엉터리 지적보부상들이 벌이는 지적사기를 막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지적평등주의 를 가로막고 고착상태를 유도하는) 서열화를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더구나 문제는 그 정도로 그 치지 않는다. (이론이든 지식사회든) 논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변화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종국에는 화석화된 이론만을 양산하는 사회가 되고, 지식인의 지위란 기 껏해야 세계를 고정시키는 즉물적인 설명만을 내놓는 신세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또 그 런 상황에서는 어떠한 ‘실천적 지식’도 사회를 변화시키는 ‘혁명적 에너지’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극단적으로 말해, 학문의 효용성이 사라지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역사·이론이나 비평이 부정적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 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간략하게 짚어 보았다. 그런데 그와 같은 세간의 평가를 십분 수용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남는 의문이 있다. 물론 이런 의문은, 역사· 이론이나 비평 분야의 관 련자들에게만 전적으로 그 책임을 지울 수 있는 문제인가라는 물음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이를 테면, “철학이니 역사니……” 하는 표현에 깔려 있는 인식 혹은 판단기준이 편향되지 않고 정당한 것일까 하는 물음 말이다. 그 [편향]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우리는 앞의 표현을 단서로 삼고 출발 해 볼 수 있다. 우선, 이러한 표현의 바탕에 깔려 있는 의식 두 가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 번 째는 [철학, 역사· 이론, 비평을 배제하고도 구축행위를 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의] ‘기술적 지식’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깔려 있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영역구분에 대한 의지가 분 명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다. 또 이 두 가지를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연속해서 이끌 어 낼 수 있다. 첫 번째, 〈기술적 지식〉만으로 건축을 총체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가, 두 번째, 건축 내 분과 영역구분이 학제 간interdisciplinary 소통을 가로막는 원인 혹은 걸림돌이 되었 던 것은 아닐까 하는 물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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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지식: 그 환영과 한계 우선〈기술적 지식〉이 갖고 있는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가 무엇인지, 또 그러한 믿음이 건축 전반에 미친 영향은 어떤 것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관심과 인식의 연관성을 규명하는 자리에서, 모든 인식 형태는 인식주체 가 세계에 대해서 갖는 특정한 관심과 결부되어 있는 까닭에 [어떤 사물・사건에 대한] 관심이 없 이는 어떤 형태의 인식도 생겨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또 역사적 삶의 세 가지 측면과 맞물려 인 류가 가질 수밖에 없었던 세 유형의 관심・기술적 관심・실천적 관심・해방적 관심—이 경험 분석 적 과학empirisch-analytische Wissenschaft, 역사 해석적 과학historisch-hermeneutische Wissenschaft, 비판 지향적 과 학kritisch orientierte Wissenschaft과 같은 지식체계로 발전되었다고 밝혔다.주5 하지만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들 지식체계가 균형 있게 발전된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인류는 인간의 자기보존과 관련된〈기술 적 관심〉을 우위에 두고 경험 분석적 과학에 몰입해 왔던 것이다. 이런 경향이 상호주관적 의사소 통이나 참여에 관심을 두는〈실천적 관심〉, 그리고 왜곡된 삶의 조건들에 대한 반성에 관심을 두는 〈해방적 관심〉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하버 마스는 이에 관련된 것들—이를테면, 헤겔과 마르크스에 이르는 유물론적 철학 그리고 기술적 지 식을 이데올로기화하는 과학적 실증주의 같은 것들—을 ‘인식론폐기의 역사적 과정’이라 일컫는 다. 이는 곧 삶에 중요한 나머지 두 측면을 방기放棄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이 과정은 필연적 으로 삶을 대하는 인식 방향을 한쪽으로만 몰아갈 것 이고 이에 따라 각 분야 간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키
주5.
수 있다. 하버마스가 오늘날을 ‘인식비판의 위기시대’
하버마스에 의하면, 기술적 관심(technische Interesse)은 자연을
주6라
지배하고 노동을 통한 물질적 기초를 재생산하려는 데서,
심을 가져야 할 것은 ‘불균형을 초래했다’주7는 사실
실천적 관심'(praktische Interesse)은 상호주관적 의사소통에의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우리가 관
참여의지에서, 그리고 해방적 관심(emanzipatorische Interesse)은
자체가 아니라 “그런 불균형이 어떤 영향을 초래했는
왜곡된 삶의 조건에 대한 반성과 비판, 그러니까 지배와
가?”라는 물음에 있다. 또 그러한 불균형이 건축분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율적인 삶을 추구하려는 데서 비롯된다.
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났는지 물을 수 있는데, 이와
주6.
관련해 실무건축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로 자신들
하버마스는 『인식과 관심(Erkenntnis und Interesse)』이란 책에서,
의 태도를 정당화하려는 근거로 활용했던 실증주의
인식과 관심의 연관성을 규명하는 작업을 통해, 인식론의 과업이 진정 무엇이어야 하는지 최초로 보여준 칸트의 비판 과업을
positivism의
회복시키고자 했다. 그에 따르면 인식 비판의 참된 의도는 인간의
왜냐하면 하버마스가 “인식론의 종말을 특징짓는 명
자유와 성숙(Mundigkeit)을 가로막는 사회의 지배 체계와 이것을 인식적으로 정당화하는‘이데올로기로서의 과학’에 대한 비판에
성격을 세밀하게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칭”이라 특정할 만큼, 실용주의는 근대 과학이 수행했
있다. 또 이런 연관성을 분석함으로써 그가 주장하려는 바는,
던 방법론을 정당화하는 데 몰두했고, 또 그 장점만큼
인식적 관심(Erkenntnisinteresse)이란 용어에서 잘 드러나 있듯,
이나〈기술적 관심〉에 우위를 둔 인식행위가 갖고 있는
인식 비판은 오로지 사회이론(Gesellschaftstheorie)으로써만, 그러니까 인간의 삶 속에 뿌리를 박고 있는 인식의 조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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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짐작할
한계점을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드러냄으로써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인식론 폐기(Aufhebung der Erkenntnistheorie)의 역사적 과정을 고찰함으로써 인식비판의 위기가 어떻게 도래했는지를 보여준다.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는 실증적positiv이란 용어와 더불어 확실성, 정확성, 유용성 등을 형이상학과 구
주7. 불균형을 초래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과정을] 무조건 비난하는
별되는 과학적 지식의 성격으로 제시했다. 이런 성격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불균형이 인류의 발전과 이익에
은 도구적 행위체계, 그러니까 삶의 외적 조건을 통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그것은 타당하고 선한 것으로 오히려
제하는 데 이용되는 활동체계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
추구해야 마땅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선이 악에 비해 압도적인 우세를 보인다고 가정해 보자. 이럴 경우에는 불균형이란 말이 오히려 긍정적인 의미로 작용한다.
는데, 이것은 기술적 관심, 말하자면 인간의 삶 가운 데 '반복적이면서도 효율성을 미덕으로 여기는'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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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명령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이런 특성이야말로 실증적 태도가 갖는 장점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이번 논의와 관련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특징은 따로 있다. 첫 번째, 실 증적 과학은 인식과 인식 주체의 연관성에 대한 물음을 배제한다는 것주8이고, 두 번째는 인식대상 에 대한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이 두 가지 특성만 보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삶에 관한 인식의 지평을 얼마나 축소 시켰는지 대번에 알 수 있다. 과학이론에서, 확실성・정확성・객관성과 같은 특성들을 확보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예 측 불가능한] 유동적 요인을 최소화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주체의 개입을 배제한 것도 이를 위한 조치들 중 하나겠지만, 이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기술관료적 의식을 강화할 뿐 아니라 루카치Georg Lukács가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말한 바 있는 사물화Verdinglichung주9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게 문
제다. 더구나 객관적 사실들과 더불어 세계 구성에 대단히 큰 부분을 차지하는 주관적 사실들—주 로 감각경험에 의해 주어지는 사실들—을 인식의 범주에서 제외시켜 버리는 결정적인 한계를 지니 고 있다. 인식대상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태도는 이런 특성들과 결코 무관치 않 다. 이것은 곧 시의성Gelegenheit주10에 관련된 물음이기도 한데, 이를테면 “현실을 어떻게 포착할 것 인가?”하는 물음이 그렇다. 여기서 우리는 [이 논의와 관련해] “실증적 태도는 이러한 물음에 어떤 식으로 접근할까” 재차 물을 수 있다. 이 두 번째 물음 은 기술적 관심에 우위를 둔 실증적 태도가 갖는 한계 를 또 한 번 드러낸다. 실증적 지식은 현실에 대한 설 명Erklarung을 구할 뿐 사회적・역사적 삶의 의미를 이 해Verstehen하려 하지 않는다는 한계 말이다. 우리는 간 혹 ‘객관적 설명’이란 말을 ‘가치중립적’이란 의미와 혼 동하여 사용하곤 하는데, 이 말은 일종의
수사修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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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현실을 중립적으로 본다는 것은……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없다는 것”주11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실이 현상하는 바, 보이는 모습들이 진실을 담보하
예외적으로 주제설정이나 과학 이론의 구성과 검사의 규칙들에 대한 방법론적 물음의 단계에서 인식주체가 개입하기는 한다. 주9. 게오르크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Geschichte und Klassenbeßustsein)』박정호·조만영 옮김, 거름. 참조 주10.
지는 않는다. 현실을‘표면적으로 기술하는’정도로 그쳐
시의성이란 말의 본질적 의미는 삶의 의미를 적극적으로’다시 물을
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밖에 없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에 있다. 주11.
기술적 관심에 편중된 인식태도는, 오늘날 새삼스러 울 것도 없다. 알튀세르Louis Althuser가 ‘직접 본다는 것
루카치는 자연주의(Naturalism)를 대표하는 에밀 졸라(Émile Zola)의 소설 『테레즈 라캥(Therese Raquin)』(1867)을 비판하는 글에서 “(자연주의는 사실주의와 아무런 상관도 없으며)
의 거울환상’이라고 표현한 바 있는 이런 태도는 오랫
주체의 개입 없이 현실을 중립적으로 본다는 것은 현실에 대해
동안 실무건축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쉽게 범하는 오류
어떠한 비판의식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 이를테면 현장에서만 확인 가능한 지식에 대한 맹
자연주의적 관점이야 말로 착취와 억압의 흔적을 교묘하게 없애는
목적인 믿음이 그런 것인데, 그와 같은 믿음이 “[철학 이니 역사니 하는 이론이나 비평 따위...?] 그런 것 없
그가 보기에 주체와 상관없이 객관적 현실을 묘사하고자 하는 부르주아지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객관적 현실이라 말하는] 현실의 겉모습이 아니라 ‘현실 속에 은폐된 진짜 현실의 모습’을 들추어 드러내 보이는 것이야 말로
이도 잘 지내왔다”라는 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실주의(리얼리즘, realism)'이라고 주장했던
런 사고는 비판행위 자체를 비생산적인 것으로 간주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주12 게다가 이런 태도나 인식이 건축 학도를 길러
주12.
내는 교육 현장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크
“칸트의 [저술에서 드러나는] 비판개념은…단지 판단만하고
게 개의치 않는 모양새다. 말하자면 교수진의 구성에
생산적이지 않은 정신적 태도라는 의미와는 무관하다. ‘비판적’이라는 어휘는 오히려 생산적이며 창조적이라는 의미를
서 보이는 실무와 이론의 심한 불균형이 이런 인식을
지닌다. “『Walter Benjamin Gesammelte Schriften』, ed. Rolf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인식 속에는, 과거에 건축
Tiedemann, Hermanan Schweppenhäuser, Frankfurt a. M. 1972,
이 지녔던 “으뜸-테크네ἀ ρχή-τέχνη)[arch(e)-techne)” 로서의 지위와 (진리를 드러내는) 탈은폐(ἀλήθεια) [Aletheia])로서의 계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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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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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기술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실무능력을 타 분 주13.
과와의 관계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확정하는 배타적
여기서는 비트루비우스(Marcus Vitruvius Pollio)의 『건축
직능職能으로 보는 시각만 있을 뿐이다.주13 더구나 실
십서(De architectura libri decem)』나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의 『건축론(De re aedificatoria )』이 제안하는 전인적(全人的) 건축가상은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다.
무지향적인 태도는, 읽고 쓰는 행위에 기반한 지식 생산을 통한 비판적 실천을 고무하는 대신, [설계라 는] 물리적 구축의 현실감각과 테크닉만을 장려해왔 다. 이런 경향들이 결코 말하지 않은 진실은, 실무 이 외의 다른 쪽을 거의 내팽개침으로써, 건축이‘스스로 입지를 좁혀왔다’는 것과 건축계내의 권력구성이 자 본의 창출과 이익에 귀착되는‘특정지식만을 반복 생
산하도록 조직 되어있다’는 점이다. 이런 행태가 타 분야와의 담론 공간에서 건축이 힘을 쓰지 못 하게 된 이유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 [불균형을 고착시키는] 상황은 하버마스가 주 장한 인식론 폐기과정과 그 궤軌를 같이 하는데,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그가 이 과정을 “인식주체가 자기반성Selbstreflexion 능력을 잃어버리는 과정”이라 적시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구축 문제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식주체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된 문제인 까닭 에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되는 문제다. 지금까지 논의를 통해 〈기술적 지식〉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는 태도는 결국 인식비판의 위기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그와 같은 태도는 주체의 연관성에 대한 물음을 배제하고 역사 적·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사물화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을 뿐 아 니라 현실포착과 같은 시의성에 관련된 물음을 소홀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밝혔다. 더구 야 마땅한 사항인데, 그러한 태도는 결국 삶에 대한 물음을 배제한 건축을 상정하는 것이나 다름없 기 때문이다. 그로써 건축이 인간의 삶에 관여하는 방식에도 총체적인 의문을 가할 수밖에 없는 상 황이 벌어진다. 이 같은 상황이라면, 오늘날, 과거 건축이 지녔던 〈으뜸-테크네〉로서의 지위와 탈 은폐로서의 계기를 다시 회복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헛된 기획이 되고 말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 을 내놓지 않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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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실증적 태도가 〈삶에 대한 이해〉와 같은 물음을 빠뜨린다는 사실은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고려해
배타적 직능과 부메랑 효과 건축가의 지위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때, “실무능력을 (스스로의 존재를 확정하는) 배타적 직능으 로 보는 시각”은 오늘날 정보사회에 이르러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과 거에는 건축가의 독자적인 능력에 의존해 건물을 설계하던 방식이 대부분이었고, 그로써 건축가 는 독점적 지위를 어려움 없이 누릴 수 있었던 반면, 오늘날은 상황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를 테면, 누구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많은 정보와 그러한 정보들을 제공하는 다양한 매체의 발 달로 인해, 건축가는 점차 [주어진 요소들을 단순히 조합하는] 코디네이터로 전락할 처지에 놓이 게 된 것이 그렇다. 말하자면 그러한 지식을 정보나 매체를 통해 해결하게 됨으로써, 한 때 건축가 의 지위를 확정하는 토대로 삼았던 ‘배타적 직능’이라는 유일한 무기가 이젠 더 이상 그 구실을 하 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은 어찌 보면 역설적인데, 만약 실무자들이 〈기술적 지식〉에만 매달 리지 않았다면, 이런 상황이 닥치더라도 건축가의 지위가 이처럼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은 지금보다 훨씬 낮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한때 배타적 직능이라 여겼던 지식이 결국 건축가의 지위 를 흔드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사실상 그 어느 때보다, 건축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또 건 축가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심각하게 숙고해야 하는 일이 새로운 숙제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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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앞서 언급했듯,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건축의 입지가 좁아진 원인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 다. 이를 테면, 한때 TV 드라마에서는 건축가를 설계사라 불렸던 적이 있다. 건축계는 이를 두고 문 화적 몰상식이라 힐난했지만, 이는 건축인들이“스스로 입지를 좁혀 왔던”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 니까 실무분야에서 지식생산을 통한 사회적 개입과 비판적 실천을 ‘지속적으로’ 외면한 결과인 셈 이다. 이것은 건축가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실무능력만을 강조하 는 건축가를 설계사라 칭하는 것은 오히려 적확한 표현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소위, 건축가를‘대접 하지 않는’사회· 문화적 수준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왜 그와 같은 현상이 생겼는지 반성하는 태 도가 우선되어야 한다. 사태가 이런데도 건축 분과들 간의 생산적 관계를 도모하려는 움직임은 미 미하다. 비록 건축 내 분과의 영역구분은 연구범위를 구체적으로 확정하고 깊이 있는 연구를 위한 조치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학제 간 소통에 얼마간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 다. 그럼에도 그러한 담쌓기가 자기 영역, 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구실로 삼았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마땅하다.
건축가는 지식인인가? 간혹 들을 수 있는 물음 중 하나는 “건축가는 지식인인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건축가의 사회적 지 위를 묻는 것이지만, 우리 현실을 돌아보면 그런 물음 자체가 우스꽝스럽게 들리기도 한다. 왜냐 하면 건축은 지극히 구체적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현실문제에 대해서 거의 침묵 하기 때문이다. 건축가가 지식인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따지기에 앞서, (이 시대에 맞는) “지식인은 송종열 | 와이드AR 건축비평상
어떠해야 하는가?”를 물을 수 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인은 무엇보다 비판적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관심과 사회현실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갖고 있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관심interest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이고 책임responsibility을 다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오늘날 관심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interest의 라틴어 어원 인 inter-esse는 사이between를 뜻하는‘inter-’와 존재to be를 뜻하는‘esse’가 결합된 말이다. 이 단어 는 명사로 이해관계to concern, 차이to make a difference, 중요한 것to be of importance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 는데, 이를 종합적으로 풀어내면 이렇다. 관심interest이란“존재[자]들 사이에서” 생겨나는‘이해관계 에 얽힌’것으로 ‘차이 혹은 다름을 인식하는’행위이자 존재자에게‘중요한 무엇’이 되도록 이끄는 것이다. 또 책임은 [존재자들 사이에서, inter-esse]‘관심과 열의를 보이거나 호응하는responsive’것 과 관련된 것으로 이 말의 어원인 라틴어 responsum 과 respondere는 각각 대답an answer과 응답하는 행위to response를
뜻했다. 그러니 책임은 흔히 이해하듯 ‘떠안
아야 할’임무나 의무를 말하기에 앞서‘응답하는 능력’ 을 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주14.
서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유감스럽게
촘스키는 『민주주의 교육(Democracy Education)』에서, “지식인
도 거기에 대한 답은 긍정적이지 않다. 지금 상황을 단 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들은 존재들 틈에서…[부조리 한 사회에] 관심을 갖고 인식을 일깨울 수 있을 만한 응답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촘스키Noam Chomsky 가
우려한 바대로주14, 특정 자본・문화・정치
권력의 입장을 대변하는 확성기가 되겠다고 자처하기 까지 한다. 문제는 이들의 역할이 어떤 집단이 설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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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진실과 정의에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그 효율적인 행사에만 헌신한다.”고 질타했다. 촘스키(Noam Chomsky), 사상의 향연: 언어와 교육 그리고 미디어와 민주주의를 말하다, C. P. 오테로 엮음, 이종인 옮김, 시대의 창. 2007. p. 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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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 안에서 [사회적 이슈를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거짓조화를 말함으로써] 사회 현실을 왜곡되게 전하고 해석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그들은 겉치레뿐인 반대나 가짜 논의—전시용 토론—를 통해 정작 있어야 할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토론이나 생산적인 논의 기회를 가로막으며, 대중심리를 교묘하게 통제하려 든다는 말이다. 지식인의 책무는 [부당한] 현실에 응답하는 것이다. 이 것은 현실개입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금-여기Jetztzeit에
주15.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Thesen über Feuerbach〉에서, “지금껏
서, 현실을 해석Interpretationen der Wirklichkeit하고 무엇을 해
철학은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야 하는지를 비판적으로 묻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것
것”이라고 했던 마르크스의 주장은 실천을 촉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은 지식인의 역할이 단순히 현실을 설명하는 차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주15 이를테면, 사
주16. 이 용어는 '모든'이라는 뜻의 πᾶν[pan, "all"]과 "입 밖에 내다"
회현실을 외면하고 문제를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억
ῥῆσις [rhesis]/ ῥῆμα "utterance, speech"가 결합되어 문자 그대로 '모든
압적 권력과 무지無知의 관성에 맞서 불편한 진실에 이
것을 말하기'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푸코(M. Foucault)에 따르면,
의를 제기하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회의
소크라테스가 이‘파르헤지아’라는 개념을 확장・발전 시켰고, 그로써 파르헤지아는 민회와 법정에서 실천되는 정치적 미덕에서
문제를 덮고 거짓된 조화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
개인들 사이에서 실천되는 ‘도덕적 미덕’으로 변모한 것이라 한다.
실에 대한 명료한 이해를 바탕으로 급진적 문제를 형 태화하는 것이 바로 지식인의 역할이다. 따라서 지식
용산, 남영동 대공분실(현재는 경찰청 소속 인권센터)을 떠올려
인은 ‘진실로...모든 것을 말하고’ [타자와의 대면에 앞
보자. 한국 최고의 건축가라 추앙받는 김수근이 설계한 건물이다.
서] 자기 자신과 싸우는 존재여야 한다. 그 본질은 ‘스
반인권적, 그리고 개발독재정권의 '한국기술개발공사'의 대표이사였던 인물에 대한 공과를 새로이 평가하는 것은
스로를 진실과 대면케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런 행
차치하더라도, 그를 결코 지식인이라 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한
위는 무엇보다 용기를 필요로 한다. 중국의 저항시인
사실이다.
베이따오(北島, 본명 趙振開)는 문화혁명(1966-1976) 을 겪은 뒤 그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들의 대응방식을 이렇게 묘사했다. “비겁함은 비겁한 자의 통행증, 고상 함은 고상한 자의 묘비명”이라고. 철저히 억압당했던 시대에 대한 시인의 평가가 이국땅, 다른 시간대에 와 서도 전혀 낯설지 않은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지식인 으로서 아무 탈 없이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필시 어느 정도 비겁함을 안고 살아가는 것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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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7.
터이다. 이렇듯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스스로를 과감 히 드러내는 일이면서, 스스로 박탈당할 처지에 놓일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이다. 푸코의 말에 따르 면, 자신이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을 처벌이나 후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행위가 바로 파르헤지아(παρρησία)주16다. 말하자면, 파르헤지아 속에서 화자는 설득하기가 아니라 솔직 하게 말하기를 선택하며, 거짓이나 침묵이 아니라 진실을 선택하고, 생명과 안전이 아니라 죽음의 위험을 선택하며, 아첨이 아니라 비판을,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도덕적 의무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위험에 맞선] 진실에의 용기는 생각만으로 하는 성찰이 아니라 삶으로 꾸려지는 자기 성찰이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건축가는 지식인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우리 건축이 강압적 현실에 대한 저 항코드였던 적이 있었던가?"라는 질문을 해 볼 수 있다.주17 단언컨대, 그에 대한 답은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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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면서, 〈개입하는 사유〉로서의 비평 지금까지 논의를 통해, 물리적 구축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현실 문제를 외면함으로써, 건축계 스 스로 사회·문화적 입지를 좁혀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사·이론, 비평 그리고 실무건 축 전체가 이런 진단을 비껴갈 수 없는 것이 우리 건축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과 제는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사회문제, 현실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영향력을 발휘하고 결과를 이끌어 내는 실천과 이를 뒷받침하고 새롭게 검토하는 ‘논박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 이다. 다시 말해, 〈개입하는 사유〉를 통해서만 이 무기력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다. 물론 어떤 방식 으로 사유가 개입해야 하는지 혹은 현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은 저마다 다를 수 있 다. 따라서 비평이 화두로 삼아야 할 것은 “사회인식의 전제이자 수단”으로서의 비평이어야 한다. 그로써만 비평이 그 힘을 오롯이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비판 적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거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주18 왜냐하면 개개 인의 사유는 ‘냉담하고……대개 무가치한 것’으로 끝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이 더 가 치 있는 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개입해야 한다. 이를 테면, 여러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며 토론을 펼 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것은 논박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무반성적 판 단기준을 중단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한 장에서 논의되는 모든 것들은 특정 영역에 묶여 있 는 것이 아니라 “횡단적이고, 전위적이며 초월적인 것”이어야 마땅하다. 그로써 비평적 발언이 지 닌 힘을 회복할 수 있고, 〈소비되는 것에서 인식을 전 환(혹은 형성)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레 히트는 문학기술의 개선이 위기의 산물, 즉 순수문학 영역에 들이닥친 위기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송종열 | 와이드AR 건축비평상
산물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와 같은 현상들은 “어 떤 의미에서는 위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를 보여준다는 것인데, 이 논의와 관련해 마지막으로 새 겨야 할 말이 있다. “문학과 예술의 영역에서 새로운 기술이나 구성수단의 형성기준은…언제나 현실과의
주18. 홍성민, 『문화와 아비투스: 부르디외와 유럽정치사상』, 서울: 나남, 2000, 407쪽. 주19. 에르트무트 비치슬라, 윤미애 옮김, 『벤야민과 브레히트』, 파주: 문학동네, 2015, 227-228쪽.
관계다.”주19 건축도 다를 바 없다.
송종열 1970년 부산 생.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이종건 교수 연구실에서 수학. ‘지금-여기’라는 시의성을 잃지 않고 건축 생산이 이루어지는 맥 락을 끊임없이 검토하는 호흡 고르기를 통해, 건축이 어떤 식으로 삶에 관여하고 사회에 대한 비판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깊이 고민하고 있으 며, 현재는 계간 《건축평단》 고정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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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REPORT] 제6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
수상소감
송종열
공론의 장에서는 비평가로서 몇 걸음도 채 내딛지 못한 초심자에게 이번 상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 다. 우선 지금까지 실행해 왔던 작업이 얼마나 유의미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고는 했지 만, 거기에 대한 확신은 늘 안개 속이었다. 더구나 우리 건축계를 비춰볼 때, 그것을 가늠해 볼만한 언덕이 많지 않은 현실은 이 길을 선택하는 것이 실은 꽤나 긴 방황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엄두조차 내기 힘들다는 사실을 이따금씩 상기시켜주곤 했다.
그런 탓에 건축비평은 늘 소수의 몫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그렇게 이루어진 비평이 어떤 식으 로든 비판대상으로 재론 되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어쩌면 그러한 비판[혹은 평가]마저 비평가의 몫 이었던 까닭에, 결국 비평에 대한 비평행위가 쳇바퀴 돌듯, 자기참조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닌 지, 또 그러한 한계가 논박의 기회를 스스로도 조금씩 고사(枯死)시켜 왔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일이다. 어쨌거나 이번 비평상 응모자가 단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은〈비평〉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여 전히 멀리 있다는 것을 또다시 확인시켜 준 셈이다.
흔히, "건축은 한 사회의 문화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라고들 한다. 이러한 전제는 마땅히 다음 과 같은 질문을 호출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테면 "우리 건축계는 그러한 지위에 걸 맞는 역할을 하고 있는가"하는 물음이 그것이다. 안타깝게도 건축계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그다지 긍정적이 지 않다. (단평론)「한국 건축비평의 무기력성: 현실진단과 과제」는 비평의 무기력성뿐만 아니라 사 회와 문화영역에서 건축의 위상이 위축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재고(再考)한 글이다. 필자는 이 글의 결론부에서 〈개입하는 사유〉를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현실개입〉을 요청하였다.
〈개입하는 사유〉란 말은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 첫 번째는 비평가의 임 무를 대체로 "지성의 사심 없는 발휘"라든가 "예술작품에 대한 설명과 취향교정"(T. S. Eliot, 「The Function of Criticism」, 1923)으로 보았던 기존의 시각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벤야민 (Walter Benjamin)이 <비평가의 테크닉에 관한 13가지 테제>의 첫 번째 테제에서 비평가를 "[문학] 투쟁의 전략가"로 규정했던 바와 마찬가지로, 비평의 임무는 문화를 전파하고 해석하는 '전술적 역할' 을 수행하는데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건축[비평]이 사회와 문화영역에 깊숙이 개 입하기 위해 요구되는 비평은“사회인식의 전제이자 수단으로서의 비평”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현실성에 대한 탐구〉는, 현실변화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과 무관치 않은 까닭에, 기존의 틀을 새 롭게 서술하는 것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과정에서, 비평가의 입장은 끊임없이 적응하고 반 응하고 진화해 갈 것이다. 또 그러기 위해서 비평가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예리한 감성과 논쟁적 기 술, 그리고 중요한 영역을 포착하고 열어젖히는 능력이다. 말하자면 이런 것들은 비평이 일종의 〈개 입하는 사유〉로서, 어떻게 사회적으로, 지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 비평가의 책무가 무 엇인지를 묻는 과정을 통해 드러난다. 따라서 비평행위는 답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라기보다 우리에게 던지는 일종의 질문이다. 요컨대 새로운 언어로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과 문제가 무엇인지 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작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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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EDGE
격하게 추천하는 병신년의 탐독서
전진삼 | EDGE
『원정수·지순 구술집』마티, 건축 장편소설 『건축의 덫』정예씨
요사이 건축의 글쓰기가 다양한 형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목천건축아카이브 운영위원들이 주축이 되 어 생산해내는 한국현대건축가 구술집은 대표적이다. 지난해 말 다섯 번째 책으로 『원정수·지순 구 술집』(채록연구자 최원준, 배형민)이 발간되어 중·대형 건축사무소 조직을 이끌었던 대표 건축가 (김정식, 윤승중)와 원로 건축학자(안영배)와 4.3그룹 구성원 건축가들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증언록 이 구비되었다. 박춘명, 송민구, 엄덕문, 이광노, 장기인 구술채록집이 국립문화예술자료관에서 발간 되었으므로 그것까지 치면 한국현대건축 초창기 지형을 이해하는 데에 큰 무리가 없을 정도다. 한 권 의 구술집을 탄생시키기까지 3~5인의 채록연구(관련)자가 1년 이상의 시간을 구술자와 만나, 대화 하고, 자료들을 살피고, 구술자의 진술을 정리하고, 교정 및 윤문 작업을 거치면서 1차 자료로 완성시 키는 작업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시간과 비용을 담보로 하는 이 작업에 구술자와 채록자 모두 사명감과 열정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을 터다. 그런 면에서 목천김정식문화재 단이 해온 구술집 출간의 기획과 실행은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한국현대건축의 미래를 풍요롭게 만 드는 선도적 행위로 훗날에 더더욱 크게 평가받아 마땅한 일이다. 금번 『원정수·지순 구술집』은 앞서의 구술집들과 함께 동시대의 건축 사건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구술집의 특성이 구술자 개개인의 성향을 반영할 수밖에 없기에 다소 구술자 개인의 활동사항이 과장되어 드러내는 폐단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이다. 이야기 구조가 사실만을 지향한다하더라도 한 시대를 산 어느 개인의 기억은 사실과 허구가 적 당히 버무려진 삶의 총체로 드러나는 것이 자연스런 까닭이다. 이번 책이 건축 무림의 고수들이 벌이 는 무협지의 일단처럼 다가오는 느낌은 그런데서 연유하는 것이라 치면 건축 책 글쓰기의 지난한 방 식에 함몰되어 있던 학자, 연구자들에게는 곁눈질로라도 청량감을 나눠가질 수 있는 가치가 이 책 전 반에 흐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 이번 구술집에서 특히 그런 느낌이 크게 다가온 것일까?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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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이 구술채록의 생생한 시간대 위주로 짜여진 사전 이야기 전개 골격(각본)에 의해 기록, 전달 한다는 기준이 강했던 종전의 편집구성 방식에서 벗어나 구술자 두 분의 이야기들을 ‘시대와 세부주 제별로 재조합하는 (편집)과정을 통해 독자의 읽기 편의성’을 증대했다는 채록자 최원준(숭실대, 건 축학)교수의 변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구술채록집의 속성상 이미 내뱉은 이야기는 수정할 수 없다는 글쓰기의 원칙에 유연성을 가지고 접근한 것이 이번 책을 돋보이게 한 비결이 되었다. 구술자 두 분의 기억력이 (또는 개인 사정에 의해 동반 구술이 불가한 경우를 포함하여) 상호보완체계를 지님으로써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할지라도 향후 구술채록의 방법론으로 적절한 가치부여가 이뤄지면 좋을 것이다. 건축 비평가로 활약상이 큰 이종건(경기대 대학원, 건축학)교수가 환갑을 지나며 첫 번째 건축 장편 소설 『건축의 덫』을 출간했다. 이제껏 국내 출판시장에서 건축소설이란 소타이틀을 걸고 나온 책으론 손가락을 꼽을 만하다. 그것도 현역 건축 비평가이자 대학교수로서는 초유의 일이다. 건축인의 숙명 때문이었겠지만 소설책 제목에 ‘건축’이 드러나 있다. 첫 번째 소설책치고는 인물의 설정, 사건의 전 개방식, 핫이슈 등등에 치밀함이 묻어난다. 글의 호흡은 저자의 평소 글쓰기 스타일과 달리 단문 기조 로 독회의 속도감을 만끽할 수 있고, 의사 전달력이 힘을 갖추고 있다. 건축 비평 글쓰기의 또 다른 방 편으로도 읽히는 이 소설책은 저자가 평문에 담아내지 못하는 현실 기반한 상상의 세계를 유감없이 다룸으로써 현장의 생생함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반면에 사건상황을 구축하고 전달하는 데에 온 신 경을 쓴 탓에 저자의 트레이드마크인 장광설과 비평가로서의 독설을 기억하는 독자들에게는 자칫 싱 거운 대사, 가벼운 장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의 반복 등으로 등을 돌릴 수도 있을 터다. 그러나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만나고자 하는 독자층은 건축세계의 바깥을 겨냥하고 있기에 그들의 세계에선 전혀 다 른 이야기가 된다. 축공부의 배경, 인간관계, 건축사건, 그리고 비평행위를 통해 정리된 건축과 사회에 대한 숱한 가치들 이 책이란 가상의 공간 안에서 부딪히고, 나름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짜여 있다. 특히 근년 에 장안의 화제가 된 서울시신청사를 대상으로 설계공모의 전개과정을 사건의 주 배경으로 놓고 대 형 프로젝트를 둘러싼 설계조직과 구성원 간, 그리고 프로젝트 주변인들을 둘러싼 모순된 상황을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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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통상의 자전적 소설류가 그러하듯 저자 주변의 상황을 매개로 한 내용을 구성요소로 한다. 건
요하게 추적해 들어감으로써 비평문에 담기엔 부담스러웠을 건축판의 이야기를 독자들의 눈을 통해 각인시키고 있는 것은 이것이 소설책의 형식성을 품고 세상에 등장하게 된 배경으로 읽힌다. 앞서의 건축가 구술집과 건축 장편소설이라는 일상적이지 않은 기록의 방식이 건축 콘텐츠에 다가서 는 글쓰기의 진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처한 상황을 겹쳐놓고 보건대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건축역사이론가들이 구술채록을 하며 부딪혔을 구술 사실의 진정성 판단에 따른 전문가로서의 회의 감, 대학교수이며 건축 비평가가 들이댄 소설의 형식성에 따라붙는 천박주의에의 비난. 적어도 이러 한 시시비비를 각각의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그들이 감수했을 때라야 만이 새로운 글쓰기의 방편이 우리 건축사회를 건강하게 받쳐주는 또 다른 버전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고 믿는 까닭이다. 그런 면에 서 목천건축아카이브 운영위원들(배형민, 전봉희, 우동선, 최원준, 김미현)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건축 비평가 이종건의 남의 눈 의식하지 않고 글쟁이로서의 할 일을 하고 마는 두둑한 배짱에 절로 고 개가 숙여진다. 개인적으론 저들의 수고가 널리 공유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책읽기를 거부하는 일반 사회풍토, 건축계는 얼마나 다른가? 역사는 역사쟁이들만의 전유물이고, 책은 글쟁이들끼리만 소통하는 도구라는 등식은 얼마나 잘못된 인식의 결과물인가. 한국건축의 현재와 당면하여 죽기 살 기로 생존을 탐하고, 미래와 대면하여 행동하기는 접어둔 채 대책 없는 준비만 연호하는 건축인들 모 두에게 이 두 개의 서로 다른 형식성의 책은 올 한 해 탐독 1순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전진삼(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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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건축평단이 아니다
2016 건축평단 특집│봄 건축의 힘│여름 건축의 이론과 실천│가을 건축의 허상│겨울 도시의 실상 건축평단은 정기구독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070-4067-8952 jeongye-c-publishers.com
WIDE건축영화공부방 2016년 《WIDE건축영화공부방》(시즌 5)는 ‘ARCHITECT’을 키워드로 프로그램을 운용합니다.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 일정과 참여 방법을 확인 바랍니다.
제24차 상영작: 노먼 포스터- 건축의 무게(2010) 감독
카를로스 카르카스, 노르베르토 로페스 아마도
개관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1935~)에 대한 다큐멘 터리 영화 홍콩 상하이 뱅크, 베이징 공항,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 거 킨 빌딩 등 전 세계 중요한 건물들을 설계한 노먼은 1983 년 영국왕립건축가협회 금상, 1999년 프리츠커상, 스털링 상 등을 수상하였고 그 전, 1990년엔 기사작위Knight Bachelor 를 서임 받아 늘 그의 이름엔 “Sir경”가 붙는다. 겉보기와 달리 노동 계층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라온 포 스터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작품 뿐 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건축의 가치를 설명한다. 리처드 로저스나 부인 웬디를 포함한 주변 인물, 예일대학에서의 스승 폴 루돌프, 버크 민스터 풀러의 영향 등 그의 인간적 관계도 매우 흥
How Much Does Your Building Weight, Mr. Foster?
미롭다. 웬디를 암으로 잃은 노먼 역시 심장마비로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 한 그에게 과연 건축은 무엇일까.....?
일시 2016년 2월 15일(월) 7:00pm 장소 원도시건축 지하 강당 방장 강병국(간향클럽 자문위원, WIDE건축 대표) ● 참석 신청 예약 총원: 총 30인 내외로 제한함(선착순 마감 예정) ●신 청 예약 방법: 네이버카페 <와이드AR> WIDE 건축영화공부방 게시판에 각 차수별 프로그램 예고 후 선착순 접수 주최 간향클럽, 미디어랩&커뮤니티 주관 WIDE건축, 와이드AR 후원 ㈜원도시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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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 제109차 한국의 건축사진가 09 이야기손님 남궁선(건축사진가) 일시 1월 13일(수) 7:30pm 장소 토즈 홍대점 H1 방 주제 건축, 사진으로 보다
2016년 2월 | 제110차 한국의 건축사진가 10 이야기손님 윤준환(건축사진가) 일시 2월 17일(수) 7:30pm 장소 토즈 홍대점 H1 방 주제 건축의 숨겨진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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