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세상 위에 계실 뿐 아니라 우리 가운데,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도 거하신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 더 듣
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성
경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해석하는 중요한 한 가지 방식은 성전에 대한
가르침과 참된 성전이신 예수님에 대한 가르침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
레고리 빌은 이 주제를 설득력 있는 학문적 저술로 발전시킨 바 있는데, 『성전으로 읽는 성경 이야기』에서는 미첼 킴과 함께 이런 아이디어를
현장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번안했다. 이 책은 목
회자들이 설교하는 일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오늘날 많은 이들을 괴롭
히는 고독감에 대한 훌륭한 해독제다.”
존 프레임
리폼드 신학교 조직신학 및 철학 분과 교수
“자기 백성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 이 경이로운 비전은 창세기에서 요한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언약적 목적들 가운데 핵심이다. 『성전
으로 읽는 성경 이야기』는 이 주제에 대한 수십 년간의 연구를 더 광범
위한 청중에게 제시한다. 게다가, 오늘날 이 세상에서 어떻게 이런 성경
의 중대한 주제가 선교의 엔진이 되는지를 보여 준다. 알기 쉽고 매력적
인 이 연구는 하나의 진수성찬이다.”
마이클 호튼
캘리포니아 주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조직신학 및
변증학 분과 그레셤 메이첸 교수
왜 우리는 이 책을 쓰게 되었을까? 우리는 이 책의 성경신학적 관
점이 교회가 세상에서 선교적 사명을 다하도록 연료를 공급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이 책을 쓰면서 에덴, 성전, 하나님의 영광
스러운 임재, 새 창조, 교회의 사명 등의 주제들이 궁극적으로 동일
한 실재의 다양한 측면이라는 점을 이전보다 더 명확히 보게 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성경신학의 세계와 교회의 필요들
사이를 잇는 다리를 놓기를 바란다. 이 책의 내용과 기본 주제는 그
『성전 신학』( The Temple and the Church’s Mission: A Biblical The
of the Dwelling Place of God )
이후에 여러 컨퍼런스에서 했던 한 세미나에 압축되었다. 글쓰기와 말하기는 매우 다른 매체다. 글쓰기에는 심도 있는 논의
를 제공하면서 논증을 뒷받침하기 위한 2차 자료들을 탐구할 수 있
는 여유가 허락된다. 설교는 레이저와 같이 하나의 요점을 전달하기
위한 초점이 요구된다. 『성전 신학』에 있는 상당한 분량의 내용을
번안하여 설교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구두로 전달할 수 있도록 철저
히 내용을 축소해야만 했다. 전해진 설교를 다시 글의 형태로 옮기
는 일은 상당한 내용을 보충하면서 설교로 전했던 자료를 심화시킬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설교의 울림과 초점을 유
지하고자 노력했다. 어떤 자료는 원래의 책에서 그대로 옮겨 왔으
며, 대부분은 간단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내용을 다시 고치고
표현도 바꾸었다. 우리의 바람은 원래의 책이 가진 성경신학적 의미
가 실천적인 통찰과 결합되어, 세상에서 이룰 하나님의 백성의 선교
를 위해 더 큰 열심과 열정을 점화하는 것이다.
원래의 책에서 이 책으로 옮기는 데에는 어느 정도 해석학적 전환
이 있었다. 원래의 책에서 G. K. 빌은 구속사적으로 뚜렷하게 구분
되는 여러 시대들, 즉 에덴, 노아, 족장, 이스라엘( 시내 산 → 광야 성막 →
예루살렘 성전 ), 시작된 종말, 완성된 종말 등과 같이 시대에 걸쳐 있는
성전 개념의 발전을 밝히며, 각 시대들이 어떻게 서로 연관되며 서
로를 세워주는지를 보기 위해 간단한 윤곽을 그려보려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압축적인 성격으로 인해 우리는 때때로 앞선 시대의 성전
의 의미와 나중 시대의 발전된 의미를 결합한다( 특히 앞장들이 그렇다 ).
뜻이 모호할 경우에는 원래의 책을 참고해야 한다. 하나님은 종종 아내들을 사용하셔서 우리의 신학이 일상적인 삶
의 실재들과 연결될 수 있도록 도우셨다. 우리는 모두 아내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도린다 빌과 김은실 사모는 우리들과 함께 성전
신학에 대해 토론했을 뿐 아니라, 또한 가정 안으로 하나님의 임재
를 가져옴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이것을 실제로 살아내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어 주었다. 아내들은 우리가 이 주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이 애써 주었다. 이 책을 쓰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부여
하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 1:28 ) 라는 부르심을 몸
소 살아내고 말았다. 하나님이 우리와 자녀들과 손주들까지 복을 허
락하셨던 것이다! 빌에게는 에덴 클램이라는 손녀가 생겼고, 킴에
게는 에덴 리버 킴이라는 딸이 생겼다. 우리 아이들의 이름에는 이
런 자녀들에 대한 우리의 기도가 반영되어 있다. 우리는 아이들이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고, 또한 그 임재를 땅
의 끝까지 확장하는 데 쓰임받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
너무나 많은 다른 사람들도 이 책에서 언급할 가치가 있다. 돈 카
슨은 원래의 책을 읽고서 자세하게 평가해 주면서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카슨은 이 책을 개정하도록 제안하면서 결정적으로 이 책이
원래의 상태보다 더 나은 책이 될 수 있게 해 주었다. IVP 출판사의
브래넌 엘리스는 이 책의 학문적인 깊이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폭
넓게 전달될 수 있도록 번역해 주었다. 이 여정 전반에 걸친 그의 상
냥하고 고무적인 도움은 매우 귀중했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책의 아이디어를 주시고 힘을 공급해 주시며
이 책을 쓰도록 훈련시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하
나님의 영광이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을 통해 더 분명히 드러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 책의 형식에 대한 몇 가지 측면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영어 번역은 ESV를 참고했고,
앞에 가장 놀랍고도 즐겁게 펼쳐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십자
가를 지고서 당신이 사랑하는 주와 구주를 따르는 것이 즐거운 일
임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십자가의 달콤함은 모든 달콤함을 능가합니다. 주님의 은혜에 매
혹된 영혼들에게”2)
병상에서조차 저드슨은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사람
도 더욱 매력적인 전망을 가지고서, 더욱 빛나는 소망이나 더욱 흥
분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3) 저드슨의 희생적이면서도
기쁨으로 충만했던 수고의 기반은 그의 깊은 확신에서 형성된 것이
었다. 오늘날 미얀마로 알려진 버마에는 그 희생의 열매로 400만 명
이상의 그리스도인이 있다.
이런 값비싼 희생이 먼 과거로 퇴보한 것일까? 오늘날 단기 선교
팀들은 비행기에 올라탈 수 있고, 한 주간 중국 시골에서 가난에 처
한 고아들을 돌볼 수도 있고, 자신들의 안락한 교회에서 선교보고를
하러 귀국하기 전에 베이징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를 수도 있다. 세
계화가 단기 선교의 필요 중 일부를 채워 주었음에도, 오늘날 선교
를 향한 도전은 계속해서 버거운 상황이다. 아직까지도 3000개 이
상의 미전도 및 미개척 종족들이 남아 있다. 그들은 세상에서 접근
하기가 가장 어려운 몇몇 지역에 있으며, 전체 수효를 따져보면 대
략 2억 5천만 명에 달한다.4) 우리는 반드시 가야만 한다. 여전히 미
약한 결실만을 보고 있다 해도 이를 견뎌내야 한다.
“기독교 미국”에서조차 오늘날
것이다. 우리는 사명이 요구하는 희생을 치를 수 있는가? 미국의 청년들
에 대한 최근 연구는 그다지 고무적이지 않다. 청년들의 신앙적인
목표는 대체로 “즐겁고 행복하고 안전하고 평온함을 느끼는 것”이
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관적인 안녕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
력, 다른 사람과 친근하게 잘 지내는 것”6) 등을 원하기 때문이다. 만
일 저드슨의 목표가 “주관적 안녕감”이었다면, 미얀마는 현재까지
도 어둠 가운데 방치되었을 것이다! 결혼과 직장이라는 희생적인
도전에만 안주하는 최근의 문제를 생각해 볼 때7), 지구상에 아직 복
음화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세계 선교의 희생을 치를 각오를 다
지는 일은 얼마나 도전적인 일이 되겠는가?
강력한 확신이야말로 우리를 이 힘겨운 희생으로 몰아간다. 이 책
의 목적은 희생적인 선교를 위한 성경적인 확신을 강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드문드문한 체험이나 서로 동떨어진 성경 구절들로 선교에
헌신할 동기를 얻는다면, 그런 동기의 원천은 힘겨운 도전 앞에서
고갈될 수 있다. 끈기 있는 선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하고
도 경건한 연구에서 나온 충만한 확신을 필요로 한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하나님의 광대한 선교에 기초할 때 우리의 확
신은 점점 부요해지고
전투계획이 쓸모없게 되어버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적군
은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편이 “각본”을 벗어날
때, 전지에 있는 병사들과 장교들은 그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을 알지
못해 마비 상태가 되고 만다. 지휘관의 의도는 전체적인 전투 계획
을 한 가지 단순한 말로 집약시켜 이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다. 즉 병
사들에게 자유와 융통성을 부여해서 전열을 벗어나지 않은 채 임기
응변으로 대처하라는 것이다. 이런 명령은 병사들이 목표에 대한 전
망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전투지에서 급변하는 상황에 유동적으
로 맞춰갈 수 있게 해 준다.8)
전장에 있는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자기 지
휘관의 의도를 알아야 한다. 우리 인생의 변화무쌍하고 도전적인 상
황 속에서 지휘관의 의도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에 대해
설득력 있는 성경적 그림을 갖는 일에 시간을 들여야 한다.
성경은 요한계시록 21, 22장에서 우리의 “완성된 선교”에 대한
그림을 그림으로써 지휘관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요한계
시록을 마무리하는 장에서 새 하늘과 새 땅( 계 21:1 ) 은 새 예루살렘에
대한 기다란 묘사( 계 21:1~22:5 ) 와 맥락을 같이 한다. 왜 요한은 새 예
루살렘을 방대하게 묘사하기 전에 “새 하늘과
관찰함으로써
서로를 해석해 줄 수 있도록 구성한 것
같다. 요한계시록에서 이렇게 나란히 배치된 이미지는 종종 서로 다
른 이미지를 해석해 준다( 예를 들어, 계 5:5~6, 7~13, 21:1~3 ). 9) 새 하늘과
새 땅은 새 창조의 광범위한 영역을
요한계시록 21~22장에 나타난 이 그림은 창세기 1~2장에서 주
어진 사명을 성취하며, 우리는 이 사명의 진전을 성경 전체에서 발
견할 수 있다. 창세기 1~2장에서 에덴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
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거주지의 경계를 확장하여 땅
에 충만하라고 사명을 위임하셨다( 창 1:28 ). 창세기 3장의 죄로 인해
하나님이 명하신 본래의 부르심이 좌절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은 성막과 성전을 설립할 시기까지 계속해서 족장들 가운데 하나님
이 임재하시는 처소를 세우셨다. 솔로몬 성전의 파괴 이후, 선지자
들은 새롭고 확장된 성전의 도래를 예견하고, 이런 예언들은 예수와
교회를 통해 성취된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인 교회는 하늘과 땅
전체를 충만하게 할, 즉 세상 전체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될
한 날이 이를 때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선교는 마태복음 28장
18~20절의 대위임령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선교는 창세기 1장에서
시작해 새 하늘과 새 땅이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
는 요한계시록 21~22장에 이르는 하나님의 심장박동이다. 온 세상
이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히 채워지는 이 궁극적인 그림은 에덴 성
소에서 가지셨던 하나님의 본래 의도를 성취한다. 따라서 우리는 에
덴에서 시작하려고 한다.
1장
에덴을 성전으로 읽기
창세기 1~2장의 문맥
갈망. 우리는 갈망하는 피조물이다. 우리가 이 갈망의 대상을 잘못
생각할 때, 우리는 실망하고 좌절한다. 우리가 관계를 추구하면 종
종 갈등으로 좌절을 맞는다. 만족을 추구하면 불평으로 인해 좌절한
다. 의미를 추구하면 우리 자신의 결점으로 인해 좌절한다. 톨킨( J. R.
R. Tolkin ) 은 우리가 가진 갈망의 뿌리를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우리
는 모두 [에덴을] 갈망하면서, 끊임없이 그것을 엿본다. 타락한 우
리의 본성 전체가 설령 최대한으로 관대하고 자비로울 때에도 여전
히 ‘포로상태’라는 느낌에 젖어 있다.”1) 우리 마음의 갈망은 이 포로
생활에서 좌절을 경험하지만, 이런 갈망은 본래 에덴에 세워진, 하
나님이 거하시는 장소 안에서 확실하게 채워진다. 하나님이 거하시
는 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는 관계, 만족, 의미를 향한 우리의 갈망을
충분히 만족시키며, 창세기를 여는
우리를 만드셨다. 하나님의 임재는 에덴에서 생명과 목적을 부여하
는데, 그래서 우리는 “우리 마음이 그분 안에서 안식을 찾을 때까지
안식할 수 없다”2)는 사실에 놀라서는 안 된다. 이번 장에서 우리는
어떻게 에덴이 삶과 목적을 향한 우리의 갈망을 만족시키는 성전과 하나님의 거주지로 제시되는지를 탐구할 것이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인 에덴
에덴은 성소와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로 제시된다. 이는 창세기 1~2장과 구약 성경의 광범위한 증거를 통해 알 수 있다.3) 에덴 동산
에서 “거니시는” 하나님에 대한, 언뜻 보기에 의외의 언급조차도( 창
3:8 ) 성전 안에서의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함축으로 가득하다.
레위기 26장에서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닐면서” ( walk, 개
역개정 “행하며” )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레
26:12 ). 신명기 23장에서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영을 거룩하
게 지키라고 명령하시는데, 이는 여호와가 그들의 진영 가운데 “거
니시기” 때문이다( 신 23:14 ). 사무엘하 7장에서 다윗이 성전을 건설하
려고 계획했을 때, 여호와는 다윗에게 “내가 거주하기 위해 장막( 성
막! ) 안에서 돌아다녔다” ( 삼하 7:6, 저자 사역 ) 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와 비
슷한 방식으로, 여호와는 에덴에서 “거니셨다”( 창 3:8 ). 왜냐하면 에
덴 자체가 성전이자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에스겔에서는 더 명시적으로 에덴을 성전이라 부르는데, 에덴은
“하나님의 동산”, 그 가운데 “성소”가
이 제사장의 죄는 성소를 더럽히고 이로 인해 자신이 내쫓긴다( 겔
28:17~18 ). 5) 따라서 에덴 동산은 에스겔 28장 18절에서 가장 분명하
게 성전이라 불리는데, 여기에는 제사장으로서 아담과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
수많은 다른 증거를 살펴보면 우리는 에덴을 첫 번째 성전으로 이
해할 수 있다. ( 지혜로 인도하는 ) 율법이 들어있는 지성소의 언약궤는 선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이것도 지혜로 인도하는 것이다 ) 를 메아리치게 한다.
언약궤에 접촉하는 것과 그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것 모두 죽음에
이르게 한다. 에덴으로 향하는 입구는 동쪽에 있는데( 창 3:24 ), 이는
성전의 입구가 동쪽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예, 겔 40:6 ). 에덴과 성
전은 모두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특징으로 한다. 에덴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는 동산 가운데 세우신 생명과 목적에
대한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다. 에덴의 이미지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서 인간의 근본적인 갈망이 충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그려 준다. 예를 들어, 생명을 위한 갈망은 생명의 강에서 나오는 물
과 생명나무의 열매를 통해 충족될 수 있다. 목표를 향한 요구는 동
산-성전( 창 2:15. 민 18:5을 보라 ) 을 경작하고 지키라는 아담의 제사장적
소명 안에서 이뤄진다. 에덴과 동산-성전의
성급한 독자가 볼 때 쉽게 지나치기 쉬운 이 묘사는 사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발견한 생명의 의미가 풍부하다. 식물로 가득한 에덴의
신록 이미지는, 그 중에서도 특히 나무와 강은 이후에 성막과 성전
을 반영한다.
생명나무.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
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 2:9)
“생명나무”는 동산 중앙에 서 있었고 이 나무의 열매는 영원한 생
명을 얻게 했을 것이다( 창 3:22 ). 왜일까? 잠언 3장은 우리에게 하나
님의 지혜를 “생명나무”에 비교하면서 하나님의 지혜가 인생의 길
에 빛을 비추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보여
준다( 잠 3:16~18 ). 마찬가지로 성막과 성전에서 이 “생명나무”는 지성
소 밖에 있는 등잔대의 모형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임재
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인생의 길에 빛을 비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등잔대는 하나의 작은 나무줄기와 일곱 개로 뻗어 나온 가지들
이 생장하고 꽃을 피우는 모양으로 생겼는데( 출 25:31~40, 37:17~24 ), 이
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생명을 주는 풍성함을 생생하게 표현
해 준다.6)
풍성한 생명은 나무 자체에서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동산의 신
록 이미지에서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셨기”( 창 2:9 ) 때문이다.
계 22:2. 아래의 논의를 보라 ). 동산에서 볼 수 있는 생명의 풍성함은 성막
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볼 수 있는 풍성함을 한 편의 그
림으로 생생하게 보여 준다. 하나님의 임재는 생명으로 넘쳐난다.
생명의 강.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
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 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
생명을 우리에
게 상기시킨다. 에덴에서 이 강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
무를 포함하여 강가에서 자라는 많은 나무에 생명을 공급한다( 창 2:9, 17, 3:24 ). 에덴에서 이 물은 지상의 나머지 지역과 온 민족이 살게 될
장소로 흘러 나가기 전에 먼저 동산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동산을
향해 흐른다( 창 2:10~14 ). 마찬가지로, 나중에 성전을 묘사하는 부분
에서도 강물이 강가의 생명나무들을 향해 흐른다. 에스겔 47장에서
는 성전 문지방 아래에 강물이 흐르는데 그 강의 좌우편에 나무들
이 무성했다. 이 강물은 바닷물을 되살아나게 하며( 겔 47:8 ), 생물들
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겔 47:9 ), 강가에 있는 나무들에서 치료하는 잎
사귀들이 자라게 한다( 겔 47:12 ). 요한계시록에서는 새 예루살렘에 강 이 흐르고, 그곳에는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
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
었다”( 계 22:1~2 ). 이 강은 하나님의 임재, 즉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와서 주변 나라들에게 생명을 공급한다.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이 생명수의 강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가장 깊은 곳에서 나와 만국을 향해 흐른다. 성전에서 하나님의 거
룩함은 지성소에서 최고로 나타나며 성소와 바깥뜰을 향해 퍼져 나
간다. 바깥뜰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일 수
있는 곳이고, 우리가 앞으로 보게 되듯이, 세상 전체를 상징한다. 종
말의 성전에서 강은 지성소에서 성전 뜰까지 흐르며 이후에는 바깥
나라들을 향해 흐른다( 겔 47:1; 계 22:1 ). 강은 에덴에 있는 하나님의 임
재에서 흘러나와 동산으로 흐르고 그 후에는 언젠가 온 민족이 거
주하게 될 지상의 나머지 지역에까지 흐른다( 창 2:10~14 ). 에덴에 거
룩의 점진적 확대가 나타나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은 에덴과
지성소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온 민족이 살게 될 바깥 세상과 육
지를 향해 확대된다.
결국 거룩의 점진적인 확대는 분명히 에덴과 성전 사이에 평행을
이룬다. 성소에 생명나무를 닮은 등잔대와 제사장에게 양식이 되는
임재의 떡이 있는 것처럼, 에덴 동산에도 생명나무가 있으며 ( 창
2:8~9 ), 아담이 먹고 살 수 있도록 음식이 제공된다( 창 2:16 ). 이스라엘
의 두 번째 성전의 바깥뜰이 온 민족이 올 수 있는 장소로 제공되었
듯이, 아담에 의해 정복될 에덴 바깥의 육지와 바다는 구스와 앗수
르의 나라들이 된다( 창 2:13~14 ). 물론 이런 땅들은 아직 사람들로 가
득 차지 않은 상태다.8) 이 유사성은 다음의 도표로 확인할 수 있다.
생명의 강이 하나님의 임재에서 나와 온 민족을 향해 흐르기 때문
에 온 민족을 향한 우리의 선교는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에서 나오
는 생명으로부터 흘러나와야 한다. 선교를 향한 우리의 헌신의 자원
이 우리가 가진 이상의 샘에서만 공급된다면, 우리는 진이 빠져서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많은 사람이 낭만적이게도 역경을
넘어서고자 하는 충동으로 가난한 자, 미전도 종족, 고통 중에 있는
자를 향해 무모하게 희생적 헌신으로 뛰어든다. 하지만 그런 이상주
의는 값비싼 순종이라는 도전에 의해 시험을 받으면서 금세 자원이
고갈되고 만다. 하지만 우리의 자원이 고갈될 때면 우리는 하나님의
실 수 있다. 우리 하나님은 견딜 만한 기쁨과 능력을 주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에서 얻는 생명은 하나님이 우리
나가야 하며, 그 필요는 우리를 이끌어 하나님의 임재에서 나오는
생명을 더욱 가득히 마실 수 있게 해야 한다.
동산 바깥에서는 생명의 강이 순금과 베델리엄과 호마노로 가득
한 땅으로 둘러싸여 있다( 창 2:12 ). 이런 것들은 각각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생명을 나타낸다. “맑은 유리 같은 정금”( 계 21:18, 21 ) 이 성
전을 뒤덮는데, 이는 성막의 신성한 기구들이 금으로 만들어진 것과
같다. 금으로 도색한 것은 빛을 반사하는데,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살면서 하나님의 빛을 반사하는 것과 같다. 베델리엄은
만나의 생김새를 가진 향기로운 물질인데( 민 11:7 ), 만나는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 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사실,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키고 우리에게 힘을 준다. 마찬가지로, 만나도 광야에
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같은 역할을 했다( 시 78:24~25; 요 6:58 ). 호마노
는 성전에서 널리 사용되었는데, 특히 대제사장의 흉패에 물린 이
보석에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이 새겨졌다( 출 25:7, 28:9 ). 이는 하
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존귀함을 반영한다. 이런 방식으
로 이 풍성한 이미지는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가 우
리에게 생명을 가져다주어 우리의 가슴이 죄로 말미암아 약해지지
않게 하고, 어떻게 우리의 삶을 활력 있게 유지하며, 어떻게 우리의
정체성이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로 바르게 확립될 수 있게 하는지
를 생각하게 한다.
시편 36편은 에덴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에서 나오는 강을 풍성한
생명이 있는 곳으로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 36:7~9)
하나님의 임재와 성전 안에서 에덴의 강물은 생명의 샘을 가져오
도록 흐른다. 하나님의 임재는 생명과 빛을 가져온다. 참된 생명과
양식이 하나님의 임재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
의 강에서 꾸준히 그 물을 마셔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권태로
움 가운데 오락거리와 공허한 친교와 끊임없는 어떤 활동에서 생명
을 구한다. 하지만 어떤 것도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하지 못한다.
“기분전환을 위한” 우리의 활동은 매일의 도전에 직면하는 우리 영
혼의 내적 자원을 새롭게 창조해 내지 못한다. 우리 앞에 놓인 이스
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의 강을 버려두고
서 물을 담아 두지 못해 우리를 해갈해 주지도 못할 헛된 웅덩이를
판다( 렘 2:13 ). 우리는 생명수의 샘에서 영혼의 만족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만족을 주지 못할 썩은 물이 담긴 웅덩이를 팔 것인가? 에덴
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강물은 우리에게 하
나님의 임재에서만 발견되는 생명력을 공급하는 물이 주는 만족과 회복의 자리로 오라며 손짓한다.
우리는 만족을 주는 대상을 얻기 위해 희생한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우리 영혼에 만족감을 주는 풍성함은 우리를 재촉해서 안전
지대에서 벗어나게 하고, 따뜻한 침상의 자리에서 뛰쳐나와 새벽기
도와 말씀묵상의 자리에 무릎을 꿇도록 우리를 불러낸다. 이런
부르심을
드러난 하나님의 임재, 즉 하나님의 부요하심 안에서 만족을 찾는
마음에서 생겨난다.
에덴과 목표를 향한 갈망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에 두어 이를 경작하고 지키게 하셨는데( 창
2:15 ) , 이는 에덴의 동산 - 성전에 있는 제사장적 사역이다. 아담의
“일”은 흙을 경작( 창 2:5 )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예, 신
4:19 ). 아담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 레 18:5 ) 과 마찬가지로 동산
을 지키고( 창 2:15 ), 동산이 타락과 부패에 이르지 않도록 지켜낸다( 민
1:53을 보라 ). ‘일하다’와 ‘지키다’라는 동사는 때때로 창세기 2장 15절
밖의 제사장적 문맥에서 함께 사용되었다.
이와같이 너희는 성소와 제단을 지키는 직무를 다하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미치지 아니하리라 보
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너희의 형제 레위인을 택하여 내게
돌리고 너희에게 선물로 주어 회막의 일(work)을 하게 하였나니9)
(민 18:5~6, ‘봉사’[service]를 ‘일’[work]로 고침)
이 단락에서 제사장은 성소를 부패와 오염으로부터 지키고 성막
에서 섬기는 일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담도 성전에서 제사장으
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동산-성전을 타락으로부터 지키는 일을 한
다. 같은 맥락에서 에스겔 28장 13절도 에덴의 아담을 “각종 보석”
으로 단장한 제사장과 같이 옷 입은 사람으로 보여 준다. 이 돌들은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의 제사장 의복에 해당하는 것이다 ( 겔 28:17 ~21 ) 10)
아담의 직무에 대한 이런 이해는 창세기 2장의 다음 구절들을 살
펴보아도 분명하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라고
명령한 이후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
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2:16~17)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산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후에, 하나님의 계
명도 지켜야 한다고 명령하신다. 제사장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함
으로 성전을 지켜야 했던 것처럼( 민 18:5 ), 아담도 한 사람의 제사장
으로서 에덴이라는 동산-성전을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함으로 지켜
낸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제사장적
목적을 성취한다.
아담은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는 첫 번째 제사장 직무에 실패하는
데, 이 직무에는 외부자였던 뱀의 침입으로부터 동산-성전을 지켜
내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11) 뱀은 속이는 말로 슬그머니 동산 안으
로 기어 들어왔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
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 3:1 ). 뱀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으로
약화시킨다. 하와가 뱀에게 대답한 말은 뱀이 자신이 세운 계략에
성공했음을 보여 준다. 창세기 2장 16~17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
씀과 3장 2~3절에 기록된 여자의 대답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주목
하라.
표 1.1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
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
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는 네가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
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
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
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첫째, “여호와 하나님”에서 “하나님”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바꼈다.
영어( 또는 한국어 옮긴이 ) 로는 이것이 충분히 감지되지 않는데,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엘로힘 ) 은 하나님의 개인적인 이름으로 친밀하고 언약
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반면에 “하나님”( 엘로힘 ) 은 만물을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을 의미한다. 창세기 2장이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특별한 백성과 언약적인 관계에서 명령을 공포하시는 것으로 제시
하는 반면, 창세기 3장에서 하와는 이런 인격적인 하나님을 멀찍이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둘째, 하나님의 허용하심이 약화된다.
하나님은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를 아낌없이 허락해 주셨음에도, 하와는 이 은혜로운 제안을 “동산 나무의 열매”라고 축소하면서 하
나님의 너그러운 제안을 약화시킨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금지명령
은 극대화한다. 하나님은 한 나무에서 나는 열매만을 먹지 말라고 명
령하셨음에도, 하와는 “만지지도 말라”라고 덧붙인다. 하와는 첫 번
째 율법주의자가 되고 하나님의 명령을 실제보다 더욱 엄격한 것처
럼 보이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죄의 결과는 최소화된다. 하나님은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말한 반면 하와는 단지 “죽을까 하
노라”라고 말할 뿐이었다.12)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동산을 지
키는 데 실패했다. 뱀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약화시켰고, 결국 하나님 자신에 대한 확신까지도 약화시켰다. 존 칼빈은 다음과
같이 올바르게 말한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모든 존경심을 떨쳐버리게 된다는 것이다……아담
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지 않았다면 감히 하나님의 권위에 반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사실 모든 고난을 다스리는 최고의 굴
레가 바로 여기 있다. 즉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함으로 의를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으며, 그래서 행복한 인생을 위한 궁극적인 목
적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아담은 마귀
의 모욕적 언동에 휩쓸렸고 하나님의 영광 전체를 잃어버리고 말 았다.13)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보호가 제거될 때, 이 세상의 유혹은 더욱
거세진다. 창세기 3장 6절에서 하와는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
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임을 느꼈
을 때 유혹에 압도되었다. 음식에 대한 욕구, 보는 것의 즐거움, 지혜
를 얻으려는 열망은 모두 강렬하며, 고유한 맥락에서 보면 합법적인
욕구다. 우리 육신의 욕구들은 합법적일 수 있지만, 하와는 불법적
인 방식으로 이를 만족시키려 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멍에는
야생마와 같은 우리의 욕망이 우리를 파멸시키지 않도록 지켜준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함으로 동산 - 성전을
얻는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처소를 지키는 자신들의 사명을 이
루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처
소를 확장하여 온 세상을 충만하게 하고, 이를 지켜내는 우리의 사
명을 성취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결론 이번 장에서 우리는 에덴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첫 번째 성전이
자 처소임을 살펴봤다. 결국 에덴은 인생이 만족을 얻는 장소다. 하
지만 죄가 에덴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로 돌아가는 길을 막아 버렸
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부정한 뱀이 성전을 더럽히도록 허용
함으로써 성전을 지키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에, 제사장적 역할을 잃
어버렸고 두 그룹이 동산- 성전을 “지키는” 책임을 넘겨받는다( 창
3:24 ). 14)
누가 하나님의 임재로 돌아가는 길을 열 것인가? 우리 인생은 에
덴 동편으로 영원히 내박쳐진 것일까?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희생
함으로 하나님의 임재로 돌아가는 길을 활짝 여셨다( 히 10:19~20 ). 그
결과, 생명을 주는 물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지금은 예수님을 믿는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 요
자들도 이 생명수를 마실 뿐 아니
라 생명수의 샘이 주변의 열방을 향해 넘쳐흐른다( 요 7:37~39 ). 이에 대해 나중에 충분히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이번 장에서 에덴이 첫 번째 예배 장소였음을 확실히 했다.
왜냐하면 에덴이 하나님의 임재가 거했던 장소였고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정적이지 않으며, 아담은 하나님의 임재로 온 세상을 채울 때까지
에덴을 확장해야 했다. 이것을 어떻게 이룬다는 말일까? 다음 장에
서 우리는 어떻게 에덴에서의 예배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이 땅의
끝을 향한 선교로 넘쳐흐르게 할 것인지를 탐구할 것이다.
2장
에덴을 확장하기
창세기 1장 26~28절의 부르심
에덴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이며,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
소는 예배의 장소다. 따라서 에덴의 확장이 곧 예배의 확장이다. 예
배는 에덴에서 받은 사명에 연료를 공급한다. 이 사명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가 예배에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고 하나님
의 영광을 드러내면서 “세상을 충만하게 하는” 사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창 1:28 ). 사실 예배는 에덴에서 주어진 사명의 목적이며, 이
사명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땅 끝까지 나타낼 성전
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들로 충만하게 함으로써 세상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 사실, 존 파이퍼도 “예배는
땅에 충만하라는 부르심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창 1:26~28 ). 창세
기 1장 26~28절은 예배자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보유하며 또 이를
나타내기 때문에 예배가 선교의 연료라는 점,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
들이 번성하여 하나님의 영광으로 세상을 가득 채우게 되듯이 예배
가 곧 선교의 목적이기도 하다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2)
예배는 선교의 공급원이다: 하나님의 형상의 의미
우리는 우리가 바라보는 것을 닮는다.3) 애완동물은 종종 주인을
닮고, 결혼한 사람들도 때때로 신기할 정도로 배우자를 닮는다. 그
러나 우리는 신체적으로 애완동물이나 배우자를 닮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
나님을 영적으로 닮아가고 드러내도록 창조되었다. 이번 단락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이 세상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는지, 그리고 어떻게 예배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더욱 분명하게 반영하고 드러내도록 도와주는지를 탐구할 것이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낼 때마다 우리의 선교는
더욱 힘을 얻어 세상에 있는 원수의 파괴적인 세력들을 압도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형상은 더 나
은 실재를 반영한다. 창세기 1장 26~27절은 하나님이 아담을 자신
의 “형상” 또는 “모양”대로 지으셨다고 말한다. 이
권위를 드러내도록 했다( 비록 이 왕들이 거짓 신들의 형상임에도 말이다 ). 4) 아담
은 하나님의 임재와 세상에 대한 통치를 나타내기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5) 하나님의 형상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속한 왕이자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하나님과 함께 다스려
야 했다.
대표자로서 통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형상”이라는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하면 ‘아이콘’이 된다. 컴퓨터 화면에서
아이콘은 작은 그림파일로 되어 있는데, 이 아이콘을 클릭하면 아이
콘이 나타내는 메가바이트급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안내한다. 은
유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창조에 나타난 테라바이트급의 하나님
의 영광으로 안내하는 작은 아이콘이다. 우리는 종종 세상에서 굉장
한 파멸에 비추어 스스로를 작게 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강력한 임재의 아이콘으로 창조하셨다. 아이콘은 자신을 가리키지
않고 훨씬 위대한 실재로 안내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을 나
타내어 결국 우리가 어딜 가든지 우리의 존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로 안내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은 세상에 죄가 들어옴으로 왜곡되었다. 그
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을 마땅히 드러내야 할 만큼 드
러내지 못한다. 이것은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이 뱀을 제압하지 못할
때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 점에 대해 아래의 추가 논의를 보라 ).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예배를 통해 회복된다. 우리는 하나님
의 완전한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골 1:15 ) 하나님을 예배하
고, “그와 같은 형상( εἰκών, 에이콘 ) 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
른다”( 고후 3:18 ).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과 아이콘으로서 하나
님의 임재를 점점 더 분명하게 반영하고 드러내도록 우리를 변화시
킨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 변화되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의 임
재를 나타낼 때, 이 예배는 우리의 선교사역에 연료를 공급하여 하
나님의 권위를 드러내고 “땅을 정복”( 창 1:27~28 ) 하게 한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고 이 형상은 온 땅을 다스리고 정
복하는 인간의 임무를 통해 표현된다( 창 1:26~27 ). 6) 마치 하나님이 혼
돈을 제압하고 창조세계를 다스림으로 세상을 각종 생물들로 채우
셨던 것처럼, 아담과 하와도 “정복하고, 온 땅을 다스려야” 하고, 이
로써 “생육하고 번성하여” 하나님의 형상들로 “땅에 충만하게” 되
어야 한다( 창 1:26, 28 ). 7)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담은 말을 하고 동
물들의 이름을 지음으로 피조물을 다스린다( 창 2:19 ).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이름을 짓는 일을 하심으로 피조물을 통치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다( 예, 창 1:5, 8, 10 ). 8)
그러나 아담은 사명에 실패했고 부정한 생물이 동산으로 들어오
도록 허용했다. 아담은 이 뱀을 “제압하지” 않았고 도리어 뱀의 속
임에 제압당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동산 성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확장하지 못하고서 동산에서 쫓겨났다.
다니엘 7장은 아담의 후손이 최초의 아담이 실패했던 그 자리에
서 성공할 한 시기를 내다본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사람[아담!]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지금까지 “성전”은 풍성한 연구와 신학적 성찰의 자료로 사용되어 왔다. 하지
만 이 성전이라는 주제는 세상 속에서 교회가 수행하는 지속적인 선교 사역을
위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성전으로 읽는 성경 이야기』에서 두 저자는 성전
신학을 책장에서 강단으로 옮겨 놓는다. 교회는 바로 이 강단에서 교회의 선교
적 사명에 대해 가르침과 권면을 받는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세상 위에 계실 뿐 아니라 우리 가운데, 우리와 함께, 우
리 안에도 계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에 대해 더욱 자세히 듣기를 바란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해석하는 중요한 한 가지 방식은 성전에 대한 가르침과 참된 성전이신 예수님
에 대한 가르침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레고리 빌은 이 주제를 설득력 있는 학문
적 저술로 발전시킨 바 있는데, 이번에는 『성전으로 읽는 성경 이야기』 에서 미
첼 킴과 함께 이 개념을 현장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번안했
다. 이 책은 목회자들이 설교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고, 오늘날 많은 이들을
괴롭히는 고독감에 대한 훌륭한 해독제다.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존 프레임, 리폼드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자기 백성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 이 경이로운 비전은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
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언약적 목적들 가운데 핵심을 차지한다. 『성전으로 읽
는 성경 이야기』 는 이 주제에 대한 수십 년간의 연구를 더 광범위한 청중에게
제시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오늘날 이 세상에서 어떻게 이런 성경의 중대한 주
제가 선교의 동력이 되는지를 보여 준다. 알기 쉽고 매력적인 이 연구는 하나의
진수성찬이다.
마이클 호튼,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ISBN 978-89-6092-423-9
ISBN 978-89-6092-247-1 (세트)
www.rnrbook.com 값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