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칼뱅 총서 II : 작품선 33권 중 - <칼뱅 작품선4 로마 가톨릭 논박서1>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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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득의에 대한 지식이 제거된 곳에서는 그리스도의 영광 은 소멸되고 종교는 무너지고 교회는 파괴되며 구원의 소망은 완전히 없어지고 맙니다……먼저, 우리는 사람들에게 먼저 자 신들을 살펴보도록 권고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단지 피상적이 고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양심을 하나님의 법정 앞에 세우기 위 해 하고, 자기 자신의 불의함이 엄격하게 확신될 때는 모든 죄 인에게 선포된 심판의 엄격함을 생각하도록 가르칩니다. 그리 하여 그는 자신의 비참함에 놀라고 당황하여 하나님 앞에 부복 해 엎드려 겸손하게 되고 자신감을 모두 벗어 버리며 마지막

* * * 칼

칼뱅 총서 I. 칼뱅 기독교 강요

멸망에 던져진 자처럼 신음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 구 원의 모든 부분이 완성되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 비 가운데만 유일한 안식처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전 인류가 버려진 죄인들이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lt;기독교 강요/초판, 1536&gt;

&lt;기독교 강요/2판: 프랑스어 초판, 1541&gt;

만이 그들의 유일한 의가 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는 자

&lt;기독교 강요/최종판, 1559&gt;

신의 복종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악을 도말하셨고 자신의 희생

칼뱅 총서 II. 칼뱅 작품선

&lt;칼뱅 작품선 2. 교회 개혁서 2권&gt;

신 담당하셨으며, 자신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대속해 주셨기 때

&lt;칼뱅 작품선 3. 강연·서문·유언·고별사 등 7권&gt;

문입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바는 이와 같이 인간은 자신의 공

&lt;칼뱅 작품선 4. 로마 가톨릭 논박서 1 5권&gt;

&lt;칼뱅 작품선 5. 로마 가톨릭 논박서 2 2권&gt;

&lt;칼뱅 작품선 6. 재세례파와 심령파 논박서 4권&gt;

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화해된다는 것입니다.

&lt;칼뱅 작품선 7. 니고데모파와 세르베투스 논박서 5권&gt;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와 교제할 때,

&lt;칼뱅 작품선 8. 세네카의 &lt;관용론&gt; 주석&gt;

&lt;칼뱅 서간집&gt;(1530~1538)

작품선 33권

허물을 씻으셨으며 자신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 저주를 대

&lt;칼뱅 작품선 1. 교회 법규·신앙고백서·교리문답서 7권&gt;

작품선 33권

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혔으며, 자신의 피로써 우리

칼뱅 총서 III. 칼뱅 서간집

칼뱅 총서 II

칼뱅 작품선

Jean Calvin

칼뱅 총서 II

4

적이나 가치 있는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값없이 주시는 은혜

우리는 이것을 성경의 표현을 따라 믿음의 의[롬 4:13 참고]라 고 부릅니다.

장 칼뱅 지음

- &lt;사돌레토에게 주는 답신&gt; 중에서

박건택 옮김 칼뱅 총서 IV. 칼뱅의 제네바 당회 회의록, 목사회 회의록

&lt;칼뱅 제네바 당회 회의록 1&gt;(1542~1544)

칼뱅 총서 V. 칼뱅 설교집

&lt;칼뱅 시편·예레미야 설교집&gt;

ISBN 978-89-6092-672-1 ISBN 978-89-6092-538-0 (세트) www.rnrbook.com

값 22,000원

지은이

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 장 칼뱅은 마르틴 루터와 함께 16세기 개신교 종교개 혁을 이끈 탁월한 신학자이자 목회자다. 칼뱅은 30년 도 안 되는 목회 기간 동안 엄청난 양의 저서들을 남 겼는데, 그의 대표 작품인 『기독교 강요』를 비롯하여 성경 주석, 설교집, 신학 논문, 논쟁서, 신앙고백서, 교리교육서 등을 포함한다. 27세 때 초판을 발간한 이 래 23년 동안 5판에 걸쳐 개정 증보한 『기독교 강요』 는 교회사에서 최고의 교의학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칼뱅은 목회자로 부름을 받은 이래로 기독교 교회의 개혁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칼뱅의 사상은 전 유럽에 전파된 후 신세계로 뻗어 나갔으며, 훗날 전 세계에 알려졌다. 칼뱅의 통찰과 영향력은 현재까지

칼뱅 작품선 4

Jean Calvin 로마 가톨릭 논박서1 5권

Recueil des opuscules de Jean Calvin 장 칼뱅 지음 | 박건택 옮김

지속되어, 성경에 기초를 둔 신학 사상의 모형을 제시 해 줄 뿐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교회 안에서 성도들 의 신앙 양육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옮긴이

박건택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불어불문학을 전 공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프랑스 IPT(Institut Protestant Théologie)에서 신학 석사(M. en théologie), 파리 10대학에서 박사 과정 수료(DEA), 파리 4대학에서 역사학 박사(D. en histoire)를 취득했다. 오랫동안 총신대학교 신학대학 원 교회사 교수로 재직하고 퇴임하였다. 저서로는 『칼 뱅의 자유사상』, 『자끄 엘륄의 생애와 사상』 등이 있 고, 칼뱅 작품 선집을 비롯하여 주로 칼뱅 원전을 번 역해 왔다.


| 칼뱅 작품선 4. 로마 가톨릭 논박서1 5권 |

사돌레토에게 주는 답신(Responsio ad Sadoleto , 1539) … ………………… 6 성물론(Traité des Reliques, 1543)… …………………………………………… 63 파리 신학대학 신조와 해독제 (Articuli Facultatis parisiensis cum antidoto , 1544)… …………………… 126

트렌트 공의회 법령과 해독제 (Acta synodi tridentinae cum antidoto , 1547) …………………………… 187

점성술에 대한 경고(Advertissement contre l’astrologie , 1549)… ……… 341

| 칼뱅 작품선 1. 교회 법규·신앙고백서·교리문답서 7권 | 편역자 서문 | 8

일러두기 | 77

약어표 | 79

베즈의 칼뱅 전기 | 83

제네바 교회 설립 시안(1537) … ……………………………………………………… 162 제네바 신앙교육서(1537)… …………………………………………………………… 173 [파렐]의 제네바 신앙고백서(1537)… ………………………………………………… 221 1541년 제네바 교회 법규(1541)… …………………………………………………… 232 제네바 교리문답서(1545)… …………………………………………………………… 251 제네바 콜레주 규정(1559)……………………………………………………………… 343 1561년 제네바 교회 법규(1561)… …………………………………………………… 359 | 칼뱅 작품선 2. 교회 개혁서 2권 | 교회 개혁의 필요성(1543)………………………………………………………………… 6 교회 개혁의 참된 방식(1549) … ……………………………………………………… 144


| 칼뱅 작품선 3. 강연·서문·유언·고별사 등 7권 | 코프의 강연(1533)… ……………………………………………………………………… 6 올리베탕 성서 서문(1535)……………………………………………………………… 18 로잔 신조와 강론(1536)………………………………………………………………… 44 성만찬 소고(1541)… …………………………………………………………………… 59 취리히 합의와 해설(1549/1555) … …………………………………………………… 94 스캔들 론(1550)… ……………………………………………………………………… 150 유언과 두 고별사(1564)………………………………………………………………… 288 | 칼뱅 작품선 5. 로마 가톨릭 논박서2 2권 | 피기우스의 자유의지 논박(1543)………………………………………………………… 6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에 대해(1552) … ……………………………………………… 330 | 칼뱅 작품선 6. 재세례파와 심령파 논박서 4권 | 영혼 수면론 논박(1534/1542) … ………………………………………………………… 6 재세례파 논박(1544)… ………………………………………………………………… 101 리베르탱파 논박(1545)… ……………………………………………………………… 221 리베르탱 수사에 대한 반박 서신(1547)… …………………………………………… 348 | 칼뱅 작품선 7. 니고데모파와 세르베투스 논박서 5권 | 두 서신(1537)… …………………………………………………………………………… 6 신도의 처신(1543)… …………………………………………………………………… 130 니고데모파에게 주는 해명(1544) ……………………………………………………… 185 네 편의 설교(1549/1552) … …………………………………………………………… 211 세르베투스 논박(1553)… ……………………………………………………………… 298 | 칼뱅 작품선 8. 세네카의 &lt;관용론&gt; 주석 | 세네카의 &lt;관용론&gt; 주석…………………………………………………………………… 6 부록 1. 주요 인물과 사건 연대표… …………………………………………………………… 333 2. 참고문헌… ………………………………………………………………………………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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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돌레토에게 주는 답신

1  )

사돌레토 추기경에게 장 칼뱅이 평강을 [기원합니다.]

우리 시대가 낳은 수많은 학자 가운데 그대는 그 훌륭한 학식과 뛰어 난 웅변술로 인해 학문을 탐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는 몇몇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 므로 나는 학문 세계에서 그대의 이름을 들먹이며 다음과 같이 이의제 기2  )   하는 것에 대해 매우 주저했습니다. 또한 어떤 강한 필요성이 나로 하여금 이와 같은 일을 하도록 강요한 것이 아니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뛰어난 학식을 갖춘 사람을 비난하는 데 열의를 내는 것은 매 우 경멸받을 만한 일이며, 모든 사람이 사랑과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다 고 생각하는 그런 경탄할 만한 재능을 가진 사람에 대해, 정당한 이유도 없이 단지 감정에 충동되어 펜을 굴리는 것은 매우 추한 일이 된다는 것 은, 나도 모르는 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그대에 대해 하 는 이 일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 설명을 하고 나면 나는 모든 비난으로부 터 벗어날 뿐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은 이 일의 대의명분이야말로 매우 1  )   Joannes Calvinus, Jacobo Sadoleto Cardinali. 2  )   라틴어 expostulatione에 해당되는 영어 expostulation은 충고의 의미로 살아남아 있으나, 이

단어가 불어에는 없으며 réclamation(이의신청, 이의제기)의 의미로 여겨진다(COC, p. 289).

6 | 칼뱅 작품선 4


중요하고 이것을 저버리는 것은 내 의무를 비열하게 회피하는 게 됨을 인정할 것입니다. [답신의 배경]

그대는 최근 제네바 시의회와 시민에게 서한을 써 보냈습니다. 거기서 그대는 그들이 이전에 벗어 던졌던 로마 교황의 멍에를 다시 쓰기를 원 하는지 어떤지 그들의 마음을 떠 보았습니다. 그 서한에서 그대는 자신 의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을 줄 사람들의 감정을 해치는 것이 현명하지 못한 일인 것으로 판단하고 선한 탄원자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대는 그 들로 하여금 그대가 주장하는 바를 지지하게 만들기 위해 온갖 아첨으 로 그들을 달래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노력을 했으나 그로 인 해 로마 교황의 폭정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는 많은 사람을 향해 그대는 온갖 비방과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여기에서 그대는 사악한 수단을 써서 복음의 구실 아래 제네바시를 선동해 교회와 믿음을 파멸로까지 이끌어 갔다고 그대가 통탄해 하는 사람들의 기세를 완전히 꺾으려 합니다. 그러나 사돌레토여, 나도 그대가 그와 같이 대단한 적의를 가지고 공격 하고 비난하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내가 제네바로 초 청을 받기 전에 그곳에서는 이미 믿음이 확립되어 있었고 교회의 형태 또 한 수정되었지만, 나는 그것에 동의했을 뿐 아니라, 파렐과 비레3  )  가 이 미 이룩해 놓았던 것들을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확립하고 보전하려고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따라서 나와 그들의 입장은 같은 것입니다. 만 일 그대가 나를 개인적으로 비난했었더라면 나는 그대의 학식을 생각하 고 그대의 학문을 존중해 그런 비난을 쉽게 용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으로부터의 소명에 의해 지지받고 또 인정되었다고 확신하고 있는 나의 사역이 도전받고 공격당하는 것은 보았을 때, 내가

3  )   칼뱅이 제네바에 오기 이전에 이들은 그곳에서 개혁 활동을 했다.

사돌레토에게 주는 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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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여기에서 침묵을 지키며 그대의 말들을 무시하고 지나친다면 그것 은 인내가 아니요 배신행위가 될 것입니다. 제네바 교회에서 나는 처음에는 교사요, 그다음에는 목회자로서의 직 분을 감당했습니다.4  )   이 직분들을 받음에 있어서 나는 진정한 소명을 받았음을 주장하는바, 내 주장이 옳다고 믿습니다. 내가 얼마나 성실하 고도 신실하게 그 직분들을 수행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지금 장황 하게 설명할 계제가 아닙니다. 나는 내 자신이 명석하고 박학다식하고 사려 깊고 능력이 있고 근면하다고, 지금 주장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 나 한 가지 나는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데 반드시 요구되는 성실성을 가 지고 노력했던 것만은 확실합니다. 나는 이 점을 나의 양심상 나의 심 판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천사에게 호소할 수 있으며, 모 든 선한 사람이 나를 위한 증인이 되어 줄 것입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 에게 받은 것으로 보이는 ( 이 문제에 대한 설명이 있고 난 후에는 분명하게 밝혀질 것이나 ) 이 사역에 대한 그대의 비방과 중상모략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 대로 내버려 둔다면, 나의 그런 침묵을 하나님께 대한 배신행위로 비난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따라서 이제는 도저히 회피할 수 없는 가장 커다란 의무가 나로 하여금 그대의 비난들에 맞서게 만들고 있으며, 내가 하나님이 내게 의뢰하신 그 일을 명백한 배신으로 저버리 지 않으려면 그와 같이 할 수밖에 없음을 모든 사람이 알 것입니다. 비 록 지금은 내가 제네바 교회의 사역에서 떠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하 여 부성적인 애정을 가지고 그 교회를 돌아보지 않을 수는 없는 것입 니다. 하나님이 내게 교회를 맡기셨을 때는 그 교회에 영원토록 충성하 도록 매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제네바 교회에 가 장 사악한 덫이 놓여 있음을 보고 있고, 그 교회의 안전을 위해 나의 최 상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요, 이 심각한

4  )   doctoris…pastoris

8 | 칼뱅 작품선 4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지 않을 경우 그 위험이 곧 닥치게 된다고 할 때, 누가 나에게 이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채 침묵을 지키며 기다리고 있으 라고 충고하겠습니까? 만일 그대가 방심하지 않고 그 생명을 지키고 보 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어떤 것이 파괴되고 있는데 그것을 못 본 척하고 멍청히 바라만 보고 있다면 그 얼마나 비정한 일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이 점에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대 자신이 내 모든 어려움을 덜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이웃이라는 ( 그러나 그다지 가깝지 도 않은 이웃인데도 ) 5  )

점을 그렇게 강조해 제네바 시민들에 대한 사랑을 공

공연히 나타내길 원하면서도, 나와 내 명성에 대해서는 조금의 주저함 도 없이 신랄하게 비난합니다. 이웃으로서의 의무보다 훨씬 강한 의무 에 의해 내게 맡겨진 제네바시의 공익을 지키고, 제네바시를 파멸로 이 끌 것이 분명한 그대의 충고와 노력들에 대항하는 것이 인간의 법에 부 합되는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게다가 비록 지금 내가 제네바 교회와 아무 관계가 없지만 ( 그렇다고 내가 그 교회에서 내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거나 내 자신의 영혼보다 덜 사랑하고 덜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

설령 내가 그 교회

에 대해 아무 애정도 갖고 있지 않다손 치더라도, 내 사역이 ( 내가 그것을 그 리스도에게 받은 것임을 알기에, 필요하다면, 내 생명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하는 )

거짓되게 비방

받고 비난당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그것을 못 본 척하고 견딜 수 있 겠습니까? 따라서 내가 여러 가지 타당한 이유로 이 싸움에 ( 만일 나의 무고함에 대한 단 순하고 절제 있는 이 변호를 싸움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

들어갈 수밖에 없음을 공정한

독자들은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며, 뿐만 아니라 사돌레토 그대 자신 도 이해하리라 봅니다. 물론 내가 내 자신의 무고함에 대해 변호하고 있 지만 그것은 동시에 내 동역자들을 위한 변호도 되는 것입니다. 사실 내

5  )   사돌레토가 주교로 있는 교구는 Carpentras(현재는 아비뇽을 군청 소재지로 하는 Vaucluse군

의 부 군청소재지이나 당시에는 교황청에 소속된 지역이었다)로서, 사실상 제네바에서 그렇게 가까운 것은 아니다.

사돌레토에게 주는 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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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의 명분이 그들과 너무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으므로, 나는 그들 을 대적해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을 내게 하는 것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것 입니다. 이런 대의명분 아래 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그대에 대해 내가 어떤 감정을 가졌는가 하는 점은 내 행동으로 나타내 보일 것입니다. 그 와 같이 하여 대의명분의 선함과 정의로움, 정직성, 진심에서 우러나는 성실함, 솔직한 언어 등에서 내가 그대보다 낫다는 사실뿐 아니라, 겸손 함과 정중함을 견지하는 데 있어서도 훨씬 성공적이었음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될 것입니다. 내 글 중에는 그대의 감정을 상하게 만드는 내용이 있 을 것이며 깊이 공감되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다음과 같 은 사항에 대해 노력할 것입니다. 첫째, 나는 그대가 전에 나를 공격했던 그 불의한 비난과 같은 표현들은, 반드시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경우들을 제외하고는 결코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 격정이나 신 랄함에 이를 정도나 또는 건방지게 보임으로써 순진한 사람들에 반감을 가져올 정도의 거친 언사들은 피할 것입니다. 우선 다른 사람의 경우였다면,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내가 전혀 언 급하지 않기로 결심한 바로 그 내용을 먼저 들고 나왔을 것이 분명합 니다. 그는 힘들이지 않고 그대가 그대의 서한에서 의도한 바가 무엇인 지 거론해, 서한을 보낸 목적이 그대가 주장하는 바와는 전연 맞지 않음 을 쉽게 입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이전에 솔직한 사람 이라는 큰 신망을 얻은 처지가 아니라면, 제네바 시민들과 전연 교제나 관련이 없었던 외국인이 지금까지 그런 일이 전혀 없었음에도, 이제 와 서 갑자기 제네바 시민들에게 그토록 대단한 사랑을 가지고 있음을 공 언한다는 것은 미심쩍은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그대는 로마 의 교황청 6  )  에서 요즈음 학습되고 있는 로마식 기술, 즉 모든 술수와 계 략을 꾸며 내는 것에 어렸을 적부터 철저히 익숙해 있었고, 클레멘트에

6  )   L: romana curia. F: ès institutions romaines.

10 | 칼뱅 작품선 4


게서 직접 교육을 받았으며 추기경으로까지 선출된 사람이므로,7  )   대부 분의 사람은 이 문제에서 그대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 을 것입니다. 그대는 그대의 그런 환심 사기를 통해 단순한 사람들의 마 음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완벽하게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면, 그런 계략에 대해 쉽게 논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많은 사람은 그대가 술수를 쓴 것으로 믿으려 했으나,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대 에 대해 그런 생각을 갖지 않겠습니다. 모든 종류의 일반 학문을 닦은 그 대와 같은 사람의 성격상 그런 일은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나는 생각하 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는 이 문제로 그대와 토론을 시작함에 있어, 그 대가 그와 같은 서한을 제네바 시민에게 보낸 것은 그대의 학문, 사리 분별, 품위에 어울리는 순수한 동기에서였다는 것과, 그대가 믿기에 제 네바 시민의 이익과 안전에 도움이 되게 하려고 신실한 마음으로 충고 를 보낸 것이라고 생각하려 합니다. 그러나 서한을 발송한 의도가 어 떤 것이었든지 나는 이 문제에서 그대를 악의로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 습니다. 그대가 가장 독설적이고 가장 모욕적인 표현들을 구사해 우리 주님이 우리 손에 맡기신 일들을 왜곡하고 철저히 분쇄하려 애쓰는 것 을 볼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대와 공개적으로 맞서지 않을 수 없었습 니다. 목자들이 한편으로는 온순한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평화롭게 인 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려 애쓰는 자들의 계략을 물리칠 수 있는 무장을 갖추고 있을 때만, 교회가 견고히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그 서한에서 여러 다른 문제도 언급했으나, 그 서한의 전체적 인 목적은 실질적으로 제네바 시민들을 로마 교황의 세력 아래 소위 그 대가 말하는바 교회의 믿음과 복종 아래로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 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의 성격상 그대는 제네바 시민들의 감정을 부

7  )   위에서 밝혔듯이 사돌레토는 교황 클레멘트 7세(1478-1534) 밑에서 성장했다.

사돌레토에게 주는 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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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럽게 만들 필요가 있었기에 그대는 서한의 서문을 영생의 비교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한 장황한 설명으로 채웠습니다. 뒷부분에서 그대는 문제 의 핵심에 접근해 설명하길, 하나님을 잘못 섬기는 것보다 더욱 영혼에 해로운 것은 없고,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기 위한 가장 좋은 규율은 교회 에 의해 제정되는 것이며, 따라서 교회의 통일을 깨뜨린 자들은 회개 없 이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주장하길 그대 와의 친교에서 이탈되어 나가는 것은 교회에 대한 공개적 반항이요, 제 네바 시민들이 우리에게 받은 그 복음은 불경건한 교리들의 잡동사니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이런 설명들을 통해 그대는 만일 제네바 시민들 이 그대의 충고를 따르지 않을 경우, 어떤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 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8  )   그대의 목적을 위해서는 제네바 시민들 로 하여금 우리의 말에 완전한 불신을 갖게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 이었으므로, 우리가 애쓰는 모든 열심이 자신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제네바 시민들 마음속에 그대는 사악한 의심을 심기 위 해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따라서 그대는 우리 목적은 우리 탐심과 야 심을 채우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대가 그와 같은 술수를 쓴 의도가 우리에게 오점을 안겨 주고, 그대의 서한을 읽는 사람 들의 마음을 증오로 가득 차게 만들고 우리를 불신하게 하는 것이었으 므로, 나는 다른 문제로 넘어가기에 앞서 이 점에 대한 반박을 간략하게 하려 합니다. [개혁적 소명의 정당성]

나는 내 자신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습니다.9  )   그러나 그대가 나로 하여금 잠잠히 있게 해 주지 않으므로, 나는 겸손하게 내 입장을 밝히려 합니다. 내가 만일 내 자신의 이익만을 염두에 두었더라면, 나는 결코 교 8  )   사돌레토가 보낸 편지를 칼뱅이 요약한 내용이다. 9  )   이 말은 칼뱅의 수줍은 기질을 말해 주는 대표적 표현이다.

12 | 칼뱅 작품선 4


황의 세력에서부터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곳에 있었더라면 내게 있 어서 고위 성직으로의 길은 더 쉬웠을 것이라는 점을 자랑하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나는 결코 그것을 바란 적도 없고, 내 자신 스스로 그것 을 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나와 같은 나이에 이미 고위 성직에 오 른 많은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나와 대등한 인 물들이며 어떤 사람들은 나보다 못한 자들로 생각됩니다. 나는 단지 다 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내게는 내가 바랐던 최정상, 즉 문자 그대로 자유롭고 명예로운 지위에서 안락함을 즐기는10  )   위치에 도 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뻔뻔스런 용맹을 소 유한 자가 아니고서야 어느 누구도 내가 교황 왕국 밖에서 그곳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개인적 유익을 추구했다고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며, 설 령 그런 비난이 있다 해도 나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비난을 누가 감히 파렐에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가 자신의 노력으로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에게는 이 미 궁핍을 겪을 하등의 이유가 없을 정도의 그만한 문학적 재능을 갖추 고 있으며, 그의 저명한 가문으로 인해 외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특별히 지적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우리 각자의 이름으로 논박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대가 오늘날 우리와 연합해 똑같은 대의명분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적해 간 접적으로 술수를 던지는 것처럼 보이고 있는바, 나는 파렐과 내 자신을 위해 그대의 주장에 반박한 것과 같이 그들 모두를 위해서도 반박할 수 있음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몇몇은 그대가 그 이름을 들 어서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그대 양심에 맡기려 합니다. 그대는 그들이 교황 측에서 떨어져 나온 것과 절망 속에서 새 출 발 11  )  을 하려는 수단으로써 그와 같은 변신을 하게 만든 것이, 배고픔 때 10  )   불어 역본은 vaquer à l’étude(학문에 열중하는)으로 되어 있다. 11  )   L: novas tabulas. F: nouvelle conversion.

사돌레토에게 주는 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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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사례를 들먹일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와 함께 이 대의명분에 동참한 사람 가운데는 이 세상에서 새로운 인생 의 계획을 추구하는 데 요구되는 좋은 지위와 부귀를 그대가 누리는 것 과 같이 누리지 못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얻은 명예와 권 세가 어떤 것들인지 나와 함께 잠시 생각해 봅시다. 우리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우리가 우리에게 마땅히 주어진 부와 명예 외에 다른 것 을 추구했거나 갈망한 적이 없음을 증언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 가운데서 그대가 우리에게 대해 비난하 고 있는 바와 같은 그런 야심의 흔적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그와 같은 것을 혐오했다는 명백한 증거들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우리에게 받은 많은 확실한 증거들이 있음에도, 그대는 그대의 몇 마디 말로 인해 그들이 그대의 무 익한 중상모략을 신뢰할 정도로 매료되리라고 기대할 순 없을 것입니다. 또한 말보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들어 설명하면, 가면을 쓴 수많은 주교 나 사제들이 면책 특권이란 구실로 위정자들에게서 몰래 빼돌린 “검의 권세”와 시의 다른 소유지들을12  )   우리가 다시 시 당국의 권한으로 회복 시켜 놓지 않았습니까? 주교와 사제들이 찬탈했던 폭정과 야심의 도구 들을 혐오하고 폐지하기 위해 싸운 사람들이 우리가 아닙니까? 만일 고 위 성직으로 승진할 희망이 있었다면, 우리는 그런 일들에 대하며 교묘 하게 모른 체함으로써, 교회를 다스리는 직책과 함께 그와 같은 권한들 역시 누릴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승인 을 받지 않았다면 어찌 수많은 영혼에 대한 주교나 사제들의 지배, 아니 오히려 고문이라 불려야 할 그 전부를 뒤집어엎으려는 그와 같은 노력 을 했겠습니까? 우리 역시 그와 같은 노력이 우리 자신들에게 손해가 됨 을 고려하지 않았던 바가 아닙니다.

12  )   종교개혁은 성직자들에게서 세속 소유지들을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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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재정의 올바른 관리]

교회 수입에 대해 말씀드리면, 그 수입 중 상당한 액수를 이런 소용 들이 속에서 누군가가 삼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언젠가 그들에게 서 그와 같이 교회 수입을 가로채는 것이 금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 데도, 궁극적으로는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만, 그것이 우리의 수 입이 되게 하는 방도를 우리가 고안하지 않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 니까? 우리는 분명한 목소리로 교회 수입 중에서 검소하고 수수한 생활 을 유지하기에 필요한 이상의 것을 자신의 개인적 사용을 위해 충당하 는 어떤 주교라도 도둑으로 비난했습니다. 우리는 목사들이 자체 무게 에 깔리고 말 정도의 그런 풍요로움에 빠져 있는 한, 교회는 치명적인 독약에 감염된 것임을 항변해 왔습니다. 우리는 교회 수입이 주교들의 소유가 되는 것을 부당하다고 선언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협의하길 성 직자에게는 호사스런 풍요가 아니라, 그들의 직임에 합당한 검소한 생활 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정도로 지불하고, 그 밖의 교회 수입은 초대 교회 의 예를 따라 처분하는 것이 옳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연례적으로 교회 와 시 당국에게 회계 보고한다는 책임 하에 권위와 비중 있는 사람 13  )  이 교회의 수입을 관리하도록 선출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우 리 주장이 우리 자신들의 유익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까? 우리가 교회 수입에 관련된 문제들로부터 자발적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한 처사 로 생각되지는 않습니까? 물론 이 모든 것은 사실상 현재 우리의 모습이 라기보다는 앞으로 우리가 그와 같이 되길 바라는 모습들입니다. 그런 데 이와 같은 내용이 한마디도 부인할 수 없이 널리 명백하게 알려져 있 는데 무슨 염치로 그대는 우리가 엄청난 부와 권력을 탐했다고 비난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특히 우리의 행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 앞 에서 말입니다. 우리는 그대 교황 측 사람들이 자기들을 따르는 무리에 13  )   이때 이미 칼뱅은 집사 직분의 평신도 사역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것은 1541년 제네바 교회

법규에 명문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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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우리에 대한 끔찍한 거짓말들을 퍼뜨리고 있는 사실에 대해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곳에는 그런 거짓말들에 대해 감히 반박하거나 견책할 만 한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 언급했던바, 그 모든 것을 직접 목격했던 사람들에게 그와 반대되는 것을 가지고 설 득하려는 것은 매우 신중하지 못한 처사가 될 뿐 아니라, 사돌레토 그대 의 학식과 사려, 분별력 및 품위에 대한 명성에 중대한 손상을 가져오는 일이 될 것입니다.14  )   그러나 우리가 의도했던 목표들은 그 결과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대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가난함과 미 천함을 통해 그리스도의 왕국의 확장만을 위해 노력해 왔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의 탐심을 위해 그리스도의 거룩한 이 름을 남용한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대가 우리를 대적해 토해 내는 다 른 많은 혹독한 비난들에 대해서는 묵과하겠습니다. 그대는 우리를 교 활한 자, 기독교의 통일과 평화의 적, 오래되고 잘 정돈된 것들을 개조하 는 자, 사람들에게 유해한 유혹자 및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사회 전반 을 위해 해로운 자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대 자신도 비난받는 일 에서 벗어나길 원했다면 편견을 자극하기 위해 우리에게 그와 같이 과 장된 언사로 비난을 퍼붓지 말았어야 했으며 스스로 자제를 보였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점을 하나하나 자세히 다루고 싶은 생각 이 없습니다. 다만 내가 그대에게 주지시켜 주고 싶은 것은 한마디로 즉 시 논박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에 대해 많은 말을 가지고 무고한 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비열한 짓임은 말할 것도 없고, 더욱이 그대에게는 어울 리지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에 대한 그대의 그 형편없는 경멸과 비교할 때 그대가 사람들에게 가하는 해는 아무것 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제네바 시민들은 우리 설교를 통해 가르침을 받 고 그들이 이전에 빠져 있었던 오류의 수렁에서 벗어 나와 복음의 순수

14  )   이제 존중심은 빈정거림이 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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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훈으로 나아가는바, 그대는 그것을 [1]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포 기”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더 나은 형태의 교회를 세우기 위 해 로마 교황의 폭정을 벗어 던지려 했는데, 그대는 그것을 [2] 교회로 부터의 실제적인 분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 두 가지 점을 차례 로 살펴봅시다.

[1] [복음 설교] 영원한 복의 좋은 점을 설명한 그대 서한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서 문에 대해서는 길게 답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와 영생에 대한 말씀은 우리가 밤낮 귀 기울여 듣고 계속 회상해 보고 또 끊임없 이 묵상을 할 만한 주제임은 사실이나, 그럼에도 나는 그대가 무슨 이유 로 여기에서 이 문제를 그렇게 지루한 설명을 하고 있는지 납득이 잘 되 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종교적 감정을 등에 업고 그대 자신을 부각 시키려 한 게 분명하다고 판단됩니다. 그대에 대한 모든 의혹을 제거하 기 위해 영광된 삶에 대한 진지한 생각이 그대에게 가득 차 있음을 입증 하려 했던 것인지, 아니면 영광된 삶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통해 그대의 서한을 읽는 자들의 마음을 부추기고 동요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 각했던 것이었는지 잘 모르겠으나, 나는 그대의 의도가 어떤 것이었는지 여기서 밝히려는 게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일차적 존재 동기로서 하나 님의 영광을 제시하려는 열의를 보이지 않고 모든 생각을 자기중심에서 만 전개하는 것은 그다지 건전한 신학은 못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선 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태어났지 우리 자신을 위해 태어난 게 아니기 때 문입니다.15  )   사도의 말과 같이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다시 주

15  )   사돌레토는 자신의 편지에서 인간 영혼의 무한한 값어치와 영생을 향한 인간의 열망을 강조

했다. 게다가 그는 1538년에 플라톤의 스승인 Phaedrus 을 통해 철학을 칭송한바 있다. 이에 대해 칼뱅은 하나님 중심의 신학으로 맞선다. 파리 국립도서관의 사본에는 “사람은 자신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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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로 돌아가야 하므로[롬 11:36], 만물은 하나님과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인간들이 더욱 주님 자신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시려고 자신의 이름의 영광과 우리의 구원을 불가분리하게 결합시켜 놓으심으로써,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증진하고 확장하려는 열심을 부드럽게 조정하셨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자신 들의 선과 유익에 대한 모든 생각과 염려보다는 하나님 영광을 높이려 는 열심이 우리에게 있어 더욱 커야 할 것을 가르치셨고, 자연의 형평 또 한 만물보다 주님을 먼저 섬기지 않으면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님을 가 르쳐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의무는 단지 자기 자신의 영혼 구 원만을 확보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대가 전적으로 인간 중심적인 입장에서 천국생활을 향한 열망을 갖도록 장황하고도 자세한 권고를 늘어놓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말은 한마 디도 하지 않고 있는 사실을 한심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 후에 우리 인생의 목표로서 천국 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더 높은 부르심 외에는 우리에게 다른 목표가 있 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는 그대에게 기꺼이 동의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의 모든 행동과 말과 생각들의 지속적인 목표로서 영생과 천국을 우리 앞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복된 영생의 소망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적 으로 교제하는 것 외에 인간을 동물보다 뛰어나게 만드는 것은 참으로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우리 가르침을 통해 목적한 바 는 사람들로 하여금 영생에 대해 묵상하고 그것을 갈망하게 만드는 것 입니다. 나는 또한 하나님께 대한 왜곡되고 잘못된 예배보다 우리 구원 에 해로운 것이 없다고 한 그대의 주장에 기꺼이 동의하는 바입니다. 우 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만들기 원하는 자들에게 시키는 경건 훈련

원을 이루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주를 달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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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기초 원리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자신들 임의로 자기 자신의 기쁨 을 위해 하나님께 대한 예배 형태를 새로이 만들어서는 안 되며, 유일하 게 합당한 예배는 태초로부터 하나님이 직접 인정하셨던 바로 그 예배 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선포된 대로[삼상 15:22] 순종이 제사보다 더 낫다고 주장합니다. 요약하면 우리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에게 직접 받았던 예배의 유일한 규범을 지키고 모든 거 짓된 예배에서 떠나도록 모든 수단을 다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돌레토 그대가 이 문제에 대해 스스로 그대의 믿음을 토로함으로써, 나로 하여 금 변호할 수 있는 기초를 주었습니다. 그대는 잘못된 사상으로 인해 거 룩한 진리가 거짓으로 변하게 될 때 그것은 영혼의 두려운 파멸을 가져 온다고 했는바,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우리 양측, 즉 로마 교황 측과 우리 측 사이에 어느 쪽이 유일하게 합당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 는가 하는 점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대는 가톨릭교회가 합당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가장 확실한 예배의 규범은 가톨릭교회가 제정한 것이라고 가정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돌레토 그대가 헛되게 애 쓰고 있는 것처럼 보여 이 점에 대한 모든 혼동에서 그대를 벗어나게 해 주려 합니다. 우리가 사람들로 하여금 가톨릭교회가 오랫동안 지켜 온 예배의 방식을 버리도록 만들기 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 입니다. 그대는 교회라는 용어를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잘 알면서도 고 의적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고대 교회]

나는 그대가 교회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부분도 있겠으나, 올바로 알 고 있으면서도 고의로 속이고 있음을 당장에 밝히려 합니다. 먼저 용어 를 정의함에서 그대는 교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와줄 수 있었던 부 분들을 생략했습니다. 그대는 교회를 과거나 현재, 또는 지구상의 어느 지역에 있더라도, 그리스도와 한마음으로 연합된 것이요, 언제 어디서 사돌레토에게 주는 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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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한 분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인도되는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렇다 면 주님 자신이 교회를 지적해 말씀하실 때 교회의 가장 명확한 표지로 우리에게 자주 언급하셨던 하나님 말씀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주님 은 말씀 없이 성령을 자랑하는 것이 대단히 위험스러운 일임을 아시고 계셨으므로, 교회가 진실로 성령에 의해 다스림을 받고 있음을 선포하시 면서도 성령의 다스림이 막연하고 불안정한 것이 되지 않게 하시기 위 해 주님이 교회를 말씀에 기초하도록 만드셨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들으며 그의 양들은 그의 음성을 목자의 소리로 듣되 다른 소리는 이방인의 소리로 듣는다 [요 10:27]고 하셨던 것입니다. 성령께서 바울의 입을 통해 선포하시길, 교회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져 있는 것이요[엡 2:20], 물 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주님 앞에 거룩하게 되었다[엡 5:26] 고 했습니다. 이와 똑같은 내용이 베드로의 입을 통해 더 분명하게 선언 되었는바, 그는 우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 니할 씨로 되었다[벧전 1:23]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복음 의 전파가 그와 같이 자주 하나님의 나라라고 불린 이유는 그 복음이야 말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다스리시는 왕권이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 이겠습니까? 이와 같은 내용은 사도 저작물들에서만 발견되는 게 아닙 니다. 선지자들이 교회의 갱신과 전 세계로의 확장을 예언할 때 그들은 언제나 말씀에 우선권을 두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생수가 흘러 나와 네 개의 강으로 나뉘어 전 세계를 뒤엎을 것이라[슥 14:8]고 말씀 합니다. 이 생수가 무엇인가 하는 데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즉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오고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 올 것이다[사 2:3]. 크리소스토무스는 성령의 구실 아래 우리를 복음의 단순한 교리에서부터 호도하려는 어떤 사람도 용납하지 말도록 충고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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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바 매우 옳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16  )   성령이 우리에게 약속된 것은 새로운 교리를 밝혀 주시기 위함이 아니요, 복음의 진리를 우리 마음에 새겨 주시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의 우리에게 있 어 크리소스토무스의 충고가 얼마나 필요한가 하는 점을 체험합니다. 우 리는 서로 매우 다른 두 분파에게 공격을 당합니다. 사실 교황과 재세례 파들이 어떤 점에서 어울립니까? 사탄이 아무리 교활하게 자신을 위장 한다 해도 어느 정도는 정체가 노출되고 있음을 우리가 알 수 있듯이, 그 양쪽 모두 성령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자랑하고 있는바, 그것은 불가피 하게 하나님 말씀을 묻어 버리고 사장시키는 경향이 생겨나게 되고 스 스로 오류를 범할 여지를 만들게 됩니다. 사돌레토 그대도 바로 그와 같 은 잘못을 범해 성령을 하나님 말씀에서 분리시켰고, 그로 인해 성령을 모욕하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찾는 사람들이 어떤 분명한 표식도 세워 있지 않은 두 갈래에 있을 때, 그대는 그들에게 교회의 권위 를 따르는 게 합당한 일인지, 소위 새로운 교리 창시자들의 말을 듣는 게 합당한 일인지 알려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모든 교리 를 검사하는 시금석과도 같으며 성령은 교회가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밝혀 주시는 분임을 그대가 알고 있었고 또한 그것을 속이려 했던 게 아 니었다면, 그대는 결코 이 가장 복잡하고 당혹스런 문제로 도피하지 않 았을 것입니다. 그대의 경험에 비추어 잘 배우시기 바랍니다. 성령 없이 말씀 자체만 을 강조하는 것이 불합리하듯이 말씀 없는 성령만을 자랑하는 것 역시 그 못지않게 불합리한 일입니다. 이제 그대가 교회에 대한 그대 자신의 정의보다 더욱 참된 정의를 용납할 수 있으시다면 앞으로는 다음과 같 이 말하시기 바랍니다. 즉, 교회란 전 세계에 퍼져 있고 모든 시대에 걸 쳐 존재하나 그리스도의 한 영과 교리로 묶여 있으며, 믿음의 통일과 형

16  )   Chrysostomus의 어떤 책인지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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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적 연합을 지키고 배양하는 모든 성도의 모임이라는 것입니다.17  )   교 회에 대한 이와 같은 정의에 대해서는 우리는 어떤 이견도 없습니다. 우 리는 오히려 교회를 우리의 어머니로 존경하고 있고 교회의 품에 머물 러 있길 원합니다. 그런데 그대는 여기서 나를 비난합니다. 그대는 성도 들의 한결같은 동의에 따라 1,500년 이상이나 인정되어 왔었던 모든 것 이 우리의 경솔함으로 인해 무너지고 파괴되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는 우리 입장을 그대가 좀 더 진실하고 솔직하게 다루길 요 청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철학자들에 의 해서도 그리 되어야 합니다만, 나는 단지 그대가 비열한 비난에 빠지지 않길 권고하는바, 만일 그대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침묵을 지 킨다 해도, 신실하고 정직한 사람들에 대한 그대의 명성은 치명적인 해 를 입을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사돌레토 그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습 니다. 만일 이것을 감히 부인하려 한다면 나는 그대가 다음과 같은 사실 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매우 교묘하게 위장했음을 모든 사람에게 분명하게 밝힐 것입니다. 즉 우리가 주장하는 교회의 형태가 로마 가톨 릭교회보다 초대 교회 형태에 훨씬 가까울 뿐 아니라, 처음에는 무식한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고 더럽혀졌으며 후에는 교황과 그의 도당들에 의 해 극악무도하게 난도질당하고 거의 파괴되다시피한 교회의 본래의 형 태를 새롭게 하고자 우리가 노력해 왔다는 사실 말입니다. 사도들이 제 정했던 교회의 형태만이 참된 교회의 유일한 모범이고 조금이라도 이에 서 벗어나는 어떤 형태의 교회도 잘못된 것이 분명하지만, 나는 그대에 게 그 초대 교회 형태로 되돌아 갈 것을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그 들의 저술에서 묘사되고 있는바, 크리소스토무스 및 바실리우스 시대의 희랍인 가운데 존재하던 교회의 형태와 키프리아누스, 암브로시우스 및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의 라틴 세계에서의 고대 교회 형태를 그대 눈앞에

17  )   교회 정의의 기준은 그 불가견적인 성격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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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려 보고, 그런 후에 지금 그대들 가운데 잔존하고 있는 그 고대 교회의 폐허를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분명코 그 차이는 다윗과 솔로몬 치하에 번성했던 그 유명한 교회와 시드기야와 여호야김 치하에서[왕하 24:825:7 참고] 온갖 종류의 우상숭배에 빠지고 거룩한 예배의 순수성이 완 전하게 부패되었던 그 교회와의 차이만큼이나 클 것입니다. 부패하고 타 락한 기존의 교회 상태에 결코 만족하지 않고 고대의 경건함과 거룩함 을 열망해 현재 교회가 처한 상황을 개선하고 초대 교회의 영광을 회복 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대는 오랜 옛 교회의 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의 표지: 교리]

교회가 기초하고 안전하게 유지되는 것은 다음 세 가지에 근거하는바 그것은 교리, 권징 18  )   및 성례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첨가시키면 의 식이 있습니다. 이 의식들을 통해 거룩한 직임을 맡은 자들을 훈련시키 는 것입니다. 그대는 그대 교회의 영예를 보전하기 위해 우리가 이 네 가 지 사항 중 어느 것으로 그대 교회를 판단하기 원하십니까? 교회가 기초 를 두어야 하는 그 선지자적 및 복음적 교리의 진리가 그대의 교회에서 는 대부분 소멸되었을 뿐 아니라, 불과 검 19  )  에 의해 무참하게 제거되었 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세워지고 교부들의 저작물들에 기록되며 고대 공의회들의 인정을 받은 우리 믿음의 모든 제도가 맹렬하게 거부되고 박해받는 그런 교회를, 그대는 감히 내게 교회라고 주장할 생각입니까? 그대의 교회에 이전의 옛 주교들이 교회 안에서 행하던 참되고 경건한 훈련의 흔적이 남아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대들은 초대 교회 주교들 이 만들었던 모든 제도를 비웃지 않았습니까? 성례에 대한 그대들의 극 악한 신성모독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엄청난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18  )   칼뱅이 실제로 교회의 표지를 언급할 때 이 권징을 빼고 말씀과 성례만을 말한다. 19  )   불에 태워 죽이는 것과 피 흘려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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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습니다. 의식에 대해 그대들은 분명 필요 이상의 의식들을 갖고 있습 니다. 그러나 그 의식들 대부분이 매우 유치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들 이고 수많은 형태의 미신들로 더럽혀진 것들이므로, 교회의 보전을 위해 서는 전적으로 무용한 것들입니다. 그대가 분명하게 아셔야 할 것은 나 의 이와 같은 말들은 비난하는 뜻에서 과장된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모든 것이 너무 명백하고 분명해, 이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지적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제 그대가 원한다면 똑 같은 방법으로 우리를 시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 그대는 그대의 서 한에서 했던 것과 같은 그런 비난을 우리에게서 찾아볼 수가 없을 것입 니다. 성례에 대해 말씀드리면 우리는 성례가 ( 부패하기 이전의 순수함으로 회복되 어 )

그 본래의 영예와 위엄을 갖게 하는 목적 외에는 아무것도 손대지 않

았습니다. 우리는 의식들 대부분을 폐지했는데 20  )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의식의 수효가 너 무 많은 이유로 일종의 형식적 유대주의로 빠졌기 때문이고, 부분적으 로는 의식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우상으로 채우고 믿음을 증진시켜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방해물이 되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시대적 상황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의식들은 여전히 간직해 오고 있습니다. 우 리의 권징이 초대 교회가 명한 것과 똑같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부 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들은 권징을 전적으로 폐지했으면서 도, 그것을 본래의 상태로 회복시키려고 노력해 온 우리에 대해서는 지 금까지 반대하여 우리에게 권징을 왜곡한다고 비난하고 있는 게 도대체 어떻게 공정한 처사가 될 수 있겠습니까? 교리에 대해 우리는 주저 없이 초대 교회의 기준에 호소합니다. 예를 들면, 그대는 우리를 비난하기 위한 근거가 될 것으로 판단한 몇 가지 점

20  )   칼뱅은 세례와 성찬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성례를 성례로 보지 않고 의식으로 여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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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다루었는바, 우리가 교회의 신앙에 대적하려고 그와 같은 것들을 고 안해 낸 것이라고 주장한 그대의 비난이 얼마나 불공정하고 거짓된 것 인가 하는 점을 간략하게 설명하려 합니다. 세부 설명에 들어가기에 앞 서 나는 성경 말씀만을 설명하려 노력해 온 우리 개혁파 백성을, 그대가 무슨 이유로 잘못되었다고 비난하고 있는지 스스로 거듭 생각해 볼 것 을 경고하려 합니다. 우리가 그런 노력을 통해 하나님 말씀에 빛을 던 져 주었으며, 이 점에서는 단순한 시샘일지라도 우리로부터 찬사를 빼앗 아 가기가 부끄러울 정도임을 그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곤란하 고 미묘한 문제들을 통해 사람들을 유혹해 왔다거나, 사도 바울이 그리 스도인들에게 주의하도록 말씀한 그 철학[골 2:8]을 가지고 그들을 꾀어 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그대가 전혀 솔직하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그대는 개혁자들이 등장하게 된 시대적 상황이 어떤 것이었고 목회자 후보생들이 신학교에서 배운 교리가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 기억할 수 있습니까? 그대 자신은 그들이 배운 교리가 단지 궤변에 불과할 뿐 아니 라, 스콜라 신학은 너무 복잡하고 뒤틀리고 혼돈스러우며 의문투성이라 비밀에 싸인 마술 21  )  이라고 불릴 정도였음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어 떤 문제를 어둠 속에 감출수록, 또한 성가신 수수께끼들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 모두를 혼동에 빠뜨릴수록 예리함과 학식에 대한 명성은 더욱 커졌습니다. 그런 학교에서 배웠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학문적 결실 을 갖가지 기술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하려 했을 때, 그들이 과연 교회 를 세웠는가를 그대에게 묻고 싶습니다. 한 가지 점만 살펴봅시다. 그 당시 유럽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항상 간직하도록 부탁했던 것과 같은 그런 단순함을 보여 주는 설교가 도대체 있었습니까? 늙은 부인네들이 화롯가에 앉아 한 달 동안 꾸며 댈 수 있었던 공상들보다 한 편의 설교를 듣고 더 많은 공상을 하게 만들었

21  )   당시 이런 표현은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에게 흔한 것이었다.

사돌레토에게 주는 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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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바, 그렇지 않았던 설교가 참으로 한 편이라도 있었습니까? 당시의 설 교는 통상 두 부분으로 나뉘었는데 전반부에서는 신학교에서 배웠던 모 호한 질문들을 다루어 무식한 백성을 놀라게 했고, 후반부에서는 부드 러운 이야기나 재미있는 추리들로 채워 청중을 흥분시켜 즐겁게 만들곤 했습니다.22  )   하나님 말씀이라고는 두세 마디만 전했는데 이 말씀들의 권 위로 인해 쓸모없는 설명으로 가득 찬 설교가 그나마 설교로 인정받곤 했습니다. 그러나 개혁자들이 설교의 기준을 높이자마자 우리 가운데 있 었던 그 모든 속임수들23  )  이 일순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대들의 설 교자들은 아직도 벌어진 입으로 예전의 어리석은 소리들을 뱉어 내고는 있습니다만, 부분적으로는 우리가 저술한 서적들을 통해 배우고, 또한 부분적으로는 수치심 및 평신도들의 불평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우리 개혁자들의 본을 따랐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설교 진행 방법을 이전의 방법과 비교하거나 그대들 가운데 아직도 대단한 평판을 받고 있는 설 교 방법과 비교해 본다면, 그대의 비난은 정말로 터무니없는 것임을 누 구나 알게 될 것입니다. 그대가 인용했던 바울의 말씀을 계속 좀 더 인용 했더라면, 어떤 학생이라도 우리를 향한 그대의 비난은 모두 그대 자신 에게 적용되고 있음을 쉽게 감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헛된 철학 [골 2:8]이라고 한 것을 성경이 해석하길, 그것은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에 의해 경건한 사람들을 노략하는 것이라 했는데, 그대들은 헛 된 철학으로 교회를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이신득의]

그대 자신조차도 후에는 스스로 우리의 무고함을 증언했습니다. 그 대가 비난할 대상이 된다고 생각했던 우리 개혁자들의 교리들 가운데 그 어느 것 하나라도 교회를 세우는 데 일차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것이 22  )   중세 설교는 종종 그 지적 형식주의와 동시에 세속적인 비속성으로 비난받았다. 23  )   L: offuciae. F: ténéb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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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었음을 스스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대는 로마 교황 측과 우리 개혁자들 사이에 가장 첨예하게 대립된 문제인 이신득의를 다루었 습니다. 이것은 난해하고 무용한 문제입니까? 이신득의에 대한 지식이 제거된 곳에서는 그리스도의 영광은 소멸되고 종교는 무너지고 교회는 파괴되며 구원의 소망은 완전히 없어지고 맙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 한 때 그대는 불경스럽게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이 교리를 지워 버렸던 것입니다. 우리 개혁자들의 저술들은 이 사실들에 대한 분명한 증거로 가득 차 있으며, 모든 그대들의 교회가 아직까지도 이 교리에 대해 무지 하다는 사실은 우리 주장이 결코 근거 없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는 것입 니다. 그러나 그대는 우리가 모든 것을 믿음에 돌리고 행위는 전적으로 무시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우리에 대한 매우 악의에 찬 편견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긴 토론을 벌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토론을 위해서는 두꺼운 책이라도 한 권 써야 할 것입니다. 내가 제네바 에서 목사로서의 직분을 감당하고 있을 때, 제네바 시민들을 위해 내가 만들었던 교리문답 24  )  을 본다면, 세 마디만 가지고도 그대를 침묵하도록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우리가 주 장해 온 바를 간략히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사람들에게 먼저 자 신들을 살펴보도록 권고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단지 피상적이고 형식적 으로가 아니라 양심을 하나님의 법정 앞에 세우기 위해 하고, 자기 자신 의 불의함이 엄격하게 확신될 때는 모든 죄인에게 선포된 심판의 엄격 함을 생각하도록 가르칩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비참함에 놀라고 당 황하여 하나님 앞에 부복해 엎드려 겸손하게 되고 자신감을 모두 벗어 버리며 마지막 멸망에 던져진 자처럼 신음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우 리 구원의 모든 부분이 완성되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 가운데만 유일한 안식처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전

24  )   &lt;제네바 신앙교육서&gt;를 의미한다.

사돌레토에게 주는 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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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버려진 죄인들이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만이 그들의 유일한 의가 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복종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악 을 도말하셨고 자신의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혔으며, 자신 의 피로써 우리 허물을 씻으셨으며 자신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 저 주를 대신 담당하셨으며, 자신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대속해 주셨기 때문 입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바는 이와 같이 인간은 자신의 공적이나 가치 있는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화해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 접하고 그리스도와 교제할 때, 우리는 이것을 성경의 표현을 따라 믿음의 의[롬 4:13 참고]라고 부릅니다.

[선행과 참회]

사돌레토여, 그대가 우리 주장에 대해 비방하고 물어뜯을 것이 무엇 이 있습니까? 선행에 대해 여지를 남겨 놓지 않은 것 때문입니까? 분 명코 공로는 사람을 의롭게 하는 데 있어 지푸라기만큼의 가치도 없다 고 우리는 주장합니다. 성경은 모든 부분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 소 리 높여 외치고 있으며 그들의 양심은 신랄하게 자신을 비난합니다. 바 로 그 성경이 하나님의 선하심 외에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소망이 없 음을 가르치고 있는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해 우리의 죄가 사함 받고 의가 우리에게 돌려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두 가지 모두가 값없이 주 어지는 것으로 선포하고 있으며, 인간은 일한 것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 기심을 받는다[롬 4:6]고 결론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는 만일 선 행이 중시되지 않는다면 의라는 용어 자체가 우리에게 제시해 주는 개 념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합니다. 내 답변은 이렇습니다. 만일 그대가 성 경에서 ‘칭의’라는 용어의 진정한 의미를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큰 어려 움 없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용어는 인간 자신의 의를 언급하고 있 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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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죄인의 공적들과는 상관없이 그의 불의를 책망하시지 않으시고 그 를 의롭다 여기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는 바울 사도를 통해 말씀된 바 와 같이[고후 5:19]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어 우리를 자신 과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 그와 같이 하시는지 이어 서 말씀하시고 계시는데, 그것은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으심으로 하 신다고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화목하게 하는 사역이 복음에 포함되 어 있다고 하여 우리가 이 복의 동참자가 되는 것이 오직 믿음으로 가능 함을 말씀합니다. 믿음이란 용어는 그대가 말하는 대로 매우 일반적인 용어이며, 매우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칭의의 능력 을 믿음에 부여할 때, 그는 그와 동시에 믿음 역시 거룩한 은혜의 무조 건적인 약속에 의해 제한되는 것이며, 인간의 행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 음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바울 사도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칭의가 믿음에 따른 것이라면 공로와는 상관이 없으며, 만일 공로에 따 른 것이라면 믿음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 를 구실삼아 선행이 부정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해를 입히는 일 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신 목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선행을 원하 시고 계시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게 만들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와 똑같은 내용의 많은 유사한 구절에서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이 유는 우리가 선행을 행함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지 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기록합니다. 우리 적대자들이 계속 입 벌려 토해 내는 비방, 즉 값없이 주어지는 의를 주장함으로 인해 그리스도인의 삶 에서 선행을 하려는 욕망을 우리가 앗아가 버렸다고 하는 그 비방은 너 무 사소한 것이라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행이 칭의에 어떤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부인합니다. 그러나 의인의 삶 속에서 는 선행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을 주장합니다. 의롭다 하심을 입은 자는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으며 동시에 성령이 계시지 않는 곳에서는 그리 스도 또한 결코 존재하시지 않는다고 한다면 값없이 주어지는 의는 필 사돌레토에게 주는 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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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적으로 중생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게 됩니다. 따라서 만일 믿음의 공로가 얼마나 밀접해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점을 옳게 이해하기 원한다면 사도들이 가르치고 있는바[고전 1:30], 우리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위해 보냄을 받으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바랍니다. 우리가 값없이 주어지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는 믿음을 통한 칭의가 있 는 곳에는 반드시 그리스도도 계십니다. 또한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에 는 인간을 새로운 삶으로 중생시키시는 성결의 영이 함께 계십니다. 반 대로 정결함과 거룩함을 향한 열심이 없는 곳에는 그리스도의 영도 그 리스도 자신도 결코 존재하시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 곳 에는 의가 없을 뿐 아니라 믿음도 전혀 없습니다. 성경의 성령의 도움 없이는 믿음도, 칭의의 사역을 감당하시는 그리스도도 이해할 수가 없 기 때문입니다. 우리 개혁자들의 믿음은, 그리스도는 자신이 의롭다 하신 자들을 복 된 삶으로 출생시키시고, 그들을 죄의 권세에서 구해 내사 의의 권세 아 래로 옮기시고, 그들을 하나님 형상으로 변화시키시며[고후 3:18 참고], 그들로 하여금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도록 훈련시킨다는 것 입니다. 우리의 이런 교리로 인해 사람들을 타락시켰다는 그와 같은 비 난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그대가 인용하고 있는 성경구절들 역 시 같은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대가 그 구절들을 곡해해 값없는 칭의의 교리를 공격한다면, 그대의 주장하는 바가 얼마나 조잡한가 하는 점을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엡 1:4] 말하길, 우리는 창세전에 사랑 안에서 택함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할 때 우리가 택함 받 은 것은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거나, 우리 사랑이 택함을 받게 된 원인이라고 누가 감히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값없이 택함 받은 목적이 순결하고 오염되지 않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인 것처럼, 값없이 주어지는 칭의의 목적 또한 그와 같습니다. 바울 사도의 말씀은 참되니 [살전 4: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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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하심입니다. 우리 ( 개혁자 ) 들이 일관되게 주장해 온 바는 인간은 자 신의 공로와는 전혀 상관없이 단번에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일 뿐 아니 라, 그의 구원도 이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 ( 칭의 ) 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어떤 행위도 하나님의 은혜로 인정받지 못할 진대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지기에 불가능합니다. 나는 사랑이 구원을 얻 는 제일 되는 원인이라는 그대의 주장을 읽고는 대단히 놀랐습니다. 사 돌레토여, 누가 행여 그대가 그런 말을 하리라 기대했겠습니까? 확실히 맹인 된 자들은 자신들의 어둠 속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너무 확신한 나 머지, 자기들의 구원의 첫 단계는 사랑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한줄기 거룩한 빛을 소유한 자들은 자신들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택하심 에 의존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영원한 구원은 하늘 아버지의 기업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서만 예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일관되 게 가르치고 있는 바는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요, 다 만 하나님에 의해 사랑과 은총 가운데 무조건적으로 영접되었다는 사실 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택함 받은 이유가 이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라고 누가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이 교리에 대해 무지하므로, 그대는 죄가 참회와 속죄 행위로 사해진다고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 면 성경이 증언하는 바와 같이 죄를 속하기 위한 더 이상의 제사를 필요 없게 만드시고 세상 죄를 친히 담당하신 속죄의 희생양 그리스도는 어 찌되는 것입니까[히 10:12 참고]? 우리가 가진 성경을 살펴보시기 바 랍니다. 성경은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속죄, 화해 및 죄 씻 음을 얻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설명하는데, 그대는 어찌 감히 인간의 공 적을 그리도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그대는 이와 같은 신성모독을 하나 님의 교회에 돌릴 만한 하등의 근거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물론 고대 의 교회 역시 그 나름대로 속죄 행위의 방법들이 있었음을 나도 인정합 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죄인들이 하나님께 속죄받고 자신들의 죄에서 구원받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자기들이 고백하는 회개가 거짓 사돌레토에게 주는 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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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님을 입증하고, 자기들이 저지른 죄의 행위들에 대한 기억을 지우 기 위한 것에 불과했던 것이었습니다. 고행은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 로 부과되었던 게 아니라, 매우 심각한 죄를 범한 자들에 한해 부과되었 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표지: 성례]

성만찬 교리의 경우 그대는 우리 ( 개혁자 ) 가 우주의 주님 및 완전히 자 유롭고 무한한 하나님의 거룩하고 영적인 능력을, 한계가 지어진 육체 적 속성의 범주로 제한하려 노력했다고 비난합니다. 그와 같은 중상모략 을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항상 분명하게 밝혀온바, 그리스도 의 신적 능력뿐 아니라 그의 본질 역시 무소부재하시며 어떤 한계에 의 해서도 제한되지 않는다고 증언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그대는 우리가 그 리스도의 신적 능력과 본질을 육체적 속성의 한계로 제한하려 했다고 주저 없이 비난합니다. 그와 같이 우리를 비난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육체가 세상적인 요소들로 채워진 것이라고 하는 그대들의 주장에 우리 개혁자들이 동의하지 않기 때문일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러나 만일 그 대가 조금이라도 신실한 사람이라면, 그리스도 육체의 장소적 임재를 빵 으로부터 제거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영적 능력을 육체적 한계로 제한 하는 것과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엄연히 있다는 사실에 대해 그대 는 분명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교리는 교회가 언제나 공인된 교리로 채택해 왔던 것입니다. 이 문제 한 가지만 다루기 위해서도 한 권의 책 을 저술해야 할 터인데, 우리 모두 그런 수고를 덜기 위해 말씀드리거니 와 그대가 아우구스티누스의 &lt;다르다누스 ( Dardanus ) 에게 보낸 서한&gt;25  )  을 읽는 게 더 좋을 것입니다. 그 서한을 읽으면 그대는 한 분 동일하신 그 리스도는 그의 충만하신 거룩하심으로 모든 하늘과 땅을 채우시고도 넘

25  )   Augustinus, Epistola 1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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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시지만, 그의 인간성의 측면에서는 모든 곳에 편재해 계시는 것이 아 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개혁자들은 성만찬에서 믿는 자들에게 제 시되고 있는 살과 피의 교제를 강조해 선포하고 있는바, 이 살은 참된 음 식이요 이 피는 참된 음료라는 사실과, 영혼은 만들어 짜낸 개념에 만족 하지 아니하고 실제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누림을 명백하게 밝힙니다. 그리스도의 장소적 제약은 없으며 영광스런 그리스도의 몸이 세상적인 요소들의 수준으로 타락되어서는 안 되며 빵이 그리스도를 성체 변화 한다고 주장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그리스도로 예배하는 등의 허구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우리 개혁자들의 주장입니다. 그렇다 해 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수단이 되는 그리스도의 그와 같은 임재가 성 만찬에 포함되어 있음을 우리는 결코 부인하지 않으며 그것을 감추려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이 장엄한 의식의 위엄과 목적을 우리가 사용 할 수 있는 가장 존귀한 용어로 묘사하며, 우리가 이 의식을 통해 얻는 유익이 말할 수 없이 큼을 분명히 합니다. 이 모든 내용 가운데 대부분 을 그대는 무시합니다. 이 의식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그 거룩한 은총 을 간과하고 너무 거대한 은총의 합당한 사용 또한 간과한 채, 그대는 사 람들이 영적인 신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어도 눈에 보이는 표식들을 멍청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 리 ( 개혁자 ) 가 그대 가톨릭교회의 조잡한 화체설을 비난하고, 이 화체설은 사람들의 마음을 빵과 포도주라는 물질들에 붙잡아 두어 그들로 하여 금 그리스도에게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여 불법적이고 불경건한 사람들 이 되게 만드는 어리석은 숭배라고 주장하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 고 대 교회의 그늘 아래에서 그대들은 그대들의 바로 그 사악한 우상숭배 를 감추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헛된 일입니다. [고해성사]

비밀 고해성사에 대해 우리 개혁자들의 입장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사돌레토에게 주는 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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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득의에 대한 지식이 제거된 곳에서는 그리스도의 영광 은 소멸되고 종교는 무너지고 교회는 파괴되며 구원의 소망은 완전히 없어지고 맙니다……먼저, 우리는 사람들에게 먼저 자 신들을 살펴보도록 권고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단지 피상적이 고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양심을 하나님의 법정 앞에 세우기 위 해 하고, 자기 자신의 불의함이 엄격하게 확신될 때는 모든 죄 인에게 선포된 심판의 엄격함을 생각하도록 가르칩니다. 그리 하여 그는 자신의 비참함에 놀라고 당황하여 하나님 앞에 부복 해 엎드려 겸손하게 되고 자신감을 모두 벗어 버리며 마지막

* * * 칼

칼뱅 총서 I. 칼뱅 기독교 강요

멸망에 던져진 자처럼 신음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 구 원의 모든 부분이 완성되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 비 가운데만 유일한 안식처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전 인류가 버려진 죄인들이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lt;기독교 강요/초판, 1536&gt;

&lt;기독교 강요/2판: 프랑스어 초판, 1541&gt;

만이 그들의 유일한 의가 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는 자

&lt;기독교 강요/최종판, 1559&gt;

신의 복종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악을 도말하셨고 자신의 희생

칼뱅 총서 II. 칼뱅 작품선

&lt;칼뱅 작품선 2. 교회 개혁서 2권&gt;

신 담당하셨으며, 자신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대속해 주셨기 때

&lt;칼뱅 작품선 3. 강연·서문·유언·고별사 등 7권&gt;

문입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바는 이와 같이 인간은 자신의 공

&lt;칼뱅 작품선 4. 로마 가톨릭 논박서 1 5권&gt;

&lt;칼뱅 작품선 5. 로마 가톨릭 논박서 2 2권&gt;

&lt;칼뱅 작품선 6. 재세례파와 심령파 논박서 4권&gt;

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화해된다는 것입니다.

&lt;칼뱅 작품선 7. 니고데모파와 세르베투스 논박서 5권&gt;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와 교제할 때,

&lt;칼뱅 작품선 8. 세네카의 &lt;관용론&gt; 주석&gt;

&lt;칼뱅 서간집&gt;(1530~1538)

작품선 33권

허물을 씻으셨으며 자신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 저주를 대

&lt;칼뱅 작품선 1. 교회 법규·신앙고백서·교리문답서 7권&gt;

작품선 33권

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혔으며, 자신의 피로써 우리

칼뱅 총서 III. 칼뱅 서간집

칼뱅 총서 II

칼뱅 작품선

Jean Calvin

칼뱅 총서 II

4

적이나 가치 있는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값없이 주시는 은혜

우리는 이것을 성경의 표현을 따라 믿음의 의[롬 4:13 참고]라 고 부릅니다.

장 칼뱅 지음

- &lt;사돌레토에게 주는 답신&gt; 중에서

박건택 옮김 칼뱅 총서 IV. 칼뱅의 제네바 당회 회의록, 목사회 회의록

&lt;칼뱅 제네바 당회 회의록 1&gt;(1542~1544)

칼뱅 총서 V. 칼뱅 설교집

&lt;칼뱅 시편·예레미야 설교집&gt;

ISBN 978-89-6092-672-1 ISBN 978-89-6092-538-0 (세트) www.rnrbook.com

값 22,000원

지은이

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 장 칼뱅은 마르틴 루터와 함께 16세기 개신교 종교개 혁을 이끈 탁월한 신학자이자 목회자다. 칼뱅은 30년 도 안 되는 목회 기간 동안 엄청난 양의 저서들을 남 겼는데, 그의 대표 작품인 『기독교 강요』를 비롯하여 성경 주석, 설교집, 신학 논문, 논쟁서, 신앙고백서, 교리교육서 등을 포함한다. 27세 때 초판을 발간한 이 래 23년 동안 5판에 걸쳐 개정 증보한 『기독교 강요』 는 교회사에서 최고의 교의학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칼뱅은 목회자로 부름을 받은 이래로 기독교 교회의 개혁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칼뱅의 사상은 전 유럽에 전파된 후 신세계로 뻗어 나갔으며, 훗날 전 세계에 알려졌다. 칼뱅의 통찰과 영향력은 현재까지

칼뱅 작품선 4

Jean Calvin 로마 가톨릭 논박서1 5권

Recueil des opuscules de Jean Calvin 장 칼뱅 지음 | 박건택 옮김

지속되어, 성경에 기초를 둔 신학 사상의 모형을 제시 해 줄 뿐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교회 안에서 성도들 의 신앙 양육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옮긴이

박건택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불어불문학을 전 공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프랑스 IPT(Institut Protestant Théologie)에서 신학 석사(M. en théologie), 파리 10대학에서 박사 과정 수료(DEA), 파리 4대학에서 역사학 박사(D. en histoire)를 취득했다. 오랫동안 총신대학교 신학대학 원 교회사 교수로 재직하고 퇴임하였다. 저서로는 『칼 뱅의 자유사상』, 『자끄 엘륄의 생애와 사상』 등이 있 고, 칼뱅 작품 선집을 비롯하여 주로 칼뱅 원전을 번 역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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