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녹색시민과 녹색 삶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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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 녹색시민의 시민됨을 위하여』

제3회 녹색시민과 녹색삶 ○ 일시 : 2015년 7월 30일 5시 ○ 사회 : 박영신 (연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녹색교육센터 이사장) ○ 발제 : 유정길 (지혜공유협동조합 이사장) ○ 토론 : 한문순 (핵없는 세상 회원) ○ 토론 : 육경숙 (녹색교육센터 소장)

유정길 (지혜공유협동조합 이사장) 녹색운동에서 시민이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면 너무 뻔한 얘기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하 지 않겠습니다. 녹색적 삶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전환이라고 하는, 이전의 개혁, 혁명, 변혁 등, 이것 보다 더 큰 규모의 전환을 강제하는 분위기로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개벽이라는 말을 썼는데 이것 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전환은 이것에서 저것으로 변화하는 것인데 이것에 대한 설명과 시민이 어 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구태여 환경, 공해보다 녹색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환경운동에서 말하는 녹색이 아닙니다. 단순한 대 증요법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가다보니 등장한 것이 환경문제였습니다. 사회의 문제 중 가장 약한 부분이 환경문제로 드러난 것이지요. 환경 자체에 주목하는 것을 환경개량주의라 하는데 현상만 취급하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환경운동보다는 생태주의 라고 칭하는 것이 맞을테고 이런 방향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녹색은 환경운동을 포함하지만 이는 10%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녹색적인 관점으로 뒤집는 것이죠. 녹색교육, 녹색복지 등. 경제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녹색이라는 것이 환경운동 을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전환, 근본 바탕에 대한 회의를 통해 변화 시켜야 합니다.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보면 환경운동의 메시지 첫 째는 발전이라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입 니다. 발전과 성장의 기본적 척도는 자원이 무한하다는 가정 하에 지금이 자본주의 시스템이 설립되었 는데 하나뿐인 지구라는 말이 있듯이. 잘못된 패러다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궁극적으로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자원 무한주의를 유한주의로 전환해 경제적 등 모든 관점을 새롭게 접근해야 합니다. 자원무한주의라는 잘못된 패러다임에서는 미국처럼 모두가 잘 사는 방향을 지향했습니다. 두 번째는 민주주의 문제. 민주주의라는 것은 인간중심적, 우리끼리 합의를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말이 갖고 있는 메시지는 미래세대의 가능성과 권리를 훼손시키지않아 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결정하면 땅을 헤치고 강을 개발할 수 있는데 지속가능 발전과 생태주의가 전하는 것은 과연 당신들이 그런 권리를 갖고 있는가. 땅이라는 것이 인간들뿐 아 니라 모든 생물들이 공유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의 민주주의는 현세대 중심주의입니다. 미 래세대와 생명을 고려하지 않고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합의만 중요시합니다. 지금의 민주주의 가 완벽한가 물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노예제 폐지, 여성 참정권으로 진화 해왔는데, 여성 참정권, 노예제 폐지 등으로 진화해 왔는데 앞으로도 진화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세대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미래세대를 생각하는 민주주의로 변화해야 합니다. 셋째. 발전과 행복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생산을 누가 많이 하고 많이 소비 하는냐로 부자를 규정짓고 그런 나라들이 잘 사는 나라라고 규정했습니다. 이것에 대해 GNH를 새롭 게 제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생산에 척도를 둔 GNP를 폐기하고 새로운 척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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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학교를 들어가고 친구를 만나는 것도 계산적인 관점이 들어가는 사회입니다. 이윤 동 기로 사람관계를 만들려고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생산을 중심 으로 한 메카니즘이 들어 있습 니다.

이렇게

라이프스타일이

만들어졌다. 근대 사회에는 모 든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고 봤 지만, 현재는 모든 생명이 연결 되어 있다고 봅니다. 어떤 생물 의 멸종이 인간의 삶에도 영향 을 끼친다는 사고를 해야 합니 다. 기존 환경을 파괴시킨 것은 모든 것을 나누었기 때문인데 지금의 임금노동이 중심인 현 경제시스템도 그렇습니다. 빙산을 보면 빙 산의 10분의 1은 수면 위로 나머지는 수면 아래에 있다. 우리가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지배당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출근할 때 아이가 웃어주는 것, 지나 가는 사람이 친절히 대해주는 것 등등 이런 것들은 돈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돈을 받지 않은 노동들이 우리 삶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림자노동이라는 말이 있는데, 현재의 임금 노동은 숨겨진 어마어마한 부분의 무불노동 위에서 보여지는 부분이다. 주부의 가사노동, 친구의 고민 상담 등등 이런 모든 것들을 화폐 환산하면 얼마나 많은 액수가 될지 모릅니다. 전환이 필요한 시기인데 어떻게 할 것인가? 무력을 통해 새로운 혁명정부를 만들 것인가? 혁명을 통 해 정부를 바꾼들 전환이 이뤄질까? 생각해 봅니다. 전환의 과정에는 미래 씨앗들이 있어야 하는데, 혁명적 방법으로는 비폭력 사회를 만들 수 없습니다. 저는 틈 전략, 중심이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촘촘한 자본주의 영역에 무수한 비자본주의 영역들이 있는데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 틈을 벌리고 중 심이동을 시켜가야 합니다. 5% 정도의 중심만 이동을 하면 충분합니다. 5%까지 가는데 50년이 걸린 다면 50%까지 가는데 15년밖에 안 걸릴 것입니다. 지금의 녹색사회 기본 흐름은 틈 전략, 중심이동 전략 입니다. 중심이동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시장 영역 속의 무수한 비시장영역을 격려하고 활성화 시켜 사회의 주류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귀농본부에서 농지 트러스트 일을 하고 있는데 농사 짓는 사 람이 땅을 가져야 하지만 대부분의 농지가 농사짓는 이가 돌아가신 뒤 그 자식들의 소유로 되어 있습 니다. 현재 귀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농사지을 땅이 부족합니다. 유산 받은 땅을 농사지을 사람에게 위탁하거나, 농지하향비율제 등을 통해 농지의 비율이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하는 활동 등이 필요합니 다. 스위스는 2013년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투표를 했고 200만 원 정도가 통과되었다 합니다. 과거 근대적 사회 속에서 있던 것 중 탈근대적인 것들을 발견하고 격려하고 키워서 주류화로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과거처럼 과격하게 반대하는 운동은 아닙니다. 정부를 뒤집는 혁명이 아니라, 90년 이후 운동은 지금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감시하고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운동으로 변했습니다. 지금 이후의 운동은 위기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는 비판 운동과 더불어, 한편으로 시민의 실천적 영역에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항 운동과 대안운동이 함께 진행되어야 합니다. 무 엇을 하지 말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어떤 것을 하자, 어떤 방향으로 가자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무 엇에서 무엇으로 바꾸는, 전환하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과거의 저항 운동은 소수의 지사, 운동가들의 운동이었다고 보면, 이제 마을만들기 운동이나 협동조합 이런 것은 우리사회가 어디로 가자하는 대안 운동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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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를 저항운동으로 본다면, 냉각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대안운동의 시각은 대단히 넓어졌습니 다. 제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운동권이 아니었지만 귀농이나 마을 만들기에 대안운동에 직간접적으 로 참여하고 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환은 단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서 운동이 전개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항은 몇몇 소수의 탄압이나 결기로 움직일 수 있지만 대안운동은 많은 시 민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저항운동은 지사적 운동이지만 대안운동은 오래할 수 있고 아름다운 운동입 니다. 미움과 증오를 조직해서 하는 운동보다 희망과 행복이 동력이 되어 하는 운동에 시민들이 참여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전환을 하기 위한 시민의 참여가 필요하고 이것에 발을 딛으면 저항과 감시하는 운동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전환을 해야 하는가. 노동을 전환시키는 운동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지불노동에 대해선만 이야기하는데 협동조합 같은 대안적 지불노동도 있습니다. 또 부불노동이 있습니다. 사람의 삶은 무수히 많은 다른 사람이 존재해 야만 내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사할 때 덕분에 잘 있다는 말을 하는데 무수한 많은 사람들 이 주변에서 그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있고 바람이 있고 태양이 있고 새가 울 고 벌레가 울고 비바람이 있는 덕분에 우리가 생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개인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무수히 많은 은혜를 받고 있기 때문에 내 삶은 그런 은혜를 값는 형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불노동보다 부불노동이 많이 확대되어야 합니다. 공유하는 거죠. 가급적이면 돈에 의존하지 않고 돈 에 아닌 것에 의존하는 삶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자본은 돈 주의라는 뜻입니다. 돈 중심의 사회라는 말이죠. 어차피 한국 사회도 경제성장 저성장 시대에 들어섰고 전세계적으로 자원의 한계 때문에 고도 성장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럼 돈에 의존하지 않는 삶은 무엇이 있을까. 사람의 관계성을 고도화 시키는 방법에서 예전에 계, 두레, 향악 같은 게 있어서, 가난했지만 이런 걸로 협력하고 협력적 관계 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돈을 적게 벌어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월급이 적으면 월급을 높이는 것이 맞냐, 저는 그 방향은 좋은 방향은 아니다 라고 생각합니다. 운동단체의 발언권이 확대 되는 것 은 돈을 적게 받기 때문입니다.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서 고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월급이 많아지면 그런 말을 들을 이유가 없습니다. 언론이 주목하게 하는 목소리가 되고 객관성과 공정성이 있다고 평가하게 됩다. 가난한 간사들끼리 살 수 있는 방안을 같이 고민해야 합니다. 정토회는 돈이 없으니까 방법을 생각합니다. 결혼식을 하면서 최대한 하객을 모아 가급적 축의금을 개별적으로 달라 고 해서 그 돈을 모아서 비닐하우스를 사서 법륜스님이랑 같이 살았습니다. 냉장고 하나가지고 일곱, 여덟 명이 같이 살았습니다. 비닐하우스에 보일러만 잘 들어왔기 때문에 여름엔 더워서 늦게 들어가 고. 운동단체에서는 돈을 못 번다고 생각하고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온갖 방법을 구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회의 흐름들도 이런 방향으로 확대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빈 방을 민박집으로 하고 우버 택시 같은 것이 나오는 것도 일정정도 상업적이긴 하지만 공유의 형태입니다. 아이들 빨리 크니까 옷도 공유하고 장난감도 공유하고 책도 공유하고 요즘에 예복도 공유하잖아요. 셰어하우스는 젊은 사람들이 집을 같이 구해서 같이 살지요. 그다음에 켈렉티브 하우스라고 몇 가족이 같이 집을 구 입해 공동식사 등을 하면서 같이 살기도 하고 성미산같은 마을에선 코하우징이 세 채 지어졌습니다. 저녁밥을 하는 분을 구해 공동의 저녁식사를 마련해서 밥하는 시간도 줄어들고 아이들도 같이 지냅니 다. 이것이 환경운동은 아니지만 녹색적 인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유의 가치가 넓어지는 형태로 달라지고 있고 별별 희한한 것들이 공유가 되고. 이런 것들의 주체가 되는 것은 일반 시민들입니다. 시민들은 저항을 조직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아하고 아름다운 삶을 조직하는 방법으로, 개인만 생각하 는 삶에서 전체를 생각하는 삶으로 의식이 확대되면서 시민의식이 생기고, 시민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과거 변혁운동과 감시하는 운동은 분노하고 깨어 있는 시민들이 운동주체라면 그 사람들은 강력한 분 노의 대상이 있지 않으면 조직되기 어렵습니다. 제가 볼 때는 그런 방향의 시민운동방향보다는 행복이 중심이고 가치가 중심이고 그 삶을 통해서 내가 즐거워해야하는 방식으로 시민운동이 활동하고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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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방향 이것이 장기적으로 오랫동안 갈 수 있는 방향입니다. 비자본적인 기업, 대안적 자본주의적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다 봅니다. 시장거래도 있지만 비시장 거래가 있습니다. 비시장거래가 뭐냐. 아버지가 유산을 남겨줄 때 그냥 줍 니다. 선물경제같은 거죠. 재산도 사유재산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재산을 확대하는 방식이 필요 합니다. 나대지, 시유지 이런 것들을 엄밀히 말하면 정부 소유가 아닌데 지자체가 이걸 팔아서 수입원 을 잡으려고 하는 것 이런 것을 막아야 합니다. 공유의 공간과 공유의 공간들을 개인들에게 판매하지 못하게 하고 공유의 재산으로 하는 것. 공유화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국립공원개발을 반대하 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공유의 재산과 자산을 좁히지 않게 만들고 개인들에게 사유화 하지 않 도록 하는 것. 이런 것도 굉장히 중요한 대안적 시장금융 같은 것입니다. 금융 역시 공유의 가치에 투 자해야 합니다. 미래세대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지요. 이를테면 녹색연합에 사람들이 많이 후원하는데 노르웨이나 스웨덴 같은 곳은 세금을 많이 징수해서 이것으로 사회적 공공활동을 합니다. 사회가 발전 할수록 공공 영역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아진다면 국립공원을 지키는 운동이나 이런 것 역 시 국가가 하면 좋은 것이잖아요. 어쨌든 노동과 기업과 시장과 재산과 금융과 이런 사적 영역을 뜯어내는 그런 것들의 지불노동을 부 불노동으로 확대하고 자본적 기업을 비자본기업으로 확대하고 유산을 남기지 않고 농지트러스트로 기 부하게 한다든가 이렇게 전환을 하는 운동이 중요한 운동이 라고 생각하고 앞으로의 운동은 이러한 방향으로 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활동을 통해 내가 행복해야지 남다른 결단을 하게 하는 사람을 보면 존경할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살지는 못하겠어 하게 됩니다. 운동을 확대시키는 것은 나 같은 사람이 많아져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려면 내 삶이 행복해져야 합니다. 그런 행복의 기운으로 시민들이 무 수히 많은 대안운동에 참여하고 그러면 저항운동으로 확대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안운동이 활성화 되 어야 저항운동의 방향성을 세울 수 있습니다. 저항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대안운동의 방향성이 점검이 되면 저항운동을 의미 있는 방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어쨋든 녹색이라는 것이 환경운동하는 녹색이 아닌 녹색적 사회를 위한 전환을 도모하는 것이고 여기서 시민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녹색적 가치를 확장시키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녹색연합이 이를 인큐베이팅 하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한문순(핵없는 세상 회원) 정명희 선생님께서 제게 부탁하시면서 하신 말씀은 ‘핵없는세상’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면서 녹 색의 가치나 태도가 활동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시민으로서 갖는 가치와 의미가 운동에 어 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대해 경험을 나눠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유선생님은 큰 틀에서, 추상적인 원 리 차원의 녹색의 가치와 태도, 함께 하는 환경철학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니 저는 제가 참여해서 함께 하고 있는 탈핵운동 경험을 가지고 조금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핵없는세상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 거라 간단히 소개하면요, 기독교평신도공동체 예람교회가 모 태가 되어 만들어진 시민단체예요. 후쿠시마 이후에 그리스도인으로 반성과 고백을 하면서 기독교 시 민으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자각에서 단체설립을 준비했죠. 정신건강사회운동을 펼치는 여성단체 알트루사 여성상담소가 참여하고 숭실대 교수 외 관계자 몇 분이 함께 참여해서 일반시민이 참여하는 단체가 되었습니다. 녹색연합과 다른 점 가운데 하나는 월급받는 스태프 중심의 시민단체가 아니고 시 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봉사로 굴러가는 시민단체라는 점이에요. 직업적 활동가가 존재하지 않습니 다. 사무실도 없고요. 그래서 운영비가 그다지 들지 않습니다. 운영비가 많이 들지 않으니 공동행동 분담금이나 연회비를 아주 잘 내는 단체입니다. 형편이 어려워 못 낸다는 단체들도 꽤 되거든요. 활동 이 별로 없으니 그렇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활동을 무리하게 벌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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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 하니까요. ‘할 수 있는 만큼’에 대한 저마다의 판단은 주관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자기 변화에 따라 그 판단이 달라집니다. 교우들의 경우, 기독교 시민으로 서의 자의식이 어느 상태인가에 따라 에너지팀장을 맡는 것이 ‘할 수 있는 만큼’이기도 하고 월례시민 모임에 나가는 게 ‘할 수 있는 만큼’이기도 하지요. 시민합창을 할 때는 나올 수 있지만 자원활동가회의에는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할 수 있는 만큼’이기 도 합니다. 당연히 시민으로서의 자의식이 커질수록 운동에 참여하는 결의수준이 높아져 가는 거죠. 녹색의 가치는 시민으로서 자의식에 눈을 뜨면서 관심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 교회는 예배 후에 설교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데요. 자기 삶을 설교와 연관지어 솔직한 고민과 질문을 나누는 시간입니 다. 정답이 따로 있다고 전제하지도 않고 설교초점을 맞추어 가급적 고민하려고 하지만 자기대로 떠오 르는 자기 이야기와 연결 짓는 게 핵심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저가 보기에 이 시간이 기독교 시민으로 서 자의식을 계속 성장시켜 가는 중요한 훈련 시간입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20-30명 남짓 서로 아주 다른 남녀노소 다양한 계층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눠요. 다 다른 생각과 반응이 오가는데 그 안에 서 개개인이 자극 받는 게 아주 크지요. 그러다보니 저도 십 년 넘게 교회에 나가고 있지만 교우들의 변화를 꽤 보는데요, 처음엔 내가 시민이라고? 거의 이런 식의 의식상태였던 이가 지금은 핵없는세상 행사를 할 때 탈핵연극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배우가 되어 있기도 합니다. 시민의식이 생기니까 자기 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스스로 기획해서 참여하는 것이죠. 한 분은 알트루사에 나온지 십 년이 넘은 분인데, 굉장히 알뜰하고 짠순이에요. 회원등록을 하지 않고 회비를 내지 않았어요. 그런데 십 년 만에 시민단체 회원으로서 자의식을 갖고 자기 결단을 하고 스스 로 회비를 내기 시작했죠. 핵없는세상에도 부부가 같이 꼬박꼬박 일년 치 회비를 한꺼번에 냅니다. 십 년이 걸린 일이지만 저희는 의미 깊은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게 변화하기까지 동료들과 갈등도 있고 활동가들의 설득과 본인의 거절이 수시로 일어나기도 했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그 분의 몫이라 저희는 기다리죠. 개인의 성장을 강요할 수 없고 억지로 무리해서 몰아갈 성질의 것도 아니니 까요. 그런 점이 상당히 신뢰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나를 기다려주는구나, 내가 참여할 수 없는 나 의 이유와 상태를 용납하는구나, 그런 여지를 갖는 건데요, 그렇다고 가능성을 버리고 포기하는 건 아 니에요. 알트루사식으로 표현해보자면 이래요. 마음에도 발달이라는 게 있거든요. 엄마 뱃속에서부터 몸이 계속 자라고 변화해가듯이, 마음도 자라는 것이거든요. 어린 아이가 처음부터 일어나 걷는 게 아 니라 한동안 누워 있다 뒤집고 기고 걷고 긴 시간이 걸려 그 과업을 달성하잖아요. 마음도 그런 과정 이 있습니다. 양육자하고 갓난쟁이 시절에 신뢰감을 쌓은 바탕 위에 한 두 살 시기엔 자기만의 독자성 을 형성하고 그 힘으로 4살을 전후해 자율적으로 놀면서 사회적 관계와 세상을 학습하고 그 다음엔 학교 들어가 훈련하고 청소년시기엔 자신을 실험하고 자기정체성을 확립해 가면서 그 위에서 청년기 에 친밀한 관계를 겪으며 돌보고 책임지는 영역이 발달하고 하는 쭉 그런 평생의 발달과정이 있는 것 이죠. ‘시민’으로서 자의식을 갖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성숙한 책임감을 갖는 것은 이렇게 긴 시간 마 음이 발달한 결과물인 것이죠. 보통 심리발단단계라고들 해요. 이 가운데는 도덕성발단단계라는 것도 있죠. 이 발달의 원리들을 보면요, 전 단계의 발달이 다음 단계 의 발달에 영향을 미칩니다. 뒤집기를 거치지 않고 바로 걷는 아이가 없는 것처럼요. 그런데요, 이런 마음의 발달은 우선 양육자가 ‘마음’에 대한 섬세한 이해가 있어야 아이가 적절하게 돌봐져서 아이 마 음의 성장이 이루어지거든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나면요, ‘할 수 있는 만큼’이라고 했을 때, 그게 그 냥 너 할 수 있는 만큼 쉬울 대로 해, 이런 의미가 아니라, 그 사람의 발단단계를 인정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나오는 방침인 것이에요. 몸은 어른으로 자랐지만 심리적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우리 사회에 서 부지기수거든요. 보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영역이 중요하지 않은 물질중심의 문화라서 부모님들이 대개는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데 초점을 두고 양육을 하시니까 심리발달이란 영역은 거의 버려지고 방치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몸의 나이에 걸 맞는 마음 나이에 이르지 않은 어른이 부지기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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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를 보세요. 어른 같아 보이세요? 그런데 박근혜만 이 아니라 우리나라 상당수의 성인이 제대로 성인이 되 지 못했다는 걸 저희는 대한민국의 현실로 보고 있어요. 우리나라 시민의 맨얼굴이랄까요? 교회가 되었든 알트루 사가 되었든 이런 현실을 고려하고 있는 거지요, 저까지 포함해서요, ‘우리는 시민으로 자라본 적이 없다’, 심한 발언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냉정히 말해 저희가 보는 건 그렇습니다. 이데올로기 교육이 시민을 만든다 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윤형씨 사례를 보세요. 그게 폭력 사건으로 두드러지게 드러나서 그렇지, 우리도 다 그 자 장 안에 있다고 봅니다. 말로는 시민이라고 하고 의식선 상에선 시민인 줄 아는데 실제 내용은 ‘시민’으로 살지 못해요. 그걸 자각하지 못할 뿐이죠. 현실을 그렇게 보니 까 아직 자기중심적인 동기로 칭찬을 얻기 위해 착한 일 을 해야 하는 아이 단계의 성인이 가족을 책임지고 공동 체를 책임지는 시민으로 갑자기 성장하는 일은 거의 없 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 거치지 못한 과정을 교회와 알트 루사에서 순조롭게 거치며 다시 성장하도록 돕는다는 방 침 속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것이죠. 탈핵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대단하고 중차대한 사회운동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운동은 사람이 하는 것이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발현되는 내용이 다르다는 점에 대해 이해받고 용납 받아야 하는 것, 기다려줘야 하는 게 많거든 요. 물론 성장하도록 자극도 하고 갈등도 해야죠. 그냥 놔두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이 성숙한 시민에 이르기까지 온 마을의 사람들이 한 아이를 기른다는 공동체적 원리를 저희들 각자에게도 적용하는 것 이죠. 이것을 무시하고 개인차를 무시하고, 당위로, 보편기준으로 모두가 다 이러이러해야한다,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에요. 다만, 각자대로 다 다른 위치와 단계 속에서도 모두 다 성장해야 한다는 과제 는 게을리 하지 않도록 거울이 되고 자극이 되고 그러는 거죠. 지금 하는 게 최선이니 그냥 아무렇게 나 막 살아라, 마냥 박수쳐주고 위안만 주고, 그게 아니라요. 이건 비전있는 지도자들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할 이야기는 참으로 많지만, 정리할께요. 녹색세상은 녹색의 마음이 만들어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마음의 세계에 대해 잘 알아야 하 고요. 그래서 녹색의 동기가 확고하게 형성이 되어야 탄탄한 녹색시민이 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 는 녹색의 이데올로기만이 아니라 녹색행위만이 아니라, 녹색현안만이 아니라, ‘녹색’할 수 있는 사람 마음에 더 예민해지고 마음 성장의 원리를 다들 제대로 아시는 게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탈핵연대활동을 통해 주로 확인하는 건, 어쩜 그렇게 사람 마음의 세계에는 다들 깜깜들 하신가, 하는 점이에요. 녹색이데올로기는 많은데 녹색하는 마음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헌신과 진심은 넘치지만 ‘시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모르시는 것 같아요. 유선생님 말씀에 동의하는 부분은 녹색가치란 것은 질높 은 삶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우러나는 것이고, 계속해서 그런 질 높은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제가 참여하고 목격하고 있는 탈핵운동은 녹색의 질높은 삶을 추구하기보다는 기본적 생존을 위한 안전유지의 법적인 물리적인 조건을 만드는 데 주로 초점이 가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다른 시 민, 동기 수준의 변화로 녹색이상을 추구하기보다 다른 걸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운동 같아 보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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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요. 생태주의자들이나 환경운동을 하는 이들도 몸의 불편함을 감수하지만 마음의 불편함은 감수하지 않습 니다. 제가 말하는 마음의 불편함은 다른 사람과 차이를 느껴 가는데 있어 갈등은 피할 수 없는데, 갈 등을 피하기만 합니다. 자기를 성장시키려면 자기를 알아야 하는데 따루나 다니엘튜더 같은 이방인들 에게서 한국인의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데 실제 한국민 스스로 자의식은 없습니다. 자기가 듣 고 싶지 않은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 불편한데 이걸 감내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의 문이 생깁니다. 개별차가 있지만 전체적인 인상이 그래요. 공동행동에 참여하는 여러 환경단체 부문단체들이 존재하지 만, 그 가운데 핵없는세상은 소리가 잘 안 나고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독보적인 면이 있는 단체 지요. 작년 내내 집행위 회의에 사무국 단체외에 거의 나오지 않는데도 핵없는세상은 대부분 꼬박꼬박 참여했습니다. 그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기성 활동가들도 있었던 것 같지만 다른 단체들과 방침과 원리와 지향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3년이 넘게 유지되고 살아남아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봐요.

육경숙 (녹색교육센터 소장) 저는 우선, 유정길 선생님이 물질과 돈, 경쟁 등으로 점철된 현대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근저의 고민없이 본인의 성향에 따라 원래 조용한 삶, 작은 삶을 지향할 수 도 있지만 이러한 삶을 녹색시민의 삶이라고 하는데 우리 모두가 동의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녹색시민이라고 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할 점은 이렇게 세상에 대한 지각과 성찰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가? 라는 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물론 이 러한 물음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시작될 수 있고, 점점 사회적인 차원으로 확대될 때 그 의미가 있겠지 요. 그리고 이러한 인식과 성찰은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비관적인 삶의 자세, 그래서 더욱 배 타적인 삶을 살게 하는 차원이 아니라 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연대의 삶으로 지향될 수 있어야 합 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러한 성찰과정이 어떻게 긍정의 연대의 삶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는가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단순하고 소박한 심플라이프가 지금은 마치 유행처럼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삶이 단순한 삶인지에 대해 다양하게 의견을 나누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제가 생각하 기에 중요한 것은 여기서 말하는 작고 소박한 삶이 과연 자연스러운가 그리고 자발적인가 하는 것입 니다. 또 이 삶의 양식은 마치 정해진 틀이 있어 맞추어 사는 획일적인 단순함, 죄의식과 불안, 두려 움, 심적 강요로 자기의 삶을 옥죄는 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의 조건속에서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는 삶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물질적인 가치 측면에서 <많이 소유하지 못하면 견 디지 못하고, 소유하면 남용하게 마련인 재물을, 그는 소유하지 않고서도 견디고 소유하고도 적절히 즐길 수 있었다>(아울렐리우스의 명상록 중)는 말처럼 말입니다. 또한 이것은 물질적인 가치보다 정신적인 가치 즉 삶의 자세, 마음가짐에 더 큰 무게가 있다고 생각 합니다. 작은 것은 결국 큰 것의 방편이며, 진리는 단순하다는 지혜를 바탕으로 보면 결국 나와 세상 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한 단순 소박한 삶은 <현재에 집중하라>, <중요한 것을 하라>, <친절, 미소, 배려와 같은 작은 가치들을 소중히 하라>라는 말들과도 일맥상통할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소박한 삶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좋은 인간의 삶의 자세로 늘 언급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좋은 것은 맞는데, 실천 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왜 어려울까요? 또 선생님은 일상속에서의 자립의 중요성을 강조하셨고 철학자 이반 일리치도 개인과 가족, 공동체가 담당해야 할 역할을 전문가나 제도화된 기관, 산업으로 넘기는 삶의 제도화를 비판했습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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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작은 공동체들이 이러한 삶의 제도화에 맞서며 먹을거리, 에너지, 교육, 의료 등의 분야를 스 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며 건강한 삶을 꾸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개인적인 차원에서든 사회적으로든 이러한 삶의 자립을 어렵게 하는 요소들(타성, 편리주의, 게으름, 경험의 장 부족, 여유 없는 삶, 언론의 유혹 등등)이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 체에서 어떻게 삶의 자립을 함께 할까에 대한 고민(예를 들면 가정, 녹색연합차원에서)도 역시 중요하 게 생각됩니다. 성찰과 질문을 통해 사회적 관심사에 용기를 가지고 참여하는 삶이 우리가 지금껏 이야기해온 시민의 삶일 것입니다. 사람마다 어떻게 하면, 또 무엇이 있으면 행복한지는 저마다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으 로 <관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나아닌 타인에게서 얻는 기쁨은 우리를 삶의 행복으로 이끕니다. 그 러나 우리는 아주 많이 타인과의 관계의 소중함을 소홀히 생각하며, 이상적인 것, 개인적인 것, 커다 란 문제들을 더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지속적인 참여와 연대는 타자와의 만남속에서 얻어지는 참여의 즐거움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당위만을 가지고는 힘듭니다.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의 문제에 당당하게 참여한다는 것은 내가 노예가 아닌 주제임을 자각할 때이며 이것은 내적인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 다. 이렇게 타자와의 관계의 중요성인식과 즐거움, 내적인 힘을 바탕으로 사회에 참여할 때 우리는 행 복한 연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내적인 힘은 어디에서 얻어질까요?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즐거운 참여의 장을 만들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녹색시민은 자연, 우주의 순리를 따르며 자연스럽게 살려고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속에서, 어느 것도 영원할 수 없으며, 어느 존재도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인식은 우리 로 하여금 세상에 대해 겸손하게, 또 감사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꼭 종교적인 면이라고만 치부될 수 없는 중요한 녹색삶의 중요한 부분이며 얼, 혼, 영성, 마음에 대해 우리가 깊은 관심을 가져야 이유입 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자연 그 자체임을 알고, 자연스러운 삶을 살기위해 끊임없이 자연을 가까 이 하며 우리가 사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바로 녹색삶이라고 할 때, 이러한 자각들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끝으로 시민이기도 하고 때로 노예이기도 한 우리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즐겁게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저는 우리가 녹색시민다운 녹색삶에 한 걸음 가까이 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녹색시민과 그 삶에 대한 의견은 어쩌면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할 수 있지만, 함께 나누면서 공통분모를 만들고 지 향한다면 우리의 활동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더욱 힘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김호기선생 님 발제와 이번 유정길 선생님 발제에도 중요하게 언급된 부분은 바로 마음이었습니다. 예전에 틱냣한 스님과 하는 프로그램에서 즉문즉설 시간에 한 활동가가 열심히 활동하지만 왜 세상이 변하지 않느냐 는 질문에 당신의 마음에 평화가 없는데 어떻게 평화가 오냐고 말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로 마칠까 합 니다.

유정길 보수니 진보니 하며 나누는 것들을 걷어내야 사회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다 선의지를 갖 고 있는데, 이런 선의지를 어떻게 조직화하느냐가 운동단체에게 중요합니다. 제 장인어른은 조선일보 애독자이고 텔레비전 보면서 진보적 운동하는 사람들 욕하시는 분인데, 그래도 저를 좋아하십니다. 장 인과 저는 굉장히 사이가 좋지만 텔레비전을 보며 운동하는 게 나오면 딱 그 순간만 행복이 깨지는 거죠. 그런데 우리의 보통 시각은 나와의 차이 몇 프로만을 갖고 그걸 전면화 시켜 백프로 나쁜 사람 이라고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10년, 20년 같이 활동해왔던 사람도 한번 생각을 달리해 틀어지면 악 마로 취급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도 다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데 진영에 갇혀 있지 않아야 그런 선의지를 잘 도모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 생각을 강하게 가질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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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바라보는 긍정의 에너지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습니다. 환경운동하는 사람들이 일 종의 삶에 있어서 원칙 같은 게 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분 별심을 세 가지라 합니다. 모든 괴로움은 과거에서 옵니다. 옛날의 콤플렉스, 열등감, 구박받고 야단맞 던 것들이 되살아나 괴로움이 됩니다. 또 모든 걱정거리는 미래에서 온다고 합니다. 앞날에 대한 걱 정, 노후보장, 결혼, 같은. 또 모든 불안감은 무수한 현재의 삶과 비교하면서 옵니다. 현재의 삶이 백 프로여야 하는데 과거 때문에 30프로 괴로움이 있고 앞날 걱정으로 내 삶ㄹ의 30프로를 쓰고 현재 삶 은 40프로밖에 투여하지 않는다면 과거는 이미 가 버렸고 미래는 오지 않았는데 그걸로 현재를 괴롭 힙니다. 그 두 개를 딱 끊으면 대단한 에너지가 나옵니다. 현재에 100프로를 쓰는 거지요. 수행은 이 런 분별을 끊어내는 것입니다. 운동가들도 앞날에 대한 분별을 끊어야 합니다. 제가 아프가니스탄에 5년여 있으며 느낀 것은 과거 제가 어릴 적 미국 토요영화를 보면서 우리 부모 님이 미국인이었으면, 내가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했는데 아프카니스탄 아이들이 저를 보면 그런 생각 을 합니다. 과거 우리가 미국을 부러워한 것처럼요.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설을 누리는 기회를 가집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마치 과거에 우리가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부러워한 것처럼 우리가 여기에 태어난 것도 복입니다. 아프카니스탄 에선 월 50달러를 벌면서 애 대 여섯을 키우며 사는 이들을 보고 인도에서도 저렇게도 사는데 한국에선 어떻게든 못살까 싶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활동가들을 단체에선 도와주고 새로운 일을 도모하려 해야 해야지만 개인은 과거 때문 에 두려워하지 않고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현재의 삶을 소비하는 식으로 살지 않아야 한다고, 그래야 작은 것이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생각합니다.

윤기돈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 이 자리가 뭔가 같이 소통하고 가진 고민을 터놓은 자리여서 뜻깊게 생각하고 참석하고 있습니다. 기 존 기성세대의 삶을 존중할 수 있을까? 변화 변혁은 존중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방 을 겪고 전쟁을 겪고 가난한 삶을 살았던 그들을 부정하고 출발할 수 있을까? 그런데 기본적으로 변 화를 이야기할 때는 부정부터 출발합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존중하면서도 한계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다른 가능성을 볼 것인가를 이야기해야 될 때라고 봅니다. 앞선 세대를 부정하는 것으로 나의 위치를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존중하지만, 그들이 넘지 못했던 어떤 삶, 그들과 다른 여건 속에 서 우리의 삶을 달리 이야기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다른 방식의 삶이 가능하다 봅니다. 그림자 노동, 무불노동을 이야기하셨는데, 미국에선 재활용품이 다 버려집니다. 분리수거를 안합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는 재활용품 분리수거를 잘하는데 거기엔 그림자노동이 있습니다. 그냥 분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씻고 말리는 노동이 있습니다. 그걸 그냥 그림자노동으로 깔고 갈 것인가, 아니면 지금의 시스템에 합류시킬 것인가. 저는 그것의 가치를 지금의 시스템에 합류시킨 이후에 선물의 관계 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은 개개인이 흘린 땀의 가치를 그냥 깔고 있습니다. 그런 노동을 순 환시스템으로 들여오지 않는 한 변화를 끌어내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90%의 노동이, 그 가치로 이 사회가 지탱된다면 어떻게 그 90%를 보이게 할 것인가? 보이지는 않는 그 가치를 드러 내는 과정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메이저리그에 몸 값 나가는 선수들이 있는데 그 선수들이 크기 위해선 초중고에서 야구에 몸 바쳤던 다른 선수들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그러면 일 년에 몇 백 억 불의 연봉을 받는 그들이 그 가치를 나의 가치로만 한정하지 않고 나를 지탱해 왔던 가치로 환원할 것인가를 이야기해야 합니 다. 지금 나의 존재가 과거부터 어떻게 연관지어 왔는지, 그래서 지금 나의 가치가 이렇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시스템, 불러내오는 시스템이 먼저 되어야지, 그런 다음에야 선물의 관계, 증여의 관계, 무불노동이 순환의 시스템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한정된 자원을 소비하는 거라면 앞으로는 순환된 자원을 갖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무불노동, 그림 자 노동을 순환의 시스템에서 그 가치를 올곶게 드러내지 않고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어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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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가치를 돈으로 지불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가치가 순환의 시스템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 을 더 촘촘히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기본소득, 저성장 이야기도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잘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로만 세상이 굴러가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노동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사 람들의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기본 노동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 노동을 발휘할 수 있도록 소득을 지불하자 것이지, 노동하지 않아도 소득을 지불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기본소득보다는 기 본노동을 먼저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저성장이라는 말도 맞지 않다 생각합니다. 고도성장의 반대의 말로 저성장, 제로성장을 쓰는데 성장은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성장이 있습니다. 이제는 양적성장은 다 했으니 질적성장을 이야기해야 한 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시스템에서 사용하는 말의 반대말을 쓰는 게 아니라 다른 언어로서 다른 가 능성, 다른 희망을 볼 수 있게 질적성장이라는 말을 만들어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녹색교육이 자기의 존재가 어떻게 주위와 연관되어 풍부화되는지를 깨닫게 하는 교육이었으면, 다양한 실험을 하는 교육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답을 제시하기 보다는. 지금 당장의 사회변화가 불가능하다면 다양한 실험들, 그리고 그 실험이 주위와 어떻게 연관되어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공동체도 공동체로 서만 구획을 두는 데 한 공동체가 그곳이 계속 더 큰 사회와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를 갖고 가지 않으 면 희망이 없다 봅니다. 그 안에서만 완결짓는 게 아니라 나와 인접한 다른 공간과의 연계성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가 녹색교육, 시민교육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채영재 머리를 하얗게 만들기 위해 공부를 했는데 공부를 하다 보니 시민의 삶을 고민하게 되는 자각이 생깁 니다. 제가 읽은 책 중에 김시습이나 정약용의 삶에 관한 책들이 있는데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면 녹색시민의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철민 (한신대 엔지오연구소) 두 토론자의 말에서 핵심은 모든 시민교육에서 좋은 내용인 것은 아는데 듣고 나면 슈퍼맨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것입니다. 모든 학습자가 교육을 받은 뒤 좋았어요 하지만 집이 가까워지면서 계속 마음 이 무거워집니다. 그걸 개인이 또 깨우쳐야 한다 식으로 개인으로 환원하면 답이 없고 어떻게의 문제 가 교육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변화의 도약대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그 중간을 어떻게 놓 을 지에 대한 설명이 교육에서 풍부하게 제시되어야 합니다. 주변에 그런 사례가 많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공동육아 부모모임이 없으면 지탱이 안되는데, 그런 것 같은 변화를 딛고 갈 수 있는 작은 조건이 하나 있어야 합니다. 녹색이 주는 개념이 주는 가장 큰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인 데, 개인이든 단체든 늘 고민에 빠지면 자기 혼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단체들도 비슷한 일 하면 서 서로 바쁘다 하는데 저 단체가 잘하는 일이 있으면 그 단체에게 하라고 하고 나는 다른 일 하면 안될까 싶습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잘할 수 있는 일 한 두가지를 하고 연결된 관계나 그룹으로 존재하면, 그럴 수 있는 조건을 이야기하면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녹색시민도 많은데 자원봉사, 평화, 인권 등등 많습니다. 교육이나 운동을 하는 주체들, 공급자라고 표 현하자면 공급자들은 인권이나 환경, 지속가능성 같은 문제들이 각각 자신들에게 중요한 문제인데, 시 민들의 삶에선 그게 결국 하나입니다. 공급자들은 분리해서 사고하지만. 저는 시민교육 이야기하는데 듣는 사람은 저흰 시민교육 아니라 마을교육 합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듣다보면 같은 이야기 라고 합니다. 그런 걸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박영신 그림자 노동, 기본소득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유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임금을 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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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는 노동 그걸 합하면 얼마나 대단하가 이런 이야기인데 윤기돈 선생도 이런 걸 이야기했는데 제 질 문은 우리가 시민, 녹색 이야길 하며 현존하는 경제체제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데 그것이 못마땅하 다는 것을 이야기할 때 또 그 잣대가 돈으로 이야기한다, 상담했을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 그걸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인가 이렇게요. 우리가 비판하는 넓은 뜻의 경제체제, 산업문명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도 비판의 설득과 구조 자체가 자본의 논리, 경제체제의 논리입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 니까?

윤기돈 증여의 관계, 선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여기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한 단계 더 밟아야 한다고 생각합 니다. 지금 사람들의 불안함은 나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는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땀의 가치가 굳이 물질로 환원될 필요는 없지만 이것을 순환될 필요가 있다, 어떻게 순환될지 이야기 해야 한걸음 더 내 딪을 수 있습니다.

박영신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겐 돈 이야길 해야지 통한다 이런 말입니까?

윤기돈 돈이든 아니든 그래야 내가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인간이 신이 아니니까 인정하고 존중받아야 산다고 봅니다. 그런 나의 존재가 서로 어떻게 존중하고 존중받는지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한문순 저는 자원봉사하면서 시간투자를 많이 합니다. 직업은 따로 있구요. 저의 자원봉사는 그림자노동, 무불 노동입니까?

윤기돈 아닙니다. 선생님의 직업, 돈 버는 곳이 따로 있지만, 그 직업의 노동 안에 자원봉사하는 일도 포함되 어야 한다는 거죠. 돈버는 곳이 따로 있고 노동이 따로 있다는 것이 아니라, 잉여노동 또는 그림자 노 동이 직업에 따로 있는게 아니라 통합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존의 시스템이 있고 다른 시스템 이 있는데 그걸 넘어가는 단계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정명희 (녹색연합 정책팀) 우리나라는

재활용율

이 높은 편인데, 재활 용 안하는 것이 더 경 제적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렇게 이야기하는 배경 엔 재활용에 들어가는 보이지

않는

노동에

대한 비용을 따져보면 경제적이지 않다는 건 데요. 그런

식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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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논리, 돈으로 환산해 바라보는 것이지만 많은 시민들에게 재활용을 할 때 어떤 가치가 있는지 드 러내주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부여한다면 좀 다르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원봉사도 예전 엔 먹고사는 것 해결되니, 시간이 남으니 하는 일이라 했지만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어느정도 자원활 동에 대해 부여된 가치가 있습니다. 돈을 환산한 것이 아닌, 그 노동을 드러내고 그렇게 이름을 매겨 주는 것, 가치를 부여해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박영신 저도 그걸 기대하고 말했는데요. 집에서 분리수거를 하는 행위 자체, 그 마음씨를 존중해주는 것. 그 것이 행복한 그런 세계를 만들지 않으면 맨날 삼성의 논리, 정부의 논리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닌 가 하는 겁니다.

정명희 기본소득 이야기를 더 하자면, 스위스 기본소득은 아직 결정이 되진 않은 상태입니다. 2016년에 다시 투표를 한다 합니다. 저는 유럽보다는 나마비아 사례를 의미있다고 보는데 나마비아의 기본소득은 금 액은 굉장히 낮지만, 독립하고 나서 워낙 경제수준이 낮아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했는데 그러면 노동하 는 인구가 줄거라고 했지만 오히려 노동하는 인구가 더 늘어났다 합니다. 기본소득을 이야기할 때 불 로소득, 노동하지 않은 인구가 늘어날 거라는 기우가 그 사회가 어떤 조건인가에 따라 기본소득이 투 여되는 의미가 다를 거라고 봅니다. 어떤 사회에서는 기본소득이 일할 수 있는 힘을 위한 식량과 교통 비가 될 수 있고 어떤 사회는 여가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역할이 될 수도 있 습니다. 그 사회에서 기본소득이 필요한 것이 어느 지점 때문인가가 세심하게 나오지 않으면 기본소득 은 좋은 구호 정도밖에 될 수 없을 것이다 생각됩니다.

윤기돈 재활용을 하면서 부를 축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물상이라고 하지만 아파트 도는 고물상은 거의 기 업수준입니다. 저는 땀의 가치라는 부분을 꼭 돈으로 환산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순환시스템에 들어와야 더 많은 가치가 생산될 수 있는데 그걸 단순히 좋은 일로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돈으로 환산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가치를 어떻게 인정하고 그 가치가 내 삶에서 표방되는지 를 우리 사회가 정확히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그냥 협력자의 일로만 남게 된다는 겁니다.

박영신 저는 시민의 개념을 고귀하게 하고 싶은 쪽인데 어중이 떠중이가 시민이 될 수 없다는 쪽입니다. 어떤 의미에선 선각자, 사상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저도 못 그러면서 그런 지향을 합니다. 저는 행복해 야 한다고 하는데 뭐를 행복이라 하느냐, 우리 사회가 말하는 행복, 그걸 똑같이 행복이라고 하는가, 유기농을 먹으니까 더 혈색이 좋고 체중조절도 잘 되고 훨씬 행복해 보인다는 건가? 우리 사회에서 행복이라는 것이 뭘까? 저는 우리 사회를 높게 보지 않고 오늘 우리 체제, 우리 문명권에서 보는 행 복하다고 하는 그런 눈으로 행복하기 위해 시민운동 하자 해야 하는가 하는 이런 물음이 있습니다. 유 정길 선생은 녹색을 강조하면서 환경철학을 이야기하고 환경과 관련된 종교를 이야기하셨는데, 저도 동의하는 부분도 많지만 그런데 기성세대가 말하는 그 행복이라는 것을 우리가 그리 높이 봐야 하나 묻고 싶습니다. 제가 갖는 믿음의 세계에선 의를 위해서 픽밥받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 말합니다. 전 혀 다른 것입니다. 배불리 먹고 강남에 몇십평 아파트, 골프치고 하는 것을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을 우습게 보고 저질이다 라고 봅니다. 이게 시민의식이고 녹색시민의식이라 보는데, 그런데 행복을 이약 하면서 그렇게 가야 하나, 그럼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런 말 쓰면서 더 잘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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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순 행복을 저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쾌락이 누리는 측면이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행복도 있다고 생각합 니다. 헌신이나 희생, 고통을 무시하는 것이 아 사실은 운동하는 사람들도 안 행복해 보입니다. 행복 이 운동의 목적이냐하는 질문과는 다른데 대안적 삶을 추구하면서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 것. 다는 아 니더라도 찌든 사람도 많아 보이고 밖에 나오는 것 싫어 이런 사람도 운동권이고 속이 막 들끓는데도 말해도 소용없어 이렇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는 심리적으로 예민하지 못해서 서로 알아주지 못하 기 때문에 행동을 못 만든다고 생가합니다 수행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도 좋지 만 인간관계를 질적으로 다르게 추구하는 것이 운동이 지향하는 것이 추구하는 것이라면, 그런 커뮤니 티를 만들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그런 행복을 아시는 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박영신 제가 대학에 있을 때 그 단과대학에서 소수의견입장을 택한 적이 있다. 몇몇 경우에 저는 지금도 그 의견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굉장히 다수의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슬픈 일입니다다. 다수의 입 장에서 보면 박영신이라는 사람이 가련한 인간이다. 저는 한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다. 감사했습 니다. 내가 이런 입장에 설 수 있게 하늘이 기회를 주셨다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지지 만, 사실은 예수도 졌습니다. 부처도 공자도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지고 가련하 지만 다른 입장에서 보면 내가 이런 다른 입장에 설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줬느냐 하며 감사합니다. 대학교정을 걸을 걸을 때 어깨 늘어뜨리지 않고 꼿꼿하게 다녔습니다. 나를 반대했던 사람이 오히려 나를 보기 부끄러웠지. 이런 복됨, 감사, 차원이 다른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현존하는 질서를 비판하면서 현존하는 잣대로 행복을 이야기한다, 저에게 좀 아닌 것 같습니다.

허승은 (녹색연합 활동가) 오늘 이야기하신 관계, 마음, 행복이 마음에 남는데 계속 고민이 됩니다. 찌든 삶을 사는 활동가의 모 습이 제 모습인데 제가 행복해야 주변이 행복해지고 이 연결고리를 알겠는데, 삶과 운동이 같아야 하 는데 운동은 여기서 하고 삶은 다른데서 찾아야 하나? 생각합니다. 그전엔 운동과제에 빠져서 살기가 바빴지만 그래도 지금은 내가 행복해야 주위와 운동도 다 행복해진다고 각성하고 수행같은 것들이 필 요하다는 것도 생각합니다. 운동이 의제를 다루는 것뿐만 아니라 대안의 행복을 찾는 가는 연습도 곧 운동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박영신 그 행복은 통상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행복입니까 다른 겁니까?

허승은 제 삶에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가 일 텐데, 물질 이런 것과는 좀 다른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이 자본 주의 사회에서 이 부족함은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유종반 (생태교육센터 이랑 대표) 포럼을 고민하고 준비하면서 실천과 실현에 마음이 더 쓰입니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알고서도 못하는 그 부분이 뭘까? 어영부영 시민이 아닌 정말 귀한 시민, 시민 되기가 어렵다고 말하는데 시민 이 된다고 해서 시민사회가 이뤄질까, 우리는 시민보다는 시민사회를 만들기 위해 시민이 되어야 한다 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몇 사람이 시민이 되었다고 우리가 원하는 상회를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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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그런 시민사회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열심히 교육하면서 희망을 갖다가도 다시 주저앉게 되 는데 이런 고민을 가장 오래한 곳이 종교그룹입니다. 그런데 제가 잘은 모르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앗 이것다 하는 것을 교회에서, 절에서, 어느 종교에서 보여줬는가? 제가 생각할 땐 그렇지 못하다는 겁 니다. 우리가 해봐야 겠다고 이런 모임도 갖는 건데 우리보다 많은 기간 동안 더 차원 높은 생각을 가지고, 수행을 하는 종교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아 이거다 하는 이론적인 게 아니라 실제적으로 볼 수 있고 될 수 있는 그런 모습들이 종교에서조차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면 과연 이것은 실현가능할 수 있 을까? 유정길 선생님은 종교를 가지고 다른 것보다 우리가 꿈꾸는 실현가능성이 있다는 방법으로 제기하셨 는데 실제 우리 주변에 교회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절이 늘어날수록 성직자들이 늘어날수록 분명히 밝고 선하고 깨끗해져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데 이런 고민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종교에서도 풀 지 못한 것을 우리가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박영신 유종반 선생은 우리가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라 알고 있는데 그렇다고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종 교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데, 종교는 안한다 입니까, 종교는 다른 걸 알고 있다는 겁니 까?

유종반 기존에 많이 했던 이야길 다시 우리가 재정리 하면서 이야기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없었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있었던 내용들인데도, 고전에서도, 종교를 창시한 이들도. 이미 기존에 우리가 흉내 낼 수 없는 진리와 사상이 나왔음에도 다시 반복하는 이유가 우리가 실천하고 실현하는 것으로 나타 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승훈 (숙명여대 리더쉽교양학부) 중심이동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중심이동이라는 건 종교용어로 하면 회심이고 개종입니다. 이게 얼마 나 큰일인가, 힘든 일인가, 어떻게 가능할까 생각합니다. 현실에서의 고민 한 가지는 행복에 대한 것 입니다. 요즘 사회에서 행복과 힐링이 강조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행복이나 힐링은 기존의 질서를 굉장히 정당화시켜주는, 다양성의 이름으로 오히려 주류를 더 튼튼하게 해주는, 그런 역할, 압력밥솥의 배출구 역할을 해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힐링이 이 사회의 중심을 바꿔주는 게 아니라 지금의 삶을 유지하면서 조금 더 편하게 해 주는 것, 행복 역시 사는데 이렇게 사면 조금 더 좋아져 하는 것 정도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비판적인 생각을 하는데, 웬디브라운이 관용이라는 책에서 관용이 개 인의 미덕으로는 좋지만 나와 다른 것을 참아내는 것, 다른 취미를 인정해주는 것 그런데 이게 정치의 영역으로 올라가면 관용이 다름을 억압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 책은 부시정권 에서 이슬람과 관련해서 쓰는 거긴 한데요. 우리 사회에서 행복이나 힐링이 그런 역할, 다양성을 인정 하지만 지금 질서를 정당화시켜주는 안전핀 역할이다 생각이 듭니다. 저도 다른 행복이 있다 생각하는 데 왜 활동하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을까 하면 그건 갈등을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갈등이 있어야 다른 행복을 경험해 볼 수 있는데 한나 아렌트가 우리는 행복하면 사사로운 것을 생각 하는데 가족, 이런 것. 근대는 공공의 행복이 있는데 이것을 상실했다는 겁니다. 근대 역사에서 공공 행복을 발견했던 세대들에 대해 말합니다. 사생활의 영역이 아니라. 공공의 장에 나왔을 때 느끼는 행 복이 있는데 그걸 망각하고 산다는 겁니다. 그걸 알려면 갈등의 지점을 거쳐야 합니다. 틀 자체에서 행복이라는 것은 틀을 유지시켜 주는 것인데 다른 행복은 이 틀을 깨야 하는 겁니다. 제가 고미하는 지점은 다른 행복을 경험하기 위해 이 과정 겪어야 하는데, 그래서 이야기 나오는 것이 행복과 힐링 이런 이야기보다는 이걸 깰 수 있는 갈등, 장애, 정치 이런 이야기들이 결코 소홀할 수 없는 것 아닐 까. 싸움이라는 것. 물론 이런 이야기만 하면 안되지만요. 행복하면 자연스럽게 잘 될 것 실제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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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경험하려면 굉장히 큰 싸움입니다. 개인의 생활에서, 사회에서도 굉장한 싸움입니다. 윤기돈 씨 가 이야기한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 관련된 것을 고민하지 않으면 그런 차원까지 나가지 않으면 이 안 에서 쉽게 포섭될 수 있는데 이걸 어떻게 깰까, 그렇다고 계속 투쟁하자고 하는 건 아닐 것 같고, 이 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미경 (녹색교육센터) 흐름이 있는 것 같은데, 1회, 2회 차에선 시민에 대해 시민은 저항해야 한다, 저항이 의무가 되어야 한다고 정의 내렸다면 유정길 선생님은 단순히 저항운동을 넘어서 생활의 대안이 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경제프레임을 전환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개인이나 공동체, 마을에 미뤄 버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신애 (녹색교육센터) 처음 녹색교육센터에서 일할 때엔 녹색이란 무엇일까 많이 고민했지만 곧 일이 너무 많아서 고민할 기회, 시간조차 없어 3년하고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나가서 2-3년 장사를 하다가 다시 돌아왔는데 장 사는 너무 세속적인 생활입니다. 단골 손님을 만들기 위해 농담도 하고 그러는데 한계가 왔습니다. 가 게 안에만 있으니까 사람을 못 만나고 바깥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누군가 나를 찾아오지 않 으면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상태, 사회와 단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야 하는 사람인데 그게 안되니 고민이 되더라구요. 제가 살면서 가장 보람되고 좋아하는 일이 뭘까 생각 해보니 사람을 만나고 또 그 사람들 중 순수했던 사람들이 바로 이곳의 사람들이었다 그 가치를 몰랐 다는 생각을 다시 하며 교육센터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바쁘지만 올해 들어 책도 읽으 며 이제야 알아갑니다. 요즘 고민하는 부분은 작은 것이 아름다운 삶, 천천히 사는 삶, 나누는 삶입니 다. 하루만이라도 천천히 살아보자 생각하며 하루를 그렇게 살면 모든 게 더 안정적이 된다는 걸 느꼈 습니다. 교육센터가 이사오면서 저희가 모토로 삼은게 배움과 나눔입니다. 그 모토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교육센터의 모임에서 느끼는 것이 제가 원하는 게 이렇게 사람을 만나 이야기나누는 것, 대화 하는 사람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소통이 필요했다는 거죠.

박영신 개인수행, 고요, 평화 이런 게 있는데 얼핏 육경숙 선생 이야길 들으면 그걸 잘하면 다른 게 해결이 된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나의 고민은 개인과 이웃, 개인과 사회를 떼어놓고 개인이 먼저 수행해서 고 요를 찾고 평화를 찾지 않으면 안된다 하는데 언제까지 수행해야 합니까? 같이 가야 하는 게 아닌가 가 고민입니다. 내가 부족한데로 이웃을 만나 같이 기도하며 가자가 아니라 내가 수행을 언제까지 하 고, 이제 됐다 하고 이제 시민으로 나가 싸워야 하냐는 거지요.

한문순 수행하는 단체의 분이 알트루사에 온 적이 있는데 수행을 열심히 해도 여기서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 니 떠나시더라구요. 갈등 속에서 자기 부대낌이 해결 안 되니까,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이해가 안 된다는 건데 그 이해가 될 때까지 견디면서 서로 정중심에서 벗어나는 걸텐데요. 수행이 해 결해, 알트루사가 해결해 이런 차원은 아니지만 아 분의 말씀처럼 대화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녹색단체에서 반녹색같은 마음이 보이는 대목이 그런 겁니다. 속을 내놓고 들어 주고 알아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거죠.

배보람 (녹색연합 정책팀) 저는 친한 게 뭐가 중요해, 일이 되면 되지 이런 주의인데요. 왜 일하면서 친해져야 해, 관계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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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해야지 이런 편입니다. 우리가 친해지지 말자 이런 게 아니라 관계, 의사소통 이런 걸 이야기할 때 너와 나와의 대화에만 치중합니다. 그 대화는 우리의 운동, 너와 나의 가치, 지향이 뭔지 부딪히고 한 편으로는 갈등이어야 하는데 우리가 의사소통, 관계, 마음 표현하는 방식이 친밀감 같은 말로만 치중 됩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인데요. 일하면서 행복하지 않아서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는 후배에게 그만두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내 옆의 사람이 일하면서 365일 계속 행복하기만 하면 나는 싫을 것 같다, 그건 조증이다고 말했습니다. 그 행복이 쾌락이니 재미와는 구분되지만 일하면서 행복하지 않아, 즐겁지 않 아 이런 말은 일에 대한 환상이라 생각됩니다. 의사소통, 마음 이런 걸 이야기할 때 그런 것이 마구 혼재되어 그렇게 되지 않으면 우리는 마치 불우한 사람이 된다는 식의 표현은 지양되어야 한다 생각 합니다. 자본주의 방식에 대한 전환을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법과 제도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법과 제 도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걸 늘 목격합니다. 그럼 같이 어떻게 전화해야 할 것인가인데 이를테면 공공성에 관한 부분. 요즘 서울시가 지하철역 이름을 판다고 하는데, 자본화 되지 않았던 것이 자본화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보문역을 롯데캐피탈역으로 되는 것지요. 자본화 되지 않는 영역을 자본화된 것을 멈추게 하는 것이 큰 화두라 생각합니다. 공동체를 많이 만들어 행복한 사 람들이 많아져 행복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자본화의 영역이 자본화되는 것을 막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황일수 (녹색연합 정책팀) 저는 그림을 그리다 환경단체에 왔는데, 중심이동, 전환보다는 녹색의 가치, 행복이라는 것이 일을 하 면서 힘듦을 떠나 이걸 했을 때 여기에 대한 가치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 야 가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림 그리고 사유하는 것도 과연 노동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인가. 예술가의 작업, 감정을 표현하는 작업도 노동으로서 가치가 되는가가 사회적인 테두리 안에서 사람들 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따지고 보면 다양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예술하는 게 힘들지만 이런 것이 가 치가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녹색시민사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영신 물질의 가치뿐만 아니라 귀하다는 생각 같은 건가요?

황일수 귀하다는 생각과 물질적 가치도 필요할 것 같은데요. 유럽 중산층들이 말하는 가치를 이야기할 때 그 나라는 복지가 되어 있고 복지라는 것은 현 시대에서 살 수 있는 기반이 있다는 건데 그 기반은 아무 리 생각해도 돈입니다. 아프카니스탄 같은 나라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노동이든 예술이든 기본적인 것을 영위하기 위해선 경제적 문제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최윤선 (녹색교육센터) 나는 시민인가를 계속 생각하게 되는 자리입니다. 계속 나오는 이야기처럼 물질, 자본, 가치, 철학에 대해 항상 갈등하고 있습니다. 활동가 월급으로 서울에서 자취하면서 사는데 저의 이상은 공익적인 삶, 시민적인 삶을 생각하는데 소비하고 구입하는 것은 공정무역같은 걸 고민하다가도 원플러스원 상 품을 사게 되는 이중적인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소비의 철학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배우고 갈등하고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공정무역을 고민할 때 한 친구가 공정무역이 중요한 이유는 너가 쓰는 돈은 너 가 투표하는 것과 똑같다, 싼 거 싼 거를 찾을 때마다 제3세계 아이들의 노동력을 구입하는 것이고, 그 기업을 후원하고 그 기업을 위해 토표하는 것이다고 말했을 때 감동을 받았는데, 실제 소비할 때엔 또 갈등합니다. 예전엔 내 몸과 나를 위해 투자했다면 지금은 보다 큰 이유로 소비하는 모습으로 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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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합니다. 앞에 나왔던 많은 이야기들을 늘 같이 고민하게 됩니다.

유정길 저는 이제 민중, 시민 이런 걸 고민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구분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예전엔 순수니 참여 이런 걸로 구분도 했는데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관계론적으로 사고하는 우리 입장에서, 물 리학적으로보면 모든 물자가 입자와 파동이 같이 있는데 어느 것도 고립된 개념은 없다고 봅니다. 저 는 한 개인이 깨달은 내용은 그 자체로 사회적 영향 있다 여깁니다. 산 속에서 닦은 도가 무슨 의미 가 있겠냐 하지만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나름대로 인간의 한 경지를 개척하고, 그 것은 인류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에 대한 수준이 되는 겁니다. 영적인 깨달음의 수준을 높이는 것 자체가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이나 부처님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모든 게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보면 개인의 각성이나 영성적 깨달음도 그 자체가 이미 사회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 니다. 요즘 스피리츄얼 액티비즘이라는 것이 있는데 메디테이션 운동입니다. 그동안 모든 평화가 반전 을 이야기했는데 전쟁은 마음 속의 분노와 갈등이 조직화되어 시작되었고 그것을 풀고 내 안의 고요 함을 갖는 것이 진화된 평화운동이라고 말하는 그룹도 있습니다. 9월 22일 전 세계에서 동시에 메디 테이션하는 운동을 하기도 니다.. 노래운동하는 플레잉 포 체인지라는 사람들의 평화운동도 있습니다. 시민을 특별한 사람으로 보면 볼수록 저는 관념적 우월감을 갖게 된다 봅니다. 이런 우월감을 가지면 잠재적으론 내가 괴롭고 남들이 답답해지며 이런 상황에서 너희는 왜 분노하지 않니? 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을 계도와 의식화의 대상으로 삼게 됩니다. 이런 게 옳은 것인지, 어떤 개인이든 선의지가 있고 그걸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어떻게 의미있게 사용할 것인가 특정 개인을 시민이나 민중으로 규 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하게 됩니다.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 노동을 돈을 보는 관점으로 보는 사람이 있고 자기 실현으로 보는 관점도 있습니다. 지금 내가 바라보는 관점은 자기 실현의 관점으로 노동을 보고 거기서 임금노동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예 강을 건너온 뒤에 다시 보는 거지요. 자본주의적으로 보면 어디 다 임금노동인데 노동했는데 왜 돈을 안줘하고 요구하게 됩니다. 운동단체에서는 왜 임금문제가 논란이 안 되는가를 보면 엔지오의 모든 활동가들은 사무총장을 사용자로 생각하지 않고 변화를 우해 집단적 으로, 자발적으로 모이는 사람들, 누구에게 요구하는 노동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노동의 관점을 임금으로만 보면 노동은 적게 하고 돈은 많이 받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자기 실현의 관점으로 보면 노동을 많이 할수록 좋습니다. 무불노동은 자기실현의 노동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이런 과점에서 먼저 보고 여기서 임금노동을 고려하는 것이 더 좋다 봅니다. 기본소득을 임금노동으로 보면, 고용은 계속 주는데 임금노동에 고용된 사람이 줄고 고용되지 않은 사람은 임금 받을 일이 없어지는 것인데요. 기 본소득은 니가 존재하기 떄문에 관계망 속에서 나를 살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존재 자체, 나를 살리는 관점에서 임금을 주는 거지요.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말했지만 저는 그건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합 니다. 저도 그렇지만 보통 내 부인을 잘 알아, 하지만 부인은 저 사람이 나를 뭘 알아 그러지요. 안다 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더 알기를 방해합니다. 이건 모르는 겁니다. 부모는 아이를 안다고 하지만, 아 이들은 부모가 자기를 하나도 모른다 합니다. 저는 안다는 생각이 더 알기를 방해하기 때문에 언제나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중요하다 봅니다. 마지막으로 행복은 주관적인 것이지요. 힐링도 중요하다 봅니다. 치료니까요. 힐링은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는 다고 말하는데 실제 제가 본 힐링 책들은 삶의 관점을 달리 보이게 하는 책들이 많습니 다. 집합적인 관념에 휩싸여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을 벗어나는데 도와줍니다. 구조적인 문제를 삼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오히려 그렇게 해결해야만 구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자기가 너무 괴로우면 자기 문제만 보는데 그걸 벗어나면 구조의 문제에 다가갈 수 있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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