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JISUNG - NO. 830
2016년 11월 2일(수)
sarl Paris-JisuNG 4 rue Péclet 75015 Paris issN 1627-9249 NO siret : 792 874 513 00015 eDiteur : JeONG, NacK-sucK 광고문의/기사제보 06 0880 4546
parisjisung@gmail.com
북한, 김일성 대학에서 어학연수 받고온 프랑스 젊은이를 만나다. -프랑스 언론에서 이야기한 것과 다른 북한을 접하다20대 중반인 J는 한국을 두번 정도 다녀갔다. 한번은 대학에서 1년 코 스로 한국어를 공부했고, 그 다음은 6개월 동안 또한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했다. 이공학 분야를 전공한 J 는 연구원의 삶을 살고 싶어하지 않 았다. 그건 슬픈 일이라고 한다. 항 상 대부분 혼자 연구소에 있어야 되 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돈 을 벌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가 전공 한 이공분야를 좋아하지만 그것으로 일을 하고 싶어하지는 않았다. 북한 에 다녀온 이야기에 앞서 J의 한국( 남한) 체류기부터 물어보았다. 프랑스에서 가지고 있던 한국에 대 한 이미지와 가서 본 것은 달랐어요? 어땠나요? -일단 한국에 간건 다른 것을 보고 자 했어요. 수년전부터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한국에 가서 케이 팝, 케이 드라마 이외의 것들을 접하고자 했어요. 그것들은 나에게는 피상적인것들이었어요. 한국에서 전 통문화를 접했고, 한국 사람들을 만 나면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살 고 있는지 알게 되었어요. 그건 한국 에 가서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에요. 한국에 총 1년 6개월 정도 있었는데요, 부모님들은 너무 오래 있다고 이해 못하셨어요. 그런데 그 런 시간이 되어야 그쪽에 적응을 할
제 11회 파리 한국 영화제 개막 식에서 - 3p 10월 25일 20시 파리 샹젤 리제 거리에 있는 퓌블리시 스 극장에서 열한번째 파리 한국 영화제 개막식이 있었 다.
J 가 북한 방문시 찍은 사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프랑스인들 이 여행 떠날때는 그쪽 지역 문화를 보고자 하는거에요. 내가 속한 문화 와 같은 문화를 접하기 위해 수만킬 로미터 떨어진 곳에 가지는 않죠. 그 쪽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 러 가는거에요. 한국에 관심 가진 동기는 무엇이었 어요? 일본 드라마를 보다가 한국음악을 들 었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제목을 알 게 되면서 다른 것들을 접하게 되었 죠. 한국 드라마를 보게 되었고, 그리 고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면서 한국 어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처음에 한 국말을 들었을때 참 이상했어요. 좋 지도 나쁘지도 않았어요. 표현하기 가 참 힘든데요. 정말 이상했어요. 음
전 세계 네트웍을 갖춘 파리지성을 만나보십시오
세계로 통하는 창
<특집 인터뷰> 북한 김일성 대학에서 어학연수 받고온 프 랑스 젊은이를 만나다 - 1P 프랑스 언론에서 이야기한 것과 다른 북한을 접하다
파리지성
매주 화요일 파리지성을 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나 억양 등이 프랑스어와 하나도 닮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한국어 공 부를 했어요. 좀 더 체계적인 한국어 수업을 듣고 싶어 한국으로 가게 되 었어요. 그럼 다른 문화를 보기 위한 것이었 겠네요. 네, 다른 문화속의 사람들을 이해하 기 위한 것이었어요. 한국 사람들은 당연히 다르게 생각하고 살아갈 것 같았어요. 그런 것들을 보고 이해하 려고 하면서 나의 사고의 폭을 넓히 고 싶었어요. 내가 잘 아는것에만 머 문다면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수 많은 것들이 있어요. 세상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다른 곳을 가보고 싶었어요. (4면으로 이어짐)
마크 로스코 (1903-1970) "회 화란 경험에 관한 것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 - 7p 위로와 치유의 작가, 거대한 침묵의 그림들 앞에서 조용 하고 관조적인 교감의 경험 을 가능케 한 혁명적인 작가 : "작품에는 어떤 설명을 달아 서도 안 된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 분 노한 민심, 서울서 대규모 촛 불집회 - 8p '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이 불거진 이후 첫 주말, 서울 도심에는 1만여명의 시민들 이 운집하여 최순실 처벌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 구했다. 임혜영, 박은주 전시 - 파리 퐁 데자르 갤러리 - 11P 11월 7일부터 14일까지 파 리 퐁데자르 갤러리에서 임 혜영, 박은주 전시가 열리게 된다. 임 혜영 작가는 홍익대 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구하 갤러리 ... 재외동포언론인협회 시국선언 문 - 12 p
www.parisjisung.com
제34대 프랑스한인회장 입후보자 등록안내 프랑스한인회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서는 2016년 12월16일(금) 프랑스한인회의 정기총회 당일 제34대 프랑스한인회 회장선거를 실시하게 됨을 알려드립니다. 아울러 선관위에서는 프랑스한인회 정관 제12조 및 제13조 규정에 따라 아래와 같이 제34대 프랑스한인회장 입후보자 등록을 공고합니다. 재불한인 여러분께서는 제34대 프랑스한인회 회장선거에 회장 입후보 등록 및 선거권 행사를 위하여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참 여를 부탁드리며, 제34대 프랑스한인회가 재불한인사회의 화합과 발전을 이끌 수 있도록 협력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선거일 : 2016년 12월 16일(금) 18:00 (2016 정기총회 시) 2. 입후보자 등록기간 : 2016년 10월 24일(월) 14:00 ~ 2014년 11월 23일(수) 18:00 (프랑스한인회 업무시간 : 월~금 14시~18시)
3. 입후보자 자격 : - 대한민국 또는 프랑스 국적 소지자로서 프랑스에 체류하고 있는 프랑스 한인 중 - 최근 2년 이상 프랑스한인회비를 낸 자. - 5인 이상의 프랑스 한인들의 추천을 받은 자 - 기타 자세한 자격요건은 한인회 정관 제12조 (한인회 홈페이지 참조 및 2006년 5월 4일에 개최된 임시총회 부칙 참조)
4. 입후보자 추천인 : - 자격 : 2016년 프랑스한인회 회비를 낸 자에 한하여 추천가능 - 추천인은 1인에 한하여 (피)추천인을 추천할 수 있음. 즉, 추천인 1인이 2인 이상 동시 추천은 불가함
5. 입후보자 공탁금 : 3,000유로 (입후보 등록과 동시에 프랑스한인회 선관위에 제출) - 수표로 지불 (발행: A.R.C.F. 앞으로 기입 / 선관위가 보관의무)
6. 입후보자 추천서 프랑스한인회 선관위 소정양식 (4종) : 프랑스한인회 사무실에 비치 - 프랑스한인회 홈페이지(http://www.koreanfr.org)에서 다운로드 가능
7. 제출서류 : 1) 제34대 프랑스한인회장 입후보자 등록증 (프랑스한인회 양식1) 2) 제34대 프랑스한인회장 입후보 지원 동기서 (프랑스한인회 양식2) 3) 제34대 프랑스한인회 운영계획서 (프랑스한인회 양식3) 4) 제34대 프랑스한인회장 입후보자 추천서 각 5부 (프랑스한인회 양식4) (추천인은 당해 년도 한인회비를 낸 한인회원에 한하며, 추천인이 2인 이상의 입후보자 복수 추천은 불가) 5) 입후보자 신원증빙 서류 - 입후보자 이력서 (이력과 관련한 디플롬 사본 등 첨부) - 프랑스 체류증 복사본 첨부 - 프랑스 최소 3년 체류 근거 증명서 - 거주지 증명서 (EDF, GDF, Quittance de Loyer 중 1개) 6) 공탁금 : 3,000유로 수표로 제출 (A.R.C.F. 앞으로 발행) ※ 등록기간 마감 이후, 후보자 사퇴 시에는 공탁금 반환 불가
8. 서류제출 방법 및 제출처 : 프랑스한인회 사무실로 직접 방문접수 (프랑스한인회 업무시간 : 월~금 14시~18시) (※프랑스한인회로 방문시간을 예약하시면, 선관위원이 접수합니다.) 프랑스한인회 ARCF / 83, rue de la Croix Nivert 75015 Paris (M)8. Commerce Tel. 09 71 55 44 41 koreanfr@gmail.com // 이주덕 선관위원장 : 06 99 28 44 53 jdlee92170@gmail.com
9. 입후보자 선거운동기간 : 입후보자 등록일 ~ 2014년 12월 15일 18:00까지 (선거 전 일까지) 10. 선거권자 : 2016년 11월 21일(금) 18:00까지 한인회비를 납부한 (프랑스 체류증 소지자)에 한해 선거권자 마감 - 한인회비 납부자 명단 : http://koreanfr.org/?uid=430&mod=document&page_id=25 - 선관위는 선거인 명부를 작성 후 해당 명부를 (선거권자 마감일 이후) 한인회 홈페이지에 발표 - 선거권자는 프랑스 체류증을 반드시 지참, 확인해야 하며(미소지 시 선거권 없음), 대리선거는 불가 ※ 자세한 선관위 규정은 한인회 정관(한인회 홈페이지에 게재) 참조 http://koreanfr.org/?page_id=16
제 33대 프랑스한인회(ARCF)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이주덕 위원 : 이석수, 정락석
문화
NO. 830 / 2016년 11월 2일(수) - 3
제 11회 파리 한국 영화제 개막식에서 감독에게 주어졌고, 10월 25일 11 회 파리 한국 영화제 개막영화 상 영에 앞서, 그리고 영화제 내내 상 영되었다. 이후 스폰서와 파트너 회사들의 대 표들을 소개했고, 모철민 주 프랑 스 대한민국 대사의 축사가 있었 다. 모철민 대사는 지난 11년동안 파리 한국 영화제를 이끈 배용재 집행위원장과 수고하는 그 팀에게 축하한다고 하면서, 이번에도 큰 성공을 기원한다고 했다. 이어 아시아나 항공 협찬으로 이루 어진 2015년 FlyAsiana프라이 아 시아나상을 받은 <연인들>의 최 2016 제 11회 파리 한국영화제 개막식에서
수진 감독에 대한 시상식이 있었 고, 배용재 집행위원장의 간단한 인삿말과 함께, 11번째 파리 한국 영화제의 개막을 알렸다. <터널>의 김성훈 감독이 이날 참 석해 인삿말을 했다. 그는 아름다 운 도시에서 개최되는 파리 한국 영화제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하다 고 하면서, 그날 오르세 박물관을 방문해서 작품들을 보면서 너무 의
개막식 포토존에서
10월 25일 20시 파리 샹젤리제 거 리에 있는 퓌블리시스 극장에서 열 한번째 파리 한국 영화제 개막식이 있었다. 2006년 1회가 개최되어, 2015년 10회까지 매년 개최된 파 리한국영화제는 프랑스의 최대 정 기 한국 문화 행사이며, 파리 유일 한국영화제라고 할수 있다. 지난 10년간 파리 한국 영화제는 장편 201편, 단편 199편 등 400편 의 한국 영화를 프랑스 현지 관객 에게 소개하였으며, 이 중 383편은 당시 프랑스 미개봉/미출시 작품이 었다. 또한 31명의 감독, 5명의 배
우, 6명의 영화 PD와 부산국제영 화제 김동호 조직위원장이 파리한 국영화제를 다녀갔다. 개막작인 <터널> 상영에 앞서 가 진 개막 행사에는 한국과 프랑스 사회자가 불어와 한국어로 진행했 다. 올해 11회를 맞이하여 파리 한 국 영화제는 몇가지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 13편의 페이사쥬 영화들 을 대상으로 관객상을 개설했다고 발표했다. 페이사쥬 분야의 영화 를 보고 나서 의견을 남기는 사이 트인 SensCritique로 가서 별점을 주면 폐막식때 가장 많은 별점을
인삿말중인 <터널>의 김성훈 감독
미있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하
받은 작품에 대해 SensCritique 관 객상을 수여하게 된다고 한다. 또 다른 새로운 시도로는 영화제 협찬 사인 삼성전자와의 파트너쉽을 통 해 이루어진 '내가 본 한국'이라는 프로젝트로 매년 초청 감독들중 한 명에게 삼성 스마트폰을 제공하게 되면 감독은 한국에 가서 그가 본 한국의 모습을 20초정도 되는 영 상을 촬영하고 다음해 영화제에서 개막식 영화 뿐만 아니라, 매 영화 상영전마다 보여주는 프로젝트라 고 한다. 2015년에 시작된 이 프로 젝트에는 영화, <암살>의 최동훈
면서, 파리 한국 영화제 개막작인 <터널>을 본 관객들이 같은 느낌 을 가지기를 원한다고 했다. 이후 개막작인 <터널> 상영이 있 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 이 올라가자 관객들은 우뢰와 같 은 박수를 쳤다. 폐막식은 11월 1 일 화요일 8시 Publicis극장 1관에 서<우리들>의 윤가은 감독, <비 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 <아수 라>의 김성수 감독과 배우 정우성 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파리지성>
인터뷰
NO. 830 / 2016년 11월 2일(수) - 4
(1면에서 연결됨) 그래서 사고의 폭을 넓히게 되었 나요? 그럼요. (J의 대답은 아주 단호했다). 한국에 가서 보고는 내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을 노트에 숫자를 매겨가 면서 적어보았어요. 그게 어떤 것들이었어요? 말해줄수 있어요? 네, 한국에 가서 제일 충격적이었던 건 교회에 있는 붉은 십자가였어요. 그게 도처에 있었어요. 유럽 사람이 붉은 십자가를 보면 이상하게 여길 거에요. 붉은 색은 좋지 않은 것을 상징해요. 사탄, 아픔, 피 같은거요. 프랑스에서는 붉은 십자가를 걸지 않아요. 이해하기 힘들었고요, 충격 적이었어요. 그래서 노트에 적었죠. 그리고 또 이상하게 여긴 것은 길이 경사져있는거에요. 그래서 한국 사 람들이 운동화를 즐겨신는구나 싶 었어요. 그리고 한국 나무들이 동그 랗게 깎여져 있는것도 이상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노트해서 답을 얻었 어요? 아뇨. 답이 없어요. 다른 방법으로 보고 이해했어요. 그건 거부하고 받 아들이는게 아니고 다름을 이해하 는거에요. 내가 보아왔던 것과 다른 것에 대해 일단 물러나서 다시 생각 해보는거에요. 먼저 판단치 않고 이 해하려고 해보는거에요. 내 나름의 의견을 가지면서 그것들을 존중하 는거에요. 이해했나요? 많은 것들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어 떤 것들은 이해는 했지만 받아들이 고 싶지 않은것들이 있었어요. 예를 들면, 한국에서 국수를 먹을 때 소리 를 내쟎아요. 그게 맛있고, 잘 먹고 있다는 표현이라고 하던데요. 그것 을 그렇게 이해는 했지만, 먹으면서 소리 내고 싶지는 않아요. 그리고 프
랑스인들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먹는다는 의미보다는 그 순간을 그 사람과 함께 나누는거라고 생각해 요. 한국인들은 식사를 너무 빨리해 요. 북한도 마찬가지더라고요. 북한에서 식당에 갔었어요? 몇몇 북한 사람들과 함께 식사한 적 은 있는데 아쉬워요. 만약 다음에 가 게되면 북한 사람들과 자주 식사를 하게 해달라고 할거에요. 함께 먹으 면서 그들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보 고 싶어요. 북한에서 당신에게 어떤 식사를 준 비해 주었어요? 북한에 중국인들이 자주 오는 것 같 더라고요. 그런데 프랑스인들을 맞 이하는게 익숙하지 않아 조심하는 듯 했어요. 프랑스 사람이니까 프랑 스식, 적어도 서양식 식사를 준비해 서 주었는데 난 그게 별로 좋지 않 았어요. 난 북한 지역 음식을 먹어보 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들이 준비해 준 프랑스 식사가 맛있지 않았어요. 돈을 들이고 그 먼곳으로 가서 내가 프랑스에서 쉽게 먹을수 있는 음식 을 먹고 싶지는 않았죠. 그래서 그들 에게 북한 음식을 먹고 싶다고 했고, 좀 해주었어요. 북한에서는 어떻게 소통했어요? 통 역사가 있었어요? 북한에 도착했을 때 어떤 학생이 통 역을 해주었는데요. 불어를 3년 공
부했다는데 완벽하게 구사했어요. 어떻게 그렇게 불어를 배웠는지 모 를 정도였어요. 불어 책이 있었지만 프랑스 사람이나, 혹은 프랑스 영화 도 안보고 어떻게 그렇게 불어를 배 웠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아마 언어 습득하는데 타고난 능력이 있지 않 을까 싶어요. 한국에 가서 경험했던 인상적인 것 들 좀 더 이야기해주세요. 사람들과의 관계들이 유교 사상에 서 왔다고 하는데, 프랑스와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한국 사람들의 언니, 누나, 오빠 같은 호칭은 이곳에는 없어요. 다른거죠. 한국 대학에 있 을 때 같은 또래 한국 학생에게 영어 를 가르쳤어요. 그들이 나에게 존칭 을 붙이는거에요. 같은 또래고 친한 데 반말해도 되는데 가르치는 입장 이라고 존대를 하는등, 너무 격식을 차리는 것 같았어요. 이해는 했지만 불편했어요. 다른 예로요, 다른 나 라에 여행을 갔었는데 나이가 나보 다 많은 프랑스인이었어요. 50대쯤 이었을것 같아요. 나와 같은 학생 입 장으로 갔었는데요, 그는 나이가 많 기 때문에 나보다 윗사람이라고 생 각하는거에요. 그는 아시아에서 많 은 시간을 보냈고, 유교적인 문화에 젖은 것 같았어요. 프랑스인들은 이 런 것을 견디기 힘들어해요. 나이가 많지만 같은 학생의 입장이면 위사 람이 아닌 동료 관계가 되어야 해요. 그건 윗사람 콤플렉스밖에 되지 않
아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프랑스 문 화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프랑 스의 자유, 평등, 박애 중 그건 사람 들 사이의 평등인거쟎아요.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반말을 한다고 해서 존중안하는건 아니쟎아요. 한국은 다른거 같아요. 나이가 많으면 다른 이들을 존중 안하더라고요. 나에게 그건 견딜수 없어요. 나이, 직업 ,학 교를 떠나 사람을 존중해야 되는데, 한국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너 무 중요하더라고요. 나는 그것 때문 에 한국인들이 불행한 것 같아요. 그 리고 권위의식도 있어요. 누군가가 다른이들보다 나이가 많고, 좋은 직 책에 있으면 자기에게 복종 안하는 이들에게, 일종의 복수 같은 것을 하 는거에요. 그러다보면 그 복수는 세 대를 거쳐가는거에요. 그건 그들의 힘을 남용하는거에요. 어떤 대학이 고, 어떤 직책을 가지고 있고, 누구 를 알고 있는가 등에서 따라 힘을 주 는거에요. 물론 프랑스도 그런 것들 이 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에요. 나는 그런것들이 한국인들을 불행하게 하는 것들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나 는 한국 사람이 아니에요. 그안에 들 어가 있지 않기에 그런 점들이 있다 고 발견하는거에요. 그런것들을 보 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면서 프랑스 와 비교해 보게 되었어요. 한국사람 들은 너무 정해진 규율에 따라 살려 고 하니까 스트레스가 있을거 같아 요. 벗어나기 위해 싸워야해요. 정부 나, 정책에 대해서도 맞서 싸워야해 요. 프랑스는 자유를 위해 싸웠어요. 한국은 분단과 전쟁, 독재체제 등 많 은 소용돌이속에 있었쟎아요. 그와 중에 '경제 성장의 기적'이라고 하던 데요. 여기서 '기적'은 적당한 단어가 아니에요. 너무 쉽게 사용하는것 같 아요. 기적은 요술같은거에요. 그렇 게 경제가 성장하기까지, 희생했다 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많은 이들이 열심히 일하며 노력한거쟎아요. 그 런 경우는 국민들의 노력의 결실이 라고 하죠.
인터뷰 어떻게 북한에 갈 생각을 했어요? 남한에 갈 생각을 했던것과 같아요. 다른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였어요. 한쪽 이야기만 듣고는 제대로 알수 없어요. 북한은 나쁘고, 기아에 허 덕이고 있다고 하죠. 누가 이런 이 야기를 하냐면 남한이죠. 북한과 전 쟁을 했으니깐 긍정적으로 이야기 하지 않죠. 한쪽의 선전이에요. 아무 도 북한쪽 이야기를 듣지 못했고, 이 해하지 못했어요. 이건 말이 안된다 고 생각해요. 물론 모든 나라들이 좋 지만은 않죠. 하지만 다른 것들도 있 다고 봐요. 북한을 이해하기 위해서 였어요. 북한에서 돌아온 이래로 한 쪽 의견, 그것도 북한을 모르는 언론 의 이야기에 반항심이 일었어요. 프 랑스 언론에서는 북한에 대해 아무 렇게나 이야기하고 사람들은 그것 을 믿는거에요. 그렇게 바보같은게 너무 안타까워요. 북한 다녀온 이야 기를 하면 사람들이 내말을 안믿어 요. 안듣던지, 안믿던지, 안이해하 는거에요. 사람들은 언론을 믿어요. 그런데 언 론은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전해요. 언론의 목적은 정확한 정보를 주는 게 아니고, 돈을 벌려고 하는거에요. 겁주는 것을 싣으면 신문이 잘 팔릴 수 있으니까요. 북한에서 무엇을 했어요? 한국어 배우고, 평양을 보고, 북한 사람들을 만나려고 했어요. 북한 학 생들요 그리고 그들이 사물을 어떻게 보고, 어떤 생각을 하며, 자신의 나라를, 정치를 그리고 남한을 어떻게 생각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어요. 그럼 북한 학생들과 만나서 이야기 했어요? 몇몇 학생들과 약간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요, 문제는 그들에게 질문을 하는것은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 기에 조심스러웠어요. 어쨌든 북한 이니까요. 일단 생각하는 것이 다르 고 그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해서 어 떻게 받아들일지 몰랐어요. 얼마나 머물렀어요? 한달요. 그리고 북한에서는 원칙이 혼자 나가면 안되는것이라고는 했 는데, 그럴수 있었어요. 북한측 이야 기가 참 애매했어요. 이런 식이었어 요. 혼자 나가도 돼요. 하지만 거기 이상은 안돼요. 이런 거에요. 그래서 할수 있는 것과 하지 말아야되는 것 을 정확히 잘 모르겠더라고요.
NO. 830 / 2016년 11월 2일(수) - 5
그런 상황에서는 조심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그랬죠. 그리고 사람들이 이야기한 북한에 있는것 같지가 않았어요. 그 냥 평범한 도시에 있는듯했어요. 그 런데 프랑스에서는 내가 가고 싶은 데 가고 사진찍고 싶은곳에 찍곤하 는데, 북한에서 나의 태도는 달랐어 요. 사진 찍어도 되냐고 좀 물어봤어 요. 그런데 엄격히 사진 찍지 말라는 곳 외에는 그냥 물어보지 않고 찍었 어요. 김일성 동상에서는 사진을 정 면에서만 찍어야 해요. 측면이나, 뒷 면에서 찍으면 안된다고 하더라고 요. 그래서 거기서는 아예 사진을 안 찍었어요. 평양에 있었어요? 그 도시는 어땠 나요? 평양은 아주 아름다웠어요. 컬러풀 했고요. 건물을 많이 짓고 있었어요. 큰 건물요. 내가 평양 시내 사진 찍 은 것을 보여주면 아무도 평양이라 고 믿지 못할거에요. 우리가 생각하 던것과는 달라요. 그외의 다른 모습 은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았어요. 나 는 내가 본것만 이야기해요. 북한의 모든 모습이 그렇다고 이야기하지 는 않아요. 평양은 수도니까 다른 도 시들과는 다를수 있죠. 김일성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웠어 요? 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3 시간씩, 그리고 토요일에는 1시간 30분 동안 한국어 수업을 들었어요. 그들은 유럽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지 않았어요. 한국어 수업 방식은 유럽인들에게 맞지 않았어 요.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매일 숙제 를 많이 내어주어 힘들었어요. 특히 남북한의 문법, 단어들이 달랐어요. 내가 '화장실'이라고 하면 못알아들 어요. 북한에서는 '위생실'이라고 해 요. 또 내가 '옥수수'라고 하면 못알 아들었어요. 특히 사용하지 말아야
될 단어는 '한국'이었어요. '조선'이 라고 해야해요. 특히 슬펐던데 갈라 진 한국이 자신들의 나라를 지칭하 는 말조차 이렇게 다르다는거에요. 독일이 분단되어 있었을때 동독, 서 독이라고 했쟎어요. 어쨌든 독일이 라는 단어는 같았죠. 이런 것조차 서 로 동의가 안되는데 어떻게 당신들 이 통일을 바랄수 있어요 ! 그럼 한달 동안 북한에 머물면서 남 북한이 어떤 점이 다르다고 느꼈 어요? 다른 점은.. 설명하기 힘들고요, 가 장 와닿았던건 남북이 닮았다는거 에요. 북한 사람이 하는 행동과 말 이, 남한 사람과 같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언어는 많이 달랐어요. 그 런데 생각하는게 많이 닮았어요. 유 교사상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줄수 있어요? 설명하기는 힘든데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요. 서열적인 면에서 존중 하고 아주 조심하는게 남한에서 느 낀거와 같았어요. 보통 사람들은 북 한의 정치 이야기를 주로 하죠. 거 기에 사람들이 있다는걸 잊어요. 나 는 북한사람들의 인간적인 면을 보 고자 했어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 는지 알고 이해해보려고 갔어요. 남 한에서처럼 나를 '언니, 누나' 라고 부르지는 않았어요, '동무'라고 불렀 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는 남한과 마 찬가지였어요. 첫수업에서요, 선생 님이 'J 동무'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예' 했죠. 그런데 선생님은 아무 반 응이 없는거에요. 내가 "예"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서기를 기다린거였어 요. 선생님은 내가 일어서야 되는것 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모른거에요. 프랑스에서는 대답하면서 일어서지 는 않죠. 그리고 수업 시간에요. 선생님과 몇 마디 한국어로 대화를 하고 나니, 바 로 남한에서 한국어 배웠구나 라고 했어요. 내가 한국말 할때 남한 억
양이 있었어요. 선생님에게는 그게 좀 우스웠나 보더라고요. 기분 나쁘 지 않게 약간 조롱하듯 이야기 했어 요. 처음에는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몰 랐어요. 왜냐하면 그는 '한국'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거든요. '남조 선'이라고 했어요. 나는 '한국'이라고 할줄 알았거든요. 처음에는 북한의 남쪽을 이야기 하는줄 알았어요. 나 중에 알았죠. 북한에 가기전에 북한에서는 '어'와 ' 오'가 남한과 반대로 사용하고 있다 고 미리 이야기해주었어요. 혼동해 서 사용하다가 어떤 북한 학생에게 지적 받았어요. 그리고 남한에서는 '괜찮아요?' 가 거기서는 '일 없습니 까?' 라고 해요. 물론 '괜찮아요?라고 해도 통해요. 그런데 그렇게 말 안한 다고는 알려주었어요. 또한 '역사'를 '력사'라고 하고요, '여자'를 '녀자'라 고 적어요. 전 대통령 노무현을 '노 무현'이라고 적으니 그렇게 적는거 아니라고 했어요. '로무현'이라고 했 어요. 그게 전통적이고, 정확한 한국 어라고 했어요. 이상했어요. 왜 남한 이 철자를 이렇게 바꾸었나 싶었어 요. 프랑스도 철자나 문법을 이렇게 바꾸지는 않아요. 그리고 이런 부분 에 있어서 북한은 안티 미국이 아니 었어요. 외래어를 전혀 사용안할줄 알았는데, "텔레비죤, 라지오" 등 미 국에서 온 말을 사용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왜 미국 단어를 사용하느냐 고 물었더니, 미국에서 온 모든것을 거부하지는 않는다고 했어요. 사물 을 지칭하는 한국말이 있으면 사용 하고, 없으면 미국말을 사용하는거 래요. 그게 자연스러운거죠. 그런데 미안한 이야기지만 남한이 나 북한사람들 솔직하지 않아요. 남 한에서요 친구로 생각한 어떤 사람 이 자기 생각을 이야기 안해요. 한번 도 짜증낸적도 없고요. 친구로 생각 하고 있을때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 를 대하지 않으면 상처가 되요. 감 출 필요없고, 생각을 이야기하면 좋 을텐데 정직하지 않아요. 나에게 그 건 존중의 증거에요. 남한에서 그런 거 때문에 짜증이 났는데요. 북한에 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수가 없었어요. 왜 그러는 지는 알아요. 상처를 주지 않기 위 한것인줄 아는데 그게 더 상처가 돼 요. 그게 유교사상에서 왔다는것을 알고 이해는 하지만, 나는 받아들이 지는 않아요. 좋은 의도라는것은 알 아요. 하지만 나에게는 좋지 않아요. 내가 알고 이해하는 것들에게 대해 서는 완전히 거부할수는 없어요. 또 한 나쁘고, 좋다로 판단할수도 없고
인터뷰 요. 물론 내가 좋고, 싫고는 있어요. 하지만 나의 의견이 절대적일수는 없죠. 나도 모르게 처음에는 막 판단 하려고 하는데, 그러지 않으려고 노 력해요. 누군가를 처음 보고는 싫은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알고보니 좋 았어요. 그랬기에 항상 내가 틀렸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이런저런 판단이 드는것은 자연스러운거에요. 그 다음에는 생 각을 물려야죠. 이런것을 여행을 통 해 배워요. 다른것을 발견하니까요. 이런 과정속에서 잘 몰랐던 나 자신 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해요. 그래서 여행을 좋아하는군요. 어릴때부터 부모님과 여행을 많이 했어요. 프랑스 언론을 통해 알았던 북한과 가보고난 후의 북한의 다른점이 있 다면요. 북한에 다녀왔다고 하면요, 사람들 이 거기 갈수 있냐고 해요. 그리고 는 힘들지 않았냐고, 무섭지 않았 냐고 해요. 북한에서 거리를 산책하 면서 도둑 맞을까봐 걱정하지 않았 어요.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그런 걱 정이 돼요. 사람들이 언론이 움직이 는대로 생각해요. 북한에 가면 무섭 고, 먹지 못하고, 세뇌 교육 받는다 등,, 어디서 그런 정보들을 들었어 요? 확인해봐 줄수 있냐고 하고 싶 어요. 북한은 사람들이 생각하는것 처럼 그렇게 나쁘지 않았어요. 사 실이라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그것 들이 정말 맞는건지 아닌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아요. 저 또한 평양이 아주 컬러풀했다고 하는건 회색빛을 띄고 있을것이라는 선입 견 때문이었던거에요. 음료수 스프 라이트도 있고, 아디다스 운동화도 있었어요. 자유롭게 평양 거리를 다녔나요? 별로 그러진 않았어요. 백화점에 한 번 갔었어요. 전자제품들이 있었고,
NO. 830 / 2016년 11월 2일(수) - 6
북한 자체 브랜드도 있었고, 중국에 서 온것들이 있었어요. 화장품들이 있었는데 북한은 화장하는거나, 매 니큐어 바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남한에는 많은 여성들 이 성형수술을 했던데 무서워 보여 요, 엄청 큰 눈하며 자연스럽지 않 아요. 그것을 아름답다고 하는데 이 렇게 가다가는 자연스러운것을 아 름답게 여기지 못하게 될거 같아요. 자연스러운게 또한 아름다워요. 북 한 사람들은 자연스러워서 아름다 워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 으니까 아름답죠. 남한이 이런 면은 북한을 배웠으면 좋겠어요. 북한의 좋은 점이라고 할수 있어요. 그들은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해요. 그것을 어떻게 알았어요? 경험한 것이 있다면요. 북한 남학생이 프랑스 여학생이 파 운데이션 바르고, 색연필로 눈 화장 한 것을 보고는 안하는게 더 예쁘 다고 하는것을 봤어요. 북한 여성들은 화장 안하던가요? 거의 못봤어요. 무대에 서는 이들 말고는요. 내가 본 북한 여학생과 남학생들은 모두 이쁘고 잘생겼어 요. 그런데 그들은 김일성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었어요. 어쩌 면 외모가 선발되어 들어왔을수도 있어요. 다른 곳은 몰라요. 이 부분 은 조심스러워요. 그리고 북한에 여행을 간 사람들은
대부분, 모두는 아니겠지만요, 그들 은 북한에 갔다 왔다는것을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것 같아요, 무언가를 발견하고 이해하려고 하면서 자기 의 생각을 바꾸기 보다는 자랑하고 싶은거 같아요. 무언가 통제받은 것은 없었나요? 북한을 떠나올때 세관 통과하면서 내 사진기에 있는 사진을 봤어요. 사진 검열을 좀 하는것 같았는데, 세관원이 사진기에 있는 사진을 보 더니만 물속에서 찍은게 있으니 신 기해했어요. 북한에서 한달은 너무 짧았어요. 북한, 중국 학생들과 친 구가 되었는데요, 북한을 떠나오면 더이상 그들과 연락할수 없어서 아 쉬워서 눈물이 났어요. 중국 친구와 는 그가 중국으로 돌아가면 연락할 수는 있는데요. 아~ 그리고 북한에 도 인터넷이 있어요. 그런데 너무 비쌌어요. 비싸서 인터넷 안한게 아 니고 저렴해도 안했을거에요. 인터 넷 없이 북한에 있으니 아주 좋았 어요. 인터넷 없으니 사람들을 만나 게 되요. 인터넷이 있으면 사람들을 만나기 보다는 메시지를 주고 받쟎 아요. 불편한 점은 있었지만 신선했 어요. 기회가 되면 북한에 다시 가 고 싶어요. 많이 못봤어요. 남한에 서는 오랜 시간 머물며 여행도 많 이 했어요. 북한에서는 보고 싶은것 도 많고요. 세계속에서 한국을 이해 할 것들이 많이 있을거 같아요. 북 한은 많이 가려져 있어요. 그래서
더 많은것을 보고 싶고, 다른이들에 게 전하고 싶기도 해요. 북한에 대 해 안좋게 알려져 있는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모든게 안좋지 않 아요. 북한 정부의 정치에 대해서는 고쳐야 될게 있죠. 물론 기아로 인 한 사망자들이 있겠죠. 그건 다른 나라에도 있어요. 독재자가 다른 나 라에도 있고요. 프랑스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독재자들은 받아들여요. 왜 그런 나라의 독재자들은 괜찮고 북한의 독재자는 안되는거에요? 북 한의 핵실험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 는데요. 프랑스가 가지고 있는 핵무 기를 무슨 권리로 다른 나라에서는 가지면 안된다고 이야기할수 있나 요? 사람들은 '김정은이 정상 아니 다' 라고 하는데요, 그가 정상이 아 니면 바로 전쟁을 일으켰겠죠. 그 는 바보가 아니에요. 그가 핵무기 를 만든건 방어하기 위해서에요. 상상을 해봐요. 나를 중심으로 주 위의 모두가 적일때 겨우 수백킬로 떨어진 남한도 적일때 어떻게 반응 을 해야되요? 방어하기 위해 무장 하는거죠. 북한에 대한 편견이 너 무 심해요. 사람들은 조종당하고 있 는것에 대한 인식이 없어요. 조종당 하면서 만족하고 있어요. 제가 북한 은 괴물이 아니라고 하면, 바로 친 북한이라고 해요. 나를 카테고리안 에 넣어버려요. 생각을 안해요. 나 는 친북한이 아니라고 해요. 내가 변호하고 싶은건 공정함이에요. 북 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들은 공정 하지 못해요. 북한에 가서 느낀것에 대해 더 이 야기해줄게 있다면요 호의와 친절을 느꼈어요. 우리를 담 당하는 사람이 우리를 외출하게 하 려면 여러 군데 허락을 받아야해요. 정말 최선을 다해 우리를 여행하게 해주었어요. <파리지성>
파리 13구에 업소용 주방용품 전문업체 신씨다이 오픈
SINSIDAI FRANCE 142, Boulevard Vincent Auriol 75013 Paris / Tel : 09 83 85 33 90
문화
NO. 830 / 2016년 11월 2일(수) - 7
마크 로스코 (Mark Rothko,1903-1970) - "회화란 경험에 관한 것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 -
사진1
위로와 치유의 작가, 거대한 침묵 의 그림들 앞에서 조용하고 관조 적인 교감의 경험을 가능케 한 혁 명적인 작가 : "작품에는 어떤 설 명을 달아서도 안 된다. 그것이야 말로 관객의 정신을 마비시킬 뿐 이다. 내 작품 앞에서 해야할 일은 침묵이다". 마크 로스코, Mark Rothko, 1903 년 러시아 출생의 미국 추상표현 주의 미술 '색면 추상'의 선구자 이자, 평면회화의 혁명가로 평가 되는 인물이다. 본명은 마르쿠스 로스코비츠, Marcus Rothkowitz. 1913년 가족이 모두 미국 오리 건주 포틀랜드로 이민을 왔다. 유 럽에서 나치의 영향력이 커지자 로스코는 1938년 미국 시민권 을 얻어 법적으로 미국인이 되었 다. 1940년에 이름도 마크 로스코 (Mark Rothko)로 개명했다. 로스 코는 현대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 하는 화가이자, 세계 미술시장에 서 가장 인기 있는 화가 중 한 명 이다. 그의 작품은 거대한 캔버스에 스
며든 모호한 경계의 색채 덩어리 와 극도로 절제된 이미지를 통해 캔버스의 한계를 넘어서며, 우주 적 확장성과 이것이 불러일으키는 숭고함, 내적 감흥과 감동 등 벅찬 감정적 유대를 유발시킨다 이렇게 로스코의 거대한 작품은 분명 추상화처럼 보이지만, 그 스 스로는 늘상 추상화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1957년 한 인터 뷰에서 감정적 교류에 대해 이렇 게 말한다 : "나는 색채나 형태나 그 밖의 다른 것들의 관계에는 관 심이 없다. 내 관심은 오로지 비극, 황홀경, 운명 같은 인간의 근본적 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람 들이 내 그림을 대할때 무너져 울 음을 터뜨린다는 사실은 내가 인 간의 기본 감정과 소통할 수 있다 는 것을 보여준다. 내 그림 앞에서 우는 사람은 내가 그것을 그릴 때 경험한 것과 똑같은 (일종의) 종교 적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는 관람객들이 자신의 작품과 교감하기를 원했고, 자신의 그림 들과 마주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 신의 근원적 감정을 만나 기꺼이
눈물을 흘리는 감동과 치유 그리 고 위안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는 또한 자신의 작품 하나하나 가 개별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 다고 믿었으며, 작품 스스로 개성 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사진 1은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 있 는 로스코 채플(Rothko Chapel) 내부 전경 : 1970 - 1971년에 세 워진 로스코 채플은 종교와 상관 없이 누구든 들어와서 그림을 보 고, 스스로 깊은 내면의 공간 속 에 빠져 들어 치유와 위로의 경험 을 선사할 수 있는 장소이다. 종파 를 초월한 모든 종교를 위한 일종 의 성소로서, 팔각형의 공간에 로 스코의 검은 어두운 색의 작품 14 점이 걸려 있다. 로스코가 거의 말 년에 이르러 제작한 작품들이다. 로스코는 1921년 예일대학교에 입학했으나, 3년 만에 학업을 그 만두고 뉴욕 아트스튜던츠 리그 에서 회화 수업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0년 만에 페기 구겐하임(Marguerite Guggenheim)의 후원을 받으면서
화가로서 이름을 알린다. 1940년 대 후반 자신만의 사각형 색면회 화를 선보이기 시작, 58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미국 대표 작가 중 한 명으로 참가한다. 1960년에는 뉴 욕 근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 전을 열며 당대 최고의 작가로 부 상했다. 그러나, 로스코는 이러한 자신의 사회적 명성을 반기지 않 았다고 한다. 오히려 자신의 미술 적 진보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 지 않았는지에 대해 끊임 없이 반 문하며 두려워했다. 또한 예술이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극도로 불편해했다고 전 해진다. 1964년 이후 로스코는 주 로 어두운 색이 지배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말기 작품에서는 단 하 나의 수평선으로 화면이 양분되는 등 구성이 더욱 단조로워지고 무 거움과 우울함의 정조가 짙게 드 리워졌다. 결국 그는 우울증과 건 강의 악화로 1970년 2월 25일 뉴 욕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자 살로 생을 마감한다. <파리지성 / 현 경, dongsimijs@gmail.com>
La Maison du Ginseng et des Thés coréens (고려인삼 프랑스 대리점) KIMEX-CO Ginseng, Gros et Détail
L’Original Ginseng Coréen sous toutes ses formes les plus efficaces, pure à 100 % 6 ans d’âge ( Panax C.- A. Meyer) GINSENG
-Extrait concentré Rouge, Royal, Impérial Gold -Extrait concentré Blanc Gold -Poudre Rouge Gold -Gélules et Comprimée -Thé au ginseng Rouge, Blanc, Frais -Racines séchées
KIMEX-CO (YUJA)
Thés et Tisanes
- Thé vert BIO - Thé vert sachet et vrac - Thé vert au riz grillé - Tisane sceau de Salomon
Thés en gelée
- Yuja (Citron coréen) - Gingembre - Jujube - Aloé Véra
86, BD Saint-Marcel, 75005 PARIS / Métro N°7, Les Gobelins – BUS : 27, 47, 83, 91 Tél : 01 45 35 68 07- Fax : 01 45 35 68 14 / http://www.kimex-co.com
Artisanat
- Boites laquées - Céladons - Théières - Tasses - Idées cadeaux
국내 소식
NO. 830 / 2016년 11월 2일(수) - 8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 분노한 민심, 서울서 대규모 촛불집회 '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
되며, 이를 통해 둘 사이
이 불거진 이후 첫 주말,
의 관계가 최소 37년 이상
서울 도심에는 1만여명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시민들이 운집하여 최순
1995년 최순실 씨는 정
실 처벌과 박근혜 대통령
윤회와 재혼했다. 이 무렵
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전
정윤회는 '육영재단 이사
까지는 의혹 정도로만 여
장 박근혜 비서실장'으로
겨졌던 최순실 씨의 국정
활동하다가 1998년 박근
개입이 JTBC의 보도를
혜가 정식으로 국회의원
통해 사실로 드러남에 따
이 되자 그의 '비서실장'
라 박 대통령 하야를 주장
으로 2005년까지 일했다.
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이렇게 '최태민 일가'는 계
날로 높아지고 있다.
속해서 박근혜 대통령의
10월 29일, 서울 광화문
주위를 맴돌았던 것이다.
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 혜 시민 촛불 집회'에는 주최측이 신고했던 2천명 보다 훨씬 많은 1만명 가 량(주최측 추산 3만 명) 의 시민이 참석했다. 주최 측은 "유례없는 국정 농단 이 자행됐음이 사실로 드 러났다"며 '최순실 사태' 의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 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다. 이 자리엔 이재명 성남시 장과 더불어민주당 송영 길·박주민 의원, 정의당 노회찬·이정미·김종대 의원 등 야권의 정치인들 도 다수 참여했다. 시위 대는 청와대 진입을 시도 하며 한 때 경찰과 대치 했으나 큰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파란의 시작 '최순실 게이트'의 도화 선이 된 것은 10월 24일 JTBC 뉴스보도였다. 이 날 JTBC는 최순실 씨가
떠난 사무실의 짐 속에서 그의 것으로 추정되는 태 블릿 PC를 발견했으며, 이 안에는 박 대통령의 연 설문 44개를 비롯해 국 무회의 발언·대선 유세 문 등 200여개의 파일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최순 실 씨는 이 태블릿을 통해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길 게는 4일, 짧게는 몇 시간 전에 미리 받아봤으며, 직 접 수정까지 한 것으로 밝 혀졌다. 게다가 여기에는 '극비'로 취급됐던 드레스 덴 연설문까지 포함되어 있어 충격을 더했다. 구체적인 증거가 나오고 여론이 거세지자 박 대통 령은 10월 25일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직 접 언급하며 "과거 어려움 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 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 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
에서 조언을 해준 것은 맞 지만 "청와대의 보좌체계 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 뒀다"고 해명했다. 그러 나 이 해명 내용 역시 거 짓임이 JTBC 후속보도 를 통해 드러났다. 군사, 외교, 안보를 넘나드는 주 요 기밀사항들에 대해서 도 박 대통령이 최씨와 미 리 상의한 내용이 드러난 것이다.
최순실과 박근혜의 인 연 최순실 씨를 이해하기 위 해서는 그의 아버지 최태 민이 누군지 알아야 한다. 최태민은 승려 출신으로 1970년대에 불교, 기독 교, 천도교를 합친 사이 비 종교인 '영생교'의 교 주로 활동했다. 그는 여 섯 명의 부인에게서 3남 6녀를 두었는데 최순실은 5녀이다. 박 대통령의 어
머니 육영수 여사 피살 사 건 뒤 최태민은 박근혜에 게 위로의 편지를 전했고, 이것을 계기로 둘은 가까 워졌다. 1975년 최태민은 목사 안 수를 받고 '대한구국선교 단'을 설립했고 박근혜는 이 단체의 명예총재로 추 대되어 관련 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이듬해 에는 박근혜와 '새마음봉 사단'이라는 관변 운동단 체를 만들어 함께 활동했 다. 이때부터 최태민은 박 근혜를 등에 업고 각종 이 권 개입과 횡령 등의 비리 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1979년 한양대에서 열린 '제1회 새마음제전'에서 최순실은 전국새마음대학 생 총연합회장 자격으로 당시 새마음봉사단 총재 였던 박근혜를 수행했다. 이것은 최순실과 박근혜 의 첫 공식 대면으로 추정
최근까지 계속 불거졌 던 의혹 박근혜 정권은 출범 후 여 러 번 인사 문제로 진통을 겪어왔다. 집권 여당이나 청와대 내부에서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인사가 계 속되자, 점차 '비선 실세' 에 관한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2014 년, 아무런 공식 직함이 없는 정윤회 씨가 청와대 내·외부 인사들과 정기 적으로 접촉하면서 국정 에 개입하고 있다는 내용 의 청와대 문건이 언론에 유출됐다. 당시 박근혜 대 통령은 제기된 모든 의혹 을 부정하고 "문건유출은 국기문란 행위"라며 오히 려 유출에 대한 책임을 물 었다. 해당 사건 수사과 정에서 박관천 경정은 " 대한민국 권력 서열 순위 는 최순실 1위, 2위 정윤 회, 박근혜 대통령은 3위 에 불과하다"는 말을 남겼
브데뜨 파리 유람선 샴페인 1잔 또는 크레페와 음료가 제공되는 스낵 크루즈 (croisière plaisir) 이용시, 성인요금에서 3유로 할인해 드립니다. (광고 지참)
www.vedettesdeparis.com 유람선 관광코스 한국어판 제공
VEDETTES DE PARIS Port de Suffren 75007 Paris TEL. 01 44 18 19 50
국내 소식 다. 그러나 박 경장의 이러한 발 언은 당시에는 터무니없는 것으 로 여겨졌다. 2014년 12월에는 박 대통령이 정윤회씨 딸인 정유라와 연관된 승마 협회 조사와 관련해 문화체 육관광부의 국·과장을 '나쁜 사 람'으로 찍어 직접 교체 지시를 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그러나 그 때에도 박 대통령은 모든 의혹에 대해 일절 부인했다. 2016년 7월, TV조선은 "미르재 단이 설립 두 달 만에 대기업에서 5백억원에 가까운 돈을 모았는 데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모 금 과정에 개입한 정황이 있다" 는 보도를 냈다. 두 달 뒤에는 "미 르와 K스포츠재단의 실세가 최순 실"이라는 한겨레의 보도가 있었 다. 박 대통령은 "비상시국에 난 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 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 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보도 내용을 유언비어로 일축했다. 폭로는 계속됐다. 얼마 후, 경향 신문에 의해 삼성이 정유라 씨 를 위해 독일에 승마장을 구입했 음이 드러났다. 이어서 정유라씨
NO. 830 / 2016년 11월 2일(수) - 9 의 이화여대 입학과 학사 과정의 특혜 사실도 밝혀졌다. 또한 최 순실 씨가 독일 현지에 비덱이란 법인을 만들고, 80억원을 추가 로 국내 기업에 요구했다는 보도 도 나왔다.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던 즈 음, 10월 24일 박 대통령은 돌연 개헌 추진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 날 저녁, JTBC에 의해 최순실 씨 의 태블릿PC 내용이 폭로된 것 이다. 2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연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 표는 "오늘로써 대통령발 개헌 논의는 종료되었음을 선언한다. 정치권은 성난 민심을 수습하는 데 모든 힘을 모아야 한다. 이 나 라는, 이 국가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오직 국민의 것"이라며 대 통령의 개헌 시도에 대한 반대 입 장을 분명히 했다.
석연치 않은 최순실의 귀국… 다음은? 박 대통령의 사과 다음날 세계일 보와의 독점 인터뷰에서 최순실 씨는 연설문 유출 건은 인정했지 만 다른 의혹에 대해서는 일관되 게 부인하며 "비행기를 탈 수 없
을 정도로 신경쇠약에 걸려 있고 심장이 굉장히 안 좋아 돌아갈 상 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사흘 만인 30일, 최씨는 영국을 거쳐 돌연 귀국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최순실 씨 귀 국 당시 인천공항에는 검찰 수사 관 10-20명이 나와 있었으며, 그 중 대여섯 명이 최씨와 함께 공항을 나섰다고 한다. 통상적으 로 검찰은 피의자나 참고인을 미 리 접촉하지 않는다. 이런 보도 가 사실이라면 공식적인 조사 이 전에 검찰과 최씨가 사건에 대한 의견 사전 조율을 하는 것이 아니 냐는 의혹이 불거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귀국 한 최순실 씨는 이경재 변호사를 통해서 "검찰소환에 응하겠으나 건강이 좋지 않고 장시간 여행· 시차 등으로 매우 지쳐 있으므로 하루 정도 몸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달라"고 했고 이 에 대해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31 일 오후 3시에 최씨에게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도록 통보했다. 이에 대해 박지원, 노회찬 등 야 권 정치인들은 물론 새누리당조
차 왜 검찰이 최순실 씨를 공항에 서 긴급체포 하지 않았는지 이해 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편 10월 28일, 박근혜 대통령 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10명 전원 에게 사표 제출을 지시했다. 청와 대는 이틀 동안이나 완강히 거부 하던 검찰 압수수색에도 협조하 여 임의제출 방식으로 상자 일곱 개 분량의 자료를 제공했다. 그러 나 '최순실 게이트'의 주요 인물 인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비서 관과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등의 사무실에는 진입을 불허하여, 결 국 '꼬리 자르기'를 하려는 게 아 니냐는 질타를 받고 있다. 10월 26일, 리얼미터의 여론조 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 또 는 탄핵'으로 이번 사태에 책임져 야 한다는 여론이 42.3%에 이르 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를 제 외한 전 지역, 60대 이상을 제외 한 전 연령층에서 '하야 또는 탄 핵' 답변이 1순위를 차지했다. 같 은 날 박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17.5%로 하락해 재임기간 최초 로 20%대 지지율이 무너졌다. <파리지성 / 김연수 rachelle.kim4@gmail.com>
재불한인업체 주소록인 알로파리 2017년판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이미 발행된 알로파리에 있는 오류, 수정될 사항이나 새로운 업체가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더 나은 한인주소록 알로파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신규등록 및 광고문의 06 0880 4546 alloparis2000@gmail.com
국제 소식
NO. 830 / 2016년 11월 2일(수) - 10
유네스코, 동예루살렘 구시가지 '훼손 위기의 세계유산' 등급 유지
로 인해, 이곳은 종교적 갈등으로 인 한 물리적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는 종교적 성지다. 그러나, 유네스코는 앞서 동예루살 렘 구시가지를 무슬림 명칭인 '알샤 리프(Mosquée Al-Aqsa / Haram
는 또한 결의안에서 이스라엘을 '점 령국'으로 명명하고, '템플마운트'를 무슬림 명칭인 '알샤리프' 라고만 지 칭했다. 결의안은 이스라엘 우익 극 단주의자와 병력이 알아크사에 기습 침투하는 것을 규탄하며, 이는 성지 의 신성함을 해치는 '도발적인 학대' 라고 비난했다. 다시말해, 이스라엘 이 동예루살렘의 '점령군'이라는 사 실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 결의안은 이집트, 레바논, 알제리 등 아랍권 국가들이 동예루살람의 팔 레스타인 문화유산 보호를 촉구하며 제출한 것으로, 지난 13일 유네스코 위원회에서 승인됐다. 결의안 승인 에 대해 이스라엘은 유네스코에 대 한 협력을 중단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유네스코는 팔레스타인 을 손을 들어준 것이다. 실제로 이스 라엘은 지난 2011년 유네스코가 팔 레스타인의 회원국 가입을 승인했을 때에도 유네스코 지원금 지불을 중 단시킨 바 있다. 한편, 유네스코의 이번 동예루살렘 (Jérusalem-Est) 구시가지(la Vieille
al-Charif)'라고만 지칭하며, 유태인 (juif)과 기독교적(chrétien) 연결고리 를 모두 제거해 버리는 입장을 취해 강한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18일 오전 (파리) 유네스코는 동예루살렘 구시가지 운영에 관한 ' 점령된 팔레스타인 결의안'을 통과시 켰다. 유네스코가 이스라엘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동예루살렘의 성 지와 관련한 팔레스타인의 운영권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것이다. 이 결의안은 동예루살렘 구시가지 가 이슬람교와 유대교, 기독교에게 가지는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이 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유적지 방문 및 주변 발굴을 제한하는 조치에 대 해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유네스코
ville de Jérusalem) 대한 '훼손 위기 의 세계유산(patrimoine mondial en péril)' 등급 유지와 관련해, 마크람 퀘 이시 유네스코 주재 요르단 대사는 " 유네스코가 동예루살렘 문제를 기술 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 부가 (동예루살렘 구시가지를) 여러 가지로 바꾸고 있어 훼손 위기에 처 해 있다는 점을 논의하려 하는 것" 이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평화협 상 대표 사엠 에레캇은 "유네스코의 이번 결정은 이스라엘의 강점이 문 화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산을 위협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 이라 고 전했다. < 파리지성 / 현 경, dongsimijs@gmail.com >
The Old City of Jerusalem is home to the Muslim’s world’s third most sacred site - al-Aqsa mosque [EPA] (출저: aljazeera.com/news)
유네스코(UNESCO)가 이슬람과 유대교의 공동성지인 동예루살렘 (Jérusalem-Est) 구시가지(la Vieille ville de Jérusalem)와 관련해 '훼손 위기의 세계유산(Endangered World Heritage/ patrimoine mondial en péril)' 등급을 유지한다. 구시가지가 있는 동예루살렘은 1967년3차 중동 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점령했다. 이 후, 이슬람 3대 성지 가운데 하나인 알아크사 사원((al-Aqsa mosque) 주 변 등지에서 팔레스타인인들과의 끊 임없는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는 장 소다. 예루살렘은 한편 국제사회가 단 한번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 하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26일(현지시간) 알자지라에 따르면, 유네스코는 이날 무기명 다수결 투 표를 통해 현재 이스라엘이 점령하 고 있는 동예루살렘 구시가지가 여 전히 훼손 위기에 처해있다고 판명 했다. 이번 투표에 참여한 21개 나라 가운데 10개 나라가 이에 찬성한 것
으로 알려졌다. 유네스코가 이처럼 동예루살렘 구시 가지를 '위기 유산'으로 유지한 것은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이 이를 바르 게 관리하지 못하고 있으며 강점 하 에 훼손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했다 는 의미이다. 이에 이스라엘은 유네 스코 전문가들이 유적의 정확한 상 태를 분석하고 보존하는 활동을 저 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의 구시가지 를 솔로몬이 세운 최초의 성전터 '템 플 마운트(Temple Mount/mont du Temple/l'esplanade des Mosquées pour les musulmans)'라 칭하고 자신 들의 점령권한을 주장하고 있다. 템 플 마운트에는 이슬람 선지자 모하 메드가 승천한 바위 사원 '알아크사 모스크(al-Aqsa mosque)'가 있어 무 슬림들에게도 성스러운 곳이다. 기 독교인들에게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뒤 부활한 성분묘 교회가 있다. 이런 복잡한 종교역사적 관계
수요일 오후 2시 ~ 5시 수요일 오후 5시 30분
문화
NO. 830 / 2016년 11월 2일(수) - 11
임혜영, 박은주 전시 -파리 퐁데자르 갤러리인연과 닿는것에 기쁨을 느끼며 옷 에 마음을 담아보았다. 이러한 작업 과정은 항상 나를 흥분시키며 다음 작품에 기대감으로 난 항상 즐겁다. -임혜영 작가노트박은주 작가는 이화여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서울과 도쿄, 프랑스에서 아홉차례에 거쳐 개인전을 가졌다. 각종 아트페어(NAAF BIAF KIAF HOTEL ART FAIR)에 출품했으 며, 경향신문 미술대전, 메트로디 자인 공모전에 입선한 바 있다.
박은주 작
11월 7일부터 14일까지 파리 퐁데
트쇼에서 특별상, 2010 Innovation
자르 갤러리에서 임혜영, 박은주 전
기업 & 브랜드 대상을 받은바 있다.
시가 열리게 된다.
현재 신미술대전 심사위원, 토정미
임 혜영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
술대전심사위원, 한국미협 이사, 한
학을 졸업하고, 구하 갤러리, 한벽원
국전업미술가회 이사, 뉴아트샵 이
미술관, 뉴저지프린스턴갤러리, 갤
사로 있다.
러리ONL, 갤러리 담, 애플갤러리 등에서 개인전 및 초대전을 한바 있 다. 광복 70주년 2015 글로벌 자랑 스런 인물대상 한국언론사협회 문화 예술 부문 수상했고, 살롱 앙뎅팡당 국제 앙드레 말로 협회의 올해의 작 가상에 선정되었으며, 남송 국제 아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나에게 있어 신명나는 일이다. 이제까지 살면서 이만큼 희열과 만족감을 그 무엇과 도 비교 할 수 없었다. 아마도 나의 손이 움직일수 있는 그때까지 난,이 신명나는 그림 작업에 몰두할것이
임혜영 작 <옷에 마음을 놓다>
다. 내가 이제껏 살면서 사랑하고 했 던것이 무엇인가? 놀랍게도 답은 쉽 게 얻을수 있었다. 난, 나의 화려함 을 사랑한다. 나의 주변에 손때 묻은 것들 체취가 느껴지는 나의 날개들, 나를 만들어주는 나의 체취와 마음 을 작업해 보기로 했다. 일상의 여러 상황에 따라 자신을 표현함을 옷에 담아 보았다. 가시적인 일차적인 현 상보다 마음으로 느낄수 있는 감성 의 진실을 옷과 인연하여 작업하였 다. 시간과 감성의 순환 작용을 변형 과 확대 그리고 재창조하여 새로운
'붓을 든다. 마음 저 깊은곳에 있는 무언가를 마구 흩날려본다. 여러색 이 어우려져 복합적인 색채를 드러 낸다. 내마음이면서도 내마음이 아 닌 제 3의 눈으로 재해석해 보고 덧 칠을 또 해본다. 인간의 진정한 위대 함은 '이미 그러함'이 아니라, '항상 조금씩 되어감'에 있으니 그림도 마 찬가지, '더 나은 인간'을 향해 변해 가는것처럼 열린 마음으로 천천히 단순하게 만들어 가는가 보다. 예술 은 솔직함의 미학에 접근하는 최고 의 선물인 것이다' - 박은주 작가노트-
www.restaurantsoon.com 샹젤리제 유일의 한식전문점
20석, 10석 연회석, 노래방 완비(예약필수)
연중무휴 (1월 1,2일 5월 1일, 12월 25일 제외) 예약문의 01 4225 0472 06 1407 3619 20, Rue Jean Mermoz 75008 Paris M˚ (1) Franklin D. Roosevelt Fermé le dimanche 연중무휴, 새벽 4시까지 식사 가능
한인
NO. 830 / 2016년 11월 2일(수) - 12
'미래식품보고서, 파리국제식품박람회 SIAL'
한불 합작 메뉴를 선보이고 있는 파트릭 고티에
한국관
박광희 손김치
지난 10월 20일 막을 내린, 파리
에 관한 흐름과 정보 등의 '미래
화를 이룬 메뉴 '김치팍시(보쌈)',
와 '청도 감건시'의 경우, 가공식
국제식품박람회(SIAL)는 올해로
식품보고서'가 쓰여지는 장으로
계절야채를 이용한 '된장소스 비
품박람회에서 몇 안되는 '자연식
29회를 맞이했다. 이번 박람회에
도 불린다.
빔밥', 참기름을 이용한 마들렌느
품'으로 바이어 및 방문객들에게
는 AT(한국농수산물 유통공사)
파리국제식품박람회(SIAL
(쿠키)와 인삼을 갈아만든 '잉글
각광을 받았다. 그외에도 한국만
가 지원하는 업체 및 개별 참가업
Paris)는 독일 쾰른에서 열리는
리쉬크림' 디저트 등, 참신한 레
두의 경우, 프랑스 대형마트 입점
체를 포함 약 52개의 한국업체가
ANUGA, 동경식품박람회와 함
시피를 선보이며, 한국관을 방문
이후, 활발한 판매전략으로 판로
참가했다. 전시관 4홀에 마련된
께 세계 3대 국제식품박람회로
하는 현지인과 바이어들에게 한
를 넓혀가고 있다.
한국관(Korea Food) 주변에는
손꼽히는 전문박람회다. 이번 박
식재료를 이용해서 요리하는 방
52개 업체로 구성된 한국관운영
참가한 업체들의 한국식품을 소
람회 결과를 살펴보면, 155,000
법과 맛을 직접 경험할수 있는 기
과 참가업체의 수출확대를 위해
개하는 시연, 시식프로그램을 보
명의 관람객과 80여개국이 넘는
회를 제공했다.
전심을 기울여온 농수산물유통공
기위해 바이어들의 발길이 끊어
국가에서 온 7,000여개 업체가
이번 박람회에 참가한 한국식품
사 파리지사(김영범지사장)는 '수
지지 않았다.
참여한 것으로 발표됐다.
으로는 알로에 음료를 시작으로
출상담목표액인 4천만불을 훌쩍
SIAL(파리국제박람회)은 1964년
한국관에서는 행사개막에 맞춰
인삼차류, 김치, 선식, 소금(죽
넘은 5천만불의 수출상담을 이루
에 레스토랑과 도매업자들의 상
프랑스미식의 대명사 '미슐린가
염), 밤, 감(건시), 만두, 냉동광
어냈다'고 전했다. 또한, 이런 박
호 교환 및 발전을 위해 시작되
이드'가 선정한 스타셰프 '파트
어, 각종양념류 등 약 일백여종
람회를 통해, '한국식품의 해외
었다. 파리국제식품박람회는 여
릭 고티에(Patrick GAUTHIER)'
류의 한국대표식품들이 소개되
수출판로를 모색하고, 세계식품
느 국제박람회와 같이 격년으로
가 한국 식재료인 김치와 인삼,
었다.
시장의 동향을 미리파악하여, 향
개최되며, 매년 10월 중순에 이
등을 이용해 한불합작의 메뉴를
한국발효식품에 대한 관심들이
후 한국식품들의 해외 진출의 길
루어진다. 이곳은 지구상에 존재
선보이면서 한국식문화홍보를 맡
높아지는 가운데, 죽염과 강원도
잡이가 되고자 한다'는 각오를 밝
하는 인간이 먹고 마시는 모든 것
았다. 한국 김치와 생선대구의 조
평창에서 참가한 '박광희 손김치'
혔다.
문화
NO. 830 / 2016년 11월 2일(수) - 13
재외동포언론인협회 시국선언문 - 이번 사건은 참혹한 국격의 파괴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사상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지켜보면서 우리 재외동포 언론인들은 참혹한 심정을 지울 수 없다. 차라리 무능과 부패로 인한 파탄이라면, '내 어머니가 나병환자라 해도 나는 내 어머니를 사랑하겠다'는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비통한 심경을 삼키며 참아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무시하고 국민이 위임한 국가 통치권을 사유화한 사상 초유의 국기문란사건이다. 더불어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는 우리 재외동포 언론인들은 이번 사건을 '국격 파괴 사태'로 규정한다. 이번 사태는 일개 개인이 국정을 농단한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특정인의 국정 개입도 문제지만, 국가운영 시스템이 비선실세에 의해 너무나 쉽게 붕괴됐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더욱이 외교·통일·안보·국방문제 등의 국가기밀이 유출됐다는 사실은 한 나라의 국제관계를 유지하는 시스템 마저 무너졌음을 나타내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참혹한 국격의 파괴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외교적 영향력과 위신은 이미 중차대한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너진 국가의 위상이 고스란히 남북 관계와 국제 외교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임은 불을 보듯 자명하다. 대한민국의 국격은 750만 해외동포들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국가의 권위와 질서가 만신창이가 된 순간, 해외 한인들의 자존감은 처참하게 짓 밟혔다. 전세계 주류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내는 '최순실 게이트' 기사로 인한 수치심은 오롯이 한인 동포들의 몫이 되고 있다. 국가 위 엄의 상실이다. 이에 재외동포 언론인들은 대통령을 포함한 관련자들의 성역없는 수사로 이번 사태를 둘러싼 모든 의혹들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국가 규 범을 어긴 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투명한 진상규명을 통해 후퇴한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실추된 국가의 명예를 일으켜 세울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를 위해 재외동포 언론인들은 국민 주권의 붕괴는 곧 민주주의의 붕괴임을 직시하고, 부패권력에 대항하는 국민적 함성의 열망을 적극 지 지하며, 대한민국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어떤 순간에도 결코 펜을 놓치 않을 것임을 천명한다. 2016년 10월 31일 (사) 재외동포언론인협회
< Du jazz au classique> 드뷔시, 쇼팽, 포레, 브람스를 재즈로 손모은 & Serge Forté듀오 콘서트
오는 11월 9일(수)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원장 박
린을 수학한다.
재범)에서 재즈 바이올리니스트 손모은과 피아니
2010년 대구 스트링스 오케스트라 콩쿨에서 1
스트 Serge Forté 듀오의 연주회가 개최된다.
위, 2015년 프랑스 Léopold Bellan 콩쿨에서 1
손모은은 경북예술고등학교와 계명대학
위를 수상한 바 있는 손모은은 현재 실내악, 심
교에서 클래식 바이올린을 전공하면서 재즈
포니 오케스트라 뿐 아니라 재즈 빅밴드에서 연
음악에 대한 매력을 발견, 도불 후 CRR de
주하며 재즈와 클래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
Boulogne-Billancours 에서 재즈 바이올린을,
한 활동을 하고 있다.
Conservatoire de Meudon에서 클래식 바이올
이번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공연에서 손모은과
함께 무대에 오를 Serge Forté는 재즈 피아니스 트이자 작곡가, 편곡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전방위 예술가이다. 튀니지 출생으로 피아노를 전공한 그는 초기 피아노 교수로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동시에 프로듀서, 작곡가, 편 곡가로 활동하여 'La vie en bleu'(1992), 'Jazz'in Chopin'(2003), 미국 재즈싱어 Sheila Jordan의 'Believe in Jazz'(2004)등 10여개의 음반 제작에 참여한 바 있다. 현재 Grand Paris Seine Ouest 피아노 교수이자Vian 재즈 페스티벌, Château de Ville d'Avray 재즈 콘서트 예술감독을 역임 하고 있다. 이번 문화원 콘서트에서는 <재즈에서 클래식 음악으로…>를 주제로 드뷔시의 'Le plus que lente', 쇼팽의 'Cantablie', 포레의 'Lydia'를 재즈 풍으로 소화한 연주곡들과 쇼팽의 'Etude no.6' 와 냇킹콜의 'Autumn Leaves', 브람스, 리스트 의 곡과 엘라 핏제랄드의 'How high the moon', 'Take the A train'을 함께 편곡한 곡 등 다양한 레파토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ㅇ 일시 : 2016년 11월 9일(수), 12시30분 ㅇ 장소 : 주프랑스한국문화원 2, avenue d'Iena 75016 Paris 01 4720 8386
생활정보
NO. 830 / 2016년 11월 2일(수) - 14
H.P 06 0786 0536 parisjisung@gmail.com / 4 rue Péclet 75015 paris
주말은 10% 할인
www.graphipro.fr 서도출력 인터넷으로 가격과 부수를 확인후 주문할 수 있어 편리합니다.
영업 시간 월-토 10:00-20:00 (일 휴무)
현수막(프랭카드), 대형인화지, 카달로그, 엽서, 포스터, 명함, 메뉴판, 테이블시트, T-Shirt, 전단지, 논문, 포토폴리오, Xbanner 심플배너(29.7cm x 120cm) = 10유로
T. 01 467 000 63
(한국어). 06 17 98 62 01 (중국어). 06 10 41 91 77 1-3 rue Baudin 94200 Ivry sur Seine (Périphérique).Porte d'Ivry (M).7 Pierre et Marie Curie (Tram).3. Porte d'Ivry
ACE Mart - Hi Mart 매주 주말 10 % 할인
ACE MART
TEL 01 4297 5680 FAX. 01 4297 5668
63, rue Sainte-Anne 75002 Paris M˚ (7.14) Quatre Septembre / Opera
Hi MART
TEL 01 4575 3744 FAX 01 4575 9313
71 bis, rue Saint Charles 75015 Paris M˚(10) Charles Michels
GALERIE PONT DES ARTS (Seoul)
. 습니다 있 고 여겨지 로 리 다 . 름다운 합니다 아 도 고 기 이 곳이 만적 비는 장낭 붐 가 상 ts)는 로 로항 es Ar 들 d t 객 대상으 n 광 o 을 P 관 ( 르 계인 위해 세계 전세 하기 퐁데자 는전 ' 이 을 데 리 들 다 역할 가운 티스트 가교 다리 예술의 아 ' 는 은 는 용 주 사 전 수많 품고 연결해 르는 보행자 을 지 을 정 이 로 간 는 가 ㅇㅇ ,열 인 술과 짝열고 이어지 했으며 느강을 예 활 획 , 로 센 를 기 국 호 한 곧바 을 다. 파리 게문 에 전시들 랑스와 였습니 사원과 들 프 하 학 한 는 술인 참신 개관을 프랑스 든예 갤러리 하고 에 모 양 르 가 는 다 자 심 하 다. 퐁데 리중 를원 초청해 기 저희 왔습니 을 월파 하 2 해 들 1 교류 년 예술가 역할을 하고 2008 의 리 통 스 난 다 소 지 니다. 의 와 프랑 입 술 계 과 것 예 세 고 한국 문화 노력할 록 도록 막론하 그동안 도 있 를 되 장르 칠수 러리가 을펼 예등 갤 꿈 공 , 는 큰 있 사진 할수 회화, 여 도 기 앞으로 발전에 술 예 문화 한불
는 르 자 퐁데 리 갤러
GALERIE PONT DES ARTS (Paris)
서울 갤러리 -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7길 27 tel. 02-733- 0536 / 010-9386-3835 파리 갤러리 - 4 rue Peclet 75015 Paris FRANCE Tel. +33 (0)9 8354 5076 / +33(0)6 0880 4546 g.pontdesarts@gmail.com
www.galeriepontdesarts.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