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기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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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기도력

June

6월

2018년도 장년 기도력

선교적 교회와 선교적 그리스도인

복음의 길을 만든 사람들 우리나라에 재림 기별이 들어온 때부터 6·25 전쟁 때까지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믿음의 영웅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 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느꼈으 면 합니다.

오늘날 교 회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이유 는 정치적인 이슈에 교 회가 적극 적으 로 관 여하지 않 아서가 아닙니다. 교 회의 능력은 정치에서가 아니라 도덕적이고 영적인 권위에서 나옵니다. 정치적인 것들은 일시적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도덕적·영적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영향력은 변함없이 영원합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목적에 뿌리내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일상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는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왼쪽부터: 강성수 목사, 자부 설현희, 손주 강로엘, 아들 강하라, 지명자 사모

필자 강성수 목사 호남합회에서 37년간 목회하고 2017년에 은퇴했습니 다. 2008년, 삼육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논제: ‘한국 재림교회 교회 개척 역 사 분석’), <호남합회 선교 100년사>를 편집했습니다.

이달의 필자_ 봉원영 목사 서중한합회와 미국(미시간합회, 중가주합회)에서 목회 했고 현재 삼육대학교에서 실천신학을 가르치고 있습 니다. 그리스도인의 바른 삶을 꿈꾸는 하나님의 선교 적 교회(missional church)와 현존하는 미래인 다음 세대를 위한 양육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와 교육 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201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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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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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금)

하나님의 선교적 교회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 3:15)

복음의 길을 만든 사람들 “주님을 위하여 길을 곧게 만들어라”(요한복 음 1장 23절, 쉬운성경)

최근 전 세계적으로 교회 안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개념 중 하나 가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입니다. 선교적 교회는 단순히 건물로서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

의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20세기 말 선교적 상황과 형편에 대한 선

파될 것이며, 그때서야 세상의 끝이 올 것이다.”

교 신학자들의 자기 반성적 성찰에서 시작된 학문적 이론인 동시에 운동입

라고 말씀하셨어요. 복음을 전하려면 길이 있

니다. 학자들에 따라서 선교적 교회, 선교적 교회론, 선교적 교회운동 등으

어야 하지요.

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사실 선교적 교회는 이전에 강력한 기독교 체제를 이루며 전 세계로 선교사를 파송했던 나라들이 20세기에 급격한 세속화의 영향으로 오히려 선교지와 같이 되어 버린 상황에 직면하면서부터 비롯되 었습니다. 1990년대에 교회가 이처럼 혼란을 경험하게 되었던 데는 당시에 출현한 시대적 사조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때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사회 각 분야에 서 이미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순수 학문과 건축 분야에서 시작된

길은 참으로 중요해요. 길이 잘 닦여 있고, 곳 곳에 이정표가 붙어 있으면, 목적지를 찾기가 아주 쉬워요. 기차는 철로로 다니고, 자동차는 도로로 다녀요. 그래야만 속력도 낼 수 있고 안 전해요. 등산을 할 때도 등산로를 따라가야 안 전하고 힘이 덜 들어요.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일 수 있 도록 침례 요한은 복음의 길을 만들었어요.

포스트모더니즘이 대중문화로 파고들어 패션, 음악, TV, 영화, 연극, 예술,

무엇이 복음의 길일까요? 믿지 않는 친구에

그래픽 아트, 문학 등에도 등장했습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일상생활에

게 예수님을 소개했다면 내가 복음의 길이에

표준적 사고로 자리 잡아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쳤고 교회는 그러한

요. 복음이 담긴 책을 친구에게 전해 주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소산과 대면했습니다. 다원주의에 영향 받은 사람들은

그 책도 복음의 길이 될 수 있어요.

교회 안에서조차 종교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정의하기 시작했고 결과적 으로 종교적 신념과 정체성의 약화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포스트모던적 사고와 종교다원주의의 급진적이고 총체적인 영향력이 교회의 전통적인 역할을 점령해 버렸고 마침내 교회는 사회 주변 부로 밀려나 버렸습니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잃은 채, 이전까지 실 효를 거두었던 어떤 선교적 방법도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잃어버린 정체성과 사회 공신력을 회복하기 위해 교회 모임과 전도 프로그 램을 어떻게 개발해야 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정도가 아니라 교회의 ‘교회 다움’을 회복해야 한다는 정직한 반성과 새로운 시도의 필요성에서 선교적 교회가 등장한 것입니다. 오늘날은 선교적 역량이 어느 때보다도 잘 구비된 시대지만 동시에 선교 가 가장 어려워진 시대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교적 교회’를 꿈꾸며 그

길을 만들 때는 여러 사람이 협력하여 만들 어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도 부모님, 선생 님, 목사님, 성경과 교회의 책들이 복음의 길이 되어 준 덕분이에요. 1904년 이전에는 한국에 재림교회가 없었는 데 하나님께서 쓰시는 일꾼들이 우리나라에 복음을 가지고 들어왔어요. 그들은 사람들에 게 전도하여 복음의 길을 만들었어요. 그 뒤 선 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학교를 세우고 학 생들에게 복음을 가르쳤어요. 그들에게 배운 학생들은 목사님들이 되어 복음의 길을 잘 닦 았어요. 이 길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까지 복음 이 전해진 거예요.

교회 안에서 신앙을 유지하면서 주의 재림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 모든 그

이번 달에는 우리나라에 복음을 가지고 들

리스도인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6월은 하나님

어온 분들, 선교사님들,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께서 원하시는 선교적 교회와 선교적 그리스도인의 삶을 조명해 보고자 합

세운 분들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기로 해요.

니다. 76  교회지남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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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안)

우리 인생의 ‘십 시’

이응현과 손흥조 - 한국인 최초의 재림교인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십 시쯤 되었더라”(요 1:39)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 다”(마가복음 16장 16절, 쉬운성경)

본문에서 요한은 60년도 훨씬 더 지난 자신의 과거의 경험을 추억하고 있 습니다. 60여 년 전의 어느 날, 예수님을 처음 만나 그분의 제자가 되었던 순

미국 이민회사가 하와이 이민을 원하는 사

간을 이야기하는데 그때가 ‘제십 시’였다고 기록합니다. 60년도 더 지난 그

람을 모집했어요. 수많은 사람이 하와이에 가

옛날의 사건에 대해 정확한 시간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의 경험

서 잘 살아 보겠다고 모여들었어요. 그 당시 우

이후로 그는 전혀 다른 사람,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오

리나라는 살기가 무척이나 어려웠거든요. 1904

늘 우리에게 ‘제십 시의 경험’은 무엇일까요? 지난날의 과거를 돌아볼 때에 인생의 영적인 전환점이 되었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각자의 영적인 인생의 출발점, 그 전환점을 여전히 기억하며 살고 있습니까?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요한은 이렇게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주 하나님 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 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8; 22:13).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처음이고 나

년, 이민선에 탄 사람들 중에 이응현, 손흥조 선생님 두 분이 있었어요. 이민 수속을 위해 일 본 고베항에 내려서 기다리는 동안, 이응현 선 생은 시내를 구경했어요. 그러다가 ‘제칠일 재 강림교파 고베교회’라고 적힌 긴 간판을 보았 어요. 호기심이 생겨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마 침 구니야 히데 전도사님이 그를 보고 들어오라

중이라고 드러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자기 이름을 공표

고 손짓을 했어요.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한문

하실 때는 항상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고 그것을 통해 전달하려는 확

으로 글을 써서 함께 이야기하고, 성경 공부도

실한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이기 때문

했어요. 다음 날부터는 손흥조 선생도 함께 가

입니다(호 12:5).

서 성경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렇다면 ‘알파와 오메가’라는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1904년 6월, 두 분이 고베를 떠나기 전 마지

말씀하시려는 것일까요? 우리 인생의 처음(알파)도 생각하고, 끝(오메가)도

막 안식일이었어요. 두 사람은 저녁 늦게까지

생각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성경을 배운 뒤 구니야 전도사님에게 침례를 베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하겠다고 가슴으로 고백했던 그 처음의 순

풀어 달라고 간청했어요. 그날 밤, 폭풍우가 몰

간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절대로 지금처럼 살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

아쳤지만 횃불을 밝히고 뒷산 폭포에 올라가

지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삶의 마지막을 대하게 될

침례를 받았지요.

지를 생각한다면 그리고 주님이 재림하시는 세상 끝 날에 우리가 과연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서게 될지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절대로 지금처럼 살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삶이 더 진지하고 신실해지지 않을까요? 더 거룩한 삶 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요? 우리의 처음을 잊어버리고 우리의 끝을 잊어버 리며 사니까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자신의 처음을 정확하게 기억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60

이후 이응현 선생은 하와이로 가서 평생을 전도하며 살았어요. 미국 최초의 한인 재림교인 이세요. 손흥조 선생은 이민 수속이 안 되어 하 와이에는 못 갔지만, 구원의 기쁨 덕분에 실망 하지 않았어요. 도리어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하 며, 돌아오는 배 안에서 사람들에게 구원의 소 식을 전했지요. 귀국 후에도 해주, 대구, 부산

년이 훨씬 지났어도 그는 그 순간을,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삶이 변화되었

등 여러 지역을 다니며 많은 이에게 복음을 전

던 그 ‘십 시’의 경험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요한이 마지막

했답니다.

까지 그러한 믿음과 신앙을 견지할 수 있었던 분명한 비결이었습니다.

201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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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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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일)

처음보다 나중이 나은 삶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 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요 3:1~2)

임기반 - 최초의 한국 교회 지도자 “집으로 돌아가서…사람들에게 말해라”(누가 복음 8장 39절, 쉬운성경)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간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회원이며 유대인의 영적 선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장례식 때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이나 가

배 안에서 손흥조 선생이 전도한 사람들 중

지고 온 것으로 보아 그는 부자였을 것입니다(요 19:39). 그러한 그가 예수님

에는 하와이에서 일하다가 귀국하는 임형주 선

을 찾게 된 강한 동기는 성전을 개혁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메시아적 권

생도 있었어요. 임형주 선생은 예전에 고향에

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요 2:13~22). 어두운 밤에 예수님을 찾아오게 된

서 감리교회를 개척하고 지도한 적이 있는 분

것은 자신의 지위와 체면 때문이었을 것입니다(요 12:42). 요한복음에는 니고데모에 관한 기록이 세 번 언급됩니다. 첫 번째는 “밤 에 예수께” 찾아와 거듭남의 비밀을 들었던 사건입니다(요 3:1). 그런데 요한 은 그가 단순히 시간적으로 밤에 찾아왔음을 말하는 정도가 아니라 헬라 어 문법의 특별한 용법을 이용해서 그가 “밤에 속한” 사람이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밤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의 생각이 밤이었고, 그의

이었어요. 독립협회의 일을 하다가 일제가 거기 가담한 사람들을 잡으려고 하자 다른 나라로 피했지요. 그 뒤 미국 이민회사를 통해 하와이 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고베에 들렀을 때는 신 분을 밝히지 않고 재림교회를 방문하여 구니 야 목사님에게 성경을 배운 적도 있었어요. 나 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세 천사의 기별을 전하

인생이 밤이었고, 그의 삶이 밤이었습니다. 그의 본질은 밤 그 자체였습니다.

기로 결심했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배 안에서

두 번째로 요한복음 7장에 나타나는 니고데모의 모습을 화잇 선지자는

손흥조 선생을 만나게 되자 얼마나 기뻤는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그 진리를 마음속에 숨겨 두었으므

몰라요. 두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또

로 3년 동안 밖으로 나타난 결과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가

함께 복음을 전하기로 약속했어요.

씨 뿌린 밭을 잘 알고 계셨다. 밤에 고적한 산에서 귀 기울이는 한 사람에게

임형주 선생은 인천에서 손흥조 선생과 헤어

하신 그 말씀은 상실되지 않았다. 니고데모는 한동안 그리스도를 공개적으

진 후, 서울정동교회를 방문했다가 경찰이 찾고

로 시인하지 않았지만 예수의 생애를 주목하고 그의 교훈을 숙고했다. 그는

있으니 피하라는 말을 들었어요. 아버지가 돌

산헤드린 회의에서 예수를 죽이려는 제사장들의 계획을 거듭거듭 좌절시

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상복을 입은 채 고향

켰다”(소망, 176).

에 갈 때도 경찰에 잡히지 않기 위해 걸어서 가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예수님의 장례식을 적극적으로 돕고 참여하는 니고데모의 모습이 나타납니다(요 19:39). “유대인들이 어린 교회를 멸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때에 니고데모는 그 교회를 보호하려고 나 섰다. 니고데모는 더 이상 조심하거나 의심하지 않았고, 제자들의 신앙을 격 려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유지하는 일을 돕고 복음 사업을 발전시키 는 데 재산을 사용했다. 과거에 그에게 존경을 표했던 이들이 이제 그를 조 롱하고 핍박하였으므로 그는 이제 세상 재물에는 가난하게 되었으나, 자신 의 신앙을 옹호하는 일에 흔들리지 않았다”(행적, 104~105). 이처럼 니고데 모는 믿음의 진보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더 욱 확실한 믿음을 견지했던 사람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믿음이 깊어지고 끝이 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선교적 그리스도인의 또 다른 특징입니다.

78  교회지남

야 했어요. 청년 정원걸의 집에 숨어 지낼 때, 뜻 을 같이하는 강창오, 정원걸, 양제환에게 성경 적인 교회를 한국에 세우겠다는 계획을 말했어 요. 이름도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자신의 삶 을 세운다’는 의미로 임기반으로 바꾸었지요. 고 향에서 전도회를 할 때는 경찰들에게 잡혀갔다 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음 날 풀려난 적도 있어 요. 임기반 선생은 한국 교회 초창기에 교회를 든든하게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한 분이랍니다.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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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일(월)

갓 구운 빵 향기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요 6:48)

정원걸 - 신실한 심부름꾼 “마가 요한도 그들을 돕기 위해 함께 갔습니 다”(사도행전 13장 5절, 쉬운성경)

빵을 만들려면 알맞은 조리법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작 손님을 끌어 모으는 것은 조리법이 아닙니다. 빵집의 간판도 아닙니다. 솔깃한 광고 문구 나 화려한 포장, 경품의 약속도 아닙니다. 경품 때문에 빵을 살 수는 있지만

정원걸 청년은 평안남도 용강군 주홍리에서 농사를 짓는 신실한 청년이었어요.

그것은 경품에 대한 미련 때문이지 직접적으로 빵 때문에 사는 것은 아닙

그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 자기 집에 임기반

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빵을 사려는 사람의 발길을 끄는 것은 그런 것이 아

선생을 숨겨 주고 여러 가지 심부름을 했어요.

니라 바로 갓 구운 빵 냄새입니다. 구수한 빵의 냄새가 더욱 허기를 느끼게 하고 빵을 맛보고 싶다는 갈망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빵(bread)’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요 6:48). 그분 은 정말 갓 구워 낸 빵이셨습니다. 그리하여 이 땅을 갓 구운 빵 냄새로 가 득 채우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빵 냄새를 맡으며 본능적으로 군침을 흘렸 고, 오랫동안 애써 참아 온 허기가 되살아났습니다.

어느 날 임기반 선생이 자신의 가족들과 정원 걸, 강창오, 양제환을 불렀어요. 그리고 친형님에게 이런 부탁을 했어요. “형 님, 저는 쫓기는 몸이라 붙잡혀서 다시 돌아오 지 못할 수도 있으니 형님이 제 가족까지 맡아 주십시오.” 그런 다음, 임기반 선생은 앞으로 자 신은 안식일교회를 세워 사람들을 구원하고,

영혼을 유혹하여 맛보게 하는 것은 그 냄새입니다. 또 영혼을 유혹하여

학교도 설립할 예정이라고 말했어요. 그 말을

먹게 하는 것은 그 맛입니다. 분명 조리법이나 브랜드나 포장이 아닌 것입니

들은 부인이, 쫓기는 몸으로 그런 일들을 하면

다. 사람들이 빵을 찾는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이 아니라 빵 그 자체를 원하기

위험하니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된 후에 하

때문인데도 우리는 종종 가난한 이들에게 빵을 주기보다는 조리법을 줄 때

면 안 되겠냐면서 큰 소리로 울었어요.

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조리법은 ‘말’에 해당합니다. 그러면 빵은 그 말

임기반 선생은 “이 기회에 참된 진리를 전하

을 통해서 이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빵 대

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오.”라고 대

신 조리법을 주었다는 것은 직접적인 행동보다는 단순히 말하는 것에 너무

답했어요. 선생님의 뜨거운 신앙심과 높은 순

앞서 있었다는 뜻입니다.

교 정신에 모두가 크게 감동을 받고 그 뜻을 따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혹시 이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 까? 어느 날 그리스도의 몸인 이 교회가 온통 말문이 막혀 버린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말입니다. 한 글자도 쓸 수 없고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한마디도 말할 수 없다면 세상은 복음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 순간에 남 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의 삶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우 리가 지금까지 말뿐인 복음을 전했다면, 그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 을 때에 남는 것은 결국 하나도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말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것만큼 그 말을 삶과

르기로 했어요. 정원걸 청년은 임기반 선생의 심부름꾼으로 서,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데 많은 역할을 했어 요. 우리나라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구니야 목 사님을 초청할 때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의 이 름으로 편지를 보내기 위해 부근의 여러 마을 을 다니며 70여 명의 동지들을 모으기도 했어 요. 이후에도 문서 전도로 복음을 전하며 하나 님께 충성했지요.

행동으로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아프리카에 가서 원주민 속에서 일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지도자도 필요하지만

하고 싶으냐?”는 물음에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자신의 삶이 곧 설교가 되기

그 곁에서 도와주는 사람도 매우 중요하답니다.

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엿새 동안의 삶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분명하고 설득력 있는 안식일의 본문이 되기를 그는 원했던 것 입니다. 이런 교회가 진정 선교적 교회입니다. 201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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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강창오 - 편지를 받아쓴 충성스런 일꾼 “빨리 내게 와 주었으면 합니다”(디모데후서 4 장 9절, 쉬운성경)

골드러시가 한창이던 19세기 말, 미국 북서쪽 몬태나주에 있던 여섯 사람 이 사금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내려가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필요한 돈과 장

진남포에서 부유하게 살며 한문과 일본어

비를 준비하고 부푼 꿈을 안고 캘리포니아에 도착했지만 결국 금맥을 찾지

를 배운 25세의 강창오 청년은 1904년 여름, 임

못했고 돈과 식량마저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인디언의 습

기반 선생과 정원걸, 양제환을 만났어요. 그들

격을 받아 목숨만 겨우 건진 처지가 되었고, 타지에서 더 이상의 희망이 보

은 구니야 목사님을 초청하여 교회를 세우기로

이지 않자 그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힘들고 지친

뜻을 모으고, 각자 할 일을 정했어요. 양제환

귀향길에 잠깐 쉬려고 어느 모래사장에 주저앉았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사

은 임기반 선생을 보호하고, 정원걸은 각 지방

금밭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모았어요. 임기반 선생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발견한 사금밭에서 어설프게 채금을 시작하면 소 문이 날 테니 얼른 고향으로 돌아가서 모든 준비를 완전히 해서 가능한 한 빨리 다시 돌아오자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고향에 돌아온 이들은 비밀리에 사금을 캘 준비를 마친 뒤 한 사람씩 몰래 마을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렇게 사금밭에 도착했 는데 놀랍게도 마을 사람 백여 명이 이미 거기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여섯 사람 중 다른 사람에게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완

은 한문으로 편지를 쓰고, 강창오 청년이 일본 어로 번역했지요. “진남포 일대에 신자 30명이 생겼으니 어서 와서 도와주십시오.” 하는 내용 의 편지를 구니야 목사님에게 보낸 뒤, 얼마 후 에 답장이 왔어요. 일본과 러시아가 전쟁 중이 고, 건강도 좋지 않고, 말도 통하지 않으니 한국 에 올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간절한 내용으로 다시 편지를 보냈어요.

전히 망하고 돌아온 그들이 몇 달 동안 고향에서 재기를 위해 준비하는 동

“예수 그리스도의 종 강창오는 구니야 히데 형

안,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얼굴에서 기쁨과 행복을 보았습니다. 도무지 망

님에게 문안합니다. …이제 우리(남자 16명, 여자

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그들이 금광을 발견한 게 틀

14명, 아이 6명)는 믿고 침례 받기를 원합니다.

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 여섯 명을 끊임없이 주시

이 편지를 보시면 지체 없이 오십시오. 저희는 형

했고 그들이 하나씩 마을을 떠날 때 가만히 뒤따라 나왔던 것입니다.

님이 오시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사금밭 하나만 발견해도 얼굴빛과 마음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한문과 일본어를 섞어서 편지를 쓴 후에 36

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계시는

명이 이름을 쓰고, 서명을 했어요. 감동을 받은

하나님 나라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내 삶의 현실로 다가오니 실제

구니야 목사님은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내고 우리

내 삶에는 걱정과 근심거리가 있다 할지라도 그곳에서 남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한 기쁨과 감사와 평안을 누리는 그 상태, 그것이 바로 예수를 믿는 것 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물어봅니다. “너 이렇게 어려운데, 너 사업이 안 되어 이 렇게 힘든데 어떻게 그렇게 행복할 수 있니? 그 기쁨은 도대체 무엇이니? 너 믿는 예수 나도 한번 믿어 볼까?” 나 혼자 교회 왔는데 그 자리에 백 명 이 따라온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 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것입니다.

80  교회지남

나라에 와서 복음을 전했어요. 그때 강창오 청 년은 통역을 했지요. 진남포에 한국 선교본부 가 조직될 때는 선교본부의 서기 겸 회계가 되 었고 나중에는 의사가 되어 의료선교를 했어 요.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통하여 일하셔요.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6월 6일(수)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

구니야 히데 목사 최초의 전도 설교자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2)

“바울은 말씀을 전하는 일에만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18장 5절, 쉬운성경)

하나가 되지 않는 교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아무리 기도해도 소 용없습니다. 그 속에 형제에 대한 불신이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구니야 목사님은 36명이 보낸 편지를 받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저절로 기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기도

한국에 오려고 수속을 밟았어요. 일본 교회 책

하실 때, 아버지 하나님과 자신이 하나였던 것처럼 제자들도 자기와 하나가

임자인 필드 목사님께 허락도 받았어요. 그런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하신 것입니다(요 17:22).

데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 갑자기 심한 병에

그것이 세상을 위한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승

걸렸어요. 날씨마저 나빴지요. 구니야 목사님은

천하시기 전 가장 간절히 기도했던 주제가 백성의 연합입니다. 진정 무엇 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순교하는 마음으로

문에 예수님이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셨을까요? 서로 다른 사람이 모인 교

배에 올랐어요. 그 당시엔 전화로 소식을 전할

회 안에서 모두가 하나 되지 않고는 교회가 그 기능을 감당할 수 없을 뿐더 러 그 속에서 희망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역설적으로 마지막 시대에 주님의 백성 사이에서 서로 연합하는 정신이 부족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의 온전한 연합만이 마지막 시대를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수가 없어서 강창오, 정원걸 등 수십 명이 날마 다 진남포 부두에 나가서 목사님이 오시기를 기 다렸어요. 1904년 8월 9일 저녁, 드디어 구니야 목사님 이 진남포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기다리는 사람 이 아무도 없지 뭐예요. 기다리다 지친 형제들 이 다 집으로 돌아간 뒤였거든요.

“마음에 성령이 역사하시면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해진다. 그리스

다행히 구니야 목사님은 정원걸 형제의 주소

도와 연합할 때 성도 간에 연합하는 끈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하나 된 모습

만으로도 목적지를 잘 찾아갔어요. 구니야 목

은 그리스도의 위엄, 덕 그리고 죄를 지고 가시는 그분의 능력을 세상에 보

사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피신 중이던 임기

여 주는 가장 설득력 있는 증언이 된다”(원고, 111, 1903).

반 선생이 찾아왔어요. 다른 동지들도 다 모였

교회 안에 어떠한 문제가 있고, 그리스도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면

지요. 뜻밖에도 이웃 사람들까지 일본 사람이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임

왔다며 구경하러 몰려들었어요. 전도의 기회가

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온 셈이지요. 구니야 목사님이 석판에 한문으

“큰 동그라미를 그리고 원둘레에서 중심을 향하여 반지름을 여럿 그려 보

로 성경 내용을 쓰면 임기반 선생이 우리말로

라. 반지름들은 유원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서로 더욱 가까워진다. 그리스도

설교를 했어요. 필요할 때는 강창오 청년이 통

인의 삶도 그와 같다. 그리스도께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더욱 가까워진다. 백성이 일치된 행동으로 연합할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가정, 179). 서로를 바라보면 우리 모두 연약하고 죄 많은 인간이기에 때때로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고 그 예수님만을 바 라본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과 거리가 가까워진 만큼 내 형제 들과의 관계도 가까워진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께서 돌아 가시기 직전, 그 마지막 순간까지 그토록 원하셨던 것이고 오늘날 하나님의

역했지요. 5주 동안 16마을에서 전도회가 열렸 어요. 많은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였어요. 용동 마을에서 전도회를 할 때는 1주일 전도로 교회 가 생기기도 했어요. 다른 마을에서도 성령의 역사로 한꺼번에 수십 명이 복음을 받아들였지 요. 이런 일들이 계속하여 일어났어요. 구니야 목사님은 힘든 줄도 모르고 기쁜 마 음으로 복음을 전했답니다.

선교적 교회가 반드시 경험해야 할 일입니다.

201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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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6월 7일(목)

교회는 생명을 다루는 곳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롬 14:1)

필드 목사 - 교회를 조직한 지도자 “제자들을 위해 각 교회에 장로들을 임명하 고”(사도행전 14장 23절, 쉬운성경)

만약 두꺼운 돌벽 뒤에 금괴가 엄청나게 많다면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서 돌을 부수고 꺼내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독수리 알 안에 있는 생명을 꺼

구니야 목사님은 일본 교회의 책임자 필드

내려면 따뜻하게 품고 기다려 줘야 합니다. 품어 주고 사랑해 주면 그 안의

목사님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필드 목사님은

생명이 자라서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일본 도쿄에서 출발하여 8일 만에 진남포에 도

사랑을 강조하는 이유는 사랑으로 따뜻하게 품어 줘야 속사람이 자라기 때문입니다. 속사람이 자라면 스스로의 힘으로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습 니다. 그런데 껍질을 망치로 깨는 줄로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망치로 얼마든지 껍질을 깰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망치로 알을 깨면 단 하나의 생 명도 건질 수 없습니다. 이 시대는 비평과 비난의 시대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비평 하기를 좋아합니다. 그것은 망치로 달걀을 깨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 안에

착했지요. 필드 목사님이 한국에 와서 보니 새 신자가 많았어요. 목사님은 교회를 조직할 때 가 되었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1904년 9월 17 일에 우리나라 최초의 재림교회인 선돌교회를 조직하고 장로들을 세웠어요. 다음 날은 안식일 이었어요. 선돌감리교회 예배당에서 예배드리 려고 하자 감리교 선교사가 어찌하여 재림교회 가 감리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느냐고 예배 중지

서도 정의(正義)와 하나님의 뜻을 빙자하여 “교회가 이러면 안 돼!” 하면서

를 요구했어요. 사실은 선돌감리교회 교인 중

자꾸 망치를 휘두르고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이 구니야 목사님과 성경 공부를 하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 방법은 아닙니다. 물론 죄를 무조건 덮어 주거나 교

면서 재림교인이 되었어요. 그 결과 선돌감리교

회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교회는 생명을 다루는 곳임을 잊지

회를 짓는 데 비용을 낸 분들이 대부분 우리 교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인이 되었기에 교회 건물도 가져오려고 했던 거

현재 교회에는 수많은 인재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인

예요. 필드 목사님은 그렇게 싸우는 것은 하나

재가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

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면서 별도로 건축 계획을

는 무엇입니까? 교회가 무능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망치와 다이너마이

세우라고 했어요. 그 후에는 강대모루교회, 용

트의 힘을 너무 믿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힘이 망치나 다이너마이트에서 나

동교회, 바매기교회를 조직했어요. 9월 27일에

오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깨뜨리기는 잘하지만 생명의 역사는 없습

는 모든 교회 대표자와 진남포로 모여서 총회를

니다. 망치로 깨기를 잘하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의 능력이 무엇인 지 다시금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의 능력은 말씀과 사랑으로 성도를 품어 서 성도 안에서 그 속사람이 자라서 스스로 껍질을 깨도록 돕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동료가 되기를 원하는 형제가 있거든 그의 믿음이 약하더라도 따뜻이 맞이하십시오. 옳고 그른 일에 대해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비판 해서는 안 됩니다”(롬 14:1, 현대어성경).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아무것도 아니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고전 13:1~3). 말씀을 공급하고 사랑으로 품어야 속사람이 자라는 것입니다. 사 랑의 의미를 깨닫고 사랑의 역사로 말미암아 생명들을 얻는 능력 있는 교 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82  교회지남

했어요. 이 총회에서 한국 선교본부를 조직하고 책임자로 임기반 장로, 서기 겸 회계로 강창오 형제를 세웠어요. 그리고 9월 30일, 구니야 목사 님과 필드 목사님은 일본으로 떠났어요. 일본에 도착한 필드 목사님은 한국에서 일어 난 놀라운 일을 대총회에 보고했어요. 또 한국 교회의 발전을 위해서 선교사들이 필요하니 빨 리 보내 달라고 요청했어요.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6월 8일(금)

우리 외에는 없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 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이봉승 장로 - 최초의 교회 장로 “장로들에게 순복하고”(베드로전서 5장 5절, 개역한글)

필립 얀시의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이라는 책에는 얼 파머라는 목사 님과 관련하여 미국의 한 고등학교 합주단의 연주 후에 있었던 이야기가 소

임기반 선생이 구니야 목사님을 초청하려고

개되어 있습니다. “그 고등학교 합주단이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했을 때

동지들을 모집할 때 선돌마을에서도 여러 명

우리는 대경실색하고 말았습니다. 귀머거리였지만 베토벤이 그 소리를 들었다

이 참여했어요. 그들은 감리교회 신자였고, 그

면 무덤 속에서 통곡할 노릇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물을 것입니다. 왜 저렇게

중에는 이봉승 선생도 있었어요. 구니야 목사

괴롭히느냐고. 왜 저 어린 학생들에게 불후의 작곡가 베토벤이 구상한 음을 저토록 애써 가며 재현하게 하느냐고.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그러나 우리는 학생들에게 완벽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저 유명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도 완벽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습니다. 객석에 앉은 청중들 중에는 그 학생들의 연주를 통해서야 베토벤의 위대한 9번 교향곡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완벽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청중들이 그 래도 베토벤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길은 학생들의 그 연주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 알고 있습니다. 지 금처럼 기도하고 말씀을 보다가 혹은 예배 중에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하

님은 여러 마을에서 모인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쳤어요. 일본인 선교사가 친절하고 성경도 잘 가르친다고 소문이 나자, 많은 사람이 모여 들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성경을 배웠어요. 거 기에 있던 선돌감리교회 교인들이 구니야 목사 님에게 듣고 배운 이야기를 다른 감리교인들에 게 전했어요. 그러자 약 70명 정도 되는 선돌감 리교회 사람들이 구니야 목사님에게 “더 깊이 배우고 싶으니 부디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십시 오.” 하고 요청했어요.

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면서도 그 감동을 오후까지 간직할 수 있을지는 아

구니야 목사님은 선돌감리교회 예배당에서

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인생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특별

전도회를 열었어요. 많은 사람이 안식일을 깨닫

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복음을 함께 나누라고 하십니다. 나누는 삶을 살

고 침례를 받았어요. 그리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입니까? 비록 작곡가가 애초에 구상한 음

재림교회인 선돌교회가 세워졌어요. 교인은 32

에는 결코 이르지 못하겠지만, 불완전하게나마 세상에 들려줄 사람은 우리

명이었고 이봉승 선생이 초대 장로가 되었어요.

외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현실을 아시면서도 우리를 지

처음에는 예배당이 없어서 이봉승 장로님의 동

금의 자리에 있게 하셨습니다. 가정, 직장, 거리에서 또 학교에서 오늘 만나

생인 이학승 집사님 집에 모였어요. 교회를 건축

게 될 그 많은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우리를 믿 으시고 그들을 우리 있는 곳으로 보내셨습니다. 너무나 가슴 벅찬 사실이며 복음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가 여전히 우리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 를 깨닫고 그 목적대로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은혜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할 일

하기 위해 모든 교인이 매일 밤 짚신 한 켤레씩 을 만들어 헌납하기로 했지요. 연말까지 300원 을 모았는데, 그 당시에는 큰돈이었어요. 그 헌 금으로 초가 네 칸의 집을 지었어요. 바로 그 집 이 우리나라 최초의 재림교회 예배당이에요. 이 선돌교회로 많은 청년이 모여들었어요. 이

을 지정해 주신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신분과 위치에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봉승 장로의 지도 덕분에 그들은 재림교회의

나를 보내소서’(사 6:8)라고 말해야 한다. 말씀을 전하는 목사와 간호사, 선교

훌륭한 일꾼들로 성장했어요.

사와 그리스도인 의사에게 그리고 상인, 농부, 전문직의 사람, 기술자 등을 막론한 그리스도인 개인들, 그 모든 사람에게 그 책임이 지워져 있다.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장로님들을 존경 해야 합니다.

들에게 그들을 구원하는 복음을 제시해 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우리가 종사하고 있는 모든 사업은 이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치료, 134). 201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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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6월 9일(안)

방향은 속도보다 중요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눅 2:49)

이근억 선생 - 최초 삼육학교 인 광염학교 선생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 이다”(마태복음 5장 13~14절, 쉬운성경)

예수의 나이가 열두 살이 되었을 때, 요셉과 마리아는 그를 데리고 유월 절 참석차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명절 기간을 은혜롭게 보내고 돌아오는 길

이근억 선생은 시골사람이었지만 한문에 정

에 예수를 잃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생각해 보면, 유월절은 예수님의

통했고 한약방을 경영하는 동네 유지였어요.

보혈로 다시 살게 된 경험에 감사하는 잔치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 잔치

그가 24세에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하자 집안에

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소년 예수의 부모는 그 명절에

서는 난리가 났어요. 가족들은 물론 친척들과

참석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갔다가 정작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

동네 사람들까지 그를 비난하고 욕했고, 집에서

고는 그 예수님을 성전이 아닌 “친척들과 아는 사람들 가운데서” 찾았습니

도 쫓겨났어요. 그러나 끝까지 예수님을 믿겠다

다(눅 2:44). 예수님은 당연히 “아버지의 집에” 머물고 계셨는데도 말입니다.

고 하자 아버지가 다시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

예수님을 상징하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희생 제물을 드렸지만 정작 모든 예

어요. 무릎을 꿇고 앉으니 아버지는 “죽이지는

식의 주인공인 예수님은 잊었습니다. 예식에만 집중하느라 정작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안식일에 교회 갔다가 예수를 잃어버렸다.’ 우리의 안식일 모습은 과연 이날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에게로 모든 관심을 집중하며 참으로 행복 가득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까? 정신없이 드

않을 것이니 안심해라. 너는 독자임에도 조상 의 제사를 버리고 서양교를 믿겠다는 것이로구 나.” 하고 탄식했어요. 이근억 선생은 기뻤어요.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어요. ‘책망이 이뿐이라면 정말 감사합니다. 효도하겠습니다.’ 그런 다음, 밤낮으로 사람들과 모여서 성경을 공부하고, 한약방 일도 했어요. 얼마 후에는 한약방 한편

리는 안식일 예배, 오후에 각종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행사들, 제직

에 방을 만들고 아이들 10여 명을 모아서 가르

회의, 기타 모임들 가운데 혹시 예수님 중심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지는

치기 시작했어요. 이름을 광염학교라고 했는데

않습니까? 교회가 성도로 하여금 매 안식일 교회에서 예수님을 잃어버리며

마태복음 5장 13~14절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살도록 하지는 않았는지 겸손히 자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안식일이 너무

말씀에 따른 것이었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삼

분주합니다. 안식일 행사를 줄여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안식일에 교회에

육학교인 셈이지요.

서조차도 예수님을 생각할 겨를 없이 그날을 보내고 있는 이것이 부인할 수

순안에 의명학교가 생기자 이근억 선생은 광

없는 현실이라는 말입니다.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일까요? 정말 괜찮은 일일

염학교를 다른 선생에게 맡기고 의명학교에서

까요?

성경을 배우는 학생 겸 한문 선생이 되었어요.

방향은 속도보다 중요합니다. 우리의 방향을 다시 맞추면 좋겠습니다.

성경 공부를 마친 1911년부터는 목사가 되어 많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전

은 곳에 교회를 세웠어요. 1915년에 안수를 받

10:31)는 말씀처럼 우리의 모든 삶의 방향과 초점을 예수님에게로 다시 정 조준하여, 예수님을 잃어버리는 그러한 일이 우리 교회와 우리 각자의 삶에 서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눅 2:46). 예수의 부모는 성전에서 잃어버린 예수를 그 성전에서 다시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잃었던 그 예수님을 안식일에 성전에서 다시 찾을 차례입니다.

84  교회지남

고 평생 주님을 위하여 일하다 1932년에 주님 안에서 잠이 드셨어요.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예수님께 충성한 사람 들을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만드셔요.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6월 10일(일) 스미스 목사 최초의 선교사

책임감에 의해 요청되는 봉사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 리요 하더니”(막 16:1~3)

“기도하고…안수하여 보내니라”(사도행전 13 장 3절, 개역한글)

그들을 산 위에 있는 무덤으로 이끈 것은 희망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셨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은 채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것

대총회는 필드 목사님으로부터 한국에서 일

은 단지 의무였습니다. 순진한 헌신이었습니다. 그들은 되돌려 받을 것을 기

어난 놀라운 일에 대한 보고와 함께 선교사를

대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운명하신 예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겠습

보내 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니까? 이 여인들은 무엇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드리기 위해 산을 오르고

대총회는 여러 나라에 한국의 선교 활동 소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실 무덤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무덤은 봉

식을 전했어요. 연말기도주일 낭독문에도 경험

인되어 있었고 그 여인들에게는 무덤을 막은 돌을 움직일 힘도 없었습니다. 돌을 굴릴 수도 없는데 도대체 그들은 왜 무덤에 가는 것입니까? 그들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자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못 만나도 좋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가 있는 곳까지 가겠다.’ 이러한 정신을 소유했던 것 입니다. 그보다 더 고귀한 동기도 없습니다. 그것은 책임감에 의해 요청되는 봉사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선교적 그리스도인을 향하신 주님의 부르심 입니다.

을 갖춘 선교사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한국에 선교사로 가서 일할 사람을 찾는 글을 실었어 요. 그렇게 해서 찾은 사람이 사명감에 불타는 29세의 젊은 스미스 목사님이에요. 스미스 목 사님은 1905년 8월, 천막전도회를 이끌다가 부 름을 받고 그해 바로 우리나라에 오셨어요. 먼 저 서울에서 우리말을 조금 배운 후 1906년 봄 에 선교본부가 있는 진남포로 갔지요. 그해 6월

아버지께서 그 여인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

에는 순안에 있는 새 신자 22명에게 말씀을 가

들이 산길을 걸어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마음에 미

르치고 침례를 베풀었어요. 그리고 역이 있어서

소를 보내고 계셨고 그들의 헌신에 감동하셨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을 준

교통이 편리한 순안으로 선교본부를 옮기고,

비하고 계셨습니다.

삼육학교도 세웠어요. 스미스 목사님은 교통비

천사가 돌을 굴려 낸 이유가 무엇일까요? 누구를 위해서 그 돌을 굴려 내

조차 아끼기 위해 평양에서 순안까지 걸어 다닐

었을까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그분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첫 번

정도로 검소했어요. 이렇듯 헌신적으로 봉사하

째 단계로서 천사들이 돌을 굴려 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시던 중에 질병으로 딸을 잃는 슬픔을 겪었고,

러나 예수님이 밖으로 나오시도록 천사들이 꼭 돌을 굴려 내야만 했을까

목사님도 병에 걸려 많은 고생을 했어요. 의사

요? 죽음을 정복하신 분이 바윗덩이 하나 밀어낼 힘이 없었을까요?

가 필요하다고 느낀 목사님은 대총회에 의료선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 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마 28:6). 그렇습니다. 그 돌은 예수를 위해서가 아 니라 그 여인들을 위해서 굴려졌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밖으로 나갈 수 있 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여인들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한 사람들을 위해 종종 그렇게 하십니다. 그들의 앞길이 너무도 캄캄하던 바로 그때 천사가 나타났고 주님이 모습을 드러내 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천사들을 보내셔서 선교적 그리스도인들을 위 해 무덤을 막은 돌을 굴려 내고 계십니다.

교사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어요. 1909년에는 가족들과 함께 동해안의 항구도시 원산으로 전 도하러 갔어요. 열심히 전도하고 성경을 가르친 결과 새 신자들이 생기고 성경을 배운 사람들 이 고향으로 돌아가 교회들을 세웠어요. 1911년 에 또다시 아들을 질병으로 잃는 크나큰 슬픔 을 당했지만 절망하지 않고 계속 복음을 전했 어요. 이렇게 헌신적인 선교사들 덕분에 교회는 더 욱 든든해졌어요.

201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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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6월 11일(월)

복은 함께 누려야 합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 25:29)

사엄태 - 최초의 처녀 선교사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사도행전 16 장 9절, 쉬운성경)

앨버트로스라는 새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새의 똥이 오랜 세월 동안 산 호초 위에 쌓이고 쌓여서 섬이 된 곳이 있습니다. 적도 바로 아래 태평양에

필드 목사님은 우리나라에 ‘여인들에게 복

떠 있는 나우루(Nauru)라는 섬나라입니다. 섬 지표면을 덮고 있던 똥들은

음을 전할 여자 선교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

세월이 흘러 인광석으로 변했습니다. 호주와 하와이 사이에 있는 나우루의

어요. 대총회도 한국에 여선교사가 필요하다고

면적은 21제곱킬로미터에 불과합니다. 울릉도의 3분의 1 크기입니다. 국가

판단했어요.

라고 하기엔 너무도 작지만 과거에는 얼마나 부강한 나라였는지 모릅니다. 나우루는 노천에 깔려 있는 인광석을 전 세계에 팔아서 부(富)를 채웠습니 다. 한때 나우루의 1인당 국민 소득은 3만 달러에 육박했습니다. 그랬던 이 나라가 어느 순간부터 호주, 대만 등 해외의 원조를 받지 않고는 끼니조차 연명하기 어려운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처럼 부유했던 나라가 어쩌다가 어 린이를 위한 식량까지 외국으로부터 얻어먹는 처지가 되었을까요?

미국에 사는 23세 처녀인 사펜버그는 어느 날 전도 방문을 하고 늦게 집으로 돌아왔어요.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가 강 저편에 흰옷을 입 은 사람들이 모여서 두 팔을 벌리고 “와서, 우리 를 도와주세요.” 하고 자신을 부르는 꿈을 꾸었 어요. 그다음 날에는 대총회로부터 한국에 선 교사로 가 달라는 편지를 받았어요. 그런데 한

사실 나우루 섬은 땅을 조금만 걷어 내도 순도 높은 인광석이 나왔기 때

국이 어떤 나라인지 도무지 상상조차 되지 않

문에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었습니다. 자연히 현금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는 거예요. 그래서 도서관에 갔어요. 백과사전

주민들은 더 이상 일하지 않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해 채굴장에서 나

을 펴서 한국에 대해 찬찬히 읽다가 거기에 실

오는 수입으로 먹고살았습니다. 빈부 격차 없는 지상낙원이었습니다. 한 번

린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글쎄 사진 속에

도 외국에 가 본 적 없던 사람들이 전세기를 타고 하와이, 피지, 싱가포르

그녀가 꿈에 본 것과 똑같은 흰옷을 입은 사람

로 쇼핑 관광을 가는가 하면 전세기로 호주 멜버른까지 날아가 럭비 경기

들이 있지 않겠어요. 그녀는 하나님께서 대총회

를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를 통해 자신을 한국으로 부르신다는 사실을

그러한 생활이 십 년 남짓 진행되다가 1990년대 초에 들어서면서 두 가지

깨달았어요.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주민의 90퍼센트가 비만이고 50퍼센트가 당뇨를

사펜버그는 1907년 1월에 최초의 여선교사

앓게 된 것입니다. 채소와 어류 대신에 수입한 가공식품에만 매달린 결과였

로 우리나라에 왔어요. 이름도 우리나라 사람

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인광석이 곧 바닥난다는 조사 결과였습니다. 그 럼에도 나우루 주민들은 여전히 희희낙락했습니다. 정부에서 어항(漁港)을 만들어 일하게 했지만, 주민들은 그것을 해수욕장으로 사용했습니다. 농장 을 개발하려 했지만 표토(表土)가 사라진 땅에서 농사는 불가능해진 지 오 래였습니다. 그렇다고 섬을 휴양지로 개발할 수도 없었습니다. 인광석 채굴 로 자연 경관은 이미 훼손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럼 사엄태라고 했어요. 처음에는 스미스 목사 님 집의 방 한 칸을 빌려 살았어요. 그리고 목 사님과 함께 순안에 사역자 양성학교를 세우고 여학생들을 가르쳤어요. 사역자 양성학교는 현 재 삼육대학교가 되었어요. 그 뒤 각부 주임으 로, 시조사 편집인으로 큰일들을 맡아서 했어 요. 그러다가 1919년 12월에 주 안에서 잠이 드

자연이 아무 대가나 보상 없이 베푼 혜택을 누리다가 오히려 그 복이 저

셨어요. 평생을 주님을 위해 일하신 거예요. 우

주가 되어 버린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들은 과연 무엇입

리도 하나님이 부르실 때 “주여, 제가 여기 있나

니까?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어떠함에 상관없이 무한정으로 허락

이다.” 하고 대답하는 어린이가 되도록 해요.

하신 복들은 과연 어떤 것들입니까? 우리에게 허락된 복들을 제대로 활용 하지 못하면 그것은 더 이상 우리에게 복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86  교회지남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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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화)

작은 예수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요 2:5)

스캇 - 돕는 선생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출애굽기 15 장 20절, 개역한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즙으로 바꾸는 기적을 베푸셨던 분은 누 구입니까? 분명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그 기적을 일으켜야만 했던 이

1907년, 순안에 사역자 양성학교로 남학교와

유는 잔치에 포도주가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상황을 제공했

여학교가 생겼어요. 사엄태 선교사는 미국 <시

던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조>에 자신은 교육 전문가가 아니므로 자신을

우선 잔치 책임자가 결혼식 하객의 수를 잘못 예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가 계산했던 수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온 것입니다. 또한 포도주를 아무 리 충분히 준비했어도 하객이 그만큼 오지 않았다면 예수님이 굳이 물을 포도주로 만드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보통 초청을 받았다고 해서 초청 받은 사람이 다 오는 것은 아닌데 이번 혼인 잔치에서는 달랐던 모양입니 다. 초청받은 사람 대부분이 참석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잔치에 참 석했던 모든 사람도 분명 그날 포도주가 모자랄 수밖에 없도록 원인을 제 공한 것입니다. 또 다른 하객들, 어쩌면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초청하 지 않았던 사람들까지도 잔치에 참석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 역시 포도주가 모자라도록 한 분명한 원인 제공자들입니다.

대신하여 학교 교육에 경험이 많은 선생이 순안 의 여학교를 맡아야 한다는 글을 썼어요. 그 결 과 1908년 27세의 스캇 선생이 노설 의사 부부 와 함께 우리나라에 왔어요. 스캇 선생은 미국 의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교회에서는 여전도사로 일하던 분 이에요. 그러던 중 대총회의 요청을 받고 우리 나라에 온 거예요. 그리고 사엄태 선생님과 함 께 여학생들을 가르쳤어요. 당시에는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하여 남자 와 여자가 한 학교에서 배울 수가 없었어요. 그

그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잔치 자리에서 아들 예수가

래서 진남포에 여학교를 세웠어요. 학생 수가

무언가를 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래서 아들 예수를 따로 불러 이 문

늘자 다시 순안의 의명학교와 합쳐졌어요. 스캇

제를 해결하도록 종용했습니다(요 2:3). 연회장은 하인들을 불러 놓고 예수

선생은 전도부인들을 양성하는 일도 했어요.

님이 무엇을 시키든지 그대로 따르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날 예수님의 명령

여학생들을 학교에서 가르쳤을 뿐 아니라 함께

은 분명 하인들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포도주가 모자라 난리인

활동하면서 전도하는 법을 가르쳤어요.

데 발 씻을 물이나 항아리에 가득 채우라니 논리에도 맞지 않는 명령입니

1911년 8월에는 이렇게 교육받은 여성 7명에게

다. 그럼에도 하인들은 예수님의 그 명령에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하인들이

선교사 신임장을 주고 전도부인이라고 칭했어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더라면 물은 포도주로 바뀌지 않았을 것입 니다. 이 모든 조건이 다 충족되어야 했습니다. 이 경우의 수에서 하나라도 충 족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요한복음 2장에서 접하는 형태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분명 그 이적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행하 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적이 이루어지기 위해 각 과정마다 상황을 충족 시키는 작은 예수들이 있었습니다. 기적은 그런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작은 예수가 되어서 자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 루”는 것입니다(롬 8:28).

이들은 전국을 다니면서 전도 활동을 했지요. 또 전도부인들이 활동하는 가운데 힘을 얻도 록 수양회도 개최하고 용기를 주었어요. 미국에 있던 스캇 선생님의 동생도 언니의 부탁을 받고 남편과 함께 우리나라에 와서 학 생들을 가르쳤어요. 제부(동생의 남편)는 의명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하워드 리(이희만) 목사님이에요. 스캇 선생님은 우리나라에 와서 여성들을 위 하여 32년이 넘도록 봉사하셨어요.

201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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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3일(수)

말씀의 최종 목적지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 10:37)

노설 의사 최초의 의료선교사 “예수님께서…사람들의 갖가지 병을 고쳐 주 셨습니다”(마태복음 4장 23절, 쉬운성경)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귀를 통해 머리로 들어옵니다. 그러나 말씀의 최 종 목적지는 우리의 머리가 아니라 손과 발입니다. 그런데 머리로 들어온

스미스 목사님은 1906년 겨울에 딸을 디프테

하나님의 말씀이 손과 발로 가는 데 시간적 간격이 있습니다. 그 시간차는

리아로 잃고 말았어요.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사람마다 다릅니다. 말씀이 머리에서 손과 발로 가는 데 십 년, 이십 년이

교인들 중에 “미국에도 우리 교회 의사들이 있

걸리는 사람도 있고 안타깝게도 평생이 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

나요? 있으면 언제나 올 수 있나요?” 하고 물어

면 불과 하루 혹은 불과 몇 분이 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머리에서 손과 발까지 말씀이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은 사람, 그런 사 람을 가리켜 우리는 ‘믿음이 좋다, 신앙이 좋다, 믿음이 견고하다, 믿음에 굳 게 서 있다, 신앙생활 잘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간혹 우리는 머릿속에 담긴 말씀의 양으로 믿음을 판단하기도 합니다.

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스미스 목사님은 대총회에 의료선교사를 보 내 달라고 요청했어요. 대총회는 사람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교회도 잘 지도할 수 있는 의료선교사를 모집했어요. 노설(러셀) 의사는 수련과정을 마치고 아주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 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

어려운 지역에서 의료선교를 하고 싶다고 지망

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땅이 된지라”(출 14:21). 홍해

했어요. 그는 교인이 3,500명인 큰 교회에서 안

앞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식일학교 교장을 했던 분이에요.

갈라지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모세의 귀를 통해 머리로 들어갔습

대총회는 1908년에 노설 의사를 우리나라에

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모세의 머리에 있는 동안에 홍해에서는 아무 일도 일

의료선교사로 파송했어요. 노설 의사 부부는

어나지 않았습니다. 이 말씀이 그의 손끝으로 갔을 때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그해 가을에 우리나라에 왔어요. 그 시절에는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많은 사람이 질병으로 죽어 갔답니다.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노설 의사는 처음에 스미스 목사님의 집을

(왕하 5:14). 나병을 앓고 있던 나아만 장군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

한 칸 빌려 살림도 하고 아픈 사람들도 치료해

라는 말을 엘리사에게 들었습니다. 그 말이 나아만 장군의 머리에 있을 때

주었어요. 아내도 간호사였고 또 의학 공부도

는 그의 몸에 아무런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했었기 때문에 함께 일했어요. 얼마 후에 초가

통해 주신 말씀이 그의 손끝과 발끝으로 갔을 때 나병이 낫는 기적을 체험 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역사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머리 에서 손끝과 발끝으로 갔을 때 비로소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 님은 우리에게 교훈을 받은 대로 행하라고 하십니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머리에 있는 말씀을 손과 발로 보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머릿속에 부지런히 담아야 합니다. 그리 고 머릿속에 있는 이 말씀을 부지런히 손과 발로 보내야 합니다. 이 일이 동 시에 일어나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머릿속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자 마자 그 말씀이 손과 발로 가면 좋겠습니다. 머리에서 손끝, 발끝으로 직행 하는 고속도로를 만듭시다. 그러면 홍해가 갈라지고 요단강이 갈라지는 것 을 우리 눈으로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88  교회지남

집 한 채를 40원에 사서 옮겨 갔어요. 거기에서 4년 동안 2만 명이나 되는 사람을 치료했어요. 그리고 환자들에게 전도지를 주며 복음을 전했 어요. 그뿐 아니라 평안도, 황해도의 교회들도 지도했고, 1910년에는 목사 안수를 받고 우리 나라 1호 안수목사가 되었어요. 병들어 고통 당 하는 사람들과 치료하는 의료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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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목)

생각의 파트너를 바꾸면 행복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 라”(잠 4:23)

전시열 목사 - 초대 연합회장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기 12장 1절, 쉬운성경)

“(사람은) 자기에게 익숙한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 그리하여 행동이 반복 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은 품성을 이루어 그 품성으로 현세와 영원의 운명 이 결정된다”(실물, 356).

노설 의사가 한국에 온 지 약 한 달 후에는 버터필드 목사님 부부가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지금 내가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좌우된다면, 내 운명을 결정

왔어요. 버터필드 목사님은 모태 신앙인으로

하는 것은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현 상황에 대한 생각, 즉 반응과 해석의

삼육교육을 받았고, 신학 공부를 마치고, 문서

문제입니다. 여기서 생각이라는 말을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가장 일반적으로는 ‘자기 자신과 그 안의 자아(自我)가 주고받는 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그 생각에 대한 정의가 달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는 생각이라는 것이 ‘자기 자신이 그 안의 자

전도, 교사, 전도회 강사 등으로 일했어요. 1907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1908년 9월에 아 내와 두 아들과 함께 우리나라로 왔는데 29세 였어요. 교회에서는 우리나라식으로 전시열이 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어요. 그해 11월 대총회 에반스 목사님과 일본의

아’와 나누는 대화였다면, 예수님을 믿은 이후의 생각은 ‘자기 자신이 그 안

필드 목사님이 함께 우리나라에 오셨어요. 에

에 있는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우

반스 목사님은 교회들의 형편을 보고 한국 교

리에게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권면합니다(히 3:1).

회를 일본 교회에서 분리시켜 대회를 조직하기

생각이란 어떠한 상황과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

로 했어요. 1908년 11월 8일, 교회 대표들이 순

에서 사고의 과정을 거친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의 결

안에 모여 역사적인 미션(Mission) 조직 총회를

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감정입니다. 우리는 종종 사고 과정의 파트너로 내

했고, 전시열 목사님은 미션 감독이 되었어요.

안에 있는 자아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그 자아는 상처 받은 자아입니다. 그

전 목사님은 할 일이 많았어요. 그중 가장 중요

러므로 결론은 항상 안 좋게 나타납니다.

한 일은 전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본부

그러나 예수를 받아들이면 그 결론이 달라집니다. 선교적 그리스도인들에

를 순안에서 서울로 옮기는 것이었어요.

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생각의 파트너가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상

1909년 9월에 서울 월암동의 배설 씨 집을

황과 환경에 대하여 내 속의 자아와 대화하던 것이 이제는 그 형편에 대하여

세로 얻어서 선교본부를 임시로 옮겼어요. 지

내 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대화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생각의 파트너가 주님으로 바뀌면 큰 문제도 아주 작아집니다. 그러나 아 무리 작은 문제라도 나 자신이 생각의 파트너가 되면 결과는 더 커지게 됩 니다. 문제에 집중하면 그 문제는 더 커지게 되고 그 문제를 해결하실 하나 님은 한없이 작아지기 때문입니다. 그와 반대로 문제의 해결사이신 하나님 께 집중할 때는 오히려 문제가 한없이 작아질 것입니다. 생각의 파트너를 예 수로 바꾸면 그것이 곧 행복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예수님을 생각의 파트너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부터 내 생각의 파트너는 예

금 종로구 홍파동 월암공원 자리랍니다. 그리 고 선교본부 지을 땅을 보러 다녔지요. 그 결과 1912년에 현재 한국연합회가 있는 위치가 제일 좋을 것 같아서 넓은 땅을 샀어요. 1913년 선교 본부 건물과 예배당을 완성하고 헌당예배를 드 렸어요. 전시열 목사님은 그 후에도 교회 발전 을 위해 노력했어요. 그리고 1919년에는 초대 한국연합회장이 되었어요. 교회 지도자들을 위해 많이 기도해 주세요.

수 그리스도입니다.”

201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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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5일(금)

선교적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유산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 라”(엡 6:4)

오벽 목사 - 충성스런 지도자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린 도전서 4장 2절, 개역한글)

래리 크랩은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라는 책에서 자신이 네 살 때 경험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매우 신실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난 래리는 어

해럴드 오버그는 35세에 선교사로서 한국으

린 시절에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성찬식이

로 가라는 대총회의 부름을 받았어요. 오버그

있었습니다.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어린 래리는 바닥에 누워 뒹굴었습니다.

선교사는 1909년 11월에 우리나라로 왔어요.

그 순간에 대하여 래리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국 이름은 오벽이라고 지었어요. 그에게 맡

“바닥에 누워 있던 나는 아버지가 기도하기 위해 일어서는 모습을 올려

겨진 일은 한국 선교본부의 총무 겸 재무였어

다보았다. 아버지가 기도하시는 것을 들으며, ‘정말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요. 다음 해, 오벽 선교사는 서울 지역 목사님

것처럼 말씀하시네. 아마도 그 사람은 아버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일 거

을 겸하게 되었어요. 거기다가 문서전도인을 돕

야.’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부모님에게 받은 가장 큰 선 물은 그분들에게 내가 가장 중요한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안 것이다. 내 형제들도 아니었다. 두 분마저도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아니었다. 가 족 중 누구도 하나님보다 소중할 수 없었다.”

는 출판부장 직책까지 맡았어요. 오벽 목사님 은 충성스런 지도자였어요. 그러나 총각 선교 사 생활은 참으로 힘들었어요. 음식 준비며, 빨 래며 뭐든지 혼자 해야 했어요. 무엇보다도 사 람들에게 오해를 받기가 쉬웠어요. 오벽 목사님 은 자신에게 알맞은 배필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

이러한 아름다운 유산을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선교적 그리스도인 부

했어요. 그리고 결혼할 사람을 찾기 위해 미국

모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녀들이 부모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

으로 갔어요. 하나님께서는 엘시라는 여청년을

부모님은 나를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시지만, 그분들은 나보다도 하나님을

준비하고 계셨어요. 엘시의 아버지는 태평양에

더 사랑하신다. 그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식이 아니며 다른 어떤 것이

있는 섬들을 다니는 선교선의 선장이었어요. 오

아니라 하나님이시다.’라는 사실을 상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네 살짜리

벽 목사님은 엘시를 소개받아 결혼한 뒤 신부

어린아이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면 그 부모가 얼마나 진지하고 경건한 삶

를 데리고 우리나라로 돌아왔어요.

을 살았을는지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1915년에는 안수목사가 되었어요. 오벽 목사

는 말하는 것 하나에도, 기도하는 자세 하나에도, 예배와 안식일을 준비하

님은 한국연합회가 조직될 때 지방의 대회장이

는 삶의 모습에서도 부모로서 보여 주어야 할 것들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되었어요. 얼마 후에 전시열 연합회장님이 미국

“자녀들은 부모들이 교훈과 훈육과 모본을 통하여 만드는 그대로의 사 람이 된다.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자녀들을 훈련시킬 때 부모의 성실성 은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자녀들은 일찍부터 신앙적 의무의 신성함을 배워 야 한다. 이것은 그들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하나님께 대한 우 리의 의무는 다른 어떤 의무보다 먼저 이행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법을 원칙 에 의거하여 엄격히 준수하도록 가르치고 강조해야 한다”(5증언, 37).

90  교회지남

으로 귀국하셨어요. 그때 오벽 목사님은 맡은 일을 충성스럽게 했기 때문에 전시열 목사님을 대신하여 연합회장이 되셨어요. 오벽 목사님은 일제의 핍박이 시작될 때까지 연합회장으로서 교회들을 지도하셨어요. 우리도 주어진 일을 충성스럽게 하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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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안) 이희만 목사 의명학교의 일꾼

믿음의 삶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행 5:42)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의 위에 머물렀다 하 고”(열왕기하 2장 15절, 개역한글)

인도로 파송된 어느 영국인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선교회는 그에게 재 정 장부를 상세히 적도록 했습니다. 그러려면 계산에 능해야 했지만 그 선

1908년 우리나라에 와서 의명학교에서 학생

교사에게는 그런 능력이 별로 없었습니다. 회계학이나 경영학의 배경 지식

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스캇 선교사는 동생에게

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에게 있는 것은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소명뿐이었

학교의 소식을 전하면서 함께 일하자고 했어요.

습니다. 잔액은 언제나 맞지 않았고, 따로따로 별도로 적어야 하는 장부는

스캇 선교사의 제부(동생의 남편)는 하워드 리

늘 뒤죽박죽 섞여 있었습니다. 결국 선교회는 그를 제명하고 말았습니다.

목사님으로 미국의 대학교에서 교수였어요. 당

선교 현장에 적임자가 아니라는 게 그들의 평가였습니다. 사실은 장부 기록

시 의명학교는 1909년에 교육법이 바뀌어서 다

에 적임자가 아니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그는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시 인가를 받아야 했고, 그 외에도 해결해야 할

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몇 년 뒤 어느 여자 선교사가 원주민에게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오지의 정글 부족을 찾아갔습니다. 선교사는 예수님이 가난한 이들을 친절히 대 하시고 사랑하신다는 것, 그들의 집에 들어가서 함께 식사하신 것, 아플 때 찾아가신 것, 주린 자를 먹이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상한 심령을 싸매어 주신 것, 아이들이 즐겨 그분을 따랐다는 것 등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원

일이 많았어요. 그래서 학교를 잘 운영할 사람 이 필요했는데 바로 그 적임자가 하워드 리 목 사님이었어요. 하워드 리 목사님은 스캇 선교사 의 권유와 대총회의 요청으로 1910년에 우리나 라에 와서 의명학교 총무가 되었어요. 이름도 우리나라식으로 이희만으로 바꾸었어요. 이희만 목사님은 1911년에 의명학교의 교장

주민들은 생글생글한 눈빛으로 희색이 만면하여 듣더니 그중 한 사람이 이

선생님이 되셨고, 학교 주변에 넓은 땅을 사서

렇게 소리쳤습니다. “사히브 선교사님, 우리는 그분을 잘 알아요. 그분이 여

학생들에게 농업 교육을 시켰어요. 또 의명학

기서 몇 년째 살고 계시거든요.”

교에 정식으로 신학과도 설립하였어요. 일제 강

그러고 나서 그들이 여선교사에게 한 사람을 소개해 줬는데 그는 바로 몇

점기 시절에 계셨던 많은 목사님과 교회 지도

년 전 선교회에서 제명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거기에 정착하여 자신의

자들이 의명학교 출신이에요. 이희만 목사님은

임무를 다하고 있었습니다. 병든 자가 있으면 달려갔고, 필요하면 밤새 오두

1920년에 미션 감독이 되셨다가 미국으로 귀국

막 밖에 지켜 서서 간병하며 보살폈습니다. 아프면 상처를 싸매 주었고 노약

했지만 1924년에 다시 의명학교장으로 봉사하

자에게는 음식과 물을 주었습니다. 마을에 콜레라가 돌자 집집을 돌며 최선

기 위해 우리나라에 오셨어요. 하지만 이희만

의 도움을 베풀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삶을 통하여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목사님이 귀국한 후인 1937년 일제는 의명학교

누군가가 우리 동네나 직장에 와서 예수님 이야기를 했을 때, 과연 그 말 을 듣고 이렇게 말할 사람이 있을까요? “우리는 그분을 잘 알아요. 여기서 몇 년째 살고 계시거든요!” 말이 아니라 삶으로 말하는 삶! 이런 삶을 참으로 동경합니다. 말은 때때 로 상처를 줍니다. 그러나 삶은 감동을 줍니다. 단순히 예수님에 대해서 입 으로 말하기보다는 우리 각자가 예수의 삶을 살아감으로 그분의 삶에 관하 여 행동으로 말해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이런 삶의 주인공으로

를 빼앗아 갔어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요. 해 방 후에는 이희만 목사님의 아들 이제명 목사 님이 우리나라에 와서 현재 삼육대학교 부지를 구입하고 학교의 기틀을 놓았어요. 대를 이어 교육 사업에 헌신한 훌륭한 가족이에요. 우리는 이런 헌신적인 선생님들에게 감사해 야 해요.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018. 6.

91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6월 17일(일)

나사로 이야기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대제사장들이 나사 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 러라”(요 12:9~11)

왕거린 목사 - 남부 지방 교회 개척 책임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복음 20장 21절, 쉬운성경)

오늘 성경절에서 각 절에 등장하는 ‘나사로’라는 이름 뒤에 붙은 ‘조사’와

왕거린(Wangerin)은 경건한 어머니에게서

명사를 유심히 살펴봅시다. “나사로도”(9절), “나사로까지”(10절), “나사로

믿음을 배웠어요. 대학을 졸업한 후, 문서전도

까닭에”(11절). 사실 나사로의 이 이야기는 요한복음 11장부터 읽어야 합니

를 하며 야영회를 조력하고 있을 때 한국에 선

다. 11장을 시작하면서 두 누이를 둔 “어떤 병든 자”가 등장하는데 그의 이

교사로 가라는 부름을 받았어요. 왕거린 목사

름이 나사로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루속히 예수님을 수소문하여 모셔 와야

님 가족은 1909년에 우리나라에 왔어요. 그리

할 만큼 위중한 병에 걸렸고 결국 죽고 맙니다.

고 이름을 왕아시라고 지었어요. 왕아시 목사

그런데 12장에서 또다시 나사로가 등장합니다. 똑같은 사람이면서도 전 혀 다른 사람입니다. 그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건강한 나사로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예수님만큼 호기심과 흥미를 보이는, 이제 모든 사람의 대화의 중심으로 떠오를 만큼 중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성경의 이 두 장 사이에 극명한 대조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12장의 나사로는 죽었다

님은 처음에는 문서전도를 하며 교회를 도왔어 요. 다음 해 우리나라를 여러 선교 지역으로 나 눌 때, 남부 지역 선교의 책임자가 되었어요. 그 런데 남쪽 지방에는 사무실도 없고, 선교사 사 택도 없었어요. 이곳저곳 선교본부를 세울 땅 을 찾다가 대구 남쪽의 경산이 좋겠다고 생각

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통해서, 예수 안에서 그가

했어요. 그래서 경산읍 서쪽 성암산 기슭에 넓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나사로도” 관심의 대상이 된

은 땅을 샀어요. 그리고 1911년 8월에 목사님들

것입니다(9절).

과 전도부인들이 와서 큰 천막을 치고, 전도회

그런데 나사로 사건 이후 나사로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자, 대제사장

를 했지요.

들이 이번에는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한 것입니다(10절). 이제는 예수님

그 당시 사람들은 외국인을 본 적이 별로 없

과 나사로가 소위 같은 급으로 취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었으므로, 코가 큰 서양 사람들이 신기했어요.

받는 대우를 나사로가 받게 된 것입니다.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예

특히 ‘백인 아이’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수를 믿었기 때문입니다(11절).

서 천막으로 몰려갔어요. 아이들은 미소를 지

시간이 지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지상에서의 마지막 주일이

으며 사람들을 반겨 주었어요. 목사님의 아이

시작되던 첫날,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게 됩니다. 그런데 <시

들 덕분에 전도회에 더 많은 사람이 모였어요.

대의 소망>에서는 예수께서 타고 계셨던 바로 그 나귀의 고삐를 나사로가

절반은 말씀에 귀를 기울였지만 나머지 절반은

잡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그 행렬을 멈추게 할 수 없었습니다. 로마의 속박 가운데 있었던 그때에 왕으로 예루살렘에 당당하게 입성하시 는 그 행렬을 누구도 멈추어 서게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행렬의 제일선에 나귀의 고삐를 쥔 나사로가 서 있었습니다. 그는 죽었 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죽음을 경험

서서 구경만 했어요. 성령의 역사로 새 신자가 생기고 교회가 세워졌어요. 그 후 목사님은 남 쪽 지방에 많은 교회를 세웠어요. 그러나 목사 님은 너무 과로하셨는지 병이 들어 1916년에 귀 국했으며, 1년 만에 주님 안에서 잠이 드셨어요. 사모님은 사엄태 선교사의 동생 왕대아 여사

한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 가장 무서운 죽음을 경험한 그로서는 더 이상 어

예요. 왕대아 여사는 우리나라로 다시 와서 오

떤 것도 두려울 게 없었던 것입니다. “나사로도”(9절), “나사로까지”(10절) 그

랫동안 하나님의 사업을 도왔답니다.

리고 “나사로 까닭에”(11절).

92  교회지남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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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월)

선교적 그리스도인의 믿음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마 9:21)

김승원 총무 - 출판소 시작 “모세는 모든 가르침의 말씀을 책에 적었습 니다”(신명기 31장 24절, 쉬운성경)

성경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말합니다(롬 1:17). 그런 데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란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안식일마다 교회에 출석하는 정도의 믿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믿음은 교회에 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 올 때부터 책을 만들어 보관하게 하셨어요.

는 것 이상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살아 존재하신다는 것을

1905년 여름, 일본에서는 누르는 인쇄기로

인정하고 사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닙니다. 믿음은 교회에서 직분을 맡아 봉

안식일학교 교과책을 만들었어요. 우리나라에

사 좀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믿음은 그렇게 쉽고 가벼운 것이 아

서도 인쇄 사업을 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

닙니다. 안식일마다 교회에 빠지지 않고 출석한다고 해서, 직분을 맡아 봉사하면 서 신앙을 유지한다고 해서 믿음의 진보가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러한 마 음으로 평생을 교회에 다닌다 한들 믿음의 발전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교 회에 다니는 것 자체를 믿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상 어떤 다른 필요를 느끼겠으며, 무슨 발전이 있겠습니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리라”라고 하였습니다(롬 1:17). 믿음은 사는 것입니다. 죽는 것은 믿음이 아 닙니다. 믿음은 삶이고 그 삶이 곧 믿음입니다. 혈루증으로 12년을 앓던 여인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나 음을 입게 되는 장면에서 화잇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지요. 그해 10월에 일본에서 수양회가 열렸는 데, 인쇄하는 법을 배워 오도록 김규혁, 김승원 두 청년을 보냈어요. 두 사람은 일본에서 사업 을 도우면서 인쇄 기술을 배웠어요. 김승원 청 년은 다음 해 봄에 귀국하여 스미스 목사님을 도와 통역도 하고 책도 번역했어요. 그리고 최 초로 <신약 안식일>이라는 소책자를 만들었는 데 일본에서 인쇄를 해 왔어요. 1909년 3월에 일본대회에서 인쇄기를 보내 주었어요. 의명학교 한 칸에 인쇄기를 놓고 출 판하면서 시조사가 시작되었어요. 편집 책임자

“그리스도를 단순히 세상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명목상의 믿음으로는 결

는 스미스 목사님이었고, 김승원 청년은 시조사

코 심령의 치유를 가져올 수 없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단순히 진리에 대

총무가 되어 인쇄 일을 맡았어요. 그해 가을 선

한 지적인 동의가 아니다. 온갖 것을 알기까지 믿음을 활용하지 않는 자는

교본부를 서울로 옮길 때 시조사도 함께 이사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다. 그리스도에 관하여 믿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했어요.

않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어야 한다.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유일

1910년 7월에 최초의 선교 잡지인 <특별한 기

한 믿음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 것, 그리스도의 공로를 우리 자

별>을 출판했는데 나중에 이름을 <세 천사의

신의 것으로 삼는 믿음이다. 믿음을 의견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구원하 는 믿음이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자가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로 들어서 는 것이다. 진정한 믿음은 생명이다. 산 믿음은 활력의 증가, 의지하는 신뢰 를 의미하며 그것으로 영혼은 정복하는 능력자가 된다”(소망, 347).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도 그 상황 속에서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

기별>로 바꾸었어요. 김승원 선생은 1911년 1월에 일본에서 최신 회전인쇄기를 사 왔어요. 회전인쇄기는 성능이 좋아서 어떤 책이라도 만들 수 있었어요. 시조사는 1916년에 <세 천사의 기별>을 <교

이심을 기억하고 그분을 의지하면 그 믿음 때문에 살고, 아무리 만만해 보

회지남>과 <시조>로 나누어 출판하게 되었어

이고 쉬워 보이는 상황이라 해도 자기 자신을 신뢰하면 패배한다는 사실을

요. 지금도 우리가 보는 찬미가, <교회지남>, 안

알아야 합니다. 정말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식일학교 교과, <시조>, <가정과 건강> 등 많은 책을 만들고 있답니다. 우리 친구들도 이 책들 을 소중히 여기고 많이 읽도록 해요. 201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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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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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화)

순교 그 이후의 이야기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김효섭 선생 최초의 문서전도인 “아름다워라 기쁜 소식을 가지고 산을 넘어오 는 사람이여”(이사야 52장 7절, 쉬운성경)

1956년 1월 8일, 에콰도르 정글 속에 있는 쿠라리강에서 시체 다섯 구가 떠올랐습니다. 짐 엘리엇, 네이트 세인트, 피트 플레밍, 에드 머큘리 그리고

김효섭 선생은 평안남도 용강군 사람이었어

로저 요더리안. 이 젊은 선교사들은 모두 아쿠아족의 창에 찔려 죽었습니

요. 1909년 7월 한참 더운 여름, 김효섭 선생은 <예

다. 이들의 죽음으로 세계 기독교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섯 명이 복음을

수께서 속히 오심>, <하나님과 참안식일>, <죄인이

전하기 위해 정글에 들어갔다가 순교했다는 소식은 미국 전역에 대대적으

구주를 구함>이라는 책을 짊어지고 문서전도의

로 보도되었습니다. 한국 전쟁이 막 끝난 때였던 그 당시에는 특별한 뉴스 가 없었고, TV가 나온 지 얼마 안 되었던 때라 한동안 이 뉴스는 TV에 거 의 매일 등장했습니다. 선교사들의 소지품에서 발견된 아쿠아족의 사진은 더욱더 사람들의 관심을 고조시켰습니다. 이 다섯 선교사의 부인들은 슬픔에 빠졌고 아홉 명의 자녀들은 갑작스럽

길을 떠났어요. 조선미션 감독 전시열 목사님은 전 세계에 다음과 같은 소식을 알렸어요. “이제 우리의 최 초의 문서전도자가 문서전도용 책 상자를 메고 우리의 선교본부를 떠났습니다.” 김효섭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문서전도인

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당시 미국 언론들은 이들의 순교에 대해 한결같이

이 되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산을

헛된 투자라고 했습니다. 이 비극적인 죽음이 정말 헛된 것이었을까요?

넘고 강을 건넜어요. 그 무렵 문서전도에 참여

남편을 잃은 라헬 세인트와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인디언 여인 다유마를

한 분들은 선교사들과 선교에 열정적인 교인들

만나 인디언 언어를 배웠고 다유마와 함께 그 부족에게로 들어가서 그들과

그리고 의명학교 학생들이었어요. 전국적으로

평생 같이 살았습니다. 다유마는 자기 부족에게 말씀을 전했고 신약 성경

교회가 많지 않던 시절, 하나님께 헌신한 문서

을 그들의 언어로 번역했습니다. 결국 다섯 선교사를 죽였던 다섯 인디언도

전도인들은 문서전도 활동을 하면서 많은 교회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후에 그들은 모두 부족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습니

를 세웠답니다.

다. 게다가 아쿠아족은 다른 부족을 위해 다른 인디언 언어로 성경을 번역 했습니다. 후에 이들은 다섯 선교사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그들은 총을 사용하지 않았고 무방비 상태였어요. 또 죽어 가면서도 계 속 노래했어요.” 에콰도르 정부는 나중에 모든 선교사에게 영주 비자를 발급하기로 했 고, 몇 년 뒤에는 선교사 다섯 명의 얼굴이 담긴 기념우표를 발행하여 그들 을 추모하기까지 했습니다. 찰스 스윈돌은 에콰도르 정글에서 창에 찔려 죽 은 다섯 선교사에 대해 읽은 후 복음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했습 니다. 이들의 이야기가 그에게 있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수많은 대학생이 선교에 헌신하기로 결단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 습니다.

1910년 서울의 선교본부에서 전국적인 선교 를 위하여 사역자 수양회를 개최했어요. 그때 전국을 네 지역으로 나누어서 선교를 책임질 선교사들과 한국인 조력자들을 정했는데 대부 분 문서전도를 하던 분들이 선교의 책임자가 되 었어요. 김효섭 선생도 책임자가 되었지요. 수양회를 할 때 오전에는 선교사들로부터 성 경 공부와 전도하는 법을 배웠고, 오후에는 시 내로 나가서 집집을 방문하며 사람들을 초청했 어요. 그리고 저녁에는 전도회를 했지요. 그 후 김효섭 선생은 스미스 목사님과 함께 원산에 가 서 복음을 전했어요.

선교사는 많았으나 순교자가 없었던 시기에 이들의 순교는 젊은이 수천

지금도 많은 문서전도인이 어려움을 이겨 가

명의 가슴에 불을 질렀습니다. 오늘날 감동을 주는 사람이 없는 것은 주님

며 전도하고 있어요. 힘들지만 보람을 느끼며 전

을 진정으로 따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킵

하고 있어요. 많은 기도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니다. 그런 사람이 곧 선교적 그리스도인입니다. 94  교회지남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6월 20일(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1)

수산나, 이도신 초기 여성 문서전도인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눅 13:18~19)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 는데”(사사기 4장 4절, 개역개정)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우리 주님은 이 질문으로 천국에 관 한 비유를 시작하셨습니다. 이 땅에 계실 때 예수님은 그 무엇보다도 하나

문서전도는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도 했어요.

님의 나라에 관하여 많이 가르치셨습니다. 특별히 죽음에서 부활하신 이후

최초의 여자 문서전도인은 수산나입니다. 1910

승천하시기까지 사십 일 동안 그분의 가르침은 이 주제에 집중되었던 것으

년부터 문서전도를 시작했지요. 수산나는 11월

로 보입니다(행 1:3).

3일에는 인천에 가서 문서전도를 했는데 성경,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이처럼 매우 작은 겨자씨에 비유하시어 우리 를 깜짝 놀라게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당시의 지중해나 로마 제국처럼 뭔가 거대한 것에 비유하실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오히려 그분은 현미경으 로나 제대로 볼 수 있는 지극히 작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신 걸까요? 하나님 나라는 결국

성경 교리, 안식일학교 교과, <세 천사의 기별> 을 전했어요. 책을 팔 뿐 아니라 관심 있는 사람 들을 모아서 성경을 가르쳤어요. 여성 문서전도 인 중에서 몇 명은 전도부인이 되어 성경을 사 람들에게 전문적으로 가르쳤지요. 여성 문서전도인 중에는 이도신 할머니도 있

에는 커지겠지만 언제나 작게 시작한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었는데 호랑이같이 생긴 여장부였어요. 1914년

하나님은 허식에 가치를 두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하찮아 보이는 사람, 시시

경에는 대원군이 살던 운현궁을 찾아갔어요.

해 보이는 사건을 통해서 일하기를 좋아하신다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

문 앞에는 경찰과 군인이 총을 들고 파수를 보

다. 이 점은 예수님의 삶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예수님도 낮은 신분으로 출

고 있어서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어요. 그런데

생하셨습니다. 그분의 고향 나사렛은 매우 보잘것없는 곳이어서 나다나엘은

이도신 할머니가 문서전도를 하러 그곳에 간 거

거기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냐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요 1:46). 그분

예요. 할머니가 무턱대고 궁궐로 들어가려고 하

은 가난하게 사셨고 정규 교육도 받지 않았고 책 한 권도 쓰지 않았습니다.

자 궁궐을 지키는 경찰이 막아섰어요. 할머니는

그분은 다른 유대인에게 배척당하셨습니다. 또 그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이

“하나님의 기별을 가지고 왔는데 왜 못 들어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죽으심은 마치 겨자씨를 심

게 합니까?” 하면서 막무가내로 들어가겠다고

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분은 곧 다시 살아나셨고 그분의 부활과 승천 후 지

했어요. 경찰은 하는 수 없이 대원군의 며느리

금까지 사람들은 새들이 나뭇가지에 깃들 듯 그분께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인 마님에게 보고를 했어요. 안방에 계시던 마

주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주시는 메시지는 우리의 환경과 사역이 어떠한 변화를 낳기에 너무 작아 보일지라도 낙심치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과부의 동전 한 닢, 한 달란트, 냉수 한 그릇, 장정만 5천 명을 먹였던 소년 의 도시락과 같이 아주 작은 것에서 가치를 찾는 멋진 기술을 지니고 계십 니다. 하나님 나라의 겨자씨가 오늘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씨를 우리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에 그리스도를 위한 새로운 일로 심기를 바랍니다.

님이 “그런 사람이라면 들여보내라.”고 했어요. 운현궁 안으로 들어간 이도신 할머니는 마님에 게 후한 대접을 받고, 진리의 문서들을 전하고 올 수 있었답니다. 할머니의 아들 최건주는 시 조사 총무 일을 하다가 1912년에 공주에 파견되 어 교회를 세웠어요. 문서전도인들은 곳곳에 있 는 사람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한답니다. 문서전도 하는 분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용기 를 주고, 문서전도인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201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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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6월 21일(목)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2)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눅 13:21)

김종원 장로 - 제주도에 교회를 개척한 문서전도인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라”(마가복음 16 장 15절, 새번역)

이 비유는 어제 설명된 겨자씨의 비유와 짝을 이룹니다. 겨자씨의 비유가 하나님 나라의 외적인 성장을 설명한다면, 누룩의 비유는 안에서부터 사

김종원 선생은 1913년 김규혁 목사님의 전도

회를 변혁시키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보여 줍니다. 겨자씨 비유는 “모든

로 재림 신앙을 받아들인 후 바로 문서전도를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복음화와 연결되고(마 28:18~20), 누룩의 비유는

시작했어요. 이듬해 문서전도를 하기 위해 제주

우리의 “착한 행실”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는 삶의 변화(마 5:16)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소량의 누룩을 인 류에게 섞어 놓으신 것과 같았습니다. 그 뒤 인류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 니까? 예수님의 생애는 열두 제자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 고 그 제자들은 세상을 뒤집어 놓았고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복음의 그 누룩은 계속해서 사회를 변혁시키고 있습니다.

시에 머물면서 제주시교회를 세웠어요. 어느 날 문서전도를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어요. 그 런데 어떤 술 취한 사람이 구경을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돌아간 다음에 술 취한 그 사람이 자기도 책을 사겠다고 하는 거예요. 김종원 문 서전도인이 당신은 살 수 없다고 하자, 그 사람 은 화를 내며 책값이 얼마냐고 물었어요. 그래 서 전체 책값을 말해 주었어요. 굉장히 큰 금액

누룩이 보이지 않게 작용하듯 성령께서도 보이지 않게 활약하십니다. 누

이었지요. 그런데 그 술 취한 사람이 주머니에

룩이 반죽 덩어리를 부풀어 오르게 하듯 성령께도 우리의 삶을 극적으로

서 돈을 꺼내어 책값을 다 주는 거예요. 그래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누룩이 반죽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생

가지고 있던 책을 몽땅 주고 왔어요. 사실, 그

각해 봅시다. 누룩이 반죽 안에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밖에

술 취한 사람은 그날 소를 팔았기 때문에 돈을

서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반죽 자체에는 변화시키는 능력이 없습니다. 마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얼마 후에 술이 깨어 많

찬가지로 모든 인간도 스스로는 절대로 변화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

은 책을 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그러다

리에게는 외부로부터 오는 능력이 필요한데 그 힘을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

가 도대체 어떤 책인지 궁금하여 읽어 보기 시

하나님이십니다.

작했어요. 책들을 읽는 동안 성령이 그 사람의

그런데 때때로 우리는 선한 목적으로 행한 어떤 일들의 결과를 미리 계 산하면서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을 사용하고 계시는지 의문을 품을 때 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말씀, 즉 하나님의 누룩은 우리가 복음을 들고 다가가는 사람들의 마음 반죽을 은연중에 신비롭게 변화시킨다는 사실에 서 용기를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가 전하 는 증거의 긍정적인 결과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이것을 보신다면 굳 이 우리가 보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복된 소식이 우리 삶에 영적인 누룩이 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진정 타인의 삶에서 하나님의 변화시키는 누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는 하나님 나라의 일이 아무리 작더라도 그 생명과 능력이 엄청난 결과를 이룰 수 있음 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이 자리와 상황에 감사하며 우리를 여기 있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96  교회지남

마음을 감동시켰어요. 그 사람은 한효선 선생이었는데 책을 읽고 예 수님을 믿게 되자 곧 자기 마을에 교회를 세웠 어요. 그 교회가 사계리교회예요. 현재는 모슬 포교회지요. 한효선 선생도 문서전도에 나섰어 요. 그리고 고향인 진도에 가서 교회를 또 세웠 어요. 한편 김종원 장로님은 제주도에 애월교 회를 더 세웠고, 경상도에 가서도 안동교회, 영 주교회, 통영교회를 세웠어요. 하나님은 헌신한 문서전도인들을 사용하여 크게 일하신답니다.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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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2일(금)

우리 인생을 방해하는 것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 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 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눅 14:18~20)

정문국 목사 - 한국인 최초의 대회장 “교회에 머물면서 많은 사람을 가르쳤습니다” (사도행전 11장 26절, 쉬운성경)

구니야 목사님이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전할

사실 그들이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겠다며 사양하는 구실은 결코 나쁜 게

때가 1904년이었는데 그때 많은 청년이 복음을

아니었습니다. 그저 놀러 갈 데가 있다느니, 잠을 좀 자야겠다느니 하는 것

듣고 안식일을 지키기 시작했어요. 그 무렵 김

과는 다른 문제였습니다. 논리적으로 성립이 되는 구실이었습니다. “그런 일 때문이라면 하는 수 없지요.”라고 누구나 허락할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그 사람에게 중대한 일이며 좋은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교회 예배나 신앙적 모임에 가끔씩 참석하지 않는 이유도 생각해 보면,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를 만나야 하기 때문에’, ‘집안에 매우

승원 청년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이웃 마을에 사는 정문국 청년을 찾아갔어요. 김승원 청년 은 친구 정문국에게 일본인과 서양인에게 배운 안식일, 예수님의 재림, 침례 등에 대하여 이야 기해 주었어요. 정문국은 감리교회에 다니고 있 었는데 김승원 청년을 따라 우리 교회에 나오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라는 구실 등

기 시작했어요. 그 후 평양에서 교사가 되었는

을 곧잘 대곤 합니다. 이런 핑계로 교회에 빠지는 것이 좋다 나쁘다 하는 판

데 순안에 의명학교가 세워지자 그곳으로 가서

단은 그만두고서라도, 이것이 숨길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인 것은 분명합니

학생들을 가르치고 신학을 공부했어요.

다. 두 번째 중요한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을 억누른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1915년 순안에서 한국 재림교회 총회(제6회

우리 자신에게만 중대한 일,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경계하는 지혜가

조선미션 연회)가 열렸어요. 그때 대니얼스 대

필요합니다. 중요하지 않거나 좋아하지 않는 일 때문에 인생을 그르치는 게

총회장을 비롯하여 많은 분이 오셨어요. 그리

아닙니다. 단지 덜 중요한 것들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하지 못하게

고 안수식을 했는데 정문국 목사님이 우리나라

만들 때 우리의 인생은 망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목사 안수를 받았어요.

“하늘 왕국을 최우선으로 삼으라. 마음이 계속 하늘에 머물면 친절을 베

안수를 받고 황해도 사리원에서 천막을 치고

푸는 모든 일에 힘이 생기며 행하는 모든 의무에 생명력이 깃들 것이다. 마

전도회를 했는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받아들

음을 하늘의 사물에 머물도록 훈련시키는 것은 모든 노력에 열성과 생기를 줄 것이다”(화잇주석, 잠 4:23). 다윗은 “날 계수함”을 알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시 90:12). 맞이하는 매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을 찾아 행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 도한 것이 아닐까요? 중요한 것과 급한 것을 구분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다윗의 기도를 조용히 묵상해 봅니다. “하나님, 가 장 중요한 것을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와 또 그것을 과감히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용기를 오늘 저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였어요. 거기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 중에 고 향에 돌아가서 교회를 세운 사람도 여러 명 있 었어요. 정문국 목사님은 그 후 평안남도 안주, 전라남도 나주, 전라북도 군산 등 여러 곳에서 전도회를 하고 교회를 세웠어요. 그리고 서울 중앙교회를 담임하였고 한국인 최초로 대회장 이 되셨어요. 정문국 목사님은 몸은 작았지만 음성이 아 주 좋았어요. 설교나 강연을 하면 알기 쉽고 재 미있게 하여 환영받는 전도 목사가 되었어요. 교회를 부흥시키는 목사님들을 위해 기도 많 이 해 주세요.

201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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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안)

능력보다는 유용성 있는 삶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 시니”(마 21:3)

김석영 목사 - 성경을 무기 삼아 승리한 사람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칼을 쥐십시오”(에 베소서 6장 17절, 쉬운성경)

1886년 9월 29일, 엘렌 화잇은 여러 사람과 산딸기를 따는 꿈을 꾸었습 니다. 꿈에서 일행은 산딸기를 따러 왔음에도 정작 산딸기 따는 일에는 별

김석영 청년은 선돌교회 출신으로 매우 강

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리저리 사방으로 흩어져서 산딸기를 따는가 싶더

직했어요. 1904년에는 구니야 목사님이 머무

니 이내 싫증을 느끼고는 도시락만 까먹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것은 하나도

는 여관방에 찾아가 성경을 배웠어요. 그리고

남기지 않은 채 말입니다. 화잇은 조금 기분이 상했지만 그들을 독려하며

23세 때는 ‘김신실’이라는 정말 신실한 여청년

계속해서 산딸기를 따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제안을 거절해 버립

과 결혼하면서 “아브라함이 고향 갈데아 우르

니다. 화잇 여사가 그들에게 대단히 긴 이야기를 하는데 골자는 다음과 같

를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나그네 생활

습니다.

을 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자.”고 다짐했어

첫째, 사업의 성공은 우리의 일하는 방법에 달려 있다. 낮은 나무뿐 아니 라 고개를 들어 높은 나무에서도 찾아보아야 한다. 인간적인 안목으로 결 정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우선은 주변을 살펴보아야 한다. 주변에 거두어 야 할 영혼들이 있다. 셋째, 왜 이곳에 왔는지 지금 우리가 이곳에 있는 이 유를 기억해야 한다(복음, 131~134). 사람들이 그저 편한 곳, 쉬운 곳에서만 산딸기를 따려고 하지 고개를 들

요. 그리고 사역자 양성소를 찾아갔어요. 아내 와 함께 스미스 목사님의 집안일을 하면서 신 학 공부를 하여 목사님이 되었어요. 김석영 목사님은 1914년에 전라남도 광주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셨어요. 그 교회가 바로 호남합회 최초의 교회인 송정리교 회예요.

어 손을 뻗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져온 도시락에만 관심이 있지

또 김석영 목사님은 전라남도 남평교회로 부

가지고 갈 열매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반 바구니 정도로 만족

임했는데 동네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집을 샀어

한다는 것입니다. 바구니에 담긴 것을 쏟아내고 다시 따러 나가는 수고를

요. 밤마다 귀신이 나온다고 아무도 살지 않는

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고개를 들고 손을 뻗고 까치발을 드는 것,

집이었어요. 밤에 들어 보니 정말 천장에서 귀

배가 고픈 중에도 계속해서 일하는 것, 다시 일하러 나가는 것은 참으로 불

신 소리 같은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목

편한 일입니다.

사님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그리고 용

그러나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주는 것은 인생을

감하게 천장을 뜯어 보니 그 안에 거문고가 숨

주는 것입니다. 시간이 모여 인생이 됩니다. 따라서 시간을 내주는 것은 자

겨져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무서워한 그 이상

기 인생을 뚝 잘라 나눠 주는 참으로 소중한 일입니다. 주님은 그러셨습니

한 소리는 쥐들이 거문고 위를 뛰어다닐 때 나

다. 영원이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인간 세상에 오셔서 자기 시간을 할애하

는 소리였어요.

여 우리와 함께 지내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자기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전도는 그런 것입니다. 시간을 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나의 인생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유용성(availability) 있는 사람이 되어 야 합니다. 잘 쓰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능력(ability) 있는 사람이 되 는 것은 그다음의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우리에게 그토록 의 미 있는 이유는 그분이 능력 있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 여 기꺼이 십자가에 죽으셨던 그분의 유용성 때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98  교회지남

한번은 십일조와 헌금에 대한 설교를 한 후 헌금을 거두려고 하는데 불량배들이 몽둥이를 들고 와서 빼앗으려고 했어요. 그때 목사님은 소년 다윗이 골리앗에게 했던 것처럼 “너희는 몽둥이가 무기이지만, 나는 하나님의 말씀, 바 로 이 성경이 무기다.”라고 큰소리로 외쳤어요. 그러자 그 패거리가 도망치고 말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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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일)

아둘람 교회를 꿈꾸며

정동심 목사 - 설교하고 감옥에 간 지도자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 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

“밤중에 주님의 천사가 감옥 문을 열고”(사도 행전 5장 19절, 쉬운성경)

한 자가 사백 명가량이었더라”(삼상 22:1~2)

정동심 목사님은 평안남도의 산속에 있는 진

다윗이 예수님의 모형이라면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

명삼육초등학교를 다녔어요. 성경 읽기를 얼마

통한 자’들은 우리의 모형입니다. 그들은 아둘람 굴로 다윗을 찾아와서 다

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밤이고 낮이고 성경을

윗을 장관으로 삼고 그를 따랐습니다. 그에게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읽다 보니 석 달 만에 다 읽게 되었어요. 초등학

나중에는 이스라엘의 용사와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교를 졸업하고 의명학교에서 4년간 공부를 했

마찬가지입니다.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아

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1년간 문서전도를 하면

둘람 교회로 나와 예수님을 장관으로 모시고 훈련을 받으면 용사와 지도자

서 사람을 만나는 법을 배웠어요. 그 후에 평안

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을 부르시고 그 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예수께로 나온 이들을 보면, 다름 아닌 ‘환난 당 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 수로 나의 구주 삼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놀라운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들은 더 이상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아니

남도에 있는 삼육학교 선생이 되어 학생들을 가르쳤지요. 몇 년 후에는 황해도에 있는 삼육 학교 교사 겸 교장 선생님이 되었어요. 그 뒤 목사가 되어 평안도, 만주, 함경도의 교 회들을 돌보았어요. 일제 말기에 정동심 목사 님은 중한대회장으로서 화강리교회에서 지도

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담대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주님

자들을 위한 수양회를 열었어요. 설교는 ‘때가

과 함께 통치하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까웠으니 속히 준비하자’는 내용이었어요. 그

아둘람 교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무렵 일본 외무부장관이 바티칸을 방문하여

우리의 교회가 각각 아둘람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아둘람 교회 안으

교황을 만난 일이 있었어요. 목사님은 그 일을

로는 계속해서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찾아와

언급하면서 마지막이 가까웠다고 이야기했어

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둘람 교회를 통해서 계속 용사와 지도자로 거

요. 수양회를 감시하던 일본 경찰이 이것을 독

듭나야 합니다. 이 일은 교회가 존재하는 한 계속되어야 합니다. 아둘람 교

립운동이라고 트집을 잡았어요. 그리고 그들은

회는 늘 열려 있어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올

목사님뿐 아니라 연합회장을 비롯한 교회 지도

수 있어야 합니다. 와야 합니다. 아니, 가서 데리고 와야 합니다. 아둘람 교

자 8명을 잡아 청양경찰서에 가두었어요. 성도

회를 통해 회복된 이들은 이제 또 다른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

들은 힘을 합하여 지도자들의 석방을 위해 기

음이 원통한 자’를 세우는 일에 나서야 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 들에게 부탁하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 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 그러한 아둘람 교회의 모습이 오늘 우리가 섬기는 교회에서 분명히 드러 날 때, 비로소 주의 복음이 우리가 속한 지역사회 공동체를 향해서 올바로

도했어요. 일본 경찰은 갇힌 사람들을 100일 만에 풀어 주었어요. 그런데 정동심 목사님은 풀려나지 못했어요. 목사님은 재판을 받고, 8개 월 동안 감옥살이를 한 후에 풀려났어요. 해방 후, 목사님은 교회 해산 때 헐값으로 빼앗겼던 교회 재산을 찾고 교회들을 세우는 일에 온 힘 을 다했어요. 또 삼육학교들을 세우는 일에도 앞장섰답니다.

선포될 것입니다.

201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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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월)

예수님의 재림이 지체될 때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

최태현 목사 - 우리 교회 최초의 순교자 “그대는 지금까지 배워 온 가르침을 계속 좇아 가십시오”(디모데후서 3장 14절, 쉬운성경)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겪는 딜레마는 예수님의 재림이 지체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요한복음이 기록된 주목적 중 하나가

최태현 목사님은 침례교회의 전도사가 되어

재림이 지연되는 상황에 대해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를

원산 부근의 안변교회를 섬겼어요. 그때 스미

이야기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스 목사님이 원산에 와서 전도회를 개최했지

서기 60년대에 소개된 세 복음서의 종말론적 관점은 요한복음의 관점 과 많이 다릅니다. 공관복음이라 일컫는 마태·마가·누가복음에서는 “이 세 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하면서 세상의 끝이 마치 “이 세대” 안에 곧 이루어질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마 24:34; 막 13:30; 눅 21:32). 보통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는데 공관복음에서는 마치 그 30년 안 에 종말이 올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때 가 서기 31년경이었고 공관복음은 서기 60년대에 세상에 나왔으니 실제로

요. 최태현 목사님은 밤마다 다른 사람들 모르 게 그 전도회에 참석했어요. 2주간의 공부를 통 하여 마침내 우리 교회가 진리 교회인 것을 깨 닫게 되었지요. 그리고 우리 교회로 개혁하게 되었어요. 침례교 총감독은 깜짝 놀라서 온갖 방법으로 회유하려 했지만 최 목사님은 끝까지 진리를 따르고자 했어요. 1910년 1월 정식으로 우리 교인이 되었고, 동시에 안변교회의 담임목

한 세대가 지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공관복음을 읽는 사람들은 ‘아, 이제

사가 되어 교역자의 길을 걸었어요. 30년을 충

곧 세상의 종말이 오겠구나!’라고 생각했을 게 분명합니다.

성스럽게 봉사했지요.

마태, 마가, 누가는 이러한 세상의 종말이 곧 있을 것을 강조하면서 복음

일제 말기에 전쟁의 위험을 느낀 대총회는 선

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알 수 없으니 항

교사들에게 본국으로 귀국하라고 지시했어요.

상 “깨어 있으라”고 대단한 긴장감을 촉구하고 있습니다(마 24:42; 막 13:33;

선교사들이 고국으로 다 떠난 후 1941년 2월부

눅 21:36). 이처럼 공관복음에는 재림의 긴박성이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그

터 최태현 목사님이 한국연합회장이 되어 어려

래서 1세기 중반 사람들은 생전에 세상의 종말이 오는 줄 알았습니다.

운 고비들을 헤쳐 나갔어요. 일 년이 지난 1943

그런데 요한복음이 기록되던 1세기 말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한 세대가

년 2월 4일에 일본 경찰은 교회 지도자들을 잡

지나고 또 다른 한 세대가 지난 상황이었는데도 재림이 지연되고 있었던 것

아갔어요. 얼토당토않은 전시보안법을 적용해

입니다. 예수께서 서기 31년경에 말씀하신 이후로 30년을 기다렸고 그때 세

우리 교회 지도자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했답니

상의 종말이 오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그 뒤 또 30여 년이 흘 렀는데도 예수님의 재림이 여전히 지체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요 한복음을 기록하던 서기 1세기 말에는 재림에 대한 긴장감과 긴박감이 사 라져 버렸습니다. 그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똑같이 경험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약속이 모두 성취되었고 이제 재림의 약속만이 남아 있습니다. 세상이 이토

다. 심지어 “예수가 높으냐? 일본 천황이 높으 냐?” 또는 “예수가 재림하면 일본 천황도 멸하 느냐?”라는 유치한 질문을 해대며 죄를 찾고 자 했어요. 하지만 아무런 문제점을 찾지 못했 어요. 일제는 비인도적인 고문으로 최 목사님이 의식을 잃자 급히 경성요양병원(현재 삼육서울 병원)으로 보내 응급치료를 받게 했지만 그날

록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 모든 인류가 오랫동안 이 약속의 성취를 기다렸는

오후 8시 45분에 끝내 마지막 숨을 거두고 말

데 아직도 예수님의 재림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떠

았어요. 스데반처럼 순교자가 되신 거예요.

한 신앙적 경험을 통하여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을까 요? 가장 효과적인 긴장은 시기를 정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성서적이지 않 습니다. 그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100  교회지남

그러나 주님이 오시는 날 예수님을 섬긴 많은 사람과 함께 부활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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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화)

여호와의 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 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김명길 목사 낮에는 상인, 밤에는 목사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13절, 쉬운성경)

요한은 재림의 지연으로 긴장감이 사라진 서기 1세기 말을 살아가던 그 리스도인에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선언합니다(요 1:14).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1912년 9월이었어요. 16세의 김명길 선생은 <일요일과 안식일>이라는 길가에 떨어진 전도

그런데 구약 성경에 이런 표현이 종종 등장합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

지를 보고 회기동교회를 찾아갔어요. 전도사님

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욜 2:31;

에게서 안식일에 대해 자세히 배웠어요. 그리고

말 4:4~6). 구약에서 “여호와의 날”은 여호와께서 방문하시는 날로 묘사되 는데 이 방문의 목적은 항상 구원과 심판입니다. 구원과 심판은 항상 종말 을 의미했습니다(히 9:27). 세상의 종말에 믿는 자는 구원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방문은 곧 종말 사건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나중에 예수님의 초림 사건을 묘사하면서 요엘서의 이

거룩하게 지키기로 결심했지요. 그때 선생은 다 른 교파의 교인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했는데 주인에게 안식일을 지키겠다 말하니 배은망덕 하다고 쫓아냈어요. 그 후 선교사들의 집에서 일하다가 문서전도를 했는데 이때 여러 곳에 교회를 세웠어요. 이 무렵 전시열 목사님의 권 유로 신학을 공부하고 삼육학교에서 학생들을

성경절을 인용했습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가르쳤어요. 그리고 결혼한 후에는 목사가 되어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

교회들을 돌보았지요.

하여 피가 되리라”(행 2:16, 20). 베드로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을 예수

일제 말기에 일본 경찰은 담임하던 교회의 신

님의 초림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요한 역시 여호와의 방문 사건을 묘사하

자들을 잡아가서 교회를 떠나도록 강요했어요.

는 “여호와의 날” 개념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표

그 소식을 들은 목사님은 경찰서에 항의하러 갔

현합니다.

는데 일본 경찰은 목사님을 경찰서에 가두고 말

따라서 요한은 예수님의 초림 사건, 즉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신 그

았어요. 거기서 20일 동안 갇혀 있다가 풀려났

사건을 언급하면서 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 방문하셨고 예수님의 초림 자

지요. 그 후에 교회가 해산이 되었어요. 목사님

체가 사실은 종말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의 날은 예수의 초림과 함께 시작

은 배낭에는 판매할 핸드백을 넣고 전국의 교

되었다는 것입니다. 창세 이후로 약속되었던 것이 예수님의 초림을 통해서

회를 찾아다니면서 낮에는 장사를 하고 밤에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제자들과 그 당시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이제 세상은 이미 끝이 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러한 의미 에서 사탄이 아직 멸망당하지는 않았지만 관계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 니다(요 14:30). 물론 재림의 날에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심으로 실제적 종말이 이르러 오겠지만, 이미 그 종말은 예수님의 초림을 통해서 시작된 것이므로 끝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실 때 “다 이 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이미 세상의 운명이 결정되고 새로운 세대 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종말을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동

는 목사로서 활동을 했지요. 그때 겪은 고통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일본 경찰에게 불심검 문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눈길에 미끄러 져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떨어지기도 했어요. 이 런 어려움 속에서도 신자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격려했어요. 그리고 구도자를 찾아내어 복음을 전하고, 밤중에 몰래 침례를 주었어요. 그렇게 침례를 받은 성도가 153명이나 된답니다. 해방 후에는 빼앗겼던 교회 재산을 도로 찾고, 해산된 교회들을 다시 세우는 데 힘썼답니다.

시에 이미 종말의 경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01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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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6월 27일(수)

성령 강림의 약속

반내현 목사 - 꺼지지 않는 불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 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이 생명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다 전하여라” (사도행전 5장 20절, 쉬운성경)

1:13~14)

<꺼지지 않는 불>로 유명한 반내현 선생은 불

여기서 ‘보증(earnest)’이라는 말은 보증금을 의미합니다. 현대 그리스어

신자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28세 때 박기풍 목

에서 이 용어는 결혼을 약속하는 약혼반지를 뜻하기도 합니다. 즉 우리가 이

사님을 만났는데 예수님에 대하여 차근차근 알

미 예수님을 받아들였으므로 예수님 스스로가 보증금이 되셔서 우리가 하

려 주는 거예요. 그래서 반내현 선생은 즉시로

늘 집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보증금 얼마를 내고 나면 아직 집값

예수님을 믿고 불처럼 뜨겁게 전도했지요. 일제

을 완불하지 않았지만 그 집이 내 것으로 생각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의 핍박이 시작되었을 때는 신사참배를 거부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구원의 반지를 끼워 주심으로 이 땅에서

고 집을 팔아 전국을 다니면서 방황하는 교인

하늘이 시작되게 하셨습니다. 미국식으로 생각한다면, 아직 결혼은 하지

들을 돌보기 시작했어요. 교회가 해산되었을

않아서 여전히 내 성(姓)은 그대로지만 이미 마음속에서 정신적인 결혼 생

때는 통곡하며 가평군 적목리 산골짜기에 믿음

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꼭 오셔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

의 식구들을 모았지요. 50여 명이 모여 일제의

복은 지금 이 순간부터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고 이미 마음속에서는 동거

핍박을 피하여 숨어서 신앙을 유지했답니다.

가 시작된다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 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이것은 서로가 사랑할 때만 가능합 니다. 정신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꼭 결혼한 뒤에라야 행복한 게 아 니라 아직 결혼하지 않았어도 약혼했으니 앞으로 경험할 결혼을 생각만 해 도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해방되기 직전, 아주 추운 겨울 밤이었어요. “너는 곧 나가라!” 누군가 자신을 흔들어 깨 우는 것이었어요. 반내현 선생이 잠자리에서 벌 떡 일어나 보니 새벽 4시였어요. 사모님과 나이 많으신 어머니를 잠에서 깨웠어요. “하나님께서 주신 뜻을 따라 선교여행을 떠나고자 합니다.”

사랑은 긴장을 일으킵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

반내현 선생은 가족과 작별인사를 하고 해산

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창 29:20).

명령이 내려진 교회들을 찾아다녔어요. 처음에

예수님의 재림이 혹 늦어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재림을 기다릴 수

찾아간 교회에서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어요.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사랑하면 가능합니다. 7년도 수일처럼 여긴 야곱

그러나 실망하지 않았어요. 다음 교회에서는 여

의 경험이 우리의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긴장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러 신자를 방문하고 격려할 수 있었어요. 또 다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그토록 사랑에 대해 강조한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른 지역에서는 16명을 모아서 성경을 가르쳤어

사랑하면 오래 참고 기다립니다. 늦어지는 재림을 기다릴 때는 예수님에 대

요. 이렇게 여러 교회를 다니면서 사람들을 믿

한 깊은 십자가 사랑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

음 위에 세우고 유력한 사람을 만나면 또 성경

운데 거하”심으로 주 안에서 우리에게 이미 동거의 경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언을 가르치고 믿음을 받아들이도록 했지요.

(요 1:14). 아직 실제적 종말로서 하늘의 경험을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반내현 선생은 교회 해산으로 방황하던 곳곳

이 땅, 즉 은혜의 왕국에서 동거가 시작됨으로 오늘 우리는 실현된 종말론 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102  교회지남

의 양 떼를 돌보았어요. 해방 후에는 목회자가 되어 여러 지역을 다니 면서 교회들을 부흥시켰답니다.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6월 28일(목)

현재적 경험과 미래적 완성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 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5)

임성원 목사 –북한대회장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 다면”(사도행전 20장 24절, 쉬운성경)

요한은 미래적 종말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그 긴장감마저 시들해진 그리

임성원 목사님은 어릴 때 호기심으로 마을에

스도인들에게 어떻게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야 할지 설명합니다. “저를 믿는

있는 교회에 나갔다가 예수님을 만났답니다. 그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

리고 의명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가 되어 교회

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 “아들을

들을 섬기다가 32세의 젊은 나이에 안수를 받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았어요.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해방이 되자 교회 지도자들이 신도대회를 소

영생과 심판은 앞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이라고 요한

집했어요. 그때 임성원 목사님은 북한에 있다가

은 역설합니다. 영생도 사실 지금 주어지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지

삼팔선을 넘어 서울로 왔지요. 신도대회가 1945

금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에게는 지금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년 10월에 서울 회기동 본부교회에서 열렸는데

땅에 계시므로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부활을 종말

전국 각지에서 대표자 146명이 모였어요. 해방!

에나 있을 미래의 사건으로 여기는 백성 앞에서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

신앙의 자유! 교회의 재건! 감동의 시간이었어

리심으로 부활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요한은 이미 종 말이 시작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지금의 현재적 구원만 강조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를 기이 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 라”(요 5:28~29). 이처럼 직설적으로 미래의 부활과 심판도 동시에 이야기

요. 일주일 동안 열렸던 대회는 4일 연장될 정 도로 뜨거웠지요. 이 대회에서 임성원 목사님 은 한국연합회장으로 선출되어 교회 재건에 힘 쓰셨어요. 이듬해에는 대총회에서 보낸 새로운 연합회장 님이 우리나라에 오셨어요. 그래서 임성원 목사 님은 북한대회장이 되셨어요. 한번은 회의에 참

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오늘 믿음 안에서 천국을 경험한 사람이 내

석하러 서울에 왔다가 다시 북한에 가려고 하는

일 그 구원을 완성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이미 천국이 있

데 사람들이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

고 우리는 영생을 이미 맛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누려야 합니다.

어요. 그러나 북한에 할 일이 많다고 하시며 배를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사막의 여우에게 이렇게 말

타고 가셨어요. 북한 땅에 내렸는데 그만 북한 경

합니다. “가령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

찰에게 체포되어 옥에 갇히고 말았어요. 그렇지

야.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을 느끼겠지.” 정말 사랑하는 사람

만 하나님의 은혜로 1주일 만에 무사히 풀려났

을 기다린다면 3시부터, 아니 이미 그 이전부터 그를 만날 기대감에 벌써 행

어요. 또 한번은 환등기 등 여러 전도 물품을 가

복에 젖어 드는 법입니다. 마음으로는 이미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지고 평양에 가다가 걸려서 간첩으로 몰려 고생

그러므로 우리 주님의 재림의 날에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

한 적도 있어요. 임성원 목사님은 공산 치하에서

다. 오늘 우리가 이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신다면 이미 우리는 천국을 경

도 교인들을 찾아다니며 북한 교회들을 지도하

험하는 것입니다. 영광의 천국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오늘 우리가 은혜의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면, 지연되는 재림마저 기쁘게 기다릴 수 있을 것입 니다. 요한이 1세기 이후 독자들에게 그토록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것 입니다.

셨어요. 특별히 북한 교회의 지도자 양성에 많은 힘을 쓰셨어요. 이분들과 임성원 목사님은 6·25 사변 때 남쪽으로 무사히 내려오셨어요. 그 후 북한 교회 출신 지도자들이 우리 교회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답니다. 201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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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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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금)

나를 믿으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이제명 목사 - 삼육대학을 세운 선교사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 에 이르렀더라”(열왕기하 2장 22절, 개역개정)

주님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사 용된 ‘믿다’라는 말은 라틴어로 ‘크레도(credo)’인데 ‘심장을 바친다’는 뜻의

제임스 리(한국 이름 이제명) 목사님은 1912

‘코르도’에서 나온 말입니다. 심장은 마음을 의미합니다. 믿음은 마음을 바

년 평안남도 순안에서 하워드 리(이희만) 목사

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그렇게 마음이 가 버린 상태, 마음을 하나님께 드

님의 장남으로 태어났어요. 그리고 해방이 되

린 상태, 마음이 기울어진 상태를 뜻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가 있는 곳이 곧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믿으면 그 믿음의 대상이 우리에게 현실이 되는 일을 우리는 종종 경험합니다. 사실과 현실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미국에 뉴욕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 그 미국의 뉴욕을 매일 실감하고 사실로 느끼며 사십니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에 뉴욕이 있다는 것을 사실로 받 아들이지만 그것을 현실처럼 매일 피부로 느끼고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미국의 뉴욕을 매일 느끼고 실감하며 사는 어느 집사님이 있 습니다. 집사님의 따님이 대학 졸업 후 잠시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더 공부

자 선교사가 되어 우리나라에 다시 오셨어요. 그리고 삼육중학교장, 한국연합회 교육부장, 삼육신학원장 등을 맡아 봉사하셨어요. 특히 1947년에는 삼육학교 교장으로 있었는데 미국 에서 학교 부지를 구입하라고 자금이 왔어요. 그래서 여기저기 물색하다가 현 삼육대학교 오 얏봉에 올라가 보니 아주 좋은 곳인 거예요. 당 시 이씨 왕실에서 관리하던 땅을 구입하여 학 교를 세웠어요. 그 뒤 뒷산 골짜기를 막아 호수 를 만들었지요.

하겠다는 생각으로 뉴욕에 있는 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뉴욕

6·25 전쟁 때는 피난했다가 북한군이 서울에

에 도착하던 첫날에 커다란 폭풍이 불고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그 뒤로 집

서 물러간 다음에 다시 돌아왔어요. 이제명 목

사님은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인터넷으로 뉴욕의 날씨를 확인하는 습관

사님은 전쟁으로 인해 폭격당하고 폐허가 된

이 생겼습니다. 뉴욕의 날씨를 매일 한국에서 느끼고 사는 것입니다. 한국

학교 복구에 온 힘을 쏟았어요. 그때 우리나라

은 안 더운데 뉴욕이 폭염이면 집사님은 덥습니다. 한국에 비가 안 와도 뉴

사람들은 자유롭게 한강을 넘을 수 없었는데

욕에 비가 오고 추우면 집사님도 춥습니다. 마음이 뉴욕에 가 있기 때문입

이제명 목사님이 손수 지프차를 몰고 가서 학

니다. 사랑하는 딸이 뉴욕에 가 있기 때문입니다.

생, 교직원, 교인을 가리지 않고 가서 도와주었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라고 하십니다. “너 진짜 나 를 믿니? 나를 믿는다는 것은 너의 심장이, 너의 마음이 나한테 와 있는 것 이다.” 마음이 갔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니까 뉴욕의 날씨 가 어머니에게 현실로 경험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 나라의 날씨가 느껴지는 게 당연합니다. 이 땅에서 천국을 맛보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실감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뉴욕을 실감하고 느끼는 것처럼 말입니다. 혹시 오늘도 근심할 수밖에 없는 경제 문제, 자식 문제가 있나요? 믿는다는 것은 마음이 주님께로 가야 하는 것인데 그 마음이 경제와 자식에게 기울어 져 있으니 주님과 그 하나님의 나라가 느껴지는 대신에 그 문제들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음을 달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이 계시는 아버 지 집, 그 나라를 맛보고 그 나라가 오늘 나의 삶에서 현실이 될 것입니다. 104  교회지남

답니다. 그뿐 아니라 미군부대에 다니면서 건축 자재, 책상, 걸상 등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많 이 얻어다가 재활용하기도 하고, 남은 것은 길에 산더미처럼 쌓아 두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었 어요. 또 저수지에 파이프를 연결하고 스프링클 러를 설치하여 농사를 지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는 처음 있는 일이어서 구경거리가 되었어요. 이제명 목사님은 현재 삼육대학의 기초를 놓 은 분으로서 헌신적인 일꾼이셨어요. 삼육대학교 호수는 목사님의 이름을 따서 오 늘날 제명호로 불린답니다.


Daily ┃ 오늘을 위한 생명의 양식

devotional

6월 30일(안)

모든 민족을 위한 복음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 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 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류제한 박사 삼육서울병원을 세운 의사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마태복음 8장 7절, 개역한글)

조지 루(한국 이름 류제한) 박사는 1928년에

미얀마 선교의 기초를 닦은 미국 최고의 선교사 아도니람 저드슨은 예수

대총회의 부름을 받고 한국에 왔어요. 처음에

님의 이름을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나님이

는 순안병원에서 사람들을 치료했어요. 1931년

자신을 부르셨다고 믿었습니다. 어느 날 앤이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진

에는 전국적인 의료 활동을 위해 진료소를 세

그는 연인의 아버지에게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여쭙고 싶습니다. 내년 초봄에 따님과 함께 떠나도 될까요?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못 보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출발하는 순간부터 온갖 어려움과 아픔이 뒤따르는 선교사의 삶을 살 겁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위태로 운 파도를 헤쳐 나가야 하고, 남부 인도의 험한 기후에 몸이 상하고, 부족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고, 괴로운 일 투성이고, 툭 하면 욕을 얻어먹거나 수모

우고 사람들을 치료했어요. 처음에는 이층집 을 빌려서 치료하다가 1933년에야 경성요양병 원 부지를 구입하고, 병원 건물을 짓기 위해 모 금을 했어요. 교인들의 적극적인 호응으로 건축 자금이 모였어요. 1936년 1월부터 새 건물에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4 월에는 간호사 양성학교를 시작했어요. 간호사

를 당하고, 박해받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동의해 주시겠습니

양성학교는 나중에 간호학교로 불리다가 지금

까? 이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따님과 어르신 대

의 삼육보건대학으로 발전했어요.

신 돌아가신 분을 위해, 영원한 멸망에 처한 영혼들을 위해, 시온을 위해 그

류제한 박사는 미국과 일본의 전쟁이 일어날

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저를 받아 주시겠습니까? 이런 난관을 뚫고, 영

무렵 대총회의 지시에 따라 본국으로 귀국했다

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의의 면류관을 쓰고, 따님을 통해 영원한 고통

가 해방 후에 다시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왔어

과 절망에서 구원받은 이교도들이 구세주를 드높이는 찬양을 우렁차게 부

요.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부지를 더 구입하여

르는 가운데 다 함께 만날 소망을 품고 이 결혼을 인정해 주시겠습니까?”

병원을 크게 확장했지요. 그리고 병원 이름을

예비 장인에게 보낸 간절한 호소의 이면에는 먼 나라들에서 영광을 받으

서울위생병원이라고 지었어요. 지금은 삼육서

실 하나님을 그리며 바라보는 시각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앤의 아버지는

울병원으로 바뀌었지요. 서울위생병원이 발전

혼인을 허락했고 결국 딸을 잃어버리는 뼈아픈 대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할 무렵 6·25 전쟁이 터졌어요. 북한군이 서울

38년간 선교지에서 일하면서 아도니람 저드슨은 두 번이나 아내를 떠나보 냈고, 어린 일곱 자녀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불교 국가 미얀마의 심장 부에는 그리스도인이 200만 명 이상 살고 있습니다. “그대가 그렇게 구원받은 영혼을 한 사람도 내세우지 못한다면, 아, 행동 의 방향을 새롭게 바꾸고 바꾸라.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하라. 그리 스도께로 가까이, 피 흘리는 그의 옆구리로 가까이 가라. 온유하고 정숙한

을 점령했을 때 류 박사님은 직원들과 함께 피 난을 갔어요. 피난지에서 사람들을 치료하였는 데 이것이 삼육부산병원으로 발전했답니다. 북 한군이 물러가고 서울위생병원을 되찾은 뒤 류 제한 박사는 병원장을 하면서 대통령 주치의가 되었어요. 하나님께서는 류제한 박사를 통하여 많은 일

정신으로 삶을 단장하라. 자신의 영혼뿐 아니라 다른 영혼도 구원할 수 있

을 이루셨어요.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

도록 지혜를 달라고 간절히 통회하며 겸손히 그분께 간구하라”(1증언, 513).

셔서 많은 일을 이루길 원하셔요.

201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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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지남>을 애독해 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더욱 알차고 유익한 월간지를 만들어 가기 위해 여러분의 협력을 기대하며 몇 가지 사항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1. 신앙 간증 신앙생활 중 느낀 은혜나 감동은 나눌수록 더 욱 커집니다. 간증은 그리스도를 높이고 그분의 능력을 증거 하는 수단입니다. 자신 또는 주변의 사연을 정리하여 보내 주십시오(3,600자 분량). 2. 전도와 교회 부흥 교회의 전도 경험과 그로 인한 부흥 사 례는 공동체 안의 침체된 선교 열정을 일깨우는 영적 자극 제가 됩니다. 교회 또는 단체나 개인의 전도 이야기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3,600자 분량). 3. 신학, 교리, 신앙 관련 상담 주변에서 잘 해결되지 않는 신앙 문제나 궁금한 교리 문제 중 공개적 답변이 필요한 내 용을 보내 주시면 각계 전문가의 협력을 얻어 해결해 드리도 록 하겠습니다. 4. 기도력 원고 어린이 기도력 지면(매일 800자 1개월 기본) 을 통해 나눌 기별이 있다면 보내 주십시오. 어린이 기도력 필자도 추천해 주십시오. 보내 주신 원고나 필자는 심의 절 차를 거쳐 선정합니다. 5. 해외 선교 이야기 외방 선교를 위해 헌신하는 교우나 단 체가 늘고 있습니다. 한국인 교우들의 해외 선교 사례를 접

6. 취재 추천 재림 신앙 공동체 모두에 유익을 끼치고 귀감이 될 만한 사연, 행사, 인물 등을 추천해 주시면 절차를 거쳐 선정하도록 하겠습니다. 7. ‘가을 낙엽 프로젝트’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저개발 국가 를 중심으로 필요한 출판물을 지원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후원의 손길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8. 광고 지면 활용 한국 재림교회 내 원활한 소통 및 정보 교 환을 위하여 광고 지면(유료)을 개방하고 있습니다. 적극 활 용하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광고는 편집국 심의를 거쳐 확정됩니다(비용 문의 - 시조사 영업부 02)3299-5346). 9. <애드벤티스트 월드>지 보급 안내 매달 본지에 삽입하여 동시 번역 발행하는 <애드벤티스트 월드> 한글판은 대총회 와 연합회의 특별 보조금으로 <교회지남> 독자에게 무료로 제공해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지남> 구독료에 포함되지 않 습니다. 10. 제안과 건의 사항 한국 교회 발전 및 본지 운용을 위한 건설적인 제안이나 건의 사항을 보내 주시면 소중히 접수하 여 적절하게 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수하고 있습니다. 해외 선교의 생생하고 현장감 넘치는 보고 를 기다립니다.

국내외 독자 여러분께 주님의 평강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 <교회지남> 편집진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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