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선교사 (20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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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선교사 <만나 줍는 여인> 이 새벽 안개 자욱하여 그대 모습 보이지 않습니다 무릎으로 나아가는 님의 자태마져 가리운 새벽 수 천 년 전설을 머금고 나아가는 여인을 봅니다 내 영혼의 바구니에 채울 양식을 주어 담으려 벌판을 감싸고 내려 앉은 안개 언덕을 오르는 여인네의 입술에 사랑의 숨결 맺히어 있습니다. 내 고된 억압의 사슬 풀어내고 광야 허기진 다리 끌며 걸어 나올 때 구름과 불기둥으로 이끌어 주신 님 삶의 지친 마디마디 쓰디 쓴 물 흘러나와 영혼의 호흡 힘겨울 때도 생명수 가지로 생수 만들어 주신 님. 안개 속 꿈길 펼치어 영혼의 바구니 가득 만나 채워 주시던 다순 숨결까지 바구니에 채우며 안개 낀 언덕 오르던 여인의 발걸음이 고운 새벽길에서 그대 영혼의 고운 숨결을 느낍니다. 글_김동욱 필리핀 선교사(yeadalm@hanmail.net) 일러스트_김은영(lewis1212@naver.com)

2015 선교는 누구든지 해야하고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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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호는 정기휴간입니다 1


선교사를 사랑하는

성목사 부부

쩐의 전쟁 어느 선교사님께서“이제부터는‘쩐의 전쟁’입니 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쩐의 전쟁’ 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대화의 내용으로 보아 지금 부터는‘돈과의 전쟁’ 이란 의미로 해석이 되었습니 다. 할 일은 많은데 그 일을 추진하려면 재정적 뒷받 침이 있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래서 재정적 후원의 절실함을 그렇게 표현하셨을 것입니 다. 어느 TV프로그램의 종영작(終映作) 속에‘쩐의 전 쟁’ 이란 제목을 본 적이 있습니다. 돈 없는 사람들의 절실한 이야기를 그렸다기보다 가진 자 있는 자들의 탐욕을 그린 드라마나 영화일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되면‘쩐의 전쟁’ 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 찾아보려 합니다. ‘쩐의 전쟁’ 을 언급하셨던 선교사님은 필요한 자금 의 확보를 위해 비장한 결심을 내비췄습니다. 선교지 에서 복음 뿐 아니라 자기 목숨까지 아낌없이 주려하 던 바울 사도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당 장 필요한 선교비가 조달되지 않는 현실에서 진행하 는 사역의 완성을 위해서는 자기 목숨까지 내놓겠다 는 비장한 결심을 태연하게 아니 웃음 띤 얼굴로 이 야기할 때 듣는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뭉클하고 뜨거 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한국에서 젊을 때 들어놓았던 암보험을 한국에 나가 해약하고 그간 부어왔던 보험료를 환급받으면 어느 정도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으리란 이야기였습 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자연사(自然死)할 각오가 되 어있다 했습니다. 혹시 병들게 될 경우 병원에 가지 않으면 자연사하는 것이란 의미일 것입니다.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복음’ 을 소개하는 바울 사도의 글에 서“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 시고” 라고 말하며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셨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산 바울은“하나님의 은혜 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 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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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 가려 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의 절개를 지키려고 목숨을 아끼지 않는 성도들의 이야기를 듣 게 됩니다. 또 선교현장에서 순교 내지 순직하는 선 교사님들의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세상적인 관점에 서 볼 때는 어리석은 죽음 같으나 성도의 죽음을 하 나님께서는 귀중히 보신다 했습니다(시116:15).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신 예수 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 뒤를 따르는 제자들 역시 목숨을 바쳐 복음을 전하는 것이 마땅하다 할 것입니 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마음과 목숨을 다 바쳐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 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 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신대로(롬8:32) 하나 님께서는 독생자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주의 자녀들에 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이 시기에 목숨을 아끼지 않고 주의 일에 헌신하시는 주 의 종들에게 가장 필요한 때 가장 좋은 것으로 넉넉 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까마귀를 통해서든지 과부 의 손길을 통해서도 주의 종들의 필요는 부족함 없이 채워집니다. 할렐루야! KO MI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23:1)

글_성기호 목사 본지 발행인 keehosung@hanmail.net


라오스에서 보내 드리는

하늘나라 백성들

Face of Lao - “괜잖아유” 의 나라 “라오스” 는 필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이름으 로 다가온다. 라오스말로 라오, 영어로는 Laos, 헬 라어로는 λαὸ(라오) 혹은λαὸς(라오스)인데 벧전2: 9~10절에“오 직너희는…그의 소유된 백성(λαὸς) 이니…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 나님의 백성(λαὸς)이요”Laos는 하나님의 백성(my people)이라는 뜻이다. 라오스 땅은 이미 사람들 의 입에서“라오스” 라는 이름이 불릴 때마다 하나 님께서“내백성”이라는 불붙는 마음으로 이 땅을 보실 것이다.

(56x76cm charcoal pastel 2007)

라오스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식당 에 갔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종업원 이 물을 갖다 주다 실수를 하여 물을 테이 블에 쏟았을 때 그 상황에서 종업원의 입 에서 나온 말은“커톧(죄송합니다)” 이아 닌“버뺀냥(괜찮아요)”그 상황에서 뭐가 괜찮다는 건지! 내가 괜찮다고 말해야지 자기가 괜찮다고 먼저 말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한국에서 가져온 아이들 자전거를 잃어버 리고 경찰서에 신고했을 때 경찰들이 하는 말“버뺀냥” . 당신들은 돈이 많으니 그냥 라오스 사람 도와주었다고 생각하지요! 라오스 전역을 차(스포티지)로 돌아볼 욕 심으로 북쪽 끝인 퐁사리부터 남쪽 끝인 아따쁘까지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짬빠싹 시골의 어느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조금 가다가 차가 섰다. 알고 보니 디젤이 아닌 휘발유로 가득 채웠던 것. 기름을 모두 빼 고 지나가는 차에서 디젤을 좀 얻어 겨우 주유소로 돌아가서 콧김을 뿜으며 따졌더 니 하는 말도“커톧” 이 아닌“버뺀냥” . 교통사고를 당하여 씩씩거리며 따지는 나 에게, 100% 잘못은 그 사람에게 있음이 명확한데도 라오스사람이 하는 말은“커 이 아닌“버뺀냥” . 톧” 직원들에게 일을 맡기면서“다이버(할 수 있지?)” 라고 하면“다이다이(물론 할 수 있지요)” 했지만 그 일을 처리하지 못해 추 궁을 하려면 돌아오는 말은“커톧” 이아 닌“버뺀냥” . 라오스는“버뺀냥”천국인 것 같다. KO MI

글과 그림_엄미정 라오스 선교사 & 화가 apost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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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은혜의 발자취Ⅰ

선교사 천로역정(5) 편집자주 : 브라질 김선웅 선교사의 20여년간 사역이야기를 10번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선교 세 번째 Partner Stage 단계(2005년부터) 이 단계에서는 정말로 기적과 이적들이 많이 일어났습 니다. 우리가 개척한 첫 번째 교회가 자립, 자치, 자조 를 넘어 선교사를 훈련하여 파송하고 선교헌금을 보내 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시골, 그것도 산골에서 개척 한 교회가 자립한 것입니다. 재적 인원이 80명이며(아 이들 포함) 평균 출석은 5-60명이며, 교회 리더들은 100% 십일조를 하며 선교헌금도 합니다. 교회 리더들 은 10년 전에는 자기 집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께서 간섭하셔서 지금은 모두 자기 집을 가지게 되었 고 더불어 그들의 직업도 안정적인 직종으로 바뀌었습 니다. 할렐루야!

또한 오늘 저를 선교사로 보내시고 임명해 주셔서 감 사를 드립니다. 기도해 주시고 협력해 주시는 GP 선 교회와 모든 교회 그리고 성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 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우 리로 하여금 이런 고백을 듣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줄줄이 사탕의 축복(성장하는 축복의 열매들) 기증받은 땅에서 2005년도에 두 번째 따보앙 교회를 개척할 때, 첫 번째 헬몬교회가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가끔 연합예배도 드리고 함께 수련회도 하며 또한 연 약한 찬양 팀도 도와주었습니다. 학교도 건축하여 이 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교회 청년들이 결혼도 하고 사범대학을 졸업하여 학교 선생님으로, 비서로 그리고 교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교회는 화비오 목사가, 그리고 두 번째 교회는 빠뜨리시아 여 자 목사가 담임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두 교 회의 대표로서 사역자들을 계속해서 훈련하고(한 달에 한번 모여서 세미나와 설교 훈련을 하며 목회자 회의 를 합니다) 제직 세미나와 교사 세미나 등 재교육에 주 로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열매가 맺히는 헬몬교회 예수행진 감동이 넘치는 고백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소외된 산골 깊은 곳 작은 동네 에 개척한 아주 작은 교회가 선교사를 보내고 지원한 다니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길다면 길고 짧 다면 짧은 10년 동안에 기적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 었습니다. 비록 저는 브라질 사람이 되지 못했지만 그 들이 나와 같게 된 것입니다.그리고 처음으로 선교사 를 파송하고 헬몬교회가 선교헌금까지 보낼 수 있는 정도로 성장한 후로는 아무도 우리를 이상한 원숭이로 보지 않고, 모두가 주님의 제자들 이라는 자부심을 갖 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파송 받은 죠제 윌슨 선교사 가 파송 받을 때 한말이 기억납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누군가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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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리 안수집사의 안수식을 거행하는 김선웅 선교사 브라질교회의 불문율(?) 처음 브라질에 도착 했을 때, 선배 선교사님들로부터 브라질 교회와 한국 교회간의 여러 가지 다른 점을 전 해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과 크게 다른 점이 있 었는데 그것은 바로 예배 시간입니다. 브라질 교회들 은 한국과 달리 저녁에 예배를 드립니다. 왜 아침이 아 니라 저녁에 예배를 드릴까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


았는데 아마도 파티 문화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브 라질 사람들은 일주일 동안 일하고 주말에는 친한 사 람들끼리 모여 음식을 먹으며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춤을 추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결혼식이나 행사도 다 주말에 하는데 오후 늦게 시작하여 새벽까지 이어집니 다. 그러니 주일 아침에 일어나 예배를 드리러 간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입니다. 그리고 기온도 만만치 않습 니다. 오전 열시가 넘어 가면 벌써 태양이 중천에 떠서 아주 따갑게 내리 비칩니다. 그래서 주일 아침 늦게 일 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오후에 간단히 간식을 먹은 다음 저녁 무렵 교회로 예배를 드리러 갑니다. 모든 브라질 교회가 예배 시간이 저녁이기에 첫 번째 개척한 헬몬교회도 저녁 7시에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 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데 그날따라 달도 별도 뜨지 않았고 불빛 이라곤 하나 도 없는 어두컴컴한 밤이었습니다. 1미터 앞도 보이 지 않는 숲속 길을 걸으며 뱀이라도 나오면 어쩌나 걱 정하면서 막대기를 땅에다 대고 끌어서 그 소리를 듣 고 다른 짐승들이 가까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겨우 집 으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교인들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을 그렇게 걸어서 교회에 온 것 입니다. 그래서 예배 시간을 저녁에서 아침으로 바꾸 자고 제안을 하였고 교회 제직들과 장시간 회의를 하 여 결국 아침 9시에 주일학교를 시작하고 10시30분에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최종결정을 했습니다. 브라질 교회의 예배 시간을 바꾼다는 것은 상상해 볼 수 없는 일이었지만 우리 교회는 숲속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 습니다. 덕분에 교인들은 주일날 일찍 일어나 교회를 오기 위해 토요일에 일찍 자야 했고, 파티나 행사장에 가더라도 많이 즐기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집에 돌아오는 등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였고 교회는 점점 더 성 장해 갈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교회가 교회를 낳다 2005년 두 번째 교회를 개척했을 때, 첫 번째 교회인 베이자 풀러 헬몬교회에서 아침 예배를 드리고 첫 번 째 교회 리더들과 함께 두 번째 교회인 따보앙 헬몬교 회에서 저녁예배를 드리며 이 교회를 세워 나갔습니 다. 선교사 혼자가 아닌 개척멤버로 그들이 섬겨 준 것 입니다. 그렇게 2년 동안 리더들이 찬양 팀과 주일학 교 교사로 봉사하며 따보앙 헬몬교회 지도자들이 세워 질 때까지 열심히 도왔고, 2년 만에 두 번째 교회 제직 들이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후 두 번째 교회 역시 저녁에서 아침으로 예배 시간을 옮겼 고 2010년부터는 스스로 첫 번째, 두 번째 교회 사역 자들과 리더들이 함께 세 번째 교회인 과나바라 헬몬 교회를 개척하였다. 이때부터 우리는 교회개척을 넘어 선교개척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선교사로 헌신한 사람들을 위한 기도의 시간 헬몬교회에서 선교사를 파송하다(교회개척에서 선교 개척으로) 2007년에 하나님께서는 베니시우 선교사를 아프리 카 모잠비크로 파송할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을 정리하 여 주셨습니다. 이때까지는 현지 선교회가 만들어지 지 않았기 때문에 브라질 한인교회인 사랑의 교회(김 영수 목사)에서 파송예배를 드리게 하셨고 우리가 개 척한 두 교회와 더불어 선교헌금을 보내기 시작했습니 다. 그러나 베니시우 선교사를 파송하는 좋은 소식이 있기도 전인 2006년 12월 22일에 저는 과로와 긴장의 연속으로 몸의 평형감각을 관장하는 전정기관이상(이 석 발작증)으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한 달 동안 침대에만 누워 있었습니다.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6개월 후에 두 번째 이상 현상이 발병했 는데 한 번 경험이 있어서인지 회복하는데 3주가 걸렸 습니다. 그리고 3개월 후에 다시 세 번째 발작 때에는 회복하는데 2주가 걸렸고 그 후에 가끔씩 증상이 나타 나는데 이제는 병에 익숙해졌기에 금방 회복이 됩니 다. 이 병은 정말 세상이 도는 것을 혼자 느끼게 하는 병입니다. 지구가 돌 때는 정말로 싫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빨리 그것도 정신없이 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도바울도 이보다 더한 것을 가지고 평생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역했는데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하니 절 로 감사가 나옵니다. KO MI

글_김선웅 브라질 선교사 brazilgp@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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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은혜의 발자취Ⅱ

여섯, ‘ 하나님께서 뉴질랜드 전국을 품게 하심’ 편집자주 : 장철호 뉴질랜드 선교사의 20여년간 사역이야기 를 10번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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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스타운에서 일본 교회와 한국 교회 두 곳을 개척하 게 하셔서 젊은이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게 하신 하 나님을 찬양합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국적을 불문하 고 스키와 스노보드를 타기 위해서 해마다 퀸스타운을 방문을 합니다. 인구가 불과 만 명이 채 안 되는 도시 에 매일 유동인구가 3만을 헤아릴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사업에 바빠 서 주일날 교회를 나온다는 것은 상상이 안 된다는 표 정을 지을 정도로 매일 분주한 곳입니다. 하지만 저희 집에서 하는 주중의 성경 및 영어공부 시간에 유럽의 젊은이 뿐만 아니라 동양의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 이 호기심과 친구 만들 목적으로 와 식사도 하고 영어 도 배우며 복음도 함께 들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힘 들지만 복음을 들으러 제 발로 오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주일날에는 한국 교회까지 섬겨야 하니 보통 바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링턴이란 도시가 있는데 바로 뉴질랜드 수도입니다. 가는 자체가 저희들로서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소용 이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전혀 부족함이 없이 매 순간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그리고 갈급한 영혼들을 준비해 두셔서 복음이 떨어지 자마자 눈물을 펑펑 흘리며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열매가 없으면 한번만 가고 안 갔을 텐데 우리가 오기 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가지 않 을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기도만 하면 계속 뉴질랜 드 전국을 품으라는 마음을 주셔서 땅 밟기를 하며 주 님의 승리를 선포하라는 음성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 었습니다. 주님께서 주도적으로 하시는 일에 저희들은 그저 도구로 끌려 다닌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쓰임 받 는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생각할 때 감사가 절 로 나왔으며 자동차의 달린 킬로수는 엄청나게 올라가 고 있었습니다. 자주는 못가지만 한 달에 한번 만이라 도 와줬으면 하는 성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또 일어 나서 가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살아있는 더니든 교회 예배

특송으로 예배를 섬기는 주일학교 어린 친구들

그런데 현지 목사님께서 저희들의 사역을 전국의 크리 스천들이 보는 신문에 게재를 하셨습니다. 그러자 여 기저기서 와서 복음을 전해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최남단 인버카길이란 도시부터 티마루, 지금의 더니 든, 심지어는 수도 웰링턴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저 희들은 시간이 허락되는 한 달려갔습니다. 제일 가까 운 곳이 자동차로 두 시간 반이 걸렸고 먼 곳은 비행기 로 한 시간 반을 가야했습니다. 우리는 남섬의 맨 남단 에 살고 있었는데 육로로는 갈 수 없는 북섬 남단에 웰

뉴질랜드에 사는 한국인들은 약 3만에 달합니다. 그 중에 80%가 오클랜드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200개가 넘습니다. 일본인들은 약 2만 정도가 사는데 일본 교회는 전국에 저희 더니든 일본인 교회 를 포함하여 3곳뿐입니다. 그 외에는 저희들이 비정기 적으로 섬기는 집회소가 여러 곳이 있을 뿐입니다. 영 적으로 척박한 민족인데 사역자도 없어서 성경을 공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지 않겠습니까?


한번은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 밑에 있는 티마루라는 도시에 가서 일본인들을 모아서 예배를 드리는데 갑 자기 지역 방송국에서 취재하러 온 것입니다. 그러더 니 그 다음날 지역 신문에 우리의 예배 사진이 여러 장 올라가는 바람에 그곳에 현지인과 결혼하여 살고 있 던 일본인 자매들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갑 자기 가정 수만 6가정이 된 것입니다. 그 조그만 도시 에도 이렇게 갈급하여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단지 한 영혼을 소중이 여기는 마음으로 찾아 갔는데 주님께서는 지역 신문과 방송국을 통해서 우리 의 사역을 소개해 주신 것입니다. 그 후 우리는 한 달 에 한번 씩 가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며 교제 를 하며 자매들을 격려하였습니다.

기타 합주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중고등부 학생들 그러다가 크라이스트처치의 일본인 교회 목사님이 저 희 사역을 관심있게 보시더니 함께 동참하겠다고 하여 저희는 다른 도시를 공략을 하고 일본 목사님에게 그 사역을 부탁했습니다. 한동안 열심히 가시더니 크라 이스트처치에 지진이 나면서 교인들을 돌보는 일이 너 무 많아지는 바람에 한동안 중단이 되었습니다. 그러 더니 아예 모임이 없어져버렸습니다. 자매들이 줄줄이 자녀들을 출산하고 양육하는 바람에 바빠서 서로 시간 을 맞추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곳 뉴질랜 드는 거의 피임을 하지 않고 생기는 대로 낳는 추세라 가정마다 4-5명의 자녀를 두는 것은 보통입니다. 카 요 자매도 다섯 명의 자녀를 양육하느라 그 가녀린 몸 매가 더 야위어 정말 보는 자체가 힘들었었고 보다 못 한 부모님들이 자녀 양육을 돕기 위해 뉴질랜드에 와 서 자녀들을 데려가서 키우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 은 몇 년이 흘러 막내가 유치원에 다니게 되어 픽업하 는 일이 주 업무가 되어버렸습니다. 가끔은 저희들이 찾아가서 함께 기도하고 격려하며 향수병과 우울증을 달래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 주민과 유학생들과 함께하는 식탁 공동체 대학교수로 일하다가 은퇴한 일본 남자분이 자기는 크 리스천이 아니지만 자기 집을 개방하여 집회를 하도록 허락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갔더니 2박 3일간 각기 다른 그룹의 일본인들을 아침과 저녁에 모아 집회를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놓은 것을 보고 정말 하나님께 서 하시는 일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뿐만 아니 라 정기적인 모임을 위해 교회를 빌리려고 시내를 나 갔는데 시내 가장 중심에 있는 한 교회를 찾아가자마 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목사님이 환영을 해 주시며 얼마든지 복음을 위해 이 교회를 사용해도 좋 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사람들을 모아 첫 예배를 드리고 국세청에 다니는 자매에게 그 모임을 부탁하고 왔습니다. 하지만 본인 자신도 갈급하여 계 속적으로 말씀의 은혜를 공급받지 못한 상태라 모임 자체가 흐지부지하게 되어 지금은 한 달에 한번 씩 가 정에서 모이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그곳에 있을 수만 있다면, 몸이 두 개,세 개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 각을 하며 일군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 국은 일군이 넘쳐나서 문제이고, 일본은 일군이 없어 서 평신도 지도자를 세워서 해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일본 선교를 위해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KO MI

글_장철호 뉴질랜드 선교사 gideon9191@hanmail.net

웰링턴에 처음 갔을 때의 일입니다. 한 자매가 그곳 국 세청에서 일하면서 몇몇 친구들을 모을 테니까 와서 말씀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갔습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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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

땅끝이야기Ⅰ

여섯번째 - '조국의 통일'에 대처하는 자세 편집자주 : 러시아 박광배 선교사의 선교를 향한 이야기를 10 번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습니다. 무기로 통일을 꿈꾸는 북한 정권과 너무나 흡 사합니다. 그것이 가능할까요? 하나님은 역사의 방향 을 그렇게 잡고 계시지 않습니다.

조국의 통일을 생각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 을 준비해야 할까요? 역사적으로 분단되었던 국가들로 서 통일을 경험한 국가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분단에 서 통일을 이룬 독일을 생각합니다만 또 있습니다. 베 트남입니다. 그리고 예멘도 분단과 통일을 경험하였습 니다. 독일은 성공적으로 통일을 이루었기에 우리에게 좋은 점만 각인되어있습니다. 이것을 시각적인 착각이 라고 합시다. 그동안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으며, 어떻 게 극복하였는지는 우리가 더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용한 것은 통일 독일에 중추적인 역할을 교회가 하였 다는 사실입니다.

라이프치히 광장에서 일어난 통일을 위한 월요 기도회

통일 독일의 중추적 역할을 한 성 니꼴라이 교회 전경 그 중심에 라이프치히에 성 니꼴라이 교회가 있습니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모든 세계학자들이 통일 독일에 불씨는 인구 10만이 되는 아주 작은 도시 라이프치히의 성 니꼴라이 교회 기도회를 꼽습니다. 교 회 기도회에서는 끝임 없이 통일을 위하여 기도회를 열 었습니다. 처음에는 10명이 안 되는 작은 모임이었습 니다. 그 숫자가 50이 되고 100 되고 500이 되면서 정 기적인 기도회 모임은 통일 독일로 가는 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정부의 부정을 고발하고 이를 바로 잡는데 교회가 앞장섰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른 통일을 위한 로드맵을 교회가 방향을 정하였습니다. 불행한 통일을 경험한 베트남과 예멘도 있습니다. 전쟁 을 통한 통일이었습니다. 엄청난 피해와 복구비용, 전 쟁을 치루면서 쌓인 분열된 마음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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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신념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 로 조국의 통일을 2025년 안에 이루어진다고 확신합니 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성경에 말씀에 근거합니다. 러시아에 선교사로 들어가서 출애굽기를 읽는 중에 20 장에 머물렀습니다. 5절입니다. 그 시점에 하나님은 우 상을 섬기는 민족들에게 아비를 죄를 갚으시는데 삼사 대까지 갚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성경의 많은 학자 들은 한 세대를 25년으로 봅니다. 25세는 아이를 출산 할 수 있는 나이로 보는 거지요. 삼대면? 75년이 됩니 다. 저는 러시아의 경우를 생각했습니다. 러시아 볼세 비키 혁명을 1917년으로 봅니다. 여기에 삼대인 75년 이 지난 러시아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세요? 1992년 러 시아는 구 소련에서 독립을 합니다. 그리고 한국 전쟁 을 1950년으로 볼 때에 삼대가 지나는 시점이 2025년 입니다. 그래서 삼대의 벌이 끝나는 시점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통일을 주실 것이라는 것이 저의 확신입니다. 이를 위하여 다양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최근 북한에 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김정은의 건강 이 상설입니다. 광해와 같이 미친 이 지도자 앞에 누가 막 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여 성편력도 이 젊은 지도자는 어느 날 주어진 권력으로 스스로 엄청나게 망가저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지 도자에게 통일 조국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 리 조국의 교회가 일어나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 이 정권을 잡으면 끈 떨어진 연과 같이 되어버립니다.


아무도 독일 통일에 대하여 회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 습니다. 물론, 통일에 대하여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희 망들이 특히 동독인들이 가지고 있던 수많은 희망이 아 직 충족이 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독일의 전 총리였던 Helmut Kohl이 이야기 하였던 것처럼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고 번영을 하기까지는 추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독일인의 마음 과 정신이 하나가 되기까지는 또 하나의 세대가 흘러야 한다고 합니다. 약 6천 5백만 명의 서독인들과 약 1천 7 백만 명의 동독인들은 통일된 하나의 조국에서 함께 하 는 사는 방법을 배워 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5천만 우리 남한과 2천만의 북한 인구와 비슷한 숫자입니다.

의 자본 이동으로 구서독 지역과 구 동독 지역의 빈부 격차를 채웠으며 이 정책은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습 니다. 당시에는 천 8백에서 2천억 마르크 정도가 매년 동독 지역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러나 복지 국가이기에 장기적인 투자 보다는 소비를 위하여 그 자금이 사용이 되기도 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였던 독일 민주 공화 국(동독)은 구독일 연방 공화국(서독)과 함께 연방 헌법 (기본법)을 단순하게 수용함으로써 통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독일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의 믿음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지난 많은 시간 동안 독일은 변하였고 또 그 변화는 유럽 연합을 이끄 는 리더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 된 독일의 역사는 독일의 첫 총리인 비스마르크 백작과 함께 1871년에 시작되었습니다. 1945년의 비 극과 함께 종말을 맞이하였다. 여기서도 참 재미있는 숫자가 나옵니다. 그때 단 75년 동안만 단일 국가로 있 었습니다. 삼대의 역사 75년입니다. 독일의 통일은 늦 게 이루어지긴 했으나 다행히도 간신히 너무 늦지 않고 제 때 이루어 졌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1989년 당시의 독일은 아직도 통일이 된 하나의 독일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세대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제 2차 대전이 끝났을 무렵 Helmut Kohl 총리는 15살짜리 소년이었습니다. 1989년으로부터 10년 혹은 20년 후의 통일은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통 일 조국에 대한 바람은 더 흐려졌을 것이기 때문입니 다. 우리 조국의 통일도 1950년 이전 세대가 살아 있을 시간에 주어져야합니다. 이 열망이 식지 않았을 때 통 일은 와야 합니다.

통일 한국도 주변 국가와 평화를 그리며 아시아의 리더 로서 자질과 실력을 준비해야 되지 않을까요? 통일이 되고 난 후 독일은 수도를 본에서 베를린으로 바꾸었 습니다. 통일 조국도 수도를 평양이나 서울 보다는 개 성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리학적으로 독일 은 유럽의 중앙부의 위치로 되돌아왔습니다. 베를린은 폴란드와의 국경과 80킬로미터 떨어져 있을 뿐입니다. 폴란드의 동쪽에는 러시아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는 새로운 유럽의 지리학적인 모습을 나타내면서도 동시 에 과거의 유럽의 지도 혹은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서쪽과의 안전한 관계를 구축한 독일 은 서쪽과 동쪽 사이에 존재하는 예상할 수 없는 세력 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국 대 한민국의 통일은 북한이 세계 최저 빈민국에서 세계 경 제 10위권으로 바로 진입하는 대박이 됩니다. 세계 모 든 나라로부터 비난을 받던 나라가 주변 국가를 아우르 며 아시아를 리더 하는 국가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독 일이 그렇게 유럽의 중심에서 주변 국가와 유럽 연합을 이루며 경제를 리더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그렇게 아시아의 리더로서 세계 질서를 새 롭게 하는 나라로 거듭나는 길은 통일입니다. 이 일에 한국 교회가 새로운 통일로 가는 진원지가 되기를 바랍 니다. 동독의 니꼴라이 교회와 같이 기도로 통일을 이 루는 그 날을 기대합니다. KO MI

글_박광배 러시아 선교사 nakhodkach@hanmail.net

통일 독일의 수도이자 유럽의 중앙부에 위치 한 베를린 통일에 대한 여러 염려들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것 은 통일을 싫어하는 남한 국민들의 마음입니다. 그것은 통일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희생입니다. 동독인들 이 치러야 했던 통일의 대가도 컸습니다. 10명중 한 명 만이 과거의 직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구동독 지역의 실업률은 구서독 지역의 실업률의 2배 가 되기도 했습니다. 구서독 지역에서 구동독 지역으로

세계 선교의 현장에서 힘쓰시는 선교사님들에게 하나님의 위로 의 말씀과 분별력에 대한 강한 메시지가 담긴 <시대를 아는 힘 >을 소개해 드립니다. 선교현장 에서, 자녀들의 교육에서 하나 님 나라의 일꾼으로 힘을 얻기 위해 활용하셨으면 합니다. 이 책의 판매 수입금은 탈북자 들을 위한 선교에 쓰입니다. 문의: 통일소망선교회 이빌립 선교사 (02-2625-0497) 가격: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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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

땅끝이야기Ⅱ

'나는 엄마다' 여섯째 이야기 편집자주 : 바울 선교회 MK맘 허은영 선교사의 삶과 사역 이 야기를 10번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보츠와나! 보츠와나! 아프리카 보츠와나는 몇 가지 유명한 것들이 있습니 다. 첫 번째로 오카방고 습지대 여행과 초베 국립공원 의 동물 사파리를 손꼽습니다. 자연에서 뛰노는 동물 들을 그대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 래서 보츠와나 여행객들은 수도 가보로네보다는 보츠 와나의 북부지역인 초베와 오카방고 델타를 다녀갑 니다. 두 번째로 다이아몬드 광산입니다. 영국으로부 터 독립한 1966년도 이후에 발견된 다이아몬드 광산 은 현재까지 이 나라의 주요수입원입니다. 보츠와나 의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다이아몬드 산업으로 지금 은 번영하고 있으나 다이아몬드 고갈 후에 대한 우려 의 의견들이 많습니다.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와 비교 한다면 안정적인 경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격차가 43배에 달하는 빈부의 격차 가 세계적인 수준에 속합니다. 세 번째로는 에이즈가 창궐한 나라입니다. 세계에서 평균수명이 짧은 편이고 (2000년경 39세) 2006년도 기준으로 전 인구의 36% 가 에이즈에 감염되어 있다고는 보도가 있습니다. 에 이즈 감염 경로는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사회 전반적인 확산 경로는 성관계를 통해 급속도로 진행되 고 있습니다.

고 염소나 다른 짐승으로 하기도 합니다. 귀한 딸을 잘 키워서 주시기 때문에 감사함 마음입니다. 이것을 로 볼라 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문화가 오히려 에이즈의 확산의 시초가 되고 있습니다. 남녀가 만나 서 사랑하게 되면 정식으로 결혼식을 할 능력이 안 되 니 먼저 살림부터 차립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남자가 다른 여자 친구가 생기면 자녀 들은 모두 엄마가 양육책임을 지고 남자는 몸만 나가 는 듯합니다. 그리고 다른 여자와 다시 살림을 차립니 다. 이렇게 정식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는 이유를 물으 면 모두 로볼라를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먼저 살림을 차리다 보니 책임감은 없어지고 잠깐의 감정에 더 충 실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사회 보편화 되 다보니 아이들이 한 엄마 아래 여러 다른 성을 가진 형 제들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에이즈 감염의 가장 큰 경로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분명하게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 한 몸 이룰 것을 말씀하셨는데 보츠와나 문화는 이것이 파괴되어 불명예스러운 에이 즈 감염률 세계1위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 받아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해피 홈 식구들

해맑게 자라난 보츠와나의 어린 꿈나무들 보츠와나의 전통 결혼 문화 - 로볼라 전통적으로 남자들은 결혼할 여자의 부모님께 짐승으 로 신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을 학벌이나 집안 등을 고려하여 소 몇 마리가 될 수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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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해피 홈! 이러한 사회 현상들을 마음 아파하며‘하나님 나라의 회복은 가정이 행복해 지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가정의 회복 차원에서 센타 이름을‘해피 홈’ 으로 지 었습니다. 보츠와나의 주종족인 츠와나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종 족입니다. 민주적이고 평화롭게 각 마을은 추장들에 의해서 민사들이 처리되고 질서도 있고 어른을 존경하 는 멋진 종족입니다. 단 하나, 이렇게 평화로운 나라 에 안타까운 것이 에이즈의 확산입니다. 그리고 이 땅


을 치료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성경뿐입니다. 하나님 이 창조하신 가정의 원형으로 돌아갈 때 에이즈의 아 픔도 치료되리라 확신했습니다. 나비야~ 나비야! 해피 홈에 등록하는 아이들은 모두 가정이 파괴된 아이 들입니다. 부모로부터 에이즈 유전인자를 받아 태어나 는 아이들이거나 또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싱글 맘 들의 자녀들 등등 모든 아이들의 아픔은 부모의 문화 때문에 시작된 아이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부모 로부터 물려받은 아이들에게‘너희들도 정말 행복 할 수 있단다.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이시란다. 이 하늘의 메시지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해피 홈에 등 록한 아이들 아니, 등록하고 싶은 아이들은 모두 받았 습니다. 최고의 음식 재료들을 구입해서 최고의 식탁 을 준비했습니다. 우유와 요플레 등으로 영양을 더해주 는 식단이었습니다. 잘 먹였습니다. 그리고 오전에 학 년에 따라 학교에 다녀오면 방과 후 클래스를 열었습니 다. 영어, 수학, 세츠와나 등 학교 수업을 도울 수 있는 과목들을 봉사자들을 통해 오픈했습니다. 또한 책을 통 해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 소통 할 수 있기에 책을 모아 서 작은 도서관도 센터 한편에 마련했습니다.

리코더를 처음 접해 보고 신기해 하는 어린 친구들 그리고 무엇보다 인성교육을 위해 1인 1악기를 가르치 기 시작했습니다. 악기수업은 해피 홈을 시작하기 2년 전부터 카톨릭에서 하는 고아원에 봉사를 했었습니다. 한국 초등학교에서 가장 먼저 접하는 리코더를 200개 를 들고 와서 아이들에게 들려주었을 때를 잊을 수 없 습니다. 처음 접하는 악기를 보며 흥분하는 아이들이 힘주어 불어대는 삑~ 소리가 마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아픔으로 들렸습니다. 열손가락으로 리코 더의 모든 구멍들을 막는데 만 몇 주가 소요됩니다. 놀 랐던 것은 열손가락을 하나하나 사용해 본적이 없는 아이들은 첫 번째 손가락을 띄어 보라고 하면 열손가 락이 다 떨어져 악기를 놓치고 맙니다. 그렇지만 모든 아이들에게 리코더를 쥐어 줄 수 있고 모두 힘껏 불어

대는 소리가 음악이 아닌 소음이 되어 버리곤 하지만 아이들이 가장 행복해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비야 나비야’한곡을 마스터 하는데 6개월이 걸렸 습니다.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처음 하는 연주 였습니다. 감동이었습니다. 또다시 두 번째 곡인‘좋 으신 하나님’ 을 익히는데 다시 6개월이 필요했습니 다. 할렐루야! 포기하지 않으니까 흙과 돌들을 만지며 놀던 아이들이 악기를 통해 하나님을 찬양 할 수 있다 는 것이 큰 기쁨이었습니다. 조금 시간이 더 필요한 것 뿐이었습니다.

해피 홈 식구들과 함께 한 음악 합주회 이렇게 해피 홈 안에서 먹이고 가르치고 책을 잡게 하 고 악기를 통한 인성교육을 시작하게 된 것은 모두 지 훈이와 샤론이를 키운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두 아이 를 키우면서 책읽기를 중요시 했습니다. 창의력과 다 양한 사람들과의 소통의 장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나라가 옮겨져도 좋아하는 악기를 한가지씩은 가 르쳤습니다. 해피 홈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엄마이기 때문 이었습니다. 그 자녀가 한국인이든 보츠와나 아이든 저는 엄마였습니다. 자식들 목구멍에 밥 넘어가는 소 리로 행복해 하는 엄마입니다. 바짝 말랐던 논에 물들 어가는 소리처럼 삑삑 거리는 리코더 연주소리에 행복 한 엄마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예배드리며 말씀을 암 송하는 소리가 담장을 넘을 때 가장 행복한 저는, 엄마 입니다. KO MI

글_허은영 바울선교회 MK 선교사 baurimk@naver.com

선교사 디브리핑을 위한 모임 7월 11일 (토) 오후 5시 문의: 김종남 목사 010-2765-9654 gbm19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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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반쪽과의 만남

Love Story

하나님의 은혜 아버님 환갑잔치에 초대되어 기적적으로 결혼을 승낙 받게 되었다. 한번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일에는 끝까 지 고집을 꺽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자매를 통하여 여러 번 들었었는데 식사 후 가족들만 찍는 가 족사진 자리에“박군 이리와서 같이 찍게나” 라는 말씀 을 하셨다.

은혜로 허락하신 아내 윤새나 선교사(우)와 딸과 함께 올해로 결혼 9년차인 우리부부는 연애 기간을 포함, 지난 11년간의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참으로 하나님 의 은혜를 통한 만남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을 거슬러 2005년, 당시 대학생이였던 나는 인천 의 주안장로교회에서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나게 되었 다. 매주 내 삶의 활기가 되어준 청년국 예배의 찬양팀 워쉽 댄스로 섬기고 있는 한 자매에게 눈길이 머무르 게 되었다. 자매가 부르는 찬양의 가사와 몸동작 하나 하나에 나와는 다른 무언가 진심을 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작은 개척교회를 섬기다가 현재의 교 회로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열심히 봉사할 곳을 찾고 있던 나에게 담임 목사님께서 성경공부 모임의 ‘찬양인도자’ 라는 자리를 부탁하셨다. 그런데 신기하 게도 그 자매가 이 모임의 반주자로 오게 되었다. 이 후 여러 모임을 함께 하였고 또한 같은 청년국 찬양팀 을 섬기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용기 있는 고백과 함께 연인으로 발전 할 수 있었다. 연애를 시작하고 1년이 되지 않아 지금의 아내와 많은 공통점과 관심분야가 있는 것을 알았고, 기도 중에‘이 자매라면 하나님께서 평생 짝지어주신 배필로 삼아 살 수 있겠다’ 는 확신이 들어 프로포즈를 하였다. 자매는 기쁜 마음으로 결혼을 승낙하였지만 평소 우리들의 연 애를 탐탁지 않게 여기셨던 지금의 장인어른의 승낙을 받기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앙 외에는 어느 것 하 나 내세울 것 없었기에 오직 하나님께 매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날로부터 새벽기도 40일을 작정하여 자매 와 함께 다니게 되었고 새벽기도를 마치는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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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기도의 응답으로 장인어른은 결혼을 승낙 하셨 고, 결혼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2007년 9월 1일 결혼하게 되었 다. 이 후 한 번의 유산을 경험하고 아이가 생기지 않 아 기도하던 중에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1년 동안 단 기선교사 부부로 섬길 수 있었다. 그리고 은혜의 땅 탄 자니아에서 선교사로 살게 하시어 3년 뒤 결혼 기념일 에 그곳에서 딸 하경이(6세)를 얻게 되었다. 지금은 큰 딸 출산 이후 6년 만에 둘째 출산을 곧 앞두고 있다. 결혼 후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의 수학을 가르치는 안정 된 직장과 평안한 환경들을 얻도록 허락하셨지만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 해 선교지로 가게 된 우리 가족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찬양을 좋아하고 장애인을 사랑하며 학생 들 가르치던 일에 은사가 있던 우리 부부는 평신도 선 교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그 달란트대로 지금 탄자니아 아루샤에서 학교사역과 찬양사역, 제자훈련 사역 등을 감당하고 있다. 은혜의 하나님!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섰을 때에 더 큰 은혜로 보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늘 내 곁에서 싸움 한번 없이 든든하 게 지켜준 당신!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 니다. KO MI

글_박종대 탄자니아 선교사 rabbitturtle04@gmail.com

월간 한국인선교사 쉴터는 선교사님들을 섬기고자 마련된 작은 숙소입니다. 현재 인천시 구월동의 한 빌라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다섯 채가 1997년부터 운영되고 있습니다. 운영헌금: 매월 1만원 후원계좌: 국민 512625-95-102325 조성수 이용문의: www.kormi.net / ☎ (02) 2268-6636


믿음의 눈으로 그리는

엘가의 빛그림 1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주의 심장 가지고 우리 이제 일어나 주 따르게 하소서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 가득하리라 온 세상에 나가 있는 선교사님들을 통해 주님의 영광이 온 땅을 덮어가리라 믿습니다. KO MI

사진_이기수 엘가 대표 elga1004@gmail.com

1995년 3월에 창간한 월간『한국인선교사』 는 해외에서 사역하는 한국인선교사의 삶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을 통하여 한국 교회의 선교 역사로 기록하고자 발행하는 선교잡지의 하나로서 선교사님들에게 무료 월간 보내기와 선교사님들을 위한 쉴터 운영 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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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와 IT

세상 돋보기 6

IT 교육을 통한 선교의 새 패러다임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 우연이란 없다는 생각에 절 대 동의합니다. 특히 늘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다 짐하는 자들에게는 더욱 하나님의 뜻이 중요하기에 그렇습니다. 지난주에는 각기 다른 날, 두 분의 선교 사와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분들의 사역지 가 캄보디아와 미얀마여서, 또 그분들과의 대화가 현 지에서의 컴퓨터와 스마트폰 교육이어서 더욱 소중하 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평신도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선교에 열정과 관심이 많은 분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선 교에 부담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이들은 깊은 관심 정 도를 넘어 은퇴 후의 선교에 대해 진지한 열정을 토해 냅니다. 선교지에서는 누구나가 필요하지만 현지인들 을 실제로 도울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가진 이들이라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시키는 기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오랜 제 생각입니다. 사실 평신도들이 선교에 가장 큰 부담을 갖는 이유는 그곳으로의 완전 한 이주를 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교사님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그들이 완전한 이주를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효과적인 방법이 있음을 깨 닫게 됩니다. 이번에 두 선교사님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이런 생 각이 확실하게 되었습니다. 두 분의 선교사님들은 제 가 그곳 선교지에 일정기간 머물면서 컴퓨터와 스마 트폰을 가르치는 일을 담당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바 램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형편이나 환경은 그것이 용 이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좋은 해 결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여러 선교사 님들과 나누려 하는 것입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비롯한 스마트기기 교육은 선교 지에서 반드시 병행해야 할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임 이 분명합니다. 동남아에 이제 막 스마트폰 들이 보급 되기 시작하고 이를 잘 이용하는 기술을 습득한다면 그들의 삶의 질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IT 전문가들을 모든 선교지에 파송할 수는 없고.. 그래서 이런 방법을 제안합니다. 저와 같은 이들이 체계적으 로 컴퓨터와 스마트 기기들을 가르치는 동영상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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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하여 Youtube 등에 올리겠습니다. 이것을 이용하여 현지 선교사님들이 혹은 조력자들이 자막을 제작하여 도 좋고 혹은 그대로 번역하여 재교육을 실시하여도 좋습니다.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르기에 실제로 가르치는 방법을 순서대로 재연하는 것은 아주 유익 한 학습방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선교의 전략도 방법도 바뀌어야 합 니다. 우리나라의 초기 미국 선교사들이 끼친 영향은 단순한 복음전도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믿는 이들의 삶의 질이 바뀌어 지면서 자연스레 기독 교는 좋은 종교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그 영향력은 사 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선교지의 현지인들이 보다 빠르게 선진기술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선진기술도 아니지만)을 배우게 된다면 그 들의 일자리도, 삶의 질도 달라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 입니다. 앞으로 한달 정도 자료들을 정리하여 다음 달에는 여 러분들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이트를 알려 드 리겠습니다. 그리고 이 사이트를 통해 보다 효과적으 로 선교사역을 돕는 귀한 일들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와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이 몇 명만 협 력되어도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선교 사님들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은 혜를 주셔서 조속한 시일에 선교지를 방문하기를 소 망합니다. 그곳의 현실을 보게 되면 더욱 효과적인 대 처를 할 수 있기에.. KO MI

글_윤승준 Kyelp 대표 sjyoon7231@gmail.com 블로그 blog.naver.com/joshua7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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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건강상식

낸시가 사랑하는

병은 없다 6

하나님 만나기 6

결석 (요로결석, 칼슘,수산결절)

어린양의 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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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석은 신장(콩팥)에 돌이 생긴 것으로 돌이 생기면 염증이 생기고 부패가 일어나 엄청난 통증을 느끼게 된다. 소변을 볼 때, 옆구리 통증, 붉은 소변이 나오고 등 뒤를 치면 깜짝 놀라게 된다. 신장결석의 대부분은 칼슘결석으로 비만, 운동 부족, 서구화된 식습관 때문이고, 단백질의 과다 섭취로 단 백질의 분해과정에서 요산이 증가하면 결석이 생기게 되고, 수술 후에도 식생활을 개선하지 않으면 10년 안에 다시 생 기게 된다. 요로결석은 수산칼슘석과 인산칼슘석으로 구분되며 방광 안에 있는 돌은 대체로 크고 수술로 제거 해야 하며 4미리 미만의 돌이 요도에 걸리게 된다. 요로결석에 걸리면 혈뇨 가 나오고 한쪽 하복부에 심한 통증이 생기며 발열과 오한 이 복합적으로 생기거나 아무런 증상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 도 있다. 요로결석이 생기면 통증은 갑자기 나타나 수십 분 에서 수 시간 지속되다가 사라진 후 또 다시 간헐적으로 나 타나는데, 허리에 요통이나 배탈이 난 것으로 오인하는 경 우가 많다. 대개는 통증이 매우 심해 응급실을 방문하게 된 다. 또 여름철에는 땀을 많이 흘리게 되면서 소변이 농축되 고, 햇볕에 많이 노출되면 비타민 D의 형성이 증가돼 칼슘 배설을 늘려 요로결석 많이 생성된다. 요로결석의 원인으로는 비만과 육류, 커피, 우유 등 동물성 식품을 많이 먹는 나라에서 많이 발병하고 요로결석이 있는 환자는 뼈 속에 있는 칼슘이 빠져 골다공증에 걸리게 되고 반대로 골다공증이 있는 경우 요로결석 증상도 동시에 나타 나며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통풍(요산수치가 높아), 부갑상 선 항진증, 운동을 하지 않는 경우에 발생률이 높다. 그 이 유는 뼈에 있는 칼슘이 소변으로 배설되는 과정에서 결석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로결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칼슘이 많이 들어있 는 음식 즉 고기, 우유, 커피, 멸치, 생선, 계란 등을 먹지 말 고 또한 약으로 먹는 칼슘도 섭취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생 수를 자주 먹어 소변의 산성화를 막고 생채소와 과일을 많 이 먹어 칼슘이 정체되지 못하게 배출시켜야 한다. 그리고 요로결석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식 생활 습관을 고쳐야 한다. 요로결석은 약물 요법이나 레이 저, 수술을 해도 식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다시 재발하게 된 다. 과일속의 비타민C, 구연산이 수산칼슘의 결합을 억제시 키므로 구연산이 많이 든 오렌지, 자몽, 귤 등 시큼한 과일을 많이 먹고 주스로 보다 생과일을 평소에 자주 섭취하면 좋 다. 생수를 많이 먹게 되면 4미리 이하의 결석은 소변을 통 해 배출되기도 한다. KO MI

이덕우 목사는 자연치유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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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_안민희 자매 als367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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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의 소리

글_편미선 필리핀 선교사 GP선교회 punmisun65@hotmail.com

어느 날 교회 집사가 흥분된 목소리 로 나에게 오더니 드디어 첫 열매로 수 하가 네 개나 달렸다고 좋아라 한다. 바나나 열매도 한덩이, 깔라만씨 나무 에는 깔라만씨 열매가 주렁주렁, 빠빠 야 나무가 한그루 있는데 열매를 세어 보니 족히 삼십개 정도가 쪼르륵 가지 런히 질서 있게 달린 것이 아닌가! 그 뿐 아니라 각종 야채들도 제각각의 책 임을 다하여 우리에게 기쁨을 줄 뿐더 러 가끔은 시장에 가지 않고도 몇 끼니

의 반찬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처 음 몇 번은 잘 자란 야채들이 너무도 예쁘고 아까워서 매일 눈으로만 즐기 다가 먹을 시기를 놓쳐 못 먹고 버릴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때를 맞추어 수 확을 해야 하는 지혜도 배웠다. 과실수에 달려 있는 열매들을 눈으로 보니 내가 가꾸지 않았는데도 가슴 뿌 듯하고, 그 열매들이 귀하고 사랑스러 워 감히 따 먹을 수가 없었다. 8년여 동안 그 정원을 가꾸는 남편의 수고와 정성, 그리고 그 수고와 땀의 대가로 나무마다 달리는 실하고 풍성 한 열매를 보면서 정직한 수고의 원칙 을 배운다. 돌아보니 과실수 뿐만 아니라 이 사 역지에 처음 와서 만났던 어린이들이 자라서 이젠 어엿한 숙녀와 건장한 청 년이 되었고, 부모들의 노름 테이블을 정리해주고 동전 몇 푼씩 챙겨 간식을 해결하던 꼬마들이 이젠 교회의 각 파 트에서 없어서는 안될 크고 든든한 성 숙한 재목들이 되어 이 교회를 섬기고 있다. 가끔씩 이 바울의 정원을 없애고 그 공 간을 다른 용도로 활용할까 하는 고민 을 하다가도 문득 과실수들의 열매를 바라보며 수고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을수 없다는 말씀의 진리와 이치를 깨우쳐 주는 좋은 선생님으로 모시기 로 했다. 우리가 게으르고 나태해지면 이 야채 들과 나무들이 말을 한다. 정신 차리라 고....그러면 또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금 맡겨주신 사역에 정진하며 하 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기대하시는 실 하고 풍성한 열매를 더 많이 올려드려 야지 다짐을 하게 된다. 땅 끝에서 주 님께 드릴 열매를 가득안고 주님을 맞 을 그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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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202호 1995년 2월 6일 등록 등록번호 라-7036호 2015년 7월1일 발행

"바울의 정원"

우리가 사역하며 살고 있는 교회 앞 마당에 작은 정원이 있다. 이름하여 바울의 정원이다. 남편의 영어이름이 Paul(바울) 인데, 8년 전에 쓰레기더미 를 정리, 청소하여 만든 정원에 야채와 나무들을 심고, 가꾸고, 물을 주고, 직 접 자연 거름을 만들어 영양분을 공급 해주며 애지중지 정성들여 가꾸길래 내가 바울의 정원이라 이름을 붙여주 었다. 작긴 하지만 그 밭에는 많은 종류 의 과실수와 야채들이 심겨져 있다. 과 실수로는 빠빠야, 바나나, 잭푸룻, 수 하(필리핀자몽), 깔라만씨(탱자처럼 생 긴, 필리핀에서는 약방의 감초처럼 쓰 이는 비타민c가 풍부한 과일), 구야바 노 등이 있고, 야채들로는 말룽가이, 호 박, 가지, 생강, 피망, 청양고추, 레몬그 라스, 고구마등이 있다. 내 키보다도 더 크게 자란 선인장도 있는데 가끔씩 아 름다운 꽃을 피운다. 비록 하루 만에 지 는 꽃이지만 피어있는 하루 동안은 참 으로 고귀한 자태를 뽐내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 날씨 때문에 무기 력해지는데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느 라 바쁜 남편에게 왜 사서 고생을 하느 냐고, 그 작은 정원에서 무슨 선한 것 이 나겠느냐고 말렸더니 그 정원을 가 꾸면서 진정한 목회와 선교를 배워가 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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