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8호 7월 8일~9일 값 1000원 http://sunday.joongang.co.kr
July 8~9, 2012. no.278. sunday.joongang.co.kr
ISSUE
모터바이크의 페라리
두카티를 타는 사람들
CONTENTS editor’s letter
06
THIS WEEK PEOPLE 새 미드 ‘뉴스룸’으로 돌아온 에런 소킨
ISSUE
쉬어가기 08
머릿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문득 떠오르
명품 모터바이크 두카티 시승 행사 ‘미사노 서킷’을 가다
는 기억이 있습니다. 몇 년 전 전남 담양 소
REVIEW & PREVIEW
쇄원(瀟灑園)을 처음 들렀을 때의 감흥이
14
그런 것이었습니다. 대숲길 사이로 천천히
국립발레단 ‘포이즈’
걸어 올라가면 작은 계곡 위로 어느새 나 BOOK
16
타나는 제월당, 광풍각, 대봉대…. 대나무
숨은 책 찾기 <12> 열화당 사진문고『사페이』
숲 사이로 들리는 바람소리와 계곡 물소 리 속에 펼쳐진 고즈넉한 풍경은 무릉도원
INTERVIEW
18
세계 3대 모터바이크 두카티
영화 ‘후궁’ 의상감독 조상경
에 다름없었죠. 깊고 맑을 소(瀟)자에 비바 람 소리 쇄(灑)자가 “소쇄소쇄” 하며 노래
COLLECTOR
하는 것 같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22
얼마 전 지인들과 담양에 들렀다가 소쇄원
이계영씨의 강아지 피규어린
을 다시 찾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반가운 GALLERY
24
마음에 가고 있는데, 소쇄원 도착 직전 도
하종현 회고전
로변에 차를 세우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PORTR AITS ESSAY
그곳은 바로 식영정(息影亭). 송강 정철이
25
‘성산별곡’을 지었다는 곳이죠.
스티브 J의 콧수염 패션
FOOD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우선 눈에
26
띄는 것은 한아름이 넘는 거대한 소나무
주영욱의 도전! 선데이 쿠킹 <6> 전복탕
HOUSE
였습니다. 거북이 등짝 같은 두툼하고 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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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판교의 월든힐스 2단지
최명철의 집을 생각하다 <6> 서판교 월든힐스 2단지
COLUMN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는 사방이 탁 트 인 상쾌함을 주었죠. 저희 일행은 누가 먼 저랄 것도 없이 마루에 누웠습니다. 그림
31
자도 같이 누웠습니다. 솔바람이 솔솔 불
컬처#: ‘나가수2’ 유감
SOUL-SEARCHING
고한 표피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습니다.
었습니다. 손때 묻은 나무바닥의 메마른
32
감촉이 좋았습니다. 시간도 그렇게 쉬어갔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16> 『인간의 대지』와 생텍쥐페리
습니다. 한눈에 내려다보인 광주호는 당시 가뭄으
CARTOON
33
로 졸아있었습니다. 이번 비로 다시 물이
김재훈의 문화 캐리커처 VS
CONTE
찼겠죠. 문득 식영정 마루에 누워 듣는 빗 소리가 궁금해집니다. 그렇게 넉넉해진 마
34
음으로 올 하반기는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영화 의상감독 조상경
이계영씨의 강아지 피규어린 컬렉션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S MAGAZINE
표지 두카티 몬스터. 사진 두카티 코리아
문화에디터 정형모 취재 홍주희 유주현 사진 조용철 최정동 편집 우현아 교열 한규희 디자인 전유진 최귀연 통신원 이지윤(런던) 최선희(파리) 김성희(밀라노) 광고 김진영 구명서 엄태규 마케팅 박유선 이용임 박유림 기사제보 02-751-9000, 080-023-5002 광고문의 02-751-5555 / Fax 02-751-5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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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SUNDAY MAGAZINE
THIS WEEK PEOPLE
저커버그 스토리, 잡스 일대기 천재 속내 꿰뚫는 시나리오 작가 HBO 새 미드 ‘뉴스룸’으로 돌아온 에런 소킨
지난 5월 소니 픽처스가 스티브 잡스 일대기를 다룰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에런 소킨이 맡는다고 발표했 을 때 사람들은 이 이상 완벽한 ‘캐스팅’은 없다고 했 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소셜 네트워크’와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의 단장 인 빌리 빈의 성공 실화를 바탕으로 한 ‘머니볼’을 선 보여 전기(傳記)에 탁월한 능력을 선보였으니 말이다. 소킨은 2011년 ‘소셜 네트워크’로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았고, 2012년 ‘머니볼’로 같은 부문 후보에 올랐다. 그야말로 최고의 주가를 자랑하는 시나리오 작가인 에런 소킨이 새 드라마를 시작했다. 지난달 24일부터 미국 HBO를 통해 매주 토요일 밤 방송되는 ‘뉴스룸(Newsroom)’이다. 새 ‘미드’는 ‘에런 소킨 표’라는 이유만으로 큰 기대 속에 시작했다. 210만 명이 첫 회를 시청했고, HBO는 2회 만에 시즌2 제작을 결정했다. ‘뉴스룸’의 무대는 ACN이라는 가상의 방송국이다. 한 줄 요약하자면 앵커 빌 맥어보이(제프 대 니얼스)와 프로듀서 매킨지 맥헤일(에밀리 모티어)를 중심으로 뉴스룸의 긴박감 넘치는 뒷얘기 를 그릴 예정이다. 소킨은 연극으로 극작의 길을 시작했다. 1992년 영화 ‘어 퓨 굿맨’도 희곡이 눈에 띄어 연극을 초연하기도 전에 영화 판권을 팔게 된 작품이다. 이후 ‘맬리스’ ‘대통령의 연인’의 시나리오를 썼 고, 98년 처음 ABC에서 코미디로 TV에 진출했다. 이듬해 NBC에서 ‘웨스트 윙’을 시작하면서 그의 작품은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2003년 시즌4를 끝으로 소킨이 떠나기까지 ‘웨 스트윙’은 2000~2003년, 4년 연속 ‘에미상 최우수 TV 드라마 시리즈상’을 수상했다. 소킨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쏟아지는 대사다. 상식적이면서 센스가 넘치고, 간결하면서 정곡 을 찌르는 그의 ‘대사발’은 관객을 생각하고 판단하게 만든다. 파격과 괴팍을 넘나드는 천재의 섬 세함을 절묘하게 그린 ‘소셜 네트워크’나, 우리가 세상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게 만 든 ‘웨스트윙’이나, 그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답을 주지 않는다. 아마 ‘뉴스룸’을 통해서도 그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할지, ‘동전의 양면’을 보여주며 판단케 할 터다. 그리고 이는 한국 시청자들에게도 유의미한 보편적인 주제가 될 것이다. 이를테면 1화에 등 장했던 두 주인공의 치고받는 대화 중 윌 맥어보이가 하는 말이 그렇다. “사회학자들은 결론을 내렸어. 지금 이 나라는 남북전쟁 이후에 가장 양극화돼 있단 말이야. … 사람들은 원하는 사실만 받아들인다고(The social scientists have concluded that the country is more polarized than in any time since the Civil War. … People choose the facts they want now).” 소킨은 지금까지 좋은 시나리오가 좋은 영화, 좋은 드라마를 담보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왔다. 예정된 잡스 전기 영화에서 연출로 영역을 확장하는 그가 좋은 시나리오 작가로서 좋은 영화도 만들어 줄 수 있을지 벌써 궁금해진다. 글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06 SUNDAY MAGAZINE
2011년 제8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수상한 에런 소킨. 사진 중앙포토
ISSUE
아름다운 기계 덩어리’에 반해 만명이 모였다 알프스 넘고 바다 건너
두카티 매니어 총출동, 이탈리아 미사노 서킷
08 SUNDAY MAGAZINE
ISSUE
바람을 가르며 길을 떠난다. 혼자라도 좋고 여럿이라면 더 좋다. 두둥 두두둥 …. 두툼한 두 바퀴 사이 엔진의 폭발음이 질주하는 야수의 심장 박동소리로 들린다면 당신은 모터바이크족임에 틀림없다. 모터바이크의 최고를 다투는 명가로 흔히 미국의 할리 데이비슨(Harley Davidson)과 독일 BMW의 모토라드(Motorrad), 그리고 이탈리아의 두카티(DUCATI)를 꼽는다. 특히 두카티는 1926년 설립된 라디오 부속품 회사 ‘라디오 브레베티 두카티’가 모터바이크 사업에 뛰어든 뒤 56년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낸 경주용 바이크 브랜드다. 연간 생산대수는 4만2000대에 불과하지만 월드 수퍼바이크(WSBK)와 모토 GP 등 수많은 경기에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며 명성을 각인시켰다. 기술과 디자인의 완벽한 결합을 추구하는 이 이탈리아 장인정신의 결정체에 푹 빠진 사람들을 ‘두카티스티(Ducatisti)’라 부른다. 두카티는 2년에 한 번 전 세계 두카티스티를 위해 아드리아 해변에 위치한 미사노 서킷(Misano Circuito)에서 월드 두카티 위크(WDW)라는 행사를 연다. 신제품을 시승해 보고 전 세계 두카티스티들과 열정을 공유하며 스타 레이서들과도 직접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올해는 6만5000명이 이곳을 찾았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두카티스티’가 된 걸까. 미사노(이탈리아) 글·사진 김성희 중앙SUNDAY 매거진 유럽통신원, 정형모 기자, 사진 두카티 코리아
두카티 시운전 모습
디아벨 시리즈
SUNDAY MAGAZINE 09
ISSUE
조승우는 6대 보유, 비·강동원·성시경·김종훈 의원도 매니어 국내의 대표적인 두카티 매니어는 뮤지컬 배우 조승우다. 폴 스마트, 멀티스트라 다1200, GT1000 등 총 6대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5월 국내에 처음 출시된 1199 파니갈레의 1호 고객도 그였다. 2011년 제69 회 EICMA 모터쇼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이크’로 선정된 1199 파니갈레는 출고 가가 4800만원에 달한다. “처음 매장을 찾아 엔진 시동을 걸고 기어를 딱 넣는 순간 ‘이건 내 거다’라는 느 낌이 왔다”는 그는 바쁜 일정 틈틈이 두카티를 즐긴다. 공연장으로 이동할 때도 이용하고 공연이 없는 월요일에는 투어를 떠나기도 한다. 날씨가 좋으면 근교로 달 려나가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것을 먹는 일상의 소소한 재 미를 두카티로 만끽한다. 그는 두카티를 유독 즐기는 이유로 “바라만 봐도 입꼬리 가 올라가는, 다른 바이크들이 줄 수 없는 뛰어난 디자인”을 꼽는다. 사진으로 조각을 만드는 권오상 작가도 두카티에 푹 빠져 있다. 2006년 그는 인 터넷에서 구한 사진과 오토바이 제원 수치만으로 두카티 모형을 만들어 전시를 마쳤다. 그러고 나서 매장을 찾아가 비로소 실물을 보았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기계 덩어리였죠. 오토바이 면허도 없었지 만 그냥 사고야 말았습니다. 오토바이를 산다는 느낌이 아니라 현대 조각품을 산다는 느낌이었어요. 디테일이 생각보다 훨씬 정교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두카티 코리아 홍성인 대표는 영화 ‘나잇 앤 데이’(2010)에서 두카티를 타고 나왔던 톰 크루즈를 비롯해 올랜도 볼룸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표적인 두카 티스티라고 소개했다. 국내에서는 가수 비, 영화배우 강동원, 가수 성시경 등이 즐겨 탄다고. FTA 협정으로 유명해진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도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이 홍 대표 의 귀띔이다. 10 SUNDAY MAGAZINE
ISSUE
라디오 부품 만들다 변신 가볍게 더 가볍게’ 모토 두카티는 스포츠카 브랜드인 마세라티, 람보르기니, 그리고 페라리의 본사가 있 기도 한 이탈리아 중부 볼로냐에 본사를 둔 모터바이크 제조업체다. 2차대전 이후
1199 파니갈레 6 1199 파니갈레 내부 1199 파니갈레 국내 1호차의 주인공이 된 조승우 권오상 작가가 두카티 엔진을 본따 만든 ‘토르소’ 두카티 스케치
쿠졸로(Cucciolo·강아지)라는 자전거용 모터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라디오 부품 회사 두카티의 운명을 바꾼 계기가 됐다. 이들은 1953년 본격적인 모터바이크 사 업을 위해 두카티 메카니카와 두카티 엘레트로니카로 회사를 나눴고 54년 천재 엔지니어 파비오 탈리오니를 영입했다. 그리고 56년 처음으로 데스모드로믹 밸브 를 사용한 경주용 바이크 125 그란 스포트를 출시했다. 1972년 이몰라 200밀리아 경주에서 영국 레이서 폴 스마트와 이탈리아 레이서 브루노 스파자리가 ‘이몰라 750’을 타고 1, 2위를 차지했다. 이 경기는 두카티 수 퍼바이크 전설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74년 두카티는 수작업으로 만든 한정판 모터바이크 ‘750 수퍼 스포츠’를 출시 해 전 세계 바이커들을 흥분시켰다. 그리고 88년 미국에서 처음 생긴 월드수퍼바 이크(WSBK·양산 바이크 서킷 경기)에서 이탈리아 레이서 잔카를로 팔라파는 두 카티 851와 888을 타고 참가하는 경기마다 승리했다. 이어 해골처럼 부속이 그대 로 보이는 ‘몬스터’, 모터바이크계의 입생 로랑으로 불리는 디자이너 마시모 탐부 리니가 디자인한 ‘916’, 현재 디자인 실장인 잔안드레아 파브로가 만든 ‘1098’ 등 을 계속 내놨다. 두카티는 새로운 바이크를 만들 때마다 어떡하면 더 가볍게 만들 수 있을까를 연구했다. 2012년 본격 출시된 1199 파니갈레는 많은 부분에서 기존의 스타일에 서 벗어난 제품이다. 일단 두카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크롬 몰리브덴 강철 트러 스 프레임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양산 바이크로는 세계 최초로 알루미늄 모노 코크(Monocoque·하중을 외피로 견딜 수 있는 단일 외피형 구조) 프레임을 사용 했다. 그 결과 최고 출력 195마력의 1199cc 엔진을 탑재했음에도 무게가 164kg SUNDAY MAGAZINE 11
ISSUE
밖에 나가지 않는다. 2006년부터 두카티의 CEO를 맡고 있는 가브리엘레 델 토르키오(Gabriele Del Torchio) 회장은 5년 만에 두카티를 세계시장 점유율 11%의 4억8000유로 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성장시켰다. 두카티는 유럽시장의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미국(+48%)과 아시아 시장(+238%)에서 크게 성장하고 있다. 오는 7월 말 체결될 폴크스바겐 그룹의 브랜드 아우디 AG의 두카티 인수를 앞두고 델 토르키오 회장 은 6월 23일 WDW행사 공식 기자회견에서 “세계 2위, 유럽 최대의 자동차 제조업 체 폴크스바겐이라는 기업의 투자 덕분에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힘을 얻게 됐다. 두카티는 볼로냐에 본사를 둔 이탈리아 브랜드로 항상 남을 것이며, 회사 방침과 제조 관련 시스템은 기존의 두카티 스타일을 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친 없으면 마네킹 태우고 비키니 미녀와 워시 올해로 7회를 맞이한 월드 두카티 위크(WDW 2012·6월 21~24일) 행사를 위해 이탈리아는 물론 독일, 오스트리아, 동유럽 국가들, 스위스, 프랑스의 두카티스티 들은 자신의 ‘애마’를 타고 알프스를 넘었다. 미국, 일본, 한국, 중국, 인도 등 먼 나 라에 사는 팬들은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미사노 서킷 광장은 두카티 세상이었다. 대부분은 상징적인 붉은색이지만 노 란색, 무광 블랙도 많았다. 바이커들은 가죽 슈트를 입거나 두카티의 상징인 붉 은 티셔츠를 입었고 헬멧과 선글라스, 장갑을 필수로 착용했다. 이들에게 자 신의 바이크를 장식하거나 개조하는 것은 하나의 의무다. 출고된 그대로 타 는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많은 사람은 프런트 카울이나 연료탱크에 액세 서리나 스티커를 붙이기도 하고 직접 그림을 그려 넣거나 레이서들의 사 인을 받아 장식한다. 뒤에 같이 탈 여자친구가 없는 사람들은 시트에 여 자 마네킹을 부착하기도 했고 아예 커버를 직접 디자인하는 매니어들도 12 SUNDAY MAGAZINE
ISSUE
있었다. 매니어들의 변형 바이크 콘테스트는 이미 행사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아 WDW 기간 중 최고의 개러지 바이크를 투표로 선정하고 있다. 바이크 워시 코너에는 비키니 차림의 날씬한 미녀들이 바이커들의 혼을 쏙 뺐 다. 15유로만 내면 미녀들과 함께 바이크 워시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남자들로 바 글바글했다. 비키니 미녀들은 바이크 워시 코너에만 있지 않았다. 여성 두카티스 티나 행사를 즐기러 온 일반 여성들도 36도의 폭염을 참지 못하고 시원스레 옷을 벗어던졌다. 온몸에 문신을 한 터프가이들도 질세라 웃통을 벗었다. 팬 중에는 몸에 스티커나 에어브러시로 두카티 로고를 새긴 사람, 짧게 자른 머 리를 두카티 로고와 같이 물들인 사람도 많았다. 장난감 두카티를 모는 꼬마 레이 서도 있었다. 하루 두 번씩 스턴트맨 쇼가 열렸고 부속품 조립 경연대회와 바이크 묘기를 배우는 코너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히스토리 존에서는 과거의 유명한 바이크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 하이라이트 행사는 역시 트랙에서 열렸다. 트로이 베일리스와 카를 로스 체카와 같은 SBK 레이서들과 모토GP의 레이서 니키 하이든과 발렌티노 로시가 번개 같은 속도로 테스트 라이딩을 했다. 일반인도 미리 신청하면 레이서처럼 트랙에서 프리 라이딩을 할 수 있었고 올해에 출시된 파니갈레도 시승해 볼 수 있었다. 레이서들의 대기소인 패독 앞은 스타 레이서 들을 직접 보기 위해 몰려든 팬들로 항상 북적거렸다. 매일 저녁 행사가 끝나면 사람들은 모터 바이크의 핸들그립을 리드미컬하게 돌리며 “두둥 두둥 두두둥”하고 일부러 소리를 크게 냈다. 한 명이 부릉거리면 주 변 사람들도 따라서 부릉거렸다. 바이크의 바퀴를 헛돌려 안개처럼 하얀 고무연 기를 낼 때마다 두카티스티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WDW 행사는 셋째 날 저녁 리 초네 해변가에서 열린 두카티 올스타 콘서트에서 절정을 이뤘다. 아드리아 해안 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MTS 1200 바이크 시리즈 스트리트 파이터 848
경주에 나선 두카티
멀티스트라다
모토 GP 선수들이 타는 데스모세디치 두카티 1199 파니갈레 앞에 선 모토 GP 레이서 발렌티노 로씨 트랙경기후 팬에게 인사하는 레이서 니키 하이든, 트로이 베일리스, 발렌티노 로씨(왼쪽부터) 두카티 바의 미녀들
SUNDAY MAGAZINE 13
REVIEW & PREVIEW
디자이너의 발레 연출 반쪽의 성공 국립발레단 ‘포이즈’, 6월 29일~7월 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국립발레단의 컨템퍼러리 발레 ‘포이즈’ 엇이 되었든 작품의 완성도가 만족스러우면 (Poise·6월 29일~7월 1일 예술의전당 오페
속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화제가 됐
라극장)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안성수 교수와
던 만큼 대작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에 크게
유명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의 공동작업이라
못 미쳤기 때문이다.
는 이유만으로도 세간의 관심을 한껏 받았다.
1막 30분, 2막 30분 등 총 60분 동안 줄거
더욱이 국립발레단이 창단 50주년을 맞아
리나 특정 내용이 없는 대신 ‘균형(포이즈)’
야심차게 준비한 창작 프로젝트 1탄인 만큼
이라는 주제가 곳곳에 숨어 있었다. 러시아
한국 발레사의 반세기를 정리하는 의미 또한
군 제복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하양, 빨강, 검
담고 있기에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정의 세 가지 색 의상은 하양과 빨강 배경의
그러나 제작 초기부터 의문이 들었다. 무
무대와 조화를 이루며 간결함을 표현했다.
용 작품에서 연출이 별도로 필요한 것인가. 25개의 대형 직사각형 구조물은 공중에 직 안무 작업에는 연출도 포함하는 것 아니던가. 각으로 매달려 조형예술로서의 가치를 보여
안무(choreography)
굳이 이 둘을 구분해야 한다면 왜 패션 디자
주었고, 지름 16m 크기의 대형 회전판은 다
이너가 발레 작품에서 연출까지 맡았을까.
각도의 신체를 아울렀다.
안성수는 발레의 기본을 바탕으로 현대적
그런데 쇼스타코비치와 바흐의 음악, 그 속
감각의 동작을 만들어내는 국내 몇 안 되는
에 녹아 있는 안성수 특유의 반복적 움직임
안무가 중 하나다. 신문방송학도에서 영화감
은 실상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순미
독 지망생으로 다방면의 관심사를 가졌던 만
를 강조하는 미니멀리즘에 충실한 나머지 예
큼 그의 연출력은 눈부시다. 집요하리만큼
술의 본질을 남기는 기본 개념마저 제거하고
움직임 하나를 모티브로 삼아 캐넌 등의 형
만 것이다. 무용-음악-디자인, 셋의 ‘균형’은
식으로 동작을 완성하는 안무법 또한 독창적
이루어지지 못했고, 디자인의 압승으로 마무
이다. ‘선택’ ‘볼레로’ 등 다수의 수작을 보면
리됐다. 하인츠 슈푀얼리(Heinz Spoerli)의
서 그의 연출력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 2001년 작 ‘올 셸 비(All Shall Be)’가 바흐 그러한 그가 왜 작품을 완성하는 데 있어 가
의 음악에 맞추어 빨간색을 강조하며 미니멀
것(오늘날 무보법 dance notation으로 불린다)을 가리켰지만, 18세기 말 이후
장 큰 결정권이라 할 수 있는 연출이라는 지
리즘 발레로서 극찬을 받았던 것이 기억났다.
무용을 만드는 기술을 의미하게 되었다. 또한 무용의 모더니즘 출현 이후 안무의
휘봉을 넘겨주어야 했을까.
슈푀얼리가 안무는 물론 무대, 의상디자인까
무용과 기록에 관한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본래 무용의 발 동작을 실제로 적는
범주에 연출을 포함시키는 개념이 만연하다. 14 SUNDAY MAGAZINE
하지만 누가 무슨 역할을 했든, 이유가 무
지 맡았고, 별도의 연출자는 없었다.
REVIEW & PREVIEW
천재의 야외 레이저 작품 새 단장 광:선 백남준 스펙트럼, 7월 6일~9월 16일 서울 방이동 소마미술관, 문의 02-425-1077
7월 20일은 우리 시대의 천재 예술가 백남준의 80번째 생일. 그는 생전에 80세까지 살겠 다고 얘기했었다. 30여 년 전 이미 비디오 아트라는 통찰력을 보여준 그가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과연 무엇을 보여주고 있을까. 국민체육진흥공단 소마미술관은 고 백남준 탄생 8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볼거리를 마련했다. 우선 소마미술관 내 상설 전시관인 백남준비디오아트홀을 재개관한다. 또 올림픽공원 몽촌해자에 설치된 세계 유일의 야외 설치 레이저작업 ‘올림픽 레이저 워터스크린 2001’ (7월 공연, 오후 8시30분)을 다시 단장해 선보인다. 이와 함께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백 남준의 커뮤니케이션/인스트럭션 아카이브와 컨셉트 드로잉 170여 점을 포함해 백남준 의 싱글 채널 비디오, 비디오 조각, 비디오 설치, 레이저 작업, 오브제, 판화 등 총 240여 점을 소개한다. 월요일 휴관. 성인 3000원.
명장면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막에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소마미술관
서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협주곡 2번에 맞 추어 두 쌍이 함께 펼치는 4인무는 오선지 위 의 음표를 나타내듯 시각적으로 매우 훌륭했
한국의 멋과 맛 살린 최현 춤사위
다. 2막에서는 김보람, 박수인 등 4명의 현대
최현 춤의 비상, 7월 9일·16일·23일(매주 월요일) 오후 7시30분 서울 정동극장, 문의 02-751-1500
무용수들이 광대처럼 끼어들면서 컨템퍼러 리 발레가 가지는 자유로운 표현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발레의 기 본기를 바탕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하체 움직 임과 한삼이 공중에서 휘날리듯 부드러우면 서도 힘 있는 상체의 유연함을 보여준 김지영 의 노련미는 압도적이었다. 국립발레단이 지난 50년 동안 무척이나 빠 르게 성장해 지금의 자리에 온 것인 만큼 앞 으로 50년은 더욱 힘찬 박차로 세계의 주인 공이 돼야 한다. 일관된 비전으로 무용 창작 활동의 모델이 돼 주어야 한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근 들어 개념 이 흐려지고 있는 무용 창작의 핵심 키워드인
정동극장이 2010년부터 근현대 한국 예술계를 이끈 거장들을 기념하기 위해 추진 중인 ‘거장의 정동 나들이’ 사업. 그 두 번째 예술가로 무용가 최현을 선정했다. 2012년 그의 타 계 10주기를 맞이해 7월을 추모의 달로 정하고 최현우리춤원(회장 윤성주)과 공동 주최 로 릴레이 공연을 이어간다.
‘안무’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
배우이자 무용수, 안무가이자 교육자였던 최현의 작품들은 흥과 멋, 여백의 미, 정중동
다. 이 시대는 ‘동작 짜기’의 기술적 능력만을
의 미 등 한국 춤의 본질적 요소 등을 사용하면서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이
안무라고 정의하지 않는다. 융·복합이라는 시
나 상황을 춤으로 표현했다. 정혜진, 전순희, 이미영, 남수정 교수가 총감독을 맡은 ‘무용
대적 조류를 변명 삼아 타 분야의 이름 있는
극으로 만나는 최현’ ‘시서화로 만나는 최현’ 등의 프로그램에서는 최현이 창작한 ‘시
예술가를 연출자로 모시는 안무가의 안일함
집가는 날’ 등의 무용극과 한국의 멋과 맛을 제대로 살려낸 우리 춤의 백미로 손꼽히는
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다양한 소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글 장인주 무용평론가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정동극장
사진 국립발레단 SUNDAY MAGAZINE 15
BOOK
페이는 쉽게 판단이 서질 않았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종군사진가였던 로버트 카파나 유진 스미스의 강렬한 사진풍에 길들여진 탓인지, 일견 평범해 보였다. 하지만 최전선이 아닌 후방 진차지군구(晋 察冀軍區, 중국 공산당의 혁명 근거지로, 산 시성·차하얼성·허베이성에 해당하는 지역) 에서 활동한 당 소속 사진 선전원이었던 사 페이는 극적인 이미지를 좇았던 ‘라이프’나 매그넘의 사진가들과는 다른 처지였다. 외부
형장서 스러진 팔로군 선전원이 찍은 전쟁터의 일상
숨은 책 찾기 <12> ‘열화당 사진문고’ 중국 사진가편『사페이』
자가 아닌 내부자의 시선이었으며, 중국인들 의 사기와 단결을 도모하고 후방 민주 건설을 위한 기록이 목적이었다. 그렇다고 정치 선전 을 위한 선동적인 장면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 전장에서의 일상을 세심하게 포착한, 첫인상은 강렬하지 않지만 볼수록 이야깃거 리가 많은 사진이라고 할까. 격변의 시대는 사페이를 혁명이라는 사회 적 이상으로 향하게 했지만, 예술과 인간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다른 한쪽에서 늘 그를 붙잡고 있었다. 이 둘을 혁명시대 예술의 이 상적 형태로 실현시키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루쉰의 목판화 운동에 영향을 받았던 그는 39년 진차지군구에 신문사진과를 설립하고 42년 항일 근거지를 기록한 화보집인 ‘진차
16 SUNDAY MAGAZINE
형식에 내용이 따라가는 경우가 있다. 책에선
피며 후보를 좁혀 나간 후, 베이징의 한 사진
지화바오(晋察冀畵報)’를 창간하기에 이른
시리즈물이 그렇다. 세계 주요 사진가들로 구
전문 갤러리의 도움으로 두 사진가의 유족 연
다. 그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성된 ‘열화당 사진문고’가 서른 권쯤 나올 때
락처를 얻었다. 그들에게 첫 e-메일을 보낸
그러나 냉혹한 현실과 이상의 괴리, 천성적
까지 중국어권 사진가가 없었다. 구색을 갖
게 2008년 가을이었고, 2011년 가을 책이 출
으로 낭만적 성향은 결국 그의 내면을 몹시 괴
춰 보자, 발단은 그렇게 된 것이었다.
간됐다.
롭혔던 듯하다. 일본과의 전쟁이 끝나고 중국
우리나라에 사진 하는 사람이 참으로 많
좡쉐번(庄學本, 1909~1984)과 사페이(沙
공산당이 국민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시점
지만 일본 말고는 아시아의 근대 사진가들
飛, 1912~1950)는 모두 중국이 봉건주의의
에서 그는 돌연 죽음을 맞는다. 동기를 알 수
을 체계적으로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앞서
병폐와 제국주의 열강에 신음했던 1930~40
없는 살인사건으로 화베이군구 정치군법처
나온 대만 사진가들도 그랬지만, 중국 사진
년대에 전성기를 보냈다. 새로운 문명과 사상
는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50년 3월 4일 형을
가들도 직접 현지에서 섭외할 수밖에 없었
이 유입되던 상하이라는 근대적 공간에 있던
집행한 것이다. 서른여덟의 젊은 나이였다.
다. 북디자이너 뤼징런(呂敬人) 교수로부터
두 젊은이는 시대의 요청에 응답할 수밖에
‘구색’을 점잖게 말하면 균형이나 다양성쯤
사진 관계자 한 명을 소개받아 초기 다큐멘
없었고, 좡쉐번은 변방의 소수민족을 기록
될 터인데, 그것은 숨어 있는 세계와 마주하
터리 사진가 중 중국을 대표할 만한 이를 추
하기 위해 서북지역으로, 사페이는 항일전쟁
기 위한 좋은 구실이 되기도 한다. 사페이의
천해 주길 부탁했다. 갑작스러운 요청이 부담
의 근거지였던 동북지역으로 떠났다. 웅장한
발견은 나에겐 뜻밖의 행운이었다. 책 만드는
스러웠는지 반응이 소극적이었다. 몇 차례 다
자연을 배경으로 생명력 넘치는 원주민들의
이가 누리는 이런 호사가 미안해서라도 이 책
른 시도도 해보았지만 여의치 않자 우선 중
모습을 담은 좡쉐번의 사진은 단번에 눈길
을 권하고 싶다. 만남은 또 그
국에서 출간된 사진책들을 사들였다. 대륙이
을 끌었고, 별다른 고민 없이 출간을 결정했
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넓은 만큼 작가도 지역별로 엄청나게 많았다. 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팔로군(八路軍)의 사
글 이수정 열화당 기획실장
한 권, 한 권 검토하고 잡지 특집기사들을 살
사진 열화당
진 선전원으로 중일전쟁의 현장을 기록한 사
GUIDE
금주의 문화행사 책
영화
전시
클래식
잇 주얼리 저자: 윤성원 출판사:웅진리빙하우스 가격: 1만5000원
메릴린 먼로는 “다이아몬드는 여자에
두 개의 달
예술가의 초상 전
서울시향 보컬시리즈 Ⅱ
게 최고의 친구”라고 했다. 티파니는 하
감독: 김동빈
기간: 7월 4~10일
일시: 7월 13일 오후 8시
늘색 상자만으로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
배우: 박한별, 김지석, 박진주, 라미란
장소: 서울 원서동 바움아트갤러리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등급: 15세 관람가
문의: 02-742-0480
문의: 1588-1210
GIA 보석학교로 유학을 떠났던 저자가
두 개의 달이 뜨면 이승의 사람과 저승의
시인이자 무용평론가, 화가로서 전방위
기존 국내 오케스트라 무대에서 접하기
보석의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실용과 예
사람이 만난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공포
예술활동을 펼쳤던 고 김영태 선생의 추
힘들었던 모차르트ㆍ바그너ㆍ말러 등의
술을 넘나드는 다양한 브랜드, 스토리를
소설 작가 소희(박한별), 대학생 석호(김
모 5주기 기념전. 생전에 개성적인 필치로
가곡ㆍ아리아ㆍ종교음악ㆍ오페라를 선보
품은 역사적인 보석, 보석을 선택하는 법,
지석), 여고생 인정(박진주)은 영문도 모
수많은 예술가를 화폭에 담아 국립예술
인다. 지휘는 카를로 리치(사진)가, 연주
뉴욕의 디자이너, 보석 경매까지 사치가
른 채 낯선 집 지하실에서 깨어난다. 시간
자료원에 기증했던 캐리커처 원본 작품
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맡는다. 소프라
아니라 가치로 보석을 바라볼 수 있는 길
은 멈춰 있고, 아무리 벗어나려고 헤매어
들을 한데 모았다. 박목월, 백건우 등 예
노 레베카 에번스가 모차르트의 아리아
잡이가 된다.
봐도 제자리만 맴돌 뿐이다.
술가들의 반가운 얼굴을 만나볼 수 있다.
를 노래한다.
더 이상 디자인은 장식의 수단이 아니다.
연가시
여름생색전
앙상블 프론티어 시리즈 2
제품을 혁신하고 기업의 철학까지 담아
감독: 박정우
기간: 7월 4~17일
일시: 7월 12일 오후 8시
내는 비즈니스의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
배우: 김명민, 문정희, 김동완, 이하늬
장소: 서울 관훈동 공아트스페이스
장소: 금호아트홀
등급: 15세 관람가
문의: 02-730-1144
문의: 02-6303-1977
자인을 활용해 경영혁신에 성공한 기업
전국의 하천 곳곳에서 뼈와 살가죽만 남
동화약품, 가송재단에서 개최하는 공모
중3 때 만나 창단 29주년을 맞은 여음목
의 사례를 모았다. 다이슨, 닌텐도, 무인
은 참혹한 모습의 시체들이 떠오른다. 곤
전 ‘제 1회 가송예술상’의 본선 진출작 전
관5중주는 서울예고와 서울대 동문인 다
시회. 우리 전통의 문화가 담긴 ‘접는 부
섯 연주자 이지영ㆍ오선영ㆍ송정민ㆍ김형
게 한다. 보석의 세계에 사로잡혀 뉴욕의
결국, 디자인 저자: 닛케이디자인 역자: 유주현 출판사: 나무수 가격: 1만3800원
다. 일본 최고의 경제언론사 닛케이가 디
양품 등 대기업부터 중소 규모 제조회사
충의 뇌를 조종해 물가로 유인해 자살하
까지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직접
게 만드는 연가시의 변종이 등장해 인간
채(접선)’에 젊은 작가들의 톡톡 튀는 아
찬ㆍ신현석으로 구성됐다. 프랑스 니스 서
디자인을 챙긴 경영자들이 ‘잘 팔리는 디
까지 감염시킨 것. 제약회사 영업맨 재혁
이디어를 담았다. 16명의 젊은 작가가 참
머 뮤직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등 활발히
자인’으로 비즈니스 혁신을 이룬 성공 비
(김명민)은 변종 연가시에 감염된 가족을
여해 ‘부채’라는 모티브 아래 다양한 소
활동 중이다. ‘관악오중주를 위한 여름
결을 공개한다.
살리기 위해 치료제를 찾아 고군분투한다.
재와 기법을 접목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음악’ 등을 연주한다.
THIS WEEK CHART 베스트셀러 순위 책명
자료=교보문고
영화 예매
자료=맥스무비
작가·출판사 순위 영화명
공연 예매
자료=인터파크
주연 순위 공연명
클래식 음반
자료=풍월당
출연 순위 음반명
음반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스님·쌤앤파커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앤드루 가필드
EBS모여라딩동댕 번개맨의 비밀
-
나의 사랑 나의 탱고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칼 팔레머·토네이도
연가시
김명민·문정희·김동완
뮤지컬 위키드 오리지널 내한공연
-
쇼팽: 야상곡 - 이반 모라베츠
임수정·이선균·류승룡
뮤지컬 시카고
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고도원·해냄출판사
내 아내의 모든 것
스님의 주례사
법륜·휴
더 레이븐
초역 니체의 말
프리드리히 니체·삼호미
콰이어트 아프니까 청춘이다 빅 픽쳐
수전 케인·알에이치코리아
존 쿠삭·루크 에번스
인순이·최정원·윤공주
뮤지컬 모차르트!
박은태·임태경
미드나잇 인 파리 오웬 윌슨·마리옹 코티아르
초특급 애니 뮤지컬 로보카 폴리
후궁: 제왕의 첩
연극 옥탑방 고양이
조여정·김동욱·김민준
-
박성훈·장지우·윤정빈
Warner Korea
바이스 : 아르스 멜랑콜리에
Glossa
리스트 : 러시안 트랜스크립션
NAXO
파가니니 포 투 : 바이올린과 기타 비발디 : 라 체트라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
-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김도현·김재범·성두섭
슈베르트 즉흥곡 외:루비모프
더글러스 케네디·밝은세상
마다가스카3:이번엔 서커스다!
-
뮤지컬 김종욱찾기
테오도라키스
해커스토익READING David Cho·해커스어학연구소
미쓰GO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와이즈베리
캐빈 인 더 우즈
고현정·유해진·성동일 크리스 햄스워스
DG
Channel Classics
김난도·쌤앤파커스
최원준·윤석현·강동호
Supraphon
ZIG ZAG C&L Music
뮤지컬 라카지
정성화·남경주·김다현
브루흐: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집 ARS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황정민·서범석·홍광호
어린아이들의 낮잠
Telrac
SUNDAY MAGAZINE 17
INTERVIEW
18 SUNDAY MAGAZINE
INTERVIEW
괴물’의 무릎 나온 운동복 그런 평범한 게 더 어려워요 : 영화 ‘후궁’의상감독 조상경
그는 청담동의 한복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촬영 전에 작업의 상당 부분이 마무리 되는 일의 특성상 한복에서 손을 뗀 지도 꽤 됐을 텐데 ‘후궁’이 흥행몰이를 하는 사이 그가 작업한 또 다른 영화가 개봉을 했는데도 말이다. ‘후궁’의 의상 일부를 제작했다는 그곳에서 조 감독은 ‘한복 일’을 한다고 했다. 사극으론 첫 작품이었던 ‘후궁’이 한복 디자인이라는 또 다른 일로 그를 이어준 것이다. 어차피 옷과 관련한 일이니 ‘후궁’ 작업과 큰 차이도 없을 것 같은데 그는 “목적이 다르니까 전혀 다른 일”이라고 했다. 옷은 옷이지만 영화 의상의 방점은 ‘의상’에 찍힌 게 아니었다 . 영화 의상을 시 작한 것도 “옷이 좋아서가 아니라 영화가 좋아서”라고 했다. 내시 입는 철릭은 청바지 천으로 장난 좀 쳤죠 -‘후궁’이 첫 사극이었는데 어떤 점이 다른가요.
‘후궁: 제왕의 첩’이 관객 250만 명을 넘겼다. 픽션 사극이라는 트렌드, 고
“한복은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카메라 각도에 따라 달라요. 풀샷으로 들어가야
전적 복수극의 재해석, 배우들의 열연 등 영화엔 각종 흥행 요소가 있지
하는 옷인데 타이트하게 들어가서 아까운 적도 있고, 감독님이 옷을 봐서 부감으
만 관객의 눈을 사로잡은 주인공은 또 있다. 이색적이고 화려한 고전 의
로 찍어준 적도 있고요. 그래서 촬영장엔 잘 안 가는데 이번엔 자주 가게 됐죠.”
상이다. 무채색에 가까운 색감의 겹겹이 둘러싼 옷은 그 자체로 시각적인
-옷을 보고 영화 시대배경을 콕 집어내지 못했어요.
즐거움이 됐을 뿐만 아니라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를 완성하는 무언의 도
“시나리오엔 왕조가 표시돼 있지 않았어요. 김대승 감독님에게 시대를 잡고 가
구가 됐다. ‘후궁’의 의상을 맡은 조상경(39) 의상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야 한다고 했죠. 발 디딜 곳이 필요하다고. 제가 조선복식사를 쫙 보고 그중에서
에서 무대미술을 전공하고 2002년 ‘피도 눈물도 없이’로 데뷔한 이래 40
후궁에게 맞는 실루엣을 가진 시대를 제안했는데 그게 14~16세기 초반이에요.”
편 가까운 영화 작업을 해왔다. 금자의 물방울무늬 원피스(‘친절한 금자
-기존 사극에서 보던 한복과는 다르기도 했고요.
씨’), 양궁선수 남주의 무릎 나온 자주색 트레이닝복(‘괴물’), 과감하고 섹
“후궁을 맡고 몇 달을 밤새워 TV 사극을 다 받아 봤는데 90년대 사극 의상이 훨
시한 정 마담의 원피스(‘타짜’), 쓸쓸함이 전해지는 애나의 트렌치 코트
씬 좋았어요. 요즘 사극 의상은 좀 의아했고요. 수양대군이라고 명시된 인물이 입
(‘만추’) 등…. 배우가 대사를 말하기도 전에 캐릭터를 선명하게 드러냈던
은 게 수양대군의 옷이 아니고, 당의가 없던 시대인데 공주가 예쁘게 당의를 입고
이 옷들이 바로 그의 작품이다.
나와요. 고종의 옷을 세종이 입어도 아무렇지 않은 거죠. 사람들이 조선 후기 한복
글 홍주희 honghong@joongang.co.kr, 사진 최정동 기자, 중앙포토
에 익숙해져서 이런 데 거부감이 없는 것 같아요.” -관객에겐 오히려 ‘후궁’의 의상이 낯설었던 것 같은데.
“김 감독님이 조선 후기로는 갈 필요가 없다고 하셔서 더 그럴듯하게 만들어보 고 싶었어요. 그림·유물 같은 사료를 보여주면서 의상을 만들었고 자신 있게 작업 했어요. 전통 한복 하시는 분들은 칭찬도 해주셨는데 고증에 대한 불신이 있는 거 예요. 처음엔 당황해서 다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죠. 작업하고 시간이 흘러서 좀 객관적으로 보게 되니까 ‘아, 내가 배색을 그렇게 했구나’ 싶더라고요. 이를테 면 붉은색 옆에 중국은 샛노랑을 대고 일본은 흰색을 대요. 우리는 빨강 옆에 파 랑을 써요. 배색에 따라 느낌이 크게 달라지는 거죠. 깃에 블랙을 댔던 대비의 의 상에 대해 제일 말이 많았던 것도 그런 이유 같아요.” -의상도 픽션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다만 그때 원단을 쓸 수 없으니 소재는 놓쳤는데, 그 부분에선 장난을 좀 쳤어 SUNDAY MAGAZINE 19
INTERVIEW
후궁:제왕의 첩
타짜
괴물 친절한 금자씨
모던보이
20 SUNDAY MAGAZINE
INTERVIEW
요. 내시들이 철릭(綴翼 :일종의 포(袍)로 지금의 두루마기 형태다. 왕부터 낮은 신 분까지 두루 입었다)을 입고 있는데 일하는 내시들의 작업복이니까 데님으로 해 봤어요. 원래 데님이 미국에서 작업복으로 시작했으니까. 그런 식으로 소재는 바 꿨지만 옷의 성격이나 형태는 조선 초기로 간 거죠.” 영화 의상은 배우가 아닌 캐릭터가 요구하는 옷 -보통 어떻게 작업을 하나요.
“시나리오를 봐야죠. 많은 정보가 있어요. 감독님들이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가 면서 시나리오를 쓰니까 의도하건, 하지 않건 시나리오 안에 색이나 형태에 대한 묘사를 흘려요. 박찬욱 감독님의 경우엔 ‘올드보이’에 격자무늬란 단어가 많았어 요. 지문에서 힌트를 많이 얻죠. 텍스트를 이미지화하는 작업을 하니까 시나리오 를 보고, 감독님과 얘기하고, 캐스팅된 배우를 보고 다 조합해서 유추해요.” -시나리오에 구체적으로 의상이 명시되기도 하나요.
“감독님이 색상을 지명할 때도 있고, ‘친절한 금자씨’에선 물방울무늬가 시나리 오에 명시돼 있었어요. ‘감독님 왜 물방울이에요’ 하고 물었더니 ‘꼭 그렇게 안 해 도 된다’면서 그냥 촌스러웠으면 좋겠대요. 그럼 금자가 촌스러워야 하는 거지 꼭 물방울무늬 옷을 입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저는 그걸 간파하는 거죠.” -의상은 캐릭터만이 아니라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것 같습니다.
“작업을 포스터에서 시작해요. 영화의 이미지를 한번에 보여주고, 사람들이 가 장 먼저 접하니까 포스터 이미지를 생각하는 거죠. 그런 점에서 ‘만추’가 기억에 남아요. 제가 한 다른 영화들은 방에 포스터를 붙여놓을 수가 없어요. 세잖아요. 그런데 만추는 훈남훈녀가 나오니까 그런 이미지로 가야겠다 하는 식이죠.” -배우도 변수가 되지 않나요.
“의상이 확 바뀔 때도 있어요. 꼭 이 배우를 캐스팅해야 하는데 시나리오는 누가 조상경의 필모그래피 2002
피도 눈물도 없이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올드보이 범죄의 재구성, 얼굴 없는 미녀, 쓰리 몬스터 달콤한 인생, 친절한 금자씨, 미스터 주부퀴즈왕, 소년 천국에 가다 짝패, 괴물, 타짜, 구미호 가족,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미녀는 괴로워 프랑스 중위의 여자(단편), 헨젤과 그레텔
2010
봐도 안 어울리면 어떻게 좀 해보라고, 캐릭터 좀 만들어 보라고 할 때도 있어요.” -필모그래피를 보면 ‘모던보이’는 20세기 초 복식이고, ‘고지전’은 군복이잖아요. 작업하는 의상의 폭이 굉장히 넓습니다.
“그래서 깊이가 얕아요. ‘고지전’ 얘기를 하면, 전 군인이 나온 영화를 본 적이 없 거든요. 그런데 한국전쟁을 공부하고 전쟁에 대해 조사하고 사람들을 인터뷰하
아버지와 마리와 나, 스페어, 모던보이
러 다녔어요. 살아계신 참전 군인들이 기억하는 얘기를 듣고, 수기·사진·신문 자료
그림자 살인, 박쥐
다 뒤지는 거죠. 모르는 것 하나하나를 리서치부터 시작해서 쌓는 거예요.”
이끼, 심야의 FM, 초능력자, 카페 느와르 글러브, 파란만장(아이폰 영화), 만추, 고지전 후궁:제왕의 첩, 미쓰GO
개봉 예정작 신의 아들, 신세계, 26년
-일상복은 어떤가요. 참고할 문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더 쉬울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려워요. ‘괴물’의 캐릭터들. 너무 평범하잖아요. 자료를 찾는 것도 아니고 현재의 모르는 사람들을 그리는 게 훨씬 어려워요.” -촬영이 끝나면 옷은 어디로 가나요.
“버리기도 하고, 아프리카에 보내기도 하고, 배우가 기념으로 갖기도 하고, 경매 도 해요. 제가 보관하기도 하는데, 그건 남들이 안 가져간 거?(웃음) 이런 얘기 하 면 다들 허탈해 하죠.” -그래도 애착 가는 옷이 있을텐데.
“작업한 옷은 전부 필름 안에 남잖아요. 그걸 위해 만들어진 옷이에요. 의상 경 매를 하면 옷을 산 사람이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데 너무 안 어울려요. 배우를 위 한 옷이고, 역할 때문에 만들어졌으니까 영화 밖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특 별히 옷에 애착이 없는데, 그게 매력적인 부분이에요. 연극도 그래요. 조명을 계 산하고 만든 옷이기 때문에 무대에서나 빛을 발하지, 막을 내리고 배우가 분장을 지우면 옷은 사라지는 게 맞아요.” -영화 의상은 뭘까요.
“캐릭터가 요구하는 옷이라고 생각해요. 조여정이 아니라 화연이가 입는 옷, 만추
이영애가 아니라 금자가 입는 옷이죠.” SUNDAY MAGAZINE 21
COLLECTOR
22 SUNDAY MAGAZINE
COLLECTOR
“유치원 때 잃어버린 강아지 다시 찾는 심정으로 모았죠”
어린시절 길에서 주운 청동 인형
나의 애장품 <5> ‘민간 외교관’ 이계영씨의 강아지 피규어린
성북동 앰배서더 이계영(Kay Lee·57)씨의 집은 완 전 ‘개판’이다. 마당에 곱게 깔린 잔디에는 진돗개 두 마리가 뒹굴고 실내에는 개 그림, 개 사진, 쿠션, 베개, 잠옷, 헝겊인형, 접시, 컵, 냅킨까지 개 천지다. ‘I’m a Dog person’이라 외치는 이씨는 대사관저 가 많은 성북동 주택가에서 민간 외교인으로 통한다. 장애인 아동을 돕는 자선단체 ‘사랑심기’ 위원으로 각국 대사 부인, 외국 기업 간부 부인들과 합심해 각 종 봉사활동을 천직으로 삼고 있다. 방글라데시 명 예총영사인 남편(쌍용C&B·모나리자제지 김광호 회 장)의 조력으로 각종 자선행사를 열어 외국인들의 참 여를 유도하고 있다. 유기견 돕기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는 그는 ‘애완용’ 이 아닌 ‘동반자’로서 개와의 관계를 중시한다. 남편 의 개 사랑은 한술 더 떠 마당에 풀어놓고 사이좋게 치킨을 나눠 먹을 정도란다. 그래서일까, 취미로 모은 수천 점의 도자기 중 개와 함께 있는 사람 인형이 유 독 많다. 개를 안고 있는 여인, 주인을 끌어당기는 개, 개와 함께 공놀이하는 소년, 개의 털을 빗겨주는 소 녀 등에서 개를 보는 이씨의 마음이 읽힌다. 이씨의 강아지 피규어린(장식용 미니 조각) 컬렉션은 어린 시절 기르던 개가 가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며칠을 울 고불고하다가 장충동성당 근화유치원 등 굣길에 우리 개와 똑같이 생긴 손가락만 한 청동 인형을 주운 거예요. 우리 개가 돌아온 것 같아 지금 까지 보물 1호로 간직하고 있죠. 그때부터 개 인형은 그냥 못 지나쳐요.” 개를 사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나갔다 오면 온 몸으로 반기는 건 개밖에 없죠. 누가 그렇게 반겨주 겠어요?” 그러면서 줄쳐 가며 읽었다는 『Anne of Green Gables(빨강머리앤)』8권을 펼쳐보인다. “앤 의 아들들이 군대에 가자 개 먼데이는 매일 기차역에 나가 형제를 기다려요. 동생 월터의 전사를 먼데이가 먼저 느끼고 슬피 울었답니다. 형 젬이 실종돼 생사를 몰랐지만 먼데이가 울지 않아 안심했대요. 나중에 젬 이 절름발이로 돌아오자 먼데이도 절뚝거리며 달려 가는 장면, 감사 예배를 드릴 때 먼데이가 아무리 날 뛰어도 목사님이 탓하지 못했다는 대목이 너무 와 닿아 몇 번을 읽었어요.”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조용철 기자 SUNDAY MAGAZINE23
GALLERY
물감을 밀어내 그리다 마대 위로 나온 물감을 지우고 밀어내면 그 스 스로 나에게 말을 건넨다. 뒤에서 밀려나온 물 감이 마대 캔버스와 만들어내는 비정형적인 이 미지는 자연과 가장 닮아 있다. 자신의 재주를 숨기면서 표현하려는 내용을 충분히 담는 것이 예술이다. 기술이 튀면 그것만 보이는 법이다. 단순해질수록 어려워지는 것이다. 계속 단순화 하고 제외하고 정수만 남기고 싶다.”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하종현(75)은 마포(麻布)로 만든 화면을 애용한다. 화면 뒤에 서 안료를 밀어내면 삼베에 한약재를 짜듯 물 감의 ‘진액’이 배어나온다. 이 ‘접합’ 시리즈로 그는 추상회화의 새로운 스타일을 개척했다. 이 번 전시에서는 그가 화업을 시작한 1960년대 작품부터 최근작 ‘이후접합’까지 대표작 85점 을 볼 수 있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하종현 회고전 6월 15일~8월 12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문의 02-2188-6000
‘접합 74-98’(1974), 마포에 유채, 22597㎝
24 SUNDAY MAGAZINE
PORTRAIT ESSAY
권혁재 기자의 不-완벽 초상화
스티브J의 콧수염 패션 <정혁서>
“유학시절, 디자이너로서 살아남기 위해 캐릭터를 찾아야 했다. 남다르게 긴 인중, 콧수염을 길렀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 개성 넘치는 디자이너들 속에서도 ‘콧수염 기른 동양인’이 각인됐다. 나의 브랜드 ‘STEVE J & YONI P’ 디자인에도 콧수염을 그려넣었다. 이 머스태시 디자인으로 스토리를 엮은 의상도 선보였다. 현재 한국, 일본, 홍콩, 이탈리아 등 세계 곳곳에서 나의 스토리가 담긴 의상이 팔리고 있다.”
SUNDAY MAGAZINE 25
FOOD
참기름에 볶은 전복 대추·통마늘과 함께 시간 푹 끓이면 끝! 주영욱의 도전 선데이 쿠킹 <6> 전복탕
더운 날씨가 오래 계속되니 몸이 쉽게 지친다.
26 SUNDAY MAGAZINE
회나 찜으로 먹는데 탕이라니 뭔가 새로운
번 집에서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느낌이어서 한번 가보기로 했는데 이게 소위
전복은 각종 아미노산이 풍부하고 영양소
‘대박’이었다. 해녀인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바다에서 땄
와 비타민이 많이 들어 있어 대표적인 보양식 재료 중 하나다. 저지방 고단백 식품이어서
다는(사실 확인은 못했지만 왠지 믿음은 갔
피부 미용에도 좋고 여름철에 부족해지기 쉬
다) 큼지막한 전복으로 끓여낸 전복탕은 전
운 영양분을 보충하는 데 최고다. 게다가 맛
복이 야들야들하게 씹히는 맛도 좋았지만 국
도 좋다. 마침 농림수산식품부에서 7월의 웰
물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담백하면서도 감
빙 제철 수산물로 선정했단다. 이를 계기로
칠맛 있는 진한 국물이 예술이어서 함께 갔
수협 같은 곳에서 한 달 동안 특별 할인판매
던 일행들 모두 코를 박고 그릇을 싹싹 비웠다.
까지 실시한다고 했다. 전복탕을 하기에는 지
마치 맛있는 보약 한 첩을 먹은 느낌이었다.
금보다 더 좋은 때가 없다.
이렇게 해서 이 식당은 경주 쪽으로 여행을
나른한 휴일 아침, 전복탕 만들기를 시작
뭔가 몸에 좋은 보양식을 먹어줘야 할 것 같
하게 될 때면 꼭 찾아가는 맛집이 되었다. 몇
했다. 먼저 마트에 가서 전복을 사왔다. 끓이
은 의무감이 슬슬 밀려오는 와중에 전복탕
번째인가 가서 안면을 익혔을 때쯤 전복탕을
면 크기가 줄어들기도 하고, 씹히는 맛이 좋
생각이 났다.
어떻게 만드는지 그 방법을 주인아주머니께
으려면 아무래도 씨알이 굵은 것이 좋을 것
여행을 다니다 보면 가끔 숨어 있는 맛집
슬쩍 물어보았다. 영업 비밀일 수도 있어서 나
같아서 좀 비싸지만 큰 것들을 골랐다. 부드
을 발견하는 횡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해
름 조심스럽게 물어봤는데 경쟁 상대가 안 된
러운 솔로 박박 문질러서 전복에 붙어 있는
송정’이 바로 그렇게 발견한 곳이었다. 신라
다고 생각해서인지 의외로 선선하게 알려주
물때를 씻어내고 나서 전복 껍질을 떼어냈다.
문무대왕의 수중릉이 있는 경주의 감포 바
셨다. 놀랍게도 전복에 대추와 마늘만 넣고
전복은 껍질을 떼어내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
닷가에 있는 작은 횟집이다. 감포에 있는 감
그냥 끓이는 단순한 방법이란다. 보약을 달이
운 일인데 숟가락을 이용해 살살 떼어내 보니
은사지 석탑을 보러 가던 길이었다. 근처에 뭔
듯이 오래 끓이면 전복에서 진한 국물이 우
나름 요령이 생기면서 해볼 만했다. 역시 뭐
가 먹을 만한 게 있나 하고 미리 인터넷을 뒤
러나와서 깊은 맛이 난다고 했다. 그렇게 단
든지 윽박지르는 것보다는 살살 달래는 것이
져봤더니 이 식당에서 전복탕을 한다는 글
순한 방법으로 맛있는 탕이 된다는 것이 신
최고다. 떼어낸 전복에서 내장을 분리해 따
이 눈에 띄었다. 전복은 보통 구이를 하거나
기하기도 하고, 만드는 방법이 쉬워서 언제 한
로 깨끗하게 씻었다.
FOOD 재료 전복, 마른 대추, 통마늘, 참기름
준비 전복. 씨알이 굵은 것이 좋다. 8~9㎝ 정도의 크 기를 사용. 성인 1인분에 3개 정도 가 적당하다. 내 장을 떼어낸 뒤 깨끗하게 씻은 다 음 함께 넣어서 끓인다. 통마늘 마른 대추
요리 Tip 전복을 깨끗이 손질한 다음 칼로 십자모양으로 칼 집을 낸다. 그리 고 프라이팬에 참 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표면이 노 릇노릇해질 때까 지 뜨거운 불에 살 짝 볶는다. 냄비에 물을 넉넉하고 붓고 전복과 전복 내장,
탕을 끓이기 전에 해송정 아주머니께서 가
단백이 듬뿍 들어 있는 것이 느껴지는 묵직
르쳐준 대로 먼저 전복에 칼집을 내고 프라
한 맛이다. 대추에서 나온 달짝지근한 맛과
이 팬에 참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살짝 볶았
마늘의 감칠맛이 잘 어우러지고 있다. 그렇
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어봤는데 이 무뚝
게 단순한 재료들로만 끓였다는 것이 믿기지
마른 대추, 통마늘을 넣고 끓인다. 1시간 정도 끓이 면 된다. 국물 맛을 보면서 시간을 조절한다. 마지 막에 소금으로 살짝 간을 한다. 그릇에 담아낼 때 는 내장은 제외하는 것이 더 깔끔하다.
뚝한 경상도 해녀 아주머니께서는 “그렇게
않을 정도로 깊은 맛이 난다. 오래 끓였는데
해송정 횟집
해야 더 맛있어요”라고만 간단하게 말꼬리를
도 전복은 씹히는 식감이 충분히 충실했다.
경주 감포 바닷가 대로변에 있다. 횟집이지만 전복
자르셨다. 나중에 전문 요리사에게 물어보니
미리 겉을 참기름 코팅으로 익혀준 덕분이다.
탕이 유명하다. 해삼 무침도 아주 맛있고 다른 곳
기름으로 코팅을 해서 표면을 익혀주면 오래
국물이 잘 배어들어 맛이 풍부하고 보들보들
에서 맛볼 수 없는 특별한 맛이다. 전복탕은 한 시
끓여도 전복의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고 그대
한 것이 씹어 넘기기가 아까울 정도다. 때로
로 남아 있고 씹히는 맛도 더 쫄깃하게 해준
는 소박하고 단순한 본래의 맛이 최고라는
다는 것이었다.
것을 보여준 음식이었다.
살짝 볶아준 전복과 전복 내장, 그리고 마 른 대추와 통마늘을 함께 넣고 탕을 끓이기
맛있게 먹었다. 모두들 국물까지 남김없이 비웠다. 감포 앞바다의 파도 소리와 바
는 끓여야 하니까 물을 좀 넉넉하게 부어야
다 내음이 없는 것이 좀 아쉬웠
한다. 중간중간에 궁금해서 뚜껑을 열고 국
지만 그래도 충분히 즐겁고 맛
물 맛을 보았다. 처음에는 좀 밍밍하게 별맛
있었다. 신선한 해초를 먹고 자
이 없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깊어져 가
란 전복이 가져다 준 바다의 생
는 것이 느껴졌다.
명력 때문에 기운이 불끈 났다면
다. 뜨거운 국물에서 올라오는 참기름 향이
먹을 수 없다. 근처에 문무대왕 수중릉, 감은사지 석탑, 이견대 등 역사적 명소가 많이 있다. 경상북 도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054-771-8058.
‘보약 한 첩’ 전복탕으로 식구들과 점심을
시작했다. 푹 고아주는 것처럼 한 시간 정도
오래 기다린 끝에 드디어 전복탕이 완성됐
간 이상 끓여야 하기 때문에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너무 과장일까? 아무튼 몸 보신 한 번 잘했다. 그것도 맛있게.
먼저 코를 찌르면서 식욕을 자극했다. 전복 내장과 함께 끓여서 녹색을 띤 국물이 참 진 하다. 전복에서 우러나온 각종 영양분과 고
주영욱씨는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그중 사진, 여행, 음식을 진지하게 좋아한다. 마케팅리서치 회사 마크 로밀코리아 대표이사.
SUNDAY MAGAZINE 27
HOUSE
‘속 보이는’ 유리집 함께 쓰는 마당 마음의 벽도 허물까 최명철의 집을 생각하다 <6> 서판교 월든힐스 2단지
서울시 신청사의 가림막이 걷혔다. 오랜 세월
지구상에 유리와 철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보아왔던 석조건물 뒤편에 낯선 유리건물이
이들의 출현으로 도시의 풍경이 바뀌었고 모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두 건물이 도무지
더니즘의 역사가 시작됐다.
어울리지 않는다. 건축가의 변명에도 불구하
유리는 투명하다. 자신의 삶을 어느 정도
고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의 대비를 인식하기도
남에게 보여주고 싶고, 어느 정도 다른 사람
전에 시각적으로 불편하다. 일제강점기 시대
의 삶을 엿보고 싶다는 인간의 노출증과 관
묵직한 건물을 압도하는 유리 건물의 형상
음증을 충족시키는 데 유리만 한 재료도 없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억측들이 네티즌이나
다. 건축가로서는 도전하고 또 극복하고 싶은
외국인들 사이에서 퍼져나간다. 꽤나 오랫동
재료다.
안 시빗거리가 될 것 같다.
이 같은 욕망을 구현한 유리집으로 대표적 인 작품이 1945년 시카고 근교에 미스 반데
노출증과 관음증의 건축 재료, 유리
어 로에(Mies van der Rohe)가 지은 판스워
최초의 유리건물은 1851년 영국 런던의 하이
드 주택(Farnsworth House)과 49년 미스
드파크에 지어졌다. 전장이 565m나 되는 수
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지은 필립 존슨의 글
정궁(Crystal Palace)이다. 제1회 만국박람
라스하우스(Glass House)다. 벽면이 온통
회에서 대영제국의 위용을 자랑하면서 서양
유리다. 나의 공간이 곧 너의 공간인 셈이다.
문명의 팡파르를 울렸다. 1889년 파리 만국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파격이었다. 건축주
박람회 때 혁명 100주년 기념탑으로 지어진
와 논란을 빚고 결국 소송까지 한 판스워드
에펠탑과 함께 역사를 바꾼 건축물이 되었다. 주택은 빼어난 작품성과 동시에 건축적 교만 28 SUNDAY MAGAZINE
HOUSE
서판교 월든힐스 2단지 전경. 1851년 런던 하이드파크에 지어진 수정궁. 사진 PetrusBarbygere
이라는 논란 속에 국가문화유산이 됐다. 두
청계산 남사면 길게 늘어선 부지에 다양한
유리집 모두 경치 좋은 교외에 위치한 주말
저층 연립주택을 건립했다.
별장이다.
2단지는 운중천이 흐르는 길에서 보면 서
그렇다면 도시 속 공동주택으로서 유리
측 위쪽의 1단지와 동쪽 고속도로 전에 있는
집은 가능할까. 지난해에 입주가 시작된 경
3단지 사이에 가장 낮은 부지에 위치해 있다.
기도 서판교 월든힐스 2단지는 이 질문에 대
올망졸망 하얀 입방체들이 늘어선 전경은
한 대답이다.
낮아서인지 편안하게 느껴진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각 세대 1층
이는 백색의 건물과 유리로 된 풍경은 낯설
서판교는 뛰어난 입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다. 마당에 서면 쇼케이스 형태의 건물들이
청계산 남면과 마주하고 있는 광교산 백운
양옆으로 마주해 있다. 각 세대 1층은 4면이
산 자락의 수려함 사이에 있는 서판교는 최
온통 유리다.
차량이 들어서는 정문을 지나면서부터 보
근 모 재벌 3세의 집 이야기부터 시작해 단
그런데 유리벽을 사이로 마주한 상대가
독주택 붐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새로 뚫린
모르는 사이라면 둘 다 불편해진다. 마네킹
경수고속국도나 남서울CC 등의 환경도 인
이 움직이면서 나를 바라보거나 우리 속의
“20세기 들어 ‘한 주택=한 가족’이라는 형
런 관계에 주목한 사람이다.
기 원인이다. 2006년 대한주택공사(현 LH
동물이 나를 보고 웃는다고 생각해 보라. 내
식이 자리 잡았다. 이런 가족 전용 주택을 목
공사)는 판교 신도시 부지 중 가장 입지가 좋
시선의 선택권과 타인의 시선 간에는 수많
표로 설계한 결과 주택은 그 지역 및 환경과
은 이곳에 고급 주거단지를 기획했다. 외국
은 사회적 관계가 존재한다. 설계자인 일본
는 분리된, 획일적인 패키지 상품이 되고 말
인 초청 설계 경기의 방식으로 3명을 선출해
의 노 건축가 야마모토 니켄(山本理顯)은 이
았다. 고령화 등으로 인구 구조가 급격히 변 SUNDAY MAGAZINE 29
HOUSE
서판교 월든힐스 2단지 내부. 미스 반데어 로에가 지은 판스워드 하우스. 사진 tinyfroglet 필립 존슨의 글라스하우스. 사진 Eirik Johnson
하고 가구당 평균 인구 수가 2인으로 떨어지
자유롭게 소통하는 공간이었다. 프라이버시
종종 외면당해 왔다. 에펠과 미스도 여러 수
는 상황에서 주택은 미래 라이프스타일을
를 우선하는 사적 공간(private space)과
모를 겪었다. 서판교 월든힐스 2단지도 예외
염두에 두고 지어져야 한다. 이제부터는 주
열려 있는 공적 공간(public space) 사이의
는 아니다. 미국발 경기 하락에도 순조로운
택과 주택 사이의 관계 즉 공동체 문제에 주
매개공간, 즉 사회적 공간(social space)이
분양을 마친 1, 3단지와 달리 2단지는 지난
목해야 한다.”
었던 것이다. 이 사회적 공간이 넉넉해질 때
해 입주 때까지도 50% 미만에 머물렀다. 구
인간들의 관계가 풍요로워진다는 내용이 건
조조정 중인 LH공사로서는 애물단지였다.
축학 개론에 나온다.
현재까지도 몇 가구가 미분양이란다.
서판교 월든힐스 2단지는 바로 핵가족만 의 자율성과 완결성에 그쳐 밀실에 가까워 진 현대의 주거문화를 경계하면서 새로운
노 건축가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이 사랑
그런데 입주 후 사계절을 지낸 지난봄부
관계의 복원을 주장하는 그의 의도가 고스
방은 거주자들이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꾸
터 조금씩 변화가 감지됐다. 각양각색으로
란히 담겨 있다.
밀 수 있게 비워놓았다. 텅 빈 캔버스라 생각
인테리어가 된 이 사랑방 공간을 중심으로
해 주길 바란다. 취미를 위한 방이거나 작업
이웃끼리 저녁을 함께하거나 다양한 모임을
21세기 버전 이웃사촌 만들기 실험
실로 쓸 수 있다. 응접실로 꾸며 손님을 맞는
여는 액티비티가 하나 둘 생기고 있다고 한
10여 가구씩 나누어진 9개의 동네는 각기
공간이 될 수도 있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
다. 낯선 사람이 이웃 사촌이 되는, 새로운 공
공동 데크 형식의 마당이 있고 이 공간으로
간으로 만들 수도 있다. 가족만이 아닌 이웃
동체 실험이 시작된 셈이다. 결과는 과연 어
부터 각 집의 현관이 연결된다. 현관이 있는
을 의식하며 사용하는 장소가 되면, 거주자
떻게 나올 것인가.
이 유리집을 건축가는 ‘사랑방’이라 불렀다.
의 개성과 활기와 온정이 담기게 된다. 프라
자료 제공 야마모토 니켄(山本理顯)
일본에도 있다는 이 사랑방 형식은 개념상
이버시와 커뮤니티, 이 둘이 공존하는 새 시
우리나라 전통 주거형식과 유사하다. 전통
대의 주택이 될 것이다.”
가옥에서 사랑채, 또는 사랑방은 외부인과 30 SUNDAY MAGAZINE
역사적으로 예술가들은 당대의 평가에서
최명철씨는 집과 도시를 연구하는 ‘단우 어반랩(Urban Lab)’을 운영 중이며,‘주거환경특론’을 가르치고 있다. 발산지구 MP, 은평 뉴타운 등 도시설계 작업을 했다.
COLUMN
이해하기 힘든 룰 패자 아닌 승자가 하차 황당 서바이벌 쇼 컬처 #: ‘나가수 2’ 유감
국카스텐의 ‘The saddest thing’은 절묘했
지속됐던 가수의 행복감도, 팬의 행복감
고, 서문탁의 ‘Black Dog’는 반가웠다. 패기
도 일시 중지되고 만다. 서바이벌 쇼의 기
와 감성, 기교를 다 갖춘 이 실력파 젊은 밴드
본이 승자와 시청자가 오랜 기간 함께 느
의 스타 탄생을 지켜보는 일은 흥미롭고, 지
끼는 ‘증진하는 행복감’이라는 것을 완전히
상파 주말 예능프로에서 레드 제플린을 듣
포기하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빈약한 스토리 텔링이다. 요즘의
는 일은 감격스럽다. 이번 주 김건모와 한영 애가 들고 나올 노래는 무엇일까-. 확실히 이런 기대는 ‘나는 가수다(이하 나 가수)’가 아니면 갖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점
이달의 가수가 되어 ‘나가수’를 떠난 박완규(5월)와 JK김동욱(6월).
나가수는 선곡도 제각각, 분위기도 제각각
낳지만 그게 용납되는 것은 시청자들과 프 이어서 공연 장면만 따로 보면 더 이상 볼 것 로그램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 때
이 없을 정도다. 그렇다고 감동의 스토리 같
점 매니어 프로 수준으로 기울어가는 ‘안습’ 문이다. 바로 ‘최후의 승자’를 낳기 위함이다. 은 것에만 기대 임재범 같은 굴곡진 인생 스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가 선전해 줬으
최선을 다해 경쟁자를 물리친 최후의 승자
토리를 가진 가수들만 나오기를 기다릴 수도
면 하는 바람이 있다.
는 희열을 느끼고 그 과정에서 승자를 응원
없다.
한 달여의 휴지기를 거친 뒤 시즌 2로 등장 한 뒤에도 ‘나가수’는 계속해서 룰을 바꾸고 있다. 생방송에서 녹화방송으로, 시청자 문
하며 함께 달려온 팬들은 폭발적인 행복함 을 느낀다. 그런데 나가수는 시즌 1이나 2나 할 것 없
진지한 음악프로임에도 불구하고 ‘예능프 로’임을 강조하며 개그맨의 뜬금없는 멘트로 썰렁한 분위기를 만든다거나, “떨려요”만을
자 투표에서 모니터 투표로. 가수들을 대기
이 지나치게 ‘꼴찌’에만 시선이 집중돼 있다. 강조하는 무대 뒷모습은 음악 프로와도 어울
실에 따로따로 모았다 한자리에 앉혔다가. 어
시즌 1에서 1위는 말로만의 영예일 뿐 아무런
리지 않는다.
차피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룰이란 없으
혜택이 없었다. 외려 꼴찌를 일곱 번 안 한 사
노래 외의 이야깃거리를 바란다고 억지 웃
니 ‘잘할 때까지 계속 해보라’는 심정으로 느
람에게 명예졸업을 안겨주는 것이 가장 큰
음이나 감동을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 음악
긋하게 보고 있다. 결국은 좋은 가수의 좋은
영예였다. 시즌 2에서는 심지어 꼴찌를 가리
프로인 만큼 음악 선곡의 주제를 통해 자연스
노래를 듣게 해주는 것이 이 프로의 성사를
기 위해 예선 본선을 치른다. 이렇게 되면 꼴
럽게 가수의 인생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도 있
찌를 하는 사람에겐 지나친 부담을 줄 수밖
고, 준비나 편곡 과정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에 없고, 보는 사람들도 민망하기 그지없다.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를 것이므로. 그렇지만 애정을 가진 팬에게는 불만이 없 을 수가 없다. 나의 불만은 크게 두 가지다. 먼
서바이벌 쇼에서 꼴찌란 이 쇼에서 가장
예를 들어 ‘첫 가수 오디션 무대에서 불렀
저 아무리 외국의 서바이벌 쇼를 토착화시킨
못하는 사람을 가려서 쫓아보내야 한다는
던 노래’라거나 ‘사랑하는 연인에게 불러줄
포맷이라고는 하지만 왜 ‘서바이벌 쇼’의 가
의미보다 ‘승자’를 위해 결국 나머지 사람들
자장가’ ‘친구에게 띄우는 가을 편지’ 아니
장 핵심, 즉 ‘승자를 위한 쇼’가 아니냐는 것
은 언젠가는 떠나야 하기 때문에 안타깝지
면 훨씬 더 추상적인 주제에 따라 가수들로
이다. 서바이벌 쇼는 연속된 승부를 거쳐 탈
만 내보내는 마음이어야 한다. 그러니 꼴찌를
하여금 ‘선곡의 예술’을 펼쳐보일 수 있도록
락자를 걸러내 마지막 승자를 가려내는 쇼다. 만들어내는 구조는 훨씬 더 가볍고 간단해
한다면 어떨까. 이야기도 이끌어낼 수 있고,
이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승자가 탄생해 가
필요에 따라 차분하거나 열광적인 일관성 있
는 과정에 동참하게 함으로써 최후의 승자가 얻는 행복에 공감하게 만드는 구조다. 그 과정에서 탈락자가 나오고 아쉬움을
야 한다. 더구나 시즌 2에서는 예선을 거쳐 매월 최
는 분위기를 통해서라면 한 편의 뮤지컬 같
고 가수가 경연을 떠나도록 하는 이해하기 힘
은 쇼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든 룰을 내놓았다. 2주 만에 1등을 하는 순간
글 이윤정 대중문화평론가, 사진 SUNDAY MAGAZINE 31
SOULSEARCHING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Love does not consist in gazing at each other but in looking outward together in the same direction.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감사하라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16>『인간의 대지』와 생텍쥐페리
누구에게나 첫 비행이 있다. 기나긴 준비과정
행시간 신기록을 세우려다 리비아 사막에 추
이야기로『인간의 대지』를 마무리한다. 사
을 거쳐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새로운 길
락한다. 그는 물 없이는 19시간밖에 살 수 없
령부에서 하달한 부조리하고도 무모한 공격
을 향해 출발하는 것이다. 아직 준비가 덜 됐
다는 곳에서 갈증에 시달리며 5일간이나 걷
명령에 따라 잠도 깨지 않은 상태에서 사지를
다는 생각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마저 느껴질
고 또 걷는다. 신기루에 수없이 속다 더 이상
향해 나서는 중사, 그는 출발하면서 빙그레
때 선배가 해주는 한마디는 큰 힘이 된다.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끝내는 절망이 무엇인
웃는다. 이 순간 사람들은 더는 말이 필요 없
“폭풍우나 안개, 눈 때문에 힘들 때도 있을
지조차 모르는 지경에 이른다. “사막, 그것은
는 일체감을 느낀다.
거야. 그런 때는 자네보다 먼저 그런 일을 겪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Antoine de Saintry, 1900~1944)
바로 나다. 나는 이제 침을 만들 수 없다. 태양
“우리 외부에 있는 공동의 목적에 의해 형
사람들을 떠올려 봐. 그리고 이렇게 생각해. 때문에 내 안에서 눈물의 샘이 바싹 말라버
제들과 이어질 때, 오직 그때만 우리는 숨을
『어린 왕자』를 비롯해 자
렸다. 희망의 숨결이 바다 위의 돌풍처럼 내
쉴 수 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사
신의 조종사 경험이 녹아
위를 스쳐 지나갔다.”
랑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있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정찰
‘남들이 해낸 일은 나도 꼭 할 수 있다’고.” 생텍쥐페리가 조종사로서 처음 비행에 나 서기 전날 밤 기요메는 미소를 한번 지어 보
이 순간 그는 한겨울 안데스산맥을 횡단하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임을. 동료란
였다. 거기에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가치
다가 일주일이나 실종됐던 기요메를 기억한
도달해야 할 같은 정상을 향해 한 줄에 묶여
가 담겨 있었다.
다. 그는 우편 행낭을 뒤집어쓴 채 48시간을
있을 때만 동료다.”
“한 직업의 위대함이란 어쩌면 사람들을 이
기다리다가 눈보라 속을 닷새 낮과 나흘 밤
생텍쥐페리는 프랑스에서 폴란드로 돌아
어주는 데 있을지 모른다. 진정한 의미의 부
동안 걸었다.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면
가는 노동자 수백 명이 탄 열차 3등칸에서 비
(富)란 하나뿐이고, 그것은 바로 인간관계라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아내는
참함과 더러움으로 진흙덩어리가 돼버린 인
는 부니까. 우리는 오직 물질적인 부를 위해
생각하겠지. 만약 내가 살아 있다면 걸을 거
간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잠
일함으로써 스스로 감옥을 짓는다. 우리는
라고. 동료들도 내가 걸을 거라고 믿을 거야. 을 자고 있는 황금사과 같은 어린아이를 발견
타버린 재나 다름없는 돈으로 우리 자신을 고
그들은 모두 나를 믿고 있어. 그러니 걷지 않
한다. “여기에 음악가의 얼굴이 있구나. 여기
독하게 가둔다. 삶의 가치가 깃든 것이라고는
는다면 내가 나쁜 놈인 거야.”
에 어린 모차르트가 있구나. 여기에 생명의
그는 깨닫는다. 조난자는 자신이 아니라는
아름다운 약속이 있구나. 보호받고 사랑받고
친구와의 오래 묵은 추억, 함께 겪은 시련
사실을. 조난당한 이들은 바로 자신을 기다리
잘 교육받기만 한다면 그 아이가 무엇인들 되
을 통해 영원히 맺어진 동료와의 우정은 돈
는 사람들이고, 그는 조난자들을 향해 달려
지 못하겠는가!”
무엇 하나 살 수 없는 그 돈으로.”
으로 살 수 없는 법이다.『인간의 대지(Wind, 가야 한다고. “만약 내가 이 세상에 혼자였다 Sand and Stars)』는 바로 이 같은 돈으로
면 나는 그냥 뻗어버렸을 거야.”
그러면서 그는 죽어가는 모차르트를 괴로 워한다. 너무도 많은 사람이 비참함 속에서
살 수 없는 가치를 전해준다. 세 대의 비행기
인간의 위대함은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다
그저 잠든 채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오직 정
가 연속해 불시착했던 그날 밤, “우리는 사막
는 것을 느끼는 데 있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신만이 진흙에 숨결을 불어넣어 인간을 창조
한가운데서 추억을 이야기하고 농담을 나누
가족과 동료들에 대한 책임. 그리하여 마침
할 수 있다.”
고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한없이 가난했다. 내 가족과 동료들의 품으로 돌아왔을 때 그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고립된 개
힘들었던 기억이 펼쳐주는 마술 같은 맛을
인은 존재하지 않고, 우리 모두는 같은 나무
바람, 모래, 그리고 별. 그럼에도 어두침침한
비행에 나섰다가 지중해 상에서 실종됐다.
그 식탁보 위에서 추억말고는 세상에서 아무
만끽하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자유 안에
에 난 가지들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공동체를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
것도 가진 것 없는 예닐곱 명의 사내가 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무를 받아들이는 데 있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서로서로에게 감사해
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
보이지 않는 보물을 서로 나누고 있었다.”
다. 진리는 이처럼 역설적이다.
야 한다. 인간은 자신을 인간으로 알아주는
생텍쥐페리는 1935년 파리~사이공 간 비 32 SUNDAY MAGAZINE
생텍쥐페리는 마드리드 전선에서 겪었던
상대 앞에서만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으니까.
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 다.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CARTOON
김재훈의 문화 캐리커처
포스터 전성기의 내 이름은 조르주 푀르. 포스터 화가들의 황금시대였던 1890년대에 파리에서 활약했어. 그땐 참 좋은 시절이었지.
포스터의 새 장
아르누보 화가들 베거스터프 형제
베거스터프 형제는 새로운 포스터 양식을 만든 우리의 예명이자 상호였어.
난 미국의 윌 브래들리. 당시 가장 독창적이었던 오브리 비어즐리 그림 스타일을 대놓고 따라 그렸지. 그래서 사람들이 날 미국의 B라고 불렀어.
한 가지 유행에 모두가 열광하는 시대는 우리 같은 영리한 자들이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지.
19세기 후반 쥘 셰레와 로트렉을 거쳐
장식적인 아르누보가 대세였던 때에
무하, 비어즐리 같은 아르누보의
단순하면서도 파격적인 스타일의
귀재들에 의해 꽃을 피운 포스터의 대유행은
새로운 그림이 등장했는데, 종이를 오려서 찍는 방식의
예술문화의 중심지가 된 파리의 거리를
그 포스터를 제작한 작가의 이름은 베거스터프 형제였다.
형형색색으로 수놓았다.
파리에서 공부한 영국의 제임스 프라이드와
당시는 그야말로 포스터의 황금기였기에
윌리엄 니컬슨은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닌
유럽과 미국의 곳곳에서 실력 있는 화가들이
포스터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함께 나눈 동료였고
수없이 배출됐고 대중들은 그런 빼어난
그들의 실험에 의해 포스터는
그림들을 거리에서 보고 즐겼다.
또 하나의 진로를 얻게 되었다.
갤러리가 아닌 거리에서 자신들의 작품을 맘껏 선보일 수 있었던 시절에 화가들은 정말 신나지 않았을까요?
베거스터프 형제들에 의해 포스터 양식이 산업화 시대에 걸맞게 업그레이드된 것이겠지? 그림은 점점 단순해지고 포스터와 화가들의 사이도 차츰 멀어졌겠지?
김재훈씨는 홍익대에서 디자인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영상디자인과 문화사회학을 공부했다. 인문과 문화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정보 만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SUNDAY MAGAZINE 33
CONTE
말보다 글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는 했다. 제법 웃기는 이야기였고 끝에는 반전
할 것이다. 또 ‘토탈 리콜’과 ‘이레이저’의 영
도 있었다. 대략 이런 이야기다. 비디오 대여점
화 내용도 미리 소개해 두면 ‘헤드 클리너’를
이 지금의 치킨집보다 많을 때였다. 친구는 아
영화 제목으로 오해한 데 대한 개연성을 더
널드 슈워제네거가 나오는 영화를 좋아했다. 높일 것 같았다. 문제는 내가 직접 겪은 게 아
34 SUNDAY MAGAZINE
니고 오래 전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라
탈 리콜’ ‘이레이저’ 같은 영화들 속에 본 적
는 데 있다. 검색해 봤더니 역시 비슷한 내용
이 없는 제목의 비디오를 발견하고 빌려달라
의 이야기가 해외 유머로 나와 있고, 국내 버
고 했다. 그때는 그렇게 친구나 이웃이 빌려온
전으로도 이미 나와 있었다. 디테일은 달랐지
비디오를 돌려보기도 했다. 냉장고에서 캔맥
만 결국 ‘헤드 클리너’를 영화인 줄 알고 빌려
주를 꺼내 마시면서 테이프를 넣었는데 화면
와 봤다는 이야기였다. 한 발, 아니 여러 발 늦
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전파
은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당시에 먼저
가 잡히지 않는 TV 화면처럼 보였다. 나는 친
썼어야 하는데 말이다.
작가 제임스 엘로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
구에게 테이프를 돌려주면서 말한다. “테이
소. 내게 그런 걸 좀 가져다 주시오. 어떤 이야
프에 문제가 있나 봐. 아무것도 안 나오더라.”
제임스 미치너가 쓴 『소설』이라는 소설 에서 데블런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기라도 좋소. 어디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좋소.
친구는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이런 철칙을 명심하십시오. ‘말하지 마라. 대
그저 피만 흥건하고, 특히 나를 1960년대로
나를 본다. “너네 집 비디오 헤드에 문제가 있
신 글로 발표하라’. 가령 예를 들어, 여태까지
데려가 주는 이야기이기만 하면 되오.” 베르
었던 거 아냐?” 친구는 나를 의심하는 것이
아일랜드인은 선술집 같은 곳에서 경이로운
나르 앙리 레비가 쓴『아메리칸 버티고』에
다. 옆에 있던 친구의 아내도 나를 보며 눈을
눈으로 바라보는 친구들에게 천만 가지도 더
나오는 대목이다. 마감은 코앞인데 아직 소
흘기는 것 같다. 우리 집 비디오기기가 오래
되는 훌륭한 이야기를 늘어놓았을 겁니다.
재조차 정하지 못한 나는 제임스 엘로이의
된 것이긴 했다. 나는 울컥한다. “야, 우리 집
그러나 그중에서 문학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심정으로 중얼거린다. “그렇소. 내게 그런 걸
비디오 멀쩡해. 다른 테이프는 잘만 나온다
글로 씌어진 오천 편 정도뿐입니다. 글로 써
좀 가져다 주시오. 어떤 이야기라도 좋소. 어
니까.” 친구와 친구의 아내는 동시에 어처구
서 남기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디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좋소. 그저 웃음만
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런데
흥건하고, 특히 마지막에 반전이 있는 이야기
왜 그걸 빌려갔어? 헤드 클리너를.”
이기만 하면 되오.”
들숨날숨
나는 친구 집에 갔다가 친구가 빌려놓은 ‘토
그러니까 입을 다물고 글을 써야 한다. 그 것도 남들이 쓰기 전에 먼저.
그런 이야기다. 거기에 연체료나 야한 영화
물론 그런 이야기만 있다고 다 되는 것은
빌리기 등 비디오 대여점에 관한 추억 몇 가지
아니다. 이번에도 쓰려고 했던 소재가 있기
를 슬쩍 집어넣으면 그 시절의 향수를 자극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 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아내를 탐하다』 『슈 슈』를 썼다.
“아이가 힘들어할 땐 무조건 품에 안아주면 돼” ▶“화가 날 때 그 화가 몸의 신경과 혈액순환
▶“아이가 힘들어 할 때 엄마는 아이를 무조
▶“알렉산더 대왕이 술통 속에 있는 디오게
에 미치는 악영향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건 품에 안아주면 돼. 아이는 엄마 품에서 실
네스를 찾아와 무엇을 해주면 좋겠냐고 물
심각하다. 욕설이 되어 나오기 전에 마음에
컷 울고 나면 충분히 위로를 받아. ‘엄마는 언
었을 때 디오게네스가 햇빛이나 가리지 말
서 화를 삭이는 것이 훨씬 건강에 이롭다. 사
제나 네 편이야’라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주면
아달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견
람은 화를 잘못 내고 죽을 수도 있는 법이다.
되는 거야. 무슨 정답을 찾으려고 할 필요가
유주의적 삶은 자유롭고 솔직하다. 문명사회
더 나아가 화가 잔뜩 묻은 독설은 상대방을
없어. 울고 난 후 아이는 스스로 답을 알게 돼.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가식적으로 행동해
죽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예수는 화를 내어 욕
자기가 뭘 잘못했을 때도 아이들은 스스로
야 하지만 견유주의적 삶을 사는 사람에게
설을 퍼붓는 행위를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과
다 알아. 아이들은 선과 악을 본능적으로 파
가장 즐거운 일은 자유롭게 연설하는 것이
연결시키기까지 하였다.”
악할 수 있어.”
다. 그들은 예의를 차릴 필요도 없었다.”
-조성기의 책『미움극복』중에서
-양순자의 책『어른공부』중에서
-줄스 에번스의 책『철학을 권하다』중에서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안나푸르나의 여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다녀왔습니다. 지난겨울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에 다녀온 뒤로 이어지는 인연입니다. 히말라야 14좌, 8000m 이상 봉우리 14개의 베이스 캠프를 모두 다녀올 생각입니다. 시간이 꽤나 걸릴 길입니다. 체력이 안 되면 정신력으로라도 버텨서 걷고 또 걸어야 합니다. 산에는 살고 있지만 그동안 힘든 산행을 다니지 않았고, 나잇살이 중력에 의해 처진 볼품없는 중늙은이가, 게다가 무슨 ‘산악회’에 한 번도 가입한 적 없는 게으른 아저씨가 마음을 냈습니다. ‘예순!, 환갑’ 되기 전에 ‘꿈을 향한 열정’으로 있는 힘, 없는 힘 모아 마음을 다하렵니다. 그 첫발이 안나푸르나였습니다.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산속의 낙원 ‘샹그릴라’는 저 멀리 구름 너머 어디쯤 있을 겁니다. 구름 일어나는 먼 산도 지금 디디고 있는 걸음 안에 있습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 깊은 물’ ‘월간중앙’ 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중정다원’을 운영하며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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