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존 오웬 전집07 - 영적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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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발간사_8 존 오웬의 『영적 사고』에 대한 해제_11 독자에게 드리는 글_32

1부 영적 사고와 지성 1장 ‌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의 단어 설명 ·40 2장 ‌ 영적으로 생각하는 은혜와 의무의 본성 ·52 3장 ‌ 영적인 생각이 은혜의 내적 원리에서 나오는 증거 1 ·64 4장 ‌ 영적인 생각이 은혜의 내적 원리에서 나오는 증거 2 ·90 5장 ‌ 영적인 생각의 대상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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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사고


6장 ‌ 미래의 영광에 대한 영적인 생각 ·142 7장 천국의 영광스러운 상태에 대한 영적인 생각 ·161 8장 하나님에 대한 영적인 생각 ·173 9장 ‌ 하나님에 대해 묵상해야 할 것 ·198 10장 ‌ 영적으로 묵상하는 것과 관련된 규칙 ·218

존 오웬의 『영적 사고』에 대한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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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영적 사고와 감정 11장 ‌ 감정에서 영적으로 생각하는 자리의 본질과 용도 ·244 12장 감정이 영적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 ·269 13장 감정을 혁신시키는 일 ·278 14장 영적으로 ‌ 새롭게 된 감정과 빛과 각성으로만 변화된 감정의 차이 2 ·290 15장 영적인 ‌ 감정과 예배의 규례 ·301 16장 ‌ 영적인 감정이 영적인 것과 동화하는 것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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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영적인 감정이 부패하는 원인과 위험성 ·341 18장 영적인 감정의 상태 ·359 19장 영적인 감정의 대상 ·370 20장 영적인 대상에 영혼을 적용함 ·382 21장 생명과 평안을 주는 영적인 생각 ·391

존 오웬의 『영적 사고』에 대한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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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간사 |

백금산 목사(예수가족교회)

존 오웬 전집 발간은 꿈입니다. 존 오웬 전집을 발간하는 것은 출판을 시작할 때부터 가진 저의 소 망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제 그 소망이 이루어져 존 오웬 전집 발간 의 첫걸음을 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굳이 존 오웬 전집을 발간 하려는 이유는 전집 발간이 이루어져야 본격적으로 존 오웬에 대한 연구가 총체적으로, 그리고 균형 있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인물의 전집 발간은 그 인물 연구의 고속도로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존 오웬 전집 발간은 복입니다. 존 오웬(1616-1683년)은 영국 청교도 신학자와 설교자 가운데서 가 장 뛰어난 인물로 ‘청교도의 황태자’ 또는 ‘영국의 칼빈’이라고 불립 니다. 또한 넓게는 17세기 개신교 스콜라주의의 가장 탁월한 대변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개혁파 정통주의의 챔피언이며, 좀 더 거시적으 로는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칼빈, 조나단 에드워즈 등과 어깨를 나 란히 하는 교회사 최고의 영적 거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교회사적으 로 중요한 이런 인물을 좀 더 가까이서 만난다는 것은 분명 우리 한 국 교회의 신학과 신앙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위한 초석이 될 것 입니다. 존 오웬 전집 발간은 신학적 역사 계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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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사고


존 오웬은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의 절정에 있던 인물로서 아우 구스티누스를 비롯한 고대 교부들,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중세 스콜라 신학,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와 같은 고전어의 통달과 고 전 문학과 역사와 철학에 대한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을 갖추도록 해 준 르네상스 인문주의, 오웬 신학의 기초와 뼈대를 형성해 준 종교개 혁 신학의 전통을 자신의 신학 속에 거대하게 결집해 놓은 인물입니 다. 따라서 존 오웬 전집을 읽는다는 것은 21세기의 가벼운 신학적 분위기를 떠나 우리로 하여금 고대 교부들, 중세 스콜라 신학, 르네 상스 인문주의, 16세기 종교개혁과 17세기 청교도와 개신교 정통주 의 신학의 역사적 전통과 만나 대화하며,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신학 적 전통 가운데 건전한 진수를 계승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존 오웬 전집 발간은 도전입니다. 존 오웬 전집을 발간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번역입니다. 오웬 전집에는 (1) 교리적인 책, (2) 실제적인 책, (3) 논쟁적인 책, (4) 성경 강해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교부 신학, 중세 신학, 가톨릭 신학, 루터파 신학, 개혁파 신학, 이단 신학 등 신학 전반과 랍비와 유대 문헌, 고대에서부터 당대의 홉스와 데카 르트에 이르기까지의 철학 서적, 문헌학, 역사, 지리, 법률, 고전 문학 등 17세기 당대 최고 지성인이 도달할 수 있는 백과사전적 지식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오웬은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만연체의 문장을 구사하기 때문에 더욱 번역이 까다롭습 니다. 따라서 방대한 존 오웬 전집을 발간하는 것은 에베레스트 14고봉을 오르는 것과 같은 험난한 길입니다. 언제 존 오웬의 전집 완간이라는 등정을 완수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존 오웬 전집 발간 의 열쇠는 실력과 끈기를 갖춘 좋은 번역자를 구하는 데 있습니다.

존 오웬의 『영적 사고』에 대한 발간사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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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해 번역자를 찾고 진행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독자들의 기도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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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사고


존 오웬의 『영적 사고』 에 대한 해제 - 박홍규 목사 (함께하는 교회)

존 오웬의 『영적 사고』에 대한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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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영적 사고』에 대하여

존 오웬(John Owen, 1616-1683년)은 이 땅에서의 자신의 수고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고 이 땅에 있는 성도들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을 준비하려 했다. 그것은 구원받은 성도가 이 땅에서 온갖 시련 과 역경 속에서도 천국을 맛보며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안내서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1 )  이 작업을 하기 전에 오웬은 국교회를 반대하 고 더 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분리주의를 택했던 성도들에 대해 방어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무엇인지 밝히는 글을 썼 다. 2 )  이 글을 쓴 후에 오웬은 사도 바울이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 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1 )  이 책은 John Owen, The Works of John Owen , Vol. 7, Edited by William

H. Goold(Johnson & Hunter, 1850-1853)에 들어 있는 ΦΡΟΝΗΜΑ ΤΟΥ ΠΝΕΥΜΑΤΟΣ, or The Grace and Duty of Spiritual Mindedness라는 제목으로 1681 년에 출판되었다.  2 )  오웬은 1680년에 국교회에 반대하고 분리주의교회를 정당화하는 Nonconformity Vindicated 를 썼으며, 1681년에 영적인 생각과 관련된 책을 쓰기 직전에 복음적인 교회의 기원과 본질 등과 관련된 An Inquiry into the Original, Nature, Institution, Power, Order, and Communion of Evangelical Churches를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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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사고


20:24)고

고백한 것처럼 건강이 좋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성도들과 교회를 위해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다행히 오웬은 이 책을 쓴 후에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되어 성도들 에게 이 글을 기초로 설교할 수 있는 은혜를 경험하기도 했다. 3 )  살 아생전 그토록 열망하던 그리스도의 영광을 이제 얼마 후 볼 것을 기대하며 마지막 혼을 불어넣어 성도들의 영적인 성숙을 위한 안내 서를 작성하고 이를 설교하는 백전노장의 설교가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듣는 이들의 영혼을 얼마나 감동시켰을지 상상하 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웬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는 로마서 8장 6절 한 구절 중에서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는 부분에 자신의 논의의 모든 초점을 맞춘다. 4 )  이렇게 성경의 한 구절을 기초로 두꺼운 신학 책을 쓰는 것은 청교 도의 보편적인 전통이기도 하고 오웬 또한 즐겨 쓰던 방법이기도 했 다. 5 )  이것은 그만큼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그 내용이 심오하고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의 구성과 방법

오웬은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는 말씀을 기초로 자신의 논의를 크게 1부와 2부로 나눈다. 6 )  그는 1부에서 먼저 “영의 생각은

3 )  Owen, ΦΡΟΝΗΜΑ ΤΟΥ ΠΝΕΥΜΑΤΟΣ , or The Grace and Duty of Spiritual

Mindedness in The Works of John Owen, Vol. 7, prefatory note.  4 )  앞의 책, title page.  5 )  John Bunyan, The Works of John Bunyan , 3 vols, edited by George Offor(The

Banner of Truth, 1853, 1862)를 참고하라.  6 )  Owen, The Grace and Duty of Spiritual Mindedness, analysis를 책의 전체 구성과

관련해 보라.

존 오웬의 『영적 사고』에 대한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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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평안이니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간략하게 살핀 후에 사 람의 영혼의 기능 중 가장 근본적이며 중요한 기능인 지성(the mind) 이 영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이며, 우리가 영적으로 생각한다 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영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외적인 수단 은 무엇이며, 어떻게 영적으로 생각해야 하며, 영적으로 생각해야 할 대상은 무엇이며, 영적을 생각하는 것의 가치와 유익은 무엇인지를 밝힌다. 2부에서 오웬은 사람의 영혼의 또 다른 핵심적인 기능인 감정(the affections)이

영적으로 생각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며, 영적

으로 새롭게 된 감정이 어떤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가 우리 감 정으로 어떻게 세상을 대하고 세상과 싸워 이길 수 있는지 밝힌다. 그는 또한 인간의 감정의 부패와 영적인 혁신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영적으로 새롭게 된 감정이 예배와 같은 의무와 어떤 관련이 있으며, 우리 감정이 영적으로 생각할 때 어떻게 하늘에 속한 영적인 것과 동화되는지 밝힌다. 더 나아가, 그는 어떻게 부패한 감정이 변화되 며, 영적으로 되기 위해 감정이 모델로 삼아야 할 대상과 규칙은 무 엇이며, 우리 감정이 영적이며 하늘의 것을 추구해야 할 참된 근거는 무엇이고, 어떻게 우리 감정이 이 영적인 대상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밝힌다. 그러고 난 다음에 영적인 생각의 결과인 생명과 평안이 무엇 인지를 밝힘으로써 논의를 마친다. 우리는 여기에서 오웬이 자신의 글을 인간의 영적인 생각의 두 기 능, 곧 지성적인 생각과 감정적인 생각으로 나누어 논의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것은 오웬이 인간을 영혼과 육체의 통일체로 보면서 인간 의 본성을 영양의 기능을 하는 식물 혼과 움직임의 기능을 하는 동물 혼이 아닌 이성적인 기능을 하는 영혼에서 찾고, 영혼의 이성적인 기 능을 다시 지성적인 기능과 감정적인 기능으로, 곧 이론적인 부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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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적인 부분으로 구분하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인간 이해를 따라 자신의 논의를 전개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7 )  이런 오웬의 논의 전개 방식은 당시의 지적인 전통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콜라적인 방법론의 일환이다. 이를 통해 오웬은 인간의 영혼에 대해 철학적 이해를 신학 에 접목해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체계를 효과적으로 구축한다. 8 )  영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로마서 8장 6절에서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할 때 “영 의 생각”은 “프로네마 투 프뉴마토스”(φρόνημα τοῦ πνεύματος)를 번역한 것으로 영어로는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to be spiritually minded)로 번 역되었다. 이것은 “육신의 생각”을 “육적으로 생각하는 것”(to carnally minded)으로

be

표현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오웬은 “영으로 생각

하는 것”과 “육으로 생각하는 것”은 서로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세 상에 사는 사람은 이 둘 중 하나에 속해 있다고 주장한다. 9 )  따라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는 있을 수 없다. 이 두 상태의 차이 는 무한한데 그것은 결과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 영적으로 생각 하는 것은 “생명과 평안”이지만, 육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 기 때문이다. 10  )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영”은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것이

7 )  “Aristotle” in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 https://www.iep.utm.edu/

aristotl/. Summary of Aristotle’s Theory of Human Nature” in Reason and Meaning , https://reasonandmeaning.com/2014/10/17/theories-of-humannature-chapter-9-aristotle-part-1/.  8 )  Carl R. Trueman, The Claims of Truth: John Owen’s Trinitarian Theology(Cornwall: Paternoster Press, 27, 34-44, 51, 79-84를 보라.  9 )  Owen, The Grace and Duty of Spiritual Mindedness, 268-269.  10  )  앞의 책,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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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영적인 생명의 원리”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적인 활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적이며 감정적인 것 모두를 포함한다. 오웬은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사물에 대해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 이 이해한 것에 감정이 관여한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 둘을 합 하면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 영적인 생명 과 빛의 원리를 제공받은 지성이 실질적으로 활동해 영적인 것을 생 각하고, 영적인 것에 감정을 두고, 지성이 기뻐하고 만족하는 즐거움 과 맛을 찾는 것”이다. 11  )  이는 곧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성이 영적인 것을 깨닫고 감정이 이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참된 신자와 거짓된 신자를 구분하는 중 요한 원리다. 12  )  그리고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이므로 “은혜” 이자, 중생한 신자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하므로 “의무”다. 13  )  우리가 영적으로 생각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오웬에 따르면 영혼의 주요한 기능인 지성은 생각을 그 열매로 가 지고 있다. “사람의 지성은 나무가 꽃들로 덮인 것처럼 생각으로 덮 여 있다.”  14  )  그러므로 우리는 지성의 상태를 알려면 그 열매인 생각 이 어떠한지 알아야 한다. 오웬은 사람의 지성과 마음은 온갖 보물이 나오는 보물 창고와 같은데 이 보물 창고에서 악한 것도, 선한 것도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15  )  그런데 문제는 사람의 마음이 중생의

11  )  앞의 책, 269-271.  12  )  앞의 책, 272.  13  )  앞의 책, 275.  14  )  앞의 책, 276.  15  )  앞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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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새롭게 되지 않는다면 본성적으로 악하다는 데 있다. 오웬은 사람의 마음은 온갖 “악한 생각의 진흙과 더러운 것이 쏟아져 나오는 바다”와 같다고 지적한다. 16  )  사람은 잠시 내적인 각성으로 죄를 깨닫 고 일시적으로 영적인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천둥이 치 며 내리는 소나기와 같아서 곧 사라지고 만다. 사람은 고난이나 역경 과 같은 외적인 요인 때문에 잠시 영적인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 나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내고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내는 것 처럼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영적인 것을 생각할 수 없다. 17  )  오웬은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몇 가지 지침을 제공한다. 그는 먼저 우리가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고 기도하는지를 통해 알 수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 오웬은 말씀이 우리 안에서 열매를 맺고 있는지 묻는다. 말씀은 영혼의 영적 인 양식이며, 은혜가 발휘되는 기회를 준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옥 토가 아니라 돌밭이나 가시밭 같아서 말씀은 돌밭에 떨어진 씨앗이 나 가시밭에 떨어진 씨앗과 같을 수 있다. 이럴 때 잠시 말씀을 기쁨 으로 받지만 우리는 환난과 시련과 역경이 닥치면 영적으로 생각하 는 것을 멈추고 만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말씀에 대 해 어떻게 반응할까? 그는 믿음으로 말씀을 받고 사랑으로 반응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말씀이 자신의 영적인 성장의 수단이 된다. 18  )  둘째, 오웬은 우리가 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알려면 우리 기도 를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은혜가 없이도 은사를 이용해 의무적으로 기도할 수 있으며 얼마든지 열심히 외적인 의무를 감당

16  )  앞의 책, 277-278.  17  )  앞의 책, 278-282.  18  )  앞의 책, 283-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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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오웬 전집 07

영적 사고 “영의 생각은 평안이니라”(롬 8:6). “위의 것을 생각하라”(골 3:2). 런던, 1681

*본문 글 중의 [ ]는 편집자가 추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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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드리는 글

나는 독자에게 이어지는 논의의 본성과 계획에 대해 간략하게 설 명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독자에게 안내를 제시하 고 내가 이 책을 출판하는 것에 대한 약간의 변명을 줄 수 있을 것이 다. 이를 통해 독자는 여기에서 전달되고 있는 생각이 내가 다른 사 람을 세우기 위해 어떤 것도 할 수 없고, 내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을 때, 내가 본래 개인적인 용 도로 사적으로 했던 묵상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은혜롭게 내게 회복할 수 있는 작은 힘을 주셔서 내가 이 주제를 묵상할 때 약 간의 유익과 만족을 얻었다고 생각했으므로 나는 개인적인 모임에 서 가르칠 때 똑같은 주제를 고집했다. 그리고 나는 한편으로 이 주 제에 대해 대화할 때 받았던 유익에 대한 느낌과, 다른 한편으로 이 전체의 논의에서 제시되고 요구된 의무가 현재의 모든 상황을 고려 할 때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의 마음과 양심에 선포하고 주장하기에 시기에 적절하다는 인식에서 이 일을 하고 있다. 다른 것은 다른 사 람의 방법과 계획에 맡기더라도 이것은 내가 내 사역 전체 과정에서 내 일을 규정했던 두 가지임을 인정한다. 내가 바라기에 그 능력을 어느 정도 실제로 경험했던 진리를 제시하고, 현재의 경우와 시험과 다른 상황이 특별한 방식으로 감당할 것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 는 의무를 지키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가르칠 때 내가 주로 하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사역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교회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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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에 대한 하나님의 전체 계획이 선포되어야 하는 것처럼, 구체적으 로 우리는 사람이 허공을 때리는 것처럼 불확실하게 싸우지 말아야 하고, 어떤 범위와 계획이 없이 함부로 우리의 화살을 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감독하고 있는 무리에 대한 지식이 그들의 ‘부족과 은 사와 시험과 빛과 강점과 약점’에 대한 마땅한 고려와 더불어 요구 된다. 그리고 사역 과정에서 하나님 영광에 대한 열망과 사람의 영혼 에 대한 연민에서 말씀을 준비하고, 말씀을 주신 하나님과 말씀이 전 달되는 사람을 향한 권위에 대해 마땅한 존경을 드러내고, 말씀을 전 하는 자나 듣는 자가 곧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는 것에 대 해 깊이 느끼면서 말씀이 전파될 때, 이 모든 사역의 복된 결과를 평 안히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내 계획은 단지 내가 왜 “영적 으로 생각하는 은혜와 의무”에 대한 이 작고 솔직한 글을 선포하고 출판하는 것이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처한 현재 상황을 고 려할 때 전적으로 시기적절하다고 판단하는지 그 이유를 선포하려 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목적과 관련해 주목하고 싶은 첫 번째 것 은 세상은 지금도 사람의 마음에 세상을 끈질기게 심으려 하고 있다 는 것과 세상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채우는 다양한 방식이다. 세 상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면(세상이 사람의 지성과 생각과 감정을 세상으로 채 울 수 있다면),

세상은 어떤 사람 안에서는 영혼으로 하여금 믿음과 순

종에 대항해 요새를 세우게 할 것이며, 다른 사람 안에서는 모든 은 혜를 약화시키고 영원한 파멸에 이르게 할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이 우리 생각을 채울 때 세상은 우리 감정을 사로잡을 것이다. 그리고 첫째, 세상에 있는 모든 공적인 사건의 현재 상태는 그 안에 있는 개인의 사적인 이익과 더불어 계속 많은 사람의 생각 속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거의 그들이 서로 대화하는 유일한 주제다. 세상은

독자에게 드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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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강력한 힘으로 사람을 몰아가고 있으며, 많은 곳에서 안정의 모 든 기초를 무너뜨려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혁명으로 들뜨게 하거 나 혁명에 대한 기대로 무질서에 빠지게 하고 있다. 이런 세상의 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런 생각이 늘어나고 위력 을 떨치고 긴급하게 마음을 사로잡아 영적인 것에 대해 즐거워할 수 있는 여지와 시간을 빼앗아 가지 않는다면 허락되고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세상이 비교적 아무것도 아닐 때 마치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행동하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이 세상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세상의 것에 대 한 생각으로 악취를 풍기면서 어떤 영적인 의무를 수행하거나 참여 하려 할 때 그가 어떤 은혜를 적절하고 왕성하게 불러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매우 어렵다. 세상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 람의 마음에 파고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채우고 사로잡는다. 세상이 주는 이런 이익이 사람 마음을 세상의 형상과 모양으로 바꾸지 않도 록 경계되고 제거되지 않는다면, 생명과 평안을 주는 ‘영적으로 생각 하는 은혜’는 얻을 수도 적절히 발휘될 수도 없을 것이다. 계속되는 논의에서 보겠지만 영적이고 하늘에 속한 것을 소중히 여기고 지속적으로 묵상할 수 있도록 우리 생각을 지키고 보존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런 덫에서 어느 누구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종교를 고백하는 많은 사람 안에 세속적인 정신이 보편적으 로 퍼져 있다는 크고 암시적인 증거가 있다. 그러므로 지금은 자신이 고백하는 종교의 능력과 경건에 자신이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지 마 땅히 살펴볼 때다. 많은 사람 안에, 신앙을 고백하는 일반인 안에 널 리 퍼져 있던 그런 정신이 분명히 밝혀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것 은 모든 사람에게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의 습관과 옷과 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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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그의 일상적인 대화와 시간의 낭비에서, 그와 다른 사람의 한 계를 넘어서는 지나치게 자유로운 오락에서, 똑같은 본성을 지닌 다 른 많은 일에서 많은 사람 안에 (엄격하게 금지된) 세상과 일치하는 것이 들어 있어서 세상을 구분해 내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사람 마음에 있는 육적인 감정을 드러내므로 아무리 그렇지 않은 척 해도 영적인 평화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마 음과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것의 죄와 위험성을 발견하게 하며, 그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방법과 수단으로 안내하고, 그의 생 각과 감정에 더 나은 대상을 제공하며, 그가 생명과 평안을 계획하고 있다면 모든 신자에게 필수불가결하게 요구되는 것을 발견하고 행 하게 권면하는 것이 ‘계속되는 논의’에서 하려는 일의 일부다. 이것 은 그런 목적을 이루는 데 단지 미약한 시도로 판단될 수도 있다. 그 러나 이론 논의가 두 가지 이점을 가진다는 것은 부인될 수 없다. 이 런 논의는 첫째로 시기에 적절하고, 둘째로 신실하게 의도된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런 논의가 나보다 더 많은 능력과 기회를 가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신자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세상의 격렬하고 끊임 없는 요구에 반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데 동참하게 할 만큼 성 공한다면, 내 수고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중에 만약 말 씀 사역이 똑같은 목적으로 임명된 다른 수단과 더불어 보통 이상으 로 활기차게 일어나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복음과 기독 교의 전체 본성이 요구하는 ‘엄격하게 자신을 죽이고, 신실하게 대화 하고, 세상의 방법에서 떠나고, 하늘의 것을 생각하고, 영적인 것을 묵상하기’를 즐거워하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고백의 영광을 잃어버리고, 우리의 영원한 상태가 어떻게 될지 매우 불확실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세상을 사랑함으로써 얻는 이익과 보상과 관련해서 도 똑같이 언급될 수 있다.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처럼 생각하

독자에게 드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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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하는 것이며 위의 것에 대해 대화하게 하는 것과 가장 먼 것이다. 종교를 고백하는 많은 사람이 이런 부패한 감정을 추구하면서 시들 어 버리고, 쓸모없게 되며, 활력을 잃어버리고, 하나님 사랑이 자신 안에 있다는 어떤 증거도 주지 못하게 된다. 이런저런 많은 이유로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이 영적으로 사고하고 묵상하는 삶을 살며 위의 것을 거룩하게 묵상하는 것과 거리가 먼 사람임을 증언한다. 그 러나 우리가 이런 일에서 어느 정도 선한 열매를 맺고 있지 않다면 어떤 은혜도 우리 안에 번성하거나 번창할 수 없으며, 어떤 의무도 우리로 말미암아 올바르게 수행될 수 없고, 거룩하게 되거나 향상될 수 있는 어떤 조건도 없으며, 우리는 올바른 방법으로 준비되거나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을 얻기에 적합하게 되지” 못한다. 그러므 로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에게, 특별히 나와 같이 이 세상을 떠날 때 가 가까운 사람에게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고 미리 맛보게 하는 유일 한 수단인 이 모든 악에 대한 유일한 치료책으로 사람을 안내하고 도전하는 것이 이어지는 논의의 계획이며 범위다. 그리고 이것은 독 자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로 안내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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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사고


1부 영적 사고와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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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의 단어 설명

우리의 번역에서 이 표현은 원문에 있는 표현과 다르게 소리 난다. 우리는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to be spiritually minded)이라고 말한다. 원문에서 이 표현은 앞부분에 있는 “육신의 생각”(φρόνημα τῆς σαρκός)을 “육적으로 생각하는 것”(to be carnally minded)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영 의 생각”(φρόνημα τοῦ πνεύματος)을 표현한 것이다. 난외주에서 우리는 “육신으로 생각하는 것”(the minding of the flesh)과 “영으로 생각하는 것”(the minding of the Spirit)이라는 표현을 발견한다. 고대와 현대의 모 든 번역에서 이 구절은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지혜, 이해, 지성, 생 각, 신중함, 성령의 분별력, 성령이 맛을 내는 것” 등이 이 구절을 표 현하는 데 사용된다. 우리의 모든 영어 번역본은 최초의 틴들의 번역 본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는 표현이 사용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사도의 계획을 고려할 때 원문이 강조 하는 것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어떤 표현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 리는 더 나아가 이 구절에서 성령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전체 구절에서 이중적 반정립을 포함하는 두 개의 전체적인 명제 가 있는데, 하나는 주어와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술어와 관련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반대는 영원한 복과 영원한 파멸이 놓여 있 는 가장 크고 중요한 문제다. 주어가 반대되는 것은 “육신의 생각하는 것”과 “영으로 생각하는

것”이나 “육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 리고 이 둘은 인간의 두 상태를 구성하는데, 세상에 있는 모든 개인 은 이 중 하나에 속해 있다. 그리고 그들이 어디에 속해 있는가는 사 람의 영혼에 가장 중요한 문제다. “육체”와 “영혼”에 의해 표현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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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질은 똑같은 사람 안에 동시에 혼합되어 있을 수 있다. 중생한 모 든 사람 안에 그럴 수 있는데, 그들 안에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고 이 둘은 서로 대적하기” 때문이 다(갈 5:17). 그러므로 똑같은 주체 안에서 다르고 반대되는 행동들은 구분된 상태를 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하나가 영혼 안에서 우세하거나 지배하게 되는 곳에서 이런 행동은 다른 상태를 만든다. 이런 상태의 구분에 대해 사도는 “그러나 너희가 육신에 있 지 아니하고 영에 있다”고 표현한다(롬 8:9). 어떤 사람은 “육신 안에 있으며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8절). 그는 “육체를 따른다”(5절). 그는 “육체를 따라 행한다”(1절). 그는 “육체를 따라 산다”(13절). 이것 이 한 상태다. 다른 사람은 “영 안에” 살며(9절), “영을 따라”(5절) 살 며, “영을 따라” 행동한다(1절). 이것은 다른 상태다. 첫 번째 종류는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며, 다른 상태는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 중 어느 하나에 모든 살아 있는 사람이 속해 있다. 그는 육체나 영의 지배적인 행동 아래 있다. 이들 각자 안에 선과 악에 대 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떤 중간 상태도 없다. 이 두 상태 사이의 차이는 크고, 거리는 어떤 면에서 무한한데, 영 원히 복을 받은 상태나 저주받은 상태가 이런 행동에 의지하기 때문 이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이런 다른 상태를 구성하는 원인의 다른 열매와 효과와 그들의 활동에 의해 증언되고 있는데, 그것은 명제의 서술어 사이에 있는 반대로 표현된다. 육신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 망”이지만, 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평안”이기 때문이다. “육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다.” 절대적으로 형벌적인 것으로 서 사망은 영적이거나 영원한 것이다. 이들 중 첫 번째 것은 형식적 으로 그런 것이며, 다른 것은 공로적으로 그런 것이다. 그것은 형식 적으로 영적인 사망인데, 육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죄와 허물로

1장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의 단어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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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있기” 때문이다(엡 2:1).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 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고(3절), 형벌적으로 영적인 죽음의 권세 아 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어 있다”(골 2:13).

그리고 이것은 공로적으로 영원한 사망이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롬 8:13).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 6:23). 사도는 육적인 마음에 그런 비참한 운명과 그런 무서운 선언을 하 는 이유를 다음 두 구절에서 선언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 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 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느니 라”(7, 8절). 육신의 생각이 그렇다면 “육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 이라는 것은 놀랍지 않다. 어떤 다른 것이 된다는 것은 적합하지 않 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나 “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선언된다. 그리고 이것들은 우리가 특별히 묻 고 있는 것이다. 곧 “영으로 생각하는 것”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그 것은 “생명과 평안”인가?

I. “영”이란 무엇인가 1. 이 문맥에서 “영”은 보통 성령 자신과 사람들의 영혼에 미치는 성령의 사역과 관련된 곳에서 그렇듯이 분명히 이중적인 의미로 사 용된다. (1) 영은 하나님의 영 자신의 위격이나 성령을 의미한다. “만일 너 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롬 8:9).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 살 리신 이의 영이”(11절). 영은 여기에서, 그리고 후에 주장될 모든 영적 인 자비와 유익의 주된 효율적인 원인으로서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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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된 모든 사람 안에 일어나는 영적 인 생명의 원리에 사용된다. “영으로 난 것은 영이기” 때문이다(요 3:6).

“영”이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후자의 의미로, 곧 영 자신이 아니라 영으로 난 것, 하나님에게서 난 자들 안에 있는 영적인 생명의 원리 로 사용되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영은 그 본성과 행동과 경향 과 활동에서 “육체”와 반대되기 때문이다(롬 8:1, 4, 5). 그러나 여기에 서 의도하는 “육체”는 모든 악한 행동이 나오고 모든 악한 사람의 행 동이 영향을 받는 부패한 본성의 내적으로 타락한 원리다. 이들 사이 의 반대는 사도가 언급하고 선언한 반대와 똑같다(갈 5:17). 그러므로 이곳에서 “영”은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해 살게 만들어 주는 신 자의 영혼 안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새로운 순종의 거룩하 고 살아 있는 원리다. 2. 이 영에는 “생각”(φρόνημα)이 붙어 있는데, 우리가 언급했던 것처 럼 매우 다양하게 번역된다. “생각하는 것”(φρόνησις)은 지성의 주된 힘과 행동이다. 그것은 지성의 빛이며 지혜이고 신중함이며 지식이 고 이해이며 분별력이다. 그것은 단순히 사고하거나(διάνοια) 추 론(σύνεσις)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감정의 습관적인 틀과 경향성을 포함해 실천적인 차원에서 지성의 힘이다. 그것은 사물들에 대해 기쁨을 가지고 밀착해 생각하는 지성의 기능 이며, 이 기능을 적절히 사용할 때 지성은 사물 안에서 모든 감정이 작동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하는 것”(φρονεῖν)을 때때로 “생각하는 것”(think), 곧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으로(롬 12:3), 때 때로 “감정을 두는 것”, 곧 우리 감정이 일어날 정도로 사물을 이해 하는 것으로, 때때로 “생각하는 것”(mind), “땅의 것을 생각하는 것” 으로(빌 3:19) 번역하는데, 이것은 지성이 고정하고 있는 사물 안에서

1장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의 단어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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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하는 즐거움과 맛을 포함한다. 어느 곳에서도 “생각”은 단지 사 물에 대해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이 이해한 것에 감 정이 관여하는 것을 지시한다. 여기에서 사용된 단어인 “생각”은 앞에서 묘사된 지성의 힘이 실 질적으로 발휘되는 것을 표현한다. 그러므로 “영으로 생각하는 것” 은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 영적인 생명과 빛의 원리를 제공받은 지성 이 실질적으로 활동해 영적인 것을 생각하고, 영적인 것에 감정을 두 고, 지성이 기뻐하고 만족하는 즐거움과 맛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더 나아가 이 구절이 표현하는 것처럼 “영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한 묘사에 빛을 주기 위해 다음과 같은 것을 주목해야 한다.

Ⅱ. “영으로 생각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1. “영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이것이 무엇인가에 대 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영의 능력과 우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곧 그것은 영적인 생명과 빛의 원리로 말미암아 지성이 바뀌고 새롭게 되어 그로 말미암은 활동과 영향으로 영적인 것을 지 속적으로 생각하고 묵상하며, 즐거움과 기쁨으로 영적인 것을 감정 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땅의 것을 생각 할” 때 정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사람의 부패한 감정에 맞게 일어나 는 땅의 것을 사랑하는 원리에서 그의 생각과 묵상과 열망은 지속적 으로 땅의 것에 얽매인다. 2. 그러므로 우리에게 제시되어 있는 영적으로 생각하는 큰 의무 와 관련해 세 가지를 구분해 볼 수 있다. (1) 영적이며 하늘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묵상하고 열망하는 지성 의 실질적인 활동. 이것은 앞 구절에서 “육신의 일을 따르는 자는 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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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일을 생각한다”고 표현되고 있다. 곧 그는 육신의 일을 생각하 고, 그의 생각은 육신의 일에 대한 것이며, 그는 육신의 일을 열망한 다. 그러나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생 각과 묵상을 영의 일에 고정시킴으로써 영의 일을 생각한다. (2) 모든 감정과 더불어 영적인 것을 붙잡고 매달리는 지성의 경향 과 성향과 틀. 이렇게 “영으로 생각하는 것”은 습관적으로 감정에 머

물러 있다. 그러므로 영 또는 빛과 생명의 영적인 원리로 말미암아 갱신되고 행동하는 영이나 지성으로 생각하는 것은 지성이 영적인 것에 대한 사랑과 즐거움의 감정에서 영적인 것을 생각하고 묵상하 고 열망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3) 지성이 지성 자체의 구성과 경향과 열망에 맞게 영적인 것에서 발견하는 맛과 풍미를 즐거워하는 것. 영적인 것에는 새롭게 된 지성 에 맞는 맛을 내는 소금이 들어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영적인 것 은 아무 맛이나 냄새도 나지 않은 계란의 흰자와 같다. 영적인 삶의 달콤함과 만족은 이런 맛과 풍미에 놓여 있다. 영적인 것에 대한 사 색적인 관념들은 홀로 있을 때 건조하고 수액이 없으며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이런 풍미 속에서 우리는 경험으로 하나님은 은혜로우 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은 포도주보다 더 낫다는 것을 맛본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다른 무엇이든지 감각적인 욕구에 가장 잘 맞는 것을 찾게 된다. 이것은 “말로 할 수 없는 영광으로 가득 찬 즐거움”의 적 절한 기초다. 이 모든 것은 영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협력하거나, 어떤 사람이 영 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구성한다. 그리고 비록 그 안에 포함된 전체의 의무의 기초가 감정과 ‘감정으로 영적인 것을 직접적으로 붙잡는 데’ 있으며, 영적인 것에 대한 지성의 사고와 묵상이 영에서 나옴에 도 불구하고, 나는 아래서 다룰 이 의무의 구분된 부분에 대해 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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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것에 대한 우리 생각과 묵상의 활동에서 시작할 것이다. 우리 생 각과 묵상은 지성이 감정에 이끌려 진정으로 제일 먼저 행동하는 것 이므로 우리 생각과 묵상의 원천이 어떤 본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가 장 분명하고 잘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감정이 고정 되어 있는 지성의 즐거움과 관련된 세 번째 언급된 것에 대해 구분 해 말할 필요가 없는데, 이것은 다른 것을 다루는 데서 자연스럽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나가기 전에 내가 생각할 때 현재의 논의의 기초로 제시된 구절에 직접적으로 포함된 중요한 진리를 언급하는 것은 논의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Ⅲ. 영적인 생각과 육적인 생각의 차이는 무엇인가 1. 영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참된 신자를 모든 중생하지 않은 사람과 구분하는 큰 특징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여기에서 사도에 의해 증언

된다. “육적으로 생각하고”, “육신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중생하지 않은 사람이며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으며, 기쁘시게 할 수도 없고, 영원히 멸망받아야 한다. 그러나 “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즐거워할 것이다.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시험하고 결정하는 것은 곧 여기에 의존한다. 2. 어떤 사람이 영적으로 생각하는 곳에, 오직 그곳에 생명과 평안이 있 다. 생명과 평안이 무엇이며, 어디에 놓여 있으며, 이 세상에 있는 모

든 것보다 탁월하고 우월한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우리가 영적으 로 생각하는 것의 효과와 결과가 되는지는 후에 선포될 것이다. 이런 고려는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충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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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내고 우리가 영적으로 생각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부지런히 살 피는 것 외에 어떤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과 양심이 진리의 능력에 영향을 받고 올바로 복종하는 것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유익이 될 것이다. 곧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평안이라”는 것은 우리가 다르게 생각하는 것 은 뭐든지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생명과 평안이 아님을 의미한다. 나는 우리가 진리의 능력으로 영향을 받는다면 유익할 것 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말씀을 들을 때 크게 자신을 속이기 때 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해 속에서 거룩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동의 하지만, 자신의 양심에 진리를 능력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진리에 따라 자신의 상태와 조건을 엄격하게 판단하지 않다. 이것은 그들이 파멸의 상태에 있음을 증명한다. 그들은 사실 마땅히 믿어야 하는 진 리에 대해 한 소절도 믿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믿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개념으로 말씀을 이해하고 동의한다. 그들은 적어도 말씀을 반박하지 않으며 때때로 칭찬하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을 믿지 않는다. 그들이 믿었다면 말씀으로 자신 들을 판단하고, 마지막 날 말씀이 자신을 판단하기 위해 자신과 함께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사도 야고보가 선언한 것처럼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는, 거울로 자기 생긴 얼굴을 보 는 사람”과 같다(약 1:23, 24). 말씀은 그들과 그들의 상태와 조건이 어 떠한지 보여 준다. 그들은 말씀을 보고 심지어 말씀이 선언하는 대로 자신들이 그러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곧 그들 생각은 다른 생 각으로 가득 차며, 다른 감정으로 행동하고, 다른 일에 사로잡히며, 한순간에 말씀이 자신과 자신 상태를 보여 준 것을 잊어버린다. 그러 므로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생명과 평안이라”는 것에 대한 견고

1장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의 단어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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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확신이 우리 마음에 자리를 잡고 있지 않다면, 우리가 그 능력 아 래 있지 않다면, 내가 이 주제와 관련해 제공하는 모든 것을 전적으 로 잃어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빛과 고백이 뭐든지, 우리 지 식이나 우리 의무가 어떠하든지 이런 확신이 없다면 우리는 사실 생 명과 평안에 실질적으로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들이 전제될 때 나는 이 의무의 본성과 정신의 상태에 요구되 는 것이 무엇인지 더 실천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 “영적으로 생각한 다는 것”은 이 의무의 본성과 존재에서나 그 정도에서 고려될 수 있 다. 우리는 어느 하나를 다른 것보다 더 고려할 수 있거나, 똑같은 사 람이라도 어느 때에 다른 때보다 더 고려할 수 있다. 그것은 첫 번째 방식으로 “육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반대되며, 다른 방식으로 “세상 처럼 생각하는 것”과 반대된다. “육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도가 말했듯이 “사망”이다. 이것은 모든 면에서 그러하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허물과 죄로 죽는다. “육 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 본질이나 존재에서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반대된다. 사람이 의도하는 은혜와 의무의 본질과 존재에서 영적으로 사고하지 않을 때 그는 육적으로 생각하는 것, 곧 영적인 사망의 능력 아래 있으며 영원한 사망에 노출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 가 나아가는 원리적 기초이며, 우리는 이것에서 지성을 바르게 사용 해야 할 필수불가결한 필요성을 증명한다. 사람이 세상적으로 생각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땅의 것 에 대한 사랑이 지성을 전적으로 지배할 때 일어나는 것으로서 절대 적인 것이다. 이것은 형식적 차원에서 육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일치 하지 않는데, 육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땅의 것을 생각하는 것보다 범 위가 더 크기 때문이다. 육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뿌리와 원리, 곧 육 신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땅의 것을 생각하는 것은 대상이나 땅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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