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창세기의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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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 2007 by Wm. B. Eerdmans Publishing Co.

Originally published in English under the title

Preaching Christ from Genesis by Sidney Greidanus

Published by Wm. B. Eerdmans Publishing Co.

2006 44th Street SE Grand Rapids, MI 49546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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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Korean edition is published by arrangement of Wm. B. Eerdmans Publishing Co. through rMaeng2, Seoul,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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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발행일 2024년 12월 15일

지은이 시드니 그레이다누스

옮긴이 신윤수

펴낸이 김은주

펴낸곳 부흥과개혁사

편집 권대영 디자인 박슬기 기획 이승영 마케팅 권성직

인쇄소 영진문원

판권 Ⓒ부흥과개혁사 2024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6길 9-20, 2층(서교동)

전화 Tel. 02) 332-7752 Fax. 02) 332-7742

홈페이지 http://rnrbook.com e-mail rnrbook@hanmail.net

ISBN 979-11-94295-19-8 (94230) 978-89-6092-900-5 (94230) (세트)

등록 1998년 9월 15일 (제13-548호)

는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추구합니다. 부흥과개혁사는 부흥과 개혁이 이 시대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조국 교회의 부흥과 개혁의 방향을 위한 이정표이자, 잠든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을 촉구하는 나팔소리요, 깨어난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의 불길을 지속시키는 장작더미이며, 부흥과 개혁을 꿈꾸며 소망하는 교회들을 하나로 모아 주기 위한 깃발이고자 기독교 출판의 바다에 출항하였습니다.

│서문 11

│감사의 글 15

│약어 17 1장 창세기에서

2장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시다 83

창세기 1장 1절-2장 3절

3장 잃어버린 낙원 113

창세기 2장 4절-3장 24절

4장 가인과 아벨

창세기 4장 1-26절

5장 노아와 홍수

창세기 6장 9절-9장 17절

6장 바벨탑

창세기 11장 1-9절

7장 아브람의 부르심

창세기 11장 27절-12장 9절

8장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 265

창세기 17장 1-27절

9장 이삭의 출생

창세기 21장 1-7절

10장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라는 명령

창세기 22장 1-19절

11장 사라의 매장

창세기 23장 1-20절

321

351

12장 이삭을 위한 신부

창세기 24장 1-67절

13장 야곱과 에서

창세기 25장 19-34절

14장 야곱이 이삭을 속이다

창세기 27장 1-45절

15장 벧엘의 야곱의 꿈

창세기 28장 10-22절

16장 야곱이 레아와 라헬과 결혼하다

29장 1-35절

17장 야곱이 브니엘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다

32장 22-32절 ( 32:23-33 )

18장 노예로 팔려 간 요셉

창세기 37장 2-36절

19장 유다와 다말

창세기 38장 1-30절

39장 1-23절

21장 애굽에서 권력자가 된 요셉

창세기 41장 1-57절

22장 요셉이 형들을 시험하다 669

창세기 43장 1절-45장 28절

23장 야곱의 애굽 이주 707

창세기 46장 1절-47장 31절

24장 야곱의 죽음과 장사 741

창세기 48장 1절-50장 26절

│부록 1 본문에서 설교까지 거치는 열 단계 과정 771

│부록 2 강해 설교 모델 774

│부록 3 “우주의 왕” 776

│부록 4 “큰 싸움의 시작” 789

│부록 5 “여호와께 제단을 쌓다” 804

┃참고문헌 817

┃서문┃

설교자와 신학생과 성경 교사를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이 책의

주된 목표는 바쁜 설교자와 교사가 창세기 이야기를 선포할 수 있도

록 격려하고 돕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창세기 설교와 창세기 공과

를 준비할 때 중요한 요소를 빠르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각 이야기

의 줄거리 파악하기( 줄거리 ), 이스라엘을 향한 메시지의 핵심 표현하

기( 주제 ), 이스라엘에 요구되었고 유추를 통해 오늘날의 교회에도 요

구되는 응답 발견하기( 목표 ), 각 이야기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연결하는 다양한 방법 발견하기, 핵심 구절에 대한 성경 강해 확보

하기 등이 그에 해당한다.

이 책은 나의 저서인 『구약의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의

자매서로 구속사적 그리스도 중심 방법론을 심화 설명하고 강화하 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 중심 설교는 항상 하나님 중심적이지만,

하나님 중심의 초점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충만함으로 나아간다. 이는 사도 요한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

니라”( 요 1:18 ) 라고 설명한 것과 같다.

독자는 내가 이야기마다 동일한 기본 패턴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패턴은 내가 신학교 1학년 학생들을 위해 개발한 본

문에서 설교까지의 10단계에 기초한 것이다( 부록 1 참고 ). 1) 각 장에서

이전까지 설명한 내용을 반복한 것은 성경 본문에 대한 기본적인 해

석학적이고 설교학적인 접근 방식을 심어 주기 위한 것이다. 먼저

이야기 단위를 검색하고 그 맥락을 확인한다. 다음으로 중요한 문학

적 특징, 특히 중요한 줄거리에 주목하는데, 이는 이야기의 이해뿐만

아니라 이야기 형식의 설교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하나님 중심 해석

을 마친 후에는 본문의 주제와 목표를 명확하게 진술한다. 이렇게

설정된 주제를 염두에 두고 이 구체적인 이야기에서 신약의 예수 그

리스도로 이어지는 다양한 길에 대해 브레인스토밍을 할 수 있다.

신약의 맥락에서 구약의 메시지를 보게 되므로, 우리는 본문의 주제

와 목표를 설교의 주제와 목표로 확장할 준비까지 가능해진다. 각

장은 이야기를 적절하게 이해할 뿐만 아니라 설교에 통합할 통찰을

모으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설교 강해’ 단원으로 마무리한다. 이 부

분은 가능한 한 구어체를 사용하고, 회중이 따라 읽을 수 있도록 인

용문 앞에 참고 구절을 제시하며( 회중이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눈으로 볼

때 이해도가 훨씬 높아진다 ), 이야기의 흐름을 유지함으로써 설교의 모델

을 제공하고자 한다( 대부분의 인용, 복잡한 주장, 기술적 세부 사항은 각주로 처

리 ). 나는 강해의 어느 단계에서 그리고 어떻게 신약 성경의 그리스

도에게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지적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히 제

안을 위한 것일 뿐이다. 여러분이 실제 설교를 작성하는 동안 그리

스도께로 나아가는 더 좋은 방법과 지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 이다. 마지막으로, 목표와 관련하여 적용을 위해 간단하게 제안도 한다. 실제 설교에서는 대상 회중의 상황에 맞는 예화와 구체적인

제안을 통해 이러한 ‘적용’에 살을 붙여야 한다.

1) 나는 Preaching Christ from the Old Testament, 279-318에서 이 10가지 단계를 설명 하고 창세기 22장에 적용했다.

과거에 창세기 본문을 다룬 에세이를 여러 편 출판한 적이 있다.2)

이 책에서는 이 글들을 수정하고 상당히 확장했다. 부록 2에서는 칼

빈 신학교 1학년 학생들을 위해 개발한 강해 설교 모델을 재현했다.

이 모델은 성경적이고 관련성이 있으며 체계화된 설교를 목표로

한다. 또한 설교 구성에서 이 모델을 따를 때의 실제적인 결과를 보

여 주기 위해 창세기 이야기를 본문으로 나의 설교 세 편을 실었다

( 부록 3-5를 보라 ).

달리 명시되지 않는 한, 인용된 성경 역본은 NRSV ( 개역개정 )다. 성

경 인용문에서 나는 때때로 특정 단어나 문구를 이탤릭체로 강조

했다. 히브리어 원문이나 NRSV에는 그러한 강조 표시가 없으니 특

별히 표기하지 않았어도 독자는 이것이 내가 강조한 것임을 이해할 것이다. 각주의 참고문헌은 최소한으로 유지했다. 전체 참고문헌은 ‘참고

문헌’ 단원에서 찾을 수 있다. 각주에서는 참고문헌 부분에 포함되

지 않은 책이나 논문의 완전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목차에서는

1장에서 다루는 주요 주제와 2장부터 24장까지 다루는 주요 본문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이 본문과 각주를 통해 회복된 낙원, 곧 다가올 하나님 나라

에 대한 성경적 비전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세우는 설교를 개발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함으로써 많은 설교자로 하여금 창세기 이야 기를 설교하게 만드는 자극제가 되기를 소망하고 기도하며 이 책을

2) 이 출판물은 나의 Preaching Christ from the Old Testament, 292-318에서 창 22:119로 시작했다. 그다음에는 로저 반한(Roger Van Harn)이 자신이 편집하고 있던 The Lectionary Commentary에 몇 편의 에세이를 제출해 달라고 내게 청했다. 나는 창 6:98:22; 24:1-67; 28:10-22; 29:15-35; 37:1-36에 대해 썼다(각각 1권의 pp. 11–16; 43–48; 52–56; 56–60; 64–68). 그 후 댈러스 신학교에서 구약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설 교하는 것에 대한 특강 요청이 들어왔다. 여기서 나는 약간의 변화를 주면서 이 책에서 사용 하고 있는 강해 에세이 형식을 시도해 보았다. 창세기 1:1-2:3; 2:4-3:24; 4:1-26에 대한 이 강의는 이후 BSac 161(2004)에 각각 pp. 131-141; 259-273; 387-397에 게재되었다.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시드니 그레이다누스

창세기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할 때의 문제들

설교자는 창세기 이야기를 설교하기 전에 직면하게 될 몇 가지 문

제와 해결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서론 장에서는 먼저 그리스도를 설교할 때 관련된 문제, 다음으로 창세기 이야기를 설교

본문으로 선택한 이유, 세 번째로 창세기의 해석 문제, 마지막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설교할 때의 이슈에 대해 검토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설교할 때의 문제

이 책은 창세기 이야기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에 대한 것

이다. 안타깝게도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 많은 혼란이 있다.1) 신약 성경의 증언에 근거하여 나는 이 전에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을 “본문의 메시지를 신약 성경에 계시 된 대로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사역, 및/또는 가르침에 나타난 하

1) 나의 PreachingChristfromtheOldTestament, 2-3을 보라.

나님 계시의 절정과 진정으로 통합하는 설교”라고 정의한 바 있다.2)

두 가지 해석학적 이동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에 대한 위의 정의는 해석상 두 가지 이동

을 가정한다. 첫째, 이 정의는 해석자가 본문의 메시지를 그 자체의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한다고 가정한다. 즉, 해석자는 저자가 이스라

엘에 들려주기를 원했던 메시지를 분별하려고 노력한다.3) 둘째, 해

석자가 본문의 메시지를 전체 정경( 신약 포함 ) 과 구속사 전체의 맥락

에서 이해한다고 가정한다.4)

신약 성경으로의 이러한 이동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째, 중요한 해석학적 규칙은 본문은 항상 그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

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기독교 성경에서 창세기 이야기의 맥락은

구약 성경뿐만 아니라 신약 성경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 이야기( 창 17장 ) 에는 “너희 중 남자는 다 할

례를 받으라”( 17:10 ) 라는 하나님의 계명이 포함되어 있고, 설교자들

은 이 계명을 오늘날 회중에게 직접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

으로 감지한다. 오히려 설교자들은 성령이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 표징인 할례( 행 15:28-29 ) 를 신약의 표징인 세례( 골 2:11-14 ) 로 대

체하도록 인도하신 신약 성경의 맥락에서 이 본문을 이해한다. 마찬

가지로, 여자의 후손에 대한 창세기 3장 15절과 같이 이야기에 오실

메시아에 대한 약속이 포함되어 있을 때 설교자는 그 약속에서 멈출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계속 나

아가야 한다. 다른 예를 들면, 창세기 22장 13절에서 “이삭 대신” 바

쳐진 숫양에 대한 이야기처럼 이야기에 그리스도의 모형이 포함되

2) 앞의 책, 10.

3) 앞의 책, 228-230.

4) 앞의 책, 230-232.

어 있는 경우, 설교자는 그 모형에서 멈출 수 없고 하나님의 백성

“대신” 바쳐진 예수 그리스도라는 원형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처럼 신약 성경으로 옮겨 가는 두 번째 이유는 기독교 설교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설교해야 한다는 신약의 요구 때문이다. 기독교 설

교가 유대교 설교와 다른 이유는 기독교 설교자는 구약 성경 구절을

신약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추가 계시 맥락에서 이해하기 때문

이다. 그레이엄 골즈워디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표현했다.

“이 이야기는 그 자체로는 결코 완전하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

에서 정점에 이르는 구원의 큰 이야기의 일부에 속한다. 단순히 구

약의 역사적 서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완전할지라도 기독교 설교가 아니다.”5)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일곱 가지 방법

교회 역사를 통틀어 설교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구약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해 왔다. 때로는 알레고리, 모형론 등 오늘날 우리가

적절하지 않다고 여기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6) 『구약의 그리스

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에서 나는 설교자들이 주변부에서 중심부

로, 즉 구약의 구절에서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로 합법적으로 옮겨

갈 수 있는 일곱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7) 이 일곱 가지 방법은 구속 사의 진행, 약속 성취, 모형론, 유비, 통시적 주제, 신약 성경의 언급

및 대조다. 우리는 신약 성경의 그리스도에 이르는 각 길을 간략하

게 살펴보겠다.

5) Goldsworthy, PreachingtheWholeBibleasChristianScripture, 150.

6) 나의 PreachingChristfromtheOldTestament, 70-109를 보라.

7) 앞의 책, 234-277을 보라.

구속사의 진행

구약 성경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르는 가장 광범위하고

기초적인 길은 구속사 진행의 길이다. 이 길은 하나님의 선한 창

조( 창 1장 ) 에서 시작하여, 죄로 인한 인간의 타락과 여자의 후손을 통

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 창 3:15 ), 하나님이 여자의 후손 계보를 이어

가는 긴 역사( 창 3장-말라기 ), 그리스도( 복음서 ), 교회( 사도행전과 신약 서

신 ), 마지막으로 새로운 창조( 계 22장 ) 에 이르기까지 세상과 함께 하

신 하나님의 역사를 추적해 나간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성경에서 예

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중심으로 유지되는 구속사를 추

적할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승천하여 다시 오실 때까지 하늘

에서 자신의 교회를 다스리신다. 구속사를 크게 보면 다음과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8)

이스라엘 안에서 하나님의 구속행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속행위

교회사와 세계사 안에서 하나님의 구속행위

창조 새 창조

본문이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활동을 증언할 때, 우리는

구약 성경을 통해 꾸준히 전진하고,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

내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원 행위로 이어지고, 예수의 승리의 재림

으로 절정에 이르는 길에 우리가 서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

8) Oscar Cullmann, ChristandTime:ThePrimitiveChristianConceptionofTimeand History(trans. Floyd V. Filson; rev. ed.; Philadelphia: Westminster, 1962), 178을 보라.

어, 가인이 아벨을 살해하는 이야기( 창 4장 ) 를 설교할 때 하나님이

“아벨 대신”( 4:25 ) 셋을 주셔서 여자의 후손에게 대를 이어 가게 하

신다는 사실은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갈 3:16 ) 과 궁

극적으로 그의 승리 재림으로 이어지는 구속사 진행의 연결 고리를

구성한다.

다음 장에서는 개별 이야기의 줄거리를 추적해 본다. 여기서는 성

경의 메타 이야기를 단일 플롯으로 시각화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9) 성경의

창 11장 창 12장 바벨/흩어짐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시다

배경

창 1장

세상

창조

창 6-9장 구약 성경

창 4장

창 3장 9)

예비 사건

창 2장

세상의

낙원

성취

폭력/홍수

살인/저주

죄/추방

갈등 유발

사건

창 3장

타락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부르시다

복음서

서신서

계시록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시다

예수가 자신의 교회를 열방에 보내시다

그리스도의 재림

고조되는 긴장 해결 결과

계 22장 회복된 세상의 낙원

교자는 신약으로 이동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약속의 궁극적

인 성취를 보여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야곱이 아들들에게 남긴 마지

막 말에서 유다에게 한 말은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담고 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 49:10)

이 이야기를 설교할 때 우리는 이 구약의 약속에서 유다 지파와

다윗 가문에서 태어나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약의 성

취로 쉽게 옮겨 갈 수 있다( 마 1:1-17 )

모형론

구약 성경 본문에서 그리스도께로 가는 세 번째 길은 모형론이다.

구약의 구속 사건, 인물 또는 제도는 위대한 원형, 즉 예수 그리스도

의 인격 및/또는 사역을 예표하는 모형으로 기능할 수 있다. 예를 들

어, 아담과 하와의 타락( 창 3장 ) 에 대해 설교할 때 인류를 대표하는

첫 번째 아담이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를 예표한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실제로 바울은 아담을 “오실 자의 모형”( 튀포스 ) 이라고 부

른다( 롬 5:14 ). 10) 아담은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대비되는( 죽음 대

생명의 대비 ) 모형( 인류 대표 ) 이다.

10) 신약 성경 저자들의 모형론 사용에 대한 간략한 개요는 O. Palmer Robertson, The Israel of God, 4-6을 참고하라. 마태복음에 초점을 맞춘 더 자세한 설명은 David Holwerda, JesusandIsrael, 31-58을 참고하라.

유비

구약 성경 본문에서 그리스도에 이르는 네 번째이자 보다 일반적

인 길은 유비의 길이다. 유비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가르치신 것

과 그리스도가 교회에 가르치신 것,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약속하

신 것과 그리스도가 교회에 약속하신 것,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요

구하신 것( 율법 ) 과 그리스도가 그의 교회에 요구하신 것 사이의 유사

점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창세기 12장 1-9절의 메시지가 이스라엘

이 여호와를 예배하기 위해 가나안을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라면, 신

약으로 넘어가서 예수가 교회에 하나님을 위해 모든 민족을 차지 하라고 명령하신다는 것을 유비를 통해 보여 줄 수 있다( 마 28:1820 ).

통시적 주제

구약 성경 본문에서 그리스도에 이르는 다섯 번째 길은 통시적 주

제의 길이다. 이 방법은 구속사 진행의 길과 종종 겹치기도 하지

만,11) 구속사의 발전보다는 신학적 사상의 발전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통시적 주제”는 성경신학 분야의 전문 용어다. 이

는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기까지 성경을 통해 추적할 수 있는 주제,

즉 다가오는 하나님의 왕국,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구속, 하나님

의 임재,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

의 심판, 하나님의 섭리 같은 주제를 말한다. 구약의 모든 주요 주제

는 그리스도로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설교할 때 이러 한 통시적 주제 개념을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율법

이라는 주제는 창조 기록( 창 2:16-17 ) 에서 족장을 거쳐 시내산과 선지 11) 구속 역사와 계시 역사 분야가 겹치는 것과 비교해 보라. 구속사의 진보는 일반적으로 하나 님 계시의 진보를 수반한다.

자와 하나님의 율법을 완벽하게 실천하여 우리를 위해 율법을 성취

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율법의 깊이 있는 차원을 보여 주셨고

우리가 그 율법에 따라 살기를 기대하신 그리스도까지 추적할 수

있다( 마 5-7장; 22:37-40 ).

신약 성경의 언급

구약 성경 본문에서 그리스도에 이르는 여섯 번째 길은 신약 성경

의 언급을 이용하는 것이다. 때때로 신약 성경은 선택된 설교 본문

을 암시하거나 인용하여 그것을 그리스도와 연결한다. 이 경우 신약

성경의 인용은 그리스도께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 예를 들

어,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를 설교할 때 이스라엘에게 전하는 메

시지는 온 세상의 왕이 말씀으로 땅을 자신의 좋은 왕국으로 창조하

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의 중요성을 설명한

후( “하나님이 이르시되”를 10회 사용 ), 요한이 이 “말씀”( 로고스 ) 을 다시 포 착하여 그것이 예수였다고 명확히 밝힌 신약으로 넘어갈 수 있다.

실제로 요한은 창세기 1장 1절을 인용하여 “태초에 말씀이 계시

니라……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요 1:1, 3 ) 라고 썼다. 이 신약 성경의 언급은 그 자체만으로도 설교에서 그리스도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대부분 신약 성경의 언 급은 그리스도로 가는 여러 길 중 하나를 뒷받침하는 데 가장 잘 사

용될 수 있다.12)

대조 구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에게 이르는 마지막 길은 대조의 길이다.

12) 구속사의 진행, 약속 성취, 모형론, 유비, 통시적 주제의 길을 뒷받침하기 위해 위에서 사용 한 신약 성경의 언급을 참고하라.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인해 현대 교회에 대한 본문의 메시지는 이

스라엘을 위한 원래의 메시지와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하

나님은 아브라함/이스라엘에게 언약 백성의 징표로 그들 중 모든 남

자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셨다( 창 17:11 ). 2천 년 동안 할례는 하

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다는 징표로 기능했다. 그러나 이

방인 회심자를 위해 기독교 교회의 첫 번째 공의회는 피 흘림이 있

는 이 고대 의식을 폐지했다( 행 15:28-29 ). 할례 대신 세례가 점차 언

약 구성원의 징표가 되었다( 골 2:11-14 ). 할례와 세례의 대조는 예수

그리스도가 단번에 피를 흘리심으로 옛 언약의 피의 의식과 희생제

사를 종식했기 때문에 존재한다.

창세기를 선택한 이유

그리스도 중심적인 해석과 설교 방법을 보여 주기 위해 나는 창세

기를 선택했다. 이 책을 선택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중

요한 이유는 교회에서 창세기가 중요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현재 창세기 설교가 부족하기 때문이며, 세 번째는 창세기에서 그리 스도를 설교해야 하는 난제 때문이다.

기독교적 이해를 위한 창세기의 중요성

그리스도 중심적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창세기를 선택한 주된 이

유는 이 책이 기독교 교회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창세기가 후

대 성경에는 가정되어 있지만 반드시 가르치지는 않는 세계관을 기

독교인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창세기를 설교하지 않는다

면, 우리는 교인에게 이 근본적인 세계관을 상당 부분 박탈하는 것

이다. 세계관은 “모든 존재에 대한 일관된 개념”( 웹스터 ) 또는 “개인

의 사물에 대한 기본 신념의 포괄적인 틀”이다.13) 그것은 우리가 전

체에 비추어 개별 요소와 사건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모든 현실에 대 한 근본적인 관점이다. 기본적으로 세계관은 하나님, 우주, 인간이라

는 세 가지 실체와 이들의 상호 관계에 대한 지식으로 구성된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주권자며( 무신론과 대립 ), 이 우주와 전적으로 다

른 분이고( 범신론과 대립 ),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며( 다신론과 대립 ), 이

우주의 창조주고( 세속주의 및 자연주의적 진화론과 대립 ), 자신의 창조물과

언약을 맺고 지키고( 이신론과 대립 ),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고

자신을 대신하여 세상을 관리하게 하셨다( 쾌락주의와 대립 ) 라고 가르

친다. 창세기는 더 나아가 하나님이 악의 근원이 아니라 피조물이

물리적 세계를 누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선하게 창조하셨다고 가르

친다( 영지주의와 대립 ). 오늘날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악과 파멸의 근원

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인간의 불순종이며, 그 결과 피조물에 하

나님의 저주가 내려졌다. 그러나 하나님은 즉시 자신의 창조 세계를

자신이 의도했던 아름다운 왕국으로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렇게 창세기는 구속사의 시작을 스케치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

조 세계와 피조물을 회복하기를 원하셨고, 마침내 “땅의 모든 족속”

에게 복이 될 아브람과 특별한 언약을 맺으셨다( 창 12:3 ).

13) Albert M. Wolters, Creation Regained: Biblical Basics for a Reformational Worldview(Grand Rapids: Eerdmans, 1985), 2.

창세기는 구속사의 시작을 스케치하면서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죄에 대한 하

나님의 심판,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

실하심,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의 임재에 대해 가르친다. 케네스 매튜스의 말을 빌리자면 “창세기

없는 성경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토대도 회반죽도 없이 카드로

집을 세우는 셈이 된다. 우리의 영적 유산의 뿌리를 붙들지 못하면

그 유산이 지속적으로 열매를 맺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다.”14) 오늘

날 교회는 그 뿌리와 접촉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일주일 내내

TV를 비롯한 온라인 매체와 SNS 등에게 하나님을 배제한 세계관으

로 맹폭격을 당한 후, 주일에야 겨우 ‘현실 검증’,15) 즉, 성경적 세계

관을 자세히 풀이해 주는 설교가 필요하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은 창세기 설교를 더 많이 들어야 한다.

창세기 설교의 부족

설교자가 회중을 고려하여 설교 본문을 선택한다면 창세기를 피

해야 할 이유는 많다.16) 어느 저자는 창세기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특징짓는다. “창세기는 신앙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매우 세속적인

전설의 집합체처럼 보인다. 그 내용( 강간, 살인, 형제 간의 다툼과 질투, 남편 의 성적 관심을 얻으려고 싸우는 욕구 불만의 두 아내, 가족 내 교활한 속임수 등 ) 은 하나님의 계시 말씀보다는 아침 드라마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17)

14) Mathews, Genesis 1–11:26(『NAC 창세기 1』,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8), 22.

15) 칼빈 신학교에서 1학년 설교학을 가르치는 동료 잭 로다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모든 영 역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성경적 세계관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Nancy R. Pearcey, TotalTruth:LiberatingChristianityfromItsCulturalCaptivity(Wheaton, IL: Crossway, 2004)를 참고하라.

16) 일반적으로 구약 성경을 본문으로 한 설교가 부족한 이유에 대해서는 나의 Preaching Christ from the Old Testament, 16-25를 참고하라.

17) Throntveit, “Preaching from the Book of Genesis,” WW 14/2(1994) 212.

게다가 벨하우젠 이후 자료비평은 이 책을 J, E, P, D 등의 부분으로

쪼개어 논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파편화는 설교 본문을 불확실하게

만들고 이스라엘을 향한 최종 저자의 메시지를 놓치게 만든다. 게다

가 설교자가 창세기를 설교하려고 하면 다음과 같은 골치 아픈 질문

에 직면하게 된다. 지구는 젊었을까, 늙었을까? 창세기 1장의 하루

는 24시간이었을까, 아니면 그보다 긴 기간이었을까? 홍수는 전 세

계적이었을까, 아니면 국지적이었을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실존

인물인가 아니면 허구의 인물인가? 이러한 해석학적, 설교학적, 목

회적 문제의 조합 때문에 현대 설교자들은 창세기 이야기를 설교하

지 않는 편이 더 나은 지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창세기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해야 하는 어려움

창세기를 선택한 세 번째 이유는 창세기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해

야 하는 어려움 때문이다. 창세기에는 약속 성취 도식을 적용할 수

있는 “메시아 본문”이 7곳밖에 없다고 알려져 있다. 창세기에 나열

된 전통적인 메시아 관련 본문은 다음과 같다.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

창세기 4장 25절, 셋의 계보

창세기 9장 26절, 셈의 축복

창세기 12장 3절, “땅의 모든 족속”을 위한 아브라함 축복

창세기 26장 3절, 이삭의 후손 축복

창세기 46장 3절, 야곱에 대한 약속

창세기 49장 10절, 유다에 대한 왕의 통치 약속

이 구절들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은 꽤 간단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창세기의 다른 많은 이야기에서 그리스도를 어떻게 설교할

수 있을까?

설교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다. 어

떤 이들은 단순히 “여호와”를 그리스도와 동일시하여 본문에서 여

호와가 언급될 때마다 그리스도로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18) 다

른 이들은 요한복음 1장(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 에서 힌트를 얻어 구

약에서 활동하는 영원한 로고스를 찾는다. 이들은 창세기에 나오는

여호와의 천사를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인 영원한 로고스라고 주 장한다.19) 그러나 여호와의 천사는 몇 구절에만 등장하기 때문에 이

것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그리스도를 여호와의 천사

와 동일시하는 것은 나사렛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 계시의 충만함으 로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알레고리

해석을 통해 예수를 설교하려고 하는데, 이는 구약의 메시지를 정당

하게 평가하지 않고 단순히 신약의 예수 이야기를 구약으로 끌어들

이는 것( 일종의 에이세게시스 ) 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단지 이야기의 세

부 사항에 지나지 않는 것을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모형으로 이해하

여 예수를 설교하려고 한다( 올바른 모형론과는 구별되는 모형화 오류 ). 잘못된 노력의 몇 가지 예는 설교자가 창세기 이야기에서 그리스

도를 설교할 때 직면하는 어려움을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어느 인기 라디오 설교자는 창세기 2장 18-25절에 대해 다음과 같

은 알레고리 해석을 제시했다.

아담이 잠들어 있던 중에 하나님은 아담의 상처 입은 옆구리에

18) 예를 들어, William Robinson, “Jesus Christ Is Jehovah,” EvQ 5(1933) 145; T. W. Calloway, Christ in the Old Testament(New York: Loizeaux, 1950); Howard A. Hanke, Christ and the Church in the Old Testament(Grand Rapids: Zondervan, 1957)를 보라.

19) James D. G. Dunn, Christology in the Making:A New Testament Inquiry into the OriginsoftheDoctrineoftheIncarnation(London: SCM, 1980), 149-162를 보라.

서 아담의 일부인 아내를 창조하셨고, 아담의 피를 흘리심으로

그 대가를 치르셨다……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아담은 자신

의 목숨을 바쳐 신부를 얻기 위해 아버지의 집을 떠나신 주 예수

의 모습이다.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도 첫 아담과 마찬가지로 신

부인 교회를 얻기 위해 잠들어야 했고, 십자가에서 죽고 무덤에

서 사흘 밤낮을 주무셨다. 예수의 옆구리도 예수가 잠든 후에 열

렸고, 그 상처 입은 옆구리에서 구원이 흘러나왔다.20)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인자 가인에게 주신 보호의 표 ( 창

4:15 ) 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옮겨 가인의 표가 ‘십자가 형태’였을

것으로 추측했다.21) 마찬가지로,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져온

것( 창 14장 ) 에서 우리는 예수가 옛 언약의 완성과 해체를 위해 제정

하신 새 언약의 성찬이 분명히 암시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22) 많은

사람이 이삭이 나무를 지고 산으로 올라가는 것( 창 22:6 ) 을 그리스도

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의 예표라고 설교했다.23) 현대에 출간된

어느 모형/예표 사전은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찾기 위해 종을

보낸 이야기( 창 24장 ) 를 알레고리로 그리스도에 빗대어 설명한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위해 신부(리브가)를 얻기 위해 그의 종(성령)을 보내신 아버지의 한 모형이다. 종은 성령을, 이삭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리브가는 교회를 상징한다.24)

20) Martin R. DeHaan, Portraits of Christ in Genesis(Grand Rapids: Zondervan, 1966), 32–33.

21) 예. Vischer, The Witness of the Old Testament to Christ, 75. 22) 앞의 책, 132.

23) 초기 교부부터 오늘날의 설교자까지 그렇다.

24) W. L. Wilson, Wilson’sDictionaryofBibleTypes(Grand Rapids: Eerdmans, 1957), 15.

또 다른 사람들은 요셉의 생애를 그리스도의 생애로 여겨 세부 사

항에 대해 설교했다.

성경에 정통한 사랑하는 여러분, 구약 성경에서 요셉의 모형

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를 더 분명하고 온전하게

보여 주는 개인 모형은 거의 없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여러

분은 요셉과 예수 사이를 매우 많은 방향에서 평행선을 그릴 수

있다……요셉은 형제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데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우리 주님의 한 모형이었다……I. 먼저, 주 예수 그리

스도는 요셉처럼 대부분 개인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는 점에 주목하라……II. 두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주 예수 그리

스도가 처음으로 자신을 어떤 사람에게 계시하실 때, 그것은 보 통 공포의 한가운데서 이루어지며, 그 첫 계시는 종종 큰 슬픔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III. 셋째, 요셉의 경우처럼 예수의 첫

번째 나타나심은 슬픔을 안겨 줄 수 있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가

형제들에게 다시 나타나시면 그들에게 가능한 가장 큰 기쁨이 찾

아온다.25)

이러한 하자 있는 노력은 창세기 이야기에서 그리스도를 진정으 로 설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뿐만 아니라 이것이 얼마나

진정한 소망인지도 보여 준다. 그러나 다음 논문에서 그리스도를 설 교하는 일곱 가지 방법 중 하나 이상을 통해 창세기 이야기에서 그 리스도를 합법적으로 설교할 수 있음을 입증한다면, 우리는 거의 모

25) Charles Spurgeon, Christ in the Old Testament:Sermons on the Foreshadowing of Our Lord in Old Testament History(London: Passmore & Alabaster, 1899), XLVII, 93–97.

든 구약의 책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할 수 있을 것이다.26)

창세기 해석의 문제

해설 에세이로 나아가기 전에 창세기를 해석하는 데 몇 가지 중요

한 쟁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문학적 해석의 쟁점을 논의한

다음 역사적 해석의 쟁점으로 넘어가겠다.

문학 해석 문제

자료비평

자료비평은 처음에 “문학비평”이라고 불렸다. 창세기에 대한 대부

분의 현대 주석은 학생들에게 그라프-벨하우젠의 문서 가설에 따른

J, E, P, D 자료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비평 학계는 “[비록]

여러 지점에서 상당한 반대자가 있었지만 1878년경부터 1970년까

지 이 가설을 널리 받아들였다.”27) 이 가설은 J ( 여호와 기자 ) 는 BC

950년경 이스라엘 왕정 시기에, E ( 엘로힘 기자 ) 는 BC 850년경 분열

왕국 시기에, D ( 신명기 기자 ) 는 BC 620년경 유배 직전에, P ( 제사장 기

자 ) 는 BC 500년경 포로 이후 시대에 등장했다고 주장했다. 이 문서

가설의 결과는 전통적인 유대교 및 기독교 입장을 부정하는 것이

었다. 모세는 이들 자료보다 최소 300년 이상 앞서기 때문에 모세가 오경의 주 저자라는 것이 기존의 전통적 입장이었다. 또한, 구약학자

26) 내가 ‘거의’라고 말하는 이유는 지혜 문헌이 여전히 큰 도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혜 문 헌은 그 독특한 성격 때문에 일반적으로 구속사의 진행, 약속 성취, 모형론을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지혜 문헌은 그리스도에 이르는 나머지 네 가지 길, 즉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의 유비, 통시적 주제, 신약 성경의 언급, 대조로 제한된다. 27) Wenham, Genesis 1–15, xxvi. 자료비평의 계몽적인 역사에 대해서는 Wenham, ExploringtheOldTestament, 159-185를 참고하라.

는 대부분의 노력을 자료비평에 쏟으면서 교회와 설교자를 거의 포

기한 셈이었다. 왜냐하면 설교자는 본문 뒤에 있는 가설적인 자료를

놓고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영감받은 성경( 딤후 3:16-4:2 ) 으로

서 정경으로 전해 받은 최종 본문을 놓고 설교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한 세기 동안 가망이 없는 일에 맹목적으로 매달린 끝에

마침내 “현대 비평이 낳은 성과가 가설에 불과하다는 점”이 인정되

었고,28) 지난 수십 년의 새로운 문학비평은 학문적 집중을 최종 본

문으로 돌려놓았다. 사실 새로운 문학비평은 문서 가설을 약화시

켰다. 게리 렌즈버그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어휘가 일반적으로 서로

다른 자료에 할당된 단위에서 나타난다”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

는 “이 모든 내용은 편집적 구조화에

관심이 어떻게 문서 가설

을 크게 약화시키고, 실제로 본 저자에 따르면, 문서 가설을 지지할

수 없게 만드는지를 보여 준다”라고 결론 내렸다.29) 문서 가설의 붕

괴와 함께 창세기 자료의 연대도 무너진다.30) 고든 웬함은 “신문학

비평가는 이야기 안에 자료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최종 편집

자가 자신의 자료를 어떻게 보았는지, 최종 편집자가 그렇게 배열한

이유를 이해하고자 한다”라고 설명한다.31) 이 신문학비평은 그 선구 자인 편집비평 및 수사비평과 함께 설교자에게 설교할 본문이 주는

28) 앞의 책, xxxv. 자료비평가들 사이의 일부 의견 불일치에 대해서는, 예를 들어, Wenham, Genesis 16–50, 18-19, 79, 203-204, 219-221을 보라. R. K. Harrison, “The Historical and Literary Criticism of the Old Testament,” in Biblical Criticism, ed. Harrison et al., 27–29 및 Waltke, Genesis, 24–29 참고.

29) Rendsburg, Redaction of Genesis, 104. 참고. p. 105, “창세기를 J, E, P 가닥으로 나누 는 표준 구분은 폐기되어야 한다.”

30) 렌즈버그는 창세기의 편집 연대를 상당히 늦은 시기(BC 10세기 통일 왕조)로 보고 있지 만, “창세기는 그 책의 고대성을 나타내는 증거들로 가득 차 있다”라고 인정한다. 앞의 책, 114. 예를 들어, 아브람이 이복 누이와 결혼하고 야곱이 처제와 결혼하는 것과 같은 “창세 기에 반영된 다양한 관습은……후기 오경 율법과 모순된다.” 앞의 책, 115. 참고. pp. 107120.

31) Wenham, Genesis 1–15, xxxiv.

메시지를 분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32)

창세기의 톨레도트 구조

창세기는 흔히 두 부분으로 나뉜다.

1. 태고사( 창 1:1-11:26 )

2. 족장사( 창 11:27-50:26 )

아브람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분명히 창세기의 새로운 단원

을 시작하지만, 올바른 해석과 설교를 위해서는 이 책의 전체적인

문학 구조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창세기의 통일성을 인식하면

각 이야기를 책 전체에 비추어 해석할 수 있다.

창세기 이야기를 통합하는 가장 분명한 문학적 특징은 저자가 세

심하게 짠 톨레도트 구조다. 엘레 톨레도트는 우리말로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번역된다. 주로 “이들은……의 족보다” 또는 “이들은……

의 내력이다” 또는 “이것은……의 계보다.” 톨레도트는 “산출된 것,

결과를 의미한다.”33) 저자는 톨레도트 단위 열 개34)를 통해 이스라엘

의 뿌리를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에덴의 아담과 하와까지 거슬러

올라가 추적한다.

톨레도트 열 개 단위 창세기는 하나님이 일곱 35) 날 동안 땅에 자신

의 좋은 왕국을 창조하는 것으로 시작하며, 첫 번째인 ( 하늘과 땅의 )

32) 나의 Modern Preacher and Ancient Text, 51-67과 나의 글 “The Value of a Literary Approach for Preaching,” 509-519를 참고하라.

33) Martin Woudstra, “The Toledoth of the Book of Genesis and Their RedemptiveHistorical Significance,” CTJ 5/2(1970) 187.

34) “열”(10)은 충만함의 수, “일곱”(7)은 완성 또는 완전함의 수다.

35) 위 각주를 보라.

톨레도트( 창 2:4-4:26 ) 는 그 좋은 왕국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

여 준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역, 에덴 추방, 가인의 동생 아벨

살해, 라멕이 사소한 일로 젊은이를 살해한 일을 자랑하는 일곱 세대

의 타락 정도( 4:23 ) 가 그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아벨 대신”( 4:25 ) 다른 자녀인 셋을 주셔서 여자의 후손 계보는 유

지될 수 있었다.

두 번째 톨레도트는 아담의 톨레도트다( 창 5:1-6:8 ). 아담에서 셋을

거쳐 노아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 이어진다. 이것이 여자의 후손

계보다. 이 계보의 일곱 번째 세대는 첫 번째 톨레도트의 일곱 번째

세대인 라멕과 정반대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 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5:24 ). 그리고 열 번째

세대는 노아로, 그의 아버지는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

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5:29 ) 라고 말했다. 그러

나 노아 시대에는 그러한 악이 만연하여 하나님은 “내가 창조한 사

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6:7 ) 라고 결심하신다. “그러나 노아

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6:8 ). 다시 여자의 후손 계보는 유지

될 수 있었다.

세 번째 톨레도트는 노아의 톨레도트다( 6:9-9:29 ). “노아는……하나

님과 동행하였으며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6:910 ). 그러나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

지라”( 6:11 ).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지시하여 땅을 쓸어

버리고 정화할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자가 있게 하신다. 홍수가 그친 후, 하나님은 땅과 노아와 그의 아들들과 언약을 맺으셨다. “하나님

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9:1 ). 노아는 깨끗해진 땅에서 출발한 또 다

른 아담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악이 도사리고 있다. 노아는 술에 취해 장막 안에 벌거벗고 누워버린다. 노아의 아

들 함이 노아를 모욕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노아는 함의 아들 가나

안을 저주한다( 9:21-25 ). 가나안은 또 다른 가인, 즉 뱀의 씨다. 그러

나 노아는 셈과 야벳에게 축복할 수 있었고( 9:26-27 ), 여자의 후손 계

보는 계속될 수 있었다.

네 번째 톨레도트는 노아의 아들 셈, 함, 야벳의 톨레도트다( 10:111:19 ) . 여기서는 시간 순서를 뒤집어, 먼저 “홍수 후에 땅에 흩어

진”( 10:32 ) 70개( 10×7 ) 나라를 열거한 다음, 하나님이 바벨에서 언어

를 혼잡하게 하셔서 사람들이 “온 지면에 흩어지게 된”( 11:9 ) 이야기

를 전한다. 저자는 이 네 번째 톨레도트가 다시 한번 인간의 불순종

으로 끝나서 처음 세 톨레도트와 다음과 같이 평행을 이루도록 연대

순을 변경했을 것이다. (1) 저주받은 가인과 라멕의 가증스러운 자

랑, (2) 극단적인 폭력, (3) 저주받은 가나안, (4) 바벨의 반역. 이 반

복되는 순서를 통해 저자는 인간의 끊임없는 반역과 여자 후손의 대

를 이어 가기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주의를 환기한다.

다섯 번째 톨레도트는 셈의 톨레도트다( 11:10-26 ), 또다시 “열” 세대

를 거쳐 아브람과 그의 형제에게로 빠르게 이동한다( 두 번째 톨레도트에

서, 아담에서 노아까지 “열” 세대를 보라 )

여섯 번째 톨레도트는 데라의 톨레도트다( 11:27-25:11 ). 여기에는 아

브람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 약속된 복,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하나님은 노아처럼 또 다른 아담인 아브

람과 함께 새롭게 출발하신다. 여자의 후손 계보는 계속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래는 아이를 낳지 못하므로 그 문화의 관례대로 자기 여종

하갈을 아브람에게 주어 자녀를 양육하게 한다. 이스마엘이 태어 난다( 16:1-16 ) . 나중에 사라가 임신하고 이삭이 태어난다. 이제 아

브라함에게는 이스마엘과 이삭이라는 두 아들이 있지만, 여호와는

그에게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21:12 ) 라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시다

창세기 1장 1절-2장 3절

창조 이야기를 설교할 때 설교자는 몇 가지 어려움에 직면한다. 첫

번째 어려움은 이 이야기에서 그리스도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하

는 점이다. 창세기 1장은 메시아 구세주가 필요하지 않은 완벽하게

선한 창조를 이야기한다. 창세기 1장에는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약

속도 없고,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도 없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설교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어려움은 이 이야기의 핵심을 잘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주제를 설정하는 것이다. 이 구절에는 그 자체로 설교 본문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여럿 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 26-31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여 다스리게 하셨고, 창세 기 2장 2-3절에서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세 번째이자 더 곤혹스러운 어려움은 “창세기 1장과 과학의 충돌”

부르는 논쟁에 설교자가 쉽게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이다. 지 구의 나이는 어떻게 되는가? 지구는 6천 년밖에 안 된 젊은 행성인 가, 아니면 약 40억 년이나 된 행성인가? 그리고 이 질문과 관련하

여 창세기 1장의 날들은 24시간의 하루인가 아니면 오랜 기간을 말

하는 하루인가? 한편으로 우리가 긴 시간의 편에 서게 되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왜냐하면 본문은 분명히 “저녁이 되며 아침

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녁과 아

침은 일몰과 함께 시작하는 히브리식 24시간의 하루를 나타낸다.

게다가 식물과 나무가 셋째 시기에 창조되었다면, 넷째 시기가 되어

서야 창조된 태양 없이 그것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반

면에 하루를 24시간의 하루라고 가정하면 몇 가지 다른 문제에 직

면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은 2억 년 전에 공룡이 지구를 돌

아다녔고 인간은 20만 년 전에 나타났다고 주장하지만 창세기 1장

에는 인간뿐만 아니라 육상 동물도 여섯째 날, 즉 24시간 안에 창조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또한 몇 가지 본문 문제에 직면 한다. 예를 들어, 넷째 날 태양이 창조되기 전 처음 3일 동안 어떻게

“저녁과 아침”이라는 날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우리 세대의 많은 설교자는 창

세기 1장 설교를 기피한다. 그러나 창세기 1장은 기독교 신앙의 초

석을 다지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를 빠뜨리는 것은 비극이다. 사도신

경의 첫 번째 구절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

가 믿사오며”라고 고백한다. 현대에 생긴 문제 때문에 창세기 1장의

메시지를 설교하지 못하는 것은 교회의 신앙을 약화하는 것이다. 그

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창세기 1장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건전한 해석 원칙은 먼저 저자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려주려고

의도한 대로 구약 성경 본문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지구의 나이나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창조했는지에 대해서는 관

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질문은 현대에 생

긴 문제며, 본문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고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영감

받은 창세기 저자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려면, 우리는 본문을 주의

깊게 듣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본문에 우리의 현대적 질문을 강요

하는 대신 고대 이스라엘이 원래 들었던 대로 창조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따라서 본문 단위를 정한 후에는 이스라엘을 향한 저자의 메

시지( 주제 ) 와 저자가 이스라엘을 향해 이 메시지를 쓴 이유( 목표 ) 를 파악해야 한다.

본문과 문맥

본문 단위는 대부분의 역본처럼 창세기 1장 1절에서 2장 3절까지

이어지며, NRSV가 보여 주는 대로 2장 4a절의 톨레도트 공식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창세기의 톨레도트 공식인 “이것이……의 내력이

니”는 항상 새로운 순서를 시작할 뿐 결론으로 기능하지 않는다.1)

이 이야기의 명백한 결론은 2장 1-3절에 기록된 일곱째 날이다. 이

부분도 1장 1절과 문학적 수미상관을 형성하며, “2장 1-3절은 동일 한 문구를 소개하지만 순서를 반대로 소개함으로써 1장 1절을 반영

한다. 즉 ‘창조하시니라’, ‘하나님’, ‘천지’가 ‘천지’( 2:1 ), ‘하나님’( 2:2 ), ‘만드시던’으로 다시 등장한다. 이 교차대구 패턴으로 이 부분이 깔

끔하게 마무리되며, 1장 1절과 2장 3절을 연결하는 ‘하나님이 창조 하시니라’의 수미상관이 이 마무리를 강화한다.”2) 4a절도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의 내력이니”는 다음 이야기의 적절한 서문으

로,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여 준다.

1) “톨레도트 공식에는 자손(progeny)의 속격이 아니라 항상 조상(progenitor)의 속격이 뒤 따른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Hamilton, Genesis 1–17(『NICOT 창세기 I』, 부흥과개혁 사 역간, 2016), 151을 참고하라.

2) Wenham, Genesis 1–15, 5.

문학적 특징

이 이야기는 인간이 창조되기 전부터 “존재”했던 편재하는 화자를

드러낸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생각을 알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

았더라”라고 말하며, “우리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자”( 26절 ) 라는 하

나님의 계획을 알고 있는 전지한 존재다.

화자는 완전한 수 “7”과 그 배수를 사용하여 이 이야기를 세심하

게 구성했다. 즉 7일, “그대로 되니라”가 7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심히 좋았더라”가 7회, 하늘( 샤마임 ) 이 21회( 3×7 ), 땅( 에레

츠 ) 이 21회( 3×7 ), 하나님( 엘로힘 ) 이 35회( 5×7 ) 다.3) 그는 또한 충만의

수인 “10”이라는 수를 활용하여 “그리고 하나님이 이르시되”를

10회 반복한다. 또한 그는 첫 6일을 3일씩 두 묶음으로 구성하고,

둘째 3일 묶음도 첫째 3일 묶음과 평행을 이루게 ABC A′B′C′ 구

조로 구성했다.

줄거리

다른 히브리어 이야기만큼 분명하지는 않지만, 창세기 1장 1절-

2장 3절에서도 줄거리를 감지할 수 있다. 예비 사건(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 4) 갈등이 고조되는 사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 긴장이 점차 해소되는 과정(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

3) Cassuto, Commentary on Genesis, I, 13–15를 보라.

4)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라는 NRSV의 번역도 문법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전통적인 번역을 선택해야 한다. von Rad, Genesis, 46–47 및 Anderson, Contours, 88–89. Cassuto, Commentary on Genesis, I, 20은 “2절은 새로운 주 제를 시작한다. 따라서 창 1:1은 전체 단원에 대한 공식적인 서언을 구성하며, 단원의 주요 사상을 모두(冒頭)에서 장엄한 간결함으로 표현하는 독립적인 문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 고 주장한다. 이야기의 관점에서는, 주요한 예비 사건(하나님이 창조하셨다)이 강조되고 결 과적인 갈등에 종속되지 않는 것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에 운행하시니라”에 이어서 혼돈, 곧 카오스를 몰아내고 질서, 곧 코스모스를 확보하

는 하나님의 말씀 10회 ), 결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 등이 그것이다. 이 하나의 줄거리를 다음과 같이 개 관할 수 있다.

“하나님의 영”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1)

궁창(2)

마른 땅(3)

초목(4)

광명체(5)

물고기와 새(6)

가축과 야생동물(7)

혼돈

배경 예비 사건 창 1:1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갈등 유발 사건 1:2

땅이……했다

인간(8) “생육하고 번성하여……땅에 충만하라”(9)

모든 생물을 위한 먹을거리(10)

갈등 고조 해결 결과 2:1-4

하나님이 안식하셨다

구약 성경을 세계와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이야기로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의 주제를 결정하기 전에 하나님 중심 해석 을 강조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다음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이 이야 기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는 가? 여기서 저자는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창조 이

야기에서 하나님 중심적 초점은 너무나 분명해서 놓치면 안 된다.

그 이야기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하는데, 천지는 곧 온 우주를 가리킨다. 2절은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

행하시니라”라고 말한다. 그다음에는 “하나님이 이르시되……그대

로 되니라”가 10회,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가 7회 나 온다. 한편 저자는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5, 8, 10절 ) 라고

기록했다. 하나님은 동물에게도 복을 주셨고, 그다음에는 일곱째 날

에 인간에게 복을 주셨다( 1:22, 28; 2:3 ).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음이

니라”( 2:3 ). 데릭 키드너는 “‘하나님’이 성경 첫 문장의 주어가 된 것

은 우연이 아니다. 이 단어가 장 전체를 지배하고 페이지의 모든 지

점에서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이야기의 많은 구절에

서 약 35회 사용되었다.”5)

본문의 주제와 목표

이스라엘이 듣도록 의도된 대로 본문을 주의 깊게 들으면서 본문

의 주제( “의도” ) 와 이스라엘을 향한 저자의 목표를 분별하려고 노력

한다. 우리는 아마도 1절을 주제 진술로 이해하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주제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주

제는 이야기 나머지 부분이 만드는 주요 요점, 특히 “하나님이 이르

시되”가 10회 반복되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7회 반복되는 점을

포괄하지 못한다. 전체 이야기에서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자

5) Kidner, Genesis, 43.

신의 선한 왕국으로 창조하셨다”라는 것이 더 적절한 주제일 것

이다.6) 그러나 우리는 이 주제를 더 구체화할 수 있다. 하나님은 최 고의 왕으로 묘사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지고, 혼

돈에서 질서를 가져오며, 낮, 밤, 하늘, 땅, 바다의 이름을 짓는다.

따라서 더 생생하고 사실적인 주제는 우주의 왕이 강력한 말씀으로

세상을 자신의 선한 왕국으로 창조하셨다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향한 목표와 관련하여 저자는 몇 가지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가장 분명한 목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태초

에 이 세상을 자신의 선한 왕국으로 창조하신 주권적인 왕이라는 것

을 가르치는 것이었다.7) 물론 모든 성경 본문의 목표는 무언가를 가

르치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왜 이스라엘에게 이 메시지를 가르

치고 싶었을까?”라는 질문을 제기하면 더 깊고 관련성 있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먼저 본문에 단서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창세기

1장에서 한 가지 단서는 저자가 해, 달, 별의 창조를 넷째 날로 미루

고 있다는 점이고, 또 다른 단서는 해와 달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

냥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

게 하시며”( 16절 ) 라고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왜 해와 달의 이름을 밝

히지 않았을까? 이는 이스라엘 이웃 나라 이교 신의 이름이었기 때

문이다. 분명히 저자는 해와 달과 별을 신으로 삼는 이교 세계관에

대한 논쟁을 계속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셋째 날에 초목을 창조 하신 후인 넷째 날에야 이교도들이 신으로 부르는 것들을 창조하

6) “하나님 나라”에 대한 월트키의 발언은 반복해서 언급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그에 상응하는 표현도 비교적 드물고 늦게 등장하 지만, 이 개념은 구약 성경 전체에 대한 정보를 알려 준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세상의 창 조(창 1장)에서 이스라엘의 멸망(왕하 25장)까지 추적하는 기본 역사는 모두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것이다.” Genesis, 44. 다음도 보라. S. G. De Graaf, Promise and Deliverance, I, 29–35.

7) 참고. Cassuto, Commentary on Genesis, I, 7, “이 부분에서 토라의 목적은 온 세상과 그 안에 포함된 모든 것이 유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셨다. 이것들은 “광명체”일 뿐이다. 따라서 단순히 가르치는 것보다

더 구체적인 목표는 이교 신화의 영향에 맞서고 이스라엘의 세계관

을 형성하거나 교정하는 것이다.8) 설교자는 사람들의 세계관을 현대

의 세속적 세계관과 대조되게 성경적으로 교정하기 위해 이 주요 목

표를 염두에 두고 창조 기록에 대한 설교를 확실히 개발할 수 있다.

그러나 더 깊이 파고들 수도 있다. 본문 자체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이 처한 역사적 상황에서도 저자의 목표에 대해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유배되어 있을 때 이 창조 이야기를 들

었다고 가정해 보자. 강력한 바벨론 군대가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나라를 침략하여 많은 사람을 죽이고 다른 사람들을 유배지로 데려 갔을 때였다. 바벨론은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를 물리친 것처럼 보

였다. 그들은 여호와의 성전을 불태우고, 여호와의 성읍 예루살렘을 파괴했으며, 여호와의 백성을 노예로 삼았다. 이스라엘의 신은 강력

한 바벨론의 신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고대 바벨

론의 창조 서사시 『에누마 엘리시』에 따르면, 그들의 우두머리 신 마

르둑( 히브리어로 ‘므로닥’으로 알려짐 ) 9)은 하늘과 땅의 창조자였다. 마르

둑이 바다의 여신 티아맛과 싸우면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

주(마르둑)는 그물을 펼쳐서 그(티아맛)를 에워싸고, 그가 품고 있던 독한 바람을 그 얼굴에 풀어 주었다.

티아맛은 삼키려고 입을 벌렸고, 그는 그가 입술을 다물지 못하도록 거센 바람을 몰아쳤다.

8) “창세기 1장은 고대 근동의 다른 모든 곳에서 유행하던 다신교에 맞서 하나님의 유일성을 다시 한번 확증한다. 특히 이교 신화에 따르면 해, 달, 별, 바다 괴물은 강력한 신이지만 창세 기는 단지 그것들이 피조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Wenham, Genesis 1–15, xlix. 고대 근동 우주론과의 개념적 유사성과 이에 대한 논쟁에 대해서는 John Stek, “What Says the Scripture?” 226–232를 참고하라.

9) 렘 50:2를 보라. “바벨론이 함락되고 벨이 수치를 당하며 므로닥이 부스러지며 그 신상들은

수치를 당하며 우상들은 부스러진다 하라.”

거센 바람은 그의 배를 부풀게 했고,

내장이 막혀버린 그는 입을 크게 벌렸다.

그가 화살을 쏘아 그 배를 가르고

내장을 찌르고 심장을 꿰뚫었다.

그는 그를 제압하고 그의 목숨을 끊었다.

그의 시체를 내던지고 그 위에 섰다……

그는 그를 갈라 말린 물고기처럼 둘로 나누고,

그 절반을 세워 덮개, 창공으로 만들었다.

그는 가죽을 펼쳐서 파수꾼을 세우고,

물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는 하늘을 가로질러 가며 (그것의) 궁창을 점검했다……10)

그런 다음 마르둑은 “위대한 신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고, 별들

로……별자리를 두고……달이 나타나게 했다.” 마르둑은 살해된 티 아맛의 나머지 절반으로 돌아와서, “그를 덮개로 삼아 지하 세계를

세웠다.”11) 그리고 마르둑은 “나는 인간을 창조할 것이며, 그들이 신

들의 짐을 져서 신들이 쉴 수 있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르둑은 처형당한 반역자인 신 킹구의 피로 인간을 만들었다.12) 그

후 “위대한 신들이 소집되어 마르둑의 운명을 가장 높게 만들 었다……그들은 그를 영원히 천지의 주권자로 세웠다……그의 말은

위아래로 최고가 될 것이다……그는 자신을 섬기도록 검은 머리의 사람들을 임명할 것이다.”13) 사람들은 이 위대한 신들이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에 있는 주( 여

10) 『에누마 엘리시』, 태블릿 IV, 행 95–104, 137-141(Hallo, The Context of Scripture, I, 390–402에서 번역).

11) 앞의 책, 태블릿 V, 행 1–2, 12, 63.

12) 앞의 책, 태블릿 VI, 행 7–8, 34.

13) 앞의 책, 태블릿 VI, 행 95–96, 100, 104, 113.

호와 ) 의 성전을 파괴하고 그의 백성을 포로로 끌고 갈 수 있게 했다

고 생각했다. 이스라엘이 이 강력한 신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기록하여 이스라엘을

위로하려고 한다( 10:5 ).

그들의 우상은 오이밭의 허수아비(개역개정. “둥근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고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이 메어야 하느니라

그것이 그들에게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마찬가지로 창조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세계관을 바로잡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변덕스러운 이교 신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주권자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다는 소망을 주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스라엘을 위한 이 메시지의 더 깊고 적절 한 목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에게 자기들의 하나님이 세상의 운

명과 자기들의 운명을 주관하시는 주권적인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사

실을 알려 주어 위로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법

이 창조 이야기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은 구세주가 필요 없

는 완벽한 세상에 대해 말하고 있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

로 이 본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약의 성취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이나 그리스도의 모형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본문이 타락 전의 세상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타락 후의 세상에서 이스라엘이 받은 말씀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우주의 왕이 강력한 말씀으로 세상을 자신의 선한 왕국으로 창

조하셨다라는 주제를 감안할 때,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르는

합법적인 다리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에게 이르는 일곱 가지 가능한

길을 확인해 보자.

구속사의 진행

구속사의 진행은 하나님이 이 땅을 자신의 선한 왕국으로 창조하

신 것에 대한 메시지이기 때문에 신약 성경의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다리가 될 수 있다. 왕에 대한 인간의 반역으로 인해 이 왕국이 망가

졌지만, 하나님은 이 땅에 자신의 왕국을 회복하기로 결정하셨다. 예

수는 신약 시대에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막

1:15 ) 라고 선포하면서 초림으로 이 왕국을 가까이 가져오셨다. 예수

의 기적은 하나님 왕국의 임재를 알리는 표징이었다. 예수는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눅 11:20 ) 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는 “하늘

과 땅의 모든 권세”( 마 28:18 ) 를 받으셨고,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

아 계시며( 엡 1:20-23 ), 지금 왕으로 통치하고 계신다. 예수는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실 때 요한이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계

21:1 ) 라고 증언한 것처럼 이 왕국을 온전히 이루실 것이다.

약속 성취

창조 이야기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이 없다.

모형론

이 구절에는 그리스도의 모형이 없다.

유비

해당 구절의 목표를 고려하면 종종 유비의 다리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그 목표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에게 자기들의 하나님이

세상의 운명과 자기들의 운명을 주관하시는 주권적인 창조주 하나

님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어 위로하는 것”으로 보았다. 예수도 신약

성경에서 이러한 위로의 메시지를 가르치셨을까? 신약 성경의 서신

서는 예수를 언급하며 이 메시지를 가르치고 있는가? 산상수훈에서

예수는 실제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주권자시며( 마 6:9-11 ),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신다. 예수는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

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

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

6:26 ) 라고 우리를 격려하신다. 신약 서신과 관련하여 히브리서 1장

2-3절이 떠오른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

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

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

드시며.”

통시적 주제

통시적 주제는 창조 기사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또 다른 방법

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설교자는 하나님의 강력한 창조 말씀이라는

통시적 주제를 추적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

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10회 ) 나중에 아브람을 이교

환경에서( 참고. 수 24:2 ) 가나안으로 부르시고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

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세상을 구속하고자 하셨다( “여호와께서……이르시

되” ).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왕국 표준에 따라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

하기 위해 열 가지 말씀을 주셨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왕국을 구

현하지 못하자 하나님의 말씀은 선지자를 통해 심판뿐만 아니라 포

로 생활 후의 재건에 대해서도 말했다( 사 40:12-31; 42:5-9; 렘 31:35-40 ).

때가 차자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안에서 성육신했다. 예수는 하나님

의 말씀이셨고 이 땅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

을 전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창조가 선하다는 통시적 주제도 추적할 수 있다. 이

선함은 타락으로 인해 손상되었지만,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놀라

운 창조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충분한 내용이 남아 있다( 예. 시

8편; 19편; 136편 ). 신약에서 예수는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선함을 회복하기 시작하셨고, 마지막 날에는 창조 세계 자체를 “썩

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하실” 것이다( 롬 8:21 ). 이 창조 이야기의 다른 중요한 하위 주제는 신약 성경의 예수 그

리스도에게서 찾을 수 있다. 이 이야기와 구약 성경 전체에 나타나

고 신약 성경에서 예수가 주장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생각해 보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8 ). 또는 인간이 하 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주제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 골 1:15; 고후 4:4 ) 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에 이른다. 또

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안식일( 출 20:8-11; 31:13-17 ) 주제는

예수가 올바른 관점으로 설정하셨고( 막 2:27 ), 예수가 “하나님의 백

성”을 위해 얻으신 최종적인 “안식”( 히 4:1-12; 계 14:13 ) 을 가리킨다. 그

러나 통시적 주제 방식을 사용할 때 설교자는 설교가 통일성을 잃지

않도록 본문 주제를 뒷받침하는 주제를 선택하도록 주의해야 하며, 더욱이 청중이 정보 과부하로 인해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일이 없도록

너무 많은 세부 사항을 포함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신약 성경의 언급

신약 성경의 언급은 또 다른 선택지를 제공한다. 『헬라어 신약 성

경』( NA27 ) 부록14)에는 신약에서 이 이야기를 인용하거나 암시하는

성경 구절 23개를 열거한다.

창세기 1장 1절에 대해서는 히브리서 11장 3절,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와 요한복

음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창세기 1장 3, 6, 9절의 “하나님이 이르시되”에 대해서는 베드

로후서 3장 5절의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창세기 1장 31절의 “심히 좋았더라”에 대해서는 디모데전서

4장 4절의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

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부록에 나열된 이 구절들은 이야기의 주제보다는 관련 장절을 언

급하기 때문에, 이야기의 주제를 그리스도에게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구절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에 포함된 어떤

한 절이 주제를 표현하는 데 근접한 경우, 나열된 신약 성경 구절 중

일부는 주제를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그 주제를 신약 시대로 이어

가는 데 유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에 하나

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이 이야기의 주제를 표현하는 데 가장

근접한 구절이다. 창세기 1장 1절에 대해 나열된 신약 성경 구절은

히브리서 11장 3절과 요한복음 1장 1절이다. 히브리서 11장 3절은

예수 그리스도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지만, 요한복음 1장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는 구절이 있다. 요한복음 1장은 예수를 “말

14) Nestle and Aland, Novum Testamentum Graece(27th ed.; Stuttgart: Deutsche Bibelgesellschaft, 1993), 770–801.

씀”이라고 부를 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

에”를 인용하여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느니라”라고 말한다.

더욱이 요한복음 1장은 빛과 어둠, 생명과 같은 창세기 1장의 다른

개념에 대한 암시를 몇 가지 추가한다. 설교에서 그리스도를 향한

다리로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신약 성경 구절로는 고린도전서 8장

6절, 골로새서 1장 15-17절, 에베소서 1장 10절, 히브리서 1장

2절, 요한복음 3장 16절을 들 수 있다.

대조 창조 이야기의 메시지와 신약 성경의 메시지 사이에는 대조되는

내용이 없다.

설교의 주제와 목표

정경의 맥락과 구속사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메시

지를 바꾸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교회에 동일한 메시지를

다시 선포할 수 있다. 따라서 우주의 왕이 강력한 말씀으로 세상을 자

신의 선한 왕국으로 창조하셨다라는 본문 주제는 그대로 설교의 주

제도 될 수 있다. 이 주제는 ( 모든 설교 주제와 마찬가지로 ) 역동적인 이야

기를 정적인 명제로 축소하지만, 설교자는 적어도 두 가지 이유, 즉

각 이야기의 독특한 본문 요소의 조합을 정당하게 평가하고 설교를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주제에 대한 진술이 필요하다. 설교 자체는 정적인 주제를 다시 매력적이고 역동적인 형태로 바꿔야 한다.

설교 목표는 이스라엘을 위한 저자의 목표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우리는 저자의 목표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에게 자기들의 하나님이 세상의 운명과 자기들의 운명을 주관하시는 주권적인 창 조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어 위로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본문 목표를 약간 수정해서 설교 목표로 삼을 수 있다. 하나님을 경

외하는 백성에게 우리의 하나님이 세상의 운명과 우리의 운명을 주관

하시는 주권적인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려 주어 위로하는

것. 이 목표는 이 설교가 다루는 필요성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즉

옛 이스라엘처럼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도 테러리스트, 대량 살상 무

기, 재난, 질병, 죽음 등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세력을 두려워 한다.

설교 형식

이야기 본문을 설교할 때는 일반적으로 줄거리를 따라가는 이야

기 형식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창세기 1장의 경우, 7일

또는 10번의 “하나님이 이르시되”라는 세부 사항에 설교가 얽매이

는 것이 걱정된다. 따라서 나는 그 대신 3대지 설교를 선택하여 각

대지가 주제를 뒷받침하는 개별 측면을 강조하게 했다. 또한 연역적

으로 설교를 전개하는 경우, 즉 서론에서 주제를 언급하는 경우 주

제를 더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이러한 고려 사항은 다음과 같은

설교 개요로 이어진다.

서론: 오늘날 우리의 두려움을 과거 이스라엘의 두려움으로 전 환하기.

주제 설명: 우주의 왕은 강력한 말씀으로 이 땅을 자신의 선한 왕국으로 창조하셨다.

I. 우주의 왕은 강력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II. 우주의 왕은 칠 일 만에 자신의 일을 완성하셨다.

III. 우주의 왕은 자신의 왕국을 선하게 창조하셨다.

결론: 우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세상의 운명과 우리의 운명

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설교 강해

설교 서론은 일반적으로 설교에서 다룰 회중의 필요를 상기시킬

때 가장 효과적이다. 이러한 필요는 대개 설교 목표에서 도출될 수 있다. 이 경우, 그것은 미지의 예측할 수 없는 힘에 대한 두려움이다.

따라서 나는 지구와 충돌하는 소행성, 초강력 태풍, 테러리스트가 장

악한 대량 살상 무기 등 이러한 힘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을 설명하

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다. 그런 다음 이스라엘 및 강력하지만 변덕

스러운 이방 신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으로 전환한다. 이렇게 하면

회중이 이스라엘이 들었던 위로 메시지, 즉 “우주의 왕이 강력한 말

씀으로 이 땅을 자신의 선한 왕국으로 창조하셨다”라는 메시지를 들

을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다.

첫째로, 우주의 왕은 강력한 말씀으로 땅을 창조하셨다.15) 창세기

1장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한다. “천지”

곧 하늘과 땅은 우주 전체를 의미한다. 성경은 이교도의 그 어떤 신

이 아니라 엘로힘이 태초에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강력한 메시지

로 시작한다. 다음 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하

나님”( 야웨 ) 으로 밝혀질 것이다( 2:4 ).

이 이야기의 갈등은 2절에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 음 위에 있고”라는 말로 이 땅으로 초점을 옮기면서 야기된다. “혼돈 하고 공허하며”( 토후 바보후 ) 라는 말( 즉 아무것도 살 수 없고 형체도 없는 불모 지 ) 에서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는 말로 이어지며 갈등이 확대

15) 바라의 의미에 대해서는 John Stek, “What Says the Scripture?” 207–213을 보라.

된다. 이는 빛이 전혀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다. 존재하는 것은 형태

가 없고 텅 비어 있으며 어둡고 깊은 바다뿐이다. 이런 땅에서는 어

떤 것도 자라거나 성장할 수 없다. 완전한 혼돈이다.16)

하지만 한 줄기 희망이 있다. 2절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영[루아

흐]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영은 혼돈에

속하지 않고 마치 힘센 독수리가 “자기 새끼 위를 맴돌며” 새끼들을

휘저어 날아가게 하려는 것처럼 혼돈 위를 맴돌고 있다( 신 32:11 ). 그

리고 이 하나님의 영, 즉 하나님의 숨결이 혼돈에서 질서를 가져오

려고 한다. 하나님이 말씀하기 시작하고, 그 첫 번째 말씀은 치명적

인 어둠에 대한 말씀이다. 3절을 보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

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하나님은 찬란한 빛, 즉 땅에서 생명이

살 수 있게 하는 빛으로 이 치명적인 어둠을 몰아내신다. 4-5절을

보라.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

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어둠을 밤으로 몰아냄으로써 어둠

의 한계를 정하셨다. 처음 사흘은 하나님이 혼돈의 세력( 어둠과 물 ) 을

몰아내고 생명력 있는 우주를 형성하기 위한 분리의 날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둠의 한계를 정한 후 파괴적인 물을 다룬다.

6-7절을 보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16) 나는 2절이 6일의 질서 부여 과정을 거친 다음 아주 좋은 우주가 되기 전에 하나님의 피조 물(혼돈)이 미완성임을 묘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좋았더라”라는 하나님의 선언이 보여 주듯 (첫째 날과 같은) 미완성은 악이 아니다. 2절이 “하나님의 창조 결과가 아니라 이 세 상의 가장 초기 단계에 존재하는 혼돈”을 묘사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Ross, Creation and Blessing, p. 107이 옳다면, 이야기의 갈등이 훨씬 두드러질 것이지만, 물질의 선재를 상정 하는 이교도의 신화를 반박하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 크레아티오 엑스 니힐 로) 논쟁을 희생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참고. von Rad, Genesis, 51, “1장의 신학 적 사고는 무와 창조라는 극 사이가 아니라 혼돈과 질서라는 극 사이를 이동한다. 그러나 무에서의 창조 사상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1절이 2절보다 앞서는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이제 지구는 형태를 갖추

기 시작하여 아래에 있는 물과 위에 있는 물과 숨 쉴 공기가 생긴다.

그러나 아직도 하나님이 의도하신 생명은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신다. 9절을 보라. “하나님이 이르시

되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

니라.” 하나님은 물과 땅을 분리하신다. 물이 물러가고 땅이 나타

난다. 이제 지구는 하늘뿐만 아니라 바다와 육지가 있는 명확한 형

태를 갖추게 된다. 하나님이 땅에게 초목을 자라게 하라고 명하실

때( 11절 ), 지구는 생명이 살아갈 수 있게 된다. 형태가 없고( 토후 ) 공허

하고( 보후 ) 어둡고 캄캄한 바다였던 이전의 혼돈과 달리, 이제 낮과

밤, 위로 하늘과 아래로 물, 바다와 초목이 있는 마른 땅 등의 형태가

생겼다. 이제 지구는 비어 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생명체로 가득

차게 되었다.17)

처음 3일 동안 눈에 띄는 그림은 하나님이 강력한 말씀으로 혼돈

의 파괴적인 세력을 물리치신다는 것이다( 참고. 욥 38:8-11; 벧후 3:5-7 )

그러나 이것이 혼돈의 세력이 더 이상 지구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 하나님은 위의 물과 아래의 물을 분리하셨

지만, 나중에 대홍수 때처럼 자신의 강력한 말씀을 거두실 수 있

었다.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창 7:11, 21 ). 사실, 하나님은 어둠을 밤

으로 몰아내셨지만, 빛을 거두어 어둠이 다시 지배하도록 허락하실

수도 있었다. 그는 애굽에 아홉 번째 재앙으로 그렇게 하셨다( 애굽의

태양신 레를 차단하는 재앙 ).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

어서 그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17) 처음 3일의 “형태”와 마지막 3일의 “채움”에 대해서는 Kidner, Genesis, 46을 참고하라. Hughes, Genesis, 25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형태”와 “채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가 없으되”( 출 10:22-23 ). 선지자들은 다가오는 여호와의 날을 “어

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로 묘사한다( 욜 2:2; 참고. 암

5:18, 20 ). 모든 흐린 밤은 이스라엘에게 의미 있는 삶을 차단하는 칠

흑 같은 어둠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약의 신실함( 창

8:22 ) 으로 피조물을 보호하시며 매일 아침 찬란한 빛으로 어둠을 몰

아내신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이 이르시되”라는 구절이 10회 반복된다.

10은 충만함의 수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열 가지 말씀

을 하셨다는 메시지를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들었을까? 그들은 의

심할 여지 없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열 가지 말씀, 즉

십계명을 떠올렸을 것이다. 출애굽기 20장은 열 가지 말씀으로 이

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율법을 제시한다. 창세기 1장은 열 가지 말

씀으로 창조를 위한 하나님의 법을 제시한다.18)

시편 33편은 창조를 위한 하나님의 열 가지 말씀의 의미를 잘 포 착한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 33:6, 9; 참고. 148:5-6)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강력한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메시지를 어떻게 들었을까? “이 이미지는 강력한 주권자가 왕좌에

서 법령을 선포하고, 명령을 내리고, 그 말 한마디로 모든 일이 이루

18) Wenham, Genesis 1–15, 38을 보라.

어진다는 이미지다.”19) 고대에는 왕이 땅의 법이었다. 왕이 말만 하

면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을 우주의 왕으로 묘 사한다. 이는 첫째, 하나님이 우주의 주인이심을 의미한다( 참고. 시

24:1-2; 89:11; 95:5 ). 둘째, 하나님이 우주의 법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강력하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이루어지고, 명령하시면 발

생하며, 뜻하시면 뜻대로 된다. 우리 하나님은 우주의 주권자 왕이

시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우연한 일이

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왕은 주권자시며 우주를 통제하신다. 그

는 자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셨고, 강력한 말씀

으로 우주를 다스리신다.

사도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를 기록할 때 의도적으로 창세기 1장

의 장엄한 말씀을 상기시킨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

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

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

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말

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5, 14)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소개 한다. 그리스도는 태초에 계셨다. 그리스도는 주권적인 창조주 하나 님과 하나시다.

바울도 비슷한 생각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19) Brueggemann, TheologyoftheOldTestament, 146.

그[예수]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

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

께 섰느니라(골 1:15-17)

우리 주 예수는 우주의 왕과 하나시다.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창조

되었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있다. 예수의 고귀한 본성을 알면 인

간이 되신 예수의 엄청난 희생을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요한은 이

영원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 1:14 ) 라고 선포하고, 바울은 그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빌 2:7 ) 라고 말한다. 우주의 왕이

종이 되셨다. 세상이 멸망으로 향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예수를 통

해 다시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톤 코스몬]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

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가 이 세상을 창

조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가 이 세상을 구원하실 것이다.

화자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이 땅을 창조하셨다는 메시지와 더불어

우주의 왕이 7일 만에 창조 사역을 끝냈다는 점을 강조한다. 창세기

의 저자는 숫자 “7”과 그 배수를 강조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

를 창조하시니라”라는 1절은 히브리어로 정확히 일곱 단어로 이루

어져 있다. 2절은 정확히 14단어, 즉 2×7로 이루어졌다. 이 이야기

에서 하나님의 이름( 엘로힘 ) 은 35회( 5×7 ), 하늘( 샤마임 ) 과 땅( 에레츠 ) 은

각각 21회( 3×7 ) 언급된다.20) “7”은 완전성, 완전함의 수다.21) 이

20) Cassuto, Commentary on Genesis, I, 13–15, 및 Mathews, Genesis 1–11:26(『NAC 창세기 1』,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8), 120–21을 보라.

21) “고대 근동 지역에서 숫자 7은 오랫동안 충만함/완전함을 나타내는 주요한 숫자 상징으로

스라엘은 특별히 일주일 주기로 인해 “7”이라는 숫자를 알았다. 이

스라엘이 광야를 여행할 때, 여호와는 일주일에 6일 동안 만나를 거

두고, 여섯째 날에 모은 만나가 일곱째 날까지 상하지 않을 것이니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가르치셨다( 출 16장 ). 나중에 시내산에서 이 패

턴은 십계명으로 성문화되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

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출 20:9-10 )

창세기 1장의 저자는 이스라엘이 엿새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는 일주일을 패턴으로 삼아 하나님이 엿새 동안 창조 역사를

완성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에게 선포

한다. 그러나 저자는 문제에 직면한다. 일주일에 일하는 날이 6일밖 에 없는데 8가지 창조 행위를 보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저

자는 셋째 날과 여섯째 날에 두 가지 창조 행위를 배치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 해결책은 날들 간의 조화로운 평행법을 강조 한다.

오리게네스와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미 창세기 저자가 4, 5, 6일을 1, 2, 3일과 평행이 되게 구성하여 ABC A′B′C′ 패턴이 이루어지게 했다는 것을 관찰했다.22)

1일 빛

4일 빛의 전달자: 해, 달, 별 2일 궁창 5일 바다와 하늘에 거하는 것: 물고기와 새

사용되었으며, 7일 주기는 매우 오래되고 확고한 관습이었다.” Stek, “What Says the Scripture?” 239. 22) 내게 “문학적 틀 이론”에 처음 관심을 갖게 한 N. H. Ridderbos, Is There a Conflict between Genesis 1 and Natural Science? trans. John Vriend(Grand Rapids: Eerdmans, 1957)는 “이 견해는 이미 초대 교회(알렉산드리아의 필론, 오리게네스, 아우구스티 누스)에 퍼져 있었다”라고 주장한다(11).

3일 두 가지 창조 행위:

땅과 초목

6일 두 가지 창조 행위: 육상 동물과 인간

7일 하나님이 안식하셨다

분명히 저자는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연대기적 보

고를 제공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그는 연대기적 설명을 하기 위해

창조 당시 그곳에 있지도 않았고, 이는 다른 어떤 인간에게도 마찬

가지였다. 저자는 객관적인 연대기적 보도 대신 이스라엘과 오늘날

의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세심하게 구성된 설교를 준비했다.

이스라엘이 강력한 이교도 신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기억하는

가? 창세기 저자가 해, 달, 별의 창조를 초목의 창조( 셋째 날 ) 와 물고

기와 새의 창조( 다섯째 날 ) 사이 넷째 날에 배치한 것을 주목하라. 그

는 이스라엘에게 이 강력한 이교 신인 해, 달, 별도 초목과 물고기,

새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말한다.23) 우리가 왜

그들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저자는 16절에서 이교도 신의 이름인

해( 셰메슈 ) 와 달( 야레아흐 ) 이라는 이름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하나님

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라고 쓰고

있다.24) 이교의 강력한 신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만드신 광명체일 뿐이다.

두려움에 떨던 이스라엘이 들었던 것을 우리도 듣는가? 틀림없이

우리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 이교 신 해, 달, 별도 하나님

23) 참고. Westermann, Genesis, 9, “화자는……고의로 천체의 창조를 식물과 동물의 창조 사이에 배치한다. 그는 고대 근동에서 가장 중요한 신이었던 천체는 식물이나 동물과 같은 피조물이라고 주장한다.”

24) 별이 뒤로 밀려난 것은 별을 신으로 숭배하는 자들을 조롱하기 위한 것도 어느 정도 있지 만(참고. 사 47:13), 2절부터 저자가 이 땅에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해와 달이 “땅에 빛을 비추는” 보다 직접적인 빛이기 때문이다.

의 피조물이다.25) 우리의 운명은 별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우주의 그 어떤 것이나 우연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주

권자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만드셨고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돌보실 것이다.

창세기 1장의 저자는 세 번째 요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우주의 왕

이 자신의 왕국을 선하게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구절은 여섯 번 나온다. 빛이 좋았고, 마른 땅이 좋았

고, 초목이 좋았고, 해와 달과 별의 빛이 좋았고, 물고기와 새가 좋았

고, 육지 동물이 좋았다. 모두 여섯 번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인

간을 창조하셨고, 일곱 번째로 31절은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

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말하신다.

하나님은 이 땅에 자신의 왕국을 심히 좋게 창조하셨다. 특히 6일

째와 7일째에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은 여섯째 날에 육상 동물

을 창조하신 후 잠시 멈춘 것처럼 보였다. 화자가 속도를 늦춘다. 이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스스로 숙고하신다. 또는 궁정에 자신의 의

지를 선언하신다.26) 26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고대 세계에서는 왕이

멀리 떨어진 지방에 자신의 형상으로 동상을 세웠다. 왕의 형상은

이 지역이 왕의 영토에 속한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 주 었다.27)

25) “큰 바다 짐승들”(21절)에 대해서는 Cassuto, Commentary on Genesis, I, 49-51을 보라. 참고. Ross, Creation and Blessing, 102, “그 신들은 해, 달, 별, 동물, 강, 기타 많은 것들과 동일시되었다. 요컨대, 이교에서 숭배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다. 따라 서 그들의 신은 이스라엘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없었다. 피조물이 창조주께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26) Stek, “What says the Scripture?” 233, “이 선언은 그 자체로나 사용된 언어로도 왕이 자 신의 임박한 행동을 궁정 관료에게 발표하는 어전 회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Hamilton, Genesis 1–17, 208–209는 이 입장에 반대하며 “우리”를 “하나님에 대한 언급”으로 받 아들인다. 참고. Cassuto, Commentary on Genesis, I, 55–56.

27) Von Rad, Genesis, 60.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시고 우리를 이 땅에 두

셨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영역이며 하

나님의 왕국이다. 인간을 하나님의 노예로 묘사한 바벨론 창조 서사

시 『에누마 엘리시』와 뚜렷하게 대조되는28) 창세기 1장은 우리가 하

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음을, 즉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

표자임을 선포한다.29)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을 대신

하여 이 왕국을 관리할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와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다. 하나님은 신중하게 숙고하신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

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6-27)

앞서 하나님이 물고기와 새에게 복을 주어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

신 것처럼, 이제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정복

하라고 복을 주신다.30) 28절을 보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

28) 위 각주 12와 13을 보라.

29) 수 세기에 걸쳐 신학자는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려고 노 력했다. 어떤 이는 영혼이라고 주장했고, 어떤 이는 인간의 이성, 자의식, 옳고 그름에 대한 인식, 하나님과의 교감 등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생각했다. “형상”과 “다스리다”라는 용어 가 가까이 놓인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를 이 땅에서 하나님의 대표자로 만 든다는 것을 암시한다. Walton, Genesis, 131은 형상을 “그것이 나타내는 것의 기능을 지 닌 신적(또는 왕적) 본질의 물리적 표현”으로 정의한다. 월턴은 계속해서 설명한다. “이는 그 형상을 지닌 자에게 [사랑, 신실함, 정의, 지혜 같은] 대표자의 속성을 반영하고 대표자 를 대신하여 행동할 능력을 부여한다.”

30) Stek, “What Says the Scripture?” 251, “인류에게 주어진 이 말씀은 오랫동안 그리고 여 전히 널리 알려진 것처럼 지시나 명령이 아니다. 이것은 복이다……하나님의 복으로 그들 은 땅을 채우고, 하나님의 복으로 그들은 주변의 피조물을 다스릴 것이다.”

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남자와 여자 모두 우주의

왕을 대신하여 이 땅의 통치자가 되는 높은 영예와 권위를 받았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피조물을 위해 먹을 것을 마련해 주신다. 고대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에서 신들이 인간을 만들어 자신들에게 음식

을 제공하게 한 것과 대조적으로,31) 여기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먹

을 것을 마련해 주신다. 다시 한번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가 선함을

느낀다. 그리고 31절이 이어진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

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우주의 왕은 모든 것을 심히 좋게 창

조하셨다고 판단하신다. 생명이 생기는 것을 방해하던 혼돈의 갈등

이 완전히 해결된 것이다. 원래의 혼돈은 질서가 제대로 잡힌 우주 가 되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정말 멋졌다! 정말 훌륭했다! 하

나님의 창조 세계는 우리가 누리고 책임감 있게 발전시켜야 할 하나

님의 놀라운 선물이다.

이야기의 결말은 하나님의 창조가 선함을 강조한다. 2장 1-3절은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고 한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 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32)

31) 『아트라하시스』, 행 190–197.

32) “일곱째 날에 대한 세 번의 언급이 각각 히브리어 단어 일곱 개로 이루어진 문장에서 나타 나는 것은 안식일의 특별한 성격에 주목하게 한다.” Wenham, Genesis 1–15, 7.

하나님의 창조는 완성되었고 하나님의 왕국도 지상에 잘 세워

졌다.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자신이 창조하신 것을 좋았다고, 심지어 심히 좋았다고 선

언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만드시는데, 이는

하나님이 이날을 일하시던 날과 구별하여 매우 특별한 자신의 날로

정하셨다는 뜻이다. 이 특별한 날은 하나님과 피조물의 교제를 강조

하고 상징한다.33)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들도 수고를 그

치고 일의 열매를 누릴 수 있다. 이 특별한 날은 우리에게도 좋은 날

이다. 예수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

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막 2:27 ) 라고 말씀하셨다. 안식일은 우

리에게 좋은 날이다. 우리는 휴식할 날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이 오

로지 일로만 이루어진다면 우리 모두 지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칠 일 중 하루를 쉴 수 있도록 풍성하게 공급해 주신다. 우리

는 일을 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우리

삶의 의미와 방향을 묵상하며, 우리 손으로 만든 작품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에서도 기쁨을 느끼고, 가족과 친구 관계를 누

릴 수 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하게 창조하셨다. 이것이 바로 창

세기 1장의 복음 메시지, 즉 기쁜 소식이다.

창세기 1장에는 이 땅을 자신의 선한 왕국으로 창조하시고 우주

의 왕이신 하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우주가

얼마나 광대한지 깨닫고 있다. 특히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은 우리

에게 별과 은하계의 놀라운 사진을 제공했다. 과학자들은 이제 각각

10억 개의 별을 가진 10억 개의 은하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끊임없이 팽창하는 우주의 한가운데는 지구라는 작은 행

33) De Graaf, Promise and Deliverance, 30.

성이 떠 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무서

운 그림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어둡고 무서운 우주에 홀로 남겨진 것 같다. 지구는 거대한 이웃 행성 사이를 떠다니는 연약한 작은 배에

불과하다. 파괴적인 소행성이 언제 지구를 다시 덮칠지 누가 알겠는 가? 우리는 우리의 통제를 훨씬 뛰어넘는 힘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고 우리 에게 확신시켜 준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

님은 자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혼돈에서 질서를 창조하셨다. 이 하나

님은 어떤 소행성보다, 어떤 별보다, 어떤 은하보다, 심지어 온 우주

보다 위대하시다. 그리고 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하게 창조하셨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돌보실 것이다. 어떤 위험이 우

리를 위협하더라도 우리는 그분 안에서 안전과 안식을 찾을 수

있다.34)

오 주님, 당신은 위대하시고,

당신의 작품은 놀라울 뿐이나이다.

당신의 경이로움을 노래하기에 어떤 말로도 충분하지 않

나이다.

당신의 뜻대로 당신을 위해

무(無)에서 만물을 있게 하시고,

당신의 능력으로 모든 피조물을 보존하시고,

당신의 섭리로 세상을 인도하시나이다.35)

34) 일부 이 연구에 기반한 나의 설교는 부록 3에서 볼 수 있다.

35) 정교회 물의 대축일에서 발췌.

우리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계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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