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유대인 친구들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친구들의 아내 한
명은 지역 회당의 안식일 학교에서 가르친다. 나는 토라( 성경의 맨 처
음 다섯 권 ) 주석 한 권을 집어 들고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아
내가 그 주석에 큰 관심을 보이며 내 생각을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 주석은 마치 핵심을 놓친 농담을 읽는 것과 비슷하네
요. 이 주석은 토라의 요점, 즉 예수 그리스도를 놓치고 있군요.” 내
친구들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약속된 메시아로 믿는다는 사실
을 안다. 하지만 그들은 내 대답에 놀랐다. “뭐라고요?” 그들이 물
었다. “당신은 모든 성경이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믿나요?” 요한복음 5:39-40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
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은 성경이 자신에 관한 책이라고 말씀하신다.
누가복음 24:25-27, 44-47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
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
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
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영어 성경
그림 1: 히브리어 성경과 영어 성경
역사서
지혜서 예언서 율법서 역사서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
히브리어 성경
율법서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
여호수아에서
에스더까지
욥기에서 아가까지 이사야에서 말라기까지
예언서
시가서 전기 예언서 후기 예언서
이사야에서
여호수아에서
열왕기상하까지
(룻기 제외)
말라기까지
(애가, 다니엘서 제외) 시편, 욥기, 잠언, 룻기, 아가, 전도서, 애가, 에스더, 다니엘, 에스라, 느헤미야, 역대상하
히브리어 성경은 영어 성경에 있는 구약 성경과 다르게 배열되어
있다( 그림 1 참고 ). 예수님이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
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눅 24:44 ) 고
말씀하셨을 때, 이는 구약 성경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편’은 시가서라고 하는 부분에 포함된 책 전부를 가리키는 약어로 주로 사용
되었다 ).
예수님은 “모든 성경”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설명
하신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
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
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
될 것이다”( 눅 24:46-47 ).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첫 부활절
에 성경을 해설하신다. 그리스도는 모든 구약 성경이 자신을 가리
키고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즉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 열방에
대한 그리스도의 선포가 다 자신에 관한 것이라고 하신다. 단지 메
시아에 대한 몇 가지 예언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성
경 전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 이야기다.
보통 사람들은 추리 소설을 읽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며
작가와 머리를 맞대고 단서를 찾으며 범인을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 장을 먼저 읽어보기 좋아한다. 이들
은 처음부터 이야기의 결말을 먼저 알고 싶어 한다. 그다음 나머지
부분을 읽으면 바로 이해가 된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성경, 특
별히 구약 성경을 이 두 번째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우리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경을 읽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성경
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성경을 이해하려면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그리스도는 성경의 의미를 풀어 주는 열쇠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볼 때 의미가 있다. 이것은 특히 구약 성경에 있어서 그
렇다. 구약 성경이 어떻게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는지 볼 때만 우리
는 구약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은 성경에 의미를 부여하
신다. 예수님이 구약 성경의 약속과 이야기를 어떻게 성취하셨는지
생각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약 성경을 읽을 수 있다.
그리스도를 이해하려면 구약 성경이 필요하다 신약 성경 기자들은 구약 성경의 범주 안에서 예수님을 이해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구약 성경의 성취자로 기록했다. 신약 성경
기자들이 예수님을 설명하려고 참고한 구약 성경의 배경을 이해해
야만,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시고 어떤 일을 하셨는지 온전히 이해
할 수 있다.
성경 신학은 성경에 대한 이런 접근 방식에 사용되는 용어다. 이
용어는 넓은 의미에서 성경에 근거한, 또한 성경에 충실한 신학을
의미한다. 그러나 좁은 의미로는 성경이 어떻게 서로 맞물려 있는
지 살펴본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부분들이 전
체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볼 수 있다. 전체, 즉 구원의 전체 계
획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부분을 이해하기 어렵다. 전체를 이해함
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또한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행하실 일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목적 안에서 우
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성경신학은
우리에게 성경적 세계관을 제시한다. 때때로 우리는 성경이 신학과
윤리의 백과사전 형태로 기록되어 있어서 하나님은 ‘ㅎ’으로, 기도
는 ‘ㄱ’으로 찾아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
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다. 성경은 이야기다. 이야기를 이해해야만
성경과 그 신학을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신약 성경 저자들이 구약
성경을 사용한 방식이다.
성경 신학은 또한 성경, 특히 구약 성경을 잘못 읽는 두 가지 일반
적인 방법, 즉 우화화와 도덕화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준다.
우화화 우화화 곧 알레고리화( allegorising ) 는 영성화( spiritualising ) 로서, 외 부에서 의미를 가져와 구절을 읽어 내는 것을 말한다. 등장인물이
나 사건은 ‘영적’ 진리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알레고리화
는 단어의 평범한 의미를 우회해 숨겨진 의미를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것을 기도나 믿음 등의 ‘물맷돌’을 가
지고 ‘거인’과 싸우는 그리스도인의 모델로 보는 것이 그것이다. 이
경우 우리가 ‘돌’에 부여하는 의미는 궁극적으로 자의적이다. 이것
의 문제는 독자가 무엇이든 자신의 변덕에 따라 성경의 새로운 의
미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에 진리를
숨겨 두지 않으셨으며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방식으로 진리를 계
시하셨다. 도덕화 도덕화( Moralising ) 는 구약 성경 이야기를 ‘교훈을 주기 위해 쓴’ 도
덕적 이야기로 간주한다. 이 방식의 문제는 성경에 도덕적으로 복
잡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비도덕적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다. 등장인
물의 행동이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인지 나쁜 본보기인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입다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가장 먼
저 본 것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맹세하지만, 정작 그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자기 딸이다( 삿 11장 ). 입다는 섣부른 약속에 대한 경고인가, 아
니면 하나님의 헌신에 대한 한 예인가? 우리는 이런 결정을 내릴 때
기껏해야 성경 다른 곳에 나온 원칙을 적용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우리 자신의 편견을 적용한다. 사실 구약 성경의 이야기는 무엇
보다도 하나님 이야기다. 도덕화는 그리스도를 우회해 성경 메시지
를 구원과 은혜의 메시지가 아닌 도덕적 옳고 그름의 메시지로 축
소한다. 구약에서는 율법에 순종함으로써, 신약에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받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성경 메시지는 처음
부터 끝까지 구원은 은혜로 받는다는 것이다.
우화화나 도덕화 모두 성경 본문에 외부의 무언가를 끌어들여 읽
는 것을 말한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아닌 다른 목소리를
듣게 된다. 아무리 신약의 진리를 구약으로 읽어 낸다 해도 그것은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구약의 진정한 음성을 듣지 못하게 만든다.
그 결과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인식은 빈곤해진다.
약속의 이야기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다. 창세기 1장부터 3장까지는 하나
님이 어떻게 세상을 선하게 만드셨고 인류가 그 세상을 누리게 하
셨는지 설명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선한 통치 아래 두셨고
그 통치는 우리에게 생명과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인류는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켰다. 성경의
나머지 부분은 하나님이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시고 창조의 목적을
이루시는 일을 어떻게 시작하셨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 중심에는 약속이 있다. 창세기 12:1-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
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
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
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
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
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
어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
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이 약속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1. 하나님을 아는 백성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 12:2 ).
2. 복의 땅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
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창 12:7a ).
3. 열방을 향한 복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
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 12:3 ).
어떤 사람들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민족, 땅, 복으로 본다.
성경 신학의 패턴을 각각 다르게 볼 수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약속
의 세 번째 요소로 민족이 강조되는 것 같다. 창세기의 맥락에서
“복”은 구체적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 세계에 선
포하신 저주의 결과에 대한 복이다. 타락은 저주로 이어졌고 이제
하나님은 복을 약속하신다. 다시 말해 인류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은
심판을 뒤집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다. 복의 약속은 우리를 죄
와 심판에서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이다. 백성에 대한 약속은 하나님
으로부터, 그리고 서로에게서 멀어진 백성이 하나님 백성인 새로운
인류가 될 것이라는 구원의 한 부분이다. 땅에 대한 약속도 그 구원
의 일부다. 우리는 회복된 에덴, 복의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 복 주
시겠다는 약속은 민족과 땅에 대한 약속에 추가되는 것이 아니다.
복은 하나님이 복 주시는 장소에서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 되는 것
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추가 요소는 이 복이 모든 민족
에게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추가해야 할 요소가 하나 더 있다.
4. 왕과 왕국 왕과 왕국에 대한 이 약속은 성경 전체에 걸쳐 나온다. 아브라함
에게 하신 약속에서도 예상할 수 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단순한 민족이 아닌 정치적 실체를 가리키는 단어인
“국가”를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서 민족들
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창 17:6 ) 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구원에 대한 약속의 이 요소는 다윗에게 새롭고 독특한 방
식으로 다가온다.
사무엘하 7:11b-16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
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
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
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구원의 한 가지 약속에 대한 다양한 차원의 약속이 성경 이야기
를 이끌어 간다. 약속은 아브라함, 모세, 다윗과 맺은 언약 및 그리
스도가 맺으신 새 언약에서 확증된다. 언약은 공식적으로 합의된
약속인데 오늘날로 치면 ‘계약’으로 볼 수 있다. 다양한 언약이 있지
만, 그 밑바탕에는 하나의 약속이 있다.
갈라디아서 3: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
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바울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미리 선포된 복음이라고 말 한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복음으로 우리에게 주신 약속과 같다.
성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약속을 어떻게 성취해 가 시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삶 속에
서 그 약속을 부분적으로 성취하신 이야기다. 그러나 각 부분적 성
취는 예수님을 통한 궁극적 성취를 가리킨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
의 궁극적인 목적은 새로운 창조 세계에서 새로운 인류를 위한 것
이므로 약속은 점점 더 커진다. 약속은 예수님을 통해 새 창조 안에
서 성취된다.
이 책 나머지 부분에서는 성경에 나오는 구원 약속의 각 요소를
따라가 보려 한다.
이 책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읽을 수 있다. 약속의 각 요소를 차례로
읽으면서 성경을 따라가며 읽을 수 있다( 그림 2를 세로로 읽는 방식 ). 또
는 성경 이야기의 각 단계를 읽으면서 그 시점에서 구원 약속에 어
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그림 2를 가로로 읽는 방식 ). 이
를 돕기 위해 각 장의 제목을 다음과 같이 달았다( 그림 2의 첫째 열에 있
는 제목 ).
창조 (창세기 1-2장)
그림 2: 요약
하나님을 아는 백성 복의 장소 왕과 왕국 열방을 향한 복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류 에덴이라는 집에서
타락 (창세기 3-11장) 고립된 인류 에덴에서 추방됨
아브라함 (창세기 12-50장)
이스라엘 (출애굽기열왕기상하)
추락에서
포로로 (열왕기하)
약속의 백성 약속의 땅
예루살렘과
자유를 얻은 백성
포로로 잡힌 백성
성전과 함께
받은 땅
잃어버린 땅,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
예언 남은 백성 새 예루살렘으로
땅이 회복될
것임
말씀을 통해 통치하시는 하나님 땅을 채우라는 명령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함
언약의 약속을
통해 통치하시는 하나님
왕을 통해 통치하시는 하나님
예언의 말씀을
통해 통치하시는 하나님
앞으로 오실
왕을 통해 하나님이
통치하실 것임
예수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새 백성
살아 있는
하나님의 성전
복음을 통해
통치하시는 왕 예수
새 창조 새 인류 새 창조 하나님의 영원한
자유의 통치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들
모든 민족에게
약속된 복
열방을 하나님의
통치로 이끌도록
부름을 받음
열방의 방식에
합류됨
심판과 구원이
열방에 임할
것임
모든 민족을 향한 복음
모든 민족으로
구성된 백성
이 책의 목적은 하나님의 구원 약속의 여러 요소가 어떻게 전개
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성경을 전체적으로 읽을 수 있
고, 오늘날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살펴
볼 수 있다. 성경 구절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
질 수 있다.
● 이야기의 이 시점에서 약속의 각 요소에는 어떤 일이 일어 나고 있는가?
● 이 이야기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 우리에게 무 엇을 말해 주는가?
● 이 부분은 그리스도의 사역과 어떻게 대조되거나, 이를 가 리키거나, 조명하는가?
● 이 부분은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의 말씀에 대 해 어떻게 확신을 주는가?
● 이 부분은 사람들이 약속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지에 대해 무엇을 알려 주는가?
각 장 마지막에는 느헤미야를 사례 연구로 삼아 관련된 원칙을
설명하면서 어떻게 이런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지 간략하게 설명해
놓았다.
하지만 구원 약속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살펴보기 전에 성경 이야
기에 대한 개요를 알아야 한다. 성경 이야기에 이미 익숙하다면 1장
을 건너뛰고 2장으로 바로 넘어가도 좋다.
1장
구원 약속에 대한 이야기
나
는 그림 3과 같은 다이어그램을 처음 보고 정말 깜짝 놀랐
던 순간을 잘 기억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때까지 성경을 서
로 거의 관련 없는 이야기들을 단편적으로 모아 놓은 것으로 생각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이야기들이 함께 모여 우리에게 하나님
모습을 보여 주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따라야 할 도덕적
모범을 제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갑자기 처음으로 성경이
하나의 이야기임을 알게 되었다. 모든 개별적 이야기는 하나의 에
피소드였다. 게다가 도덕적 예시를 보여 주는 모음집이 아니라 구
원 이야기였다. 큰 이야기와 그 안에 담긴 모든 에피소드의 주인공
은 모세, 다윗, 엘리야, 바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었다.
이 이야기는 비단 성경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류 역사의 이야 기다. 전 세계 모든 문화권에서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어떤 때는 이
야기꾼이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오늘날에는 책이나 영화, 텔레비전
그림 3: 성경 이야기의 개요
구약
창조와 타락
아브라함
이스라엘
멸망에서 포로로, 예언
예수 신약
교회
새 창조
타락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애굽 모세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사울 다윗 솔로몬
오바댜, 요엘
이사야, 미가
남왕국 (유다)
새 창조 창조
북왕국 (이스라엘)
앗수르
바벨론
나훔, 스바냐, 예레미야, 하박국, 에스겔, 다니엘, 학개, 스가랴, 말라기 엘리야, 엘리사, 요나, 아모스, 호세아
에스라, 느헤미야
예수 오순절 바울
그리스도의 재림과
마지막 심판
프로그램의 형태로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야기는 허구고
어떤 이야기는 사실이지만, 모든 이야기는 우리의 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한 사회는 역사 속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면
서 그 사회의 가치를 전승한다. 그러나 모든 역사는 사실 성경이 말
하는 단 한 이야기의 일부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
하게 해 주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인류와 세상에 대해 참된 것을
설명해 준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는 이야기다. 죄와 죽음에
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 약속에 관한 이야기다. 창조 성경은 하나님에서부터 시작된다. 성경의 첫 구절은 “태초에 하
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 이다. 모든 것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이 계셨다. 하나님은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다. “산이 생기
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
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시 90:2 ).
그림 4 타락 노아 창조
하나님은 만물보다 먼저 계실 뿐 아니라 만물을 만드셨고 만물을
다스리신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좋은 세상이었다. 창조 이야기
전체에서 우리는 다음 메시지를 듣게 된다. 즉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10, 12, 18, 21, 25, 31 ) 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혼돈하고
공허한”( 창 1:2 ) 것에서 질서 있고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셨다. 이야기
자체가 이 사실을 강조한다. 처음 사흘 동안 하나님은 형태가 없는
것과는 다른 환경을 창조하셨고, 다음 사흘 동안은 그 환경에 맞게
그곳에서 살아갈 것들을 창조하셨다.
그림 5: 창조의 패턴
형태가 없는 것에서 창조하심 공허한 곳을 채우심
첫째 날: 빛 넷째 날: 광명체
둘째 날: 물과 하늘 다섯째 날: 물고기와 새
셋째 날: 땅과 식물 여섯째 날: 동물과 사람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창 1:26-27 ). 하나님
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다음과 같이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 하나님과 함께 피조물을 통치하기 위해: 하나님은 “그들로
다스리게 하자”라고 말씀하신다.
● 관계를 맺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
들자”라고 말씀하시고 우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리도록 만
드셨다. 하나님은 최초의 남자와 여자를 동산에 두셨다. 그곳은 안
전하며 하나님의 공급이 있는 곳이었다( 창 2:8-9 )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세상을 만드셨다( 창 1:3, 6, 9, 11, 14, 20, 24 ). 하
나님은 말씀을 통해 통치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통치, 즉 안
전과 자유와 생명을 주는 통치 아래 살도록 창조되었다. 최초의
남자와 여자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을 신뢰함으로써 하나님
통치에 대한 헌신을 표현해야 했다.
창세기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
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
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조의 일곱째 날에 하나님은 쉬셨다. 지금까지는 매일 같은 방식
으로 하루가 끝났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
니라”( 창 1:31 ). 하지만 일곱째 날에는 그런 구절이 없다. 이날은 끝이
없는 날이다. 이것은 창조의 절정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안식을
세상과 함께 누리시려고 안식일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지치지 않
으셨다. 오히려 하나님의 일은 끝났다. 그 어떤 것도 부족하지 않
았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
더라”( 창 1:31 ). 그러나 하나님이 만드신 좋은 세상은 이제 더는 좋은
세상이 아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아름답고 선하고 진실한 것을 자
주 본다. 하지만 악과 고통과 추함도 본다. 무언가 변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그림 6: 타락 타락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창조
타락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았고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
지 않았다. 사탄은 뱀의 모습으로 하와에게 찾아와 하나님 말씀에
의문을 제기했다. 사탄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통치가 선하신지
의심하게 했다( 창 3:1-5 ). 그들은 하나님 명령에 불순종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했다( 창 3:6-7 ). 창조의 질서가 뒤집
힌 것이다. 하나님은 피조물을 다스리는 사람들을 다스리려 하셨다.
이제 뱀이 하나님의 권위를 거부한 사람들을 지배하게 되었다.
사탄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을 주었다( 창 3:5 ).
이것은 선과 악에 대해 아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담과 하와는
이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고 있었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 자신이 선과 악을 아시는 분이므
로( 창 3:22 ) 선과 악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