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ependent rock magazine vol.56 / www.elephant-shoe.net / 2012 march TABLOID 05
why radiohead
왜 라디오헤드는 한국 팬에게 특별한가? 왜 라디오헤드는 더 이상 'Creep'을 연주하지 않는가?
EPISODE : 핸드폰
Small Talk about Music 흑백 화면의 핸드폰이 컬러 화면의 핸드폰으로 변한 것도, 문자 메시지 저장 한도 100개의 핸드폰에서 메시지 무한 저장이 가능한 핸드폰으로 변한 것도,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이제는 당연히 그랬던 것처럼 여기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은 과거에는 전화기라는 것을 상상하지도 못했을 텐데 말이죠. 그렇다면 반대로 머지않은 미래에는 전화기라는 것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할 때도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만지작거리고 있는 이 영원히 함께할 것 같은 <핸드폰>에 대한 필진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언젠가는 없어질지도 모르니 여러분의 추억도 되새겨 보시구요
石군
The Strokes – Hard to explain
Album : Is This It (2001) 지인들과 카페에 갔을 때 좋은 음악이 나오면 그들은 항상 나에게 “이 노래 누가 부른 거야?”를 묻곤 했다. 모든 음악을 다 알 리 없지만, 왠지 모른다고는 말할 수 없었기에 대충 “누구 같은데? 멜로디가~”이러며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이렇게 거짓말을 하며 음악에 박식한 체하고 살아왔는데 스마트폰이 나오며 세상이 변했다. 음악을 폰에 들려주면 곡에 대한 모든 정보가 뜨는 세상이 돼버렸다. 이제 어떻게 설명하면 내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JEE
Metronomy - The Look
Album : The English Riviera (2011) 단음으로 전화벨이 울리던 시절, 4폴리 핸드폰은 충격이었다. 당시 우리 반에는 반 정도가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사치라며 오히려 왜 필요하냐고 물었었다. 하지만 친구의 4폴리 벨소리를 듣고는 어머니께 졸라 수능 끝나는 날 바로 핸드폰을 구입하였다. 16폴리 핸드폰이 막 나왔지만, 나의 선택은 4폴리였다! 어찌 보면 악기가 마구 쏟아져 나오는 음악보다 미니멀한 '뿅뿅' 음악을 더 좋아하는 것도 이런 과거 때문이 아닐까?
JUNE
RATM - Killing in the Name
Album : Rage Against the Machine (1992)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 짜증이 난다. 특히 핸드폰이 그랬다. 실수로 인터넷 접속 버튼을 누르게 되면 황급히 취소 버튼이나 전원버튼을 눌러야 했고, 바로 요금이 얼마나 나왔는지 확인해야 했다. 외국 친구들은 공짜로 인터넷을 접속하던데 이게 뭐냐고 투덜댔지만, 우리나라 대기업은 바뀌지 않았다. 하긴 뭐 누구라도 쉽게 그 큰돈을 포기하긴 힘들었을 거다. 그래서 아이폰이 더 대단해 보이는 거다!
이지선
Pet Shop Boys - Love Comes Quickly
ELEPHANT-SHOE tabloid issue No.05 / 2012-3-1
Album : Please (1986) 재작년 지산에서 펫샵보이즈 공연을 보고 있는데 어떤 총각이 내 앞으로 호로록 뛰어가면서 핸드폰을 툭 떨어뜨렸다. 잽싸게 핸드폰을 주워다가 일단 통화목록부터 확인했다. 흐음- 여자친구는 없군. 그래서 솔로인 후배에게 맡기고 주인 찾아주라고 했다. 그 해 글로벌 개더링에서 저스티스 음악에 춤을 추다 뭔가가 발에 걸려서 봤더니 또 핸드폰! 저장된 사진을 뒤졌더니 상당히 미인인 여성이 주인인 듯. 옆에 있던 발정 난 친구에게 넘겼다. 올해 솔로탈출을 꿈꾸는 분들, 제 앞에 살포시 핸드폰을 흘리시면 됩니다. 매칭 시스템은 근거리 순입니다.
Editor-in-Chief 石군 / ewanjj@naver.com First Director June / dafunk@hanmail.net Director JEE / seg1129@naver.com Julian Kim / comfortingsounds.vol1@hotmail.com 맹선호 / pluto116@naver.com
COCO
Radiohead -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
Album : Kid A (2000) 교회 종소리에 섞여 언제나 잘 들리지 않던 너의 목소리. 나는 언제나 빠르게 말하고 종소리가 그치기 전에 전화를 끊고 싶었어. 종일을 기다려 한 전화인데도 참 이상하지. 나도 이유를 잘 설명해줄 순 없을 것 같아. 그냥 그래야만 했어. 한동안 네 생각에 잠을 잘 못 잤어. 이젠 다시 잘 잘 수 있게 되었지만 더는 식물원 꿈을 꾸지 않아. 슬프지만 어쩔 수 없지. 교회 앞도 지나가지 않아. 곧 이사를 가게 될 거야.
Creative Director Coco / pinkymallow@naver.com Mr.Yun / djmou@hanmail.com Art Director NOKID / starfucker6@naver.com Jisun / aniklee@naver.com Registration Number / 마포,라00343 Published by Elephant-Shoe / www.elephant-shoe.net Printed by 솔텍 / 서울 중구 필동2가 120-1
맹선호
Coldplay - Warning Sign
Album : A Rush of Blood to the Head (2002) 기억력이 썩 좋지 않은 대신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성향인데, 방 정리를 하다 보니 십여 년 전의 첫 휴대전화(PCS라고 쓰여있더라)부터 영국 살 때 쓰던 전화기들까지 대여섯 개가 나왔다. 배터리가 간당간당 하나가 켜졌는데 당시 주고받던 문자들이 그대로 남아있더라. 아직도 손에 쥐면 익숙한 기분이 드는 하얀색 전화기는 꼭 켜보고 싶었는데 켜지질 않았다. 기억하고 싶은 것도 흐릿해져 가는 세월이 안타까웠는데, 그 전화기 속 문자보관함을 보면 생각이 날지도 모르겠다.
*엘리펀트슈 타블로이드의 본문은 아모레 퍼시픽에서 제공하는 아리따 글꼴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All Rights Reserved 2012 Elephant-Shoe COVER PHOTOGRAPHY / 맹선호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와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 주최자 마이클 이비스가 백스테이지에서 대화중인 표지사진은 엘리펀트슈가 담아온 사진입니다.
NOKID
Nirvana - All Apologies
Album : In Utero (1993) 22살, 겨울에 영하 20도 까지 내려가던 전방의 포병으로 근무했다. 밖에 키 크고, 잘생기고, 착하기까지 하지만 조금은 과격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의 핸드폰 컬러링은 너바나(nirvana)의 ‘All Apologies’. 음악을 듣는 게 힘든 짬밥 없던 일, 이병 시절, 친구에게 전화를 걸면서 최대한 늦게 전화를 받아주길 바랐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듣고 싶었다. 제대 후 같은 작업실 동료로 1년 정도 지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이상한 종교에 빠졌고 친구들과 나는 그를 잡고 싶었지만, 우리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 후론 그를 만나기 어려워졌다. ‘All Apologies’를 들으면 그가 생각난다.
Julian Kim
Arctic Monkeys - Brick by Brick
Album : Suck It and See (2011) 작년 말 벨파스트의 혹독한 날씨를 이기지 못하고 사망한 나의 전화기는 아주 예측 불허의 친구였다. 전화 수신이 잘 안 되었던 것은 물론이고, 메시지가 도착해도 푸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추운 날씨에는 자동으로 꺼져버리기까지 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비록 추위는 많이 탔지만, 떨어뜨려도 좀처럼 고장 나지 않는 돌처럼 단단한 친구였다. 2
E L E P HA N T - S HO E
CONTENTS MA RCH 2012 COVER STORY
why Radiohead
05 MY RADIOHEAD 06 Probably, This Song? 07 Please, This Song! 페스티벌 기획자, 신촌거주 34세 싱글남, 1세대 홍디스트, 홍대 떡볶이 연구가. 전직 런더너, 피터팬컴플렉스 보컬이 각자의 라디오헤드에 대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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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SPECIAL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의 구별법
피터팬 컴플렉스가 알려주는 음반 제작 과정 초급편 16 LIVE SKETCH
Russian Red: Live at Union Chapel BEIRUT 내한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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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롱? 나는 한 번도 맛있게 먹은적 없어 | 배낭두개 Episode 8 : 마카롱은 괜찮아 ‘작은 것이 아름답다’ 부티크 페스티벌의 미학 | 힙스터之道 Offset Festival 구 소비에트의 마지막 영웅.빅토르 초이 | Music of Resistance : Виктор Робертович Цой 프로 만화가의 초보 음악 생활 | Hello!Nokid Episode 15-20화
E LE P H A N T-S H O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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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why Radiohead 오아시스나 뮤즈의 첫 내한도 이렇지는 않았다! 콜드플레이가 온들 이럴 수 있을까? 도대체 왜 라디오헤드의 내한 소식에는 록 음악 팬이 아닌 이들조차 술렁이는가? PHOTOS : WARNER MUSIC KOREA
록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2월 중 최고의 화두는 아마도 <라디오헤드 내한>이었을 것이다. 이 소식이 트위터로 퍼지던 1월 31일, 한국의 여러 포털사이트에서는 <라디오헤드>가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했으니, 이들의 공연에 대한 팬들의 굶주림이 거의 아사 직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배고픔은 아무리 팬이었어도 참기에는 너무 힘든 고통이었고, 이에 라디오헤드는 팬에게조차 애증의 밴드가 되어 버렸다. 급기야 라디오헤드가 한국에 오지 않는 이유가 톰 요크(Thom Yorke)가 학창시절에 한국인 유학생에게 괴롭힘을 당해서라는 루머까지 돌았었다. 이들이 결성된 1985년으로부터는 27년, 데뷔앨범 “Pablo Honey”로 한국에 알려진 1993년으로부터는 19년, 전 세계를 홀린 앨범 “OK Computer”로 한국인도 사로잡은 1997년으로부터는 15년 만에 이루어진 한국에서의 첫 공연이니 팬들이 이렇게 악성루머를 만들어낸 것도, 또 1위에 오를 정도로 검색을 한 것도 이해가 된다. 이 두 가지 사건에 나도 크게 한몫을 했으니까. 도대체 왜 우리는 이렇게 이들의 내한에 열광하는가? 단순히 유명한 팀의 첫 내한이기 때문이라기엔 이미 여러 번 겪은 일이고, 그 중 이 정도로 온 매스컴의 관심을 받았던 적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라디오헤드는 왜 특별한 것인가? 이들의 앨범이 전 세계적으로 3억 장 정도가 팔렸고,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에서 최고의 얼터너티브 밴드 상을 세 번이나 받으며 최다 수상을 했기 때문일까? 그렇다기엔 브릿 어워드(BRIT Awards)에 여덟 번 후보로 올랐지만 한 번도 수상한 적이 없는 기록은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 것인가? 밴드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그들의 역사와 기록들은 빼놓을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가 밴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곳에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의 희로애락 중 한 가지 이상의 감정을 함께 공유했던 음악에 대한 추억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중에서도 슬픔에 대한 부분에서만큼은 록 팬이든 아니든 그 누구라도 한번쯤은 라디오헤드 음악과 함께 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짝사랑을 할 때 상대방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자신을 자책하며 듣던 ‘Creep’이라든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다 상처받아 이부자리에서 한참을 울며 잠을 청할 때 위로가 되어 준 ‘(Nice Dream)’, 또는 더 이상 살아갈 힘도 목적도 없이 느껴질 때에 더 극한 선택을 한 이의 독백을 들으며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다는 것에 힘을 내게 해준 ‘No Surprises’처럼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좋아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이들의 음악에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시간은 나이를 먹게 한다는 부작용을 갖고 있지만, 반대로 죽을 만큼 슬프고 힘들었던 일도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거리로 만들어내는 순작용도 갖고 있다. 이는 그 당시의 감정을 현재에 와서는 100%의 강도로 다시 느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음악에는 당시의 상황과 감정이 저장되어 있어, 한 때 위로를 받았던 음악을 시간이 지나 다시 들으면 그 때의 문제가 마치 지금의 일처럼 다가온다. 재생되는 동안 그 문제의 기승전결이 자연스럽게 그려지고, 음악이 끝날 때쯤에 헛웃음을 내뱉으며 나도 모르게 ‘그래, 그랬지.’라고 말을 하게 된다. 내 경험을 미뤄볼 경우 CD를 통해 그 때의 감정을 절반 정도 느낄 수 있을 수 있었다면, 라이브에서는 좀 더 극적인 경험을 했었다. 그 때의 상황이 주던 고통은 더 큰 아픔으로, 그 문제가 풀리며 느끼던 해방감은 더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아마 올해 지산에서의 라디오헤드 공연 때 많은 이들이 이런 경험을 하며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 눈물의 이유가 되는 감정은 각기 다르겠지만, 그 각각의 감정이 우리가 라디오헤드에 열광하는 이유일 것이다. 7월에 눈물을 쏟을 수많은 관객 중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대성통곡하고 있을 여섯 명이 지금 여기에 있다. 이들은 왜 그렇게 라디오헤드에 열광하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4
E L E P HA N T - S HO E
MY RADIOHEAD 에밀리
페스티벌 기획자
“일하는 게 행복하다.” 세상에서 제일 이해할 수 없는 말 중에 하나였다. 놀기도 바쁜데,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 행복하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요즘 그 말을 내가 하고 있다. 일하는 게 즐겁다. 하루하루가 즐거워 머리에 꽃을 꽂고 춤이라도 추고 싶은 마음이다. 당연히 라디오헤드가 오기 때문이다. 지산밸리록페스티벌에 관객이 아닌 스태프로 참여한 지 3년째, 뮤즈와 스웨이드가 다녀갔고 올해에는 라디오헤드가 온단다. 작년 겨울, 남들보다 조금 먼저 라디오헤드가 올해 한국에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매년 떠도는 뻔한 루머일 뿐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기 시작하고, 정말로 라디오헤드가 밸리록페스티벌에 올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오마이갓! 내가 기획하는 페스티벌에 바로 그 라디오헤드가 온다니! 나 라디오헤드랑 같이 일하는 거야? 짧지 않은 인생 최고의 일이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만 같아서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작은 목표가 생긴 나는 그래서 일하는 게 즐겁다. 올해의 페스티벌 중 한국의 페스티벌이 최고였다는 말 한 마디 듣고 싶다는 작지만 커다란 목표. 언젠가 도쿄에서 본 라디오헤드의 라이브는 손가락에 꼽을 만큼 아름다웠다. 비록 초기히트곡을 연주하지 않는다 해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어메이징한 그들을 맞이할 한국의 어메이징한 관객들에게 축배를! 이 어메이징한 사태의 유일한 단점이 스태프로 일을 할 나는 그들의 공연을 볼 수 없다는 어메이징한 사실에는 동정을!
JUNE
1세대 홍디스트
정민
신촌 거주 34세 싱글남
나의 90년대 학창시절은 온통 미국 뮤지션들의 음악에 둘러싸인 시대였다. 빌보드를 통해 팝 음악을 찾아 들었고, 너바나(Nirvana)를 통해 얼터너티브 세계로 인도된 이후로는 얼터너티브 음악만을 들었다. 이후에도 블루스, 메탈, 하드코어, 펑크를 비롯한 이 모든 장르가 미국만의 독식 장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금 생각하면 우스울 정도로 미국계 밴드들의 음악만 들었다. 그러던 내게 21세기 뉴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하고 한 줄기 빛이 내려졌으니 그것은 우연한 계기로 AFKN 라디오에서 듣게 된 라디오헤드의 ‘High and dry’였다. 그 당시만 해도 내게 있어서 라디오헤드는 ‘Creep’으로 만들어진 한낱 유행 같은 밴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미 그 당시에는 “OK computer”로 그래미 베스트 얼터너티브 앨범을 수상하고 “Kid A”가 출반된 상태였지만, 나는 미련하게도 그들을 오랜 시간 외면하고 있었다. 그러던 내게 ‘High and dry’를 위시한 “The bends”의 곡들은 영국 특유의 침울하고도 몽환적인 사운드로 내 음악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 앨범 한 장을 통해 영국 음악 전반으로 나의 관심은 퍼져 나갔고, 내가 갈망하던 음악이 어떤 음악이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편협함에 갇혀있던 나의 음악관을 해방시켜준 것이 바로 라디오헤드였기에 지금은 다른 어떤 밴드보다도 소중하고 위대한 존재이다. 아직도 심신이 지칠 때 먼저 찾아 듣게 되는 곡들은 “The bends”와 “OK computer”에 수록된 가슴 따뜻한 곡들이다. 라디오헤드의 내한 공연이 실현된 것이 꿈만 같고 이들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다시 한 번 함께 노래하는 바로 그 순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이다.
JEE
홍대 떡볶이 연구가
"KID A"이후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라디오헤드는 나에게 어렵고, 난해한 음악이 되었다. 그러나 취재와 여행을 위해 런던을 왔다갔다하면서, 멀어져간 라디오헤드의 정서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영국 음악 스타일에 큰 일조를 한 먹구름과 우중충한 날씨를 런던에서 직접 경험했고, 작은 라이브 클럽을 다니면서 상업성과는 100만 광년 떨어진 실험적인 공연을 자주 봤더니 어느새 멜로디와 가사보다 사운드에 더 신경을 쓰며 음악을 듣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2008년 6월 25일 런던 빅토리아 파크에서 직접 눈으로 보게 된 라디오헤드의 콘서트! 'Creep'이나 'Nice Dream', 'High and Dry'는 들을 수 없었지만, 설치미술에 가까웠던 무대장치와 하늘을 꽉 채웠던 공간감 강한 사운드는 말 그대로 새로운 세상, 신세계였다. CD로 들었을 때 숨겨져 있던 악기 소리가 공연장에서는 정확히 들려 완벽히 이해되지 않았던 곡들의 의도를 명확히 알 수 있었고, 무대 위에 매달려있던 설치물을 이용한 조명 쇼는 신선한 경험 그 자체였다. 공연 전에는 과거 히트곡을 많이 연주하길 바랐지만, 공연이 끝나갈 즈음에는 그동안 관심이 없던 최근 곡들을 한 곡이라도 더 듣고 싶어졌다. 'Paranoid Android'를 마지막 곡으로 공연은 끝이 났고, 이날 이후 가장 최근 앨범부터 KID A까지 거꾸로 CD를 사게 되었다.
2008년 여름, 무슨 용기였는지 겁 많고 걱정부터 하고보는 성격의 소유자인 내가 영국과 벨기에 페스티벌 여행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벨기에 록 베르히터(Rock Werchter)에서 라디오헤드를 처음 보게 되었다. 와!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인생에서 떨리고, 긴장되는 순간이 다가왔다. 이들을 정말 제대로 보고 싶은 욕심에 맨 앞 펜스로 향했으나 역시 쉽지 않았다. 모든 노력을 다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견딘 나에게 돌아온 자리는 앞에서 세 번째 줄. 그야말로 인간 샌드위치가 되기 딱 좋은 곳이었다. 난생처음 겪는 환경에 익숙해지기도 전, 공연은 시작되었고 정말 힘들게 톰 요크를 비롯한 멤버들을 봐야만했다. 점점 체력이 고갈되어가자 한국에서부터 가져왔던 오랜 기대, 설렘은 어느새 사라져갔다. 정녕 눈앞에 있는 게 라디오헤드냐며 이 악물고 버티고만 있었다. 그 이후 글라스톤베리에서 스페셜 게스트로 톰 요크와 라디오헤드가 두 번이나 나왔지만, 매년 그곳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공연을 놓치고 말았다. 특히 작년엔 눈물이 날 정도로 억울했고, 라디오헤드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간절한 존재가 돼버렸다. 올해 초 후지 록 페스티벌 헤드라이너가 발표된 날, 진심으로 빚을 내서라도 일본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어쨌든 올해는 하늘이 도와주시나보다. 지산에 라디오헤드라니! 오 마이 갓!! 손꼽아 기다린 만큼 이번엔 반드시 제 정신으로 이들을 보고 말테다!!!
맹선호
전지한
전직 런더너
"In Rainbows" 앨범이 발매되고 영국으로 이사했다.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라디오헤드의 단독 공연을 볼 수 있었고, 그곳은 초여름의 런던 빅토리아 파크였다. 오래간만의 공연인지라 티켓은 순식간에 매진되었고, 커다란 공원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간신히 자리 잡은 곳에서는 저 멀리 무대 위에서 몸을 꼬아대며 춤을 추는 사람이 톰 요크인지 구워지는 오징어인지 판단할 수 없을 정도. 게다가 런더너들이란 이 귀한 공연은 안중에도 없이 술을 엄청나게 마셔대며, 무슨 이산가족상봉이라도 한 마냥 폭발하듯 수다를 떨어댔다. 무대 위는 보이지도 않았지만, 음악이라도 제대로 들렸다면 내 돈이, 내 꿈이, 내 열망이 그렇게 무참히 짓밟히지 않았을 텐데. 설상가상으로 기온 차가 큰 런던의 여름에 채 적응하지 못한, 비행기까지 타고 한국에서 날라온 친구는 바닥에서 추위와 사투를 벌이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전쟁통같이 시끄러운 그곳에서 나는 계속해서 친구를 깨우며 소리쳤다. "잠들면 죽어!"손꼽아 기다렸던 나의 첫 라디오헤드 공연은 이렇게 한 편의 재난영화 같았다. 그런데 그 라디오헤드가 한국에 온단다. 지인들에겐 ‘난 우연히 만난 적도 있고, 공연도 꽤 많이 봐서 스톤 로지스가 더 보고 싶다’며 건방을 떨었지만, 사실은 응축된 갈망으로 폭발할 ‘동포’들의 뜨거운 기운 속에서 보는 것은 더 특별할 거란 생각에 벌써부터 설레는 속마음을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한다.
피터팬 컴플렉스 보컬
“당신은 왜 라디오헤드를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에 순순히 답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어렵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쉽게 말하는 것은 더더욱 싫다. 그냥 솔직히 ‘나의 이유는 아주 특별하거든’이라면서 거들먹거리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며칠 전 잠시 만난, 가요와 아이돌을 사랑하던 그녀는 나의 작업실 아이튠즈 셔플 재생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 굉장히 트렌디한 유럽 음악들이 나올 때는 조용하던 그녀가 ‘High and Dry’가 흘러나오자 “얘네 누구지?”라고 물었다. 내 대답에 그녀는 외국 뮤지션 중 라디오헤드를 가장 대단하게 여긴다고 말했을 때, 나 또한 그렇다고 동의할 수 없었던 것과 비슷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부터 내가 “Kid A” 이후의 음반이 가지는 현재시대의 음악적 가치와 예술적 위치에 대해서 떠든들 라디오헤드에 대한 나의 진정하고 올바르며, 또 지나치도록 순수한 접근을 이루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가 5/4박과 4/11박을 오가며, 이 곡 자체가 기존화성을 부수면서 결국에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라고 내가 말한다면, 그녀의 ‘대단한 밴드’라는 표현보다 라디오헤드를 더 대단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아, 슬프다. 나의 순수한 진심이 이렇게 밖에 표현될 수 없다는 사실이 말이다. 자, 지금부터 말하는 내가 라디오헤드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너무 놀라지 말기 바란다. 난 ‘Creep’이 좋다.
E LE P H A N T-S H O E
5
2011 The King of Limbs
2007 In Rainb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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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에 어떤 밴드도 새로 녹음할 앨범을 지난 앨범과 똑같이 만들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변화의 폭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모든 밴드는 저마다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때문에 새 앨범이 나올 때면 지난 앨범과 비교하여 어떤 변화가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팬에게는 큰 즐거움이다. 예를 들어 퀸(Queen)은 여덟 번째의 정규앨범인 “ The Game”에서 신디사이저를 처음으로 활용했고 팬들은 이 사실에 주목했다. 때문에 팬은 이 앨범을 기점으로 삼아 퀸 음악을 1기와 2기로 구분지었다. 2기부터의 퀸은 자신의 스타일을 록음악에 한정짓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흡수했지만 퀸 특유의 멜로디 지향적인 특성은 계속해서 유지되었기에 팬들은 어색함 없이 퀸을 계속해서 사랑했다. 하지만 모든 변화가 팬들의 환호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포크의 대가인 밥 딜런(Bob Dylan)은 포크의 상징과도 같은 어쿠스틱 기타 대신 일렉 기타를 쓰는 대변신을 시도했다. 그 역사의 현장이던 1965년의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 있던 당시의 팬들은 이에 크나큰 충격을 받고 밥 딜런을 변절자라 여겼다. 그렇다면 라디오헤드는 어땠을까? 영국 옥스퍼드셔카운티(Oxferdshire county)의 사립학교 애빙던 스쿨의 선후배들이 모여 결성된 라디오헤드도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을 것이다. 그 후 발표한 ‘Creep’이 엄청난 인기를 누렸음에도 평단은 그저 <너바나(Nirvana)의 가벼운 버전>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한 차가운 반응만을 보였다. 이런 비평에 이를 악물고 또 변화를 시도했다. 자신의 감정을 충실히 표현한 가사는 호평을 받았었기에 이에 더 집중했고, 이번에는 직접적인 표현 대신 추상화된 시적인 가사를 썼다. 이를 더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느릿느릿 흘러가는 깊은 강물과 같은 사운드가 필요했고, 여러 층의 사운드를 겹겹이 쌓으며 깊이를 얻었다. 이런 변화로 두 번째 앨범 “The Bends”를 만들어 냈고, 이 형식은 이후 라디오헤드 음악의 가장 큰 골자가 됐다. 이를 더욱 발전시킨 “OK Computer”는 영국 차트에서 첫 1위를 차지했고, 비평가로부터의 찬사도 드디어 얻어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생겼다. 앞서 JUNE 형이 살짝 이야기한 것처럼 라디오헤드의 음악 스타일은 “Kid A”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모든 변화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흔히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 말을 한다. 이 말을 뒤집어보자면 죽을 만큼 힘들었기 때문에 변할 수밖에 없었던 걸 수도 있다. 앞서 욕을 먹었던 밥 딜런의 변화도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민중가요의
이후 프로듀서 나이젤 고드리치(Nigel Godrich)와 함께 파리, 코펜하겐, 옥스퍼드의 스튜디오에서 다양한 실험을 2년 가까이 한 끝에 모든 멤버들이 바라는 하나의 도달점을 찾았다. 이 지향점을 표현하기 위해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이라는 관념적인 밴드 형태의 구성을 버렸다. 리드 기타를 맡았던 조니 그린우드(Jonny Greenwood)는 기타대신 키보드와 여러 전자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드러머인 필 셀웨이(Phil Selway)는 드럼 대신 기타와 백킹 보컬을 맡으며 본연의 드럼 파트는 리듬 머신에 맡겼다. 이 변화는 라디오헤드의 음악스타일을 1기와 2기로 나누게 되었고, 그 기준점이 이때 발표한 네 번째 정규앨범 “Kid A”다. 싱글을 한 장도 발표하지 않은 채 등장했기에, 무방비 상태로 이 앨범을 접한 영국의 팬과 평단 모두 라디오헤드의 변화를 걱정했다. 심지어 톰 요크가 미쳤다는 말까지 나왔었다. 하지만 이들은 어떠한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첫 공연을 미국의 “Saturday Night Live”에서 가진다. 원곡을 완벽히 소화해낸 이 공연으로, 많은 이들의 험담과 걱정을 불식시켰다. 또한 이 공연을 통해 미국에서 자리를 잡게 됐고, 처음으로 미국 앨범차트 1위를 차지했다. 그동안 영국 밴드가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적이 거의 없었기에(반대로 미국밴드가 영국에서 성공한 경우도 흔치 않다.) 영국의 평단도 라디오헤드의 이 앨범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고로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The Bends”앨범의 미국 차트 최고 순위는 88위였다.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했고, 평단으로부터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으며, 밴드 스스로에게는 지속적인 음악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변신은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단 하나의 문제가 생겼다. 바로 이들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팬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제자리에 멈춰선 팬은 이들의 변신을 욕하며 “Kid A” 전의 세 앨범만을 들었지만, 라디오헤드의 새로운 행적을 쫓아가는 이들도 있었기에 이때부터 팬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눠졌다. 전자와 후자의 팬 중 어느 쪽이 더 많은가에 대한 답을 전 세계적으로까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단언컨대 전자의 팬이 많다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이들의 첫 내한에 ‘Creep’, ‘High and Dry’, ‘Exit Music’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는 희망에 부푼 이들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공연을 위한 예습이라며 초창기 세 앨범을 듣고 있는 지인들을 보며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2기에 들어선 라디오헤드는 공연장에서 1기의 음악을 거의 연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20곡 정도를 한
중심이 포크였던 것처럼 미국에서의 포크 음악도 반전과 인권 등의 주제를 다뤘고 그 중심에 밥 딜런이 있었다. 하지만 그와 뜻을 같이 했던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며 밥 딜런은 무너져 내렸다. 그 후 “나는 정치적인 곡을 쓴 적이 없다. 노래는 세상을 구하지 못한다.”고 말하며 더 이상 저항적인 가사를 쓰지 않았고, 일렉기타를 들고 로큰롤 사운드를 흡수해 포크 록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라디오헤드도 밥 딜런처럼 큰 고통의 과정을 네 번째 앨범 “Kid A”를 준비하던 1998년에 겪고 있었다. 당시 라디오헤드의 모든 멤버가 극심한 우울증 상태였기에 월드투어의 마지막 공연을 파리에서 마친 후 바로 휴식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우울증 환자에게 굉장히 어색한 제목의 월드 투어 DVD인 “Meeting People Is Easy”를 위한 음악 작업을 했다. 이 과정에는 데드라인도 없었고, 레이블의 어떤 간섭도 없었지만 이들은 극도의 긴장 속에서 일을 진행했다. 결국 톰 요크(Thom Yorke)는 더 추상적이고, 더 잘게 찢어진 사운드를 쌓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작곡을 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몰리게 된다. 결국 이들은 모든 작업을 내려놓고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공연에서 연주하는데, 그 중 1기의 음악은 전혀 없는 경우도 있고, 정말 많이 연주한 경우도 2~3곡 정도가 전부이다. 그러니 1,2,3집 앨범으로만 예습을 하고 이번 첫 내한 공연을 접할 경우 100분의 공연 시간 동안 멍하니 있다올 공산이 크다. 그래서 적어도 엘리펀트슈 독자만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2009년부터 현재까지의 26개 공연의 셋 리스트를 분석했다. 이 데이터를 가지고 빈도수 가중치와, 시기별 가중치, 새 앨범 가중치 등을 적용시켜 뽑은 곡 리스트를 가지고, 라디오헤드가 배치했던 방식을 따라 순서를 정한 예상 셋 리스트를 준비했다. 우선 가장 최근 앨범인 “The King of Limbs”의 수록곡은 거의 모두 연주하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들어줘야 하며, 최근에 싱글로 공개된 ‘These Are My Twisted Words’, ‘Supercollider’, ‘The Butcher’, ‘The Daily Mail’, ‘Staircase’ 등은 최근의 공연에서 처음으로
E L E P HA N T - S HO E
연주했기 때문에 지산에서도 연주할 확률이 높으므로 반드시 예습해야 한다. 셋 리스트에 자주 등장하는 곡들이 그 다음으로 많은 앨범은 "In Rainbows"이니 “The King of Limbs”와 이 두 앨범만을 반복해서 듣고 가도 대부분의 곡이 익숙할 것이다. 하나 더 들을 시간이 있다면 “Kid A”를
추천한다. 이럴 시간이 없다면 예상 셋 리스트를 엘리펀트 슈 홈페이지의 본 기사에서 들을 수 있으니, 틀어놓은 채 웹 서핑 배경음악 삼아 예습하면 된다. 셋 리스트를 쭉 훑어보면 조금 실망스럽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공연에서도 1기의 음악들이 종종 등장하고 있으니 지산에서도 한두 곡 정도는 연주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 한 곡이 무엇이 될지는 라디오헤드 본인만이 알겠지만, 팬에게 있어 그들이 연주해주기를 절실히 바라는 한 곡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앞서 엉엉 울 준비가 되어 있는 6명도 각기 다른 음악을 연주해주길 바라고 있다. 라디오헤드가 “옷 벗고 춤추면 그 노래 불러줄게!”라면 잠시 고민 한 끝에 옷은 안 벗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춤은 추지 않을까 싶은 그들이 바라는 노래를 준비했다. 6곡 중 과연 연주되는 곡이 있을까? 그리고 연주되면 춤을 출까?
Anticipated Setlist
chosen by Elephant-Shoe 01. Bloom ★★★ 02. Little By Little ★★★ 03. Staircase ★★★ 04. The National Anthem ★★ 05. All I Need ★★ 06.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 ★★★ 07. 15 Step ★★★ 08. Weird Fishes/Arpeggi ★★ 09. Lotus Flower ★★★ 10. The Daily Mail ★★★ 11. Morning Mr Magpie ★★★ 12. Idioteque ★ 13. Bodysnatchers ★★ 13. Lucky ★★ 14. Nude ★ 15. Give Up The Ghost ★★★ 16. You and Whose Army? ★ 17. Reckoner ★★ 18. Supercollider ★★★ Encore 1 19. There There ★ 20. Jigsaw Falling Into Place ★ 21. Morning Bell ★★ 22. Pyramid Song ★★ Encore 2 23. Paranoid Android ★ 24. Street Spirit (Fade out) ★★
★★★high probability ★★medium probability ★low probability
Probably, This Song? 세
2001 Amnesiac 2003 Hail to the Thief
1997 OK Computer 2000 Kid A
1993 Pablo Honey 1995 The Bends
Please, This Song! No Surprises
에밀리 / 페스티벌 기획자
Karma Police
JUNE / 1세대 홍디스트
Just
맹선호 / 전직 런더너
케이블TV 대신 지역유선방송이 나오던 시절, 가장 즐겨보던 채널은 홍콩의 채널V였다. 중화권 VJ들이 인기를 끌던 그때 책상 앞보다는 TV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길었고, VHS 비디오 테이프를 데크에 넣어두고 좋아하는 뮤직비디오가 나오길 기다렸다가 잽싸게 녹화 버튼을 눌러 나만의 뮤직비디오 콜렉션을 만드는 것은 잉여 중의 상잉여만이 할 수 있는 취미였다.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밴드들의 뮤직비디오가 가득 들어 있던 그 콜렉션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뮤직비디오가 라디오헤드의 ‘ No surprises ’ 였다. 정적이지만 오묘한 뮤직비디오. ‘음악 같은 건 몰라요, 예쁜 오빠언니들이 예쁘게 나오는 뮤직비디오가 제일 좋아요!’ 생각하며, 오로지 스타일과 비쥬얼만을 추구하던 내 인생에 라디오헤드가 들어온 운명 같은 사건이었다. 나와 라디오헤드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머리끝까지 천천히 물이 차오르는 것처럼, 귓가에 들리는 실로폰 소리와 함께 아무런 장비도 없이 우주의 끝을 유영하는 것처럼. 라디오헤드 팬질의 정점을 찍었던 2008년 한 해 동안 영국과 벨기에, 일본에서 열리는 뮤직페스티벌과 단독공연을 따라다니며 듣고 싶어 했던 대부분의 곡들을 라이브로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듣지 못한 마이 페이보릿 라디오헤드 송을 다른 곳도 아닌 우리나라에서 듣게 된다면,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모두들 ‘Creep’을 외칠 때 난 ‘No Surprises, Please!’를 외쳐야지.
한 밴드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공연이다. 라디오헤드가 공연장에서 'Creep'을 안 부르는 데는 그들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산에 오는 관객 모두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바란다고 해도 최근 이들의 셋 리스트를 보면 2009년 레딩 페스티벌의 기적이 쉽게 일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Creep'이 경기도 이천 땅에서 울려 퍼진다면, 몇 년은 회자될 얘기 거리가 될 것이다. 이렇게 누구나 바라는 'Creep'을 제외하고는 'Karma Police'를 꼭 들었으면 한다. 물론 97년 발표 곡이긴 하지만, 최근 공연에서도 편곡을 하여 연주를 했던 적이 있고, 과거 히트 곡 중에서 최근 곡들과 같이 연주되어도 어색하지 않은 노래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앞에서 말한 2008년 6월 25일의 기분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 욕심이기도 하다. 4년 전 처음 접했던 라디오헤드의 공연, 과거의 곡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22번째 노래로 '카르마 폴리스'가 흘러나오는 게 아닌가! 런던에 거주하고 있는 엘리펀트 슈 식구 쥴리앙 김군과 같이 관객들과 하나가 되어 멜로디를 따라 부르던 기억은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는 순간으로 남아있다. 2012년 지산에서 그 기분을 다시 한 번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최고의 시간이 될 것이다. “톰 요크! 불러줘요, 카르마 폴리스!!”
도대체 구하기도 어려운 티켓을 왜 굳이 사서 술 마시고 수다를 떠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런던 관객들 덕분에 생애 첫 라디오헤드 공연은 망쳤지만, 그로부터 2주 후의 벨기에 베르히터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가 또 라디오헤드였다. (오빠들 우리 너무 자주 보는 거 아녜요?) 라디오헤드를 매혹시킨 환경친화 페스티벌답게 플라스틱 맥주잔 10개인가를 모으면 맥주 한 잔을 공짜로 주는 멋진 페스티벌이었다. 살다 보면 사소한 것에 홀려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의 내가 그랬다. 게다가 라디오헤드 바로 전 무대는 시규어 로스였고, 나는 이 두 밴드는 최고로 기분 좋은 상태로 봐야 한다고 아침부터 다짐하며 환경보호에 앞장섰다. 원한대로 나는 잔디에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들려오는 아이슬란드 선율을 완벽하게 즐겼고, 그리고 라디오헤드가 무대에 오른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꿈을 꾸고 라디오헤드는 공연을 했다. 아름다운 벨기에의 하늘 아래에서. 그런데 귓가에 ‘Just’의 인트로가 들리는 순간, 나는 ‘저스트다!’라고 외치며 벌떡 일어났다. 주변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그것은 라디오헤드를 향한 것이 아니라 이 엄청난 공연이 다 끝나가도록 쿨하게 잠이나 자다가 마침내 일어난 날 향한 것이었다. 정확히 2주 전에 런더너들에게 받은 커다란 인상 그대로 벨기에인들에게 전해준 것. 라디오헤드님, 저 올여름엔 제대로 들을 테니까 꼭 불러 주세요. 요즘 나무늘보처럼 살고 있는 저를 그때처럼 정신 번쩍 들게 해주세요.
High and dry
Let Down
Exit Music
정민 / 신촌 거주 34세 싱글남
JEE / 홍대 떡볶이 연구가
전지한 / 피터팬 컴플렉스 보컬
사람들에게 라디오헤드에 대해 묻는다면 무슨 앨범과 곡을 떠올릴지 궁금하다. 이분법적 사고로 양분할 수는 없겠지만, 사용된 사운드와 보컬 성향 등은 차치하더라도 단적으로 “OK computer”까지의 곡들이 멜로딕 성향이 짙었다면 “Kid A” 이후의 곡들은 일렉트로닉 요소와 함께 무조적(atonal)이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최근 그들은 공연에서 90년대 앨범의 곡들을 연주하지 않는다. ‘High and dry’, ‘Karma police’, ‘No surprises’와 같은 서정적인 노래를 공연장에서
기분이 우울해지면 항상 라디오헤드의 음악이 생각난다. 정서적으로 힘들 때, 화가 나서 분할 때, 그냥 조금 울적해질 때 말이다. 한번 우울의 늪에 빠지게 되면 하나의 시작이 모든 문제와 연결고리가 되어 스스로 더 깊게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날들이 며칠 동안 계속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라디오헤드의 많은 곡 중에서도 'Let Down'이란 곡을 고른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가사의 뜻을 바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나의 예전 여자 친구와 학교 앞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 내 뒤에 있던 TV의 한 프로그램 배경음악으로 ‘Creep’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당시 Rage Against machine처럼 되고 싶어 랩 라임가사를 맞추고 있을 때였는데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물었다. ‘이 음악 누구야?’ 그녀는 나의 손을 잡고 광화문 교보문고로 가서 ‘Creep’보다 더 좋은 노래가 있다며, 그 음반을 사야한다면서 “OK Computer”를 샀고, 다시 나의 손을 잡고 덕수궁으로 가서
라이브로 듣기는 쉽지 않다. 메탈 사운드에 둘러싸여 오버드라이브된 소리만 듣던 내 귀를 “The bends” 앨범이 정화해주었다. 초기의 청아하고 멜랑콜리한 기타 사운드와 감성적인 톰 요크의 팔세토는 내게 있어 라디오헤드란 밴드를 상징하며, 아직도 그들이 소중한 이유이다. ‘High and dry’를 처음 듣고 “The bends”를 접하는 순간 난 기타 테크닉과 드럼 속도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라디오헤드를 통해 내가 느끼고 간직했던 서정성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진화라 할지라도 내겐 어색하다. “The king of limbs”에서 느껴지는 덥스텝은 더 멀게만 느껴진다. 그들의 현재 음악은 충분히 놀랍고 탄복할 만하며 난 “In radinbow”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러나 ‘High and dry’가 주었던 심연에 빠진듯한 마음의 울림은 도저히 느껴지지 않는다. 2011년 글라스톤베리에서 그들과의 첫 만남도 그래서 감흥이 적었는지는 모르겠다. 난 “The bends”의 ‘High and dry’를 꼭 라이브로 듣고 싶다. 어쩌면 태어나 처음으로 공연장에서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파왔다. 깊은 슬픔에 빠져들기도 하다가 또 어느 부분에선 오기도 생기고, 마지막엔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다. 나중에 가사를 해석해 보니 신기하게도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가졌던 감정들과 너무나 비슷하여 놀랐다. 음악이란 것이 멜로디와 곡 분위기만으로도 이렇게 비슷한 감정을 찾아내 마음을 동요할 수 있다고 새삼 느끼게 되었다. 어쨌든 쉽게 볼 수 없었던 라디오헤드가 월드 투어를 다녔던 2008년, 벨기에 록 베르히터(Rock Werchter)에서 운 좋게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맨 앞 관중들 사이에 끼어 너무 정신이 없었지만, 확실한 건 '렛 다운'은 연주되지 않았었다. 그리고 다시 손꼽아 기다렸던 라디오헤드가 올해 지산 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확정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Creep'과 'Just', 'High and Dry' 같은 불후의 명곡이 포함된 2009년 레딩 록 페스티벌의 셋 리스트를 바라겠지만, 나는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Let down'을 한 번 더 기대해본다.
잔디밭에 누워 ‘Exit Music’을 들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좋지?” 도무지 뭐라고 말해야 그녀의 행복해 하는 기분을 망치지 않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정확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건 싫고, 난 아까 TV에서 흘러나오던 그게 더 좋았는데 어쩌지. 여자 친구와 잔디밭에 이어폰을 나눠 끼고 누워 듣기에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었다. 그 후, 5년쯤 지난 어느 날 새롭게 만난 여자친구에게 ‘Exit Music’을 들려 줄 기회가 있었다.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5년 전의 나의 모습을 똑같이 보았고, 속으로 ‘당장 음악을 바꾸지 않으면 오늘 네가 원하는 어떤 것도 해주지 않겠어!’라는 강한 눈빛 신호를 읽을 수 있었다. 그때 처음 느꼈다. 뭔가 그냥 그저 재밌는 우월감이랄까? 어쩌면 10년 전 그때 그 여자 친구 역시 잔디밭에 누워 그때 내가 느꼈던 느낌을 먼저 느꼈던 건가? 하지만 지금 라디오헤드가 지산에서 ‘ Exit Music ’ 을 부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녀들은 모두 떠났는데 말이다. 하지만 신청합니다. Exit Music! E LE P H A N T-S H O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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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ROOM
배낭 두 개 Episode 8 : 마카롱은 괜찮아
“ 마카롱 그거 별로야. ” “ 아마 몸에도 안 좋을 걸? ” “ 나는 한 번도 맛있게 먹은 적이 없어. ” "그럼 파리에서 굳이 먹지 않아도 되겠네." ”
WORDS, PHOTOS : JUNE, JEE
JUNE
JEE
진면목을 몰라주고 오해를 했던 음식들이 꽤 있었다. 약과는 군대를 가서야 맛있는 간식임을 알았고, 게장은 어른들만 먹을 수 있는 맛이라 초등학교 때 성급한 결론을 내버렸었다. 하지만 이제 나이도 나이인데 설마 그런 음식이 약과와 게장 말고 또 있겠냐고 할 즈음,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해 작년 7월, 파리에서 또 다른 오해와 맞닥뜨렸다.
난생 처음 파리에 발을 디딘 날. 한국에서부터 워낙 정신없이 여행을 준비한 터라 어디를 갈지 무엇을 할지 제대로 정하지도 못한 채 도착한 숙소에서 얘기를 나눠야만했다. 정말 눈 깜박하니 파리였다. 그러고 싶진 않았지만, 다음날 우리는 관광객 티가 팍팍 나게 가이드 책을 끼고 샹젤리제 거리로 향했다.
"마카롱 그거 별로야." "아마 몸에도 안 좋을 걸?" "나는 한 번도 맛있게 먹은 적이 없어." "그럼 파리에서 굳이 먹지 않아도 되겠네."
여기가 샹젤리제? 대단할 것 같았던 거리는 의외로 명품 숍들이 늘어서 있는 것 외에 별로 큰 재미가 없었다. 걷고 또 걷다가 잠시 쉴 곳을 찾을 때 마침 책에서 본 '라 듀헤'라는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마카롱을 파는 가게였는데, 정말 유명한 곳인지 사람들은 꽤 넓은 가게 안에서부터 문 앞까지 줄을 서 있었고, 야외 공간 역시 대기자가 많았다. '오! 이렇게 맛있고 유명한 곳인가!'라며 혼자 중얼거리자 JUNE군이 타이밍 맞춰 제안을 했다.
숙소에서 다음날 샹젤리제를 돌아다닐 일정을 짜면서 이런 대화를 했었다. 프랑스 밴드의 CD와 음악잡지, 그리고 런던에서 못 구한 플스 게임 '록밴드 비틀즈'를 사고, 눈으로만 볼 거지만 유명 디자이너 매장에도 들어가 보고, 저녁은 홍합요리를 먹자고. 어디에도 마카롱을 먹을 계획은 없었다. "왜 저렇게 줄이 길지?" "저기가 마카롱으로 유명한 라 듀헤(La Duree)라는 베이커리네!" "음, 다리도 아픈데 커피 한 잔 마실까?" "좋아, 그냥 속는 셈치고 마카롱도 한 번 먹어보자."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보니 다리는 아파왔고, 몸이 피곤해서인지 달달한 간식이 생각난 게 사실이었다. '마카롱 나 그거 별로야.'라고 워낙 강하게 얘기했기에 커피를 먹자는 핑계로 베이커리에 들어왔다. 그러나 케이크를 먹기에는 부담스러웠고, 왠지 지금은 마카롱이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주문한 바닐라, 딸기, 초코, 캐러멜 맛의 마카롱 세트는 몇 분 뒤 남자가 봐도 너무나 예쁜 접시에 담겨 등장했다. 그리고 한 입. 아! 이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까? 항상 실망만 했던 경험 때문에 '맛있어 봤자 마카롱이지'라는 고자세로 입에 넣었는데, 완벽한 반전이었다. 수비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엄청난 카운터 펀치를 맞았다고 할까? 특히 부서지는 머랭(이제는 마카롱 박사가 다 되었다.)조각 사이의 촉촉한 크림은 충격 그 자체였다. 얼마나 맛있었는지,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마카롱만 보이면 먹어보고 비교를 하고 있다. 물론 파리에서 먹었던 맛을 찾지는 못했지만, 마카롱을 입에 넣을 때마다 즐거웠던 여행의 추억이 온 몸이 퍼지는 기분이다. 과자나 초콜릿을 못 먹게 하는 JEE양도 이상하게 마카롱은 항상 괜찮다고 한다.
JUNE 10년 동안의 음악활동을 바탕으로 음악과 영상 작업을 하고 있는 미디어 작가. 30년 뒤 멋진 ‘로큰롤 할아버지’를 꿈꾸며 매년 여름이면 록의 고향 영국으로 날아가 보고, 듣고, 경험을 쌓는 중. 초 긍정적 마인드의 소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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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L E P HA N T - S HO E
JEE
La Duree
10년 동안 요리와 함께 삶을 보내던 중 록 페스티벌에 꽂혀 회사를 박차고 영국으로 날아감. 30년 뒤에도 스니커즈와 닥터 마틴이 잘 어울리는 멋쟁이 할머니가 되고 싶어 함. 항상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걱정녀.
주 소: 전화번호 : 영업시간 : 지하철역 : 홈페이지 :
75 avenue des champs elysees 01 40 75 08 75 07:30~23:00 (평일) 07:30~24:00 (토) 08:30~23:30 (일) George V www.laduree.fr
"음, 다리도 아픈데, 커피 한 잔 마실까?" "근데, 마카롱 싫어하잖아?" "피곤하니까 커피 마시려고." "음, 나는 마카롱 하나 먹을까 생각중인데." "그래? 그럼 하나씩 먹어볼까?" "좋아, 그냥 속는 셈치고 마카롱도 한 번 먹어보자." 사실 가이드 책에서 보긴 했지만 의심도 많고, 첫눈에 마음을 다 줄 수 없기에 반신반의하며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또 고민하고 있었다. 사실 마카롱이라면 설탕과 달걀흰자가 주가 되어 건강에 안 좋다는 생각과 한국에서 먹어봤던 맛만 떠올랐다.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는 얘기. 난 그다지 까다롭지 않은 여자인데 말이다. 그래도 새로운 곳에 왔으니, 마음을 열기로 했다. '마카롱에 도전!' 20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커피와 마카롱 세트를 주문할 수 있었다. 막상 눈앞에 놓인 마카롱은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뻤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사르르 녹는 것이 진짜 놀라운 맛이었다. 또 속은 쫀득쫀득한 게 진짜 세상에 이런 맛이 있을 수 있을까? 그동안 먹었던 것들은 다 뭐였단 말인가! 배신감이 심하게 들 정도였다. 우리는 둘 다 파리가 처음인지라 생각보다 높은 물가를 인지 못하여 용돈을 아주 적게 가져갔다. 그럼에도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바로 다음날 '라 듀헤'에 다시 찾아가 마카롱 세트를 살 정도였다. 마지막 밤을 추억하며 파스텔 톤의 예쁜 마카롱을 먹으려던 계획이었지만, 관광객의 가방 안은 생각보다 짐이 많았고, 마카롱은 부서지고 눌린 모습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비록 못생겨진 마카롱을 먹긴 했지만, 한 여름 파리의 마지막 밤은 꽤 달콤했었다. 서울로 돌아와 JUNE은 가끔씩 케이크 가게를 들르거나 마카롱이 보이면 사먹자고 조른다. 보통 단 음식은 건강을 생각해 말리는 편이지만, 마카롱만큼은 파리에서의 기억 때문인지 같이 먹고 싶어지는 게 사실이다. 먹는 것 하나로 추억을 서로 공유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게 아닐까?
WORDS : 맹선호, PHOTOS: Julian Kim
고백합니다. 힙스터도 아니면서 힙스터의 취향을 소개한다는 게 저 같은 게으름뱅이에게는 무리라는 사실을 절감하며 자학한 한주였습니다. 지난 호에 이어 ‘힙스터는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가 <2>’를 준비해왔는데, 라디오헤드(Radiohead) 내한 소식에다 토로 이 므아(Toro Y Moi)와 더 페인즈 옵 빙 퓨어 엣 하트(The Pains of Being Pure at Heart)의 공연에 흥분하는 바람에 그간 리스트업해놓은 힙스터 밴드들을 제대로 찾아보지 못했네요. 무릎 꿇고 반성 후 절차탁마해서 다음 호에 찾아뵙겠습니다. 이번 호에는 대신 특별판으로 꼭꼭 숨겨놓았던 런던의 부티크 페스티벌 오프셋 리뷰를 공개합니다. 관객 대부분이 힙스터인 인디 페스티벌의 미학을 엿보시길 바랍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부티크 페스티벌의 미학,
Offset Festival
말
그대로 페스티벌의 시대이다. 전 세계적 페스티벌 붐의 선두주자인 영국은 이제 여름이면 주말마다 기차역에 텐트를 짊어진 페스티벌 고어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페스티벌은 쿨한 여가 생활로 여겨지고, 페스티벌 패션 가이드가 잡지들을 빼곡히 채운다. 최근 영국에서만 한 해에 400개가 넘는 페스티벌이 열리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이 페스티벌의 홍수 속에서 거대한 흐름을 벗어나려는 움직임들이 조금씩 눈에 띈다. 점점 상업화되어가는 대형 페스티벌과는 반대로 작은 규모의 친근감 있는 부티크 페스티벌의 등장이 그 중 하나. 한없이 치솟는 대형 페스티벌의 티켓 가격과 비교해 저렴한 티켓 가격부터, 쾌적한 캠핑 환경, 여유로운 분위기들이 점점 많은 관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런던 멋쟁이들은 다 모인 스타일리쉬 런던 근교 숲 속 페스티벌 시내에서 지하철로 30분 정도면 도착하는 런던 동북쪽의 하이놀트 숲(Hainault Forest)에서 열리는 오프셋 페스티벌(이하 오프셋)은 부티크 페스티벌계의 떠오르는 샛별이다. 말 그대로 떠오르는 샛별 같은 뮤지션으로 가득하기 때문. 영국신문 가디언(The Guardian)은 오프셋의 라인업을 두고 ‘최소한 3년 안에 이름을 알릴 밴드들’이라며 이 페스티벌의 선구적 취향을 인정했다. 참고로 2010년 머큐리상(The Mercury Prize)을 받아 대중에게 널리 이름을 알렸던 엑스엑스The XX가 2009년의 오프셋 헤드라이너. 사실 처음 이 페스티벌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한 친구 덕분이다.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그녀는 지난해 완벽한 본인 취향의 라인업에 반해 오프셋에 왔다가 사이트를 배회하는 훈남, 훈녀들에 감동해 올해에는 반드시 친구들을 데려와 캠핑하며 더 오래도록 눈요기를 하겠다며 의욕을 불태우던 중이었다. 막상 그녀는 페스티벌 당일 심한 감기몸살에 걸려 침대에 누워 피눈물을 흘렸고, 그녀의 꼬임에 넘어갔던 나와 다른 친구들은 그녀가 지난 1년간 칭송하던 그 페스티벌의 ‘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페스티벌 사이트에는 이스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멋쟁이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 주변의 시선 따위는 의식하지 않은 -하지만 그들이 거울 앞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는 상상할 수 있다- 자유로운 패션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촌스러움과 빈티지의 경계에 가파르게 서 있는 듯한 독특한 복고 패션과 평범을 벗어난 헤어 스타일에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 사이트 안에는 꽤 커다란 규모의 빈티지 마켓이 운영되고 있었는데, 웬만한 런던의 빈티지 가게들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괜찮은 물건들이 꽤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9월의 쌀쌀한 저녁 기온을 물리쳐줄 두툼한 니트와 모피코트까지 멋쟁이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을 패션을 언제라도 장착할 수 있으니, 패션에 관심 있는 페스티벌 고어들은 집으로 돌아갈 때 짐 정리하느라 고민 좀 할지도 모르겠다.
선구적인 라인업, 인디 음악팬들에겐 보물창고 오프셋이란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비싼 몸값의 출연진과 그에 따른 비싼 티켓 가격, 사라져가는 페스티벌의 자유정신을 상쇄하기 위한 대안 페스티벌이다 보니 실제로 라인업이 창의적이고, 획기적이고, 또 선구적인 기운을 물씬 풍겼다. 다시 말하자면, 나처럼 미디어에 휩쓸려 떠먹여 주는 음악들만 날름날름 받아먹는 평범한 리스너에겐 오프셋의 라인업이 낯설기만 할 뿐이었단 이야기다. 하지만, 이 밴드들의 집합은 음악 좀 듣는다는 마니아들에게는 보물창고나 마찬가지. 실제로 페스티벌이 끝난 후, 음악 좋아하는 영국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니 다들 너무나도 부러워해서 괜히 아는 척 좀 하면서 어깨를 으쓱이기도 했던 것을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한다. 그런데 페스티벌 티켓을 사기 전부터 머릿속으로 꼭 봐야 할 밴드 이름들을 주르륵 나열하던 지금까지와는 다른 오프셋에서의 경험이 나에게는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주었다. 과거에는 지금 당장 내 발에 물집이 잡힐지언정, ‘너를 보기 위해 내가 이 거금을 투자해서 이 페스티벌에 왔다!’는 강렬한 의지로 정신없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뛰어다니다가 밤이면 녹초가 되곤 했더랬다. 하지만 오프셋은 그런 강한 욕망이나 의지와는 거리가 먼 페스티벌이었다. 주로 잔디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하늘 위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거나, 맥주를 홀짝였다. 주변에서 이 밴드가 괜찮다더라는 말에 어슬렁어슬렁 스테이지로 움직이며 어떤 재미있는 공연인가 하고 구경하는 것은 아마도 오프셋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 게다가 오프셋의 관객들은 무대 앞에 매달려 서로 밀치며 공연을 보는 것이 쿨한 행동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인지, 아니면 한껏 차려입은 옷이 망가질까 봐 그러는 것인지 무대 앞자리 사수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잔디 위에 앉거나 누워 들려오는 음악을 여유롭게 즐길 뿐. 덕분에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무대 앞 펜스를 잡고 마음에 드는 밴드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돗자리에 앉아 한참 피자 삼매경에 빠져있는데 갑자기 메인 스테이지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이스라엘 밴드 모노토닉스(Monotonix) 때문이었다. 얼마 전 스페인의 한 페스티벌에 다녀온 친구가 ‘완전 미친 사람들’이라며 오프셋에서 꼭 봐야 한다고 강조에 강조를 거듭하던 그 밴드였다. 공연장에서 수많은 서핑을 보아왔지만, 커다란 플라스틱 휴지통 안에 팬티만 입고 들어가서 관객들의 머리 위를 서핑하는 보컬 아미 샬레브(Ami Shalev)의 공연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공연 내내 무대 위는 텅 비어 있었고, 밴드 멤버들은 드럼까지 들고 객석으로
내려와서 공연했다. 아미는 어느새 높다란 콘솔 천막 위에 올라가 관객들을 상대로 개그 만담을 시작했고, 관객들 사이에 역시 팬티만 입고 섞여 있던 다른 멤버들은 다음 곡을 시작할 때까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 없이 진정 자유로웠던 공연이 끝나자 그는 공연 내내 흩뿌려댔던 자신의 옷들을 챙기러 객석을 돌아다녔고, 함께 즐겼던 관객들은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마음 내키는 대로 공연을 보다 보니 어느새 헤드라이너 미스터리 젯(Mystery Jet)의 무대까지 끝나고, 다른 작은 스테이지들의 조명도 모두 꺼졌다. 오프셋은 캠핑 사이트와 공연장이 분리되어 있는데다가 런던 시내와 가깝다 보니 당일치기로 페스티벌을 즐기는 관객들이 많아 밤이면 사이트가 꽤나 조용해진다. 피곤하지도 않고 잠도 오지 않아 일행들과 조용한 페스티벌 사이트를 산책하니 우리처럼 잠들기 아쉬운지 술자리를 벌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서로 모르는 사이임에도 페스티벌이란 공간은 자연스럽게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해주는 이상한 기운이 있나 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까 낮에 꽤 인상 깊은 공연을 보여주었던 아트 브룻(Art Brut)의 멤버들이었다. 아, 이런 동네 청년들과의 잡담 같은 분위기라니 이 페스티벌 정말 친근감이 넘치는군. 심지어 일요일 저녁 공연이 끝나고, 런던 시내로 향하는 지하철 맞은 편 좌석에는 조금 전 무대에 섰던 카리부(Caribou)의 한 멤버가 퇴근 중이었다. 출연진과 관객이 함께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한없이 친근한 페스티벌이라니. 오프셋에 진정 어울리는 완벽한 엔딩 아닌가. E LE P H A N T-S H O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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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ROOM
MUSIC OF RESISTANCE:
Виктор Робертович Цой (Viktor Tsoi)
지금은 해체된 구 소비에트의 마지막 영웅 빅토르 로베르토비치 초이. 그는 불꽃 같은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었다. WORDS : Julian Kim , PHOTOS : www.cosmo.vgorode.ru
희
미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방학 때마다 찾아가서 지내곤 했던 사촌 형네 생각이 참 많이 난다. 조그마한 방에 모여 사촌 형들과 함께 보던 만화책, 286 컴퓨터에 플로피 디스크를 넣고 하던 흑백 NBA 농구게임 그리고 동네 친구들과 함께했던 팽이치기, 눈싸움 같은 놀이에 즐거워하며 뛰어놀던 시절은 지금은 모두 아련한 향수가 되어있다. 그랬던 시절, 먼지 수북이 쌓인 사촌 형의 책장 속에서 발견한 책 한 권. 그 책은 빅토르 초이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자서전이었는데 ‘그’의 존재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을 때 나에게는 무척이나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한동안 빅토르 초이라는 인물과 그의 음악에 푹 빠져 지냈었다. '그'란 인물을 완전히 잊고 지내던 어느 날, 필자의 러시안, 카자흐스탄 친구들이 빅토르 초이와 키노를 알고 있냐며 물었었다. (친구들끼리 내기를 했던 모양이다)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마르셀이 마들렌을 먹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것처럼 한동안 잊고 지냈던 빅토르 초이란 인물이 다시 떠올랐고 어린 시절 기억의 조각들도 함께 되살아났다. 이번 저항의 음악에서는 필자의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빅토르 초이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노래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자신의 메시지를 사회와 대중들에게 전달하려 했던 빅토르 초이의 음악관과 또한 그의 노래가 열렬한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 소련 사회의 모습도 단편적으로나마 다뤄보려고 한다. 그럼 소비에트 록의 선구자로 여겨지며 아직도 러시아를 비롯한 구 소비에트 연방 국가의 사람들 기억 속에 깊이 남아있는 빅토르 초이의 음악과 그의 삶을 들여다보도록 하자. 세상엔 죽었어도 죽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인간의 역사 속에 함께 숨 쉬고, 늘 기억되는 그런 사람. 우리는 이런 이들을 영웅이라 부른다. 지금은 해체된 구 소비에트의 마지막 영웅 빅토르 로베르토비치 초이(ВикторРобертович Цой).그는 불꽃 같은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었다. 1962년 6월 21일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한국인 2세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 출생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까레이스키 3세였다. 빅토르 초이는 어릴 적 할아버지로부터 10
E L E P HA N T - S HO E
동양적인 철학사상을 많이 교육받았다고 하는데 이러한 동양적 사고는 훗날, 그의 음악 세계에 있어 철학적인 가사들의 기반이 되었다고 받아들여진다.
재편성하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탄생한 그룹이 바로 키노 (КИНО : 러시아어로 ‘영화’라는 뜻)였다. 그들의 데모테이프는 처음엔 레닌그라드, 그리고 나중에는 러시아 전역의 록매니아들에게 퍼지게 되었다.
5살 때 레닌그라드 (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하게 되는데, 후에 그의 사망 후 구소련연방에서 독립한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사이에서 그의 국적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논쟁이 벌어졌을 때 카자흐스탄에서는 크질오르다가 실질적인 출생지이므로 당연히 그의 국적이 카자흐스탄이라고 주장했고, 러시아 측에서는 그의 주 활동지였던 레닌그라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그가 인정받는 아티스트가 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곳이라며 그의 국적이 러시아라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결국 국적은 러시아로 하되 출생지가 카자흐스탄임을 반드시 표시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지만, 이 에피소드 하나만으로도 그의 존재가 얼마나 컸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지금도 필자의 친구는 빅토르 초이가 카자흐스탄인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레닌그라드로 옮겨온 빅토르는 세로브 예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음악에 심취해 1974년 그의 친구 막심 빠쉬코프와 함께 교내에서 ‘팔라타 세스토이(제6병동)'이라는 그룹을 결성. 그러나 저항적이고 자유 지향적인 록은 당시 소련의 공산 체제하에서는 반국가적인 음악으로 간주되던 시절이었기에 록을 연주한다는 이유로 퇴교를 당하게 되었다. 방황 끝에 다시 시립 제61 기술전문학교에 들어가 목각을 전공하게 되었고 재학 중이던 알렉세이 르빈과 올레이 발리스카와 함께 그룹 ‘가린과 쌍곡선’을 결성하게 된다. 그룹을 결성하여 언더그라운드 클럽, 길거리, 파티에서 연주하던 1981년, 당시 러시아 최고의 록그룹 ‘아쿠와륨’의 리더 보리스 그레벤쉬코프가 우연히 빅토르 초이의 연주를 파티에서 듣게 되었고, 그의 재능을 인정해 당시 레닌그라드의 유일한 합법 록 공연장이었던 레닌그라드 록 클럽에서 공식 데뷰 무대를 마련해 주었다. 이때 보리스 그레벤쉬코프는 빅토르 초이의 음반을 내주기 위해 그의 프로듀서가 되었고, 빅토르는 올레그 발리스키가 탈퇴한 ‘가린과 쌍곡선’을
이듬해 키노는 1982년 최초의 앨범인 "45(소록 피아트)"를 발표했는데, 앨범 제목을 45로 붙인 이유는 앨범의 재생시간이 보너스 트랙을 추가하여 총 45분이라는 단순하고도 즉흥적인 이유에서였다. <45>의 첫 곡 ‘시간은 있고 돈은 없다’(Времяесть,аденегнет)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키노의 초창기 곡 중에 한 곡으로 빅토르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앨범에 수록된 ‘외곽전철’(Электричка)이라는 곡은 원치 않은 곳으로 향하는 전차에 끌려가고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곡으로 당시 개인의 삶을 보장하지 않는 소비에트 전체주의 체제의 부조리함을 은유적으로 비판한 가사로 금지곡이 되기도 했고, ‘알루미늄 오이’ (Аллюминиевыеогурцы)라는 곡은 미사일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반전음악이라는 해석도 있다. 로우파이로 레코딩되었지만 비범한 재능이 번뜩이는 이 앨범은 언더그라운드에서 퍼져 나갔는데, <45> 앨범의 곡들을 포함한 키노의 초기작들은 포크에 좀 더 가까운 음악이었다. 첫 번째 앨범이 나왔지만, 대중적인 지지를 아직 얻지 못하고 있던 빅토르는 여전히 시련의 나날들을 보내야 했다. 첫 번째 앨범이 나오고 같은 해 두 번째 앨범 <유명하지 않은 노래들>이 나왔는데, 이 앨범 또한 키노 사운드의 전형이 되는 어두운 뉴 웨이브 스타일의 흔적을 느낄 수 있어서 굉장히 매력적이다. (수록곡들 중에는 빅토르 최의 히트곡 중 하나인 ‘마지막 영웅’의 초창기 버전이 실려있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록그룹 경연대회에서 주최측의 애매한 판정으로 참패당한 키노는 내부분열이 생겨 알렉세이 르빈이 탈퇴하고 빅토르는 심한 절망에 빠졌다. 그에게 미래는 여전히 어두운 것만 같았다. 빅토르는 노래 말고, 실질적으로 돈이 생기는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음악 활동을 하면서 일 할만 한 직장은 그리 많지 않았고 힘들게 구한 일자리는 보일러공이었다. 그는 낮에는 어느 건설회사 기숙사의 보일러실에서 보일러공으로
밤새워 일하며, 노래를 만들어 그 만의 음악적 세계를 넓혀나갔고, 1984년 네 번째 앨범 "캄챠트카의 책임자" (러시아어로 캄챠트카는 보일러실의 속어)가 나오게 되었다. 훗날 그의 사후에 앨범이 쓰였던 이 보일러실은 러시아의 자유와 저항을 상징하는 성지가 되었고, 그 작은 보일러실에서 열었던 그만의 작은 콘서트는 이후 레닌그라드 언더그라운드의 신화가 되었다. 힘든 삶 속에 하나의 위안이 있었다면 ‘나는 선언한다’라는 노래로 러시아 국제 평화재단의 반전가수상을 받은 것 정도였다. 아무튼, 이 앨범에서는 색소폰, 첼로, 키보드 등의 세션 악기들을 가미해 밴드의 소리 영역을 확장시키는 실험적인 시도가 엿보이고 가사 또한 사회 비판적이라고는 하나 표현은 매우 시적으로 승화되어 있다. 공장, 학교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팬들이 원하는 어느 곳에서든 공연하며 입지를 굳혀갔던 그에게 1985년 평생에 가장 기쁜 일이 생겼는데, 마리안나와 그의 아들 샤샤 초이가 태어난 것이다. 또한, 같은 해 레닌그라드 록그룹협회 주최의 콩쿨에서 대상을 받으며 음악 실력을 입증받았다. 그러나 키노의 4장의 앨범 <45>, <유명하지 않은 노래들>, <46>, <캄챠트가의 책임자>는 여전히 다수 대중의 관심 밖에 있었다. 이 시절 키노는 다른 록그룹들과는 조금씩 더 차별화된 길을 걷고 있었다.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되면서 많은 음악인이 서구의 록 그룹들을 모방하려 하였다면, 키노는 러시아 특유의 정서를 담은 록을 구사하며 젊은이들의 사랑과 고독, 전쟁과 체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노래했다. 여전히 언더그라운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키노는 다시 의기투합하여 앨범 <밤> 녹음을 마쳤지만, 이 앨범은 녹음기사와의 문제로 나오지 못했고, 대신 <이것은 사랑이 아니야…>를 발표했지만, 이 음반 역시 흥행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캄챠트카의 책임자>가 좀 더 어두운 느낌의 음악이었다면 이 앨범은 밝은 느낌이 난다. ‘내 집을 비핵화지대로 선포한다’에서는 가사에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반전 의식을 담고 있다. 키노가 처음으로 인기를 얻었던 앨범은 1986년 발매된 <밤> (Night) 때부터였는데, 앞에서 언급했듯 이 앨범은 다섯 번째 앨범이 되었을 뻔했지만 여섯 번째 앨범으로 세상에 발표되었다. 누구도 성공하리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발매 두 달 만에 50만장을 기록하더니 몇 달 지나지 않아 200만장이나 팔려나갔다. (또한, 앨범의 6곡이 <레드 웨이브: 소련의 언더그라운드 밴드 컴필레이션>에 수록되어 미국에서 발매되기도 하였다) 드디어 키노의 음악이 언더그라운드의 컬트를 벗어나 소련연방 음악차트 1위를 달리게 된 것이었다. 페레스트로이카 시대가 시작되면서 언더그라운드를 벗어난 키노는 1988년 7집 앨범 <혈액형>을 발표하며 진중하고 비장한 음악을 내놓았다. 이 앨범은 키노의 가장 인기있는 앨범이고 타이틀곡 ‘혈액형’은 영화 이글라의 메인 테마곡으로 사용되면서 키노를 대표하는 곡이 되었다. 앨범 전체적으로 어레인지도 굉장히 잘 짜여있고 기타 밴드의 포맷은 유지하면서 전자음을 적절히 섞어낸 사운드는 키노 사운드 전형을 확립시켰다고 할 수 있다. 소련 정부에서는 일체의 공적 대응을 자제하며 애써 무시했지만, 이 앨범은 굉장한 인기를 끌어 두 번째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것은 물론 ‘사미즈다트’ (소련 체제하에서 출판을 금지당한 문인들이 지하에서 몰래 찍어내 돌리던 유인물 혹은 출판물) 처럼 카세트테이프로 대량 카피되어 소련 전역에서 돌아다닐 정도였다고 하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룹명 키노가 말해주듯 빅토르는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평생 4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그 중 라쉬드 누그마노프 감독의 <이글라>는 마약과 범죄에 찌든 무기력한 젊은이들의 개혁과 변화에 대한 갈망을 밀도 있게 그려 15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후에 오데사에서 열린 황금 쥬크 영화제에서 최우수 배우로 선정되어 구 소비에트 젊은이들에게 저항과 자유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또한, 그는 <Assa>라는 영화에서 그의 밴드와 함께 1989년 나온 앨범 <마지막 영웅>의 ‘변화’라는 곡을 부르는데, 이 곡이 바로 <혈액형>과 함께 빅토르 초이와 키노를 대표하는 곡이다. 이 곡은 페레스트로이카에도 아주 큰 영향을 끼쳤는데, 많은 젊은이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자신들의 바람을 공감했다. 페레스트로이카는 빅토르 초이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아닌가 싶다. 같은 해 나온 후속 앨범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에서는 더욱 묵직한 록 사운드를 선보이며 5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 이때 키노는 소비에트 연방 밖을 벗어나 프랑스, 이태리, 미국 등지를 돌며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다. 자국 내 공연의 암표는 무려 2만 루블까지 암거래되었는데, 그러나 이 시기에도 빅토르 최는 월급 50루블의 보일러공 생활을 계속했다고 한다. 1990년에는 모스크바 루즈니키 경기장에서 대규모 단독 공연을 가지면서 최절정을 맞이했는데 이때 경기장에 모여든 관중들은 공식 집계로 62,000여 명 (비공식 10만여명)에 달했다니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오늘 나는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 - 빅토르 초이 1990년 8월 15일, 빅토르가 발트해 동부 리가의 외딴 시골 길에서 마주 오던 버스와 충돌해 사망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그는 뮤직비디오 촬영과 휴식차 라트비아 공화국에 체류하고 있었는데 낚시를 즐기고 자신의 승용차로 호텔로 돌아오던 중 비운의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 빅토르 초이의 사망소식이 알려지자 당시 소련은 온 나라가 비통함에 잠겼으며 그를 따라 5명의 여인이 자살하고 광적인 팬들의 성화로 장례식이 며칠씩 연기되는 등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런데 얼마 후 빅토르 초이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타살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를 죽음으로 이끈 교통사고에 대한 경찰의 명확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 더욱이 그의 부인 마리안나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빅토르의 시신을 공개하지 않고 단순히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났다는 경위만 보고해 의구심을 일으켰다. 소련 해체에 불만을 품은 강경파 KGB에 의한 암살이 아닐까? 라는 추측을 낳기도 했는데, 당시 진보세력과 보수파 간의 극심한 갈등 속에 있었던 소비에트의 상황을 보아도 그렇고, 아무런 수사기록도 남아있지 않아 재수사 불가한 것 등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혹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그의 마지막 앨범이 유실될 뻔했지만, 보컬 데모 테이프는 다행히 맴버들에 의해서 복원되었으며, 같은 해에 그의 유작은 <쵸르늬> 블랙 앨범으로 나오게 되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빅토르 초이가 한국공연을 앞두고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다. 그토록 할아버지의 나라에 가서 공연하고 싶어했던 빅토르는 한국 땅을 밟지 못하고 세상과 이별했다. 자유와 저항을 노래했던 음유시인 빅토르 초이- 그는 공산주의 체제에 억눌린 구소련 젊은이들에게 노래와 영화를 통해 자유를 향한 의지를 전파해 당시 공산당 서기장인 고르바초프가 개방정책을 채택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음악과 가사에는 러시아 특유의 음울함과 서정성이
녹아있고, 자유와 민주주의, 삶, 사회적 메시지가 담겨있다. 1980년대 전체주의 사회의 통제와 탄압속에서 그처럼 정제되면서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던 뮤지션은 극히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그중에서도 그만큼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내면적 욕망을 노래로 표출해 낸 이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러시아를 비롯한 구 소비에트연방 국가들의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마지막 영웅’이라 부른다. 그가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르바트 2번지 그의 추모의 벽 (일명: 통곡의 벽) 앞에선 끊임없이 그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그를 기리는 추모글이 계속 쓰이며, 그의 무덤 앞에는 매일 꽃들이 헌화되고있다. 그가 남긴 음악과 메시지가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Пачка сигарет" (A Pack of Cigarettes)
"Группа крови" (Blood Type) E LE P H A N T-S H O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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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n red
union chapel / london photo : julia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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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ORDS : JUNE, PHOTOS : 石군
2011년 겨울. 홍대 모 술집에서 있었던 실화. 어느 일행의 술자리에 크라잉넛의 베이시스트 한경록이 잠시 합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 "어! 크라잉넛이죠?" "안녕하세요. 크라잉넛의 '캡틴 록'입니다." "진짜 팬이에요!" "저희 노래 '넌 내게 반했어' 좋아하시나요?" "그럼요. 그 노래 너무 좋아해요!" "노브레인의 '말달리자'는요?" "노브레인 '말달리자'도 당연히 알죠!" "에잇!"
CRYING NUT
Q : 잘 안 알려진 얘기지만, 노브레인 초창기에 크라잉넛의 드러머 이상혁이 멤버였죠? 성우 : 정식 멤버는 아니었고, 초반에 객원 멤버로 같이 했었죠. 경록 : '드럭'에서 시작하던 당시에 성우가 크라잉넛 객원 보컬을 하기도 했었어요. 서로 같이 연주하고 공연을 다녔으니까요. 성우 : 항상 드럭 식구들끼리 같이 움직였으니까 연주도 자연스럽게 도와주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희는 5인조 시절도 있었죠.
Our Nation 1집 (1996) 말달리자 (1998) 서커스 매직 유랑단 (1999) 하수연가 (2001) 고물라디오 (2002) 와일드 와일드 라이브 (2003) OK 목장의 젖소 (2006) 불편한 파티 (2009)
해석이었지만, 버버(정민준)가 들어오면서 헤비한 사운드가 만들어졌어요. 음, 예를 들면 유명한 음식점에서 요리사 한 명이 나가므로 가게가 잘못될 수도 있지만,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도 생긴다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현재의 노브레인에 아주 만족하고 있어요. Q : 반대로 오리지널 멤버들과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크라잉넛은 어떤가요? 경록 : 문득문득 우리도 놀라요. 음악 작업도 힘들지만, 인간관계가 제일 어려우니까요. 10년은 되야 서로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더라고요. 17년 동안 같은 일로 웃고, 울고, 화내면서 멤버들의 표정이 닮듯이 크라잉넛의 음악도 그런 표정이 생긴 것 같아요. 그동안 음악을 만들면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는데, 정답이 없는 문제에 답을 내려고 다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서로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됐어요. 너무 귀만 기울여서 지금까지 앨범이 안 나오고 있지만요. (일동 웃음) Q : 크라잉넛은 귀는 그만 기울이고 녹음을 해야 되겠군요. (웃음) 장점은 들었고, 단점은 뭔가요? 경록 : 너무 잘 안다는 게 짜증이 나요. 결혼은 안했지만, 부부생활이 이럴 것 같아요. 징글징글하다는 표현이 딱 맞겠네요. 성우 : 마누라는 예쁘기라도 하지. (일동 웃음) 경록 : 공연 다닐 때 차에서 주로 생활하면서 계속 같이 있으면, 서로 예민 해져서 티격태격하게 되거든요. 이혼 안 하고 사는 게 신기해요.
Q : 말 나온 김에 '드럭' 얘기를 해볼게요. 돌이켜보면 어땠나요? 경록 : 제일 재밌던 시절이었어요. 저희와 클럽, 그리고 인디음악의 시작이었고, 펑크가 대세였잖아요. 크라잉넛, 노브레인 두 팀 모두 지금보다 훨씬 반항적이었고요. 라이벌이 안될 수가 없는 구조였어요. 오히려 저희보다 양 밴드의 팬들이 더 심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음악적 발전도 더 빨리 되었다고 생각해요. 성우 : 지금은 술을 안 마시는 편인데, 그때는 저도 술을 꽤 마셨어요. 경록 : 못 먹어도 일단 성우가 술병은 항상 들고 있었어요. (일동 웃음) 성우 : 매일 술을 마셨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던 게 신선했어요. 드럭은 현실과 동화되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의 해방구 같은 느낌이었으니까요. 이곳에만 오면 한마디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어요. 경록 : 야! 니가 제일 이상했어! (웃음) 성우 : 너도 이상했어! (일동 웃음)
Q : 크라잉넛이 보는 노브레인의 장점은 뭔가요? 경록 : 노브레인이란 말처럼 아무 생각 없게 만들어주는 음악과 무대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변화를 하면서 자기 색을 찾았다는 게 큰 힘인 것 같아요. 얼마나 고민이 많았겠어요.
Stand Up Again! (2004 EP) Boys, Be Ambitious (2005) 그것이 젊음 (2007) Absolutely Summer (2009 EP) High Tension (2011)
Q : 둘 다 정상은 아니었죠? (웃음) 경록) 너는 빨강머리에 말도 안 되는 체인까지 달고 다녔잖아. 성우 : '허리케인 조는 울지 않아' 이런 헛소리만 했던 게 누군데? (일동 웃음) 경록 : 일단 패션에서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펑크 로커, 외롭잖아요. 처음 성우를 봤을 때 반가웠어요. 성우 : 말 그대로 둘 다 정상은 아니었어요. (웃음)
Q : 반대로 노브레인이 보는 크라잉넛의 장점은 뭘까요? 성우 : 없습니다! (일동 웃음) 우리가 가질 수 없는 오리지널 멤버라는 부분은 부럽기도 하고, 두고두고 박수 받아야 될 일이죠. 근데 몇 달 있다 누가 나오는 거 아니야? (웃음) 경록 : 내가 잘릴 것 같은데? (웃음) 성우 : 동네 친구들로 구성된 멤버들끼리의 하모니가 가장 큰 장점이죠.
라인업 1기 이성우(보컬), 정재환(베이스), 차승우(기타), 황현성(드럼), 박진(기타) 2기 이성우(보컬), 정재환(베이스), 차승우(기타), 황현성(드럼) 3기 이성우(보컬), 차승우(기타), 황현성(드럼) 4기 이성우(보컬), 정재환(베이스), 황현성(드럼) 5기 이성우(보컬), 정민준(기타), 정재환(베이스), 황현성(드럼) 6기 이성우(보컬), 정민준(기타), 정우용(베이스), 황현성(드럼)
Q : 이제 본격적으로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의 구별법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크라잉넛은 큰 변동 없이 오리지널 멤버들이 함께하고 있고, 노브레인은 다양한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새로운 멤버들과 만들어가는 밴드의 장점은 뭘까요? 성우 : 예전 멤버들과 만들어냈던 색깔이 빨강색이라면, 지금은 파랑색인 것처럼 장점은 역시 변화죠. 해보지 못했던 실험이 새로운 멤버들로 인하여 쉽게 되는 건 행운이라 생각해요. 차승우가 있었을 때는 로큰롤 기반의
Q : 노브레인이 보는 크라잉넛과의 차이점은 뭔가요? 성우 : 일단 키가 다르죠. (웃음) 노브레인에서 제일 작은 현성이가 크라잉넛의 평균 키니까요. 경록 : 그래서 키보고 베이스 뽑았냐? (웃음) 성우 : 같은 펑크라는 기본을 가지고 있지만, 해석은 다르게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크라잉넛은 가사를 비롯해 기발하고 아기자기한 재미가 곡에 녹아있죠. 제가 좋아하는 '오줌싸개 제너레이션' 같은 가사는 절대 우리가
라인업 1기 박윤식(보컬), 이상면(기타), 이상혁(드럼), 한경록(베이스) 2기 박윤식(보컬), 이상면(기타), 이상혁(드럼), 한경록(베이스), 김인수(키보드)
NO BRAIN Our Nation 2집 (1997) 청춘구십팔 (1999) 청년폭도맹진가 (2000) Viva No Brain (2001) 안녕, Mary Poppins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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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공연이나 행사 중에도 이런 경우가 있나요? 경록 : 한참 영화 라디오스타가 알려지기 시작할 때 심했어요. 대학교 축제에 가면, 관객들이 '비와 당신'을 그렇게 불러달라고 했어요. 어떻게 할 수가 없었죠. 그냥 웃고 넘겼어요. (웃음) 성우 : 다음 곡 뭐할까요? 라고 물어봤더니, '말달리자'라는 말이 나와서 재미로 연주를 했어요. 관중 대부분은 크게 웃으면서 장난처럼 넘어갔는데, '룩셈부르크!!'를 외치는 거예요. 그때 '말달리자'가 우리 노래 아니라고 말했죠. (웃음) 실제 길거리를 지나가다보면 크라잉넛이란 얘기를 많이 들어요. 경록 : 저희도 마찬가지에요. 어! 노브레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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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노브레인은 어떤가요? 성우 : 당연한 얘기인데, 버버 같은 경우도 그냥 도와줄 때와 멤버일 때 입장이 다르더라고요. 멤버 변동이 있을 때마다 각기 다른 취향을 노브레인이란 하나의 이름으로 모아야 되니까 힘들었죠. 그런데 오히려 그런 작업이 어려운 만큼 재밌었어요. 지금은 저희만의 색깔도 생겼고요.
쓸 수 없어요. 기발함, 유머러스함, 겨드랑이를 살살 건드려주는 아픔이 크라잉넛만의 매력이죠. Q : 크라잉넛이 보는 노브레인과의 차이점은 뭔가요? 경록 : 우리는 외모가 귀공자 스타일이에요. (웃음) 농담이고, 성우가 말한 것처럼 노브레인이 저희보다 스트레이트한 매력이 있어요. 좀 더 시원시원하고, 고속도로 같은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그 안에 애수도 분명 있고요. 확실히 에너지는 강한 것 같아요. Q : 인터뷰 도중에 깨달았는데, 문신과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은 노브레인 에게 어울리고, 크라잉넛은 귀여움이랑 어울리네요. 경록 : 방금 귀공자라고 얘기했잖아요. (일동 웃음) 노브레인은 뇌가 근육질이라니까요. 상혁이 문신은 노브레인에 비하면 점이지요. (웃음) Q : 한참 웃었네요. 노브레인이 생각하는 크라잉넛의 곡 BEST 3는 뭔가요? 성우 : '말달리자'는 당연한 거고, 저는 '룩셈부르크'가 좋더라고요. 그냥 나라 이름만 나열하는 것으로 오해하시는데, 가사가 '위 아더 월드'잖아요. 내용이 너무 좋고, 멜로디도 정말 마음에 듭니다. 주제 때문에 잘못하면 교훈적인 계몽가로 느껴질 수도 있었는데, 크라잉넛만의 재치로 누구나 즐겁게 들을 수 있는 펑크곡이 되었죠. 또 다른 곡은 경록이가 작사 작곡한 '밤이 깊었네'요. 히트 곡은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보너스로 한 곡을 더 말하고 싶은데, '오줌싸개 제너레이션'이에요. 일단 가사가 너무 너무 좋은데다 윤식이가 허탈해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게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죠. 개인적으로 말도 안 될 정도로 멋진 노래라고 생각해요. 경록 : '오줌싸개 제너레이션'은 군대에서 만든 노래에요. 하고 싶은 건 많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냥 난 어린애, '오줌싸개'라는 느낌을 거기서 받았거든요. Q : 크라잉넛이 꼽은 노브레인의 BEST 3도 궁금하네요. 경록 : 초창기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던 시절을 떠올려주는 '아름다운 세상'이요. 그런 외침, 분노가 되게 솔직했던 것 같아요. 반어법적인 표현도 마음에 들고요. 실제 우리가 같이 어울려 놀 때 아름다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노래 뭐지? 문민정부, X까는 소리" 성우 : 아, '아주 쾌활한' 경록 : 맞다! '아주 쾌활한'. 기타 리프도 멋있고 공격적인 가사도 맘에 들어서요. 그런 가사는 아마 최초이지 않을까요? 노브레인의 똘끼, 순수한 에너지가 잘 느껴져서 골랐어요. 성우 : 너는 요새 우리 노래 안 듣는 것 같아! (웃음) 경록 : 아니야. 얘기할거야. 마지막은 크라잉넛도 공연에서 연주했던 '넌 내게 반했어'요. 분명히 과도기가 있었고, 힘도 들었을 거예요. 그러데 이 노래로 색깔을 찾았던 것 같아요. 심플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노브레인만의 곡이에요. Q : 노브레인의 '리틀 베이비', '넌 내게 반했어' 같은 노래들은 다른 의미로 앞서간 음악이었다고 생각해요. 성우 : 3집의 '리틀 베이비'와 그 후 '넌 내게 반했어'가 나왔을 때 주변에서 말들이 많았죠. 당시에는 실망, 배신이란 표현을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지금은 이해를 해요. 3집이 변화의 폭이 커서 그렇지 크라잉넛도 우리도 발표하는 앨범마다 변했다는 얘기를 계속 들었어요. 경록 : 저희도 매번 팬들한테 말랑말랑해졌다는 소리를 들어요. 성우 : 세면 세졌다고, 부드러우면 부드러워졌다고, 비슷한 느낌이면 똑같다고 욕먹으니까 어지간한 말은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고 있죠. (웃음) 경록 : 사실은 변화 안하는 게 제일 욕먹을 짓이잖아요. 같은 제품의 라면 스프도 1년마다 조금씩 바뀐다는데요. Q : 이번에는 서로 명반 한 장을 골라보죠. 노브레인이 꼽은 크라잉넛의 앨범은 뭘까요? 성우 : 제 취향으로는 첫 번째 앨범이죠. 다른 앨범도 다 좋지만, 1집 같은 경우는 빼놓을 노래가 없어요. 편곡이 전부 스트레이트해서 맘에 들어요. Q : 크라잉넛이 꼽는 노브레인의 명반 한 장은 뭐죠? 경록 : 같이 한창 달리던 그때가 그리워요. 그래서 '아우어 네이션(Our Nation)' 2집을 골랐어요. 노브레인의 첫 녹음인데 너무 잘하는 거예요. 성우 : 지금 들어보면 사운드가 유리창에 반사된 듯한 이상한 소리죠. '아우어 네이션' 1집은 날것의 느낌이라도 있는데, 2집은 그냥 안 좋아요. 경록 : 그래도 안 좋은 사운드를 성우의 거친 보컬이 다 덮어버렸어요. (일동 웃음) Q : 이번에는 공연에 대해 얘기할게요. 노브레인 최고의 공연은 언제였나요? 성우 : 15주년 공연이 의미도 있었고, 만족감도 커서 기억에 남아요. 경록 : 우리가 게스트로 간 게 10주년 공연이었나? 성우 : 아니, 그건 그냥 단독 공연이었어. 경록 : 제대하자마자 머리도 짧고, 무대도 어색한데 급하게 연락이 왔어요. 저희 컴백 공연도 하기 전이었는데, 게스트로 가서 공연을 재밌게 했었어요. 성우 : 우리도 한번 해줄게. 불러줘. Q : 크라잉넛에게 최고의 공연은 언제였나요? 경록 : 2007년 펜타포트 때가 기억에 남아요. 비 때문에 트라이포트 취소되고, 군대도 갔다 오고 하다 보니 8년 정도 큰 페스티벌에 설 기회가 없었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를 하면서 선곡을 하는데, 상혁이가 시작을 '말달리자'로 하자는 거예요. 그전까지 한 번도 첫 곡으로 한 적이 없었거든요. 실제로 해보니까 난리가 났어요. 슬램판이 형성되고, 푸드 코트에서 맥주 들고 뛰어오고, 무대 위에서 저희는 전쟁난 줄 알았어요. (웃음) 관객석 여기저기서 회오리가 몰아치는 장면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Q : 뜬금없는 질문인데 두 팀의 보컬을 바꿔볼게요. 크라잉넛에 이성우가 보컬이면 어떤 곡을 만들어 보고 싶나요? 경록 : 불대가리(이성우의 오랜 별명)가 보컬이라... 성우 : 너 탈퇴하는 거 아니야? (일동 웃음) 경록 : 진짜 자극이 될 것 같아요. '라몬즈(Ramones)' 같은 스타일이 어울릴 것 같아요. 성량이 좋으니까 스트레이트한 펑크 앨범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불대가리가 쓸쓸한 정서도 잘 담아내기 때문에 '밤이 깊었네' 같은 미디움 템포의 발라드도 잘 소화할 것 같아요.
성우 : 앞에서도 말했지만, 재치 있는 가사에 용수철처럼 통통 튀는 음악이 나올 것 같아요. 제가 힘 있고, 딱딱한 느낌이라면 윤식이는 그런 장점이 있죠. Q : 노브레인이 생각하는 크라잉넛의 미래는 뭘까요? 성우 : 지금 그대로 계속 가면, 산울림처럼 사이키델릭하면서도 즐거운 음악을 해낼 것 같아요. 이미 획을 그었지만, 더 큰 획을 긋지 않을까 싶네요. Q : 크라잉넛이 바라보는 앞으로의 노브레인 모습은 뭘까요? 경록 : 시작했을 때부터 좋은 의미의 라이벌이었는데, 10년 뒤에도 옆에서 이름이 들리고 있으면 서로 외롭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처럼 20년, 30년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Q : 같은 바람이에요. 오랜 꿈이지만, 가능하다면 노브레인과 크라잉넛 그리고 차승우를 비롯한 예전 드럭 식구들이 모두 모이는 특별한 공연을 기획해 보고 싶네요. 바세린 출신의 전 노브레인 기타 박진 씨도 포함해서요. 성우 : 이건 우리끼리만 한 얘기인데, 노브레인과 크라잉넛이 서로의 곡을 연주한 앨범을 제작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경록 : 랜시드(Rancid)랑 노에프엑스(NOFX)처럼! 성우 : 해보면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의 특징과 차이점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겠죠. 경록 : 정말 재밌겠네요. 성우 : 근데 더 헷갈려할 수도 있겠네요. (일동 웃음) Q : 차승우, 박진, 이상혁의 초창기 노브레인 라인업으로 녹음을 해봐도 의미 있겠네요. 경록 : 저도 노브레인에서 베이스 쳤으니까 재밌을 것 같아요. '알겠니 모르겠니' 같은 그 시절의 미발표곡도 녹음하고요. Q : 상상만으로도 기대가 커지네요. 이제 인터뷰 마지막이군요.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성우 : 노브레인은 작년에 앨범이 나왔으니까 올해는 싱글 발표 정도로 활동을 할 것 같아요. 다른 뮤지션들과 공동작업한 곡들도 선보일 예정이고요. 4월 7일 상상마당에서 공연도 있어요. 경록 : 크라잉넛은 서울소닉이란 이름으로 옐로우몬스터즈, 3호선 버터플라이와 SXSW에 참여해요. 신인의 마음으로 북미 투어를 다녀오면, 신선한 자극을 많이 받을 것 같아요. 그리고 올해는 어찌됐든 앨범을 낼게요. 성우 : 개인적으로는 일본을 비롯해 동남아시아에 K-POP만 있는 게 아니라 한국의 밴드문화도 있다는 것을 많이 알리고 싶어요. Q : 노브레인과 크라잉넛의 올해 계획들이 다 잘되길 바랄게요. 인터뷰를 통해 많은 분들이 문신과 근육 이외의 차이점에 대해 알게 되는 계기가 되면 좋겠네요. 경록 : 오랜만에 성우와 옛날 얘기 하면서 즐거웠어요.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이 같이 할 수 있는 특별한 공연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인터뷰였어요. 성우 : 저도 경록이랑 인터뷰 같이 하니까 재밌었어요. 공연도 그렇고, 앞에서 말한 앨범도 좋은 아이디어 같아요.
Q : 반대로 노브레인에 박윤식이 보컬로 들어온다면 어떨까요? E LE P H A N T-S H O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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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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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팬 컴플렉스가 알려주는 음반 제작 과정 초급편 WORDS : JUNE PHOTO: SHOWMUST 제공
음악을 했던 사람들이나 음반 관계자가 아니고서야 믹스, 마스터링, 혹은 데모 작업 등등 음반 제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쉽게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엘리펀트 슈가 2012년 3월, 4년 만에 5집 'O'를 발표하는 피터팬 컴플렉스를 통해 앨범 준비 과정을 들여다보는 코너를 준비해 보았다.
1. 아이디어1.스케치 아이디어 스케치 보컬 멜로디나 기타, 건반의 테마가 생각나면, 간단한 녹음을 한다. 물론 5선지에 음표를 그릴 수도 있지만, 대부분 녹음 장비를 이용해 아이디어를 저장한다. 최근에는 휴대폰에 다양한 기능이 있어서 어디서든 간편하게 녹음 할 수 있다. 예전에 많이 사용하던 휴대용 레코더는 거의 사라지는 추세.
Q : 새 앨범에 수록되는 곡들의 아이디어 스케치는 어땠나요? 지한 : 예전 앨범은 혼자 아이디어를 스케치하고 확장시켜나갔는데, 이번 앨범은 제가 아이디어를 들고 온 뒤 다른 멤버들이 전개해 나가는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우리로서는 최초의 시도였지요. 아이디어를 녹음한 파일을 각 멤버들의 컴퓨터에 복사를 한 뒤, 발전된 결과물을 다 같이 들어보는 방식이었죠. 마치 제가 피터팬 컴플렉스라는 회사의 CEO가 된 기분이었어요. (웃음)
2. 데모를 위한 편곡 위한 편곡 2. 데모를 아이디어 스케치가 끝나면 간단한 편곡으로 넘어가게 된다. 드럼 리듬과, 코드 진행을 만들며, 각 악기들의 라인을 정한다. 전반적인 곡의 구성도 짜는데, 바뀔 가능성이 크므로 충분히 염두에 둔다. 요새는 컴퓨터와 프로그램의 발전으로 데모를 위한 간단한 편곡까지 아이디어 스케치와 같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Q : 새로운 편곡의 시도가 있었는데,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지한 : 멤버 모두가 프로그래밍과 작곡, 작사 능력이 발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특히 기타를 담당하고 있는 치원이에 대한 재발견이 있었어요. 이때까지 발표된 피터팬 컴플렉스 앨범을 통해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되었죠. 그리고 멤버들과 제가 생각하는 전개가 다를 때 조정하는 부분이 아무래도 힘들었던 것 같아요. Q : 이번 5집 앨범을 통해 큰 변신을 했어요. 왜 신스 팝, 일렉트로닉이었나요? 지한 : 글쎄요... 왜 일렉트로닉이었을까요? 첫 번째는 기존의 방식이 심심해서였고, 두 번째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에요. 피터팬 컴플렉스가 일반적인 형태의 밴드였을 때, 각종 기타 이펙터를 엄청나게 사서 소리에 대한 실험을 많이 했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사운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죠. 기타 다음으로 빠지게 된 것이 신디사이저였어요. 기타 이펙터 대신에 다양한 신디사이저를 모으다보니 자연스럽게 일렉트로닉으로 넘어오게 되었죠.
3. 데모 3. 작업 데모 작업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성능이나 기능을 보여주기 위한 시범 또는 전시라는 demo의 사전적 의미처럼 음악에서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범적으로 곡을 만드는 과정을 데모 작업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까지 작업된 상태에서 녹음을 하느냐는 뮤지션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는 인트로와 절, 후렴구까지 구성해 놓고 녹음을 한다.
Q : 데모 작업은 어땠나요? 지한 : '자꾸만 눈이 마주쳐' 같은 노래는 데모가 정말로 30개 정도 되요. 록 버전도 있고, 피아노 버전, 통기타 버전, 드럼 머신과 피아노로 된 버전 등등 너무 많아요. 아마 일반적인 록 밴드였다면, 이렇게까지 다양한 데모가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일렉트로닉적인 접근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Q : 녹음 스튜디오를 작업실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지한 : 그렇죠. 100%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큰 장점이었죠. 반대로 단점은 관리를 해야 된다는 거죠. (웃음) 작업실이라는 공간 안에 아이디어 스케치를 할 때부터 우리의 결과물이 누적이 되는 거고, 그것은 정리되지 않은 악기와 선들의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하죠. 피터팬 컴플렉스라는 밴드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데에는 공간의 힘도 분명 크다고 생각해요.
4. 정식 4. 편곡 정식 편곡 데모 작업의 결과물을 통해 곡에 대한 장, 단점이 파악되면 좀 더 세부적인 편곡 과정으로 들어간다. 데모 버전이 많다면 그 중 실제 앨범에 수록될 버전을 골라야하고, 곡 구성도 완성시켜야 한다. 앨범 녹음 시 각 악기의 톤과 사운드를 최종 결정하지만, 편곡 때 많은 것들이 정해지면, 훨씬 진행이 수월하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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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일렉트로닉이기 때문에 편곡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것 같아요. 지한 : 일렉트로닉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이 편곡에 있어서 변화 가능성이 많다는 거죠. 드럼이라든가 기타 같은 악기 연주는 틀이 있기 때문에 한정적인데, 신디사이저는 변화의 폭이 더 큰 것 같아요. 그런 이유로 어제까지 마음에 들었던 편곡을 오늘 쉽게 바꿀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곡마다 다른 스타일의 버전이 많은 거죠. 어쨌든 새 앨범에 실리는 노래들은 모두 엄청난 변화와 고심 끝에 선택된 결과입니다.
5. 레코딩 5. 레코딩 정식 레코딩 전까지의 과정을 프리 프로덕션(pre-production)이라 하는데, 컴퓨터와 프로그램의 발전으로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 과정을 많이 거치면 거칠수록 노래가 다듬어지는 건 당연한 사실. 국내 인디 음악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도 고사양의 컴퓨터와 홈레코딩 시스템의 영향이 분명하다. 프리 프로덕션이 끝나면 앨범에 실릴 정식 녹음을 해야 한다.
Q : 레코딩 과정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겠어요? 지한 : 레코딩 과정이 시간적으로는 많이 축소되었죠. 실제 베이스를 치는 곡보다 무그(Moog)에서 베이스 사운드를 녹음하고, 드럼머신도 많이 사용했으니까요. 레코딩의 기본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분명 다른 개념이 존재하고 있는 거죠. 편곡을 하면서 녹음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해도 되고요. Q : 앞에서도 나온 얘기지만, 자신들의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진행한다는 건 큰 장점이죠? 지한 : 돈을 내고 사용하는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다면 훨씬 작업이 빨리 됐겠죠. (웃음) 작업시간이 무한대라고 생각하니까 결정이 자꾸 유보되더군요. 반대로 말하면 피터팬 컴플렉스의 음악이 무한히 변화할 수 있는데 일조를 했다고 생각해요. 제일 큰 장점은 독립된 공간이다 보니 편곡을 하다가 합주를 할 수 있고, 합주를 하다가 갑자기 녹음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6. 믹스 6. 믹스 DJ가 두 곡을 섞는 것도 믹스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믹스는 보컬, 기타, 베이스, 건반, 드럼 등등 노래 한 곡의 다양한 녹음 소스들의 밸런스를 맞춰 정리하는 것이다. 각 소스들의 음색과 좌우 패닝(panning), 이펙팅(effecting)을 비롯해 많은 것들이 이때 결정되며, 음반 제작 과정 중 레코딩과 함께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Q : 믹스 과정도 과거와 달랐을 것 같은데요. 지한 : 우리나라 최고의 뮤지션들이라 할 수 있는 두 분이 믹스 과정에 참여를 해주었어요. 밴드 잔향의 보컬 겸 사운드엔지니어인 이순용 씨와 레이시오스 출신이자 킬러컷츠 리더 상진 씨인데, 뮤지션이자 엔지니어, 사운드 디자이너인 분들과 작업을 해보니 예전보다 큰 공감대를 형성하며 믹스를 진행할 수 있었어요. 이 부분이 지금도 정말 만족스러워요. Q : 만족스러웠던 믹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듣고 싶군요. 지한 : 첫 번째 곡부터 확인할 수 있는데, 과도한 리버브를 마음대로 사용한 것처럼 예전에 하지 못했던 행동들을 할 수 있었죠. (웃음) 저희 스튜디오에서 편하게 하니까 곡당 몇 시간 안에 끝내야 되었던 과거와 달리 2~3일씩 믹스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여러 가지 시도가 가능했죠.
7. 마스터링 7. 마스터링 믹스 과정이 한 곡, 한 곡에 관한 것이었다면, 마스터링은 앨범 전체의 색깔을 만드는 작업이다. 곡마다 다른 볼륨과 톤을 조정해주고, 노래 사이의 간격도 정한다. 믹스 때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잘못된 믹스를 마스터링으로 크게 수정하기는 힘들다.
Q : 마스터링은 어땠나요? 지한 : 마스터링 역시 새로운 엔지니어와 장소를 선택했어요. 앞에서 말한 킬러컷츠 상진 씨의 소개로 찾아간 마스터링 스튜디오였는데, 알고 보니 슈가도넛의 멤버였던 김탁 씨가 운영하는 곳이었어요.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이라 반가운 마음도 들었고, 편하게 작업을 했죠.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왔어요.
8. 앨범 재킷 디자인 8. CD 프레싱 마스터링으로 음악 과정이 끝이 나면 프레싱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디자인된 앨범 커버를 프린트하고 CD를 찍어내는 것인데, 마스터 CD를 프레싱 업체에 넘기고 일주일 정도 기다리면, 비닐에 싸진 앨범 완제품을 받을 수 있다. 참고로 프레싱 최소 수량은 500장이다.
Q : 하나의 앨범이 나오려면 음악작업 외에 다양한 디자인 작업이 필요하죠. 커버 디자인은 음반 제작 과정 중 언제 나왔나요? 지한 : 앨범 재킷은 재작년에 이미 컨셉이 나왔어요. 5집의 "O"이기도 하지만, 제로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최창섭 작가를 만나면서 구체화 되었어요. 피터팬 컴플렉스 멤버들이 그분의 드로잉 모델이었고, 그것을 발전시킨 네 명의 일러스트 작업을 전반적인 앨범 디자인 컨셉으로 정했어요. 디지털 싱글 때는 1차 버전이었고, 완성된 버전이 정규 앨범 커버 형태로 소개될 예정이죠.
9. 뮤직비디오 9. 뮤직비디오 비닐에 싸진 따끈따끈한 새 앨범이 나오면, 홍보라는 단계가 필요하다. 공들여 만든 앨범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사용되는데, 뮤직비디오는 기본 중에 기본이다. 최근에는 DSLR 카메라의 발전으로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퀄리티있는 인디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쉽게 볼 수 있다.
Q : 홍보를 위해서는 영상 매체인 뮤직비디오가 필요하잖아요. 어떤 계획이 있나요? 지한 : 안 그래도 회의를 계속 하고 있는데, 뮤직비디오도 어떻게 보면 기존 방식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요. 100%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피터팬 컴플렉스의 신곡들이 들어가는 게임을 만들 계획이 있어요. 게임 영상을 뮤직비디오처럼 사용할 생각도 있고요. 어쨌든 독특한 아이디어의 영상이 될 것 같아요. Q : 게임을 만드는 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지한 : 재미있는 것이 피터팬 컴플렉스 멤버 한명 한명이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나라 여자 드러머 중에 누가 신디사이저란 악기를 완벽히 이해하면서 작곡, 작사, 미디 프로그래밍까지 다 소화해낼 수 있을까요? 경인이 같은 경우에는 로코모티브란 솔로 프로젝트를 통해 그걸 해내고 있고, 지일이 같은 경우에는 유학을 다녀와 팀의 국내외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치원이는 게임을 비롯한 전문 프로그래머에요. 그래서 게임을 개발해보자는 얘기가 나올 수 있었던 거죠.
10. 피터팬 컴플렉스 5집 '0' 컴플렉스 5집 '0' 10. 피터팬 Q : 마지막으로 3월 8일 발매되는 앨범 "O"는 어떤 앨범인가요? 지한 : 신스 팝, 혹은 일렉트로닉으로 스타일이 바뀌었기 때문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피터팬 컴플렉스 역사상 음악적으로는 가장 성숙한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90년대 인디음악이 시작되던 때부터 지금까지 몸을 부딪히고 놀았던 시대라면, 이제는 홍대에 필요한 것이 춤이라고 생각해요. 머리만 흔드는 걸 넘어서 스텝을 밟으며, 무대 위에서 뮤지션들이 하던 행동들을 관중들이 해야 되요. 저희 5집은 이러한 명제를 반영한 앨범이죠. 지금까지 앨범 제작 과정을 피터팬 컴플렉스 인터뷰와 함께 알아보았다. 음악 좀 아는 사람이 잘난 척하며 프리 프로덕션, 믹스, 마스터링이라는 단어를 쓰더라도 초급반을 수료한 엘리펀트슈 독자 여러분은 이제 겁먹지 않아도 된다! E LE P H A N T-S H O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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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Sketch
Russian Red: Live at Union Chapel 러시안 레드 2012. 1. 23 @ Union Chapel, London words , photo : Julian Kim 겨울 노을이 소리 없이 머무르다 간 자리에 어둠이 깔리고, 어두운 거리에 가로등이 환하게 길거리를 비추기 시작하면 런더너들의 발걸음은 집으로 향한다. 귀가하는 사람들 사이에 묻히다시피 ‘ 하이버리 & 이슬링턴 ’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유니언 채플로 향하는 길. 차디찬 바람에 얼굴은 한없이 얼얼해진다. 이날 런던 북쪽 이슬링턴에 위치한 유니언 채플에서는 러시안레드의 런던 공연이 있었다. (유니언 채플은 평소에는 교회로 쓰이지만, 소규모 이벤트가 종종 열리기도 하며 매년 ‘ Little Noise Sessions ’ 와 같은 어쿠스틱 자선 공연이 열리기도 하는데 페어포트 컨벤션(Fairport Convention),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와 같은 뮤지션들이 이곳을 찾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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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 나무의자에 앉아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마냥 지루하지 않았던 까닭은 ‘마리아 다 페(Maria da Fe)’의 ‘Ate Que A Voz Me Doa’와 같은 플라멩코 음악들이 흘러나와 교회 안 분위기를 채워주었기도 하지만 마드리드 출신의 아름다운 여인들과의 즐거웠던 수다 때문이기도 했다. 게다가 관객 대부분이 스페인 사람들이어서일까 … 마치 스페인에 여행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해서 조금은 이국적이었다. 카나리워프 (런던 동쪽의 금융회사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에서 일을 마치고 홀로 공연장을 찾았다는 Dan이라는 이름의 스페니쉬 회사원 아저씨는 “러시안레드를 영국에서 보게 되다니!”라며 굉장히 설레여 하며 필자에게 그녀가 FIB, Primavera Sound, Jazzaldia, Eurosonic 음악 페스티벌에 섰던 때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주었고 나중에 꼭 공연사진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러시안 레드는 마이스페이스에 올린 음원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무대를 비추던 조명이 꺼지고 루르드 에르난데스, 벨앤세바스챤의 스티비 잭슨, 밥 킬디, 그리고 다른 멤버들이 박수세례를 받으며 무대 위로 올랐다. 루르드 에르난데스는 수줍은듯한 미소와 눈웃음으로 관객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대신했고, 첫 곡 ‘The Memory is Cruel’이 잔잔한 느낌의 피아노 반주와 함께 시작되었다. 슬로우 템포의 이 곡은 ‘한때는 믿었지만 이제는
스페인 인디씬에서 센세이셔널 한 데뷔를 했다. 이제는 스페인을 넘어 한국에서도 생소한 이름이 아니지만, 그녀의 런던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8년 스페인 인디 레이블 유레카(Eureka)에서 나온 첫 번째 앨범 "I love your Glasses" 이후 3년여의 공백 끝에 나온 두 번째 앨범 "Fuerteventura"에서는 모과이, 틴에이지 팬클럽과 함께 작업해 온 토니 두건 (Tony Doogan)이 프로듀싱하고 벨엔세바스찬 멤버들이 앨범 레코딩에 직접 참여했는데 이번 런던 공연에서는 특별히 벨엔세바스찬의 스티비 잭슨과 밥 킬디도 함께 무대에 올랐었다.
함께일 수 없는 사랑의 양면성’을 표현한 노래라고 하는데, 애절하고도 아련한 느낌이 묻어나와 순식간에 관객들을 몰입하게 했다. 사실 러시안레드는 작년 6월과 10월 앨범홍보와 GMF를 위해 두 차례나 내한해 한국팬들을 찾은 바 있었는데 필자에게는 이번이 그녀의 공연을 처음 접하는 기회였다. 오피셜 웹사이트에 올라온 사진과 북촌 한옥 마을에서 찍은 영상을 보았을 땐 그녀가 굉장히 상큼한 분위기의 소녀일 것 같았는데 이날 그녀의 모습은 드레스와 청순하게 땋은 헤어스타일 때문인지 조금은 더 성숙해 보이는 여인 느낌이었다.
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유니언 채플 앞에는 조금은 이른 시간임에도 입장을 기다리는 팬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저녁 7시가 되자 입장이 허락되었고 안으로 들어가자 은은하게 고딕양식의 교회 안을 비추는 조명들이 스테인드글라스와 함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교회 안이라서 술은 안 팔려나 … 라고 생각했었지만 조그만 스톨에서 가볍게 요기할 수 있는 음식과 와인 정도는 판매했다. 와인 한잔을 사서
첫 곡이 끝나고 그녀는 어쿠스틱 기타로 ‘Nick Drake’를 직접 연주하며 부르기 시작했다. ‘닉 드레이크를 좋아하는 여인들은 모두 매력적이다.’라고 필자의 친구가 농담으로 이야기했던 적이 있는데, 루르드 에르난데스를 보면서 이 신빙성 떨어지는 이야기가 어쩌면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무엇에 홀린다는 게 이런것이 아닌가 싶다.) 카메라를 들고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어야 했던 필자가 멋진 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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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아내는데 집중하기보다는 그녀의 매력에 흠뻑 매료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다음에 이어진 ‘Everyday Everynight’은 컨트리풍의 곡으로 벤조와 슬라이드 기타연주로도 얼마든지 몽롱한 드림팝 음악을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었고, 이번 앨범의 첫 싱글 ‘I hate you but I love you’와 같은 1950년대의 느낌이 나는 곡은 교회 안의 울림이 더해져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러시안레드의 음악 중에서 가장 상큼 발랄한 업템포 넘버인 ‘The Sun, the Trees’가 연주되자 공연장의 분위기는 한층 밝아졌다. 특히나 “태양과 나무들 달과 바다 그리고 구름이 내 위에 걸려있어요”라는 코러스 부분은 듣는이들이 굉장히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었는데 무대에 오른 이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기타와 베이스를 치고 있던 벨엔세바스찬 멤버들도 이때 만큼은 코러스 부분을 함께 도와주었다. 흥겨운 분위기는 앨범제목과 동명인 ‘Fuerteventura’에서도 이어졌는데 몇몇 스페인 사람들은 심지어 곡 중간에 와인을 사러 나가면서도 리듬에 맞춰 춤추며 자리를 떠나 다른 관객들을 웃음 짓게 했다. ‘Tarantino’와 ‘Cigarettes’가 끝나고 그녀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오늘 멋진 관객들과 함께하게 되서 정말 영광이에요. 러시안레드의 첫 번째 런던 공연인데 유니언채플이 굉장히 멋지네요. 오늘 밤은 모든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져요.”라며 공연을 계속 이어갔다. Julio Medem 감독의 영화 "Room in Rome"에도 삽입됐던 ‘ Loving Strangers’를 부를 때쯤에는 그녀가 괜히 스페인의 Goya Award에서 최고 음악상 후보에 선정된 게 아니구나 … 라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 공연이 끝나서도 이 곡의 멜로디가 인상적이었는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공연이 막바지로 접어들자 그녀는 “이번 곡이 마지막 곡입니다. 와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정말 원더풀한 저녁이었어요. ” 라며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고, 런던의 공연장까지 찾아와준 모국의 팬들에게도 잊지 않고 “그라시아스”라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마지막 곡 ‘Mi Canción 7’은 강력한 퍼커션 비트와 나름 싸이키델릭한 기타톤이 인상에 남는 곡이었는데 곡이 끝나고 루르드와 그녀의 멤버들이 무대에서 사라지고 나서도 팬들은 못내 아쉬웠는지 예배당 의자를 손으로 두드리며 앵콜을 외쳤다. 팬들의 앵콜 요청에 홀로 나온 루르드 에르난데스는 앵콜 곡으로 ‘A Hat’을 불렀는데 어쿠스틱의 공허함과 루르드의 보컬이 두드러졌던 이 곡과 함께 그녀의 런던 데뷔 무대는 막을 내렸다.
BEIRUT 내한공연 베이루트 2012. 1. 25 @ AX-HALL words : 정민, photo : 소니뮤직
음악을 듣는 사람이라면 대개 자신이 선호하는 음악 장르가 있기에, 새로운 부류의 음악과의 첫 만남은 어색하고도 귀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듣다 보면 모든 것이 사랑스러운 것이 음악이 아닌가. 소위 말하는 월드뮤직에 익숙하지 않다면 굳이 집시나 보헤미안의 음악을 들추지 않아도 이 밴드를 관심의 첫 시작으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새해의 시작과 함께 대중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미국의 인디 뮤직 밴드 베이루트가 내한하였다. 베이루트는 월드뮤직을 하는 미국 뉴멕시코 출신의 밴드이다. 밴드의 시작은 리더인 잭 콘돈(Zach Condon)의 원맨 프로젝트에서 비롯되었다. 재즈 밴드에서의 트럼펫 연주 경험을 위시한, 산타페 지역의 멕시칸 뮤직, 그가 좋아했던 에밀 쿠스트리차(Emir Kustarica) 감독 영화의 발칸 뮤직, 유럽 여행 동안 접했던 프렌치 뮤직 등 그는 다양한 음악 장르에 영향을 받았다. 베이루트라는 밴드의 이름도 정치적 위치가 아닌 베이루트라는 도시에 내재된 다양한 요소의 충돌(collision)에 관한 의미에서 지어진 것이라 한다. 다양한 음악적 영감의 혼재 속에서 바다를 좋아하던 그에게 사면이 육지로 둘러싸인 뉴멕시코에서의 10대 생활은 그를 방안에 가두게 했고 집에서 직접 레코딩한 음악으로 시작하여 블로고스피어(blogosphere) 스타가 되었던 잭 콘돈의 베이루트가 이제 전 세계가 주목하는 밴드가 되어 바다를 건너 우리 앞에 섰다. 공연장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베이루트의 인기를 보여주듯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못(MOT)의 오프닝 공연이 끝나고 빼곡히 들어찬 관객 앞에 드디어 잭 콘돈의 베이루트가 등장하였다. ‘Good evening Korea!’라는 인사와 함께 시작된 베이루트의 역사적인 첫 내한 공연의 첫 곡은 ‘Scenic World’였다. 베이루트의 팬이라면 셀 수 없을 만큼 들어봤을 만한 이 곡의 인트로는 잭 콘돈이 우리 앞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눈과 귀를 통해 우리 가슴에 전해왔다. 그의 따뜻한 대화를 기대했다면 아쉽게도 공연은 간단한 멘트 이외에는 쉴 새 없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앨범에서 들어왔던 베이루트만의 침잠하는 듯한 몽환적 연주들과 잔잔하면서 음유적인 보컬이 귀에 직접 전해지는 매 순간을 통해 이런 아쉬움은 쉽게 잊혀졌다. 공연은 베이루트의 3장의 정규 앨범과 EP 수록곡 전반에 걸친 다양한 곡들로 연주되었다. 유년시절의 다양한 경험이 나이브(naive)하게 집약된 1집과 유럽 여행 이후 프랑스 음악의 영향하에 완성된 2집, 이전 앨범들로 이루어진 토대 위에 베이루트만의 어메리칸 팝 사운드 요소가 가미된 3집과 그 사이 발표된 EP들의 다양한 곡들은 수많은 관객들을 가슴 벅차게 했다. 일반적인 대중음악 공연에서는 접할 수 없는 우크렐레, 트럼펫, 아코디언, 프렌치 혼, 튜바 등의 악기가 들려주는 다채로운 소리를 통해 잭 콘돈이 말하고자 하는 음악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것도 베이루트 공연만의 색다른 재미였다. 전형적인 사운드의 미국적이거나 영국적인 음악에만 익숙한 음악 팬이었다면 이번 공연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5곡의 앙코르를 했음에도 공연은 한장의 앨범을 듣는 느낌이었고, 75분이라는 길지 않은 런닝타임으로 끝을 맺었다. 그러나 이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느낄 수 있었던 베이루트 음악 세계의 황홀감은 잭 콘돈이 이야기한 대로 에너지 넘치고 진실되며 아름다운 음악의 모습으로 길고도 길게 많은 사람의 가슴 속에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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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MMENDED ALBUMS
Feel The Sound Imperial Teen 2012. 1. 31 Merge 1996년 결성된 인디 팝의 원조 밴드라 할 수 있는 임페리얼 틴의 신보가 나왔다. 꽤나 긴 역사를 가진 밴드지만 이번 앨범이 겨우 다섯 번째 앨범이고, 미국 현지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팀은 아니다. 하지만 2012년의 초반기에 발표된 앨범 중에서는 반드시 주목해야만 할 앨범이다. 인디 팝이나 인디 록처럼 기존의 장르 앞에 인디가 붙은 새로운 장르들 중 대부분은 얼터너티브 록 음악과의 융합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얼터너티브 록 음악의 가장 주된 특징은 먹먹한 기타 사운드에 있는데 이를 멜로디 지향적인 팝 음악에 얹은 스타일이 인디 팝이다. 이런 형식은 이들의 초기 앨범에서는 확실히 드러나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확연히 달라졌다. 대중적인 팝의 경우 멜로디, 비트, 베이스 중 어느 한 부분을 도드라지게 하여 자극적으로 만드는 반면 이들의 인디 팝은 어느 하나도 유난히 튀어 보이지 않게끔 평면에 배치한 후 그 위를 기름종이로 덮어 살짝 흐릿하게 보이게 만들어놨다. 이는 요즘 인디 음악의 최대 화두인 어떻게 트렌디하면서도 빈티지한 사운드를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노장의 대답이다.
Le Voyage Dans La Lune AIR 2012. 1. 16. Astralwerks
words : 권범준
1 Guilt-Free 이이언 (eAeon)
2 Talk (EP)
[초회한정판](보너스 CD 포함) 번아웃 하우스 (Burntout House)
3 격동하는 현재사 정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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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사운드를 추구하는 칠아웃 밴드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 작가적이고 통찰력있는 감성적인 사운드트랙이 에어의 트레이드마크이다. 만약 프로그레시브라는 말이 록의 경계를 벗어나 사용된다면 에어는 충분히 프로그레시브적인 일렉트로닉 밴드로 불릴만하다. 이번 신작 "Le Voyage Dans La Lune(달세계로의 여행)"은 프랑스 감독 조르쥬 멜리어스가 만든 세계 최초의 무성 SF 흑백영화에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SF 영화의 사운드트랙과 같은 오마주 앨범이지만 그 동안 선보여왔던 복고적인 사운드를 신디사이저와 멜로트론, 하프시코드, 피아노를 이용해서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수작이다. 몇 년 동안 조금 식상한 사운드를 들려주면서 일렉트로닉 팬들의 관심에서 빗겨난 감이 있지만 본작으로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만한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장엄한 일렉트로닉 교향곡 ‘Parade’와 비치하우스가 참여한 ‘Seven Stars’가 추천트랙.
5 보편적인 노래
Drink In The Desert
9 TV를 끄면 좋겠어 (EP)
2012. 1. 25. SHOWMUST 요즘 해외에서의 K-POP 인기가 대단하다. 이에 맞물려 한국의 인디 음악도 해외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2년 전부터 영국에서 혈혈단신으로 가장 밑바닥부터 활동하고 있던 한국의 인디 뮤지션이 있다. 바로 휴 키이쓰다. 첫 EP 앨범인 “When Summer Holds The Rain”을 내면서 평일 오프닝 팀으로 공연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비중 있는 공연을 하고 있다. 이런 발전을 배경으로 새로 준비한 두 번째 EP “Drink in The Desert”가 발표됐다. 이전 앨범이 팝 느낌이 강했다면, 이번 앨범은 좀 더 순수한 어쿠스틱 기반의 소울 음악으로 변화했다. 편안하고 읊조리는 듯한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Kings of Convenience)라기 보다는 강약 조절에 능수능란한 폭발력을 지닌 제임스 블런트(James Blunt) 스타일을 가진 소울/포크 록을 연주한다. 주목할만한 점은 본 앨범의 쇼케이스가 런던의 위치한 딩월스(Dingwalls)에서 열린다는 것. 이곳은 작년에 콜드플레이가 공연을 했고, 푸 파이터즈, 스트록스도 런던 공연 때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니 영국 현지 프로모터가 그와 이번 앨범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Beyond The Sky Black Bag 2011. 1. 11. 루비레코드 루비살롱의 신예 블랙 백의 EP앨범이 발표됐다. 문샤이너스, 허클베리핀, 게이트 플라워즈 등이 소속된 레이블답게 이들의 음악도 기본적으로 스트레이트한 록 사운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인디씬의 현재 가장 큰 흐름은 얼터너티브 사운드를 기본 베이스로, 조금은 먹먹하고 흐릿한 음악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확고한 비전을 가진 루비살롱의 영향일까? 이들의 음악은 이런 조류를 타지 않은 채,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을 명확한 사운드로 들려주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들 음악은 밴드의 기본 뿌리라 할 수 있는 블루스와 하드 록에 두고 있다. 보컬 장민우가 그래치 기타의 날카로운 리프로 리듬감을 만들고, 그 위를 이성복의 펜더 기타가 블루스 스타일, 펑크(Funk) 스타일까지 아우르면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블랙 백이라는 이름 안에서 유려하게 보여준다. 심지어 다섯 번째 트랙 ‘Beyond The Sky’에서는 대곡형태를 취한 포스트 메탈의 영역까지 발을 뻗고 있다. 이 곡을 통해 이들이 강렬한 사운드 안에서 섬세한 감정 표현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E L E P HA N T - S HO E
* 이 차트는 향뮤직의 2월 음반 판매량을 기준으로 합니다.
복고와 첨단을 아우르는 프렌치 일렉트로닉 듀오 에어의 2년 반만의 신작이다. 에어는 동시대의 일렉트로닉 밴드와는 다르게 무그와 아날로그 사운드를 이용한 독창적인 칠아웃(혹은 그와 유사한) 사운드를 창조해왔는데, 대중적인
Hugh Ke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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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3 ELEPHANT-SHOE CHART
(일반판) 이디오테잎 (Idiotape)
브로콜리 너마저
6 아름다운 날들
루시드 폴 (Lucid Fall)
7 내가 부른 그림 이영훈 (Indie)
8 차연 (Differance) 잠비나이 (Jambinai)
아홉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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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실 (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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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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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Way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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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는 하늘의 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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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Is Nowhere Else In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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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o Elevator (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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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Cry (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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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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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You Worry Baby (I'm Only Swimming)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짙은
주윤하
언니네 이발관
센티멘탈 시너리 (Sentimental Scenery)
글렌 체크 (Glen Check)
몽키즈 (Monkeyz)
별 (Byul)
검정치마 (The Black Ski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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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 Besid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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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 - 우정모텔
바이 바이 배드맨 (Bye Bye Badman)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FEATURE
나는 너와 어째서 다른가
- 칵스(The
Koxx) [Access Ok]
WORDS : 차우진, PHOTO: 해피로봇 레코드
카메라가 망가졌다. 난생처음 사진을 찍게 해준 필름 카메라다. 고칠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없다고 했다. 인터넷 지도를 따라 청계천으로 갔다. 몇 년 만에 길가에 게딱지처럼 붙어 있는 상점들을 보면서 걸었다. 어느 가게 앞에서 작고 예쁜 가방을 멘 젊은 여자가 디카로 물건들을 찍고 있었다. 주인장이 뭘 찍느냐고 퉁명스레 말하자 금방 얼굴이 붉어지는 아가씨였다. 주인장은 그녀가 쇼핑몰에 사진을 올릴 거라 생각했겠지만, 아마도 그 사진들은 소셜 네트워크에 업로드되었을 것이다. 어딘지 좀 짠하고 뭔지도 모른 채 잃어버린 것들을 환기시키는 비네팅(vignetting) 효과의 사진들, 액자처럼 전시되는 노스탤지어. 가진 게 많은 사람일수록 자신이 무언가 많은 걸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뭔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더 많이 가진 사람일 것이다. 가령 도시 사람들은 고향 같은 걸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디지털에 삶을 대부분 신세 진 자들은 아날로그의 무언가를 놓쳤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흘려버린 것들은 그리운 뭔가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들을 낭만으로 추억할수록 그건 점점 이상한 형태로 변하기만 한다. 그러다 마침내 정체 모를 상실감이 막연히 그리운 대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실 시골이든 아날로그든 그 속의 인간에는 아무 관심도 없이, 그저 노스탤지어는 모든 걸 안개 속으로 감춰버린다. 그러면서 향수에 빠진 우리를 더 인간적으로, 더 비판적으로, 혹은 더 근사하게 보이도록 돕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지독하게 이기적이고 파괴적이며 또한 속물적이다. 노스탤지어가 감추는 건 바로 그 진실이다. 요컨대 인간적 시선을 고수하면서 비겁하지 않게 사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2000년 이후, 그러니까 스트록스(The Strokes)와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 이후 영미 록 음악은 개러지 사운드와 빈티지 일렉트로니카의 향연이라 해도 좋을 만큼 장르 혼성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바다 건너 제국과 대륙에서 MGMT가 그 정점을 찍었다면, 최근 들어 극동아시아 반도 이남에서는 칵스가 그 흐름을 주도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포니나 검정치마가 시기적으로 앞서지만 칵스가 보다 대중적으로, 또한 전략적으로 이 스타일을 차용했다는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이때 대부분의 팬들과 홍보 담당자는 칵스의 음악을 ‘기성 한국 밴드의 고정 관념을 깔끔하게 제거한 사운드 ’ 라고 설명한다. 말마따나 칵스의 레퍼런스(reference)로 언급할 만한 밴드들은 록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팀들이다. 뮤즈(Muse)와 디페시 모드(Depeche Mode)가 떠오르는 중에 아울 시티(Owl City)와 패션 피트(Passion Pit) 도 아련히 보인다. 첫 곡 <XXOK>에 이어, 추억의 전자오락 <쿵푸>의 테마가 연상되는 인트로로 동양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Oriental Girl>, 그리고 타이틀곡 <12:00>을 지배하는 클럽 튠과 <Jump To The Light>의 과감한 어프로치, <술래잡기>의 속도감과 <Refuse>의 극적인 구성이 앨범의 인상을 지배한다. 특히 신서사이저가 중요한데, 다른 곡들과 달리 미니멀한 구성으로 공간을 천천히 확장시켜나가는, 그러다 응축된 소리가 마침내 터져나오는 <The Words>에서는 피아노, 신서사이저, 미디가 한꺼번에 등장하기도 한다. 건반이 곡의 주선율뿐 아니라 7분에 가까운 곡의 시작과 끝을 도맡으면서 멜로디는 강화되고 소리의 결은 보다 촘촘해지는데, 이 앰비언트 사운드는 질주하는 앨범의 일관성을 해치기보다 자정 전후에 시작된 난장판 파티가 덧없이 끝나고 찾아오는 공허한 새벽의 냄새를 자극한다. 여기에 넓은 사운드 스펙트럼을 포괄하는 아날로그 신서사이저 코르그(KORG) MS-2000과 보급형 아날로그 신서사이저인 롤랜드(Roland) JUNO-106, 그리고 디페시 모드와 펫샵보이즈, 자미로콰이와 프로디지가 즐겨 사용한 JP-8000 등이 저 독특한 음색을 만들어낸다. 당연히 이런 악기들을 몰라도 칵스의 그루브를 이해하는 데엔 문제없겠지만, 적어도 이 기기들이 차별화된 음색의 형성에 관여한다는 것은 ‘교양’ 정도로 익혀둬도 좋을 것이다. 어디 가서 아는 체하기 좋다는 얘기다.
“ 이베이에서 앤티크한 운동화를 구매하면서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식집’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향유하는 생활 양식, 요컨대 한국형 힙스터의 라이프스타일 말이다. 그걸 비난하거나 조롱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
하지만 칵스의 영민함은 사운드보다 가사에서, 한국어와 영어를 섞으며 그 경계를 모호하게 처리해버리는 전략에 있다. 단언컨대 이건 전략이다. 밴드 영어 표기(Koxx)와 앨범 제목을 활용해 첫 곡의 제목 <XXOK>를 만들 만큼 이들은 꽤 재미난 언어 감각을 구사하는데, <Oriental Girl>에서 이런 감각은 “look at her dancing”을 “룩 앳 허 딴싱”으로, 요컨대 영국식 영어 발음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다만 이런 라이프스타일이 현재 칵스의 음악을 소비하는 청년 집단과 맞물리는 인상이 흥미롭다는 걸 말하고 싶을 뿐이다. 뜨겁고 끈적한 열대야의 습도를 그대로 전달하는 <12:00>의 뮤직비디오에서, 멤버들은 각자 여자를 꼬드기다 퇴짜를 맞는다. 그 과정이 코믹하게 묘사되는 뮤직비디오는 칵스라는 밴드가 클럽과 바, 세련됨과 찌질함, 홍대에 대한 신화와 내면의 경계에 걸쳐 있음을 암암리에 드러낸다.
이뿐이라면 그저 장난기 정도였겠지만, 영어 가사의 곡 <12:00>에 난데없이 “ 12시가 되면은 문을 닫는다 ” 란 가사가 등장하거나 <술래잡기>의
이런 취향을 공유하는 또래 집단은 칵스를 ‘구별 짓기’의 한 요소로 활용하고, 칵스 역시 이를 통해 ‘ 세련되게 지역화된 한국 인디밴드 ’ 의 이미지를
버스(verse)에서 낯설게(혹은 이상하게) 분절되는 한국어나 코러스(chorus)의 영어가 뒤섞이는, 두 언어의 경계가 거의 완전히 흐릿해지는 순간들은 이들을 ‘해외 밴드의 사운드를 재현하는 데 탁월하다’고 평가할 수만은 없게 만든다. 이들은 앞서 언급한 ‘기성 한국 밴드의 고정 관념을 깔끔하게 제거한 사운드’를 재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출신’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획득하게 된다. 브리티시, 신스팝, 개러지 등의 단어와 엮이는 이 사운드는, 21세기 대중음악의 화두라고 할 만한 지역성과 국제화의 접목, 요컨대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을 체현한 결과로도 보인다.
한국어를 영어처럼 흐릿하게 발음하는 건 록 음악에 대한 보편적 선입견(요컨대 식민주의)을 반영하면서 또한 그 편견에 도전하는 효과를 만든다. 그런데 이것이 ‘정치적인 올바름’이 아니라 특정 태도와 스타일을 반영한다고 생각하면 칵스의 정체성은 흥미롭게 변한다.
것이다. 과거가 아닌 현재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특히.
요컨대 이베이에서 앤티크한 운동화를 구매하면서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식집’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향유하는 생활 양식, 요컨대 한국형 힙스터(hipster)의 라이프스타일 말이다. 그걸 비난하거나 조롱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이런 개념을 구현하려 애쓴다는 점에서, 칵스는 동시대 한국에서 좀 더 진지한 음악적 실천을 고민하는 밴드 중 하나라 해도 좋을
- <청춘의 사운드>, 차우진 산문집 / 책읽는수요일
12:00 - KOXX E LE P H A N T-S H O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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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recandplay.net
백현진, 정재일 2010. 5. 15. @ 합정동
렉앤플레이는 2009년 11월부터 도시의 일상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라이브 연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기록된 연주를 엘리펀트 슈를 통해 탭진에서 여러분들께 보여드리고, 들려드리려 합니다. 우리는 뮤지션과, 라이브와, 공간과, 술을 중시합니다. 우리는 착합니다. 겁먹지 마세요.
우리는 몇 번의 연락 끝에 백현진을 만나, 입대를 앞둔 정재일이 녹음 중이던 성북동 소닉엣지 스튜디오로 일정을 논의하러 갔습니다. 백현진이 어어부프로젝트의 신보 녹음 차 출국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 주 안에 작업을 진행하기로 해습니다.
여기까지 다음 며칠 간 피아노를 구하러 빨빨 돌아다닌 우리는 원래 낙원상가에서 피아노를 빌려 서울아트시네마 앞 공터에 놓고 싶었지만, 3시간에 걸쳐 관계자들을 만나고 관리소장으로부터 낙원빌딩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들은 뒤 마침내 거절당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트위터에서 누군가 알려준 당인리 커피공장- 앤트러사이트에 전화를 했고, 사장님은 손님이 있을 시간인데도 비교적 흔쾌히 승낙을 해주었습니다. 오후 느지막이 앤트러사이트에서 만났을 때는 꽤나 더웠고 정재일은 어느새 맥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백현진은 옷을 갈아입었고, 첫 곡을 마무리한 뒤 우리는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습니다.
봄의 풍경 백현진은 녹음된 소리를 확인한 뒤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우리는 그 사이 피아노를 테라스로 옮겼습니다. 주변이 소란스러워져 아래쪽을 내다보니 웬 아주머니가 이쪽을 노려보며 화를 내고 있었고, 그 옆에는 경찰차가 서 있었습니다. 소음민원을 넣은 것이죠. 여태껏 작업하면서 제지를 강하게 받은 적이 처음이라 우리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경찰관은 자주 겪은 일인 듯 우호적이긴 했지만 어쨌든 주민들과 친하게 지내는 게 서로서로 좋겠다고 사장님에게 충고한 뒤 돌아갔습니다. 어쩌면 좋지 싶어 머뭇거리던 차, 조금 전 대화에 등장했던 1층의 빈 공간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곳이 공장이었을 때 작업장이나 대형 창고로 쓰였을 법한 높고 넓은 빈 방이 있었고, 우리 모두 그곳에 반해버렸습니다. 울림도 좋고, 널부러진 자재 및 가구들이 풍기는 분위기도 훌륭해서 피아노를 들고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전문가라면 둘이서 옮길 업라이트 피아노에 남자 일곱 명이 붙어서 끙끙대는 모습은 퍽 우스꽝스러웠지만 별로 상세히 회고하고 싶지는 않은 추억입니다. 여튼 피아노 위치를 잡은 뒤 정재일은 맥주를 하나 더 마시러 갔습니다. 백현진은 다시 옷을 갈아입었고, 주변 아파트 주민들의 주말 저녁식사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 이곳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피아노를 도로 올리기는 의외로 내리기보다 쉬웠습니다. 오랜만에 힘을 써서인지, 날씨 때문인지, 두 사람의 강렬한 음악에 집중해서인지, 퍽 노곤했습니다. 맛있는 밥과 술이 필요한 타이밍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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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y news forecast
루비 레코드가 예보하는 3월의 공연 리뷰 혹은 프리뷰!
루비살롱과 강동아트센터가 주최한 춘추감성프로젝트 시즌1, 밴드뮤직페스티벌 Blooming Spring Days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3월 3일부터 3월 18일 3주간 강동아트센터에서 열린 주말 음악소풍 Blooming Spring Days는 첫 날 몽니와 칵스의 공연으로 활기차게 막을 연 후 마지막 날 The Finnn과 소란의 공연으로 화려하게 마무리 하였다. 이번 Blooming Spring Days 공연에서는 홍대에서 가장 차가운 도시 남자 그러나 내 여자에게는 따뜻할 밴드 더 문샤이너스와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가 합동공연을 하여 이목을 끌었다. 그들은 공연 이후 홍대 모처, 선샤인에서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는 소식을 들을 수가 있었다. 출연 밴드 측에 따르면 이번 공연을 통해 출연 밴드들 간의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었다.라는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이번 공연은 대형 음악 페스티벌에서 만날 수 있던 밴드 12팀을 250석의 아담한 규모의 소극장에서 친밀하게 호흡할 수 있는 장점이었다. 공연 관람객은 “항상 멀리서 보았던 밴드를 소극장에서 볼 수 있는 점이 장점이었다. 심지어 밴드 다리 붙잡을 정도로 가깝게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오늘 계탄 날이다. “라며 두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세웠다. 이번 공연은 ‘춘추감성 프로젝트‘ 는 공연 타이틀과 같이 봄, 가을 시즌제로 진행되어 관객들 만날 예정이다. 시즌 2는 올 해 가을에 이어질 예정이다.
허클베리핀(이달의 아티스트), 더 문샤이너스(이달의 아티스트), 블랙백(이달의 루키) 등이 제 5회 올레뮤직 인디어워드의 수상자로 선정됐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이달의 아티스트’ 부문에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인디어워드 사상최초로 공동수상자가 탄생하였다. 97년 데뷔해 홍대 인디음악계에서 관록을 쌓아 온 허클베리핀과 50-60년대 로큰롤을 귀환을 알리려 나타난 밴드 더 문샤이너스가 선정되었다. ‘이달의 루키’부문에서는 원숙한 사운드를 재현하는 컬리지록 밴드 블랙백이 선정되었다. 이번 올레뮤직 인디어워즈 투표는 음악평론가, 기자, PD 등 7인의 음악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단이 1차 선정한 제 5회 '올레뮤직 인디어워드' 후보를 대상으로 한 네티즌 투표로 2월 27일부터 3월 11일까지 진행되었다. 이상 월간 미리 보는 3월의 루비미래뉴스를 마칩니다. 모두들의 바람대로 3월 한 달도 즐겁게 마무리 하세요.
허클베리핀이 또 다시 DGBD를 뜨겁게 달궜다. 지난달 14일 허클베리핀 당폭발 시즌1, 초꼬소영의 당폭발대잔치로 관객 모두의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초콜렛을 뿌린 허클베리핀이 3월 14일 화이트데이를 맞이하여 열린 캔디기용의 당폭발 러브쉐이크가 많은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 속에 성황리에 마무리 됐다. 이번 공연은 허클베리핀 이기용이 사전에 가장 애절하고 절실한 남성 솔로의 사연을 받아 즉석에서 만남을 주선해주는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날 여성관객의 숫자는 가뭄의 콩 나듯 적었으며, 가까스로 얻은 여성에게 허클베리핀이 운영하는 바 샤에서 에프터 3회 제공이라는 파격적인 제안에도 커플탄생은 실패하였다. 하지만 커플 탄생은 실패하였어도 히트곡 무대를 비롯해 앨범 수록곡 무대, 멤버들의 개별 무대 등 추억의 달고나쇼, 입안에 누가 더 캔디를 많이 넣을까? 쇼 등 조잡한 이벤트까지 더해져 현장의 분위기를 최고조로 이끌었다. E LE P H A N T-S H O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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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음악 -
루시드폴5집 track10.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최근에 이사했는데 작업실의 짐을 정리하면서 이 노래를 계속 들었다. 사실 루시드폴의 이번 5집은 전작에 비해 크게 와 닿지 않았지만, 끄트머리에 있는 이 트랙의 트럼펫이 정말 좋았다. 멜로디는 계속 과거를 추억하게 해주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왜 아름다웠던 것 같을까?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말이다.
이달의 이사 -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세를 계약했다. 지방 골짜기라 그런지 부동산에서 전/월세는 하지 않는다. 발품 팔아 돌아다니면서 전봇대 찌라시를 보고 집을 얻었다. 이사를 하는 데는 트럭을 가진 친구의 도움을 얻었다. 5년 동안 머물던 도시는 나를 정말 찌들어 살게 했다. 좋기도 했지만 힘들었다. 넓은 강이 있는 곳으로 이사했다. 지금은 마음이 정말 편하다. 하지만 친구들을 보기 힘들어진 건 아쉽다.
이달의 가난 -
전세 때문에 전 재산을 꼴아박았더니 통장이 0원이 찍힌 건 4-5년 만에 처음인 것 같다.
이달의 자작곡 -
넓은 강이 보이는 시골로 이사하면 자작곡이 잘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최근 만든 자작곡은 정말 쓰레기같았다. 하하하
이달의 광고 -
이사가 나를 가난하게 했다. 프리랜서의 단점 = 안정적이지 않은 수입, 현재 불황. 일러스트나 만화가 필요하신 분은 blog.naver.com/starfucker6 로.
이달의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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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했다. 부끄러웠다.
kok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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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쿠키 냄새를 맡으면 힘이 솟는 엘리펀트 슈의 마스코트 코코마! 여기에는 지난 한 달 동안 코코마가 트위터를 통해 전했던 해외 소식을 모아놨습니다. 보다 빠른 음악 뉴스와 엘리펀트 슈 관련 소식을 얻고자 하신다면 팔로우 해주세요. 트친이 되시면 코코마가 음악 추천부터 맛있는 쿠키 추천과 연애 문제, 인생 상담 등 무엇이든 해드립니다. 어서 오세요, 코코마에게 :) 잭 화이트(Jack White)가 솔로 앨범 “Blunderbuss”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앨범은 그가 직접 프로듀싱하고 네쉬빌에 있는 그의 <Third Man> 스튜디오에서 레코딩 되었다고 합니다. 싱글 ‘ Love Interruption를 안 들어 볼 수 없겠죠?
1969년도에 나왔던 비틀즈의 <Abbey Road> 히트 싱글 ‘Here Comes The Sun’의 George Harrison의 솔로 기타 연주 부분이 그의 아들 다니 해리슨(Dhani Harrison)에 의해 43년 만에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잭 블랙과 카일 가스의 Tenacious D가 새 앨범 <Rize of the Fenix>와 함께 돌아옵니다! 영국에서는 메탈리카, 프로디지, 블랙 사바스, 사운드가든, 메가데스와 함께 헤비한 음악공연으로 소문난 다운로드 페스티벌에 오를 예정입니다.
독일의 전설적인 신스 밴드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가 뉴욕의 MOMA에서 8일 동안 1집부터 8집의 곡들을 연주한다고 합니다. 자세한 정보는 MoMA.org
올해 브릿 어워드 베스트 브리티시 밴드 콜드플레이(Coldplay), 베스트 인터네셔널 밴드 푸 파이터즈(Foo Fighters), 공로상은 블러(Blur)가 받았습니다.
매년 최고의 무대세팅을 보여주는 브릿 어워드지만 올해 블러가 보여준 빙글빙글 돌아가는 도너 케밥 무대장치에 정말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동시에 정말 멋있었구요!! 최고의 밴드 반열에 올랐음에도 그들의 백그라운드를 잊지않고 지속적으로 그들의 음악과 공연에 런던의 문화코드를 유쾌하게 풀어낸다는 점에서 굉장히 멋진 것 같아요.
ELEPHANT-SHOE TABLOID RELEASE PARTY! 매달 첫째 주 일요일, 살롱바다비에서 엘리펀트슈 타블로이드 발매 기념 파티가 열립니다. 다양한 컨텐츠와 이벤트가 진행될 예정이니 4월 1일, 4월호 매거진과 만나요. (수익은 전액 클럽과 뮤지션에게 나눠집니다.)
+platform 홈페이지에 오시면 매일매일 국내외의 다양한 음악 소식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또한 아이폰, 아이패드 어플리케이션 <Tapzin> 으로도 만날 수 있으니 편한 방법으로 엘리펀트 슈를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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