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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in English under the title Theoretical-Practical Theology, Volume 3: The Works of God and the Fall of Man by Reformation Heritage Books, Grand Rapids, MI, USA.
This Korean edition is translated and used by permission of Reformation Heritage Books through rMaeng2, Seoul, Republic of Korea.
This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5 by Revival and Reformation Press, Seoul, Republic of Korea.
이 한국어판의 저작권은 알맹2를 통하여 Reformation Heritage Books와 독점 계약한 부흥과 개혁사에 있습니다.
이론과 실천 신학 3
발행일 2025년 3월 25일
지은이 페트루스 판 마스트리흐트
옮긴이 윤석인
펴낸이 김은주
펴낸곳 부흥과개혁사
편집 권대영 디자인 박슬기 기획 이승영 마케팅 권성직
인쇄소 영진문원
판권 Ⓒ부흥과개혁사 2025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6길 9-20, 2층(서교동)
전화 Tel. 02) 332-7752 Fax. 02) 332-7742
홈페이지 http://rnrbook.com e-mail rnrbook@hanmail.net
ISBN 979-11-94295-51-8 (94230)
ISBN 978-89-6092-572-4 (94230)(세트)
등록 1998년 9월 15일 (제13-548호)
저작권법에 의하여 한국 내에서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는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추구합니다. 부흥과개혁사는 부흥과 개혁이 이 시대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조국 교회의 부흥과 개혁의 방향을 위한 이정표이자, 잠든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을 촉구하는 나팔 소리요, 깨어난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의 불길을 지속시키는 장작더미이며, 부흥과 개혁을
꿈꾸며 소망하는 교회들을 하나로 모아 주기 위한 깃발이고자 기독교 출판의 바다에 출항하였습니다.
편집자이자 번역자로서 일곱 책으로 구성한 페트루스 판 마스트리흐
트의 『이론과 실천 신학』 세 번째 책을 소개하게 되어 기쁘다. 마스트리
흐트는 첫 책에서 신학서론, 즉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위해 살
아가는 교리로서 신학의 본질, 신학의 기초인 성경, 신학의 분류인 믿
음( 1부 ) 과 사랑 또는 준행( 2부 및 3부 ) 을 다루었다. 두 번째 책에서는 구
원하는 믿음에 대한 장으로 믿음을 다루기 시작하고, 그다음으로 믿음
의 주요 대상인 하나님을 그분의 존재, 이름과 속성에 드러난 그분의 본
질, 세 위격으로 계시는 그분의 존재에 따라 고찰했다. 이 책에서 마스 트리흐트는 6권 끝까지 계속되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고찰한다.
2권 서문에서 설명한 대로, 마스트리흐트는 각 장에서 석의, 교리, 변 증, 실천이라는 사중 구조를 따른다. 이 책의 자세한 개요는 목차 또는
1권 “이 저작 전체의 방법론적인 배열” 중에 214-215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주제는 하나님의 내적 활동, 즉 하나님의 작정에서 시작 하여 하나님의 외적 활동, 즉 창조와 섭리 일반에 이어 구체적으로 죄와 관련된 하나님의 사역으로 진행한다. 책의 구분 기준은 우리가 독자적 으로 정했지만, 원래 마스트리흐트가 구분한 권 구분은 그대로 유지 했다. 그래서 이번에 내는 책, 『이론과 실천 신학 3』에는 마스트리흐트
의 1부 3권 하나님의 사역( De operationibus Dei, 1.3.1-12 ) 과 4권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배역( De hominis apostasia a Deo, 1.4.1-4 ) 을 실었다.
이 책에 담긴 마스트리흐트의 가르침 중에 소개할 가치가 있는 것으
로 타락과 예정의 관계에 대한 중재적 입장, 코페르니쿠스주의에 대한
거부, 귀신과 마법의 실재에 대한 옹호, 셋째 하늘에 대한 교리의 네 가
지 요점이 있다. 각 논점을 차례로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타락과 예정의 관계에 대한 중재적 입장
마스트리흐트가 『이론과 실천 신학』을 저술할 무렵에는 타락과 예정
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 거의 한 세기 동안 이어졌다.1 ) 칼빈 이후 개혁
파 내부에서는 하나님이 자기의 영원한 작정으로, 또는 우리가 관조하
는 이 작정의 논리에 따라, 죄로 타락한( ‘랍수스’ ) 인간을 택했는지 아니
면 타락하지 않은 인간을 택했는지에 대한 곤란한 질문이 생겨났다. 타
락을 허용하는 작정은 논리적으로 개인을 구원으로 택하는 것에 앞서
는가 ( “타락 후 예정론” ) 아니면 그 후인가 ( “타락 전 예정론” ) ? 테오도르 베
자( 1519-1605 ) 는 타락 전 예정론의 입장( 아직 타락하지 않은 상태, 즉 “타락 전”
의 개인을 택함 ) 을 지지하는 것으로 유명해졌으며, 자카리아스 우르시누
스( 1534-1583 ) 는 타락 후 예정론( 타락한 것으로 여겨지는 인간을 택함, 즉 “타락 이
후 또는 타락보다 더 나중에” ) 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마스트리흐트가 속한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교리적 표준문서인 벨기
에 신앙고백서( 1561 ) 는 16조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우리는 아담의
모든 후손이 이렇게 멸망과 파멸에 빠졌으며……하나님은……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택하신 모든 자를 이 멸망에서 구원하고 보전하
1 ) 일반 주제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Klaas Dijk, De Strijd over Infra- en Supralapsarisme in de Gereformeerde Kerken van Nederland (Kampen: J. H. Kok, 1912); Joel R. Beeke, Debated Issues in Sovereign Predestination: Early Lutheran Predestination, Calvinian Reprobation, and Variations in Genevan Lapsarianism (Go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2017); Campegius Vitringa, DoctrinaeChristianaeReligionis…ParsII (Leiden, 1762), 40–45; Bernard de Moor, CommentariusPerpetuus…ParsSecunda … (Leiden, 1763), 63–72; William Muenscher, Elements of Dogmatic History, trans. James Murdock from 2nd German ed. (New Haven, Conn.: A. H. Maltby, 1830), 180–181.
시며……다른 자들은 그들이 연루된 타락과 멸망에 그대로 두신다고
믿는다.”2 )
이런 확언은 벨기에 신앙고백서만 독특한 것이 아니다. 종교개혁 이
후 시대의 수많은 개혁파 신앙고백서는 타락 후 예정론을 분명히 긍정
한다.3 ) 이중 어느 신앙고백서도 타락 전 예정론을 명시적으로 긍정하
지 않지만, 대부분의 개혁파 정통 신앙고백서와 가장 널리 받아들여진
신앙고백서에서는 명시적으로 타락 전 예정론을 거부하지도 배제하지
도 않고 여타 방식으로 타락과 예정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결정하려 시
도하지도 않는다.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는 두 견해의 측면이 모두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도르트 총회( 1618-1619년 ) 당시 항변파( 야코부스 아르미니
우스의 신학을 추종한 자들 ) 의 격렬한 반대 속에서도 개혁파 대의원 대부분 타락 후 예정론자였다. 도르트 신조는 타락 후 예정론의 성격을 띠고 있 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조가 타락
일치한다고 타락 전 예정
론자가 주장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4 ) 이후 수십 년간 네덜란드
2 ) Reformed Confessions of the 16th and 17th Centuries in English Translation, ed. James T. Dennison Jr., vol. 2, 1552–1566 (Grand Rapids: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0), 433–434.
3 ) B. B. 워필드는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제네바 신조(1552), 헝가리 신앙고백서(1557), 제네바 영국 망명자들의 신앙고 백서(1558), 프랑스(1559) 및 벨기에(1561) 신앙고백서, 도르트 신조 및 신앙고백 서(1618)와 스위스 신앙고백서(1675), 라이프치히 회담(1631)에서 채택된 조항과 함 께……여기에는 아마 다음과 같은 문서도 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 1537년의 제네바 신 앙고백서, 칼빈이 제네바 학생을 위해 작성한 신조(1559), 파리 교회(1557)와 프랑스 교회(1562), 지기스문트 신앙고백서(1614)와 가시 선언(1645), 그리고 확신은 덜하지 만 아마 2차 스위스 신앙고백서(1562)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1563)은 타락 후 예 정론을 분명히 시사하지는 않더라도 표현되지는 않으나 어느 정도는 근본적인 타락 후 예정론의 관념에서 말하는 신앙고백서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어조와 태도의 문제여 서 주장하기에 너무 미묘한 것은 사실이다.
“Predestination in the Reformed Confessions,” PresbyterianandReformedReview 12, no. 46 (Jan. 1901): 126–127.
4 ) 도르트 신조가 타락 후 예정론임을 증명하기 위해 특별히 투레티누스가 사용한 논증을
자들은 양측에 줄을 섰다.5 ) 네덜란드뿐 아니라 개혁교회 전체에서 타
락 전 예정론은 고작 소수의 저명한 인사가 대표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 확하지만 이들은 많았고 활발했다.6 ) 특히 마스트리흐트의 스승이자 마
네 번째 주제, 질문 9(I, VI, VII)에서 참고하라. Francis Turretin,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ed. James Dennison Jr., trans. George Musgrave Giger (Phillipsburg, N.J.: Presbyterian & Reformed, 1992, 『변증신학 강요 1』,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7), 1:342. 타락 전 예정론자는 하나님의 무시간적 의도에 있는 작정의 순서에 대해 명시적으로 말하
기보다 약간의 접합을 통해 이 언어를 구속의 역사적 실행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윌리엄 커닝엄은 설명한다. “총회는……논쟁의 요점에 대해 공식적이거 나 명시적인 견해 제시하기를 삼가는 듯 보이지만, 신조의 일반적 범위와 내용에서는 확실 히 타락 후 예정론의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도르트 총회가 타락 전 예정론의 견해를 정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이 문제는 매우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한쪽에서는 고 마루스와 푸치우스가, 다른 한쪽에서는 고마루스의 뒤를 이어 흐로닝언 신학 교수로 부임 한 마레시우스 또는 데스 마레츠가 오랫동안 논쟁을 이어 갔다.” The Reformers and the Theology of the Reformation (Edinburgh: T&T Clark, 1862), 368. 게르할더스 보스는 도 르트 신조가 “타락 후 예정론의 견해를 유지했으나 타락 전 예정론의 견해를 정죄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라고 말한다. Reformed Dogmatics, trans. Richard B. Gaffin (Bellingham, Wash.: Lexham Press, 2014), 148–155. 다음도 보라. J. V. Fesko, Diversity within the Reformed Tradition: Supra- and Infralapsarianism in Calvin, Dort, and Westminster (Greenville, S.C.: Reformed Academic Press, 2001); J. V. Fesko, “Lapsarian Diversity at the Synod of Dort,” Drawn into Controversie: Reformed Theological Diversity and Debates within SeventeenthCentury British Puritanism, ed. Michael A. G. Haykin and Mark Jones (Göttingen: Vandenhoeck & Ru precht, 2011), 99–123. 5 ) 마스트리흐트 이전에 네덜란드인이거나 네덜란드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낸 타락 후 예정 론자로서 일반적으로 나열된 인물은 유니우스(1602년 사망), 레이던 개요(1625)의 저자 들, 뤼베르튀스(1625년 사망), 발라우스(1639년 사망), 티시위스(1640년 사망), 폴리안 더르(1646년 사망), 대슈판하임(1649 년 사망), 리베(1651년 사망), 코케이우스(1669년 사망)가 있다. 마스트리흐트 이후 타락 후 예정론자로는 빌헬뮈스 아 브라켈(1711년 사 망), 피트링아(1723년 사망), 아 마르크(1731년 사망), 헬렌브룩(1731년 사망), 더 모 어(1780년 사망), 로테르담(1781년 사망), 페네마(1787년 사망)가 있다. 마스트리흐트 이전에 네덜란드인이거나 네덜란드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낸 타락 전 예정론자로서 일반 적으로 나열된 인물들은 트렐카티우스 2세(1607년 사망), 에임즈(1633년 사망), 보헤르 만(1637년 사망), 고마루스(1641년 사망), 호미위스(1642년 사망), 마코비위스(1644년 사 망), 트리흘란트(1654년 사망), 호른베이크(1666년 사망), 에세니우스(1677년 사망), 하 이다뉘스(1678년 사망), 뷔르만(1679년 사망), 푸치우스(1676년 사망), 왐프리의 존 브라 운(1679년 사망)이 있다. 마스트리흐트 이후 타락 전 예정론자로는 비치우스(1708년 사망), 휘르틀러르(1711년 사망), 홀티우스(1773년 사망), 콤리(1774년 사망), 브라 허(1776년 사망), A. 카이퍼(1920년 사망), 케르스턴(1948년 사망), G. 보스(1949년 사 망)가 있다.
6 ) Cunningham, Reformers, 363; Heinrich Heppe, Reformed Dogmatics, ed. Ernst Bizer,
스트리흐트의 위트레흐트 신학교 전임자였던 저명한 교수 히스베르투
스 푸치우스( 1589-1676 ) 는 타락 전 예정론자였다.
개혁파 정통은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하나의 영원한 작정이 ( 하나님처
럼 ) 가장 단순하고 복잡하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이 작정이 피조물로 종
결하는 것으로 구별된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논리적 순서로 구성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7 ) 타락 전 예정
론자와 마스트리흐트의 논리 순서는 도르트 신조로 결정되었다. “의도
에서 처음인 것은 실행에서 마지막이다.” 그리고 반대로 “실행에서 마지
막인 것은 의도에서 처음이다.”8 ) 따라서 인간의 구원과 영벌에 대한 작 정의 고전적인 타락 전 예정론의 순서는 간단히 말해 다음과 같다.
1. 개개인에 대한 택함과 유기
2. 이런 개개인의 창조
3. 이런 개개인이 죄와 비참함으로 타락함
4.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성취된 구속
5. 그리스도가 이룬 구속의 은택을 택함 받은 자에게 적용
프란키스쿠스 투레티누스( 1623-1687 ) 는 1679년 라틴어로 처음 출간된
자신의 『변증신학 강요』 1권( 『이론과 실천 신학』 초판은 1682년에 출간 ) 에서 철
trans. G. T. Thomson (1950; repr., Eugene, Ore.: Wipf & Stock, 2007), 162. 7 ) 1.3.1 XXVI. 존 데버넌트는 작정이 이익에 따라 정해질 수 없다고 생각한 인물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타락 전 예정론 교리와 타락 후 예정론 교리를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 으나……이런 고통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원한 내재적 작정에서 우선순위와 차순위는 인간의 나약한 이성의 상상에 불과하며……결국 이 논쟁에서 거의 또 는 전혀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아퀴나스는 예정이 인간의 타락과 비참한 상태 이전에 고 려되든 이후에 고려되든 그것은 순간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Summa] Part. 1, qu. 23, art. 1).” Animadversions Written by the Right Reverend Father in God, John Lord Bishop of Salisbury, upon the Treatise intitled, Gods love to Mankinde (London: Iohn Partridge, 1641), 160–161. 8 ) 1.3.2 XXI.
저한 타락 후 예정론을 주장했다.9 ) 투레티누스는 인간의 창조를 인간
의 택함과 유기에 종속시키는 것은 “본성과 은혜의 역사를 혼란스럽게 한다”라고 주장했다.10 ) 그보다 투레티누스는 창조의 질서와 구원의 질
서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이것이 자유롭게 택하는 하
나님의 작정에 더 부합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의 유명
한 신조는 창조와 구속의 두 질서 안에서 하위 작정에만 적용되며 두
질서 사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마스트리흐트가 이런 입장에 대응하거
나 이런 입장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 주지는 않지만, 투레티누스도 마스
트리흐트의 견해를 알지 못했다. 고전적인 타락 후 예정론 입장은 인간
과 관련해 작정의 순서를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1. 개개인의 창조
2. 모든 피조된 개개인의 타락
3. 개개인에 대한 택함과 유기
4.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성취된 구속
5. 그리스도가 이룬 구속의 은택이 택함을 받은 자에게 적용
두 견해 모두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진리를 사
랑하는 태도에서 하나님이 예정 가운데 우리와 함께하시는 방식을 더 깊고 더 정확하게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스트리흐트는 신
비의 깊이를 더 심오하고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추가적인 구별을 시
도한다. 이 과정에서 마스트리흐트는 작정의 순서와 관련해 중재적 태
도를 보인다.11 )
마스트리흐트는 한편으로 택함과 유기 모두 논리적으로는 인간이 죄
9 ) Turretin, Institutes, 1:341–350; Nicholas A. Cumming, Francis Turretin (1623–87) and the Reformed Tradition (Leiden: Brill, 2020), 133.
10 ) Turretin, Institutes, 1:342.
11 ) 동의. Heppe, ReformedDogmatics, 162.
로 타락했음을 전제한다고 단언한다. 마스트리흐트는 이것을 인정함으
로써 타락 후 예정론자에게 거의 모든 전권을 넘겨주는 것처럼 보이는
데, 이런 식으로 관련 성경 구절 대부분에 대한 타락 후 예정론의 해석을
고수한다. 다른 한편으로, 마스트리흐트가 제시하는 처음 두 가지 “하나
님의 행동”은 타락 전 예정론의 성격을 띤다. 또한 마스트리흐트가 유기
를 예정 아래 분류하는 견해를 단호하게 옹호한다는 점도 중요한데, 타
락 후 예정론자를 보면 이렇게 하기를 꺼렸던 경우가 종종 있었다.12 )
마스트리흐트의 중재적 입장을 허용하고 구별하는 주요 요체는 (1)
예정과 (2) 택함과 유기를 구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항상 그렇게 명확히 구별된 것은 아니다. 마스트리흐트에 게는 “예정”이 천사와 인간의 영원한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의
미하며, 택함과 유기는 그보다 더 구체적인 부분일 뿐이다. 따라서 마스
트리흐트의 순서에서 하나님의 처음 두 행동은 일반적으로 예정과 관
련 있으며, 마지막 두 행동에만 택함과 유기가 들어간다. 인간과 관련된
작정에서 마스트리흐트의 순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창조될 수 있는 일부 불특정 사람들에게는 긍휼을 베풀어 그분 의 영광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형벌을 내려 그분의 의를 나타내 기 위한 것이다
2. 개개인은 창조되어 죄에 빠질 것이다
3. 이렇게 타락한 개개인의 택함과 유기
4. 택함을 받은 자와 유기된 자의 운명을 이루거나 완성하기 위한
12 ) 1.3.2 XII. 타락 후 예정론자는 유기를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작정된 하나님의 일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속한 것으로 완전히 긍정하지만, “예정”이라는 용어가 사람을 심판으로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정적이고 선택적인 사랑과 구원에만 적용된다 는 점을 종종 성경의 언어와 함께 강조한다. Vos, Reformed Dogmatics, 148–155, 다음 을 인용. Trigland, Sr., Den Recht-ghematichden christen. Ofte vande ware moderatie ende verdraechsaemheyt, nd ed. (Amsterdam: Broer Janz, 1615), 33; Turretin, Institutes, 342.
45
수단을 마련하고 감독하는 행동
마스트리흐트가 말하는 하나님의 첫 행동은 단순히 인간의 창조를 통
해 하나님의 속성과 영광을 나타내기로 결정한 것도 아니고, 구체적이
고 창조될 개개인에게 긍휼을 베풀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고 형벌을
내려 그분의 의를 드러내기로 결정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첫 행동은
단지 창조될 수 있는 두 집단의 불특정 사람들에게 이런 것들을 나타내
기로 결정한 것뿐이다.13 ) 독자는 특정 개인과 무관한 이런 행동이 로마
서 9장 21-23절에 부합하는지를 두고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훗날 네덜
란드계 미국인 개혁파 신학자 게르할더스 보스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69. 마스트리흐트의 견해에 대해 어떤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가?
예정을 원래 특정 개인과 무관한 것으로 만들어서 예정이 지닌
실천적이고 위로가 되는 요소를 제거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항상
특정 개인과 관련된 표현을 제공한다. 성경은 택함의 첫 번째 행동
이 이미 개개인에 대한 사랑(즉, “미리 아심”)이라고 말한다.14 )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마스트리흐트의 나머지 설명에서 마스트리흐
트가 창조에 대한 타락 전 예정론의 언어를 사용하고 옹호하며, 타락을
허용하고 택함과 유기를 하나님이 자기의 긍휼과 의로운 진노를 영화
롭게 하고자 예정한 계획의 “수단”으로 여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15 ) 타락 후 예정론자는 종종 하나님이 사람들을 타락, 유기, 징벌 의 수단으로 창조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러나 마스트리흐트가 말하는 첫 번째 행동에는 특정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이들의 창조는
13 ) 타락 후 예정론이 말하는 창조의 목적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Turretin, Institutes, 1.346.
14 ) Vos, ReformedDogmatics, 1:148–155.
15 ) 1.3.2 IX-X.
논리적으로 이들의 택함이나 유기 이전에 존재하므로, 마스트리흐트는
일관되게 “유기의 최고 목표는 죄인에 대한 공의로운 징벌에서 하나님
의 보복하시는 공의를 나타내는 것이지 결코 피조물의 파멸이 목표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16 )
마스트리흐트는 자신이 “엄격한 타락 전 예정론자”와 “엄격한 타락
후 예정론자” 사이의 중도를 걷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스트리흐트 혼자
만 이렇게 한 것이 아닌 것은 마스트리흐트 자신도 “중도의 가장 정통
적인 신학자”에 속한다고 공언한 것에서 드러난다.17 ) 마스트리흐트가
언급하는 또 다른 진영은 “개혁파 보편주의자”로서, 특히 프랑스 아미
로주의자를 가리킨다.18 ) 마스트리흐트는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신학적
입장을 옹호하는 자들을 “펠라기우스주의화된 자들”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마스트리흐트가 중재적 타락 후 예정론자였는지 아니면 중재적 타락 전 예정론자였는지는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19 ) 마스트리흐트는 한 편으로 택함과 유기를 타락한 인류에게서 비롯한 것으로 이해하면서 타락 후 예정론의 기초를 채택하여 이 분야에서 타락 후 예정론자에게
16 ) 1.3.2 II. 1.3.4 VI에서 유기의 경우 택함에 비해 수단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마스트리흐 트가 추가한 탁월한 평가를 보라. 참조, “과거 타락 전 예정론은 적어도 하나님의 작정에 서 창조와 함께 인간의 타락을 허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의 영광이라는 최고 의 목적에 종속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여기서 타락을 허용하는 것은 수단으로 나타난다. 징벌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 유의하라.”
Vos, ReformedDogmatics, 1:148–155, section 65.
17 ) 1.3.2 XIII.
18 ) 마스트리흐트는 Schismata sub aetate sexta N.T., (6)의 1.8.3 XLIII에 나오는 자신의 은혜 언약의 역사에서 존 카메론을 “개혁파 보편주의”의 창시자로, 그의 제자 모이즈 아미로를 전파자로 분류하고 “프랑스의 테스타르, 달레 등 여러 사람을 열거했는데, 이들에게서 영 국의 존 굿윈, 리처드 백스터 등, 또한 독일의 콘라트와 요하네스 베르기우스, 루트비히 크 로키우스 외에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의 여러 사람에게도 전해졌다.” 참조, 1.2.17 XXXIII; 1.3.11 XI; 1.4.1 VI; 1.4.4 XXX, XXXV, XXXVI; 1.5.18 XXXIX. 19 ) 루이스 벌코프는 마스트리흐트를 타락 후 예정론자로 분류했고, 보스는 마스트리흐트 를 타락 전 예정론자로 분류했다.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pt. 1, Works of God, II, E, p. 118; Vos, ReformedDogmatics, 1:148–155, section 66.
가장 큰 실질적 지분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마스트리흐트가 굳
게 확신하는 중재적 확언은 대부분 타락 전 예정론에서 나온다. 마스트
리흐트도 처음에는 스승 푸치우스처럼 타락 전 예정론 입장에서 출발
하여 타락 후 예정론을 인정했는가? 아니면 네덜란드 주류인 타락 후
예정론으로 출발하여 벨기에 신앙고백서에 더 부합하는 것처럼 보
이다가 타락 전 예정론을 수용했는가? 이 문제에 대해 확실하게 결론을
내리기 전에 “중재적이고 가장 정통적인 신학자” 집단을 구성하는 사람
들 가운데 누가 있는지( 그리고 푸치우스가 이 무리에 속했는지 ) 에 대해 추가로
역사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20 ) 분명한 사실은 마스트리흐트가 타락과
예정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자신을 독창적이라고 여기지 않았다는 점
이다. 그보다 마스트리흐트는 이미 잘 닦인 길을 걷고 있었다.
마스트리흐트는 자기의 패러다임과 관련해, “이렇게 하면 서로 달라 보이는 견해를 가장 쉽게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이며, 한쪽이 통례적으로
반대파를 비난하는 어려움을 가장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21 ) 더욱이 “성경이 이 질서를 가르치고 있으며, 이는 경험
20 ) 마스트리흐트의 견해는 모두가 타락 전 예정론자로 인정하는 사무엘 러더퍼드의 견해와 비슷하지만 약간 다르다. 러더퍼드는 영원하고 구별할 수 있는 두 가지 유기 행동을 주장 했는데, 하나는 택함과 병행하여 선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락 후 예정론자가 말하 는 창조와 타락 이후다. 마스트리흐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둘 다 소극적인 성격이 있다.
그러나 주된 차이점은 러더퍼드가 첫 번째 유기의 행동을 특정 개인에게 속하는 것으로
주장했다면 마스트리흐트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택함과 유기에 대한 러더퍼드의 교
리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독특하게 타락 후 예정론적인 용어의 사용과 함께 온건한 타락 전 예정론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Guy Richard, “Samuel Rutherford’ s Supralapsarianism Revealed: A Key to the Lapsarian Position of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The Confessional Presbyterian 4 (2008): 163. 마스트리흐트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네덜란드 데카르트주의 신학 교수 요하네스 브라운(1628-1708)은 그 의 책 DoctrinafoederumsiveSystematheologiaedidacticaeetelencticae (Amsterdam: Abraham van Someren, 1691), I.ii.9.24에서 마스트리흐트와 매우 비슷하게 중재적 입
장을 명확히 했으나 분명히 타락 전 예정론에 가깝다. 이후 미국 장로회 교도이자 프린 스턴 신학교 초대 교수였던 아치볼드 알렉산더(1772-1851)도 마스트리흐트와 매우 비
슷하게 중재적 견해를 취했다. God, Creation, and Human Rebellion: Lecture Notes of Archibald Alexander from the Hand of Charles Hodge, ed. Travis Fentiman (Grand Rapids: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9), 75–76. 21 ) 1.3.2 XII.
으로 분명하게 확인된다”고 한다.22 ) 예정, 특히 유기에 대한 마스트리
흐트의 논의는 매우 심도 있고 탁월하다. 가장 박식하고 확신에 찬 독자
도 우리의 거룩하고 주권적이며 선하신 하나님의 신비와 성품에 훨씬
큰 경외심을 갖도록 도전할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주의에 대한 거부
고대 후기에 선호하던 태양계 모델은 프톨레마이오스 ( 170년 사망 ) 의
지구 중심설로서, 별이든 행성이든 모든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이론이었다.23 ) 1543년 종교개혁 2세대인 코페르니쿠스는 태양
을 태양계의 중심에 두는 태양 중심설을 주장하는 획기적인 연구를 발 표했다. 1588년 티호
22 ) 1.3.2 XXI. 23 ) 일반 주제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Hoon J. Lee, “Accommodation—Orthodox, Socinian and Contemporary,”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75, no. 2 (2013): 335–349; Hoon J. Lee, The Biblical Accommodation Debate in Germany: Interpretation and the Enlightenment (Cham, Switzerland: Palgrave Macmillan, 2017), especially ch. 2, “Accommodation in the Seventeenth-Century Dutch Republic,” 23–60; R. H. Vermij, The Calvinist Copernicans: The Reception of the New Astronomy in the Dutch Republic, 1575–1750 (Amsterdam: Koninklijke Nederlandse Akademie van Wetenschappen, 2002); R. Hooykaas, “The Reception of Copernicanism in England and the Netherlands,” in The Anglo-Dutch Contribution to the Civilization of Early Modern Society, ed. Charles Wilson, Reyer Hooykaas, A. Rupert Hall, and Jan Waszink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76), 33–44; Aza Goudriaan, “Creation, Mosaic Physics, Copernicanism, and Divine Accommodation,” in Reformed Orthodoxy and Philosophy, 1625–1750: Gisbertus Voetius, Petrus van Mastricht, and Anthonius Driessen (Leiden: Brill, 2006), 125–133; T. van Nouhuys, The Age of the Two-Faced Janus: The Comets of 1577 and 1618 and the Decline of the Aristotelian World View in the Netherlands (Leiden: Brill, 1998); E. Grant, In Defense of the Earth’s Centrality and Immobility: Scholastic Reaction to Copernicanism in the Seventeenth Century (Philadelphia: 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 1984); H. J. Howell, God’s Two Books: Copernican Cosmology and Biblical Interpretation in Early Modern Science (Notre Dame, Ind.: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2002); Robert S. Westman, The Copernican Question: Prognostication, Skepticism, and Celestial Order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1).
이라고 생각한 것을 결합하여 태양은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하고 행성
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지구 중심적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1615년에서 시작하여 1621년에 이르기까지 요하네스 케플러는 태양
중심 모델을 더 정확하게 개선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비슷한 시기에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갈릴레오는 오래된 프톨레마이오스
태양계를 추가로 무너뜨리는 천문학적 발견을 이루었다. 갈릴레오는 이
발견의 대가로 의혹을 샀고, 후에는 로마 종교 재판소에서 정죄당하게
되었다. 르네 데카르트는 1628년 네덜란드로 이주하여 여기서 자기의
주요 저작을 모두 집필했다. 데카르트는 한때 태양 중심 태양계를 제안
했고 미적분학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아이작 뉴턴은 마스트
리흐트의 『이론과 실천 신학』 초판과 2판 ( 1682년과 1698년 ) 사이인
1687년에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Principia ) 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은 새로 창안된 미적분학과 함께 경험적 증거에서 도출된 케플러의 태양
중심 행성 운동의 세 가지 법칙을 이론적으로 도출했다.
마스트리흐트는 이런 상승세 가운데 “개혁파는 티호 브라허의 천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태양 중심설을 부정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계
시가 분명히 태양 중심설을 부정하고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밝히
기 때문이다”라고 하며 태양 중심설에 크게 반대했다.24 ) 사실 지구는
“이 우주의 중심”이다( 전 1:4 ). 25 ) 마스트리흐트는 자신이 성경의 분명하
고 빈번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한 것에서 자기의 근거( 헬. ‘푸 스토’, “내가 설
곳” ) 를 찾은 것이 분명하지만( 마스트리흐트는 자기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 놀라울
정도로 많은 구절을 인용한다 ), 여기서는 당시의 문제 상황이 우리 시대와는
24 ) 1.3.6 XLIX. Herman Bavinck, Reformed Dogmatics (Grand Rapids: Baker, 2004, 『개 혁교의학』,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1), 2:483. 바빙크는 마스트리흐트와 그의 여러 동시
대 사람을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 세계관”을 옹호하는 것으로 부정확하게 묘 사했다. 『이론과 실천 신학』에서 마스트리흐트의 우주론에 대한 주요 관련 부분은 다음을
보라. 1.3.6 XIX, XXVII-IXXX, XLIV, XLVI, XLIX-L, LXVII. 25 ) 1.3.6 XIX. 이것은 태양 중심 모델에서 우주는 무한하며 중심이 없을 수 있다고 제안한 이
탈리아의 조르다노 브루노(1548-1600)의 견해와는 대조적이다.
근본적으로 달랐으므로 지구 중심적인 결론을 요구하는 이런 문제 없
이 마스트리흐트의 해석학에서 그리고 철학과 과학과 계시의 조화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음을 주장할 것이다.
마스트리흐트가 활동한 당시 물리적 증거에 대해서는 대체로 양측이
관점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마스트리흐트는 “우리 대적들
은 자기들의 견해를 옹호하여 성경으로부터 무언가를 주장하려 하지도
않고 심지어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을 확실하게 암시하는 자연으로부터
무언가를 주장하려 하지도 않는다”라고 결론 내렸다. 그보다 코페르니
쿠스와 데카르트의 추종자들은 “이 가설의 이점으로 이 세상의 현상을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가설이 옳다고 긍정 한다.” 마스트리흐트는 태양
대한 이런 주요 논거에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에 “신학을 함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행동은 성경 의 변함없는 증언을 견해나 실제로 철학적
하는 것이다”26 ) 라고 말할 수 있었다.
불과한 것으로 반대
철학적 추측과 대조적으로 그리고 과학 원리에 무지하거나 회의적이
었던 것과 달리, 마스트리흐트는 관찰, 경험, 조사 수단을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이 진리에 대한 자연의 증거로 충분하므로 매우 중요하게
여겼으며 심지어 이런 것에 대한 열정도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마스트 리흐트는 지구가 전혀 평평하지 않고 “정확히 둥글며” 이것이 순전히 “선원들의 증언”에 근거한다고 여겼다. 마스트리흐트는 1607년에 발행 된 개혁파 자료에서 지구의 둘레가 “5,400 독일식 마일” ( 약
40,000km ) 이라고 진술한다.27 ) 독일식 마일은 약 6.61 미국식 마일이다.
26 ) 1.3.6 XLIX.
27 ) 1.3.6 XLVI. 독일식 마일은 “17세기와 18세기 초에 네덜란드 항해사들이 주로 사용 한 해상 측정법으로 길이는 4해리와 같았다.” “German Mile,” Oxford Reference, accessed Feb. 18, 2021, https://www.oxfordreference.com/view/10.1093/oi/ authority.20110803095849560. “해리는 원래 자오선(경도의 남북선)을 따라 1분(60분의 1도)의 호가 지구 표면을 가로지르는 길이로 정의되었다.” “Mile,” Britannica, accessed Feb. 18, 2021, https://www.britannica.com/science/mile. 해리조차도 지역과 역사에 따라 다르게 정해져 왔으며 마스트리흐트의 출처가 사용한 정확한 측정값을 알기도 쉽지
마스트리흐트의 측정은 현재 추정되는 지구의 자오선 둘레와 약
0.011%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이 오차는 대부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독일식 마일의 지역적 또는 시간적 변형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28 )
마스트리흐트는 많은 면에서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인 지구관을 가지
고 있었다. “지구는 우주와 비교할 때 그 크기에 있어서는 작은 점에 지
나지 않지만, 그 자체로 절대적으로 고려한다면 가장 광대한 크기다.”
마스트리흐트는 지구가 정말 “공중에 매달려 있다( 욥 26:7; 38:4-6 ) ”라는 것을 명백한 사실로 받아들인다. 이 신비는 “많은 사람을 괴롭혀 왔지
만”, 마스트리흐트는 이 현상을 단순히 “신이 내린 기적”으로 치부하기
보다는 이 현상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세 가지 자연 원리를 제시한다.29 ) 한편 마스트리흐트는 유성, 폭풍, 화산, 간헐천이 자연적으
로 발생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30 ) 마스트리흐트는 또한 달이 조수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31 ) 마스트리흐트는 점성술을 거
부했으며, 성경의 증언뿐 아니라 자연 이성, 경험, 상식에도 상당 부분
의존해서 그렇게 했다.32 ) 이 모든 입장과 일관되게, 마스트리흐트가 태
양 중심설보다 지구 중심설을 확증했던 중요한 이유는 “현상과 경험
이……성경의 체계를 더 진실하고 견고하게 확증하며, 지금까지 기독교
인의 상식도 이에 동의해 왔기 때문”이었다.33 )
마스트리흐트의 성경 해석 방법은 여러 면에서 오늘날의 일반적인 해
않지만, 1929년 이후 해리는 국제적으로 1,852m로 정의되었다. 28 ) 이것은 NASA 고더드 우주 비행 센터의 데이터를 사용한 것으로서 다음에 따른다. Tim Sharp, “How Big Is Earth?,” accessed Feb. 18, 2021, https://www.space.com/17638how-big-is-earth.html. 오늘날 지구 둘레는 더 부푼 적도 부분을 기준으로 측정하는 경
우가 많지만, 17세기에는 더 평평한 극에서 측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둘레가 더 작 았다.
29 ) 1.3.6 XLVI.
30 ) 1.3.6 LVIII.
31 ) 1.3.6 XLVII.
32 ) 1.3.6 LXVIII.
33 ) 1.3.6 XIX.
석법보다 발전한 것이었다.34 ) 1.3.6 XLIV에서 마스트리흐트는 시편
104편 5-6절에서 주가 땅의 기초를 놓은 것과 관련된 표현이 시적이고
비유적임을 “마치 기초 위에 놓인 것처럼” 확인한다. 마스트리흐트는
성경 해석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 이전 저작에서
“비유 표현이 거짓은 아니지만……이런 문제에서 단어는 사안의 진실
에서 옮겨져 똑같이 진실한 사안을 나타낸다”라고 설명했다.35 ) 이 밖에
도 “성경은 보통 사람의 공식을 사용할 수 있다.”36 ) 마스트리흐트는 진 술한다. “성령께서 진리를 표현하기 위해 때때로 대중적인 언어의 거친
말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는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진실되게 표현하려는 가운데 해당 문제가 상응한 수준에 미치지 못 한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37 ) 이 구절에서 마스트리흐트는 성경
이 때에 따라 조정의 원리를 통해 진리를 전달한다는 것을 분명히 긍정 하면서도, 이것을 자기 반대파가 명시적으로 옹호한 신조의 거짓된 의
전달하는
34 ) 마스트리흐트의 다음 저작을 보라. Vindiciæ Veritatis et authoritatis Sacræ Scripturæ in rebus philosophicis adversus dissertationes D. Christophori Wittichii [크리스토프 비티 히의 박사 학위 논문에 반대하여 철학적인 사실에 대해 신성한 성경의 진리와 공의를 정 당화함] (Utrecht: Johannis a Waesberg, 1655). 1장과 5장은 다음 저작의 4장에서 영어 로 번역되어 있다. J. A. Schlebusch, “Cartesianism and Reformed Scholastic Theology: A Comparative Study of the Controversy” (master’s thesis, University of the Free State, South Africa, 2013).
35 ) Schlebusch, “Cartesianism and Reformed Scholastic Theology,” 75.
36 ) Schlebusch, “Cartesianism and Reformed Scholastic Theology,” 72.
37 ) Schlebusch, “Cartesianism and Reformed Scholastic Theology,” 76.
38 ) Schlebusch, “Cartesianism and Reformed Scholastic Theology,” 77. 마스트리흐트의 대적이었던 크리스토프 비티히도 파우스투스 소키누스와 데카르트의 뒤를 이어 이 원칙 을 따랐다. Lee, Biblical Accommodation, 23. 개혁파 스콜라주의에서 이해되는 “조정” 을 정의하면서, 리처드 멀러는 “조정은 특별히 율법과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 인간의 말 과 개념을 사용할 때 발생하지만, 진리의 상실이나 성경 권위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은 전 혀 아니다. 조정이나 겸비(謙卑)는 계시의 방식이나 양식, 즉 무한한 하나님의 지혜를 유 한한 형태로 선물하는 것을 의미하며, 계시의 질이나 계시된 내용을 의미하지 않는다.” Dictionary of Greek and Latin Theological Terms Drawn Principally from Protestant ScholasticTheology (Grand Rapids: Baker, 1985), 19.
철학과 성경의 일관성과 관련된 마스트리흐트의 더 큰 관심사에 종속
되어 있었다.39 ) 구체적으로 말해, 마스트리흐트는 자연철학과 성경 계
시의 조화를 목표로 하는 “모세의 물리학”이라는 오랜 교회사적 전통
안에서 작업했다.40 ) 모세의 물리학은 당대의 철학과 관련하여 다양한
문제를 포함했으므로 자연철학은 성경을 뒷받침하는 한에서 잠정적으
로 유지되었고, 개혁파는 구체적 사례의 명확성과 장점에 따라 다양한
정도와 범위로 철학을 통합하는 데( 또는 그렇게 하지 않는 데 ) 능숙했다.41 )
마스트리흐트는 경험적 지식에 큰 비중을 두었고 확고한 일반 해석학
방법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종속되고 도움이 되는 한에
서 특정 철학을 느슨하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맥락에서 고려
된 태양 중심설의 뚜렷한 문제는 마스트리흐트의 체계에 본질적으로
결속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장점에 따라 서거나 무너져야 하는 것으
로 보였다. 마스트리흐트에게 문제는 천문학 가설( 코페르니쿠스주의 ) 을 성
경에서도 가르치지 않고 자연철학으로도 증명할 수 없을 때, 그리고 그
것에 대한 유일하게 중요한 주장이 모든 사람의 실제 경험과 상반되는
듯하면서 어느 정도의 이론적인 현상학적 편의성을 제공한다는 것일
때 어떻게 평가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오늘날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 천문학자들은 1727년과 1838년에 태
양 중심설에 유리한 두 가지 명백한 증거 또는 경험적 증거를 발견했다.
1851년 처음으로 일반인도 푸코의 진자 운동을 통해 지구 자전에 대한
39 ) Mastricht, Vindiciae veritatis.
40 ) 슬레뷔스는 이렇게 말한다. “판 마스트리흐트는 신학을 과학의 여왕으로 여기고, 그 주 요 출처인 성경이 다른 모든 과학적 연구 자료와 결론에 대해 주된 권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분명하다.” “Cartesianism and Reformed Scholastic Theology,” 144. 41 ) 하우드리안은 설명한다. “세 가지 다른 주제……창조의 6일, 실체적 형태, 코페르니쿠스 주의가 논의될 것이다. 첫 번째 주제는 신학자와 철학자들이 성경의 구체적인 본문 자료 를 가지고 어떻게 작업했는지를 보여 줄 수 있다. 두 번째 주제는 그 자체로 성경이 아닌 철학의 기원을 가진 철학 개념이 성경 해석에 어떻게 사용되었으며 현대의 입자설에 직면 하여 어떻게 옹호, 수정, 포기되었는지를 보여 줄 수 있다. 세 번째 문제인 코페르니쿠스 주의 역시 물리학(또는 천문학)과 성경이 만나는 영역에서 기본적인 태도를 보여 준다.” ReformedOrthodoxyandPhilosophy, 104–105.
가시적인 증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
과 관련해 마스트리흐트가 활동한 당시 선원들의 증언과 마찬가지로
경험을 통해 직접적이고 반복적으로 조사하고 시험하고 확인할 수
있다. “성경과 이성에도 하나의 같은 진리의 빛이 있다”라는 마스트리
흐트의 말대로42 ) 우리는 하나님이 때에 따라 듣는 사람들의 지리적 관
점에 따라 그들의 유익을 위해 성경에서 진리를 말씀하신다고 결론 내
릴 수 있다.43 )
마스트리흐트는 성경이 자연의 빛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어떻게 한정
하는지 그리고 자연의 빛이 성경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어떻게 형성하
는지에 대해 진실하고 일관된 견해를 발전시키고 다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 노력할 때 우리는 “마음에 놀라움과 경이로
움을 품을 수 있다. 이 목적을 위해 하나님은 욥에게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
냐’( 욥 38:4-6 ) 라고 묻는다.”44 )
귀신과 마법의 실재에 대한 방어 『이론과 실천 신학』이 출판된 17세기 마지막 3분기에는 귀신과 소위
42 ) Schlebusch, “Cartesianism and Reformed Scholastic Theology,” 70. 43 ) 이훈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조정은 특정 구절을 해석할 때 석의의 원리로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성경의 영 감, 권위, 무오성을 유지하는 데도 공헌했다. 예컨대 창세기는 해와 달을 한꺼번에 “두 큰 광명체”로 묘사하고 있다. 그렇지만 칼빈은 달의 표면이 반사 요소로 구성되어 있 어서 그 자체로 빛을 발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하지만 칼빈은 모세가 달에 대한 설명에서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보다 모세는 조정된 방식으로 글 을 썼다. 모세는 과학적 진리를 인간의 시각적 지각과 현상학적 언어 사용에 맞게 조 정했고, 이것은 성경이 모든 문제에 대해 완전한 무오성을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Biblical Accommodation, 4. 44 ) 1.3.6 LI.
“흑마술”의 실재에 대한 믿음이 쇠퇴하는 현상이 나타났다.45 ) 그런 의
심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마스트리흐트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븐 시
나, 이븐 루시드와 그들의 추종자들은 어떤 귀신도 인정하지 않고, 귀신
의 영향을 우화나 자연적 원인으로 축소했다”라고 지적한다.46 ) 적어도
16세기 후반부터 이런 것들, 특히 주술과 관련해 개신교 신자 사이에서
( 소수이기는 하지만 ) 상당한 회의론이 있었는데, 이런 마법과 그에 따른 민
사 소송에 대한 대중의 이해는 주로 미신, 로마 가톨릭, 가난한 자에 대 한 압제에 기인한다고 생각되었다.47 ) 이런 회의론은 상당 부분 정당화
되었다. 1450년에서 1685년까지 여전히 로마 가톨릭 신앙을 유지하던
45 ) 일반 주제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K. R. Hagenbach, A Text-Book of the History of Doctrines, ed. Henry B. Smith (New York: Sheldon, 1867), 2:341–343; Scott Taylor, “The Gadarene Demoniac in the English Enlightenment,” in A Linking of Heaven and Earth: Studies in Religious and Cultural History in Honor of Carlos M. N. Eire, ed. E. Michelson, S. Taylor, and M. Venables (London: Routledge, 2012), 49–66; 이 논문 끝에 나오는 일차 참고문헌은 특별히 18세기 상황에 유용하다. Owen Davies, The Oxford Illustrated History of Witchcraft and Magic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7); Johannes Dillinger, The Routledge History of Witchcraft (London: Routledge, 2020); Witchcraft and Magic in Europe, ed. B. Ankarloo and S. Clark, 6 vols.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1999–2002); Encyclopedia of Witchcraft: The Western Tradition, ed. Richard Golden, 4 vols. (Santa Barbara, Calif.: ABC-Clio, 2006); William E. H. Lecky, “The Declining Sense of the Miraculous: On Magic and Witchcraft,” in History of the Rise and Influence of the Spirit of Rationalism in Europe, vol. 1 (New York: D. Appleton 1919); Witchcraft in the Netherlands from the Fourteenth to the Twentieth Centuries, ed. M. Gijswijt-Hofstra and W. Frijhoff (Rotterdam: Universitaire Pers Rotterdam, 1991); Brian Levack, The Oxford Handbook of Witchcraft in Early Modern Europe and Colonial America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3); Claudia Swan, Art, Science, and Witchcraft in Early Modern Holland: Jacques de Gheyn II (1565–1629)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5); 네덜란드의 상황을 다루면서 두 단원을 할애한 Brian Levack, Witchcraft in Continental Europe, vol. 2 (London: Routledge, 2013); Renilde Vervoort, Bruegel’ s Witches: Witchcraft Images in the Low Countries between 1450 and 1700 (Bruges: Van de Wiele, 2015), 특히 다음 단원 Dries Vanysacker, “Prosecutions for Sorcery and Witchcraft in Europe,” 11–17.
46 ) 1.3.8 XVIII.
47 ) Philip C. Almond, England’s First Demonologist: Reginald Scott and the Discoverie of Witchcraft (New York: I. B. Tauris, 2011).
네덜란드 남부의 정부 당국은 마녀로 추정된 약 1,150-1,250명을 처형
했으나, 개혁파에 속한 북부 지방에서는 1608년을 마지막으로 160200명을 처형하는 데 그쳤다.48 ) 이 지방에서 다른 유럽 국가보다 훨씬
일찍부터 기소 건수가 급감한 이유는 네덜란드 국가 위정자가 한창 번
영하던 시기에 “에라스무스 회의론”을 표명하고 주술과 마술에 대한 고
발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49 )
지적인 측면과 관련해, 르네 데카르트( 1596-1650 ) 는 앞서 언급한 대로 1628년 네덜란드 북부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자기의 주요 저작을 모두 저술했다. 물질과 정신의 이원성( 후자가 전자에 작용하지 않는다는 주장 ) 을 강
조하는 데카르트주의는 1640년에 이르러 개혁파 정통 신학을 압박하기 시작했다.50 ) 데카르트의 뒤를 이어 스피노자는 1660년에 발표한 저서
에서 초자연적인 것과 마귀 및 영의 존재에 대해 더 강력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마스트리흐트가 나중에 글을 쓰게 될 주요 대적은 이 논쟁에서
가장 큰 폭풍을 일으킨 네덜란드 개혁파 목사 발타사르 베커였다.51 )
베커는 목회에서 물러나는 빌미가 되는 그의 주요 저작 『마법에 걸린
세계』( 1691/1695 ) 에서 귀신이 실제로 존재하더라도 사람의 영혼이나 신
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베커는 성경을 다루
48 ) Vanysacker, “Prosecutions for Sorcery,” 13-14.
49 ) Vanysacker, “Prosecutions for Sorcery,” 14.
50 ) Daniel Ragusa, “Petrus van Mastricht’s Ad Verum Clariss. D. Balthasaren Beckerum: Beginning with Scripture, Ending with Worship,” in Petrus van Mastricht (1630–1706): Text, Context, and Interpretation, ed. Adriaan Neele (Go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2020), 143–158.
51 ) 주제, 논쟁, 베커의 영향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Ragusa, “Beginning with Scripture”; Jonathan I. Israel, Radical Enlightenment: Philosophy and the Making of Modernity, 1650–1750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3), 375–405. 데카르트가 베커의 견 해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W. van Bunge, “Balthasar Bekker’s Cartesian Hermeneutics and the Challenge of Spinozism,” British Journal for the History of Philosophy 1, no. 1 (2008): 55–79. 베커의 영향에 대한 18세기 설명은 다음을 보라. J. L. von Mosheim,InstitutesofEcclesiasticalHistory, 5:432–438, 17th cent. sect. 2, pt. 2, ch. 1, XXXV–XXXVIII. 베커의 저작과 기타 관련 문헌의 다양한 판본을 인용한 내용은 이 책 1.3.7 XXVII의 각주를 보라.
는 범위에서 성경 저자가 조정의 원칙에 따라 기사를 썼다고 주장했다.
베커는 이것을 태양 중심설에서 추론했다. “별에 대한 지식은 성경 저
자들이 대중의 양식과 능력에 적응했으며 하늘, 땅, 해, 달, 별에 대해
그 자체의 본성에 따라 그리고 그 자체에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사람들
의 일반적 관념에 따라 말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게 보여 주는 몇 가
지를 분명히 밝혀 준다.”52 )
지리적 관점이나 시적 관점과 관련해서는 자연스럽게 조정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귀신에 대해 또는 그러한 귀신에게 예
수가 말했다거나 귀신 들린 것으로 알려진 사람에게는 작용하지 않는
귀신에게 또는 귀신에 대해 예수가 말했다는 것으로 미루어 예수는 사
람들과 제자들의 상식, 경험, 선의와 반대되는 명백하게 비이성적인 발
언 그리고/또는 거짓에 관여한 것이다. 하지만 마스트리흐트가 보기에 “성경이 철학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철학이 성경에 종속되어 있었다.
이 출발점만이 영과 육, 하늘과 땅을 포함한 풍부한 다양성을 지닌 창조
의 전체적 본질을 설명할 수 있으며,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이것을 설명
할 수도 없고 실제적이고 역동적인 관계로 이끌 수도 없다.”53 )
마스트리흐트는 온전한 성경의 가르침과 “일반적인 견해”를 지키고
자 노력하면서 지나친 것을 경계하도록 조심했다. “개혁파는 곳곳에서,
특히 교황주의자 가운데서 아무런 근거 없이 전해지는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미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문제 삼지 않지만, 그럼에도 악한 천
사의 도움을 받아 자기 예언을 제시하고 악한 일을 벌이는 마술사는 존
재한다고 생각한다.”54 )
52 ) Balthasar Bekker, The world bewitch’d, or, An examination of the common opinions concerning spirits: their nature, power, administration and operations … ([London]: Printed for R. Baldwin in Warwick-Lane, 1695), 257.
53 ) Daniel Ragusa, “Catching Up on Petrus van Mastricht,” Reformed Forum, July 10, 2018, accessed Feb. 16, 2021, https://reformedforum.org/catching-up-on-petrus-vanmastricht/.
54 ) 1.3.8 XXII.
마스트리흐트는 퍼킨스의 말을 인용하여 정신병에 걸린 많은 사람이
마귀와 상상으로 계약을 맺은 것으로 생각했다.55 ) 마스트리흐트는 진
정한 귀신 들림이 나타나는 경우 교황주의자가 행하는 퇴마 의식이 아
닌 에베소서 6장의 “기도, 싸움, [그리고] 사도의 전신 갑주”로 충분
하다고 이해했다.56 )
1682년과 1698년에 각각 초판과 2판이 출간된 『이론과 실천 신학』은
뉴잉글랜드에서 악명 높은 세일럼 마녀재판이 벌어진 시기 ( 16921693 ) 와 겹친다. 이 유감스러운 사건은 미국 식민지에서 처음이자 마지
막으로 발생한 일련의 주요 마녀재판이었는데, 유럽에서 발생한 사건과
함께 고찰하면 사라져 가는 시대의 마지막 숨소리와도 같았다.57 ) 영국
에서 마법으로 인한 처형이 마지막으로
슬러 올라간다.58 )
55 ) 1.3.8 XIV. William Perkins, A discourse of the damned art of witchcraft so farre forth as it is reuealed in the Scriptures, and manifest by true experience … ([Cambridge]: Cantrel Legge, printer to the Vniuersitie of Cambridge, 1610), 24, 96, 190.
56 ) 1.3.8 XXIV.
57 ) History.com의 편집진은 세일럼 마녀재판의 결론과 유산을 설명한다.
존경받던 목사 코튼 매더는 유령 증거 ( 또는 꿈과 환상에 대한 증언 ) 의 모호한 증 거 가치에 대해 경고했지만, 세일럼 마녀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코튼의 우려는 거의 무시되었다. 하버드 대학 총장이자 코튼의 아버지였던 인크리스 매더는 나중에 아들 과 함께 마법에 대한 증거 기준을 다른 범죄와 같게 적용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무 고한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는 것보다 마녀로 의심되는 10명을 달아나게 두는 편이 낫다”라고 결론지었다……재판은 1693년 초까지 강도가 점점 약해지면서 이어졌는 데, 그해 5월에 필립스는 마술 혐의로 수감된 모든 사람을 사면하고 석방했다. 1697년 1월 매사추세츠주 법원은 세일럼 마녀재판의 비극을 추모하기 위해 단식의 날을 선포 했고, 이후 법원은 이 재판이 불법이라고 판단했으며, 주심 판사 새뮤얼 수얼은 이 과 정에서 자기의 역할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했다……매사추세츠 식민지는 1711년 사 형수의 명예를 회복하고 상속인에게 재정적으로 배상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Salem Witch Trials,” History, Nov. 4, 2011, accessed Feb. 16, 2021, https://www. history.com/topics/colonial-america/salem-witch-trials. 그 후에도 산발적으로 재판이 열리기는 했으나 그 횟수는 극히 적었다.
58 ) 이 보고서의 타당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Wallace Notestein, A History of Witchcraft in England from 1582–1718 (Washington, D.C.: American Historical Association,
하지만 이런 이념적 변화는 단순히 과잉에 대한 반작용이나 역사적
필연이 아니라, 마스트리흐트가 경고한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에 대한 의심이 승리했음을 보여 주는 충격적 증거였다. 근대 이전
에 유령과 마녀에 대한 불신을 처음으로 공표한 사람들은 주로 자유사
상가였다.59 ) 과거의 어느 역사가는 “진실은 마법의 존재에 대한 성경의
증거에 의문을 제기하기 전에 마법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60 ) 실제로 “마법에 대한 불신이……일련의 확실한 주장이나 새
로운 발견의 결과가 아니라, 유럽에 만연한 사고 습관이 점진적이고 무
의식적이면서도 심오하게 수정된 결과이자……이것이 견해에 미친 영
향의 결과라는 사실은 이 문제를 공정하게 조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
나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 틀림없다”라고 말했다.61 )
영국의 1735년 마녀 처벌법은 유럽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마법
은 불가능한 범죄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제 마법을 행한다고 주장하
는 사람은 단순히 사기꾼으로 여겨져 벌금과 징역형으로 처벌된다. 하
지만 마스트리흐트의 3권 8장 “악한 천사”는 영적 실재와 관련해 현재
영어로 번역된 가장 완전하고 성경적 통찰이 있으며 영적으로 도움이
되는 작품 중 하나로서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지닌다.
셋째 하늘의 교리
오늘날은 그리스도인이 땅에 속한 모든 열망과 기쁨의 결실을 변화된
땅의 황홀한 기쁨에서 찾게 될 것이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지금
우리의 육체적 재산과 마찬가지로 부활 후에도 우리는 무한하고 고무
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새 땅을 지배하면서 산업을 성취하기 위해 영원 히 수고할 것이다.62 ) 이런 견해는 종교개혁 이후에도 선례가 있었지만, 1911), 419.
59 ) Lecky, HistoryofRationalism, 12.
60 ) Lecky, HistoryofRationalism, 12.
61 ) Lecky, HistoryofRationalism, 10.
62 ) Michael E. Wittmer, Heaven Is a Place on Earth: Why Everything You Do Matters
마스트리흐트가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 개혁파의 지배적 견해는 신자가
새 땅이 아니라 하늘에 영원히 거하며, 그들의 가장 크고 주된 기쁨은
영적인 것, 즉 바로 하나님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63 ) 결국, 성
도가 죽은 후에 “가장 높은 하늘로 영접받고 그곳에서 빛과 영광 가운
to God (Grand Rapids: Zondervan, 2004), 201–207; Randy Alcorn, Heaven (Carol Stream, Ill.: Tyndale House, 2004); Ian K. Smith, Not Home Yet: How the Renewal of the Earth Fits into God’s Plan for the World (Wheaton, Ill.: Crossway, 2019). 특 히 미국의 청교도 시대와 대조적으로 남북전쟁 후 황금기와 1890-1920년 진보주의 시대 에 미국사에서 이 관념이 부상한 것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The Busiest Place in the Universe” and “Heaven: ‘A Busy Hive, a Center of Industry,’” in Gary Scott Smith, Heaven in the American Imaginat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119–121; 141–144. 천국 교리의 역사와 대중의 마음속에 있는 천국 개념에 대해서는 중세까 지 고대사를 다루는 Edward J. Wright, The Early History of Heave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2), 성경 시대 이후 현대사를 다루는 Colleen McDannell and Bernhard Lang, Heaven: A History (New Haven, Conn.: Yale University Press, 1988), 주제별로 다루는 Alistair McGrath, A Brief History of Heaven (Blackwell Publishing, 2003), 1650-1750년대를 다루는 Philip C. Almond, Heaven & Hell in Enlightenment Englan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를 보라.
63 )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문답90. 존 H. 더프는 “새롭게 된 세상의 용도와 관련해 두 가 지 주요 견해가 존재했다. [17세기 영국의] 대다수 학자는 깨끗해진 세상이 하나님의 영 광과 지혜와 권능에 대한 기념비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의 영원 한 거처에서 이 기념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몇몇 신학자는 새 하늘과 땅이 그리스도 와 그리스도의 백성에게 영원한 거처가 될 것이라는 견해를 채택했다.” “‘A Knot Worth Unloosing’: The Interpretation of the New Heavens and Earth in Seventeenth-Century England” (PhD diss., Calvin Theological Seminary, 2014), viii.
셋째 하늘에 대한 마스트리흐트의 주요 부분은 다음을 보라. 1.3.6 XXX-XXXII, XXXIVXXXVI, XXXVIII-XLIII.
네덜란드의 『순수 신학 개요』(1625)는 이렇게 가르친다.
XXXVI. 또한 이 문제에서 하늘은 최후 심판 때까지 복 받은 영혼의 거처가 될 것이
지만, 그럼에도 부패의 속박에서 해방되고 영광스럽게 된 이 땅은 복 받은 사람의 거 처가 될 것이며, 그 후에는 하늘만 천사에게 남겨진다고 표명하는 자의 말에 귀를 기
울여서는 안 된다. 마 5:12; 눅 12:33; 히 10:34에서 확인할 수 있는 대로, 성경은 성
도의 모든 상급, 그리고 변함없는 상급을 하늘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하늘은 신 자에게 최종적인 상급으로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 마 5:10; 19:14 ). 셋째, 땅과 반 대되는 하늘은 우리의 영원한 집 ( 고후 5:1 ), 우리의 성 ( 빌 3:20 ), 우리의 본향 ( 히 11:16 ) 으로 불리며 따라서 우리는 세입자처럼 잠시만 거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거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종말에 죽을 신자는 그 안에 잠시만 머무를 것이고, 마지막 날에 살아 있는 것으로 나타날 사람은 결코 들어가지 못할 것 인데, 이 모든 주장은 터무니없고 신성한 약속의 진리와는 거리가 멀다.
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된다면”(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86문답, 마 25:34, 46 ), 이런 경험을 한 다음 이 땅의 삶으로 돌아오는 것은 실망스러운 일
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 앞에서 떠난 성도의 영역을 “셋째 하늘”이라고 부
른다( 고후 12:2 ). 마스트리흐트는 성경을 근거로 첫째 하늘을 지상의 하
늘과 대기, 둘째 하늘을 별이 빛나는 하늘 또는 항성계, 셋째 하늘을 하
나님의 성소 중 가장 높은 하늘인 천상의 하늘이라고 설명한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첫째 날에 창조되었다( 창 1:1 ). 64 )
루터파와 달리 셋째 하늘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지
역으로 존재한다.65 ) 실제로 신자는 에녹, 엘리야, 그리스도가 현재 그렇
듯 언젠가 몸과 영혼이 그곳에 거할 것이므로( 시 27:4; 요 14:2-3; 히 11:16 )
“셋째 하늘이 영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편이 진리에 더 가까워 보 이는데, 언젠가는 몸도 받을 운명이기 때문이다.”66 ) 하늘은 “가장 넓은 곳이며……이런 이유로 우리 구주는 그곳에 거할 곳이 많다고 했다( 요
14:2 ).” 하늘이 “지극히 찬란하고……‘온전히 빛나며’”, “썩지 않는 이유
는 썩거나 변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절대 썩지 않을 것이기 때문인데,
이로써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요 영원한 집이라고 부른다( 고후 5:1 ).”67 )
하늘은 우리에게 헤아릴 수 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유한한 것이 틀림
없다. “어떤 종류의 무한성도 하나님의 교류할 수 없는 속성에 해당하
기 때문이다.”68 )
하늘의 목적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의 집이 되는 것인데, 그곳
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거하기보다 자기의 위엄과 영광을 우리에
Synopsispurioristheologiae, ed. Herman Bavinck (Leiden: Didericus Donner, 1881),
Disputatio LII, 662.
64 ) 1.3.6 II.C.1.a, XIX, XXVI, XXX, XXXIV.
65 ) 1.3.6 XXXV.
66 ) 1.3.6 XXXI.
67 ) 1.3.6 XXXII.
68 ) 1.3.6 XVI.
게 보이신다.” 따라서 하늘은 성도가 영원토록 수고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우리의 모든 수고를 그치고 쉬는 곳( 히 4:9-11 ) ”이 될 것이며 “우리
는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여 볼 것( 고전 13:12 ) ”이다.69 )
마스트리흐트는 6권에서 “하늘과 땅”( 벧후 3:7; 10절도 보라 ) 이 불에 의해
쇄신될 것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70 ) 17세기 종교개혁자들에게는 이 구
절의 “하늘”이 낮은 첫째 하늘과 아마도 둘째 하늘만을 의미했는데, 그
이유는 어느 17세기 종말론 학자가 지적한 대로 “가장 높은 하늘은 그
리스도, 성도, 천사의 거처여서 정결하게 하는 불을 겪으리라고 믿기 어
렵기 때문”이었다.71 ) 그렇다면 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가정할 때
새 하늘과 새 땅의 목적은 무엇이겠는가? 개혁파는 성경이 계시하는 것
이상으로 말하지 않도록 조심했으나 하나님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위 한 목적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이해했으며, 종종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나님이 전에 인간을 향해 베푸신 능력과 지혜와 선하심에 대한 기념
비”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또한 성도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주목하고 살필 수도 있을 것이며, 현재 하늘에 사는 천사가 이따금 하늘 과 땅을 오가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간혹 그곳을 여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72 ) 더 작은 영광은 여전히 그 놀라운 질서와 다양성, 특히 그들
69 ) 1.3.6 XXXII, XLII.
70 ) 1.8.4 VIII, XIX, XXI.
71 ) Duff, “‘A Knot Worth Unloosing,’” 158n 90.
72 ) Edward Elton, The Triumph of a True Christian (London: Richard Field for Robert Mylburne, 1623), 497. Duff, “‘A Knot Worth Unloosing,’” 183에서 인용. 이와 비슷하 게 마스트리흐트도 1.8.4 VIII에서 신중한 추측을 제시한다. 신자의 영원한 거처 및 새 하 늘과 새 땅에 대한 종교개혁 이후 개혁파의 다른 논의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William Bucanus, Institutions of Christian Religion (London: George Snowdon, and Leonell Snowdon, 1606), 492; Andrew Willet, Hexapla, that is, a six-fold commentarie vpon the most diuine Epistle of the holy apostle S. Paul to the Romanes (Cambridge: Cantrell Legge, printer to the Vniuersitie of Cambridge, 1611), 366–373; Johannes Wolleb, Abridgment of Christian Divinity (London: T. Mabb for Joseph Nevill, 1660), 301–309; Thomas Adams, A commentary or, exposition vpon the diuine second epistle generall, written by the blessed apostle St. Peter (London, 1633), 1356–1382; Richard Baxter, ThegloriouskingdomofChrist (London, 1691), 71–73.
을 비교할 때 나타나는 차이를 통해 더 크고 점증적인 영광에 이바지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일을 묵상하면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창조주가 우리에게 땅을 준 이유는 ( 우리의 집이 아니라, 히 13:14; 11:9 )
우리가 잠시 머물 거처가 되게 하려는 것이므로 우리는 땅에 속한 자가
되지 말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빌
3:19 ).”73 ) 또한 “땅은 하늘의 소유를 얻기 위해 몸과 마음으로 최선을 다
해 애쓰도록 우리를 자극한다.”74 )
결론
이 서론적인 고찰이 독자에게 이 책을 이해하고 유익하게 사용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연구와 집필에 도움을 준 트래비스 펜티먼에
게 특별히 감사를 표한다. 또한 4권의 편집에 도움을 준 마이클 헌터,
키스 메티슨, 우터 피터스에게도 감사한다.
끝으로, 라틴어 원문이나 네덜란드어 번역본의 독자는 지금까지 세 권의 책에서 우리가 원래 절 표기에서 여러 가지 실수를 수정해야 했다
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마스트리흐트의 상호 참조와 우리
의 상호 참조를 현 영어판의 번호와 일치시켰다.
우리는 독자에게 마스트리흐트의 가르침과 적용을 추천하며, 주가 이
책에 복을 베푸셔서 그분의 놀라운 사역이 감사함으로 선포되고 죄인
이 죄의 형벌과 권세로부터 구원받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조엘 비키 - 토드 레스터
73 ) 1.3.6 LIV.
74 ) 1.3.6 XLI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