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선교사 <그리운 사람> 겉모습보다 속사람이 단단하며 그래서 주 앞에 아름다운 사람 사람 앞이 아닌 주님 앞에서 일 중심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실어 나르는 사람 다른 사람들이 가진 기준이 아닌 주님 앞에서 향기였던 사람 그 사람이 그립습니다. 때론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덜 다듬어진 모습으로 내면의 연악 함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본래의 마음을 잃은 듯 가장 연약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지만 이웃의 부족함을 포근히 껴안고 덮어 줄 줄 알았고 말보다는 일상의 삶을 통해 주님의 능력을 보이려했던 사람 그 사람이 그립습니다. 주께서 허락하신 지체들의 마음과 공동체를 세우며 생명의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고 주님을 닮아가려는 사람 풍요로운 영적 삶을 통해 주님의 이야기를 쓰려는 사람 그 사람이 그립습니다. 글_김익환 필리핀 선교사(siskc@hanmail.ne) 일러스트_김은영(lewis1212@naver.com)
2015 선교는 누구든지 해야하고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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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를 사랑하는
성목사 부부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후계자이며 가나안 정복의 대업을 이 루어야 할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셨습니다.“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수 1:2). 40년 전 가나안을 정탐했던 사람들 대다수가 자기들이 들어가 얻어야 할 그 땅의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 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거인들인 아낙 자손을 보았다고 부정적인 불신앙의 보고를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은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통곡했 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었습니다. 이로 인해 불신앙의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음 을 맞게 되었습니다. 40년이 지났지만 요단 강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는 여 리고 성은 여전히 성벽도 든든하고 공격하기 쉽지 않은 큰 성으로 우뚝 서있습니다. 게다가 눈앞의 요단강은 홍 수로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변변한 무 기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 아는 백성들에게“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 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차지하게 하시 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며 도강과 전투준비를 명령했습니다. 말세지말(末世之末)을 사는 우리에게도 영적 전투의 날 이 다가왔습니다. 세계가 동성결혼을 인정하고 합법화 하는 조치들을 취해가고 있습니다. 기독교 국가였던 미 국에서도 금년 6월 26일에 전국적으로 동성결혼을 허 용하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나라가 21개국 이며, 동성커플에게 정식 부부에 준하는 권리를 인정하 는 나라가 16개국이나 됩니다. 최근에는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까지 국민투표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습니다. 이제는 성적 취향이나 종교를 차별하는 것이 국가의 제 제를 받는 때가 되었습니다. 동성결혼이 합법화 된 나라 에서는 동성결혼의 주례를 거부하는 목사나, 동성 부부 를 위한 결혼 케이크 제작을 거부하는 제과점, 동성 부 부의 결혼식장에 꽃 장식을 거부하는 화원이 제재를 받 습니다. 벌금이 부과되고 교회의 세금면제 혜택이 취소 되며 심지어 감옥에 수감되는 때를 맞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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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 뿐 아니라 종교의 차별도 같은 제재를 받는 때 가 되었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 는 것도 종교차별이 됩니다. 기독교만이 구원의 종교이 고,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라는 성경의 진리가 박해 를 받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새벽이 가까워올수록 어두움이 더욱 짙어지는 것은 대 자연의 원리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도“밤이 깊고, 낮 이 가까이 왔습니다.” (새번역 롬 13:12)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밤이 깊은 어두 움의 때라는 말입니다. 죄악의 거센 파도가 교회 뿐 아 니라 신자들의 삶에 고통을 가져오는 위기의 때가 되었 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교훈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독 교가 로마의 박해를 받을 때는 성도들이 순전한 복음을 붙들고 신앙의 절개를 굳게 지켰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가 로마정부의 공인을 얻고 자유를 누리게 되자 교회가 부패하고 기독교의 진리도 왜곡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래서 중세의 암흑시대가 오고 말았습니다. 이제 기독교가 전에 없던 혹독한 시련을 겪을 때를 맞았 습니다. 신앙적 양심과 기독교 진리 때문에 박해를 받 게 되면 참 신자와 거짓 신자가 분명히 나타날 것입니 다.“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히 10:38)하신 말씀처럼 교회와 신자들이 바른 신앙을 지 키기 위해 순교적 각오로 영적 전쟁에 임해야 하겠습니 다. 불로 단련할 때 순금이 나오듯이 영적 전쟁을 통해 값지고 빛난 승리가 주어질 것입니다. 영적 가나안을 쟁 취하기 위한 결전의 날이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KO MI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 16:33)
글_성기호 목사 본지 발행인 keehosung@hanmail.net
라오스에서 보내 드리는
하늘나라 백성들
Face of Lao - “괜잖아유” 의 나라 2 “라오스” 는 필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이름으 로 다가온다. 라오스말로 라오, 영어로는 Laos, 헬 라어로는 λαὸ(라오) 혹은λαὸς(라오스)인데 벧전2: 9~10절에“오 직너희는…그의 소유된 백성(λαὸς) 이니…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 나님의 백성(λαὸς)이요”Laos는 하나님의 백성(my people)이라는 뜻이다. 라오스 땅은 이미 사람들 의 입에서“라오스” 라는 이름이 불릴 때마다 하나 님께서“내백성”이라는 불붙는 마음으로 이 땅을 보실 것이다.
(56x76cm charcoal pastel 2013)
“버뺀냥(괜찮죠)” 은 자신이 잘못한 상황 을 얼버무리려고 먼저 선수(先手)를 치면 서 뭐 이 정도를 가지고 그러냐며 그냥 넘 어가려는 인식에서 나온 말이다. “커톧(죄송하다)”한마디면 다 해결할 상 황임에도 그 말이 그리도 어려운지.. 처음 라오스에 왔을 때 공산주의국가에서 는 잘못했다는 말을 하면 자아비판을 받고 벌에 처해진다는 잘못된 정보를 진실로 알 고“커톧” 이라는 말을 꺼려한다고 알아왔 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커톧” 의“커” 는 간청. 요청을 표현할 때 쓰는 접두어이고“톧” 은“벌하다. 징계하 다. 심판하다” 의 의미로“저를 벌해주세 요” 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라 오스사람들의 입에서“커톧” 이라는 말은 결코 쉽게 나오지 않는다. 아니 한편으로 는 이 단어를 입에 올리기 꺼려하는 마음 을 이해해보려 노력도 해본다. 그래서 필자는 학교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 들에게“커톧” 대신“커아파이” (용서해주 세요)란 말을 요구하는데 의외로 이 말은 커톧보다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하곤 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시면서 천국에 서 사용하는 3단어를 선물로 주셨다. 이 3 단어만 사용해도 이 땅이 천국과 같을 것 이다. 그 말은 바로‘미안합니다’ ‘고맙습 , 니다’ ‘사랑합니다’ , 이다. 라오스에 살면서 라오스 사람들 사이에서 나 한인사회 가운데서 이 3단어를 찾아보 기 쉽지 않다. 아니“버뺀냥” 이 이 3단어 를 다 잡아먹은 것 같다.자신의 잘못을 정 직하게 인정하는“커톧” ,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컵짜이라이” ,사 랑하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기초 적이면서도 귀중한 표현“커이학짜오” 이 3가지 천국언어가 가득한 라오스 땅이 되길 기도한다. KO MI
글과 그림_엄미정 라오스 선교사 & 화가 apostol@hanmail.net
하나님의 은혜로 월간 한국인 선교사 발행이 20년이 넘어갑니다. 창간호부터 지금까지의 책 내용을 모두 스캔해서 ISSUU에 올려두었습니다. 자유롭게 가져가셨으면 합니다. (홈페이지: http://issuu.com/koreamission/docs, 아이디: koreamission, 패스워드: 22686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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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은혜의 발자취Ⅰ
선교사 천로역정(6) 편집자주 : 브라질 김선웅 선교사의 20여년간 사역이야기를 10번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브라질에서는 총기 사고로 연간 약 4만 명 이상이 죽습 니다. 하루에 평균 110명 정도가 총 때문에 죽는 브라 질의 선교사로 사역하면서 저 역시 총을 피해 갈 수 없 었습니다. 첫 번째 총 이야기 선교지에서 교회를 개척할 쯤에 길을 가고 있는데 동네 청년 하나가“목사님”하고 저를 조용히 불렀습니다. 그리고 옷 속에 감추어 두었던 총과 실탄을 보여 주면 서 미화 50불에 사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총 때문에 많이 놀랐지만 전혀 놀라지 않는 표정으로 태연 하게 물어 보았습니다.“왜 내가 이 총을 사야 합니까? 그리고 총알이 왜 3개만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 청 년은“모든 사람에게는 원수가 있습니다. 목사님도 원 수가 있잖습니까? 그 원수를 총으로 쏴 죽이세요. 보통 총을 한 두 번은 잘못 쏘아서 원수가 죽지 않을 수도 있 지만 3번째에는 반드시 죽습니다.”목사인 제가 과연 총으로 쏘아서 죽이고 싶을 만한 원수가 있었을까요? 그 청년은 제가 목사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총 때문에 얼마나 놀라고 있었는지는 몰랐을 겁니다. 일평생 총을 사라고 말한 사람은 그 사람이 유일합니다.
다. 산을 내려가고 있는 중에 다른 쪽 차선의 차 한 대 가 산을 올라오면서 갑자기 멈추더니 어른으로 보이는 사람이 총을 들고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또한 운전하던 사람도 내리더니 우리를 향해 총을 겨누 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라고 명령을 내렸습 니다. 순간‘아, 올 것이 왔구나!’하는 순간에 아내인 김혜란 선교사가 차를 내리면서 그들에게“너희가 누 군데 우리에게 총을 겨누고 있냐!”하면서 용감무쌍하 게 따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어이가 없다는 듯 이 경찰이라고 신분을 밝혔음에도 다시 그러면 신분증 을 보여 주라고 당당하게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내의 이런 태도를 보고 그 사람이 말하기를 만약에 누 군가가 당신에게 총을 겨누면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하 며 이렇게 따지고 다가오면 위험하다고 말해 주었습니 다. 알고 보니 강도가 우리 차랑 똑같은 차를 훔쳐서 도 주 중이었기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었습니다.
원주민 주부들의 자립을 위해 인형 만들기 교육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망을 나누는 현지 청소년들 두 번째 총 이야기 우리가 개척한 교회는 깊은 산중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시내를 나가기 위해서는 높은 산을 꼭 넘어가야 했습니다. 딸 데보라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 쯤 일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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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총 이야기 교회를 개척한 지 8년쯤 되었을 때 일입니다. 어느 토 요일, 저는 도시에 볼일이 있어서 나갔고 아내는 교회 에서 주일 예배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일이 끝나서 집에 가려고 시동을 거는데 갑자기 시동이 걸리 지 않았습니다. 그 차는 오전에 수리를 하고 온 차였습 니다. 그래서 집에 전화를 했더니 계속 통화중이여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걸어가려고 교회를 나서는데 기 도원 관리 집사로부터 전화가 와서 강도가 집에 들어와 싹 쓸어갔다고 하였습니다. 놀란 아내는 교인들과 뛰 어서 집에 가보니 (걸어서 7분 거리) 이미 상황은 종결 된 상태였습니다. 집사가 설명한 당시 상황은 2명의 총
강도가 집에 들어와 아들 성순이(당시 9살)와 교회 청 년 2명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을 한 곳에 가둬두고, 옆 에 살고 있던 강 선교사님의 집에 먼저 들어가 다 훔친 다음에 집에 있는 아내의 시계와 반지를 가지고 갔고, 우리 집 옆에 잠시 머물고 계시던 박 장로님 집에 있는 물품들과 마침 방문한 장로님 딸이 타고 온 차량을 빼 앗아 훔친 것들을 가지고 도망간 것이었습니다. 강도가 사라지자 인질로 있던 강 선교사님 부부와 아들 성순 이, 청년들, 박 장로님 부부는 무서운 나머지 산 속으 로 도망을 쳤다가 우리 부부를 만난 것이었습니다. 그 제야 왜 차 시동이 안 걸렸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 하면 강도들은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고 하였습 니다. 더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막 아주신 것입니다. 아들 성순이는 얼마 동안 트라우마로 인해 힘들어 했지만 지금은 다 극복하고 웃으면서 그 때의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은혜와 감사의 빠뜨리시아 목사 안수식 최근에 일어난 네 번째 이야기(2012년 6월) 당시 저는 지피 선교회에서 5권역(중남미와 아프리카 지역) 대표로 있었는데 파라과이 정 선교사님으로부터 국제상호기금 대여를 위한 청원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역하고 계시던 파라과이 신학교가 신학대학으로 승 격되면서 파라과이 문교부에서는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교실과 도서관 추가 건축을 전제로 승격되기 전에 공부한 신학생들에 한해서 1년간 공부를 더 하면 학사 졸업장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건축위원 장이었던 정 선교사님은 급히 필요한 2만 불을 위해 선 교회 국제상호기금 청원을 한 것인데 본부 사정상 8월 말쯤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 서 기도하던 중 브라질에서 사업하시는 집사님 한 분에 게 찾아가서 상황을 설명했더니, 그 자리에서 미화 2만 불을 빌려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는 6월 19일 저녁 6시 돈 2만 불을 가지고 파라과이행 2층 국제버스를 탔다. 그런데 8시경 쯤 이 미 승객으로 변장해 차 안에 있던 무장 강도 2명이“꼼 짝 말고 손 들어.” 라는 소리와 함께 행동을 개시했고 버스를 따라왔던 승용차 4대에 타고 있던 일행들이 버
스로 올라와 승객 53명 전원을 털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아내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하나님 강도의 눈 을 가려 주십시오. 이 돈은 파라과이 신학대학에 꼭 필 요한 돈입니다.’저는 그 때 아래층 뒤쪽에 아내와 앉 아 있었는데, 버스 2층에 탑승하고 있던 34명은 모두 버스 밖으로 나가 일일이 몸수색을 받았고 여자들은 속 옷까지 다 뒤져 전부 털어갔습니다. 1층에 탄 12명도 버스에 그대로 앉아 털렸습니다. 저는 가지고 있던 브 라질 돈(약 미화 1000불정도)을 상납하고 시계와 핸드 폰도 상납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아주 여유 있는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 었습니다. 총 든 강도가 우리 앞에 오자 아내는“이 총 진짜에요? 저는 진짜 총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처음 보 거든요.”하니 강도가 말하길 이 총은 진짜 총이며 위 험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후에 계속해서 돈과 시계 노트북 등을 요구하는 강도에게 옆에 있는 남편은 목사이며 그래서 돈이 많지 않다고 하자 강도는 목사가 무엇이냐고 되물어 왔습니다. 아내는 다시 교회 목사라 고 대답하였고 강도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하며 도 리어 우리에게 축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강도는 계속해서 가방을 뒤지만 그 속에는 먹을 것뿐이었습니 다. 그러면서 시간은 약 20분쯤 시간이 지난 뒤, 이번 에는 인상이 좋지 않은 강도가 다시 우리에게 와서 가 방을 뒤지려고 하자 좀 전의 강도가 와서‘거기는 이미 내가 다 확인 했어’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밖으로 끌 려 나갔더라면 앞주머니와 뒷주머니에 있던 2만 불을 빼앗길 뿐만 아니라 거짓말 한 것 때문에 몸이 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총을 든 떼강도는 25분 만에 어마어마한 돈을 털어 갔 다. 파라과이 국제버스는 보통 장사하는 사람들이 파라 과이 무관세 지역에 물건을 장만하러 가기 때문에 현금 을 소지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강도가 떠난 후 그나마 감추었던 핸드폰으로 경찰서에 전화를 했습니 다. 그리고 3시간 만에 경찰차 2대가 왔습니다. 새벽 4 시 다시 집으로 돌아와 정 선교사님께 연락을 드리니 이미 파라과이 뉴스에 국제버스 강도사건 기사로 도배 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 음 주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무사히 2만 불을 전달했 습니다. KO MI
글_김선웅 브라질 선교사 brazilgp@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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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은혜의 발자취Ⅱ
일곱, ‘ 현지 교회가 한국 선교사에게 바라는 점’ 편집자주 : 장철호 뉴질랜드 선교사의 20여년간 사역이야기 를 10번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뉴질랜드는 태평양에 속해 있지만 80%가 영국계라서 자신들의 출신에 대한 자존심이 대단합니다. 지금으로 부터 약 160년 전에 영국에서 새로운 땅 뉴질랜드로 이민이 시작되었습니다. 대부분이 사금을 태거나 목 축을 하기 위하여 이주해 온 사람들입니다. 범죄자들 을 수용하면서 시작된 호주의 이민지들과는 달리 뉴질 랜드 사람들은 정말 순수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왔습니 다. 게다가 그 당시의 이민자들의 80%가 넘는 숫자가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오자마자 미국의 청교 도들처럼 교회부터 지었고 그리고 학교를 짓고 그 다 음에 자기들의 집을 지었습니다. 집들도 얼마나 튼튼 하고 좋은 자재를 사용해서 잘 지었는지 지금도 오래 된 건물들이 신축 건물보다 비쌀 정도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중심으로 움직였던 사회라 기독교인이 아닌 사 람들도 교회를 다니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습니다.
립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자녀들이 안쓰러워서 부모 들이 조금씩 양보하다 보니까 아예 이들의 자녀들은 교회로부터 멀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어릴 때는 부모의 손을 잡고 교회를 다 녔던 추억들이 다 있습니다. 지금은 전체 15%가 스스 로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 중에 교회에 정 기적으로 다니는 사람들은 전 인구의 5% 정도 밖에 안 되어 나이 드신 분들이 모이면 한숨을 쉬시면서 장차 이 나라가 어찌될까 탄식을 합니다. 이들은 저희 같은 선교사들을 만날 때마다 이제 뉴질랜드의 장래는 동양 에서 온 선교사들이 책임을 져 주어야 한다고 힘주어 부탁을 합니다.
말레이시아 수 자매의 세례식
현지 교회의 성도들의 예배 후 교제의 시간 하지만 뉴질랜드에도 물질문명의 혜택이 주어지면서 젊은이들이 조금씩 세상으로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고 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학을 진학하거나 아니면 사 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부모의 간섭이 없이 마음대로 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부모로부터 독립하면 정 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기에 학교를 다 니면 무이자로 학비를 빌려줄 뿐 아니라 매주 생활비 까지 정부에서 제공을 해주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갑 자기 공돈이 생기는 바람에 술로 며칠 만에 다 탕진을 하고 모자라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부모에게 손을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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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한 자매는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갔다가 거 기서 뉴질랜드 남자를 만나 결혼한 후, 남편을 따라 뉴 질랜드로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신학을 공부하는 학 도로 박사과정까지 다 마친 상태였습니다. 자신이 받 은 달란트는 가르치는 은사이지 목회가 아니라고 했는 데 고민 중에 더니든 근처의 한 장로교회로부터 청빙 을 받고 목회를 해보자고 하여 왔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하는가 싶었는데 점점 교인들과의 갈등을 겪게 되 었습니다. 그래서 교단에 이야기를 하니 슈퍼바이저를 선정하여 그 사람과 한 달에 한 번 정도 조언도 구하고 기도도 하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고민 끝에 저를 슈퍼바이저로 세워 함께 기도하며 마음을 달랬습니다. 이들이 너무 힘들어 지쳐 있을 때 한 달씩 휴가를 가시면 제가 그 교회를 가서 사회부터 설교, 축 도까지 다 섬겼습니다. 시골 사람들이라 누구 하나 사 회를 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 후 주위에 목사님이 안 계신 교회가 여러 곳 있었 는데 가끔씩 저를 초청을 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양 로원을 방문하여 저희 가족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찬양 으로 섬겼었습니다. 그리고는 저의 간증을 나누며 하 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소 문이 나자 여기저기 교회에서 저희들을 불러주셔서 가 면 그들은 눈물을 흘리시며 자기들의 보모시대에나 들 을 수 있었던 간증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영적인 추수 의 시기가 끝난 이곳에 예전 같은 놀라운 하나님의 역 사를 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다. 이 같은 훈련조차도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현지 교 회를 섬길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티마루 집회소에서 성경공부 후 함께한 공동체 식구들
현지 교회에서 설교중인 장기드온 선교사 저는 처음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일본 선교에 대한 부담 을 받고 시작한 선교사이기에 이들을 바라보면 안타까 워서 도와드리고 싶은데 일본 선교를 놓을 수가 없어 서 나름대로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도 일본 교 회를 섬기고 있지만 일본인들만 오는 곳이 아니라 중 국, 말레이시아, 타이완 등 여러 나라의 학생들도 참 석을 하고 있어서 예배 자체가 일본어와 영어를 동시 에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어 10년 전부터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일본 교회라고 말하면 안 된다 며 이곳은 국제교회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일본에 가기 전에 필리핀에서 10개월 동안 영어 언어 훈련을 한 적이 있습니다. 38세에 일본에 파송을 받아 들어갔는데 일본어를 배우는 동안 영어는 어디로 갔는 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43세에 뉴질랜드로 안식년으로 왔다가 현지 교회의 목사님의 간절한 동역 제안으로 이곳 뉴질랜드에 남은 지 벌써 16년째가 되 었습니다. 그래서 영주권을 받기 위해 틈틈이 영어를 공부하였습니다. 법이 바뀌면서 IELTS6.5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선교지를 옮기면서 낙원 같은 뉴질랜드로 왜 선교지 변경을 했는가? 자녀 교육 때문 아니냐? 라는 별별 말을 다 들으면서 선교비가 추풍낙 엽처럼 떨어져 영어 공부를 위해 학원을 다닐 형편이 전혀 못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은 혜를 베풀어주셔서 무사히 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습니
그리고 10여 년 전부터 뉴질랜드는 기독교 국가임을 포기했습니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온갖 인종, 종 교들을 다 받아들여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특히 무슬 림 국가에서 들어 온 학생들이 아예 돈으로 유명 대학 교의 특정 학과의 정원을 사버렸습니다. 이들은 유학 생 신분으로 와서 공부하지만 정부에서 학비와 생활비 를 대주니 뉴질랜드 정부로서는 외화 수입에 큰 자원 이 되어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감에 따라 할랄 음식을 요구하고 학교마다 기도실을 요구하 며 점점 침투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학교는 재정적 이 유를 들어 점점 이들과 타협하며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실정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판인데 정부나 학교조차 개념도 없이 돈만 따라 가는 실정이니 이 나라의 장래가 참으로 암담하기 그지없습 니다. 아름다운 자연의 나라 뉴질랜드가 세상의 물질 과 사신 우상에게 점령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 나님께서 우리 같은 선교사들을 이곳에 보내신 목적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뉴질랜드의 장래와 이들의 구원 사역을 위해서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샬롬! KO MI
글_장기드온 뉴질랜드 선교사 gideon91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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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
땅끝이야기Ⅰ
일곱번째 - '단기 선교'의 계절 편집자주 : 러시아 박광배 선교사의 선교를 향한 이야기를 10번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단기 선교의 계절입니다. 단기 선교는 방문하는 분들 이 선교 현장을 직접보고 느끼고 도전을 받는데 있습 니다. 더 나아가 선교 헌신자들이 단기 선교를 통하여 일어나서 지속적으로 이 선교가 주님 오실 때까지 계 속되는데 있습니다. 또한 선교 현장에서 맞아들이는 선교사는 외롭게 사역하다가 고국의 성도들과 후원자 들을 만나게 되면서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치유가 되 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혼자 기도하며 현 장에 필요를 생각하던 것을 방문자들과 나눌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 자리에서 그 필요들에 대한 응답이 나올 때는 황홀 합니다.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듯하다.” 고 고백한 욥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방문했던 분들이 모든 사역을 마치고 떠날 때 는 다시 혼자가 된다는 생각으로 한없이 외로워지기 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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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수록 유혹이 더 많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난 이렇 게 큰 역사를 이루었다.” 는 칭찬을 받고 싶어집니다. 지나간 이야기입니다. 어느 한국 대형교회 파송선교 사였습니다. 매달 성도들의 출석률을 본 교회에 보고 드렸습니다. 몇 년이 지나 본 교회 담임 목사가 현장 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전도되고 늘어나는 성 도들의 수를 계산해보면 이제는 천명에 가까운 수가 모이는 엄청난 교회로 보고를 드렸으니 얼마나 현장 이 보고 싶었겠습니까? 담임 목사님 방문 연락을 들 은 이 선교사는 마음이 급해 졌습니다. 없는 성도 수 를 허위로 보고를 드렸던 것입니다. 어찌 어찌 선교 사들이 세운 이웃 교회 현지 교회 성도들을 동원하여 200명 가까운 분들을 모았습니다. 집회 내내 담임 목 사는 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에게 전도되어 온 분들 로 알고 감격해 마지못해 설교하였고, 듣는 성도들은 그제야 본인들이 잘못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 다. 담임 목사가 떠난 자리에서 선교사의 위상은 현장 에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분명한 것은 선교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닙니다.
전도된 아이들에게 복음 뿐 아니라 놀이와 휴식을 함께하는 모습
오지인 로마노브까지역을 섬기고 있는 부산 수영로교회 지체들
기도편지를 보고 기도하던 분들이 선교 현장에 오면 반응들이 다양합니다. 어떤 결과가 있더라도 선교사 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함께 기도 제목을 나누며 사역을 공유하여야 합니다. 단기 선교팀들이 오면 선 교사들이 쉽게 빠지기 쉬운 유혹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역에 대한 과대 포장입니다. 선교사 자신을 너무 영 웅적인 인물로 보여주고 싶어 하는 유혹도 받을 수 있 습니다. 이 유혹은 선교지에 도착한 시간이 짧으면 짧
두 번째로 선교사에게 있는 유혹은 자신의 청빈을 강 조합니다. ‘차량이 몇 년 되었지만 난 아직도 이런 차 를 타고 있다’ ,‘아직도 이렇게 누추한 곳에서 살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데 돈이 없어 이 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다’ 등등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 하듯이 이야기합니다. 죄송하지만 선교 현장을 방문 하는 많은 분들은 여행 플러스 선교 현장 방문을 통해 본인의 힐링을 위하여 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생각이
전혀 다른 분들이 방문하는데 선교사의 구차한 자기 어려움의 이야기가 귀에 들릴까요? 열거하자면 우리 의 속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조심스럽습니다. 사실 어 렵게 선교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에 게 이 글이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선교사는 선교 현장에 어떻게 살기 위해, 어떤 수준에 생활을 유지 하기 위해 혹은 어떤 차종을 사서 차량을 타려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선교 현장에 온 분명한 이유가 내가 받은 구원이 너무 감사하고 그 구원을 또 알려 주고 싶은 마음에서 그 땅에 영혼들을 찾아 왔 습니다. 예수님이 성육신하셔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 고 우리 죄인의 형상을 입으시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기까지 하신 삶이 우리의 모델이 고 선교의 모델입니다. 바로 인카네이션입니다. 그분 은 하늘 보좌와 죄인들 속에서의 삶은 결코 비교하시 지 않았습니다.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굶고 힘들 어도 한 번도 현장을 떠날 생각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분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모습은 새벽 미명 시간에 그리고 한적한 곳을 찾 아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본인에게 주어진 제자들 과 함께 하셨습니다.
단기 선교는 불편을 감당하고 출발하는 것입니다. 지 금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 교회에서 이곳 숙소 예 약을 부탁했습니다. 금액은 얼마라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세식 화장실에 욕조가 있어야 한다는 등, 금 액에 비해 말도 안되는 황당한 부탁들을 합니다. 혹 금액이 조금이라도 높을라치면 한국은 얼마면 되고, 숙박소가 가는 곳마다 있다며 불평합니다. 그리고 먹는 것에서 불편을 감당해야 합니다. 싱겁 다. 짜다. 느끼하다. 별 말들이 다 있어도 여기는 선 교지입니다. 선교지를 위하여 정말 도와주셔야 할 부 분이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일입니다. 선교지의 음 식 그릇이 비워질수록 선교지의 성도들의 은혜도 넘 칩니다. 음식이 남으면 남은 것만큼 은혜도 못 받습 니다. ‘이분들은 본래 우리하고 다른 분들이구나’ 하며 이질감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앞으로도 선교에 대한 열정을 가진 자기 일꾼을 준비하시고 시대마다 사용하십니다. 자신 의 모습이 초라하다고 절망하지 맙시다. 선교사의 소 망은 본래 이 땅이 아닙니다. 삶에 여유가 없는 것으로 도 낙담하지 맙시다. 그 상급은 하늘에 있습니다. 알 아주는 이 없다고 해서 좌절도 하지 맙시다. 이 길은 본래 위의 부름을 받아 이 길을 걸어가는 사명자들입 니다. 열매 없는 것으로도 절망하지 맙시다. 이 사역 은 결코 숫자에 있지 않습니다. 그 질과 능력에 있습니 다. 이 시대에도 사도 바울 같은 사람 한 사람이면 그 나라를, 그 주변 국가를 능히 변화 시킬 것입니다. 멀리서 그 대상자를 찾지 말고 내가 그 주인공이라는 착각으로 목숨을 다하는 그날까지 맡겨진 사명을 다 하며 달려갑시다. 그분이 부르시는 부름을 따라 그분 이 맡겨주신 이 귀한 사명을 가지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고 위의 것을 생각하며 나아갑시다. 모두 파이팅입 니다. KO MI
글_박광배 러시아 선교사 nakhodkach@hanmail.net
전도의 키맨인 현지 어린 리더들에게 기도하는 박광배 선교사 찾아오시는 단기 선교팀들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봅 시다. 단기 선교는 여행이 아닙니다. 패션을 자랑하는 시간도 아닙니다. 한국만 좋다고 하며 조금 불편한 일 이 있으면 한국은 이렇지 않다고 한국 타령만 하는 시 간이 아닙니다. 와이파이 타령을 하며 인터넷이 안 된 다고 불평하는 시간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자기 장비 를 자랑하는 자리도 아닙니다. 개성들이 각자 다르다 보니 사진도 나이에 따라 찍느라 많은 시간이 허비됩 니다. 더군다나 저마다 자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느 라 시간을 맞추는 것이 힘들어졌습니다.
세계 선교의 현장에서 힘쓰시는 선 교사님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의 말 씀과 분별력에 대한 강한 메시지가 담긴 <시대를 아는 힘>을 소개해 드 립니다. 선교현장에서, 자녀들의 교 육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힘 을 얻기위해 활용하셨으면 합니다. 이 책의 판매 수입금은 탈북자들을 위한 선교에 쓰입니다. 문의: 통일소망선교회 이빌립 선교사 (02-2625-0497) 가격: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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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
땅끝이야기Ⅱ
'나는 엄마다' 일곱째 이야기 편집자주 : 바울 선교회 MK맘 허은영 선교사의 삶과 사역 이 야기를 10번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별들의 속삭임! 올드날래디 아이들 해피 홈 앞마당은 올드날래디 지역의 마을 회관입니 다. 이 지역 추장의 허락으로 작은 센터를 지을 수 있 었습니다. 조립식으로 지어졌지만 이 지역의 아이들 을 위한 멋진 집이었습니다. 페인트칠을 하고 멋지게 그림도 그려 넣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멋은 그곳에서 울려 퍼지는 찬양 소리입니다. 기도 소리입니다. 말씀 암송 소리입니다. 시간 시간 다른 소리들이 넓은 마당 가득합니다. 이쪽저쪽 그늘진 나무 아래에서 들려오 는 리코더 부는 소리들과 영어 클래스, 수학 클래스, 합창 클래스 등 날마다 쉴 틈 없이 멋진 소리들로 가득 합니다. 해피 홈에 오는 아이들은 정부에 등록되어 있는 고아 들, 이 지역 추장이 필요에 의해서 보내준 아이들과 지 역 복지사들의 추천을 통해서 정말 돌봄이 필요한 아 이들을 등록했습니다. 처음 시장 구석에서 7명의 아이 들에게 밥을 나누었고 날마다 수가 늘어나 더 이상 시 장 골목을 사용 할 수 없어서 근처 공터나 공원 등을 사용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한 지역에 작은 공간도 마련하고 또한 넓은 마당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큰 행 복이었습니다. 그 숫자도 날마다 커져서 100명의 등 록을 마감했는데도 날마다 아이들은 모여 들었습니다. 밥 한 끼를 위해 그리고 간식 등등을 위해 그리고 힘찬 찬양과 배움의 소리들을 듣고 달려오는 아이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급기야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는 300명이 넘는 아이들을 날마 다 나의 식탁에 둘러앉힐 수 있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해피 홈 놀이터 마당 한가득 뛰노는 아이들의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힘이 넘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곳은 어린이들만 위한 놀이터가 아니었습니다. 해피 홈 아이들 소식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여 러 봉사자들이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 은 나는 분명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선교 사역인데 종교 와 관계없이 아이들을 위해 봉사자들이 오고 또 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또한 봉사자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습니다. 할렐루야!! 봉사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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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를 받고 어느 분야에서 봉사 할 것인지를 물어보면 서 나를 소개합니다. 내가 왜 보츠와나에 왔는지를 이 야기하며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부터 설명했습니다. 어 느 때는 신문 기자를 놓고 간증을 하고, 어느 날은 텔 레비전 카메라 앞에서도 간증하고, 이슬람 국가에서 온 대사관 직원들 앞에서, 외국계 은행 직원들, 국제 여성단체 등등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전할 기 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해피 홈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여기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기에 수업 시 간 전에 예배에 함께 참여하고 함께 기도하며 아이들 을 내 아이처럼 같이 키워 가자고 도전했습니다. 그리 고 날마다 15개국 출신의 봉사자들이 각자의 재능대 로 해피 홈의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어 주었고 아이들 과 함께 기도하고 예배하며 복음을 듣는 기회가 되었 습니다. 해피 홈의 마당은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아 니라 복음이 필요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영적으로 쉼 을 얻고 기쁜 소식을 접하는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티처 바바라와 함께하는 영어 수업 하늘나라 마당입니다 보츠와나는 한 가정에 보통 4~6 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언니, 오빠가 자연스레 부모의 역할을 대신합니다. 집안 청소와 물 길어 오기는 물론 이고 동생들을 키우며 밥도 먹이고 돌보는 일은 너무 도 당연합니다. 이런 환경 때문인지 해피 홈에서도 서 로 마당을 청소나 설거지는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오 히려 공부하는 할 때보다 설거지하고 청소하는 일들을 할 때는 더 흥겨워하며 엉덩이를 흔들고 보츠와나 전 통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기도 합니다.
“주여~”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병원으 로 달려가 시체를 확인하고서야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회의 하던 그 시간에 오싸디는 부쉬 숲을 한참 지나면 쓰레기장이 있는데 마켓에서 버린 음식물들을 구하기 위해 큰 대로를 건너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해피 홈 센타에 오기 전에 이 마을 아이들은 어느 마켓이 무슨 요일 몇 시쯤에 쓰레기를 버리는지를 모두 알고 있을 정도로 그곳을 찾는 것을 일상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브라질 대사관에서 나온 봉사자들과 함께 한 해피 홈 친구들 해피 홈에는 물이 없습니다. 그 지역의 모든 가정이 그 렇듯 마을 공동 수도에 가서 물을 길어 와야 합니다. 아이들 걸음으로 10분정도 걸어가서 양동이에 물을 받아 둘씩 물을 길어 옵니다. 이것은 고도의 기술을 요 합니다. 양쪽에서 양동이를 맞잡고 걸어 갈 때 서로 잘 호흡이 맞아야 물을 흘리지 않고 잘 가져 올 수 있습 니다. 정말 동역이고 호흡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유난 히 눈에 띄게 물을 열심히 길어 오는 오싸디라는 초등 학교 5학년의 아이가 있습니다. 동글동글 웃기도 잘하 고 날마다 설거지를 할 때면 제일 먼저 물동이를 들고 뛰어가는 아이였습니다. 날마다 시끌벅적하던 해피 홈 마당이 조용했던 날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보츠와나의 수도 가보로네 바로 옆에‘오래된 별’ 이라는 의미의 올드날래디 마을은 우범지역이기도 하지만 가장 열악 한 환경을 가진 마을입니다. 낮에는 천국이지만 밤이 면 외출을 하기도 무서운 지역으로 변합니다. 이 지역 주민들은 밤에 촛불 하나 태우기도 힘들 정도로 극심 한 가난에 처해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에 하나님을 극 적으로 해피 홈을 만드신 것입니다. 이렇게 센타를 세 우기까지는 법적 절차가 상당히 어렵고 또한 외국인으 로 일을 추진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 님의 방법은 그 지역을 관할하는 추장의 마음을 움직 이셔서 공공장소인 마을 회관의 터를 내주었던 것입니 다. 처음에는 저희가 매입 할 수 있는 땅을 찾아보았지 만 이미 포화 상태로 판자촌을 이루고 있고 그 외에는 정부에 소유라서 불가능했습니다. 이렇게 일이 진행되 면서 마을 회관에 상주하는 직원들이 저희 센타를 고 발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문제는 소음과 많은 아이 들이 출입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이런 고발 때문에 시 청 담당부서에서 시설점검 및 확인 한다며 임시 휴원 하라고 공문이 왔습니다. 저희도 나름대로 지역 추장 을 통해 우리의 입장과 사실을 증명하였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 하루를 휴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시청 담당 자와 회의에 들어갔다가 나오니 몇 명의 아이들이 달 려와 눈물을 터트렸습니다.‘오싸디’ 가 교통사고로 죽 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인터네셔널 우먼스 클럽의 해피 홈 돕기 바자회에서 공연 언제나 환한 얼굴로 물을 길어 오던 아이를 이젠 이곳 에서는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날 정부로부터 고발당 하지만 않았어도 한 아이의 목숨을 지킬 수 있었을 텐 데 하며 여러 가지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그 가운 데 정신이 번쩍 나게 한 것은‘구원’ 이었습니다. 해피 홈이 있었기에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오사디처럼 언 제 죽는지를 모르는 우리 모든 아이들이 구원의 확신 을 갖고 천국 시민으로 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 니다. 날마다 예배드리는 생활이었지만 무엇을 먹이고 가르치고 하는 것들과 또한 센타를 문제 삼는 사람들 에게 마음을 많이 빼앗겼던 것을 회개했습니다. 그날 부터 더욱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라는 것과 예수님 밖에 는 구원자가 없다는 것을 외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나 봉사자나 교사들에게 신앙을 고백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천국 복음 때문에 오늘 제가 여기에 있 습니다. KO MI
글_허은영 바울선교회 MK 선교사 baurimk@naver.com
선교사 디브리핑을 위한 모임 9월 12일 (토) 오후 5시 문의: 김종남 목사 010-2765-9654 gbm19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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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반쪽과의 만남
Love Story
오빠, 우리 사귀어 보지 않을래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고아 출신이라는 환경 때문에 자매 들에게 몇 번의 거부를 당한 후 하나님께 독신의 은사를 주시지 않은 거라면 자매가 자기에게 프로포즈를 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말해 주었다. 이 후 일주일간의 금 식 기도를 통해 서로에게 주신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후 남편은 먼저 선교지로 나가고 나는 국내에서 사역 간사 로 캠퍼스에서 사역을 하였다. 1년 반의 시간 동안 각자 의 사역지에서 메일을 통해 안부를 묻고 서로를 위해 기 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실한 믿음의 동역자인 채강식 선교사(좌)와 기업인 아이들 1남 6녀의 많은 형제들이 있는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직장 생활을 하던 중 우즈벡키스탄으로 비전트립을 통 해 선교에 부르심을 발견하였다. 그러다 직장 생활을 그 만두고 JDM(예수제자운동)이라는 단체에서 하는 8개월 과정의 공동체 훈련인 DTI라는 훈련을 자원하였다. 우리의 첫 만남은 훈련 시작 전날인 오리엔테이션 시간 에 이루어졌다. 지금의 남편이 된 그 형제는 잘 알아들 을 수 없는 경상도 부산 사투리로“나는 여자엔 관심 없 습니다. 선교사로 헌신하여 훈련받고자 이 훈련원에 입 소하였습니다”라고 소개하였다. DTI는 8개월간 전도 훈련과 캠퍼스 훈련을 한다. 그래 서 전국에 있는 JDM에 속한 지역을 다니기에 장거리 차 안에서 각자의 삶을 나눌 시간이 많았다. 그는 어릴 적 부모를 잃어 고아원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호락 호락하지 않은 세상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살았다고 했 다. 그 시간 속에 하나님이 얼마나 세세하게 간섭하시어 친 부모처럼 보살펴 주었는지 그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길이 부러웠다. 그리고 고된 훈련 속에서도 늘 아침 이면 경건의 시간을 갖는 모습에 참 귀한 형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훈련 기간 동안 하나님은 내게 선교사의 비전을 확실 하게 확신시켜 주셨고 JDM의 간사로, 선교사로 헌신하 게 하셨다. 남편과 깊어지는 삶의 간증 속에‘하나님이 이렇게 은혜 주시는 사람 옆에 꼭 붙어 있으면 그 은혜 가 내게도 흘러들어 오겠구나 ’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 다. 통통한 볼을 볼 때마다‘볼 살 없는 내 얼굴과 대비 되니 얼마나 귀여워’ 라며 생각의 전환을 한 그 때부터 함께 설거지조, 청소조로 묶여 늘 함께 있으려고 노력하 였다. 그러나 눈치라곤 전혀 없는 이 사람은 아무런 반 응도 없었다. 결국 훈련 기간의 마지막인 졸업 여행 중 에 속초 어느 바닷가에서 내 마음을 고백하기에 이르렀 다. '오빠 우리 사귀어보지 않을래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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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윤씨 집안의 장손으로 엄격한 유교 집안이던 우 리 집안에서 고아 출신의 사위를 순순히 받아줄 리 없 었다. 1남6녀의 형제 중 유난히 사랑하셨던 넷째 딸이 유치원 교사직을 그만두고 사역 간사가 된다고 할 때에 ‘넌 이미 내 딸이 아니다’ 라고 하셨던 아버지께 진심을 말씀 드렸다. 어른들과 대화하는 것을 잘 못하는 내게 하나님은 지혜로 말하게 하셨고 남편은 인사드리러 가 기 전날 하나님의 특별할 은혜를 주실 거라는 확신 가운 데 인사를 드리러 갔다. 힘들게 승낙을 받았던 형부들은 좋은 구경할 거라며 함께 자리를 마련했고 정말 기적적 으로 아버지께서는 단 5분도 안 걸려 허락을 하셨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남편이 대학 생활을 할 때 돌봐 주 셨던 친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교회 장로님이 셨던 아버님께 부모석에 앉아 달라고 부탁을 드렸는데 우리를 한약방으로 데려가 한약을 지어 주시고 예단과 예복을 해주시며 부모님처럼 준비시켜 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않으셨던 부모님은 이런 그분들의 모습 에 놀라워하시며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 삶을 사는 지에 대해 충격을 받으셨고 남편을 새롭게 봐주셨다. 얼마 전 결혼 15주년이 지났다. 결혼 후 두 달 만에 선 교지로 향했던 우리에게 세 명의 기업을 주셨다. 늦둥이 를 선물로 주셔서 여전히 신혼처럼 살고 있는 우리의 삶 은 남편에게로부터 흘렀던 은혜의 생수가 오늘도 흐르 고 있다. 우리 삶 가운데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 감사합 니다! KO MI
글_윤필녀 K국 선교사 c-osh@hanmail.net
월간 한국인선교사 쉴터는 선교사님들을 섬기고자 마련된 작은 숙소입니다. 현재 인천시 구월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다섯 채가 1997년부터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용문의: www.kormi.net / ☎ (02) 2268-6636
믿음의 눈으로 그리는
엘가의 빛그림 2
(예수전도단 전도여행중 방문한 중국 랴오닝성 이석채교회에서 촬영한 사진)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1-3)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전세계에서 헌신하시는 선교사님들을 통해 시편 1편 말씀이 곳곳에서 이루어지니 감사가 크게 넘쳐납니다. KO MI
사진_이기수 엘가 대표 elga1004@gmail.com
1995년 3월에 창간한 월간『한국인선교사』 는 해외에서 사역하는 한국인선교사의 삶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을 통하여 한국 교회의 선교 역사로 기록하고자 발행하는 선교잡지의 하나로서 선교사님들에게 무료 월간 보내기와 선교사님들을 위한 쉴터 운영 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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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와 IT
세상 돋보기 7
선교사님들의 후방엔 든든한 지원군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LG 전자에 다니는 조카가 최신형 스마트워치를 선물 해 주었습니다. 삼촌이 하는 일이 IT에 관한 일이기에 이것을 통해 좋은 제품을 개발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결코 싸지 않은 시계를 차고 다닌지 벌써 두 달이 되 어 갑니다. 아직은 관련된 앱들이 거의 개발되지 않아 눈에 띄는 결과물을 창출하지 못하지만 이런 것들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들이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기독교 국가가 아닙니다. 아니 이런 추세로 간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에서“예 수 외에 구원이 없다.” 고 선포하면 평등법 위반으로 구속이 되는 사태에 이를지도 모릅니다. 이런 곳에 살 면서 느끼는 것은 바로 크리스천이 삶의 현장에서 영 향을 미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불신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때에야 비로 소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들은 당장 필요가 있든 없든 자꾸 사용을 하 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미 개발된 기존의 것들도 자꾸 사용을 하면서 나 같으면 이런 기능들을 추가 할 텐데 하는 생각으로 발전을 거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선교의 현장에서도 동일하리라 믿 습니다. 그들의 속사람을 바꾸기 위한 방법으로 컴퓨 터 교육, 영어 교육을 구상하고 기도하시는 많은 선교 사님들을 봅니다, 특히 동남아 지역에서는 한글 교육 도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첨단 Technology를 도입할 수 있다면 아주 적 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입니다.
LA에 살면서 유리한 점 중 하나는 선교사님들을 접할 기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들과 대화를 나 누면서 느껴지는 것들이 자신들이 매우 세상에 뒤쳐 져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많 은 목회자들을 만나 본 필자의 생각에는 결코 선교사 님들이 뒤쳐져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 다. 오히려 어떤 분들은 매우 앞선 H/W나 S/W를 사 용하시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이번 여름 단기 선교를 다녀왔습니 다. EM은 태국으로 KM은 나바호로 각각 2주와 5일 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선교는 두 곳에서 VBS를 통해 어린 영혼들에게 포커스를 맞 추는 것이었습니다. 오래전부터 기도로 준비하고 실 행한 선교이기에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결과를 얻 었으리라 확신합니다. 선교에는 분명한 전략이 있어 야 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략에는 때론 첨단 기술도 필요합니다. 그 런데 내가 그 기술을 다 갖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습 니다. 아니 오히려 리더가 다 아는 상황에선 강력하게 밀어붙이지 못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은 선교사님들이 필요한 기술적인 일을 돕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은 그리 어 려운 일이 아닙니다. 생각하는 방향을 이메일로 보내 주시면 더 효과적인 방법을 연구해 돕는 일을 하려고 헌신된 많은 분들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물론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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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님의 사역을 알리십시오. 블로그를 통해 알리 시고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페이스북을 통해 알리십 시오. 그리고 이것을 배우는 일에 도전하십시오. 반나 절이면 되는 일에 두려움을 갖지 마십시오. 미얀마 선 교사로 다시 헌신하시며 떠나신 선교사님 부부는 단 이틀의 교육을 통해 원하시는 모든 것을 만들고 배워 가셨습니다. 혹 LA에 들르실 때 꼭 연락을 주시길 바 랍니다. KO MI
글_윤승준 Kyelp 대표 sjyoon7231@gmail.com 블로그 blog.naver.com/joshua7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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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건강상식
낸시가 사랑하는
병은 없다 7
하나님 만나기 7
열사병
어두운 후에 빛에 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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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병은 햇빛에 장시간 노출되는 여름철에 주로 발생하 며 그 증상으로는 의식이 저하되고 40도 이상의 고열이 나며, 저할혈압이 생기고, 호흡이 곤란해지며 이러한 고열 은 간부전과 신부전을 일으키며 그대로 방치하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 우리 몸은 외부 온도와는 상관없이 체온을 조절하는 체온 조절중추가 있어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데 그러나 체 온조절중추의 능력을 넘어설 정도가 되면 체온조절중추 가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특히 여름철에 뜨거운 햇볕에 장시간 노출되거나 지나치게 더운 장소에 오랫동안 있게 되는 경우에 체온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하게 되면 열사병 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열사병이 나타나기 전 증상으로는 두통, 어지러움, 구역질, 경련, 시력 장애 등이 있으며, 의식이 저하되고 몸 은 뜨겁고 건조하며 붉게 보이게 된다. 호흡이 얕아지고 느리며 혈압이 떨어지며 피부가 뜨거워지고 건조해지며 땀이 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가장 좋으나 응급처치로는 시원한 그늘로 환자를 이동시키고 기도를 유지하고, 의복을 벗기 고 팬으로 체온을 내려주며 물을 뿌려주고 아이스팩을 목 이나 겨드랑이에 넣어주고 어느 정도 의식이 회복되면 조 청이나 산야초발효액을 냉수에 타서 먹인다. 이러한 열사병의 예방법으로 평소에 풍욕이나 냉온옥 등 자연건강법을 꾸준히 실천하고 물(1일 8-10잔), 죽염(1일 5그램이상), 감잎차(1일 2잔), 과일과 채소를 골고루 먹어 면역력을 상승시켜야 하고 특히 여름철에 과로를 하거나 햇볕에 장시간 노출을 피해야 한다. 그 외에도 야외 활동시 창이 넓은 모자(밀짚모자)를 쓰고, 밝은색 옷을 입고, 충분한 염분 보충과 함께 오이나 당근, 토마토 등 시원한 채소와 과일을 준비하는 것이 열사병을 예방하는 좋은 방법중 하나이다. KO 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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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우 목사는 자연치유 전문가
다음 카페 <병은 없다> 운영 cafe.daum.net/leedokwoo 건강문의 nlc8004@hanmail.net
그림_안민희 자매 als367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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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의 소리
글_편미선 필리핀 선교사 GP선교회 punmisun65@hotmail.com
선교지에서의 삶은 늘 에너지 넘 치고 활기찬 삶만은 아니다. 살아도 살아도 이들의 문화 속에 완전히 녹 아들어 동질감을 느끼며 살 수 없기
에 마치 물위에 떠있는 기름처럼 아 니면 어항속의 금붕어같이, 혹은 동 물원의 원숭이 같다고 해야 하나? 그 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이들 속에 함께 살아가면서 슬플 때 같이 슬퍼하고, 기쁠 때 같이 기뻐해 야 한다. 이들과의 갈등 속에 이리저 리 부딪히며 살아내야 하는 부담과, 빡빡하게 막힌 오랜 전통들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그 틈새 속에 복음을 끼워 넣어야 하는 부담감으로 허덕일 수밖에 없다. 도대체 우리의 삶을 통한 작은 몸 짓으로 인해 선교의 바퀴가 정상적으 로 굴러가고 있는 것일까? 하나님 나 라의 지경이 이들 가운데 넓혀져 가 고 있긴 한 걸까? 머리 속이 복잡해진 다. 해결점이 보이지 않고 그저 모든 것이 희미하다. 머릿속이 텅 빈 듯이,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린 듯이, 온몸에 힘이 펌프물 빠져 버리듯이 쭉 빠져 버린 듯이, 손가락 하나 까딱 거릴 힘이 없이 무기력 할 때가 있다. 바로 그 때 펌프질을 하면서 얻은 교 훈이 힘으로 다가온다. 나 혼자 펌프 질하고, 물주고, 빠져버린 물 다시 끌 어올리느라 애씀이 아니라, 쉼 없이 펌프질로 물을 뿜어내는 일은 기도의 동역자님들께 맡기고 그 물을 받아 나무에 물주는 일은 선교사들이 하는 일임을 고백한다. 분명한 것은 쉬지 않고 새벽을 깨우는 기도의 동역자들 의 펌프질로 인해 오늘도 선교지의 영혼의 나무들은 무럭무럭 자라 간다 는 사실이다. 팔이 아프시겠지만 계 속 펌프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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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프질"
네 번째 개척한 교회 옆에 펌프가 있다. 교회 주변이 너무 황량하여 나 무를 심었는데 건기 동안 땅이 메말 라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어야 한다. 남편이 출타하여 없는 동안 이 나무 들에게 물주는 일은 당연히 내 몫의 일이기에 오늘도 물을 주기 위해 펌 프질을 한다. 건기라서 말라버린 우 물물을 끌어 올리려 안간힘을 쓰며 펌프질을 해 보건만 픽! 픽! 바람 빠 지는 헛소리만 난다. 연신 마중물을 넣고 펌프질을 하고, 또 마중물을 넣 고 펌프질을 하니 드디어 밑에서 부 터 무엇인가 끌려올라오는 느낌과 함 께 쭈욱하고 물이 따라 올라온다. 드 디어 펌프질을 할 때 마다 물이 쏟아 져 나온다. 그러나 계속해서 펌프질을 해야 한 다. 펌프질을 멈추고 한 양동이 물을 받아 나무에 주고 온 사이 또다시 물 이 빠져 나가 다시금 마중물과 함께 팔이 아프도록 펌프질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땅 밑에 흐르고 있는 지하 수를 끌어 올리려면 이렇게 안간힘을 써야하는데 잠시 쉬는 사이 물이 빠 져 나가 버리는 것은 아주 순식간이 다. 그렇게 하루 몇 시간을 고생하고 나니 온 몸이 뻐근하게 아파 그 다음 날은 교회 집사 한명과 같이 가서 나 는 계속 펌프질을 하고, 같이 간 집사 는 물을 받아 나무에 주니 한결 수월 하고 짧은 시간 안에 물주기를 마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