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RAVEL 35 PREVIEW

A R T R AV E L T R I P 3 5 . H I G H WAY Mok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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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행의 영감을 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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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도로

H I G H WAY

더 멀고, 높고, 위대한 어디에 도착하고 싶다. 그럴싸한 목적지가 생겼다. 이 상한 일이지. 최선을 다해 한참 떠나온 것 같은데 돌아보면 같은 자리일 때 가 많았다. 사람들은 언제나 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달린다. 애타는 마음. 길 끝에 반드시 닿아야 하는 어디가 있고, 그곳에 이르기 전까지는 멈추면 안 된다. 이 길은 목마르고, 모자라고, 숨이 차는 곳이다. 당신의 도로는 그 반대편에 있었다. 뭐가 다르겠냐 물으니 누군가 그 길은 새로운 어디에 도착하기 위한 게 아니라 길 자체가 목적지였던 곳이라 하더 라. 그래서 당신이 어딘가 닿기 위해 도로 위에 선 것이 아니라, 첫 발을 내딛 는 순간 이미 도착한 것이라고. 그 말에 오랫동안 가슴이 떨렸다. 느리게 달 리고, 오래 멈춰도 죄책감이 없었다. 그제야 도로 옆에 핀 엉겅퀴가 보였다.

편집장 양정훈

자, 여기 놓여진 도로를 따라 마음껏 미국 | 안수향

때로는 목적지가 아닌, 그곳에 가기까지의 길들 이 여행이 된다. 어디를 가느냐보다 어떤 길을 선택하고 또 어떻게 갈 것인지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되고, 그 길을 따라 놓인 풍경과 사소한 사 건들이 결국 물음에 관한 답이 되기도 한다. 그 러니까, 보다 경섭(經涉)에 가까운 여행. 나의 젊음은 마음껏 달려도 좋을 길을 꽤 오래도록 바랐고 때마침 여기 미국, 서쪽 어딘가의 쭉 뻗 은 하이웨이 위를 지나고 있는 중이다.

그 밤은 어두웠고 길은 희미했지

십 대 시절을 돌이켜보면 앞이 캄캄한 길뿐이었다. 방과 후 친구들과 함께 학원으로 가는 길에는 매달 십만 원 조금 넘 는 돈이 필요했는데, 우리 집안 형편에 그것이 무리인 줄 알 면서도 아주 가끔 엄마에게 울며 떼를 썼다. 안된다는 말밖 에 해줄 수 없는 밤. 엄마는 까만 방구석에서 유독 웅크린 자 세로 잠을 잤다. 친구들이 모두 학원을 가버린 밤, 길 위에는 도무지 무엇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십 대가 되어서도 사정이 그리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적어 도 대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장 아르바이트를 하러 갈 수 있 게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길. 물론 잠을 아주 많이 줄여야 했다. 그래도 학비를 보태고도 조금 남을 만큼 돈을 벌 수 있었다. 이십 대 생활에 그나마 힘이 되어준 고마운 길 이다. 때때로 늦별이 길을 비추어주는 날이면, 희미한 별빛 에 의지해 길을 따라 걸었다. 다만, 그 길 위에는 도시의 밤 과 간판 불빛 같은 뿌옇고 허망한 것들이 늘 함께였다. 사실 걷고싶은 길이 많았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맨 몸을 던져 바다를 건너는 일보다 하굣길과 출근길이 이어지 는 110-1번 버스와 35분이라는 시간이 당분간 끊기지 않는 다는 현실. 당시 내게는 그 두 갈래 길이 무척 중요했다. 그 렇게 이상과 현실의 틈새에서 서성이던 걸음은 대부분 이상 을 향하지도, 그렇다고 현실과 타협하지도 못한 채 어중간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꽤 긴 시간을 훑어 걸었다. 사실, 무척 서럽고 무서웠다.

갈 길이 멀어 다행이야

언젠가 한 번쯤은 쭉- 뻗은 길 위를 마음껏 달리며 단 며칠이 라도 해방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달리고 싶을 때까지 실컷 달리고, 멈추고 싶은 곳에서 한정없이 멈춰 설 수 있다 면. 그런 도로가 있다면 좋은 풍경이 보이면 다가가고, 누가 깨우지 않아도 오직 아침 햇살을 마중하기 위해 일어날 것 이고, 쌓인 일이 없어도 밤하늘 별빛과 오래도록 마주할 것 이다. 다가오는 일을 다가오도록 허락하고 마음껏 겪어보며, 그것만으로도 여과 없는 하루가 되는 그런 도로를 상상했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그리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적 언어들과 그것에 관한 은유가 도로 곳곳에 닿아있는, 그런 여행. 그래, 그런 여행을 꿈꾸었었다. 운이 좋았다. 집안 사정이 이전보다 나아졌다. 무엇보다 단돈 몇만 원이 없어 우리 가족이 오랫동안 짊어져야 했던 걱정들 이 훨훨 사라진 것이 좋았다. 걱정이 사라진 자리에는 잊은 줄 알았던 오래된 꿈이 도로 위의 이정표가 되어있었다. 갓 서른을 넘긴 젊은이가 지난 삼십 년을 재료로 삶과 여행에 관해 이야기 하게 되었다. 운 좋게 얻은 여행작가라는 타이 틀이 익숙해질 무렵. 미국을 두번째 방문했다. 하이웨이를 맘껏 달리고, 실컷 보고, 질릴 때까지 운전을 해 보겠노라, 다부진 결심으로 운전대를 잡은 여행이다. 캘리포 니아와 애리조나, 유타, 네바다주... 특별한 계획변경이 없는 한 최소 3,938km를 달리기만 해야 한다. 오래도록 쌓아온 서 러운 마음이 한꺼번에 와르르- 지도 위의 도로 사이로 쏟아 져 뻗어간다. 가야 할 길이 멀어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사람은 길을 잃고 내비게이션은 길을 잊지

내비게이션은 최단 시간 운전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 만, 애석하게도 차창 밖에 걸린 풍경이 주는 즐거움은 알지 못 한다. 실컷 달리자고 왔으니 기왕이면 에둘러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고 싶었다. 시간보다 공간을 위한 여정을 생각하겠다 고 다짐해본다. 운전대를 잡고 드디어 고대하던 하이웨이를 달린다. 첫 드라 이빙은 유타주와 애리조나주 사이에 있는 거대한 바위들의 골짜기, 모뉴먼트 밸리 (Monument Valley)다. 대략 676km 를 달려야 하는데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리기만 해도 꼬박 6시 간 32분이 걸린다. 복잡한 라스베가스 공항을 빙- 둘러 벗어 나 달리다 보면 불더시티가 나타나는데, 그곳에서부터 93번 도로가 시작된다. 비슷한 풍경들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진행 방향의 왼쪽에 그 유명한 미국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후버댐 이 콜로라도 강과 함께 나타난다. 이는 미국 뉴딜 정책의 상징 이기도 하다. 멀리 인공호수인 레이크미드가 보일까 싶어 고 개를 갸웃거려보지만 도로 주변의 작은 언덕들이 쉽게 허락 해주지 않는다. 나중에 알고 보니 후버댐의 이름은 원래 '불더 댐'이었단다. 댐 공사와 관리를 위해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 한 곳의 이름이 바로 조금 전에 무심히 지나온 '불더시티'다.

다시 한참을 달려 93번 도로는 공사의 책임자였던 루이스 킹 맨(Levis Kingman, 1845-1912)의 이름을 딴 작은 도시, '킹맨 (Kingman)'에 다다랐다. 이곳 킹맨에서부터 동쪽 방향의 '윌 리엄스(Williams)'까지 이어지는 길이 흥미롭다. 이 길을 달려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긴 도로를 운전해 이곳을 찾는다. 미국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도로 는 미국 최초의 동서 횡단도로이자 미국인들의 향수 그 자체, '히스토릭 루트66 (Historic Route 66)'이다.

1926년에 완공된 루트66.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하이웨이 가 개통하기 이전 미국인들은 동쪽과 서쪽을 마음껏 횡단할 수 없었다. 개통 이후 비교적 잘 살던 서쪽을 향해 많은 이들 이 웨스턴드림을 품고 루트66 을 스쳐 갔다. 이런 역사적 서 사는 3,945km의 길을 완성했다. 그렇게 하이웨이는 이야기가 되었고, 노래가 되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도로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더 새롭고 편리한 길이 대신하며 끝나버렸지만. 미국 역사의 뒤안길로 곧장 사라질뻔한 루트66을 일부구간 이나마 보존하려는 사람들이 이곳 윌리엄스에 있다. 마을 은 오래된 향수로 가득 차 있다. 원색 계열의 페인트와 네온 사인들, 상점의 안내문들, 창문, 주차장의 벽, 가로등. 사방이 'Route 66' 사인으로 대표된다. 이따금씩 지나가는 남루한 캠핑카와 많은 보행자까지 보고 있으면, 나는 그들이 기억하 고 싶은 과거를 향해 난 도로를 타고 곧장 달려왔을 지 모르 겠다. 길의 전개 그 자체가 곧 향수이고 역사가 되는 곳. 역사 는 다시 걸음을 향해준 사람들의 다음 일정과 함께 길을 따 라 뻗어 나간다.

준비성 있는 여행자라면 바비 트루프(Bobby Troup)가 쓰고 냇킹 콜(Nat King Cole)이 부른 그레이트 히트곡, <Route 66 (Get your kicks on)>를 담아가는 것이 좋다. 특히 창문을 반 이상 내린 채 운 전하며 듣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나는 냇킹콜의 음성으로 "Get your kicks——o—n—route—sixty-six"라고 세 번 반복하는 부분을 가장 좋아한다. 이 가사가 나올 때마다 따라부르며 몇 음절로나마 루트66의 순간을 점유하고자 노력해보곤 한다. 추억 가득했던 마을이, 좋아하던 길이 사라진 줄 알았다가 눈앞에 다시 나타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노래로밖에 시절을 추억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떤 헛헛한 마음이 들지 생각해본다. 오랜 도로 위에 새겨진 숱한 추억의 상실은 함부로 영역이다. 그저 서른이 조금 넘 은 나는 여전히 잘 알지 못한다. 다만 "Get your kicks on Route sixty-six"나 세 번 외치면서 그들의 향수를 느껴보는 척 할 뿐. 한 곡 재생 모드로 틀어놓은 노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반복되고, 다시 길을 위한 여정을 위해 운전대를 잡는다.

If you ever plan to motor west, Travel my way, take the highway that is best.

Get your kicks on Route sixty-six.

Nat King Cole <Route 66 (Get your kicks on)>중에서

새까만 밤을 어디에 담아둘까

한 번의 시간변경대를 지나 길은 네바다주에서 애리조나로, 잠시 유 타를 들렀다 다시 애리조나로 뻗어 나간다. 어느새 깊은 밤. 자동차 의 헤드라이트는 이곳의 짙은 어둠을 쉬이 걷어내지 못한다. 곧장 모 뉴먼트 밸리 내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나바호 보호 지역 내의 유일 한 호텔인 더 뷰 호텔(The View Hotel). 발코니에 앉아 평온을 뜨고 지는 별과 해를 오롯이 경험할 수 있어 유명한 곳이다. 참고로 '나바 호(Navajo)'는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부족으로 현재 미국 내에 있 는 원주민 부족 중 가장 큰 부족이다. 호텔 리셉션에서 처음 마주하 는 직원 역시 나바호족이다. 어딘가 나와 조금 닮아있는 미소에 괜스 레 안심하게 된다. 안내받은 방에 들어가 짐을 푼다. 긴 운전 탓에 고단한 기운을 긴장 이 조금 풀린 그제야 알아차렸다. 무거운 걸음을 발코니로 옮겨본다. "밤이면 별이 엄청나게 보인다던데, 오늘은 과연 보일까? 아, 멋진 사진 찍어서 실컷 자랑하고 싶다." 그런 시시껄렁한 마음과 함께. 커 튼 뒤로 별들이 가득한 평원이 펼쳐진다면 모든 피로가 풀릴 것 같 다. 그런 기대감으로 커튼을 젖힌다. "......" 여행은 기대와 현실이 간극이 서로 타협해야 하는 일의 연속이다. 이 걸 매번 겪으면서도 어리석은 기대를 한다. 항상 극적인 순간은 원하 는 시간에 찾아오지 않는다. 커튼 뒤로 펼쳐진 광경은 딱히 압도적인 풍경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맑은 별들이 바람에 불 때 마다 반짝이는 청명하고 청아한 장면도 아니었다. 오히려 카메라 세 팅을 맞추는 동안 낮은 구름이 몰려와 풍경을 온통 뒤덮었다. 나바호 부족 거주지 방향으로 무심한 자동차 몇 대가 먼지를 잔뜩 내뿜으며 지나갔다. 밤사이 하늘이 맑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쉬움에 발코니를 몇 번 더 드나들었다. 이내 마지막 1퍼센 트의 기대마저 내려놓았다. 아이러이하게도, 그제야 카메라 가 아닌 두 눈으로 밤을 담을 수 있었다. 가만히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시선을 내버려 두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오직 나에게만 허락된 밤. 모든 것이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으 로 적요하다. 그 고요도 날것 그대로다. 밤이 묵묵히 길을 걸어간다. 어딘지 모르게 고단해 보인다. 그 언젠가의 아빠 같기도 하고, 엄마 같기도 하고, 동생 같기도 하고, 매일 아르바이트 유니폼을 욕실 맨바닥에서 손빨래하 며 울던 나 같기도 하다. 언젠가의 고단함이 나와 내 가족의 인생에 어떤 의미로 남은 숙제였을까. 이제 마음껏 쉬어도 되 는 것일까. 수많은 질문을 허공에 던지며 꼬박 밤을 지새웠다.

나바호는 계속 달리라고 말했지

아침은 가장 어두운 밤을 지나 온다. 스무 살 이후 몇 해 동안 아르바 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앞이 보이지 않던 길 위에서도 이 사 실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그땐 그걸 몰랐다. 바짝 서로를 붙들고 있 던 모뉴먼트 밸리의 평원과 진한 구름 사이를 아침이 비집고 들어올 때 다시금 알게 되었다. 살면서 숱하게 보았던 아침의 모습을 지구 반 대편에 와서야 제대로 보고 있다. 서서히 스미는 밤과 달리 미국의 서 쪽 아침은 평원 위 뷰트(Butte)와 메사(Mesa) 위로 와락 쏟아진다. 옛날 나바호족의 치유사는 아픈 사람을 위해 회복을 위한 기도를 외 워주었다고 한다. 그들의 기도문은 마치 노래와 같은 운율과 리듬이 있어 힐링송으로 불리기도 한다. 기도문 속 신은 아픈 이를 위해 발과 다리, 몸과 마음의 아픔을 멀리 가져가는 존재다. 신은 아픈 이를 사 뿐히 걷게 하고, 기분을 좋게 해주며, 이전보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 상을 선물한다. 지난 밤 머릿속을 어질러 놓았던 모든 질문을 잊게 만 든 나바호의 치유사는 아침 풍경이었다. 나바호의 치유사는 가장 어 두운 시간을 뚫고 나와 결국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나바호의 아침. 다쳤던 다리가 나은 사람처럼 가뿐히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침이 내린 풍경 위로 그토록 바라던 희망적 언어와 그것에 관한 은유가 도 로 곳곳에 닿아있다. 잠을 조금 더 자기로 했다. 그래도 괜찮다. 어차 피 가야 할 길은 한참 남았다. 어떤 길을 걸어도 괜찮을 것 같은 여행과 인생을 생각했다. 실컷 달 리고, 아프고 울더라도 다시 일어나기만 하면 된다는 걸, 지나온 모든 길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까마득한 도로 위에서 배웠다. 볕에 드러낸 상처들이 나바호의 오래된 도로 위에서 아물고 있었다. 아득한 서쪽 길 위의 아침. 무언가를 향해 하이웨이를 달리는 한 이번 여행은 계속 될 것이다. 좋은 이정표와 튼튼해진 두 다리를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Happily, with abundant dark clouds, may I walk.

Happily, with abundant showers, may I walk.

Happily, with abundant plants, may I walk.

Happily, on a trail of pollen, may I walk.

Washington Matthews, Navaho Myths, Prayers, and Songs(1906) <Prayer> 중에서

루트66ㅣ미국 개요 미국 최초의 대륙횡단 도로 길이 3,925km

알래스카

개통 1926년

캐나다

주요도시 일리노이 주 – 미주리 주 – 캔사스 주 – 오클라호마 주 – 텍사스 주 – 뉴멕시 코 주 –애리조나 주 – 캘리포니아 주 라스베가스

미국 워싱턴

로스앤젤레스

모뉴먼트 밸리

멕시코

가는 법 1926년 미국 최초로 개통된 대륙을 횡단 도로로 경제공황 이후 침체된 미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어준 도로다. 1950년대 이후 미국 대륙횡단 고속도로 인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가 개통한 이후 점점 쇠퇴했다. 그러나 루트66은 상징성을 인정받아, 현재는 국가지정문화재로 등재할 것을 추진중이다. 냇킹 콜을 비롯, 밥 딜런, 엘비스 프레슬리등 유명 가수들이 루트66을 가사에 담 아 노래하기도 했다. 그만큼 미국인들에게 사랑받았던 길.

TRAVEL NOTE 여행기간 여행동선 여행비용 교통정보

2017년 4월 25일-5월 15일 인천공항에서 LA입국 후 렌터카로 라스베가스-루트66-모뉴먼트 밸리 순으로 이동, 그리고 남은 여정 이후 샌프란시스코에서 렌터카 반납을 하고 귀국하였습니다. 약 320만 원, 렌터카 인수 및 반납 지역이 다르더라도 미국의 경우 크게 비용차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미국 국립공원 연간 이용권을 80불 정도에 구입하면 이후 모든 국립공원을 이 패스로 이용이 가능합니다. 대중교통 이용에 제약이 있어 미국의 경우 렌터카 이용이 비교적 효율적입니다. 혹은 투어상품을 이용하면 이동에 드는 비용을 포함하여 여러 곳을 다녀올 수 있습니다. 그랜드캐니언 등 미서부 대표 국립공원들을 갈 경우 항공편으로 이동하여 라스베가스에서부터 렌터카를 이용하면 운전시간을 조금 더 줄일 수 있습니다.

COMMENT The View Hotel은 모뉴먼트 밸리 내 유일한 호텔이라 만실인 경우가 많습니다. 해당 홈페이지에서만 예약이 가능하고 숙박을 하고자 하는 경우 몇 달 전 미리 예약 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발코니에서 보는 밤하늘과 일출이 정말 멋진 곳이라 모뉴먼트 밸리 여행을 하고자 하는 경우 이곳에 머무는 것을 추천합니다.

안수향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을 불과 얼마 전에 떼버린, 지금은 사진가이자 글 쓰는 사람. 늘 비범한 여행 을 꿈꾼다. 29살, 첫 유럽여행으로 10년 동안 꿈꿨던 아이슬란드를 처음 가본 이후 수 차례 다시 다녀올 정도로 북유럽 지역의 풍경에 빠져있다. 취미는 구글맵에서 숨겨진 풍경 찾기와 언제 떠 날지 모르는 여행 준비. 여행을 통해 오래 전 던졌던 질문과 마주하고 답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좋은 길 나쁜 길 이상한 길 독일 | 강현우

수건은 늘 있어야 할 곳에 차곡차곡 개어져 있었고 냉장고는 기본 식재료가 떨어질 때 즈 음 채워졌다. 씻고 싶을 때 씻을 수 있어야 했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어야 했기에 어느 정도의 노력을 더해 삶을 잘 정돈해 놓고 살았다. 비가 사방에서 들이치는 날이면 지붕 아 래 숨어 잠잠해지길 기다렸고 볕이 내리쬐는 날이면 들려오는 매미 울음소리처럼 선풍기 앞에 늘어져 있었다. 권태는 반복되는 어떤 것들을 먹고 자라난다. 몸속 어딘가에 숨어있던 권태는 정돈되고 반복되는 삶이 맛있었는지 어느새 자라 내 머릿속 안방에 자리를 잡았다. 그날은 출출한 밤이었다. 전 날 시켜 먹고 남은 피자를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피자에서 수 분이 날아가는 소리가 타닥타닥 들려왔다. 피자 박스에 그려진 비행기를 보고 문득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전자레인지가 0초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정적을 깼다. 막 꺼 낸 피자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여행을 갈까.'라는 생각은 그렇게 피자와 함께 다시 목 구멍으로 넘어갔다. 여행에 대한 욕구도 피자도 소화가 될 때쯤 현관문을 여는 비밀번호 소리가 들렸다. 친구였다. 우리는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아직 소화되지 않은 여행에 대한 푸념이 불쑥 튀어나왔다. 친구의 답은 간단하고 명쾌했다. "그럼 가자." 그날 새벽, 정확히 한 달 뒤 떠나는 독일행 편도 티켓을 끊었다. 잠시 후 결제가 완료됐다는 문자가 왔다. 그게 내 여행의 시작이었다.

두려움 낯선 언어와 낯선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향으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큰 가방이 눈에 띄었는지 그 중에 몇은 시선 을 잠시 우리에게 뒀다가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프랑크푸르트(Frankfurt) 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는 버스는 많았 지만, 우리가 마음껏 부릴 수 있는 사치는 시간뿐이라 걷기로 했다. 아름다운 유럽의 길을 온몸으로 느끼며 걷다가 고 즈넉한 곳에 올라 텐트를 치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맥주 한 잔을 기울이는 뷰티풀 캠핑 인 유럽의 환상은 정확히 그 날 밤 깨졌다.

6월의 독일은 비가 오거나 땀이 비 오듯 흐르거나 둘 중 하나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비를 막아줄 나무를 찾아 그 아 래 텐트를 쳤다. 집을 짓는 우리를 맞이해 준 건 수많은 모기. 모기를 조금이라도 털어내기 위해 몸을 있는 대로 흔들 어가며 텐트를 치는 모습이 여간 꼴 사나운 게 아니었다. 축축한 몸을 접어 텐트 속으로 기어들어가 모기가 들어올세 라 서둘러 문을 걸어 잠갔다. 몸의 물기를 닦아내고 침낭 안에 몸을 구겨 넣는 게 비에 젖은 텐트와 덜 마른 몸 때문인 지 진흙 속을 파고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피곤한 몸 덕분에 바로 곯아떨어졌지만 불편한 잠자리는 우리를 금세 깨웠다. 새벽에 눈을 뜬 우리는 텐트를 접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비가 잠시 그치고 해가 뜰 때면 젖어있던 텐트와 옷 가지를 말리기 바빴고 미리 사뒀던 식량이 떨어질 때면 근처 마을을 찾기에 바빴다. 길 위에서의 날들은 생각보다 더 녹록지 않았다. 여행의 고비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든든한 힘이 됐던 친구가 15일 만에 크로아티아로 떠 났다. 나는 그렇게 혼자가 됐다. 밤이 다가와 늘 그랬듯 비를 막아 줄 나무를 찾아 텐트를 쳤다. 비좁은 줄만 알았던 텐트는 혼자 쓰기엔 꽤 넓었고 잠들기 전까지 오고 가던 시시콜콜한 대화들 대신 정적이 흘렀다.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는데도 어느샌가 작은 두려움이 찾아와 내 옆에 누웠다. 작은 두려움은 상상을 먹고 금세 몸집을 키웠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는 곧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로 바뀌었고 달빛과 나뭇가지들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텐트 위를 일 렁이다, 낯선 이가 되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아무도 없었지만 아무도 없지 않았던 밤은 길게만 느껴졌다.

마술사 지난밤이 힘들었던 걸까. '집에 갈까?'라는 생각이 약해진 마음을 비집고 들어왔다. 결국 두려움에 밤잠을 설쳤다. 아침 이 오자마자 텐트를 가방에 구겨 넣고 마을로 나왔다. 그렇게 마을 구석진 곳 주차장에 한 시간 째 앉았다. 다들 출근을 했는지 주차장은 한산했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아지랑이를 피울 정도로 뜨거운 햇살이 내렸다. 그 위에 널어놓은 텐 트와 옷가지들은 바삭하게 마른 지 오래다. 다음 마을까지 걷기엔 먼 거리라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한 시간을 걸 어 고속도로 초입에 도착했다. 갓길이 있는 적당한 곳을 찾아 짐을 내려놓고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아지랑이 속을 뚫고 오는 차들이 만들어주는 뜨거운 바람이 고마울 정도로 바람 한 점 없는 더운 날씨였다. 나를 지나치는 무심한 시선들에 무너진 건 무려 네 시간이 흐른 뒤였다. '집에 갈까?'라는 생각이 '집에 가자!'라는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나는 힘 없이 엄지손가락을 내렸다. 목적지를 적은 박스를 가방 보조 주머니에 욱여 넣었다. 핸드폰 배터리도 더는 아낄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다. 이어폰을 꽂 고 재생목록 가장 위에 있는 노래를 눌렀다. 세 번째 곡이 재생될 때쯤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검은 정장의 사내가 눈에 들 어왔다.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닌 고속도로 위에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게 낯설었다. 정리할 수 없을 만큼 듬성듬성 난 수염을 두 손가락으로 만지며 걸어오던 남자가 나를 한참 바라봤다.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잠시 길가에 앉았다. 그는 마술사였다. 마술 거리공연을 하며 유럽을 여행 중이라고. 많은 대화는 오가지 않았지만, 간만의 대화 가 제법 즐거웠다. 하지만 그늘 한 점 없는 도로는 오래 앉아있을 곳이 아니었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기 위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그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찾더니 내 손 위에 그 물건을 툭- 올려줬다. 초콜릿이었다. 고맙다는 말을 건넸 고 돌아온 대답은 'your welcome'이 아닌 "keep going" 이었다. 그가 지나가고 그 자리에 계속 앉아있던 나는 짐을 내려놓고 다시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30분 정도 흘렀을까 거짓말처럼 히치하이킹에 성공했다. 어스름한 저녁이 돼서야 목적지인 힐더스(Hilders)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포기하려 했던 하루는 낯 선 이의 위로로 채워졌다. 그 마술사는 어쩌면 마법사는 아니었을까.

불청객 흐르는 물줄기들이 한 데 모여 강을 이루듯 동네 골목골목에서 흘러나오

맞고 있었고, 잔디 위엔 돌로 만들어진 토끼 두 마리가 앉아 있었다. 열려

는 자동차들이 고속도로로 하염없이 흘러들어왔다. 어디에서 흘러들어와

있는 차고지 안에는 오래된 작은 자동차 한 대가 비를 피하고 있었다. 작

어디로 가는지 모를 차들이 줄줄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세상이

고 낡았지만 잘 가꾸어진 집을 천천히 구경했다. 어떤 사람의 집일까 상상

넓다는 걸 새삼 느꼈다. 상대적으로 작아진 나는 조금이라도 커 보이려고

하던 중 처마 밑에 앉아 비를 구경하는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언제부터 앉

가슴을 폈지만 찌는 태양과 죄어 오는 가방의 무게가 나를 다시 작게 만

아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집과 어우러져 있었던 그는 집과 오랜 시간을 함

들었다. 혹여나 작아진 나를 보지 못하고 치고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께한 듯했다. 체크 무늬 낡은 셔츠는 그 집의 고벽돌처럼 느껴졌고 주름

친구가 챙겨준 형광 밴드를 발목에 감고 밝은색 티셔츠를 가방에 묶었다.

진 얼굴은 오래된 벽과 맞물려 보였다. 오랜 세월 함께 보내 집과 커플룩

고속도로 구석진 곳을 걷고 있는 사람이 신기했는지 아니면, 불편했는지

을 자연스럽게 입게 된 걸까. 그 모습이 보기 좋아 버스가 몇 차례나 지나

몇몇 차들은 경적을 요란하게 울리며 지나갔다. 나는 자동차들을 위한 고

도록 바라봤다. 한 곳을 응시하던 할아버지가 곧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

속도로 위에 두 발을 올린 불청객이자 구경거리였다.

다. 너무 노골적으로 구경을 하다가 눈이 마주친 나는 민망함이 섞인 멋쩍 은 웃음과 함께 고개를 살짝 끄덕여 인사를 건넸다. 무뚝뚝할 것 같던 할

하루가 끝날 때쯤 마을로 빠지는 길목에 다다랐다. 고속도로 위를 걷는 건

아버지는 이내 미소와 함께 손을 살짝 들어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속도를 늦추지 않는 자동차들의 눈살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내게 손짓을 보냈다. 분명 이쪽으로 오라는 손짓이었다. 다가가 '구텐탁

그런지 평소보다 더 지치고 힘이 들었다. 마을 초입에 도착하자 프랑켄하

(Guten Tag)'하고 인사를 했다. 어리숙한 발음이 웃겼는지 피식- 웃음을

임(Frankenheim)이라고 쓰여있는 간판이 보였고 곧 그 위로 빗방울이 떨

보이며 인사했다. 그는 내가 독일어를 못한다는 걸 눈치채고는 가방을 내

어지기 시작했다. 마켓에 들어가 앞으로 먹을 빵과 잼 그리고 버터 물 한

려놓으라는 몸짓을 했다. 가방을 내려놓은 나를 멀뚱히 세워 두고 집으로

통을 샀다. 슈퍼마켓 처마 밑에 가방을 내려놓고 나이프를 꺼내 빵을 갈랐

들어가 햄과 치즈가 끼워진 샌드위치와 따듯한 커피 한 잔을 들고 나왔다.

다. 잼과 버터를 얹고 맛을 느낄 새도 없이 씹어 삼켰다. '오늘 밤도 축축

할아버지의 호의는 샌드위치와 커피로 끝나지 않았다. 그날 나는 그의 차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나를 지치게 했지만 한시라도 빨리 눕고 싶어 엉

고지 한편에 텐트를 칠 수 있었고 따뜻한 물로 샤워까지 할 수 있었다.

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지붕이 되어줄 나무가 있는 곳을 찾아 걸었지만 마 땅한 장소가 없었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어디서 왔는지 모를 이방인을 경

이곳에서 나는 이방인이었으며 불청객이었다. 물론 그 누구도 내게 불청

계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객이라 말한 일은 없다. 다만, 걷는 내내 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 다. 이 작은 집 차고지에서의 하루. 내가 이방인이고 불청객일 수도 있지

빗살은 점점 굵어져 걸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지붕이 있는 버스정류장

만, 누군가에겐 반가운 손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줬다. 그

에 잠시 가방을 내려놓고 비를 피했다. 정류장 건너편엔 작은 잔디밭과 차

리고 이 생각은 앞으로의 나의 여행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기 시작했다.

고지가 딸린 아담한 집이 한 채 있었다. 창문과 문 앞엔 작은 꽃들이 비를

텐트 안에서 비가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틀린 길은 없다 이제는 걷는 게 제법 익숙해졌다. 하루를 버텨야 할 양의 물과 음식도 짐

호탕하게 닫고 내게 다가와 물었다. 어디로 가든 길이냐는 질문에 나는 마

작할 수 있게 되어 짐의 무게를 최소화하는 건 이제 어렵지 않다. 근육통

이닝겐(Meiningen)으로 가다 산길이 막혀 결국 이곳까지 오게 됐다는 이야

이 근육으로 자랐는지 아침도 꽤 상쾌해졌다. 오늘은 산을 하나 넘어야 하

기를 했다. 그는 잠깐 나를 살피더니 자기가 사는 곳은 일메나우(Ilmenau)

기에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밤새 내린 비에 바닥은 젖어있

이고 마이닝겐은 가는 방향이니 태워주겠다며 차에 탑승하는 걸 허락했다.

었지만, 간만의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반가웠다. 국도 옆으로 나 있

차 안에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차근차근해주었다. 최종 목적지인 드레스

는 작은 인도를 따라 걸었다. 도로는 웬만해선 틀리지 않는다. 지도에 나와

덴(Dresden)까지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며 가는 중이라는 내게 호기심이

있는 만큼 걸었더니 산이 나왔다. 내가 걸어왔던 도로는 산을 만나자 양쪽

생겼는지, 가족들과의 저녁에 초대했다. 초대에 응하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으로 팔을 벌려 산을 감싸 안고 있었다. 돌아가기엔 너무 먼 거리라 산을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설마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팔려가는 건 아닌지 한

가로지르기로 했다. 도로가 흙으로 바뀌는 순간 산 내음이 나기 시작했다.

편으로는 겁이 났다. 신호음이 몇 번 가더니 전화가 연결됐고 수화기 너머 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핸드폰에 띄워진 이름 뒤에 붙은 하트가 그

누군가의 발길이 흙과 나뭇잎을 잘 다져 길을 만들어 놨다. 그 길을 따라

의 피앙세임을 설명해줬다. 통화 후 한동안 말없이 달리던 마이클은 검은색

깊은 곳으로 올랐다. 한참을 오르던 중 처음엔 '이 길이 맞나?'라는 작은

줄 다섯 개가 그어진 하얀색 간판이 나오자 입을 열었다.

의문이, 얼마 안 가 '이 길이 아닌 거 같은데?!'라는 의심으로 그리고 또 얼 마 안 가 '여긴 어디지??'라는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잠깐 멈춰 뒤를 돌아

"저 간판이 아우토반 속도 무제한 표시 간판이야."

보니 누군가가 내 뒤를 따라오며 교묘히 길을 지운 것처럼 길이 사라졌다. 사방을 살폈지만, 일부러 열과 오를 맞춰 심은 듯한 나무들이 방향감각을

말이 끝나기 무섭게 RPM이 급격히 오르는 소리가 차 안에 울렸다. 계기

빼앗아갔다. 지도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그 자리에 선 채 한참을 고민하다

판의 바늘은 200km를 훌쩍 넘더니 곧 300km를 가리켰다. 마이클은 보

가 결국 왔던 방향으로 다시 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원 점으로 돌아왔다.

조석 손잡이를 꽉 잡고 있는 내 모습이 만족스러웠는지 흡족한 표정을

아무리 찾아도 며칠 동안 산을 돌아가는 길밖에 없었다. 서둘러 걷기 시작

짓고 있었다.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작은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작아 지도에서 미 처 확인하지 못했던 마을. 슈퍼마켓도 없고 사람들도 다 어딜 갔는지 보이

음식이 차려진 저녁 식탁은 테라스에 준비돼 있었다. 지역 기자인 마이클과

지 않았다. 손꼽아 셀 수 있는 집들이 마을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

그의 가족들에게 그간의 여정을 얘기했다. 마이클은 내 이야기를 독일어로

었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 보니 마을만큼 작은 호숫가가 나왔다. 이름 모

번역해 가족들에게 전해줬다. 두 자녀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 무

를 호수 옆 벤치에 가방을 풀어 놓고 앉았다. 해는 이미 산을 넘어가 밤을

릎에 앉아있듯 조용히 숨죽이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가 끝나고

부르고 있었다.

집을 구경했다. 방금 먹은 저녁 밥상처럼 따뜻한 냄새가 나는 집이었다. 텔 레비전 앞에 모여있던 아이들은 시간이 됐는지 엄마의 인솔하에 방으로 들

오늘 밤은 여기서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내게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

어갔다. 나도 곧 손님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정갈하게 정리된 침대 위에는

다. 그는 카메라를 보여주며 잠시 비켜 줄 수 있냐는 제스처를 취했다. 구석

볕 냄새가 배어 있는 잘 마른 수건이 올려져 있었고 창가에는 어디서 샀는

으로 밀려난 나는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는 그를 구경했다. 삼십 분 가까이

지 모를 괴상한 나무인형들이 진열돼 있었다.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고 나

셔터를 누르던 그는 볼일이 끝났는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트렁크 문을

니 하루의 긴장이 씻겨 내려갔는지 졸음이 몰려왔다. 긴 하루였다.

길 위에서 일메나우를 떠난 지 10일째. 드디어 드레스덴에 도착한 나는 숙소부터 잡았다. 낡은 집이었지만 혼 자 쓸 수 있고, 세탁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어 선택한 숙소였다.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체크인을 하 는 나를 보고 전쟁이라도 난 거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를 건네던 집 주인에게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 오는 길이라고 받아쳤다.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나는 방에 짐을 풀었다. 쉬는 것도 잠시 짐들을 꺼내 묵은 때를 하나둘 벗겨내기 시작했다. 걷는 내내 집이 되어준 텐트는 잘 닦아 한 편에 널어놓고 깨끗 해질 수 없을 것 같던 옷과 양말도 묵은 때를 벗었다. 마를 날이 없던 신발과 가방도 볕이 잘 드는 창 아래 널었다. 살면서 세탁에 이렇게 집중해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구석구석 천천히 닦아 냈다. 짐 정리가 끝나고 욕실에 들어갔다. 누군가 같이 살았다면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욕실 문을 두드릴 게 분명할 정도로 오랜 시간 공들여 샤워를 했다. 머리카락이 다 마르기도 전에 집 앞 노천카페에 나와 앉았다. 길 위에서 적었던 글과 그림이 그날의 냄새를 간직한 채 빼곡히 적혀있는 노트를 폈다. '힘들다', '집에 갈래'라는 내용이 절반인 걸 보니 그 간의 여정이 즐겁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의 내용이 나를 계속 걷게 만들어 줬다. 시작을 함께해준 친구가 없었다면 언제 시작할지 모를 여행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혼자가 된 날 아지랑이 피는 길 위에서 만난 마술사가 없었다면 그게 여행의 끝이 될 수도 있었다. 내가 먼저 낯선 시선으로 바라봤다. 당연히 돌아오는 시선도 낯설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스스로 주체가 되 어 이방인을 자처했던 건지 모른다. 그런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 따듯한 사람들에게서 다가서는 법을 배웠다.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던 길이 눈앞에서 사라질 때면 적지 않게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 수많은 다른 길이 매력적인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 안다. 내 생각은 길 위에서 느리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회색빛 길들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화려한 건물도 재밌는 볼거리도 맛있는 음식도 없다. 그래서 볼 수 있었다. 많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을 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말이다.

ART

아우토반ㅣ독일 개요 독일의 자동차 전용 고속도로

덴마크

제한속도 110km – 무제한 (구간마다 상이)

베를린

폴란드

네덜란드

독일 벨기에

주의사항 ① 아우토반의 60%는 속도 무제한 도로다. 단, 상습정체구간이나, 도로합 류구간 등 이유로 40% 구간은 110-130km로 속도 제한을 하고 있다. 운전시 제한속도 표지판을 확인 할 것.

드레스덴

에르푸르트 체코

프랑크푸르트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프랑스

개통 1935년

헝가리

스위스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② 아우토반에는 사복경찰이 잠복하고 있다. 제한속도 및 추월차선 위반, 난 폭 운전 등을 하면 사복경찰이 주의 표지판을 보여준다. 사복경찰은 창문을 내리고 빨간 팻말을 창밖으로 보여주는데, 무시하고 달리면 도주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③ 독일 내 아우토반에는 통행료가 없다. 단, 국경을 넘거나 타국으로 고속 도로를 이용해 넘어갈 경우 통행료가 발생한다. 특히 스위스의 경우는 고속 도로 패스 최소 한달 권을 구입해야 하며, 오스트리아의 경우도 고속도로 패 스를 발급받아야 한다. 고속도로 패스는 고속도로 중간에 있는 주유소나 매 점에서 판매한다.

TRAVEL NOTE 여행기간 여행동선

여행비용

2016년 6월 7일 – 2016년 7월 21일 프랑크푸르트(Frankfurt) - 하나우(Hanau) - 풀다(Fulda) - 힐더스(Hilders) - 프랑큰하임(Frankenheim) - 마이닝겐(Meiningen) - 일메나우(Ilmenau) - 에르푸르트(Erfurt) - 바이마르(Weimar) -예나(Jena) - 라이프치히(Leipzig) - 드레스덴(Dresden) / 중간 중간 이름 모를 마을들은 제외 했습니다. 한국발 호치민 경유 프랑크푸르트행 항공권 37만원(편도)

COMMENT 방향을 정하고 걸으니 길은 어디에나 존재했어요. 다만 그 길의 모양이 사람이 걸을 수 없는 길일 수도 있고 걷기엔 조금 불편한 길일 때도 있었죠. 시원하게 뚫려있 는 길이 높은 장벽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어떤 이의 도움이 그리고 위로가 계속 걸을 수 있는 힘을 줬어요. 긴장을 끝까지 늦추지는 않았어요. 수상함이 느껴지면 호의도 정중히 거절 했고요. 그렇게 느리지만 천천히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L사의 더티 스프레이가 없었다면 사람 취급을 못받을 수 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길 위의 맛이 궁금하시다면 한 번쯤 걸어 보시길 추천해드려요.

강현우 일러스트레이터. 수학을 전공했고 가르쳤다. 늘 정답을 찾아야 했던 그에게 정답이 없는 '그림'은 삶의 환기구였다. 환기만으로는 부족하단 걸 느껴 숨을 크게 쉬고자 일을 그만두고 그림여행을 떠났다. 지금도 세계 어딘가를 걷고 맛보고 그리며 낭창낭창 사는 중.

길 위의 노래는 슬프다 이민희

달리는 자의 머릿속은 대개 텅 빈 것 같다. 단조로운 고속도로가 되었든 시시각각 풍경이 변하는 복잡한 시내 도로가 되었든 늘 그렇다. 생각이 많아졌다가 산산이 흩어지고 사라진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길 위에서 찾 아온 상념을 붙잡고 나누는 일에 성공한다. 그들은 모든 여정이 반드시 설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길 위의 슬픔을 아름다운 방식으로 말한다. 노래는 그래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어떤 음악가들의 이야기다.

젊은 우리는 어디든 달릴 수 있어

여행 같은 건 사치인지도 모른다. 미국 뉴 저지에서 나고 자라 1970년대 이십 대가 된 어느 노동 계급 청년에게는 그랬다. 그는 질문한다. 땀 흘리며 성실하게 일하고 차곡차곡 돈을 모을 수 있다 면 정말로 우리의 삶이 달라질까. 가구가 변하고 사는 집이 달라지고 나아가 여가를 풍요롭게 즐 기는 중산층이 될 수 있을까. 질문의 답은 매우 명확하다. '아니요'다. 그는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 를, 즉 허상을 알고 있다. 그는 살아왔던 이 마을이 또래 청년의 등골을 뽑아 먹고 있다고 성토한다. 등이 휘도록 일한 뒤 밤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달린다. 죽음에 가까운 질주로 현실의 피로와 절망을 잊으려 한다. 그리 고 꿈을 꾼다. 새장 같은 마을에서 빠져나와 9번 고속도로를 달려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불안한 여정에 사랑하는 이가 동참한다면 좋겠다. 사랑하는 이의 이름은 웬디다. 그는 사실 더 큰 꿈을 꾼다. 이 탈출이 자신과 웬디만 이루는 미래가 아니기를 바란다. 그의 표현 에 따르자면 "부서진 영웅"으로 고속도로가 가득 차는 날을 상상한다. 모두가 질주를 위해 거리 로 나서고, 모두가 가고 싶어 하던 어딘가에 도착하기를 바란다. 동시에 그렇게 모험할 수 있는 우리의 가능성을 말한다. 그건 우리의 본성을 따르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 또래 집단의 탈출을 꿈꾸고 인간의 본성을 일깨우는 이 같은 사연은 영어로 쓰였고 나는 아주 약 간의 살만 붙여 이를 거의 직역에 가깝게 옮겨 놓았다. 원본은 어떤 노래의 가사고, 노래 한 곡에 이토록 풍성한 이야기가 담겨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노래의 제목은 <Born to Run>이다. 그리 고 노래를 쓴 이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이다. 그는 <Born to Run>을 1974년 썼고 공연을 통해 차 차 소개하기 시작했으며 이듬해 발표한 세 번째 앨범 「Born to Run」에 싣게 된다. 노래는 여러 사람의 마음을 울렸다. 가장 열광했던 이는 이전까지 음악 평론가로 활동했던 존 랜 도라는 사람이다. 1974년 5월 하버드 스퀘어에서 열린 보니 레이트 공연의 오프닝 무대를 맡았 던 브루스 스프링스턴이 <Born to Run>을 부른 것을 보고 존 랜도는 썼다. "나는 로큰롤의 미래 를 보았다. 그 이름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이다." 그날 이후 두 명의 운명이 바뀌었다. 이전까지 두 장의 앨범을 발표했지만 별 반응을 경험하지 못했던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미국 노동계급을 대표 하는 로큰롤 스타로 부상했다. 존 랜도는 그날부터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매니저가 되었다.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 <Born to Run>에 세상이 열광하자 브루스 스 프링스틴은 꿈의 뉴욕은 물론 미국 대도시를 순회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 에는 고속도로마저 벗어났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세계로 향했다. 어디든 도착하기만 하면 늘 그랬던 것처럼 몸이 부서져라 공연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는 그의 전성기이자 로큰롤의 현재였다. 마흔을 바라볼 즈음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매디슨 스퀘어 광장의 무대에 올랐다. 1987년 9월 집이 없는 아이들을 위한 자선공연이 마련되었고 그 는 <Born to Run>을 부른 뒤에 어제와 오늘을 말했다. <Born to Run>은 도피를 선택하고 멈추지 않은 어떤 소년과 소녀에 관한 노래라 설명했다. 그때는 그랬던 것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원하는 것은 집이었노라 깨닫는다며 누구에게나 집이 있어야 할 권 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여행이 됐든 이주가 됐든 우리는 늘 탈출을 꿈꾼다. 그런데 원하는 것이 정 말로 탈출일까. 사실은 새로운 정착에 가깝지 않을까. 우리는 꿈의 고속도 로를 질주해서, 때로는 바다와 하늘을 가로질러 만나는 어제보다 나은 세 계를 원한다. 그런 우리에게 길은 통과해야 하는 곳이다. 집은 우리가 도착 해야 하는 곳이다.

아티스트 Bruce Springsteen 곡명

Born to Run

출시연도 1975

내가 어디로 가는지 묻지 마세요

운전대를 잡고 달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또 있다. 그의 주행 또한 절박하지만 무엇 으로부터의 도피인지, 그리고 도착하고자 하는 목적지는 어디인지는 좀 많이 모호 한 편이다. 다시 가사를 따라가 보기로 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그는 매일 밤 똑같은 꿈을 꾼다. 꿈속에서 늘 만나왔기에 풍경은 이제 알지만, 여전히 이름을 알 지 못하는 도시가 그의 이름을 부른다. 그는 꿈의 부름을 따라 차에 시동을 걸고 달 리기로 한다.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이런 곳이다. 동물들이 죽으면 가게 되는 곳, 너무 높아서 어쩌면 오를 수 없는 산, 너무 깊어서 건널 수 없는 강, 오로지 꿈 속에 서만 봐왔기에 풍경은 익숙하지만 실은 이름조차 낯선 곳. 이 모호한 주행의 노래를 남긴 이들은 캐나다 출신의 6인조 밴드 아케이드 파이 어다. 데뷔작 「Funeral」(2004)은 말 그대로 장례식을 다룬 작품이다. 앨범의 주 제는 구체적인 경험으로부터 나왔다. 핵심 멤버 윌리엄 버틀러의 할머니, 레진 샤 사뉴의 할아버지 등 잃어버린 가족으로부터 출발해 떠나고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를 대서사시로 구성했고 이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획득하는 눈부신 결과 로 이어졌다. 두 번째 앨범 「Neon Bible」(2007)은 전작보다 더 큰 성공을 거뒀으 되 전작 같은 명확한 콘셉트 앨범이 아니었다. 모호한 노래들을 남겼고 그 가운데 에는 한밤중 알 수 없는 부름을 따라 알 수 없는 목적지로 향하는 <Keep The Car Running>이 있었다. 노래의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찾기 위해 송미닝스로 갔다. 송미닝스는 전 세계 이용자가 가사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웹사이트다. <Keep The Car Running> 항목을 주시한바 다양한 논평과 해석이 쏟아지는 가운데 희망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노래 속 화자는 왜 운전대를 잡게 되었는가. 누군가는 정신 질환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울증 혹은 강박증에 사로잡힌 이가 환영을 따라 자다 벌떡 일어나 한밤의 질주를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향하는 목적지는 어디 인가. 누군가는 징집을 피하고 전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린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사랑의 종말을, 어떤 이는 죽음의 질주를 말한다. 어느 것도 정확한 답이라고 말하 기는 어렵다. 이처럼 추상의 예술은 다채로운 방식으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나는 어쩌면 <Keep The Car Running>이 '복잡한 마음'에 관한 노래가 아닐까를 생각한다. 차를 운전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찬 우리는 과연 또렷 한 목적 없이 모르는 길을 향해 달릴 수 있을까. 너무 높아서 오를 수 없는 산을 넘고 너무 깊어서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 풍경을 알지만 이름은 모 르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뛰어들 수 있을 것인가. 도로가 있고 차가 있다면 실현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다. 그런데 이 모든 조건이 갖춰졌다고 했을 때 우리는 한밤중에 과연 무작정 시동을 걸 수 있을까. 탈 없는 일과는 우리를 머물게 하고 멈추게 하며 잠들게 한다. 그러나 마음의 요동은 때때로 우리 를 무모하게 움직이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리고 나는 몇 가지 충동을 생각한다. 가족과 다투고 애인과 싸우고 울 면서 택시를 잡아탔던 가엾은 이십 대의 어떤 그리고 날들을 떠올린다. 그래 봐야 갈 수 있는 곳이라곤 친구 집뿐이었던 초라한 날들을. 휴식이 든 견학이든 또렷한 목적 없이 충동적으로 티켓을 지르고 비행기에 올랐 던 어떤 불안한 과거도 함께 떠오른다.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그런 내게 <Keep The Car Running>은 어둡고 슬픈 과거를 환기하는 노래다. 나 는 이제 모르는 불안한 세계를 갈망하지 않는다. 내가 사라지길 원하지 않는다. 무작정 차를 타고 도로에 뛰어들고 싶었던 가파른 나날들과 작 별한 뒤에 나는 건강과 여가 같은 안전한 일과에 집착하는 재미 없는 어 른이 되었다.

아티스트 Arcade Fire 곡명

Keep The Car Running

출시연도 2007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그리고 눈물로

여성 과학자 호프 자런의 삶을 다룬 책 「랩걸」에는 「허클베리 핀」의 사례를 들어 "장거 리 자동차 여행이 미국 특유의 문학적 도구"라고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미국 전역에 서 이루어지는 학회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시즌 비행기 탈 돈은 없고, 그래서 3,000마 일(약 4,800km)을 시속 60마일로 달려 50시간 운전할 계획을 세우고 동료 및 학생들 을 설득하고자 했던 말이다. 미국 안 가본 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매체를 통해 늘 접해왔다. 그 유명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해리와 샐리가 함께 차를 타고 시카 고에서 뉴욕으로 이동하는 영화였다. 「얼모스트 페이모스」는 버스를 타고 미국 전역을 여행하는 어느 밴드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레드불이 미국에서 많이 팔리는 건 졸음 을 참으면서까지 운전해야 하는 화물 노동자가 너무 많아서라고 어느 책에서 읽었다. 노래로부터 장거리 여행을 찾을 때도 많았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참여하기 도 했던 싱어송라이터 수프얀 스티븐스의 <Chicago>도 그런 노래였다. 디트로이트 출 신으로 현재 뉴욕에 사는 수프얀 스티븐스는 그동안 지역을 소재로 다양한 앨범을 만 들어왔는데, 「Michigan」(2003)은 고향 미시건 주로부터 출발한 작품이다. 일리노이 주를 중심으로 경험하고 상상한 바를 엮어 만든 콘셉트 앨범 「Illinois」(2005)도 있다. 여기 실린 <Chicago>는 자동차 장거리 여행에 관한 노래다. 시카고로, 그리고 뉴욕으 로 떠나는 어떤 사랑꾼이 사랑을 통해 자신이 재창조되는 기분을 누렸다고 말하는 것 으로 시작하는 노래다. 현대의 노래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Chicago>의 서사도 아주 명확하지는 않다. 일단 출발지가 특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노래는 노래다운 방식으로 출발지점을 말해준다. 사랑이다. 1절을 노래하는 그는 사랑에 빠졌고, 그래서 사랑을 찾아 차를 타고 시카고 로 달린다. 2절의 출발지점 또한 사랑인데 목적지가 다르다. 뉴욕이다. 많은 말들이 생 략되었지만 대략 이러한 시나리오를 예상해볼 수 있다. 사랑에 빠진 그는 어딘가에서 시카고로 달려왔다. 먼 길을 달려왔으나 시카고에서 일이 잘 풀린 것 같지는 않다. 곧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되는데 그 사랑은 뉴욕에 있다.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뉴욕까지 달 린다. 그러나 그 사랑 또한 잘 풀린 것 같지 않다. 혹시 인터넷 채팅으로 시작된 불장난 이었던 것일까.

아티스트 Sufjan Stevens 곡명

Chicago

출시연도 2005

먼 길을 떠난 그의 주머니 사정이 그리 좋지는 않아 보인다. 구글이 알려 주기를 시카고에서 뉴욕까지 비행기를 타면 두 시간 반이 걸린다. 구글 지 도가 알려주기를 시카고와 뉴욕의 거리는 789마일, 즉 1200km가 넘는다. 자동차로 간다면 시속 100km로 쉬지 않고 달려도 열두 시간 이상 걸린다. 그의 노래에 비행기는 없다. 대신 밴이 있다. 열두 시간 이상 밴을 타고 고 속도로를 타고 시카고에서 뉴욕까지 달려온 그는 어느 밤 시내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거기서 잔다. 사랑을 향해 이만큼 먼 거리를 이동해왔던 그는 한 때 실수투성이었던 자신이 사랑을 통해 재창조되었다 말하지만, 밴에서 함께 잠드는 대상은 그의 사랑이 아니다. 먼 길을 함께 달려와 준 친구다. 그는 밴에서 친구와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노래는 결국 자신의 실수 에 대해 다시 말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른바 '롱디(Long Distance Relationships)' 커플에 관한 노래는 많다. 스노우 패트롤의 <Set The Fire To The Third Bar>는 수 마일 떨어진 곳 에 사는 애인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노래다. 브루노 마스의 <Long Distance> 또한 보고 싶을 때 당장 볼 수 없는 관계의 불안을 다룬다. 나는 더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수프얀 스티븐스의 <Chicago>는 롱디가 무엇 인지를 논하지도 못하는 노래다. 사랑을 찾아 장거리 주행을 몇 차례 시도 했으나 사랑 대신 우정으로 차에서 울다가 잠드는 이의 이야기다. 사연을 알고 들으면 더 슬퍼지는 노래이기도 하다. 좌절된 사랑 앞에서 과연 누가 이렇게까지 초연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완성된 노래는 명랑하며 사랑스 럽다. 음악가는 이런 방식으로 현실을 바꾸는 마법사인지도 모른다.

해피엔딩이라 믿고싶다

여태까지 슬픈 노래 얘기만 했는데 나는 완벽한 해피엔딩에 실패할 준비를 하고 있다. "휴일 을 앞둔 밤 아무도 없는 새벽 도로를 질주해서 바닷가"로 향하면서 시작되는 마지막 선곡 < 항상 엔진을 켜둘게>도 행복이 넘쳐 흐르는 노래라 단정할 수가 없다. 2절의 가사 "너와 만 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러서 너와 내가 아는 그 바닷가에 다시 간다는 표현으로 미루 어 노래 속의 두 주인공은 한때 사랑했고, 한참 전에 헤어졌고, 긴 시간이 흐른 뒤에 어떤 여 유가 생긴 날 재회를 꿈꾸는 관계로 이해된다. 그러나 기쁜 재회라고 믿고 싶어진다. 너를 위 해 언제든 달릴 수 있도록 항상 엔진을 켜두겠다는 노래의 제목, 휴일 전야라는 노래의 시점, 처음부터 끝까지 활기차게 구성된 노래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우리를 그렇게 믿게 만든다. "만약 그때가 온다면 항상 듣던 스미스를 들으며 저 멀리로 떠나자." 내가 노래에서 가장 좋 아하는 대목이다. 뻥뻥 뚫린 도로를 달리는 순간에 너와 내가 아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런 순간 또한 <항상 엔진을 켜둘게>를 기쁨의 노래로 착각하게 만든다. 나도 언제부턴가 사랑 하는 이와 함께 차를 타면서 알게 되었다. 달리는 길이 보다 만족스러우려면 다른 일을 잊을 수 있는 여유와 목적지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 하고 교통지옥도 피해야 하지만 서로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느낀다. 너와 내가 좋아하는 3-4분짜리 그 노래는 함 께 하는 시간과 관계를 다시 묶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너와 나의 접점이 있는 노래는 아 주 많지 않다. 그래서 더 귀하다고 느낀다. 나는 현재 이 원고를 베트남 하노이 한복판에서 쓰고 있다. 출장과 여행을 겸해서 다섯 시간 가량 비행기를 타고 다른 여름으로 왔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위해 엔진을 켜둔 고마 운 이를 만났다. 영어와 베트남어를 섞어 짧게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그는 나의 이름을 알지 만 나는 그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차가 기아차라는 것만 알지 차종조차 모 른다. 어두워서 제대로 못 봤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건 예정대로라면 밤 열두 시 반에 도착했 어야 할 비행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그가 나를 한 시간 이상 기다렸다는 사실이다. 그는 약속 한 날짜와 시간에 공항에 나와 예약한 숙소로 데려간 픽업 기사다. 그를 만나 인사한 뒤 가장 먼저 했던 말은 미안하지만 5분만 더 기다려줄 수 있느냐는 거였 다. 다섯 시간 참은 담배를 피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더 커 5분도 못 썼다. 장초를 끄고 후다닥 그에게 달려가 트렁크를 열면서 그냥 참을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동안 누군가 엔진을 켜고 기다린다는 것은 언제나 낭만적인 일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공항 픽업 서비스가 20불도 안 된다는 사실은 더 나를 괴롭힌다. 20불도 안 되는 일 앞에서 그는 한밤중에 달리고 또 기다리는 사람이다. 여행은 모르는 인연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일이 어 제보다 더 많이 쌓이는, 갚을 수 없는 빚의 나날이다.

아티스트 델리 스파이스 곡명

항상 엔진을 켜둘게

출시연도 2001

공항에서 도심으로 연결되는 잘 닦인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항상 엔진 을 켜둘게>가 떠올랐다. 한 달짜리 휴가를 앞둔 몹시 늦은 밤이었고 우 리는 휑한 도로를 멈추지 않고 달렸다. 이를 제외하고는 사실 많은 것이 노래와 같지 않았다. 함께 듣는 노래는 스미스가 아니라 케이팝을 닮은 베트남의 이름 모를 달달한 대중가요였고 목적지는 너와 내가 아는 바 다가 아니라 거미줄처럼 복잡해 길을 잃기 쉬운 하노이 구시가지였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나와 그의 가장 확실하고 충분한 의사표현은 침 묵이었다. 묵묵히 도로를 달리는 고요한 차 안에서 거짓말 같은 노래를 생각했다. 그 거짓말 같은 노래는 우리에게 많은 역할을 한다. 삶의 어 느 시점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기도 하고, 이렇게 건조한 여정에도 노래 가 개입할 틈이 생긴다. 사실 우리가 이끌리게 되는 노래 대부분은 슬프 다. 그러나 우리는 노래로부터 슬픔이 아닌 아름다움을 읽으려 한다. 노 래는 우리가 꾸는 꿈인지도 모른다.

ART

이민희 음악 및 기타 여러 분야를 쓰는 프리랜서 작가로 10년 생활해왔다. 최근 1인 출판사를 차렸고, 첫 책 출간을 앞두고 있다. 가장 큰 걱정은 판매부수가 아니라 '앞으로 여행을 못 가면 어떡하나'다. 「왜 그 이야기는 음악이 되었을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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