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비판적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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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트루먼

이단은 항상 교회의 삶의 일부였는데, 교회 역사가라면 누구나 해결

해야 하는 질문 중 하나가 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더 잘 알 것이라 고 기대할 수 있는 기독교인 사이에서 왜 이단이 일반적으로 그토록

매력적인 것으로 드러나고 지지자가 생겨나느냐는 것이다. 정답은 간

단하다. 이단은 일반적으로 중요한 질문을 던지며 상당한 진리가 담긴

답변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일부 극단적 형태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하

나님의 율법으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었던 5세기 이단 펠라기우스주의

를 예로 들어 보자. 펠라기우스주의가 제기한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인간의 도덕적 책임에 대한 것이었다. 이것은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그런데 펠라기우스주의가 제시한 답변 은 인간의 책임을 강조했다. 펠라기우스주의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성

경적 관념을 소멸시키는 경향이 있는 방식으로 그렇게 했지만, 성경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면 인간의 책임을 어느 정도 강조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펠라기우스주의자가 인간의 책임을 중요하게 이해했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펠라기우스주의자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라는 문제와 관련 된 다른 모든 진리를 왜곡하거나 대체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책임을 강 조했다는 것이다.

비판 이론을 주제로 하는 책의 서문을 이단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하

는 이유가 무엇일까? 비판 이론이라는 포괄적인 용어로 함께 분류되는

다양한 방법론, 특히 비판적 인종 이론과 관련해 기독교 진영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에게 비

판 이론의 매력은 진리의 일면을 포착한다는 사실에 있다. 문제는 비

판 이론이 다른 진리를 사소한 것으로 만들거나 뒤엎거나 심지어 거부

할 정도로 이 진리를 강조한다는 사실에 있다.

닐 셴비와 팻 소여가 쓴 이 책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비판 이론을 단순히 문화 마르크스주의로 치부하는 접근법이 특

정 지지층에게는 통할지 몰라도 이 문제에서 기독교 변증의 가장 중요

한 과제, 즉 올바른 이유( 그것이 파악하고 있는 진리의 일면 ) 로 비판 이론에 매료

된 사람들에게 비판 이론이 궁극적으로 교회에 좋지 않고 성경적 기독

교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설득하는 데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내가 비판적 인종 이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청년층 가운데 이 이론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은 당연히 인종주의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아도

미국에서는 인종 문제를 다루는 유일한 방법이 비판적 인종 이론이라

는 표현 양식을 통해서만 허용되는 세상에 살고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단순히 문화 마르크스주의에 빠져 있다고 지

적하는 것은 설득력 있는 전략이 아니다. 그보다 이들이 보고 있는 문

제 중 일부와 비판적 인종 이론이 강조하는 문제가 사실이더라도 비판

적 인종 이론 자체가 궁극적으로 확실한 해답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

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비판 이론이 인종, 젠더, 퀴어, 탈식민주의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지만 몇 가지 공통점을 공유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중에서도 진리에 대한 주장이 궁극적으로 조작적이라는

관점은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이다. 초기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주장한

대로 구식 계급의 이해관계에 공헌하든 후대의 사상가가 주장한 대로

훨씬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교차성의 모델 안에서 이해해야 하든 상

관없이, 비판 이론은 궁극적으로는 진리 주장과 절대자에 기반한 종교

인 기독교에 모두 치명적이다. 이 사실은 또한 일부 기독교인이 가령

비판적 인종 이론에 대한 수용 가능한 접근법으로 제시한 “고기는 먹 고 뼈는 버리자(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취사선택하자 ) ”라는 절충주의가 불합리함

을 암시한다. 비판 이론가에게는 고기와 뼈의 구별 그 자체가 이의를

제기하고 전복해야 할 문화 체계의 구성물이므로 이런 구별 역시 폭로

되고 폐기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일부 기독교인이 비판적 인종 이론에서 느끼는 유혹은

매우 위험하다.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비판적 인종 이론은 궁극적으로

인종 문제에만 국한될 수 없고 섹슈얼리티와 젠더에도 적용되어야 하

는 중요한 원칙과 방법의 정당성을 수용해야 한다. 성 이분법과 성적

관습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비판적 인종 이론을 해방적인 것으로 칭송할 수는 없다.

이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기독교인은 비판 이론이 어떻게 발전했는

지, 비판 이론의 원리와 주장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비판 이론이

결국 기독교나 실제로 안정된 의미 범주를 사용하는 모든 세계관에 어 떻게 반대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 작업을 수행하려면 전문 용어를

피하고 명확성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하는 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셴비와 소여가 하는 작업이다. 이 훌륭한 책에서 셴 비와 소여는 비판 이론의 역사를 요약하고, 그런 다음 비판 이론이 좋

은 질문을 던지고 일부 진리를 포착하는 부분과 비판 이론의 전반적인 계획이

판 이론의 방법론이 정치적 계획과 어떻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에 대한 더 나은 개념을 독자에게 제공하는 중요한 안내서다. 셴비와

소여는 어떤 개념을 마르크스나 마르쿠제에게서 추적할 수 있다면 자

기 임무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논객의 안일함을 피하고, 대신 비판 이

론을 그 자체로, 그리고 성경적 진리와 비교해 제시하려 노력한다. 셴

비와 소여가 지적하는 대로 모든 진리가 하나님의 진리라면, 우리는

비판 이론에 건전하게 참여하거나 거기서 발견할 수 있는 통찰을 인정

하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모든 진리가 하나님의 진리라

면, 우리는 또한 기독교 정통 신학과 궁극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진리

를 거부하는 것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처한 어려운 시대에 조

심스럽지만 필요한 이 길을 걷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셴비와 소여는

독자 여러분에게 차분하고 관대하면서도 솔직한 안내자가 되어 줄 것

이다. 이 책은 비판 이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읽어야

할 중요한 책이다. -칼 트루먼, 철학박사(애버딘 대학교)

전 프린스턴 대학교 제임스 매디슨 프로그램 종교 및 공공 생활 분야의 윌리엄 사이먼 객원 연구원,

현 펜실베이니아주 그로브 시티 대학 성경 및 종교학 교수

다가오는 위기

이 책은 공화당에 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민주당에 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자유당, 녹색당, 미국연대당, 휘그당, 혁신당에 대한 책이 아 니다.

이 책은 정치에 대한 책이 아니다.

우리는 교회 환경의 안팎에서 사회 정의, ‘깨어남’( wokeness: 사회적 불의와 불평등과 인종적 편견 또는 차별에 대해 경계하고 관심을 보이는 능력이나 상태를 가리키는 아프리카 계 미국인의 방언에서 유래한 정치적 은어 woke의 명사형. ‘각성’, ‘자각’, ‘깨어 있음’ 등으로 다양하

게 번역되지만, 이 책에서는 woke를 “깨어난”으로, wokeness를 ‘깨어남’으로 통일해 표기함-옮긴 이 ), 비판적 인종 이론, 또는 심지어 인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런 확

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우리가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투표하도록 설득하려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우리는 신학이 문화의 상류에 있고 문화가 정

치의 상류에 있다고 인식한다. 리처드 존 노이하우스가 말한 대로, “정

치는 문화의 기능이며, 문화는 ( 종교의 기능까지는 아니어도 ) 종교를 반영

한다.”1) 따라서 우리는 기독교가 기독교인의 문화적 입장과 정치적 입

장을 알려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렇더라도 이 책은 정치에 대한 책

이 아니며, 심지어 정치의 기초가 되는 문화적 입장에 대한 책도 아

니다.

이 책은 총기 규제를 칭찬하거나 비판하기 위해 쓴 게 아니다. 이 책

은 최저임금을 15달러 또는 30달러로 올리거나 최저임금 폐지를 주

장하기 위해 쓴 게 아니다. 이 책은 학교 기금, 무역 관세, 이민 정책, 국방부 예산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쓴 것도 아니다. 이런 문제들이 중

요하고 우리도 다양한 정도로 거기에 관심이 있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정치적인 게 아니라 신학적인 것이다.

특정한 일련의 사상이 우리 문화를 장악했으며, 신앙을 고백하는 교

회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런 사상은 공동선과

기본적인 기독교 신학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고 있다. 이런 사상을 전

적으로, 상당 부분 또는 적당히, 그러나 비판 없이 수용하는 한, 우리는

사회에 불화를 심고 건전한 교리를 약화할 것이다. 결국 이런 사상은

방치하면 사회를 분열시키고 눈에 보이는 교회를 무너뜨릴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놀라운 주장이다. 우리가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무

엇일까? 우리가 너무 지나치게 우려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먼저 일련의 문화 유물을 고찰하자.

야생에서 깨어남

2016년 네 명의 학자가 “빙하, 젠더, 그리고 과학”이라는 제목의 논

1) Richard John Neuhaus, The Naked Public Square:Religion and Democracy in America (Grand Rapids: W.B. Eerdmans, 1984), 132.

문을 동료 심사 학술지( Progress in Human Geography ) 에 발표했다. 이들은

“페미니스트 빙하학 체제”를 만들면 “더 정의롭고 공평한 과학과 인간

과 얼음의 상호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2) 이 기사를 접

한 대다수 사람은 재미와 혼란을 동시에 경험했다. 빙하는 커다란 얼

음덩어리다. 페미니즘과 젠더는 큰 얼음덩어리 연구와 어떤 관련이 있

을까?

같은 해 올랜도의 펄스 나이트클럽에서 끔찍한 테러 공격이 발생 했다. 총격범은 이슬람 국가에 충성을 맹세하며 50명 가까운 사람을

살해했다. 여기에 대응해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웹사이트는 공개서한을 통해 “우리의 적은 백인 우월주의, 가부장제, 자본주의, 군

사주의라는 네 가지 위협이며, 이것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

지다. 이슬람이 아니라 이런 영향력이 테러리즘을 일으킨다. 퀴어가

아니라 이런 영향력이 동성애 혐오증을 일으킨다”라고 진술했다.3) 이 것은 이상한 반응처럼 보인다. 자본주의나 가부장제가 게이 나이트클

럽에서 총기를 난사한 이슬람 테러리스트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2017년 <뉴욕 타임스>는 예시바 대학교의 흑인 법학 교수 에코우

얀카가 “내 아이는 백인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쓴 칼

럼 기사를 게재했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어린 자녀를 어 떻게 양육할지를 고민하던 저자는 “조심하라고 가르치고, 의심하라고 가르치고, 불신하라고 가르칠 것이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내 아

2) Mark Carey et al., “Glaciers, Gender, and Science: A Feminist Glaciology Framework for Global Environmental Change Research,” Progress in Human Geography 40, no. 6 (December 2016): 770-793, https://doi.org/10. 1177/0309132515623368.

3) Black Lives Matter, “In Honor of Our Dead: Latinx, Queer, Trans, Muslim, Black—We Will Be Free,” June 14, 2016, https://web.archive.org/web/ 20160614192829/http://blacklivesmatter.com/in-honor-of-our-deadqueer-trans-muslim-black-we-will-be-free/.

이들이 백인과 진정으로 친구가 될 수 있는지를 논의해야 할 것

이다……나는 내 아이들에게 백인과의 우정이 가능한지를 깊이 의심

하도록 가르칠 것이다. 아이들이 물어보면, 나는 내 아이들에게 백인

의 아름다운 피부색이 단층선이라고 가르칠 것이다. 우리가 내면이 모

두 똑같다는 미사여구는 사용하지 않겠다. 나는 먼저 내 아이들을 안

전하게 지켜야 하므로, 세상이 분리와 폭력과 종종 죽음으로 이어지는

배신의 낙인을 보여 주기 전에 그들에게 가르칠 것이다.”4)

이에 뒤질세라 워싱턴 포스트는 몇 달 후 노스이스턴 대학교 사회학

교수 수잔나 다누타 월터스가 “왜 우리는 남성을 미워할 수 없는가”라

는 제목으로 쓴 칼럼 기사를 게재했다. 월터스는 성적 학대와 여성 혐

오의 수많은 사례를 들면서, “명백하게 사실적인 이 맥락에서 남성을

혐오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보인다. 거짓말을 할 수는 없지만, 나는 급

진적 페미니스트의 공격에 대해, 문제를 불확실하지 않은 용어로 명명

하는 것에 대해 항상 호감을 느꼈다. ‘그러나 우리는 남성을 혐오하지

않는다’라는 여러 세대의 예비 페미니스트의 항변에 격분했으며, ‘남

성이 문제가 아니라 이 제도가 문제다’라는 주장이 지나치게 귀중하다

는 것을 크게 깨달았다”라고 사색한다. 월터스는 남성 동료에게 당부

하는 말로 마무리한다. “그러니 남성 여러분, 여러분이 진정으로 ‘우리

와 함께’( 해시태그 #WithUs ) 고 수천 년간 여러분이 만들어 내고 혜택을 누

린 모든 비애에 대해 우리가 여러분을 미워하지 않기를 원한다면, 이

것부터 시작하세요. 우리가 실제로 두들겨 맞지 않고 일어설 수 있도 록 몸을 내밀어 주세요. 페미니즘 여성에게만 투표하겠다고 서약하세 요. 공직에 출마하지 마세요. 어떤 책임도 맡지 마세요. 권력에서 물러

4) Ekow Yankah, “Can My Children Be Friends With White People?,” The New York Times, November 11, 2017, https://www.nytimes.com/2017/11/ 11/opinion/sunday/interracial-friendship-donald-trump.html.

나세요.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흘리는 악어의 눈물

은 더 이상 우리가 닦아 주지 않는다는 점을 부디 알아주세요. 우리는

여러분을 미워할 권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에게 잘못했으니까

요. ‘가부장제 때문에.’ 팀 페미니즘을 위해 열심히 뛸 때가 한참 지났

어요. 그러니 승리합시다.”5)

이런 접근법은 타당한가? 이런 접근법은 건강한가? 이런 접근법은

진정한 사랑과 화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가?

2018년 소셜 미디어에서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두 예능인 셰어와

로지 오도넬이 트위터에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셰어는 대선 후보

자 조 바이든-베토 오루크를 지지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오도넬

은 “2번 조는 안 돼요”라고 답했다. 누군가 “조 바이든은 왜 안 되

죠?”라고 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도넬은 “더 이상 늙은 백인 남

자는 안 돼요”라고 딱 잘라 말했다.6) 다시 한번 사람들은 불쾌함과 혼

란스러움을 동시에 경험했다. 오도넬의 반응은 노골적인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의 명백한 표현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바이든이 최종 민주

당 후보가 되었을 때, 왜 백인 민주당 당원 중 49%는 후보가 “70대 백

인 남성”이라는 사실에 신경을 곤두세웠으나, 그에 반해 흑인 중 28%

와 남미인 중 30%만 이런 우려를 공유한 것일까?7)

5) Suzanna Walters, “Why Can’t We Hate Men?,” TheWashingtonPost, June 8, 2018, https://www.washingtonpost.com/opinions/why-cant-we-hatemen/2018/06/08/f1a3a8e0-6451-11e8-a69c-b944de66d9e7_story.html.

6) Rosie O’Donnell, Twitter post, December 12, 2018, https://twitter.com/ Rosie/status/1073077220707614720.

7) Amina Dunn and Jocelyn Kiley, “Some Democrats are bothered nominee is an older white man—and they solidly back Biden in November,” Pew Research Center, April 20, 2020, https://www.pewresearch.org/facttank/2020/04/20/some-democrats-are-bothered-nominee-is-an-olderwhite-man-and-they-solidly-back-biden-in-november/.

2019년 비키 오스터웨일은 약탈을 “격변이나 폭동의 순간에 벌어

지는 재산의 대량 징발, 대량 절도”로 정의한 책 한 권 분량의 변론서

를 출간했다.8) 이 책은 “약탈은 이성애 가부장적 인종 자본주의 사회

의 핵심 신념과 구조를 공격한다……약탈은 소유권과 재산의 정당성,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도덕적 명령, 법과 질서의 ‘정의’를 거부 한다. 약탈은 이 모든 것의 실체가 자연적 사실이 아니라 이념, 경제,

국가 폭력으로 유지되고 다수의 희생으로 소수를 이롭게 하는 사회적 구성물임을 드러낸다”라고 주장한다.9)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의

여파로 시위와 약탈이 난무한 가운데, 미국 공영 라디오는 오스터웨일

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오스터웨일은 이런 맥락에서 약탈이 “재산의

개념”과 “백인성( whiteness ) 과 백인 우월주의의 역사”를 공격하는 것

이라고 주장했다. 오스터웨일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약

탈은] 사람에게 자유와 쾌락을 창의적으로 느끼게 하고……폭동과 약

탈을 일종의 기쁨과 해방으로 경험하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광범위한 조롱이 이어지자, 미국 공영 라디오는 원래 기사가

“인터뷰에서 논란이 되는 일부 의견을 완전하게 평가할 수 있는 충분 한 맥락을 독자에게 제공하지 못했다”라며 사과하는 도입문을 추가

했다.10) 왜 약탈이 “이성애 가부장적 인종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공 격인가? 왜 약탈이 사회적 선, 즉 건전하고 카타르시스적이며 회복적 인 행동으로 여겨지고 있는가?

8) Natalie Escobar, “One Author’s Controversial View: ‘In Defense Of Looting,’” NPR, August 27, 2020, https://www.npr.org/sections/ codeswitch/2020/08/27/906642178/one-authors-argument-in-defenseof-looting.

9) Vicky Osterweil, InDefenseofLooting:ARiotousHistoryofUncivilAction (New York: Bold Type Books, 2020), 3.

10) Escobar, “One Author’s Controversial View: ‘In Defense Of Looting.’”

2020년 스미스소니언 연구소의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 문화

박물관은 “미국의 백인성과 백인 문화의 양상과 가정”에 대한 정보 도

표를 게시했는데( 나중에 삭제함 ), 이 인포그래픽은 “과학적 방법에 대한

강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선형적 사고”, “인과 관계”, “미래 지향”,

“지연된 만족”, “예의 바름”, “근면이 성공의 열쇠” 등의 항목을 “백인

성”의 요소로 열거한다.11) 이런 주장은 신나치 선언문의 중간에 나올

법한 이야기다. 하지만 연방 정부의 지원을 받는 국립 박물관에서 만

든 진보적이고 반인종주의적인 교육 문서에 이런 주장이 나오는 이유

는 무엇일까?

이런 관점을 채택하는 것은 스미스소니언만이 아니다. 월마트의 한

교육 프로그램에서 직원들은 인종주의가 “백인으로 여겨지는 사람에

게는 유리하고 백인으로 여겨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억압 체계”며, 유

색인은 “자신과 다른 유색인에 대한 내면화된 부정적 메시지, 거리 두

기, 과장된 가시성, 백인에 대한 보호”를 특징으로 하는 “내면화된 인

종적 억압”으로 고통받을 수 있으며 “백인 우월주의 문화”에는 “기록

된 단어 숭배”, “예의 바름에 대한 강조”, “개인주의”, “객관성” 등의

요소가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12) 다시 말하지만, 이런 주장은 백인 우

월주의 모임에서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인데, 왜 대기업에서 열린 다

양성 교육 모임에서 이런 주장이 제기되고 있을까? 2021년 CNN 뉴스 기사에서 “태어날 때 사람의 젠더 정체성을 알 수 없으며, 태어날 때 성별을 지정하는 합의된 기준도 없다”라는 내용

11) Marina Watts, “In Smithsonian Race Guidelines, Rational Thinking and Hard Work Are White Values,” Newsweek, July 17, 2020, https://www. newsweek.com/smithsonian-race-guidelines-rational-thinking-hardwork-are-white-values-1518333.

12) Christopher F. Rufo, “Walmart vs. Whiteness,” Christopher_Rufo, October 14, 2021, https://christopherrufo.com/walmart-vs-whiteness/.

이 보도되었다.13) 이 문장은 대중의 항의로 인해 최종적으로 삭제될

때까지 24시간 동안 그대로 유지되었다. 성과 젠더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믿는다 해도 “태어날 때 성별을 지정하는 합의된 기준이

없다”라는 말이 정말 사실일까? 그리고 인간이 태어날 때 누군가의 성

별을 “지정한” 적이 있는가? 성별은 “지정하는” 게 아니라 “인식하는”

게 아닌가?

성별과 관련해 놀라운 발언을 한 단체는 CNN만이 아니다. 미국시

민자유연맹도 성과 젠더 정체성과 관련해 혼란을 일으키는 콘텐츠를

꾸준히 생산해 왔다. 2020년 4월 30일자 미국시민자유연맹 기사에서

는 “트랜스젠더 운동선수에 대한 네 가지 신화”를 폭로했는데, 여기에

는 “트랜스젠더 운동선수의 생리적 특성은 시스젠더 운동선수보다 불

공평한 이점을 제공한다”, “성별은 이분법적이며, 출생 시 명백하고,

단일 생물학적 특성을 통해 식별할 수 있다”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

석: 이런 진술은 현실에 대한 진정한 관찰이 아닌 신화로 제시되었다 ). 14) 미국시민자유연맹

은 “사실: 트랜스젠더 운동선수는 스포츠에서 불공평한 이점이 없다”,

“사실: 트랜스젠더 여아는 여자아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리고

결국 로우 대 웨이드 사건을 뒤집은 돕스 대법원판결이 유출되자 미국

시민자유연맹은 트위터에 “낙태 금지가 불균형하게 해를 끼치는 대상 은 다음과 같다. 흑인, 원주민과 기타 유색인, LGBTQ 공동체, 이민자, 청년층, 생계형 노동자, 장애인”이라는 성명을 올렸다.15) 낙태 찬성 페

13) Devan Cole, “South Dakota’s governor issues executive orders banning transgender athletes from women’s sports,” CNN, March 31, 2021, https://www.cnn.com/2021/03/30/politics/south-dakota-transgendersports-kristi-noem/index.html.

14) Chase Strangio and Gabriel Arkles, “Four Myths About Trans Athletes, Debunked,” ACLU, April 30, 2020, https://www.aclu.org/news/lgbtqrights/four-myths-about-trans-athletes-debunked.

15) ACLU, Twitter post, May 11, 2022, https://twitter.com/ACLU/status/

미니스트를 포함한 많은 사람은 낙태 금지로 피해를 겪을 것으로 추정

되는 대상의 목록에서 여성이 빠진 것을 의아하게 여겼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2021년 6월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블

루스 클루스>에서는 여장남자 니나 웨스트가 등장하는 프라이드의 달

애니메이션 노래 따라 부르기 동영상을 “개미들의 행진”이라는 곡에

맞추어 공개했다.16) 가사는 프라이드 거리 행진에 등장하는 다양한 젠

더와 성 정체성을 기념하는데 무성애자, 양성애자, 범성애자, 논바이너

리( 제3의 젠더 ) 의 성인에 대한 노골적인 언급을 담고 있다. 동영상에 등

장하는 만화 캐릭터 비버 중 한 명은 유방 절제술 흉터가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이것은 이 등장인물이 성전환 수술을 통해 유방을 제거 한 생물학적 여성을 상징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아직 도형과 문자를

배우는 미취학 아동이 논바이너리와 범성애의 의미를 이해해야 할까?

많은 기독교인은 “외부에 있는” 문화에서 세속적 진보주의자 사이 에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고 인식한다. 그러나 일부 기독교인은 이런

유형의 관심사가 적어도 보수적인 복음주의자 사이에서는 교회의 “내 부”에서 일어나는 문제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안타깝게도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2013년 크리스티나 클리블랜드 박사는 IVP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

서의 분열』이라는 책을 출간해, 그리스도인이 인종적·정치적 경계를 넘어 서로의 차이를 내려놓고 사랑할 것을 촉구했다. 2015년에는 인 터바시티의 어배너 선교대회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섰고, CRU15 직원 1524431029473316866.

16) Blue’s Clues and You!, “The Blue’s Clues Pride Parade Sing-Along Ft. Nina West!” YouTube video, May 28, 2021, https://www.youtube.com/ watch?v=d4vHegf3WPU.

회의에서 대학생선교회( Campus Crusade for Christ ) 를 대상으로 연설했다.

2016년에는 주요 복음주의 잡지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에 일련의 인

종 관련 기사를 기고했다. 2018년에는 신망받는 두 저명 복음주의 목

회자 타비티 안야윌레와 아이작 애덤스가 <더 프론트 포치>에 기고한

글에서 클리블랜드와 그의 작품을 추천하기도 했다.17) 분명 클리블랜

드는 저명 복음주의자와 복음주의 단체의 지지를 받는 영향력 있는 인

물이었다.

불과 4년 후, 클리블랜드는 『신은 흑인 여성이다』를 출간했다. 클리

블랜드는 스스로 “백인 남성 신”이라고 지칭한 존재를 크게 비난했으

며, “신성한 흑인 여성”에 대한 헌신을 선언했다. 이 책에서 클리블랜

드는 “모든 흑인 여성의 해방을 위해서는 백인 우월주의, 가부장제, 자

본주의, 이슬람 혐오증, 동성애 혐오증, 트랜스젠더 혐오증 등 모든 억

압 제도를 해체해야 한다.”18)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 안

에서 트랜스젠더 혐오증을 근절해야 한다. 신이 흑인 여성이라면 이

여성은 흑인 트랜스젠더 여성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렇다”와 같은

진술을 한다.19) 어느 순간, 클리블랜드는 “땅에서 [분출한] 남부 동맹

과 같은 백인 남성 신의 기념비……모든 사람이 각각 논리, 이성, 전통,

확실성, 합의 등 지식의 해로운 남성성의 우상에 경의를 표하는 서로

다른 황동 명판을 달고 있는” 악몽에 시달린 적이 있다고 이야기

한다.20) 논리와 이성이 해로운 백인 남성성의 속성인가?

17) Thabiti M. Anyabwile and Isaac Adams, “People to Know: Dr. Christena Cleveland,” The Front Porch, July 30, 2018, https://thefrontporch. org/2018/07/people-to-know-dr-christena-cleveland/.

18) Christena Cleveland, God Is a Black Woman, 1st ed. (San Francisco: Harper-One, 2022), 223.

19) Cleveland, God Is a Black Woman, 232.

20) Cleveland, God Is a Black Woman, 54.

미셸 히긴스는 정통 신학에서 급격히 후퇴한 또 다른 사례다. 히긴

스는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커버넌트 신학교에서 목회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보수적인 미국 장로교 교단 ( PCA ) 에 소속되어 있었다.

2015년 히긴스도 클리블랜드처럼 인터바시티의 어배너 선교대회에

서 연설했다. 2017년에는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기독교 배경을 가진

다른 두 여성 크리스티나 에드먼슨, 에케미니 우완과 함께 <크리스채

너티 투데이>의 “여름에 들을 만한 12가지 팟캐스트”에 포함된 “진리 의 테이블” 팟캐스트를 시작했다.21)

3년 뒤에 히긴스는 낙태에 찬성하고 LGBTQ를 인정하는 교단에 속 한 세인트루이스의 세인트 존스 교회( The Beloved Community ) 의 담임 목사 가 되었다. 2021년 오순절 주일에 히긴스는 교인에게 다음과 같이 설 교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퀴어 육아로 인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주

님께서 이전에는 환영받지 못했던 방식으로 삼위일체의 퀴어함을 보 여 주시길 바랍니다.”22) 이 교회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히긴스가 조직 한 단체 “정의를 위한 믿음”은 “흑인 여성주의+해방 신학”과 “흑인 퀴

어 페미니즘 정치 렌즈”에 기반한 교육을 제공한다.23)

단테 스튜어트는 세 번째 사례를 제시한다. 스튜어트는 리폼드 신학 교의 학생이었고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의 필진이었으며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주요 복음주의 웹사이트 <복음 연합>의 “정기 기고가”로 등 록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2022년 4월에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와 인

21) Morgan Lee, “12 Podcasts for Your Summer Listening List,” Christianity Today, July 3, 2018, https://www.christianitytoday.com/ct/2018/julyweb-only/12-podcasts-for-your-summer-listening-list.html.

22) WokePreacherTV, Twitter post, September 6, 2021, https://twitter.com/ WokePreacherTV/status/1434852935289163778.

23) “Training,” Faith for Justice, accessed December 3, 2022, https://www. faithforjustice.org/training.

터뷰를 가졌다.24) 2022년 2월 13일 스튜어트는 트위터에 “나는 백인

신학이나 복음주의 신학이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확신

한다. 우리는 더 나은 인간이 되고 더 사랑스럽고 해방적인 신앙을 구

현하는 방법을 보여 주기 위해 더 많은 여성주의, 흑인 해방, 퀴어 신

학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를 이끄는 목소리를 확장해야만 더 나아질

수 있다”라는 게시물을 올렸다.25) 로우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돕스

대법원판결이 나온 6월 30일, 스튜어트는 “로우 대 웨이드 판결을 뒤

집는 것은 기독교 도덕이나 생명 보호에 대한 게 아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페어런츠> 잡지에 기고했다. 스튜어트는 “이것은 낙태나 가족을

돌보는 것에 대한 게 아니다. 이것과 그들이 반대하게 될 많은 자유는

백인 가부장적 기독교 국가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나를 가장 아프

게 하는 것은 기독교인이 이 순간을 축하하고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

셨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이것은 기

독교인이 수년간 종교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이것은 보호, 사랑, 도덕

에 대한 게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오직 한 가지 권력, 즉 백인 권력에

대한 것이다”라고 진술했다.26)

이런 각 사례에서 이 인물들이 방금 언급한 노골적인 발언을 하기

수년 전부터 비판적 사회이론( critical social theory ) 이 조장한 비성경적이고 거짓된 사상에 동조하는 신호를 보냈다는 점에 유의하는 게 중요하다.

24) Heather Thompson Day, “Dante Stewart: Making Space for Growth,” Christianity Today, April 21, 2022, https://www.christianitytoday.com/ct/ podcasts/viral-jesus/dant-stewart-making-space-for-growth.html.

25) Danté Stewart, Twitter post, February 13, 2022, https://twitter.com/stewartdantec/status/1492875444294725633.

26) Danté Stewart, “Overturning Roe v. Wade Isn’t About Christian Morals or Protecting Life,” Parents, June 30, 2022, https://www.parents.com/kindred/overturning-roe-v-wade-isnt-about-christian-morals-or-protecting-life/.

조금만 분별력이 있었다면 이런 발언을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

규모 공개 플랫폼을 사용하는 지도자뿐 아니라 우리가 개인적으로 알

고 있는 평범한 기독교인에게서도 이단성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더 많은 사례를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싶지

는 않다. 이런 점진적 하향 평준화가 누군가의 상상으로 꾸며 낸 허구

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데는 이 몇 가지 사례만 언급해도 충분

하다.

실제로 현재는 백인성과 백인 특권의 주제를 탐구하는 기독교 문학

의 하위 분야가 있다. 조너선 윌슨-하트그로브는 『복음의 재구성: 노

예 소유 종교로부터의 자유 찾기』에서, “백인으로서 내 문제는 피부로

사는 법을 몰랐다는 것이다. 이른바 내 특권의 빈곤은 내 삶을 위한 복

음 능력의 풍부함을 보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었다”라고 서술한다.27)

윌슨-하트그로브는 “백인이 집단적으로 [이른바] ‘쪼그라든 심장 증

후군’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것은 흑인을 노

예로 삼았던 백인의 경험에 뿌리를 둔다”라는 밥이라는 인물의 말을

긍정적으로 인용한다.28)

크리스 퍼는 『이성애자 백인 남성』에서, “이성애자 백인 남성은 수

세기 동안 우리 문화와 전 세계에서 최고 포식자였다……우리는 모든 사람을 우리 자신을 지탱하는 먹이로 삼아 왔다……우리는 지배하고

소비하도록 길러졌다……우리는 이것을 떠나서 자신이 누구인지, 포 식자가 아니라면 자신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라고 서 술한다.29) 데이비드 스완슨은 『백인 교회를 재훈육하기: 값싼 다양성

27) Jonathan Wilson-Hartgrove, ReconstructingtheGospel:FindingFreedom from Slaveholder Religion (Downers Grove: IVP, 2018), 60(강조는 원문의 것임).

28) Wilson-Hartgrove, ReconstructingtheGospel, 161.

29) Chris Furr, Straight White Male: A Faith-Based Guide to Deconstructing

에서 진정한 연대로』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우리[백인]는 상처받은 민족이다. 과거에 우리 대부분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사악한 거래의 결과로 생긴 숨겨진 상처를 무시해

왔다. 우리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희생을 발판으로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충분히 오래 가만히 있으

면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피해, 우리가 연루된 피해, 우리가 가한

피해를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유색인의 목소리와

경험을 신뢰하기로 선택한다면 이런 피해를 느끼는 능력이 자랄 것

이며, 이와 함께 백인성의 파괴적인 요구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능력도 자랄 것이다.30)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는가?』에서, 다양한 기고자는 “백인

성은 기독교에 기생적으로 결합한 [세상의] 존재 방식이다”31), “백인

성은 이교 우상 숭배의 종교적 체계로 가장 잘 이해된다”32) 등의 발언

을 한다.

우리가 이 부분에서 강조한 내용은 모두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지만, 사람들이 자기의 일상생활에서 사적으로도 영향을 받고 있다는

Your Privilege and Living with Integrit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2022), 3.

30) David Winston Swanson, Rediscipling the White Church:From Cheap DiversitytoTrueSolidarity (Downers Grove: IVP, 2020), 49-50.

31) Willie James Jennings, “Can White People Be Saved? Reflections on the Relationship of Missions and Whiteness,” Can “White”People Be Saved?, eds. Love L. Sechrest, Johnny Ramírez-Johnson, and Amos Yong (Downers Grove: IVP Academic, 2018), 27.

32) Andrew T. Draper, “The End of ‘Mission’: Christian Witness and the Decentering of White Identity,” Can“White”PeopleBeSaved?, 177.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자기 소개란에 대명사를 적어 줌 회

의에 참여한 동료, “이 집에서 우리는……를 믿는다”라고 쓴 이웃집의

마당 표지판, 식민주의와 문화적 전유에 대한 비난으로 파탄한 지역

뜨개질 클럽33)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은 일종의 대체 현실에 들어온 것

처럼 느끼고 있다( 대체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도 말이다 ). 그렇지

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하려 할 때 기독교인과 비기독교

인은 모두 몇 가지 일반적인 오류를 범한다.

잘못된 대응

“이것은 모두 의미 없는 헛소리다.”

첫째, 많은 사람은 이런 문화 유물을 난무하는 정치적 정당성의 기

괴하고 일관성 없는 발현이나 현대의 진보적 시대정신의 단순한 표현

으로 일축한다. 이런 반응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정확하지 않다. 이런 사

건들은 비판적 사회이론으로 알려진 광범위한 학문 분야에서 나온 일

관되고 포괄적이며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일련의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비판 이론은 1920년대 초기에 프랑크푸르트학파에서 시작되었는 데,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처음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괴테 대학교 사회연구소에 소속된 사회이론과 비판 철학 학파였다. 비판 이론이라 는 용어는 대문자( Critical Theory ) 로 표기하면 종종 프랑크푸르트학파와 그 직계 후손을 가리킨다. 하지만 비판적 사회이론( critical social theory, 때로

소문자로 “critical theory”로 표기한다는 점에 주의하라 ) 은 페미니즘 이론, 탈식민주의, 비판적 교육학, 퀴어 이론, 비판적 인종 이론 등 비판적 전통 안에서

33) Kathrine Jebsen Moore, “A Witch-Hunt on Instagram,” Quillette, February 17, 2019, https://quillette.com/2019/02/17/a-witch-hunt-on-instagram/.

생겨나고 발전해 온 수많은 비판적 사회이론( 또는 비판 이론들 ) 을 아우르

는 포괄적인 범주다. 지난 세기 동안 비판적 사회이론은 여러 세대의

사회이론가와 학자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고 여러 학문 분야를 형성

했으며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한때는 일반 사회와 동떨어진 학계의

분위기에만 국한되던 표현이 이제는 공공의 광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한때는 몇몇 대담한 젠더 연구 전문가에게만 익숙하던 용어가 이제는

<뉴욕 타임스> 인기 도서의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한때는 기괴하

고 난해하게 여겨지던 개념이 이제는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모든 가두

판매소에서 중고나 재중고로 입수할 수 있다. 우리의 문화적 순간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비판적 사회이론의 지식 영역에 대한 친숙함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진보-보수의 정치적 논쟁일 뿐이다.”

또 다른 일반적인 실수는 이런 사상에 대한 유일한 비판자가 보수적

인 기독교인, 열렬한 공화당원 또는 사악한 극우 음모론자라고 가정하

는 것이다. 그렇지만 점점 더 많은 무신론자, 자유주의자, LGBTQ+ 공

동체 구성원, 저명 페미니스트가 이런 사상이 우리 문화에 빠르게 뿌

리내리고 있는 현실에 우려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몇 사람만 언급하

면, 문화 평론가이자 언론인 더글러스 머리, 앤드루 설리번, 바리 와이

스, 코미디언 빌 마허, 앤드루 도일( 일명 티타니아 맥그래스 ), 리키 저베이스,

선구자이자 혁신가 일론 머스크, 문화 비평가이자 작가 토머스 채터튼

윌리엄스,34) 저명한 판타지 작가 J. K. 롤링,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 트, 신경 과학자 샘 해리스, 생물학자 제리 코인, 언어학자 존 맥오어

34) Williams, Self-PortraitinBlackandWhite:UnlearningRace를 적극 추천한다. 이 책은 훌륭한 저술로서 인종에 대한 여러 가지 잘못된 관점에 대헤 예방 접종을 해 준다.

터, 경제학자 글렌 루리, 페미니스트 커밀 파글리아 등이 “깨어난 정통

주의”의 성장에 반대하면서 이것이 자유 민주국가의 적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런 항변 중 가장 악명 높은 것은 제임스 린지, 헬렌 플럭로즈, 피터

버고전이 쓴 일련의 “가짜” 논문이었다.35) 세 사람 모두가 자칭 자유 주의 무신론자인데, 린지와 버고전은 무신론을 장려하는 책을 저술한

바 있다. 그렇지만 이 세 사람은 비판적 사회이론의 방법론과 가정을

기준으로 학계가 부패했다고 생각한 것을 목표로 선정하기로 결정

했다. 2년 동안 이들은 “뚱뚱한 보디빌딩”에서 “개 공원 강간 문화”에 이르기까지 터무니없는 주제를 다루는 7편의 가짜 논문을 동료 심사

학술지에 게재하는 데 성공했다.36),37)

마찬가지로, 진보적인 버니 샌더스 유권자이자 에버그린 주립대학

생물학 교수인 브렛 와인스타인도 강의실 밖에서 성난 학생들과 대치

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 클립이 입소문을 타면서 표제를 장식했다.38) 와인스타인은 유색인 학생과 인종 차별로 인해 직면한 어려움에 대한

연대를 보여 주기 위해 학교 차원에서 “결석의 날”을 지정하고 백인 학생에게 캠퍼스에 출입하지 않도록 요구한 것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35) Yascha Mounk, “What an Audacious Hoax Reveals About Academia,” The Atlantic, October 5, 2018, https://www.theatlantic.com/ideas/archive/2018/10/new-sokal-hoax/572212/.

36) Richard Baldwin, “RETRACTED ARTICLE: Who Are They to Judge? Overcoming Anthropometry through Fat Bodybuilding,” Fat Studies 7, no. 3 (September 2, 2018): i–xiii, https://doi.org/10.1080/21604851.2018.1453 622.

37) “Statement of Retraction: Human Reactions to Rape Culture and Queer Performativity at Urban Dog Parks in Portland, Oregon,” Gender,Place & Culture 27, no. 2 (February 1, 2020): 307-326, https://doi.org/10.1080/09 66369X.2018.1475346.

38) Douglas Murray, The Madness of Crowds: Gender, Race and Identity (London: Bloomsbury Continuum, 2019), 128-132.

표적이 되었다. 와인스타인은 어떤 학생도 인종 때문에 캠퍼스를 떠

나라는 지시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는데, 결국 에버그린을 집어

삼킨 반발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국 와인스타인과 그의 아내인 동료

교수 헤더 헤이잉은 안전 문제로 캠퍼스를 떠나야 했다. 이 두 사람은

나중에 사임했다.

이런 사상에 대한 지지자와 반대자 간의 충돌은 종종 문화 전쟁으로

표현되지만, 무언가 더 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이 이른바 사회 정의 문제를 무시해야 하는 이유다.”

문화적 시대정신에 대한 세 번째 반응은 기독교인이 정의의 깃발로

포장된 모든 것을 복음에서 멀어지게 하는 원인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이 반응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큰 잘못이다. 사

회 정의를 어떤 용어로 생각하든 또는 많은 세속적 사회 정의 운동에

대해 어떤 우려를 하든 간에, 그리스도인이 성경적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타협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정의라는 표현의 남용에 너무 지

친 나머지 정의가 철저하게 성경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가 6장 8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

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

냐”라고 권고하신다. 시편 82편 2-3절은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

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니라”라고 지시 한다. 이사야 1장 17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행을 배우며 정의 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

하여 변호하라”라고 명령하신다. 이사야 58장 6-7절에서 하나님은 종

교적 금식을 하면서도 폭력과 악행을 계속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정죄

하신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

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

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마태복음 25장 34-46절은 육체적 필요

의 해소가 진정한 구원의 열매라고 가르친다.

세속적 이념이 거의 완전히 접수한 것처럼 보이는 인종 차별에 대한

논의에서도 기독교인은 물러나서 살피려는 충동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최소한 인종주의는 하나님이 정죄하시는 편파성의 죄다( 신 1:17; 레 19:15; 잠 20:23; 약 2:1-4 ). 간음, 교만, 탐욕, 도둑질과 같은 죄를 구체적으로 거명하고 거기에 맞서 싸우며 정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종 차별도 구체적으로 거명하고 거기에 맞서 싸우며 정죄해야 한다. 또한 사회

적·정치적 행동과 복음 전파를 대립시킬 필요도 없다. 수십 년간 기독

교인은 살인의 죄악스러움과 인간 생명의 신성함에 대한 신념 때문에

당연히 낙태 반대 운동의 선두에 서 왔다. 우리는 낙태 반대 활동이 복

음을 가리게 해서는 안 되며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또 한 복음을 훼손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생명 존중 운동을 포기하 지도 않았다.

깨어남 운동에 반대하는 기독교인은 실제로 지나치게 광범위하거나 부당하게 넓은 범위의 기준을 적용해 적으로 인식한 상대방을 비난할 수 있다. 실제의 사회적 불의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인종주의도

정말 존재한다. 성차별주의도 정말 존재한다. 실질적인 억압도 정말 존재한다. 이런 문제들을 성경적 관점에서 해결하려 시도하는 기독교

인은 종종 자신이 깨어난 사람으로 즉시 무시당한다고 불평하는데, 이 런 고민에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인종주의의 지속성에 대한 논

의가 비판적 인종 이론을 수용하는 태도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성차

별주의나 성적 학대에 대한 논의가 페미니즘에 대한 항복으로 비난받

아서는 안 된다. 억압이나 정의 같은 단어는 성경 곳곳에서 발견되므

로 적신호나 경고등을 곧바로 쏘아 올려서는 안 된다.

게다가 어떤 사람은 자신이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적 견해를 고수

한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깨어남 이념, 사회 정의, 인

종주의, 또는 급진 페미니즘 등을 수용한다고 비난하는 데 뛰어들기도

한다. 여러분이 이런 사람이라면 회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를 구

해야 한다. 더욱이 반( 反 ) 깨어남 운동이 깨어남 운동만큼이나 편집증

적이고 과격해졌다는 우려도 고려할 가치가 있다. 실제로 기독교 민족

주의의 특정 표현은 백인 정체성주의와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백인

민족 국가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둘은 모두 악

한 것이다.

우리는 깨어남 이념의 위험을 분명히 인식하는 사람으로서, 반대의

극단으로 치닫는 반동적 자세의 위험성도 마찬가지로 인정하려 한다.

정의, 약자에 대한 배려, 기독교의 사회적 관심에 대한 성경의 광범위 한 명령을 감히 무시해서는 안 된다. 또한 다른 기독교인의 말이나 의

도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무자비한 해석을 가정해서도 안 된다. 목회

자가 특권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곧바로 그 목회자를 로빈 디

앤젤로의 제자로 가정해서는 안 된다. 성경 공부에서 누군가가 사회 정

의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해서 곧바로 교회 권징 절차를 시작해서는

안 된다. 종교적 자유에 대한 우리의 발언을 기독교 민족주의나 신정

주의로 즉시 매도하지 않는 것처럼, 인종적 불의에 대한 다른 기독교

인의 발언을 비판적 인종 이론이나 문화 마르크스주의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황금률( 마 7:12 ) 은 어디에나 적용되는 것처럼 여기에도 적용 된다.

이 세 가지 대응이 잘못되었다면 올바른 대응은 무엇일까? 우선 이

이념에 이름을 붙여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어려움이 시작된다.

이름에는 무엇이 있는가

깨어남 사상을 비판하는 일은 물론이고 이해하려 시도할 때도 곧 의

미론의 장벽에 부딪힐 것이다. 우리 문화를 휩쓸고 있는 이념에 명칭 을 붙이려 시도하자마자 어떤 사람은 당신이 잘못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거나 당신이 사용 중인 용어를 오해하고 있다거나 올바른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도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덤으 로, 당신은 “당신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교육하라”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 “깨어난”( woke ) 이라는 단어를 예로 들어 보겠다. 불과 몇 년 전만 해

도 이 단어는 자기 인식을 나타내는 용어로 널리 퍼져 있었다. 백인 우

월주의를 해체하고 사회 정의를 옹호하는 웹사이트와 단체가 스스로

깨어난 상태라고 자랑스럽게 홍보했다. 심지어 학자도 자신이 사회 정

의를 옹호하는 것을 지칭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깨어난”이라는 표현

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국제 다문화 교육 저널에 게 재된 동료 심사 논문 “우리는 깨어난 사람이다: 고등 교육 유색인 대학

원생의 세 ‘여성’( Womxn ) 에 대한 공동 비판적 자문화기술지”를 예로 들 어 보자.

우리는 깨어남을 억압의 교차 체계에 대한 비판적 의식으로 정의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깨어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개인과 집단 의 경험에 존재하는 억압을 인정하는, 철회할 수 없는 체화된 의식 과 정치적 정체성을 지니는 것이다. 식민 지배의 역사(hxrstory)를

경험한 유색인 여성(womxn)으로서 우리의 억압자는 탈인종주의,

탈성차별주의 미국을 주장함으로써 우리가 권력의 불평등에 눈감

고 침묵하며 안주하게 만들려 노력한다. 우리는 유색인 여성들이

깨어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억압 체제의 존재를 분명히 함으로써

여기에 맞서 자본을 보유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깨어난 여성은

억압을 명명하는 표현을 소유할 필요가 없으며, 그보다 억압에 대

해 알고 억압의 부당한 본질을 거부한다.39)

2017년에는 이 용어가 허용될 뿐 아니라 추천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비평에서 “깨어난”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가끔 흑인의

은어를 인종 차별적으로 차용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깨어난”

이라는 단어가 한때 흑인 사회에서 인종적 불의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컬럼비아 언어학자 존

맥워터의 적절한 지적대로 “단어는 항상 움직이고 있다”라고 할 수

있다.40) 어떤 집단, 민족, 사람, 시대도 단어를 소유하지 않으며, 단어

의 의미는 그 단어가 지배적으로 사용되는 문화적·하위문화적 어감

에 따라 형성된다. 더욱이 특정 단어는 더 이상 합의된 의미가 없는

“부유 기표”라는 기호학적 개념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것은 “깨어난”이라는 용어에도 어느 정도 적용된다.

비판적 인종 이론 ( critical race theory ) 은 사람들이 백인성, 조직적 인종주

39) Aeriel A. Ashlee, Bianca Zamora, and Shamika N. Karikari, “We Are Woke: A Collaborative Critical Autoethnography of Three ‘Womxn’ of Color Graduate Students in Higher Education,” International Journal of Multicultural Education 19, no. 1 (February 28, 2017): 90, https://doi. org/10.18251/ijme.v19i1.1259.

40) John H. McWhorter, WordsontheMove:WhyEnglishWon’t—andCan’t— Sit Still (Like, Literally) (New York: Henry Holt, 2016).

의, 백인 특권, 미시적 공격을 둘러싸고 소용돌이치는 개념의 집합에

때때로 적용하는 또 다른 용어다. 예를 들어, UC 버클리 대학교 법학

교수 키아라 브리지스는 『비판적 인종 이론 입문』에서, “구조적/제도

적 인종주의”( 7장 ), “암묵적 편견”( 8장 ), “미시적 인종 공격”( 9장 ), “백인

특권”( 10장 ) 과 같은 “핵심 개념”에 각각 한 장 전체의 분량을 할애하지

만, 사실상 이런 용어들은 비판적 인종 이론의 외부와 법학의 맥락 밖

에서 기술적으로 개발된 것이다.41) 그렇지만 비판적 인종 이론을 언급

하면 대학원에서나 가르치는 난해한 법률 이론일 뿐이라는 말을 듣기

도 한다.42)

문화 마르크스주의 ( cultural Marxism ) 로 전환하면, 이 어구가 오랜 학문적

내력이 있고 수십 년간 학계에서 사용된 사실에도 불구하고 신나치 음

모론에서 유래되었다는 단호한 주장을 듣게 되어 경악을 금하지 못할 것이다.43)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백인 우월주의자가 이 용어를 채 택했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혼란을 피하려면 아마도 이 용어를 피해야 할 것임을 의미한다.

비판적 사회 정의 ( critical social justice ) 는 효과가 있을까? 이 용어는 로빈 디앤젤로와 오즐럼 센소이가 그들의 공저 『정말로 누구나 평등할까?』

에서 사용한 것인데, 저자들이 설명하는 대로 비판적 사회 정의는 문

41) Khiara M. Bridges, Critical Race Theory: A Primer (St. Paul: Foundation Press, 2019), xiv-xv.

42) 비판적 인종 이론의 순수한 법적 측면조차도 기독교와 양립할 수 없다는 확장된

주장은 다음을 보라. Neil Shenvi and Timon Cline, “What if Critical Race Theory Were Just a Legal Theory? A Christian Critique,” LibertyUniversity Law Review, Vol. 17, Issue 3 (2022), https://digitalcommons.liberty.edu/ cgi/viewcontent.cgi?article=1343&context=lu_law_review&fbclid=IwAR2Et XHLGSeaOClO7Zc81fkscWzJGj8UbqE8vjATH2I3KJsdcBEZ1Xfl6Pk.

43) Rob Smith, “Cultural Marxism: Imaginary Conspiracy or Revolutionary Reality?,” Themelios, Vol. 44, Issue 3 (December 2019): 436-465.

화와 학계 모두에서 종종 깨어남의 결과로 이해되는 많은 개념을 아우

른다. 저자들은 비판적 사회 정의를 정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 한다.

사회 정의에 대한 비판적 접근법은 사회가 인종, 계급, 젠더, 섹슈

얼리티, 능력 등 사회 집단에 따라 상당하고 광범위한 방식으로 계

층화되어 있음(즉 분열되고 불평등함)을 인식하는 특정 이론적 관

점을 말한다. 비판적 사회 정의는 불평등이 사회 구조에 깊이 내재

해 있는 것으로(즉 구조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이런 현실을 적극적

으로 변화시키려 노력한다. 우리가 적용하는 이 정의는 비판 이론

의 접근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44)

하지만 킴벌리 크렌쇼, 주디스 버틀러, 리처드 델가도, 패트리샤 힐

콜린스, 헨리 지루, 사라 아메드, 에두아르도 보니야-실바, 피터 맥라

렌, 콰메 안토니 아피아, 그리고 다양한 지식 영역을 대표하고 비판적

전통에서 글을 쓰면서도 반드시 비판적 사회 정의라는 별칭과 동일시

하지는 않는 많은 학자에게 이 명칭을 직접 적용한다면 비평가들은 쉽

게 불만을 제기할 수 있다.

반인종주의 ( antiracism ) 는 어떤가? 이것이 올바른 분류일까? “아니요,

절대 아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반인종주의는 ‘인종주의에 대한

반대’를 의미할 뿐인데, 누가 인종주의에 반대하고 싶지 않겠는가? 반

인종주의에 반대하면 인종주의자가 되는 게 아닌가!”

결국 여러분은 어떤 사람에게는 적합한 용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

44) Ӧzlem Sensoy and Robin J. DiAngelo, Is Everyone Really Equal? An Introduction to Key Concepts in Social Justice Education, 2d ed. (New York: Teachers College Press, 2017), xx.

을 것이다. 모든 용어는 “문제가 있다.” 모든 용어는 “문화적으로 적절

하지 않다.” 모든 용어는 “우익의 개 호루라기”다. 모든 용어는 “사기

도박꾼이 채택한 것”이다.

이런 의미론적 불확실성은 소셜 미디어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현상

이 아니다. 문화 평론가들은 이 괴물의 이름을 짓기 위해 수년간 고군

분투해 왔다. 조던 피터슨은 “포스트모던 신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

판으로 명성( 또는 악명 ) 을 얻었다. 루키아노프와 하이트의 인기 도서 『나 쁜 교육: 덜 너그러운 세대와 편협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학생의 정신적 취약성에 공헌하는 억압자-피해자 세계관의 부상을 한

탄한다.45) 저자 웨슬리 양은 대학 캠퍼스에서 고전적 자유주의를 대체

있는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계승자 이념 ( successor ideology ) 이라는

어구를 만들었다.46) 사회학자 제이슨 매닝과 브래들리 캠벨은 “피해자

문화”가 20세기 대부분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존엄성 문화”를

어떻게 대체했는지를 설명한다.47) 많은 사람은 이름을 지정할 수는 없

더라도 사회 정의, 억압, 인종주의, 이성애 규범성과 관련된 무언가가

우리의 담론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있다.

비판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헬렌 플럭로즈와 제임스 린지의 공

저 『냉소적 이론들』은 이런 개념들을 상당히 포괄적으로 다룬다. 이들

45) Greg Lukianoff and Jonathan Haidt, The Coddling of the American Mind: How Good Intentions and Bad Ideas Are Setting Up a Generation for Failure (New York: Penguin Press, 2018).

46) Ross Douthat, Coleman Hughes, Wesley Yang, and Reihan Salam, “The Successor Ideology,” The Manhattan Institute, August 6, 2020, https:// www.manhattan-institute.org/the-successor-ideology.

47) Bradley Campbell and Jason Manning, The Rise of Victimhood Culture: Microaggressions, Safe Spaces, and the New Culture Wars, 1st ed. (New York: Springer, 2018).

문화적 구성주의에 대한 헌신”, “사회는 무엇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를 결정하는 권력과 위계 체계로 구성된다는 믿음”과 같은 원칙을 바

탕으로 “재구성된 포스트모더니즘”이나 “대문자 이론”이나 “사회 정

의 이념”이라고 번갈아 부르는 이념의 기원을 추적한다.48) 하지만 플

럭로즈와 린지의 용어 역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깨어남을 비판하는 사람에게만 이

현상에 대해 합의된 단일 용어가 없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학술 문헌

을 접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형평성, 교차성, 조직적 억압, 이성애 규

범성, 시스젠더, 사회 정의, 색맹 인종주의, 백인 우월주의, 백인성, 백인

특권, 남성 특권, 시스젠더 특권, 논바이너리 등 수많은 유행어의 바다

에서 헤엄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용어를 사용

하는 저자들이 자기의 분석과 논의의 바탕이 되는 특정 이념을 반드시

명확하게 밝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때때로 기사, 책의 장, 또는 책의

저자가 특정 지식 영역( 예. 비판적 인종 이론이나 비판적 교육학 등 ) 에 이름을 붙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는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계급주의, 능

력주의, 이성애주의, 식민주의, 트랜스젠더 혐오증, 지방 공포증 등을

분석하면서 자기의 가정에 명시적으로 이름을 붙이거나 해당 분석이

속한 특정 역사적 학문의 흐름을 밝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름조차 정하지 못한 이념을 어떻게 다

룰 수 있을까? 세 가지 제안이 있다.

첫째, 명칭보다는 개념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개념에 집중하면 제시된 모든 명칭을 거부하고 근원적인 문제를 중심

으로 변죽을 울리는 해결 불가능한 의미론적 야바위 놀이를 하는 것을

48) Helen Pluckrose and James A. Lindsay, Cynical Theories: How Activist Scholarship Made Everything about Race,Gender,and Identity—and Why ThisHarmsEverybody, 1st ed. (Durham: Pitchstone Publishing, 2020), 31.

방지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개념을 설명하는 데 사용하는 용어가 아

니라 작동하고 있는 개념 자체다. 핵심 쟁점은 특정 개념이 참인지 거

짓인지, 성경적인지 비성경적인지다. 해당 개념이 비판적 인종 이론의

범주에 속하는지, 퀴어 이론의 범주에 속하는지, 비판적 교육학의 범

주에 속하는지는 거의 무관하다.

이런 문제는 외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상관없이 이들 중 어떤

분야도 단일하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더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비판

적 인종 이론은 창립된 지 불과 몇 년 만에 공동 창립자들이 확인한 여

러 가지 정의적 요소가 특징이지만, 이 분야가 성장하고 확장되면서

다른 학자들이 추가한 여러 가지 주요 특징, 개념, 신조에 대해 만장일

치로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확장된 주장은 비판적 인종 이

론의 특정 지지자가 일부 특정 개념을 “진짜 비판적 인종 이론이 아

니다”라거나 “모든 비판적 인종 이론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경계의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마르크

스주의 사상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마르크스주의 옹호자도 어떤 교리

가 “진짜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다”라거나 “내가 마르크스주의를 이해

하는 방식이 아니다”라고 주장함으로써 모든 비판을 피하려 할 수

있다. 종종 이런 주장은 주의를 흐트러뜨리는 기능을 할 수 있는데, 문

제의 개념이 참으로 비판적 인종 이론이나 마르크스주의의 합법적인

구성 요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가장 좋은 대응은 비판적

인종 이론이나 마르크스주의의 정확한 경계를 다시 정하는 작업을 피 하고, 대신 문제의 개념이 우리의 분류 방식에 상관없이 참되고 성경

적인지를 묻는 것일 수 있다.

여기서는

비판적 사회이론을 의미 있게 식별할 수 있으면서도 새로운 학문이 추

가되고 합류할 때 그 정체성의 정신에 따라 수정과 성장을 허용하는

일련의 핵심 개념과 관점을 느슨하게 고수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낫다.

개념에 초점을 맞추면 어떤 개념이 기독교와 유효한 증거와 양립할

수 있고 양립할 수 없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비판적 인종

이론은 비성경적이다”라는 포괄적인 진술을 생각해 보라. 비판적 인종

이론 지지자는 비판적 인종 이론이 “인종은 사회적 구성물이다” 또는

“백인 우월주의는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처럼 사실이고

심지어 명백한 주장을 긍정한다는 반응을 즉각 보일 것이다. 그러면

비판하는 사람은 한발 물러나 비판적 인종 이론의 어떤 요소가 성경적

이고 어떤 요소가 그렇지 않은지를 정확히 명시해야 하는데, 이것은

전체 범주가 아닌 특정 개념을 비판했다면 직면하지 않았을 문제다.

이뿐 아니라, 명칭이 아닌 개념에 초점을 맞추면 깨어남 이념을 지

지하는 사람이 단순히 명칭만 바꾸고 똑같은 나쁜 개념을 계속 옹호하

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비판적 인종 이론이 도전받으면 그 지지자는

똑같은 오류를 비판적 백인성 연구라는 제목으로 재포장할 수 있다.

비판적 백인성 연구가 공격을 받으면 이들은 반인종주의 교육학으로

재처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계속된다. 기독교인은 특정 용어

에 맹공을 퍼붓는 대신, 해당 용어가 어떻게 명명되고 포장되었는지에

관계없이 이런 이론의 내용을 정확하고 집중적이며 신중하게 비평해 야 한다.

둘째, 특정 명칭을 사용할 때 모든 사람과 특히 기독교인은 가능한 한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문화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비

판적 인종 이론, 교차성, 반인종주의, 비판 이론 같은 용어를 혼용해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부주의, 피상성, 무지의 소지가 있다

는 비난을 쉽게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용어가 잘 받아들여지고 명

확한 의미가 있을 때는 그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이 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려면 무신론자가 기독교를 비판

하면서 “기독교는 1517년 마르틴 루터가 삼위일체를 믿었다는 이유

로 파문을 당하면서 시작되었다”라고 말한다고 상상해 보라. 이 무신

론자가 기독교에 대해 정교한 반론을 제기하더라도 이 한 문장만으로

그의 신뢰성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할 것이다. 우리가 이 무신론자에게

종교개혁과 기독교를 혼동하고 있고 루터는 1521년까지 파문되지 않

았으며 루터와 그의 반대자들을 포함한 모든 기독교인은 삼위일체를

믿었다고 부드럽게 설명하기 시작하면, 이 무신론자는 우리가 사소한

세부 사항에 지나치게 치중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이 무신론자는

“결국 개신교는 기독교의 한 분파며 날짜도 충분히 근접하며 루터는

어떤 교리 때문에 파문당했으니 어떤 교리인지가 중요한 것은 아

니다”라고 불평할 수도 있다. 이런 반박은 최소한의 역사적 또는 신학

적 배경지식이 있는 기독교인에게는 거의 신뢰를 불러일으키기 어

렵다.

안타깝게도 비판적 사회이론을 충분히 공부하지 않은 사람도 똑같

이 심각한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물론 기독교인으로서 특정 개념이

비성경적임을 밝히는 것은 언제나 정당한 일이다. 하지만 안토니오 그

람시나 데릭 벨 같은 인물을 언급하거나 헤겔 변증법 ( Hegelian dialectic ) 이

나 관점 인식론 ( standpoint epistemology ) 같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지

뢰밭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므로 각별하게 주의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 만, 우리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도 아니고 “전문가에게 맡겨 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대신, 우리는 여러분의 주장을 약화 할 수 있는 잠재적 함정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도우려 한다. 가장 안전한 길은 항상 특정 인물의 특정 진술이 증거와 성경 말씀과

일치하는지 또는 일치하지 않는지의 측면에서 비평하는 것이다.

셋째, 기독교인이 깨어남 이념 전체에 대해 말하려 할 때, 우리는 앞

으로 이 책 전체에서 채택할 인습인 현대 비판 이론 ( contemporary critical

theory ) 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이 용어는 (1) 사회적 이분

법, (2) 헤게모니적 권력, (3) 체험, (4) 사회 정의와 관련된 네 가지의

다면적 개념을 지칭하는 데 사용할 것이다. 이런 개념은 비판적 사회

이론의 광범위한 지식 영역에서 가져온 것이며, 오늘날 우리 문화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깨어남 표현의 핵심이다.

우리가 알기로는 현대 비판 이론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49) 따라서 이 용어는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논의에서 특정 용어

가 정치적으로 무기화되는 것과 관련된 어떠한 부담도 없다. 더욱이

이 용어는 설명적으로도 적절하다. 깨어남과 관련된 많은 개념이 비판

적 전통에서 흘러나왔으며, 이런 특정 개념이 로빈 디앤젤로나 이브람

켄디 같은 현대 유명 작가나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같은 현대 행

동주의 운동에서 사용하는 이념적 체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

지가 없다. 특히 로빈 디앤젤로는 자기의 “사회 정의에 대한 분석이 비

판 이론으로 알려진 학파에 기초한다”라고 분명히 진술한다.50) 그림

1은 비판적 사회이론, 다양한 비판적 사회이론들( 예. 비판적 인종 이론과 퀴어

이론 ) 및 우리가 현대 비판 이론이라고 부르고 있는 사상 간의 관계를

보여 준다. 다시 말하지만, 비판적 사회이론은 비판적 인종 이론, 퀴어

이론, 탈식민주의, 비판적 교육학 등 수많은 비판적 사회이론을 포함

하는 포괄적인 범주다. 오늘날 이런 다양한 비판적 사회이론들은 네

49) 이것은 이 단어가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예를 들어, Anthony Elliott, ed., The Blackwell Reader in Contemporary Social Theory (Malden: Blackwell, 1999)에서 항의 제목으로 사용된다.

50) Sensoy and DiAngelo, IsEveryoneReallyEqual?, 25.

가지 핵심 개념을 공유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현대 비판 이론이라는 명

칭으로 부른다.

비판적 사회 이론

탈식민주의

마르크스주의

비판적 교육학

3기 페미니즘

비판적

1. 사회적 이분법 퀴어 이론

문화 연구

인종 이론 2기 페미니즘

신 마르크스주의

2. 헤게모니적 권력

3. 체험

4. 사회 정의

그림 1 비판적 사회이론(또는 비판 이론)은 비판적 인종 이론, 퀴어 이론 등 다양한 비

판적 사회이론들(또는 비판 이론들)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범주다. 현대 비판 이론은 오

늘날 이런 이론들을 통합하는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다. 비판적 사회 정의와 반인종주의는 크게 영향력이 있고 비판적 사회이론에 따라 형성되지만, 엄밀히 말해 비판적 사회이론들이 아니므로 이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구체적 명칭의 사용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점은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한다. 우리가 관심 있는 것은 우리 문화에서 작동하는 다양한 비판적 사회이론에 공통된 일련의 기본 개념이다. 이런 개념을

포괄하기 위해 다른 용어로 대체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환영한다.

그러면 우리 두 사람은 어떻게 현대 비판 이론을 둘러싼 싸움에 휘 말리게 되었을까? 우리는 항상 기독교를 세속주의의 공격에서 지키고 싶어 하는 전투로 단련된 ‘문화 전사’였는가? 그렇지 않다. 현대 비판 이론

우리가 참여하게 된 계기

우리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이 논의의 한가운데에 서게

되었다. 셴비는 이론 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변증학에 대한

열정이 있다. 대학원에서 기독교인이 된 이후, 셴비는 비기독교인에게

기독교를 합리적으로 변증하는 것이 동료 학자와 복음을 나누는 데 매

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결과 셴비는 피터 윌리엄스, 앨빈 플랜팅가, 존 프레임, 리처드 보

컴, 티모시 켈러 같은 기독교학자, 철학자, 목회자의 저술에 깊이 빠져

들었다. 과학적 배경을 가진 셴비는 과학과 신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강연 요청을 자주 받았는데 “신은 존재하는가”, “예수는 누구인가”, “예수는 죽음에서 부활했는가” 등과 같은 더 근본적인 질문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정치적·문화적 쟁점을 한쪽으로 치워 두는 경향이 있 었다. 셴비는 이런 흥미와 관심을 반영해 『왜 믿어야 하는가: 기독교에

대한 이성적 접근』을 저술하게 되었다.51)

이에 반해, 소여는 금융 서비스와 은행 부문에서 수년간 종사한 후

학계로 돌아와 언론정보학 석사와 교육학 및 문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

했다. 소여는 프로그램과 연구 일환으로 포스트모던 철학자와 사회학 자, 비판적 교육학자, 2, 3기 페미니스트 학자, 비판적 인종 이론가의

연구를 섭렵했다. 대학원 과정에서 유일한 복음주의 기독교인이었던

소여는 자신이 배운 내용 중 일부가 일반 은혜와 맞닿아 있음을 인식 했다. 그렇더라도 자신이 배우고 있는 내용 대부분은 성경적이고 정통

적인 기독교의 삶과 세계관에 반대되는 것이었다. 비판적 사회이론과

비판 철학은 그의 프로그램에서 중심이었다. 소여는 자기의 학위와 향

51) 다음을 보라. Neil Shenvi, Why Believe?:A Reasoned Approach to Christianity (Wheaton: Crossway, 2022).

후 학문을 사용해 교육 기관에서 가르치고 복음을 중심으로 삼으며 학

생과 동료 교수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려 했다.

우리의 친구 제러미 태너가 변증학에 대한 공통의 열정을 서로 나누

자고 제안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로 함께 모이게 되었다. 당시

셴비는 자신이 파악할 수 없는 문화와 복음주의 내부의 경향에 대해

점점 더 고민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기독교가 진리인가”라고

묻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은 “기독교가 억압받는 사람을 해방하는 가”라거나 “성경은 사회 정의를 지지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

었다. 더욱이 셴비는 학생, 동급생, 전직 교인들이 점점 더 정통 신학에 서 멀어지고, 때로는 기독교 신앙을 완전히 버리는 현실을 목격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종종 ‘정의 문제’에 대한 열정을 표현하는 태도로

시작했으나 점점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전통적 기독교의 이해, 그

리스도의 배타성, 복음의 본질에 대한 의구심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소여는 자기의 학문적 관심사를 설명하자 모든 것이 분명히 이해되 었다. 셴비가 마침내 깨달은 사실은 사람들이 단순히 정치에 대한 몇

가지 새로운 신념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기독교 세계관을 서서히

잠식하는 새로운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후 몇 달

과 몇 년 동안 우리는 비판 이론과 그 하위의 비판적 사회이론이 무엇

인지, 이런 것들이 우리 문화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왜 많은 개

념이 기독교와 양립할 수 없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함께 작업하기 시작 했다. 우리가 교회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나쁜 상황이 아 니다. 사람들은 무작정 또는 뚜렷한 이유 없이 신학적 자유주의를 향 해 표류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 대신, 우리는 그들이 받아들인 나쁜 사상이 우리 문화에 점점 더 깊숙이 침투하면서 나타나는 필연적이고

논리적인 결과를 목격 중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목표가 단지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또한 기독교인에게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 정의, 억압,

그 밖의 여러 가지 뜨거운 쟁점이 관련된 질문에 대해 성경이 더 나은

답변을 해 준다는 사실을 밝히려 한다. 우리 문화에 만연한 비성경적

범주를 들먹이지 않고도 노예제도, 린치, 흑인 차별 정책, 성적 학대,

불의 등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이런 문제들이 관련된 극악한 악을

인식하고 올바르게 대응하는 일은 가능하다. 참으로 이것은 가능할 뿐

아니라 매우 중요하다. 정의를 추구하면서 성경을 무시한다면 그 과정

에서 기독교와 정의를 모두 잃게 될 것이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이해하기( 2-7장 ), 비평하기( 8-12장 ), 참여하기( 13-15장 ) 의 세 부

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다양한 비판적 사회이론들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중점

을 둔다. 우리의 논의는 ( 광범위한 청중을 염두에 두면서 ) 비판적 사회이론의 모

든 분야를 포괄적으로 다루려는 것은 아니어도 충분하게 철저하며, 교

회와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대 비판 이론의 분야들에

초점을 맞춘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논의가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

은 아니다. 우리가 다루지 않은 비판적 사회이론과 비판적 전통의 분

야와 측면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주로 이런 개념들이 일차적으로는

교회에, 이차적으로는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장 중요 한 몇 가지 방식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다룬다면 우리의 분석을 바꿀

수 있는 어떤 개념을 다루지 않는 때는 없을 것이다.

2장에서는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노

예제도, 린치, 짐 크로법 등 미국의 수치스러운 인종주의의 역사를 간

략히 살펴보고, 현대 비판 이론과 이런 문제에 대한 현대 비판 이론의

대응이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호소력을 갖는 이유를 설명하겠다. 3장

에서는 비판적 전통에 대한 개요를 통해 사회이론가들이 어떻게 교차

성 체계 안에서 통합된 개념을 개발해 현대 비판 이론의 중심 사상을

만들어 냈는지를 설명하겠다. 4장에서는 현대 저자들의 작업에 대한

설명을 통해 백인 특권, 백인 취약성, 헤게모니적 권력, 이성애 규범성, 교차성 등과 같은 개념이 비판적 전통에서 어떻게 등장하는지를 설명

하겠다.

5장에서는 비판적 인종 이론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인종에 대

한 질문에 비판적 체계를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질문할 것이다. 우리는 법학 분야에서 교육학, 사회학, 간호학, 경영학, 정치학 등의 분야를 아

우르는 광범위한 학제 간 기획으로 발전한 비판적 인종 이론의 진화 과정을 추적하겠다. 6장에서는 또 다른 중요한 사회이론인 퀴어 이론

을 분석한다. 후기구조주의 사상에서 퀴어 이론의 기원을 살펴보고 오

늘날 여성학, 젠더 연구, 교차적 페미니즘에서 퀴어 이론이 어떻게 표 현되는지를 설명하겠다. 끝으로 7장에서는 비판적 사회이론가가 전달

하는 인종, 계급, 젠더에 대한 통찰 중 일부가 어떻게 타당한지를 자세 히 설명하겠다. 비판적 사회이론의 근본이념은 거부하더라도 이런 통

찰은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 비판적 사회이론가의 긍정적인 공헌을 인 정하는 것은 진실을 추구하는 일과 그다음 부분에서 현대 비판 이론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비평을 제시하는 우리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 하다.

이 책의 2부( 8-12장 ) 는 현대 비판 이론과 기독교 간의 다양한 갈등을

설명하는 데 전념한다. 먼저 기본적인 복음주의 신학에 대한 짧은 설

명( 8장 ) 으로 시작한다. 역사적 개신교 정통 신앙의 표현으로서 복음주

의자는 무엇을 믿는가? 이런 믿음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기본적인

문화적·사회적 입장은 무엇인가?

9-12장은 4-6장과 평행하게 현대 비판 이론 일반을 비평하면서 비

판적 인종 이론과 퀴어 이론에 초점을 맞춘다. 9장에서는 오늘날 모든

비판적 사회이론의 핵심을 이루는 일련의 사상인 현대 비판 이론이 다

른 관심사 중에서도 권력, 지식, 억압, 정체성 등에 대한 기독교적 신념

과 어떻게 모순되는지를 설명한다. 또한 현대 비판 이론이 기본적인

기독교 세계관과 양립할 수 없는 대안적 세계관으로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강조한다. 10장에서는 기독교와 비판적 인종 이론 간의 갈

등에 더 집중한다. 다른 관심사 중에서도 젠더와 섹슈얼리티, 법, 정의,

형평성 등에 대한 비판적 인종 이론의 관점이 여러 측면에서 기독교적

관점과 충돌한다는 점을 설명한다. 11장은 집단적 조상의 죄책에 대

한 추기( An Excursus ) 다. 이 개념은 타당하고 성경적인가? 12장에서는

퀴어 이론의 주장과 방법론이 젠더와 성별에 대한 성경적 이상을 약화

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기독교 신학 전반을 어떻게 오염시키는지를 설명하겠다.

3부에서는 현대 비판 이론의 지지자들과 소통하고 정의와 화합에

대한 성경적 이상을 추구하는 측면에서 기독교인이 나아갈 길을 제시 하겠다.

13장에서는 지역 교회를 황폐화할 수 있는 몇 가지 인기 있는 개념 을 열거하고, 기독교인이 모든 것을 성경과 대조해 이런 위험을 진지

하게 받아들이도록 권고할 것이다. 14장에서는 현대 비판 이론의 매

력을 설명하고, 기독교인이 공공장소와 교회 모두에서 가장 부식성 있

는 사상에 이의를 제기할 방법을 제안하겠다. 또한 동료 신자에게 복

음을 위해 화합과 정의를 추구할 것을 촉구하고, 이 일을 실천할 수 있

는 실질적인 방법을 제안하겠다. 그런 다음 15장에서는 몇 가지 결론

적인 생각을 제시하겠다.

각 장은 논리적 순서를 따르지만 서로 어느 정도 상관없이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비판적 전통의 역사에 관심이 없는 독자는 3장을 건

너뛰더라도 책의 나머지 부분을 이해하는 데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아니면 퀴어 이론에 특히 관심이 있는 독자는 6장과 12장을 먼

저 읽고 나서 이전 장으로 돌아가 퀴어 이론이 비판적 전통에 어떻게

어울리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대상

복음주의 기독교인으로서 우리의 일차적 관심은 현대 비판 이론이

미국과 해외의 복음주의 교회 안으로 침투한 현상에 있다. 우리는 미 국의 수많은 목회자와 신자뿐 아니라 콜롬비아, 싱가포르, 캐나다, 영

국, 남아공, 가나, 케냐, 호주, 인도, 중국, 일본 등 전 세계의 기독교인

에게서도 개인적으로나 공동으로 문의를 받아 왔다. 이런 사상이 교

회, 대학, 지역 사회에 침투하는 현상은 전 세계 곳곳에서 목격된다. 우

리는 기독교인과 다른 사람들이 이런 위협을 이해하고 성경적 범주, 역사적 기독교 교리, 이성에 호소해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에게 복종하게”( 고후 10:5 ) 함으로써 여기에 대응할 수 있게 준비시키려 한다.

이 책 전체에서 복음주의 ( evangelicalism ) 라는 용어는 역사적 개신교와 거의 동의어에 가까운 신학적 범주로 사용하겠다. 따라서 복음주의는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밝히지 않는 일부 사람을 포함할 것이며, 자신 을 복음주의자라고 밝히면서도 복음주의 교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제외하겠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회정치적 범주로서의 복음주의에는 관심이 없다( 8장을 보라 ).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솔

직히 말하면 우리는 복음주의 정치로 여겨지는 많은 것을 한탄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사회정치적 범주로서의 복음주의에는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비판적 사회이론이 복음주의 신학과 더 광범위하게 역

사적 기독교 신학과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밝히려 한다. 우리 목표는

특정 기독교 전통과 상관없이 정통 기독교 신학을 수용하는 모든 사람

에게 우리 주장이 관련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비판적 사회이론의 영향력이 사회 전반의 문제라는

사실도 인정한다. 비판적 사회이론은 교육에서 의료, 정부, 상업에 이

르기까지 공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어떤 형태

의 기독교도 고백하지 않는 많은 사람조차 이런 사상의 확산에 대해

우리만큼이나 우려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런 여러분을 위한 것이다. 기

독교적 관점에서 글을 쓰고 있지만, 책의 처음 일곱 장은 거의 전적으

로 설명하는 내용이다. 게다가 이 책의 후반부에서도 기독교인과 비기

독교인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현대 비판 이론에 대한 많은 비판을 제

시하겠다. 우리가 긍정하는 모든 것을 긍정할 수는 없더라도, 기독교

가 어떻게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불의를 비판하는 근거를 제공하는

동시에 현대 비판 이론의 위험하고 잘못된 전제를 거부하는지를 이해

할 수 있길 바란다.

끝으로, 우리는 이런 분야들에 대한 학문적 경험이 거의 없거나 전

혀 없는 일반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쓰려고 의도했다. 되도

록 전문 용어를 피하고 기술 용어는 신중하고 명확하게 정의한 후에만

사용한다. 하지만 이 책에는 일차 자료에서 가져온 인용문과 분석이 가득하다. 이것은 당면한 주제를 적절히 다루기 위해 의도된 것이고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미 언급한 대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철저하지는 않지만( 5,000페이지나 되는 책을 누가 원하겠는가? ) 공정하게 표현하

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초 학문에 중점을 두고

있다. 깨어남 이념에 반대하는 책들은 비판은 길면서도 학문이 부족한

경우가 너무 많다. 이런 책들은 수사학적으로는 강력할지 모르지만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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