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감사의 글 ┃ 약어표
8
9
┃ 선지자들의 연대표
1장
11
서론 15
1부 선지서의 맥락 23 2장
선지서의 신학적 맥락 25
3장
선지서의 역사적 맥락 52
2부 구약의 선지자 67 4장
구약 선지자의 역할 69
5장
거짓 선지자와 이방 선지자들 84
6장
선지자들의 메시지 102
7장
선지자들의 설득 전략 123
8장
예언 말씀에서 성경책으로 144
3부 선지서 159 9장
이사야 161 188
10장 예레미야 11장
에스겔 214
12장 다니엘
240
13장 호세아
263
14장 요엘
283
15장 아모스
294
16장 오바댜
306
17장 요나
317
18장 미가
328
19장 나훔
342
20장 하박국
353
21장 스바냐
363
22장 학개
374
23장 스가랴
384
24장 말라기
402
┃ 미주
412
909-908년 왕상 15:25 908년 바아사에게 암살됨(왕상 15:27)
908-886년 왕상 15:33 여로보암의 집안을 모두 죽임(왕상 15:29)
886-885년 왕상 16:8
885년
885-880년 왕상 16:21 오므리와 내전(왕상 16:21-22)
885-874년 왕상 16:23 첫 5년간 디브니와 전쟁; 880년 단독 통치자 됨
874-853년 왕상 16:29 전투 중 사망함(왕상 22:33-37)
853-852년 왕상 22:51 자식 없이 사망함(왕하 1:2, 17)
나답
바아사
엘라
시므리
디브니
오므리
아합
아하시야 예후에게 살해됨(왕하 9:24) 요람을 병거에서 죽이고 이세벨을 처형함(왕하 9:24, 33)
요람 / 여호람 852-841년 왕하 3:1
841-814년 왕하 9:13
814-798년 왕하 13:1
798-782년 왕하 13:10
예후
여호아하스
여호아스
왕상 16:15 오므리의 공격을 받고 불로 자살함 (왕상 16:17-18)
엘리사 855796년
엘리야 860852년
930-909년 왕상 12:20 솔로몬 마지막 해 왕위에 오름 (왕상 14:20)
여로보암
술에 취한 채 시므리에게 암살됨 (왕상 16:8-14)
재위 기간 관련 본문 통치의 주요 특징
왕
이스라엘 재위 기간
관련 본문
왕상 15:1-2
910-869년 왕상 15:9-10
913-910년
796-767년
왕하 14:1-2
835-796년 왕하 12:1-2
요아스 아마샤
왕하 11:3
841-835년
아달랴
왕하 8:16-17
왕하 8:25-26
853-841년
아하시야 841년
여호람
여호사밧 872-848년 왕상 22:4142
아사
아비야
르호보암 930-913년 왕상 14:21
왕
라기스에서 암살됨(왕하 14:19)
7세에 통치 시작함(왕하 11:21)
아하시야의 어머니(왕하 11:1)
이스라엘에서 예후에게 살해됨 (왕하 9:27-28)
853-848년 여호사밧과 공동 섭정; 아달랴와 결혼함
872-869년 아사와 공동 섭정
통치의 주요 특징
유다
선지자들의 연대표
11
12
752–742년 왕하 15:17
742–740년 왕하 15:23
752–732년 왕하 15:27
732–722년 왕하 15:30; 17:1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
호세아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임명함
길르앗에서 통치, 므나헴과 겹침, 752-740년; 통일 이스라엘 통치, 740-732년; 호세아에게 암살됨 (왕하 15:30)
베가에게 암살됨(왕하 15:25)
앗수르 왕 불과 동맹 맺음 (왕하 15:19-20)
므나헴에게 암살됨 (왕하 15:14)
752년
살룸
왕하 15:13
살룸에게 암살됨(왕하 15:10)
아모스 767753년
753–752년 왕하 15:8
통치의 주요 특징
스가랴
관련 본문 여호아스와 공동 섭정, 793-782년
재위 기간
여로보암 2세 793–753년 왕하 14:23
왕
이스라엘
호세아 755725년
요나 792753년
히스기야
아하스
요담
웃시야/ 아사랴
왕
729–686년
735–715년
750–735년
792–740년
재위 기간 아버지 아마샤와 공동 섭정, 792-767년; 16세에 통치 시작(왕하 14:21); 750년에 분향하다가 나병에 걸려 아들이 통치하는 동안 별채에서 지냄(대하 26:16-21)
통치의 주요 특징
왕하 18:1-2
왕하 16:1-2
아버지 아하스와 공동 섭정, 729-715년; 산헤립이 701년 유다 침공함(왕하 18:13)
732년 요담이 죽은 때부터 계산하여 16년(왕하 15:38)
735년에 왕위에서 제거됨
이사야 740695년
왕하 15:32-33 웃시야와 공동 섭정, 750-740년;
왕하 14:21; 대하 26:3
관련 본문
유다
미가 742686년
13
640–609년 왕하 22:1
요시야
포로 #3: BC 586년
말라기 515445년
학개 520년
예루살렘/성전 파괴
597–586년
시드기야
스가랴 520518년
요엘 (미상)
왕하 24:17-18 요시야의 삼촌/아들
가족과 바벨론에 유배됨 (왕하 24:10-14)
598–597년
여호야긴
포로 #2: BC 597년
왕하 24:8
609–598년 왕하 23:34-36 애굽의 지배를 받음, 609-605년; 포위 공격 중 사망함(렘 22:18-19)
애굽에 끌려감 (왕하 23:34)
바로 느고에게 폐위되어
여호야김
왕하 23:31
나훔 663612년
오바댜 586-553년
다니엘 605536년
에스겔 593571년
예레미야 627562년
스바냐 622-612년
하박국 608-605년
네 아들: 요하난, 여호아하스(살룸), 여호야김, 시드기야(대상 3:15)
포로 #1: BC 605년 70년의 시작 (렘 25:9-12)
여호아하스 609년 (살룸)
642–640년 왕하 21:19-24 신하들에게 암살됨(대하 33:24)
아버지 히스기야와 공동 섭정, 697686년; 12세에 통치 시작; 648년 바벨 론으로 끌려가 굴욕당함(대하 33:11-7)
아몬
왕하 21:1
697–642년
통치의 주요 특징
므낫세
관련 본문
재위 기간
왕
유다
1장
서론
바울이 이르되 “……아그립바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 는도다.”
사도행전 26:25-28
기
독교 신앙의 핵심을 설명하는 성경 구절이나 누군가를 기독교인이 되도록 설득할 수 있는 성경 말씀을 떠올리면 요한복음이나 로마서 같은 신약 성경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히브리어 성경만 가지고 있던 사도 바울은 구약의 선지서에서 기독교 신앙 의 본질을 배웠다. 아그립바왕도 선지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속에 대해 말하 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위에 인용한 구절에서 바울의 질문에 대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바울과 아그립바는 구약 성경의 선지서들이 단지 유대인의 성경이 아 니라 기독교인의 성경이라고 믿었다. 이 책은 시리즈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기독교 성경으로서 구약 성경의 ‘선지서’를 소개 하는 책이다. 여기에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 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가 포함되어 있다. 선지서는 특정한 역 사적 상황에서 하나님을 대변했던 고전 선지자들의 대화, 행동, 설교, 예언을 담고 있는 복 합적인 책이다.
기독교 성경으로 구약 읽기 나는 이 책의 제목에 있는 “~으로”(as)라는 단어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이 제목은 이 선지서들이 본질적으로 기독교 성경이 아니지만 기독교 성경“으로” 읽는 것도 가능하다는 인상을 줄지 모른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구약 성경은 우리가 특정한 기
1장 ┃ 서론
15
법이나 규칙에 따라 읽는다고 해서 기독교 성경이 되는 것이 아니며, 다른 방식으로 읽 는다고 해서 다른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구약의 선지서들은 기독교 성경이다. 그 책들은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하거나 “교회” 또는 “세례”라는 단어를 포함하지 않을 수도 있지 만, 하나님의 세상 창조와 아담과 하와의 죄에서 마지막에 있을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에 이르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계획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다윗의 자손으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백성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승리로 다시 살아나 평화와 정의의 왕으로 통치하 는 하나님의 메시아에 대해 말한다. 신약 성경에서 바울은 디모데라는 젊은 목회자에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 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라는 편지를 썼다. 바울이 이 글을 썼을 당시에는 신약 성경이 기록되고, 확인되고, 수집되는 과정에 있 었으므로, 바울이 언급한 것은 선지서를 포함한 구약 성경이다. 구약 성경은 우리 믿음을 강화하고, 하나님에 대해 가르치며,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준비시키기 위한 하나님 말 씀이다. 우리는 선지서를 기독교 성경으로 만들기 위해 특별한 방식으로 읽지는 않지만, 선지 서가 기독교 성경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가 선지서를 읽는 방식에 몇 가지 큰 영향을 미친다. 첫째, 구약의 선지서는 구약과 신약을 모두 포함하는 기독교 정경의 일 부다. “정경”(canon)이라는 단어는 공식적인 것, 중요한 것을 의미한다. 정경은 무엇이 성 경으로 포함되느냐와 관련될 뿐 아니라 무엇이 제외되느냐는 문제와도 관련된다. 좀 엉뚱 하지만, 이런 예를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들은 “스타워즈 캐넌”(Star Wars canon)에 대 해 이야기하며 어떤 영화와 책이 실제 스타워즈 스토리와 우주에 포함되는 중요한 것인지 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앉아서 루크 스카이 워커(Luke Skywalker)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 있지만, 그것은 캐넌이 아니며 아무도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그러 나 어쩌면 당신은 오랜 팬이고 새로운 스타워즈 영화 중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 른다. 형편없다! 그러나 그것이 공식 영화 중 하나라면 중요하다. 그것은 캐넌이며,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더 큰 우주의 권위 있는 일부다. 마찬가지로 성경의 각 선지서 역시 성경 정경의 일부다. 즉 이 책들은 공식적인 하나님 말씀으로 인정 받으며 창세기나 고린도전서만큼이나 권위가 있음을 의미한다. 위의 디모데후서 3장 16절 인용문에서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 이라고 썼다. 이것을 우리는 ‘영감’이라고 부른다. 선지서의 인간 저자들은 특정 언어(히브 리어 또는 아람어)로, 특정 시간, 특정 장소와 환경에서, 특정 청중을 대상으로 글을 썼다. 그러므로 선지서들은 모두 서로 상당히 다르며, 각기 성격이 달라 서로 다른 관심사를 다
16
기독교 성경으로서의 선지서 개론
룬다. 그러나 모두 ‘하나님의 숨결’이 담겨 있고 성경 정경의 일부이므로, 그 안에서 말씀 하시는 궁극적이고 신성한 저자는 한 분 하나님이다. 선지서는 많은 선지자의 목소리를 대 변하지만, 이 목소리들은 모두 변함이 없는 살아 계시는 한 분 하나님을 대변한다. 따라서 선지서들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관점을 제시하거나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는 있지만 상충하는 관점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선지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역사에서 어떤 일을 행했는지를 상반되게 이해하지 않는다. 둘째, 구약 성경 선지서는 영감으로 쓰인 정경이며 기독교 성경이므로, 우리는 그 권위 에 따라 독자로서 접근한다. 우리가 본문을 읽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나는 메일함 에서 스팸 메일을 발견하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의심하면서 읽는다. 정부에 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뉴스 보도를 읽을 때, 나는 배움에 열려 있지만 모든 기자가 의제를 가지고 있음을 알므로 여전히 조심스럽다. 소득세 양식의 지침을 읽을 때는 이해하고 준수 하려고만 노력한다. 소득세 양식은 권위 있는 것이므로 내가 동의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어떤 글을 읽을 때 특정한 자세를 취한다. 부모나 배우자의 다정한 쪽지, 직장 상사 의 지시,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누군가의 글 등 어떤 것이든 읽을 때 특정한 태도를 보 인다. 구약의 선지서는 기독교의 성경이므로, 우리는 본문을 비판하거나 잘못을 찾기 위해 읽 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 접근한다. 또한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구약 선지서를 내부자(insiders) 관점에서 읽는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 자 그분의 교회 구성원이라면,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 백성의 일부이며 하나님이 자기를 사 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 놓으셨는지 두려워하지 않고 기대할 수 있다. 선지자 들이 무엇을 요구하든 우리는 순종할 것이다. 그들이 비판하는 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우리 삶에서 제거할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어떤 주장을 하든, 우리는 그것을 우리 신학 에 통합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이런 말은 어쩌면 순진하게 들릴 수도 있다. 우리는 비판적으로 읽지 않으려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는 상세하고 분석적으로 읽으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에서 비판적일 것이다. 그 리고 우리는 본문에 우리 자신의 선입견을 강요하지 않고 본문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할 것이다. 때로 이것은 우리가 평생 들어왔던 일반적인 생각과 해석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구약의 선지서는 어렵다 구약 성경은 교회에 중요하지만, 항상 이해하기 쉬운 것은 아니다. 그 페이지마다 우리
1장 ┃ 서론
17
는 폭력적인 이야기, 이상해 보이는 율법, 왕이나 지리적 구역의 목록, 전혀 뜻밖의 환상과 상징을 읽는다. 현대의 많은 기독교인에게 선지서는 특히 이해하기 어렵고 오늘날과의 관 련성을 파악하기 어렵다. 선지서가 어려운 이유 중 몇 가지를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이다. 이 책에서 다루려는 문제들이 바로 이것들이기 때문이다. 첫째, 구약의 선지서는 독자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루신 모든 일과 하나님이 계시하 신 말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가정하므로 우리에게 종종 어렵다. 선지서는 우리가 이런 신학적 맥락을 이해한다고 가정한다. 선지자들의 윤리는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에서 모
세에게 주어진 율법에 기초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구체적인 요구를 하셨으나 그들 은 (늘 그렇듯이) 거부하고 순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 율법은 하나님의 가치를 반영 하며,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그에 대한 책임을 물으신다. 예언의 메시지 대부분은 창세 기, 출애굽기, 사무엘하에서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다. 구약의 나머지 부분을 더 많이 이해할수록 이런 신학적 언급이 더 분명하게 이해될 것이다. 선지 서들은 성경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거대한 신학적 환상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들은 우리가 따라잡을 수 있게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선지서에 들어가면 우리는 이미 진행 중인 논의의 한가운데로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둘째, 구약의 선지서는 종종 특정한 역사적 맥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어렵다. 선지자들은 고대 사회를 특징짓는 특정한 죄악에 대해 말한다. 그들은 종교 운동과 제사장 및 거짓 선지자의 행동에 대해 언급한다. 이들은 도둑질하고, 강간하고, 살인하고, 억압을 일삼는 실제 침략 군대 앞에서 청중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촉구한다. 이들은 가난한 사 람들을 희생시키고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여 부를 쌓은 이웃 나라들의 악에 대해 말한다. 선지서의 페이지마다 우리는 선지자가 왕이나 정치권력자에게 고난과 핍박을 받는 이야기 를 듣는다. 많은 경우 선지자의 메시지는 이런 특정 사건에 기반을 둔다. 하지만 선지자들 은 우리가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배경을 알려 주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가 그 배경을 이해하 고 있다고 상정한다. 따라서 선지서를 제대로 읽으려면 역사적 배경과 상황을 연구하는 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선지서가 어려운 세 번째 이유는 선지서가 복합적인 문학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컨대 사무엘하처럼 단순한 이야기도 아니고, 많은 시편처럼 짧은 시도 아니다. 선지서는 이야기 와 시, 설교와 예언적 신탁이 혼합되어 있다. 끔찍한 죄를 밝히고, 완전한 멸망을 애도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을 파악하려고 애쓰는 등, 감정적으로 날것 그대로의 강렬한 내용 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넷째, 선지서에는 목차와 같은 것이 없다. 고등학교 때 이사야 같은 책을 읽으려 했던 기 억이 있는데, 내게는 그 내용이 마치 믹서기에서 혼합되어 66개의 장에 흩어져 있는 것 같
18
기독교 성경으로서의 선지서 개론
았다. 나는 한 예언적 신탁이나 이야기가 다음 것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분간할 수 없 었다. 사실 성경학자들도 선지서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 한 학자는 아 모스서가 “내용이나 연대기적 순서를 거의 고려하지 않고 배열되어 있다”라고 말한다.1 또 다른 학자는 선지서들이 “어떤 뚜렷한 배열 원칙도 없이 뒤범벅된 끔찍한 잡탕”이라고 생각해도 크게 잘못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2 우리는 각 선지서를 개관하면서 이런 구조 문제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스포일러 주의: 각 선지서는 의미 있는 방식으로 배열되어 있다!)
선지서는 이 네 가지 이유 말고 다른 이유로도 어렵다. 이 모든 특징은 작품의 장르와 관 련이 있다. 장르는 모든 본문을 해석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내가 “광대, 신부, 오리가 술집 에 들어왔다”라고 말하면 여러분은 내 말을 농담으로 해석한다. 그런 다음 여러분은 나의 다음 말(요점)이 유머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 또는 내가 “여기 당사자들이 앞서 언급한 일, 월, 연도에 증서로서 이 선물에 손을 얹었다는 증거로”라고 말하면 여러분은 이를 법적 문서의 일부로 해석한다. 이 경우 여러분은 서명 아래에 날짜를 입력할 곳을 찾는다.3 우리 는 사회에서 다양한 유형의 문서를 처리하면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뿐 아니라 어떻 게 의미를 창출하는지,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그 문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평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구약 선지서를 능숙하고 충실하게, 그리고 그 자체의 관점에서 읽으려면 우리는 구약 선지서가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선지자들이 어떻게 소통하 는지 등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이 책의 구조 구약 선지서는 장르가 매우 뚜렷하고 현대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다음 일곱 장에 서는 이런 문제를 좀 더 깊이 있게 다루겠다. 2장과 3장은 선지서의 맥락을 다룬다. 2장에 서는 신학적 맥락을 다루며, 성경신학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줄거리 안에 선지서를 위치 시킨다. 3장에서는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고 이스라엘 역사의 주요 사건과 선지서들이 연 대순으로 서로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개괄적으로 설명한다. 4-8장은 예언 현상을 다룬다. 4장에서는 구약 선지자의 본질적인 “직무 설명”을 살펴 본다. 선지자의 임무에 대한 이런 고찰은 이스라엘과 주변 국가의 거짓 선지자들을 살펴보 는 5장의 반대 관점에서도 계속된다. 하나님의 참 선지자들은 종종 거짓 선지자들과 갈등 을 겪으며 그들과 구별되었다. 6장에서는 선지서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는 몇 가지 핵심 메시지를 살펴본다. 7장에서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종종) 적대적인 청중에게 (종종) 인기 없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한 특별한 전략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8장에서는 선
1장 ┃ 서론
19
지서 자체의 기원과 선지서가 어떻게 성경책으로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해석에 대한 함의 를 논의한다. 9-24장에서는 구약의 각 선지서를 한 장씩 다루겠다. 상상할 수 있듯이 이사야서나 에 스겔서처럼 길거나 복잡한 책에 대한 장은 더 길고 다른 장은 훨씬 짧다. 각 장은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다. 즉 먼저 “길잡이”에서 선지자의 정체성과 그가 처한 특별한 상황을 살 펴본다. 다음으로, “본문 탐구”에서는 책의 문학적 구조를 살펴본 다음 그 내용을 부분별로 논의한다. 마지막으로, “적용”에서는 각 선지서의 주요 신학적 요점을 요약하고, 전체 기독 교 성경과 우리 신앙 안에서 각 책이 갖는 특별한 의미를 살펴본다. 각 장은 더 깊이 생각 해 보기 위한 몇 가지 토론용 질문으로 끝난다.
가치 있는 여정 나는 여러분이 선지서를 직접 읽을 때 이 책이 유용한 안내서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책은 단지 안내자일 뿐이다. 진정한 가치는 성경 본문을 읽는 데서 나온다. 성경은 살아 있 고 운동력이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우리를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딤후 3:16) 해 준다. 이 책을 준비하는 동안 선지서를 읽으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에 대한 내 믿음은 격려와 힘을 얻었다. 여러분의 믿음이 선지서를 공부하면서 더욱 굳건해지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선지자들은 오래전에 살았지만, 하나님 말씀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우리는 마음과 영혼과 힘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려 하므로,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오늘날의 교회에 매우 중요하다.
기독교인의 성경 읽기 질문 1. 선지서를 기독교의 성경으로 읽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기 말로 설명해 보라. 사도행전 26장 25-28절과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을 제외하고, 어떤 본문이 여러분의 답에 도움을 주는가?
2. 여러분은 이전에 어떤 자세로 선지서를 읽었는가? 앞으로 선지서들을 대할 때 그 자세가 어떻게 바뀌 어야 할까?
20
기독교 성경으로서의 선지서 개론
3. 선지서를 읽을 때 가장 두렵거나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이 자료를 접하면서 어떤 주제에 대해 더 배 우고 싶거나 어떤 기량을 익히고 싶은가?
1장 ┃ 서론
21
1부
선지서의 맥락
1장 ┃ 서론
23
2장
선지서의 신학적 맥락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 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누가복음 24:25-27 1
파
티에 참석하여 대화 중에 여러 친구에게 다가갔다고 상상해 보라. “……그래서 케이트가 목요일에 직장을 그만뒀어요.”
“정말이에요? 난 케이트가 해밀턴 계정을 얻으려 하는 줄 알았는데요!” “알아요! 하지만 케이트는 내년에 도쿄에 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우리 모두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대화를 따라잡고 쫓아갈 수 있는 능력은 두 가지에 달려 있다. 첫째, 몇 가지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알아야 한다. 케이트는 누구인가? 어디에 서 일했나? “해밀턴 계정”이란 무엇인가? 둘째, 완전히 이해하려면 성격, 가치관, 꿈 등 케 이트의 인생에 대한 큰 그림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 케이트는 자기 일을 좋아했나? 평소 충동적인 성격인가, 아니면 그만둘 만한 이유가 있었을까? 해밀턴 계정을 잃은 대가는 무 엇이었나? 왜 도쿄에 가고 싶어 할까? 구약에서 선지서를 집어 드는 것은 대화 도중에 끼어드는 것과 비슷하다. 신학적 맥락을 모르면 일부 진술은 기껏해야 이상하게 보일 뿐이다! 예를 들어, 선지자 예레미야는 다윗 왕 이후 약 400년 후에 살았지만, 미래에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 의 왕 다윗을 섬길 것”이라고 말한다(30:9). 이와 같은 언급은 개별적으로 보면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구약 성경 전체에 걸쳐 구축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서 절정에 달하며 요한계시록에서 마무리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장 대한 서사인 전체적인 ‘대화’에 중요하게 이바지하고 있다. 선지서는 성경의 위대한 신학 이야기에 독특하고 중요한 이바지를 하지만, 개념을 소개하거나 이미 일어난 일을 살펴보
2장 ┃ 선지서의 신학적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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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데 그치지 않는다. 따라서 선지서를 이해하려면 우리가 대화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즉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고 선지서가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 장의 시작 부분에 인용된 누가복음 24장 25-27절에서 예수는 몇 가지 중요한 말씀 을 하셨다. 첫째, 예수는 선지서를 별개의 모음집으로 언급하신다. 성경에는 “선지서”라는 부분이 있으며, 그들은 신학과 신앙에 이바지할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둘 째, 선지서는 “모든 성경”의 메시지에 이바지한다. 다시 말해, 모든 성경에는 통일된 메시 지가 있다. 물론 성경의 여러 책에는 다양한 메시지가 있지만, 이 모든 메시지가 서로 연결 되어 하나의 큰 메시지를 형성한다. 셋째, 선지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계 획에 대해 말하며, 이는 예수 자신에서 절정에 이른다. 따라서 예수는 “선지자들이 말한 모 든 것을 믿지 않으면” 자신의 사역을 오해하고 구원의 제안을 놓치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이 장에서 우리는 구약 성경의 위대한 신학 이야기를 기본적으로 검토하겠다. 구약 신학 을 각기 다른 각도나 접근 방식에서 다루는 길고 복잡한 책이 많이 나와 있다. 각 책은 구 약 신학의 ‘중심’이 무엇인가, 즉 다른 모든 게 그것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주제가 무 엇이냐에 대해 각기 다른 생각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땅이 주제일 수 있고, 다른 사람에 게는 왕권, 메시아, 약속, 하나님의 영광, 언약 또는 이들의 조합일 수 있다. 우리는 구약 성 경의 이야기를 이중 마지막 주제인 “언약”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겠다. 선지서는 하나님 이 장차 이루실 일을 포함하여 구속사의 주요 전환점으로서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 약에 특히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언약 “언약”(히. ‘베리트’)이라는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287번 나타난다. 이 단어는 때때로 “조약” 또는 “계약”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다음은 실제 정의다. “[언약은] 두 당사자 사이 에 어떤 관계를 규정하고 설정하는 지속적인 계약으로, 당사자 중 적어도 한쪽이 다른 쪽 에 대해 명시된 규정들을 준수해야 할 엄숙하고 구속력 있는 의무를 포함하며, 신의 저주 의 위협 아래 서약으로 맺어지고, 시각적 의식으로 비준된다.”2 이 정의에는 몇 가지 핵심 사항이 있다. 첫째, 언약은 “지속적”이며 언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지를 나타내는 일몰 조항이 없다. 둘째, 언약은 양 당사자의 구체적인 기대와 혜택이 딸린 관계를 규정한다. 이 는 관계적 요소가 반드시 포함되지 않아도 좋은 계약과는 다르다. 나는 통신 회사와 개인 적인 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내 휴대폰에 대한 무선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일정 기간 요금 을 지불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나중에 통신사를 바꾸면 불성실한 고객이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언약에서는 의무의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관계다. 셋째, 이런 관계적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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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경으로서의 선지서 개론
때문에 언약은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언약을 어기면 관계의 단절, 당사자 사이의 적대감 조성 등의 결과가 초래된다. 따라서 언약은 당사자들이 불성실로 인한 결과를 피할 수 있도록 당사자들에게 그 점을 상기시켜 주는 특별한 의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언약은 두 당사자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는 공식적인 계약으로, 당사자 중 적어도 어느 한쪽에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고대 근동에서는 대왕(“종주 국”)과 자신의 영역 내 영토를 다스리는 소왕(“속국”) 사이에 정치적 또는 군사적 언약이 있었다(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고). 정치적 언약의 또 다른 예로는 시드기야왕이 예루살렘 백성과 맺은 모든 노예를 해방하기로 한 것이 있다(렘 34:8-10). 창세기 14장 13절에서 “언약”이라는 단어는 아브람/아브라함과 일부 아모리 형제 사이의 군사적 조약을 의미하 며, 영어 번역에서는 “동맹”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언약은 라반이 사위 야곱에게 딸들 을 잘 대접하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개인적인 합의일 수도 있다(31:44). 말라기 2장 14절에서는 결혼을 “언약”이라고도 한다. 결혼은 단순히 법정에서 효력을 발휘하는 법적 인 언어로 된 계약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에게 새로운 현실을 시작하게 하는 관계를 맺는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언약은 정치와 일상생활의 정규적인 일부였으므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 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정의하는 모델로 언약을 사용하셨다. 사람들은 언약의 개념과 구성 요소를 알고 있었으므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과 관계의 각 측면 에 대한 기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구약에는 다섯 가지 주요 신학적 언약이 있다(표 2.1 참고).3 표 2.1. 주요 신학적 언약 언약
핵심 구절
노아와의 언약
창 6:18; 9:1-17
아브라함과의 언약
창 12:1-3; 15:1-21; 17:1-21
이스라엘과의 언약
출 19:3b-8; 20:1-24:18
다윗과의 언약
삼하 7:4-17
새 언약
렘 31:31-34
이 언약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구속 계획을 수행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이 언약들은 하나 님의 약속과 행동을 결합하는 틀과 궤적을 형성하며, 그 안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위 해, 세상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영광을 위해 구주를 일으키기 위해 자기 백성을 사용하신다. 각 언약에 대해 우리는 그 언약이 나타나는 본문, 언약 참여자, 언약을
2장 ┃ 선지서의 신학적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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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한 하나님의 중심 약속, 하나님이 참여자들에게 부과하는 의무,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의 신실함을 엄숙하게 보증하기 위해 지정한 언약의 공식적인 표징을 논의하겠다.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창조하신 사건이 아니라 창세기 에서 세상을 창조하신 사건에서 시작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 말하고 규 정하는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사이의 관계는 모든 창조 질서에 대한 하나님의 더 큰 목적 안에서 설정된다.4 창세기의 시작 부분에서 우리는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여 자신을 알고 자신과 관계를 맺게 하셨다.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피조물을 다스려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서 목적을 찾고, 하나님과 합당한 관계를 맺듯이 서로 합 당한 관계를 맺는다. 모든 세상은 제대로 질서가 잡혀 있다. 동산에는 평화와 자유가 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지시에 복종하여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피조물을 다스리 기를 거부한다. 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죄를 지으면 모든 피조물에 영향을 미치는 파 국적이고 광범위한 결과가 초래된다. 그러나 한 번 큰 피해를 주고 파괴력이 멈추는 거대 한 재래식 폭탄과 달리, 인류의 죄는 핵무기와 같아서 폭발할 때 막대한 피해를 줄 뿐 아 니라, 치명적인 방사능을 통해 해마다 계속 파괴하고 죽이고 고통을 초래한다. 우리는 죄에 빠짐으로써 인류에게 초래되는 네 가지 근본적인 결과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죄는 죽음으로 이어진다. 첫 번째 죄는 비교적 사소해 보이지만(선악과를 먹은 것), 창조를 원상태로 돌려놓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아담과 하와는 즉시 죽지는 않았지만 죽음 을 피할 수는 없었다(창 2:17; 3:19). 죽음은 창조 질서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아니라 부자 연스러운 결과이며, 이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이 아니다. 둘째, 관계가 깨진다. 깨진 관계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다. 이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만나 시려고 동산에 오셨을 때 그들이 부끄러움 때문에 몸을 숨기는 장면에서 잘 드러 난다(3:8-10). 나중에 사람 사이의 수평적 관계도 심하게 손상되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창세기 4장 1-16절에서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고 부모와의 관계도 깨뜨린다. 세 번째 결과는 피조물에 대한 그들의 지배가 손상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대로 인간이 피 조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대신(1:26), 이제 피조물은 인간에게 대항하여 삶을 어렵게 만 들 것이다(3:16-19). 네 번째 결과는 이제 의심과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과 무질서한 관 계라는 이런 새로운 상태가 인간 존재의 구성 요소로서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죄 를 지을 뿐 아니라 죄를 짓는 성향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 새로운 본성이 그들의 자손과 자손의 자손에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결론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할 뿐 아니라” “그의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6:5)이라는 것이다. 그림 2.1은 하나님의 창조 범위와 죄의 보편적 실재를 나타낸다. 이 그림은 구속사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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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경으로서의 선지서 개론
시각적으로 생각하기 시점에서 모든 것을 포괄하므로 매우 단순한 표다. 그것은
창조와 죄의 범위
‘죽어 가고 있고, 하나님을 적대시하며, 하나님의 목적을 이
그림 2.1
루지 못하고 있는’ 하나의 세상이 있다는 것이다.
창조/죄
노아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 모든 생물
주요 언약 중 첫 번째는 노아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이다. 창세기 6장에 이르면 하나님은 이 땅의 보편적인 악에 대해 두 가지 반응을 보이신다. 첫째, 심판의 행위로 모든 생물을 대홍수로 멸망시키기로 결심하신다. 동시에 한 사람과 그의 가족은 구원하기로 결심하신다. 홍수가 가라앉고 위험이 지나가자,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 을 맺으시는데, 이는 노아의 가족을 홍수에서 구하는 것이 인류를 보존하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일 뿐 아니라 계시적인 목적도 있음을 나타낸다(표 2.2 참고).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행동은 이 언약 관계와 결합하여 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원의 본질을 드러내는 첫 번째 단 계다. 표 2.2. 노아와의 언약 관련 본문
창 6:18; 9:1-17
참여자
하나님과 땅의 모든 피조물(9:10, 12, 15, 16, 17)
약속
부정적: 다시는 홍수로 모든 생명을 멸하지 않으리라 긍정적: 생명을 위한 긍정적인 조건을 만들리라
의무
생명에 대한 존중(참고. 9:4-6)
표징
“무지개”
하나님은 창세기 6장 18절에서 노아에게 구원의 수단인 방주를 지으라는 지시와 관련 하여 이 언약을 처음 언급하신다. 이 언약에 대한 주요 논의는 9장 1-17절에 있다. 우리는 종종 이것을 하나님과 노아와의 언약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과 땅의 모든 생명 체 사이의 언약이다. 구절의 반복에 주목하라. 하나님은 거의 “모든 생물”(8:21)을 죽이시 고 “모든 생물” 중 일부인 방주 안에 있는 것을 구원하셨으며(9:10), 이제 노아와 그의 가 족과 “모든 생물”과 언약을 맺으실 것이다(9:12, 15, 16 참고). 하나님은 이 언약이 자신과 “땅에 있는 모든 육체”(9:17) 사이에 맺어진다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이 언약에 대한 표는 그림 2.2와 같다. 이것은 그림 2.1과 매우 비슷하게 보이는데, 그 이유는 범위 면에서 이 언
2장 ┃ 선지서의 신학적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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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으로 생각하기 노아와 맺은 언약의 범위
약이 모든 피조물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 많은 해악을 끼친 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지은 온 세상에 대한
그림 2.2
하나님의 소망을 반영한다.
노아와의 언약
언약의 중심 약속에는 부정적 측면(하나님이 하지 않으실 일)과 긍정적 측면(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다. 부정적인 약 속은 “내가 너희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홍수의 물로
모든 생물
모든 육체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땅을 멸하는 홍 수가 있지 아니하리라”(창 9:11)라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긍정적으로 이 땅에 죽음이 아닌 생명이 있 기를 원하신다. 이 점은 명시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인
류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에서 분명해진다. 첫째,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것이다(9:1, 7). 이 것은 동산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1:22, 28 참고). 둘째, 하나님에게 는 생명이 매우 중요하므로, 역설적으로 살인에 대해 유일하게 합당한 형벌은 사형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9:6).
어떤 의미에서 이런 생명 존중은 언약이 요구하는 의무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생명을 깊 이 아끼시는 것처럼 사람들도 생명을 존중하고 보존하기를 바라신다. 이 언약의 표징은 하 늘의 무지개다. 무지개는 빛이 공기 중의 물 입자에 부딪힐 때 자연적으로 발생하므로 기 적적인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홍수로 모든 생명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는 지 속적인 알림으로 무지개를 지정하셨다(9:15, 17). 노아(그리고 땅의 모든 피조물)와의 언약은 인류의 사악함에도 불구하고 죽음보다 생명 을 가져오는 것이 하나님의 선호이자 의도임을 드러낸다. 우리는 이 자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사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인류의 반역에 대해 죽음 대신 생명을 구하 는 것으로 응답하신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죄의 합당한 결과는 전 세계적인 멸망 이지만, 하나님은 그것으로 마지막이 되기를 바라지 않으신다. 노아와 땅의 모든 생명과 맺은 언약은 그가 은혜의 하나님임을 나타낸다. 물론 이 언약은 드러나는 내용에서 매우 제한적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죄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실 것인지에 대한 암시가 없으 며, 메시아에 대한 암시나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에 대한 암시도 없다. 그러나 계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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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경으로서의 선지서 개론
진행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하나님이 심판보다는 은혜를 가져올 계획임을 아는 것으로 충 분하다.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노아는 포도원을 만들고 술에 취해 벌거벗은 채 아들들에 게 수치스러운 상황을 보여 준다(창 9:20-25). 이것은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의 생명 을 구하셨지만, 그들의 마음은 치유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한 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노아 의 죄는 인간의 곤경을 조명한다. 대부분 사람은 한 번쯤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 즉 잔 인함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증오, 편견, 탐욕과 같이 사람들 사이에서 해소되기 어려운 문 제들에 염증을 느껴 보았을 것이다……이에 대해 우리 중 이상주의자들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어떨까? 역사를 다 없애 버리고 백지상태에서 새로 시작하면 어떨까?’라고 묻 는다. 노아의 이야기는 그런 해결책을 반박한다.”5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에 대한 이 이야 기가 추잡한 에피소드로 마무리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육체의 구원이 우리 마 음속에 있는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는 경고를 받고 있다.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구약 성경의 주요 언약 중 두 번째 언약이다. 창세기 의 첫 11장은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세상의 창조, 죄에 빠져 타락한 인간, 홍수, 바벨탑에 서의 언어 창조(창 11:1-9)와 같은 보편적인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창세기 12장에서는 논의가 극적으로 전환되어 한 사람,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그림 2.3). 창세기의 이런 구조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특별히 다루신 것(12-25장)이 1-11장 에 제시된 보편적인 문제에 대한 하나님 답변의 시작임을 암시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의 가계에 행하시는 모든 일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시려는 것이다. 이는 창세 기 12장 1-7절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큰 민족으로 만들어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이 되 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분명해진다. 신기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으 려면 아브라함을 올바르게 향해야(“축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두 번째 중요한 대화는 창세기 15장 1-21절에 나온다. 하나 님은 아브라함에게 후손과 소유할 땅을 주겠다는 약속을 반복하시면서 더 자세히 말씀하 신다. 약속을 인봉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동물 사체를 나누라고 지시하신다. 해가 진 후,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에 자신을 묶는 상징적인 방법으로 그 반쪽 사이로 지 나가신다(15:7-11, 17).
2장 ┃ 선지서의 신학적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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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으로 생각하기 창세기 구조 속의 아브라함 그림 2.3
창세기의 장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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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타락 홍수 민족들
50
아브라함
이삭
야곱
[원역사]
[족장사]
[모든 것의 기원]
[하나님 백성의 역사]
유다
표 2.3. 아브라함과의 언약 관련 본문
창세기 17:1-21(참고. 12:1-7; 15:1-21)
참여자
하나님과 아브라함 및 그의 후손
약속
자손 → 나라(17:5-8) / 하나님과의 관계(17:7) / 땅(17:8)
의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17:1)
표징
할례(17:10-14)
공식적인 언약은 창세기 17장 1-21절에 나온다(표 2.3 참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몇 가지 약속을 하셨는데, 그중 일부는 12장 1-3절과 15장 1-21절에서 예견된 것이었다. 첫째, 아브라함에게 여러 민족으로 성장할 자손을 주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특히 그 민족 중 하나(이스라엘)가 하나님 관심의 초점이 될 것이다(17:5-6). 아 브라함의 후손은 이 언약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언약의 참여자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17장 7a절에서 “내가 나와 너 및 네 뒤에 오는 네 후손 사이에 그들의 대대로 내 언약을 영원한 언약으로 세우리라”라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그림 2.4를 통해 이 언약의 범위를 설 명할 수 있다(물론 크기를 잴 수는 없다!). 노아와 맺은 언약이 하나님과 땅의 모든 생명체 사이의 언약이었던 반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과 맺은 언약은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다. 즉 그것은 하나님과 한 사람 및 그의 후손들 사이의 언약이다. 그러나 본문은 이 언약이 궁 극적으로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가져다주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림에서 아브라함과 그의 가계는 작은 흰색 점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화살표는 그 언약에 담긴 함 의를 나타낸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은 어떻게든 다른 모든 사람에게 복의 근원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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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경으로서의 선지서 개론
시각적으로 생각하기 이다. 창세기는 이미 처음부터 특정 계보를 추적하는 데 큰 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범위 그림 2.4
심을 보였다. 우리는 경건한 계보가 가인이 아니라 셋을 통 아브라함과의 언약
해 계속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4:25). 셋의 후손이 노 아다(5:6-29). 노아는 아들 중에서 함이나 야벳이 아닌 셈 을 지목한다(9:26). 셈의 후손이 아브라함이다(11:1026). 이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 시는 특정한 혈통이 이야기의 초점이 된다. 하나님은 이스 마엘이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마엘이 아닌 아브라 함의 아들 이삭을 선택하셨다(17:18-19). 에서가 나이가 많은데도 에서가 아닌 야곱을 선택하셨다(25:23-26). 창
민족들
세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야기의 관심은 (애굽에서 자기 가족을 구한) 요셉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계보를 잇는 것은 유다다(49:10). 유다를 거쳐 다윗까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어지는 이 특별한 가계가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수단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약속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리라는 것이다. 창세기 17장 7b절에서 하나님은 “너와 네 후손에게 하나님이 되리라”라는 영원한 언약을 세운다고 말씀하신다. 또한 17장 8절 끝에서는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라고 말씀 하신다. 세 번째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땅을 주겠다는 것이다. 살 곳이 없는 민족은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땅 곧 가나 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17:8)라고 약속하신다. 이 언약의 의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하나님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 이다. 창세기 17장의 시작 부분에서 하나님은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 너는 내 앞에서 행 하며 흠이 없어야 내가 나와 너 사이에 언약을 맺으리라”(17:1-2)라고 말씀하신다. 아 브라함은 이미 15장 6절에서 이런 믿음을 보여 주었는데, 화자는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매 그가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다”라고 말한다. 이 믿음은 언약의 복에 참여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언약은 궁극적으로 아브라함만을 복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온 땅의 모 든 민족에게 복을 가져다주기 위한 것이므로, 그 복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 나 믿음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8-9절에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방인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실 것을 예견하사 아브라함에게 미리 복음을 전하되 ‘너를 인하 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라고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믿음의 사 람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라고 기록한다.
2장 ┃ 선지서의 신학적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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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표징은 할례다(창 17:11). 우리는 이 언약이 주로 아브라함의 후손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았다. 따라서 언약의 표징은 번식과 관련된 것이 적 절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혈통에 속한 모든 남자는 대대로 할례를 받아야 하며, 심지 어 외부에서 집안에 들어온 사람들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17:12). 노아와 모든 생명과의 언약을 상징하는 무지개처럼, 이 표징에도 기적적인 요소는 없다. 사실 할 례는 고대 세계에서 상당히 흔한 관습이었다. 그러나 이제 할례는 하나님의 약속과 땅의 모든 족속에게 하나님 복의 원천으로서 아브라함의 새로운 지위를 영구적으로 상기시키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명령으로 주어졌다.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라함에게는 많은 자손이 있었다. 그의 아들 이삭에게는 야곱이 있었다. 나중에 “이스라엘”이라고 불리게 된 야곱에게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된 아들과 손자가 있었다. 창세기 말미에는 기근이 들었을 때 야곱의 아들들과 그 가족이 요 셉의 영향력과 보호로 말미암아 애굽으로 이주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출애굽기를 펼치면 400년의 세월이 흐른 후 두 가지 새로운 현실이 전개된다. 첫째, 아브라함의 후손은 폭발 적으로 성장해 큰 민족을 이루었다. 출애굽기 1장 7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생육하고 크게 불어나 번성하고 심히 강하여 땅이 그들로 가득 찼다”라고 말한다. “크게 불어나다”로 번 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종종 우글거리는 곤충 떼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이것은 엄청난 수 의 이스라엘 백성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두 번째 새로운 현실이 있었다. 애굽의 정치적・사회적 상황이 바뀌었고, 야곱 후손들은 요셉의 총애를 받던 신민에서 요 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 아래 학대받는 노예가 되었다(1:8). 성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 및 그의 후손과 맺은 이전 언약 때문에 고통받는 백성을 불쌍 히 여기신다고 말한다. 이들은 이미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며, 그 언약이 여전히 유효하므 로 하나님은 이미 그들과 관계를 맺고 계시다. 다음 구절은 이런 연관성을 잘 보여 준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의 언약을 기억하사(출 2:24).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 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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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경으로서의 선지서 개론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3:15).
하나님은 출애굽기의 다른 곳(4:5; 6:3, 8; 32:13; 33:1)에서도 아브라함과 맺은 이전 언약을 암시하신다. 하나님은 큰 권능과 기적으로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광야로 인도하여 그곳 시내산에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19장 5-6절에서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 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시며 이 언약 의 주된 목적과 약속을 제시하신다. 이 말씀에는 두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첫째, 언약의 주된 약속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시리라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배로운 소유물”이자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며, 이는 그들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 구별 될 것임을 의미한다. 둘째, 그들은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다. 제사장의 임무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재하는 것이다. 제사장은 주로 자신을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 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나아간다. 이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즉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후 손을 사용하여 열방에 복을 주겠다는 언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하나님의 미래 구원 계획 에서 이스라엘의 역할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 언약은 이스라엘 민족의 삶과 통치의 중심이므로, 노아와 아브라함과의 언약에서 보 았듯이 몇 구절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출애굽기, 민수기, 신명기를 지배하고 있다. 또한 역사서(여호수아-열왕기)의 배경에 놓여 있으며, 선지자들의 메시지 중 많은 부분의 기초가 된다. 주요 구절로는 초기 언약 의무를 제시하는 출애굽기 20장 1절-23장 19절, 언약의 비준과 기탁을 설명하는 출애굽기 24장 3-8절 및 25장 16절, 순종 또는 불순종에 대한 축복과 저주를 명시한 레위기 26장 및 신명기 28장이 있다. 표 2.4를 참고하라. 표 2.4. 이스라엘과의 언약 관련 본문
출 19:5; 20:1-23:19; 24:3-8; 25:16; 레 26장; 신 28장
참여자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약속
하나님과의 관계 / 열방을 위한 제사장
의무
하나님에 대한 전적이고 배타적인 충성을 포함하여 모세의 율법에 대한 순종
표징
안식일(출 31:13, 16-17)
2장 ┃ 선지서의 신학적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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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으로 생각하기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의 범위
위에서 언급했듯이 언약 참여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 족이다. 다음 그림은 언약의 범위를 보여 준다(그림 2.5).
그림 2.5
(그림 2.4의 아브라함과의 언약과 비교하여) 더 큰 흰색 원 이스라엘과의 언약
은 이제 한 국가가 된 아브라함의 후손을 나타낸다. 이전 언 약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과 맺은 언약이었던 것처럼 이 언 약도 아브라함의 후손과 맺은 언약이다. 화살표는 언약의 목 적이 궁극적으로 온 세상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계속해서 나 타낸다. 이 언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맺어진 것이지만, 이스라엘 민족/국가에 속한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신실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금방 분명해진다. 언약 공동체의
민족들
구성원 중 일부는 믿음이 아니라 출생을 통해 포함된다. 다 시 말해, 공동체는 아브라함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사람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결과로 의로운 사람들,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거부하는 사람들로 구 성된 혼성 공동체다. 공동체가 혼합되어 있다는 한 가지 징후는 전형적인 죄와 반항적으로 행하는 죄가 구분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그 예다. “제사장은 실수한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그를 위해 주님 앞에서 속죄할지니……그는 용서받을 것이다……그러나 그가 본토인이든 지 타국인이든지 손을 높이 들고 무엇이든 하는 사람은 주님을 욕되게 하며 그 사람은 그의 백성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다. 그가 주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의 계명을 어겼으므로 그 사 람은 완전히 끊어질 것이며 그의 죄악이 그에게 있을 것이다”(민 15:28, 30-31). 손을 높
이 들고 죄를 짓는다는 것은 “고의적”이라는 뜻이 아니라(우리 모두 알다시피, 대부분 죄 는 고의적이기 때문이다) “회개하지 않는”을 의미한다.6 이 구절은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 의 일부가 하나님께 복종하기를 원하지 않고 그의 명령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 한다. 반항적이고 회개하지 않는 죄에 대한 결과는 공동체에서 끊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이야기 구절에서 언약 구성원의 혼합적인 성격을 볼 수 있다. 민수기 16장 1-35절에서 한 무리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권위를 부여하신 모세와 아론에게 반란 을 일으킨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 무리의 지도자들을 죽이시고(16:31-33), 하늘에서 내 린 불이 250명을 더 죽인다(16:35). 이들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의 구성원이지만 심판을 받는다. 가장 두드러진 예 중 하나는 여호수아서에 나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여리고성과 그 모든 주민을 완전히 진멸하라고 지시하신다. 이는 가나안 땅의 큰 악에 대한 심판이 될 것이다. 여호수아 2장에서 여호수아는 공격 전에 도시를 정찰하기 위해 정탐꾼들을 보냈 고 그들은 라합이라는 여인을 만난다. 적군 가운데 심판의 기준에 부합한 사람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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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경으로서의 선지서 개론
시각적으로 생각하기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의 구성원 그림 2.6
라합
여호수아
믿는 이스라엘
아간
민족 이스라엘
이스라엘과의 언약
그 사람이야말로 라합이다. 그는 여리고의 가나안 사람 창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라합은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백성과 함께하기를 원했으므로 구원을 받고(수 6:17), “오늘날까 지”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고 있다(6:23-25).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간이라 는 이스라엘 사람은 여리고 전투 이후 하나님께 불순종한다(7:1).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의 회원 자격을 충족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지파이자 다윗왕을 배출 하고 나아가 결국 메시아를 낳을 유다 지파 아간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간은 불신앙 때문에 자신뿐 아니라 그 가족까지 완전히 멸망한다(이는 하나님이 가나안 사람들 에게 의도하신 것과 같은 운명이다)(7:24-26). 이 에피소드는 민족 이스라엘과 믿는 이 스라엘이 똑같지 않음을 보여 주므로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벤 다이어그램으로 설명할 수 있다(그림 2.6 참고). 이 그림에서 이스라엘 주변의 어두운 영역은 여호와를 따르지 않는 주변 민족들을 나타낸다. 아간은 이스라엘 민족의 일원이지만 여호와를 따르는 자가 아니 므로 주변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심판을 받는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민족이면서 동시에 여호와를 따르는 사람이다. 라합은 이방 민족 출신이지만 믿으므로 이스라엘에 포함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 전체와 언약을 맺으셨으므로, 그 구성원에는 하나님께 신실한 사람과 신실하지 않은 사람이 모두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공동체에 서 함께 살면서 언약의 복을 누리고 (나중에) 언약을 어겼을 때의 결과도 함께 경험한다. 이 개념은 일부 선지서에서 논의의 기초가 된다.
2장 ┃ 선지서의 신학적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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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은 고대 근동(ANE)의 일반적인 정치적 언약을 모델로 삼았다.7 표 2.5는 출애굽기 20-25장에 제시된 청동기 시대 고대 근동의 언약과 이스라엘의 언약 을 단순화한 비교표다. 가운데 열을 보면, 전형적인 언약은 대왕이 자신을 밝히고 언약 관 계를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다음 그는 자신의 영토 안에서 부하 또는 하급 왕(봉신)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 이미 한 일을 회고한다. 아마도 그는 부하 왕을 도와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건은 이제 봉신 에게 의무를 요구하는 언약의 기초가 되었다. 이런 의무는 명확하게 진술되어 있다. 예를 들어, 봉신은 정기적으로 군사적 또는 재정적 지원을 제공해야 할 수도 있다. 또한 대왕도 신하 왕에 대해 지속적인 의무를 질 수 있다. 언약이 비준되면 성스러운 장소에 보관되거 나 공공장소에 새겨져 신하의 순종과 충성의 필요성에 대한 지속적인 증거가 되었다. 언약 을 주는 사람은 언약을 받는 사람에게 (충성에 대해서는) 복이 있고 (불충에 대해서는) 저 주와 좋지 못한 결과가 있을 것임을 보장하는 언약의 증인으로 자기 신들을 호출했다. 표 2.5. 고대 언약과 이스라엘과의 언약 고대 근동의 언약
이스라엘과의 언약
언약 수여자의 신원
왕은 신하에게 은혜로운 관계를 부여한다.
하나님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이스라엘을
역사적 서문
과거는 현재의 의무를 위한 기초이며, 왕 은 이미 신하에게 유익을 주었으니 이제
구원한 언약의 주체로 자신을 밝히신다(출 20:2).
신하가 응답해야 한다. 의무
신하는 왕에 대한 의무가 있다.
“십계명”(출 20:3-17, 부연 설명 20:2223:19)은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의무다.
비준
왕과 신하가 언약을 발효시킨다.
백성은 언약에 동의하고(출 24:3) 의식을 행한다(24:5-8).
언약의 기탁과
언약은 속국 백성에게도 구속력이 있다.
정기적 공개 낭독 증인 목록
축복과 저주
모세는 언약궤에 십계명을 기탁한다(출 25:16).
왕은 언약을 증거하고 신하에게 책임을 묻
언약의 증인은 자연(신 30:19; 31:28), 노
기 위해 신들을 부른다.
래(31:19), 백성 자신이다(수 24:22).
왕은 신하에게 순종에 따라 위협과 약속을
하나님은 순종하면 복을, 불순종하면 저주
한다.
를 약속하신다(레 26장; 신 28장).
우리는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에서도 이와 같은 유형을 볼 수 있다. 출애굽기 20장 2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고 언약의 역사적 근거가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할 때 이미 행한 일임을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하신다. 의무는 이미 성립된 관계에 대한 응답으로 그다음에 나온다는 점에 유의하라. 이스라엘이 순종하여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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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경으로서의 선지서 개론
나님과의 관계가 맺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미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므로, 그들 은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고 그의 가치에 부합하는 공동체에서 살아야 한다. 출애굽기 20장 3-17절의 십계명은 언약의 의무를 요약한 것으로, 20장 22절-23장 19절에서 부연 설명된다. 여기에는 예배 규정(20:25; 22:29)에서부터 집안의 종(21:1-6), 부모를 저주하 지 말 것(21:17), 마법과 주술 금지(22:18), 성 윤리(22:19), 사회 정의와 가난한 자에 대 한 배려(23:6-8)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포함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먼저 구두로(출 24:3), 이어서 희생 동물의 피를 바르는 의식 행위 로(24:5-8) 언약을 비준한다. 백성은 “주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행하고 순종하 겠나이다”라고 말한다. 그런 다음 모세는 동물의 피를 취하여 반은 제단에 뿌리고 나머지 반은 백성에게 뿌린다. 레위인들은 언약 전체를 상징하는 십계명이 담긴 돌판을 언약궤에 넣어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의 책임을 영원히 상기시킨다(출 25:16; 40:20). 고대 근동 의 상황에서 왕은 신들에게 언약의 증인이 되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언약은 하나님(유일신!)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이므로 누가 증인이 되어야 할까? 신명기에서 하 나님은 하늘과 땅이 대대로 지속될 것이므로 상징적인 증인으로 하늘과 땅을 부르 신다(30:19; 31:28). 모세는 또한 백성에게 그들이 맺은 약속을 상기시키는 증거로 노래 를 가르친다(31:19). 나중에 여호수아서에서 백성은 언약을 갱신하고 여호수아는 백성 스 스로가 증인이라고 말한다(수 24:22). 언약의 마지막 구성 요소는 축복과 저주다. 하나님은 먼저 순종에 대한 축복을 선포하신 다음(레 26:3-13; 신 28:1-14), 불순종에 대한 저주를 선포하신다(레 26:14-39; 신 28:15-68). 표 2.6은 이 구절들을 비교한 것이다. 이 구절들은 독특한 축복과 저주를 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겹치는 부분도 있다. 비율에 주목하라. 즉 축복에 대한 구절은 총 25개 이지만, 구체적이고 문제가 되는 저주에 대한 구절은 그보다 두 배 이상 많은 68개다. 안타 깝게도 이스라엘은 결국 이 언약을 어기고 이 모든 저주를 겪게 될 것이다. 그런 저주에는 땅이 산물을 생산하지 못하고, 적에게 패하고, 굶주림에 자기 자식을 잡아먹고, 이방 땅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 등이 포함될 것이다. 신명기에는 백성이 언약을 성공적으로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문제는 그들의 마음이 본질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변화, 즉 그들이 순종할 수 있게 해 줄 내적 변화다. 다음 구절에 주목하라.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 하셨느니라(29:4).
2장 ┃ 선지서의 신학적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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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2.6. 언약의 축복과 저주 레위기
축복
26:4
풍성한 농사
26:5
끊이지 않는 수확
26:6
땅의 평화
26:7-8
대적에 대한 승리
26:10
풍성한 양식
26:11-13
하나님이 함께하심
레위기
저주
26:16a
공포와 질병
신명기 복된 태와 농사
28:3-6, 11
대적에 대한 승리
28:7, 10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
28:9
경제적 번영과 힘
28:12-13
신명기 전염병과 질병
28:21-22, 27, 35
미치는 것, 눈이 머는 것, 정신병
28:28-29
26:16b
헛된 농사 노력
26:17
적에게 패배
적에게 패배
28:25-26
26:19-20
소산 없는 땅
소산 없는 땅
28:16-19, 23-24
죽음에 이르는 저주와 혼란
28:20
아내가 납치됨, 아이들, 동물들
28:30-33
자기 자식을 잡아먹음
28:53-57
소산 없는 땅
28:38-40
26:22
들짐승들
26:25-26
칼, 전염병, 기근
26:29
자기 자식을 잡아먹음
26:30
파괴된 종교 유적지
26:31-33
폐허가 된 도시와 유배
아이들이 유배됨
28:41
26:34-35
황폐한 땅
황폐한 땅
28:42
26:36-39
적 앞에서의 두려움
이방인에게 복종
28:43-44
적에게 패배
28:48-52
죽음을 부르는 질병
28:58-63
이방 땅으로 유배
28:64-68
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조상과 함께 누우려니와 이 백성은 그 땅으 로 들어가 음란히 그 땅의 이방 신들을 따르며 일어날 것이요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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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경으로서의 선지서 개론
맺은 언약을 어길 것이라(31: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10:1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30:6).
이스라엘의 불신실함에 대한 불길한 예언은 더 나아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이스라엘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실질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그동안 그들은 실패하고 이 언약을 깨뜨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주께로 돌아오면”(30:2) 희망 이 있다. 레위기 26장 41-42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 할례받지 아니한 그들의 마음이 낮아 져서 그들의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으면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 약을 기억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그 땅을 기억하리라.” 선지서를 공부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것이 이스라엘에 대한 선지자들의 근본적인 메시지 중 하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쓰라린 결과와 죽음 속에서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전심 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개입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의 표징은 안식일이다. 하나님은 십계명으로 언약을 소개하시면서 이스라엘에게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명하신다. 이 목록의 열 가지 계명 중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에는 가장 광범위한 설명이 나온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 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 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 니라”(출 20:9-11). 출애굽기 후반부에서 하나님은 안식일이 이스라엘과 맺은 이 언약의 표징이라고 말씀하신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 의 표징이니”(31:13). 이어서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31:16)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출애굽기부터 신명기까지 마흔두 번이나 언급될 정도로 중요한 명령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것은 기적적인 표징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백성에게 그들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지속해서 상기시 키기 위해 일정 기간을 지정하신 것이다. 안식일을 전체 언약의 표징이자 상징으로 사용하 는 것은 일부 선지자들이 누가 진정으로 여호와를 따르는 사람인지를 나타내는 표식으로 안식일에 주목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예. 사 56:2-6 또는 겔 20:12 참고).
2장 ┃ 선지서의 신학적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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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나라로 존재할 때부터 언젠가는 왕의 통치를 받을 것이라는 기 대가 있었다(신 17:14-20 참고). 하나님은 왕이 스스로 하나님의 율법을 필사하여 평생 읽고, 그 율법에 순종함으로써 여호와 경외하는 법을 배우라고 명하셨다(17:18-19). 왕은 백성이 하나님께 신실하도록 끊임없이 인도해야 했다. 왕은 이 땅에서 공의를 실천하고 가 난한 자를 돌보며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 신실함의 모범을 보여야 했다. 사사 시대가 끝날 무렵 백성은 왕을 요구한다. 그들은 구체적으로 “모든 나라와 같은” 왕을 요구한다(삼상 8:5). 사무엘이 이런 왕은 그들을 착취하고 그들의 희생으로 자신의 권력과 유산을 쌓을 것이라고 경고한 후에도 그들은 자신들과 싸워 줄 왕을 통해 “모든 나라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대답한다(8:20). 사무엘은 낙담하지만, 하나님은 백성이 사 무엘의 지도력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다스리는 것을 거부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여기에는 두 가지 상충하는 의제가 있다. 하나님은 자 신이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왕이자 지도자이며 인간 왕이 자신을 대신하여 백성에게 율법 을 가르치고, 신실함의 본을 보이고, 공의를 행함으로써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이행하기 를 원하신다. 그러나 백성은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다른 모든 나라처럼 인간 왕이 그들을 이끌고 전쟁터로 나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 백성의 소원은 이 루어지고 사울이 모든 나라의 왕과 똑같은 왕이 된다. 사울은 이기적이고 불순종하며 자신 의 성공에만 관심이 있었다. 사울의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은 그에게서 왕권을 빼앗고 그는 전쟁터에서 죽임을 당한다. 사울의 후계자가 다윗이다. 이번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우선하는데, 별 볼일 없어 보이지 만 하나님을 향한 복종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선택된다(삼상 16:7). 다윗은 자기 가족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피해를 주는 심각한 죄를 짓지만, 오직 하나님께 끈질기게 충성하고 죄에서 돌이킴으로써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모범으로 삼고 실천한다. 다윗은 하나님에게 헌신하기 위해 하나님을 위한 “집”(성전)을 짓기를 희망하는데, 이때 까지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곳은 성막(장막)이었기 때문이다(삼하 7:2). 처음에 나단 선지자는 성전 건축에 대한 다윗의 소망을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그날 밤 하나님은 나단에게 다윗이 성전을 건축해서는 안 된다고 지시하신다. 대신 하나님은 다윗과 언약을 맺으신다. 이 언약을 설명하는 주요 구절인 사무엘하 7장 8-16절에서 하나님은 “언약”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다윗은 마지막 말에서 “[하나님이] 나와 영원한 언약을 맺으셨으므로”(23:5)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언약이라고 부른다. 시편 89편 3-4절 도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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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경으로서의 선지서 개론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이 언약의 직접적인 참여자는 하나님과 다윗이지만, 언약의 목적은 하나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을 세우는 것이다. 표 2.7을 참고하라. 표 2.7. 다윗과 맺은 언약 관련 본문
삼하 7:8-16; 23:5; 시 89:3-4
참여자
하나님과 다윗(국가에 대한 함의 포함) 다윗의 생애 동안의 약속(삼하 7:8-11): •위대한 이름 •이스라엘을 위한 땅
약속
•적들로부터의 안식 다윗의 생애 이후(삼하 7:12-16): •영원한 자손 •영원한 왕국
의무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충성
표징
없음
그림 2.7에서 별은 흰색 원으로 표시된 이스라엘의 구성 원(및 지도자)인 다윗을 나타낸다. 위의 논의에 비추어 볼 때, 가운데 원은 언약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의 혼합된 성 격을 묘사한다. 일부는 신실한 신자이지만 다른 일부는 출 생으로만 구성원이 된다. 아브라함 및 이스라엘과 맺은 언
시각적으로 생각하기 다윗과 맺은 언약의 범위 그림 2.7 다윗과의 언약
약을 설명하는 그림에서와 같이 화살표는 다윗 언약이 궁 극적으로 땅의 모든 민족(바깥 큰 원)에게 복을 주기 위한 것임을 나타낸다. 이 그림에서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하나 님이 세상에 복을 주시기 위한 수단으로 작은 개체들과 계 속 언약을 맺으셨다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 아 브라함의 자손에서 나오는 국가로서의 이스라엘, 아브라함 자손이며 통치자인 다윗이 그 예다. 언약의 약속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부분(삼하
민족들
2장 ┃ 선지서의 신학적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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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11)은 하나님이 다윗의 생애에 대해 다윗에게 직접 하신 약속을 설명한다. 하나님은 다윗의 이름을 크게 하시고(7:9), 이스라엘을 위해 땅을 견고하게 지키시며(7:10), 사방의 대적들로부터 다윗에게 안식을 주겠다고 약속하신다(7:11a). 이런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약속은 사무엘하 7장 12-16절에서 미래에 대한 더 큰 약속으로 확장된다. 하나님은 말의 유희를 사용하신다. 즉 다윗은 하나님께 “집”(성전)을 지어 드리려 했지만, 대신 하나님은 다윗을 “집”(왕조)으로 만드실 것이다(7:11b).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의 왕국을 영원히 다 스릴 자손을 주실 것이다(7:12-13). 따라서 창세기에서 시작된 약속의 계보는 계속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를 선택하셨다. 유다의 아들 베레스는 보아스의 조상이었다. 보아스는 룻에게서 다윗 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 오벳을 낳았다(룻 4:18-22; 대상 2:4-15). 내전으로 나라가 분열될 때 다윗의 후손은 유다 왕이 될 것이다. 그 왕 중 일부는 사악하여 징벌을 받겠지 만(삼하 7:14-15), 하나님의 약속은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다윗의 후손은 궁극적으로 영 원한 왕국과 영원한 왕좌를 다스리게 될 것이다(7:16).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나님이 어떻게 다윗에게 영원한 “집”을 주실 수 있을까?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한 가지 가능성은 왕조가 영원하고 영원히 대가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은 이런 가능성을 배제 한다. 두 번째 가능성은 절대 죽지 않는 왕위 계승자가 궁극적으로 있는 것이다.8 다윗과의 언약에는 명시적인 의무가 없다. 그러나 이 언약은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 토대 위에 세워졌으므로, 다윗과 그의 후손이 그런 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하나님은 이 언약에 대한 표징을 지정하지 않으셨다.
새 언약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내시고 자신과의 관계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주도권 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에게 신실해지려는 의지가 없거나 불가능하다(또는 둘 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베푸신 수많은 기적을 보았는데도 광야에서 투덜거린다. 약속의 땅 에 들어가서도 하나님 명령을 어긴다. 그들은 주변 민족의 신과 종교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군사력이나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는 능력에 자신감을 가진다. 그들은 언약의 동반자인 하 나님의 성품을 반영하지 못한다. 그들은 사회적 약자를 학대하고 착취하며 도둑질하고 살 인하고 타락한 성행위를 저지른다. 다윗의 혈통에서 나온 왕들 역시 동족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과 실패의 본을 따른다. 이스라엘이 언약의 의무를 어겼으므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에게 언약의 저주를 내릴 것이라고 선포하신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설령 그들이 다시 시도하고 어쩌면 다음에는 더 큰 노력을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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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경으로서의 선지서 개론
해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리라는 진술을 통해 강화된다. 위에서 언급 했듯이 신명기는 이런 실패를 예견한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으며 하나님이 요구 하는 것을 행할 수 없다. 나중에 하나님이 궁극적인 언약의 저주, 곧 그들을 그 땅에서 쫓 아내기 몇 해 전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신명기 말씀을 되풀이한다.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 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 으리라(렘 4:4).
할례받은 자와 할례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 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9:25-26).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13:23).
신명기처럼 예레미야는 그들의 마음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으므로, 그들 자신에게 맡기 면 결코 신실한 언약의 동반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좋은 소식이 있다. 선지자들 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기존 언약과는 몇 가지 주요한 차이가 있는 새 언약을 맺으 시리라고 선포한다. 선지서의 여러 구절에서 이스라엘과 맺은 이전 언약과는 다른 언약을 말한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종”을 통해 성취될 미래 언약을 말한다. 그는 그 종이 스스로 백성을 위한 언약 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42:6). 이사야는 그 종이 언약을 시작하거나 세우거나 중재할 것 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 자신이 언약이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에 유의하라. 이 사야 54장 1-10절은 “평화의 언약”을 기대한다. 마찬가지로 에스겔은 하나님이 “그들의 육신에서 돌같이 단단한 마음을 제거하고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그들이 내 율례 대로 행하고 내 규례를 지키며 순종하게”(11:19-20) 하시리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한 목 자, 내 종 다윗을 세워서 그들을 먹일 것이며”, “그들과 평화의 언약을 맺을 것”(34:23, 25)이다. 이것은 새 마음, 새 영, 하나님과 살아 있는 관계로 이어질 것이다(36:25-26). 여 러 구절에서 하나님은 “영원한 언약”에 대해 말씀하신다(사 55:1-5 및 렘 50:5 참고). 그 러나 새 언약의 핵심 구절이자 그 이름을 부여한 구절은 예레미야 31장 31-34절이다. 예레미야 31장 31-32절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낼 때 그들의 조상 들과 맺은 언약과는 다른 새 언약을 맺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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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임에도 그들이 깨뜨린 이스라엘과의 언약에 대한 언급이다(31:32). 하나님은 지금까 지 언제나 선하심으로 돌보아 주었으며 그들에게 관계를 깨뜨릴 이유를 주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그렇게 했다. 그런 다음 예레미야 31장 33-34절에서 하나님은 이 새 언약에서 네 가지 약속을 주 신다(표 2.8 참고). 첫째, 31장 33b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내 법을 그들 속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기록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강퍅하고 할례를 받지 않은 마 음이 그들로 하여금 신실하지 못하게 했다는 이전 구절의 직접적인 반향이자 반전이다. 이 새 언약에서 하나님은 그들 마음을 내면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율법 준수가 이질적이고 외면적인 것이 아니며(따라서 불쾌한 것이 아니라), 율법이 그들의 새로운 본성에서 자연 스럽게 나올 것이다. 표 2.8. 새 언약 관련 본문
렘 31:31-34
참여자
하나님과 이스라엘/유다(신실한 추종자)
약속
1. 마음에 기록된 내적 율법(33b절) 2. 하나님과의 관계(33c절) 3. 믿는 성도들(34a절) 4. 죄 사함(34b절)
의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암묵적)
표징
없음
둘째, 예레미야 31장 33c절에서 예레미야는 이 새 언약에서 하나님이 내내 의도했던 것, 즉 자기 백성과 관계를 맺는 것을 마침내 성취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그들에 게 속하고 그들은 하나님에게 속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죄가 있기 전 동산에서 나누 었던 친밀감과 자유가 회복될 것이다. 셋째, 예레미야는 31장 34a절에서 혼합된 공동체의 종말을 선언한다. “더 이상 각 사람 이 자기 이웃과 자기 형제에게 주님을 알라고 가르치지 아니하리니 이는 지극히 작은 자로 부터 큰 자까지 모두가 나를 알겠음이라.”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스라엘과 맺은 이전 언약 의 구성원은 신자와 불신자, 즉 하나님을 찾고 그에게 신실한 사람과 그에게 반역하는 사 람으로 구성되었다. 따라서 이 언약 공동체 안에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을 따 르고 헌신하도록 촉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 새 언약에서는 “그들이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므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새 언약의 구성원은 근본적 으로 달라질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신실한 사람들로만 구성될 것이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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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경으로서의 선지서 개론
시각적으로 생각하기 공동체 안에서 “전도”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 언약은
새 언약의 범위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렘 31:31, 33)과 맺어졌지만, 그
그림 2.8
언약에는 믿는 자들만 포함된다(그림 2.8 참고).
새 언약
바울은 로마서 9장 6절에서 “이스라엘의 후손이라고 해서 모두 이스라엘에 속하는 것은 아니니”라고 말하면서 “이 스라엘”이라는 단어를 비슷하게 사용한다. 바울의 말에서 첫 번째 나온 “이스라엘”은 야곱의 아들들에게서 육체적으로 후손이 된 자들에 대해 말한 것이므로 국가적・민족적 이 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두 번째 나온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믿는 백성을 가리킨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즉 믿음의 자손]이
민족들
되는 것은 아니다”(9:7). 몇 구절 뒤에서 바울은 이사야 10장 22절을 인용한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그들 중 남은 자만이 구원을 받으리라”(롬 9:27). 그림 2.8의 화살표는 안쪽을 가리킨다. 이전 언약에서 바깥쪽을 가리키는 화살표는 각 언약이 궁극적으로 열방을 복되 게 하려는 것임을 나타낸다. 새 언약에서는 이 복이 명확해졌다. 이 복은 열방을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새로운 신앙 공동체 안으로 초대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선지자들이 열방이 예루살렘(하나님 나라의 중심)으로 몰려와 구원을 경험한다고 말하는 이유를 설명 해 준다. 새 언약의 네 번째 약속은 예레미야 31장 34b절에 있다. 하나님은 “내가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신다. 예레미야는 이 용서가 어떻 게 이루어질지 설명하지 않고, 단지 그것이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 기초가 될 것이라고만 말한다. 신약 성경은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지 설명한다. 예레미야 31장 31-34절에는 새 언약에 대한 명시적인 의무를 주지 않지만, 이 구절과 선지서의 다른 구절에서 볼 때, 새 언약 구성원들은 이제 하나님 명령에 순종할 수 있게 될(그리고 기대될) 것이 분명하다. 율법이 “그들 안에” 및 “그들의 마음에” 있다는 말이 가 리키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31:33).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 및 자기 백성이 자신, 그리고 서로서로 관계를 맺는 구체적인 방법을 계시하는 율법을 주셨다. 변화되고 용서받은 새 언 약 공동체의 구성원은 이제 진정한 하나님 백성으로 행동할 것이다.
2장 ┃ 선지서의 신학적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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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으로 생각하기 언약의 상호 관계 그림 2.9
(1) 노아 언약
(2) 아브라함 언약 (3) 이스라엘 언약
(4) 다윗 언약
(5) 새 언약
생명 (죽음이 아님)
1
자손 2 관계 3 땅
1
영원한 자손 2 영원한 보좌
1
1
하나님과의 관계 2 열방을 위한 제사장 1
변화 관계 3 믿는 지체들 4 죄 사함 2
언약과 그리스도 구약 성경의 다섯 가지 주요 언약은 오랜 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계시가 되었다. 이것 은 한 언약이 끝나면 다음 언약이 시작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각 언약은 계속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언약들은 서로를 기반으로 한다. 휴대전화의 앱 업데이트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필수적인 앱은 계속 유지되지만, 어떤 기능은 추가되고 어떤 기능은 쓸모없어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서도 언약과 언약 사이에는 연속 성이 있지만 일부 기능은 쓸모없어질 수 있다.9 우리가 보는 것은 완전한 대체가 아니라 추가와 조정이다. 선지서의 일부 구절에서 모든 언약이 함께 언급된 것은 그들 모두가 여
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에스겔 37장 24-26절을 살펴보라(개별 언약은 강조체로 표시).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될 것이요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내 규례를 따르며 내 율례에 순종해야 한다[이스라엘]. 그들은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너희 조상들이 살던 땅에 거할 것이다[아브라함]. 그들과 그들의 자자손손이 영원히 거기 에 거할 것이며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왕이 될 것이다.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과 맺는 영원한 언약[새 언약]이 될 것이다. 내가 그들을 그 땅에 두어 번성하게 하고 내 성소를 그들 가운데에 영원히 세울 것이다[이스라엘].
예레미야 33장 14-26절은 하나님의 다윗왕이 다양한 언약을 성취하는 것에 대해 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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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경으로서의 선지서 개론
는 또 다른 예언 구절이다. 그림 2.9는 이런 진행과 연속을 보여 준다. 각 언약은 이전 언약 의 약속을 이행한다. 이를 확인하는 한 가지 (그러나 지나치게 단순화된) 방법은 그림 2.9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거꾸로 읽는 것이다. 새 언약(내적이고 영구적인 변화와 용서) 은 다윗왕이 하나님의 구속된 왕국을 다스리는 수단이며, 이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관계 를 맺음으로써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성취하기 위함이며, 이는 또 아브라함이 모든 민족 에게 복이 될 수 있게 하려는 것인데, 하나님은 모든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번성하고 살기 를 원하시기 때문이다(노아와의 언약). 이 틀을 성경 전체라는 정경의 맥락에 놓을 때야 우리는 비로소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다.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죄에 빠졌을 때부터 하나님은 구약 성경 전체에 걸쳐 특정한 후손을 보존해 오셨고(셋 → 노아 → 아브라함 → 이삭 → 야곱 → 유다 → 보아스 → 다윗 → 유다 왕들 → 스룹바벨), 이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 이른다(마 1:1-17; 눅 3:23-38). 이 과정 에서 하나님은 인류의 대표자를 선택하셔서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한 그의 구원의 수단을 향 하는 궤적을 그리게 하시고 또 그 수단을 나타내게 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 손인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셨고, 그런 다음 이스라엘 중에서 다윗을 자기 왕이자 메시아 의 근원으로 선택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을 구속하고 온 인류가 믿음으로 자기 백성 안으로 들어오도록 초대하는데, 인류는 그리스도가 망가진 세상을 회복하시고 새 하 늘과 새 땅을 열어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그림 2.10).
시각적으로 생각하기 예수 그리스도와 언약
세계
인류
이스라엘
그리스도
다윗
이스라엘
인류
세계
그림 2.10
Stephen G. Dempster, Dominion and Dynasty: A Theology of the Hebrew Bible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03, 『NSBT 하나님 나라 관점으로 읽는 구약신학』,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2), 231-234를 보라.
2장 ┃ 선지서의 신학적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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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섯 가지 언약을 각각 성취하신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 는 노아와 땅의 모든 생명과 맺은 언약을 성취하시는데, 심판이 아닌 생명을 가져오고 믿 는 자에게 전 지구적 대재앙에서 구원을 주시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열방에 복을 가져다주시는 아브라함의 후손의 정점이자 목표다. 사도행전 3장 25-26절에서 베드 로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 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 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 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라고 말한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 는 자기 백성 가운데 “장막을 쳤고”(즉 거했고, 요 1:14) 단번의 희생을 통해 그들이 자신 과 영원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으므로 시내산 언약을 성취하셨다. 히브리서 기자는 9장 13-14절에서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 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고 기록한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 획을 완벽하게 실행하시고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시는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의 왕이시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왕국에서 공의와 정의로 다스리신다(마 6:33). 마지막으로, 새 언약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실현된다(마 26:28; 고전 11:25). 예수의 십자가 사역을 믿음으로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하나를 이루어 그리스도와 연 합하고, 그의 가족으로 입양되고, 그의 영으로 은사를 받고, 그들의 죄를 완전히 사함을 받 는다(행 2:5; 엡 2:13-22; 계 7:9).
결론 이 장에서 논의한 신학적 서술은 구약 선지자들의 메시지와 사역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맥락이다. 선지자들은 특정한 시대와 상황에 따라 하나님에게서 독특한 메시지를 받았지 만, 그들의 말은 이미 확고한 이런 토대 위에 세워졌다. 그들은 이전의 언약을 청중이나 독 자들에게 적용하고 하나님이 장차 이루실 새 언약을 계시하는 설교자다. 이런 언약은 선지자들의 신학적 중추를 형성한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므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에게 소중한 존재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을 사랑하시지만, 다른 모든 민족에게도 깊은 관심을 두고 계신다.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의 지위는 또한 모든 인간이 하나님에게 책임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선지자들이 열방의 악을 정죄하고 이 스라엘과 서로를 해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는 근거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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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경으로서의 선지서 개론
의 후손을 통해 성취될 구속 계획을 세운 것은 하나님 자신의 사랑 때문이었다. 아브라함 의 후손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성장했고, 하나님은 그들과 특별한 언약을 맺으셨지만, 그들 은 하나님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치고 근본적인 결함이 있음을 보여 주면서 실패했다. 미래 에 대한 회복과 희망이 약속되어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언약의 저주가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선지자들은 다윗 왕조와 다윗의 도성 예루살렘에서 이 희망을 찾는다. 이스라엘은 완악하고 반역하기로 작정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회복시키기로 더욱 결심하셨다. 결국 하나님 백성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자신들의 왕이 다스리는 안전하고 정의로운 좋은 세상 에서 평화와 온전함과 번영 가운데 살게 될 것이다. 죄의 저주가 풀리고 모든 게 잘될 것 이다.
기독교인의 성경 읽기 질문 1. “언약”을 자기 말로 정의하라. 언약과 계약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2. 언약의 “의무”와 “조건”에는 차이가 있는가? 언약의 의무와 그에 상응하는 표징이 항상 율법주의로 이 어지는가?
3. 구약의 언약 공동체가 “혼합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언약 공동체의 혼합적 성격이 선지서 와 구약 전체를 읽는 방식에 어떤 함의를 주는가?
4. 모든 언약의 근간이 되는 목표를 식별할 수 있는가? 이 목표는 인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전반적인 목적에 대해 무엇을 시사하는가?
5. 예수는 각 언약을 어떻게 성취하셨는지 설명해 보라. 핵심 성경 본문을 들어 답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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