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월간
本
본; 민권연대 월간지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本; 본질을 봅니다
월간
본; 本
시선집중
세상의 모든 무기
사자의 늙은 이빨 B-52
4
“저항의 봄, 만개하라” 사람을 통해 시대를 읽는다
26
미래의 거울, 역사
28
동아시아 역사칼럼“이토를 쏘다”
5
이달의 역사 기미독립선언
스승을 만나다
민권연대 원로회의 서상호 의장님
예술, 그 본질적 가치
장년이 미래다
34
윤이상을 만나다
광주 장년모임 정무영 대표 대구 장년모임 허상화 대표
“나의 삶, 나의 음악, 나의 만족” 드라마의 기술 엿보기
사람과 사람사이
9
진심의 언어(대화) 경제를 생각하는 시간
고전의 향기
11
우리는 엔진의 노예가 아니다 TPP열차 꼬리칸에 올라타려는 한국
하얀 정글, 의료민영화
48
연극, 전시, 콘서트 ㅣ 북스토리
18
지리산, 역사의 흔적 컬러로 보는 이슈
40
리어왕 다시 읽기 유쾌한 탈출
낙하산이 꽂힌다 공공부채가 불어온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
드라마;행동하다
발행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
발행일 2014년 3월 11일
22
블로그 http://mag-mkyd21.tistory.com 문의
mag.mkyd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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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지 본(本)이 새롭게 출발합니다. 따뜻한 봄이 왔습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새싹과 나무들이 기지개를 폅니다. 개구리도 다람쥐도 시냇물 소 리에 잠에서 깨어납니다. 봄을 맞아 한 나무꾼이 산에 오릅니다. 나무꾼은 급한 마음에 나무를 팹니다. 도끼에 날이 서지 않아 아름 드리나무는 꿈쩍을 안합니다. 날아 서지 않아 손도 아프고 힘만 듭니다. 원래 힘든 것이라 스스로 위로하 지만 좌절감은 커갑니다. 다른 나무꾼도 산에 올랐습니다. 이 나무꾼은 시시때때 정성스럽게 도끼날을 갈아왔습니다. 그리고 나무를 팹니다. 날이 잘 서있는 도끼는 힘도 덜 들고 손도 덜 아픕니다. 아름드리나무는 쿵 소리와 함께 쓰러집니 다. 한 번 성공한 자신감은 갈수록 커집니다. 같은 시간과 같은 힘을 들였습니다. 무엇이 다를까요? 지금 국민과 함께하기 위해 날을 갈고 있습니까? 역사의 수레바퀴를 미는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수 레바퀴가 더욱 잘 굴러가기 위해서는 기름을 쳐야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속과 분단, 독재를 무너뜨리기 위 해서 더 예리하게 날을 갈아야합니다. 날을 가는 숫돌의 역할을 할 월간지 본(本)이 매월 초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은 관심과 애정 부탁드립니 다. 편집자.
시선집중
저항의 봄 만개하라
http://mag-mkyd21.tistory.com/2
오는 6월 4일은 지방선거가 있는 날이다. 지방선거는 지방의회
서 승기를 잡고 여세를 몰아 재벌 편중, 서민 포기, 민주 파괴 정
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을 선출하는 자리다. 우리나라는 제헌헌
책들을 더욱 앞세우려 할 것이다. 특히 정부 비판 세력에 대한 탄
법에서 지방자치 규정을 두었으며 첫 지방선거는 1952년에 있
압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최근 미국이 연일 강조하는 한일관계
었다. 그러나 5.16 쿠데타가 발생하고 군부독재 시기에는 지방
개선, 한일 군사협력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총체적 관권
자치제도가 사라졌다. 지방선거는 87년 6월 항쟁으로 헌법이 바
부정선거로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는 지난 대선 문제를 덮으려 할
뀐 다음인 1991년에 부활했으며 민선 1기 지방자치단체장은 더
것이다. 한 마디로 완벽한 유신부활이 이뤄지는 것이다.
늦은 1995년에 선출됐다. 정부·여당의 지방선거 전략은 간단하다. 우선 지난 대선과 마 지방자치제도란 지역 주민들이 자기 지역 행정을 직접 책임지는
찬가지로 국가기관을 총동원할 가능성이 높다. 설사 들통 나더라
제도다. 어떤 자치단체장을 뽑느냐, 어떤 지방의회 의원을 뽑느
도 김용판 무죄 판결에서도 보듯 아무 문제가 안 되기 때문이다.
냐에 따라 그 지역 주민들의 삶이 바뀌게 된다. 그러나 지방선거
여기다 야권 분열을 유도하면 금상첨화다. 진보당은 철저히 고립
를 통해 바뀌는 부분보다는 총선이나 대선을 통해 바뀌는 부분
시키고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연대를 막으면 손 짚고 헤엄치기
이 훨씬 크다. 지방 정책은 결국 국가 정책의 하위개념일 수밖에
다. 연초에 “통일은 대박” 발언으로 야당의 단골 의제도 선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중앙정부에 재정 의존을 많이 하는 우리나
했으니 근심걱정이 없다. 다만 내세울 인물이 없다는 게 문제다.
라 지방자치제도는 그 한계가 뚜렷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유신부활을 막자면 정부·여당의 지방선거 이런 이유로 그간 지방선거는 인물을 보면서 지역 일꾼을 뽑는
전략을 역으로 이용해야 한다. 대선 관권부정문제를 철저히 파헤
다는 취지보다는 정당을 보면서 중앙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는
치면서 정부를 압박해 지방선거에서 관권부정선거를 쉽사리 하
취지가 더 강했다. 간단히 말해서 지금까지 지방선거는 ‘정권
지 못하도록 막아야한다. 정권심판의 목표 아래 야권연대를 실현
심판론’과 ‘정권 안정론’의 대결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
해야 한다. 민생공약 파기, 민주주의 후퇴 등 지난 박근혜 정권 1
은 한국 정치에 민주주의가 올바로 자리 잡을 때까지는 계속 반
년의 실정을 드러내야 한다.
복될 수밖에 없다. 특히 중요한 것은 더 이상의 민주주의 파괴를 막고 진보운동의 명 올해 6.4 지방선거도 마찬가지다. 정부·여당은 지방선거 승리
맥을 지키기 위해 진보당이 지방선거에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
를 통해 자신들의 집권 기반을 더욱 다지려고 한다. 지방선거에
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진보당의 역대 최다 출마 목표는 정당
서 국민들이 여당을 지지하면 앞으로 자신들의 정책을 더 강하
하고 또 절실하다 하겠다.
게 밀어붙일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지방선거에
사람을 통해 시대를 읽는다
스·승·을·만·나·다
민권연대 원로회의 서상호 의장 http://mag-mkyd21.tistory.com/3
Q1 A.
▲ 왼쪽에서 두 번째. 동지들과 함께 계시는 서상호 의장님
선생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또 어떻게 운동의 삶을 살아
고 1년이 못되어 5.16이 일어나고 우리는 구속되거나 피신하여 뿔
오시게 되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뿔이 흩어졌어요.
1950년, 6.25전쟁이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에 다시 회합하여 4.19혁명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심
그때는 불과 스무 살 남짓이었는데 전쟁을 경험하면서
각하게 고민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희생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한
왜 우리가 분단이 되어야 하는지, 같은 민족 형제자매들이 왜 반목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답은 ‘운동의 주체’였습니다. 그리고 이
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
것을 교훈삼아 본격적인 조직들이 결성되었습니다. 조국통일과 민
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도 하고 해보니까, 이 전쟁의 비극은 우
주화실현을 강령으로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리민족의 잘못이 아니라 강대국들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미국은 2차 대전, 연합국을 승리로 이끌고 약소국
64년도에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일굴욕협정반대 투쟁을 거세
가들을 지원해주는 든든한 존재였어요. 하지만 해방된 우리나라에
게 펼쳐냈습니다. 당시 정권에서는 비상계엄이라는 초강수로 학생
미군이 주둔하고, 분단과 전쟁을 겪으며 우리가 희생되었음을 알고
들을 막고 해산시켰지요. 인혁당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일부는 구속
굉장히 분노했습니다. 자주적으로 통일을 하는 것만이 이 땅에 평
되었고 저는 전국 지명수배자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때 당시 검
화와 민족변영을 가져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들이 기소를 못했어요. 북과의 관계를 지어내지 못했기 때문입니 다. 그렇게 공소가 보류 되고 1차 인혁당 사건은 조작사건으로 밝
전쟁시기에는 사회단체나 이런 곳에 가입하여 활동하지는 않았다
혀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로부터 87년까지 23년간 요시찰 인물
가, 활동을 시작한 것은 4.19 혁명이 있기 직전이었을 겁니다. 저는
로 쫓기고 감시당하며 살았습니다. 지금은 민권연대에서 원로회의
대학을 다니지 않았지만 친구들이 대학에 있었어요. 전국통일학생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지요.
웅변회라는 조직이 있었습니다. 학생회장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곳 이었죠. 그곳에 고향선배와 친구들이 있어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시대적 문제와 사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조직 이 더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지만요. 이후 4.19때 조국통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엄청 높았지 않습니까? <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이런 구호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때 통
Q2
23년이라는 삶의 오래 시간을 쫓기고 감시당하며 사 셨습니다. 그 시간들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힘드
시지는 않으셨는지, 그 시간들을 이겨낸 힘은 무엇이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일민주청년동맹에 가입하여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
5
사람을 통해 시대를 읽는다
A.
오랜 시간을 쫓기고 감시당하는 것이 물론 편할 순 없습
지요. 우리운동은 남에게 손 벌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지
니다. 불편하고 힘들긴 했지만 탄압과 고생 없이는 운동
역, 이 땅에서 해야 됩니다. 많은 희생을 각오하더라도 이러한 역사
을 할 수가 없습니다. 시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역사적 활동에
적 운동을 통하지 않고서는 독재의 압재를 걷어낼 수 없겠지요. 종
서 이런 고생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고, 반드시 승리한
미·친일세력들에게 역사를 맡기다보면 우리는 영원한 주권 없는
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불편하긴 했어도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적
국민으로 억압당하고 살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 민중들이 모두다
은 단 한 번도 없어요. 고생은 오히려 지금 후배들이 더 하고 있는
스스로 주인 되는 참된 우리 삶을 맞이할 수 있게 열심히 해야 합
것 같습니다. 민족과 역사에 철저히 부합하는 길이라는 것, 그것이
니다. 오늘날 민주화와 통일 운동이 이 정도까지 발전된 것 또한 우
위안이 되어 저는 이 운동의 길을 행복하게 걸어 올 수 있었습니다.
리 투쟁의 성과겠지요.
Q3
Q5 A.
<통일운동가>라고 자신을 소개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기뻤던 순간은 언제이신지 말씀 부탁드
릴게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이야기 있으시면 부탁드리 겠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라는 말이
A.
이전에는 통일운동가라고하면 비밀스런 활동이 주로 진 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김대중 정권 때 남북화
있습니다. 그리고 수신제가(修身齊家), 즉 나라의 독립
과 평안을 논하기 전에 자신의 교양과 인격부터 먼저 갖춰야 한다
합의 정신으로 북과 교류가 활발해지고 6.15공동선언도 발표되었
고 이 말을 운동에 가져와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요. 그 이후부터는 어디서든 자주·민주·통일에 대해 더 자유롭
틀렸습니다.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을 때에는 그에 맞서 싸워야지 나
게 이야기하고 활동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6.15공동선언 5주년 기
를 키우기 위한 공부만 하고 있어야 되겠습니까?
념행사를 평양에서 남북해외가 함께 진행했었는데, 그때 대표로 참 석했던 것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리고 60년대에는 유행한 이런 말도 당부하고 싶습니다. “전략적
그리고 공동선언 발표 이후, 무엇보다 새로운 정세 속에서 느낀바
으로 적을 무시하고 전술적으로 적을 중요시하라” 전략적으로 적
가 많았습니다. 더 많은 민중들과 함께 하려다보니 논리적이고 이
을 종이호랑이 보듯 대담하고 당당하게 활동을 펼쳐나면서도, 전술
론적인 준비들이 많이 필요했어요. 이론적 준비의 필요성을 굉장히
적으로는 언제나 신중하고 세심하게 적을 파악하고 대하라는 이야
많이 느꼈던 겁니다. 어느 때보다 교양과 연구를 열심히 했습니다.
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Q4
Q6 A.
요즘 박근혜 정부를 보면서 느끼는 부분들이나, 지방선 거를 보면서 드시는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해요. 말씀 부
탁드릴게요.
선생님에게 삶의 좌우명은 무엇인가요?
좌우명은 잘 모르겠고 ‘자주정신’ 하나로 살아왔습니 다. 스스로가 내 운명을 책임지려는 마음. 그리고 그것
A.
자본주의가 극도로 보편화된 사회에서, 선거라는 그 자 체는 기만과 조작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들
에게서 우리가 나아 가야할 길을 찾기 위해서는 적극 뛰어들어야
6
을 침해하는 것들에 대해서 철저하게 배격하고 투쟁하는 삶을 살았 던 것. 그것 뿐 입니다.
사람을 통해 시대를 읽는다
청·년·이·미·래·다
광주민권연대 장년모임 ‘활인14’정무영 대표 http://mag-mkyd21.tistory.com/4
반갑습니다. 광주 장년모임의 대표 정무영입니다.
대 대강당에서 있었던 남북해외 청년학생 상봉모임 당시 남과 북 청
사는 이야기 다 비슷한데 막상 이렇게 말하려고 하니 쑥스럽네요.
년학생들이 같이 통일을 이야기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광주 장년 모임은 지난 2월 14일 정월대보름날 2014년 첫 정기모 임을 하였습니다. 이날 모임에서는 그동안 결정하지 못했던 광주장
작년에 있었던 ‘2015년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 남북단일팀 성사를
년모임의 새로운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활인14’입
위한 통일음악회’를 올 해에도 장년모임이 주축이 되어서 준비하기
니다. 활인은 ‘활력 넘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고, 뒤에
로 결의하였습니다. ‘남북단일팀 성사’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을 청
14는 2014년에 이름이 지어졌기 때문에 붙여졌습니다. 유럽 독일
년모임 활개의 ‘패기’와, 광전대련 학생들의 ‘열정’과 장년모임의
명문 축구팀 ‘살케 04’와 비슷한 맥락이랄까요.
‘노련미’로 한데 모아 반드시 성사시키겠습니다. 또한 6월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우리 후보들을 적극지원 할 계획입니다.
광주의 장년모임은 매달 두 번째 금요일에 정기모임을 하고 있습니 다. 근데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번개를 하고 있으니 일주일에 한번
장년이라는 특성상 일과 가정에 최선을 다해도 시간이 모자라는 측
쯤은 얼굴 보는 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더 자주 보고 싶어도
면이 없진 않지만 시대의 부름에 응당 화답을 해야 하는 책임감 또
생활 전선에 다들 나가있는지라 쉽지는 않습니다. 광주장년모임 회
한 청년이나 학생들 못지않다고 생각합니다.
원들은 과거 학생운동하면서 날라 다녔던 역전의 용사(?)들부터 노 동자, 주부, 자영업자, 회사원, 경영인 등 실로 다양한 직업군과 연
우리 장년 세대는 박정희 시대에 태어나 박근혜 시대를 살아가는 세
령층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회원들 중에는 운동경험이 전무한 회원
대입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영화 주인공인 벤자
들도 많아서 정기모임 뿐만 아니라 촛불집회나 강연회 등을 통해서
민 버튼도 울고 갈 거꾸로 가는 시대를 살아가는 서러운 세대죠. 하
실천하고 배우며 토론하면서 함께 가고 있습니다.
지만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장년세대의 힘으로,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반드시 정 방향으로 돌려
광주장년모임 ‘활인14’의 2014년은 통일로 가는 길목에 다시 한
놔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어야만 청년에서 진정한 ‘장년’으로
번 깊은 발자국을 남기고자 합니다. 남과 북 청년학생이 모여서 통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후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기 위
일을 이야기하는 뜻 깊은 자리가 2015년 광주유니버시아드 대회
해 올 해도 ‘투쟁’입니다!!
때 펼쳐질 예정입니다. 광주 사람들은 아직도 2006년6월15일 전남
7
사람을 통해 시대를 읽는다
청·년·이·미·래·다
대구민권연대 장년모임 ‘시계탑’허성화 대표 http://mag-mkyd21.tistory.com/5
안녕하세요. 대구 장년모임 대표 허성화입니다. 90년대 대학시절을
각자 직장이나 주거지가 너무 차이가나서 모이는 것이 쉽지 않지
보낸 청춘들이 벌써 장년이 되어 장년모임을 만들었네요. 대구 장년
만 이제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자기시간을
모임 이름은 시계탑입니다. 90년대 대구의 주요 집회와 약속은 대
내기는 좀 더 편할 때가 있습니다. 적당히 요령 것 시간을 활용하
부분 대구 백화점 앞 시계탑에서 이뤄졌죠. 그 때 추억을 같이 공유
면서 모임을 꾸려나가는 거죠. 요즘은 좀 뜬금없지만 가끔 장년의
하는 사람들이 ‘시계탑’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지금도 대구백
미래인 노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곤 합니다. 애들 키우고 나서 귀농
화점 앞은 대구의 촛불집회의 상징과 같은 공간이죠. 앞으로도 쭉
이나 노후생활에 대한 얘기를 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추억을 만들 것 같습니다만 그 때의 열의와 열정을 잊지 말고 살자는 의미가 담겨져 있죠.
몸은 장년이지만 마음만은 청년입니다. 청년처럼 뜨겁게 살아야지 요. ‘청년’이란 단어만 보면 ‘청년이 서야 나라가 산다’는 표현이
2014년 대구 장년모임 ‘시계탑’은 90년대를 함께 고민하고 치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활동하다보면 후배 일 때는 선배를 바라보
하게 살았던 더 많은 동지들을 모을 계획입니다. 그러면서 청년세
고, 선배 일 때는 후배를 바라 볼 때가 많습니다. 청년도 서고. 장년
대와 가교역할을 하면서 젊은 청년세대의 기운도 받고 저희의 노련
도 서고. 나아가서는 노년도 바로 세울 수 있는 민권연대를 우리가
함도 전수해주려고 합니다. 그 시절 수없이 많았던 거리의 대학생
만들어야겠다고 생각 합니다.
들이 지금은 모두 장년이 되어있겠죠. 하지만 그 때 그 마음은 변치 않고 간직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구 민권연대 장년모임 ‘시계탑’ 언제나 청년처럼 열심히 살겠습 니다. ‘시계탑’ 화이팅!!
8
사·람·과·사·람·사·이
진심의 언어(대화) http://mag-mkyd21.tistory.com/17
우리가 일상생활을 함에 있어 서로가 지켜야 할 예절이 있다. 모든
과 마음의 준비정도를 고려해서 쉬운 말로 해야 한다. 말이라고 하
예절을 다 알고 일상생활에 적용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아주 기본
는 것은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얘기 받아들일 수 있
적인 예절은 지킬 수 있도록 생활예절을 소개하고자 한다. 일상적
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 생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말을 할 때는 가식 없이 상대방을 바라보며 진정을 다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고려 없이 반말을 하거나 조잡
집, 직장, 거리, 회식자리, 회의, 뒤풀이 자리 등 다양한 곳에서 사람
한 농담, 야비하고 몰상식한 말, 비속어, 줄임말을 마구 쓰는 것, 상
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우리는 대화를 하게 된다. 대화를 통
대방이 이해할 수 없는 전문적인 내용을 장시간 이야기 하는 것, 아
해서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하고 나의 생각을 전달하기 한
는 척 하며 자기 자랑으로 대화를 독점하는 것은 대화의 기본적인
다. 그 과정에 맘이 맞으면 끈끈한 사이로 발전하기도 하지만 반대
예절도 모르는 무례한 행동이다.
로 서로에 대한 실망과 불쾌감만 커지는 경우도 있다. 특히 회의나
또한 대화를 나눌 때는 상대방의 심기를 자극하거나 자존심을 건
술자리에서의 작은 말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가기도 한다.
드리는 말은 피해야 한다. 대화의 내용에서는 동지를 비웃거나 헐
예를 들어 듣는 사람은 관심도 없는 프로야구 이야기를 야구역사부
뜯는 말, 깍아 내리는 말을 해서는 안 되며 본인이 없는 곳에서 그
터 시작해서 주요선수, 팀별 특징, 야구 룰까지 일장연설을 한다거
의 뒷얘기를 해서도 안 된다. 듣는 사람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기본
나 반대로 상대방이 진지한 자기 고민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귀
적인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말을 시작 할 때에는 ‘오~’ 나 ‘거
를 후비고 코를 푸는 행동을 하는 것은 작은 행동이지만 대화 상대
시기~’와 같은 군더더기 말은 가급적 피하고, ‘씨~’ 나 ‘제기랄
에게 아쉬움과 상처를 줄 수 있다.
~’ 과 같이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표현도 삼가야 한다.
대화예절에서의 기본은 말하는 예절과 듣는 예절이다. 대화예절은
말하는 것 못지않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예절도 중요하다. 상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예의를 갖추는 것이지만 그 예의가 무
대방의 이야기는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제 말만 한다면 그 이상 예
엇인지 잘 몰라서 무례를 범하는 일이 종종 있다. 말을 한다고 해서
의 없는 행동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뱉는 말이 모두 말이 되지 않는다. 말을 할 때에는 상대방의 상황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의 얘기를 들을 때는 평온한 표정을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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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예의바르고 공손한 자세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표정 과 눈빛, 온몸으로 들어야 한다. 상대방의 이야기에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으면 고개를 끄떡여 주고 자신의 느낀바 감정도 솔직히 이야기해주면서 상대방의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특히 윗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듣는 예절을 잘 지켜야 한다. 윗사람이 얘기를 하는데 두 다리를 쫙 벌리고 앉아서 듣는다거나, 뒷짐을 지고 듣거나, 팔짱을 끼거나,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듣는 것은 버릇없는 행동이다. 자기 또래나 아랫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점잖고 의젓한 몸 가짐 유지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어야 한다. 상대방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말을 가로채거나 이야기내용이 재미가 없다는 듯 눈을 감 거나 다른 곳을 바라보는 행동, 불필요하게 몸을 흔들거나 손발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도 예의 없 는 행동이다. 의문점이 있으면 기억해두었다가 그의 이야기가 다 끝난 다음에 질문을 하거나 이 야기도중에 질문을 해야 할 경우에는 상대방의 양해를 꼭 구하고 물어야 한다. 또한 자리를 떠 야 할 사정이 있을 때에는 상대방에게 미안하다는 양해를 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 도록 조용히 움직여야 한다. 자신의 의사를 주장하는 대화를 함에 있어서도 서로가 지켜야 할 예절이 있다. 자신의 주장을 펼 칠 때에도 대화 장소와 대상의 성격, 수준을 고려해야 한다. 대화전개방식에서도 본격적인 이야 기를 꺼내기 전에 짧고 간단한 인사말로 대화분위기를 친숙하게 만들고 자기뿐만 아니라 상대방 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화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면서 대화를 시작한다. 자신의 주장을 본격적으로 펼칠 때에도 겸손하고 조리 있게 해야 하며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해야 한다.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서 참고자료를 심하게 인용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전문용어를 사용한다면 상대방의 호감을 유도하기보다 거리감만 생기게 된다. 대화 상대는 자신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해를 할 수도 있다. 주장을 하는 것도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기 때문에 자기의 주장만 고집하는 것은 옳지 못 하다. 주장을 펼칠 때는 상대방의 의견과 생각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해야 하며 상대방에게 모욕 을 주거나 망신을 주는 것 또한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상대방이 질문을 하면 알아들을 때까 지 자세히 설명해주고 의견을 말하면 성의껏 다 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대화예절은 어렵지 않다. 다만 얼마나 인식하 고 행동으로 옮기느냐의 문제이다. 대화예절을 조금만 신경 써서 지켜나간다면 보다 더 고상하 고 품위 있는 생활이 유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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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생각하는 시간 2013년 11월 15일, 정부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 Pacific Partner-
우리는 엔진의 노예가 아니다
TPP열차 꼬리칸에 올라타려는 한국탑 http://mag-mkyd21.tistory.com/6
ship : TPP) 참여를 타진해 보는 공청회를 열었다. 공청회 자리에서 박천일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한국이 TPP에 빨리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입 장을 밝혔다. 공청회가 끝나고 박 실장이 자리를 뜨려는 순간 현대자동차 직 원이 그를 가로막았다. 현대차 직원은 박 실장에게 “말씀하신 내용이 무역협 회의 공식 입장인지 알고 싶다”며 협정 참여 시 현대·기아차가 겪게 될 어려 움이 충분히 언급되지 않았다고 항의했다(경향신문, 2013.11.19). 어찌된 일인가? 한·미 FTA, 한·유럽연합(EU) FTA 등 각종 자유무역협정 체결 시 정부가 내세웠던 대표적인 논리는 관세가 철폐되어 우리 주력 수출 품이 혜택을 많이 본다는 것이었다. 그 안에서도 자동차 부분의 이익은 단연 1순위로 꼽혔다. 물론 현대·기아차도 FTA 협정에 적극 찬성해 왔다. 그런 데 이제 와서 현대·기아차가 기존의 FTA보다 더 포괄적인 자유무역협정인 TPP에 왜 강하게 반대하고 있을까? TPP가 무엇 이길래? TPP란 무엇인가? TPP는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들의 무역 자유화 협정으로, 2005년 6월 싱 가포르, 뉴질랜드, 칠레, 브루나이 4개국 체제로 출범했다. 2008년 2월 미국 이 참여를 선언하면서 주목 받기 시작해, 이후 호주, 페루, 베트남, 말레이시 아, 캐나다, 멕시코가 참여했다. 2013년 3월에는 일본이 들어오면서 현재 총 12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기존 FTA처럼 양 국가 간의 협정이 아닌 다자간 협 정이며, 미국이 주도하는 모양새를 띄고 있다. TPP는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농업제품을 포함한 모든 공산품의 관세를 철폐 하고, 금융·의료 등 서비스 시장의 완전자유화를 지향한다. 지적재산권, 노 동규제 등 자유무역협정의 거의 모든 사안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 으로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제대로 알 수가 없다. TPP 협상은 철저한 비 밀주의 방침 아래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조차도 지정된 분야에 한에서만 열람이 허용되어 불만이 높은 상황이다. 물론 모두가 내용을 알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협상을 주도하는 통상관료들은 내용을 알고 있을 것이고, 미국의 기업들도 TPP에 긴밀하게 간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3년 11월 13일 미국 독립언론 <퍼퓰러레지스턴 스>는 미국 600개 기업 자문가들은 TPP 협상문 구성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고 보도하기도 했다. 전 세계 민중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칠 협상이 몇 몇의 통상관료들과 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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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만 정보를 공유한 채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민중들은 진행
가기 전에 한미FTA를 충실하고 전면적으로 이행해야 한다”며 “자
과정은 전혀 모른 채 최종 협정문만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라
동차 분야에서는 여전히 비관세 장벽이 높고 금융분야에서는 투명
고 강요받게 될 것이다. 만약 거부한다면 주변국과의 관계가 크게
성 부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훼손 된다느니 하면서 말이다. 통상독재다. 나아가 협상 중간에 한국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는 미국의 입장 막차 타려는 한국, 입장료는? 한국은 TPP협정에 참여를 추진하고 있다. 2013년 11월 29일, 현오 석 경제부총리는 공식적으로 TPP참여에 관심을 표명했다. 그런데 가입의사를 밝혔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TPP에 가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존 참여국들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기존 참가국 들의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일종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각국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은 한국에게 협상이 마무리 된 후 가입하라는 것이다. 협상이 진행 되는 과정이라면 우리의 요구를 반영할 여지가 그나마 있지만, 협 상이 마무리 된 후 가입하게 되면 이미 정해진 협상내용과 원칙을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TPP체제에 들어가기 위한 입장료는 더 욱 커질 것이다. 장밋빛 전망? 삼성공화국 만들기!? 값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TPP협상은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이 득을 가져다줄까? 그 동안 정부는 각종 FTA 협정을 추진할 때마 다 경제가 몇% 성장할 것이라느니, 일자리가 몇 개 늘어날 것이라 느니 하며 협정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어마어마한 것처럼 뻥튀기 를 해왔다.
▲ 재인용 : FTA대응범국민대책위
그런데 작년 11월에 열렸던 공청회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한국
최근 한-호주 FTA가 타결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한-호주
의 TPP 조기 참여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농민단체뿐 아니라 발표자
FTA는 2009년 협상을 시작했지만 호주의 쇠고기 관세완화 요구에
와 토론자에게서도 나왔던 것이다. 그만큼 이 협상에 대한 확신이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협상이 중단되었다. 그러던 것이
없는 것이다.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한국이 TPP
정부가 작년 11월 말 TPP참여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불과 몇 일
협상에 참여할 경우 발효 뒤 10년간 2.5~2.6%의 추가 성장을 할
후인 12월 5일, 호주의 쇠고기 관세완화 요구를 한국이 받아들이면
것으로 추정했다. 연간 0.25%(GDP가 약 1300조원이라 했을 때 3
서 한-호주 FTA가 체결된 것이다. 한국은 호주뿐만 아니라 캐나다,
조2000억원 가량) 상승에 불과한 수치다(※ 삼성전자의 2013년 영
뉴질랜드 등과도 FTA 협상을 재개했고, 기존 FTA 체결국에게도 추
업이익이 36조8000억원이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8%를
가적인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차지하는 TPP참여국들의 규모에 비해선 한국에 미칠 경제적 영향 은 미미하다 할 수 있다.
특히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은 한국에 비싼 입장료를 물리겠다 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이 TPP협상 중간에 참여의사를 밝히자
그도 그럴 것이 TPP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나라들은 한국과 이미
미국은 조속히 회담을 마무리해야 한다며 한국의 제안을 거절했다.
FTA협정을 맺은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항상 자유무역협정과 관련
오히려 커틀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는 “한국은 TPP 가입에
되어서 정부가 주장하는 것은 수출증대 효과인데, FTA협상을 체결
앞서 FTA 이행과 관련한 우려사항을 해결해야 한다”며 한미FTA관
한 국가와 또다시 무역협정을 맺어봐야 큰 효과를 볼 수 없는 것
련 개방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커틀러 대표보는 TPP
은 당연한 일이다. FTA협정을 맺지 않고 있는 나라는 일본, 캐나
협상 참여국에 대해 쇠고기 수입 제한규정을 완화하도록 요청할 방
다, 뉴질랜드, 멕시코 4개국이다. 한국의 전체 수출액 중 이들 4개
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 상공회의소도 “한국은 TPP에 들어
국에 대한 비중은 약 9.1%정도(2013년 기준)다. 일본(6.2%)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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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 경우 그 비중은 3%가량에 불과하다. 수출이 크게 늘어날 여 지가 없는 것이다.
▲자료 : FTA대응범국민대책위 TPP협상은 미국이 주도하는 모양새를 띄고 있다. 미국은 경제위 기 탈출을 위해 수출을 늘리려 하는데, 그 일환으로 각 국들과 자
결국 현 상황에서 TPP협정을 맺는다는 것은 한-일 FTA를 체결하
유무역협정을 체결해 나가고 있다. 또한 미국은 TPP 협상에서 미
는 것과 유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본과의 무역에서 한국
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협정 내용을 정립하고 이를 향후 다른 FTA
은 큰 적자를 보고 있다. 2013년의 경우 일본에 대해 한국은 약 27
협상의 토대로 사용할 목적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이나 ‘
조5000억원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TPP 협정으로 기존의 관세가
신흥국’들은 FTA협정 시 미국이 우위를 가지고 있는 서비스, 지적
철폐되면 대 일본 무역적자는 더욱 확대 될 것이다. 자동차를 비롯
재산권, 노동 및 환경 등에 관한 부분을 제외시키려는 경우가 많으
해 기계, 부품소재, 전기제품 등에서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현
므로 TPP를 통해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기반으로 협상을 해 나가
대·기아차가 우려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겠다는 의도다.
나아가 정부의 자유무역협정 논리라는 것은 농수축산업 등 경쟁력
그런데 미국의 TPP참여는 단순히 경제적 이득만을 목적으로 하는
이 떨어지는 부분을 희생양으로 삼아 수출경쟁력이 있는 산업을 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 아세안+6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각 국가들과의 자유무역
개국), 한중일 FTA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협력 구상이 중국
협정을 확대해 나간다면 마지막에 살아남게 되는 경쟁력 있는 산업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을 차단해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려
이란 어떤 것일까? 현대자동차까지 우는 소리를 하고 있는 상황에
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파이낸셜차임즈>는 TPP 추진의 암묵적인
서 말이다. 삼성 정도만이 살아남으려나? 물론 삼성이 살아남는 다
목적이 ‘중국 배제’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인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
는 것도 확실치 않다.
다(한국은행 국제경제리뷰).
농수축산업의 피해는 TPP협상에서 더욱 심화 될 것이다. 그나마 자
따라서 TPP협상은 단순한 경제적 이득 여부뿐만이 아니라 세계경
체적으로 충당이 되던 쌀 시장마저 개방될 것으로 보인다. 투기자
제 질서 재편과도 연동된 문제다. 미국, 중국 등의 이해가 충돌하는
본들의 곡물투기가 곡물가격 폭등으로 이어지는 등 식량안보 문제
동북아에서 한국의 입지와 전략을 정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는 한
가 제기된 지 오래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업 등을 경쟁력이 없다고
국이 기존과 같이 ‘한-미 동맹’에 만 집착하면서 미국 경제권 편입
포기하는 것은 한국경제에 큰 우환으로 다가올 것이다. 반도체만
에 비중을 두는 정책을 편다면 큰 비용을 감수해야 함을 보여준다.
잘 만들어서 먹고 살겠다는 식의 자유무역논리는 이후 우리에게 더 큰 비용을 치르게 할 것이다.
RCEP협정에 발을 걸치고 있는 한국은 향후 미국의 의도와 요구에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2013년 12월 6일 조 바이든 미국
TPP vs RCEP
부통령이 청와대에서 공개적으로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라고 압박했다. 이대로라면 별다른 경제적 실 효성도 없는 협정을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각종 ‘입장료’를 지불 해가며 추진하게 될 것이다. 국제경제 질서 재편에서 한국의 입지 는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다. 민중의 삶을 파탄 내고, 한국경제의 불균형 발전을 부추길 TPP 열 차에 미국 주도의 경제권에 편입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비싼 입장료 를 내가며 올라타야 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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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생각하는 시간
박근혜 정부가 공공기관 부채 규모를 발표하며 이른바 “공기 업 정상화” 여론몰이에 대대적으로 나서고 있다. 똥 묻은 개
낙하산이 꽂힌다 공공부채가 불어온다
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다. 총체적 부정선거를 통해 비정
http://mag-mkyd21.tistory.com/7
박근혜 정부는 공기업이 상당 수준의 빚을 진 사실을 과대 포
상적으로 탄생한 정부가 다른 기관의 “정상화”를 외치는 기 상천외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장하는 한편, 그 원인이 마치 공기업 노동자들의 “과도한 임 금과 사내 복지”에 있는 것 마냥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이러 한 박근혜 정부의 주장은 노동조합에 공기업 부실경영의 책 임을 전가하기 위함이며, 결국 “공기업 민영화”를 노린 사전 포석일 뿐이다. 박근혜 정부가 2월 13일 발표한 공공부채의 현황을 짚어보고 그 원인과 부작용, 해법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나라 빚 821조원의 진실은?
기획재정부 발표에 의하면 2012년 말 기준으로 비영리 공공 기관을 제외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의 빚, 즉 “국가 채무”는 모두 443조 1000억 원이다. 여기에 중앙 및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된 국민연금공단 등 비영리 공공기관 의 부채를 “국가 채무”와 합하면 504조 6000억 원이 된다. 이것이 세계 경제위기 상황에서 “재정위기”, “국가부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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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용어와 함께 거론되는 이른바 “일반정부 부채”다. 일반정
이번에 발표된 821조 원의 2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2013년
부 부채는 정부와 지자체가 채권을 발행하는 등으로 빚을 진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국가부채 세미나에서는 국내 공공부
경우에 해당하므로, 만에 하나 이를 갚지 못할 경우 정부나 지
채가 1988조 원에 이른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자체가 “부도”에 직면할 수도 있다.
과도한 나라 빚의 부작용 2012년 말을 기준으로 한국 정부의 “일반정부 부채”는 국내 총생산(GDP)의 39.7%수준으로 나타났다. 일반정부 부채 규
공공부채 자체가 무조건 나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정부가
모를 국내총생산과 비교하는 이유는, 해당 국가의 빚이 그 나
빚을 내어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재원 등으로 사용한다면, 소
라의 경제규모에 비해 얼마나 큰지를 상대적으로 파악하기
득 재분배에 일정한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서민 생활에 직
위해서다. 하지만 일반정부 부채 규모가 “재정위기”를 초래
결되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기업이 국민들에게 저렴한
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일례로 국내총생산 대비 공공
가격으로 서비스를 공급하다가 적자 경영을 하고, 이를 메우
부채 비율이 300%를 넘는 일본이나 150%대인 캐나다 같은
기 위해 빚을 낼 수도 있다.
나라도 “국가 부도”같은 위기가 현실적으로 나타나지 않았 다. 나라마다 경제 사정이 다르고, 또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국공립 의료원이다. 서민들이 누구나
을 사들인 주체도 국내외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저렴한 비용으로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제공 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 의료원이 적자를 보는 만큼, 서민
국내총생산 대비 일반정부 부채 비율이 39.7%라는 점은 유
들은 부담 없이 의료혜택을 받는 셈이다. 이 외에도 국민건
럽연합(EU)이 제시한 재정건전화 권고기준, 국내총생산 대비
강보험이나 전력, 가스, 우편, 철도 등이 대표적인 공공서비
60%와 비교했을 때 낮은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지 “일
스다. 공공부채가 많다는 사실 보다는, 공공부채의 성격이 더
반정부 부채”만을 근거로 현재 나라 전체의 빚이 안전하다고
중요하다는 것이다.
주장하기에는 한계가 따른다. 실제로 정부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빚은 더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채의 규모가 어떤 식으로든 자꾸 늘어난다면, 이는 분명 공공기관의 운영에 커다란 짐이 될 수밖에 없다. 민주
정부가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공기업의 부채 389조 2000
당 이용섭 의원실에 의하면, 2014년 국가 채무 예상액 515
억 원까지 포함할 경우, 공식적인 “총 공공부문 부채”는 821
조 2000억 원에 대한 이자 지급액은 무려 2014년 정부 예산
조 1000억 원이다. 이것이 바로 “국제기준”에 따른 나라 빚
의 9.1%, 22조6000억 원이다. 정부의 농림·수산·식품 분
이다. 2012년 말 현재 ‘나라 빚’은 국내총생산 대비 64.5%
야 예산 18조6000억 원보다 많고, 전체 사회간접자본 개발
에 달해, 유럽연합(EU)이 권고한 국내총생산 대비 60% 수준
(SOC) 예산 23조3000억 원에 육박하는 돈이 소모적인 이자
을 뛰어넘는다.
지급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이용섭 의원은 “국가채무 이 자지급액이 일반회계 예산의 10%를 넘어서면 원리금 부담의
하지만 실제 ‘나라 빚’은 이보다 더 많다고 보는 것이 옳다.
가중으로 재정의 경직성이 높아지며, 특히 저출산·고령화,
공식적인 “공공부문 부채” 821조 1000억 원에는 미래에 정
사회양극화, 경기침체 등 당면한 국가적 과제 해결을 위한 재
부가 지급해야 할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연금 등을 나타낸 ‘
원마련에 어려움이 커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연금충당부채’가 436조 9000억 원, 정부가 따로 보증한 ‘보 증채무’가 145조 7000억 원이 포함되지 않았다. 금융공기업
채권발행이 증가할수록 소득 재분배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의 부채도 집계에서 모두 빠졌다. 이들을 합치면 공공부채는
국민 전체의 평균적인 이자 부담은 증가하는 반면, 국채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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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는 국내외 투기세력은 이자 소득을 챙기기 때문이다. 국
과 일반 금융 부채로 나뉜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이자가 발
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정부예산의 9.1%가 국내외 투기세력
생하는 일반 금융부채다.
에게 고스란히 넘어가는 것이다. 감사원이 2007~2011년 금융부채 10대 공공기관의 부채 원 과잉 부채, 원인은 정부정책의 실패
인을 분석한 내용을 보면, 4대강 사업과 인천공항철도 등 무 리한 정부정책사업과 공공요금(전기·수도·가스 등) 통제 로 발생한 금융부채가 전체의 절반을 넘어섰다. 특히 이명 박 정부 들어 강하게 밀어붙였던 각종 해외사업 부채까지 정 부 몫으로 돌린다면, 전체 금융부채 증가분의 63.1%에 달한 다. 한마디로 공기업 부채의 책임이 대부분 정부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놓고 볼 때, 박근혜 정부가 공기업 과잉 부채 의 원인으로 주장하는 이른바 “방만 경영”, “도덕적 해이”, “ 철밥통 노조” 등은 그저 자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적반하 장임이 분명하다.
<그림 > 2012년 감사원에서 지적된 주요 공공기관 부채 증가
해법은 낙하산 인사 근절부터
원인 분석(자료 : 한겨레) 황당하게도, 박근혜 정부는 정부의 정책 실패로부터 발생한 공기업 부채문제에 대한 해답을 “민영화”에서 찾고 있다. 부 현재 박근혜 정부가 문제 삼고 있는 공기업 부채는 왜 늘어
채가 많은 공기업을 “민영화”하면 정부는 일순간 부채에서
난 것일까. 공기업 부채는 국가재정을 지원받은 정부차입금
자유로워지며, 동시에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책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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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터 자유로워진다. “민영화”과정에서 벌어지는 각종 로비에 의한 “검은 돈”의 유입은 정부 실세들이 얻을 수 있는 또 다
오히려 공기업 부채문제에 대한 해답은 정부에게서 찾아야
른 전리품이다.
한다. 대표적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가 바로 “낙하산 인사”다. <한겨레>가 2013년 들어 임명된 공공기관장을 분석한 결과,
“민영화”는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공기업을 민영화하면
전체 77명 가운데 34명(44%)이 낙하산 인사로 꼽혔다. 이명
해당 기업은 무조건 흑자경영을 해야 한다. 적자보는 민간 기
박 정부 출범 초기인 2008년 신규 임명된 공공기관장 180명
업은 존재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기
중에 78명(43.3%)이 낙하산 인사로 꼽힌 것과 비슷한 수준이
업이 흑자 운영을 해야 한다면 서비스 가격이 인상될 수밖에
다.
없다. 당장 비용 문제로 서비스에서 소외되는 국민이 생긴다. 공공서비스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공기업의 존재 이유
사회공공연구소의 김철 연구위원은 “낙하산 인사”의 문제점
가 순식간에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에 대해 “전문성 없는 낙하산 기관장이 논공행상식으로 기관 장 자리를 차지하고 정부 시책을 밀어붙이는 행동대장 노릇 을 하면, 공공기관 임직원들이 경영에 대해 무책임해질 수밖 에 없다”고 일갈했다. 역대 대통령이 자신의 치적을 위해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각 종 재정사업도 재검토되어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 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이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오 건호 연구실장은 “공공기관의 부채 문제를 개혁하기 위해서 는 기재부의 그간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을 반성하고, 논공 행상이 되어버린 기관장 인사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해법 을 제시했다.
<그림 > 2013년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현황(자료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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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터닝 포인트
지리산, 역사의 흔적 http://mag-mkyd21.tistory.com/8
2월 1일 토요일
표소가 나왔다. 아저씨가 우리 짐을 보고 “위에 눈바람이 불어 종주 는 힘들 것 같네.” 하신다. 이런.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날씨가 화
첫 산행일기다. 내일이 산행이라 좀처럼 잠이 올 것 같지가 않다.
창하고 따뜻한데 무슨 소리야. 꼭 종주 하겠다고 다시 한 번 결심하
전부터 소망해왔던 겨울 지리산 종주.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
고 다시 산행에 나섰다.
지. 산의 무게에 눌려 지금은 아직 벅차다. 준비의 부족이 어떤 결 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최대한 준비하
드디어 산행을 시작했다. 화엄사에서 스피치, 아이젠으로 중무장을
려 한다.
하고 얼마 전에 산 산악용 바지와 장갑까지 끼고 올라갔다. 가방이
가장 걱정되는 것은 길을 잃을지 모른다는 것인데 사람들과의 만남
너무 무겁다는 느낌이 자꾸 든다. 마치 산악부 1학년 때의 텐트 매
이 해결해주겠지. 이번 산행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냥 산을 느끼고
고 선배들의 채찍질에 올라가던 그 느낌이다.
오는 것? 나의 신념을 굳히는 것? 후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겠
오늘따라 왜 이리 숨이 가쁜지 모르겠다. 가는 길에 가장 맛있는 식
다. 목표는 산을 느끼고 사람을 느끼자. 추상적이지만 이보다 더 좋
량인 눈을 먹으며 올라갔다. 쌓여있는 눈을 먹는다는 것, 도시에서
은 것이 어디 있으랴. 처절했던 무장투쟁 역사를 느낄 수는 있을까?
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가능하다. 손으로 한 웅큼 쥐
빨치산들의 처절한 전투, 무엇을 가슴에 담아올 지에 대한 기대와
어 안쪽의 깨끗한 부분을 먹으면 그 맛이 아이스크림 같다. 레몬 맛
산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한다. 산 앞에서 겸손하자.
사탕과 눈을 같이 먹었더니 영락없는 레몬 샤베트다. 가도 가도 끝 이 없다. 눈을 먹다 못해 흘러내리는 계곡 물도 먹으며 몇 ㎞ 남았
2월 2일 일요일
다는 이정표만을 바라보며 무거운 다리를 옮겼다. 후배 녀석은 뒤 에서 “형 아주 죽을라하네. 벌써 그러면 어떡해” 라고 계속 재촉한
9시 20분. 출발부터 늦어지고 있다. 예상한데로 후배 녀석은 늦게
다. 벌써 이렇게 힘든데 종주는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오고 가방은 무겁다. 여기에 얼마나 더 넣어야할지 두려울 뿐이다.
풍경이 정말 멋있다. 아래로 펼쳐진 구름과 봉우리들. 그래서 올라
잘돼야 할 텐데. 택시를 타고 운 좋게 11시 45분 화엄사 가는 직행
오나 보다. 신나게 평지를 걷다보니 노고단 산장이 보인다. 부산에
버스를 바로 탈 수 있어 일정이 그렇게 늦어지지는 많았다.
서 오신 아주머니, 아저씨 덕에 삼겹살과 된장국도 얻어먹고 우리
화엄사 버스터미널에서 올라가다가 사진도 찍고 한참 가다보니 매
의 주 메뉴인 3분 카레에 깻잎으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 그분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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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며 같이 식사하는 것은 산을 오르는 사람만의 특권이다.
움직이질 않고 배만 고프다. 역시 겨울 산행은 추위와의 싸움이다.
별이 쏟아질 것 같다. 내가 아는 별자리는 다 찾았다. 오리온자리,
연하천 산장지기는 갈색머리를 길러 파마하고 모자를 쓴 모습이었
카시오페아, 북두칠성, 별이 너무 많아 찾기가 힘들 지경이다. 밥 먹
다. 산장지기는 백두대간 50일 종주, 산이 얼마나 좋은지 무서운지,
기 전에 본 노고단 일몰도 일품이다. 내일 9시간 산행이 걱정이지만
장비는 어떻게 사용하는지 술기운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산은 언제나 한품에 우리를 안아준다.
이번 종주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저녁이었다. 산은 천천히 그리고 꼭 정상을 오를 필요는 없다는 그 말이 정말 인상 깊었다. 꾸준하면
2월 3일 월요일
된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반짝 열심히 할 수는 있지만 꾸준하긴 어 렵다. 산장에 지내면서 전국의 산을 다니는 이들의 삶의 여유와 깊
밤새 잠을 설쳤다. 출입금지 구역인 노고단으로 향하여 노고운해를
이는 어디서 오는 것인지. 산에서 배운 것인지.
본 순간 애써 올라와서 다시 내려가야 된다는 짜증들은 말끔히 사 라졌다. 산들 사이의 구름의 바다, 문풍지 사이로 들어오는 햇발 같
2월 4일 화요일
기도 하고, 오로라로 만든 커튼 같기도 한 구름이 사방에 떠있다. 이 렇게 멋있을 줄이야.
어제 먹은 술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도저히 못 일어나겠다. 어제
눈 위를 걷는 기분은 정말 좋았다. 설레는 마음에 첫발을 딛었지만
도 중간에 계속 꿈을 꾸었는데 꿈꾸면서도 내 그 많은 상상력에 감
지금까지의 다져진 길은 없고 우리가 처음이었다. 눈이 허리까지 빠
탄했다. 7시 좀 넘어서 일어나 씻는데 손끝이 갈라져서 떨어져 나
지는 느낌, 도저히 안 되겠어서 4발로 기어갔더니 좀 더 나았다. 4
갈 것 같다. 예정보다 2시간이나 늦은 출발이지만 여유롭고 즐기면
발로 기고 있는 나도 옆의 무수한 토끼와 다른 동물 발자국을 보니
서 갔다. 가는 중간 중간의 능선과 구름들은 가슴속에 담고 가끔 너
동물이 된 기분이다. 삼도봉은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의 경
무 멋있으면 사진도 찍으면서 갔다. 가다 만난 작은 딱따구리 소리
계 지점이다. 몇 번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쳐 가져온 비상식량도
가 들려 사진 찍으려다 놓쳐 버렸다.
다 먹고 눈과 고드름으로 갈증을 달래며 토끼봉, 명선봉을 지나 4시
그곳에서 눈에 띈 것이 ‘현대사의 아픔인 지리산 빨치산’라는 빨치
쯤 오늘의 숙소인 연하천 산장에 도착했다. 이곳은 아무런 난방시
산 소탕 표시판이었다. 당시 유격대 대장인 이현상 근거지가 여기
설 없이 침낭과 매트리스로만 보내야한다. 추위 때문에 손발이 잘
서 6.3㎞라고 적혀있었다. 단지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참히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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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한 현대사의 비극. 그 당시 민중 사이에서 그들이 어떤 존재였는
던 중에 길을 잃은 4명을 만났다. 밤새 내린 눈과 바람이 길을 다 없
지, 그들은 죽인 경찰들이 거의 대부분 친일파에서 친미파로 변절
애버려서 그 후로 몇 번 헤매다가 드디어 천왕봉을 밟았다. 하지만
한 자들인지. 그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날씨 때문에 일출 보지 못하고 천왕봉의 절경도 보지 못했다. 3대 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이다. 하지만 정상에 올랐
씁쓸한 마음을 접고 발길을 돌렸다. 새석산장은 아직도 먼 건가. 먹
다는 기쁨에 3박4일의 종주의 마지막인 천왕봉의 ‘한국인의 기상
구름이 몰려오고 눈이 조금씩 오기 시작하는데 걱정이 된다. 길이
이 이곳에서 발원되다’ 비석을 얼싸 안았다.
사라질 수도 있고 내일 일출도 봐야하는데. 그래서 발걸음을 더욱 서둘렀다. 눈발은 점점 심해지고 고도 1700m를 넘어서자 거센 바
내려가는 길은 험난했다. 눈보라는 계속 되고 아무래도 오늘 이 길
람이 불어왔다. 길이 약간 씩 사라져간다. 0.8㎞ 남았는데 정말 안
은 우리가 초행인 것 같았다. 어제 사람들이 만들어 온 길의 흔적
나온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마지막이 가장 힘들다. 드디어 넓은 평
이 아주 조금씩 남아있고 눈은 무릎에서 엉덩이까지 빠졌다. 이래
원이 나왔는데 눈 때문에 산장이 안 보인다. 좀 더 가니 장터목이 보
서 눈이 많이 오는 산에서 길을 잃어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고 후배는 탈진 할 것 같다고 하면서 털푸덕 주저앉았다.
길은 찾기는 힘들었지만 나무마다 핀 눈꽃이며 설경은 정말 눈부시
도착한 산장은 시설은 좋지만 바로 천왕봉 아래라 사람이 붐벼 시
다. 오는 사람도 가는 사람도 없어 우리뿐이었다. 산장에서 몸을 녹
끄럽다. 소등이 9시라 원래 하고자했던 할 일을 뒤로 미루고 서둘
이고 있는데 “여기까지 길 트고 오느라고 수고했다”며 다른 등산객
러 저녁을 먹고 숙소로 올라갔다. 이제 내일 5시 40분에 일어나서
이 우리가 만들어 온 길을 따라 속속 도착하였다. 거기서부터 우리
일출만 보면 된다. 무지 따뜻한 숙소에서 옆에 아저씨가 코를 심하
는 한 번도 안 쉬고 대원사까지 6㎞를 뛰어내려왔다. 정말 허벅지
게 골았지만 꿀잠을 잤다.
가 터질 듯이 달려 80분 만에 내려왔다.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종 주 한 그 느낌은 오지다는 표현이 딱 이었다.
2월 5일 수요일 지리산 첫 문턱부터 있는 빨치산 격퇴 안내판에서 느낀 현대사의 일출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뒤척이다 일어났다. 서둘
비극, 가려진 역사 속에서 나의 몫을 찾는데 이번 종주가 도움이 되
러 나왔지만 밖은 눈보라가 치는 어제 그대로였다. 혹시 모를 기대
었을 것 같다. 지리산, 힘들었던 만큼 거기에 서린 선배들의 한과 역
감에 랜턴을 하나씩 들고 야간 산행을 시작했다. 눈보라를 뚫고 가
사를 가슴 속에 깊이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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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터닝 포인트] *여행 수기를 기다립니다. mag.mkyd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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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이슈 의료민영화에 대한 말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다. 그런 데 제대로 알고 말들을 하고 있는 건지, 제대로 알고 반대하고 있는
하얀정글 의료민영화
건지, 그 반대의 목소리가 꾸준히 이어질 수 있을까?
http://mag-mkyd21.tistory.com/9
이미 의료는 민영화 되어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먼저 ‘의료민영화’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얘기해 보자. 혹자는 ‘ 의사에 의해 설립된 병, 의원이 95%나 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비록 사적인 의료기관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하더라도 그 사적 의료기관들도 각종 법과제도에 의해 공공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 문에 우리나라의 현 의료제도에서 의료가 완전히 민영화 되어있다 고 볼 수만은 없다. 의료의 공공성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이외에 사적의료기관의 설립주체가 의사(치 과의사, 한의사 포함)와 특수 비영리 법인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그 러한 법과 제도 중의 하나이다. 설립주체를 한정하고 있는 것은 영 리적 목적에 의해 의료행위가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 인 것이다. 비영리 법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의사 개인들이 설립하는 것이 어 떻게 의료가 영리에 의해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는 지 궁금해 할 것 이다. 의사가 설립한 의료기관은 설립자가 그 의료기관의 장이 되 어야 한다. 즉, 그 의료기관에서 행해지는 모든 의료행위를 설립자 인 의사 당사자가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다. 비록 의사가 설립한 의 료기관이 이윤추구를 하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의료의 왜곡은 최 소화 될 수 있다. 의료가 왜곡되어 생길 수 있는 모든 불상사는 의 사 자신의 자격과 자신이 설립한 병의원에 치명적으로 작용하기 때 문에 의사들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실제로 개업가의 의사들 은 자신들의 의료행위를 스스로 제약하는 것에 매우 익숙해 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의료보험제도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는 상당 히 공공성을 띠고 있다. 그것이 유럽의 일부국가의 의료제도 만큼 공공성을 덜 띠고 있는 것은 정부가 비용을 적게 대고 있기 때문이 다. 무엇보다 의료보험의 수가 즉, 진료비를 정부가 정한다는 것은 의료의 공공성을 보여주는 영역이다. 비급여라고 해서 의료비 중에 서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 부분이 사적영역에 속하고 그에 해당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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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고 그 이유가 바로 정부가 약속하고
법인’까지로 확대되었다. 이후 설립가능 한 주체에 ‘생활협동조합’
부담해야 할 부분을 제대로 부담하지 않음으로 인해 생긴 현실이지
까지 포함되었다. ‘생활협동조합’이 의료기관의 설립주체에 포함
만, 그래도 그 것은 의료제도의 근간이 되는 부분은 아니다. 기본적
된 것은 ‘의료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되었던 ‘의료생활협동조합’을
인 의료비를 정부가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의료가 공적
제도적으로 합법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지만, 현재 많은 지역
인 면이 매우 강함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에서는 ‘사무장병원’이 합법을 가장하는데 악용되어지고 있는 것 이 현실이다. 또한, 특수 외자유치지역에 한해서 ‘외국의 기관’이
이 외에도 보건의료영역은 파업권의 제한을 비롯하여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설립에 투자, 자문, 운영에 관여할 수 있는 법
그 공공성을 보장받고 있다.
과 제도도 마련되어 있다.
이렇게 공공성을 법과 제도에 의해 보장받고 있는 의료영역에 영 리를 허용한다는 얘기는 공공성을 보장하고 있는 법과 제도를 약
이렇게 의료의 영리화 즉 의료민영화가 점차적으로 이루어지면서
화 시켜야만 가능한 일이다. 즉, 의료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영리
처음의 소규모 사무장병원들의 요구는 오히려 ‘동네 애들 장난’수
성을 보장한다는 말은 곧 의료의 공공성을 포기하겠다는 얘기가 된
준이 되었다. 대형병원들 스스로가 비영리법인의 굴레에서 벗어나
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의 영리화’라는 말이 ‘의료의 민영화’라는
고자 하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재벌기업과 연관된 병원들
말로 대체되어 사용될 수 있다.
의 경우는 그러한 요구가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그러한 노골적인 요구가 민망하다보니 최근 나온 것이 ‘비영리법인’이 ‘영리법인’
그럼, 의료민영화는 혹은 의료의 영리화는 누가, 왜 하려고 하는가?
을 자회사로 둘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다. ‘비영리법인’인 의료기 관이 돈벌이를 하겠다고 ‘영리법인’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기가 민
‘사무장 병원’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무장 병원’이
망하니까 의료기관의 운영이 어렵다는 명분을 앞세워 편법으로 돈
란 실제로는 의사가 아닌 사람이 병의원을 설립하고, 그것이 법적으
벌이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것이다.
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의사를 고용해서 법과 형식적으로는 고용된
의료기관의 재정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의료기관의 재
의사가 설립한 것처럼 꾸미고 자신은 의사에 고용된 ‘사무장’인 것
정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데, 의료보험을 시
처럼 위장한 상태에서 실제 병의원을 운영하는 병의원을 지칭한다.
작한 30년이 지난 현실은 의료보험재정에서 정부지원이 차지하는
‘사무장병원’은 이들 병의원이 ‘의료가 영리화’ 되었을 경우 생기
비율은 거의 초기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정부의 의료보험 재정
는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며, 이런 ‘사무장 병원’의 운영
에 정부지원을 점차 확대하기로 한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
자들이 끊임없이 의료기관 설립주체를 자유롭게 만들어 의료가 영
면서 정부에서도 의료기관의 재정보전을 위해 편법을 쓸 수밖에 없
리화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무장
게 되는 것이다. 그런 배경을 가지고 의료의 영리화가 점점 확대되
들의 바람은 일부 국회의원을 매수하여 시도 하는데 그치면서 번
어 가고 있다.
번이 제지되어 왔다. 그들의 시도는 일반회사를 설립할 때와 같은 ‘영리법인’이 의료기
거기에 재벌들, 대자본까지 끼어든다. 동네 구멍가게, 치킨집, 피자
관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한 시도는 항상 시
집, 빵집들을 죽이고 제살 불리기를 해온 재벌들은 문화시장을 독차
류를 타고 명분을 만들면서 일정정도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부분
지 하고 그러고도 모자라서 의료시장을 넘보기 시작한다. 대형병원
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병의원 설립주체의 폭이
을 지어서 병원들끼리 규모싸움을 하여 기존 의과대학병원들을 경
점점 넓어지고 쉬워지면서 그들의 요구가 조금씩 관철되어가고 있
쟁과 싸움판으로 내몰고, 이제는 동네병의원들마저 자신들의 돈벌
는 것이다.
이에 이용하고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우선 설립주체인 ‘비영리법인’이 특수재단법인인 ‘의료법인’과 의 과대학을 보유하고 있는 ‘학교법인’에 국한되어 있다가 ‘사회복지
원격진료는 재벌 대기업이 의료민영화, 의료영리화로 가는 매우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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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이슈
련되고 쉬운 방법입니다.
하고 있는걸까? 반대할 명분과 이유가 참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
원격진료를 통해 대형대학병원의 유명한 교수들에게 진료를 받게
장 중요한 것은 의료가 상품화되어지는 것이다. 마치 교육이, 예술
해 줄 것이다. 시간, 공간, 거리의 제약이 없고, 비용도 훨씬 덜 들
이 상품화되었듯이.
면서.
원격의료를 통해 진료 받고자 하는 의사는 하나의 멋진 상품이 된 다. 실제 그 의사의 지식과 능력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매스
지금 추진되고 있는 원격의료는 동네의원 즉,
컴을 통해서 실력 있고 따뜻하고 멋진 의사로 만들어 주면 된다. 그
1차 의료기관에 한해 시행한다고 한다.
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자신의 주치의로 지정하여 진료를
속성상 2차, 3차 병원으로까지 확대되는 건 시간문제다.
하면, 그 멋진 의사는 원격으로 몰려오는 수많은 환자들에게 친절 하게 대해주고 환자들의 문제와 고민을 정성껏 들어주기야 하겠지
의사, 간호사와의 직접적인 접촉이 필요한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을
만, 정작 필요한 의료상의 조치는 그가 혼자 해내기에는 역부족일
것이기에, 원격진료는 끝내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것이다. 그러면, 실제 필요한 의료적인 일은 그를 도와주고 보조해
하지만, 위에서 얘기한 의료민영화가 이루어진다면 얘기는 달라진
주는 의사들이 거의 다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그런 의료수
다. 병의원의 개설이 쉽게 이루어지고 그렇게 되면 병의원도 프랜
요를 제대로 처리해 내기 위해서는 규격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환
차이즈체인 시스템으로 운영 할 수가 있다.
자의 호소, 증상, 검사결과, 원격으로 들어오는 여러 데이터들을 종
예를 들어 서울대학병원, 삼성의료원, 현대아산병원의 분원(체인점)
합해서 진단하고, 처방하고, 다음 단계의 진료로 넘기는 각종 과정
으로 등록한 동네의 어느 개인의원이 있다. 환자가 핸드폰이나 컴퓨
들이 어느 한 의사가 깊은 생각을 해서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안
터로 그 대형병원의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다가, 꼭 의사의 진찰, 치
될 것이다. 한 유명한 의사의 팀에 몇몇 보조 의사가 배정되어 일들
료, 검사가 필요해서, 가까운 그 대형병원의 체인병의원으로 가서
을 처리하면서, 그들은 환자들의 각종 문제들을 처리할 수 있는 시
원래 진료를 받던 대형병원의 전문의의 지시에 따라 그 체인병원의
스템을 만들어 그 규격에 따라 처리해 내게 될 것이다. 물론 그 시
의사에게 좀더 자세한 진료와 검사를 받고 그 데이터는 곧바로 원
스템은 여러 훌륭한 의사들이 모여 많은 의논과 궁리를 통해 만들
격으로 본원으로 연결이 되어 그 전문의에게 전달이 되고 그 결과
어 지겠지만,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의 각종 예외적일 수 있는 문제
에 따라 처치와 처방이 이루어진다. 환자는 마치 대형병원에서 진
를 담기에는 부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
료를 받은 것과 같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 위한 또 다른 보완책을 만들어 내겠지만, 그 보완책 또한 또 하
서울에 사는 한 환자가 부산에 가서도 같은 주치의(그것도 서울삼
나의 규격일 따름이다.
성병원의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고, 그 병원의 체인병원에서 간단 한 검사를 시행하고 그 결과를 곧바로 주치의가 판독하여 처방을
거기에 또, 중요한 문제는 원격의료기술이 아직 충분히 발달되어
내리면 가까운 체인약국을 정해 지정하면 처방전 없이 가서 약을
있지 않다는 것이다.
탈 수 있는 현실이 온다는 것이다. 원격진료는 이렇게 멋진 것이다.
그 어느 나라에서도 아직 원격의료를 법제화해서 시행하는 나라는 없다. 아직 전혀 생각들도 안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만 기술이
의료의 영리화는 이런 원격진료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초석
출중해서 원격의료를 할 수 있는 기술을 충분히 갖췄나 하면, 다른
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듯 멋진 원격진료를 반대
나라보다 조금 더 발달 된 것이 인터넷망의 보급정도다. 이런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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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이슈
에서 원격의료를 도입한다는 것은 국민을 실험대상으로 삼겠다는
이 멋진 원격진료를 반대하는 것이다.
것이다. 그것도 의료에서... 물론 원격의료기술이 충분히 담보될 때까지 생명을 다루는 주요 질
의료민영화와 원격의료 도입은 의료시장을 대형병원의 독과점 체
환과 상황에는 원격진료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둥의 말도 안
제로 변화시킬 것이다. 이미 동네 구멍가게가 사라지고, 빵집이 사
되는 변명을 댈 것이다. 감기하나만 해도 폐렴, 폐암 등의 심각한
라지고, 피자, 치킨 심지어는 떡볶이 집이 사라지는 현실을 우리는
질환과 연관되어 있고, 배가 아프기만 해도 그것이 수술할 질환인
목격하고 그 현실이 무엇을 말하는 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의사
지, 아닌지 부터 확인해야 하는 것이 정석인데, 그리고 수술할 질환
들에게 닥치는 더 큰 재앙은 의사들이 독립적인 의료의 주체가 아
의 경우 그 시기를 놓치면 생명과도 직결되는 문제인데, 어느 질환
닌 의료기술자격을 가진 단순한 고급기술자로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원격의료를 해도 되는, 생명과 연관이 없는 질환이라고 단언할
이미 현대사회에서 의료와 사회의 제도 구축에 있어서 일반 국민의
수가 있단 말인가?
참여가 높아진 상황 또 의료의 소비자인 환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진 현실에서 의사들이 예전처럼 의료의 주체로 올바른 의료를 책임지
단순히 의료민영화 즉, 의료의 영리화를 앞당기기 위해서 원격진료
고 짊어지고 간다고 한다는 것은 너무 과장된 얘기가 될 수도 있겠
를 서두르는 것일까?
지만, 적어도 일차의료 즉, 동네병원에서만은 의사들의 역할이 아
우리나라의 전자의료사업을 육성, 발전시키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직 많이 남아있고 이것은 의사들이 자신들의 역할에 자부심을 갖고
서다. 지금 원격의료의 도입을 추진하는 곳이 보건복지부가 아니다.
임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라고 볼 수도 있다.
보건복지부 내의 기류도 반대하는 기류가 더 강하다. 원격진료는 첨 단의 기술들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이루어지는 만큼 많은 부가가
의료민영화, 원격진료는 저들의 그 큰손으로 우리를 옥죄어 올 것
치가 창출될 것이다. 영상과 음향을 비롯한 여러 데이터를 디지털
이고, 그 들의 그 큰 힘을 우리는 쉽게 막아내기 힘들 것이다. 그리
화하는 기술, 그리고 그것을 손상없이 전송하는 기술, 그리고 그것
고 그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세련되게, 매우 멋진 모습
을 다시 재현하는 기술들이 모두 정밀하게 이루어져야하며, 양방향
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가면서 그것을 소리 높여 반대하는 우리를 매
으로 빠르게 왔다갔다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기존의 기술을 발전
우 난처하게 만들 수 있다.
시키는 것이라 전혀 새로운 기술들은 아니지만, 의료영역에 접합하
그들은 우리를 갈라놓을 수도 있다. 벌써 의협과 정부가 타협안을
면서 정교함과 속도를 향상시키고 인체접촉이라는 특이한 문제들
내놓고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거짓정보를 언론에 흘리면서 의사들
을 해결해 나가는 기술들은 향후 전자의료분야라는 새로운 영역으
사이, 의사와 국민 사이를 이간질 시키고 있다. 이후에도 유사한 짓
로 발전해나가면서 많은 성과를 이루어 낼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
들을 오히려 그보다 더 심각한 일들을 하면서 반대하는 목소리를
자회사들이 이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앞으로 치고 나가기 위해서는
조금씩 사그라지게 만들 것이다. 숱한 거짓과 위협 그리고 당근이
그러한 시장을 다른 나라보다 빨리 만들어 주는 것이 매우 절실하
난무할 것이다.
다고 할 수 있다. 경제부처의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의 원격의료시장
계속 버텨나가기 위해서는 진실을 바로 알고 차분히 대처하되 단호
이 빨리 열려서 우리나라 전자회사들이 다른 나라보다 앞서 기술을
한 입장을 견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개발하고 발전시켜 나가기를 간절히 원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국민의 의료권, 건강권을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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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무기
항간에 B-52가 논란이다. 2013년 상반기의 한반도 전쟁위기 국면 에서도 미군의 B-52전략폭격기가 한반도에 날아와 군사적 갈등을
사자의 늙은 이빨 B-52 http://mag-mkyd21.tistory.com/10
낳았다. 올해 2월 6일에는 남북고위급 접촉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논의하는 과정에 B-52가 군산에 폭격훈련을 실시하는 통에 이산가 족 상봉 합의가 연기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미군이 2월 24일부터 시작한 ‘키 리졸브 연 습’ 등 한미 합동 군사연습에 핵폭탄을 탑재할 수 있는 미(美) 공군 B-52 전략폭격기를 투입할 계획이라고 일본의 니혼게이자이(日本 經濟)신문이 워싱턴발(發)로 보도했다고 한다. 항간에 논란이 되는 B-52는 과연 무엇일까? B-52는 스트레이토포트리스(Stratofortress), 즉 성층권의 요새라 불리는 미 공군의 핵전략폭격기다. 비행기의 길이가 48m, 너비( 주 날개의 너비)는 56.4m이며, 동체의 무게가 221.35톤이다. 보잉 747 여객기의 길이가 70m, 날개너비가 64m인 것을 고려한다면 웬 만한 여객기만큼 커다란 동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이 비행기는 정말 오래된 기종이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으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만들어진 B-52는 1955년 배치된 이래 미 전략공군사령부의 주력 폭격기가 되었다. B-52는 1956년 비키니섬에 수소폭탄을 투하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베트남 전쟁에서 3백만톤의 폭탄을 투하였다고 한다. 베트남전 당 시에 활약하던 미군전투기인 F-4 팬텀 등이 모두 퇴역하는 상황 속 에서 그로부터 무려 20년 전인 1950년대에 개발된 비행기가 지금 도 하늘을 날고 있다는 사실자체가 의아하다. 보수 군사평론가들은 그 동안 북한의 미그 전투기가 대체로 60년대 에 개발된 기종으로 현대전에서 쓸모없는 수준이라는 혹평을 주저 하지 않았다. 이들이 60년대 기종보다 10년이나 더 오래된 B-52에 대한 평가는 오히려 정반대라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B-52가 1950년대에 제작된 전략폭격기이다보니 B-52의 비행특 성은 전투폭격기보다 오히려 보통의 상용여객기에 더 가깝다. 보 잉 747 등 민간 상용여객기도 최대항속거리가 1만 4000km이며 상용여객기의 실용상승한도도 대체로 1만미터 이상이다. 여객기 의 속도는 시속 893km, 즉 250m/s 이므로 대략 마하 0.75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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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할 수 있다.
서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경우에 비해 발사에서 폭발에 이르는 시간 이 현격히 짧다. 이에 반비례해서 상대의 핵피해규모는 훨씬 더 커
B-52는 어떠한가. 최대항속거리가 2만 km이며 실용상승한도도 1
지게 된다. 또한 지상에서 발사되지 않고 비행기 동체 상에서 발사
만8000m 수준이다. 동체의 최대속도는 마하 0.95로서 음속을 넘
된다면 미사일 방어체제의 요격관측을 피할 가능성도 있다.
지 않도록 조절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B-52는 우리가 해외여행갈 때 타고 가는 민간여행기와 비교할 때 조금 작은 대신 조금 더 빠르
실제로 B-52 폭격기는 주로 재래식 폭탄을 투하하던 “2차대전” 형
며 좀 더 멀리, 높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식의 폭격기다. B-52는 ALCM 발사 플랫폼으로 바뀌어 12~20발 의 *AGM-86B를 탑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1992년부터는 신
무엇보다 B-52는 레이더 관측을 회피하는 스텔스기능이 없다.
형 AGM-129를 탑재하고 있다. 걸프전 당시 범용/클러스터 폭탄
B-52가 단순한 여객기 수준의 “커다란 비행기”이기 때문에 군사
및 비핵탄두를 장착한 AGM-86C를 사용하여 중요 목표물 공격에
적 위협이 될 수 없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위력을 발휘한 G형이 퇴역한 후 H형도 재래식 공격 임무용으로 사 용할 수 있도록 개조 작업을 실시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1950년대 기종인 B-52가 현대전에서 기능할 수 있는 부분은 핵미사일 정착으로 볼 수 있다. 스텔스 기능을 비롯한 방어
현재 B-2 스텔스 핵폭격기가 아니라 B-52 전략폭격기가 동원되
수단이 전무한 B-52는 단지 고도 1만8000m로 높이 날아 지대공
는 현 상황은 미국의 군사비 지출 부담을 들 수 있다. B-52는 전
미사일의 레이더 조준범위를 벗어나야 기체 생존률을 높일 수 있
략폭격기이지만 날로 쇠퇴하는 늙은 사자인 미국의 처지를 더없이
다. 일상적인 폭탄투하라면 B-52는 지대공미사일이 있는 이상 폭
정확히 반영하는 기종이다. 사자의 늙은 이빨은 부러지거나 뽑히
격지점까지 비행이 불가능할 것이겠지만 핵미사일은 상황이 다르
게 되어 있다.
다. 전략핵미사일을 탑재하면 B-52는 핵미사일을 싣고 이륙해서 상대의 영공을 침범하지 않은 상태에서 핵미사일을 발사하게 된다.
미국은 B-52를 앞세운 한반도 군사적 긴장고조 행위를 당장 중단 해야 할 것이다.
1만 8000m 상공의 하늘에서 전략핵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지상에 *AGM-86B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17300&cid=40942&categoryId=3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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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거울, 역사
동아시아 칼럼 “이토를 쏘다”
일본 아베 신조 내각의 출범 이후, 소리없는 전쟁이었던 ‘한중일 역사분쟁’은 급기야 현실정치의 문제로 부상했다. 일본은 극우세 력의 입장을 대변하는 교과서를 채택하고, 독도와 댜오위댜오에서
http://mag-mkyd21.tistory.com/12
영토분쟁을 일으키며 급격히 우경화되었다. 한국과 중국은 일본의 우경화에 즉각 반발하고 나섰지만, 일본의 우경화는 날이 갈수록 심각한 지경에 다다르고 있다.
아베 극우 내각은 적극적인 우경화 정책을 통해 희망이 사라진 일 본사회를 다시금 군국주의 광기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려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극우 교과서 채택이다. 동북아시아 역사 분쟁의 원인은 일본의 우경화와 역사왜곡에 있는 것이다.
이 연재에서는 한중일 역사분쟁의 뿌리인 일본의 우경화 이론과 그 근거가 되는 역사적 인물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이 일본 극우세력의 숨은 의도를 폭로하고, 올바른 역사인식에 조금이나마 기여함으로써 새로운 동북아 시대를 열어나가는 데 하나의 밑거름 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일본인일 것이 다. 역사교과서에서 안중근의 의거를 배울 때 꼭 나오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에게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제국주의와 침략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정치가였으며, 일본 군국주의화의 이론적 배경이었던 메이지헌법의 초안자였다는 사실은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일본이 패전하고 소위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일본국헌법이 공표되 기 전까지 50여 년간 일본 제국주의의 근간이 되었던 ‘대일본제국 헌법’은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제정된 헌법이었다. 그러나 이 헌법 은 천황의 군 통수권에 절대적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일본을 군국주 의의 막다른 길로 치닫게 만들었으며 300만 명 이상의 일본인과 수 ◀젊은 시절의 이토 히로부미. 그는 존왕양이를 외치며 외국 공사관을 습 격하거나 막부세력을 공격하는 건달수준의 지사(志士)였다. 실제로 그는 유신지사 중 직접 살인을 해본 몇 안 되는 인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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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명의 동아시아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미래의 거울, 역사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을 근대로 이끈 메이지 유신시대의 인물이다.
되었다.” 이 교과서는 이토가 심혈을 기울인 대일본제국헌법이 일
한국의 극우세력들이 박정희의 10월 유신을 찬양하는 것처럼, 많은
본을 근대 입헌국가로 만들었으며, 민간의 급진적인 자유민권론자
일본 극우 정치인들은 이 ‘메이지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다. 메이지
나 다른 외국의 매스컴으로부터도 칭찬을 받았다며 찬양하고 있다.
유신은 일본 종래의 봉건적 정치체제였던 막부체제를 무너뜨리고, 일본을 근대적 국가로 바꾼 개혁이었다. 메이지 유신은 식산흥업을
메이지헌법은 “천황은 국가의 원수로서 통치권을 총람한다”며 국
장려했지만, 동시에 노골적인 침략을 조장했다. 유신은 일본을 천황
가의 주권을 천황에게 부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일본제국의 천
제의 우월성을 맹신하는 기형적인 군국주의 국가의 길로 이끌었다.
황은 궁궐에 갇혀 군부의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말았다. 결국 천황 주권을 명시한 메이지헌법은 천황을 내세운 군국주의자들에게 무
젊은 시절 이토 히로부미는 그의 스승 요시다 쇼인의 존왕양이(천
소불위의 권력을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황을 존숭하고 외세를 배척함) 사상에 감명받아 구체제인 막부를 타 도하는 테러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해외 유학
메이지헌법에 의해 창설된 제국의회는 천황을 앞세운 군부의 입법
길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그는 구체제를 무너뜨리는 막부 타도 운
자문기관에 불과했다. 법안제출권과 예산동의권은 있었으나 제국
동에 전념했으며, 그것이 성공하여 메이지 유신시대가 열리자 정치
의 주권을 가진 천황이 재가해야 효력이 발생했다. 입법권이 이런
가로서 승승장구했다.
사정이나 행정권과 사법권은 두 말할 나위가 없었다. 특히 군대에 대한 민간 정치인의 통제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토는 일본이 개항 과정에서 구미 열강에게 빼앗긴 이권은 인근의 나라들을 침략해서 복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국기를 두고
군 통수권자인 천황을 내세운 군부는 의회와 정부에 전혀 책임을
“이제 막 바다 위에 떠오르려고 하는 태양을 상징하며, 우리 일본이
지지 않았다. 천황이 임명하는 육군대신이나 해군대신은 현역 군인
구미문명의 한 가운데를 향해 약진하는 모습”이라는 내용의 히노마
으로 임명되어 군 예산이나 병력을 마음대로 편성할 수 있었다. 군
루(붉은 원)연설은 이런 그의 생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작전도 군부 마음대로 였으며, 심지어 전쟁의 여부도 군부의 결정 에 따를 뿐이었다.
또한 이토 히로부미는 메이지헌법의 준비 단계부터 참여한 초안자
이토가 초안한 헌법은 겉으로는 요란하게 메이지천황을 받들었지
였다. 1882년 그는 유럽에 유학하며 유럽 각국의 헌법을 연구했다.
만, 실권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젊은 시절 천황을 위해 암살과
이토는 프러시아 제국의 도이치헌법을 메이지헌법의 모델로 삼았
테러까지 저질렀던 ‘메이지시대의 지사’ 이토 히로부미는 그가 만
는데 의회권한이 강한 영국식보다 황제권한이 강한 독일식을 선호
든 메이지헌법으로 하여금 천황을 다시 허수아비 신세로 만들고 말
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제국 초대내각의 총리가 된 그는 본격적으로
았던 것이다.
각 조문을 작성해서 검토했고, 천황의 자문기관인 추밀원을 설치한 후 스스로 의장이 되어 헌법 초안을 심의하였다.
그가 진정으로 존왕양이를 외쳤든 아니든 간에 그의 헌법은 해외 침략의 의도를 내포하고 있었고, 실제로 해외침략의 근거로 이용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일본의 극우 교과서는 1889년 2월 11일 메
되었다. 그런 이토 히로부미를 청렴결백한 지사로 그리면서, “이토
이지헌법이 반포되는 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날
의 활약을 떠받친 것은 다름 아닌 국가를 생각하는 마음이었다.”고
은 전날 밤부터 내린 눈으로 도쿄 시내가 온통 은빛 세계로 변했지
칭송하는 일본의 극우교과서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
만, 축포가 울리는 소리, 다시(일본의 전통 축제 등에서 끌고 다니
아야 할 때이다.
는 장식 수레)의 행진, 가장행렬이 이어져 온통 축하 행사 일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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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거울, 역사
3월의 역사
기미독립선언 http://mag-mkyd21.tistory.com/11 1919년 3월 1일 3·1 운동에 맞추어 민족대표 33인이 당시 일제 강점 하에 있던 조선의 독립을 국내외에 선언한 글. 3·1 독립 선언서(三一獨立宣言書)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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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까지 다니면서 한번쯤은 읽어봤을 기미독립선언서의 첫
“
“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가들 사이에는 희망적인 영향을 끼쳤다.
구절이다. 3.1운동은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민족자주” 독립 의 지를 떨친 항쟁이었으며 ‘3월’에 떠오르는 대표적인 역사적 사건
최근 발굴된 자료에 따르면 “한국애국당”이라는 곳에서 국내외 독
이다.
립선언서 발표를 주도했다고 한다. 한국애국당은 여운형 선생이 관 련된 신한청년당과도 관련이 있는 단체로서 김규식 선생을 파리
1910년 무단통치는 식민지 조선에게 많은 고통을 안겼다. 일제
로, 여운형 선생은 길림으로, 장덕수 선생은 일본으로 밀파하는 등
는 헌병경찰제도 등을 통해 일체의 집회와 단체행동을 엄금했다.
활동을 벌였으며 이들이 주도하여 1919년 길림, 용정, 동경, 하와
1918년에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이 끝났는데, 조선에서 대다수를 차
이, 상해 등 국내외에서 70여 종의 독립선언서를 만들었다고 한다.
지하고 있는 농민들은 토지조사 이후 지주-소작 관계가 더욱 악화 되어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게다가 1918년 일본에서 쌀
해외에서 독립선언서가 발표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에서도
폭동이 터지면서 일제는 조선에서 막대한 양의 쌀을 퍼갔고, 때문
독립선언을 발표하겠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3.1일 독립선언은 천도
에 농민들의 불만은 더욱 고조되고 있었다. 노동자들의 처우도 열
교 대표인 손병희 등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조선인 노동자의 임금은 일본인에 비해
주로 종교인이 참여하여 준비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와중에
1/2~1/3에 불과했고 노동시간은 12시간에서 16시간에 이르렀다
1919년 1월 갑작스럽게 고종이 사망하였는데, 세간에 고종 독살설
고 한다.
이 퍼지면서 일본의 부당한 조선 점령과 강압 및 폭력에 의한 통치 에 대한 분노에다가 망국의 슬픔까지 결합되어 조선인들 사이에 일
3.1운동이 일어나기 전인 1918년 11월, 식민지 세력권 확대를 둘
제에 대한 분노가 더욱 증폭되었다.
러싸고 벌어졌던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파리강화회담이 열렸다. 미 대통령 윌슨은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스스로 결정하게
독립선언서를 준비했던 사람들은 소위 민족대표 33인을 뽑아 3월
하자”는 소위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했다. 윌슨의 이 발언은 사실 1
1일 2시에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시위운동을
차 세계대전 패전국의 식민지를 독립시켜 패전국을 약화시키겠다
일으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들은 거사를 앞두고 2월 28일 회합
는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이었으므로 당시 승전국이었던 일본에게는
자리에서 ‘탑골공원에서 거사를 할 경우 자칫 폭력사태가 일어날
해당되지 않았다. 그러나 강대국 논리에 어두웠던 조선의 독립운동
수 있다’고 우려하며 독립선언서 낭독 장소를 기생요리집인 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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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거울, 역사
관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3월 1일 오후 3시에 모여 기생
체 가 3.1 운동에 참여하여 전 민족적으로 독립 의지를 과시했다.
요리집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자기들끼리 축배를 들었다. 소위 민족대표들은 친절하게도 조선총독부에 전화를 걸어
3월 1일 서울과 동시에 평양, 의주, 선천, 안주, 원산, 진남포에서 만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식을 열고 있다고 연락했고, 전화를 받
세시위운동이 일어났고 다음날인 3월 2일에는 지금의 북한전역으
은 일본 경찰이 태화관으로 들이닥쳐 이들을 연행해갔다. 이런 행
로 만세운동이 확산되었다. 이후 3월부터 4월 사이에 전국적으로
동은 역사에 아쉬운 지점으로 평가된다.
1,214회의 만세시위운동이 벌어졌고[임종국 〈실록 친일파〉] 일 본은 이를 강압적으로 진압하였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
Q: 소요와 폭동을 일으킬 목적으로 선언서를 발표한 것 이 아닌가? 김창준: 결단코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는 무기가 없어 힘 으로 다툴 수는 없으므로 폭동을 일으키는 것은 어리석 은 일이라 선동할 목적은 없고 다만 많은 사람에게 알리 기 위하여 선언서를 배포한 것이다. Q: 피고는 조선독립이 꼭 될 줄로 생각하는가? 박동완: 그렇다. 일본과 여러 나라가 허락할 줄로 생각 하고 있다 최성모: 나는 목적이 좋으므로 동지가 되었다. 독립이 되 고 안 되고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내 의사를 발표했을 뿐 이다.
에는 3월 1일부터 5월 말까지 200만 명의 민중이 시위에 참여하였 고 사망자가 무려 7,509명, 부상자는 15,961명, 피검자가 46,948 명에 달한다고 기술되어있다. 일제 조선총독부의 기록에도 참가자 106만 명, 사망자 553명, 피검자 12,000명이라고 되어있다. 3.1 운동은 흔히 알려진 것처럼 비폭력 평화운동만은 아니었다. 일 본 자료에 따르면 3.1 운동 초기라고 할 수 있는 3월 3일, 조선의 민중들과 일제 경찰이 충돌하여 1명의 일본 군경 사상자가 발생한 것을 비롯하여 3월 6일에는 13명에 달하는 일본 군경 사상자가 발 생하기도 했다.
- 기미독립선언서를 발표했던 33인의 재판 기록 중에서 관공서 파괴나 주재소 습격 등의 사례는 초기부터 있었다. 자료에 따르면 3월 초부터 3월 중순까지 항쟁 261회 중 61회가 이런 양 한편 오후 2시, 애초에 모이기로 했던 탑골공원에는 학생들이 모였
상을 보였고 가장 격렬하게 만세운동이 펼쳐졌던 3월 하순부터 4
다. 탑골공원에 모인 사람들은 소위 민족대표가 나타나지 않자 독
월 초순까지는 544회의 항쟁 중 207회가 폭력을 동반했다. 대표
자적으로 독립선언서를 낭독, 만세시위운동을 시작했다. 여기에 만
적인 사례로 수원의 경우 3월 26일 송산면에서 200여명의 농민이
세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또는 고종의 국장을 구경하기 위해 온 수
면사무소를 습격했고 3월 28일에는 경찰관 주재소 앞에서 시위를
십만의 군중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서울 시내를 넘어 전국적으
벌이다가 일제의 군경이 탄압하자 일제의 경찰을 처단하기도 했
로 삽시간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종교계와 학생들이 비롯하여 노
다. 3월 29일 오산에서는 경찰관주재소와 면사무소, 우편소를 습
동자, 농민, 걸인과 기생에 이르기까지 일부 친일파를 제외하고 전
격하기도 했다. 3월 31일 향남면에서는 1,000명이 모여 일본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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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거울, 역사
교를 불태웠으며 의왕면에서는 면사무소와 경찰관 주재소를 습격
이었다. 그러나 조직적인 지도의 부재에 따른 산발적인 시위로 각
하기도 했다.
개격파 당할 수밖에 없었다. 민족주의 운동은 3.1 운동을 지도하지 못했으며 자칭 민족지도자들이 독립선언서 낭독 후에 일제에 자진
여기에 그치지 않고 창녕, 합천, 안성 등 일부 지역에 한정된 것이
출두해버리기도 했다.
긴 하나 군중이 초보적인 무장을 갖추고 일본의 지방권력을 무너뜨 리고 “지방독립”을 이루려는 사례도 있었다. 특히 안성의 경우 3.1
소위 민족대표 33인은 대부분 3년 이하의 형을 살았으나 후기 시
운동 당시 전국 3대 실력 항쟁지(황해도 수안, 평양북도 의주, 경기
위 주동자들은 10년이 넘는 장기 투옥을 당해야 했다. 일제의 무
도 안성) 중 하나로서 극렬하게 항쟁을 펼쳤다. “4.1항쟁”을 통해
력진압에 맞서 끊임없이 만세시위를 진행하고 일제 공관을 파괴하
안성지역의 민중들은 일제를 몰아내고 경부선 철도 차단까지 시도
며 일제 군경을 심판했던 민중들을 일제가 더욱 경계했다는 것을
하는 등 강력한 운동을 진행했으며 안성 지역을 이틀 동안 해방 지
알 수 있다.
역으로 만들기까지 했다. 3.1 운동은 새로운 노선을 등장을 예고했다. 명망가가 아니라 전체 민중이 일본에 맞서야 한다는 것과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 다는 것이 교훈으로 남았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노선들이 들어왔으며 만주 지역에는 민족주의 계열의 무장 독립군이 활동하 여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등의 성과를 얻게 되었다. 만약 3.1 운동과정에서 민중들이 희생을 각오한 투쟁을 벌이지 않 았다면 3.1 운동은 33명이 음식점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사 건에 그쳤을 것이다. 아니,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사실조차 기록에 남지 못했을 수 있다. 민중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에 작은 사건에 불 과했던 “태화관 독립선언서 낭독사건”이 일제시기 우리 민족의 자 주독립 의지를 시위한 대표적인 사건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3.1 출처 : 현대한국사 vol.4 - 암흑의 시대(1910~1930), 편집부 신구
운동은 역사를 이끌어나가는 힘이 민중에 있다는 원리를 알려주는
문화사, 1973, pp245~287
역사적 사건이었다.
3.1 운동은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전 세계에 보여준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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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그 본질적 가치
윤이상을 만나다
나의 삶, 나의 음악, 나의 민족
http://mag-mkyd21.tistory.com/13
우리나라의 가장 세계적인 음악가는 아마 윤이상(Isang Yun)일 것
리다. 또한 서양음악에서 사용하는 음은 정확히 직선을 그리며 같
이다. 동양에서 유일하게 음악가의 이름을 건 음악경연대회가 바로
은 굵기로 진행한다. 네모반듯한 도형을 그리듯이 정확히 딱 떨어진
통영에서 열리는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다. 북한에서도 1982년부
다. 그래서 피아노는 서양의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정확한 악기다.
터 윤이상 음악제를 개최해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를 쉬쉬
동양은 음을 더하기보다 그 음 자체를 중시한다. 그래서 한음이 다
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그는 동백
른 굵기로 연주된다. 예를 들어 판소리 춘향전에서 “업고놀자” 하
림 사건, 통영의 딸과 같은 간첩사건으로 더 유명하다.
는 것처럼 떨면서 꺾는다. 트로트 역시 비틀어줘야 맛이 난다. 그 사이 여백도 중시한다. 굿거리장단에서 덩 기덕 할 때 덩과 기덕 사
서양악기로 동양철학을 담다
이의 여백의 미가 살아야한다. 대금이 이런 특징들을 반영한 대표 적인 악기다.
그는 도교와 불교에 관심이 많았고 동양적인 음악을 추구했다. <
윤이상은 동양적 기법을 적용하기 위해 한음을 중심적으로 그 음을
소리>, <피리>, <예악> 등 한국식 제목도 많다. 하지만 악기는 모
변형시키는 ‘주요음’ 기법을 사용했다. 그래서 연주가 어렵다. 함
두 서양악기였다. 서양악기로 동양적 음악을 한다. 뭔가 안 어울리
부르크 오케스트라 한 단원은 리허설이 막 시작될 때 이 곡을 연주
지 않나?
하면 뇌에 이상이 올지 모른다는 의사 진단서를 내밀기까지 했다.
서양은 화음을 중요시한다. 어릴 적 배웠던 ‘도미솔 도파라’과 같이
‘이건 쓰레기다. 동양인이 음악도 모른다’며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으뜸음을 바탕으로 음을 더하고 채우면서 조성(調性)을 만드는 원
급기야 연주거부에 나섰다. 그 후 윤이상은 벌레 씹은 표정의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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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보며 곡을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난해한 전위음악의 세계 윤이상은 쉽베르크가 창시한 *12음 기법에 동양철학을 담고자 했 다. 이윽고 1959년 9월 4일, 윤이상은 독일 다름슈타트(Darmstadt) 현대음악 강습회에 큰 성공을 거둔다. 연주회에서 맨 처음 연주된 곡은 윤이상의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이었다. 한국전통음악이 베 인 음악에 청중들은 경청했다. 청중들은 ‘브라보’를 외치며 열렬한 찬사를 보냈고 윤이상이 세계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허나 유명세로 그의 음악을 기대하고 들었다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그의 음악은 쉽게 남에게 들려주기 어렵다. 들려주면 욕먹기 딱 이 다. 사실 그의 음악은 귀곡 산장에서 틀어줄 정도로 으스스하거나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괴상하고 난해하다. 연주자들도 벌 벌 떤다. 그 난해함 때문에 연주도 감상도 어렵다. 손사래를 치며
에서 무기를 제조한 사실이 발각되면 큰일이었다. 그 때 경찰관이
뒷걸음칠 수도 있다. 그 음악세계를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
문건을 꺼내들었다. “조선말로 쓰인 문건, 너희 집에서 압수한 거야.
해야한다.
조선말로 가곡을 쓰는 것은 불온한 사상을 퍼트리는 짓이다.” 다행
쉽게 설명하자면 그는 백남준과 비슷한 전위 예술가다. 보통사람이
히 비밀이 발각되지는 않았지만 윤이상은 옥고를 치룬 뒤 징용으로
봐서는 뭐가 예술인지 잘 이해하기 힘들다. 기존 형식과 질서의 파
끌려갔다가 겨우 탈출하게 된다.
괴, 난해한 철학적 접근으로 흘러온 현대 예술적 흐름인 셈이다. 현 대 음악의 한 분야를 개척했다고 하는 그의 음악은 기존의 익숙한
동백림 간첩단 사건
음악과는 완전히 다르다. 한국전쟁 후 1956년 윤이상은 현대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 동 정치적인 음악가 윤이상
베를린으로 유학을 갔다. 당시 한국의 정치상황은 불안했다. 1961 년 5.16 쿠테타가 일어나고 박정희가 집권했다. 그러던 중 윤이상
윤이상은 사회적 문제에 침묵하지 않은 음악가였다. 많은 예술가는
은 헤어졌던 친구가 북한에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도교에 대
순수예술을 주장한다. 음악가가 음악이나 하지 왜 정치에 관여 하
한 관심으로 그는 좌청용 우백호가 그려진 고구려의 강서고분사신
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직도 그는 빨갱이 취급을 당한다. 그런
도를 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북한에 갔고 간첩 누명을 뒤집어
그가 왜 예술 지상주의를 꿈꾸지 않고 정치적 문제에 관여했을까.
썼다. 1967년 동백림 간첩단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 시절 동베
그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게 정치라고 봤다. 그래서 윤이
를린은 ‘동백림’으로 불렸다. 박정희 대통령이 보내는 친서를 전달
상은 “정치가는 음악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음악가는 정치를 할 수
하겠다며 그를 부른 중앙정보부 요원들은 그를 한국행 비행기에 태
있다.”라고 말했다.
웠다. 한국에 도착한 후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온 그는 모진 고문 을 받으며 허위자백을 강요받았다. 윤이상은 자신의 육신을 민족과
일제시절 윤이상은 귀국한 유학생들과 반일지하조직을 만들기도
민주의 재단에 바치기로 각오하고 자살을 시도했다.
했다. 그 지하조직원들은 향후 일본과 전쟁을 대비해 폭탄을 만드 는 방법을 모의했다. 그러던 윤이상이 갑자기 체포되었다. 만약 섬
그를 포함한 34명 전원은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부인 이수자 여사
*12음 기법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9515&cid=662&categoryId=2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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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쿠데타로 인해 한국 현대사의 질곡은 계속되었다. 윤이상 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하는 처절한 학살을 보고 분노와 증오에 떨며 교향곡을 작곡했다. 불의에 맞선 교향곡 <광주 여 영원히>는 그렇게 탄생했다. 곡 초반부는 강렬한 타악기 연타와 고음으로 시민군들의 항쟁을 표현했다. 중반부는 낮은 현악기와 느 린 음율로 학살의 비극을 표현한 후, 종반부는 정의와 새 세상을 향 해 전진하는 모습을 표현하며 장엄하게 끝난다. 윤이상은 조국의 민주화를 위한 일이라면 고통스러워도 기꺼이 나서면서도 작품 활 동은 더욱 철저했다. 그의 예술혼으로 71세의 윤이상은 독일연방공 화국 대공로훈장을 받는다. 그는 남과 북이 서로 한 핏줄임을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에 통일운 동에도 나섰다. 1987년 윤이상은 일본 마이니치신문과 인터뷰에서 남북합동음악회를 건의했다. 이윽고 1990년 평양에서 범민족통일 도 징역 5년형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 작곡을
음악회가 개최된다. 윤이상은 건강이 악화되어 산소 호흡기를 낀
계속했다. 그렇게 옥중에서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은 완성됐다. 이
채 평양에 갔다. 10월 14일 서울전통음악연주단 일행 17명과 함께
수자 여사는 옥중악보를 가방에 넣어 다시 유럽으로 향했다. 1969
민간단체가 처음 군사분계선을 넘은 역사적 쾌거였다. 또한 그는
년 독일 뉘른베르크(Nuremberg)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된 오페라 <
1990년대 초 열사정국을 맞아 <화염속의 천사>라는 곡으로 민주화
나비의 미망인>은 대성공을 거뒀다. “현대 오페라의 갈 길을 윤이
운동을 하면서 분신자살을 했던 대학생들을 기리는 진혼가를 썼다.
상이 열어주었다”는 비평가의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그 이후 스트 라빈스키, 카라얀 등 음악 거장들이 161명이 그의 석방을 청원했
돌아오지 못한 윤이상
고, 압력을 느낀 박정희는 1969년 대통령 특사로 그를 석방시켰다. 그의 소원은 죽기 전에 한번 만이라고 조국 땅을 밟는 것이었다. 마 윤이상은 서독으로 추방을 당하고 입국금지를 당하게 된다. 윤이상
침 1994년 한국에서 윤이상음악제를 개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다
음악도 연주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1972년 뮌헨올림픽의 개막
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는 윤이상에게 한국 방문에 앞
오페라 <심청전>과 같은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973년 서울
서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반성문을 요구했다. 완전한 명예회복
신문사 주최로 윤이상 음악회를 추진했지만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을 바랬던 그는 38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려던 계획을 취소할 수밖
방한은 또 다시 좌절되었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윤이상
에 없었다. 윤이상은 병환이 중해져 범민련 해외본부 의장직도 반
은 일본에서 김대중 납치사건을 강력하게 규탄하는 성명을 내고 기
납하고 일본으로 갔다. 통영 근처까지 가고 싶었던 그는 생애 마지
자회견을 가졌다. 한국의 민주화를 바랬던 서독의 유학생들은 민주
막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멀리서 고향땅을 바라만 봐야했다. 그 이
사회건설협의회를 결성하고 윤이상을 의장으로 세웠다. 그는 1977
후 죽는 날까지 그는 한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년 일본에서 한국민주민족통일해외연합(한민련)을 창립하고 유럽 본부의장에 추대되었다.
그렇게 다시 독일로 돌아간 그는 멀리 이국땅 독일에서 눈을 감았 다. 음악보다 더 충격적인 윤이상의 인생, 그는 1995년 78세로 삶
5.18 광주와 통일운동
을 마쳤다. 그가 음악에 담고자 했던 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순수 한 열정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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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ag-mkyd21.tistory.com/14 예술, 그 본질적 가치
드라마 기술 엿보기
드라마; 행동하다 드라마, 영화, 연극과 같은 매체는 우리를 웃고 울린다. 최근에 유행
수박을 놓고 떠올린 것이 돛단배라고 해보자. 이것은 의외성을 갖
했던 영화 변호인, 설국열차, 레미제라블에서 보듯이 그 사회적 영
고 있지만 논리적이기도 하다. 일단, 수박과 호박의 관계처럼 1차
향도 크다. 그렇다면 이런 창작물은 어떤 원리로 만들어지는 것일
원적이고 진부하지 않다. 이것은 의외성이다. 게다가 먹기 좋게 잘
까? 그 원리와 기술을 살짝 들여다보자.
려진 삼각형 수박의 모습에서 돛단배의 이미지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논리적 연계도 갖추고 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의외의 결
우선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론이 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론은 창
과에서도 “아!” 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창작과 연출에
작자들보다 비평가들에 의해 발전되어왔다. 사회운동에서도 완성
서 중요한 부분이다.
된 이론으로 실천이 행해지는 것이 아니듯, 이론은 실천과 창작의 과정에서 검증되고 풍부해졌다. 그러하기에 이론이나 기술에 얽매
이는 극에서도 마찬가지다. 슬픈 상황을 슬픈 대사, 슬픈 표정연기,
이지 않고 창조적인 창작활동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먼
슬픈 분위기로 연출하는 것은 논리성은 있으나 뻔하다. 심하게는 관
저 밝힌다.
객들에게 슬픔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강요로까지 느껴져 불편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슬픔을 느껴야 하는 주체는 배우가 아니라 관객
1. 논리성과 의외성
이기 때문이다. 의외성, 신선한 반전이 필요하다. 오히려 흐르는 눈 물을 참고, 어떻게든 슬픔을 삼켜내려 노력하는, 내면의 자신과 싸
누구나 영화나 드라마 속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우는 인물의 감정을 표현해보는 것이 어떨까. 오히려 우리는 이 모
그 장면은 탄탄한 스토리로 관객을 빠져들게 한 다음 꼭꼭 숨겨져
습에서 더 큰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논리성과 의외성의 결합
있다가 어느 순간 튀어나온다. 너무 허무맹랑하다거나 누구나 예
은 의외의 방향으로 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다.
측 가능하다면 헛물 캐기 십상이다. 이런 스토리 구성에도 원리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논리성과 의외성을 둘 다 놓치지 말아
2. 서스펜스, 서프라이즈
야 한다는 것이다. 평균 영화 상영시간은 120분이다. 짧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잘 사고에는 개념적 사고와 형상적 사고가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개
만들어진 영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본다. 왜 그럴까. 사람의 집
념적 사고는 논리와 관련 있는 것이고 형상적 사고는 이미지화라고
중력은 보통 5분이라고 한다. 즉 영화가 안 지루하려면 사람을 집
볼 수 있다. 예로, 수박을 놓고 호박을 떠올리는 것은 개념적사고이
중시킬만한 요소가 5분마다 계속 나와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다. 논리성은 있지만 의외성이 떨어져 식상하고 재미가 없다. 반대
서스펜스와 서프라이즈다. 서스펜스는 기다림의 상태, 즉 긴장이고
로 수박을 놓고 난로(?) 따위를 떠올리는 것은 놀라운 의외성이 있
서프라이즈는 놀라움이다. 드라마의 구조는 이 서스펜스와 서프라
지만 논리적 관계는 전혀 가늠할 수가 없다. 때문에 공감할 수도 없
이즈의 계속되는 반복이라 볼 수 있다.
다. 논리성과 의외성은 반드시 결합되었을 때, 그 효과를 발휘한다. 아래에서 살펴보자.
서스펜스는 다음에 일어날 사건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의 긴장, 그 리고 기다림이다. 다음 상황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망, ‘어떻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라는 것이다. 물론,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인지하고
지’가 필요하다. A와 B라는 인물이 C라는 목표를 차지하기 위한 상
있을 경우에도 해당인물이 그 상황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황을 설정해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
대해 긴장한다. 다음은 서스펜스의 4가지 유형이다.
다. C라는 목표물은 공동으로 차지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A와 B 가 저마다 나름의 C를 차지해야하는 분명한 목적과 스토리가 필요
① 공감적 서스펜스 : 자기 동일시 효과를 기본으로 함
하다. 그 속에서 A와 B의 C를 향한 강력한 의지가 나오며 둘 사이
② 무지의 서스펜스 : 불안을 해소하고 싶은 욕망에서 기초
의 갈등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③ 공연 서스팬스 : 고난도의 기술 ④ 음악적 서스팬스 : 청각 효과
또 다른 갈등의 조건으로는 대상의 ‘힘의 크기가 비슷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물리적, 정신적 부분까지 포함한다. 갈등의 대상 중
①, ②번의 이해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고, ③, ④번의 설명
일방의 힘이 상대적으로 클 경우에는 갈등이 일어나지 못한다. 다
을 덧붙이자면 다음과 같다. 공연 서스팬스는 간단하게 서커스나 김
음 사례를 살펴보자. 갑오농민전쟁, 동학혁명 당시 왕이었던 고종
연아의 경기를 떠올리면 좋겠다. 고난도의 기술에서 이어질 다음상
과 녹두장군이라고 불렸던 전봉준을 예로 들면, 이 둘은 처지로 인
황에 대한 기대와 긴장이 고조되는 것이다. 공연포스터도 같은 맥
한 힘의 차이가 분명하다. 이 관계는 일방적일 뿐, 갈등이 성립되지
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해당 공연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포스터 한
않는다. 하지만 둘 사이에 갈등은 일어난다. 전봉준이란 인물에 백
장이 곧 해당 공연의 수준을 기대하게 한다. 음악적 서스팬스는 리
성들의 지지가 힘으로 더해져 봉기라는 행동으로 나타났기 때문이
듬, 청각적 부분과 관련한다. 예를 들면 인물의 목소리가 그 인물에
다. 민중들의 지지와 힘이 더해진 전봉준과 왕의 힘의 크기가 비슷
대한 기대를 높여주는 것이다. 실제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는 신뢰
했기 때문에 갈등이 가능했다.
감을 준다. 사기꾼들의 목소리가 대부분 좋은 이유도 같은 원리다. 위와 같이 갈등의 조건이 성립되어 갈등이 발생한 경우, 갈등해결 서스펜스가 이어질 다음 상황에 대한 긴장, 기대라면 서프라이즈는
은 주로 3가지 중 하나로 정리된다. 한쪽의 승리와 다른 한쪽의 파
기대배반이다. 기대하지 못했던 의외성이 곧 서프라이즈가 되는 것
멸, 혹은 둘 다 파멸하는 경우, 마지막으로 중제 혹은 타협으로 끝
이다. 가령, 잊지 못하고 있는 헤어진 옛 연인으로부터 늦은 밤 전화
나는 경우이다.
가 걸려오는 상황을 마주해보자. 무슨 일인지, 왜 나에게 연락 하는 건지, 내가 보고 싶은건지 등 수 많은 긴장과 기대, 궁금증들 속에서
하지만 갈등은 그 성격에 따라 해결방법이 달라진다. 갈등의 성격
서스펜스는 이어진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서프라이즈는 어떠해야
에는 두 가지가 있다. 계급적 성격을 띠는 적대적 갈등과 그렇지 아
하는가. 술에 취해보고 싶어 전화했다는 전개는 논리적으로 문제가
니한 비적대적 갈등이다. 이 중, 계급적 성격을 띠는 적대적 갈등은
없다. 하지만 뻔하다. 서프라이즈는 아닌 것이다. 오히려 잘못 건 전
보통 화해와 타협보다는 한 계층의 승리와 파멸로 결론지어진다.
화였다는 설정이 서프라이즈가 된다. 혹은 그 전화 받기를 포기하는
프랑스 시민혁명 후 루이 14세가 단두대에 올랐고, 동학혁명 후 전
인물의 행동이 서프라이즈가 될 수도 있다. 기대배반. 앞서 얘기한
봉준이 처형당한 것처럼 말이다. 비적대적갈등은 한쪽이 설득, 감
논리성과 의외성의 결합이 가장 극적인 서프라이즈를 만들어 낸다.
화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갈등의 성격에 맞 는 해결방법을 바르게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3. 갈등이론 탐욕스런 왕과 고통 받는 민중들 사이에 갈등이 있다고 치자. 그 갈 무엇이든지 극적이라면 갈등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영화나
등구조에서는 왕이 스스로 민중들 속에 들어가 죄를 뉘우치고 다시
연극에서는 빠질 수 없는 요소다. 갈등이란 것은 싸움이다. 그리고
선한 왕으로 탈바꿈한다는 해결방법은 존재할 수 없다. 물론 과거
갈등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주인공에게 ‘분명한 목적’과 ‘강력한 의
중세시대 작품들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실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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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존재하지 않은 사례이며, 현대 자본주의사회에 들어와서는 맞
그대로 반영한다. 그리고 사상이란 것은 머리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
지 않는 해결방법이다.
을 넘어 손끝발끝까지 전해져오는 것이다. 그것이 작품에 고스란히 전달되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교육영상도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
이렇게 볼 때 홍길동전의 결말은 상당히 아쉽다. 홍길동은 서자로
다. 하지만 자신의 준비정도와 다르게 수준을 낮추거나 혹은 높여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형을 형이라고 못 부르는 온갖 차별을 받았
서 포장한 작품들은 감동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 집을 나온 홍길동은 신출귀몰한 솜씨로 활빈당이라는 의로운 도적을 만들어 탐관오리를 징벌한다. 하지만 결말은 율도국이라는
5. 방법론
나라를 만들며 홀연히 떠나는 것이다. 홍길동이 신분제도를 철폐하 는 투쟁으로 더 나서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의 세계관이나
작품을 쓰려면 글을 써야한다. 배우는 것도 좋지만 우선 써봐야 한
시대상의 반영일 수도 있고, 결말이 인위적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
다. 글쓰기를 배우러만 다니는 사람 중에 글 잘 쓰는 사람이 나오기
다. 이렇듯 갈등구조를 분석해보면 해당 작가의 세계관이나 시대상
쉽지 않다. 글은 많이 써보면서 스스로 고비를 넘어야 한다. 잘 쓰
을 엿볼 수가 있다.
는 사람은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라, 많이 깨지고 부딪히며 스스로 갈고 닦은 사람이다. 책에서든, 강좌에서든 글쓰기를 배우는 것으
4. 기술 + 진실
로만 터득하려는 사람은 그 배운 것 이상을 넘어서기가 어렵다. 즉, 창작에서도 본인이 스스로 주인 되서 하느냐 마느냐가 좋은 창작자
위와 같은 다양한 기법들이 드라마를 위해 존재한다. 그렇지만 기
(혹은 창작물)를 결정짓는 것이다.
술로 작품이 나오지는 않는다. 진짜 감동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 서는 기술보다 영감이 더 큰 역할을 한다. 영감은 엄청난 창조적 열
표현력을 키우는 것에 대한 부분도 간단하다. 쓰면 쓸수록 는다. 계
정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는 마음대로 불러일으켜지지 않으며
속 써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장을 좋아하는 것
무의식의 세계에 존재한다. 그 영감을 얻기 위해 술과 마약(?)에 손
이다. 좋은 문장들은 수집해놓기도 하고 좋은 글들을 필사해 보는
을 대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물론, 그것은 잘못 나아간 방법이다.
방법도 좋다. 필사하는 동안 문체의 향기가 들어와 무의식에 저장
그러면 우리는 영감이 올 때까지 그냥 기다려야 될까.
이 된다. 문장에 대한 본인의 욕심, 그리고 역시나 노력이 중요하다.
영감은 ‘새’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는 ‘나무’를 만들고 가꿔야 한
글을 쓸 때, 머릿속의 내용들을 떠오르는 대로 써내려가야 하는지
다. 튼튼하고 잘 가꿔진 나무에 새가 날아들고 더 오래 머물 수 있
미리 구상해놓고 해야 하는지 헷갈릴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
기 때문이다. 이 ‘나무’를 키우려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노력’이
시는 토해낸다. 소설은 써내려간다. 희곡시나리오는 짠다.>라고 보
다. 톨스토이도 하루 6시간씩 글을 썼다고 한다. 어느 순간 찾아올
통 표현한다. 시는 순간적으로 토해낼 수 있다. 그리고 소설은 써내
영감을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의무적으로 글을 쓰고 창작을
려간다. 태백산맥의 작가가 일러준 창작후기를 들어보면, 어느 순
하는 노력들을 해야만 한다.
간에는 인물들이 알아서 행동하고 움직였다고 한다. 자신이 생각 해놓은 결말이 있다하더라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하는
기술로 승부하는 창작물, 혹은 뛰어난 기술로 연기하는 배우들이
것이다. 다만, 희곡과 시나리오는 구성을 짜고 시작해야한다. 보통
있는 반면, 진실(내용)으로 승부하는 창작물, 혹은 진심으로 연기하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성(혹은 단계를 생략하기도 함)으
는 배우들이 있다. 다큐나 교육영상 같은 경우 지루하다는 편견을
로 진행을 그려놓기 짜들어가기 마련이다.
깨고, 담담하고 소박하게 풀어가지만 심금을 울리는 작품들이 있는 것도 그 이유다. 대상에 대한 창작자의 진심과 마음이 작품 속에 투
인간은 누구나 위대한 창조자다. 특별한 작가가 아니라도 예술적 창
영되어 살아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창작자의 사상적, 마음상태 등을
작을 멈추지 않는 풍요로운 삶을 바라며 이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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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
리어왕 다시 읽기
http://mag-mkyd21.tistory.com/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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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작탄생의 비밀
배체제에 대한 문제제기, 정의와 평등의 호소, 新-舊의 갈등과 같 은 문제들을 심어놓는다. 이 문제들은 근대사회가 안고 있는 절실
18세기 낭만주의자들은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일컬어 “세상에
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들이
서 가장 완벽한 극예술”이라고 칭송했다. 굳이 이런 평가에 동의하
다. 그래서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은 명작의 반열에 굳건히 자리매
지 않더라도, <리어왕>이 세계명작의 하나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
김하고 있는 것이다.
다. 세익스피어는 어떻게 이런 명작을 창조할 수 있었을까?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세익스피어의<리어왕>은 세익스피어의 순수한 창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하는데, 어떤 문제를 심어놓았는가에
작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 작품의 가치가 규정된다는 점이다. 이는 곧 작가의 철학과 관 련된다. 물론 세익스피어는 극작술도 훌륭했다. 그러나 그보다 주
리어왕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전해 내려왔던 전설이며,
목해야 할 것은 그에게는 사회와 인간에 대해 보다 깊은 차원에서
이는 여러 작가들에 의해 출간되기도 했다. 세익스피어는 <브리튼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세익스피어가 절실
왕 열전>, <연대기>, <리어왕과 그의 세 딸에 대한 진정한 연대기 사
하고 의의있는 문제들이 아니라 사사로운 문제들을 심어놓았다면
극>, <요정여왕> 등에서 이야기의 줄거리와 소재, 인물 등 거의 대
어떻게 되었을까? 리어왕 이야기를 단순히 극작술적인 차원에서나
부분을 빌려왔다. 리어왕의 두 번째 플롯인 글로스터와 그의 두 아
이야기를 변형하고 재구성했다면? 세익스피어는 당대에 재주있는
들 이야기도 <아카디아>라는 산문집에 실려있는 이야기를 빌려와
작가 중 한 사람에 그쳤을 것이며,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은 그렇고
변형시킨 것이다.
그런 가정멜로드라마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작가의 재능이란 기술과 철학을 동시에 포함하는 개념이다.
학자들은 세익스피어가 새뮤얼 하스넷의 <지독한 가톨릭교 사기선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명작이란 개인의 창조물이기도 하지만,
언>, 미셀 드 몽테뉴의 <수상록> 등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고, 여기
동시에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세익스피어가 <리어왕>을 쓸 때,
에 나오는 표현들을 다수 이용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탁월한 문
줄거리, 주요등장인물, 표현 등을 빌려왔다는 사실은, <리어왕>이란
체, 괴기하고 새로운 표현, 이로써 만들어내는 독특한 스타일 등도
명작이 오로지 세익스피어의 위대한 재능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빌려온 것들이다.
사회적 축적이 토대가 되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누구도 무에서 유 를 창조하지는 못하는 법이다. 또한, 만약 그의 시대에 중세의 몰
사실, 리어왕 뿐만이 아니라 <맥베쓰>, <햄릿>, <오셀로> 등 세익스
락과 르네상스의 도래라는 일련의 사회적 조건들이 형성되지 못했
피어가 창작한 명작들은 모두 빌려온 이야기다. 맥베쓰는 11세기
다면 그가 리어왕 전설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할 수 있었을까?
스코틀랜드에 실재했던 인물로 앞서 언급한 <연대기>에 실려있는
세익스피어가 근원적 문제들을 심어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
이야기며, 덴마크 왕자 햄릿의 이야기도 구전되어 내려오다가 12세
의 철학과 관점이기도 하겠지만, 근대의 사상적 조류에 강하게 영
기 즈음에 활자화되어 출간되었다. 오셀로는 <헤카토미시>라는 이
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야기 모음집에 있는 이야기를 빌려온 것이다. 세익스피어는 이렇 게 빌려온 이야기들에 변형을 가했을 뿐, 실제로 이야기 자체를 지
작품이 사회적 산물이라는 점에 대해 좀 더 부언하자. 원래 리어왕
어낸 것은 아니다.
은 해피엔딩이었다. 결말에서 리어는 다시 왕위를 되찾고, 왕국의 질서는 회복된다. 그런데 세익스피어는 이를 뒤집어 놓는다.왕위에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변형을 가했다는 것이다. 세익스피어는 이미
서 쫓겨난 리어는 미치고 나서야 자기 왕국의 억압과 모순을 깨닫
존재하던 리어왕 이야기에 보다 심각한 문제들, 즉, 사회구조와 지
는다. 그리고 왕과 딸들,왕의 충신들이 모두 죽는다. 왕의 권위는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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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딸 코델리아의 죽음에 비통한 리어왕 탄나고, 왕국의 질서는 해체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40년 후,
가 결국 죽는다. 리어뿐만은 아니다. 극중 주요등장인물 중 누구도
찰스1세가 의회에 의해 처형당하고, 왕국은 공화국으로 바뀐다. 이
행복해지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파멸하여 죽음에 이른다. 살아남은
사실은 <리어왕>에 내포된 사상과 당대 사회의 사상적 조류가 직접
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조차 행복하지 않다. 올버니는 “이 피투성
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역설한다.
이의 나라를 함께 지켜주시오.”라고 부탁하지만, 에드거는 답을 못 하고, 켄트는 “내 주인이 부르십니다.”며 자살에 대한 암시를 한다.
그리고, 다시 왕정복고 시대가 되자,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은 개작
살아남은 그들의 운명은 암울하다. 사악한 자들은 모두 죽었고, 전
을 당한다. 각종 풍자들은 삭제되고, 리어는 다시 왕국을 되찾고, 충
쟁에서도 승리했지만 왕국의 앞날은 예측불가능하다. 이런 비극은
신들은 모두 살아남아 해피엔딩을 맞는다. 개작자인 테이트는 ‘이
왜 일어났을까?그 함의는 무엇인가?
야기에 부족한 개연성과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사 실은 ‘왕정’이 ‘복고’되었기 때문이 틀림없다.
리어는 자신에 대한 딸의 사랑을 시험하려든다. 자식들의 사랑을 시 험할 만큼 리어는 오만한 인물이다. 거너릴과 리건은 갖은 수사를
2 비극의 원인
동원하여 아첨하지만, 코딜리어는 “자식의 도리에 따른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한다. 리어는 어리석게도 아첨에 속고 진실은 알
세익스피어는 원래 해피엔딩이었던 리어왕 이야기를 완전한 비극
아보지 못한다. 게다가 조폭하고 경솔하다. 분노한 리어는 막내딸에
으로 뒤집어 놓는다. 절대군주였던 리어는 순식간에 헐벗고 굶주린
게 저주를 퍼붓고 홧김에 모든 재산과 모든 권력을 거너릴과 리건
채로 황야에 버려진다. 그는 주검이 된 코딜리어를 안고 울부짖다
에게 줘버린다. 비극적 사건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오만함, 조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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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솔함 등 리어의 성격, 혹은 성격적 결함은 이 비극의 출발점이다.
맥베쓰와 그의 부인이 가진 야심을 비극의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
사실 거너릴과 리건이 자신의 아버지를 황야로 내몰았던 것은 그들
다. <오셀로>의 경우, 이아고의 악마적 성격과 오셀로의 질투심이
의 악한 성격 탓도 있지만, 리어의 조폭함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
비극의 원인으로 된다. 성격, 혹은 성격적 결함이 비극의 원인이라
기 때문이다.리건은 “켄트가 쫓겨 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될 가능
는 것은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연극이 현실세계의 거울이라고 할
성이 많다”고 걱정하고, 거너릴은 “당할까봐 내내 걱정하기보다 걱
때, 비극은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비극적 사건들에 대한
정스러운 해악을 제거”하려고 든다.
탐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비극에는 ‘인간은 왜 고통을 겪어 야 하며, 참혹하고 비참한 사건들은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사고가
글로스터 일가의 비극도 성격에서 비롯된다. 글로스터가 쾌락을 탐
내포되어 있기 마련이다.세익스피어는 <리어왕>을 통해 ‘인간의 성
했던 것은 비극의 근원을 제공한다. 글로스터는 켄트에게 에드먼
격’이 원인라고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당대사회의
드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 녀석의 어미는 예뻤지요. 만드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 함의를 좀 더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서는
는 동안 즐거웠으니....” 에드거의 대사도 의미심장하다. “신들은 공
다른 시대와의 비교가 필요하다.
정하다. 우리가 탐닉하는 악덕을 이용하여 우리를 병들게 한다. 너 를 잉태한 그 어둡고 사악한 장소가 아버지의 눈을 빼앗아 간 것이
고대사회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오이디푸스왕>은 비극의 원인을 “
다.” 게다가 그는 리어처럼 경솔하고 어리석다. 에드먼드의 계략에
신이 내린 운명”에서 찾고 있다.신은 그에게 저주스러운 운명을 던
빠진 글로스터는 그는 진위를 확인하기도 전에 에드거를 악당이라
져 주었고, 오이디푸스는 그 운명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 신은
고 부르며 저주를 퍼붓는다. 에드거도 에드먼드의 농간에 순진하게
인간에게 참혹하고 비참한 운명을 지워주었고, 그것이 결국 비극적
넘어간다. “잘 속는 아버지에 고결한 형님, 남에게 해를 끼치지 못
사건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고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자신들의 운
하는 성격, 아무 의심이 없구나. 그들의 어리석은 정직함을 내 계략
명이 그렇고, 팔자가 그렇고,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고대사회가
으로 편안하게 올라타는 거야.”라는 에드먼드의 대사는 그들의 성
생각했던 신은 인간과 비슷했다. 신들은 변덕스럽고, 실수도 하고,
격을 직접적으로 말해준다.
나쁜 짓도 일삼는다.하지만 중세를 거치며 신은 유일하고 완전해진 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은 원죄를 저질렀고, 이로 인해 현실의 삶
거너릴과 리건, 에드먼드, 콘월 등 악(惡)을 상징하는 인물들은 사
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고대와는 달리 고통스러운 삶에서 탈출할
악하고 탐욕스럽다. 선(善)하다고 믿어지는 인물들도 이 비극적 사
수 있는 방법은 생겼다. 유일신을 믿고 회개하여 천국을 가는 것이
건에 책임이 있다. 코딜리어는 왕궁의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다. 죽어서야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아버지인 왕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충신의 상징인 켄트도 과격 하고 직설적이다. 켄트는 리어에게 “내가 무례한 것은 리어가 미쳤
르네상스와 함께 시작된 근대사회의 세계관은 이전 시대와 현격한
기 때문입니다! 무슨 짓을 하십니까, 다 늙어서!...이 가증스러운 경
차이를 가지게 된다. 신을 부정하지 않지만, 인간중심의 관점과 과
솔함을 멈추”라고 소리친다. 그의 과격한 직언은 분노한 리어를 더
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되었다. 인간사회의 고통과
분노하게 만든다. 올버니는 신중해보이지만 우유부단하다. 그는 거
비극적 사건은 피할 수 없는 운명, 혹은 원죄 등에 의해 일어나는
너릴의 행동에 문제의식을 가지지만 “상황을 지켜보자”며 미룬다.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리어왕>에 나오는 에드
거너릴의 말을 빌자면 올버니는 “당신은 위험천만한 온화함으로 분
먼드의 대사는 당대의 사고를 반영해 준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에
별력이 모자란다.”
서 가장 어리석은 짓이 아닌가. 나쁜 운명에 처할 때, 그것이 대개 는 우리 자신의 탓이건만,해나 달, 별의 탓으로 돌리다니....신의 강
모든 등장인물들의 성격은 서로 치차처럼 맞물려 돌아가며 비극적
요에 의해 사악해지기라도 한다는 듯 말이야.” 이전 사회에 비해 대
결말을 향해 굴러간다. 비극의 원인은 그들의 성격에 있다. 세익스
단히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비극의 근원은 정확히 밝히
피어의 다른 작품들도 유사하게 해석할 수 있다. <맥베쓰>의 경우,
지 못했다. 시대적 한계 때문이다. 비극의 근원을 사회적 차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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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가는 폭풍의 속의 리어왕 찾고, 그 사회를 변혁할 수 있다는 관점은 현대에 들어서면서 가능
주린 뱃가죽으로, 그리고 구멍 뚫린 넝마를 걸친 채로 이토록 험악
해진다. 역사는 그렇게 진보를 향해 전진한다.
한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3 사회변혁의 가능성
리어 자신이 그 왕국을 지배하던 군주였으므로, 그는 자기반성에 이른다. “오, 그동안 내가 이것에 대해 너무 소홀했구나!” 지배자로
리어는 헐벗고 굶주리는 신세가 되어 폭풍우 쏟아지는 광야를 헤
서의 가책을 느낀 그는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영화를 누
메인다. 폭풍우 속에서 그는 이렇게 외친다. “천둥이여, 둥근 세상
리는 자”들에게 말한다. “불쌍한 자들이 느끼는 비통함을 깨달으
을 내리쳐 평평하게 만들어라! 자연의 형상을 깨부수고, 배은망덕
라. 넘쳐나는 것들을 그들에게 나눠주어라. 그리하여 하느님이 공
한 인간을 태어나게 하는 모든 종자들을 없애버려라!” 거너릴과 리
평하다는 것을 보여라.” 지배자 리어가 깨달은 사회의 진실이란 ‘
건에 대한 복수심이 인간세상 전체에 대한 것으로 확장된 것이다.
불평등’이었다.
분노가 극에 달한 리어는 “내 머리가 돌기 시작한다.”고 말하고, 그
미쳐서야 깨달은 리어처럼, 글로스터 또한 장님이 되어서야 진실을
순간부터 놀라운 변화를 일으킨다. “아이야, 이리 오너라. 너는 어
본다. 리어처럼 광야에 내쫓긴 신세가 된 글로스터는 거지 톰(에드
떠냐? 추우냐? 나도 춥다...나는 네가 가여워 죽겠다.” 이제 리어는
거)을 동정하며 지갑을 건넨다. 한 때 백작으로서 부와 영화를 누리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이해하고 동정하는 것이다. 그의 왕국에는 부
던 글로스터는 “재물로 넘쳐나고 욕정을 탐닉하는 인간은 하늘의
와 향락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머리를 누일 집도 없이 굶
뜻을 농락하고, 자신이 못 느끼는 탓에 보려고 하지 않았”다며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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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하며, 곧 이어 “공평한 분배로 지나친 것을 무효로 만들어 모두가
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그 힘은 누구에게 있는가?
충분히 누리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변혁의 힘이 각성된 민중에게 있다는 사고는 비교적 최근에 발생했 리어의 깨달음은 광기의 증폭과 함께 사회적 차원을 향해 나아간
다. 세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에는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다. <리어
다. “저기 재판관이 천한 도둑을 야단치는 것을 보라. 그런데 두 사
왕>에 나오는 민중들은 그저 헐벗고, 굶주리며, 불쌍한 존재이자 누
람이 자리를 바꾸면 누가 재판관이고 누가 도둑놈이냐?...누더기 옷
군가 구원해주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지배자들은 왕권을 놓고 국
사이로 보이는 죄는 크게 보이지만 법복이나 모피외투는 모든 죄를
제적인 전쟁을 벌이고, 민중은 지배자들의 싸움에 동원되어 피를
감춰준다. 죄에 황금칠을 하면 정의의 창도 상처 하나 못 입히고 부
흘리고 죽어가는 희생자다. 극의 말미에서 비로소 기존의 체제-리
러진다.” 마치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연상시키는 말이다. 곧 이어
어의 왕국-는 파멸에 이르지만, 그것은 지배층들이 분열하여 서로
리어는 “아무도 죄 짓지 않았다”고 선언한다. 불평등이 제도화 되어
를 죽인 결과일 뿐, 민중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리어왕>에
있는 세상이며,사회체제가 본질적으로 잘 못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 풍겨나오는 짙은 허무주의적 경향은 변혁적 힘이 누구에게 있는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영화를 누리는 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 어떤 일도 서슴치 않는다. 글로스터를 죽이려는 콘월의 대사를 보자. “법적 절
그럼에도 세익스피어가 <리어왕>에 심어놓은 정치적 주제는 시대
차를 따르지 않고 그 자를 사형해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의 분노를
를 초월한 변혁적 선동성을 가지고 있다. “공평한 분배로 모두가 충
달래기 위해 권력을 사용하겠다. 사람들이 비난은 하겠지만, 감히
분히 누리게 하소서”라는 리어와 글로스터의 기도는 현대사회에도
어쩌지는 못 할 거다.” 간단하게 ‘사회적 룰’을 무시하는 콘월의 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사는 끔찍하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부당한 행위를 제제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권력
4 갈등의 해석
을 가진 개한테도 복종”하는 수밖에 없다. 리건, 거너릴, 에드먼드는 리어, 글로스터가 늙고 노쇠하며, 어리석 리어왕이 취한 이야기 구조는 평범하면서도 특별하다. 중세적 사고
고, 고집스러우며, 판단력이 떨어진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재산과
를 반영한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지배층이 이러저러한 고난을 겪으
권력을 자신들에게 이양해야 한다. “자식이 충분히 성숙하고 아버
며 각성한 후, 원래 자리로 돌아와 선정(善政)을 펼치는 구조를 가
지가 노쇠하였을 때, 아버지는 아들의 보호를 받고 아들이 아버지
지고 있다. 그들은 잃어버린 권력을 되찾고, 백성들은 선정에 의해
의 재산을 관리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의
행복해진다. 이와 같은 이야기 구조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첫
권력과 재산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거너릴과 리건은 “권력을 여전
째, 사회변혁의 힘은 지배층의 각성에 있다. 둘째, 사실상의 지배질
히 휘두르려” 하기 때문에 리어를 견제한다.
서는 더욱 공고화된다. 반대로, 리어와 글로스터의 입장에서 젊은이들이란 경솔하고 탐욕 세익스피어는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취했지만 중세적 사고에서 탈
스럽고 사악하다. 그러므로 젊은이들 중 늙은 자신을 보호해주고 부
피한다. 세익스피어가 설정한 리어와 글로스터의 운명은 중세 이야
양할 자, 즉 “충직하고 순리를 따르는”자, “인간 본연의 의무에 대
기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쳐진다. 한때 지배자였던 리어와 글로
해, 부모 자식의 인연에 대해, 예의범절의 중요성과 감사하는 마음
스터는 뼈저린 자기반성까지 했지만,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에 대해” 아는 자를 골라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이러한 결말은 지배자들의 일부가 도덕
리어와 글로스터는 현명하지 못하여 실패한다. 그 댓가로 “새끼를
적으로 개선된다고 해서 불평등한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역
키웠더니 새끼에게 자기 머리통을 뜯겨 먹히는” 신세로 전락한다.
설해준다. 지배층의 각성으로도 불가능한 이 불평등한 사회의 변혁
45
고전의 향기
문학예술작품이 인간과 삶의 반영이듯, 작품 속의 갈등을 현실세계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 인물들이 절대군주 리어의 왕권회복을 위
의 갈등에 비추어 해석해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
해 투쟁한다는 점이다. 둘째, 보수적이지만 기존 체제에 대해 불만
은 가정적 차원이다. 독선과 아집, 호령을 일삼는 리어의 모습은 가
을 가졌을 것이다. 리어와 글로스터가 황야에서 불평등한 사회구조
부장제하의 어느 가장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자식에게 버림받고
를 인식했기 때문이다. 셋째로, 기존체제의 몰락을 막을 수 없다고
광야를 헤매는 리어와 글로스터의 모습은 골방에서 죽어가는 독거
여겼을 것이다. 리어의 왕권을 회복하는 일이 실패하는 것으로 처리
노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했기 때문이다. 넷째, 다음에 올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왕국의 결말 때문이다.
가정적 차원을 넘어 좀 더 확장시키면 세대 간의 문제, 즉 젊은 세 대와 노인 세대의 갈등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젊은이들과 늙은이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론일 뿐이다. 작품세계의 갈등이 현실
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일어나
세계의 갈등의 반영이라면, 갈등의 조성과 해결방식에 작가의 세계
는 일이다. 대개의 젊은이들은 늙은이들을 고리타분하고 답답하다
관이 어떤 식으로든 작용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고 여기고, 대개의 늙은이들은 젊은이들이 경솔하고 예의를 모른 다고 여긴다.
5 에드먼드와 홍길동
정치적인 차원에서도 확장시킬 수 있다. 편의상 구세력과 신세력 간의 갈등이라고 부르자. 이 때,갈등의 대상인 재산과 권력은 체제
서양의 세익스피어는 1564년에 태어나 1616년에 죽었다. 동양의
질서로 치환할 수 있다. 구세력은 기존의 체제질서와 가치를 고수
허균은 1569년에 태어나 1618년에 죽었다. 같은 시대에 살았던 두
하려 한다. 기존 체제의 지배권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신
사람은 공교롭게도 각각 에드먼드와 홍길동이라는 ‘서자’라는 형
세력은 기존의 체제질서와 가치를 개혁하거나 아예 전복하여 새로
상을 내세워 적서차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서양과 동양이라는 거
운 질서를 창출하려 한다. 기존체제의 지배권에서 소외되어 있기
리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은 문제를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
때문이다.
리어왕>과 <홍길동전>에 적서차별의 문제가 다루어졌다는 것은 이 전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신분제도가 흔들리고 있었음을 말해준
세익스피어 당시 영국은 절대군주가 지배하는 왕정체제였다. 그러
다. 다시 말해 신분제도의 모순이 격화되고 있었으며, 이것이 새로
나 얼마 후 왕은 교수형에 처해지고 의회가 지배하는 공화국 체제
운 사회로의 전환기에 들어서는 하나의 징표임을 말해준다.
로 바뀌게 된다. 추론하자면, 세익스피어는 왕정을 지키려는 세력 과 왕정에 불만을 느끼고 전복하려는 세력 간의 치열한 갈등이 벌
에드먼드는 “그런데 왜 나는 왜 관습의 병폐 안에서 내 것을 강탈
어지는 시기에 살고 있었으며 당대 사회의 정치적 갈등이 리어왕에
하는 까다로운 국법을 참아야 한단 말인가? 그저 형보다 열 두 달
반영되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 아니다.
이나 열 네 달 늦게 났다는 이유만으로? 왜, 서자라서? 그래서 비 천해서? 신체는 탄탄하고 정신은 신사처럼 관대한 내 모습은 정실
그렇다면, 당시 세익스피어의 세계관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보수적
자식에 견줄만큼 참되지 않던가? 그런데 왜 우리를 천하다고 낙인
가치관을 지녔을 것이다. 충과 효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인물들이 선
찍는가? 서출이라고? 천하고 천하다?”라고 한탄한다. 홍길동 또한
한 인물로 상징되기 때문이다. 충과 효가 그 자체로 보수적 가치인
“대장부가 세상에 나서 공자와 맹자를 본받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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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
병법이라도 익혀 대장인을 허리춤에 비스듬히 차고 동서로 정벌하
띄고 있다. 그래서일까, <리어왕>은 한 때 개작을 당하는 수준에 그
여 나라에 큰 공을 세우고 이름을 만대에 빛내는 것이 장부의 통쾌
쳤지만, <홍길동전>은 아예 금서가 되어 300년간 출간되지 못했다.
한 일 아니겠는가. 나는 어찌하여 이렇게 외롭고, 아버지와 형이 있
두 작가의 인생행로도 비교해 볼 만한데, 세익스피어는 왕실극단의
는데도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작가로 평생을 살았지만, 허균은 역적이 되어 처형되고 만다. 두 사
못하니 심장이 터질 지경이라,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람은 정치적 성향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에드
라고 한탄한다.
먼드와 홍길동 형상의 차이를 단지 작가 개인의 정치적 성향의 차 이에 의한 것으로만 본다면 더 깊은 함의를 추적해 볼 수 없게 된다.
두 사람 모두 한탄에 그치지 않는다. 적자와 서자를 구분하고 차별 하는 신분제도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자연이여, 그대는 나
또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설은 동양과 서양의 가치관의 차이다.
의 여신. 나는 그대의 법칙만을 따르겠다.”는 에드먼드의 말은 의
서양이 개인주의를 기본 가치관으로 삼고 발전시켜 온데 반해, 동
미심장하다. 인간의 차별을 두는 신분제도가 자연적 근거가 전혀
양은 집단주의를 기본적 가치관으로 삼고 발전시켜 왔다. 서양의
없는 그야말로 인위적인 제도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물
서사가 적대적 갈등이 첨예한 조성과 어느 한쪽이 파멸함으로써 산
이 생겨날 때부터 오직 사람이 귀하게 태어났으나 소인에게는 이
출하는 카타르시스를 목적으로 한 것은 개인주의적 가치관과 직접
런 귀함이 없사오니 어찌 사람이라 하겠는지요?”라는 길동의 말 또
적인 관련이 있다. 반면에, 동양의 서사가 비적대적 갈등이 주를 이
한 같은 의미로써 이들은 자신을 옭아맨 관습과 제도를 부정한다.
루고 결말에서 이상적인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은 집단주의적 가
신분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중세적 사고가 근본부터 흔들리
치관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이와 같이 에드먼드와 홍길동 두 인물
고 있는 것이다.
형상의 차이에는 서양과 동양의 가치관의 차이가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간다. 에드먼드는 형을 모함 하여 쫓겨나도록 만들어 적자의 자리를 차지한다. 이어 아버지 글
에드먼드의 형상과 관련한 또 하나의 추론도 가능하다. “목적에만
로스터를 몰락시켜 그의 재산과 권력을 차지한다. 여기에서 그치지
부합한다면 무엇이든 정당화 될 수 있어.”라는 에드먼드의 대사는
않고 거너릴, 리건과 정을 통함으로써 이후에는 왕의 자리까지 오
당대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마키아벨리즘을 연상시킨다. 마
르려고 한다. 그러나 홍길동은 의적이 되어 조정에 맞서는 투쟁을
키아벨리는 자신의 저서인 <군주론>에서 무자비할 정도로 현실적
벌이고, 훗날에는 조선을 떠나 율도국이라는 이상국가를 세운다. 차
인 견해를 피력함으로써 당대의 유럽을 충격에 빠뜨렸다. 마키아벨
별받던 에드먼드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싸우다가 결국 죽게 되지만,
리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충성, 진실, 애정 같은 관계에 기초한
홍길동은 만인이 평등한 세상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렇듯 세익스피
사회질서와 체계를 부정했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런 견해를 사악
어와 허균은 공통적으로 서자라는 형상을 통해 신분제도의 문제를
하고 위험한 것으로 간주했다. <오셀로>에 등장하는 악인 이아고의
제기하고 있으나 해결방식은 전혀 달랐다.
성격 또한 에드먼드와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본다 면, 세익스피어는 공화주의자인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부정적으로
이러한 차이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인물형상을 비교해 보면 세익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스피어의 에드먼드에 비해 허균의 홍길동이 훨씬 혁명적인 성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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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탈출
작가 신혜원 <들꽃의 노래> 전시회 3.17(월)~4.5(토) / 무료 cafe다리 다리상자 (가톨릭청년회관 1층, 홍대입구역 2번 출구 50m) <여는 행사> 3월 18일(화) 저녁 8시 cafe다리 공연무대 / 10,000원(음료1잔 포함) ○작가 신혜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 윤 미향, 고등학생 강지수, 가수 백자와 이혜진, 배우 유정 숙, 다큐창작소 출연
앙굴렘국제만화축제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한국만화기획전 앙코르전
지지않는 꽃 2014. 2. 18 - 3. 16 한국만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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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토리
일하는 사람의 철학이야기 1권, 2권
[일하는 사람의 철학이야기]는 쾌저입니다. 우리사회에서 거의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 철학입니다. 그런데 그 철학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가하면서 일하는 사람의 실천적 생활적 입장에서 글을 쓴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공리공론에 다름 아닌 서구 관념론과 대비된 과학적 유물론에 대한 인식을 쉽게 풀어쓰기도 했습니다. 많은 인용구로 예를 들며 흥미를 돋구어 주는가 하면 특히 맹목적인 반공세대에게도 거부감 없이 스며 들도록 하고 있는 설득력 있는 문체가 돋보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 신보수주의자들의 공허한 외침에 시장경제 부가가치 그런 수치에 솔깃했던 대중들에게도 그 청맹과니 막힌 눈과 귀를 열어주는 데도 한몫을 하고도 남습니다. 맹목적 쇼비니즘 반공애국주의가 설치고 있는 것에 대해 염두하고도 있고 여전히 활개치고 있는 검열잣 대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 읽히기도 합니다. 통일문제나 미래의 조국에 대한 이야기는 묵시적으로 보류 하고 있으면서도 상당한 암시도 행간에 많이 숨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참으로 수고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애쓰는 분들이 있어서 우리 민중이 모두 현명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문병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