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 T R AV E L La Ciot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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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e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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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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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 32.
A RT I ST I C
Morocco
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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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행의 영감을 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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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x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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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ga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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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K
여행자의 예술, 예술가의 여행 ARTISTIC
그의 연주를 한참 보고 있다. 당신이 단단한 턱을 아래로 내리 고 입술을 굳게 닫은 채 어제, 일년 전 그리고 그 훨씬 오래부 터 연습한 자신을 내 앞에 하나 둘 내놓을 때 마다 나는 꼭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청춘을 다 팔아다가 고작 음악이나 그 림 따위를 하며 나이 먹겠다고 각오했을 때. 잡히지도 않는 꿈 같은 내면을 찾겠다고 젊음을 온통 탕진하고 실험하겠다고 마 음 먹었을 때. 나는 그 눈썹과, 입술과, 떨리는 손짓을 믿지 않 을 수 없다. 그 야만적인 힘이 당신을 끝까지 데려갈 것이다. 예 술가와 여행자는 그렇게 한 풍경에서 만난다. 우리는 현실 저 건너 멀고 깊은 꿈에 잠겼다. 기꺼이.
편집장 양정훈
사진가의 건축기행
ARCHITOUR 독일 | 장원준
건축을 찍는 이유? 처음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냥 건축을 찍 었을 때 가장 내 마음이 편안했다. 마치 이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인 연이 있어 만나듯이 건축과 나 사이에도 특별한 인연이 생긴 것이 아닐까 한다. 촬영을 다니면서 왜 내가 건축을 찍게 됐는지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러다 건축이 가진 독특한 습성을 발견했다. 불변성. 건축물은 한번 그 자리에 지어지면 변하지 않는다. 물론 세월이 가 면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순 있지만, 따로 허물지 않는 이상 본질은 변하지 않은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서 수없이 많은 맺고 끊음을 경험하며 거기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 던 중 건축물이 가진 불변성을 느끼고는 나도 그런 성질을 닮아가 고 싶었을까. 그렇게 나는 건축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Museum für Modern Kunst
공간 속으로
프랑크푸르트 시가지를 하염없이 걷던 중, 길 한복판에 웬 역삼각형 모양의 건물이 하나 보인다. 자세히 가서 살펴보니 케이크 조각같이 생긴 건물의 이름은 Museum für Modern Kunst, 프랑크 푸르트 현대미술관이었다. 1977년 K.슈트뢰허 사후 그가 가진 1960년대 미국 현대미술품들을 전 부 프랑크푸르트 시에 기증하는데, 이에 프랑크푸르트 시는 그의 컬렉션을 바탕으로 미술관 건립 을 계획하게 된다. 이후 건축 공모를 거쳐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한스 홀레인(Hans Hollein)에 의 해 지어지고 1991년 개관했다. 건물의 외관은 삼각형의 세 면이 전부 다른데, 이렇게 독특하게 생 긴 외형은 건축계에 많은 주목을 받게 된다. 미술관에 입장해 짐을 맡기고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꼭대기 층까지 이어진 새하얀 공간 속에 순 간 압도당한다. 그러면서 천천히 새하얀 공간과 조명과 바닥, 벽으로 이루어진 조형적 요소에 시 선이 향하게 된다. 마치 전시물들이 그 속에 피어 오르는 것 같다. 관람을 하다 말고 다시 매표소로 내려가 촬영이 가능한지 물었다. 직원의 허락을 받고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낸 뒤 촬영 허가 스티 커를 몸에 붙이고 다시 전시장으로 들어간다. 기둥을 휘감으며 오르는 계단과 외관을 그대로 닮아 케이크 모양으로 좁아져 가는 공간, 내부를 찍으며 사진가의 모든 감각은 비로소 활짝 깨어난다. 그동안 여러 가지 건물을 찍었지만 그 중 나는 미술관을 가장 좋아한다. 예술품을 소장하는 미술 관 건물에서는 그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철학과 감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미술관이라는 건 건축가가 지은 또 하나의 거대한 예술작품인 것이다.
PRICE│18Euro OPEN│10:00-18:00, 월요일 휴관 ADDRESS│Domstraße 10, 60311 Frankfurt am Main WEB│www.mmk-frankfurt.de
베를린
Bauhaus-Archiv
감각의 확신
베를린에 도착을 하자마자 숙소에 짐을 맡기고 곧장 바우하우스 아키프로 향한다. 사 진을 시작하기 전 실내디자인을 전공할 때부터 바우하우스에 대해 공부를 해왔고, 세 계 디자인사에 한 획을 그은 교육기관인 만큼 이번 독일에서 바우하우스에 대한 기대 감은 꽤 컸다. 바우하우스는 발터 그로피우스에 의해 1919년 바이마르에 세워졌고, 처 음엔 공예 학교적 성격을 띄다가 1923년 예술과 기술의 통일이라는 연구성과를 발표 하고 바우하우스의 정신이란 걸 갖게 됐다. 이후 1932년 나치의 탄압을 받기 시작해 1933년에는 결국 폐쇄되는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이후 바우하우스의 단순하고 실용 적인 디자인 정신은 미국에서 다시 꽃피우게 되는데, 발터 그로피우스 사후 그의 작품 을 다시 모아서 베를린에 바우하우스 아키프 미술관을 설립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그로피우스가 지은 이 건물을 구석구석 살펴보면 직각 호나 정사각형 같은 굉장히 단 순하면서도 정직한 형상의 도형을 지니고 있다. 이런 디테일이 모인 건물의 전체 형상 은 단순하지만 빈틈을 찾아 볼 수 없다. 군더더기 없는 정말 기본. 그렇게 이루어진 선 과 면들은 전혀 허술하지 않았다. 내가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때, 디자인을 하다가 사 진으로 전향한 이방인은 처음부터 사진을 시작한 사람들과 조금 다른 처지에 놓였다. 그들과 소통의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때론 자기의심도 자랐다. 하지만 이번 여 행으로 인해 작은 확신이 서기 시작한다. 정답은 기본에 있고, 그게 시작이며 또 앞으 로 내 사진이 사람들과 소통해야 할 방향이다.
ADDRESS│Klingelhöferstraße 14, 10785 Berlin WEB│www.bauhaus.de/en/ NOTICE│2018년 4월 29일부터 내부 전시관 리뉴얼에 들어갔다. 2019년 재개장이 목표. 현재 전시관 내부 관람은 할 수 없다.
뮌헨
Pinakothek
나와 어울리는 공간
사실 내가 뮌헨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오로지 하나였다. 세계 최고의 맥주축제인 옥토버페스트. 맥주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 축제는 독일 여행에서 필수 코스였다. 하지만 옥토버페스트 참가는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행사장에 도착한 순간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와 우박에 속수무책. 결국 축제를 즐기지 못하고 집 으로 향하는 열차를 탈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뮌헨을 벗어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비가 그치는 모습에 야속함을 감출 수 없었다. 둘째 날,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표를 끊어서 뮌헨으로 향한다. 이번에는 날씨가 무척이나 좋은 만큼 성공적인 축제 참여를 자신하고 축제 장소로 향했다. 사람들은 흥에 겨워 있고, 분위기는 무척이나 뜨거웠다. 헌데 그 공간 속에 있는 내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식어있었다. 축제 공간 속에서 들려오는 함성과 노랫소리, 왜 그런지 그 소리들이 편안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결국 행사장 을 빠져 나와 집으로 가는 길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기대했던 축제였는데. 돌이켜 보니 오히려 행사장에 가기 전 잠시 들렀던 뮤지엄에서 나는 더 나답고, 편안하고, 즐거웠던 것 같다. 그런 경험 많을 것이다. 얼마나 기대하고 기다렸는지 와 상관없이, 어떤 공간 속에서는 조금이라 도 더 있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다른 공간에서는 잠시라도 그곳에 머물기 싫어질 때. 마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어울림이 있듯, 사람과 공간 사이에도 어울림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건축이 가진 또 하나의 역할일지 모른다. 피나코테크 뮤지엄은 그런 의미에서 옥토버페스트보다 훨씬 내게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알테, 노이에, 모데른 세 곳으로 구성된 뮤지엄은 각각 중세, 19세기, 현대미 술과 디자인을 전시하는데 미술관들의 건축물 자체가 그 속에 전시물의 느낌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전시물들을 모두 느끼고 이해할 수 없어도 이 공간은 그 속에 있는 나고 드는 사람들을 철학적으로 변 모시키기에 충분하다. 작품과 건물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함께 어울리기에도. PRICE│12Euro OPEN│10:00-18:00(수요일-일요일), 10:00-20:00(화요일), 월요일 휴관 ADDRESS│Barer Str. 27, 80333 München WEB│www.pinakothek.de
TRAVEL
독일 노르웨이
개요 일본 혼슈섬 중남부에 위치한 도시
스웨덴
면적 225.21km²
덴마크
인구 약 270만명
영국 아일랜드 네덜란드
폴란드
베를린
독일 벨기에 프랑크푸르트
체코 슬로바키아
뮌헨 프랑스
오스트리아
오사카 라멘 오사카를 여행한다면 라멘은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 중 하나다. 일본에서도 오사카 라멘은 맛 좋기로 유명하다. 오사카 라멘에 담긴 이야기도 있다. 오사 카식 라멘은 다른 지역 라멘에 비해 매콤하다. 식민지 시절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살던 곳으로,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춰 조금씩 변한 것이다. 오직 오사카 에서만 먹을 수 있는 한국인의 맛 오사카 라멘.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TRAVEL NOTE 여행기간 여행동선 여행비용 숙소정보
2017년 9월 1일-10월3일 프랑크푸르트로부터 시작, 뒤셀도르프, 함부르크 등 10개 도시를 거점으로 동-북-서-남 방향으로 독일 일주. 거점지에서 주변 도시를 찾아 여행했습니다. 항공권 포함 총 380만원, 미술관 할인제도와 독일 철도패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녀 경비를 절약했습니다. 거점지를 선정한 후 숙박 중개 사이트에서 호스텔을 미리 예약했고, 프랑크푸르트와 마지막 거점인 바인가르텐은 에어비앤비를 이용했어요.
COMMENT 독일은 특히 중앙역 주변으로 시내가 발달되어 시내 관람은 베를린 같은 대도시가 아닌 이상 도보여행으로도 충분할 거예요. 주변도시로 나가게 된다면 지역 티 켓을 이용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장원준 사진가. 본래 여성복 브랜드에서 포토그래퍼로 활동을 했지만 자신과 조금 더 어울리는 일이 있 다는 걸 깨닫고 안정을 떠나 여행을 향했다. 삶은 하나의 여행이고, 이곳 저곳을 유랑하며 자신만 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뜻에서 '삶랑자' 라는 이름을 쓴다. intragram: @leben_studio, @leben_traveler
일러스트레이터와 삶의 예술가들
용산 1987 용산전자상가 | 한국 | 정연석
토요일 용산 선인상가. 좁은 통로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곳 2층으로 세상의 모든 컴퓨터와 노트북과 키보드와 마우스가 모여든 것 같다. 그리고 정체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컴퓨터의 부속들. 컴퓨터는 1도 모르는 나 같은 '컴 알못'에게 선인상가 2층은 미지의 세계이나, 이 좁은 복 도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날카롭고 익숙한 눈빛으로 그 날의 사냥감을 훑으며 지나간다. 선인상가 2층은 인터넷 최저가가 이끄는 방향으로 모든 거래행위가 끌려가는 21세기식 판매 전략을 굳이 따라 가지 않거나, 아니면 따라가지 못하는 20세기 소년들의 세상이다. 더 이상 파는 자와 사는 자가 직접 대면할 필 요가 없는 디지털 세상에서, 상품은 모니터가 보여주는 컬러사진과 에누리가 없는 판매가의 방식으로 거래된 다. 하지만 이곳에는 사진이 아닌 실물을 보고, 판매자의 말투와 눈빛으로 제품 구매를 결정하는 20세기적 상거 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다. 온라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선인상가 2층은 마지막 남 은 20세기 인류 최후의 전선처럼 느껴졌다. 선인상가 2 층의 복도에는 여전히 지난 세기의 쿰쿰한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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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용산
올해 초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용산도시재생을 위한 작은 전시에 걸 그 림들을 그린 적이 있다. 선인상가, 나진상가, 원효상가, 전자랜드를 차례 로 다니면서 그곳을 터전으로 생업을 잇는 상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작 은 가게를 그림으로 그렸다. 그전에 나는 용산전자상가를 방문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나는 부산에 서 성장기를 보냈고 컴퓨터나 전자게임에는 완전히 문외한이었다. 컴 퓨터와 모니터를 연결하는 작은 어댑터를 사기위해 용산을 처음 찾았 던 때. 용산역과 전자상가를 연결하는 보행교의 이미지는 한동안 나에 게 용산전자상가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다. 좁고 긴 통로에는 아마 도 용산역에서 주로 활동하는 걸로 보이는 노숙인들이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누워있었다. 그들에게 시간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다. 아마 그들도 과거에는 통로를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처럼 시간을 재촉하며 살았을 것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용산역 보행교의 노숙인들은 세상의 시간에 무관심해 보였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용산역 노숙인들의 시간에 무관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좁은 통로를 동시에 흐르던 한 없이 늘어지는 시간과 급하게 지나치는 시간들. 그날 오후의 늘어짐과 무기력과 무관심은 한동안 용산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나는 천 원짜리 작은 어댑터 하나를 사기위해 용산을 세 번이나 찾아야 했다. 처음 두 번의 방문에서 엉뚱한 제품을 구매한 이유였다. 컴퓨터에 너무나 무관심하게 살아온 주제에 용산을 너무 만만하게 본 대가였다. 초보자에게 용산전자상가는 너무나 넓고 광활한 세상이었다. 그곳은 해 독불가의 암호문처럼 복잡했다. 용산에는 작은 매장이 4,000개가 넘게 있었고, 나는 내가 필요로 하는 매장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세 번 만에 겨우 원하는 물건을 얻었을 때 두 번 다시 용산전자 상가를 찾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노숙인들이 쉬고 있던 보 행교를 빠르게 걸어서 돌아갔다. 24
텅 빈 침묵
그림을 위해 다시 찾은 나진상가 2층은 너무나 한산했다. 군데군데 비 어있는 가게들은 셔터를 내린 채 새로운 입주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 인상가 2층에서 보았던 그 복작거림이 이곳에는 없었다. 용산전자상가 의 쇠락을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비어있는 가게들은 현재 용산전자 상가가 처한 사정을 텅 빈 침묵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셔터에 '입점준 비중'이라고 써 붙여 놓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준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비어있는 가게들은 한동안 계속 비어있었 고 굳게 닫힌 셔터가 언제 다시 올라갈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몇몇 빈 가게는 창고로 쓰이고 있었다. 그 이 빠진 것처럼 보이는 통로를 사 이에 두고 나진상가의 상인들이 각자의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 활기차 보이던 선인상가도 3, 4층으로 올라가면 비어있고 닫혀있고 썰렁하기 는 마찬가지였다. 용산전자상가 전체의 공실률은 20%가 넘는다. 용산전자상가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6차선 청파로에는 여전히 차량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그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있는 붉은 타일의 낮고 긴 건물들은 지금의 불황을 겨우 버텨내고 있었다. 이 오 래된 건물에도 한때 사람들로 붐비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 다. 용산전자상가는 20세기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마무리했지만 다가 오는 21세기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한때 한국 전자유통의 성지였 던 용산전자상가의 전성기는 21세기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컴퓨터 모니터와 휴대폰의 액정 속에서 전기적 신호를 통해서 이루어 지는 21세기적 상거래의 방식 속에 용산전자상가의 운명은 위협받고 있었다. 용산의 많은 매장이 온라인 상거래를 통해서 겨우 생존하고 있 지만 그로 인해 용산전자상가라는 실체적 공간은 과거의 시간 속에 묶 여 버린 채 장소적 기반마저 흔들리고 있었다. 용산전자상가는 겨우 살고 있었다. 26
용산 1987
용산전자상가는 1987년 세운상가의 전자제품 상가들이 이전해오면서 시작되었다. 이곳은 원래 청과물시장이 있 던 자리다. 전자산업을 육성하려는 정부의 시책에 따라 1983년 청과물시장이 가락동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전 자제품의 생산과 판매, 유통을 위한 전자상가가 만들어졌 다. 한해 매출 10조원에 달할 정도로 장사가 잘 돼서 상인 들이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빴다고 한다. 하지 만 이제 모두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조립pc와 게임 관련 산업의 메카와도 같았던 용산전자상 가는 오늘날 IT강국을 만드는 산파역할을 했지만 아이러 니하게도 그들이 만든 인터넷 세상은 지금 용산의 끝 모 를 침체의 원인이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컴퓨터 와 게임팩을 사기위해 용산을 찾지 않는다. 예전 '용산키 즈'들에게 용산전자상가는 좋아하는 컴퓨터와 게임기를 실컷 볼 수 있는 놀이동산인 동시에 '용팔이'로 대변되는 악덕상인들에게 바가지를 쓰고 불량배들에게 돈을 뺏기 는 잊고 싶은 장소이기도 했다. 이제 용산전자상가는 과 거의 장소가 되었다. 용산에 대한 달달한 기억도 용팔이 에 대한 트라우마도 모두 과거의 일이 되었다. 여전히 용 산을 찾는 '용산키즈'들이 있지만 이제 용산은 그들이 선 택할 수 있는 수많은 선택지 중에 하나일 뿐이다. '용팔이'의 악명이 가장 높았던 터미널상가는 2014년 모 두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 드래곤시티호텔이 들어섰다. 네 개의 호텔체인이 1,700개의 객실을 갖춘 최초의 호텔플렉 스인 드래곤시티는 용산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얼핏 보 면 거대한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매머드급 호텔 아래로 용산전자상가는 언제 꺼질지 모르는 촛불처럼 위 태로워 보인다. 하지만 용산전자상가에는 여전히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 상인들과 기술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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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과 좋은 친구들
나진상가 17동의 '좋은친구'는 매점 겸 작은 카페다. 가 게를 들어서면 사장님이 살뜰히 모아놓은 CD와 LP가 직접 칠했다는 노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벽에는 옛 날 음악잡지에서 오린 듯 한 가수들의 사진이 액자에 걸 려있다. 지금은 활동하지 않는 예전 가수들의 사진을 보 고 있으면 이곳의 시간은 1980-90년대에 멈춰있는 것처 럼 보인다. 나진의 다른 가게 주인들처럼 컴퓨터를 팔았 다는 사장님은 몇 년 전에 업종을 변경했다. 그는 커피도 팔고 라면도 파는 이 작은 카페에서 누구보다 좋아보였 다. 직접 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개인적으로 열심히 모아 온 CD와 LP를 벽에 차곡차곡 쌓아서 멋진 음악카페를 만들었다. 화려한 인테리어 같은 것은 없지만 나는 이 가 게가 용산전자상가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 는 여기서 큰돈을 벌기 보다는, 그의 가게가 나진상가에 서 일하는 사람들이 차를 마시고 라면을 먹으면서 음악 을 들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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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기 위해 용산의 작은 가게들을 다닐 때, 너 무 좁고 물건이 많은 가게들은 그림을 그릴만한 각도가 안 나와서 힘들었다. 나진상가 19동 1층의 대박유통은 좁은 가게가 온통 각종 전자제품과 노트북모니터, 작은 부품들을 담은 용기들로 가득했다. 아마도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의 소망을 담은 듯 한 가게의 상호는 지금 용 산전자상가의 상황에서 오히려 자조처럼 보인다. 책처 럼 책장에 촘촘히 꽂혀있던 모니터는 이 가게의 정체 성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대박유통의 사장님은 노트북모니터를 수리하고 계셨다. 가게 안은 몹시 좁고 물건들은 너무 많아서 필요한 부품을 찾아서 모니터를 수리하는 일이 가능할까 싶었지만 이 작은 공간은 오랫 동안 모니터를 수리해 오신 사장님의 동선에 최적화된 공간이다.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노트북을 수리하는 사 장님의 세월이 이곳에 나름의 질서를 부여하고 있었다. 나진상가뿐만이 아니라 선인상가의 컴퓨터부속품과 관련 제품을 파는 가게에도 도저히 파악이 안 될 만큼 많은 제품들이 가계 안을 온통 채우고 있었지만 그것 들은 모두 나름의 질서로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용산전자상가의 상인들에게 그들의 작은 가게는 그들 이 세상과 만나는 접점이면서 동시에 스스로와 만나 는 접점이다. 그 공간 속에서 그들은 오랜 시간 자신 만의 전문성과 자긍심으로 쉽지 않은 세상을 버텨내 었다. 카메라 앞에서 익숙하지 않은 포즈를 취해주셨 던 많은 상인이 바로 용산전자상가를 유지하는 힘이 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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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예술가들
얼마 전 후배에게 예술가가 다 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내 그림이 예술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고 딱 히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물론 내 가 하는 건축도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예술을 하지는 못하지만 인생을 예술처럼 살고 싶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름 없는 건축가, 그림쟁이로 남더라도 인생을 예술처럼 살고 싶다고. 하지 만 어떻게 사는 게 예술적인 삶인지는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냥 막연히 그렇게 대답했고 그렇게 대답했더니 그렇게 살고 싶었다. 용산전자상가의 작은 가게들과 그곳에 인생을 묻고 힘든 시간들을 묵묵히 견뎌내는 분들을 보면서 예술처럼 산다 는 게 특별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직업을 살아낸 사람들, 성실하고 부지런히 살아온 착한 사람들의 인생이야말로 예술이 아닐까라고. 사실은 먹고 사는 일 속에 예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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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를 빌려 어설픈 그림의 모델이 되어주셨던 용산전자상가의 사장님들께 고맙다는 말씀을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선인상가의 일두정보통신, 구산컴넷, 용산테크노, 비젼라인 사장님. 사진 찍기 부끄럽다고 한사코 도 망 다니셨던 플리마켓 사장님 고맙습니다. 나진상가의 카페 좋은친구, 대박유통, 알아전산 사장님 고맙습니다. 무겁게 짐을 옮기는 포즈를 취해주셨으나 그냥 서있는 그림으로 그려서 죄송스러웠던 원효상가 태영전기의 친 절하고 유쾌하셨던 사장님 고맙습니다. 용산전자상가가 다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길, 사장님들의 앞날에 좋 은 일만 있으시길 빌겠습니다. ART
정연석 건축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동시에, 도시와 건축에 대한 관심으로 스스로 도시유목민을 자처하 는 도시여행자. 도시의 이면에 숨어있는 공간과 시간을 찾아 드로잉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으 며, 여전히 틈만 나면 카메라를 청진기 삼아 들고 도시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드 로잉으로 기록한 도시 이야기 「기억이 머무는 풍경」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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