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사
(‘히스토리아 살루티스’)
단원 A 성령과
1장 성령론 서론
성경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말씀 중 하나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제
자들에게 하신 말씀 속에 나온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
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7 ). 주 예수 그리스
도가 우리를 떠나가는 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유익”이 될 수 있다는 것
인가? 그리스도는 “진리의 영”( 14:16-17 ) 의 사역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
하신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하신 중보자
인 그리스도를 소중히 여긴다면( 6절; 딤전 2:5 ), 성령의 사역을 소중히 여
기게 될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 1703-1758년 ) 는 “성령의 내주와 감화와 열매는 모든
은혜, 거룩함, 위로, 기쁨의 총합, 한마디로 말해 그리스도가 이 세상
에서 사람들을 위해 값 주고 사신 모든 영적인 복의 총합이고, 그리스
도가 내세에서 그들을 위해 값 주고 사신 모든 완전함, 영광, 영원한 기
쁨의 총합이다”라고 말했다.1 )
하지만 성령론을 연구하는 것은 특별한 도전이다. 싱클레어 퍼거슨
은 “성령의 사역은 인정되어 왔지만, 성령 자신은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1 ) Jonathan Edwards, AnHumbleAttempt, in WJE, 5:341.
36 개혁파 조직신학 5
여전히 신적 존재의 익명의 얼굴 없는 측면이다”라고 말한다.2 ) 그 이
유는 부분적으로는 성경은 성령에 대해 길게 다루는 경우가 드물고, 성
령에 대한 대부분의 언급은 다른 교리를 다루는 과정에서 지나가는 말
로 나오기 때문이다.3 ) 옛사람들이 성령을 가리킬 때 “거룩한 유령”( Holy Ghost ) 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이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Holy Ghost”는 유령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거룩한 영”( Holy Spirit ) 을 다른
식으로 표현한 것인데도, 사람들은 이 표현을 유령과 연결시켜 걸려 넘
어지기 때문이다.4 )
하지만 이런 난점들이 있다고 해서 우리는 성령의 역사와 구속의 적
용을 연구하는 중요한 과제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이 과제는 우리의
최고의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난점
들을 만났을 때 도리어 힘을 내어, 확고한 결단, 주의 깊고 신중한 사고, 끈질긴 인내,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 우리의 지성을 조명해 주시라
고 성령께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을 통해 이 중요한 작업을 해내겠다는
결의를 다져야 한다( 시 119:18; 엡 1:17-18 ). 성령을 성공적으로 연구해 나가
려면, 우리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다. 이 책을 더 읽어 나가기 전
에 이제 잠시 멈추고, 성령께서 자신의 말씀으로 당신을 모든 진리 가
운데로 인도해 주시라고 기도하라.
성령론에 대한 반론
성령을 성경적이고 신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에 대해 몇 가지 반론이
2 ) Sinclair B. Ferguson, The Holy Spirit, Contours in Christian Theology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6), 12.
3 ) Millard J. Erickson, Christian Theology, 3rd ed.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13), 773.
4 ) “Ghost”는 독일어 어근(Geist, ‘가이스트’)과 관련되어 있고, “spirit”는 라틴어(spiritus, ‘스피 리투스’)에서 왔지만, 뜻은 같다.
1장 │ 성령론 서론 37
제기될 수 있다. 그런 반론들 중 좀 더 흔히 제기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반론 1: 우리는 성령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대답은 이러하다. 우리도 단순한 이해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성령의 은혜를 구하고 온 마음으로 주를 섬겨야 한다는 것에 동
의한다. 하지만 성령을 연구하지 않으면, 한 개인은 성령이 아닌 다른 “영”으로 충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일 4:1-2 ). 사도 바울은 교회가 속아
넘어가서 “다른 영”을 받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데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고후 11:2-4 ). 따라서 우리는 참된 하나님의 영인 성령과 성
령의 사역을 알아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 하나님의 영을 아는 것은 교
회에 생명을 주시는 분을 아는 것이다. 제프 토머스는 “모든 회중의 삶
에서 본질적이고 결정적이며 중심적인 요소는……성령의 감동으로 된
말씀을 통해 조명되는 하나님의 영과 그 사역이다”라고 말한다.5 )
반론 2: 성령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행실이 기괴해진다. 우리의 대답
은 하나의 오류에 지나치게 반발해 정반대의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
는 것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 1899-1981년 ) 는 “사람들이 성령론을 소홀히
하는 것은 성령에 대한 거짓되고 그릇되며 과장된 사실을 두려워해 성
령론 전체를 기피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6 ) 성령은 삼위일체 중 한
위격이고, 하나님 말씀이 우리에게 성령에 대해 가르치며, “성령은 구
원을 적용하는 분이어서, 성령에 대한 진리를 아는 것이 실천적으로 대
단히 중요하”므로, 우리는 성령론을 연구해야 한다.7 )
반론 3: 성령론은 그리스도인을 분열시킨다. 우리의 대답은 이러하다.
성령론의 여러 측면은 개혁파 신학자, 루터파, 아르미니우스적인 복음
주의자, 로마 가톨릭, 오순절파, 은사주의자 사이에서 첨예한 쟁점이라
는 것은 우리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적인 변증을 소
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적인 변증은 반드시 필요하기
5 ) Geoffrey Thomas, The Holy Spirit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1), 2.
6 ) Martyn Lloyd-Jones, GreatDoctrinesoftheBible, vol. 2, GodtheHolySpirit (Wheaton, IL: Crossway, 1997, 『성령
7 ) Lloyd-Jones, Great Doctrines of the Bible, 2:6.
개혁파 조직신학 5
38
때 문이다( 딛 1:9; 유 3절 ). 참된 그리스도인 간의 분열을 치유하고 그들을 거 짓 그리스도인과 분리시키는 길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성령에 대한 진
하나님과 놀라운 구원』, 부흥과개혁사 역간,
5.
2007),
리를 배워, 겸손과 사랑과 하나님을 경외함 가운데서 그 진리를 받아들
이는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를 분열시키는 영이 아니다. “한 성
령”이 존재하고, 이 성령은 교회를 한 몸으로 연합시키신다( 고전 12:13; 엡
2:18; 4:4 )
반론 4: 성령을 연구하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진다 . 우리의 대
답은 건전하지 않은 방식으로 성령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예수 그리스
도에게서 멀어질 수 있지만, 성령에 대한 성경적인 교리를 연구하는 것
은 그런 해로운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령은 성자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 오셨다( 요 16:14 ).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므로( 롬 8:9 ), 성령을
연구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다. 리처드 십스( 1577-1635년 ) 는
이렇게 썼다. “성령은 자신의 사역 및 위로와 관련한 모든 것을 그리
스도에게서 가져오고, 그리스도를 모든 것의 본으로 삼는다. 왜냐하
면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신 것처럼 그리스
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8 )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저작으로 유명한 두 명의 개혁파 신학자인
존 오웬( 1616-1683년 ) 과 토머스 굿윈( 1600-1679년 ) 은 성령에 대한 긴 글도
썼다.9 ) 성령론을 소홀히 하는 것은 실제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줄어들
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속한 모든 것은 오직 성령을 통해 우리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성령을 연구하는 것의
8 ) Richard Sibbes, A Description of Christ, in The Works of Richard Sibbes, ed. Alexander B. Grosart, 7 vols. (1862–1864; repr., Edinburgh: Banner of Truth, 1973), 1:18.
9 ) John Owen, Pneumatologia, in The Works of John Owen, ed. William H. Goold, 16 vols. (1850–1853; repr., Edinburgh: Banner of Truth, 1965), vols. 3–4; Thomas Goodwin, The Work of the Holy Ghost in Our Salvation, in The Works of Thomas Goodwin, 12 vols. (1861–1866; repr.,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06), vol. 6.
39
1장 │ 성령론 서론
중요성 하나님 말씀은 성령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하므로, 사실 그것으로 충분
하다. 우리가 진리를 연구하는 데 필요로 하는 유일한 근거는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 속에서 그 진리를 가르치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주제를 깊이 연구하려는 우리 동기를 강화하기 위해 성령을 연구하
는 것이 아주 중요함을 보여 주는 여러 이유를 고찰해 보자.
1. 성령을 아는 것은 우리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 성령은 하나님이
시다. 따라서 성령의 위격과 사역을 연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보다 더 귀한 것도 없고, 사
람을 변화시키거나 생명을 주는 것도 없다( 렘 9:23-24; 31:33-34; 요 17:3 ). 특
히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번째 위격이고, 특히 우리를 이끌어
성부 및 성자와 교제하게 하는 역할을 하신다( 고후 13:14; 갈 4:4-6 ). 밀러드
에릭슨은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인격적인 존재가 되
게 해 주는 지점이다”라고 쓴다.10 ) 그리스도는 승천하시면서, 자신의
제자들을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와서 성부와 함께 그
들 안에 거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는데, 이 모든 약속은 성령을 통해
이루어진다( 요 14:16-23 ). 웨인 그루뎀은 “성령의 사역은 이 세상에, 특히 교회에 하나님의 능동적인 임재를 드러내는 데 있다”고 말한다.11 )
2. 성령을 아는 것은 우리의 구원을 아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지
혜를 발견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구원을 계시하신다( 고전
2:9-16 ).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지만,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죄인을 거듭나게 하여 하나님 나라로 들
어가게 하신다( 요 3:3-5 ). 성령 없이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시라 고백할
수 없다( 고전 12:3 ). 그래서 니케아 신조에서 교회는 성령을 “생명의 주이
자 수여자”라고 고백한다.12 ) 성부가 특히 구원을
10 ) Erickson, Christian Theology, 772–773.
11 ) Wayne Grudem, Systematic Theology: An Introduction to Biblical Doctrine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4), 634.
12 ) The Three Forms of Unity, 7.
13 ) William Ames, The Marrow of Theology, trans. John D. Eusden (Grand Rapids, MI: Baker, 1968), 1.14.1–2 (149).
개혁파 조직신학 5
40
예정하셨고, 성자가 구원을 성취하셨듯, 성령은 구원을 사람들의 삶에 적용하신다.13 ) 웨스 트민스터 소교리문답( 29문 ) 에서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령이 그리스
1:11-12 ) 그 구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고 말한다.14 ) 성령론은 하나님이
구원하시는지를
았는지를 아는 데 아주 중요하다.
3. 성령을 아는 것은 거룩함 가운데서 영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인 성
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성화는 “성령의” 일이다( 살후 2:13; 벧전 1:2 ). 윌리
엄 퍼킨스( 1558-1602년 ) 는 “성부는 성자와 성령을 통해 거룩하게 하시고, 성자는 성령을 통해 성부로부터 거룩하게 하시며, 성령은 직접 자신을
통해 성부와 성자로부터 거룩하게 하신다”고 말했다.15 ) 오웬은 성화
는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본성 전체를 새롭게 하
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16 ) 그는 “거룩
함을 증가시키는 이 모든 것은 성령 자신의 사역이다”라고 지적했다.17 )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거룩하게 되고( 고전 3:16-17; 6:19-20 ), 죄를 이기
며( 갈 5:16 ) , 기도하고( 롬 8:15; 엡 6:18 ) , 조명을 받으며( 엡 1:17-20 ) , 그리스
도의 영광으로 변화되고( 고후 3:17-18 ),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 빌 1:19-20 ) 은 성령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
든 각각의 측면을 열거한다면, 각각의 항목 옆에 ‘성령을 통해’라는 말
을 덧붙일 수 있다.
4. 성령을 아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균형을 잡아 치우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설교와 체험 중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기 쉽다. 우리는 교리에 대한 지식과 영적인 삶의 체험 간
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이것은 말씀과 성령의 균형이다.
14 ) Reformed Confessions, 4:357.
15 ) William Perkins, An Exposition of the Symbol, in The Works of William Perkins, series eds. Joel R. Beeke and Derek W. H. Thomas, 10 vols.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2020), 5:305.
16 ) Owen, Pneumatologia, in Works, 3:386.
17 ) Owen, Pneumatologia, in Works, 3:393.
1장 │ 성령론 서론 41
도가 값 주고 사신 구속을 우리에게 유효하게 적용하시는 것을 통해( 요
죄인을 어떻게
알고, 당신이 구원을 받았는지 받지 않
말 씀이나 성령 중 어느 한쪽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냉랭한 지성주의나 혼 란스러운 감정주의를 초래해, 결국 사람들은 마음이 완악해져 회의주 의로 빠져들 수 있다. 판 헨데런(
) 과 펠러마( 1929-2019년 ) 는
1923-2004년
이렇게 썼다. “말씀은 성령과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말씀은
성령의 말씀이다. 성령은 말씀 없이 오지 않으신다. 성령은 말씀의 영
이다. 누군가가 말씀을 믿게 되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성령이 역사해
그 사람의 마음을 열어 말씀을 받아들이게 한 덕분이다.”18 )
5. 성령을 아는 것은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
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마 28:19 ) 세례를 받듯, 우리의 예배
도 삼위일체적인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세 위격으로 된 한 하나님
과 한 하나님 안에 계시는 세 위격을 예배한다.19 ) 토머스 왓슨( 약 16201686년 ) 은 이렇게 썼다.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는 질서가 있지만, 등급은
없다……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위격에 동등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20 )
또한 성령의 사역을 제대로 아는 것은 예배에 필수적이다. 옛 언약 아
래에서 하나님 백성은 복잡한 제의 체계를 사용해 물리적인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고, 이 제의 체계를 통해 성령은 그리스도를 계시하셨다( 히
10:1 ). 새 언약에서는 외적인 제의는 사라지고 예배는 단순화되어, 교회
는 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부에게 나아가 예배를 드
린다( 엡 2:18 ). 교회가 예배자들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은 우리의 개인
적이고 인종적이며 사회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성령이 우리 모두를 하
나 됨과 평안 속에서 한데 묶고 계시기 때문이다( 고전 12:12-13; 엡 4:3-4 ).
성령은 우리를 진리와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시므로, 우리는 시와 찬송
과 신령한 노래로 주께 노래한다( 엡 5:18-20 ). 따라서
18 ) J. van Genderen and W. H. Velema, Concise Reformed Dogmatics, trans. Gerrit Bilkes and Ed M. van der Maas (Phillipsburg, NJ: P&R, 2008), 767.
19 ) Perkins, AnExpositionoftheSymbol, in Works, 5:322.
20 ) Thomas Watson, A Body of Divinity (Edinburgh: Banner of Truth, 1965), 112.
21 ) The Three Forms of Unity, 5.
42 개혁파
5
조직신학
성령을 아는 지식 은 예배의 단순성, 일치성, 영적인 성격을 지켜 준다. 6. 성령을 아는 것은 역사 속의 기독교 정통 신앙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교회가 시작된 때부터 그리스도인은 기본적인 바른 교리( orthodoxy ) 를 소중히 여겨 신조를 통해 고백해 왔다. 사도신경에서 그리스도인은 “나 는 성령을 믿는다”( “성령을 믿사오며” ) 고 고백한다.21 ) 성령론은 성경에 뿌
개혁파
의 성령론, 한층 더 구체적으로는 청교도의 성령론이 유일하다”고 말
했다.23 ) 따라서 성령론을 소홀히 하는 것은 우리의 기독교적이고 개혁
파적인 유산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7. 성령을 아는 것은 우리의 문화를 상대로 말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
는 것이다. 과학은 우리에게 많은 기술을 제공해 주었지만, 삶의 가장
깊은 문제들에 대한 대답은 전혀 제공해 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무엇
인가 초월적이고 영광스러운 것을 체험하고 싶어 하지만, 우리의 나라
들은 도덕적인 기준이나 신적인 지혜를 떠나 정처 없이 표류하고 있다.
성령론은 기독교가 참된 지식과 진정한 영적 체험을 제공해 준다는 것
을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게 우리를 준비시킨다. 에릭슨이 썼듯, “체
험을 강조하는 문화에서 우리는 일차적으로 성령의 사역을 통해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느끼게 되고, 그리스도인의 삶은 특별한 유형성
을 부여받게 된다.”24 ) 사람들은 기독교를 단순한 사회 제도나 신념 체
계나 일련의 행위 체계로 보는 한, 기독교의 유일무이성을 알 수 없다.
조지 스미턴( 1814-1889년 ) 은 이렇게 썼다.
기독교가 살아 있는 능력이 되었던 곳마다 일관되게 성령론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속죄
22 ) Benjamin B. Warfield, Calvin and Calvinism, in TheWorksofBenjaminB.Warfield, 10 vols. (Bellingham, WA: Logos Research Systems, 2008), 5:21.
23 ) Benjamin B. Warfield, The Work of the Holy Spirit, trans. Henri de Vries (Grand Rapids, MI: Eerdmans, 1946), xxxiii에
24 ) Erickson, Christian Theology, 773.
1장 │ 성령론 서론 43
두고, 초기 교회에서 발전되었으며,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새롭
되어 한층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 워필드( 1851-1921년 ) 는 존 칼
( 1509-1564년 ) 을 “성령의 신학자”로 불렀다.22 ) 워필드는 “성령의 사역 에 대한 발전된 교리로는 종교개혁의 성령론, 더 구체적으로는
리를
게
빈
및 칭의와 마찬가지로 교회를 서게 하 기도 하고 넘어지게도 하는 신조로 여겨졌다. 인간에게 체험되 는 것으로서의 기독교의 독특한 특징은 성령의 사역이다. 성령 의 사역은 기독교를 모든 철학적 사변 위로 아주 높게 들어올릴
대한 아브라함 카이퍼의 해제.
뿐 아니라, 다른 온갖 형태의 종교 위로 아주 높게 들어올린다.25 ) 8. 성령을 아는 것은 영적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
은 영적인 원수와의 싸움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싸움은 우리의 초자연
적인 동맹군인 성령을 의지할 때만 이길 수 있다. 그리스도가 광야에
서 마귀와 직접 맞붙어 싸우셨을 때도, 예수님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
은”( 눅 4:1 ) 사람이셨으므로 이길 수 있으셨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둠의
세력과의 싸움에서 우리의 중요한 공격용 무기는 “성령의 검 곧 하나
님의 말씀”( 엡 6:17 ) 이고, 그리스도도 바로 그 무기를 사용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무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18절 ) 것이다. 이 세상
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하려는 악한 영들로 가득하지만, 요한은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
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요일 4:4 ) 고 썼다.
9. 성령을 아는 것은 우리의 의존 관계를 느끼는 것이다. 성령론은 인
간의 무능력과 하나님의 주권으로 가득하다. 여호와 하나님이 스룹바
벨에게 하신 말씀은 지금도 여전히 노력하고 애쓰는 모든 그리스도
인 위에 휘날리는 깃발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
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
니라”( 슥 4:6 ). 주권적 은혜에 대한 교리는 인간의 활동에 능력을 수여하
지만( 빌 2:12-13 ), 하나님에게서 독립하려는 인간의 교만한 영의 욕망을
훼손시킨다. 핑크( 1886-1952년 ) 는 “신앙을 고백한 그리스도인이
25 ) George Smeaton, TheDoctrineoftheHolySpirit, foreword by W. J. Grier (Edinburgh: Banner of Truth, 2016), 1.
26 ) Arthur W. Pink, TheHolySpirit (Grand Rapids, MI: Baker, 1970), 8.
44 개혁파 조직신학 5
하고 있다고 생각해 마음이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교만해져, 하나
안에서 무엇을 행하기로 약 속하셨는지를 진지하게 연구하려 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경고했다.26 ) 이레네오
활동함
가 말했듯 우리는 단지 “마른 흙”
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그리고 자기 백성
( 180년에
)
일 뿐이고, 성령은 “하늘로부터 오는 물……[과] 하나님의 이슬”이므
로,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으려면 반드시 성령이 있어
야 한다.27 ) 존 대그( 1794-1884년 ) 는 이렇게 말했다. “믿는 자는 자신이 누
리는 하나님의 생명과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복이 성령으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제대로 알므로, 이 모든 복을 수여하는 주체이신 성령에
대해 결코 무관심할 수 없다……그래서 믿는 자에게는 성령의 성품과
직임을 연구하는 것은 즐거움의 원천일 것이다.”28 )
10. 성령을 아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삼
위일체적 성격과 구원 계획, 이 두 가지 때문이다. 삼위일체 안에서 성
자와 성령은 위격상으로는 서로 구별되지만, 존재와 활동에서는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성자와 성령은 모든 사역에서 아주 긴밀하게 연합되
어 있으므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주는 영이시니”( 고후 3:17 ) 라
고 쓸 수 있었다. 또한 하나님은 구원 계획과 관련하여 성자가 이루어
놓으신 것을 성령이 오셔서 적용하도록 정해 놓으셨다( 요 16:13-14 ). 성
령의 중요한 사역은 믿는 자를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는 것이다. “주
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고전 6:17 ). 칼빈은 “성령은 그리스도를 우
리와 유효하게 하나 되게 하시는 줄이다”라고 썼다.29 ) 성령 안에서의
이 하나 됨은 우리와 그리스도 간의 인격적 교제의 수단이다. 빌헬무스
아 브라켈( 1635-1711년 ) 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반영해 이렇게 썼다.
“성령은 믿는 자를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은택에
27 ) Irenaeus, Against Heresies, 3.17, in ANF, 1:445.
28 ) John Dagg, Manual of Theology, 2 parts (Charleston, SC: Southern Baptist Publication Society, 1859), 1:235.
29 )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ed. John T. McNeill, trans. Ford Lewis Battles, The Library of Christian Classics, vols. 20–21 (Philadelphia: Westminster, 1960), 3.1.1.
30 ) Wilhelmus à Brakel, The Christian’s Reasonable Service, trans. Bartel Elshout, ed. Joel R. Beek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1992–1995), 1:184. 다음을 보라. The Heidelberg Catechism (LD 1, Q. 1; LD 20, Q. 53), in The Three
45
1장 │ 성령론 서론
참여하는 자로 만드 신다……이 하나 됨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 소유대명사를 사용할 수 있 게 해 준다.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mine ) 나는 그에게 속하였 도다( His ) ’ ( 아 2:16 ).”30 )
성령의 능력, 당신
을 붙들어 은혜 가운데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게 해 주시는 성령의 능력
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당신의 구원과 성화의 모든 측면에서
성령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알게 되었는가? 당신은 성령 안에서 당신이
다른 믿는 자들과 하나 되어 있음을 발견했는가? 성령은 당신이 죽음
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고, 당신의 죄는 사함을 받았으며, 당신은 영생의
상속자라는 것을 당신의 영과 더불어 증언하고 계시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성령을 사랑할 것이고, 성령이 어떤 분이고 무엇을
행하시는지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기를 원할 것이다. 성령이 당신을 모
든 진리 가운데로 이끄시고, 성부의 사랑을 당신 마음에 널리 쏟아 부 으시며,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를 당신 안에서 영화롭게 하실 때, 당신은 ‘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 중 어느 위격이 내게 가장 필 요한지는 알지 못하지만, 내게는 각각의 위격이 다 필요하고, 나는 모
든 위격을 사랑한다는 이 한 가지는 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
이 이 성령에 대해 낯선 외인이라면, 성령의 구원 사역을 당신의 지성
속에서 알고 믿음으로 체험하는 것이 당신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다.
성령이라는 위격
오늘날에도 에베소 교회의 제자들처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행 19:2 ) 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에게 성령은 자신들이
교회에서
46 개혁파 조직신학 5 당신은 성령을 아는가? 당신은 죄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 회
성령의 능력, 당신으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
수 있게 해 주신 성령의 능력, 당신의 육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박으시는 성령의 능력, 당신을 거룩하게 하시는
심시키시는
원받을
못
암송하는 신조 속에만 나오는 이름이거나 그 이하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성령은 천사 또는 인격을 지니지 않은 하나님의 힘이라고 생각하는 등 성령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다. 어떤 사람은 성령 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고백하긴 하지만, 현실의 삶 속에서는 Forms of Unity, 68, 84.
성령을 무시하고 살아간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설령 성령이 이 땅에서
물러나 구원하고 거룩하게 하시는 사역을 어느 날 갑자기 그치신다 해
도 그들의 삶은 전혀 차이가 없을 것이다.
성령은 심오한 신비다. 우리 주 예수님은 전에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
을 바람이 부는 것에 비유하셨다. 우리는 성령을 주관할 수 없고, 성령
이 어디에서 시작하거나 어디에서 끝나는지를 알 수 없으며, 단지 그
결과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요 3:8 ).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다면,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령은 성경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성경은 구약 성경에서 94번, 신약 성경에서 250번 이상 성
령에 대해 말한다.
성령의 이름
성경은 종종 성령이 행하시는 일 또는 성령이 주시는 은혜와 관련된
이름이나 직함을 말해 주는데, 지혜의 영, 진리의 영, 성결의 영, 생명의
영, 양자의 영, 믿음의 영, 은혜의 영, 영광의 영이 그런 것들이다.31 ) 성
령은 위로자 또는 변호자( “보혜사” ) 다.32 ) 이 직함들은 우리에게 성령에
대한 것을 가르쳐 주지만, 성령의 본질이 아니라 성령의 사역과 좀 더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어떤 이름은 성령과 하나님의 아들 간의 밀
접한 관계를 말해 준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 아들의 영, 예수 그리스
도의 영이다.33 ) 우리는 이 기능적이고 관계적인 직함에 대해서는 다른
장들에서 살펴보겠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위격 중 한 분을 가리키는 세 가지 명칭을
주목하려고 하는데, 둘은 주로 구약 성경에서 사용되고, 다른 하나는
거의 전적으로
또는 변호자(‘파라클레토스’): 요 14:16, 26; 15:26; 16:7.
33 ) 그리스도의 영: 롬 8:9; 벧전 1:11. 아들의 영: 갈 4:6. 예수 그리스도의 영: 빌 1:19. “예수의
영”(행 16:7)이라는 독특한 표현은 여러 초기 대문자 사본에 등장하지만, 정경 본문과 대다수의
사본에는 나오지 않는다.
1장 │ 성령론 서론 47
신약 성경에서 사용된다. 31 ) 지혜의 영: 출 28:3; 신 34:9; 사 11:2; 엡 1:17. 진리의 영: 요 14:17; 15:26; 16:13; 요일 4:6. 성 결의 영: 롬 1:4. 생명의 영: 롬 8:2. 양자의 영: 롬 8:15. 믿음의 영: 고후 4:13. 은혜의 영: 히 10:29. 영광의 영: 벧전 4:14. 32 ) 위로자
1. 하나님의 영 또는 여호와의 영. 이 명칭은 구약 성경에서 성령에
대해 주로 사용된 것이지만, 신약 성경에도 몇 번 나오는데, 모두 60번
가량 사용된다. 물론 하나님은 자신의 신적 본성에서 영이시다( 사 31:3; 요 4:24 ). 찰스 하지( 1797-1878년 ) 는 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능력”을 전달
하므로, “비물질적이고 비가시적인 행위 주체”라고 썼다.34 )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은 모두 이 동일한 영적 본질을 공유하신다. 따라서
세 위격은 모두 비가시적이고 지성적이며 살아 있는 존재이고, 물리적
인 몸이 지닌 제한이나 필요나 복합성이 없다.35 )
삼위일체 하나님 전체가 영인데도 불구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번째 위격을 특별히 “하나님의 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
이라는 단어는 흔히 부는 ‘바람’이나 우리가 호흡할 때의 ‘숨’을 가리
킨다. 이것은 신비이지만, 성경은 성령이 하나님의 숨, 즉 하나님의 살
아 있고 활동하며 인격적이고 지성적이고 역동적인 생명과 같다는 뜻
을 내포하고 있다. 헤르만 바빙크( 1854-1921년 ) 는 이렇게 썼다. “성령은
전능자의 숨( 욥 33:4, ‘전능자의 기운’ ), 그의 입의 숨( 시 33:6, ‘그의 입 기운’ ) 이다.
예수님은 성령을 바람에 비유하시고( 요 3:8 ), 자신의 제자들을 향해 숨
을 ‘내쉬신다’( 요 20:22 ).”36 )
오웬은 숨이라는 개념을
결코 그의 인격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37 ) 성령이 성부
와 성자에게서 영원히 발출된다는 것과 관련된 문제는 삼위일체론에서
논의되는 것이 적절하다.38 ) 따라서 여기서는 “하나님의 영”이라는
34 ) Charles Hodge, Systematic Theology, 3 vols. (repr., Peabody, MA: Hendrickson, 1999), 1:522.
35 )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 책 2권 7장을 보라.
36 ) Herman Bavinck, Reformed Dogmatics, ed. John Bolt, trans. John Vriend, 4 vols.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03–2008), 2:277. 네덜란드어에서
37 ) Owen, Pneumatologia, in Works, 3:55.
637-642를 보라.
48 개혁파 조직신학 5
지속적이고 살아 있는 현존과 연결시켜,
그에게서 지속적으로
한 인격체의
“한 사람의 생명의 숨은
발산되지만,
이 름은 성령은 살아 계시고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이고, 성령의 존
직접 번역한 부 흥과개혁사 역간, 헤르만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이 있다(편집자 주).
38 ) 성령의 발출에 대해서는 이 책 2권 603-606,
재와 활동은 비가시적이지만 인격적이고 강력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
르친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칼빈은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이므로, 어떤 면에서 우리는 우리를 향한 생명을 주
시는 성령의 능력을 느끼고 있다”고 썼다.39 )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원하고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우리를 양육하시기를 원한다면, 성부로부
터 오는 하나님의 영을 구해야 한다.
2. 거룩한 영(성령) . 이 이름은 구약 성경에는 세 번밖에 나오지 않
는다( 시 51:11; 사 63:10-11 ). 하지만 이 이름은 신약 성경에 94번 등장해, 성
령에 대한 신약 성경의 묘사를 지배한다.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하나님
의 영은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특히 거룩한 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거룩하심은 영이시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삼위일체 하나님 전체에게
속하는 하나님의 속성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하나님의 위엄과 도
덕적 탁월성으로, 이 속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만물 위에 계시고, 자신의 영광을 위해 모든 죄에 대적하신다.40 ) 퍼거슨은 ‘거룩한 영’에
서 ‘거룩한’이라는 단어는 “성령의 존재의 ‘타자성’( otherness ) ”을 강조
한다고 쓴다.41 ) 오웬은 성령에 대해 “성령의 본성의 영원한 영광스러
운 거룩하심이 성령이 ‘거룩한’ 영이라 불리는 토대다”라고 썼다.42 ) 거
룩하심은 성령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모든 것과 구별시킨다. 그래서 출
애굽기 15장 11절에서는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
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
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라고 말한다. 성령은 거룩하시므로,
우리는 언제나 성령을 두려움, 경외, 경이로움, 공경 가운데 바라보아야
한다.
성령을 거룩한 영이라 부르는 것은 성령의 본성과 사역이 거룩하
기 때문이다. 안토니우스 티시우스( 1565-1640년 ) 는 “성령이 거룩한 영( 사
63:10 ) 과 하나님의 거룩한 영( 엡 4:30 ) 으로도 불리는 것은 성령의 본성,
39 ) Calvin, Institutes, 1.13.14.
40 )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서는 이 책 2권 5장을 보라.
41 ) Ferguson, TheHolySpirit, 16.
42 ) Owen, Pneumatologia, in Works, 3:56.
1장 │ 성령론 서론 49
직임, 효과 때문이다”라고 말했다.43 ) 소극적으로 말하면, 성령이 거룩
한 영이라 불리는 것은 이 세상의 더러운 영들에 대해 가차없이 대적하
기 때문이다. 성령의 역사를 마귀가 하는 것이라고 비방하는 것이 성령
에 대한 신성모독인 이유는 성령을 거룩하지 않은 영이라고 비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막 3:29-30 ). 44 ) 스미턴이 썼듯, 성령이라는 이름은 성령
이 “인간적인 것이든 사탄적인 것이든 온갖 거룩하지 않은 영과 정반
대되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 준다.45 ) 따라서 성령이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인이 자신을 더러움과
세상적인 것에 내주는 것은 하나님의 질투를 촉발시킨다( 약 4:4-5 )
거룩함과 관련해 성령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하나님 백성의 성화다.
마르틴 루터( 1483-1546년 ) 는 사도신경을 이렇게 요약했다. “나는 나를 창
조하신 성부 하나님을 믿는다. 나는 나를 구속하신 성자 하나님을 믿 는다. 나는 나를 거룩하게 만드시는 성령을 믿는다.”46 ) 프란키스쿠스
투레티누스( 1623-1687년 ) 는 성령은 “주체적으로”( 성령은 지극히 거룩하시다는 점
에서 ) 와 “결과적으로”( 성령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다는 점에서 ) “최고의 의미에
서 거룩하신 영이라 불린다”고 썼다.47 ) 아마도 이것이 신약 성경에서
성령을 무엇보다도 특히 거룩한
43 ) Johannes Polyander, Antonius Walaeus, Antonius Thysius, and Andreas Rivetus, Synopsis Purioris Theologiae,Synopsis of a Purer Theology:Latin Text and English Translation, vol. 1, Disputations 1–23, trans. Riemer A. Faber, ed. Dolf te Velde, Rein Ferwerda, Willem J. van Asselt, William den Boer, and Riemer A. Faber, Studies in Medieval and Reformation Traditions: Texts and Sources (Leiden: Brill, 2014), 9.3 (230).
44 ) Owen, Pneumatologia, in Works, 3:56.
45 ) Smeaton, TheDoctrineoftheHolySpirit, 101.
46 ) The Large Catechism (2.7), in The Book of Concord: The Confessions of the Evangelical Lutheran Church, ed. Robert Kolb and Timothy J. Wengert, trans. Charles Arand et al. (Minneapolis: Fortress, 2000), 432. 다음도 보라. The Heidelberg Catechism (LD 8, Q. 24), in The Three Forms of Unity, 75.
47 ) Francis Turretin,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trans. George Musgrave Giger, ed. James T. Dennison Jr., 3 vols. (Phillipsburg, NJ: P&R, 1992–1997), 3.30 (1:303).
50 개혁파 조직신학 5
내주하시는 자는 이 세상의 더러운 영들이 조장하는 죄와 거짓 예배를 멀리하는 것이 마 땅하다( 고후 6:14-17 ). 성령이
영이라 부르는 이유인 것 같다. 그리스 도의 사역이 끝나면서, 외적이고 제의적인 거룩함을 강조했던 옛 언약 은 내적이고 도덕적인 성화를 강조하는 새 언약으로 대체되었다. 스미
턴은 성령을 자주 ‘거룩한’이라는 단어와 결합시키는 것은 “우리로 하
여금 인간의 구원과 관련한 성령의 특별한 사역을 더 가까이 보게 해
준다”고 말했다.48 )
성령은 하나님 백성을 거룩하게 만드는 사역을 통해 구속사 전체에
걸쳐 자신의 거룩하심을 널리 드러내신다. 퍼킨스는 “[삼위일체 하나
님의] 세 번째 위격이 ‘거룩한’ 영이라 불리는 이유는 성령의 본성의
거룩하심 때문만이 아니라, 성령의 직임이 하나님의 교회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49 ) 바울이 고린도전서 6장 19-20절
에서 제시한 논증의 취지도 바로 그것이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
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
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가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는
채로 살아가면서, 성령을 우리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
는다. 도리어 그런 것과는 정반대로 성령을 알면 우리에게서는 죄에 대
한 근심,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 사람들에 대한 온유함, 삶의 모든 영역
에서 실천적인 거룩함을 추구하려는 열심이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시기 때문이다.
성령의 신성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성령은 성부나 성자가 아니지만, 성부 및 성
자와 동일한 신적 본성을 공유하시므로, 성령 하나님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 성령을 피조 된 영, 예컨대 천사라고 보는 것은 심각한 잘못이다.
4세기의 아리우스주의자들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부정했
48 ) Smeaton, TheDoctrineoftheHolySpirit, 101. 49 ) Perkins, An Exposition of the Symbol, in Works, 5:305. 제임스 어셔도 마찬가지다. “성령 이 거룩한 영이라 불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으로서의 성령의 본질적 거룩하심 때문만은 아니다. 성부와 성자도 성령만큼이나 무한히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령이 하나님의 자 녀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으로서, 인간과 관련해 모든 거룩함의 원천이자 거룩함을 만들어 내는
분이라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다. 성부와 성자도 하나님의 자녀를 거룩하게 하지 않으시는가?
물론이다. 하지만 성부와 성자는 성령을 통해 그렇게 하시고, 성령만이 직접적으로 거룩하게 하
는 일을 하시므로, ‘거룩한’이라는 명칭을 갖게 된 것이다.” A Body of Divinity, ed. Michael Nevarr (Birmingham, AL: Solid Ground, 2007), 3rd head (75).
1장 │ 성령론 서론 51
을 때, 성령이 하나님이시라는 것도 부정했고, 그중 일부는 성령은
천
사라고 했다. 이것은 정통적이고 성경적인 신앙의 위대한 수호자로 아
리우스주의에 대항해 싸운 아타나시우스( 약 297-373년 ) 의 격렬한 반발을 초래했다.50 ) 쿠란( 코란 ) 은 이 문제에 대해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이슬람교도는 일반적으로 성령은 가브리엘 천사라고 믿는다.51 )
하지만 성경은 성령이 하나님이시고 여러 방식에서 그러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계시해 준다. 성경은 성령에 다음과 같은 것을 돌린다.
1. 하나님의 이름과 명칭 . 신약 성경은 성령을 “하나님”이라 부르
고( 행 5:3-4 ), 구약 성경이 “여호와”( 야웨 ) 에게 돌린 말씀을 성령이 하신
말씀이라고 말한다.52 )
2. 하나님의 속성. 성경은 성령의 전지하심( 사 40:13; 고전 2:9-11 ), 전능하
심( 눅 1:34-37 ), 편재하심( 시 139:7; 고전 6:19 ), 영원하심( 창 1:2 ), 미리 아심( 행
1:16; 벧전 1:11-12 ), 선하심( 느 9:20; 시 143:10-11 ), 사랑( 롬 15:30 ), 참되심( 요 14:17 ),
거룩하심( 사 63:10-11; 롬 1:4 ) , 무한하심( 요 3:34 ) , 생명( 고후 3:3, 6 ) , 단순하
심( 롬 8:10; 요일 5:6 ) 을 계시한다.53 ) 3. 하나님의 관계. 성령은 성부로부터 발출되는( 요 15:26 ) 성부의 영( 마
10:20 ) 이고, 성자의 영이며( 갈 4:6 ), 그리스도의 영이다( 롬 8:9 ). 신약 성경
에서 성부, 성자, 성령은 한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활동하는 세 위격으
로 반복해서 함께 등장한다. 그리스도의 사역의 개시( 막 1:9-11 ), 죄인의
구원( 갈 4:4-6; 딛 3:4-6 ), 교회에서의 영적 은사 활동( 고전 12:4-6 ), 믿는 자
를 영적으로 힘 있게 하고 성장시키는 것( 엡 1:17-20; 3:14-17 ). 성령은 성부
및 성자와 하나이므로( 마 28:19; 고후 3:17 ),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은
50 ) J. N. D. Kelly, Early Christian Creeds, 3rd ed. (London: Continuum, 1972), 339–340.
51 ) Norman L. Geisler and Abdul Saleeb, Answering Islam:The Crescent in the Light of the Cross (Grand Rapids, MI: Baker, 1993), 35. 쿠란은 계시를 가브리엘(Surah 2:97)과
성령 둘 모두에 돌린다.
52 ) 사 6:9-10을 인용한 행 28:25-27; 렘 31:33을 인용한 히 10:16.
53 ) 이 책 2권 569를 보라. 성령의 거룩하심(2권 133-135), 생명(2권 197), 단순하심(2권 207208), 자존하심(2권 234-236), 편재하심(2권 249-251), 영원하심(2권 263-264), 전지하 심(2권 344-345, 351-353), 권위(2권 404-405), 능력(1권 461-468, 2권 407-409), 사 랑(2권 437), 참되심(2권 459-460), 기쁨(2권 507)에 대한 언급을 보라.
52 개혁파 조직신학 5
하나의 신적 지식, 능력, 생명, 의지를 공유한다.54 )
4. 하나님의 활동. 성령은 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셨고,55 ) 피조물에 생
명을 주시며( 시 104:30 ), 하나님의 말씀에 영감을 수여하셨고,56 ) 그리스
도와 사도들을 통해 이적을 행하셨으며,57 ) 죄인을 중생시키시고 죄인
에게 영적 생명을 주시며,58 )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다.59 ) 이 책을 읽어
나가면 앞으로 우리는 성령이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들을 행하신다
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5. 하나님의 임재.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라고 말하는 것의 의미는 성
령의 임재는 곧 하나님의 임재이고, 성령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
님으로 거하신다는 것이다.60 ) 윌리엄 에임스( 1576-1633년 ) 는 이렇게 말
했다. “성전을 하나님 외의 다른 존재에게 구별해 드리는 것은 불법
이다……그러나 이 대목에서는 이 성전은 성령을 위해 특히 거룩하게
세워져야 한다고 말한다.”61 ) 온 세상 만민 중에 흩어져 있는 하나의 백
성( a people ) 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므로, 그들 모두 안에 동시에 거하
시는 성령은 하나님일 수밖에 없다.62 )
6. 하나님의 권위. 성령은 교회에 대해 “그의 뜻대로” 주권을 행사하
신다( 고전 12:11 ESV; 참고, 행 13:2 ). 성령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이끄셨고( 사 63:14 ), 하나님의 자녀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며( 시 143:10; 롬 8:14 ), 성육신
하신 중보자를 이끌기조차 하셨다( 마 4:1 ). 핑크는 이렇게 썼다. “중보자
를 이끄시는 권한을 지니신 분이라면 하나님의 한 위격이 아니고 누
구시겠는가? 구속주가 복종하신 분이라면 하나님이 아니고 누구시겠
54 ) 요 7:37-39; 고전 12:11; 계 5:6. 이 책 2권 580-581을 보라.
55 ) 창 1:2; 욥 26:13; 33:4; 시 33:6. 2장을 보라.
56 ) 23:2; 행 1:16; 히 3:7; 9:8; 벧후 1:21. 성경과 영감에 대해서는 이 책 1권 17장을 보라.
57 ) 마 12:28; 눅 4:14; 행 10:38; 롬 15:19; 히 2:4.
58 ) 요 3:3-6; 6:63; 고후 3:6; 딛 3:5.
59 ) 롬 1:4; 8:11; 고전 15:42-45.
60 ) 시 139:7; 학 2:1-5; 고전 3:16-17; 엡 2:21-22.
61 ) William Ames, A Sketch of the Christian’s Catechism, trans. Todd M. Rester, Classic Reformed Theology 1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08), 104.
62 ) Ambrose, OftheHolySpirit, 1.7, in NPNF2, 10:104.
63 ) Pink, TheHolySpirit, 15.
1장 │ 성령론 서론 53
63 )
는가!”
7. 하나님의 존귀. 믿는 자에게 세례를 베풀 때 성령에게는 성부 및
성자와 동등한 존귀가 부여되고( 마 28:19 ), 하나님 백성을 축복할 때도
성령에게는 성부 및 성자와 동등한 존귀가 부여된다( 고후 13:14 ). 그래서
교회는 니케아 신조에서 성령은 “성부 및 성자와 함께 예배와 영광을
받으신다”고 고백한다.64 )
성령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기독교 정통 신앙의 핵심이다. 더글러
스 켈리가 썼듯, 초기 교회의 신학자들은 “성령의 최고의 왕적 권위”에
대해 썼다.65 )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 330-389년 ) 는 이렇게 말했다.
따라서 성령은 언제나 존재하셨고 존재하시며 언제나 존재하
실 것이다. 성령은 시작도 없으셨고 끝도 없으실 것이다. 성령은
영원토록 성부 및 성자와 함께 해 오셨고 함께 언급되어 오셨다.
성부에게 성자가 없거나, 성자에게 성령이 없다는 것은 늘 합당
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성령은 언제나 자기 자신과 동
일하시고, 함께 계시는 성부 및 성자와 동일하시다. 따라서 성령
은 비가시적이시고, 영원하시며, 불가해하시고, 불변하시며……
자유의지와 자신의 전능한 능력으로 스스로 움직이시고, 영원
히 움직이신다……성령은 생명이자 생명을 주시는 분이고, 빛이
자 빛을 주시는 분이며, 절대적인 선, 선의 원천이시다……옳음
자체이시고, 왕적인 영이시며, 주, 보내시는 자, 분리하시는 자, 자신의 성전을 세우시고 자신의 뜻대로 이끌며 역사하시는
이다.66 )
64 ) The Three Forms of Unity, 7.
65 ) Douglas F. Kelly, SystematicTheology:GroundedinHolyScriptureandUnderstood in the Light of the Church, vol. 1, The God Who Is:The Holy Trinity (Fearn, Rossshire, Scotland: Christian Focus, 2008), 341-342. 66 ) Gregory of Nazianzus, On Pentecost, chap. 9, in NPNF2, 7:382.
54 개혁파 조직신학 5
분
성령은
계명을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 백성은 성령을 경배해야 한다. 저 큰
삼위일체 하나님 전체에 적용하는 것은 선하고 옳다. “네 마음
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
22:37; 참고, 신 6:5 ). 당신은 성령을 사랑하는가? 당신이 성경을 읽다가 성
령에 대한 많은 언급 중 하나를 만나면, 당신의 영혼은 성령을 사랑하
고 경배하는 달콤한 움직임으로 응답하는가? 당신은 교회에서 충실하
게 설교되는 성경을 들을 때, 성령이 교회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기뻐하는가? 당신은 단지 섬김을 위한 능력을 얻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성령의 영광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다른 사람이 성령의 영광에 대해 더
많이 알도록 돕기 위해, 성령이 당신을 충만하게 하기를 원하는가? 믿
는 자는 성령에 대한 사랑 속에서 기도해야 하고 성장해 나가기 위해
힘써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니다. 하
지만 그런 경우에도 하나님이신 성령은 당신에게 소망을 주실 수 있고,
구원을 위해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자 하는 동기를 당신에게 주실
수 있다. 성령은 이적을 일으키시는 분이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이시다. 당신의 영혼이 마른 뼈들의 골짜기처럼 죽었다 해도, 성 령 하나님은 당신을 살리실 수 있다. 이렇게 기도하라.
당신의 숨으로 말미암아 영혼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는 영원하신 성령이시여,
우리 죄인이 당신의 보좌 앞에 엎드리오니,
1장 │ 성령론 서론 55
당신의 살리시는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게 해 주십시오.67 ) 성령의
성령과 관련된 또 하나의 주된 오류는 성령은 인격체가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힘 또는 임재일 뿐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오늘날 성 령의 인격성을 부정하는 것은 성령의 신성을 부정하는 것보다 더 흔한
인격성
67 ) Edward Cooper, “Father of heaven, whose love profound,” Kelly, Systematic Theology, 1:313에서 재인용.
이단이다. 우리는 이 이단을 소키누스주의, 단일신론( 유니테리언주의 ) , 68 )
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 또는 여호와의 증인69 ) 의 교설 속에서 발견
한다. 근대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인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17681834년 ) 는 성령을 인간 안에서
활동하는 신적 본질의 현존이라고 말
했다.70 ) 그런 정식은 성령을 하나님의 활동 양태로 축소시키는 것으로, 게할더스 보스( 1862-1949년 ) 가 지적했듯 “성령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의
표현일 뿐이라고 말한 옛 사벨리우스주의의 오류”다.71 )
성경은 성령이 인격적인 존재,72 ) 즉 이성과 의지를 갖춘 본성을 지닌
존재, 유일무이한 “나”로서 다른 인격체와 관계를 맺는 존재라는 것을
계시한다.73 )
1. 성령은 어떤 사물이 아니라 어떤 인격체다. 성경에서 성령이 물처
럼 부어진다거나( 행 2:17 ) 불처럼 소멸된다고( 살전 5:19 ) 말하는 것은 성령
이 인격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수
“생수의 근원”( 렘 2:13 ) 또는
68 ) Robert Wallace, A Plain Statement and Scriptural Defence of the Leading Doctrines of Unitarianism (Chesterfield, England: for the author, by T. Woodhead et al., 1819), 34. 오늘날 보편구원론적 유니테리언주의(Unitarian Universalism)라는 종파는 “불가지론자, 이신론자, 무신론자 및 그 중간에 있는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모호한
“Existence of a Higher Power in Unitarian Universalism,” Unitarian Universalist Association, December 21, 2015, http://www.uua.org/beliefs/what-we-believe/ higher-power. 69 )
“Is the Holy Spirit a Person?” Awake! (2006), Watchtower Online Library, December 21, 2015, http://wol.jw.org/en/wol/d/r1/lp-e/102006245.
70 ) Friedrich Schleiermacher, The Christian Faith, ed. H. R. Mackintosh and J. S. Stewart, 2 vols. (New York: Harper and Row, 1963), 571–572, 738. 참고, Hodge, Systematic Theology, 1:534.
71 ) Geerhardus Vos, Reformed Dogmatics, trans. and ed. Richard B. Gaffin et al., 5 vols.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2016), 1:67. 사벨리우스주의에 대해서는
2권 588을 보라.
72 ) 이 책 2권 569-571을 보라.
73 ) 이 책 2권 925-928을 보라.
74 ) Gordon D. Fee, God’s Empowering Presence:The Holy Spirit in the Letters of Paul (Peabody, MA: Hendrickson, 1994), 830.
56 개혁파 조직신학 5
을 보여
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서조차
“소멸하는 불”( 신 4:24 ) 에 비유한다. 이것들은 “순전하고 단순하다는 것
주는 표상들”로서 비유법이므로,74 ) 하나님이나 성령이 인격이
인본주의로 탈바꿈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성령을
능력의 활동……하나님의 활동력으로
하나님의
본다.”
이 책
없는 존재임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성령의 활동을 가리
킨다. 해딩턴의 존 브라운( 1722-1787년 ) 은 “지성적이고 영원한 인격체에
고유하지 않은 어떤 것을 성령에게 돌리는 이 모든 성경 본문에서 그런
표현들은 성령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와 감화를 나
타내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75 )
헬라어 신약 성경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성경은 성령을 문법적으로
하나의 인격체로 말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위
로”를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위로자”( “또 다른 보
혜사”; 참고, 14:26; 15:26; 16:7 ) 를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76 ) “위로자, 보혜
사”( ‘파라클레토스’ ) 로 번역된 단어는 변호자, 즉 법정에 나와 어떤 사람을
대변해 주는 사람을 가리킨다.77 ) “또 다른”은 성령을 그리스도와 비교
하는 단어이고,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는 하늘에서 자기 백성의 “대
언자”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말할 때 사용된다( 요일 2:1 ). “성령”으로 번
역된 헬라어는 문법적으로 중성이지만,78 ) “보혜사”로 번역된 헬라어는
남성이고, 이 보혜사를 가리킬 때 남성 대명사가 사용된다. “그가[‘에케
이노스’] 너희에게 모든
가르치고”( 요 14:26 ), “그가[‘에케이노스’]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15:26 ), “진리의 성령이
16:13-14
75 ) John Brown of Haddington, Systematic Theology: A Compendious View of Natural and Revealed Religion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5), 143.
76 )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Edinburgh: Banner of Truth, 1958), 96.
77 ) TDNT, 5:800–803.
78 ) 헬라어에는 남성, 여성, 중성이라는 세 가지 문법적인 성이 있고, 이것은 단지 형태론(언어적 형 태)의 문제일 뿐이므로, “성령”(‘프뉴마’)으로 번역된 단어가 중성이라는 것은 성령이 인격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녀”(‘파이디온’)로 번역되는 헬라어도 중성이다.
79 ) Bavinck, Reformed Dogmatics, 2:278. 많은 신학자는 요 14:26, 15:26, 16:13-14에서 성령
을 가리킬 때 남성 지시대명사 ‘에케이노스’를 사용한 것은 통상적으로 대명사와 그 선행사의 성
을 일치시키는 것과 어긋나므로, 이것은 성령이 인격체라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한다. 예컨대 다 음을 보라. Brown, Systematic Theology, 140; Erickson, Christian Theology, 784. 하지 만 다른 신학자들은 이 각각의 본문에서 남성 대명사의 선행사는 “성령”으로 번역된 중성 명
사가 아니라, “보혜사”로 번역된 남성 명사라고 주장한다(요 14:26; 15:26; 16:7). Daniel B. Wallace, “Greek Grammar and the Personality of the Holy Spirit,” Bulletin for Biblical Research 13, no. 1 (2003): 97–125, 특히 97-111. 적어도 우리는 “보혜사”로 번역 된 남성 명사가 분명히 인격체를 가리키는 단어이고, 이것은 남성 대명사들을 통해 확증되고
1장 │ 성령론 서론 57
것을
오시면……그가[‘에케이 노스’] 내 영광을
“또 다른 보
나타내리니”(
). 79 ) 예수님은 성령을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
하느니라”( 고전 2:11 ). 인격이 없는 사물은 정보를 담을 수 없고, 인격체만
이 진리를 안다. 또 성령은 행위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하신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
이 옳은 줄 알았노니”( 행 15:28 )
성령은 선택하실 때 의지를 사용하신다. 영적 은사에 대해 바울은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고전 12:11 ). 힘은 선택을 하지 못한다. 성령의 의지는
죄를 열렬히 반대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여호와께 반기를 든
것은 성령을 “근심하게” 했고 화나게 했다( 사 63:9-10 ). 바울은 에베소 성
도에게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 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엡 4:30 ) 고 경고했다. 우리는 고통이나
격정이 수반된 근심을 하나님께 돌려서는 안 되지만, 이 본문은 성령이
사람들을 인격적이고 관계적인 방식으로 대한다는 것을 가르친다.80 )
찰스 하지는 “따라서 성령은……우리가 기쁘시게 할 수도 있고 화나시
게 할 수도 있는 인격체로 묘사된다”고 썼다.81 )
3. 성령은 다른 위격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별개의 위격인 인격체다. 별개의 위격인 성령은 성부 및 성자와 구별되고, 삼위일체의 질서에
있다고 믿는다. 80 ) 오웬은 근심과 분노에 대해 “이것은 마음의 그런 감정과 동요를 하나님이나 성령에게 돌리는 것
이 아니라, 은유적 표현이다”라고 썼다. 하지만 또한 그는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아야 할 우
리의 의무는 우리가 “거룩하고 신적이며 지성적인 인격체로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우리 안에서
및 우리에 대해 자유롭게 역사하시는” 성령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예라고
말했다. Owen, Pneumatologia, in Works, 4:413–414. 다음도 보라. Communion with God, in Works, 2:265–266. 하나님의 감정과 불가침성에 대해서는 이 책 2권 18, 19장을
보라.
81 ) Hodge, Systematic Theology, 1:525.
58 개혁파 조직신학 5 혜사”라 부르심으로써, 자기가 아버지
승천하신
자기를
행할
18; 16:7 ). 이런 식으로 우리
가르치셨다.
성령은 이성적이고 의지적인 본성을 지닌 인격체다. 성령은 영광스
일을 아신다. “하나님의
하나님께로
후 성령 이
대신해 그리스도처럼
것임을 보여 주셨다( 14:2-3, 12,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하나님을 증언하시는 인격체로 볼 것을
2.
러운
따라 다른 두 위격과 관계를 맺고 있다.82 ) 성령은 사람들과도 인격적인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심으로써 자신의 인격성을 나타내 보이신다. 성
령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증언하며, 책망하고, 인도하신다( 요 14:26; 15:26; 16:7, 13 ) . 성령은 사람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신다 ( 롬 8:26 ) . 존 길( 16971771년 ) 은 이렇게 썼다. “그리스도의 대변과 중보기도가 그리스도가 인
격체이고, 중보기도를 받으시는 성부와 구별되는 위격이라는 것을 증
명해 주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성령의 중보기도는 성령의 인격성, 즉
성령의 구별되는 인격성을 증명해 준다.”83 )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으로서 말씀하고 행하신다. 성령은 베드로
에게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행 10:19-20 ) 고 말씀하셨다. 안디옥 교회가
기도하고 금식할 때, 성령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해 바나바와
사울을 위해 따로 세우라고 교회에 명령하셨고, 이렇게 해서 이 두 사
람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았다”( 13:1-4 ). 성령은 그것 ( it ) 이 아니라, 바빙
크가 말했듯 “자기 자신을 일인칭으로 말씀하시는” 나( I ) 다.84 )
성령의 신적 인격성이 지닌 실천적 함의
성령은 하나님이시고 살아 있는 인격체시므로, 퍼킨스는 각각의 그
리스도인은 “성령이 말씀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계시하신 대로의
성령을 인정하고……성령이 나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자 위로자이심
을 믿으며……그런 이유에서 내 마음의 모든 신뢰를 성령께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85 )
이 마지막으로
82 ) 눅 4:1, 18; 요 14:16, 26; 16:26. 이 책 2권 572-574를 보라.
83 ) John Gill, A Complete Body of Doctrinal and Practical Divinity (1839; repr., Paris, AR: The Baptist Standard Bearer, 1995), 168. 앞으로 인용할 때는 Gill, Body of Divinity 로 표기하겠다.
84 ) Bavinck, Reformed Dogmatics, 2:278.
85 ) Perkins, AnExpositionoftheSymbol, in Works, 5:306.
1장 │ 성령론 서론 59
말한 것은 성령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는 것이 얼 마나 중요한지를 한층 더 분명하게 보여 준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을 자격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피조물은 그런 신
뢰와 믿음을 받을 자격이 없다. 하지만 성령은 그럴 자격이 있으시다.
당신은 성령을 믿고 신뢰함으로써 성령을 높이고 있는가? 당신은 당
신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않고, 온 마음을 다해 성령을 신뢰하고 있 는가? 그리스도를 믿는 당신의 믿음은 주 예수님이 당신의 삶 속에
서 역사하실 때 사용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을 신뢰하도록 당신을 이끄 는가?
성령의 인격성은 ‘참된 영적 삶은 성령과의 인격적 관계를 포함한다’
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우리는 성령을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단 순한 능력으로 대해서는 안 되고, 우리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조종할
수 있는 존재로 대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초월적 체험을 추구하기 위
한 목적으로 성령을 구해서도 안 된다. 성령은 인간적 인격체인 각각
의 믿는 자 안에 신적 인격체로 거하신다. 성령은 우리의 죄 때문에 근
심하시고, 우리의 거룩함을 보시고 기뻐하신다. 당신을 향한 성령의 사
랑, 분에 넘치는 은혜, 인내를 놀라워하라. 로이드 존스가 말했듯 거룩
하신 분이 자신을 낮추어 “당신과 내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깜짝 놀랄
일이다.86 ) 성령은 성경의 저자이시고, 성경 속에서 어떻게 하면 성령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당신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다. 성령이 말씀
속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성령께 순종하라.
성령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우리에게 성부 및 성자와 함께 성령을
예배할 것을 요구한다. 성령을 예배하지 않는 것은 삼위일체 교리를 훼
손하는 것이다.87 ) 성령의 신적 속성들을 찬양함으로써 성령을 높이자.
60 개혁파
5
조직신학
성령의
하나님을 향해 들어올려 성부 와 성자와 성령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당신의 교회의 예배를 계획하 고 인도하라. 당신이 한 가정의 가장이라면, 당신의 가정 예배가 성령 을 소홀히 하지 않게 하라. 모든 그리스도인이여, 모든 기회를 붙잡아 86 )
87 ) 다음을 보라.
권능의 역사들을 통해 계시된 성령의 영광을 송축하자. 당신 이 목회자라면, 회중의 마음을 삼위일체
Lloyd-Jones, Great Doctrines of the Bible, 2:21.
Joel R. Beeke and Mark Jones, A Puritan Theology: Doctrine for Lif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2), 422.
성령께 감사하라. 왜냐하면 성령 없이는 당신은 존재하지 못할 것이고, 성령 없이는 당신에게 영적인 삶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묵상과 토론을 위한 질문
1. 성령론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반론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런 반론들에 대
해 어떻게 대답할 수 있는가?
2. 성령과 성령의 사역을 아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 그리스도, 우리의 구원을 더 잘 아 는 데 도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3. 성령론은 다음과 같은 것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의 삶
● 올바른 예배
● 우리의 문화 속에서의 복음 전도
● 영적 전쟁
4. ‘정통 신앙’이란 무엇인가? 저자들이 “[성령에 대한] 이 교리를 소홀히 하는 것은 우 리의 기독교적……유산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의도는 무엇인가?
5. 성령을 연구하면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자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6. 성령을 “거룩한 영”이라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7. 성령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일곱 가지 근거를 열거하고, 각각의 근거 마다 몇 개의 증거 본문도 제시하라.
8. 성경은 하나님의 영이 인격체라는 것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9.
1장 │ 성령론 서론 61
이 장의 실천적 적용 중에서 당신이 들을 필요가 있었던 것은 어떤 것인가? 더 깊은 성찰을 위한 질문 10. 서로 다른 전통과 교단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진리에 충실하면서도 불필요하게
분열을 초래하지 않는 방식으로 성령과 성령의 사역에 대해 서로 대화할 수 있으
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1. 저자들은 “이것은 신비이지만, 성경은 성령이 하나님의 숨과 같다는 뜻을 내포하
고 있다”고 말한다. 이 비유는 어떤 성경 진리들을 보여 주는가? 성령을 “하나님의
숨”에 비유했을 때 있을 수 있는 위험성들은 어떤 것들인가?
12. 이단 집단에 속한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영에 대
해 말하는 모든 것은 ‘영’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해하면 다 설명된다.” 당신은 이
단언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개혁파 조직신학 5
62
성령의 사역: 창조와 일반 은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생각할 때 거듭남이나 성령의 은사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성령을 하나님의 창조 사역 및 섭리 사
역과 연결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성령은 영원하신 삼위일체의
세 번째 위격이시다. 벨기에 신앙고백( 8조 ) 에서는 “성부는 성자 없이, 또는 성령 없이 계신 적이 없으셨다……진리와 능력과 선하심과 인자
하심에서 셋 모두는 하나이시다.”1 ) 하나님의 백성이 부르는 찬송 속에
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오 주여, 주의 성령은 삶을 풍성하게 만드십니다.
땅을 새롭게 하시고, 땅이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2 )
1 ) The Three Forms of Unity, 23. 2 ) The Psalter, No. 287 (시 104:30).
2장 │ 성령의 사역: 창조와 일반 은혜 63
2장
잃은 자를 구원하시는 성령의 사역보다 선행하는 것은 이 세계를 창 조하시는 성령의 사역이다. 중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 찬송은 이 렇게 시작한다.
오 복되신 창조주 성령이시여,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당신의 안식처로 삼으십시오.
은혜의 성령이시여, 하늘의 도우심으로
당신이 지으신 영혼들에게로 오십시오.3 )
이 가사는 성령이 잃어버린 죄인을 새롭게 하러 오실 때 낯선 땅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창조하신 땅으로 돌아오시는 것임을 우리
에게 상기시켜 준다. 성령에 대한 포괄적인 신학은 구속이 아니라 창
조 및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섭리로 시작해야 한다. 밀란의
암브로시우스( 약 339-397년 ) 가 말했듯 성령은 “만물 위에 계시기” 때문 이다.4 )
성령과 창조
창조론은 조직신학에서 자신의 독자적인 자리가 있고, 앞에서 우리
는 창조론을 자세하게 살펴보았으므로,5 ) 여기서는 창조와 관련해 성령
의 구체적인 사역에 초점을 맞추겠다.
성령의 세계 창조
창세기 1장 1-2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 돈하고
이 창조 과정의 맨 처음에 우리는 살아 있는 피조물을 위한 거
처를 만들기 위해 일하시는 성령을 만난다. 스프로울( 1939-2017년 ) 은 이
렇게 말했다. “성령은 무질서로부터 질서……즉 온전하고 완벽한 구조,
3 ) “Veni Spiritus Creator”, TrinityHymnal—BaptistEdition, No. 251에 번역되어 있다.
4 ) Ambrose, OftheHolySpirit, 1.1.19, in NPNF2, 10:96.
5 ) 이 책 3권 2-6장을 보라.
6 ) 신 32:10; 욥 12:24; 사 34:11; 45:18; 렘 4:23에 나오는 ‘토후’와 ‘보후’의 용법을 보라.
64 개혁파 조직신학 5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 행하시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만유를 창조하셨지만, 처음에 땅에는 살아 있는 피조물이 거주하지 않았고 거주할 수도 없었다( “혼돈하고 공허 하며” ) 6 )
우주의 각각의 부분이 서로 통합되어 온전한 전체를 이루고 있는 구조
를 만들어 내신다. 우리에게 혼돈 대신에 질서를 갖춘 우주가 있는 것
은 성령 덕분이다.”7 ) “운행하시니라”( ‘라하프’ ) 로 번역된 동사는 다른 곳
에서는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돌보신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 즉 어미새가 새끼 위에 너풀거리는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신
32:11 ). 창세기 1장 2절에서 “혼돈하고”( ‘토후’ ) 로 번역된 이 똑같은 히브
리어 단어가 신명기 32장 10절( “황무지” ) 에서도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두
본문의 연결 관계를 강화시키고, 창세기가 거센 바람을 묘사한 것이 아
니라, 개간되지 않은 시원의 황야에 하나님이 임재해 돌보실 때 주체로
활동하신 성령을 묘사한 것임을 확증해 준다.8 ) 자애로움을 보여 주는
이 표상은 하나님의 성령이 초기 상태에 있는 피조세계를 보살펴 생명
과 완성으로 이끄셨음을 말해 준다. 존 오웬은 “성령이 안 계셨다면 사
방이 온통 어둠이 뒤덮여 있어 아무것도 생겨날 수 없는 죽은 바다, 혼
돈의 바다였을 것이다”라고 썼다.9 ) 싱클레어 퍼거슨은 여기서 성령의
활동은 “하나님의 임재를 피조세계 속으로 연장시켜 질서를 만들어 내
어 하나님의 생각 속에 있는 계획을 완성하는” 것( 성령은 구원과 관련해서도
이와 똑같은 사역을 수행하신다 ) 이었다고 말한다.10 )
우리는 이후에 이어지는 본문에서 하나님이 반복하여 말씀으로 만유
를 주권적으로 지으신 것을 보므로( 창 1:3-31 ), 창조의 각각의 단계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말씀에 따라 성령이 활동하신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레온 우드( 1918-1977년 ) 는
7 ) R. C. Sproul, TheMysteryoftheHolySpirit (Wheaton, IL: Tyndale House, 1990), 85.
8 ) Ferguson, The Holy Spirit, 19–20. 다음도 보라. Graham A. Cole, He Who Gives Life: The Doctrine of the Holy Spirit, Foundations of Evangelical Theology (Wheaton, IL: Crossway, 2007), 96–99. “하나님의
1:2; 41:38; 출 31:3; 35:31; 민 24:2; 삼상 10:10; 11:6; 19:20, 23; 대하 15:1; 24:20; 겔 11:24).
16:15-16, 23; 18:10).
9 ) Owen, Pneumatologia, in Works, 3:98.
10 ) Ferguson, TheHolySpirit, 21.
2장 │ 성령의 사역: 창조와 일반 은혜 65
“[창세기 1장 2절의] 말씀은 이후의 6일 동안 의 창조 활동에 대한 설명 직전에 나오고, 이것은 6일 동안의 창조 사
영”(‘루아흐 엘로힘’)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어구는 구약 성경에서 “바람”을 가리키는 데는 사용되지 않고, 일관되게 하나님의 영을 가리킨다(창
다만 예외적으로 하나님이 사울을 괴롭게 하기 위해 보내신 악한 영을 가리킬 때 몇 번 이 어구가 사용
된다(삼상
역을 성령이 수행하셨다는 함의를 지닌다”고 썼다.11 ) 하나님의 활동에
서 성령과 말씀은 함께 간다. 시편 33편 6절은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
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히브리어로 ‘영’을 뜻하
는 ‘루아흐’]으로 이루었도다”라고 말한다. “말씀”, “입”, “기운”[‘루아
흐’]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기운”을 “영”으로 번역하는 것이 가
장 좋고, 이것은 창세기 1장의 ‘루아흐’가 창조 사역에 함께 한 “하나
님의 영”을 가리킨다는 것을 보여 준다.12 ) 시편 33편이 우리에게 권면
하듯, 우리는 창조주 성령의 선하심을 즐거워해야 하고, 성령의 능력을
경외함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하늘의 모든 사랑스러움은 성령으로부
터 온다. “그의 입김[영]으로 하늘을 맑게 하시고”( 욥 26:13 ) 13 ) 존 칼빈
은 “만유의 아름다움(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 과 그 보존은 성령의 능력 덕분 이다”라고 말했다.14 )
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삼위일체 하나님 전체의 아름다운 활동으로
빛난다. 신학자들은 성경을 따라 창조에서는 성부의 사역을, 구속에서
는 성자의 사역을, 구원을 적용하는 것에서는 성령의 사역을 강조하지
만, 하나님의 모든 사역에서는 이 세 위격이 모두 한 하나님으로 행하 신다. 마이클 호튼은 “모든 각각의 사역에서 세 위격은
330-395년 ) 는
11 ) Leon J. Wood, The Holy Spirit i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Zondervan, 1976), 30.
12 ) E. W. Hengstenberg, Commentary on the Psalms, trans. P. Fairbairn and J. Thomson, 3 vols. (Edinburgh: Thomas Clark, 1845), 1:527–528.
13 ) 욥 26:13의 전후 맥락에서는 하나님의
뒤섞여 있다. “영”(‘루아흐’)이라는 단어는 “바람”을 가리키는 데도 사용되긴 하지만(28:25; 30:15, 22), 좀 더 폭넓은 맥락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 활동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27:3; 32:8; 33:4). “맑게 하시고”(‘쉬프라’)로 번역된 단어는 “아름답다”(‘샤파르’, 시
16:6)를 의미하는 동사와 관련되어 있다. “꼬부라진 뱀”(개역개정에는
John F. Walvoord, TheHolySpirit: A Comprehensive Study of the Person and Work of the Holy Spirit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1), 38.
14 ) Calvin, Institutes, 1.13.14.
15 ) Michael Horton, Rediscovering the Holy Spirit: God’s Perfecting Presence in Creation,Redemption,andEverydayLif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7), 38.
66 개혁파 조직신학 5
서로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15 ) 니사 의 그레고리오스( 약
각자 별개의 일을 하는 방식
사람들은
창조 사역에 대한 묘사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묘사가
“날렵한 뱀”)은 성좌를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이 본문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으로 협업한다고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아서, 성부가 성자와 공
동으로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하는 일도 없고, 성자가 성령 없이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것도 없다. 하나님이 피조세계에 대해 행 하시는 모든 활동은 그 활동에 대한 우리의 관점에 따라 성부나
성자나 성령의 일로 언급되지만, 사실은 성부로부터 기원하여, 성자로 말미암아 진행되어, 성령 안에서 완성된다.16 )
따라서 창조주는 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영으로 언급되고, 신약 성경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으로 언급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이 창조주시다. 이레네오는 성부 하나님에 대해 “성부
에게는 말씀과 지혜, 즉 성자와 성령이 언제나 함께 했고, 성부는 성자
와 성령을 통해, 그리고 성자와 성령 안에서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만
물을 지으셨다”고 썼다.17 ) 아타나시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성부는 성
령 안에서 말씀을 통해 만물을 창조하신다. 왜냐하면 말씀이 있는 곳에
는 성령도 있고, 말씀을 통해 창조된 것들은 말씀으로부터 성령에 의해
생명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18 )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
님을 우리의 창조주로 예배해야 하고, 하나님의 영이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삼위일체 하나님께 우리의 기도를 드려
야 한다.
성령의 인간
16 ) Gregory of Nyssa, On“NotThreeGods,” in NPNF2, 5:334.
17 ) Irenaeus, Against Heresies, 4.20.1, in ANF, 1:487–488.
18 ) Athanasius, The Letters of Saint Athanasius concerning the Holy Spirit, trans. and ed. C. R. B. Shapland (London: Epworth, 1951), 3.5 (174).
2장 │ 성령의 사역: 창조와 일반 은혜 67
창조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창 1:26 ) 라는 깜짝 놀랄 만한 선언 속에서 “우리”라는 복수형 속에는 2절에
서 소개된 신적 위격이신 하나님의 영도 포함되어 있음에 틀림없다.19 )
성령은 인간의 창조주시다. 이것은 인간의 창조에 대해 더 자세한 것
을 우리에게 전해 주는 창세기 2장를 통해 확증된다. “여호와 하나님
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7절 ). 하나님은 신적 호흡 행위를 통해 첫 사람에게 생
명을 주셨고, 우리가 앞 장에서 보았듯 하나님의 숨은 성령과 밀접하
게 연결되어 있는 은유다( 요 20:22 ). 창세기의 다른 본문들에서는 “생명
의 숨”( 6:17; 7:15, 22, “생명의 기운” ) 을 가리키는 데 “영”( ‘루아흐’ ) 으로 번역되
는 단어를 사용한다. 욥은 창세기 2장 7절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의
숨결[영]이 아직도 내 코에 있느니라”( 욥 27:3 ) 고 말했다. 오웬은 욥기
33장 4절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숨은
똑같지만, 전자는 직설적 표현인 반면, 후자는 은유적 표현이라는 점
만 다를 뿐이다. 따라서 이 호흡은 하나님의 영의 특별한 행위를 가리 킨다.”20 )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라는 어구는 한 무리의 사람이 어떤 계획을
세우려 할 때 서로 의논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자기 자신 안에서 서로
의논하셨음을 보여 준다. 성령은 인간의 창조 배후에 있는 신적인 영원
한 의논에 참여하셨다. 성령은 창조의 주체이실 뿐 아니라, 성부 및 성
자와 함께 인간에 대한 작정의 주체이시다. 여기서 또 다시 우리는 성
령의 인격성과 신성을 본다. 성령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를 소유하
시고, 그 지혜에 따라 자신의 완전한 계획을 세우셨다( 사 40:13 ).
또한 인간은 성부 및 성자는 물론이고 성령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
았다. 따라서 성령이
68 개혁파 조직신학 5
타락한 죄인의 성화를 위해 일하시는 것은 자기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것을 새롭게 하시는 것이다.
창조주로서 다시 오셔서 자신의 뜻대로 우리 안에 서 역사해 거룩함을 만들어 내신다. 성령은 우리에게 역사해 “중생”( ‘팔 19 ) Ferguson, TheHolySpirit, 21. 이 책 3권 73-75를 보라. 20 ) Owen, Pneumatologia, in Works, 3:101.
우리는 성령처 럼 거룩하도록 지음 받았고, 우리의 죄가 우리의 핵심을 타락시켰긴 하 지만, 성령은 주권적
린게네시아’, 딛 3:5 ) 을 만들어 내시는데, “중생”은 “재창조” 곧 새 창조로
번역될 수 있다. 우리는 성령이 우리의 창조주시라는 것을 알므로, 잃
어버린 죄인을 중생시키는 성령의 능력에 대해 큰 확신을 가져야 한다.
무에서부터 만유를 창조하신 성령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무한한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계신다.
성령과
섭리
창조와 관련한 성령의 활동은 첫 주간에서 끝나지 않았고,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끊임없이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으로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21 ) 성령은 퍼거슨이 “하나님의 능력의 임재”22 ) 라고 부른 것을 통
해 생명을 새롭게 하고 지속시키는(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온 후에
도 ) 신적 위격이다.
만물에 대한 성령의 섭리
모든 살아 있는 것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성령 덕분이다.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
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
롭게 하시나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
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시 104:29-31 ). 암브로
시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성령은 만물에 생명을 주신다. 성령은 성부
및 성자처럼 만물의 창조주시기
수 있겠는가?”23 ) 시편 104편에서는 하나님이 자기가 창조하신 식물과
동물과 사람에게 물과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섭리론에 대해서는 이 책 2권 27, 28장을 보라.
22 ) Ferguson, TheHolySpirit, 21.
23 ) Ambrose, OftheHolySpirit, 2.5.32, 34, in NPNF2, 10:118–119.
24 ) 하나님의 “낯”(얼굴)인 성령에 대해서는 겔 39:29를 보라.
2장 │ 성령의 사역: 창조와 일반 은혜 69
때문이다……땅을 새롭게 하는 것이 성령의 사역이라면, 땅의 창조가 성령의 사역이라는 것을 누가 부정할
것을 묵상한다( 13, 27절 ). 하나님의 “낯”은 피조세계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임재다.24 )
21 )
오웬은 “만물을 지속적으로 붙들고 보전하는 것이 자신의 직임이자 사
역인 하나님의 성령은 어떤 피조물이 날마다 낙엽처럼 떨어져 나가 흙
으로 되돌아가 공백이 생긴 경우에 자신의 능력을 통해 그 피조물을 새
롭게 만들어 내어 공급하신다”고 말했다.25 ) 스미턴은 이 본문은 “하나
님의 성령이 생명의 원천이시고, 피조물들은 자신의 온갖 꼭 필요한 변
화 속에서 자신을 새롭게 하고 활력을 되찾는 능력을 성령으로부터 받
는다”고 썼다.26 ) 만물을 붙들어 유지시키는 성령의 사역은 하나님이
자기가 창조한 피조세계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계시해 주고, 모든 선한
것을 주시는 영광스러우신 분을 우리에게 알게 해 준다( 31절 ). 첫 창조
에서 성령이 행하신 사역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온 세계
에 의와 평화를 회복하고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새 창조의 사역이 어떤
것일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사 32:15-17 ).
따라서 성령은 피조세계에 생명력과 기쁨을 줌으로써 삼위일체 하나
님의 복된 삶을 드러내신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354-430년 ) 는 “삼
위일체 안에서 성령은 태어나지 않으신 분이지만, 태어나게 하신 분[성 부]과 태어나신 분[성자]의 달콤한 관계를 모든 피조물에 각자의 역량
을 따라 차고 넘칠 정도로 풍부하고 풍요롭게 충만하게 하심으로써, 모
든 피조물이 각자의 고유한 질서를 지키는 가운데 각자의 고유한 자리 에 만족하게 하신다”고 말해 성령을 높였다.27 ) 칼빈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을 통해 우리를 생명 안에서
25 ) Owen, Pneumatologia, in Works, 3:99.
26 ) Smeaton, TheDoctrineoftheHolySpirit, 9.
27 ) Augustine, On the Trinity, 6.10.11, in NPNF1, 3:103.
28 ) John Calvin, Commentaries, 22 vols. (Grand Rapids, MI: Baker, 2003), 행 17:28.
70 개혁파 조직신학 5
지키시고 우리를 붙 들고 계신다. 성령의 능력은 이 세계의 모든 부분에 퍼져 만물을 각자 의 상태 속에서 보존하고, 성령은 하늘과 땅의 모든 살아 있는 피조물 속에서 우리가 보는 힘과 활력과 활동을 공급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피조물에 불과한 것들에 신성을 돌리는 인간의 우상숭배를 반박하는 한편, 성경은 창조주의 지속적인 활동을 계시한다고 칼빈은 말했다.28 ) 창조하고 유지시키는 성령의 사역은 성령이 진정으로 하나님이시라
는 것을 보여 준다. 성령은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고, “우리”는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한다”( 행 17:25, 28 ).
칼빈은 이렇게 썼다. “성령은 모든 곳에 퍼져 있어 하늘과 땅에서 만물
을 붙들고 자라게 하시며 살아나게 하신다. 한계에 의해 제한되지 않으
시므로 피조물의 범주에서 제외되시는 성령은 자신의 힘을 모든 것에
주입하시고, 본질과 생명과 움직임을 피조물에게 불어넣어 주신다는
점에서 명백히 하나님이시다.”29 )
우리는 이렇게 피조물과 관련해 성령의 내재성을 말하는 바로 그 지
점에서 만물의 주로서의 성령의 초월성도 단언해야 한다. 우리는 성령
의 편재성을 왜곡해, 성령은 영광에서 만물보다 무한히 높이 계시는 거
룩한 영이시라는 것을 미묘하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많은 신학
은 범재신론, 즉 하나님은 이 세계 속에 내재하시고, 마치 육신 속에 있
는 영혼처럼 참여하시므로, 하나님과 이 세계는 분리될 수 없다고 가르
치는 거짓된 교설 쪽으로 기우는 경향을 보여 준다.30 ) 호튼은 “최근 수
십 년 사이에 확산된 범재신론적 성령론은 ‘주이자 생명의 수여자’이
신 성령을 비인격화해, 세계 속에서 일하시는 신적인 분이라기보다는
이 세계 안에 내재하는 어떤 신적인 것으로 변질시키는 경향을 보여 주
어 왔다”고 경고한다.31 ) 그 결과 하나님의 영은 우주의 영이 되었고, 우
리를 필요로 하고 우리와 함께 고난을 겪는 만물의 생명이자 동력이 되
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이 하나님을 “스스로 온전히 완전하시고, 세
계로부터 독립되어 계시며, 불변하시고, 전지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
이라고 말하는 것과 반대된다.32 )
주이신 성령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람들과 나라들을 보존하
신다. 이것이 시편 139편 7절의 사상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거기
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섭리적 돌보심과 보호라는 맥락
29 ) Calvin, Institutes, 1.13.14.
31 ) Horton, RediscoveringtheHolySpirit, 69. 32 ) Horton, RediscoveringtheHolySpirit, 76.
2장 │ 성령의 사역: 창조와 일반 은혜 71
속에서 하나님 의 영의 편재성을 크게 기뻐하기 때문이다. 앞서 우리는 창세기 1장
책
보라.
30 ) 만유재신론에 대해서는 이
2권 162-167을
2절과 신명기 32장 11절 사이의 연결 관계, 즉 창조하시는 성령과 광야
에서 자기 백성을 돌보신 하나님을 결합시키는 연결 관계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이사야는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
신 것에 대해 “여호와의 영이 그들을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같이 편
히 쉬게 하셨도다 주께서 이와 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이름을 영
화롭게 하셨나이다”( 사 63:14 ) 라고 썼다. 이스라엘에 대한 성령의 사역
은 모세를 통한 영적인 인도하심을 포함한 것이었지만( 11절 ), 하나님은
그 척박한 곳에서 육신적인 자양분과 보호도 공급해 주셨다. 그것이 광
야의 만나든, 오늘날 우리의 일상적인 양식인 빵과 버터든, 성령은 지
금도 여전히 인간 실존의 모든 세부적인 것에 깊이 관여하신다. 성령은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며, 우리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 하나님의 피조
물인 우리를 모든 것에 섭리적으로 유지시키고 다스리신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셔서, 단지 사랑의 보존자로서만이 아니라 의로
우신 심판주로서도 이 세계를 다스리신다. 성령은 열방을 심판하신다.
여호와의 “호흡”( ‘루아흐’ ) 은 넘쳐흐르는 불의 강이 되어 앗수르의 세력
을 집어삼켰다( 사 30:28, 31, 33 ). 성령은 타는 듯이 뜨거운 사막의 바람처
럼 모든 타락한 인류 위에 불어닥쳐, 모든 육체를 풀처럼 시들어 버리
게 함으로써 온 인류를 심판하신다. 그 회오리바람 앞에서는 왕들조차
도 초개 같다( 40:6-8, 22-24; 참고, 시 103:15-16 ). 성령은 항상 “우리 하나님의
말씀”( 사 40:8 ) 과 함께 일하신다.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악인에게
영원한 형벌을 선언하시고, 하나님 백성에게 소망을 주신다.
따라서 성령은 하나님의 섭리의 모든 영역에서 일하신다. 한 나라가
추수 때 곡식을 거두어들여 그 식탁이 먹을 것으로 가득하다면, 그것은
성령 덕분이므로 성령께 감사하는 것이 마땅하다. 한 나라가 전쟁이나
자연재해 같은 재앙으로 신음하고 있다면, 우리는 여호와의 전능하신
숨 앞에서 두려워 떠는 것이 마땅하다. 성령은 주권적인 영이시므로, 우리는 성령을 두려워하는 것이 마땅하다.
72 개혁파 조직신학 5
인생에 대한 성령의 섭리
성령은 모든 각각의 사람을 직접 지으시고 붙드신다. 각 개인은 “하
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욥
33:4 ) 고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퍼거슨은 “이 절의 후반절은
창세기 2장 7절을 반영하고, 전반절은 창세기 1장 2절을 반영한 것으
로 보인다”고 쓴다.33 ) 따라서 이 본문은 창조를 개인에게 적용한 말씀
이다. 각각의 인간 생명은 성령에 달려 있다. 제프 토머스는 이렇게 말
한다. “당신은 얼마나 오래 살 것 같은가? 당신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이 당신에게 생명을 주시는 동안은 당신이 살아 있
을 것임은 안다.”34 )
성령은 물리적인 생명만을 유지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내적
삶을 형성하고 유지시키시며, 명철과 지혜를 주신다.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욥 32:8 ). 이것
은 우리가 소유한 모든 기술이나 능력과 관련해 우리에게 영광이 주어
질 때 그 기술과 능력을 우리에게 주신 성령께 그 영광을 돌려야 한다
는 것을 의미한다. 칼빈은 우리의 사고 능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
리는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 덕분이라는 것
을 알아야 한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아끼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타
락으로 우리의 본성 전체가 파괴되는 결과가 초래되었을 것이기 때문
이다.”35 )
성령은 리더십의 능력을 주신다. 우리는 이것을 여호수아( 신 34:9 ) 와
사울( 삼상 10:6, 10; 11:6 ) 에게서 본다. 칼빈은 이렇게 썼다. “인류에게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은 흔히 사람들을 이끌 위치에 있는 자들에
게 영웅적인
33 ) Ferguson, TheHolySpirit, 20.
34 ) Thomas, TheHolySpirit, 18.
35 ) Calvin, Institutes, 2.2.17.
36 ) Calvin, Institutes, 2.3.4.
2장 │ 성령의 사역: 창조와 일반 은혜 73
본성을 수여하신다.” 하지만 그들이 불신자여서 “야심”에 따라 움직인다면, 그들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게 된다.36 ) 이교도인 애굽와 바벨론의 왕들조차도 사람들을 잘 이끌
수 있는 지혜는 신적인 영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정했다.37 )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산업과 예술 분야에서 일할 능력과 기술을 주
시거나 그런 기술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능력을 주실 때, 그 능력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물이다. 아브라함 카이퍼( 1837-1920년 ) 는 “은사와
달란트는 성부로부터 오고, 성자에 의해 각각의 개성에 맞추어 안배되
며, 성령에 의해 마치 위로부터 온 불꽃으로 말미암은 것처럼 각 사람
속에서 점화된다”고 말했다.38 )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지혜의 성령
으로 충만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은 목재, 금속, 직물을 다루는 기술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그런 기술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능력도 가
질 수 있게 되었다( 출 28:3; 31:1-11; 35:31-35 ) 39 ) 이 사람들은 말씀을 가르치
는 데 성령을 필요로 한 설교자가 아니었고, 손으로 일하는 기술자들
이었다. 이 땅에서 최일선에서 가장 실무적인 일을 하는 직업도 성령
의 은사를 필요로 한다. 농부가 땅을 일구고 씨를 심고 수확하는 것을 아는 것도 “하나님이 그에게……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사 28:26; 참고, 2328절 ). 칼빈은 “성령의 뛰어난 은사들이 인류 전체에 퍼져 있다”고 말
했다.40 ) 이것은 자연적인 능력과 사역을 위한 영적 은사를 혼동하는 것
이 아니라( 고전 12:4 ), 모든 일에서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기술은 성령으
37 ) 창 41:38; 단 4:8-9; 5:11, 14.
38 ) Kuyper, TheWorkoftheHolySpirit, 39–40.
39 ) 콜(Cole)은 출애굽기 28, 31, 35장에 언급된 성령의 사역은 단지 성막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지
어지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것을 일반화해 인간의 모든 지식과 기술에 적용할 수
없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Cole, He Who Gives Life, 111–112. 하지만 이 성경 본문들은 하
나님이 사람들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 것은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정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여러 가지 기술로 나무를 새겨
만들게” 위한 것임을 보여 준다(출 31:3-5). 하나님은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
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 정교한 일을 고안하게 하
셨다”(35:35). 이 일들은 자연적인 기술들이다. 성막(정교하게 장식된 것이긴 하지만 통상적인
장막)을 짓는 데 초자연적인 능력이 요구되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자연적인 기술이 성령의 은사라는 것은 성령의 사역 없이는 사람들에게 그런 능력이 결여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끝으로 성막은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의 장소였지만, 성막을 새로운 에덴
동산처럼 짓고 장식한 것은 인간의 원래의 상태, 즉 하나님의 숨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어 땅을
다스리는 인간으로의 복귀를 시사해 준다(창 1:26; 2:7).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행하신 것은 아담
에게서 시작되고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되고 완성된 인류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
준다. 40 ) Calvin, Commentaries, 창 4:22. 칼빈은 여기서 “예술과 학문”을 언급했다. 다음도 보라.
Calvin, Commentaries, 고전 1:17
74 개혁파 조직신학 5
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찰스 하지는 성령은 “모
든 지적 삶”, 즉 지성의 모든 능력의 “원천”이라고 말했다.41 )
성령이 인간의 모든 지혜와 노력에 관여하신다는 사실은 그리스도
인의 삶에 여러 가지 실천적 함의를 지닌다. 첫째, 우리는 모든 기술 및
능력과 관련해 날마다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 우리 앞에 놓인 일을 위
해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고, 하루 종일 하나님의 도우
심을 구하는 기도를 끊임없이 드려야 하며, 감사기도로 하루를 마쳐야
한다.
둘째,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지식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칼빈은 성령은 불신자 안에 내주해 그들을 거룩하
게 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롬 8:9; 고전 3:16 ), 성령은 “인류의 공동의 유익
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모든 자에게……뛰어난 은택을” 나누어 주신다
고 쓴 후42 ) 이런 말을 덧붙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진리의 유일한
원천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영을 욕되게 하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리 자체를 거부하거나, 진리가 나타났을 때 진리를 멸시하지 말아야
한다.” 칼빈은 법과 시민생활, 자연에 대한 과학적 연구, 수사 기술, 의
학, 수학을 거기에 포함시켰다.43 ) 그는 “우리가 자연학, 변증학, 수학을
비롯한 학문들에서 불경건한 자들의 일과 사역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하
나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이 도움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44 )
셋째, 인간의 사고를 보존하기 위한 성령의 일반적 활동의 결과와 성
령의 특별 계시를 구별해야 한다. 단지 인간적인 가르침과 글은 성령에
의해 유지된 어느 정도의 진리를 담고 있긴 하지만, 많은 죄와
41 ) Hodge, Systematic Theology, 1:530.
42 ) Calvin, Institutes, 2.2.16.
43 ) Calvin, Institutes, 2.2.15.
44 ) Calvin, Institutes, 2.2.16.
2장 │ 성령의 사역: 창조와 일반 은혜 75
어리석 음 때문에 왜곡되어 있기도 하다( 롬 3:11; 엡 4:17-18 ). 우리에게 전적인 복 종을 명령할 수 있는 신적 권위, 우리의 절대적인 신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무오한 진리성, 우리의 믿음과 경건을 지도하는 것과 관련한
충분성을 지닌 것은 오직 성경이다( 딤후 3:15-17 ). 45 ) 칼빈은 이렇게 썼다.
“교양 학문을 비롯해 지혜를 얻게 해 주는 모든 학문은 하나님의 선물
이다. 하지만 그 학문들은 한계를 지닌다. 즉 그 학문들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침투할 수 없다. 따라서 그 학문들은 여주인이 아니라
시녀의 지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아니, 그 학문들은 하나님의 말씀
과 성령에 전적으로 종속될 때까지는 공허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
져야 한다.”46 )
넷째, 모든 능력이 성령으로 말미암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다. 모든 기술, 학문, 예술은 하나
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윌리엄 퍼킨스는 이렇게 말했다. “손
으로 하는 모든 기술은 인간의 능력 안에 있지 않고, 성령으로 말미암
아 온다. 이것은 우리에게 우리의 특정한 생업을 수행할 수 있게 해 주
는 이 은사를 잘 사용해야 한다는 것, 즉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교
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47 ) 따라서 우
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을 감사해야 하고, 가능한 한 우리의 일을
사랑해야 하며, 그 일에 우리의 힘을 쏟아야 한다( 전 9:10 ). 성경은 “무
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 3:23 ) 고 말한다.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일반 은혜
성령은 죄악 된 사람들에게 물리적인 생명과 정신적인 능력을 여전
히 주고 계신다.
따라서 우리는
“일반 은혜”라는 주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일반 은혜”는 하나
님이 의인과 악인 둘 모두에게, 심지어 결코 회개하지 않을 자에게조차
45 ) 인간의 지성에 대한 죄의 효과에 대해서는 이 책 3권 502-504, 508-510을 보라. 기록된 하나
님의 말씀의 권위, 무오한 진리성, 충분성에 대해서는 이 책 1권 21, 22장을 보라.
46 ) Calvin, Commentaries, 고전 3:19.
47 ) Perkins, AnExpositionoftheSymbol, in Works, 5:309.
조직신학
76 개혁파
5
하지만 이 은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인을 하나 님과 화해시켜 영광으로 이끄는 구원의 은혜가 아니다.
주시는 선한 은사라고 정의한다.
하나님의 일반적인 선하심
창조주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번째 위격이신 성령은 인류 전체
에게 많은 은사를 부어 주신다는 것에 대해서는 앞에서 살펴보았다. 하
나님의 선하심은 이 세계 전체에 미친다( 시 145:8-9 ). 하나님은 무조건
적인 사랑, 심지어 모든 불리한 조건을 뛰어넘어 주시는 사랑의 본이
시다.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시면
서,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
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고 말씀하신다( 마 5:44-45 ) .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다”( 눅 6:35; 참고, 행 14:1617 ). 48 )
타락한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선하심은 하나님이
의로우신 심판으로 노아의 방주에 보존된 사람과 생물을 제외한 모든
인간과 생물을 쓸어버리신 대홍수 후에 나타났다. 카이퍼는 “일반 은혜
교리의 출발점은 하나님이 노아와 언약을 맺으신 것에 있다”고 썼다.49 )
하나님은 창조 때 인간에게 주신 복들을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 다시
내려주셨고( 창 9:1, 7 ), 인간이 생물을 사용하는 것 및 인간의 범죄에 대 한 처벌과 관련해 새로운 질서를 세우셨으며( 2-6절 ), 온 인류 및 생물과
언약을 세우셔서 다시는 대홍수로 이 세계를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
셨다( 8-17절 ). 케르스텐( 1882-1948년 ) 은 “우리는 노아 언약과 은혜 언약을
구별해야
50 )
48 ) 하나님의 보편적 선하심과 일반적
Abraham Kuyper, Common Grace, trans. Nelson D. Kloosterman and Ed M. van der Maas, ed. Jordan J. Ballor and Stephen J. Grabill, intro. Richard J. Mouw, 2 vols. to date, Abraham Kuyper Collected Works in Public Theology (Bellingham, WA: Lexham Press; Grand Rapids, MI: Acton Institute, 2015, 2019, 『일반
1』, 부흥과개혁 사 역간, 2017), 1:10.
50 ) G. H. Kersten, Reformed Dogmatics:A Systematic Treatment of Reformed Doctrine Explained for the Congregations, trans. Joel R. Beeke and J. C. Weststrate, 2 vols. (Grand Rapids, MI: Netherlands Reformed Book and Publishing Committee, 1980), 1:79. 노아 언약
2장 │ 성령의 사역: 창조와 일반 은혜 77
한다”고
이 세계를 보존
지적했다.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사랑에 대해서는 이 책 2권 444-446을 보라. 49 )
은혜
및 노아 언약과 은혜 언약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 책 4권 156-159를 보라.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셨다( 12:1-3 ). 카
이퍼는 이렇게 썼다. “일반 은혜가 없었더라면 택하신 자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특별 은혜는 일반 은혜를 전제한다.”51 ) 하나님의 계
획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교회가 있다. 따라서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계획을 주도하는 것은 “일반 은혜가 아니라 하나님
이 정하신 대로 안배되는 특별 은혜다.”
하나님에 의한 죄의 억제
타락한 인간에게 나타난 또 하나의 하나님의 선하심은 죄의 억제다.
인간은 지금 실제로 자행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악을 자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은 한편으로는 모든 인간의 영혼 속에서
활동하는 양심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정의와 질서를 유지하려는 시
민 정부를 통해 인간의 죄를 억제하신다( 롬 2:14-15; 13:1-7 ). 53 ) 윌리엄 에
임스는 내적으로 양심을 통해 역사해 영적 죽음의 진행을 억제하심으
로써,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과도한 죄에 재갈을 물려 죄인조차도 많은
극악무도한 죄를 저지르는 것을 혐오하게 하신다”고 썼다.54 ) 하나님이 자신의 감화를 거두어들이시고 죄인을 그들의 죄에 넘겨주시면, 가족
구성원과 친구에 대한 본성적인 애정은 죽고, 사회는 타락해 끔찍한 불
법으로 빠져든다( 롬 1:28-31; 딤후 3:1-3 ).
하나님이 죄를 억제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로 흔히 인용되는
성경 본문은 창세기 6장
“함께 하다”( ‘야돈’ ) 로 번
역된 동사의 특정한 형태( 이 형태는 여기에만 나온다 ) 와 관련된 불확실성 때
51 ) Kuyper, Common Grace, 1:265.
52 ) Kuyper, Common Grace, 1:266.
53 ) 인간에게서 죄를 벌하고 억제하는 수단인 양심과 시민 정부에 대해서는 이 책 3권 569-575를 보라.
54 ) Ames, The Marrow of Theology, 1.14.21, 27, 30 (123–124).
78 개혁파 조직신학 5
52 )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지만 이 성경 구절은 해 석하기가 어려운데,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3절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 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 형태의 동사가 ‘심판하다, 정의를 집행하다, 다
투다’를 뜻하는 어근( ‘딘’ ) 에서 왔다고 믿고, 어떤 사람은 ‘계속하다, 거
하다’를 뜻하는 어근에서 왔다고 믿는데, 후자는 70인역과 불가타 역
본의 읽기이기도 하다. ‘다투다’라는 읽기는 성령이 노아 같은 경건한
자의 설교를 통해 사람들과 다투셨다는 사실을 밑받침해 줄 수 있다( 벧
후 2:5 ). ‘거하다’라는 두 번째 읽기와 관련해 존 커리드는 이렇게 썼다.
“‘나의 영이 머물지 아니하리니’라는 서두의 구절은 하나님의 생명의
영을 가리키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창] 2:7을 보라 ).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
에게서 생명을 거두어들여 인간의 끔찍한 행실을 끝낼 것이라고 약속
하고 계시는 것이다.”55 )
하나님은 흔히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려고 악인의 죄를 억제하신다.
아비멜렉이 사라가 결혼한 여자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사라를 데려간
후, 여호와 하나님은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
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창 20:6 ) 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 후
하나님은 가나안인들을 “크게 두려워하게” 하시는 방식으로 그들을 억
제해 야곱의 가족에게 복수하지 못하게 하셨다( 35:5 ). 하나님은 이스라
엘에게 해마다 절기에 모일 것을 명령하시면서, 그들이 지키지 않는 사
이에 이웃 이방 나라들이 그들의 땅을 “탐내지” 못할 것이라고 약속
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그를 예배하는 자를 보호하시기 위해 다른
나라의 탐욕을 제한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출 34:24 ). 이 악한 세계에서
평화의 상당 부분은 하나님이 자신을 기쁘시게 하는 경건한 자에게 주
시는 복에서 생겨난다( 잠 16:7 )
인간은 악한 죄인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여전히 자녀에게 좋
은 것을 주고( 마 7:11; 딤전 5:8 ), 자신이 속한 문화에서 수치스러운 일로 여
겨지는 악덕을 피하며( 고전 5:1 ), 자기를 사랑해 주는 자를 사랑한다( 마
5:46-47 ). 하인리히 불링거( 1504-1575년 ) 는 이렇게 말했다. “이교도의 가
55 ) John D. Currid, A Study Commentary on Genesis: Genesis 1:1–25:18, EP Study
Commentary (Darlington, England: Evangelical Press, 2003), 175.
2장 │ 성령의 사역: 창조와 일반 은혜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