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하나님 아들의 상속을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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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au McCaulley, 2019

This translation of Sharing in the Son’s Inheritance: Davidic Messianism and Paul’s Worldwide Interpretation of the Abrahamic Land Promise in Galatians, First Edition is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Bloomsbury Publishing Plc. through rMaeng2, Seoul,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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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Korean translation edition ⓒ 2024 by Revival and Reformation Press, Seoul,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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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들의 상속을 나눔

발행일 2024년 11월 20일

지은이 이소 매콜리

옮긴이 신윤수

펴낸이 김은주

펴낸곳 부흥과개혁사

편집 권대영 디자인 박슬기 기획 이승영 마케팅 권성직

인쇄소 영진문원

판권 Ⓒ부흥과개혁사 2024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6길 9-20, 2층(서교동)

전화 Tel. 02) 332-7752 Fax. 02) 332-7742

홈페이지 http://rnrbook.com e-mail rnrbook@hanmail.net

ISBN 979-11-94295-14-3 (94230) 979-11-94295-01-3 (94230) (세트)

등록 1998년 9월 15일 (제13-548호)

는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추구합니다. 부흥과개혁사는 부흥과 개혁이 이 시대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조국 교회의 부흥과 개혁의 방향을 위한 이정표이자, 잠든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을 촉구하는 나팔소리요, 깨어난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의 불길을 지속시키는 장작더미이며,

주기 위한 깃발이고자 기독교 출판의 바다에 출항하였습니다.

목차

┃약어 6

1장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땅과 메시아 9

1.1. 문제 상황 9

1.2. 개요 11

1.3. 바울 서신에 나타난 땅에 대한 연구사 15

1.4.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바울의 메시아

1.5. 1장의 결론 77

땅 상속에 대한 연구사 50

2장 위경에 나타난 왕적 인물, 다윗 자손

2.1. 서론 79

2.2. 솔로몬의 시편 17편 83

2.3. 바룩2서 95

2.4. 에스라4서 108

2.5. 마카베오1서 13-14장 117

2.6. 2장의 결론 124

3장 사해

3.1. 서론 126

3.2. 4Q174(4QFlorilegium) 131

3.3. 4Q252(4QcommGena) 139

3.4. 4Q161(4QIsaiah Peshera) 146

3.5. 1QSb(Blessings) 156

3.6. 3장의 결론 160

4장 저주의 끝과 상속의 시작: 다윗 자손 메시아의 신앙, 성령, 아브라함의 땅 약속(갈 3:1-14) 163

4.1. 서론 163

4.2. 갈라디아서 3장 1-5절 166

4.3. 갈라디아서 3장 6-9절 175

4.4. 갈라디아서 3장 10-14절 187

4.5. 4장의 결론 231

5장 아들의 유업에 참여하다:

아브라함의 땅 약속(갈 3:15-4:7; 5:21) 233

5.1. 서론 233

5.2. 갈라디아서 3장 15-19절 235

5.3. 갈라디아서 3장 26-29절 262

5.4. 갈라디아서 4장 1-7절과 5장 21절 278

5.5. 5장의 결론 308

6장 결론 310

6.1. 갈라디아서에서 땅과 메시아의 재조명 310

6.2. 쿰란과 위경의 증거 313

6.3. 갈라디아서 3장 1-14절에 나타난 저주와 유업과 성령 316

6.4. 갈라디아서 3장 15절-4장 7절과 5장 21절에 나오는 메시아의 씨와 그의 유업과 왕국 319

6.5. 본 연구의 시사점 322

┃참고문헌 328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땅과 메시아

1.1. 문제 상황

갈라디아서를 바탕으로 아브라함의 땅 약속에 대한 바울의 해석에

대해 주목할 만한 연구가 여태 전혀 없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

닐 수 없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 6, 8, 9, 14, 15-18, 26-29절, 4장 21, 25-31절에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땅 상속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은 기대를 벗어난다. 아브라 함의 약속에 적어도 가나안 땅, 아브라함 자손의 번성, 이방인의 복이 포함된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1) 학자들 대부분 바울이 아브라 함에게 약속된 대가족과 이방인의 복에 관심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는

1) 바울은 아브라함의 약속을 언급할 때 ‘게’(γῆ)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지만, 롬 4:13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물리적 공간을 약속했음을 인정하며, 여기에는 ‘아브라암’(Ἀβραὰμ), ‘에팡겔리아’(ἐπαγγελία), ‘클레로노모스’(κληρονόμος) 및 ‘코스모스’(κόσμος)라는 어휘가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포함 한 다른 서신에서 상속에 대한 확장된 이해를 보여 주고 있는지 당연히 궁금하게 만 든다. 아래 논의를 보라.

점을 감안할 때, 특히 바울이 절정을 이루는 진술에서 갈라디아 교인

을 상속자로 묘사하면서도( 3:26-29; 4:7, 30-31 ) 땅 상속에 대해서는 별

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뜻밖이다. 갈라디아서

에서 땅 주제를 논의하는 소수 학자도 바울이 땅에 대한 약속을 포기

하거나 영적으로 해석한다고 주장한다.2)

이 책은 갈라디아서의 상속에 대한 최근 논의가 아브라함의 땅 약속

에 대한 바울의 해석을 바울 학계에서 뜨거운 논쟁이 되고 있는 또 다

른 질문인 유대교 또는 초기 기독교 메시아 신앙의 역할과 연결하지

않았다는 것이 결함이라고 주장한다. 학자 대부분 다윗 자손 메시아

신앙이 바울 신학의 어떤 측면에서도 거의 또는 전혀 역할이 없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메시아 신앙이 아브라함의 땅 약속에 대한 바울의 해

석에 미친 영향을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3) 이런 가정은 잘못이다. 이

책은 바울이 예수의 신분을 다윗 자손 메시아로 확증한 것과 아브라함

의 땅 약속에 대한 바울의 해석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바

울은 아브라함에 대한 땅 약속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다

윗의 자손( 갈 3:16 ) 예수가 세상 민족과 영토를 자신의 유업과 왕국으로

받을 자격이 있다( 시 2:7-8 ) 고 믿었기 때문에 온 땅을 포함하도록 확장

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바울에 따르면, 신자는 온 땅을 다스리는

2) 땅의 약속에 대한 중요한 연구는 윌리엄 데이비스(W. D. Davies)의 1979년 저 서다. 이 연구에서 데이비스는 바울이 지리적 땅의 약속을 포기했다고 주장한다. “땅에 대한 언급은……갈라디아서의 논쟁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라는 Bruce 1982: 172는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를 대표한다. Burton 1980[1921]: 185; Witherington 2004: 245-246, 292; Das 2014: 390; Martyn 1997: 342343; Williams 1997: 96-97; de Boer 2011: 185; Garlington 2007: 206207도 보라. 이 저자들은 성령이 땅을 대체했다고 주장한다.

3) Lee 2016: 375는 “전통적으로 대다수의 학자들은 바울의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 를 칭호가 아니라 예수의 성으로 이해해야 하며 예수의 메시아 직분은 바울의 사상 에서 거의 또는 전혀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강조 추가).

메시아적 아들의 전 세계적 상속에 참여함으로써 자신들의 유업을 받

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바울의 메시아 신앙에 대한 학계의 합

의가 잘못되었으며, 그 때문에 아브라함의 땅 상속에 대한 바울의 이

해에 대한 합의도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1.2. 개요

1장은 바울 신학에서 땅과 메시아 신앙에 대한 연구사를 고찰한다.

여기서 나는 대다수 학자가 충분한 주해적 근거 없이 바울이 땅 약속

을 포기하거나 영적으로 해석했다고 가정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바울 이 땅 약속을 영적으로 해석했다는 이런 주장과 함께, 나는 바울이 지

리적 이스라엘 땅을 온 세상 또는 왕국의 종말론적 수용으로 대체한다

고 주장하는 비주류 학자 집단을 강조한다. 나는 땅 약속을 전 세계적

으로 해석하는 이들의 주장이 땅 약속을 무시하거나 영적으로 해석하

는 의견보다 더 타당함을 보여 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학자들의 제

안이 언약 저주의 제거와 종말론적 상속 수용 사이의 연관성을 강조하

는 갈라디아서 3장 1절-4장 7절을 통해 강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또한 이런 과거의 의견을 기반으로 다윗 자손 메시아 신앙과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전 세계적 상속을 확언한 것 사이의 관계를 명 확히 할 것이다.

이 장 후반부에서는 메시아 신앙을 검토하면서 학자들이 유대교 메

시아 신앙, 초기 기독교 메시아 신앙,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바울의 메

것이다.4) 학자들은 이런 무시로 인해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상속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전 세계적 메시아 왕국을 무 시한다.

2장과 3장에서는 제2 성전 시대 문헌( 4Q161, 4Q174, 4Q262, 1QSb, 솔로몬

의 시편 17편, 바룩2서, 에스라4서, 마카베오1서 ) 을 검토한다. 이들 본문은 제2

성전 시대 저자들이 종종 왕적 인물이 땅에 대한 약속을 최종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5) 땅의 범위는 다양 하다.6) 때로는 땅에 전 세계를 포함하기도 하고, 예루살렘과 그 주변

지역만 포함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왕적 인물이 회복의 대리인 역할을 한다는 주장은 제2 성전 시대 여러 담론에서 안정적으로 일관된 요 소다.

4장과 5장은 바울이 대속의 죽음을 당함으로써 언약의 저주를 소멸

시키고, 그리하여 메시아의 온 세상 상속에 참여하는 신자를 통해 아

브라함의 약속이 최종적으로 실현될 수 있게 하는 다윗 자손 메시아로

예수를 제시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바울에 따르면, 성령과 함께 시작

하는 이 상속은 믿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메시아 왕국에 들어갈 때 궁

극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따라서 바울의 주장 목표, 곧 왕이 세상을 물

려받고 백성이 그 상속에 참여하는 것은 제2 성전 시대의 많은 가능성

가운데 하나로 인정할 수 있다.

논의를 더 진행하기 전에 “땅 약속”이라는 문구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 책에서 땅 약속( 또는 땅에 대한 약속 ) 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처 소를 마련해 줄 것이라는 성경 본문의 여러 구절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4) 아래에 제시된 땅 약속의 정의를 보라.

5) “왕적 인물”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아래 방법론 논의를 보라.

6) Lied 2008: 199는 바룩2서의 땅에 대해 말하면서 “땅은 이스라엘의 역사적 경계가 아니라 더 작은 지역을 지칭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것은 반대로 바룩2서 를 비롯한 제2 성전 시대 문헌에서 더 넓은 지역을 지칭할 수도 있다.

선언을 말한다. 내러티브 관점에서 보면, 이 약속은 아브라함 이야기

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할 때

처음 등장한다( 창 12:1-3; 15:1-21 ). 하나님은 또한 출애굽 이야기에서도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 땅을 약속했다( 출 13:11 ). 또한 이스라엘의 예언서

에서는 포로기 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이 땅을 회복해 주실 것이라

는 선언을 볼 수 있다( 사 11:11-16; 겔 37:11-14 ). 그러므로 내가 땅의 약속

을 언급할 경우, 가나안 땅( 그리고 포로기 후 및 제2 성전 시대 일부 문헌에서는

세계 ) 이 상속으로 이스라엘에게 속한다는 생각을 말한 것이다. 나는 이

땅에 대한 이후의 모든 언급이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명

시적으로 암시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일부만 그렇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이 땅이 하나님의 선물로서 당연히 이스라엘의 것이라는 일반적

인 관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2 성전 시대의 왕적 인물은 땅 약속과 어떤 관련이 있는

가? 제2 성전 시대 저자들은 종종 왕적이며 메시아적인 인물을 위에서

정의한 땅 약속의 최종적인 실현과 연관시킨다. 달리 말하면, 이들 제2

성전 시대 저자들이 볼 때 이스라엘은 아직 하나님이 약속한 땅을 얻

지 못했다. 이 저자들은 하나님이 왕적이며 메시아적인 인물을 대리인

으로 삼아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것을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기록에서 이스라엘이 받는 것은 단순히 가나안 땅이 아닐 때도 있다.

그 대신 이스라엘의 회복은 전 세계적인 왕국에서 절정에 이른다.7)

2장과 3장은 왕적이며 메시아적인 인물이 실제로 제2 성전 시대 문헌 에 나오는 땅 약속의 최종 실현과 관련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이 책의 광범위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4장과 5장에서는 신자가 메시아 예수의 전 세계적 상속에 참여할 수 있다는 바울의 주장이 제2 성전 시대 메

7) 예를 들어, 바룩2서, 에스라4서, 솔로몬의 시편 17편에 대한 논의를 보라.

시아 신앙의 한 표현이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믿는 유대인과 이

방인이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상속할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

셨던 상속 약속이 성취될 것이라고 바울이 주장하기 때문이다. 바울에

게 이런 성취는 믿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새 창조 안에서 메시아 예수

의 통치 아래 사는 형태를 취한다. 바울이 육체적으로 부활한 신자가

물리적 공간에 사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에 이것은 땅 약속의 영적 해

석이 아니다.

바울이 명시적으로 아브라함에게 초점을 맞춘 것은 제2 성전 시대

저자 사이에서도 두드러진다. 다른 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그 땅으

로 회복시킬 사람이 왕일 것이라고 선언하는 과정에서 간혹 아브라함

을 떠올리지만, 바울은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주장의

중심 기둥으로 삼는다. 다른 사람이 다른 약속을 반복해서 언급할 때

바울은 왜 아브라함이 약속받은 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일까? 바울이

아브라함에게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아브라함을 통해 열방에 복을 주

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곧 하나님이 이방인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약

속된 상속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락할 것이라는 약속을 보았기 때문 이다. 바울이 볼 때 메시아 예수는 바로 이 아브라함( 그리고 다윗 ) 의 씨

이며, 믿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초대하여 예수 자신에게 속한 것을 나 누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목적에 있어서 이방인의 위

치를 강조하는 신학적인 기능이 있다. 아브라함에 대한 땅 약속이 온

땅을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되는 것은 내 생각에 다른 성경 자료에서

발견되는 땅 약속을 강조하는 제2 성전 시대 저자와 근본적으로 다르

지 않다. 그들의 신학적 의제는 반드시 아브라함의 땅 약속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 저자들은 하나님이 왕적이며 메시아

적인 인물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상속을 회복하기 위해 행동할

것이라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주장한다. 이런 설명을 바탕으로 이제

우리는 땅과 메시아 신앙에 대한 바울 학계의 연구를 검토해 보겠다.

1.3. 바울 서신에 나타난 땅에 대한 연구사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바울서신 특히 갈라디아서에서 땅 문제를 소

홀히 다룬다. 바울 사상에서 땅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신약 성경의 땅

이라는 더 큰 연구의 맥락에서 이루어진다.8) 따라서 대부분 이 주제를

간결하고 피상적으로 다룬다. 땅에 대한 논의에서 주요한 관점은 다음

넷이다. (1) 바울은 땅에 대한 약속을 포기했다. (2) 바울은 땅을 성령

으로 대체했다. (3) 바울은 땅에 대한 약속을 구원으로 대체했다.9) (4)

바울은 땅에 대한 약속의 전 세계적 성취를 믿었다.

이하의 논의에서 나는 바울이 아브라함에 대한 땅 약속을 포기했다

는 다양한 의견의 문제점을 강조한다. 아브라함에 대한 땅 약속이 전

세계적으로 성취되었다는 이전의 확언은 갈라디아서의 핵심 부분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 의존하고 있다. 땅 약속에 대한 바울의 해석에 특

별히 초점을 맞추어 갈라디아서 3장 1절-4장 7절과 5장 21절을 새롭

게 읽으면 바울이 메시아의 상속과 왕국에 참여하는 신자들을 통해 땅

약속이 전 세계적으로 성취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주장을 입증할 수 있다.

8) Davies 1979와 Martin 2015의 정경적 접근을 보라.

9) 이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런 개인 구원 및 아브라함 약속과의 관계의 모습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이는 이런 개인 구원이 정확히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그리고 그것 의 위치가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해석한 대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주어진 약속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야기한다. 아래 Watson 2004에 대한 논의를 보라.

1.3.1. 바울이 땅에 대한 약속을 포기했다는

바우어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 ( Paulus, der Apostel Jesu

Christi ) 은 기독교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출발했다.10) 바우어가 보여

주고자 한 것은 이렇다.

기독교가 단지 유대교의 한 형태로 남고 그 후 궁극적으로 그것

에 흡수되는 대신에 어떻게 별개의 독립적인 원리로서 자신을 주장

하고, 유대교에서 벗어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모든 민족적

사상과 삶으로 그 형태를

취했는가 하는 것.11)

바우어는 갈라디아서의 땅 문제를 직접 다루지는 않지만, 기독교가 보

편성을 확보하기 위해 메시아 신앙과 땅을 포함한 유대교와 그 민족적

기대를 거부해야 했다는 바우어의 주장은 땅 약속에 대한 바울 해석의

한 경향으로 자리 잡았다.

해머의 연구는 ( 자신이 바울의 편지가 아니라고 믿는 ) 에베소서의 상속 주

제와 논란 없는 바울 서신에 나타나는 상속 표현을 비교한다.12) 해머

에 따르면 바울은 신자가 이미 과거에 상속했다고 생각했지만 에베소

서 저자는 상속이 미래에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해머의 재구성에서

에베소서는 그리스도로 시작하여 종말에서 끝난다.13) 반면에 바울은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로 끝난다. 또한 해머에 따르면 그리

10) Baur 1876: 2-3.

11) 앞의 책, 3.

12) Hammer 1960.

13) 앞의 책, 269-270.

스도는 상속의 내용으로 신자가 상속하기 위한 수단이면서 유업의 상

속자다.14) 해머에게 이것은 예수의 죽음이 옛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고

새 시대에는 신자가 그리스도를 유업으로 상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리스도가 유업의 상속자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

는 자기 자신을 유업으로 상속한다.

해머의 상속 이해는 로마서의 ‘슁클레로노모스’( συγκληρονόμος ; “공동

상속자” ) 에 대한 혼란스러운 설명으로 이어진다. 해머는 그리스도가 상 속자이므로 신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될 수 있다고 말

한다. 그러므로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고 그리스도를 유업으 로 받는다.15) 그러나 그리스도가 유업이고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하 기 때문에 신자도 유업이 된다. “바울에게 있어서 ‘슁클레로노모이 크

리스투’는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가 될 뿐만 아니라 유업 도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즉,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유업을 받는 수

단이자 유업의 내용이 된다.”16) 이런 설명에서 그리스도와 신자 모두

자기 자신을 유업으로 상속한다.

해머는 갈라디아서에서 유업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타당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신자가 그리스도에게서 상속자의 지위를 얻는다는 사

실을 적절하게 강조한다. 그럼에도 해머의 설명에는 문제가 있다. 첫 째, 해머에 따르면 바울은 그리스도를 상속자면서 ( 상속의 대상인 ) 유업

인 것으로 묘사한다.17)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리스도를 결코 유업 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둘째, 해머는 자신이 바울 이전의 출처라고 간

14) 앞의 책, 271.

15) 앞의 책.

16) 앞의 책, 272.

17) 앞의 책, 271. 또 “그리스도는 상속자지만, 아브라함의 복이 성취된 약속(갈 3:14)

으로서 유업이기도 하다”라고 말하는 Hammer 1992: 415-416도 보라.

주하는 것에서 나오는 유업에 대한 모든 언급을 제거한다.18) 이것은

갈라디아서 5장 21절과 고린도전서 15장 22-28절을 포함하여 하나

님 나라와 관련된 모든 언급이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었음을 의미한다.

해머는 바울이 다른 곳에서 어떤 구절을 가져왔다면 그런 구절은 바울

의 견해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그래서 이런 본문을 배제

한다.19) “하나님 나라”는 바울 이전의 개념이기 때문에 유업에 대한

메시아적 이해도 선험적으로 배제된다. 메시아 신앙이 유대적이기 때

문에 정의상 비바울적이라는 생각은 바우어와 “종교사학파”에 뿌리를

두고 있다.20) 그러나 종교사학파는 제2 성전 시대 자료에 대한 편견

없는 분석에 근거하여 이런 가설을 제시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구

에 나타난 기독교를 인간 성취의 정점으로 보는 역사 철학의 결과물로

서 이런 가설을 내세웠다.21) 셋째, 해머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의 현

재 상태와 그 상태에서 발생하는 신자의 미래 소망 사이의 관계를 설

명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만 유업이라면 몸의 부활, 모든 피

조물의 구속,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에 대한 바울의 관심은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고전 13:8-13; 15:53-55; 롬 8:20-21 ). 마지막으로, 신자와 그리

스도가 상속의 수단이면서 상속의 내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갈라디

아서와 로마서에서 상속과 관련된 바울 논의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신약의 땅에 대한 논의에서 영향력이 큰 중요한 책은 데이비스의

『복음과 땅』( The Gospel and the Land ) 이다.22) 데이비스는 성경연구에서

땅 문제에 대한 연구가 부족함을 한탄하면서 이 작업을 시작한다. 데

18) Hammer 1960: 268 n. 13.

19) 앞의 책. 이에 대해서는 Denton 1982: 158을 보라.

20) Wright 2015a: 12-16을 보라.

21) 앞의 책.

22) Davies 1979: 4.

이비스는 학계가 “초대 교회가 가장 끈질기고 열정적으로 받아들였고

합의에 이르러야 했던 교리 하나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

한다.23) 그런 다음 데이비스는 구약에 나타난 땅 약속을 추적한 다음

계속해서 제2 성전 시대로 넘어간다.

데이비스가 구약과 제2 성전 시대를 검토하는 한 가지 요소가 우리 에게 중요하다. 데이비스는 성경 문헌을 검토하면서 다윗왕과 땅 유업

의 회복 사이의 연관성을 인정한다. 이사야 9장 2-7[1-6]절에 대한 해석에서 데이비스는 “새로운 다윗 왕국은 회복된 땅을 의미하며, 이

는 이전의 죄악 된 형태로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공의로 회복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24) 이사야 9장 2-7[1-6]절에 대한 이런 해

석을 고려할 때, 데이비스가 바울 사상의 땅을 분석할 때 다윗 자손 메

시아의 왕국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의외다.

데이비스는 바울로 돌아가서 고린도전서 15장 3-8절로 시작한다.

데이비스는 여기서 땅이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은 땅이 무관한 것임을

보여 준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중심 설교에는 지리에 대한 관심이 전

혀 나타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25) 이것은 특별한 변론일지도 모 른다. 고린도전서 15장 3-8절은 세례, 주의 만찬, 율법과 무관하게 이

방인을 포함하는 일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바울에게

이런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 3-8절에서 이스라엘 땅에 대해

23) 앞의 책, 5. 24) 앞의 책, 43.

25) Davies 1979: 166. 데이비스는 또한 바울이 롬 9:4에서 이스라엘의 선물에 대해

논하면서 땅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러나 9:4의 입양은 그 땅으로 가는 여정을 기록하는 출애굽 사건을 가리키는 것 같다. 롬 9:4에 언급된 예배는 그 땅의 중심인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반대 주장에도 불구하고 롬 9:4의 ‘하이 에팡겔리아이’(αἱ ἐπαγγελίαι)에는 땅이 포함된다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혜택은 이스라엘이 그 땅에 존재하는 것을 가정한다.

언급하지 않는다는 데이비스의 말은 옳다. 하지만 이것은 바울이 지리

에 관심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4절에서 바울은 그

리스도가 모든 통치자와 권세를 멸한 후에 그 나라를 아버지께 바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다음 바울은 그리스도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

는 사망이니라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고전 15:25-

27 ) 라고 말한다.26) 고린도전서 15장 25-27절에는 시편 8편의 확실한

인용문이 나온다. 시편 8편에는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

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시 8:4-

6 ) 라는 구절이 나온다. 따라서 15장 25-27절에서 예수가 다스리는 왕

국은 모든 피조물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린도전서

15장 50절에서 바울은 신자에게 그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지리에 대한 관심을

보여 주고, 그것은 창조 질서 전체의 지리에 대한 것이다. 데이비스가

고린도전서 15장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검토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 또한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 나타나는 전 세계적 상속에 대한 설명

의 효력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데이비스는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분석하는 동안 바울이 자신의

칭의 교리를 통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고 말 한다. 즉 구원은 “율법과 무관하고”, “범인종적이며”, 믿음의 약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27) 데이비스에게 율법은 땅의 삶을 위한 것이므로 율법의 제거도 땅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28) 데이

26) 모든 성경 본문은 달리 명시되지 않는 한 NRSV에서 인용한 것이다.

27) Davies 1979: 174-175.

28) 앞의 책, 179.

비스에 따르면 바울은 땅에 있다는 것을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으로

대체한다. 데이비스는 “바울은 토라가 아니라 살아계신 주님을 삶과

죽음의 중심으로 삼았으며, 일단 예수 안에서 그의 토라를 본 후에는

원칙적으로 땅과 결별했다”라고 말한다.29) 데이비스에 따르면 이스라

엘 땅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유업에 대한 바울의 해석은 “비영토적”

이다.30) 데이비스는 유업에 대한 바울의 비영토적 관점이 땅 약속의

실제 성취를 믿는 바울 반대파의 견해와 대조적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바울이 땅에 대해 침묵한 것은 “단순히 땅에 대한 의식적인 관심이 없

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땅에 대한 의도적인 거부를 가리킨다.”31)

바울의 칭의 교리와 그의 범인종적 구원 이해가 유대교 특수 은총설과

단절을 수반한다는 데이비스의 주장은 100년 전에 바우어가 주장 한 것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32)

바울의 땅 약속에 대한 이런 설명에는 다섯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데이비스는 칭의와 토라와 바울이 결코 언급하지 않은 땅 약속을 연결 한다. 아브라함의 약속에 대한 두 가지 논의에서 바울은 (1) 아브라함

의 씨가 세상을 약속받았고( 롬 4:13 ), (2) 상속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

니라 약속으로 말미암아 온다고 말한다( 갈 3:18 ).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

암는 칭의가 상속을 무효로 만든다고 말하지 않는다. 둘째, 데이비스는 바울과 그 반대파가 땅에 대해 서로 다르게 이해한다고 가정하지만, 바

울은 반대파의 해석을 반박하지 않는다. 바울과 그 반대파가 땅과 같은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데 그 문제를 전혀 논의하 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하기가 어렵다. 셋째,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29) 앞의 책, 220.

30) 앞의 책, 179.

31) 앞의 책.

32) Baur 1876: 3.

있는 것이 땅을 기독교의 구속 영역으로 대체한다고 주장한다. 데이비

스는 해머와 마찬가지로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현재 상태와 미

래에 생명, 부활, 왕국 또는 새로운 피조물을 받는 것 사이의 관계를 설

명하지 않는다( 고전 15:18-22; 갈 5:21; 6:14-16 ). 이것은 우리에게 네 번째이

자 근본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데이비스는 “비영토적” 개념과 “초영토

적” 개념을 구별하지 않는다. 따라서 바울에게 있어 땅에 대한 통찰 중

어느 것도 땅 약속에 대한 잠재적인 세계적 이해를 실제로 다루지 않

는다. 바울이 로마서 4장 13절에서 땅 약속에 대한 세계적인 해석을

명시적으로 제공하고 있고, 갈라디아서 5장 21절, 고린도전서 6장

9절, 15장 50절에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에 대해 언급한다

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은 문제가 된다. 더군다나 로마서 15장 8-12절

에서 바울은 메시아의 부활과 세계적 통치를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주어진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연결한다. 데이비스가 로마

서 15장 8-12절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다윗의 왕권과 포로기 후 땅으

로의 회복이 이사야서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데이비스의 과거 주장을

고려할 때 특히 흥미롭다.33) 마지막으로, 데이비스는 전 세계적 상속에

대한 언급을 포함할 수 있는 갈라디아서 본문은 검토하지 않는다. 그는

‘퀴리오스 판톤’( κύριος πάντων; “모든 것의 주인” ) 이라고 불리는 갈라디아

서 4장 1-7절의 상속자가 어떤 ‘클레로노미아’( κληρονομία; “유업”, “상

속” ) 를 받을 것인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데이비스는 갈라디아서 3장 18절의 ‘클레로노미아’에 대해 논의할 때 “하나님의 복”을 의미한다고

말한다.34) 그러나 데이비스는 이 하나님의 복이 무엇을 수반할 수 있는

지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복”에는 무엇보다도 메시

33) Davies 1979: 43.

34) 앞의 책, 175.

아의 세계적 왕국에서 누리는 영생이 포함될 수 있다.35) 데이비스는 또

한 3장 1절-4장 11절의 상속 언어와 5장 21절의 왕국 사이의 연관성 도 검토하지 않는다. 사실 데이비스의 연구는 왕국에 대한 바울의 관점

을 전혀 자세히 고려하지 않는다. 데이비스는 바울이 정치적 민감성 때

문에 로마서에서 왕국 논의를 자제했다고만 말한다.36)

1.3.2. 성령이 땅을 대체한다는 주장: 두 가지 설명

갈라디아서에서 땅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해석은 성령이 땅을 대체 한다는 것이다.37) 따라서 우리는 바울이 어떻게 이 결론에 도달했는지 설명하려는 두 가지 시도를 살펴볼 것이다.38) 한스 디터 베츠는 성령 이 땅을 대체한다는 주장의 근거를 갈라디아서 3장 14절의 두 ‘히

나’( ἱνα ) 절 및 이 두 절과 많은 사람이 바울의 경험적인 논증이라고 부

르는 것( 갈 3:1-5 ) 과의 관계에 둔다.39) 베츠는 바울이 “이방 기독교인이

35) 데이비스(앞의 책, 165)는 m. Sanh. 11:1을 인용한다. 데이비스는 이 본문이 아 브라함 약속과 구원에 대한 바울 당시 대다수 유대인의 견해를 나타낸다고 생각 한다. 이 본문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장차 올 세상에서 몫이 있나니 이는 ‘주의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땅을 영원히 유업으로 받으리라’라고 기록되었음이라…… ”라고 말한다. 바울이 구원 장소나 그것과 아브라함 약속의 관계에 대해 다르게 이 해한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바울의 의도는 단순히 이 몫이 메시아 예수와의 관계를 통해서 온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36) Davies 1979: 178. 롬 15:12가 왜 정치적으로 위험하지 않은지 궁금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 바울은 예수에 대해 “이새의 뿌리가 올 것이요, 그는 이방인을 다스 리기 위해 일어나는 분이다. 그 안에서 이방인은 소망을 가질 것이다”(강조는 나의 것). Wright 2013: 1304를 보라.

37) Burton 1980[1921]: 185; Witherington 2004: 245-246, 292; Das 2014: 390; Martyn 1997: 342-343; Williams 1997: 96-97; de Boer 2011: 185.

38) 갈 3:1-5 및 3:14를 주석하면서 성령과 땅에 대한 다른 제안을 논의할 것이다.

39) Betz 1979: 153. 비슷한 주장이 de Boer 2011: 214-216에 의해 제기되었다. 4장의 논의를 보라.

성령을 받았고( 3:2, 5 ), 그들이 “믿음으로”( διὰ τῆς πίστεως, ‘디아 테스 피스테

오스’ ) 그렇게 했다는 이유로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이것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라면( 3:8 ), 그 약속의 내용인 복은 성령

의 은사임에 틀림없다”라고 말한다.40)

베츠는 계속해서 갈라디아서 3장 15-18절의 약속을 고찰한다. 베

츠에 따르면, 갈라디아서 3장 15-18절에서 바울은 약속을 “받는 자들

을 특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41) 그럼에도 베츠는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서 바울이 언급하는 “약속”을 해석할 때, 바울이 갈라디아

서 3장 6-14절에서 논의하는 것과 똑같은 약속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 6-14절에서 3장 15-18절로 넘

어가면서 동일한 약속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주장은 베츠가 갈라디아

서 3장 6-14절과 15-18절에서 약속을 다르게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3장 15-18절에서 베츠는 약속의 단수 수령자는 단수 후손인 그리

스도라고 바울이 믿었다고 주장한다.42) 베츠가 3장 14절의 약속된 성

령을 3장 15-18절의 약속과 동일시한다면 베츠는 성령( 유업 ) 이 이

스라엘에게 약속된 것이 아니라 단수 후손인 그리스도에게 약속되

었다고 주장해야 한다.43) 그러나 베츠는 이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 오

히려 베츠는 갈라디아서 3장 18절에서 ‘클레로노미아’( κληρονομία ) 에

대해 더 광범위한 정의를 제공한다. 갈라디아서 3장 18절의 해석에서

베츠는 ‘헤 클레로노미아’( ἡ κληρονομία ) 를 “하나님 구원 사역의 모든

40) Betz 1979: 153.

41) 앞의 책, 157.

42) 앞의 책.

43) 베츠(앞의 책, 156)는 “사도에게 있어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은 3:6-14에 언급된 아브라함의 복과 동일하다”라고 말한다.

은택”으로 정의한다.44) 이렇게 해석하면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 14절

에서는 약속( 상속 ) 을 성령으로 규정했다가, 3장 15-18절에서는 “하나

님의 구원 사역의 모든 은택”으로 규정할 것이 요구된다.45)

성령이 땅을 대체한다는 베츠의 제안에는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해서

는 갈라디아서 3장 1-18절을 주해하면서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지금

으로서는 베츠( 와 다른 많은 학자 ) 가 아브라함을 통해 이방인에게 임하는

복을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약속하신 땅과 백성의 복으

로 축소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베츠는 성령의 은사로 아브라

함 약속의 세 가지 측면이 모두 성취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바울이 이

런 약속을 축소시키지 않았다고 주장할 것이다. 오히려 이방인의 복은

이방인이 메시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임을 보 여 줄 것이다. 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롭다 하심으로 이방인은 아

브라함의 가족( 씨 ) 에 속하게 된다. 이제 이방인은 이 가족에 속하게 되

므로 장차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씨( 메시아 ) 에게 약속된 상속을 받을

자격도 생긴다. 바울이 이방인을 아들과의 관계를 통해 상속할 권리가

있는 상속자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갈 3:26-29 ). 따라서 바 울의 관점에서 아브라함의 약속은 갈라디아 교인이 아브라함과 다윗

의 씨로서 온 땅을 상속하는 메시아 예수의 상속에 참여함으로써 성취 될 것이다. 상속에 대한 나의 해석이 정확하다면, 성령은 이 공유된 상 속의 시작이지 완성이 아니다.

베츠의 주장은 성령이 계약금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베츠는 갈라디아서 3장 18절의 ‘클레로노미아’( κληρονομία ) 가 구원의 모든 은 택을 포함한다고 말한다.46) 그러나 3장 18절의 ‘클레로노미아’가 “구

44) 앞의 책, 159.

45) 앞의 책.

46) 앞의 책, 159.

1장 ┃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땅과 메시아 25

원의 은택”을 가리킨다면 약속 내용 전체가 갈라디아서 3장 14절의

성령으로 환원될 수 없다.47)

갈라디아서의 약속과 성령에 대한 윌리엄스의 연구는 아브라함 약

속의 내용도 검토한다. 윌리엄스는 학자들이 한 구절의 해석이 다른

구절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바울의 약

속 구절을 분리해서 고려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개탄하면서 시작

한다.48) 예를 들어, 윌리엄스는 학자들이 갈라디아서 3장 8-14절에서

성령을 아브라함 약속의 내용으로 주장한다면, 그들은 그러한 약속의

해석을 3장 15-29절과 통합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윌리엄스에 따르

면, 3장 8-14절의 해석을 이어 갈 이런 필요성은 3장 16절과 19절에

서 그리스도를 상속자로 간주하기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49) 그는 “많

은 저자가……그리스도에게 약속된 것이 무엇인지, 수혜자로서 그에

게 귀속되는 것이 무엇인지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않는다”라고 말

한다.50) 이 관찰을 통해 윌리엄스는 약속의 내용이 아브라함, 그리스

도, 기독교인 세 당사자에게 약속된 것이어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51)

윌리엄스가 이런 결론을 내린 이유는 바울이 그리스도( 갈 3:16 )와 아

브라함( 3:16 )과 신자( 3:26-29 ) 에게 약속이 이루어졌다고 언급하기 때문

이다. 이런 통찰은 윌리엄스로 하여금 “하나님이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아브라함과 그리스도에게도 약속하신 것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하게

한다.52)

47) 3:14과 3:15-18 사이의 연결에 대한 베츠 자신의 이해를 앞의 책, 156에서 다시

보라.

48) Williams 1988: 710.

49) 앞의 책.

50) 앞의 책, 710 n. 4.

51) 앞의 책, 711.

52) 앞의 책.

윌리엄스는 성령이 자신의 기준을 충족한다고 주장하며 바울이 어

떻게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리스도와 믿는 자에게 성령을 약속했다

고 말할 수 있었는지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윌리엄스에 따르면, 하나

님이 아브라함에게 수많은 후손을 주겠다고 말씀했을 때 아브라함에

게 성령을 약속하셨던 것이다. 성령이 아브라함의 자녀를 낳기 때문에

수많은 후손은 성령의 선물을 의미한다.53) 그는 갈라디아서 4장 28-

31절이 이 이론에 대한 확언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는데, 여기서 바울

은 신자도 이삭처럼 성령으로 태어난다고 말한다고 여긴다.54) 윌리엄

스에 따르면 성령이 신자에게도 약속되는 것은 성령이 신자를 아들과

상속자로 삼기 때문이다.55) 마지막으로 윌리엄스는 어떻게 성령이 그

리스도에게 약속될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그는 그리스도와 성령 사이

의 연관성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세상을 약속하

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윌리엄스는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서 하나

님이 그리스도에게 세상을 약속하신다는 믿음의 증거를 찾는다. 윌리

엄스는 갈라디아서 3장 16절을 해석할 때 바울이 창세기 17장 8절을

아브라함의 후손인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세상 약속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윌리엄스에게 이 세상 약속은 성령

약속이다. 윌리엄스는 “바울이 아브라함 이야기를 읽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한 씨인 그리스도에게 세상을 약속하셨고, 이 세상에

대한 약속은 다름 아닌 성령의 약속이다”라고 말한다.56)

그런 다음 윌리엄스는 하나님이 어떻게 죽은 아브라함과 현재 신자 에게 성령을 받음으로써 세상을 주실 수 있는지 설명한다.57) 윌리엄스

53) 앞의 책, 714.

54) 앞의 책.

55) 앞의 책, 716.

56) 앞의 책, 717.

57) 앞의 책.

는 고대 세계에서는 후손과 조상이 동일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아

브라함은 자손을 통해 세상을 받는다.58) 반면에 신자는 자신을 지배하

던 율법이나 비인간적인 권세에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세상을 받

는다. 이 해석에서 신자는 성령을 통해 현재 만유의 주인이 된다( 갈

4:1-2 ). 59)

마지막 부분에서 윌리엄스는 그리스도가 이방인의 회심을 통해 세

상과 성령을 받는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금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인 그리스도에게 약속한 것

이 성령이었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충만

하셨다는 의미(누가복음의 강조)도 아니며, 또한 아마도 하나님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이 하나님의 영에 의한 것이

었다는 의미도 아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성령을 “제

공”했다고 단언하지 않는다. 도리어 갈라디아서 3장과 4장의 논증

에는 하나님의 영의 기적적인 능력으로 땅의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

로 태어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그리스도의 영역이 되고 있다는

사도의 확신이 내포되어 있다.60)

윌리엄스의 성령 연구는 몇 가지를 올바르게 파악하고 있다. 첫째, 윌

리엄스는 유업이 그리스도와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약속을 성취하는

신자에 의해 현재 또는 미래에 소유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타당하게 지

적한다. 둘째, 윌리엄스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세상을 약속했다고

58) 앞의 책.

59) 앞의 책, 718.

60) 앞의 책, 719. Martyn 1997: 342-343은 “한마디로 유업은 교회를 창조하는 그리 스도의 영이다”라고 말할 때 이에 가깝다.

바울이 믿었음을 인정한다. 셋째, 윌리엄스는 정확하게 성령의 역할은

신자의 상속자 지위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

만, 윌리엄스의 제안에는 상당한 결함이 있다. 윌리엄스의 설명에 따

르면 바울은 그 약속을 성령으로 정의하지만 서로 다른 세 당사자에게

세 가지 다른 것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에게 성령의 선물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율법과 비인간적 권세에서 자유를 경험함으로써 세상을 받게

될 것을 의미한다. 신자에게 약속된 성령은 자녀가 되는 수단이다. 그

리스도에게 성령은 회심하는 사람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그리스도가

받는 세상이다. 바울이 약속된 성령에 대해 그렇게 유연하게 정의했다

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또한 바울은 회심하는 사람을 통해 세상이 그리스도의 영역이 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바울이 보기에 그리스도

가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부활의 결과다( 롬 1:3-4 ). 마지막으로, 신자가

이미 세상을 다스리고 있다는 윌리엄스의 주장은 바울의 종말론을 과

도하게 실현한 것이다( 고전 4:8; 롬 8:17 ). 윌리엄스가 제안한 대로 약속된

성령에 대해 3중 정의를 채택하기보다는 “세상”이 메시아의 전 세계

적 상속을 가리키도록 하는 것이 훨씬 이해하기 쉽지만, 이 주장에 대 한 완전한 논의는 갈라디아서 3장 1절-4장 7절의 주해를 기다려야 한다.

1.3.3. 구원인 땅 상속 프랜시스 왓슨은 『바울과 믿음의 해석학』( Paul and the Hermeneutics of Faith ) 에서 창세기 땅 유업과 갈라디아서 바울 주장 사이의 관계에 대 해 논한다. 왓슨에 따르면 창세기 내러티브는 이방인의 복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오히려 창세기는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약

속된 땅을 강조한다.61) 반면에 바울은 이방인의 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왓슨은 바울이 볼 때 창세기 15장은 땅에 대한 약속을 담은 것

이라기보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하나님이 인간 구원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셨다는 복음의 주장을 확증한다”라고 본다.62)

왓슨에 따르면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8-14절에서 창세기 15장 6절

을 사용하여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율법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

사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율법을 행하는 것은 인간의 주도권을 수반하

기에 율법은 구원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왓슨에게 믿음은

인간의 활동이 아니다. 오히려 믿음은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역사를

받기 위한 인류의 수단이다.63)

왓슨은 갈라디아서 3장 15-18절 해석에서 바울이 “약속”에 대해

말할 때 창세기 15장 7-21절에 요약된 언약의 약속을 언급한 것이라

고 주장한다. 왓슨은 이런 약속이 땅과 자손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인정한다.64) 그러나 바울이 유업과 약속을 언급할 때 의미하는 것은

가나안 땅이나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바울이 의미하는 것은 구원

이다.65)

왓슨은 갈라디아서에서 바울 주장의 기초가 되는 창세기 본문이 땅

약속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은 타당하게 인식한다. 바울이 사용

한 자료 본문이 땅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바울이 땅 약

속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한 탐구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

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왓슨은 바울의 관심은 오직 인

61) Watson 2004: 193-194.

62) 앞의 책, 196. Moo 2013: 23-31도 보라.

63) Watson 2004: 196.

64) Watson 2004: 197. 왓슨에 따르면, 우리가 갈 3:16의 자료 본문으로 창 13:15를 택하든 아니면 창 17:7-8을 택하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

65) Watson 2004: 202. Dunn 1993: 186도 보라.

간의 구원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왓슨이 갈라디아서의 논증과 관

련된 구원의 의미를 정확히 어떻게 이해하는지는 완전히 명확하지

않다. 예를 들어, TLNT의 구원에 대한 정의에 따르면 구원( σωτηρία, ‘소

테리아’ ) 은 “천국, 곧 영생에 들어갈 때까지는 완전하고 최종적일 수

없다.”66) 왓슨을 비롯한 사람들이 이런 구원의 정의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천국의 삶이 땅 약속을 대체하게 된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 서

신에서 천국 여행을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울은 예수의 부활을

일관되게 세상을 자기 왕국으로 다스리기 위해 살아난 것으로 묘사

한다( 롬 1:3-4; 15:12; 고전 15:24-28; 빌 2:6-11 ). 67)

반면에 ISBE는 바울 신학의 구원을 “하나님이 죄와 심판에서 개인

을 구출하는 것”으로 정의한다.68) 왓슨이 이런 정의를 염두에 두고

있다 해도 왓슨의 제안은 여전히 문제가 있다. 상속을 죄와 심판에서

의 구출로 정의하면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 16절과 19절에서 어떻게

상속이나 약속이 그리스도에게 속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약속이 그리스도에게 속한다는 말은 단순한 여담이

아니며 갈라디아서를 주해할 때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가 그리스도의 상속에 참여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

는 것은 정확히 말해서 그 약속이 그리스도께 속하기 때문이다( 갈 3:14, 16, 26-29 ). 그러므로 상속을 죄와 심판에서의 구원으로 정의하면 그리

스도가 죄와 심판에서의 구원 약속을 받았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죄나 심판에서 구원받을 필요가 있었다고 바울이 믿었다

66) Spicq, “σῴζω, σωτήρ, σωτηρία, σωτήριος,” TLNT 3:350.

67) 왕국(하나님의 나라)은 롬 1:3-4와 15:12에는 나오지 않지만, 롬 15:12에서 사 11:1을 암시하는 것은 바울이 약속된 다윗의 아들로서 예수의 부상과 통치를 바라 보고 있음을 보여 준다. 비록 빌 2:6-11은 어떤 메시아 본문을 암시하지는 않지만, 메시아 예수의 보편적, 우주적 주권을 강조한다.

68) Liefeld, “Salvation,” ISBE[revised edition] 4: 293.

는 증거가 부족하다.

나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신자를 죄와 심판에서 구원한다고 바울이

믿었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이런 구원은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온 땅의 상속자가 되는 결과를 낳는다. 바울의 논증 중심에 있는 것은

상속자( 그리스도 ) 와의 관계로 인한 신자의 상속자 지위다( 갈 3:16, 29; 4:7 ). 따라서 천국의 삶이라는 구원이든 죄에서 구출된다는 구원이든

갈라디아서의 상속에 대한 정의로는 부적절하다.

마지막으로,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구원을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구원을 갈라디아서의 중심 주제라고 주장한다

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어느 서신에 특정 용어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에도 그에 해당하는 개념이 존재할 수 있다고 학자들이 믿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바울의 진정한 의도가 구원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면,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의 상속 언어가 온 땅에 대한

메시아의 상속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선험적 이

유가 없다.

1.3.4. 전 세계 땅에 대한 약속의 확언

제임스 헤스터는 바울의 유업 개념을 연구한 저서를 낸 초기 인물

이다.69) 헤스터는 구약에 나타난 유업 연구로 시작한다. 헤스터는 유

업이란 “오로지 주인과의 관계 때문에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에게 주

어지는 소유물로 보통은 땅이며, 일반적으로 이런 관계는 법적으로든

영적으로든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다”라고 결론지었다.70)

그런 다음 헤스터는 로마의 상속법이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 나타

69) Hester 1968.

70) 앞의 책, 5.

난 바울의 유업과 상속자 언어 용법을 어떻게 조명할 수 있는지를 고

찰한다. 헤스터는 바울이 일종의 성인 입양 절차인 ‘아드로가티

오’( adrogatio ) 를 통해 한 사람을 “상속자”로 지명하는 관행을 언급한다

고 생각하는데, 이를 통해 한 로마 시민이 “다른 로마 시민의 ‘파트리

아 포테스타스’( patria potestas ), 곧 부권( 父權 ) 아래 들어온다.”71) 이를 통해 상속자는 전체 재산을 상속할 자격을 얻는다. 헤스터에 따르면

상속 재산은 분할할 수 있지만 땅과 돈의 개별 재산은 분할할 수 없 었다. 그 대신 전체 재산의 지분으로 분할할 수 있었다. 따라서 로마의

표준 관행에 따르면 상속자가 여러 명인 상황에서 각 상속자는 전체 재산의 지분을 상속한다.72)

이어서 헤스터는 제2 성전 시대의 상속 언어 사용을 검토한다. 그는

이 시대의 많은 사람이 땅의 완전한 소유를 종말까지 미뤘다고 믿 는다.73) 그는 “유업의 소유는 상속자와의 관계에 달려 있다. 그가 접근 할 수 있는 유업은 하나님의 왕국이다”라는 점에서 신약 성경이 독특 하다고 주장한다.74) 그는 유업이 전 세계적인 것이 되었음에도 불구하

고 그것은 물리적 장소의 지위를 잃지 않았으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정해진 장소에서 통치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75) 헤스터에 따르면,

신자의 아들 신분은 그리스도가 신자와 공유하는 상속권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헤스터는 그리스도가 아들의 상속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유업을 대신 차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76) 헤스터는 “이 스라엘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것이다”라고

71) 앞의 책, 17.

72) 앞의 책.

73) 앞의 책, 31.

74) 앞의 책, 36-37.

75) 앞의 책, viii.

76) 앞의 책, 37.

말한다.77)

헤스터는 유업에 대한 바울의 이해를 아브라함의 땅 약속에 대한 자

신의 해석과 올바르게 연결한다. 헤스터는 또한 왕국에 대한 바울의

믿음이 아브라함의 땅 약속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설명해 준다고 타당

하게 인식한다. 또한 헤스터는 지금까지 등한시되었던 점, 즉 전 세계

적 유업이 그 유업을 영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헤스터는 신자는 오직 그리스도와의 관계 때문에 유업을

상속한다고 타당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헤스터의 연구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헤스터는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유업에서 그리스도의 아들 됨과 그

리스도가 아들로서 갖는 상속권을 구별한다. 그러나 바울은 다윗과 아

브라함에 대한 갈라디아서 3장 16절의 해석에서 이들을 한데 모은다.

더욱이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유업을 소유하는데

나중에 그리스도가 그 민족을 배제하고 그것을 취한 것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 대신 바울은 이스라엘 민족이 저주 아래 있으며 예수의 죽

음이 그들을 저주에서 구속할 때까지 그들은 그 유업을 상속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저주에서의 구속을 통해 믿는 유대인과 이방인은

이 유업을 종말론적으로 받을 상속자가 될 수 있다. 바울이 이스라엘

의 구속을 위해 예수를 이스라엘의 곤경과 동일시한 것에 헤스터가 주

목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의 상속에 대한 헤스터의 설명은 지지할 수

없는 것이 된다. 포먼도 로마서에 초점을 맞추어 땅 유업이라는 주제를 고찰한다( 갈라

디아서에 대해서도 한 장을 할애하지만 ). 포먼은 바울이 말하는 유업과 관련된

학자 대부분의 견해가 상속자와 상속 재산 자체, 곧 유업을 동일시하

77) 앞의 책, 38.

는데 이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바르게 지적한다.78) 달리 말하

면, 학자 대부분이 다음과 같이 가정한다는 것이다.

성경과 성경 이후의 전통에서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땅과 그 땅의

상속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었던 것이 이제는 바울에 의해 개 별 기독교인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한 언급으로 변환되었다.79)

포먼은 “바울이 말하는 유업은 구체적인 지리적 영역에 묶이지 않는

한 비영토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또한 반드시 비물질적인 것, 곧 영적 인 것을 가리킬 수밖에 없다”라는 잘못된 추론을 안타까워한다.80) 비

영토적인 것은 영적인 것과 동등하다는 가정은 갈라디아서의 유업에 대한 학문적 고찰에 큰 장애가 된다.

포먼은 갈라디아서를 분석하면서 로마서 4장과 갈라디아서 3장 사

이의 놀라운 유사점을 강조한다. 포먼에 따르면 둘 다 창세기 15, 17, 18장에 의존한다.81) 두 본문 모두 하나님이 토라가 아닌 믿음을 통해

전 세계를 하나의 가족으로 세우려고 계획했다고 주장한다. 유업의 내

용과 관련하여 포먼은 “바울은 로마서 4장 13절에서 ‘세상’을 상속

한다고 언급할 수 있지만 갈라디아서에서는 그 개념이 결코 그런 현세

적 용어로 언급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82)

포먼에 따르면, 상속에 대한 “현세적” 정의가 없기 때문에 바울이 땅

약속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고 결론 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포먼 은 갈라디아서가 상속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상속자가 누구인지에 초

78) Forman 2011: 4.

79) 앞의 책.

80) 앞의 책, 6.

81) 앞의 책, 172.

82) 앞의 책, 174.

점을 맞추고 있다고 다시 한번 예리하게 지적한다. 포먼에 따르면, 바

울이 상속자의 신원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일부는 바울이 상속의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83)

포먼은 전 세계적 상속이 바울이 주장한 내용의 초점이 아니라는 것

은 인정하면서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4장 1-7절에서 전 세계적 상속

이해에 대한 믿음을 보여 준다고 믿는다. 포먼은 4장 1-2절의 상속자

를 ‘퀴리오스 판톤’( κύριος πάντων ) 으로 지칭하는 것은 상속자가 온 세

상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바울이 믿었음을 암시한다고 제안한다.84)

포먼에 따르면, 기독교인이 세상을 소유할 것이라고 바울이 믿게 된

이유는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수많은 자손 때문이라고 한다. 포먼이 볼

때, 하나의 큰 가족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땅 약속이 전 세계적으로

성취되는 것을 의미한다.85) 간단히 말해서, 아브라함의 자손은 그 공

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86)

포먼은 갈라디아서 3장 26-29절의 분석으로 갈라디아서의 땅에 대

한 고찰을 마무리한다. 포먼은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는 유대인 사회나 그리스-로마 사회에 대한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 믿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리스도 왕국의 기능은 로마 왕국과

달랐다.87)

포먼의 연구는 땅 상속에 대한 바울의 전 세계적 이해와 왕국의 중

요성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이것은 이후 우리의 논쟁에서 중요하게 다

룰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에 대한 땅 약속을 전 세계적인 것으로 이 해하기 위한 포먼의 근거에는 결함이 있다. 포먼은 땅 약속의 전 세계

83) 앞의 책.

84) 앞의 책, 180(Scott 1992의 주장을 따름).

85) Forman 2011: 182.

86) 앞의 책, 182.

87) 앞의 책, 189-191.

적 이해에 대한 자신의 주장 근거를 아브라함의 가족을 구성할 많은

수의 자녀에 두었다. 나는 유업에 대한 갈라디아서의 전 세계적 이해 는 하나님이 다윗 자손 메시아에게 세상을 메시아의 유업으로 약속

했다는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회심자 수가 아니라 왕

국에 대한 바울의 믿음이 땅 약속에 대한 바울의 전 세계적 해석으로

이어진다.

로드리고 모랄레스는 성령의 선물과 이스라엘의 땅 회복을 연결하

는 구약의 예언 문학이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의 역할을 설명하는 데 도

움이 된다고 주장한다.88) 모랄레스의 연구는 이스라엘의 땅 회복을 예

언하는 본문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땅 약속에 대한 바울의 이해

와 맞닿아 있다. 모랄레스는 구약과 제2 성전 시대 문헌에서 저자들이 성령을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 및 변화와 연관시키는 다양한 방식을 보

여 줌으로써 성령이 회복과 연결되어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한다.

모랄레스는 갈라디아서로 눈을 돌려 갈라디아서 3장 10-14절이 언

약에 대한 불순종으로 인해 이스라엘에 닥친 저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은 언약의 저주에서 민족

을 구속하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모랄레스에 따르면, 믿음으로 말미암은 성령의 은사는 믿는 사

람이 율법의 행위를 행하지 않고도 이사야서와 에스겔서에 약속된 회 복의 시작에 참여하고 있음을 증명한다.89) 모랄레스는 바울이 “이 저 주를 포로보다 더 근본적으로 죽음에 대한 것으로 해석하고, 회복 또 한 지파들의 이스라엘 땅으로의 민족주의적 귀환보다는 부활과 새 창 조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다른 제2 성전 시대 유대인과 다르다”라고 주

88) Morales 2010: 4. 89) 앞의 책, 79.

장한다.90)

모랄레스는 갈라디아서 3장 10-14절의 저주를 민족적 저주에 대한

언급으로 해석함으로써 제임스 스콧과 톰 라이트의 제안을 채택하고

수정한다.91) 모랄레스는 갈라디아서의 저주가 민족 전체에 대한 저주

를 의미한다는 두 사람의 견해에 동의한다. 모랄레스는 그 저주의 근

본적인 이미지가 포로라는 라이트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

려 모랄레스는 신명기 저주의 중심 형벌을 죽음으로 본다.

모랄레스의 주장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4장에서 다루겠지만 여기서

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즉 모랄레스의 연구가

유용한 것은 모랄레스가 갈라디아서 3장 10-14절에서 민족적 초점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연구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모랄레

스의 제안을 뛰어넘고 수정한다. (1) 나는 왕적 인물을 통한 땅 약속의

최종 실현에 초점을 맞춘 제2 성전 시대 문헌이 단순히 이스라엘의 회

복을 언급하는 본문보다 갈라디아서의 바울의 주장과 비교하기에 더

좋은 자료임을 보여 줄 것이다. (2) 바울 논증의 메시아적 형태에 주목

하면 바울이 땅 유업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는 것이 드러날 것

이다. 바울은 땅 유업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과 영토를 포

함하는 것으로 확장한다. (3) 바울이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하기 때문

에 포로와 회복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모랄레스의 주장은 중복

되는 개념 사이에 불필요한 구분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존슨 하지는 성령과 아브라함의 약속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방식

에서 모랄레스와 다르다. 그럼에도 하지는 유업이 온 땅을 포함하도록

확장되었다는 데 동의한다. 유업의 이런 확장은 여기서 고려할 가치가

90) 앞의 책.

91) 앞의 책, 92. Wright 1992a: 144-148 및 보다 최근의 Wright 2013: 863-868; Scott 1993: 645-655를 보라.

있다.

『아들이면 또한 상속자다』( If Sons, Then Heirs ) 에서 하지는 초기 기독

교인이 유대교라는 민족적 특수성을 버리고 보다 보편적인 형태의 종

교를 받아들였다는 관념에 도전한다. 그 대신 하지는 바울의 복음은

이방인도 세례와 성령 영접을 통해 아브라함의 가족에 포함될 수 있음

을 선포한다고 주장한다. 존슨 하지에 따르면, 바울은 하나님이 아

브라함을 부르신 이야기를 소환함으로써 자신이 이방인 포용을 옹호 함을 정당화한다. 하지는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이방인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는 창세기 12장 3절의 주장은 이방인을 하나님의 백성에 포함한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따라서 친족 관계, 특수성, 민족성을 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요소가 바울 복음의 핵심 요소라는 것

이다.92) 또한 존슨 하지는 이방인의 친족 관계에 대한 바울의 설명이 허구라는 주장을 반박한다. 하지는 모든 친족 관계는 사회적으로 구성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는 이런 통찰을 통해 이방인 포용에 대한 바울

의 기록이 아브라함과의 생물학적 관계를 찬양하는 사람들처럼 바울

에게도 실제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93) 하지는 유대인 저자와 비유대

인 저자 모두 적법한 개인이나 집단과 친족 관계를 구성한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한다.94)

하나님이 어떻게 이방인을 자기 가족으로 받아들였는지 설명하기

위해 존슨 하지는 성령의 역할을 강조한다. 존슨 하지는 많은 유대인

저자와 그리스-로마의 저자가 ‘프뉴마’를 물질적 실체라고 믿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성령은 “이방인을 그리스도에게 연합하

92) Johnson Hodge 2007: 4-5.

93) 앞의 책, 15-17.

94) 앞의 책,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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