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기도력
M ay
5월
2018년도 장년 기도력
재림 성도와 가정
세상 안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들의
삶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사람을 ‘그리 스도인’이라고 하며 그리스도인 가운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속한 사람 을 ‘재림 성도(Adventist)’라고 부릅니다. 가정에 관한 성경과 증언의 교훈에 귀 기 울이면서 진실하고 행복한 재림 가정을 실현해 보고자 노력하는 특별한 한 달이 되길 바랍니다.
초기 교회의 변증서 중 하나인 <디오네트에게 쓴 편지>에 보면 “영혼이 몸속에 살지만 몸에 속하지 않았듯이,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재림 성도들은 세상 안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삶의 표준은 세상의 표준보다 높아야 합니다. 성경을 따름으로 희망의 신학을 구축해야 합니다.
* 대전삼육초등학교 김성원 선생님이 그려 주신 필자 가족 캐리커처입니다.
필자 한효수 목사 한효수 목사님은 충청합회 대전삼육초등학교 교목으 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가족으로 김연희 사모님과 자 녀 상진, 상인 두 아들이 있습니다.
이달의 필자_ 이국헌 목사 서중한합회와 한국연합회에서 목회자로 사역했고 현 재는 삼육대학교에서 신학과 학생들에게 교회사를 가 르치고 있습니다. 재림교회의 신학이 이 시대를 위한 희망의 신학이 되게 하기 위해 역사와 문화 분야에서 연구와 교육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201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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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5월 1일(화)
희망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를 위하여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
희망은 모두가 추구하는 지고한 가치입니다. 프랑스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인 피에르 신부는 희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희망은 삶의 의미 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만약 삶이 아무런 목적지도 없고, 그저 곧 썩어 없어질 보잘것없는 육신을 땅속으로 인도할 뿐이라면 살아서 무엇 하겠는 가? 희망이란 삶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단순한 기쁨> 중에서). 가톨릭 신부로 사회 정의를 위해 레지스탕스에 가담했고, 전쟁 후에 낭스 의 국회의원이 되었던 피에르는 파리에 정원 1만 평이 딸린 집 한 채를 헐값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가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예레미야 31장 1절)
영어로 가족을 ‘패밀리(family)’라고 합니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Father And Mother, I Love You)’라는 영어 문장의 머리글자를 모아 도 ‘패밀리’가 되지요. 이처럼 가족에게 가장 중 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가정’이라는 제도를 통해 자
에 구입하여 ‘엠마우스’라는 간판을 붙이고 집 없는 사람들의 보금자리를
녀들을 맡기셨습니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하
만들었습니다. 엠마우스 공동체는 상처 입은 사람, 환멸을 겪은 사람들의
나님께서 세상의 가장 소중한 선물로 주신 사
거처가 되었습니다. 가정이 파괴된 사람, 출소자, 아이와 함께 버림받은 여
랑스런 자녀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자, 알코올 중독자들이 하나둘 여기에 찾아와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희망
관계입니다.
을 찾았습니다.
가족이라는 말을 생각할 때마다 중요하게 여
이런 경험을 토대로 피에르 신부는 희망의 조건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겨야 할 것이 또 있습니다. 가정의 주인이 예수
“희망이란 우리 안의 빈자리를 하나님께서 모두 채워 주실 것을 아는 것이
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적
다. 하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하나 있다.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
인 부모입니다.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아버지(아
선을 다해 사랑을 베풀려고 애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빠), 어머니(엄마)에게 말씀드리고 부탁하고 상
피에르 신부의 희망 이야기는 누가복음 24장에 근거한 것입니다. 예수의
담하는 것처럼 예수님께도 자주 그렇게 이야기
죽음을 목격하고 슬픔과 절망으로 풀이 죽어 엠마오로 돌아가는 형제들
합시다. 하나님은 그러한 하늘 가족을 기쁘게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의미와 가치를 상실하고 좌절한, 상처 입은 자들이었 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그 제자들과 동행하셨 습니다. 집에 도착하여 축복 기도를 드릴 때 그들은 눈이 열렸고 예수를 알 아보았습니다. 그들은 희망을 발견하고 다시 삶의 현장으로 뛰어나갔습니 다. 예수께서 살아나셨고, 삶의 의미는 회복되었습니다. 누가가 엠마오의 제 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한 이유는 절망 속에 살아가는 인류에게 희망의 불꽃을 피워 주기 위함이었다고 피에르 신부는 설명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
돌보십니다. 믿음으로 생활하는 자녀들과 가정 모두를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쁘게 여기는 재림 성도의 가정이 되도록 작은 것부터 실천해 봅시다. 하 나님의 모습을 나타내는 재림 성도의 가정이 되고, 특히 5월 한 달이 그런 달이 되도록 모두 가 힘써 봅시다. 예수님은 그러한 가정을 바라 보시며 행복한 미소를 지으실 거예요.
람은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절망의 세상에서 희망을 꽃피우는 사람입니다. 영감의 선지자는 희망과 관련하여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들의 시련과 마
“우리의 가정은 벧엘(하나님의 집)이 되고 우
음의 고통과 실망을 동정해 주라. 그러면 그들을 도와줄 길이 열릴 것이다.
리의 마음은 성전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그 심
그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이야기해 주고, 그들을 위하여 그들과 함께 기
령에 하나님의 사랑을 품은 사람들이 있는 곳
도하고 희망을 북돋으라”(치료, 143~144). 그리스도인들은 희망이라는 가치
에서는 어디나 화평과 빛과 즐거움이 있을 것
를 드러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다”(재림신도의 가정, 19).
76 교회지남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5월 2일(수)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
그리스도인 가정의 가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 라”(눅 8:48)
빈 의과대학의 신경정신과 교수였던 빅토르 프랑클은 어느 날 새벽 3시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 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신명 기 11장 18절)
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를 건 여인은 자살하고 싶다면서 프랑클 박사 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프랑클 박사는 자살을 극구 말리며 생명이 얼마 나 소중한 것이며 왜 생명을 존중해야 하는지 30분 동안 그녀와 전화상으 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여자는 마침내 자살을 포기했고 병원으로 찾 아가겠다고 했습니다. 프랑클은 자신의 상담이 설득력이 있어서 자살을 방 지했다고 생각했지만 며칠 뒤 그녀를 만나고 나서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 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자살하지 않기로 결심한 단 하나의 이유는 내가 한밤중에 수면
집안 어른들이 자손들에게 주는 가르침을 가훈(家訓)이라고 합니다. 어떤 집에 가면 ‘가 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글이 벽에 걸려 있습니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된다 는 뜻입니다. 또 ‘이 집에 들어오는 이에게 평화’ 라는 글을 걸어 놓은 집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탈출하기 전
을 방해받았다는 이유로 화를 내지 않고, 30분 동안이나 참을성 있게 이야
날 밤에 양의 피를 문설주와 좌우 인방에 발
기를 들어 줘서…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
랐습니다. 처음 태어난 자녀가 죽지 않도록 하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삶의 의미를 찾아서> 중에서).
나님이 알려 주신 방법을 따른 것입니다(출
우리 주변에는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12:1~14). 그것을 기념하는 절기를 유월절이라고
삶의 의미를 찾아 주고, 이 세상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해 주는
합니다. 유월절은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방법은 그들의 존재를 소중하게 여겨 주는 것입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상징했습니다.
앓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눅 8:43). 삶이 저주스러웠던 이 여인이 어느 날
이스라엘은 어린양의 피를 문 주위에 발라
예수를 만나 치료받았습니다. 예수는 그 여인의 존재 가치를 드러냈고 그
생명을 지켰는데, 여러분의 가정에도 목숨처럼
여인의 신체적 질병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 치료했습니다. 영감의 글에
소중히 여기는 가르침이나 가훈이 있나요? 집
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종들 중 가장 비천한 자의 궁
안에 가훈이 없다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성
핍함도 못 본 체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귀는 도움을 구하는 부르짖음을 다 들으셨다. 그분은 그 많은 무리 중에서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한 여인이 자 기의 옷자락을 만지는 것도 감지하셨다. 믿음으로 살짝 건드린 그 여인의 행위는 응답받았다”(실물, 358).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도(요 4:7),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
경절을 프린터로 출력하여 액자에 넣거나 코팅 하여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봅시다. 붓글씨나 예 쁜 손글씨도 좋겠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 의 표로 삼으며 예수님의 재림을 진심으로 기 다리는 그리스도인 가정이 됩시다.
자도(요 5:5) 존재감을 잃고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
“그대의 손에 성경을 쥐고 있을 때에는 그대
수는 그들로 하여금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습니
가 거룩한 땅에 서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천사
다. 그 방법은 만나서 대화하고 고통과 절망에 귀 기울여 준 것입니다. 그리
들이 그대의 주위에 있으며 그대의 눈을 열 수
스도인이 예수와 같이 이웃의 처지를 이해하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된다
있다면 그대는 그 천사들을 볼 것이다”(교회에
면 세상은 좀 더 살 만한 가치가 있게 될 것입니다.
보내는 권면, 252).
201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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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5월 3일(목)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부자
가정의 제사장인 아버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마 19:21)
경상북도 상주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오정면·문달님 부부가 있습니다. 이 들 내외는 매년 추수를 마치면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을 찾아가 주민들에 게 유기농을 가르치고, 마약 퇴치 운동을 벌입니다. 또 심장병 어린이들을 국내로 데려와 치료해 주기도 합니다. 1억 원이 넘는 치료비 전액을 자신들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 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라디아서 4장 6절)
성경에서 ‘아버지’를 가리키는 대표적인 히브 리어는 ‘아브’입니다. 이것은 자녀가 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
의 헌신과 자녀들의 지원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부부가 매년 보르네오로
나님의 자녀이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달려가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바로 그곳에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들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와 함께 신앙하면서 하
이 있습니다. 정글 속, 밀림 속에서 문명과 동떨어진 생활을 하는 사람들, 순
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모두 믿음
박한 웃음과 어린아이의 감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사는 사람들, 그러나 순
안에서 한 가족이기도 하지요. 교회에 미워하
박함으로 인해 가난, 질병, 무분별한 문명의 피해에 속수무책인 사람들, 우
거나 싫은 사람이 있다면, 한번 생각해 보아야
리는 그런 정글 속 원주민들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것입니다”(오정면, <세상
할 문제입니다. 결국은 다 함께 하늘에 가야 할
에서 가장 가난한 부자> 중에서).
사람들이에요. 마음씨 좋은 사람이 되고 싶으
열여덟 번째 보르네오를 향하는 이 부부의 삶을 이끄는 힘은 무엇일까
세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면서 하나
요? 이 부부는 자신들의 삶을 여전히 보르네오섬으로 이끌고 있는 힘을 ‘감
님을 닮은 사람이 되도록 성령님의 도움을 구
동’이라고 말합니다. 사람과 함께 부딪히는 삶에 감동하고, 바다 같은 사랑
합시다. 그리고 똑같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에 감동하고, 살아 있음에 감동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버리고
부르는 교인들을 형제처럼 대합시다.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 매년 짐을 꾸리는 게 결코 힘 들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그들의 삶은 예수의 삶과 가장 많이 닮아 있습니다. 농부이자 목사인 오 정면 씨는 예수님을 통해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았습니다. “네 소유를 팔 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라고 예수께서 부자 청
또 우리를 낳아 주신 아버지(아빠)께 감사드 립시다. 믿음 안에서 아버지는 가정의 제사장 입니다. 영어로 남편을 ‘허스밴드(husband)’라 고 합니다. 가정을 감싸 주는 띠라는 뜻이지요. 우리를 믿음 안에서, 하늘 본향으로 이끌려고 고생하시는 아빠에게, 엄마에게 그리고 할아버
년에게 하신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지, 할머니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해 보세요. “우
로서 오정면 목사는 이 땅에서 진정한 부자로 살아가는 법, 단지 잘사는 게
리 가정을 위해 매일 애쓰시고, 사랑의 띠로 가
아니라 ‘제대로 사는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처럼 사
정을 둘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결같은 사랑
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 부부 외에도 예수님처럼 살기 위해 노력하
을 베풀어 주시고 교육시켜 주시고 신앙 안에
는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그들처럼 우리도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부자로
서 자라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면, 예수님께 더 가까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영감의 선지자도 이렇게 우리에게 호소합니다. “오늘날은 과거 어느 때보
“가정의 띠라는 그의 이름은 남편의 올바른
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
정의이다. …어떤 의미에서, 아버지는 아내와
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
자녀들이 기도와 찬양으로 연합하고 있는 동
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눅
안 하나님의 제단 위에 아침과 저녁의 희생 제
12:33~34)는 구주의 권면을 실천해야 할 때이다”(2보감, 166).
78 교회지남
물을 올려놓는 가정의 제사장이다”(교회증언 1 권, 547).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5월 4일(금)
상처 입은 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어머니의 위치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 구하노라”(요삼 1: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에베소서 6장 2절)
정신의학 전문의로서 30세 때 교통사고로 척추 손상에 의한 전신마비의 고통을 이겨 내고 삶의 지혜와 통찰력을 얻게 된 대니얼 고틀립은 자폐증
재림 성도의 가정에서 어머니(엄마)는 가정
손자인 샘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입고 사는 샘에게 고틀립은
의 여왕, 가정의 선교사입니다. 그만큼 신앙생
고통을 없애려고 애쓰지 말라면서 이렇게 충고합니다. “애를 쓰면 쓸수록
활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지요.
아무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란다. 상처는 그 자체의 방식으로 필
어머니는 자기의 생명력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요한 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아무는 것이다”(<샘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자녀의 품성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고틀립 박사는 ‘상처가 치유되는 건 기적과 같다’고 말합니다. 마음의 상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모
처란 특별한 치유책으로 마음을 다스려서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자신
세에게는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는’ 어
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상처를 치유하겠다고 재촉하지 않고
머니 요게벳이 있었습니다(히 11:23). 하늘에서
“그 고통은 지나가는 것이라고 믿기만 하면 됩니다.” 대개 마음의 고통은 감
지시한 아들이요 결백한 사사이며 선지자학교
정의 상처입니다. 감정은 늘 영원히 지속되지 않기에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를 세운 사무엘에게는 기도의 사람인 어머니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상처가 아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우리 안에 있
한나가 있었습니다. 메시아의 앞길을 준비한 침
으므로 마음의 고통을 알아주고 이해해 주고 보살펴 주기만 하면 시간이
례 요한의 어머니는 나사렛 예수의 친척이었던
그 상처를 치료해 준다고 고틀립은 자신의 인생 경험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 습니다. 그는 또 한 가지 처방을 제시합니다. ‘상처를 입으면 그저 당신을 사랑하 는 사람 곁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신체적 질병으로 고통 당하는 사람뿐 아니라 마음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의 이야기도 많습니다. 그중 예 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마리아도 있습니다(막 14:3). 그녀는 주위의 멸시
엘리사벳입니다(가정과 건강, 34). 어머니의 일 은 매일 희생과 헌신이 따르지만 집안에서 별 로 중요하지 않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그 수 고를 알아주지 않아 서운할 때도 있을 것입니 다. 어머니들이여! 긍지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어 머니는 가정의 여왕이고 가정의 선교사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우리 모두 구원받고 하
를 받으며 살았고 그래서 입은 상처가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를
늘에서 살게 될 때 함께 구원받은 자녀들이 자
만났고 그분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다스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기의 면류관을 어머니 앞에 벗어 들고 감사의
돌아가시기 직전에 그녀는 마음의 상처가 나았음을 확신하며 사람들의 비
인사를 드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난에도 아랑곳 않고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습니다. 그 향유는 상처가 아문
어머니의 일을 도우실 것입니다.
그녀의 마음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입고 고통스러울 때 우 리는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에게 그런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되고 강건 하기를 바라는 예수님에게 다가갈 때 우리의 상처는 치유받게 될 것입니다. 영감의 선지자는 말합니다. “예수님은 능력의 근원이시요 생명의 샘이시 다. 예수님은 우리를 자신의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죄로 병든 영혼을 치유하 는 생명나무 잎사귀를 제시하신다”(행적, 478). 상처 입은 사람은 예수께로 나아가서 생명나무 잎사귀의 치유를 경험해야 합니다.
“어머니는 가정의 여왕이며 자녀는 그의 신 하들이다. 어머니는 기품 있는 모성으로 가정 을 지혜롭게 다스려야 한다. 어머니의 감화력 은 그 무엇보다 권위가 있어야 하며 그의 말은 곧 법이 되어야 한다. 어머니가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지도 아래 있다면, 자녀에게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 는 권면, 111).
201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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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5월 5일(안)
‘안식의 여정’에서 드리는 기도
예수님이 사랑하는 주의 자녀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 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눅 13:16)
헨리 나우웬은 20세기를 살다 간 영적 지도자 중 한 사람입니다. 네덜란 드에서 태어났고 예일대와 하버드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라르쉬 데이 브레이크 장애인 공동체에서 봉사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 지친 사람들에 게 영적 깨우침을 전했습니다. 그는 내면에 깊은 영적인 고요함을 지녔고 외적으로는 단순하고 꾸밈없이 살았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따뜻한 시선으로 대했지만 자신에게는 혹독한 구도자로 살았습니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 가며 하나님 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누가복 음 2장 52절)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5 월 5일이 어린이날입니다. UN에서 정한 세계 어린이날은 11월 20일입니다. 여러분은 부모님 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에게 사랑받는 자녀가 되려
종교 지도자로서 설교, 강의, 여행 등으로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그는 분
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초의 학교인 가정에
주한 일상 중에서도 고독, 기도, 저술, 독서 등을 통해서 내면의 성찰을 추
서 봉사와 실천을 통해 삶의 기초를 잘 다져야
구했습니다. 이후 안식년을 맞이하면서 나우웬은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안
합니다.
식의 여정’에 들어갔습니다. 그 과정을 기록한 책에서 나우웬은 이렇게 기도
어릴 때부터 남을 도와주는 삶을 배우고 몸
합니다. “야망으로 가득 찬 세상 한복판에서 겸손한 자가 되게 하소서. 권력
과 마음이 균형지게 자라야 합니다. 작은 일에
에 집착하는 세상에서 연약하게 살게 하소서. 복수와 응징의 고통이 난무
도 힘써 부모님을 돕고 순종하고 존경해야 합
하는 세상에서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게 하소서”(<안식의 여정> 중에서).
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심을 버리고 나쁜
헨리 나우웬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 가장
것을 삼가는 ‘절제’의 습관도 배워야 합니다. 또
필요한 것은 참된 쉼, 즉 진정한 안식이라고 말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부지런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
유대인들에게 쉼의 날인 안식일을 주셨고 그것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
을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과 함께 율법 속에 규정해 놓으셨습니다. 이 명령을 각색하면 ‘쉬는 날을 기 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도 읽을 수 있습니다. 국제 네비게이토선교회 대 표를 역임한 기엔 카젠은 이렇게 말합니다. “일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다. 그러나 쉬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명령이다. 사람과 동물은 모두 새 힘을 얻기 위해 일에서 벗어나 규칙적으로 쉴 필요가 있다. 휴식은 온몸과 영혼 을 새롭게 한다. 휴식은 생명력을 공급해 준다. 휴식은 육체, 정서, 영적으로 새로운 활력을 준다.” 많은 사람이 휴식을 잘 모릅니다. 자본주의적 경쟁 사회에서 쉼은 낭비이
그리고 부모들이여! 예수님이 우리 가정에 귀하고 복된 선물로 주신 자녀를 사랑으로 교 육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좋은 교육은 예수님 을 신뢰하는 신앙 교육입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처럼 기도로 자녀를 기르십시오. 예수님이 미소 지으며 기뻐 받으시고 복 주실 것입니다. 오후에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말해 주십시오. “얘야! 아빠(엄마)는 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단다.”
자 무능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휴식은 생명력의 원천입니다.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에게는 반드시 새로운 활력을 얻기 위한 쉼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자녀가 배워야 할 첫째 공과는 하나님이 그
휴식은 일하는 것만큼이나 당위적인 신의 명령이 되어야 합니다. 안식일은
들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이다. 이 교훈은 가
우리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 쉼을 얻는 날입니다. 18년 동안 사탄에게 매
장 어린 시절에 주어져야 한다. 자녀들이 하늘
인 바 된 한 여인이 예수의 도움으로 안식일에 해방되었듯이 그리스도인들
아버지를 알도록 하는 일에 부모는 하나님께
은 안식일에 쉼을 통해 영적 해방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책임을 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하 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을 모든 교훈으로 가 르쳐야 한다”(새 자녀 지도법, 487).
80 교회지남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5월 6일(일)
관계가 관점을 결정한다
재림 성도의 가정은 행복한 가정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요 9:11)
“야곱 집과 이스라엘 집 모든 가족아 나 여호 와의 말을 들으라”(예레미야 2장 4절)
무엇에 관하여 안다는 것과 누군가에 관하여 안다는 것은 매우 다른 문 제입니다. 물건은 설명서를 읽으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는 다릅니다. 사람의 자유와 존재의 깊이는 단순히 읽고 이해 할 수 있는 정도의 매뉴얼로 규정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이해하려 면 다른 방법이 필요합니다. 신영복 선생은 그 방법을 ‘관계’라고 규정합니다. 마음을 지닌 존재인 ‘사람’
재림 성도의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천사들이 거하는 곳이며 즐겨 찾는 곳 이기 때문입니다. 엘렌 화잇은 행복한 그리스도 인 가정이 되는 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질서가 있고 잘 정돈된 가정이 되어야
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관계’라는 프리즘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
합니다. 하나님은 무질서, 느슨하고 해이한 것을
람은 단지 정적이고 평면적으로 바라보아서는 이해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싫어하십니다. 이런 것 때문에 가정의 행복이 허
관계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입체적으로 경험해야 그 존재의 가치를 알 수 있
물어집니다(2증언, 298). 우리의 마음까지도 잘
는 심미적이고 총체적인 존재가 바로 사람입니다.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바
정돈된 행복한 가정이 되도록 실천해 봅시다.
로 이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베르 카뮈가 쓴 <오해>
둘째, 부드럽고 사랑스런 유쾌한 목소리, 근
라는 희곡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관계를 무시한 인간의 부조리한 판단이 엄
면함, 단순함을 유지해야 합니다(가정, 422). 목
청난 비극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실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소리가 너무 크거나 독단적인 말, 마음의 평안
깊은 산골에서 어머니와 딸 마르타는 여인숙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함을 해치는 짜증스런 언어는 멀리하도록 합시
은 바다와 태양이 있는 남쪽으로 이사하고픈 꿈을 이루기 위해 부자들이 투
다. 하나님은 그렇게 결심하고 실천하는 가정
숙할 때마다 수면제를 먹이고 돈을 빼앗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20년 전에 집
을 보며 기뻐하십니다.
을 나간 아들이 성공해서 어머니와 동생을 만나러 옵니다. 그 아들은 가족 을 놀라게 하려고 일부러 정체를 숨기고 이 여인숙에 투숙합니다. 그런데 어 머니와 여동생은 그를 단순한 부자 손님으로 여기고 수면제를 먹여 살해합 니다. 뒤늦게 그가 가족이었음을 깨닫고 비극적으로 자살하고 맙니다. 이 희 곡은 관계의 부재가 낳은 부조리의 극단을 보여 줍니다. 관계가 상실된 관점 은 오해가 되고, 그 오해는 결국 인간의 부조리한 판단으로 이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신영복 선생은 “관계는 관점을 결정한다.”고 강조했습니다(<감옥으로
셋째, 순결한 사랑과 순종 그리고 권위를 존 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고집대로 만 하면 장래에 큰 불행을 겪을 것입니다(새 자 녀 지도법, 271). 언어 예절을 지키고 부모님께 존경을 실천하 기만 해도 집안 분위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선 한 뜻을 굳게 실천하도록 노력합시다. 할 수 있는 것부터 다짐하고 실천해 보세요.
부터의 사색> 중에서). 요한복음 9장에는 선천적인 맹인을 예수께서 고치시
오늘도 예수님은 여러분의 가정을 바라보고 계
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시각장애인은 예수와 만난 관계를 통해서 그분이 메
십니다.
시아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여전히 예수의 존재를 불신했습니다. 그들은 고침 받은 시각장애인의 부모를 불러 놓고 그
“사랑이 거하며 또 그 사랑이 표정과 언어와
아들의 행위를 꾸짖으면서, 그가 만난 예수는 죄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
행동에 표현되는 가정이야말로 천사들이 거하
나 이미 예수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은 시각장애인과 그의 부모는 더 이상 종
기를 즐겨 하는 곳이다”(재림신도의 가정, 426).
교 지도자들의 평가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관계가 관점을 바꿔 놓은 것입 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은 관계를 통해서 올바른 관점을 지녀야 합니다. 그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201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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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5월 7일(월)
꽃들에게 희망을
감사하는 예절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 를 것이니라”(막 8:34)
트리나 폴러스는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전 합니다. “애벌레로 남아 있다는 것은 자신만을 위한 아이와 같은 삶에 머물 러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변신, 어쩌면 내 종말이 될 수도 있을 공동체를 위한 선택을 통해 인류에 공헌하고 공동체 에 공헌함으로써 인생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기도 한다. 애벌레가 아니라 자신을 버리고 번데기로 변화했다가 나비로 재탄생하는 일이야말로 진정 한 자기 부활인 셈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 라”(출애굽기 20장 12절)
내일은 어버이날입니다. 우리나라는 1956년 5월 8일에 ‘어머니날’ 행사를 처음 시작했습니 다. 1973년부터는 웃어른을 공경한다는 뜻에 서 공휴일은 아니지만 어버이날을 법정 기념일 로 정하여 지금까지 지키고 있습니다. 원래 어버이날은 1868년에 미국의 애나 자
나비가 존재해야 지구 환경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애벌레가 변신해서 나
르비스라는 여성이 남북전쟁으로 자녀를 잃은
비가 되지 않으면 꽃들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부모들을 위로하려고 마련한 ‘어머니들의 우
인들이 변화되지 않으면 사람에게도 희망이 없게 될 것입니다. 트리나 폴러
정의 날’ 행사에서 비롯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스는 아이처럼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사는 상태를 애벌레에 비유합니다. 사
죽은 후 그녀의 딸이 어머니의 뜻을 기리기 위
람은 성장하면서 애벌레에서 번데기로의 변신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변신하
해 1905년 5월 9일 웨스트버지니아의 어느 교
려면 인류 공동체를 위해 공헌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공동체를 위해 자
회에서 ‘어머니를 기억하는 모임’을 만들었는
기를 희생해야만 번데기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입니다.
데 이 행사가 미국 사회에 퍼지게 되었고 마침
자기중심적인 삶은 애벌레의 삶이며 육신에 속한 삶입니다. 그것은 가장 초보적인 삶입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이 궁극적 희망이듯이 인간도 자기부정을 통해 영의 세계로 변화해야만 인류에 희망이 생깁니다. 그런 변 화를 위해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죽이는 자기 종말을 스스로 실현해야 합니 다. 사도 바울이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한 것처럼, 자아를 죽이고 이웃 을 위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자기를 죽여야 합니다. 이 자기 종말에서부터
내 1934년에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어머 니날’을 제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존경과 감사 의 뜻을 기리기 위해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흰 카네이션을 바치고 어머니를 추모하며 교회를 찾은 사람들에게 카네이션을 주었는데 여기서 유래가 되어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드립니다. 돌아가신 부모님께는 흰 카네이션, 살아 계신 부
새로운 삶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모님께는 붉은 카네이션을 드린다는 걸 알고 있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
나요? 빨간색 카네이션은 ‘사랑과 존경’을, 흰 카
은 자기희생의 길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에 종말을 고하고 이웃과 인류 공
네이션은 ‘떠나보낸 부모님을 슬퍼한다’는 뜻입
동체를 위한 삶으로 거듭나는 것이 바로 애벌레로부터 나비로 변화되는 것
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해
입니다.
보세요. 또 가족의 어른들께 카네이션을 달아 드
나비로 거듭나야 인류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변신은 단지 우리의 희망을 이루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죽이고 영의 세계로
리고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 보세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재탄생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희망이며, 그 희망은 곧 인류의 희망이 됩니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인류의 희망이 되었듯이, 이제 그리스도인의 자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다. 이 계명은 유년
기희생이 인류의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꽃들에게 희망이 되는 나비
기와 청년기와 장년기와 노년기 누구에게나 적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변신하기 위해서 자아를 죽이고 이웃을
용된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일에서 면제되
위한 삶을 사는 거듭남을 경험해야 합니다.
는 인생의 기간이란 없다”(재림신도의 가정, 292).
82 교회지남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5월 8일(화)
천국의 조건
생명력 있는 가정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사 65:18)
남이섬 관광지를 만든 강우현 대표는 남이섬을 ‘나미나라공화국’이라 부 릅니다. 그는 2006년에 나미나라공화국을 세우고 스스로 대통령이 되었습 니다. 남이섬 관광지를 찾는 사람은 출입국관리소에서 여권을 받아서 남이 섬으로 입국하게 됩니다. 그곳에는 국기도 있고 국가도 있으며 화폐와 우표 는 물론 상형문자 형태의 언어도 있습니다. 남이섬 관광지를 만든 사람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한 일서 5장 12절)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힘차게 살아 있을 때 아름답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밝 은 모습으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 면 풀 죽어 시무룩하고 그늘진 사람도 있지요.
이 동화 같은 콘셉트로 나미나라공화국을 설립하고자 한 이유가 있습니다.
또 웃음소리가 넘쳐 나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생태주의를 표방했던 그들은 세상의 모든 국가가 더 이상 친환경적인 나라
불편한 소리와 분위기에 잠겨 있는 집도 있습니
로 발전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세상은 욕망과 파괴와 분쟁
다. 행복한 가정, 생명력이 넘쳐 나는 가정이 될
과 억압이 가득한 곳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이상적인 국가나 사회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아들이 있는 자에
를 건설할 꿈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상적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게는 생명이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여기서
비전은 포기해서는 안 될 소중한 가치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이상을 구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따라서 생명력 있
현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나미나라공화국을 만든 것입니다.
는 가정은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 가정’입니
나미나라공화국은 하늘 높이 자란 나무들과 광활한 잔디밭, 아름다운
다. 그런 가정은 가족 모두가 계속 기도하는 가
강이 어우러진 자연 생태 공간입니다. 그곳에서는 사슴, 타조, 토끼들과 무
정입니다. 기도는 바로 ‘영혼의 호흡’입니다. 잠시
수한 새들이 인간과 평화롭게 공존합니다. 그곳을 찾는 사람은 욕망으로
라도 숨을 멈추면 몸이 답답한 것처럼 기도하지
가득 찬 마음을 비우고, 삶의 짐을 내려놓은 채 자연과 더불어 자유를 누 리면서 사랑과 평화를 누립니다. 나미나라공화국은 인간이 꿈꿔 온 천국을 패러디 한 것입니다. 천국의 꿈을 가장 고상하게 묘사한 인물은 이사야입니다. 이사야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이상적으로 그리면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겠다”고 기록했습니다. 사랑과 평화와 조화
않으면 우리 영혼은 힘들어집니다. 그런데 생명 을 유지하려면 기도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양식 을 먹어야 합니다. 생명의 양식인 성경 말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나 다른 방법으로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성경을 가까이하고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매우 중요 합니다. 또 꾸준히 예배에 출석하면서 하나님의
로움이 넘쳐나는 꿈이 실현되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나미나라공
사랑에 감사하며 다양한 봉사 활동으로 하나님
화국은 그 고상한 천국의 꿈을 이 땅 위에 실현해 보려는 이들의 작은 시도
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렇게 생명력을 지
입니다. 거기서는 모든 것이 보호되고 재활용되며 낡고 못 쓰게 된 것들이
닌 가정은 예수님에게 큰 복을 받습니다.
창조적인 노력에 의해 새롭게 재창조됩니다. 이 모든 과정은 방문객에게 즐 거움과 기쁨을 주기 위함입니다. 그들의 노력을 생각해 볼 때 천국의 조건 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 간직된 사랑과 평화와 조화 의 삶을 실현할 수만 있다면 천국은 바로 거기 있게 될 것입니다. 엘렌 화잇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바칠 만큼 그대의 자녀들을 고귀하게 여기셨다. 그리스도 께서 피 흘려 얻어 낸 존재처럼 그들을 대하라. 참을성 있고 단호하게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람
은 “만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인식한다면 우리는 이곳
으로 훈련하라. 사랑과 관용으로 그들을 가르
지상에 있는 교회 안에 천국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교권, 86). 하
치라. 그러면 그들은 그대에게 기쁨의 면류관이
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꿈을 실현시킬 주체들
되고 세상에 빛과 같이 비칠 것이다”(재림신도
로서 사랑과 평화와 조화의 삶을 추구할 의무가 있습니다.
의 가정, 279). 201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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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수)
‘인격’으로 사회 변혁을 꿈꾸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 6:36)
재림 성도들의 본보기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시편 37편 3절)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애딘버러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된 스마 일스는 개혁자가 되기 위해서 의사의 길을 포기했습니다. 대신 그는 <리즈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을 새벽형 인간,
타임즈> 편집장이 되어 사회 개혁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1840년대 영국에
밤늦게까지 깨어 있는 사람을 저녁형 인간이라
서 그는 세대 선거권, 투표함 투표, 의회 3년 임기제, 평등 선거구, 일정한 재 산 소유자에 한정한 피선거권 폐지 운동 이 5대 강령을 실현시키기 위해 리 즈의회 개혁연합의 사무총장이 됩니다. 지금은 당연한 선거 제도들이지만 150여 년 전만 해도 실현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던 내용들입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 그는 의회 개혁을 위한 모든 활동을 완전히 접
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좋으냐가 아니 라 새벽형이든 저녁형이든 자기 일에 얼마나 성 실하냐입니다. 주님은 성실하신 분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 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 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
고 새로운 목표에 도전합니다. 단순한 정치 개혁만으로는 사회를 변화시키
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 그
기 힘들다고 보았고 개인의 정신과 인격을 변화시키기 위한 도덕주의자의
분은 우리를 성실하게 돌보십니다. 그리스도를
길을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1859년에 스마일스는 <자조론>을 저술했고 잇
따르는 우리도 성실한 모습을 세상에 보여 주
달아 <인격론>(1871), <검약론>(1875), <의무론>(1880)을 출간합니다. 특별히
어야 합니다(가정, 393).
<인격론>에서 그는 친절하고 예의 바른 행동을 중요한 도덕적 덕목의 하나
‘진리, 진실, 성실’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에메
로 제시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예의는 사회적 관계를 부드럽
트’입니다. 이것은 ‘아만’이라는 단어와 관계가
고 편안하게 만들어 줄 뿐 아니라 인생살이의 무게를 덜어 준다. 무례하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 ‘아멘’이라고 하는 말이 바
거친 태도는 타인으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닫게 하지만, 친절하고 예의 바
로 ‘아만’에서 비롯한 말입니다. ‘아만’이라는 말
른 행동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쉽게 열게 한다.”
은 ‘진실하다, 성실하다’는 뜻입니다.
인격적 태도는 관계를 부드럽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인생살이의 무게 를 덜어 줍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줍니다. 사회적 관계를 부드 럽게 경작하는 작업이 인격의 힘입니다. 딱딱하고 굳은 사회의 심성을 부드 럽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 우리는 인격의 날을 세워야 합니다. 그 인격의 힘 으로 조용하게 성실하게 사회를 기경(起耕)한다면 그곳에서 생명과 희망의 꽃이 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바로 이런 인격의 힘으로 세워
‘에메트’는 히브리어 알파벳의 첫 글자, 가운데 글자, 마지막 글자를 합쳐 만든 단어입니다. 모 든 일의 처음, 중간, 마지막이 한결같이 진실하 며 성실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지요. 재림 성도 역시 누가 보든 안 보든 하나님이 나 를 지켜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성실해야 합니다. 선한 뜻을 세우고 진실 하게 그 뜻을 이루어 가는 복된 가정이 됩시다.
집니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게 될 때 세워지는 곳입니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며, “원
“주님의 선교사를 양성하는 최고의 장소는
수를 사랑하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때” 생명과 평화의 나라인 하나님 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라가 세워지게 됩니다. 우리가 “죽기 전에 권능으로 임하는” 하나님 나라는
가정, 하나님을 경배하는 가정, 성실이 제2의
이렇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인격이 사랑의 제국을 열었고, 제자들의
천성으로 자리 잡은 가정이다”(재림신도의 가
인격이 그 제국을 확장시켰습니다. 이제 이 과제를 부여받은 재림 성도들도
정, 35).
생명과 희망의 나라를 세워 나가기 위해 인격을 갖춘 삶을 살아야 합니다.
84 교회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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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목)
피곤했거든요
천사가 방문하기 좋아하는 가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 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막 5:34)
수십여 년 전,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40대 여성 로자 파크스가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 니라”(마태복음 18장 10절)
피곤한 몸을 이끌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마침 버스 앞쪽에 좌석 하나가 비 어 있어서 주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 순간 버스 안에 있던 모 든 사람이 그녀를 쳐다보았습니다.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불쾌하다 는 듯 그녀에게 경멸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그녀는 싸늘한 시선을 무시하
아브라함이 즐겨 나그네 대접한 것처럼 그의 조카 롯도 기쁜 마음으로 천사를 대접하여 소 돔 성에서 구원받은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입니
고 태연하게 자리에 앉아서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경찰관이 와
다. 여러분의 집에도 천사가 찾아오면 좋겠지요?
서 그녀를 체포해 갔습니다. 그녀는 흑인 여성이었고, 그녀가 당당하게 앉은
천사는 어떤 가정을 좋아할까요? 먼저는 하
그 자리는 버스의 앞쪽에 구별되어 있던 백인 전용 좌석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가정입니다. “사랑이
1960년대 미국에서는 버스, 기차와 같은 대중교통 수단에 백인 전용 좌석
있고 표정과 말과 행동에 사랑이 나타나는 가
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흑인이 거기 앉으면 험악한 상황을 각오해야
정은 천사들이 있기를 좋아하는 장소”입니다
만 했습니다. 로자 파크스는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지만 과감하게 백인 전
(가정과 건강, 47). 신실한 성도의 가정과 예수
용 좌석에 앉았습니다. 나중에 어느 대학원생이 그녀에게 “그날 왜 그 버스
님이 계신 하나님의 보좌를 항상 오고 가는 천
앞자리에 앉았나요?”라고 묻자 파크스는 “피곤했거든요.”라고 대답했다고
사가 있습니다. 주님의 가정들을 지키고 보호
합니다. 피곤했기 때문에 그녀는 빈자리에 앉은 것뿐입니다. 하이랜더 포크
하는 천사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아
스쿨에 다니면서 비폭력 운동을 배운 로자 파크스는 시민불복종 운동을
버지와 어머니들이여, 그대들의 일이 아무리
추진하던 전국연합회 몽고메리 지부의 비서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인종 차별에 대한 강력한 저항 운동에 동참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 는 백인 좌석에 앉은 자신의 행위를 인종 차별 철폐를 위한 시위라고 답하 지 않았습니다. 피곤했기 때문에 빈자리에 앉았던 것입니다. 단순하지만 본 질적인 이 신념의 행위는 결국 흑인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결과를 낳았습니 다. 이후 사회학자들은 ‘로자 파크스 결정’이란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사회
과중할지라도 그대들의 가족을 하나님의 제단 앞에 모으는 일에 실패하지 말라. 거룩한 천사 들이 그대들의 가정을 지켜 주도록 기도하라.” (가정과 건강, 52)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정은 쾌활하고 예절과 사랑이 깃드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와 같은 미덕이 있는 곳에는 행복과 평 안이 있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곤란한 문제들
변화를 위해서 자신의 영혼과 존재에 충실한 결정을 내렸던 로자 파크스
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날씨가 아무리 흐릴
덕분에 미국 흑인 사회에 희망이 성취되었습니다.
지라도 인내와 감사와 사랑으로 마음을 명랑
마가는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에 관하여 기록합니다(막 5:25~34). 그 여인은 만성적인 질병으로 피곤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여자
하게 유지하라. 그런 가정에 하나님의 천사들 이 거한다”(가정과 건강, 52).
이면서 병자였기 때문에 유대 사회에서 거의 버림받은 존재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손님 대접하기를 꺼리지 않는 재림 성
세상 밖으로 자신의 존재를 다시 드러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
도의 가정이 됩시다. 그 손님들 가운데 천사도
다. 그러나 예수께서 자기 마을로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세상 밖
있지 않을까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다른 가
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습니다. 그녀는 위대한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
정을 초대하고 대접하는 일을 실천해 봅시다.
덕분에 지긋지긋한 질병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자신의 영혼과 존재를 위한
“사랑과 동정과 자비심으로 아름답게 된 가정
결정은 종종 기적을 경험하게 해 줍니다. 오늘 영혼을 위해 위대한 결정을
은 천사들이 방문하기를 좋아하고 하나님께서
내린다면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영광을 받으시는 장소이다”(재림신도의 가정, 19). 201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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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5월 11일(금)
지옥, 희망이 없는 세계
구원을 위한 한 영혼의 가치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 11:20)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시편 63편 8절)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스에 ‘앙골라’라는 감옥이 있습니다. 감옥이지만 옥 외 생활이 가능하고 농사도 지을 수 있는 곳입니다. 공동 침실과 샤워실, 거 대한 공동 욕조가 있고, 배구 코트, 잔디밭, 복싱 경기장도 있습니다. 겉보기 에는 목가적이고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감옥이지만 그곳은 사형이나 무기징 역형을 선고받은 죄수들이 수감되는 곳입니다. 루이지애나 주정부의 법에
재림 성도의 가정에서 행복의 향기는 가정의 울타리와 경계를 넘어 이웃의 가정에까지 번져 가야만 합니다. 한 사람의 가치는 얼마나 소중 할까요? 예수님이 죄인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따르면 그 감옥에서는 절대로 가석방 같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 번 이곳
십자가에 달리실 만큼 소중합니다. 또 선교와
에 입소한 죄수는 죽기 전에 절대로 이곳을 나갈 수 없습니다. 앙리-레비는
봉사의 삶을 실천하는 한 사람의 향기가 주변
이 감옥을 둘러보고 나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곳의 죄수들은 수감자의
을 온통 구원의 분위기로 채울 수 있습니다.
유일한 희망인 석방에 대한 막연한 기대조차 없이 생활해야만 한다.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없다면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아메리칸 버티고> 중에서) 인간은 희망이라는 궁극적인 목적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희망 이 없다면 삶의 전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편리한 환경이라
선교는 한 사람으로 시작하여 성령의 능력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함께하시면 여러 분은 가족에게 그리고 이웃에게 생명의 말씀 을 전하는 향기가 될 수 있습니다.
도 희망이 없다면 그걸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희망이 없는 곳
한 사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전도자의
이 지옥입니다. 그래서 단테는 지옥 편 제3곡에서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온
마음이 가족 모두의 마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갖 희망을 버릴지어다.”라는 문구가 지옥문 앞에 적혀 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살면 이웃을 소홀히 여기거
지옥은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삶 속에 무수한 지옥이 존재합니다. 인류 의 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는 저 무시무시한 지옥은 사실 우리의 삶 속에서 희망의 상실을 경험하는 세계에 대한 의식적 표현들입니다. 지금도 희망이 없는 지옥과 희망의 천국을 넘나드는 삶을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희망의 유무가 천국과 지옥을 갈라놓는 것입니다.
나 상대방에게 무관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 님은 그들을 위해서도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재림 신앙을 하지 않는 가족이 있으면 더 많이 관심을 기울이고 이웃도 귀하게 여기는 가정이 됩시다. 그리고 이웃에게 예절 바른 인사를 먼 저 실천해 봅시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이 땅에서 지옥의 관념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희망을 창출해야만 합
“한 명의 죄인을 위해서라도 그리스도께서
니다. 희망이 있는 세계를 추구할 때 지옥이 아닌 천국을 만들어 가는 것입
자기 목숨을 버리셨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
니다. 인류는 이천 년이 넘도록 예수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를 기다려 왔습
하면서 십자가에 가까이 나아간다면 거기서
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이천 년
그대는 한 영혼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였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분은 희망 없
다”(실물교훈, 196).
는 세계에 오셔서 직접 희망이 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이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키는 것은 제자들의 몫으로 남겨졌습니다. 그분의 제자로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새겨진 ‘온갖 희망을 버릴지어다’라는 지옥의 문구를 지워 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인류를 지옥으로 인도하 는 베르길리우스가 아니라 희망의 세계로 안내하는 베아트리체가 되어야 합니다. 86 교회지남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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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안)
생명과 평화, 희망의 길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레 26:6)
평화 운동의 대부로 인정받는 김지하 선생은 그의 책에서 현대 사회를 이
그리스도인 향기인 화목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그가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고린도후서 5장 18절)
렇게 진단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대혼돈(big chaos)의 시대를 살고 있다. 세 계는 병들고 삶은 위태롭다. 인간 내면의 도덕적 황폐와 생태계의 오염, 세계
사람들은 저마다의 특징이 있습니다. 재림
경제의 위기, 지진과 해일을 포함한 끝없는 기상 이변, 테러와 전쟁으로 인해
성도의 가정 중에서 활동적인 가정이 있는가
한시도 조용할 때가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끝없는 절망과 문
하면 감성적인 가정, 정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명에 대한 회의가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다”(<생명과 평화의 길> 중에서).
가정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특성이 아름답고
그의 진단처럼 인류 사회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자연스럽게 한데 어울릴 때 화목한 관계가 이
위기를 극복할 희망적 대안이 필요합니다. 김지하 선생은 인류의 희망을 견
루어지는 것입니다. ‘화목’이란 서로가 뜻이 맞
인할 희망의 세대가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대혼돈의 시대를 헤쳐 나갈
고 정다움이 있는 따스한 분위기를 말합니다.
수 있는 세대는 새로운 문화의 길을 여는 세대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특
예수님은 사람들을 위해 화목 제물이 되셔
별히 내적으로 평화주의를 수호하고 외적으로 생명의 역동성을 확장시키는
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습니다(고후
혁명적 세대가 출현하면 인류에게 희망의 기운이 솟아나게 된다는 것입니
5:19). 따라서 그리스도인도 정다운 분위기를
다. 그가 강조한 희망의 세대는 생명과 평화의 길에서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감돌게 하는 화목 제물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
이 생명과 평화의 메시지는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에 기인해야만 합니다.
다. 어떻게 화목의 향기가 될 수 있을까요? 그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려는 복의 핵심은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은 대적 을 쫓아내고 다른 민족을 정복함으로써 얻는 정치적인 것으로 풀이했습니 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평화는 모든 인류를 향한 평화의 복을 상 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평화를 얻는 길은 인간의 내면에 부여된
리스도께서는 화목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골 1:20). 그분과 먼저 화목한 관 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사랑 안에 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 5:13)는 말씀을 따르면 됩니다. 화목한 관계가 이루어질 때 믿음, 소망, 사랑
도덕률, 즉 인간성의 본질과 법도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
생명과 평화의 메시지는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성의 회복과 관련된 것
님과 화목하고 싶은 사람은 눈에 보이는 이들
이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존재로
과도 화목하게 지내려고 할 것입니다. 화목하
성장한다면 우리는 인류를 구원할 희망의 세대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게 하는 주님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작은 일부
보여 주신 영적 기운으로 절망과 회의를 몰아내는 일에 앞장선다면 인류는
터 찾아서 시작해 봅시다.
희망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시하신 길은 생명과 평 화의 길입니다.
“순결한 정신은 바른 생각과 바른 행동에서
영감의 선지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주님께서는 청년들을 붙들어 사탄
비롯한다. 악한 생각은 영혼을 파괴하지만 생
의 책략으로부터 지켜 주고 평화의 길로 인도할 자신의 율법과 모든 지혜의
각을 올바르게 지배하면 주를 위해서 화목하
규칙에 순종할 것을 정당하게 요구하신다”(부모, 99). 예수님을 닮은 젊은이
게 일할 수 있도록 마음이 준비된다”(복음교역
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평화의 길로 나아간다면 이 시대를 드리운
자, 126).
대혼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018. 5.
87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5월 13일(일)
하늘을 향해 걷는 사람
찬양이 있는 행복한 가정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 러 가자 하니라”(요 11:1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시편 150편 6절)
종로구 신문로의 흥국생명 빌딩 앞에는 ‘망치질하는 사람’이라는 조형물 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설치 미술가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작품입니다. 그는 1979년에 뉴욕 폴라 쿠퍼 갤러리에서 ‘망치질하는 사람’을 처음 소개한 뒤 프랑크푸르트, 바젤, 시애틀, 댈러스 등 세계 7대 도시에 유사 작품들을 전 시했습니다. 이런 대형 작품을 세계 곳곳에 설치하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하늘에 있는 거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 를 찬양하라’는 오늘의 성경 말씀도 많이 들었 을 것입니다. 호흡이 끊어지면 결국 죽는 것처 럼 기도를 멈추면 영적인 삶도 위험해집니다.
랐습니다. 그 거인은 항상 인간을 이롭게 해 주고 도와주는 존재로 인식되
자연스럽게 영적인 호흡을 계속할 수 있는 방
었습니다. 그때부터 보로프스키는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하늘의 거인에
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대한 상상을 키웠습니다. 이런 어린 시절의 상상력이 작품으로 승화되면서
찬양은 노래로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최고의 설치 미술가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보로프스키의 작
오늘 나의 가정에서 찬양의 소리가 흘러나오
품들은 갤러리에서 만들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갤러리 밖으
고 있습니까? 찬양은 행복의 수레바퀴가 잘 돌
로 나왔습니다. 갤러리 앞 광장이나 도로 위에 작품들을 설치했고 새로운
아가게 하는 윤활유와 같습니다. 노래를 잘 못
미술 전시 문화를 창출했습니다.
한다고요? 그러면 찬양 음악을 틀어 놓으셔도
그의 작품 중에는 ‘하늘을 향해 걷는 남자’도 있습니다. 그는 건물의 옥상
됩니다. 흥얼거리며 찬양을 따라 하는 일이 많
이나 벽 위에 하늘로 향한 길을 상징하는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을 따라
을수록 좋습니다. 찬양이 있는 가정은 행복한
걸어가는 인간들을 만들어 전시했습니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하늘을 향
가정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많은 교회는 찬양
해 걷는 꿈을 가진 인간들의 본질적 욕구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사람은 누 구나 하늘을 향해 걷는 꿈을 꿉니다. 그러나 그 꿈을 현실화하는 사람은 많 지 않습니다. 보로프스키의 작품에서 우리는 하늘을 향해 걷는 꿈을 현실 화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합니다. 바로 관습적인 공간을 벗어나는 것입니 다. 갤러리에서만 작품을 만들어야 했다면 보로프스키의 영감은 세상에 소 개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시 공간을 박차고 나와 직접적으로 사람
이 넘칠 것입니다. 찬양을 부르며 감동에 젖어 눈물을 흘리는 경험을 해 봅시다. 노래하는 법 을 익히고 악기 연주를 배워서 가정과 교회에 서 찬양에 동참해 봅시다. 자녀들이 진실한 마 음으로 찬양에 참여할 수 있도록 부모들은 계 기를 만들어 주고 후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찬 양의 삶을 통해 신앙 부흥 운동이 일어나도록
들에게 다가간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하늘을 향해 가는 그의 꿈은 이루어
합시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하
졌습니다.
는 자연스러운 습관은 나의 자녀들을 하늘 도
예수님의 삶이 그랬습니다. 그분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직접 세상으로
성으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입니다.
내려오셨고 죄인과 가난한 자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신성을 앞세우거나 종교적 권위와 전통에 얽매였다면 인류의 구원자가 되지 못하
“구원받은 자들의 가슴은 더욱 열렬한 헌신
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 머물지 않고 십자가로 나아가셨기 때문에
으로 뛰고, 더 힘차게 거문고를 탄다. 그리고 천
인류 구원의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런 삶은 그리스도인이 본
천만만의 목소리를 합하여 찬양의 노래를 힘차
받아야 할 삶입니다. 영감의 선지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
게 부른다”(살아남는 이들, 432).
며 일하는 남녀의 얼굴에는 하늘의 평화가 깃든다. 그들은 하늘의 분위기에 둘러싸인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시작되었다”(소망, 312). 88 교회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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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월)
항상 기뻐하는 길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우리 주변을 보면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 다. 모두 분명한 사명과 목적을 지니고 살아가겠지만 그중 기쁨의 노래를 부르며 사는 사람은 찾기 어렵습니다. 풍요로운 물질문명 속에서도 기쁘 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이 설 명하고 있습니다. “기뻐하라. 인생에 부여된 사명은 기쁨이다. 하늘을 향해, 저 태양을 향해, 멀리 떨어진 행성 한가운데서 빛나는 별을 향해, 나무를 향해, 동물을 향해, 인간을 향해 기쁨의 노래를 바쳐라. 이 기쁨이 사라지
재림 성도의 가정을 에덴동산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 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세 기 2장 15절)
첫 번째 인간인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는 에 덴동산에서 생명 과일을 먹으며 사랑과 행복 이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하 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어 에덴에서 쫓겨나고 영원한 삶도 잃어버렸습니다. 한동안
지 않도록 주의하라. 만에 하나 너의 인생에서 이 같은 기쁨이 사라졌다면
아담과 그의 아들들은 에덴동산 동편 문어귀
그것은 네가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길> 중에서).
까지 다가갈 수 있었지만 하나님을 떠난 세대
기쁨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를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들이 늘어나고 세상이 더욱 악해져서 홍수로
렇다면 인류가 길을 잃어버린 지점은 어디일까요? 순수한 영혼이 욕망에 이
심판을 받을 때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지상에
끌려 갈 때 길을 잃게 된다고 톨스토이는 말합니다. “내 안의 영혼을 욕망
서 거두어 가셨답니다(가정과 건강, 539). 너무
으로부터 자유롭게 해방시킨다면 우리는 다시 길을 찾게 될 것이고, 그렇게
나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되면 다시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이 재림하실 때 에덴동산은 회복될 것입니다.
가 기쁨의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면 그것은 영혼이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 기 뻐하는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리스도인은 기쁨의 삶을 살며 기쁨의 노래를 불러 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는 명제는 매우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덕목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기뻐하라’고 거듭 말합 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기쁨 은 인생에 부여된 사명이라는 톨스토이의 말과 바울의 말을 연결시켜 보면 그리스도인이 왜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이
우리의 가정이 지상에서 작은 에덴동산이 되면 어떨까요? 하나님이 자주 우리를 만나러 오시는 가정, 중앙에 있던 생명과처럼 영원한 생명이며 빛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모신 가정, 에덴에서 제정된 안식일을 지키는 재림 성도의 가정은 작은 에덴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가정 을 행복의 에덴동산으로 만들도록 합시다.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에덴의 생명나무로 나
유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세계를 향해 기쁨의 노
아가는 길이 회복될 것이다. 구원받은 자들은
래를 불러 주어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영광스러웠던 첫 인류만큼 자라난다”(각 시대
모든 인간적인 욕망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복음의 진보를 위해서
의 대쟁투, 645).
스스로 매인 바 된 바울은 그런 경험을 통해서 기쁨의 노래를 되찾았습니 다. 우리도 바울처럼 항상 기뻐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영감의 선지자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빛 안에 계신 것처럼 빛 안에서 거 닐어야 한다. 그러면 어두움 속에 다니지 않을 것이다. 찬양과 기쁨의 노래 를 부르게 될 것이다”(1설교, 248).
201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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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화)
신은 착각이다?
효도와 공경 그리고 예절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 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 14:1)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책 <만들어진 신>에서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논 증을 제시했습니다. 요약하자면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신과 같은 창조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 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 쁘게 하라”(잠언 23장 24~25절)
적 지성은 진화의 마지막 산물이기 때문에 창조자로서의 신은 존재하지 않 는다. 둘째, 신의 존재 증명은 논증의 대상일 뿐이므로 신이 존재한다는 믿 음은 망상이다. 셋째, 신이 사라진다면 인간은 더욱더 열정적이며 영적으로 진화된다.’ 그래서 무신론자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합니다. 신이 없어도 인간은 충분히 도덕적이며 희망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도킨스 같은 무신론자들이 이런 주장을 당당하게 펼치는 이유는 무엇일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바랍니다. 그 행 복과 기쁨을 얻기 위해 가정은 매우 중요한 역 할을 합니다. 지혜로운 자녀를 둔 부모는 그 자 녀 때문에 행복합니다. 대를 이어서 재림 신앙 을 지키는 자녀가 있다면 더 많이 행복할 것입
까요? 그 이해가 논리적으로 명쾌하고 정확하기 때문이라는 사람들도 있습
니다. 또 자녀가 어른을 공경하고 효도하면 부
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진리에 기초하기보다 자신의 사유 방식에 기인한
모님은 더 행복할 것입니다.
것이며, 오늘날 종교적 현상에 대한 비평적 사고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신의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예절을 중요시했습니
존재를 증명한다거나 인간 도덕성의 근원을 이성적으로 설명하기란 불가능
다. 예절이란 ‘예로서 나타나는 말투나 몸가짐’
합니다. 영적·종교적인 문제는 과학적·귀납적 방법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
을 말합니다. 어른을 공경하고 효도하는 자녀,
문입니다. 그럼에도 단순한 논리와 사고로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이유가 또
예절 바른 자녀를 보면 사람들은 “뉘 집 자식이
있습니다. 왜곡된 종교 현상과 몰지각한 종교인들의 태도 때문입니다.
여!” 하며 그 부모까지 칭찬을 합니다.
도킨스는 구약의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구약의 신은 모
오늘 나의 가정을 돌아봅시다. 집 안에서 몸
든 소설을 통틀어 가장 불쾌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시기하고 거만한
가짐과 말투가 예절 바르며 인사를 공손하게
존재, 불공평하고 용납을 모르는 지배욕을 지닌 존재, 복수심에 불타고 피
잘하는지 말입니다. “요즘 젊은 아이들은 인사
에 굶주린 존재…변덕스럽고 심술궂은 난폭자로 나온다”(<만들어진 신> 중
할 줄을 몰라.” 하는 말이 재림 성도의 가정에
에서). 이런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그렇게 왜곡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본성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그분의 뜻을 반영하면서 살았다면 이런 비평은 용납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면서 살면 하나님에
서는 들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가정에서 부모님 과 어르신들께 공손하고 예절 바른 말투나 몸 가짐을 실천하면 밖에서도 그런 예모 있는 사 람이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도 예의 바른 분이셨습니다. 예의범절
대한 인식이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본성을 더 충
이 몸에 스며서 아름다운 향기로 가정의 분위
실하게 드러내면서 산다면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의식은 상당히 줄어들 것
기를 만들고 그 향기가 이웃과 교회와 학교에
입니다.
까지 번져 가는 ‘예절과 공경, 효(孝)’ 운동을 모
사람들이 ‘하나님은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선을 행하는 자가 없기 때 문’이라고 다윗은 말합니다(시 14:1).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신다면 사람
두가 실천해 봅시다. 성령께서는 이러한 가정들 과 개인들에게 행복을 더하실 것입니다.
들이 그분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다윗은 설명합니다(5절). 그리스도인이 삶 에서 신의 존재를 제대로 드러내면 그분은 더 이상 왜곡된 존재로 인식되
“그리스도교는 사람을 신사로 만들어 줄 것
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신의 존재는 그를 믿는 인간의 삶으로 증명되는 것
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예의가 바르셨다”(가정
입니다.
과 건강, 325).
90 교회지남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5월 16일(수)
기독교의 진보를 생각한다
성도의 가정은 벧엘이 되어야 한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빌 1:12)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브라질 국경 지역에는 세계 3대 폭포로 알려진 이 구아수폭포가 있습니다. 이 지역 상류에 살던 원주민(과라니족)들은 1750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창세기 31장 13절)
년 포르투갈에 의해 무참하게 살육되었습니다. 영화 ‘미션(The Mission)’ 은 바로 이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노예 상인이었던 멘도사는 영적 회심 을 경험한 후 가브리엘 신부와 함께 이곳의 원주민을 돕는 선교사가 됩니 다. 어느 날, 스페인령이었던 이곳이 포르투갈에게 넘어가면서 문제가 발생 합니다. 포르투갈에서는 원주민 사냥을 합법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원주민 들은 강력하게 저항했지만 선교사들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과라니족은 전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도망치던 야곱은 들 판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다가 꿈에서 사다리 를 오르내리는 천사들과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쓸쓸한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그곳을 ‘벧엘’이라고 이름 짓습니
멸하고 맙니다. 그 살육의 현장에서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했던 멘도사
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하나님의 전)’이라는 뜻
신부는 부끄러움에 이렇게 한탄합니다. “그리하여…신부들은 죽고 저만 살
입니다.
아남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죽은 건 나고, 산 자는 그들입니다. 그 이유는 언제나 그렇듯 죽은 자의 정신은 산 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재림 성도의 가정이 모두 ‘벧엘’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나님이 가정에 함께하실
살아 있다는 건 단지 목숨이 붙어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올
때 그 가정은 벧엘이 될 수 있습니다. 헌신하는
바른 정신이 살아 있어야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기
어머니, 협력하는 아버지가 있는 가정, 출생하
독교의 진보에 대해서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 전부터 자녀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가
기독교가 진보했다면 예수의 가르침이 교회와 세상에 역동적으로 살아
정이 곧 ‘벧엘’입니다(재림신도의 가정, 255).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오늘날 기독교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야곱의 사다리처럼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가
요? 예수의 정신을 전 세계적 지평으로 확장시킨 인물은 바울입니다. 바울
정, 천사들이 진실한 기도를 담아 예수님께 보
은 “복음의 진보”를 위해서 세계로 나아갔고 로마의 감옥에서 목숨까지 바
고드리고 기도가 응답되는 행복한 가정은 진
쳤습니다. 그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 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고자” 노력했습니다(빌 1:20). 그래서 그는 죽었어도 죽지 않 은 인물이 되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예수의 정신이 살아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복음의 진보, 기독교의 진보입니다.
정 그늘 없는 가정이고 이상적인 재림 성도의 가정입니다. 재림 성도의 가정은 모두 ‘하나님의 집’이 되 어야 합니다. 천사들을 쫓아내고 하나님을 슬 프게 하는 일들이 생기지 않도록 가정을 작은 ‘벧엘’로 가꾸어 나갑시다. 예수님은 그렇게 ‘벧
근대 이후 기독교의 확산을 두고 기독교의 진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엘’이 된 가정을 구원하시려고 천사들과 함께
많습니다. 그러나 영화 ‘미션’에서 드러내듯 서구의 기독교화는 기독교의 진
재림하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벧엘을 이룬
보와 거리가 먼 요소도 있었습니다. 기독교는 정복과 살육의 주체가 되어
가정은 하늘 집에도 이르게 될 것입니다.
복음의 진보를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역사에 대해 겸허한 반성이 필요 합니다. 그리고 복음의 진보를 위해서 바울이 노력한 일들을 되새겨야 합니
“우리의 가정은 벧엘(하나님의 집)이 되고 우
다. 영화에서 가브리엘 신부는 멘도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
리의 마음은 전당이 되도록 해야 한다. 마음에
랑이시오. 사랑이 설 자리가 없는 곳에서 난 살아갈 힘이 없다오.” 이 말에
하나님의 사랑을 품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기독교 진보의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어디나 화평과 빛과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재 림신도의 가정, 19).
2018. 5.
91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5월 17일(목)
녹색 소비, 녹색 정신!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 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 1:5~7)
자전거, 천장 선풍기, 빨랫줄, 타이 국수, 공공 도서관, 무당벌레, 이 여섯 가지 사물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무런 연관성도 없어 보이는 이것들을 노스웨스트 환경기구의 수석연구원 존 라이언은 “지구를 살리는 불가사의 한 물건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동일 제목이 붙은 책에서 라이언은 과도 한 소비에 중독되어 있는 현대인에게 녹색 소비를 소개하면서 지구의 파멸 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합니다. 빨랫줄처럼 사소한 것이 지구를 살리 는 데 필요한 물건이라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환경과 인류의 미래를 생각해
행복한 가정은 섬김의 가정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 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 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태복음 20장 28절)
‘섬김’에 대해 착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 이가 많은 사람은 어린 사람에게, 윗사람은 아 랫사람에게 당연히 섬김을 받아야 한다고 생 각합니다. 또 섬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섬 김을 받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 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볼 때 이런 물건이 인류의 삶에 끼치는 영향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 대부분은 지구 환경에 부담을 주는 것들입니다. 지
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나친 소비와 욕망을 앞세워 살다 보면 우리는 적색 소비에 치중할 수밖에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그렇습니다. 세상의
없습니다. 주변의 흔한 물건들이 지구를 살리는 불가사의한 물건들임을 아
사고방식과 하나님의 사고방식은 다릅니다.
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녹색 정신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만 이런 물건들은 단지 물리적인 지구를 살릴 수 있을 뿐입니다. 세
시키면 불만스럽지요? 그러나 ‘행복한 가정은
상은 물질을 넘어서 정신적·영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물리적인 지
섬김의 가정’임을 명심하십시오. 예수님은 작
구를 살리기 위해 이런 물건들이 필요한 것처럼 정신적·영적으로 이 세상을
은 일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극히 작
살리기 위해서도 다른 요소들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베드로는 여덟 가지 정
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신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믿음, 덕(선량),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마 25:40).
사랑’을 행하면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벧후 1:10)고 그는 말합니다. 베드로가 제시한 여덟 가지 덕목은 라이언이 제시한 물건들만큼이나 지 구를 살리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환경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해 물 리적 지구 살리기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있듯이 도덕적·종교적 재앙으로부 터 영적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이 이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선 량과 인내와 친절과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서 최근에 무슨 노력을 기울였는
가정이 행복하길 바란다면 서로를 섬기고 배 려하십시오. 예수님은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젖 어 있는 이 세상에 오셔서 섬김의 삶을 살면서 사람들을 일깨우셨습니다. 다락방에서 저녁 을 먹기 전에도 직접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 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구주이신 예수님, 온 갖 영광을 받아 마땅한 예수님께서 말입니다.
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일상에서 지구를 영적 파멸로부터 구원해 내기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섬김의 정신을 가르치고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왜곡된
싶어 하십니다. 작은 일부터 협력하여 내가 먼
사회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 선량과 친절과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야
저 하는 가족이 된다면 이미 행복한 그리스도
합니다. 그런 일상적인 작은 노력들이 이 지구를 구하는 녹색 정신이 될 것
인 가정이 된 것입니다.
이라고 하나님은 오늘도 권면하고 계십니다.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자기의 도움으로 구속받은 자들을 보게 될 때에 주의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다”(실물교훈, 361).
92 교회지남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5월 18일(금)
평화주의자가 되는 것
하늘나라를 사모하는 가정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공의의 열매는 화평 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사 32:16~17)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말년에 그리스도인을 도덕적 부패에서 건져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 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 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요 한계시록 21장 27절)
낼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을 발견했다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 진 실을 묻어 둘 수 없다고 판단하고 <사랑의 법칙과 폭력의 법칙>을 저술했습 니다. 그의 눈에 비친 19세기 말의 유럽은 만인이 만인에 대해 투쟁하던 시기 였습니다. 톨스토이는 “혁명 세력이 정부에 대항하고, 정부가 혁명 분자들을 대적하고, 피압박자들이 압박자들에게 저항하고, 나라와 나라가 대립하고,
이 땅에는 질병, 고통, 장애, 늙는 것, 헤어짐과 슬픔의 눈물이 가득합니다. 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늘에 가고 싶지 않으세요? 재림 성도의 가정은 하늘나라를 사모하는 가
서양과 동양이 대립하고 있으며, 그 대립이 날이 갈수록 가혹해지고 있다.”고
정입니다. 세상이 주는 것에 만족하고 세상의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대립과 투쟁의 주요 원인이 그리스도인에게 있다고
꿈만을 이루기 위해 바쁘게 지내고 천국에 대해
톨스토이는 지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의 고상한 개념”이 없고, “그
서는 관심이 적거나 없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삶에 일치하는 행동의 규칙이 없고”,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공
천국이 필요 없다는 착각에 빠져들게 되니까요.
유할 규칙이” 없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늘나라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
톨스토이는 그 해결책도 기독교 신앙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가는 곳입니다. 그곳은 더럽고 흉측한 것이
“진정한 기독교 교리는 사랑을 오직 이 생명의 최고 법으로 인정하는 데
나 거짓말하는 사람은 절대 갈 수 없는 곳입니
에만 존재하며, 그 결과로서 어떤 예외를 인정하는 데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 거짓말을 하고 다니나요? 천국에서는 그러
다. 즉 법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폭력을 사용할 가능성 등의 예외를 인정하
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남의 약점
는 기독교 교리는 차가운 불이나 따뜻한 얼음같이 너무나 명백한 모순이라
을 들추어내거나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도 그
는 뜻이다”(<사랑의 법칙과 폭력의 법칙> 중에서).
곳에는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난무하는 대립과 투쟁을 해결할 수 있는 방책은 “진정한 의미 에서의 기독교 교리”, 즉 사랑의 법칙이라는 것이 톨스토이의 가르침입니다. <전쟁과 평화>라는 소설을 썼을 때만 해도 그는 평화주의와는 거리가 멀었 습니다. 그러나 나이 50에 접어들면서 영적 혼란을 경험한 뒤로 비폭력 평 화주의의 사도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가 평화주의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를 사모하는 가정은 예수님과 교제 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교회에도 열심히 출석 하고 남을 섬길 것입니다. 성실하게 살면서 하 늘나라를 마음에 그리며 사는 사람, 천국 가는 삶을 연습하며 하늘 본향을 사모하는 그리스 도인이 됩시다.
예언자 이사야는 기독교의 의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정의가 광야
“하늘나라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을
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누리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마음과 정신이 바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사 32:16~17). 그리스도의 의로 거듭난 사람
뀌어야 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만
의 결실은 평화가 될 것입니다. 그 예언처럼 톨스토이는 그리스도인으로 거듭
가능합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서 평화주의자가 되었습니다. 만인 대 만인이 투쟁하는 시대에 그리스도인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고 주님은 말씀
은 진정한 의의 결실을 맺어 평화주의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영감의 선지자
하셨습니다. …거듭나야만 마음이 순결해지고
도 “그리스도의 종교는…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열매를 맺을 것”라고 말했습
정신이 새로워지며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
니다(2설교, 96).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곧 평화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새 능력을 얻습니다”(교회증언 9권, 155~156).
2018. 5.
93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5월 19일(안)
해피 홀릭, 그 비결을 찾아서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가정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 가스 족속의 땅을 그의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매 주 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느 9:8)
소설가 권지예는 <해피 홀릭(Happy Holic)>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 다. “생의 반환점을 돌아온 저는 지금 자유롭고 행복합니다. …가난하고 소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 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 라”(골로새서 3장 15절)
박한 일상을 통해 만난 사람들의 해맑은 미소와 따뜻한 인사는 눈물겨운
안식일을 맞이할 때 ‘행복한 안식일입니다
진실이 되어 제 가슴에 와서 박힙니다. 삶이 이토록이나 단순하다니! 인생
(Happy Sabbath)’ 하고 인사를 나눌 때가 많
이란 참 별거 아니다. 그러니 돈 워리! 비 해피!”
습니다. 여러분은 안식일을 어떻게 맞이하고 어
자신의 삶을 두고 이렇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입니다. 어쩌면 힘들고 지친 일상을 지내는 이들에게 이런 글은 호사가의
떻게 마무리하세요? 가정마다 차이가 있겠지 만 한 가지만큼은 같았으면 합니다.
사치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권지예 작가의 삶은 사치스럽지 않았
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안식일 행복하
습니다. <뱀장어 스튜>라는 작품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았던 그녀는 수년 동
게 보내세요’라고 말하면서 마음에 감사가 넘치
안 평범한 주부로 살면서 작품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삶을
지 않는다면 진실한 인사가 아닐 것입니다. 바
찾기 위해 노력한 덕분에 행복 중독의 삶을 살아가는 비법을 찾아서 독자
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범사에(모든 일
들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
그녀는 자신이 발견한 행복의 비결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쓴 나물 반찬 에 밥이 더 달게 느껴지듯, 어떤 추억이든 따뜻한 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평범한 행복의 비결이다. 나에게 인생의 고비를 넘기는 묘약 같은 추억을 만 들어 준 그들, 그 사람들에게 중독된 나는 해피 홀릭이다.” 행복은 자신의 삶과 주변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추억이든 따뜻한 눈 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라는 작가의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 다. 그리스도인이 삶의 여정과 목표와 결과들을 따뜻한 눈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인다면 행복한 족속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라 고 했습니다. 재림 성도의 가정은 작은 일에도 감사가 넘 쳐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 보세요. 행복이 전파를 타고 전달 될 것입니다. 가족끼리 감사할 이유를 한 가지 씩 말해 보세요. 처음엔 생각이 안 나다가도 사 소한 것부터 감사가 넘칠 것입니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하늘 가족입니다. 그
느헤미야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도 해피 홀릭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랜
래서 예수님은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접고 황폐해진 고국으로 돌아온 그들은 자신들의
니다. 가정에서부터 감사하는 예절이 실천되면
죄를 자복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주는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
교회에서도 그리고 밖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
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
주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서로에게 감사하며 행
을 주시고…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복을 전하는 행복 전도사가 되어 봅시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니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느 9:7~8).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친절한 태도는 재물이나
서 아브람에게 주신 원래의 약속은 “애굽 강에서 큰 강 유브라데까지”였지
사치품보다 훨씬 값지다. 사랑이 있는 가정은
만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그 넓은 땅을 차지한 적이 없습니다. 고작 팔레 스타인 지역을 얻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땅도 크게 보고 복으로 여 기며 행복해했습니다. 해피 홀릭의 비결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인에게 이런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 94 교회지남
소박한 것에 만족하고 그것으로 인해 행복을 얻는다”(재림신도의 가정, 155).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5월 20일(일)
길 잃은 자를 위하여
마음이 통하는 행복한 가정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오세영 시인의 ‘6월’이라는 시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바람은 꽃향기의 길이고, 꽃향기는 그리움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강물은 꽃잎의 길 이고, 꽃잎은 기다림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그는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자연의 세계와 역사의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세계 인 자연에는 질서 정연한 법칙이 있습니다. 자연계는 주어진 법칙에 따라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기 길을 가고 있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 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에베소서 4장 29절)
가족 간에 다툼이 생기면 분위기가 어두워 지고, 서로 화목하다면 집안이 따뜻하고 밝아 집니다. 중요한 것은 소통, 즉 대화입니다. 휴대폰 때문에 가정의 소통이 방해받고 있지
꽃향기는 바람을 자신의 길로 알고 늘 그 길로 다니며 꽃잎은 강물을 따라
는 않은가요? 휴대폰은 선하게 사용하면 좋은
흐른다는 걸 시인은 자연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자연은 절대로 길을 잃
것이지만 휴대폰을 보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
는 법이 없습니다. 가끔씩 그 길이 막혀 있다면, 그건 길을 잃어버리고 사는
을수록 가족 간의 대화와 소통의 시간이 그만
인간이 인위적으로 망가뜨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훼방에도 아
큼 줄어들겠지요. 물론 서로 떨어져 있을 때는
랑곳없이 자연은 그런 방해물들을 돌아서 다시 자기의 길을 찾아갑니다. 그
휴대폰이 소통에 유익한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리고 그 자연의 길을 통해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인간이 가야 할 길을 알려
함께 있을 때는 얼굴을 마주 대하고 마음을 표
줍니다. 그래서 자연의 세계에서 인간은 길을 잃는다 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
현하는 것이 진정한 소통의 방법입니다. 휴대
아도 됩니다. 자연이 열어 놓은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다시 길을 찾을 수 있기
폰 때문에 따뜻한 대화와 소통에 방해를 받지
때문입니다. 자연의 세계에서 자연은 길 잃은 인간의 안내자가 됩니다.
않도록 서로 돌아봅시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그러나 인간은 역사 속에서도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역사 의 주인을 자처하면서도 결국 그곳에서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역사 가 지향해야 하는 궁극적 목적을 상실한 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세계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인간의 안내자는 이성도 아 니고 제도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바른길을 찾아 줄 안내자는 누 구일까요? 길을 묻는 도마에게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 로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역사의
서로 혼자인 것처럼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일이 많다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가정들은 서로에게 도움 이 되고 덕을 세우는 대화와 선한 말을 통해 은 혜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실물, 338). 저 속하거나 거친 표현, 농담, 실없는 소리를 삼가 고 유행하는 신조어를 마구잡이로 사용하지 맙시다. 오늘 나의 가정에 깨끗한 대화들이 늘 어나는 향기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봅시다.
궁극적 목표인 하나님의 나라는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갈 때 비로 소 성취될 것입니다. 예수의 인격과 그의 삶, 그의 정신이 바로 역사 속에서
“주님께서는 성화된 언어 습관을 요구하신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 목적입니다. 역사 속에서 길을 잃을 때
다. 성결한 언어는 살아 있는 향기가 되기 때문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본질적 가치를 찾고, 지속적으로 그 목표를
이다”(서신, 156, 1900).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영감의 선지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만일 사 람이 타락한 인류를 위하여 소망과 도움의 유일한 근원이 되시는 자를 무 시하면 인류 진보의 이상(理想)이나 인류 향상을 위한 모든 노력은 다 헛된 것이 될 것이다. …그를 떠나서는 참으로 아름다운 품성이 있을 수 없다. 하 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은 곧 그리스도이다”(정로, 23).
201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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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5월 21일(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행복을 더해 주는 신뢰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눅 10:36~37)
증오의 시대에 사랑과 평화와 화해를 외쳤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죽기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 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명기 6장 7절)
직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가장 극렬하게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 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를 감옥에 던지십시오. 그래도 여전히 당신들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란 믿고 기댈 수 있
사랑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 명심하십시오. 고통을 감수하는 우리
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신뢰할 수
의 힘이 당신들을 지킬 것입니다. 어느 날, 우리가 당신들의 가슴과 양심에
있는 사람입니까? 신뢰받는 사람이 되도록 노
호소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가 승리할 것입니다”(연설문, ‘The Ameri-
력합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나 교회에서
can Dream’ 중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힘은 정말
나 신뢰를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가정 교회
로 승리했습니다. 증오와 전쟁과 분열은 악순환을 반복할 뿐이지만 사랑과
에서 자녀들은 기도하는 법과 하나님을 신뢰
용서와 화해는 진정한 승리를 가져다줍니다. 그는 예수님의 삶 속에서 세상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
을 변화시키는 힘이 바로 그것이었음을 배우고 그대로 실천했던 것입니다.
십니다(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킹 목사처럼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은 많습니다. 그런 노력을
110). 신뢰심은 가정에서부터 교육되어야 하는
기울였던 사람들이 보여 준 사랑의 실천은 모두 예수님의 삶을 통해 영감
덕목입니다. 먼저 부모가 자녀에게 신임을 얻어
을 받은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세상을 변화시
야 합니다. 약속한 것은 신실하게 지킬 줄 아는
키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임을 깨닫고 그들은 그 방법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부모의 실천이 먼저 필요합니다. 자녀들이 부모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인도의 간디,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 같은 인물은 예수님의 방식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승리의 삶을 보여 주었습니다. 미국에서 조용한 교회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클레어본이라는 젊은 목사도 그 방법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는 ‘심플웨이’라는 신앙 공동체를 이끌고 있 습니다. 그 공동체와 함께 노숙자들과 사회에서 유기된 사람들의 인권을 위
를 사랑하고 신뢰하고 순종하는 법을 배우면 그리스도인 생애의 첫 공과를 잘 가르친 것입 니다(재림신도의 가정, 199). 서로 바빠서 가족 끼리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생기 지 않습니까? 시간을 내어 자녀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들을 마련하십시오(부모와 교사와 학 생에게 보내는 권면, 124). 높은 탑을 쌓으려면
해 특수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사랑의 힘으로 세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게 필요하지만 공든 탑이
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작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는 불가항력적 혁명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서로가 쌓은 신
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대안 기독교 운동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그
뢰심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생 동안 재림 성도의
는 말합니다. “증오보다 더 어려운 게 하나 있다. 그게 바로 사랑이다. 전쟁보
가정은 신뢰가 무너지지 않도록 애써야 합니다.
다 더 어려운 게 하나 있다. 그게 바로 평화이다. 분열보다 더 많은 노력과 땀
신뢰하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며 실천하여 하늘
과 눈물을 요구하는 게 하나 있다. 그게 바로 화해이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기
분위기가 감도는 행복한 가정이 되기 바랍니다.
때문에 우리 삶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쉐인 클레어본, <믿음
“이 땅의 보호자를 신뢰하고 복종하고 존경
은 행동이 증명한다> 중에서) 세상을 바꾸는 가장 위대한 힘은 사랑을 실천
하듯 하나님을 신뢰하고 복종하며 존경할 줄
하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
아는 아이는 행복하다. 이런 선물을 어린이와
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증오보다 사랑을, 전쟁보다 평화를, 분
학생에게 베푸는 사람은 어떤 시대의 보물보다
열보다 화해를 추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런 실천하는 믿음은 추구할 만한
도 더 귀중한 보배, 영원히 계속될 보배를 선사
가치가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고 있는 것이다”(교육, 245).
96 교회지남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5월 22일(화)
한 영혼의 삶을 변화시킨 그림 한 점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 15:20)
헨리 나우웬은 <탕자의 귀향>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고 받은 감동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1983년 가을, ‘탕자의 귀향’이라는 제목이 붙은 렘브란트의 그림 하나를 처음 보는 순간, 나의 모든 관심은 돌 아온 아들을 가슴에 품어 주는 그 아버지의 손으로 쏠렸다. 나는 거기서 용
건강이 주는 행복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 의 건강이 됨이니라”(잠언 4장 22절)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이란 질병이 없 거나 허약하지 않은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 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회생활까지
서와 화해와 치유를 보았다. 그뿐 아니라 안전과 안식 그리고 집에 있는 것
건강해야 진짜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건
같은 평안함을 느꼈다. 생명을 주는 아버지와 아들의 포옹 그림에 나는 너
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은 성
무나 감동을 받았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이 탕자가 받았던 그것을 받고 싶
경과 예언의 신을 통해 건강에 관하여 자세하게
은 열망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그 만남은 나 자신의 귀향을 시작하는 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도 자상하
환점이 되었다.”
게 알려 주십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원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은 안 본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바로크 예술
한다면 저지대에서 생기는 독소와 안개가 없는
작품입니다. 화가 특유의 빛과 어둠의 대비 속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나
곳에 집을 지어 하늘의 생명소들이 자유롭게 들
타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표정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 그림을 본 사람은
어올 수 있게 해야 한다. 두꺼운 커튼을 걷고 창
많지만 그로 인해 삶이 바뀐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그
문과 덧문을 열라. …그리고 햇빛을 가릴 정도로
그림을 보고 삶의 전환점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이 그림에서 렘브란트는 용
나무들을 집 가까이에 심지 말라. 햇빛 때문에
서와 치유와 안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말년에 렘브란트는 가족을 잃은 슬 픔과 질병으로 힘겹게 살았습니다. 재산과 인격의 파산 상태에 있던 렘브란 트는 예수님의 비유 속에서 용서와 치유를 발견했고 거기서 얻은 진정한 안 식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 그림을 그렸던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돌아온 아들의 비유’는 기독교의 진리, 즉 하나님과 인간의 실존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구원받아야 할 존재이며,
휘장과 양탄자와 사진이 바랠 수도 있지만 햇빛 은 아이들의 뺨에 건강미 넘치는 혈색을 가져다 줄 것이다”(재림신도의 가정, 149). “가족 전체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요리하는 사람의 기술과 지혜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교육, 198). “나무들 과 꽃들을 가꾸면 분별력과 판단력이 커지며, 하 나님의 유용하고 아름다운 피조물들에 친숙해
안식처인 하나님의 품으로 귀향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지면 마음이 깨끗하고 고상해지고 창조주께로
통해 우리의 실존을 설명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비유 속에서는 아버지(신)
향하게 된다”(교회증언 4권, 136).
와 아들(인간), 그 초월과 실존 사이의 간극을 메워 주는 힘인 사랑(아가페)
가장 기초적인 뉴스타트 건강 기별로부터 여
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기독교는 바로 이 세 가지 요소에 대한 깨달음의 종
러 구체적인 사항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재
교입니다. 렘브란트는 이 사실을 죽기 1년 전에야 깨닫고 서둘러 이 작품을
림교회에 주신 기별은 참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남겼습니다. 한 영혼을 변화시킨 그림은 바로 이런 기독교의 진리 속에서 탄
실천이지요. 신체적 건강은 영적인 건강에 영향
생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이 그림이 소장되어 있는 곳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을 줍니다. 건강이 주는 행복을 위해 결심해 봅
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입니다. 그러나 그 그림에 담긴 진리의 영향력은 예수
시다. 작심삼일도 괜찮습니다. 3일마다 반복하
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영원히 존재합니다. 예수님의 비유 속에
면 되니까요.
서 용서와 치유와 안식을 경험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깨끗하게 하기를 게을리하면 질병이 생긴다. 병 은 원인 없이는 오지 않는다”(재림신도의 가정, 22).
201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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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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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수)
고민 끝에 얻은 힘은 강하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행복한 가정은 목적지가 같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디모데후서 4장 18절)
도쿄대학 교수가 된 재일동포 강상중 교수가 <고민하는 힘>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현대인의 삶을 질타하 면서 고민하라고 충고합니다. “많은 사람이 더 크게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고민을 계속해서 결국 뚫고 나가 뻔뻔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새 로운 파괴력이 없으면 지금의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미래도 밝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21세기 사회를 아이러니가 점철된 사회라고 지적합니 다. 21세기의 세대는 정체성을 잃어 가는 세대, 돈이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등산할 때 아무리 산이 높아도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결국은 목적한 곳에 이르게 됩 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래 희망을 이 루기 위해 성실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원하는 꿈들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사회의 다양한 곳에서 자기 나름의 꿈을 펼쳐 나가는 전문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그리스도 인 가정이라면, 어떤 일에 종사하든지 자신감
거라는 막연한 환상을 가진 세대,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주체할 수 없다고
을 갖고 열심히 하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보
착각하는 세대,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이해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
람을 느끼고 행복하지 않을까요? 이스라엘 백
는 세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이 심화된 이유가 진지하게 고민
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행진하면서
하지 않은 결과라고 지적합니다. 만일 인류가 자아, 경제관, 지성, 청춘, 믿
하나님께 순종할 때는 행복한 여행길이 되었지
음, 노동, 사랑, 죽음 등과 같은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
만, 불순종할 때에는 고통과 어려움이 따랐습
민했다면 이 사회는 좀 더 나은 사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 대
니다.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이 가야
부분은 사소하고 너절한 수많은 고민에 둘러싸여 살아가면서도 정작 본질
할 목적지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었듯이
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영적 바벨론에서 나온 영적 이스라엘이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를 가르치십니다. 첫째는 ‘고민하지
가야 할 목적지는 바로 하늘 본향입니다. 예수
말라’는 것이고, 둘째는 ‘고민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먹고 마시며 입고
님은 우리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어 천국
사는 사소한 문제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 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 6:34). 이런 문제로 염려하지 말 아야 하는 이유는 그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서 채워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약속이 실현될 수 있는 조건도 알려 주십니다. “너 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에 데려가려고 천사들과 함께 일하십니다. 성 령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돕기 위해 다가오십니 다. 행복한 재림 성도의 가정은 인생의 최종 목 적지가 같은 사람들입니다. 같이 하늘로 방향 을 정한 사람들입니다.
더하시리라.” 더 본질적인 것에 대해 ‘고민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와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자 희망입니다. 우리가 진지하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
고민해야 할 하나님 나라는 정의가 살아 있고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나라입 니다. 인류의 마음에 간직된 궁극적인 희망의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으로 그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될 수 있도록 고민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고민하는 힘은 하나님 나 라를 실현시킬 만큼 강할 것입니다. “사탄은 투쟁 없이 하나님의 나라가 지 상에 세워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선지자는 기록했습니다(행적, 167).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민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98 교회지남
라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 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12, 14). 이것이 계명을 지키는 자들의 목적 지이다.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그 성에 들어가는 무리의 숫자 속에 속하기를 우리 모두가 원해야 하지 않겠는가?”(목사와 복음교역자에게 보내는 권면,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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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목)
기적은 지금도 일어나야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마 14:16)
문명 시대에 기아로 굶주리는 사람들이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죽
시련 속에서도 꽃이 피는 가정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 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 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 라”(베드로전서 1장 7절)
음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문명의 발달 로 인류의 삶이 나아지고 있다고 대부분 생각하지만 지구 다른 편의 기아 와 영양실조는 심각합니다. 8년간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 동한 스위스 사회학자 장 지글러의 보고에 따르면 인류는 심각한 식량난으 로 고통 당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기아를 방지하기 위한 투쟁은 어 떻게 되었는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뒷걸음질치고 있다. 2001년엔 7초마다 10세 미만의 어린이 한 명이 기아로 목숨을 잃었다. 같은 해, 8억 2,600만 명 이 심각한 만성 영양실조로 불구자가 되었다. 그 숫자는 현재 8억 5,400만
사람은 울음을 터트리며 태어나고 갖가지 고 난과 시련을 겪으며 살다가 죽습니다. 그 가운 데서도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 있습니다. “우리 는 고통이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 어려움과 시 련과 슬픔이 하늘 본향으로 가는 길에 내내 우 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세상과 다가올 세상 에서 행복하려면 마음을 밝게 하는 것에 눈을 두어야 한다. …어두운 장면에서 눈을 돌려 하
명으로 증가했다. 1905~2004년에 만성적인 영양 결핍으로 고통 받는 사람
나님께서 앞길에 뿌려 놓으신 은혜를 보라”(가
이 2,800만 명 증가했다”(<탐욕의 시대> 중에서).
정과 건강, 171).
이런 불합리한 상황이 심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장 지글러는 탐욕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니기 때문에 살면서 곤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주의 논리에 입각한 자본주의
란한 일과 장애물을 만날 것입니다. 어느 가정
의 발달로 지구의 한쪽은 점점 부유해지지만, 다른 한쪽은 점점 더 가난해
이나 근심거리, 크고 작은 시험과 시련들이 있
지는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적인 탐욕이 기아의 악순환을
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재림 성도의
심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본주의의 탐욕은 우리 개개인의 작은 욕
가정은 시련 속에서도 꽃이 피는 가정이 될 수
심 때문에 더 큰 에너지를 얻습니다. 즉 기아 문제는 우리의 욕심이 낳은 결
있습니다. 참된 의인은 힘들 때나 편안할 때나
과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구촌 기아 문제에 어떤 책임을 져
한결같이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견뎌 냅니다. 어
야 할까요? 이 엄중한 물음에 대해 성경에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벳새다
려울 때는 욥을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예수님
의 들판에서 허다한 군중이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저녁이 되어 몹시 허기를 느 끼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제안하셨습니다. 제 자들이 계산해 보니 군중을 먹이려면 200데나리온어치의 떡이 필요했습니 다. 자신들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제자들은 잘라 말했습니다. 제 자들의 모습은 8억 5천만 명의 기아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
의 십자가를 묵상해 봅시다. “곤란이 일어날 것 이다. 그대들은 장애물을 만날 것이다. …위급 한 일이 생기면 ‘내가 지금 어찌하리이까’ 하고 여호와께 물으라”(원고, 67, 1901).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계십니다.
냐고 항변하는 오늘 우리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은 떡 다섯 덩이와 물
“매일매일 영원한 반석이신 예수님께 마음을
고기 두 마리로 군중을 먹이셨습니다. 이 사건은 성경에 기록된 가장 놀라
집중하려고 애쓰며 겸손하게 사는 사람은 자기
운 기적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가능했을까요? 탐욕을 제거하고
자신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시련의 폭풍우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진실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의
가운데서도 요동치 않고 굳게 설 것이다”(성화
욕망을 제거하고 굶주린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느낀다면 지금 이 시대에도
된 생애, 12).
오병이어의 기적은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런 믿음으로 살아간다 면 기아로 굶주린 지구촌 아이들이 더 이상 배고프지 않을 것입니다. 201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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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금)
고난의 역사에는 희망이 산다
기다림이 있는 행복한 가정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 었나이다”(시 119:71)
고난과 희망을 연결시키는 것은 결코 사치스러운 미화나 수사(修辭)가 아 닙니다. 역사에서 고난은 희망을 잉태하고 있었고, 그 희망은 겨울을 이겨 낸 나뭇가지의 꽃들처럼 결국 아름다운 결실로 피어났습니다. 고흐의 명작 들은 정신적인 질환의 고통 속에서 피어난 작품들입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은 잔다르크라는 영웅을 낳았고 크림전쟁은 나이팅게일과 그녀의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의 아침을 기다 림보다 더하도다”(시편 130편 6절)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행복했던 추억이 있습 니까?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을 기다릴수록 가슴이 더욱 두근거릴 것입니다. 성경에도 기다림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옵니
간호 정신을 낳았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톨스토이의 대작 <전쟁과 평
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십계명을 받기까지
화>가 탄생했고 볼셰비키혁명은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와 같은 위대한 작
40일이 지나자 기다림에 지친 이스라엘 백성은
품을 낳기도 했습니다. 인류 최대의 비극으로 꼽히는 홀로코스트는 수많은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문학, 영화, 음악, 미술 작품들에 영감을 주어 위대한 작품들을 탄생시켰습
만들라”(출 32:1)라며 하나님을 저버리기도 했
니다. 이 모두는 고난의 역사가 희망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보고 싶어서 그분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곡집으로 평가받고 있는 슈베르트의 ‘겨울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뽕나무 위로 올라
여행(겨울 나그네)’은 고난 속의 희망이라는 감동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
가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눅 19:2~9). 탕자의
다. 비탄에 잠긴 채 겨울 속으로 떠나야만 했던 주인공은 자신의 고난을 홀
비유에서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로 짊어지고 그 누구로부터도 도움이나 위로를 받지 못한 채 혼자서 절규합
늘 밖에서 기다립니다(눅 15:11~24).
니다. 바람과 눈과 추위와 고독 속에서 그 절규는 노래가 됩니다. 고난 속에 서 희망을 찾아가는 여행을 묘사한 슈베르트의 이 노래는 토마스 크바스 토프라는 장애인 성악가에 의해 더 섬세하고 감동적인 노래로 거듭났습니 다. 해표상지증을 앓아 손과 발이 거의 없이 오뚝이와 같은 모습으로 태어 난 크바스토프는 장애로 인한 고난을 성악으로 승화시키며 희망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고난을 희망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유대 문학에서도 단골 주 제입니다. 그런 노래를 많이 소개한 시편 중에서도 특히 119편 7절은 백미
사랑하는 사람을 가정에 맞이하기 위해 청 소도 하고 음식도 마련하면서 분주하게 준비 할 때면 행복하지요. 왜 그럴까요?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예수 님을 기다리고 있나요?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 나심을 기다림이라”(고전 1:7). 내 영혼이 주를
입니다. “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는 오히려 유익하게 되었습니다. 그 고난 때
기다리는 소망이 그 어떤 기다림보다 더한 기
문에 나는 주의 율례를 배웠습니다”(새번역).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했습
다림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가정이 재림 성
니다.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으며,
도의 가정입니다. 기다림과 소망이 넘칠 때 행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분의 몸 곧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워 가
복의 향기가 가정을 감싸게 될 것입니다.
고 있습니다”(골 1:24, 새번역). 고난 속에서 유익과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신앙의 힘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도, 아시리아와 바벨로
“우리는 게으르게 기다릴 것이 아니라 흔들
니아의 포로 생활도, 로마의 압제와 디아스포라의 생활도 결국 그들에게는
리지 않는 믿음 가운데 열심히 활동하면서 주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꽃피워 주었습니다. 그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
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교회증언
의 고난으로 보증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난이 있는 곳마다 희망이 움트고 그
5권, 452).
결실이 꽃피리라는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의 역사에 희망이 산다’는 격언의 산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100 교회지남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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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안)
진실 담론을 추구하라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잠 12:19)
어른을 공경하는 가정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 다”(신명기 32장 7절)
아날학파의 역사학자인 페르낭 브로델은 역사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이런 충고를 남겼습니다. “수면에서 출렁거리는 파도를 보고 바다를 논하지 말고 그 심연으로 들어가서 바다를 보듯이, 표면에서 출렁거리는 사건들을 역사 라 하지 말고 그 역사의 심연으로 들어가서 진실을 파헤쳐 역사를 말하라.” 그의 말에 따르면 역사란 표면에 드러난 사건들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이
5월 가정의 달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 분 중에는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모두 살아 계신 가정도 있고 그중 에 어느 분은 돌아가신 가정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라 그 사건의 이면 속에 들어 있는 깊은 의미를 찾는 작업이라는 것입니
할아버지, 할머니 덕분에 여러분도 세상에 존
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사건만으로 어떤 판단을 내립니다. 그러나 진실
재하는 것입니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엄마 아
은 표면이 아니라 심연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저널리즘의 본질도 표면적 사
빠도 없었을 것이고 그러면 여러분도 태어나지
실(fact)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 속에 숨겨진 진실(truth)을 보도하
못했겠지요.
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사건의 본질과 진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는 계획을 세워 보
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외형적인 모습으로만 평가해서는
세요. 재미있는 이벤트도 마련하면 더 즐겁겠
안 됩니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은 인상관리 이론을 주장했습니다. 사람들
지요? 웃어른 공경과 자녀의 교육에 관하여 이
은 모두 자신의 인상을 관리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연극을 하며 살기 때문
런 교훈이 있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훈련과
에 겉모습은 배우의 모습과 유사한 것이지 본심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속을 태만히 하는 가정이 어디나 있다. 아이
따라서 사람을 올바로 평가하려면 겉모습이 아니라 그 심연을 통찰해야 합
들이 불경하고 무례하게 말대꾸하거나 어른에
니다. 신앙생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형식적이거나 외식적인 것이 아 닙니다. 종교적 행위만으로 신앙을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시대에 바리새인들은 매우 훌륭한 신앙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행위와 외식만으로 평가한다면 정말 훌륭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바리새인들의 신 앙을 예수는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였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 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
게 해서는 안 될 언어를 사용해도 그냥 내버려 둔다. …단 한 번이라도 아이가 무례한 행동을 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부모와 삼 촌, 이모와 조부모들은 돌을 갓 지난 아이가 화 내는 것을 보고 웃기만 한다. 버릇없는 앳된 표 현과 고집을 귀엽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그릇 된 습관이 굳어지고 아이는 커서 주위 모든 사
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 유대 종교
람에게 미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새 자녀 지도
지도자들은 외형적인 형식에 치중했습니다. 훌륭한 신앙인으로 보이기 위해
법, 288). 그렇습니다. 좋은 교훈입니다. 우리를
애썼지만 마음에는 진실한 신앙인의 정신이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그 대신
있게 하신 어른들을 가정의 달이 지나기 전에
인간적이고 외형적인 권위로 자신들의 종교성을 내세웠습니다. 진리와 상관
만나 봅시다. 전화라도 해 봅시다.
없는 관습과 전통으로 신앙을 유지했습니다. 겉모습은 화려했지만 속에는 죽은 시체가 가득했습니다. 진실하지 못한 유대인들은 결국 하나님의 아들
“청소년들이 중대한 과오를 범하는 이유는
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영감의 선지자는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이 교사
자신들보다 더 오래 살아온 어른들의 경험을
들(제사장, 서기관 등)은 외식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완고한 마음은 진리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부모와 교사와 학생에
를 받는 데 장벽이 되었다. 그들은 죄를 깨닫게 하는 성령의 감화를 물리쳤
게 보내는 권면, 223).
고 하나님의 계명 순종하기를 거절했다”(실물, 277). 우리는 바리새인과 같아 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진실 담론을 추구해야 합니다. 2018. 5.
101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5월 27일(일)
화내지 말라
하늘 가족의 또 다른 어른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6~27)
로마 황제로서 철학적 성찰에 충실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분노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 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언 22장 6절)
와 증오에 대해 늘 경계하며 살았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인간은 서로 협력하 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이므로 서로에게 화를 내거나 증오해서는 안 된다는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사
도덕적 신념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또 타인을 협력자로 이해한다면 서로를
람은 고아처럼 인생의 시련을 홀로 견디도록 방
증오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치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하늘 가족
현대 윤리학자인 에마누엘 레비나스는 ‘타자성의 철학’으로 아우렐리우
의 일원으로 받으시며 자기 아버지를 그들의
스의 사상을 구체화시켰습니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인간은 타자의 생명에
아버지로 부르도록 허락하신다”(화잇주석, 룻
의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타자로부터 생명력을 취하여 생명을 유 지합니다. 예를 들어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생명을 영위하는 것 등입니다. ‘타자’란 자기 바깥에 있는 ‘외재성’을 말합니다. 그 외재성이 없다면 우리는 삶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형제와 동포들은 우리의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조건이 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에 게 화를 내거나 증오를 품어서는 안 됩니다.
2:20).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교회에 서 내 옆에 있는 교인도 그렇게 기도합니다. 따 라서 우리 모두는 하늘 가족입니다. “하늘 가 족으로 태어난 자는 모두 특별한 의미에서 우 리 주님의 형제들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가 족을 한데 묶는다. 어디서나 그 사랑이 표현되
이스라엘의 반역과 고집에 인내력을 잃은 모세는 홧김에 반석을 두 번 치
는 곳에서는 친족 관계가 나타난다.”(시대의 소
는 바람에 백성에게 그리스도의 희생을 잘못 드러냈고 자신은 약속의 땅을
망, 638)는 사실을 명심합시다. 피를 나눈 가족
코앞에 두고 광야에서 삶을 마쳐야 했습니다.
만 내 가족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화를 내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식이 아닙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
흘리신 피를 나누는 교인들과도 하나님 안에
들에게 권면합니다.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 한 가족인 것입니다. 교회에도 어른들이 계
서로 지체가 됨이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
십니다. 어르신들을 존경하고 사랑합시다. 특별
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5~27). 우리는 한 몸의 지체들이며 서로
히 외롭게 살아가는 어르신들이 계시다면 부모
협력해야 할 존재들입니다. 서로에게 화를 내거나 증오해서는 안 됩니다. 예
님과 함께 시간을 내어 방문하고 집청소나 정
수의 형제 야고보는 “화를 내는 사람은 하나님의 정의를 이룰 수가 없다”고
리정돈을 도와드립시다. 이웃에도 어르신들이
했습니다(약 1:24, 공동번역). 솔로몬은 “화를 잘 내면 말썽을 일으키고 골
계실 것입니다. 그분들에게도 예의 바르게 행
을 잘 내면 실수가 많다.”, “미련한 사람은 화를 있는 대로 다 터트리지만 지 혜로운 사람은 화를 가만히 가라앉힌다.”고 했습니다(잠 29:22, 11, 공동번 역). 선지자도 “화를 내지 말라. 화를 내지 말라.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교훈은 자제의 교훈이다.”(2설교, 303)라고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화를 내지 않는 품성을 도야해야 합니다.
동합시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서도 십자가에 목숨을 버리셨으므로 그들 역시 예비 하늘 가 족입니다.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이러한 마음은 어려서부터 배우는 순종의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입니다. “청년들은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동시 에 경험 있는 교회 어른들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청년에게 보내는 기별, 445).
102 교회지남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5월 28일(월)
자신에 대한 지식, 양심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 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 1:19)
토머스 모어는 영국 국교회가 탄생하는 과정 속에 있었던 유능한 정치가 입니다. 한때 헨리 8세의 후원 아래 대법관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청렴하고
행복을 향한 성도의 가치관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 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 는 자라 하리라”(이사야 58장 12절)
양심적인 그는 왕의 이혼과 재혼을 반대하여 공직에서 물러났고 분노한 왕 은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를 참수시키고 말았습니다. 양심에
재림 성도는 재림의 날에 구원받을 것이라는
충실했던 토머스 모어는 세상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그의 양심은 지금도 살
희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늘에 가고
아서 인류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영국 의회 앞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
싶으면서도 이 세상을 더 중요하게 여겨서 하나
했습니다. “나는 내 영혼의 구원을 위해, 내 양심의 공표를 위해 일해야 합
님 나라를 잃어버린다면 얼마나 억울할까요!
니다. 하나님께 외칩니다. 그의 눈은 인간의 마음을 보시므로 그가 나의 증 인입니다.” 자기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할 양심이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 입니다. 영어로 양심(conscience)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 내면에 분명한 신념으로 확립된 가치를 양심이라고 말합니 다. 양심을 지키기 위해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목숨보 다도 더 소중한 자기 확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도 “나는 양
세상을 향한 도전은 좋습니다. 꿈을 이루는 것도 좋습니다. 성실하게 살면 그만큼 열매를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꿈을 좇다가 신앙 을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하면 어느새 신앙에 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성공을 위해 안식일 정 신을 훼손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 길 수 있습니다. “안식일을 더욱 철저하게 지 켜야 한다. 피할 수도 있는 여행을 이날에 자
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설사 위험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일일지라도 아무
주 하지는 않는가? 안식일 준수에 관하여 주님
것도 철회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께서 주신 빛에 따르면 배나 기차로 이날에 여
느부갓네살 왕 앞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섬
행하는 일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이 일에 대
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
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바른 모본을 보여야
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
한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교회에 가서 하나
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
님이 그들에게 들려주고자 하시는 기별을 전
을 아옵소서”(단 3:17~18).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 것은 바로 그들의
해야 할 때는 안식일에도 이동할 수 있다. 그러
신앙 양심이었습니다.
나 차표를 포함하여 필요한 모든 것은 가능한
예수님은 분명한 양심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신 구세주이십니다. 회당에
한 다른 날에 준비해야 한다”(교회에 보내는 권
서, 예루살렘에서, 가버나움에서 그는 자신의 양심을 지켰습니다. 예수님
면, 267~268). 안식일 준수를 위한 기별뿐 아니
의 모본을 따른 제자들도 신앙의 양심을 지켜 감옥에 가기도 했습니다. 바 울은 디모데에게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호소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양심을 버려” 믿음에 관하여 파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 은 양심을 지켜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마지막 때일수 록 양심의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영감의 선지자는 이렇
라 다양한 신앙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 다. 행복을 향한 최종 목적지는 주님이 계신 하 늘나라입니다. 그곳에 이르기까지 성도의 신앙 가치관을 명확하게 하며 살 때 하나님은 하늘 기념책에 우리 이름을 기록하실 것입니다.
게 호소합니다. “양심의 문제를 강제하기 위하여 세상 통치자들이 종교계
“지금 세상에는 무너진 데를 수보하며 황폐
의 목사들과 연합할 때에 참으로 누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섬기는지 나타
한 곳을 다시 세우는 교회가 단 하나 있다”(마
나게 될 것이다”(행적, 432).
지막 날 사건들, 43).
2018. 5.
103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5월 29일(화)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 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벧전 3:15)
제인 구달은 인류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는 지식인 중 하나입니다. 자연 파괴, 대량 학살, 물질주의, 불평등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그녀가 인류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는 이유는 다음의 네 가지 때문입니다.
하늘 가는 예행연습에서 얻는 행복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 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신명기 33 장 29절)
화려한 무대에서 공연하기 전까지 배우들 은 수많은 준비와 연습으로 구슬땀을 흘립니
첫째, “인간의 명석한 두뇌”가 있는 한 희망이 있다. 둘째, 필요한 경우 “기
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행복해
회와 도움을 준다면 충분히 회복되는 자연의 놀라운 회복력”이 있기 때문
합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하늘 가는 연습이 필
에 우리는 희망이 있다. 셋째, “전 세계 젊은이에게 새로운 시각과 열정, 에
요합니다. 직장이든 학교든 학원이든 자주 빠
너지”가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 넷째, “절망적인 어려움을 딛고 결국 성
지면 불성실한 사람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
공한 훌륭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이 있다.
다. 교회에 출석할 때마다 하늘 가는 예행연습
인간의 두뇌, 자연의 회복력, 젊은이들의 에너지와 열정, 불굴의 인간 정 신에서 희망의 원동력을 발견한 구달의 통찰력은 정말로 옳은 것일까요?
이라고 즐겁게 생각하면 훨씬 행복할 거예요. 교회에 출석하는 이유는 친구를 만나는 기쁨
인간이 희망의 세계를 창출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여 온 것
도 있겠지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혹
은 사실이지만 인간의 이성이 언제나 합리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인간
시 보기 싫은 사람이 교회에 있더라도 교회를
은 그 희망의 근거를 도구화하여 절망에 빠지곤 했습니다. 지구온난화 문제
찾는 데 소홀하지 말아야 합니다. “땅으로 향
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자연 치유력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고, 젊은이의 에너 지와 열정도 이상하게 점점 식어 갑니다. 불굴의 인간 정신에 관한 도전적 이야기들도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희망의 또 다른 근거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우리 주위에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희망을 노래하는 음 악가, 희망을 그리는 화가, 희망 여행을 떠나는 여행가, 희망의 불꽃을 살려
하는 마음의 창문은 닫고, 하늘로 향하여 열어 두라.”(재림신도의 가정, 96)라는 말씀을 명심 합시다. 하늘 가는 연습에서 또 다른 중요한 삶 은 ‘드리는 것’입니다. 경배와 찬양을 드리고, 예 배를 드리고, 십일조와 헌금을 구별하여 드리 고, 헌신·섬김·봉사를 드리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적 헌신, 이러한 실천은 천국에 이르는 리
내는 자원봉사자, 희망을 말하는 정치가, 희망을 선포하는 설교자가 있습
허설이자 필수 준비 과정입니다. 또 ‘하나님께
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죄로부터 영원히 용서
베드로는 “희망의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고 권
를 받고, 살면서 복을 받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
면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희망의 이유를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
고, 기도의 응답을 받고, 시험과 시련으로부터
다. 그리스도인의 희망 이야기는 인생을 긍정하고 세계를 긍정하는 세계관
승리를 얻는 것, 이 모든 것은 주님이 주시는 은
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본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역사의 의
혜입니다. 하늘 가는 예행연습으로 행복이 갑
미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 사회는 희망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
절로 넘치는 가정이 됩시다. 재림이라는 공연이
다. 슈바이처는 이 긍정적 세계관의 핵심을 생명 외경 사상이라고 했습니
펼쳐지는 당일에 예수님은 신앙의 예행연습에
다. 인류라는 거목에 희망의 결실을 맺게 해 줄 진정한 자양분은 바로 ‘생명
신실한 성도를 구원하러 반드시 오십니다.
외경’입니다. 이 사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인류의 미래는 희망적일 것입니
“하나님의 교회는 다양한 은사와 성령의 능
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신앙의 세계가 희망으로 가득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
력을 충만하게 받은 여러 성도가 모인 궁정이
니다. 예수님이 만드신 세상은 생명 외경으로 가득 찬 곳이기 때문입니다.
다. 자신이 도와주고 축복하는 사람들의 행복 에서 그들은 행복을 얻는다”(사도행적, 12).
104 교회지남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5월 30일(수)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 니라”(마 25:40)
치과의사였던 민승기 씨가 ‘위드 마이’라는 소셜 벤처기업을 세웠습니다. 이 회사에서는 ‘위드 마이’라는 치약 한 제품만 만듭니다. 사회적 기업이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가정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 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 시되”(창세기 5장 1절)
인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아담
서 이윤을 목적으로 삼지도 않습니다. 처음부터 ‘봉사’와 ‘나눔’을 염두에 두
의 후손입니다. 가족 모두가 주님의 모습을 닮
고 만든 기업입니다. 민 대표는 창업 동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좋은 일을
아 가고 있습니까? 닮고 싶은 롤모델이 있다면
하고 싶어도 일상에 쫓기다 보면 시간과 기회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차
그에 대한 정보가 많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성
피 사용하는 치약 같은 생활필수품을 통해 나눔이 보다 자연스럽게 일상
경 지식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의 일부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창업했습니다.”
재림하실 때 우리가 하늘에 가져가는 것은 변화
일상에서 봉사와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삶에 쫓기다 보
된 품성이라고 합니다. 사탄은 이것을 잘 알기
니 우리는 바람만큼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아주 가끔씩 특별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지 못하
한 기회에 기부하거나 봉사에 참여할 뿐입니다. 일상에서 불가능한 현실을
도록 방해합니다. 그래서 단련이 필요합니다.
가능케 하려고 민승기 대표는 ‘위드 마이’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디를 깨
아주 건강한 치약을 만들어 ‘원포원(one for one)’ 시스템으로 판매하는 계
끗게 해야 하는지 주님은 아신다. 그분은 시련
획을 세웠습니다. 원포원이란 소비자가 자체 쇼핑몰에서 치약 하나를 구매
의 풀무 속에서 우리가 온전히 다 타서 없어질
하면 그 대응으로 치약 하나를 위생 상태가 열악한 지역에 보내는 제도입니 다. 일반 판매를 통해서 유통될 때는 수익의 10퍼센트를 봉사와 나눔에 사 용합니다. 그런 식으로 지구촌 곳곳의 열악한 위생 환경에 처한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 주며 일상 속에서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봉사와 나눔을 일상에서 실현하기 위해 어떤 프로젝트를 고안할
때까지 버려두지 않으신다. …그분은 자녀들을 보고 계신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 날 때까지 정련의 과정을 지켜보고 계신다. … 풀무불은 순결하고 세련되게 할 뿐 삼키고 멸 망시키지는 않는다”(화잇주석, 말 3:34). “성경을 탐구하는 교육을 통해 구원의 계획
수 있을까요?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재림교인에게 봉사와 나눔은 사명입
을 체험적으로 알게 된다. 이러한 교육으로 마
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봉사와 나눔의 삶이었습니다. 제자들 역시 봉
음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다. …이 교육을
사와 나눔을 강조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해 우리가 직분
통해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되고 성도의 기업
을 받은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함이라고 강조합니다
을 얻도록 준비된다”(실물교훈, 42).
(엡 4:12). 베드로는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
하나님의 형상 회복은 일생 동안 되어야 할
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권
과정입니다. 이것은 돈이 많다고 출세했다고 되
면합니다(벧전 4:7~10). 고린도후서 9장에서 바울은 주어진 재물도 봉사를
는 게 아닙니다. 오직 그분을 닮으려는 갈망으로
위한 것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성령 하나님을 통해 거듭날 때 얻는 경험입니다.
예수님도 칭찬받는 사람들의 업적을 나열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재림 가족이 됩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지식은 구
이니라”(마 25:40).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주위에 많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원받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소유해야 할 지식
을 자신과 동일시하십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돌아볼 때 우리는 예수
이다. 그것은 품성을 변화시키는 지식이다. 이
의 필요를 돌아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권면에 따라서 봉사와
지식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형상이 마음에
나눔을 실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재창조된다”(가정과 건강, 287). 2018. 5.
105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5월 31일(목)
아 유 레디?
하늘 여행을 하게 될 가정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눅 18:41)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요한계시록 8장 1절)
알렉스 로비라는 <준비된 행운>이라는 책에서 행운을 붙잡은 자의 이야 기를 들려줍니다. 옛날 마법사들이 살던 시대에 고상한 덕성을 갖춘 마린이 라는 왕궁 마술사가 있었습니다. 그의 높은 덕성 때문에 왕국은 늘 평화로 웠습니다. 나라가 너무 평화롭다 보니 기사들은 자신들의 실력을 뽐낼 수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죽은 의인들이 부활하 여 그때까지 살아남은 의인들과 함께 죽지 않 을 몸으로 변화됩니다. 그런 다음 모두가 하나
가 없어서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마린은 전국의 기사들을 불러 놓
님의 보좌와 새 예루살렘성이 있는 곳으로 하
고 7일 뒤에 피어날 마법의 클로버에 관하여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잎이 네
늘 여행을 떠납니다. “우리는 다 같이 구름 속
개인 그 클로버를 손에 넣는 사람은 일과 재물과 명예 등 모든 것을 얻는다
으로 들어가서 7일 동안 유리 바다를 향하여
는 것입니다. 그 네 잎 클로버는 열두 언덕 너머 마법의 숲에서 자라니 누구
올라갔다”(초기문집, 16). 우주 여행의 주인공
든지 그곳에 가서 클로버를 손에 넣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기사들은 불
이 되는 것입니다.
가능한 일이라고 투덜대면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흑기사 노트와 백기사
<초기문집> 39쪽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시드는 클로버를 찾아 마법의 숲으로 떠납니다. 숲에 들어서자 숲속의 신
또 다른 세상을 보여 주셨다. 나에게 날개가 주
들이 나타나 이 숲속에서는 클로버가 자라지 못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어졌고 천사가 나를 밝고 영광스러운 세계로
말을 듣고 흑기사는 클로버 찾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백기사 시드는 목
안내했다. …그곳 주민들은 예수님의 형상을 지
표와 신념을 가지고 그곳에서 클로버가 자라나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녔다. 얼굴은 거룩한 기쁨으로 빛났고 자유롭
렇게 6일이 지나고 일곱째 날이 되었을 때 행운의 신이 녹색 비를 뿌리면서 숲의 상공을 지나갔고 숲속에는 마법의 클로버가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백기사 시드가 행운의 클로버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 올 수 있도 록 미리 철저히 준비했기 때문이라고 알렉스 로비라는 설명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은총으로 복을 받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와 그의 딸, 로마의 백부장과 그의 신하, 혈루증을 앓던 여인, 여리고의 삭개오
고 행복해 보였다. 지구상에 있는 사람들보다 그들이 훨씬 더 아름다운 이유가 무엇인지 그 중 한 명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 님의 계명에 완전히 순종하고 지구에 사는 사 람들처럼 불순종으로 타락하지 않았기 때문입 니다.’ 그 뒤 나무 두 그루를 보았다. …한 나무 의 열매는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때 나
와 소경 바디매오 등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은총을 입었던 이유는 하나입
를 수행하던 천사가 말했다. ‘여기서는 아무도
니다. 예수님에게 은총 얻기를 갈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회가 찾아왔
금단의 열매를 맛본 사람이 없다. 만일 그들이
을 때 그들은 적극적으로 예수님에게 나아가 은총을 간구했고 그 결과 복
그것을 먹으면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달
을 얻었습니다. 행운을 바란다면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행운이 왔을
일곱이 뜨는 세계로 이동했다. 거기서 나는 옛
때 그 행운을 누릴 준비를 하지 않으면 행운은 다가오지 않습니다. 모든 사
날에 승천한 에녹을 만났다. 지상에서 바로 이
람에게는 미래라는 행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미래의 행운은 언제나 준비
곳으로 왔냐고 물었더니 그는 ‘아니요. 내 집은
된 사람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도성이고 이곳은 방문차 왔지요.’라고 대답했
“주님은 미래의 삶에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셨다.”고 영
다. 그는 자기 집처럼 그곳을 거닐었다. 나는 수
감의 선지자는 가르쳐 줍니다(의료, 100). 예수님이 준비하신 미래의 행복
행하는 천사에게 나도 거기 남아 있고 싶다고
을 얻기 위해서 이제 우리가 준비할 차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오늘 주님께
졸랐다. 이 어두운 세상으로 돌아올 것을 생각
서 예비하신 복을 받기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하는 자에게 행복과 행 운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 유 레디? 여러분, 준비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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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좋은 낙원에 이를 때까지 인내하며 서로 격려하는 가정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