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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젊어서 설교할 때 성경적 설교를 적절히 준비하는 데 도움을 줄
만한 모범 설교를 다룬 책을 찾아본 기억이 난다. 하지만 유감스럽
게도 별로 도움은 받지 못했다. 내가 받은 성경 해석학 및 설교학 박
사 학위도 다니엘서같이 어려운 성경책을 설교하는 일에 별로 도움
이 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교구 목사로 8년 동안 사역할 때 다니엘
서 설교는 겨우 한 번 해 보았다. 다니엘 2장( 비교적 쉬운 본문 ) 을 “하
나님 나라가 모든 세상 나라를 대체할 것”이라는 주제 아래 설교한
것이다( 1974년 3월 3일 ). 이후로 거의 40년이 지나 신학교 교수직에서
은퇴한 지금 다니엘서를 깊이 연구할 시간을 가졌고, 젊은 시절에
얼마나 좋은 소식을 놓쳤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그러나 매주 두 편
의 새로운 설교를 작성해야 했을 때 나로서는 이 논란 많은 책을 책
임 있게 설교하는 것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바쁜 설교자와 성경 교사에게 다니엘서의 좋은 소식을 선
포하는 데 도움을 주려는 것이 의도다. 다니엘서에서 설교와 교훈을
끌어내는 데 중요한 재료를 더 빨리 파악하도록 도울 것이다. 이때
주목할 요소는 다음과 같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여섯 이야기와 네
환상의 개별 줄거리( 플롯 ) 를 찾아내는 것, 포로로 잡혀 있던 이스라
엘 사람이 받는 핵심 메시지( 주제 ) 를 작성하는 것, 이런 이스라엘 사
람에게 이 메시지를 보내는 저자의 목표( 목적, 의도 ) 를 확인하고, 또
유비를 통해 오늘날 자기 교인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는 설교자의 목
표를 찾아내는 것, 각 설교 본문을 신약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와 연
계시키는 다양한 방법을 파악하는 것, 각 설교 본문에 대해 적절한
성경 강해를 실시하는 것.
『창세기의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와 『전도서의 그리스
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의 자매편인 이 책은 구속사적인 그리스도
중심 설교를 증명하고 보강할 의도도 있다. 이번에는 묵시 장르 설 교를 작성하는 것으로 이 의도를 증명하고자 한다. 그리스도 중심
설교는 항상 하나님 중심적이지만 하나님 중심적 초점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하나님의 충분한 자기 계시에 초점을 맞춘다.
사도 요한이 설명하는 것과 같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 1:18 ) 각 설교 본문에 대해 똑같은 기본 양식을 따른다. 이 양식은 내가
신학교 1학년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계발한 것으로, 본문에서 설
교까지 10단계 과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부록 1을 보라 ). 이 양식은 본
문과 어색한 관계에 있는 상태에서 설교를 작성할 준비가 될 때까지
점차 더 깊이 참여하는 상태로 학생을 끌고 간다. 결과적으로 각 장
에서 반복이 이어지는 것은 성경 본문에 대한 기본적인 해석학 및
설교의 방식을 가르치려는 의도 때문이다. 처음에는 설교 본문의 범
위( 문학적 단위 ) 를 정하고 그 본문의 맥락을 점검한다. 그다음에는 중
요한 문학적 특징, 특히 줄거리를 주목한다. 줄거리는 설교 본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이야기 형식으로 설교를 전하는 데
에도 중요하다. 그리고 하나님 중심
된다.
각 장은 ‘설교 강해’ 부분으로 끝마친다. 설교 강해 부분은 설교 본
문 구절의 의미를 설명할 뿐만 아니라 설교자가 설교 속에 넣기를
바라는 많은 주석가의 관점도 ( 종종 각주에서 ) 제공한다. 설교 강해 부
분은 가능한 한 구어체를 많이 사용하고, 본문을 인용하기 전에 교인
이 따라 읽을 수 있도록 어느 구절인지 제시하며( 이렇게 하면 교인이 말
씀을 듣고 볼 때 훨씬 이해하기 쉽다 ), 설교의 흐름을 계속 유지함으로써( 대
부분의 인용, 복잡한 주장, 전문적인 세부 사실은 각주에 넣었다 ) 모범적인 설교
를 제공하는 데 힘썼다. 설교 강해 부분에서는 또 설교 어느 지점에
서 그리고 어떻게 그리스도에게 나아갈지도 보여 준다. 그리고 앞서
진술한 설교의 목표에 맞추어 적용을 간단히 언급한다. 실제 설교에
서는 설교를 듣는 교인의 상황에 적합한 예화와 구체적 사례를 이런 적용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설교 강해 부분에서는 설교 본문의
모든 구절을 설명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설교자는 설교 본문이 길 경
우 핵심 구절을 선별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성경 교사는 11번의 전
체 수업에서 설교 강해 부분을 다니엘서를 공부하도록 학생들에게
맡길 수 있다.
부록 2는 내가 신학교 1학년 학생을 위해 계발한 강해 설교 모델
을 제공한다. 이 설교 모델은 성경적이고 적절하게 체계적으로 엮인
설교를 목표로 한다. 이전에 내가 신학교에서 가르쳤던 학생인 라이
언 페이버가 본서의 교정과 11편의 다니엘서 설교 시리즈를 준비하
고 설교하는 일을 맡아 주었다. 페이버의 허락을 받아 이 설교 가운
데 두 편을 부록 3과 4에 실었다.
다른 역본임을 밝히지 않는 한 인용 역본은 NRSV다. 이와 다른 역
본이나 사역일 경우 따로 밝혔으며, NIV는 최신판 ( 2011 ) 을 사용
했다(성경 인용구는 원서의 취지를 살렸으며 개역개정과 차이는 별도로 표시하
였다-옮긴이). 각 장 첫 부분의 인용 성경(개역개정)은 해석상 중요한 본
문 그리고/또는 독자가 읽을 필요가 있는 본문이다.
각주의 참고문헌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충분한 자료를 원하면 ‘참
고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에 없는 경우 각주에서 확인
가능한 경우도 있다.
아무튼 이 책이 설교자와 성경 교사에게 세상 나라를 통제하는 하
나님의 주권과 하나님 나라의 확실한 도래에 대한 다니엘서의 메시
지로 고통받는 하나님 백성의 믿음, 소망, 사랑, 견인을 높이 세우는
데 도움을 주기를 바라고 기도한다.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시드니 그레이다누스
서론 다니엘서의 그리스도를 설교할 때 고려할 문제
메시지는 “독자에게 함정과 덫이
가득 찬 형태로 제공된다”라고 말했다.1) 브렌트 샌디와 마틴 아벡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묵시 장르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불합리한
해석에 빠지기 쉽다. 그 이유는 주로 그리스도인이 묵시를 원래 의
도되고 이해된 대로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부분이
든 저자가 직접 속한 문화와 저자의 의도에서 벗어난 성경 본문은
거리에서 배회하는 집 잃은 어린아이와 같아 포악한 학대를 받기 마
1) Lacocque, Book of Daniel, 1. 라콕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다니엘서가 비판자에게
주는 문제점은 엄청나게 많고 복잡하다. 묵시 언어는 일부러 모호한 형태를 취하고 역사적
언급도 고의로 비밀스럽게 제시한다. 나아가 다니엘서는 익명 저자의 작품이고, 사건이 일어
나기 전에 사건에 대해 진술하며, 두 언어를 사용하고, 외국에 기원을 둔 문학과 경건의 영향
을 다양하게 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특히 셈어 본문 등과 관련해 훨씬 폭넓고 종종 다른 성격
을 가진 헬라어 역본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연대도
있다. 사실 현대 비평학자, 세대주의자 등 학자들은 다니엘서의 기록
연대와 역사성 문제뿐만 아니라, 웬만한 설교자라면 다니엘서를 설
교하려고 시도하는 것조차 꺼리는데도 다니엘서를 ‘세상의 끝’을 예
언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지3) 여부를 두고도 치열한 논쟁을 벌
였다. 『공동성서일과』는 3년 주기로 진행되는 일과표에서 다니엘서
본문은 단 세 본문만 선택한다. 매해 부활절 저녁에는 다니엘 12장
1-3절을 읽고, 세 번째 해 만성절에는 다니엘 7장 1-3, 15-18절을
읽으며, 두 번째 해의 오순절 말기 주일에는 다니엘 7장 9-14절을
읽게 했다. 시블리 타우너는 이 문제를 분명하게 거론한다. “왜 설교
자들은 째깍거리는 다니엘서의 시한폭탄을 들고 강단에 올라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까?”4)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주된 목적이 목회자가 다니엘서의 메시지를
설교로 전하는 것을 돕는 데 있고, 복잡한 서론 문제에 대한 설명은
2) Sandy and Abegg, “Apocalyptic,” 187.
3) 교회사의 긴 시간에 걸쳐 다니엘서는 세상의 종말을 예언하는 일에 악용되었다. 예를 들어
보자. 1840년대에 밀러주의자의 지도자 윌리엄 밀러는 다니엘 8장의 2,300일을 2,300년으
로 이해하고, 그리스도는 1843년 3월 21일과 1844년 3월 21일 사이 어느 한 시점에 재림
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Hal Lindsey, The Late Great Planet Earth (Grand Rapids: Zondervan, 1970)는 1970년대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캘리포니아 라디오 방송 진행자
해럴드 캠핑(Harold Camping)은 “날을 비워두세요. 2011년 5월 21일에 그리스도가 재림
하시니까요”라고 광고했다. 캠핑은 자신의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자 2011년 10월 21일로 날
짜를 바꾸었다. Helge Kvanzig, “The Relevance of the Biblical Visions of the End Time,” HBT 11/1 (1989) 35는 이렇게 지적한다. “성경의 마지막 때에 대한 관점을 실제로
적용한 많은 결과가 실망의 역사였다.” 예수가 친히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이 목적을 저해할 우려가 있으므로, 서론 문제에 대한 상세한 설명
은 다른 저자의 책을 보기를 바란다.5) 피터 크레이기의 주장이 타당
하다. “역사 비평을 붙들고 씨름하는 것으로는 다니엘서의 적합성을
파악하지 못한다. 결국 다니엘서의 메시지를 보려면 다니엘서 저자
의 관점을 나누고자 노력해야 한다.”6) 그렇더라도 서론 문제를
5) 예컨대 다음을 보라. Montgomery, The Book of Daniel, 1-109; Young, Prophecy of Daniel, 294-306; Baldwin, Daniel, 13-74; Goldingay, Daniel, xxv-liii, 320-334; Collins, Daniel, 1-71; Redditt, Daniel, 1-39; Longman, Daniel, 19-40; Lucas, Daniel(『AOTC 다니엘』,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7), 17-43, 306-325; Steinmann, Daniel, 1-73.
6) Peter C. Craigie, TheOldTestament:ItsBackground, Growth, and Content (Nashville: Abingdon, 1986), 248.
7) 주석가는 해석의 출발점이 해석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두고 의견이 나뉜다. 한편으로 Miller, Daniel, 22-23은 이렇게 말한다. “저자 및 기록 연대 문제와 관련해 사람이 취하는
견해가 중요한 것은 그 견해가 결국은 이 예언의 모든 국면의 해석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Goldingay, Daniel, xl은 자기 책의 서론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다니엘
서의 이야기가 역사든 허구든 다니엘서의 환상이 실제 예언이든 유사 예언이든 또는 BC 6세기든 BC 2세기든 그 사이 어느 한 시점에 기록되었든 다니엘이 기록했든 다른 어느 인
물이 기록했든 놀랍게도 다니엘서의 주석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Lucas, Daniel, 18도 그렇게 말한다. 우리는 다니엘서 저자의 목표가 주석에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해 보겠
지만, 확실히 다니엘서 저자의 목표는 다니엘서가 바벨론에서 포로로 고통받는 이스라엘에
게 주는 것인지 아니면 안티오코스 4세에게 박해받는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에게 주는 것인
지 판단에 따라 바뀐다. 그리고 이에 따라 현대 설교자의 목표와 적용도 바뀌게 마련이다.
BC 6세기 배경에서 다니엘서 저자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하나님의 주권과 신실하심에 대한
메시지로 이스라엘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에게 신실하라고 권고하는 것에 있었을 것 이다. 반면에 BC 2세기 배경이라면 저자의 핵심 목표는 “경건한 자가 안티오코스 4세와
헬라주의자의 박해에 대한 영적 저항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에 있었을 것이다(Lacocque, Book of Daniel, 10); 참고. Russell, Daniel, 11, “다니엘서 이야기는……안티오코스 에피
파네스의 통치 시대인 BC 2세기를 배경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보면 다니엘서의 목적
은 아주 많은 면에서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그들의 조상의 가르침 및 관습에 매우 적대적인
외국 문화가 지배하는 상황 속에서 유대인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는 것에 있다.” 참고. Portier-Young, Apocalypse against Empire, 229, “다니엘서 저자들은 독자에게 안티오코스
의 명령과 박해, 그의 통치를 밑받침하는 패권과 통치 체제에 대한 비폭력 저항 계획을 제시
했다.”
첨언. 다니엘서 열두 장을 다 연구한 다음 나는 사람이 추정하는 다니엘서의 기록 연대가 다니엘서의 이야기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보자. 하나님이 자
이유를 어느 정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니엘서의 역사적 배경과 지리적 배경
다니엘서는 BC 605년(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 1:1 ) 에서 BC 536년( “바사 왕 고레스 제삼년” 10:1 ) 까지 다니엘과 세 친구
의 삶 속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다. 다니엘서는 또 안티오코스 4세
의 통치를 포함해 이후에 벌어진 일( 8:9-12, 23-25; 11:21-35. 175-163 BC )
및
때”( 예. 11:40; 12:1-3, 13 ) 와
기 백성을 어떤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다는 메시지가 허구 기사라면 다니엘 3장과 6장은
과연 어떤 위로를 줄 수 있겠는가? 그런데 기록 연대는 다니엘서 환상(다니엘 7-12장)의 메
시지를 식별하고 설교하는 데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 다니엘서의 기록 연대를 BC 2세기로
보고 넷째 나라를 헬라 제국으로 가정하면 다니엘서의 환상은 안티오코스 4세에게 집중되고
거의 그를 벗어나지 않으며, 확실히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도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예컨대 Redditt, Daniel, 146에서 다음 말을 보라. “다니엘 8장은 안티오코스의 죽음이 하
나님 나라를 가져올 것으로 오해되었다.”
8) 이 도표는 다음 저술에서 뽑아온 자료를 기초로 작성했다. Baldwin, Daniel, 73; Lucas, Daniel, 43; Miller, Daniel, 292-304; Steinmann, Daniel, 521; Towner, Daniel, 16-18; Young, ProphecyofDaniel, 302-303.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587 예루살렘이 멸망함; 성전이 불에 탐; 남은 유다 사람이 포 로로 잡혀감
왕하 25:8-21
562-560 아멜-마르둑(에윌-므로닥) 왕하 25:27-30
560-556 네르갈사레셀, 느부갓네살의 사위
556 라바시-마르둑
556-539 나보니두스
550-539 벨사살(부친 나보니두스와 공동섭정) 단 5; 7:1; 8:1
539-331 메대-바사 제국 단 2:39a
550-530 고레스/다리오, 메대-바사 제국의 왕 단 1:21; 5:31; 6:1, 28; 8:3-4, 20;
서론 ┃ 다니엘서의 그리스도를 설교할 때 고려할 문제 21
제국 단 2:40
“마지막 때” 단 8:17; 11:35, 40; 12:4, 9, 13
고통의 시기 단 7:25; 12:1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 단 7:27; 12:1
죽은 자 가운데에서의 부활 단 12:2, 13
땅에 세워진 하나님 나라 단 2:35, 44; 7:14, 27; 9:24; 12:3, 13 이 연대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다니엘서는 세계 제국 넷, 곧 바벨론, 메대-바사, 헬라( 특히 애굽과 수리아 ), 로마 제국을 다룬다.
26쪽에 나오는 지도는 중간에 자리 잡은 이스라엘과 함께 이 네 나라의 위치를 보여 준다.
다니엘서는 다니엘과 세 친구에 대한 여섯 개의 이야기( 1-6장 ) 와
다니엘이 본 네 개의 환상( 7-12장 ) 을 담고 있다. 전통적으로 회당뿐
만 아니라 교회도 다니엘서를 BC 6세기에 다니엘이 기록한 것이라
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견해가 현대에 바뀌었다.
BC 2세기
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성경
의 모든 초자연적 요소가 의심에 부쳐지고 포르피리오스의 이론이
점차 지지를 얻게 되었다.”9) 포르피리오스같이10) 비평학자들도 예
언은 미래를 상세히 예견할 수 없다고 추정했다.11) 그들은 또 다니
엘서의 6세기 포로 사건에 대한 설명은 ‘혼란스럽지는’ 않아도 아주
모호하고,12) 반면에 11장에서 BC 3세기나 2세기에 대해 다니엘이
제공하는 정보는 믿을 수 없이 정확하다 ( 위의 도표를 보라 ) 고 주장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저자( 들 ) 가 BC 6세기가 아니라 이 사건들이
일어난 후인 BC 2세기에 다니엘서를 쓴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제임스 몽고메리에 따르면 다니엘서 저자는 “BC 168-165년에 마카
베오 반란 초기에” 다니엘서를 기록했지만 13) 1-6장에서는 아마 이
전 자료를 활용했을 것이다.14) 이때 다니엘서 저자의 목표는
마카베
9) Archer, “Daniel,” 13은 “J. D. Michaelis (1771), J. G. Eichhorn (1780), L. Berthold (1806), F. Bleek (1812), 그리고 이들 이후의 많은 다른 학자를” 언급한다; 참고. John Collins, Daniel, 25-26; Adela Yarbro Collins, “The Rise of Historical Criticism,” 앞 의 책, 121-123.
10) Collins, Daniel, 25는 이렇게 주장한다. “포르피리오스의 추론 노선은 본질상 현대 비평가 의 노선과 비슷하다. 특히 다니엘 11장의 다니엘 예언과 헬라 시대 사건 간의 대응 관계는 예언이 사건 이후에 주어졌다는 가정으로 매우 쉽게 설명된다.”
11) 예. Towner, Daniel, 115, “우리는 [다니엘 8장의] 환상 전체를 사후 예언으로 추정해야
한다. 왜 그런가? 인간은 몇 세기의 시차를 두고 미래의 사건을 정확히 예견할 수 없기 때문
이다.” 참고. Collins, Apocalyptic Vision, 8, “단 11:29-39에서 안티오코스의 두 번째 전
쟁은 분명히 사후 예언이기에 이처럼 엄밀하게 묘사된다.”
12) “다니엘 11장의 헬라 역사에 대한 언급은 사실상 정확하지만 이전 부분의 바벨론과 바사
시대에 대한 언급은 무척 혼란스럽다.” Collins, Daniel, 26.
13) Montgomery, Book of Daniel, 96; 참고. Collins, Daniel, 26, “최소한 7-12장의 계시에
대해서는 개연성의 저울추가 압도적으로 마카베오 시대를 옹호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7-12장은 분명히 마카베오 시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Collins, 앞의 책, 324는 다니엘
7장은 “엄밀히 후기 연대인 BC 167년에……곧 8-12장의 히브리어 계시보다 약간 앞서
기록되었다”라고 지적한다; 참고. Seow, Daniel, 7, “BC 164년에 기록되었다.”
14) Montgomery, Book of Daniel, 96은 다니엘 1-6장을 마카베오 이전 시기, 곧 대략 BC
오 반란에 가담해 잔인한 셀레우코스 왕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
스( 175-163 BC ) 의 멍에를 벗어 버리라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권고하
는 것에 있었다고 한다.15)
이 학자들은 다니엘 1-6장의 BC 6세기 배경에 대해 명백한 역사
적 ‘오류’를 지적함으로써 자기들의 견해를 밑받침했다. 예를 들어
보자. 다니엘 1장 1절은 이렇게 진술한다.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
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
러 성을 에워쌌더니.” 반면에 예레미야서는 이 일이 “여호야김 넷째
해”에 일어난 것으로 본다( 25:1, 9 ). 노먼 포티어스는 “다니엘 1장 1절
진술의 부정확성은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라고 확신을 갖고 말
한다.16) 다니엘 4장 30절에서 느부갓네살왕은 이렇게 자랑한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 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그러나 바벨론은 느부
갓네살이 생존하기 오래전에 이미 존재했고, 고대 역사가는 느부갓
네살을 바벨론의 창건자로 보지 않는다. 다니엘 5장 1절은 “벨사살
왕이 그의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라고 말한다( 참고.
8:1 ). 롤리는 벨사살을 ‘왕’으로 부르는 다른 본문이 없다는 것을 이
유로 이것을 ‘중대한 역사적 오류’로 본다.17) 다니엘 5장 11절과 18절은 느부갓네살을 벨사살의 ‘부친’으로 언급한다. 이에 대해
기록된 것으로 본다. Collins, Daniel, 47-48도 그렇게 본다.
15) 위에서 각주 7에서 관련 인용문을 보라.
16) Porteous, Daniel, 25; 참고. Collins, Daniel, 132, “단 1:1은 역사적으로
17) Rowley, “The Historicity of the Fifth Chapter of Daniel,” JTS 32 (1930) 12. Redditt, Daniel, 2도 그렇게 본다.
18) 앞의 책, 20; 참고. Collins, Daniel, 32, “‘아들’은 ‘손자’ 또는
은 벨사살이 죽임을 당했을 때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
었다”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롤리는 이렇게 말한다. “신바벨론 제국
이 멸망한 후에 다리오에게 왕좌가 넘어갔다는 점에서 다니엘서의
기록은 분명히 잘못이다.”19) BC 6세기와 관련해 나타나는 이 모든
‘오류’는 논증이 계속될수록 다니엘서 저자가 이 사건들이 일어난
시대 이후에 살았음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보자. 존 콜린스는 이렇
게 말한다. “다니엘서 저자가 벨사살의 부친과 지위에 대해 잘못 기
록했다는 것은……우리가 갖고 있는 이야기가 벨사살왕에 대한 기
억이 희미해졌을 때 기록되었음을 암시한다.”20)
이 학자들은 또 언어학적 증명으로 BC 2세기 연대를 옹호하는 자
기들의 견해를 보강하면서, 다니엘서 저자가 바사어 단어, 헬라어 차
용어, 추측건대 후기의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사용한다고 지적
한다.21) 이 학자들의 논증이 매우 광범하여서 대다수 현대 주석가는
전통적 견해인 다니엘서의 BC 6세기 연대설을 거부한다. 그 대신
이들 주석가는 다니엘서의 기록 연대를 BC 168년과 164년 사이에
둔다. 다만 다니엘과 세 친구 이야기 가운데 일부는 BC 3세기나 4세
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본다.
19) 앞의 책, 31. 롤리는 다른 곳에서 메대 사람 다리오가 “벨사살의 죽음과 고레스의 통치 사 이에 바벨론 왕좌를 차지했다”라는 정보를 “……다니엘서에서 가장 심각한 역사적 오류”로
간주했다. “……그 이유는 신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린 자가 고레스였다는 사실이 확실히 알
려졌기 때문이다.” H. H. Rowley, Darius the Mede and the FourWorld Empires in the Book of Daniel:A Historical Study of Contemporary Theories (Cardiff, 1935; reprint 1964), 9; 참고. Collins, Daniel, 30, “메대 사람 다리오 같은 사람은 다니엘서 이
야기를 제외하면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 Collins, Daniel, 33; 참고. Rowley, “The Historicity of the Fifth Chapter of Daniel,” JTS 32 (1930) 31, “다니엘서 저자는 진정한 역사를 기록한 것이 아니고, 거의 확실히 당
대의 역사를 기록한 것도 아니다.”
21) 예컨대 Montgomery, Book of Daniel, 22를 보라. “증거가 보여 주는 것처럼 이 헬라어
단어들은 후기 연대설로 저울추가 기울게 하는 것이 틀림없다.” 참고. Porteous, Daniel, 13, 다니엘 2:4a-7:28은 “(BC 3세기……어쩌면 2세기보다 앞서지 않은) 아람어 후기 방 언이지만 다니엘서 나머지 부분은 후기 히브리어로 되어 있다.”
이 주석가들이 옳다고 해도 그들은 다니엘서의 ‘내재 저자’가 BC
6세기의 다니엘이고, ‘내재 독자’도 바벨론 포로 당시의 이스라엘
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말은 ‘실제 저자’는 자기 독
자가 이 이야기와 환상을 BC 6세기의 배경 속에서 듣고 이해하기를
바랐다는 뜻이다.
BC 6세기 연대설
그러나 이런 현대 학자에게서 나온 논증에는 결정적인 설득력이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콜린스가 직접 지적하는 것처럼
다니엘 1-6장이 안티오코스 4세의 박해와 관련되어 있음을 증명하
는 것이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다니엘 1-6장의 이야기를 면밀하
게 살펴보면 이 이야기들이 [안티오코스 4세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작성되었다는 견해를 지지하지 않는다.”22) 느부갓네살이 잔인한 성
격과 포악한 기질을 가졌기는 해도 안티오코스가 여호와의 제단을
제우스의 제단으로 만들어 모독할 정도로 하나님의 성전을 모독하
지는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느부갓네살은 결국 이스라엘의 하나님
을 주권적인 “지극히 높으신 이”로 고백했다( 4:34-35 ). 벨사살은 자
신이 개최한 술잔치에서 하나님 성전의 신성한 그릇으로 술을 마심
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도전했다는 점에서 안티오코스와 비
슷하다( 5:2-4 ). 그러나 이것 역시 안티오코스가 성전에서 제우스를 섬기고, 매일 드리는 제사를 없애고, 돼지고기를 제단에 바치고, “멸
22) Collins, Daniel, 33. 콜린스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롤리의 주장은 이방인 군주가 다
니엘에게 매우 호의적이고, 이 유다 사람 영웅에 대한 음모는 그가 왕궁에서 출세한 것에
대한 질투에서 나왔음을 말하는 다니엘 6장과 관련해서 보면 매우 취약하다. 이런 이야기
에 함축된 삶의 상황은 종교적 박해가 아니라 이방 세계에서 성공을 추구한 소수 유다 사람
에게 닥친 위험이다……롤리 등 학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다니엘 1-6장에는 반드시 안
티오코스 에피파네스 시대에 대한 언급으로 이해되거나 지금 일반적으로 그렇게 받아들여
지는 본문이 전혀 없다.” 참고. Collins, ApocalypticVision, 9-10; von Rad, Old TestamentTheology, II, 309-310.
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움으로써 성전 자체를
모독한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8:11-14; 11:31 ). 다리오는 안티오코스 4세와 정반대다.
다리오는 자기 친구 다니엘을 위해 “심히 근심했다.” 다니엘을 건져
내려고 온종일 힘을 다했다.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길” 원
했다.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 서 떨며 두려워하라”라고 조서를 내리고 다니엘의 하나님을 “살아
계시는 하나님”으로 찬송하는 감동적인 송영으로 끝맺는다( 6:14, 16, 25-27절 ).
둘째, 예언은 미래를 상세히 예견할 수 없다는 현대 학자들의 가정
을 인정할 수 없다.23) 선지자들은 자기들의 메시지를 당대에 전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게 할 때 얼마든지 미래를 상세히 예견할 수
있다( 예컨대 왕상 13:2와 사 44:7, 28절을 보라 ). 하나님은 미래를 상세히 아
신다( 예. 사 41:21-23; 46:8-11 ).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미래를 상세히 계
시하실 수 있다.24) 예를 들어 보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종에게 일어
날 일을 다음과 같이 세세히 예견한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23) 참고. Baldwin, Daniel, 184-185, “어떤 사실을 미리 말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예언과 관
련해 교회는 확실히 힘을 잃고 말았다. 저속한 합리주의적 인본주의가 기독교 사상 속에 깊
이 침투해 성경 속에서 미래 사건에 대한 희미한 언급 이상을 보는 것에 대한 모든 주장을
무조건 조롱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간 사상이 왕좌에 앉아 다니엘 11장 같은 장을
사건 이후에 기록된 역사로 판단했다. 이와 반대로 시간이 시작될 때도 계셨고 시간이 없을
때도 계실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 ‘오래전에 장차 올 일을 알리는’(사 44:7) 것을 정당성을
갖고 확실히 주장하실 수 있다.”
24) Leupold, Exposition of Daniel, 471-472는 예레미야 50; 51장; 슥 9:1-8; 이사야 13; 14장; 21:1-10을 언급한다.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사 53:3, 7-9)
이 예언은 약 6백 년 후에 예수의 생애와 죽음에서 이루어졌다. 예수
는 직접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서……자
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다”( 눅 24:27; 44-47절도 보라 ). 예수는
심지어 다니엘서를 인용해서 미래의 박해에 대해 경고하셨다. “그러
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마 24:15-16 ). 여기서 예수는 다니엘을 ‘선지자’
로 부를 뿐만 아니라 다니엘이 미래 사건을 예고하고 있다고 추정하
셨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이 미래에 일어날 일
이다.25) 사실 신명기 18장 21-22절에 따르면 우리는 예언이 이루어
지는지 점검할 때 참된 예언과 거짓 예언을 구분할 수 있다. 그러므
로 예언은 미래를 예견할 수 있고, 따라서 예언의 후예인 묵시 문학
도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26)
셋째, 다니엘서 저자/편집자가 다니엘이 BC 6세기에 자신이 받은
환상을 기록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바벨론 벨사살왕 원년에 다
니엘이……꿈을 꾸며……환상을 받고……그 꿈을 기록하며……내
25) 마 26:64도 보라. 거기서 예수는 자신을 다니엘이 묘사한 “하늘 구름을 타고 온……인자”
로 말씀하신다.
26) 다니엘 11장과 관련해 루카스는 ‘아카드 예언들’이 단 8:23-25와 11:3-45와 비슷한 문학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루카스는 계속해서 이 유사점은 “그것들[다니엘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1장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과 세 친구
다니엘 1장 1-21절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
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
장에게 구하니
다니엘 1장 8절 1)
약 20년 전에 다니엘이 바벨론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하는 것
에 초점을 맞춘 설교를 들은 적이 있다. 설교자는 젊은이들에게 다
음과 같이 권고했다. “다니엘과 같이 여러분도 기름진 음식을 피하
십시오. 다니엘과 같이 여러분도 술을 금하십시오. 다니엘과 같이 여
러분도 성관계를 피하십시오.”2) 긍정적으로 보면 내가 이 설교를 심
1) 본서 모든 장에서 나는 독자가 중심 주제에 초점을 맞추도록 한두 개 절을 핵심 구절로 선정 했다. 이 핵심 구절은 설교 본문으로 사용할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설교 본문은 문학적
단위 전체다.
2) 이때 설교자가 ‘성관계 금지’를 다니엘과 어떻게 연관시켰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바벨론 당국은 다니엘과 세 친구를 환관으로 만든 것 같다.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은 이사야
가 히스기야에게 준 예언에 부분적으로 기초가 있다. “네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
지어 20년 후에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부정적으로 보면 이 열정
적인 설교자가 본문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좋은 소식을 놓
쳤다는 것이다. 이런 자구적 직접 적용은 보통 저자가 의도한 의미
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자구적 직접 적용은 설교를 혼란
에 빠뜨린다. 신약 성경의 맥락에서 보면 이런 자구적 직접 적용은
비성경적일 수 있다.3)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니엘과
관련된 이 이야기를 다니엘을 본받아 기름진 음식과 포도주를 먹지
말라는 뜻으로 듣지 않았다. 왕의 음식과 포도주가 그들의 식탁에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유감스럽게도 바쁜 목사들은 다니엘서 저자
가 이스라엘에게 주는 메시지와 이 메시지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하는 저자의 목표( 목적 ) 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내지 않고 적용부
터 먼저 찾을 수 있다.
다니엘서는 포로로 고난 속에 있던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졌다.
다니엘 1장의 이 첫 번째 이야기는 세계 전역에서 벌어지는 그리스
도인에 대한 박해로 크게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설교 본
문이다. 최근 추산에 따르면 1억 명의 그리스도인이 세계 전역에서
박해를 받고 있다.4) 이 모든 박해 속에서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하
나님은 자기 백성에 대한 학대를 멈추게 하실 힘이 없는가? 많은 사
람, 특히 유럽 사람은 주권적인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포기
하고 세속적 생활 방식을 취했다. 다른 사람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사 39:7; 왕하 20:18; Steinmann, Daniel, 89-91을
보라). 다니엘과 세 친구가 진실로 환관이 되었다면 설교자는 그의 자구적 직접 적용으로 그
가 깨달은 것보다 더 큰 문제에 봉착했을 것이다.
3) “확실히 말해 우리는 사무엘이 아말렉 왕 아각을 찍어 쪼개거나
Clowney, PreachingandBiblical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 1961), 80.
4) “‘Open Doors’ 2009 World Watch List.”
Paul Marshall, Their Blood Cries Out: The Worldwide Tragedy of Modern Christians Who Are Dying for Their
Googling “Persecution of Christians”는
궁금하게 여긴다. “박해가 우리에게 닥치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까? 기독교 신앙을 포기할까, 아니면 기독교 신앙 위에 굳게 설까?”
본문과 문맥
다니엘 1장의 이야기를 설교할 때는 도덕화5)를 피해야 할 뿐만 아
니라 이 이야기를 더 작게 잘라 다루기 쉬운 설교 본문으로 만드는
것도 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다니엘서에 대해 유명한 한 설교
지침서는 “정복자 왕이 유능한 유다 소년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
과 언어를 배우도록 요구한 것( 3-4절 )”에서 두 편의 다른 설교를 만
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1) 교육의 중요성과 한계, (2) 종교/
기독교 공동체가 세속 문화에 대해 취할 수 있는 대안적 태도.”6) 그
러나 사실 우리는 유다 소년들이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배
워야 했다는” 이야기의 세부 사실( 4절 ) 에 기반을 두고 “세속적 교육
의 요구와 대가”에 대한 설교를 작성할 수 없다. 이 설교 지침서는
이야기의 각 부분에 대해 다른 설교를 제안하지만7) 그 가운데 어느
것도 다니엘 이야기의 요점( 주제 ) 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성경 저자는 자기 메시지를 몇 마디 단어나 어구가 아니라 문학적
단위로 전달한다. 성경 저자를 공정하게 다루고 성경 저자의 영감
받은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먼저 설교 본문으로 삼을 문학 단위를 결
정하고, 그다음에는 이 전체 단위로 저자가 전하는 요점( 주제 ) 을 파
악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교 본문으로 기능할 문학 단위의
5) ‘도덕화’는 설교 본문의 저자가 원독자에게 이런 적용(들)을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설교 본문 에서 하나 이상의 도덕을 끌어내는 것이다.
6) John G. Gammie, Daniel, 11.
7) 단 1:5-8에 대한 가능한 세 편의 설교(“그렇게 너는 대학에 간다”; “혼자라는 것에 대해”; “경계 너머”)에 대해서는 앞의 책, 14를, 단 1:9-16에 대한 설교(“사순절 전 설교 ‘식사와 성 향’”)에 대해서는 18을, 단 1:17-21에 대한 설교(“지혜의 종류”)에 대해서는 18을 보라.
요소를 확립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그런 다음에 이 단위가 포로로
잡혀 있는 이스라엘에게 전하려는 요점을 찾아내야 한다. 전도서 같은 책에서 주요 문학 단위를 찾아내는 것이 어려운 것과
반대로 다니엘서는 본문의 문학 단위를 찾아내기가 쉽다. 다니엘
1장 1절은 연대 표시로 시작한다.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
워쌌더니”( 단 1:1 ). 21절은 또 다른 연대 표시로 단위를 마친다. “다니
엘은 고레스왕 원년까지 있으니라”( 단 1:21 ). 다니엘 2장 1절은 또 다
른 연대 표시로 새로운 문학적 단위를 시작한다. “느부갓네살이 다
스린 지 이 년이 되는 해에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고……” 그러므로
설교 본문은 다니엘 1장 1-21절로 정해진다.
구약 성경의 맥락을 보면 다니엘 1장은 역대하 36장 6-7절과 연 계된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와서 그[여호야김]를 치고 그
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느부갓네살이 또 여호
와의 전 기구들을 바벨론으로 가져다가 바벨론에 있는 자기 신당에
두었더라.” 다니엘 1장 2절에서 화자는 느부갓네살왕이 하나님 성전
의 그릇을 ‘시날 땅’으로 가져갔다고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을 거역
하고 ‘시날 평지’( 창 11:2 ) 에 정착한 사람들이 바벨탑을 세웠다. 여기
서 이처럼 바벨탑 이야기를 반영하는 것은
), 강제로 포로로 잡혀 왔고( 6절 ), 외
국 이름을 받고( 7절 ), 하나님이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
고( 9절 ), 하나님이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게 하고”( 17절 ), 바벨
론의 ‘통치자’가 되게 하신( 2:48 ) 소년으로 묘사하는 것은 요셉 이야
기를 환기시킨다. 요셉도 용모가 빼어나고( 창 39:6b ), 강제로 포로로
잡혀갔고( 애굽, 창 37:36 ) , 외국 이름을 받았으며( 창 41:45 ) , 주인에게
“은혜를 입었고”( 창 39:4; 41:37 ), 하나님이 꿈을 해석할 능력을 주셨으
며( 창 41:39 ), 애굽의 통치자가 된( 창 41:41-45 ) 소년으로 묘사되었다.
화자는 다니엘을 또 다른 요셉으로 간주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외국 땅에서도 자기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 사용하실 하나님의 자
녀로 묘사한다.8)
다니엘 1장은 다니엘서의 서론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후 장들과
도 많은 연계성을 갖고 있다. 1절은 1-4장에서 주된 역할을 하는 바
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소개한다. 2절은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다”라고 지적한다. 이
정보는 우리에게 5장 3절을 미리 준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5장 3절
에서 우리는 벨사살이 자신이 마련한 잔치에서 이 그릇으로 술을 마
심으로써 이 그릇을 더럽혔다는 내용을 본다. 6절은 다니엘의 저
항( 11절 ) 에 합류하는 세 친구를 소개한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3장에
서 주된 역할을 맡는다. 3장을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는 왕의 신상에
절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맹렬히 타는 풀무 불속에 던져진다. 17절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
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이로 말미암아 다니엘의 세 친
구도 바벨론에서 고관이 되었다( 2:49 ). 17절은 계속해서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라고 말한다. 이것은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하는 2장과 4장에 대해 우리를 미리 준비시
키고, 또 다니엘이 벽에 쓰인 글을 해석하는 5장과 환상을 다루는
7-12장에 대해 우리를 미리 준비시킨다.
8) “다니엘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BC 598년에 첫 번째 포로 사건이 임할 때를 대비해 선발
대로 [BC 604년에] 바벨론으로 보내졌다.” Block, “Preaching Old Testament Apocalyptic,” CTJ 41 (2006) 26.
문학적 특징 화자는 느부갓네살왕이 다니엘과 세 친구가 “온 나라 박수와 술객
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20절 ) 알았다고 말할 때 과장법을 사용한다.
‘십’은 완전수이므로 다니엘과 세 친구는 [바벨론 다른 현자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참고. 3:19의 “칠 배나” ). 우리가 이 이야기와 그 요점을
더 잘 파악하기 위해 살펴볼 주요 문학적 특징은 이야기 구조, 줄거 리, 인물 묘사, 반복이다.
이야기 구조
다니엘 1장의 이야기는 세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9)
장면 1: 예루살렘,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
는 해”( 1:1-2 )
A. 여호와가 느부갓네살에게 예루살렘 함락을 허락
하다( 1:2a )
B.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전 그릇을 바벨론으로 가
져가다( 1:2b )
등장인물: 느부갓네살과 여호와
장면 2: 바벨론: 다니엘과 세 친구가 재교육을 받음( 1:3-17 )
A. 다니엘과 세 친구가 바벨론에 잡혀 오다( 1:3-7
Jacob Licht, Storytelling in the Bible (Jerusalem: Magnes, 1978), 29. 각
장면에 대체로 두 인물만 등장하기는 해도(Robert Alter, The Art of Biblical Narrative [New York: Basic Books, 1985], 72를 보라) 다니엘과 세 친구
B.
다니엘이
왕의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결심하다( 1:8 )
C. 다니엘이 두려움에 떠는 환관장에게 문제를 일으
키다( 1:9-10 )
D. 감독하는 자가 열흘 동안 왕의 음식을 주지 않는
데 동의하다( 1:11-14 )
E. 감독하는 자가 계속 왕의 음식을 주지 않는 데 동 의하다( 1:15-16 )
F. 하나님이 네 소년에게 지혜를 주시다( 1:17 )
등장인물: 다니엘/세 친구와 환관장
장면 3: 3년 후 왕궁: 검증 시간( 1:18-21 )
A. 왕이 다니엘과 세 친구와 면담하다( 1:18-19 )
B. 왕이 다니엘과 세 친구를 자신의 왕궁에 두다( 1:19-21 )
등장인물: 다니엘/세 친구와 왕 줄거리 이야기를 이해하고, 주요 요점( 주제 ) 을 파악하고, 이야기를 설교로
다시 전하려면 줄거리를 식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니엘 1장 이야
기의 문학적 배경은 여호와가 유다 왕 여호야김을 느부갓네살의 권
세에 넘겨주고, 느부갓네살이 하나님 전의 그릇 일부를 바벨론으로
가져가도록 허용하신 것이다( 1-2절 ). 여기서 느부갓네살왕이 똑똑한
소년들을 바벨론으로 데려와 재교육시키고, 결국 왕궁에서 섬기게
하라고 명령한 것은 예비 사건이다. 왕은 그들이 날마다 왕의 음식
과 포도주를 먹도록 정한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이 소년 가운데 일
원이었다. 환관장이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히브리식 이름 대신 바벨
론식 이름을 새로 지어 준다( 3-7절 )
다니엘이 자기를 더럽히지 않도록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으라
는 왕의 명령을 거부하기로 결심한 것은 갈등 유발 사건이다( 8절 ).
이 중대한 시점에서 이야기의 속도가 느려진다. 또한 여기서 “행동
주체가 정부의 활동에서 포로의 결연한 행동으로 바뀐다.”10) 이제
이야기는 포로의 결단에 따라 형성된다. 다니엘을 좋아하면서 왕을
두려워하는 환관장이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해달라는 다니엘의 간청을 거절할 때 긴장이 고조된다( 9-10절 ). 화자
는 10-13절에서 간접 화법 대신 직접 화법을 사용하여 속도를 크게
낮추어서 긴장이 커진다. 다니엘이 자기들을 감독하는 하급 관원에
게 다가가 열흘 동안 왕의 음식과 포도주 대신 채소와 물만 먹게 해
달라고 제안했을 때 긴장은 더 고조된다( 11-13절 ). 감독하는 자는 이 시험에 동의한다( 14절 )
열흘 후에 다니엘과 세 친구가 다른 소년보다 “더욱 아름답고 살
이 더욱 윤택한” 모습을 보이고 감독하는 자가 왕의 음식과 포도주
를 계속 물리치고 채식을 줄 때 긴장이 해소되기
야기는 다니엘이 다른 모든 바벨론 왕들보다 더 오래 살면서 바사
왕 고레스 원년까지 계속 왕궁에 있었다는
끝난다( 21절 )
다니엘 1장의 이야기를
있다.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하나의 플롯으로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절정
14절 감독하는 자가 동의하다 15절 시험이 성공하다
11-13절 열흘간의 시험 16절 채소와 물
10절 환관장이 돕지 않을 것이다 17절 하나님이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
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이스라엘] 소
년”으로 제시한다( 3-4절 ) . 이 네 소년은 다 “유다 [지파의] 자손”
이다( 6절 ). 열흘간의 시험이 끝난 후에 이 네 소년은 다른 소년들
보다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한” 모습이었다( 15절 ).
더구나 하나님은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 왕은 이 네 소년의 “지혜와
총명이” 자기 나라의 다른 현자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알
았다( 20절 ). 다니엘의 성품은 그의 행동으로 더 깊이 드러난다. 곧 다
니엘은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
리라”( 8절 ) 라고 굳게 결심함으로써 자신의 용기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자신의 신실함을 보여 준다.
화자는 환관장을 다니엘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풀고( 9절 ) 왕을
“두려워하는”( 10절 ) 자로 묘사한다. 다니엘의 코셔 요청을 환관장이
거절한 것은 환관장이 왕에 대해 가졌던 두려움을 증명하는 역할을
한다( 10절 ). 화자의 하나님 묘사는 아래 “하나님 중심 해석” 부분에
서 살펴보겠다.
반복 화자는 또 반복을 사용해 어떤 관념을 효과적으로 강조한다. 예를
들어 보자. 2절에서 “‘집’( 3회; 개역개정, ‘전’, ‘신전’, ‘창고’ ) 과 ‘그의
신’( 2회 ) 이라는 단어가 반복되는 것은 이 사건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일으킨 신학적 위기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반복이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분명히 드러나지만
성전의 ‘하나님’에 대한 반대를 부각
한다.”12) 다니엘과 세 친구는 지금 이방 신이 지배하는 땅에 있다.
8절에서도
12)
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나아가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7절과
8절 모두 같은 동사 형태 야셈 ( ‘그가 두었다’/‘정했다’ ) 으로 절이 시작 된다.”13) 이것은 다니엘이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 8절 ) 이 환관장이 다니엘이라는 히브리 이름을 벨드사살( “벨[바벨
론의 최고 신 마르둑]이여 그의 생명을 보호하소서”, 7절 ) 이라는 바벨론 이름
으로 바꾼 것에 대한 직접적인 반발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벨드사살’이 아니라 참 이스라엘 사람 ‘다니엘’( “하나님이 나
의 심판자이시다” ) 이 되기를 원한다.
화자가 열흘간 채소와 물을 먹는 시험을 세 번이나 언급한 것( 12, 14, 15절 ) 은 다니엘과 세 친구가 불과 열흘 만에 다른 소년보다 더 좋
은 모습을 보여 준 일이 기적임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주목
할 것은 화자가 “주/하나님이 주셨다”( 나탄, 2, 9, 17절. 아래에서 “하나님
중심 해석” 부분을 보라 ) 라는 말을 세 번 반복한 것이다.
반복은 또 인클루지오( A-A’ ), 평행법( A-B; A’-B’ ), 역평행법( A-B; B’
-A’ ), 교차 대구법( 예. ABCB’A’ ) 같은 복합적인 문학 구조에 주의할 것
을 알려 준다. 골딩게이는 화자가 다니엘 1장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
이 내적 교차 대구를 가진 종합적 교차 대구 구조( C1,2, C’2,1 ) 로 제시
한다고 주장한다.
A 바벨론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패배시키다( 1-2절 )
B 소년들이 훈련을 위해 붙잡혀
1 자기를 더럽히는 일을 피하다( 16절 )
B’ 소년들이 훈련에서 승리하다( 17-20절 )
A’ 다니엘이 바벨론 사람보다 오래 살다( 21절 )
이 교차 대구 구조의 중앙( CC’ ) 은 다니엘이 더러움을 어떻게 피하는
지와 관련되어 있어서 설교자들은 예를 들어 예측할 수 있는 적용( 다
니엘을 본받아라! ) 과 함께 다니엘의 용기 있는 성품에 철저히 초점을 맞
춤으로써 이 이야기를 인간 중심적으로 이해하고 설교하고 싶은 유
혹을 받을 수 있다.14) 그러나 골딩게이는 다음과 같이 정확히 지적 한다. “이 이야기가 인간 참여자의 결단과 행동으로 지배되기는 해
도……각각의 이중 배치[AB, CC’, B’A’]는 하나님의 행동을 한 번
언급하고, 언급할 때마다 ‘주다/만들다’를 의미하는 나탄 동사를 사
용한다[2, 9, 17절].”15)
하나님 중심 해석
다니엘 1장 본문을 공정하게 다루고, 수평적인 인간 중심적 해석
과 설교를 피하려면 다음을 질문해야 한다.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하나님은 무슨 일을 행하시는가? 하나님은 때때 로 에스더서처럼 무대 뒤에서 조용히 역사하신다. 그러나 다니엘
1장의 이야기에서 화자는 주권적인 하나님이 인간 역사에 적극적으
로 관여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화자는 세 주요 지점에서 “주/하
나님이 주셨다”( 나탄
이 이야기의 배경을 보면 화자는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를
그[느부갓네살]의
느부갓네살은
손에 넘기시매”라는
강했지만
사실을 알려 준다( 2절, NASB ).
유다를 바벨론의 손에 주신 이는 만군의 소
유자이신 주( 아도나이 ) 였다. 자신이 포로임을 깨달은 다니엘에 대해
긴장이 높아질 때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
휼을 얻게 하신지라[주셨다]”( 9절 ). 옛날에 하나님이 요셉에게 “간수
장에게 은혜”를 얻게 하신 것처럼( 창 39:21 ) 16) 여기서도 다니엘에게
환관장의 호의를 주신다. 이 좋은 관계 덕분에 다니엘은 처벌을 두
려워하지 않고 코셔를 요청한다. 유감스럽게도 왕을 두려워하는 환
관장이 다니엘의 요청을 거부한다. 하지만 환관장 밑에 있던 감독하
는 자가 열흘 동안의 시험에 동의한다. 그럴지라도 겨우 열흘이 지
난 상황에 간단한 식단이 무슨 차이를 만들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무대 뒤에서 조용히 이 시험에 복을 베풀고, 그 결과 불과 열흘 만에
다니엘과 세 친구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살찐 모습을 보여 주었다.
마지막으로 긴장이 해소될 때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문헌과 지
혜의 모든 측면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주셨고”( 17절 ), 그리하여 그들
은 왕궁에 배치되었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이 없었다
면 이야기는 더 이상 전개될 수 없었을 것이다. 롱맨의 주장이 타당
하다. “이야기가 표면적으로는 인간 인물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다니엘 1장은 주로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해 가르칠 의도를
갖고 있다.”17)
16) Seow, Daniel, 27은 “‘은혜와 인자’에 대한 언급은 간수장의 호의가 아니라 간수장 앞에서
‘은혜와 인자’를 가리킨다”라고 주장한다.
17) Longman, Daniel, 56; 참고. Seow, Daniel, 21, “다니엘 1장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자유에 대해 말하고, 의롭고 신실한 인간 행동의 본보기는 부차적일 뿐이다.”
본문의 주제와 목표
이상의 통찰을 활용하면 이제 다니엘 1장의 이야기 주제를 작성할
수 있다. 다니엘 1장의 이야기 배경, 긴장의 고조, 해결 부분에서 “하
나님이 주셨다”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오는 것은 하나님이 주제의 주
체라는 점을 암시한다. 롱맨은 “하나님의 주권은 아무리 강력한 인
간 통치자라도 그 인간의 권세를 크게 능가한다”라는 것을 다니엘
1장 이야기의 주제로 제안한다. 물론 이것도 좋은 주제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롱맨도 자신이 이것을 “다니엘서의 주요 관심사”라고 부를
때 깨닫는 것처럼 너무 일반적이다.18) 스타인만도 비슷한 주제를 제
안한다. “하나님은 인간 가운데 일어나는 만사를 통제하신다.”19) 이
것 역시 좋은 주제다. 하지만 이것도 너무 일반적이다. 이것은 수 많
은 성경 본문의 주제로 쓸 수 있을 정도다. 특별히 이 본문에 맞는 주
제가 아니다.
다른 각도에서 줄거리를 보면 이 특수한 이야기의 요점을 식별하
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에게 이스라엘( 유다 ) 을
지배할 권세를 주시기 때문에 다니엘과 세 친구는 재교육을 받고 바
벨론 왕궁을 섬기기 위해 바벨론으로 붙잡혀 간다. 그러나 다니엘은
왕의 음식으로 자기를 더럽히기를 거부한다. 다니엘은 인간 왕이 아
니라 자기 하나님에게 순종한다. 하나님은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호
의를 베풀도록 역사하심으로써 다니엘과 세 친구가 스스로를 더럽
히지 않는 길을 찾게 하신다. 하나님은 또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지
식과 모든 학문과
18) Longman, Daniel, 46. 강조 표시는 내가 한 것이다.
19) Steinmann, Daniel, 77.
다니엘과 세 친구를 선택한다. 본문의 구체적인 주제는 다음과 같이
작성할 수 있다. “주권적인 여호와가 신실한 다니엘과 세 친구를 바
벨론에서 권세 있는 지위를 갖도록 이끄신다.” 이것은 다니엘 1장의
이야기를 충분히 요약한다. 그럴지라도 다니엘 1장의 메시지를 제대
로 포착한 것은 아니다. 포로들은 다니엘 1장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들었을까? 우리 자신이 이처럼 고통받는 포로의 곤경 속에
있다고 상상하면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듣게 된다. 신
실한 다니엘과 세 친구를 바벨론에서 권세 있는 지위로 이끄신 주권
적인 여호와가 포로 상태에서도 신실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실 것 이다.20)
여기서 질문은 다니엘서가 왜 이 메시지를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
하느냐는 것이다. 다니엘서의 목표 또는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화자
의 일차 목표는 주제에 맞게 주권적인 여호와가 포로 상태에서도 신
실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실 것이라는 메시지로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
하는 것이다.21) 그러나 화자는 여기서 부수적 목표도 염두에 두었을
수 있다. 화자는 다니엘과 세 친구를 그들이 약속의 땅에서 아주 멀
리 떠나 있을 때도 하나님에게 신실한, 곧 자기들이 먹는 음식과 관
련해 하나님에게 신실한( 1장 ), 우상 앞에 절하지 않고 숭배하지 않음
으로써 하나님에게 신실한( 3장 ), 매일 기도와 관련해 하나님에게 신
실한( 6장 ) 참 이스라엘 사람으로 제시한다. 요약하면 다니엘과 세 친
구는 포로 상태에서도 하나님의 법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에게 계
20) 참고. Seow, Daniel, 30, “이 이야기는 통상적인 능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심지어는 고난
속에서도, 심지어는 무력함의 징조 속에서도, 심지어는 사망의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의 다 양한 주심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승리 이야기다.”
21) 참고. Longman, Daniel, 56, “여기서와 다니엘서 다른 곳에서 미묘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주권은 하나님 백성을 위로하는 것을 목표로 의도했다. 그들의 제한된 인
간적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자기들이 단순히 적대 세력의 손에 붙잡혀 있다고 생각한다. 다
니엘 1장은 그들에게 신적 주권의 실재를 지적함으로써 잘못되었지만 이해할 수 있는 그들 의 인식을 제거한다.”
속 신실했다. 화자는 포로로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니엘과 세
친구와 동일화되기를 바란다. 말하자면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피함
으로써 그들의 모든 행동을 모방하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22) 참 이
스라엘 사람은 포로 상태에서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에 신실하다
는 점을 배운다는 의미에서 그들이 다니엘과 세 친구와 동일화되기
를 바란다.23) 그러므로 화자의 부수적 목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포
로 상태에서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에 신실하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법
여기서는 설교할 때 이 구약 이야기에서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로
나아가는 가능한 방법을 살펴보겠다. 보통 이렇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본문의 주제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확대하는 것이다. 다니엘
1장에는 메시아의 오심에 대한 약속이 들어 있지 않고, 또는 신약 성 경과의 중대한 대조점도 없으므로 그리스도에게 나아가기 위한 나
머지 다섯 가지 방법 곧 구속사의 진행, 모형론, 유비, 통시적 주제, 신약 성경의 언급을 차례로 살펴보겠다.
구속사의 진행
구속사의 진행은 신약 성경의 예수에게 직접 나아가는 방법을 제
공한다. 다니엘 1장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강조한다. 주가 여호야
김을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겨]주셨다 ( 2절 ).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포로 상태에 있을 때도 그들에게 계속 개입하셨다. 하나님은
22) 예컨대 Collins, Daniel, 145를 보라. “이 이야기는 특수한 실천적 목표를 갖고 있다. 곧 디
아스포라 유대인에게 주변 문화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음식으로 자기를 더럽히
는 일을 피하도록 권고하는 것이다.”
23) 피상적인 성품-모방 설교와 성경 인물과의 동일화 설교 사이의 차이, 그리고 후자 설교를
사용할 때 조심할 것에 대해서는 나의 책 Modern Preacher, 175-181을 보라.
다니엘에게 환관장의 은혜를 주셨다 ( 9절 ). “하나님은
지식과 기술을
주셨다”( 17절 ). 하나님은 인간 역사 속에 들어와 자기 백성에게 심지
어는 그들이 포로로 있을 때도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심으로써
자기 백성을 인도하고 보호하고 구원하신다.
하나님은 때가 되자 모든 선물 가운데 가장 보배로운 선물을 주
셨다. “하나님이……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
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 마태복음 1장은 아 브라함에서 다윗까지 14대( 14는 ‘다윗’이라는 이름의 히브리어 수다 ), 다윗
에서 포로까지 14대, 포로에서 예수 그리스도까지 14대에 걸친 계보
를 제시함으로써 구속사의 이런 진행을 강조한다.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
까지 열네 대더라”( 마 1:17 ). 예수는 또 다른 다윗왕이다. 예수는 하나
님의 백성을 세상의 포로 상태에서 구원하고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태어나신 메시아 왕이다. 예수는 대제사장 기도에
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간구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
지 아니함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
옵나이다”( 요 17:14, 16 ).
오늘날 땅의 하나님 백성은 여전히 에덴의
모형론
모형론도 다니엘서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시하기( 미리 지시하기 ) 때
문에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이어서 나오는 다니엘
과 예수 사이의 유비와 단계적 상승도 주목하라. 주권적인 주가 다
니엘이 약속의 땅에서 사악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도록 허용하
신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는 자신의 독생자를 하늘에서 이 사악한 세
상으로 보내셨다( 요 3:16 ). 다니엘이 참 이스라엘 사람이었던 것처럼
예수도 참 이스라엘 사람 곧 참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음식 및 포도주와 관련해 하나님에게 순종했다. 예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에게 순종하셨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셨다. 하나님은 예수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셨다(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눅 2:47 ). 하나님은 다니엘을 바벨론
에서 큰 권세의 자리로 이끄셨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를 훨씬
큰 권세의 자리로 이끄셨다.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
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다니엘 1장이 주권적인 주가 자기 백성을 포로 상태에서도 인도하
실 것이라는 메시지로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는 것처럼 예수도 자
기를 따르는 자를 다음과 같이 위로하신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
니라”( 눅 12:32 ).
통시적 주제
우리는 또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약에서 신약으로 이끄시는 주
제도 통시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 먼저 하나님이 후세에 바벨론이
된 “갈대아 우르”에서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내신 아브라함으로 시
작할 수 있다. 그다음에는 하나님이 약속의 땅에서 ( 역시 후세에 바벨론
에 속한 ) 하란으로 인도했다 다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야곱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다음에는 다니엘같이 강제로 포로로 잡혀갔지만
역시 하나님이 큰 지혜와 꿈을 해석할 권능을 주셔서 바로 다음으로
2인자의 지위를 차지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기근에서 구원할 수 있
었던 요셉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요셉은 애굽에서 죽었으나 이스라엘
자손에게 약속의 땅에 묻어 달라고 당부했다. “하나님이 반드시 당
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창 50:25 ). 세월이 흐르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의 포로에
서 구원하셨고 이스라엘은 요셉의 유골을 약속의 땅에 매장하기 위
해 가지고 갔다( 출 13:19; 수 24:32 ).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사 시대, 왕정 시대, 포로 시대, 남은 자의 귀환을 거쳐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
지 인도하셨다. 예수는 땅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자기 교회를 세우셨
을 때 자기 교회를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예수는 “내가 세상
수 있기 때문이다. 폭넓게 훌쩍훌쩍 건너뛰는 것이 종종 길고 긴 여
정을 통해 성경 전체를 통찰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신약 성경의 언급
『헬라어 신약 성경』( NA27 ) 부록을 보면 요한복음 3장 35절을 다니
엘 1장 2절의 인유로, 요한계시록 2장 10절을 다니엘 1장 12, 14절
의 “열흘 동안”의 인유로 제시한다. 이 제시는 어느 것도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성구 사전에서 ‘하나님의 섭리’ 항
목을 보면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을
확인하게 된다. 예를 들어 보자. 예수는 이렇게 가르치셨다. “참새 다
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
새보다 더 귀하니라”( 눅 12:6-7 ). 대제사장 기도에서는 이렇게 간구하 셨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예수
를 따르는 자들]을 보전하사……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지금 내
가 아버지께로 가오니……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
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
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28-29 )
설교의 주제, 목표, 필요성
신약 성경을 특히 본문의 주제와 연관시켜 점검해 보았으므로 이 제 설교의 주제와 목표를 작성할 준비가 되었다. 구속사와 계시의
진행으로 말미암아 설교의 주제는 항상 본문의 주제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하지만 간혹 본문의 주제와 다를 수 있다. 우리는 다니엘 1장
의 본문 주제를 다음과 같이 작성했다. “신실한 다니엘과 세 친구를
바벨론에서 권세 있는 지위로 이끄신 주권적인 여호와가 포로 상태
에서도 신실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실 것이다.” 신약 성경은 이 메시
지를 바꾸지 않으므로 본문의 주제를 한 어구를 제외하고 설교의 주
제로 삼을 수 있다. “포로 상태에서도”라는 어구는 몇 가지 질문을
일으킨다. 교회는 오늘날 이스라엘처럼 “포로 상태에” 있는가? 우리
는 위에서 바울이 하나님의 백성은 죄로 얼룩진 악한 세상에 살기
때문에 포로 상태에 있다고 가르치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의 시민
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빌 3:20 ). 베드로도 신약 시대 교회를 “흩어진
나그네”로 부른다( 벧전 1:1; 참고. 약 1:1 ). 그러므로 설교 주제에서 “포로
상태에서”라는 말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포로’라는 말이
교인에게 명확하지 않을 수 있고 주제는 수정처럼 명확해야 하므로
‘포로 상태에서’라는 말을 ‘세상에서’로 바꿀 것이다. 또 다른
은 하나님이 세상에서( ‘세상에서도’ ) 교회를 인도하시는 것이 놀라운
서도’에서 ‘도’라는 말을 뺄 수 있다. 그렇다면 설교의 주제는 다음
과 같이 된다. 신실한 다니엘과 세 친구를 바벨론에서 권세 있는 지위 로 이끄신 주권적인 여호와가 세상에서 신실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실
것이다.
앞에서 다니엘서 저자가 자신의 메시지에 대해 두 가지 목표를 가
졌을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일차 목표는 “주권적인 여호와가 포로
상태에서도 신실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실 것이라는 메시지로 하나
님의 백성을 위로하는 것”이다. 부수적 목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포로 상태에서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에 신실하라고 권고하는 것”
이다. 다니엘 1장 이야기 설교도 오늘날 교회에 대해 똑같이 두 가지
목표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포로 상태에서도’라는 말을 ‘세상에
서’라는 말로 다시 바꿔야 한다. 이 설교를 전할 때 갖는 이중 목표24)
는 다음과 같다. 주권적인 여호와가 세상에서 신실한 자기 백성을 인
도하실 것이라는 메시지로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는 것과 그들에게
하나님에게 신실하라고 권고하는 것.
물론 이중 목표를 갖고 설교의 초점과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이 단
일 목표를 가질 때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그렇더라도 성경 저자가
이중 목표를 염두엔 둔 것으로 보인다면 이중 목표를 갖고 통일된
설교를 전하는 것에 도전해야 한다. 어쨌든 이 이중 목표는 설교가
전해야 할 교인의 이중적 필요성을 암시한다. 이 세상에서 겪거나
목격하는 박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악한 세력을 진실로 다스리고 계신지 의문을 품고 하나님의 법에서
멀어지고 싶은 유혹을 받기 쉽다.
통일된 설교를 위해서는 설교가 하나의 주제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이중 목표(적용)도 성
저자의 목표가 그것을 보증하면 확실히 가능하다.
설교 강해
설교의 서론은 그들 자신이나 다른 그리스도인이 받는 박해에 너
무 충격을 받아 사랑의 하나님이 과연 현존하시는지 의심하기 시작
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상실하며 세속적 삶의 방식을 따라 살기
시작한 사람을 예화로 들며 이 설교의 적합성을 드러낼 수 있다.25)
예를 들어 보자. 많은 사람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잔혹 행위 때문
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한다. 수백만 명의 유대
인과 함께 많은 그리스도인이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죽었다. 따라서
박해가 닥치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잃어버릴 수 있는지 물어보라.
국가가 주도적으로 교회를 공격하거나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는 이
유로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하나님 백성
의 박해에 초점을 맞추면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주권적인 하나님
을 믿는 믿음을 잃어버리기 쉽다.
확실히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의 작은 나라가 바벨론 군대에
게 멸망당하고 백성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잃 어버리기 쉬웠다.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 번의 파고를 거치며
포로로 붙잡혀 갔다. 첫째, BC 605년에 바벨론 사람들은 다니엘과
세 친구를 포함해 귀족 소년들을 데려갔다( 단 1:1-6 ). 둘째, 8년 뒤에 바벨론 사람들은 엘리트 집단에 속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대규모로
데려갔다. 이때 여호야긴왕, 왕족, 귀족, 용사, 장인, 대장장이가 붙잡
혀 갔다( 왕하 24:10-17 ). 셋째, 마지막으로 BC 587년에 바벨론 사람들
은 비천한 자를 제외하고 남은 사람을 모두 데려갔다. 이때 바벨론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벽을 허물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불태
웠다( 왕하 25:1-21 ). 그때 하나님은 어디 계셨는가? 자신의 성읍과 성
25) 적합한 서론의 다른 대안에 대해서는 이 책 부록 3에서 라이언 페이버의 설교를 보라.
전을 보호할 힘이 없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바벨론의 신들
이 이스라엘의 하나님보다 훨씬 강한 것처럼 보였다.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는 믿음을 잃어버리
기가 쉬웠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
서 나를 잊으셨다”( 사 49:14 ) 라고 불평한 사실을 기록한다. 어찌 바벨
론의 위대한 신 마르둑을 섬기지 않겠는가? 다니엘서는 이처럼 비참
하고 흔들리는 상황에 있던 포로들에게 주어진다.
1-2절을 보라.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26)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주
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
시매 그가 그것 27)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여기서 저자는 ‘시날 땅’이라는
말을 사용해 창세기 11장을 환기한다. 창세기 11장을 보면 ‘시날 평
지’에 정착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바벨탑을 세운다. 그러므
로 우리는 처음부터 바벨론이 악한 지역 곧 흑암의 나라였음을 상기
하게 된다. 바벨론 지역 사람들은 교만하고 반항적인 사람들로 하나
님과 하나님 백성의 원수다.28)
더 나아가 2절이 느부갓네살의 권세에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
김……를 넘기시매”라고 말하는 것도 주목하라. 현대 역사가는 유다
26) “바벨론 왕(히브리어 본문을 직역하면 ‘바벨의 왕’) 느부갓네살은 기를 쓰고 하나님을 모욕 한다. 느부갓네살은 바벨에서 예루살렘을 침략해 하나님 집의 거룩한 그릇을 가져간다. 바
벨론의 군사력이 하나님의 능력에 감히 도전한다.” Seow, Daniel, 23.
27) 여기서 “그것”은 여호야김과 성전 그릇을 다 가리키는 것 같다(참고. 대하 36:6-7). 여호야
김은 바벨론에 붙잡혀 가고, 아마 느부갓네살에게 충성을 맹세했을지라도 곧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바벨론의 봉신 왕으로 재임했을 것이다(참고. 왕하 24:1). Steinmann, Daniel, 84를 보라.
28) “현대 이라크 남동부 바벨론을 가리키는 말로 시날은 구약 시대 고어다……이 명칭은 특히
거짓 종교, 아집, 자기 확대가 충만한 곳을 암시한다(창 11:1-9; 슥 5:11).” Goldingay, Daniel, 15; 참고. Porteous, Daniel, 27. “처음부터……위험 가운데 들어 있는 것으로 말
할 유다 포로의 환경은 믿음에 반하는 요소를 담고 있음이 암시된다.”
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에게 패배해 멸망당한 것이라고 말할 것
이다. 바벨론 제사장은 바벨론의 강력한 신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을 압도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 1장 본문은 유다의 비극
에 대해 전연 다른 관점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주께서 느부갓네살
의 권세에 유다 왕 여호야김을 넘기셨다. 2절은 직역하면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을 느부갓네살에게 주셨다”다. 여기서 “주”로 옮긴
히브리어 단어는 아도나이로, 이 단어는 “하나님의 소유권, 하나님의
통제권을 강조한다.”29) 따라서 처음부터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주가
만물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주권적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바벨론의 신은 어림도 없다.30)
그렇다면 주권적인 주가 왜 자신의 참된 백성에게 이런 재앙이 일
어나도록 하셨을까? 다니엘 9장에서 답변을 확인한다. 다니엘은 기
도를 통해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
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
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
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단 9:11 ). 31) 이스라엘
의 계속된 불순종이 하나님이 유다를 바벨론의 권세에 넘기신
31) 불순종에 대한 언약 저주는 신 28:15-68을 보라; 참고. 렘 21:1-7; 25:8-14.
32)
두었더라”33)라는 말씀을 본다. 이처럼 하나님의 성전에서 금과 은으
로 된 그릇을 가져간 것은 “느부갓네살과 그의 신이 이스라엘 왕과
그의 신에 대해 승리했음을 입증하는 표지였다. 전쟁은 신의 이름으
로 치러졌고, 따라서 약탈은 신에게 속해 있었다.”34)
3-4절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본다.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
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곧 흠이 없
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
에 익숙하여35)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
대아 사람36)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이 소년들은 엄선
된 자였다. 이 소년들은 상류층 출신으로 쉽게 재교육시킬 수 있고
좋은 신체 조건을 갖고 있어 교육을 잘 받아들였으며 “지식에 통달
하며 학문에 익숙한” 즉 지능 지수가 높은 십대 청소년이었다. 이 소
년들은 모든 수업에서 1등을 하고 모든 운동의 대표 선수로 뽑히는
수준이었다. 이 소년들은 바벨론으로 붙잡혀 와 여기서 갈대아 사람
의 학문과 언어를 배웠다. 다시 말하면 이 소년들은 바벨론 방식과
언어로 재교육을 받았다.37) 이 소년들은 ‘재설계되었다.’ 느부갓네살
33) “이 행위는 고대 근동의 통상적 관습을 반영한다. 승리한 군대는 패전국의 신전을 약탈하고
패배한 신의 상징물을 가져가 자기들의 신전에 두었다.” Longman, Daniel, 47. 34) Goldingay, Daniel, 15. 골딩게이는 나아가 이렇게 지적한다. “많은 그릇이 귀한 금속으로
만들어졌고……가치 있는 약탈물이었다……이 그릇들은 또 예루살렘 성전에서 신상 가장
가까운 곳에 둠으로써 종교적 중요성이 크다.” 앞의 책. 참고. Smith-Christopher, “Book of Daniel,” 38. “바벨론 사람들은 바벨론 제국 산당의 바벨론 신들 ‘아래’ 약탈한 종교적
상징물을 두는 것, 그리하여 정복당한 사람과 신을 사로잡았음을 상징하는 일의 선전 가치
를 잘 알고 있었다.”
35) “지성적 능력을 가리키는 이 세 표현(지혜/지식/학문)은……인간 지성의 특징적 요소를 표
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 ‘특출한 학습자’를 가리키는 말의 동의어로 간주해야 할 것
이다(참고. Miller, Daniel, 61). 이 삼중 표현의 누적 효과는 느부갓네살왕이 본래적인 지
적 능력을 강조했다는 것을 부각할 뿐이다.” Hill, “Daniel,” 50.
36) 칼두 곧 갈대아 사람은 느부갓네살의 부친 나보폴라살이 차지했던 바벨론 남부 출신 사람
들을 가리켰다. 따라서 그들은 포로 기간에 바벨론에서 지배 계급이었다. 그러나 구약 성경
에서 갈대아 사람은 일관되게 바벨론 사람 전체를 가리킨다.
37) “아마 매우 복잡한 설형문자 자체 및 바벨론 종교에 특유한 신성한 신화와 의식과 징조와
함께 신성한 수메르 언어가 여기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Porteous, Daniel, 27.
은 이들 이스라엘 십대 소년을 세뇌해서 바벨론 현자로 만들고자
했다. 느부갓네살왕이 똑똑한 이스라엘 소년들을 바벨론으로 데려온 것
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최고 지성을 바벨
론 왕궁에 두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이제는 바벨론에 예
속되어 있음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유다에서 반역이 일어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38)
5절은 이렇게 덧붙인다.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
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이것은 왕이 이 유다
소년들을 애지중지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왕은 이 소년들이 하
나님이 주신 식단을 버리게 하고 싶었다. 이 소년들은 먹고 마시는
것조차 바벨론 사람이 되어야 했다.39) 이 소년들은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바벨론 사람이 되어야 했다. 5절과 6절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40)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 그들 가운데는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
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소년이 이 재교육 프로
그램을 위해 붙잡혀 갔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유다 지파
출신인 이 네 소년이 있었다.
네 소년은 경건한 부모가 자기 자녀에게 의미를 담아 지어 준 아
름다운 히브리 이름을 가졌다. 이 네 소년의 이름은 이스라엘의 하
나님 여호와를 증언한다. 다니엘은 “엘 ( 하나님 ) 은 나의 심판자이
시다”를 의미한다. 하나냐는 “야 ( 여호와 ) 는 은혜로우셨다”를 의미
38) Baldwin, Daniel, 79; Goldingay, Daniel, 15를 보라.
39) “이 오래된 유대인 음식 규정은 조상이 물려준 다른 모든 관습 및 관행과 함께 폐기해야
했다. 이 소년들을 자기 민족과 이어 주었던 마지막 끈을 잘라 내야 했고, 따라서 정해진 음
식 규정도 폐지해야 했다.” Veldkamp, Dreams and Dictators, 12.
“일부 고대 바사와 헬라 자료에 따르면 [삼 년은] 대체로 14세에 시작해 16세나 17세까지 계속되는 정규 고등 교육 기간이었다.” Seow, Daniel, 24.
한다. 미사엘은 “누가 엘 ( 하나님 ) 과 같은가?”를 의미한다. 아사랴는
“야 ( 여호와 ) 가 도우셨다”를 의미한다.41)
유감스럽게도 환관장이 행한 첫 번째 일은 이 아름다운 이름을 다
른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네 소년은 자기들의 과거와 자기들의 하
나님과 단절해야 한다.42) 네 소년의 정체성은 이스라엘 소년에서 바
벨론 현자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환관장은 그들의 아름다운 히브
리 이름을 바벨론의 신과 관련된 의미를 담은 바벨론 이름으로 대체 한다. 7절을 보라.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
이라 하고.” 벨드사살은 “벨이여 그의 생명을 보호하소서”를 의미
한다. 여기서 벨은 ‘주’를 의미하고, 바벨론의 최고 신 마르둑을 가리
킨다.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사드락은 달의 신 ‘아쿠의 명령’
또는 최고 신 ‘마르둑의 명령’을 의미한다.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 고.” 메삭은 ‘누가 아쿠와 같은가?’를 의미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으로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아벳느고는 바벨론의 지혜와
농사의 신 ‘느고의 종’을 의미한다.43)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대신 이제부터 네 소년은 바벨론과 바벨론의 신을 섬겨야 한다.
8절은 이렇게 말한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
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41) 다음 자료를 보라. Leupold, Exposition of Daniel, 64; Goldingay, Daniel, 17; Steinmann, Daniel, 88.
42) 참고. Calvin, Commentaries on Daniel, I, 96, “이렇게 이름을 바꾼 것은 그들의 마음 속
에서 유다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기 위해서였다.”
43) Steinmann, Daniel, 88-89. 또 Collins, Daniel, 141; Miller, Daniel, 65-66도 보라. Steinmann, 앞의 책, 92는 이렇게 지적한다. “네 소년이 새로 받은 이름은 아마 바벨론 만
신전의 신을 공경하는 바벨론 신명(神名)을 개악한 형태의 이름일 것이다……각 이름 속에
들어간 신명에는 하나 이상의 자음 추가, 삭제, 변경으로 일어난 개악된 이름이 담겨 있다.”
스타인만은 다니엘서는 “이 네 소년이 그들의 하나님 대신 이교 신과 연관된 이름을 갖는
것을 개인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라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해 일부러 이름을 개악했을 것 이라고 추측한다.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포로들 속에서 저항이 일어난다.
다니엘은 강제로 바벨론까지 붙잡혀 왔다. 또 다니엘은 그것이 훌륭
한 바벨론 사람이 되는 첫 번째 단계임을 깨달았겠지만 이름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게 되었을 때 다니
엘은 저항한다.44) 다니엘은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로 결심한다. 화자
는 다니엘이 이에 대해 매우 진지하다는 점을 암시하기 위해 8절에
서 다니엘이 “자기를 더럽히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두 번 반복한다.
왕의 음식과 포도주가 왜 다니엘을 더럽히는가? 45) “더럽히다”( 가
알 ) 라는 말은 제사 용어 곧 종교 언어다. 자기를 더럽히는 자는 “부
정하게 된다”, 곧 거룩하지 못하게 된다. 자기를 더럽히는 자는 더
이상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속에 들어가지 못한다. 따라서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첫 번째 사실은 이 왕의 음식이 코셔가 아니었다
는 점이다. 왕의 음식에는 돼지고기 등 금지된 음식이 있었을 것
이다. 심지어는 하나님이 먹도록 허용하신 짐승의 고기도 그 짐승이
피를 제대로 빼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적절히 도살된 것이 아니
었다.46) 하나님의 율법에 따르면47) 이스라엘 사람은 이런 고기를 먹
으면 부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다니엘이 왕의 포도주를
거부한 것을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포도주는 나실인을 제외하고 모
든 이스라엘 사람이 먹는 코셔였기 때문이다( 민 6:3 ).
다니엘이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거부해야 했던 두 번째 이유가
44) 다니엘과 세 친구의 개명은 “그들이 훌륭한 바벨론 사람이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의미가 있었다. 이 시점에서 다니엘은 7절과 8절에 처음 나오는 동사가 암시하는 것처럼
어떤 자세를 취하기로 결심한다. 환관장은 이들 유다 소년에게 바벨론 이름을 ‘두었고’(바
야셈), 다니엘은 이에 대한 반발로 다니엘은 자신의 마음속에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지 않겠다는 결심을 ‘두었다’(바야셈).” Lucas, Daniel, 57-58.
45)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한 고찰은 Goldingay, Daniel, 18-19와 Steinmann, Daniel, 99를 보라.
46) “바벨론에서는 식용으로 짐승을 도살할 때 피를 빼내지 않았고, 그래서 피로 더럽혀지는 일 을 사실상 피할 수 없었다.” Stefanovic, Daniel, 62.
47) 레위기 11장; 17:10-14; 신 12:23-25; 14:3-21을 보라.
있다. 보통 왕의 식탁에 놓인 고기와 포도주의 일부는 먼저 바벨론
신에게 바쳤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음식을 먹는 것은 간접적으
로 바벨론 신을 숭배하는 행위가 되었다.”48) 다니엘이 왕의 음식을
먹지 않고 왕의 포도주를 마시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것은 바벨론
신에게 반대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편에 서는 일이다.49) 이것은 바
벨론에서 무척 위험한 태도다. 다니엘은 이로 말미암아 처형당할 수
도 있다. 4백 년 후에 안티오코스 4세 치하에 많은 유다 사람이 부정
한 음식을 먹지 않고 거부한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당시 나온
마카베오1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이에 꺾이지 않고 부정
한 것을 먹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이스라엘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
은 부정한 음식을 먹어서 몸을 더럽히거나 거룩한 계약을 모독하느
니 차라리 죽음을 달게 받기로 결심하였고, 사실 그들은 그렇게 죽 어갔다.”50)
그런데도 다니엘은 위험한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용기 있게 “자
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당부한다. 환관장이 이 저항
을 왕에게 보고한다면 다니엘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9절
을 보라.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
게 하신지라.” 하나님은 앞서
48) Miller, Daniel, 67, 다음을 참고. L. Wood, A Commentary to Daniel (Grand Rapids: Zondervan, 1973), 37; 참고. Archer, “Daniel,” 33-34, “아마 식단에 있는 대부분의 고
기가 바벨론의 수호신(예. 마르둑, 느보, 이슈타르)에게 바쳐진 제물에서 가져왔을 것이고, 의심할 것 없이 왕의 식탁의 포도주(5절)는 이 신들에게 바친 헌주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본질상 부정한 것이 아닌 이런 음식과 포도주도 이교 제사 용도로 사용되어 더럽혀진 것
이다.”
49) Lucas, Daniel, 54-55.
50) 공동번역개정판 마카베오1서 1:62-63; 참고. 마카베오2서 7장. 이 본문을 보면 일곱 형제
와 그들의 어머니가 “율법이 금하는 돼지고기” 먹기를 거부함으로써 차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