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선교사 <부활의 소망> 긴 겨울의 끝자락 춘풍에 떠밀리고 해살이 분주한 봄날이면 사순절이 열린다. 공생애 주님을 향한 그리움 모함과 반역 엉터리 판결이 난무했지만 억울하다 한마디 항변 없이 병들고 소외된 자를 찾아 치유와 소망을 전하시다 세상의 온갖 죄를 담당하려 고난, 저주 아픔을 한 몸에 지고 대속제물 되시어 장사되었기에 안식 후 첫날을 기다립니다 몰약과 향료 굳게 닫힌 돌문 여러 가지 생각 정리는 안 되지만 이른 새벽 찾은 무덤엔 그 무엇도 필요 없는 빈 무덤 부활의 소망. 글_김익환 필리핀 선교사(siskc@hanmail.net) 일러스트_김은영(lewis1212@naver.com)
2017 선교는 누구든지 해야하고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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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를 사랑하는
서목사 부부
위위심(爲爲心)
“위하고 위하는 마음” 편집자주 : 성기호 목사님과 서좌원 목사님의 선교사를 향한 사랑의 이야기를 격월로 연재합니다.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남기신 흔적을 따라 경건과 절제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고 난에 동참하는 기간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올해 들어 말씀과 기도 를 통해 거룩하고 건강한 교회를 세워야겠다는 마음 에 예수님을 닮고 싶은 열망이 더욱 강하게 다가오 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갖는 마음일 것입니다. 아래 성경 몇 구절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 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11:29)
예수님의 '위위심'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실은 반드시 자기희생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 하고 이웃을 위하는 마음을 지니고 사는 삶에는 언 제나 희생과 수고와 헌신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입 니다. 나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위하고 이웃을 위하는 이 삶은 곧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 을 따르는 제자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지니고 사는 자의 삶입니다. 목회자요 선교사로 자신의 삶을 드린 자는 예수님의 마음을 사역현장에서 나타내고 본을 보이는 삶입니 다. 위위심 즉 위하고 위하는 삶을 통해 예수님의 마 음을 품고 오늘도 삶의 현장에서 또한 사역의 현장 에서 온갖 희생을 다하고 계신 모든 분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삶을 통해 나타내므로 인하여 구원과 생명의 열매가 풍성하기를 기도드립니다. KO MI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 려 함이니라”(막10:4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 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 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 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7)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와 겸손한 마음, 섬김의 마음, 자기를 비우고 낮추시는 마음, 예수께서 친히 지니 시고 본을 보이시고, 나타내신 마음입니다.이 마음 이 곧 위하고 위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위하고 우리를 포함하여 온 인류를 위하는 마음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 시어 대속의 제물이 되어주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은 하나님을 위하여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고 성 취하셨으며, 이로 인하여 온 인류가 믿음으로 구원 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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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서좌원 목사 보라매 교회 담임 목사 crosslovego@gmail.com
캄보디아에서 보내드리는
길 위의 아이들 3
쌍둥이와 엄마
캄보디아에는 유독 쌍둥이가 많습니다. 가난한 시골 사람들은 유독 아이가 더 많습니다. 부모는 태어난 아이에 기뻐하며 이렇게 양쪽 허리에 아이를 올려 안고 때론 언니 오빠가 동생들을 안고 돌봅니다.
그래도 아프고 잘 못 먹는 아이들이 비위생적이고 위 험한 환경에서 자라는 걸 보는 것은 결코기쁘기만 할 순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 아이들은 좀 더 안전하게 좀 더 사 랑 받으며 이 아이들의 미래는 이전보다 현재 삶보다 나아지길 기도합니다. KO MI
세상 엄마들에겐 가난도 질병도 이 아이의 얼굴을 보 는 기쁨으로 위로가 되는가봅니다. 글과 그림_정정미 캄보디아 선교사 hawk8@hanmail.net
하나님의 은혜로 월간 한국인 선교사 발행이 20년이 넘어갑니다. 창간호부터 지금까지의 책 내용을 모두 스캔해서 ISSUU에 올려두었습니다. 자유롭게 가져가셨으면 합니다. (홈페이지: http://issuu.com/koreamission/docs, 아이디: koreamission, 패스워드: 22686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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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은혜의 발자취
세번째, ‘카이로 한인교회’를 인가받기까지 편집자주 : 이집트 이준교 선교사의 사역이야기를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제가 카이로에 도착하였을 때 카이로에서는 얼마 전 부터 한국학교 설립에 관한 의견이 오가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마침 저는 취학자녀 둘을 데리고 왔고 또한 교직의 경험이 있었기에 자연스레 이 문제를 가 지고 함께 의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교사확보 문제, 학사운영, 학칙제정 등을 구체적으로 의논하게 되었 습니다. 1979년 12월 20일 카이로 한국학교 운영협의회를 조직하고 회장의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카이로 한 국 총영사 관저의 부속시설을 개조하여 교사로 꾸미 고 사무실을 만들어 12월 5일 개교를 하였습니다. 현지에 나와 있는 동산토건(두산건설) 회사가 교실을 만들고 사무실을 꾸미는데 협조하여 주었고 공관장 공로명 대사께서 적극 도와주셨습니다.
고 그 다음 해인 1981년 2월 15일 교육부 파견교사 를 보내어 주었습니다. 부부가 다 교사였으나 교육부 에서는 남자만 교사로 파견하고 부인은 현지에서 초 빙하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의 이름으로 부 인 교사초빙을 하였습니다. 사례비 역시 현지에서 부 담하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교육부에서 파견교사가 나온 이후 카이로 한국학교 운영협의회는 새로 부임한 파견교사에게 학교운영의 업무일체를 인계하고 조직을 해체하였습니다. 그 이 후 지금까지 카이로 한국학교 설립위원장의 자격으 로 학교를 지원하여 오고 있습니다.
진지한 모습으로 시험에 임하는 오순절 신학교 학기말 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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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교제가 있는 애굽 현지인 목회자 세미나 식사시간
저의 첫번째 사역인 카이로 한인교회는 이집트에 있 는 외국인 교회로서 이집트 정부로부터 허가를 취득 한 허가된 교회입니다. 1980년 6월 22일 자로 이집 트 내무성에 등록이 되고 필자가 교회 대표자의 이름 으로 노동부로부터 노동허가를 취득하였습니다.
모두 열한 명의 어린이가 복식수업으로 공부를 하였 습니다. 장차 학교버스를 구입하기로 결의하고 차량 을 구입할 때까지는 필자의 선교차량(7인승 웨곤)을 어린이들 등하교에 이용키로 하였습니다. 선교차량 이 스쿨버스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저의 경우 입국해서 3년 동안은 아메리칸 대학의 학 생신분으로 비자를 받아서 체재했고 그 이후에는 카 이로 한인교회 담임목사의 신분으로 노동허가와 거 주비자를 받아서 사역하여 왔습니다. 하나님의 특별 하신 은혜라 생각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1980년 4월 15일 자로 본국 정부 교육부(당시 문교 부)로부터 재외 국민 초등학교 설립인가를 취득하였
또한 목사안수 받기 전에 중,고등 학교에서 십년간 영어교사로 직장생활을 하였었기에 선교지에 와서
곧바로 설교사역을 쉽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집트 는 영국의 지배를 72년간 받은 나라입니다. 그러기 에 웬만한 지식층의 사람들은 영어를 곧 잘합니다. 나이가 든 현지인 교회 목회자의 경우 강단에 별도의 통역자를 세우지 않아도 담임목사가 즉석에서 통역 을 하곤 해서 영어만 제대로 하면 설교사역 하는 것 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아니합니다. 저의 두 번째 사역은 교회개척 사역입니다. 교회개척 사역은 선교지의 사정상 한국과 같은 방법은 잘 통하 지 아니합니다. 한국처럼 마음대로 교회를 세우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방법으로 하면 할 수 없 는 것도 아닙니다. 선교사가 일선에 나서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현지인 사역자와 합심하여 동역하 면 할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 처음에는 현지인 사역자 뒤에서 후원하여 주면서 동역하였습니다. 지금은 애굽 복음주의 교단 카이로 노회원으로서 전도분과 위원회의 일원으로 노회 산하의 교회개척 사역자들을 후원하고 기도하 면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카이로 노회 산하에 는 열여섯 명의 교회개척 전임사역자들이 헌신하고 있습니다.
층까지 모두가 애굽 현지인 무슬림들이었습니다. 저 는 그 아파트에서 오래 살았습니다. 저의 아래층에 사는 이웃은 육군 대령출신이었습니 다. 아주 철저한 무슬림입니다. 그러나 필자와는 매 우 가까이 지내는 이웃이었습니다. 무슬림의 축제기 간, 예컨대 라마단의 금식 전후에 있는 축제기간에는 초콜릿 선물도 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면 자기는 크리 스마스와 부활절에 선물을 들고 와서 축하를 하였습 니다. 이런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위층에는 과부인 할머니들이 사셨는데 그들과도 역 시 아름다운 이웃으로 지냈습니다. 복음을 직접 제시 하고 전도의 메시지를 전하는 선포전도 이전의 단계 를 현존전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전도의 기초를 다지 는 단계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과 2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 다.“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 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 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선교의 대사령관 되시는 주님의 지상명령이십니다. 가서 전도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세우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는 일이 곧 선 교인 것입니다. KO MI
글_이준교 이집트 선교사 leejk1979@hanmail.net
이집트 룩소르에서 정을 나눈 세계 한인선교회 임원들 미국 풀러 신학교에서 교회성장학 교수로 사역한 피 터 와그너 박사가 쓴 교회성장의 전략이란 책에 보 면 전도의 세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그 첫째가 현존 전도(Presence Evangelism)입니다. 현존전도란 직접 복음을 선포하기 이전의 단계를 말하는데 집을 짓는 것에 비하면 기초공사 단계입니다. 무슬림에게 전도하려고 할 경우 전도하기 전에 전도 대상자와의 관계 형성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전에 살던 아파트에는 모두 여덟 가정이 있었습 니다. 2층을 제외한 아래층 그리고 위로 3층에서 8
세계 선교의 현장에서 힘쓰시는 선 교사님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의 말 씀과 분별력에 대한 강한 메시지가 담긴 <시대를 아는 힘>을 소개해 드 립니다. 선교현장에서, 자녀들의 교 육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힘 을 얻기위해 활용하셨으면 합니다. 이 책의 판매 수입금은 탈북자들을 위한 선교에 쓰입니다. 문의: 통일소망선교회 이빌립 선교사 (02-2625-0497) 가격: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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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
땅끝 이야기
셋, ‘바티에이 땅에서 이루어낸 하나님의 승리’ 편집자주 : 캄보디아 김득수 선교사의 사역이야기를 10번에 걸쳐 연재합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합니다 2017년은 아주 무겁게 다가와서 긴 한 달을 괴롭히며 회상과 회귀를 반복하게 합니다. 이젠 세월을 받아들 일 때가 된듯합니다. 겸허하게 내 삶과 사역의 마무리 를 하는 10년을 구상하며 깊은 묵상에 잠기곤 합니다. 노을이 아름답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 젠 얼마 있지 않아 삶의 뒤태를 보이다가 노을이 지듯 무대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전엔 제가 누군가를 바라 보고 따랐는데 이젠 어느덧 누군가가 나를 보고 따르는 자리에 서있습니다. 제 인생의 노을도 그렇게 아름답기 를 기도합니다. 혹 저의 뒤태를 바라보는 이가 자신들 의 노을도 그리 아름다울 것이라 여기게 되겠지요. 작 은 희망입니다. 회상과 회귀 그러다가 처음의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캄보디아를 향할 때의 하나님과의 만남을 새롭게 마음 판에 새깁니다.‘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하 나님께 순종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그렇게 캄보 디아로 왔던 출발선에 다시 섭니다.
바티에이 지역의 전형적인 마을 풍경과 사람들 하나님이 예비하신 학교부지 외무 부총리‘하오남 홍’ 이 보여 준 땅은 모두 네 곳입 니다.‘바티에이’ 만 세 곳이고 한 곳은‘빠아으’ 입니 다.‘빠아으’ 는 캄보디아에서 와서 1년 8개월을 살아 서 많이 정들었고 편한 곳이기도 하고 사람들의 왕래도 빈번한 곳입니다. 가까이‘스쿤’ 이라는 도시가 있고, ‘바티에이’ 도 있습니다. 만일 대학이 그곳에 선다면 그 런대로 캄보디아에서는 괜찮은 대학으로 발전시킬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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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고 기대했으니까요. 제가 하고 싶은 사역도 펼쳐볼 욕심도 났습니다. 교회사역과 영성사역을 겸하는 센터 입니다. 단호하다 할 정도로‘빠아으’땅이 아니면 안 된다고 고집을 좀 부렸습니다. 사실 그 땅을 산다는 것은 캄보 디아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곳이 개인 땅이기도 하고, 정말 큰돈을 주고 사서 줘야 하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돈을 가지고 있어도 개인이 나서서 땅 을 사기조차 어려운 땅입니다. 또한 부총리가 주고 싶 어 하는 땅은 매립해야 되는 땅입니다. 원하는 대로 땅 을 얻을 수도 있고 완전히 매립해서 준다는 약속을 하 였습니다. 사실 나무 하나 없는 매립지를 받겠다고 나 선다는 것은 어리석다 못해 미친 결정으로 보일 수 있 습니다. 그러나 돈 한 푼 없이 대학을 설립하려는 것이 라 없다는 내색도 못하고‘빠아으’땅만 고집 했습니 다. 이렇게 고집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땅 을 사서 준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기에 다른 좋은 땅 을 쉽게 얻게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습도 용납하셨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긴 줄다리기 끝에‘바티에이’군 청사의 땅은 어떠냐? 물어왔습니다. 시엠립 방향의 4차선 대로변의 탁 트인 곳으로 모든 땅 중에서 제일 좋은 땅입니다.‘빠아으’ 와는 한 생활권입니다.‘바티에이’ 는 군청이 있고 경 찰서와 초, 중, 고 학교가 있습니다. 교육청과 군부대 도 있습니다. 교육과 행정 도시로 장차 큰 도시가 형성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대학이 선다면 자 연히 도시 기반도 갖추어 질것입니다. 캄보디아 전역 에서도 이 보다 더 좋은 땅을 만나기 쉽지 않을 것입니 다. 학생들과 함께‘길가에 크고 좋은 땅을 주세요!’기 도한지 불과 3개월 만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그것도 1 달러도 손에 든 것이 없이 얻은 것입니다. 지난 뒤에 생 각하니 어떻게 그렇게 말도 안 되는 황당한 기도를 했 었을까? 지금도 어처구니없는 기도였다고 생각이 들곤 합니다. 두 번 다시 그런 기도는 하지 못할 것 같습니 다.‘믿음의 기도는 산을 들어 바다에 던져지라! 그리 하면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그 땅을 받을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겠다 하고 한 두 달이나 지났습니다.‘바티에 이’절에서 흑암의 세력과 직면했던 경험이 큰 두려움
으로 남아 있어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바 티에이’ 에는 큰 절이 있고 그 안에 승려학교도 있습니 다. 그 해에 학교 학생 중 두 명이 스님이 되는 3주 훈 련과정에 들어갔습니다. 큰 충격이었습니다. 자식을 돌보듯 가르친 학생이 둘이나 중이 된다는 것은 생각조 차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절간으로 들 어가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제가 절 안 깊숙이 들어갔을 때 흑암의 세력이 엄습하는데 마치 공처럼 튕겨 나갈 것 같았습니다. 잠 시도 더 있을 수 없을 만큼 짓누릅니다. 10분도 채 안 되어 탈출하듯 뛰쳐나왔습니다. 프놈펜에 올라와서는 이틀이나 아팠습니다. 그러나 학생 모두 학교로 데려 왔습니다. 지금 그 학생 중 한명은 예배 때 통역을 하면 서 목사가 되겠다고 다짐을 하였고, 또 다른 학생은 프 놈펜에서 대학에서 공부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바티에이는 정말 피하고 싶은 곳입니다. 이곳에 서 영적 싸움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맥이 다 풀릴 지경이었습니다. 그 때의 엄습했던 흑암의 두려움을 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습니다. 학교부지는 바티에이 절 과 한 두 불럭 인접한 땅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네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는 것이다.’대학 부지를 얻어 냈다는 것은 결코 제 가 했다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1달러도 주지 않고 군청사내 건물을 모두 비워주고 청사를 새로 짓고 나간 다는 것은 기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합니다. 하나님이 하 시는 것이기에 당연히 이런 응답 뒤에는 뛸 듯이 기뻐 하며 믿음은 하늘 높이 충만해야 맞을 것입니다. 헌데 한 두 달이나 머뭇거리며 대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땅 을 얻으니 또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는 것입니 다.‘아~! 어리석은 나의 믿음이여!’ ‘믿음이 , 없는 세 대와 얼마나 함께 하리요.’말씀 앞에 선 저의 모습은 주님을 답답하게 하는 선교사입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하나님의 특별한 시간입니다 학교부지는 부총리가 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 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 없는 저는 자신의 염려와 두 려움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내 모습에 깜짝 놀 라‘하나님! 주께서 계획하신 곳이라면 매립지라도 받 겠습니다.’비로소 뜻을 정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분 앞에 스스로 뜻을 정할 때까지 하루를 천년 같이 참고 기다리십니다. 그러다가도 뜻을 정하면 언제였나? 싶 게 스르르 물꼬를 여시곤 합니다. 선교지에서 늘 경험 하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얼마 후 외무부 장관과 NGO 담당 실무자와 사적인 시 간을 가지면서 문제를 푸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열매를 딸 때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외무부는 학교 부지 문제로 일을 진행하고 있었습 니다. 그리고 이렇게 매듭을 지었습니다. 학교 부지 내 에 불법 거주자가 19세대가 있는데 정부가 대토를 마 련하여 이주시키고, 청사와 부속 건물들도 새로 짓고 이전하기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으로 세워진 바티에이 국제대학 전경 땅이 눈앞에 오니 현실감이 확 다가왔습니다 빈손으로 대학을 세울 수 있을까 믿음‘빵’자신감 제 로입니다. 믿음이 없을 때는 자신감이라도 있어야 하 는데 완전 에너지 바닥이 드러납니다.‘주님! 저는 어 떻게 해야 하나요?’언제나 믿음은‘빵’ 에서 출발합니 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놀라운 체험이 쌓여 큰 믿음으 로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충전되었다가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전류가 흘러야 자 석이 되는 것처럼 믿음은 성령의 은혜가 임하기 전에는 언제나‘빵’ 에서 시작됩니다. 엄청난 땅을 주겠다는데 기뻐하기는커녕 선뜻 대답도 못하는 어리석은 믿음은 제로선상에 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땅이 나 타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는 사탄이 큰 권세를 가지고 있는 바티에이 땅에서 이루어낸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 그리고 2010년 1월 26일 5천명이 모이는 대형집회를 열고 학교부지 기증 식과 대학 본관 기공식을 가졌습니다. KO MI
글_김득수 캄보디아 선교사 godcambod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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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
땅끝 이야기
삼, 초창기 사역과 정착(2) 편집자주 : 남아프리카공화국 변동식 선교사의 사역이야기를 10번에 걸쳐 연재합니다.
선교사 지망생으로 5년 만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이후 남아공이라 지칭)에 당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라는 말 밖에는 따로 설명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 저에게 남아공은 선교지가 아닌 영어훈련 장소 일 뿐 이었습니다.
못하고, 입은 있으나 말하지 못하는 설움을 빨리 없 애고자 더반 시내에 있는 영어학원에 등록 하였습니 다. 그런데 펜티엄 시대를 살아왔던 저에게 뚱뚱한 현지인 줄루 선생님이 286 컴퓨터에서 출력한 중학 교 1학년 수준의 누런 A4 용지에 문제를 풀어 보는 것이 영어 수업의 시작이었습니다.
웩(WEC) 남아공 본부가 있는 더반에 짐을 풀자마자 아들 셋을 테이블에 모아 일성을 날렸습니다.“우리 는 드디어 홍해를 건너 남아공에 당도했고, 이제 부 터는 영어의 파도를 넘어서기 위하여 게임은 물론 모 든 한국 드라마 시청을 금지한다!” 더욱이 외국인 선교사들만이 묵고 있는 선교본부에 서 가족의 유일한 통역관이 저였으니 가족모두가 얼 마나 고생이 많았는지 알고도 남습니다. 그래서 특단 의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집중해서 예수 영화를 감상 중인 교회 공동체 ‘무식하면 용감하다’ 란 말처럼 아내와 저는 매일아 침 동일한 시간에 현지인들이‘택시’ 라고 부르는 봉 고차를 타고서 집에 있는 전 재산을 갖고서 더반시내 의 한복판에 내려서 한 블럭을 걸어서 학원을 다녔습 니다. 나중에 한국 선교사님들을 만나서 지난 일들을 나누다보면 모두들 기절초풍 하면서 하나님의 특별 한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루는 리더 집으로 가족모두 생일초대를 받아 기쁜 마음으로 갔는데 차와 음료수만 준다는 영어를 못 알 아들어서 식사를 주는 줄 알고 밥도 안 먹은 상황에 서 쫄쫄 굶은 일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남아공은 치안이 불안하여 한국인들의 경 우 시내를 거의 돌아다니지 않을 뿐만 아니라, 흑인 택시도 많이 위험하여 타는 일이 없고, 더군다나 큰 돈을 지닌 채 시내 한복판을 걸어 다녔음에도 강도를 안 만난 것 자체가 기적 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참 고로 요즘도 아내는 근처에 있는 쇼핑몰이나 공원으 로 운동을 하러 갈때 지갑은 물론 핸드폰도 집에다 두고 다닙니다.
또한 남아공에 도착한 직후 세 아들을 사립도 아닌 일반 고등학교를 보냈건만 방과후 실종되어 동네방 네를 뛰어 다녀야만 했습니다. 귀는 있으나 알아듣지
그렇게 본부에서 2개월간 생활하다가 선교사 훈련으 로 인해 본부를 나와야 하는 상황이 생겨 다른 곳에 자그마한 방 두개가 있는 집을 얻게 되었습니다. 당
찬양과 율동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흑인 마을의 어린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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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는 전화선으로 컴퓨터를 접속하여 저녁 7시 부 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인터넷을 사용 하곤 하였습 니다. 다섯 식구가 순번을 정해서 밤에 사용 하였는데 마 치 군대에서 내무반 불침번을 서는 듯한 착각에 빠 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은 어찌나 느리고 또 얼마나 자주 끊기던지..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인 터넷이 끊길 때마다 또다시 요금을 지출 해야만 하 였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남아공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었고, 우리 부부도 본부에서 온갖 바디 랭기지와 몸으로 때우는 대화를 하면서 2005년 7월에 웩 영입 의 마지막 훈련인 선교사 영입훈련 3개월 과정을 받 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아공은 영어 훈련장소가 아 닌, 저의 선교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KO MI
글_변동식 남아공 선교사 satto@sarang.org
한국인선교사가 새롭게 전자 잡지(앱)를 출시합니다 1995년 3월 창간된 이래 한국인선교사가 발행 된지 22년이 지났습니다. 그간 한국인선교사를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또한,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도와 물질로 동역해 주신 국내외 선교사님들과 애독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길거리에서 일용직을 구하는 일군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변동식 선교사 남아공에는 관광비자로 입국하였기에 가족 모두는 학생비자로 변경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이민국 에 가 필요한 서류를 받아 작성해서 또다시 찾아가면 하염없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다 운 좋게 담당자를 만나면 또다시 서류를 퇴짜 놓아 20 번은 족히 넘게 찾아가야 했습니다. 바쁠게 없는 느려터진 행정과 창구마다 직원들이 요 구하는 조건들도 제각기 달라서 이해하는데도 어려 움이 많은데 직원들의 고압적인 자세를 대하노라면, 고객을 왕 처럼 모시며‘빠름빠름’을 외치는 한국이 그리울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온 가족이 가슴을 졸이며 간절히 기도했던 학 생비자를 받게 되었고, 그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듯이 저녁식사 이후에 영어 성경책으로 가정예배 드리며 또한 각자에게 맡겨진 숙제를 하며 바쁜 시간들을 보 내었습니다. 또한 남아공에 도착한지 6개월 되었을 무렵, 학교에 서 돌아온 10학년인 큰 아들이 ‘엄마, 신기하게도 뒤 에서 말씀하고 계시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 작해요!’ 라고 자랑스럽게 언어가 들리기 시작한 이 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한국인선교사들의 선교행전을 기록하고, 빛그림을 통하여 선교 사역을 후세역사에 보존하고자 발행했던 한국인선교사가 이제 종이 발행의 사명을 마치고 전자 잡지 형식의 스마트폰 앱에서 새롭게 인사드리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동안 사랑해 주시고, 구독해 주신 애독자님들께 양해의 말씀과 함께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종이 발행은 많은 재정과 우편요금이 들어갑니다.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종이 발행을 병행하지 못함을 넓은 마음으로 양해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나!! 쉽게!! 빠르게!! 요즘 선교지에 계신 선교사님들께서는 대부분 스마트폰을 사용하십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한국인선교사 앱을 통해서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고 한국인 선교사를 쉽고 빠르게 만나실 수가 있습니다. 또한 선교지의 다양한 소식들을 빠르게 전하고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긴급한 기도요청이나 은혜로운 간증들도 앱을 통해서 직접 나누실 수가 있습니다. 중,단기 선교사님들과 선교 지망생들 , 그리고 단기 선교를 준비 중에 있는 개인 및 교회들의 소통의 창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선교사님들뿐만 아니라 국내외 애독자님들께서도 한국인선교사 앱을 적극 이용해 주시고 참여 및 전파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롭게 시작하는 한국인선교사 앱! 애독자님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9
선교의 가치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
(3) 국내 다문화 사역의 선교적 대안① 편집자주 : 한세대 조귀삼 교수의 선교의 가치를 통한 세상 바라보기를 10회 걸쳐 연재합니다.
다. 그러나 타종교나 타세계관 속에도 부분적인 진리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세계관의 변화 유도를 통한 복음의 수용 세계관이란“세상을 보는 창” 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세 계관은 마치 안경처럼 우인간의 몸에 밀착되어 있습니 다. 철학이란 의도적이고 의지적으로 고수하려고 하는 그 무엇인 반면에 세계관은 비의도적이고 비의지적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며 전이론(前理論)적입니다. 따 라서 이러한 세계관은 무의식적으로 습득된 것이기 때문 에 자신의 세계관을 상대화하지 못하고 절대화함으로서 만약 선교사가 타 문화권에 가서 사역을 할 때에는 많은 충격을 가지게 됩니다.
두 번째는 타종교가 선복음(Pre-Gospel)이라고 생각하 는 견해입니다. 이는 타종교 속에 진리의 복음이 잘 설명 되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미리 만들어 놓으신 것이라는 견해 입니다. 따라서 복음은‘최선의 길(the Best Way)’ 이기는 하지만‘유일한 길(the Only Way)’ 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세계관의 속성은 타락한 인간은(창 3장) 이성(理性)을 진 리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성(理性)은 경험한 것을 합리화 시켜서 하나의 틀을 만들고, 이 틀 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속성을 가지 고 있습니다(롬 3:11-18). 그리고 이러한 세계관은 다음과 같이 형성됩니다. 즉 세 계라는 실재(Reality)에 대한 지도를 그리는 과정입니다. 어린이는 부족한 이성(理性)과 부족한 경험으로 말미암 아 개방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경험과 이성(理性)의 합리화로 인해 패쇄적이고, 수용성 이 부족하여 개방적 이라기보다는 튕겨져 나오는 특성이 있습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다양한 세계관을 지닌 가운 데 한국에서의 문화적응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동아시 아의 불교권이나 힌두교 권에서 온 외국인은 업보(業報) 의 개념인‘삼야신(samnyasin)’ 을 가지고 있습니다. 업 보란 산스크리트 언어로‘카르마(Karma)’ 라고 부릅니 다. 즉 좋은 업을 쌓으면 좋은 곳에서 태어나고 나쁜 업 을 쌓으면 나쁜 곳에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타종교에 대한 성경적 관점은 타종교 를 우선 일반은총의 발로로 보는 견해입니다. 즉 인간은 본질적으로 절대자를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인정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관점에서의 생각은 독자 들의 마음에 의해서 각각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있겠지 만 저는 세 번째의 이론이 타당하다는 견해를 밝히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타종교의 형성은 인간의 타락의 결과물이기 때 문입니다. 첫째 인간의 타락은 자연계에 대한 지식을 상 실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의 이성과 상식에 근거 한 철학, 신화, 사상, 종교와 같은 것들이 생겨나게 되었 고, 하나님에 대한 불충분하고 왜곡된 지식을 진리로 착 각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도덕적 능력의 저하를 들 수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부당한 욕구들의 분출로 말미암아 이러한 욕구 들을 채우기 위하여 인간은 죄를 짓지 않을 수 없게 되었 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인간의 마음이 본질적으로 거짓 되고 심히 부패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렘 17:9). 세 번째는 자연계의 전락을 들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 님으로부터 땅을 관리하는 위임을 받고 있었습니다(창 1:26-28).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은 타락한 인 간들에게“땅이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다(창 3:17)” 고 선언하였습니다.
이는 삶에 있어서 선을 쌓을 것을 주창하고 있는 이론입 니다. 또한 삼야신 이란‘모든 것을 포기 한다’ 는 의미 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도의 과정 속에서 걸식하 는 것은 비난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이론입니다. 그리고 이슬람권에서 온 사람들은 코란을 신앙의 중심에 놓고 깊은 무슬림 신도로 살고 있습니다.
타락하기 전에는 인간은 만물을 영적인 권위로 다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후에는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자연계로 전락하였을 것입니다(창 9:2). 전락된 자연계의 원리는 진화론자들의 명제대로‘적자생존’ 과‘양육강식’ 으로 요약되는 생태구조로 바뀌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타종교의 세계관을 가지고 기독교인 곁에서 일하 는 그들을 향해 주로 세 가지 관점에서 생각하게 됩니다. 먼저는 타종교란 사단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견해입니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각자 다른 세계관을 지니고 있는 그들에게 선교의 방법을 찾아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습 니다. 선교의 본질을 생각해 볼 때, 어떤 세계관을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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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든지 그 틀을 변형시키는 작업이 곧 선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계관의 변화를 만드는 노력 가운 데에 필요한 것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타락한 인간을 향한 총체적 회복자가 그리스도이 심을 인식 시키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인 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사죄의 확신과 함께 새 생명 을 얻게 되고, 이를 통해서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 안을 얻게 됨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성공적으로 살아 갈 수 있는 능력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둘째는 내적 치유를 통한 변화를 가져 오도록 해야 합 니다. 인간의 자아 중심주의를 통한 방법이 아닌“하나 님이 누구시냐”분명한 깨달음을 통해서 믿음으로 은혜 를 체험함을 통한 자연적인 치유가 일어나야 합니다. 즉 “치유” 를 방해하는 쓴 뿌리, 상처(히 12:15) 등을 전능하 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치유되는 것은 세계관의 변화 요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셋째는 제자화를 통한 세계관의 변화를 가져오도 록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제자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구 절은 수없이 많지만 대표적으로 마태복음 28장 18-20 절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지상생활을 마감하면서 기독 교인들에게 주시는 중심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제자화 란 성경적 지식이나, 성구를 외우는 프로그램이 아닌 예 수님의 삶의 모습을 오늘날 전도의 현장에서 실제화 하 는 작업입니다. 즉 성경적 지식의 축척이 아니라 복음의 실용화의 현장을 통해서 신앙의 체질이 개선되는 작업이 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포괄적 다문화의 상호이해 세계관이 문화의 중심부에 있다고 하면 문화는 세계관 을 감싸고 있는 포괄적인 요소입니다. 폴 히버트(Paul Hibert)는 문화에 대해서“한 사회에서 습득된 행동과 사고의 양식들과 한 사회에 특징적인 생산품들의 종합 적 시스템 이다” 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 다고 하였습니다. 즉 문화는 정형화된 행동(patterned behavior)이며, 습득되어 진 것(learned)이며, 종합적 시 스템(integrated system)이며, 사고들(ideas)이며, 생산 품들(예술품들)이며, 한 사회의 특징적인 요소임을 말했 다. 아울러 문화란 인식적 차원, 감상적 차원 그리고 평 가적 차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들이야 말로 오랫동안 자신의 문 화권에서 생활한 나머지 사회체계와 문화 체계가 기독교 인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삶이란 사 회체계와 문화체계는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둘 가운데 어느 하나가 부재하면 다른 하나도 성립될 수 없 습니다. 일반적으로 사회체계는 사회적 행동의 경향들 입니다. 문화체계는 그 행동을 해석합니다. 결국 사회는 문화를 형성하며, 또한 문화는 사회를 형성합니다.
에 적응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따라서 이들 을 향한 한국 교회의 자세는 그들을 대할 때에 배타적인 관점이 아닌 포괄적 문화 이해의 접근 방법이 필요합니 다. 포괄적인 문화이해를 위해서 첫째는 문화 센터 운영 을 통한 문화 이해 강좌를 개설하는 것이 유효합니다. 두 번째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다문화 이해를 돕기 위 한 자국 성도들의 교육이 필요합니다. 한국인들은 단일 문화 속에서 성장하였습니다. 따라서 21세기의 다문화 시대를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과 문화관을 교정해야할 필 요가 있습니다. 즉 지구촌은 이미 다문화 속에서의 삶이 보편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한국의 교회들은 이주민들로 하여금 한국문화와 역사를 수용하도록 강요내지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그 러나 본질적으로는 그들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삶을 이 해하는 쌍방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합니다. 만약 예수 님이 이 땅에 도성인신을 통해서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지 않았다면 하나님과 인간간의 소통 을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론의 뒷받침은 손병돈의“여성결혼 이민자의 한국사회 적응 결정요인”속에서 언급되었습니다. 그의 조사 연구에 의하면 여성결혼 이민자의 삶의 만족도에 주는 주요한 변수는 여성결혼 이민자 가족 등 주변 인물 들이 여성결혼 이민자의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정도 에 따라서 결혼 만족이 높게 나타남을 언급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의 문화와 역사가 다른 자들과 하나의 신앙공 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들이 지닌 다양한 문화적, 역 사적 배경과 세계관을 이해하여 그들과 의사소통을 해야 하고 신앙공동체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 이주 노동자들과의 만남에는 예측 불가능한 일이 많기 때문에 성령의 사역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국내 거류자들로 하여금 자국의 문화유입을 시 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즉 그들의 도서, 영화, 음악, 예 술공연 등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한국에 자신들의 종교를 심어나가는 역선교가 나타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필자가 말한“역 선교” 의 용어는 이슬람 선 교사들이 한국을 이슬람종교화 하기 위해서 교회나 사회 각층에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KO MI
글_조귀삼 한세대 교수 canmission@naver.com
결국 이들 디아스포라 이주민의 근본적인 문제는 적응의 문제입니다. 지금껏 살았던 장소를 떠나서 새로운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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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반쪽과의 만남
Love Story
나를 아시는 주님 간 아! 내가 바라던 조건의 배우자일지도 모른다는 생 각이 들었다. 몇 번의 선과 교제의 요청을 받았었지만 마음의 응답을 하지 못했었는데 이번의 이 권사님의 제 안은 이루질 것 같은 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만나보기 전, 떡 줄 사람 은 생각도 않는데 김치 국부터 마신다는 옛 말이 있는 데, 이 권사님의 사촌을 만나보니 내가 눈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후에 놓여 진 돌짝 밭길이란... 나 좋다 는 사람도 여럿 있었건만, 이성의 마음을 얻기가 이렇 게 힘들어서야 싶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귀한 사람 이효순 선교사(좌) 요즘 아가서를 ASV(AMERCAN STANDARD VERSION)을 읽고 있다가“I KNOW YOU” ‘내가 , 너 를 알고 있다’ 고 하는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다. 주님이 나를 아신다고 하시는 말씀으로 이해가 되었다. 주님이 나를 아신다고 하는데 주님은 나를 어떻게 아시는 것 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이 나를 아신다는 말씀은 두려움도 느끼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운 마음을 갖 게도 한다. 지난 날 들을 돌이켜보면 주님은 나를 아시 는 분이심을 종종 느낄 수 있었다. 결혼 전에 이러한 배우자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목사님 가정이나 장로님 가정의 딸이면서 목 회를 좀 아는 배우자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 다. 나는 당시에 나 혼자 믿어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 를 해야 한다는 것이 좀 벅차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모 태신앙의 소유자? 이면서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니고 있어서 교회의 분위기를 알고 다년간의 목회 경험을 소 유한 배우자를 만난다면 좋을 텐데 하는 막연한 소망에 지나지 않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학교에서 내게 부족한 영어를 잠깐 배우셨고, 나를 늘 밝은 모습으로 대해주시던 주안장로 교회 권사님 한분이 내게 만남을 권하셨다. 작은 아버 지 딸이 동인천에 있는 모 장로교회 전임전도사로 있는 데, 내가 진짜 사랑하는 동생이니 만나 보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아버님은 교회의 장로님이시고 어머님은 집 사님이신 믿음의 가정이라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는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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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 후 1년여가 지나고 결혼 후인천 주안에서 신혼살림 을 시작하면서 첫 아이 세희가 태어났다. 그리고 장로회 신학대학원 졸업의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 이효순 선교 사가 주님이 내게 보내주신 바로 그 사람임을 하나씩 하 나씩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속으로 하던 말,‘아 ~ 이 사람을 하나님이 내게 보 내셨구나!’나의 아내는 내가 하는 말을 듣지 못했고 이 것을 밝히 말한 적도 없지만. 하나님에 의해서 내게 보 내진 그 응답의 사람이라는 것이 큰 위로가 되고 있다. 기독교의 지식은 추상적인 지식이 아니며, 단순한 정보 로서의 지식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서 체험되어지는 지 식이라고 한다. 그것을 구약에서는‘야다’ 라는 단어로 말한다. 이것은 체험지이다. 같은 집에서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으면서 동일한 사건을 겪으면서 알게 되는 부 부여야만 알 수 있는 신비로운 지식이다. 하나님은 내게 부부로서의 삶을 살게 하셨다.‘내가 너 를 안다, I know you' 또 다른 여성을 통해서 주님은 나 를 아신다고 말씀하셨던 신혼 시절의 주님의 음성을 다 시 상기해 보았다. KO MI
글_안성기 필리핀 선교사 askahn0105@naver.com
월간 한국인선교사 쉴터는 선교사님들을 섬기고자 마련된 작은 숙소입니다. 현재 인천시 구월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다섯 채가 1997년부터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용문의: www.kormi.net / ☎ (070) 8884-6636
믿음의 눈으로 그리는
빛그림 이야기 6
성령의 바람은 날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KO MI
사진_ 김동준 목사 kdj-007@hanmail.net
1995년 3월에 창간한 월간『한국인선교사』 는 해외에서 사역하는 한국인선교사의 삶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을 통하여 한국 교회의 선교 역사로 기록하고자 발행하는 선교잡지의 하나로서 선교사님들에게 무료 월간 보내기와 선교사님들을 위한 쉴터 운영 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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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관점으로 본
선교사의 위기관리 3
선교사의 재정적 위기 선교사의 재정적 위기는 크게 두 가지 외부적 요인을 갖 고 있습니다. 먼저는 선교후원을 하고 있는 모국 교회의 형편이 중요한데, 한 때 세계 2위의 선교대국이라 자랑 하던 한국교회의 선교는 그 순위가 급락하여 6위까지 밀 려났으며 그 하락 속도에 가속이 붙어 있는 것이 선교사 의 재정적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세계 선교에 대한 후원과 관심이 급속히 냉 각되는 이유로는 장기적 경기불황으로 인한 교인들의 경 제적 어려움과 줄어들고 있는 교세,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확산으로 인한 헌신의지의 감소 등을 들 수 있습 니다. 다음으로는 사역하고 있는 나라의 형편이 중요한 데, 선진국들의 보호무역주의가 강력한 힘을 얻으며 약 소국들의 경제 불황이 가중되고 있음으로 선교사의 재정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모라토리엄(moratorium) 을 선언하거나 IMF의 강력한 통제 하에 들어가거나 화 폐개혁 등의 선교지 환경은 선교사의 자비량 사역에 어 려움을 배가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선교를 준비하는 예비 선교사들을 위하여 후원하는 한국 교회의 후원 축소나 중단으로 인해 재정 적 위기에 맞닥뜨린 선교사들이 전문인 선교나 자비량 선교로 전환하려 하지만 미리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 에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선교를 준비하는 미래의 선교사들은 전문인 선교나 자비 량선교를 감당할 수 있는 준비를 철저히 하고 선교지로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외부의 후원에 의지하면서 온 전히 사역에 전념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나가고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자비량 선교의 시대로 급속히 전환 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선교사들을 양성하고 훈련시키는 신학교와 선교단체들 도 비즈니스 선교나 전문인 선교를 감당할 수 있는 실제 적 역량을 키우는 커리큘럼을 개발, 강화해야 합니다. 그 리고 선교 이론이나 타문화 연구 위주의 커리큘럼에서 벗어나 실제적이고 체험적인 자비량 역량을 키워주는 일 에 전력을 다 해야 합니다. 선교지에서 사역하고 있는 기존의 선교사들을 위하여 선교지에서 사역하고 있는 기존의 선교사들에게는 엄중 한 절약과 헌신이 요청됩니다. 충분히 검소하게 생활하 고 있겠지만 마른 수건을 짜낸다는 심정으로 더 절약하 는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과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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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서의 의무를 소홀히 여길 수는 없지만 학비가 매우 비싼 영어를 사용하는 국제학교에서 비교적 저렴한 현지 인 학교나 중국인 등의 다른 외국인 학교로 전학시킬 수 있다면 생활비의 상당 부분을 절약할 수 있으리라 짐작 됩니다. 90년대에 필자가 사역하던 곳에서 영어를 사용 하는 국제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을 부러워하는 중국인 학 교의 한국 자매가 있었습니다. 이제 곧 중국의 시대가 열 릴 테니 너희들이 어른이 될 때쯤이면 중국어를 잘 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시대로 변할 것이라고 그들을 위로 하고 격려했었다. 그리고 그 격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주거지도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시내 중심가나 한인 타 운이 아닌 현지인 마을로 옮기는 것도 주요 절약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필자는 항상 현지인 마을에 거주했는데, 언어 습득과 문화 적응은 물론 직, 간접 선교에 월등한 효율성이 있었습니다. 이 일들은 일반적 상황에서도 권 장할만한 일인데 하물며 재정적 위기의 상황에서는 더욱 이 필요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약만으로는 위기타개에 한계가 있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직업을 찾거나 사업을 통해서 자비량 선교 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기존 선교사들이 직업과 사업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믿을만한 현지 인들이나 후원하는 교회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성급하게 사업을 시작하기 보다는 느리고 답답하더라도 충분히 연구하고 시장조사를 하고, 자신의 특성과 형편 을 고려하여 기도하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 다. 당장 비즈니스 선교의 전선으로 뛰어들 필요가 없는 선교사라 할지라도 평상시에 비즈니스적인 마인드를 가 지고 항상 현지의 상황과 경제적 동향을 민감하게 인지 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KO MI
글_정진웅 주은혜교회 담임목사 성결대학교 선교학 객원교수 jjwrhe@hanmail.net
월간 한국인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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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박정례 간사 ☎ 010-2797-6103 kormi@kormi.net 후원계좌:국민012-21-0840-091조성수
미국 후원
문의: 이윤수 목사 ☎(909)276-0011 williamwooramlee@yahoo.co.kr
선교사 건강상식
낸시가 사랑하는
네 몸은 성전이라 3
하나님 만나기 23 주이름 찬양
벌레나 동물에 의한 손상(1)
1. 뱀에 물렸을 때 뱀에 물린 사고가 많지만 독사의 종류는 세 종류 정도이 다. 생물학적 분류상 논란이 있고 국가마다 다양한 독사가 있지만, 대략 우리나라에는 살모사, 까치살모사, 불독사의 세 가지 독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사는 머리가 위에서 보았을 때 삼각형 모양으로 생겼고 일반적으로 독 이 없는 뱀과 구별되므로 독사에 물렸을 때는 확인을 위해 뱀을 잡아 나중에 치료방침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처치는 먼저 환자를 안정시킨다. 물린 부위를 물로 씻어내 고 깨끗한 넓은 천 같은 것으로 물린 부위의 위, 아래쪽에 적당한 압력으로 묶는다. 이 때 너무 꽉 묶어 전혀 피가통 하지 않게 하면 안되고 정맥피는 몸으로 되돌아 가는 것을 막고, 동맥피는 어느 정도 흐를 수 있는 적당한 압력이 좋 다. 몸을 고정시키고 손상부위를 심장보다 낮게한 다음 빨 리 병원으로 이송한다. 단 입으로 어떤 것도 주지 않는다. 환자를 안정 시키고 움직이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자 꾸 움직이면 독이 몸으로 더 퍼질수 있다. 이때 주의점은 뱀에 물린 상처를 빨아내는 것은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아직 확인된 사항은 아니다. 특히 입에 상처 가 있는 상태에서 시행하면 구조자의 몸에도 독이 흡수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한다. 상처 자체의 처치에는 여러 민 간요법이 내려오지만 가능하면 된장이나 허브 등 다른 물 질을 상처에 바르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 려 상처를 자극하고 더럽히는 결과가 되기 쉽고, 또한 칼 로 상처를 절개하는 경우도 있는데 학문적으로 반드시 도 움이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 되는 부분이므로 이러한 처치 를 절대적으로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처치 때문에 의료기 관으로의 이송시간이 길어지는 것이 환자에게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전문가의 처치에 따라야 한다. KO MI
월간 『한국인선교사』는 도서잡지 윤리실천강령을 준수합니다. 월간 『한국인선교사』에 실린 글, 사진, 그림은 월간 『한국인선교사』의 서면 허가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선교지에 있다보면 벌레나 동물에 의해 손상을 받는 경우 가 있다. 이럴 경우, 어떠하든지 빨리 의료기관으로 이송 하는 것이 원칙이나, 의료기관으로 쉽게 갈 수 없거나, 멀 리 떨어져 있는 경우, 의료기관에 가기 까지 합병증을 예 방하는 목적으로 응급처치를 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대표적인 손상인 뱀과 개, 그리고 벌에 물렸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알아봄으로써, 여타 다른 동물과 벌레에 의 한 손상에 대해 대체할 수 있는 방법 또한 갈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햇살이 나를 비추고 부요할때에도 또는 거칠고 험한 길에 고통스러울 때에도
주이름 찬양 햇살이 나를 비추고 만물이 새롭게 될때 풍요의 강물이 흐르는 부요한 땅에 살때에 주님 찬양해
주이름 찬양 거치른 광야와 같은 인생길 걸어갈때 가는길 험할 지라도 고통이 따를지라도 주님 찬양해
우리는 주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기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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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 선생은 이석참바른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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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_안민희 자매 als367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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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의 소리
글_최승암 우간다 선교사 GMS ugachoi@gmail.com
아기 낳은 고통에 견주어도 약하지 않 다는 증언이 많은 것을 보면 확실히 쉽지 않은 열병인가 봅니다. 아침이면 ‘오늘 이 한나절을 어떻게 버틸까?’, 저녁이 되면 ‘오늘 이 밤을 어떻게 견 딜까?’(신 28:67, 욥 7:4) 고열로 인한 구토와 어지러움, 뒤척임이 2주 동안 이어졌습니다. 아내는 당시 함께 감염 되어 치료 중이던 첫째 아들을 함께 돌보느라 두 배로 정신이 없었지요. 투병을 지켜보던 동료 선교사가 잔 뜩 겁을 먹고 “말라리아 정~말 무섭구 나” 독백하던 대사가 귀에 남아 있습 니다. 말라리아로 사경을 헤매다 회복될 때 의미 있게 불렀던 노래가 있습니 다. ‘후일에 생명 그칠 때’라는 찬송으 로 성도가 이 땅을 떠날 때 많이 부르 지요(옛 찬송가 295장). ‘후일에 생명 그칠 때 여전히 찬송 못하나 성부의 집에 깰 때에 내 기쁨 한량 없겠네 내 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 하겠 네~’로 가사가 이어집니다. 손가락 하 나 움직일 수 없는 탈진에서 눈을 떠 보니 아버지 집이고 거기서 주님을 뵙
는다면 얼마나 기쁠까.. 영혼의 고백 을 담아 여러 차례 눈물로 불렀습니 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을 때 천국 의 소망이 그렇게 큰 위로와 은혜가 될 줄 몰랐습니다. 아프리카 선교 23년, 목사, 친족 안에 목회자가 많아 신학교에 가지 않기 위 해 결단과 헌신 필요 등 이 모두는 이 땅에서 그럴 듯 하지만 주님 앞에 설 때는 아무런 역할도 효과도 없을 것입 니다.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죄 씻음 받은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하니까요. 천국을 대망하며 우리의 어깨를 무겁 고 딱딱하게 하는 겉 휘장을 날마다 벗어야겠습니다. 다시 말라리아 얘기입니다. 파송교 회에 긴급 철야기도 소집령이 떨어짐 과 더불어 약을 바꾸고, 의사 선교사 님 집에 자원 입원(?)하는 난리법석을 떤 후에 말라리아는 회복세로 돌아섰 습니다. 말라리아에서 회복될 때는 이 상한 음식이 먹고 싶다고 합니다. 꼬 불쳐둔 된장을 풀어 멀건 국물로 쾌차 했다는 선배 선교사님도 계셨는데, 저 는 갑자기 ‘보신탕’이 먹고 싶었습니 다(지금은 이름이 바뀌었지만, 그때는 다들 그렇게 불렀지요). 참고로 저는 이 음식의 적극적 매니아 (mania)가 아닙니다. 아기를 가져 입 덧이 심할 때 예상치 않은 음식이 먹 고 싶은 것과 같은 맥락이겠지요. 하 여튼 대뇌의 전두엽에서 번개같이 떠 오른 생각은 확신으로, 확신은 믿음으 로, 믿음은 고백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그때 저를 위해 삶을 바친 ‘도꾸?’ ‘쫑?’ 이름도 가물 한 견 공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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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 그리고 보신탕”
십 수년 전, 선교지 우간다에서 말 라리아로 인해 천국 문턱을 넘나들던 때가 있었습니다. 방문한 지방 사역지 의 현지 성도들 보다 말라리아 모기가 더 격하게 환영했나 봅니다. 대게 말 라리아는 적절한 투약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당시는 가지고 있던 ‘클로르 퀸’이란 약에 저항성이 있는 말라리아 로 약효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 지요. 웬만한 질병이나 감기 몸살에는 ‘물 많이 드세요’라는 처방 외 달리 묘 책을 쓰지 않던 경북대 출신 UBF 의사 선교사님도 그때만큼은 매우 진지하 게 조치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