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미로에서 길 찾기
요한계시록은 종종 성경의 여러 책 중에 버림받은 책으로 취급되
는데, 다른 모든 사람이 난처해하고 정경의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
으면 하고 바라는 가족구성원과 비슷하다. 이것은 요한이 이단자라
는 뜻이 아니라 요한이 정말 이상해서 그의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을
약간 불편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이런 괴짜 삼촌이 있는 가족이 정
상이라고 친구들을 어떻게 설득하겠는가? 이 삼촌은 항상 머리 일
곱 개 달린 용, 기괴한 짐승, 메뚜기-인간-전갈이 뒤섞인 마귀의 존
재가 인류를 괴롭히는 기괴한 환상에 대해 늘 말하고 다닌다. 이것
은 시작에 불과한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면 지구와 그 주민을 황 폐화하고 멸망시키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에 대해 말하기
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삼촌에게 맡겨 둔다면, 교회의 어린이 성 탄절 행사에는 마구간 밖에서
자 잡아먹으려고 기다리는 장면이 연출될 것이다( 계 12:4-5 ). 대다수 그리스도인은 당신이 특히 가족 모임에 새로운 친구를 데려온다면
이 삼촌을 무시하는 것이 정말 최선이라고 여긴다.
요한계시록은 그 기이함 때문에 역사적으로나 전 세계적으로 많
은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소홀한 취급을 받았다. 이런 독자들은 요
한계시록이 어쩌면 중요할 것이라는 상식은 있어도 요한계시록을
전문가에게 맡기고 중요 핵심을 알아내는 편을 선호한다. 이런 접
근법은 성경의 머릿돌과 같은 요한계시록에 담긴 부요함을 놓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아름답고 부요한 책에 대한 많은 경쟁적인
해석이 있으며 일부 해석은 환상 자체보다 더 기괴하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을 무시하는 것이 확실히 가장 쉬운 선택이지만 이런 무
시에는 대가가 따른다. 물론 요한계시록을 신학의 중심으로 삼고
종말 사건에 대한 복잡한 도표를 만들고 수정하는 데 모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요한계시록을 무시하거나 요한계시록에 집착
하는 이 두 가지 극단적인 태도는 흔히 볼 수 있다.
여러분은 자기의 과거 경험에 비추어 요한계시록을 이해하고 올
바르게 해석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이
런 이해에는 노력과 연구가 필요하지만, 가치 있는 것은 거저 주어
지지 않는다. 첫 번째 단계는 요한계시록을 잘 이해할 수 있고 그리
스도인의 여정에 풍부한 자원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요한계
시록은 피해야 할 책이 아니라 대신에 즐길 수 있는 책이 될 수도 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환상의 미로를 성공적으로 통과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이 책은 건전한 해석적 관례와 성경을 전체로 읽는 교회
의 전통을 바탕으로, 복잡하지만 부요한 이 책의 난제를 헤쳐 나가
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섯 가지 규칙을 고찰하겠다. 이 원칙들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은 요한계시록의 환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인 출발점
이다. 기초가 튼튼하면 새 건물을 짓는 전체 과정이 더 매끄러워지
며 모든 벽, 바닥, 설비가 잘 어울리고 의도한 대로 작동할 수 있다.
견고한 해석적 기반이 마련되면 다양한 환상을 검토하고 어떤 사람
이 특정 환상에 대해 제안한 해석이 터무니없는 것인지, 이상하지
만 가능한 것인지, 개연성이 있는 것인지, 사실상 확실한 것인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두려움이나 소심함 대신 자신감을 가지고
이런 문제에 접근하는 일은 가능하다.
이 책의 목표는 미로를 성공적으로 빠져나가는 데 필요한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도구는 여러분을 기본적으로 요한계시록을 무
시하는( 아니면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오해로 고통받는 ) 사람에서 요한계시록
을 잘 이해하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고 개인적·영적 유익
을 얻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줄 것이다. 이 책은 요한계시록
에서 요한이 전하는 독특한 목소리가 복음서 저자와 바울의 큰 목
소리에 묻히지 않고 들리게 하려 노력한다. 물론 요한의 종말론적
인 억양 때문에 요한을 이해하기 어렵고 일부 교회 찬양대원처럼
때때로 음정이 맞지 않는( 어쩌면 심지어 음치인 ) 듯이 보이는 것은 사실 이다. 그렇더라도 다른 성경 저자들이 더 강하고 ‘예쁜’ 목소리를 가
졌다고 해서 요한의 ( 현대인의 귀에는 때때로 기괴한 ) 종말론적 목소리를 무시하거나 간과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잘 듣는 훈련을 받으
면 신약 성경의 다양한 목소리가 경쟁하거나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요한의 원래 청중은 거의 2천 년 이후의 독자처럼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를 절실히 들어
┃ 미로에서 길 찾기 11
야 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무시하면 위험에 빠진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요한계시록을 읽기 위한
다섯 가지 기본 원칙에 대해 논의한다. 이 원칙들이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데 있어 완전하거나 최종적인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출
발점이다. 이런 기초적 수준에서 저지르는 실수 때문에 많은 독
자가 잘못된 해석에 빠졌으며 오늘날에도 오해와 혼란이 생겨나고
있다. 이제는 요한계시록과 관련해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은 없는
데, 이런 요점은 여러분이 과거에 요한계시록에 대해 배운 바와 상
반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처음으로 새 안경을 쓰는 모
험을 즐기라. 새 안경을 쓰면 시력이 개선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목표는 하나님이 오래전에 자기 백성에게 나타내신 것을 현재에 듣
고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다섯 가지 기본 해석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환상의 원래 목적에 초점을 맞추라. 요한계시록은 일
차적으로 동기를 부여하는 책인데, 이 진리를 무시하 면 책의 전체 요점을 놓치게 된다.
2. 원래의 역사적 맥락을 해석의 지침으로 삼으라. 요한
계시록은 여러분을 위해 기록되었으나 원래 여러분 을 대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다.
3. 반복을 인식하라. 요한계시록은 서로 거의 평행하게 이어지는 일련의 환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환상
은 마지막( 예수의 재림과 최종 심판 ) 에 절정에 이른다.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4. 상징성을 인식하라. 요한의 환상은 대단히 상징적이
어서 상징적인 책으로 읽어야 한다.
5. 요한계시록을 기독교 성경으로 읽으라. 여기에는 요한
계시록을 해석하기 위해 더 넓은 성경적 맥락, 특히
구약 성경을 사용하는 것이 포함된다.
1부의 다섯 장에서는 (1) 각 원칙을 설명하고, (2) 원칙을 뒷받침
하는 주장과 증거를 제시하며, (3) 이런 원칙이 왜 필요한지 또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환상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을 주
는지에 대한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사례를 제시하겠다. 1부의 다섯
장에서는 요한계시록 전반에 걸쳐 사례를 살펴보겠다. 그런 다음
2부 6장부터 15장까지는 이 다섯 가지 원칙에 비추어 요한계시록의
각 주요 환상 부분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이 환상들이 요한계시
록을 이해하는 데 함께 작용하는 방식을 보여 준다. 이 연구를 마칠
즈음이면 여러분은 이 다섯 가지 원칙을 적용해 요한계시록을 이해
하는 방법, 잘못된 질문을 인식하는 방법, 더 나은 질문을 하고 대답
하는 방법을 명확하게 이해할 것이다. 사람에게 생선을 주면 하루
를 먹을 수 있어도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면 평생을 먹을 수 있다
는 옛말이 있다. 아래에서 논의하고 예증하는 다섯 가지 원칙을 통 해 평생 사용할 낚시법을 배울 수 있다.
끝으로,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이 하나 더 있는데, 이것은 다른 규칙에 앞서는 규칙으로서 여러분이 요한계시록을 반
드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동안 요한계시록을 읽지 않았다면
여기서 멈추고 꼭 먼저 읽기를 바란다. 요한계시록은 한자리에서
쉽게 읽을 수 있을 만큼 분량이 적다. 요한계시록 전체를 한 번에
읽으면 큰 그림, 즉 요한계시록에 소개된 환상의 전체 범위를 확인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렇게 요한계시록을 읽으면 이 책의 나
머지 부분이 훨씬 더 가치 있게 느껴질 것이다.
1장
원래의 목적: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것을
중요한 것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원칙 1 환상의 원래 목적에 초점을 맞추라. 나
는 몇 년 전에 어느 목사님과 나눈 대화를 통해 깊은 영향을
받았다. 나는 요한계시록에 대해 가능한 모든 것을 열심히
배우고 있었으며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가장 복잡한 환상을 풀려고
노력하던 중이었다. 나는 이 목사님에게 20장에 나오는 1천 년의 환
상에 대해 질문했다. 목사님은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 중 어 느 견해를 지지하십니까? 목사님은 질문에 직설적으로 대답하려 하
지 않았다. 목사님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요한계시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지만, 내가 반복해 물어본 후에도 대답하기를
거부했다. 목사님은 마침내 그 이유를 설명했는데, 정확한 표현은 기억할 수 없어도 말의 취지는 분명했다. 이런( 그리고 비슷한 ) 논쟁은
요한계시록의 진정한 목적과 요점을 놓치며 사소하고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초점을 맞추므로,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이해
하려는 시도에 심각한 해를 끼쳤다는 것이었다. 목사님이 옳았다.
요한계시록은 복잡한 교리서도 아니고 미래 사건에 대한 상세한
일정표도 아니다. 요한계시록의 일차 목표는 세상의 마지막 직전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고 요한계시록에 신학이 포함되어 있지 않거나 요한계시록이 미래
사건을 묘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요한계시록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어느 쪽도 일차 목적
은 아니다. 요한계시록은 일차적으로 동기를 부여하는 책이다.
요한계시록은 예언이라는 장르에 속하지만, 예언에 대한 이해가
다르므로 여기에 약간의 혼동이 생겼다. 많은 사람은 예언에 대한
언급이 곧바로 미래와 관련된 정보를 암시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때로는 이것이 사실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생각
은 대다수 성경 예언의 요점을 놓치고 있다. 구약 시대의 히브리 선
지자들은 청중에게 미래와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물론 그런 경우도 가끔 있기는 하다 ).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심판
을 피하고 하나님의 복과 구원을 경험하기 위해 청중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언약에 충실할 것을 더 자주 촉구한다. 요한도 같은 일
을 한다.
동기를 부여하려는 요한의 목적은 요한계시록을 구성하는 수미
쌍관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이런 수미쌍관은 요한이 본 환상의 시작과 마지막에 나온다. 수미쌍관은 핵심 구절이나 문장을 반복하 고 강조함으로써 한 부분이나 전체 책의 시작과 마지막을 표시하는
데 사용되는 문학적 장치다. 요한은 요한계시록 1장 3절과 22장
7절에서 수미쌍관을 사용한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
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 1:3 )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
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계 22:7 )
이런 수미쌍관은 책의 말씀이 지키도록 의도된 것임을 나타낸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요한계시록과 관련된
많은( 대다수? ) 토론과 논쟁은 휴거, 적그리스도, 큰 환난( 환난 전인가, 환난 중인가, 환난 후인가? ), 천년왕국( 전천년설인가, 후천년설인가? ), 짐승의
수, 교회와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한 문제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런
논쟁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서는 거의 밝히지
않는다. 이런 논쟁이 주된 관심의 초점이 되면 요점을 놓치는 것
이다. 왜 실제로 연극을 공연하는 배우에게 집중하지 않고 무대 밖 에서 소품을 재배치하는 무대 담당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
는가? 소품이 장면을 연출하는 데 중요하더라도 연극의 핵심은 아 니다. 스포트라이트는 항상 이야기 전개의 중심을 비춰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는 항상 요한계시록의 주요 목적에 스포트라이트를 비 춰야 한다.
지키기는 행동을 나타낸다. 요한계시록은 행동으로 하는 반응을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불러일으키고 이런 반응에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요한
계시록은 단순히 특정 신학 사상에 대한 생각을 바꾸거나 미래의 사건과 관련된 지적 정보를 전달하려는 의도로 기록된 게 아니
었다. 요한계시록은 우리가 일상에서 살아가고 행동하는 방식을 변
화시키기 위해 기록되었다.
역사적 상황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요한계시록이 무엇
보다도 동기를 부여하는 책이라면, 이 책이 동기를 부여하는 목표
를 아는 일이 필수적이다. 예수는 요한을 통해 청중이 무엇을 하기
를 원하시는가? 예수는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기를 원하시는가? 이
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원래 청중의 역사적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한다.
1세기 말 소아시아( 현대의 튀르키예 ) 의 일곱 교회에서 요한계시록을
처음 접한 청중은 몇 가지 문제에 직면했는데, 주로 박해와 고난의
문제를 둘러싸고 있었다. 안디바라는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증언 하다가 버가모에서 죽임을 당했고( 계 2:13 )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
었는데( 1:9 ), 요한은 곤경, 고난, 순교의 증가로 이어질 것이 분명한
박해가 갈수록 심각하게 확대될 것을 예언적으로 예기했다. 이뿐
아니라,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두 지역에서는 믿는 유대인과 믿지
않는 유대인 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고( 2:9; 3:9 ), 일부 교회에서
는 거짓 가르침 때문에 그리스도인 사이에 내부 분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요한은 이런 거짓 교사들을 구약 성경에서 가져온 은유적
인 칭호( 발람과 이세벨의 추종자 및 그 자녀들 ) 로 묘사한다. 거짓 교사들은 기독교가 사회적으로 망신당하지 않고 박해를 피
하고 경제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주변 문화와 우상 숭배와 타협하고
거기에 동화되는 태도를 옹호한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명백한데,
일부 그리스도인, 특히 라오디게아에 있는 그리스도인과 버가모, 두
아디라, 사데에 있는 일부 그리스도인이 박해를 거의 또는 전혀 겪
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주변 문화와 타협하고
혼합되었으므로 풍요롭고 편안하게 지냈다( 이들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
을 먹고 음행에 가담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것은 우상 숭배에 대한 비유적 표현일
가능성이 있다. 2:14, 20 ). 이들은 그리스도를 뚜렷하게 증언하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원래 일곱 교회를 둘러싼 역사적 상황에는 예수의
왕권을 증언한다는 이유로 어려움과 핍박( 환난 ) 을 겪은 일부 그리스
도인과 우상 숭배적이고 이교도적인 주변 문화와 구별할 수 없게
되어 핍박을 피한 다른 그리스도인이 포함되었다.
1세기와 21세기 사이의 유사점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실제의 물
리적인 박해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믿음을 실천하려는 그리스도인
은 주변 문화와 타협하고 조화를 이루고 그 가치( 물질주의와 단기적 쾌
락의 끊임없는 추구를 가치로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 를 받아들이고 싶은 유혹
을 끊임없이 받는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하나님의 신실
한 백성을 특징짓는 초월적인 삶( 히브리서 11장에 감동적으로 묘사되어 있
음 ) 을 살고 싶어 하지만, 우리는 종종 삶을 ‘더 쉽게’ 만들어 주는 형
태의 힘들지 않은 동화에 안주한다. 요한계시록은 청중이 타협과 동
화를 거부하고 희생적인 제자의 길을 받아들이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구상된 책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원래의 청중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던 것처럼 현세대에게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
리스도인은 반드시 이겨야 하며 다른 선택안은 없다.
이기기: 초상화
요한계시록의 언어에서 요한의 일차 목표는 청중이 이기도록 동기
를 부여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모든 부분은 청중을 이기는 자로
변화시키기 위해 구상되었다. 어떤 청중에게는 이기는 것에 대한
이런 격려가 현재의 신념과 행동을 강화하는 반면, 어떤 청중에게
는 이기는 것에 대한 격려가 자기의 신념과 행동에 극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요한은 모든 청중에게 하나님의 새 창조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이기기를 제시한다. 우리는 이김으로써 요한계시록의 말씀
을 지킬 수 있다.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대한 각 선포는 이기거
나 정복하는 자에 대한 약속으로 끝난다( 2:7, 11, 17, 26; 3:5, 12, 21 ). 이
일곱 가지 약속은 각각 요약되어 하나님의 새 창조에서 누릴 미래
의 생명에 대한 요한의 환상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기는 자는 이것
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21:7 ). 하나님의 새 창조에서 누릴 영원한 부활 생명과 관련 된 모든 약속은 이기는 자를 위해 예비되어 있다. 이것은 선택 메뉴 항목이 아니라 주요리다. 요한계시록의 중간에 요한은 이기는 방법
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요한계시록 12장 11절은 “또 우리 형제들
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
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라고 진술
한다. 하나님 백성은 어린양의 보혈과 그들의 증언으로 이기는데, 구원은 승리로 이어지는 예수의 희생으로만 가능하다. 이것은 자동
차 범퍼에 물고기 모양의 스티커를 붙이는 피상적인 증언이 아
니다. 이것은 대가가 큰 증언이어서 고난과 심지어 죽음으로 이어
질 수 있다.
또한 요한계시록은 이기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명령을 제시한다. 요한계시록은 청중에게 그들이 어디서
떨어졌는지 기억하고( 계 2:5 ), 회개하고( 2:5, 16; 3:3, 19 ), 처음 행위를
가지고( 2:5 ),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2:10 ), 죽도록 충성
하고( 2:10 ), 일깨어 죽게 된 것을 깨우고 굳건하게 하고( 3:2 ),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고( 3:3 ), 가진 것을 굳게 잡
고( 3:11 ), 그리스도에게서 금과 흰옷과 안약을 사고( 3:18 ),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며 그를 경배하고( 14:7 ), 바벨론에서 나
오고 ( 18:4 ) , 바벨론의 심판을 기뻐하고 ( 18:20 ) , 하나님께 찬송하
고( 19:5 ),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19:7 ),
그대로 의를 행하고 그대로 거룩하라( 22:11 ) 고 명령한다.
이런 명령은 회개, 인내, 순종, 증언, 예배라는 다섯 가지 주요 주
제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주제들은 요한계시록 전체에 걸쳐 나타나
며 이기는 것의 의미를 요약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
며 인내함으로써, 메시아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를 증언함으로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써, 하나님의 능력, 사랑, 구원에 대해
하나님을 예배함으로써 이긴다. 이런
것들이 이기는 삶의 특징이다. 하지만
요한은 우리가 완벽하지 않으며 이런
영역에서 부족하기 쉽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이유로 요한은 회개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많은 초점을 집중
한다. 우리는 고의적인 죄와 타협 또는
우연한 방황을 통해 스스로 부족하다
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회개하고 새
롭게 인내하도록 부름을 받는다.
요한은 일반적으로 요한계시록에서
믿음이나 신앙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
는다. 이것은 요한에게 믿음이 중요하
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요한계시록
에서는 믿음이 증언과 예배의 언어를
통해 표현된다. 우리는 증언할 때 자기
혼자서 또는 소집단 모임에서 이런 주
제를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다면 다음 의 참고 자료를 검토하라.
회개: 계 2:5, 16, 21, 22; 3:3, 19; 9:20, 21; 16:9, 11.
인내: 인내하고(계 1:9; 2:2, 3, 19; 3:10; 13:10; 14:12), 충성하고(1:5; 2:10, 13; 3:14; 17:14), 굳게 잡으라 (2:13, 25; 3:11).
순종: 계명을 지키고 선한 일을 행하라
(계 1:3; 2:2, 5, 19, 26; 3:3, 8; 12:17; 14:12-13; 22:7).
증언: 계 1:2, 5, 9; 2:13; 3:14; 6:9; 11:114; 12:10-12, 17; 19:10; 20:4-6.
예배: 계 4:1-11; 5:6-14; 7:9-17; 8:1-5; 11:15-19; 12:10-12; 14:1-5, 7; 15:1-4; 16:1-7; 19:1-8.
의 믿음을 보여 주는 것이며, 하나님께 예배할 때 자기의 믿음과 충
성을 선포하는 것이다.
승리, 이기기 또는 정복하기의 언어( 같은 헬라어 단어에 대해 다른 영어
단어가 다른 번역에서 사용되고 있음 ) 는 신자와 관련해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무섭고 불길한
어떻게 신자를 이기고 죽이는지를 묘사하는 때다( 11:7; 13:7 ). 요한
의 환상은 많은 그리스도인이 지금 최고의 삶을 경험하는 대신 재
정적 파탄, 가난, 조롱, 고난, 박해, 심지어 죽음까지 겪게 될 것이며, 짐승이 잠시 그리스도인을 이기고 승리할 것임을 나타낸다. 다행히
도 이것은 요한이 본 환상의 결말이 아닌데, 우리가 그리스도인으
로서 이런 고난 중에도 신실한 증언을 통해 궁극적인 승리를 얻
는다는 점은 분명해진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정복당함으로써 정복 한다.
요한은 여기서 예수와의 명백한 유사점을 보여 주고 승리의 언어
를 사용해 십자가를 묘사하는데, 죽임당한 어린양은 이긴 사
자다( 5:5-6 ). 예수는 십자가에서 악에게 지고 죽임을 당함으로써 악
을 이기셨다. 요한에게는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정상적이고 예상
되는 승리의 양식이어야 한다. 3장 21절에서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라는 예수의 약속은 이런 유사성을 더
강화한다. 우리는 예수처럼 고난 중에서도 죽음의 순간까지 신실함
으로써 예수의 승리를 따르도록 부름을 받았다.
결론
언제나 환상의 원래 목적에 초점을 맞추라. 요한계시록의 주요 목
표는 청중이 이기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진정한 회개, 인내, 순종, 증언, 예배를 통해 이긴다. 요한은 필요한 모든 수단( 이
경우는 심판과 구원에 대한 종말론적 환상 ) 을 사용해 그리스도인 청중이 이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생에서 승리를 거두고 이길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을 목표
로 삼는다. 이것이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쓴 이유다.
이 첫 번째 원칙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논란의 여지가 가장 적은
원칙이다. 이 원칙은 또한 쉽고 빠르게 잊어버리거나 무시되기도
한다. 이론적으로는 이 원칙에 동의하기 쉽지만, 논의가 환상의 의
미와 뉴스에서 펼쳐지는 사건과의 연관성 여부로 옮겨 가는 즉시
잊어버리기 쉽다. 이 첫 번째 원칙을 마음에 새기고 이 원칙이 요한
계시록에 대한 접근법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라. 요
한계시록의 모든 메시지와 환상은 인내, 순종, 예배, 증언, 그리고
필요하다면 회개를 통해 이 세상에서 승리를 거두도록 여러분에게
동기를 부여하려 한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토론에서 이 원칙이 등장하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는가? 가끔 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참여했던 대부분의 토론에
서는 요한에게는 이상하고 중요하지 않아 보였을 가능성이 있는 질
문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책에서 요한계시록에 대해 논의할 다
른 모든 것과 아울러 이 첫 번째 원칙을 마음에서 놓치지 말라. 언
제나 환상의 원래 목적을 우선시하라. 우리는 이겨야 하는데, 각 환
상은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구상된 것이다.
2장
원래의 맥락: 요한계시록은 여러분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기록된 책이 아니다
원칙 2
원래의 역사적 맥락을 해석의 지침으로 삼으라.
요
한계시록이 여러분을 위해 기록되었으나 원래 여러분을 대
상으로 기록된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
하다. 요한계시록은 거의 2천 년 전에 소아시아( 현대의 튀르키예 ) 에 살
던 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기록되었다. 원저자와 원래의 청중은 문
화, 언어, 삶의 경험에서 우리와 엄청나게 다르다. 하지만 이들이 인
간이라는 현실에서는 우리와 같은데, 이들도 생존에 대한 열망,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 질병과 죽음, 불행의 현실에서도 하나님의 구원과 약속에 대한 믿음을 공통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런 유
사성 덕분에 우리는 고대인과 고대 본문을 이해할 수 있지만, 차이
점을 무시하거나 경시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요한에게 영감을 주셔서 그가 본 것을 기록하도록 하
요한계시록
셨다는 확신은 요한계시록이 우리를 위해 기록되었다는 확신을
준다( 바울은 고전 10:11과 롬 15:4에서 이 점을 강조한다 ). 요한계시록은 우리
를 대상으로 말하고, 우리의 사고와 세계관을 형성하고, 회개, 순종,
인내, 증언, 예배와 같이 이기는 행동에 대한 동기를 우리에게 부여
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이 원래 우리를 직접적인
대상으로 기록된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면 우리는 해석 작업
에서 신중해지고 겸손하게 되며, 원저자와 원래 청중의 역사적 상
황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이 배우려는 동기를 부여받게 된다. 원저자
와 원래의 청중은 환상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이 원칙은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올바르게 해
석하는 데 도움을 준다. 특정 환상에 대한 제안된 해석이 원래의 청
중에게 의미가 통하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았다면 옳을 가능성이
없다. 이것은 그런 해석이 꼭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보다
가능성이 매우 낮으며 우리가 가장 마지막으로 선택할 해석이 되어
야 한다는 의미다. 요한을 비롯한 성경의 저자들은 원래의 독자와
청중에게 영향을 미치고 이해되도록 글을 썼다. 따라서 원래의 청
중에게 의미가 통하고 이해되었을 해석을 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을 수천 년 후에나 일어날 사건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
로 읽는 해석은 마지막 세대에 사는 사람들 외에는 최초의 청중과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에게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대부분을 아주
무관한 것으로 만든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21세기의 군사적, 기
술적( 예. 이식된 컴퓨터 칩 ), 지정학적 발전에 초점을 맞춘 해석은 더 무
거운 증명 부담을 안고 있는데, 원래의 청중이 이해할 수 없었을 것
이기 때문이다. 훨씬 더 가망성 있는 해석은 최초의 청중이 해당 환
상을 어떻게 이해했을지를 탐구하는 데서 나온다. 한 가지 문제는 2천 년 전 소아시아의 생활과 관련된 역사적 정
보가 우리가 원하는 만큼 광범위하지 않다는 점이다. 게다가 고대
문학과 고고학 자료는 스스로 해석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이런
한계를 들어 과거와 관련된 어떤 것도 확실하게 알 수 없다고 말하
지만, 이런 회의론은 부당하다. 우리가 원하는 만큼 잘 알지 못할 수
도 있지만, 많은 것을 확신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증거가 남아 있
기 때문이다. 역사적 배경 정보에 얼마나 큰 비중을 두어야 하는지
를 알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지만, 우리는 원래의 역사적 맥락을 무
시하면 위험에 빠지게 된다.
짐승과 플리니우스 2세 1)
요한계시록의 각 환상에 대해 먼저 우리는 해당 환상이 원래의
동기 부여 기능, 즉 나에게 이기도록 동기를 부여하거나 설득하는
데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가능한 한 원래의 청중이 해당 환상을 어떻게 이해했을지를 알아내
려고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 12장에서 요한은 사탄
1) 플리니우스에 대한 이 논의는 다음에서 발췌하고 각색한 것이다. Alexander E. Stewart, Perseverance and Salvation:What the New Testament Teaches about Faith and Works (Areopagus Critical Christian Issues Series; Gonzalez, FL: Energion, 2018), 29–31.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을 상징하는 강력한 용이 분노하여 그리스도인들, 즉 “하나님의 계
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 12:17 ) 을 말살하려 하는 환상
을 받는다. 요한계시록 13장은 용이 그리스도인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에서 조력자 또는 협력자라고 할 수 있는 사나운 두 짐승의 도
움을 받는 과정을 계속 설명한다. 첫 번째 짐승은 그리스도인을 이
기고 죽일 수 있는 권세를 받는다( 13:7 ). 두 번째 짐승은 이 짐승의
우상을 만듦으로써 같은 일을 수행하는데, 그래서 첫 번째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을 죽인다( 13:15 )
12-13장은 최초의 독자가 이해했을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할
때 명확해진다. 플리니우스 2세가 AD 111년부터 113년까지 폰투
스/비티니아 총독으로 재임할 때 플리니우스 2세와 트라야누스 황
제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 모음 중 한 통의 편지가 발견된 덕분에, 우리는 최초의 독자가 이 두 장을 어떻게 해석했을지를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편지는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지 20년 이내( AD
96년경 ) 에 기록되었고, 위치도 일곱 교회와 가까운 지리적 범위 안에
있다. 이 편지는 또한 요한계시록을 읽은 적이 없고 초기 그리스도
인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던 인물( 플리니우스 2세 ) 이 쓴 것이다. 역사
적 증거와 관련한 한, 이것은 비교적 같은 시기에 가까운 지리적 지
역에서 문학적 의존성이 전혀 없는 독립적인 자료라는 점에서 순금
이나 다를 바 없다! 플리니우스 2세의 편지는 다음과 같다. 특히 굵
은 글씨체로 표시된 부분에 주목하라.
플리니우스 2세
폰투스/비티니아 총독, AD 111-113년
플리니우스가 트라야누스 황제께
폐하, 제 의심을 해결해 주고 제 무지를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제 모든 어려움을 폐하께 말씀드리
는 것이 제 습관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조사에 참석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그리스도인에게 일반적으로 내려지는 처벌의
성격이나 정도, 조사 시작의 근거와 압박의 범위를 알지
못합니다. 또한 나이를 이유로 구별해야 하는지, 아니면
젊은이와 성인을 한가지로 다루어야 하는지, 신앙을 철회
하는 사람을 사면해야 하는지, 아니면 한때 기독교를 고백
했다면 신앙을 포기해도 얻을 것이 없는지, 범죄가 없더라
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만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 아니
면 오히려 그 이름과 관련된 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지를
전혀 확신하지 못합니다.
현재로서는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혐의로 제 앞에
끌려온 모든 사람에 대해 제가 취한 방침입니다. 저는 그
들에게 그리스도인인지를 직접 물었는데, 그들이 인정하
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처벌에 대한 경고와 함께 같은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질문을 두 번 세 번 되풀이합니다. 그들이 계속 고집을 부
리면 저는 그들을 처형하기 위해 끌고 가라고 명령합니다.
저는 그들의 자백의 성격이 무엇이든 간에 그들의 완고함
과 흔들리지 않는 완강함을 처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확
신하기 때문입니다. 로마 시민인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광신적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재판받기 위해 로마로 보
내야 할 인물의 명단에 넣었습니다.
제가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지금, 흔히 그렇듯이 혐
의가 더 광범위해지고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여러
피고인의 이름이 적힌 익명의 소책자가 유포되었습니다.
이들 중에서 저는 저를 따라 신을 부르는 공식을 복창하고
당신의 조각상에 포도주와 향을 바치고 ( 저는 이 목적을 위해 신
의 형상과 함께 당신의 조각상을 법정에 가져오도록 지시했습니다 ) 여기에
더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을 욕하면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거나 그리스도인이었던 적이 없다고 부인하는 사람을 기
각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이해한 바로는 진정한 그
리스도인이라면 그중 어떤 것도 하도록 유도할 수 없기 때 문입니다.
제보자가 저에게 이름을 알려 준 다른 사람들은 처음에 는 혐의를 인정했다가 그다음에는 부인했는데, 그들은
2년 또는 그 전에 그리스도인이기를 그만두었고 일부는 심
지어 20년 전에 그만두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
른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당신의 조각상과 신들의 형상을
경배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욕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그
들이 저지른 죄나 잘못을 모두 합쳐도 이것보다 더 많지
않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들은 정해진 날 동트기 이전에 정
기적으로 모여 그리스도를 마치 신처럼 기리면서 그들끼리
서로 번갈아 가며 구절을 음송했으며, 또한 어떤 범죄 목
적이 아니라 절도, 강도, 간음을 삼가고 신뢰를 깨뜨리지
않으며 반환을 요구할 때 보증금을 거부하지 않기로 맹세
했습니다. 이 의식이 끝나면 흩어졌다가 나중에 다시 모여
평범하고 무해한 종류의 음식을 먹는 것이 그들에게는 관
례였으나, 제가 모든 정치 모임을 금지하는 칙령을 내린
후에는 그들이 사실상 이 관례를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저
는 그들이 집사라고 부르는 두 명의 여성 노예로부터 고문
을 통해 진실을 얻어 내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고 결정했습
니다. 저는 터무니 없이 길게 진행되는 변질한 종류의 숭
배 외에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더 이상의 심사를 유예하고 서둘러 폐하의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이 질문은 특히 위험에 처한 사람
의 수를 염두에 둔다면 검토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입
니다. 모든 연령과 계층과 남녀 모두의 많은 사람이 재판
받는 중이며 이런 상황이 지속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
니다. 이 불쾌한 숭배와의 접촉을 통해 감염되는 것은 도
시뿐 아니라 마을과 시골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그것을 견제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