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and Idea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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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서의 존 버거. 미유시, 프랑스. 1980. 사진 장 모르.

존 버거의 스케치북 열화당 기획 | 온그라운드 갤러리 후원 2017. 3. 9. - 4. 7.

존 버거의 초상 장 모르가 찍은 오십 년 우정의 풍경

죽음 후에 장례식 풍경과 추모의 글들

book and idea 2017. 3. 9

책과 선택31


존 버거의 스케치북 | 전시를 열며  Foreword by Yi Soojung

드로잉, 또 하나의 언어 「존 버거의 스케치북」전을 열며 이수정(李秀廷) 편집자, 열화당 기획실장

버거(John Berger, 1926-

고 있다. 예술가는 유화나 조각 작품을

2017)는 1950년대 초, 화가

완성할 때, 어떤 대상을 견고하게 재창조

이기를 포기하고 글을 쓰기

하고 그 안에 들어가려 한다. 그러나 드

시작했다.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당

로잉을 할 때는 대상을 통과해 지나간다.

시 핵전쟁의 위기에 대응하는 직접적인

“드로잉은 어떤 사건을 발견해 가는 자

방법으로 인쇄매체와 글이 더 빠르고 적

전적인 기록이다. 직접 보는 것이든, 기

합하다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억에 의존한 것이든, 상상한 것이든 말이

후에도 결코 ‘드로잉’만은 멈추지 않았

다.”

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또한 드로잉은 간략하고 즉각적인, 무

1953년 『뉴 스테이츠먼(New States-

엇보다 아주 사적인 작업으로, 누구에게

리와 경험을 따라가게 된다. 바로 이 때

(historic past tense)’다. 이 세 가지 드로

man)』에 기고한 「드로잉은 발견이다

보여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과 소통

문에 일반인들과 달리 예술가들은, 자신

잉 유형은 보는 이에게 각기 다른 시제로

(Drawing is Discovery)」라는 글에서 그

하기 위해서 한다. 드로잉 앞에서 우리는

이 존경하는 예술가들의 대표작보다 드

말을 걸고, 우리는 다른 상상력으로 반응

는 드로잉이 다른 시각예술과 어떤 점에

그림 자체보다는 그것을 그린 사람과 자

로잉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존 버

한다.

서 근본적으로 다른지 명쾌하게 설명하

신을 동일시하고, 화가의 눈이 지나간 자

거가 드로잉을 지속했던 이유 역시, 그것

그러나 드로잉 앞에서 우리가 기적처

이 글쓰기와 더불어 소통과 발견을 위한

럼 어떤 영감을 받을 때, 종이 위에 그려

적절한 방식이었다는 데 있다.

진 것과 실재는 서로 긴밀해지고, 보는 이는 새로운 세계가 곧 창조되려는 순간

2

는 드로잉이라는 행위 자체

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이 순간 드로잉

에 대한 탐구적 글쓰기도 꾸

은 또 다른 시제를 획득하는데, 그것은

준히 병행했다. 1987년 『하

바로 ‘미래 시제(future tense)’다.

퍼스 매거진(Harper’s Magazine)』에 발

다른 시각예술과 달리 특별히 드로잉

표한 「종이 위의 드로잉(To Take Paper,

이 그러한 확장된 세계를 열어 주는 까닭

To Draw)」에서, 앞서 나열한 드로잉의

은 무엇일까. 그 비밀은 바로 종이와 간

세 가지 범주에 시제(時制)를 대입해, 그

략한 선에 있다고 존 버거는 말한다. 채

것을 언어적 개념으로 해석하는 독특한

색화는 실제 자연과 일종의 경쟁관계에

글쓰기를 한다.

있고, 그림 속에 재현된 장면을 알아보라

먼저 화가가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을 그

고 우리에게 호소한다. 반면 드로잉은 대

린 드로잉은, 보는 이에게 그림이 그려진

부분 캔버스가 아닌 종이 위에, 채색이

그 순간과의 마주침을 제시한다. 이때 드

아닌 단색으로, 어떤 윤곽만을 개괄해 그

로잉의 시제는 ‘직설법 현재(present in-

려진다. 명암도 색도 없기에 보는 이의

dicative)’다. 화가의 마음속 상상의 이미

시선을 유혹하려 들지 않고, 아직 도래

지를 그리는 경우, 한 장면 안에 여러 가

하지 않은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흔적

지 요소들을 조합해 함께 연출하게 되는

이란, 어떤 것이 사라진 후 남겨진 것일

데, 그 드로잉은 ‘만약 …라면 어떻게 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것에 대한

까’와 같은 ‘조건문 시제(tense condition-

계획일지도 모른다.”(El extraño caso de

al)’다. 마지막은 기억에 의해 그린 경우

Giorgio Morandi, El Pais , 1997) 인간만

로, 지나간 어떤 일을 붙잡아 두기 위한

이 드로잉에서 과거, 현재뿐만 아니라 미

것이다. 이때 드로잉은 ‘나는 이것을 보

래를 내다본다. 동물은 드로잉을 알아볼

았노라’고 선언하는, ‘역사적 과거 시제

수 없다.


장 모르를 그리는 존 버거. 1998. 사진 장 모르. “실물 크기쯤 되는 커다란 앵그르지에 목탄으로 드로잉을 했다. 세 점을 그렸는데, 모두 좋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덜 나쁜 상태가 되어 갔다. 처음에는 서툴게나마 얼굴의 지도를 그려 볼 수 있을 뿐이다.” —존 버거 “무언가를 그리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시작되는 걸까.” —『벤투의 스케치북』 중에서 (p.2 위) 아일랜드 코네마라 해변에서 드로잉하는 존 버거.

2004. 사진 세라 오플래허티(Sarah O'Flaherty). (p.2 아래)

대한 예술가들의 작품론을

김해 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소설 『A가

숨어 있는 그림을.” 그는 다른 말을 쓰는

시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가 전시에 맞

쓰면서도, 그 역시 예술가였

X에게』에서 아이다는 감옥에 갇힌 사비

이들, 죽은 이들,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

춰 보내 온 짧은 인사말을 전하며, 말해

기에 더 그러했겠지만, 드로

에르에게 자신의 손 그림을 편지에 그려

과, 그가 아는 모든 언어로 포기하지 않

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말걸기, 눈길을

잉에 주목해 이야기를 풀어 가는 경우가

보내고, 『벤투의 스케치북』에서는 스피

고 끊임없이 대화했다.

따라 손끝에서 탄생한 외양의 텍스트, 이

많았다. 2000년 스웨덴의 일간지 『아프

노자의 눈을 빌려 그림을 그린다. 베벌리

톤블라데트(Aftonbladet)』에 기고한 글

를 위해 쓴 『아내의 빈 방』과 그의 마지

에서, 반 고흐의 올리브 나무 드로잉을

막 에세이집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에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예술작품에서

서 글과 그림은 동등한 ‘텍스트’로서 함

기대하는 예비적 습작이 아니었다. 번거

께 흐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겐 아

적을 따라가 보는 자리로, 오리지널 드로

롭게 물감을 다루는 일 없이, 좀 더 손쉽

직도 어려운 글쓰기와 달리, 드로잉은 할

잉 60여 점을 책 속 글귀들과 함께 펼쳐

게 그림 그리는 행위로 안내했을 뿐이다.

수록 조금씩 쉬워집니다. (…) 그래서 글

보인다. 『벤투의 스케치북』에 수록된 그

그것은 그의 사랑의 지도였다.” 그의 글

을 쓰기 시작할 때, 귀가 먹먹해지고 새

림 38점,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중 「망

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인 ‘지도’가 여

로운 생각들이 잘 들리지 않으면, 매일

각에 저항하는 법」에 실린 8점의 그림과

는 최근, 당신이 종종 말하던 공동체, 그

기에서도 나온다. 그는 위대한 드로잉은

그림을 그립니다. 드로잉은 어떤 사물이

친필 원고, 그리고 그의 아내 베벌리에

것 없이는 살아 있는 이들이 살아갈 수

하나같이 ‘새로 발견된 섬의 지도’와 같

나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는 아

게 바쳤던 아름다운 드로잉 11점, 드로

없는 공동체, 즉 죽은 이들의 공동체에

다고 했고, 초상화를 ‘얼굴의 지도’라 불

주 귀한 방법입니다. 이야기를 쓰는 것

잉 노트 1권으로 구성된다. 십여 년 동안

합류했습니다. 따라서 뛰는 가슴을 지

렀다.

(storytelling)과 같아요.”(Nicholas Wroe,

열화당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며 보내온

닌 채 여기에 있는 우리는 ‘존은 어디에

장 앙투안 와토가 드로잉하는 순간을

John Berger: a life in writing, Guardian ,

그림과 선물들도 함께한다. 전시에 맞춰

나 있다’고 느끼고, 그렇게 말할 수 있습

실감나게 상상하기도 했다. “대부분 아

2011) 존 버거의 문장들을 읽다 보면 점

존 버거의 마지막 에세이집 『우리가 아

니다. 그의 삶이 그렇게 끝났지만, 그 삶

주 섬세하고, 아주 조심스러운데, 거의

차 알게 되는데, 그는 글도 그림을 그리

는 모든 언어』와 그의 평생의 동지였던

은 그가 평생 동안 했던 일들을 통해 퍼

몰래 그린 것처럼 보인다. 마치 자신 앞

듯이 쓴다.

사진가 장 모르(Jean Mohr)가 오십 년 동

져 나갔고,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무엇으

안 찍은 존 버거의 초상사진집 『존 버거

로 다가옵니다. 모든 시대로부터, 그리

의 초상』도 출간된다.

고 모든 시대에 주어진 것이죠.

의 나뭇잎에 앉은 나비를 그리는 동안,

미 우리 안에 내재된 그 언어에 각자의

번에 마련한 전시 「존 버거의

상상력으로 화답할 수 있길 바란다. 그렇

스케치북」은, 드로잉에 대한

게 다시 담소(confabulations)가 시작된

그의 오랜 생각과 시선의 흔

다….

“친

애하는 한국의 독자와 관 람객께. 여러분도 아시겠 지만, 제 아버지인 존 버거

조마조마해 하며 그린 것처럼 말이다. 하

에를 떠나, 가벼운 스케치북

구십 세 생일을 맞아 열 계획이었으나,

느낌을 가집니다. 단지 한 남자를 향한

지만 그와 동시에 그 작품들은 관찰과 감

과 목탄을 챙겨 들고 세상 밖으로 나간

여러 사정으로 올 봄으로 미뤄졌다. 갑작

감사의 마음이 아니라 삶 자체에 대한 감

정의 엄청난 힘을 드러내는 드로잉들이

존 버거. 그에게 드로잉은 지도를 읽는

스런 그의 죽음으로 추모의 자리를 겸하

사의 마음 말입니다. 임신부가 아기를 지

다.”(Drawings by Watteau, The Look of

행위였고, 서로 다른 말을 사용하는 사람

게 되었다. 그를 사랑하고 존경했던 국내

니듯이 희망을 지닌 삶. 꽃을 피우고, 누

Things , 1972) 작품으로 완성되어 작업

들 사이에서도 소통되는 근원적인 언어

외 여러 분들의 아름다운 문장이 그 자리

군가의 얼굴에 그 영혼을 드러내 주는

과정을 알아보기 힘든 유화와 달리, 예술

였다. 드로잉은 우리의 빈약한 어휘의 한

를 가득 채워 주었다.

삶. 지극히 간단히, 세계화된 우리 세계

가들의 드로잉은 그들의 내밀한 감정과

켠을 메워 주는 또 다른 언어다.

종이 위를 움직이는 초크의 움직임이나 소리에 나비가 겁을 먹고 날아 갈까 봐

십여 년 전, 커다란 캔버스와 유화물감이 가득한 아틀리

책 출간과 전시 모두 작년 11월 그의

이런 실험을 하며 우리는 어떤 감사의

전시를 열기까지 귀한 공간과 지원을

의 비극적 뉴스는 모두 제쳐 두고, 우리

섬세한 눈길을 따라가 볼 수 있게 한다.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존 버거는 먼

아끼지 않은 온그라운드 갤러리, 특별

는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로 속삭이고

그만큼 이젠 세상을 떠나 직접 만날 수

저 떠난 오랜 친구 러시아의 조각가 에른

히 조병수 선생님과 박지윤 큐레이터에

노래하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라

없는 존재와 소통하기에 적합한 매개체

스트 네이즈베스트니(Ernst Neizvestny,

게 깊이 감사드린다. 존 버거의 많은 책

고요.

다. 존 버거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1925-2016)에게 짧은 글을 바쳤다. “당

을 우리말로 옮긴 김현우 선생님은, 준비

신은 죽었고 저는 살아 있으니 다시 그릴

과정에서 필요한 영문 번역을 바쁜 일정

신의 에세이와 소설 속에 직

수밖에 없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림,

중에 도맡아 해 주었다. 무엇보다 먼 한

접 그린 그림을 삽입하기도

오직 우리끼리만 주고받을 수 있는 그림,

국땅으로 아버지의 소중한 드로잉을 흔

했는데, 드로잉을 글의 보조

이름붙일 수 없는 에너지의 흔적을 기록

쾌히 보내 준 존 버거의 아들 이브 버거

수단이 아닌, 실제 언어적 존재로 자리매

한 그림. 네이즈베스트니라는 단어 속에

(Yves Berger)의 협조가 없었다면 이 전

이 전시회는 바로 그것을 표현합니다. 그로부터, 우리로부터, 당신으로부터. 2017년 3월, 이브 버거.” ■

3


존 버거의 스케치북 | 드로잉에 대하여  On Drawing by John Berger

무엇을 그리고 싶어진다는 것은 존 버거가 말하는 ‘드로잉’

존 버거의 인터뷰와 책 중에서 드로잉에

다른 드로잉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또 다

는 점입니다. 목탄이 아주 활용도가 넓다

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을 일부

른 드로잉으로 이어집니다. 처음엔 보통

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지우기

어쨌든 드로잉은 무언가를 지향하

형편없는 작품이죠. (…)

도 쉽기 때문입니다. 저는 드로잉을 할

는 실천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연에서

다른 감각들보다는 눈을 많이 활용합

때 뭔가를 덜어내는 작업을 많이 하거든

발생하는 다른 지향의 과정에 비유할

니다. 이 주 전에 초상화를 한 점 그렸어

요. 종이의 흰 여백으로 되돌아가는 작업

수 있다.

드로잉이 저에게 어떤 의미이냐고요?

요. 제 친구인 폴란드 여성의 초상화입

이요.

사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 행위가 저를

니다. 남편이랑 시동생과 함께 우리 집

—로버트 엔라이트(Robert Enright)

아가는 새나, 쫓기는 와중에 은신처를

빨아들입니다. 드로잉을 할 때는 다른 것

에 와서 저녁을 같이 먹었죠. 그 사람들

와의 인터뷰 중에서, 『보더 크로싱스

찾아가는 산토끼, 혹은 알 낳을 곳을

들은 모두 잊어버리는데, 다른 활동을 하

은 대부분 폴란드어와 러시아어로 대화

(Border Crossings)』 , 1995. 5.

알고 있는 물고기, 빛을 향해 자라는

는 동안은 그런 일이 없거든요. 드로잉은

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드로잉을 했어

다른 모든 걸 지워 버려요. 드로잉을 하

요. 어쩌면 제가 드로잉을 하는 이유들

는 동안 저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그 대

중 하나는, 러시아 사람들과 종종 어울릴

상에서 늘 보이던 모습과 어딘가 다른 점

때가 있는데, 제가 러시아어를 할 줄 몰

드로잉을 할 때 —여기서 드로잉은 글쓰

멀리, 소리 없는 동행이 있음을 알고

을 찾아서 그걸 한데 모아 보려고 노력

라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기나 추론과는 아주 다르다— 나는 종종

있다. 별처럼 먼 곳이지만, 그럼에도

발췌해 엮었다. —편집자

나에게 드로잉이란

뇌의 능력에서 나온 이미지들이다.”

드로잉을 할 때 나는, 하늘 길을 찾

나무, 자신들만의 방을 짓는 벌 들에게

그리고 싶은 마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을 받는 다.

합니다. (…)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랬던

드로잉이 저를 실망시키지는 않습니

순간적으로 신체의 생리현상과 비슷한

동행이다. 우리가 같은 우주에 있기 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몇 주, 몇 달, 아니

다. 오히려 반대로, 좋은 드로잉을 그렸

어떤 일에 가담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문이 아니라, 우리가 비슷한 방식으로

지금 돌아보니, 몇 년씩이나 드로잉을 하

을 때 이런 생각을 합니다. 드로잉이 그

받는다. 소화 작용이나 땀을 흘리는 것처

—각자에게 맞는 양식에 따라— 무언

지 않고 지냈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떤 것보다 저를 만족시켜 준다고 말이

럼, 의식적 의지와는 별개로 작동하는 기

가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중독되었다고는 할 수 없겠군요. 그러던

죠. 글쓰기보다 더 만족스럽습니다. 드

능들. 이 인상은 과장된 것이지만, 드로

드로잉은 무언가를 꼼꼼히 살피는

것이 어느 시점부턴가 저를 사로잡아 버

로잉에 대해서 제가 한마디 더 말씀드릴

잉이라는 행위 혹은 드로잉을 하려는 마

형식이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려는 본

린 겁니다. 한 점을 그리고 나면 그것이

수 있는 것은 제가 목탄을 많이 사용한다

음은 어떤 원형, 논리적 추론에 앞서 있

능적인 충동은, 무언가를 찾으려는 욕

는 어떤 것에 닿아 있다. 안토니오 다마

구, 점을 찍으려는 욕구, 사물들을, 그

지오 같은 신경생리학자의 최근 작업 덕

리고 자기 자신을 어딘가에 위치시키

분에, 살아 있는 신체의 세포와 세포 사

려는 욕구에서 나온다.

4

이를 오가는 메시지가 도표나 지도의 형

다시 다마지오를 인용하자면, “…

태를 띠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메시

의식하는 정신은 유기체와 앎의 대상

지들은 특별히 배열된 것이고, 좌표를 가

사이에 관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생

진다.

겨난다.”

그런 ‘지도’들을 통해 신체는 뇌와 소

본능적 충동은 그렇다 치고, 특정한

통하고, 뇌는 신체와 소통한다. 그런 메

대상을 갑자기 그리고 싶게 자극하는

시지들이 정신의 근간을 구성하므로, 정

것은 무엇일까. 어디를 가든 스케치북

신은 신체와 뇌가 함께 만드는 것이고,

을 들고 다닌다. 몇 주 동안 꺼내지 않

그 점은 스피노자가 믿었던, 그리고 예견

는다. 그동안은 사물을 봐도 그걸 그려

했던 바이다. 드로잉이라는 행위에는 아

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마도 그런 지도 읽기에 대한 희미한 기억

그러다 갑자기 그 마음이 생긴다. 꼭

이 있을 것이다.

그려야만 한다.

다마지오는 이렇게 말했다. “의식하는

내가 보기에, 그 마음이 생길 때면,

정신의 전체적인 짜임은 똑같은 천으로

상황이나 그림의 대상에 상관없이 비

만들어진다. 그 천이란 지도를 읽어내는

슷한 상상력의 작동 때문에 그림을 그


존 버거가 그린, 죽은 아버지의 초상(왼쪽)과 그 그림이 놓인 서가(오른쪽, 사진 베벌리 버거). 쇼베 동굴 벽화를 그린 존 버거의 드로잉.(p.4)

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것 같다.

만들었기 때문이다. 허리와 배, 그리고

드로잉을 하는 내 손은 순록들이 추는

연필이 지나간 자국과 흰 종이 사이

물론 모든 드로잉은 각자의 존재 이유

가슴의 아래쪽은 선 하나로 두 마리가 모

춤의 시각적 리듬을 고스란히 따라갔고,

의 모든 형태에는 이제 한 인생의 순간

를 가지고, 독창적인 것이 되기를 희망한

두 표현되고, 두 마리의 사자는 동물다운

그렇다면 처음에 저 순록들을 그린 손과

들이 들어올 수 있었던 문이 하나 있었

다. 매번 드로잉을 시작할 때마다, 우리

우아함으로 그걸 공유한다.

함께 춤을 추는 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다. 단지 한 얼굴을 지각한 대상이 되

는 그때만의 서로 다른 희망을 가지기 때

나머지 부분들은 따로 표현된다. 꼬리

문이다. 그리고 매번 드로잉은 예측할 수

와 등, 목, 이마와 주둥이는 각각 독립되

없는 그때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실패한

어, 가까이 다가가다가 멀어지고 한데로

다. 그럼에도 모든 드로잉은 비슷한 상상

모이다가 서로 다른 지점에서 끝이 난다.

력의 작동으로 시작된다.

수사자가 암사자보다 한참 길기 때문이

모든 비행기는 출력이나 짐, 목적지에

다. (…)

—「퐁다르크 다리」, 『여기 우리가 만 나는 곳』(강수정 역) 중에서

기보다 그 그림은 앞으로 나아가 양면 적이 되고, 여과기 역할을 했다. 변함 없고 점차로 더 익숙해지는 하나의 이

아버지의 마지막 초상

미지를 앞으로 투사하면서 뒤로는 과 거에 대한 내 기억을 그려냈다. 내 아

최근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관 앞에

버지는 자신의 데스마스크에 일종의

서 나는 그의 그림을 몇 점 그렸다. 그의

생명을 부여하기 위해 돌아왔다. (…)

상관없이 활주로의 똑같은 안내선을 따

나는 흡수성이 뛰어난 일본 종이에 그

라 이륙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늘에

림을 그린다. 이 종이를 선택한 까닭은,

오를 수 없다. 똑같은 방식으로, 모든 자

여기에 검은 먹으로 그림을 그리면 거친

사람들은 시각의 신선함, 처음으로 바

점검하는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를 그

발적인(주문받은 것과 구분되는) 드로

바위 표면에 목탄(이 동굴 안에서 태워

라보는 강도에 대해서 말하지만, 내 생각

린 그림은 나무 한 그루를 보여 주는 것

잉은 비슷한 상상력의 작동을 거쳐 ‘이

만든)으로 그림을 그리던 어려움과 조금

에는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강도가 더 크

이 아니라 보여지고 있는 나무를 보여

륙’ 해야 하고, 그 상상력의 힘으로 하늘

이나마 비슷해질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

다. 내가 볼 수 있는 모든 것들 중에서 오

준다. 나무의 시각이 거의 즉각적으로

에 떠 있을 수 있다.

다. 양쪽 다 선은 결코 고분고분 말을 듣

직 그 그림만이 남을 것이다. 나는 내가

기록되는 반면에 나무 한 그루의 광경

지 않는다. 어르고 구슬려야 한다.

그리고 있었던 그 얼굴을 볼 수 있는 마

(보여지고 있는 나무)을 점검하는 일

지막 사람이었다. 완벽한 객관성으로 그

은 몇 분의 일 초가 아닌 몇 분, 몇 시간

리려고 노력하면서 나는 울었다.

이 걸리며, 바라봄의 훨씬 이전의 경험

바로 그 상상력의 작동—우리의 마음

얼굴과 머리를 그린 것들이었다. (…)

그리면서 보는 것은 모양의 구조를

에 울림을 주는 많은 것들처럼 복잡하고

순록 두 마리가 반대 방향, 동쪽과 서

모순적인 그것—을, 나는 정의 내리고 묘

쪽으로 걸음을 내딛고 있다. 윤곽선을 공

사해 보고 싶은 것이다.

유하진 않지만 몸이 겹쳐져서, 위에 놓

내가 그의 입, 그의 눈썹, 그의 눈꺼풀

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것을 다시 지

인 순록의 앞다리가 커다란 갈비뼈처럼

을 그렸을 때, 그 구체적인 형태가 흰 지

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림 그리

밑에 있는 순록의 옆구리를 가로지른다.

면 위에 그어진 선들로 나타났을 때, 나

는 행위는 사라짐의 과정을 거부하게

크로마뇽인의 드로잉

분리될 수 없는 두 몸이 하나의 육각형을

는 그들이 그 모습대로 만들어 준 그 역

되며 수없이 많은 순간들의 동시성을

쇼베 동굴 벽화

이루며, 위쪽 순록의 작은 꼬리가 아래쪽

사와 경험을 느꼈다. 그의 인생은 내가

제시하게 된다.(…)

순록의 뿔과 운을 맞추고, 위쪽 순록의

그리고 있는 종이의 정사각형만큼이나

한 점의 그림으로서 내 탁자 위에 놓

제일 깊숙한 동굴에 사자 두 마리가 검은

부싯돌 같은 기다란 옆머리가 아래 순록

무한한 것이었지만, 그 안에는 어떤 그림

인 그림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색 목탄으로 그려져 있다. 거의 실물 크

의 뒷다리 중족골(中足骨)을 향해 휘파

보다도 더 무한하게 신비로운 방식으로

그것은 수천 년 동안 그림을 그리도록

기에 가깝다. 사자들은 옆으로 나란히 서

람을 분다. 두 마리는 하나의 몸짓을 이

그의 성격과 운명이 드러났다. 나는 기록

이끌어 준 동일한 희망들, 원칙들과 조

있는데, 수컷이 뒤에 있고 암컷은 그것과

루고 원을 그리며 춤을 춘다.

을 남기고 있었고, 그 얼굴은 이미 그의

화를 이루며 작동한다. 그것은 한 출발

선을 그리는 게 얼추 끝났을 때 화가는

삶의 기록일 뿐이었다. 그때 그림 한 점

점이 됨으로써 작동하고, 그래서 출발

목탄을 버리고 손가락에 먹(수영을 하고

한 점은 하나의 출발점에 불과했다. (…)

점이 된다.

그 사자들을 똑같이 그려 본다. 암사자

나왔을 때의 머리칼색)을 듬뿍 묻혀 아

내가 작업하는 탁자 앞의 벽에다 틀을

는 수사자 옆에서 몸을 비벼 대는 동시에

래쪽 순록의 배와 목선을 따라 문질러 가

짜서 걸어 놓을 그림 한 점을 골랐다. 점

그 안에 들어가 있다. 이렇게 두 가지가

며 색을 칠했다. 위의 순록에도 똑같이

차 그리고 지속적으로 그 그림과 내 아버

병존하는 까닭은 대단히 교묘한 생략을

했지만 바위 위의 허여스름한 침전물과

지의 관계는 변화했다. 아니면 나를 위해

통해 윤곽선 하나를 두 사자가 공유하게

섞여 색이 덜 강렬해 보인다.

변했다. (…)

—『벤투의 스케치북』 중에서

같은 길이로 수평을 이루며 앞으로 나와 있다. (…)

매일 내 아버지의 삶은 좀더 내 앞에 있는 그림에게로 돌아온다. —「그 순간에 이끌려」, 『시각의 의 미』, (이용은 역, 동문선) 중에서

5


우리는 몇 분 안에, 자연이 수천 년에 걸

냥의 문제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피

쳐 했던 대로, 그 모든 것 중에서 선택을

아노 소나타 작품번호 110 역시도.

해야 한다. 이 모든 것 중에서 우리는 하

그녀는 왼쪽 눈을 이따금 두리번거

나의 자물쇠와 하나의 열쇠를 선택해야

려 균형을 깨뜨린다. 이 약간의 비대칭

한다. 두 개가 아니라 세 개의 목숨을 주

의 순간이야말로 내게는 가장 소중했

어야 할 것 같다.

다. 내 목탄 조각으로 무리 없이 그 순

—『우리 시대의 화가』(강수정 역) 중 에서

간에 닿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순간 을 붙잡을 수 있다면…. 내가 그녀를 그리고 있음을 그녀는

마리아 무뇨스를 위한 드로잉

물론 알고 있었다. 내 겨냥과 마주치기 위해 그녀는 무언가를 내보내고 있었

그녀를 지켜보던 어느 날, 드가의 후기

다. 그녀가 보내는 것이 내 겨냥을 벗

조각상과 나체 무용수의 드로잉들, 특

어나지 않고 닿으면 좋은 그림 하나가

히 〈스페인 춤〉이라는 작품이 생각났

생기게 될 것이다.

다. 마리아에게 자세를 잡아 줄 수 있냐 고 부탁했고, 그녀는 승낙했다.

대상과 닮게 그리는 것이 인물화의 조건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닮

이거 한번 봐 주세요, 그녀가 제안했

을 수도 닮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하

다. 무대에서 취하는 준비 자세인데, ‘브

튼 그것은 신비로 남는다. 이를테면 사

모든 위대한 드로잉은 기억에 의존한

리지’라고 부르죠. 몸의 무게가, 바닥을

진의 경우 ‘닮음’이란 없다. 사진에서

그림이다. 그걸 배우는 데 그렇게 오랜

짚고 있는 왼손 손바닥과 역시 바닥에 평

그건 질문조차 되지 않는다. 닮음이란

시간이 걸리는 건 이 때문이다. 드로잉이

평하게 놓은 오른발 발바닥 사이에 걸리

생김새나 비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

이 드로잉이라는 것은 모든 활동 중에서

필사처럼 글쓰기의 일종이라면 몇 년 안

게 되거든요. 고정된 두 점 사이에서 몸

은 아마도 두 손가락 끝이 만나는 것같

가장 심오한 활동이다. 또 가장 많은 노

에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모델을 앞에

전체는 무언가를 예상하고, 기다리며,

이 두 방향에서의 겨냥이 그림에 포착

력을 요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탕진

두고 있을 때조차 드로잉은 기억에서 나

걸려 있는 거예요.

된 것이리라.

해 버린 몇 주, 어쩌면 몇 년의 시간을 후

온다. 모델의 역할은 기억을 상기시켜 주

‘브리지’ 자세를 한 마리아를 그리는

점차 그녀의 얼굴과 비슷하게 되어

회하는 것은 드로잉을 할 때이다. 동화에

는 것이다. 그저 외우고 있는 판에 박힌

것은 아주 좁은 광물층에서 석탄을 캐는

갔다. 하지만 나는 결코 제대로 닮은

서처럼 장래에 화가가 될 아이에게 어떤

고정관념이 아니다. 의식적으로 떠올릴

광부를 그리는 것과 비슷했다. 마리아의

모습으로 그려낼 수는 없을 것임을 알

선물을 줄 수 있다면, 나는 그 아이가 드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델이 상기시키는

몸은 매우 여성적이지만, 지독한 노력과

고 있었다. 그림을 그릴 때 종종 그런

로잉을 완전히 터득할 수 있도록 긴 수명

것은 드로잉에 의해서만 구체화하고, 그

인내를 시각적으로 경험한다는 점에 있

것처럼, 그녀를, 그녀의 모든 것을 사

을 선물로 주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깨

럼으로써 떠올릴 수 있는 경험이다. 그리

어 거기에 견줄 만했다. (…)

랑하게 되어 버렸고, 내가 아무리 잘

닫지 못하는 것은, 화가는 작가나 건축가

고 그런 경험들이 더해지면서 실체를 지

집에 돌아와 그림을 다듬었다. 종종 머

그린다 해도 그것은 하나의 흔적 이상

또는 디자이너와는 달리 자신의 예술을

닌 삼차원의 구조적 세계에 대한 인식의

릿속 이미지가 종이 위의 이미지보다 더

이 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

창조하는 사람인 동시에 그것을 구현하

총합을 이룬다. 스케치북의 비어 있는 면

또렷할 때가 있었다. 나는 다시 그리고,

그림이 진행돼 가면서, 나는 또 다른

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에게는 두 개

은 텅 빈 백지다. 그 위에 뭔가를 하나 표

또다시 그렸다. 이것저것 바꿔 보고 다시

어떤 것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끼기

의 목숨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드

시하면 그 면의 가장자리는 더 이상 단순

지우는 사이 종이는 회색이 되었다. 그림

시작했다. 종이에 그리고 고치는 낱낱

로잉을 터득해야 한다. 거의 모든 화가들

히 종이를 잘라낸 면적이 아니다. 그것은

이 더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그녀

의 자국들이 그녀가 태어나기 전에 그

은 어떤 발견을 했을 때 드로잉을 할 수

소우주의 경계가 된다. 고르지 않은 힘을

가, 마치 금방 일어날 것처럼, 더 힘있게

녀에게 상속된 유산처럼 여겨진다. 그

있다. 하지만 발견을 하기 위해 드로잉

가해서 그 위에 두 개를 표시하면 백지

거기 자리를 잡았다.

리는 행위는 지난 시간을 들추어내는

을 하는 것, 그것은 마치 신이 하는 것과

는 더 이상 하얗지 않은 불분명한 삼차원

그리고 오늘, 이미 말했듯이, 어떤 일

같은 과정이며, 인과를 규명하는 작업이

적 공간이 되며, 표시가 더 늘어날 때마

이 일어났다. 수정을 하려는 나의 노력과

다. 선의 힘에 비하면 색의 힘은 아무것

다 공간의 불분명함은 줄어들어 점점 더

그것을 견뎌낸 종이가, 마침내 마리아의

도 아니다.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실

명료해진다. 그 소우주는 이제껏 우리가

몸이 지닌 탄력을 닮아 가기 시작한 것이

질적인 대상과 대비시켰을 때 그 유형의

인식했거나 감지한 모든 비례의 잠재력

다. 그림의 표면—이미지가 아니라 그 피

실체를 그냥 보는 것보다 더 선명하게 드

으로 가득하다. 그 공간은 모든 형태, 지

부—을 통해 무용수를 보며 머리털이 쭈

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선의 힘. 드로잉

금까지 한 번이라도 보거나 만졌던 비스

뼛 서는 경험을 하는 순간들이 있음을 생

을 하는 건 손으로 아는 것이다. 도마가

듬한 사면, 움푹한 구멍, 맞닿는 접촉점,

각하게 된다.

요구한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예술가

분리의 흐름 등의 잠재력으로 가득하다.

의 정신에서 출발해 연필이나 펜 끝을 통

그리고 거기서도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

해 이 세계가 견고하며 구체적이라는 증

면 몇 개의 표시를 추가한 후에는 공기와

거가 나온다. 하지만 그 증거는 전혀 익

압력이 작용하고, 그렇게 되면 부피와 무

숙하지 않다. 위대한 드로잉─손이나 토

게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이

그녀가 연주를 마친 직후에 내가 그녀를

르소의 뒷면처럼 전에 수천 번쯤 본 형상

단계가 되면 한 번이라도 머리를 파묻었

그리기 시작한 적이 한 번 있었다. 피아

을 그린 것이라고 해도─은 하나같이 새

거나 부딪친 적이 있는 온갖 강도의 단단

노 뚜껑은 열린 채로였고 그 곁에 앉아

로 발견된 섬의 지도와 같다. 다만 지도

함과 유연함,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인 움

있었다. 눈을 긴장시킨 채 나는 기다렸

보다 드로잉을 읽기가 훨씬 쉬울 뿐이다.

직임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땅 속 지하

다. 그리기의 충동은 눈에서보다 손에서

드로잉 앞에서는 우리의 오감이 측량기

수처럼 뭔가에 가려진 흉근이며 팔꿈치

온다. 마치 저격수처럼 오른팔에서부터

구가 된다.

와 발목, 또는 나뭇가지를 창조하기 위해

오는 것이다. 나는 때때로 모든 것은 겨

야노스 라빈이 말하는 드로잉 1952년 6월 26일 일기에서

6

—『벤투의 스케치북』 중에서

턱을 괴고 있는 젊은 여자


존 버거의 붓꽃 드로잉(가운데), 그리고 타토 올리바스의 사진 〈아카데미아〉(왼쪽)와 〈사라 바라스〉(오른쪽).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중에서. 스페인의 무용수 마리아 무뇨스를 위한 존 버거의 드로잉. 『벤투의 스케치북』 중에서.(p.6 위) 『A가 X에게』에 나오는 아이다의 손 드로잉. (p.6 아래)

작업이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염색체처 럼 유전된다.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김우룡 역) 중에서

그 사진을 마주쳤을 때 내 기억 속의

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지금까지 두

잘 아는 누군가의 초상화를 그리려

뭔가가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엽서를

이미지가 나란히 함께 제시된 적은 한 번

면 눈앞에 있는 대상에서 놀라움을 느

처음 봤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느낌이었

도 없었다.

낄 수 있을 때까지 잊고 또 잊어야 한

다.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기억이 분명

두 이미지 사이의 유사성은 내재적인

다. 아닌 게 아니라, 살아 있는 초상화

것이다. 거의 유전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의 핵심에는 모두, 친밀함에 둘러싸인

이제 막 춤을 시작하려는 젊은 여인의

것 같다.(물론 이 용어의 일반적 의미에

절대적인 놀라움이 분명히 드러나 있

모습은 내가 그린 붓꽃 그림을 떠올리게

서 보자면 이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플

다. 오해를 받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럼

어쨌든, 편지지 위에 손바닥을 놓고 그

했다. 몇 해 전에 그린 연작 드로잉들 중

라멩코 무용수의 에너지와 이제 막 피어

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초상

윤곽선을 그려서 당신에게 보여 주고 싶

하나였다. 그 그림을 꺼내서 두 이미지를

나려는 꽃의 에너지는, 그럼에도 동일한

화를 그리는 일은 섹스와 비슷하다.

었어요. 그런 생각이 들고 —그게 언제였

비교해 보았다.

역학 법칙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고, 둘의

수차례 시작만 거듭한 결과, 한 점의

해졌다.

아이다의 손

든 상관없어요— 얼마 후, 손 그리는 법

과연 기하학적 측면에서 무용수의 집

시간 단위가 아주 다름에도 불구하고 동

드로잉이 나타난다. 그 안에 개 한 마

을 설명한 책을 발견하고 한 페이지 한

중하고 있는 몸과 막 피어나려는 꽃 사

일한 박동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진화의

리와 소년이 보이고, 그 둘은 나와 비

페이지 살펴봤어요. 그리고 사기로 결정

이에 공통점이, 등가물이라 할 만한 것

관점에서 보면 둘은 무한할 만큼 멀리 떨

슷한 또래인 한 남자의 얼굴 안에 담겨

했죠. 마치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 같았어

이 있었다. 물론 구체적인 모습은 다르지

어져 있지만, 리듬의 관점에서는 함께 움

있다. 둘의 표정 어디에도 순진함은 찾

요. 모든 이야기는 또한 손의 이야기니

만, 두 대상이 지닌 에너지와 두 이미지

직이고 있다.

아볼 수 없다.(순진함을 찾고 싶다면

까. 집어 들기, 균형 잡기, 가리키기, 합치

를 통해 표현된 형태와 동작, 그리고 움

기, 주무르기, 헤쳐 나가기, 쓰다듬기, 자

직임이 비슷했다.

는 동안 내려놓기, 자르기, 먹기, 닦기, 연

두 이미지를 스캔한 다음 두 쪽 그림처

주하기, 긁기, 쥐기, 벗기기, 짜기, 방아쇠

럼 만들어서 편지와 함께 타토 올리바스

당기기, 접기. 책의 각 페이지마다 서로

에게 보내 주었다.

‘모든 시대, 모든 춤의 모태가 된 그 동 작.’ —「노래에 관한 몇 개의 노트」 『우리 가 아는 모든 언어』 중에서

성공한 남자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순진한 사람들이 이 그림에서 순진함 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는 것은, 놀라는 습관이다. 개와 소년에게 세상은 놀라 움의 대상이니까. 종종 경이롭고, 가끔

장 모르의 초상화

다른 행위를 하고 있는 손 그림이 정교하

그는 답장에서 그 사진은 이십 년 전

게 그려져 있어요. 여기 하나 보여 줄게

마드리드의 유명한 플라멩코 학원 아모

요.

르 데 디오스에서 찍은 거라고 알려 주었

실물 크기쯤 되는 커다란 앵그르지에 목

생 동안 찍은 사진들은 놀란 상태에서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요. 지금 당

다. 지금 그 학원은 문을 닫았고, 사진 속

탄으로 드로잉을 했다. 세 점을 그렸는

비롯된 어떤 깨어 있음의 결과물이다.

신을 만져 보고 싶어하는 내 손을 내려다

의 무용수를 다시 만난 적은 없으며, 이

데, 모두 좋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보고 있어요. 너무 오래 당신을 만져 보

름도 모른다고 했다.

서 조금씩 덜 나쁜 상태가 되어 갔다. 처

지 못해 이젠 쓸모없이 되어 버린 손처럼

그는 두 이미지의 ‘우연의 일치’를 보

은 기적처럼 보이기도 하는 세상은, 끊 임없이 놀라움을 주는 곳이다. 장이 평

—「장 모르: 초상화를 위한 스케치」 『사진의 이해』 중에서■

음에는 서툴게나마 얼굴의 지도를 그려 볼 수 있을 뿐이다.

존 버거(John Berger, 1926-2017)는

보이네요. 당신의 아이다.

고 나서 붓꽃 드로잉과 더 닮은 다른 사

—『A가 X에게』 중에서

진이 떠올랐다고 덧붙였다. 전설적인 무

세 장 반의 지도. 마침내 그가 가야 할

용수 사라 바라스(Sara Baras)의 젊은 시

시간이 되었다. 운전석에 앉은 그가 활주

절 사진이었다. 올리바스가 보내 준 인화

로를 향해 서서히 움직이는 조종사처럼

관점을 제시해 왔다. 중년 이후 프랑스 동부의

된 사진을 본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

왼손의 두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알프스 산록에 위치한 시골 농촌 마을로 옮겨 가

었다.

같이 있어서 즐거웠어. 그가 차를 몰고

붓꽃과 플라멩코 내가 글을 쓰는 탁자 위에는 늘 종이들 이 너무 많다. 며칠 전 종이 뭉치에서 스

한쪽은 여인이고 다른 쪽은 식물이라

사라졌다.

페인에 사는 친구가 몇 달 전에 보내 준

는 점만 제외하면 무용수와 붓꽃은 쌍둥

작업실에 돌아온 나는 새 종이를 한 장

엽서를 발견했다. 무용수 사진으로 유명

이 같았다. 두 이미지를 본 사람은 사진

꺼내서는 서둘러 그림을 그렸다. 이제 그

한 스페인 사진작가 타토 올리바스(Tato

가든 화가든 어느 한쪽이 다른 이미지를

는 가고 없기 때문에 당연히 그를 보고

Olivas)가 찍은 플라멩코 무용수의 흑백

보고 자신의 이미지를 ‘맞추려고’ 꽤 노

그리는 것은 아니다. 나는 바닥에 놓인

사진이 인쇄된 엽서였다.

력을 기울였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

지도들을 보며 잊으려고 애쓴다.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처음 미술평론으로 시작해 점차 관심과 활동 영역을 넓혀 예술과 인문, 사회 전반에 걸쳐 깊고 명쾌한

살면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농사일과 글쓰기를 함께해 왔다. 저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기』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벤투의 스케치북』 『A가

X에게』 『킹』 등이 있다. • 전체 지면에서 별도의 표시가 없는 번역문들은 모두 김현우가 옮겼다.

7


존 버거의 초상 | 책 속에서  John by Jean: Fifty Years of Friendship by Jean Mohr

존 버거의 초상 장 모르가 찍은 오십 년 우정의 풍경

장 모르와 존 버거는 창의적 협력자이자, 오십 년 넘게 우정을 이어 온 친구 사이였다. 『행운아』 『말하기의 다른 방법』 『제7의 인간』과 같은,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동시에 독자와 평단의 극찬을 받은 많은 책들을 함께 만들었다. 정말 가까우면서도 너무나 다른 둘은 상호보완적 관계의 표본이라 할 만했다.

나는 지난 반세기 동안 딱히 뭘 해야겠다는 생각 없이 다양한 상황과 환경에 처한 존

가끔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언제나 우아함을 잃는 법 없이 한 영역에서 다른

버거(John Berger)의 사진을 수도 없이 찍었다. 극적인 사진도 있고 우스꽝스러운

영역으로 매끄럽게 오가는 그의 능력이다.

사진도 있다. 대부분이 특별히 준비를 하거나 요란 떠는 일 없이 촬영된 사진들이다.

존의 작업에는 (때로는 아주 감동적인) 나약한 순간들뿐만 아니라 여러 절정의

물론 많은 사진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잡지와 신문에 실리고 텔레비전에 나오고 작가

기억과 부인할 수 없는 성취들도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의

존 버거에 대한 여러 전시회에 걸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진들을 하나의 포괄적인

작업이 보여 주는 활동의 폭과 풍부함이다.

기획 아래 묶어 본 적은 없는데, 이 친구가 자기 삶을 다루는 전기(傳記)라면 일단 반대하고 나선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는 말하곤 했다. “내가 저세상으로 가고 나면 그럴 시간이 차고도 넘칠 거야.” 그러다 그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이 듦’이라는

사진가이자 친구로서, 말하자면 ‘특권을 가진’ 목격자로서 나는 이 책을 빌려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올해 신년벽두에 존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남은 우리는 저마다

주제를 바탕에 깐다면 자신에 대한 글을 써도 좋다고 허락한 것이다. 흥미롭고

충격에 빠져 있다. 모쪼록 이 책이 그의 부재가 남긴 공허를 메우는 데 조그만

도발적인 접근법이지만, 그래서야 독자들을 다 쫓아 버리지나 않을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존은 최근에서야 자신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가족 사진첩인 지금의 형태로 사진집을 만드는 데에 동의했다. 사진을 선정하거나 설명 글을 다는 일에는 관여하지

2017년 2월, 장 모르(Jean Mohr)

않기로 했다. 재미있어 했는지 짜증스러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존 버거의 역할은 구경꾼으로 한정되었다. 그가 겪어 온 모험 중에서도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치와

—『존 버거의 초상』 「책 머리에」 전문

시골살이, 가족, 글쓰기, 예술에 이르는 아주 다양한 영역에 대한 그의 전적인 헌신과,

존 버거의 초상 장 모르가 찍은 오십 년 우정의 풍경

장 모르(Jean Mohr, 1925- )는 스위스 제네바

사진 장 모르 글 장 모르, 존 버거 역자 신해경 판형 및 장정 180×235mm, 양장 발행일 2017년 3월 5일 면수 168면 가격 37,000원

출신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제네바대학에서

차례 책 머리에-장 모르 / 사진 / 장 모르: 어느 초상화를 위한 한 장의 스케치-존 버거

되었다. 초기에는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사업기구,

이 책은 1960년대부터 찍은 수백 장의 사진에서 장

『말하기의 다른 방법』 등을, 에드워드 사이드와

모르가 직접 가려 뽑아 친구에게 바친 일종의 헌사로,

『마지막 하늘이 지난 후』를 공동작업했으며, 오십 년에

미술비평가, 화가, 소설가, 농부로서의 모습과 더불어,

걸친 팔레스타인 난민 기록에 대한 회고록 『나란히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고 파리 줄리앙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공부한 뒤 서른 살이 되어서야 직업 사진가가 세계보건기구 등 세계 인권기구들과 함께 일했다. 존 버거와 『행운아』 『제7의 인간』 『세상끝의 풍경』

8

그를 중심으로 한 모든 가족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또는 마주보며』를 냈다. 1964년에는 동시대 주요

반세기 동안 제한 없는 특권을 부여받은 장 모르만이

스위스 예술가 오십 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고,

완성할 수 있는, 위대하면서도 평범한 한 작가의

1978년 쾰른에서 인권 문제에 참여도가 높은

꾸밈없는 기록이다.

사진가에게 주는 상을 받았다.


1978년, 런던에서. 존 버거의 부모는 런던에

1979년, 오트사부아에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살았다. 정신없이 분주하게 쌓여 가는 아들의

길고 추운 겨울이 첫 봄꽃에 자리를 내어 줄

이력은 부모의 자랑거리인 동시에 걱정거리였다.

때마다, 시간은 그의 이목구비에 뚜렷한 흔적을

존이 자주 런던을 방문한 덕에 부모와 자식은

남겼다. 얼굴이 변하고 눈에 띄는 주름들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생기면서 지식인의 삶과 농부의 삶이 잘 조화된 모습을 드러냈다.

1993년, 오트사부아 안네마스 기차역에서. 에른스트 네이즈베스트니가 존 버거를 찾아왔다.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난 두 친구가 기차역 지하통로를 지나는 모습을 찍었다.

9


죽음 후에 | 장례식 추도문  A Speech in the Funeral by Jacob Berger

내 아버지의 여인들

아흔의 나이로 2017년 1월 2일 세상을 떠난 존 버거의 장례식이 2017년 1월 7일 토요일, 그가 살았던 프랑스 오트사부아 주의 작은 마을 미유시에서 열렸다.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유족은 그날의 기록을 사진과 글에 담아 이메일로 보내왔다. 그중 첫째아들인 제이콥 버거의 추도문(pp.10-11)과, 막내아들 이브 버거의 추도시(p.10 아래), 친구 앤서니 바넷의 장례식 풍경 스케치(p.12)를

제이콥 버거(Jacob Berger)

번역해 소개한다. —편집자

영화감독, 작가

토니에서 아버지의 임종을

니다. 저는 ‘낙관주의’라는 말을 좋아하

인이었고, 중국에서 태어났으며, 또한

지키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지 않습니다. ‘확신’이란 말을 좋아합니

오스트리아와 유대인 혈통도 가지고 있

‘얼마나 남자다운가!’ 하는

다. 네, 미리암 할머니는 아버지에게 그

었고, 귀족이었고, 그러니까….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미 돌아가

확신을 주었습니다.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넬라(Nella)가 나타났죠. 아버 지는 치밀한 분이었습니다. 인내심 있는

그 모든 것들이 아버지가 그저 한 명의

분이셨죠. 아버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셨지만 그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

미리암 할머니와 제 어머니 애냐

영국 작가가 되지 않게 도와주었습니다.

예민하고 재능있는 분이었는데, 넬라가

버지에게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

(Anya) 사이에 어떤 여인이 아버지에게

신께서 영국 작가들로부터 우리를 지켜

아버지에게 미치는 법을 알려 주었습니

다고, 그렇게… 남자다운 방식으로. 하

영향을 미쳤는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주셨죠. 그리고 베벌리(Beverly), 네, 베

다. 더 격해지는 법이요! 암탉처럼 울고,

지만 아버지는 또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그 여인들도 아버지에게 무언가

벌리는 미국 남부 출신이었습니다. 그분

당나귀처럼 울부짖는 법을. 넬라는 아버

여성적인 면모도 지닌 분이었습니다. 그

를 전해 주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의 피에는 오트사부아와 관련된 건 전혀

지에게 집시가 되는 법을 알려 주었습니

여성적인 면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확

아마 회화나 드로잉과 관련한 것들이겠

없었죠. 하지만, 당신의 인내심으로, 당

다. 본인이 집시였으니까요. 그녀 덕분

신이 없는 저로서는, 대신 아버지의 삶에

지요. 바버라, 이본….

신의 지혜로, 눈앞에 있는 것에 대한 당

에 아버지는 더 재미있고 더 자유로운 사

신의 무한한 믿음으로, 아버지가 농부가

람이 되었습니다.

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몇몇 여인들에 대

그 다음 애냐가 아버지에게 준 것은,

해 이야기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어떤 감각이었습니다. 엄

아버지는 그 여인들에 의해 말 그대로 양

격함에 대한, 철저함에 대한, 이념적인

육되고, 부양받았으니까요.

것에 대한, 그러니까, 비타협적인 태도

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아버지의 인생에는, 말하자면 연인이 되지 못했던 다른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벌리는 계절의 변화와 함께

‘말하자면’이라고 덧붙이는 건, 그 관계

지내는 법을, 언덕을 오르내

에 사랑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건…

릴 때 그 언덕의 리듬에 맞춰

그러니까, 어쨌든 달랐으니까요. 예를

제 할머니 미리암(Myriam)이 기억납

에 대한 감각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왜냐

니다. 할머니의 사진이나 다른 이미지들

하면 마르크스주의 사상가가 되기 위해

을 떠올려보면 모두 하나같이 미소를 짓

서는, 혁명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는, 완

움직이는 법을, 소 떼나 양 떼, 개들, 심지

들어 제 누나 카트야(Katya)가 있습니

고 계신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 미소는

고한 태도를 지니는 것이 나았을 테니까

어 파리들과 함께 움직이고 숨 쉬는 법을

다. 제가 기억하는 한 카트야는 늘 아버

특별한데, 거의 풍자에 가까운 미소, 마

요. 확고해지는 편이 나았을 테니까요.

아버지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니,

지와 함께 놀았습니다. 아버지도 늘 누나

치 그 어떤 비극적인 일도 그 미소를 거

또한 제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더 넓은 세

아버지와 나란히 그것들에 대해 배웠습

와 놀았고요. 두 사람은 그녀가 아주 어

두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듯한 미소입

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러시아

니다. 그분은 아버지에게 적응하는 법을

릴 때부터 함께 놀았습니다. 둘은 아버지

당신이 바라보는 모습을 봅니다. 당신이 바라보고 귀 기울이는 모습을 봅니다. 당신은 말하죠, ‘나를 보지 말고, 내 시선을 따라가 보십시오.’ 여기를 보세요, 여기도, 여기도, 여기도, 그리고 저기도. 그림들에 귀 기울이고, 농부들과 이민자들의 말투에 귀를 기울이세요. 아픔을 치유하는 어머니와, 우리에게 양식을 주는 동물들에, 나보다 아는 것이 많은 가난한 이들에게, 수감자들에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아가씨에게 귀 기울이세요. 그들을 보고, 그들을 들으세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들리시나요? 나는 여기 있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희망을 지닌 채 나는 여기 있습니다, 당신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이브 버거가 장례식에서 낭독한 추도시

10


존 버거와 그의 어머니 미리암. 1978. 사진 장 모르.(왼쪽) 존 버거와 그의 아내 베벌리 버거. 캥시, 1996. 사진 장 모르.(오른쪽) 존 버거의 관을 보고 인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과 묘지 풍경. 2017. 1. 7.(아래) 장례 예배에서 추도시를 프랑스어로 낭독하는 아들 이브 버거. 2017. 1. 7.((p.10 아래)

와 딸이었고, 마음을 나누는 절친한 친구

제가 놓쳐 버린 다른 여인들도 많이 있

을 전하고 싶습니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

다. 얼굴의 선들을 따라 그렸습니다. 그

였고, 남편과 아내였습니다. 장 폴 사르

을 것입니다. 그분들이 저에게 나쁜 감정

로 아버지라는 인물을 만들어낸 그 여인

때, 천천히,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

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였고, 안토니우

을 가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들에게요.

다. 모든 게 괜찮다는 생각이요. 모든 게

스와 클레오파트라였습니다. 두 사람이

그리고 제 동생 이브의 아내인 산드라

함께 쓴 책은 장난기 가득한 대화였습니

(Sandra)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다. 로렐과 하디처럼 무대에서 함께 공연

왜냐하면 산드라가, 그러니까, 산드라가

했고, 편지와 이메일, 문자 들을 주고받

아버지에게 죽는 법을 알려 주었으니까

았습니다. 마치 끝날 줄 모르는 대화 놀 이 같았죠.

있어야 할 자리에, 자기 자리에 있었습니

무리는 프랑스어로 하겠습

다. 처음으로, 거스를 필요가 없었습니

니다. 이 모든 여성들은 모두

다. 분개할 필요도 없었죠. 시간이 멈췄

훌륭한 분들이었지만, 각자

습니다. 커다란 고통이었지만, 모든 게

요. 제 전처였던 크리스티나(Cristina)는

가 차지하는 자리도 꽤 컸다는 말씀만 드

괜찮았습니다. 우리의 형제 사이먼이 말

그 방법을 보여 주었습니다. 본인이 먼

리고 싶습니다. 모두들 아버지에게… 굶

했듯이, 아버지는, 이제, 모든 곳에 계시

저 죽음을 맞이하면서, 죽음이 다른 이들

주려 있었다고 할까요! 이 여성들에 이

니까요. 그걸로 됐습니다. ■

리고 틸다(Tilda)가 있습니

에게 선물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으

어 제 자리를 차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

다. 저는 개인적으로 틸다를

니까요. 하지만 산드라는, 실제로 죽음

습니다. 지난 이십 년 동안 제가 아버지

알지 못하지만, 그녀가 아버

을 맞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아버지

와 단 둘이 있을 수 있었던 때는, 단 한 번

지에게 알려 준 것은 알고 있습니다. 확

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녀는 경험을 함

신을 가지고, 치밀하고, 격해지고, 장난

께하는 이였고, 길을 안내하는 이였습니

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엔젤」(1990)은 제40회 베를린 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다. 이브 버거(Yves Berger, 1976- )는 화가로, 제네바 국립고등미술학교를 졸업했다. 아버지 존 버거와

다. 그녀가 저 산길의 첫번째 굽이를 넘

아버지를 지켜보았습니다. 덕분에 저는

들을 근사하게 해야만 합니다. 우리 모두

어갈 수 있게 아버지를 이끌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아버

알고 있듯이, 과장된 연기는 모든 예술가

마지막으로, 이렌(Irene)이 있었습니

지와 단 둘이 있을 수 있습니다. 거기 아

에게 가장 나쁜 것이니까요. 틸다는 아버

다. 아버지의 눈을 감겨 준 이렌. 아버지

버지가, 안토니의 거실에 갖다 놓은 병상

지에게 멋있게 행동하는 법을, 과장하지

는 이렌의 품에서, 우리 모두 눈을 감고

에 누워 있었습니다. 저는 눈물을 훔치

않는 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덕분에 아버

싶은 그 품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며 오랫동안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았

나는 그 모든 여인들에게 감사의 마음

겸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가 감독한

아버지 주변에는 늘 여인들이 있어서,

스러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

지는 멋있는 사람이 되었지요.

제이콥 버거(Jacob Berger, 1963- )는 영화감독

함께 지냈던 알프스 산록의 시골 마을에 살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습니다. 아버지의 초상을 몇 점 그렸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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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후에 | 장례식 풍경의 기록  A Note on John Berger’s Funeral by Anthony Barnett

관 속에는 여유가 없다! 앤서니 바넷(Anthony Barnett)

작가

리에 있는 산은 불멸의 존재로 여겨지기

대부분은 이미 매장을 마친 후였다. 관에

쉽다. 하지만 그 산에 익숙해져 있는 이

누운 망자(亡者)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

들에게 그 산은,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으

이었다. 뭔가 낯설었다. 늘 활달하게 움

로 보이지 않는다. 산은 또 다른 시간 단

직이던 존의 팔이 가만히 있었기 때문만

위를 지닌다.” 존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

은 아니다. 그 팔들이 이제는 아무 특징

는 산이었다.

도 없이 그의 몸통 옆에 딱 붙어 있기 때

영구차의 뒤를 따라 묘지를 나올 때 다

문이었다. 그가, 그 무엇으로도 가둘 수

시 한번 종소리가 울리고, 엄숙한 울림이

없었던 존이, 그렇게 비좁은 곳에 갇혀

계곡 가득 퍼져 나가며, 멀리 있는 이들

있다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도 미유시(Mieussy)가 또 하나의 죽음을

나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관 속에는 여유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풍경 안에

가 없다는 것을.

보이는 모든 가정이 그렇게 장례 행렬에

늦게 도착한 카트야가 관 앞에서 흐느 끼며 그의 가슴을 쓰다듬는 사이, 나는

합류한다.

다시 교회 안으로 돌아왔다.

영 존

국에서는, 나는 그의 모습을

다. 렌트카에 달린 망할 위성 내비게이션

보고 싶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보고 싶어졌

중에, 우리 모두는 현대식 건 물인 마을회관에 데운 와인 과 달달한 빵을 놓고 모였다.

의 관을 보고 인사하기 위해

음악이 지독히 거칠게 흘러나온다. 덕

덕분에 길을 잘못 들어 시간이 지체되었

테이블 위에는 여러 나라 언어로 된 존의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사

분에 우울한 쇼팽의 전주곡이 꽤나 활기

다. 휴(Hugh)가 운전대를 잡고 존의 젊

책이 몇 야드, 아니 몇 미터씩 이어지게

진이다.(p.11 아래) 묘지의

차게 되어 버렸다. 오직 톰 웨이츠(Tom

은 전기 작가 톰(Tom)이 뒷자리에서 길

놓여 있고, 액자에 넣은 드로잉 두 점, 그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나무 아래 그의 관

Waits)의 노래만이 그런 거친 음향으로

을 안내하면서 겨우 예배 시간에 맞춰 도

리고 이브가 옛날에 그린 존과 베벌리의

이 놓여 있다. 모두들 걸어서 그 앞을 지

들어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분

착할 수 있었다. 묘지 앞 계단에서, 늦게

채색화와 여러 장의 사진도 놓여 있다.

나 마지막 존경을 표하고, 그 옆에 기다

위기에 맞지 않고 세속적인 그의 애도곡

도착할 거라던 카트야를 기다리는 제이

우리는 새 친구를 사귀고, 오래된 친구를

리고 있는 유족과 포옹하며 위로의 말을

도 갑자기 멈춰야 했다.

콥이 우리를 맞아 주었고, 교회 안으로

만나고,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오십

전할 예정이었다. 그런 다음에는 왼쪽에

이브가 존의 시를 불어와 영어로 아름

안내해 주었다. 녹색 브이넥 스웨터를 착

명 남짓으로 줄어들었을 무렵, 테이블들

난 길을 따라 내려가 교회 입구에 있는

답게 낭송한다. 제이콥이 존의 인생에 있

용한 존은 아주 편안해 보였다. ‘착용’이

을 모아 하나의 긴 식탁을 만들고 나란히

방명록에 서명을 했다. 멀리서 반짝이는

었던 여인들을 빠짐없이, 씩씩하게 이야

라고, 차려입은 듯한 표현을 썼지만, 그

앉아 존의 작품과 그의 존재감에 둘러싸

산등성이가 우리 위로 떠 있는 것 같았

기한다. 그 사이에, 이제 아흔넷이 된, 제

는 재킷을 입지 않아서 꽤 편안해 보였

인 채 수프와 치즈, 소시지, 레드 와인을

다.

이콥과 카트야의 어머니 애냐와 넬라가

다. 커다란 그의 얼굴은 고요했다. 당연

먹었다. 톰 드 사부아 치즈를 통째로 자

아내 베벌리의 장례식에서 이미 보았

도착하고, 카트야와 산드라가 두 사람을

히, 큰 두 눈은 감겨 있었고, 눈꺼풀의 선

르는 즐거움은 내 차지였다. 이때부터 유

듯이, 이 마을의 장례식에는 일정한 절차

반갑게 맞아 준다. 존의 조카인 도미니

들이 또렷이 보였다. 두 눈은 마치 아주

족과 손님들의 사진 찍기가 시작되었고,

가 있다. 전날, 장례식 직전에 교회에서

크(Dominic)가 가족을 대표해 이야기하

속이 깊은 가방처럼 보였다. 주름이 가득

사진 찍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다가

관을 하룻밤 보관했다. 그 다음 관을 닫

고, 뉴욕에서 온 사이먼(Simon)이 『모든

하고 그동안 아주 잘 써 온, 이제는 단단

결국 단체 사진이 되었다!■

고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작은 마을이라

것을 소중히하라』에서 발췌한 문단을 낭

히 잠겨 버린, 그래서 보석들을 영원히

별도의 성직자를 둘 수 없기 때문에, 마

독한다. 교회에서 나오다 그 낭독을 들은

담게 된 가방! 손가락 둘을 내 입에 갖다

을 주민 중 교회 안에서 어느 정도 위치

우리는 산등성이를 돌아본다. 낭독은 다

댔다가, 그의 이마에 내려놓았다.

를 가지고 있는 여인이 예배를 진행한다.

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늘 같은 자

앤서니 바넷(Anthony Barnett, 1942- )은 영국 작가로, 독립 미디어 플랫폼인 ‘오픈데모크라시’를 만들기도 했다.

죽은 이를 본 적은 별로 없다. 그것도

장례식 후 마을회관에서 가진 저녁 만찬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오십 명 남짓으로 줄어들었을 무렵, 유족과 손님들의 사진 찍기가 시작되었고, 결국 단체 사진이 되었다.

12


죽음 후에 | 추모의 글  Memorial Writings for John Berger by People Who Love Him

우리의 목소리, 잘 들리나요? 존 버거에게 바치는 추모의 글들 제프 다이어(Geoff Dyer) 외

존 버거를 직접 또는 책으로 만났던 사람들,

이제 그 글들은 존을 위한 것이 되었습니

대에, 그 없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

‘숙주(host)’. 이 역시 또 하나의 흥미

그를 사랑하고 존경했던 사람들이 남긴

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겠지

까. 그의 말에 따라 살아가는 것, 시몬 베

로운 단어이다. 환대(hospitality), 병원

요.

유가 말했던 (존 버거 본인이 그녀에 관

(hospital) 같은 단어가 모두 이 단어를

—앤 마이클스(Anne Michaels, 시인), 장

한 에세이에서 언급했던) ‘창조적인 집

어원으로 하고 있다. 숙주는 환대를 제공

례식에서의 낭독문 중에서

중력’을 가지면 되는 걸까. 베유의 문장

하는 사람과, 집단, 무리, 부족 모두를 의

은 다음과 같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 창

미한다. 이 단어의 어원은 두 가지인데,

런 분은 다시 없겠죠. 그분의 마

조적인 집중력을 가지는 것은, 비범함의

‘낯선 이’ 혹은 ‘적’뿐 아니라 ‘손님’을 뜻

추모의 글 중 일부를 발췌하여 소개한다. 기꺼이 수록을 허락해 주신 분들과 매체에 감사드린다. —편집자

신은 역사상 가장 소란스러웠던

아 왔습니다. 인간 본성의 모순이 어떻게

음은 그분의 몸보다 훨씬 컸습니

동의어이다.” 존 버거의 비범함은 —급

하는 라틴어가 모두 그 어원이 된다. 내

드러나는지를 보았고, 사람들이 놀라운

다. 슬픔 속에서도, 제가 책을 마칠 때까

진적이고, 명석하고, 부드럽고, 확고했

생각엔, 그 둘을 인식하고, 어느 쪽인지

발명을 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전쟁을

지 그분이 기다려 주었다는 사실이 기쁩

던— 어떤 비옥한 양분이 되어, 맹렬한

판단하는 것, 그리고 거기서 어떤 친절함

멈추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언

니다. 그분의 두 손에 제 책을 전할 수 있

지성과 애정이 담긴 명확함이 빛나는 그

을, 인간적인 반응을 만들어내는 것이 선

제나 그런 싸움들 옆에, 그 대의에 대한

었습니다. 그분이 읽은 마지막 책이었겠

만의 집중력 있는 관심으로 드러났다. 그

택의 문제임을 알아보았다는 것이 그의

확신을 가지고 서 있었습니다. 팔레스타

죠. 그분이 읽어 주지 않았더라면 저는

는 그런 예견자였고, 지금도 그러하고,

재능이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인에서, 치아파스에서, 블랙 팬더와 함

마칠 수 없었을 겁니다. 오랫동안 그분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말이다.

께, 농부들과 함께말이죠. 당신은 어떤

저를 최고(Utmost)라고 불렀습니다. 저

—알리 스미스(Ali Smith, 작가), 『가디

—올리비아 랭(Olivia Laing, 작가), 『가

말을 하든 여성을 위한 자리를 남겨 두었

는 그분을 점보(Jumbo)라고 불렀죠. 제

언(Guardian)』, 2017. 1. 6.

디언』, 2017. 1. 6.

고, 어머니의 눈길 같은 시선으로 사물들

가 화나 있을 때 그분은 제 뒤에 서서 귀

을 바라보았죠. 우리는 계속 당신을 읽

로 부채질하는 시늉을 해 주었거든요. 저

고,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과 당신의 글

는 그분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분도 그

을 알게 된 것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하며

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에 대해 존 버거는 ‘대실패’라고 했지만,

제나 부드럽게.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지낼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묻겠죠. 존

—아룬다티 로이(Roy Arhundati, 작가),

그 영화 속 그의 대사 한 줄은 내 머릿속

것, 시와 산문, 자연과 인간이 만든 것이

이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는 어떻게

장례식에서의 낭독문

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기억을 떠올려

만나서 하나가 되고, 물론 작가와 독자도

보자면, “죽고 나면 나는 누구 소유도 아

하나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확하

했어요, 존! (Well done, John!)

닌 땅에 묻히고 싶어”라는 대사였다. 그

게, 그가 자신들에게, 또한 자신들이 그

—틸다 스윈턴(Tilda Swinton, 영

땅은, 말하자면, 우리 모두의 땅이었다.

에게 밀착해 있다고 느낀다. 그는 그들

—제프 다이어(Geoff Dyer, 작가), 『가디

의 것이었다. 그는 그들에게 귀 기울인

언』, 2017. 1. 6.

다. 심지어 지금도, 이 어둡고 부조리한

세기였음이 분명한 한 세기를 살

했을까, 하고요. Muñoz & Pep Ramis, 무용가), 장례식에

서의 낭독문 중에서

화배우), 장례식 저녁 만찬에서

—마리아 무뇨스와 펩 라미스(María

계 어디를 가든 존의 친구라면 나

인이 집필하고 연기까지 했던 영 화 「워크 미 홈(Walk Me Home)」

동안 존 버거가 우리에게 준 것들

의 문장은 대상들을 한데 모은다. 확실하게, 분명하게, 그리고 언

시대의 소음이 귀를 먹게 할 정도로 울리

가 미치는 범위이고, 그가 껴안을 수 있

려운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 위대한

『다 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그는 자 본주의는 “대중들이 자신의 관

듣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는 크기겠죠. 세상 구석구석까지요. 저

사상가이자, 예술에 대한 글을 쓰는 위

심사를 가능한 한 협소하게 정의하도록

다.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는 것

는 지난번 베벌리의 장례식 때 캥시에 있

대한 작가이자, 가장 위대한 응답자였

강제하는 것을 통해 살아남는다”고 했

을. (…)

었습니다. 베벌리가 세상을 떴을 때 제가

던 그에 대한 모든 것이 생생하다. 버거

다. 이 협소함, 무언가를 담장 안에 가두

1999년, 우리는 버려진 올드위치 지하

존에게 말했죠. “죽음이 우리에게 뭔가

의 작품에 담긴 그 응답과 책임감이, 사

거나, 담장 밖으로 몰아내려는 병적인 충

철역에서 아트엔젤(영국의 미술단체)

를 떼어 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

상과 예술을 하나로 뒤섞어, 세계를 이해

동에 그는 맞서 싸웠다. 낯선 이를 친밀

이 주최한 퍼포먼스 「수직선(A Vertical

이 주는 것도 분명 있을 것이다”라고요.

하고, 더 분명하게 직시하고, 더 나은 곳

하게 대할 것. 차이에 열려 있을 것. 다른

Line)」을 함께 연출했다. 예술의 기원에

떠나 버린 누군가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으로 만들게 하는 힘을 만들어낸다. 우

것을 받아들여 열매를 맺을 것. 그는 사

대해 생각해 보는 행사였다. 공연의 마지

우리를 안내할 것입니다. 그때 베벌리를

리 모두가 속해 있는 그 세계를 말이다.

람들, 우리 모두를 아우르는 그 숙주를

막은 지하 깊은 곳에서, 세계에서 가장

위한 글 몇 줄을 존에게 보내 주었는데,

그런 존 버거가 이제 없다. 이 어두운 시

믿었다.

오래된 선사시대 미술인 쇼베 동굴의 벽

를 찾아낼 것입니다. 그것이 그

을 과거형으로 생각하는 일은 어

는 이런 때에도, 그는 다른 이의 소리를

13


화를 발견할 당시를 상상해 보는 것이었

를 함께할 기회가 오리라는 희망을 가졌

겠다. 존 버거 선생님, 저승에서는 이승

거가 육신의 옷을 벗고 다른 세상으로 갔

다. “이 어두운 곳에서도 내 목소리가 들

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다니! 소식

에서 보는 방법이 다릅니까? 명복을 누

다. 지상의 고통을 지켜보느라 못내 아팠

리나요?”라는 존의 외침으로 공연이 시

을 접한 나는 그가 서명하여 보내 준 시

리시길 빕니다.

을 그분의 영혼에 평온함이 깃들기를….

작되었다…. 네, 존, 이 어두운 곳에서도

집을 들척이며 안타까운 마음을 달랠 뿐.

—강운구(사진가)

—이혜경(소설가)

당신의 목소리는 잘 들립니다.

그리고 그가 이웃 로베르 조라의 죽음을

—사이먼 맥버니(Simon McBurney, 영

애도하여 남긴 시 구절을 몇 번이고 되뇔

화배우, 연출가), 『가디언』, 2017. 1. 6.

뿐. “당신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소 / 지

금은 사라져 가는 기술을 / 망치로 두드

직 이윤만을 경배하고 탐욕만을 부추기

으니, 사라졌으니, 죽었으니, 넘어가려

버거는 “내가 이야기꾼이라면,

려 / 낫을 날카롭게 하는 기술 말이오 /

는 지구적 전제주의에 저항하는 모든 살

는 발목을 붙잡았다. 움직이고 만나 이야

그건 내가 듣는 사람이기 때문이

당신의 무덤 옆에 서자 / 나의 눈에 당신

아 있는 사람들과 연대”했다. 특히 그는

기로 옮기면, 영영 이별인 줄 알았던 것

다”라고 말했다. 종종 존 버거의 존재감

의 엄지손톱이 / 박막(薄膜)만큼이나 얇

여성과 이주노동자, 소작농과 동물 같은

들도 되살아난다고. 막혔으니, 깜깜하

이 가지는 특별한 성격을 묘사해보려 했

은 / 낫의 날을 검사하고 있는 것이 보이

소외된 약자들의 편에 서 있었다. 일하지

니, 가파르니, 주저앉으려는 손가락을

지만, 단 한 번도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

오.” 우리의 무딘 언어와 인식을 날카롭

못하면 굶을 수밖에 없는 자유 없는 사람

끌어당겼다. 다시 보고 영혼을 맞바꿔 그

했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듣고 있는 방식

게 하는 기술을 가르쳐 준 그는 저 세상

들, 기계지기, 청소부, 갱부(坑夫), 시멘

리면서, 틈과 빛과 줄을 함께 찾자고. 생

을 묘사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에서도 우리를 향한 따뜻한 눈길을 멈추

트 잡부, 세탁부, 천공공(穿孔工) 등 이

생하고 다정하게!

어쩌면 부분적으로는 그가 침묵에 둘러

지 않으리라. “두드리고 / 늘려 펴서 / 해

주노동자들을 고향, 그들에게 아무런 보

—김탁환(소설가)

싸여 있다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시

마다 더 얇게 만”드는 일에 우리가 얼마

장된 미래가 없어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시한 이야기나 자화자찬, 허식 따위를 완

나 정성을 다하는가를 살피면서. 그럼에

고향으로 돌아가, 남편, 아버지, 시민, 애

전히 제거한 침묵. 뉴욕이라는 소란스러

도 그가 이제 이곳에 더 이상 있지 않다

국자인, ‘사나이’로 다시 되돌아 갈 수 있

운 도시에서 날아온 내게는 그 침묵이 훨

는 엄연한 사실에 아쉬움과 슬픔의 마음

도록, 그의 전 생애를 바쳐 투쟁했다. 오

현, 존 버거. 소설가 조세희는 시선의 아

씬 크게 느껴진다. 그가 온몸으로 듣는

은 커져만 간다. 커져 가는 아쉬움과 슬

늘, 나는 광화문에서 촛불을 든 ‘그’를 문

픔을, 사제 문정현은 시선의 뜨거움을 가

사람이라는 건 확실하다. 그의 자세나 선

픔 속에, 그리고 깊은 애도 속에, 고인의

득 만난다.

르쳐 주었다. 존 버거는 시각의 의미와

이 뚜렷한 얼굴, 그리고 친밀감과 거리를

명복을 빈다.

—민현식(건축가)

그것의 방법에 대해 말했다. 사물을 보는

동시에 담고 있는 그의 시선에서, 그 감

—장경렬(서울대 영문과 교수)

버거의 모든 작업은 ‘인간’에 종 착된다. 그것의 실천을 위해, “오

버거를 통해 ‘이전’과 ‘다음’을 소 중히 하는 법을 배웠다. 지나갔

는 사랑스러운 세 분의 노인에게 ‘시선’을 배웠다. 조세희와 문정

법, 사건을 보는 법, 그것의 시각화가 가

떤 계기에, 문광훈 교수가 존 버거

고는 얻는 행복…. 당신을 통해

는 낱낱이 살핀다. ‘여기, 우리가 만나는

선생께 열화당 사진문고로 나온

배운 것입니다. …저에겐 큰 가르침이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수성을 알아볼 수 있다. 함께 작업할 때,

은 것에 보내는 따스한 시선, 그리

지는 의미를 존 할아버지는 속삭였다. 그

유창함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무언가

를 듣고 있는 그가 우리, 즉 손님들을 위

사진집 『강운구』를 보냈다. 존 버거 선생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의 시선은 섬세하다. 이 아프고, 뜨겁

해 마련해 준 공간이었다. 아주 급진적인

이 답례로서인 듯, 문 교수에게 책 한 권

—승효상(건축가)

고, 섬세한 시선을 가진 세 분의 할아버

어떤 환대. 그의 집중력은 언어를 더 매

을 보내면서 그 앞 장에 사진집 『강운구』

끈하게 해 주었고, 우리로 하여금 진심을

를 본 느낌을 한마디 쓰셨다. 그것을 문

말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교수가 복사해서 내게 주었다.

그는 기억할만한 말을 많이 했지만, 그런

지는 ‘여전히 종결되지 않고 있는 폭력과

은 이따금 선심 쓰듯 지상으로 빛

갈등’을 어떻게 수용하고 저항할 것인가

을 한 줌씩 내려 보내는 듯하다.

에 대해 각자의 지혜를 사람과 나누려 했

—벤 레너(Ben Lerner, 작가), 『더 뉴요커

덧없는 세상을 좀 더 견딜 만하게 해 주

다. 그러나 세상은 지혜를 짓밟고, 괴물

(The New Yorker)』, 2017. 1. 6.

는 그런 존재를. 존 버거의 글은 내게 그

을 찬미한다. 괴물로 질주한다.

빛이나 다름없었다. 삶의 누추함이며 그

—노순택(사진가)

난해 여름의 끝 무렵인 8월 27일

속에서 고통에 겨운 목숨을 따뜻하게 지

아침에 영화 「존 버거의 사계」를

켜보는 그의 시선에 깃든 극진함에 기대

통해 나는 존 버거와 만났다. 그의 시집

어, 나는 점자책을 손가락으로 짚듯 세상

는다는 건 이 세상에서 그 육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물론 그 육체의

『아픔의 기록』과 『백내장』을 번역한 나

누가 이럴 경우에 좋지 않은 소리를 할까

을 읽어 가며 삶을, 존재를 있는 그대로

부재는 슬프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

로서는 그와 직접 마주하지 않았어도 번

마는, 그래도 존 버거 선생께서 듣기 좋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지상에 미만한 목

에게 그 부재는 이 세상 무엇으로도 대신

역 과정에서 이메일을 통해 이야기를 주

은 말씀을 해 주셔서 감격했다. 이런 기

숨의 처연함을 그대로 바라보며 다독이

할 수 없는 견딜 수 없는 공백이며 시련

고받았기에 영화를 통해 만나는 그가 낯

회에 존 버거 선생의 필체를 꼼꼼히 들여

는 그의 글이 지닌 깊은 울림은 오래도록

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언제 어

설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든 우리가 자리

다보는 것도 어쩌면 추도하는 한 방법이

내 안에서 공명할 것이다. 그 사람, 존 버

디서든 망자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느

장례식 후, 현대식 건물인 마을회관에 사람들은 데운 와인과 달달한 빵을 놓고 모였다. 테이블 위에는 여러 나라 언어로 된 존 버거의 책이 몇 미터씩 이어지게 놓여 있고, 액자에 넣은 그의 드로잉과 초상사진들이 놓여 있다. 존 버거의 죽음을 맞아 모인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도 있지만, 처음 만나는 경우도 많았다. 테이블들을 모아 하나의 긴 식탁을 만들고 나란히 앉아 존의 작품과 그의 존재감에 둘러싸인 채 수프와 치즈, 소시지, 레드 와인을 먹었다. “잘했어요, 존!”이라고 외치며 건배 제의를 하는 틸다 스윈턴. (p.15 위)

14


낄 수 있고, 또 그들이 전하는 목소리에

순간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한 적이 있

귀 기울일 수 있다. 남겨진 사람들이 좀

다. 존 버거에게 기존의 관습적인 비평에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 바라는 망자들의

대한 저항은 과거의 방식에 머물러 있기

목소리. 우리가 사랑했고 우리를 사랑했

를 거부하고 더 나은 현실로 나아가기 위

던 지금은 없는 이들의 목소리. 그 목소

한 고민과 탐구의 연장선에 놓인 제스처

리 덕분에 우리는 ‘죽음’이 있은 후에 비

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로소 ‘손상된 것들을 고칠 기회를 제공’

—장영엽(기자), 『씨네21』, 2017. 1. 17.

받는다는 걸 나는 존 버거의 책들을 통해 —김경(칼럼니스트), 『경향신문』, 2017.

1. 26.

맹랑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정향이 박힌

알았다.

버거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열 살배기로 돌아가, 열일곱 살의

사과를 먹으며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어날 때부터 자신이 죽을 것을 알

처럼 리스본에 머무르고 있을까. 혹은 슈

았던 사람처럼 그는 지상의 모두

투트가르트의 아파트에서 이민 노동자

를 위해서, 거의 아무도, 어떤 생명도 빼

들과 수다를 떨고 있을지도, 자신이 만든

놓지 않고 관찰하고 글을 썼다. 가난한

가상의 공간 생 발레리에서 개와 뒹군다

사람, 산 위의 양치기, 친구의 어머니, 새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어

해 첫날에 죽은 송아지, 시인, 사진작가,

쩌면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서 있을지도

무명의 화가, 한 번도 빛을 보지 못한 사

모른다. 존 버거식 유머를 활용한다면 촛

람들, 아깝게 죽은 사람들, 체온과 친밀

불 때문이 아니라 길거리 음식 때문에!

감을 나누길 갈망하는 사람들, 존재 이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분명 그의 책 속에

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 분노하거나 좌절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하는 사람들. 우리 모두를 위해서 쓴 거

—이지(소설가), 『씨네21』, 2017. 1. 17. 책(『다른 방식으로 보기』)은 방

력과 일관성을 갖춘 지식인 존 버

웠고, 그렇게 이십세기 중후반을 대변할

송이 되자마자 격렬한 논쟁을 불

거. 미술 실기와 비평, 그리고 문학과 영

만한 내러티브를 생산했다. 내러티브는

요.” 우리는 목이 마른 날 일단 그에게로

러일으켰으며, 지금까지도 보수적이고

화를 넘나든 그를 어떻게 하나의 이름으

시뮬라크라(Simulacra)의 현대사회에

가면 된다. 그럼 그는 물과 갓 구운 비스

아카데믹한 미술대학에서는 이 책을 금

로 부를 수 있을까? 애매모호한 명명일

서 이면의 진실을 쫓는 지성적 도구였다.

킷을 가져오고 그다음에 뒤적뒤적 기억

기시하고 있다. 하지만 작품은 이 책의

지 모르나, 일종의 ‘시각 사상가(visual

“그렇게 놓인 사진들은 살아 있는 맥락

의 앨범과 책장을 뒤져서, 가장 좋은 이

제목처럼 다양한 ‘보는 방식들’로 더욱

thinker)’로서 버거는 미술의 시각언어

으로 복원된다. 물론 그것들이 유래된 원

야기를 가져올 것이다. “무엇이 당신을

풍성한 해석을 낳을 수 있다. 미술사 연

에 대한 대중적 이해에 지대한 영향을 미

래의 시간적 맥락은 아니고 —그것은 불

힘들게 하나요?” 자기 연민과 나약함과

구에 정치·사회적 관점이라는 보는 방

쳤음이 분명하다. 더불어 말이나 글뿐이

가능하다— 경험의 맥락이다. 그리고 거

쓸데없는 말로 치장하는 것을 싫어하는

식을 도입해 새로운 지평을 연 이 책은

아닌 실천적으로 사회의 불평등과 불의

기에서 사진들의 모호성은 마침내 진실

그는 그 무엇으로 환원되지 않는 한 사람

서양 회화와 현대 광고의 연관성에 대해

에 저항한 의식있는 지식인으로 남을 것

이 된다.”

한 사람의 본질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한

서도 고찰함으로써 광고 커뮤니케이션

이다. 미술인에게 이보다 더 큰 명예가

—전가경(디자인 저술가) 『미술세계』,

사람의 껍데기가 아니라.

연구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 많은

있을까?

2017. 2. ■

—정혜윤(CBS 라디오 피디), 『보그』,

미술사 및 대중문화 연구자들이 존 버거

—전영백(미술사학자), 『월간미술』,

2017. 2.

의 영향 아래 있다고 할 수 있는 이유다.

2017. 2.

나 다름없는 문장을 나는 그의 책에서 쉽 게 알아볼 수 있다. “거기 좀 앉아요. 가서 뭘 좀 가져올게

양한 재능과 창의력, 그리고 실천

사진과 글의 상호작용을 대안으로 내세

—김신(디자인 칼럼니스트), 『중앙선데

는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팔을 들고, 단식투쟁을 하고, 인간사슬

이』, 2017. 1. 8.

는 서사의 직조 방식에 대해 고심 했던, 편집자적 면모가 다분한 이

을 만들고, 소리치고, 글을 쓰는 것은 미

시대의 특별한 이야기꾼이었다. “진정

래가 무엇을 품고 있든 상관없이 지금 이

한 사진의 서술 형태”를 고민한 버거는

존 버거가 구십 세 생일을 앞두고 아래의 메일을

아들 이브 버거가 그린, 아버지 존 버거의 사망

보내왔다. 결국 그의 마지막 메시지가 되었다.

직후의 초상 드로잉. 가족이 보낸 아래의 부고 메일에 첨부되었다.(왼쪽)

곧 제 생일이 돌아옵니다. 케이크 값보다 양초 값이 더 들 것 같은 생일이!

친애하는 모든 분께,

여기까지 올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존 버거가 어제 아침 안토니에 있는 자택에서

행복하고 운이 좋지요.

사망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협력하고, 많은

지난 두 주 사이에 그의 건강이 악화되었고 그는

모험들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것이 행복합니다.

평화롭게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생일이란 그런 것을 축하하는 자리겠지요.

그는 눈을 감았습니다, 마치 다시 한번 적절한 단어를

하지만 저는, 이 축하가 말이 없는 것이 되기를

찾아야 할 것처럼.

바랍니다. 드러내는 것보다는 은근히 전하는 것. 그런 식으로 우리의 지평은 뒤섞일 것입니다.

2017년 1월 3일

감사의 마음과 포옹을 전합니다. 존

2016년 9월

15


죽음 후에 | 번역가의 에세이  Translator's Essay on John Berger by Kim Hyun-Woo

그의 손이 해준 약속 존 버거와의 만남을 회상하며 김현우(金玄佑)

번역가

달이 지났다. 추운 겨울 아

다.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그의 책을 다

침의 출근길이었다. 휴대

섯 권이나 번역하고 당시 여섯번째 책을

전화 메시지로 부음(訃音)

작업하고 있었지만, 맨 처음 그의 책을

을 들었다. 그가 죽었다. 곧 닥칠 것이라

접했던 때부터 생각하면 이십 년 만에,

고 생각하던 일이 닥쳤다. 실감은 나지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

않았다. 그가 내 안에 있는 방식이 그러

었다. 설레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보다

전부터 알고 지내던 옆 동네 할아버지 같

않을 수 없었다. 파란색과 연두색의 중간

했다. 늘 문장으로만 존재했던 누군가의

는 부담이 더 컸던 것이 사실이다. 두려

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다정한 분

쯤, 가장 가까운 색을 고르자면 ‘맑은 봄

몸이 이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

울 이유는 많았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고

위기는 집 안에 들어오고 나서도 계속 이

날의 하늘색’이라고 해야 할 그 눈은, 솔

이 내게는 아직 상실로 다가오지 않았다.

백을 하기 직전에 왠지 나의 단점만 자꾸

어졌다. 존 버거가 문학적 동지이자 친구

직한 눈이었다. 자신이 말을 하는 동안은

그의 문장은 지금까지와 다르지 않을 것

생각나서 불안한 것과 비슷했다고 할까.

이기도 한 넬라 비엘스키와 함께 지내는

상대가 자신의 말을 어떻게 듣고 있는지

이므로…. 다만 기억해 보려 했다. 그의

매우 섬세하지만 한편으로는 절대 타협

파리 근교 안토니의 집은, 크지도 화려하

궁금해 하고, 상대가 말을 할 때는 자신

몸이 어떠하였는지, 나의 삶을 지켜 준

하지 않는 단호함이 함께 있는 글들을 써

지도 않았다. 주로 하얀색으로 꾸민 실내

의 대답을 미리 생각하지 않고, 온통 상

그 문장을, 때론 용기를 주고, 아주 많은

온 작가임을 생각하면, 그 두려움은, ‘이

에는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고, 벽에는

대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눈, 여든아홉

때에 나를 구원해 주었던 그 문장을 만든

분이 나에게 실망하면 어쩌지’ 하는 걱

그림들이 많이 걸려 있는데, 존 버거 본

의 노인이 그렇게 아이의 눈을 그대로 지

몸이 어떠하였는지, 삼 년 전의 프랑스를

정이었다. 어떤 사람과 직접 만나는 것에

인의 드로잉—『벤투의 스케치북』에 나

니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다시 떠올렸다.

대한 두려움이 그를 좋아하는 마음에 비

오는,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경비원에

그의 글을 접하며 상상했던, 엄격하고 예

례하는 것이라면, 나의 두려움과 걱정은

게 쫓겨나기 전에 그렸다는 십자가상과,

민하게 평생을 살아온 노인의 모습은 그

그 어느 때보다 컸다.

일본 붓을 선물받은 캄보디아 여인이 그

렇게 하나씩 깨지고 있었다. 존 버거는

리 근교의 날씨는 3월 초라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

처음부터 그 불안함은 기우였음이 밝

려 주었다는 새 그림은 금방 알아볼 수

예민하고 단호하면서, 그럼에도 여전히

로 따뜻하고, 무엇보다 맑았

혀졌다. 우리가 탄 차가 집 앞에 도착하

있었다—과 그의 손자, 손녀의 사진들도

다정한 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다. 현지에서 만난 불문학자 정재곤 선

는 기척을 느꼈는지, 존 버거 본인이, 우

사이사이에 보인다.

생도 예외적으로 좋은 날씨라고, 참 좋

리말로 하자면 ‘버선발’로 현관문을 열

은 날에 오신 거라고 했다. 살짝 땀이 밸

고 내려와 대문을 열어 주었고, 일행들

정도로 따뜻한 날씨였지만, 어쩌면 땀이

한 명 한 명과 악수하며 다정하게 맞아

난 건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

주었다. 세계적인 작가라기보다는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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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맞은 것처럼 새하얀 머리

와, 느릿느릿한 몸동작에도,

야기들이 무르익었다. 먼저, 열화당(悅

그는 나이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했

話堂)에서 특별히 챙겨간 『훈민정음(訓

다. 거실 한쪽 구석에 오토바이 헬멧이

民正音)』을 보여 주었다. 당신의 글이 어

놓여 있었다. 집 앞에 오토바이가 한 대

떤 언어로 번역되고 있는지, 그 언어는

놓여 있는 걸로 보아, 아직도 가끔씩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차근차근 설명하

오토바이를 타고 다닐 정도로 건강한 모

는 정재곤 선생의 설명을 존 버거는 매우

양이라고 생각되어 마음이 놓였다. 백내

흥미롭다는 듯이 들었다. 내가 고민 끝에

장 수술을 받은 후에 눈이 어떤지 걱정이

준비한 붓펜을 받아 들고는 즉석에서 그

되었지만, 어두운 곳에서 아주 작은 글

림을 한 장 그려 주기도 했다. 이번 만남

씨를 읽을 때가 아니면 큰 불편함은 없는

에서는 열화당과 존 버거 사이의 신뢰를

것 같았다. “눈을 수식하는 형용사는 네

확인하는 작은 문서도 준비했다. 열화당

다섯 개밖에 안 돼요. 갈색, 파란색, 옅은

이기웅(李起雄) 사장이 어렵게 이야기

갈색, 녹색. 그리고 당신의 눈 색깔은 사

를 꺼냈다. “저는 편집자입니다. 그리고

비에르색이에요”(『A가 X에게』)라는 문

편집자의 역할은 작가와 독자 사이의 메

장을 번역했던 나로서는, 그의 눈을 보지

신저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서는 제가 선

리 나이로 팔십구 세였다. 눈

물로 가져간 접시에 넬라가 과자를 담아 오고, 포도주도 한 잔씩 마시며 이런저런 이


생의 글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최선을 다

가 X에게』에 나오는 ‘마음의 쉼표’라는

시작하는 순간, ‘듣는’ 일에는 소홀해질

해 충실하게 전달하겠다는 약속을 표현

표현이 아마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존 버거의 얼굴에 미안

그랬다. 버선발로 대문까지 마중 나

군가의 상실을 확인하는 것 은 의외의 순간이다. 부음을 들었던 날도, 무덤덤했던 내

야기는 국제문화도시교류협

올 때부터 줄곧 느껴 온 것이지만 존 버

가 존 버거라는 작가가 이제는 없음을 실

회에서 준비 중인 ‘안중근기

거는 다정하고 겸손했으며, 손님을 진심

감한 것은 의외의 순간이었다. 근작인 존

념 영혼도서관’ 이야기로 이

으로 대했다. “선물은 요구할 수 없는 것

버거의 마지막 에세이 『우리가 아는 모

음, 이 문서에 대해서는 미리 이야기를

어졌다. 일반적인 도서관이 아니라, 한

이다”(『G』)라는 그의 문장이 떠올랐다.

든 언어』의 교정쇄를 볼 때였다. 지금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리인이

인물의 삶을 정리하는 자서전(自敍傳),

‘선물’의 자리에 ‘존경’을 넣어 보면 그의

지 작업했던 책에서 저자 존 버거를 소

있어서 내가 문서 자체에는 서명을 해 드

혹은 해당 인물의 자료를 애정을 가지고

행동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직접 만

개하는 생몰년 표시 ‘1926- ’이 신간에

리기가 곤란합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을

정리한 사람이 쓴 전기(傳記)를 꽂는 도

난 그의 행동은, 스스로 존경을 요구하

서는 ‘1926-2017’로 바뀌어 있었다. 하

해 봤는데….”

서관이라고, 사람이 죽은 후 몸이 묻히

지 않지만, 바로 그 인격 때문에 보는 이

이픈 뒤의 빈자리를 채운 ‘2017’이라는

존 버거가 그림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는 곳이 무덤이라면 그의 영혼이 모셔지

로 하여금 무한한 존경을 불러일으켰다.

숫자가, 이젠 무언가 되돌릴 수 없게 바

“이게 제가 얼마 전에 그린 드로잉입

는 곳이 이 도서관이 될 거라는 설명을,

그의 말이 아니라, 편집자와 역자를 대

뀌어 버렸음을 알리고 있었다. 앞으로도

니다. 바다에 있는 갈매기와 구름인데

때로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때로는 눈을

하는 그의 몸짓, 눈빛, 그리고 손동작 하

계속 그럴 것이다. 그 상실감에 맞서 남

요…. 내가 여기에 내 이름을 적은 다음

감은 채 뭔가를 떠올리며 듣던 존 버거가

나하나가, 섬세하면서도 단호한 그의 글

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

에, 이 그림을 문서와 함께 액자에 넣으

말했다. “아내가 죽고 나서 내가 그녀를

을 그대로 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는 생각 끝에, “내 삶을 정리하는 글이라

면 제가 문서에도 서명을 한 것과 같은

애도하는 글을 쓴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

『A가 X에게』에 그렇게 자주 등장하는 손

면 쓰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그의 말이

셈이 되지 않을까요.”

서였습니다.”

그림들의 의미도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숙제처럼 느껴졌다. 평생 다른 이의 삶

해하는 표정이 살짝 스쳤다. “나는 작가 의 역할도 마찬가지로 메신저의 역할이 라고 생각합니다. 네, 마찬가지입니다.

‘문서’가 받아들여지는 데 있어 문화

“당신은 사 주 전에 죽었지. 어젯밤 처

같았다. 손이 하는 약속이 그 어떤 말보

을 ‘듣는’ 역할에 충실했던 한 작가를 기

적 차이가 있음을 익히 알고 있지만, 그

음으로 당신이 돌아왔어. 혹은, 다른 말

다 더 힘이 센 것임을 그의 행동은 확인

억하는 방식이라면, 이제는 그의 이야기

럼에도 작가 본인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로 하자면, 당신이 없어진 자리에 당신의

해 주었다. 그것이, 그의 글을 통해 느꼈

를 들어 주는 일, 그리고 그가 남긴 문장

확인하려는 욕심에 들고 간 문서였는데,

존재가 들어왔다고 해야겠지”로 시작하

던 감동과 위안과 용기 들을 그 손을 통

들을 전하는 일은 남겨진 이의 몫이어야

존 버거 본인이 모두를 만족시키는 해결

는, 『아내의 빈 방』 이야기였다. 죽음 이

해 확인한 것이, 이번 방문의 큰 수확이

할 것이다. 존 버거는 『벤투의 스케치북』

책을 제시한 것이다. 대작가에 대한 편견

후에도 여전히 자신이 느끼고 있는 아내

었다. 그동안 그의 글을 읽고 번역하며

에서, 이름 모를 러시아 화가가 그렸던

은 그렇게 또 깨졌다. 자신의 글을 좋아

의 존재를 담담하게 적어 간, 죽은 아내

지내 온 삶이 바른 길이었음을, 앞으로

정물화를 복원하며 약속을 과거로 보내

하고, 진심을 다해 그 글을 한국 독자들

에 대한 노작가의 애정과 감사와 그리움

있을 선택의 순간에도 그 손이 한 약속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했다. 마찬가지

에게 전하겠다는 출판사의 마음에 작가

이 감동적으로 담겨 있는 글이다. 그렇다

믿으면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는 확신을

로, 이제, 그의 글을 다시 읽는 것은, 우리

역시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대리인 때문

면 혹시 그의 삶을 정리하는 글도 그 도

얻은 것, 그것이 역자인 내가 받은 가장

의 약속을 그에게 보내 주는 것이 될 것

에 문서에 서명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서관에 실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큰 선물이었다.

이다. 그럴 수 있음을 보여 준 작가였기

림을 한 장 그려서 문서와 함께 보관하면

당연히 들었다. 그 기대를 눈치채기라도

처음 맞이할 때와 마찬가지로, 존 버거

에, 이제 우리와 함께 있지 않은 그에게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직접 그림을 그린

한 듯 존 버거가 말을 이었다. 그의 작가

는 헤어질 때에도 대문 앞까지 나와 일행

우리의 약속이 닿을 수 있음을 믿어 의심

것이다. 갈매기를 그린 작은 그림 한 장

관이 드러나는 말이었다. “하지만, 내 삶

한 명 한 명을 꼭 껴안아 주었고, 우리가

치 않는다. ■

이지만, 자신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온

을 정리하는 글이라면 쓰지 않을 생각입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거기 서서 손을

편집자와 역자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니다. 내 삶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전혀

흔들어 주었다. 대작가를 직접 만나는 것

노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그림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에 나는

에 대한 걱정으로 그의 집을 찾았던 나에

이라 묵직했다. 우리가 그를 만나기 위해

‘이야기꾼’입니다. 그리고 이야기꾼이

게는 그 손이 해 주었던 약속만으로도 넘

준비를 했던 만큼 그 역시 우리를 맞이하

하는 일은 타인의 삶을 ‘듣는’ 일이지요.

칠 만큼 만족스러운 만남이었다.

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 『A

이야기꾼이 자신의 삶에 관심을 가지기

김현우(金玄佑, 1974- )는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비교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교육방송(EBS) 프로듀서로 있으면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존 버거의 많은 책을 번역했다.

열화당과 존 버거 사이의 신뢰를 확인하는 서약서에 서명을 대신해 동봉한, 갈매기와 구름을 그린 드로잉을 든 존 버거. 존 버거의 손.(p.16 위) 거실에서 이어지는 존 버거의 서재, 서재라기보다는 온실에 가깝다. 간이 테이블처럼 보이는 책상과 접이식 의자가 그의 소박함을 잘 보여 준다.(p.16 아래) 사진 김현우

17


열화당에서 출간한 존 버거의 책들  Books by John Berger

책으로 만나는 존 버거 소설, 평론, 에세이, 시, 드로잉

1972년 발표 이래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는 이 소 설의 이야기 전개 방식은 가히 파격적이다. 화자의 시점이 계 속해서 바뀌는가 하면, 저자가 직접 독자에게 말을 걸어 오기 도 하고, 이야기 중간중간에 철 학적 사색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설명이 불쑥불쑥 등장하 기도 한다. 독자들은 페이지를 넘기면서 곳곳에서 소설 읽기 의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치 / 두번째 편지 뭉치 / 세번째 편지 뭉치 / 감사의 말 / 옮긴이의 말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딜레마의 문제를 섬세하게 다

살아가는 인간의 상황과 내면

루고 있다.

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포착한 다. 존 버거는 이 신비롭고도 소 박한 29 편의 포토카피에서 성 실한 관찰자로서 일차적인 묘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사와 설명만을 통해 이야기 속

1984년에 초판 발행되어 여러

차례 1. 자두나무 곁의 두 사람 / 2. 무릎 에 개를 올려 놓고 있는 여인 / 3. 오마 가 는 길 /4. 라코스테 스웨터를 입은 남자 / 5. 유모차의 여인 / 6. 턱을 괴고 있는 젊 은 여자 / 7. 가죽옷에 경주용 헬멧을 쓴 채 미동도 없이 서 있는 남자 / 8. 바위 아 래 개 두 마리 / 9. 르 코르뷔지에가 지은 집 / 10. 자전거를 탄 여인 등 29편

저자 존 버거 역자 강수정 판형 및 장정 A5 변형, 반양장 발행일 2006년 3월 20일 면수 232면 가격 15,000원

나라에서 꾸준히 읽히고 있는 이 책은, 존 버거가 그간의 저서 들에서 다루었던 여러 주제들

A가 X에게

히 근대의 과학적이고 계량적

편지로 씌어진 소설

인 시간관, 그리고 문명과 도시

장면을 손에 잡힐 듯 보여 준다.

화에 의해 ‘시간’과 ‘공간’ 모두

우리 시대의 화가

로부터 분리되어 버린 인간 소

저자 존 버거 역자 강수정 판형 및 장정 A5 변형, 반양장 발행일 2005년 11월 20일 면수 256면 가격 10,000원

외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마치 길고 짧은 경구들을 모아 놓은

아픔의 기록

연가(戀歌)다. 모든 인간이 공

2008년 영국의 권위있는 문학

것 같지만, 그 바탕에는 인간의

유하고 있는 보편적 정서와 시

존재 조건이 되는 큰 철학적 주

냉전이 절정으로 치닫던 1958

시 소묘 사진 1956-1996

상인 부커상 후보작에 오른 존

제가, 때로는 일상에서 편하게

년 영국에서 발행되어 보수적

적 상상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버거의 신작. 저자는 어느 폐쇄

씌어진 일기나 편지처럼, 때로

인 평단의 공격으로 출간 한 달

지평을 넘어 그들의 상처를 끌

된 교도소에서 발견한 편지와 인용, 메모들을 바탕으로 했음

는 잘 정제된 시나 소설처럼 다

만에 배포가 중단되었고, 칠 년

어안고 끝내 삶을 긍정하는 황

가온다.

뒤 복간되었으며 이십 년 뒤에

홀한 전이(轉移)를 체험할 수

을 밝히면서, 현실과 허구의 경

여든을 넘긴 나이에 지금도 농

있을 것이다.

계를 허물며 이야기를 시작한

차례 1. 한때 / 2. 여기서 / 역자 후기

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는

G

저자 존 버거 역자 장경렬 판형 및 장정 A5 변형, 반양장 발행일 2008년 8월 1일 면수 112면 가격 11,000원

작가 존 버거의 유일한 시집. 산 문과 소설 영역에서 주된 활동 을 했던 그가 40여 년 동안 은밀 하게 써 온 50여 편의 시와, 그가

저자 존 버거 역자 김현우 판형 및 장정 A5 변형, 반양장 발행일 2008년 8월 1일 면수 470면 가격 17,000원

직접 그린 드로잉, 직접 찍은 사

부커상, 가디언 소설상, 제임스

진을 함께 엮어냈다. 그동안 그

타이트 블랙 기념상 등을 수상

가 만났거나 상상하는 누군가

한 바 있는 『G』는, 실험적 구성

의 아픔과 상처를 기록한 이 모

과 섬세한 필치로 주인공 G 의

든 시편들은, 그 아픔의 주인들

일대기를 따라가며 ‘역사 속의

에게 바치는 존 버거의 내밀한

18

사적인 순간들’을 포착해낸다.

는 헝가리어로 출간되기도 했

다. 약제사인 아이다가 반정부 테러 조직 결성 혐의로 이중종 신형을 선고받고 독방에 갇힌 자신의 연인인 사비에르에게 쓴 편지와 그 편지 뒤에 적힌 그 의 메모로 이뤄진 이 이야기를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저자 존 버거 역자 김우룡 판형 및 장정 A5 변형, 반양장 발행일 2005년 3월 1일 면수 152면 가격 10,000원

통해, 우리는 가장 내밀하고도

작가가 직간접으로 만났던 사

사적(私的)인 사랑 이야기를 오

람들의 모습을 치밀한 시각적

늘날의 문제로 역사화하는 작

산문을 통해 마치 사진을 찍듯

가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이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포

차례 한국의 독자들께 / 존 버거가 다시 세상에 선보이는 편지들 / 첫번째 편지 뭉

차례 한국의 독자들께 / 시작 / 일기 / 끝 / 후기

저자 존 버거 역자 김우룡 판형 및 장정 A5 변형, 반양장 발행일 2004년 4월 10일 면수 136면 가격 10,000원

을 포괄 함축하여 보여 준다. 특

저자 존 버거 역자 김현우 판형 및 장정 A5 변형, 반양장 발행일 2009년 8월 25일 면수 232면 가격 14,000원

의 단편을 구성하면서, 현대를

토카피(사진복사)’라고 이름 붙인 이 글들은, 세기말 인간사

던 이 책은, 섬세한 다층 구성의 지적이고 도덕적인 일종의 추 리소설로서, 긴박했던 시대에 부응하는 동시에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예리하게 담아내고 있다. 존 버거는 예술과 이데올 로기, 망명에 대한 탁월한 이해 력을 바탕으로 헝가리 망명화 가의 일기를 통해 한 인간이 어 떻게 예술이라는 고독한 소명 과 양심의 요구를 조화시키는 지, 그리고 이에 따르는 용기와

픽션과 에세이의 경계를 넘나 드는 이 책은 존 버거 자신과 동 일한 이름, 나이, 배경을 지닌 주 인공을 등장시킴으로써 자전적 (自傳的)인 요소를 가미해 자유 로운 허구성과 실제 삶이 밀착 된 현실성 모두를 놓치지 않고 있다. 그는 모든 감각을 끌어와 자신의 삶 속에 들어왔던 무수 히 많은 삶들을 추억하는 따뜻 한 한 인물을 섬세하게 창조해 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신념이 담긴 지적이고도 아름 다운 이 소설은, 공간의 경계와 시간의 한계를 자유롭게 넘나 들면서 명랑하고 유머가 넘치 는 이야기들을 펼치는 한편, 읽 는 이의 가슴에 애잔한 감수성 을 환기시킨다. 차례 한국의 독자들께 /1. 리스본 / 2. 제 네바 / 3. 크라쿠프 / 4. 죽은 이들이 기억 하는 과일들 / 5. 아일링턴 / 6. 퐁다르크 다리 / 7. 마드리드 / 8. 슘과 칭 / 8½ / 감 사의 글


모든것을 소중히하라

의 대표적인 미술비평서. 영국

미를 되찾게 되는 과정을 속 깊

인간보다 더 인정이 많은 개의

생존과 저항에 관한 긴급보고서

비비시(BBC) 텔레비전에서 시

은 음성으로 들려준다. 터키 출

감각을 통해 우리는 아무런 가

리즈물로 방영해 화제가 되었

신의 예술가 셀축 데미렐의 삽

식도 감상도 없이, 가난에 따르

던 프로그램을 기초로 한 책이

화들이 이 기록과 명상에 깊이

는 혼란과 고통 속에서도 살아

다. 영상과 이미지 언어, 예술작

를 더해 주는 한편 『아픔의 기

남은 열정과 개인성, 그리고 기

품에 나타난 여성 이미지, 유럽

록』을 옮겨 선보인 바 있는 문학

억들을 마주하게 된다.

오늘날 세계를 점령한 탐욕과

전통 유화와 사유재산의 관계,

평론가 장경렬의 번역은 원문

독재로 인한 고통에 관하여 존

광고 이미지와 소비문화 등, 존

한 글자 한 글자까지 세밀하게

버거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버거는 서구 전통의 미적 기준

재현해낸다.

써내려 간 16편의 글을 묶은 에

을 탈피해 이미지 이면에 숨어

세이집. 삶과 예술에 관한 철학

있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의문

과 성찰을 보여 주었던 다른 저

을 제기한다. 유럽 명화뿐만 아

작들과는 달리, 이 책에는 존 버

니라 신문, 잡지, 텔레비전 등 다

거의 정치적 시각, 이념적 지향

양한 미디어에 등장하는 그림

들이 짙게 깔려 있다. 세계 곳곳

이나 사진을 대상으로 삼는 이

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독재 행

책은,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이

존 버거가 철학자 스피노자의

위들을 통해 오늘의 세계를 지

미지들을 보는 새로운 눈을 열

거가 아내 베벌리 밴크로프트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생

배하는 부정의(不正義), 거짓

어주는 쉽고도 명쾌한 안내서

버거(Beverly Bancroft Berger,

각하고 느낀 면면을 글로 쓰고

희망, 새로운 형태의 독재를 고

이다.

1942-2013)의 죽음 후 아들 이

또 그림으로 그렸다. 주변 인물

브 버거(Yves Berger)와 함께 그

저자 존 버거 역자 김우룡 판형 및 장정 A5 변형, 반양장 발행일 2008년 4월 10일 면수 160면 가격 9,000원

아내의 빈 방 죽음 후에

벤투의 스케치북 저자 존 버거 역자 김현우·진태원 판형 및 장정 A5 변형, 양장 발행일 2012년 11월 20일 면수 184면 가격 18,000원 도판 66컷

저자 존 버거·이브 버거 역자 김현우 판형 및 장정 180×250mm, 양장 발행일 2014년 7월 30일 면수 40면 가격 20,000원 도판 올컬러 21컷

소설가이자 미술비평가로 활 발한 글쓰기를 해 온 작가 존 버

발하고, 나아가 이러한 전제주

들과 겪은 사소한 일상부터 폭

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전체

녀를 그리며 엮은 추모집. 함께

력과 자본에 저항한 작가들의

했던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죽

이야기까지, 존 버거는 한결같

음 이후에도 여전히 느껴지는

이 진실된 눈길로 관찰하고 기

그녀의 존재에 대한 애정이 담

록한다. 이 책은 드로잉이라는

겨 있는 글, 12점의 그림, 5컷의

주의에 저항하는 세상 모든 사 람들과 소통하고 연대하기를 꿈꾼다. 차례 한국의 독자들께 / 지금 우리가 바라 는 것 / 절망의 일곱 켜 / 정복되지 않은 절 망 / 나는 내 사랑을 나직이 말할 테요 / 지 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등 17편 / 주

다른 방식으로 보기 저자 존 버거 역자 최민 판형 및 장정 A5 변형, 반양장 발행일 2012년 8월 1일 면수 192면 가격 14,000원 도판 246컷

1972년 초판 발행된 이후 지금 까지 가장 영향력있고 대중적 인 책으로 자리매김한 존 버거

백내장 백내장 제거 수술 이후의 몇몇 단상들 저자 존 버거 그림 셀축 데미렐 역자 장경렬 판형 및 장정 B6 변형, 양장 발행일 2012년 9월 20일 면수 72면 가격 12,000원 도판 31컷

행위에 대한 탐구이면서, 세상 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인 도하는, 예술의 역할에 대한 명

사진 곳곳에는 남편의 담담한 배어 있다.

상이다. 꽃, 인간의 몸, 새로운

것의 의미』 등 저작을 통해, 보

세계 질서의 무자비함과 그에

는 행위와 인식에 관한 빼어난

대한 저항의 형태를 바라보는

사진의 이해

통찰을 보여 온 작가 존 버거. 이

우리의 시선 말이다. 스피노자

책은, 시각적인 것에 관한 우리

인용문의 경우, 번역의 정확성

시대의 위대한 예언자인 존 버

이나 문체 등을 고려해 가장 권

거가 백내장 수술이라는 작은

위있는 1925년 라틴어 판을 새

기적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전

로 번역하는 방법을 택했다.

저자 존 버거 편자 제프 다이어 역자 김현우 판형 및 장정 A5 변형, 반양장 발행일 2015년 7월 1일 면수 248면 가격 18,000원 도판 흑백 29컷 수상 및 선정 2015년 세종도서 교양·문학부문

시각의 영상들이 잃어버린 의

근간

예술가들의 이야기 저자 존 버거 편자 톰 오버턴 역자 김현우 판형 및 장정 A5 변형, 반양장 발행예정일 2017년말

스모크

깊고 명쾌한 관점을 제시해 온

저자 존 버거 그림 셀축 데미렐 역자 김현우 판형 및 장정 B6 변형, 양장 발행일 2016년 9월 20일 면수 72면 가격 12,000원 도판 42컷

존 버거가 실은 미술평론부터

“담배를 함께 피우며 우리는 세 상에 대한 견해를 교환했다. 서 로의 여행을 이야기했고, 계급 투쟁에 대해 토론했다. 우리는 꿈을 교환했다. 우정을 나누었 다.” 금연 운동, 미세먼지, 전쟁,

이 책에 실린 글들은 1967년부

테러 등으로 ‘연기’는 현대인에

거리의 이야기

터 2007년까지 40년에 걸쳐 씌

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어진 존 버거의 사진 에세이들

불을 지피며 사람사는 온기를

로, 존 버거에 관한 비평서 『말

상징했던 농경시대나, 담배가

하기의 방법』의 저자이자 예리

사람 사이에 친밀함을 형성하

한 감각을 지닌 작가 제프 다이

고 격정적인 대화의 장을 마련

이 소설은 ‘킹’이라는 이름의 개

어(Geoff Dyer)에 의해 한자리

해 주던 시절과 다르게 말이다.

가 바라본 유럽의 어느 도시 근

에 모였다. 사진가나 이론가의

아흔의 나이에도 여전히 애연

교 노숙인들의 이야기다. 번영

글에서는 볼 수 없는 바깥의 시

가인 존 버거는 위트 넘치는 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멋진

선으로 씌어진 이 에세이들을

러스트레이터인 셀축 데미렐과

신세계를 관통하는 고속도로

통해 존 버거는 ‘사진이란 무엇

함께, 이 시대에 던지는 역설적

옆, 버려진 트럭과 고장난 세탁

인가’에 대한 질문에 독자들이

인 한 편의 그림 에세이를 완성

기만 가득한 쓰레기 하치장에

스스로 답을 만들어 갈 수 있도

했다.

는, 모두 한때 희망을 품고 있었

록 이끈다. 이 책에는 다른 저서

지만 결국 20세기에 의해 버려

에 포함된 사진에 관한 글 외에,

진 사람들이 무리지어 살고 있

책으로 묶이지 않았던 전시회

다. 작품 속 화자 ‘킹’은, 한 노숙

평문, 사진집 서문이나 후기 등,

인 부부의 연약함, 그들의 인내,

총 24편의 에세이가 시간 순서

그리고 아름다웠던 시절에 대

에 따라 사진가들의 주요 작품

한 성스러운 기억을 지켜본다.

과 함께 실려 있다.

저자 존 버거 역자 김현우 판형 및 장정 A5 변형, 반양장 발행일 2014년 6월 20일 면수 216면 가격 13,000원

포트레이트

예술과 인문, 사회 전반에 걸쳐

슬픔과 아들의 애틋함이 짙게

『다른 방식으로 보기』 『본다는

하는 기록과 명상으로, 섬세한

차례 책머리에-제프 다이어 / 제국주의 이미지 / 사진의 이해 / 포토몽타주의 정 치적 활용 / 고통의 사진 / 신사 정장과 사 진 / 폴 스트랜드 / 사진의 활용 / 외양들 / 이야기들 / 농부들의 그리스도 / 유진 스 미스 /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 / 산다는 것의 의미 등 24편 / 주 / 수록문 출처 / 옮 긴이의 말 / 찾아보기

시작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 이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미술 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다. 이 책은 프랑스의 쇼베 동굴 에 그려진 선사시대 벽화부터 낙서를 미술작품으로 발전시킨 미국의 추상주의 화가 사이 톰 블리(Cy Twombly )의 급진적 작품까지 예술가와 역사를 혁 신적인 방법으로 연결시킨다. 그의 예리하고 독특한 글을 통 해 렘브란트, 헨리 무어, 잭슨 폴 락에서 피카소까지 세간에 인 정받았고 그렇지 않았던 예술 가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접근 법을 제시한다. 그러면서도 정 치와 예술 그리고 문화의 폭넓 은 연구 사이에서 중요한 연관 성을 유지하고 있다. 차례 서문 / 쇼베 동굴 그림 / 파이윰 초상 화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 피터르 브 뤼헐 / 미켈란젤로 / 카라바조 / 렘브란트 / 장 앙투안 와토 / 터너 / 귀스타브 쿠르 베 / 빈센트 반 고흐 / 폴 세잔 / 프리다 칼 로 / 잭슨 폴록 그림 등 74편

19


존 버거의 새책  A New Book by John Berger

말해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존 버거의 마지막 에세이

“오

랜 시간 동안 나로 하여금

라 보여 줬던 그의 이야기는 과격할 정도

들을 만날 수 있다. 존 버거는 영국 작가

글을 쓰게 한 것은 무언가

로 도전적이고, 비판적이었으며 다정하

저넷 윈터슨(Jeanette Winterson)의 말대

가 말해질 필요가 있다는

고도 온화했다. 그건 아마도 그가 이야기

로 “화가가 물감을 다루듯이 생각들을

직감이었다. 말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

꾼이기 전에 훌륭한 관객이었기 때문일

다루고”, 빈 곳을 다채로운 색감으로 물

예 말해지지 않을 위험이 있는 것들. 나

것이다. 일상에서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

들였다.

는 스스로 중요한, 혹은 전문적인 작가라

람들뿐만 아니라, 수영장의 유리 지붕에

기보다는 그저 빈 곳을 메우는 사람 정도

떠 있는 새털 구름, 플라멩코 무용수의

라고 생각하고 있다.”

흑백사진은 그에게로 와 새롭게 씌어졌

—「자화상」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다.

한 편의 짧거나 긴 에세이들 에는 그의 드로잉과 메모, 회 상은 물론, 알베르 카뮈부터

는 노래하는 새들이 그려진

전 세계적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냥갑을 가지고 있던 폴란

것에 대한 그의 사려 깊은 생각이 담겨

드인 친구 자닌과, 사십대까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놓지 않고 소리

신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깊어진

지 절도죄 등으로 감옥을 드나들다가 그

내어 부르려 했던 이름 없는 대상들은 그

눈매만큼이나 진하게 패인 주름과 하얗

림을 그리게 된 마이클 콴의 손을 끌어

가 피워 놓은 모닥불 곁으로 하나둘 모여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게 물결치는 머리털이 그간의 세월을 그

무대로 안내했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들었다. 마른자리와 따뜻한 담요가 있는

러안고 있다. 그리곤 이 길에 들어선 이

기울였다. 그렇게 이 책을 읽는 독자들

그곳에는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들

후 무수히 듣고 답했을 질문을 다시 한

은 코마키오의 구월 광장에 모여 발을 구

의 노래와 춤과 눈물이 뒤섞여 있다. 그

저자 존 버거 역자 김현우 판형 및 장정 140×220mm, 양장 발행일 2017년 3월 5일 면수 120면 가격 15,000원

번 떠올려 본다. “나는 왜 쓰는가?”

르며 콧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사이로 들

리고 오늘처럼 바람이 짙어진 계절, 그는

그는 호칭된 작가(writer)보다 떠돌이

어가고, 아랍어로 노래하는 야스민 함단

한 걸음 앞선 시공간에서 여전히 우리를

이야기꾼(storyteller)이 더 어울렸다. 경

(Yasmine Hamdan)의 공연에 초대되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계를 넘나들며 일상을 다양한 각도로 잘

눈, 입술, 볼, 손가락으로 대화하는 청년

중에서

만년에 이른 존 버거가 거울에 비친 자

책과 선택31 book and idea

발행일 2017년 3월 9일 발행처 책과선택 편집실 경기도 파주시 광인사길 25 (문발동 520-10) 전화 031-955-7000 팩스 031-955-7010 www.youlhwadang.co.kr yhdp@youlhwadang.co.kr

책과선택 편집실 편집 이수정 조윤형 박미 김주화 온그라운드 갤러리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0길 23 개관 화요일-일요일 오전 10시-오후 7시 휴관 월요일 전화 02-720- 8260 www.on-ground.com

『책과선택』은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예술’을 위한 책 이야기입니다.

Book and Idea is a book journal for arts with beautiful spirit. ⓒ 2017 by Youlhwadang Publishers Printed in Korea.

편집자의 말  Editorial

행간 사이의 연대를 위하여 열화당에서 존 버거의 글을 출판한 것은 팔십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시에 맞추어 출간하는 『책과 선택』 31호는 드로잉에 대한 생각을 담은

1982년 『시각과 언어』 1(성완경, 최민 편)을 펴낼 때 『다른 방식으로 보기』

존 버거의 글을 시작으로, 평생 지기인 장 모르의 초상사진집 출간소식, 그

의 일부 텍스트를 「광고이미지와 소비문화」(최민 옮김)라는 제목으로 수록

를 추모하는 가족과 세계 여러 나라의 지인 그리고 한국 독자들의 글 들로 채

출간한 바 있고, 1988년에는 『예술과 혁명』의 앞부분을 옮겨 『사회주의 리

워졌다.

얼리즘』(20세기미술운동총서, 김채현 옮김)이라는 책으로 엮어 선보인 바

그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는 ‘연대(solidarity)’다. 『그리고

있다. 그리고 십육 년 후인 2004년, 존 버거의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

사진처럼…』(김우룡 옮김)을 출간한 2004년에 존 버거는 뜻밖에도 열화당

리들의 얼굴, 내 가슴』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열일곱 권을 출간했으니, 그와

식구들에게 막 나온 자신의 한국어판에 직접 서명을 해 보내 주었다. 내가

의 인연은 삼십오 년을 이어 가고 있는 셈이다.

간직하고 있는 그 책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행간 사이의 연대를 위

그의 신간 출판과 드로잉 전시를 준비하던 중에 뜻밖의 부음(訃音)을 듣

하여 ―간절한 소망을 담아. 존 버거. 2004년 7월 14일 미유시에서.(For

게 되었지만,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그리 무겁지만은 않았다. 그가 그에게

Yun-hyung Cho and the solidarity between lines ― with my best wishes. John

주어진 삶의 모두를 아낌없이 소진하고서 우리 곁을 떠났다는 생각 때문이

Berger. 7/14/04 Mieussy)”

었을 것이다. 그가 남긴 드로잉 육십여 점이 기적처럼 한국의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날 이 왔다. 노동과 글쓰기, 사색과 드로잉을 병행해 온 존 버거, 무엇보다 진 부함과 타성에 빠지지 않았던 그의 면모는 그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20

차례 자화상 / 로자를 위한 선물 / 당돌함 / 넘어지는 기술에 관한 몇 가지 노트 / 나는 아르카디아에도 있 다 / 깨어 있음에 관하여 / 만남의 장소 / 라 라라라 라 라라 라 / 노래에 관한 몇 개의 노트 / 은빛 조각 / 망각 에 저항하는 법

전시를 계기로 그의 글 행간 사이사이의 ‘연대’가 이 땅에서도 실천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조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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