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변증신학강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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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프란키스쿠스 투레티누스는 “개혁교회의 교리에 대한 최고의 해설자”(새뮤얼 알렉산더), “놀 라운 종합자”(로저 니콜), “제네바의 개혁주의자들 가운데 우뚝 솟은 인물”(레온 모리스)이라

었는데, 투레티누스가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30년간 가르친 사역의 열매였다. 한때 에드워드 영이 “성경에 대한 장엄한 논문”이라고 묘사한 이 책은 원어인 라틴어를 읽을 수 없는 이들에 게는 사실상 숨겨진 보화와 다름없었다. 1992년에 영어판이 출간되고, 이제 한국어판이 출간 되면서 누구나 이 보화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변증신학의 목표는 잘못된 교리를 논박하면서 진리를 드러내고 굳게 세우는 것인데, 이 책은 특히 로마 가톨릭, 아르미니우스주의, 소키누스주의 신학 사상에 맞서서 성경에 대한 개혁주 의의 이해를 제시한다. 세 권 중 첫 권인 이 책에서 투레티누스는 신학, 성경, 삼위일체, 신적

헤르만 바빙크

작정, 창조, 섭리, 천사, 인간의 원래 상태, 죄, 자유의지 등을 다룬다.

개혁교의학 전집 헤르만 바빙크 지음 | 박태현 옮김

개혁교의학 1

개혁교의학 2

864쪽 | 40,000원

816쪽 | 35,000원

개혁교의학 3

개혁교의학 4

800쪽 | 35,000원

912쪽 | 40,000원

개혁교의학 색인 224쪽 | 10,000원

“‌ 이 책의 번역은 개혁교회에, 그리고 개혁신학의 역사와 발전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에게 주목할 만한 사건 이다.”

_싱클레어 퍼거슨

“‌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에 대한 널리 퍼진 무시와 오해, 심지어 그릇된 진술을 교정하기 위한 커다란 도약 이 될 것이다.”

_리처드 개핀 주니어

들과 종교개혁자들을 거쳐 20세기 초에 이르기 까지 기독교회사의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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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키스쿠스 투레티누스 (Francis Turretin, 1623~1687) 이탈리아 출신의 스위스 개혁신학자로서, 17세기 개 혁파 정통주의 신학을 종합하고 완성한 인물이다. 투 레티누스는 제네바 아카데미와 레이든, 위트레흐트, 파리, 소뮈르 등에서 수학하였고, 다시 제네바로 돌 아와 1648년에 제네바 교회의 목회자가 되었다. 1653 년에는 제네바 아카데미의 교수로 임명되어 죽기 전 까지 철학과 신학을 가르쳤다. 특히 투레티누스는 로

Francis Turretin

마 가톨릭, 아르미니우스주의, 소키누스주의, 소뮈르 학파의 신학 사상에 강하게 반대하였다. 투레티누스 의 대작인 『변증신학 강요』는 개혁파 정통주의 시대의 스콜라적 신학 발전의 정점을 보여 주는 문헌이다.

옮긴이

박문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및 전문대학원에서 학업을 마치고, 비블리카 아카데 미아에서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등 고전어를 수

“‌ 투레티누스가 이룬 참으로 놀라운 성취에 대해 다시금 감동을 받는다……투레티누스 안에 매우 깊은 목회 적이고 헌신적인 부담과……놀랍도록 덕을 세우는 가르침이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다.” _존 프레임 “‌ 신학 문헌에 있어서 엄청난 기여다……사람은 거장을 읽는 일에서 결코 실수하지 않는다. 프란키스쿠스 투

이 책은 고대 교부들로부터 중세 스콜라 신학자

변증신학 강요

고 불려 왔다. 『변증신학 강요』(Institutio Theologiae Elencticae)는 1679~1685년에 처음 출판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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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레티누스는 거장이다.”

_폴 파인버그

“‌ 투레티누스의 축약적이면서도 얽히고설킨 문체 및 매우 전문적인 논의와 기꺼이 씨름하는 사람은 신화를 극복하고 개혁신학에서 투레티누스의 중요성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_리처드 멀러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그리고 사회, 정치, 교육 등 문화적 이슈들을 종 교개혁의 역사적 전통을 따라 “오직 성경”의 원

프란키스쿠스 투레티누스 지음

리를 기반으로 진지하게 분석하고 비평적으로 대

박문재·한병수 옮김

화함으로써 유기적 연관성과 논리적 통일성을 지

변증신학 강요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프란키스쿠스 투레티누스 지음 박문재·한병수 옮김

닌 교회의 교리를 정교하고 선명하게 제시했다.

학하였다. 수많은 책을 번역하였는데, 대표적인 역서 로는 라틴어 원전을 번역한 칼빈 주석  (  『공관복음』, 『요 한복음』, 『고린도전후서』 ), 매튜 풀 청교도 성경주석, 매

튜 헨리 주석, 스펄전 설교 전집, 톰 라이트의 “기독 교의 기원과 하나님의 문제” 시리즈(이상 크리스천다이 제스트) 등이 있다.

한병수 미국 미시간 주에 있는 칼빈 신학교에서 역사신학 전 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전주대학교 기초 융합교육원 교수와 교목으로 기독교를 가르치고 있으 며, 전주대학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 서론』, 『신학의 통일성』 (이상 부흥과개혁사), 『기도란 무엇인가』 (SFC) 『기독교란 무

ISBN 978-89-6092-483-3 ISBN 978-89-6092-482-6(세트) www.rnrbook.com 값 50,000원

엇인가』 (복있는사람) 등이 있고, 다수의 역서가 있다.


Copyright ⓒ 1992 by James T. Dennison, Jr. Originally published in English under the title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Vol. 1 by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mpany, P.O. BOX 817, Phillipsburg, NJ 08865, U.S.A. All rights reserved. This Korean Edition Copyright ⓒ 2017 by Revival and Reformation Press, Seoul, Republic of Korea Translated and used by permission of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mpany through arrangement of rMaeng2, Seoul, Republic of Korea. 이 한국어판의 저작권은 알맹2 에이전시를 통하여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mpany와 독점 계약한 부흥과개혁사에 있습니다. 신 저작권법에 의하여 한국 내에서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는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추구합니다. 부흥과개혁사는 부흥과 개혁이 이 시대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조국 교회의 부흥과 개혁의 방향을 위한 이정표이자, 잠든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을 촉구하는 나팔소리요, 깨어난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의 불길을 지속시키는 장작더미이며, 부흥과 개 혁을 꿈꾸며 소망하는 교회들을 하나로 모아 주기 위한 깃발이고자 기독교 출판의 바다에 출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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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신학 강요 프란키스쿠스 투레티누스 지음 박문재·한병수 옮김


목차

약어

21

편집자 서문

24

감사의 말

28

투레티누스의 헌사

29

독자들을 위한 서문

37

첫 번째 주제: 신학 질문 1. “신학”이라는 ‌ 말은 기독교 학교에서 사용될 수 있는가? “신학”은 얼마나 다 양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 | 43 질문 2. 신학의 존재와 구분은 있는가? | 46 질문 3. 자연적 신학은 주어질 수 있는 것인가? | 50 질문 4. 자연적 ‌ 신학은 구원에 충분한가?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구원받는 보편적인 종교가 있는가? 이에 대하여 우리는 소키누스주의자들 및 항론파의 견해에 반대한다. | 55

신학의 대상 질문 5. 하나님과 ‌ 신적인 것들이 신학의 대상인가?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64

신학의 종류 질문 6. 신학의 종류는 무엇인가? | 67 질문 7. 신학은 이론적인 것인가 실천적인 것인가? | 70 질문 8. 인간 ‌ 이성은 믿음의 대상인 기독교 교리와 신학을 가늠하는 원리와 규범인 가? 우리는 소키누스주의자들에 반대하여 이를 부인한다. | 75 질문 9. ‌ 신앙의 주제에서 어떠한 판단권이 이성에 허용될 수 있는가? 또는 이성의


활용성은 전혀 없는가? | 82 질문 10. 신앙의 ‌ 주제들을 다룰 때 모순의 해결은 인간의 이성에 돌려질 수 있는가?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87 질문 11. 신앙의 ‌ 신비들을 다룰 때 지각의 증거는 유용한가? 아니면 그것은 완전히 거부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전자를 승인하고 후자를 거부한다. | 90

결론의 활용 질문 12. ‌ 믿음의 교리와 실천은 오직 하나님의 명료한 말씀에 의해서만 증명되는 것 인가? 그것들은 성경에서 도출한 결론에 의해서는 적법하게 증명될 수 없 는가? 우리는 결론에 의해서도 적법하게 증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93 질문 13. 신학에서 철학이 사용될 수 있는가?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103

신앙의 근본적인 조항들과 오류들 질문 14. 어떤 ‌ 신학적 주제들은 근본적인 것이고 어떤 신학적 주제들은 근본적인 것 들이 아닌가? 그것들은 어떻게 서로 구분될 수 있는가? | 108

두 번째 주제: 성경 하나님의 말씀 질문 1. 말씀을 통한 계시는 필연적인가?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119

성경의 필요성 질문 2. 하나님의 ‌ 말씀이 기록의 형태로 보존될 필요가 있었는가? 우리는 이를 긍정 한다. | 122 질문 3. 성경은 ‌ 오직 우연적인 계기에 따라 하나님의 명령 없이 기록된 것인가? 우리 는 교황주의자들에 반대하여 이를 부인한다. | 126


성경의 권위 질문 4. 성경은 ‌ 진실로 확실하고 신적인 것인가?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128 질문 5. 성경에 ‌ 실질적인 모순이 있는가? 또는 설명할 수 없고 조화될 수 없는 어떤 설명 불가능한 본문이 있는가? 우리는 이를 부인한다. | 140 질문 6. 성경의 ‌ 신적 권위가 우리에게 알려지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 권위는 교회의 증거나 우리의 증거에 의존하는가? 우리는 교황주의자들과 반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 161

정경 질문 7. 어떤 ‌ 사라진 정경적인 책이 있을 수 있는가? 우리는 이를 부인한다. | 173 질문 8. 구약의 ‌ 책들은 신약의 교회에 여전히 믿음의 표준과 도덕규범의 일부인가? 재세례파에 반대하여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178

외경 질문 9. 토 빗서, 유딧서, 집회서, 마카베오 상하권, 바룩서, 에스더와 다니엘서의 추가 부분 등을 정경에 포함해야 하는가? 우리는 교황주의자들과 달리 이를 반대 한다. | 183

성경의 순수성 질문 10. 구약과 ‌ 신약의 원문은 우리에게 순수하고 왜곡되지 않게 전달이 되었는가? 우리는 교황주의자들과 달리 이를 긍정한다. | 188

권위 있는 판본 질문 11. 구약의 ‌ 히브리어 판본과 신약의 헬라어 판본은 유일하게 권위 있는 판본인 가? 교황주의자들과 달리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196 질문 12. 현재의 히브리어 텍스트는 내용에서나 문자에서나 모든 현존하는 역본들 이 규범으로 삼아 검증을 받아야 하고, 차이점이 있다면 교정을 받아야 할 정도로 신뢰성이 있고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것인가? 또는 히브리어 원본이


제공하는 독법이 다소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그것이 제공하는 독법을 버리거나, 다른 고대 주석과의 비교를 통하여 또는 적합한 판단과 추 정에 의하여 수정을 가하거나, 아니면 다른 더 적합한 독법을 따라야만 하는 가? 우리는 첫 번째 질문은 긍정하고, 두 번째 질문은 부정한다. | 202

역본들 질문 13. 역본들은 ‌ 필연적인 것인가? 교회에서 역본들의 용도는 무엇이며 그 권위는 어떠해야 하는가? | 211

70인역 질문 14. 구약의 70인역은 본래적인 성경인가? 우리는 이를 부정한다. | 217

불가타 역본 질문 15. ‌ 불가타 역본은 권위가 있는가? 교황주의자들의 입장과 달리 우리는 이를 거부한다. | 222

성경의 완전성 질문 16. 성경은 ‌ 이후의 기록되지 않은 전통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완전하게 포함하고 있는가? 우리는 교황주의자들과 달리 이를 긍정한다. | 228

성경의 명료성 질문 17. ‌ 구원에 필수적인 것들에 관하여 성경은 너무도 명료해서 기록되지 않은 전통 이나 교회적인 권위와 같은 외적인 도움 없이도 신자들은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가? 교황주의자들과 달리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239

성경 읽기 질문 18. 어떠한 ‌ 신자도 성경을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가? 그리고 허락 없이도 읽어


야 하는가? 교황주의자들과 달리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245

성경의 의미 질문 19. 성경은 ‌ 사중적인 의미, 즉 문자적 의미, 풍유적 의미, 영적 의미, 훈육적 의 미를 가졌는가? 교황주의자들과 달리 우리는 이를 부정한다. | 247

논쟁의 최상위 판단자와 성경의 해석자 질문 20. 성경 ‌ 또는 그 안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이 논쟁의 무오한 최상위 판단자요 성 경의 해석자가 되는가? 아니면 교회나 로마의 교황인가? 우리는 교황주의 자들과 달리 전자를 긍정하고 후자를 부정한다. | 253

교부들의 권위 질문 21. 교부들의 ‌ 저작은 믿음의 교리들과 성경의 해석에 있어서 진리의 규범인가? 교황주의자들과 달리 우리는 이를 부정한다. | 264

세 번째 주제: 삼위일체 하나님 질문 1. 하나님의 ‌ 존재는 무신론자의 견해와 달리 누구도 반박할 수 없도록 입증될 수 있는가?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273 질문 2. 진정한 ‌ 의미에서 무신론자로 불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는가? 우리는 이를 부정한다. | 286

하나님의 하나 됨 질문 3. ‌ 하나님은 하나인가? 우리는 이교도와 삼신론자들에 반대하여 이를 긍정 한다. | 290


“여호와”라는 이름 질문 4. 이 이름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특유한 것이어서 피조물과 공유될 수 없는 것 인가? 우리는 소키누스주의자들에 반대하여 이를 긍정한다. | 295 질문 5. 신적 ‌ 속성은 신적 본질과 실제로 구별될 수 있는가? 우리는 소키누스주의자 들에 반대하여 이를 부정한다. | 300 질문 6. 속성들을 ‌ 공유될 수 있는 것과 공유될 수 없는 것으로 구별하는 것은 타당한 가?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303

하나님의 단순성 질문 7. ‌ 하나님은 지극히 단순하고 온갖 합성에서 자유로운가? 우리는 소키누스와 보르스티우스에 반대하여 이를 긍정한다. | 305

하나님의 무한성 질문 8. 하나님은 ‌ 본질에서 무한한가? 우리는 소키누스와 보르스티우스에 반대하여 이를 긍정한다. | 310

하나님의 광대성 질문 9. 하나님은 ‌ 본질과 관련해서 무한히 크고 동시에 모든 곳에 있는가? 우리는 소 키누스와 보르스티우스에 반대하여 이를 긍정한다. | 313

하나님의 영원성 질문 10. 하나님의 ‌ 영원성은 선순위와 후순위에 따른 연속성을 배제하는가? 우리는 소키누스주의자들에 반대하여 이를 긍정한다. | 321

하나님의 불변성 질문 11. 하나님은 본질과 의지에서 불변한가?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325


하나님의 지식 질문 12. 개별적인 ‌ 일들과 미래의 우연한 일들을 포함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지식 아 래 있는가? 우리는 소키누스에 반대하여 이를 긍정한다. | 328

중간 지식 질문 13. 하나님 ‌ 안에는 본성적인 지식과 자유로운 지식 사이에 중간 지식이 존재하 는가? 우리는 예수회와 소키누스주의자들과 항변파에 반대하여 이를 부정 한다. | 337

하나님의 의지 질문 14. 하나님의 ‌ 의지에 따라 어떤 일들은 필연적인 것이 되고 어떤 일들은 자유로 운 것이 되는 것인가?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346 질문 15. 의지를 ‌ 작정 의지와 명령 의지, 선한 목적(‘유도키아’)과 선한 뜻(‘유아레스 티아’), 표명된 의지와 감춰진 의지와 계시된 의지로 구별하는 것이 합당한 가?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349 질문 16. 신적 ‌ 의지를 선행적 의지와 후속적 의지, 실효적 의지와 비실효적 의지, 조건적 의지와 절대적 의지로 구별하는 것은 옳은가? 우리는 이를 부정한다. | 357 질문 17. 하나님의 ‌ 의지에 어떤 원인을 돌릴 수 있는가? 우리는 이를 부정한다. | 364 질문 18. 하나님의 ‌ 의지는 정의의 일차적 준칙인가? 우리는 이를 구별한다. | 367

하나님의 정의 질문 19. ‌ 응보적 정의는 하나님에게 본성적인가? 우리는 소키누스주의자들에 반대 하여 이를 긍정한다. | 370

하나님의 선하심, 사랑, 은혜, 자비 질문 20. 이것들은 서로 어떻게 다른가? | 379


하나님의 능력 질문 21. 하나님의 ‌ 전능은 무엇이고, 모순을 내포한 것들에도 미치는가? 우리는 이를 부정한다. | 384

하나님의 통치권과 주권 질문 22. ‌ 하나님의 통치권은 무엇이고 얼마나 많은 종류가 있는가? 절대적 권한과 상대적 권한이라는 구별은 허용될 수 있는가? | 393

거룩한 삼위일체 질문 23. 이 ‌ 신비와 관련해서 “본질”, “실체”, “실재”, “위격”, “삼위일체”, ‘호모우시 온’이라는 단어들의 의미는 무엇인가? 교회는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는 것 이 합당한가? | 397 질문 24. ‌ 삼위일체에 관한 신비는 근본적인 신조인가? 우리는 소키누스주의자들과 항변파에 반대하여 이를 긍정한다. | 408 질문 25. 하나의 ‌ 신적 본질 안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서로 구별되는 세 위격이 존재하는가? 우리는 소키누스주의자들에 반대하여 이를 긍정한다. | 414 질문 26. 삼위일체 ‌ 신비는 구약 성경에 의거해서 증명할 수 있고 구약 시대에 알려져 있었는가? 우리는 소키누스주의자들에 반대하여 이를 긍정한다. | 424 질문 27. 어떻게 ‌ 신적 위격들은 본질과 구별되고, 또한 서로 구별될 수 있는가? | 432

성자의 신성 질문 28. 성자는 ‌ 성부와 동일 본질이고 동일하게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인가? 우리는 소키누스에 반대하여 이를 긍정한다. | 438

성자의 영원한 출생 질문 29. ‌ 하나님의 아들은 영원 전에 성부에게서 출생했는가? 우리는 이를 긍정 한다. | 453


성령의 신성 질문 30. ‌ 성령은 성부 및 성자와 구별되는 신적 위격인가?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468

성령의 발출 질문 31.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왔는가?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476

네 번째 주제: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 질문 1. 하나님 안에 작정들이 존재하는가, 그러면 어떻게 존재하는가? | 481 질문 2. ‌ 하나님의 작정은 영원한가? 우리는 소키누스에 반대하여 이를 긍정한다. | 485 질문 3. 조건적 ‌ 작정이 존재하는가? 우리는 소키누스주의자들과 항변파와 예수회에 반대하여 이를 부정한다. | 488 질문 4. 작정은 ‌ 장래의 일들을 필연적으로 만드는가?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493

생명의 끝 질문 5. 각 ‌ 사람의 생명의 확정되고 움직일 수 없는 끝과 그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작정을 통해 결정되어 있어서, 각 사람은 그렇게 정해진 것과 다른 시간이나 다른 종류의 죽음으로 죽을 수 없는가? 우리는 소키누스주의자들과 항변파 에 반대하여 이를 긍정한다. | 497

예정론 질문 6. 예정론을 ‌ 공적으로 가르치고 전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507 질문 7. 이 ‌ 신비에서 “예정”, ‘프로그노세오스’, ‘에클로게스’, ‘프로테세오스’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가? | 511


천사들의 예정 질문 8. 천사들의 ‌ 예정은 존재했고, 사람들의 예정과 동일한 종류와 질서를 따른 것 이었는가? 우리는 전자는 긍정하고 후자는 부정한다. | 517

예정의 대상 질문 9. 예정의 ‌ 대상은 창조나 타락의 가능성이 있는 인간이었는가, 아니면 창조되어 타락한 인간이었는가? 우리는 전자를 부정하고 후자를 긍정한다. | 525

선택의 원인 질문 10. ‌ 그리스도는 선택의 원인이자 토대인가? 우리는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과 루터파에 반대하여 이를 부정한다. | 538 질문 11. 선택은 ‌ 믿음이나 행위에 대한 예견에 의거해서 이루어지는가, 아니면 오로 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인가? 우리는 전자를 부정하고 후자를 긍정한다. | 545

선택의 확실성 질문 12. 특정한 ‌ 사람들에 대한 구원으로의 선택은 한결같고 변할 수 없는가? 우리 는 항변파에 반대하여 이를 긍정한다. | 559 질문 13. 신자는 ‌ 자신의 선택에 대해 단지 추정적이고 개연적인 확실성이 아니라 믿 음에 의거한 틀림없는 확실성으로 확신할 수 있는가? 우리는 교황주의자들 과 항변파에 반대하여 이를 긍정한다. | 571

유기 질문 14. ‌ 유기의 작정은 오로지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는 뜻(‘유도키아’)에 의거한 절대 적인 것인가, 아니면 죄가 그 고유한 원인인가? 우리는 이를 구별한다. | 581 질문 15. ‌ 복음에 대한 불신앙이 유기의 원인으로 전제되는가? 우리는 항변파에 반대 하여 이를 부정한다. | 595 질문 16. ‌ 끝까지 믿는 자들을 구원하고 믿지 않는 자들을 정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유기의 작정의 전부인가? 우리는 항변파에 반대하여 이를 부정한다.

| 599

질문 17. ‌ 죄에 빠져 있는 인류 전체를 불쌍히 여겨서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의 중보자 로 정해서 그들 모두를 불러 그리스도의 은택에 참여하여 구원을 받게 하고 자 하는 조건적 의지 또는 보편적 계획을 하나님에게 돌릴 수 있는가? 우리 는 이를 부정한다. | 602

예정에서 신적 작정들의 질서 질문 18. 신적 ‌ 작정들에서 어떤 질서를 인정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질서는 어떤 것 인가? | 634

다섯 번째 주제: 창조 질문 1. 창조란 무엇인가? | 653 질문 2. 창조 ‌ 능력은 원리적으로 또는 도구적으로 피조물과 공유될 수 있는가? 우리 는 이를 부정한다. | 656 질문 3. 세계는 ‌ 영원 전에 존재했거나 적어도 존재할 수 있었는가? 우리는 이를 부정 한다. | 660 질문 4. 세계는 한 해의 어느 계절에 창조되었는가? 봄이었는가 가을이었는가? | 667 질문 5. 세계는 ‌ 한순간에 창조되었는가, 아니면 6일에 걸쳐 창조되었는가? 6일 동안 매일 지음 받은 구체적인 것들은 운동이나 시간의 연속 없이 창조되었는가, 아니면 하나님은 각각의 것을 만드는 데 한 날 전체를 사용했는가? | 671 질문 6. 하나님이 ‌ 6일에 걸쳐 창조한 것들은 어떤 순서로 되어 있었는가? | 674 질문 7. 모세가 ‌ 말한 광명체들의 용도를 근거로 점성술을 구축하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는 점성술사들에 반대하여 이를 부정한다. | 682 질문 8. ‌ 아담이 최초의 인간이었는가, 아니면 그 이전에 사람들이 있어서 창조된


세계와 인간의 활동이 존재했던 시기는 아담보다 훨씬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가? 우리는 아담이전설자들에 반대하여 전자를 긍정하고 후자를 부 정한다. | 689

인간 창조 질문 9. ‌ 인간은 순수한 본성 가운데서 창조되었거나 그렇게 창조될 수 있었는가? 우리 는 펠라기우스주의자들과 스콜라 신학자들에 반대하여 이를 부정한다. | 697 질문 10. ‌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면 그 형상은 어디에 존재했는가? | 700 질문 11. 원의는 ‌ 본성적인 것이었는가, 초본성적인 것이었는가? 우리는 가톨릭 진영 에 반대하여 전자를 긍정하고 후자를 부정한다. | 707 질문 12. 최초의 ‌ 인간은 타락 이전에 불멸성을 소유했는가, 아니면 본성과 조건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는가? 우리는 소키누스주의자들에 반대하여 전자 를 긍정하고 후자를 부정한다. | 712

영혼의 기원 질문 13. 영혼들은 ‌ 하나님이 창조했는가, 아니면 출생된 것인가? 우리는 전자를 긍정 하고 후자를 부정한다. | 717

영혼의 불멸성 질문 14. 영혼은 그 내재적 구성에서 불멸인가?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725

여섯 번째 주제: 하나님의 실제적 섭리 질문 1. 섭리는 존재하는가?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735 질문 2. 하나님의 ‌ 섭리를 “운명”이라 부르고, 운명적인 필연성을 섭리에 돌리는 것이 옳은가? 우리는 이를 구별한다. | 743


섭리의 대상 질문 3. 큰 ‌ 일이든 작은 일이든, 우연적이고 자유로운 일이든 본성적이고 필연적인 일이든, 모든 일이 섭리에 속하는가?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747

섭리의 행위들 질문 4. 섭리는 ‌ 오직 만물의 보존과 유지에만 미치는 것인가, 아니면 만물에 대한 통 치에도 미쳐서, 하나님은 일반적이고 중립적인 협력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특 수하며 직접적인 협력을 통해 친히 행하여 실효적으로 만물과 협력하는 것 인가? 우리는 예수회, 소키누스주의자들, 항변파에 반대하여 전자를 부정하 고 후자를 긍정한다. | 752

하나님의 협력 질문 5. 하나님은 ‌ 구체적이고 동시적인 협력만이 아니라 선행적인 협력을 통해 이차 적 원인들과 협력하는가?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758 질문 6. 어떻게 ‌ 하나님의 협력은 이차적 원인들, 특히 인간 의지의 우연성 및 자유와 조화될 수 있는가? | 766

악과 관련된 하나님의 섭리 질문 7. 죄는 섭리 아래 있는가? 섭리는 죄에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가? | 772 질문 8. 우리의 ‌ 교리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죄의 원천으로 만든다는 것이 수반되거나 그런 합법적인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가? 우리는 가톨릭 진영, 소키누스 주의자들, 항변파, 루터파에 반대하여 이를 부정한다. | 791 질문 9. 섭리 교리의 사용과 악용은 존재하는가? | 801

일곱 번째 주제: 천사 질문 1. 천사들은 창조되었는가? 그렇다면 언제 창조되었는가? | 807


질문 2. 천사들은 영적이고 무형적인 존재인가?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810

천사들의 지식 질문 3. 천사들의 지식의 방식과 대상은 무엇인가? | 814 질문 4. 천사들의 ‌ 의지와 자유의지는 무엇인가? 그들에게도 감정이 있는가? | 818 질문 5. 천사들의 능력은 어떠한가? | 819

천사들의 출현 질문 6. 천사들은 어떻게 출현했고 어떤 몸을 입었는가? | 822

천사들의 질서 질문 7. ‌ 천사들 가운데 어떤 질서가 존재하고, 분명한 위계가 존재하는가? 우리는 전자 를 긍정하지만, 유대인들과 로마 가톨릭에 반대하여 후자를 부정한다. | 824

천사들의 사역 질문 8. 하나님은 ‌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천사들의 사역을 사용하는가? 신자마다 평 생을 지켜 주는 수호천사가 존재하는가? 우리는 이를 부정한다. | 831

천사들의 중보기도와 천사 숭배 질문 9. 천사들은 ‌ 우리를 위해 하나님에게 중보기도를 드리는 자들이고, 천사들을 종 교적으로 숭배하는 것이 합당한가? 우리는 로마 가톨릭에 반대하여 이를 부 정한다. | 838

여덟 번째 주제: 타락 이전 인간의 상태와 자연 언약 질문 1. 죄 없는 상태에서 아담의 자유는 어떤 것이었는가? | 849 질문 2. 아담에게는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가? | 852


자연 언약 질문 3. 하나님은 ‌ 아담과 어떤 언약을 맺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종류의 언약 이었는가? | 856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질문 4. 선악을 ‌ 알게 하는 나무라고 불린 이유는 무엇이고, 왜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법을 주었는가? | 862

생명나무 질문 5. 생명나무로 불리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 865 질문 6. 아담에게는 ‌ 영생과 천국의 삶에 대한 약속이 주어져서, 아담이 순종의 삶을 마친 후에는 천국으로 들어갈 것이었는가?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868

낙원 질문 7. 지상의 낙원은 여전히 존재하는가? 우리는 이를 부정한다. | 873

아홉 번째 주제: 일반적인 죄와 구체적인 죄 질문 1. 죄의 ‌ 형식적 근거는 불법성(‘아노미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옳은가?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879 질문 2. 의도성(‘토 ‌ 헤쿠시온’), 즉 인간이 아는 가운데 의지적으로 어떤 것을 행하는 것은 죄의 본질에 속하는가? 우리는 교황주의자들과 소키누스주의자들에 반 대하여 이를 부정한다. | 882 질문 3. 죄책은 ‌ 죄의 구성 요소인가, 죄의 불가분의 부수물인가, 아니면 단지 죄의 효 과인가? 그리고 죄책은 비난가능성의 죄책과 형벌의 죄책으로 구별할 수 있 는가? | 884


가벼운 죄와 죽을죄 질문 4. ‌ 모든 죄는 그 자체로 그리고 본성에서 죽을죄인가, 아니면 가벼운 죄도 존 재하는가? 우리는 교황주의자들에 반대하여 전자를 긍정하고 후자를 부정 한다. | 886

천사들의 타락 질문 5. 천 사들이 하나님을 거슬러 반역했다고 말할 때 그들의 죄는 무엇이었는가?

| 894

아담의 타락 질문 6. 인간의 ‌ 최초의 죄는 무엇이었는가, 불신앙이었는가 교만이었는가? | 897 질문 7. 거룩한 ‌ 사람이 어떻게 타락할 수 있고, 그의 타락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이었 는가? | 901 질문 8. ‌ 아담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잃었는가? 우리는 이를 긍정 한다. | 909 질문 9. 아담의 ‌ 실제적인 불순종은 본성적 출생으로 말미암아 그에게서 생겨나는 그 의 모든 자손에게 직접적이고 선행적인 전가를 통해 전가되는가? 우리는 이 를 긍정한다. | 912

원죄 질문 10. 원죄, ‌ 또는 타고난 오염과 부패가 존재해서 출생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는 가? 우리는 펠라기우스주의자들과 소키누스주의자들에 반대하여 이를 긍 정한다. | 934 질문 11. 원죄는 ‌ 영혼의 본질 자체를 부패시켰는가? 또한 원죄는 단순한 박탈인가, 아니면 어떤 적극적 속성인가? | 944

죄의 유전 질문 12. 어떻게 원죄는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유전되는가? | 949


질문 13. 실제적인 죄와 그 다양한 구분들 | 954 질문 14. 성령을 ‌ 모독하는 죄의 공식적인 근거는 무엇에 있는가? 또한 그 죄는 왜 사 함 받을 수 없는가? | 958 질문 15. 죄는 ‌ 그 자체가 죄에 대한 형벌일 수 있는가? 우리는 이를 긍정한다. | 967

열 번째 주제: 죄의 상태 안에 있는 인간의 자유의지 질문 1. “자유의지” ‌ 또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아우텍수시우’)이라는 용어를 기 독교 학파들에서 유지하는 것이 옳은가? 자유의지는 영혼의 어느 기능에 귀 속되는가, 지성인가 의지인가? | 975 질문 2. ‌ 모든 필연성은 자유의지와 모순되는가? 우리는 교황주의자들과 항변파에 반 대하여 이를 부정한다. | 978 질문 3. ‌ 자유의지의 형식적 근거는 중립성에 있는가, 아니면 이성적 자발성에 있는 가? 우리는 전자를 부정하고, 교황주의자들과 소키누스주의자들과 항변파에 반대하여 후자를 긍정한다. | 984 질문 4. ‌ 죄의 상태에서 자유의지는 죄의 종으로서 죄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에 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시민적이고 외적으로 도덕적인 선만이 아니라 율법에 제시된 하나님의 뜻에 정확히 부응하는 내적이고 영 적인 선을 향해 자신을 기울이는 힘도 여전히 지니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교황주의자들과 소키누스주의자들과 항변파를 반대하여 전자를 긍정하고 후자를 부정한다. | 989

이교도의 미덕 질문 5. ‌ 이교도의 미덕은 선한 행위이고, 이것으로부터 선을 행할 자유의지의 능력을 추론할 수 있는가? 우리는 교황주의자들에 반대하여 이를 부정 한다. | 1010


| 약어 |

*

수정된 인용구.

+ ‌ 투레티누스가 인용한 내용을 인용한 곳에서 확인할 수 없음. AA ‌ Josephus, Against Apion. Translated by H. St. J. Thackeray.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26. ACW ‌ Ancient Christian Writers. New York: Newman Press, 1946~. AJ ‌ Josephus, Antiquities of the Jews . Translated by H. St. J. Thackeray, R. Marcus and L. H. Feldman.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28~1931. ANF ‌ Alexander Roberts and James Donaldson, eds. Ante-Nicene

Fathers. Grand Rapids: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69~1973. BT ‌ I. Epstein, ed., The Babylonian Talmud. London: Soncino Press, 1935~1952. CCSL ‌ Corpus Christianorum, Series Latina. Turnholt: Brepols, 1953~. CG ‌ Augustine, City of God. Translated by Demetrius B. Zema and Gerald G. Walsh. New York: Fathers of the Church, 1950~1954. CI ‌ Augustine, Christian Instruction . Translated by John J. Gavigan. New York: Cima Publishing Co., 1947. CR ‌ Corpus Reformatorum. Berlin: C.A. Schwetschke, 1834~. CSCO ‌ Corpus Scriptorum Christianorum Orientalium. Paris: Reipublicae, n.d.

21


Cochrane A. C. Cochrane, Reformed Confessions of the 16th Century.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66. FC ‌ Fathers of the Church. Washington, D.C.: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Hefele ‌ Charles J. Hefele, A History of the Councils of the Church. 5 vols. New York: AMS Press, 1883/1972. ICR ‌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 2 vols. Edited by John T. McNeill. Translated by Ford L. Battles.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60. JW ‌ Josephus, The Jewish War. Translated by H. St. J. Thackera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26~1929. LCC John Baillie, John T. McNeill and Henry P. Van Dusen, eds.

Library of Christian Classics.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53~1966. Lauchert ‌ Friedrich Lauchert, Die Kanones der Wichtig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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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 Grand Rapids: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56. NPNF2 Philip Schaff and Henry Wace, eds.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Second Series. Grand Rapids: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52. PG ‌ Jacques Paul Migne, Patrologiae . . . series Graeca. Paris: J. P. Migne, 1857~1887. PL ‌ Jacques Paul Migne, Patrologiae . . . series Latina. Paris: Garnieri Fratres, 1878. ST ‌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ca. 3 vols. New York: Benzinger Brothers, 1947~1948. Schaff ‌ Philip Schaff, Creeds of Christendom. 3 vols.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31. Schroeder ‌ Canons and Decrees of the Council of Trent. Translated by Henry J. Schroeder. St. Louis: Herder, 1941.

22 | 변증신학 강요 1


VD ‌ Robert Bellarmine, “De Controversiis: Prima Controversia Generalis — De Verbo Dei,” in Opera Omnia. Vol. 1. Neapoli: Josephum Giuliano, 1856.

약어 |

23


| 편집자 서문 | 편집자 서문

투레티누스의 『변증신학 강요』 ( Institutio

Theologiae Elencticae ) 에

대한 조지 머스

그레이브 가이거 ( George Musgrave Giger ) 의 번역은 사랑의 노고였다. 자신의 친구 이자 프린스턴 신학교 교수인 찰스 하지 ( Charles Hodge ) 의 부탁에 대한 반응으 로, 가이거는 손으로 썼을 때 무려 8,000쪽에 달하는 분량의 『변증신학 강요』 를 번역해 냈다. 가이거는 1847년에서 1865년까지 프린스턴 대학교 ( 뉴저지 칼리 지 ) 의

고전학 교수로 봉직했다. 거기서 그는 헬라어와 라틴어를 붙들고 씨름

했다. 가이거의 투레티누스 영역본은 학생들이 하지의 조직신학 수업에서 과 제로 할당되는 내용을 탐구할 수 있도록 신학교의 도서관 책상에 놓여 있었 다. 가이거가 번역한 본문의 일부는 이미 타자기로 작성한 문서로 나와 있었 으나 완역본은 출간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수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완 역본 출간을 소호해 왔다. 지금 기획되는 이 작품은 가이거를 정당하게 대우 하는 하나의 시도이다. 가이거의 번역은 직역에 가까우며 원문에 충실하다. 가이거가 한 작업 의 장점은 투레티누스의 스타일에 엄격하게 밀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의역 적인 번역이 많이 발견되지 않는다. 다루기 곤란한 어구들과 번잡한 종속 절과 과장된 문체를 지닌 스콜라적 스타일은 가이거의 번역에 그대로 나타 난다. 투레티누스의 전문 용어 이해에 도움이 되는 스콜라적 라틴어 용어들 을 연구하길 원하는 독자들을 위해 리처드 멀러 ( Richard A. Muller ) 의 『라틴어 헬 라어 신학용어 사전』 ( Dictionary

of Latin and Greek Theological Terms: Drawn Principally from

Protestant Scholastic Theology [Baker, 1985] ) 과

리처드 맥키언 ( Richard McKeon ) 이 편집한 『중

세 철학 선집』 ( Selections From Medieval Philosophers [Charles Scribner’s Sons, 1930] ) 에서 “용어 집”( 2:422~506 ) 부분을 추천한다. 투레티누스는 특히 다양한 논지를 요약하고 주 된 사상의 여러 설명을 나누고자 할 때에 불완전한 문장을 사용하길 좋아한다.

24 | 변증신학 강요 1


이런 이유로 독자들은 번역서 전체에서 미완성된 문장과의 대면을 각오해 야 한다. 가이거의 번역본을 다듬은 나의 편집본은 가독성을 높이려는 노력 을 하면서도 번역의 원형이 훼손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이런 목적 을 위해 문장들은 가능한 한 짧아졌고, 는 것으로 판명되는 부분은 )

( 투레티누스의 주장에 있어서 명백히 곁다리에 해당되

괄호를 사용했고, 일부 고전적인 표현들은 수정하고 최

대한 더 현대적인 용어들을 선택했다. 수정의 일부는 나의 가독성 기준에 근거한 주관적인 것임을 독자들은 양해해 주길 바란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가이거의 영어와 투레티누스의 라틴어가 가진 정신에 충실하려 혼신의 힘 을 기울였다. 영역본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언급해야 할 것들이 있다. 먼저 가 이거가 사용했던 원문은 1847년 에든버러/뉴욕 판본이다. 이것은 1688~ 1690년 판본에 성경의 일부 인용문과 관련하여 약간의 수정을 가한 재판이 다. 내가 살펴본 바로는, 이 19세기 판본의 텍스트는 1696년 인쇄본과 다르지 않았다 ( 이 인쇄본은 세 권으로 출간된 1679~1685년판 원본의 재판이다 ). 여기서도 일부 성경 인 용문에 대해서는 예외다 ( 이

예외는 1688~1690년 판본에 대해서도 동일하다 ).

1675~1685년

판본은 1680~1686년에 다시 세 권으로 인쇄된다. 정밀성을 높이고 많은 부 분에서 신장을 보이는 새로운 편집본은 1682~1688년에

( 세 권으로 )

등장한

다. 수정되고 신장된 이 편집본은 1688~1690년에 세 권으로 다시 인쇄된다. 1675~1685년판의 1696년 인쇄본은 멜키오르 레이데커 ( Melchior Leydekker ) 의 수 려함과 아드리안 릴랜드 ( Adrian Reeland ) 의 서정미를 가미한 첫 번째 작품이다. 이것은 1701년에 ( 세 권으로 ) 다시 인쇄된다. 1734년에는 다양한 인쇄본이 있었 다. 세 권으로 된 것도 있고, 투레티누스의 『논박집』 ( Disputationes ) 이 제4권으로 추가되어 네 권짜리 “전집”( Opera ) 형태로 나온 것도 있었다. 이 전집은 완성된 에든버러/뉴욕 판본의 기초였고, 제4권은 1848년에 모습을 드러냈다. 독자가 지금 붙들고 있는 이 영역본은 1847년 판본에 다양한 종류의 수정 과 첨가가 이루어진 작품이다. 필요에 따라 모든 성경 인용문은 검토와 수정 을 거쳤다 ( *표시는

1847년에 가해진 수정을 가리킨다 ).

투레티누스는 성경 본문을 인용할

때에 장까지만 언급한다. 그래서 나는 텍스트의 문맥에 기초하여 해당 장의 절까지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성경 인용문은 킹제임스 성경 ( King James Version ) 에 기초했다. 두 번째로 언급해야 할 문제는 다른 인물들에 대한 투레티누스의 인용에 관한 것이다. 고전 철학자들, 교부들, 중세 스콜라 학자들, 종교개혁 인물들, 아르미니우스주의 학자들, 소키누스주의 학자들, 반동 종교개혁 로마 가톨릭 변증가들 등에 대한 투레티누스의 해박한 지식과 관련하여 그의 인용문을 조 사하고 그가 활용한 자료의 정확한 서지 사항 전체를 제공하는 것이 지혜로워 편집자 서문 |

25


보인다. 이것은 이 출중한 제네바 신학자가 사용한 문헌들에 의해서 그의 주 장을 파악하기 원하는 독자들을 위해 투레티누스의 교의학을 더 유용하게 만 드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결국 나는 투레티누스가 다른 인물들의 문헌에서 인용한 모든 내용 ( 때로는 암 시한 부분 ) 을

규명하고 확인하고 교정하고 그것의 서지 사항 전체를 제공하려

노력하게 되었다. 규명 작업을 통해 천여 명에 육박하는 인물들의 사전적인 목록이 만들어졌다. 이 목록은 3권에 수록될 것이며, 거기에는 개별 인물들의 성, 이름, 예명, 생년월일 및 사망 연도, 그리고 그들의 신학적 활동을 다룬 글 을 포함하고 있는 백과사전이나 사전에 대한 언급도 포함되어 있다. 투레티누스의 인용문 확인은 ( OCLC를 통한 국회 도서관 같은 ) 온라인 문헌 저장소, ( 특 별히 어바인에 소재한 캘리포니아 대학이 제작한 Thesaurus Linguae Graecae [TLG] 같은 )

색인들과 용어

색인 등의 광범위한 활용 및 여러 도서관의 협력을 요구한다. 투레티누스의 인 용문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투레티누스가 때때로 자신의 자료를 자기 방식으 로 바꾸어 쓴다거나 어쩌면 기억에 의존하여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 다. 이런 이유로 인해 몇몇 인용문은 인용된 문헌에 나와 있는 그대로의 문자 적 인용이 아닌 경우도 있다. 편집자 입장에서 본다면, 이것은 다소 미심쩍은 규명으로 귀결될 수 있는 사안이다 ( 그래서 그런 인용문에 있어서는 의문 부호 “?”를 사용했다 ). 할 수만 있다면, 나는 투레티누스가 사용한 문헌들의 영역본 정보를 제공 하려 했다. 교부들의 인용문 경우에는, 미뉴 ( J.

P. Migne )

편집본인 Patrologiae

Graecae ( PG ) 또는 Patrologiae Latinae ( PL ) 에서 해당 본문을 제공했다. 원본이 그러한 것처럼, 인용문을 각주 형식으로 구분하지 않고 본문에 삽입했다. 투 레티누스의 인용문을 수정한 경우에는 이를 가리키기 위해 별표(*)를 사용했 다. 원문에서 발견되는 이런 실수들은 활자화 작업에서 벌어진 실수, 즉 타이 핑을 담당한 자의 편에서 발생한 전치, 오독, 실수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인용문은 투레티누스의 원문에서 본래 위치했던 곳에 삽입했다. 때때로 나 는 책, 장, 항에 대하여 투레티누스 자신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다. 이 는 독자들로 하여금 인용문의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 에서 이루어진 작업이다. 헬라어와 히브리어 용어 및 어구는 이 책의 앞부분 에 밝힌 영문 표기법을 따라 음역했다. 투레티누스는 모음부호 없는 히브리 어 표현들만 사용했다. 이 부분에서는 그의 습관을 따랐으며 별도의 모음부 호 제공은 시도하지 않았다. 저널과 자주 인용되는 문헌과 성경 각 권의 약어 는 약어표를 참조하면 된다. 인용문의 4% 정도는 규명하지 못했다 ( 이에 대해서는 플러스 부호[+]를 사용하여 투레티누 스가 암시하고 있는 문헌을 언급해 두었다 ).

들 ( 국가 통일

미국과 영국과 다른 나라들이 가진 표준 목록

목록 [National Union Catalogue], 영국 박물관 목록 [British Museum Catalogue ] 등 ) 을

26 | 변증신학 강요 1

활용


해도 투레티누스가 인용하는 문헌을 규명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때로는 투레티누스가 밝히고 있는 출처에 그가 인용하는 부분 ( 또는 그 부분의 타당한 의역 ) 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에 나는 1847년 판본에 나온 그대로 인용문을 삽입했다. 독자들 중에서 이런 인용문의 출처를 발견하는 이가 있 다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있는 편집자에게 연락해 주길 바란다. 이 영역본은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1847년 판본의 구분법을 따 라 1권은 1~10번까지의 주제를 다루었고, 2권은 11~17번까지의 주제를 다 루었고, 3권은 18~20번까지의 주제를 다루었다. 3권은 주제별, 성경별, 히브 리어, 헬라어, 고유명사, 및 베네딕트 픽테트의 “장례식 연설”( Funeral Oration ) 의 영역본을 포함한다. 특별히 픽테트의 연설문은 투레티누스의 삶을 그려 주는 일차 문헌 중의 하나다. 나는 투레티누스의 놀라운 신학적 활동의 간략한 소 개와 그가 끼친 영향력에 대한 평가를 추가할 생각이다. 끝으로, 투레티누스 가 인용한 문헌들의 완전한 서지 사항은 용이성을 위해 OCLC 번호와 더불어 포함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지와 가이거와 구프린스턴 신학이 유익할 것이라 확신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오늘날의 교회와 학계에도 더 풍성하게 실현될 것이다. 주후 1992년, 하나님의 은혜로 ( Dei Gratia )  제임스 데니슨 주니어

편집자 서문 |

27


| 감사의 감사의 말 |

첫 번째 감사의 말은 존 거스트너 ( John H. Gerstner ) 박사에게 돌아가야 한다. 내 가 피츠버그 신학교의 학생으로 있었을 때 거스트너 박사는 나에게 프란키스 쿠스 투레티누스를 소개해 주었다. 거스트너가 투레티누스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만든 『변증신학 강요』의 발췌본은 나의 신학적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 다. 본서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영글고 하나의 역본으로 묶여지기 위해서 는 수년이 걸려야 했다. 샤론 테일러는 프린스턴 신학교의 도서관 사서 보조 로 있으면서 가이거 영역본의 촬영을 위해 도움을 주었다. 안나 휘튼은 그 작 업을 완료했고 계속해서 수정하고 추가해야 할 부분들을 본문에 삽입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이사진과 교수진은 내가 출판을 위한 원고를 준비할 때 현저한 진전을 이룰 수 있도록 1988년에 연구 안식년 을 허락해 주었다. P&R 출판사의 브라이스 크레이그와 톰 노타로는 끊임없는 격려와 시설과 필요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캐서린 드라운은 교정하는 작 업에 그녀의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 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특별한 한 여인의 도움은 어떤 식으로도 충분히 평가될 수 없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몽고메리 도서관 문서보관 책임자 및 관장 대행인 그레이스 멀렌 ( Grace Mullen ) 은 나의 궁금증에 답변을 제공해 주었고 참 고 문헌 목록들을 조사해 주었으며 다른 수다한 잡무까지 흥겹고 정확하게 수행해 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미국판 셜록 홈스라는 합당한 별명을 수여했 다. 정말 고마워요, 그레이시! 다른 많은 분들이 이 기획의 실현을 위해 그들의 시간과 정열을 헌사했다. 3권 색인 부분에서 그들을 더 충분히 높이고자 한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 Soli Deo Glori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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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레티누스의 헌사 | 투레티누스의 헌사

프란키스쿠스 투레티누스는 가장 지엄하고 고귀하고 존경스러운 집정관들 과 명예로운 제네바 공화국의 모든 의원들께 건강과 모든 행복이 있길 진심 으로 바랍니다. 하나님이 가장 탁월한 귀족인 여러분을 통치의 보좌에 머물게 하신 이 공 화국의 상태를 생각할 때마다, 마치 거룩한 시인이 예루살렘 도성에 대해 “하 나님의 성이여 너에 대하여 영화로운 내용들이 언급되고 있도다”라고 노래했 던 것처럼,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음이 명백해집 니다. [제네바가] 자연의 유익 측면에서 보자면 소박하고 수천 개의 유대 도 성 중 무엇보다 작은 곳이지만, 여호와 경배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참으로 크 고 무엇보다 위대한 곳입니다. 주님께서 풍요의 손으로 지금까지 부으셨고 지금도 날마다 쏟으시는 은총은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다 해도, 그 모든 것 들 중에서 그 위엄을 드높여야 할 두 가지의 탁월한 은총이 있습니다. 즉 첫 째는 그것보다 더 거룩한 것이 없는 경건 ( religio ) 이며, 둘째는 그것보다 더 달 콤한 것이 없는 자유 ( liberias ) 입니다. 이것은 마치 한편으로 세상의 이집트가 키메르적 오류의 흑암으로 뒤덮여 있는 동안에 의로움의 햇살이 내리쬐는 고 센과 같으며, 다른 한편으로 세상의 다른 많은 지역에는 의로운 심판의 치명 적인 불길이 번지지만 비록 작으나 안전하여 경건한 자들이 쾌적한 피난처 를 발견하는 소알과 같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 가시적인 태양이 더 이상 경배 되지 않는 태양의 집이요 도시인 진정한 벧세메스 및 헬리오폴리스와 같습니 다 ( 한결같이 지속적인 소문에 의하면 이런 경배는 이교도들 안에서 실행되어 왔다고 합니다 ). 그러나 높은 곳에서 거룩한 여명이요, 우리의 태양과 방패요, 경건의 영광을 주장하고 계신 모든 축복의 태양이며, 자유를 위해 정복될 수 없는 무적의 수호 자를 보내시는 가장 안전한 보호의 방패가 되시는 그리스도 우리의 주님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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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를 받으소서.

( 제네바의 가장 위대한 영광인 )

이 두 가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탄복할 섭리를 기념해야 할 가장 공정한 논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어떤 지 역도 전쟁에서 자유롭지 않은 유럽 전체를 휘감고 있는 가장 심각한 격동 속 에서도 부화뇌동하지 않으며, 손상되지 않은 무제한의 평화로운 번영기를 구 가하는 사람들은 우리 이외에 지구촌의 어느 구석에도 없습니다. 이와 달리 다른 이들은 황폐한 들판과 점령되고 약탈된 도시와 소각된 마을과 절단된 지방과 비탄한 다른 지역들과 전쟁의 비참하고 끔찍한 후유증을 목도하며 극 도의 슬픔에 압도되고 있습니다. 부모의 처소에서 내쫓김을 당한 이들은 가 련한 유배자와 낙오자의 방황에 내몰려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포 도나무와 무화과나무 그늘에서 우리의 빵을 평온하게 먹으며 지고한 평화를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진실로 우리가 이런 자유와 평화를 우리 구원을 감찰하고 계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이라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가장 배은망덕한 인간이 되고야 말 것입니다. 그분만이 홀로 우리의 평안을 생산하는 분이고 지금도 생산하고 있는 분입니다. 이렇게도 놀라운 은총의 저자이신 그분이 앞으로도 계속해 서 그런 은총의 공급자이자 보존자가 되고자 하십니다. 다른 누가 인간의 모 든 기대치를 뛰어넘을 그렇게도 중다한 모사들과 역적들의 정체를 드러나게 할 수 있을까요? 다른 누가 그렇게도 많은 침략들과 사악한 도모들을 격퇴하 고 좌절시킬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익살스런 상형문자 애호가는 모든 것을 지 탱하고 있는 섭리를 표상하려 할 때에 어떤 버팀목도 없이 공중에 매달린 도 시, 오직 하늘에서 뻗은 거대한 팔에 의해 지탱되는 그런 도시를 그리곤 했습 니다. 어두움이 드리우지 않은 우리의 제네바는 상징적인 차원이 아니라 실 제로 인간적인 수단이나 보조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만 지탱되고 있는 그런 도시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으 로도 되지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만 되느니라”( 슥 4:6 ). 그러나 우리로 지금까지 안전하게 안식하게 만든 신적인 보호의 중추적 인 토대라 할 두 번째 은총은 훨씬 더 특별하고 빛나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으 면 안 됩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기 원하셔서 주신 측량할 수 없는 선물로서 천상적인 진리와 더 순전한 경건의 기탁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대 적하는 로마의 독재자가 제거되고, 오류는 정복되고, 미신은 산화되고, 우상 은 전복되고, 어두움은 흩어지게 만든 이 은총으로 말미암아 캄캄함 이후에 오랫동안 갈구하던 구원의 빛은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에 뒤덮여 있던 자들 을 즐거이 일으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진리의 금 촛대를 두실 정도로 사랑 하던 행복의 언덕은 거룩한 진리의 광선을 사방으로 퍼뜨리며 세상의 상당한 지면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 언덕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언약궤의 안식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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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좌소요 그 거룩한 이름의 전당으로 성결하게 하실 정도로 명예롭게 여기시는 국가와 교회에 은총을 수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의해서는 싫어한바 된 그 도시는 점점 대적하며 흥분하는 마귀와 적그리스도의 격분과 광포를 감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애정을 받으며 그분 에게 눈동자와 같이 여김 받는 제네바는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달콤 한 피난처를 찾았고, 도시 고유의 아름다운 것들을 구가할 뿐 아니라 이런 은 총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여 은총의 출처와 증대를 하나님 추종적인 우리 조국에 돌리는 자들의 어머니 또는 유모라는 별칭이 합당할 정도가 되었습니 다. 오히려 이런 점에서 제네바는 가장 특별하게 행복한 곳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말미암아 종교개혁 운동의 황홀한 특권을 언제나 누리고 있 으며 이곳에 위탁된 가장 고귀한 경건의 보고가 훼손되지 않도록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면류관과 영광이며,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이 유사한 은총을 허락하지 않으신 지구촌의 다른 많은 백성들 중에 아주 뛰어 나게 되었고,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과 거룩한 사자의 재산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구별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토록 놀라운 은택을 수여하신 하나님을 감사히 기념하며 성실 하고 진실하게 보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 회를 돌보는 최고의 의사처럼 그 은택을 돌봄의 일순위로 삼아 자유의 대의 못지않게 종교의 대의를 확고히 지지하여 모든 오류의 오염에서 벗어나 순수 하게 만드는 일은 지극히 뛰어난 귀족들 즉 여러분의 경건한 선조들이 지칠 줄 모르도록 열망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지고한 판단력은 그 은택을, 로마가 이전에 영광을 누렸던 방패로서 트로이나 하늘이 내려 준 수호신 팔라디온 이상으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불굴의 보증인 언약궤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국가와 교회의 복지는 언약궤의 보유와 보존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전 시대에 인류의 가장 비열한 원수들이 개혁된 복음의 빛을 가리고 동 시에 전소하기 위해 복음을 다시 적그리스도적 속박의 원초적인 멍에로 묶으 려고 했던 공공연한 종교개혁 원수들과, 깜찍하고 유려한 종교의 그럴듯하지 만 거짓된 탈로 위장하고 복음의 심장부에 거하면서 치명적인 억견들에 대 한 신뢰를 교리에 심으려 했던 교활한 시논들 ( Sinons, 트로이 전쟁에서 활약한 그리스 전사 들 ) 을

동원하여 저질렀던 흉물스런 오류를 다시 설명하면 지루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러분의 영민한 선조들을 통해 경이로운 은총으로 그런 오류에서 복음을 자유롭게 했습니다. 여러분의 실록은 거룩한 종교개 혁 역사가 구교에 의해 얼마나 수다하고 위력적인 전략들에 의해 공격을 받 았는지, 경건의 성스러운 훈련이 불경하고 파벌적인 인물들의 어떠한 격분에 의해 괴롭힘을 받았는지, 그리고 복음 진리의 순수성이 얼마나 자주 공세에 투레티누스의 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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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렸는지 등을 잘 증거하고 있습니다. 한때 이런 일들은 종교개혁 발발 직후인 1536년에 이곳에서 소요를 일으 켰던 광적인 재세례파 폭도들에 의해 시도된 적이 있습니다. 이후에는 무례 한 궤변론자 프로테우스보다 더 변덕스러운 페트루스 카롤리의 교묘한 술책 과 지극히 간악한 비방들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 반(半)펠라기우스 주의 무리들의 지도자인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에 의해 저질러진 하나님의 말씀과 정통적인 교리의 파괴적인 왜곡이 있고, 난폭한 그루에티우스가 가 장 비열한 계략으로 사모사타 이단성과 마니교를 버무려 만든 오류의 뒤범벅 도 있습니다. 이후로 1551년에는 불경한 제롬 볼섹이 펠라기우스주의 독성을 뿜어내며 신성한 예정론과 구원의 은총을 뒤틀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급기 야 거룩한 삼위일체 교리의 경이로운 신비와 관련하여 사람이 아닌 모든 악 독의 괴수인 마이클 세르베투스의 끔찍한 불경에 의해 저질러진 것도 있습니 다. 지극히 불량한 이 사람은 자주 경고를 받았지만 유럽의 유명한 지역 곳곳 에서 수년 동안 이미 뿜어냈던 지극히 유해한 독기를 일반인들 중에서도 내 뿜기를 중단하지 않았던 자입니다. 투옥된 이후에도 자신의 마귀적인 완고함 을 털지 아니하고 결국 1553년에 저질적인 불경에 지극히 합당한 형벌을 받 은 것입니다. 부단히도 자주 꺾였으나 사탄은 포기하지 않고 전비를 다지며 이방의 발렌티누스, 파울루스 알키아투스 및 지극히 불경건한 세르베투스와 동일하게 교분을 나눈 다른 제자들과 같은 새로운 불경건의 거목들을 발굴 해 왔습니다. 1558에는 사모사타 이단성과 아리우스 이단성을 곁들인 삼신주 의 오류, 즉 괴물에 괴물을 더하는 일을 도모하기 위해 이들이 서로 뭉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의 선진들은 위엄 있게 이런 것들을 확고하게 저지하고 흔 쾌히 싸워 자신들이 “경건의 대의를 위한 불굴의 진정한 수호자들”( strenuos et cordatos piae causae Vindices ) 임을

큰 칭찬과 더불어 승인했던 것입니다. 이 영광스

러운 칭호는 지극히 출중한 하나님의 사람 칼빈이 이전에 그 선진들에 대해 사용했던 말입니다. 이 나라의 가장 깨어 있던 선진들과 여러분의 열정과 경건은 우리로 하여 금 여러분의 최우선 관심사가 바로 이것임을 의심할 수 없게 만듭니다. 진실 로 여러분은 지극히 지혜로운 왕의 신탁과 일치하는 경건과 의로움에 의해 통치가 강화될 것이라는 점과, 하나님의 권위가 그의 말씀으로 여러분과 함 께할 것이고 그리스도 자신이 여러분을 통해 통치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주 의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통치는 행복할 수 없고 제대로 이루어질 수도 없 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언제나 보호자와 지도자 로 계신 신정제가 귀족제보다 낫다는 사실과, 최고의 법이어야 하는 공화국 의 안전이

( 하나님이 여러분의 날개 그늘 아래 보존을 맡기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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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종교의 문화와 교회를


윤택하게 하는 경건한 돌봄이라는 두 가지의 흔들리지 않는 성벽을 파수함 에 의해서만 가장 잘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또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것 이 지금까지 여러분에 의해 잘 성취되어 와서, 종교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 을 힘입어 오류와 미신의 어떠한 부패에 의해서도 오염되지 않고 있으며 예 전에 수용된 더 순수한 교리에는 어떠한 변경도 가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는 여러분들이 그 교리가 그대로 보존될 수 있도록 그 일에 스스로 매였기 때 문입니다. 통치자들이여, 이 신성한 목적과 대의를 위하는 일에 여러분의 경 건하고 지속적인 충성을 가지고 언제나 정진하여 이 선한 것들이 우리에게 영속되고 여러분의 보호 속에서 이 공화국이 언제나 행복하고 경건에 있어서 도 창대하여 마지막 세대까지 이어지길 원합니다. 이 소망은 (1) 여러분이 하 나님을 경건하게 경배하고 기억하는 일에 언제나 전념하는 한, (2) 여러분이 여러분의 백성들 중에 경건과 정의와 기독교와 민족에 대한 사랑과 영혼들의 거룩한 조화는 번창하게 하고 지극히 타락한 이 시대에 심지어 성장하는 교 회 안에서도 창궐하는 무수한 죄악들은 엄하게 제어되게 하는 한, (3) 이 도 시가 우리의 열정에 의해 교리의 순수성과 도덕적 행위의 진실성에 있어서 진실로 “개혁주의 도시”( Urbs

Reformata ) 라는

이름에 부응하는 한, 진리의 좌소

이자 경건한 이들의 피난처가 될 도시들 ( 나는 이 단어를 “하나님의 도성”이며 하나님의 기쁨이 있는 참된 “헵시바”라 부릅니다 ) 의

보호자가 되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돌봄은 공화국의 지도자와 주요 인물들에게 속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만물의 절대적인 통치자가 자신의 일을 위해 신적인 일들을 섬기라 고 부르신 이들에게 더 관계된 것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진리 의 좌소를 택하실 때 우리를 향한 섭리적인 돌보심에 아무리 경의를 표하고 자 해도 다 표하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돌보심을 결코 중단하지 않 으시고 계속해서 신실하고 열정적인 일꾼들을 당신의 추수 밭에 보내고 계십 니다. 그들에게 탁월한 은사를 입히시고 용감하게 기독교를 정화하는 거룩한 일에 착수하게 하시고 착수된 때에 그것을 온전하게 만들도록 돕고 계십니 다. 하나님이 종교개혁 운동의 토대를 다지기 위해 사용하길 원하셨던 하나 님의 출중한 종들인 윌리암 파렐 ( William Farel ) 과 삐에르 비레 ( Pierre Viret ) 의 노고 에 제네바가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결코 충분히 드높일 수 없는 가장 탁월한 칼빈의 가장 강렬한 특심과 지치지 않는 성실에 큰 빚을 졌습니다. 칼빈은 진실로 극진한 열성과 불굴의 성실로 정평이 난 분입니다. 하나님은 칼빈에게 웅대한 정신과 지극 히 정교한 판단력과 심오한 학식을 주셨으며 예기치 않게 가장 어려운 때에 그를 제네바로 불러 섬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더 순전한 교리와 경건의 투레티누스의 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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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을 확립하기 위해 칼빈의 열정을 쓰시고자 했습니다. 물론 처절한 싸움 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놀라운 은총으로 저를 이 영광스러운 지위로 부르셔서 저 로 하여금 거의 30여 년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물론 저는 이 지위에 저 자신 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항상 느끼고 있으며, 저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의 식은 여기에 있는 우리보다 앞선 위대한 선진들에 비해 저 자신이 얼마나 열 등한 자인지를 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름을 받은 때로부터 제가 저 의 선진들을 따르되 비록 동일한 행로를 걷지는 않지만 동일한 방식대로 걸 어가고, 동일한 보폭은 아니라 해도 전심으로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가 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떠한 과제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저는 하나님 앞 에 엄중히 선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저에게 맡겨진 학생들을 더 순전한 신학 과 온전하고 확고한 교리로 덧입히는 이 일에만 전무하는 것 외에 제가 발견 한 이 도시를 더 아름답게 장식하고 저에게 위탁된 직무에 저를 묶었던 맹세 의 양심을 더 만족하게 할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이 길에 들어선 것은 비록 저 자신의 자발적인 동의에 의한 것이지만 저를 강권했던 인물들, 즉 저와 혈육의 관계를 맺고 있는 그리스도의 두 신실한 종들이 있었 습니다. 한 분은 저의 외삼촌인 위대한 신학자 요한 디오다티 ( John Diodati ) 인데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그의 이름과 백향목의 가장 소중하고 감미로 운 부위에 해당하는 성경에 관한 그의 사역이 그의 출중함을 잘 보여 주고 있 습니다. 또 하나는 복스럽고 가장 달콤한 기억을 가진 저의 가장 친애하는 아 버지 베네딕트 투레티누스 ( Benedict Turretin ) 인데, 아버지는 조기에 맞이한 아주 서글픈 죽음으로 세상을 떠나셨으나 그의 명성 ( 이에 대해 저는 침묵하려 합니다 ) 이 증 언하고 그의 저작들이 확인시켜 주듯이 정확하고 강직한 신학자의 명성을 얻 은 분입니다. 이 분들에 의해 책임감이 더욱 고양된 저는 언제나 이것만은 저 에 의해 수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즉 호기심만 배 양하고 믿음을 세우지는 못하는 헛되고 무용한 질문들을 제거하고, 말씀의 신성한 지침에 따라 저의 모든 사역을 설정하고 하나님 안에 있는 “순전하고 이성적인 젖”을 청년에게 제공하여 그들이 경건과 일치하는 진리 안에서 나 날이 성장하고 섬김의 일들을 위해 그들을 준비된 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이 것이 바로 이 저작의 목적이며, 그 첫 번째 부분을 1권에서 다룰 것입니다. 먼 저 이 책의 용도는 학자들을 겨냥한 것이었고 책의 구도도 거칠게 잡았습니 다. 제가 사실 이 책을 공적으로 출간하여 우리와 원수들 사이에서 발발한 논 쟁의 더 용이한 해명을 위해 신적인 것들을 수호하는 자들에게 어떤 유익이 주어질 것을 기대하는 자들의 자주 반복되는 요청에 부응하려 하는 것은 저 의 자발적인 감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떠밀린 성격이 더 강합니다. 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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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선하신 하나님과 더불어 그 시대에 일 어나는 사태가 우리를 가르칠 것입니다. 여하튼 저는 이 저작을 정중히 여러분과 지극히 탁월한 분들에게 보여 드 리고 헌정하려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 얄팍한 재주를 가지고 다가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적잖은 망설임이 있었지만, 여러분의 호의와 저의 책임에 대한 생각이 설득하여 저의 이름이 박힌 이 저술의 서두에 여러 분의 빛나는 이름들을 거명해야 한다는 것에 어떠한 의심도 갖지 않게 되었 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감미로운 구원의 교리를 포함한 논증에 대해 여러분에게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득되어 이 저작을 여러분의 보 호 아래에서 더 복되고 안전하게 공적으로 내놓게 된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이 오로지 하나님의 대의와 천상적인 진리의 진흥을 겨냥한 이 소략한 저작 을 장려하는 일에 거부감을 가지실 것이라고 여기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하 나님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인간이 고안한 허황된 사상들에 반대하고 진리의 옹호자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저의 연구로 말미암은 ( 비록 미미한 것이지만 ) 이 결실들을 여러분에게 헌정하는 것보다 더 정당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 들은 사실 여러분의 토양에서 발아하고 배양된 것이기에 이미 여러분의 것입 니다. 지극히 경건하고 덕망이 높은 저의 할아버지 프란키스쿠스 투레티누스 가 백여 년 전에 루카 도시에서 이곳으로 이주하게 만들었던 그 고유한 은덕 에도 불구하고 제가 다른 행동을 취한다면 망은의 범죄를 저지르는 셈이 될 것입니다. 가장 저명한 원로들의 보호 아래에서 가장 감미로운 나라의 모든 은택을 버리고 더 순수한 종교를 고백하려는 신성한 열정의 재촉을 받은 저 의 할아버지는 이탈리아 국가의 많은 이웃과 친족들, 그리고 진리에 대한 사 랑과 그리스도 예수의 은은한 향기 때문에 여기까지 이른 다른 경건한 사람 들과 더불어 가장 소망적인 복음의 빛을 향유하는 즐거움을 누리며 자신의 가족과 함께 여기에 둥지를 틀었던 것입니다. 1552년부터 한 그리스도인 장 관의 보호와 권위 아래서 존 칼빈의 노력으로 이탈리아 교회가 세워졌고 지 금까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보호 아래에서 보존되 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이 호의에 대한 기억은 이 호의가 감사하는 이들의 증언으로 모든 자에게 전해져야 함을 우리에게 요구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여러분은 저를 향한 동일한 호의의 명료한 증표 주기를 중단 하지 않았고 많은 구별된 것들로 저를 존대해 주시되 제가 교회와 학교에서 수행하는 신성한 직무를 저의 공로로 보상해 주셨을 뿐 아니라 언제나 친절 한 방식으로 치하해 주시고 저의 모든 시도를 승인해 주셨습니다. 다른 곳 에 자주 초청을 받았을 때에는 저의 직위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것만 투레티누스의 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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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고 있었는데, 특별히 수년 전에 벨기에 연맹국과 홀란드의 지극히 고 매하고 강대한 원로들에 의해 가장 번창하고 있는 레이던의 아타나이움의 신 학 교수로 오라는 영예로운 초청을 받기 몇 년 전에 여러분은 저를 향한 자비 로운 정서를 가지고 제가 여기에 남아 있기를 원했습니다. 이 일에 있어서 여 러분은 여러분에게 헌신된 저의 신앙과 충성을 너무도 확고히 붙드셔서 제 가 만약 빚을 갚을 수 없으면서 그 빚을 어떤 식으로든 인정하지 않았거나 여 러분에 대한 저의 존경과 감사를 표하는 항구적인 기념물이 존재해야 한다 는 것을 주의하지 않았다면 저는 악명을 얻는 것이 마땅했을 것입니다. 그러 므로 지극히 뛰어나신 분들이여, 복음의 빛이 발하는 여러분의 선 자리에 저 의 미미하지 않고 지극히 자발적인 마음에서 우러나는 충심이 담긴 이 미미 한 저작을 드리오니 잔잔한 지지와 더불어 받아 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에 게 지극한 책무를 가졌다고 자인하는 저에게 계속해서 호의를 베풀어 주십시 오. 저는 섬김과 존경으로 온전히 여러분의 것이기를 선언하며 약속하고 있 습니다. 나머지에 대해서는 탄원자의 자격으로 저는 왕들의 통치를 가능하게 하시는 지극히 선하고 지극히 위대하신 하나님께 아룁니다. 하나님이 출중한 지도자인 여러분에게 언제나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이 공화국을 가능한 한 오랫동안 안전하게 지켜 주시기를, 여러분을 온갖 종류의 복으로 부요하 게 하시되 지혜와 능력의 주도적인 신으로, 경건과 정의의 신으로 여러분을 주장하사 여러분의 모든 계획이 하나님의 지극히 거룩한 이름에 영광을 돌리 고 이 나라에는 유익을 수여하고 교회에는 복을 제공하길 바랍니다. 아멘. 1679년 2월 10일, 제네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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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들을 위한서문 서문 | 독자들을 위한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저는 여기 서두에 이 책을 출간하는 이유와 의도를 그대에게 간략하게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당신이 이 책에 대해 그 릇되게 생각하고 이와 관련하여 저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것을 저에게 돌 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높게 평가된 이런 종류의 문헌들이 신 학자에 의해 출간이 되었으나 중다한 분량이 가장 큰 유익을 끼쳐야 할 열성 적인 독자들을 자주 혼미하게 만들었고 미심쩍은 마음을 일으켰기 때문에, 저도 만용과 경솔의 딱지를 떼기가 쉽지 않은 듯합니다. 재능이나 교수에 있 어서 그들과 비교할 수 없는 저 자신은 제가 탁월함을 가지고 수행해야 하는 이런 작업에 요구되는 이 모든 것들이 저에게 구비되어 있지 않음을 잘 인지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제가 햇살을 밝히고 호머의 일리아 드 같은 글을 쓰려는 것처럼 감히 일반 독자에게 이런 종류의 글쓰기에 수고 의 땀을 흘리고자 합니다. 이것은 저 개인의 사사로운 판단에서 비롯되지 않 고 공적인 호출이라 불리는 것에 대한 경의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저에게 부 과된 직무에서 나온 이 책임은 저를 충분히, 아니 그 이상으로 변론해 줄 것 입니다. 나아가 이 직무는 하나님께 구별된 청년들의 학업을 강의든 저술이 든, 어떤 식으로든 도와야 할 의무를 저에게 부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궁 정을 축조할 때에 비록 헌납할 수 있는 금이나 은이나 화려한 옷감이나 다 른 더 소중한 것들은 없었으나 그들의 소유물 중에 놋과 철과 다른 더 저급 한 것들의 헌납에 최소한 주저함이 없었던 이들, 하나님은 화폐 가치가 아니 라 드리는 자의 심정에 따라 헌물의 가치를 매기시기 때문에 염소의 가죽이 나 털이라도 헌납했을 이들의 성의는 기림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바로 이 경우는 제가 추구한 것이 아니라 저에게 부여된 과제에 대해 제가 수행했던 것과 저의 의도를 풍성하게 증언할 것입니다. 저는 공적인 부분이든 사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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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이든 저에게 위탁된 직무의 요구에 따라 청년들을 힘닿는 대로 가르치 려 했고, 그들이 탐구할 과제로는 매우 유용한 학습이 이루어질 저명한 마레 시우스의 책 ( Decades  ) 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언급된 논쟁들의 상황과 기본에 대해서는 몇 마디의 설명이 필요하고 어떤 구분과 탐색이 추가될 필 요가 있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이로써 논적들의 주된 속임수가 드러나고 주 된 논거들은 반박되게 말입니다. 저는 육성[의 학습]으로 만족하지 않고 글로 도 옮기길 원했고, 그래서 기억에 더 깊숙이 박히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 저작은 조금씩 진전되어 갔는데, 열성적인 이들의 필사도 한몫을 했습니다. 저는 오로지 모든 노력을 이 과제에만 집중했지, 서둘러 집 필된 이 문헌이 출간될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의 기도와 친구들의 바람과 저의 귀에 들린 괜찮은 소문들이 없었다면, 제가 알 지도 못한 다른 이들에 의해 추진된 출판의 기획은 기울였던 노력에 훨씬 미 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많은 결점과 오류들로 인해 격이 떨어진 조야하고 미 숙한 출판물이 나오지 않도록, 장고 끝에 저는 비자발적 마음을 가지고 기꺼 이 이것을 저에게 요청한 이들의 바람에 부응하여 어찌 되었든지 이 소략한 저작을 출판하되 더 성실한 주의를 기울여서 수정하고 증보했고 더 정교한 방법으로 분류하려 했습니다. 이 방법은 박학을 입증하지 않지만, 최소한 지 인들에 대한 신의와 진리에 대한 변증의 열망은 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 약 어떤 사람들이 이 책에서 더 많은 것들을 기대하고 이 저작을 조잡한 미숙 아로 부른다면, 저는 앞서 고백했던 것과 동일한 것을 시인할 수밖에 없습니 다. 여기에 추가하여, 이것은 출판되지 않고 보류되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 할 것입니다. 이 책에는 “변증신학 강요”라는 제목이 부과되어 있습니다. 이는 여기에서 신학의 완전하고 정확한 체계가 다루어질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도 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진실로 저에게 제시된 기획이 아닙니다. 저의 과제는 고대이든 지금이든 우리의 논적들과 우리 사이에 놓인 주된 논쟁들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미로에서 더 용이하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청년들에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논쟁이 선 호되는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구분하기 위해 더 깊은 진리의 지식으로 겸비해야 하고 강력한 의의 갑옷과 믿음의 방패로 무 장되어 적대적인 자들을 변박하고 사탄의 화전을 소멸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 식을 대적하는 요새와 논증들을 격파하여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 앞에 복종하 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공부하는 학생들의 진보를 도모해야 하는 데는 그들 로 하여금 성경이 우리에게 예루살렘 건축자가 이전에 사용했던 흙손처럼 검 을 다루도록 가르치는 것보다 더 좋은 방식은 없습니다. 즉 믿음이 기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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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진리의 교훈을 가르쳐서 거짓을 입증하고, 이로써 직접적인 방식이든 간접적인 방식이든 그 입증을 비하하는 오류들이 확실히 반박되고, 그리하여 오늘날 슬프게도 성도들 가운데 편만하게 되고 주님의 교회를 비참하게 유린 했던 심각하고 중다한 문제들을 올바르게 정초함에 있어서 실수함이 없게 하 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위험한 오류들이 관계되어 있고 알려지지 않은 논쟁의 상 황과 관련하여 너무나도 자주 오류가 발생하기 때문에, 논쟁은 가면 속에서 불행하게 진행되고 무작위의 맹아적인 격전을 수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 가 다른 무엇보다 주안점을 둔 것은 사태의 본질과 무관한 모든 것을 제거하 고 할 수 있는 대로 양 진영의 입장에 따라 문제의 상태와 중심점을 집어내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르게 정위되고 탐구되면, 진리가 견고히 세워지 고 오류가 저절로 소멸되는 것과 관련된 나머지를 해결하는 방법은 쉽게 주 어질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여기서 씨름하는 것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경 중의 문제이기 때문에 진리를 확증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예시된 모든 논거를 부지런히 긁어모으려 하지 않습니다. 목적의 달성을 위해 저는 두 가지의 추 가적인 것들을 제안했습니다. 즉 (1) 분별력을 가지고 사안이 해결될 수 있는 더 중요하고 더 확고한 논거들을 선택했고, (2) 필요에 따라서는 논적들의 주 된 반론에 답변하기 위해 추가적인 강조도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저는 설명 의 출처 ( fontes solutionum ) 에 관한 논의를 추가하여 일련의 장황한 논증을 제거하 고 구별된 것들만 나타나게 하였고, 한 번의 눈길만 주어도 논적들의 무기가 무뎌지고 주된 반론의 신경이 제거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저는 간략하고 명료하게 수행하여 과도한 정교함이 모호함을 유발하지 않도록 하였고 과도한 장황함이 지루함을 빚어내지 못하도록 했습 니다. 사안에 대한 단순하고 꾸밈없는 설명을 제공하고, 더미에 불과했을 지 루한 증거들의 인용은 생략하고, 모든 감정의 표출은 피하는 것으로 만족하 며, 논거를 다룸에 있어서 다르게 취급될 수도 있을 것들에 대해서는 간단한 언급으로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다수 의 보편적인 질문들을 제가 다룬다고 해서 놀라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 면 여기에서 저는 이런 글쓰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박학하고 유순한 이들에게 유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초보적인 학습이 필요한 입문자와 초 보자의 유익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하기의 언어와 글쓰기 의 방식을 그들의 교육에 적합하게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물론 일반 주 제들 안에서 자주 언급되는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우 리의 신학은 이미 너무나도 극심한 논쟁 더미에 치였고 압도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신학에서 불필요한 것들도 적지 않으며, 많은 부분이 지혜롭지 못한 독자들을 위한 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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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들에 의해 난삽하게 교란되어 있습니다. 이 경솔한 자들은 불쾌한 호기심 에 이끌려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것들은 무시하고, 봉인되어 닫힌 하늘을 탐 색하며 하나님의 비밀한 심연까지 헤집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찮은 것들의 분방한 수집으로 단어들의 공허한 음소들에 집착하고 난제의 실마리 를 풀려고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언제나 학습자의 성장과 경건의 증진을 위해서는 질문을 늘리는 것보다 진리가 인정될 정도만큼 질문의 수 를 줄이는 게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 중요하 고 더 필수적인 질문들은 택하고, 지나치게 어렵고 이상한 또는 사도들이 피 하라고 한 “어리석고 무지한 변론”( 딤후 2:23 ) 에 해당되는 ( 이것을 모르는 자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고 아는 자들에겐 유익이 없는 그런 )

헛되고 유치한 질문들은 제하려고 했습

니다. 사도의 황금률이 언제나 주장하는 것처럼, “지혜롭기 위해서 알아야 합 니다.” 그래서 저는 욕망이 강렬한 자들의 새롭고 기이한 흥미를 유발하기 위 한 교활한 자들의 불경스러운 공상은 피해야 한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저는 지각할 수 있는 형태의 어법과 고전적인 신앙의 단순성과 순수성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외에는 저의 열정을 어디에도 쏟지 않았습니다. 그 고전적 인 신앙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뒤를 이은 우리의 경건한 선진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것이며, 이 저작에서 제가 최대의 역량으로 변질되지 않고 그대로 보 존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물론 저는 이 저작이 많은 사람들의 구미를 만족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즉 지금이 대단히 풍요로운 시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들은 옛 진리를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고 기묘하고 현대적인 사고 외에는 어떠한 것도 존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독단 속에서 현명하고 자신 의 사사로운 견해를 소중하게 여기되 그것이 마치 진리의 표준인 것처럼 여 깁니다. 무지한 자들 앞에 펼쳐진 진리의 더 탁월한 빛과 더 심층적인 검증대 의 꾸밈 아래에서 ( sub pretextu ) 결국 전해져 온 것들은 해체되고 좋은 규정들은 파괴되고 자신의 사견과 결정만이 존중될 것입니다. 그들은 예언의 유사물을 시중드는 것에 관심을 쏟으면서 마치 자신은 건강한 정신 상태 속에 있는 것 처럼 자신과 다른 사람들은 골이 비었으며 무지하고 구시대적 형태에 노예적 인 집착을 보인다고 주장하되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악함에 근거하여 파괴하고 무지한 것으로 치부하 는 것을 저는 진심으로 칭송의 특별한 근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오래된 것 들은 가장 진실된 것이기 때문에, 특히나 신적인 것들에 대한 논의에서 새로 운 것이 적다는 사실보다 더 좋은 표지에 대한 진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런 논의에서는 오래된 것이 최고이며 으뜸가는 고대성을 향해 소급되면 될수 록 좋은 것입니다. 길이 없는 고지와 벼랑으로 인도하는 새로운 경로를 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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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서 잘 알려지고 잘 다져진 길을 멸시하는 자들이 언제나 위태로운 방황 의 길로 빠진다는 사실은 지극히 슬픈 경험들을 통해 확인된 것입니다. 저는 진리를 조명하고 성경을 탐구하기 위해 혜안을 발휘함에 있어서 특별 한 천재성을 보이며 하나님이 주신 빛나는 재능을 정당하게 발휘하는 분들의 성실을 멸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합당한 칭찬을 고의 로 빼앗거나 그들이 제공하는 유익을 일부러 거절하는 것은 그 놀라운 재능 의 저자이신 하나님께 대놓고 망은을 저지르는 셈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실상은 너절하고 유해한 간교함 속에서 그들은 거절되고 기발한 교리들은 교 회에 주입되어 우리의 선진들이 마치 몽롱한 안개와 그림자 속에서 살았으며 그들 스스로는 자신들의 오류에서 종교를 정화시킬 수 없었던 것처럼 여겨지 고 있습니다. 이는 진실로 그렇게 위대한 분들의 명성을 훼손하는 것이며 종 교에도 치명적인 일입니다. 이는 경건한 귀를 가진 자들이 견딜 수 없는 일입 니다. 한번 기발함 때문에 어떤 책들을 천거해 보십시오. 저의 책을 정당화할 요 량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열성을 다해 새로운 어떤 것, 하나 님의 말씀에 이질적인 것, 우리의 교회에서 수용된 공적인 형식에서 멀어진 것이 저의 책에 포함되는 것을 피하고자 했으며, 가장 저명하고 검증된 신학 자들이 확증해 주지 않은 어떤 내용도 도입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저는 이 소략한 저작에 앞으로 어떤 칭송이 주어질 것으로 기대하지 않고, 그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이 저의 노고로 이루어진 이 저 술을 있는 그대로 진지하게 숙고해 준다면,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를 적절히 섬길 수 있다면 만족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어떤 열매가 맺는다면 그 것은 진리를 조명하고 성도들을 온전히 세우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서일 것입니다. 만약 이 저작의 주요한 부분이 당신에게 무익하지 않고 명백하게 무용하지 않다면 ( 그 부분이 무익하고 무용한 것이라고 제가 지각하게 된다면 공적으로 선보이는 것이 내키 지 않겠지만 )

저는 더 활기차게 다른 부분으로 전진할 것이고 선하신 하나님과 함

께 이 일들을 수행해 나갈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저에게 능력을 주시고 수 명을 연장시켜 주셔서 제가 더 민첩하게 믿음을 또 다시 전수하는 것이 하나 님께 합당하게 보인다면 말입니다. 저도 인간이고 인간의 한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의 입 에서 언급된 어떤 것들이 만약 우리 믿음의 규범인 성경과 상응하지 않는다 면, 저는 그것이 아예 발화되지 않기를 바라며 나아가 지탄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당신이 이 책에 호의를 보이고 나의 오류들에 대해 관대하다면 이 말을 들이시오. “만약 당신이 이것보다 더 올바른 것을 알고 독자들을 위한 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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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면, 총명한 벗들이여, 나누시라. 그렇지 않다면 나와 함께 이것을 즐기시 라”( Horace, Epistles , 1.6.67~68 ). 진리와 평화의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진리와 사랑 안에서 살게 하시기를, 그리고 우리 모두가 믿음의 통일성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의 통일성에 이르러 능력 안에서 온전하게 되고 그리스도 예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때 까지 날마다 머리되신 그분 안에서 자라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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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주제

신학

질문 1. “신학”이라는 말은 기독교 학교에서 사용될 수 있는가? “신 학”은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 “신학”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정당하다 1. 철학자 ( 아리스토텔레스 ) 가 의도했던 것처럼 언어는 사물의 표상 ( ‘튀포이’ ) 이기 때문에 정확한 방법론의 준칙에 따라 무엇보다 “이름들을 먼저 조사하기”( ‘프 로톤 엑세타제인 타 오노마타’ ),

즉 단어들의 용법과 의미를 먼저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

듯, 우리가 신학 그 자체에 다가가기 전에 “신학”이라는 말에 먼저 주의를 기 울이는 것이 마땅하다. 사실 “신학”은 그것의 대상을 정당하고 확실하게 표명 하는 기술적인 용어로서 존속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의 모든 사 람에 의해 수용되고 있는데 이런 일반적인 용례에 비추어 본다면, 위에 제기 된 질문이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신학”이라는 용어가 성경에 등장하지 않고 이방인의 거짓된 체계를 암 시하는 말로 활용되어 왔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 용어를 싫어하고 오히려 성경에서 도출된 다른 말을 사용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 람들의 견해에 직면해야 한다. 2. “신학”이라는 말이 성경에 “문자 그대로 새겨진 용어”( ‘엔그라포스 아우토렉세 이’ ) 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이지 않은 용어”( ‘아

그라포스’ ) 인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말씀들”과 같이 “신

학”을 구성하는 단순한 어구들은 성경 ( 롬 3:2; 벧전 4:11*; 히 5:12 ) 에 이따금씩 등장한 다. 이와 같이 소리와 음절로서 성경에 형식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 등장하 는 것도 있고, 의미와 지시된 실체로서 성경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형태로 등장하는 것도 있다. 신학이 비록 성경에 전자의 형태로는 등장하지 않지만 후자의 형태로는 등장한다. 3. 성경 밖에서 교리를 생산하는 것은 불법적인 일이지만, 우리에게 거룩한 진리를 설명하고 오류를 경계하는 일에 적합한 것이라면 성경에서 발견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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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는 말이라 할지라도 때때로 사용하는 것은 적법하다. 이런 목적을 위해 “삼 위성”, “동일 본질”, “원죄”와 같은 말들이 신학자에 의해 사용되어 왔다. 4. 비록 이방인이 “신학”이라는 용어를 남용하여 그들의 그릇된 체계를 가 리키려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악하고 그릇된 의미를 부여한 그 용어 를 “우리의 참되고 구원적인 가르침”에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 는 않는다. 이방인들 중에서 거짓되고 가상적인 신을 가리켰던 “하나님”과 세 속적인 집회에 적용되던 “교회”라는 용어들이 성경에서 참되신 하나님과 성 도들의 무리를 가리키기 위해 더 온당한 의미에서 사용되는 것처럼, 헬라어 적 근원을 가진 “신학”이라는 용어도 이방인의 학교에서 거룩한 용도로 전환 되어 사용된다. 이는 마치 이집트의 물품이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거룩한 목 적에 이바지한 것과 마찬가지다. 5. 우리는 성경에 천상적인 학문을 가리키는 다양한 유사어가 있음을 부인 하지 않는다. 이는 천상적인 학문이 “비밀한 지식”( 고전 2:7 ), “바른 말씀들의 형 태”( 딤후 1:13 ), “경건에 이르는 진리의 지식”( 딛 1:1 ), “교리”( 딛 1:9 ), 그리고 다른 용 어들로 명명되고 표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 이라는 용어는 용납될 수 있고 용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신학”은 용법의 역사도 장구하고 우리의 구원적인 지식을 가장 잘 표현하는 최적의 용어이기 때문이다. 6. “신학”이라는 용어가 이방인에 의해 사용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신에 대해서 탁월하게 논하고 신들의 숭배를 확립하고 신들의 탄신일, 결혼, 출산, 통치 및 성취를 제시한 사람들을 “신학자”라 불렀고 그들의 지식을 “신학”이 라 불렀기 때문이다 ( Lactantius, The Wrath of God 2 [FC 54:85~88]; Clement of Alexandria, Stromata 3.3 [ANF 2:384; PG 8:1119~1120]; Isidore, Etymologarium 8.6.18 [PL 82:307]; Aristotle, Metaphysics , 3.4.9 [Loeb, 1:126~127] ).

용어의 사용 7.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신학”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의 말씀”( ‘데우 곤’ ) 을

일부 가리키고 “하나님에 관한 말씀”( ‘로곤

페리 투 데우’ ) 을

일부 가리키는

부적합한 방식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에 관한 말씀” 모두를 가리키 는 적합한 방식으로 활용된다. 두 번째의 방식이 적합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 님에 의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에 대해 언명할 수 없기에 당연히 “하나님의 말 씀”과 “하나님에 관한 말씀”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토마 스 아퀴나스가 절묘하게 표현했던 것처럼 “신학은 하나님이 가르치고 하나님 을 가르치고 하나님께 인도하는 것”( Theologia a Deo docetur, Deum docet, et ad Deum ducit, Summa Theologiae , I.i.7 )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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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듯이, 근원에서는 하나님에 의하며, 대상에서는


하나님에 관하여 수행하며, 목적에서는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께 이르는 것이 신학이다. 이러한 개념화는 신학의 이중적인 원리를 포괄하는데, 하 나는 존재 원리 ( principium

essendi ) 로서

하나님 자신이며 다른 하나는 인식 원

리 ( principium cognoscendi ) 로서 하나님의 말씀이다. 8. “신학”이라는 용어는 다시 학자들에 의해서 세 가지의 방식으로 활용 된다. (1) 넓은 활용, (2) 엄밀한 활용, (3) 적정한 정도의 의미에 따른 활용. 첫 번째 방식은 형이상학 분야에 적용되는 것이며, 일례로서 아리스토텔레 스는 신학을 제1의 철학 ( primus 1:296~297]과 11.7.9 [Loeb, 2:86~87] ).

philosophia ) 이라

명명했다 ( Metaphysics ,

6.1.10~11 [Loeb,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론적인 철학을 물리학적 철

학, 수학적 철학, 신학적 철학으로 구분한다. 두 번째 방식은 교부들이 “신학” 이라는 말로 특별히 기독교의 가르침 중에서 그리스도 신성을 다루는 부분 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런 방식에 입각하여, 요한은 “말씀의 신성”( ‘텐 투 로구 데오 테타’, 계 1:2 ) 을

엄격하게 강조했기 때문에 특별히 “신학자”로 명명되고, 경건한

교부들 중에서는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가 신학자의 이름을 취하는데 이는 그가 다양한 연설에서 그리스도 신성을 논증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하여 교부들은 그리스도 신성에 대한 가르침에 해당하는 “신학”( ‘데올로기아’ ) 과 그의 성육신에 대한 가르침에 해당하는 “경륜”( ‘오이코노미아’ ) 사이를 구분했다. 신학과 경륜에 의한 “예수의 신학화”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논구하는 것 을 의미한다 ( 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 5.28 [FC 19:343; PG 20.512]; Basil the Great, Adversus

Eunomium 2 [PG 29.601]; Gregory Nazianzus, Oration 31.26, “On the Holy Spirit” [NPNF 2, 7.326; PG 36.161], Oration 38.8, “On the Theophany” [NPNF 2, 7.347; PG 36.320] ).

세 번째로, 가장 적합한 방식의

신학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을 위해 계시하신 신 적인 것들에 대한 가르침의 총화 또는 체계”를 가리킨다. 9. “신학”이라는 용어가 이방인과 이단들의 그릇된 신학에 적용될 경우에 는 남용이고 미심쩍은 사용이며, 우리가 설명할 수 없이 가장 완전한 방식으 로 하나님을 알면서 그 안에 존재하여 지각해야 하는 무한한 본래적 지혜나 그리스도 신학이나 천사적인 신학을 가리키는 경우에는 적합하긴 하지만 언 어가 그 자체의 위엄에 이르지는 못하기에 약간 아쉬운 사용이며, 자연적 신 학과 초자연적 신학으로 구분되는 이 땅에서의 인간적인 신학에 적용될 경우 에는 더 합당한 사용이라 하겠다.

첫 번째 주제: 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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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 신학의 존재와 구분은 있는가? 신학의 존재는 증명된다 1. 신학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들은 많다. (1) 하나님의 본성과 선하심이 이 것을 증명한다. 하나님은 지극히 선하신 분이기 때문에 최상으로 교통적인 분이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사랑을 통해서 이성적인 피조물에 가 장 적합하고 인간의 본성에 가장 용이하게 교통하는 분이다. (2) 사람들의 일 치된 견해와, 결코 무가치할 수 없는 신지식을 갈구하는 모든 사람의 타고난 성향이 신학의 존재를 증명한다. 이는 비록 사람들이 참된 신학에서 이탈하 여 부끄럽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여전한 신지식 추구가 그 런 신학의 존재를 입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적인 것들을 알고 가르치 는 종교상의 심오한 교리 해설자를 가지지 않을 정도로 야만적인 나라는 발 견되지 않았다. (3) 창조의 목적이 신학의 존재를 증명한다. 이는 하나님이 이성적인 피조물을 만드시되 그들에게 알려지고 그들에 의해 경배를 받으실 의도를 가지고 지으셨고, 신학 없이는 그런 의도가 구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4) 사물의 본성이 신학의 존재를 증명한다. 학문의 구성에 요구되는 두 가 지의 요건은 알려질 수 있는 지식의 대상과 알고자 하는 지식의 주체이다. 즉 알려질 수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가지성이 높은 하나님과, 그에 대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 지성이 부여된 합리적 피조물이 두 가지의 요건이다. (5) 구 원의 필요성이 신학의 존재를 증명한다. 이는 인간이 초자연적 목적을 향하 도록 정해졌기에 필히 그 목적에 이르도록 초자연적 수단이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그 수단은 하나님의 지식을 취하는 믿음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2. 모든 실재가 철학 분야에서 논의되지만, 그들에게 알려질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이 아니라 본성에 따라 그들에게 지각될 수 있는 것들이 논의된다. 본 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계시에 의해서 알려지는 실재들을 취급하는 초자연적 신학의 어떤 선행적 판단도 철학적 대상의 범주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모든 자연적인 실재들이 더 열등한 학문에 종속되어 있지만, 어떤 인간 학문도 도 달하지 못하는 다양한 초자연적 신비들을 가르치는 신학의 필요성은 여전히 소멸되지 않는다. 3. 어떠한 지각도 그것의 완성에 이르는 초자연적 지식을 요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여기에서 지성이 그런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지성은 이성의 이해를 능가하고 지각은 더더욱 미치 지 못하는 초자연적 목적을 향하도록 정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성의 이 런 요구는 도달하지 못한 목적과 목적의 결핍을 가리키는 불완전의 표지이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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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달해야 할 목적을 향하는 능력에서는 완전성을 가리킨다. 4. 형이상학은 자연 질서 속에 있는 모든 학문의 극점이긴 하지만 초자연적 질서에 속한 신학을 더 우등한 것으로 인정한다. 학문은 추상성의 많고 적음 에 따라 구별되고 모든 학문 중에서 형이상학과 같이 질료와 극도로 동떨어 진 학문은 모든 것들보다 뛰어난 것이라는 철학자의 표현은 자연 질서에 속 한 모든 보편적인 것들의 주변만 맴도는 지극히 이론적인 학문에 대한 언급 이다. 이 학문들은 그것의 고유한 대상을 마음의 추상으로 구성하고, 우수성 은 탁월한 추상을 구가하는 학문에 수여된다. 그러나 이것은 이론과 실천이 혼합되어 있고, 자연 질서에 속한 모든 것들보다 월등하고, 어떤 추상에 의해 구성된 대상이 아니라 계시에 의해 형성되고 구별된 대상을 가진 신학에는 적용될 수 없는 내용이다.

신학의 다양한 유형 5. 신학은 다양한 유형에 따라 참된 신학과 거짓된 신학으로 구분되는 경향 이 있다. 거짓된 신학, 모호하게 이렇게 불리는 신학은 하나님과 그에 대한 경 배에 있어서 그릇된 교리를 일컫는 것으로서 그 종류는 다양하다. 첫 번째 유 형은 이방인의 신학이며, 그것의 다양성이 증거되고 있다. 플라톤의 경우는 『국가』 2권에서 이방인의 신학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상징적인 신학 또는 신화적인 신학이며, 이것은 이방인들, 특히 이집트 사람들이 신적인 신 비를 가르치곤 하였던 기호들의 혼돈스러운 은닉으로 둘러싸인 것을 일컫는 다. 둘째는 철학적인 신학 또는 논증적인 신학이며, 이것은 신적인 것들에 대 한 사색적 작업을 일컫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성』 6권 5장과 8권 1장 ( FC 8:314~317, 14:21~22 ) 에 등장하는 마르쿠스 바로 ( Marcus Varro ) 는 이방인 의 신학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무대와 극장을 위한 시인들의 신화적 인 신학 또는 우화적인 신학이다. 둘째는 각 도시와 국가의 관습을 따라 사원 에서 공적으로 실행되는 사제와 국민의 정치적인 신학 또는 시민적인 신학이 다. 셋째는 학교에서 학습되는 철학자의 물리적인 신학 또는 자연적인 신학 이다. 유스티누스 ( Justin Martyr, Hortatory to the Greeks 스 ( Clement of Alexandria, Stromata

3 [ANF 1:274; PG 6:247~248] ) 와

5:8 [ANF 2:454~457] ) 는

클레멘

신의 본성과 신적인 것들에 대

한 우화적인 논의 때문에 시인들을 “신학자”로 불렀으며 철학자들 및 사제 들도 그렇게 불렀다. 그러나 신들이 출생을 했다는 그들의 생각 때문에 그들 이 논하는 신학의 주된 부분은 신들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다. 두 번째 유형 은 유대인과 무함마드 추종자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를 공적으로 거부하는 불 신자들과 이단자들, 또는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첫 번째 주제: 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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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대립되는 교황주의, 소키누스주의, 그리고 다른 이단들의 신학을 일컫는다. 그들의 신학은 비록 어느 정도 진리를 가지고 있 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이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근본적인 부분들에 서 부패했기 때문에 이에 근거해서 호칭을 붙이자면 거짓된 신학이라 불리는 것이 합당하다. 6. 참된 신학은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첫째는 무한하고 조성되지 않은 신 학이다. 이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자기 지식 ( 마 11:27 ) 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하 나님 자신만이 알려지는 대상이고 알려진 지식이고 동시에 아는 주체이다. 이는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 우리에게 알리려고 작정하신 신학이며 사람들은 이것을 원형 ( archetypal ) 이라 일컫는다. 둘째, 유한하고 조성된 신학이다. 이는 무한한 원형적 신학의 모상이며 모형이다. 즉 하나님과 신적인 것들에 대한 피조물의 지식이요, 지고한 지식에 의해 형성되고 지성적인 피조물과 교통된 지식이다. 지식 취득 방식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영혼과 위격적 연합을 통한 것으로서 “연합의 신학”( theologia unionis ) 이 있으며, 믿음을 통해 살아가지 않고 관조를 통해 살아가는 천사들과 지복에 이른 영혼들의 천상적인 통찰을 통해 얻어지는 “통찰의 신학”( theologia visionis ) 이 있으며, 목적지에 아직 도달하지 않 은 나그네에 대하여 이루어진 계시를 통해 얻어지는 “계시의 신학” 또는 스 타디움 신학 ( theologia revelationis seu stadii ) 이 있다. 7. 두 번째로 계시의 신학은 다시 자연적 신학 ( theologia naturalis ) 과 초자연적 신 학 ( theologia supernaturalis ) 으로 구분된다. 자연적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주 변을 맴도는 것으로서 각자에게 심겨진 보편적인 개념에서 오는 생득적 신 학과 피조물이 추론적인 방식으로 얻는 습득적 신학을 일컫는다. 습득적 신 학은 타락하기 이전의 아담 안에서는 아름다운 것으로 있었으나 타락한 인간 안에서는 극도로 무질서해졌다. 초자연적 신학은 우리의 이성을 초월하는 것 이며 하나님에 의해 새로운 은혜의 빛 속에서 우리에게 교통된 것으로서, 하 나님이 홍수 이전과 이후의 족장들 모두에게 보이시고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하신 구약에서, 또는 그리스도 예수에 의한 것 ( 요 1:18 ) 이요 그리 스도 예수에 대한 것 ( 행 1:1; 고전 2:2 ), 즉 그리스도 예수를 저자와 대상으로 가지 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기독교적 ( christiana ) 이라고 불리는 신약에서 지시된 최 고선의 향유에 우리가 이르게 되는 신학이다. 이 신학이 엄밀한 의미에서 계 시적인 것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 신학의 원리가 거룩한 계시에 의해 엄밀 하게 시작되고, 피조물에 의해서가 아니라 말씀에 의해서 수행되는 신학이기 때문이다. 8. 조직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초자연적 신학은 성경에서 도출된 하나님과 신 적인 것들에 대한 구원적인 교리들을 어떤 방법에 따라 세부적인 교훈들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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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신학 강요 1 발 행 일 | 2017년 11월 1일 지 은 이 | 프란키스쿠스 투레티누스 옮 긴 이 | 박문재·한병수 편 집 인 | 신상균 디 자 인 | 김광휘 펴 낸 이 | 김은주 펴 낸 곳 | 부흥과개혁사 판권 Ⓒ부흥과개혁사 2017 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6길 9-20, 2층(서교동) 전화 | Tel. 02) 332-7752 Fax. 02) 332-7742 홈페이지 | http://rnrbook.com e-mail | rnrbook@hanmail.net ISBN 978-89-6092-483-3 978-89-6092-482-6(세트) 등록 | 1998년 9월 15일 (제13-548호)

값 5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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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키스쿠스 투레티누스는 “개혁교회의 교리에 대한 최고의 해설자”(새뮤얼 알렉산더), “놀 라운 종합자”(로저 니콜), “제네바의 개혁주의자들 가운데 우뚝 솟은 인물”(레온 모리스)이라

었는데, 투레티누스가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30년간 가르친 사역의 열매였다. 한때 에드워드 영이 “성경에 대한 장엄한 논문”이라고 묘사한 이 책은 원어인 라틴어를 읽을 수 없는 이들에 게는 사실상 숨겨진 보화와 다름없었다. 1992년에 영어판이 출간되고, 이제 한국어판이 출간 되면서 누구나 이 보화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변증신학의 목표는 잘못된 교리를 논박하면서 진리를 드러내고 굳게 세우는 것인데, 이 책은 특히 로마 가톨릭, 아르미니우스주의, 소키누스주의 신학 사상에 맞서서 성경에 대한 개혁주 의의 이해를 제시한다. 세 권 중 첫 권인 이 책에서 투레티누스는 신학, 성경, 삼위일체, 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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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번역은 개혁교회에, 그리고 개혁신학의 역사와 발전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에게 주목할 만한 사건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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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리처드 개핀 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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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란키스쿠스 투레티누스 (Francis Turretin, 1623~1687) 이탈리아 출신의 스위스 개혁신학자로서, 17세기 개 혁파 정통주의 신학을 종합하고 완성한 인물이다. 투 레티누스는 제네바 아카데미와 레이든, 위트레흐트, 파리, 소뮈르 등에서 수학하였고, 다시 제네바로 돌 아와 1648년에 제네바 교회의 목회자가 되었다. 1653 년에는 제네바 아카데미의 교수로 임명되어 죽기 전 까지 철학과 신학을 가르쳤다. 특히 투레티누스는 로

Francis Turre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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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박문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및 전문대학원에서 학업을 마치고, 비블리카 아카데 미아에서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등 고전어를 수

“‌ 투레티누스가 이룬 참으로 놀라운 성취에 대해 다시금 감동을 받는다……투레티누스 안에 매우 깊은 목회 적이고 헌신적인 부담과……놀랍도록 덕을 세우는 가르침이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다.” _존 프레임 “‌ 신학 문헌에 있어서 엄청난 기여다……사람은 거장을 읽는 일에서 결코 실수하지 않는다. 프란키스쿠스 투

이 책은 고대 교부들로부터 중세 스콜라 신학자

변증신학 강요

고 불려 왔다. 『변증신학 강요』(Institutio Theologiae Elencticae)는 1679~1685년에 처음 출판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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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레티누스는 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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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레티누스의 축약적이면서도 얽히고설킨 문체 및 매우 전문적인 논의와 기꺼이 씨름하는 사람은 신화를 극복하고 개혁신학에서 투레티누스의 중요성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_리처드 멀러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그리고 사회, 정치, 교육 등 문화적 이슈들을 종 교개혁의 역사적 전통을 따라 “오직 성경”의 원

프란키스쿠스 투레티누스 지음

리를 기반으로 진지하게 분석하고 비평적으로 대

박문재·한병수 옮김

화함으로써 유기적 연관성과 논리적 통일성을 지

변증신학 강요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프란키스쿠스 투레티누스 지음 박문재·한병수 옮김

닌 교회의 교리를 정교하고 선명하게 제시했다.

학하였다. 수많은 책을 번역하였는데, 대표적인 역서 로는 라틴어 원전을 번역한 칼빈 주석  (  『공관복음』, 『요 한복음』, 『고린도전후서』 ), 매튜 풀 청교도 성경주석, 매

튜 헨리 주석, 스펄전 설교 전집, 톰 라이트의 “기독 교의 기원과 하나님의 문제” 시리즈(이상 크리스천다이 제스트) 등이 있다.

한병수 미국 미시간 주에 있는 칼빈 신학교에서 역사신학 전 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전주대학교 기초 융합교육원 교수와 교목으로 기독교를 가르치고 있으 며, 전주대학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 서론』, 『신학의 통일성』 (이상 부흥과개혁사), 『기도란 무엇인가』 (SFC) 『기독교란 무

ISBN 978-89-6092-483-3 ISBN 978-89-6092-482-6(세트) www.rnrbook.com 값 50,000원

엇인가』 (복있는사람) 등이 있고, 다수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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