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EPHANT-SHOE 2014/02 no.26 vol.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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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music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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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 FEBRU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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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77 no.26


small talk with music E P I S O DE 결심

장은석

맹선호

이지선

Julian Kim

Daft Punk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

T.O.P

Discovery (2001)

DOOM DADA

Damien Rice

Iceage

I remember

Morals

O(2001)

You're Nothing(2013)

나이가 들수록 자신감을 갖게 되는 일은 적어지고,

너무도 당연하게 새해 결심을 하나 했다. 그리고 생

얼마 전 은석형과 이야기를 나누다 2014년에는 핏해

차도 실패가 두려워 온갖 자잘한 리뷰들을 분석하

반대로 자신에게 실망하는 일은 많아진다. 그래서

각해 보니 지난해의 결심 중 기억나는 것은 하나도 없

지기로 서로 다짐했다. 이 다짐이 얼마나 갈지는 모

고 나서야 결제버튼을 누른다거나 나가려고 입은

인지 이번 스몰톡 주제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노

다. 실행된 결심도 하나 없다. 이것은 그냥 연례행사

르겠으나, 신경을 써야 할 필요성을 요즘 팍팍 느끼고

옷이 맘에 안 들어 결국 그게 그거일 옷장을 뒤적대

래는 이것이었다. 내년 나의 다짐은 당연하게도 이

일 뿐이다. 인생이 나선처럼 돌아가는데 그 스프링

있으니 퍼스널 트레이너로 일하는 옆집 형에게 조언

느라 약속에 늦는 일 따위를 줄이겠다는 이야기다.

노래 제목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바랄 수 없다

모양이 어디론가 뻗어 가고 있다고 믿으면 된다. 그

이라도 구해야 할 것 같다. 덴마크 펑크밴드 Iceage

우선 Funders and Founders에서 제시한 생산적

는 것쯤은 알고 있다. 이 네 가지 중에서 지금 내가

중에 잊힌 결심들이 스프링에 탄성을 부여하고 그 에

의 보컬만큼 멋져지면 좋겠지만 그건 말도 안되는 나

이기 위한 35가지 습관을 익힐 예정인데, 옷 고르는

간절히 바라는 것은 “Harder”다. 모든 것을 단단하

너지가 삶에 축적되어 언젠가는 터지겠지. 죽기 전이

의 바램이겠다.

게. 그것이 내년의 목표다.

면 좋겠다.

다프트 펑크의 좋아하고, 이 노래를 수도 없이 들었 지만, 이 노래의 가사에 어떤 감흥을 느낀 적은 없 었다. 그만큼 그동안 나는 나 자신이 제법 단단하

DOOM DADA (2013) 생산적인 인간이 되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제 쓸데 없는,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인터넷 쇼핑을 할 때조

고, 괜찮으며, 빠르고, 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을 아끼기 위한 나만의 유니폼부터 고민해야겠 다. 생산적인 고민이리라 믿으며 우선은 스몰토크 의 음악을 대충 골라야겠다. 이 내용과는 상관없이 지난 한 해 개인적으로 가장 박수 치고 싶은 싱글이 다. “멈추지 않는 뜨거운 영호온-”

JUNE

KAY

키치킴

The Chordettes Mister Sandman Mister Sandman(1954)

The Vines

오랜만에 쇼핑을 하고나니 바지 기장을 줄이는 데

Get Free

까지 1시간의 여유시간이 생겼다. 무엇을 할까하다

Highly Evolved (2002)

K's Choice Everything For Free Cocoon Crash(2005)

지하 서점으로 내려갔다. 수많은 책들이 빼곡히 자 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문득 '어쩜 이렇게 제목들이

신년을 맞이하여 저는 앞으로 더 많은 술자리에 참

재미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제목을

석할 계획입니다. 토익 학원도 다니지 않을 겁니다.

짓기까지 작가들은 꽤나 긴 고뇌의 시간을 가졌겠

당연히 책은 한 권도 읽지 않을 거고요. 운동도 하

지? 한참을 제목들만 들여다보며 이곳저곳을 누비

지 않을 생각이에요. 원래 유리잔이랑 다짐은 깨부

던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수기 위해 존재하는 거니까요.

2014년 나의 결심은 금주이다. 올해 상당한 알코올 을 소비하였고 그로 남은 건 감출 수 없는 뱃살뿐이 었다. 이미 이주 전부터 실행하고 있는데 희한하게 도 살이 더 찌고 있다. 그래도 조금은 마셔야 활발 한 장운동이 될 듯하다. 2014년 나의 결심은 절주 이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다가오는 2014년은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야겠다. 눈에 띄는 그런 하루 하루 말이다.

ELE P H ANT - S H OE t a b l o i d V o l . 7 7 N o . 2 6 FE B RUAR Y 2 0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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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E seg1129@naver.com Julian Kim comfortingsounds.vol1@

이지선 anik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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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선호 pluto116@naver.com R e g i s t r a t i o n N u m b e r 마포,라00343

Publisher / Editor-in-Chi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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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석 ewanj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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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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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식 bleutk@gmail.com 키치킴 kitschiker69@naver.com E D IT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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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KID starfucker6@naver.com Art


contents 2014 February no.26

루시드폴이 입은 니트는 프레드페리, 어깨에 걸친 카디건은 본인 소장품

Editor's note 04 COVER SPECIAL

lucid fall 혼자 보내는 시간들

12 SPECIAL 공대를 다니다 경영학과로 옮겨와 졸업했습니다. 덕 분에 제게는 공대 친구와 경영학과 친구가 있는데, 공대생 친구들이 이것저것 척척 만들어내는 것을 보 며, 기술이라고는 계산기 두들기는 것 밖에 없는 자

혼자 공연을 본다는 것 당신 옆에서 신나게 춤추는 이 사람, 사실은 이 공연장에 혼자 왔다

신이 초라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아쉬움만 가진 채 졸업을 하고는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계속했 고, 지금은 잡지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설날이 되 어 오래간만에 고향 친구들을 만났는데, 우연히도

14 REVIEW x LABEL SAFARI

그 자리에 모인 친구가 치과의사, 이비인후과의사,

ATP Festival : End of An Era

교사였습니다. 모두 대학교에서 지정된 커리큘럼을

힙스터의 시대는 끝났다

밟으면 지정된 직업을 갖게 되는 이들이었죠. 그들과 이야기하니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앞으로 1년 후, 5

16 RELEASE PARTY

년 후, 10년 후, 20년 후에도 그들은 의사라는, 교사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라는 직업을 갖고 있을 것인데, 과연 나는 무엇을 하

이스턴 사이드킥 | 청년들 | 적적해서 그런지 | 24아워즈 | 곽푸른하늘 | 포스트패닉

고 있을까 싶었죠.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그들과 헤 어져 혼자 집으로 가는 길에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 습니다. 하지만 이 고민은 쉬이 해결됐습니다. 친구 들의 의사와 교사라는 직업처럼 나의 직업 또한 이 미 결정되어 있다 생각하기로 했고, 지정된 커리큘럼 처럼 내 앞의 일들을 해내다 보면 어느새 그곳에 도 달해 있을 것이라 믿기로 했습니다. 술에 취해 정신 없이 걸어도 집에는 귀신같이 도착한 것처럼 말이죠. 술에 취한 것처럼 왼발이 오른쪽으로 나가기도 하고, 보폭도 들쭉날쭉해도 목적지만 잊지 않는 것. 올해

20 MUSIC VIDEO STILL HERE

Crystal Fighters Love Natural 증축과 신축

22 ORIGINAL SOUND NOVEL

그 남자 그 남자는 자신이 더 이상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저의 다짐은 마치 취권 같네요.

1월 31일 장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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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 자

보 내 는

시 간 들

EDIT: 장은석 PHOTOS: 지감독 HAIR & MAKE UP: 조판수, 박연숙 (SERGIO BOSSI 청담본점)

ELEPHANT-SHOE


cover special

한 해의 끝과 시작은 바쁘고 화려해서 그동안 ‘한번 밥 먹자’고 말만 오갔던 수많은 사람까지 만나고, 또 만나느라 그 어 느 때보다도 누군가와 어울리는 일이 잦다. 때론 누군가와 어울려야만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는 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그 긴 약속도 잦아들며 숙취가 슬슬 사라짐을 느낌과 동시에 어느새 새해도 이렇게나 지났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시끌벅적했던 시 간들을 뒤로 하고 나면 어느 순간 남아 있는 것은 지친 육체와 공허한 기분뿐이다. 그래도 숙취가 사라짐과 함께 머리가 천천히라 도 회전하고 있음이 느껴진다면 그때가 바로 세웠던 계획들도 다시 한 번 정비하며, 혼자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느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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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혁이 입은 재킷과 니트 풀오버, 고한결이 입고 있는 파카와 도트 셔츠는 모두 프레드 페리

ELEPHANT-SHOE


.특 르게 느껴진다 바람 또한 다 던 불 럼 처 제나 형태를 확 느낄 때면 언 다. 하지만 그 인 저 달라졌음을 보 마 게 기 얗 공 , 하 고 처럼 새 풍경도 변하 고 온다. 가 붙잡은 것 계절이 바뀌며 았던 것을 갖 을 파란 공기 숨 않 는 지 쉬 라 내 바 때면 은 가끔 겨울로 바뀔 차가운 바람 히 가을에서 다. 모질게도 있 이 람 바 는 이 흩트려 놓 기 억 들 . 인할 새도 없 던 지 난 았 알 줄 만 사 라 진 히 식 어 서 전 완 이 나 머 날 씨 만 큼 며, 처음에는 사라지지 않으 도 써 를 수 무슨 순간에 찾아와 다니기만 한 예상치 못한 기저기를 돌아 서 여 아 몸 같 내 도 고 와 가지 않 이것은 감기 나는 가는 등 떠나 래가 있다. 하 가슴으로 옮겨 내 이 이 면 생각나는 노 증 때 통 할 던 주 있 마 에 리 을 다시 ’이다. “내게 안은 채 바람 디에서 부는지 않는 통증을 어 , 지 람 지 라 ‘바 사 의 이 폴 다. 루시드 말하는 전 다른 하나는 이 흐른다.”고 이 분다’이고, 물 람 눈 . ‘바 다 의 분 라 람이 이소 닫 던 머리위로 바 댄 바람에 창 억이 담겨져 있 추 던 았 같 지 내 맘에 덧 금 는 오 어 는천 불 서 에 람은 또 어디 말하는 후자 여성에게, “바 은 그대.”라고 않 지 가 자의 노래는 나 떠 질게 시리도록 이냐 진 두 눈이 모 여성이냐 남성 아 보아도 흐려 단순히 가수가 는 이 . 다 른 오 떠 이 에게 더 쉬이 이 때문이다. 의 노래는 남성 어서 남녀의 차 있 에 별 이 는 아니다. 그보다 겪는다. 하지 에서 오는 것이 은 큰 상실감을 성 여 , 면 반 는 괴 해방감을 느끼 뒤늦게 점점 더 별 직후 남성은 반면, 남성은 는 가 해 복 극 며 여성은 루시 의 바람이고, 만 시간이 지나 ’는 이별 직후 다 분 이 람 소라의 ‘바 참 후의 바람 로워한다. 이 이별로부터 한 ’는 지 는 부 , 어디에서 드폴 드 폴의 ‘바람 , 남성은 루시 소라의 노래에 이 은 성 여 이다. 그렇기에 자든 자신을 둘 만 남자든 여 지 하 . 다 한 요 동 의 음악에 더 에 있던 존 면, 자신의 옆 때 낄 느 를 변화 대 러싼 환경의 고 그 시작은 게 된다. 그리 하 각 생 를 화 재의 변 번 새 앨범 [꽃 루시드폴은 이 . 다 온 서 에 개 바람 서도 은 노래를’에 .]의 ‘바람 같 은 말이 없다 . 이는 뮤지 이야기를 했다 바람에 대한 자, 이번 현재의 다짐이 션 루시드폴의 하다. 큰 기조이기도 앨범의 가장

셔츠와 카디건 모두 프레드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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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장 들

바 람

같 은

노 래 를

애 써

귀 를

기 울 이 지

들 을

있 는

하 고 지

싶 어 않

않 아 도 사

그 런

은 노 래

‘바람 같은 노래를’ 중

ELEPHANT-SHOE


셔츠는 프레드페리, 담요는 데이비드 휘세네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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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와 팬츠 그리고 스니커는 프레드페리, 니트는 POST by JAZZ

ELEPHANT-SHOE


모든 것이 자극적이어야만 하는 요즘, 음악도 점점 그렇게 변하고 있다. 빠른 비트와 큰 사운드가 귀를 사로잡고, 잔잔하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는 어느새 한물간 느낌이 들기도 하다. 특히나 잔잔한 루시드폴의 음악은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에 가 려져 잘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지루한 음악이라는 말까지 듣기도 한다. 사실 루시드 폴의 공연장에 가면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하는 관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가끔은 잠든 것은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사실 처음에는 화가 나기도 했 어요. 내 노래가 그렇게 졸린가.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달라졌어요. 그만큼 내 음악이 편할 수도 있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 앨범을 작업할 때는 신기하게도 연주곡 ‘꽃은 말이 없다’를 집에서 기타로 칠 때마다 집에 서 키우는 개가 잠을 자는 거에요.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할 정도로.” 이번 앨범을 작업할 때 다른 어떤 콘셉 트나 다른 걸 생각하지 않았지만, 다만 하나 그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던 아이디어는 ‘미니멀리즘’이었다. 하지만 단조롭 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기타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다. 기타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음악가라기보다는 과학자 같았다. “이번 앨범은 제가 책임지고 편곡부터, 디렉션까지 전부 혼자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악기 구성이 단순해 진 대신에 기타 소리를 좀 더 좋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노래를 더 잘해야 할 텐데’ 등 걱정을 많이 했어요. 혼자 하 는 싸움이잖아요.” 그렇게 이번 앨범의 시작은 소리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되었다. 류트(16세기경에 유행했던 만돌린과 비 슷한 형태의 현악기)를 만드는 장인도 찾았다. 우리나라에 딱 한 명 있다고 하는 류트를 만드는 사람을 찾아가고, 외국에 서 기타 줄을 주문하고, 별의별 과정을 겪었다. 2년마다 꾸준히 발표하는 앨범을 농사짓는 마음이라고 표현한 루시드 폴은 6집 [꽃은 말이 없다.]를 지난여름 북촌의 한옥에서 오롯이 혼자 농사지었다.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게 하지만, 천재를 만드는 것은 고독이다. 온전한 작품은 한 사람의 예술가가 혼자 하는 작업으로 탄생한다.” - 에드워드 기번 (18세기 영국의 역사가)

사람을 내형적, 외향적 두 유형으로 나누더라도, 혼자 있을 시간은 둘 모두에게 필요하다. 얼핏 생각하면, 외향적인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 타 인과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맺는 개방적이고 사교적인 사람들이므로, 그들이 혼자 있을 필요를 말하는 것이 이상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 향적인 사람들은 상대와 지나치게 깊은 관계를 맺거나 그 관계에 몰두해 내적 욕구를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앤서니 스토가 ‘우울증적’ 개인성이라고 부르는 외향적인 사람들이 특히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행사나 모임에 참석해 피곤해하다가, 다시 혼자가 되면 기운을 회복하고, ‘원래의 자신’으로 되돌아오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려 면 누구나 때로는 마음과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피곤한데 반기는 척해야 하고 투덜거리고 싶을 때 미소를 지어야 하는 등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창조의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는 인간관계가 아무리 중요해도, 인간관계보다 그가 노력을 쏟는 특별한 분야가 훨씬 더 중요할 때가 많다. 북촌에서 혼자 작업한 시간 동안 루시드 폴 또한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조금은 다른 외로움을 이야기했다. “누군가와 있을 때 외로워지는 것보단 혼자 있을 때 외로운 게 낫지요. 그리고 혼자만 있는 건 아니에요. 그게 친 구든 가족이든 반려견이든. 다만 불필요할 정도로 목적 지향적인 모임, 원치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가져야 하는 만남 등을 거부하고 살 고 싶을 뿐이죠.” 하지만 작업시간이 길어지면 의욕도 떨어지고,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지치게 된다. 이럴 때면 많은 이들이 작업현장을 떠나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는 다른 방법을 취한다. “음악으로 지치고 힘들더라도 이를 극복하게 하는 것도 결국 음악이에요. 내가 내 음악에 지치지 않는다면, 곡 작업도 공연도 꾸준히 할 수 있어요. 하루 일이 설령 힘들거나 지치게 해도, 큰 그림에서 지치지 않으면 문제가 없어요. 천성이 게으르지 않고 욕심이 많은 제 성격 탓일 수도 있고요.” 루시드 폴이 욕심이 많다는 말도 믿어지지 않지만, 성격도 급한 편이라는 더욱 믿기 힘든 말까지 한다. 그런데 의식적으로 느리게 살고자 애를 쓰다 보니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란다. 개나 고양이 같은 생명체뿐만 아니라 나무나 꽃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그의 이번 앨범 제목에 꽃이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꽃은 말이 없다.]이더라도 그는 꽃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의 이야기 또한 들려주었고, 이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홀로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무언가 와 대화를 할 시간을 준다. 그게 동물이든, 식물이든, 사물이든, 풍경이든 간에 그 대화는 결국 나와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현대는 소음의 시대다. 소음의 시대에 ‘나’의 말은 ‘너’에게 미처 닿지 못한 채 소멸하기 일쑤다. 사실 멜로디나 비트를 듣고 판단하게 되는 게 큰 요즘 시류에서 루시드폴의 음악은 지루하게 느껴지기까지 할 정도다. 하지만 잠시 멈추거나 혼자서 생각하지 않는 한은 자꾸 미루게 되고 결국 무신경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전달해준다. 이전까지의 루시드폴의 음악은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바뀔 때에 더 많이 생각이 났다. 계절이, 풍경 이, 내 옆의 사람이 변할 때면 그의 음악을 찾았다. 하지만 이제는 반대로 그의 음악을 들으면 나에게 변화가 생긴다. 내 안에 부는 바람을 느끼게 해준다. 그의 음악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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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공연을 본다는 것

나이를 먹을수록 혼자 해야 할 일들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도 혼자 하기 쉽지 않은 일은 분명 있다. 예를 들면 밖에서 혼자 밥 먹는 일. 오 죽하면 혼자 밥 먹기 레벨을 측정하는 리스트가 있을까. 그런데 어쩌면 밥보다 더 어려운 것이 혼자 공연장에 가는 것일지 모르겠다. 혼자 밥 먹는 것은 생존 이지만, 공연장에 가는 것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함께 갈 친구를 구하지 못 했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는 밴드의 라이브를 포기한다는 것은 여러

당신 옆에서 신나게 춤추는 이 사람,

모로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세상에는 혼자 밥 먹는 것을 아무렇지 않아 하는 사람만큼이나 혼자 공연 보러 가는 사람 역시 적지 않다. 그래서 엘리펀트슈는

사실은 이 공연장에 혼자 왔다

어쩌면 당신이 공연장에서 몰래 훔쳐봤을 수도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혼자여서 다행이야

여기 한 여대생이 있다. 이름은 허유경으로,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하는 꿈많은 21세 소 녀이다. 글쓴이가 실제로 만나본 그녀의 첫인상은, 작고 둥근 얼굴과 큰 눈을 가진 전형 적인 고양이 상의 미인으로 어딜 가나 사람들의 환대를 받을 것만 같은 인상을 내비쳤 다. 그런 그녀가 혼자 공연을 본다니. 인터뷰어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남자로서 도무지

허유경 (23세 / 대학생)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그녀에게 조심스레 질문을 해보았다. ‘어쩌다가……’ 그녀가 처음 인디 음악을 접하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터 넷에서 우연히 브로콜리 너마저를 접하게 된 그녀는 밴드의 특이한 이름에 이끌려 처음 인디 음악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유희열이 진행하는 라디오천국의 애청자 가 되어 다양한 밴드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이어폰 너머의 세계에 호기심이 동해 본격 적으로 공연장을 찾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그녀 역시 주위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 함께 공연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매번 공연을 볼 때마다 음악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 지인들 에게 소위 ‘영업’을 하는 시간과 노력이 너무나도 많이 들었고, 이에 염증을 느낀 그녀는 자연스레 혼자 공연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제가 성격이 꽤 소심한 편이에요. 그래서 신나게 공연을 즐기다가도 어느 순 간 같이 공연을 보러 온 지인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그날 공연은 끝난 것이나 다 름없어요. 그래서 이디오테잎, 갤럭시 익스프레스, 파블로프 등과 같이 신나게 뛰어놀기 좋은 밴드들의 공연은 될 수 있는 대로 혼자 보러 가곤 해요.”

어느 힙덕후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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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남성이 있다. 이름은 김현수로 대학에서 전자전기공학을 전공하는 공대생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이런 자리가 처음인지 그는 흥에 겨워 자신에 대한 소개를 마구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글쓴이는 남자의 구체적인 인적사항 따위에는 큰 흥미가 없었기에 그가 하는 말을 그저 귓전으로 흘려보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별안간 지금 이 시간이 선 자리가 아닌 인터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정신을 갖고 그의

키치킴 (25세 / 엘리펀트슈 에디터)

말에 본격적으로 귀 기울여 보기로 했다. 지금은 뼛속까지 록덕후인 그이지만, 어릴 때는 노토리어스 비아이지The Notorious B.I.G와 제이 지Jay-Z, 그리고 (지금은 스눕 라이언Snoop Lion으로 그 이름을 바꾼) 스 눕 독Snoop Dogg의 음악을 달고 살았던 힙덕후였다고 한다. 그러던 스무 살의 어느날, 당시 좋아하던 랩퍼들이 모여 홍대에서 공연을 연다는 소식에 그는 당시 사귀던 여자친

구와 함께 공연을 보러 갈 것을 결심한다. 그것이 피비린내 가득한 설전(舌戰)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모른 채… [무명], [누명]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국내 최고의 랩퍼로 자리 잡은 버벌 진트와 믹스테잎

등으로 힙합 팬들에게 점차 주목받기 시작하던 스윙스와 산 이 등 수많은 유명 래퍼들이 함께한 자리였기에 공연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 그 자체였다. 하지만 ‘힙합 이즈 마이 라잎’을 외치던 그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느 때와 같이 좋아하던 노래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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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청껏 따라 부르며 그렇게 공연을 즐겼다. 래퍼들의 미발표곡 공개와 콜라보 무대 등으 로 공연장의 분위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순간, 옆에 있던 여자친구가 별안간 갑자기 소리 를 꽥 질렀다. “아, 좀 그만!” 평소 발라드와 가요를 좋아하던 그녀는 평소 힙합을 좋아하던 남자친구를 위해 울며 겨 자 먹기로 공연에 따라오게 되었다. 그래도 기왕 찾아온 김에 그녀는 공연의 흥미점을 찾

으려 노력했지만, 알 수 없는 단어들을 쏘아 대는 래퍼와 땀 냄새 가득한 관객들로 가득

그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 그 이후로 혼자 공연을 보기 시작한 것 같아요. 이상하

찬 힙합 클럽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인내심이 폭발하고 만 것이다. 결국 그 둘 은 공연 도중 무대 밖으로 나가 한바탕 말싸움을 벌였고, 며칠 후 그들은 결별하고 만다. 게 그 공연을 다녀오고 난 이후로 힙합이 재미없어졌어요. 이상하죠?” 여자친구와 힙합, 둘 다 잃어버린 그는 록 음악으로 눈을 돌렸고 지금은 매년 50여 차례에 육박하는 밴드

● ELEPHANT-SHOE

공연을 관람하는 록덕후이자 해마다 열리는 국내 수도권의 모든 록 페스티벌을 정복하 는 페스티벌 고어로 거듭났다. 같이? 아니,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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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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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ys Don’t Cry

혼자 공연 보는 사람들의 계보가 있다면 꽤 윗자리를 차지할 것이 분명한 이 남자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어린 당 신에겐 낯설지도 모를 단어를 조금 열거해야겠다. <핫뮤직>, <서브> 같은 음악잡지가 있던 90년대에는 애독자 엽 서로 공연 초대 이벤트가 이루어지곤 했는데, 음악 채널 KMTV 개국기념 행사 중 하나였던 노이즈가든 콘서트에

노경우 (35세 /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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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첨된 것이 그의 혼자 공연 보기 역사의 시작이었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홍대 드럭에서의 라이브부터 스매 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의 첫 내한 공연 같은 것들이 그 뒤를 이었고, 이후로 꽤 오랫동안 그는 혼자 공 연을 보았다. “오늘 볼 밴드는 누구고, 어떤 음악을 하고 따위의 설명이 귀찮다. 소싯적에는 음악을 전도하겠다며 친구들을 데려갔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뉴비’ 따위가 불평하는 게 듣기 싫더라.” 그리고 그는 말을 잠 시 멈춘 후 다시 입을 뗐다. “사실은 여자친구가 없어서 혼자 다녔다.” 공연장의 커플들을 저주하는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이하 GMF)의 개근생이다. 혼자 보 는 공연 중에서도 난이도가 꽤 높은 음악 페스티벌도 혼자 다닌다고 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글래스톤버리 Glastonbury 페스티벌 같은 해외 페스티벌들도 혼자 갔다. 그는 단지 오래된 ‘혼자 공연 보는 사람’이 아니라 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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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까지 높았다. 관객끼리의 단란함이 유독 눈에 띄는 GMF에서 주변 커플에 대한 마음을 담아 틴에이지 팬클럽 Teenage Fanclub의 음악에 맞춰 슬램을 한 적도 있는 그에게도 고역으로 꼽는 순간은 있었다. 주말에도 출근하 는 직업이다 보니 보통 국내의 대형 페스티벌은 당일치기로 다녀오곤 하는데, 2012년 여름은 어쩐지 운이 좋았 다. 휴가를 얻은 덕분에 페스티벌이 끝나고 근처 모텔에 묵었는데, 푹신한 침대에 누워 피로를 풀려던 참 그의 눈 에 들어온 것은 천정에 달린 거대한 거울이었다. 거기엔 목욕 가운을 입은 한 지친 남자가 있었고, 그 남자를 바라 보는 것은 GMF에서 커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것보다 견디기 어려웠다고 그는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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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딱히 공연을 혼자 보는 게 싫단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요즘에는 음악 취향이 맞 는 친구들이 생겨 누군가와 함께 공연장에 가는 일이 잦아진 바람에 혼자 공연 보는 게 좀 별로라며 그는 자신에 게 ‘배가 불렀다’는 표현을 썼다. 앞으로 꿈이 있다면 늙어 죽는 그 날까지 혼자 공연 보는 것을 창피해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난 후 그는 들릴 듯 말듯 중얼거렸다. “그래도 다음에는 모텔 대형 거울에 나 말고 다 른 사람도 같이… 아, 아니다.”

단언컨대 친구를 사귀기에 가장 완벽한 장소

6년 차 런더너 손은지는 한 달 평균 28개의 공연을 보는 ‘어마 무시’한 음악 마니아다. 여름 페스티벌까지 감안해 일 년에 400개가 넘는 라이브를 보는 이 바쁜 일정 대부분을 그녀는 오롯이 혼자 해낸다. 이유는 간명하다. ‘같이 볼 사람이 없어서’. 실제로 그 살인적인 스케줄을 함께할 수 있는 친구를 찾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다. 일이나 공부를 하다 저녁이면 홀로 공연장으로 향하는 삶이 이제 일상이 되었지만, 혼자 공연을 본다는 것이 처

손은지 (34세 / 대학원생)

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영어 울렁증과 외국인 공포증에 시달리던 그녀이기에 더욱 그랬다. 특히 그녀가 자주 가는 작은 공연장에서는 마치 관객들끼리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인 것만 같아 고립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낯선 공연장 입구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공연장 문을 열고 들어가게 한 것은 ‘너무너무 보고 싶 다’는 원초적 욕망이었다. 지금 그녀는 오히려 그런 소규모 공연장에서 다른 어떤 곳보다 소속감을 느낀다. 확실 한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다 보니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도 많아 이제는 서로 눈인사를 나눌 정도다. 서브 컬처 신의 구성원으로서 소속감 같은 것을 느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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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서 친구를 사귀게 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언젠가 독일 함부르크Hamburg에서 간판도 없는 작은 클럽 에 갔을 때였다.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일렉트로닉 록 밴드 마이 애이미Mi Ami의 공연이었는데, 조금 일찍 도착 한 공연장엔 관객이 한 명도 없었다. 당황한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첫 관객으로 예상치 못 한 동양 여자가 나 타나니 주최자 역시 놀랐다. 입장 스탬프를 공짜로 찍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공연 내내 술을 제공해줬고, 심지어 밴드와의 뒤풀이까지 초대해주었다. 팬이었던 밴드와는 막상 너무 떨려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없었지만, 주최자와 친구가 된 덕분에 이후 그가 주최하는 모든 공연 게스트리스트에는 그녀의 이름이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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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혼자 공연을 가서 좋은 점을 역설적으로 새로운 친구를 만날 가능성이 열려있는 거라 말한다. 실제 그녀는 런던 친구들 대부분을 공연장에서 만났다. 덕분에 학교나 직장에서 만난 한정된 계층의 사람들보다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단다. 무엇보다 친구를 사귈 때 음악 취향을 중히 여기는 그녀에게는 취향 이 증명된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라는 것은 괜찮은 친구를 사귀기 위한 완벽한 장소라는 이야기엔 절로 눈동자가 커지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마찬가지일 테다. 13


REViEW x Label safari

ATP Festival : End of An Era 힙스터의 시대는 끝났다 EDIT: 맹선호 / WORDS : 손은지 Photos: 손은지

엘리펀트슈를 통해서 이미 여러 번 소개된 바 있는 영국의 언더그라운드 음악 페스티벌 ATP는 특 유의 음악적 성향으로 마니아층이 공고한 페스티벌이다. ’ATP’란 이름이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

의 곡 ‘All Tomorrow’s Parties’의 약자란 사실을 안다면 이 페스티벌이 추구하는 음악적

성향이 어떨지 조금은 짐작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ATP는 페스티벌마다 헤드라이너가 큐레이 터를 직접 맡아 주요 라인업을 결정한다는 점이 특별하다. 덕분에 헤드라이너만 결정되면 그 해의 라인업은 기본적으로 그 팬들을 만족하게 할 만한 취향의 밴드들로 채워지게 마련이고, 당연히 관객 의 만족도는 높을 수밖에 없는 것.

이러한 방식을 통해 ATP는 모과이Mogwai가 큐레이팅했던 역사적인 첫 번째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애 니멀 콜렉티브Animal Collective (2011년), 디어헌터Deerhunter (2013년) 등 동시대의 가장 잘나가는 언더그 라운드 마이너 스타들과 그 친구들이 팬들에게 집중적으로 소개될 수 있는 장을 제공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이노서 주니어Dinosaur Jr (2006년),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 (2008년/2009년), 페이브먼트Pavement (2010년), 갓스피드 유 블랙 엠퍼러Godspeed You! Black Emperor (2010년), 그리고 뉴트 럴 밀크 호텔Neutral Milk Hotel의 제프 맨검Jeff Mangum (2012년) 등 전설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의 컴백에 도 큰 역할을 하며 우리 시대의 언더그라운드 취향을 선구적으로 이끌어왔다.

또 다른 특별한 점으로는 관객들이 따로 캠핑이나 숙박 시설을 준비할 필요없이, 페스티벌 티켓에 리조트 숙박 시설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꼽을 수 있다. 덕분에 푯값이 다른 중소규모 페스티벌과 비 교하면 조금 비싸고 2인 이상 그룹으로만 표를 구매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티켓 구매와 함께 비교적 저렴하고 편안한 숙박 시설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편의성도 돋보인다.

다소 황량한 분위기의 한겨울 비수기의 리조트

Last Ever UK Holiday Camp

그런데 슬프게도 이 특별한 ATP 페스티벌이 지난 2013년 11월 22일부터 24일, 그리고 11월 29일부터 12월 1일, 두 번의 일정을 끝으로 15년 동안 이어온 역사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사실상 ATP 측에서 페스티벌을 그만두는 이유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어 확신할 순 없지만, 아마도 페스티벌의 핵심인 리조트를 섭외, 관리하는 데에 문제 가 있어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End of An Era’라는 이름으로 열린 영광의 마지막 ATP 페스티벌 큐레이터는 누구였을까? 한 시대가 끝 나는 것을 기념이라도 하듯 ATP 자신(그러니까 직원들)과 ATP와 비슷한 음악 성향으로 언더그라운드 음악 팬들 사 이에서 매년 화제가 되고 있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프리마베라 Primavera 페스티벌 두 팀이 그 마지막 큐레이팅을 맡 았다. 그리고 모두가 궁금해했던 메인 헤드라이너는 지난 5월 장기하와 얼굴들과 함께 국내에서도 재결성 공연을 펼 친 적 있는 전설의 뉴욕 펑크 밴드 텔레비전Television 이었다. 텔레비전은 특히 록 명반을 뽑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언 급되는 1977년 앨범 [Marquee Moon]을 통째로 연주하는 특별한 이벤트를 펼쳤는데, 이는 이번 ATP의 가장 핵심 적인 부분이면서 팬들의 가장 큰 기대를 받았던 부분이기도 했다. ELEPHANT-SH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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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evision @ ATP 텔레비전의 공연은 헤드라이너치고는 다소 이른 시간인 페스티벌 둘째 날 5시 30분에 시작해 1시간이 좀 못 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적 조건과는 무관하게 그들의 컴백을 오랫동 안 기다려왔을 팬들에게 35년이 넘는 시간의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녹슬지 않은 연주로 응답하며, 페스티벌의 하일라이트로서 전혀 부족함 없는 공연을 보여주었다. 이어 포 스트 록의 아버지 갓스피드 유 블랙 엠퍼러의 감정을 서서히 고조시키는 특유의 휘몰아치는 연 주가 2시간 가까이 펼쳐졌고, 또 8, 90년대 미국 인디펜던트 록 씬의 전설 다이노서 주니어가 멤버들의 지긋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층 관객들의 쉼없는 스테이지 다이빙과 격한 호응을 이끌어내며 페스티벌 중 가장 에너지 넘치는 시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슬로우코어slowcore 장 르의 원로밴드 로우Low와 포티셰드Portishead 멤버 죠프 배로우Geoff Barrow의 사이드 밴드로서 컬트 적인 팬층을 이끌고 있는 빅Beak 또한 각각 금요일과 일요일의 헤드라이너로서 관객들의 열띤 반응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주목할 밴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ATP와 지속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어온 소닉 유스Sonic Youth

멤버들의 포스트 소닉 유스 밴드들 또한 이번 라인업의 핵심을 차지하였는데, 기타리스

트 리 레이날도Lee Ranaldo와 드러머 스티브 셀리Steve Shelley의 새로운 얼터너티브 록 밴드 더 더스 트Lee Ranaldo and the Dust가 ATP의 마지막 라인업에 그 이름을 올렸다. 무엇보다 보컬 서스턴 무어 Thurston Moore

는 익스페리멘탈 기타 록 밴드 첼시 라이트 무빙Chelsea Light Moving, 그리고 그의 또 다

른 아방가르드 노이즈 프로젝트 밴드 폰Porn으로서 두 차례나 무대에 오르며 ATP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었다. 물론 원로급의 공연이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2013년 가장 뜨거운 유망주 들로 손꼽힌 포레스트 소즈Forest Swords와 학산 클락The Haxan Cloak이 신선하고 ‘쿨’한 익스페리멘 탈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들려주며 젊은 피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도 했다.

실제로 ATP 는 항상 신선한(다른 말로는 생소한) 라인업을 선보이며 한창 떠오르는 가능성 넘 치는 젊은 밴드들을 소개하는 장으로서도 큰 역할을 해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전히 마이 너한 정신은 유지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연륜 넘치는 밴드들이 주 라인업을 이루었다는 점이 눈 에 띄었다. 사실 이번에 공연한 밴드 중 다수는 지금까지 ATP 페스티벌의 큐레이터로서 한 번 씩은 이름을 올렸던 적이 있는데, 이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였다는 것은 분명 어떤 ‘마지막’의 위엄을 보여준 것 같았다. 다소 묵직한 라인업은 관객 구성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 그간 옷차림에나 신경 쓰면서 음악도 패션으로 듣는다는 소위 ‘힙스터들의 페스티벌’이라는 오명을 완전히 벗어내는 듯 보였다. 최소 15년 이상은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만 들으며 살아왔을 법한 연령대의 외골수 음악 팬들이 관객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웬만한 장르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 는 헤드라이너들의 활동시기를 감안한다면 이러한 관객 구성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첫 번째 ATP 경험이자, 이전 엘리펀트슈를 통해 소개된 적 있는 멋쟁이 청 춘들로 가득했던 2011년 애니멀 콜렉티브의 ATP와는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라 개인적으로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글의 시작부터 계속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이야기하기는 했으나 또 다른 원로 사이키델 릭 밴드Loop와 ATP가 큐레이터를 맡은 진정한 마지막 캠프 ‘End of An Era Part 2’가 그 다 음 주 주말에 이어졌다. 헤드라이너이기도 한 루프와 함께 모과이, 더 팝 그룹The Pop Group, 셀락 Shellac

등이 공연한 주말 캠프를 마지막으로 ATP는 마침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다

행히도 레코드 레이블이나 이벤트 기획사로서 ATP가 문을 닫는 것은 아니며, 영국의 캠프 페 스티벌을 제외한 미국, 호주, 아이슬란드의 ATP 연계 페스티벌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또 영국 내에서도 ‘I’ll Be Your Mirror’ 같은 도심형 비(非)숙박 페스티벌이나 단독 콘서트를 통해 활발히 ‘내일들의 파티(All Tomorrow’s Party)’는 계속 이어질 것이니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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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Y MUSIC INDUSTRY

SAVE THE MUSIC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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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엘리펀트슈와 두 번째로 함께 하는 바다비 생일파티 WORDS : 장은석 / PHOTOS : KAY

연말이 되면 쌓이고 쌓인 약속으로 바쁘다. 엘리펀트슈도 그랬다. 여름처럼 록 페스티벌 전쟁이 열리 는 것도 아니고, 신보도 잘 나오지 않는 연말이니 바쁠 일이 없어 보일 법도 하다. 하지만 연말이 되 면 엘리펀트슈 어워드도 준비해야 하며, 매달 진행되는 릴리즈 파티는 바다비의 생일과 겹쳐 준비해 야할 것이 많아진다. 평소의 릴리즈 파티에는 보통 네 팀을 섭외하는 편인데, 바다비 생일파티와 함 께 하는 12월에는 더 많은 팀을 섭외한다. 작년에는 아홉번째, 구텐버즈, 텔레플라이, 블랙백, 데이 드림, 쏘울 파크, 아시안체어샷, 노컨트롤,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까지 참여해 총 아홉 팀이 함께 했 다. 12월 공연 섭외를 시작하며 긴장을 잔뜩 했는데, 다행히도 올해에는 여섯 팀이 공연하기로 결정되 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했다. 섭외를 시작하기 전에 후보군을 추리는 작업을 하는데 있어 기준은 바 다비와 연이 있음과 동시에 올 한해 동안 엘리펀트슈와 연을 맺었던 이들을 모으는 데 있었다. 가장 먼저 생각난 팀은 올해 엘리펀트슈 릴리즈 파티를 가장 많이 함께 했던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클럽 공연 때마다 많은 인파를 몰고 다니며 자신들의 인기를 한껏 보여주었고, 데뷔 EP앨범까지 발 표하며 올해 가장 주목받은 신인이라 부르는데 모자람이 없는 한해를 보냈다. 이어 10월 릴리즈 파 티에 함께 하기로 했다 단독공연 일정에 의해 어긋났던 곽푸른하늘이 떠올랐다. 10월 매거진에 실린 인터뷰와 함께 진행된 촬영은 올해 최고의 결과물 중에 하나였다. 그런 그녀와 공연을 한 번도 같이 하지 않은 채 2013년을 보내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웠기에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는 엘리펀트 슈 어워드 2012에서 신인상을 받은 24아워즈와 적적해서 그런지와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팀 모두 올해 드디어 데뷔 정규앨범을 발표했고, 여름 페스티벌을 포함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2013년을 자신들의 바이오그래피에 의미 있는 한해로 만들었다. 이쯤 섭외가 되고 나니 꼭 생일 파티 에 아는 사람만 불러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엘리펀트슈와는 깊은 연을 맺고 있지만 바다 비에서는 한 번도 공연한 적이 없는 팀인 이스턴사이드킥에게 연락을 했다. 11월 매거진 커버스토리 를 맡았던 그들은 자신들이 커버였던 달의 릴리즈파티가 아니었음에도 흔쾌히 참여를 결정했고, 그 동안 엘리펀트슈 릴리즈파티에 그들을 섭외해달라던 수많은 사람의 바람을 드디어 이뤄주게 되었다. 마지막 한 자리는 반대로 바다비와 인연을 맺고 있지만, 엘리펀트슈와는 함께 하지 못한 이로 포스 트패닉이 함께 하게 됐다. 더유나이티드93으로 이름을 날리던 그들은 포스트 패닉으로 이름을 바꿈 과 동시에 음악 스타일도 함께 변화했고,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었기에 엘리펀트슈도 이들에게 계속 해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드디어 함께 할 기회가 생겼다. 총 3일에 걸쳐 진행되는 바다비 생일파티는 예매가 진행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엘리펀트슈와 함께 한 토요일 공연이 가장 먼저 매진되었다. 이정도의 멤버들이 한데 모인 공연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모인 이들의 대부분이 경쾌하거나 쎈 음악을 하는 밴드이다 보니 유일하게 부드러운 음악을 하는 곽푸른하늘은 공연 전에도 공연 중에도 공연이 끝난 후에도 걱정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그녀에 게는 관객들을 자연스레 자신의 편으로 끌어오는 능력이 있었다. 첫무대가 곽푸른하늘이었던 덕분에 생일파티 분위기가 자연스레 만들어졌고, 관객들의 집중도 모아졌다. 이어 청년들은 특유의 유쾌함과 경쾌함으로 더욱 흥이 일게 만들었고, 24아워즈는 언제나처럼 객석을 뜨겁게 만들었다. 적적해서 그 런지는 데뷔앨범 [Psycho]를 발표 후 엘리펀트슈와의 첫 공연이었는데, 앨범 녹음과정을 겪으며 확 실히 더 단단해진 라이브를 보여주었다. 셋 체인지는 어느 때보다 빠르게 이뤄진 덕분에 여섯팀이지 만 굉장히 빠른 호흡의 공연이 계속되었고, 이때 빠른 템포가 매력적인 포스트 패닉이 무대에 오르며 공연은 점점 더 가빠지기 시작했고, 마지막 이스턴사이드킥이 무대에 오를 때에는 자연스레 숨이 턱 까지 차올랐다. 많은 이들이 엘리펀트슈 릴리즈 파티에서 이들을 보고 싶어했던만큼 굉장한 반응이 바다비를 메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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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EASE PARTY


엘리펀트슈의 릴리즈 파티는 매달 첫째 주 일요일에 열립니다. 릴리즈 파티에서는 해당 달의 엘리펀트슈가 처음으로 공개되는 자리이자, 이달도 무사히, 엘리펀트슈가 발간되었음을 자축하 고자 만든 공연입니다. 인디펜던트 뮤직 신의 뮤지션과 공연장의 공정한 이윤 추구를 지지하는 엘리펀트슈는 공연의 수익금을 살롱 바다비와 아티스트에게 1:1로 전액 환원합니다.

왼쪽 위 부터 시계방향으로 포스트패닉 청년들 이스턴사이드킥 곽푸른하늘 24아워즈 적적해서 그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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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MMENDED ALBUMS Blood Hot Tess Parks 2013.12.03 359 Music 눈이 오는 날이면 세상이 유독 조용해 보인다. 겨울이 그렇다. 비단 눈이 오는 날이 아니어도 말이다. 추위 때문인지 사람이 몇 없는 거리의 앙상한 가지만 남 은 가로수들을 보면 채워져야 할 부분이 비어져 있어서인지 고요하다. 이 시즌에 는 음악 씬도 조용해지는 편이어서 신보 소식도 점점 줄어든다. 그래서 이때만큼 은 새로운 앨범을 추천하기 정말 어렵다. 하지만 올해에는 다행히도 구원을 받 았다. 테스 파크스Tess Parks덕에 말이다. 전혀 정보가 없는 뮤지션의 신보를 접했을 때, 이를 한 곡이라도 들어볼 것인가 아닌가는 대개 앨범 커버 이미지에서 갈린다. 앨범 재킷은 이렇게나 중요한 것 인데, 때론 이를 통해 선입견을 주기도 한다. 테스 파크스의 앨범 사진을 보고, 예쁘장한 여자가 꽃 들고 찍은 걸 보니 포크 가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첫 트랙 ‘Somedays'의 시작에 기타가 아닌 드럼이 등장할 때부터, 밑바닥을 찍고 그 밑 으로 더 나아가려는 그녀의 목소리가 등장할 때부터, 힘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느 껴지지 않는 나른하고도 나른한 기타가 나올 때부터 이 앨범이 포크로 향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으로는 사이키델릭 사운드가 강하지만, 일렉 기 타 사운드를 과하게 만들거나, 노이즈를 심하게 쓰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모든 사운드를 굉장히 명확히 들리게 한 편인데도 그녀의 음악에서 사이키델릭한 면 이 느껴지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녀의 목소리에서 만들어졌다. 무겁지만 가벼이 얹혀지며, 내려가는 듯 올라가는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도 비현 실적이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사이키델릭하다. 캐나다 토론토 출신의 그녀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영국으로 넘어오면서 부터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200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영국과 캐나다를 오가 며 공연을 했고, 올해 초 [Work All Day / Up All Night]라는 무거운 제목의 EP 를 자신의 돈으로 발표했다. 이는 여전히 밴드캠프Bandcamp 사이트에서 무료 로 들어볼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 앨범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큰 수확이 있었다. 이 앨범을 통해 그녀는 알란 맥기Alan McGee와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영국 음악 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라면 알란 맥 기라는 이름이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크리에이션 레코즈Creation Records라 는 레이블의 공동 설립자로 그곳에는 오아시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지져스 앤 메리 체인, 프라이멀 스크림 등 당시 최고의 뮤지션이 몸담은 거대 레이블이 다. 이토록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레이블 오너인 알란 맥기는 2012년 도쿄 록스 Tokyo Rocks라는

페스티벌의 2013년도 라인업에 도움을 주면서, 무명의 뮤지션들

을 돕기 위한 레이블을 차리게 된다. 그것이 바로 359 뮤직 레이블인데 테스 파 크스가 그의 도움을 받는 뮤지션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녀의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졌다. 하 지만 그녀에 관한 인터뷰나 기사는 신임임을 감안하면 꽤 많은 편이지만, 되 려 라이브 클립 등의 영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마도 여기에 알란 맥기의 노림수가 있어 보인다. 그녀의 외모와 음악은 확실한 스타성을 갖고 있어 이 를 철저히 준비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녀의 유일한 비디오클립이라 할 수 있는 ‘Somedays'의 뮤직비디오만 봐도 알 수 있다. 무척이나 공을 들인 이 영상은 요즘 흔치 않은 뮤지션에게만 집중하고 있다. 그것도 얼굴 클로즈업 컷으로 절 반을 채운 채 말이다. 다른 것은 없다 그냥 그녀의 음악과 그녀, 그것이 전부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느껴지는 것은 알란 맥기의 전략이 통하고 있 다는 얘기이다. 이제 앨범까지 나왔으니 2014년은 본격적으로 그녀가 바빠지 는 해가 될 것이고, 우리들의 귀에도 그녀의 음악이 익숙해지는 해가 될 것이다. WORDS : 장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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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o 적적해서 그런지 2013.11.12 Mirrorball Music 4인조 혼성 록 밴드 적적해서 그런지Juckjuck Grunzie가 그간의 활동을 집대성하는 첫 번째 정규 앨범 [Psycho]를 발표했다. 2007년 처음 밴드 가 결성된 것을 감안하면 첫 번째 앨범이 나오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알 수 있는데 이를 단순히 밴드의 게으름 혹은 나태함으로 인 한 것으로 판단하면 꽤 곤란하다. 적적해서 그런지는 꾸준한 공연을 토 대로 싸이키델릭, 슈게이징, 개러지, 하드 록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며 밴드의 색깔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는데, 가장 주목할만한 변화는 바로 함지혜와 이아름의 트윈 기타 체제에서 탈피하여 함지혜가 단독으로 기 타를 연주하고, 팀의 보컬인 이아름은 기타 대신 신디사이저를 잡게 된 것이다. 이는 바로 밴드의 중심이 그런지와 개러지 록 일변도에서 몽환 적인 싸이키델릭으로 그 추가 옮겨갔음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적적 해서 그런지의 첫 번째 앨범은 이러한 변화를 가장 손쉽게 감지할 수 있 는 기록과도 같다. 변칙적인 리듬 위에 리버브 가득한 보컬 사운드와 신 디사이저 멜로디를 얹어 완성한 ‘Walking In A Dream’과 난해한 멜로 디와 독특한 구성이 돋보이는 ‘Psycho’ 는 본작의 필청 트랙 중 하나. 방 대한 음악적 스펙트럼이 엿보이는 영기획의 싸이코반Psycoban이 선물한 ‘Meth-Odd’ 리믹스 트랙 역시 주목할 만 하다.

WORDS : 키치킴

Psychemoon 써드스톤 2013.11.28 SUNDAYDISCO! ‘난생 처음, 엄청난 흥분에 몸을 맡겨라!’,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 앰프의 열기를 당신의 청각으로 고스란히 전달하는, 이놈들이야말로 록-지니-어스!’. 80년대 외 화 포스터에서나 볼 법한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캐치프레이즈가 인상적인 이 글 귀는 바로 3인조 밴드 써드 스톤Third Stone의 신보 보도자료 중 일부이다. 강건함과 자신감이 뚝뚝 묻어나는 이 문구들처럼 써드 스톤의 이번 신보는 과연 우리에게 엄 청난 흥분을 안겨다 줄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허언에 불과한 것일까. 앨범의 포문 을 여는 첫 번째 트랙 ‘Door’ 를 들어보자. 딜레이를 머금은 단음의 리프만이 계속 해서 반복되는 이 노래는 완전한 포스트 록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이는 그간 써드 스톤이 걸어온 노선을 무색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써드 스톤은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an 등으로 대변되는 빈티지 블루스를 표방했던 팀이었기에 -2집 활 동 당시, 프론트맨 박상도는 베스트나 웨스턴 셔츠, 그리고 카우보이 중절모 등을 즐겨 입곤 했다. 영락 없는 스티비 레이 본의 그것이었다- 그 변화는 더 크게 다가 온다. 충격은 계속된다. 타이틀곡인 ‘Oasis’은 오아시스가 가져다 주는 황망한 정서를 싸 이키델리카와 블루스를 토대로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풀어내며, 기타의 능숙한 완 급조절이 일품인 ‘Machine’과 ‘Psychemoon’은 앞선 트랙의 분위기를 자연스레 넘겨받음과 동시에 앨범의 기승전결을 주조한다. 하이라이트는 앨범의 마지막 트 랙인 ‘잃어버린 얼굴’. 정통 블루스 잼으로 시작하는 이 트랙은 점차 절정으로 달려 가면서 무자비에 가까운 퍼즈 톤의 노이즈를 쏴대기 시작하는데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가

보여준 싸이키델릭 블루스 스타일에 포스트 록의 어법을 입혀 써드 스톤

만의 스타일을 새로이 재창조하고 있다. 써드 스톤의 이번 앨범은 과거 명인들의 유산들을 충분히 활용하면서도 시대의 흐름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과 연구가 빚어

The Crystal Method The Crystal Method 2014. 1. 14 Tiny e 미국 출신의 일렉트로닉 듀오 크리스탈 메쏘드가 다섯 번째 정규앨범을 발표했다. 제목도 [The Crystal Method]다. 보통의 밴드들이 데뷔 앨범 쯤에 취하는 셀프 타이틀 앨범을 이번에야 쓴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 어 보인다. 사실 그들은 데뷔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데뷔앨범 [Vegas] 는 10년 동안 꾸준히 팔린 덕에 2007년 플래티넘을 기록했으니, 그들 의 데뷔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상승세도 하 락세도 없이 꾸준했으나, 굴곡 없는 것은 때로는 독이기도 하다. 그들의 음악은 TV 쇼, 광고, 영화 등 다양한 곳에서 늘 쓰였기에 더없이 익숙하 다. 하지만 되려 그것이 이들에게 부정적인 면을 주기도 한다. 아무런 정 보 없이 이들의 음악을 들어도 미드의 한 장면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하 지만 이번 앨범을 굳이 자신들의 이름으로 한 것은 무언가의 의지인 듯하 다. 하지만 여전히 지나치게 트렌디한 사운드는 영화나 TV쇼의 크레딧 에서 들어본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다 보니 셀프타이틀의 앨범으로서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찌 생각해보자면, 대중들의 비판에 “이게 우리다!”라는 자부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트렌디한 사운드에 대해 더욱 트렌디함을 내세우며 정면돌파하려는 이들에게 [The Crystal Method]라는 셀프타이틀은 완벽한 이름이다.

WORDS : 장은석

낸 하나의 ‘작품’과도 같다. 한국 음악사 한 부분에 당당히 기록될, 그야말로 명반 그 자체이다.

WORDS : 키치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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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VIDEO STILL HERE

WORDS : 장은석

Crystal Fighters Love Natural 증축과 신축 천생연분이라든지, 선남선녀가 만났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는 커플은 비슷한 면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외 모, 성격, 취향 등 적어도 하나 정도는 말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면이 많은 이성에게 관심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와는 다른 이에게 더 눈이 가고, 그와의 연애를 그려보게 된다. 내가 가지지 못 한 것을 갖고 있는 이와의 만남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이를 경험해보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로 연인이 되어 자신이 바라던 세계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부터 상대방에게 무섭게 빠져들기 시작하고, 이내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완전히 바뀌는 경험을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의 기존의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고 있음은 깨닫지 못한다. 새로운 세계로의 이주가 무사히 끝난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행여 적응을 못하거 나, 향수병이 생길 때 큰 재앙이 다가온다. 그때부터는 동경해왔던 것들이 이상하게만 느껴지고, 별 볼일 없고 지루하기만 했던 지난 것들이 너무나 포근하고 아늑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이전의 세계를 복구하는 것이 쉬 운 일은 아니다. 지금의 새로운 세계를 무너뜨리는 작업을 먼저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대로 언감생 심(焉敢生心)이라거나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누에는 뽕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식의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은 인생에 있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성장은 기존에 지은 건물 위에 새로운 층을 쌓아 올리는 증축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지만, 이전의 건물 을 완전히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신축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증축은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은 채로 점 진적인 변화를 가져갈 수 있어 여러모로 안정적이다. 하지만 증축은 증축일 뿐이어서 어느 이상 높이 쌓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때로는 과감히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새로이 쌓는 작업 또한 필요하다. 이 과정은 당연하게 도 건물이 크면 클수록 큰 비용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렇기에 자신의 세계가 커지기 전에 이 철거 작업을 경험하며 자신의 대지를 넓혀가는 것이 유리하다. 즉, 젊었을 때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는 너무나도 뻔 한 이야기와 이어진다. 이 철거작업의 계기는 다양하지만, 사람을 통해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와 이 어진 수많은 사람 중에서도 연인은 가장 큰 영향을 주고받는 상대이고, 그렇기에 가장 큰 변화를 이끌어내기 도 한다. 그렇기에 때로는 나와는 전혀 다른 인물을 통해 나를 철거하고 상대방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나를 만들어 볼 필요가 있다. 이때 자신의 세계가 무너짐을 걱정하기 보다는 새로운 세계를 얼마나 멋지게 만들 것 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이 세계만큼은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세계이고 온전한 나만의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Directed by Ben Perry & Duncan Christie DOP John Lee Produced by Clare Gibson @ Armoury Production Company: Armoury Girls: Alice Cheng and Megan Heaton Harris Boy: Jude Campbell

ELEPHANT-SHOE


21


FEATURE

original sound novel

그 남자

앨범 커버에 덧 붙이 는 단편 소설 EDIT : 장은석 / WORDS : 물고기군

그 남자는 자신이 더 이상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할 수 없으

어느 날 밤, 그는 꿈속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

고양이를 봤다. 아내는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했고, 약을

리라고 생각했다. 이 말의 의미는 이전까지 자신이 그럴 수

다. 다음날 아침, 주방 싱크대 아래 걸레받이 판자가 떼어

먹어야 했다. 약을 먹으면 아내는 아주 온순해졌지만 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리라.

져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것이 현실의

루의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냈다. 그렇게 아내는 안방 침대

십 여년 전 결혼했을 때, 그는 자기 인생이 새로 시작되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 그 혼자 신혼

에, 아기는 병원 침대에, 마치 나무처럼 누워만 있었다. 한

기분을 느꼈다. 진지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생각한 것은

집에서 지내던 약 보름 동안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고양

편 회사에는 구조조정이 있었다. 그는 살아남았지만 황차

아니지만, 그는 결혼을 통해서 인생 - 특히, 그 자신의 인

이가 한 짓이었다. 총각 시절, 그가 독립해 나오자마자 기

장은 날라갔다. 황차장은 자기 사업을 벌일 계획인데 그에

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고,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

르기 시작한 고양이로, 나이는 일곱 살, 따져보면 거의 반

게 합류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는 회사에서 황차장의

다. 아니, 생각했다기 보다는, 어디선가 그런 생각이 그에

평생을 살아오던 집에서 그와 함께 신혼집으로 이사온 셈

업무를 이어받았다. 그의 생각에 자기 마저 회사를 떠날 수

게 찾아왔고, 그는 마지못해 그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받

이었다. 며칠 동안 밥도 먹지 않고, 구석진 곳에 몸을 꾸겨

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그런 생각은 황차장에게

아들였다. 그러니까 그가 결혼을 결심했을 때는 그게 뭔지

넣고 꼼짝하지도 않았다. 그러더니 결국에는 이렇게 걸레

는 배신이었다. 황차장을 마지막으로 만난 날은 몹시 안

도 몰랐고, 그게 자기 인생에 무슨 영향을 미칠지도 몰랐

받이 판자를 떼어내서 마치 쥐새끼처럼 싱크대 아래 안쪽

좋았다. 황차장에게는 아이가 둘 있었는데, 현재는 모두

다. 그것은 자기 인생에서 일어나는 다른 여러 사건 - 진학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었다. 그는 쪼그려 앉아 머리를 기울

어머니와 함께 미국에 있었다. 매달 보내야 하는 돈이 엄

이나 입대 같은 일 중에 하나였을 뿐이다. 그러나 어느 순

여 안을 들여다 보았지만,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

청났다. 그는 황차장에게 회사의 입장을 전해야 하는 역할

간, 그는 ‘감당’이란 단어가 자꾸 떠올랐고, 그 단어를 포

만 그안에 있는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은

을 맡았다. 황차장이 횡령한 돈을 조용히 돌려주면 회사는

함한 전체 문장이 겨냥하는 것이, 바로 ‘자기 인생’이라는

신처를 찾은 후로 고양이는 완전히 기운을 회복한 것처럼

형사고발은 하지 않을 거라는 게 전달사항이었다. 그는 직

사실을 인정했다. 즉, 너는 네 인생을 감당해야 해. 또 이

보였다. 물론 여전히 바깥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도 깜

급이 올랐고, 봉급도 올랐다. 하지만 그것과 비교도 안될

말의 의미는 이전까지 그는 인생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짝 놀라 귀를 쫑긋 세우고는 후다닥 싱크대 아래로 기어들

정도로 업무양도 늘어났다. 인원은 줄어들고, 실적 압박은

않았다는 것이리라. 그에게 인생은 감당해야 할 것이 아니

어 갔지만 나머지 시간에는 밥도 잘 먹고, 집안 구석구석을

점점 심해졌다. 1년이 지난 후에는 모회사에서 그가 속한

라, 그냥 흘러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혼과 함께, 그 흐름

활달하게 돌아다녔다.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회사를 매각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때까지도 아이는

은 뚝 끊겼다. 그는 마치 정신을 차려보니 발목까지 차오르

싱크대 아래 걸레받이를 그렇게 떼어진 채로 두었다. 비록

살아 있었다. 현대의학의 승리였고, 돈의 힘이었다. 의사는

는 얕은 개울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몇 년 더 지나서 고양이도 그 장소를 잊어버린 듯, 더 이상

새로운 치료방법을 제안했는데, 비급여 항목이라서 이전

전까지 자신을 싣고 흐르던 부드럽고 따뜻한 물살이 순식

기어들어 가지 않게 된 후에도.

보다 서너 배 이상 돈이 필요했다. 그런데도 반드시 좋아진

간에 사라져 버렸다.

Peter Murphy Seesaw Sway NINTH (2011)

고양이는 3년 전에 죽었다. 그의 막연한 예상대로 고양이

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가 선택해야 했다.

는 그렇게 15년을 살았다. 인생의 전반기를 총각인 그와,

아내는 거의 살아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녀 옆에 누워

나머지 후반기를 결혼한 그와 살았다. 그리고 묘하게도 바

있으면, 결혼 전 자신이 품었던 인생에 대한 이미지가 떠

톤을 이어받듯이 아이가 태어났다. 거의 하루, 이틀 차이

올랐다. 다시금 무언가 그의 몸을 띄워서 두둥실 흘러가

였다. 고양이를 잃은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그의 사

게 만드는 것 같았다. 입사 동기의 장례식에서 황차장을

무실 책상에 아이 사진이 담긴 액자가 세워졌는데, 그것을

만났다. 1년 전 구조조정에서 해고 된 직원이었다. 아내

보고 황차장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자신의 아이

가 무척 예뻤고, 강인하게 보였다. 황차장님, 돈이 필요

처럼 좋아했다. 황차장은 아이를 키워야만 진짜 인생을 살

합니다. 그것도 많이요. 그가 말했다. 황차장은 그가 무

게 되는 거라고 말했다. 그는 그말의 의미를 얼마 지나지

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황차장은 괜찮아보였다. 아

않아 알게 됐다. 황차장은 회사에서 그에게 아버지같은 존

니, 이전보다 훨씬 나아보였다. 황차장은 여전히 그에게

재였다. 왜인지 알 수 없지만 황차장은 그가 신입이었을

친절했고, 이렇게 되물었다. 자네, 감당할 수 있겠나? 그

때부터 그를 아꼈고, 그가 다른 동기들에 비해 빠르게 승

는 회사가 매각되기 전에 뜰 생각이었다. 그 즈음 아버지

진할 수 있었던 데도 황차장의 몫이 컸다. 회사에서 그는

가 쓰러졌다. 두 번의 큰 수술을 받았다. 다행인 것은 아

소위 말하는 황차장 라인이었다. 물론 그에게는 장점이 많

내 상태가 조금 나아졌다는 것이다. 아내는 정신을 차렸

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매우 성실한 인간이었고, 머리도 무

고, 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척 좋았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학창시절부터 그의 성

어느 날 밤, 그는 다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고, 이

적은 줄곧 탑클래스였고, 집안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일

번에는 곧장 잠에서 깨어났다. 혼자 자기에는 지나치게 넓

류고등학교에 일류대학, 졸업 후에 곧바로 일류기업까지,

은 침대는 마치 바다처럼 출렁이는 것 같았다. 그는 방문

말그대로 탄탄대로인 인생이었다. 이미 말했듯이 그의 인

을 열고 나왔고, 온 집안에 불을 켰다. 집 또한 너무 넓었

생은 부드럽고 따스한 물살에 실려 두둥실 떠가는 것 같았

다. 두 사람이 살기에도, 세 사람이 살기에도 그랬다. 하지

다. 그는 그게 뭔지 몰랐지만, 또 딱히 그런 인생에 만족한

만 이제 그는 혼자였다. 부엌 싱크대 걸레받이는 여전히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이 운이 좋다는 점은 부정하지

떼어진 채로, 그 아래 편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한

않았다. 그러나 그런 그의 운은, 아마 거기까지 였다.

참동안 쪼그려 앉아,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 구

아기에게 문제가 있었다. 심장에도 문제가 있었고, 신장

멍 속에서 무언가 기어나오길 기다리는 걸까? 3년 전에 죽

에도 문제가 있었다. 구조적이기도 했고, 화학적이기도 했

은 고양이가? 아니면, 가지처럼 관을 줄줄 달고 있는 자기

다. 어쨌든 아이의 몸에는 수많은 관이 연결되었는데, 그

아이가? 그는 더 이상 자신이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할 수 없

모습이 마치 나무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 관들은 가지

다고 생각했다. 그는 점점 자신이 쪼그라든다는 생각이 들

거나 뿌리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를 더 힘들게 한 건 아내

었다. 아니, 그러길 바랐다. 처음 이 집에 이사왔을 때 고

였다. 아내는 내내 고양이가 싫었다고 말했다. 그는 왜 고

양이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양이가 살아있을 적에, 자신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는

마침내 바닥에 몸을 바짝 엎드리고 그 구멍 속으로 기어

지 궁금했다. 그리고 고양이가 이 일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들어가기 시작했다. 

몰랐다. 어느 날 아내는 아기를 거의 죽일 뻔했다. 아내는 ELEPHANT-SH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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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é MINI 02-322-6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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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É NOSTALGIA 02-6398-4464

그림자따라하기 앞으로뒤로가기

café Nthen 02-325-1718

그문화 다방 02-3142-1429

CAFÉ ORGANIC 02-332-4650

그앞 02-333-1861

café Oui 02-338-0407

노pd네 콩 볶는 집 02-337-3456

CAFÉ PROJECT A. 02-3142-9883

마망갸또 02-3141-9664

CAFÉ RONIN

몽소 070-8272-2003

café stay in 02-336-7757

물고기 02-338-0913

고 내년에는 더 많은 활동을 준비 중인 할아버지들이 멋지네요. 그들이 새

Café usine 02-336-3555

사자 02-337-7928

café YOM

해맞이 인사를 영상으로 공개했습니다. 롤링스톤즈가 내

상수동 까페

Café ooo 02-335-3008

섬 02-336-9631

년에는 아시아투어를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한

café 게으른고양이 070-8867-7819

아울스덴 02-322-0052

국에서도 볼 수 있으려나요? 아무튼 엘리펀트슈도 인사를

CAFE 롱끌

안녕, 낯선사람 070-4115-5610

Café 수다

이리카페 02-323-7861

CAFÉ 장쌤 070-4084-3414

이철헤어커커 서교점 02-326-2326

café 피아노의 숲 070-7808-7357

작업실 02-338-2365

CAFFEE STUDIO 010-4242-1647

장싸롱 02-6085-4264

Coffee Seed 02-326-6230

짧은여행의기록 02-6338-7789

CHEESE CAKE

라니 헤어 02-325-8834

CHURRO 101 070-8625-0331

마켓 밤삼킨별 02-335-3532

Da-da-da 02-324-2062

모두들 사랑한다 말합니다 02-324-9478

dingdong 02-334-3381

모모디자인하우스 02-333-1793

Dinner Filament 02-333-9946

민트샵 shop.mintpaper.com

EGO: 02-338-9342

슬런치 팩토리 02-6367-9870

Femme J Hair Salon

씨클라우드 02-323-6646

FIVE EXTRACTS 02-324-5815

용다방 070-7551-9093

five tables 02-3141-1555

제비다방 02-325-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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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느림 02-332-2873

HAIR BY J STYLE

카페 에반스빌 070-7636-3872

Hair Maison de DOROTHY

칼디 커피하우스 02-334-7770

HO DAN SA 070-7717-5344

커피감각 02-334-3353

Home Pub 맘

커피공장 2An 010-4613-2043

I do 02-334-1229

퍼플레코드 02-336-3023

JAKIYA 02-326-2824

함박식당 070-4409-0205

Jena's Grazie 02-335-2288

향레코드 02-334-0283

JUAN'S CHURROS 02-335-7886

호우 café bar 02-322-5425

KAAREKLINT The Café 02-335-1771

히루냥코 02-322-7596

로 보내주세요.

튜디오에서 새로운 트랙을 만드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네요. 2014년 크리스

보니 왠지 2014년에 신보가 나올 것 같지만, 기다려 보죠.

2013년도 며칠 남지 않았네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점점 빠르게 흘 러간다는데, 앞으로는 한해가 더 빨라지겠죠. 그렇다면 과연 롤링스톤즈 할아버지들의 한해는 얼마나 빠를까요? 하지만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

드릴게요! 즐거운 새해 되세요!

이번 호 커버 촬영은 눈보라 치는 날이었습니다. 궂은 날씨를 뚫고 촬영장에 모인 스탭들에게 감사를. 2014년 새해에는 엘리펀트슈 식구들 과 엘리펀트슈가 만날 모든 뮤지션이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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