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모세오경의 메시아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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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첸은 이 책에서 이스라엘의 약속된 메시아인 예수에 비추어 오경을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해 과감하고 새롭고 획기적인 연구를 보여 주었다. 마르키온의 망 령이 누운 관에 대못을 단단히 박았다! 진지하게 읽어 볼 가치가 있는 중요한 책 이다.” 티머시 조지 샘퍼드 대학교 비슨 신학부 연구 교수 겸 RCoS 주석 편집장

“몇 년 전부터 예수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오경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이후 오경 각 권의 주석을 여러 편 읽은 후에 학자들이 메시아 대망에 대해 귀한 언급 을 거의 하지 않는 것을 알고 실망했다. 이것은 아무래도 오경의 문법적-역사적 해석에 대한 학문적 연구 어디에도 메시아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 했다. 첸 박사의 책은 학문적으로 오경의 문자적 의미의 본질적 부분에 메시아 사 상이 들어가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변호한다. 학자만 아니라 평신도에게도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세스 포스텔 이스라엘 성경 대학 학장

“세심하게 연구한 이 책에서 케빈 첸은 존 세일해머의 방법론을 통찰력 있게 적 용하고 확장하여 오경 메시아 비전의 의미를 조명한다. 이 책은 모세오경에서 발 견되는 메시아 예언의 네트워크가 신학 메시지의 중심에 있는 메시아에 대한 일 관되고 포괄적인 비전을 투사하기 위해 설계되고 의도된 복잡한 배열 또는 상호 연관된 렌즈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널리 관심을 끌고 있다. 첸은 자신의 접근 방식과 관련된 여러 가지 복잡한 해석학 문제와 씨름하면서도 이러한 본문 상호간 관계가 저자가 오경에 의도한 통일된 메시아 신학의 존재를 가리킨다고 조심스럽게 주장한다. 예언, 모형론, 점진적 계시, 반복 문제에 대한 관점을 제시 하는 이 책은 성경 해석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일관성 있고 신실하게 읽고, 이해하고, 가르치고, 선포할 수 있기를 바라며 독자에게 많은 것을 고려할 기회를 제공한다.” 데이비드 도커리 트리니티 국제 대학교 및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 총장


“복음주의자 등 여러 기독교인은 종종 구약 성경에 대한 ‘그리스도 중심적’ 접근 법을 옹호하지만, 이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케빈 첸은 고(故) 존 세일해머의 획기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오경의 메시아 적 (그리스도 중심) 정체성을 신약 성경 저자나 후대 기독교 신학자의 (재)해석이 아 닌 모세와 모세 이후 (영감 받은) 편집자의 저작 의도에 근거하는 오경의 비전을 제 시한다. 그 결과 오경의 메시아 비전은 본문 중심적이고 영적으로 설득력 있으며, 구약 성경이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에 필요한 기여를 하게 된다. 다른 접근법을 택하는 학자도 첸이 이렇게 유용한 책에서 제기하는 방법론적 질 문에 열린 마음으로 깊이 관여함으로써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네이선 핀 노스 그린빌 대학교 학과장

“이 놀라운 책은 모세가 그리스도에 대해 썼다는 주장을 입증한다. 이 책은 창세 기 49장, 출애굽기 15장, 민수기 23-24장, 신명기 32-33장의 주요 시문 부분을 포함한 주요 구절에서 텍스트 및 텍스트 간 증거를 풍부하게 제시한다. 케빈 첸은 오경이 나머지 구약과 신약으로 메시아의 빛을 반사하고 굴절하기 위해 전략적으 로 구성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 책이 널리 그리고 주의 깊게 읽히기를 소망하고 기도한다.” 조슈아 매튜스 웨스턴 신학교 교수

“케빈 첸은 자신의 맨토인 존 세일해머의 어깨 위에 서서 오경에 나타난 메시아 의 중요성을 증명하는 것으로 자신의 진로를 잡았다. 첸이 특히 세일해머가 제시 한 오경과 시내산/신명기 율법의 구분을 보강하고 견고하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오경의 메시지는 오경이 메시아의 미래 구원을 내다보므로 복음이다. 학자들이 반드시 첸의 결론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첸의 글은 명확하고 통찰력이 있 고 자극을 주며 충분히 연구되어 있다. 적절히 예증하면 첸은 옛 본문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우리에게 도전을 주었고, 그 결과 이 본문들이 스스로 말한다.” 스티븐 뎀프스터 크랜들 대학교 종교 연구 교수


Originally published by InterVarsity Press as The Messianic Vision of the Pentateuch by Kevin S. Chen. ⓒ 2019 by Kevin S. Chen. Translated and printed by permission of InterVarsity Press, P.O. Box 1400, Downers Grove, IL 60515, USA. www.ivpress.com. License arranged through rMaeng2, Seoul, Republic of Korea. This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4 by Revival and Reformation Press, Seoul, Republic of Korea 이 한국어판의 저작권은 알맹2를 통하여 InterVarsity Press와 독점 계약한 부흥과개혁사에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하여 한국 내에서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는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추구합니다. 부흥과개혁사는 부흥과 개혁이 이 시대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조국 교회의 부흥과 개혁의 방향을 위한 이정표이자, 잠든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을 촉구하는 나팔소리요, 깨어난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의 불길을 지속시키는 장작더미이며, 부흥과 개혁을 꿈꾸며 소망하는 교회들을 하나로 모아 주기 위한 깃발이고자 기독교 출판의 바다에 출항하였습니다.


| 목차 |

| 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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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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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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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4 1장 여자의 후손 56 2장 족장 내러티브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자손 99 3장 유다의 사자 154 4장 유월절과 바다의 노래 202 5장 시내산의 그림자 234 6장 놋뱀과 발람의 예언 274 7장 모세와 같은 선지자 308 8장 유다에 대한 축복 339 9장 시내산/신명기 율법의 반복된 위반 369 결론 392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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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서문 |

모든 독자가 알아차릴 것으로 추정하고 저술한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존 세일해머의 연구를 유지하고 확대하려는 시도다. 감사하게 도 이 임무는 한 사람이나 한 책에 맡겨진 것이 아니고 세일해머에 게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 특히 가르치거나 저술하는 특권을 가진 우리 같은 사람에게 맡겨진 일이다. 과거에 세일해머에게 배운 많은 제자가 훌륭한 교사와 학자가 되었고 확실히 대부분 나보다 더 많은 업적을 쌓았다. 나는 그들 가운데 일부와 함께 공부하고 그들을 친 구와 대화 상대로 둔 것에 감사할 뿐이다. 10년 전에 세일해머의 대 작 『모세 오경 신학』( The Meaning of the Pentateuch , 2009 ) 을 출판한 IVP Academic이 이제 막 경력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이 쓴 책 을 세일해머를 잇는 후속작으로 출간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 한다( 역시 주님의 뜻이기를 바란다 ). 이 책을 저술하게 된 원동력 가운데 하 나는 오경에 대한 세일해머의 주요 작품 두 권( 또 한 권은 『내러티브로서의 모세오경』[The Pentateuch as Narrative ] ) 이 확실히 오경에서 메시아의 중심

적 위치를 강조하는 한편 특히 시내산/신명기 율법 등 다른 문제도 상세히 다룬 점에 있었다. 나는 오경의 메시아에 거의 독점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보통은 그 자체로는 이해되지 못하는 여러 본문을 포 함해서 오경의 메시아 본문만 폭넓게 다루는 작품을 저술하는 것이 유익하리라 생각했다.

저자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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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 세일해머의 작품에 익숙할 것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지만 세일해머의 작품에 익숙한 분은 이 책이 특히 방법론 과 오경의 종합적 해석과 관련해 오경의 구조와 핵심적인 시 본문에 기반을 두고 세일해머가 걸었던 일반적 경로를 따르고 있음을 빠르 게 인식할 것이다. 동시에 주의 깊게 비교하면 이 책이 주해적으로 일부 핵심 요점( 예. 창 3:15 ) 에서 세일해머의 견해와 다르고, 다른 요 점( 예. 27:27-29; 49:8-12 ) 에서는 세일해머보다 훨씬 멀리 나간다는 것도 확인할 것이다. 따라서 세일해머는 내가 내린 어떤 결론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면에서 세일해머를 따 르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 책은 불필요할 것이다. 내가 핵심 지점에 서 세일해머를 따랐다는 것은 내가 종종 세일해머의 주장을 설득력 있다고 간주했음을 뜻한다. 동시에 오경에서 메시아 사상을 그 이상 으로 훨씬 깊이 제시한다고 생각되는 다른 내용도 찾아냈다. 과거에 세일해머는 오경에는 찾아낼 것이 여전히 많다고 믿는다고 말한 적 이 있다. 나는 내가 그중 일부를 찾아냈기를 바란다. 메시아 사상이 충분히 실현되고 각 사람의 공적이 불로 시험받을( 고전 3:13 ) 그날까 지 내가 얼마나 충실하게 오경의 메시아 사상을 제시했는지 판단하 는 것은 각 독자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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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모세는 예수에 대해 글을 썼는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요 5:46 ). 예수는 몸이 마비된 자를 치료한 다음, 일 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과감하게 말했다( 5:5-8 ). 그러나 이 일을 안식일에 행했기 때문에 유대인 가운데 많은 이에게 박해받을 정도로 공격에 시달렸다( 5:9-10, 16 ). 모세 율법을 이토록 열심히 준수 하는 유대인 앞에서 예수는 모세의 글( 창세기-신명기 또는 오경 ) 을 읽으 면 오히려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로 믿게 될 것이라고 말 했다( 5:18; 20:31을 보라 ). 그럼에도 믿지 않는 유대인은 자기들이 부지런 히 연구해 온 성경( 5:39-40 ) 을 비롯해 여러 가지 믿을 만한 증언 자료 를 무시하고 예수를 거부했다( 5:32-38 ).1) 결국 예수는 믿지 않는 유대 인이 실제로 “[모세의] 글도 믿지” 못했다고 선언했다( 5:47 ). 이는 그 들이 이 기초적인 본문을 연구하고 모세에게 헌신했음에도 불구하

1) 세례 요한(요 5:32-35), 예수의 사역(요 5:36), 하나님 아버지(요 5:37-38)의 증언도 이 증

언 자료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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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5:45 ), 오경을 잘못 이해하고 위대한 선지자이자 율법 제정자인 모세와의 관계를 잘못 해석했음을 의미한다.2) 모세에 대한 그들의 헌신은 매우 열정적이었지만, 모세가 기록한 메시아에 대한 거부와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갔다. 따라서 사도행 전 15장 21절은 오경의 율법에 깊이 헌신한 유대인에게 불필요한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 유대인 회당을 전통적으로 “[모세를] 설교 하는 곳”으로 규정하고 있다.3) 당시나 지금이나 율법 중심의 오경 해석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같은 본문( 행 13:39; 26:22-2;3, 28:23 ) 과 다른 구약 성경( 17:2-3, 11 ) 에서 규칙적으로 복음을 전파한 바울과도 대조적 이다. 예수가 안식일에 행한 또 다른 치유 이적 곧 예수가 날 때부터 맹 인이었던 사람을 고친 사건이 있은 후에, 예수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아 바리새인은 예수를 하나님에게서 온 자가 아니라 2) Rudolf Schnackenburg, The Gospel According to St. John , trans. Cecily Hastings

et al. (New York: Crossroad, 1982), 2:129는 모세를 “글을 써서 예수를 증언하는 증인” 으로 부른다. 이것은 “모세 같은 선지자”(신 18:15-18) 같은 구절에만 사실인 것이 아니다. “‘그람마타’(γράμματα)가 다른 곳에서 모세의 모든 글(오경)을 가리킨다는 의미여서 이 말 이 모세의 모든 글을 가리킨다는 의미일 수 있기 때문이다……성경으로 배운 자(참고. 7:15) 는 누구보다 예수가 모세를 통해 약속된 메시아였음을 그 배움을 통해 깨달았을 것이다.” 다 음도 보라. D. A. Carso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 Pillar New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1991), 266. Andreas Köstenberger, John ,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Baker, 2004, 『BECNT 요한복음』,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7), 195도 카슨을 따랐다. 이 두 학자는 믿지 않는 유대인이 오경을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책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오경을 “자체적 인 목적”을 가진 것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오경을 오해했다고 본다. 카슨은 신 18:15를 염두 에 두고 “이 구절을 아마 모세의 책을 읽는 어떤 방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을 것 같다”라 고 생각한다. 쾨스텐베르거는 구약 성경은 “예수를 향해 나아가는 예언적 방향”과 예수의 가 르침과의 “대응 관계”를 갖고 있다고 덧붙인다. 오경의 메시아 메시지와 관련해 말하면, 이 두 학자의 입장이 모세가 예수의 증인으로서 “적극적 역할”을 맡고 있음을 강조하는 슈나켄 부르크의 입장(Schnackenburg, John , 1:277n217)까지 나아가는지는 불분명하다. 3) 다음을 보라. Darrell Bock, Acts ,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Baker, 2007, 『BECNT 사도행전』,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9), 507; John Stott, The Message of Acts , The Bible Speaks Today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4), 248; Craig S. Keener, Acts: An Exegetical Commentary (Grand Rapids: Baker, 2014), 3:2279.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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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바리새인의 판단에 문제가 있는 것은 예수가 진실로 “죄인”이었다면 이런 “표적”을 행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요 9:16 ). 특히 이런 전례 없는 치유 이적과 관련해 말하자면, 하나님은

죄인의 말은 듣지도 아니하시고 이런 이적을 죄인에게는 허락하지 도 않았을 것이다( 9:31-33; 3:2 ). 그럼에도 지금 볼 수 있게 된 사람에 대해 바리새인이 하는 말 (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요 9:28 ) 은 그들이 모세의 제자와 예수의 제자 사이를 갈라놓았음을 보

여 준다. 바리새인은 모세를 신실하게 따르면서 동시에 예수를 따르 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이에 대한 근본적 이유는 바리새인은 모세와 모세의 글에 대한 신실함을 오경 율법을 주의 깊게 낱낱이 지키는 것과 동일시했으나 예수는 오경 율법을 스스로 지켰지만 때 때로 이런 “율법 준수”를 바리새인과 전연 다르게 이해했기 때문 이다( 7:23; 마 12:3‑12; 눅 14:5를 보라 ). 바리새인의 마음속에서는 구분이 그 토록 명확해서 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한 모든 자를 회당에서 출교하겠다고 경고했다( 요 9:22 ).4) 그러나 요한복음 5장 45-46절에 나타난 예수의 말씀은 이런 구 분이 날카롭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오히려 반대 로 모세의 글을 적절히 이해할 때 예상되는 반응은 실제로 예수를 약속된 메시아로 믿는 믿음이었다(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

4) Bertold Klappert, “‘Mose hat von mir geschrieben’: Leitlinien einer Christologie

im Kontext des Judentums Joh 5,39‑47,” in Die Hebraische Bibel and ihre zweifache Nachgeschichte: Festschrift fur Rolf Rendtorff zum 65. Geburstag , ed. Erhard Blum et al.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1990), 619‑640은 안식일 논쟁을 매우 엄격한 안식일 전통과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 가운데 어느 것에 더 우선권이 있 는지와 관련된 “유대교 안의 갈등”으로 규정한다(623-624). 회당에서 퇴출된 소수파 유 대-기독교인에 대한 클라페르트의 언급은 이와 같은 갈등과 관련되어 있다(639). 클라페르 트는 이 갈등이 첫 세기 말에 일어난 것으로 보지만(추측하건대 요한복음의 공인된 기록 연 대에 기반을 두고), 성경의 역사적 정확성을 강조하는 자는 이 갈등이 예수의 지상 생활 기 간보다 훨씬 앞서 일어났다고 주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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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리니” ).

예수의 초기 제자 가운데 하나이자 믿는 유대인인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다”( 요 1:45 ) 라고 말했을 때 바로 이 진리를 인정한 것이다. 분명히 빌립은 믿지 않는 유대인이 모세와 예수를 조화시키 려고 할 때 겪는 인식적 불일치와 신학적 갈등을 거의 겪지 않 았다( 9:16을 보라 ). 더 나아가 빌립의 말은 그가 심지어 예수를 만나기 오래전에 오경과 선지서를 통해 이미 형성된 메시아 대망 사상을 가 졌음을 함축한다( 1:43 ). 빌헬름 피셔가 말한 것처럼 “구약 성경은 우 리에게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말해 주고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말해 준다.”6) 따라서 빌립과 믿지 않는 유대인들 간의 특별

한 차이는 오경에 대한 대립적 해석과 관련 있었다.7) 그러므로 사도 행전을 보면 비슷한 신학 논쟁을 거듭 목격한 이방인 국외자들은 이 런 논쟁을 유대교 율법 및 종교와 관련된 “문제”( ζητήματά, ‘제테마 5) Klappert, “Mose hat von mir geschrieben,” 634‑636은 모세와 예수 사이의 “대응”

((Entsprechung)을 강조하고, 이것은 익숙한 율법-복음 “반정립”(Antithese)과 대조 된다. 먼저 모세가 [이스라엘을] 구원으로 이끈 “표적”(twOtwOa, ‘오토트’, 70인역 σημεῖά, ‘세메이아’)을 행했다. 아울러 예수의 “표적”(σημεῖά)도 종말론적 구원을 이끌었다. 나아가 모세의 표적이 이스라엘을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도록 이끈 것처럼(출 14:31) 예수 의 표적도 “유일한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낸 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지식을 제공하려 는 의도가 있었다(요 17:3). 6) Wilhelm Vischer, The Witness of the Old Testament to Christ , trans. A. B.

Crabtree (London: Lutterworth, 1949), 1:7, 강조 표시 원문. Klappert, “Mose hat von mir geschrieben,” 628은 이 인용문을 약간 다른 형태로 인용하고, 대신 H. J. 이반트 를 출처로 언급한다. 피셔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분을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자만이 예수를 알고, 그리스도가 예수인 것을 아는 자만이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안다.” 7) 이것은 요 17:40-42에 나타난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다른 견해를 통해서도 증명되고, 둘 다

구약 성경을 언급한다. 이 때문에 예수와 관련해 무리 사이에 “분쟁”(σχίσμα, ‘스키스마’)이 일어났다(요 7:43. 그리고 9:16; 10:19를 보라). 이에 따라 바리새인은 무리가 예수를 긍정 적으로 평가하는 것(7:31)을 무시하고, 무리를 “율법을 알지 못하는” 자로 여겼다(7:49). Schnackenburg, John , 2:127은 요 5:39에서 성경이 자기에 대해 증언한다는 예수의 과 감한 주장을 주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주장은 유대교의 성경 사용과 반대되는 기 독교 공동체의 성경 이해에 대한 간명한 진술을 보여 준다. 이 주장은 복음서 저자들 당시 [복음주의자에게는, 예수 당시]와 이후 시대에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에 벌어진 논쟁을 반영 한다……이것은 초기 기독교의[복음주의자에게는, 예수 자신의] 기독론적인 성경 해석의 결 정적 요점을 표시한다.”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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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 로 언급했다( 행 18:15; 23:29; 25:19‑20; 참고. 26:3 ).

물론 모세가 시내산/신명기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주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고, 이것은 예수 자신도 인정한 사실이다( 요 7:19‑23; 1:17 ). 그러나 오경은 또 모세를 광야에서 뱀을 든 자로 묘사하고, 이것은 구원을 위한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예시했다( 3:14; 이 책 6장을 보라 ). 모 세는 또 미래에 자기 자신과 같은 선지자가 올 것도 예언했고( 신 18:15-18 ), 어떤 이는 이 선지자가 메시아와 같은 인물이라고 주장

했다( 요 6:14‑15; 이 책 7장을 보라 ). 따라서 그때와 그 이후로 오경의 해석 과 관련해 논란은 오경이 시내산/신명기 율법에 광범한 주의를 기울 이는지가 아니라 시내산/신명기 율법이 메시아에 대한 중요한 주제 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에 있다. 오경의 주요 요점은 시내산/신 명기 율법의 수여와 이 율법 준수의 중요성에 있고, 메시아 관련 본 문은 부차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그치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또는 이 두 주제는 “둘 다” 방식으로 똑같이 중요한가? 다르게 말하 면 하나의 문학적 통일체인 오경은 특히 시내산/신명기 율법 및 메 시아와 관련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할까?8) 오경 저자는 둘 중 하나 를 구원의 중심으로 제시하는가, 아니면 둘 다 똑같이 구원의 중심 으로 제시하는가? 오경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에 따라 앞서 언급한 자 곧 예수를 거부하는 유대인들은 “율법 준수”( 사람의 전통과 혼합된; 막 7:13을 보라 ) 라는 특수 개념을 강조했지만 예수는, 그리고 유대인이기

도 했던 제자들은 율법을 지지하면서도 메시아가 오경의 중심에 있다고 주장하고, 율법 준수를 하나님의 계획에서 부차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았다( 예. 마 19:8 ). 둘 중에 어느 것이 중심으로 선택되

8) 다음을 보라. John Sailhamer, The Meaning of the Pentateuch: Revelation,

Composition, and Interpretation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9); James Todd III, Sinai and the Saints: Reading Old Covenant Laws for the New Covenant Community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17), 8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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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가에 따라 다른 하나는 반드시 중심에서 제외되고, 앞에서 인용된 두 집단 사이의 대화는 이미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해결책은 없고 중도도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9) 예수를 믿는 것은 회당에서 쫓겨 나는 일이었다( 요 9:22, 35‑38 ). 여기서 성경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질문은 예수와 제자 들이 어떻게 오경을 메시아를 중심으로 둔 책으로 이해했느냐는 것 이다. 오경은 율법에 훨씬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는가? 무심한 독자 도 오경에 대해 율법의 수( 전통적 계산에 따르면 613개 ) 와 율법 준수의 중 요성에 대해 강한 인상을 갖고 오경에서 멀어진다. 얼핏 보면 오경 의 핵심 목적으로 시내산/신명기 율법을 지키는 것 말고 다른 것은 생각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 그림에는 더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애 초부터 율법을 지키라는 오경의 거듭된 주장을 확실히 알고 있는 예 수는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7:13 ) 라고 지적했고,10) 이것은 예수가 말씀을 전하는 자들뿐만 아니라 인간 전체에게도 사 실이었다( 사 24:5‑6; 롬 3:9, 19‑20; 11:32 ). 따라서 문제는 단순히 하나님의 율법의 중요성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우리의 불가피한 현 실에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것에 대해서는 저주와 사망을 포함해 심각한 결과가 따른다( 신 27:26; 겔 18:20 ). 불순 종과 하나님의 진노가 다 확실하므로 율법 준수에 대한 열심과 우리 의 최선의 노력도 그 자체로 막다른 골목이다( 롬 10:2를 보라 ). 그 이유 는 열심과 노력 다 실제적이고 완전한 율법 준수를 낳지 못하기 때 문이다. 심지어는 희생제사 자체도 분명히 어떤 상황에서는 하나님 의 진노를 제거할 수 없었다( 출 32:10‑14; 민 14:12, 29; 15:30; 25:11; 삼상 3:14;

9) 갈라디아서도 시내산/신명기 율법과 그리스도에 대해 “모두에게 이익”을 주장하는 견해를

강력히 반대한다. 10) 이것은 이 책 9장에서 더 상세히 전개될 것이다. 믿지 않는 유대인들의 죄악성에 대한 예수

의 지식은 모세가 그들을 아버지께 고발할 것이라는 그분의 앞선 주장과 일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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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51:16‑17[18‑19] ). 이 신학 논쟁에 대해 다른 각도를 취한 예수는 자기

를 믿지 않는 자의 반대를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더 큰 영광 을 취하려는 욕심에서 나온 것으로 통렬하게 비판했다( 요 5:41‑44; 11:47‑48; 12:42‑43. 롬 2:23; 3:27을 보라 ).

프리즘을 통과하는 빛으로서의 오경의 메시아 예언 이 신학 논쟁을 더 철저히 다루려면 오경에 나타난 메시아의 역할 을 직접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맥락에 따라 이 책의 목적은 오경 자체가 메시아를 오경의 신학적 메시지의 중심으로, 메시아에 대해 “저자가 의도한” 일관된 묘사를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가 의도한”이라는 말은 인간 저자의 의도와 신적 저자 의 의도를 다 가리키고, 이 두 의도는 똑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선 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견해는 오경에 나타난 몇 가지 메시 아 예언을 간혹 인정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오경 중심 메시지의 한 부분으로는 보지 않는 현대의 성경 독자 중에는 흔하지 않고, 때로 는 들어 보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 대신 오경은 주로 산재된 메시아 예언을 포함할 뿐인 시내산/신명기 율법을 선전하는 책으로 간주 된다. 다시 말하면 메시아는 오경 속에 있으나 중심에는 없고 기껏 해야 주변을 차지하는 것으로 그친다. 이에 대응하여 이 현상을 예증하고 설명하기 위해 프리즘을 통과 하는 빛 은유를 사용할 수 있다. 확실히 오경에 나오는 메시아 예언 은 마치 프리즘 속에 들어가는 “백색광”( 그림 1의 왼쪽에서 나오는 빛 ) 을 직접 보는 것처럼, 독자에게 한꺼번에 즉각 나타나지 않는다.11) 그

11) “백색광”이 전체 스펙트럼에서 나오는 빛을 구성한다. 프리즘을 통과한 백색광이 가시적

빛(즉 색상들)뿐만 아니라 불가시적인 빛(적외선과 자외선과 같은 것)으로도 흩어진다는 사실은 오경이 메시아의 충분한 영광을 포착하지 못하고, 그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사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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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오경의 메시아 비전


대신 이 예언들은 흩어져 있거나 “분산되어 있다.” 이것은 프리즘이 빛을 가시적인 스펙트럼의 무지개 색깔을 포함해 그 구성 요소인 파 장들로 분산시키는 것과 같다. 그림 1. 프리즘을 통과하는 빛인 메시아 예언

분산된 빛 오경 속에 흩어진 예언의 “무지개”

백색 빛 오경의 메시아 신학

동시에 오경 어디서 발견되든 각 예언은 또 다른 예언과 그리고 오경 전체와 적절히 관련될 때 드러나는 더 충분한 메시아 사상을 갖도록 기여한다. 이것은 마치 독자에게 간혹 한 색상 다음에 다른 색상이 보이는 것처럼, 그들의 마음의 눈에 이 색상이 큰 그림으로 재결합해야 하는 본문 속 단서를 수반한다. 이 단서는 주로 반복된 단어와 주제로 구성되지만 언어유희,12) 비슷한 구문 또는 같은 문학

일치한다(출 34장). 인간이 이것을 직접 그리고 충분히 보는 것은 과학자들이 강렬한 백색 광을 분출한다고 말하는 태양 속을 우리가 육안으로 직접 들여다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 12) 최근에 이 주제를 다룬 것으로 다음을 보라. Isaac Kalimi, Metathesis in the Hebrew

Bible: Wordplay as a Literary and Exegetical Device (Peabody, MA: Hendrickson, 2018); Gary Rendsburg, How the Bible Is Written (Peabody, MA: Hendrickson, 2019), 358‑410. 저자가 여러 본문을 비슷한 단어로 연결하기 위해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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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의 사용도 포함할 수 있다. 이 반복이 두 본문( 또는 그 이상 ) 에 집 중될수록 저자는 그만큼 독자가 두 본문을 관련시켜 “텍스트 상호 간에” 해석하기를 바란다.13) 다양한 학자들이 다르게 사용하지만, 본 연구에서 상호 텍스트성( 및 그 유사 개념 ) 이라는 용어는 드보그랑드 와 드레슬러의 말을 빌리자면 “주어진 텍스트의 생성 및 수용이 다 른 텍스트 참여자의 지식에 따라 달라지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다.14) 광학 분야의 은유를 더 깊이 전개하면, 각 메시아 예언은 메시아 “파장”이나 “색상”( 즉 주제 ) 을 결합하고 집중하는 “렌즈”로 간주할 수 있다. 렌즈 비유는 여기서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에 대해 사용되지 않고 입사 광선을 집중시키는 것에 대해 사용된다( 그림 2를 보라 ). 특정

유희를 사용할 수 있다. 13) 복수의 본문 사이에 의도적 관계가 가능한지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설명은 다음을 보라.

Richard Hays, Echoes of Scripture in the Letters of Paul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1989), 29‑33; Benjamin Sommer, “Exegesis, Allusion, and Intertextuality in the Hebrew Bible: A Response to Lyle Eslinger,” VT 46 (1996): 483‑487; Jeffery M. Leonard, “Identifying Inner-Biblical Allusions: Psalm 78 as a Test Case,” JBL 127 (2008): 241‑265. 14) Robert de Beaugrande and Wolfgang Dressler, Introduction to Text Linguistics

(New York: Longman, 1981), 182. 드보그랑드와 드레슬러는 상호 텍스트성은 “한 본 문의 활용을 이전에 접한 하나나 그 이상의 본문에 대한 지식에 의존하게 만드는 요소에 관 심을 둔다”라고 설명한다(10). 상호 텍스트성이라는 말의 사용에 대해서는 확실히 논란이 많다. 어떤 이는 다양한 사람들이 이 말을 각기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때문에 성경학자는 이 말을 저자의 의도와 결합해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다음을 보라. Russell Meeks, “Intertextuality, Inner-Biblical Exegesis, and Inner-Biblical Allusion: The Ethics of a Methodology,” Biblica 95 (2014): 280‑291. 그럼에도 이 말이 명확 히 정의되고 그 정의에 따라 사용되는 한, 이 말의 사용을 포기할 충분한 이유는 찾기 어 렵다. 유물이나 잔해 같은 비텍스트 사물을 포함하는 것으로 상호 텍스트성을 지나치게 넓 게 정의하지만, Peter Leithart, Deep Exegesis: The Mystery of Reading Scripture (Waco, TX: Baylor University Press, 2009), 117‑118은 유능한 해석자는 “그가 해석 하는 본문의 앞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다른 본문에 대한 지식도 활용하고, 이 지식은 또 그가 연구하는 특정 본문에 빛을 던져 준다”라고 바르게 지적한다. “모든 위대한 작가와 많 은 무명의 작가가 그 전통에 속한 다른 작품에 대해 알고 있는 가운데, 그 전통의 배경에 비 추어 작품을 썼다”라는 레이하르트의 말이 옳다면, 구약 성경 안에도 의도적인 상호 텍스트 성이 있음을 예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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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오경의 메시아 비전


메시아 예언에 나타난 주제는 결코 전체 “스펙트럼”이 아니고, 항상 전체의 부분집합이며, 종종 특정 본문의 이전 내러티브 맥락에 맞추 어 선별된다. 각 메시아 예언, 곧 “렌즈”는 이렇게 유일하게 설계된 고유의 “출사 광선”을 가졌다. 특정 메시아 예언에 나타난 주제의 수 는 예언마다 다르다. 당연히 긴 예언이 짧은 예언보다 더 많은 “색 상”을 결합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그림 2. 메시아 렌즈와 초점

출사 광선 선별되고 집중된 메시아 “색상” 또는 주제

초점

입사 광선

렌즈

메시아 “색상” 또는 주제

나아가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 예언 ) 과 같이 하나의 렌즈를 통과하는 이런 빛은 종종 창세기 12장 3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 아 복을 얻을 것이라”; 7절의 “자손”을 주목하라 ) 같이 이후에 오경에서 나타나

는 다른 렌즈에게 취해지기도 한다. 특히 이 경우에 뒤의 본문( 창 12:3 ) 은 앞의 본문( 3:15 ) 의 모든 주제를 포함하지 않고 선별된 주제만

포함한다. 그림 3에서 첫째 렌즈에서 나오는 모든 빛이 둘째 렌즈를 통과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하라. 이것은 이후에 메시아 예언 이 종종 이전 예언의 선별된 부분만 취하는 일반적 현상을 예증하는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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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도움을 준다. 그림 3. 복수의 예언을 통과하는 메시아 “빛”의 부분

예. 창 3:15

예. 창 12:3 렌즈 1

렌즈 2

방금 살펴본 사례는 단지 초기의 한 본문만 참고했지만 일부 메시 아 예언은 복수의 초기 본문을 참고한다. 아마 오경에서 나중에 나 오는 예언은 이런 참고 본문이 더 늘어날 것이다. 그 이유는 갈수록 끌어들여 사용할 수 있는 초기 예언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민수기 24장 9절은 창세기 27장 29절과 창세기 49장 9절을 함께 인용한다( 이 책 6장을 보라 ). 창세기 27장 29절과 창세기 49장 9절이 서로 관련되고, 또 이 두 본문이 창세기 3장 15절 및 창 세기 12장 3절과도 관련되면 더 복잡해진다( 그림 4를 보라. 또 이 책 1-3장 도 보라 ). 따라서 오경에 나오는 메시아 예언은 확실히 여기저기 “산

재되어” 있지만 복잡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서로 연계된다. 이 본 문들은 각각 개별적으로 살펴보면 이미 독자적으로 아름다운 빛을 발산하지만, 함께 묶이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단편적으로 모아 놓 은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담는 파노라마 그림을 보여 준다. 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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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오경의 메시아 비전


에서 나오는 독자적인 빛은 이 광각 그림에 직접 비취고, 다른 본문 에 전달되며, 이런 적극적 피드백 순환이 반복된다. 메시아 예언의 이런 네트워크는 오경 저자가 독자에게 일관되고 포괄적인 메시아 사상을 투사하기 위해 주의 깊게 마련한 상관 렌즈를 복합적으로 배 치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복합적인 상호 텍스트 관 계는 오경에 저자가 의도한, 통일된 메시아 신학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중요한 증거를 제공한다.15) 그림 4. 메시아 예언의 네트워크

창 12:3

창 27:29

창 49:9

창 3:15 민 24:9

15) Franz Delitzsch, Messianic Prophecies in Historical Succession , trans. Samuel I.

Curtiss (Edinburgh: T&T Clark, 1891), 21도 똑같이 “신인(神人) 관념이 처음에는 한 줄기 광선으로 나타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델리치는 또 메시아가 “아직은 구약 신앙 의 중심에 서 있지는 못한다”라고 믿었다. 이것은 델리치가 메시아 본문은 “연결선 없는 고 립된 점과 같다”라고 보았기 때문이다(10). 확실히 “구약 성경에서 전개되는 기독론은 한 줄기 빛과 같고, 이것은 [모세, 다윗, 이사야 같은] 단일한 빛의 점에서 나온 광선으로 구성 된 빛의 길과 같다”(11). 델리치는 자신의 역사적 모형을 견지하면서 이런 기독론의 전개 를 “빛의 점진적 상승”으로 지칭했다. 메시아 본문이 확실히 여기저기 산재되어 있음을 인 정하지만, 이 책의 신념은 상호 텍스트성이 델리치가 없다고 생각한 “연결선”을 제공한다 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본문의 네트워크는 오경의 종합적인 구성 전략과 연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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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체”로서의 의도적 예시 오경은 직접 예언 외에도 메시아에 대해 저자가 의도한 예시( 또는 전조 ) 도 포함한다. 창세기 28장 10-22절에 나오는 야곱의 “사닥다

리” 관련 본문( 이 책 2장을 보라 ) 을 포함해 이런 본문은 그 자체로는 예 언이 아니고 메시아에 대한 의도적인 “반사체”를 보여 준다. 광학 유 비를 계속하면, 이런 본문은 “거울”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집과 차 안에서 흔하게 보는 현대의 “평면”( 즉 이차원 ) 거울이 아니다. 이런 평면거울은 사실상 거울에 비치는 모든 가시적인 빛을 그대로 반사 한다. 우리가 이런 종류의 거울에서 보는 이미지는 사진과 비교할 수 있다. 성경에서 메시아의 사진에 가장 가까운 것은 예수의 생애 를 직접 내러티브 기사로 담은 네 복음서다. 그러나 오경에서 의도 적으로 예시하는 메시아는 사진과 다르고 일종의 자연 거울인 연못 의 물에 비친 반사체와 같다. 어떤 상황에서는 물이 쓸모 있는 거울이 될 수 있기는 해도( 참고. 약 1:23 ), 맑은 호수에 반사된 자연 경관의 사진처럼 물이 반사하는 이미

지는 수면의 잔잔함 정도, 바라보는 각도, 조명, 심지어는 이미지의 메이크업에 의존한다.16)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 를 “탁월한 물의 화가”로 평가하는 것이 유용한 유비다. 그 이

유는 모네의 그림에서 물이 “대기 상태, 물이 흐르는 바닥의 형태, 물이 운반하는 침니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습을 취하기 때문이다. 물은 화가가 본 일시적 조건에 따라 맑거나 흐리거나 잔잔하거나 요 동하거나 빠르게 흐르거나 조용히 흐를 수 있다.”17) 이에 따라 물에

16) 예컨대 맑은 물은 바닷물과 다르게 반사한다. 반사율을 표시하기 위해 사용된 말은 ‘알베

도’다. 17) Charles Stuckey, ed., Monet: A Retrospective (New York: Hugh Lauter Levin

Associates, 1985), 67, 강조 표시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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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오경의 메시아 비전


비친 반사체는 대체로 현대의 평면거울에 비친 것만큼 선명하지는 않다. 선명함은 특히 수면을 교란하는 것( 예. 잔물결 ) 의 특성과 크기에 의존한다. 나아가 반사체의 명암도도 물이 입사광을 덜 반사하기 때 문에 현대의 평면거울만큼 강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물은 단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게”( 고전 13:12 ) 반사한 고대 거울과 비슷하다. 따라서 물에서 반사된 이미지는 희미하고 그 “테두리”도 흐릿하다. 유추해 보면 의도적 예시는 메시아 예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접 적이다. 일반적으로 말해 메시아 예언의 모든 사실은 메시아와 직접 관련되어 있으나 의도적 예시를 다룬 본문은 메시아와 관련되지 않 은 요소도 있다. 이것이 예상되는 것은 의도적 예시가 종종 진행 중 인 내러티브 줄거리를 전개하는 목적으로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메 시아 예언이 이 줄거리에 속하기는 하지만, 시 형태로 자주 표현되 는 것은 내러티브의 진행을 중단시키는 역할을 한다. 창세기 28장 10-22절과 야곱의 “사닥다리” 사례로 돌아가면, 이 본문은 야곱이 에서를 피해 도망하는 내러티브를 전개하면서 동시에 메시아에 대 한 의도적 예시 요소도 담고 있다. 성경 독자는 이 본문에 나오는 모 든 사실이 메시아를 의도적으로 예시한다고 추정해서는 안 된다. 그 보다는 주해적 기초에 따라 저자가 메시아와 관련된 것으로 설명하 는 것처럼 보이는 요소가 어떤 것인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이 런 의도적 예시를 지닌 각 본문은 마치 반사하는 각 연못의 표면이 자체의 빛과 각도에 따라 자체의 독자적인 교란 배경을 가진 것처 럼, 그 자체로 분석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메시아에 대한 의도적 예 시를 지닌 본문은 강조점과 강도와 관점이 다양하다. 어떤 경우에는 메시아 예언이 의도적 예시를 동시에 사용할 수도 있다( 이 책 1, 3, 7장 을 보라 ).

이론적으로 이런 다양한 수면( 水面 ) 을 모방한 거울을 만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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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이때 이런 거울은 잔물결의 특수한 양식과 일치하도록 구부릴 수 있고, 거울의 반사율을 수면의 반사율과 일치시킬 수도 있다. 위 에서 설명한 메시아 예언의 “렌즈”같이 메시아에 대해 저자가 의도 한 예시를 포함하는 본문도 단지 선별한 메시아 주제, 다시 말해 보 통 문학적 맥락과 관련된 주제를 포함한다. 다르게 말하면 각 “거울” 은 장차 오실 왕이 어떤 왕일지에 대해 불완전하지만 중요한 각도를 보여 준다. 오경 자체에서 끌어낸 상호 텍스트성의 증거는 이 거울 들이 직접적인 예언 렌즈로 서로 관련되어 있고, 저자가 오경 전체 를 통해 투사한 메시아의 종합적 초상을 그리는 데 이바지하도록 의 도했다는 점을 알려 준다.

인간 저자의 의도를 굳게 붙잡기 앞에서 저자가 의도한 직접적 메시아 예언과 저자가 의도한 예시 의 상관된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오경에 저자가 의도한 메시아 사상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다른 곳처럼 여기서도 저자의 의도는 인간 저자의 의도를 가리키고, 이때 인간 저자의 의도는 성경의 하나님의 의도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된다( 벧후 1:20-21 ). 뒤에서 상세히 옹호할 이 입장은 이 책의 접근법을 구약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찾아내는 인 기 있는 모형론 접근법과 구별한다.18) 방법과 결과에 약간의 중복이

18) 이 방법을 간략히 역사적으로 개관하는 것은 다음을 보라. Stanley Gundry, “Typology

as a Means of Interpretation: Past and Present,” JETS 12 (1969): 233‑240. 이 방 법을 충분히 다루는 고전 작품은 다음을 보라. Patrick Fairbairn, The Typology of Scripture (Philadelphia: Daniels and Smith, 1852); Leonhard Goppelt, Typos: The Typological Interpretation of the Old Testament in the New , trans. Donald Madvig (Grand Rapids: Eerdmans, 1982). 다음도 보라. R. M. Davidson, “Typological Structures in the Old and New Testaments” (ThD diss., Andrews University, 1981). 최근의 견해를 요약하고 추가 참고문헌을 제시하는 것은 다음을 보라. W. Edward Glenny, “Typology: A Summary of the Present Evangelical Discussion,” JETS 40 (1997): 627‑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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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오경의 메시아 비전


있지만 모형론은 이 책의 접근법과 달리 성경에 기록된 구원 역사의 인물, 사건, 제도( 예. 희생 제사 요소 ) 사이 특히 구약 성경의 이런 “일들” 과 그리스도 사이의 양식과 대응 관계를 강조한다. 데이비드 베이커 는 “모형”을 “다른 사건이나 인물이나 제도에 대해 본보기나 모범으 로 작용하는 성경의 사건이나 사람이나 제도”로 정의한다.19) 예를 들어 보자. 모형론 전문가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 는 명령을 받은 사건( 창 22:1-18 ) 과 예수가 실제로 십자가에서 희생 제 물로 죽은 사건 사이의 평행 관계를 주목하고, 이삭은 그리스도의 “모형”( τύπος, ‘튀포스’; “모범” 또는 “본보기” ) 이라고 결론지을 것이다. 이런 말은 로마서 5장 14절에서 아담을 그리스도의 “모형”( τύπος) 으로 말 할 때 확실히 사용된다. 또 고린도전서 10장 1-6절에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실패한 것을 신자, 특히 고린도 지역의 신자에게 “본보 기”( τύποι, ‘튀포이’ ) 로 말할 때에도 사용된다.

‘튀포스’라는 말이 이런 본문에서 전문적 의미로 사용되든 아니

든,20)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모형론은 “주로 하나님의 언약 역사 전 체에 걸친 하나님의 지속적 목적에 기반을 둔 역사적 해석 방법이라 는 것이다. 모형론은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다양한 단계들 사 이의 대응 관계를 증명하는 데 힘쓴다.”21) 모형론은 ( 역사적 ) 사건에 대한 해석으로서 성경 본문의 지시 대상 ( 예. 사건, 인물, 제도 ) 속에서 역 사적 유비를 찾아낸다. 이에 따라 베이커는 모형론을 ( 역사적이고 회고적 이 아니라 언어적이고 전망적인 ) 예언, 아니 사실 더 중요하게는 문법적-역

사적 분석을 통해 본문의 객관적 ( 그리고 종종 풍성한 ) 의미를 찾아내고

19) David L. Baker, Two Testaments, One Bible: The Theological Relationship

Between the Old and New Testaments , 3rd ed.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10, 『구약과 신약의 관계』,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6), 180. 20) Baker, Two Testaments , 175n9는 이것을 반대한다. 21) G. W. H. Lampe, “Typological Exegesis,” Theology 56 (1953): 202, 강조 표시 원문.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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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가 아니라 ) 본문의 유비를 확인하는 데 이상을 두는 성경 본문의

주석과 구별한다.22) 따라서 레온하르트 고펠트는 다음과 같이 언급 한다. “오직 역사적 사실( 인물, 행동, 사건, 제도 ) 만이 모형론 해석의 재 료다. 단어와 내러티브는 이런 문제를 다룰 경우에만 활용될 수 있다.”23) 모형론 양식은 시사적이고 주목할 만하지만, 이 책은 모형론 양식 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이 중요한 차이다. 이 책의 목적은 역사적 유비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구성 전략의 일부임을 증명할 수 있는 본문의 유비를 찾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오 경 저자가 사실 자체에 대해 의도한 것과 관계없이 오경에 나타난 사실과 그리스도 사이의 비교를 이끌어 내지 않고 저자의 의도를 본 질적인 필수 조건으로 간주한다. 저자의 의도가 없으면 오경 자체의 메시아 사상을 말할 수 없다.24) 여기서 핵심 문제는 단순히 오경에 나타난 특수한 사실과 그리스도 사이의 유사점이 아니라 저자가 오 경의 특정 본문을 최초 독자가 어떻게 이해하기를 원했느냐는 것 이다.25) 이것은 그리스도의 “모형”이 아무리 많이 확인되더라도 이

22) Baker, Two Testaments , 181. 23) Goppelt, Typos , 17‑18. Davidson, “Typological Structures,” 407은 두 가지 방식

을 모두 시도한다. “이런 해석학적 구절에서 모형론은 역사신학일 뿐만 아니라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석이다. 인물, 사건, 제도 자체를 해석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 실재들을 성경에 기록 된 대로 해석하는 것이다”(강조 표시 원문). 그럼에도 고펠트가 모형론이 “역사신학”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은 모형론을 단순히 주해와 동일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24) 일부 구약 선지자들은 종말론적 구원을 조금 이해했다고 인정하더라도 똑같은 기본 문제점

은 그대로 남아 있다. 예컨대 Lampe, “Typological Exegesis,” 202는 이렇게 말한다. “확실히 구약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성경 기록의] 양식 형태를 비록 그들이 전 체 가운데 극히 일부만 볼 수 있었다고 해도, 어느 정도 이미 인식할 수 있었다.” 25) Fairbairn, Typology of Scripture , 40은 모형을 하나님이 복음과 일치하도록 “설계하

고” “미리 정한” 것으로 설명하지만, 하나님이 무한한 지혜로 이를테면 유월절 어린양이 메 시아의 죽음을 예시하도록 의도했다고 말하는 것이 오경의 인간 저자도 오경의 구성 전략 을 통해 의식적으로 같은 사실을 의도했다는 것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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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오경의 메시아 비전


런 모형이 반드시 오경 저자의 의도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26) 더 욱이 저자가 독자에게 제시하는 웅대한 메시아 사상에서는 서로 관 련된 것이 훨씬 적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모형이 있다고 해서 저자가 의도한 이런 예시가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아니다. 우 리가 저자의 의도를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주해가 이 의도를 찾아내 려고 가지는 높은 가치와 맞닿아 있다.27) 예를 들어 보자. 모형론 접근법은 “여자의 후손”을 그리스도의 모 형으로 보는 것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창세기 3장 15절이 실제로 직 접적 메시아 예언이고, 따라서 저자가 그렇게 이해되기를 의도했 는가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언질도 주지 못한다.28) 또 다른 대표 사

26) E. Earle Ellis, foreword to Goppelt, Typos , xv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약 성경 저

자들 자신은 자기들이 언급하는 일들의 미래의 의미를 염두에 두었다고 그럴듯하게 주장할 수 있지만, 이것이 반드시 하나님이 신약 성경이 주장하는 것만큼 이 의미를 구약 성경 저 자들에게 알려 주었다는 주장은 아니다.” 27) 우리는 여기서 Johann August Ernesti, Institutio interpretis Novi Testamenti , 5th

ed. (Leipzig: Libraria Weidmannia, 1809), 32에 나온 구분을 염두에 두고 있다. 에르 네스티는 어떤 해석은 “교리적으로는 참일 수 있으나 문법적으로나 주해적으로는 참일 수 없다”(verae dogmatice, sed non grammatice et ἐξηγητικῶς, ‘베라이 도그마티케, 세 드 논 그람마티케 에트 엑세게티코스’)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엑세게시스’(“주해”)라는 용 어가 때때로 저자의 의도를 찾아낼 때 발휘하는 효력과 상관없이 특정 해석법(예. 신학적 주해, 교부 주해, 중세 주해, 유대교 주해)을 가리키기 위해 다르게 사용된다는 것을 인정 한다. 신약의 구약 사용과 관련해 저자의 의도를 옹호하는 최근의 견해는 다음을 보라. Abner Chou, The Hermeneutics of the Biblical Writers: Learning to Interpret Scripture from the Prophets and Apostles (Grand Rapids: Kregel, 2018), 26‑30. 28) 예컨대 Graeme Goldsworthy, According to Plan: The Unfolding Revelation of

God in the Bible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2), 106에서 창 3:15에 대한 신중한 설명을 주목하라.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간의 증오는 그리스도와 사탄 간의 싸움을 예시한다. 신약 성경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의 발아래 사탄을 상하게 할 것이라고 언급함으로써(롬 16:20) 아주 간명하게 이것을 지지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여자 에게서 태어나는 것도 이 예언을 환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갈 4:4).” 골즈워디는 창 3:15가 그리스도와 사탄을 예시하지만 그것을 반드시 오경 저자가 의도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골즈워디는 여기서 후손이라는 말과 관련된 문법 문제와 이 본문의 의미를 오경 자 체에서 저자가 어떻게 더 깊이 전개하는지 고려하지 못한다. 이런 고찰(이 책 1-3장을 보 라)에 비추어 보면, 창 3:15에서 저자가 직접 메시아 예언을 의도한 것으로 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긴장감을 사용해 독자의 관심을 자극하고, 이때 독자는 계속 읽어 가면서 이 “후손”에 대해 더 깊이 확인할 것이다.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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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여자의 후손

창세기 3장 15절에 나오는 “여자의 후손”에 대한 예언은 오경, 그 러니까 성경에서 처음 접하는 메시아 예언이다. 이 예언은 간단하지 만 오경의 전체 메시아 사상에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이 예언은 창세기 1-2장의 이전 내러티브에 의존하므로 창세기 1-2장의 문맥 과 관련해서 보아야 가장 이해하기 좋다. 이 점에서 창세기 3장 15절은 메시아에 대한 직접 예언일 뿐만 아니라 특별히 아담을 장 차 임할 왕과 제사장을 의도적으로 예시하는 인물로 언급하는 예언 으로도 간주될 것이다. 곧 이 예언은 “렌즈”이자 “거울”이다.

왕과 제사장인 아담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천지 창조( 창 1:1 ) 와 6일에 걸친 하나님의 창조 활동( 1:3-31 ) 에 대해 상술한다.1) 이때 창조 활동의 절정은 여섯

1) 지구의 나이와 이 본문이 생명과 우주의 기원에 대한 현대 과학의 견해와 어떻게 조화를 이

룰 수 있는지에 대한 복잡한 논쟁에 들어가는 것은 이 책의 연구 범주를 벗어난다. 여기서 우 리는 그것이 특히 창 3:15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 창조에 초점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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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 날이었고( 1:24-31 ), 이것은 여섯째 날에 더 큰 관심이 주어지고 여 섯째 날이 유일하게 “심히 좋았더라”( 1:31 ) 라는 하나님의 평가를 받 은 것으로 암시된다. 여섯째 날의 중요성은 또 사람( ~d"a', ‘아담’ ) 창조 와도 관련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고 남자와 여자로 창조 된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바다와 하늘과 땅의 모든 짐승을 다스리라 는 명령을 받았다( 1:26-28 ). 사람은 또 번성해서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라는 명령도 받았다( 1:28 ). 하나님은 사람에게 씨 맺는 채소 와 열매 맺는 나무를 음식으로 주었다( 1:29 ). 그러므로 여섯째 날 이전에 식물과 동물을 창조한 것( 1:11‑12, 20‑22, 24‑25 ) 은 인간의 통치 및 생존과 관련되어 있다. 이들 다른 피조물의

목적이 완전하지 않아도 창세기 1장은 이 피조물이 인간을 위해 창 조되었음을 이렇게 암시한다. 나아가 궁창( 1:6-8 ), 바다, 땅( 1:9-10 ) 이 이 다양한 생물의 서식처로 주어진 것은 필수적이었다. 해와 달을 정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한 것 도 오직 이런 일을 판단할 능력이 있는 인간의 유익을 위해서였다. 암시적으로 보면 두 큰 광명체의 “주관”( 1:16, 18 ) 은 창세기 1장 2628절에 나타난 인간의 통치와 대체로 비슷하다. 이것은 이번 장 끝 에서 상세히 다룰 것이다. 어쨌든 창세기 1장에 나타나는 것은 하나 님이 특별히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는 장면과 사람이 땅에 충만하여 땅을 다스리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다. 창세기 1장 26-27절에서 인간 창조를 형식적으로 언급한 다음 창세기 2장 7절은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 람[~d"a'h', ‘하아담’]을 지으셨는지”를 상세히 관찰해서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이 첫 사람의 이름은 “아담”이다( 2:20 ). 따라서 창세기 첫 부분에서 ‘아담’이라는 히브리어 단어에 대해 복합적인 언어유 희가 있다. 이 단어는 집단적 인류( 1:26; 5:1-2 ), 개별적 인간( 2:7, 8, 15 ) 그리고 이 첫 사람의 개인 이름으로( 5:3-5 ) 사용된다. 이 언어유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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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효과는 아담을 역사적 인물이자 특별히 일종의 왕으로서 다 스리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루는 일에 책임이 있는 인류 의 대표로 제시하는 것이다( 1:26-28 ). 아담은 후에 에덴동산에 배치된다( 2:15 ).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선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고( 2:16-17 ), 짐승의 이름을 지어 주었으며, 돕는 배필로 아내를 얻었다( 2:18-25 ). 데스몬드 알렉산더와 고든 웬함 같은 학자는 에덴동산과 성막 사이 에 유사성이 많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포함된다. 여호와가 그들 가운데 “거니심”( 3:8; 레 26:12 ), 아담과 하와가 동쪽으 로 가고 그룹들이 동산을 지킴( 창 3:24; 출 25:18‑22; 26:1, 31; 민 3:38 ), 등잔 대와 생명나무의 유사함( 창 2:9; 3:22; 출 25:31‑35 ), 금과 호마노가 있 음( 창 2:11‑12; 출 25:7, 11, 17; 28:9 ),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임무와 성막에서 레위인의 임무를 묘사하는 데 똑같이 히브리어 동사 둘( rm;v', ‘샤마르’, 2)

“지키다”; db;[', ‘아바드’, “경작하다” ) 을 사용함( 창 2:15; 민 3:7‑8; 8:26 ).

오경 안

에서 이처럼 널리 나타나는 상호 텍스트적 연계성 때문에 에덴동산 을 원형적 성소로, 아담을 원형적 레위인 또는 제사장으로 보게 된다.3) 그러나 이런 섬김의 역할이 제단이나 희생제사와는 연결되지 2) T. Desmond Alexander, From Paradise to the Promised Land , 3rd ed. (Grand

Rapids: Baker, 2012, 『주제별 모세오경 개관』, 부흥과개혁사 역간, 2024), 123‑124. Gordon Wenham, “Sanctuary Symbolism in the Garden of Eden Story,” in Proceedings of the Ninth World Congress of Jewish Studies, Division A: The Period of the Bible (Jerusalem: World Union of Jewish Studies, 1986), 19‑25. 웬 함은 성막 또는 성전과의 평행 관계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에덴의 강과 시 46:5 및 겔 47:112에 나오는 강 사이의 연관성도 주목한다. 이동이 가능한 성막은 아마 자연적으로는 강과 연결되지 않을 것이다. 강과 연결되는 것은 안에 씻을 물을 담아 놓은 놋대야(출 30:18)였을 것이다. 성막과 관련된 강에 가장 가까운 것은 민 20:11에 나오는 반석에서 흐른 “많은 물” 이었다. 시 78:16, 20은 이 물을 “시내”와 “강”으로 부른다(참고. 시 78:15; 74:15; 105:41). 3) 관련 문헌에 대한 유용한 분석과 상호 관계는 다음을 보라. Seth Postell, Adam as Israel:

Genesis 1–3 as the Introduction to the Torah and Tanakh (Eugene, OR: Wipf and Stock, 2011), 111‑114. 다음도 보라. Gregory Beale, The Temple and the Church’s Mission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66‑76; 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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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는다. 성막이 원래 상태보다 타락 이후 상태의 에덴동산에 더 가까운 것 처럼 보이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속죄소를 지키고 덮개와 성막 휘장에 수놓인 그룹의 형상이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에 생 명나무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길을 지킨 실제 그룹들( 창 3:24 ) 과 비슷 하기 때문이다. 최초의 부부는 불순종하기 전에 자유롭게 생명나무 로 나아갈 수 있었다( 2:9, 15 ). 따라서 성막과 성막 안의 그룹 형상은 이 최초의 죄와 그 결과를 상기하고, 아울러 이후로 아담의 후손이 저지르는 무수한 죄를 암묵적으로 환기하는 역할도 가진다. 지성소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 것은 타락 후에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것이 금 지된 것과 일치하고, 이 두 실재는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교 제가 끊어졌음을 암시한다( 히 9:8 ). 성막의 잠정적 성격도 성막이 “양 식”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을 통해 암시된다( 출 25:9, 40 ). 따라서 성막 은 실제 그룹이 아니라 그룹의 형상만 가졌다. 그럼에도 원래 상태의 에덴동산은 여전히 성막과 평행 관계가 많 으며, 원형적 성소 역할도 계속 유지된다. 아담과 관련해서 말하면, 아담은 역사적 인물이자 자기 후손으로 땅을 채우고 다스려야 했던 인류의 대표로 등장할 뿐만 아니라 원래의 동산 성소에서 섬기고 자 유롭게 생명나무로 나아갔던 일종의 제사장으로 활동한다. 따라서 창세기 1장과 2장을 함께 읽으면( 그렇게 읽어야 한다 ) 나타나는 결합 효 과는 아담이 원형적 동산 같은 성전에서 섬기고 다스리는 일종의 제 사장-왕으로 제시된다.4)

Sailhamer, The Pentateuch as Narrative: A Biblical-Theological Commentary (Grand Rapids: Zondervan, 1992), 100‑101. 4) 다음을 보라. Wenham, “Sanctuary Symbolism,” 21. 웬함은 아담은 “원형적 레위인”이

었고, “유사-제사장 역할”을 담당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인물은 창세기 14장에서 멜기세댁 으로 명확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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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후손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특권을 얻었음에도 뱀에게 속아 금 지된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 창 3:1-7 ). 하와는 한편으로 먹음직도 하 고 보암직도 한 것에 자극받았으나 다른 한편으로 “지혜롭게 할 만 큼 탐스러웠기” 때문에( 3:6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에 끌 렸다. 여기서 이처럼 지혜를 강조하는 것은 나무 자체의 이름[선악 을 알게 하는 나무]이 하와에게 “[너희가] 하나님[또는 ‘신들’]과 같 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 뱀의 마지막 말과 일치한다 는 점이다( 3:5 ). “선악을 알” 것이라는 말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이런 지식이 없는 것이 특징인 아이들을 언급하는 신명기 1장 39절에도 나타난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자기들의 육체적 욕심과 교만을 위 해 아이들같이 여호와를 믿는 믿음을 저버린 것을 암시한다.5) 여호 와를 경외하는 것을 지혜의 근본으로 추천하지만( 잠 1:7 ), 아담과 하 와는 홀로 완전한 지혜를 가진 여호와( 2:6 ) 와 상관없이 지혜를 구함 으로써 잘못을 저질렀다.6) 아담과 하와가 지혜를 구한 것은 이렇게 실패로 끝났다. 창세기 3장 6절에서 하와가 “좋다”( bwOj, ‘토브’ ) 라고 “본”( ha'r", ‘라아’ ) 것은 실 제로는 수고, 고통, 사망으로 판명되었다( 창 3:16-19 ). 분명히 어떤 것 이 “좋다”라는 것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하나님의 인식과 달리 불완 전하거나 심지어는 결함도 있을 것이다( 1:4, 10 등 ). 아담과 하와는 여 5) Wenham, Genesis 1–15, Word Biblical Commentary (Waco, TX: Word, 1987), 75.

Postell, Adam as Israel , 116은 창 3:6에서 ‘타아바’(hw"a]T;)와 ‘네흐마드’(dm'x.n<)라는 단 어는 이 죄를 십계명의 열 번째 계명에서 금지한 탐심의 죄(출 20:17; 신 5:21)와 연계한다 고 지적한다. 여기에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그들의 욕심은 첫째 계명을 어긴 죄라는 말을 덧붙일 수 있다. 십계명에 대한 이런 암시는 아담과 하와가 포괄적으로 시내산/신명기 율법 전체를 어긴 것으로 보는 것과 비슷하다. 6) 다음을 보라. Wenham, Genesis 1–15 , 63‑64. 지혜에 대한 더 상세한 내용은 이 책 5장

에서 브살렐에 대한 설명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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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와와 상관없이 “지혜롭게” 되려고 시도할 때 도리어 “어리석은 자가 되었다”( 롬 1:22 ).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먹기 에도 좋고 눈에 보기에도 좋다고 느낀 것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 니지만 에덴동산에는 여호와가 금하지 않은 아름답고 맛있는 다른 열매들이 많이 있었다( 창 2:9, 16 ). 아담과 하와에게서 “어떤 길은 사람 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잠 14:12; 16:25 ) 라는 속담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이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창 3:22 ) 라고 언급했을 때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교만하여 인간 중심적인 시도로 지혜를 얻고자 한 일에 대한 풍자적인 언급으로 이해하는 것이 최선이다. 아담과 하와는 선한 것 에 대한 자신들의 판단 기준에 따라 행함으로써 암묵적으로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은 곳에 두었다. 아담과 하와가 자기들의 죄를 정면으로 마주한( 3:8-13 ) 후에, 여호 와는 뱀부터 시작해 죄를 지은 당사자에게 심판을 선언했다( 3:14-15 ). 뱀은 다른 어떤 땅의 짐승보다 더 큰 저주를 받았고 배로 기어다니 는 형벌을 선고받았다.7) 여자와 뱀 사이의 “증오”( hb'yae, ‘에바’ ) 는 그 들 각자의 “후손”( [r:z<, ‘제라’ ) 사이의 증오로 계속될 것이라고 예언한 후에, 뱀에 대한 심판이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나 뱀은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예언에서 절정에 달한다( 창 3:15 ). 때때로 “여자의 후손”에 대한 예언 또는 ‘프로토에방겔리움’( “최 초 복음” ) 으로 불리는 창세기 3장 15절은 옛날부터 뱀이 여자의 “후

손”에게 최종적 패배를 당할 것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되었다.8)

7) 뱀의 이 비참한 굴욕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고, 사 65:25와 미 7:17로 증명되는 것처럼 종말

론적 구원과 연계되어 있다. 레 11:41-44는 뱀을 땅에서 기어다니거나 우글거리는 다른 피 조물과 연결한다(#rv, ‘샤라츠’; fmr, ‘라마스’; “기어다니다/우글거리다”). 이 두 동사는 물속에서 떼를 지어 다니는 피조물에도 사용할 수 있다(창 1:20‑21; 레 11:46). 8) Irenaeus, Against Heresies 5.21.1; Justin Martyr, Dialogue with Trypho 100. 다음

을 보라. R. A. Martin, “The Earliest Messianic Interpretation of Gen 3:15,” JBL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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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등장하는 중대한 해석 문제는 창세기 3장 15절이 진실로 메시아에 대한 직접 예언이냐는 것이다. 칼빈은 “신비적 해 석”( anagogy ) 을 통해 창세기 3장 15절을 그리스도 및 사탄과 관련시 키긴 하지만 다음과 같이 유명한 말을 했다. “이것을 단순히 인류와 뱀 사이에 적대적인 다툼이 항상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려고 한다. 본성의 은밀한 느낌으로 사람은 뱀을 몹시 싫어하 기 때문이다.”9) 칼빈의 해석은 칼빈보다 앞서 등장한 랍비 라시의 해석과 비슷하다. 라시는 창세기 3장 15절을 단순히 인간과 뱀 사이 의 다툼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하고,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을 치 명적인 상처로 간주했다( “너는 똑바로 서지 못하고 그의 발꿈치를 물 것이며, 그럼 10)

에도 너는 그를 죽일 것이다”).

라시의 해석에 따르면 이 다툼에서는 확실

한 승자가 없다. 라시와 칼빈은 뒤에서 다룰 여러 가지 논점을 제시 하지만, 뱀에 대해 말하면 뱀은 보통 피조물이 아니다. 뱀은 하나님 이 앞서 내린 명령을 말했고, 알고 있었고, 왜곡했다( 창 2:16‑17; 3:1‑4 ). 뱀은 상하게 될 때까지 많은 세대를 살아갈 것이다( “그가 너를[‘네 후손’이

(1965): 425‑427. 마틴은 70인역이 이 구절에 대해 메시아 해석을 최초로 보여 준다고 주 장한다. 9) John Calvin, Commentaries on the First Book of Moses called Genesis , Calvin’s

Commentaries, trans. John King (Grand Rapids: Baker, 2003), 167. 칼빈이 창 3:15를 단지 “신비적 해석”을 통해 사탄의 패배와 연관시키는 것에 대해 편집자는 각주에서 “성경의 숭고한 진리와 신비를 묵상하기 위해 (교회 기록에서) 지상의 것들보다 특히 마음 을 추상적인 사색으로 높이 올리는 것”이라고 해설한다(168). 칼빈은 “신비적 해석”을 문자 적 의미와 구별된 용도로 사용한다. “진실로 여기서 모세가 사용한 말에는 모호함이 전혀 없다. 그러나 나는 다른 해석자들이 말하는 의미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이 여자 의 후손을 논란 없이 그리스도로 취하기 때문이다”(170). 신비적 해석에 대한 더 상세한 설 명은 다음을 보라. Henri de Lubac, Medieval Exegesis: The Four Senses of Scripture , trans. E. M. Macierowski (Grand Rapids: Eerdmans, 2000), 2:179‑181. 칼빈의 창 3:15 해석에 대한 더 상세한 설명은 다음을 보라. Hans Frei, The Eclipse of Biblical Narrative: A Study in Eighteenth and Nineteenth Century Hermeneutics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1974), 25‑27. 10) A. J. Rosenberg, Genesis: A New English Translation/Translation of Text, Rashi,

and Other Commentaries (New York: Judaica, 1993), 1:57. 라시의 주장은 창세기 3장을 신화적 요소가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자에게 여전히 영향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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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님] 상하게 할 것이다” ). 따라서 뱀은 사탄에게 능력을 받고 사탄으로 충

만한 짐승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쉽다. 다른 본문은 사탄이 이 뱀과 긴밀하게 동일시된다는 것을 확증한다( 사 27:1; 계 12:9 ). 그렇지만 반드 시 자연계에 존재하는 일반적인 뱀과 동일시되는 것은 아니다. 에덴 에 나타난 뱀은 아마 자연적인 물리적 뱀이었겠지만 사탄은 본질상 다른 형태를 취할 수도 있는 영적 존재다. 예를 들면 사탄은 번개같 이 떨어지고( 눅 10:18 ), 유다 속에 들어가고( 22:3 ), 광명의 천사로 가장 한다( 고후 11:14 ). 세스 포스텔은 아벨을 죽인 일로 가인이 받은 “네가 땅에서 저주 를 받으리니[hT'a' rWra', ‘아루르 앗타’]”( 창 4:11 ) 라는 하나님의 판 결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해 죽음에 이르게 함으로써( 3:19 ) “네가 모 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hT'a' rWra']”라는 비슷한 판결을 받은 뱀의 후손으로 가인에게 주어진다고 지적 했다.11) 포스텔은 또 창세기 9장 25절의 “가나안은 저주를 받 아[rWra', ‘아루르’]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라는 말도 비슷하게 가나안을 뱀의 후손의 일원으로 보지만, 창세기 9장 26-27절에서 이후 셈이 받는 복은 셈의 계보에서 나온 여자의 후손 의 궁극적 승리를 암시하고, 이것은 이 후손이 창세기 49장 8-12절 과 연관될 때 훨씬 분명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이 책 3장을 보라 ). 뱀의 후손을 자연계의 뱀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지 않고 사탄의 속 이고 찬탈하고 흉악한 간계를 따르는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이 런 해석은 성경에서 널리 확증된다. 뱀의 “후손”은 귀신( 벧후 2:4; 유 6절; 계 12:9 ) 과 악한 인간까지 모두 포함한다. 창세기 1-11장 밖의 오

11) Seth Postell, “Genesis 3:15: The Promised Seed,” in The Moody Handbook of

Messianic Prophecy: Studies and Expositions of the Messiah in the Old Testament, ed. Michael Rydelnik and Edwin Blum (Chicago: Moody Publishers, 2019) 244-245,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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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역시 악한 인간이 뱀의 후손의 일원임을 확증한다. 민수기 24장 17절은 원수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공통 주제를 통해 창세기 3장 15절을 인유하는 메시아 예언이지만 여기서 원수는 인간 원수인 모 압이다( 이 책 6장을 보라 ). 여기서 결과는 흉악한 모압( 그리고 이 문맥에서는 에돔 ) 을 뱀 및 뱀의 후손과 연계하는 것이다. 신명기 32장 31-33절

은 이것을 일반화해서 이런 모든 인간 원수에게 적용한다. 시편 58편 3-4절은 이에 따라 악인을 일반적으로 나면서부터 곁길로 가 고, 거짓을 말하고, “뱀의 독”을 가졌으며,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다”라고 규정한다. 시편 140편 3절은 악하고 포악한 사람을 똑같 이 묘사한다. “뱀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 의 독이 있나이다.” 훨씬 명확한 사례를 들면 세례 요한과 예수가 바 리새인을 “독사의 자식들”( γεννήματα ἐχιδνῶν, ‘겐네마타 에키드논, 마 3:7; 12:34; 23:33; 눅 3:7 ) 로 부른 것이다.

창세기 3장 15절과 관련된 중대한 난점은 여자의 “후손”의 엄밀 한 지시 대상을 결정하는 것이다. “후손” 또는 “씨”로 번역된 히브리 어 단어( [r:z<, ‘제라’ ) 는 문법적으로 단수형이지만 대체로 이 단어를 번 역하는 데 사용하는 영어 단어와 마찬가지로 단수 지시 대상이나 복 수 지시 대상을 다 가질 수 있다. ( 창 1:11-12와 달리 ) 인간 자손에 대해 사용되었을 때 이 단어를 가리킬 수 있다( 즉 집단적으로 간주된 “씨” 또는 12)

“후손” ).

이 단어는 ( “가족”이나 “성직자”처럼 ) 집합 명사로 기능할 수 있

12) 일부 학자는 양자택일식의 선택을 피하려고 한다. Derek Kidner, Genesis , Tyndale

Old Testament Commenta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67), 75‑76은 여자의 후손은 “아브라함의 후손과 같이 집단 후손이면서(참고. 롬 16:20) 동시 에 이 중대한 싸움에서 개인적 후손이다(참고. 갈 3:16). 마지막 아담으로서 예수가 인간을 자기 안에 두었기 때문이다.” James Hamilton, “The Skull Crushing Seed of the Woman: Inner-Biblical Interpretation of Genesis 3:15,” SBJT 10 (2006): 30‑54도 비슷하게 말한다. 해밀턴은 이 집단 후손을 “그들의 후손의 승리를 바라고”(31) “하나님을 신뢰하는”(43) 자로 규정한다. 그러나 뒤에서 다룰 문법적 고찰에 비추어 보면 “여자의 후손”이 둘 다 가리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자의 후손”이 집단적 후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것은 “그”의 지시 대상이 아닐 것이다. “그”는 개인만 가리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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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나 엄밀히 말하면 그것이 항상 집단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므로 집 합 명사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 그렇더라도 이 단어의 용법은 뱀을 패배시킬 자가 집단적으로 여자의 후손일 가능성을 허용한다.13) 그 러나 이 후손을 언급하기 위해 단수형 독립 인칭 대명사를 명확히 사용하는 것( “그[aWh, ‘후’]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 은 이 본문이 개인 후손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암시한다. 반면에 이사야 61장 9절과 이 사야 65장 23절은 다 후손( [r:z<, ‘제라’ ) 을 복수형 독립 인칭 대명사 곧 그들 ( 각각 ‘헴’[~he]과 ‘헴마’[hM'h,] ) 과 결합해서 집단적으로 사용한다. “그

들[~he]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r:z<]이라”( 사 61:9 ). “그들[hM'h,] 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r:z<]이요”( 65:23 ). 개인 “후손”을 가리키기 위해 단수형 독립 인칭 대명사를 사용하 는 것은 다른 본문과 비슷하고( 창 15:3‑4; 21:13; 삼하 7:12‑14; 대상 17:11‑13 ), 집단 “후손”을 가리키기 위해 복수형 독립 인칭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은 이사야 57장 3-4절( 독립 복수형 대명사 너희를 두 번 사용 ) 과 비슷 하다. 단수형 독립 인칭 대명사는 개인 후손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 고, 복수형 독립 인칭 대명사는 복수의 ( 집단적 ) 후손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는 명백한 법칙의 유일한 잠재적 예외가 이사야 41장 8절 이다. 하지만 이것도 단수형 너가 그 구절 뒷부분에 나오는 자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을 주로 가리킨다는 것을 기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경우에 그라는 대명사는 이전 문맥에서 적절한 지시 대상이 없게 된다. 이것은 대체로 대명사가 기능하는 방식이 아니고, 또 후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메 시아 본문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13) Calvin, Genesis , 170은 이것을 확신했다. “집합 명사가 오직 한 사람만으로 이해되는 것

을 누가 인정하겠는가? 게다가 싸움의 영속성이 지적되는 것처럼 대대로 시대가 계속되는 동안 인류에게 승리가 약속된다. 그러므로 나는 여자의 후손이 일반적으로 여자의 자손 전 체를 의미한다고 설명하겠다.” 많은 현대 학자도 이 견해를 취하고, 여기에는 메시아 해석 은 저자가 의도한 문자적 의미의 한 부분으로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센수스 플레니 오르(sensus plenior, “더 풍성한 의미”)로 정당화된다고 믿는 Wenham, Genesis 1–15 , 81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미 지적했듯이 후손은 이런 학자들이 믿는 것처럼 항상 그런 것이 아니라 간혹 집합 명사처럼 기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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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로 하면 설명할 수 있다( “나의 종 너[단수형]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r:z<, ‘제라’]” ). 또한 “이스라엘”은 이곳과 주변 문맥에

서 일관되게 문법적으로 단수형으로 지칭된다( “나의 종[단수형] 너[단수형] 14)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너][단수형] 야곱아”, 사 41:9‑10; 42:19; 43:1‑7; 44:1‑3을 보라 ).

이사야 41장 8절에서 많은 명사를 서로 동격으로 결합하면서( 예. 이 스라엘, 종, 야곱 ) 단수형 독립 인칭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은 단순히 후손

과 관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규칙의 예외도 아니다. 어쨌 든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지칭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사야 41장 8절과 창세기 3장 15절을 제외하고 방금 인용한 다른 일곱 개의 평행 본문은 그 문법적 수( 즉 단수형이나 복수형 ) 가 후손 의 지시 대상이 단수형인지 또는 복수형인지와 일치를 이룬다( 아래 표 15)

1.1을 보라 ).

다시 말하면 단수형 독립 인칭 대명사는 집단 후손이 아

니라 개인 후손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후손에 대한 철저한 문법적 분석 역시 단수형과 복수형 동사의 주어로서의 그 말의 용법과 형용 사, 분사, 대명사 접미와 함께 사용할 때 그 말의 용법을 다룰 것을 요구하지만,16) 독립 인칭 대명사의 지시 대상으로서 그 말의 용법에

14) 따라서 이스라엘은 단수형 독립 인칭 대명사로 지칭될 수 있다(민 22:3도 보라). 그러나 이 것은 후손과 관련된 문법 문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런 문맥에서 이스라엘 은 집합 명사지만 후손은 개인이나 집단을 가리킬 수 있기 때문이다(느 2:12; 전 3:18의 짐 승[hm'heB., ‘브헤마’]과 창 1:11‑12; 2:17의 나무를 보라). 15) 이 조사를 위해 후손이라는 말이 나오는 모든 본문과 한 절 안에 나오는 독립 인칭 대명사

를 수집해 잘못 찾아낸 것을 가려내고 분석했다. 레 11:37-38은 그 말이 대체로 집합 명사 고, 독립 인칭 대명사와 대명사 접미(레 26:16; 27:30을 보라)를 포함해 단수형 문법적 요 소(신 14:22를 보라)만 동반하는 식물의 씨(씨들)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포함하지 않 았다(삼상 8:15와 렘 2:21은 제외). 16) 이 책 2장을 보라. 거기서 Jack Collins, “A Syntactical Note (Genesis 3:15): Is the

Woman’s Seed Singular or Plural?,” TynBul 48, no. 1 (1997): 139‑148을 설명할 것이다. 콜린스가 각주에서 사 41:8을 “참된 예외가 아닌” 것으로 보는 이유는 “저자의 환 상 속에서 족장이 이상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143). 콜린스의 논문이나 콜린스의 논 문을 비판한 존 월턴의 Genesis ,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Zondervan, 2001), 225 (including n. 3)는 독립 인칭 대명사와 관련된 자료의 세부 항 목을 따로 분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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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오경의 메시아 비전


대한 이 책의 고찰은 창세기 3장 15절의 여자의 후손을 개인으로 해석하는 견해를 강력히 찬성한다. 표 1.1 후손을 독립 인칭 대명사와 함께 사용하는 사례 후손과 독립 인칭 대명사가 지시 대 상이 같은 본문

독립 인칭 대명사

지시 대상

문법적 수가 일치하는가?

창 3:15

결정해야 함

결정해야 함

창 15:3-4

단수

일치

창 21:13

단수

일치

삼하 7:12-14

그(13절) 그(14절)

단수형(둘 다)

일치

사 41:8

너(단수형)

복수

불일치. 그러나 단수 대명사 너가 “이스라엘, 나의 종, 내 가 택한 야곱”을 직접 가리킴

사 57:3-4

너희(복수형, 3절) 너희(복수형, 4절)

복수형(둘 다)

일치

사 61:9

그들

복수형

일치

사 65:23

그들

복수형

일치

대상 17:11-13

그(12절) 그(13절)

단수형(둘 다)

일치

오경과 구약 성경의 포괄적인 문맥을 살펴보면 문맥도 이 견해를 지지하는 것으로 충분히 확인된다. 앞의 본문 가운데 몇 개는 같은 단수 대명사 그 ( aWh, ‘후’ ) 가 개인 후손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개인 후 손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창세기 3장 15절과 의도적인 상 호 텍스트적 연관성이 있음을 암시한다. 후손에 대한 약속은 이후에 아브라함에게 전해졌다( 창 12:7 ). 아브라함은 수많은 자손을 약속받았

1장 | 여자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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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뿐만 아니라( 12:2 ) 그의 상속자가 될 후손도 약속받았다( 15:3-4 ). 이 후손의 지시 대상이 개인인 것은 다른 개인 곧 다른 경우에 상 속자가 될 후손인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병렬 배치된 것으로( 15:2. 여기서도 그에 대해 ‘후’[aWh]가 사용되는 것을 주목하라 ) 강력히 암시된다( 15:5에서 복수 후손으로 바뀌는 것에 대한 설명은 이 책 2장을 보라 ). 창세기 3장 15절처럼

이 “후손”도 여호와가 직접 화법으로 단수 대명사 그 ( aWh ) 를 사용해 언급한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r:z<, ‘제라’]를 주지 않았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y[,Memi

aceyE rv,a], ‘아셰르 예체 밈메에이카’, 즉 후손],

[그(aWh)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15:3-4).

놀랍게도 “네 몸에서 날……씨[후손]”라는 같은 말이 사용되어 다윗에게도 상속자가 약속되었다( 삼하 7:12 ).17) 이 “씨”가 개인이라는 것, 그것도 왕 인물이라는 것은 그가 성전을 건축하고 다윗의 왕위 를 영원히 견고하게 할 자라는 점으로 분명하다( 7:13 ). 사무엘하 7장 12-14절에서 여호와가 직접 화법으로 같은 단수 대명사를 두 번 사 용해 그를 언급한다. 내가 네 몸에서 날[^y[,Memi aceyE rv,a], ‘아셰르 예체 밈메에이카’] 네 씨[[r:z<]를 네 뒤에 세워 그[단수형]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aWh]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단수형] 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단수형]에게 아버

17) 이 두 본문은 구약 성경에서 이 어구를 사용하는 유일한 두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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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가 되고 그[aWh]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대명사 “그”를 이중으로 사용하는 것은 창세기 3장 15절과 창세 기 15장 4절에서 이 말의 두 용례가 결합되어 있는 것과 비슷하다. 평행 본문인 역대상 17장 11-13절도 비슷하게 주장할 수 있다. 이 본문에서는 “네 몸에서 날……씨”( 7:12 ) 가 “네 아들들에게서 있 을……씨”( ^yn<B'mi hy<h.yI rv,a], ‘아셰르 이흐예 밉바네이카’; 개역개정. “네 씨 곧 네 아 들 중 하나” ) 로 대체된다. 단수 지시 대상이 역대상 17장 11절에서 다

윗의 일반적 아들들, 말하자면 다윗의 집단 “후손”과 구분됨으로써 훨씬 명확해진다. 또한 여호와는 비슷하게 단수 대명사 그를 두 번 사용해서 왕의 상속자 개인을 언급한다( 대상 17:12-13 ). 창세기 15장 3‑4절, 사무엘하 7장 12‑14절, 역대상 17장 11‑13절은 아브람과 다윗이 각각 받은 예언 “환상”( 창 15:1; 삼하 7:17; 대상 17:15 ) 과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서로 깊이 관련되어 있다. 큰 이름( 창 12:2; 삼하 7:9 ), 민 족( 창 12:2; 삼하 7:10 ), 땅( 창 12:7; 삼하 7:10 ), 세계적 축복( 창 12:3; 시 72:17 ), 왕 권( 창 27:29; 삼하 7:12‑16 ), 영원성( 창 17:7; 삼하 23:5 ) 같은 아브라함 언약과 다윗 언약 사이의 다양한 공통점과 함께, 이 본문 사이에 많이 나타 나는 어휘와 구문과 주제의 연관성은 창세기 3장 15절의 원래 약속 과 함께 이 두 언약이 마태복음 1장 1절이 함축하는 것처럼 똑같은 아브라함과 다윗과 메시아 후손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암시 한다. 심지어는 창세기 21장 13절의 이스마엘에 대한 진술( “그[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 도 누가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될 것인지와 관련되어

있다( 창 21:10‑12; 22:17 ). 후손[씨]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같은 대명사 그 ( he ) 라는 말이

스가랴 6장 13절 관련 문맥의 하나님 예언에서 두 번 나타난다. “그[aWh, ‘후’]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그 ( aWh )가] 영광도 얻고.” 여 기서 이 개인은 성전을 건축하는 왕이면서 동시에 분명히 메시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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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왕이다. 마찬가지로 이사야 53장도 크게 높임을 받은 자, 곧 왕 이자 제사장인 인물과 관련되어 있다( 사 52:13, 15; 다음도 보라. 6:1 ). 이 인 물은 같은 대명사 그라는 단어로 다섯 번 언급된다( 53:4, 5, 7, 11, 12 ). 이 사야 53장과 스가랴 6장은 아담을 제사장-왕으로 묘사하는 내용을 우리에게 환기할 뿐만 아니라 창세기 15장 3-4절 및 사무엘하 7장 12-14절과 함께 창세기 3장 15절의 후손에 대한 약속을 개인 메시 아 인물과 훨씬 깊게 연계한다.18) 게다가 이것은 때때로 선지자를 통해 전달되기도 하지만 여호와가 직접 말한 것처럼 주어지기도 하 고, 이때 이 다양한 본문이 약속된 이 개인 후손에게 긴밀하게 주의 를 기울이도록 전략적으로 대명사 그를 사용해 이 “후손”을 가리 킨다. 이와 관련해 2인칭 남성 단수 대명사 너 ( hT'a;, ‘앗타’ ) 라는 말이 창세기 49장 8절( hT'a; hd"Why>, ‘예후다 앗타’, “유다야 너는”; 이 책 3장을 보라 ), 시편 2편 7절 ( hT' a ; ynI B . , ‘브니 앗타’, “너는 내 아들이라” ) , 시편 110편 4절( ~l'wO[l. !heko-hT'a;, ‘앗타 코헨 르올람’, “너는 영원한 제사장이라” ) 같이 핵심적 인 메시아 본문에 나타난다. 언뜻 보면 창세기 15장 3-4절의 내용 자체는 이런 소망과 거 리가 멀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창세기 15장 4절에 사용된 “상 속자가 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 vr: y " , ‘야라슈’ ) 는 “차지하다/소유 하다”를 의미할 수도 있고, 그 “대적”( 창 22:17 ) 과 그 “원수”( 24:60 ) 의 성문을 차지하는 “후손”에 대해 사용된다. 따라서 이 단어가 오경에 서 널리 사용되는 것을 보면 창세기 15장 4절에서 아브람의 상 속자가 될 개인 “후손”을 창세기 22장 17절과 24장 60절에서 자기 원수를 물리치고 그들의 성문을 차지하는 개인 “후손”과 연계 한다.19) 더구나 창세기 22장 17절에서 “대적”( wyb'y>ao, ‘오예바이브’ ) 에 대 18) 시 89:52에서 “너희 메시아의 발꿈치”라는 말도 이 후손을 개인인 왕 인물과 연계한다. 19) 창 22:17; 24:60에서 “후손”(씨)의 단수 지시 대상을 옹호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

라. T. Desmond Alexander, “Further Observations on the Term ‘Seed’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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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오경의 메시아 비전


한 언급은 이 본문의 네트워크를 창세기 3장 15절의 여자와 뱀 사 이의 “증오”( hb'yae, ‘에바’ ) 곧 원수와 연결한다. 이 원수는 여호와가 직 접 [원수가] “되게 한”( tyvi, ‘쉬트’ ) 것이지만 여호와는 시편 110편 1절에서 비슷한 언어로 “내가 네 원수들[byEao, ‘오예브’]로 네 발판 이 되게 하기[tyvi]까지”라고 선언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이 증오는 메시아가 온전히 다스리실 때 끝난다. 창세기 3장 15절에 나온 말을 여러 번 반복함으로써 창세기 4장 25절( “이는 하나 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r: z < , ‘제라’]를 주셨다[tyvi ] 함이며”; ‘잇 샤’[hV'ai], 곧 “여자”도 있다 ) 에서 하와가 셋으로 이름을 지은 것은 가인의

형제 살해를 “증오” 문제와 연계하고, 또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을 하나님이 은혜로 개인 후손을 “주신”( 즉 세운 ) 것과 연계하는 것 같다.20) 민수기 24장 18절은 “유산이 되다”( 상속자가 되다 ) 라는 동사의 동족 명사를 사용함으로써 모압과 에돔으로 대표되는 메시아의 “원 수”( wyb'y>ao, ‘오예바이브’ ) 가 메시아의 “소유” 또는 “유산”( hv'rEy>, ‘예레샤’ ) 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나아가 민수기 24장 18절에서 “세일”( ry[ife, ‘세이르’, 에돔 땅을 가리킴 ) 이라는 말은 창세기 22장 17절 ( 그리고 24장 60절 ) 에서 “성문”( r[;v;, ‘샤아르’ ) 이라는 비슷한 말과 함께 각각의 절이

놀랍게도 언어유희로 서로 일치한다 (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 리라”[ wyb'y>ao r[;v; tae ^[]r>z: vr:yIw,> ‘베이라슈 자르아카 에트 샤아르 오예바이브’ ] 와 “그 의 원수 세일도 그들의 유산이 되고”[ wyb'y>ao ry[ife hv'rEy> hy"h'w>, ‘베하야 예레샤 세이르 오예 21)

바이브’] ).

민수기 24장 18절 문맥은 이 소유(유산)가 “후일에/마지막

Genesis,” TynBul 48, no. 2 (1997): 364‑368. 이 책 2장에서 이 본문들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보라. 아브라함 자신이 약속의 상속자로 묘사되는 것만큼(창 15:8) 이 연관성에 따 라 이삭을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기는 해도, 이 두 본문은 아브람의 상속자라는 정체성 때문 에 단순히 이삭(21:10)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20) Postell, “Genesis 3:15.” 21) “세일”(ry[ife, ‘세이르’)과 “성문”(r[;v;, ‘샤아르’)의 연관성은 “세일”에서 확인되는 것과

1장 | 여자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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