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선교사 <겨울이 항상 고독한 여행이지만은 않습니다.> 앙상하게 마른 나뭇가지, 함께 이야기 들려주던 새들도 떠나고 길 가던 여행객도 추위에 웅크리고 찾아와 주지 않는 겨울, 세찬 바람 억세게 몰려와 생채기 남기고 떠나는 차운 계절은 고독과 외로움을 가져다주고 삶에 대한 의욕마저 떨어뜨리곤 합니다. 그러나, 겨울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아래로 아래로 뿌리를 내기 위해 차운 동토를 파고들고 외로움을 잊기 위해 뿌리에서 부터 줄기를 돌고 돌며 희망의 생명수를 전하고 또 전하며 봄 맞을 준비를 합니다. 앙상한 뼈대만 보이는 초라한 내면에서는, 봄 햇살이 찾아오기만 하면 곧장 푸르른 이파리를 싹 틔우기 위해 긴 밤을 설렘으로 준비합니다. 곳곳으로 떠나간 벗들이 없어도 그들의 이름 하나 하나 되새기며 벗들을 향한 그리움의 이젤위에 소망의 시를 써 내려 갑니다. 겨울을 반기는 이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더더욱 고국을 떠나 변방에서 겨울보다 더 차운 날을 보내는 이들은 겨울의 혹독한 고독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을 것입니다. 영적 순례길을 걷는 이들에게 겨울이란 어쩌면 생명의 주인을 더 깊이 생각하고 만나고 교제할 수 있는 내면으로의 풍성함을 위한 고독 속에서의 풍요로움을 찾는 소중한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길고 긴 겨울의 밤새우며, 영혼의 주인께 긴 사랑의 고백을 하며 차운 밤 새워본 자만이 차운 눈물 흘린 자를 끌어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글_김동욱 필리핀 선교사(yeadalm@hanmail.net) 일러스트_김은영(lewis1212@naver.com)
2015 선교는 누구든지 해야하고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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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를 사랑하는
성목사 부부
주를 위한 어리석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이스라엘의 복수법이 있 습니다. 흔히 동해보상법(同害 報償法)이라고 불리는 구약의 복수법은 복수의 한계를 정한 것입니다. 자기 가 당한 것 이상으로 복수하려는 것을 막는 규제법입 니다. 신약시대를 살면서도 구약의 동해보상법을 떠올릴 때 가 있습니다. 그 이상은 아니지만 내가 당한만큼은 갚 아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거짓 으로 무고(誣告)하고 사법당국에 고발하여 괴롭힘을 준 이들에게 똑같은 괴로움을 주는 것은 정의라는 생 각이 들었습니다. 무고와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면 그들 도 검찰에 불려갈 것이고, 또 자기들을 방어하기 위하 여 엄청난 액수의 변호사비를 지출할 것이니 그 괴로 움은 그들이 당할 마땅한 몫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 습니다. 그러나 그때 예수님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머리엔 가시관을 쓰시고 죄인처럼 빌라도 앞에 서신 주님. 욕 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 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 게 부탁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을 뿐 아니라 고난의 본을 보여 그 고난 의 자취를 따라오기 원하시는 주님의 얼굴이 떠올랐습 니다.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셨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으셨으 나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가신 예수님. 곤욕을 당 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시며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 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않으신 예수님을 내다보 며 예언하였던 이사야서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하시려 인간 되어 세상에 오시고 대속 의 죽음을 앞두고도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주 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여러 경우에 작성했던 고발장이 여전히 컴퓨터에 저 장되어 있었지만 단 한 건도 검찰이나 경찰에 내지 못 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의 권면도 한 몫을 하였습니다.“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 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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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 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육체적으로 괴롭고 경제적으로 낭비가 오고 말할 수 없는 멸시를 당하고 있지만 예수님을 떠올리니 내가 당하는 괴로움이 아무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 다. 아무 흠도 없으신 예수께서 나를 위해 그런 괴로움 을 참으셨는데 허물과 실수가 많은 내가 겪는 고통은 오히려 가볍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신 것처럼 나도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주님 주시는 평안, 세상 이 주는 것 같지 않은 평안이 넘침을 경험했습니다. 목회자로 또는 선교사로 사역하는 현장에서 겪는 어려 움이 많을 것입니다. 부당하게 괴로움을 주며 하나님 의 일을 방해하는 무리들에게 같은 정도의 복수를 하 는 것이 정의라고 판단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며 주님께서 끼쳐주신 고 난의 본을 따르려는 사역자들은“그리스도 때문에 어 리석음” (고전 4:10)을 기쁨으로 감당해야 하겠습니 다.“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 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 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생 각하며 주를 위해‘어리석은 삶’ 을 살 때 하나님의 자 녀로서 온전함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KO MI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괴로움을 참으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글_성기호 목사 본지 발행인 keehosung@hanmail.net
라오스에서 보내 드리는
하늘나라 백성들
Face of Lao - 단골손님이란?(1) “라오스” 는 필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이름으 로 다가온다. 라오스말로 라오, 영어로는 Laos, 헬 라어로는 λαὸ(라오) 혹은λαὸς(라오스)인데 벧전2: 9~10절에“오 직너희는…그의 소유된 백성(λαὸς) 이니…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 나님의 백성(λαὸς)이요”Laos는 하나님의 백성(my people)이라는 뜻이다. 라오스 땅은 이미 사람들 의 입에서“라오스” 라는 이름이 불릴 때마다 하나 님께서“내백성”이라는 불붙는 마음으로 이 땅을 보실 것이다.
(76x56cm charcoal pastel 2013)
라오스에 16년 넘게 살아오면서 이 땅과 이 땅 사람들의 수 없는 문화, 풍습과 만 난다. 때론 우리나라의 그것과 너무 흡사 하여 놀라고 때로는 너무 달라 놀라고.. 오늘은 룩카빠짬(단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단골이란 말에서는 따뜻함이 묻어 나온다. 뭔가 넉넉할 것 같고 덤을 많이 줄 것 같고 눈 내리는 추운 겨울 돈 없어도 배고플 때 찾아가면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말아 줄 것 같아 마음이 훈훈해 진 다. 우리나라에서는 단골손님이 최고! 라오스에 살면서도 많은 단골들이 만들어 졌다. 정육점, 식당, 옷 가게, 은행등.. 근 데 라오스에서는 단골이 될수록 물건 값을 깎아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올라가고 서비스의 질도 더 떨어져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때로는 기분 나빠서 단골에 게 이럴 수가 있냐고 따지기도 하지만 오 히려 그쪽에서 우리를 이상하게 볼뿐.. 라오스 사람들의 속내(니싸이 콘라오)를 들어봤는데 라오스에서는 단골이 될수록 그 손님에게 더 받아도 된다는 생각이 지 배적이란다. 친하니까 잘 아니까 남들보 다 자기와 친하니까 자기 사정을 살펴주어 야 하고 물건 값도 더 주어야 한다고 생각 한단다. 라오스 사람들은 이런 단골 개념 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라오스 격언에“콘후깐팽꾸와” (아는 사람 이 더 비싸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라 는 말이 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손님 입장에서 보면 그 주인 과 잘 아니까 더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 된 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역시 라오스는 착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다. 이 그림의 아이는 좋아서 웃는 것일까 아니면? KO MI
글과 그림_그림-엄미정 라오스 선교사 & 화가 apost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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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은혜의 발자취Ⅰ
선교사 천로역정(1) 편집자주 : 브라질 김선웅 선교사의 20여년간 사역이야기를 10번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프롤로그 효율적인 선교사역을 위해 가장 중요하면서 또한 가 장 어려운 부분이 현지 지도자 양성과 지도력 이양입 니다. 이와 관련해 SIM 소속 Harold Fuller 선교사는 보통 선교사가 교회를 개척할 때 4P단계의 발달 과정 을 (1. Pioneer Stage, 2. Parent Stage, 3. Partner Stage, 4. Participant Stage) 가진다고 했습니다. 그 동안 GP선교사로서의 선교 경험과 Harold Fuller의 이론을 실제적으로 비교하고, 면밀히 분석해본 결과, 그가 말한 선교지 교회 개척 4P단계의 종결점인 현지 인에 의한 선교사역이 파송된 선교사(우리)들보다 월 등한 결과를 이끌어낸다는데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 다. 그래서 브라질 선교사역 14년 만인 2007년에 하 나님께서는 우리에게 'Church Planting to Mission Planting' 사역의 첫 열매를 보게 하셨고, 개척한 교 회를 선교적 교회로 이끌어낼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한 교인들이 선교적 훈련을 받으면서 교회의 본질 과 목적을 알게 된 후부터는 헬몬 교회를 통하여 선교 사 Sending base 뿐만 아니라 현지선교 단체로(GPBrasil) 선교 지원을 이끄는 거점이 되게 하셨습니다.
구름이 거대한 원을 만들었고 집회중인 여의도 광장 중심에만 비가 멈췄습니다. 광장 주변으로는 여전히 비가 쏟아졌습니다. 그때 저는 그곳에 있었고 하늘이 열리는 신기한 자연현상을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마지막 날 집회를 이끌던 빌 브라이트 목사님과 김준 곤 목사님은 외쳤습니다. 세계를 향해 달려 나갈 청년 들이여 일어나라! 광장에 모인 수많은 젊은이들을 향 한 큰 도전이었습니다. 철없는 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당시의 저는 선교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그 순간 강 사 목사님의 선교적 초청에 나도 모르게 그만 자리에 서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선교사로 지명하 여 부른 첫날의 그 감동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습 니다. 당시 한국에서 파송한 선교사는 고작 100명을 넘지 못할 때였습니다. 그 대회에서만 10만 선교사 헌 신이 이루어졌습니다.
2010년 시작된 GP-brazil 선교회 이사 모임
2007년 예수행진중인 헬몬교회 성도들 하나님의 부르심과 순종 1980년 8월 소나기가 퍼부어져 내리던 여의도 광장에 서‘80 세계복음화 대성회’ 집회가 있었습니다. 수십 만의 인파가 무릎을 꿇고 차가운 빗줄기를 이기며 뜨 겁게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능력이었을까? 하늘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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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13일에 브라질 선교사로 파송 받고 21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저희 가족을 선택하셔서 당 신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이루셨다고 확신합니다. 사 실 저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성실한 동역자라기 보다는 불순종과 순간순간의 그릇된 판단으로 실패를 더 많이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 나님께서는 용서와 사랑으로 당신의 계획을 위해 저와 우리 가족을 사용하여 주셨습니다. Why me? 이 글을 (질문을) 통하여 부족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인 저를 어 떻게 하나님께서 50년간 기다리며 선교지의 교회들을 동원하여 선교회(지피브라질 선교회)를 만들도록 삶을 간섭하셨는지를 나누려고 합니다.
선교의 첫 번째 Pioneer(Servant) Stage 단계.(1994년 부터) 브라질에 도착하자마자 선교의 첫 번째 단계인 Pioneer기간을 6년간 보내게 되었습니다. 개척자란 자신감에 기초한 용기와 비전으로 미지의 세계를 개 척해 나가며 무엇인가를 이뤄내는 사람입니다. 창세 기 말씀 중에 하나님께서 이 땅의 첫 번째 개척자 아담 에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 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 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어 주신 아내와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선교 사역을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해결이 급선무였습니다.
원주민 마을 교인 심방
2004년 헬몬교회 앞에서 가족과 함께 선교 현장에서 떨어져 맞닥뜨린 개척자 단계 동안에 저와 우리 가족이 정복하고 이뤄낸 것은 무엇이었을 까? 솔직히 처음엔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습 니다. 무엇보다 당시 저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따른 건 강악화와 탈모증상으로 개척자로서 가장 필요했던 자 신감을 많이 잃었습니다. 그 문제로 얼마나 많이 울 며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를 위 해 주신 아내 역시 새로운 환경에 의한 스트레스로 대 단히 힘들어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서로를 탓하며 쉽 게 짜증을 내며 자주 다투었습니다. 무엇보다 당시에 가장 불편하게 했던 것은 동역자로서의 아내가 생활비 문제를 꺼낼 때였습니다. (브라질은 아시아와 달리 생 활비가 많이 듭니다. 당시 환율이 1: 0.84 이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사역비를 먼저 지출한 다음에 남는 것을 생활비로 사용했었습니다. 참고로 브라질 상파울 로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생활비가 높은 도시입니다). 사실 아내에게 생활비를 먼저 주고 난 다음 사역비를 써야 했는데 여건상 생활비를 제대로 주지 못해 가족 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생 활비 문제를 꺼낼 때 마다 깊은 절망감을 느껴야 했습 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하나님께서 동역자로 짝지
솔직히 선교 첫 기간에 제가 할 수 있었던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그저 살아남아야만 한 다는 것 밖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말도 안통하고 문화도 모르는데다가 그들은 겉으로는 존경 하는 척 하지만 동물원 원숭이 보듯 하고, 어쩌다 자기 네 말을 더듬더듬 하기라도 하면 신기해하며 웃곤 했 습니다. 현지인들의 관점으로 한국산 원숭이였던 제가 브라질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통과해야 하는 첫 번째 P 단계는 용기백배한 개척자로서의 모습이 아니 라 심신이 지쳐서 쌍코피가 나고 극심한 탈모로‘모골 이 송연’ 한(毛骨悚然) 모습의 긴장 단계였습니다. 이 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과 함께 6 년 동안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경험했던 무수한 문화 충격과 갈등, 경제적 어려움, 좀처럼 보여 지지 않는 사역의 열매로 인한 좌절감, 언어 소통의 불편함 등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저와 아내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 었습니다. 그런 폭풍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선교사 역을 계속해서 진행시키셨습니다. 어려운 재정상황에 서도 가족이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기적처럼 하 늘에서 만나가 쏟아졌고 황량한 들판에 교회의 기둥 들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교회 건축을 마치 고 유치원을 개원한 후 넘치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 감 사함으로 안식년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와도 같은 현지인들에게 교회와 유치 원, 나의 집, 차, 그 밖의 물건들을 맡기고 간다는 것 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 손 에 의탁하고 1년간의 안식년을 통해 고갈되었던 나의 영혼에 충만함과 쉼을 얻었고 건강도 회복했으며 필요 한 새로운 지식들로 재충전할 수 있었습니다. KO MI
글_ 김선웅 브라질 선교사 brazilgp@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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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은혜의 발자취Ⅱ
둘, ‘일본에서의 정착과 언어 훈련’ 편집자주 : 장철호 뉴질랜드 선교사의 20여년간 사역이야기 를 10번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저희 가족이 일본으로 갈 때까지 선교를 지원하겠다 는 후원교회가 나서지 않아서 오직 하나님의 절대 주 권을 가지시고 책임을 지시는 그분만을 믿고 무조건 갔습니다. 초창기에 돈이 없어 쌀을 사지 못하여 한 국에서 비상용으로 가방에 싸 간 라면을 계속 먹고 살았습니다. 아이들은 왜 우리는 밥을 먹지 않느냐고 밥을 달라고 보채었습니다. 가구도 살림살이도 전혀 없었기에 거리를 돌아다니며 버려진 쓰레기 속에서 가전 제품과 필요한 물품들을 장만해야 했습니다.
공부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러다가 어느 날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수업을 듣고 있는 학교의 교장 선생님께 가서 무조건 사정 이야 기를 하고 오후에도 돈을 내지 않고 공부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 까? 교장 선생님께서 두 말도 하지 않으시고 공부를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겠습 니까? 저는 제 귀를 의심하면서 감사를 표시하고 그 날부터 오후까지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10개 월만에 어느 정도 의사 소통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찬양을 하는 일본 엄마들의 모습 더니든 일본인 교회에서 식사를 나누며 교제하는 성도들 가정 예배를 매일 드리면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저 희들을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언어 습득 을 위해 학원에 가야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끼니 를 걱정하는 우리로서는 꿈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하 지만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으로 사람들을 동원하시고 어느날 갑자기 한국의 목사님들에게 저희 가족을 생 각나게 하셔서 선교비를 조금씩 채워주셨습니다. 그 래서 파트 타임이지만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도 신기한 것이 언어 공부를 하는 것이 그렇게 재미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꿀을 먹듯이 조 금씩 공부를 하니까 항상 아쉬웠습니다. 풀타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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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가족은 매일 가정 예배를 드리면서 일본에 입국 한 지 만 일년이 되면 일본 교회를 개척하게 해 달라 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 는 일이었지만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고 무조건 그 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후일, 함께 동역했던 테라 다 목사님의 이야기로는 만약에 필리핀 사람이 한국 에 와서 한국어를 일년간 공부를 하고 한국 교회를 개척하면 누가 그 교회를 가겠느냐고 말했는데 그 정 도로 나의 일본어 실력은 초보 수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외국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주위의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 때는 말 을 잘 하지 못하니 영어로 했다가 한자를 썼다가 손 짓발짓해 가면서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어느 날 굉장히 친절한 한 사람이 자기 집으로 우리 를 초대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갔더니 입구에 커다란 불단과 함께 온갖 잡신들을 섬기고 있 었습니다. 더듬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중에 이들이 남 묘호랑개교 지도자란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저희를 전도하기 위해서 초대를 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기독 교 선교사임을 밝히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하려고 했지만 언어가 너무 부족하여 속만 새까맣게 타 들어 갔습니다. 이들을 전도하기 위해 설득을 시키려고 하 면 할 수록 정말 저에 대해서 화가 났습니다. 왜 진 작에 좀 더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하지 못했을까 하 는 자책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빨리 언어를 마 스터해서 이런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 있게 살아 계신 하나님과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고 다짐을 했습 니다. 이런 충격이 저로 하여금 일본어를 빨리 습득 할 수 있도록 해준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 라 일본에서 일본인 영혼들을 붙들고 사역하시는 언 어가 조금 부족하신 선교사님의 설교를 몇 년간 번역 해 드렸던 것이 저에게는 엄청난 훈련과 언어의 진보 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은 동시통역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있는 관동 지역을 강타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학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태풍 때문 에 운동회가 연기되었으니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습 니다. 주일날 태풍은 관동지역을 통과하면서 많은 비 를 뿌리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전화가 오 기를 태풍 때문에 월요일 학교도 취소되고 화요일부 터 등교하며 수요일 쯤에 운동회를 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환호를 하였고 덤으로 월요일 까지 휴가를 얻게 된 것이었습니다. 수요일 날 운동 회에 갔더니 얼마나 햇살이 좋은지 운동장이 다 말랐 음은 물론이고 최고의 운동회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정말 좋으신 하나님께서 어린 아이들의 기도까지 들 어주셨습니다.
지난 쓰나미(2011년)때 해일이 덮치는 광경 선교사로 정착하는 시기에 너무 연약한 삶의 형편과 모양을 가지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작은 마음의 소원까지도 때마다 응답하시며 함께 하 시는 확신을 주시려고 그 때를 도우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KO MI
한국인의 영적 자녀들인 일본인 성도들과 예배 후 어느 날, 아이들이 학교에서 운동회를 하는데 주일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정 예배 시간에“운동회를 참석하고 싶으 니 환경과 지혜를 주셨으면” 하고 아이들과 함께 기 도를 했습니다. 연습은 열심히 했는데 금요일까지 소 식이 없었습니다. 토요일 저녁에 기도를 하면서 하나 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더 좋은 것으로 갚아주실 것이니 실망하지 말고 계속 기도를 하지고 하며 가정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갑자기 태풍이 올라와서 진로를 한국에서 일본 쪽으로 돌려 우리가
글_장철호 뉴질랜드 선교사 gideon91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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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
땅끝이야기Ⅰ
두번째 - '선교사역'에 가장 중요한 것은? 편집자주 : 러시아 박광배 선교사의 선교를 향한 이야기를 10 번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선교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이 질문을 던지면서 글을 시작합니다. 필자 스스로에게도 던지는 질문이 기도 합니다 뭘까? 후원자를 잘 만나는 것일까? 좋 은 선교지를 찾는 일일까? 좋은 동역자를 만나는 일일 까? 많은 것이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명 입니다.
기를 기대했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쪽에서 부는 북 한 개혁의 바람은 개성공단 못지않은 변화들이 일어나 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대북사업으로 훈춘을 거점으 로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도로 확장입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철로 보수를 하면서 러시아 핫산과 나진선봉으로 기찻길을 개통하여 시베 리아 석탄을 한국 포항제철로 운송하는 일을 성공적으 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여기 시간이 지난 조선일보 기사 를 참고로 첨부합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대북선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 가면서 북한선교를 한다는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제가 사역 하는 지역은 러시아와 중국 북한이 만나는 트라이 앵 글지역입니다. 일반적으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과 중국의 훈춘, 북한 나진 선봉지역을 묶어서 트라이 앵 글 지역으로 말합니다. 더 가깝게는 러시아에서 북한 바로 위에 위치한 핫산 지역을 말합니다. 이곳 연해주 에서는 엄청난 북한 인력들이 러시아로 들어와서 건설 과 다양한 분야에서 외화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 여성분들은 러시아도시 곳곳에 북한 식당을 운영 하면서 수입을 증대시키고 있습니다.
구소련권 시절 현지인 가정행사 대통령 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김석철 위원장)가 청 사진으로 제시한 '두만강 다국적 도시'의 현장인 이곳 은 몇 년 전부터 3국이 주변 개발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물밑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한국인과 조선족, 그리고 고려인과 북한인의 만남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통일이 꼭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통일을 생각하는 관점을 러시아 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통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의 전환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남한과 가까운 개 성에 공단을 설립하고 그곳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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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국내 언론 최초로 취재한 러시아 하산역에는 석 탄과 건설용 중장비를 실은 북한행 열차가 대기 중이 었다. 이곳에서 승객과 화물을 실은 시베리아 횡단열 차는 북한 두만강역을 거쳐 나진항으로 향한다. 불과 30~40㎞ 북쪽에 포시에트항과 자루비노항이 있지만, 러시아는 최근 나진항 3호 부두를 50년 장기 임차했 다. 나진은 러시아보다 항구 입지 여건이 좋을 뿐 아니 라 두만강과 연해주를 연계한 극동 개발의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북한 철도 현대화 작업에도 250 억달러(26조원) 투자 방침을 밝혔다. 극동 지역에 대 한 영향력 확대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두만강 북쪽 지 린(吉林)성 훈춘(王軍春)시에선 창춘(長春)과 연결되는
고속철도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린성과 헤이룽 장(黑龍江)성 등 내륙에서 생산되는 곡물과 목재 등을 훈춘으로 실어나르기 위한 것이다. 운반된 곡물·목 재는 북한 나진항이나 러시아 자루비노항을 거쳐 동해 와 태평양으로 나간다. 중국 정부는 2009년 '두만강개 발계획 요강'에 따라 2010년 '창지투(창춘·지린·투 먼) 선도구' 계획을 구체화한 데 이어 2012년에는 훈 춘시 일대를 '국제합작시범구'로 지정했다. 5년간 3차 례 개발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북한도 국제사회의 제 재 조치를 뚫는 출구로 두만강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나선시 원정리와 훈춘시 취안허(圈河) 세관을 잇는 두 만강대교 옆에는 '신(新)두만강대교'가 건설되고 있습 니다. 중국 쪽은 아직 착공을 안 했지만 북한 쪽에선 벌써 강 중간까지 교각이 섰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연 구위원은 "북·중·러가 동시에 두만강 개발을 추진 하는 것은 그만큼 개발 잠재력이 높고 상호 협력 필요 성이 크다는 의미"라며 "남·북·중·러가 공동으로 두만강 다국적 도시 개발에 나서면 성공을 거둘 수 있 다"고 했다. '두만강 다국적 도시' 프로젝트를 구상한 김석철(71)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은 "북한 경제를 살리고 통일의 전 기(轉機)를 마련하려면 뭔가 돌연변이같이 혁신적인 일이 '꽝'하고 일어나야 한다"며 "이런 불길을 일으킬 불쏘시개나 관솔(송진이 많아 등불의 재료로 쓰이는 소나무 가지)이 바로 두만강 다국적 도시이고 또 다른 것이 DMZ(비무장지대) 개발"이라고 말했다.
움이 있어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이 없이 선교에 프로젝트성으로 접근한 사람은 선교 비즈니스 로 전락해버립니다. 선교 비즈니스란 다른 비즈니스에는 자금을 투자 받았 으면 회수를 해줘야하고 지분 투자를 했으니 지분을 줘 야 합니다. 그러나 선교비는 받으면 끝입니다. 다시 돌 려 줘야하는 비용도 지분도 없습니다. 이러한 약점을 이용하여 우후죽순 선교 브러커들이 생겨나고 있습니 다. 진정성을 가지고 사역하는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 금씩 실체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대 북사역을 하기에 일일이 이 지면에 밝힐 수는 없지만 모든 사역의 종착점은 사명이 있는 자는 남아 있고, 다 른 목적으로 접근한 사람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에 개인 개인이 받은 사명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침례 세례 중인 안드레이와 박광배 선교사 이 사명이 어떤 고난도 이겨 내게 하고, 시련이 있어도 주님 바라보며 그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 다. 그곳이 아프리카든, 동남아든, 유러시아든, 어떤 오지이든, 이 사명 하나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바라기 는 대북사역이 앞으로 더욱 활발히 이루어져야 합니 다. 그러나 바람직한 대북사역, 검증된 사역, 먼저 현 장 경험이 있는 선배들의 자문과 충고도 귀를 기울이 며 하는 선교도 결코 돌아가는 길은 아닙니다. KO MI
글_박광배 러시아 선교사 nakhodkach@hanmail.net
환경와 기후를 넘어 북한 선교의 중심이 될 교회에서 제가 사역하는 현장이 북한 선교에 있어서 중심에 서 있습니다. 필자는 일찍이 북한 외교관들과 교제를 하 면서 24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과연 대북 선교는 가능 할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면 저희에 놓인 대북사 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에 대한 답은 이 글을 시작하면서 언급하였듯이 사명입니다. 북한 선교에 대한 사명을 가지고 뛰어든 사람은 어떤 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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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
땅끝이야기Ⅱ
'나는 엄마다' 두번째 이야기 편집자주 : 바울 선교회 MK맘 허은영 선교사의 삶과 사역 이야기를 10번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지진은 그 후에 오는 여진이 더 무섭습니다. 언제 다 시 땅이 흔들릴지 모르는 가운데 불시에 흔들어 대면 후다닥 건물 밖으로 뛰어 나와야 합니다. 바기오시의 모든 물 공급도 차단되고 오직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 에 의지해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건물 안 에서 잠을 청할 수 없어서 건물을 피해서 노숙을 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합니다. 저희는 한국 선교사 몇 가정이 모여서 합숙을 시작했습니다. 양식도 없고 저 희가 살던 집은 언덕위에 세워진 집인데 집이 많이 기 울어져서 한 발짝도 발을 디딜 수가 없었습니다. 겨우 이불과 옷들을 건져서 나왔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고 수습을 하지 못하니 콜레라등 전염병이 돌기 시 작했습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저희부부가 주말에 사역하던 쌍칼로스 하이츠의 학생 몇 명이 수소문 끝 에 저희가 임시 머무는 곳을 찾아왔습니다. 와~ 감동 이었습니다. 그들은 저희가족의 생사를 알기 위해 며 칠을 걸어서 찾아온 것입니다. 눈물과 함께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내 목숨의 위협 앞에서 감히 산을 넘어야 하는 교회를 찾아갈 엄두도 내지 못했기 때문 입니다. 지진을 통해 강하게 주신 영혼에 대한 부담은 급기야 선교사로 파송 받도록 길을 안내해 주셨고 그렇게 하 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필리핀의 선교사역은 시작되었 습니다.
정말 복음이 필요한 곳에서 시작하고자 바기오를 떠 나 싼페르난도 라우니온이라고 하는 마을로 거점을 옮겼습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오셔서 사람도 집도 준 비해 주고 계셨고 어느 지역으로 이사를 가든지 아들 사무엘은 왕성한 힘으로 친구들을 사귀고 온갖 개구 쟁이의 힘으로 현지인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웃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현지어인 일루까노를 배우고 또 그 선생님과 친구가 되는 등, 이렇게 사람들과 관 계를 맺고 어린이들이 모이면 길거리 성경방을 열었 습니다. 그다음 길거리 교회가 세워지고 주일학교 교 사들을 양육하며 선교를 익혀가고 있을 때 둘째인 샤 론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큰 아이를 낳고 6년 만입 니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것입니다. 그 때쯤, 기도하던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대한 기도가 열려지 고 필리핀을 디딤돌 삼아 더 멀리 그리고 더 복음이 간절한 땅으로 우리의 눈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결국 만6년의 필리핀 사역을 뒤로하고 아프리카로 두 번째 사역을 준비하러 한국으로 향했습니다.
보츠와나에 입국하여 가족들과 함께
96년 남아공 전통복장을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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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아프리카!!! 아프리카를 준비하는 저희가족에게 하나님은 큰 선물 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섬 선교를 열정적으로 하시 는 선배 목사님께서 바울선교회에서 꼭 파송을 받도 록 강권하시며 이동휘 목사님과 만남을 주선하셨습니 다. 필리핀에서 이미 이목사님과 바울선교회 선교사 들과 교제하며 좋은 선교단체임을 알고 있었는데 하
만 500만원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다 채워 주셨 습니다. 가서 정착하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두 달 생 활비도 챙겨서 주셨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 왜냐하 면 필리핀에서 철수하고 선교회 훈련 받는 동안도 계 속 재정적인 어려움이 컸기 때문에 아프리카를 준비 하면서도 그 먼 곳까지 가는 경비는 어찌해야 하는지 걱정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비자가 해결 되지 않는 상황과 또한 도울 자도 보이지 않는 상황 가운데 믿음으로 날짜를 정하고 비행기를 예약하자 하나님께서는 정확한 날에 떠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채워 주신 것입니다.
보츠와나 현지인 친구와 함께 당나귀를 타고 있는 사무엘 나님은 저희를 아프리카로 보내시면서 바울선교회 허 입도 함께 준비해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 도하심이었습니다. 바울선교회에서 일정기간 훈련을 마치고 아프리카 보츠와나로 파송식도 마쳤는데 정작 보츠와나로 들어갈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 때만 해도 인터넷이 자유롭지 못했고 또한 보츠와나는 우 리나라와 수교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한국에서 입국 방법을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바울선교회 의 여러 인맥을 통해 연결을 시도했지만 현지에 이미 들어가 있는 선교단체도 도울 수 없다는 대답이었습 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영국에서 제안이 들 어왔습니다. 한인교회를 하시는 선배목사님으로부터 영국으로 들어와 외국인사역을 맡아 함께 하자는 제 안이었습니다. 영국으로 몰려드는 제3세계의 사람들 을 선교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비자는 물론 사택과 모 든 필요한 것들을 교회에서 준비해 준다는 정말 선교 사로써는 최고의 조건이었습니다. 정작 가려고 하는 아프리카 보츠와나는 길이 보이지 않는데 누가 봐도 안정적인 영국은 일사천리로 모든 것이 갖춰진 곳이 었습니다. 급기야 마음에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나 누어진 마음을 가지고 남편은 금식하고 기도하며 결 정하겠다고 기도원을 찾았습니다. 금식이 끝나는 날 이른 새벽 남편은 기쁨 가득한 얼굴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두 마음을 품지 마라”그 날로 한 달 후 비행기표를 예약했습니다. 보츠와나 인 근 국가인 남아공으로 들어가기 위함이었습니다. 물 론 남아공에도 도와줄 사람은 없지만 비자 없이도 3 개월을 머물 수 있기에 남아공에 가서 보츠와나로 가 는 길을 찾아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결정하자 아무 준비도 되지 않던 아프리카행이 하나하나 채워 지기 시작했습니다. 필리핀으로 출발 할 때와는 달리 이젠 4가족이었습니다. 거리가 멀어서 비행기 표 값
남아공에서 비자를 기다리며 세번째 생일을 맞이한 샤론 1996년 10월 16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SA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아 들 사무엘과 이제 3살이 된 딸 샤론이와 함께 커다란 이민 가방 2개를 들고 말로만 듣던 아니 사진으로 접 했던 땅 검은 대륙이라 불리는 아프리카에 첫 발을 디 뎠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KO MI
글_허은영 바울선교회 MK 선교사 baurim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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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반쪽과의 만남
Love Story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하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것처럼 느껴져 친밀한 교 제의 시간을 보내는데 갑자기 마음에 한 음성이 들렸 고“네게 준 마지막 기회다.” 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 신 배우자였던 것이다. 형제에게“다음 주에 모기도원 에 있을 거다.”하고 전화를 끊었고 기도원에서 만나 대화하던 중에 형제가“저는 성령님께 순종해서 말할 뿐이니 자매님이 OK든 NO든 알아서 하시라며 그때 C 국에 가서 기도할 때에 자매님에 대한 부담감을 주셨 다.” 라고 했다. 성령께서 나와 그 형제에게 주셨던 마 음들을 나누고 그날부터 결혼에 대한 말씀의 확증과 서로 안에 사랑이 싹트기를 기도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사는 남편과 자녀들 열한 살의 한 소녀가 외국으로 나가서 다른 나라의 사 람들을 도우며 섬기리라는 꿈을 품고 자랐다. 구체적 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인생의 분명 한 목적이 있었고 되돌아보면 주님의 세밀한 간섭하심 이 있었다. 20대 초반에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고 기도 로 준비 중일 때 배우자를 위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 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행13:22) 이 말씀을 붙들고 장래 나의 배우자가 이러한 사람으 로 쓰임받기를 간구했다. 신학교에서 대학부 대학원 과정의 신학공부를 마치고 모선교회에서 선교훈련을 마친 후, 선교사로 파송되 어 C국에 들어가 언어 연수와 협력사역을 감당했다. 2 년 후에는 서북의 중심부로 가서 한족교회와 교사들을 훈련하며 섬기게 되었다. 그 무렵 이제까지 경험해 보 지 못한 마음 한곳이 텅 비어 있는 느낌, 영적인 영역 이 아닌 사람으로 채워져야만 하는 공허함이 몇 달간 계속하여 잠깐씩 느껴졌다. 그 이듬해 2월 모선교회의 훈련생들이 현지 언어 연수차 내가 있는 곳으로 오게 되었다. 우리는 함께 교회들을 방문하고 교제하고 합 심기도후 마무리 기도를 지금의 남편이 하는 중에 성 령께서 내게 말씀하셨다.“저 형제가 너를 품고 간다.” 고.. 그러나 아무런 기약도 없이 팀들은 기차를 타고 그곳을 떠났고 나는 한국으로 들어왔다. 한 달 후쯤 내가 머무는 곳에 나를 찾는 전화가 왔는 데 당시 전도사였던 그 형제였다. 통화중 마음이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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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중에 주께서 말씀하셨고 마음에 소원을 두 고 여쭈었던 것들에도 신실하게 응답해 주시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셨다. 한 가지 예로, 만난 지 한 달 도 안 되어 결혼을 결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에 형 제의 청혼이 고민이 되었다. 일주일의 시간을 달라하 고 하나님께 다시 묻고 한 가지 기적을 보게 되기를 구 했다. 누군가가‘둘은 조화를 이루어 잘 어울린다.’ 라 는 말을 하게 되면 결혼식을 올리고 사역지로 들어가 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아야지 하는 어찌 보면 무 지한(?) 결심을 했는데 그날 밤 철야 후에 잘 아는 권 사님께서“어쩜 두 분은 그렇게 조화를 잘 이루고 어 울리는지 넘 멋지다.” 고 말씀하셨다. 정말 놀랍고 감 사했다. 결혼식까지의 모든 과정들이 순조로웠고 기쁨 중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시간들이었다. 사랑하는 남편과 더불어 한족과 소수민족, 우리민족들을 섬기는 동안 우리에게 하은이와 요한이 두 자녀를 선물로 주 셨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시고 기뻐하시는 종 남편 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서 그 분의 뜻을 이루기 위 해 변함없이 달려가고 있어 늘 감사드린다. KO MI
글_ 김헵시바 C국 선교사 silklordok@hanmail.net
낸시가 사랑하는
하나님 만나기 2
내마음의 빈방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더불어 먹고이는 그는사관에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그와 구유에 뉘었으니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눅2:7 그림_안민희 자매 als367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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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와 IT
세상 돋보기 2
휴대폰과 네비게이션 인터넷조차 잘 되지 않는 환경에 계신 수많은 선교사 님들이 들으시면 우리의 환경을 너무도 모른다고 질 타하실 말씀이지만 실제 많은 선교사님들이 이 스마 트폰을 잘 활용하고 계십니다. 휴대폰이라는 것이 사 실 인터넷 환경에서 사용과 관계없이 통신망의 구축 에 따라 동작하는 것을 원칙으로 개발된 기기라 이런 환경이 잘 구축되지 않은 나라에선 그리 유용하지 않 은 것이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나라라고 생각하시 는 이곳 미국에서조차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곳이 너 무나 많이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휴대폰의 일반적인 사용과 스마트폰에서 많이 사용하는 네비게이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휴대폰은 영어로 Cellular Phone이라고 합니다. 통 신사에서 망을 구축할 때 하나의 셀이 담당하는 범위 를 반경 600미터라고 가정하면 이 셀들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 있는 통신망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동 중에 A 라는 셀에서 내 휴대폰을 붙들고 있다가 다른 셀로 넘어가면 이곳으로 관리가 이관됨을 말합 니다. 그런데 이 셀이 얼마나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 는가에 따라 통신의 질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비게이션의 경우 이미 그 지역의 지도 및 데이터를 모두 기계자체에 내장하고 있기에 아무 문제가 없지 만 스마트폰용 내비게이션의 경우 통신이 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자칫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내비게 이션의 원리는 내가 있는 곳을 GPS를 이용하여 알 고 난 후 목적지까지의 데이터를 통신망을 통해 가지 고 옵니다. 이때 해당 데이터의 양은 그리 많지 않으 니 요금에 신경 쓰실 정도가 되지 못합니다. 어쨌든 그 후는 GPS를 이용하여 이동 중의 현재 위치와 이 미 받아둔 목적지까지의 정보를 비교해 가며 방향 등 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동 중 목적지 를 바꾸려고 하는데 그곳이 통신망이 되지 않는 지역 이라면 데이터를 가져 올 방법이 없으므로 무용지물 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 스마트폰 내비게이션만을 믿 고 미국에서도 장거리 운전을 하다 낭패를 본 경우는 많이 있습니다. 인구가 많은 곳에서는 셀의 범위가 반경 600미터마 다 이지만 도심을 벗어나면 그 거리는 1.2 킬로미터 로 늘어납니다. 또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지역에는 대부분 통신망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장 거리 운행에서 스마트폰을 절대로 믿는 불상사가 없 으셨으면 합니다. KO MI
아직도 이동 중 휴대폰 통화의 끊어짐이 잦다면 대부 분 이 경우에 해당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따라서 휴 대폰은 자기를 관리하는 셀과의 통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의 위치를 알리게 되어 있습 니다. 그런데 만일 셀이 구성되어 있지 않은 곳을 지 나게 될 때는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그렇습니다. 휴대폰은 자신의 위치를 계속해서 알리 려 접속을 시도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배터리는 계속 방전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나 통화가 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배터리가 뜨거워지며 빨리 소모되는 것 을 경험 하셨을 것입니다. 따라서 휴대폰이 동작하지 않는 지역에서는 전원을 꺼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 렇지 않다면 차량용 충전기를 이용해서 계속 충전을 하셔야만 낭패를 면하실 수 있습니다. 요즈음 초행길이 아니더라도 운전 중 내비게이션 이 용은 아주 보편화 되어 있습니다. 자동차용 전용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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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윤승준 Kyelp 대표 sjyoon7231@gmail.com 블로그 blog.naver.com/joshua7231
선교사 디브리핑을 위한 모임 3월 14일 (토) 오후 5시 문의: 김종남 목사 (gbm1958@naver.com/010-2765-9654)
병은 없다
코미 게시판
선교사 건강상식 2
건초염(근육 통증)
한국인선교사 국내후원
건초염은 어떤 곳에서도 생길 수 있지만 주로 손목에 많이 발생하고 특히 손목을 많이 쓰는 사람에게 주로 많이 발생하며, 아기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산모, 아기 를 돌보는 할머니, 수공예 작업자, 피아니스트 등에 많 이 발생한다. 손목 외에도 어깨, 무릎, 발꿈치 후면, 손가락 등에도 자 주 발생한다.
쉴터 이야기
이러한 건초염이 생기면 관절이 뻐근하고 통증이 발생 하며 또한 부종이 생기고 염증이 난 부위를 누를 땐 심 한 압통이 생기게 된다. 건초염 환자들이 주로 여름철에 많이 발병하는 것은 여 름철에는 활동량이 많아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체내 비타민과 미네랄, 염분 등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건초염을 예방하고 치유하기 위해서는 무리한 일이나 운동을 삼가하고 적절한 휴식과 규칙적인 생활 을 습관화해야 하며 적극적인 치유를 위해서는 현미식, 생수, 죽염, 감잎차, 생 채소, 1분 냉·온욕, 풍욕, 겨자 찜질 등을 실시하고 자연건강법을 따라 실천해야 한다. 자연건강법을 따라 실천하게 되면 먼저 체내 노폐물이 자연적으로 배출되어 피가 깨끗해지면서 건초염뿐만 아니라 몸이 전체적으로 건강해져서 다른 여러 가지 질 병들도 함께 치유된다. KO 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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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후원: 매월 천원부터 자유롭게 구독후원: 1년에 1만원 후원계좌:국민012-21-0840-091조성수 문의: 박정례 간사 (kormi@kormi.net/ ☎ 010-2797-6103) 월간 한국인선교사 쉴터는 선교사님들을 섬기고자 마련된 작은 숙소입니다. 현재 인천시 구월동의 한 빌라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다섯 채가 1997년부터 운영되고 있습니다.
운영헌금: 매월 1만원 후원계좌: 국민 512625-95-102325 조성수 이용문의: www.kormi.net / ☎ (02) 2268-6636
코미 메세지
*월간 한국인선교사 20주년 감사예배 및 선교잔치가 신대방동 보라매교회 (서좌원 목사)에서 있습니다. 일시 : 2015년 5월 11(월)-12(화) 문의 : 김종남 목사 (010-2765-9654/gbm1958@naver.com) *인천 쉴터에서 선교사들과 후원자들이 함께 하는 기도모임이 있습니다. 일시 : 3월 6일(목) 저녁 7시 문의 : 박정례 간사(02-2268-6636)
재정 보고
이덕우 목사는 자연치유 전문가
다음 카페 <병은 없다> 운영 cafe.daum.net/leedokwoo 건강문의 nlc8004@hanmail.net
개인수표 보내실곳 1806 Morning Canyon Rd. Diamond bar, CA91765 수취인:KOREAN MISSIONARY 문의: 이윤수 목사 (williamwooramlee@yahoo.co.kr/ ☎ (909)276-0011&(909)912-9104)
월간 『한국인선교사』는 도서잡지 윤리실천강령을 준수합니다. 월간 『한국인선교사』에 실린 글, 사진, 그림은 월간 『한국인선교사』의 서면 허가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건초염은 근육을 움직일 때 나타나는 통증을 말한다. 건이란 근육과 뼈를 연결해 주는 결합조직으로 이 건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건초라 하는데 근육을 움직일 때마 다 활액이라는 액이 들어 있어 원활하게 하지만 근육의 무리한 사용으로 건초 또는 활액에 염증이 생기게 되는 데 이것을 건초염이라 한다.
한국인선교사 해외후원
한구인선교사 하는일
1월 재정보고 들온모든셈 2,390,850 나간모든셈 2,000,480 전월이월 -3,215,102 당월이월 -2,824,732
1995년 3월에 창간한 월간『한국인 선교사』 는 해외에서 사역하는 한국 인선교사의 삶과 활동에 대한 이야 기를 사진을 통하여 한국 교회의 선 교 역사로 기록하고자 발행하는 선 교잡지의 하나로서 선교사님들에게 무료 월간 보내기와 선교사님들을 위한 쉴터 운영 을 하고 있습니다.
후원이사장 서좌원 | 후원이사 권오기 권희숙 김석주 김영국 김재일 김희경 돌다리교회 박원홍 시카고한인교회 오은희 이동수 이상호 안동근 조주형 발행인 성기호 | 편집인 조성수 | 편집장 김종남 | 편집 안세혁 | 행정 박정례 | 지원 최숙 이석영 | 미국팀장 이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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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의 소리 어느 후배 선교사가 속상해 하며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파송교회 목사와 장로가 선교지를 방문하였는데 선교사가 사는 집을 보고 선교사가 살기에 집이 너무 큰 것 아니냐고 찜찜해 하며 한국으로 귀국했다고 한다.
글_편미선 필리핀 선교사 GP선교회 punmisun65@hotmail.com
얼마 전 회의 참석차, 남편과 말레이시아 꾸찡의 한 외국인 선교사집을 방문하였다. 이층으로 된 집인데 방이 여섯 개 정도 되고, 거실도 아주 넓어 2,30명은 충분히 모여 교제할 수 있는 아주 넓고 좋은 집이었다. 그 집에 들어가 앉아서 나도 모르게 남편 귀에 대고 "선교사가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아도 되나? 외국 선교사들은 참 사치스러운 것 같지?"라고 속삭였다. 약 7개국에서 온 선교사들과 함께 모여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저녁 시간이 되어 식탁에 모였다. 깜짝 놀랐다. 식탁에 차려있는 음식은 빵과 파스타와 샐러드뿐 이었는데,
저녁을 먹고 다음 날의 일정 때문에 취침을 하려고 하는데 약속이나 한 듯이 각자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위층으로 올라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사치스러운 외국인 선교사들이었으 면 좋은 호텔로 갔어야 하는데 마치 자기 집에 온 것처럼 꽤나 익숙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속으로 놀랐다. 이들에게는 그저 사역에 꼭 필요한 집이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인도네시아로 오고가는 선교사들에게 편안한 쉼의 공간을 제공해주고, 그 공간에서 여러 가지 많은 전략을 논의하고 건설적인 선교를 위해 고심하는 그런 장소에 불과함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느낌만으로 알 수 있었다. 선교사가 어떤 집에서 지내는지, 어떤 도시에서 사는지, 어떤 음식을 먹는지 이런 것들로 진짜 선교사, 가짜 선교사를 논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계신지, 그 방향을 함께 바라보며 가다보면 좋은 집에서 살 수도 있고, 때로는 초가집에서 살 수도 있고, 도시를 지날 수도 있고, 사막을 지날 수도 있고, 풍성한 만찬으로 배부를 수 있고, 때로는 굶을 수도 있을 것이다. 주님이 머무신 곳에 머물고, 주님이 가시는 그 길을 따르는 자가 진짜 선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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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선교사”
사실 그 후배 선교사집은 그 가족이 사는 집이고, 단기 팀들이 오면 숙소가 되기도 하고, 교인들이 모여 교제하는 장소가 되기도 하는 다용도 집이다. 특히, 이 지역은 호텔비가 터무니없이 비싸 호텔에서 4박 정도 하는 금액으로 한 달 치 랜트비를 해결 할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렌트를 하여 살고 있다. 다른 선교사들처럼 선교센터 건물이 없기에 가정집을 다목적으로 오픈하여 선교사역에 필요한 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음식의 초라함과 상관없이 얼마나 풍성하게 교제를 나누는지... 단순한 음식이지만 아낌없는 감사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 감동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