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복음주의적 종말론에서의 하나님 나라 비전 27
1. 오시는 왕-복음주의의 기초 27
2. 복음주의적 종말론의 성경적 관심 33
3. 하나님 나라 비전(종말론)의 선교와의 관련성 39
2장 세계 복음화와 하나님 나라 43
서론 43
1. 복음화: 은혜의 나라로 초대하기 44
2. 복음화: 영광의 나라를 준비하기 56
3장 하나님 나라와 현대 유토피아주의 69
몇몇 현대 철학적 및 신학적
체계와의 성경적 만남
1. 매혹으로서의 미래와 악몽으로서의 미래 70
메시아적 마르크스주의의 목표 70
과학과 기술의 새로운 세계 질서 75
운동의 유토피아적 비전 82
운동의 비전에 대한 비판적 성찰 88
2.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성경의 증언 90 약속으로서의 하나님 나라 90 예수 안에 임한 하나님 나라 92
다가오는 영광의 형태의 하나님 나라 95
도래와 기대 사이의 긴장 속에 있는 하나님 나라 99
5장 1980년 멜버른 대회에서 하나님 나라의 이념적
6장 정치적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백성 신학 143
1. ‘백성 신학’의 네 가지 근원 143
제3세계 신학 협의회들 143
위한 그리스도인’ 146
도시 농촌 선교회 147
세계 교회 협의회의
사회역사적 해석학 163
‘백성 신학’의 다양한 형태 169
3. 백성 신학의 내용과 에큐메니칼적 의미 171
백성 신학의 중심 교리적 쟁점 172
4. 백성 신학에 대한 비판적 평가 187
정당한 우려 187
성경적 신앙의 이념적 왜곡 189
성경적 구원론의 굴복 191
인간의 자기신격화의 위험 192
제3세계 백성 신학들은 보편적인가, 토착적인가 193
7장 어떤 하나님 나라가 임박했는가 199
서론 199
상황 신학의 특별한 표본으로서의 카이로스 문서 205
상황 신학의 기본 특징 207
신성한 카이로스를 가진 혁명적 상황의 식별 210
성경적 카이로스의 특징 212
성경적 신앙의 거부와 성경적 신앙의 이념적 대체 219
마지막 평가 227
8장 성경의 하나님
는
9장
위조품을 분별하
카이로스 문서에 대한 비판적 평가
샌안토니오와 마닐라 대회(1989년)에 이은 세계 선교 264
서론 264
I. 샌안토니오 대회의 결과에 대하여 265
A. 무엇이 복음주의적 희망을 일깨웠는가 265
B. 여전히 우리에게 경계하도록 도전하는 것 266
C. 일부 복음주의자들의 ‘다리 놓기’는 시기상조였다 268
II. 마닐라 대회의 의의 269
A. 로잔 I의 좋은 연속 269
B. 대회에서 드러난 약점 270
C. 위협적인 영향의 징후 271
III. 선교에 대한 성경적 ‘구원
역사’ 관점을 향하여
1. 선교의 근원, 내용 및 목적 274
2. 선교의 소망의 메시지 274
3. 선교를 위한 능력 부여 275
4. 선교의 전쟁터 275
5. 선교, 성령 및 영들의 분별 276
6. 선교의 전망 277
7. 그리스도의 교회, 하나님 나라 및 선교 278
8. 선교의 사회적 업적의 잠정적인 성격 278
9. 선교의 긴급성 279
10. 선교의 확신 279
전망 280
| 출처 282 | 참고문헌 285
273
|추천사|
페터 바이어하우스의 생애와 신학
우병훈 교수 ( 고신대학교 신학과 )
페터 파울 요하네스 바이어하우스( Peter Paul Johannes Beyerhaus, 1929-2020년 ) 는 독일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선교학자다. 그는 성경에
근거한 선교의 정통성을 사수하기 위해 일평생 헌신했다. 특히 철
저한 문헌 연구와 특유의 변증적 방법으로 WCC ( World Council of Churches: 세계교회협의회 ) 의 선교론에 대해 비판함으로써 학계와 세계
교회의 주목을 받았다. 비록 2020년에 소천했지만, 그가 남긴 신학
적 유산은 그가 가르친 후학 및 그의 사상에 동의하는 이들을 통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8년 10월 5일에 바이어하
우스 학회( Beyerhaus Academy; 회장 이동주 박사 ) 가 창립되어 다양한 활
동을 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바이어하우스의 생애, 그의 신학적 발
전, 신학적 경향 및 그의 대표작인 이 책 『하나님 나라와 유토피아
오류』를 소개하겠다.
바이어하우스의 생애
페어 바이어하우스는 1929년 브란덴부르크의 호엔크레니히에서
루터교 목사인 지크프리트 바이어하우스( Siegfried Beyerhaus ) 의 장남
으로 태어났다.1) 그는 베를린, 할레, 하이델베르크, 본, 웁살라, 베텔
에서 개신교 신학을 공부했다. 그는 웁살라에서 잉에예르트 칼렌( Ingegärd Kalén ) 을 만나 1955년에 결혼했다. 웁살라에서 그의 박사 지
도교수인 벵트 순드클레르( Bengt Sundkler ) 도 만났는데, 그에게서 성
경적 구원론과 구속사를 배웠다. 그는 1952-1953년 및 1955-
1956년에 순드클레르의 지도 아래 선교학 연구를 수행했고, 이때
순드클레르는 그의 선교신학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바이어하우스는 1953년부터 1954년까지 발터 프라이타크( Walter
Freytag ) 가 이끄는 독일 개신교 선교 위원회의 감독 대리 역할을 수
행했다. 1956년에 그는 웁살라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학위 논문은 “선교 문제로서 젊은 교회의 독립”이라는 주제를 다루
었다.2) 그는 1955년 1월 15일 베를린 주교 오토 디벨리우스( Otto
Dibelius ) 에 의해 목사로 성임되었다. 그해 8월 6일 팅스타드에서 잉
에예르트와 결혼했는데, 팅스타드는 아내의 고향이었으며
스웨덴
1) 여기에서 다룬 바이어하우스의 생애는 독일 위키백과를 많이 참고하고, 빠진 부 분은 영어 위키백과로 보충했다. https://de.wikipedia.org/wiki/Peter_Beyerhaus; https://en.wikipedia.org/wiki/Peter_Beyerhaus
2) Peter P. J. Beyerhaus, Die Selbständigkeit der jungen Kirchen als missionarisches Problem (Wuppertal-Barmen: Verlag der Rheinischen Missions-Gesellschaft, 1956). 월드캣(WorldCat)에 따르면 이 책은 1956년
부터 1967년 사이에만 25쇄를 찍었다. https://worldcat.org/identities/lccnn50011148/
추천사 9
의 노르셰핑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들은 이후 다섯 자녀
를 낳았다. 바이어하우스가 튀빙겐 대학교에 재직한 이후로는 대학
교에서 남쪽으로 약 11킬로미터 떨어진 고마링겐에 거주했다. 바이
어하우스가 세상을 떠난 곳도 바로 이 장소였다. 1956년에 그는 영
어를 공부하기 위해 옥스퍼드를 방문한다. 그해 여름에 스웨덴으로
돌아온 후 노르셰핑에 있는 여러 지역 교회에서 사역했다. 노르셰
핑에서 첫 딸인 카롤리나가 태어났다.
1955-1957년 바이어하우스는 공식적으로는 베를린 교구에 소속
된 목사였다. 1957-1965년에 그는 남아프리카의 베를린 선교협회
에서 봉사했다. 또한 1965년부터 1997년까지 튀빙겐 대학교( Eberhard Karls Universit ät T übingen ) 의 선교학과 에큐메니칼 신학 교수로
봉직했다. 그는 1969년 12월 27일에 알브레히트 벵겔 하우스( Albrecht-Bengel-Haus; 약어 ABH ) 를 세우고, 1970년부터 1974년까지
초대 명예 총장직을 맡았다.3) 알브레히트 벵겔 하우스는 튀빙겐에
소재한 복음주의 신학생을 위한 연구실이다. 이후에 다루겠지만, 바
이어하우스는 구속사적 성경 해석자 알브레히트 벵겔의 영향을 많
이 받았는데, 그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연구소가 바로 벵겔 하우
스다. 현대 성경 비평학에 대한 비판으로 유명한 게르하르트 마이
어( Gerhard Maier ) 도 1980년부터 1995년까지 이 기관의 총장을 역 임한 바 있다.
바이어하우스는 “고백교회 컨퍼런스”( Konferenz Bekennender Ge -
3) 벵겔 하우스의 홈페이지는 아래와 같다. https://www.bengelhaus.de/
meinschaften; 약어 KBG ) 를 1969년에 공동 창립했다.
그리고 1978년
부터 이 단체의 회장을 맡았고, 2009년부터는 명예 회장이 되었다.
이 단체는 이후에 “국제 고백교회 컨퍼런스”( Internationale Konferenz
Bekennender Gemeinschaften; 약어 IKBG ) 또는 “국제 기독교 네트워
크”( International Christian Network; 약어 ICN ) 로 알려졌다.4) 이 단체는
루돌프 불트만의 비신화화 방법론에 반대하고, 개신교회가 정치화
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보수적 교회들이 모여 형성한 단체로서, 독
일의 보수적 복음주의 교회들의 상위 조직이 되었다. 특히 국제적
인 신학대회를 개최하여 다섯 가지 주제, 즉 1 ) 성경적 조직신학, 2 ) 선교, 전도, 에큐메니즘, 3 ) 실천신학, 4 ) 교회와 환경, 5 ) 가족
과 양육 등의 분야를 다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1970년 고백교회 컨퍼런스의 두 번째 회의에서 바이어하우스는
“선교의 근본적 위기에 대한 프랑크푸르트 선언” ( Frankfurter Erk -
l ärung zur Grundlagenkrise der Mission ) 의 초안을 발표했다. 같은 해에
출간된 이 성명서는 선교에 대한 복음주의적 이해와 새로운 에큐메
니칼 접근 방식을 대조했다. 후자에 따르면 현대의 선교는 단순한
개발 원조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바이어하우스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그런 주장에 강한 반대를 표명했다. 이 선언은 전 세계적
으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독일의 모든 복음주의 선교단체가 연합
하여 “복음주의 선교 사무국”( Arbeitsgemeinschaft Evangelikaler Mis -
sionen ) 이 생겨나게 된 것도 바로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결실 중에
4) 이 단체의 홈페이지는 아래와 같다. https://www.ikbg.net/en/index.php
추천사 11
하나였다. 바이어하우스는 세계 복음화를 위한 로잔 운동의 공동
창립자였다. 그는 1974년 로잔에서 열린 첫 번째 대회와 1989년
마닐라에서 열린 두 번째 대회에서 기조 연설을 했다.
1974/75년에 바이어하우스는 튀빙겐의 신학부 학장이었고
1989년부터 1996년까지 슈투트가르트 근처 코른탈에 있는 선교자
유대학( Freie Hochschule für Mission ) 의 총장직을 수행했다. 또한 1987년
에 고마링겐에
bruderschaft St. Peter und Paul )
1997년에 바이어하우스는 자신의 집이 있는 고마링겐에 “디아크
리시스 연구소”( Institut Diakrisis ) 를 설립했으며 저널 「디아크리시스」
의 편집장이 되었다.5) ‘디아크리시스’라는 명칭은 시대의 정신을 분
별한다는 의미에서 유래했다( 고전 12:10 참고 ) . 이 연구소는 독일 개신
교의 고백교회 컨퍼런스와 고백교회 국제회의의 지원을 받고 있다.
바이어하우스는 사망할 때까지 이 연구소의 명예 회장으로 재직하
면서 지속적으로 활동했다.
2004년에 바이어하우스는 보수적인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가 연
합하는 “신앙고백적 에큐메니칼 운동” ( Bewegung der BekenntnisÖkumene ) 을 설립했다. 2006년에 “독일-바티칸 협회”( Deutsch-Vatikanischen Gesellschaft ) 가 설립되는데, 2009년부터 그는 이 협회의
명예 회원으로 활동했다. 바이어하우스는 동성애를 포함한 모든 성
5) 아래의 홈페이지를 참고하라. https://www.ikbg.net/en/diakrisis.php
적 지향성의 평등을 주장하는 “반기독교적 젠더 이데올로기”에 반
대하는 “고백적 에큐메니칼 선언” ( Bekenntnis ö kumenischen Erkl ärung ) 에 최초로 서명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독일 복음주의 비
상공동체( Evangelische Notgemeinschaft in Deutschland; 약어 ENiD ) 의 「갱
신과 방어」( Erneuerung und Abwehr ) 의 기고자였다. 이 단체는 동성혼
을 반대하고, 사회주의를 거부하며, 여성의 어머니 역할을 강조 한다.
2010년에 그는 “사도적 형제단 연맹”( Bund Apostolischer
미( Gustav-Siewerth-Akademie ) , 스위스 바젤의 독립신학교( Staatsuna-
bh ängige Theologische Hochschule ) , 벨기에 뢰번의 개신교 신학부 및
연세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그리고 나탈의 마푸물로 근처 움푸물
로에 있는 루터파 신학교의 총장직을 수행했다. 그는 1995년에 일
리노이주 디어필드에 있는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 ( TEDS ) 에
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의 주요 연구 분야는 선교와 에큐메니칼 운동이었지만, 아프리
카 독립 교회에 대한 연구도 유명하다. 그의 대표 저술은 『흔들린
기초: 선교를 위한 신학적 기초』( Shaken Foundation: Theological Foundations for Mission, 1972 ) , 『성경적 선교신학』 ( Theologie der christlichen Mission, 1987 ) , 『하나님 나라와 유토피아 오류』( God’s Kingdom and the Utopian Error, 1992 ) , 『그가 보내신 말씀』( Er sandte sein Wort,
1996 ) , 『현대 선교와 변증』( Mission and Apologetics, 2004 ) 이 있다.6) 특
히 그의 주요 저작인 『그가 보내신 말씀』에서 그는 그리스도를 중심
으로 하는 세계 선교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켰다. 그는 2020년 1월
18일에 고마링겐에서 세상을 떠났다.
바이어하우스의 신학적 형성
바이어하우스의 신학은 한편으로는 굉장히 일관성을 지니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풍부한 다양성을 지닌다.7) 우선 그가 일평생
성경적이고 복음주의적인 신학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뚜렷한 일관
성이 나타난다. 한 사람의 신학자가 그처럼 철저하게 성경에 충실
하고 복음주의 신학에 헌신하기는 쉽지 않다고 여겨질 정도로, 바
이어하우스는 이 부분에서 특별한 모범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다
른 한편으로 그는 다양한 신학을 탐색하고 기꺼이 그들과 대화하려
했던 보편교회적인 정신을 가졌다. 그는 개신교뿐 아니라, 로마
6) 우리말로는 아래와 같이 번역된 책이 있다. 『성경적 선교신학』, 손주철·김영동 옮김(서울: 성광문화사, 2004); 『그가 보내신 말씀』, 이동주 옮김(서울: CLC, 2008).
7) 페터 바이어하우스의 신학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아래 글들을 참고하라. 김은홍, “바이엘하우스의 신학적 배경과 방법론의 고찰,” 「한국개혁신학」 46 (2015): 79-104; 김은홍, “바이어하우스의 선교 목표인 복음화의 신학적 구조 분석,” 「한국개혁신학」 65 (2020): 262-294; Peter Beyerhaus, Mission in urchristlicher und endgeschichtlicher Zeit (Giessen: Brunnen-Verlag, 1975), 307-308; D. Bosch, Witness to the World (London: Marshall, Morgan & Scott, 1980), 30; J. W. de Gruchy, “The Great Evangelical Reversal: South African Reflections,” Journal of Theology for Southern Africa, 9 (1978): 45-57.
톨릭 및 정교회 신학자들과도 만남을 가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신의 신학을 현대주의의 다양한 사조에 편승시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성경적 중심을 잡으면서도 현대의 다양한 신학적 경향
과 대화하여 복음주의 신학의 깊이와 외연을 확장시킨 사람이었다.
아래에서는 바이어하우스의 신학적 형성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살펴보고, 그의 신학적 특징을 정리하겠다.
바이어하우스의 신학의 토대는 성경이었다.8) 그는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 이라는 종교개혁의 모토에 충실했다. 그는 성경과 하나님
의 말씀을 상호 교차적으로 사용했다. 이것은 때로 성경과 하나님
의 말씀을 분리시키는 현대 신학과 결별하고 오히려 옛날의 개혁의
길, 즉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길을 그가 걸어갔다는 사실을 보
여 준다. 그는 성경이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지칠 줄 모르고 강
조했다. 그의 신학의 처음과 중간과 끝은 언제나 성경이었다. 그는
“성경은 그 자신의 해석자다”( Scriptura est interpres sui ) 라는 종교개
혁의 성경 해석 원리를 고수했다.
또한 그는 독일 경건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여기에서 그는
순전한 교리와 거룩한 삶의 일치를 배웠다. 그는
8) Peter Beyerhaus, Er sandte sein Wort:Theologie der christlichen Mission, Heilsgeschichtliche Missionstheologie; Bd. 1 (Wuppertal: Brockhaus, 1996), 102-103.
추천사 15
향을 받아 개인적 경건이 선교의 열정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
했다.9) 그는 “믿음의 내용으로서의 믿음”( fides quae ) 뿐만 아니라
“믿는 행위로서의 믿음”( fides qua ) 을 강조했다. 따라서 그의 신학에
서는 실천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바이어하우스는 자신의 박사 지도교수인 벵트 순드클레르에게
구속사의 중요성을 배웠다. 그리하여 직접 알브레히트 벵겔( Albrecht Bengel, 1687-1752년 ) 의 구속사적 성경 해석을 연구했다. 그는 벵겔의
신학이 창조부터 종말에 이르는 성경의 거대 서사시를 일관성
중심적 성경 해석임을 알게 되었다.
특히 그는 벵겔에게서 그리스도의 사역이 지상에만 한정된 것이 아
니라, 부활 승천 재림까지 이어지는 우주적 차원까지 확장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바이어하우스는 벵겔의 신학적 중요성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간파하고, 그의 신학적 정신을 계승하고자 1969년에 벵
겔 하우스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 외에도 바이어하우스는
구스타
프 바르네크( Gustav Warneck, 1834-1910년 ) 와 카를 하르텐슈타인( Karl
Hartenstein, 1894-1952년 ) 의 영향을
9) Beyerhaus, Er sandte sein Wort, 51-52.
10) Beyerhaus, Er sandte sein Wort, 111-113.
11) 자세한 설명은 김은홍, “바이어하우스의
석,” 269-273을 보라.
바이어하우스의 신학적 특징
바이어하우스의 신학이 지니는 주요한 특징은 아래와 같다.
첫째, 바이어하우스의 신학은 언제나 성경에 근거하고 있다. 다른
신학 사조를 비판할 때에 그는 구약과 신약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비판을 정초시키는 방식을 고집스럽게 유지한다. 그는 “오직 성경”
과 “모든 성경”( tota Scriptura ) 이라는 종교개혁의 모토에 충실하다.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말씀이며 기독교 신앙의 토대라고 그는
주장한다.12) 그는 성령이 오류가 없으므로 성경도 오류가 없다고 믿
는다.13) 그렇기에 그는 성경이 모든 신학의 근거이자 출발점이 되어
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를 자신의 선교학적 통찰에 적용시킨다.
둘째, 바이어하우스의 신학은 통전적인 하나님 나라 사상에 근거
하고 있다. 그는 성경적인 하나님 나라 사상을 제시하기 위해 삼위
일체론, 창조론, 계시론, 성경론, 구원론, 기독론, 교회론, 성령론, 종
말론을 함께 엮어 생각한다.14) 말하자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성경적
인 가르침을 포괄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신학의 다른 모든 주제를
하나님 나라와 연결하여 사고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WCC나 현
대의 자유주의적 선교학이 지니는 편향성과 비일관성, 편협성을 비
판할 수 있었다.
셋째, 바이어하우스의 신학은 삼위일체적인 특징을 지닌다. 그는
12) Beyerhaus, Er sandte sein Wort, 102.
13) Beyerhaus, Er sandte sein Wort, 298-300.
14) 이런 통전성은 바이어하우스 신학의 특징이다. 가령 Beyerhaus, Er sandte sein Wort에서도 해석학, 조직신학, 교리사, 실천신학이 함께 엮여 나타난다.
추천사 17
언제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중심적으로 사유한다. 그는 “성경적
하나님 나라의 중심에는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고 성령 안
에서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성부가 계신다”라고 주장하며, 하나님
나라의 목표는 바로 삼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데 있다고 단
언한다.15) 그리하여 그는 유토피아 사상에서 발견되는 율법주의적
이며 인간 중심적인 기획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이처럼 바이어하
우스의 신학은 루터파 신학의 은혜 중심적인 특징이 하나님 나라
사상에서 활짝 꽃피는 특징을 보여 준다.
넷째, 바이어하우스의 신학은 언제나 선교를 지향한다. 그는 하나
님 나라와 선교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그는 하나님
나라가 삼위일체의 사역으로 역사 속에 점점 계시되는데, 이것은
삼위 하나님의 선교 사역과 정확하게 경로를 같이 한다고 본다. 선
교는 하나님 나라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도구가 된다. 선
교는 모든 민족의 구원을 위해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
언하는 일인데, 바로 그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가져오
셨다. 선교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며, 하나님 나라는 선교에 동기를
부여한다.
다섯째, 바이어하우스의 글은 균형 감각을 갖추고 있다. 그는 자
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의 견해도 정확하게 소개하고 정중하게
비판한다. 날카로운 비판 이전에 정확한 이해를 추구한다. 정확한
이해 후에는 분명한 비판을 시도한다. 아울러 비판에만 그치지 않
15) Beyerhaus, God’sKingdomandtheUtopianError, 161.
고 반드시 대안을 제시하는 건설적인 특징을 지닌다.
이 책에서도 바이어하우스 신학이 지니는 이런 특징이 잘 나타 난다. 이 책에서 그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바탕으로
현대 신학에 깊게 침투한 유토피아 사상을 다각도로 비판했다. 유
토피아 사상은 이미 교부 시대부터 다양하게 존재해 왔다.16) 하지만
현대 “자유주의 신학들”( liberal theologies ) 과 “메시아주의적 마르크
스주의”( Messianic Marxism ) 에서 제시하는 유토피아 사상은 기존의
사상과는 전혀 결이 다르다. 바로 그 점을 바이어하우스가 예리하
게 포착했다. 그는 신학적 자유주의가 제시하는 유토피아 사상은
비성경적일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대척점에 서서 현대 교회와
선교를 병들게 만들고 있다고 보았다.
이 책에서 바이어하우스는 메시아주의적 마르크스주의에서 제시
하는 유토피아 사상뿐 아니라, WCC의 문서나 현대 선교 문서에 나
타난 유토피아 사상을 비판했다. 그는 그런 사상과 성경적 하나님
나라 개념의 차이를 10가지 지점에서 구체적으로 짚어 냈다. 이 책
의 8장이 그것을 다루고 있는데, 그 장을 먼저 읽고 다른 부분을 읽
는 것이 책에 쉽게 접근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
Neil and Kosta Simic, eds., Memories of Utopia: The Revision of Histories and Landscapes in Late Antiquity (New York, NY: Routledge, 2019);
B. Hoon Woo, “Pilgrim’s Progress in Society: Augustine’s Political Thought in the City of God,” Political Theology 16, no. 5 (2015): 421–441.
추천사
매우 요약해 주므로 이 책을 깊이 음미하면서 읽어 보길 권한다.
될 것이다.
|서문|
( Missions-Which Way?, 1972년
들린
( Shaken Foundations, 1973년 ), 『방콕 ‘73-세계 선교의 시작
인가, 끝인가?』 ( Bangkok ’73-Beginning or End of World Mission?,
1974년 ) 1)라는 제목의 책들에서, 나는 1961년에 뉴델리에서 이전의
국제 선교사 협의회가 세계 교회 협의회( World Council of Churches, WCC ) 로 통합된 이후 에큐메니칼 선교학의 극적인 발전 및 1968년 에 웁살라에서 열린 WCC 제4차 총회와 태국에서 열린 제8차 세계
대회의 중요한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런 사건들은
WCC 운동 안팎에서 복음주의 지지자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고,
곧 유명한 1966년의 휘튼 선언과 1970년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에
서 사과하는 반응이 표명되기에 이르렀다.
1) 세 책 모두 존더반 출판사(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출간되었다.
315명의 동료 참가자들과 내가 방콕에서 접한 ‘집단역학 실험’에
대한 나의 비판적 설명이 지금까지 영어로 된 나의 마지막 책으로
남아 있지만, 세계 선교 운동의 두 진영에 대한 내 개인적인
관심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 이후로 선교학적 중요성을
지닌 모든 에큐메니칼 대회에 관심을 가진 학생으로 남아 있었고, 대부분의 대회에 언론인 참관자로 참석하고 독일어 서적과 기사에
그 모임들에 대한 분석을 발표했다. 그러나 방콕에서 좌절감을 느
낀 경험을 한 이후로 나의 건설적인 참여는 1974년에 로잔에서 열
린 역사적 대회를 시작으로 세계 복음화를 위한 복음주의 운동으로
옮겨 갔다. 그 후로 나는 최근 마닐라에서 열린 제2차 세계 복음화
국제 대회( 1989년 ) 를 포함하여, 복음주의 운동의 대부분의 회의와 대
회에 주로 연사로 참석해 왔다.
1980년과 1989년에 국제 선교 운동의 양 진영은 각자의 후원 아
래 별도의 세계 대회를 열 것을 요구했다. 이 사실은 1973년에 방
콕과 1974년에 로잔에서 취한 대조적인 방향으로 인해 야기된 선
교학적 양극화가 양측의 대표자들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차
례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치유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사
실상 샌안토니오에서 ‘복음주의적 관심을 가진’ 160명의 참가자들 이
는 논의될 수 있고 논의되어 왔다. 선교 과업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왜곡시킨 것은 WCC 운동 측의 사회적 행동과 복음 전도 사이의 불
균형이라고 주장하는 복음주의자들이 있다. 그러면 균형을 조정하
는 것이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것이다. 이것이 사실상 ‘급진적
복음주의자들’의 대표들, 즉 두 운동 간의 합의를 주장하는 주요 대
변인들이 제안하는 것이다. 만약 복음주의자들이 그들의 에큐메니
칼 동료들에게서 배워 제3세계의 사회정치적 도전을 직시한다면,
반면에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이 수많은 미전도 종족 그룹의 영적 필
요에 부응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면, 그들은 통합이 가능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런 고려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의 약점은
이것이 신학적 토대 속으로 충분히 깊이 파고 들어가지 못하는 약
간 실용적인 접근이라는 것이다. 복음주의자들이 비기독교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더 열심인 반면에, 에큐메니
칼 운동가들은 그들의 빈곤을 야기하는 불공평한 사회 구조를 변화
시키는 데 더 관심이 있다는 사실은 마지막 분석에서 하나님의 구
속 계획에 대한 이해의 깊은 균열에 근거하고 있다. 양측 모두 원칙
적으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영적 및 육체적, 개인적 및 집단
적 필요가 모두 제거되는, 인류의 완전한 구원이라는 데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양측은 이 행복한 상황에 도달한 상태를
에 근거하여 제시한 이 신성한 목적에서 항상 영감을 받아 왔다. 그
러나 현대 국제 운동의 비극은 신학적 자유주의, 사회복음, 인본주
의 이념의 영향 아래,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서로 다른 천년왕국 이
론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흐릿한 개념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인
한다. 가장 급진적인 왜곡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다양한 역사 철학에서 바라는 어떤 이상적인 상태에 대한 동의어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모두 종말론적 정확성의 기본적인 결여, 또는 내 신학이 뿌리를 두고 있는 대륙 사상 학파의 용어를 사용하면, 성경적인 구
원 역사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기인하는 혼란의 여러 다른 수준들
이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구속적 경륜이 최종 목적지 에 도달하여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의 거울이 될 때까지, 하
나님이 주권적으로 세계를 다루실 때 펼쳐지는 여러 단계들 사이의
구원 역사의 결정적인 차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원대한 목적
을 놓치고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단계들을 소홀히 하면, 이론적인
오류가 생길 뿐 아니라, 그것의 실질적인 결과는 하나님의 자녀에
게 약속하시고 주신 천국을 오로지 사람 자신의 자율적인 노력에
의해서만 건설될 지상의 나라로 바꾸는 것이다.
이 일련의
를 이른바 ‘예수님의 언어’로 대체함으로써 사실상 선지자에서부터
복음서를 거쳐 서신서에 이르는 성경적 신학의 내적 원리를 뒤집는
이른바 ‘하나님의 나라 신학’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그런
제안이 오
더라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런 견해는 하나
님의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며( 고후 1:20 ), 우리는 하
나님과의 교제, 즉 교회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실현의 현재 단계에
서 그 나라로 받아들여진다는 성경적 구원 역사의 결정적 요점을
놓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데 있어 하나님의 주권적인 경륜을 염두
에 두라는 이 호소는 이 에세이와 강연 모음집을 관통하는 공통적
인 아이디어다. 독자들은 그 에세이들과 강연들이 세계 복음화를
위한 로잔 운동의 제1차 대회와 제2차 대회 사이의 16년 동안 다양
한 경우에 작성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장들의 스타일이 다르고, 때로는 이전 장에서 설명한 주장이 반복되지만, 원래 지적한 맥락
을 유지하기 위해 업데이트를 최소한으로 제한했다. 그럼에도 독자
들은 이 책을 동질의 신학적 취지를 가진 것으로 만드는 내적 일관
성을 인식할 것이라고 믿는다. 나의 성경 인용문은 일반적으로 개
정 표준역( RSV ) 성경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번역본은 때에 따라 개역개정
과 새번역 성경으로 대체했다-편집자 주 ).
마지막으로 이 책의 두 편집자인 북아일랜드 뱅거의 로버트
의 다른 전통적인 계열에 따라 형성된 교회 환경에서
수용될 수 있
도록 몇 가지 신학적 수정을 제안했다.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뿐 아
니라 오늘날 교회의 선교와 에큐메니칼 사상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
해 알고 싶어 하는 지성적인 평신도를 위한 책을 만들고 싶었으므
로, 이런 관심에 특별히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