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선교사 (20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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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선교사 <동정녀 마리아의 기원> 어두운 신음과 눈물의 창가에 소망의 꽃처럼... 하얀 눈 꽃 송이 기별도 없이 하늘하늘 내려오면 님이여, 오랫동안 마른 땅에 새싹 돋아나게 하소서 밟히고 밟히어 저들의 신음조차 말라버린 히브루의 적도위에 한 줄기 빛으로 찾아와 주소서 아론의 마른 가지에 새싹 피어나 저들의 아픔 씻어주고, 걸을 수 있는 희망의 여정을 주신이여 이제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순례자의 길에 광명의 노래 부를 수 있는 눈꽃으로 피워 주소서 수천 년 얽매인 신음에 감격의 부둥킴으로 채워 주소서 님이여, 흰눈 내리면 아가들의 미소도 더욱 커지이다 키작은 가지에도 순결의 눈꽃 함박으로 피워 주시고 긴 밤 새워 광야를 지키는 파숫군의 어깨에도 더 이상 전쟁과 분열의 소식 그치고 평화와 기쁨의 눈꽃 가득 피어나 다함께 춤추는 아침이 되게 하소서 글_김동욱 필리핀 선교사(yeadalm@hanmail.net) 일러스트_김은영(lewis1212@naver.com)

2015 선교는 누구든지 해야하고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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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를 사랑하는

성목사 부부

우리의 보호자 조회 건수 수천만이 넘는 감동의 다큐멘터리 동영상 이 있습니다. 봄을 맞아 동면에서 깨어난 새끼곰이 새싹이 돋는 들판에서 뒹굴며 봄볕을 즐기고 있었습 니다. 이때 굶주린 재규어(즉, 아메리카표범)가 먹잇 감을 발견합니다. 숨을 죽이고 새끼곰에게 접근할 때 위험을 깨달은 새끼곰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날 살려 라 도망을 칩니다. 눈 녹은 물이 불어난 강줄기를 따 라 도망치지만 재규어의 걸음을 당할 수 없었습니다. 강둑을 가로질러 쓸어져있는 나무줄기를 타고 도망 하려 할 때 설상가상으로 나무가 부러지며 새끼곰은 강물 속으로 떨어집니다. 다행히 부러져 내린 나뭇가 지를 타고 강물 따라 피신하지만 강둑을 타고 달려온 재규어가 물에 떠내려 오는 새끼곰보다 먼저 자리를 잡고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새끼곰은 물로 뛰어들어 필사적으로 도망을 치지만 역부족이었습니 다. 재규어의 발톱에 얼굴은 피로 물듭니다. 도망갈 길도 없는 마지막 순간 새끼곰은 사력을 다해 소리치 며 재규어를 위협합니다. 한발 한발 다가오던 재규어 는 잠시 멈칫하더니 꼬리를 내리고 뒤돌아섭니다. 그 러나 새끼곰은 여전히 소리치며 최후의 몸부림을 합 니다. 아마 자기가 몸부림치며 고함을 치니 재규어가 겁이나 도망치는가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새끼곰 뒤에서 어미 곰이 두 발로 일어서서 재규어 를 향해 큰 입을 한껏 벌리고 입엔 거품까지 문채 자 식을 지키기 위해 포효하고 있었습니다. 재규어가 도 망친 것은 새끼곰의 발악에 가까운 울부짖음 때문이 아니라 그 뒤에 서서 위협적 자세로 자식을 지키려는 모성에 위험을 느낀 때문이었습니다. 뒤를 돌아본 새 끼곰은 그제야 어미를 향해 질주하고 어미 곰은 피투 성이가 된 새끼곰의 얼굴을 핥으며 모자상봉이 이루 어집니다. 구글창에‘재규어와 새끼 곰 동영상’ 을치 면 볼 수 있는 영상입니다. 내가 목회 정년을 앞두고 한국에서 목회할 때 새벽기 도 시간에 이 동영상을 신자들에게 보여드렸습니다. 동영상에 아무런 대사도 없으나 짧지만 감동적인 동 영상을 보는 신자들의 눈에 감격스런 눈물이 보였습 니다. 철없고 천방지축이던 나를 보호하고 키워주신 부모님을 떠올리기도 했을 것이고, 나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기도 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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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 속의 고독’ 이란 말이 있듯이 목회현장에서 또 는 선교현장에서 나 혼자 내팽겨진 듯 한 고독과 괴로 움의 시간을 겪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이 어려움을 알고 계실까? 아신다면 왜 침묵하 시는가?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요 15:18) 하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이 땅에 오신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가 당하는 괴로움을 같이 겪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신자를 박해하고 교회를 진멸하는 청년 사 울에게“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 느냐?”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실 뿐 아니라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구원하 시며 연약한 우리를 드시며 안으시는 분이 우리 아버 지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품 안에 사랑과 위로가 있으며 평안과 안전이 있습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 신의 손바닥에 새기시고 잊지 않고 지키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세상을 이기신 우 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날까지 주의 종들 과 함께 하시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역경에서 건져주 시고 환난에서 지켜주시는 보호자가 우리를 죄와 사 망에서 구원하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할렐루야! KO MI

글_성기호 목사 본지 발행인 keehosung@hanmail.net


라오스에서 보내 드리는

하늘나라 백성들

Face of Lao - 착한 할머니 “라오스” 는 필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이름으 로 다가온다. 라오스말로 라오, 영어로는 Laos, 헬 라어로는 λαὸ(라오) 혹은λαὸς(라오스)인데 벧전2: 9~10절에“오 직너희는…그의 소유된 백성(λαὸς) 이니…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 나님의 백성(λαὸς)이요”Laos는 하나님의 백성(my people)이라는 뜻이다. 라오스 땅은 이미 사람들 의 입에서“라오스” 라는 이름이 불릴 때마다 하나 님께서“내백성”이라는 불붙는 마음으로 이 땅을 보실 것이다.

(76x56cm charcoal pastel 2013)

라오스 사람들은 여전히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과 정서를 가지고 있다. 라오스에 거 주하는 한국사람 집에서 1,000$ 이상을 도둑맞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정황 상 그 집에 일하는 핼퍼나 경비원이 의심이 가 나 본 사람도 없고 경찰서에 신고를 했지 만 경찰들도 의심 간다는 두 사람을 심문 하였으나 둘 다 부인하던 중 라오스 집 주 인이 의심 가는 두 사람을 데리고 절에 가 서‘캄싸반’이라는 예식을 하면 분명히 알 수 있다고 하기에 자기가 그 두 사람을 데리고 가 결국은 자백을 받았다고 한다. ‘캄싸반'의심 가는 사람들을 절에 데려가 스님과 함께 예불 후 음식을 먹이는데 자 신이 정직하다면 잘 먹고 뒤탈도 없지만 죄를 범한 사람이 먹으면 배가 아프고 속 이 썩고 죽을 수 있다고 믿는다. 두 사람 모두 음식을 안 먹겠다고 했단다. 결국 두 사람을 경찰이 다시 취조한 결과 핼퍼는 작은 물건을 여러 차례 훔쳤고 경비가 그 돈을 훔쳤음을 자백 받았다. 미궁의 사건을 그들이 신뢰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의 권위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며 순 수한 마음과 함께 라오스에서 불교가 생활 깊숙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구약성경에도 이와 흡사한 방법이 나오는 데 (민수기5장, 부정한 여인 판단 법) 이런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 들(Laos)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 을 네 몸처럼 사랑해야 함을 오늘도 심어 본다. KO MI

글과 그림_그림-엄미정 라오스 선교사 & 화가 apost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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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은혜의 발자취Ⅰ

열번째 이야기 - ‘밥상 공동체’ 편집자주 : 온두라스 장세균 선교사의 20여년간 사역이야기 를 10번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65억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지구 상 현존하는 인구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 가 있는데 바로 "예수 영화"입니다. 예수영화는 누가 복음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그린 복음 전 도용 영화입니다. 저도 수 년 동안 온두라스 곳곳에서 예수 영화를 수 없이 상영하였습니다. 많은 지역 사람 들이 처음으로 영화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외부인들 이 잘 접근할 수 없는 모스키티아의 마을에도 공군 수 송기를 타고 가서 예수 영화를 상영하였던 기억이 납 니다. 예수 영화를 보면서 마음속에 인상 깊게 남아있 는 장면이 있는데 예수님이 마태를 부르는 장면입니 다. 마태는 성문 앞에서 열심히 세금을 걷는 중에 예 수님의 일행들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눈 길이 마태를 향하면서 마태는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순간의 시간이 지난 후 예수님께서는 "Sígueme" (나 를 따라오라) 간단한 한 마디로 그를 부르십니다. 즉 시 그는 모든 일손을 멈추고 주님의 부름에 응하는 장 면이 늘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하던 세리 마태를 왜 제자로 삼았을까요? 성경에서도 “세리와 죄인” 으로 함께 기록하면서 부정적으로 기록 하고 있지 않는가! "인사가 만사" 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누구를 발탁하여 어떤 자리에서 일하게 하는가 가 매우 중요하기에 나온 표현이지요. 정확한 기준과 판단으로 탁월한 선택을 요구하는 시대적인 조류에 비춰보면 소위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감히 통과할 수 없는 파격적인 조치인데, 왜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비 난과 비판을 감수하시면서 그를 택하셨을까요? 아마 당시 예루살렘 판 조간신문에 "예수, 세리 마태를 제 자로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사회면 중심 기사로 등장 하여, 많은 칼럼니스트들이 그 부당성에 대하여, 마태 의 취부 과정과 예수님의 편파적인 인사에 대하여 비 판하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 주님 께서는 그를 제자로 택하셨을까요?

시골 교회에서 함께 친교를 나누는 장세균 선교사

렌카 마을 사람과 함께 '예수 영화' 관람 예수님께서는 왜 마태를 그의 제자로 부르신 것일까 요? 당시 세리라는 직업은 가장 비난 받던 직업이었 습니다. 로마의 앞잡이로 부당하게 세금을 많이 걷어 서 치부하고 상납하던 매국노로 인식되던 시절, 이스 라엘 민족들이 이방인, 창기 및 죄인들과 같이 취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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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내 마음속에 예수님 당시 가 장 소외된 "미전도 종족" 그룹이 바로 세리들일 수 있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그 시대 의 "미전도 종족"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는 집회 현장에는 아마 얼씬하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복음을 들을 수 없었던 그들은 바로 요즈 음 선교에서 많이 사용하는 미전도 종족이었음이 틀 림없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수근 수근 거리는 당 시 교회 지도자들에게 그의 사역을 명확하게 말씀하 셨습니다.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 르러 오셨다." 예수님께서 마태의 부르심을 통하여 "


세리와 죄인"들 뿐 아니라 이 세상에는 구원받지 못할 자가 하나도 없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는 한 생명의 소중함을 늘 강조하셨지요. 이는 당시뿐 아니라 이 시대 우리들에게도 가장 소중한 주님의 따 스한 마음입니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 소중하"게 여 기시는 주님의 코라존 (마음이라는 스페인어)이지요.

자들을 모두 초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소외 받 을 수밖에 없던 "미전도 종족" 그룹인 동료 세리들과 죄인들을 초청하여 전도 집회를 하였지요. 그는 축제 의 잔치를 복음을 전하는 미전도 종족 전도 집회로 준 비하고 예수님을 강사로 모셨습니다. 아마 그는 예수 님의 말씀 후에 자신의 간증을 하면서 동료들에게 복 음을 전하였을 것입니다. 소외된 한 사람을 부르셔서 그가 속한 집단 및 종족을 구원하는 주님의 깊은 사랑 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산골교회에서 친교 시간을 위해 준비하는 손길 예수님의 판단은 정확하였습니다. 마태는 그의 이름 의 뜻과 같이“하나님의 선물” 과 같은 소중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제자들 가운데 가장 지성인으로서, 조직적인 사고와 이성적인 분석 능력으로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마태복음을 기록하였 지요. 그런데 말씀을 읽으면서 마태는 큰 잔치를 배설 하였다는 말씀에 관심이 집중이 되었습니다. 마태가 준비한 잔치는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넘치는 축제의 잔치요,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감사의 잔치였습니다. 마태는 정성을 다하여 잔치를 준비하고 예수님과 제

밥상 공동체로 함께 시가하는 교회 식구들 주님을 닮고자 소원하며 이 땅에서 작은 예수로 살아 가는 우리의 삶도 주님의 깊은 코라손을 본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삶이 축제의 잔치가 되어 기쁨의 공동체를 이 땅에 세워가야 합니다. 잔치를 통하여 복음을 증거하고 말씀을 나누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 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온두라스에서도 어쩌 면 가장 소외된 렌카 인디언 마을에 주님께서 부족한 저를 불러주셔서 이들과 삶을 나누는 귀한 기회를 주 셨는데 부족하지만 잔치를 통한 밥상공동체를 만들었 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식사는 밥만 나 누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나누는 곳"이라는 말이 있지 요. 어쩌면 평생 한번도 초청받아 잔치에 참여하는 기 회를 가져 보지 못한 분들을 한 가정씩 초청하여 정성 껏 음식을 차려놓고 함께 음식을 나누면서 기도하고, 찬양하며, "왜 내가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를 설명하면서 간증과 복음을 전하는 밥상전도 바로 이 것이 내가 꿈꾸며 준비하는 밥상공동체요 "삶으로 그 리는 복음" 사역이 될 것입니다. KO MI

소박하지만 정갈한 렌카 마을의 손님 밥상

글_ 장세균 온두라스 선교사 segyunj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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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은혜의 발자취Ⅱ

하나, ‘일본 선교사로의 부르심’ 편집자주 : 장철호 뉴질랜드 선교사의 20여년간 사역이야기 를 10번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저는 평소에 선교에 대한 관심은 많았으나 선교사는 아무나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말 고르고 뽑 으신 특별한 분들만 가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선 교사님이라면 너무 부럽고 존경스럽고 감히 가까이 가기도 두려울 정도로 귀하신 분들이라고 생각을 했 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은 감히 선교사로 가는 것은 꿈도 못 꾼다고 생각을 하며 살았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경건회가 끝나고 잔디밭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함께 기도를 하는데 저도 모르게 의분이 일어 났습니다. 아니 일본 사람들 지들이 뭔데 하나님 앞에 서 무릎을 꿇지 않는다는 말인가? 하나님께서 저 같 은 사람도 선교사로 불러주신다면 일본으로 가서 이 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고 싶다 고 서원을 해 버린 것입니다. 아차! 싶었으나 이미 물 은 엎질러졌고 그 이후 나는 선교사로 가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서원을 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리 고 한국의 시골로 들어가 농촌교회를 선교하는 교회 로 만들어 선교사를 후원하면 된다고 생각을 하였습 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많은 기회를 통해 체험 하게 하셨고, 30년 동안 자립을 하지 못했 던 농촌교회를 몇 년 만에 선교사 여러 명을 후원하는 교회로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가장 어렵다는 도시 개척교회를 섬겨봐야겠다는 마음이 들 었습니다. 습기냄새로 가득한 지하에서 시작한 교회 가 일 년도 안 되어 지상으로 올라왔고 참으로 아름다 운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선교회 선교 훈련 당시 현지인들 위해 기도하는 정은혜 선교사 그러던 어느 날, 총신대학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의 일 입니다. 일본에서 선교사로서 활동하시던 독일 선교 사님이 16년 동안이나 사역했으나 단 한 명도 주님께 로 인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본국으로부터 송환 명 령이 떨어졌다고 하셨습니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 에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들렀는데 경건회에서 간증이 나 설교를 부탁을 받아서 강단에 섰다고 하셨습니다. 키가 너무 커서 일본인들과 함께 생활 하시는 것이 힘 들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인들은 길거리에서 도 만나면 인사를 여러 번하고 헤어질 때도 상대방이 멀리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머리를 숙여서 인사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교사님은 키가 너 무 커서 그렇게 자주 인사를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 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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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경에서 처음 교회를 개척하고 함께한 사람들 갑자기 두려운 마음과 함께 오래 전에 서원한 것을 하 나님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하나님! 정말 저를 원하십니까? 제가 아니라도 훨씬 귀한 분 들이 많이 계시잖아요? 저는 단지 의분이 일어나서


그렇게 말했을 뿐인데요. 사실 전 일본 사람들이 정말 싫어요. 말하는 것도 간사스럽게 들리고, 생김새도 그 렇고, 음식도 매력이 없어요. 전 고추장 체질이지 간 장 체질이 아니거든요.”그런데도 하나님의 저를 향 한 태도는 요지부동이셨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대해 하나님의 확실한 응답을 받기 위해 저녁을 먹고 산에 올라가 밤새 기도를 하고 새벽에 내려와 새벽기도를 드리고 집에 와서 잠을 자는 일과가 40일간 진행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 밤새 기도하고 새벽녘에 두 손을 들고 부르짖고 있는데 저 건너편에서“건너와서 우리를 도와 달라” 는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라는 음 성이 들렸습니다. 산꼭대기에서 해운대 바다 건너편 에 무엇이 보인단 말인가? 라고 생각하며 보았더니 해가 막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정말 섬이 보이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쓰 시마 섬이라고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쓰시마 섬 이 거기서 보인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하나님, 정말 제가 일본 선교사로 가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그렇 다” 고 하셨습니다.

동경 우에노 공원에서 홈리스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장절호 선교사 그래서 다시 하나님과 기도로 줄다리기를 했습니다. “하나님! 만약에 저를 바꿔주신다면 제가 가겠습니 다. 첫째, 일본 말을 유창하게 해야 하는데 제가 일본 어 자체를 배우고 싶지가 않습니다. 일본어를 속히 습 득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둘째 는 일본 음식이 맞지가 않습니ㅏ. 매력없는 음식을 평생 먹는다고 생각을 하니 기가 막히는데 맛있게 먹 게 해주신다면 가겠습니다. 셋째는 일본 사람들을 사 랑하는 마음을 주시면 가겠습니다. 저는 정말 이 쪽바 리들이 싫습니다. 이가 갈립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 가 얼마나 혹독한 고난을 받으셨는지 이들의 잔혹성

을 세뇌를 시키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가 지 않아서 주님의 응답이 떨어졌습니다.“내가 다 해 줄테니까 너는 가기나 해라.”

현지 교회 목사님과 함께 섬겼던 우라와 복음 교회 그래서 국내에서의 목회 12년을 마무리하고 바울 선 교회에 지원하여 필리핀에서 십개월 동안 선교 훈련 을 받고, 본국에서 GMS교단 선교 훈련을 수료하였 습니다. 당시에는 일본 선교를 갈려고 하면 종교비자 를 받아야 하는데 선배들도 최소한 일년씩 기다리곤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청한지 3개월 만에 비자가 나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비자를 받고 3 개월 내에 일본으로 가지 않으면 비자가 취소된다는 말에 급히 가방 하나씩만 챙겨서 일본으로 날아갔는 데 공항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일본 사람들 의 말이 무슨 말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너무 정답게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본 가정에 식사 초대 를 받아서 갔는데 음식이 입에 쫙 달라 붙는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정말 맛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 니라 그들이 너무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습니다. 갑자 기 소름이 끼치면서 정말 하나님께서 나를 일본 영혼 들을 위해 부르셨구나 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 고 내가 이들을 위해 내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겠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그렇게도 미 워하고 원수같이 여겼던 일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 는 주님의 마음을 제 속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이들의 구원을 위한 주님과의 동행이 새로운 약속의 땅 일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KO MI

글_장철호 뉴질랜드 선교사 gideon91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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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

땅끝이야기Ⅰ

첫번째 - '불가능이 없는 세계선교' 편집자주 : 러시아 박광배 선교사의 선교를 향한 이야기를 10번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입니다. 이 지형을 트라이앵글로 생각하고 오래전부 터 북·중·러 3국이 공을 들인 결과 이제 기차 길을 연결하였으며 첫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한국 경제 지도가 급격히 바뀌고 있습니다. 이는 한 국 교회가 그렇게 염원하던 북한 선교의 문도 다른 장소에서 열려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그 문은 그렇게 염원하였던 한국이나 중국이 아닌 러시 아에서 열어가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 언론에서 뜨겁게 취재하였지만 일반인들은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기사가 있습니다. 러시아 하산 에서 북한 나진 선봉으로 이어지는 54킬로미터의 기 찻길입니다. 이는 현대식으로 보수 수리하여서 이어 진 길이기도 합니다. 이 길로 시베리아산 석탄이 나 진 선봉 부두에서 중국배로 선적이 되어 한국 포항제 철에 하역이 되고 있습다. 그래서 북한의 대외적인 대화의 문은 러시아를 통하여 열어가고 있습니다.

러시아 최초의 한국인 순교자인 김창식 선교사 묘지 앞에서 이 뿐이 아니다. 러시아의 건설회사가 20년 동안 노 후한 북한의 기찻길을 보수 수리하겠다고 계약서에 서명하였습니다. 북한은 그 공사비를 북한의 지하자 원을 개발하여서 갚겠다는 계획입니다. 북한으로서 는 지하자원을 개발하여서 좋고, 거기에 노후한 기찻 길을 보수 수리하니 얼마나 좋은 방법입니까? 이제

혹한의 날씨 속에 사역을 감당하는 박광배 선교사 제가 사역하는 러시아 연해주는 이런 경제적인 문제 와 외교적인 문제로 아주 민감합니다. 러시아 전체 지도를 놓고 보면 북한은 우랄 산맥 서쪽으로는 모스 크바 북한 대사간에서 동쪽으로는 나호드까 북한 영 사관에서 관리를 합니다. 그러나 한국 지도를 놓고 보면 북한 끝에서 왼쪽은 중국이고, 오른쪽은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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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주 농산물 중 하나인 감자 농장


세계 선교를 이야기하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북한 선교는 우리 민족의 염원이고, 중국과 러시아에서 사역하는 우리들에게 살아생전 북한에서 설교하고 전도할 날을 기도하고 있지 않는지..

은혜가 가득한 러시아 현지인 지도자 교육 이 길은 동해안으로 연결하여서 한국과 연결이 될 전 망입니다. 그러면 이미 동해안에서 개성까지 연결된 남북 기찻길과 연결이 되면서 한국과 북한, 러시아를 경유하여 유럽으로 연결되는 기찻길이 완성되게 됩 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하키 국가대표감독 부부 어릴 때 교회에서 목사님의 기도제목을 따라 기도하 였던 때가 있었습니다.“여러분 중국의 문이 열리고 저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의 문이 열려서 복음이 들 어가고 선교사를 파송하며 전도할 날을 위하여 기도 합시다.”사실 저에게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식의 기 도였습니다.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시 간이 지난 지금 저의 위치는 이미 24년을 러시아에 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입니다. 북한을 위한 우리의 기도, 세계선교를 위한 우리의 그 어떤 기도도 불가 능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역사 를 이루고 선교사를 그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KO MI

선교의 문을 통해 맺어진 축복의 열매

글_박광배 러시아 선교사 nakhodkach@hanmail.net

저는 이 길을 선교의 문이 열리는 길로 생각합니다. 러시아 국적을 가지고 24년을 러시아에서 사역하는 나에게는 한없이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김정일 생전에 하바롭스크를 방문하였을 때, 러 시아 정교회의 아름다움과 러시아 사람들의 정신세 계를 지배하는 러시아 정교회를 북한에도 세우고 싶 다고 요청하여서 이미 평양에는 러시아 정교회가 세 워졌습니다. 물론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제안으로 친 러시아 정책으로 가기 위한 일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하면서 하나님은 조용히 북한의 문을 조금씩 열어가 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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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

땅끝이야기Ⅱ

엄마이야기 첫번째 - 나는 '엄마'다 편집자주 : 바울 선교회 M K 맘 허은영 선교사의 삶과 사역 이야기를 10번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엄마가 되다. 첫아이의 유산으로 두 번째 임신은 처음부터 살얼음을 걸었습니다. 임신초기 출혈이 있어서 한약으로 몸을 추스르며 모든 사역들을 뒤로하고 방안에서 아이가 건 강하게 자라기를 기도하며 태교를 시작했습니다. 전도 사인 남편과 함께 경기도 안양시 삼막동, 불교가 97% 인 마을에 옛날 한옥 마루를 개조하여 겁 없이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뜨거운 7월, 동네 아이들을 위한 여름 성경학교를 준비하던 날 오랜 진통과 함께 사무엘이 태어났습니다. 오랜 기도 끝에 주신 아들이라 해서 지 인께서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어주셨습니다.

교에서 나도 피아노를 수강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프 니를 탔습니다. 시내에서 장을 보기 위해 남편은 횡단 보도에서 기다리게 하고 저는 과일가게를 향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가게에 진열되어 있던 과일들이 내 쪽 을 쏟아져 내리는 것이 아닙니까! 너무 놀라서 뒷걸음 질 하는데 땅의 흔들림이 느껴지고, 순간 가게 뒤편의 큰 건물이 내 쪽으로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놀 랐는지 얼른 피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 다. 그 때 뒤쪽에서‘은영아~’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 가 들렸다. 남편이 아들을 안고 뛰어 오고 있었습니다. 아수라장이 된 시장 한복판에서 한국어로 부르는 소리 는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조금 전에 아들을 안 고 신호등에서 기다리던 남편이 나를 찾아 달려온 것 입니다. 떨고 있는 내 손을 낚아 채고 달리기 시작했습 니다. 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길거리에 수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있었고 이리저리 전봇대가 쓰러져 전선이 깔려 있고 쓰러지는 건물들 더미에서 비명소리가 들여왔습니다. 길거리 위에 다리가 건물에 걸려 피가 철철 흐르는 사람들과 어디로 가야 할지 모 르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를 달려서 도착한 곳은 넓은 운동장이 있는 버 나함 공원 이었습니다. 남편은 내게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세대를 위한 엄마로서의 부르심의 삶을 살고 있는 허은영 선교사 엄마의 첫 외출 그리고... 사무엘이 첫돌을 지내고 두 번째 돌이 돌아올 무렵 우 리 가족은 필리핀 바기오에 쌍칼로스 하이츠 산골마을 아이들을 위한 성경학교를 이젠 아들과 함께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89년도에 남편이 바기오에 있는 신학대 학원으로 진로를 결정하고 주말에는 현지인 교회 사역 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을 따라 나선 타국은 날마다 눈물로 지새는 밤의 연속이었습니다. 너무 낯설고 무 조건 한국이 그리워 눈물만 흘렸습니다. 이런 엄마의 모습과는 달리 2살 된 사무엘은 동네 아이들과 너무 쉽게 친구가 되고 말이 아닌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모 습이 대견스러웠습니다. 어느 오후 남편이 다니는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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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바기오에서 오랜 기도의 선물 사무엘과 함께 “여보! 지진이야, 꽉 잡아.” 내 손을 이끌고 큰 나무들이 무성한 공원주변으로 달 렸습니다. 그 때 다시 땅이 흔들렸습다. 더 이상 뛸 수


가 없었습니다. 웅~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천둥 과 번개가 치고 소낙비가 쏟아졌습니다. 삽시간에 하 늘이 어두워졌습니다. 순간‘아~ 이게 종말이구나. 주님이 오시는 날이구나. 마치 그날 같았습니다. 하늘 의 소낙비도 피할 곳이 없었고 더욱이 흔들리는 땅위 에 서 있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남편의 손을 잡 고 아들을 가운데 안은 채 무릎을 꿇었습니다. 우리 가 족뿐만 아니라 쓰러지는 건물을 피해서 공원에 모인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 습니다. 우리 부부도 무릎 꿇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아무것도 아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하 나님의 이름 밖에는……. 오직 외마디. “하나님! 하나님! 살려주세요!” 순간 이렇게 주님 앞에서 서는구나! 라는 생각이 스쳤 고 마음으로 주님 뵐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전도사 로 믿음이 강하신 어머님을 통해 믿음의 유산을 물려 받았기에 어려서부터 교회 봉사는 삶의 전부였습니다. 신학교에 근무하면서 나름 사역자들을 위한 사역이라 는 사명도 있었고 또 전도사 남편 만나서 교회도 개척 하고 등등 주님 앞에 설 때에 내 이력서에는 수 없는 이력들로 꽉 차 있다는 자부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주님은 내게‘무엇 What?"을 물어보시지 않 으셨다.‘어떻게 How?’ 를 물으시는 것이 아닌가요!!

함께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서승학선교사(맨 오른쪽)과 자녀들 ‘순결하게, 거룩하게 살았느냐?’ 이 물음에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교회 에서 주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고 자부했는데 솔직히 거룩히 살지는 못했습니다. 거짓과 속임수 그리고 미 움과 불평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제 모습은 거룩과 너무 멀어져 있었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을 본 순간“주님 한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살려주시면 거룩하게 살겠습 니다”빗속에서 울며 드린 기도였습니다. 품에 안겨 있

는 아들 사무엘도 공포에 질려 울음을 그치질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제 마음에 주님의 두 번째 질문을 던 지셨습니다.‘저 죽어가는 영혼들 어떻게 할까요?’지 진으로 아수라장이 된 바기오시티! 지진으로 건물이 무 너져 내렸고 사람들의 고통의 소리가 하늘을 찌르는 듯 했습니다. 그 가운데 조용히 물으시는 주님은 저 죽어 가는 영혼에 대한 나의 반응을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네! 선교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헌신된 삶에 있어 가장 든든한 동역자인 가족들 90년도 바기오시를 강타한 진도 8의 지진은 굉장한 재난이었습니다. 모든 고층 건물들은 도미노가 스러 지듯 무너져 내렸고 UB대학에서 강의 듣던 학생들은 한 층이 지붕과 천장이 맞닿아 전체학생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처음 지진보다 더 무서운 것은 계속해서 발생되는 여진이었습니다. 또한 복구가 늦어지는 통 에 썩은 시체들로 인해 발생되는 전염병이 우리를 더 욱 두렵게 했습니다. 첫 아이 사무엘과 함께 엄마 선교 사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지진 후에 미 군의 도움으로 대피하게 되었고 한국으로 돌아와 길거 리와 전철에서 지진 사진들을 보여주며 예수님을 증거 했습니다. 분명 이 세상에 종말은 있으며 예수님만이 구원자시라는 것을 외치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습니 다. 교회에 파송을 요청하고 이젠 학생의 신분이 아닌 선교사로 필리핀을 다시 밟았습니다. 주님이 주신 영 혼구원의 사명을 가지고 필리핀 선교행전의 시작이었 습니다. 지진을 통한 선교사로 부르심이었습니다. KO MI

글_허은영 바울선교회 MK 선교사 baurim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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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반쪽과의 만남

Love Story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안 선교훈련을 받고 있었는데 마지막 과정이 해외선교 지 방문이었다. 해외 선교지를 다녀와야 졸업이 된다 는 것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때가 양가에서 결혼 이야기가 오갈 때여서 우리는 신혼여행을 중국으로 가 는 단기선교 여행으로 잡고 훈련센터의 배려로 인정받 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이지영 선교사, 그리고 딸과 함께 청년부시절 찬양팀으로 함께 봉사하던 자매가 같이 일 하는 언니가 있는데 너무 괜찮다며 꼭 만나보라며 몇 번 강하게 부탁을 해서 만났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 을 하며 휴가때 중국으로 2주 동안 단기선교를 다녀왔 던 때여서 가슴속에 몇 년만 짧게 선교지에서 봉사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아내를 처음 만난 후 알게 된 사실은 현재 교회를 잠시 쉰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으며 계속 만남을 갖기는 힘들겠다고 여겼다. 그러나 아침에 큐티를 할 때, 어떻게든 자매가 믿음을 찾고 다시 교회를 다니게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성경공부를 권하게 되었다. 그 당시 아내는 다니던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교회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믿음 있는 배 우자를 놓고 기도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다니던 교 회에서 함께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 작된 성경공부를 통해 아내의 선하고 남을 배려하며 욕심 없는 마음씨에 끌렸다. 특히 어려운 이웃을 불쌍 히 여기고 도우려는 모습을 보며 마음에 강한 확신이 왔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결혼 후 나의 모난 부 분들이 아내의 성품을 통해 다듬어지고 연단받게 되었 다.) 물론 성경공부도 열심히 준비하며 숙제(성경암송) 도 완벽하게 하는 모습은 더욱 사랑스러워 보였다. 이때 즈음부터 같은 교회 청년부 예배에 참석하며 교 제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교회 청년부 형님이 선교훈 련 같이 받자며 권하여 아내와 함께 등록하여 1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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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신혼여행 겸 단기선교로 중국 동북삼성을 누 비며 교회를 방문하던 중 마음속 깊이 도전을 주시는 음성을 듣고 선교사의 길을 걷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 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내에게 그간의 마음속에 받은 말씀들을 나누 며 조심스레 물어보았습니다. 아내의 대답은“하나님 께서 원하시면 해야죠,,,”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이렇 게 말해준 아내가 너무 고마웠다. 이렇게 동의를 얻고 신학교에 학사편입 후 졸업과 동시에 필리핀에서 영어 를 배우며 대학원을 마치고 한국에서 몇 년 부교역자 사역을 하며 훈련받고 목사 안수 후 2008년 선교지로 나오게 되었다. 선교지의 생활은 쉽지 않지만 아내의 내조와 교육환경 이 열악한 곳에서 올해 홈스쿨링으로 고졸 검정고시를 마친 외동딸과 함께 교회개척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내 힘을 의지 하는 선교가 아닌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이루어가심을 경험하는 중이다. KO MI

글_ 엄명훈 몽골 선교사 umjiny@naver.com


낸시가 사랑하는

하나님 만나기 1

그림_안민희 자매 als367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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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와 IT

세상 돋보기 1

블로그를 활용하십시오 저와 같은 성품을 가진 사람들은 교회에서 그리 환영 받지 못합니다. 자꾸 무언가를 바꾸자고 하니 변화를 싫어하는 어른들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 리의 생각이 바뀌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역이 결코 효 과적이지 못한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한국인 선교사를 처음 구상하는 단계에 같이 있었습 니다. 너무도 좋은 일이고 또 해야만 하는 일에 동의 하면서 그리고 그 일에 동참하겠다고 약속을 하고서 어느새 20년이 지났습니다. 혈기와 자신감으로 가득 했던 젊은이가 어느새 노인으로 접어드는 기로에 서 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제야 그 일에 아주 작은 반찬 하나를 놓게 만드셨습니다. 하 나님의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하나님은 결코‘아무나’ 에게 시키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 았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시는 자만이 그 일 을 감당할 수 있다는 귀한 사실을 말입니다.

많은 선교사님들이 홈페이지에 대한 문의를 해 오십 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한결 같습니다. 홈페이지 만들지 마시고요 블로그를 하십시오. 혹은 카카오스 토리를 하십시오. 이것이 제 대답입니다. 홈페이지는 유지를 위한 고정비용이 들어갑니다만 블로그는 그 렇지 않습니다. 선교사님들이 하시는 일 중 가장 중 요한 선교보고의 일과 선교현장의 일을 알리는 일은 블로그와 카카오톡이 최고입니다. 블로그는 네이버 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이게 얼마전까지 한국사람에 게만 허용이 되었는데 이젠 해외거주자 누구에게나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블로그의 가장 큰 장점은 만들기가 아주 쉽다는 것과 유지비가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블로그를 만 드는 자세한 방법은 제 블로그에 동영상강좌로 올려 놓겠습니다. 저는 미국 L A 인근에 거주하고 있습니 다. 안식년으로 이곳에 계시거나 혹 오실 계획이 있 으신 분들은 언제든 연락(909-971-7720) 주시면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KO MI

이젠 써 주심만으로 감사하면서‘선교사와 I T '란 주 제로 1년간 연재를 하려 합니다. 먼저 약속을 드릴 것은 언제든 제게 이메일을 주시면 제가 가진 모든 은사를 동원하여 도움을 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30년 전 찬송가 자동반주기란 것을 개발했습니다. 우연히 일본잡지에 나온 새로운 I C 를 보고, 이걸 이 용하면 전자 올갠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아이디어로 겁 없이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짧은 시간에 주셨는지 어떤 기능이 필 요하겠다 하는 생각에서 프로그램까지 일주일 만에 끝내게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적어도 2-3 개월은 걸려야 할 일인데...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 금까지도 그 외의 특별한 기능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 을 보면 하나님이 하신 일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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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윤승준 Kyelp 대표 sjyoon7231@gmail.com 블로그 blog.naver.com/joshua7231

선교사 디브리핑을 위한 모임 2월 14일 (토) 오후 5시 문의: 김종남 목사 (gbm1958@naver.com/010-2765-9654)


코미 게시판

선교사 건강상식

병은 없다(스트레스 대처법)

한국인선교사 국내후원

또한 반복적인 갈등, 긴장, 스트레스는 정신적인 건강 을 잃게 하여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무기력증 등을 일 으키며 또한 과식과 폭식을 하는 식습관이나 나쁜 생 활습관을 만들어 결국 육체적 건강까지 모두 잃게 됩 니다. 똑같은 암 환자인 경우에도 환자의 성격이나 스트레 스를 받는 정도에 따라 병의 진행이나 병이 낫는 시간 이 서로 달라지는 것도 환자가 받는 스트레스의 차이 에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평소에 불평을 자주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 람들은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 직업을 찾아 선택하거 나 삶의 스타일이나, 식생활습관, 생활환경 등과 함께 때로는 직업까지 바꾸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KO MI

*생활 속에 꼭 실천해야 할 것들 1. 좋은 일을 찾아 실천할 것. 2. 좋은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할 것. 3. 주변 사람들에게 겸손하게 인사를 잘 할 것. 4. 좋은 생각, 고운말, 좋은 일을 찾아 실천할 것 5.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찾아 실천할 것. 6. 주변 사람들의 칭찬 거리를 매일 찾아 열심히 칭찬 할 것. 7. 자신을 사랑하고 너그럽게 용서할 것.

쉴터 이야기

일반후원: 매월 천원부터 자유롭게 구독후원: 1년에 1만원 후원계좌:국민012-21-0840-091조성수 문의: 박정례 간사 (kormi@kormi.net/ ☎ 010-2797-6103) 월간 한국인선교사 쉴터는 선교사님들을 섬기고자 마련된 작은 숙소입니다. 현재 인천시 구월동의 한 빌라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다섯 채가 1997년부터 운영되고 있습니다.

운영헌금: 매월 1만원 후원계좌: 국민 512625-95-102325 조성수 이용문의: www.kormi.net / ☎ (02) 2268-6636

코미 메세지

재정 보고 ※

개인수표 보내실곳 1806 Morning Canyon Rd. Diamond bar, CA91765 수취인:KOREAN MISSIONARY 문의: 이윤수 목사 (williamwooramlee@yahoo.co.kr/ ☎ (909)276-0011&(909)912-9104)

월간 『한국인선교사』는 도서잡지 윤리실천강령을 준수합니다. 월간 『한국인선교사』에 실린 글, 사진, 그림은 월간 『한국인선교사』의 서면 허가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갈등, 긴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이 질병에 잘 걸리고 쉽게 낫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스트레스는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약화시키고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내분비호르몬 순환체계에 이상을 일 으켜 갑상선 이상, 유방 이상, 자궁 이상 등의 부인과 질환에 걸리게 됩니다.

한국인선교사 해외후원

이덕우 목사는 자연치유 전문가

다음 카페 <병은 없다> 운영 cafe.daum.net/leedokwoo 건강문의 nlc8004@hanmail.net

한구인선교사 하는일

*2014년 월간 한국인선교사를 섬겨주신 김 바이런 선교사님(1p, 일러스트), 장세균 선교 사님(4-5p, 은혜의 발자취Ⅰ), 김요셉 선교사님 (6-7p, 은혜의 발자취Ⅱ), 전철한 선교사님(810p, 땅끝이야기), 권상한 선생님(13p, 책과 생각), 김종남 목사님(14p, 마음산책), 이석 선생님(15p, 네 몸은 성전이라), 이용웅 선교사님(16p, 선교사 의 소리)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동안 월간 한국인선교사의 행정간사로 섬겼던 최숙 간사가 결혼합니다(2015년 2월 14일 1시, 대구원일교회). 그리고 캄보디아 선교사로 갑니다. *박정례 선교사(010-2797-6103)가 행정 간사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2015년 1월호는 남아공에서 디자인 편집을 담당하는 안세혁 간사의 교통사고로 2월호로 미뤄지게 되었습니다.

12월 재정보고 들온모든셈 3,295,050 나간모든셈 2,584,966 전월이월 -3,483,136 당월이월 -3,215,102

1995년 3월에 창간한 월간『한국인 선교사』 는 해외에서 사역하는 한국 인선교사의 삶과 활동에 대한 이야 기를 사진을 통하여 한국 교회의 선 교 역사로 기록하고자 발행하는 선 교잡지의 하나로서 선교사님들에게 무료 월간 보내기와 선교사님들을 위한 쉴터 운영 을 하고 있습니다.

후원이사장 서좌원 | 후원이사 권오기 권희숙 김석주 김영국 김재일 김희경 돌다리교회 박원홍 시카고한인교회 오은희 이동수 이상호 안동근 조주형 발행인 성기호 | 편집인 조성수 | 편집장 김종남 | 편집 안세혁 | 행정 박정례 | 지원 최숙 이석영 | 미국팀장 이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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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의 소리 많은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이렇게 질문을 한다. "선교사님은 선교지 에서 오랫동안 사셨으니 선교지가 고국보다 더 편하시겠네요?" 라고.. 사실은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닌데요 , 저도 우리나라가 편하고 좋은데요" 라고 대답하고 싶다.

글_편미선 필리핀 선교사 GP선교회 punmisun65@hotmail.com

나는 특히 성격이 감성적이다 보니 쿨하고 덤덤하게 헤어지는 것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 누군가와의 이별식은 항상 어설프고 어색하기 짝이 없다. 특히 자녀들과 헤어질 때 나는 내 스스로에게 울지 않고 덤덤하게 헤어지는 미션수행 성공을 주문하곤 한다. 선교지에서 태어난 19살 난 둘째 딸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을 준비 하며 처음으로 혼자 한국에서 머물면서 고국에 대해 배우며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 선교사부모의 주머니 사정을 감지하였는지 나름 열심히 알바 를 하며 경제활동을 하는 딸과 한 달 여간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 회를 만들어 한국에서 귀하고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짧은 시간을 뒤로 하고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공항에 오지 말고 그냥 집으로 가라고 해도 극구 공항까지 따라왔다. 하루에도 열 두 번 씩 엄마, 아빠 볼에 뽀 뽀를 해대고, 사랑고백을 하고... 우리 눈엔 아직도 어린 아이일 뿐인데, 엄마 아빠 보내놓고 혼자 쓸쓸해할 딸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게 저 려왔다. 우리에겐 정겹고 따뜻한 고향인 이곳이 딸에게는 낯설고 물설은 외국이나 다름없는 느낌 일텐데 이 치열한 삶에 현장에서 외로움을 견 디어 혼자 부딪히며 살아 내야하는 딸의 심정은 또 얼마나 막막할까? 생 각하니 참았던 눈물이 쑤욱하고 뱃속에서부터 올라왔다. 참자...참자...를 수없이 마음속으로 외치며 참는데 나도 모르게 꺼억 꺼억 울고 말았다. 그리하여 내 스스로에게 주어진 쿨한 헤어짐의 미션 실패다. 누군가는 '그렇게 여려서 어찌 선교를 하겠나?' 하실지 모르나 나뿐이 아닌 모든 선교사들이 아마 늘 이런 아픔을 겪고 있을게다. 이 순간도 어딘가에서 힘들게 외로움을 참고 견디어 내며 씩씩하게 생활 하고 있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홧팅!!!!을 외치며, 이런 아픔을 이겨내는 삶을 통해 선교지마다 아름다운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길 기대해본다. KO MI

월간「한국인선교사」 | 서울 중앙우체국 사서함 5998호 | 대표전화 02-2268-6636 HomePage http://www.kormi.net | E-mail kormi@kormi.net | 팩스 02-2268-6346

통권 197호 1995년 2월 6일 등록 등록번호 라-7036호 2015년 2월1일 발행

“선교사의 속마음”

또 "자녀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도 익숙하시겠네요?"라고 물으면 "그건 더욱이 아닌데요" 라고 대답하고 싶으나 질문한 사람들이 무안, 당황해 할까봐 마치 진짜 그런 듯이 고상함을 유지하며 '그렇지요' 라고 대답을 하고 속으로 쓴 웃음을 짓는다. 선교사라도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헤어짐 은 그 때마다 힘든 순간이고, 가슴 아프다. 특별히 부모가 함께 있어줘야 할 나이에 늘 부모를 그리워 하게하고, 외로움을 혼자 견디어 내게 한다 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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