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하나님이 우리와 닮은 점 10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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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질문하기

만일 당신이 “내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 보라. 인생의 궤적을 바라보며 내가 과연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아니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길을 가고

있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면 이 책을 계속 읽어 보라. 이 책을 다

읽었을 즈음에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다시는 의심할 필요가 없

길 바란다.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과거에 질문했던 방식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이 질문은 특별히 기독교적인 사색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한 번도 불러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답을 찾는 데

관심이 없다. 이 질문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 내가 모든 선 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앞으로 나아갈 길은 넓지 않고 좁다

는 신자의 인식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내 삶에 대한 뜻을 갖고 계시

며, 우리는 우리 인간이 보기에 옳아 보이는 길을 따라가려다 실패

한 역사를 바탕으로 그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분별하는 일은 까다롭다. 그리스도를 떠났던 우리

의 삶이 어땠는지 되돌아볼 때, 우리는 우리가 내렸던 잘못된 결정

과 그에 따른 결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시간과 돈과 노

력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우리 눈앞에서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흘러가지만, 우리를 웃게 하는 대신 “다시는 안 되지”라고 속삭이게

한다. 믿음을 갖기 전에 우리는 어두워진 마음에 옳다고 느껴지거

나 합리적으로 보이는 일을 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의 감정

이 우리를 속이고 이기적인 논리가 우리를 배신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말라. 이제 우리에겐 하나님과 연결된 직통

전화가 있다. 하나님께 무엇을 해야 할지 여쭈어 보기만 하면 된다.

의도하지 않아도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주로 더 나은 의사

결정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게 된다. 하나님을 마치 우리의 질문

에 답해 주시는 인생 문제 상담사, 관계와 상황에 대한 가장 어려운

질문에 답해 주시는 친절한 칼럼니스트로 잘못 이해할 수 있다. 우

리는 우리의 판단력을 믿지 못하므로 누구와 결혼해야 할지,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하나님께 묻는다.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어느 동네로 이사 가야 할지 여쭤 보기도 한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요? 주님,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게 해 주세요. 좁은 길로 인도해 주

세요.”

이런 질문은 하나님께 여쭙기에 끔찍한 질문은 아니다. 어느 정도

하나님이 우리와 닮은 점 10가지

는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는

열망을 보여 준다. 이 질문은 우리가 매일 행하는 삶 속에서 하나님

께 영광 돌리고 싶은 훌륭한 열망을 보여 준다. 하지만 우리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핵심

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 삶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길 원한다

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보다 더 나은 질문을 할 필요

가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일에 직면했을 때 결정을 내리지 못하

고 시간을 끄는 경향이 있다. B를 선택해야 할 때 A를 선택하면 모

든 것을 잃는다. B를 선택하면 모든 게 잘될 것이다. 하지만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결정 그

자체보다 결정을 내리는 사람에게 관심이 더 많으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시몬 베드로를 보라. A라는 결정( 그리스도를 부인 ) 과 B라는

결정( 그리스도를 인정 ) 의 선택 길에 놓였을 때 베드로가 실패한 일은

유명하다. 그러나 베드로를 정의하는 것은 그의 잘못된 의사 결정

이 아니다. 베드로를 회복시킨 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고 말하

는 게 더 맞는 말이다. 베드로의 이야기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

냐에 상관없이 여전히 희망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우리가 내리는 그 어떤 결정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

해 보면 이 말은 이해가 간다. 하나님은 어떤 결정의 결과도 자신의

영광과 우리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실 수 있다. 그 점은 우리에게 안

심이 된다. 베드로는 두 가지 선택에 직면했는데, 그중 하나는 분명

서론 ┃ 더 나은 질문하기 11

히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똑같이 현명해

보이거나 똑같이 현명하지 않은 두 가지 옵션 중에서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느 쪽이든 답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더 나은 질문이 있다. 자기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은 신자라면 그가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성경을

사용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시편이나

복음서의 한 이야기를 몇 시간 동안 묵상하며 그 말씀이 현재의 딜

레마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여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해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침묵을 듣거나, 직감이나 ‘인도하심’에 따라 행동

했다가 나중에 주님의 뜻을 듣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의 좌절감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 과정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잘 알고 있으며, 그에 수반하는 수치심, 즉 성령의

음성에 둔감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데 어리석은 그 느낌을

잘 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자기 뜻을 숨기지 않으신다. 이 땅의

부모로서 나는 아이들에게 “나를 기쁘게 할 방법이 있단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는지 어디 보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땅의

자녀들에게도 내 뜻을 숨기지 않는데,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얼마

나 더 그러지 않으시겠는가? 하나님의 뜻은 발견할 필요가 없다. 하

나님의 뜻은 명백히 보인다. 하나님의 뜻을 보려면 우리는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와 닮은 점 10가지

의 주요 관심사에 해당하는 질문을 시작해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

이어야 하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물론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라

는 질문이 서로 무관하지는 않다. 하지만 질문하는 순서가 중요 하다. 마음을 다루지 않고 행동에만 집중한다면, 우리는 단지 더 나

은 행동을 하는 자아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끝날 수 있다. 생각해

보라. 내가 여전히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다면 올바른 직업을 선택

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탐욕에 사로잡혀 있다면 올바

른 가정이나 배우자를 선택하는 게 나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길을 잃은 사람도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의 내주하

심을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우리의 성화에 있어 복음의 소망은 단순히 우리가 더 나은 선택

을 하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존 뉴

턴으로 하여금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라고 말하게 한

소망이다. 또한 사도 바울로 하여금 신자들이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 것”( 고후 3:18 ) 이라고 말하게 한

소망이다. 복음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소유한, 그리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소유한 은혜가 우리를 점점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 킨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하지만 그저 아무렇게나 더 나은 사람이 아니다. 복음은 우리를

원래 우리가 되어야 했을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복음은

우리의 형상을 새롭게 한다. 원래 인간이 어떤 존재여야 했는지 알

서론 ┃ 더 나은 질문하기 13

고 싶은가? 그렇다면 죄를 짓지 않은 유일한 인간을 바라보라.

만드시고 표하신

15년 전 나는 골동품 가게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작고 예쁜 모

양의 녹색 도자기 꽃병을 발견했다. 녹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

이었으므로 나는 적힌 대로 10달러를 내고 그 꽃병을 사기로 했다.

그런데 꽃병을 뒤집어 보니 바닥에 ‘맥코이’라는 상표가 큼지막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조금 찾아보니 그 맥코이 도자기 꽃병은 내가

지급한 가격의 4배의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우리 집 정

원에서 딴 꽃으로 가득한 그 꽃병을 보는 것이, 그리고 그 꽃병이

우리 집 현관 테이블 위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즐거워 그 꽃병이

좋았다. 그 꽃병은 얼마나 모양과 기능이 조화를 이루는 꽃병이었

는지 모른다.

하지만 15년 전, 우리 집에 네 명의 어린 자녀가 살고 있을 때

였다. 운명의 그날, 내 작은 꽃병이 타일 바닥에 떨어졌다. 완전히

수리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꽃병은 깨졌다. 안타까운 마음

에 초강력 접착제로 다시 붙였지만 물과 꽃을 담던 꽃병의 시대는

공식적으로 끝났다. 지금 그 꽃병은 거실 책장 위에 놓여 있다. 꽃병

바닥엔 여전히 맥코이라는 상표가 적혀 있고 그 아름다움과 목적을

말해 주는 모양을 갖고는 있지만, 이제 만들어진 원래의 기능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제한되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그 깨

어진 부분은 더 자세히 보인다. 이제 그 꽃병은 10달러를 주어도 팔

하나님이 우리와 닮은 점 10가지

수 없겠지만 나는 여전히 그 꽃병을 아주 좋아한다. 깨졌든 깨지지

않았든 말이다.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점에서 금이 간 꽃병과 같다. 창세기 1장

에 규칙적으로 반복되어 나오는 창조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보라.

하나님은 닷새 동안 “……이 있으라”고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이 명

령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즉시 생겼고, 보기에 좋았다. 빛과 어둠, 땅, 바다, 하늘, 온갖 동식물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제자리를 잡는다. 창조 여섯째 날, 반복되던 이야기의 규칙이 깨지

는 게 눈에 띈다. “있으라”가 “만들자”로 바뀐다. 창조 이야기는 놀

랍도록 개인적이고 중요해진다. 또한 놀랍도록 시적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자신의 형상을 표하셨다.

자신의 형상을 지니고 살며 일과 놀이, 예배할 때 자신을 대표하도 록 창조하셨다. 모양과 기능이 조화를 이룬 모습이다. 창세기 3장에

나오는 끔찍한 재앙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 더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대로 일하고, 놀고, 예배하지 않지만

말이다. 하나님에게 우리는 여전히 중요한 가치가 있다. 모든 인간 이 그렇다. 우리는 금이 간 그릇들이다. 아름다움을 나타내라고 만

드셨지만 여기저기 금이 가서 물이 새는 그릇이다. 그러나 하나님

서론 ┃ 더 나은 질문하기 15

은 아들을 보내셔서 자신의 형상을 가진 자들이 완전히 자신의 형

상을 지닐 수 있게 구속하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다”( 히 1:3 ). 이런 은혜로 말미암아 기적적으

로 회복된 모든 깨진 그릇에게 그리스도는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야 하는가?”라는 더 나은 질문에 대한 답이 되신다.

당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한다면 바

로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

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29 ).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우리 속에 있는 깨진 금들이 잘 수리되

어 우리가 창조된 목적대로 하나님을 대표하고, 그리스도, 그 모습

과 기능이 완벽하게 흠 없이 드러나신 우리의 맏형 그리스도를 닮

은 모습으로 우리가 점점 더 자라 가는 것이다. “그는 보이지 아니

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다”( 골

1:15 ). 따라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델이자 안내자 역할을 하신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

느니라”( 벧전 2:21 ). 또한 사도 요한이 말했듯이 “그의 안에 산다고 하

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해야 한다”( 요일 2:6 ).

그리스도를 닮고 싶으면 그리스도가 걸으셨던 길을 걸어야 한다.

좁고 안전한 길

나는 수 세기 동안 아메리카 원주민이 살았던 뉴멕시코의 한 언

덕에 올랐던 적이 있다. 언덕 정상에 물 공급원이 없었으므로, 주민

들은 생존에 필요한 물을 길어 올리기 위해 매일 계곡으로 내려가

야 했다. 그 결과 바위에 마모된 보행로가 생겼는데, 이 길은 끊임없

이 이어지고, 깊이는 약 13cm 정도 되며, 가파른 절벽을 한 발로 겨

우 디딜 정도로 폭이 좁은 길이었다. 이 좁은 길에서 균형을 유지하

려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지만, 가장 안전한 등반 경로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의 의미다. 앞으로

나아갈 길이 무엇이든 그 길은 넓지 않고 좁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좁은 길에 발을 딛는

첫 번째 위치를 묻는 것을 의미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

갈 때마다, 우리는 점점 더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 골 3:10 ) 가 된다. 그렇다. 하나님의 뜻은 그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좁은 길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처럼 정처 없이 방황하며 절벽에서

떨어질 위험에 처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저 우리 구주 예수 그리 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면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질문에 단번

에 답하려는 책이다. 이 책은 좁은 길의 존재를 잊었거나, 그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그 좁은 길을 밝히 보여 주려

서론 ┃ 더 나은 질문하기 17

는 책이다. 좁은 길은 감추어진 길이 아니다. 언덕 정상을 향해 오르

는 것처럼 많은 성도의 신실한 발이 그 길을 깊이 딛고 있었고, 그

들의 시선은 그 길을 먼저 걸었던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분

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

문을 던지고 그리스도의 인격을 바라보며 그 답을 찾는 법을 배운

이들에게 그 길은 아주 잘 보인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자 기쁨인 사람

들에게는 그리스도가 직접 자신을 보여 주신다.

가장 거룩하신 하나님

반복은 배움의 어머니다.

로마 속담

“엄마, 머리가 너무 지끈거리는데 학교에 가야 해요. 물 한 잔은

마셨어요.”

“엄마, 시험 때문에 너무 불안해요. 기도해 주실래요? 물 한 잔은 마셨어요.”

같은 주 다른 날에 서로 다른 두 명의 대학생 아들에게 두 개의 문자를 받았다. 우리 가족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둥지를 떠난 아

기 새가 어미 새에게 보내는 이 메시지가 좀 의아하고 이상하게 들

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아이들은 완벽히 이해한다. 나는 언제나 아

이들이 몸이 아프다고 하면 “물을 한 잔 마셔 보렴”이라는 말로 대

답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집의 이 민간요법 조언 때문에 아이들에게 꽤 많은 놀 림을 받았다. 아이들은 만약에 팔다리를 잃었다는 문자를 보내도

내가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라는 조언을 했을 것이라고 농담하기도 한다.

저녁 뉴스를 보고 있는데 막내 아이가 내 오른쪽에 앉아 있다고

상상해 보라. 어떤 의사가 뉴스에 나와 머리가 아프거나 다른 곳이

불편하면 가장 먼저 할 일이 바로……여러분이 짐작하는 그 일이라

고 말하자, 아들은 기뻐한다. 아들 칼빈의 얼굴은 이제 내려야 할 결

정을 내렸다는 표정이다. 이제 나와는 안 살겠다는 것이다. 다행히

도 아들은 올해 졸업해 집을 떠난다. 아마도 아들이 둥지를 떠날 때

쯤이 되면 나는 제대로 된 기관에서 명예 의학박사 학위를 받지 않

을까?

“물을 한 잔 마셔 보렴”은 우리 아이들의 머릿속에 새겨진 많은

문구 중 하나일 뿐이다. 부모들은 반복해 말한다. 많은 것을, 그리고

특히 아이들에게 그렇다. 아이들을 보모에게 맡길 때 내가 마지막

으로 하는 말은 항상 “서로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였다. 아이들이

친구 집에 놀러 가도 되냐고 물어볼 때 내가 늘 하던 질문은 “방은

깨끗하니?”였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이는 닦았니?”였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길 바라는 것을 반복한다. 그리고 우

리는 반복해 듣는 것을 배운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 아이들은 내가 반복해 질문할 때까지 기다리

지 않았다. 친구 집에 가도 되냐고 물어볼 땐 “엄마, 제 방은 깨끗하

하나님이 우리와 닮은 점 10가지

고 숙제도 다 끝냈어요”라고 말했다. 반복이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

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지혜의 저장소인 성경이 이 방법을 규칙

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경이 반복하는 내용에 주

의를 기울이면, 우리는 성경이 우리에게 가장 배우고 기억하길 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내가 명시적으로 밝힌 이 책을 쓴 의도는 우리 삶에 대한 하나님

의 뜻을 분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물음으로써 하나님의 뜻

을 분별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일차적으로 우

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것이며,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질문을 바꾸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가?”라고 물으면 하나님의 뜻은 숨겨져 있지 않고 말씀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은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인간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완벽하게 형상화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

으라”라고 분명히 답한다. 우리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그

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인데,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우리에게 하나

님의 형상을 완벽하게 닮은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책에서 우

리는 어떻게 창조주를 닮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

1 ┃ 가장 거룩하신 하나님 21

그러나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성경

의 대답이 “하나님의 바로 그 형상을 닮으라”이므로 우리는 “하나

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

신학자들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수 세기 동안 성경을 연구

했다. 스티븐 차녹, 아서 핑크, A. W. 토저, R. C. 스프로울은 모두 하

나님의 무한한 성품을 이해하는 데 내게 큰 유익을 주었고, 이들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주제를 깊이 탐구했다.1) 모든 조직

신학 문서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열하고 탐구한다. 하지만 나는 이

글에서 다른 글의 저자들이 제시한 하나님에 대한 드높은 관점을

받아들이고, 한 가지를 더 질문하고 싶다. “하나님은 하시다”라

는 지식이 생길 때 내 삶의 방식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나는 다른 글에서 이 빈칸을 채울 수 있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참

인 하나님의 비공유적 속성 10가지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2) 하

나님만이 무한하시고, 이해를 초월하시며, 스스로 존재하시고, 영원

하시며, 불변하시고, 편재하시며, 전지하시고, 전능하시며, 주권을

갖고 계시다. 하나님의 이런 특성 중 한 가지 면에서라도 하나님처

럼 되려 애쓸 때 우리는 자기를 하나님의 경쟁자로 설정하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기를 열망하

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에게만 해당하는 속성, 무한한 존재에게만

적합한 속성을 추구한다.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경배하기보다 스스로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한다. 하나님의 전능하

심을 경외하며 기뻐하기보다는 우리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영역

에서 전적인 능력 발휘하기를 열망한다. 불변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닮은 점 10가지

안식하기보다는 딱딱하게 굳어진 우리 자신이 반복적으로 짓는 죄

를 가리키며 자신이 변하지도 않았고, 변할 수도 없다고 선언한다.

우리의 아버지 아담과 어머니 하와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한계

를 거부하고 어리석게도 우리가 휘두를 수 있고 소유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 무한함을 갈망하며 오직 하나님을 위한 것을 갈망

한다.

하나님의 비공유적 속성을 갈망하는 것은 “너희가 하나님처럼 되

리라”라는 뱀의 유혹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이것은 죄 많은 마음의

자연스러운 성향이지만, 새로운 욕망을 가진 새 마음을 받은 우리

는 제한된 존재에 적합한 다른 속성, 즉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러 오

신 풍성한 삶을 설명하는 속성을 갈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공유적 속성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

님의 성품 중에서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성품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사랑이 많으시며, 공의로우시고, 선하시며, 자비로우시 고, 은혜로우시며, 신실하시고, 진실하시며, 오래 참으시고, 지혜로

우시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다”고 말할 때 우리가 묘사하는 바

로 그 목록이다. 내가 이제 자세히 살펴보려는 내용도 바로 이 목록 인데 그리스도가 하신 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나타내는 열 가

지 하나님의 속성이다. 예를 들어 내가 더 자애로워질수록 나는 하

나님의 형상을 완벽히 닮으신 그리스도를 더 많이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성찰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할까? 하나님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3) 이 질문에 옳은 답

1 ┃ 가장 거룩하신 하나님 23

이 있기는 할까? 나는 그렇다고 주장하고 싶다. 우리는 배움의 어머

니, 즉 반복되는 것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

가장,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님이 반복하신 게 사실이라면 하나님의 한

속성이 목록 맨 위에 나오는 것으로 분명해지는데,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다. 거룩함이란 모든 도덕적 탁월함의 총합으로 “모든

도덕적 흠이나 더럽힘의 반대”로 정의할 수 있다.4) 거룩함은 분리

되고, 신성하며, 구별되고, 완전히 순결한 성품을 갖고 있다는 개념

이다.

반복의 법칙에 따라 생각해 볼 때, 성경에서 우리가 하나님에 대

해 가장 먼저 생각하길 바라는 것은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것

이다. 거룩함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거의 700번이나 등장한다. 동사

형태인 거룩하게 하다라는 단어는 추가적으로 200번 더 등장한다.

어떤 형태든 거룩함에 관련되어 언급된 단어들은 사물이나 사람, 장

소와 관련되어 있지만 이 단어의 하나님과의 관계는 놀랍다. 거룩 함보다 더 자주 하나님의 이름과 결합한 속성은 없다. 성경에는 하

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29번이나 언급되어 있다. 이사야서 한 책

에서만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25번 부른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완전히 순전하신 성품은 하나님을 다른 모든

경쟁자와 구별되게 만드는 요소다.

하나님이 우리와 닮은 점 10가지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

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출 15:11).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삼상 2:2).

애굽과 가나안,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은 다른 한계들도 가지고 있

었지만, 마찬가지로 완전히 순전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

도 않았다. 그들의 업적에 대한 기록은 경전이라기보다는 텔레비전

쇼에 가까웠고 열심히 믿는 자들은 그들의 음란한 장난을 관음증적

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 누구

도 그를 바라보고는 살 수 없을 정도의 거룩함을 지니고 계시며, 하

나님 바로 옆에 사는 죄 없는 천사들조차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도덕적 순결을 지니고 계셨고, 그래

서 날개로 시선을 가리고 있었다.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계 4:8; 참고. 사 6:3).

1 ┃ 가장 거룩하신 하나님 25

나는 천사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천사들이 하나님에 대해 생

각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쉬지 않고 반복하는 한 가

지 말, 즉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는 말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여기서 반복되는 것 중 특별히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게 있다. 랍비

들은 일반적으로 요점을 강조하려 두 번 반복하는 방법을 사용했

고, 예수님도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사람

이 내게 주여, 주여 하리라”와 같은 구절에서 동일한 기법을 사용하

신 것을 알 수 있다. R. C. 스프로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속성이 세 번째 등급으로 격상된 것은 하나뿐이다. 세 번 연속으로 언급된 하나님의 특성은 단 하

나다. 성경은 하나님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고 말

한다. 하나님은 단순히 거룩하시거나 심지어 거룩하고 거룩

하신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거룩하고, 거룩하시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랑, 사랑, 사랑이라고 하지 않는다. 자비, 자비, 자비로우시다고 하지 않는다. 진노, 진노, 진노하신다

고, 공의, 공의, 공의로우시다고 절대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거룩하고, 거룩하고, 거룩하셔서 온 땅이 하 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하다고 말한다.5)

우리는 가장 기억하고 싶은 것, 가장 중요한 것, 가장 쉽게 잊어버

리는 것을 반복한다. 하나님 백성은 성경이 하나님의 가장 높은 속

하나님이 우리와 닮은 점 10가지

성으로 찬양하는 내용을 잊어버리기 쉽다. 대신 다른 속성을 강조

하면서 말이다. 어떤 교회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사실만

을 반복해 강조한다. 어떤 교회는 하나님이 공의로우시다는 사실을

거의 독점적으로 반복한다. 때로 성경 자체보다 우리의 배경이 우

리가 하나님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에 영향을 주

기 쉽다. 성경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반복하지만, 우리의 교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의 완전하심이 천사들의 시선을 피하

게 만드는데, 거룩함에 대한 설교는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좋아하

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환영받는 느낌을 받도록 사랑을 강

조하거나 모든 사람이 똑바로 행동하도록 공의를 강조하는 편이 나

을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은 그 사랑과 공의로우심 때문에도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

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하나님의 거룩함에

스며들어 있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따라 정의된다. 하나님은 단순

히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 완전히 순결한 성품으로 사랑하신다. 하

나님은 단순히 공의롭게 행동하시는 게 아니라 완전히 순결한 인격

에서 공의롭게 행동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 외의 하나님

의 다른 속성을 강조하거나 하나님의 거룩하심과는 별개로 하나님

의 속성을 강조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자신의 상상이나 목적을 위 해 하나님을 꾸며 내는 일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거룩한 공

의가 아니라 인간적인 공의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깨달을 때 계시는 우리를 변화시킨다. 하나

님에 대한 지식과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은 항상 함께 간다. 하나님

1 ┃ 가장 거룩하신 하나님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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