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최전선 제주바다 인터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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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최전선, 제주바다 인터뷰

펴낸날 2023년 3월 / 펴낸이 윤정숙 / 펴낸곳 녹색연합

기획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준) 윤상훈, 신수연, 신주희

주소 (02879)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19길 15 / 전화 02-747-8500

메일 greenkorea@greenkorea.org / 홈페이지 www.greenkorea.org

인스타그램 @greenkorea_united, @jeju_softcoral

디자인 고래의노래 whalesong.co.kr

발간번호 01-23-03-02

범섬과 바닷속 산호정원을 가장 잘 아는 ‘바다 길잡이’

강용옥 서귀포 법환 해조호 선장

마라도 미역 실종 사건... “이번 겨울 딱 1개체 봤다”

강정찬 제주대학교 기초과학연구소 연구원

바다가 사라지면, 결국 인간은 멸종 위기에 들어설 겁니다

고광민 서민생활사 연구자

바다와 육지 사이, ‘이곳’에 감춰진 놀라운 세상 임형묵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

어류도감이 올해 목표... ‘물고기 학교’ 만들고 싶어 김상길 ‘시민과학자’ 굿다이버 대표

제주바다에는 아름다운 산호가 살고 있습니다 황성진 우석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보이지 않는 산호를 사랑하게 하고 싶었어요 정은혜 작가·생태예술가

제주바다는 생태적 회복력을 상실했어요 고준철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 연구원

낚싯줄에 엉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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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 구조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이정준 ‘돌핀맨’ 다큐멘터리 감독 지금 제주바다는 ‘혁명적’ 변화를 겪고 있어요 신수연 녹색연합 해양생태팀장 여는 글 1화 2화 3화 4화 5화 6화 7화 8화 9화 10화 6 8 20 30 40 48 58 70 84 94 110 목차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의 미역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징후는 있었다. 8월 평균 수온이 2018년 24.89℃, 2019년

25.38℃, 2020년 26.14℃, 2021년 27.87℃로 최근 5년 사이

매년 1℃ 가량 상승했다. 미역 포자는 25℃ 이상의 수온이 5일

정도 지속되면 죽어버린다. 해조류 전문가의 연구 결과다. 미역

실종사건은 기후변화에 따른 수온 상승이 유력한 범인으로 지

목되었다.

2021년 가을과 2022년 봄, 녹색연합은 제주 연안 조간대 전체

(2021년 200곳, 2022년 40곳)를 직접 조사하였다. 해조류가

사라지고 석회조류가 하얗게 암반을 뒤덮는 ‘갯녹음’ 현상 때문

이었다. 제주도 97개 해안마을 전체 갯바위가 갯녹음으로 뒤덮

여 있었다.

톳, 모자반, 감태 등 해조류 바다숲은 어디로 갔을까. 제주바다

의 물 빠진 조간대는 ‘하얀 바위’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난

1월, 제주 언론은 ‘지하수의 경고’를 방송하였다. 기후변화만이 아니었다. 제주국제자유도시 선언 이후, 각종 육상오염원이 지 하수를 통해 제주 연안으로 용출되면서 나타나는 바다 오염이 확인되었다.

제주바다는 애초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바뀌었고, 무엇 때문일까. 제주바다의 ‘원형’과 ‘지금’을 알고 싶었다. 제주

생활사 연구자, 조간대 조수웅덩이 다큐 감독, 해조류와 산호 전 문가, 제주바다 다이빙 마스터, 미세플라스틱 아티스트, 제주바 다를 탐색하는 환경운동가를 만났다.

누군가는 제주바다에서 빛단풍돌산호와 아열대 물고기의 확산 을 추적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남방큰돌고래와 상괭이를 기록

하고 있었다. 범섬이 보이는 서귀포 법환포구에서 마을 출신의

선장도 만났다. ‘기후변화와 육상오염원’. 이 두 가지를 빼고는

제주바다의 오염을 설명할 길이 없다. 제주섬의 육지와 지하수

와 바다가 연쇄적으로 벼랑 끝 위기 상황에 몰려 있었다.

녹색연합은 제주바다 10명의 증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10명의 이야기는 조각 모음으로 완성되어 제주바다를 오롯이

보여주리라.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2030년, 2050년 제주바다의

내일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바라는 바가

한 가지 있다. 제주바다가 제주바다의 모습대로 존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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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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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섬에서\바라본\서귀포\풍경

‘해조호’ 강용옥 선장은 서귀포 법환마을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하루에도 수

십 번을 법환포구와 범섬을 오간다. 한 번은 낚시객을 태우고, 또 한 번은 공기

통을 맨 다이버를 싣는다. 때로는 범섬 안내자가 되어 해양생태 연구자, 시민

단체 활동가, 정부기관 관계자와 함께 바다로 나간다. 바다 일은 한시도 긴장

을 놓을 수 없다. 선장의 시간은 제주바다의 물때, 바람, 너울과 파도에 맞춰

있다.

아마도 법환마을, 범섬과 바닷속 산호정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을 꼽으라면

해조호 강용옥 선장일 것이다. 지난 2월 17일 트럭에 내려 손을 흔드는 선장

을 법환포구 서귀포해양경찰서 법환대행신고소 안에서

요즘 인공어초 작업으로 바쁘시다구요?

강용옥 선장님은 원래 범섬 일대의 조사 좌표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잖아요.

요즘은 어떤 조사에 참여하고 있는지요?

올해 2월은 인공어초 작업으로 바빴어요. 제주도 서쪽과 동쪽의

판포, 신창, 고산, 대정, 신양 일대에서 인공어초에 감태 포자를

심는 작업에 참여했어요. 해양수산부가 바다숲을 조성한다고 하

는 건데, 주로 수심 15m 지점에 어초를 투하하고 풀을 일일이 심

는 작업으로 진행돼요. 범섬 일대 바닷속 산호 조사도 꾸준히 있

었어요.

강정동 제주해군기지 건설 전후 용역을 맡은 성균관대학교 조사

팀을 안내했고, 2000년부터 지금까지 이화여대 산호 연구팀이

나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등 정부기관 연구자도 저를 찾아와요.

강정마을의 지킴이들도 강정등대와 서건도 일대를 조사하는데

제가 배를 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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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인터뷰했다. 강용옥 서귀포 법환 해조호 선장 법환포구 바다 길잡이 서귀포 법환 해조호 선장 강 용 옥 범섬과 바닷속
가장 잘 아는
1화
산호정원을
‘바다 길잡이’

천연기념물 산호인 ‘해송’ 조사에도 참여했다구요?

작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해송’에 붙어있는 담홍말미잘 제거

설계용역에 참여했어요. 문섬과 범섬 일대의 해송 군락지를 안

내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이지요. 그런데 바닷속을 누구나

알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조사팀도 인원이 자꾸 교체되면 조사

지점을 잘 찾질 못해요. 두 번 일하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지금 법환에서 해조호를 몰고 계신데요.

해양 조사를 하려면 별도의 면허를 받아야 하지요?

해조호는 관광낚시선과 유어선으로 도선 허가를 받았어요. 그런

데 낚시 행위나 어업 이외의 목적으로 선박을 이용할 때는 반드

시 특별검사를 받고 해양경찰에 신고해야 합니다. 인공어초 작

업이나 해양 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에 특

별검사를 받아야 해요. 산호 조사 때도 마찬가지고. 일반 어장관

리선이 돈을 받고 수중 조사를 나가면 불법이에요. 일반 레저선

이 물고기를 잡아 판매하면 불법이지요.

선박은 등록번호판으로 그 용도를 구분하는데, 어업허가가 있는

배는 초록색 번호판이고, 일반 레저배는 ‘MB’(Motor Boat)로 되어

있어요. 우리 배처럼 어업허가가 있는 배는 제주도 관할 권역인

추자도까지만 가서 생업을 할 수 있지만, 레저배는 입출항 통제

없이 마음껏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요.

선장님은 법환마을에서 태어났잖아

요? 법환마을 소개를 좀 해주세요.

법환마을은 한국 최남단에 위치

한 해안촌이지요. 한반도에서

태풍이 가장 먼저 도달하는 곳

으로 유명해요. 태풍이 오면 모

든 방송사가 여기서 너울 치는

태풍을 촬영한다고 난리지요.

제주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남

북이 짧고 동서가 길어요. 남북

방향으로 제주도를 반으로 자르면 동쪽을 정의현, 서쪽을 대정

현이라고 했어요. 서귀포 법환마을은 정의현, 강정마을은 대정

현에 속했고 같은 제주라도 지역마다 말이 조금씩 달라요. 나는

‘편안할 강씨’인데, 제주 강씨가 참 요망져요(웃음).

배는 언제부터 탔나요?

고3 여름방학부터 직업 실습을 나갔어요. 대학교 전기학과를 졸

업했고 온풍기 기사로 용접, 전기를 만졌지만 돈이 안 됐어요.

제주에서 가장 큰 감귤 선과장 팀장을 맡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2004년 4월에 배를 시작했어요. 30대 중반이었는데, 3천만 원짜

리 배를 사서 서귀포 대포에서 3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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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범섬과 바닷속 산호정원을 가장 잘 아는 ‘바다 길잡이’
안덕면 대평에서도 2개 월 정도 있었어요. 그 배를 법환마을로 끌고 왔지요. 당시 법환에는 배가 여섯 척 있었고 유어선이 많았는데 이곳 선 강용옥 서귀포 법환 해조호 선장 한반도에서 태풍이 가장 먼저 도달하는 곳 강용옥\해조호\선장

장들의 텃세가 심하더라구요. 3년 동안 엄청 고생했어요. 이곳

에서 해마다이빙숍을 하는 김진수 형님에게 도움을 많이 받으

면서 다이버를 범섬으로 꾸준히 실었지요. 6.05톤짜리 해조호를

2008년 만들었지만 그해 가파도와 마라도 산호조사를 하기 위

해 대정 운진항에 정박했는데 바지선과 부딪혀 크게 부서지고

지금의 해조호를 다시 만들었어요. 1억 8~9천만 원 들었던 것 같 아요.

범섬은 낚시와 다이빙으로 유명한 곳이고, 범섬을 가기 위해서는 법환포구에서 배를 타야 하지요? 여기 법환마을 선장님들은 어떤 식으로 선박을 운영하나요?

코로나로 다이빙숍도 늘었고 범섬을 찾는 다이버도 50% 정도 늘

은 것 같아요. 요즘은 겨울이라 비수기지요. 오늘은 날씨가 안

좋기도 하고 벵에돔 시즌도 막바지라 범섬에 낚시객 4명만 들어 갔어요.

여름 성수기 때 하루 100만 원 벌이도 있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

에요. 법환포구에 있는 오현호, 강일호, 해조호가 번갈아 손님을

태우고 이익은 3대의 배가 똑같이 나누어 갖습니다. 이익 공동

체랄까.

선장님도 직접 다이빙을 하시나요?

예전에 나도 다이빙을 했지요. 서귀포 문섬 작은 한개창 바닷속

에 해송을 둘러싼 돌담이 있는데, 그거 내가 쌓았어요(웃음). 예

전 바다는 좋았지요. 작은 한개창 바닷속 모래와 암반지역에 다

금바리가 많았지요. 이제는 없어요. 범섬에는 배 프로펠러에 걸

릴 정도로 모자반과 미역이 크게 자랐어요. 법환 서건도에서 미

역도 채취했고. 지금은 감태나 조금 있으려나.

법환마을 앞바다의 상황은 어떤가요.

예전과 다른 변화를 느끼고 있는지요?

저기 앞, 법환포구 주차장도 바다를 매립해서 만들었어요. 예전

강상주 서귀포시장 때(10~11대 서귀포시장, 1998.7.1.~2006.4.1.) 한치

축제를 하기 위해 매립한 것인데, 그때부터 장어 치어나 ‘딴비’, ‘아홉토막좁벨레기’라고 부르는 작은 물고기가 보이지 않아요.

1990년대 초반, 서귀포 신시가지가 들어선 뒤로는 오염된 지하

수가 법환 바다로 용출되기 시작했어요. 서귀포시는 신시가지

내 주택의 생활하수 처리를 지하침투식으로 허가했고, 정화되지

않은 생활하수가 그대로 지하수로 흘러들었어요. 오염된 물이

바다로 흘러들거나 바다에서 용출되어 나오더라구요.

신시가지에서 오염된 지하수가 법환마을에서 나온다구요?

법환마을은 용천수가 나는 ‘막숙’으로 유명한데, 옛날이야기지

요. 예전에는 법환 용천수를 식수로 쓰기도 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러지 못해요. 여기는 동가름, 서가름이라고 해서 물 나는 곳이

2곳인데, 동가름물은 남자 목욕탕으로 쓰고, 서가름물은 빨래터 로 썼지요. 여름에 남탕에서 샤워하면 시원하기는 한데, 어휴 비

누냄새가 여기 법환포구 사무실에 있어도 나요.

‘막숙’은 ‘바닷속 빨래터’라고 예전에 ‘VJ특공대’에 나오기도 했어

요. 이곳에서 물을 떠다가 식수로 하고 배추도 절였는데 지금은

안되죠. 제주 서쪽의 한경면 고산은 양돈장이 많아 거기 용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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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옥 서귀포 법환 해조호 선장
보세요.
1화 범섬과 바닷속 산호정원을 가장 잘 아는 ‘바다 길잡이’
마실 수 없다고 해요. 무작위로 만들어지는 중산간 골프장을
지하수 펑펑 쓰면서 오염시키지, 세금도 못 걷고.

요즘은 소라에도 플라스틱 고무가 있다고

녹색연합이 제주 바다의 갯녹음 현상을 조사했는데, 법환마을도 심각하더라구요. 그게 신시가지 건설의 영향이 있을까요?

당연히 있지요. 불과 10~20년 전만 해도 오분자기가 있어 떼어

먹곤 했어요. 그런데 눈을 씻고 봐도 오분자기가 없어요. 요즘은

소라에도 플라스틱 고무가 있다고 하지 않나. 미역은 완전히 싹

사라졌어요.

법환은 태풍의 길목이라서 태풍이 지나가면 바닷속 돌이 잘 뒤

집어져요. 해조류가 여기에 착상해 잘 자랐어요. 이제는 바당이 허옇게 변한 게, 이게 백화현상이에요. 제주도에서 백화현상이 가장 심한 곳이 법환일 겁니다.

서귀포 신시가지의 생활하수를 방치한 게 잘 이해가 되지 않네요.

지금도 신시가지 생활하수를 침투식으로 하나요?

현재는 펌프장에서 생활하수를 끌어올려 하수처리장에서 처리

하고 있어요. 아마도 서귀포 구도심의 생활하수는 보목하수처리

장으로, 서귀포 신시가지 생활하수는 예례하수처리장으로 가고

있어요.

범섬은 문섬과 함께 문화재청이 지정한 천연기념물인데요.

보호구역으로 지정됨으로써 받는 법환마을의 혜택, 혹은 불이익이 있는지요?

혜택은 전혀 없어요. 오히려 문화재이기 때문에 낚시꾼 입도 통 제를 할까 걱정이지요. 왜냐면,

겠다는 생각을 해요. 사람들이 흑비둘기도 보고 아열대 식물도

보면서, 좋잖아요.

1970년대에 부친과 나는 범섬에 며칠씩 살기도 했어요. 소풍을

갔지요. 범섬은 물도 나와요. 예전에는 사람이 살던 초가집도 있

었구요. 범섬 꼭대기로 올라가는 길도 두 곳 있는데, 동쪽이 정 의질(길)이고 서쪽이 대정질이에요.

문화재청이 법환마을을 지원한다면, 법환포구에서 범섬과 외돌

개를 오가는 관광 상품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멋있는 범섬을

한 바퀴 돌고 외돌개에 내려주면 올레길을 따라 1시간 정도 걸어

다시 법환포구로 오면 돼요. 충분히 지원이 가능하겠지요.

15 14 15 14 강용옥 서귀포 법환 해조호 선장
낚시객과 다이버는 우리들 밥벌 1화 범섬과 바닷속 산호정원을 가장 잘 아는 ‘바다 길잡이’ 범섬\풍경
이인데 다 굶어 죽게 생겼어요. 나는 범섬을 개방하면 오히려 좋

석회조류가\하얗게\달라붙는\갯녹음이\진행중인\법환포구\앞\조간대\갯바위

석회조류가\하얗게\달라붙는\갯녹음이\진행중인\법환포구\앞\조간대\갯바위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 미역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징후는 있었다. 8

월 평균수온이 2018년 24.89℃, 2019년 25.38℃, 2020년 26.14℃, 2021년

27.87℃로 최근 4년 만에 3℃가 올랐다. 미역 포자는 25℃ 이상의 수온이 5일

정도 지속되면 죽는다. ‘마라도 미역 실종사건’의 유력한 범인으론 기후변화에

따른 수온상승이 지목되었다.

제주 해조류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 원인이 궁금했다. 제주

의 해조류를 10년 이상 연구한 제주대학교 기초과학연구소 강정찬 박사를 3

월 초 그의

안녕하세요. 우도와 마라도의 조간대 해조류를 연구했다고 들었습니다.

해조류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수행한 연구는 어떤 것이었나요?

회사생활을 하다가 매너리즘에 빠져서 마음이 힘든 날이 있었

어요. 고향인 제주도에 돌아와 좋아했던 바다풀을 공부하기 시

작했죠. 석사과정을 시작할 즈음 우도, 마라도, 비양도의 해조류

군락조사 연구 참여 제안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해녀, 어촌계

등과 마찰이 많아 바다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았어요.

우도는 2009년과 2019년, 마라도는 2010년과 2020년, 10년간의

변화를 비교하는 연구를 했어요. 동일 지점에서 계절별로 정량

조사와 정성 조사를 병행했습니다. 예를 들면 우도면 북단, 남단

두 포인트(전흘동, 비양동)를 정해서 하루는 북단만, 또 다른 날은

남단만 진행해요. 물때에 따라 조금 때에는 조하대 조사와 사리

때에는 조간대 조사를 진행합니다. 현장에서 채집한 해조류는

종류별로 연구실에서 분류해요. 한 정점당 조간대와 조하대에

각각 상부, 중부, 하부 3단계로 구분하여 각각 방형구 네 개씩 총

24개 샘플을 채집하고 서로 해조류 종류와 생물량을 비교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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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에서 만났다. 강정찬 제주대학교 기초과학연구소 연구원
기초과학연구소
강 정 찬 마라도
2화
제주대학교
연구원
미역 실종 사건... “이번 겨울 딱 1개체 봤다”

얼마 전 ‘KBS 다큐 붉은지구-침묵의 바다’에서 인터뷰하신 모습을 보았어 요. 마라도의 톳 이야기를 하며 “3~4년 만에 이렇게까지 사라질지는 몰랐

다”고 말한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그 사이 체감할 만한 놀라운 변화가 있었 나요.

2018년도에 멸종 위기 해조류를 찾으러 마라도에 갔을 때를 기

억해요. 그때 조간대에 톳이 잘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2020년도

에 같은 자리에 다시 들어갔는데 톳이 갑자기 없어졌더라고요.

2018년에 톳을 캐고 수확했던 곳이었는데, 아무것도 없었어요.

솔직히 깜짝 놀랐어요. 생태계는 슬금슬금 완만하게 변해야 하

는데, 너무 빨라요. 지금 다른 곳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에 제주 시 한림읍 귀덕마을이 해조숲으로 굉장히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해조숲이 거의 사라지고 다른 생물들이 들어왔어요. 드라마틱한

변화에요. 10년의 변화도 굉장히 큰 충격인데 3년 만에 이렇게

사라진 것은 매우 이례적이지요.

변화의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갯녹음, 즉 해조류의 대량 소멸 현상은 물리, 생물, 화학적 요인

등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나타나요. 수온 상승과 연관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어요. 그러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마라도에서 미역이 사라진 것은 기후변화 때문입니

다. 미역은 겨울에 싹이 나고 봄에 자라나 미역귀에서 포자를 만

들어서 뿌려요. 그러면 그 포자가 바위에 붙어서 가느다란 실,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사이즈의 사상체(絲狀體)를 형성하여 여

름, 가을을 나죠. 가을이 지나 알, 정자를 만들어 수정하면 다시

미역이 됩니다. 그런데 이 사상체가 25℃ 이상의 고수온에 장기

간 노출되면 죽어버려요. 서귀포 수온 자료를 찾아보니 2020년

몇 일 동안 26~27℃ 고수온이 유지되었더라고요. 한참 사상체들

이 세포 분열을 하며 알을 만들어야 할 시기인데 그러지 못했어

요. 저도 이번 겨울에 마라도 미역을 딱 1개체만 보았어요.

우도, 마라도 이외에 제주바다가 과거와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바다가 따뜻해지면서 산호류가 많이 늘었어요. 주로 돌산호 종

류가 번성하고 있어요. 협재, 한림, 비양도 인근에는 거품돌산호

가 많은데 비양도 수심 10~15m 사이가 심한 상태입니다. 예전에

는 이곳에 전복도 많이 살았는데 거품돌산호가 번성하니 전복이

붙을 데가 없어서 잘 자라지 못해요. 해조류도 마찬가지로 붙을

데가 없어서 많이 줄었고요. 산호류와 해조류는 서로 기질 경쟁

관계에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주바다가 100년 후면 일본 오키나와 바다처럼 된다는데, 미래의 모습을 그려본 적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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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바다숲,\건강한\감태\군락
강정찬 제주대학교 기초과학연구소 연구원

그렇게 된다면 차라리 다행일 거예요. 오키나와는 해조류도 잘

붙어있고 산호도 잘 서식하고 있거든요. 지금 제주바다의 문제

는 바다가 따뜻해지면서 열대, 아열대 생물이 몰려와 대신 살아

줘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환경이라는 데 있어요. 수온이 상승한

것은 확실한데, 어떤 문제인지 몰라도 아열대성 부착동물마저도

여기서 정착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관찰돼요. 과거에 살았던 종

의 영역이 다른 종으로 대체되는 것은 천이로 받아들일 수 있지

만, 현재 상황은 생물의 절멸에 가까운 형태로 관찰되니 매우 심

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죠. 단순히 기후변화의 측면으로만 이

해하기는 어려워요.

지난해 녹색연합이 제주도 조간대 갯녹음 조사를 하며 박사님의 도움도 많이

받았는데요. 제주 전체 해안마을의 조간대 200군데를 조사하며, ‘이 정도로 조간대에 해조류가 없다니!’ 하며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아마 여름에서 가을 즈음 조사해서 더 놀랐을 거예요. 4월에 조 사하면 해조류가 자라서 이전에 휑하던 곳 중 울긋불긋하게 변 한 곳이 좀 있을 거예요. 요즘은 불등풀가사리 같은 계절성 떼

조류(turf algae, 사상체 혹은 단순

형 대형 조류로서 보통 잠긴 기질 표

면에서 털 매트 모양으로 자라는 형

태)가 자라는 시기입니다. 그러

나 계절성 떼조류는 추울 때 번

성했다가 싹 사라져버려요. 원

래는 그 자리에 톳과 지충이 같

은 다년생 해조류가 들어서 있

어야 하는데, 이런 게 거의 사

라지고 없는 게 문제이긴 해요.

제주도 조간대, 조하대 해조류의 정상적인 분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요?

해조류는 온도나 수온, 파도 등에 민감해서 자기가 견딜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싶어 해요. 조간대의 경우, 여름에도 뜨거운 햇볕

을 받으며 바위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건조에 내성이 있는 해

조류가 살아요. 조하대가 시작되는 부근에 서식하는 해조류는

파도에 내성이 있죠. 예를 들자면, 조간대는 건조에 강한 패가

맨 위에 있고, 그 다음에 파도에 강하면서 다소 건조 내성을 갖

는 지충이, 톳, 꽈배기모자반(또는 조간대 모자반 류), 가장 아래에

파도에 강한 우뭇가사리, 서실류와 같은 떼조류가 순차적으로

분포하는 것이 전형적인 모습이에요.

조하대에서는 중등도의 파도가 치는 상황을 기준으로 수심 5m

까지 파도에 비교적 강한 큰잎모자반, 쌍발이모자반 등 다년생

모자반류가 분포하고 그 이하 수심으로는 잎이 넓어 파도에는

약하지만, 빛을 잘 이용할 수 있는 감태의 생물량이 점점 증가하 게 되죠.

조간대 해조류의 훼손이 점점 심해지는 상황인데요.

제주바다의 바다숲을 복원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뭘까요.

오염물질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죠. 온난화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이 있어요. 제주도의 섬들인 문섬, 마라도, 형제섬 등

은 조하대에 해조군락이 아직 건강하게 남아 있어요. 그런데 서

귀포 법환, 안덕면 사계 등 연안 쪽은 섬 지역에 비해 수온이 더

높지 않은데도 해조류가 먼저 사라졌어요.

제주대학교\기초과학연구소\강정찬\박사

25 24 25 24
서귀포 표선면도 해 조류 감소 현상이 매우 심해져 가고 있는데, 이보다 더 따뜻한 마라도 조하대 해조류는 아직 잘 서식하고 있어요. 이렇듯 연안 쪽 해조류 군락이 사라지는 것은 온난화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 2화 마라도 미역 실종 사건... “이번 겨울 딱 1개체 봤다” 강정찬 제주대학교 기초과학연구소 연구원

고 육상오염물질에서 원인을 찾아야 해요.

당연히 사람의 영향 때문이겠죠. 제주도 인구수가 증가한 만큼

우뭇가사리, 모자반 생산량은 감소했어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

겠지만, 사람이 가장 큰 원인이고, 사람들이 어떤 행위를 하고, 바다에 무엇을 버리는지, 그 버린 것 중에 어떤 물질이 해조류

군락을 훼손하는지 먼저 진단하고 그 원인을 차단하는 것이 중

요하다고 생각해요.

제주도 해조류가 사라지는 것이 각종 개발 등

제주도 육지 환경 변화와 연동되어 있군요.

근거와 데이터가 있어야 규제나 인센티브를 도입할 수 있을 텐데요.

어떤 오염물질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나요.

제주도 3대 산업, 감귤(비료), 광어양식장(약품), 양돈(분뇨) 등이

원인자가 될 수 있지 않나요.

농축산업의 규모와 방식이 많이 달라졌고, 사용하는 화학물질도

더 증가했겠죠. 이 과정에서 해조류 군락을 감소시킬 것으로 예

상되는 제초제, 살충제 등도 충분히 지하수를 통해 바다로 유입

이 가능해요. 10여 년 전에 제초제를 싣고 가던 배가 성산 온평리

에 빠져서 그 일대 해조숲이 완전히 망가져서 몇 년 동안 회복이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질소와 인의 비율이 해조류 성장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는 있지

만, 제주도는 남해 등에 비해 영양성분이 없는 빈영양화 해역으

로 해조류를 양식하기에는 어려운 해역이에요. 남해는 뻘물도

들어오고 미네랄, 질소 성분 등이 충분히 공급되어 해조류가 매

우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어요. 그러나 제주도는 빈영양 상태의

해양이어서 질소와 인이 오염원으로 지목을 받지만, 그것도 어

느 정도 있어야 해조류가 자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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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야 하죠. 광어 양식장의 항생제가 해조류의 ‘광합성 기작’(엽록체가 햇빛에 너지를 모아 물과 CO²를 연료로 하여 여러 효소의 작용으로 탄수화물을 강정찬 제주대학교 기초과학연구소 연구원 거품돌산호\군락

제주도\인구변화\추이

만드는 과정)을 망친다는 연구도 있어요. 항생제 말고 다른 물질, 예를 들면 지금은 전면 금지되었지만, 과거에는 포르말린으로

양식장 바닥 청소를 하곤 했다는데, 포르말린도 농도에 따라 해

조류 생존에 치명적일 수 있죠. 그러나 양식장 영향으로 보기에

는 모든 양식장 주변 해조류 군락이 망가진 것은 아니더라고요.

그렇지 않은 지역도 있죠. 그래서 ‘갯녹음의 주된 원인이 양식장

때문이다’라고 하기에는 어려워요.

원인을 규명하는데 가장 어려운 것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

적으로 작용하여 현상으로 나타나는 경우죠. 원인이 하나 혹은

불과 몇 가지라면 쉽게 찾아내고 차단할 수 있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제주\조간대\해조류

제주바다\갯녹음

29 28 29 28
강정찬 제주대학교 기초과학연구소 연구원

바다가 사라지면, 결국 인간은

멸종 위기에 들어설 겁니다

고광민 서민 생활사 연구자가 쓴 <제주 생활사>(한그루, 2016)에는 “OOO씨

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OOO씨’는 제주 생활

사의 주체임과 동시에 그에게 제주 생활사를 가르쳐준 ‘스승들’이다. ‘국가’와

‘국사’는 있지만, 백성의 생활사는 없다는 절박함에 전국을 다니며 스승을 만

났다고 한다.

제주대학교 후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선생의 집은 흡사 ‘생활사 박물관’과 같

았다. 그곳엔 모양이 서로 다른 해녀의 망사리(그물)가 걸려 있었고 미늘(갈고

리) 없는 다금바리 낚시 바늘도 볼 수 있었다. 고광민 연구자를 찾아간 것은

제주 바다의 과거와 현재, 해민(海民)의 생활사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께서는 ‘서민생활사 연구자’라고

자신을 소개하셨는데요. 어떤 의미인지요.

통상 ‘민속학’이라고 하는 것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보는 시선이 있어요. 권위적이랄까. ‘서민생활사’라고 한 것은 주체로서의 ‘서

민’을 강조한 언어예요. 왜냐하면 삶의 주체는 다름 아닌 서민, 그들이지요.

땅, 물, 숲, 오름 등에 깃든 제주 서민생활사를 오랫동안 연구해 오셨는데, 그 중 바다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옛 문헌에 ‘바다의 소나무’라는

산호의 한 종류인 ‘해송'에 관한 기록이 있다고 하던데요.

‘무회목(無灰木)’이라고 했어요. 혹은 제주어로 ‘무낭’이라고도 했

고요. 옛 문헌(신증동국여지승람 제38권 전라도全羅道 제주목濟州牧)에

제주도 토산물로 나와요. ‘우도牛島에서 난다. 바다 가운데 있을

때는 부드럽고 연하여 물결을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다가

물 밖에 나오면 굳고 단단하여진다’라고 했어요. 무회목으로 만

든 비녀를 관광토산품으로 팔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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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민 서민생활사 연구자
고 광 민
서민생활사 연구자
3화

제주 바다만의 특징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한국에는 4가지의 바다가 있다고 봐요. 부산에서 두만강까지는

백두대간을 끼고 있는 산이 높고 바다가 깊은 ‘산고해저山高海底’

의 모습이에요. 동해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50cm에 불과하고, 조류가 그렇게 세지 않은 순한 바다입니다. 배의 앞부분도 물살

을 가르기 좋은 뾰족한 형태가 많아요. 반면에 제주나 서해의 배

는 큰 너울에 강하도록 앞이 뭉툭하지요. 서해바다는 조수간만

의 차가 8m에 이르고 경운기가 달릴 수 있는 너른 갯벌이 있는

반면, 남해바다는 고저 차가 3~4m인데, 빠져 버리는 바다입니

다. 남해는 낙지를 여자가 감각으로 잡지만, 서해는 낙지를 남자 가 힘으로 잡아요. 제주바다는 고저 차가 2.8m 정도인데, 한마디 로 화산 바다입니다.

제주바다가 예전보다 오염도 심하고 많이 변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1968년 9월 21일, 이날은 제주도에서 경운기 교육자 수료식이 있

던 날입니다. 농촌사회에 기계가 들어간 날이지요. 소로 밭을 가

는 방식이 없어지고 더불어 소의 방목지, 소가 먹는 풀도 그다지

필요가 없어지기 시작했어요. 상징적인 날이지요.

경운기가 들어오고, 플라스틱이 나타나면서 환경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가파도와 마라도, 우도에는 아직 남아 있겠지만, 오

분자기가 제주에서 거의 사라졌어요. ‘ᄆᆞᆷ국(몸국)’의 재료인 모자

반도 우도나 성산 시흥리 외에는 찾기 어려워요. 최근에 기후변 화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제주바다가 변한 것은 기후 때문만이 아니에요. 만약 기후변화가 원인이라면 오분자기, 모자반이 제

주에서 똑같이 사라져야 하는데, 오염이 덜한 곳은 아직까지 살 아 있어요. 자업자득이라 생각합니다. 지구상에서 톳이 가장 긴

다금바리\낚시\바늘을\보여주는\고광민\연구자

곳이 제주였어요. 강원도나 중국의 톳은 손바닥만한데 제주 톳

은 3발 정도로 길었어요. 제주 사람은 톳을 밭 거름으로 쓰기도 했지요. 한때 일본에 수출을 하곤 했는데, 제주 톳도 거의 사라

져 버렸어요.

녹색연합에서 올해 2~3월에 제주바다 조간대 해조숲을 조사했는데, 선생님 말씀처럼 톳, 모자반을 찾기 어려웠어요. 특히 한라산 남쪽인 ‘산남’이 ‘산북’

지역보다 상황이 안 좋았어요.

바다와 땅의 시간은 정반대입니다. 땅의 초목은 봄에 싹이 나 여

름에 자라 가을에 열매를 맺고 시들지만, 바다의 초목은 가을에

싹이 나서 겨울에 한참 자라고 봄이 되면 포자를 퍼트리고 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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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립니다. 땅에 봄이 왔지만, 반대로 바다는 가을입니다. 그런데
3화 바다가 사라지면, 결국 인간은 멸종 위기에 들어설 겁니다

지금 이때, 풍성해야 할 바다가 텅 비어 있어요. 바다숲이 정말, 싹 사라졌어요.

제주는 4면이 바다이며 화산섬이라 제주 생활사에서

바다의 의미는 각별할 텐데요. 제주 사람에게 바다란 어떤 존재인가요.

제주도는 섬이지만 일 년 내내 바다에서 사는 사람(물론 ‘해민海民’

이라는 말은 있지만)은 없었어요. 근본은 농사입니다. 제주도는 화

산섬이기에 논이 없고 밭이 있을 뿐이에요. 한때 저수지를 쌓아

논을 만들고자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어요. 애월읍에 있는 수

산저수지가 그때 만들어진 거예요. 비가 오면 땅속으로 비가 다

들어가 버리니, 논이 될 수 없는 섬이지요. 제주의 생활하수는

땅속에 들어가 지하수로 흘러 바다에서 나와요. 혹여 바다의 지

명 중에 ‘물 뿜는 여’가 있는데, 이것은 용출수가 나오는 곳이에 요.

제주바다는 알다시피, 현무암으로 이뤄져 있어요. 현무암의 숭

숭 뚫린 구멍은 미역, 모자반 같은 해조류가 섬유질 뿌리를 내리

기 좋아요. 어렸을 때 낚시하다 보면, 해조류가 원수였어요. 빽

빽이 들어찬 해조류에 걸려 고기를 놓치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걱정할 일이 없어졌어요. ‘텅에’(물고기 은신처)가 사라지고 먹이도

사라지고 일이 그렇게 돼 버렸어요.

제주 사람에게 제주 바다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꼽으라면 미역과

거름이었어요. 제주는 화산섬이기에 논이 없어 쌀이 귀했고 소금

도 구하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지천으로 널린 미역을 했어요. 캐

낸 미역을 싣고 충청도로 가서 쌀과 소금으로 바꿔왔어요. 또한

제주 백성들은 바닷풀을 메다가 밭에 거름으로 줬어요. “듬북을

ᄌᆞ물아사 산다”는 말이 있어요. ‘듬북’은 제주에서 거름용

갯가에\떠밀려온\감태를\한\아낙네가\물속으로\걸어\들어가\줍고\있다.\ 이렇게\채취한\감태는\개인소유가\된다.(1998년\6월\26일,\안덕면\대평리,\제공:\고광민)

우뭇가사리를\허채한\날이다.\저\멀리\경운기가\줄줄이\세워져\있다.\ 해녀들이\채취한\우뭇가사리를\실어\나를\모양이다.\ 한\할머니가\허리에\구덕을\차고\갯가로\밀려든\풍조\속에서\우뭇가사리를\골라내고\있다. (1998년\구좌읍\행원리,\제공:\고광민)

34 34
해조류 를 가리키는 말이고, ‘ᄌᆞ물다’는 해녀들이 물질로 물속의 해산물 을 건져 올린다는 말이에요. 듬북을 따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말
3화 바다가 사라지면, 결국 인간은 멸종 위기에 들어설 겁니다

서귀포\해녀들이\갓물질을\하려고\출어하고\있다.\“갓물질”은\해녀들이\가까운\바다로\헤엄쳐나가\ 미역\따위를\따는\물질을\말한다.\앞에\문섬이\보인다.\(1950년대\서귀포,\제공:\홍정표)\\

인데, 톳과 모자반 같은 해조류를 베어다 육지에서 말려 밭에 거

름으로 뿌렸어요. 그래야 농사를 짓고 밥을 먹을 수 있으니.

제주에서 미역이 사라지고 있어요.

제주대학교에서 만난 해조류 전문가는 ‘미역 실종사건’의 주범을

기후변화에 따른 수온 상승이라고 지목했어요.

수온 상승? 글쎄요. 나는 오히려 백성들의 관심, 간절함이 사라

져 버렸다고 생각해요. 예전 어머니들은 미역을 캘 때 미역귀를

덜 잘랐어요. 포자가 잘 나와야 또 미역을 캘 수가 있으니까요.

바다나 땅이나 제 맘대로 하니 이런 사태가 벌어졌겠지요. 1970

년부터 지금까지 50년 동안, 천연비료의 시대는 끝났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써왔어요. 제주도 땅이 버티지 못하는 거지요. 농산

물은 맥아리가 없어졌어요. 바당의 미역과 듬북도 사라지기 시

작했고, 갯녹음도 심해졌어요. 바다가 사라지면, 결국 인간이 멸

종 위기에 들어설 겁니다.

예전엔 톳과 같은 듬북을 농사 거름으로 썼다고 하셨는데, 해조류에 남아 있는 소금은 어떻게 처리했나요. 농사에 영향이 없는 건가요.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일본에도 듬북을 농사 거

름으로 썼는데 민물로 좀 씻고 밭에 깔았어요. 그런데 제주에는

듬북을 그냥 밭에 깔아도 보리가 잘 자랐어요. 제주의 땅, 화산

섬이라 그런 겁니다. 비가 한 번 내리면 듬북에 남아 있던 소금

이 싹 씻겨 내려갔어요. 민물로 씻을 필요가 없어요. 듬북은 생

명줄입니다. 듬북이 있어야 겨울 보리농사, 여름 조 농사가 가능

했어요. 제주도는 듬북 때문에 마을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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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이 나서 마을이 갈 라진 적도 있었어요.
고광민 서민생활사 연구자

제주도 해녀 생활사에서 감태가 큰 역할을 했다는데요.

감태가 먹고사는 데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감태는 요오드 성분이 있어서 상처에 바르는 약품으로 일상적으 로 사용했지만, 전쟁이 나면서 폭탄의 원료로 사용되기 시작했

어요. 일제시대 이야기입니다. 당시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

국방성은 성산포 오조리 다리 옆에 감태 공장을 지었어요. 교역

로가 차단되니 전쟁 무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요오드의 1/5을

제주도에서 구했던 겁니다. 제주 해녀들은 파종기와 수확기 사

이인 음력 7~8월 농한기에 감태를 따서 팔았어요. 품질이 좋은

가파도와 마라도 감태를 배에 실어다 성산 공장에 팔기도 했습

니다. 미역을 캐는 게 주 생업이었는데 감태가 돈이 됐어요. 그

돈으로 해녀의 아들들이 일본 관동지역의 와세다, 관서지역의

리츠메이칸 대학으로 유학을 갔어요. 아이들이 똑똑했지요. 감

태 판 돈으로 깜깜이인 해녀 어멍을 대신해 글을 배우고 영수증

전표를 쓰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공부를 시켰어요. 그런데 해녀

아들들이 유학 간 일본 대학들은 당시 사회주의 이념이 가장 활

발했던 곳이라 그곳에서 사회주의 이념을 배워서 돌아온 거죠.

제주로 돌아온 그 아들들은 일본이 패망했으니 민중이 주인인

사회를 만들자며 주민들과 열심히 공부 모임도 열고 집회를 했

고요. 영향이 컸습니다. 그러다 1948년 ‘4·3 항쟁’이 터졌고… 어

쩌면 제주도의 4·3은 풍족했던 감태 때문이었어요.

풍족한 감태와 비극적인 제주 4·3, 그런 연관성이 있었네요.

제주도는 소라와 성게도 풍족했었지요.

일본으로 수출도 많이 했다고 하던데요.

한국에서 소라는 전라도 청산도와 남해안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

진 섬에도 났지만, 제주도가 으뜸이었어요. 서울이나 서해안 사

람들은 굴을 먹어봤지만, 소라는 먹어보지 못했어요. 그 진가를

몰랐지요. 일본 사람들은 소라를 무척 좋아했어요. 소라로 통조

림을 만들고 전쟁 때는 군납을 하기도 했어요. 식민지 시대에 제

주도에는 ‘구쟁기(소라) 공장’이 많이 생겼어요. 오늘 가서 물질해

오면 그 자리에서 전표를 쓰고 현금으로 바꿨어요.

1960년대는 성게를 소금에 절여서 일본으로 보내기도 했어요.

이후에는 나무 포장이 된 ‘곽성게’를 수출했어요. 제주 전역을 돌

아 걷어 온 ‘솜’(말똥성게)이나 보라성게를 동네 삼춘들이 차 스푼

으로 하나씩 까서 곽 위에 예쁘게 담아 비행기로 보냈어요. 제주

도 해녀는 미역, 감태, 소라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성게를 했습

니다. 청정바다이니 가능한 일이었지요.

지금 제주바다는 어떤 상황인지요.

지금은 청정바다도, 듬북도 찾을 수 없어요. 최근까지도 우도에

가면 삼사월에 모자반이 늙어서 떨어지고 뭉쳐서 바다에 떠다

녔어요. ‘멀레 듬북’이라고 했는데, 이것을 보면 낚시질도 멈추고

낫으로 듬북을 걷어왔어요. 횡재였지요. 갯가로 몰려온 ‘멀레 듬

북’은 마을 공동 소유였어요. 20~30년 전만 해도 제주 서민 생활

사의 생명줄이었어요. 이제는 슬픈 자화상만이 가득해요. 제주

해녀는 바다에서 할 물건이 없어 보령이나 태안으로 ‘출장 물질’

을 갑니다. 소라에도 갯녹음이 껴서 상태가 안 좋아요. 다, 자업 자득입니다. 제주섬이 넘쳐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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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민 서민생활사 연구자 3화 바다가 사라지면, 결국 인간은 멸종 위기에 들어설 겁니다 해송과\긴가지해송

바다와 육지 사이, ‘이곳’에 감춰진 놀라운 세상

화산섬인 제주에는 파도에 잠겼다가 드러난 갯바위 사이에 웅덩이가 참 많다.

대개는 이 바닷물 웅덩이를 지나 저 멀리 수평선과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는

데, 카메라를 들고 가만히 엎드려 웅덩이 속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다. 뷰파

인더를 통해 그가 바라본 모습은 무엇일까.

제주 조간대(밀물에 잠겼다가 썰물에 드러나는 지역)의 다양한 생태를 담은 영화 <조수웅덩이: 바다의 시작>(2019)을 비롯해 다수의 작품을 연출·제작한 임형

묵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을 지난 2월 중순, 제주 평대리 중동마을 작업실에서 만났다.

4화

안녕하세요, 제주 조수웅덩이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꾸준히 하시는데,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제주에 내려와 자연다큐 제작에 전념한 지 어느새 14년이 됐네

요. 이전에는 서울에서 영화를 전공했고, 대학 졸업 후 영상 프로

덕션, 방송국, 광고 분야에서 촬영감독으로 일했어요. 한동안 프

리랜서 촬영감독으로 일했는데, 업무 특성상 일이 들쭉날쭉하게

들어와 늘 아슬아슬한 느낌이었어요. 이대로는 내가 원하는 영

상 작업을 하면서 못 살겠다는 생각에 지치기도 했고요. 그러던

참에 2008년에 EBS 자연다큐멘터리 <하나뿐인 지구>팀 제안으

로 ‘자연의 길, 올레’ 편 촬영을 맡게 된 것이 전환점이 되었어요.

처음부터 조수웅덩이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제주에 내려온

것은 아니에요. 이 프로그램 마지막 편 촬영을 하러 제주에 내려

와 성산일출봉 조간대 주변 생태를 기록하던 중 곳곳에 바닷물

이 고인 웅덩이가 눈에 들어온 거죠. 무심코 들여다봤는데, 그

안에 놀라운 세계가 있더라고요. 다양한 생물들의 작은 움직임

들이 끊임없이 보였어요. 제주의 조수웅덩이에 대한 다큐를 만

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41 40 41 40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 임 형 묵
임형묵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

영화를 전공하셨다고 했는데, 그 무렵부터 자

연 다큐멘터리 제작을 꿈꾸셨던 거예요?

훨씬 전이에요. 제가 네 살 무렵 무거

운 장비를 메고 바닷속을 누비는 흑

백 TV 속 스쿠버다이버 모습을 보면서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했던 게 생

각납니다.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

고 특히 물고기를 좋아했어요. 아버지

가 낚시할 때 옆에서 잡은 물고기를 유심히 관찰하고, 집마당에

있던 작은 연못을 몇 시간씩 들여다보기도 하고요. 유년시절부

터 청소년기 내내 제 기억 속엔 물고기가 있어요. 영화를 전공한

것도 다큐멘터리를 만들려는 갈망이 있어서 선택한 거였어요.

갯바위 사이 조수웅덩이를 촬영하는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어떤가요?

아주 작고 느린 존재가 되어서 들여다봐야 해요. 퇴적물이 많아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금세 부유물로 물이 흐려져서 숨어버리거

든요. 수심이 얕아서 따라다니기도 어렵고요. 한 자리에 가만히

미동도 하지 않고 촬영을 하면 자연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촬영량도 많고, 몇 시간씩 물속에 엎드려 있는 건 예사지요.

저는 사실 그저 바닷가 물웅덩이라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이 제주 조수웅덩이에 관심을 둔 이유가 궁금해요.

조수웅덩이 속 놀라운 세계를 보셨다고 했는데, 그 특징과 가치는 무엇일까요? 일단 스쿠버다이빙을 하지 않아도 돼서 돈이 안 들고, 제 성향상 남들이 관심 안 두는 영역에 더 끌리기도 하고요(웃음). 밀물엔

조수웅덩이를\촬영하고\있는\임형묵\감독(제공:\임형묵)\

잠겼다가 썰물이 되면 드러나는 지역, 조간대를 흔히 갯벌이라

고 하지요. 갯벌(갯가에 펼쳐진 너른 벌판)은 끈적하고 질척거리는

펄로 된 공간만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펄, 모래, 자갈, 바위로 이

뤄진 곳 모두 갯벌이에요. 제주는 암반 갯벌(조간대) 모습이 평평

하면서 갈라진 틈도 많고, 굴곡과 구멍이 많아 생물이 서식하기

에 좋거든요. 조수간만의 차도 2m 정도라 곳곳에 조수웅덩이가

형성되어 지형과 생물상 등 관찰할 게 많아요. 제주 바다의 암반

갯벌은 면적 대비 생물다양성이 정말 뛰어납니다. 이 공간을 주

목할 필요가 있어요. 작은 공간에 집약된 다양성과 생태를 보면

이곳이 훼손되지 않고 유지되길 바라게 돼요.

제주도 대표적인 조수웅덩이 지역을 꼽으라면 어디일까요?

대표적인 생물도 궁금합니다.

제주도 대부분 지역에서 조수웅덩이를 관찰할 수 있는데, 바위

조간대가 넓게 퍼져있고 인공적인 시설이나 훼손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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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묵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
잘 보존 된 대표적인 곳들이 몇 곳 있어요. 성산일출봉 서쪽 해안 작은 선착장 옆 편평한 암반 지역엔 크고 작은 조수웅덩이가 많습니 임형묵\감독 4화 바다와 육지 사이, ‘이곳’에 감춰진 놀라운 세상

1\조수웅덩이를\촬영하고\있는\임형묵\감독(제공:\임형묵)

2,3\조수웅덩이의\생명들\ㅡ\바위게,\비늘베도라치(제공:\임형묵)\\

일부러 파놓은 듯 원형의

둥근 웅덩이 세 개가 나란히 있어요. 태풍이 지나간 후엔 웅덩이

에 큰 물고기가 갇혀 있기도 합니다.

조수웅덩이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물고기는 점망둑이에요.

바위 굴곡과 틈 사이에 살기 좋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바다에

잠겼다가 햇볕에 노출도 되는 공간이라 온도 차가 큰 극단적인

환경이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점망둑은 염분이 아주 높거나 낮

거나 산소가 부족하다든가 어떠한 급격한 환경변화에도 의연합

니다. 두줄베도라치, 앞동갈베도라치, 풀비늘망둑, 동갈자돔, 범

돔 등 물고기와 납작게, 사각게, 바위게, 참집게, 갯강구, 갯지렁

이, 고둥, 군부, 갯민숭달팽이, 말미잘 등 나열하기 힘들 만큼 다

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어요.

제주 조간대 생태와 그 가치를 기록하고 계신데, 지금 제주 바다는 연안 매립과 오염, 수온상승으로 급격하게 바뀌고

위기라는 이야기가 많이 들립니다.

조간대와 조수웅덩이를 지키기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요?

문제는 개발 계획 인허가권을 가진 정부와 지자체가 조간대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바다는 육지 끝

에서 갑자기 시작되는 게 아니거든요. 조간대라는 중간 지역이

있어서 태풍이나 해일 같은 자연재해 완충 역할도 하고, 어린 물

고기들도 자랍니다. 다양한 생물이 산다는 것은 그만큼 생태가

다양하다는 것이고 잘 지켜야 하는 곳이고요.

‘습지’라고 하면 육상에 있는 습지만

45 44 45 44
임형묵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 4화 바다와 육지 사이, ‘이곳’에 감춰진 놀라운 세상 다. 다른 곳보다
보목동 소천지, 중문 예래마을 암반 조간대도 조수웅덩이를 관찰하기 좋은 곳이에요. 대정읍 신도리엔 마치
해조류가 많아 어린 물고기도 많고요.
떠올리는데, 제주바다의 모 든 조간대가 람사르 습지(습지 보호를 위한 국제 협약인 람사르 협약 에 근거, 습지로서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지정, 등록, 보호하는 곳) 조건에

자연이 공존

마지막 장소임을 인식하고, 보호구역으로 지정 관리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물론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손을 놓으면 의미가 없고, 관리를 해야겠지요. 오름 휴식년제처럼 조간대 휴식년제가

47 46 47 46 조수웅덩이의\생명들\ㅡ\푸른테곤봉멍게\(제공:임형묵) 임형묵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 들어맞습니다. 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암반 조간대로 둘러싸여 있는데 우리만 그 가치를 모르죠. 여전히 크고 작은 매립과 해안 선 파괴가 일어납니다. 제주바다 조간대가 인간과
하는
도입되는 것 도 좋고요. 해양쓰레기 수거 역시 특정 업체에서 독식하는 게 아 니라, 운영 방식을 바꾸어 각 마을 협동조합이 관리하게 하는 것
좋겠어요.
파랑갯민숭달팽이(제공:\임형묵)

어류도감이 올해 목표... ‘물고기 학교’ 만들고 싶어

문섬과 범섬이 가깝게 내려다보이는 제주도 서귀포 신시가지 고근산 아래. 웻

슈트를 입은 스쿠버 다이버가 부력조절기와 공기통을 메고 잠수용 핀을 들고

바닷속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한쪽에는 연산호와 물고기 사이를 유영하는

몇몇 다이버 사진도 걸려 있다. 대한민국 스쿠버다이빙의 메카인 제주 서귀포

에 위치한 스쿠버다이빙 서비스 전문 센터 ‘굿다이버(GOOD DIVER)’.

한쪽 벽 가득 찬 ‘다이버’ 증명사진의 주인공이 김상길 대표다. 제주바다 물고

기를 추적하는 시민과학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터였다. 조심스레 노

크를 하고 들어섰다. “우리는 노는 ‘수위’가 달라”라고 적힌 부표가 인상적이

다.

‘굿 다이버’가 되고 싶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녹색연합 해양생태팀입니다.

제주에서 다이빙은 어떻게 시작하셨는지요, ‘굿다이버’를 소개해주세요.

제주에는 2002년에 내려왔으니 꼬박 20년이 되었네요. 다이빙

샵을 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때부터 상호는 ‘굿다이버’였습니다.

‘굿 다이버’가 되고 싶었습니다(웃음).

이곳은 체험 스쿠버다이빙 교육, 오픈워터 및 연속 교육, 각종

스페셜티 교육, 그리고 스쿠버다이빙 강사 교육까지 진행 가능

한 PADI(1966년 설립된 국제적인 스쿠버 다이빙 교육 전문 단체) 5 Star

IDC(Instructor Development Centre) 인증센터입니다. 레크레이션

다이빙은 물론 연구와 조사 다이빙도 겸하고 있지요. 최근에는

회원들과 함께 제주바다 물고기도 기록하고 있어요.

49 48 49 48 ‘시민과학자’ 굿다이버
김 상 길
대표
5화
김상길 ‘시민과학자’ 굿다이버 대표

굿다이버가 발행한 ‘굿다이버 물고기반 뉴

스레터’를 봤습니다. 몸 측면에 흑색 무늬

가 톱니를 닮은 ‘톱쥐치’가 등장하더라구

요.

서귀포 보목동 섶섬의 대표적인 다

이빙 포인트인 ‘작은 한개창’에서

작년 12월 12일, 굿다이버 물고기반

김수진 강사가 발견했어요. 이 물

고기가 국내에 처음 보고된 것은

1995년이었는데, 그 이후 우리나라

굿다이버\김상길\대표(제공:\김상길)

에 출현하였다는 보고나 기록은 전혀 없었어요.

이번 관찰 때 발견된 톱쥐치는 25년 만에 확인된 국내 두 번째

수중관찰 기록입니다. 굿다이버 물고기반의 귀중한 성과이지요.

‘굿다이버 물고기반 뉴스레터’ 두 번째는 꼼치인데, 보셔도 좋겠

네요.

‘굿다이버 물고기반’은 어떻게 시작하신 건가요?

2015년 무렵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김병직 박사님과 어류 조사

를 했던 게 인연이 되었어요. 제주바다 물고기를 아카이빙 하고

변화상을 조사하는 게 목적이었어요. 하지만 그 넓은 바다를 소

수의 연구자가 지속적으로 조사하기는 한계가 명확했지요.

자연스럽게 서귀포 지역에서 조사팀을 만들면 좋겠다는 이야기

가 나왔어요. 작년부터 제주바다 물고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펀다이빙만 하다가 의미 있는 다이빙이 시작된 겁

니다. 함께 다이빙하고 어종을 기록하고 박사님의 자문도 받았

습니다.

수중조사를\하는\김병직박사\(제공:\김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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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길 ‘시민과학자’ 굿다이버 대표

이를테면, 시민과학자에 의한 제주바다 조사인데요. 어류 조사는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셨나요?

한 달에 한 번, 이틀 동안 같은 지점을 조사해 데이터를 쌓아 갑니다. 서귀포 섶섬 ‘작은 한개창’을 집중적으로 들어갔지요.

10~15명의 인원이 2인 1조로 수심별로 조사해요. 조사가 시작되

면 가장 먼저 제가 입수해 50미터 기준선을 설치합니다.

기준선을 중심으로 좌우 5미터 내외에서 다이빙이 가능한 시간

동안 사진을 찍고 기록 작업을 해요. 다이빙을 마치면 센터에 돌

아와서는 각자 찍은 사진을 함께 보고 어종 이름을 이야기를 나

눕니다. 물론 조사 전에 제가 만들어 놓은 ‘물고기 파일’을 먼저

공유하기는 하죠.

어류 연구의 시작은 종 구분하고 이름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바

닷속에서 물고기를 보면 비슷한 종이 너무 많아 헷갈립니다. 1년

차 참가자인 ‘자리돔반’은 어종을 구분하는 포인트를 정확히 아

는 것부터 공부해요. 올해는 좀 더 나아가서, 국립생물자원관 김

병직 박사님의 조언대로 종명, 과명까지 익힐 수 있도록 할 계획

입니다.

2년차 참가자인 ‘놀래기반’은 물고기 이름을 익히고 월별 또는 계

절별로 변화하는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해요. 어종마다 10마리

미만, 50마리 미만, 100마리 미만 등 개체수도 함께 기록하지요.

특정 어종의 출현 여부와 함께 개체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죠.

제주 남쪽 바다가 많이 변해가고 있잖아요.

바닷속에 아열대 어종도 상당히 많이 유입되었구요.

굿다이버의 조사 기록은 어떠한가요?

작년에는 새로운 어종이 정말 많이 발견되었어요. 특히 서귀포

보목포구 앞 섶섬은 어종이 다양해요. 이곳 ‘작은 한개창’을 중심

스쿠버다이빙\서비스\전문\센터\'굿다이버'의\물고기반\조사\현장과\참가자들\(제공:\김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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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어류도감이 올해 목표... ‘물고기 학교’ 만들고 싶어 김상길 ‘시민과학자’ 굿다이버 대표

으로 아열대 어종 유입에 대한 모니터링을 해 오고 있어요. 알다

시피, 아열대 어종은 수온이 높아졌을 때 많이 나타나요.

지금(2월)은 수온이 점점 낮아지는 시기인데, 작년 12월은 90종, 2월은 71종을 확인했어요. 이 중에 아열대성 어종이 얼마나 되는

지 아직 분명하진 않아요. 대신에 새로 발견된 어종이 수온이 떨

어진 제주바다의 겨울을 견디고 터를 잡고 살아가는지, 혹은 잠

시 나타났다 사라지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어종에 대한 분석, 연간 변화에 대한 코멘트 등

전문적인 내용에 대한 협력은 어떻게 하시나요. 조사 결과를 저희도 볼 수 있는지요.

‘굿다이버 물고기반’은 제가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어류 조사에 관한 해석은 김병직 박사님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 습니다. 우선은 종 동정이 정확히 되었는지 코멘트 받고 있어요. 또한 ‘굿다이버’ 홈페이지나 페이스북에서 의견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조사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아 변화상을 논의하

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1년에 한두 번 정도 물

고기반 회원들과 어류에 대해서 강의를 듣는 시간도 계획하고

있어요.

‘굿다이버 물고기반’ 조사는 작년 4월부터 시작했어요. 거의 1년 이 되어가네요. 올해 4월 조사부터는 작년 데이터와 비교할 수

있겠네요. 지속적으로 다이빙하면서 기록하면 어떤 종이 늘고

있는지 등 수온이나 환경에 따른 어종 변화를 추적할 수 있을 것 으로 기대합니다. 조사 결과는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으니 언 제든지 보실 수 있습니다.

‘굿다이버 물고기반’에 참여하려면 스쿠버다이빙은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할 테고 어떤 능력, 과정이 필요한가요?

15명 정도의 다이버가 정해진 시간 동안 동시에 다이빙하다 보

니, 제가 일일이 챙길 수가 없어요. 그래서 본인의 몸을 컨트롤

하고 안전을 책임질 수 있을 정도의 다이빙 능력이 필요합니다.

또, 어류 기록을 위해 수중 카메라가 있어야 하구요.

하지만 다이빙이 약간 미숙한 다이버는 하루 이틀 전에 연습 및

교육을 진행한 후에 조사에 참여하기도 해요. 물고기에 관심 있 는 다이버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조사 다이빙이라고 해

서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레크레이션 다이빙처럼 이동 범위가

넓은 다이빙이 아니고 조사 라인을 따라 머물다가 되돌아오는

거라 오히려 더 안전하기도 해요.

1년의 조사 일정은 미리 정해서 연초에 공지해요. 참여자가 연간

일정을 조정해 가능한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합니다. 한 번 참

석한다고 결정하면, 개근은 당연하고 결석 시에는 페널티도 있 습니다.

작년까지 제주바다 수온이 많이 올랐잖아요.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

소 연구원 의견에 따르면, “지금 상태라면 제주바다는 2100년에 오키나와와

같은 환경이 될 것이다”라고 하는데, 김상길 대표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저는 연구자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어요. 누구는 물고기가 늘어

나 좋고, 누구는 토종 물고기가 사라지면 안 된다고도 하고. 조

사 기관이나 어민 등 처한 상황과 사람에 따라서 변화에 대한 생

각이 다르겠죠.

그러나 지금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은 들

어요. 서귀포는 항상 봄에 수온이 14도까지 내려가곤 했지만, 작

년 재작년은 14도까지 내려간 적이 단 하루도 없었어요.

조그만 망둥어부터 방어, 부시리 같은 큰 물고기까지 먹이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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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이뤄진 생태계가 있을 텐데 과연 아무 영향 없이 무사할까요. 올해는 작년하곤 또 다르게 2월 수온이 14~15도까지 떨어졌고 예 5화 어류도감이 올해 목표... ‘물고기 학교’ 만들고 싶어 김상길 ‘시민과학자’ 굿다이버 대표

년과 다르게 바다가 거칠고 풍랑주의보가 자주 발생했어요. 올

해 변화를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수온 상승에 따른 수중 경관 변화도 확인되는 게 있는지요.

그럼요. 일단 과거에는 제주 바닷속 시야가 매우 좋았어요. 요즘

은 1년 내내 부유물이 너무 많이 떠다니고 바닥에도 내려앉아 있

어요. 연산호만 아니라 돌산호 종류들이 대체적으로 더 빨리 자

라고 많이 늘어난 것 같아요.

해조류의 변화도 상당해요. 과거에는 모자반이 정말 많고 키도

커서 칼로 자르면서 다니기도 했거든요. 근데 요즘은 그런 모자

반이 하나도 나오지 않아요. 지금이면 겨울 바다에서 한창 자라

야 하는데, 큰 모자반 찾기가 어려워요.

제주바다 물고기를 기록하는 시민과학의 한 사례를 잘 들었습니다.

굿다이버의 기록이 제주바다를 보호하는데 큰 도움도 될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활동들을 더 해나가실 예정인지요.

‘섶섬 작은 한개창 물고기’, ‘문섬의 물고기’ 등 어류 도감을 만드

는 게 올해 목표입니다. 제주바다 물고기 104종, 갯민숭달팽이

42종을 디자인한 로그북(스쿠버다이버의 다이빙 기록) 스티커를 만

들기도 했어요.

향후에는 ‘굿다이버 물고기반’에서 더 나아가 ‘물고기 학교’를 만

들고 싶네요. 굿다이버에서 운영하는 물고기반, 갯민숭달팽이

반, 연산호반도 운영하면 좋겠어요.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

다면 모여봐야죠.

그리고 제주도청과 함께 수중해설사 과정도 하고 싶어요. 산에

가면 숲해설사가 있고 박물관에는 도슨트가 있잖아요. 바다라고

못하라는 법은 없죠. 지금도 저희는 다이버 가이드를 할 때 메모

판을 가지고 들어가 물고기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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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곤 합니 다. 이런 내용과 기술을 공식 과정으로 만들고 싶기도 해요. 현 재 ‘굿다이버 물고기반’ 참가자들이 수중해설사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5화 어류도감이 올해 목표... ‘물고기 학교’ 만들고 싶어 김상길 ‘시민과학자’ 굿다이버 대표 제주바다\물고기

6화

제주바다에는 아름다운 산호가 살고 있습니다

황성진 우석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는 한국 산호 연구자 중에서 맨 앞에 있

다. 한반도 동서남해안의 거문도, 백도, 가거도, 독도, 제주도 가릴 것 없이 산

호가 있는 곳에 황 교수가 있다. 제주바다 조사 다이빙은 대학원생이던 2003

년부터 시작했으니 올해로 20년째다.

기후변화의 시대. 사라지는 산호가 있는가 하면, 없던 산호가 나타나기도 하

며, 산호 분포가 빠르게 바뀌기도 한다. 기후변화가 초래한 산호의 변화를 지

금껏 추적하고 있다.

지난 2월, 충북 진천군에 위치한 우석대학교 진천캠퍼스를 찾았다. 해양수산

부가 선정한 이달의 산호인 해양보호생물 ‘밤수지맨드라미’ 포스터가 붙어 있

다. 자포동물 샘플이 보관된 ‘자포동물자원 기탁등록보존기관’을 지나면, 복도

끝에 황성진 교수의 연구실이 있다.

제주바다 산호관찰 20년

교수님께서는 언제부터 제주바다 산호를 관찰하기 시작했는지요?

이화여대 대학원생이던 2003년부터입니다. 2005년에는 문화재

청의 연구사업인 ‘천연기념물 제421호 문섬 및 범섬 천연보호구

역’ 산호 분포조사에 참여했어요. 서귀포의 지귀도, 섶섬, 문섬, 외돌개, 범섬, 형제섬, 송악산 일대까지 안 들어간 곳이 없어요. 20년쯤 되었네요.

지금은 기후변화에 취약한 산호를 조사, 복원하고 시민과학 프

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어요. 작년부터는 산호를 포함한 자포동

물자원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확보, 관리하는 ‘자포동물자원

기탁등록보존기관’을 해양수산부 장관령으로 지정받아 우석대 학교 주관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59 58 59 58 우석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황 성 진
황성진 우석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해양수산부 ‘자포동물자원 기탁등록보존

기관’은 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요?

알다시피 자포동물은 ‘자포(cnidae)’

라는 쏘는 ‘세포내소기관’을 가진 생

물로 산호류, 해파리류, 히드라류를

모두 포함해요. ‘해양수산부 자포동

물자원 기탁등록보존기관’은 자포

동물 자원 확보, 신종과 미기록종 발

굴, 국가 수장고에 있지 않은 기록종

황성진\우석대학교\생명과학과\교수 (제공:\황성진)

표본 확보, 자원 유지 관리와 분양, 홍보 교육 등 대국민 서비스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올해 하반기

에는 각각의 분류군을 종 단위까지 분류할 수 있는 교육 자료집

을 만들어 산호 준 전문가를 양성할 계획도 있어요.

2009년 제출된 ‘천연기념물 제442호 제주연안연산호군락 산호 분포조사’에 도 참여하셨는데요. 당시의 조사방법은 어떠했나요?

문화재청 사업으로 진행했는데, 시기가 좋았어요. 당시 서귀포

시청 문화재과 담당 공무원이던 윤봉택 선생님의 제주바다 보존

의지가 강했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였어요. 천연기념물 지정을

위해 그전에 모았던 기초 데이터 위에 새롭게 조사한 전체 데이 터를 합쳤습니다.

이화여대팀은 제주 남부해역의 45개 정점과 3권역에 대한 정

성조사(산호 동정, 분류)를 3년 동안 했고 통합보고서 작업을 1년

동안 했습니다. 정량조사(피도)는 인더씨코리아에서 맡았구요.

2015년과 2016년에 추가 조사를 성균관대 연구팀과 함께 진행하

기도 했습니다.

61 61 빨강해면맨드라미\군락\(제공:\자포동물자원\기탁등록보존기관/\촬영:\김병일) 황성진 우석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방형구 조사를 한 건가요? 똑같은 조사 지점을 매번 어떻게 확인하는지요?

대략의 조사 경계를 정하고 그 안에서 랜덤으로 50cm×50cm 방

형구를 놓고 조사해요. 고정 방형구를 설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

문에 데이터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 조사 방형구수를 되도록

많이 잡고 샘플량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노력해요. 만약 수심 30

미터의 산호 군락을 조사한다면, 10미터, 20미터, 30미터의 상중

하 수심별로 체크합니다. 수중에서 동정이 가능한 산호는 바로

기록을 하고 구별이 어려운 종은 샘플을 확보해 연구실에서 확

인해요.

산호 연구는 동일한 지역에 동일한 연구자가 동일한 연구를 장

기적으로 지속하는게 데이터 신뢰성을 위해 중요해요. 3년 정도

정기조사를 하면 유의미한 변화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분석

된 결과, 제주바다의 산호 서식은 피도는 비슷한데, 다양성은 줄

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요.

기후위기는 전 지구적인 이슈입니다. 산호도 예외가 아닐 텐데요.

교수님께서 기후변화 취약 산호를 추적하고 복원사업도 한다고 들었어요.

소개해 주신다면?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생태보전연구팀과 함께 조사했습니다. 산

호 중 몇몇은 기후변화에 따른 수온 상승에 아주 취약합니다. 특

히 남해안에 서식하는 빨강해면맨드라미의 변화가 극심해요. 해

면맨드라미 속의 산호들은 남해안 동쪽에서 서쪽까지 퍼져 있는

데, 전남 완도와 청산도에서 빼곡한 군락이 발견되기도

해 여름에 수온이 상당히 올랐는데, 불과 2개월

만에 국소적인 멸종이 일어났습니다. 전남 가거도, 경남 매물도

주변의 개체수가 급감하는 것을 현장에서 확인했어요.

문제는 수온입니다. 빨강해면맨드라미는 27~28도 수온에서 하

루이틀 만에 죽기도 해요. 반면에 제주도 서귀포에 서식하는 분

홍바다맨드라미는 수온 내성이 강해서 그보다 1~2도 높아도 적

응하고 살아남습니다. 최근 남해안 수온 상승률이 제주도보다

높은 곳이 있었어요.

한반도 남해안 연안에 가깝고 수심이 낮은 지역은 제주도보다

수온이 높았는데요. 경남 통영은 지난 여름에 수온이 26~27도까

지 올랐어요. 빨강해면맨드라미의 한반도 남방 한계선은 제주도

북쪽인 추자도인데, 그 한계선이 점점 북상할 것으로 예상됩니

다. 수온 상승에 의해 산호 생태가 바뀌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빨강해면맨드라미가

해양수산부가 지정하는 법정보호종으로 새롭게 등록되었지요.

빨강해면맨드라미는 기후변화

취약종이에요. 여름에 수온이

높아지면 빨강해면맨드라미

유생은 온도의 영향을 크게 받

을 것이고 1~2년간 여름에 생식

이 안되면 기존 서식지에서 빠

르게 사라지는 현상이 일어날

것입니다.

현재 빨강해면맨드라미 군락

이 건강하게 남아 있는 곳은 추

자군도 해역이 유일해요. 국립

호주의\해조류\생태\전문가와\함께\범섬을\ 조사\중인\황성진\교수(제공:\황성진)

63 62 63 62
했어요.
최근 남해안 수온 상승률이 제주도보다 높은
있어
6화 제주바다에는 아름다운 산호가 살고 있습니다 황성진 우석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2018년 전남 가거도 조사 때도 빨강해면맨드라미 군락을 확인했 어요. 그런데 그

해양생물자원관에서

해당종에 대한 조사를 수년간 진행했고 이

에 따라 해양수산부는 작년 12월에 빨강해면맨드라미를 법정보

호종인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했습니다.

제주도 산호종들의 서식 범위가 생각보다 빨리 북상

기후변화에 의한 산호류의 변화는 통상,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요?

산호의 종에 따라 수온 상승 등 변화 양상에 반응하는 정도가 다 릅니다. 똑같은 변화에 개체수와 서식지가 늘어나는 산호가 있

는가 하면, 사라지는 산호도 있습니다. 제주도의 동일한 서식지 에서 살아가는 밤수지맨드라미, 큰수지맨드라미, 분홍바다맨드

라미의 경우, 밤수지맨드라미 유생은 큰수지맨드라미 유생에 비

해 수온 변화에 민감합니다. 개체수와 피도가 많이 줄었지요. 반

면에 분홍바다맨드라미는 수온 30도에서도 생존 가능하고, 오히

려 지금의 변화된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아요.

제주도의 산호충류 전체를 이전 자료와 비교해보니, 전체 피도

는 거의 비슷한데 생물다양성은 줄고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예전에는 다양한 산호가 군락을 이루었으나 지금은 특정 산호를

중심으로 개체수가 확산되는 경향이 있어요. 종마다 변화 패턴

이 다 달라요. 물론, 기후변화 영향으로 최근 새로이 제주도 해 역에 유입되고 있는 열대종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빨강해면맨드라미가 기후변화에 취약하다고 하셨는데, 제주도에 서식하는 산호 중에 기후변화 취약종이 또 있는지요?

제주 남부에 주로 서식하는 산호 중에 남해안 거문도, 백도까지

빨강해면맨드라미\(제공:\자포동물자원\기탁등록보존기관/\촬영:\박승환)

65 64 65 64
6화 제주바다에는 아름다운 산호가 살고 있습니다

북상한 종이 있어요. 검붉은수지맨드라미는 2000년대에 이미

군락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어요. 자세한 조사를 해봐야 알겠

지만, 이 산호는 기후변화를 이야기하기 전부터 거문도 인근에

서식하고 있었을 겁니다.

최근 거문도 해역에 들어가 봤더니, 제주바다에 다이빙 온 느낌

이었어요. 가시수지맨드라미, 큰수지맨드라미, 실해송 등 제주

에 살고 있는 종의 꽤 큰 개체들이 있었고 자란 지 3년 이상된 개

체도 많았어요. 국립공원연구원도 거문도 일대를 고정 모니터링

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에 서식하는 산호종들의 서식 범위가 생

각보다 빨리 북상하고 있는데, 달리 말하면 우리나라 남쪽의 해

양 환경이 수온 상승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겁니다.

제주 전 지역 조간대의 갯녹음 현상이 심각한데요. 갯녹음의 원인으로 기후

변화와 육상오염원이 각각 5:5, 6:4 혹은 7:3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기후변화 이외에 제주도에서 발생하는 육상오염원이 산호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있는지요?

제주도의 하수 처리가 잘 안 되는 것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어요. 작년에 제주도내 하수처리시설의 방류수 수질이 전

국에서 가장 좋지 않은 것으로 보도되었어요. 또한 제주도는 축

산 폐수와 농업용 화학비료에 의한 지하수 오염 문제도 심각해 요.

이렇게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하수와 오염된 지하수에는 내분비

계 교란과 신경계 손상을 일으키는 잔류성유기오염물질이 잔존 합니다. 이러한 물질에 자주 오랫동안 노출되면 산호의 세포 사

멸, 생식력 감소 등이 발생합니다. 연안에 건설되는 친수시설 평

가에 잔류성유기오염물질 평가항목을 넣을 필요가 있어요.

산호 연구자들은 이러한 오염물질이 산호에 미치는 영향을 유전

자 발현 연구를 통해 진행하는데요. 육안으로 볼 때, 어떤 영향

으로 산호가 사라진 시점에서 그 원인을 연구하는 것은 너무 늦

기 때문이죠. 유전자 발현은 24시간 이내에 일어나며, 어떤 증상

은 72시간 이후에 안정화되지만 또 어떤 영향으로 사멸되기도

합니다. 환경스트레스에 대한 산호 유전자의 발현 연구는 한국

해양과학기술원(KIOST)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민과학자 스스로

산호 조사와 분석도 가능

제주도에서 펀다이빙을 즐기는 인구가 상당히 늘었는데요.

전문 산호 연구자가 아닌 취미로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도 산호를 관찰, 기록

하고 보호하기 위한 방안이 있을까요.

지금은 시민과학자의 역할이 중요해요. 저희 같은 산호 연구자

가 동서남해안 전역을 조사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히 있지요. 같

은 장소, 같은 사진을 지속적으로 올려주면 좋겠어요. 산호 서식

의 패턴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사라지는 산호가 확인되거나

여태 확인되지 않았던 미기록종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전문가의 조사 지침만 있다면 시민과학자 스스로 산호 정량조

사, 즉 피도 조사와 분석도 가능해요. 방형구 놓는 사람, 사진 찍

는 사람, 채집과 동정하는 사람 등 최소 3인이 팀워크를 맞추면

됩니다. 안전을 위해 다이빙 기술은 무엇보다도 중요하구요. 그

리고 태풍 전후 등 비슷한 시기에 관찰하는 것도 좋습니다. 산호

피도 분석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간단하게 할 수 있어요. 한두

67 66 67 66 6화 제주바다에는 아름다운 산호가 살고 있습니다 황성진 우석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번만
산호
볼 때 생태적
연습하면 어렵지 않게 할 겁니다.
구분은 종 단위로 자세하게 할 필요는 없어요. 산을
관점에서 숲 전체의 경향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듯이 산

호도 마찬가지예요. 연산호류, 돌산호류, 해양류 등 큰 구분을 하

고 자료를 오랫동안 모으면 논문 수준의 훌륭한 자료가 될 수 있 어요. 자료 분석은 우리 같은 산호 전문가와 상의해도 좋겠네요.

해양수산부가 문섬 바닷속을 수중경관지구로 지정했고, 서귀포항 동방파제 일대에 다이빙 레저센터를 만들고 있는데요.

작년 서귀포항 동방파제 앞에 4층 건물로 해양레저체험센터를

짓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자구리 해안 방향으로 동방파제

에서 90m 정도 매립해 친수시설을 만들고 스쿠버다이빙, 스킨

다이빙 교육을 하겠다고 하네요. 동방파제를 어장으로 이용하던

해녀 보상을 끝냈고 올해부터 본격적인 공사가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 연구결과에서 확인되었듯이, 서귀포항 앞 문섬 일대는 산

호의 주요 서식지입니다. 공사 중 산호 영향을 줄이고, 공사 후 3

년 동안 산호 영향을 모니터링할 것을 제안했어요.

제주도의 연안 개발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

로 나가지 못한 다이버들도 제주로 몰렸어요. 관광 개발에 대한

압력은 상당하구요. 제주만 아니라 강원도 고성 등 연안 개발에

대한 평가, 자문이 자주 들어와요.

산호 조사를 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산호 연구자들이 챙겨야 할 행정 절차가 너무 복잡해요. 우리가

제주바다 산호 조사를 하려면 몇 개월 전부터 준비합니다. 어선

을 섭외해 조사에 적합하도록 선박 특별검사를 받아야 해요. 선

박 렌탈비도 여러 조사를 하기에는 부담이에요. 천연기념물 문

섬이나 범섬을 조사하거나 산호 샘플을 채취하려면 문화재청 허

가를 받아야 하구요. 조사 준비를 마치고 현장에 갔을 때 지역의

낚시꾼과

69 68 69 68 6화 제주바다에는 아름다운 산호가 살고 있습니다 황성진 우석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마찰이 있어 조사를 못했던 경험도 있어요. 마지막으로, 제주도는 지금 현재, 이용의 관점이 매우 큽니다. 이제는 가치에 관한 이야기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제주바다 에는 아름다운 산호가 살고 있습니다. 제주산호

보이지 않는 산호를

사랑하게 하고 싶었어요

기후위기와 코로나 시대에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제주 해안가 모래밭

을 기어 다니며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주워 만다라(자연의 순환을 나타내는 원형

의 이미지)로 배치하고, 완성되면 해체하는 이가 있다.

사람들과 함께 바닷속 산호를 떠올리고 걱정하면서 자유로운 뜨개질로 산호

를 재연하는 ‘산호뜨개’ 작업도 한다. <치유적이고 창조적인 순간> <변화를

위한 그림일기> <싸움의 기술: 모든 싸움은 사랑이야기다>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제주 중산간 마을에 터를 잡고, 예술 치유 자연을 키워드로 종횡무진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는 정은혜 작가를 지난 3월 중순, 조천의 카페에서 만났다.

제주에서 미술치료사와 생태예술가로 활동 중이신데

어떤 계기로 이 직업을 선택하셨는지 궁금해요.

가족과 캐나다로 이민 가서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냈어요. 그곳

의 광활한 자연에서 한없이 작아지면서 동시에 한없이 커지는 경 험을 하기도 했고요. 캐나다에서 미술과 미술사를 공부하고 한국

으로 돌아와 뉴미디어 전문 미술관에서 기획자로 일했습니다.

2년 반쯤 일하다 첨단 기술을 이용한 소통 방식보다 좀 더 근원

적인 치유와 소통의 길을 걷고 싶어서 미국으로 건너가 미술 치

료를 공부했어요. 미국 공인 미술치료사가 되어 시카고의 정신

병원과 청소년 치료센터에서 일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예술을 통해 스스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았고, 예

술의 힘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죠. 다시 한국에 돌아와 제주에 자

리를 잡게 되었구요.

71 70 71 70 작가 · 생태예술가 정 은 혜
7화
정은혜 작가·생태예술가

플라스틱\만다라\작업\(제공:\에코오롯) 정은혜\작가\(제공:\에코오롯)

자연에서 한없이 작아지면서 동시에 한없이 커진 경험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이민자가 많은 공립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좋은 선생님들을 여럿 만났어요. 생활 속 우리 행동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 하게 한다든가, 직접 가르치기보다 경험을 통해 깨닫게 하는 방 식으로요.

당시 교회 목사님 지도로 토론토 북쪽의 광활한 호수에 있는 섬

에 카누를 타고 들어가서 3박 4일 캠핑을 했던 게 기억에 남아

요. 음식을 담당했던 누군가가 짐을 놓고 와서 섬에서는 약간의

간식 외엔 먹을 게 없었는데요. 배고픈 상황에서 날이 저물고, 그 깜깜하고 고요한 섬에서 하늘 가득 별과 그 별이 비친 호수

표면을 바라보자니 마치 제가 우주 속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감

수성 예민한 시기여서인지 그 장면 속에서 나는 죽어야겠다고도

느꼈고요.

돌아보면 자연의 아름다움, 경외심, 숭고의 경험이었습니다. 나

보다 절대적으로 큰 공간의 경험, 그 안에서 나는 아주 작은 존

재이지만 또 그 웅장함을 닮은 큰 존재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

랄까요. 이민 가서 언어가 잘 안 되고 소통이 어려웠던 시기에

그런 경험이 저에게 영향을 주었죠.

제주에서는 미술치료를 하다가 생태예술 분야의 작업도 하게 된 것인가요?

두 개의 작업이 어떻게 연결될까요?

미술 치료할 때 내담자에게 집중해서 상담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저 자신이 힘들고 우울해지곤 했어요. 피곤함도 있었고요. 그럴

때마다 제주의 숲, 바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숨을 쉴 수 있

었어요. 저를 충전하는 시간이었죠.

그러다 나중엔 내담자를 데리고 숲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문

을 열고 숲으로 간다’라고 이름 붙이고, 자연에 들어가서 하는 치

유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가져간 물건을 숲에 남겨두지 않고, 숲속의 자연물을 가져가지 않는 규칙을 세워서요. 사람들이 관

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미술치료라면, 생태예술은 사람

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하는 작업이고요. 겹치는 부분이 많아요.

통상 미술치료는 심리학과 연결될 텐데, 심리학에서는 닫혀 있는

내밀한 공간에서 개인적 차원의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과정이지요?

그런 면에서 ‘문을 열고 숲으로 간다’는 작업은 미술 치료에 있어

73 72 73 72
7화 보이지 않는 산호를 사랑하게 하고 싶었어요 정은혜 작가·생태예술가

결하기 위해 내면 안으로 계속해서 들어가는 방식은 끝이 없더

라고요.

내담자들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삶을) 살지 않으려는 것도

있고요. 치료 중에는 진짜 삶을 살지 않고, 사람을 만나지 않고, 친

구를 사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요. 하지만 그렇게 계속 내면 안으

로 들어가고 분석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자연에 드는 것은 마음의 문제를 안으로 파고들어 해결하는 방

식이 아니라 ‘문제의 크기가 달라지는’ 경험이에요. 내 마음에 문

제가 생겼고 상처가 있고 아플 수 있지만, 웃을 수 있고 살 수 있

다는 깨달음이요. 함께 할 수 있다는 열림이지요. 자연에 들어

나의 문제를 바라보면 나라는 인간이 겪는 고통이 전 지구적 맥

락에서는 별게 아니라는 인식이 듭니다. 이해하고 파악하고 분

석하는 게 아니라 열리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깨달았어요.

바닷가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줍기 시작하다

사람들과 바닷가에서 플라스틱 조각을 줍고 분류해서

만다라로 만드는 ‘플라스틱 만다라’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제주에 살고 바다에 자주 가니 모래사장에 쓰레기가 있고,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그래서 줍기 시작했어요.

미술치료 작업 중에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자연의 순환을 이야기 하며 거대한 만다라를 그리는 프로그램은 이미 있었고요.

75 75 제주\바닷속\산호를\생각하며\사람들과\"산호뜨개"\작업을\하다\(제공:에코오롯) 정은혜 작가·생태예술가 관점의 전환을 담고 있는 듯하네요.
실제
것은
맞아요. 제가 배운 것은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는 작업인데,
내담자를 만나 미술치료를 하면서 깨달은
어떤 문제를

그래서 바다에서 주워온 플라스틱 조각들로 만다라를 만들어보

게 되었습니다. 사실 친구들의 지지가 아니었으면 하지 못했을

거예요. 플라스틱 조각을 이리저리 배치해 만다라를 만드는 작

업을 할까, 라는 제 말에 누워서 듣고 있던 친구가 벌떡 일어나

며 ‘정말 좋은 아이디어야’라고 했고, 다른 친구들도 비슷한 반응

이었고요.

‘플라스틱 만다라’ 전시회(국제생태미술전, 제주현대미술관 2019)에서

‘바다에게 사과문 쓰기’ 같은 관객 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게 기억에 남는

데요. ‘사죄와 축복의 생태예술’이라는 부제와 플라스틱 만다라 작업의 의미

는 무엇일까요?

플라스틱 만다라 작업은 티베트 불교의 모래 만다라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원래 불교 용어인 ‘만다라’는 자연의 순환, 조화를 나

타내는 원형의 이미지를 의미하는데, 티베트 스님들은 며칠 또

는 몇 주에 걸쳐 색 모래로 만다라를 만들고 완성되면 그 모래를

다 쓸어 모아요.

완성되자마자 해체된 그 만다라 모래를 가까운 강이나 바다에 가

서 흘려보냅니다. 만다라를 만들며 읊조린 축복의 메시지가 지구

의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닿기를 바라는 기도와 함께요.

‘플라스틱 만다라’는 우리가 플라스틱 문명에 살면서 바다로 내

보낸 고통을 거두어들인다는 의미가 있어요. 온 바다를 떠돌다

가 제주 바닷가로 밀려온 플라스틱 조각을 모래밭을 기어 다니

며 하나하나 줍는 거지요. 자연 앞에 낮게 엎드려 나와 바다의

연결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바다와 바다 생명에게 애도와 사죄

를 보내는 기도이기도 하고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제주 함덕 서우봉 해변에서

플라스틱을 함께 줍자고 공지를 올리신 걸 봤어요.

플라스틱 수거 작업을 할 때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참가자들과\바닷가에서\주운\작은\플라스틱\조각들을\만다라로\배치한다\(제공:\에코오롯)

77 76 77 정은혜 작가·생태예술가

주로 수거 작업을 하는 서우봉 해변의 특징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모래밭에서 색색의 반짝이는 플라스틱을 주울 때, 줍는 그 순간 첫 마음은 예쁘다는 감각이에요. 모래사장 속 알록달록한 색깔, 바다에 마모된 동글동글한 알갱이들을 보며 드는 감정은 복합적 입니다. 이것이 바닷속 생명들에게 죽음을 일으킨다는 인식도

동시에 들고요. 편리함에 더해 예쁘다는 감각이 플라스틱 문명

을 확장시킨다는 생각도 했어요.

제주 해변에서 개구리알처럼 생긴 플라스틱 알갱이를 주워 무

엇인지 검색하다가 너들(nurdle, 플라스틱 제품의 원료)을 알게 됐어

요.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려고 공장에서 5mm 이하로 가공한 플

라스틱 원료 구슬이에요.

제주에서 이 너들이 제일 많이 보이는 곳이 바로 함덕 서우봉 바

다입니다. 제주 전 지역 해안가를 다녔는데 서우봉 해변만큼 많

지는 않았어요. 같은 곳에 오래가다 보니 변화상이 눈에 보여요.

작년 후반부터는 너들이 2배 이상 늘었어요. 2021년 스리랑카 선

박사고 때 유실된 것일까, 추측만 하고 있어요. 검은 돌알갱이

같이 검게 탄 플라스틱 알갱이도 많아졌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랑할 수 있을까

예술·치유·자연을 키워드로 사람들이 작업 과정 전반에 참여해서 함께 한다

는 게 참 인상적입니다. 제주 산호를 재연한 ‘산호뜨개’ 워크숍도 오래 진행하 셨죠? 그 과정과 참가자 반응은 어떠했나요.

전국을 다니면서 2018년 8월부터 2019년 8월까지 총 547

산호뜨개 역시 정해진

형태나 규칙이나 도안이 없어요. 가장 자유로운 형식의 뜨개질

인데, 사람들은 용도가 있는 뜨개질을 주로 해왔기에 도안 없이

자유로운 산호뜨개를 어려워했어요.

그래서 평생 뜨개질을 해 오신 저희 어머니 김순덕 여사님께서

첫 시작을 해주셨어요. 어머니는 바다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와

함께 바다 스노클링을 하며 본 바닷속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계

셔서, 샘플이 되는 산호뜨개 작품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참가자분들도 원칙과 답이 없다는 것에 대한 마음의 벽을 넘으

면, 그 후론 너무 신나고 재밌어하셨어요. 실패하고 낙담했던 경

험이 치유되는 시간이었다고 말씀해 주신 분들도 많았어요.

그래도 산호뜨개에는 기술이 필요하지 않나요?

산호뜨개에 사용한 뜨개 기술은 무엇인가요.

뜨개질은 코바늘 뜨개와 대바늘 뜨개로 나뉘어요. 대바늘 뜨개

는 두 개의 막대기로 뜨는 방식인데, 한 줄 한 줄씩 뜨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코를 하나 빠뜨리면 한 줄을 다 풀어야 하지요.

그런데 코바늘 뜨개는 코바늘 하나를 가지고 한 코 한 코씩을 뜨 는 작업입니다. 이 차이는 어마어마합니다. 한 코씩 뜨는 것이기

때문에, 코를 늘리거나 줄이고, 짜는 방향을 바꾸거나, 코를 빼

먹거나, 여러 사람이 동시에 뜨는 것이 다 가능하며 원형으로 뜨

는 것이 가장 편한 방식입니다.

보통 코 수를 세면서 뜨개질을 하는 이유가 꼬불꼬불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데, 산호뜨개는 꼬불꼬불하게 뜨는 것이기 때문에

코를 셀 필요도 없고,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고, 어디서든 끝낼

수 있어요. 막 뜨다가 보면 꼬불꼬불한 맨드라미 꽃 같기도 하고

79 78 79 78 7화 보이지 않는 산호를 사랑하게 하고 싶었어요 정은혜 작가·생태예술가
명의 참가자들이 소모임과 워크숍에 참여했어요. 4회의 전시가 있었고, 100여 회의 워크숍과 산호뜨개 모임을 열었습니다. 산호뜨개는 산호를 보고 영감을 받아 뜨개질을 하는 방식인데,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산호처럼
제주와

아름다운 연산호 같기도 한 산호뜨개가 만들어집니다.

산호뜨개 결과물로 전시회를 열었고, 올해도 전시 계획이 있으시다고요.

이 전시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산호뜨개로 전시를 하면서 우리가 가졌던 질문은 ‘어떻게 보이

지 않는 것을 사랑하게 할까?’예요. 우리는 보이는 것, 자주 보는

것을 사랑하고요. 사랑해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제주바다의 산호를 보호하자고 직접 말하는 대신 다른 방법으로

보이지 않는 산호를 사랑하게 하고 싶었어요. 산호뜨개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산호가 궁금해집니다. 산호 사진을 찾아보고

산호의 형태를 자세히 보다 보면 산호의 생태계, 산호가 함께 사

는 방식들이 보입니다. 한 코 한 코 산호를 생각하면서,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다로 마음의 길을 내고자 했어요. ‘플라스틱 만다라’, ‘산호뜨개’ 작업은 둘 다 여러 사람이

작업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작가 혼자 창작하는 방식과 다른 특성은 무엇일까요?

‘플라스틱 만다라’, ‘산호뜨개’처럼 점점이 모이고 배치되고 흩어

지는 과정의 작업은 공공 예술(커뮤니티 아트, 공동체 기반의 예술이

나 활동) 성격이 강하지요. 커뮤니티 아트는 하나의 장르로 정리

되지 않은 면도 있고, 60년대에 활발하다 지금은 다소 유행이

불가능하고요. 미술사에서 말하는 ‘오리지널리티’가 애매합 니다. ‘플라스틱 만다라’ 역시 배치했다가 해체하는 거라 판매 불

가하고 영속성도 없어요.

기후위기 시대, 예술은

여러 사람들과 작업하기 때문에 즐거움도 있겠지만,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수고로움도 있을 텐데

이런 작업을 꾸준히 하시는 이유나 동기는 무엇인지요?

‘산호뜨개’를 한다고 산호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플라스틱 만

다라’를 한다고 플라스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데, 왜 이런 작업

을 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아요.

산호는 바닷속에 있어 눈에 보이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

접 산호를 본 적도 없죠. 다들 산호를 보러 물속에 들어가서도

안 되고요. 숫자와 통계로 이야기하는 산호의 가치는 우리를 움

직이게 하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공감’을 만들어 내는 것은 구체 적인 것이죠. 전쟁의 피해를 나타낸 통계보다

81 80 81 80
지 나기도
‘산호뜨개’의
게 아니라
하는 것 이니까,
했어요.
경우, 나 혼자 작업을 하는
같이
이만큼 혹은 저만큼까지 누군가 했다고 경계를 따지기
난리통 속 아이의 사진이 우리 마음을 움직이게 하듯이요. 자유로운\뜨개질,\산호뜨개\워크숍(제공:에코오롯) 7화 보이지 않는 산호를 사랑하게 하고 싶었어요 정은혜 작가·생태예술가

뜨개 작업을 통해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마음을 움직이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게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관

계망을 만드는 작업이에요. ‘플라스틱 만다라’도 동일해요. 감정

적 공감을 발동하게 돕는 거예요. 예술은 상상하게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랑하게 하니까요. 예술이 수만 년 전부터 해왔던 역

할이라고 생각해요.

저에게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그것과 관계 맺는 방

식입니다. 저에게 창작은 마음을 연결하는 행위이며, 그것을 위

해 그림을 그릴 때도 있고, 뜨개질을 할 때도 있고, 모래밭의 미

세 플라스틱을 모으기도 하고, 상상 속 바이러스를 그리기도 합

니다. 저에게 예술은 예술 작품이 아니라, 예술이 일으키고, 연결

하고, 승화하는 마음의 온갖 작용이 발동하는 순간들입니다.

말로 할 수 있는 것은 말로 하라고 해요. 미술치료에서도요. 그

게 가장 경제적이니까요. 예술은 말할 수 없는 것, 표현할 수 없

는 것을 드러내게 하는 작업이에요. 기후변화로 인해 바다 생명

이 아파하는 걸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자연의 파괴에 눈물 흘릴 수 있게 하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기후위기 시대, 예술의 역할에 대해 듣다 보니 정은혜 작가님이

심리치료에 대한 책을 쓰고, 미술치료를 하고, ‘플라스틱 만다라’ 같은 작업을

하는 게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겉으로 드러나는 활동은 각기 다르지만 사실 저는 똑같다고 느

껴요. 심리치료에서 고통은 굉장히 중요한 주제인데, 자신의 고

통을 직시할 수 없다면, 진짜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심리치료의 목표가 고통의 문을 통과해서 이해와 성장으로 나아

가는 것이라면, ‘플라스틱 만다라’는 우리가 초래한 고통 앞에서

눈을 돌리는 대신 그 고통을 마주하면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통로를

있게 돕지요. 그것이 미술로 고통을 승화하는 미술치료의 원리

이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단체 ‘에코오롯’의 대표를 맡고 계신데, 어떤 곳인지 소개해 주세요.

‘에코 오롯’은 환경운동가이자 저자인 친구, 예술가이자 치료사

인 제가 만나서 만든 비영리단체입니다. 지금은 예술로 하는 환

경운동에 좀 더 포커스를

83 82 83 82
만들려는 행위예요. 플라스틱\만다라\(제공:\에코오롯) 7화 보이지 않는 산호를 사랑하게 하고 싶었어요 정은혜 작가·생태예술가 그런 면에서 내면을 치료하는 것이나 우리가 자연에게 행한 파 괴적인 관계를 치료하는 것 모두 처음 만나는 감정은 ‘고통’일 거 예요. 예술은 고통의 뜨거움에 데이지 않고, 이것을 끌어안을
두고 활동하고 있어요. 저희는 사람과 자연이 모자람 없이 온전히 더불어 살아가는 오롯한 세상을 위 해 노래하고 글 쓰고 그리고 목소리를 내고 행동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예술 활동을 하고자 하구요.

제주바다는 생태적

회복력을 상실했어요

‘생태적 임계점’을 넘어선 제주바다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준철 국립수

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 연구원은 오늘도 어선 선장과 통화해 조사 날짜를

잡고, 그물을 걷어올려 물고기 변화를 관찰하고, 수중카메라와 줄자로 아열대

산호를 찍고 크기를 재고 있다. 산호 포자를 관찰하기 위한 수조도 직접 만들

어 연구원에 설치했다. 제주바다 조간대와 조하대의 해양생태 변화를 추적한

지 10년이 넘었다.

제주시 연대포구가 창 밖으로 보이는 곳에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

가 있다. 두어 번 방문했던 곳이라 낯설지 않았다. 2층 사무실에 앉자마자 그

는, 질문도 하지 않았는데 방금 보고온 제주바다 상황을 일일이 설명해줬다.

8화

제주수산연구소 연구원

안녕하세요. 얼마전 정기 조사를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는 제주바다의 기후변화 모니터링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요.

조천읍 북촌, 한경면 신창, 안덕면 사계, 남원읍 신흥 이렇게 4곳

을 연 4회 계절별로 조사하고 있어요. 해조류는 조간대와 조하

대 5, 10, 20미터 지점에서 변화를 체크하고, 아열대 어종은 직접

잠수하거나 어선을 빌려서 그물을 놓고 확인하고요. 산호충류도

조사하는데 그물코돌산호를 아열대 지표종으로 지정해 같은 장

소에서 변화를 추적·기록합니다.

올 1~3월은 극심한 저수온기에 풍랑주의보가 하루 걸러 발효됐는데요.

제주바다 상황은 어떤지요.

엊그제(인터뷰 날짜는 3월 10일)서야 2월 정기조사를 다녀왔어요.

지난 설날 전후부터 풍랑주의보가 반복돼 조사를 못했거든요.

1월도 마찬가지였어요. 올해는 북서풍의 세력이 대단하네요.

정기 조사를 마친 첫 인상은 ‘해조류가 상당히 사라졌다’였어요.

원래 미역·모자반 같은 경우, 해갈이를 하기 때문에 1년 주기로

85 84 85 84 국립수산과학원
고 준 철
고준철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 연구원

자라고 채취하면 그 다음 한 해

는 안 보이기도 했어요. 자연스

러운 현상이지요.

그런데 5년 전인 2017년 이후부

터 해갈이도 없고 해조류 자체

가 잘 안 보여요. 그 원인으로

태풍과 풍랑의 영향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2010년 이후 지

금까지 겨울철 풍랑주의보 발

효 횟수가 크게 증가했거든요.

해조류는 늦가을부터 겨울철

에 자라기 시작하는데, 초기 성장 시기 때 풍랑에 못 견디고 잘 려서 죽어나갔어요. 조간대부터 조하대 5미터 지점까지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겁니다.

올해 풍랑주의보 발효 횟수 등 통계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겠어 요. 큰 풍랑의 횟수가 잦다보니 수심 20m권까지도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물론 기후변화에 따른 수온상승의 영향도 있어요. 제

주도는 최근 10년 사이 겨울철 수온이 최대 3℃까지 올랐으니, 해조류 급감의 주요 원인은 풍랑 스트레스와 수온 상승으로 생 각됩니다.

‘캘 미역이 없다’, ‘톳이 손바닥 크기 이상 안 자란다’. 이런 이야기를 서귀포 대정읍에서 또 제주시 삼양동에서도 들었습니다.

예전에 비해 조간대 생물상의 80% 이상 사라졌어요. 올해 조간

대 미역 생산량은 거의 제로(0)일 겁니다. 미역은 1미터까지 자랄

수 있는데, 겨울 수온이 높아지고 또 풍랑 스트레스가 겹치면서

통 자라지 않네요.

최근 몇 년의 상황을 보면, 통상 12월~2월 중순까지 북제주는

1\\성장이\둔화되고\사라지는\제주\모자반\ 2\\바닷속\인공어초\\

87 86 86
8화 제주바다는 생태적 회복력을 상실했어요
고준철\국립수산과학원\연구원\(제공:\고준철)

14℃, 남제주는 13℃ 정도로 수온이 떨어질 시기인데 그러지 못했 어요. 수온이 15℃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5년 전 조사때부

터 모자반 숲이 급속히 사라졌어요. 우리 연구소는 연, 월, 지점

별 데이터를 축적하고 암반을 덮고 있는 피복 생물의 변화상도

확인하고 인는데요. 특히 키 큰 모자반은 찾기 어려워졌어요. 미

역 값은 천정부지로 높아지고요.

해조류가 사라지니 암반 백화현상인 ‘갯녹음’도 덩달아 확산됐는데요.

현장에서 보시는 갯녹음 상황은 어떠한지요.

제주 전역의 암반지역은 갯녹음 ‘심각’ 영향권에 있어요. 키 큰

해조류가 사라지니 키 작은 산호말류, 홍조류가 포자를 번식해

암반을 가득 채우고, 그나마 남아 있던 키 큰 해조류는 뿌리내릴

공간을 찾지 못해 완전히 사라졌어요. 산호말류조차도 키 큰 해

조류가 없으니 햇볕과 풍랑에 그대로 노출돼 죽어버려 하얗게

암반을 덮어버립니다.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되고 있어요. 게다

가 제주도 남쪽의 서귀포에서 성산 지역은 기후변화에 따른 수

온 상승과 대마 난류의 영향을 직접 받다보니 갯녹음은 더욱 심

각한 상황입니다.

‘악순환의 고리’라는 게 아프게 느껴지네요. 갯녹음을 치유하기 위해 정부는

매년 300억 원 이상을 투입해 ‘바다숲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해조류 이식사업은 효과가 일시적이에요. 사업을 할 때 그뿐이

지, 1년 지나서 가보면 이식한 해조류가 죽어 있어요. 감태 이식

등에 엄청난 노력과 예산을 투입했으나 제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도 효과적인 곳이 드물었어요. 제주바다를 살리려면, 차라

리 제주바다를 아열대 바다로 인정하고 아열대 경산호류와 공생

생물 조성 사업을 하는 게 더 낫습니다.

제주바다의 수온이 상당히 올랐습니다. 국립해양조사원 통계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약 3℃가량의 수온이 오르기도 했는데요. 연구원님께서는 제

주바다 아열대 물고기 조사를 정기적으로 하시잖아요. 관찰결과가 어떤가요.

제주 남쪽바다는 기상학적으로 이미 아열대 해역(수온 18℃ 이상

이 연간 6개월 이상) 인데요. 이대로라면 머지 않아 제주 전역이 아

열대 해역으로 접어들 겁니다.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

는 위 네 지점(북촌, 신창, 사계, 신흥)에서 아열대 어종을 조사하는

데, 하루 전날 지역 어선을 빌려 ‘삼중자망’이라는 촘촘한 그물을

400미터 정도 쳐놓고 다음날 확인합니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네 정점에서 확인된 아열대 어종은 총 83

종으로 제주도 전체 어종의 약 50% 가량 돼요. 이렇게 유입된 아

열대 어종 중 70%는 제주바다에 적응하고 나머지 30%

못하고 죽은 어종)입니다. 8월 고수온기

에 매년 한 종 정도 새롭게 확인되는데, 오키나와나 대만 해역에

살던 어종이 태풍이나 혹은 모자반 덩어리를 타고 들어오기도 합니다.

아열대 산호 종류인 빛단풍돌산호, 거품돌산호 등

돌산호류가 상당히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데요.

연구소에서도 아열대 산호를 추적하고 있지요?

2013년부터 그물코돌산호를 아열대 지표종으로 놓고 제주바다

서식현황을 기록 중인데요. 같은 지점의 동일한 그물코돌산호

를 선정해 매월 조사하고 있어요. 신흥에서 확인한 자료를 보면,

연평균 4cm가량 성장하고 있습니다.

89 88 89 88
하는
8화 제주바다는 생태적 회복력을 상실했어요
정도는 ‘사멸회유종’(제주 해역으로 왔다가 겨울철 원래 서식지로 복귀하지 못 하거나 제주바다에 적응하지
그물코돌산호는 2010년 전 후 제주 남부해역에서 일부 확인됐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제 주도 전 연안에 확산·분포했고, 서식 면적은 마을어장 평균면적 (139ha)의 약 5~10%를 차지하고 있어요. 고준철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 연구원

1\\그물코돌산호\(제공:고준철)

2\\그물코돌산호\포자를\관찰한다\(제공:\고준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돌산호는 포자 방출시 연산호와 달리, 일회 성이 아니라 5~8월 사이에 틈틈이 자주 방출하는 모습이 확인됐 어요.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아열대 돌산호류가 빠르게 북상하면서 제주바다에 원래 서식했던

연산호류의 서식지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거네요.

산호 생태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정기조사로 확인한 그

물코돌산호와 거품돌산호에 한정해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그

물코돌산호가 확장되면 그 옆의 연산호가 말미잘처럼 조금씩 바

깥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았어요. 연산호가 주변부로 밀려나는

모습처럼 보였지요.

좀 더 거시적인 공간으로 판단하자면 돌산호, 연산호 등 산호충 류의 북방한계선이 점차 북상하고 있어요. 제주 북부의 북촌과 함덕의 수심 깊은 곳까지 연산호 군락이 대규모로 확인되고 있

어요. 산란과 번식을 통한 서식지의 지리적 이동이라고 할 수 있

어요. 그동안 보지 못한 새로운 종들도 많이 유입되고 있지요.

이와 동시에, 돌발적인 태풍이나 인위적인 수온 상승 등의 교란

으로 여러 산호들이 죽을 수도 있고요.

해조류, 어류, 산호충류 등 여러 분야에서 기후변화에 의한 해양생태계의

영향을 조사하고 계신데요. 어려움은 없나요.

연구원이 턱 없이 부족하죠.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연구소는 제주

바다의 아열대화, 어류 자원, 해수 관상어, 양식장 넙치 질병 연

구 등 수산자원, 해양환경, 양식기술 등 전 분야를 맡고 있어요.

그런데 기후변화에 의한 아열대화 연구는 저 혼자, 다 담당하고

91 90 91 90
제 전공은 원래 수산자원입니다.
지금 조사하는 해
있어요.(웃음)
어찌보면
고준철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 연구원

조, 산호, 물고기가 광범위하게 수산자원으로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연구를 하다보면 저조차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해

양생태 연구는 너무 취약합니다. 대학 교육도 그나마 용역비가

나오는 융합, 응용과학이 중심이고 기초과학은 등한시되는 시

스템입니다.

제주바다 생태계는 기후변화만이 아니라

육상 오염원의 영향도 크게 받고 있는데요.

육상 오염원으로 발생하는 해양생태 영향도 연구하고 있나요?

광어양식장 배출수, 하수종말처리장 등 몇몇 영향을 간접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제주 연안에 부영양화가 가속화되고 있어

요. 원인은 과부하에 있어요. 용량 이상이 유입되면서 정화가 다

되지 못한 상태에서 바다로 버려지지요. 하지만 지역에서 민감

하게 반응할 수 있는 내용이라 자료 공개는 잘 하지 않습니다.

하수나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물리적으로 시설을 대폭 확충하면

되지 않을까요. 연구원님이 생각하시는 제주바다를 되돌리기 위한

대안이랄까. 무엇일까요.

어려운 과제입니다. 우선 하수나 쓰레기 처리 시설을 지역 주민

들이 환영하지 않아요. 반대가 심하지요. 예산 문제도 있고, 시

설이 확충돼도 지속가능한지도 봐야 합니다. 제주는 지금도 이

미 포화 상태입니다. 정화된 물을 바다에 내보내도록 ‘시설’을 갖

추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제주바다는 이미 임계점을 넘었어요. 제주바다 조간대를 보시

면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생태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힘’을 완전

히 상실한 거요. 생태적 임계점을 넘어선 상황이라 어떤 방법으

수 있을지 정말 미지수입니다. 완전한 발상의 전환 없

이 현재 바다 상황을 바꾸기는 불가능할 겁니다. 우리에게 남겨

진 마지막 과제일 겁니다.

연구원님의 열정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조사 현장에 동행할 수 있을까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현장이 궁금하네요.

올해는 2월, 5월, 8월, 11월에 계절별 조사를 진행해요. 시간이 맞

으면 동행 가능합니다. 제주바다에 관심이 있으니, 변화된 현장

을 보면 새로운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아열대돌산호

93 92 93 92
로 해결할
고준철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 연구원 8화 제주바다는 생태적 회복력을 상실했어요

9화

엉킨 돌고래 구조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제주 해안가를 걷다 수면 위로 솟구쳐오르는 남방큰돌고래 무리를 마주치면

마음이 벅차오른다. 그물에 포획돼 공연 업체에서 돌고래쇼를 하다 서울대공

원으로 옮겨지고, 결국 극적으로 김녕 바다에 방류된 제돌이가 떠오르기도 한

다. 우리는 고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남방큰돌고래와 한국 토종 돌고래 상괭이를 따라다니며, 고래의 모습을 담은

다큐 <돌고래와 나>, <한국에 돌고래가 산다>, <쇼 돌고래의 슬픈 진실>, <

바다의 경고 1부 - 사라지는 고래들>, <바다의 경고 2부 - 귀신고래를 찾아 서>, <상괭이가 사라진다> 등을 만든 이정준 다큐멘터리 감독을 최근 서울에

서 만났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제주 남방큰돌고래와 한국 토종 돌고래 상괭이의

수중 생태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셨는데 언제부터 다큐 작업을 시작하셨는

지, 지금은 주로 무엇을 촬영하시는지 궁금해요.

다큐 감독을 하기 전, 제 직업은 스쿠버다이빙 강사였어요. 다이

빙 강사 일을 하면서 언젠가 동해의 참돌고래, 서해와 남해의 상

괭이, 제주의 남방큰돌고래, 전역의 밍크고래 등 한국 바다의 모

든 고래류를 영상에 담아 세상에 내놓아야겠다고 생각했고요.

특히 한반도 연안에서 관찰되던 귀신고래를 기록하고 싶다는 마

음이 강렬했어요. 한국계 귀신고래(Korean Gray Whale)는 이름에

한국(Korea)이 들어가 있을 만큼 상징성이 있는데, 57년 가까이

우리 바다에서 발견되지 않고 있어요. 우리가 잃어버린 귀신고

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다큐 작업을 시작하게 됐고, 본격적으

로 고래의 수중 생태를 기록하기 시작한 건 2015년부터에요.

고래의 생활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려면,

95 94 95 94 ‘돌핀맨’ 다큐멘터리 감독 이 정 준 낚싯줄에
이정준 ‘돌핀맨’ 다큐멘터리 감독
바다에서 계속 지내면 서 촬영 장비 등 여러 준비가 필요해요. 우선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촬영하기 시작했어 요. 현재는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생활과 서해안에서 혼획으로

많이 죽는 상괭이를 집중해서 찍고 있어요.

우리가 잃어버린 귀신고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네요.

예전에는 우리나라 바다에서 귀신고래가 새끼를 낳고 지냈던 걸까요? 귀신고래는 머리, 옆구리, 등에 고착생물인 따개비, 굴 껍데기, 조개삿갓이 붙어있거나 부착했다 떨어진 흔적 때문에 검은 피부

에 회색 반점이 잔뜩 덮인 것처럼 보여요. 연안 가까이에서 불쑥

튀어 나와 놀라게 하는 것이 귀신같다 하여 귀신고래라는 이름 이 붙여졌어요.

귀신고래는 태평양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 2개의 계군(형태적· 생태적·유전적으로 유사한 특징을 가진 개체군)으로 나눕니다. 동쪽에

는 알래스카와 캐나다, 미국, 멕시코 연해를 오가는 ‘캘리포니아

계 귀신고래(Californian Gray Whale)’가 있고요. 서쪽에는 러시아

오호츠크해 바다에서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남쪽 바다를 오가

는 ‘한국계 귀신고래(Korean Gray Whale)’가 있어요. 둘다 겨울이

되면 새끼를 낳기 위해 남하를 해요. 이러한 내용은 ‘로이 채프먼

앤드류’라는 미국인 동물학자가 1910년대에 고래 연구를 하고, 귀신고래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처음으로 밝혀졌어요.

앤드류는 당시 울산 장생포에서 새끼를 낳기 직전의 귀신고래

암컷들이 잡히면서 한국 남해안을 귀신고래 번식장이라고 지목 했고, 한국계 귀신고래라는 이름을 붙인 거죠. ‘울산 귀신고래

회유해면’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지만,1965년 이후 우리

바다에서 귀신고래를 발견한 적이 없어요.

실제 귀신고래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러시아 사할린과 멕시코 바다에서요. 2019년에 취재하러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 게레로 네그로에 갔는데,

돌핀맨\이정준감독은\2015년부터\제주\남방큰돌고래를\기록하고\있다(제공:\이정준)

마리를 봤어요. 동태평양 개체군인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는 멕 시코 바다에서 번식하거든요.

우리나라도 울산 암각화와 옛 문헌에 귀신고래 기록이 있고, 고

래가 참 많았다고 하죠. 선조들은 동해바다를 경해(鯨海)라고 부

를 만큼 고래가 가득한 바다였는데 포경으로 남획되면서 거의

사라졌어요. 고래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났겠죠. 저 길로 가면 죽

는다, 다른 길로 가자라고요. 죽어가는 고래와 눈 마주쳐... 그 모습 잊히지 않아

‘돌핀맨’이라는

97 96 97 96
거기서 수백 이정준 ‘돌핀맨’ 다큐멘터리 감독 9화 낚싯줄에 엉킨 돌고래 구조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이름으로 고래 기록을 꾸준히 하고 계신데, 여러 동물 중 고래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왜 그렇게 고래에 끌렸을까요?(웃음) 그 커다란 생명체에 매력이

2019년\1월,\멕시코\바하칼리포르니아에서\촬영한\귀신고래\(제공:\이정준)

있어요. 사실 전 고래가 죽는 모습을 먼저 봤어요. 2010년 채널

tvN에서 개국 5주년 기념 다큐를 제작했는데요. 인도네시아 오

지 마을 사람들이 고래와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담은 ‘인간 vs 고

래’라는 작품이에요. 고래는 멸종위기 동물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곳 환경이 워낙 척박해 마을 사람들은 고래잡이를 생존수단으

로 삼고 있었어요. 저는 100일 정도 현지인들과 생활하면서 사람

들이 전통적 방식인 작살로 고래 잡는 모습을 기록했어요.

척박한 환경 속 삶과 전통이 담긴 역동이랄까요. 작살을 맞은 고

래가 피를 흘리며 작살 줄을 매달고 배를 끌고가는 속도가 어마

어마해요. 당시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가는 파일럿 고래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장면이 잊히지 않더라고요. 마치 사람 같고, 저한

테 뭔가 이야기하는 것 같고,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그 경험 이

후에 아! 고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 바다에 사는 고래 이야

기를 하고 싶어졌고 다큐로 제작해야겠다고 다짐했죠.

고래가 죽는 모습을 마주한 강렬한 경험이 기록작업을 이끌었네요.

바다에서 고래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생활이 일상이 되었을텐데, 그 과정에서 깨닫거나 변화하게 된 것이 있나요?

제주에

제 한되어 있잖아요.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촬영하는 건 가능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제주에 내려와 집을 구하고, 4미터 길이의 30

마력짜리 작은 배도 구했어요. 처음에는 촬영하면서 남방큰돌

고래에 대한 배려를 하지 못했어요. 당시 저는 고래를 다큐 작업

의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거든요.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MARC)의 장수진 박사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고래를 대하

는 태도로 혼나기도 했고요. 촬영을 지속하면서 남방큰돌고래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휴식 시간을 갖거나 거리 유지를 하게

됐죠.

제주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남방큰돌고래를 마주친 적이 있어요.

제주에 남방큰돌고래가 몇 마리 정도 서식하나요? 평생 한 곳에 정착해서

산다고 알려져있는데, 먼 곳을 다녀오기도 하나요?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전세계에 분포한 남방큰돌고래 개체군 중

에서도 가장 숫자가 적은 편이에요. 현재 110~120마리 정도라 위

태위태하죠. 국내에는 제주 연안 지역에서만 볼 수 있어요. 섬

가까이에서 살고 있어서 1년 내내 관찰할 수 있죠. 또 남방큰돌

고래는 크고 작은 무리를 이루며 살아요. 우리처럼 사회적 관계

를 맺으며 살아가는 아주 특별한 바다 공동체죠. 남방큰돌고래

를 관찰하다보면 먼 바다로 빠르게 이동할 때가 있어요. 사냥을

나서는 거죠. 바다의 포식자들이 먹이를 하나씩 물고 연안으로

돌아오는 단체샷을 상상해보세요. 정말 멋집니다.

제돌이, 대포, 금등이처럼 동물원에 갇혀지냈다가 방류된 개체 외에도

이름을 가진 남방큰돌고래가 여럿이던데, 누가 고래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건가요?

99 98 99 98
이정준 ‘돌핀맨’ 다큐멘터리 감독 9화 낚싯줄에 엉킨 돌고래 구조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기록을 하면서부터에
고래는 물에 살고
육지에
만날
있는
정착한 건 2015년, 남방큰돌고래
요.
나는
사니
시간이

모양으로 개체를 구분하는 방식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데요. 국내에서도 연구자들이 제주 돌고래의 등지

느러미 목록표를 업데이트하고 있어요. 돌고래를 관찰하는 활동

가, 연구자, 그리고 저 역시 특정 개체를 구분하기 위해 이름을

짓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돌고래의

경우 핫핑크돌핀스,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연구자들과 함께

이름을 짓기도 해요. 예를 들면 꼬리없는 돌고래 오래, 낚싯줄에

엉켜 상처입은 돌고래 꽁이와 단이처럼요. 다들 돌고래를 관찰

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누가 어디서 나타났고, 어떤 상황인지 아

는 돌고래가 나오면 서로 상황을 공유하고 있어요.

제주 연안에 정착해서 사는 120여마리 남방큰돌고래가

선호하거나 회피하는 장소가 있나요?

제주 바다를 매일 돌아다니면서 촬영할 때, 동쪽에서는 한동 평

대와 하도에서 그리고 서쪽에서는 대정에서 남방큰돌고래를 많

이 만났어요. 제 경험과 기록, 연구자의 논문에서도 남방큰돌고

래가 선호하거나 회피하는 장소에 대한 부분은 동일해요. 바다

를 준설해서 새로 만든 시설물이 있으면 그 근처는 피하는 경향

이 있어요. 연안에 사니 지나가긴 하지만, 먹이를 먹거나 쉬거

나 자는 공간으로는 사용하지 않는 거죠. 국립수산과학원 고래

연구센터 김현우 박사의 모니터링 결과, 남방큰돌고래가 번식하

며 머물던 곳 주변에 한림항이 크게 확장되면서 이제는 그곳에

머물지 않는다고 해요.

2022년\1월,\등지느러미에\낚싯줄이\엉킨\새끼\돌고래\“단이”와\항상\곁을\지키는\엄마\(제공:이정준)

제주남방큰돌고래 서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에 양식장 문제

도 있어요. 양식장에 바닷물을 공급하는 취수관이 점점 바깥을

향해 증설되고 있지요. 비용이 드는데 계속 바깥으로 길게 빼는

이유는 연안 오염 때문이고요. 대정 바닷가 공사장에 취수관 파

이프가 쌓여있는 곳이 많아요. 양식장 폐수에는 사료 찌꺼기, 물 고기 대사과정에서 나온 물질이나 항생물질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어요. 드론으로 촬영해 보면 배출수 경계에 띠가 형성되어 있

어요. 고래들이 양식장에서 흘러나온 상태가 좋지 않은 손쉬운

먹잇감을 쉽게 취하려고 그 주변에 자주 모습을 보이지만, 정상

적인 상황은 아니지요. 야생에서 남방큰돌고래가 먹이사냥하는

모습을 보면 참 멋있는데 말이에요. 여과되지 않고 배출되는 농

약이나 각종 유해 물질 역시 제주 연안을 오염시키고 있죠.

남방큰돌고래를 매일 관찰하다보면 여러 에피소드가 있을 텐데,

가장 인상적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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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준설해서 새로 만든 시설물은 회피하는 경향 있어 이정준 ‘돌핀맨’ 다큐멘터리 감독 9화 낚싯줄에 엉킨 돌고래 구조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돌고래는 등지느러미의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인가요? 꼬리 없는 돌고래, ‘오래’가 제일 눈에 밟히기도 하고 마음이 쓰 여요. 오래는 ‘꼬리는 없지만 오래 오래 살아라’라는 의미로 해양

요트투어에서 관광객이 촬영한 영상에서 꼬리 없는

돌고래 모습을 처음 확인했는데 저는 그 때 러시아에서 귀신고

래를 촬영 중이었거든요. 촬영 마치고 제주로 돌아와 직접 찾아

다니다 8월 30일에 만났는데, 이 아이가 ‘오래’라는 것을 바로 알

았어요. 왜냐면 보통 고래는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내려가는데, 오래는 꼬리가 없으니까 몸을 더 틀어야하고 움직

임도 무언가 불규칙하거든요. 다른 고래처럼 수평의 꼬리가 없

으니까, 물고기처럼 꼬리 부위를 양옆으로 움직이고요. 오래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안도감과 감동을 느꼈어요.

오래를 촬영한 기록은 <오래의 바다>라는 작품으로 정리하고 있어요. 오래는 지금까지도 잘 살고 있어요. 제돌이, 오래, 턱이, 담이, 시월이 등 남방큰돌고래는 다양한 캐릭터와 자기 스토리

가 있어요. 저도 8년째 매일같이 기록중이니 데이터가 얼마나 많겠어요. 고래들의 모습을 기록하다보니, 고래와 사람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오래는 왜 꼬리가 없는 걸까요?

오래는 일직선이 아니라 지그재그 모양으로 꼬리 부분이 잘려 있어요. 아마도 날카로운 낚시줄에 걸려서 꼬리쪽 살을 파고들

어 훼손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요. 전문가들도 그렇게 보

고 있고요. 올해 어구로 인해 남방큰돌고래 새끼 두 마리가 희생

된 걸로 추정해요. 꼬리지느러미에 낚싯줄이 엉켜있던 ‘꽁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지난 4월 17일이에요. 당시 많이 수척하고

지쳐보였어요. 볼 때마다 꼬리에 엉켜있는 낚싯줄을 떼어내려는

듯 수면위로 꼬리를 내려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5월 3일 꽁이

는 보이지 않고 꽁이 엄마만 보이는 겁니다. 어린 개체라 늘 엄

마와 붙어 다녔던 아이거든요. 예감이 좋지 않았죠. 지금까지 꽁

2021년\2월\7일,\꼬리지느러미에\낚싯줄이\엉켜있는\새끼\돌고래\“꽁이”\첫\발견\(제공:\이정준)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생을 마감한 것이 아닐까 추정하

고 있어요. 주둥이에 낚싯줄이 감겨있던 ‘단이’도 지금은 안 보입 니다.

촬영 중이지만, 돌고래가 낚싯줄에 감겨있으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다큐 작업할 때 상황에 개입하지 않다는 원칙이 있지만, 그래도

너무 괴롭더라고요. 그래서 핫핑크돌핀스, 해양동물생태보전연

구소 멤버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낚싯줄에 걸린 새끼 돌고래 영

상을 공유하며, 이대로 두면 죽을 것 같으니 뭐든 해보자고 제안

했어요. 앞으로도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이고, 우리가 이런 상황에

대응할 수 있어야하지 않겠냐는 마음으로요.

제주 돌고래를 가장 오랫동안 지켜본 이들과 함께 ‘단단단 프로

젝트’를 진행했어요. 낚싯줄이 끊어지길(斷) 바라는 마음으로요.

관계기관에 연락해 해양수산부, 고래연구센터 등과 같이 회의

도 하고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펼치기 직전 상황까지 갔는데, 당 시 단이와 꽁이의 모습이 확인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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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준 ‘돌핀맨’ 다큐멘터리 감독 9화 낚싯줄에 엉킨 돌고래 구조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동물생태보전연구소에서 지어준 이름이에요. 2019년 6월 즈음, 당시 김녕의

기 찾아다녔는데 이미 죽은 것으로 추정돼서 프로젝트는 중단 되었죠.

돌고래들은 무리 중 하나가 죽을 경우, 어떤 특정 행동을 하기도 하나요?

2014년, 법환포구 앞에서 해조호 강용옥 선장이 돌고래 한마리

가 이미 죽어있는 돌고래 사체를 수면 위로 올려서 띄우는 행동

을 반복하고 있어서 해경에 신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사

체 곁에 머물며 해안으로 떠밀려가지 않게 등지느러미로 사체를

걸치고 밀어내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고요. 그 행동을 일주일간

계속했다고요. 가라앉으면 띄우려고 하고, 육지로 밀려들거 같

으면 물쪽으로 밀고, 먹지도 않고 계속해서 애도하듯이요.

그래서 당시 제주대-이화여대 돌고래 연구팀이 해경과 함께 사

체 인양을 시도했었죠. 그대로 두면 사체를 지키면서 먹지도 않

고 무리와 합류하지도 않은 채 탈진할까봐요. 등지느러미가 파

여서 알아보기 쉬운 모습의 그 암컷 고래는 시월이에요. 시월이

가 마치 장례를 치르는 듯한 행동을 직접 한 고래인데, 사체는

새끼일 가능성이 높아보여요.

상괭이 사체 224구 중 97.8%가 미성숙 개체

서해에서 한국 토종 돌고래 상괭이도 촬영하고 계시다고요.

상괭이가 안강망이라는 그물에 걸려 매년 수천 마리씩 죽어가는 상황을 담은

2019년 다큐 <상괭이가 사라진다>는 큰 이슈가 되었죠. 작품에 대한 소개 부탁드려요.

한국의 토종 돌고래 상괭이는 아시아 연안에서만 살아요. 특히

2019년\남해에서\드론으로\촬영한\쇠돌고래\상괭이\(제공:이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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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낚싯줄에 엉킨 돌고래 구조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제적 멸종위기종이에요. 제가 2018년부터 상괭이 기록 작업을

했는데, 주변에서 어려운 작업일 거라며 걱정했어요. 상괭이는

수줍고 조심성이 많아서 둘 셋씩 조용히 짝을 지어다니고, 곁을

주지 않아서 수중 생태도 거의 알려진 게 없거든요. 등지느러미

가 없으니 눈에 잘 안 띄기도 하고요. 그래도 애써 한 편 만들어

발표하고, 계속 관찰하다보니 여러가지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상괭이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안강망 어법에 의한 혼획(원래 목

적했던 어종이 아닌 다른 생물이 섞여 잡히는 것)이에요. 바닷속에 100

미터 이상 전개되는 엄청 큰 잠자리채 같은 모습의 그물이 안강

망인데, 이것을 고정해두면 조류 흐름에 따라 그물 안에 물고기 가 갇히거든요. 문제는 상괭이가 이 그물에 들어갔다가 갇혀 질

식해 죽는 거예요. 정부에서는 혼획으로 인한 상괭이 피해를 1년

에 1000마리 정도로 발표했는데, 제가 만난 어민들과 유통업 종

사자의 인터뷰, 증언, 기록을 토대로 추정하면 피해 규모는 연간

5000마리 이상으로 봅니다.

이전에는 상괭이가 혼획되면 고기로 유통됐는데 2016년 해양보

호생물로 지정되면서 혼획되면 신고해야하니까 어민들이 죽은

상괭이를 발견하면 바다에 그대로 버려요. 공식 통계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죠. 상괭이 혼획 피해가 대규모로 일어나니 정말 안

타깝죠. 작년 3월에서 6월까지 태안 일대에서 수거한 상괭이 사

체 224구를 확인한 결과 97.8%가 미성숙 개체였어요. 미처 다 자 라지 못한 어린 상괭이였던 거죠. 어린 상괭이들의 피해가 막심 한 걸 처음 확인한 겁니다. 멸종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으로 진

단하는 의견도 있는데, 심각한 상황이죠.

지금 서해에서 촬영 중인 작업도 상괭이 혼획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하는 건가요?

태안군에서\수거한\상괭이사체가\냉동창고안에\쌓여있다.\2019년\4~5월에만\5백여\사체를\수거 했다.\(제공:이정준)

상괭이의 혼획을 막기 위해 국립수산과학원에서 ‘해양포유류 혼 획저감장치’를 보급하고 있어요. 안강망에 들어온 상괭이가 살

아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탈출 장치인데요. 어민들은

상괭이가 빠져나가는 탈출구로 자신들의 어획물이 빠져나갈까

봐 걱정합니다. 하지만 ‘해양포유류 혼획저감장치’를 그물에 부

착해도 어획 손실률이 5%미만인 것이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어

요. 해마다 수 천마리의 상괭이가 사라지는 걸 막기 위해서는 어

민들의 협조가 절실합니다. 그래서 상괭이 탈출장치 효능을 입

증하는 작업을 서해수산연구소와 함께 하고 있는 겁니다.

작업이 힘에 부치지만, 그럼에도 꼭 해야하는 이유가 지금이 정

말 중요한 타이밍이거든요. 미국 정부가 내년부터 해양포유류를

괴롭히는 방식으로 잡은 수산물은 수입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선

언해서, 국내 수산물 수출 제한 때문에도 대책 마련이 논의되고

있어요.

이번 기회에 국내에도 상괭이나 남방큰돌고래같은

해양포유류를 보호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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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준 ‘돌핀맨’ 다큐멘터리 감독 9화 낚싯줄에 엉킨 돌고래 구조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한반도 서해와 남해에 가장 많이 사는데 개체수가 급감해서

안강망에서 수중 촬영 작업을 하는 게 힘들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더구나 물속에서는 무인카메라를 설치하는 게 어려울 텐데, 연속 촬영이 가능한가요?

안강망은 바닷속에 엄청나게 큰 그물이 있는 것이라 카메라 앵

글에 담는 작업이 쉬운 일은 아니에요. 조류가 휘몰아치고, 물속

에서 팔뚝이 터질만큼 힘이 들어가는 일도 많고요. 저는 상괭이

혼획 문제를 기록하기 위해 몇 백회 넘게 입수하고, 그물의 전체

구조를 이해하고 있어서 물속 작업이 괜찮아요. 그런데 다들 응

원하겠다고만 하고, 같이 작업할 사람이 없네요, 죽겠어요(웃음).

예전엔 카메라 발열과 배터리 문제로 12시간 기록하고, 배터리

교체를 위해 다이빙해서 들어가는 걸 반복했어요. 도중에 날씨

가 안 좋으면 물 속에 못 들어가서 어려움이 있었고요. 지금은

그물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열흘 동안 연속으로 녹화할 수 있

는 시스템을 제작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태

안 안면도 인근 물 속에서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죠. 안강망의 탈

출 장치 입구에 카메라를 고정했고, 수중 조명장치도 부착했어

요. 배터리, 인버터, 영상전송장치, 그리고 수면에 띄운 작은 부

이에 태양광 패널을 달아 계속 발전을 시켜 전력을 공급하고요.

어찌보면 완전 미친짓이라고 할만큼, 이걸 갖추는데 시행착오가

참 많았어요. 비용도 많이 드는 데다,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이 힘들어서 종종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라는 생각을 할 정

도였어요.

감독님의 집념 덕에 야생에서의 고래 모습과

위협받는 상황을 생생하게 볼 수 있어 감사하네요.

고래의 멸종을 막으려면, 그리고 우리 바다에 고래가 편히 살 수 있으려면

혼획을 막는 것 외에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한국은 고래를 보호하기 위한 체계적 장치와 규제가 없어요. 선

박 관광도 돌고래 50m 이내로 접근하지 말라는 고시 정도만 있 고요. 사람이 먼저지 무슨 고래 이야기를 하냐는 등, 해양포유류 를 대하는 인식 자체가 부족하기도 하죠. 제주남방큰돌고래의 경우 호주, 일본 등지의 계군에 비해 어린 개체 사망률이 높다고

해요. 통제되지 않는 관광선박, 인위적 시설과 사람들의 개입이

많아서 여러 측면에서 제어가 필요하죠. 제가 처음 본 제주바다

는 감태와 뿔소라도 많고, 길게 자란 모자반이 빽빽해서 숲속 같

았거든요. 지금은 시야가 좋은 날이 별로 없고, 냄새도 많이 나

요. 고래를 위해서, 그리고 사람을 위해서도 바다에 대한 인식, 정책이 많이 바뀌었으면 해요. 앞으로 바다를 연구하는 과학자

들이 많아지고, 조사 연구 시스템이 갖춰졌으면 하고요. 지금까

지처럼 저는 제 자리에서 영상으로 기록하고 세상에 알리는 일 을 계속하려고요.

꼬리\잘린\어린\돌고래 오래의\짝짓기\(제공:\이정준) 나는\살아서\당신을\ 만나고\싶어요\(제공:이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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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준 ‘돌핀맨’ 다큐멘터리 감독 9화 낚싯줄에 엉킨 돌고래 구조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지금 제주바다는 ‘혁명적’ 변화를 겪고 있어요

“호흡기를 물고 풍덩, 곧 바다에 뛰어듭니다. 가슴이 뛰고 호흡이 가빠집니다.

수면에서 호흡을 고릅니다. 몸이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곧 다른 세계로 진입

합니다.”

녹색연합 해양생태팀 신수연 팀장은 첫 다이빙의 순간을 담담하게 말했다. 무

섭지만 긴장되고 설렜던 순간,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미지

의 존재를 만나게 될까, 마음이 요동쳤다고.

녹색연합 사무실은 서울 성북동 한양도성 성곽 아래에 있다. 녹색연합 활동가

로 11년 차. 녹색에너지디자인, 평화생태팀, 정책팀에서 에너지전환, 군사기

지 환경오염 문제를 다루다 작년부터 해양생태팀장을 맡았다. 신수연 팀장은

지금 왜, 제주 바다로 갔을까.

10화

망가지는 바다를 직접 기록하기 위해 자격증을 땄어요

제주 바다 조사를 위해 직접 스쿠버다이빙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첫 다이빙의 순간은 어떠했는지요?

첫 다이빙은 사실 체험다이빙이었어요. 2015년 서귀포 범섬이었

을 거예요. 녹색연합은 당시 강정 활동가들과 제주해군기지 건

설 전후, 연산호 군락의 변화를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해군기지

완공 2~3개월 전이었고, 그동안 조사팀에 함께 했던 해마 다이

빙샵의 김진수 선생님께서 같이 바다에 들어가 보자고 제안하셨

어요.

체험다이빙은 본격적인 스쿠버다이빙 교육 전에, 말 그대로 체

험 삼아 공기통을 메고 호흡법을 간단히 배워 전문 가이드의 안

내로 바다에 들어가는 프로그램입니다. 첫 다이빙으로 들어간

범섬 바다에서 가슴에 달을 품고 사는 물고기, ‘달고기’를 봤던

기억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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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수 연
녹색연합 해양생태팀장
신수연 녹색연합 해양생태팀장

그때 이후, 본격적으로 스쿠버다이빙을 배우신 거네요?

네. 직접 물속에 들어가서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

무렵 저는 매년 한두 번 일본 오키나와에 출장을 갈 기회가 있었

어요. 바다를 매립해 군사기지를 확장하려는 정부 계획에 반대

하는 오키나와 주민들이 수중조사를 어떻게 하는지 배우고, 함

께 다이빙하는 워크숍에 참여할 기회가 마침 생겼거든요. 오키

나와로 떠나기 전, 제주시 도두항 인근의 어느 다이빙샵에서 급

히 혼자 스쿠버다이빙 자격의 첫 단계인 ‘오픈워터’ 자격증을 땄 습니다.(웃음)

매년 한두 번 오키나와를 다녀오셨다고요?

오키나와에서 듀공을 직접 보셨다고 하던데.

오키나와 시민단체와 환경, 평화 이슈를 공유하고 목소리를 내

기 위해 평화행진, 심포지엄 등 매년 연대행사를 함께 했어요.

오키나와 북동부 헤노코 앞바다 ‘오우라만(大浦湾)’은 여러 보호

구역으로

확대 이전하는 계획이 추

진중이었어요. 주민 반대 농성장이 4000일이 넘었던 것으로 기

억합니다.

녹색연합도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인한 연산호 군락의 영향을 조

사하고 있었는데, 오키나와 사례를 접했던 거죠. 오우라만 바닷

속에 공기통을 메고 들어가 주민들의 조사를 지켜봤어요. 무엇

보다, 푸른산호가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듀공을 직접 본 건 아니

고요. 실제 마주치는 건 정말 드문 일이라고 해요. 초식성 동물

인 듀공이 해초류를 뜯어먹고 지나간 먹이터의 흔적은 선명하게 봤어요.

오키나와 헤노코 주민들이 군사기지 확장에 맞서 오우라만 바다를 지키고

기록하는 방식은 어땠나요?

매립 예정지인 오우라만에서의 수중 조사와 기록 방식이 인상적

이었어요. 녹색연합은 제주해군기지 건설 전후 연산호 변화상을

꾸준히 조사했지만, 조사데이터를 분석할 전문가를 한국에서 찾

기 어려웠거든요.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민감한 사안이기에, 특

히 국가기관 연구자들의 검토 의견을 받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오키나와 사례에서 도움을 받고 싶었습니다. 오우라만에 서식하

는 다양한 해양생물에 대한 기록, 해양 매립과 군사기지 건설이

산호충류, 갑각류, 해양포유류 등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일목요연

하게 리플렛에 정리돼 있었어요. 수중 조사 대상지의 수직, 수평

의 변화상 조사 방식을 배우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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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연 녹색연합 해양생태팀장 10화 지금 제주바다는 ‘혁명적’ 변화를 겪고 있어요
coral)의 주요 서식지이며 돌산호가 발달한 전형적인 아열대 바 다입니다. 특히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해양포유류, 듀공 가족 3마리가 살고 있어요. 오키나와 기노완시 한가운데 후텐마 미군기지가 있는 데, 오우라만을 매립해 후텐마 기지를
중첩된, 생물다양성이 뛰어난 곳이에요. 푸른산호(blue
제주\제2공항\반대\수중\피켓팅하는\신수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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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헤노코\‘오우라만’\공동\조사\장면,\푸른\산호가\매력적이다.

첫\다이빙의\기억

바다의 변화상을 모니터링하고 기록하는 주민들, 조사방식을 주

민들에게 알려주고 데이터를 확인하는 해양 전문가, 바다를 지

켜야한다는 목소리를 세상에 퍼트리는 활동가와 법률 전문가 등

모두 인상적이었어요. 일본자연보전연맹의 아베 마리코 박사를

몇 년만에 다시 만나기도 했어요. 워크숍을 통해 산호 생태와 분

류에 대해 배우고, 오우라만 바다 조사에 함께 했습니다. 아베

마리코 박사는 2014년 제주해군기지 주변 산호 변화에 대한 심

포지엄에 오셔서 처음 알게 됐고요.

보존지역? 레토릭에 불과...

바닷속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중

2014년부터 녹색연합 제주 연산호 조사활동에 합류했는데, 신수연 팀장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요?

2012년에 서귀포 강정마을의 구럼비 해안이 발파됐고, 제주해군

현장 스케치 사진을 찍었습니다. 공기 방

울을 남긴 채 조사팀이 바닷속으로 사라지면 그들이 다시 이쪽

세계로 돌아올 때까지 약 35~40분 동안 배에 앉아 한라산의 능

선과 범섬 그리고 해상 공사 현장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스쿠버다이빙을 배운 이후에 조사팀과 같이

강정등대, 서건도에 들어가 보셨지요?

다이빙을 하며 직접 들어간 바다는 조사팀이 찍은 사진, 영상을

볼 때와 전혀 다른 느낌이었어요. 무중력에 가까운 상태를 경험

했어요. 눈 앞에 펼쳐지는 바닷속 생명은 각자 자신의 리듬으로

꼼지락거렸어요.

호흡이 안정될 때 바닷속을 날아다니는 기분이 들더라구요. 제

주해군기지와 무관하게 바다가 주는 황홀경에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강정등대와 서건도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공사로 인해 연

산호 서식지 훼손이 상당한 상태였어요. 구럼비 바다, 원형의 바

다를 공사 이전에 보지 못한 아쉬움이 컸습니다.

최근 많은 변화로 ‘원형의 바다’가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겠네요.

최근에는 서귀포 문섬과 범섬 조사를 자주 다닌다고 들었습니다.

‘기후위기’, ‘생물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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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연 녹색연합 해양생태팀장 10화 지금 제주바다는 ‘혁명적’ 변화를 겪고 있어요 기지 방파제를 쌓기 위해 케이슨을 바다에 투하했어요. 각종 보 호구역으로 중복지정된 강정바다의 연산호 군락도 직접적인 영 향을 받기 시작했어요. 녹색연합은 계절별 연산호 정기조사를 했고, 저는 배 위에서 조 사 위치를 기록하거나
‘해양보호구역’을 키워드로 제주 남쪽 바다를 살피고 있어요. 제주 남쪽 바다는 해양보호구역의 핵심 이자 기후위기의 최전선 같은 곳입니다. 서귀포와 송악산 앞바 다는 천연기념물 제442호로 지정된 ‘제주연안연산호군락’이 있

1\\제주해군기지\산호조사를\위해\마이크로네시아에서\온\폼페이\해양환경연구소\소속의\사이먼\엘 리스,\조사를\위한\방형구\틀을\만들고\있다

2\\2014년\제주\연산호\국제심포지엄과\현장\답사에\참여한\전문가들과\녹색연합\활동가\등\현장\ 조사팀\모습.\일본자연보전연맹의\아베마리코,\폼페이\해양환경연구소의\사이먼\엘리스,\해마다 이빙\대표\김진수,\해조호\선장\강용옥,\미국\어류\및\야생동물관리국\짐\마라고스,\정은혜\작가,\ 녹색연합\활동가\등

천연기념물, 유네스코 생물권보전

지역,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1a(엄정보호지역) 등 겹겹의 보호장

치로 지정된 지역이고요.

그런데 레토릭에 불과합니다. 말뿐이지요. 바닷속 기후위기의

징후는 너무나 급격하게 나타납니다. 최근 녹색연합은 서귀포

관광잠수함이 문섬 수중 암반과 산호를 훼손한 현장을 보도하기 도 했고요. 낚시나 어업의 영향도 살피고 있어요. 문섬과 범섬의

개발과 이용 현황, 산호 서식지, 기후변화의 징후들을 차근차근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주 바다를 기록하는 시민과학자의 역할에 관심이 많다고요?

자연생태분야 연구기관의 전문가들은 인력과 역할에 한계가 있

어요. 몇 명되지 않는 연구자가 제주 바다의 산호를 모두 조사할

수도 없고요. 아마추어 다이버의 기록이 세상을 바꾸고, 제주 바

다를 보존할 수 있다고 믿어요. 학자나 보고서의 기록이 아니더

라도 돌산호 종류가 확연히 늘었다는 것은 경험적으로도 알 수

있어요.

녹색연합 해양팀에서는 즐거운 레저활동인 ‘펀 다이빙’을 넘어

‘바다를 기록하는 시민과학자’로서 조사 다이빙을 할 수 있도록

‘산호학교’를 기획, 운영하고 있어요. 이번 7~8월에 산호 전문가

들과 함께 1기 산호학교 프로그램을 열었고요. 70명의 참가자들

을 대상으로 4회의 이론 교육을 하고, 그 중 선발된 8명의 참가

자들과 문섬, 범섬 바닷속에서 조사 키트를 이용해 기록하는 연

습을 했어요. 앞으로 조사 데이터를 축적, 활용하는 방법을 논의 하고 있고요. 지난해에는 제주 바다 산호에 관한 대중서도 내셨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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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연 녹색연합 해양생태팀장 10화 지금 제주바다는 ‘혁명적’ 변화를 겪고 있어요
어요. 서귀포 문섬과 범섬은

1\\시민과학자를\양성하는\산호학교\현장교육\참가자\모습

2\\산호학교\현장교육\모습

3\\서귀포\문섬\바다에서\만난\산호,\긴가지해송\\\

170종 중

120종의 산호가 제주 바다에 살고 있는데, 알고 있는 사람이 별

로 없어요. 우리 바다의 기후위기, 생물다양성, 해양보호구역 등

을 알려줄 키워드가 산호라 생각했어요. 바다 에세이와 산호 도

감, 다이빙 현장 지도 등 정보와 정서를 모두 담은 책입니다. 만

일 <ㅈㅈㅅㅎ> 2쇄를 찍는다면, 산호 조사 시민과학 방법론이

포함된 증보판이 나오면 좋겠네요. 이 책이 제주 바다 시민과학

안내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수연 팀장님은 특별히 애정하는 바닷속 산호 친구가 있나요?

서귀포 문섬에서 만난 ‘긴가지 해송’이요, ‘바다의 소나무’라고 1

년에 1cm밖에 자라지 않아요. 바닷속 새하얀 긴가지해송을 보니

제 마음을 건드리는 무언가 있었어요. 다음 다이빙 때도 그 모습

그대로 만나자고 인사했어요. 문섬을 가면 생각나는 친구에요.

생태운동가로서 활동하는 동안, 다양한 질문을 스스로 하셨을 텐데, 제주 바다를 보며 어떤 질문을 하는지요?

이문재 시인은 ‘세면대와 화장실에서 바다를 떠올릴 수 있다면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는데요. 활동하면서 결국 배운 것은

121 120 121 120 신수연 녹색연합 해양생태팀장 10화 지금 제주바다는 ‘혁명적’ 변화를 겪고 있어요 네, 산호 연구자, 수중사진작가, 생태 예술가, 녹색연합 활동가 가 함께 <ㅈㅈㅅㅎ>라는 책을 냈어요. ‘제주산호’의 초성을 따 서 제목을 지었는데요. 우리나라 전역에서 발견된 산호
내가 먹는 음식, 내가 쓰는 전기, 내가 마신 물, 내가 버린 쓰레기 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까하는 ‘연결’에 대한 질문과 인식이 낙담하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걸 한다

에요.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저에게 특히 부족한 감수성인데, 조금씩

배우고 있어요. 전국적인 가뭄이라고 하지만 도시에서는

못 느

껴요. 제주 바다의 기후위기 징후는 먼 이야기처럼 들리고요. 나

와 자연과의 연결성을 촘촘히 살펴보면서 함께 존재하려고 한다

면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주 바다 곳곳을 다니고 있는데, 직접 확인한

제주 바다 기후위기의 징후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지난해 제주 바다 조간대(썰물에 물이 빠져 드러나는 경계지역) 모든

지역을 조사하면서, 해조류가 사라지고 사막화되는 바다를 봤습

니다. 암반 조간대에 해조류가 싹 사라지고 하얀 석회조류로 뒤

덮인 모습이요. 해녀들과 주민들에게 옛 바다의 모습에 대한 이

야기도 들었어요.

제주 바다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바뀌는 천이의 과정이 아니라 인

위적이고 급격한 혁명적 변화를 겪고 있어요. 예측하기 쉽지 않아

요. 중앙 정부나 지자체도 꼼꼼히 조사하지 않고요. 일례로 바닷

속 산호는 수온 상승으로 ‘개체수도 많이 늘었고 서식지도 확장되

었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어떤 산호는 서식지를 북

쪽이나 수심 깊은 곳으로 옮기지만, 어떤 산호는 급격한 수온 변

화에 죽어버려요. 돌산호 등 아열대 산호가 늘고 있지만, 서식지

경쟁에 밀린 연산호 종류도 있어요. 변화가 다이나믹해요.

기후위기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기후변화로 인한 징후는 대자연의 큰 변화이기 때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흔히들 말합니다. 비관적이고 무기력하

지요. 정말 맞을까, 스스로 질문해요. 첫 다이빙, 바다에 처음 잠

1\\해조류가\사라지고\바위가\석회조류에\뒤덮인\갯녹음(바다\사막화)\현장,\ 형제섬이\보이는\안덕면\사계리\지역 2\\갯녹음\돌멩이를\들어보이는\신수연팀장\\\\

수할 때, 고요히 깊숙이 들어가던 마음으로 제주 바다를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잃어버린 옛 바다의 모습을 찾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질문도

합니다. 낙담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요. 현장을 살펴보고 기록하고 세상에 ‘말걸기’를 하고 싶어요.

동료 활동가와 함께 제주 바다에서 마주한 존재의 이름과 소식

을 우선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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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연 녹색연합 해양생태팀장 10화 지금 제주바다는 ‘혁명적’ 변화를 겪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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