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들은 특정한 주제에 대해 상충되는 견해를 살펴보는 것이 때때로
도움이 되지만, 다양한 생산적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 상보적 모델들을 살펴보
는 것도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창세기 1장에 대해 한 가지 접근방
식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강력한 이해를 함께 풀어내는 관점의 협력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 이들의 명료한 글과 문학적, 문화적, 신학적 감수성은 창조 이야기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풍부하게 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을 분열시킨 끈질긴 논쟁 하나를 마침내 넘어설 방법을 제안하는
해석적 통찰을 다차원적으로 확장해 준다. -존 월턴 휘턴 대학 구약 성경학 교수, 『창세기 1장의 잃어버린 세계』의 저자
『창세기 1장에 대한 7가지 해석방식』에서 데이비드슨과 터너는 성경 첫 장의
문학적 아름다움과 풍부한 신학적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기술한다. 창세기 1장
은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선언하지만, 그 메시지는 훨씬 더 깊이 내
려가고 더 광범위하게 퍼진다. 데이비드슨과 터너는 창세기 1장을 능숙하게 해
독하여 서로 얽혀 있고 상보적인 의미의 층 일곱 개를 드러낸다. 이 책은 성경,
즉 하나님을 더 잘 알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트렘퍼 롱맨 3세
웨스트먼트 대학 성경학 명예 교수
『창세기 1장에 대한 7가지 해석방식』에서 그레그 데이비드슨과 케네스 터너는
성경학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을 시도한다. 저자들은 자신들이 동의하지
않는 창세기 1장의 해석이 틀렸음을 밝히는 데 에너지를 쏟은 다음 자신들의
해석의 우위를 의기양양하게 주장하는 대신에, 더 다채롭고, 다양한 종류로 이
루어지고, 미묘한 차이가 있는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 다양한 관점의 강점을 활
용하려 한다. 철저하게 정통적이고 복음주의적인 관점에서 성경의 창조 이야
기에 접근하여, 목회자와 평신도 독자들에게 내용과 논조 둘 다에서 지침을
준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의 해석 중 어떤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모
두가 수천 년 동안 학자와 일반 사람의 관심을 끌어온 이 풍부한 텍스트에 대
한 대화와 숙고로의 초대를 환영할 것이다. -대니얼 블록
휘턴 대학 구약 성경학 명예 교수
그레그 데이비드슨과 케네스 터너가 우리에게 얼마나 이해하기 쉽고 도움이
되는 책을 주었는가! 성경에 대한 분명한 헌신, 주제에 대한 확고한 지식, 부드
러운 태도로 이들은 창세기 1장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풍부하게 하고 창세기
1장과 ‘과학과의 충돌’에 대한 두려움을 잠재울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제시했다.
이들은 반론을 사려 깊고 설득력 있게 다루고, 심지어 각 장 뒤에 토의를 위한
질문도 제시한다. 이 책은 교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C. 존 콜린스
커버넌트 신학교 구약 성경학 교수
그레그 데이비드슨과 케네스 터너는 창세기 1장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 및 창
세기 1장의 광범위한 함의를 이해하는 데 전념하는 훌륭한 책을 저술했다. 이
들은 성경의 시작이자 기초가 되는 이 장이 어떻게 풍부하게 짜여 있고, 다층
적이며, 신학적으로 확고한지를 보여 준다. 이 책은 마음을 위한 잔치다! -폴 코판 팜비치 애틀랜틱 대학교 철학 및 윤리학 교수(플레저가 석좌 교수)
이 책은 기념비적인 함의의 작업이다. 성경의 창조 이야기를 해석하는 이 다층
적 접근방식은 흔히 성경의 제한된 측면만을 검토하는 기존 견해들의 단순한
합보다 더 큰 하나님의 창조적 의사소통의 그림을 그려 독자에게 도전한다.
『창세기 1장에 대한 7가지 해석방식』은 자신의 형상을 지닌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아 그들을 더 깊은 헌신으로
데이비드슨과 터너는 일반 그리스도인 독자에게 창세기 1장에 내재된 다양한
의미의 풍부한 태피스트리(다채로운 색실로 복잡한 그림을 짜 넣은 직물)를 명
료하게 써진 글로 보여 주려는 목표를 달성했다. 그러나 이들은 더 많은 일을
했다. ‘신앙의 규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아우구스티누스의 말) 가능한 많
은 이해를 포함시킴으로써, 독자들이 성령의 책임 있는 그릇으로서 스스로 성
경적 증거를 따져 보도록 격려한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해석에 대한 불일치가
진리 안에서의 교제에 장벽이 될 필요가 없음을 보여 준다. 더욱이 이들의 책
은 창조 이야기를 메시아적 성경 신학의 맥락 속에 둠으로써 전체 성경 메시지
를 이해하는 입문서 역할을 한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중요한 업적이며, 나는
이 책을 모든 진지한 그리스도인에게 강력히 권장한다. -존 가비 『하나님의 좋은 땅』과 『하늘과 땅의 생성』의 저자
역사를 보면 신학계와 신학교에서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각각의 입장에서
찬성하는 근거와 반대하는 논지가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되고 해석되었다. 그
러나 어느 입장을 선택하는 대신에 좀 생소하지만 잘 알려진 견해 사이에 조
화가 가능하다면 어떨까? 『창세기 1장에 대한 7가지 해석방식』의 저자들은 이
런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이고 다면적인 측면을 다루면서 학자와 평신도 모두
에게 가치 있는 책을 제공한다.
-포스터 걸릿
세계 선교회(MTW) 선교사, 이탈리아
『창세기 1장에 대한 7가지 해석방식』은 독자에게 성경의 첫 장과 관련하여 복
음주의 학문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를 간결하게 설명한다. 이 책은 창조 이야기
를 해석하는 일곱 가지 다른 접근방식을 제시한다. 이 특징 하나만도 이 책을
살 가치가 있게 만든다. 그러나 데이비드슨과 터너는 단순히 현재의 해석을 조
사하는 것을 넘어선다. 이들은 이런 접근방식들이 지붕에 겹쳐 있는 기와처럼
집합적으로 상보적인 주제로 작용하며, 결과적으로 창세기 1장의 통일된 메시
지를 강화하는 것을 보여 준다.
-켄 키슬리
사우스이스턴 침례 신학교 신학 교수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에 대한 수많은 논쟁적인 책들을 고려할 때, 이 책에서
당신이 발견할 우아함은 신선한 느낌을 준다! 예수는 성령이 교회를 공동체로
가르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요 16:13). 이 책은 성경에 대한 높은 견해를 공
유하는 다양한 주석가의 다양한 통찰을 모아 그 약속에 대한 확신을 보여
준다. 그 결과로 진정으로 대화를 발전시키는 한 권의 책이 태어났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창조 논쟁에서 너무 흔히 실종되어 있는 그리스도적인
형제애의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책을 사용하여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가 창조주를 경배하는 일에서 더욱 풍성해지게 하시기를 기도
한다!
-마이클 르페브르 목사, 『창조의 예배』의 저자
목사이자 교회 개척자로서 내가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과 나누
는 대화 중 많은 부분이 불가피하게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로 돌아간다. 너무
많은 관점과 해석 때문에 어느 것이 ‘올바른’ 것인지 알기 어려울 수 있다. 데이
비드슨과 터너는 우리를 이런 편협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더 나은 길을 제시한다. 이들은 창세기 이야기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들
이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풍부한 다층적
이해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도와준다. 이 책은 목회자와 사역 전문가를 위한
소중한 도구다. 이 책은 우리가 창세기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
에게 창세기 이야기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포괄적이고 명쾌한 이 책은
모든 목회자와 교회의 도서실에 알맞은 책이다. -마리오 루소 독일의 목사, 교회 개척자
창세기 1장과 2장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에 대한 단수적이고 논쟁적인 해석과
는 대조적으로, 이 무궁무진한 텍스트에서 여러 수준의 의미를 탐구하는 책이 여기에 있다. 고대 기독교 주석과 최근의 성경 해석학 연구를 바탕으로 데이비
드슨과 터너는 창세기 1장과 2장의 신학적 풍부함을 보여 준다. 이 과정에서
자가
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내용에서 권위 있고 무오하다면’ 창세기를 이해하는 많
은 상충되는 방식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창세기 1장에 대한 많은 해석
중 어느 것이 옳을까? 이 잘못된 선택에 대해 데이비드슨과 터너는 창세기가
다양한 아름다움을 지닌 고대 텍스트라고 대답한다. 사실상 많은 해석이 정확
하면서 동시에 각 해석이 다른 의미 층과 공명한다. 우리는 잘못되고 상충적인
해석의 불협화음에서 돌아서서, 참되고 하나로 결합된 많은 해석의 교향곡으
로 예배하도록 초대받는다. 이 책은 일곱 층의 선율을 표본으로 뽑았지만, 우리
는 창세기에서 이들 너머에도 층이 있는지 궁금해하고 찾아야 한다. 당신이 세
부 사항에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이 책은 교회가 성경의 다면적인 아름다움을
회복하도록 요청하면서 많은 충실한 읽기의 다양성을 정당하게 확언한다. 창
세기를 함께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다양성이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라는 것
을 알게 된다. 로잔 언약에서 선언한 바와 같이, 우리의 다양성은 ‘온 교회에 하
나님의 다채로운 지혜를 더욱 많이 드러낸다.’ -S. 조슈아 스워미더스
워싱턴 대학교 실험실 및 유전체 의학 부교수, 『족보상의 아담과 하와』의 저자
데이비드슨과 터너는 창세기 1장을 이해하는 여러 접근방식을 아주 유용하게
결합하는
보여 주었다. 성경 첫 장의 이해
에 대한 이런 접근방식은 성경 첫 장과 현대 과학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계속 진
을 알도록 도와준다.
애버벡
복음주의 신학교 구약 성경학 및 셈어 교수
현대 사회의 영향은 창세기 1장을 구름과 폭풍우로 가리고 감히 오를 사람이
거의 없는 산으로 남겨 놓은 것이다. 다행히도 그레그 데이비드슨과 케네스 터
너는 용감히 그 정상에 올라 내가 본 것 중 가장 도움이 되는 약간의 성경적 통
찰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들은 성경에 완전히 충실하게 남아 있는 풍부하고 다
차원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창조에 대한 성경적 설명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누
구나 『창세기 1장에 대한 7가지 해석방식』 속으로 모험하러 들어가야 한다. 성
경 해설자와 초보자 모두에게 설득력 있는 읽을거리다. -플레치 매틀럭 뉴욕주 임마누엘 침례교회 담임목사
『창세기 1장에 대한 7가지 해석방식』은 창조 사건과 관련된 성경 구절을 깊고
참을성 있고 경건하게 밝힌 것이다. 이것은 사려 깊은 성경 연구생들이 배울
뿐 아니라 기쁨을 누릴 책이다. 여러 해 전에 이 책이 있어서 나에게 창세기에
대해 묻던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제 생각이 깊은 그리스도인이 이 책을 볼 수 있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
며, 많은 책을 나누어 주려 한다. -폴 런퀴스트
전 위클리프 언어학자, 선교사, 목사
『창세기 1장에 대한 7가지 해석방식』은 창세기 1장을 가르치는 사람이나 창세 기 1장과 씨름하고 있어서 이 매우 중요한 텍스트에
들이 반론을 예상하고 그 반론을 공개적으로 공정하게 다루는 것에 감사한다.
또한 풍부한 각주와 참고문헌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책을 신자와 회의론자
모두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브래드 버틀슨
전 기독학생회(IVF) 지역 책임자
지구의 나이에 대한 과학적 논쟁을 피하고 그 대신에 『창세기 1장에 대한 7가
지 해석방식』에 집중함으로써 데이비드슨과 터너는 성경의 첫 장을 읽고, 연구
하고, 묵상하는 데 유용한 도구를 제공했다. 이들은 성경의 신성한 영감과 무오
성을 충실히 수용하면서 성경의 창조 이야기를 조명하는, 수 세기 동안 충실한
신자들이 사용한 그 텍스트에 대한 사려 깊은 접근방식을 공유한다. 이것은 교
회와 소그룹과 우리 신앙의 기초적인 구절 중 하나의 아름다움, 깊이, 능력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조엘 우드러프
C. S. 루이스 연구소 소장
기본적으로 성경 학문은 간단하다. 아이디어와 입장에서 결점을 식별하기 위
해 다른 사람들과 겨룬다. 많은 경우에 이것은 누가 최고로 군림할 것인지 보
기 위해 수행된다. 그런데 창세기 1장에 대해서 만큼은 학문의 적대적인 면이
드러난다. 토론이 흔히 다른 입장의 약점을 폭로하는 것이나 한 입장이 우월
하다고 홍보하는 것에 대한 것일 뿐 아니라, 상대방의 오류를 폭로하고 그들이
성경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경건으로 성경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그들을 당황하게 하는 것’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 대한
7가지 해석방식』에서 데이비드슨과 터너는 이런 경향에 반대하는 작업을 제안
한다. 창세기 1장을 이해하는 일곱 가지 다른 방식을 상보적인(경쟁적이지 않
은) 입장들로 논의함으로써, 이들은 독자에게 성경의 첫 장의 주요 해석 진영
을 소개할 뿐 아니라 성경해석학의 복잡성을 보여 준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것은 자신들이 하는 방식으로 창세기 1장의 깊이와 풍부함을 조명함으로써, 저
자들은 서로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창세기 1장의 해석 집단들 사이에서 평화
적인 토론을 용이하게 만들기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반가운 책이다. 이 책은 성경 본문에 대한 다양하지만 합법적인 해석을 수용하
는 것이 하나님 말씀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아보는 것을 얼마나
있는지를 보여 준다.
강화시킬 수
-데이비드 슈라이너
웨슬리 성경 신학교 부학장 겸 구약 성경학 부교수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 사도신경, AD 2세기
◆ 저자 소개 ◆
켄 터너
터너 박사는 조지아주 북동부에 있는 토코아 폴스 대학의 구약 성경학 및 성경
언어학 교수다. 그는 여가 시간을 주로 자녀들의 축구 경기를 참관하고 변증론
회의에서 연설하는 데 보낸다. 기원에 대한 그의 관심과 참여는 물리학 및 수
학에서 받은 학사 학위, 대학생 및 고등학생과의 소통, 홈스쿨링 분야에 대한
참여에서 비롯된 것이다. 때때로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제에 대해 그는 그리스
도인이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함으로써 지적 정직성과 평화적인 대화를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되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레그 데이비드슨
데이비드슨 박사는 미시시피 대학교 지질학 및 지질공학과 교수이자 학과장
이다. 그의 주 업무는 지구화학 및 수문학 연구를 포함하여, 미시시피의 사이프
러스 늪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애리조나 대학교에 제출한 그의 학
위 논문에는 사해 두루마리와 토리노 수의의 연대를 측정한 방사성탄소 연구
실에서 오랜 시간 들인 노력이 담겨 있다. 그는 놀랍게도 두 할아버지가 목회
자이고 아버지가 생물학자인 집안 출신으로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과 자연 세
계의 진가를 알아보도록 양육되었다고 자신의 성장 배경을 기술한다. 후에 과
학과 성경을 오해하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에 그는 많은 글과 책을 쓰게 되고, 미국 등 여러 대륙에서 다수의 강연을 하게 되었다. 그의 책에는 총천연색으로
여러
◆ 저자들의 다른 책 ◆
그레그 데이비드슨
▶ 비소설
『과학의 친구, 신앙의 친구』(Friend of Science,Friend of Faith)
『그랜드 캐니언: 고대 지구의 기념비』(TheGrandCanyon:Monument to an Ancient Earth)(공저)
▶ 소설
▷ ▷ 물아핀 3부작
『종말의 그림자』(Shadows of the End)
『제후와 공국』(PrincesandPrincipalities)
『나라들이 분노해도』(ThoughNationsRage)
켄 터너
『하박국』(Habakkuk)(주석)
『이스라엘의 죽음에서 죽음의 죽음. 신명기의 유배의 신학』(The Death of DeathsintheDeathofIsrael:Deuteronomy’sTheologyofExile)
『항상 우리의 유익을 위해. 신명기의 메시지와 영향에 대한 연구』(For Our Good Always: Studies on the Message and Influence of Deuteronomy)(공동 편집)
┃목차┃
┃ 저자 소개 13
┃ 감사의 글 22
서론: 창세기 1장의 많은 층들 24
성경의 다층적 진리 28
예 1. 이사야의 메시아│예 2. 사라와 하갈, 역사와 비유
문화적 맥락 32
우려에 대한 대응 33
모든 시대와 백성을 위해?│고고학에 대한 의존│주변 국가의 영향│무오성 과 해석│동기
우리의 소망 40
토의를 위한 질문 40
모델 접근방식: 족보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41
특이점 42
마태복음 1장: 누락된 이름과 일관성 없는 계산│누가복음 3장: 두 명의 아버
지와 더 많은 이름
자세히 보기 45
문학적 장치: 기억을 위한 구조화│문화적 규범을 수용하고, 신학적 오류에 도
전하기│숫자의 상징적 사용: 산술적 값을 대체하는 의미
함의 53
창세기 1장의 예들 54
두 번의 빛과 어둠의 분리│빛을 빛의 부재에서 분리하기?│구체 위의 저녁과
아침
흥미가 커진다 56
기본 57
토의를 위한 질문 59
1장 창세기 1장의 1층(노래): 문학적 해석 61
틀 64
세부 사항 67
장르: 시, 서술 또는⋯⋯? 71
역사는 어떨까 78
도전과 응답 79
반론 1. 자세히 조사해 보면 창세기 1장의 평행 구조는 실패한다
반론 2. 창세기 1장의 시적 이해는 성경을 과학과 조화시키려는 시도에 따라 추진된다
토의를 위한 질문 83
2장 창세기 1장의 2층(유비): 유비적 해석 85
성경의 유비 86
유비의 분석 89
일은 좋은 것이다│무질서에서 질서로│창의성의 축하│일, 성찰, 재충전│
매일의 휴식을 넘어서: 안식일 안식
도전과 응답 102
반론 1. 유비적 견해는 순환논법에 기초를 두고 있다
반론 2. 창조의 날들은 순차적이면서 비순차적일 수 없다
토의를 위한 질문 107
3장 창세기 1장의
기원 이야기 120
바빌론 이야기: 에누마 엘리시│이집트 이야기들
창세기 1장의 논쟁 126
하나님에 대한 배경 이야기가 없다│진정한 시작│다수가 아닌 한 하나님│
신이 아닌 피조물│창조는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다│원시 혼돈을 의인화하지
않았다│창조의 일관성은 제작자를 반영한다│사람의 가치와 예외주의│하
나님이 사람을 먹이시지 사람이 하나님을 먹이지 않는다│창조에 대한 하나님
의 평가│회유나 조작이 아닌 예배│
도전을 받지 않는 것 137
우리 시대에 대한 적절성은? 138
도전과 응답 140
반론 1. 창세기 1장이 다른 모든 이야기보다 먼저 나왔다면 어떻게 논쟁이 될
수 있는가
반론 2. 부정적인 주제(논쟁)는 주요 메시지처럼 보이지 않는다
토의를 위한 질문 141
4장 창세기 1장의
4층(언약):
언약적 해석 143
히타이트 조약과 시내산(모세 언약)│아브라함 언약│노아 언약
창조 언약 155
종주-봉신│왕실 토지 무상 불하│유배의 중요성(토지 무상 불하의 상실)
자연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 161
자연의 돌봄과 연구 169
도전과 응답 171
반론 1. 언약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는다
반론 2. 성경의 언약은 항상⋯⋯
반론 3. 동물의 죽음이 자연과의 깨어지지 않은 언약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토의를 위한 질문 179
5장 창세기 1장의 5층(성전): 성전적 해석 181
고대 근동의 신전 184
신전과 우주론│우주의 산│성경과 고대 근동의 유사점
창조-성전 기능적 유사점 193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특별한 장소│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제사장 거주자│강
과 생명의 근원
창조-성전 상징적 유사점 201
공유된 형이상학적 토대│위치와 방향│그룹│생명나무와 등잔대│선악을 알게 하
는 나무와 언약궤│금과 보석│층이 있는 설계│일곱 연설 중의 성막에 대한 지시
창조에서 새 하늘과 땅으로 206
도전과 응답 212
반론 1. 이 견해는 최근의 고고학적 발견에 너무 의존한다
반론 2. ‘성막’과 ‘성전’이라는 단어는 창조 이야기에 나오지 않는다
토의를 위한 질문 216
6장 창세기 1장의 6층(달력): 시간적 절기 예표론적 해석
개요 221
장르의 중요성. ‘율법’으로서의 모세오경 222
시간, 달력, 모세오경 224
217
이야기 배후의 절기들: 예배용 날짜│노아의 홍수│출애굽과 광야 방랑│그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연대 결정 불연속성
달력-서술과 창세기 1장 237
시간, 절기, 창세기 1장 14절 238 시간순 불연속성│한 주간 안의 연도│절기로서의 안식일│안식일과 일요일
도전과 응답 248
반론 1. 이 견해는 새로운 것이므로 사실일 수 없다
반론 2. 이 견해는 너무 복잡해서 그럴듯하지 않다
토의를 위한 질문 250
7장 창세기 1장의 7층(땅): 지리적 가나안 예표론적 해석 253
에덴으로서의 땅 256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무지│창조의 날들│지리│약속의 땅에 대한 묘사
이스라엘 민족으로서의 아담 264
왕과 제사장│창조와 시내산
이스라엘 민족의 실패의 확실성 270
미래의 소망 275
이음매 1. 창세기 49장과 야곱(이스라엘)의 복│이음매 2. 출애굽기 15장과 이집트
에서 구출│이음매 3. 민수기 24장과 둘째 세대│이음매 4. 신명기 32-33장과 미
래의 실패, 미래의 소망│모세오경의 마지막 말
도전과 응답 288
반론 1. 창세기 1장은 우리 행성과 가나안의 창조 둘 다를 기술할 수 없다
반론 2. 에덴을 가나안과, 아담을 이스라엘 민족과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다
토의를 위한 질문 291
결론 292
노래: 예술가로서의 하나님 292
그리스도
유비: 농부로서의 하나님 294
그리스도
논쟁: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로서의 하나님 295
그리스도
언약: 종주로서의 하나님 296
그리스도
성전: 임재로서의 하나님 296
그리스도
달력: 안식일의 하나님 298
그리스도
땅: 구속주로서의 하나님 299
그리스도
광물 유비 다시 논의하기 301
그들 전체를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303
왜 지금인가 304
과학은 어떻게 되는가 305
우리의 소망 308
토의를 위한 질문 309
부록 1. 자연과의 깨어지지 않은 언약 311
죽음: 인간 대 다른 모든 것 312
죽음과 유배 313
죽음: 효율성 대 낭비 314
육식과 ‘식품으로서의 식물’ 315
육식동물의 설계 316
추천 도서 316
부록 2. 고대 근동 기원 신화에서 발췌한 글 318
┃ 참고문헌 323
서론
창세기 1장의 많은 층들
바탕으로 한다. 고대에서 기원했지만 창세기 1장의 메시지는 전 세
계로 퍼져 나갔고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된 문화권의 의식에도 스며
들었다. 그 메시지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가 먼 시대와 땅
에 살았던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물질세계의 본
질과 특성은 무엇인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이 세계를 존재하
게 만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인간의 가장 깊은 질문을
다룬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이 본문의 적절한 해석에 대해 설전이 벌어
지면서, 너무 자주 신랄한 어조가 이 이야기의 풍부함과 아름다움
을 압도했다. 그 갈등이 주로 성경의 영감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싸움이라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겠으나,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불협화음은 성경의 권위와 신성한 영감을 고수하는 사람들의 내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스스로를 성경무오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
람들 사이에서도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인을 구분하기 위해 파 놓
은 강화된 신학적 참호들과 함께 견해가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다.
이 하나의 본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 불일치 때
문에 교회가 분열되고 우정이 깨어졌다.1)
이런 갈등의 대부분은 교회가 성경 전체의 본질에 대해 오랫동안
확언해 온 것을 완전히 포용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고 우리는 믿
는다. 창세기를 지나 성경의 나머지 부분을 읽을 때 많은 그리스도
인은 성경이 1차원적인 대본이 아니라, 흔히 그 메시지에 여러 층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아차렸다. 때로는 층들이 세 번 또는 열 번 또는
백 번 읽고 나서야 이해되었다. 초기 교황이자 신학자인 대교황 그
레고리 1세는 욥에 대한 자신의 연구에서 이런 의미를 잘 포착하여
성경을 “어린양이 걸을 수 있고 코끼리가 헤엄칠 수 있는 강”2)으로
묘사했다. 그는 욥기에서 피상적인 읽기로도 분명히 드러나는 몇
가지 주제를, 그리고 여러 관점에서 접근하는 신중한 연구를 통해
서만 간파할 수 있는 몇 가지 주제를 인식했다.3)
1) 한 친구는 창세기 1장의 이해의 차이 때문에 이혼까지 했다.
2) Gregory the Great, Moral Reflections on the Book of Job, 1:53.
3) 중세 시대에는 성경을 다음 네 가지 관점이나 의미에서 고려하는 것이 일반적 이었다. 역사적 의미, 비유적 의미, 도덕적 의미, 영적 의미(사후 세계 또는 궁 극적인 것에 관계된). Wikipedia, s.v., “Allegory in the Middle Ages,” https://en.wikipedia.org/wiki/Allegory_in_the_Middle_Ages.
욥기나 일반적으로 성경에 대한 그레고리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
는 그리스도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4) 그러나 창세기에 오면 논의가
갑자기 바뀐다. 창조 이야기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대한 전형적인
대화를 들으면, 창조 이야기를 이해하는 방법이 하나뿐이라는 인상
을 받을 수 있다. 더욱이 창세기 1장을 잘못 이해하는 것은 성경 전
체를 잘못 이해하는 것과 같은 절박감이 수반되는 경우가 많다.5) 성
경을 진정으로 믿는다는 것은 다른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의 참된
의미에 충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톨킨의 말을 차용하면, 신실한 사
람들은 모든 것을 지배할 하나의 해석을 찾으려 한다.6)
그러나 만일 우리가 창세기 1장도 많은 진리의 층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각 층이 다른 층들을 보완하고 확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을 가지고 풍부함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창세기 1장에 접근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나 이상의 시각, 강조 또는 주제가 동시에 유효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한 구절이 각각의 독자에게 다른 것을 의미할 수
있는 신비로운 것 또는 일종의 자유로운 해석을 제안하고 있는 것
이 아니다. 어떤 성경 주제에 대해 논리적 불일치 때문이든 성경 본
문에 추가된 인간의 편견 때문이든 언제나 단순히 잘못된 해석이
4) 복음주의적인 로잔 언약은 성령이 “모든 문화권의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을 비
추시어 그 진리를 그들 자신의 눈으로 새롭게 인식하게 하고, 그렇게 하심으로
온 교회에 하나님의 다채로운 지혜를 더욱 많이 계시하신다”(강조 추가)라고
확언한다. 2절. “성경의 권위와 능력”(참고. 엡 3:10).
5) 창조의 7일은 창세기 2장의 몇 절까지 확장된다. 후에 지적하겠지만, 우리는 ‘창세기 1장’을 창 1:1-2:3의 약칭으로 사용한다.
6) ‘해석’은 여기에서 단 하나의 이해 또는 의미라는 일반적인 뜻으로 사용된다.
서론 후반에 더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많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진리의 층들이란 정확
히 무엇을 의미할까?
하나의 예로서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서 이것을 생각해 보자. 수직
갱도를 탐사하다가 아름다운 광물 지층을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
겠다. 조사 결과 우리는 그것이 주로 칼슘과 플루오린 원소로 구성
되어 있으며, 분홍색 결정이 서로 연결된 정육면체 모양을 하고 있
음을 발견한다. 긁기 경도 시험은 그것이 방해석보다 더 단단하고
인회석보다 더 부드럽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모든 것이 그 광물을
형석으로 식별하는 데 기여한다. 이런 특성화는 그것을 석영으로
잘못 식별하는 것 또는 그것이 납과 규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잘못
된 주장과 같은 경쟁 옵션을 배제한 진실의 한 층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시료를 다른 빛에서 관찰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비유적으로 말해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다른 빛이다. 단파장 자외
선(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음 ) 을 쪼이면 분홍색 결정이 갑자기 푸른빛
을 낸다! 그 광물은 인광성이어서 자외선을 흡수하여 가시광선인
푸른빛을 방출한다. 이 새로운 발견으로 인해 이전의 식별이 갑자
기 틀린 것이 되지 않는다. 그것이 칼슘과 플루오린으로 이루어진
것은 여전히 사실이다. 여전히 정육면체 모양이다. 그리고 정상적인
조명 아래에서는 여전히 진짜로 분홍색이다. 여전히 형석이다. 그러
나 새로운 빛 아래서 이 광물에 대한 또 하나의 진실의 층이 분명해
진다. 그것은 우리가 또 하나의 진실의 층을 찾지 않고서는 결코 발
견하지 못했을 이해다. 이 예는 더 확장될 수 있다. 왜냐하면 다양한
형석이 장파장 자외선 아래에서 훨씬 더 많은 색을 나타내고, 가열
되면 또 다른 색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열발광 ). 각각은 이 광물
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진가를 아는 것을 확장하는 진실의 다른 층
을 나타낸다.
성경의 다층적 진리
광물 사례의 중요한 측면은 각 발견의 상보적 성격이다. 한 빛 아
래의 푸른색 착색은 다른 진동수의 빛 아래에서 분홍색 착색에 도
전하거나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의 형석 결정이 분홍색인지
파란색인지 묻는다면, 우리는 장난스럽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우리는 성경에서 비슷한 원리가 작동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아래
에 두 가지 예, 즉 약속된 메시아를 고대하는 예와 이스라엘 역사
중의 사건을 회상하는 예를 제시하겠다.
예 1. 이사야의 메시아
이사야서의 앞부분에서 선지자는 정복하는 왕으로 오실 메시아
에 대해 말한다. 다윗의 왕좌에 앉아 자신의 나라를 영원히 굳게 세
울 한 아기가 태어날 것이다( 사 9:1-7
예수의 왕국에서 예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해 주기를 요청했던
이유일 것이다. 예수의 참된 사역에 대한 오해는 부분적으로 이사야서의 메시아
적 층 중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는 데서 비롯되었다. 계속 읽으면 같
은 선지자가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지상에 정의가 확립될
때까지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을 온유한 종에 대해, 또한 이방의
빛이 되어 눈먼 자들의 눈을 뜨게 하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는 사람에 대해 말한다( 사 42:1-9 ). 그리고 이사야 52장
없고 멸시와 버림을 받
은 메시아, 고난과 고통을 아는 사람, 우리의 죄악 때문에 하나님께
매를 맞고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질 사람에 대한 묘사를 발
견한다. 이사야는 메시아가 정복하는 왕으로 오실지, 온유한 치유자로 오
실지 또는 화목 제물로 오실지 혼동하지 않았다. 모두가 사실이며,
각각은 서로 다른 이해의 층을 나타내어 메시아가 어떻게 하셨으며
앞으로 어떻게 오실지에 대한 더 깊고 풍부한 이해로 인도한다.
예 2. 사라와 하갈, 역사와 비유
둘째 예는 같은 등장인물과 사건, 즉 사라와 그의 여종 하갈에 대
한 다른 성경 저자들의 다른 관점으로 주의를 이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약속하시지만 그의 아내 사라는 불
임이다.7) 특히 자신의 나이가 많은 것을 고려할 때 변화가 있을 것
을 믿지 않고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하갈을 주어 자기를 대신하여
아들을 낳게 한다( 창 16장 ). 여러 해 후에 사라 자신이 임신하여 자신
의 아들을 낳는다( 창 21장 ). 한 수준( 한 층 ) 에서 이것은 이스라엘의 과
거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 및 하나님과의 상호 작용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다. 다른 수준에서 그것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
때에도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자신의 약속을 충분히 이루실 수 있다
는 도덕적 교훈을 준다. 또 다른 층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의도적으
로 선택하시는 것으로 시작하여 자신을 위해 한 백성을 구별하려는
하나님의 의도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 이야기가 실제로 역사적인 사건이지만 이제
이 이야기를 비유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신은 우리가 말하는 ‘누군가’가 사도 바울이라는 사실을 상
기하기 전까지( 갈 4:21-31 ), 그것이 둘 다일 수 없다고 항의할지 모
른다. 바울은 그 본문의 역사적 성격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이 이
야기에 더 깊은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
들은 두 언약이라”( 갈 4:24 ) 고 말한다.8) 하갈( 여종 ) 은 구약을 나타내
고, 그의 아들은 육신을 따라 태어난 자녀( 현재의 예루살렘 ) 를 나타 7)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름은 이야기의 이 시점에서 아직 아브람과 사래였다(창 16장).
8)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갈 4:24에서 ‘알레고레오’(allegoreo)라는 단어를 사용 한 것이 비유, 예표 또는 다른 무엇의 전문적 의미와 일치하는지에 대해 의견
을 달리하고 있다. 우리가 이해의 다중 층에 대해 주장하는 요점은 이 질문을
해결하는 것과 상관이 없다.
낸다. 사라( 자유 여자 ) 는 신약을 나타내고, 그의 아들은 약속을 따라
태어난 자녀( 위에 있는 예루살렘 ) 를 나타낸다. 따라서 같은 이야기가
역사적, 도덕적, 상징적 진리의 다른 층들을 전달한다. 각 이해의 층
은 그 본문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창세기의 첫 장에 나오는 일련
의 가능한 진리의 층들을 탐구하겠다. “[어떤 신학적 주제]에 대한
네 가지 견해”와 같은 제목이 붙은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달
리 어떤 층도 다른 층들과 경쟁 관계로 제시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
려 그 층들은 상보적인 관점으로 제시된다. 우리는 이런 층들을 지
붕 위에 겹쳐 있는 기와처럼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각 기
와는 다른 기와들과 독립적이다. 한 장의 기와는 그 자체로 실제적
이고 진짜인 것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한 장의 기와는 비를 잘 흘러
내리게 하지 못한다. 다른 기와들과 결합할 때 그 아래의 전체 구
조가 폭풍우에게서 보호된다. 겹치는 기와들의 이미지는 둘째 이유
로 적절한 은유 역할을 한다. 각 층은 창조 이야기에서 독특한 것을
끌어내겠지만, 한 층에 대한 본문의 지원 또는 고고학적 지원은 때
때로 다른 층을 지원하는 역할도 한다. 각 층을 변호하는 데 쓰이는
주장이 겹칠 것이다.
우리는 위에서 가능한 층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기술하는 모든 층의 모든 세부 사항이
설득력이 덜함을 발견할지 모른다. 창세기 1장에 진리의 층들이 포
함되어 있다는 우리의 기본 논지는 제안된 모든 층이 수용되거나
각 층 안의 모든 요소가 확인되는 것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
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제안이 아니다. 그 본문의 다양한 아름다움
은 설령 층들의 부분 집합만 수용되더라도 분명할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는 우리가 제시하는 층들이 모든 가능성을 다 나타
낸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문화적 맥락 이 책에서 각 층을 관통하는 공통 주제는 원래 독자의 눈을 통해
본문을 이해하는 것이다.9)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성경의 필자들이 우리와 동등한 문화적 규범에 따라 인
도되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직관적으로 분명해 보이지 않
는다면, 만나는 모든 사람이 당신의 나라의 문화적 뉘앙스를 따를
것이라고 가정하고 외국에서 한 달을 보낼 때 예상되는 결과를 잠
시 생각해 보기 바란다. 지역 주민들과의 새롭고 지속적인 우정이
생길 가능성이 없을 것이다!
구약 성경이 기록된 문화권은 고대 근동의 일부였다. 성경의 언어
9) 창세기가 기록되었을 때 최초의 청중은 출애굽 당시와 시내산에서 시작된 이
스라엘 민족이었다. 모세오경의 일부(예. 모세의 죽음에 대한 글)는 분명히 모 세 이후에 기록된 부분이며, 어떤 학자들은 바빌론 유배 기간까지 내용 수정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모세 시대와 유배 기간에 이르기까지의 이
스라엘 민족에 대해 대체로 똑같이 “원래 청중”이라고 언급한다.
는 먼 땅이나 미래 문명을 위해 표현을 표준화하려는 시도 없이, 그
것이 기록된 시간과 장소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성경의 페이지
에서 전투를 위해 무장한 천사들은 자동 소총을 들고 기계화 차량
을 타고 도착하지 않고 병거를 타고 칼을 들고 온다( 예. 왕하 6:17; 민 22:23 ). 상거래는 악수나 서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발을 벗어
교환하는 것으로 끝난다( 룻 4:7-8 ). 자녀가 없는 젊은 과부는 재혼하
여 다시 시작하라는 권고를 받지 않고, 자기 시동생과 동거하여 죽
은 남편의 이름으로 자녀를 양육하도록 권고를 받는다( 창 38:6-11 )
간단히 말해 성경은 우리 문화의 감수성과 뉘앙스에
스스로를
대와 장소의 맥락에서 말씀하셨다.10) 우리가 성경에 대한 우리의 이
해가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성경에 강요된 현대적이고 문화적으로
주입된 표준이 전혀 효과가 없을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
자신을 원래 청중의 사고방식과 세계관 속에 넣어야 할 책임이
있다. 우려에 대한 대응
앞의 문단은 신중한 독자들에게 우리의 가정과 동기에 대해 몇
가지
위를 존중하기를 원하듯이, 이런 우려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가장
일반적인 우려를 아래와 같이 범주별로 나누어 우리의 설명과 확약
을 제시하려 한다.
모든 시대와 백성을 위해?
우리가 성경을 원래 청중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
조할 때, 우리는 성경이 모든 시대와 모든 백성을 위해 기록되지 않
았음을 제안하고 있는 것일까? 성경의 중심 메시지가
성경의 명료성 교리는 구원의 근본적인 메
시지와 관련이 있다.11) 하나님의 용서와 구속의 필요성과 그것으로
나아가는 길은 고대 문화의 신비한 언어나 뉘앙스에 가려져 있지
않다. 그것은 열린 마음으로 읽는 모든 이에게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그 교리는 성경 전체의 명확성이나 이해의 용이성에
대해 어떤 주장도 하지 않는다. 성경의 모든 구절의 의도가 첫 번째
읽을 때 분명히 드러난다면, 신학교 학위나 심지어 개인
신앙고백 1.7.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은 그 자체가 똑같이 분명 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명확하지
함과 깊이에 대한 느낌은 수년 간의 연구 후에만 올 수 있다는 것
이다. 고고학에 대한 의존 고대 근동 문화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은 지난 200년 동
안의 고고학적 발견에서 나왔다. 우리가 이런 발견에 의존한다면, 고대 도서관들의 유적이 발견되기까지 대부분의 교회 역사에서 창
세기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없었다고 추론하고 있는 것일까? 광범
위한 수준에서 우리는 제시된 층들 중 어느 것도 완전히 새로운 것
이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어떤 층들의 발전이나 세부 사항은 최
근에야 결실을 맺었지만, 각 층의 기본 전제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경 해석의 역사에서 고대의 뒷받침이 있음을 알게 된다. 최근의
발전과 관련하여 우리는 명료성의 주제로 돌아간다. 하나님의 주권, 우리의 죄악의 상태와 구속의 필요성,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지
속적인 관심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중요한 창세기의 측면들은 피상
적인 읽기에서도 분명하다. 고대 근동 문화에 대한 더 많은 지식이
그 본문에 대한 이전의 모든 이해를 대체하지는 않지만, 이해를 개
선하고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성지 순례를
하고
주변 국가의 영향
성경의 이야기와 율법이 이스라엘을 둘러싼 지배적인 문화권들
의 오래된 이야기와 율법을 차용해 각색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들이 있다. 그것이 이 책이 인도하는 곳인가? 대답은 ‘아니오’다. 어
디에서도 우리는 이스라엘이 단순히 이웃 나라의 아이디어를 빌
렸다고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원래 청중에게는 분명했을
가능성이 컸지만 현대 독자는 쉽게 놓칠 수 있는 것을 보는 데 도움
이 될 수 있는 공유된 문화적 경험을 간헐적으로 지적하겠다. 우리
는 우리의 접근방식과 의도를 반복적으로 상기시키면서 이 주제를
다시 논의하겠다.
무오성과 해석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시카고 선언문 18조는 “성경 본문을 그 문
학적 형식과 수사적 장치를 고려하여 문법적-역사적 해석 방법에
따라 해석해야 하며,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라고 확언
한다.12) 영감을 받은 문서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많은 복음주의자들
은 시카고 선언문을 성경 해석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간주
한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이 진술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물을 것
이다. 짧은 대답은 두 저자가 이 선언문에 동의하고, 심지어 복음주
의 신학회의 회원 자격 요건의 일부로 매년 이를 확인한다는 것
12) International Council on Biblical Inerrancy, “Chicago Statement on Biblical Inerrancy,” art. 18.
이다.
그러나 그 선언문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려면 더 긴 대답이 필
요하다. 이 조항이 같은 문서의 뒷부분에서 어떻게 설명되는지 확
인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저자들은 “불오성, 무오성, 해석”이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경은 현대 기준에서 절대적으
로 정확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의 주장을 이행하고 저자가 목
표로 한 집중된 진리의 분량을 달성한다는 의미에서 오류가 없다.”
다시 말해 성경은 그것이 가르치려 하는 모든 점에서 오류가 없다.
성경 저자들은 오류를 범한다는 비판을 받지 않고 현대의 기대와
반대되는 문학적 장치와 그 시대의 설명 방법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후에 나온 성경 해석에 대한 시카고 선언문 15조에서는 “성경을
문자적인 또는 정상적인 의미에 따라 해석할 필요성”을 추가한다.13)
그리고 ‘문자적’의 의미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문자적 의미는
문법적-역사적 의미, 즉 저자가 표현한 의미다. 문자적 의미에 따른
해석은 본문에서 발견되는 모든
13) International Council on Biblical Inerrancy, “Chicago Statement on Biblical Hermeneutics,” art. 15.
14) International Council on Biblical Inerrancy, “Chicago Statement on Biblical Hermeneutics,” art. 15.
적인’으로 더 많이 이해된다.15) 두 선언문의 저자들은 문학 장르, 시
적 또는 수사학적 장치, 비유적 표현 또는 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때
적절한 해석이 단어의 피상적 읽기와는 매우 다른( 그리고 더 정확한 )
무언가를 의미할 수 있음을 확언한다.16) 우리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각 층은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이런 이해와 일치하고 그것을 따
른다.
또 하나의 잠재적인 혼란이 성경의 ‘해석’과 ‘의미’와 같이 단순해
보이는 용어의 사용에 대해 일어난다.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성경 구절을 통일된 메시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결합될 수 있는 다양한
주제, 모티프, 뉘앙스 또는 층을 가진 하나의 주요한 의도된 해석 또
는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이해한다.17) 그러나 기독교 평신도는 자주
‘해석’( 또는 ‘의미’ ) 을 ‘주제’나 ‘층’과 같은 용어와 교환하여 사용한다.
따라서 하나 이상의 ‘해석’이 전체 의도된 메시지에 기여할 수 있다.
이런 상충되는 정의는 광범위한 기독교 청중을 대상으로 한 책에
대해 도전을 제기한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부분적으로나 전체적으
로 성경에 하나의 의도되고 통일된 메시지가 있음을 확언한다. 우
15) “성경 해석의 형식적 규칙”, B부의 제목 아래 설명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역사적 배경에서 그 본문을 이해하는 언어학적으로 자연스러운
방법이 무엇인지 물음으로써.” International Council on Biblical Inerrancy, “Chicago Statement on Biblical Hermeneutics.”
16) 가벼운 예로 미국 어디에서나
17) International Council on Biblical Inerrancy, “Chicago Statement on Biblical Hermeneutics,” art. 18.
리는 이 책의 층들을 경쟁적인 해석들로 제시하지 않으며, 그 층들
을 창세기 1장의 통일된 메시지에 기여하고 강화하는 상보적인 주
제로 제시한다. 우리가 미묘한 의미나 해석을 언급할 때마다 의도
는 이 확언과 일치한다.
동기
마지막으로 예상되는 우려는 저자들의
관련이 있다. 이 책은 정말로 성경의 역사적 진실성을 무시하거나
성경을 현대 과학적 기원 이론과 병합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창조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영리한 책략일까? 진실하고 정직하게
우리가 대답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은 ‘아니오’다. 우리 각자는 다른
곳에서 과학과 성경의 교차점에 대해 글을 썼지만, 이 책은 과학에
대한 어떤 의무나 존중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창세기에 접근한다.
이 책에는 과학적 주장이나 가정이 없다. 위에서 언급한 형석 광물
과 같이, 예시하기 위해 자연의 예를 불러올 수 있지만, 우리는 성경
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어떤 과학적 증거도 사용하지 않겠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시대의 지배적인 과학적 이론에 주의를 기울
이지 않았다면 제시된 다양한 관점이 고려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
장하면서 반대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
의 자연의 피조물에 대한 관찰이 하나님의 기록된
하게 각 층의 변호는 성경으로 성경을 이해하는 것에 달려 있다.
우리의 소망
이 책에 대한 우리의 소망은 두 가지다. 첫째, 이 책이 창조 이야
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둘째, 올
바른 이해가 하나의 관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교회가 더 큰 연합을 경험하고, 그 사명을 약화시키는 해로운 말다
툼을 중단하는 것이다. 우리의 소망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층들( 복수 ) 에 대해 토론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어떤 견해( 단수 ) 가 다른 모든 것을 신학적 둥지에서 쫓아내야 하는
지에 대해 논쟁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토의를
위한 질문
1. 해석에 하나 이상의 층을 포함하는 성경 본문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
각하는가? 이것은 어디에 도움이 될까? 그것이 어떻게 위험해지거나 잘
못될 수 있을까?
2. 창조에 대한 현재의 기독교적 논쟁에 대해 당신은 무엇을 알고 있는가?
당신은 이런 것이 교회의 사명에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해로운지 발견
했는가?
3. 이 책에 다가갈 때 당신은 어떤 다른 우려가 떠오르는가? 그런 우려가
어떻게 다루어지기를 바라는가?
모델 접근방식
족보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창세기 1장은 역사다. 이것은 단순한 진술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쉽게 정의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의 서구적 사고
방식에서 ‘역사’는 사건을 신문 기사처럼 순차적으로 보도하는 것
과 같은 좁은 정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수천 년 전 시내산에 서
있던 이스라엘 민족은 서구 문화권의 일부도 아니었고 이에 얽매이
지도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후기 산업 시대의 문학적 기
준에 속하거나 얽매이지 않으신다는 점이다. 우리가 성경을 진정으
로 이해하려면, 미리 정해진 규칙을 성경 본문에 가져오기보다는
성경에서 역사적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평가를 이끌
어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경 본문 중에서 가장 복잡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 족보를 예로
들어 보겠다. 이 주제는 창조 이야기에 대한 우리의 후속 접근을 위
한 모델 역할을 할 것이므로, 이것에 처음에
것보다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겠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창세기나 구약 성경에서 이용할 수 있는 족보는 많지만, 마태복음
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두 족보는 보고된 단일 가계에서는
그만큼 분명하지 않을 문학적 장치가 작동하는 것을 인식할 수 있
는 독특한 기회를 제공한다. 마태복음의 족보부터 시작하는 것이
특히 적절하다. 신약 성경의 시작 부분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구약
성경의 시작 부분을 연구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
먼저 두 족보의 내부와 족보 사이에 잘 알려진 특이점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시작하겠다. 이것은 해결할 수 없는 오류가 있다
는 것을 암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특이점이 그 본문 아래에 무엇
이 놓여 있는지를 더 자세히 살펴보게 하는 자극제로 작용한다. 거
기에서 우리는 이 족보가 기억을 돕고, 중요한 상징을 이용하며, 신
학적 오해에 도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살펴
의 아들이 영원히 왕좌에 앉으리라는 다윗에게 주어진 약속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 언뜻 보기에 아무것도 특별히 이상해 보이지 않
는다. 목록에는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예수로 끝나는 41명의 이름
이 포함되어 있다. 족보는 다음과 같은 17절로 끝난다. “그런즉 모
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
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문학적 장치가 없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바꾸지 않은 단순한
역사적 목록을 기대한다면, 이름을 헤아릴 때와 목록을 구약 성경
의 기록과 비교할 때 문제가 생긴다. 첫째, 14명의 3개 그룹을 합하
면 41개가 아니라 42개가 되어야 한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명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다윗부터 바빌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 여고냐 ) 까지 14명의 이름이 더 나온다. 유배된 이후부터 예수까
지 추가된 이름은 13개뿐이다. 둘째 문제는 같은 가계를 찾기 위해
구약 성경으로 돌아갈 때 발견된다. 다윗부터 유배까지의 마태의
족보에는 구약 성경에서 확인된 네 세대가 누락되어 있다.
마태의 목록에 있는 각 이름은 다음 이름의 아버지로 식별된다.
전통적인 설명에 따르면 “~의 아버지”( gennao ) 는 ‘~의 조상’을 의
미할 수도 있으므로 오류 없이 세대를 건너뛸 수 있다.1) ‘세대’( ge-
nea ) 에 대한 단어는 마찬가지로 성경의 다른 곳에서 부모-자식 관
계뿐 아니라 광범위한 개인들의 집단을 언급하는 데 사용된다. 그
1) Russell, “Genealogy of Jesus Christ”; France, Gospel of Matthew, 27.
러나 마태는 전체 세대 수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설명만으
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는 단순히 가계를 식별하지 않는다. 그는 특
정한 세대 수를 말한다. 실제 조상의 명단을 실제보다 적게 센 수
치다.
누가복음 3장: 두 명의 아버지와 더 많은 이름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족보는 마태복음 1장과 일치하게 아
브라함과 다윗을 거쳐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나단을 거친다. 두 족보는 예수의 양부인 요셉에
게 다시 수렴한다.
불일치에 대한 전통적인 해결 방법은 마태의 족보는 요셉을 통한
것이고 누가의 족보는 마리아를 통한 것이라는 방식이다. 그러나
본문이 문학적 허가나 자유가 없는 단순한 역사라면 문제가 남
는다. 첫째 문제는 예수의 아버지 그 자체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
의 직계 아버지에 대한 질문을 우회하는 데 사용된 적절한 ‘불확실
한 단어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에서 요셉은 예수의 아버
지가 아니라 “마리아의 남편”( 마 1:16 ) 으로 식별된다. 마찬가지로
누가복음에서 예수는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 눅 3:23 ) 이다. 문제는 요셉의 아버지에게서 일어난다. 마태는 요셉의 아
버지가 야곱이라고 말한다( 마 1:15 ). 누가는 요셉의 아버지가 헬리라
고 말한다( 눅 3:23 ). 두 명의 아버지!
또 다른 어려움은 세대 수다. 다윗부터 예수까지 누가의 목록에는
마태보다 50퍼센트 더 많은 이름이 들어 있다. 이것이 문자 그대로
사실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려면 누가의 목록에 있는 모든 이름
이 젊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더 많은 세대를 허용하고, 마태의 목
록에 있는 모든 이름이 늙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같은 기간에 더
적은 세대가 되는 확률이 낮은 시나리오가 필요하다.2)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자세히 보기
이런 특이점이 역사적 오류를 나타낸다는 주장은 변호할 수 없다.
유대인들은 족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으므로, 실제 오류를 신속
하게 수정했을 것이다. 기록은 의도적으로 목적을 가지고 작성되
었다. 우리는 그 의도의 세 가지 층을 탐색하겠다.
문학적 장치: 기억을 위한 구조화
하나님의 섭리, 신실하심, 자비, 공의를 자주 상기하지 않으면, 우
리는 일상의 근심 때문에 쉽게 지치게 되고, 상상 속의 위협( 및 집중
을 방해하는 물건 ) 때문에 주의가 산만해지고, 삶에 대한 우리의 관점
이 근시안적으로 변해, 우리 자신의 고투와 당면한 필요만 생각하
게 된다. 우리의 연약함을 염두에 두고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수
2) 같은 기간에 50퍼센트 더 많은 이름을 들어가게 하려면, 문자 그대로 읽는 것
은 마태의 족보에 나오는 남자들은 누가의 족보에 나오는 조상들과 비교하여
아들을 낳을 때 평균적으로 50퍼센트나 더 나이가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많은 방법으로 기억할 수 있게 도와주신다.3) 성경의 페이지는 이런
목적을 위해 고안된 도구와 지침으로 가득 차 있다. 연례 유월절 준
수 또는 더 자주 있는 성찬식의 거행과 같은 것은 과거 사건을 기억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노래도 마찬가지로 지속적인
기억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명백하다. 모세의 노래( 출 15장 ) 와
드보라의 노래( 삿 5장 ) 는 이스라엘 자손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
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이룩하신 놀라운 일을 잊지 않게 하
려고 여러 세대에 걸쳐 만들어지고 노래로 불러진 실제 사건의 시
적 표현이다. 시편은 또한 많은 수가 “합창단 지휘자를 위해”라는
표지가 붙어 있고 어떤 것은 가사에 반주해야 하는 악기 유형에 대
한 지침이 포함된 노래로 작성되었다.4)
기억을 돕는 미묘한 방법은 이야기 구조에서 발견되며, 운율, 말
놀이, 주제를 언급한 다음 병렬 또는 역순( 교차라고 함 ) 으로 주제를
다시 논의하는 시적 서열 또는 뒤에 나오는 이야기에 산재된 역사
적 요약을 이용한다. 이런 방법 중 하나만 부각하면, 말놀이는 거의
비슷하게 들리지만 매우 다른 의미를 가진 두 단어를 사용하여 요
점에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다. 예레미야 1장 11-12절에서 하나님
은 자신의 말씀이 이루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