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선교사 (20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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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선교사 <어둠이 드리우면> 주님! 내 삶에 어둔 그림자가 드리우면 해를 등지고 있음을 알게 하소서! 내 삶에 어둠의 긴 그림자가 드리워질수록 세상의 소욕들로 채워져 가고 있음을 알게 하소서. 이로 인해 순간적으로 육신의 즐거움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참된 즐거움이 아님을 깨닫게 하소서. 육신의 욕망으로 어둠의 즐거움을 말씀의 빛에 비추어 가만히 내려놓게 하소서. 주님! 내 삶에 어둔 그림자가 드리우면 빛 되신 주님을 향해 돌아서게 하소서! 눈부심의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주시는 생명의 빛으로 돌아서 어둠의 그림자를 이기게 하소서. 때론 눈부신 햇살이 나의 두 눈에 비춰 세상을 바라보기에 어려울 수 있지만 주저 없이 해를 향해 돌아설 수 있게 하시고 어둠의 그림자를 뒤로하고 빛 되신 주님을 푯대삼아 달려가게 하소서 한눈팔지 않게 하소서 넘어지면 다시금 일어나게 하사 주님과 함께 최후 승리자가 되게 하소서! 글_김익환 필리핀 선교사(siskc@hanmail.ne) 일러스트_김은영(lewis12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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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선교는 누구든지 해야하고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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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를 사랑하는

성목사 부부

마음이 뜨거운 사람들 마음(心)이 뜨겁다(熱)라는 것은 열심(熱心)이 있다는 말입니다. 자동차의 엔진에도 불이 붙고 열이 나면 힘 을 얻어 달음질을 칩니다. 사람도 뜨거운 마음을 가질 때 이루어야 할 바를 성취할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낙심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던 예수님의 두 제자들은 마 음이 뜨거워지자 발걸음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돌아 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활력이 있기에 부 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그가 풀어주시는 성경 말씀을 들을 때“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하 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말세 성도들을 향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상태를 책망하시며 차든 지 뜨거울 것을 명하십니다. 마음이 뜨거워진 선지자 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던 예레미야는 그로인해 매를 맞고 갇히게 됩니다. 다시는 파멸과 멸 망을 선포하지 아니하리라 작정했을 때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았다고 고백합니다. 마음이 뜨거워질 때 어떤 박 해나 방해가 와도 거기 굴복하지 않고 말씀을 선포하 는 책임을 끝까지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뜨거운 마음 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듣는 이의 마음도 뜨거 워집니다. 잘못 가던 걸음을 바로잡고 생명의 길, 사 명의 길을 달음질 할 수 있는 능력을 받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불을 던지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 다. 그런데 이 불은 오순절 다락방에 던져졌습니다.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붙기 시작한 이 불이 세계로 퍼 져가고 있습니다. 실망과 비굴함에 정복되었던 제자들이 성령 충만을 받 자 뜨거운 마음으로 뛰쳐나가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매를 맞아도, 옥에 갇히는 고통을 당해도 아니 죽음 앞 에서도 겁내지 않고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성령의 능력 을 받아 부활의 증인, 예수님의 증인 노릇을 잘 했습니 다. 사도들의 뒤를 이어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부 르심을 받은 선교사님들 역시 뜨거운 마음을 품고 세 계를 무대로 사역하고 계십니다. 사명을 위해 부르신 주의 종들을 부모 없는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 시고 성령이 오셔서 권능을 주시며 보호하시고 그 발 걸음을 인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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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바알을 아울러 섬기는 이 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갈멜 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과 대결을 폈던 엘리야는“내가 만군의 하나 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나다” 고 고백합니다. 새번역 성경은“만군의 하느님 야훼를 생각하여 가슴에 불이 붙고 있습니다.” 라고 번역합니다. 하나님과 바알 사이 에서 머뭇머뭇하며 엘리야 선지자의 권면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는 무관심한 민중들, 게다가 왕권의 비호 를 받는 우상의 선지자 팔백오십 명과 벌이는 대결은 목숨을 거는 모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뜨 거웠기에 아니 가슴에 불이 붙고 있었기에 두려움 없 이 갈멜 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제단에 불을 내리고 삼년이나 가물었던 땅에 비를 내리는 능력의 종이 된 것은 그의 가슴이 뜨거웠기 때문입니다. 열심은 그 방향성이 올바를 때 부르신 사명에 부응하 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을 향한 열심, 죄악의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는 영혼들 에 대한 뜨거운 마음, 사명을 감당하려는 열심이 두려 움 없는 효과적인 헌신을 가능하게 합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의 열심이 방향을 잘못 잡아 교회를 핍박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배척하 며 복음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을 향해“그들이 하나님 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말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도, 그의 제자들을 괴롭히며 교회를 핍박한 것도 열 심은 열심이나 올바른 열심이 아니었습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되 듣든지 아니 듣든지, 말씀으로 인한 어떤 박해가 온다 해도 두려움 없이 땅 끝까지 말씀을 전함으로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모셔 오는 책임을 감당하는 사역자들이 요청되는 말세의 마 지막이 바로 지금입니다(마24:14). KO MI

글_성기호 목사 본지 발행인 keehosung@hanmail.net


라오스에서 보내 드리는

하늘나라 백성들

Face of Lao - 씨양쌈니양 1 “라오스”는 필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이 름으로 다가온다. 라오스말로 라오, 영어로는 Laos, 헬라어로는 λαὸ(라오) 혹은λαὸς(라오스) 인데 벧전2: 9~10절에“오 직너희는…그의 소 유된 백성(λαὸς)이니…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 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λαὸς)이요”Laos 는 하나님의 백성(my people)이라는 뜻이다. 라 오스 땅은 이미 사람들의 입에서“라오스” 라는 이름이 불릴 때마다 하나님께서“내백성”이라 는 불붙는 마음으로 이 땅을 보실 것이다.

(56x76cm charcoal pastel 2004)

라오스에는 많은 종족들의 언어가 존재한 다. 대표적인 3종족의 말을 보자.“안녕 하세요” 에 해당하는 말은 라오어는“싸바 이디” , 카무족어은“싸마일러” , 몽족어은 “녀용” . 그리고“감사합니다” 는 컵짜이(라 오어), 커프라뉴암(카무족어), 우와짜우(몽 족어)이다. 사실 이들의 말은 전혀 다른 언 어이다. 그러나 같은 라오어 일지라도 각 지역별로 존재하는 씨양쌈니양(방언, 사투 리)가 있다. 우리로 치면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사투리라고 할까! 필자는 1997년 라오스에 입국하여 라오어 를 공부하기 위해 라오스 국립대학교(동독 대학교) 외국인 특별과정에 등록하여 라오 스학과 교수님과 필자 그리고 아내 이렇게 3명이 약 1년간의 과정을 마치고 영광스 러운 동독대학교 라오학과의 수료증을 받 았다! 라오어에 가장 정통한 라오어문학과 교수님으로부터 배웠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곳에서 배울 때 라오어는 자음, 모음과 함께 쌀라피섿(특별모음) 3개가 있는데 아 이(마이무완),아이(마이응아이),암 이라 가 르치고 그렇게 사용하며 살아왔다. 2004년도에 루왕파방으로와 학교를 설립 하고 아이들에게 라오어를 가르치는데 우 리학교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아이,아으,암 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표준말에 따라 아이,아이,암으로 가르치라 했더니 파싸느아(북쪽말)의 표준 말은 아이,아으,암라는것이다. 루왕파방 교육청에 공식문의 했더니 그곳 답변도 라 오스의 북쪽은 아이,아으,암이 표준말이란 다. 그러면서 비엔티얀으로 대표되는 파싸 따이(중남부말)는 아이, 아으를 예쁘게 발 음하면서 아이, 아이라고 바꾸어 가르친다 면서 아이,아으,암으로 가르치란다. 결국 은 내가 손들었다. KO MI

글과 그림_엄미정 라오스 선교사 & 화가 apostol@hanmail.net

하나님의 은혜로 월간 한국인 선교사 발행이 20년이 넘어갑니다. 창간호부터 지금까지의 책 내용을 모두 스캔해서 ISSUU에 올려두었습니다. 자유롭게 가져가셨으면 합니다. (홈페이지: http://issuu.com/koreamission/docs, 아이디: koreamission, 패스워드: 22686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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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은혜의 발자취Ⅰ

선교사 천로역정(7) 편집자주 : 브라질 김선웅 선교사의 20여년간 사역이야기를 10번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선교의 4번째 Participant Stage (2009년부터) 선교의 참여자 단계(Participant Stage는 선교사가 개 척한 교회에서 훈련받은 지도자들이 성장하여 그들도 선교의 눈을 뜨고 선교적 교회로 세워지는 것을 의미 합니다. 즉 타국에서 파송되어진 선교사가 현지인 선 교사를 낳는 것을 말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하워드 풀 러가 말한 선교의 마지막 단계까지 왔을 때, 현지인 들이 우리보다 더 많은 사역들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을 경험으로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말처 럼“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한 3:30).”이제까지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면서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그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능력과 성 령의 역사, 그리고 예수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외국인 인 우리보다 분명 더 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 도의 이름만 높아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흥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며 우리는 쇠하여 져야 합니다.

브라질 GP선교컨퍼런스를 섬기는 헬몬교회 성도들 한국 토종선교단체로서 국제단체의 좋은 모델을 보여 주는 GP선교회 ‘GP-Korea 선교회’ 와‘GP-U.S.A 선교회’ 를 통 해 또 다른 지역에 미션 플렌팅(Mission Planting) 사 역들이 일어나기를 소망하던 중 드디어 2010년 4월 24일에 지피선교회는 브라질 현지 선교단체인‘GPBRAZIL 선교회’ 의 현지창립과 더불어 국제선교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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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서의 첫 발을 디딜 수 있었습니다. 지피 국제선교 단 체로의 도약을 축하하기 위해 양춘길 국제협의회장 과 김병선 국제대표가 참석하여 함께 기쁨을 나누었 습니다. 17년 동안 한 곳에서 일구어 낸 브라질 선교 사역의 열매로서 연약했던 브라질 교회들이 힘을 합쳐 'GP-BRAZIL' 이란 선교회 이름을 가지고 브라질 선 교사 뿐 아니라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사역하는 지피 한국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선교단체로 까지 성장을 하 였습니다. 우리 헬몬교회가 2%안에 들어간다니까요 어느 날 한국 선교사가 개척한 교회 중 자립하는 교회 가 2% 미만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균 출석 50명 정도 되는 헬몬교회와 따보앙교회가 자립, 자치, 자조와 선교사 파송 및 지원을 하며 현지 선교단체를 창립하는 데 일조를 한 것과 함께 우리의 선교 사역들이 그 2% 안에 들어간 사실에 감사를 드 렸습니다. 그러나 사실 더 큰 감사가 있습니다. 그것 은 선교의 마지막 P단계에서 아들 성순이가 자기는 절 대로 선교사가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부터 헬몬교회에 주말마다 올라가 실비우 집사 집에서 자면서 교회 찬양팀에 합류하여 예배 때마다 키보드를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찬양을 위한 파워포인트 작업을 손수 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에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선교지 교회를 섬기더니 대학생이 되어서는 상파 울로에 있는 다민족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성순이가 상파울로에 있는 교회로 가게 되자 딸 데보라 형순이 는 오빠의 뒤를 이어 헬몬교회에 주말마다 올라가 현 지 교회 친구 집에서 잠을 자고 찬양 팀에 합류해서 예 배 때 키보드 연주를 했습니다. 오빠가 그랬듯이 데보 라 형순이도 고등학생이 된 후부터 선교지에서 엄마, 아빠처럼 사역을 한 것입니다. 누구의 강요가 아닌 스 스로 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 정말로 자랑스럽습니 다. 데보라도 이젠 대학생이 되어 상파울로에서 학교 를 다니며 한인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어느 곳에 있 든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자녀들로 인해 하 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교회자립의 비결을 생각해 보니 지금 생각해 보니 헬몬교회가 자립을 할 수 있었던 비 결은 현지인과 돈 관계를 맺지 않고 교인들에게 교육 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세상 지식과 성경 지식을 함께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며 훈련에 힘 쓴 것이 주효하였 습니다. 비록 지금은 부족하지만 희망을 가지고 외부 사람이 아닌 교인들 가운데 순종하는 사람들을 골라 지도자 교육을 시키고 제직회를 통하여 자치적으로 문 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순차적으로 훈련을 하여 조 금씩 지도력을 이양해 나가니 -행정적인 것 뿐 아니라 재정적인 것까지 포함하여- 선교사가 떠났을 때에도 큰 혼란이 없었습니다. 참고로 우리가 처음 교인들을 만났을 때는 최종 학력이 5학년이었는데 지금은 제직 의 90%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 교육을 받은 사 람도 7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지속적이고 정규적인 사 역자 교육과 제직 교육 및 교사 훈련을 통하여 영적 성 장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교인 들 중에서 목회자적 성향이 있는 사역자들을 선택하여 훈련하였기 때문에 월급을 주거나 대가성 돈을 지급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현지인과 고용인 관계가 아닌 영적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가짐으로 신뢰감이 커진 것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즉 현지에서의 양적 사역보 다 질적 사역에 더 신경을 써서 지도자 훈련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것이 자립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파워로 무장한 김선웅&김혜란 선교사 우리에게 있어서 선교의 모든 단계는 GP(God is Power)가 있었습니다. 개척한 시골의 작은 두 교회가 자립, 자치, 자조를 넘 어 스스로 세 번째 교회를 개척하고 또한 현지 GPBRAZIL 선교회가 창립되어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 했습니다. 2007년에 한 가정(베니시우 선교사)을 프리 카 모잠비크로 파송하고 2010년에 현지 선교회를 창 립하면서 두 번째 가정(죠제윌슨과 끌레이지 선교사) 을 파송하고 다음 해인 2011년 10월에 또 한 가정(실 비우와 에리카 선교사)을 파송했습니다. 우리가 개척 한 첫 번째 헬몬교회에서 세 가정이 선교사로 파송 받 고 지금까지 낙오자 없이 장기사역자로 사역하고 있으 며 브라질 현지에서 교회와 개인을 통하여 선교헌금의 100%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세번째 선교사 파송을 하면서 축복하고 안수하는 사역자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눅16:10)” 브라질 산골에 개척한 지극히 보잘것없는 작은 교회가 세계선교의 꿈을 가진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것처럼 보 일 수 있습니다. 아니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일일 것 입니다. 그러나 어느 곳에 있든지 그 곳이 산골이든 섬 이든 상관없이 교회는 교회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 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계선교를 하라고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복음이 들어가지 않았던 시골사 람들을 위해 보냄을 받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작 은 일에 충성했을 때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세계 선 교의 작은 부분을 감당하게 하셨고 지금도 계속 영역 이 확장되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선교사를 파송 하면서 겪었던 별의별 온갖 어려운 일들을 생각해보면 와우! 소리밖에 나지 않지만 참고 인내하며 견디어 내 었기에 오늘까지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걱 정과 어려움을 생각지 않고 주어진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낸 결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보너스 사역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저를 사용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 드립니다. KO MI

글_김선웅 브라질 선교사 brazilgp@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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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은혜의 발자취Ⅱ

여덟, ‘ 주님께서 구원하신 자녀들 이야기 1’ 편집자주 : 장철호 뉴질랜드 선교사의 20여년간 사역이야기 를 10번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오자와 나미 자매 이야기 나미 자매는 고등학교때 뉴질랜드로 유학을 왔습니다. 하지만 공부보다 향수병과 싸우는 것이 더 급선무였습 니다. 홈스테이를 하면서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와 몇 시간씩 전화를 한 결과 전화세가 엄청나게 나와 결국 홈스테이 부모로부터 꾸지람을 듣고 쫓겨나 다른 곳으 로 갔는데 고독감과 함께 향수병은 더 심해졌습니다.그 러다가 우리 교회를 찾게 되었고 주님을 만날 수 있었 습니다. 늘 우울하고 정신질환 비슷한 증세를 보이던 자매가 주님을 만난 이후 너무도 밝고 행복한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교회에서 찬양을 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자기도 기타를 배워서 찬양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기타를 가르친 결과 몇 달 후에는 교회 에서 찬양을 인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전문학교에서 관광을 공부하다 가 관광 가이드를 하면 주일 성수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과감히 자기의 전공을 포기했습니다. 오히려 주 님을 위해 어떻게 헌신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말씀 공 부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급기야는 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하여 미국의 대학에 연락을 하여 통신으로 공부 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어느 정도 공부를 하면서 점점 자신들이 몰랐던 말씀의 심오함과 선교에 대한 관 심이 불같이 타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자매를 훈련시키시고 또 다른 학원도시인 더니든으로 땅밟기 를 시키시더니 이들을 파송하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더니든 지역(더니든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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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우리가 더니든에서 사역을 하고 있고 이 두 자 매들은 현재 일본으로 돌아가 가족 구원은 물론이고 활 발하게 복음 전파에 헌신을 하고 있습니다. 나미 자매 는 코우베 국제교회에서 여전히 찬양 인도자로서 섬기 며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사키꼬 자매는 독실한 싱가폴 형제와 결혼을 하여 일본 동경의 타마대학교에서 영어 를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나미 자매가 뉴질랜드의 퀸스타운에 있을 때의 이야기 입니다. 자주 저희 집에 와서 함께 살다시피 한지라 일 본에서 어머님이 방문하시게 되자 주저 없이 저희 집 에 머물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물론 복음을 들 어본 적이 없는 어머님의 구원을 염두에 두고 한 부탁 이었습니다. 저희는 흔쾌히 어머님을 우리 집으로 모 셨습니다. 그런데 오신 첫 날부터 두 모녀가 언성을 높 이며 싸우는 것이 아닙니까? 복음보다 두 사람을 진정 시키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겨우 서로를 안정시켜 놓 고 복음 제시를 하자 자기는 절대로 주님을 믿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막막했습니 다. 그리고는 일주일이 금방 가버리고 자매의 어머니는 크라이스트처치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며칠 계시다 가 일본으로 돌아가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 기 하나님께서 저를 크라이스트처치로 공무로 가지 않 으면 안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현지 목사님을 배웅 하기 위해서 공항을 가서 무사히 보내드리고 돌아서는 순간 어디선가 많이 뵙던 분이 계셨는데 바로 나미 자 매의 어머님이 아닙니까? 저는 그 순간 주님께서 이 어 머님을 구원하시기 위해 저를 이곳까지 보내셨다는 확 신이 생겨서 용기를 내어 다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어머님이 주님을 영접하지 않으시면 영원 히 천국 갈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씀드리고 주님 을 영접하시라고 권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복음을 듣 는 것을 반대하고 화를 내시던 분이 사람들이 많이 있 는 공항에서 양처럼 순하게 시키는 대로 다 하면서 주 님을 영접하였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어머님 이 일본으로 돌아가 가까운 교회를 출석하고 계시고 아 버님에게도 복음을 전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재 밌는 것은 아버님도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절하시면서 주일마다 바깥출입을 안 하시던 분이 매주 혼자 나가시 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인즉 부인을 따라 교회를 가 면 자존심 상하니까 혼자서 몰래 멀리 있는 다른 교회 를 매주 다니시다가 결국은 예수님을 믿게 되셨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나미 자매에게 남동생이 있는데 남동생 에게도 복음을 전하자 아버지처럼 화를 내면서 밖으로 나가버렸답니다. 그런데 역 앞을 지나는데 누가 전도지 를 주면서 교회를 나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니까 담임 목사님이 한국분이셨답니다. 그 순간 누나 도 뉴질랜드에서 한국 목사님을 만나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자신도 전도지의 목사님을 만나서 예수님을 믿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아 그 교회를 나가서 결국 주님을 만나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말씀을 간증 으로 들었습니다. 가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할 때 주님 께서는 절대 외면하지 않으시고 다 구원해 주심을 체험 을 통해 경험한 순간이었습니다.

사키꼬 자매와 남편 토 글렌 형제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들

더니든 일본인 교회에서 복음의 증인들로 세워져가는 형제 자매들 와따나베 사키꼬 자매 사키꼬 자매는 일찍이 뉴질랜드로 유학을 와서 대학을 졸업을 하고 면세점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학업 중 에 방학을 맞아 렌트카를 빌려서 여행을 하던 중 다른 쪽에서 오던 차량과 정면충돌하는 대형 사고를 당해 일 년이 넘게 뼈 접합 수술과 얼굴 성형 등으로 고생을 했 습니다. 하지만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덕에 이러한 어 려움 속에서도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이 잘 지내왔었습 니다. 함께 일하던 직장 동료 가운데 한 일본 형제가 자 매를 좋아하여 두 사람은 5년 동안 사귀어 왔었습니다. 그런데 결혼 날짜까지 잡아둔 상태에서 상대 남자가 한 국 여자에게 빠져서 파혼을 선언을 해버린 것입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사키꼬 자매는 밤에 잠도 못자고 눈물로 지새우기 일쑤였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살 의욕 을 상실하고 자살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호수 를 향하여 가던 중 마침 주일이라 일본인 교회의 예배 를 알리는 입간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간판에 쓰인 일 본교회라는 글을 봄과 동시에 죽기 전에 교회를 한번 가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답니다. 하지만 교회를 가 본 적이 없는지라 스스로 들어가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 니었습니다. 때마침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던 정은혜 선교사가 주저주저하고 있는 자매를 발견하고 달려나 가서 교회 안으로 영접을 하였습니다. 필시 사연이 있

을 것이란 예감은 적중했습니다. 교회 안으로 들어오자 마자 사키꼬 자매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기 시작했습 니다. 예배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정선교사는 우선 진 정을 시키고 예배가 마치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해 달 라고 해 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자매는 예배 시간 내내 눈물을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마침내 예배 가 마치고 식사 시간이 되었지만 눈물을 그치지 않고 속에 응어리진 것들을 다 토해 내었습니다. 그래도 양 이 차지 않았는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아예 하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으로 데려와서 마음 이 안정이 될 때까지 언제까지고 좋으니 우리 집에 머 물러도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정말 그렇게 해 도 되겠느냐고 묻더니 그때부터 시간만 되면 저희 집 으로 와서 며칠이고 묵었다가 다시 일하러 갔다가 아 예 퇴근을 우리 집으로 하곤 했습니다. 모일 때마다 말 씀을 함께 공부하던 중 주님께서 사키꼬 자매의 마음을 치유해 주신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자매에게 분명히 하나님께서 더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해 주실 것이라고 말해주었고 그녀의 남편은 현재 일본 동경에 있는 타마 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 하는 전도자로서의 삶을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 얼마 나 놀라운 주님의 은혜인지요. 오직 우리 아빠 아버지 께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KO MI

글_장기드온 뉴질랜드 선교사 gideon91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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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

땅끝이야기Ⅰ

여덟번째 - 선교사의 '취미생활' 편집자주 : 러시아 박광배 선교사의 선교를 향한 이야기를 10번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이번에 생각해볼 주제는 선교사의 취미생활입니다. 취미는 우리의 육신과 마음과 영적인 부분까지 영향 을 끼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사역 중에 우 리는 놓치며 살아가는 경유가 허다합니다. 취미는 선 교사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대부분이 몸도 망 가지고 지병을 얻고 나서야 나름대로 취미생활을 하 신다고 뭔가를 찾습니다. 고 옥한흠 목사님이 사진으 로 취미 생활을 하셨다는 말에 많은 목회자분들과 선 교사님들도 취미를 사진으로 정하려고 하시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무엇을 하던지 자기만의 취미를 가져야 합니다. 선교지에서 취미는 선교지마다 다양하다고 생각합니 다. 탁구나 수영, 앞에 이야기한 사진이나 등산, 바닷 가에 살면 스킨스쿠버도 도전해 볼만합니다. 눈이 많 은 곳에서는 스키를 타기나 스케이팅에도 도전해 볼 만합니다. 선교비를 가지고 선교 현장에서 생활하는 선교사가 무슨 사치스럽게 취미 생활을 하느냐고 비 판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말에 주눅이 들어 어떤 취미생활도 못하신다면 당신은 심각한 중 병환자입니다. 선교사에게 있어 취미는 먼 거리를 가 기 위한 휴식이요 재충전의 시간이자 현지인들과 정 말 가까워 질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불필요하지만 매 맞을 각오로 저의 경험을 이야기하 겠습니다. 1991년도에 선교지에 왔을 때 3개월은 흥 분의 도가니였습니다. 저는 선교사로 타국에 와 있다 는 것 자체가 흥분이었습니다. 바라보는 사람마다 인 종이 다른 사실에 날마다 새로운 날이었습니다. 현지 에서 사용하겠다고 공부하던 현지어도 날마다 내가 쓰는 생활 언어가 된 사실도 감격스러웠습니다. 정말 구름 위를 걷는 것과 같은 기쁨과 희열과 간증의 연속 이었습니다. 그리고 선교편지를 보내는 내용마다 감 격과 승리의 내용이었습니다. 3개월이 지났습니다. 제 자신이 뭔가에 눌리며 피곤 해 가면서 다운되는 느낌을 강하게 받기 시작했습니 다. 유혹도 있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며 많 은 유혹을 물리치려고 몸부림칩니다. 그러나 일시적 인 현상으로 끝나면서 영적인 치열한 전쟁에 돌입한 기분이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역도 내 영적인 부분도 망가질 상태까지 갔습니다. 그때 수영장을 찾 았습니다. 수영장은 날마다 갈 수 없는 하루 건너 한 번씩 가는 회원제였습니다. 그러나 그 날이 어찌나 기 다려지는지.. 그리고 수영하면서 현지 남자들을 사귀 고 집으로 초대도 하면서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습 니다. 취미를 즐기면서 사귀기 시작한 친구가 마음이 참 잘 통하였고 어려운 일들을 만나면 기꺼이 도와주 는 일들도 많았습니다. 지금도 그때 친구들과 친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영이 익숙해 질 무렵, 누군가가 탁구를 하자고 제안 이 들어왔습니다. 도시 내에 정식으로 등록된 클럽이 었습니다. 레슨도 해 줄뿐만 아니라 수준에 맞는 분들 끼리 짝을 지어 탁구를 치는 그룹이었습니다. 탁구로 어느 정도 취미 생활을 즐길 즈음, 제가 섬기던 선교 지에 볼링장이 생겼습니다. 한국에서 80년도와 90년 도에 목회자 시절을 보내면서 한번도 볼링장을 안 갔 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하여튼 볼링장이 오픈 하는 날 저는 그만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오픈 기념 볼 링대회에서 챔피언이 되었던 것입니다. 실력이 어느 정도 인지는 묻지 마십시오. 그 도시에서 볼링공을 잡 아본 사람은 저 밖에 없었습니다.

러시아 장기놀이에 함께한 니꼴라이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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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장에서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볼링장 코치를 제 안하여 사정상 안된다고 하니 이곳에서 볼링이라도


처달라고 하여 무료로 운동하는 영광을 1년간 누려보 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 젊은 대학생들이 인터넷으로 공부하며 동영상을 보면서 실력이 월등히 뛰어나서 특혜는 거기서 끝났습니다. 그 후에 볼링장에서 큰 형 님으로 통했습니다. 저와 함께 볼링 하는 것을 영광으 로 아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시장님도 함께 볼 링하자고 프로포즈를 취할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습니 다.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나 저의 취미 생활은 다른 분 야로 돌아섰습니다만 지금도 유투브로 볼링 결승전을 볼 때면 그 현장에서 선수로 뛰는 느낌을 갖습니다.

히 바다에 들어 갈 때면 꼭 2인 1조가 되어서 들어가 야 합니다. 산소통에 문제가 있거나 바다 속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을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젊음과 웃음이 가득한 대학교 축제

참전용사들과 함께 한 전승 기념일 축하 파티 선교사 중에는 오지에서 사역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지진 때문에 네팔을 방문하였을 때 이른 아침 뒷산을 올라갔었습니다. 묵었던 숙소가 산 밑에 있는 곳이어 서 그 뒷산이 궁금했었습니다.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서 산꼭대기 마지막 집을 지날 때 주인장이 누군 가를 불렀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아무도 없는데 손 짓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에게로 오라는 신호였 습니다. 찾아가 인사를 하였더니 방으로 들어와서 차 를 마시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날 아침 차도 얻어 마 시고 과자도 얻어먹으면서 귀한 교제를 나누었던 일 이 있었습니다. 아침 등산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이었습 니다. 저에게 마음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 선 교사가 있습니다. 이 친구의 취미는 등산이었습니다. 함께 처음으로 올라간 곳이 설악산 대청봉이었습니 다. 산 다람쥐처럼 뛰어 다니는 친구는 내설악으로 내 려온 다음에도 한 번 더 올라가도 될 만한 힘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날 나는 순교하는 줄 알았습니다. 뭐든지 차분히 준비해서 조금씩 내 몸에 맞게 즐겨야 됩니다. 취미는 현지인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바닷가에서 살아갑니다. 스킨 스쿠버 장비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름이면 아주 가끔 스킨 스쿠버를 하는 친 구들과 바다로 들어가서 여러 해산물을 맛봅니다. 특

우리가 초등학교에서 공부할 때 체육시간이나 취미 시간을 시간표에 넣어서 공부했습니다. 사역 중에 우 리네 취미 생활과 체육시간이 그러해야 합니다. 사역 과 취미 생활에 시간 배정이 잘못되면 큰 일이 됩니 다. 사역이 가장 우선입니다. 그러나 우리네 몸과 마 음, 기분을 업그레이드를 시키는 데는 취미만큼 건강 한 것이 없습니다. 이제는 즐기십시오. 취미가 없으시 면 운동장에 가셔서 뛰기라도 하십시오. 운동장이 없 으시면 걸으십시오. 걸으실 장소가 없으시면 줄넘기 라도 만들어서 줄넘기를 취미로 삼으십시오. 취미는 우리 사역에서 쉼표입니다. 쉼표가 본문이 될 수는 없 습니다. 그러나 분명 문장에서 쉼표는 있어야 합니다. 더 멀리 더 많은 글을 써 나가게 하는 것이 쉼표입니 다. 건강한 당신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분명 사역 현 장도 건강하리라 확신합니다. 몸이 망가져서 병원 신 세지면서 병원 운동실에 가셔서 몸을 만드시지 마시 고 지금 선교 현장에서 하십시오. 취미는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 과목입니다. KO MI

글_박광배 러시아 선교사 nakhodkach@hanmail.net

세계 선교의 현장에서 힘쓰시는 선 교사님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의 말 씀과 분별력에 대한 강한 메시지가 담긴 <시대를 아는 힘>을 소개해 드 립니다. 선교현장에서, 자녀들의 교 육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힘 을 얻기위해 활용하셨으면 합니다. 이 책의 판매 수입금은 탈북자들을 위한 선교에 쓰입니다. 문의: 통일소망선교회 이빌립 선교사 (02-2625-0497) 가격: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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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

땅끝이야기Ⅱ

'나는 엄마다' 여덟째 이야기 편집자주 : 바울 선교회 MK맘 허은영 선교사의 삶과 사역 이 야기를 10번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너는 엄마잖아’ 보츠와나 해피 홈에 날마다 함께 하는 아이들이 자라 는 모습이 제가 자라는 모습이었고 아이들 얼굴에 밝 은 웃음이 곧 저의 웃음이었습니다. 센터에서 배우고 예배하고 식탁을 나누며 자라가는 아이들을 위해 더 큰 소망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수도인 가보로네 외각 에 있는 올드날래디 지역은 범죄가 많고 어둠이 짙게 깔리면 골목마다 온갖 범죄들이 일어납니다. 다시 해 가 뜨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두가 그 자리에 있 지만 그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타락한 세상의 문화들로 꽉 차게 됩니다. 정말 보여주고 싶지 않은 문 화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을 이 지역에서 옮 겨준다면 그들의 소원대로 선교사도 되고 의사도 되 고 선생님도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숙사 대안학교 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꿈을 꾸며 기도가 쌓여 갈 때 하나님은 그것이 실제가 되도록 주변에 좋은 분 들을 보내주셨습니다. 한 추장의 도움으로 학교의 부 지가 준비되고 건물을 세워줄 동역자도 나서고 땅에 담을 먼저 세우고 설계도면에 그려진 대로 기초공사가 시작될 무렵 한국선교본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습 니다. 내가 바울선교회 MK(선교사자녀)사역 담당자로 임명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메일로 대 표이사님의 직인이 찍힌 공문이 왔습니다. 내용은‘조 속한 시일 내에 본부사역으로 철수하시오’한 줄의 귀 임 명령이었습니다.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한 줄의 공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로 양육한 해피 홈 자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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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우리 부부로 하여금 잠 못 이루게 하였습니다. 선 교사로 현장에서 살면서 단 한 번도 한국에서 살 것이 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이곳 해피 홈 에 등록된 318명의 아이들을 생각하니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론은‘못갑니다’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두고 엄마가 떠나는 것은 도저히 상상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자라가는 것이 제 삶 의 기쁨이었고 저의 꿈이기도 했습니다.‘그런데 주님 저는 MK사역 몰라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아이들 을 어떻게 돌보죠? 저는 우리 두 아이를 기른 것 밖에 는 없는데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저는 못해 요’ 라고 주님을 설득했습니다. 그때 주님이 마음 깊은 곳에 넣어 주신 대답은‘넌 할 수 있단다. 너는 엄마잖 아’ 였습니다.

해피 홈 리더쉽 캠프를 통해 복음과 사랑을 나눈 어린 친구들 절대복종 해피 홈은 제가 시작한 사역입니다. 아들 지훈이가 고 등학교 1학년 입학을 위해 한동 고등학교로 떠나던 날, 하나님께서 떠난 아들을 대신 해서 하나님의 아이 들인 길거리 아이들을 저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리 고 보츠와나에서의 15년 후, 저의 인생은 해피 홈이었 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놓으라니 말이 되지 않았습니 다. 이런 저에게 남편은 바울선교회 7대 정신을 이야 기 했습니다.‘절대 구원의 확신’ ,‘절대 소명’ ,‘절대 기도’ ,‘절대 감사’ ,‘절대 복종’ ,‘절대 헌신’ ,‘절대 사랑’중에 다섯 번째인‘절대 복종’ 을 기억하라고 했 습니다. 우리의 계획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본부를 통해 명하시는 일에 다만 절대복종할 뿐이라고 했습


니다. 그러나 그 말도 제겐 들리지 않았습니다. 해피 홈 아이들을 생각하면 눈물만 났습니다. 그동안 얼마 나 고생했는지 그리고 이제는 정착이 되어 많은 동역 자들이 함께 하고 있고 또 그렇게 기다리던 기독교 대 안학교도 세워지고 있는데 여기서 떠나라고요? 하나 님께 묻고 또 물었지요.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 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저의 마음에 해피 홈이 누 구 것인지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물론 주님의 것입니 다. 저도 주님의 것입니다. 그 순간 제 마음에‘그런데 왜? 내 것인 것처럼 고집하고 있니?’하는 생각이 들 었습니다. 입술은‘주님의 것입니다’하지만 생각이나 행동은‘내 것입니다’ 를 외치고 있었습니다.‘내가 어 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하는 생각이 저를 지배하 고 있었습니다. 큰 망치로 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 데 더 놀라운 것은 주님은 이미 2년 전에 바우리 후배 선교사 가정을 보츠와나에 보내시고 언어연수와 문화 적응을 하며 준비를 모두 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복음의 도구로 쓰여진 리코더 거리 연주 3월의 눈꽃을 맞으며 공항 퍼레이드 이렇게 하나님은 저를‘엠K 맘’ 으로 임명하셨습니다. 선교본부의 철수 명령을 받고 1달 만에 보츠와나의 15년을 정리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필리핀의 6년을 포함한 21년의 선교지의 삶을 앨범3권에 담았습니다. 2010년 3월 17일 인천공항의 활주로에 비행기가 착륙 하는데 창밖에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3월인데 말입 니다.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서 날아 온 저희부부 에겐 정말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남편이 눈물을 글썽 이며 고백했습니다.‘마치 주님이 너희들 수고 했다고 하시며 눈꽃을 뿌려 환영해 주시는 것 같아’정말 그 랬습니다. 3월의 눈은 주님이 준비해 주신 위로요, 선 물이었습니다. 내 구간만 달리겠습니다 첫사랑은 필리핀에서 초년병 선교사로 좌충우돌하며 살았던 6년! 들어갈 때는 셋이었는데 나올 때는 넷이

작은 달란트를 통해 감동과 은혜가 넘치는 해피 홈 공연 되었습니다. 두 번째 사명으로 받은 보츠와나는 이민 가방 두 개를 들고 두 아이와 함께 집을 구하지 못해서 떠돌아 다녔던 기억들이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5년 후, 살았던 날수만큼 늘어난 살림살이들을 정리 하며 마치 이 땅의 사명을 마치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 을 때는 그 무엇도 함께 갈수 없다는 것을 실감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순종이라는 것은 내가 동의하기 때문도 아니고 준비되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도 아 니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보츠와나를 떠나면서 받은 가장 큰 교훈은 그 어떤 사역도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 니다. 잠시 저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 것을 충성스 럽게 허락하신 구간만 달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돌아 보면 끝까지 내가 다 하고 싶은 욕심이 내 안에 있었습 니다. 마치 해피 홈이 내 것인 것처럼 그 아이들이 성 장해서 선교사로 훈련하여 파송하고 그 열매들을 보고 싶은 욕심 말입니다. 그러나 그 사역을 허락하신 분도 하나님이셨음을 고백합니다. 300여명의 아이들을 먹 이시고 입히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그들을 끝 까지 책임지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또 다음 사역자 를 세우시고 이 사역을 이어가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 셨습니다. 마치 엘리야가 엘리사를 세우듯이 말입니 다. KO MI

글_허은영 바울선교회 MK 선교사 baurimk@naver.com

선교사 디브리핑을 위한 모임 10월 10일 (토) 오후 5시 문의: 김종남 목사 010-2765-9654 gbm19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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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반쪽과의 만남

Love Story

응답해 주신 하나님 을 위해 진지하게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고, 응답을 받 았다.

하나님의 응답 김태연(우) 선교사와 사랑하는 딸들 대학 선배의 소개로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1999년 2 월 신촌에서였다. 당시 나는 신학대학교를 다니고 있 었으며, 아프리카 선교사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내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선교를 준비하고 있었다. 20대 초반에 나는 싱글 선교사로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며 일평생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중학교 때부터 결혼에 대해 구체적인 기도를 하고 있 었다. 그 이유는 중학교 시절 수련회 때에 전도사님께 서 결혼의 중요성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며 배우자를 위 해 지금부터 기도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 말씀 을 들은 이후부터 계속 배우자를 위해 기도했다. 공부 를 하든, 학교 소풍을 가든, 비가 오든, 길을 걷든, 잠 을 자든 알지도 못하는 배우자에 대한 생각이 잠시라도 들면 기도를 했다. 이렇게 약 14년을 기도했었다. 배우자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자주 드렸던 기도제목 중 하나는 결혼할 상대를 만나게 되었을 때 성령님께 서 확실한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기도를 했지만 내가 분별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었 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이런 구체적인 기도도 들어 주셨다는 것이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배우자에 대 한 약간의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은 확신 은 서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와 몇 번의 만난 후에 정 말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배우자인지에 대해 묻는 간절 히 기도를 드렸다. 얼마 후에 나는 확신을 가질 수 있 었다. 하지만 결혼은 나만이 아닌 상대도 하나님께 응 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내 역시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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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시절, 전도사님께서 결혼을 위해 해 주신 말씀 중 꼭 지키려고 했던 것이 있었다. 여자 친구와 교제를 시 작하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겪어보면서 서로의 신 앙과 성격을 맞춰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것이었 다. 그래서 1년 정도 아내와 교제 하면서 서로에 대해 충분히 알고 싶었다. 그런데 장모님께서 아내의 동생 이 얼마 뒤에 결혼을 하기 때문에 장녀인 아내가 먼저 결혼을 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나는 스승인 청년부 전 도사님께 찾아가 이런 상황을 설명을 드리고 자문을 구했다. 전도사님께서는 모든 상황을 들어보신 후에 긍정적인 의견을 주셨다. 좋은 스승이 있다는 것이 얼 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축복 속에 서 만남을 가진지 6개월 만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신기한 것은 아내에게 청혼을 한 장소였다. 청혼을 해 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장소는 정하지 못한 상황이었 다. 그런데 내가 청혼을 한 날 우리가 있었던 카페 이 름이‘작은 인디아(Little India)’ 였다. 당시 우리는 선 교지를 정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6년 뒤 우리 부부는 인도에 선교사로 나가게 되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개인적으로 너무나 신기하기만 하다. 현재 우리 부부는 10년간 인도 선교사로 살았고 예쁘 고 사랑스러운 두 딸을 키우고 있다. 아내와 살아가면 서 드는 생각은 하나님께서 내가 기도한 것보다 더 구 체적으로 아내를 보살피시고 준비시키셨다는 것이다. 귀한 아내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하나 님께서 기뻐하시는 부부가 될 수 있도록 더욱 힘쓰고 자 결심해 본다. KO MI

글_조남준 인도 선교사 nakoreada@gmail.com

월간 한국인선교사 쉴터는 선교사님들을 섬기고자 마련된 작은 숙소입니다. 현재 인천시 구월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다섯 채가 1997년부터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용문의: www.kormi.net / ☎ (02) 2268-6636


믿음의 눈으로 그리는

엘가의 빛그림 3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에 저의 마음이 있기를 원해요 아버지께서 바라보는 영혼에게 저의 두 눈이 향하길 원해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부르심에 순종함으로 지금도 애쓰시는 선교사님들의 그 땀과 눈물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실 줄 믿습니다. KO MI

사진_이기수 엘가 대표 elga1004@gmail.com

1995년 3월에 창간한 월간『한국인선교사』 는 해외에서 사역하는 한국인선교사의 삶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을 통하여 한국 교회의 선교 역사로 기록하고자 발행하는 선교잡지의 하나로서 선교사님들에게 무료 월간 보내기와 선교사님들을 위한 쉴터 운영 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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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와 IT

세상 돋보기 8

윈도우 10, 갤럭시 노트5, 그리고 갤럭시 S6 플러스

윈도우 10의 업그레이드가 시작되었습니다. 말도 탈 도 많았던 인도우 8에서 벗어나 윈도우 9가 나오나 했 더니 아예 10으로 건너뛰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 지만 이제 윈도우 버전의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풍겨 옵니다. 많은 분들이 업그레이드를 망설이고 계시겠지만 이미 첫날 전 세계에서 1,4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업그 레이드를 실시했습니다. 필자도 과감히 첫날의 대열에 참여 했습니다. 결과는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매우 세 련된 디자인도 그렇지만 아주 Compact한 느낌으로 속 도가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인터넷 웹브라우저로 엣지라는 것이 새로 생겼습니다. 이게 거의 구글과 비슷한데 거기에 뉴스 등의 기능을 포함하고 아주 컴팩트해져 보기에도 좋습니다. 물론 한국의 은행 등을 사용하는 이들을 위해 익스플로어 11도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말 이 많았던 스타트 버튼도 복원하여 일단 여러모로 합 격점을 줄 만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기능의 스마트폰과 또 획기적인 O/S가 발표 되었다 하더라도 이것을 잘 사용하지 못 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필요 없는 기기에 불과합니다. 자신의 사용능력에 따라 좋은 기종 혹은 좋은 프로그 램의 사용이 달려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곳 미국의 어른들의 경우 많은 분들이 최신형 핸드폰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들이 그렇게 좋은 것을 가지고 게 신 이유는 단 하나 화면이 크기에 글씨도 크다는 것입 니다. 하지만 그 많은 복잡한 기능들이 오히려 그들의 사용에 많은 제약을 줍니다. 단순히 전화를 걸고, 사진 을 찍고, 카카오톡 정도를 하는 것이라면 최신 기기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삼성의 경우 많은 종류의 스마트폰을 판매하고 있습니 다. 매스컴에 주로 오르내리는 폰은 최고급 기종인 갤 럭시 S 시리즈입니다. 하지만 중저가 모델인 갤럭시 A, J, E등 나라별로 또 성능별로 쓸 만한 기종들이 상 당히 많이 있습니다. 우리에게서 거품만 뺀다면 좋은 제품을 싸게 혹은 공짜로 사용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며칠 전 새벽기도 후 산행을 하면서 하나님의 주신 그 많은 은사들, 재능들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을 때 오히 려 내게 독이 된다는 깊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렇 습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은 당시의 모든 이들이 그 토록 갖고 싶었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는 고백 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최신 기기들로 하 나님을 증거 하는, 또 그분을 알아가는 귀한 도구로 사 용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거기에는 무조건 최신 제품 이 아닌 자신이 처한 상황에 적합한 기종을 선택하는 지혜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 지혜가 이글을 읽는 모든 선교사님들에게 함께 하시길.. KO MI

삼성이 예년에 비해 한 달이나 빨리 갤럭시 노트5를 발표했습니다. 9월의 애플발표에 앞서 그동안 부진했 던 S6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물론 이날 갤럭시 S6 plus도 발표되었습니다. 노트5와 S6 플러스 두 기종 모두 5.7인치의 대형 화면에 4GB 의 초대형 Ram을 가졌으면 엄청난 스펙의 카메라를 자랑합니다. 컴팩트한 디자인을 위해 배터리 일체형으 로 배터리는 교환이 불가해졌으나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고속 무선충전 기능을 부가하였습니다. 9월에 발표할 애플의 아이폰 6S에 대항하기 위한 작전을 충분히 세 운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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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윤승준 Kyelp 대표 sjyoon7231@gmail.com 블로그 blog.naver.com/joshua7231

월간 한국인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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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박정례 간사 ☎ 010-2797-6103 kormi@kormi.net 후원계좌:국민012-21-0840-091조성수 문의: 이윤수 목사 ☎(909)276-0011 williamwooramlee@yahoo.co.kr


선교사 건강상식

낸시가 사랑하는

병은 없다 8

하나님 만나기 8

건초염

천국(天國)

월간 『한국인선교사』는 도서잡지 윤리실천강령을 준수합니다. 월간 『한국인선교사』에 실린 글, 사진, 그림은 월간 『한국인선교사』의 서면 허가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건이란 근육과 뼈를 연결해 주는 결합조직으로 이 건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건초라 하는데 근육을 움직일 때마 다 활액이라는 액이 들어 있어 원활하게 하지만 근육의 무리한 사용으로 건초 또는 활액에 염증이 생기게 되는 데 이것을 건초염이라 한다. 건초염은 어떤 곳에서도 생길 수 있지만 주로 손목에 많 이 발생하고, 특히 손목을 많이 쓰는 사람에게 주로 많이 발생하며, 아기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산모, 아기를 돌보 는 할머니, 수공예 작업자, 피아니스트 등에 많이 발생한 다. 그리고 손목외에도, 어깨, 무릎, 발꿈치 후면, 손가락 등에도 자주 발생한다. 이러한 건초염이 생기면 관절이 뻐근하고 통증이 발생하 며. 또한 부종이 생기고 염증이 난 부위를 누를 땐 심한 압통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건초염 환자들이 주로 여름 철에 많이 발병하는 것은 여름철에는 활동량이 많아 땀 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체내 비타민과 미네랄, 염분 등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건초염을 예방하고 치유하기 위해서는 무리한 일 이나 운동을 삼가하고 적절한 휴식과 규칙적인 생활을 습관화 해야하며 적극적인 치유를 위해서는 현미식, 생 수, 죽염, 감잎차, 생채소, 1분냉온욕, 풍욕, 겨자찜질 등 을 실시하고 자연건강법을 따라 실천해야 한다. 자연건강법을 따라 실천하게 되면 먼저 체내 노폐물이 자연적으로 배출되어 피가 깨끗해지면서 건초염뿐만 아 니라 몸이 전체적으로 건강해져서 다른 여러 가지 질병 들도 함께 치유된다. KO MI

이덕우 목사는 자연치유 전문가

다음 카페 <병은 없다> 운영 cafe.daum.net/leedokwoo 건강문의 nlc8004@hanmail.net

그림_안민희 자매 als367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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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의 소리

"선교지의 일상"

글_편미선 필리핀 선교사 GP선교회 punmisun65@hotmail.com

다섯 시가 되면 이웃집 트라이시클(오 토바이를 개조한 탈것) 시동 거는 소리 를 시작으로 낙엽 쓰는 소리, 딸랑딸랑 빤데살(아침 빵)을 팔러 다니는 종소리 와 자전거소리, 마늘 밥 볶는 냄새, 낙 엽 타는 냄새, 조그만 구멍가게 앞에 모 여 달달한 커피 한잔 씩 마시며 아침 수 다를 떠는 아줌마들의 시끌벅적한 소 리, 꼬맹이들의 말썽소리와 함께 나의 하루도 시작이 된다. 일단 방 밖으로 나 와 부엌 겸 거실 주변을 한번 살핀다. 지난번 찾아왔던 불청객(뱀)이 혹시나 밤사이 또 오진 않았는지 확인을 한 다 음 커피를 내린다. 구수한 커피 향기가 몽롱한 정신을 깨워주고, 밤새도록 꼬 르륵 거리던 배를 일단 향기로운 커피 로 달랜 후, 하루를 시작하는 나만의 개 인적인 시간을 갖은 후 아침식사를 준 비한다. 아침식사로 빵과 커피를 주로 마시는 데 빵을 사러 동네 구멍가게를 가면 몇 몇 부지런한 동네 아주머니들의 시시 콜콜한 일상 수다 속에 나도 끼어든다. 날씨이야기, 혈압이 높아 어젯밤 병원 에 실려 간 아저씨 이야기, 만삭이었던 애기 엄마가 아들을 출산한 이야기 등, 외국인으로 신비감이 없어진지 오래되 니 이제는 그냥 평범한 동네 아줌마로 나를 대해준다. 늘 새로울 것 없는 일상 이다.

이런 평범하고 그날이 그날 같은 삶 의 연속이지만 어느 날부터 이런 일상 들의 소리 속에 예수 믿고 변화된 이 웃들의 삶의 간증소리, 교회에서 들리 는 찬양소리와 기도소리가 이 동네를 조금씩 조금씩 장악하여 가고 있다. 우 리 교회 사택 뒤쪽에 살고 있는 마약중 독자 형제도 정신이 온전하지 않음에 도 아침에 일어나면 ' 마할나 마할끼따 빵이노온(주님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목소리 높여 노래를 한다. 아직 교회는 나오지 않지만 이웃집 젊은 새댁이 작 은 목소리로 우리교회에서 자주 부르 는 찬양을 흥얼거리며 갓난아기를 재 운다. 교회의 행사가 있는 주간이면 예 수를 믿는 사람들이나 믿지 않는 사람 들의 주간 중 중요행사인 빨래하기를 미리미리 해놓고 음식준비 할 때는 너 무나 자연스럽게 함께 와서 돕기도 한 다. 교회 앞마당이 이 동네의 놀이터 인 데 아이들끼리 삼삼오오 몰려 앉아 성 경구절을 외우며 주일학교 선생놀이도 하고, 찬양과 율동을 하며 노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비록 시골 지역이지만 카이로스 선교 훈련프로그램을 통하여 젊은이들의 가 슴 속에 꾸물꾸물 꿈틀대며 올라오는 선교의 열정이 하나님의 시간에 폭발 하는 화산처럼 뿜어져 나올 것 같이 뜨 겁기만 하다. 많은 사람들이 선교지는 항상 다이내믹하고, 초자연적인 일들 이 많이 일어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우리 동네는 그저 아주 평범함 그 자체 이다. 그러나 잔잔하고 새로움이 없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이 동네 사람들 의 마음속에 주님을 영접하고 속사람 이 날로 새로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 무나도 감사하다.

월간「한국인선교사」 | 서울 중앙우체국 사서함 5998호 | 대표전화 02-2268-6636 HomePage http://www.kormi.net | E-mail kormi@kormi.net | 팩스 02-2268-6346

KO MI

통권 204호 1995년 2월 6일 등록 등록번호 라-7036호 2015년 10 월1일 발행

새벽 세시경이 되면 어김없이 울어 대는 이웃집의 닭소리와 함께 억지스 러운 하루의 일과가 시작이 된다. 그렇 다고 그 시간에 일어나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는 것 또한 아니다. 이리저 리 편한 자세를 찾아 잠을 더 청하느라 뒤척이다 보면 어느 새 다섯 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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