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춘계기도주일기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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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춘계기도주일

따뜻한 손길이 그리운 친구에게 <초청의 글> 예수님은 중요한 교훈 한 가지를 가르치시기 위해 세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교훈이 바로 이번 기도주일의 중심 주제입니다. 교회에 몸담고 있지만 잃은 양과 다름없는 우리의 형 제자매, 무슨 이유에선가 교회에서 점점 멀어지는 동료, 더 나아 보이는 것을 찾아 스스로 뛰쳐나간 친구.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보실까요? 잃은 동전, 잃은 양,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에서는 예수님이 우리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고 계시며 우리를 집으로 데리고 오기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을 찾아내어 그들을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끈으로 다시 연결해 주십니다. 그분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번 기도주일 동안, 잃어버린 자를 되찾으시는 그분의 사명을 생각하고 그 일에 함께합시다. 예수님을 따 르지 않는 이들이 우리를 통해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떠나간 이들이 돌아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입니다. 이 중요한 교훈을 소중히 간직합니다. 우리는 다시 찾을 것입니다!

<대총회 청소년부장 길버트 캥기> 필자 소개 밸번 B. 브래햄 박사와 애넛 브래햄은 서인도제도 자메이카의 세인트엘리자베스 출신입니다. 애넛은 교사와 간호사로서 청소년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밸번은 인터-아메리카지회 행정총무, 부지회장, 인적자원부장, 리더십계발담당, 목회부부장으로 복음 전도와 교회 성장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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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격동 첫째 날

재닛과 마찬가지로 베드로는 항상 무리 가운데 있었고, 모

너는 돌이킨 후에

든 일에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남을 배려하고 돕고 헌신했습니 다. 그는 물 위를 걸어 예수께로 갈 만큼 자기 믿음을 나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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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매우 열정적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제자들과 특별한 대화를

누가복음 22장 31~34절

나누고 계시던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 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외쳤습니다(마 16:16). 누가복음 22 장 31~34절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야기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

20대 후반의 남매인 듀런과 재닛은 모태 교인으로 태어나 어

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릴 때 침례를 받았습니다. 이들의 부모는 교회에 헌신하며 교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그러자

회를 이끄는 모범 교인이었습니다. 듀런은 자라면서 교회를 향

베드로는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

한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했고 교회 활동에도 적극적이었습니

비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야, 내

다. 청소년 시절 그는 컴퓨터와 전자 기기에 대한 열정을 키워

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나갔고, 청년이 되면서는 소셜 미디어 앱을 개발하는 데 천부

부인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적인 재능을 보였습니다. 곧 그는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개발로

예수님은 긴박한 순간을 내다보셨습니다. 제자들이 유혹당

유명세를 탔습니다. 성공을 거둘수록 교회 출석하는 횟수는

하고, 문제에 직면하고, 어려움과 곤란에 처하고, 그들의 충성

점점 줄었으며, 교회 활동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게 되었습니

심이 시험당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베드로의 경험을 통해

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그의

한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좌

믿음은 더욱 흔들렸습니다. 급기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

절하고, 영적인 힘을 잃고, 하나님을 떠나게 할 만큼 삶의 현실

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교회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

은 그리 만만치 않다는 사실입니다.

서까지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행여 자기의 생각이 탄 로날까 봐 교회에 완전히 발을 끊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흔들림

반면에 재닛은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녀 주

교회 안에는 사탄에게 공격받는 청년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위에는 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명랑한 성격으로 교회 활동

영적 관심이나 활동은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한때의 쾌락을

을 이끌던 재닛은 어르신들을 특히 잘 보살폈고 교회에서도 인

위해 신앙을 볼모 잡히고, 세속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세상의 그

기가 많았습니다. 오빠와는 달리 그녀는 엄마의 죽음 때문에

럴싸한 요구를 좇아가려고 믿음을 팔아 버립니다. 교활한 책

교회 활동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략가 사탄에게 체질당하며 흔들리는 이들을 주변에서 많이 볼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교회 활동에는 소홀해지고 교인이 아닌

수 있습니다. 더욱 두려운 사실은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

친구들과 교회 밖의 활동에 더 공을 들였습니다. 그녀의 신앙

다. 이런 때일수록, 이런 현실을 체감할수록 청년들은 중재자

이 흔들리는 것 같아 교인들이 걱정의 말을 건네기라도 하면,

이신 예수님께 더 분명하게 초점을 맞추고 그분과 더욱 가까워

재닛은 항상 “저 아직 그리스도인이에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분의 능력은 사탄의 힘보다 훨씬 막

세요.”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듀런이 적극적으로 교회에서

강합니다. 사탄의 교활한 능력은 한계가 있고 결국 그는 끝장

멀어졌다면, 재닛은 소극적으로 교회에서 멀어졌습니다.

날 것입니다.

108  교회지남


현실

리 마음을 깨끗게 할 것이며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예수를 잡아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

모든 우상을 내쫓는다”(리뷰, 1902. 3. 11.). 그분과 개인적인 관

찍이 따라가니라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

계를 맺지 않은 신앙은 감정적인 신앙에 불과하며 그 상태로는

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한 비자가 베드로의 불

폭풍이나 시험, 혼란의 시기를 견뎌 낼 수 없습니다.

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가로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이 여자여 내

진짜 신앙

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가

진짜 신앙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것은

로되 너도 그 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결코 진실한 신앙

아니로라 하더라 한 시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가로

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구하는 자에게 그분이 선물로 주시

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베드

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진실한 신앙을 얻기 위해

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너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방

기도하며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이야말로 그리

금 말할 때에 닭이 곧 울더라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스도인의 삶을 든든하게 만들고 용기를 줍니다. 참된 신앙으로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

힘을 얻은 사람은 ‘아니요’라고 말할 때와 ‘예’라고 말할 때를 구

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눅

별할 수 있습니다.

22:54~62).

시험과 시련을 이길 수 있는 믿음, 당당하게 그분을 자신의 구주와 주인으로 모셔 들일 수 있는 참된 믿음, 예수께서는 우

감정적 신앙

리 각 사람에게 그런 믿음을 나눠 주고 싶어 하십니다. 이 땅

감정적 신앙이란 즉흥적인 믿음이며 그 기초가 튼튼하지 못

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하고, 막강한 악의 세력에 유

합니다. 드러나는 것에 연연하고 미숙함을 숨기고 어른스러워

혹당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던 것을 빼앗기거

보이려고 하다가 그런 일이 생깁니다. 어느 패스파인더 캠프에

나 상대에게 버림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하

서 대원들이 수영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대원들은 코치를 따라

지 않은 불경한 것에 마음이 끌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

열심히 연습했고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날을 기다렸습니다. 장

스도 안에서 참된 믿음으로 성령을 의지하면 용감하게 신념을

거리 수영을 하기에는 준비가 덜 된 대원 하나가 충분히 혼자

지키며 유혹에 넘어지지 않고 승리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서 할 수 있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드디어 기회가 왔고

서 승리를 거둔 사람에게는 책임이 생깁니다. 믿음이 흔들리고

그는 훈련받은 대로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출발했습니다. 10

있는 이들을 굳게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분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그는 허우적거리다 물에 가라앉았 습니다. 다행히 근처에서 수영하던 사람들이 그를 구조하여 해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변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45분간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끝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

그는 가까스로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길은 감

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돌이킨 후에”라는 말은 ‘네가

정적인 흥분만으로 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화잇 여사는 다음

나와 함께 동행하던 예전 상태로 돌아올 때’를 뜻합니다. 한마

과 같이 말했습니다. “충동적이며 감정적인 예배는 믿음도 성

디로 ‘네가 나와 일체감을 다시 느끼게 되면 그때는 네 형제를

화도 아니다”(영문 시조, 1890. 3. 24.). “우리는 이 땅의 감정적

굳건하게 할 책임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흩어진 제자

요소가 아니라 우리의 영을 정화시키는 사랑에 의해 꼴 지어진

들을 다시 모으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길 바라신 것입니다. 왜

진실한 믿음을 간구해야 한다. 이 사랑은 자만심으로부터 우

냐하면 그들은 복음 전파의 구심점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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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끼리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기별을 전파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우리가 나누 는 대화가 주위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말

둘째 날

잔치를 시작하라

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형제 사이를 이간하기 위해 존재 하지 않습니다(잠 6:19).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 단순히 설교나 하고 이적만 행하지 않습니다. 사랑과 격려로 그 들을 굳세게 해 줍니다. 베드로가 인간의 약한 모습을 드러낼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의 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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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장 1~7절

이 파국으로 치닫도록 놔두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이들을 위해

서론

유익하게 쓰일 수 있는 베드로의 강점을 알아보셨습니다. 예수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

께서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받아들이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이

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

들에게 용서와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모두에게 넉넉합니다. 이 시간, 그분께서는 어린이부터 장년에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

이르기까지 그리고 저 멀리서 돌아오고 있는 사람도 모두 초

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청하십니다. 이러한 그분의 용서와 사랑 그리고 은혜를 힘입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도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

다른 이에게 그분의 용서와 사랑을 전하는 촉진제가 되지 않

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4~7).

으시겠습니까?

들에 있던 아흔아홉 마리 결론

누구든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기쁨이 넘칩니다. 의인처럼

예수님의 예언이 성취되자 베드로는 돌이킨 후 밖에 나가 심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회개하는 사람만이 구원받는다고 예수

히 통곡했습니다(눅 22:62). 주님께서는 그런 그를 용서하고 회

님은 말씀하십니다. 남아 있던 아흔아홉 중에는 자신이 의롭다

복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악의 세력에 강력하게 대응

고 여겨 회개할 필요를 못 느끼는 사람이 있음을 잊지 마십시

했습니다. 그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많은 사

오. 그들은 자신감에 넘친 나머지 각 사람의 결점을 찾아낼 수

람에게 감화를 주었고,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있고, 누가 회개해야 하는지, 누가 교회를 건성으로 다니는지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도록 허다한 사람을 그분께로 초청했

그리고 주님께서 이들을 어떻게 입에서 토해 내셨는지 다 안다

습니다. 여러분도 지금 주님께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베드로처

고 생각합니다.

럼 주님의 도구가 되십시오.

양을 정말로 좋아한 나머지 양이 되고 싶어 했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목동에게 가서 자신은 진심으로 양이 되고 싶다고 말하며 양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습니 다. 그 남자가 망상에 사로잡혔다고 판단한 목동은 그에게 일 단 양처럼 보여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남자는 곧바로 양 가죽을 뒤집어쓰고 양 무리에게 갔습니다. 그러자 양들이 도망 쳤습니다. 그는 다시 목동에게 갔습니다. 목동은 그에게 양처 럼 걸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걸음을 연습한 후 양 떼에

110  교회지남


게 갔습니다. 그러자 또다시 양들이 도망쳤습니다. 목동은 양

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

처럼 울어야 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연습했지만

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양들은 또 도망쳤습니다. 다시 찾아온 그 남자에게 목동은 양

목자는 한 마리가 없어져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리뷰 앤드

처럼 먹으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렇게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

헤럴드에서 발행한 클리어워드 성경은 누가복음 15장 4절을

지였습니다. 풀이 죽어 돌아온 남자에게 목동은 마침내 이렇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백 마리

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양처럼 보였고 양처럼 걸었고 양처럼

가 있는데 한 마리를 잃었다면 걱정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양

울고 양처럼 먹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양이 아니잖습니까?

아흔아홉 마리가 들판에서 풀을 뜯어 먹도록 누군가에게 맡겨

그래서 양들이 당신을 거부한 것입니다.”

두고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지 않겠느냐?” 예수께서

아흔아홉 마리 양 중에는 모범적인 교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는 교인 각 사람을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성격이나 특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과 똑같이 행동합니다. 성경을 읽

징을 아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소망과 염원을 아십니다. 그

고 기도하고 각종 예배에 참석합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중요한

분은 우리의 시험과 시련, 우리의 강점과 약점도 아십니다. 무

직분을 맡고 채식을 철저히 실천하기도 합니다. 기도 용사라고

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지, 무엇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지도

까지 불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교회 재정을 후원하고 십일

아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양이고 그분은 우리의 목자입니다.

조와 각종 헌금을 드리며 다양한 교회 사업에 참여하면서 자

한 사람을 잃었을 때, 그분께서는 그 한 사람을 찾아 나서기

신은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적인 헌

위해 아흔아홉을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위대한 목자이신 예수

신은 아닙니다. 그들은 그분과 친밀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명

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동시에 어느 곳에나 계십

예, 인기, 자부심 그리고 세속적인 것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니다. 전지전능하신 그분에게는 모르는 것도 없고 못하는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랐고 한 번도 교회를 떠난 적

없습니다. 그분께서 다른 양들을 돌보시느라 우리를 위한 시간

이 없다고 해서 하늘이 기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없을 거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하늘이 기뻐하는 이유는 절차와 규칙을 따르면서 스스로 의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를 노략한 열국으로 영광을 위하여 나

롭다 여기는 아흔아홉 명 때문이 아니라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

를 보내셨나니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

는 한 명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상태를 인정하고 성령의 도움으

는 것이라”(슥 2:8). 모든 교인이 위대한 목자의 보호 아래 있다

로 돌아오려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관심을 가지십니다. 우리 자

는 것,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입니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중

신의 죄를 회개하고 구원받아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예수께서

에 그분이 모르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분은 자기 이름과

는 아흔아홉 마리에게만 혹은 잃은 양 한 마리에게만 관심이

권세를 내걸고 우리를 지키십니다.

있는 것이 아니라 백 마리의 양 전체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백 마리 전체를 얻기 위해 한 마리부터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를 보면, 무리에서 벗어난 양은 자신 의 상태를 알고 있습니다. 그 양은 도움을 구하며 애처롭게 울 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양은 오늘날의 수많은 청년과 교인들처

무리에서 이탈한 잃은 양

럼 더 푸른 들판을 찾아 돌아다녔을 것입니다. 평범한 일상에

목자는 보통 8~9년 동안 양을 기릅니다. 목자는 양에게 이

싫증 난다며, ‘새롭고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을 찾고 싶어 하는

름을 붙여 주고 양들은 목자가 부르는 고유의 신호를 알아듣

청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과로와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

습니다. 매일 밤 양들이 우리 안으로 들어갈 때, 목자는 지팡

무기력한 절망감, 냉혹한 현실 등으로 맥이 풀려 어느 안식일에

이를 들고 입구에 서서 양이 상처가 있거나 아프지 않은지 확

그냥 집에서 잠이나 자려고 하다가 유혹의 덫에 빠져 영영 길

인합니다. 요한복음 10장 3절에 비슷한 설명이 나옵니다. “문지

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성적인 경험으로 잘못된 방향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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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수도 있습니다. 모욕과 학대, 불공평한 대우, 거절에 상처를 받고 정처 없이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교회 일에 점점 소원 해지고 교회라는 울타리 밖에서 방황하지만 여전히 일곱째 날

셋째 날

예수님을 꼭 붙들라

이 안식일이며 거룩하게 지켜야 할 날이라고 믿고 있는 청년이 많습니다. 결국 돌아가야 할 곳은 재림교회의 울타리인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매일 양심과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 러나 세상에 의해 세뇌당하고 중독되어 영적으로 무관심해지 고, 부주의하고, 생활의 염려에 빠져 버립니다. 양이란 동물은 본능적으로 자기 앞에 있는 존재를 따라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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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장 11~32절

서론

데 청년들도 이와 비슷합니다. 옳은 방향이 아닌데도, 심지어

누가복음 15장 11~32절에서는 잃어버린 아들 그 이상의 내

도살장으로 향하는 길도 양은 잘 따라갑니다. 앞의 양이 절벽

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는 특히 등장인물 세 명

에서 뛰어내리면 다른 양들도 따라서 뛰어내립니다. 종종 자신

과 잔치를 집중 조명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탕자, 아낌없이 준

이 적절하지 않은 장소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하지만 돌아

아버지, 집에 있던 큰아들이 이 비유의 등장인물입니다. 돌아

가는 길이 만만치 않습니다. 돌아오려면 도움과 격려가 필요합

온 아들로 인한 큰 기쁨이 잔치의 핵심입니다.

니다. 나머지 아흔아홉은 잃은 양이 우리로 돌아오도록 신중 하게 접촉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무리에서 벗어난 잃

집 나간 아들

은 양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기도하며 찾아 나서고 소셜 미디

이 비유에서 한 아들은 가정의 규율, 규칙에 싫증이 났고 친

어를 통해 연락하며 그들을 찾아야 합니다.

구들의 생활 방식을 부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목자는 잃은 양을 찾기 위해 다른 사람의 손을

그는 그들처럼 되고 싶어 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음주,

빌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적으로 혼자 양을 찾아 헤맸습니

가요, 춤, 흡연, 영화, 섹스, 파티, 소셜 미디어에 푹 빠진 것입

다. 정처 없이 떠돌고 있는 양을 찾아낼 때까지 그는 결코 포

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내게 돌아올 몫을 달라”고 합니다. 그

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역시 방황하는 청년 모두를 끈질기

는 오로지 아버지의 재산만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감정이나 신

게 찾으러 다니십니다. 그들은 안식일 예배나 다른 집회에 빠짐

체적·영적 건강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친절하고 사랑과 동정이

없이 참석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패스파인더 지도자이며 학

가득한 아버지는 싫은 소리 하나 없이 아들이 요구한 재산을

생반 교사, 어린이 교사일지도 모릅니다. 성경퀴즈대회 우승자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들은 그토록 원하던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고 주님을 위해 자발적으로 일하고 지역사회 활동에 적극적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인 청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과의 관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13절).

계에서 그들 모두는 어디까지나 잃은 양입니다. 주님과 조화를

돈을 잔뜩 들고 집을 떠난 아들처럼 흥청망청 사는 청년이

이루기 위해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이 당장 필요합니다. 주님은

많습니다. 그들은 엇나간 그리스도인처럼 교회를 떠나 탕자처

그분의 손길을 찾는 자들과 잔치를 벌이고 싶어 하십니다. 그

럼 먼 곳에서 양심에 침묵한 채 가정과 교회에서 배웠던 도덕

분은 꼭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적·영적 가치들을 내던져 버립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재산에 관심이 있지만 정작 하나님께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차 려 주신 음식에는 관심이 있지만 그분께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분이 주신 상쾌한 공기를 좋아하지만 그분을 좋아하지는 않

112  교회지남


습니다. 건강에는 신경 쓰지만 건강하게 해 주시는 분을 찾지

남은 것이라고는 면목 없고 불쌍한 자신의 처지를 받아 달라

않습니다. 그들은 친구들과 돈, 재능과 능력과 같이 하나님이

는 말뿐입니다.

주신 선물에는 관심이 있지만 하나님께는 흥미가 없습니다.

아들은 어떤 반응을 예상했을까요? 아버지가 자신을 거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큰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

하거나 화를 내고 호되게 꾸짖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부탁할 말을 다 외우기도 전에, 그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아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

버지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얼

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

굴에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자신을 만나러 달려오고 있었습

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

니다.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버지는 아들을 꼭 안아 주며

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목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대책 없이 관대한 아버지의 말을 들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

어 봅시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

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니”(14~20절).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22~24절).

허비하는 아버지

이 아버지야말로 사치스런 아버지입니다. 지나치게 과도한

‘탕자’라는 용어를 우리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합니다. 아들

은혜입니다. 이 아버지는 사랑을 행동으로 몸소 보여 주었습니

은 허랑방탕하며 무분별하게 살았습니다. 반면 그의 아버지는

다. 부끄러운 아들의 모습을 가장 좋은 옷으로 가려 주고 인장

긍정적인 의미에서 ‘낭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

반지를 끼워 주고 신을 신겨 주며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했습니

랑을 무모할 정도로 낭비했습니다. 풍부한 사랑과 은혜를 아

다. 아들은 환영을 받으며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고 보기 드문

주 후하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는 두 아들에게 아낌없이 주

잔치의 주빈이 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벌 받

그는 진정 아낌없이 주는 아버지였습니다. 이런 아버지에게

아 마땅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내치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심히

둘째 아들은 자기 몫을 나누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유산은

사랑하셔서 또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보여 주시기 위해, 그분

보통 사후에 분배합니다. 아버지가 멀쩡히 살아 계시는데, 이

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

아들은 자기 몫을 달라고 야단입니다. “저한테 아버지는 돌아

습니다. 우리를 가족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낭비가 얼

가신 분이나 다름없으니까 지금 당장 제 몫을 달란 말이에요.”

마나 심했는지 십자가를 바라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심하다고 생각되십

아마 집을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가족

니까? 원하는 것만 얻어 내고 하나님 역시 죽은 존재로 취급하

으로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교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어도 마

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제 유산을 받아야겠습니다. 지금 당장

음은 절망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 여러분에게도 낭비가 심한

이요.” 이 얼마나 모욕적이고 고약한 짓입니까?

아버지께서는 값비싼 사랑으로 팔을 펴십니다.

이런 돼먹지 못한 아들은 두들겨 패도 시원치 않을 텐데 아 버지는 아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이 아버지는 깊이 인내

집 안에서 잃어버린 아들

하면서 터무니없이 과한 사랑을 몸소 보여 주었습니다. 몇 년

돌아온 아들을 기뻐하며 아버지와 종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

뒤 이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그 아들이 선물은커녕 돈도, 갈

을 때, 집에 남았던 큰아들은 울화가 치밀어 잔치에 참여하지

아입을 옷도, 값진 물건도 하나 없이 빈털터리로 돌아옵니다.

않았습니다. 동생을 가리켜 “당신의 아들”이라고 빈정거리듯

2015. 3.

113


말했습니다. 자기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동생에 대 한 미움과 자신의 불행에 대한 표현이 너무 지나칩니다. 그는 집 안에 머문 탕자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숱한 사람 역시 잃어

넷째 날

나 홀로 그분 앞에

버린 아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슬프지 않습니까? 주님께 돌아온 사람을 반기기는커녕 회개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 는다고 난리를 떠는 교인, 바로 우리의 모습 아닌가요? 집에 있던 큰아들처럼 아버지 집에 거하면서 영적 빈곤, 고 통, 실망, 재난에 빠져 허우적대는 교인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 에게는 돌아온 사람이 전혀 반갑지 않습니다. 자기 연민에 빠 진 사람은 회복된 사람이 특별 대접받는 것을 보면서 자기도

4

요한복음 8장 1~11절

오늘의 성경절에서는 세 등장인물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고 발하는 사람, 고발당하는 여자, 최고의 재판관인 예수님입니다.

집을 떠나고 싶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때 아버지가 자기 연민에 빠진 큰아들을 다독입니다. “아

고발하는 사람

들아,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란다. 네

여인을 고발한 사람은 종교법을 가르치는 교사와 바리새인입

동생이 죽었다가 살았고, 그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으니 우

니다. 이들은 모세의 율법을 해석하도록 공인된 사람입니다. 당

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엘렌 화잇은

시 공회의 지도자였고 영적·도덕적 표준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 형은 잃어버린 동생에 대

한다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한 아버지의 염려를 나누지도 않았고 동생이 돌아오기를 기다

그들은 심지어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

리지도 않았다. 따라서 잃었던 동생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처럼

고 비난했습니다(마 9:34). 또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든 자를 치료

기뻐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때까지 아들로서가 아니라 종으

하셨다고 불순한 동기로 그분을 배격했습니다(마 12:10). 부딪히

로 봉사했음이 드러났다. 아버지 앞에서 일하는 것을 영원한

기 좋아하고 자신을 완전하다고 여기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기쁨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기 수고로 얻는 소득만을 생각하며

드디어 예수님을 죽이기로 공모합니다(마 12:14).

지낸 것이다”(실물, 207). 젖과 꿀, 황금 길과 황금 저택이 주는

고발당해 본 적이 있습니까? 신앙인으로 살면서 다른 이들의

표면적이고 감성적인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와 친밀한

억측이나 유혹, 압박으로 괴로웠던 적은 없습니까? 누명을 쓰거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십니다.

나 부당하게 고소당했다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 람들은 지적받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정작 자기도 모르게 남을

기쁨의 잔치

쉽게 지적합니다. 우리가 겪고 싶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이 겪지

아낌없이 주는 아버지는 큰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고, 잃었다가 다시 찾았으니 잔치 를 벌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32절, 현대어성경)

“지은 죄가 클수록 잘못을 빨리 깨닫는 법이다. 모든 교인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마음이 깨끗하고 순결한지, 자기 이름이 교

한 영혼이 예수께 돌아올 때 우리 또한 기쁨의 잔치를 열어

회 녹명책뿐 아니라 어린양의 생명책에도 기록되었는지 점검하

야 합니다. 한 사람이 주님께 돌아올 때 이 땅에, 교회에 큰 기

라. 그렇게 하는 사람은 교우를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상대가

쁨이 있어야 합니다. 아낌없이, 지나치게 후히 주시는, 값으로

부족해 보여도 멸시하지 않을 것이다”(리뷰, 1893. 1. 10.).

매길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서만 우리도 그런 기쁨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114  교회지남


고발당한 여인

합니다. 엘렌 화잇은 계속 설명합니다. “그 여인은 두려워 떨면서

레위기 20장 10절에 기록된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누구든지

예수 앞에 서 있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하신 예수의 말씀은 그녀에게 사형 선고처럼 들렸다. 그녀는 감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히 눈을 들어 구주의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조용히 운명을 기다

그런데 요한복음에 기록된 사건에서는 간통을 범한 남자에 대한

렸다”(소망, 461). 분명 예수님은 바리새인이나 종교 지도자들과

언급이 없습니다. 그는 어디에 있을까요? 예수님 앞으로 끌려온

는 달랐습니다. 그분께서는 여자의 잘못만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

사람은 왜 여자뿐인 걸까요?

시고 고소인들의 잘못까지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판결이

적절한 조사가 실시되어야 합니다. 사실 확인 없이 섣불리 판

무엇인지를 내비치셨습니다. 그들 역시 여자만큼이나 죄가 있다

단해서는 안 되며 관련자 모두를 사법 처리해야 옳습니다. 법을

는 것을, 따라서 그들도 그 여자와 똑같은 선고를 받아야 한다는

집행할 때는 한쪽에 치우치면 안 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돌을 던지는 대신 동정

자기들의 법을 집행하는 데 완벽하지도 공정하지도 못했습니다.

심, 사랑, 용서, 은혜, 자비, 관용, 포용으로 사건을 마무리하셨습

그들은 비도덕적이었고 편파적이었습니다. 악의, 미움, 원한에 눈

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이 멀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관계가 불편했고 정의와 진리의 원 칙을 지키기보다는 저열한 흥미를 채우기에 급급했습니다.

여자에게 건넨 마지막 말

정의를 따지는 자리에는 늘 예수님이 불려 갑니다. 거룩하신

사실 그 여자는 고소자들에 의해 예수 앞에 끌려갔습니다. 그

분의 조언은 늘 자리를 얻게 마련입니다. 이 상황에서 예수님이

들의 의도는 악했지만 덕분에 그녀는 예수님과 대면할 수 있는

어떤 결정을 내리셨는지는 하나의 본보기가 됩니다.

기회를 얻은 셈입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나도 너를 정 죄하지 아니하노니.” 무죄를 선고한다는 말도 혐의가 없다는 말

최고의 재판관이신 예수님

도 아닙니다. 이 시간 이후로 전혀 다르게 살라는, 더 이상 죄를

예수님은 그들의 주장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짓지 말고 살라는 엄격한 주문의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

그들이 정의라고 여기는 일을 실행하기 전에 자기 자신에 대해

유를 주시면서 잘못을 무마하지는 않으십니다. 그분은 그녀에게

생각해 보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땅에 무엇이라

“집으로 가라. 너는 이제 살았다. 그러나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

쓰셨을지, 고소하는 자와 고소당하는 자에 대해서는 무엇을 언

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만나면 삶의 변화를 요구받

급하셨을지 이런저런 추측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엘렌

습니다. 그분은 죄에서 떠나라고 주문하십니다. 요한복음 5장 14

화잇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무관심한 듯 늑장 부리는 모

절에서 중풍병자 역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비슷한 경고를

습에 고소자들은 안달이 났고 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시도록

받습니다. 그는 경고에 주의하지 않을 때 얼마나 비참한 일이 생

강력하게 촉구하면서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예수의 시

기는지를 몸소 경험한 사람입니다. 예수께서는 결코 죄를 가볍게

선을 따라 땅바닥으로 눈을 향한 뒤 그들은 안색이 변하였다. 각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러면서도 죄인들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사람의 은밀한 죄가 거기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소망, 461).

기회를 주십니다.

땅에 글을 쓰는 동안 사람들에게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을 주신

바로 지금 이 기회를 붙잡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것입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

로 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신명기 13장 9절과 17장 7

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을 통

절을 직접 가리킵니다(레 24:14 참조). 범죄를 목격한 증인이 맨

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요 3:17). 지금 예수님을 받

먼저 돌을 던지되 그 증인은 그 범죄로부터 깨끗한 사람이어야

아들이십시오. 그분께 헌신하며 예수님과 둘만의 시간을 보내십

2015. 3.

115


시오. 그분은 곧 오십니다.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지는 못하지만,

만듭니다. 그 결과 집, 가족, 친구, 교회를 떠나 외롭게 지내는 사

선택하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습니다. 구원은 여러분을 위한

람이 생깁니다.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갖가지 행위에 빠지기도 합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선물을

니다. 음주, 흡연, 약물에 중독되고 포르노, 문란한 성생활, 비정

선택하고 구주 예수께 헌신할 때입니다.

상적 취향에 휩쓸립니다. 지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학업, 직업, 의미 있는 삶을 포기하고 대충대충 살려고 합니다. 바울은 사탄의 능력을 간과하지 말고 영적인 공격과 귀신의 영에 맞서도록 무장하라고 권합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 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다섯째 날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정신의 승리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

5

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누가복음 8장 26~39절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0~13). “사탄의 계책에 빠지고 싶지 않다면 영혼의 통로를 잘 지켜야 한다. 불순한 생각을 부추기는 것은 읽지도, 보지도, 듣지도 말

귀신 들린 자

아야 한다. 영혼의 원수가 내미는 문제에 마구잡이로 휩쓸리도

예수님이 가다라 지방에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귀신 들린

록 방심해서는 안 된다. 사도 베드로는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

자입니다. 복음서 저자들이 귀신 들린 사람에 대해 수없이 언급

이고 근신하여…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한 것을 보아 당시에는 이 문제가 매우 심각했음을 알 수 있습니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

다. 그 사람은 아마 영화 ‘인크레더블 헐크’의 주인공처럼 예수님

룩한 자가 되라’(벧전 1:13~15)고 말했다. 바울도 ‘무엇에든지 참

앞에 나타났을지도 모릅니다. 증세가 정신병자와 비슷해 보였지

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

만 복음서 기자들은 그를 귀신 들린 자라고 설명합니다.

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

귀신 들린 사람에게는 적어도 여섯 가지 증상이 나타납니다.

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

첫째, 성격 장애입니다. 정체성과 개성이 귀신에게 사로잡혀 있

고 했다. 그렇게 되려면 간절히 기도하고 끊임없이 주의해야 한

습니다. 둘째, 반사회적 행동입니다. 그는 인가에서 멀리 떨어져 무

다. 우리는 성령의 감화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고상해지

덤 사이에 머물고 있습니다. 셋째, 비상한 영적 통찰력입니다. 그

고 순결하고 거룩한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하며 두려움에 떱니다. 넷

을 부지런히 연구해야 한다”(청년, 285).

째, 보통 사람들이 통제할 수 없는 초인적인 힘을 지니고 있습니 다. 자신을 묶어 둔 쇠사슬과 고랑을 그는 죄다 끊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 가다

다섯째, 지나가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괴롭힙니다. 여섯째, 자해입

엘렌 화잇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처참한 고난자의 마음은

니다. 돌이나 다른 물건으로 끊임없이 자기 몸을 상하게 합니다.

사탄에 의해 어두워졌으나 구주의 임재 앞에서 한 줄기의 빛이 암흑을 꿰뚫었다. 사탄의 지배를 떠나서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

사탄에 저항하는 정신

이 그에게 일어났다. 그러나 귀신이 그리스도의 능력에 저항하였

사탄은 우리 마음에 영향을 끼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다. 그 사람이 예수에게 도움을 호소하려고 할 때 악한 영이 그

116  교회지남


의 입에 말을 넣어 주었다. 그는 공포의 괴로움 가운데서 소리

습니다. 프로이트 이후의 신(新)정신의학이 말하는 내용과 일치

를 질렀다. 귀신 들린 사람은 자기를 자유 하게 할 수 있는 분 앞

합니다.

에 자기가 나와 있다는 것을 얼마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

첫째, 그는 예수의 발아래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자

위대하신 손을 붙잡을 수 있는 범위 내에 들어가고자 힘쓸 때에

기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삶을 예수님의 권위 앞

또 하나의 다른 의지가 그를 붙들어서 다른 말이 입 밖으로 튀어

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참 역설적입니다. 우리

나왔다. 사탄의 능력과 자유를 구하는 그의 욕망 사이의 투쟁은

가 그리스도께 굴복하면, 성령께서 우리 삶을 소유하게 되는데

처절했다”(소망, 255).

이때 우리는 가장 자유롭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다가가면 그분은 문을 활짝 열고 우리와 이

둘째, 그는 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것은 건강하다는 또 다른

야기를 나누십니다. 더욱 새롭고 예전과 다른 삶을 살도록 이끄

표시입니다. 그는 이제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벌거벗었다

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가 되면 깨끗함, 치유, 회복, 발전,

는 것은 자신이 도덕적이며 절대적이라고 과시하는 것입니다. 오

성공이 끝없이 계속됩니다. 각별하지 않은 사이끼리는 서로 깊이

늘날에도 이런 병이 나타납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며, “좋으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짜 친구 사이에는 어려운 질문도

면 그냥 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던지고 진지한 대답도 듣고 싶어 합니다. 진짜 친구는 상대가 최

발아래서, 새로운 마음으로 품위 있고 적절하게 옷을 갖춰 입었

선을 다하게 만듭니다. 종종 그런 것이 달갑지 않기도 합니다. 귀

습니다.

신 들린 거라사인은 예수님을 대면하고는 자신의 삶이 현격하게 변할 수 있다고 느낀 게 틀림없습니다. 그분이 바로 귀신 들린 자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셨습니다.

셋째, 그의 정신은 온전했습니다. 그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 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를 귀찮게 한다는 피해망상에서 벗어났습니다.

폭풍을 잠잠케 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 또한 치유하십니다. 정체성의 위기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의 생각을 다시 정리해 주시

이야기를 전하라

고 우리가 가는 길에 기쁨이 있게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자신도

이제 그는 자신을 회복시켜 주신 예수님께 푹 빠져 그분의 제

모르게 사탄의 길로 들어선 우리를 구해 주시는 분입니다. 최고

자들과 합류하고 싶었으나 예수님은 그에게 다른 사명을 주셨습

의 존재이신 하나님, 그분이 바로 우리의 친구이십니다.

니다. 자신이 겪은 일을 집에 가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일대일 전도였습니다. 그분께서는 “가족, 친구, 이웃에게 가서 하나님이

예수님께 갔더니

네게 하신 일에 대해 말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

“치던 자들이 그 된 것을 보고 도망하여 성내와 촌에 고하니

의 이야기를 전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신 예수님을 만

사람들이 그 된 것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

나야 할 사람이 밖에 많습니다.

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아래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귀신 들렸던 자의 어떻게 구원받은 것을 본 자들 이 저희에게 이르매”(눅 8:34~36). 귀신 들린 자의 소식은 삽시간에 마을 전체로 퍼졌고 큰 호기 심을 느낀 거라사인들은 수년 동안 미치광이로 살던 사람의 이 야기를 직접 듣기 위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사람의 회복된 모 습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온전함의 세 요소를 다 드러냅니 다. 그는 1) 권위에 굴복했고 2) 옷을 입었고 3) 정신이 온전해졌

2015. 3.

117


에 못을 박았습니다.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십

여섯째 날

자가에 달린 그분을 지키고 서서 아무도 그분을 구할 시도조차

예수님 편에 서겠는가?

못하게 했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셨는지 확인한 사람도 로마 병 사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예수님의 옷을 제비

6

뽑아 나눠 가졌습니다. 방주를 지은 노아를 비웃던 사람들처럼

누가복음 23장 32~43절

그분을 조롱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희롱하며 신 포도주를 주었습니다.

빌라도

통치자와 군중

그리스도를 합법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시키기 전에, 헤

백성의 선택에 따라 총독이 죄수를 석방하는 것이 당시 유월

롯과 빌라도는 판결을 내려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헤롯의 관할

절 풍습이었습니다. 대중이 원한다면 그 누구라도 석방되었습니

지역인 갈릴리 사람이었고 그리스도께 죄가 없음을 알았던 빌라

다. 유대 지도자들은 빌라도 법정에 모인 군중에게 악명 높은 범

도가 예수님을 헤롯 안티파스에게 보냈습니다. 예수께서 무죄하

죄자인 바라바를 석방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요구하라

였기에 당황하던 헤롯 역시 같은 방법으로 예수님을 다시 빌라

고 설득했습니다. 바라바와 예수님 중에 누구를 석방할지 빌라

도에게 보냈습니다. 빌라도는 그리스도의 무죄를 충분히 인식했

도가 묻자, 군중은 일제히 바라바를 외쳤습니다. 빌라도가 재차

고, 그의 아내마저 편지로 예수님을 건드리지 말라고 부탁했습니

예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묻자,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으소

다. 다시 말해, 사형을 언도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무

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빌라도의 명령

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분을 석방해야 한다는

에 따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군중들과 유대 지도자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군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해야

들은 환호하며 기뻐했습니다.

한다며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머리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힌 패

무엇이 옳은지를 알고 그 옳은 일을 하려고 하는데, 다수가 그

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아이러니합니까! 그분은 그들의 왕이었으

일을 반대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 정치적 이유와 비겁

나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한 마음 때문에 빌라도는 죄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간의 모습을

주셨으나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구주이셨으나

한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서 가장 악명 높은 범죄자와 맞바꾸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생명, 번영, 성공 그리

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지금도 매일 매 순간 반복됩니다. 어린

고 미래에 대한 열쇠를 가진 유일한 분이었으나 그것을 알지 못

이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님과 우

하고 그들은 그분을 조롱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오늘날에도

리의 사리사욕을 맞바꿀 때가 많습니다. 지금 이 순간 누구 편에

반복되고 있습니다.

서겠습니까? 빌라도인가요 군중인가요 아니면 예수님 편인가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다 로마 군인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처럼 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힌다면 어떻

“로마 군병들도 욕설하는 데 가담하였다. 헤롯과 유대 고관들

게 하겠습니까? 범법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반응하

의 지지를 받은 사악하고 부패한 군병들이 선동하는 온갖 모욕

겠습니까? 대부분은 앙갚음해 줄 때를 기다릴 것입니다. 압제하

을 구주께서는 다 받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거룩한 인내심을 잃

고 거절하며 고통을 가했던 잔인한 행동에 대해 대가를 치르게

지 않으셨다”(소망, 731). 로마 병사들은 망치로 예수님의 손과 발

할 것입니다.

118  교회지남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

이 두렵지도 않느냐? 너와 나는 곧 죽는다. 우리는 받아 마땅한

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그

벌을 받고 있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을 행한 적이 없다. 재판에

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용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가르침

대해 병사들이 말하는 것을 못 들었느냐? 빌라도 역시 그분에게

을 십자가에서 행동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자신을 조롱하고 채찍

서 어떤 잘못도 찾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예수께 이렇게

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그분은 모두 지켜보셨습니다. 그

말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 주께서 주님의 나라에 들어

러고 나서 그분은 하늘 아버지께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

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눅 23:40~42, 클리어워드 성경).

청하셨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을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셨듯

약속

이, 예수님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해 지금 이 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

간에도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용서를

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이러한 주님의 약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라도 용서해 주

속에 대해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강도에게 약속하

신다는 것을 그분이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셨듯이, 우리에게도 약속하십니다. 십자가에서 회개하는 자에게

겸손하게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분께 나아오기만 한다면 그 어떤

주신 예수님의 약속은 승리의 약속입니다. 그분께서는 다 이루

것도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에 다가가는 것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지배로부터 해방을 약속하는 증서입니 다. 그분의 편에 설 모든 이에게, 그 약속은 영원한 승리의 길로

두 강도

들어갈 영광의 문을 열어 주는 해방의 증서가 될 것입니다. 이

두 강도는 합당한 판결을 받고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한 사람은

약속은 우리 모두를 위한 기쁨의 소식입니다. 우리가 군중에서

아직은 자신이 무리 중 한 사람이며 예수님과는 어떤 관계도 없다

나와 그분의 편에 설 때 우리 역시 예수님 안에서 승리자가 될

는 것을 드러내려고 예수님을 조롱하는 데 가담했습니다. 그는 우

것입니다. 우리의 약함뿐 아니라 모든 죄와 유혹과 위협과 시련

리와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지 않았고 뉘우치

을 이길 수 있다고 그분은 확증해 주십니다. 그분의 약속은 우리

지도 않았으며 변화를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편

를 위한 증서입니다. 이제 그분 편에 서지 않겠습니까?

죄수는 진심으로 뉘우쳤습니다. 그는 군중의 압력과 무리의 뜻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고 혹시 그리스도께서 옳은 일을 행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영 생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떤 위험도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단테는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 을 지킨 사람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로버트

일곱째 날

꿈이 이루어지다

케네디는 “동료의 반감과 비난 그리고 사회의 분노에 용감하게 맞설 사람은 많지 않다. 전쟁터에서의 용맹이나 위대한 지성보다 더 찾아보기 힘든 것이 도덕적 용기이다. 그런데 세상을 바꾸려 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자질이 바로 이 도덕적 용기인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오른편에 있던 강도는 용기를 보였

7

창세기 45장 1~12절; 50장 15~22절

고, 다른 강도를 질책했으며 그와 반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오빌은 음악을 좋아하고 교회 일에 열심인 청년이었습니다. 특

는 자신의 죄를 인정했고 진심으로 자백했습니다. “ ‘너는 하나님

히 기타와 키보드를 잘 다뤘고 드럼 연주에도 관심이 많았습니

2015. 3.

119


다. 그런데 그가 다니는 교회는 보수적이었습니다. 교회 집회에

정적인 일들이 아주 많습니다. 오빌처럼 믿음에 굳게 서서 시험

서 드럼을 연주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능

을 이겨 내면서 모범이 되는 사례도 있습니다. 실패는 선택 사항

을 교회에서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예배에 적절하

이 아닙니다. 집이나 교회나 세상에서 문제를 만나더라도 늘 예

게 드럼을 연주할 줄 알았기 때문에 이따금 이웃 교회에 초청

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교회의 사명을 저버리

을 받기도 했습니다. 오빌이 출석하는 교회는 청소년이 많아 탐

지 마십시오. 어떤 유혹과 장애물이 있을지라도 가족, 교우, 사

험대, 개척대, 마스터가이드, 청년 프로그램과 같은 다양한 청년

람들을 사랑하십시오. 세상과 교회와 가정에서 그리고 타협, 원

사역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오빌은 다양한 분야에서

한, 미움, 질투가 가득한 사회에서 버틸 수 있게 하는 강력한 생

리더로 앞장서서 활동했습니다.

존 수단은 믿음, 용기, 기도, 말씀 연구 그리고 주님과의 친밀한

그는 학업 성적도 우수했고 맡은 일은 제대로 하려고 애썼습 니다. 동료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가 잘난 체한다고 여겼고 그가 하려는 일에 사사건건 반대했습니다. 오빌의 단점을 찾다가

관계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요셉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 니까?

그들은 드럼 연주를 꼬투리 잡아 사람들을 이간질했습니다. 청 년들의 부모까지 가세하여 오빌을 비난하고 반대했습니다. 그들

꿈꾸는 자 요셉

은 어디에서나 오빌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런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아버지가 요셉을 유난

데도 오빌은 교회 일을 잘해 냈습니다. 오빌에 대한 불만이 많아

히 편애하고,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지어 입혔기 때문입니다(창

지자, 교회 지도자들은 오빌이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막았고 그

37:3). 요셉은 17세가 될 때까지 옳은 일과 진리, 선한 행동, 올바

는 점점 할 일을 잃어 갔습니다. 오빌보다 실력이 없는 친구들,

른 신앙의 원칙이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집, 학교, 직

특히 그를 반대했던 사람들이 활동을 맡았으나 효과적으로 일하

장, 지역사회, 교회에서 여러분을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이

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자신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있습니까? 혹 있다면 여러분은 요셉처럼 행동할 수 있습니까?

았지만 오빌은 계속 그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그

여러분은 꿈을 꾼 적이 있습니까? 동료, 가족, 교인들에게 배척

에게 드럼 연주를 종종 부탁했던 교회에서 더 열심히 활동하게

받으면 꿈을 포기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되었고 시간이 흘러 오빌은 그 교회의 수석장로가 되었습니다.

따돌림 받기 싫어서 마약에 중독되는 청년이 많습니다. 당시 요

목회에 뜻이 있었던 그는 결국 목사가 되어 현재 합회 청소년부

셉에게도 그런 것이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인기, 우정 심

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어 형들의 압력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종교 단체뿐 아니라 모든 집단에서 오빌의 경험 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의 결과가 늘 같지는 않습니다.

이집트에서

반대의 물결에도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중간에

미디안 상인들은 이집트에서 요셉을 팔았습니다. 17세 나이에

포기하고 떨어져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도 거절, 질투, 부

형들에게 잔인하게 배신당하고, 구덩이에 빠지고, 짐승처럼 팔린

정적인 시선 때문에 신앙을 떠난 청년이 있는가 하면, 따가운 시

요셉은 드디어 이집트까지 갔습니다. 그에게는 이제 친척, 친구,

선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교회에 남아 있는 청년도 있습니다. 자

교인도 없었고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미지수였습니다. 그런 상황

신이 내린 선택 또는 앞으로 내려야 할 선택 때문에 고민하는 친

이라면 절망하고 낙담하여 목숨을 포기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구, 동시에 여차하면 교회를 떠날 생각인 친구도 있습니다.

요셉은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잊지 않았습니다. 엘렌 화

무엇하러 부정적인 문제에 초점을 두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잇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요셉은 애굽에 도착하여 왕의 시위

있지만 이런 문제는 그냥 도외시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려 가 그 집에서 10년 동안 머무르며 그를

부정적인 문제 속에서도 우리가 축하하고 주님께 감사해야 할 긍

섬겼다. 여기서 그는 특수한 시험을 당하였다. 그는 우상을 숭배

120  교회지남


하는 환경에 처해 있었다. 거짓 신의 숭배는 궁정의 모든 사치에

니까? 목사님, 장로님, 교회 어른, 동료, 부모나 형제자매, 친척,

둘러싸여 그 당시 최고의 문명국의 부와 문화의 지원을 받고 있

배우자 혹은 교회 밖의 누구입니까?

었다. 그러나 요셉은 그의 단순성과 하나님께 대한 그의 충성심 을 지켜 나갔다”(부조, 142). 시간이 흘러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로 파라오의 문제를 상담해 주고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주님과 함께한 요셉은 모든 것을 용서했습니다. 하늘 법정에서 천사들과 함께 계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 팔을 넓게 벌리고 “용 서하라! 용서하라! 또 용서하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꿈 을 간직하고, 용서의 마음을 품고, 주님을 인도자로 삼으면서 용 기를 가지십시오.

꿈이 이루어지다 이집트와 주변에 기근이 심해지자 총리 요셉의 허락하에 각국

눈물의 밤을 견디면 기쁨의 아침이 온다는 말을 늘 기억하면 서, 가야 할 길을 걸어가십시오.

백성이 양식을 사기 위해 몰려왔습니다. 그중에는 요셉의 형들도 있었습니다. 2년 동안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을 감추고 처음 보는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요셉은 자신 을 형들에게 드러냈습니다. 형들의 운명은 전적으로 요셉의 손에 달려 있었고 요셉은 형들에게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요셉이 형 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당신

여덟째 날

은혜로 산다

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 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 다”(창 45:4, 5). 요셉이 형들에게 어떤 비난의 말도 꺼내지 않았 다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그는 단지 주님께서 인도하신 게 분명 하다는 점만을 부각시켰습니다.

8

디도서 2장 11~15절

작년에 평신도 사역자 1,500여 명과 함께 평신도 대회에 참석

용서

했는데 대회 기간에 타 교파 목사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요셉은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

일곱째 날이 안식일임을 확신했으며 안식일을 준수해야 한다고

님이시라”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요약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에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교회 교인들은 2주 전부터 제칠일 안식

게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있을까요? 잔인무도한 범죄의 피해자

일에 예배드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침례 받을 준비

요, 자신의 손에 가해자들의 생명을 쥐고 있던 요셉이 그들에게

가 되어 있었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이 되기를 희망했습니

완전하고 값없는 용서를 베풀었습니다.

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을 때는 대쟁투 보급 운동의 결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형들은 요셉의 보복이 다시 두려워

과로 타 교파 목사 100여 명이 재림기별을 받아들였고 자기 교인

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형들을 요셉은 다음과 같이 안심시킵니

들을 인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일부 교인들은 이미

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목사들과 함께 재림교회 기별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람을 이끄시는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

세상 모든 나라와 지위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

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

께로 이끄는 보편적 기별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해마다 장년보다

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 50:19~21).

청년들이 더 많이 재림교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마음에 상처가 있습니까? 누가 그 상처를 주었습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

2015. 3.

121


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

가운데 그분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

개인 예배 및 함께 드리는 예배 그리고 말씀 연구와 기도를 위한

다. 구원은 모두에게 주어지며, 정직하며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시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게 합니다. 모든 사람이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를 통해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인종, 언어, 문화, 민족성, 사회적

은혜의 목적

지위, 교육 배경 등이 구원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어린이부터 장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구원의 계획에 속해 있습니다.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3). 이 말씀에서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실 것을 ‘기대하고 기다리면서’ 살라고

은혜를 통해 배운다

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스러운 소망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확실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

약속, 아직은 성취되지 않았지만 미래에 얻게 될 영적 복락을 기

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

대하는 삶인 것입니다. 이 “소망”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하늘에

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이 말씀에서 바울은

쌓아 둔 소망”이며(골 1:5), 영생의 소망입니다(딛 1:2; 3:7). 이 소

은혜를 의인화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뿌리에 해당하는 “경건치

망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신자들의 부활과 변화 그리고 하

않은 것”을 제거함으로 거기서 파생되는 “세상 정욕”을 없애라고

늘 왕국에서 성도들이 경험할 영광이 담겨 있습니다.

가르칩니다. 경건치 않은 것이란 무엇인지 그는 디도서 1장 1~10

주님께서 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세상 감옥에서

절에서 나열합니다. 즉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 그릇된 교리,

해방시키실 승리의 날을 바라보면서 준비하며 삽시다. 은혜는 우

무절제, 근거 없는 비난, 신성 모독 발언, 부도덕 그리고 상대방

리를 영광으로 이끕니다. 참으로 놀라운 주님의 은혜입니다.

을 비방하는 것 등입니다. 하나님을 반대하는 사탄의 세력 가운데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은혜의 역할입니다. 은혜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통제하고 친절을 베풀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의롭게, 강직하게,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으로 복음의 신뢰도가 증명됩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은혜의 가르침과 주장대로 생활해야 합니다. 디도서 1장 1절에 명시된 것처럼 우리는 은혜를 통해 다음 세 가지에 관 심을 갖게 됩니다. 1) 사려 깊은 자제력으로 바른길을 걷고자 합 니다. 2) 다른 사람들과의 바른 관계를 갖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 칭찬의 말을 건네고 복음을 전합니다. 엘렌 화잇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모든 참된 제자는 하나님 나라의 선교사로 태어난 다”(소망, 195).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도움 없이도 죄인을 구원하 시는 당신의 목적을 이루실 수 있으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품 성과 같은 품성을 계발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그의 사업을 분담해 야 한다. 그의 기쁨, 곧 그의 희생을 통하여 구속받은 영혼들을 보는 기쁨에 참여하기 위하여 그들의 구속을 위한 그분의 사업 에 참여해야 한다”(소망, 142). 3) 하나님과 동행하며 진실한 신앙

122  교회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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