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클래식과 춤의 세계로
대관령국제음악제
http://sunday.joongang.co.kr
제279호 7월 15일~16일 값 1000원
July 15~16, 2012. no.279. sunday.joongang.co.kr
CONTENTS 06
THIS WEEK PEOPLE
제9회 대관령국제음악제 뮤직텐트 조감도
75세 감독 데뷔 김동호
editor’s letter
어떤 강아지
ISSUE
08
며칠 전 한 출판사 대표님과 점심을 했습
음악과 춤의 만남 제9회 대관령국제음악제
니다. 생선구이를 같이 시켰는데, 그분은
REVIEW & PREVIEW
“네 발 또는 두 발 달린 짐승을 안 먹은 지
14
꽤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채식주의자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된 게 아니라 아들의 성화로 키우기 시작 BOOK
16
한 강아지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숨은 책 찾기 <16> 살림출판사『경성자살클럽』
“제가 강아지를 키우면서 배우는 게 꽤 많 아요. 우선 얘는 어디가 아프면 먹이를 가
INTERVIEW
18
까이 하질 않더라고요. 모든 에너지를 아
여우樂 페스티벌’ 예술감독 양방언
DESIGN
픈 것을 고치는 데 쓰는 것 같았어요. 스스 로 다 나았다고 생각해야 조금씩 먹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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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대더군요. 그런 모습을 보니 약까지
김신의 맥락으로 읽는 디자인 <8> 타자기
GALLERY
먹어가며 밥을 꼬박 챙겨먹는 인간이 얼마 나 분수를 모르는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24
들더라고요.”
학고재 갤러리 ‘유희적 저항’전
그는 육식을 멀리하다 보니 속이 편해지고
PORTR AITS ESSAY
25
소화에 쓸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쓸 수 있는
배우 고창석의 얼굴
것 같아 좋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는 계속
FOOD
됐습니다.
26
“강아지는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자기를
강원도의 맛, 평창 가는 길
JEWELRY
28
국악축제 여우樂 페스티벌 예술감독 양방언
걸 해주면 넌 뭘 해줘 이런 조건을 붙이지
파리 하이 주얼리 프레젠테이션을 가다
COLUMN
않아요. 그냥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이 즐거 31
워하겠구나 생각하고 그냥 그대로 행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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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서 참 반성이 많이 되더라고요.”
죠. 누군가 그것을 좋아하면 그것이 곧 나
스타일#: 드라마 의상의 역할
SOUL-SEARCHING
좋아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이
의 행복이라고 여기는 태도. 그런 모습을
강신주의 감정 수업 <16> 두려움 또는 서글픔
모든 강아지가 다 그런 건 아닐 텐데, 그놈 참 똑똑한 강아지인가 봅니다. 강아지건
CONTE
34
사람이건 제 사랑 제가 챙기는 법입니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그렇게 제 소임을 다하면 아무리 복날이 더
PHOTO ESSAY
워도 피해 가게 마련이겠죠. 네? 아닌 경우
35
도 있다고요? 세상사 토사구팽이라고요?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파리 하이 주얼리 프레젠테이션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S MAGAZINE 표지 올해 새로 오픈하는 뮤직 텐트 앞에 선 정명화(왼쪽)·정경화 대관령국제음악제 공동 예술감독. 사진 대관령국제음악제
문화에디터 정형모 취재 홍주희 유주현 사진 조용철 최정동 편집 우현아 교열 한규희 디자인 전유진 최귀연 통신원 이지윤(런던) 최선희(파리) 김성희(밀라노) 강희경(뉴욕) 박철희(베이징) 광고 김진영 구명서 엄태규 마케팅 박유선 이용임 박유림 기사제보 02-751-9000, 080-023-5002 광고문의 02-751-5555 / Fax 02-751-5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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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SUNDAY MAGAZINE
THIS WEEK PEOPLE
부산국제영화제 위원장 15년 된 명함 버리고 75세 늦깎이 감독 데뷔 단편영화 JURY 촬영 마친 김동호 전 위원장
그러니까 2년 전 이맘때였다. 15년간 몸담 아 온 부산국제영화제를 떠나는 김동호 (75) 명예집행위원장에게 퇴임 후 계획을 묻자 그는 “한학과 문인화를 공부해 내실 을 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대 문화 불모지로 불렸던 부산에서 국제적 권위의 영화제를 만들기 위해 밤낮과 자 리를 가리지 않는 ‘술자리 네트워킹’을 했 다. 그런 고단한 이력을 익히 알던 터라 고 개가 끄덕여졌다. 그런데 꿈이 하나 더 있 다고 했다. “늘 다른 사람 영화만 보고 다녔으니 이제 내 스스로 영화 한두 편 찍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올 초 그는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영화계는 역시 그에게 은퇴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감독 김동호’의 꿈을 이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1 일 촬영을 마친 단편영화 ‘JURY(심사위원)’가 데뷔작이다. 2년 전 인터뷰에서 말한 대로 문화 체육부 차관 등을 지낸 공직생활이 인생 1막, 부산영화제 위원장 생활이 인생 2막이었다면 75 세에 인생 3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JURY’는 올가을 열리는 제10회 아시아나 국제단 편영화제 개막작으로 공개된다. 국제영화제 심사 과정에서 심사위원들 사이에 빚어진 갈등을 다뤘다. 부산영화제가 발굴한 스타 중 한 명인 재중 동포 장률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다. ‘김동호 감독’의 데뷔가 흥미로운 이유는 또 있다. 20분이 채 안 되는 단편영화 한 편에 품앗이 하듯 모여든 사람들의 면면이다. 주연배우가 안성기·강수연에 보조출연자가 심지어 임권택 감 독이다. 안성기·강수연은 김 위원장이 “‘부산(영화제) 패밀리’ 중 성골(聖骨)”이라고 농담할 정 도로 두터운 친분을 나눠왔다. 조감독은 ‘만추’ ‘가족의 탄생’의 김태용 감독이, 촬영은 ‘괴물’ ‘살인의 추억’ ‘부러진 화살’의 베테랑 김형구 촬영감독이 맡았다. 게다가 편집은 강우석 감독이 한다. 보통 영화에서라면 상상하기 힘든 스태프 라인이다. 모두 김동호라는 사람에게 반한 김동 호의 사람들이다. 2차 집단적 관계에서 이런 자발성을 갖기란 사실 흔한 일은 아니다. 영화계 원로라고 다 이런 대접을 받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어른으로 존경받기에 가능한 일이 다. 지난 몇 년간 영화 분야 취재를 하는 동안 들은 그의 평판은 그대로 믿기엔 너무 훌륭했다. 열이면 열 모두 칭찬하는 것도 처음엔 좀 이상했다. 그래서 ‘흉 볼 건 없냐’고 주변 사람들에게 일부러 물어본 적도 있었다. 소득은 없었다. 영화제 말단 직원부터 해외 출장 때 같은 방을 쓴 프로그래머에 이르기까지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런 평가는 이란 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55) 같은 세계적 거장이라고 다 르지 않았다. 마흐말바프는 현재 한국에 와서 ‘김동호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 ‘JURY’ 촬영 장에도 카메라를 들고 왔다. 배우도, 감독도 아닌 영화 행정가를 주인공으로 한 유례 없는 다큐 멘터리도 곧 나올 예정이다. 06 SUNDAY MAGAZINE
글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사진 연합뉴스
ISSUE
밀착 댄스 원조, 왈츠 품위 있는 귀족 춤, 미뉴에트 그리고 탱고·래그타임 대관령국제음악제 D-6 올해 주제는 춤
공연장 좌석에 몸을 단단히 고정한 채 긴장과 침묵 속에서 연 주를 감상하다가도 미뉴에트 악장이 연주될 때는 마음이 느 슨해지면서 어느새 리듬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자신을 발견 하게 된다. 모든 예술 중 가장 추상적인 예술이 음악이라고 하 지만 음악의 리듬은 가장 구체적 신체예술인 춤을 그 안에 품 고 있기 때문이다. 9회째를 맞는 대관령국제음악제(7월 26일 ~8월 5일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 및 용평 리조트, 강원지역 전체는 7월 21일~8월 11일)의 올해 타이틀은 ‘춤에서 춤으로. 제목만 봐도
벌써 발과 어깨가 들썩인다. 26일 버르토크의 루마니아 민속춤곡으로 문을 여는 이번 음 악제 연주곡들은 바로크에서 현대까지 무려 400년의 세월을 아우른다. 바흐가 작곡한 프랑스 춤곡 샤콘, 베토벤·브람스· 드보르자크의 실내악곡에 포함된 미뉴에트를 비롯한 춤곡들, 유럽 음악의 종주국 출신은 아니지만 모국의 개성을 담은 춤 을 음악의 형태로 세계와 공유하려 했던 쇼팽, 코다이, 파야의 곡들, 라벨의 왈츠, 번스타인의 모음곡들이 청중을 기다린다. 그 음악과 춤의 세계속으로-. 글 이용숙 음악평론가· 『춤에 빠져들다』저자, 사진 열대림, 중앙포토
08 SUNDAY MAGAZINE
ISSUE
궁중 악사들의 연주에 맞춰 레스터 백작과 볼트를 추는 엘리자베스 1세를 그린 영국 궁정의 춤.
바로크 시대 음악은 당대의 춤에서 비롯된 ‘교대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 한걸음 앞으로 진행했으면 한걸음 뒤로 가고, 왼쪽으로 두 걸음 갔다간 오른쪽으로 두 걸 음 옮겨가는 기본적인 순환동작 원리다. 춤은 지구 밖 광대한 우주로 날아오르려 는 상승의지의 표현이지만, 춤을 추는 공간은 대개 사방 벽으로 한정돼 있으니 출 발했던 지점으로 언제나 돌아올 수밖에. ‘춤의 세기’로 불렸던 16세기 유럽에서는 귀족이든 평민이든 모두 춤에 열광했 다. 이 시기에 처음 등장한 스위트(Suite·모음곡)는 당연히 춤을 추기 위한 음악이 었다. 17세기 프랑스에서 눈에 띄게 발전한 스위트의 형식을 독일 작곡가 요한 야 코프 프로베르거(1616~1667)는 ‘알르망드-쿠랑트-사라방드-지그’로 고정했다. 알르망드는 독일, 쿠랑트는 프랑스, 사라방드는 스페인, 지그는 영국의 춤곡이다. 알르망드 앞에 서곡이나 전주곡(프렐류드)·신포니아·토카타 등이 붙기도 했고, 지그로 끝을 맺기 전에 미뉴에트·가보트·부레·폴로네즈·샤콘 등이 포함되는 등 다양한 변형도 가능했다. 이때부터 모음곡은 단순한 춤곡의 기능을 넘어 연주회 용 음악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바로크 모음곡은 각 지역의 정서를 담은 민속적 선율과 리듬의 춤곡들 이 한데 모여 조화를 추구하는 음악 형식이다. 라모, 바흐, 헨델 시대에 절정에 이 른 바로크 모음곡은 고전주의 시대가 시작되는 18세기 중엽부터 점차 쇠퇴한다. 신분사회의 종언과 더불어 궁정댄스가 자취를 감추고 왈츠가 전면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신분 질서가 무너지던 프랑스혁명기 상징, 왈츠 귀족과 서민의 춤이 섞여 탄생한 왈츠는 신분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한 프랑스 대 혁명기의 상징 같은 춤이다. 본격적인 커플댄스의 문을 연 춤이기도 하다. 무도회 장에서 여럿이 함께 추고 있지만 파트너와 자신 외에 다른 것을 의식하지 않게 된 다는 점에서 이 최초의 ‘밀착댄스’는 서구 개인주의 발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1867)는 당시 유럽은 물론 미국까지 뒤흔든 ‘국제 히트곡’이었다. 모음곡에 들어 있는 수많은 춤 가운데 연주곡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미뉴 에트다. 미뉴에트란 프랑스어 ‘menu pas(작은 걸음)’를 어원으로 한 용어로, 스 텝의 보폭이 작아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17세기 후반 궁정에서 가장 사랑받던 춤이다. 루이 14세의 궁정 작곡가였던 장 바티스트 륄리의 오페라와 발레에서만 보더라도 1664년부터 1687년 사이에 90곡의 미뉴에트가 사용됐다. SUNDAY MAGAZINE 09
ISSUE
저명 연주가 시리즈 ◇7월 26일(목) 오후 7시30분 알펜시아 콘서트홀 버르토크 / 세케이 루마니아 민속 춤곡 : 폴 황(바이올린), 박지원(피아노) 도흐나니 세레나데 C장조, op. 10 : 강주미(바이올린), 막심 리자노프(비올라), 루이스 클라렛(첼로) 라벨 라 발스 : 조성진(피아노) 아르보 패르트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형제들(Fratres)’: 에드워드 아론(첼로), 박지원(피아노) 드보르자크 현악 육중주 A장조, B. 80, op. 48 : 토드 필립스폴 황(바이올린), 토비 애플헝 웨이 황(비올라), 루이스 클라렛김민지(첼로)
◇7월 27일(금) 오후 7시30분 뮤직텐트 하이든 천지창조 : 임선혜(소프라노), 김우경(테너), 니콜라이 보르체프(바리톤), 서울 모테트 합창단(합창지휘 박치용), GMMFS 오케스트라(지휘 성시연)
정치와 외교의 장이었던 19세기 유럽의 무도회 풍경.
미뉴에트는 A-B-A 유형의 3절 가곡 형식인데, 그 뒤에 발전한 왈츠와 같은 4분 의 3박자 춤곡이면서도 그 춤의 성격은 완전히 달랐다. 귀족계급이 어떤 다른 춤
◇7월 28일(토) 오후 2시·7시30분(2회) 알펜시아 콘서트홀 번스타인 춤 모음곡 :
제임스 로스레이먼드 리코미니(트럼펫), 자비어 간다라(호른), 웨스턴 스프로트(트롬본), 매튜 길퍼드(베이스 트롬본) 드미트리 브리얀체프 유령의 무도회(쇼팽-녹턴 D플랫장조 op. 27 2번) :
이리나 드보로벤코, 막심 벨로세르코프스키(발레), 박지원(피아노) 비에냐프스키 에튀드-카프리스, op. 18 - 4번 a단조, 2번 E플랫장조, 6번 D장조 :
보다 미뉴에트를 선호한 이유는 자신들의 요란한 가발, 예장용으로 차고 있는 긴 칼, 움직이기 불편할 정도로 과장된 의상 등의 우아하고 위엄 있는 외관을 이 춤의 스텝이나 동작이 가장 잘 살려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서로를 안고 빠른 템포로 회전하면서 주변 세계를 잊고 무아의 경지에 빠질 수 있는 왈츠와는 달리 파트너 와 신체적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며 귀족 특유의 냉정함을 지킬 수 있는 있는 춤이 미뉴에트였다.
권혁주, 신현수(바이올린), 미하일 포킨 빈사의 백조(생상스 -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 :
병사의 바이올린 연주로 불치병 고친 공주의 세 가지 춤
이리나 드보로벤코(발레), 루이스 클라렛(첼로), 박지원(피아노)
이번 음악제에서 특히 주목할 춤곡은 1918년 초연된 발레극이면서 모음곡 형
J. S.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 BWV 1007 :
식으로 연주되는 스트라빈스키 ‘병사 이야기’의 ‘탱고, 발스(왈츠), 래그타임
루이스 클라렛(첼로)
(ragtime)’이다.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물욕을 상징하는 악마에게 영혼을 잃을
장 코랄리 / 쥘 페로 파 드 되 지젤(아당지젤) :
수도 있다는 경고를 담은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병사는 불치의 병에 걸린 공주를
김주원이동훈(발레), 토비 애플(비올라), 에반 솔로몬(피아노)
구하는데, 병사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기적적으로 되살아나는 공주가 추는 춤
에른스트 ‘여름의 마지막 장미’에 의한 변주곡 :
이 위의 세 곡이다. ‘병사 이야기’는 클라리넷, 바순, 트럼펫, 트럼본, 바이올린, 콘
강주미(바이올린), 조지 발란신 ‘아폴로’ 발췌 (스트라빈스키 - ‘아폴로’) :
이리나 드보로벤코막심 벨로세르코프스키(발레), 배익환아라웨인 린리카 마사토(바이올린), 장중진틴-루 라이(비올라), 박상민하세연(첼로), 마이클 울프(더블베이스)
트라베이스, 타악기 주자 한 명씩 총 7명의 앙상블이 연주하는 작품으로, 쇤 베르크의 영향이 돋보이는 걸작이다. 스트라빈스키가 이 작품에서 사용한 탱고는 남미 대륙으로 이주 한 유럽 이민자들의 애환을 담은 정통 아르헨티나 스타일이 아 니라 유럽으로 전해진 콘티넨털 스타일 탱고로, 경쾌하고 리 듬이 선명하다. 발스는 우아하고 매력적이며, 그에 이어지는 래그타임은 즐거움과 행복을 향해 서둘러 달리는 듯한 힘차고 유머러스한 리듬감을 과시한다. 래그타임이란 아프리카 음악 을 기초로 한 아프로아메리카 음악의 일종이다. 건반악기 연주자는 왼손으로 단조로운 2박자 화음을 연주하면서 오 른손으로는 싱코페이션을 연주한다. 영화 ‘스팅’의 주제곡 인 스콧 조플린의 ‘엔터테이너’가 대표적인 래그타임 곡이 다. 뉴올리언스 재즈가 즉흥연주를 중시하는 데 비해 래그타 임은 조성과 멜로디가 좀 더 정형화된 재즈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이 2박자 비트는 대단한 중독성 이 있어 이 음악이 유럽에 건너가자 유럽인들은 그때까 지 완전히 빠져 있던 왈츠와 탱고를 한동안 잊어버릴 정 도였다고 한다. 래그타임의 빠른 템포와 흥겨운 멜로디가 동물들의 걸음걸이를 연상시켜 이를 기초로 터키트로트, 폭 스트로트 등이 발전하게 되었다.
10 SUNDAY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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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일) 오후 5시 알펜시아 콘서트홀 슈베르트 현악 사중주 12번 c단조 D.703, ‘단악장의 사중주’:
이경선, 신아라(바이올린), 헝 웨이 황(비올라), 에드워드 에런(첼로) 헨델 오를란도, HWV 31: 사랑은 바람처럼 : 임선혜(소프라노) 이집트의 줄리오 체사레, HWV 17: 아름답군요, 내 사랑 :
임선혜(소프라노), 니콜라이 보르체프(바리톤) 알렉산더의 축연, HWV 75: 복수하라, 티모테우스가 울지 않느냐 :
니콜라이 보르체프(바리톤) 소사르메, HWV 30: 고통의 문을 향해 :
임선혜(소프라노), 니콜라이 보르체프(바리톤), 서울스트링콰르텟, 웨인 린, 신아라(바이올린), 헝 웨이 황(비올라), 박상민(첼로) 브람스 피아노 사중주 1번 g단조, op. 25 :
정경화(바이올린), 막심 리자노프(비올라), 정명화(첼로), 피터 프랭클(피아노)
◇8월 2일(목) 오후 7시30분 알펜시아 콘서트홀 박영희 항상 V (세계 초연) :
나채원(알토 플루트), 장대건(기타), 신봉주(북) 풀랑크 오보에와 바순, 피아노를 위한 삼중주 :
임수미(오보에), 곽정선(바순), 로버트 맥도널드(피아노) J. S.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d단조 BWV 1004 - 샤콘 :
정경화(바이올린)
커플댄스 발전에 공헌한 버논 캐슬 부부의 일대기 영화 속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
베토벤 현악 사중주 e단조, op. 59 2번, ‘라주모프스키’:
미켈란젤로 현악사중주단, 미하엘라 마틴, 다니엘 아우스트리치(바이올린), 노부코 이마이(비올라), 프란스 헬머슨(첼로)
◇8월 3일(금) 오후 7시30분 알펜시아 콘서트홀 리샤르 뒤뷔뇽 마술(Incantatio) op. 12b :
막심 리자노프(비올라), 로버트 맥도널드(피아노) 베토벤 현악 삼중주 D장조, op. 9 2번 :
배익환(바이올린), 장중진(비올라), 에드워드 에런(첼로) 브람스 피아노 오중주 F단조, op. 34 :
미켈란젤로 현악 사중주단, 미하엘라 마틴, 다니엘 아우스트리치(바이올린), 노부코 이마이(비올라), 프란스 헬머슨(첼로), 김선욱(피아노)
SUNDAY MAGAZINE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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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낙원 고원서 펼치는 환상 무대 빅4 “작년에 (준비할) 시간이 조금 짧았던 게 아쉬웠다면 올해는 좀 더 풍성하게 준비 했어요. 앞으로 점점 세계 최고 수준의 음악제 모습을 갖춰갈 겁니다.”
1378석 규모 뮤직 텐트 속 천지창조 올해 처음 선보이는 뮤직 텐트는 야외 공연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줄 무대다. 지
정명화 공동예술감독의 말대로 올해 대관령국제음악제는 지난해보다 한 단계
하 1층, 지상 1층에 1378석 규모로 110억원이 투입됐다. 흰색 지붕은 축음기 나팔
진화했다. 야외 연주가 가능한 뮤직 텐트가 처음 설치됐다. 쟁쟁한 음악가들이 대
모양으로 돼 있다. 투명 유리벽은 개폐가 가능하다. 개관 기념 무대는 하이든의
거 초청되면서 저명 연주자 시리즈도 1회 늘어난 10회에 걸쳐 펼쳐진다. 음악학교 ‘천지창조’. 정명화 예술감독은 “각국에서 온 음악제 참석 연주자들이 거대한 오 를 찾는 학생 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최고 수준의 발레리나·발레리노는 무대를 더
케스트라를 이루게 된다”며 “자연 속에서 듣는 음악은 전혀 다른 느낌일 것”이라
욱 환상적으로 만들 예정이다. 제9회 대관령국제음악제의 ‘빅4’를 골라봤다.
고 귀띔했다. 성시연(서울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이 소프라노 임선혜, 테너 김우 경, 바리톤 니콜라이 보르체프, 서울 모테트 합창단 등과 함께 대관령음악제 사상 최대 규모의 무대를 이끈다. 여름밤 적시는 국내외 거장의 연주 노부코 이마이를 중심으로 하는 미켈란젤로 현악사중주단이 아시아 최초 무대를 선보인다. 인디애나음대 배익환(바이올린) 교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장중진, 바이올리니스트 강주미·권혁주·신현수, 베를린 국립음대 마이클 울 프 교수 등이 이루는 현악 앙상블은 말 그대로 ‘드림팀’이다. 브라스 앙상블의 시 원한 무대도 여름밤을 적신다. 정명화·정경화 자매가 헝가리 출신의 거장 피아니 스트 피터 프랭클, 2008년 그라모폰 수상자인 비올리스트 막심 리자노프 등과 함 께 꾸미는 무대도 놓칠 수 없다. 조선시대 비운의 여류 예술가 허난설헌을 기리는 작곡가 박영희 선생의 ‘초희와 상상의 춤’ 무대는 세계 초연이다. 이 작품은 세계 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지멘스 음악재단’의 지원작으로 최종 선정됐다.
12 SUNDAY MAGAZINE
ISSUE ◇8월 4일(토) 오후 2시 알펜시아 콘서트홀 보케리니 현악오중주 C장조, G. 349, op. 42 2번 :
강주미, 신현수(바이올린), 토비 애플(비올라), 에드워드 아론, 김민지(첼로) 박영희 초희와 상상의 춤(세계 초연) :
에드워드 아론(첼로), 임수미(오보에), 채재일(클라리넷), 곽정선(바순) 쇼팽 마주르카 23번 D장조, op. 33 2번 : 왈츠 17번 E플랫장조, op. posth 왈츠 16번 A플랫장조, op. posth 마주르카 23번 b단조, op. 33 4번 : 피터 프랭클(피아노)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번 f단조, op. 80 :
정경화(바이올린), 로버트 맥도널드(피아노)
◇8월 4일(토) 오후 7시30분 알펜시아 콘서트홀 드뷔시 첼로 소나타 : 정명화(첼로), 김선욱(피아노)
3. ABT 수석 무용수 커플의 발레 공연
글라주노프 현악사중주 A장조, op. 39 :
올해의 테마 ‘춤’에 맞춰 귀한 손님이 강원도 평창을 찾는다. ABT(아메리칸 발레
토드 필립스폴 황(바이올린), 장중진(비올라),
시어터)의 수석 무용수인 이리나 드보로벤코와 막심 벨로세르콥스키다. 이 스타
루이스 클라렛박상민(첼로)
커플은 쇼팽의 ‘유령의 무도회’, 스트라빈스키의 ‘아폴로’의 일부 장면을 콘서트 홀 무대에서 보여준다. 또 국립발레단의 두 수석 김주원(객원)과 이동훈 역시 지 젤의 파 드 되로 멋진 호흡을 보여줄 예정이다. 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은 기자간 담회에서 “음악 속에 발레가 있다. 발레리나도 음악성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스트라빈스키 병사 이야기 모음곡 :
채재일(클라리넷), 곽정선(바순), 레이먼드 리코미니(트럼펫), 웨스턴 스프로트(트롬본), 배익환(바이올린), 마이클 울프(더블베이스), 박윤(타악기), 안성기(내레이션), 성시연(지휘)
◇8월 5일(일) 오후 5시 알펜시아 콘서트홀
이번 무대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뒤카 ‘라 페리’를 위한 팡파르 G. 가브리엘리 칸초네와 소나타 :
4. 안성기의 목소리 연기 음악영화 상영 스트라빈스키의 ‘병사이야기’를 위해 영화배우 안성기가 특별출연한다. 음악에 맞춘 목소리 연기를 위해서다. 이화여대 최미경 교수가 번역한 대사 속 병사와 악 마를 함께 연기한다. 렉처 시리즈도 강화됐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7월 27일), 소프라노 임선혜(7월 28일), 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7월 29일), 한국화랑협회 표
제임스 로스레이먼드 리코미니(트럼펫), 자비어 간다라(호른), 웨스턴 스프로트(트롬본), 메튜 길퍼드(베이스 트롬본) 드보르자크 현을 위한 세레나데 E장조, B. 52, op. 22 : GMMFS 앙상블 슈만 피아노오중주 e플랫단조, op. 44 :
미켈란젤로 현악사중주단, 미하엘라 마틴,
미선 대표(8월 4일)가 예술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천 국제음악영화제 프로그래머
다니엘 아우스트리치(바이올린), 노부코 이마이(비올라),
인 전진수씨가 추천하는 음악 영화들도 볼 만하다.
프란스 헬머슨(첼로), 피터 프랭클(피아노)
올해는 H석이라는 이름의 후원석 제도가 시작된다. 티켓 값 5만원에 기부금 20만원이 합쳐진 금액이다. 취소 표에 대한 현장 판매가 진행되며 콘서트홀 공연 은 ‘영상음악회’라는 이름으로 뮤직 텐트에서 생중계된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대관령국제음악제
노부코 이마이
로버트 맥도널드
피터 프랭클
성시연
김선욱
신현수
강주미
조성진
막심 리자노프
안성기
김주원
이동훈
SUNDAY MAGAZINE 13
REVIEW & PREVIEW
한번 상상해봐 20년대 파리로 타임머신 여행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파리에선 자정이 되면 타임머신을 탈 수 있다. 야만적인 열정, 그리고 피츠제럴드의 허무주 이런 가정에서 우디 앨런은 ‘미드나잇 인 파
의와 풍경에 대한 예민한 감각 등은 같은 세
리’를 시작한다. 과거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대들뿐 아니라 우디 앨런에게도 큰 영향을
있는 유럽의 옛 도시에서 이런 상상을 하는
미쳤다. 그래서 우디 앨런의 분신인 길은 파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리의 1920년대로 가자마자 입을 떡 벌리고
과거로 갈 수 있다면 언제 어디로 되돌아가고
두 작가를 경배하듯 만나는 것이다.
싶은가? 우디 앨런은 1920년대의 파리를 권
여행에서 사랑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길은
한다. 소위 아방가르드 시기였던 그때로 돌아
여성 편력으로 유명한 피카소를 만나고, 당시
가 보고 싶은 예술가들을 차례로 만나는 흥
피카소의 애인이었던 아드리아나(가상의 인
분된 꿈을 펼쳐놓는다. 말하자면 ‘미드나잇
물)와 사랑에 빠진다. 과거의 파리를 관찰하
인 파리’는 눈에 보이는 도시의 ‘공간’을 전시
는 입장이었는데 그만 사랑에 빠졌으니 현재
하는 게 아니라 예술적 기억이라는 비가시적
로 돌아가기도 아깝고, 길은 혼란을 느낀다.
인 ‘시간’을 찬미하는 영화다.
그런데 살바도르 달리 같은 초현실주의자 들에겐 이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이
헤밍웨이·피카소·달리를 만나다 우디 앨런의 영화 속 분신이자 주인공인 길
그리고 미래로 구분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웬 윌슨 분)은 시나리오 작가인데, 그래서
오히려 살바도르 달리는 ‘그림’을, 루이스 부
인지 그가 첫 번째로 만난 예술가는 작가 스
뉴엘은 ‘영화’를, 그리고 만 레이는 ‘사진’을
콧 피츠제럴드와 어니스트 헤밍웨이다. 친구
떠올린다. 세상의 모든 불가해한 현상도 이들
사이인 두 미국인은 1920년대 파리에 살며
에겐 오직 예술적 영감의 대상일 뿐이다.
작가적 기량을 쌓았고, 훗날 ‘잃어버린 세대’
헤밍웨이의 파리
들에게 시간은 공존하는 것이지 과거와 현재
이들에게 한 수 배웠는지 길은 아드리아나
의 주인공이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
를 뮤즈 삼아 자신의 소설을 완성해 간다. 심
으로 상실의 무력감과 퇴폐의 쾌락이 공존하
지어 다른 파티에서 부뉴엘을 만났을 때 이
는 당시의 파리를 고스란히 목격하고 경험한
번에는 길이 그에게 영화적 영감을 제공하기
드 스타인(캐시 베이츠 분)이다. 그녀의 집은 1920년대 파리 예술가들의 사랑방
헤밍웨이는『태양은 다시 떠오른다』(1926)
도 한다. “몇 명의 손님이 저녁에 초대받았는
이었다. 헤밍웨이는 여기서 그녀의 소개로 당대 모더니즘의 선구자들인 제임스
에 , 피츠제럴드는『위대한 개츠비』(1925)를
데, 집에 갈 시간이 되자 이상하게 아무도 문
조이스, 에즈라 파운드 등을 만나 문학적 영감을 얻는다.
남겼다. 헤밍웨이의 친유럽적인 도피주의와
밖을 나가지 못한다.” 부뉴엘은 무슨 말인지
파리에서 문학수업 중인 헤밍웨이를 도운 인물이 미국 출신 여류작가 게르트루
14 SUNDAY MAGAZINE
REVIEW & PREVIEW
탱크와 시계의 아주 특별한 인연 까르띠에 탱크 워치 전시, 7월 13~29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1층, 문의 02-757-7705
1904년 최초의 현대식 손목시계 ‘산토스’를 만든 까르띠에는 1917년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였다. 루이 카르티에가 위에서 내려다 본 탱크의 차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탱 크(Tank)’는 브랜드의 영원한 아이콘이 됐다. 100년 가까이 사랑받아 온 시계의 역사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시작됐다. ‘탱크 노말’(1917)부터 ‘탱크 상트레(1921)’ ‘탱크 시 누와즈(1922)’ ‘탱크 바스퀼랑트(1932)’ 등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던 다양한 탱크 워치 를 한자리에 모았다. 개리 쿠퍼, 클라크 케이블, 잉그리드 버그먼 등 탱크를 사랑했던 스 타들의 사진도 함께 볼 수 있다. 또 올해 론칭한 ‘탱크 앙글레즈’도 함께 전시된다. ‘탱크 아메리칸(1989)’ ‘탱크 프랑세즈(1996)’에 이어 출시된 이 시계는 카르티에 제품을 널리 알리고자 1847년 파리, 1902년 런던, 1909년 뉴욕으로 떠났던 카르티에 3형제의 여정 을 증명하는 제품이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어느덧 길도 초현
글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사진 까르띠에
실주의적 영감까지 배운 셈이다(이 영화는 훗 날 부뉴엘이 ‘절멸의 천사’로 발표한다). 우디 앨런에 따르면 파리는 초현실주의의 도시다. 과거로 바로 되돌아갈 수 있으니 말
애니 좋아하는 사람 여기 붙어라 서울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7월 18~22일 CGV 명동역·서울애니시네마, 문의 02-3455-8436
이다. 우리 모두가 상상력을 발휘하면 길처럼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공간 속에 예술적 기 억을 담고 있는 파리는 그런 시간여행의 영감 을 풍부하게 자극한다. 비오는 파리 밤거리 그리고 재즈 길은 1920년대의 파리, 그것도 ‘비 오는 파리 의 밤’이 최고라고 말한다. 약혼녀는 젖기만 한다고 투덜댄다. 이는 우디 앨런 영화의 상 투성 가운데 하나인데, 연애의 최고 순간에 는 항상 비가 내린다. 재즈 음악과 비를 빼고
전 세계 애니메이션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아시아 최대의 애니메이션 축제. 올해는
우디 앨런의 영화를 말할 수 없다. 아마 그는
개막작인 이냐시오 페레라스 감독의 ‘노인들’을 시작으로 5일간 300여 편의 작품을 상
비 오는 거리에서 재즈를 들을 때 최고로 행
영한다. ‘돼지의 왕’ ‘알로이스 네벨’ ‘고슴도치 조지’ ‘야생의 삶’ 등 전 세계 유수의
복한 모양이다.
페스티벌과 평단에서 인정받은 작품들과 ‘핌파룸 세 번째 행운’ ‘날아라 슈퍼보드’ ‘정
영화의 종결부, 길은 밤에 재즈 음반을 팔
글번치-빙산으로의 귀환’ 등 어린이를 위한 명작극장도 마련된다. 올여름 국내 개봉을
던 여성(레아 세이두 분)과 우연히 다시 만난
앞두고 있는 ‘파닥파닥’ ‘새미의 어드벤쳐2’ 등도 최초로 만나볼 수 있다. 그 밖에 픽사
다. 두 남녀는 쑥스러워하며 정답게 인사를
(Pixar)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한국 아티스트들이 신작 ‘메리다와 마법의 숲 Brave’
나누는데, 갑자기 비가 내린다. 여성은 자기
제작 이야기를 들려주는 ‘픽사 이야기’, 세계적인 애니메이터 마이크 윙 감독이 준비한
도 비를 맞고 걷는 게 좋다고 말한다. 배경음
‘애니메이션 타이밍’ 등 특별 프로그램 또한 알차다. CGV 홈페이지(www.cgv.co.kr)와
악으로 재즈가 연주된다. 둘 사이에 무슨 일
서울애니시네마 홈페이지(cinema.ani.seoul.kr)에서 예매할 수 있다.
이 벌어질지, 더 이상 말이 필요없을 것 같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SICAF 조직위원회
글 한창호 영화평론가, 사진 더블앤조이픽쳐스 SUNDAY MAGAZINE 15
BOOK
당시 교사 월급이 50원 내외였던 터라 100 원권 지폐는 가난한 집의 예닐곱 살 아동은 본 적조차 없는 것이었는데, 1935년 서울의 한 공립보통학교에서는 입학 시험으로 100 원짜리 지폐를 꺼내놓고 ‘이것은 얼마짜리 지폐냐?’라고 물었다. 부잣집 자제에게는 땅 짚고 헤엄치기 같은 문제였지만 가난한 집 자 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답할 수 없었 다. 당연히 세간의 비난이 빗발쳤지만 이 100
이 땅의 입시지옥 100년 전과 어쩜 그리 똑같은지
원권 지폐 문제는 확실한 ‘변별력’을 인정받
숨은 책 찾기 <13> 살림출판사의『경성자살클럽』
아 그 이듬해에도 출제되었다고 한다. 입학난 해소를 위해 총독부에서 행한 조치 도 매우 익숙하게 들렸다. 1934년 ‘획기적’ 조 치라며 들고 나온 것이 입시교육 금지와 입시 과목 줄이기, 보통학교 교장 추천 등이었는 데, 경쟁률이 10대 1이 넘는 상황에서 전혀 실 효를 거둘 수 없었다. 4년 후 내놓은 입시개혁 안도 주입식 교육을 철폐하고 다양한 재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학 생들은 학과공부 이외에 군국주의 이념 학습 과 체력단련 부담까지 떠안아야만 했다. 듣는 내내 어쩌면 지금의 입시 풍경과 그 리 비슷한지 감탄을 거듭했다. 이처럼 ‘자살’ 을 둘러싼 신기하고도 흥미진진한, 그러면서 도 현재의 우리 삶과 맞닿아 있는 의미심장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던 그 책의 연장선
풍이 불던 시기였다. 바이오라는 이름만 붙으
상에 있는 책이 바로『경성자살클럽』(전봉 이라는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아놓았다.
면 그게 실험용 쥐를 키워 파는 회사라도 주
관, 살림, 2008)이다.
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절이었다. 그때 그 가 넌지시 들려줬다. “1920~30년대에도 비슷했어, 지금이랑. 네
전봉관 교수는 소설가스러운 인문학자다.
어느 날 저자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식민지 시대의 문화와 풍속을 ‘인물’과 ‘사건’ “20~30년대에도 입시지옥에 시달리다 자살 한 아이들이 있었다는 거 아나?”
중심으로 스토리텔링해 독자들에게 마치 소 설처럼 읽히게 했고, 식민지 시대의 이야기들
그는 항상 이런 식으로 관심을 확 잡아당
이 문화콘텐트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
긴 후에 구상하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길
여줬다.『경성기담』이후로 그 시대를 배경
마치 19세기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처럼
좋아했다. 그에 따르면 그 시기 수많은 학생
으로 한 책, 영화와 드라마, 연극 등이 유행처
금광을 찾는 광풍이 그 시기 한반도에 불어
들이 입시 불합격을 비관해 줄을 이어 목숨
럼 번졌던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닥쳤다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였다. 그 이야
을 끊었고, 심지어는 아들의 입시 실패를 비
아쉽게도 유행이 식어가면서 저자의 지속
기를 들려준 이가 바로 KAIST의 전봉관 교
관해 아버지가 투신자살한 경우도 있었다고
적인 탐사 끝에 나온 『경성자살클럽』은 생
수였고, 그 이야기는 몇 년 뒤『황금광시대』 한다. 당시의 입학시험은 워낙 경쟁이 심해 보
각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전해지지 못했다. 그
(살림, 2005)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간됐다. 통학교 입시든, 중등학교 입시든 우수한 학
러나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책에 담긴 이야기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근대문화 연구에 뛰어
생을 뽑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정원을 초과한
는 여전히 흥미롭다. 독자들
들었고 그 첫 결과물이 그의 출세작인『경성
인원을 걸러내는 데 중점이 두어졌다. 당연히
과 나누고 싶다.
기담』(살림, 2006)이다. 당시 인문서로서는
부모의 ‘부’가 중요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글 강심호 살림출판사 기획국장
가 아는 채만식, 김기림, 김유정 이런 문인들 도 ‘금’에 열광했었단 말야.”
드물게 그해 ‘올해의 책’ 후보에 오를 만큼 ‘100원권 지폐 문제’였다. 16 SUNDAY MAGAZINE
한 이야기 10편을 저자는『경성자살클럽』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한창 벤처투자 열
사진 살림출판사
GUIDE
금주의 문화행사 책
영화
전시
클래식
소설 프랑스혁명 1~4 저자: 윤사토 겐이치 역자: 김석희 출판사: 한길사 가격: 각권 1만4000원
서양사와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나오키
5백만불의 사나이
상 수상 작가 사토 겐이치가 학자들의 연
감독: 김익로
RE-OPENING DOOSAN GALLERY SEOUL
구 대상에 머물렀던 프랑스혁명에 극적
배우: 박진영, 민효린, 조성하
여성 피리 삼중주 ‘피리, 셋 set’ 일시: 7월 20 오후 8시, 21일 오후 4시
기간: 7월 18일~8월 19일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등급: 15세 관람가
장소: 서울 연지동 두산갤러리
문의: 1544-1555
프랑스. 왕과 관료, 성직자들은 국가를 위
얼굴 빼고는 모든 것이 명품인 대기업의
문의: 02-708-5050
국립극장 ‘국가 예술가 시리즈’ 아홉 번
해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민중의 불신은
로비스트 부장 최영인(박진영)은 보스 한
두산갤러리는 2009년부터 뉴욕 첼시에
째 작품. 전통음악 연주에서 주 선율을 담
커져만 갔다. 치밀한 사료 분석을 바탕으
상무(조성하)의 명령으로 로비자금 500
갤러리와 레지던시를 열고 젊은 작가들
당하는 피리 연주자 3인방 강주희ㆍ최훈
로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내 사건 자
만 달러를 배달하러 가던 중 괴한의 습격
의 활동을 지원하고 작품을 소개했다. 이
정ㆍ김민아의 피리 앙상블 무대가 펼쳐진
체보다 인물의 심리묘사에 치중한 서술
을 받는다. 한상무가 자신을 제거하고 돈
번 전시는 갤러리 재개관을 기념하고 권
다. 박범훈ㆍ김성국ㆍ황호준ㆍ강상구ㆍ안
방식으로 재미와 문학성을 고루 갖춘 정
을 빼돌리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영인
오상·김기라·김인배 등 입주 작가들의 지
승철 다섯 명의 작곡가가 ‘피리, 셋 set’
치드라마.
은 돈가방을 든 채 도망치는데….
난 3년간 성과를 확인하는 자리다.
을 위해 만든 초연곡을 발표한다.
고려대 가정교육과 교수인 필자가 궁궐
모피를 입은 비너스
Brain - 뇌 안의 나
어쿠스틱 카페 내한공연
밖의 일상생활 속에서 전수돼 온 조선시
감독: 송예섭
기간: 7월 25일~10월 19일
일시: 7월 18일 오후 8시
대 궁중음식의 모든 것을 엮어 냈다. 조선
배우: 서정, 백현진
장소: 서울 안국동 사비나 미술관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문의: 02-736-4371
문의: 02-2000-6309
종친으로 살았던 필자의 선조들이 만들
영화감독 민수(백현진)는 우연히 만난 주
예술과 두뇌 사이에 숨겨진 창의성의 비
편안하고 서정적인 멜로디로 한국에도
어 먹던 음식을 필자의 모친이 직접 수기
원(서정)의 매력에 빠져 그녀의 집에서 시
밀을 풀어본다. MSC 뇌적성검사와 작가
많은 팬을 거느린 일본 뉴에이지 연주그
인터뷰를 이용해 참여 작가들의 두뇌를
룹 어쿠스틱 카페 내한공연. 클래식ㆍ영
재미를 불어넣었다. 혁명 전야 혼란했던
서울의 전통음식 저자: 이귀주 출판사: 고려대학교 출판부 가격: 1만7000원
시대 한성부 사대부촌인 북촌에서 왕실
로 기록한 자료를 기반으로 재현했다. 퓨
나리오 작업을 하며 함께 지낸다. 그는 미
전 한식의 유행으로 뿌리를 잃어버릴 위
스터리한 여인 주원에게 더욱 빠져들며 그
유형별로 분석해 예술가의 창의성이 발
화음악ㆍ팝ㆍ탱고ㆍ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기에 처한 우리 전통음식과 음식문화의
녀가 시키는 대로 마조히즘적인 행동을
현하는 과정을 추적하고 작품을 분석한
소화한다. ‘라스트 카니발’ ‘내일을 위한
본모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한다. 고립된 저택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다. 관객들도 검사를 통해 자신의 두뇌 유
희망’ 등이 대표곡. 여름에 맞는 시원한
제공한다.
기괴한 사랑이 충격적 결말로 치닫는데….
형을 확인하고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다.
선율을 들려줄 예정이다.
THIS WEEK CHART 베스트셀러
자료=교보문고
순위 책명
영화 예매
자료=맥스무비
작가·출판사 순위 영화명
공연 예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스님·쌤앤파커스
연가시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칼 팔레머·토네이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앤드루 가필드
뮤지컬 모차르트!
나는 공무원이다
윤제문·송하윤
뮤지컬 잭더리퍼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정목 스님·공감
해커스 토익 보카
David Cho·해커스어학연구소
스님의 주례사
법륜·휴
자료=인터파크
주연 순위 공연명 김명민·문정희·김동완
클래식 음반
자료=풍월당
출연 순위 음반명
EBS모여라딩동댕 번개맨의 비밀
-
박은태·임태경 안재욱·엄기준·이성민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외 나의 사랑 나의 탱고
Glossa Warner Korea
비발디: 라 체트라
Channel Classics
미드나잇 인 파리 오웬 윌슨·마리옹 코티아르
뮤지컬 위키드 오리지널 내한공연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
뮤지컬 시카고
인순이·최정원·윤공주
크라우스:비올라 협주곡집
ONDINE ZIG ZAG
-
-
음반사
피셔-디스카우의 예술
DG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류시화·문학의숲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주디 덴치
연극 옥탑방 고양이
박성훈·장지우·윤정빈
슈베르트 즉흥곡 외: 루비모프
해커스토익 READING David Cho·해커스어학연구소
스트리트 댄스2:라틴 배틀
폴크 헨쉘
뮤지컬 라카지
정성화·남경주·김다현
브루흐: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집 ARS
아프니까 청춘이다
두 개의 문
김난도·쌤앤파커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와이즈베리
두 개의 달
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고도원·해냄출판사
내 아내의 모든 것
권영국·김형태
뮤지컬 로보카 폴리
박한별·김지석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임수정·이선균·류승룡
황정민·서범석·홍광호
뮤지컬 헤어스프레이 공형진·안지환·오소연
다니엘 호프 : 로맨틱 바이올리니스트 프랑스 첼로 소품집 비발디 : 사계
DG
Capriccio Tafelmusik
SUNDAY MAGAZINE 17
INTERVIEW
산꼭대기에 힘들여 오르면 다른 꼭대기가 보여 그러면 또 그쪽에 가고 싶어지지 ‘여우樂 페스티벌’ 예술감독 맡은 양방언
조총련 학교 나온 의사 출신 8·15 특집 단골 양방언. 그의 이름은 몰라도 그의 음악은 웬만해선 피해갈 수 없다. 드라마영 화다큐멘터리CF 등 각종 영상매체의 삽입곡으로 심심찮게 들려오기 때문 이다. ‘동양의 야니’로 불릴 만큼 진취적이고 웅장한 스케일로 가슴을 후련하 게 만드는 그의 음악은 2000년대 이후 한국인의 역동적인 기운을 표현하는 지금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는 ‘여우락 페스티벌’(21일까지)이 한창
영상에 어김없이 등장했다. 태평소장구꽹과리 등 국악기가 뿜어내는 우리
이다. ‘여우락’은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의 줄임말로, 우리가 미처 몰랐
정서의 리듬과 선율을 클래식 오케스트라의 화음으로 웅장하게 떠받치는 것.
던 우리 국악의 매력을 펼쳐 보여주는 축제. 소리꾼 이자람, 가야금 연주
양방언 퓨전 국악의 스타일이다.
자 정민아, 해금 솔리스트 꽃별, 국악밴드 ‘AUX’ 등 우리 시대를 대표하
- 큰 행사의 예술감독을 맡은 것은 처음이다.
는 젊은 국악인 13팀이 나섰다.
“지금껏 주로 연주자로 음악에 참여해 왔지만 제안을 받고 보니 다른 역할이
그 중심에 ‘범(凡)아시아, 탈(脫)장르’ 뮤지션 양방언(52)이 있다. 북한 국
보였다. 내가 참여함으로써 여우락이 활성화되고, 지난해까지 보러 왔던 사람
적에서 한국 국적으로 전환한 재일 한국인으로, 2002부산 아시안게임
과는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내가 뮤지션이
주제가 ‘Frontier!’ 이후 퓨전 국악의 멘토가 된 그가 3년 계약으로 여우
니 다른 출연진과도 뮤지션의 관점에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할 것
락의 예술감독을 맡았다. 올해로 3회를 맞은 축제의 몸집을 3배로 키우
이고, 그 성과가 마지막 날 모두가 어울리는 여우락 콘서트에서 나올 것 같다.”
고 처음으로 야외 공연도 편성해 열기를 더했다. 북한과 남한, 일본과 한 국, 클래식과 팝·민속음악의 경계를 허물어 온 뮤지션 양방언이 ‘국악 옛
-재일 한국인으로서 국악 축제를 총괄하는 일이 버겁지 않나.
“안호상 국립극장장의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전문 국악인이 아니라고 했더
날음악 ’이라는 편견의 벽을 어떻게 허물어 갈까.
니 오히려 다른 관점을 원한다더라. 나의 관점이나 제안이 페스티벌에 새로운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조용철 기자, 엔돌프 뮤직
공기가 들어오게 하는 창문이 되면 좋겠다. 신선한 공기만으로도 많은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뮤지션들은 아주 자연스러운 인간들이라 좋은 환경이 마련되 면 자연스럽게 연주가 좋아진다.” -처음으로 야외공연도 편성했다.
“여름 축제라 야외공연이 특히 중요하다. 축제에서는 그 장소의 공기조차 추 억이 된다. ‘아, 지난해 여름 야외에서 이런 공연을 봤었지’ 하는 추억을 갖게 18 SUNDAY MAGAZINE
INTERVIEW
SUNDAY MAGAZINE 19
INTERVIEW
되는 것이 페스티벌의 매력이다. 나도 여름 페스티벌을 좋아해 자주 관객으로 간 다. 나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즐거움을 느끼는지, 흥분하고 신이 나는지를 생각했 을 때 그 장소에서만 얻을 수 있는 느낌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하늘 향한 울림이 정말 좋은 태평소에 매료 양방언은 30대에 한국 국적으로 전환해 98년 처음으로 한국땅을 밟았다. 조총련 학교를 다녔고 의사가 되었다가 뮤지션의 길로 전향한 극적인 인생사가 알려지면 서자칭‘광복절아티스트’라할만큼광복절특집방송의단골메뉴가되기도했다. -‘재일 한국인 의사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음악적 성과가 가려지는 건 아닌가.
“음악이 좋은 게 먼저고, 알고 보니 이런 인생이었다는 순서면 좋겠다. 음악을 통 해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재일 한국인이라 고통받 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통이란 누구에게나 있다. 상황이 그렇더라도 그것 을 뛰어넘을 많은 가능성이 있다. 내 경우 음악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고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음악에도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고뇌가 느껴지지 않는다.
“자세의 문제다. 내가 보고 싶은 방향, 표현하고 싶은 건 위쪽이다. 지금껏 겪어온 것을 계속 가져가기보다는 그보다 위를 향하고 싶다. 힘들여 산꼭대기에 올라가 면 다른 꼭대기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러면 또 그쪽에 가고 싶어지는 성격이다. 현 실보다는 이상을 향하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모여 같이 만든 음악으 로 힘을 얻고, 또 주고 싶다.” -국악의 어떤 점에 매료됐나?
“우리 타악은 특이하다. 중국·일본의 타악은 직선적이지만 우리 것은 복잡하다. 파워도 있고 인텔리전스도 있는, 양쪽을 다 가진 느낌이다. 선율악기 중에는 내 음 악에 담고 싶은 것이 태평소였다. 내가 가진 우리나라의 이미지와 딱 맞았다. 활발 하고 소리도 크고, 하늘을 향한 울림이 정말 좋아서 태평소를 많이 썼다.” 즐거운 추억 만드는 장소에 우리 음악 울리게 일본에서 키보디스트로 자리잡은 후 90년대 중화권에 진출한 양방언은 몽골티 20 SUNDAY MAGAZINE
INTERVIEW
베트 등의 민속음악을 국악보다 먼저 접했다. 90년대 후반 솔로 활동을 시작 하면서 팝 음악에 클래식, 다양한 민속악기까지 접목시킨 크로스오버 음반을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녹음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고히 했다. -국악 이전에 아시아의 다양한 민속음악과 접했다.
“중화권에서 일을 해보니 내가 모르는 것이 있더라. 문화도 음악도 CD만으 로는 잡을 수 없는 실감이랄까, 현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접하면서 ‘클 래식과 팝재즈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많은 것이 있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런
양방언 1960년 일본 출생. 조총련계 중학교를 다니면서도 팝음악에 매료돼 밴드활동을 시작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니혼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지만
느낌이 너무 즐거워 그쪽 뮤지션들과 자연스레 어울렸다. 사람과 음악 사이에
결국 뮤지션으로 전향했다.
도 인연이 있어서 그 사람 고유의 필터를 통하면 또 다른 음악이 나온다. ‘내 음
일본의 전설적인 록가수 하마다 쇼고의
악은 이것’이라 정의하기보다 순간의 느낌과 그때 어울리는 사람들과 함께 태 어나는 것이 내 음악인 것 같다.” -민속음악과 서양음악의 조화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한 쪽에 깊이 몰입하지 않고 중간에 있으려 한다. 뉴트럴한 ‘양방언’의 입장 에서 많은 것을 흡입해 뭔가 다른 것을 만들어내고 싶다. 중요한 것은 연주자 들이다. 이해할 수 있고 소화할 수 있는 연주자들이 그 자리에 있으면 좋은 반 응을 얻을 수 있다.” -40세 가까이에 처음 한국 활동을 시작했으니 국악의 정서가 객관적으로 보일 것 같다.
“임권택 감독이 영화 ‘천년학’을 맡기면서 ‘당신이 느낀 한국 정서를 솔직하
키보드세션으로 활동을 시작해 90년대 홍콩의 록밴드 ‘비욘드’ 프로듀서를 시작으로 드라마 ‘정무문’, 청룽(成龍)의 ‘썬더볼트’ 영화음악을 맡으며 중화권에서도 입지를 굳혔다. 한국 국적으로 전환해 98년 처음 고국땅을 밟은 이후 국악을 접목해 작곡한 ‘Prince of Cheju’ ‘Frontier!’ 등은 2000년대 퓨전 국악의 교과서가 됐다. 2007년 영화 ‘천년학’ 음악으로 영화평론가협회상, 2009년엔 다큐멘터리 ‘차마고도’로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했다. 총 8장의 솔로음반을 냈다. 현재 뮤지컬 ‘몽유도원도’ 작곡과 중국에서의 영화음악 등을 병행하고 있다.
게 표현하라. 그러려면 우선 많은 것을 느끼라’고 했다. 그래서 촬영지를 많이 쫓아다녔다. 그 모든 걸 섭렵한 후 내 생각을 표현하라기에 국악에 런던 오케스 트라까지 끌어들였다. 한국인의 정서에 한도 있고 흥도 있지만 그것으로 끝내면 재미없지 않나. 또 다른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여우락에서도 내 역할은 그걸 끌 어내는 거다. 고정되지 않은 순간순간의 반응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국악을 지루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아직 많은데.
“그렇게 생각하는 원인이 어딘가 있을 수 있고 하나의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 그걸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우리가 만들 수 있었으면 한다. 축제에 가면 뭔가 재미있을 거란 기대가 있지 않나. 즐거운 추억을 만드는 장소에서 울리는 소리 가 우리 음악이고, 거기 우리 악기가 있다면 이상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SUNDAY MAGAZINE 21
DESIGN 서 벗어났다.
타자기는 수명을 다한 물건이다. 타자기는 자신의 구
는 전문 작가들의 수를 압도했다. 즉 타자기 산업은 창
실을 컴퓨터에 넘겨준 지 오래다. 그렇지만 전 세계 경
조가 아니라 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일
제2차 세계대전 뒤 사무환경은 전환점을 맞이한
매 사이트에서 타자기는 여전히 거래가 활발한 인기
조하면서 번창했다. 타자기의 출생 신분은 산업용 기
다. 1940년대 중반까지 사무실은 사무원들의 노동력
품목 중 하나다. 자판을 치면 타자기 소리가 나게 하
계인 것이다.
을 최대한 짜내는 데 맞춰져 있었다. 엄격한 노동 효율 성이 사무실 디자인의 최고 덕목이었고, 관리자와 평
는 컴퓨터 프로그램도 인기가 꽤 있다. 기능적인 수명
생김새도 충분히 기계다웠다. 안쪽의 복잡한 기계
은 다했지만, 타자기는 추억의 물건으로 여전히 살아
장치들을 굳이 숨기지 않고 바깥으로 노출했다. 색은
있다.
한결같이 우중충한 은색이었다. 너무나 기계 같아서 사무실보다는 오히려 공장에 어울릴 정도였다. 1900
왔다. 사무원들이 일하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적인 대
초창기엔 속이 다 보이는 우중충한 기계
년부터 생산된 언더우드 No.5 타자기는 초창기 타자
우를 받는다고 여겨질 때, 또 관리자와 노동자 사이에
18세기 초반 영국인 헨리 밀은 눈이 어두운 사람들
기의 전형이다. 그 전 타자기들보다 훨씬 진보한 것이
인격적 유대관계가 형성될 때 오히려 노동 효율성이
도 쉽게 글을 쓸 수 있도록 이 기계를 만들었다. 본격
지만, 딱딱한 기계 같아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이다. 게다가 전후 최
적으로 보급되고 상용화된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무
나 당시로는 혁신적이며 아름다웠던 언더우드 타자
고의 경기호황으로 실업자가 거의 사라지자 사무원
엇이 타자기 산업을 키웠을까. 소설가같이 전문적으
기의 방식은 20세기 중반까지 영향력을 미쳤다.
들은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직장을 자유로이 이동하기
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타자
타자기 디자인에 큰 변화를 몰고 온 계기는 두 가지
기의 생산을 촉진한 부류는 맹목적으로 글을 옮기는
다. 하나는 타자기 회사들이 가정용 시장에 눈을 뜬
사원들의 위계질서가 분명하게 보이도록 했다. 그러나 관리이론이 진보하면서 새로운 주장이 나
시작했다. 이에 대한 기업의 대응은 사무환경 개선이었다. 마
사람, 즉 타자수들이다. 기업이 늘어나고 사무실 근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무환경의 변화다. 우선 가정
치 집처럼 편안하고 친근하게 사무실을 꾸미는 것
자 숫자도 증가하면서, 사장이나 중역들의 말을 문서
용이라면 외관도 바꿔야 했다. 1930년대부터 타자기
이다. 이 시기에 등장한 미국의 허먼 밀러(Herman
로 기록하는 속기사와 타자수들도 필요해졌다. 그 수
는 휴대하기 쉽게 작아지고 가벼워졌으며 검은색에
Miller)와 놀(Knoll) 같은 가구회사의 시스템 오피
마치 피아노 건반처럼 기계의 매혹적인 변신 김신의 맥락으로 읽는 디자인 <8> 타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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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스 디자인은 현대 사무환경의 표준이 됐다. 쾌적하고
연주자’로 묘사할 정도로 타자기를 기계가 아닌 악기
깔끔한 사무환경은 사무직 근로자로 하여금 공장 근
와 같은 지위로 격상시켰다.
로자와 급여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는데도 자신이 중
육을 받은 철저한 모더니스트였다. 노이스는 미국의 1세대 산업디자이너들이 추구한
한술 더 뜬 디자이너는 에토레 소트사스다. 그가
예쁜 스타일링을 거부하고, 영속적이고 일관된 기업
1969년 디자인한 발렌틴 타자기는 강렬한 빨간색 플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했다. 그가 1961년 디자인한 셀
이런 변화에 따라 타자기 역시 딱딱한 산업 기계에
라스틱 케이스로 감쌌다. 그 인상은 타자를 치지 못
렉트릭 타자기는 그런 노력의 결정체다. 셀렉트릭 타
서 사랑스러운 소비재로 탈바꿈한다. 그것을 주도한
하는 사람조차 첫눈에 반하게 만들고 소유욕을 자극
자기는 막대기에 달린 활자가 글자를 찍는 방식이 아
회사는 이탈리아의 올리베티다. 올리베티는 20세기
하는 힘과 강한 개성이 있었다.
니라 88개의 글자가 조각된 골프공 크기의 독특한 활
를 만들었다. 올리베티는 이탈리아의 감각적인 디자
명료한 조각품으로 평가받은 IBM 타자기
타자기다. 면과 면이 만나는 모서리를 부드럽게 처리
인 자원을 충분히 활용했는데, 마르첼로 니촐리는 특
미국에서 모던 디자인을 강력하게 후원한 뉴욕의 현
한 외관은 우아하고 아름답다.
히 전후 타자기 디자인의 전형을 만든 주인공이다. 그
대미술관(MoMA)은 52년 올리베티의 전시회를 개
산층이 된 것 같은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자 구조체가 이동하면서 타이핑하는 혁신적인 전동
중반의 애플이라 할 만큼 디자인으로 강력한 브랜드
노이스는 첨단 기술과 예술의 결합이라는 멋진 사
가 디자인하고 1948년부터 생산된 ‘렉시콘 80’은 밝
최하기에 이른다. 이 전시회를 찾은 IBM의 토머스 왓
례를 남겼다. 그가 주도한 IBM의 타자기 디자인은 올
은 색상의 매끈한 금속 케이스로 타자기의 기계장치
슨 주니어 회장은 올리베티의 우아하면서도 실용적
리베티만큼 반짝거리지 않는 대신 명료한 조각품으
들을 감춘 초기 모델이었다. 1950년 생산된 ‘레테라
으로 디자인된 사무용품과 일관된 기업 이미지에 크
로 평가받았다. 셀렉트릭 타자기가 채택한 키보드와
22’는 더욱 날씬하고 우아한 휴대용 타자기였다. 이
게 고무된다. 그리고 1956년 엘리엇 노이스를 IBM의
플라스틱 케이스는 이후 IBM의 컴퓨터에 적용되었 고, 70년대 사무기기들의 전형이 됐다.
타자기들의 매끈한 표면은 21세기에 애플 아이팟이
디자인 디렉터로 영입한다. 그는 1930년대에 하버드
보여준 표면 질감만큼이나 신선하고 매혹적인 것이
대학원에서 발터 그로피우스, 마르셀 브로이어 같은
었다. 당시 올리베티의 광고는 ‘타자수를 피아노 치는
독일 바우하우스의 거장들로부터 건축과 디자인 교
김신씨는 홍익대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7년 동안 디자인 전문지 월간 ‘디자인’의 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이다.
1969년 출시된 올리베티 발렌틴(Valentine). 빨간색 플라스틱 케이스가 강렬하다. 1961년 출시된 IBM 셀렉트릭(Selectric). “책상 위의 조각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868년 출시된 레밍턴(Remington) No. 1. 복잡한 내부의 기계장치들을 그대로 드러냈다. 1900년 출시된 언더우드(Underwood) No. 5. 20세기 초반 타자기 외관의 표준이 됐다. 산업용 기계 같은 이미지다. 150년 출시된 올리베티 레테라(Lettera) 22. 20세기 중반 타자기는 기계적인 외관을 벗고 산뜻한 소비재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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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중국 차세대 미술 예고편
세계 미술계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던 ‘차이나 아방가르드’ 이후, 중국 미술계에 새로 운 세대가 등장했다. 중국 현대미술의 현장에서 수년간 몸담아 왔던 큐레이터 윤재갑 은 그들의 특징을 이렇게 표현한다. “어떤 선험적인 거대 담론에 비껴서 있음으로써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혁명이냐 개량이냐, 엘리트주의냐 대중주의냐 등의 근본적 이고 추상적인 차원의 논의들에서 자유롭고, 구체적인 상황들에 주저 없이 즉각적으 로 대처한다”고. 루정위안( 젠(
), 하오량(
), 마추사( ), 황징위안(
), 예링한(
), 짱쿤쿤(
), 투훙타오(
), 판
) 등 8명의 젊은 중국 작가가 보여주는 60여 점
의 그림과 설치작업은 그래서 미래의 중국 미술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내비게이션에 다름 아니다. 글사진 정형모 기자, 사진 학고재 갤러리 ‘유희적 저항(游戏般的抵抗, Cynical Resistance)’전, 6월 29일~7월 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 갤러리, 문의 02-720-1524
예링한의 ‘Last Experimental Flying Object’(2008), Watercolor Photograph Video, 7분20초 황징위안의 ‘Gossip from Confucius City 8’(2012), Acrylic on paper, 55x5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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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ESSAY
권혁재 기자의 不-완벽 초상화
배우 고창석의 잘 산 것 같은 얼굴 “김 양식장, 철공소, 신발 공장, 음료수 공장, 서커스 무대, 이벤트 업체…. 제가 일했던 곳입니다. 연극을 하다가 영화를 해보기로 맘먹고 나선 오디션, 그해에만 하나 빼고 열 개 남짓 합격했습니다. 이렇게 산 삶의 경험들, 그대로 연기를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배우는 그간 살아 왔던 경험이 연기에 녹아납니다. 그렇다면 잘 산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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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봉평 현대막국수의 메밀국수
꾸미지 않은 맛 메밀 100% 막국수 석쇠에 구운 한우 강원도의 맛, 평창 가는 길
맛있다고 말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하다. 감자옹심이, 콧등치기국수, 올챙이국수, 꼴두국수 등도 그저 추억의 맛일 뿐이다. 막국수도 그렇 다. 막국수의 원료인 메밀의 향을 제대로 느끼려면 양념이 많지 않아 야 한다. 그러나 막국수가 맛있다고 알려진 집들은 대개 깨 범벅에 양 념이 지나치게 강하며 심지어 달기까지 하다. 마침 슬로 시티, 슬로 푸드처럼 ‘슬로’가 들어간 단어가 유행이다. 강원도는 ‘슬로’라는 단어가 제법 어울리는 지역이고, 그곳의 음식들 도 슬로 푸드의 대명사들이다. 손으로 일일이 치대야 제 맛이 나는 메 밀 음식들이 그렇고, 덕장에서 한겨울을 나야 하는 황태가 대표선수 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슬로 푸드를 제대로 느끼려면 그걸 맛보러 가는 길도 ‘슬로 로드’여야 어울리는 법이다. 이번 여름 휴가는 샛길 따라 느린 마음으로 강원도 평창으로 가보자. 글·사진 석창인 음식평론가·수원 에스엔유 치과병원장 사진 레스토랑 가이드 다이어리R
평창은 강원도의 배꼽이다.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되고, 매년 여름 대관령국제음악제까지 펼쳐지면서 그야말로 문화와 체육
문막 일호집
의 중심지가 된 느낌이다. 평창군의 구호는 ‘해피 700’이다. 사람이 가
영동고속도로의 강원도 첫 관문은 문막이다. 일호집은 톨게이트에서
장 쾌적하게 살 수 있는 높이가 해발 700m라는데 평창군의 평균이
매우 가까운 문막 읍내에 위치하기 때문에 잠시 들러 여행길 뱃속을
대략 그 언저리란다. 이런 천혜의 조건에 더해 평창은 바다와 인접한
든든하게 채워두기엔 안성맞춤인 고깃집이다.
고랭지대여서 대관령 황태 덕장이 있고, 횡계 한우를 비롯해 오대산
횡성 한우 암소를 참나무 숯불과 재래식 석쇠 위에 올려 구워 먹는
을 중심으로 각종 산나물이 지천으로 널렸으며, 송어 양식에 최초로
것도 일품이거니와 큰 멸치가 둥둥 떠다니는 강원도 스타일 된장찌
성공한 지역이기도 하다.
개의 보글거림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돈다. 주인장 내외의
그럼 강원도 음식은 무슨 맛일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강원도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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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친절도 그렇지만, 식당 주변 들판에서 캐서 바로 무쳐 내오는
유의 정서와 비슷한 중도(中道)의 맛이자 무미(無味)의 맛이 아닐까.
나물들이 열악하고 좁은 식당 분위기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메밀을 비롯해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은 예전에 먹거리가 없을 때
전화 033-735-7610 주소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문막리 278-2
효자 노릇을 하던 구황작물이었다. 그런 음식들이 입에 착착 감기고
메뉴 한우암소 모둠구이, 소면, 된장찌개
FOOD
횡성 삼군리메밀촌의 메밀국수
평창 납작식당의 생태찌개
문막 일호집의 한우암소 모듬구이
평창 용평회관의 생태찌개
평창 납작식당의 오삼불고기
횡성 삼군리메밀촌의 돼지고기 편육
횡성 삼군리 메밀촌
용평회관
100% 순메밀 막국수가 과연 맛있는 것인가 아니면 80% 메밀 함량
용평에 자주 들르는 이유는 스키나 보드 때문이 아니고 오로지 용평
이 최상인가라는 논란도 있지만, 이 식당의 장점은 순도 100% 같은
회관의 한우 등심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낮에는 스키를 즐기고 밤
그런 문제가 아니다. 주인 내외의 정성 가득한 음식이 삼군리 메밀촌
에는 한우 등심을 안주 삼아 집에서 들고 온 와인을 마시는 유명인을
의 핵심인 것이다.
용평회관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엔 꽤 큰 문화적 충격이었다.
주인공 격인 메밀국수는 지금껏 맛본 것 중 가장 심심하며 메밀향
용평회관은 대관령 등지에서 키운 한우도 특별하지만, 각종 밑반
이 입안 가득 퍼진다. 양념은 스스로 알아서 넣는 DIY 방식인데, 먼저
찬의 공력 또한 서울에서도 맛보기 힘든 수준이다. 식사로는 사람 얼
비빔 형식으로 먹다가 잘 익은 동치미 국물을 부어 물막국수를 만들
굴만큼 큼직한 두부가 들어간 생태찌개가 압권이다. 모든 것이 서울
어 먹는 것이 좋다.
최고 수준의 식당과 필적하는 만큼 밥값도 그에 상응하는 점이 걸리
식당 가는 길도 강원도 산골인지라 과연 이런 곳에 식당이 있을까
긴 하지만 말이다.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덕분에 이름 모를 산새 소리와 들꽃 감상은
전화 033-335-5217 주소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325-16
덤이다. 기왕 슬로 푸드를 맛보러 멀리까지 왔는데, 손님이 몰려 조금
메뉴 한우 등심, 차돌박이, 주물럭, 생태찌개
길어진 대기 시간이 무슨 대수일까.
납작식당
전화
식당 이름이 독특해서 알아봤더니, 예전에 계단의 천장이 낮아 납작
주소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삼배리 1번지
메뉴 메밀국수, 메밀묵, 메밀무침
수그리고 올라가야 한다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이를 한문으로
봉평 현대막국수
작명하면서 좋은 의미를 부여했는데 ‘드릴 납, 벼슬 작’으로 이 식당
봉평은 이효석의 고향이다. 현대막국수는 자타가 인정하는 봉평 최
에 오면 벼슬을 드린다, 혹은 벼슬을 얻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고의 막국숫집이다. 처음 다닌 것이 큰아이를 자동차 카시트에 묶고
납작식당은 오삼불고기의 원조라 알려진 곳이다. 바다가 가까우
다닐 때였으니 족히 이십 년은 넘었으리라. 봉평 인근에는 펜션들이
니 생물 오징어를 쉽게 구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일
집중돼 있고, 전국의 맛집과 여행 블로거들이 성지순례 코스처럼 여
단 오삼불고기로 배를 채우고 생태찌개로 깔끔하게 마무
기는 곳인지라 주말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손님들의 낙서로 벽이
리하는 것이 정석 코스다. 이제는 납작 숙이고 올
어지러운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라갈 정도도 아니고, 실내도 많이 개선되었지
막국수만으로는 쉬 배가 꺼지기 때문에 돼지고기 수육에 메밀동
만 손님들의 눈높이에 아직 미치지 못한다.
동주 한 사발 정도는 기본 옵션이다.
전화
전화 033-335-0314 주소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 384-4
주소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325-7
메뉴 메밀국수, 수육, 메밀전병, 메밀묵무침
메뉴 오삼불고기, 더덕구이, 생태찌개, 알탕
횡성 삼군리메밀촌의 메밀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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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ELRY 모두 반클리프 아펠 반지
향수병 품은 풍뎅이 브로치 그녀 가슴에 7월 파리 하이 주얼리 프레젠테이션을 가다
전 세계 주얼리 제조업체 중 ‘파리 고급 의상 조합’에 정식 회원으로 가입한 회사는 디올, 반클리프 아펠, 부쉐론, 샤넬, 쇼메, 그리고 멜레리오 디 멜레의 여섯 개. 이들 외에 파리에 매장을 둔 10개 정도의 프랑스 및 다른 나라의 최고 브랜드들도 하이 주얼리를 제작하고 있다. 이들은 매년 1월과 7월 파리 오트 쿠튀르 패션쇼 기회를 빌려 하이 주얼리 신제품을 선보인다. 이번 7월 프레젠테이션에는 역사적으로 이례 없는 높은 수준과 많은 수의 제품이 각 브랜드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은 파리 방돔 광장의 매장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지만 샤넬과 반클리프 아펠 같은 브랜드는 매장에서 벗어나 에펠탑 근처의 박물관을 빌려 테마에 맞는 공간을 연출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샤넬 솔레이 브로치, 샤넬 코메트 반지, 샤넬 콩스텔라시옹 듀 리옹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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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ELRY
반 클리프 아펠 셰르프 클립
부쉐론 부케 드엘 반지
부쉐론 부케 드엘 네클리스
반 클리프 아펠 코치넬 미스테리유 클립
반 클리프 아펠 트레플 클립
반클리프 아펠은 팔레 드 도쿄에서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 ‘팔레 들 라 샹스
추가됐다. 샤넬은 지금까지 동물의 형상을 그대로 하이 주얼리에 사용한 적이 없
(Palais de la Chance)’를 소개했다. 혜성, 큰곰자리 등에서 영감을 얻은 ‘행운
었다. 사자는 두 종류의 긴 목걸이와 반지, 그리고 팔찌에 사용됐다. 32캐럿 옐로
의 별(Lucky Star)’, 네잎클로버나 호랑나비, 무당벌레 등의 자연에서 영감을 얻
다이아몬드가 박힌 행성 위에 황색감이 도는 루틸 쿼츠로 조각된 사자의 형상이
은 ‘행운의 자연(Lucky Charm Nature)’, 그리고 신화나 역사 등 전 세계의 신
세팅된 긴 목걸이는 실제로 포효하는 사자를 축소해 놓은 듯하다. 록 크리스털, 루
비로운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행운의 전설(Lucky Legends)’ 세 가지 테마로
틸 쿼츠, 다이아몬드를 사용해 제작한 사자 브로치, 팔찌, 시계, 반지 역시 돋보였
구성했다. 특히 각 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행운과 부의 상징을 형상화한
다. 샤넬은 우주의 신비함이 느껴지는 돔 형태의 플라네타리움(영상투영실)을 만
것이 눈에 띄었다. 중국의 판창 매듭, 일본의 히나 인형, 로마의 포르투나 여신, 이
들고 별자리와 혜성이 지나가는 밤하늘 영상 아래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주얼리
집트의 개구리나 풍뎅이 등이다. 반클리프 아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니콜라
컬렉션을 디스플레이했다.
보스는 “이번 컬렉션의 준비 기간만 3년이 걸렸다”며 “행운의 상징들에 대한 아
방돔 광장 주얼리 매장 1호인 부쉐론은 지난 2세기 동안 제작했던 브랜드의 대
이디어는 행복 풍요사랑 등 우리의 삶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는 세상의 많은
표 작품들을 ‘장인의 꿈’이라는 주제 아래 재해석해 21세기 스타일로 재탄생시
아이콘들을 주얼리로 만들자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켰다. 50캐럿의 핑크색 모거나이트가 중앙에 달린 모자이크 형식의 부드러운 목
샤넬은 1932년 가브리엘 샤넬이 탄생시킨 ‘비주 드 디아망’ 컬렉션의 80주년
걸이 ‘데리라’는 19세기 말 브랜드가 개발한 목걸이의 재해석이다. 메종이 100년
을 기념한 하이 주얼리 80점을 선보였다. 이 주얼리들은 마드모아젤 샤넬의 상상
동안 가장 사랑한 테마인 뱀도 무지갯빛이 도는 오팔과 투명한 록 크리스털을 사
력을 수놓았던 행성 별 태양 술장식 리본 깃털 등의 모티브와 상징들로부터 영감
용해 물음표 모양의 오픈된 형태로 새롭게 선보였다.
을 얻었다. 이번 컬렉션에는 마드모아젤 샤넬이 가장 좋아했던 동물이자 베네치
신제품에도 과감한 창작력을 담았다. 투명한 투어멀린과 컬러스톤으로 하늘
아의 상징이며 8월 19일 태어난 그녀의 별자리를 상징하는 사자가 새로운 테마로
하늘한 나비의 날개가 붙어 있는 것같이 제작된 부케 드 엘 목걸이와 브로치, 연 SUNDAY MAGAZINE 29
JEWELRY
로렌스 보이머 앙볼 브로치
샤넬 루반 반지
샤넬 뉘 드 디아망 목걸이
마하지 않은 러프 다이아몬드 위를 다이아몬
루이뷔통 반지
로렌스 보이머 스카라베 브로치
뎅이의 향기 나는 사랑을 받을 수 있다.
드가 가득 박힌 담쟁이 이파리로 장식한 목
7월 3일 루이뷔통은 방돔 광장 23번지에 주얼리 공방이 함께한 첫 주얼리 시
걸이는 부쉐론 장인정신이 그대로 녹아 있는
계 전문 매장을 오픈했다. 루이뷔통은 주얼리 디자이너 로렌스 보이머와 함께
작품이다. 나튜르 드 크리스털 컬렉션은 오벌
세계의 다양한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램 뒤 보야지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형태의 캐보션으로 연마된 록 크리스털 안에
매장 인테리어 디자인과 레이아웃을 맡은 건축가 피터 마리노는 “매장 장식이
마치 마술사의 수정구슬 안을 들여다보는 듯
스토리를 담고 있는 각 주얼리들의 배경과 한데 어울려 고객들에게 영감을 주
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고, 주얼리와 대화할 수 있는 컨셉트로 작업했다”고 한다. 매장 내부는 자재 선
올해 말 방돔 광장에 매장을 오픈할 계획
택에 특별히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가득하다. 밀집을 절단해 탈색시키거나 착색
인 스타 디자이너 로렌스 보이머도 신제품을
한 후 가구, 상장, 판재의 표면에 기하학적 문양이나 풍경을 장식하는 형식인 ‘밀
내놨다. 철새들의 이동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
짚 마케트리’는 화려한 주얼리와 대조를 이루면서도 잘 어울렸다. 가벼운 느낌
한 앙볼 컬렉션, 일본의 정원을 연상시키는 자르당 자포네 팔찌와 귀걸이, 가벼운
의 로즈우드 패널과 하바나 가죽을 사용한 벽은 평온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조
티타늄에 여러 색을 입혀 제작한 팔찌와 귀걸이 등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올
성했다.
해의 최고작은 향수를 넣을 수 있는 풍뎅이 브로치 시리즈다. 화려한 보석과 라
루이뷔통은 이번 방돔 매장 오픈을 기념하기 위해 세 번째 람므 뒤 보야지 컬렉
커로 장식된 손바닥 반만 한 풍뎅이들의 가운데 다이아몬드 버튼을 누르면 보석
션을 선보였다. 이번 컬렉션은 젊은 시절의 루이뷔통이 개선문에서 튈르리 정원
박힌 날개가 양쪽으로 열리면서 아래 숨겨진 작은 구멍이 난 향수통이 나온다.
으로 산책하는 길에 발견한 것들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이 브로치를 착용하는 사람은 몸에 직접 향수를 뿌리지 않더라도 하루 종일 풍
파리 글·사진 김성희 중앙SUNDAY 매거진 유럽통신원·보석 디자이너
30 SUNDAY MAGAZINE
COLUMN
세종이 고종 옷을? 한국 드라마는 왜 이러는 걸까요 스타일 # : 의상의 역할
지난주 영화 ‘후궁:제왕의 첩’의 조상경 의상 감독과의 인터뷰 도중 그가 드라마 의상에 대한 얘기를 했다. 한복을 연구하기 위해 TV
는 그의 취미와 옷 입는 스타일이다. 그는 늘 티셔츠 차림이다. 다채로운 색깔
한복에만 익숙한 것 같아요. 의상이 제 역할 을 하지 못하고 협찬 의상에만 의존하다 보
의 티셔츠엔 눈에 띄는 그래픽이 그려져 있다. 니 세종이 고종의 옷을 입는 어처구니없는 상
사극을 많이 봤는데, 우리 드라마에서 ‘의상’ 주로 등장하는 그림은 수퍼맨, 배트맨, 그린
황이 발생해도 알아채지 못하는 일이 적지 않아요.”
의 역할이 매우 적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면서
랜턴, 플래시 등 DC코믹스의 수퍼히어로들
그는 미국의 인기 드라마 ‘빅뱅이론(사진)’을
이다. 이런 티셔츠 하나만으로도 어린애 같고
아카데미 의상상을 세 차례 수상한 영국
‘오타쿠’ 같은 그의 기질을 더 확실히 드러내
출신의 커스튬 디자이너 샌디 파월은 “어려
“미국 드라마엔 전체 의상을 다 관할하는
주는 것이다. 얼마 전 100회 특집으로 제작한
서부터 옷을 좋아했지만 패션디자이너를 꿈
커스튬 디자이너가 있어요. ‘빅뱅이론’을 봐
드라마 메이킹 필름에서 출연자별로 잘 정리
꾼 적은 없다”고 했다. “패션 디자이너의 일
도 그렇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배우의 연기에
된 ‘빅뱅클럽’의 드레스룸은 인상적이었다.
은 그저 옷에 관한 것일 뿐”이라는 이유다.
예로 들었다.
우리는 어떨까.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 위로
의상 감독이 그저 옷을 구해 입히는 사람
‘빅뱅이론’의 주인공은 4명의 괴짜 과학자 ‘○○○ 원피스’ ‘◇◇◇ 블라우스’ 라는 협찬
이 아니듯 극에서도 옷은 하나의 캐릭터일 텐
만 힘을 주고 의상의 역할은 미미해요.” 와 1명의 웨이트리스다. 꼭 챙겨야 할 의상이
브랜드의 이름이 더 눈에 들어온다. 물론 엔
데, 우리 드라마에서는 어째서 캐릭터가 살
라면 웨이트리스의 앞치마 달린 유니폼 정도
딩크레딧엔 의상, 의상 디자이너, 팀 코디 등
아있는 옷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걸까.
고, 나머지는 적당히 캐주얼을 입으면 그만이
의상 스태프의 명단이 포함된다. 하지만 이들
최효종이 ‘개그콘서트’에서 이런 말을 했
다. 하지만 4명의 과학자는 각자 뚜렷한 드레
의 일은 우리가 ‘코스튬 디자이너’라 부르는
다. “여주인공이 가난하다고? 역할 따윈 중요
스코드가 있고, 입고 나온 옷만으로도 캐릭
이들의 것과는 달라 보인다.
터의 특징이 연상될 정도다.
드라마 제작 관계자에 따르면, 의상 담당
하지 않아. 얼마나 예쁜 배우가 가방을 드느 냐가 더 중요해.” 우리에게 ‘옷이 말하는 대사’ 는 아직 중요하지 않은 걸까.
그중 셸던 쿠퍼(짐 파슨스)를 보자. 아이큐
자는 주로 단역과 조연급을 맡는다. 주연급
180에 11세에 대학에 들어가 16세에 박사학
스타들은 전담 스타일리스트가 있고 협찬하
글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사진 중앙포토
위를 취득한 그는 천재 물리학자지만 사실상
겠다는 브랜드들이 줄 서 있으니 끼어들 여지
사회부적응자에 가깝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
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감독이 캐릭터에 맞
져 고집불통이고 편집증에 강박증까지 가졌
는 의상 가이드라인을 준다. 이를테면
다. 사회성 제로에 사교성도 없다. 그런데도 미워할 수가 없다. 그가 사실은 냉소와 반어법을 이해할 줄 모르고 거짓말
‘직업이 변호사니까 슈트를 단정하게 입자’ 같은 것들이다. 알고도 속아주는 게 드라마니
과 비밀에 발을 동동 구르는 유약한 소년이
까 그냥 보자고 할 수도 있다. 하
기 때문이다. 그가 ‘어른의 세계’를 이해하려
지만 조상경 감독은 말을 이어
고 애쓰는 모습마저 귀엽게 보이는데, 미성숙
갔다.
한 천재 캐릭터를 구체화하기 위한 몇 가지
“한복도 마찬가지예요. 시중
장치가 있다. 비디오게임을 좋아하고 만화책
에서 팔릴 만한 옷을 협찬하다
과 피규어에 집착하고 ‘스타트랙’을 숭배하
보니까 (시청자들이) 조선 후기 SUNDAY MAGAZINE 31
SOULSEARCHING
당신의 내일은 장밋빛인가, 잿빛인가 강신주의 감정 수업 <16> 두려움 혹은 과거가 불행한 자의 서글픈 감정
“과거의 불행이 집요하게도 미래에 다시 반복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서 생기는 슬픔, 그것이 바로 두려움이다. 인간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꿈꾸는 동물이다. 그러니 과거가 행복한 사람들은 미래를 장밋빛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잿빛으로 꿈꾸게 된다.”
내일이란 말을 들으면 우리는 두 가지 상반된
헨리크 입센의『유령』은 바로 이런 잿빛 미
감정을 가질 수 있다. 먼저 내일은 지금과는
래, 그리고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묘사한 희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도록 하면서 우리에게
곡이다.
라 안에 유령이 있는 겁니다. 바닷가의 모래 헨리크 입센 (Henrik Ibsen, 1828~1906)
알만큼 많은 거예요. 게다가 우리는 모두 햇 빛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어요.”
설렘의 감정을 가져다줄 수 있다. 그렇지만 동
여기서 불행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에 내일은 지금보다 더 끔찍한 삶을 예견케
인물은 알빙 부인이다. 기독교적 삶을 내면화
목격한 날, 알빙 부인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면서 두려움의 감정을 심어주기도 한다. 아
한 알빙 부인은 젊은 시절 남편의 외도를 통
된다. 레지네가 누구인가. 그녀는 자신의 남
마 지금까지 우리의 삶이 어떻게 이루어졌는
해 너무나 커다란 상처를 받고도 묵묵히 참
편과 하녀 사이에서 태어난 저주받은 아이
지 그것이 문제일 것이다. 만약 지금까지의 인
아온 여인이다. 그녀가 자신의 아들 오스왈드
생이 끔찍한 삶의 연속이었다면 미래를 설레
를 어릴 적부터 외국으로 보내버린 것도 이런
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
이유에서였다. 남편의 자유분방함이 아들에
이다. “지금보다 더 나쁠 수는 없어!”라고 외
게 악영향을 끼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오스왈드가 레지네와 시시덕거리는 것을
아니던가. 그러니 어떻게 그녀가 자신의 멘토 근대극을 확립한 노르웨 이 극작가. 4대 사회극으 로 알려진『사회의 기둥』
였던 만데르스 목사에게 이런 두려움을 토로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형의 집』 『유령』 『민중
그렇다. 결국 알빙 부인에게 유령은 그녀가
의 적』등의 작품들을 발
두려워하는 어떤 인간적 특징들이 실체화된
표했다.
것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자유에 대한 동경,
칠 수는 있겠지만 “지금보다 더 나쁠 수도 있
그렇지만 화가로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진 오
다”는 불안한 느낌이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
스왈드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알빙 부인은 다
다. 첫사랑에 실패했던 사람이 항상 새롭게
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아들 오스왈
그리고 사랑에 대한 열정 등이다. 한마디로
찾아온 사랑을 두려워하는 것도 이런 이유
드에게서 남편의 기질을 다시 발견했기 때문
말해 기독교적 가치에 어긋나는 모든 것이 유
에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이렇
이다.
령으로 실체화되면서 그녀에게 두려움이 생
게 말하지 않았던가.
“유령, 아까도 레지네와 오스왈드가 저쪽에
기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두려움(Metus)이란 우리가 그 결과에 대
서 뭐라고 말하고 있는 소리를 듣고 저는 마
그래서 진정한 유령은 어쩌면 기독교적 가
해 어느 정도 의심하는 미래 또는 과거 사물
치 유령을 만난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
치를 내면화하고 있던 알빙 부인이었는지도
의 관념에서 생기는 비연속적인 슬픔이다.” 고 아무래도 우리는 모두 유령이 아닐까 하
모를 일이다. 어머니가 유령으로 똬리를 틀고
는 느낌이 들어서요. 선생님, 우리들 한 사람
있는 집으로 다시 돌아와 서서히 잿빛으로
한 사람이 말이에요. 아버지나 어머니로부터
시들어가 미치게 되는 사람은 오스왈드였으
『 ( 에티카』)
과거의 불행이 집요하게도 미래에 다시 반
복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서 생기는 슬픔, 유전된 것이 귀신에 씐 것처럼 우리들에게 씌
니까.
그것이 바로 두려움이다. 그렇다. 불행한 과
어 있는 겁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모든 종
오스왈드가 힘없이 읊조리는 마지막 대사
거는 과거로만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
류의 소멸된 낡은 사상이나 여러 가지 소멸된
가 서글프지 않은가. “태양… 태양…”이라고
와 미래의 삶에도 잿빛 어두움을 던지기 십
낡은 신앙 따위도 우리에게 씌어 있어요. 그
우물거리면서, 오스왈드는 기독교적 가치의
상이다.
런 것이 우리의 내부에 실제로 살아 있는 게
어두움을 날려버릴 태양을 절망스럽게 찾고 있었으니.
사실 인간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꿈꾸는
아니라 단지 거기에 달라붙어 있을 뿐이지만.
동물이다. 그러니 과거가 행복한 사람들은 미
우리는 그것을 쫓아낼 수가 없거든요. 잠깐
래를 장밋빛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잿
신문을 집어 들어도 그 행간에 유령이 잠입
빛으로 꿈꾸게 된다. 전체 3막으로 펼쳐지는
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틀림없이 온 나
32 SUNDAY MAGAZINE
대중철학자.『철학이 필요한 시간』 『철학적 시읽기의 괴 로움』 『상처받지 않을 권리』등 대중에게 다가가는 철학 서를 썼다.
CARTOON
김재훈의 문화 캐리커처
거장
루시안 베른하르트 1905년 프리스터 성냥 회사가 주최한 포스터 공모전에 나는 달랑 성냥개비 두 개와 상호만 그린 포스터를 출품했어. 그 단순함은 곧 역사가 되었지.
실력파
루트비히 홀바인 같은 자흐플라카트라도 나처럼 데생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그리면 단순명료함에 뭔가 더 풍부한 회화의 느낌까지 더해지지 않겠어?
루트비히 홀바인은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독일에서는
대상을 주인공으로 세우는
그래픽 디자인사에 커다란 획을 그었던
자흐플라카트의 공식을 따르면서도
유명한 스타일의 포스터가 성행했다.
자신의 장점 또한 잘 살린 작가였다.
아르누보의 독일식 버전인
사물이나 인물을 더 입체적으로
유겐트슈틸의 영향을 받았으나
강조하기 위해 음영의 대비를 이용해
장식은 배제하고 대상의 이미지는
형태를 그렸고, 단순한 배색과 함께
획기적으로 강조한 그 포스터를
직물의 패턴이나 질감을 활용해
대상 포스터(object poster)라는
시각적인 효과를 나타냈다.
의미로 자흐플라카트(Sachplakat) 라고 불렀다.
포스터에 어울리는 글자체도 많이 도안했어. 또 하나의 그림인 셈이지.
보여주고자 하는 대상만을
이왕 하나 그리는 거 그것만큼은 제대로 그리자는 생각이었겠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일수록 대상을
확실히 표현하는 자흐플라카트는
단순하게 표현하길 꺼리는 경향이 있다.
제품을 효과적으로 알리려는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보여주지 못함에
상업 분야에서 크게 각광받았고 그런 표현 방식은 지금까지도 디자인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다.
사장님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이 정도면 딱이지요.
대한 아쉬움 때문일 거다. 홀바인은 그런 창작 욕구를 포스터의 문법에 잘 적용시킨 화가였다.
어이 작가! 당신은 어떤 스타일의 포스터를 좋아해? 아르누보도, 자흐플라카트도 좋지만 스타일 결정은 역시 클라이언트가
그래도 돈 주고 일 시키는 사람 맘은 그게 아니지. 김재훈씨는 홍익대에서 디자인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영상디자인과 문화사회학을 공부했다. 인문과 문화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정보 만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SUNDAY MAGAZINE 33
CONTE
잠 못 드는 남자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들숨날숨
단이 예루살렘에 세운 성채처럼 견고해서 한
는 아무 말도 못한다. 아무 말도 못했지만 남
번 잠들면 난공불락이다. 폭우가 쏟아지고
자는 그 순간의 무서움을 생생하게 기억한
벼락이 떨어지고 태풍이 창틀을 뜯어가도 끝
다. 막상 손으로 잡은 참새가, 그 따뜻하고 부
내 그 어느 것도 아내 잠의 숨결 하나 건드리
드러운 생명이 너무 약했기 때문이다. 조금만
지 못한다. 어떻게 이런 빛과 소리에도 아내
세게 잡으면 부서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약
의 잠은 깊고 고요한가? 불행은 행복 옆에서
한 것은 무섭다.
더 비참해지고 불면은 숙면 곁에서 눈이 말
밤새 잠을 설친 탓에 늦게 일어난 남자가
똥말똥해진다. 이제 아내의 숙면은 남자가 불
부랴부랴 세수하고 식탁에 앉아 아내가 차
면하는 한 이유다. 새벽이 오자 비도 잦아들
린 아침을 뜨는 둥 마는 둥 한다. 못 다 잔 잠
고 천둥과 번개도 그친다. 잠은 알 수 없는 여
을 그렁그렁 눈꺼풀에 매단 채 말이다. 그때
자의 마음 같아서 아예 잊고 돌아누워 있으
남자는 맞은편에 앉아 있는 아내로부터 눈
남자는 보기와 달리 예민하다. 특히 빛과 소
면 어느새 슬그머니 다가와 등 뒤에서 껴안는
이 번쩍 뜨이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내는 목
리에. 아다치 미쓰루의 만화 ‘H2’에 보면 이
다. 그렇게 남자는 새벽에 잠깐 눈을 붙인다.
을 한 바퀴 우아하게 돌린 다음 이렇게 말한
런 구절이 나온다. “밤하늘엔 별이 있는 것처
꿈속에서도 남자는 보기와 달리 예민하
다.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잤더니 영 피곤하
럼, 휴식 전에는 원고마감이 있는 것처럼, 여
다. 어지간한 일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을 것
네.” 남자는 아직 꿈을 꾸는 것 같다. “잠을 못
름 전에는 장마가 있다.” 그렇다. 여름 전에는
처럼 보이지만 쥐 한 마리에도 태산이 움직이
잔 건 난데 왜 당신이 피곤해?” 아내는 큰 눈
장마가 있고 장마 때는 비가 내린다. 예민하
는 소리를 낸다. 사실은 쥐가 아니라 새다. 초
을 더 크게 뜬다. “잠을 못 자다니 누가? 당신
다고 해서 설마 빗소리에 잠을 설치는 남자가
등학교 쉬는 시간, 열어놓은 창으로 참새 한
아주 코를 골면서 자던데.” 새벽에 화장실 가
있을까 싶겠지만 나는 분명히 그런 남자가 있
마리가 교실로 날아 들어온다. 바깥으로 나
느라 일어난 아내가 잠시 잠든 남자를 본 것
다고 확신한다. 바로 내가 그런 남자니까.
가려고 날아다니는 참새 때문에, 참새를 서
일까? 아니면 정말 잠든 것은 남자고 밤새 잠
남자는 빗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천
로 잡으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때문에 교실
을 못 잔 사람은 아내일까? 보이는 것이 전부
둥이 으르렁거리고 번개가 번쩍거리는 날이
안은 한바탕 우당탕 난리다. 어쩌다 남자가
는 아니다.
면 남자는 거의 한숨도 못 잔다. 잠은 알 수 없
참새를 잡는다. 아이들이 모두 경탄의 눈으
는 여자의 마음 같아서 다가갈수록 멀리 달
로 남자를 바라본다. 남자는 우쭐해져도 좋
아나버린다. 비 오는 날 남자는 불면하지만
겠지만 “악!” 비명을 지르며 참새를 놓아버
아내는 숙면한다. 알 수 없는 것은 아내의 잠
린다. 바보같이. 놀리는 반 친구들에게도, 조
이다. 아내의 잠은 십자군 전쟁 때 템플기사
심스럽게 이유를 물어보는 단짝에게도 남자
남자는 보기와 달리 예민하다. 아무래도 오늘 밤 남자는 잠들지 못할 것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 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아내를 탐하다』 『슈 슈』를 썼다.
“걷는 자를 위한 공간의 배려가 결여된 도시”
34 SUNDAY MAGAZINE
▶“우리는 산책할 수 있는 도시의 거리를 가
▶“재료를 깎고 썰고 볶는 과정에 정성을 들
▶“‘떠난다’는 일은 쉽지 않다. 떠나는 방법
지고 있지 못하다. 도시의 거리가 갖는 이데
일 때와 성의 없이 요리를 했을 때엔 차이가
은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다. 수없이 떠나본
올로기는 우리로 하여금 걷지 말고 자동차 산
난다. 옛날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음식이 식당
사람에게도 모든 떠남은 항상 최초의 경험이
업의 이익에 편승할 것을 강제한다. 모든 거리
에서 먹는 음식과 다른 이유가 그 때문이다.
다. 그러나 떠나면서도 떠나지 않는 자들의
와 도로는 이미 자동차를 위해 있다. 사람들
옛날에는 텃밭에서 아버지가 사랑스러운 가
시대가 오기 시작했다. 관광의 시대. 저마다
은 한 정거장의 시내버스 구간도 걷기를 꺼려
족에게 먹일 생각을 하며 정성스럽게 재배했
은밀한 영혼 속에서 충격과 혁명을 불러일으
한다. 사람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이 도시에
다. 어머니는 신선한 재료를 이용해 정성을 다
켜야 할 것들이 집단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했
는 이미 걷는 자를 위한 공간의 배려가 결여
해 요리했다. 그러고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감
다. 여행자는 멸종되어 가고 그 자리에 관광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하며 먹었다.”
객 떼가 지불한 회비의 권리를 행사한다.”
-함성호의 책『반하는 건축』중에서
-이원종·이소영의 책『영혼의 식탁』중에서
-김화영의 책『행복의 충격』중에서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동정호의 아침 들판의 아침이 밝아질 즈음, 목적을 두지 않고 걷게 되면 무심결에 발길 닿는 곳이 ‘동정호’입니다. 동정호는 악양 들판 서쪽에 있습니다. 예부터 알려진 평사리 들판의 ‘부부 소나무’와 함께 ‘동정호’도 악양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지리산 둘레길의 하동 구간이 완성되면서 배낭 메고 걷는 남녀노소가 부쩍 늘어났습니다. 걷는 이들 중 눈썰미 있는 이는 동정호 한쪽에 새로 세운 ‘악양루’에 올라 쉬어가기도 합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섬진강 바람에 땀을 씻고, 양말 벗어던지고 난간에 걸터앉아 동정호에 떠 있는 산 그림자와 구름을 즐기는 호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옛 양반 선비들이야 제 집에 누각과 연못을 만들어 그와 같음을 즐겼지만 요즘은 언감생심이니 이런 곳을 찾아다니며 즐기는 게 상책입니다. 신선놀음이 따로 있나요, 집 나서면 신선놀음입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 깊은 물’ ‘월간중앙’ 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중정다원’을 운영하며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SUNDAY MAGAZINE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