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세상을 바꾸려는 비판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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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ly published in English under the title:

To Change All Worlds: Critical Theory from Marx to Marcuse

Copyright ⓒ 2024 by Carl R. Trueman

Published by B&H Publishing Group,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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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translation edition ⓒ 2024 by REVIVAL AND REFORMATION PRESS, Korea, Republic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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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Korean edition published in arrangement with B&H Publishing Group through Riggins Rights Management and rMaeng2, Seoul,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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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려는 비판 이론

발행일 2024년 11월 15일

지은이 칼 트루먼

옮긴이 윤석인

펴낸이 김은주

펴낸곳 부흥과개혁사

편집 권대영 디자인 박슬기 기획 이승영 마케팅 권성직

인쇄소 영진문원

판권 Ⓒ부흥과개혁사 2024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6길 9-20, 2층(서교동)

전화 Tel. 02) 332-7752 Fax. 02) 332-7742

홈페이지 http://rnrbook.com e-mail rnrbook@hanmail.net

ISBN 979-11-94295-09-9

등록 1998년 9월 15일 (제13-548호)

는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추구합니다. 부흥과개혁사는 부흥과 개혁이 이 시대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조국 교회의 부흥과 개혁의 방향을 위한 이정표이자, 잠든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을 촉구하는 나팔소리요, 깨어난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의 불길을 지속시키는 장작더미이며, 부흥과 개혁을 꿈꾸며 소망하는 교회들을 하나로 모아 주기 위한 깃발이고자 기독교 출판의 바다에 출항하였습니다.

감사의 글┃ 11

1장 비판 이론의 중요성 12

2장 헤겔, 마르크스, 그리고 비판 이론의 기원 27

3장 비판적 상상력의 도가니: 카를 코르쉬와 게오르크 루카치 58

4장 프랑크푸르트학파: 전통 이론에서 비판 이론으로 98

5장 계몽의 문제 135

6장 비판 이론과 성혁명: 빌헬름 라이히와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175

7장 문화 산업 215

8장 부정하는 영을 부정하기 253

1장 비판 이론의 중요성

서론

최근 몇 년 동안 ‘비판 이론’은 미국 문화에서 주요 논쟁의 골자가

되었다. 이 용어는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모두에게 일종의 구별 기

준으로 작용할 만큼 대단히 중요해졌다. 여러분은 비판 이론에 찬성하

는가 아니면 반대하는가? 이것은 정치적 분열의 양측에서 충성스러운

회원을 식별하는 직설적인 찬반 검사인데, 일반적으로 트윗의 글자 수

제한에 따라 정교한 수준에서 진행된다. 특히 비판적 인종 이론은 미

국의 인종적 분열 및 노예제도와 인종 차별의 오랜 그림자에 대한 소

송을 열망하는 미국인들에게 초점이 되어 왔다. 이 어휘도 문화 마르

크스주의, 백인 특권, 이성애주의 등 다른 유행어나 문구와 상당히 유

사하게 대단히 중요해졌는데,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양측의 논쟁에서

그 이론적 배경에 대한 성찰 없이 도덕화하는 수사학에 정통한 사람들

이 완전하게 확신하며 휘두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 책이 바로 이런 점에서 유용할 것으로 기대한다. 나는 지성

사학자를 직업으로 하고 지성사학자를 훈련하고 있다. 이것은 내 일차

관심사가 사상과 학파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기원은 무엇인지, 우

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어떤 주장을 하는지, 그리고 문화적·지

적·역사적·이념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것이라는 뜻이다.

나는 무엇보다 내가 연구하는 사상과 운동의 진실성이나 일관성보다

는 그 역사적·문화적 중요성의 다양한 측면에 더 관심이 있다. 따라서

이 연구는 비판 이론의 초기 발전과 관련해 몇몇 선택된 사상가의 비

판 이론적 개념을 설명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가장 시급한 문제에 더

명확하게 접근하는 데 도움을 주려는 시도다.

그렇다면 이렇게 시급한 문제가 무엇일까? 즉각적인 대답은 학교, 대학, 공공 정책 결정 및 매체에서 비판 이론이 사용되는 방식을 지적

할 수 있다. 그런 방식이 이런 문제 중 일부를 다루는 것은 분명하지

만, 현대 사회에는 이처럼 광범위한 의미에서 정치적 관심사로 부를

수 있는 것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비판 이론에 대한 지식을 중요하게

만드는 훨씬 더 심오한 문제가 있다고 제안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인

간론의 문제, 즉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는 문제다.

이 책을 집필한 2023년은 C. S. 루이스가 분량은 적지만 중요한 책

『인간 폐지』를 강연한 지 80주년이 되는 해였다.1) 1943년 루이스는

서구가 당면한 심각한 인간론적 위기를 예리하게 인식했다. 더 직설적

으로 말하면, 서구는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의하 는 능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1943년에도 사실이었다 면, “여성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기본적인 인간론적 질문이 너무 복잡 해져서 최고의 지성인조차 확신 있게 또는 명쾌하게 대답하기 어려운

1) C. S. Lewis, The Abolition of Man (New York: HarperOne, 2015).

오늘날에는 얼마나 더 그렇겠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비판 이론이 중요해진다. 시급한 정치적 관심사에

서 한발 물러서면, 테오도르 아도르노 같은 초기 인물부터 게일 루빈

같은 후대의 인물에 이르기까지 비판 이론가가 모두 인간이 된다는 것

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과 씨름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물론

비판 이론은 서로 다르고 심지어 양립할 수 없는 다양한 접근 방식을

포괄하는 용어다. 아도르노의 마르크스주의는 루빈의 퀴어 이론과 일

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두 인간론적 질문에 기본적으로 집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고 비판 이론의 현대 정치적 의미를 축소하려는 것은 아니다.

모든 비판 이론, 적어도 진정으로 비판적인 이론은 모두 혁명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판 이론을 우리 시대의 맥락 안에 두고 현대성의 흐

름과 변동성 속에서 특이한 긴급성을 띠는 다음과 같은 오래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변으로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

간은 제작과 생산으로 정의되는가 아니면 소비로 정의되는가? 생물학

적 관계는 중요한가 그렇지 않은가? 올바른 삶이란 어떤 모습인가? 기

술은 인간 본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기술은

우리를 해방했는가 노예로 만들었는가? 성적 욕망은 우리의 핵심 정

체성의 일부인가? 우주에는 도덕적인 형태가 있는가? ‘인간 본성’ 같

은 것이 존재하는가? 우리는 자유로운 행위 주체인가 아니면 더 광범

위한 문화적 영향력의 기능에 불과한가? 물론 빌라도가 간결하게 표

현한 “진리란 무엇인가”와 같은 날카로운 질문도 있다. 기독교인은 혼

란스러운 현대 사회에서 이런 질문들과 치열하게 씨름한다. 비판 이론 가도 마찬가지다. 최소한 우리는 인간의 조건과 관련 있고 진지한 답

변을 요구하는 일련의 심각한 질문을 비판 이론가와 공유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뿐 아니라 서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직면한 도전

이 이와 같은 기본적 질문, 즉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

는 더 심오한 문제를 다루는 질문으로 귀결된다면, 우리는 이 논의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것이

뒤에 이어지는 비판 이론의 측면을 설명하는 데 지침이 되는 원칙

이다. 이 책은 논쟁을 위한 책이 아니며, 비판 이론의 측면을 기독교의

맥락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기 위한 시도도 아니다.

지역 서점에는 이런 작업에 전념하는 서적들이 진열되어 있다.2) 논쟁

론자는 때로 자신이 비판하는 바를 먼저 설명하지 못하는 탓에 논쟁적

의도가 설명 자체를 심하게 왜곡하기도 한다. 이런 논쟁은 당면한 악

을 이미 확신하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설득하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신학자나 철학자가 아닌 역사학자이므로 기독교와 비판 이론을 종합 할 수 있다고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다. 내가 때로 비판 이론에 열광하

는 것처럼 보여 놀랍게 느낄 사람도 있다. 나는 비판 이론에 열광하는 게 전혀 아니며, 단지 비판 이론을 그 자체로 설명하는 게 내 임무라고

이해하므로 주요 해설 부분에서 비판을 최소한으로 유지한다. 나는 마

치 『모비딕』이나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대한 책을 쓰는 것처럼 비판 이 론의 본문을 인간 조건에 대한 깊은 질문과 씨름하려는 개인의 사례로

다루는데, 우리는 이런 본문이 표현하는 기본 철학에 동의하지 않더라

2) 논쟁적인 측면(정교함과 성공의 정도는 다양함)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Voddie Baucham, Fault Lines: The Social Justice Movement and Evangelicalism’s Looming Catastrophe (New York: Salem, 2021); Helen Pluckrose and James Lindsay, Cynical Theories: How Activist Scholarship Made Everything about Race, Gender, and Identity—and Why This Harms Everybody (Durham, NC: Pitchstone, 2020); Michael Walsh, The Devil’s Pleasure Palace: The Cult of Critical Theory and the Subversion of the West (New York: Encounter Books, 2017). 비판 이론에 특별히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지만, 다음 작품도 관련 사상가에 대한 유용한 논쟁적 논의를 담고 있다. Roger Scruton, Fools,Frauds and Firebrands (New York: Bloomsbury Continuum, 2015).

도 거기서 배울 수 있다. 많은 장이 성찰적인 후기로 끝나지만, 이것은

규범적이라기보다 시사적인 것으로서 기독교적인 비판 이론보다는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한다.3)

이 책은 비판 이론이 관련된 이차 학문에 대한 심오한 공헌도 아

니다. 이 책은 주제에 대한 소개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논의하는 거의

모든 사상가와 문제는 미묘하고 때로는 그다지 미묘하지 않은 다양한

해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내 목적은 초기 비판 이론의 기본 요소를

역사적 맥락에서 설명하여, 관심이 있는 경우 해당 주제에 대해 더 많

은 내용을 읽을 수 있게 교육하고 권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본문

에서 자주 언급하는 대로, 초기 비판 이론이 이후의 비판 이론의 기본

토대를 마련한 것이 사실이므로 그 역사적 기원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

이 현재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된다.

근본적인 문제

이 시점에서는 기독교인이 비판 이론에 대해 생각해야 할 핵심 문제

를 간략하게 제시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그렇다고 비판 이론과의

상호작용이 유용하지 않다는 뜻은 ( 분명히 ) 아니다. 이 책 전체는 그런

상호작용을 돕기 위한 시도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에서 논의하는 흐

름에서 비판 이론의 주된 문제는 인간론, 즉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에

3) 건설적인 기독교의 관점에서 비판 이론을 더 깊이 있게 성찰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 람은 다음을 참고하라. Christopher Watkin, Biblical Critical Theory:How the Bible’s Unfolding Story Makes Sense of Modern Life and Culture (Grand Rapids: Zondervan, 2022); 또한 (더 비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Neil Shenvi and Pat Sawyer, Critical Dilemma: The Rise of Critical Theories and Social Justice Ideology—Implications for the Church and Society (Grand Rapids: Harvest House, 2023, 『비판적 딜레마』, 부흥과개혁사 역간, 2024).

있다. 비판 이론은 헤겔적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에 서 있으므로 본질주

의, 즉 사물이 안정된 ‘본질’을 가지고 있다거나 그것이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 따라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고정된 특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신념에 대한 깊은 의심이 있다. 다시 말해, 인간

에 대해서는 인간 본성이 시간과 문화의 변화에도 변동이 없는 것이

며,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중요한 도덕적 함의가 있다는 개념 자체

가 기본적으로 거부된다. 따라서 초기 비판 이론가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설명이 특정 시대나 사회의 우연한 도덕적 이상에 일종의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려는 시도라고 여겼다. 물론 이런 태도는 가령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으므로, 이 사실에 비추어 삶에 질서를 부

여해야 하는 특정 목적이 있다는 주장과 충돌한다. 이것은 이 책의 많

은 서술과 분석의 배경이 되는 주제다. 이것은 또한 비판 이론이 보여

주는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 즉 인간 사회의 미래가 어떤 모습이어

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상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도 설명한다.

요약하면, 이런 관점 때문에 비판 이론은 건설적이기보다는 훨씬 더

비판적이며, 당위적인 것을 가장 일반적이고 모호한 용어가 아닌 어떤 것으로 설명하기보다 존재하는 것을 해체하는 데 더 익숙하다.

저술 동기

내가 비판 이론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고대와 종교개혁의 역사와 관련해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측면을 처음 접한 1980년대였다. 당시에

는 이 사상에 매료되었으나, 프랑스 사상과 특히 미셸 푸코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비판 이론으로 대체되면서 그 중요성이 점

점 사라지는 듯 보였다. 사실 푸코는 초기 비판 이론가들이 주장한 헤

겔적 마르크스주의의 밑바탕을 이루는 거대한 계획을 피했다.4) 그래

서 내가 이해한 대로, 비판 이론은 수십 년간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것

이었고 지나간 후기모더니즘 시대의 일부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중

2020년,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가 황금 시간대 뉴스 표제를 장식

하고 비판적 인종 이론( CRT ) 이 대중의 상상을 사로잡았는데, 정의로운

척하는 모든 트위터 전사는 비판 이론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의 의견

을 ( 280자 이내로 ) 작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보통의 교회는 상당히

모호한 법철학이었던 학문 분야를 고려해야 했다. 그리고 남침례교 같

은 교단은 갑자기 비판적 인종 이론이 성경적 기독교와 양립할 수 있

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2021년 2월 나는 <퍼스트 팅스>에 “복음주의자와 인종 이론”이라

는 논설을 게재했다.5) 이 논설에서 나는 복음주의 개신교계 일부가 비

판 이론, 특히 비판적 인종 이론을 전유하는 것에 대해 성찰했다. 이

논설 중간에서 나는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대의 논쟁을 프랑크푸

르트학파(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의 사회연구소와 관련된 인물들에게 붙여진 이름 ) 로 알려

진 유럽 사상가들의 초기 연구와 연관시켰다.

내 논설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극과 극이었다. 좋아한 사람도 많았고

싫어한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싫어한 사람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비판

이 일관된 주제로 등장했다. 첫째, 어떤 사람은 내가 초점을 맞춘 사례

가 이브람 켄디같이 실제로 비판적 인종 이론을 연구하지 않은 학자들

4) 푸코는 1970년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행한 취임 강연에서 헤겔과 그의 지적 유산에 서 벗어나는 것이 자기 기획의 필수 과제임을 분명히 했다. 다음을 보라. “The Order of Discourse” in Robert Young, ed., Untying the Text: A Post-Structuralist Reader (Boston: Routledge and Kegan Paul, 1981), 48–78(특히 74)

5) Carl R. Trueman, “Evangelicals and Race Theory,” First Things (February 2021), https://www.firstthings.com/article/2021/02/evangelicals-andrace%20-theory.

에게서 가져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 주장은 이후 가톨릭 철학자 에드워

드 페서가 반박했는데, 페서는 비판적 인종 이론이 켄디 같은 학자들에 게 미친 영향을 입증했다.6) ( 나를 즐겁게 하기도 하고 짜증 나게 하기도 했던 ) 두 번째

비판은 내가 프랑크푸르트학파를 비판적 인종 이론의 배경으로 설정

함으로써 일종의 인종주의에 빠져 흑인 해방 운동을 백인 남성 철학의 파생물로 전락시켰다는 것이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런 노선의 비판

이 내가 이 책을 쓰는 데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게 된 배경이다.

왜 프랑크푸르트학파인가

이 책이 1980년 이전에 모두 세상을 떠났고 비판적 인종 이론이 주 류 문화 대화의 주제가 되기 훨씬 전의 사람들의 생각을 다룬다는 점

고려할 때,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그의 동료들에게 집중하기로 한

내 결정을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우선 “백인

성”에 대한 비판부터 말하면, 초기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다수 회원이

경제적·사회적으로 특권을 누리는 가정 출신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확실히 이들 대부분은 유럽인이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또한

20세기 초의 문화적·정치적 역학 관계를 이해하는 데 훨씬 더 중요한

범주인 유대인이기도 했다. 이들의 기획이 1920년대 말과 1930년대

초 독일에서 시작되었고, 따라서 나치당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의 잔인 한 이념적 반유대주의의 부상과 권력을 배경으로 하여 구상된 점을 고 려하면 이것은 매우 중요한 요점이다.7)

6) Edward Feser, All One in Christ:A Catholic Critique of Racism and Critical RaceTheory (San Francisco: Ignatius, 2022).

7) 다음을 보라. Stuart Jeffries, Grand Hotel Abyss: The Lives of the Frankfurt School (London: Verso, 2016). 이 책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업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유대인의 중요성에 주목한 훌륭하고 이해하기 쉬운 역사서다.

실제로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나치즘과 파시즘이 왜 유럽의 노동자

계급 사이에서 그토록 매력적이었는지에 대한 고민은 이 시기 이론가

들의 핵심 관심사였다. 테오도르 아도르노, 막스 호르크하이머, 헤르베

르트 마르쿠제 등 주요 인물들도 목숨을 위해 독일을 떠나야 했다. 이

학파의 가까운 절친이었던 발터 벤야민은 유대의 종말론적 신비주

의·비판주의·마르크스주의를 혼합했다. 벤야민은 1940년 스페인으

로의 입국이 거부되자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에서 자살했다. 벤야민은

나치 정권을 피해 도피 중이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비판 이론에

대한 이들의 접근 방식을 옹호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이런 인물들이

미국 고등 교육 기관에서 종신직을 누리거나 스타벅스에서 편안하게

새 애플 아이폰으로 인종 억압에 대해 태평하게 트윗하는 ( 전부는 아니더라

도 ) 대다수 비판적 인종 이론 옹호자보다 소외, 박해, 물리적 억압에 대

해 더 많이 알고 있었다고 결론내리는 것은 여전히 합당해 보인다. 프

랑크푸르트학파의 초기 회원들이 젊은 학자로서 직면했던 인종 갈등

을 분석할 때 “백인성”은 솔직히 쓸모없고 무의미한 범주다. 이 개념

은 명확하게 미국에만 국한된 개념으로서, 전 세계의 다양한 민족적

투쟁을 미국 역사와 사회 갈등을 이렇게 형성한 범주로 환원하는 경향

이 있다. 유대인의 투쟁, 따라서 1920년대, 30년대, 40년대의 프랑크

푸르트학파의 유대인 회원들의 투쟁은 미국 정치를 지배하는 인종 억

압의 서사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학파와 이후의 비판 이론가 사이에는 긍정적인

연결고리도 있다. 잘 알려진 인종 운동가이자 비판적 인종 이론의 동

조자 안젤라 데이비스는 마르쿠제의 제자였다. 탈식민주의 연구의 대

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게오르크 루카치나 아도르노 같은 인물의 작품

을 깊이 탐독했다. 그리고 프란츠 파농은 프랑크푸르트에서 공부하지

는 않았으나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속한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날의 비판적 인종 이론이 초기 프랑크푸르트 이론

가들이 주장한 것과 같은 광범위한 철학적 가정, 예를 들어, 문화의 사

회적 구성에 대한 인식, 사회 체제, 계층 및 범주를 “자연스러운 것으

로 만드는” 이념의 조작적 성격, 이성( 및 지식 ) 이 어떻게 이해되고 생산

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있어 권력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등에 어떻게

기반을 두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그런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찾을 필요

는 없다. 우리는 이런 범주에 자본주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일부일

처제 핵가족, 가부장제, 전통 종교 등 공통으로 공유되는 여러 중요한

논쟁의 대상을 추가할 수 있다.

나는 이런 각 영역에서 비판 이론의 기본 논리를 초기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연구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게임의 기본 규칙은 거기서

확립되었다. 그렇다고 이후의 이론가들이 중요한 공헌을 하지 않았다

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주디스 버틀러 같은 일부 후기 이론

가들은 궁극적으로 게오르크 헤겔의 연구에 뿌리를 둔 똑같은 철학적

성찰의 노선에 서 있지만, 다른 이론가들은 모든 전체화 체계를 근본

적으로 거부하는 미셸 푸코의 후기 구조주의라는 매우 다른 원천에서

영감을 얻었다. 헤겔, 마르크스, 프로이트는 초기 프랑크푸르트학파가

그런 비평의 본보기로 삼은 인물로서, 세계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과

이해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8) 그렇더라도 두 흐름 사이에는 호르크하

이머와 그의 동료들에 대한 연구가 비판 이론의 모든 분파의 관심사와 중요성에 대해 깨달음을 줄 수 있을 만큼 유사성이 있다. 결국 프랑크

8)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에 대한 설명과 현대의 자아 개념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이들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나의 다음 저서를 보라. The Rise and Triumph of the Modern Self: Cultural Amnesia, Expressive Individualism and the Road to Sexual Revolution (Wheaton: Crossway, 2020, 『신좌파의 성혁명과 성정치화』, 부흥과개혁사 역간, 2022). 이 맥락에서는 헤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버틀러의 젠 더 이론은 푸코의 이론을 광범위하게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푸르트학파와 푸코의 철학 체계는 모두 합리적 사고와 지식으로 여겨

지는 것을 지배하는 역사적 조건과 사회 구조에 관심을 가졌다. 프랑

크푸르트학파는 허위의식과 이념에 대해, 푸코는 인식과 권력 담론에

대해 말했으나 각각의 요점은 실질적으로 같았는데, 특정 사회에서 참

되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이 본질적이거나 주어지거나 초월적인 방

식으로 “참되거나”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것들은

역사적 상황에 의해 만들어지고 권력의 이해관계에 봉사하는 것들 이다. 따라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답할 때, 두

흐름은 인간 본성에 대한 현대의 이해가 우연적인 것이며 지배적인 이

념의 기능이라고 이해한다는 점에서 서로 상당한 유사성을 공유하는

답변을 제시했다.

또한 초기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철학적 깊이와 정교함이라는 또 다

른 장점이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를 비판적 인종 이론의 배경으로 설

정하려는 시도가 “백인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역

사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이 주장은 또한 역사적인 철학적 현상으로서

의 비판 이론에 대한 성찰을 빈곤하게 만든다. 모든 사조가 그렇듯이, 후대에 새롭게 나타나는 형태는 이전 세대가 직접 씨름했던 것을 기정

사실로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사상 전통의 진정한 의미

를 축소하고, 심원한 비평이 X를 채우는 값싼 진부한 표현으로 단순화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운동의 초기 창시자를 연구한다는

것은 그 사상의 기초를 연구하는 것이며, 따라서 해당 운동이 무엇을

나타내는지를 훨씬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초기 회원들은 서양 철학 전통에 확고한 기반 을 두고 있었다. 이들은 임마누엘 칸트, 요한 피히테, 프리드리히 셸링,

헤겔 등 독일 관념론자들의 저작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이런 철학

적 배경을 바탕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이해했고, 이 전통이 제기하는 다

양한 문제와 질문을 파악하고 있었다. 탈식민주의나 비판적 인종 이론

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이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모순적인

사실이다. 예를 들어, 이들이 모두 신세 지고 있는 역사적 변화나 정치

적 혁명이라는 관념은 이런 서구적 사고의 산물이다. 서구에서 반서구

주의에 대한 지적 표현은 서구의 사고 양식과 정치적 취향에 많은 신

세를 지고 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헤겔이 인종주의자이자 서

구 우월주의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헤겔에 대한 비판 자체는 헤겔적

토대 위에 놓여 있다.

헤겔은 19세기 비판철학의 발전에서 지배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이

점은 마르크스에 대해 논의한 2장에서 살펴보겠다. 사고의 역사적 우

연성에 대한 헤겔의 강조는 자연과 문화 간의 구별과, 사회가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는 사실에 대한 확고한 철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헤겔이

역사의식에 대해 철학적으로 설명했다고 설명할 사람도 있다. 물론 이

것은 현대 담론에서 상식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황이 변한다는 생각, 즉 4세기, 18세기, 19세기를 더 넓은 역사

적 맥락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서로 비교할 수 없다는 생각

을 익히 알고 있다. 그리고 비판적 인종 이론가는 어쩌면 헤겔이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가였을 이런 통찰의 계승자다. 비판적 인종 이론가

중 상당수가 헤겔을 읽지 않았다고 해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헤겔과 그의 후계자들에게 ( 간접적으로라도 ) 빚을

지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비판적 인종 이론가는 자기의 사 고의 계보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이 점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어지는 내용의 대부분은 초기 비판 이론의 기원과 발전에 대한 냉 정한 설명이지만, 여기에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면, 초기 비판 이론 가가 단순히 더 넓은 철학적 전통을 참고해 자신을 정의하는 데 있어 더 자의식적이었을( 종종 더 정교했을 ) 뿐 아니라, 오늘날의 많은 후계자와

계승자보다 훨씬 더 실질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는 게 내 생각

이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말을 인용해 모든 위대한 역사적 사건이 두

번 일어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여기에 헤겔이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깨닫지 못했다는 냉소적인 논평을 덧붙였다. 나는

비판 이론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판 이론의

기원은 나치즘의 부상, 홀로코스트, 20세기에 유럽이 겪은 자해적 공

포를 설명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1950-60년대 민권 운동 이후, 비판적 인종 이론이 미국의 광범위한 문화적 사고방식에서 노예제도

와 짐 크로법의 오랜 영향에 대한 논쟁에 사용되면서 중대한 질문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비판 이론가는 드래그퀸( 여장한 남자 ) 이야기

시간, 선호 대명사 사용, 더 포용적인 오스카 시상식 등을 옹호하는 데

자기 기술을 활용한다. 삶과 죽음의 문제, 인간이 된다는 것과 자유로

워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하려는 진지한 시도로 시작되

어, 심오한 철학을 깊이 끌어들인 치밀한 논문과 두꺼운 저작물을 만

들어 냈던 사상 학파가 서구 자본주의의 치료적 관심사를 ( 종종 X를 통해 )

상당히 깔끔하게 표현하는 관용어로 변질되어, 자기 방종과 조작된 피

해자성에 봉사하는 데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더라도 용서받

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초기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연구 대

상으로 선택한 이유를 정당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무리 비뚤어진

것이었더라도,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단명하는 것에 관심을 둔 사소한

기획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심각하고 파괴적인 순간

중 하나를 이해하려는 진지한 시도였다.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오늘날에도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유추할 수 있었던 대로,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수십 년간 발

전해 온 비판 이론의 관심사, 심지어 푸코가 제시한 것과 같은 문화에

대한 철학적 비판의 다른 요소에서 영감을 받은 관심사에 대해서도 근

본적인 통찰을 준다는 점에서 여전히 관련성이 있다. 그러나 초기 프

랑크푸르트학파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급하게 중요한 질문과 문제를

다루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정치가 양극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우파와 좌파의

유력 인사가 메시아적 인물로 부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과학

과 이성에 근거한 주장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은 문화적 가치와 기대치를 형성하는 데 점점 더 분명하게 관여하고

있다. 상품 소비가 삶의 목적이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이면에는

인간이 된다는 것이 정말 어떤 의미가 있다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에 대한 질문이 숨어 있다. 초기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이 모든 질문과

그 밖의 더 많은 질문에 대해 현대의 계승자들보다 일반적으로 더 심

오한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질문들의 관련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시급한 문제이자 결론에서 다시 다루게 될 주제는 비판

이론이 얼마나 유용한 해답의 원천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먼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접근 방식에 대한 배경과 내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려면 19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 두 명

의 구체적인 사상가, 즉 독일 철학자 G. W. F. 헤겔과 그의 변절한 제

자이자 정치 사상가이자 운동가였던 카를 마르크스의 역할에 대해 논 의해야 한다. 이 두 사람의 공헌을 이해하지 못하면 프랑크푸르트학파 의 공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들의 사상을 개괄적으로 살펴본

비판 이론과 전통 이론을 구별하고, 도구적 이성의 문제와 씨름하고,

성혁명 이론을 개발하고, 현대 매체의 정치적 영향력을 면밀히 조사한

방식을 살필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 문제가 수

면 아래에 놓여 있음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인간 조건에 대한 통찰력 있는 질문을 제기하

고 인간 대상화를 정당하게 우려하면서도, 스스로 제기하는 인간론적

문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변을 제시하지 못한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소외된 개인이 인간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인간이 무엇인

지는 명확하지 않다. 실제로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은 괴테의 위대한

희곡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메피스토펠레스와 비슷한 존재다. 악마

가 파우스트에게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나는 항상 부정하는 영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데, 존재하

는 모든 것은 사라질 수밖에 없고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9)

애석하게도 이것은 비판 이론이 우리 마음속에 남기는 인상이다. 비

판 이론은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것, 즉 상당히 많은 것이 잘못되었다

는 사실은 분명히 인식하지만,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비판 이론은 헤겔적 마르크스주

의자의 경우처럼 인간 본성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포스트모던 비판 이론가의 경우처럼 그것이 궁극적으로 무의미한 질

문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어떤 시각도 제시하지 못한다. 여기에 비극이 있다.

9) Johann Wolfgang von Goethe, Selected Works (New York: Everyman, 2000), 780.

2장 헤겔, 마르크스, 그리고 비판 이론의 기원

서론

오늘날 누군가에게 비판 이론을 언급한다면, 그 이후의 대화는 인종, 섹슈얼리티 또는 젠더 같은 문제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을 것

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비판 이론이 반복하는 주제는 우리 시대 의 정치적·사회적 담론을 지배하는 문제를 정확하게 반영하기 때문

이다.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또한 비판 이론의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기원과 발전에 대한 이해가 거의 또는

전혀 없는 상태에서 논의가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늘날

의 세계는 자의식을 가진 1세대 비판 이론가가 자기 사상을 연마하던

1930년대 독일의 세계가 아니며, 카를 마르크스를 배출한 1840년대 의 독일 철학자 헤겔의 후계자들이 논쟁하는 세계도 아니므로, 이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으로 살펴볼 때 오늘날의 논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게 내 확신

이자 이 책의 기본 주장이다. ( 다른 무엇보다 ) 권력, 의식, 착취, 조작 등의

문제는 마르크스와 그 동료들의 헤겔적 전통을 되돌아보든, 아니면 미

셸 푸코의 후기 구조주의 연구를 되돌아보든 간에 비판 이론가들이 여

러 세대에 걸쳐 흔히 공유하고 있는 주제다. 따라서 비판 이론의 기원

에 대한 지식은 오늘날 비판 이론가의 내적 논리, 대중적 중요성, 정치

적 야망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며 어쩌면 필수적일 수도 있다.

물론 많은 보수 진영에서는 카를 마르크스나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언급하기만 해도 즉각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실

제로 “문화마르크스주의”라는 용어는 비판 이론과 관련해 선호되는

소셜미디어 용어 중 하나가 되었으며, 비판 이론에 반대한다고 확신하

면서도 해당 이론이 주장하는 바를 실제로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들이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 정치적 경멸의 의미로 사용되는 모든

용어( 아마도 “백인 특권”은 좌파와 대응되는 용어일 것이다 ) 와 마찬가지로, 이 용어의

목적은 대화를 촉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대화를 닫는 데 있다. 그렇

지만 이것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시사하는 것도 사실인데, 현대 비

판 이론의 기원이 카를 마르크스의 사상에 있고, 따라서 마르크스에

대한 논의가 광범위한 비판 이론 전통의 토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비판 이론가가 이전의 사고방식에서 등장

했듯이 마르크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문화적 진공 상태에서 등장

한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우리의 이야기는 마르크스 자신이 아니라

마르크스가 긍정적으로 의지한 동시에 어느 정도 반대하기도 했던 철

학자 G. W. F. 헤겔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헤겔의 중요성

헤겔이 이후의 비판 이론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파악하려면 역

사 문제를 다룬 헤겔의 철학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1) 헤겔은 임마누

엘 칸트의 사상이 철학적 논의를 지배하던 시대에 성년이 되었다.

따라서 헤겔 자신의 연구는 아마도 칸트 사후 수십 년간 독일 철학계

에서 계속 진행된 칸트에 대한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형성했을 것이다. 『순수이성비판』( 1781/87 ), 『실천이성비판』( 1788 ), 『판단력 비판』 ( 1790 ) 의 세 권으로 가장 유명한 칸트의 기획은 인간 지식이 가능한 조 건을 제시하려는 시도였다. 칸트가 주장한 핵심은 인간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게 아니라, 인간의 정신이 사물을 알도록 구조화된 방식

에 따라 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책상 위에 있는 램프를 보면 이 램프

는 공간을 점유하고 시간을 통해 지속된다. 칸트는 이런 존재의 측면

인 공간과 시간이 실제로 내 마음속에 존재하며 내가 지각하는 대상을

이해하는 범주라고 주장했다. 이런 것들은 램프 자체의 특성으로 이해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지식은 알 수 있는 것과 내가 인간으로서 사 물을 아는 방식 간의 종합이다.

칸트의 사상은 정신을 핵심으로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후 독일 철학 의 궤도를 설정했으나, 칸트가 가장 중요한 원천이 된 바로 그 사유의

전통, 즉 독일 관념론 안에서 수정과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관념론은

1) 헤겔에 대한 가장 좋은 입문서로는 다음을 보라. Peter Singer, Hegel: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1). 학문적으로 논 의하면서도 매우 읽기 쉬운 작품으로는 다음을 보라. Robert C. Solomon, In the Spirit of Hegel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3). 초기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대한 헤겔의 영향을 요약적으로 논의하는 작품으로는 다음을 보라. James Gordon Finlayson, “Hegel and the Frankfurt School,” in Dean Moyar, ed., TheOxfordCompaniontoHegel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7), 718–742.

개인의 사고방식에 대한 집착을 특징으로 한다. 관념론자는 철학을 앎

의 주체의 지적 영역, 즉 “앎”을 행하는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었다고

말할 수 있다.

비판 이론의 역사에서 헤겔이 독일 관념론에 가장 크게 공헌한 것은

인간의 사고방식이 시간에 걸쳐 변화한다는 통찰이었다. 칸트의 철학

은 정신의 구조가 어떻게 세계에 대한 지식을 형성하는지를 훌륭하게

설명했다. 앎의 행위에서 개별 주체의 역할이 핵심이었다. 장미색 안

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모든 것을 장밋빛으로 보는 것처

럼, 칸트도 인식 주체의 정신이 작동하는 범주가 지식에 결정적인 영

향을 미친다고 이해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간의 정신이 지각한 자료를 정신 자체의 구조에 맞게 조직화

할 때만 비로소 세계를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칸트가 크게 다루지 않은

한 가지는 역사적 과정이 사고의 본질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에 대한 문제였다. 칸트에게 있어 정신이 사물을 인식하는 범주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으므로, 고대 아테네인과 18세기 프로이센

인이 사물을 다르게 인식했는지에 대한 질문은 거의 또는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에 반해, 헤겔은 인간 사고의 역사적 차원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헤겔은 남성과 여성이 사고하고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이 시대와 장소

에 따라 변화한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그리고 이런 통찰에는 이후에

등장한 비판 이론의 핵심 중 하나가 담겨 있다. 테오도르 아도르노처

럼 헤겔에 기반을 둔 비판 이론가도 어떤 의미에서는 칸트와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즉 지식이 어떤 조건에서 가능한가라는 것 이다. 그러나

구조에서 눈을 돌려 개인이 살고 있고 “앎”이 발생하는 사회의 우연적 구조로 질문을 옮 긴다. 따라서 비판 이론가에게는 지식을 구성하는 것이 사회적·문화

적 조건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따라서 칸트의 표현을 빌리면 이성 비

판은 필연적으로 사회 비판이다.

헤겔은 이런 발전의 핵심 인물이다. 헤겔은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

식도 역사와 사회에서 주체가 처한 위치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인간의 사고를 상대화했다. 고대 아테네인, 중세 유럽

기사, 19세기 프로이센 상인은 시간, 공간 등의 기본적인 칸트식의 인

식론적 범주가 인간 정신의 상수로 남아 있더라도 모두 서로 다른 방

식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헤겔의 『역사철학 강의』에 가장 이해하기 쉽

게 표현되어 있다.2) 이 작품에서 헤겔은 보편적 자유의 개념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등장했는지를 추적한다. 예를 들어, 중국과 인도 등의

동양에는 전제주의가 있었다. 통치자, 즉 황제 한 사람만이 자유를 누

렸다. 그 후 그리스와 고대 로마에서는 자유가 인류의 일부, 즉 소수에

게만 속한다는 의식이 생겨났다. 끝으로, 게르만 땅에서 기독교의 영

향 덕분에 모든 인간은 자유롭다는 생각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시대

마다 사고방식이 실제로 남성과 여성의 삶을 형성했다. 따라서 생각이

바뀌어야만 인류가 궁극적으로 해방될 수 있었다.

여기서 두 가지가 이후에 등장한 비판 이론에서 매우 중요하다. 첫

째,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을 자연과 분리하는 역사적 과정의 중

요성이 있다. 역사는 존재의 이야기가 아닌 생성의 이야기다. 역사는

정적인 게 아니라 동적인 성격을 띤다. 헤겔은 특정 시점에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역사적 과정의 결과일 뿐이지, 상황이 필연적으로 그래야 만 하는 방식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고 이해했다. 중국에는 보편적 자 유의 관행이 없었지만, 이런 관행이 없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문화사 속에서 중국이 놓여 있는 위치의 결과였다. 따라서 자유라는

2) G. W. F. Hegel, Lectures on the Philosophy of History, trans. Ruben Alvarado (Aalten, Netherlands: Wordbridge, 2011).

개념은 그 자체가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며 그렇게 이해되어야 한다.

자유는 추상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서양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전통적 자유 개념을 사용하면, 우리는 무언가로부터 자유롭거나 무언

가를 위해 자유로울 수 있다. 따라서 나는 감금되어 있지 않아 이동에

근본적인 제약이 없다는 의미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리고 미국에

거주하는 시민이라면 헌법에 따라 부여된 권리가 있다는 의미에서 투

표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내가 자유롭다고 말하고 그 이상 말하지 않

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자유는 내가 살고 있는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결정되는 상대적인 용어다. 따라서 맥락은 내가 누구인지에 깊은 영향

을 미치는데, 나 자신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범주이

기 때문이다.

여기서 헤겔 사상에 내포된 중요한 의미 중 하나가 분명해지는데,

인간의 사고, 신념, 행동이 역사적 과정에 따라 상대화된다는 것이다.

시간의 어느 순간에 이루어지는 어느 특정 사회의 사고와 행동은 초월

적인 인간 본성의 필수적인 기능이 아니라 우연적인 것이다. 신을 믿

거나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다. 자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

고 과대평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말을 타거나 자동차를 운전

할 수도 있다. 영국인이 차를 선호하는 것은 초월적인 인간 본성의 본

질적인 기능이 아니라 그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결과며, 미국

여성이 커피를 선호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느 선호도 모두 진정한

인간성에 대한 진정한 시각을 나타내는 게 아니며, 그보다 각각 특정

사회의 특정 인간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이런 통찰은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모든 인류에게 어떻 게든 자연스럽고 규범적인 것이며, 따라서 우리가 따르는 규범과 다른

것은 진정으로 인간이 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에서 벗어난 것으로 여

겨야 한다는 인간의 일반적인 직관에 반하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의

사고와 행동은 역사와 문화의 제약을 받는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비판 이론가에게도 중요한 의미가 있을 텐데, 비판 이론가는 사회가

그 자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즉 당연한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을 비

판하는 것을 자기 임무로 이해할 뿐 아니라, 또한 문화가 그 자체를 이

해하는 방식의 밑바탕이 되는 교묘한 권력 게임이라고 이해하는 것을 폭로하기 위해 압박할 것이다.

물론 헤겔이 역사가 중요하고 행동과 사고의 양식이 시간에 따라 변 화한다는 사실만 지적했더라도 사상사에 유용한 공헌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헤겔은 마르크스 및 그에 따른 비판 이론의 발판을 마련한 두

번째 중요한 공헌을 했다. 헤겔은 역사를 정적인 실체가 아닌 지속적인

생성의 과정으로 이해했을 뿐 아니라, 이런 생성이 갈등에 뿌리를 두는

것으로, 또는 아마도 덜 편향된 용어를 사용하면, 변증법적인 것으로 이

해했다

헤겔이 이 개념을 표현한 가장 유명한 구절은 자의식의 본질과 기원

을 설명하려 시도한 방대하고 복잡한 작품인 그의 저서 『정신 현상학』

에서 주인과 종의 이야기에 나온다.3) 주인과 종의 구절은 헤겔의 주장

에서 핵심이었다. 이 구절은 또한 1930년대 러시아 이민자 사상가 알

렉상드르 코제브가 행한 일련의 강연 주제였으므로 20세기 유럽 철학 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강연에는 이후 수십 년간 프랑스 철학을 형성 한 인물들이 대거 참석했는데, 그중에서도 장 폴 사르트르, 모리스 메 를로퐁티, 자크 라캉 등이 대표적이다.4) 주인과 종의 구절은 사고 실험이다. 이 구절의 배경에는 한 존재가

3) G. W. F. Hegel, The Phenomenology of Spirit, trans. Michael Inwood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8), 76–82.

4) 다음을 보라. Alexander Kojève, Introduction to the Reading of Hegel:Lectures on the Phenomenology of Spirit, ed. Allan Bloom (New York: Cornell, 1980).

자의식을 가지려면 자의식을 가진 다른 존재에 의해 인식되어야 한다

는 헤겔의 신념이 있다. 여기서 인식된다는 용어는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이웃이나 동료로 인식할 수 있는 상식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

보다 이 용어는 특별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 인식된다는 의미가 더 강

하다. 예를 들어, 영국 국왕에게서 기사 작위를 받은 영국인은 이로써

영국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 인식된다. 반대로 다른 사

람에게 무시당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자신보다 가치가 낮다고 생각하

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영향을 미친다. 왕에게서 칭호를 받으면 중요성과 만족

감을 느끼게 되고, 누군가로부터 개 취급을 받으면 분노, 나약함, 부적

절함을 느끼게 된다.

헤겔은 주인-종 변증법을 통해 자의식에 대한 이런 이해를 설명

한다. 두 사람이 평원에서 만난다. 각자는 상대방이 자신을 우월한 존

재로 인식하기를 바라는 욕망이 있고 그래서 싸움이 벌어진다. 물론 한쪽이 다른 쪽을 죽임으로써 상대방을 완전히 통제하고 상대방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궁극적인 우월성을 입증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이다. 하지만 패자가 죽으면 승자를 인정할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

는다는 점에서 이것은 자기 패배적일 수 있다. 승자가 자신을 승자로

알려면 패자가 자신을 승자로 인정할 수 있도록 살아남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승자는 패자를 자신에게 종속시키고 그를 종으로 삼아

자신을 주군으로 만드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 상황은 완전히 만족스럽

거나 안정적이지 않다. 첫째, 종의 인정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이

것은 왕이나 대통령에게서 사회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는다는 것이 얼

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왕이나 대통령의

고귀한 지위가 그런 인정을 인상적이고 만족스럽게 만드는 것이기 때 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열등하다고 여기는 누군가에게서 중요하다고

인정받는 것은 우리를 인정하는 사람의 지위가 낮아서 그다지 만족스

럽지 않다.

둘째, 이 이야기에는 역설적인 반전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인은

종이 자신을 섬기고, 자신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자기의 일정을 정

하고, 자기의 정원을 가꾸고, 자기 명령에 따라 다른 일을 수행하면서

종의 인정을 받으므로 좀 나태해진다. 그러나 종은 이런 일을 하는 동

안 이런 방식으로 주인을 인정하면서 어떤 의미에서 주인보다 인간으

로서 자신을 더 강력하고 유능하게 만드는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 그

래서 어느 순간 주인은 종에게 의존하게 되는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

이 사고 실험은 사소해 보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관련된 심

오한 진실을 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이 우리를

대하는( 즉, 인식하는 ) 태도에 크게 영향을 받는 방식으로 자신을 생각하고

실제로 행동한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교사와 학생, 고용주와 직

원 등 모든 인간관계에서 인간의 자기 이해와 인간 행동은 위계, 기대, 욕망, 권력을 둘러싼 협상에 따른 관계의 결과물이다. 나는 다른 사람

들과의 관계와 그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에 따라 누구인지가 결정된다.

누군가가 나를 존중해 줄 때 나는 자신에 대해 기분이 좋아진다. 누군

가가 나를 경멸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그리고 지속적인 관계에는 변화 도 수반된다. 결혼식 날의 신랑과 신부는 결혼 25주년이 된 지금과 같

은 사람이 아니다. 이들은 함께 살면서 개인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변 화한다. 부부가 함께 삶을 공유하고, 자녀를 낳고, 인생의 기복에 직면 하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의식이 재구성되는 관계에는 역동성이 있다. 그들이 서로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 그들이 행동하는 방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두 바뀔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여기서 좀 더 나갈 수도 있다. 헤겔 사상의 핵심은 자유라는

관념과 자유가 역사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방식이다. 주인과 종을 생각

해 보라. 종은 주인을 주인으로 인정하지만, 자유의지나 자진해 그렇

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종은 주인이 더 강하고 자신에게 이것을 요

구하므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관계는 상당한 긴장을 수

반하는 관계다. 종은 이것이 자기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므로 강제

로 인정하기를 싫어하지만, 주인은 강제로 인정하는 것이 자유롭게 인

정하는 것만큼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결혼한 부부의 사례를

생각해 보라. 각 배우자는 상대방이 “사랑해”라는 표현을 자유롭고 자

연스럽게 사용하길 바라지만, 상대방이 이런 표현을 마지못해 또는 두

려움 때문에 사용한다고 의심한다면, 이것은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결

혼 관계가 아니라 역기능 또는 결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를 반영

하는 것이다. 주인과 종의 관계는 힘의 불균형과 지속적인 투쟁이 특

징인 후자의 관계와 같다.

이후의 비판 이론에 친숙한 사람이라면 여기서 헤겔과의 연관성은

분명할 것이다. 자의식은 우리가 처한 사회적 환경에 따라 형성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우리에게 정해진 관계와 역할의 구조망에

따라 정의된다. 따라서 중요한 질문은 이런 관계, 제도, 공동 관행, 기

대가 우리의 번영을 방해하는 역할과 정체성을 어느 정도로 강요하느

냐는 것이다.

또한 진정한 인간임을 인식하는 데 있어 자유의 중요성도 있는데, 이것은 주인과 종의 구절이 강조하고 실제로 개인적인 상호작용과 투

쟁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사회적 위계는 권력관계를

구성하며, 따라서 이런 위계가 만들고 강제하는 정체성은 그 자체가 권력의 기능이자 권력과 위계를 표현할 수 있는 양식이다. 이런 문제

는 훨씬 이후의 비판 이론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데, 권력 및 권력이

사회 구조와 정체성을 조작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은 헤

겔-마르크스주의와 후기 구조주의 모두를 포함하는 비판 이론의 지형

에서 항상 등장하는 주제다. 남성이 여성에게 기대하는 행동, 예를 들

어 특정 방식으로 옷을 입거나 가정과 사회 전반에서 특정 역할을 하

는 등의 행동에서 벗어나려는 욕구가 있는 급진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

해 보라. 이것은 남성이 여성을 인식하는 기준과 남성이 여성에게 요

구하는 인식에 대한 논쟁이다. 그리고 비판 이론가에게 있어 인식의

이런 조건은 그런 인식을 형성하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권력관계와

분리될 수 없다. 인종도 마찬가지다. 특정 인종 집단의 구성원이 어떻

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정관념은 헤겔의 인식 개념에서 그 유사 성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인간 자의식에 대한 헤겔의 역사주의적 관심은 일반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발전과 특히 비판 이론의 기초가 된다. 헤겔은 인간의

사고, 제도, 행동의 측면에서 인간 삶의 우연성을 강조함으로써 이런 것들을 비판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그리고 주인과 종의 구절에

서 우리는 권력관계가 이런 역학 관계의 많은 부분을 제공하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헤겔의 사상이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착 취하고 조종하는 사회적 관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고’ 그럼으로

써 절대화하려는 시도를 폭로하는 혁명적인 정치적 계획에 활용되

리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카를 마르크스 카를 마르크스는 비판 이론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5) 첫째,

5) 마르크스에 대한 좋은 입문서로는 다음을 보라. Peter Singer, Marx:AVeryShort Introduct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8). 마르크스에 대한 문헌 은 어쩔 수 없이 방대할 뿐 아니라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다. ‘최신

혁명적 변화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철학에 대한 마르크스의 이상은 프

랑크푸르트학파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이상이다. 둘째, 마르크스가

헤겔을 비판적으로 전유한 방식은 이후의 비판 이론가들이 전개하게

될 소외, 관념론 같은 주요 개념의 발전이 관련된다. 셋째, 인간 본성이

역사에서 추상화될 수 있는 본질을 소유한다는 개념에 대한 마르크스

의 거부는 비판 이론적 접근의 중심이 되는 반본질주의를 형성했다.

끝으로, 헤겔에 대한 마르크스 자신의 비판은 이후의 비판 이론가에게

표준이 될 작업의 형태를 중요한 방식으로 예시한다.6)

마르크스의 철학적 배경은 독일 관념론이다. 독일 관념론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임마누엘 칸트의 작업을 계기로 발전한 철학의 한

유파다. 칸트는 어떤 것에 대한 지식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관심을 가

졌는데, 1장에서 언급한 대로 인간이 사물을 그 자체로 아는 게 아

니라, 인간의 정신이 그 자체의 범주 구성 원칙에 따라 지각하는 대로

안다는 답을 내렸다. 따라서 관념론은 칸트에게서부터 이어지는 광범

위한 전통으로서, 인식 주체로서의 인간과 인식 대상과의 관계에 몰두

했다. 더 간단히 말하면, 관념론은 인간의 정신과 인간의 정신이 지각 하는 세계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연구’를 보여 주는 좋은 논설집으로는 다음을 보라. Matt Vidal, Tony Smith, Tomás Rotta, and Paul Prew, The Oxford Handbook of Karl Marx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9).

6) 마르크스와 헤겔의 연관성을 요약하는 내용은 다음을 보라. Shuangli Zhang, Marx and Hegel in Moyar, 647–669. 더 상세한 논의는 다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 Sidney Hook, FromHegeltoMarx:StudiesintheIntellectualDevelopment of Karl Marx (Ann Arbor: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966); David McLellan, The Young Hegelians and Karl Marx (London: MacMillan, 1969); Michael Heinrich, The Life of Marx and the Development of His Work: volume I:1818–41 Karl Marx and the Birth of Modern Society, trans. Alexander Locascio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2019). 이 책은 기획 3부작의 첫 번째 권이다. 2권에서는 헤겔에 대한 마르크스의 급진적 전유와 그에 대 한 반응을 볼 수 있는 1840년대의 중요한 시기에 대한 논의가 포함된다.

마르크스에게 더 직접적으로 중요한 것은 헤겔이 독일 관념론에 공

헌한 측면이다. 헤겔에게 있어 역사는 역동적인 과정인데, 하나 이상

의 관념이나 개념이 고정되어 불변의 진리로 여겨지고, 이런 관념이나

개념을 반성할수록 그 안에 모순이 나타나며, 이런 모순이 해당 관념

과 그 관념의 부정을 모두 포용하는 상위 범주로 이동하는 세 단계로

구성된 지속적인 변증법적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헤겔의 산문은 파악

하기 쉽지 않아 이 개념이 좀 알기 어렵게 들리지만, 헤겔이 말하려는

취지는 하나의 예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자유가 모든 개인이 원할 때

마다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 공동체를 상

상해 보라. 그 결과 많은 사람( 예. 약자 ) 이 원하는 바를 할 수 없는 완전 한 무정부 상태가 될 수 있다는 문제가 곧바로 드러난다. 그래서 반발

이 일어나고 독재자가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가 되면 자

유는 사실상 소멸한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그래서 인간이 공동체를 어

떻게 조직해야 하는지에 대한 세 번째 형태의 사고가 대의제 민주주

의라는 형태로 등장한다. 여기에는 자유라는 관념, 자유를 부정하는

전제주의, 그리고 이 갈등을 해결하는 대의민주주의가 있다. 마르크스

에게 영향을 준 것은 이런 종류의 역동성이지만, 마르크스는 이 운동

을 관념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 특히 인간과 생산 수단, 즉 원료를 소

유하는 사람, 원료를 제품으로 만드는 공장을 소유하는 사람, 원료를

제품으로 바꾸는 사람, 그리고 그 제품을 소유하는 사람이 연결되는

방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

마르크스와 이런 철학적 배경과의 관계는 중요한데, 마르크스는 독

일 관념론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동시에 이것을 강력하고 정치적인 방 식으로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공헌에서 핵심은 정치적 혁

명을 달성하기 위해 철학을 강조한 것이다. 런던의 하이게이트 묘지를 방문하면 마르크스의 무덤을 표시하는 대리석 비석에 새겨진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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