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선교사 20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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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선교사 <나일강이여> 창조인류의 발생지로 물을 나누어주신 오아시스 생명의 나일강 애굽의 수많은 군인과 병거보다 홍해를 가르신 여호와를 찬양한 나일강 갈대를 삶아 성경을 기록했던 papyrus 를 창조한 복음의 나일강 아기예수의 구원의 축복을 받았던 나일강 강렬한 태양을 가릴 수 없는 광대한 사막을 수도원 푸른 초장으로 변화시킨 나일강 거대한 오빌리스크와 람세스동상의 돌을 홍수 때 운반한 지혜의 나일강 점령군에 의해 발견하게 하시고 역사를 드러낸 로제타의 돌을 간직한 소망의 나일강 이방인의 돌에 의하여 순교한 마가의 피로인하여 거룩한 교회가 세워진 알렉산드리아를 품에 안고 있는 사랑의 나일강 나일강이요 나일강이요 나일강이요 이제 때가 이르렀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여호와의 영광이 네게 임하셨다. 글_ 이태성 이집트 선교사(gmtslee@hanmail.net) 일러스트_김은영(lewis12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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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는 누구든지 해야하고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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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를 사랑하는

서목사 부부

해산의 고통 편집자주 : 성기호 목사님과 서좌원 목사님의 선교사를 향한 사랑의 이야기를 격월로 연재합니다.

톨스토이 작품 중에「재난의 원인」이라는 이야기 하나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사 이좋게 지내던 이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쪽 닭이 담장을 넘어 저쪽 집에 들어가 알을 낳는 소리가“꼬꼬댁 꼬꼬!”하고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닭은 담장을 넘어왔습니다. 이집 아이가 저 쪽 집 아이한테 우리 닭이 너희 집에 가서 알을 낳았 으니 알을 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저쪽 집 아이는 달걀이 없다고 우겼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 니하셨느니라” (요8:29)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 의롭고 복된 마음으 로 채우고 다시 오실 주님을 온전히 맞이할 준비를 다하는 삶을 살아드립시다. 겨울을 돌아보고 봄을 내다보며 주님 기뻐하심을 따라 아름답게 시작 하시 기를 기도드립니다. KO MI

결국 두 집 아이가 싸우게 되었고 그 싸움에 양쪽 집 어머니가 개입되었고, 나중에는 양쪽 집 아버지까지 개입되어 싸우게 되었습니다. 결국 서로를 고소하기 에 이르렀고 법정에 까지 서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피고가 된 사람이 법원에서 태형을 맞게 되 자 화가 나서 상대방 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삽시간 에 온 집이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바 람이 휙 불더니 옆집에도 불이 옮겨 붙었습니다. 결 국 양쪽 집 모두 불에 타 버렸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까? 달걀 하나 때문일 까요? 아닙니다. 닭도, 달걀도 아닙니다. 사람 속에 있는 죄의 본성인 욕심, 교만,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이런 악한 마음이 가득 채워져 있으면 좋은 말이 나 올 수 없습니다. 양보하는 모습이나, 겸손한 태도를 보일 수 없습니다. 결코 아름다운 결과를 기대할 수 없고,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일2:16) 예수님 이 땅에 오심을 새롭게 맞이하기 위해 세상 으로부터 오는 거짓된 우리의 마음을 비웁시다. 이 는 나를 위한 일이 아닌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 부르 셨고, 세우셨고, 파송하셨고, 사역케 하셨기 때문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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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서좌원 목사 보라매 교회 담임 목사 crosslovego@gmail.com


캄보디아에서 보내드리는

가족

한국에서 의사선생님들이 왔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의사선생님 만나려고 아침부터 번호표를 받아 기다립 니다. 엄마, 아들, 아기 모두 긴장하며 지루해하며 기 다립니다. 얼굴과 손이 하얀 의사선생님을 잠시 만난 뒤 약 봉투를 들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연고하나 안약, 파스를 받은 분들은 더 기분이 좋으시지요. 의사선생님들은 떠나고 우리 가족은 때론 건강이 좋아 지기도 하고, 또 우리 가족은 여전히 아프고 몸이 가렵 고 기침을 합니다.

우리 가족이 사는 곳은 늘 이곳입니다. 잠시 다녀가는 손님을 보는 설렘과 기쁨, 기대도 멋지지만 우리 가족 이 사는 이곳이 늘 설레고 기쁘고 기대되는 곳이면 좋 겠지만 우린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이곳에서 늘 그렇게 살아 온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가끔 동네 아이들이 한국 손님 언제 오냐고 묻습니다. ‘안 와, 한국사람 여기 나 있잖아’라고 대답합니다. 한국 손님이 아닌, 이곳에 살고 있는 현지 사역자에게 서 하나님의 사랑을 찾길 바라며.. KO MI

글과 그림_정정미 캄보디아 선교사 hawk8@hanmail.net

하나님의 은혜로 월간 한국인 선교사 발행이 20년이 넘어갑니다. 창간호부터 지금까지의 책 내용을 모두 스캔해서 ISSUU에 올려두었습니다. 자유롭게 가져가셨으면 합니다. (홈페이지: http://issuu.com/koreamission/docs, 아이디: koreamission, 패스워드: 22686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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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은혜의 발자취

두번째, ‘가정교회’의 기본 현황과 변화 편집자주: C국 박화목 선교사의 사역이야기를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중국의 교회를 알자 중국정부는 지난2월1일 새로운‘종교 사무조례’ 을전 면적으로 실시하므로 말미암아 중국교회는 더 강화된 통제와 제한적으로 예배모임과 활동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미 여러 곳에서 핍박과 예배당 폐쇄 및 파괴, 신도들 체포 등의 사건이 발생했으며, 계속적으 로 위협에 직면해 있습니다. 시진핑 시대의 종교정책 은 총서기로 취임 후 그의 행보를 보면 유추할 수 있습 니다. 덩샤오핑은“공허한 말은 나라를 망치고, 실질적 행동 이 나라를 흥하게 한다.(空談誤國,實幹與邦)” 고 말했 습니다. 즉 격식보다 실용과 소통을 보여주는 리더쉽 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보여 지며, 종교정책은 실용주 의 노선을 추구하되 철저한 법의 집행을 통해 진행되 고 있다고 생각 됩니다. 그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헌법공포 3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공산당은 반드시 헌법과 법률의 범 위 안에서 활동해야 한다.” 고 말했습니다. 당 간부의 임의적 판단이 헌법과 법률보다 중시되는 일을 경계하 면서 법치를 확고히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입니 다. 앞으로 중국정부는 종교도 법에 의해 치리 와 관리 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중국교회 역시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하여 다방면 으로 재도약을 위해 기도와 주님의 인도하심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사역하고 있는 중국교회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보통 중국교회를 얘기할 때 정부 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가정(지하)교회와 정부에 등록 되어 있는 즉 삼자회(三自會)에 소속되어 있는 교회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먼저 가정(家庭)교회에 대하여 간 단히 나누겠습니다. 가정교회는 약 십여 년 전부터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왔으며,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였고 특별히‘신학교 육 강화와 교회구조와 목양시스템’ 에 변화를 주어 전 통가정교회의 구조를 유보함과 동시에 성직제도를 실 현하여 책임 있는 목양과 앞으로 세계선교에 동참하기 위하여 출항(出港)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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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교회들은 중국교회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차세 대에 큰 역할을 기대하고 더 나아가서 세계 선교에 큰 역량을 발휘할 것 이라고 예측하곤 합니다. 단 빠른 시 일 내에 실현 하기란 여러 가지 한계가 있지만, 폭풍이 몰려오듯이 변화무상한 중국교회를 주님만이 아시고 인도하시며, 그의 인자는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라 고 믿습니다(사54장10절) 가정교회의 기본 현황과 변화 중국에 기독교인이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에 미국의 국제기독교연구센터(The Center for the Study of Global Christianity) 에서는 기독교 신자가 1억 명에 도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영국BBC 2008년3월12일 보도에 의하면 중국기독교인이 7000만이라고 했습니 다. 그러나 가정교회와 삼자교회의 비율이 얼마큼 되 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가정교회 가운데 안휘성 중부지역이나 하남성 지역 단 체는 숫자를 과장되게 발표하며, 삼자교회는 숫자를 적게 발표합니다. 왜냐하면 가정교회는 외부세계에 주 목을 받기 위함이며, 삼자교회는 정부에 실제적인 숫 자를 보고하여 빠른 성장을 한다는 인상을 주게 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조사 발표를 보면 2008년 12월 11일 북경대 학에서 위지엔롱 교수는‘가정교회 과민반응’이라 는 강연 중 삼자교회의 숫자는 어림잡아 1800만에서 3000만 명이고, 가정교회는 4500만에서 6000만 명이 라고 발표했습니다. 저는 대략 가정교회는 7000만 명 이고 삼자는 3000만 명 정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가정교회의 빠른 성장 원인은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정책상 문제도 한몫을 했습니다. 더 중요 한 것은‘큰 핍박’ 이 성장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을 했 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온주 지역에서 기독교가 폭 발적인 성장을 할 때 엄청난 핍박이 그 역할을 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을 했습니다. 그 다음 가정교회가 열 정적인 전도활동을 통해서 성장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정교회는 몇 십 년의 걸친 핍박에 강하게 생존해 왔 습니다. 아울러 복음전파의 열심이 수적 증가를 가져 왔으며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수천수만의 교회


가 세워졌습니다. 또한 지식계와 문화 예술계의 성도 들이 각각의 단체(團契)를 조직하여 역동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내에 적잖은 충격과 단일화에서 다원화 현상이 전개되 어 오고 있습니다. 5. 도움을 받는 자에서 주는 자로 가정교회는 연해지역의 경제발전으로 성도들의 헌신 과 헌금을 통해 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2008 년 5월 사천지진이 일어났을 때 온주 교회를 위시하여 전국의 도시가정교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함과 동시 에 사회에 대한 책임과 참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지 하에서 지상으로 나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안국에서 폐쇄명령 후 문을 봉한 도시가정교회 이러한 사회적으로 거대한 변화 앞에 교회도 말 할 수 없는 큰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특별히 가정교회는 7가지의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1. 농촌에서 도시로 이 현상은 확연하게 드러난 새로운 변화입니다. 많은 도시가정교회는 고학력의 젊은이들이 많고, 집회방식 도 활발합니다. 또한 교회도 신속하게 성장하여 왔습 니다. 이런 현상은 통제가 느슨한 삼자에 속한 교회에 도 일어나고 있었던 현상이었습니다. 2. 연해에서 내륙으로 전통적으로 연해지역의 교회들은 공산화 이전 서방선 교사들의 영향으로 비교적 발전되었습니다. 그러나 현 재는 많은 내륙지역과 더 나아가 변방과 소수민족 지 역에도 복음이 전파되어 교회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3. 기층에서 다층으로 오늘날 복음이 평민에게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계층에 전파되었습니다. 대학생, 교수, 엘리트 계층까지도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특히 지 식인들이 도시교회를 이끌면서 신속한 성장과 동시에 여러 지역에 도시교회를 세웠으며, 아울러 해외에서 돌아온 유학파들도 가세하면서 변화에 동참하고 있습 니다. 4. 단일화에서 다원화로 이전에는 교파개념이 없었고, 신학사상에서도 보수적 인 신앙을 유지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해 외의 여러 교파와 각종 신학사상이 들어오므로 교회

6. 국내에서 해외로 여러 지역의 가정교회들이 국경을 넘어 주변국가에 선 교사를 파송 하고 있습니다. 제가중국에 세운단체도 ‘선교중국’ 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비록 소수이긴 하 지만“복음이 중국으로 들어왔으니, 복음을 밖으로 내 보내자! “ 라고 외치고, 점점 더 많은 성도들이 선교를 비전과 사명이라 여기고 순교까지 하면서 참여하고 있 습니다. 7. 폐쇄에서 협력으로 지난 역사를 되돌아 볼 때, 환경과 정치적 원인으로 가 정교회 간에 왕래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도시에서 일어난 신흥교회를 중심으로 지역 및 전국적 인 기도회 네트워크와 집회, 선교사역, 사역자 및 신 학훈련 등의 연합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국 가정교회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올 때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감옥과 순교 를 당해왔습니다. 예전에 어느 가정교회 리더를 만났 을 때 저한테 한 얘기가 지금도 귀에 생생합니다. 사도 행전 4장 19절 말씀을 인용하면서“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라고 하면서 정부의 핍박을 견뎌왔다고 했습니다. KO MI

글_박화목 C국 선교사 baishicin@gmail.com

세계 선교의 현장에서 힘쓰시는 선 교사님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의 말 씀과 분별력에 대한 강한 메시지가 담긴 <시대를 아는 힘>을 소개해 드 립니다. 선교현장에서, 자녀들의 교 육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힘 을 얻기위해 활용하셨으면 합니다. 이 책의 판매 수입금은 탈북자들을 위한 선교에 쓰입니다. 문의: 통일소망선교회 이빌립 선교사 (02-2625-0497) 가격: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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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따라

은혜의 발자취

첫째, ‘선교지’로 출발 하면서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편집자주: 캄보디아 천준상 선교사의 사역이야기를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2005년 5월 9일 저녁 어머님을 고신의료원 중환자실에 서 일반병동으로 옮겨드리고 5월 10일 캄보디아행 비 행기를 탔습니다. 어머님은 감기를 3주일 앓으셨는데 진영 세영병원에서 정신이 혼미한 상태가 되어져서 고 신의료원 응급실로 옮겼습니다. 의식을 잃은 어머님에 게 인공호흡기를 착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라고 의사선생 님이 물어오셨습니다.“인공호흡기를 착용하면 중환자 실로 들어가서 최소 21일은 나올 수 없습니다. 만약 착 용하지 않으시면 치료를 포기하는 것이고 곧 운명하시 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아우는 남아공선교사로 2번째 안식년으로 다행히 도 한국에 있었고 누님은 태국 컨켄에 강의하러 가셨을 때입니다. 저는 이미 비행기 티켓을 끊어 놓았는데 10 일쯤 남겨진 상황이었습니다. 아우와 의논해서 어머님 치료받기로 결정하고 인공호흡기를 차시고 중환자실로 들어가셨습니다. 어머님은 제가 5살 때 공주 폐결핵요양소에서 폐결핵 3 기로 오른쪽 폐를 도려내셨습니다. 어머님은 그때 무의 식 상태에서 계단을 오르고 계셨는데 계단 끝에 서서 저 멀리 바라보니 찬란한 성이 보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데 저희 3남매가 생각나시고 그 계단을 걸어서 내려오 셨는데 눈을 떠보니 회복실이었고, 제가 어머님 주려고 카네이션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님은 평생 그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공주 요양소를 나오신지 37년이 지나셨기에 어 머님이 중환자실로 옮겨 가실 때 친척들과 모든 성도님 들은 그만큼 사신 것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아우가 묵고 있는 남천동에 남천타워맨션 선교관으로 가서 아우의 가정과 저의 가정이 함께 눈물 뿌려 어머님 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밤 11시 저는 다시 아파트 놀이터에서 하나님께 다시 간청의 기도를 올리 기 시작하였습니다.“하나님 아버지 히스기야왕의 기도 를 올립니다. 어머님의 생명을 15년 더 연장해주세요. 저는 이제 선교 나가는데 어머님의 기도가 꼭 필요합니 다.”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기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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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이 중환자신로 옮겨지신지 3일째 되는 날 어머 님의 의식이 회복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중환자 실에 면회를 갔습니다. 어머님은 볼펜을 쥐시고 A4용 지에 쓰시기 시작하셨습니다.“생명의 주인 되신 여호 와 하나님을 찬양한다. 생명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인데, 사람들은 포기한다. 포기치 않는 기도를 듣고 살려주셨다. 관속에 들어가는 마지막 맥박을 끄집어내 주셨다.” 어머님과 면담 후 일주일이 흘러 캄보디아로 가기전날 어머님을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 다. 그때 어머님께 다시 여쭈어 보았습니다.“어머님 그 때 상황이 어떠셨나요?”어머님은 말씀하셨습니다.“관 속으로 나의 마지막 맥박이 들어가고 있었는데 큰 손이 오더니 끄집어내 주셨다. 그때‘그래도 죽을 건데’라는 비아냥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곧이어 맥박 을 끄집어내시는 분의 음성이 들렸는데 나중에 와도 된 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간절히 간구하는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셨 습니다. 어머님이 기록하신 A4용지를 들고 캄보디아를 향하여 비행기를 탔습니다.“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 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만 따라가기를 원합니다. 오 직 하나님의 길로만 가기를 원합니다. 다른 길은 다 막 아 주세요.”저는 캄보디아를 사역지로 정하지 않았습 니다. 지금 사역하고 있는 바탐방(프놈펜에서 북서쪽 291km)을 또한 정하지 않았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 서는 하나님의 선교의 계획 속에 부르시고, 준비시키시 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2004년도 총회세계선교회(GMS) 선교훈련(GMTI)을 마 치고 아프리카 나미비아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아우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어서 거리는 멀지만 그래도 옆 나라에 있으면서 선교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 다. 정탐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 나미비아로 보내주겠다는 교회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1년이 지나 갔습니다. 그동안 갑상선암 수술도 하고 오직 하나님만 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면서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하루는 첫째 딸 소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아빠 기다 리기가 지겹습니다. 아무 때나 갑시다.”소희의 음성이 주님의 음성으로 들렸습니다.“선교지를 내려놓습니다. 지금부터 가장 빠르게 연결되는 교회서 가라는 곳으로


가겠습니다.”3일 뒤 안동에 동문교회에서 수요설교 부 탁이 들어왔습니다. 수요설교를 하고 4일 뒤 주일오후 에 당회에서 파송 선교사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았습니다.‘캄보디아’ 라고 담임 한진희 목사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캄보디아로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도착한 다음날 온 가족이 손을 붙들고 최대한 멀리 가보았습니다. 그리고 국수를 한 그릇 사먹고 돌아왔습 니다. 시간이 흐른 뒤 거리를 재어보니 150미터 정도였 습니다. 집집마다 철장으로 되어져 있고 열쇠를 몇 개나 채워 놓아서 도시가 거대한 유치장 같이 느껴졌습니다. 저녁 6시만 되면 거리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가로등 도 제대로 없어서 어둠이 지배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밤손님이 활동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12년이 지난 지 금은 그에 비하면 얼마나 도시가 밝아지고 늦게까지 상 점이 문을 여는지 모릅니다. 대부분의 기업은 오후 5시 가 넘으면 문을 닫고 식당과 서비스업은 12시까지 하는 문화가 되었습니다. 선교지에서 언어훈련은 너무나도 중요한 시간입니다. 프놈펜 대학교 IFL에서 1년 과정의 캄보디아 언어공부 를 하였습니다. 3개월이 한 텀이고, 1주일 방학 후 바로 다음 3개월이 시작되었습니다. 3단계에 위기가 왔습니 다. 호산나 청소년 축구대회 회계를 맡아서 일주일을 빼 먹게 되었습니다. 언어 훈련을 3개월 뒤로 미뤄야 하는 가?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번 가보자는 생각이 들 었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공부를 해놓은 부분까지만 진 도가 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따라가고자 하 였고, 매주 모이는 지부 기도회에서 첫 번째 기도제목을 “하나님 캄보디아 언어로 설교를 해야 하는데 성령하나 님 기도해 주세요.” 로 정하는 등 열심히 노력한 결과 1 년의 과정을 잘 마쳤습니다. 그런데 함께 공부하였던 선교사님의 부탁이 들어왔습니 다. 한달에 한번씩 주일 설교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한 글로 설교원고를 만들고 그것을 캄보디아어로 번역한 후, 개인교수를 받는 튜터 앞에서 읽으면서 발음을 교정 하였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주일날 설교를 하였습니다. 감사한 것은 그렇게 읽었는데 스텝 한명에게 친구 목사 님이 물어보니 90%를 이해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할렐 루야 계속 한 달에 한번 설교를 도와주었습니다. 도와 달라 할 때 도와주라고 주님 말씀하셨는데 결국 그것을 통하여 언어의 진보가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 함에 주님께서 언어로 기름 부어 주셨습니다. 언어는 도전입니다. 좀 부족하고 틀려도 열심히 말하고 훈련하고 사용하다 보면 언어가 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캄보디아에 도착한지 1년 2개월째 되 는 달에 바탐방 지역에 의료 선교팀 63명이 오는데 그 팀을 맡아 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맘 으로 바탐방 지역으로 5시간 30분 동안 차를 타고 올라 가서 도청관리들과 의논하고 5개 마을 행사장 예약과 나눔 쌀 준비 그리고 의료 통역 요원 확보 등 준비를 하 였습니다. 일주일간의 단기 미션을 마치고 단기팀원들이“선교 사님 오신지 얼마나 되셨나요?” “1년 2개월입니다” “네?” “너무 잘하시는 것 아니에요.” 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1년 2개월 된 선교사가 의료 선교팀 63명을 맡아 서 사역준비하고 진행하는 것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습 니다.“주님 도와주어야 해요. 저밖에 없다네요. 주님 하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며 진행하였는데 정말 주님 께서 하게 해주셨습니다. 단기 선교팀과 사역을 마치고 프놈펜으로 내려올 때 하나님의 일은 순종해서 진행하 면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 주신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 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대로“도와주세요.” 라고 부탁하며 순종하기로 맘먹었습니다. 프놈펜에서 2년의 언어 훈련을 갖게 되었는데 신참 때 부터 많은 부탁이 들어왔습니다. 도착 6개월에 호산나 축구선교회 회계를 맡게 되었고, 그 다음은 총무로 그리 고 지부에서 막내라서 레크리에이션 진행을 도맡아 하 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조금씩 무대가 커지기 시작했 습니다. 장로교공의회에서 체육대회 인도, 그 후 한인 선교사회 크리스마스행사 사회, 그리고 2년째 가을이 되는 달에는 추석맞이 재캄 교민 체육대회 인도를 맡게 되었습니다. 12명의 보조 선교사님들 스텝과 올림픽 스 타디움에서 진행을 하였는데 참으로 기적이 아닐 수 없 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하게 해주시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진리 의 주님께서 주신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여“도와주세 요.” 하면 도와주려 하고,“맡아주세요” 하면 맡아주려고 노력하였더니 모든 관계 속에서 아름답게 열매 맺게 되 어 결국 바탐방이라는 지역에까지 오도록 하나님의 인 도하심을 받게 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놀라운 것은 선교는 하나님의 계획 속 에서 진행되고 하나님께서 선교사를 뽑으시고 훈련시키 시고 배치시키시고 책임지시는 분임을 온전히 경험하였 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 해도 다 시 선교사가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명예롭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자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KO MI

글_천준상 캄보디아 선교사 ccc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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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

땅끝 이야기

둘, ‘작은 천국’ 편집자주: 탄자니아 윤봉석 선교사의 사역이야기를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주께서 24년간 아프리카에서 사역을 감당한 선교사 를 위해서 천국을 준비해 주신다면 꼭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사는 선교지에 5 선교사 가 정이 있는데 각자 사역의 영역을 갖고 사역을 하면서 한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매주 두세 번은 만나 배드민턴을 치고, 식사를 하고, 토요일은 예배를 드립니다. 저에게는 이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 니다. 그래서 말라리아 장티푸스로 힘들고 고통스러 웠을 때에도 참석해 웃고 떠들고 애찬을 나누는 가운 데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신실한 선배들은 본인들의 마지막 순 간들을 잘들 포착하시거나 예감하시고는 처음하시는 일이 바로 주변 관계를 정리를 합니다. 용서를 구하고 용납하고 포용합니다. 그리고 모든 이해의 관계가 아 주 잘 이뤄집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저 또한 이 부분 을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기 까지 흰 구름, 먹 구름, 둥근 구름, 네모난 구름들의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서로 양보 면서 뒤로 가기도 하고, 때로는 앞으로 가고, 옆으로 물러서고, 모두 한 결 같이 노력한 덕분에 지금은 서 로를 믿고 신뢰합니다. 십자가는 함께 지면 행복해지 고 길어지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천성에서 사랑과 섬김이 법이요, 규칙이라면 이 땅에서는 용서와 화해 그리고 내려놓음과 권리 포 기 등이 선전제가 되어야 할 거라고 봅니다. 왜냐하 면 관계의 문을 열기 위해서 입니다. 관계의 문을 열 기 위해서는 저희의 경험으로는 계약적 관계로는 절 대 관계를 풀 수가 없습니다. 언약의 관계, 은혜의 관 계로 성도와 교회의 공동체는 엮어야 합니다. 계약적 관계란 단순하게 계약이 맞지 않으면 모든 관 계가 끝이 납니다. 용납이 없습니다. 잘잘못을 따지고 고발하고 계산합니다. 손해 볼일은 하지 않습니다. 결 론적으로 용서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유한한 관계입니 다. 반면에 언약의 관계, 은혜의 관계는 무한합니다. 하나뿐인 생명도 공유합니다. 물질의 공유는 당연 합 니다. 당연히 형제의 관계에서 아주 유동적입니다. 형제가 조금 부족하고 잘못해도 기다리고 인내하고 용서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바라봅니다. 그리스도 의 은혜로 하나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렇게 언 약의 관계가 유한적인 이유는 이 땅에서 함께 바라보 며 가는 곳이 바로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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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선교사들과 함께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베드민턴장 앞서 말 한 것처럼 작년 오월에 부산에 모 병원에 악 성 림프종 암 2기로 판정을 받고 가벼운 마음으로 힘 은 들었지만 편한 마음, 쉰다는 생각으로 9번의 항암 을 받았지만 완치 되지 못했습니다. 다시 서울의 모대 학병원에서 혈액암전문의에게 부산에서 받았던 모든 진료 자료를 재진을 받은 결과 병명이 악성림프종 암 은 맞지만 1단계(2기)는 아니고 마지막 3단계(4기)로 변종이 되기 직전이거나 아니면 이미 변종이 되었을 것이라는 진단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항암 6번과 정밀 검사를 위해 척수검사 의 결과를 보고 6개월 아니면 3개월만이라도 잠시 사 역지 방문을 했으면 하는 마음을 이야기하자 담당의 는 답답한 듯“이 혈액암은 수술로는 안 되고 방사선 이나 항암으로 해야 하고 그리고 이 혈액 암의 특성 은 초기의 병세의 진척이 수년이 걸립니다. 만약에 환 자분은 3단계가 지나고 완전히 변종이 되었다면 아주 빠른 속도로 전이가 되기 때문에 몇 개월 안에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염려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은 이 분야의 좋은 약이 많이 개발되어 완치율이 아주


높으니 하루라도 빨리 항암을 하세요” 라고 이말해주 었니다. 그래서 그의 권면에 따라 1차 항암을 마치고 2차 항암과 척수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때 항암치료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크게 염 려가 되지 않지만 불안한 마음 보다는 주의 뜻에 따라 서 내 때가 다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인간 관계, 주 변 정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작년 부터 저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해보니 용서와 용납이 적용된 부분은 그리 많지 않은 반면에 부끄럽고 미안 한 것들로 인해 대부분은 사랑의 빚만 차고 넘치는 시 간들이 기억되었습니다. 그 동안 잘산 건지, 못 산건지 아니면 아직 남을 헤아 리는 마음이 부족한 것인지, 어쩌면 아직 시간적 여 유가 있어서인지 모르지만 저 개인적으 지난 여정을 돌이켜 보면 사랑의 빚으로 차고 넘침을 고백합니다. 20살부터 시작한 제자훈련, 그리고 40살부터 시작한 홀로서기로 시작한 선교사의 사역 등 참 많은 사랑의 빚 위에 쌓인 지금의 여정과 사역이었습니다. 저의 작은 경험으로는 용서는 사람의 의지로는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성령의 감동만이 완전한 용 서가 이루어짐을 경험했습니다. 20년 전에 한 형제에 대한 분노와 원망으로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 벽에 답답한 마음을 기도로 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예배실에 엎드렸는데 이상하게 기도는 나오지 않고 끙끙 앓기를 이삼십 분 그리고 터진 기도는 회개와 용 서를 구하는 기도로 눈물 콧물을 얼마나 많이 흘리며 긴 시간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성도로써 마지막 종착역으로 내려야 할지, 아니면 오 늘도 주의 종이 더 달려가야 할 길이, 감당해야 할 부 분이 있는지 물어야 하는 저의 상황에서 제일 보고 싶 고 가고 싶은 곳은 모로고로 저희 집 앞마당 배드민 턴장입니다. 30도 이상 넘나드는 온도와 햇빛을 피해 손바닥만 한 나무 그늘에 피할지라도 결코 그 누구도 배드민턴을 그만하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는 즐거움으로 비속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른 땀의 열기에 서로를 보고 웃고 떠들었고, 그 리고 시원하고 얼큰한 뼈 국물과 한 공기 밥은 그 어 떤 보약 이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식사 후에 드려진 예배 가운데 한국말의 찬송과 말씀 그리고 기 도 제목을 나누는 시간은 영의 회복의 시간이 되었습 니다. 선교사의 세계는 참 이상합니다. 아무리 생전 처음 만 난 선교사님도 수십 년 지기의 친구로 발전 합니다. 그러나 저 자신도 모르게 은근히 질투, 시기, 경쟁심 그리고 우월감 내지 열등감등으로 포장되고 벽이 쌓 입니다. 저희 지역 선교사님도 이런 마음들이 많았기 에 16년의 많은 시간 동안 갈등과 번뇌 그리고 많은 상처가 쌓였지만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고 장담하는 것은 만남의 평안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남의 불편함이 없는 것이 함께 운동 하고, 밥 먹고, 예배드렸다는 이유로 함께 사는 강한 개성의 소유자인 선교사들의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되 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동기 부여 는 되겠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내 안에 평안이 머무르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그 형제를 다시 만났을 때 진정으로 저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사실 몇 번이나 그 형제 와의 관계 속에서 감정이 생기면 옛날에 묵었던 감정 까지 올라와 폭발하는 상황이 반복 되는 상황 속에서 지난 새벽의 회개기도 후에 청한 나의 용서와 용납은 그 형제와의 관계에서 저에게 큰 평안을 주셨고 그 형 제에 대한 신뢰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선교사들과 함께 하나님의 분명한 언약 가 운데 저 천성, 천국을 바라보고 있기에 현지인들과 관 계, 이웃 선교사들과 관계에서 또한 성령께서 교통하 여 주시고 다스려 주심으로 서로 용서하고 용납하였 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확신하는 것은 5가정의 선 교사들과 관계는 본성 저 천성에 가기 전 오늘 나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나라요 천성에서 누릴‘작은 천 국’ 입니다.

저는 이 작은 회복을 통해서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교 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진다는 사실을 체 험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조직이 아닌, 인간의 의가 아닌,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가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관계 속에 임하였을 때 진정한 용서와 상대를 인정하 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철저한 회개, 자기반성, 자아비판이 아닌 십자가 앞에 내가 죄인임 을 인정하고 고백하게 되었을 때, 나님 나라의 작은 벽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웃에 함께 살고 계시는 선교사들을 통해서 확인을 합니다.

글_윤봉석 탄자니아 선교사 jybs7411@gmail.com

KO MI

월간 한국인선교사 쉴터는 선교사님들을 섬기고자 마련된 작은 숙소입니다. 현재 인천시 구월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다섯 채가 1997년부터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용문의: www.kormi.net / ☎ (070) 8884-6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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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

땅끝 이야기

이, ‘순환성 글로벌 미션 이야기’ 편집자주: 아이티 강영기 선교사의 사역이야기를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두 번째 10년을 놓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사랑과 은 혜를 입은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1995년 기도 중 ‘천을 붙일 테니, 가라’하신 분부에 어찌할 바를 알 지 못하여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이 하나님의 분부 는 창세기 12장1-3절의 말씀으로 받아졌고, 4절 말 씀“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와 같 이 동일하게 믿어 의심치 않아 2000년부터 10년간 블루베리 들녘에서 첫째 10년의 하나님의 명령을 따 르며 저에게의 약속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두 번째 10년(2010-2019)을 놓고 저를 향하신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에 대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제목을 놓고 기도한지 두 달 만에 저에겐‘염소’라는 단어 하나만 주어졌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분부이며 헤아려 알 길이 없 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불과 석 달 후에 제가 할 일의 한 부분을 들려 주셨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석 달 후 하이티는 대지진의 참혹함과 큰 혼돈에 처 했습니다.

상 만민에게, 천하만국, 해 뜨는 곳, 땅 끝, 각 나라 와 족속과 방언” 의‘말씀(Word)’을 통해서 이곳과 저곳 그리고 어느 골짜기 하나라도 하나님의 만지심 이 없는 곳이 없음을 알게 하십니다. 현재 사용하는 말에도‘국제’ 와‘세계’ 라는 단어의 사용빈도가 줄어든 반면‘글로벌’ 이 더 많이 사용되 고 있습니다. 지구 전체가 한 마을처럼 가까워지는 ‘글로벌화(Globalization)’하는 그 진행 속도는 더 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젠‘글로칼(Glocal)’이 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9-10절“이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 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 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 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 에게 있도다 하니”이 말씀이 바로 오늘날을 말씀해 주신다고 봅니다.

미국 뉴저지 헤이션 계절 노동자 예배

2010년 하이티대지진 당시의 대성당 순환성 글로벌 미션 성경은 처음부터‘글로벌(Global)’을 선언하고 있 습니다. 성경은“온 세상, 모든 백성, 모든 민족,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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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선교의 개념이 복음 전파의 의도와 자산을 가 진 A라는 지점에서 복음의 기반이 없는 B라는 지점 으로 이동하는 일방통행적 개념이었다면, 오늘의 글 로벌 미션은 선교자의 A라는 지점과 피선교자의 B 지점이 서로 왕래하는 선교 형태를 만들어 내고 있 습니다. 저의 이러한 선교의 현상을“순환성 글로벌 미션” 이라 이름하고자 합니다.


저의 경우는 미국 남부 뉴저지의 블루베리 농장지대 에서 하이티 형제들과 10년간 예배하여 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과 교회를 방문해달라는 요청 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이티의 치안부재와 열악한 환경에 자신이 없어 계속 거절해 왔었습니다. 2010 년 1월12일 7.0강도의 하이티 대지진은 25만 명의 사망자와 50만 명이상의 부상자를 내었습니다. 하이티인들은 생명과 집 모든 것을 잃게 된 소식 을 듣고 하이티로 들어와 2000년부터 지난 10년 (2000-2009)간 함께 뙤약볕 아래 들녘 밭에서 예 배에 같이 했던 형제들의 교회와 지역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는 병약자와 어린이 수는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수도와 도시엔 열악한 시설과 수준이나마 병원이 있 습니다. 그러나 산지엔 그마저도 없습니다. 사람이 다치기나 하면 등에 업고 오토바이에 태워서 근 하 루나 이틀 걸려서 도시의 병원에 들어갑니다. 대지진 이후 5년간 수십 번의 방문 선교사역을 계속 하다, 2015년 1월에 3800피트 산지에 선교사 가옥 1동을 건축하고 장기거주 선교사로 자리를 잡아 갑 니다. 산지선교의 사역으로‘먹거리, 입을 것, 건축, 의료, 농업, 교육, 복음’ 의 사역을 감당하며 살아가 야할‘총체적 사역’ 으로 맡겨 주신 하나님의 백성들 과 더불어 살길 원합니다. KO MI

필라델피아를 중심한 미국 동북부 주들에서 모금한 미화 15,000불로 지진 후 첫 항공편으로 들어가 양 곡과 텐트 및 의약품을 그간 미국에서 함께 했던 교 회들을 중심으로 돕는 사역이 하이티 산지 선교의 시발이 되었습니다. 저희 동네는 블루베리 월드 캐피탈이라 불리는 세계 에서 제일 맛있는 블루베리 생산지입니다. 이 곳 뉴 저지 해먼톤과 캐리비안의 하이티가 서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복음을 나누는‘순환성 글로벌 미션’ 으 로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선교형태로의 전환을 경 험하게 되었습니다.

글_강영기 아이티 선교사 mission.newhope@gmail.com

알립니다 그간 인내와 관용으로 전자 한국인선교사(한선)를 기다려오신 여러 애독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1년 구독을 하시면서 대금을 납부하신 분들에게 어떻게 보상해야 하는가를 고심했습니다. 매월 구독료를 납부하시는 분들에게도 동일한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매월 1천 원, 1년 1만 원의 구독료를 내신 분들에게 구독료를 돌려드리는 것이 원칙이라 생각을 합니다. 금액이 크든 적든 간에 은행계좌와 명의자 이름을 알려주시면 송금해드리겠습니다. 전자 한선이 발간된 날로부터 연락주시는 분들에게 구독료를 송금해드리겠습니다. 연락이 없으신 분들은 이미 보내주신 구독료를 후원금으로 처리하는 것을 양해하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원주민들과 함께한 Bainet 산지 교회 예배 함께 되어 가는 성육신의 선교 지금은‘Haiti Mount Mission’ 이라 이름하여 산악 오지 선교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이곳 산지에선 평 균 수명이 45세입니다. 여기엔 여러 가지 원인이 있 었으나 무엇보다도 200년 이상 하루 한 끼 강냉이 죽으로 연명해온 가난이 문제였습니다. 질병이 닥쳐 와도 아무런 대책이 없고, 열이 나면 고열로 죽어가

종이 한선을 발행하지 않더라도 전자 한선을 발행하는데 경비가 필요하고, 경상비 지출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문서 선교에 동참하시는 뜻으로 더 많은 관심과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8. 03. 01 월간 한국인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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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

땅끝 이야기

1편,(너는 ‘You Are Here for Me!’ 여기에 나를 위하여 있노라!) 편집자주: 마이크로네시아 김병기 선교사의 사역이야기를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저는 ‘마이이크로네시아 선교이야기’ 를 시작함에 있 어서 아내 강현순 선교사가 기록해 놓은 글을 인용 함으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한 달전(2016년 11월 11일, 금요일), 이웃에 살고 있는 스캇(Scott) 선교사 부부와 함께 점심 교제를 가졌습니다. 남편 되는 선교사님의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태국으로 가서 치료를 받고 본국인 미국으로 돌아가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1월에 다시 귀임한 다고 해서 집에 초청을 했습니다.

하고 있었기에 가고 싶지 않았으나 리더들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교회들을 도와 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교인들과 오해까지 생겨 서 힘들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왜 나를 이곳에 보내 주셨습니까? 하 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은 ‘너는 이곳의 사람들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너 는 여기에 나를 위하여 있노라!(You are here for me!)’ 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어려움을 극복하 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계속적으로 이곳에서 16년 동안 사역해 오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이곳으로 처음 이사를 왔을 때, 우리가 선 교사라는 것을 알고 매우 반가워했습니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포장된 과일 한 바구니를 가지고 우리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 때 환영을 의미하는 과일 바구니를 받으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르겠습니 다. 저로서는 이 낯선 땅에서 이웃에 선교사가 살고 있다는 것이 든든하기도 했습니다.

폰페이(마이크로네시아 연방국의 수도)의 지형 이 말을 하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습니다. 뭔 가 통했던 것일까요? 이 간증을 들은 남편이 마음에 큰 용기를 얻은 모양입니다. 실은 남편은 이곳에 처 음 도착하여 한 달이 지나도록 오직 집에서만 거주 하며 성경과 기도, 그리고 금식을 일주일에 하루씩 하며 마치 은둔 생활을 하는 듯 하였습니다.

세계지도 상의 마이크로네시아 연방국(오른쪽 아래) 식사 교제 중에 트루디(Trudy) 사모님이 16년 전쯤 이 나라에 와서 사역을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저는 그때에 싱글로 괌에서 사역을 하 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단 리더들로부터 폰페이로 가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사역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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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지켜보는 저의 마음은 답답하고 힘이 들었습 니다. 둘만 사는 집에서 별로 웃을 일도 없고 집에 인터넷도 설치가 안되어서 마치 갇혀 사는 기분이었 습니다. 그 때는 차도 없어서 마음대로 혼자 밖에 나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중략-


그 뒤로 남편은 큰 힘을 얻어 확연히 달라진 모습으 로 사역에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2010년 경에 교회로 조직이 되었었습니다.

위의 글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저와 제 아내가 선교 부로부터 선교지 재배치를 받아 28년을 사역했던 필 리핀을 떠나 2016년 9월 5일에 서태평양 바다위에 608개(어떤 자료는 607개)의 섬들이 구름조각 같이 산재해 있는 마이크로네시아 연방국의 수도인‘폰페 이’ (Pohnpei)에 막상 도착했지만 저는 여러가지 이 유로 막막한 심리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예상치 않았던 트루디 선교사의 간 증과 고백은 순식간에 제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던 여러 의문의 견고한 진을 부수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던 제게 하나님을 위하여 살겠다는 사명감을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김병기 선교사(우)와 아내 강현순 선교사(좌) 그리고 2012년 12월에 선교사가 떠난 이후로 저희 가 도착한 시점까지 교회가 교회로서 제대로 발전하 지 못하여 지지부진 한 모습이 확연히 눈에 띄게 보 였습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마음에 새로운 힘을 얻은 저희는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 우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한 걸음 또 한 걸음 앞으 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KO MI

글_김병기 마이크로네시아 선교사 kbg@apnaz.org

산에서 내려다 본 폰페이의 일부 마이크로네시아 연방국(The Federated States of Micronesia)은 인구 16만명을 가진 작은 나라로서 수도인 폰페이의 인구는 약 3만 6천명이라고 합니 다. 종교의 분포도는 캐톨릭이 인구의 50%를 차지 하고 프로테스탄트가 47%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1852년에 받아들여진 기독교 신앙이 시간이 지나면서 전통신앙과 문화와 혼합이 되어 기독교의 존재감이 점점 약화되어 온 상황에 몰몬교가 엄청난 돈의 힘으로 마이크로네시아를 공략하고 있는 실정 입니다. 저 희 가 소 속 되 어 있 는 나 사 렛 성 결 교 회 ( T he Church of the Nazarene)는 마이크로네시아 연 방국에 설립한 두 개의 교회 중의 하나인 폰페이 의 콜로니아 나사렛교회(Kolonia Church of the Nazarene)의 미국인 선교사의 리더쉽에 속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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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위한 축복의 통로

MK 스토리

MK, 그 여정의 시작 최근에 블록버스터‘블랙팬서’라는 영화가 개봉을 했었습니다. 그동안 흑인들의 문화, 또는 그들의 역 사를 그린 영화는 수없이 많았지만 블랙팬서 만큼 아프리카라는 대륙에 대해서 그리고 흑인들의 문화 와 역사를 가장 아름답고 가장 축제답게 표현한 영 화는 처음 보았습니다. 그 아프리카, 가장 아름다운 색감들로 칠해진 그 땅이 바로 저의 영원한 고향입 니다. 아프리카라는 대륙에 발을 딛기 전, 어린 시절의 선 교 여정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딸 이길 간절히 바라셨던 아빠에게 간호사들은 아들을 낳았다는 농담을 들었지만 저는 감사히도‘서샤론’ 이란 이름을 가진 딸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이미 필리핀에서 5년째 사역을 하고 있는 선교사이셨고, 저보다 6년 먼저 태어난 오빠와‘아 떼’(필리핀 말로 이모)들에게 큰 이쁨을 받으면서 필리핀에서의 삶을 시작 했습니다.

저의 기억 속에 하나님이 처음 보여주신 아프리카의 세상은 손가락만한 굵기의 가시나무가 길옆에 수두 룩했고, 세상 파란 하늘과 손이 닿을 것만 같은 구름 들이 항상 보였습니다. 그 하늘에서 정말 가끔 비가 내렸는데, 그럴 때마다 길거리에서 비가 너무 좋은 나머지 춤을 추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엄마나 아빠가 아침 일찍 유치원에 데려다 주시면 유치원 선생님이 맞이 해주셨습니다. 내 선생님은 피부색이 나보다 더 하얗았으며, 반 친구들은 갈색, 연갈색, 진갈색, 분홍색을 띈 애들도 있었습니다. 교실에서 매일 같이 알파벳을 반복하며 공부하고 친구들과 같은 놀이터에서 지렁이를 잡으며 놀았습 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알 수 없었습니다. 겉모 습 하나로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달라지고 이룰 수 있는 꿈이 다를 수 있다는 세상인 것을 말입니다.

길가에 많이 심겨진 브츠와나의 상징인 부쉬(가시) 나무 아프리카 보츠와나로 가기전에 함께 찍은 가족사진 제가 태어나고 얼마 있지 않아 부모님은 바울선교 회에서 파송을 받게 되셨고, 3살 때 부시맨들과 콜 라병 영화에 감명 받으신 아빠를 따라서 아프리카 ‘보츠와나’로 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기까지는 다 들은 얘기입니다. 그리고 제가 직적 기억하는 삶 은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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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보츠와나에도 한국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그 리고 정말 가까운 한국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집에 서는 김치 없으면 밥을 안 먹는다고 할 정도였습니 다. 그래서 인지 한국 사람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믿 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피부색을 지닌 한국 사람들과 있을 때보다 나만 한국 사람인 교실에 있을 때가 더 편했 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게 항상 익숙했습니다. 그래서 다수에 속하지 않 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MK는 제가 선택한 타이틀이 아닙니다. 부모님의 선택에 의해서 하나님이 주신 타이틀입니다. 그러 나 단 한 번도 MK 인 것을 원망한 적은 없었습니 다. 단지 제 노력으로 얻은 것들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것들에 대한 의무와 책임감이 느껴지기 시작 했을 뿐입니다. 지금은 아프리카를 떠난 지 8년이 지났습니다. 그 곳에 대한 그리움은 평생 간직해야만 합니다. 이제 는 부모님 또한 더 이상 그 곳에 계시지 않기에‘집 (House)’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가장 순수했던 시절을 보낸 곳이기에 가장 특별한‘집(Home)’이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아직 하나님이 정확하게 왜 저에게 이러한 세 상을 보게 하셨는지는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어 느덧 26세의 나름 어른이 된 나에게는 그 이유를 찾는 것이 큰 의무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세상 을 바꾸는 상위 1%가 되겠다는 꿈은 오래전에 접었 습니다.

월간 『한국인선교사』는 도서잡지 윤리실천강령을 준수합니다. 월간 『한국인선교사』에 실린 글, 사진, 그림은 월간 『한국인선교사』의 서면 허가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자연과 벗 삼으며 현지인 친구들과 함께 다니던 유치원 시절

왜냐하면 보츠와나는 세상이 만들어놓은 빈곤이라 는 상자 밖에 가장 아름답고 강인함을 갖춘 하나님 의 보물이 있는 곳임을 알기에 제가 스스로 생각을 할 무렵에 기억이 시작 된 곳이고, 내가 가장 먼저 눈을 뜨게 된 세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보물들을 나누는 여정이 시작 되었습니다. KO MI

글_서샤론 보츠와나 MK sharonsuh1101@gmail.com

대학교를 졸업하니까 의지와 상관없이 현실주의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겉모습 하나로 차별 받는 것은 결코 하나님이 계획 하신 현상이 아니라는 것 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에 저에게 허락하신 그 삶으 로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들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즉 삶 속에서 전해지는 Story-telling 입니다.

아프리카를 홈으로 알고 살아가는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인 가족들 15


선교사의 소리

“보배스런 필리핀의 제자들”

글_김태현 필리핀 선교사 thkimmsm@hanmail.net

하는 국가 문화행사에도 참가하여 최 우수상을 받는 등 인지도도 계속 높 이고 있다. 또한 한국 방문 순회공연을 통해 자 신들을 후원해 준 교회와 후원자들을 찾아 감사의 뜻을 전달하고 더욱 열 심히 공부하고 훈련하겠다는 약속도 하였다. 한국에서 방문하는 선교 팀 들과 현지의 선교사님들을 찾아 내 나라 필리핀에 오셔서 복음을 전해주 셔서 감사하다는 뜻의 답례공연도 수 차례 하였다. 또한 한국에서 온 영어 캠프 학생들을 위해 언어봉사를 해주 고 신앙적 에너지를 공급해주고 있는 우리 제자들의 모습을 보니 너무나도 감사하고 기뻤다.

예수님의 계명을 따라 하나님을 기쁘 시게 사람에게 행복을 ‘To please God and to make people happy’라는 주 제로 ‘Disciple Making Church’ 가 세 워졌고, 미래 필리핀 기독 인재 양성 을 위해 각종 예술 활동을 지도하여 현재 60명 제자 전원이 다양한 악기 를 다루고 예배무용과 필리핀 무용, 한국 무용, 드라마 등의 공연을 통해 선교활동을 할 수 있는 제자들로 성 장되었다.

반면 정말 가슴 아픈 일들도 적지 않았다. 선발되어 훈련시켰던 제자 가정이 가난으로 월세를 못 내어 마 을에서 쫓겨나게 되고,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러 제자 명단에서 제명하게 되고, 질병에 걸렸으나 병원에도 못 가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 운 마음을 가져본 것이 한 두 번이 아 니었다.

지난 5년여 세월을 돌이켜보면 우 여곡절 참으로 눈물겨운 일이 많았 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동안 많은 변 화와 성장을 이루었고 지금은 너무 나도 사랑스럽고 대견한 보배와 같 은 존재들이 되었다. 저들의 열정적 인 찬양과 예배는 어디에서도 경험하 기 어려운 것이며, 준비된 간증과 공 연은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도록 마련되었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아도 제자들의 몸짓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열정 으로 가득 찼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 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가득 찬 행복을 만들어 전달하고 있다. 대한 민국과 필리핀 정부가 공동으로 주최

처음엔 어린 아이와 같던 아이들이 지금은 대학생이 되고 청년 티가 나 서 언젠가는 이들이 우리 곁을 떠나 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보내 기 위해서 이 아이들을 키웠고 또 당 연히 보내야만 한다. 사도바울이 디 모데와 디도를 키워 일꾼으로 세우 고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어떠했을 까? 그리고 그가 세운 교회와 성도들 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기 쁨 또한 어떠했을까? 지금은 우리의 자랑이요 보람이라고 말하지만 장래 에는 하늘나라의 별같이 주님의 얼굴 을 빛내주는 보석들이 되어 달라고 사랑스런 우리의 필리핀 아들, 딸들 에게 부탁하려고 한다. KO 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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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50대 중반에 들어선 우리 내외는 경기도 양평지역의 작은 농촌교회들이 힘을 합쳐 매입한 필리 핀 비낭오난의 채 정비되지 않은 선 교센터 부지를 개간하면서부터 필리 핀 사역을 시작했다. 교회당과 학교 를 세우고 마을 청소년들을 모아 신 앙훈련을 시킨 지 벌써 5년 반의 세월 의 흘렀다. 선교센터는 이제 아름답 게 조성되었고, 매년 12명씩의 청소 년들을 선발하여 각종 특혜를 제공하 면서 제자 훈련을 시킨 결과로 현재 1~5기생 60명의 정예화 된 제자들이 성경공부를 통해 전도자로 혹은 교사 로 성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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