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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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분석적 개관 11

│추천사 _ D. A. 카슨 23

│추천사 _ 리처드 개핀 27

│저자 서문 32

│감사의 글 37

│약어표 38

1. 서론 • 39

2. 준비를 위한 계시들 • 68

3. 예수의 자기 증언 • 93

4. 예수: 생애와 사역 • 150

5. 복음서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점진적 계시 • 175

6. 예수: 죽음, 장사, 부활, 승천 • 231

7. 복음서 신학자들 • 273

A. 공관복음 ● 278

1. 공관복음의 통일된 증언 ● 279

2. 마가복음: 특징적 증언 ● 304

3. 마태복음: 특징적 증언 ● 332

4. 누가복음: 특징적 증언 ● 367

B. 요한복음: 특징적 증언 ● 415

8. 결론 • 521

│참고문헌 524

1 서론

예수, 성경에 약속된 그리스도

BC 400년경에 옛 언약 시대의 구속 계시가 끝났을 때 아직 이루

어지지 않은 약속, 예언, 예측이 많이 남아 있었다. 특히 메시아 및

메시아 나라의 임함과 관련된 기대에 대해 구약 선지자들의 시대는

창조자이자 구속자인 언약의 주에 대해 주어진 약속들이 적절히 실

현된 것을 보여 주지 못하고 끝났다. 셈,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 이새, 다윗의 자손에게 속한 왕이 이스라엘 왕좌에 앉아 다스 리지 못했다. 신적 징벌을 받아 마땅한 죄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감

당하려고 일어난 고난의 종은 하나도 없었다. 재건된 성전은 솔로

몬 성전보다 더 큰 영광으로 채워지지 못했다. 땅끝까지 분포된 민 족들은 메시아의 의로운 통치에 기꺼이 복종하지 않았다. 해, 달, 별, 땅, 땅의 피조물로 구성된 창조 질서는 저주가 제거됨으로써 임 하는 근본적 갱신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이스라엘과 민족들의 무덤 은 가득 차 있었다.

1.
서론 39

예수께서 오실 당시 이런 메시아 기대를 크게 품고 약속의 땅에

살던 이스라엘 자손의 남은 자는 거의 다 유다 지파 자손으로 구성

되었다. 메시아에 대한 약속이 이루어지려면, 족장 야곱이 옛날에

다음과 같이 예언했으므로, 유다 지파 자손이 약속의 땅에 사는 것 이 필수적이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 49:1).

이런 유다 지파 후손은 이스라엘의 포로기 이후로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에서 다 원어로 일관되게 “유다인”( Judeans ) 으로 지칭되

었다. BC 722년에 앗수르의 침략으로 그 땅에서 추방된 북왕국 열

지파는 흩어진 소수의 개인을 제외하고 본래의 지파 정체성을 잃어

버렸다. 이어서 BC 586년에 바벨론 사람이 유다 민족을 포로로 잡

아갔다. 이 포로에서 유다 지파만 생존했으므로, 살아남은 이스라

엘 사람은 “유다인”으로 불렸다. 유다 지파 이 후손이 포로 생활

70년 후에 약속의 땅으로 돌아왔다.

최초의 영어 번역 성경부터, “주디언”( Judean, 유다인 ) 으로 음역했던

이 히브리어 및 헬라어 단어가 “쥬”( Jew, 유대인 ) 로 번역되었다.1 ) 이

1 ) 구약 성경에서 영어로 “쥬”(Jew)로 번역된 단어는 ‘예후디’(ydIWhy> , “유다인”)로, 이 단어 는 주로 에스라서, 느헤미야서, 에스더서, 예레미야서, 다니엘서, 스가랴서에서 나타난다. 헬 라어 신약 성경에서 이 지칭은 항상 “유디언”이나 “유디언즈”(Ἰουδαῖος , ‘이우다이오스’,

40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단어를 “Jew”로 표기하는 것은 사실상 영어 번역 성경 전체로 파급

되었다. 그러나 원문 성경은 전체적으로 이 단어를 “쥬”( Jew ) 가 아

니라 “주디언”( Judean ) 으로 더 엄밀히 음역한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주로 “쥬”( 유대인 ) 곧 세계 다른 민족들과 구별 된 한 민족의 구성원을 가리키는 의미로 인식되지 않고, “주디

언”( 유다인 ) 곧 이스라엘 포로 당시 생존자와 하나님 은혜의 전리품

을 가리키는 의미로 인식되었다면, 영어권 세계에서 계속 견지된

관점에 비추어 볼 때 어떤 차이가 일어났을지 궁금하다. 그러나 본

서는 영어 번역 성경들에 일관되게 등장하는 “쥬”( 유대인 ) 라는 말의

오랜 역사를 받아들이고, 그리하여 이 히브리어 및 헬라어 단어를

“쥬”( 유대인 ) 로 표기할 것이다. 아울러 독자가 “유대인”이라는 말을

볼 때마다 결국은 이스라엘 포로 당시 생존자와 하나님 은혜의 특

별한 전리품이었던 “유다인”이 구속사 속에서 계속 감당한 역할을

생각하기를 바란다.

예수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두 번째 큰 집단 역시 영어 번역 성

경들에서 특수한 지칭이 붙여졌다. 그들은 “젠타일”( Gentiles, “이방 인” ) 로 불렸다. 그러나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에 다 나오는 이 용

Ιουδαῖοι, ‘이우다이오이’; “Judean,” “Judeans”)이고, “쥬”(Jew)나 “쥬스”(Jews)가 아니 다. 주요 헬라어 신약 성경 사전의 ‘이우다이오스’ 항목의 저자는 “쥬”라는 말이 신약 성경 의 영어 번역들 속에 절대로 등장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F. W. Danker, W. Bauer, and W. F. Gingrich,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3rd ed.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0). 이 관점에 대한 반응은 다음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 다. Vern Poythress, “How Have Inclusiveness and Tolerance Affected the BauerDanker Greek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BDAG)?,”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46, no. 4 (2003): 577-588. 포이트레스는, 댄커는 정치에 대한 특 정 판단을 자신의 설명 속에 집어넣어 그 판단을 어휘적 의미의 묘사와 혼합시켰다고 주 장한다. 상세한 고찰은 다음을 보라. O. Palmer Robertson, “Israel and the Nations in God’s Covenants,” in Covenant Theology: Biblical, Theological, and Historical Perspectives, ed. Guy Prentiss Waters, J. Nicholas Reid, and John R. Muether (Wheaton, IL: Crossway, 2020), 508-514.

1.
서론 41

어( ~yIwOG, ἔθνη, ‘고임’, ‘에드네’ ) 는 “민족들” 또는 “나라들”로 더 적절히 번

역할 수 있다. 영어 성경에서 이 명확한 단어를 일관성 없이 번역한

한 사례가 신약 성경에서 예수의 사역이 이루어진 주요 지역을 밝

히며 구약 본문을 인용할 때 나타난다. 대다수 영어 번역 성경은 구

약 성경에서는 이 말을 “민족들의 갈릴리”( Galilee of the nations ) 로 번역

한다( 사 9:1 ESV, KJV, NAB[8:23], NIV[2011] ).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 이 말을

인용할 때는 참고한 여러 번역 성경이 다 “이방인의 갈릴리”( Galilee of the Gentiles ) 로 번역한다( 마 4:15 ESV, KJV, NAB, NIV[2011]. 개역개정, “이방의 갈릴

리” ). “민족들”이라는 번역은 기독교 복음의 포괄적 관점을 강조하

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성경에 나타난 이 단어의 뿌리 개념은 하나

님이 베푸는 구원 은혜의 특별한 대상으로 자주 언급되는 세상의

다양한 모든 민족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며

처음에 주신 말씀이 이 포괄적 관점을 정확히 표현한다. “땅의 모

든 족속[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창 12:3. 참고. 갈

3:8 ). 세상의 모든 나라가 하나님이 베푸는 은혜의 수납자다. “가서

모든 이방인 ( all the Gentiles ) 을 제자로 삼아”라는 번역은 새 언약 복음

의 세계 지향적 취지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 ( all nations ) 을 제자로 삼아”( 마 28:19 ) 라는 번역

은 고난을 겪은 구주의 희생적 목적과 부활하신 구주의 기대를 제

대로 요약한다.2 )

예수께서 구속사의 영역 안에 들어오신 순간에 하나님 백성과 비

참한 세상은 약속이나 예언을 더는 필요로 하지 않았다. 타락한 피

조물의 전체적인 재건과 회복에 필수적인 모든 말씀이 미래 세대를

위해 기록 증언으로 말해졌다. 아니 사실은 기록되었다.

2 ) “이방인”이 아니라 “나라들”이나 “민족들”로 번역하는 것에 대한 더 깊은 탐구는 다음을 보 라. Robertson, “Israel and the Nations in God’s Covenants,” 514-518.

42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유일하게 빠진 것은 성취였다. 약속된 메시아와 메시아의 완전한

나라는 언제 임할까? 사람들의 죄는 언제 완전히 제거될까? 하나님

백성의 포로 상태는 언제 만족스럽게 끝날까? 흩어진 지파들은 언

제 다시 모이고, 시온산은 언제 높이 들려져 모든 민족이 그곳에

올라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을까?

BC 537년에 메데-바사 고레스왕의 명령으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안전하게 귀환한 시기와 예수 당시 가이사가 통치하던 시기

사이에 선지자들의 약속이 어렴풋이라도 실현되었다고 여길 수 있

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마카베오 가문의 반란으로 유대 민족주의

와 배타주의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

더라도 보편적인 포괄적 측면이 있는 회복된 나라에 대한 예언적

기대와 대응할 수 없었다. 마카베오의 반란은 민족들이 유대인과 함께 메시아 나라에 참여하는 공개적 초대장이 아니라, 도리어 이

스라엘과 민족들 사이에 아주 깊은 쐐기를 박았고 유대인은 결국

예루살렘에서 추방되었다. 마카베오 메시아와 같은 대제사장의 등

장으로는 이사야가 약속한 다윗의 자손이나 스가랴의 예언에 따라 왕이 된 제사장 자손에 대한 기대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다 ( 사

11:1-12; 슥 6:9-15 ). 그러나 아주 분명한 것은 고레스에서 가이사까지 기간에 이스라 엘 민족이 다양한 일을 겪었으나 “초자연적” 성격을 띤 일이 없

었다는 것이다. 메시아 기대와 관련해 미래에 대해 초자연적 예언 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이에 대응하는 성취로 초자연적 사건을

요구했다. 신적 영감이 있는 꿈이나 환상을 통한 여호와 말씀의 전

달, 선지자들에게 나타난 천사 사자들의 등장, 장단기 미래 사건들 을 예언하는 능력은 초자연적 활동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러나 로

마의 세속적 지배에 반발한 마카베오 가문의 투쟁, 바리새파, 사두

서론 43

1.

개파, 에세네파, 셀롯인으로 첨예하게 대립한 유대교 안의 계파 갈

등, 대화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이웃 사마리아인을 백안시한 유대

인의 태도는 분명히 초자연적인 종교적 및 정치적 관점에 반하는

자연적 관점을 보여 주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까? 이스라엘 민족과 다른 세상 민족을

갈라놓는 이처럼 민족적이고 세속적인 분리를 영원히 파급해야 할

까? 그렇게 하면 유일한 창조자와 언약의 주를 고백한 믿음에서 나

온 세계 포용 정신과 관련된 선지자들의 약속과 예언은 어떻게 될

까? 확실히 이런 종교적 배타주의 태도는 국제적인 찬동과 참여를

낳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상 국제적으로 다양한 민족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세계는 이스라엘의 종교 생활의 핵심에서 크게 벗어났다.

이것이 참 그리스도 곧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가 오셨을 당시

의 상황이었다. 그리스도는 선지자들이 약속한 모든 것을 구현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백성의 그리스도 곧 약속된 메시아 예수에 게 초점이 있는 “좋은 소식”, “복음”, ‘유앙겔리온’을 주목하라. 그

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을 직접 목격한 당대 사람들의 새 언약 기록

속에 보존된 증언의 역사적 전개에 대한 관점을 갖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특히 예수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네 복음서 저자들의 증언과 관

련해 말하면, 네 복음서 저자들의 “목격자” 역할은 어떤 성경 내용

을 분석하더라도 핵심 개념으로 작용해야 한다. 한 학자가 이렇게 말한 것과 같다.

기독교 신앙의 경우에, 이 예수, 곧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처럼

땅의 예수는 정경 복음서의 예수다. 곧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상세히 묘사하는 바로 그 예수다……나는 복음서는 증언의 책

44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이라는 의미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복음서는

역사가 아니고 증언이라는 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복음서

역사서술의 종류가 증언이라는 점을 의미한다.3 )

이후에 전개될 결론을 예상하면, 네 복음서 기록의 목격자 관점

을 충분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 마태는 예수께서 사역 초기에 직접

부르신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였다( 마 9:9-13 ). 마지막 복음서 요한복

음의 저자인 요한은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로, 예수를 가장

친밀하게 알았던 측근 삼인방 가운데 하나였다. 요한은 처음부터

예수와 함께 했고( 막 1:19 ),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예수께서 옆구리를

창에 찔린 것을 목격자로 직접 증언한다( 요 19:35 ). 요한은 요한일서 를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 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라고 증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 요일 1:1. 참고. 3절 ). 요한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동안 그 아래 서

있을 때까지 공적 사역 내내 예수와 함께 있었고, 사도들 가운데 예

수의 빈 무덤을 찾아간 첫 번째 인물이었다. 요한은 예수의 무덤 속

에서 버려진 포개진 세마포와 딴 곳에 따로 놓인 머리를 쌌던 수건

을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요한은 보고 믿었다”( 요 20:8 ). 가장

오래된 전승이 마가를 예수의 생애와 사역에 대해 베드로가 가르쳐

준 것을 기록한 자로 제시하므로, 마가복음은 베드로의 목격자 보고

를 기록한 책으로 여길 수 있다. 베드로후서를 보면, 베드로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다른 이들이 예수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로,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를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로 선언한 하늘로부 터 난 소리를 직접 “들은” 사실을 강조한다( 벧후 1:16-18 ). 의사 누가는

3 ) Richard Bauckham, Jesus and the Eyewitnesses: The Gospels as Eyewitness Testimony, 2nd ed. (Grand Rapids: Eerdmans, 2017), 2, 5(강조 표시 추가).

1. 서론 45

자기를 목격자로 소개하지는 않지만, 누가복음이 “처음부터” 예수

와 함께 있었던 목격자에게서 나온 보고에 철저히 기반을 두었고,

그들의 증언을 자신이 자세히 미루어 살폈다고 정확히 확언한다( 눅

1:2-3 ).

여기서 잠시 뒤로 물러나 네 복음서의 예수에 대한 증언의 목격

자 성격을 충분히 헤아려 보자. 이 보고는 알려지지 않고 알려질 수

없는 얼굴 없는 일련의 “편집자들”이 항상 바뀌는 당시의 긴급 상

황에 따라 예수의 형상을 형성하거나 재형성함으로써 수십 년에 걸

쳐 내려온 전승이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목격자

로 처음부터 예수를 알았던 사람들이다. 목격자로서 자격이 없으

면, 복음서 저자들은 원래 열두 사도 집단의 일원으로 여겨질 수도

없었다( 행 1:21-22 ).

네 복음서의 증언을 충분히 파악하려면 한 가지 요소를 더 고려

해야 한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에 이 세상을 떠날 날이

임박했음을 예견하면서 아버지와 자신이 성령을 보낼 것이라고 약

속하셨다( 요 14:26; 16:7, 13 ). 성령의 유익 가운데 성령이 사도들에게 예

수께서 말씀하거나 행하신 모든 일을 정확히 기억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성령이 베푸신 이 정확한 기억 능력은 제자들이 예

수의 생애와 사역에 대해 기록한 것이 완전히 참됨을 보증할 것 이다.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한 기록뿐 아니라 기록된 것의 의미

도 대대로 하나님의 구속 목적에 철저히 일치할 것이다. 성령의 이

런 보존 활동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이 증언한 진리는 확실한 진실로

남아 있다.

예수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성령이 베푸는 이런 기억 능력과 함 께, 성령이 신자의 마음과 생각 속에 조명하시는 역사가 있다 ( 요 14:16-17 ). 복음서 증언의 진실함은 개인의 주관적 경험으로 확증될

46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뿐 아니라, 신적 영이 사람의 영에 증언하므로 대대로 날로 확장되

는 제자 공동체를 통해서도 확증된다.4 ) 오늘날도 성령은 사람의 영

속에 영원한 복음 진리를 계속 확증하신다. 성령의 이 확증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및 사역을 증언하는 중심 진리로 시작하지만, 복

음 증거의 형식과 내용 전체 부분과 개별 부분을 다 포함하는 것으

로 확대된다. 아울러 거듭난 사람은 공동체 속에서만이 아니라 개

인적으로도 예수 안에 있는 그대로 진리가 확증되는 것을 경험

한다. 복음서 기록의 목격자 성격은 복음서의 신빙성에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처럼 사람이 성령의 영감을 받은 증거를 충분히 받

아들이려면 약속된 성령이 행하시는 조명 사역이 필수적이다.

신약 성경 문서들의 이런 복합적 증언을 고려하면, 약속된 메시

아로서의 예수에 대한 계시는 여러 단계를 연속해서 거친다. 예 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대한 더 깊어지는 자각과 함께 계시를

점점 더 깊이 전개하는 이 핵심 단계는 다음과 같은 것을 포함한다. ‘천사의 수태고지, 그리스도의 선구자로서의 세례 요한, 자기 자신

을 성육신한 그리스도로 계시하는 예수, 복음서 신학자들, 성령 시

대의 출범, 사도들의 증언, 신적 영감을 받은 바울의 서신, 야고보 와 베드로와 요한과 유다와 같은 원 사도들의 증언, 히브리서, 요한 계시록.’

이처럼 예수를 약속된 메시아로 널리 제시하려면 신약 성경 문서

들에 기록된 대로 기독교 교회가 새로 출범하게 된 원래의 역사적 과정을 성취 실재들에 따라 어떻게든 포착하려 애쓸 것이다. 이 시 기 내내 새로운 신적 계시가 새 언약 백성이 예수께서 주와 그리스

4 ) 특히 다음 작품의 통찰력 있는 고찰을 보라. Abraham Kuyper, “Testimonium Spiritus Sancti, or the Witness of the Holy Spirit,” in Principles of Sacred 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 1954), 553-563.

1. 서론 47

도가 되신다는 사실을 더 충분히 파악하도록 이끌었다. 이처럼 점

진적으로 전개되는 계시 과정을 상기하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진

리는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한평생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신약 성경신학의 본질, 방법, 특징

신약 성경신학은 본질상 신약 성경 문서들에서 확인되는 계시 진

리 전체를 다룬다. 신약 성경 문서들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 방식에

따라 다루어졌다.

신약 성경신학에 대한 선택적 접근법

제목 또는 주제 접근법

제목 또는 주제 접근법에 따르면,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

적으로, 조직신학 분야에서 나온 일단의 주제들을 신약 성경 자료

의 검토와 조직화를 위한 기초로 삼는다. 대체로 이때 다루어진 주

제들은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 인간, 죄, 구원, 그리스도인의 삶, 교

회, 종말론이 있다.5 )

성경책 접근법

성경책 접근법에 따르면, 신약 성경의 다양한 저자나 책들을 일

5 ) 다음 작품을 보라. Donald Guthrie, New Testament Theology (Leicester, UK: InterVarsity Press, 1981). 거스리는 신약 성경 전개의 다양한 단계를 통해 주제들을 추적함 으로써 자신의 주제 접근법을 역사적으로 점진적인 관점과 결합한다. 참고. Thomas R. Schreiner, New Testament Theology: Magnifying God in Christ (Grand Rapids: Baker, 2008, 『신약신학』,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1).

48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반적으로 연대순에 따라, 또는 신약 책들의 배치 순서를 따라 순차

적으로 다룬다.6 )

구속사 접근법

구속사 접근법에 따르면, 신약 시대의 다양한 시기를 통해 구속

사와 계시의 진행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재구성하는 데 힘쓴다.7 )

다양한 신약 신학이 일반적으로 이 세 범주 가운데 어느 하나에

속해 있겠지만 접근법의 혼합 또는 융합이 어느 정도는 불가피

하다. 이 세 가지 접근법은 각기 자체의 장점과 약점이 있다.

본서의 연구는 구속사 접근법을 따른다. 이런 결정은 다음과 같

은 사항을 기초로 이루어진다. (1) 구속사 접근법은 하나님의 새 언 약이 인간 역사 속으로 들어올 때 수반하는 존속력을 어느 정도 포

착한다. 구속사 접근법은 주로 조직신학에서 나온 주제들을 다루지

않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속하실 때 보여 주신 결정적 행동 및

말씀과 관련된 존속력과 자극력을 다시 포착한다. (2) 구속사 접근

법은 죄와 죄의 결과에서부터의 구속이 단순히 교리가 아니라 실재

에 대한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시간과 역 사 속에서 이루어진 구속의 성취에 대한 객관적 실재를 인식해야 하나님 백성은 믿음과 지식이 강해지는 결과를 얻는다. (3) 구속사

6 ) 참고. George Eldon Ladd, A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ed. Donald A. Hagner, rev. ed. (Cambridge: Lutterworth Press, 1994); I. Howard Marshall, New Testament Theology: Many Witnesses, One Gospel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04); Leon Morris, New Testament Theology (Grand Rapids: Zondervan, 1986). 모리스는 연대기 요소를 저자 문제 및 주제와 결합한다.

7 ) 이 방법을 따를 때 나오는 근본적으로 다른 결과를 다음 두 고전 작품을 비교하면 확인할 수 있다. Geerhardus Vos, Biblical Theology: Old and New Testaments (Grand Rapids: Eerdmans, 1948); Rudolf Bultmann,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2 vols. (New York: Scribner’s Sons, 1955).

1. 서론 49

접근법은, 새 언약 역사를 결국 새 언약의 성취를 향해 나아가는 옛

언약 아래에서 벌어진 하나님의 긴 구속 활동 역사의 결정적 실현

으로 인식하면 새 언약 역사의 성취 역할에 가장 알맞다.

구속사의 이런 점진적 진행 과정의 난관은 구약 성경 계시의 시

간 구조를 성취에 대한 신약 성경 계시의 시간 구조와 비교하면 명

확히 드러난다. 아브라함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구속 사건과 말라기

시대에 일어난 하나님 백성 회복 사건 사이의 기간은 1천 5백 년에

달한다. 그러나 신약 성경의 경우를 보면, 예수의 탄생에 수반된 수

태고지와 밧모섬에서 사도 요한에게 주어진 계시 사이 경과 기간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백 년 미만일 것이다. 옛 언약 시대의 계시 진

행 과정은 떠오르는 햇빛과 같아 밤의 어둠이 점점 물러가는 일출

에 비유할 수 있다. 처음에는 먼 동쪽 지평선에 완만한 조명이

있다. 그런 다음에는 점점 다채로운 일출의 아름다운 모습이 다음

단계의 진행을 규정한다. 마지막으로 한낮의 햇빛이 완전히 드러나

창공을 밝게 비춘다. 그러나 신약 성경신학의 전개 과정을 추적하

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한 줄기 번개 빛에서 나온 조명으로 진행을 포착하려고 시도하는 것과 같다. 계시의 진행이 너무 빨라 새로운

단계들이 서로 마주치기 때문이다.

구약 성경신학의 긴 전개 기간과 신약 성경신학의 짧은 전개 기

간 사이의 양적 차이를 완화하기 위해 한 접근법은 예수의 등장 시

점에서 미래의 영원까지 전체 기간을 새 언약 기간으로 보았다.8 )

그러나 구약의 긴 기간을 구성하는 세대 및 시대와 비교하면, 구속

8 ) Vos, Biblical Theology, 325는 이렇게 말한다. “너무 기계적으로 보면, 구약 시대 수천 년 기간과 예수와 사도들의 생애 고작 백 년 기간을 대조할 수 있다. 사실 마지막 계시인 신약 성 경 계시는 그리스도가 출범시킨 사물의 질서 전체에 미치고, 그래서 신약 계시에 작용하는 디 아데케[언약]가 ‘영원한 디아데케’로 불린다(히 13:20). 그것은 종말론적 디아데케이고, 그 시 간 비교와 관련해서 보면 맞지 않는다.

50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의 실제 성취와 관련된 계시의 전달이 이루어지는 역사적 기간이

아주 짧다는 것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신학에 대한 구속사 접근법과 관련된 난관은

매우 실제적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 목적의 완성된 실재들에 대해 얻은 통찰력은 노력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다.

이 책 연구의 특징

따라야 할 방법과 관련해 구속사 접근법을 따르겠다는 결정을

렸으므로, 이 책의 신약 성경신학은 다음 세 가지 특징에 초점을 맞 추겠다.

새 언약 계시의 다양한 단계를 거친 역사적 진행을 조직 원리로 되짚

어 봄

성경책 접근법을 따르거나 신약 성경 전체에 나타난 주제를 선별 해 추적하는 접근법으로는 만물의 회복에 대한 하나님 약속이 결정

적으로 성취되는 실제 전개 과정을 구속사 접근법만큼 생생하게 포

착하지 못할 것이다.9 ) 하나님, 인간, 죄, 구원과 같이 미리 선정된

특정 주제들에 대한 특징적 관점을 얻기 위해 각 시대 단계를 요구

하지 말고, 각 시대가 자체로 선호하는 의제를 제시하게 해야 한다. 각 단계의 독특함에 민감한 태도를 갖고, 원래 수태고지 당시의 초 9 ) Vos, Biblical Theology는 경탄할

구속사 방법을 따르지만, 예수의 공적 사역에 대 한 계시를 통해 성취 시기가 열렸음을 예고하는 수태고지에서부터만 이 방법을 취한다. 불트 만은 구속사 방법을 따르면서 영지주의 패턴에 따라 바울에게 복음을 전한 것으로 추정되는 “헬레니즘 교회”의 신화를 창안한다. Bultmann, Theology, 1:67. 그러나 불트만 자신은 이 가설적인 바울 이전 헬레니즘 신학에 대해 “어떤 직접적인 증거도 거의 입수할 수 없다”라고 인정한다(1:64). 불트만은 “후기의 다른 자료에서 끌어낸 추론”(1:64[강조 표시 원문])에서 정보 를 얻는다. 그러나 불트만은 이 바울 이전 신학에 대해 100쪽이 넘는 분량을 할애하고(1:65183), “영지주의 요소”에 대해 20쪽 정도에 달하는 분량으로 결론을 맺는다(1:164-183).

1.
서론 51
정도로

자연적인 요소의 특별한 역할, 세례 요한의 회개에 대한 촉구, 예수

의 사역 기간에 일어난 마귀와 귀신들과의 대치와 같은 문제들을

다루어야 한다.

이 접근법을 따를 때 성령과 같은 주제를 소개하고 세례 요한과

예수와 바울의 사역, 히브리서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성령에 대한

증언의 흔적을 따라가는 것은 의도가 아니다. 대신 계시 과정 각각

의 새로운 단계가 강조되어야 할 진리에 따라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이 의도다. 예를 들어 보자. 구약 성경에서 뽑은 인용 본문을 소

개하는 “이루려 함이니라” 공식은 마태복음의 독특한 강조점으로

간주할 수 있다. 반면에 요한복음에서는 예수의 “나는 나다”( I am )

말씀이 특별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바울의 옥중서신

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개념이 전개되는 것을 주목할 수 있다.

반면에 히브리서에서는 “광야 백성”으로서의 교회 관념을 특별히

주목할 수 있다. 새 언약에 이르기까지 계시의 진행 각 단계는 하나

님의 구속 목적의 전체 그림에 특별히 공헌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각 새로운 단계가 “스스로 말하게” 하면, 죄인들을 완전히 하나님

께 돌아오게 하는 다면적 진리를 더 충분히 파악하고 적용할 수 있

는 새로운 발견이 있을 것이다.

구약 성경의 토대로서의 역할

최근의 연구를 통해 구약 성경이 신약 성경신학을 이해하는 원천

과 열쇠라는 사실이 더 부각 되었다. C. H. 도드의 획기적인 다음 작

품의 제목 자체가 이 중대한 주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위해 무대

를 설치하는 역할을 했다. 『성경에 따라: 신약 신학의 토대』( According

52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to the Scriptures: The Substructure of New Testament Theology ) !10 ) 신약 성경에

서 인용하는 구약 성경의 다양한 본문을 학문적으로 분석하는 연

구가 수시로 이루어졌다.11 )

그러나 이 주제에 대해서는 약간 다른 접근법이 유용한 것으로

판명될 수 있다. 지금까지 통상적 절차는 신약 성경에 인용된 특정

본문을 찾아내 그 본문을 그 본문이 들어 있는 신약 성경 문맥에

따라 분석한 다음, 그 본문을 원래의 구약 본문 문맥 안에서 연구하

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분명히 생산적이지만 구약 성경이 다양한

신약 성경 문서에 흔적을 남기는 방식을 철저히 다룬 것으로 여길

수는 없다. 마태, 바울, 히브리서 저자는 자기들의 본문을 기록

하다가 간혹 구약 성경에 나온 개별적 본문이나 어구가 불쑥 생각

났을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구약 인용 본문의 상호 문맥을 살펴보 고 자기들이 작성하는 현재 구문에 적용하는 것이 적합한지 확인했

을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서 저자와 같은 자는 아마 구약 성경을 읽

고 내용을 충분히 흡수함으로써 자신이 새 언약 시대에 성취된 것

으로 본 본문이나 전체 부분을 마음속으로 식별하는 수준에 이르렀

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현재 쓰고 있는 글에 이런 본문들을 통합해 집어넣었을 것이다. 아니 사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회 심한 후에 광야에 있을 때 예수가 진실로 성경의 그리스도였음을

10 ) C. H. Dodd, According to the Scriptures: The Sub-structure of New Testament Theology (London: James Nisbet & Co., 1952). 도드는 특히 구약 성경의 인용 본문은 문맥에서 제외된 고립된 증거 본문에 따라서가 아니라 충분한 문맥에 비추어 고찰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이 중대한 주제에 대해 자극을 주고 방향을 제시한다. 그러나 도드가 스스로 정의한 방법론은 그의 철저한 연구를 제한한다. 도드는 오직 신약 성경 저자 한 명 이상이 인용하는 구약 본문에 대해서만 이 방법론을 적용한다. 11 ) 이 주제에 대해 1,200쪽에 걸쳐 다루는 다음 작품을 참고하라. G. K. Beale and D. A. Carson, eds., CommentaryontheNewTestamentUseoftheOldTestament (Grand Rapids: Baker, 2007).

1. 서론 53

새로 깨닫고 갖게 된 자신의 신념에 따라 구약 성경을 읽고 또 읽었

을 것이다( 갈 1:17 ).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훈련받은 훌륭한 랍비

였으므로,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성경 지식이 있었던 것이 틀림

없다. 그러나 살아 계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 선 바울은

이런 새 관점에 따라 구약 성경의 메시지 전체를 다시 평가해야

했다. 바울은 이런 배경 속에서 자신의 새 언약 복음을 작성했다.

심지어는 생애 말엽에 바울은 자신이 로마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성

경에 대해서도 갇힌 자였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바울이 기록한 편

지 마지막 부분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라

고 지시하는 말이 있었다( 딤후 4:13 ). 생애 말엽에 바울은 “모든 생각

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도록”( 고후 10:5 ) 진리에 대한 자신

의 인식을 재구성하면서 구약 성경을 계속 연구했다.

오늘날도 그리스도에게 배우는 자는 마태, 바울, 히브리서 저자가

그런 것처럼 그들의 새 언약 믿음의 토대로 구약 성경을 깊이 탐구

해야 한다. 그래야만 새 언약 문서들의 풍성함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신약 성경신학의 이런 결정적 측면을 충분히 파악하려면 구약 성

경이 신약 성경의 사고 패턴에 깊이 스며든 것을 보여 주는 신약 성

경의 여러 일반 진술들을 고찰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신약 성경의 많은 본문이 구약 성경 전체가

새 언약 시대의 신학을 형성하는 데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

을 확언한다. 이 영향을 보여 주는 것은 단순히 다양한 신약 성경

저자들의 신학적 사고만이 아니다. 아니 사실은 구속사 전체가 자

체로 구약 성경을 통해 형태를 갖춘다. 다양한 신약 성경 저자들이

이 진리를 증명하는 몇 가지 사례를 지적할 수 있다.

마태가 그리스도 삶의 다양한 단계를 “이루려 함이니라”( 마 26:56 ) 라

54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는 말에 따라 분석한다는 사실은 당연히 인정되었다. 예수의 유아 기 모습, 가르침 사역, 치유 활동, 죽음으로 이끈 배반은 다 성경의

성취로 일어난다( 마 1:22; 2:17; 4:14; 8:17; 12:17; 13:35; 21:4; 27:9 ). 결론적으로

마태복음의 진술들을 요약하면 그리스도의 수난과 관련된 모든 사 건은 구약 성경의 성취로 일어났음을 암시한다.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마 26:24).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마 26:5354).

심지어는 유다의 배반과 예수의 체포도 구약 성경에 예언된 사건 이다.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

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 마 26:56 )

이런 일반적 진술들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구속 사건들

을 예견하는 특정 본문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구약 성경 전체를 고려한다.

마찬가지로 누가도 독특한 두 부활 기사로 누가복음을 끝맺는다.

두 기사 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예견하는 구약 성경의 역할을 폭 넓게 확언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엠마오로 가는 길에 두 제자 에게 나타났을 때 이렇게 선언하신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

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

1. 서론 55

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

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5-27).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

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

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눅 24:44-47).

이 두 진술에 폭넓게 담긴 구속사 요소가 매우 주목할 만하다.

(1) 그리스도의 온갖 다양한 고난, (2) 제삼일에 일어날 그리스도

의 영광스러운 부활, (3) 회개와 용서에 대한 이후 설교, (4) 모든

족속에서 나온 자가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임, (5) 복음 전파가 예루

살렘에서 시작됨. 기독교 복음의 이 모든 핵심 요소가 이 요소들의

해설을 구약 성경에서 찾도록 선포된다. 게다가 “모세의 율법과 선

지자의 글과 시편”으로 지칭되는 유대인의 정경 곧 구약 성경의 모

든 부분이 새 언약 복음의 이런 결정적 요소들을 담고 있는 것으로

선언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자기 자신에 대해 성경을 깨닫

게 하신 결과를 기록한 누가의 기사는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부활한 주님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제자들은 자기들의 경험을 반성 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눅 24:32 ). “뜨거운 마음” 곧

56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하나님이 세상에서 행하신 구속 사역의 경이로움에 고조된 마음은

구주에 대한 가시적 장면에 의존하지 않고 그들의 생각에서 우러난

것이다. 심지어는 눈이 가려져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는 동안에

도 제자들의 마음은 경탄으로 충만했다. “뜨거운 마음”이 제자들

속에 어떻게 일어났을까? 제자들이 대화를 나눈 대상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였음을 인식해서가 아니다. 아니 그것은 그들이 성경에 대

해 눈이 열린 것, 곧 구약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비밀과 관련해

제자들의 마음에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제자들을

흥분하게 만든 원인이다.

이런 이유로 모든 시대와 모든 지역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 역시 “뜨거운 마음”을 경험할 수 있다. 구주를 육체적으로 목

격하는 것이 관건이 아니다. 관건은 성경을 이해하고 믿고 행하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새 언약과 관련해 구약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

런 일반화한 진리를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끝낸다. 예수께서 자

기와 함께 이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참여할 제자들을 처음

부르실 때,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이렇게 선언한다. “모세가 율법에 기

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 1:45 ).

요한복음은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실 것에 대한 구 약 성경의 증언을 종종 인정한다.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하신 후에 비로소 제자들은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다” ( 요 2:22 ).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 제자들은 결국 “이것이 예수께 대 하여 기록된 것”임을 깨달았다( 12:16 ). 빈 무덤에 대한 증언을 듣자, 베 드로와 요한은 현장에 달려갔다. 둘 중 어린 요한이 아마 먼저 도착 했을 것이다. 베드로는 뒤따라갔으나 들어가는 것은 주저 없이 먼저 들어간다. 그런 다음 요한이 들어가고,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1. 서론 57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 20:8b-9 ). 이 본

문에서 두 가지 사실이 두드러진다. (1) “성경”( Scripture ) 이라는 말이

단수형이고, 이것은 구약 성경의 한 부분 이상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예언했음을 암시한다. 이 단수형 “성경”이 요한복음에서 무려

열한 번이나 나온다. 이 단수형 성경이 다른 복음서에서는 세 번밖

에 나오지 않고, 항상 수식어 “이”와 함께 나타난다 ( 막 12:10; 눅 4:21; 22:37 ). 요한복음에서 간혹 단수형 “성경”이 구약의 특정 본문을 가

리키기는 하지만, 아울러 이 단수형은 요한이 구약 성경의 증언을

통일된 증거로 보았다는 것도 암시한다. 이 통일된 증거는 그리스도

의 부활을 믿는 믿음의 기초를 놓았다. (2) 요한복음 20장 8b-9절

에서 이 진술은 또 사람이 성경을 적절하게 알면 믿기 위해 ‘부활하

신 그리스도를 굳이 눈으로 목격할 필요가 없다’라는 사실도 강조

한다. 성경에 대한 온전한 지식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목격자가 되

는 것보다 믿음을 낳는 데 더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나야 한다. 성경

의 증언이 없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만 따로 나타나게 되면 이후에

많은 오해와 의심을 불러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약 성경

전체의 증거를 통해 일어난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구속적이

고 회복적 의도를 옛 언약 시대와 새 언약 시대에 걸쳐 나타난 그대

로 충분히 파악하는 지식을 낳을 수 있다.

사도행전에 담긴 설교를 보면, 사도들은 사람들에게 믿기 전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개인적으로 그들 앞에 나타나실 때까지 기다

리지 말라고 권고한다. 대신 사도들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모든 백

성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뜻 안에서 하나님이

미리 택한

튀신 토이스 프로케케이로토네메노이스 휘포 투 데우’, 행 10:41 ) 에게만 나타나셨다

고 지적한다. 문자 그대로 이 본문은 하나님이 예수께서 죽은 자 가

58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증인( ἀλλὰ μάρτυσιν τοῖς προκεχειροτονημένοις ὑπὸ τοῦ θεου
, ‘알라 마르

운데서 살아나신 부활을 증언할 책임을 갖도록 특정한 사람들을 “미리 택하셨다”라고 말한다. 바울도 이렇게 택함을 받은 증인 가

운데 하나다( 고전 15:5-8 ). 더 나아가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이라는

사실 자체는 하나님이 그 사건에 정하신 중요성이 없으면 지속적 가치가 별로 없을 것이다. 따라서 사도들은 결국 구약 성경의 증언

에 기반을 두고 예수의 부활을 증명한다. 오직 부활하신 예수가 지

금 높아지신 메시아로 하나님 우편에 앉아 주권적 능력으로 성경을

이루는 약속된 다윗의 후손으로 인식될 때만( 행 2:24-36 ), 복음 메시

지는 효과적으로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오직 “그

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는”( 10:43 ) 사실이 인정될 때, 그리스

도의 죽음과 부활은 실제로 구원하는

될 것이다. 오직 그리

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고” “그를 가리켜 기

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하며,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이루게 하

신” 것을 깨닫게 하는 것으로 이해될 때만, 오직 그때 죄 사함이 그

리스도를 통해 효과적으로 선포될 수 있다( 행 13:27-39 )

따라서 구약 성경의 증언은 성령의 활력적이고 적극적인 역사와

결합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참된 의미를 믿는 모든 자

의 마음속에 새겨 놓는다.

새 언약 참여자의 믿음을 낳는 일에 구약 성경이 맡은 역할을 언

급하는 이런 일반적 진술에 따르면, 신약 성경에 인용된 특정 구약

본문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단순히 개별적

본문이 아니라 옛 언약 신학의 넓고 깊은 흐름이 새 언약 신학의 샘 을 이룬다.

따라서 이것은 신약 성경의 구약 본문 “사용”을 단순히 분석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구약 성경의 전체 메시지가 어떻게 신약 성

1. 서론 59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
능력이

경의 핵심과 본질을 형성하는지 파악하는 문제다. 구약 성경은 단순

히 신약 성경의 토대로 작용하는 정도가 아니다. 구약 성경은 실제

로 신약 성경 메시지의 본질적 성격을 규정한다. 그러므로 신약 성

경의 메시지를 규정하는 데 있어 구약 성경의 역할을 충분히 파악 하는 것은 구약 성경의 전체 메시지를 파악할 때만 이루어질 수

있다. 바울처럼 생각하려면 바울이 파악한 것처럼 구약 성경을 파

악해야 한다.

우리 가운데 많은 이가 구약 성경에 대해 이런 수준의 파악 능력

을 얻기에는 인생이 너무 늦을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은 극단적인 전

문화 시대에 만능인이 있다는 말은 거의 들어 볼 수 없다.12 ) 그러나

미래 세대 사람들은 아마 구약 성경 전체에 대한 이 명령을 받들기

에 충분히 일찍 시작해 신약 성경의 마무리 역할을 충분히 공평히

다룸으로써 “그를 따라 ‘하나님의 생각’을 생각할” 수 있다.

신약 성경신학의 현대적 적용: 다양한 신약 성경 저자의 공인된 목표

를 이루기 위한 노력

신약 성경 저자들이 자신들의 구속 진리를 신약 시대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사례는 끝이 없다. 그러나 새 언약 문서들의 특정 부분이

기록된 이유를 명확히 제시하는 본문들을 분석하는 것이 유용하다.

신약 성경의 모든 부분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에서 저자는 특별히

자신의 글이 기록된 이유를 진술한다. 다음 사례를 주목할 수 있다.

복음서 저자 가운데 두 명이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

12 ) 저명한 구약학자 브레버드 차일즈가 다음 작품에서 두 성경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 애 쓴 것을 주목하라. Biblical Theology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Theological Reflection on the Christian Bible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3). 이 작품은 구약 부분과 관련해서는 자주 인용된다. 그러나 신약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60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록하는 이유를 명시한다. 누가는 누가복음 서언에서 데오빌로가 알

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고” 자신이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

이 좋은 줄 알았다고 지적한다( 눅 1:3c-4 ). 누가의 관심은 자신이 기록

하는 좋은 소식의 객관적 실재를 확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가

누가복음을 국가 통치자와 관련해 역사적 시기를 세 번이나 언급하

며 시작하는 것은 놀랍지 않다. 누가가 기록하는 사건들은 “유대 왕

헤롯 때에”( 1:5 ), 가이사 아구스도 당시에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2:1-2 ),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

네의 분봉 왕으로” 있을 때( 3:1 ) 일어났다. 누가복음 저자는 분명히

자기 독자가 알고 있었던 일에 확실함의 기초를 놓으려는 목적으로

글을 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신약 성경신학도 믿음의 다양한 요

소와 관련해 확실함의 기초를 놓기 위해 힘써야 한다.

참으로 독특하게 요한은 자신이 글을 쓰는 목표를 언급하는 말로

요한복음을 끝맺는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

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 독자에게 믿음

과 생명을 전달하는 것이 요한복음의 정해진 목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정해진 목적 때문에 요한복음에서 “믿다”의 어근이 무려 아흔

여덟 번이나 나오는 것에 놀라서는 안 된다. 이런 정해진 목적에

따라 신약 성경신학도 독자가 복음을 믿도록 하는 것을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로 두고 있다.

각기 정해진 목적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는 네 복음

서는 사람들이 기독교 복음의 확실함을 충분한 근거에 따라 믿을

수 있도록 기록되었다. 그 결과 네 복음서에 기반을 둔 신약 성경신

1. 서론 61

학을 읽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구약 성경에 약속된 그리스도로

믿는 확고한 믿음을 당연히 가져야 한다. 이 메시지를 기초로 그리

스도를 의지하는 자는 다 영생을 얻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간혹 자신이 교회에 편지를 보내는 이유를 특별히

제시한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 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

하게 하려고” 자기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를 확실히 하려고 “더욱

담대히 대략” 썼다고 지적한다( 롬 15:15-17 ). 이처럼 바울이 로마서를

쓴 이유를 제시할 때 범주는 로마서 세 주요 부분 전체를 망라한다.

첫 번째 부분( 롬 1-8장 ) 에서 바울은 유대인 남은 자뿐 아니라 모든

족속에서 나온 사람들을 위해서도 하나님 은혜의 복음을 제시한다.

두 번째 부분( 롬 9-11장 ) 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가 모든 민

족에서 나온 사람들의 충만한 수로 동시에 채워질 때까지 이스라엘

에서 모든 민족으로, 모든 민족에서 이스라엘로, 다시 이스라엘에

서 모든 민족으로 움직이는 패턴에 따라 이 똑같은 복음을 제시 한다. 세 번째 부분( 롬 12-16장 ) 에서 바울은 이스라엘과 민족들을 위

한 복음의 이 똑같은 주제를 그들의 연합된 찬양의 결과 하나님에

게 주어지는 특별한 영광( 15:5-13 ) 을 포함해 복음의 많은 실천적 함

축성에 따라 제시한다.

바울이 로마서를 쓴 결과로 기대하는 바에 따르면, 구원의 믿음

이 이스라엘과 민족들의 칭의와 성화를 가져오는 것이 요점이다.

이 목표가 이루어질 때 하나님은 훨씬 큰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바울이 그의 다른 서신들을 쓴 목적에 따르면, 그 서신들은 각각 독자의 믿음과 삶에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는 특별한 권고로 채워 진다. 그러나 한 본문은 신약 성경신학의 목적에 대해 지침으로 삼

62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을 만한 바울의 기록 의도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

의 기둥과 터니라(딤전 3:14-15).

당시 살아 있던 사도들이 다시는 교회에 특별한 지침을 주지 못 하는 날이 오게 되리라는 점을 예상한 바울은 목사 디모데에게 이

렇게 말한다. 바울은 자신의 글의 목적이 하나님의 백성 곧 살아 계

신 하나님의 교회를 구성하는 자의 믿음 및 삶과 관련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교회는 온 세상에서 진리의 기둥과 터로 기능한다. 교회

는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모든 공동체 속에

서, 그리고 세상 전역에서 진리를 세우는 터이자 진리의 참된 구조

를 지지하는 기둥으로 작용한다. 두 개의 웅대한 기둥이 솔로몬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지탱한 것처럼( 왕상 7:15-22 ), 교회도 새 언약 성전

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지탱하는 기둥과 터로 작용해야 한다. 이 세

상에서 하나님의 집 곧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인 교회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소명이 있다. 이 소명은 교회가 하나님의 진리 모든 국면을 지탱할 때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신학적 정확

성에 따라서만 진리를 지탱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교회는 또

스스로 어떻게 행할지도 알아야 한다. 교회는 행동으로 진리를 구

현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울이 쓴 서신들의 목적이며, 이것이 신약 성 경신학의 이유다. 신약 성경신학은 교회가 올바른 교리와 올바른 실천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유지하고 보존할 수 있도록 교회에 힘을

1.
서론 63

주려고 기록되어야 한다. 교회가 이 중대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

면,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교육적이든 문화적이든, 다른 어떤 기

구도 하나님의 세상에서 적절한 지위를 지킬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다른 어떤 기구도 “진리의 기둥과 터”( 딤전 3:15 ) 로

서 기능할 수 없다. 이것은 참으로 막중한 책임이다. 교회는 교리와

삶을 통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거처로 작용한다.

공동서신을 보면, 여러 본문이 서신을 기록하는 요점을 요약한다.

각 경우에 편지를 쓰는 이유는 실천적 목적에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

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히 8:1-2).

여기서 히브리서 저자가 자신이 기록한 문서를 “쓰는” 것이 아

니라 “말하는” 것으로 언급하는 것은 이 문서의 참된 성격에 대한

저자 자신의 묘사에 적합하다. 저자 자신은 이 문서를 “권면의 말”

로 부른다 ( 히 13:22 ). 히브리서 저자의 “글”의 이 “말함” 국면은 저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있고”, “활력이 있고”,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한 것으로 분석하는 것과 엄밀하게 일치

한다( 4:12 ). 성령은 구약 성경을 통해 이 말씀을 “말씀하고”( 1:6, 8; 2:6

[“이르되”], 12, 13; 3:7; 5:6; 10:15, 17; 12:5 ), 따라서 성령이 “말씀하는” 것에 대 한 언급은 성령이 “쓰는” 것과 동등하다.

히브리서 저자는 대제사장 예수와 관련된 진리의 요점에 담긴 실

천적 결과를 제시하면서( 8:1-2 ), 이 사람 예수가 제사장이자 왕이라

64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는 사실을 강조한다. 예수는 자기 백성을 위해 다스리실 뿐 아니라, 자기 백성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신다. 이로 말미암아 하나

님 백성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 백성은

여호와의 지성소 가장 안쪽 성소로 끊임없이 들어갈 수 있고 거기

서 죄에서 깨끗하게 되는 것뿐 아니라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도

움을 받을 수 있다( 4:14-16 ). 따라서 신약 성경신학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자기들의 제사장 메시아를 통해 경배와 경이로 “가까이 나

아갈” 때 그들의 모든 필요가 충족됨을 확인하도록 큰 자극을 줄

것이다( 4:16 )

사도 베드로는 자신의 두 편지를 쓰는 목적을 다음과 같이 요약 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벧후 3:1).

베드로는 “진실한 마음”을 거룩하고 경건한 삶의 길로 제시할

때( 벧후 3:1b ) 사도 바울이 “경건함에 속한 진리”를 촉구하는( 딛 1:1 ) 것 과 똑같은 관점을 반영한다. 베드로의 경우를 보면, 베드로는 “하나

님의 참된 은혜”가 영원한 영광을 경험하기 전에 잠깐 고난을 겪게

한다고 독자에게 권고하고 선언하려고 자신의 첫째 편지를 썼다는 사실을 특별히 지적한다 ( 벧전 5:10-12 ) . 베드로후서에서는 “말세”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확립하려고 애쓴다( 벧후 3:311 ). 이때 베드로의 목표는 독자가 하나님의 날이 임하길 바라보며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사는 것이다( 11b-12절 ). 사도 요한은 요한 서신( 들 ) 에서 자신이 새 계명을 쓰는 것이 아

서론 65

1.

니라 자신이 받은 것은 처음부터 가진 것이라고 지적한다( 요이 5a절 ).

이 계명은 모든 신자가 “서로 사랑하고”, 그 계명을 따라 행함으로

써 그들의 사랑을 증명하는 것으로, 사랑 가운데서 행하는 것과 똑

같은 것이다( 5b-6절 ). 여기서 또다시 요한의 글의 목표가 실천적 방

향에 있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단순히 교리가 아니라 삶이 본

래 신약 성경신학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유다는 독자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대해 매우 간절한 마음으로

편지를 쓰지만, 편지 안에서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유

3절 ) 라고 독자에게 호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건하지 아니한 자가

그들 속에 가만히 들어와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

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

했기” 때문이다( 4절 ).

요한계시록을 보면, 영광에 들어간 예수께서 사도 요한에게 이렇

게 명령한다.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

하라”( 계 1:19 ). 앞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발하는 음성이 요한에게

그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라고 명령

하셨다( 11절 ). 이보다 더 앞에서는 여호와의 천사가 “이 예언의 말씀

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

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라고 특별한 복을 선포했다( 3절 ). 이 글

의 지속적 중요성이 이 계시가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묘

사할 것이라는 지적으로 강조된다( 19절 ). 게다가 요한계시록에 나오

는 다른 모든 경우의 숫자와 마찬가지로 “일곱” 교회에 대한 언급

도 이 메시지가 한 번이 아니라 대대로 복합적으로 적용되어야 함

을 보여 준다. 심지어는 오늘날도 일곱 교회에 주어진 이 요한계시

록 문서의 메시지를 읽고 주의하는 자는 특별한 복을 보장받는다.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재림이 있을 때까지 대대로 교

66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회들이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파악할 수 있게 기록되었다. 모

든 교회는 이 관점을 기초로 요한계시록의 다양한 메시지에서 유익

과 복을 받아야 한다.

요약 새 언약 문서들은 방대하고 다양한 내용을 가졌으나 통일된 목 표가 있다. 새 언약 문서들은 대대로 교회의 행복을 세우고 유지하

려고 기록되었다. 새 언약 문서들은 교회를 “참된 진리”의 기초 위

에 둠으로써,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살아야 할 삶에 대해 제

시함으로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와 교회의 확장에 중대 한 역할을 맡는다. 계시의 다양한 국면과 단계 속에 담긴 메시지는

점진적으로 펼쳐지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의 계획 과 뜻 안에서 그 웅대한 목표를 이룰 때 새 언약 문서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새 언약 문서들을 다루는 본서의 연구가 새 언약 문서

들 자체 속에 진술된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1. 서론 67

준비를 위한 계시들

수태고지

그리스도의 오심과 관련된 초기 선언들에서 독자가 놀랄 만한 첫

번째 사실은 메시지의 전달 방식과 메시지의 내용 자체가 초자연적

성격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초기의 수태고지는 여호와의 선지

자가 아니라 하늘에서 직접 파견된 사자를 통해 이루어진다. 하늘

이 보낸 사자들이 차례로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 예수의 어머

니 마리아, 마리아의 남편 요셉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예수께서 탄

생하실 때는 수많은 천사가 베들레헴 들판에서 목자들에게 나타

났다( 눅 1:11-20, 26-38; 마 1:20-21; 눅 2:8-14 ). 하늘에 뜬 특별한 한 별이 박

사들을 메시아에게 인도한다. 반면에 성령은 노인 시므온과 안나에

게 특별한 계시를 주신다( 마 2:1-2, 9; 눅 2:25-27, 36-38 ). 이런 특별한 현

상은 족장 시대 이후로 하나님의 구속 계시 특징인 초자연적 활동

과 잘 들어맞는다. 이런 특별한 현상은 이와 뚜렷이 대조되는 기간

곧 옛 언약 시대와 새 언약 시대 사이 4백 년 기간의 배경에 비추어

68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2

보면 그 중요성이 훨씬 극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처음에 세례 요

한의 아버지 사가랴와 대화를 나눔으로써 계시의 침묵을 깨뜨리는

하늘의 사자가 바로 옛 언약 시대가 끝날 즈음에 다니엘에게 비밀

을 계시한 하늘의 사자와 같은 인물인 가브리엘이라는 사실에 따르

면, 두 시대는 분명히 연속성이 있다( 눅 1:19, 26; 단 8:16; 9:21 ).

게다가 이런 초자연적 선포는 곧 일어나게 되어 있는 중대한 초

자연적 사건에 초점을 맞춘다. 자녀를 낳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은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다( 눅 1:13 ). 엘리사벳의 경험은 옛 언약

시대에 불임 여성이 경건한 자손을 낳는 일과 관련해 일어난 신적

개입 패턴을 따른다( 창 11:30; 16:1; 18:11; 25:21; 29:31; 삿 13:2 ). 그러나 여기서

훨씬 중대한 것은 처녀 마리아가 성령의 능력으로 아들을 잉태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눅 1:26-35 ).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유일한 방법

으로 태어날 이 특별한 아기는 하늘에서 온 사자를 통해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될 자로 선언된다( 32a절 ). 하나님

은 이 아기에게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고, 그는 “영원히 야곱

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다( 32b-33절 ). 이 선언으로 이 아기는

다윗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다스릴 오실 메시아와 관련

된 모든 약속을 이룰 자로 분명히 밝혀진다.1 ) 처녀에게서 태어나는

이 아기의 초자연적 탄생은 아버지와 동등하신 하나님의 독생자로

서의 자신의 독특한 역할을 극적으로 강조한다.

최근에는 복음주의 학자들도 이사야의 예언이 처녀가 아니라 단 지 “젊은 여성”의 잉태에 대해 말한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 러나 이사야의 예언을 적절히 이해하는 것은 “처녀”나 “젊은 여성”

1 ) 참고. Geerhardus Vos, Biblical Theology: Old and New Testaments (Grand Rapids: Eerdmans, 1948), 306. 보스는 수태고지에는 “이 새로운 일들을 구약 구속사의 유기적 구조 에 맞추려는 의도가 분명히 있다”라고 지적한다.

2. 준비를 위한 계시들 69

에 해당하는 단어의 엄밀한 의미뿐 아니라 문맥 전체에도 달려

있다. 이사야 선지자에 따르면, 수리아-에브라임 연합이 이루어진

의도는 단순히 유다 왕국에 대해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고자 함이

아니라, 250년 이상 계속된 다윗 왕가의 계승을 끝장내려 함에

있다( 사 7:6 ). 이사야는 의심하는 아하스왕에게 확증의 표시로, “[가

장] 깊은 데에서든지 [가장]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11절 )라고 함

으로써, 그 이적의 외적 한계를 제시한다.

아하스왕의 소심한 거절에 대한 예언자적 반응은 어쨌든 이사야

선지자가 제시한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하나님은 다윗에 대한 자신

의 맹세가 깨지지 않도록 보증하려고 기꺼이 어떤 일을 행하실까?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는 하나님으로서 자신의 성실하심에 대한 이

대담한 공격에 대응하려고 초자연적 개입을 어떻게 시작하실까? “보라!” 깜짝 놀라리라! 아연실색하리라!

그러면 지금 이사야 선지자는 “젊은 여성”이 아이를 가질 것이라

는 지식적 사실을 선언하는 것인가? 이처럼 흔한 평범한 출산 사건

이 역사적 상황에 따라, 그리고 가장 높은 하늘이나 가장 깊은 땅에 서 일어날 초자연적 징조에 대한 예언에 따라 일어난 기대에 부응

할 수 있을까? 절대로 부응할 수 없다. 이사야 관점에서 “초자연적

으로 깜짝 놀랄” 사건으로 분류될 수 있는 사건의 기준선은 이후에

히스기야의 중병과 관련해 일어난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사

야는 병든 왕에게 실제로 15년을 더 살게 될 것에 대한 “징조”를

약속한다. 그 징조는 해시계의 그림자가 십 도를 뒤로 물러가게 하

는 것이다( 사 38:8 ).

해시계가 거꾸로 움직일 때 가져올 모든 우주적 결과를 상상해 보라. 지구의 자전이 갑자기 멈추고 거꾸로 움직이다 다시 시작 된다. 그러면 그동안 대양의 깊은 곳은 말할 것도 없고 지구 표면

70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무수한 온갖 물체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직 처녀인 여성이 자녀를 낳는다면 그것은 당연히 “초자연적

징조”로 간주할 수 있었다. 이런 기적적 탄생은 상황의 요구에 대

한 적절한 반응일 수도 있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자신이 언약한

맹세 약속을 지키실 것이다. 여호와가 정하신 대로 다윗 계보에서

나온 신적 대표의 지속적 통치를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

었다. 필요하면 처녀라도 잉태해 아들을 낳을 것이고, 이 특별한 아

들은 ‘임마누엘’ 곧 자기 백성 속에 주권적 통치자로 거하는 성육신 하신 하나님으로 지정될 것이다. 이사야가 ‘베툴라’가

오랫동안 논란이 계속되었다.2 ) 그러나 마르틴 루터가, 누구든 이사

2 ) 참고. H. G. M. Williamson, King, Messiah and Servant in the Book of Isaiah (Carlisle, UK: Paternoster Press, 1998), 103. 윌리엄슨은 “논증을 위해” 사 7:14의 ‘알마’는 “(최소 한 원래 문맥에서는) 전형적 처녀를 가리키지 않는다는” 사실에 동의하지만, 동시에 그 말 은 “몇 년 전에 이미 자녀를 낳은 여성을 가리킬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윌리엄슨은 계속 해서 자신의 판단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직접 문맥에서 그의 탄생에 대한 예언은 아하 스 통치 당시 지배적인 역사적 상황과 확실히 연계되어 있고, 따라서 오랜 세월에 걸친 메

시아 예언은 최소한 일차적으로는 배제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108-109). 참고.

Daniel Schibler, “Messianism and Messianic Prophecy in Isaiah 1-12 and 28-33,” in The Lord’s Anointed: Interpretation of Old Testament Messianic Texts, ed. Philip E. Satterthwaite, Richard S. Hess, and Gordon J. Wenham (Carlisle, UK: Paternoster Press, 1995), 99. 쉬블러는 ‘알마’라는 말은 “아하스 측근 가운데 어떤 사람을 가리키고”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이사야에게 히스기야의 탄생이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있는 예 루살렘의 신실한 자 속에 하나님이 임하시는 것을 예고함”을 암시한다고 결론짓는다. 참고. J. Gordon McConville, “Messianic Interpretation of the Old Testament in Modern Context,” in The Lord’s Anointed:Interpretation of Old Testament Messianic Texts, ed. Philip E. Satterthwaite, Richard S. Hess, and Gordon J. Wenham (Carlisle, UK: Paternoster Press, 1995), 14. 맥콘빌은 사 7:14는 “아하스 통치의 직접 배경 속에서 성취되 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한다. NIV 2011년 판에서 마 1:18의 표제를 변경한 것에 담긴 함 축성은 분명하지 않다. 그 표제는 단순히 “요셉이 예수를 자기 아들로 받아들임”으로 되어 있 고,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건 가운데 하나로, 처녀 탄생 곧 삼위일체 두 번째 인 격인 영원한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을 선포하는 성경 부분에 대한 표제로는 너무 단조롭다.

2. 준비를 위한 계시들 71

‘알마’라는 단어를
아니라
택한 것에 대해

야가 택한 단어( ‘알마’ ) 가 결혼한 젊은 여성을 가리킨 적이 있음을 증

명하는 자에게 백 굴덴을 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당시 그것을 증명

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3 ) ‘베툴라’라는 말( 이사야가 사용하지 않기로 한 단

어 ) 이 더 엄밀하게 “처녀”를 말한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 하지

만 이 단어가 간혹 결혼한 여성을 가리킬 수 있다는 사실도 인정되

어야 한다( 욜 1:8 ). 그러나 ‘알마’( 이사야가 택한 단어 ) 는 항상 “결혼하지 않

은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그리하여 히스기야나

이사야의 아내는 고려에서 제외된다. 그렇다면 ‘임마누엘’을 낳을

이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성”이 정조를 잃었다고 결론지어야 할 까? 그렇지 않은 것이 더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이 여성은 “정조를

잃지 않은 미혼의 젊은 여성”으로 간주해야 한다. 어느 문화적 배경

에서 보아도 “처녀”는 정조를 잃지 않은 미혼의 젊은 여성이다.

따라서 마태가 마태복음을 쓰기 3백 년 전에 칠십인역 번역자들

이 이 단어를 명확하게 ‘파르테노스’ 곧 “처녀”로 번역한 것은 그만

한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자 보라. 놀랍도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그의 잉태는 독특하게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이 아이는 참으로 유일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

되어야 한다.

수태고지는 새 언약 시대를 출범시키는 계시와 사건들의 초자연

적 성격을 정확히 강조한다. 수태고지가 어떻게 다른 성격을 갖게

되겠는가? 하나님 자신의 주권적인 신적 개입만이 타락한 세상의 회복을 위한 일을 이룰 수 있다면, 이 놀라운 일의 첫 출발은 분명

3 ) 참고. Edward J. Young, The Book of Isaiah, vol. 1, Chapters I-XVIII (Grand Rapids: Eerdmans, 1965), 287n35. 여기서 피셔의 해석을 언급한다. 피셔는 특유의 표현으로 루터는 자신이 어디서 백 굴덴을 얻을지는 여호와만 아신다는 말을 덧붙였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역 사가 증명한 것처럼 루터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72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히 신적 기원이 특징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스스로 구속하기를

바라는 자는 자기 힘으로 그 길을 가게 하자. 그들이 지금부터 세상

이 끝날 때까지 이 엄청난 과업에 대해 좌절하는 결과를 계속 반복

하게 하자.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들이 또 수태고지의 증언을 한 번

더 면밀하게 살펴보게 하자. 선지자들의 기대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바로 이 사건들은 일어나기 수백 년 전에 예언되지 않았

는가? 이어지는 예수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과 승천 사건들에 대한

기록은 선지자들의 약속을 이루려고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로서

의 자신의 유일성을 확증하지 않는가?

처녀 탄생에 대한 복음서의 증언을 믿지 못하는 불신에 대해 다

음과 같이 반응한 학자가 있었다.

처녀 탄생은 성육신의 신비의 문에서 보초를 서고 있고,4 ) 우리

가운데 아무도 그 문을 서둘러 지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처녀 탄생은 확실히 초자연적 사건으로, 신약 성경의 문턱

에 서서 우리의 합리주의를 허용하지 않고, 이어지는 모든 것이

처녀 탄생 자체와 같은 질서에 속해 있으며 우리가 거기서 불쾌

함을 느낀다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고 우리에게 알려 준다.5 )

결국은 사회적으로 외세의 압박에서 구원받는 것도 메시아가 세

운 의로운 통치에 포함되겠지만, 최초의 “구원”은 다른 것에 초점 을 맞춘다. 처녀에게서 태어난 이 아들은 “여호와가 구원하다”를 의미하는 “예수”로 불릴 것이다.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

4 ) 원문은 “크리스마스의 신비”로 되어 있다.

5 ) Donald Macleod, The Person of Christ, Contours of Christian Theology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8), 37.

2. 준비를 위한 계시들 73

에서 구원할 자”이기 때문이다( 마 1:21 ).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 심판

의 무거운 손아래 있는 자기들의 상태에서 회복되는 것은 정확히

선지자들이 지적한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죄 사함이

없으면 구원도 있을 수 없다. 약속의 땅에서 사는 것이 하나님 임재

밖으로 추방된 상태에서 회복이 자동으로 이루어짐을 가리키는 것

은 아니다. 하나님과 참된 화목을 이루는 것이 새 시대에 시작된 새

로운 삶의 특징이어야 한다.6 )

하나님은 천사 가브리엘에게 옛 언약의 마지막 메시지 가운데 하

나를 다니엘 선지자에게 전하라는 사명을 맡기셨다. 그런데 이 가

브리엘 천사가 4백 년 뒤에 새 언약 복음을 최초로 받는 자에게 메

시지를 전하는 지정된 선포자가 되었다 ( 단 8:15-26; 9:20-24; 눅 1:11-20, 26-37 ). 옛 언약의 마지막 계시 경험이 새 언약의 최초 계시 경험과 연계된다. 옛 언약 아래 예언이 마지막으로 주어진 사건과 또 하나

의 연관성이 세례 요한의 사역에서 그 반향이 확인되는 엘리야의

재등장과 관련된 예언에서 나타난다( 말 4:5; 마 11:14 ).

세례 요한의 사역은 옛 언약 아래 이루어진 하나님 활동의 하나의

6 ) 참고. N. T. Wright, Christian Origins and the Question of God, vol. 1, The New Testament and the People of God (London: SPCK, 1992), 268-272; 299-307; vol. 2, Jesus and the Victory of God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6), 126-129; 268-274.

라이트는 다른 어느 현대 학자보다 이스라엘의 소망 관념을 포로에서 벗어나는 회복에 따라 전개한다. 특히 이 회복은 죄 사함을 포함해야 한다. 라이트는 이렇게 말한다. “죄 사함은 ‘포로 에서 돌아옴’을 말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Victory, 268(강조 표시 원문). 라이트가 “포로에서 돌아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더 깊이 분석한 것은 이 책 6장에서 “예수의 죽음” 부분을 보 라.

74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세례
예수의 세례
요한과

부록으로 여겨서도 안 되고, 그리스도 자신이 오실 때까지 임시방편

으로 행해진 일로 보아서도 안 된다. 나중에 사도 바울이 기독교 복

음을 선포할 때 세례 요한의 사역을 구속사 사건들의 흐름 속에 정

확히 위치시킨다는 사실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바울은 선교 활동을

시작할 때, 비시디아 안디옥에 있는 회당에서 성경에 기록된 자신의

최초 설교를 전한다. 독자는 이 설교에서 바울의 모든 메시지의 기

본 취지를 이해할 수 있는 패턴을 확인한다. 바울은 구속사의 중대

한 사건들을 돌이켜보는 것으로 다음 설교를 시작한다. ‘하나님이

자신들의 조상을 택하심, 애굽 체류, 모세의 인도 아래 이루어진 출

애굽과 광야 여정, 약속의 땅의 정복, 사사들 및 다윗의 통치에서 절

정에 달한 왕들의 통치( 행 13:16-22 )’ 등이다. 바울은 이 모든 역사가

약속된 구주로서 예수에게 집중되었다고 지적한다( 23절 ). 그런 다음

바울은 이렇게 선언한다.

그가 오시기에 앞서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행 13:24).

세례 요한의 사역은 이 초기에 구속사의 중대한 구원 사건 가운 데 하나로 위상이 높아졌다. 요한의 사역은 예수께서 오실 때까지 보충적인 사역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고, 예수께서 오신 후에도 무

시될 수 없었다. 특히 지금까지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이가 산 적이

없었다고 말씀하신 예수의 평가로 보아( 마 1:11; 눅 7:28 ), 세례 요한은

아브라함, 모세 또는 다윗 못지않은 인물로 기억되어야 한다. 요한

의 사역은 대대로 지속적 중요성이 있다. 그렇다면 그 중요성은 엄

밀히 무엇일까?

무엇보다 먼저 세례 요한은 “선지자”로 인정되어야 한다. 지난

2. 준비를 위한 계시들 75

4백 년 동안 이어졌던 예언의 침묵이 세례 요한에 이르러 드디어

깨진다.7 ) 사가랴는 마침내 입이 열리자, 자기 아들을 바라보며 이

렇게 선언한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

음을 받고”( 눅 1:76 ). 헤롯은 사람들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겼으므로

최소한 한동안은 그를 죽이지 못했다( 마 14:5 ). 요한이 처형된 후에도

예수는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했으므로( 눅 20:6 ), 세례 요한의

사역을 개인적 변론 수단으로 활용하실 수 있었다. 옛 선지자들의

전통에 속한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세상에 왔다 ( 눅

1:17 )

그런데 세례 요한의 지위는 이처럼 선지자의 지위만큼 높게 평가

될 수 있었으나 사실은 이보다 훨씬 높았다. 예수의 평가에 따르면 요한은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였다( 마 11:9; 눅 7:26 ). 표적을 행한 적이

한 번도 없었을지라도, 당시 사람들은 요한을 마음으로 무척 크게 존

경했다( 요 10:41 ). 왜 그런가? 왜 요한은 그토록 많이 존경받았는가?

대체로 세례 요한이 받은 존경은 구속사 속에서 그의 사역이 지

닌 특별한 상황에서 나왔다. 구속 활동의 전개에 비추어 볼 때, 활

동이 없던 4백 년 기간이 지난 후에 세례 요한은 메시아가 임하는

시대의 여명을 예고한 옛 언약 예언의 성취로 등장했다. 요한은

“소리” 곧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다( 요 1:23; 사 40:3 ). 예수는

요한의 사역을 구속사를 새로운 단계로 이끄는 핵심 전환점으로 분

명히 표시하신다. 예수는 특별히 율법과 선지자가 “요한의 때까지”

7 ) 참고. George Eldon Ladd, A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ed. Donald A. Hagner, rev. ed. (Cambridge: Lutterworth Press, 1994), 31-32. 래드는 요한이 활동할 당시까지

예언 사역이 없었다고 지적한다. 다음을 보라. Wright, Victory, 152-154, 라이트는 제2 성전 시대에는 예언 형식이 끝났고, “어떤 전문적 의미의” 예언이 멈춘 것으로 주장되었다고 지적 한다. 그러나 라이트는 예언이 “온갖 방식으로……여전히 왕성하게 이루어졌다”라고도 주장 한다(154).

76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선포되었다고 말씀하신다 ( 눅 16:16a. 참고. 마 11:11-15 ). 요한은 이스라엘

민족이 오랜 세월에 걸친 포로 상태에서 벗어나 회복된 것을 묘사

한 새로운 “출애굽”의 출범을 표상했다. 백성은 회복되려면 먼저

광야로 인도받아야 한다( 호 2:14-15 ). 광야에서 회개하는 이 시점부터 하나님은 새로운 출애굽을 시작하실 것이다.

4백 년의 침묵이 끝나자, 천국의 도래를 알리도록 하나님이 정하신

사자가 담대히 이렇게 외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막 1:4; 8 ) 마 3:2; 눅 3:3 ). 왕의 사자가 외치는 이 선포는 세 가지 중대한 요

소로 구성된다.

첫 번째 요소는 “회개하라”는 명령이다. 이 명령은 모든 사람 곧

공동체와 개인, 이스라엘과 민족들, 강한 자와 낮은 자, 헤롯과 창

녀 등 모든 사람에게 내려진다( 막 6:18; 마 21:32; 눅 7:29 ). 하나님 나라의

복에 참여하기 위한 이 첫 번째 필수 조건은 요나가 완고한 니느웨

백성에게 전한 메시지에서 말라기가 타락한 이스라엘에 전하는 메

시지까지 3백 년에 걸쳐 이스라엘 선지자들이 일관되게 선포한 메

시지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 욘 3:4-9; 말 3:7b )

회개의 촉구에 대한 개인의 반응에 비추어 볼 때만 아니라 구속

사의 진행에 비추어 볼 때도, 회개는 천국의 임함에 필수적이다. 세

례 요한이 “광야에” 들어가 회개하라고 촉구한 것은 하나님 백성이 가장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들의 포로 상태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했 음을 암시한다.9 ) 하나님 백성은 궁극적 복의 땅에 들어가려면 세례 8 ) 이 책 전체에 걸쳐 공관복음의 언급을 연속으로 제시할 때 마가복음이 최초로 기록된 복음서

였다는 전제에 따라 보통 마가복음을 가장 먼저 제시한다. 마가복음 우선성에 대한 상세한 고 찰은 이 책 7장에서 “마가복음: 특징적 증언” 부분의 설명을 보라. 9 ) 특히 히브리서에 나타나 있는 것과 같이, 광야 개념의 지속적 역할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 라. O. Palmer Robertson, God’s People in the Wilderness:The Church in Hebrews (Fearn, Scotland: Christian Focus, 2009). 참고. Wright, Victory, 246-258. 라이트는 예 수의 사역 배경 속에 나타난 회개를 “포로가 마침내 끝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본다(251).

2. 준비를 위한 계시들 77

요한과 예수가 촉구하는 것처럼 당대에 주어지는 회개의 촉구에 전

심으로 반응해야 한다.

선지자들은 반복해서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겔 33:11).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슥 1:3).

이 회개는 옛날 구속사 기록이 암시하듯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회개여야 한다. “내가 범죄하였노라……나와 나의 백성은 악 하도다”라고 공개적으로 인정한 자가 누구였는가? 바로 압제자 애 굽의 바로였다( 출 9:27 ). 그러나 바로는 다시 돌아갔다( 34절 ). 바로는

회개는 “여호와가 마침내 이스라엘의 운명을 회복하려면 이스라엘이 반드시 행해야 할 일” 로 정의된다(249). 회개는 “도덕적 개혁가의 요청이 아니라 종말론적 소명”이었다(251). 예

수는 청중에게 “단순히 개인적인 도덕적 회개가 아니라 종말론적 심판을 피하는 유일한 길로 증명될 종말론적 행위로” 크게 돌이킬 것을 요구하셨다(252). 또 회개는 “혁명적 열심을 포기 해야” 하는 것도 의미했다(250). 라이트는 이스라엘 선지자들의 희망이 포로 상태에서의 귀 환에 초점이 있음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옳다. 라이트는 또 약속된 “귀환”이 남은 자가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는 것으로는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유익하게 지적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포로의 끝을 경험하려면 회개할 필요가 있었다. 예수와 세례 요한이 회개를 촉구하는 것은 개인의 구원에 대한 중요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구속사적 중요성도 있었다. 그러나 라이 트는 신약 시대에 결정적 성취에 이르는 구약 성경의 많은 구속 심상 가운데 “포로의 끝”이라 는 이 한 주제를 너무 강조한다. “포로 상태에서 귀환함”과 함께 새로운 출애굽, 신약의 여호 수아 아래 이루어진 땅의 정복, 남은 가나안 땅의 입성, 다윗 왕조의 재건, 예배를 위해 하늘의 시온산에 다시 모임, 낙원으로의 복귀도 똑같이 중요하다. 이 모든 구약 심상 및 더 많은 심상

이 신약의 다면적인 구속의 완성에 공헌한다. 예수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메시지로 자신의 전파 사역을 시작하실 때 “포로 상태에서 귀환함” 못지않게 “다윗의 무너진 장막”의 회복도 암시하신다. 하나의 구속사적 심상으로 예수의 극적 선포에 담긴 모든 의미를 함축할 수 없다.

78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두 번째로 “내가 죄를 지었다”라고 선언했으나 곧 다시 돌아

갔다( 10:16, 20 ). 신약 성경 배경에서 보면, 아마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극적으로 “내가 죄를 범하였도다”라고 말한 자가 누구였는가?

다름 아닌 배반자 유다였다( 마 27:4 ). 그런 다음 유다는 물러가서 스

스로 목매어 죽었다( 5절 ). 후회를 회개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참고. 고

후 7:10 ).

바로 ( 출 9:27 ) , 발람 ( 민 22:34 ) , 사울 ( 삼상 15:24, 30; 26:21 ) 및 유다 ( 마 27:4 ) 가 다 자기들의 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참된 회개를 한 자는 없었다. 그런데 복음 나라의 실현을 경험하려고 요구된 첫 번째 행동은 그대로 남아 있다. “회개하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 를 맺으라”는 것이 세례 요한이 동시대 위선자들에게 한 말이었다 ( 눅 3:8 ).

회개는 메시아 나라의 복을 받는 열쇠다. 그러나 마음에서 우러

나온 참된 회개여야 한다. 예수께서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

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3, 5 ) 라고 경고하신 것과 같다. “회

개하라.” 이 말은 오랫동안 기다린 메시아 나라의 도래를 공개적으 로 선포하는 말이다.

현세에서 여러분에게 임할 수 있는 모든 가변적 상황을 주관하는 하나님이 베푸는 복에 참여하길 바란다면 여러분 자신의 모든 죄를 회개해야 한다. 누구이건 회개하는 자를 다 기꺼이 받아주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은혜로우시다. 예수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곧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 화목제물로 이 세상에 오셨으

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죄에도 불구하고 예수 앞에 나아가고 예

수의 영원한 나라의 모든 복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다.

두 번째 요소는 “하나님 나라” 또는 “천국”[하늘나라]이다. “회개

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 3:2 ). “이스라엘 나라”가 아니고

2. 준비를 위한 계시들 79

“천국”이다.

마태복음에서 “천국”[하늘나라]이라는 말은 다른 복음서에서 확

인되는 “하나님 나라”라는 말을 대체한다. 마태복음에서는 “천국”

이라는 말이 서른두 번에 걸쳐 나오고, 다른 복음서에서는 이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간혹 “하나님의 나라”라

는 말도 사용한다( 마 12:28; 21:31, 43 ).

마태가 천국이라는 말을 선택하는 것은 종종 선호하는 언어 문제

로 단순히 설명된다.10 ) 저명한 한 신약학자는 처음에는 “하나님

나라”와 “천국” 사이에 실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나중에는 “천[하늘]”은 먼저 이 나라의 기원을 암시한다고 지적 한다. “하나님 나라는 땅에서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 온다.” 그런 다음 이 학자는 “천[하늘]”은 또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묘사한다고 말한다. 곧 하나님 나라는 “신적이고 영광스럽고 난공

불락의” 나라다.11 )

복음서의 “천국” 개념은 신구약 중간기 문헌에서 나왔다고 때때

로 주장된다. 이 추론이 나오는 것은 복음서에 나오는 하나님 나라 개념의 직접적 출처로 보기에 구약 시대는 너무 거리가 멀기 때문

이다.

그러나 구속 계시가 4백 년간 중단되는 일은 구속사 속에서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요셉이 애굽 총리가 된 후부터

10 ) R. T. France, Matthew: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Tyndale New Testament Commentaries 1 (Grand Rapids: Eerdmans, 1985), 46. 프랜스는 마태는 그의 독자가 “주로 유대인이기” 때문에 “대체로 유대 방식의 표현”을 선호한다고 지적한다. R. V. G. Tasker, The Gospel according to St. Matthew: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1961), 50-51은 마태는 “하나님”을 하늘로 대체함으로써 (하 나님에 대해) 되도록 삼가는 유대인의 전형적 태도를 보여 준다고 말한다.

11 ) H. N. Ridderbos, BibleStudent’sCommentary:Matthew (Grand Rapids: Zondervan, 1987), 46-47.

80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수풀에서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4백 년 동

안 애굽에서 계속 종노릇했다. 그러나 여호와는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에게 4백 년 전에 족장들에게 주신 약속을 곧바로 환기하

셨다( 출 3:6 ). 세례 요한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할 때, 4백 년

전에 임한 말라기의 예언을 곧바로 환기한다( 막 1:2. 참고. 말 3:1 ).

마태복음의 “천국[하늘나라]”을 단순히 “하나님 나라”를 대체하는

용어로 이해하지 않고, 이 말을 훨씬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초가

구약 역사가 끝날 즈음 이스라엘의 포로 선지자 가운데 하나인 다

니엘의 예언에서 확인된다. BC 5세기 다니엘 당시부터 메시아

나라가 임할 때까지 세상 역사의 흐름을 예견하는 계시가 담긴 꿈

을 다룬 문맥에서 다니엘 선지자는 강력한 바벨론 군주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

님이시라”( 단 2:28 ). 이 예언을 받은 왕이 통치하는 동안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절대로 망하지 않을 나라를 세우실 것이다. 하늘에 계신 하

나님의 이 나라는 다른 모든 나라를 멸망시키고 자체는 영원히 존

속할 것이다( 2:44 )

다니엘이 예언하고 세례 요한과 예수가 선포한 이 “천국”은 땅에

서 이루어지는 통치와 분리되지 않는다. 대신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의 특성은 천국의 통치권의 포괄적 성격을 가리킨다. 하늘이 이

땅 북에서 남까지, 동에서 서까지 걸쳐 있는 것처럼 천국의 통치도

땅의 모든 나라와 세력을 포괄한다.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천국 의 절대적 지배 아래 있다.

“천국”의 임함에 비추어 볼 때, “회개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거역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땅의 모든 세력에 대해 자신의 정당한 지배권을 행사하신다. 위에 있는 하늘의 특징인 모든 요소가 하나님이 땅에 대해 행하시는 통치의

2. 준비를 위한 계시들 81

성격을 규정한다. 땅에 대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통치는 하늘처럼

영원하고 광범하고 포괄적이다. 이것이 세례 요한과 예수가 선포하

는 천국이다.

세 번째 요소는 초기에 세례 요한과 예수의 선포에 등장하는 “복

음”이다. 천국은 “가까이” 또는 “임박해” 있다. 천국은 바야흐로 전

체적으로 실현될 상태에 있다. 만물의 완성이 “문 앞에 있다.” 명령

속에 절박함이 들어 있다. 회개하라! 지금이 하나님에게 돌아갈 결

정적 순간이다. 지금이 여러분이 결정할 시간이다.

이 복음의 하나님은 참으로 놀랍게 선하시다. 단순하지만 능력으

로 충만한 이 선언을 통해 하나님은 구속받은 자기 백성을 재형성

하기 시작하신다. 하나님은 은혜로 누구든 회개하는 모든 자를 새

로 구성된 자기 백성 속에 포함하신다. 하나님은 순전하고 완전한

자기의 율법을 어긴 여러분의 모든 행위에 대해 완전한 용서, 철저

한 사면을 베푸신다. 천국의 복을 누리지 못하는 유일한 사람은 회

개하지 않는 자뿐이다! 자기 이득을 위해 도둑질하거나 속이는 부

정직한 세리들, 가정을 파괴하는 삶을 사는 부도덕한 창녀들도 세 례 요한이 전한 회개의 세례를 받아들인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회

개함으로써 예수를 믿고 예수 나라의 복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눅 7:29 ). 그러나 너무 교만해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지 않는 종 교 지도자들은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다”( 30절 ).

천국에서 제외된 그들은 오직 하나님이 사람의 삶을 주관하실 때 임하는 복을 받지 못한다.

세례 요한의 이런 준비 성명은 예수의 취임사를 예견하는 역할을 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것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모든 민족에게 계속 전파되는 복음이다( 눅 24:47; 행 2:37-38 ).

이 간명한 메시지는 씨앗 형태로 온 땅에 전파되어 오는 세대 사람

82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들의 마음속에 심길 하나님 말씀의 실체를 담고 있다.

여러분은 회개했는가? 죄짓는 생활방식을 거부했는가? 여러분

자신의 완고한 길에서 돌아서고 모든 것을 예수에게 복종시켰

는가?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하나님 나라를 구하지 말라. 회개할

때까지 여러분은 예수를 ‘자기 백성을 그들의 모든 죄와 죄의 모든

결과에서 구원할 사명을 위임받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로 믿을

준비를 하지 못할 것이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에게서 새 시대의 구속 성취의 여명을 전하라 는 특별한 부르심과 임무를 받았다. 요한은 메시아가 오기 전 “모 든 것을 회복하기” 위해 먼저 와야 했던 그 “엘리야”였다( 말 4:5-6; 막 9:12-13. 참고. 마 11:12-14 ). 따라서 요한은 “모든 것의 회복”을 이루어야 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구자가 적절한 질서에 따라

세워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 예수에 따르면 긴장이 생긴다. 예수께서 직접 이 딜

레마를 취하신다. 세례 요한이 모든 것의 회복을 이룬다면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

느냐”( 막 9:12 ). 요한의 사역을 통해 천국이 임하고 모든 것이 “회복

되었다면” 인자( 메시아 ) 가 어떻게 고난을 겪을 수 있겠는가? 예수의

다음 진술에 나타난 대조가 이 진정한 딜레마를 해결한다.12 )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막 9:13).

의심할 여지 없이 세례 요한은 오리라고 예언된 엘리야이고, 와 12 ) 예수의 진술은 전형적인 ‘멘……데’ 구성이다. “한편으로는 [요한이 모든 것을 회복하였거니 와……다른 한편으로는 [인자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2. 준비를 위한 계시들 83

서 모든 것을 회복했다( 막 9:11; 마 17:12 ). 그러나 타락하고 부패한 사람

들의 참된 “회복”은 회복을 이루는 자의 복합적인 고난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선지자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증명했음에도 왕비 이세벨이 엘리야의 머리

를 요구한 것처럼, 세례 요한이 예언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자신이 하

나님에게서 왔음을 증명했음에도 헤롯왕은 요한의 머리를 취했다.

사람들은 인자에게도 이와 똑같이 행할 것이고, 그 사실은 예수

께서 성경이 세례 요한이 “모든 것을 회복했음에도”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해야” ( 막 9:12; 마 17:12 ) 한다고 가르친 이유와 관

련해 제자들에게 자신이 취하신 딜레마에 대한 답변이다. 메시아

나라의 참된 본질이, 이와 반대로 승리주의에 대한 모든 기대에도

불구하고, 이런 딜레마를 요구한다. 부패와 죄의 권능에 붙잡힌 세

상이 구속받으려면 오시는 구속자가 죄인을 대신해 하나님의 정당

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구속자가 의로운 심판자로만 오신다면 온

세상은 죄로 말미암아 소멸할 것이다.

세상이 너무 악해 세상 자체의 가장 큰 소망을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이므로, 세례 요한이 메시아를 위해 미리 준비하는 일은 회개의

세례를 전하는 것을 의미했다. 요한 자신은 그 곧 메시아가 이스라

엘에 계시될 수 있도록( 막 1:4; 요 1:31 ), 자기가 “회개의” 세례를 전파

하러 왔다고 언급한다. 요한은 사람들이 회개의 세례를 충분히 깨

닫게 하려고, 호세아가 임할 날과 관련해 그렇게 예언한 것처럼( 호 2:9-16 ), 땅의 소유물에 대한 우상숭배와 세속적인 부도덕함에서 벗

어남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람들을 광야로 이끌었다. 이런 회개의

준비가 없으면 아무도 예수께서 누구신지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누가가 세례 요한의 중요한 역할에 대해 반성하는 것처럼, 심지어

는 ( 부패한 ) 로마 당국의 세리도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 눅 7:29 )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84 그리스도와

예수의 가르침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와 극히 대조적으로 바리새인

과 율법 교사들은 “그의[요한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 30절 ) 자기들

에 대한 하나님 뜻을 거부했다.

세례 요한 사역의 중대성에 대한 이상의 분석은 깊은 함축적 의 미가 있다. 메시아가 가져오는 회복의 나라는 고난의 나라로, 이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오직 온 마음을 다한 회개로만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세례 요한의 사역은 일시적이고 잠정

적이지만 다른 의미에서 그의 사역은 지속적 중요성이 있다. 참된

메시아 나라는 그 백성에게 죽음이 따르기도 하는 고난을 수반하 고, 이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오직 자기들의 마음에 자리 잡은 깊은

악에 대해 회개하는 자만 경험할 수 있다.

오늘날 여러분은 세례 요한의 독특한 사역을 숙고하면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회개하고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은혜를 얻으라는 요한

의 엄숙한 촉구를 간과하거나 건너뛸 수 있다고 잠시라도 생각하지

말라. 여러분은 회개하지 않으면 다 요한의 메시지를 거부한 자와

똑같이 멸망할 것이다. 여러분의 이 회개는 여러분의 영혼과 여러

분 인생의 모든 순간의 모든 죄를 철저히 포괄해야 한다. 예수의 메

시지도 요한의 메시지와 똑같았다. ‘회개하라! 네가 어찌 죽을 것이 냐? 하나님께 돌아가라. 그러면 하나님이 네게 돌아올 것이다.’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회개의 필요성을 증언하는 것으

로 그치지 않았다. 아울러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실 주의 길을 예비하

는 일을 자신의 과업으로 이해했다( 요 1:23. 참고. 눅 1:16-17 ). 요한은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자신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는 분이라는 점을 정확히 밝혔다( 요 1:27 ). 요한은 이 “오시는 이”를 특

별히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불렀다( 29절 ).

예수께서 세례 요한의 사역을 인정했음을 입증하는 또 다른 증

2. 준비를 위한 계시들 85

거가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획책했다( 요 8:39-41 ). 유대 지도자들은 다시 돌을 들어 예수를 치려

했다( 10:31-33 ). 이 때문에 예수는 요단강을 건너 요한이 처음에 세례

베풀던 곳으로 가신다 ( 40절 ) . 그런 다음 요한복음은 이렇게 지적

한다. “거기 거하시니.” 그 결과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예수께 나아

왔고,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 41-42절 ).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고 예수에 대해 증언하는 것을 기억한 많은 이가 예

수를 믿었다.

오실 왕과 이 왕의 나라는 예고된 선구자를 통해 먼저 선포된다.

구약 성경이 주의 “길을 예비할” 어떤 개인에 대해 예언한다는 사

실은 부인할 수 없다( 사 40:3; 말 3:1 ). 지금 신약 성경의 “복음서”로 알

려진 첫 세기 문서가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인의 생애와 사

역이 이스라엘 선지자들이 언급한 메시아의 선구자에 대한 기대와

일치한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듣게 될 모든 자에게 이 종합적

증언은 본래 진리의 반지를 소유하는 자기 증명 특성이 있다. 하나

님에 대해 회개하는 것은 세례 요한의 촉구를 넘어서는 보편적 요 구다. 예수는 회개에 대한 똑같은 촉구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의 피할 수 없는 결과로 제시하신다( 막 1:15 ).

이 예수께서 요한에게 나아오고, 요한은 예수의 합당하심과 자기

의 합당하지 못함을 주장하면서도 예수에게 세례를 베푼다( 마 3:14-

15 ). 이 엄숙한 순간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구속받

는 자의 씨[자손]에 대한 약속과 관련된 아브라함 언약의 보증까지

이어져 있는 고대의 정결 의식 관례를 확증하는 일에 동참하신다.

성부는 공개적으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선언하신다. 성

령은 성부가 행하신 예수의 지정을 확증하려고 비둘기같이 가시적

86 그리스도와 완성:
공관복음·요한복음

형태로 임하신다.13 )

하나님이 예수를 이처럼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언하신

직후에 사탄이 나아와 성부가 인정하신 예수의 정체성 바로 그 엄

밀한 요점으로 예수를 시험한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

든……”( 마 4:3, 6 ).

마귀와의 대결

예수의 생애 세 번의 중대한 순간에 사탄과 싸움이 벌어진다. (1)

예수께서 공적 사역을 시작하실 때, (2)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메시

아로서의 자신의 참된 본질에 대해 고백받으실 때, (3) 예수께서 이

땅에서 자신의 생애 마지막 순간에 직면하셨을 때. 이 전환점 각각

의 순간에 사탄은 하나님 아들의 자기희생 사역을 어떻게든 훼손하

려 획책한다. 예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뜻에 자기 뜻을 철저히 복

종시킴으로써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신다. 동시에 예수는 검증 곧

메시아 직무를 성공적으로 이루었음을 확증하는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신다.14 )

예수는 성령으로 메시아 세례를 받자마자 성령의 인도를 받아 광

야로 들어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다( 막 1:12-13; 마 4:1; 눅 4:1-2 ). 세례

받을 때 하늘에서 온 소리가 “이는 내 아들”이라고 선언한 것은 시 편에서 확인된 ( 시 2:7 )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메시아 지위를 가리 13 ) 리키 왓츠가 하늘이 “갈라지는”(사 63:19 MT) 것으로 성령에 대해 언급하는 사 63:11, 14를 마가가 독특하게 성령이 예수 위에 임하실 때 하늘이 “찢어지는” 것으로 언급하는 것 과 비교해 다루는 내용을 참고하라. Rikki E. Watts, Isaiah’s New Exodus and Mark (T bingen: Mohr Siebeck, 1997), 103, 106. 14 ) Vos, BiblicalTheology, 358.

2. 준비를 위한 계시들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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