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BECNT 누가복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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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NT 시리즈에 대한 추천의 글 베이커 신약 주석은 신약 성경의 원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자들이 헬라어 본문에 대한 세밀한 주석적 설명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독자와 친밀한 주석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 I. 하워드 마셜, 애버딘 대학교

나는 이 주석서를 집필하면서, 머릿속에 한 가지 비유를 떠올리곤 했다. 곧‘여행 안내자’ 에 대한 비유다. 어떤 사람이 높은 산에 위치한 유적지를 올라갈 때, 거대한 도시를 관광 할 때, 또는 어떤 아름답고 웅장한 교회를 방문할 때, 여행 안내자가 인도하는 경우가 있 다. 이 여행 안내자는 방문객에게 길을 안내해 준다. 그리고 관광하고자 하는 장소에 도착 하면, 그곳의 역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이전에 그 장소를 보고 나서 말한 것이나, 경험한 것에 대해서 소개해 준다. 그래서 관광객이 그 관광 장소 에 대한 세부 사항을 잘 인식하고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나는 이 주석서를 쓰면서, 바로 이와 같은 역할을 하려고 시도했다. 내가 주요한 목표로 삼는 것은 다음과 같다. 곧, 누가 복음의 본문에 대해서 논의하면서, 그 내용을 마가복음 및 마태복음의 내용과 비교하는 것이다. 이것 이외에도 나는 누가복음에 대한 많은 학자들의 다양한 관점들에 대해서 다 루려고 노력했다. 그 학자들의 어깨 너머로 무엇인가 의미 있거나 중요한 것을 바라볼 때 마다, 나는 그것에 대해서 충실하게 언급하려고 시도했다.

- 저자 서문 중에서 지음

대럴 벅( Darrell L. Bock)

대럴 벅은 애버딘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댈러스 신학교의 신약 연구 교수로 가르치고 있 다. 대럴 벅은 다수의 책의 저자이자 편집자인데, 대표작으로는 Blasphemy and Exaltation in Judaism

and the Final Examination of Jesus,『누가복음-NIV 적용 주석』 ,『복음서를 통해 본 예수』등이 있다.

옮김

대럴 벅 지음 신지철 옮김

신지철

총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트리어 대학교 고전문헌학부에서 수학했으며 뮌헨 대학교 개신교 신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입문』 (이상 부흥과개혁사) 등이 있다. 현재 베리타스 성경연구원 원장 및 부흥과개혁사 의 전문 번역 위원으로 섬기고 있다.

대럴 벅

지음 신지철 옮김

학부에서 신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아가페출판사 편집장을 역임했으며『오픈 성경』및『열린 성경』 (아가 페출판사)의 기획, 편집, 집필 등을 주관했다. 번역서로는『왜 우리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사랑하는가』 , ISBN 978-89-6092-323- 2 ISBN 978-89-6092-258-7(세트) www.rnrbook.com 값 55,000원


목차

시리즈 서문 - 6 저자 서문 - 9 약어 소개 - 13 서론 - 18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 87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1. 세례 요한과 엘리야(1:17)

1290

119

2. 수리아 총독 구레뇨가 실시한 인구 조사(2:1~2)

1293

383

3. 세례 요한의 사역 기간(3:1~2)

1304

4. 공관복음서의 자료들 및 상호 관계

1309

5.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제시된 예수의 족보(3:23~38)

1314

6. 인자에 대한 아람어 표현 및 누가복음에 언급된 인자의 개념(5:24)

1322

91

B. 예수의 어린 아이 시절에 대한 이야기: 선구자 세례 요한과 약속의 성취(1:5~2:40) C. 예수가 자신에 대한 이해를 계시함(2:41~52)

II. 사역 준비: 하나님에 의해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음(3:1~4:13) • 407 A. 세례 요한: 오실 그이의 선구자 (3:1~20)

411

B. 예수: 오실 그이 (3:21~4:13)

485

III. 갈릴리 지역에서의 사역: 예수가 자신을 계시함 (4:14~9:50)

특별 해설

7. 누가복음의 평지 설교: 마태복음의 산상 수훈과의 관계 및 신학적, 윤리적 기능(6:20~49) 1332 8. 예수의 비유

1351

9. 마가복음 6장 45절~8장 26절에 대한 누가복음의‘대(大)생략’ (9:18)

1357

10. 인자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의 진정성 및 수난에 대한 예고(9:22)

1360

• 563

A. 예수의 사역에 대한 개관 (4:14~44)

569

B. 예수가 제자들을 모음 (5:1~6:16)

649

C. 예수의 가르침: 평지 설교 (6:17~49)

791

D. 믿음에 대한 처음 고백 및 기독론과 관련된 질문들 (7:1~8:3)

905

E. 믿음으로의 초대, 기독론과 관련된 계시와 질문들 (8:4~9:17)

1027

F.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신앙고백과 제자도에 대한 가르침 (9:18~50)

1199

참고문헌 - 1365


목차

시리즈 서문 - 6 저자 서문 - 9 약어 소개 - 13 서론 - 18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 87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1. 세례 요한과 엘리야(1:17)

1290

119

2. 수리아 총독 구레뇨가 실시한 인구 조사(2:1~2)

1293

383

3. 세례 요한의 사역 기간(3:1~2)

1304

4. 공관복음서의 자료들 및 상호 관계

1309

5.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제시된 예수의 족보(3:23~38)

1314

6. 인자에 대한 아람어 표현 및 누가복음에 언급된 인자의 개념(5:24)

1322

91

B. 예수의 어린 아이 시절에 대한 이야기: 선구자 세례 요한과 약속의 성취(1:5~2:40) C. 예수가 자신에 대한 이해를 계시함(2:41~52)

II. 사역 준비: 하나님에 의해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음(3:1~4:13) • 407 A. 세례 요한: 오실 그이의 선구자 (3:1~20)

411

B. 예수: 오실 그이 (3:21~4:13)

485

III. 갈릴리 지역에서의 사역: 예수가 자신을 계시함 (4:14~9:50)

특별 해설

7. 누가복음의 평지 설교: 마태복음의 산상 수훈과의 관계 및 신학적, 윤리적 기능(6:20~49) 1332 8. 예수의 비유

1351

9. 마가복음 6장 45절~8장 26절에 대한 누가복음의‘대(大)생략’ (9:18)

1357

10. 인자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의 진정성 및 수난에 대한 예고(9:22)

1360

• 563

A. 예수의 사역에 대한 개관 (4:14~44)

569

B. 예수가 제자들을 모음 (5:1~6:16)

649

C. 예수의 가르침: 평지 설교 (6:17~49)

791

D. 믿음에 대한 처음 고백 및 기독론과 관련된 질문들 (7:1~8:3)

905

E. 믿음으로의 초대, 기독론과 관련된 계시와 질문들 (8:4~9:17)

1027

F.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신앙고백과 제자도에 대한 가르침 (9:18~50)

1199

참고문헌 - 1365


누가복음 1

시리즈 서문

각 본문을 이전 및 이후 본문과 관련시킴으로써 가능한 한 분명하게 문맥 속

│시리즈 서문│

에서 본문의 역할을 파악하도록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책임 있는 주석이라면 출처가 어디든 막론하고 최근의 학문 적 연구 결과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주의 신학 전통의 배 경 속에서 이런 시도를 하게 되면 얼마간 도전도 받게 되고, 과거의 결과가 반 드시 추천할 만한 견해가 아닌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 복음주의 학 자들은 비판적인 학문을 참된 교류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단순히 깎아내리려는 목적으로만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다른 경우에는 이 교류 가 도를 넘어 신학적 차이들이 무시되거나 억압되어 비판적인 학문과 동화되 는 수준에 이르게 되고, 그리하여 결국은 근본적으로 다른 출발점을 갖고 시 작한 연구의 결과가 아무 차이가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이 시리즈에 주석을 기고한 학자들은 이런 함정의 마수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한편으로, 그들은 전통적인 견해들을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간주하 지 않고, 성경 본문이 이 견해를 지지하든지 지지하지 않든지 간에, 본문을 정 확히 설명하는 데 전념한다. 다른 한편으로, 오랫동안 고수되어 온 견해에 대 BECNT로 알려져 있는 베이커 신약 성경 주석의 핵심 관심사는 잘 아는 복

하여 말한다면, 그들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고 있는 한, 단순히 인기 있는 이

음주의 사상 체계 안에서 학문적 깊이와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 주석적인 세

론을 취하기 위하여 이 견해를 쉽게 포기하거나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부 사실과 전체에 대한 안목, 비판적인 문제들과 신학적인 깨달음을 결합시키

더 중요한 것은 기고자들이 성경의 신빙성과 본질적 통일성에 대한 믿음을 공

는 주석을 제공하는 데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본문에 대한 깊이 있고

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 교회 일치 신조들이나 16세기의 종교개혁에

독립적인 검토에 주목하는 학자에서부터 견고하지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강

서 비롯된 다양한 가르침들과 같이 역사적으로 형성된 기독교 교리를 성경에

해를 갈망하는, 생각 있는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은 독자의 관심을

대한 적법한 이해에서 나오는 것으로 판단하고, 따라서 이 교리를 더 깊은 성

이끌어 내기를 바란다.

경 해석을 위한 적절한 뼈대를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의심할 것 없이 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석의 핵심 목적은 유일하게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

런 출발점에 따라 연구를 하게 되면, 때때로 본문에 대하여 생소한 견해를 낳

씀인 성경에 대한 설교와 강해에 직접 연루되어 있는 목사와 다른 사람들의

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편견

필요를 채워 주는 데 있다. 이 점이 이 시리즈 주석의 직접적인 특징이다. 예

없이 본문에 접근하는 저자들은 절대로 이런 위험에 빠질 우려가 없다고 말하

를 들어 진지한 성경 해설자는 난해한 질문들은 다루지 않는 피상적인 주석에

는 것을 우리는 거부한다.

의존할 수 없고, 또는 일어날 수 있는 문제란 문제는 모두 포함하려고 애쓰는

따라서 우리는 신학적 전제들 (어쨌든 주석자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을 성경 해석

백과사전과 같은 주석에도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의미와 직접

의 장애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신학적 진공 상태에서 사도 바울을 이해

관련되어 있는 문제들 (비록

하기를 바라는 주석자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그의 전체 작품에 대한 철학적 준

도)에

6

선별된 전문적인 사실들은 추가 주석 부분에서 따로 다루기는 해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이 주석의 목표다.

거 틀 없이 또는 그의 사상을 상황 속에 의미 있게 적용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또한 주석 문제들을 그 자체의 유익을 위하여 다루는 것, 즉 전체적인 주

하는 이차 철학적 범주들에 의존하지 않고 해석하려고 시도하는 것과 같은

장의 취지에서 비교적 벗어나 있는 문제들을 다루는 것은 특별히 피하려고

오류에 쉽게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 시리즈에 주석을 기고한 학자들은

노력했다. 나아가 한 문단을 생각의 주요 단위로 다루는 강해를 위하여 한 절

다양한 신학적 전통에 속해 있는 자들이고, 그들은 모두 이 일반 원리들을 적

씩 강해하는 강해 방법을 포기하는 것도 (개별 저자들의 재량에 따라 ) 이 노력의 일

절히 적용하는 데 있어서 똑같은 견해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강조되어

환이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주석들은 주장의 전개 과정을 강조하고, 명백히

야 한다. 결론적으로 진정 중요한 것은 이 시리즈가 원래의 본문을 정확하게, 7


누가복음 1

시리즈 서문

각 본문을 이전 및 이후 본문과 관련시킴으로써 가능한 한 분명하게 문맥 속

│시리즈 서문│

에서 본문의 역할을 파악하도록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책임 있는 주석이라면 출처가 어디든 막론하고 최근의 학문 적 연구 결과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주의 신학 전통의 배 경 속에서 이런 시도를 하게 되면 얼마간 도전도 받게 되고, 과거의 결과가 반 드시 추천할 만한 견해가 아닌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 복음주의 학 자들은 비판적인 학문을 참된 교류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단순히 깎아내리려는 목적으로만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다른 경우에는 이 교류 가 도를 넘어 신학적 차이들이 무시되거나 억압되어 비판적인 학문과 동화되 는 수준에 이르게 되고, 그리하여 결국은 근본적으로 다른 출발점을 갖고 시 작한 연구의 결과가 아무 차이가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이 시리즈에 주석을 기고한 학자들은 이런 함정의 마수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한편으로, 그들은 전통적인 견해들을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간주하 지 않고, 성경 본문이 이 견해를 지지하든지 지지하지 않든지 간에, 본문을 정 확히 설명하는 데 전념한다. 다른 한편으로, 오랫동안 고수되어 온 견해에 대 BECNT로 알려져 있는 베이커 신약 성경 주석의 핵심 관심사는 잘 아는 복

하여 말한다면, 그들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고 있는 한, 단순히 인기 있는 이

음주의 사상 체계 안에서 학문적 깊이와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 주석적인 세

론을 취하기 위하여 이 견해를 쉽게 포기하거나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부 사실과 전체에 대한 안목, 비판적인 문제들과 신학적인 깨달음을 결합시키

더 중요한 것은 기고자들이 성경의 신빙성과 본질적 통일성에 대한 믿음을 공

는 주석을 제공하는 데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본문에 대한 깊이 있고

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 교회 일치 신조들이나 16세기의 종교개혁에

독립적인 검토에 주목하는 학자에서부터 견고하지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강

서 비롯된 다양한 가르침들과 같이 역사적으로 형성된 기독교 교리를 성경에

해를 갈망하는, 생각 있는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은 독자의 관심을

대한 적법한 이해에서 나오는 것으로 판단하고, 따라서 이 교리를 더 깊은 성

이끌어 내기를 바란다.

경 해석을 위한 적절한 뼈대를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의심할 것 없이 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석의 핵심 목적은 유일하게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

런 출발점에 따라 연구를 하게 되면, 때때로 본문에 대하여 생소한 견해를 낳

씀인 성경에 대한 설교와 강해에 직접 연루되어 있는 목사와 다른 사람들의

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편견

필요를 채워 주는 데 있다. 이 점이 이 시리즈 주석의 직접적인 특징이다. 예

없이 본문에 접근하는 저자들은 절대로 이런 위험에 빠질 우려가 없다고 말하

를 들어 진지한 성경 해설자는 난해한 질문들은 다루지 않는 피상적인 주석에

는 것을 우리는 거부한다.

의존할 수 없고, 또는 일어날 수 있는 문제란 문제는 모두 포함하려고 애쓰는

따라서 우리는 신학적 전제들 (어쨌든 주석자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을 성경 해석

백과사전과 같은 주석에도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의미와 직접

의 장애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신학적 진공 상태에서 사도 바울을 이해

관련되어 있는 문제들 (비록

하기를 바라는 주석자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그의 전체 작품에 대한 철학적 준

도)에

6

선별된 전문적인 사실들은 추가 주석 부분에서 따로 다루기는 해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이 주석의 목표다.

거 틀 없이 또는 그의 사상을 상황 속에 의미 있게 적용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또한 주석 문제들을 그 자체의 유익을 위하여 다루는 것, 즉 전체적인 주

하는 이차 철학적 범주들에 의존하지 않고 해석하려고 시도하는 것과 같은

장의 취지에서 비교적 벗어나 있는 문제들을 다루는 것은 특별히 피하려고

오류에 쉽게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 시리즈에 주석을 기고한 학자들은

노력했다. 나아가 한 문단을 생각의 주요 단위로 다루는 강해를 위하여 한 절

다양한 신학적 전통에 속해 있는 자들이고, 그들은 모두 이 일반 원리들을 적

씩 강해하는 강해 방법을 포기하는 것도 (개별 저자들의 재량에 따라 ) 이 노력의 일

절히 적용하는 데 있어서 똑같은 견해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강조되어

환이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주석들은 주장의 전개 과정을 강조하고, 명백히

야 한다. 결론적으로 진정 중요한 것은 이 시리즈가 원래의 본문을 정확하게, 7


누가복음 1

저자 서문

분명하게 그리고 의미 있게 현대 독자에게 성공적으로 제시하느냐의 여부다.

│저자 서문│

이 주석 시리즈에 속한 다른 주석서들보다 이 누가복음 주석은 세부 사항 들에 대해서 보다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이 주석서가 복음서들에 대한 주석 서들 가운데서 첫 번째로 간행되기 때문에, 저자가 자료에 대한 비평과 역사 와 관련된 질문들에 대해서 다소 융통성을 갖고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졌다“자료의 ( 원천 및 사건들의 역사적 사실성”항목은 작은 글씨로 인쇄되었다. 그래서 성경 본문에 대한 실질적인 주석과 구별되게 했다. 누가복음 주석에 이와 같은 역할을 맡긴 것에 대한 추가 적인 근거에 대해서 이 주석서의 뒷부분에 있는“특별 해설 4” 를 참고하라).

따라서 다른 복음

서들에 대해서 주해하는 저자들은 이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서 보다 선별적으 로 또한 간략하게 다룰 것이다. 독자들에게 추가적인 도움을 주는 것으로서, 각 단락마다 다음 부분을 두드러지게 보이게 하려고 음영 처리를 했다. 곧 각 단락에 대한 서론적인 언급, 구조에 대한 논의다. 헬라어 성경 본문에서 다른 이문 (異文) 은 저자의 번역에서 해당 단어 또는 어구에 반 (半) 괄호 (예,

Gerasenes )

표시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독자가 사

본 문제에 대한 설명을 보도록 강해가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추가 주석’부

성경에 대한 주석서를 집필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가정을 세워 나가는 것과

분을 찾아보게 했다. 자료 표기는 저자 -연대 방식을 사용할 것이다. 이 방식에 따르면, 기본적인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주석서를 집필하는 일을 맡고 나면, 이 일은 당신과

언급이 저자의 성+연도+면수 ( 面數) 로 구성된다. 예를 들면 Fitzmyer 1981:

주석을 집필하는 일을 맡은 이후로, 나의 세 자녀들 (엘리사와 라라와 스티븐) 은 이

297이다. 이 방식에 대한 유일한 예외로는 잘 알려진 참고문헌들이 있다

미 기저귀를 떼었고, 이제 중학교에 다닐 나이가 다가오고 있다. 나의 자녀들

(BAGD, LSJ, TDNT).

은 아빠가 저술하는‘책’ 과 더불어 살아 왔다. 나의 자녀들은 나와 같이 놀이

참고문헌은 책 마지막 부분에 들어 있다.

함께 산다. 또한 이 일은 언제나 당신의 머릿속에 들어 있다. 내가 누가복음

를 하는 것을 많이 단념해야 했다. 또한 집 안에 있을 때면, 나의 자녀들은 가 모이세스 실바

능한 한 조용히 있어야 했다. 그래서 아빠가 방해를 받지 않고, 깊이 사고할 수 있게 해야 했다. 때때로 이것을 위해서 나는 아이들과 협상해야 했다. 또한 어떤 경우에는 아이들에게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자녀들은‘이 프로젝 트’ 에 대해서 잘 이해해 주며, 오랫동안 커다란 인내심을 발휘해 왔다. 오랜 세 월 동안 네 번째‘아이’ (누가복음 주석) 가 가정에 들어와서 자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대해서 나는 내 인생의 동반자이자 친구인 아내 샐리와 세 자녀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나는 너희를 매우 사랑한단다. 그렇다면 이 누가복음 주석은 무엇과 비슷한가? 사람들은 주석서에 다양하 게 반응한다. 나는 이 주석서를 집필하면서, 머릿속에 한 가지 비유를 떠올리 곤 했다. 곧‘여행 안내자’ 에 대한 비유다. 어떤 사람이 높은 산에 위치한 유 적지를 올라갈 때, 거대한 도시를 관광할 때, 또는 어떤 아름답고 웅장한 교 회를 방문할 때, 여행 안내자가 인도하는 경우가 있다. 이 여행 안내자는 방 문객에게 길을 안내해 준다. 그리고 관광하고자 하는 장소에 도착하면, 그곳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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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

저자 서문

분명하게 그리고 의미 있게 현대 독자에게 성공적으로 제시하느냐의 여부다.

│저자 서문│

이 주석 시리즈에 속한 다른 주석서들보다 이 누가복음 주석은 세부 사항 들에 대해서 보다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이 주석서가 복음서들에 대한 주석 서들 가운데서 첫 번째로 간행되기 때문에, 저자가 자료에 대한 비평과 역사 와 관련된 질문들에 대해서 다소 융통성을 갖고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졌다“자료의 ( 원천 및 사건들의 역사적 사실성”항목은 작은 글씨로 인쇄되었다. 그래서 성경 본문에 대한 실질적인 주석과 구별되게 했다. 누가복음 주석에 이와 같은 역할을 맡긴 것에 대한 추가 적인 근거에 대해서 이 주석서의 뒷부분에 있는“특별 해설 4” 를 참고하라).

따라서 다른 복음

서들에 대해서 주해하는 저자들은 이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서 보다 선별적으 로 또한 간략하게 다룰 것이다. 독자들에게 추가적인 도움을 주는 것으로서, 각 단락마다 다음 부분을 두드러지게 보이게 하려고 음영 처리를 했다. 곧 각 단락에 대한 서론적인 언급, 구조에 대한 논의다. 헬라어 성경 본문에서 다른 이문 (異文) 은 저자의 번역에서 해당 단어 또는 어구에 반 (半) 괄호 (예,

Gerasenes )

표시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독자가 사

본 문제에 대한 설명을 보도록 강해가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추가 주석’부

성경에 대한 주석서를 집필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가정을 세워 나가는 것과

분을 찾아보게 했다. 자료 표기는 저자 -연대 방식을 사용할 것이다. 이 방식에 따르면, 기본적인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주석서를 집필하는 일을 맡고 나면, 이 일은 당신과

언급이 저자의 성+연도+면수 ( 面數) 로 구성된다. 예를 들면 Fitzmyer 1981:

주석을 집필하는 일을 맡은 이후로, 나의 세 자녀들 (엘리사와 라라와 스티븐) 은 이

297이다. 이 방식에 대한 유일한 예외로는 잘 알려진 참고문헌들이 있다

미 기저귀를 떼었고, 이제 중학교에 다닐 나이가 다가오고 있다. 나의 자녀들

(BAGD, LSJ, TDNT).

은 아빠가 저술하는‘책’ 과 더불어 살아 왔다. 나의 자녀들은 나와 같이 놀이

참고문헌은 책 마지막 부분에 들어 있다.

함께 산다. 또한 이 일은 언제나 당신의 머릿속에 들어 있다. 내가 누가복음

를 하는 것을 많이 단념해야 했다. 또한 집 안에 있을 때면, 나의 자녀들은 가 모이세스 실바

능한 한 조용히 있어야 했다. 그래서 아빠가 방해를 받지 않고, 깊이 사고할 수 있게 해야 했다. 때때로 이것을 위해서 나는 아이들과 협상해야 했다. 또한 어떤 경우에는 아이들에게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자녀들은‘이 프로젝 트’ 에 대해서 잘 이해해 주며, 오랫동안 커다란 인내심을 발휘해 왔다. 오랜 세 월 동안 네 번째‘아이’ (누가복음 주석) 가 가정에 들어와서 자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대해서 나는 내 인생의 동반자이자 친구인 아내 샐리와 세 자녀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나는 너희를 매우 사랑한단다. 그렇다면 이 누가복음 주석은 무엇과 비슷한가? 사람들은 주석서에 다양하 게 반응한다. 나는 이 주석서를 집필하면서, 머릿속에 한 가지 비유를 떠올리 곤 했다. 곧‘여행 안내자’ 에 대한 비유다. 어떤 사람이 높은 산에 위치한 유 적지를 올라갈 때, 거대한 도시를 관광할 때, 또는 어떤 아름답고 웅장한 교 회를 방문할 때, 여행 안내자가 인도하는 경우가 있다. 이 여행 안내자는 방 문객에게 길을 안내해 준다. 그리고 관광하고자 하는 장소에 도착하면, 그곳의

8

9


누가복음 1

10

저자 서문

역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이전에 그 장소를

언급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고대 문헌들의 언급은 누가복음의

보고 나서 말한 것이나, 경험한 것에 대해서 소개해 준다. 그래서 관광객이 그

내용을 세밀하게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관광 장소에 대한 세부 사항을 잘 인식하고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나는 이 주

나는 각 단락의 구조를 일관된 모습으로 다루고자 시도했다. 그래서 독자들

석서를 쓰면서, 바로 이와 같은 역할을 하려고 시도했다. 내가 주요한 목표로

이 각 단락에 대한 내용을 쉽게 파악하게 했다. 먼저 나는 이 주석서에서 누가

삼는 것은 다음과 같다. 곧 누가복음의 본문에 대해서 논의하면서, 그 내용을

복음의 내용이 의도하는 흐름에 따라서 각 단락의 개관을 제시한다. 그 다음

마가복음 및 마태복음의 내용과 비교하는 것이다. 이것 이외에도 나는 누가복

각 단락의 자료의 출처와 역사적인 사실성에 대한 문제점들을 다룬다. 그러고

음에 대한 많은 학자들의 다양한 관점들에 대해서 다루려고 노력했다. 나는

나서 각 단락을 다른 복음서들에 들어 있는 평행 본문들과 비교하면서 비슷한

누가복음에 대한 유능한 학자들의 주석서들을 면밀하게 검토했다. 그 학자들

점과 차이점을 요약적으로 설명한다. 그 후에 각 단락의 문학 형식 (양식) 에 대

의 어깨 너머로 무엇인가 의미 있거나 중요한 것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그것

한 문제점들을 간략하게 다룬다. 그 다음 각 단락에 대한 자세한 개요를 제시

에 대해서 충실하게 언급하려고 시도했다. 나는 다음과 같은 학자들이 집필한

한다. 이 개요는 각 단락의 구조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언급하며, 주요 내용을

주석서들을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마셜, 피츠마이어, 쉬르만, 보봉, 플러

밝혀 준다. 마지막으로 나는 각 단락의 주제들을 요약해 준다. 그 다음에는 각

머, 루스, 에른스트, 클로스터만, 그룬트만, 놀랜드, 댕커, 티드, 에번스 등이다.

단락에 대한 나 자신의 번역이 제시되어 있다. 각 단락에 대한 주석 작업 이전

이 주석서를 집필하면서, 나는 위에서 언급한 학자들의 주석서들을 끊임없이

에 제시되는 이 모든 자료들은 독자들이 모든 내용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게 하

부지런히 참고했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다른 몇몇 학자들의 주석서들을

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 모든 자료들은 독자들을 각 단락에 들어

통해서도 나는 많은 유익을 얻었다. 나는 이 주석자들과 또한 다른 학자들에

있는 절들에 대한 논의로 이끌어 주며, 또한 독자들에게 본격적으로 본문을

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학문을 연구한다는 것은 때때로 외롭고 지루한 길을

해석 (주해) 하는 무대를 제공해 줄 것이다. 주석 (주해) 부분에서는 한 번에 한 절

걷는 것이다. 하지만 이 수고가 항상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

씩 다룰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학자들의 다양한 견해들에 대해서 언급하

급한 학자들의 학문적인 성과는 매우 높이 평가되어 왔다. 한편 이 주석서의

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독자들은 어떤 이슈에 대한 훌륭한 논의를 쉽게 찾아

원고가 상당 부분 마무리되었을 때, 다음 세 주석서들이 간행되었다. 곧 존슨

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떤 구절 (들) 에 대해서 다른 복음서 (들) 에 평행 본문

(L. Johnson 1991),

(들) 이

스타인 (Stein 1992), 놀랜드 (Nolland vols. 2~3: 1993a; 1993b) 의 주

나타날 경우에, 이 부분에서 평행 본문(들) 을 서로 자세하게 비교했다.

석서들이다. 이 주석서들은 분명히 누가복음에 대한 훌륭한 주석서들 가운데

주석 부분에서 마지막 한 단락 또는 두 단락은 다음 질문에 대해서 답변한다.

포함될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 주석서들이 최근에 출판되었기 때문에,

곧 누가는 독자들이 이 사건이나 가르침에 어떻게 반응하기를 원하는가? 대체

나는 그 내용을 충분히 검토할 만한 상황에 있지 못했다.

로 나는 누가복음의 문학 형식에 대한 연구를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 이 연구

이 주석서는 원래 기대했던 것보다 분량이 늘어났다. 그 이유는 한편으로

분야는 새로운 것으로서,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이 연구 방

누가복음이 신약 성경에서 가장 길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 복음서들에 대

법이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이 주석서는 상당 부분 집필되어 있었다. 앞으로

한 연구는 매우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복음서 연구는 왜 복합적인가? 왜냐하

이 연구 분야는 누가복음을 이해하는 데 많은 가치 있는 내용을 제공할 것이

면 복음서들 사이에 평행 본문들이 존재하며, 또한 사건들의 역사적인 사실성

다. 마지막으로 나는 정기 간행물을 제한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

에 대해서 많은 논쟁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나는 각 단락의 배경

다. 그 대신 나는 전문적인 연구서들을 집중적으로 참고하는 방법을 선택했

과 그 당시의 관습에 대해서도 조명하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누가복음을 연구

다. 정기 간행물에 대한 훌륭한 참고문헌은 다음 주석자들의 주석서에 제시되

하는 이들이 주후 1세기의 다양한 관습뿐만 아니라, 또한 이와 같은 관습을 묘

어 있다. 곧 보봉, 쉬르만, 피츠마이어, 또한 놀랜드다 (놀랜드는

사하는 고대 문헌들에 대해서 잘 알 수 있게 했다. 때때로 우리는 고대의 관습

이용한다).

이 지니고 있는 정확한 특성에 대해서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가 원래

학적이며, 또한 각 주석 부분의 요약 설명에서 목회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정기 간행물을 많이

결론적으로 말해 내가 집필한 이 누가복음 주석은 역사적이며, 해석

의 배경과 시간과 장소적으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나

이 주석서를 집필하는 데 격려해 준 많은 이들에게 감사한다. 개리 크누스

는 고대의 관습의 배후에 있는 다양한 이유들을 밝히려고 시도했다. 만약 독

먼, 로버트 래미, 조 오 데이, 앨런 피셔, 짐 위버, 모이세스 실바, 켄 바커는

자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이 주석서에서 제시되는 온갖 종류의 고대 문헌들의

이 주석서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나를 신실하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 11


누가복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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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문

역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이전에 그 장소를

언급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고대 문헌들의 언급은 누가복음의

보고 나서 말한 것이나, 경험한 것에 대해서 소개해 준다. 그래서 관광객이 그

내용을 세밀하게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관광 장소에 대한 세부 사항을 잘 인식하고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나는 이 주

나는 각 단락의 구조를 일관된 모습으로 다루고자 시도했다. 그래서 독자들

석서를 쓰면서, 바로 이와 같은 역할을 하려고 시도했다. 내가 주요한 목표로

이 각 단락에 대한 내용을 쉽게 파악하게 했다. 먼저 나는 이 주석서에서 누가

삼는 것은 다음과 같다. 곧 누가복음의 본문에 대해서 논의하면서, 그 내용을

복음의 내용이 의도하는 흐름에 따라서 각 단락의 개관을 제시한다. 그 다음

마가복음 및 마태복음의 내용과 비교하는 것이다. 이것 이외에도 나는 누가복

각 단락의 자료의 출처와 역사적인 사실성에 대한 문제점들을 다룬다. 그러고

음에 대한 많은 학자들의 다양한 관점들에 대해서 다루려고 노력했다. 나는

나서 각 단락을 다른 복음서들에 들어 있는 평행 본문들과 비교하면서 비슷한

누가복음에 대한 유능한 학자들의 주석서들을 면밀하게 검토했다. 그 학자들

점과 차이점을 요약적으로 설명한다. 그 후에 각 단락의 문학 형식 (양식) 에 대

의 어깨 너머로 무엇인가 의미 있거나 중요한 것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그것

한 문제점들을 간략하게 다룬다. 그 다음 각 단락에 대한 자세한 개요를 제시

에 대해서 충실하게 언급하려고 시도했다. 나는 다음과 같은 학자들이 집필한

한다. 이 개요는 각 단락의 구조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언급하며, 주요 내용을

주석서들을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마셜, 피츠마이어, 쉬르만, 보봉, 플러

밝혀 준다. 마지막으로 나는 각 단락의 주제들을 요약해 준다. 그 다음에는 각

머, 루스, 에른스트, 클로스터만, 그룬트만, 놀랜드, 댕커, 티드, 에번스 등이다.

단락에 대한 나 자신의 번역이 제시되어 있다. 각 단락에 대한 주석 작업 이전

이 주석서를 집필하면서, 나는 위에서 언급한 학자들의 주석서들을 끊임없이

에 제시되는 이 모든 자료들은 독자들이 모든 내용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게 하

부지런히 참고했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다른 몇몇 학자들의 주석서들을

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 모든 자료들은 독자들을 각 단락에 들어

통해서도 나는 많은 유익을 얻었다. 나는 이 주석자들과 또한 다른 학자들에

있는 절들에 대한 논의로 이끌어 주며, 또한 독자들에게 본격적으로 본문을

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학문을 연구한다는 것은 때때로 외롭고 지루한 길을

해석 (주해) 하는 무대를 제공해 줄 것이다. 주석 (주해) 부분에서는 한 번에 한 절

걷는 것이다. 하지만 이 수고가 항상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

씩 다룰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학자들의 다양한 견해들에 대해서 언급하

급한 학자들의 학문적인 성과는 매우 높이 평가되어 왔다. 한편 이 주석서의

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독자들은 어떤 이슈에 대한 훌륭한 논의를 쉽게 찾아

원고가 상당 부분 마무리되었을 때, 다음 세 주석서들이 간행되었다. 곧 존슨

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떤 구절 (들) 에 대해서 다른 복음서 (들) 에 평행 본문

(L. Johnson 1991),

(들) 이

스타인 (Stein 1992), 놀랜드 (Nolland vols. 2~3: 1993a; 1993b) 의 주

나타날 경우에, 이 부분에서 평행 본문(들) 을 서로 자세하게 비교했다.

석서들이다. 이 주석서들은 분명히 누가복음에 대한 훌륭한 주석서들 가운데

주석 부분에서 마지막 한 단락 또는 두 단락은 다음 질문에 대해서 답변한다.

포함될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 주석서들이 최근에 출판되었기 때문에,

곧 누가는 독자들이 이 사건이나 가르침에 어떻게 반응하기를 원하는가? 대체

나는 그 내용을 충분히 검토할 만한 상황에 있지 못했다.

로 나는 누가복음의 문학 형식에 대한 연구를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 이 연구

이 주석서는 원래 기대했던 것보다 분량이 늘어났다. 그 이유는 한편으로

분야는 새로운 것으로서,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이 연구 방

누가복음이 신약 성경에서 가장 길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 복음서들에 대

법이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이 주석서는 상당 부분 집필되어 있었다. 앞으로

한 연구는 매우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복음서 연구는 왜 복합적인가? 왜냐하

이 연구 분야는 누가복음을 이해하는 데 많은 가치 있는 내용을 제공할 것이

면 복음서들 사이에 평행 본문들이 존재하며, 또한 사건들의 역사적인 사실성

다. 마지막으로 나는 정기 간행물을 제한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

에 대해서 많은 논쟁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나는 각 단락의 배경

다. 그 대신 나는 전문적인 연구서들을 집중적으로 참고하는 방법을 선택했

과 그 당시의 관습에 대해서도 조명하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누가복음을 연구

다. 정기 간행물에 대한 훌륭한 참고문헌은 다음 주석자들의 주석서에 제시되

하는 이들이 주후 1세기의 다양한 관습뿐만 아니라, 또한 이와 같은 관습을 묘

어 있다. 곧 보봉, 쉬르만, 피츠마이어, 또한 놀랜드다 (놀랜드는

사하는 고대 문헌들에 대해서 잘 알 수 있게 했다. 때때로 우리는 고대의 관습

이용한다).

이 지니고 있는 정확한 특성에 대해서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가 원래

학적이며, 또한 각 주석 부분의 요약 설명에서 목회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정기 간행물을 많이

결론적으로 말해 내가 집필한 이 누가복음 주석은 역사적이며, 해석

의 배경과 시간과 장소적으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나

이 주석서를 집필하는 데 격려해 준 많은 이들에게 감사한다. 개리 크누스

는 고대의 관습의 배후에 있는 다양한 이유들을 밝히려고 시도했다. 만약 독

먼, 로버트 래미, 조 오 데이, 앨런 피셔, 짐 위버, 모이세스 실바, 켄 바커는

자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이 주석서에서 제시되는 온갖 종류의 고대 문헌들의

이 주석서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나를 신실하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 11


누가복음 1

약어 소개

주석서를 보다 명료하게 집필하도록 끊임없이 권면했으며, 많은 함정을 피할

│약어 소개│

수 있도록 조언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데이비드 에이컨은 이 주석서를 편집하 고 교정하는 일에 많을 수고를 했다. 에이컨의 예리한 눈과 인내심과 표현 감 각은 이 주석서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별히 베이커 출판사 에 깊이 감사한다. 베이커 출판사는 내가 원했던 방식대로 이 주석서를 출판 하는 것을 기꺼이 허락했다. 베이커 출판사는 진지한 복음주의 신학계를 헌신 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오늘날 이와 같은 헌신은 복음주의 신학계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허브 베이트먼은 최근에 작성된 원고를 면밀하게 읽고, 나 에게 많은 격려를 했다. 막스 터너와 하워드 마셜은 이 주석서 원고의 여러 부 분들을 검토하고 나서, 유익한 비평을 제공해 주었다. 클레이 포, 제이 스미스, 톰 베일리는 내가 작성한 컴퓨터 파일을 출판을 위한 적합한 형태로 바꾸는 데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댈러스 신학교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표 현하고 싶다. 댈러스 신학교는 1989~1990년도에 나에게 안식년을 허락해 주 었다. 그래서 나는 독일 튀빙겐 대학교에서 연구할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나는 이 주석서의 상당 부분을 집필할 수 있었다. 또한 1989년도는 베를린 장 벽이 무너진 해이기도 했다. 따라서 특별히 나는 가족과 함께 이 사건을 직접

일반 참고문헌 BAA

목격할 수 있었다. 나를 초빙해 준 마틴 헹엘 교수와 오토 베츠 교수 및 튀빙 겐 대학교 개신교 신학부 교수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내가 그곳에서 연 구하는 동안, 이들은 나에게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또한 그 당시 내가 네카타일핑엔과 키르헨텔린스푸르트라는 마을에 체류하고 있었을 때, 그곳의

BAGD

주민들이었던 나의 독일 친구들은 내가 마치 고향집에서 사는 것처럼 매우 편안 하게 해 주었다. 나와 나의 가족은 독일 친구들의 친절에 고마움을 이루 다 표현 할 수 없다. 더욱이 하나님은 우리의 여행에 언제나 신실하게 함께 해 주셨다. 나는 이 누가복음 주석을 나의 신앙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끼쳐 온 이들에게

BDB

바친다. 이들은 다양한 배경에서 온 분들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매우 매력적으로 만드는 다양성을 보여 주었다. 나는 이들이 나의 감사하는 마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들이 나에게 베풀어 준 수고에 비교하

BDF

면, 나의 감사는 겨우 한 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는다. 언젠가 나의 모든 자녀들은 부모의 집을 떠나갈 것이다. 우리 가정에서 네 번째 아이로 불렸던 이 누가복음 주석도 이제 완성되어, 내 품을 떠나게 되었

BDR

다. 이 주석서를 통해 누가복음의 주제인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삶의 모 습이 독자들에게 보다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를 기도한다. KJV 대럴 벅

12

LSJ

..

Griechisch-Dewsches Worterbuch zu den Schriften des .. Neuen Testaments und der fruhchristlichen Literatur, by W. Bauer, K. Aland, and B. Aland (6th ed.; Berlin: de Gruyter, 1988)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by W. Bauer, W. F. Arndt, F. W. Gingrich, and F. w. Danker (2d ed.;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9) A Hebrew and English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by F. Brown, S. R. Driver, and C. A. Briggs (Oxford: Clarendon, 1907) A Greek Grammar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by F. Blass, A. Debrunner, and R. W. Funk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1) Grammatik des neutestamentlichen Griechisch, by F. .. Blass, A. Debrunner, and F. Rehkopf (Go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84) King James Version A Greek-English Lexicon, by H. G. Liddell, R. Scott, and H. S. Jones (Oxford: Clarendon, 1968) 13


누가복음 1

약어 소개

주석서를 보다 명료하게 집필하도록 끊임없이 권면했으며, 많은 함정을 피할

│약어 소개│

수 있도록 조언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데이비드 에이컨은 이 주석서를 편집하 고 교정하는 일에 많을 수고를 했다. 에이컨의 예리한 눈과 인내심과 표현 감 각은 이 주석서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별히 베이커 출판사 에 깊이 감사한다. 베이커 출판사는 내가 원했던 방식대로 이 주석서를 출판 하는 것을 기꺼이 허락했다. 베이커 출판사는 진지한 복음주의 신학계를 헌신 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오늘날 이와 같은 헌신은 복음주의 신학계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허브 베이트먼은 최근에 작성된 원고를 면밀하게 읽고, 나 에게 많은 격려를 했다. 막스 터너와 하워드 마셜은 이 주석서 원고의 여러 부 분들을 검토하고 나서, 유익한 비평을 제공해 주었다. 클레이 포, 제이 스미스, 톰 베일리는 내가 작성한 컴퓨터 파일을 출판을 위한 적합한 형태로 바꾸는 데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댈러스 신학교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표 현하고 싶다. 댈러스 신학교는 1989~1990년도에 나에게 안식년을 허락해 주 었다. 그래서 나는 독일 튀빙겐 대학교에서 연구할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나는 이 주석서의 상당 부분을 집필할 수 있었다. 또한 1989년도는 베를린 장 벽이 무너진 해이기도 했다. 따라서 특별히 나는 가족과 함께 이 사건을 직접

일반 참고문헌 BAA

목격할 수 있었다. 나를 초빙해 준 마틴 헹엘 교수와 오토 베츠 교수 및 튀빙 겐 대학교 개신교 신학부 교수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내가 그곳에서 연 구하는 동안, 이들은 나에게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또한 그 당시 내가 네카타일핑엔과 키르헨텔린스푸르트라는 마을에 체류하고 있었을 때, 그곳의

BAGD

주민들이었던 나의 독일 친구들은 내가 마치 고향집에서 사는 것처럼 매우 편안 하게 해 주었다. 나와 나의 가족은 독일 친구들의 친절에 고마움을 이루 다 표현 할 수 없다. 더욱이 하나님은 우리의 여행에 언제나 신실하게 함께 해 주셨다. 나는 이 누가복음 주석을 나의 신앙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끼쳐 온 이들에게

BDB

바친다. 이들은 다양한 배경에서 온 분들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매우 매력적으로 만드는 다양성을 보여 주었다. 나는 이들이 나의 감사하는 마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들이 나에게 베풀어 준 수고에 비교하

BDF

면, 나의 감사는 겨우 한 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는다. 언젠가 나의 모든 자녀들은 부모의 집을 떠나갈 것이다. 우리 가정에서 네 번째 아이로 불렸던 이 누가복음 주석도 이제 완성되어, 내 품을 떠나게 되었

BDR

다. 이 주석서를 통해 누가복음의 주제인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삶의 모 습이 독자들에게 보다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를 기도한다. KJV 대럴 벅

12

LSJ

..

Griechisch-Dewsches Worterbuch zu den Schriften des .. Neuen Testaments und der fruhchristlichen Literatur, by W. Bauer, K. Aland, and B. Aland (6th ed.; Berlin: de Gruyter, 1988)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by W. Bauer, W. F. Arndt, F. W. Gingrich, and F. w. Danker (2d ed.;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9) A Hebrew and English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by F. Brown, S. R. Driver, and C. A. Briggs (Oxford: Clarendon, 1907) A Greek Grammar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by F. Blass, A. Debrunner, and R. W. Funk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1) Grammatik des neutestamentlichen Griechisch, by F. .. Blass, A. Debrunner, and F. Rehkopf (Go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84) King James Version A Greek-English Lexicon, by H. G. Liddell, R. Scott, and H. S. Jones (Oxford: Clarendon, 1968) 13


누가복음 1

서론

│서론 │

실마리가 되는 여러 가지 주제들에 대해서 기초를 제공해 준다. 하지만 그 쟁 점들에 대한 답변은 사도행전에서 주어진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하나님의 계획을 밝혀 준다. 또한 누가복음과 사도 행전은 하나님이 세우신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 하나 됨을 이루며 동등한 신분을 갖게 되는지를 설명해 준다. 이 공동체의 뿌리는 원래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한 것이었다. 누가가 살던 시대 에 교회는 특별히 다음 네 가지 이슈들에 당면해 있었다. 첫째, 구원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다. 곧“어떻게 이방인들이 유대 인들과 똑같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또한“어떻게 이 방인들이 유대인들과 한 자리에 함께 앉아서 식사하며, 또한 할례를 받는 것 에서 면제되었는가?”나아가“율법과 유대교의 전통과 관련된 많은 대상을 제외시키고, 어떻게 하나님의 소망이 모든 민족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전개되 었는가?”누가는 어떻게 하나님이 이 모든 과정을 인도하셨는지 설명하는 것 을 통해 대체로 사도행전에서 이 질문들에 답변을 제시한다. 둘째, 얼핏 보기에 다음과 같은 역설이 존재한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

개관

루어져 갈 때, 그 메시지를 당연히 들어야 할 청중, 곧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대부분은 그 계획에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심지어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에

적어도 다음 두 가지 면에서 누가복음은 특별한 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누 가복음은 복음서들 가운데 가장 길다. 네스틀레 - 알란트가 편집한 헬라어 성

대한 소망을 자신들에게 전파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다. 왜 하나님의 계

경에서 마태복음은 모두 87쪽이다. 마가복음은 60쪽 (막 16:8까지 포함한다면) 이다.

해서 지나치게 관대한 입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저주받은 것

요한복음은 73쪽이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모두 96쪽이나 된다. 절들의 숫자를

인가? 아니면 이 새로운 공동체는 복을 받은 것인가? 만약 복을 받았다면, 복

비교해 보아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마태복음은 모두 1,071절이다. 마가복

에 대한 증거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팔을 펼치시는 것을

음은 678절이다. 요한복음은 869절이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모두 1,151절에

그만두셨는가? 새로운 공동체는 옛 신앙 공동체로부터 스스로 물러난 것인

1)

획은 이와 같은 반대에 부딪혔는가? 이 새로운 공동체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

이른다. 둘째, 오직 누가복음만이 자신의 복음서에 곧바로 이어지는 이야기,

가? 이 질문에 대해서 누가는 교회가 자신을 유대인들과 스스로 분리시킨 것

곧 사도행전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누가는 예수와 예수의 사역에 대해서 소개

이 아니라고 답변한다. 오히려 유대인들이 교회를 자신들에게서 제외시킨 것

해 줄 뿐만 아니라 또한 초대 교회 시대에 하나님 나라와 예수에 대한 복음 사

이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구성할 수밖에 없었던

역이 어떻게 진행되어 갔는지에 대해서도 알려 준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것이다. 자신의 복음서를 통해서 어떻게 유대인들과 특별히 유대인들의 지도

통해 누가는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서 어떻게 자신의 구원을 이루셨는지, 최초

자들이 예수에게 반응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누가는 이와 같은 이슈

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예수에 대해서 어떻게 증거하고 전파했는지, 또한

들에 대한 답변의 근본적인 토대를 제공해 준다.

예수의 제자들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어떻게 선교했는지에 대해서 설명

세 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다. 곧 어떻게 십자가 처형을 당한 예수라는 인물

해 준다. 비록 정경의 형성 과정에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따로따로 배열되

과 예수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어울릴 수 있는가? 예수는 이 세상

었지만, 이 두 책들과 그 메시지는 서로 분리시킬 수 없다. 누가복음은 논쟁의

에서 육신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는 자신이 계 속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고, 또한 하나님의 소망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1 ) 복음서들에 표기된 절들에 대한 숫자는 쿠르트 알란트와 바바라 알란트가 공동 편집한 헬라어

성경(Aland and Aland 1987: 29)에 근거한 것이다. 18

납득시킬 수 있는가? 어떻게 교회는 이 세상에 있지 않은 인물을 찬양하며, 예수를 하나님의 일의 중심으로 여길 수 있는가? 어떻게 죽임을 당한 인물이 19


누가복음 1

서론

│서론 │

실마리가 되는 여러 가지 주제들에 대해서 기초를 제공해 준다. 하지만 그 쟁 점들에 대한 답변은 사도행전에서 주어진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하나님의 계획을 밝혀 준다. 또한 누가복음과 사도 행전은 하나님이 세우신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 하나 됨을 이루며 동등한 신분을 갖게 되는지를 설명해 준다. 이 공동체의 뿌리는 원래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한 것이었다. 누가가 살던 시대 에 교회는 특별히 다음 네 가지 이슈들에 당면해 있었다. 첫째, 구원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다. 곧“어떻게 이방인들이 유대 인들과 똑같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또한“어떻게 이 방인들이 유대인들과 한 자리에 함께 앉아서 식사하며, 또한 할례를 받는 것 에서 면제되었는가?”나아가“율법과 유대교의 전통과 관련된 많은 대상을 제외시키고, 어떻게 하나님의 소망이 모든 민족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전개되 었는가?”누가는 어떻게 하나님이 이 모든 과정을 인도하셨는지 설명하는 것 을 통해 대체로 사도행전에서 이 질문들에 답변을 제시한다. 둘째, 얼핏 보기에 다음과 같은 역설이 존재한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

개관

루어져 갈 때, 그 메시지를 당연히 들어야 할 청중, 곧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대부분은 그 계획에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심지어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에

적어도 다음 두 가지 면에서 누가복음은 특별한 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누 가복음은 복음서들 가운데 가장 길다. 네스틀레 - 알란트가 편집한 헬라어 성

대한 소망을 자신들에게 전파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다. 왜 하나님의 계

경에서 마태복음은 모두 87쪽이다. 마가복음은 60쪽 (막 16:8까지 포함한다면) 이다.

해서 지나치게 관대한 입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저주받은 것

요한복음은 73쪽이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모두 96쪽이나 된다. 절들의 숫자를

인가? 아니면 이 새로운 공동체는 복을 받은 것인가? 만약 복을 받았다면, 복

비교해 보아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마태복음은 모두 1,071절이다. 마가복

에 대한 증거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팔을 펼치시는 것을

음은 678절이다. 요한복음은 869절이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모두 1,151절에

그만두셨는가? 새로운 공동체는 옛 신앙 공동체로부터 스스로 물러난 것인

1)

획은 이와 같은 반대에 부딪혔는가? 이 새로운 공동체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

이른다. 둘째, 오직 누가복음만이 자신의 복음서에 곧바로 이어지는 이야기,

가? 이 질문에 대해서 누가는 교회가 자신을 유대인들과 스스로 분리시킨 것

곧 사도행전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누가는 예수와 예수의 사역에 대해서 소개

이 아니라고 답변한다. 오히려 유대인들이 교회를 자신들에게서 제외시킨 것

해 줄 뿐만 아니라 또한 초대 교회 시대에 하나님 나라와 예수에 대한 복음 사

이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구성할 수밖에 없었던

역이 어떻게 진행되어 갔는지에 대해서도 알려 준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것이다. 자신의 복음서를 통해서 어떻게 유대인들과 특별히 유대인들의 지도

통해 누가는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서 어떻게 자신의 구원을 이루셨는지, 최초

자들이 예수에게 반응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누가는 이와 같은 이슈

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예수에 대해서 어떻게 증거하고 전파했는지, 또한

들에 대한 답변의 근본적인 토대를 제공해 준다.

예수의 제자들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어떻게 선교했는지에 대해서 설명

세 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다. 곧 어떻게 십자가 처형을 당한 예수라는 인물

해 준다. 비록 정경의 형성 과정에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따로따로 배열되

과 예수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어울릴 수 있는가? 예수는 이 세상

었지만, 이 두 책들과 그 메시지는 서로 분리시킬 수 없다. 누가복음은 논쟁의

에서 육신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는 자신이 계 속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고, 또한 하나님의 소망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1 ) 복음서들에 표기된 절들에 대한 숫자는 쿠르트 알란트와 바바라 알란트가 공동 편집한 헬라어

성경(Aland and Aland 1987: 29)에 근거한 것이다. 18

납득시킬 수 있는가? 어떻게 교회는 이 세상에 있지 않은 인물을 찬양하며, 예수를 하나님의 일의 중심으로 여길 수 있는가? 어떻게 죽임을 당한 인물이 19


누가복음 1

서론

하나님의 약속을 궁극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가? 어떻게 예수를 통해서 종말이

구약 시대의 신실한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또한 예수도 유대인들의 반대에

오고, 또한 성취될 수 있는가? 예수가 부활하고 승천한 사실에 대해서 강조하

부딪혔다.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 안에서 예수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누가복음

면서, 사도행전은 이와 같은 질문들에 중요한 답변들을 제공한다. 반면에 예

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들 가운데 하나다. 반면에 사도행전은 예수의 사역을

수가 높임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기독론을 제시하면서, 누가복음은 사도

통해서 나타나게 된 새로운 공동체의 특성에 대해서 묘사한다. 이 새로운 공

행전에서 언급되는 이와 같은 답변들에 대한 핵심 근거를 제공해 준다.

동체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넷째, 예수에게 긍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예수에게 긍

이 공동체는 그 당시 유대인 공동체에 의해서 극심한 박해를 받는다. 또한 이

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무엇이 요구되는가? 예수에게 헌신하는 데에는

공동체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추가적으로 압박을 받는다. 율법과 관

무엇이 기대되는가? 예수가 다시 돌아와서 모든 소망이 완전히 실현되는 날까

련된 몇 가지 사항들과 관련하여,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이 율법 규

지,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한마디로 말해 신자들과

정을 보다 충실하게 지키기를 원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를 통해서 하

새로운 공동체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며, 또한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이것

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

이 누가복음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다. 곧 예수의 사명과 예수를 따

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배경에서 누가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답변을 제시

르는 제자들의 사명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누가복음의 상당 부분은

하고자 한다. 과연 이방인이 이 새로운 공동체에 속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이

이 세상을 떠나가기에 앞서 예수가 제자들을 어떻게 준비시켰는지를 설명해

와 같은 극심한 적대와 반대에 직면하고 있는 공동체를 위해서 존재하시며,

준다. 또한 자신이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비해 예수가 제자

또한 돌보시는가? 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어떻

들이 자신을 대신해서 어떻게 사역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해 준다. 예수가

게 예수의 삶, 가르침, 죽음과 부활이‘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들]’ (눅 1:1) 이

예루살렘을 향해 여행하는 것에 대해서 다루는 누가복음 9~19장에는 이와 같

하나님이 계획하신 사건들을 나타내는가? 누가복음의 한가운데에는 하나님

은 내용이 들어 있다. 이 내용은 누가복음의 목적과도 연결된다. 따라서 누가

의 계획,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 또한 곧 등장하게 될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질

복음의 가르침을 교회 시대와 지나치게 구분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누가복음

문들이 자리 잡고 있다.

24장 44~49절에서 예수는 자신의 사역을 교회의 사역과 동일시한다 (참조,

따라서 누가복음은 오시기로 약속된 이로서 구원과 생명의 길을 보여 주는

평지 설교와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 부분에 들어 있는 예수의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역사를 강조한다. 지금은 부활하

가르침과 윤리는 임박한 거부를 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누가는

여 메시아 및 주님으로 입증된 예수를 통해(행 2:36, 10:36), 하나님은 자기 자신

예수의 가르침과 윤리를 데오빌로를 위해서 기록했다. 그래서 데오빌로가 다

과 자신이 선택하신 자와 자신의 약속 및 계획에 대해서 계시하신다. 누가복

음 사항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고 확신하게 하려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인물을 소개하며, 또한 많은 유대인들이 하나

계획은 무엇인가? 제자로 부름을 받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자는 예수

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인물에게 적대감을 보인다는 것을 언급한다. 사도행전

를 어떤 존재로 이해해야 하는가? 제자는 예수를 전파하기 위해서 어떻게 공

은 새로운 공동체가 세워지고 확장되어 나가는 것에 대해서 연대순으로 기록

동체의 사역에 동참해야 하는가? 예수의 제자는 새로운 공동체가 예수에 대해

한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예수가 모든 사람들의 주이며, 또한 예수는 모

서 메시지를 증거하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메시지에 적대감

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고 말한다. 구원은 오직 부활 및

을 보이는 세상에서 예수의 제자는 예수가 이 세상에서 가르치고 보여 준 방

승천한 주를 자신의 구주로 믿는 것을 통해 주어진다. 공식적인 유대교와는

식대로 살아가야 한다.

대조되는 것으로서,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새로운 공동체가 나타났다. 이 새

5:10~11, 31~32).

20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이 질문들에 답변을 제시한다. 따라서 누가의 과

로운 길은 이미 구약 성경에서 약속된 것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구원에 대

제는 데오빌로에게 이전에 배운 것을 구체적으로 확인시켜 주어서, 배운 것

한 하나님의 약속이 어떤 방법으로 성취될지를 깨닫지 못했다. 심지어 예수의

을 확신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특별히 새로운 공동체 안으로 이방인들이 들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의 제자들도 하나님의 계획이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질

어가게 된 것과 관련된 논쟁에 대한 분명한 답변을 제공해 주려는 것이었다.

지에 대해 배워야만 했다 (눅

사도행전은 이 질문을 보다 더 전개시킨다. 곧 예수에 대한 복음을 받아들임

유대교에서 분리된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잘못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다.

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은 특별히 유대인들에게서 반대와 핍박을 받게 된다.

예수와 교회는 유대인들에게 언제나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의도하시는 소망에

9:35, 44~45, 18:31~34, 24:44~47).

새로운 공동체가

21


누가복음 1

서론

하나님의 약속을 궁극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가? 어떻게 예수를 통해서 종말이

구약 시대의 신실한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또한 예수도 유대인들의 반대에

오고, 또한 성취될 수 있는가? 예수가 부활하고 승천한 사실에 대해서 강조하

부딪혔다.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 안에서 예수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누가복음

면서, 사도행전은 이와 같은 질문들에 중요한 답변들을 제공한다. 반면에 예

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들 가운데 하나다. 반면에 사도행전은 예수의 사역을

수가 높임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기독론을 제시하면서, 누가복음은 사도

통해서 나타나게 된 새로운 공동체의 특성에 대해서 묘사한다. 이 새로운 공

행전에서 언급되는 이와 같은 답변들에 대한 핵심 근거를 제공해 준다.

동체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넷째, 예수에게 긍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예수에게 긍

이 공동체는 그 당시 유대인 공동체에 의해서 극심한 박해를 받는다. 또한 이

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무엇이 요구되는가? 예수에게 헌신하는 데에는

공동체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추가적으로 압박을 받는다. 율법과 관

무엇이 기대되는가? 예수가 다시 돌아와서 모든 소망이 완전히 실현되는 날까

련된 몇 가지 사항들과 관련하여,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이 율법 규

지,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한마디로 말해 신자들과

정을 보다 충실하게 지키기를 원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를 통해서 하

새로운 공동체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며, 또한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이것

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

이 누가복음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다. 곧 예수의 사명과 예수를 따

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배경에서 누가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답변을 제시

르는 제자들의 사명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누가복음의 상당 부분은

하고자 한다. 과연 이방인이 이 새로운 공동체에 속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이

이 세상을 떠나가기에 앞서 예수가 제자들을 어떻게 준비시켰는지를 설명해

와 같은 극심한 적대와 반대에 직면하고 있는 공동체를 위해서 존재하시며,

준다. 또한 자신이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비해 예수가 제자

또한 돌보시는가? 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어떻

들이 자신을 대신해서 어떻게 사역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해 준다. 예수가

게 예수의 삶, 가르침, 죽음과 부활이‘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들]’ (눅 1:1) 이

예루살렘을 향해 여행하는 것에 대해서 다루는 누가복음 9~19장에는 이와 같

하나님이 계획하신 사건들을 나타내는가? 누가복음의 한가운데에는 하나님

은 내용이 들어 있다. 이 내용은 누가복음의 목적과도 연결된다. 따라서 누가

의 계획,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 또한 곧 등장하게 될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질

복음의 가르침을 교회 시대와 지나치게 구분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누가복음

문들이 자리 잡고 있다.

24장 44~49절에서 예수는 자신의 사역을 교회의 사역과 동일시한다 (참조,

따라서 누가복음은 오시기로 약속된 이로서 구원과 생명의 길을 보여 주는

평지 설교와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 부분에 들어 있는 예수의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역사를 강조한다. 지금은 부활하

가르침과 윤리는 임박한 거부를 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누가는

여 메시아 및 주님으로 입증된 예수를 통해(행 2:36, 10:36), 하나님은 자기 자신

예수의 가르침과 윤리를 데오빌로를 위해서 기록했다. 그래서 데오빌로가 다

과 자신이 선택하신 자와 자신의 약속 및 계획에 대해서 계시하신다. 누가복

음 사항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고 확신하게 하려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인물을 소개하며, 또한 많은 유대인들이 하나

계획은 무엇인가? 제자로 부름을 받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자는 예수

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인물에게 적대감을 보인다는 것을 언급한다. 사도행전

를 어떤 존재로 이해해야 하는가? 제자는 예수를 전파하기 위해서 어떻게 공

은 새로운 공동체가 세워지고 확장되어 나가는 것에 대해서 연대순으로 기록

동체의 사역에 동참해야 하는가? 예수의 제자는 새로운 공동체가 예수에 대해

한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예수가 모든 사람들의 주이며, 또한 예수는 모

서 메시지를 증거하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메시지에 적대감

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고 말한다. 구원은 오직 부활 및

을 보이는 세상에서 예수의 제자는 예수가 이 세상에서 가르치고 보여 준 방

승천한 주를 자신의 구주로 믿는 것을 통해 주어진다. 공식적인 유대교와는

식대로 살아가야 한다.

대조되는 것으로서,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새로운 공동체가 나타났다. 이 새

5:10~11, 31~32).

20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이 질문들에 답변을 제시한다. 따라서 누가의 과

로운 길은 이미 구약 성경에서 약속된 것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구원에 대

제는 데오빌로에게 이전에 배운 것을 구체적으로 확인시켜 주어서, 배운 것

한 하나님의 약속이 어떤 방법으로 성취될지를 깨닫지 못했다. 심지어 예수의

을 확신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특별히 새로운 공동체 안으로 이방인들이 들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의 제자들도 하나님의 계획이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질

어가게 된 것과 관련된 논쟁에 대한 분명한 답변을 제공해 주려는 것이었다.

지에 대해 배워야만 했다 (눅

사도행전은 이 질문을 보다 더 전개시킨다. 곧 예수에 대한 복음을 받아들임

유대교에서 분리된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잘못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다.

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은 특별히 유대인들에게서 반대와 핍박을 받게 된다.

예수와 교회는 유대인들에게 언제나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의도하시는 소망에

9:35, 44~45, 18:31~34, 24:44~47).

새로운 공동체가

21


누가복음 1

서론

대해서 선포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이와 같은 메시지를 격렬하게

누가복음의 기원과 목적

반대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와 같은 적대감 때문에 예수는 죽임을 당했다. 마 지막 날까지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같은 지속적인 반대에 직면할 수 있다. 하

(1) 저자

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에게 신실해야 한다. 그럼에도

누가복음과 마찬가지로 또한 사도행전도 저자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하나님은 이 새로운 운동의 배후에서 함께하셨고, 또한 지금도 함께하신다.

않는다. 하지만 외적 증거 및 내적 증거는 누가가 이 두 책들의 저자라는 것을

예수의 사역과 가르침, 죽음 및 부활은 이 진리를 입증해 준다 (누가복음). 하나

암시해 준다.

님은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통해서 새로운 시대를 여셨다. 베드로를 중심으로

내적 증거. 내적인 특징들은 다음 두 가지 사항에 집중되어 있다. 첫째, 저자

예루살렘에서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이 도시 주변으로 점차

는 이 두 책들에 수록된 대부분의 사건들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아니다. 특별

퍼져 나갔다. 마침내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에서도 선포되었다 (사

히 저자는 예수의 사역과 관련된 사건들을 직접 보지 못했다 (참조, 눅 1:1~2). 오

도행전).

이 새로운 공동체 안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모두 환영을 받았다.

히려 저자는 전승들에 대한 연구에 근거해서 저술했다. 이 전승들은‘처음부

사실상 하나님이 이 모든 과정을 자신의 계획과 뜻대로 인도하셨다. 심지어

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것이다 (1:2~4). 둘째, 이른바

하나님은 이 새로운 공동체 안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상호 관계 및 교제

‘우리’부분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행 16:10~17, 20:5~15, 21:1~18, 27:1~28:16), 누가

에 대한 이슈뿐만 아니라, 또한 이방인들에게 특정한 율법을 어떻게 적용해야

는 자신을 바울의 동료라고 묘사한다.‘ 우리’부분의 역사적인 신빙성과 관련

하는지와 관련된 문제점도 해결해 주셨다 (행

해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하지만‘우리’부분이 지니고 있는 특성은 저자

10~11장, 15장).

다음 사실에 대해

서 확신하라. 예수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진정한 복에 대해서 계시해 주었

에 대한 선택의 폭을 제한해 준다.

다. 자신이 구원과 생명에 이르는 올바른 길에서 벗어났다고 깨닫고, 예수를

오늘날‘우리’부분에 대한 학자들의 논쟁은 다음 두 가지로 나뉜다. 어떤

통해서 하나님에게 돌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진정한 복이 주어진다 (눅 5:30~32,

학자들은‘우리’부분이 목격자의 증거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Ellis

19:10).

1974: 43~44, Hemer 1989: 312~334).

하나님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약속들을 지키셨다.

반면에 다른 학자들은‘우리’부분이 사건들

또한 앞으로도 이 약속들을 지키실 것이다. 이 약속들은 구약 성경에 제시된

에 대한 목격자가 존재한다는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서 저자가 스스로 문학적

소망에 기초하고 있다 (1:14~17, 31~35, 57~59, 4:16~30, 24:44~47). 그리고 이 약속

으로 고안해 낸 것이라고 이해한다 (Haenchen 1971: 85~90, Vielhauer 1966: 33~34,

들은 예수를 통해 성취되었다. 또한 장차 예수를 통해 이 약속들은 온전히 궁

47~48).

극적으로 실현될 것이다 (행 2:14~41, 3:11~26).

는가?”라는 이슈도 이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의‘우리’부

이 서론의 다음 단원“ ( 누가복음의 기원과 목적”)은 대체로 전문적인 신약 개론에

그리고“세 번째 복음서의 저자는 바울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었

분을 저술한 사람은 자신이 바울의 선교 여행에 동참했다고 묘사하기 때문이

속한 내용을 다룰 것이다. 반면에 그 이후의 단원들은 누가복음의 메시지를

다. 누가와‘우리’부분과의 연관성을 부인하는 학자들은 바울에 대한 누가의

소개할 것이다.2)

묘사를 바울 서신에서 나타나는 바울에 대한 묘사와 비교하려고 시도한다. 그 러면서 이 학자들은 이 두 가지 모습들이 역사적인 세부 사항 및 신학적인 강 조점에서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누가는 바울의 사역과 입 장을 묘사하는 데 바울의 편지들을 이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필하우어는 이 두 가지 모습들이 서로 매우 다르기 때문에, 세 번째 복음서의 저자는 바울의 동료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피츠마이어 (Fitzmyer

2 ) 피츠마이어(Fitzmyer 1981: 1~283)는 누가복음에 대한 훌륭한 서론을 제시했다. 따라서 누가복

음의 표현 방식과 서론에 대한 전문적인 견해들에 대해서 반복해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특별히 나는 다음 몇 가지 사항들에 대한 피츠마이어의 연구 결과 가운데 상당 부분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곧 누가복음 연구에 대한 현재의 상황 및 동향(pp. 3~34), 누가의 저술에 대한 피 츠마이어의 논의 가운데 몇 가지 관점(pp. 63~106)과 누가의 표현 방식과 언어에 대한 피츠마 이어의 논점(pp. 107~127) 및 누가복음의 배후에 있는 사본 전승에 대한 피츠마이어의 상세한 설명(pp. 128~133)이다. 22

1989: 1~26) 는‘우리’

부분이 문학적으로 고안된 것이라면, 왜‘우리’부분이 임의적인 방법으로 나 타났다가 없어지는지에 대해서 납득할 만한 설명을 제시할 수 없다고 주장하 면서, 그 연관성을 옹호한다. 또한 피츠마이어는 이른바‘우리’부분과 같은 문학적인 고안이 예기되는‘항해’ 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행 13:4, 13, 14:26, 17:14, 라는 18:18, 21, 20:1~2) 에는‘우리’

표현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23


누가복음 1

서론

대해서 선포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이와 같은 메시지를 격렬하게

누가복음의 기원과 목적

반대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와 같은 적대감 때문에 예수는 죽임을 당했다. 마 지막 날까지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같은 지속적인 반대에 직면할 수 있다. 하

(1) 저자

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에게 신실해야 한다. 그럼에도

누가복음과 마찬가지로 또한 사도행전도 저자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하나님은 이 새로운 운동의 배후에서 함께하셨고, 또한 지금도 함께하신다.

않는다. 하지만 외적 증거 및 내적 증거는 누가가 이 두 책들의 저자라는 것을

예수의 사역과 가르침, 죽음 및 부활은 이 진리를 입증해 준다 (누가복음). 하나

암시해 준다.

님은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통해서 새로운 시대를 여셨다. 베드로를 중심으로

내적 증거. 내적인 특징들은 다음 두 가지 사항에 집중되어 있다. 첫째, 저자

예루살렘에서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이 도시 주변으로 점차

는 이 두 책들에 수록된 대부분의 사건들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아니다. 특별

퍼져 나갔다. 마침내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에서도 선포되었다 (사

히 저자는 예수의 사역과 관련된 사건들을 직접 보지 못했다 (참조, 눅 1:1~2). 오

도행전).

이 새로운 공동체 안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모두 환영을 받았다.

히려 저자는 전승들에 대한 연구에 근거해서 저술했다. 이 전승들은‘처음부

사실상 하나님이 이 모든 과정을 자신의 계획과 뜻대로 인도하셨다. 심지어

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것이다 (1:2~4). 둘째, 이른바

하나님은 이 새로운 공동체 안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상호 관계 및 교제

‘우리’부분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행 16:10~17, 20:5~15, 21:1~18, 27:1~28:16), 누가

에 대한 이슈뿐만 아니라, 또한 이방인들에게 특정한 율법을 어떻게 적용해야

는 자신을 바울의 동료라고 묘사한다.‘ 우리’부분의 역사적인 신빙성과 관련

하는지와 관련된 문제점도 해결해 주셨다 (행

해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하지만‘우리’부분이 지니고 있는 특성은 저자

10~11장, 15장).

다음 사실에 대해

서 확신하라. 예수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진정한 복에 대해서 계시해 주었

에 대한 선택의 폭을 제한해 준다.

다. 자신이 구원과 생명에 이르는 올바른 길에서 벗어났다고 깨닫고, 예수를

오늘날‘우리’부분에 대한 학자들의 논쟁은 다음 두 가지로 나뉜다. 어떤

통해서 하나님에게 돌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진정한 복이 주어진다 (눅 5:30~32,

학자들은‘우리’부분이 목격자의 증거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Ellis

19:10).

1974: 43~44, Hemer 1989: 312~334).

하나님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약속들을 지키셨다.

반면에 다른 학자들은‘우리’부분이 사건들

또한 앞으로도 이 약속들을 지키실 것이다. 이 약속들은 구약 성경에 제시된

에 대한 목격자가 존재한다는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서 저자가 스스로 문학적

소망에 기초하고 있다 (1:14~17, 31~35, 57~59, 4:16~30, 24:44~47). 그리고 이 약속

으로 고안해 낸 것이라고 이해한다 (Haenchen 1971: 85~90, Vielhauer 1966: 33~34,

들은 예수를 통해 성취되었다. 또한 장차 예수를 통해 이 약속들은 온전히 궁

47~48).

극적으로 실현될 것이다 (행 2:14~41, 3:11~26).

는가?”라는 이슈도 이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의‘우리’부

이 서론의 다음 단원“ ( 누가복음의 기원과 목적”)은 대체로 전문적인 신약 개론에

그리고“세 번째 복음서의 저자는 바울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었

분을 저술한 사람은 자신이 바울의 선교 여행에 동참했다고 묘사하기 때문이

속한 내용을 다룰 것이다. 반면에 그 이후의 단원들은 누가복음의 메시지를

다. 누가와‘우리’부분과의 연관성을 부인하는 학자들은 바울에 대한 누가의

소개할 것이다.2)

묘사를 바울 서신에서 나타나는 바울에 대한 묘사와 비교하려고 시도한다. 그 러면서 이 학자들은 이 두 가지 모습들이 역사적인 세부 사항 및 신학적인 강 조점에서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누가는 바울의 사역과 입 장을 묘사하는 데 바울의 편지들을 이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필하우어는 이 두 가지 모습들이 서로 매우 다르기 때문에, 세 번째 복음서의 저자는 바울의 동료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피츠마이어 (Fitzmyer

2 ) 피츠마이어(Fitzmyer 1981: 1~283)는 누가복음에 대한 훌륭한 서론을 제시했다. 따라서 누가복

음의 표현 방식과 서론에 대한 전문적인 견해들에 대해서 반복해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특별히 나는 다음 몇 가지 사항들에 대한 피츠마이어의 연구 결과 가운데 상당 부분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곧 누가복음 연구에 대한 현재의 상황 및 동향(pp. 3~34), 누가의 저술에 대한 피 츠마이어의 논의 가운데 몇 가지 관점(pp. 63~106)과 누가의 표현 방식과 언어에 대한 피츠마 이어의 논점(pp. 107~127) 및 누가복음의 배후에 있는 사본 전승에 대한 피츠마이어의 상세한 설명(pp. 128~133)이다. 22

1989: 1~26) 는‘우리’

부분이 문학적으로 고안된 것이라면, 왜‘우리’부분이 임의적인 방법으로 나 타났다가 없어지는지에 대해서 납득할 만한 설명을 제시할 수 없다고 주장하 면서, 그 연관성을 옹호한다. 또한 피츠마이어는 이른바‘우리’부분과 같은 문학적인 고안이 예기되는‘항해’ 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행 13:4, 13, 14:26, 17:14, 라는 18:18, 21, 20:1~2) 에는‘우리’

표현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23


누가복음 1

서론

이레나이우스의 유명한 주장 (누가는 3.14.1) 과는

태어났고, 누가복음 및 사도행전의 저자라고 언급한다. 피츠마이어 (Fitzmyer

1981: 40) 는

외적인 증거를 다음 두 카테고리로 간단하

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뿐만 아니라 굴더 (Goulder 1989: 129~146) 는 누

게 분류한다. 곧 신약 성경으로부터 추론해 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반면에

가가 바울의 고린도전서 (가능성이 다소 덜하기는 하지만 데살로니가전서) 를 알고 있었고,

신약 성경으로부터 추론해 낼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신약 성경은 다음 사실

또한 고린도전서를 언급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학자들은 바울에 대한

들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혀 준다고 한다. 누가는 의사였고, 바울과 관련되어

두 가지 묘사들이 서로 양립할 수 있다고 말한다 (F. F. Bruce 1975~1976). 이와 같

있으며, 예수가 행한 일들을 직접 보았던 사람은 아니었고, 이방인들을 위해

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내적 증거는 저자가 바울을 알고 있었고, 또한 누

서 누가복음을 기록했다. 반면에 다음 견해들은 신약 성경에서 분명하게 언급

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는 적어도 2세대의 그리스도인이었다고 알려 준다.

되지 않는다고 한다. 곧 누가는 수리아 지역에서 왔으며, 바울의 복음을 선포

외적 증거. 바울의 편지들은 바울의 선교 여행에 동참했을 가능성이 있었던

했고, 결혼하지 않았으며, 자녀가 없었고, 또한 매우 오래 살다가 죽었다는 점

몇몇의 동역자들의 이름을 언급한다. 곧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 (몬 24절;

이다. 누가가 몇 살에 죽었는지에 대한 전승들의 언급은 차이점이 있다. 이 차

골 4:14) 다.

이 명단에 디모데, 디도, 실라, 에바브라, 바나바를 추가할 수 있을

이점은 누가에 대한 전승들의 진술들이 모두 논의할 필요가 전혀 없는 명백한

것이다. 이와 같이 바울의 동역자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하지

사실들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 준다. 하지만 누가복음의 저자와 관련된 전승들

만 교회의 전승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로서 오직 한 사람, 곧 누가에게

의 언급은 누가가 세 번째 복음서의 저자라는 것을 거의 확실하게 확인시켜

만 관심을 기울인다. 이 전승은 주후 200년 무렵에 초기 교회에 의해서 확립되

준다. 또한 전승은 누가가 바울과 연결되어 있다고 증거해 준다. 이 증거는 가

었다. 반대 의견에 대한 암시가 전혀 없이, 이 전승은 계속해서 전해 내려왔다.

능성이 매우 높다.

이 세부 사항에 대한 논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교회가 이 전승을 진지하게

누가: 이방인이며 의사? 다음 두 가지 질문들에 대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받아들였다는 점을 강력하게 뒷받침해 준다. 누가복음의 저자에 대한 언급은

누가는 이방인이었는가? 누가는 의사였는가? 대부분의 학자들은 누가가 이방

가장 이른 것으로는 클레멘스1서 (주후

13.2와 48.4 및 클레멘스2서

인이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학자들은 누가가 순전한 이방인인지, 아니면‘유

13.4에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 10장 7절에 반영된 예수

대인은 아니지만’셈어권에 속한 사람인지에 대해서 논쟁을 한다. 이와 같은

의 가르침이 디모데전서 5장 18절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많은 문헌들이 누가

질문과 관련하여, 엘리스 (Ellis 1974: 52~53) 는 예외적인 견해를 제기한다. 곧 엘

복음의 저자에 대해서 언급한다. 순교자 유스티아누스 (약

(주후 100년경)

95~96년경)

160년경) 는『트리포

리스는 누가가 헬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와의 대화』103.19에서 누가가“예수에 대한 언행록”을 저술했으며, 바울의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서 엘리스는 다음 세 가지를 지적한다. (1)

추종자였다고 주장한다.『무라토리우스 정경』(170~180년경) 에 의하면, 누가가

누가는 구약 성경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있다. (2) 골로새서 4장 10~11절은

세 번째 복음서를 저술했고, 의사이며, 바울의 동역자라고 한다. 이레나이우스

이 구절들에서 언급되는 사람들이‘할례파’ 에 속한 사람들 (할례를 받은 사람들) 이

(175~195년경) 는『이단

반박』3.1.1과 3.14에서 누가가 누가복음의 저자이며, 바

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4장 14절에서 언급되는 누가가 유대인이 아니라

울의 추종자이고, 사도행전의‘우리’부분이 이 연관성을 암시해 준다고 언급

고 암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단지 누가가 헬라어를 상용했던 유대인

한다. 이른바 누가복음에 대한“반마르키온주의자 서문 ” (The

Anti-Marcionite

이라는 것을 넌지시 알려 준다는 것이다. (3) 또한 팔레스타인의 언어를 사용

누가가 수리아 지역에 있는 안디옥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한

한다는 것은 누가의 뿌리를 밝혀 준다고 한다. 그러나 골로새서 4장 10~11절

Prologue: 175년경) 은

또한 이 서문은 누가가 84세까지 살았으며, 의

에 대한 엘리스의 이해는 타당성이 없다. 왜냐하면 모든 유대인은 할례를 받

사였고,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아가야에서 누가복음을 기록했고, 보이오티아

았기 때문이다 (McKnight 1991a: 78~82). 또한 4장 14절에서 누가는 할례 받지 않

다 (행 11:19~30, (Boeotia) 에서

13:1~3, 15:30~35).

죽었다고 전해 준다. 테르툴리아누스 (3세기

초) 는『마르키온

은 사람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새먼 (Salmon

1988) 은

엘리

박』4.2.2와 4.5.3에서 이 복음서를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요약이라고 부른

스의 견해를 지지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

다. 또한“단일신론주자 서문 ” (The

Monarchian Prologue: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는 (1) 유대인 그룹을 구별한다. (2) 저자는 율법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상세하

누가가 74세에 죽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유세비

게 논의한다. (3) 유대교에 문제점을 제공하는 것으로서, 저자는 이방인 선교

3세기 또는 4세기로 추측됨) 은

우스 (4세기 24

바울과‘분리시킬 수 없는 관계’ 에 있다,『이단 반박』

대조되는 것으로서, 피츠마이어는 누가가 단지 바울의‘후배’동료

초) 는『교회사』3.4.2에서

누가가 바울의 동료였으며, 안디옥에서

에 관심을 갖는다. (4) 또한 저자는 기독교를 유대교의‘한 종파’ 라고 부른다. 25


누가복음 1

서론

이레나이우스의 유명한 주장 (누가는 3.14.1) 과는

태어났고, 누가복음 및 사도행전의 저자라고 언급한다. 피츠마이어 (Fitzmyer

1981: 40) 는

외적인 증거를 다음 두 카테고리로 간단하

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뿐만 아니라 굴더 (Goulder 1989: 129~146) 는 누

게 분류한다. 곧 신약 성경으로부터 추론해 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반면에

가가 바울의 고린도전서 (가능성이 다소 덜하기는 하지만 데살로니가전서) 를 알고 있었고,

신약 성경으로부터 추론해 낼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신약 성경은 다음 사실

또한 고린도전서를 언급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학자들은 바울에 대한

들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혀 준다고 한다. 누가는 의사였고, 바울과 관련되어

두 가지 묘사들이 서로 양립할 수 있다고 말한다 (F. F. Bruce 1975~1976). 이와 같

있으며, 예수가 행한 일들을 직접 보았던 사람은 아니었고, 이방인들을 위해

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내적 증거는 저자가 바울을 알고 있었고, 또한 누

서 누가복음을 기록했다. 반면에 다음 견해들은 신약 성경에서 분명하게 언급

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는 적어도 2세대의 그리스도인이었다고 알려 준다.

되지 않는다고 한다. 곧 누가는 수리아 지역에서 왔으며, 바울의 복음을 선포

외적 증거. 바울의 편지들은 바울의 선교 여행에 동참했을 가능성이 있었던

했고, 결혼하지 않았으며, 자녀가 없었고, 또한 매우 오래 살다가 죽었다는 점

몇몇의 동역자들의 이름을 언급한다. 곧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 (몬 24절;

이다. 누가가 몇 살에 죽었는지에 대한 전승들의 언급은 차이점이 있다. 이 차

골 4:14) 다.

이 명단에 디모데, 디도, 실라, 에바브라, 바나바를 추가할 수 있을

이점은 누가에 대한 전승들의 진술들이 모두 논의할 필요가 전혀 없는 명백한

것이다. 이와 같이 바울의 동역자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하지

사실들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 준다. 하지만 누가복음의 저자와 관련된 전승들

만 교회의 전승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로서 오직 한 사람, 곧 누가에게

의 언급은 누가가 세 번째 복음서의 저자라는 것을 거의 확실하게 확인시켜

만 관심을 기울인다. 이 전승은 주후 200년 무렵에 초기 교회에 의해서 확립되

준다. 또한 전승은 누가가 바울과 연결되어 있다고 증거해 준다. 이 증거는 가

었다. 반대 의견에 대한 암시가 전혀 없이, 이 전승은 계속해서 전해 내려왔다.

능성이 매우 높다.

이 세부 사항에 대한 논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교회가 이 전승을 진지하게

누가: 이방인이며 의사? 다음 두 가지 질문들에 대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받아들였다는 점을 강력하게 뒷받침해 준다. 누가복음의 저자에 대한 언급은

누가는 이방인이었는가? 누가는 의사였는가? 대부분의 학자들은 누가가 이방

가장 이른 것으로는 클레멘스1서 (주후

13.2와 48.4 및 클레멘스2서

인이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학자들은 누가가 순전한 이방인인지, 아니면‘유

13.4에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 10장 7절에 반영된 예수

대인은 아니지만’셈어권에 속한 사람인지에 대해서 논쟁을 한다. 이와 같은

의 가르침이 디모데전서 5장 18절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많은 문헌들이 누가

질문과 관련하여, 엘리스 (Ellis 1974: 52~53) 는 예외적인 견해를 제기한다. 곧 엘

복음의 저자에 대해서 언급한다. 순교자 유스티아누스 (약

(주후 100년경)

95~96년경)

160년경) 는『트리포

리스는 누가가 헬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와의 대화』103.19에서 누가가“예수에 대한 언행록”을 저술했으며, 바울의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서 엘리스는 다음 세 가지를 지적한다. (1)

추종자였다고 주장한다.『무라토리우스 정경』(170~180년경) 에 의하면, 누가가

누가는 구약 성경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있다. (2) 골로새서 4장 10~11절은

세 번째 복음서를 저술했고, 의사이며, 바울의 동역자라고 한다. 이레나이우스

이 구절들에서 언급되는 사람들이‘할례파’ 에 속한 사람들 (할례를 받은 사람들) 이

(175~195년경) 는『이단

반박』3.1.1과 3.14에서 누가가 누가복음의 저자이며, 바

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4장 14절에서 언급되는 누가가 유대인이 아니라

울의 추종자이고, 사도행전의‘우리’부분이 이 연관성을 암시해 준다고 언급

고 암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단지 누가가 헬라어를 상용했던 유대인

한다. 이른바 누가복음에 대한“반마르키온주의자 서문 ” (The

Anti-Marcionite

이라는 것을 넌지시 알려 준다는 것이다. (3) 또한 팔레스타인의 언어를 사용

누가가 수리아 지역에 있는 안디옥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한

한다는 것은 누가의 뿌리를 밝혀 준다고 한다. 그러나 골로새서 4장 10~11절

Prologue: 175년경) 은

또한 이 서문은 누가가 84세까지 살았으며, 의

에 대한 엘리스의 이해는 타당성이 없다. 왜냐하면 모든 유대인은 할례를 받

사였고,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아가야에서 누가복음을 기록했고, 보이오티아

았기 때문이다 (McKnight 1991a: 78~82). 또한 4장 14절에서 누가는 할례 받지 않

다 (행 11:19~30, (Boeotia) 에서

13:1~3, 15:30~35).

죽었다고 전해 준다. 테르툴리아누스 (3세기

초) 는『마르키온

은 사람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새먼 (Salmon

1988) 은

엘리

박』4.2.2와 4.5.3에서 이 복음서를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요약이라고 부른

스의 견해를 지지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

다. 또한“단일신론주자 서문 ” (The

Monarchian Prologue: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는 (1) 유대인 그룹을 구별한다. (2) 저자는 율법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상세하

누가가 74세에 죽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유세비

게 논의한다. (3) 유대교에 문제점을 제공하는 것으로서, 저자는 이방인 선교

3세기 또는 4세기로 추측됨) 은

우스 (4세기 24

바울과‘분리시킬 수 없는 관계’ 에 있다,『이단 반박』

대조되는 것으로서, 피츠마이어는 누가가 단지 바울의‘후배’동료

초) 는『교회사』3.4.2에서

누가가 바울의 동료였으며, 안디옥에서

에 관심을 갖는다. (4) 또한 저자는 기독교를 유대교의‘한 종파’ 라고 부른다. 25


누가복음 1

서론

여기에 저자가 구약 성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점을 덧붙일 수 있다고 한

하지만 캐드버리의 저서는 누가가 의사였을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 누가가 유대인인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골로새서 4장

단지 누가복음 및 사도행전의 용어들은 누가의 직업이 의사였다는 것을 보증

14절과 더불어, 아래에 언급되는 요소들에 근거할 때, 그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해 주지 않는다. 누가의 직업이 의사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궁극적으

피츠마이어 (Fitzmyer

누가가 유대인은 아니지만, 셈어권에 속

로 누가에 대한 골로새서의 언급과 초대 교회에서 비롯된 전승을 어떻게 평가

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서 다음 사항들을 제시한다. (1) 골로새서

하는지에 달려 있다. 누가가 의사라는 것과 관련해 전승은 자세하게 언급할

4장 10~11절과 14절. (2) 라틴어 이름의 축소형으로서,‘ 루카스’ 라는 헬라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전승은 이 점에 대한 변증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이름. (3) 누가가 수리아의 안디옥 출신이라는 교회 전승의 세부적인 내용.

것이다. 따라서 누가가 의사라는 언급은 사실 그대로를 반영할 것이다.

1981: 42~47) 는

이 견해는 매우 가능성이 있다. 사실상 피츠마이어의 견해와 새먼의 견해를

누가에 대해서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말할 수 있다. 누가는‘한

결합시킨다면, 누가는 이전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이었거나, 또는 유대

동안’바울의 동역자였다. 누가는 의사일 가능성이 있다. 누가는 아마도 수리

3)

교로 개종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세부적인 내용을 더 이상 언급하지 않은 채, 대부분의 주석자들은 누가를 이방인이라고 이해한다. 그 근거로서 주석자들은 다음 사항을 지적한다. (1)

아의 안디옥 출신이며, 유대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누가가 수리아의 문화권에 서 성장했는지, 아니면 헬라 - 로마 문화권에서 성장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또한 전승에 의하면, 누가는 장수했다고 한다.

골로새서 4장 10~11절과 14절. (2) 사도행전 1장 19절의‘그들의’말로‘아겔 다마’ (아람어로‘피밭’ , 즉

핏값으로 구입한 밭을 뜻함) 라는

표현. (3) 헬라의 장소들에

(2) 자료들

대한 세밀한 언급 및 이방인들에 대한 관심. 하지만 이 세 번째 근거는 강력한

누가복음의 자료들. 누가복음의 자료들에 대한 논쟁은 공관복음서의 문제점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바울과 같은 유대인도 이와 같은 장소들에 대해서 구

이라고 알려진 매우 복합적인 분야 가운데 하나다.4) 이 이슈에 대해서 매우

체적인 지식을 갖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누가는 이방인일

많은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누가가 셈어적인 문화 배경을 지니고 있는지에

어떤 학자들은 세 공관복음서들이 서로 독립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해서 확실히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 누가는 유대교

세 공관복음서들 사이에서 어휘와 사건들의 배열 순서가 상당 부분 일치한다

와 종교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을 것이다.

는 점은 이 견해를 반대한다.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의 머리말 (1:1~4) 에서 누가

골로새서 4장 14절은 누가를 의사로 언급한다. 1882년도에 호바트는 누가 의 직업을 입증시켜 주는 전문적인 용어들을 모두 가려내어, 누가가 의사라는 것을 분명하게 옹호하려고 시도했다. 호바트는 상당히 많은 표현들을 지적했 다. 하지만 캐드버리 (Cadbury

는 이전의 자료들에 대해서 언급한다. 누가의 언급은 이 견해가 지나치게 단 순하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 준다. 공관복음서의 문제점과 관련해 매우 오래된 해결 방법으로서 아우구스티누

저서에 의해 호바트가 제시하는 근거는

스의 가설이라고 알려진 견해가 있다. 곧 세 복음서들은 마태, 마가, 누가의

확실한 것이 아니라고 판명되었다. 캐드버리는 이른바 호바트가 지적하는 거

순서대로 저술되었다고 한다. 이 가설이 지닌 주요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곧

의 모든 전문 의학 용어들이 70인역 및 요세푸스, 루키아노스 및 플루타르크와

누가가 마가복음을 사용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은 채, 요약적인 복음서로서

같은 저자들의 일반적인 헬라 문헌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것은 호바트가 지적하는 전문 용어들은 학식이 있고 문학적인 재능을 지닌 사람이

마가복음의 내용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스바흐 또는‘두 - 복음서’가설은 세 복음서들이 마태, 누가, 마가의 순

라면 어떤 직업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대로 쓰였다고 한다 (Farmer 1964). 이 가설은 다음과 같은 매력을 지니고 있

1926) 의

다. 이 견해는 다른 자료들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한 3 )‘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에 대해서 이후에 다루어지는“누가의 저술 목적 및 독자들과 수신

인”을 참고하라. 최근의 자세한 논의를 알려면, Sterling 1992: 328을 참고하라. 하지만 나는 다 음과 같은 스터링의 제안(p. 326)을 거부한다. 곧 스터링은 누가복음 및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가 아니며, 단지 이 두 책들의 저자는 단지 누가를 인터뷰해서, 행 13~28장을 위한 자료로 인터뷰 내용을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스터링은 왜 전승이 오직 누가만을 저자로 언 급하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을 제시해야 한다. 26

이 견해는 마태복음이 가장 먼저 쓰였다는 초대 교회의 전승과도 일치한다. 이 견해가 지니고 있는 주요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곧 누가가 마태복음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요약적인 복음서로서, 4 ) 누가복음의 자료들에 대한 나의 관점에 대해서 이 주석서의“특별 해설 4” 를 참고하라. 27


누가복음 1

서론

여기에 저자가 구약 성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점을 덧붙일 수 있다고 한

하지만 캐드버리의 저서는 누가가 의사였을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 누가가 유대인인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골로새서 4장

단지 누가복음 및 사도행전의 용어들은 누가의 직업이 의사였다는 것을 보증

14절과 더불어, 아래에 언급되는 요소들에 근거할 때, 그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해 주지 않는다. 누가의 직업이 의사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궁극적으

피츠마이어 (Fitzmyer

누가가 유대인은 아니지만, 셈어권에 속

로 누가에 대한 골로새서의 언급과 초대 교회에서 비롯된 전승을 어떻게 평가

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서 다음 사항들을 제시한다. (1) 골로새서

하는지에 달려 있다. 누가가 의사라는 것과 관련해 전승은 자세하게 언급할

4장 10~11절과 14절. (2) 라틴어 이름의 축소형으로서,‘ 루카스’ 라는 헬라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전승은 이 점에 대한 변증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이름. (3) 누가가 수리아의 안디옥 출신이라는 교회 전승의 세부적인 내용.

것이다. 따라서 누가가 의사라는 언급은 사실 그대로를 반영할 것이다.

1981: 42~47) 는

이 견해는 매우 가능성이 있다. 사실상 피츠마이어의 견해와 새먼의 견해를

누가에 대해서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말할 수 있다. 누가는‘한

결합시킨다면, 누가는 이전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이었거나, 또는 유대

동안’바울의 동역자였다. 누가는 의사일 가능성이 있다. 누가는 아마도 수리

3)

교로 개종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세부적인 내용을 더 이상 언급하지 않은 채, 대부분의 주석자들은 누가를 이방인이라고 이해한다. 그 근거로서 주석자들은 다음 사항을 지적한다. (1)

아의 안디옥 출신이며, 유대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누가가 수리아의 문화권에 서 성장했는지, 아니면 헬라 - 로마 문화권에서 성장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또한 전승에 의하면, 누가는 장수했다고 한다.

골로새서 4장 10~11절과 14절. (2) 사도행전 1장 19절의‘그들의’말로‘아겔 다마’ (아람어로‘피밭’ , 즉

핏값으로 구입한 밭을 뜻함) 라는

표현. (3) 헬라의 장소들에

(2) 자료들

대한 세밀한 언급 및 이방인들에 대한 관심. 하지만 이 세 번째 근거는 강력한

누가복음의 자료들. 누가복음의 자료들에 대한 논쟁은 공관복음서의 문제점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바울과 같은 유대인도 이와 같은 장소들에 대해서 구

이라고 알려진 매우 복합적인 분야 가운데 하나다.4) 이 이슈에 대해서 매우

체적인 지식을 갖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누가는 이방인일

많은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누가가 셈어적인 문화 배경을 지니고 있는지에

어떤 학자들은 세 공관복음서들이 서로 독립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해서 확실히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 누가는 유대교

세 공관복음서들 사이에서 어휘와 사건들의 배열 순서가 상당 부분 일치한다

와 종교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을 것이다.

는 점은 이 견해를 반대한다.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의 머리말 (1:1~4) 에서 누가

골로새서 4장 14절은 누가를 의사로 언급한다. 1882년도에 호바트는 누가 의 직업을 입증시켜 주는 전문적인 용어들을 모두 가려내어, 누가가 의사라는 것을 분명하게 옹호하려고 시도했다. 호바트는 상당히 많은 표현들을 지적했 다. 하지만 캐드버리 (Cadbury

는 이전의 자료들에 대해서 언급한다. 누가의 언급은 이 견해가 지나치게 단 순하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 준다. 공관복음서의 문제점과 관련해 매우 오래된 해결 방법으로서 아우구스티누

저서에 의해 호바트가 제시하는 근거는

스의 가설이라고 알려진 견해가 있다. 곧 세 복음서들은 마태, 마가, 누가의

확실한 것이 아니라고 판명되었다. 캐드버리는 이른바 호바트가 지적하는 거

순서대로 저술되었다고 한다. 이 가설이 지닌 주요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곧

의 모든 전문 의학 용어들이 70인역 및 요세푸스, 루키아노스 및 플루타르크와

누가가 마가복음을 사용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은 채, 요약적인 복음서로서

같은 저자들의 일반적인 헬라 문헌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것은 호바트가 지적하는 전문 용어들은 학식이 있고 문학적인 재능을 지닌 사람이

마가복음의 내용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스바흐 또는‘두 - 복음서’가설은 세 복음서들이 마태, 누가, 마가의 순

라면 어떤 직업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대로 쓰였다고 한다 (Farmer 1964). 이 가설은 다음과 같은 매력을 지니고 있

1926) 의

다. 이 견해는 다른 자료들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한 3 )‘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에 대해서 이후에 다루어지는“누가의 저술 목적 및 독자들과 수신

인”을 참고하라. 최근의 자세한 논의를 알려면, Sterling 1992: 328을 참고하라. 하지만 나는 다 음과 같은 스터링의 제안(p. 326)을 거부한다. 곧 스터링은 누가복음 및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가 아니며, 단지 이 두 책들의 저자는 단지 누가를 인터뷰해서, 행 13~28장을 위한 자료로 인터뷰 내용을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스터링은 왜 전승이 오직 누가만을 저자로 언 급하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을 제시해야 한다. 26

이 견해는 마태복음이 가장 먼저 쓰였다는 초대 교회의 전승과도 일치한다. 이 견해가 지니고 있는 주요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곧 누가가 마태복음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요약적인 복음서로서, 4 ) 누가복음의 자료들에 대한 나의 관점에 대해서 이 주석서의“특별 해설 4” 를 참고하라. 27


누가복음 1

서론

마가복음이 어떻게 다른 복음서들과 겹치는 단락들에서 때때로 보다 세부적

마태복음에 수록된 삼중 전승 자료에 해당되는 부분이 없다 (Fitzmyer

인 내용을 소개해 주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C.

F. Evans 1990: 17 n. w).

(5) 두 경우를 제외하고 (눅 3:7~9, 17, 4:2b~13), 마가복음에 들어 있는 자료를 마

더욱이 마가복음에는 예수의 어린 아이 시절에 대한 이야기나 산상 수훈(또는

태는 이용하지만, 누가복음에는 마태복음에 들어 있는 이 자료가 수록되어 있

평지 설교) 이

들어 있지 않다. 이 점도 마가복음이 맨 마지막에 기록되었다는 것

지 않다. (6) 이 견해는 누가복음의 머리말 (1:1~4) 의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것

을 지지하지 않는다. 특별히 마가는 종말에 대한 예수의 비유들과 가르침에

이다. 왜냐하면 이 머리말은 몇몇의 이전 자료에 대해서 암시하기 때문이다.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이 점은 마가가 예수의 여러 가지 가르침을 소개할 수

이전의 두 자료설과 굴더가 제시하는 두 자료설은 오직 두 자료만 인정한다.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기 때문이다.

이것은‘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눅

대부분의 학자들은‘네 자료설’ 을 지지한다. 이 이론은 맨 처음에 스트리터 (Streeter 1924) 가

체계화했으며, 오늘날에는 터키트 (Tuckett 1983) 와 피츠마이어

(Fitzmyer 1981: 63~106) 에

이다. 굴더 자신도 이 문제점에 대해서 말한다 (Goulder 1989: 27~37). 하지만 굴 더는 누가가 1장 2절에 언급되는 이전의 다른 자료들을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과 동등한“권위 있는 문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

이 견해는 마가복음 우선설과 또한 Q 문서로 알려

주장이 옳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왜냐하면 누가는 많은 사람들

진 예수의‘말씀’자료를 사용했다는 것을 지지한다. 나아가 마태는 자신에게

이 저술한 것을 권위 있는 전승과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1:2).

고유한 특별 자료 (M) 를 지니고 있으며, 반면에 누가도 자신에게 고유한 특별

따라서 누가는 마가복음과 특별 자료 (L) 와 전승들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매

자료 (L) 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네 자료는 마가복음, Q 문서, 마태의

우 높다 (비록 몇몇의 경우에서 서로 중요한 차이점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전승들은 마태복음에도 반

특별 자료, 마가의 특별 자료를 가리킨다. 그리고 누가는 마가복음과 Q 문서

영되었다).

와 누가의 특별 자료를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네 자료설은 Q 문서의 특성

형태로 된 Q 문서들에 대해서 말한다. 곧 마태복음에 반영된 Q 문서와 누가

(오직 예수의 말씀만을 수록함) 과

복음에 반영된 Q 문서에 대해서 말한다 (1978년도에 간행된 주석서에서 마셜은 때때로 이

Q 문서의 존재에 대한 입증과 관련하여 중요한 도

전을 받고 있다. 오직 도마복음서에만 이 장르 (예수의

말씀 모음) 와

비슷한 평행

자료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Q 문서는 그 특성이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두 가지

본문들을 다루면서 이와 같이 구별한다).

이것은 Q 문서가 어떤 고정된 형태로 쓰인 전

승이 아니라, 오히려 광범위하게 전달되었던 전승들의 모음이라고 이해하는

최근에 굴더 (Goulder 1989: 3~71) 는 이전의 견해와는 다소 다른‘두 - 복음서’

것이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의 가르침과 비유들을 상당 부분 공유한

가설을 제기했다. 굴더는 마가, 마태, 누가의 순서대로 저술되었다고 주장한

다. 이 점을 고려할 때, 마태가 Q 문서를 사용하고 누가는 자신에게 고유한 특

다. 또한 마가복음 우선설을 지지한다. 하지만 굴더는 주요 자료로 가정하는

별 자료를 사용했다는 것과 더불어, 누가의 특별 자료와 Q 문서가 서로 겹칠

Q 문서를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굴더의 견해는 누가가 마태복음을 이용했

수 있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다. 어떤 학자들은 Q 문서를 참된 문서 또는 문서

다는 것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이와 같이 연결되어

들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Q 문서를 유동성이 있는 전승들의 모음이라

있다는 것에 이의가 제기될 수 있다. 이 이의 제기는 파머의 접근 방법에도 영

고 이해한다. 또한 나는 누가와 마태가 모두 이와 같은 특성을 지닌 Q 문서에

향을 미친다. 누가가 마태복음을 사용했다는 견해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

서 자료들을 가져왔다고 이해한다.

제점에 직면하게 된다. (1) 누가복음에는 어린 아이 시절에 대한 고유한 자료

어떻게 자료가 단락별로 구별되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나는 아래에 단락과 출처에 대한 목록들을 제시한다. 이 목록은 에번스 (C.

가 들어 있다. 누가는 마태복음에 들어 있는 어린 아이 시절에 대한 자료를 언 급하지 않는다. 굴더의‘두 - 복음서’가설은 이 의문점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

피츠마이어 (Fitzmyer

할 수 있는가? (2) 누가복음의 중심 부분 (눅 9:51~19:44) 에는 마태와 비슷한 자

복음서의 상호 관계에 대해서 다른 견해를 지닌 이들도 이 목록들을 통해서

료가 약간 다르게 다시 배열되어 있다. 또한 누가는 예수의 종말에 대한 가르 침과 마태복음의 다른 가르침들을 고유한 방법으로 제시한다.‘두 - 복음서’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목록들은 누가복음의 순서대로 제시되었다.

가설은 이 점에 대해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Fitzmyer

1981: 75).

(예, 달란트, 잃은 양, 잔치, 신실하지 못한 종의 비유, 산상 수훈, 주기도 등).

1981: 67) 가

F. Evans 1990: 17~18) 와

제시한 목록들을 조금 수정한 것이다.5) 공관

따라서 어떻게 자료가 다시 배열되었는지를 쉽게 분간할 수 있을 것이다.

(3) 또한 이

견해는 마태복음에 수록된 몇몇의 비유들과 예수의 말씀들을 다시 써야 한다

28

어긋나는 것

관련된 피츠마이어의 접근

의해 지지를 받고 있다 (누가복음과

방법은 가장 상세하고 유익하다).

1:2) 와

1981: 75).

(4) 누가복음에는

5 ) 이 목록은 단락별로 제시된 것이다. 따라서 어떤 구절들은 마지막 합계에서 제외되었을 수도

있다. 29


누가복음 1

서론

마가복음이 어떻게 다른 복음서들과 겹치는 단락들에서 때때로 보다 세부적

마태복음에 수록된 삼중 전승 자료에 해당되는 부분이 없다 (Fitzmyer

인 내용을 소개해 주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C.

F. Evans 1990: 17 n. w).

(5) 두 경우를 제외하고 (눅 3:7~9, 17, 4:2b~13), 마가복음에 들어 있는 자료를 마

더욱이 마가복음에는 예수의 어린 아이 시절에 대한 이야기나 산상 수훈(또는

태는 이용하지만, 누가복음에는 마태복음에 들어 있는 이 자료가 수록되어 있

평지 설교) 이

들어 있지 않다. 이 점도 마가복음이 맨 마지막에 기록되었다는 것

지 않다. (6) 이 견해는 누가복음의 머리말 (1:1~4) 의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것

을 지지하지 않는다. 특별히 마가는 종말에 대한 예수의 비유들과 가르침에

이다. 왜냐하면 이 머리말은 몇몇의 이전 자료에 대해서 암시하기 때문이다.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이 점은 마가가 예수의 여러 가지 가르침을 소개할 수

이전의 두 자료설과 굴더가 제시하는 두 자료설은 오직 두 자료만 인정한다.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기 때문이다.

이것은‘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눅

대부분의 학자들은‘네 자료설’ 을 지지한다. 이 이론은 맨 처음에 스트리터 (Streeter 1924) 가

체계화했으며, 오늘날에는 터키트 (Tuckett 1983) 와 피츠마이어

(Fitzmyer 1981: 63~106) 에

이다. 굴더 자신도 이 문제점에 대해서 말한다 (Goulder 1989: 27~37). 하지만 굴 더는 누가가 1장 2절에 언급되는 이전의 다른 자료들을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과 동등한“권위 있는 문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

이 견해는 마가복음 우선설과 또한 Q 문서로 알려

주장이 옳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왜냐하면 누가는 많은 사람들

진 예수의‘말씀’자료를 사용했다는 것을 지지한다. 나아가 마태는 자신에게

이 저술한 것을 권위 있는 전승과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1:2).

고유한 특별 자료 (M) 를 지니고 있으며, 반면에 누가도 자신에게 고유한 특별

따라서 누가는 마가복음과 특별 자료 (L) 와 전승들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매

자료 (L) 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네 자료는 마가복음, Q 문서, 마태의

우 높다 (비록 몇몇의 경우에서 서로 중요한 차이점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전승들은 마태복음에도 반

특별 자료, 마가의 특별 자료를 가리킨다. 그리고 누가는 마가복음과 Q 문서

영되었다).

와 누가의 특별 자료를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네 자료설은 Q 문서의 특성

형태로 된 Q 문서들에 대해서 말한다. 곧 마태복음에 반영된 Q 문서와 누가

(오직 예수의 말씀만을 수록함) 과

복음에 반영된 Q 문서에 대해서 말한다 (1978년도에 간행된 주석서에서 마셜은 때때로 이

Q 문서의 존재에 대한 입증과 관련하여 중요한 도

전을 받고 있다. 오직 도마복음서에만 이 장르 (예수의

말씀 모음) 와

비슷한 평행

자료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Q 문서는 그 특성이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두 가지

본문들을 다루면서 이와 같이 구별한다).

이것은 Q 문서가 어떤 고정된 형태로 쓰인 전

승이 아니라, 오히려 광범위하게 전달되었던 전승들의 모음이라고 이해하는

최근에 굴더 (Goulder 1989: 3~71) 는 이전의 견해와는 다소 다른‘두 - 복음서’

것이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의 가르침과 비유들을 상당 부분 공유한

가설을 제기했다. 굴더는 마가, 마태, 누가의 순서대로 저술되었다고 주장한

다. 이 점을 고려할 때, 마태가 Q 문서를 사용하고 누가는 자신에게 고유한 특

다. 또한 마가복음 우선설을 지지한다. 하지만 굴더는 주요 자료로 가정하는

별 자료를 사용했다는 것과 더불어, 누가의 특별 자료와 Q 문서가 서로 겹칠

Q 문서를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굴더의 견해는 누가가 마태복음을 이용했

수 있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다. 어떤 학자들은 Q 문서를 참된 문서 또는 문서

다는 것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이와 같이 연결되어

들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Q 문서를 유동성이 있는 전승들의 모음이라

있다는 것에 이의가 제기될 수 있다. 이 이의 제기는 파머의 접근 방법에도 영

고 이해한다. 또한 나는 누가와 마태가 모두 이와 같은 특성을 지닌 Q 문서에

향을 미친다. 누가가 마태복음을 사용했다는 견해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

서 자료들을 가져왔다고 이해한다.

제점에 직면하게 된다. (1) 누가복음에는 어린 아이 시절에 대한 고유한 자료

어떻게 자료가 단락별로 구별되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나는 아래에 단락과 출처에 대한 목록들을 제시한다. 이 목록은 에번스 (C.

가 들어 있다. 누가는 마태복음에 들어 있는 어린 아이 시절에 대한 자료를 언 급하지 않는다. 굴더의‘두 - 복음서’가설은 이 의문점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

피츠마이어 (Fitzmyer

할 수 있는가? (2) 누가복음의 중심 부분 (눅 9:51~19:44) 에는 마태와 비슷한 자

복음서의 상호 관계에 대해서 다른 견해를 지닌 이들도 이 목록들을 통해서

료가 약간 다르게 다시 배열되어 있다. 또한 누가는 예수의 종말에 대한 가르 침과 마태복음의 다른 가르침들을 고유한 방법으로 제시한다.‘두 - 복음서’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목록들은 누가복음의 순서대로 제시되었다.

가설은 이 점에 대해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Fitzmyer

1981: 75).

(예, 달란트, 잃은 양, 잔치, 신실하지 못한 종의 비유, 산상 수훈, 주기도 등).

1981: 67) 가

F. Evans 1990: 17~18) 와

제시한 목록들을 조금 수정한 것이다.5) 공관

따라서 어떻게 자료가 다시 배열되었는지를 쉽게 분간할 수 있을 것이다.

(3) 또한 이

견해는 마태복음에 수록된 몇몇의 비유들과 예수의 말씀들을 다시 써야 한다

28

어긋나는 것

관련된 피츠마이어의 접근

의해 지지를 받고 있다 (누가복음과

방법은 가장 상세하고 유익하다).

1:2) 와

1981: 75).

(4) 누가복음에는

5 ) 이 목록은 단락별로 제시된 것이다. 따라서 어떤 구절들은 마지막 합계에서 제외되었을 수도

있다. 29


누가복음 1

서론

첫 번째 목록은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의 평행 본문들에 대한 것이다. 괄호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은 두 복음서들의 상호 의존 관계에 다소 의심이 가는 것 을 가리킨다. 이것은 마태의 판본 (또한 Q 문서) 이 몇몇의 누가의 본문들에 영향 을 미쳤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수난 자료 (눅

22~23장) 는

누가에

눅 3:7~14, 23~38, 4:2b~13, 5:1~11, 19:1~27, 22:28~33, 35~38, 23:6~16, 27~31, 39b~43, 47b~49).

다음에 제시되는 목록은 누가복음과 평행을 이루는 Q 문서/마태복음에 대 한 것이다. 이 목록의 내용은 앞에서 제시한 목록보다 더 복잡하다. 문제가 되 는 본문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비유들을 포함하고 있다. 누가복음과 Q 문서/

게 고유한 자료 (L) 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마태복음이 직접 관련되어 있는지와 관련해 이 본문들에서는 불확실한 요인 누가복음

마가복음

들이 들어 있다. 다음 세 가지 유형들이 불확실함을 제기해 준다. (1) 한 복음

(3:1~7)

(1:1~6)

서 저자는 다른 복음서 저자가 다른 배경에 수록한 내용을 자신의 복음서의

(3:19~20)

(6:17~18)

고유한 배경에 삽입한다. (2) 한 복음서 저자는 다른 복음서 저자가 자신의 복

(3:21~22)

(1:9~11)

음서의 이곳저곳에서 소개한 내용을 한곳에 모아서 수록한다. (3) 어떤 이야

(4:1~2a)

(1:12~13a)

기들은 다소 다르게 표현된다. 에번스 (C. F. Evans 1990: 21~22) 는 괄호 안에 들

4:14~15

1:14~15

어 있는 부분이 상호 관계가 확실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별표( * ) 처리

4:31~44

1:21~39

가 된 부분은 상호 관계가 불확실하다는 것에 대한 나의 입장을 알려 준다. 나

5:12~6:19

1:40~3:19

의 판단에 의하면, 이와 같은 본문들은 다른 형태로 된 Q 문서나, 또는 누가에

8:4~9:17

3:31~4:25, 4:35~5:43, 6:6~16, 30~44

게 고유한 특별 자료 (L) 와 서로 겹치는 것이든지, 아니면 두 가지 모두를 반영

9:18~50, (51)

8:27~9:8, 9:14~41, (10:1)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우선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Q 문서가 아니라, 반면에

18:15~43

10:13~34, 46~52

마태복음을 연결점으로 이해할 것이다.6)

19:28~38

11:1~10

19:45~21:33, (21:37)

11:11, 15~18, 11:27~12:27, 12:35~13:32,

누가복음

마태복음/Q 문서

(11:18b~19)

3:7~9, 16~17

3:7~12

22:1~13

14:1~2, 10~16

4:2~12

4:2~10

(22:14~23)

(14:17~25)

6:20~23, 27~30, 31,

5:2~4, 6~7, 11~12, 39~40, 42, (7:12),

(22:54~71)

(14:53~72)

32~36, 37~40, 41~

5:44~46, 5:48, 7:1~2, (15:14, 10:24~25),

(23:1~5, 18~25)

(15:1~5)

46, 47~49

7:3~5, 16~21, (12:33~35), 7:24~27

(23:26, 33~38)

(15:21~32)

7:1~10

8:5~13

23:44~49

15:33~41

7:18~23

11:2~6

23:50~56

15:42~47

7:24~25

11:7~19

24:1~12

16:1~8

9:57~60

8:19~22

*10:2~16

9:37~38, 10:16, 9~10a, 11~13, 10b, 7~8, 14~15, 11:21~23, 10:40

이 목록에 의하면, 마가복음은 누가복음의 406절과 관련되어 있다. 마가복 음과 관련되어 있는 구절은 누가복음 전체의 약 35퍼센트에 해당된다. 가장

*10:21~22

11:25~27

주목할 만한 사항으로서, 마가복음의 자료는 특별히 예수의 사역에 대해서 묘

*10:23~24

13:16~17

사하는 부분에서 큰 단위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점은 마가복음이 누가복음에 사용 된 자료의 근본적인 출처라고 이해되는 근거들 가운데 하나다).

마가복음과 관련된 누가복음

의 몇몇의 본문들은 또한 Q 문서나 누가의 고유한 자료에서 유래된 것이다 (곧 30

6 ) 마태복음과 Q 문서에 대한 언급은 누가복음의 순서를 따른 것이다. 따라서 때때로 여기에 언

급된 마태복음의 본문은 마태복음의 배열 순서에서 벗어나 있다. 31


누가복음 1

서론

첫 번째 목록은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의 평행 본문들에 대한 것이다. 괄호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은 두 복음서들의 상호 의존 관계에 다소 의심이 가는 것 을 가리킨다. 이것은 마태의 판본 (또한 Q 문서) 이 몇몇의 누가의 본문들에 영향 을 미쳤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수난 자료 (눅

22~23장) 는

누가에

눅 3:7~14, 23~38, 4:2b~13, 5:1~11, 19:1~27, 22:28~33, 35~38, 23:6~16, 27~31, 39b~43, 47b~49).

다음에 제시되는 목록은 누가복음과 평행을 이루는 Q 문서/마태복음에 대 한 것이다. 이 목록의 내용은 앞에서 제시한 목록보다 더 복잡하다. 문제가 되 는 본문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비유들을 포함하고 있다. 누가복음과 Q 문서/

게 고유한 자료 (L) 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마태복음이 직접 관련되어 있는지와 관련해 이 본문들에서는 불확실한 요인 누가복음

마가복음

들이 들어 있다. 다음 세 가지 유형들이 불확실함을 제기해 준다. (1) 한 복음

(3:1~7)

(1:1~6)

서 저자는 다른 복음서 저자가 다른 배경에 수록한 내용을 자신의 복음서의

(3:19~20)

(6:17~18)

고유한 배경에 삽입한다. (2) 한 복음서 저자는 다른 복음서 저자가 자신의 복

(3:21~22)

(1:9~11)

음서의 이곳저곳에서 소개한 내용을 한곳에 모아서 수록한다. (3) 어떤 이야

(4:1~2a)

(1:12~13a)

기들은 다소 다르게 표현된다. 에번스 (C. F. Evans 1990: 21~22) 는 괄호 안에 들

4:14~15

1:14~15

어 있는 부분이 상호 관계가 확실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별표( * ) 처리

4:31~44

1:21~39

가 된 부분은 상호 관계가 불확실하다는 것에 대한 나의 입장을 알려 준다. 나

5:12~6:19

1:40~3:19

의 판단에 의하면, 이와 같은 본문들은 다른 형태로 된 Q 문서나, 또는 누가에

8:4~9:17

3:31~4:25, 4:35~5:43, 6:6~16, 30~44

게 고유한 특별 자료 (L) 와 서로 겹치는 것이든지, 아니면 두 가지 모두를 반영

9:18~50, (51)

8:27~9:8, 9:14~41, (10:1)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우선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Q 문서가 아니라, 반면에

18:15~43

10:13~34, 46~52

마태복음을 연결점으로 이해할 것이다.6)

19:28~38

11:1~10

19:45~21:33, (21:37)

11:11, 15~18, 11:27~12:27, 12:35~13:32,

누가복음

마태복음/Q 문서

(11:18b~19)

3:7~9, 16~17

3:7~12

22:1~13

14:1~2, 10~16

4:2~12

4:2~10

(22:14~23)

(14:17~25)

6:20~23, 27~30, 31,

5:2~4, 6~7, 11~12, 39~40, 42, (7:12),

(22:54~71)

(14:53~72)

32~36, 37~40, 41~

5:44~46, 5:48, 7:1~2, (15:14, 10:24~25),

(23:1~5, 18~25)

(15:1~5)

46, 47~49

7:3~5, 16~21, (12:33~35), 7:24~27

(23:26, 33~38)

(15:21~32)

7:1~10

8:5~13

23:44~49

15:33~41

7:18~23

11:2~6

23:50~56

15:42~47

7:24~25

11:7~19

24:1~12

16:1~8

9:57~60

8:19~22

*10:2~16

9:37~38, 10:16, 9~10a, 11~13, 10b, 7~8, 14~15, 11:21~23, 10:40

이 목록에 의하면, 마가복음은 누가복음의 406절과 관련되어 있다. 마가복 음과 관련되어 있는 구절은 누가복음 전체의 약 35퍼센트에 해당된다. 가장

*10:21~22

11:25~27

주목할 만한 사항으로서, 마가복음의 자료는 특별히 예수의 사역에 대해서 묘

*10:23~24

13:16~17

사하는 부분에서 큰 단위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점은 마가복음이 누가복음에 사용 된 자료의 근본적인 출처라고 이해되는 근거들 가운데 하나다).

마가복음과 관련된 누가복음

의 몇몇의 본문들은 또한 Q 문서나 누가의 고유한 자료에서 유래된 것이다 (곧 30

6 ) 마태복음과 Q 문서에 대한 언급은 누가복음의 순서를 따른 것이다. 따라서 때때로 여기에 언

급된 마태복음의 본문은 마태복음의 배열 순서에서 벗어나 있다. 31


누가복음 1

서론

*(11:1~4)

(6:9~13)

방법과는 다르게, 누가가 마가복음의 자료를 다루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11:9~13

7:7~11

누가는 마가복음의 자료의 내용을 거의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11:14~23

12:22~30

아래에 소개되는 에번스 (Evans 1990: 26~27) 의 목록은 마흔일곱 가지 본문들

11:24~26

12:43~45

을 제시한다 (괄호 안에 들어 있는 부분은 Q 문서[또는 마태복음]나 아니면 마가복음으로부터 영

11:29~32

12:38~42

향을 받은 것이 의심스럽다는 것을 나타낸다).

* 11:33~35

5:15, 6:22~23

*11:39~52

23:25~26, 23, 6~7, 23:27, 4, 29~31, 34~36, 13

1:5~2:52

(10:25~28)

13:10~17

(17:28~32)

*12:2~12

10:26~33, 12:32, 10:19~20

3:10~14

10:29~37

13:31~33

18:1~8

*12:22~34

6:25~33, 19~21

3:23~38

10:38~42

14:1~6

18:9~14

*12:39~46

24:43~51

(4:16~30)

11:5~8

14:7~14

19:1~10

13:18~21

13:31~33

5:1~11

11:27~28

14:28~35(33?)

19:41~44

*13:24~30

7:13~14, 25:10~12, 7:22~23, 8:11~12, 19:30

(5:39)

(12:1)

15:1~10

21:34~36

*13:34~35

23: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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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32

22:15~18, 27,

*(14:15~24)

(22:1~10)

(7:36~50)

(12:35~38)

16:1~15

(31~33), 35~38

*14:26~27

10:37~38

(8:1~3)

12:47~48

16:19~31

23:6~16

*(15:1~7)

(18:12~14)

9:51~55

12:49~50

17:7~10

23:27~3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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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1~62

12:54~56

17:11~19

23:39~43

*(16:17)

(5:18)

10:1, 17~20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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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3~53

*(16:18)

(5:32)

*(17:1~4)

(18:6~7, 15, 21~22)

*17:22~37

24:26~28, 37~41, 40, 28

가복음 전체에서 42퍼센트에 해당된다. 따라서 누가복음의 내용 가운데 상당

*(19:11~27)

(25:14~30)

부분은 다른 복음서들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이 자료는 예수의 어린 아이 시

이 목록에 의하면, 누가복음에만 들어 있는 자료는 485절들이다. 이것은 누

절에 대한 고유한 내용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곳에서는 소개되지 않는 예수 여기서 언급된 누가복음의 241절들은 마가복음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 구절들은 누가복음의 21퍼센트에 해당된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Q 문서는 누 가복음의 중심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이 중심 단원 (눅

32

9:51~19:44) 에

의 말씀들과 비유들로 이루어져 있다. 네 가지 이적 사건들은 오직 누가복음에서만 소개된다 ( 7:11~17, 14:1~6, 17:11~19).

13:10~17,

그 가운데 세 사건은 안식일과 관련된 논쟁이나, 또는 유대인

는 기본적으로 누가복음에만 고유한 특별 자료 (L) 와 마태복음과 외관상 평행

이 아닌 이방인의 예수에 대한 반응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또한 논쟁의 여지

을 이루는 본문들이 결합되어 있다. 누가의 특별 자료가 상당히 들어 있다는

가 전혀 없이, 몇몇의 비유들은 오직 누가복음에만 수록되어 있다 (10:29~37,

점과 이 단원 가운데 몇 부분이 주제별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11:5~8, 12:13~21, 15:1~7, 8~10, 11~32, 16:1~8, 19~31, 18:1~8, 9~14).

각 단락의 자료가 Q 문서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누가의 특별 자료에서 온 것

은 매우 다양하다. 곧 섬김에 대해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 10:29~37), 겸손에 대해서

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굴더 (Goulder

(어떤 바리새인과 세리, 18:9~14),

1989: 73~128) 는

누가가 마태

이 비유들의 내용

기도에 힘쓸 것과 종말론적인 소망에 대해서 (귀찮게

복음의 자료 가운데 상당 부분을 다시 썼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굴더는 이

졸라대는 친구, 11:5~8; 재판관을 귀찮게 하는 과부, 18:1~8),

른바 누가의 특별 자료가 어떤 자료에서 온 것은 거의 없고, 오히려 이것은 사

찾은 기쁨에 대해서 (잃어버린

실상 누가의 강조점과 더 자세한 표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접근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에 대해서 (어리석

방법이 지닌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곧 이 견해는 마태복음 (또는 Q 문서) 을 다룬

은 부자, 12:13~21; 교활한 청지기, 16:1~8; 부자와 나사로, 16:19~31).

잃어버린 자의 소중함과 다시

한 드라크마와 다시 돌아온 아들, 15:8~10, 11~32),

재물을

누가복음의 윤리적인 33


누가복음 1

서론

*(11:1~4)

(6:9~13)

방법과는 다르게, 누가가 마가복음의 자료를 다루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11:9~13

7:7~11

누가는 마가복음의 자료의 내용을 거의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11:14~23

12:22~30

아래에 소개되는 에번스 (Evans 1990: 26~27) 의 목록은 마흔일곱 가지 본문들

11:24~26

12:43~45

을 제시한다 (괄호 안에 들어 있는 부분은 Q 문서[또는 마태복음]나 아니면 마가복음으로부터 영

11:29~32

12:38~42

향을 받은 것이 의심스럽다는 것을 나타낸다).

* 11:33~35

5:15, 6:22~23

*11:39~52

23:25~26, 23, 6~7, 23:27, 4, 29~31, 34~36, 13

1:5~2:52

(10:25~28)

13:10~17

(17:28~32)

*12:2~12

10:26~33, 12:32, 10:19~20

3:10~14

10:29~37

13:31~33

18:1~8

*12:22~34

6:25~33, 19~21

3:23~38

10:38~42

14:1~6

18:9~14

*12:39~46

24:43~51

(4:16~30)

11:5~8

14:7~14

19:1~10

13:18~21

13:31~33

5:1~11

11:27~28

14:28~35(33?)

19:41~44

*13:24~30

7:13~14, 25:10~12, 7:22~23, 8:11~12, 19:30

(5:39)

(12:1)

15:1~10

21:34~36

*13:34~35

23:37~39

7:11~17

12:13~21

15:11~32

22:15~18, 27,

*(14:15~24)

(22:1~10)

(7:36~50)

(12:35~38)

16:1~15

(31~33), 35~38

*14:26~27

10:37~38

(8:1~3)

12:47~48

16:19~31

23:6~16

*(15:1~7)

(18:12~14)

9:51~55

12:49~50

17:7~10

23:27~31

*(16:16)

(11:12~13)

9:61~62

12:54~56

17:11~19

23:39~43

*(16:17)

(5:18)

10:1, 17~20

13:1~9

17:20~21

24:13~53

*(16:18)

(5:32)

*(17:1~4)

(18:6~7, 15, 21~22)

*17:22~37

24:26~28, 37~41, 40, 28

가복음 전체에서 42퍼센트에 해당된다. 따라서 누가복음의 내용 가운데 상당

*(19:11~27)

(25:14~30)

부분은 다른 복음서들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이 자료는 예수의 어린 아이 시

이 목록에 의하면, 누가복음에만 들어 있는 자료는 485절들이다. 이것은 누

절에 대한 고유한 내용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곳에서는 소개되지 않는 예수 여기서 언급된 누가복음의 241절들은 마가복음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 구절들은 누가복음의 21퍼센트에 해당된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Q 문서는 누 가복음의 중심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이 중심 단원 (눅

32

9:51~19:44) 에

의 말씀들과 비유들로 이루어져 있다. 네 가지 이적 사건들은 오직 누가복음에서만 소개된다 ( 7:11~17, 14:1~6, 17:11~19).

13:10~17,

그 가운데 세 사건은 안식일과 관련된 논쟁이나, 또는 유대인

는 기본적으로 누가복음에만 고유한 특별 자료 (L) 와 마태복음과 외관상 평행

이 아닌 이방인의 예수에 대한 반응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또한 논쟁의 여지

을 이루는 본문들이 결합되어 있다. 누가의 특별 자료가 상당히 들어 있다는

가 전혀 없이, 몇몇의 비유들은 오직 누가복음에만 수록되어 있다 (10:29~37,

점과 이 단원 가운데 몇 부분이 주제별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11:5~8, 12:13~21, 15:1~7, 8~10, 11~32, 16:1~8, 19~31, 18:1~8, 9~14).

각 단락의 자료가 Q 문서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누가의 특별 자료에서 온 것

은 매우 다양하다. 곧 섬김에 대해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 10:29~37), 겸손에 대해서

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굴더 (Goulder

(어떤 바리새인과 세리, 18:9~14),

1989: 73~128) 는

누가가 마태

이 비유들의 내용

기도에 힘쓸 것과 종말론적인 소망에 대해서 (귀찮게

복음의 자료 가운데 상당 부분을 다시 썼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굴더는 이

졸라대는 친구, 11:5~8; 재판관을 귀찮게 하는 과부, 18:1~8),

른바 누가의 특별 자료가 어떤 자료에서 온 것은 거의 없고, 오히려 이것은 사

찾은 기쁨에 대해서 (잃어버린

실상 누가의 강조점과 더 자세한 표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접근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에 대해서 (어리석

방법이 지닌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곧 이 견해는 마태복음 (또는 Q 문서) 을 다룬

은 부자, 12:13~21; 교활한 청지기, 16:1~8; 부자와 나사로, 16:19~31).

잃어버린 자의 소중함과 다시

한 드라크마와 다시 돌아온 아들, 15:8~10, 11~32),

재물을

누가복음의 윤리적인 33


누가복음 1

서론

핵심 가르침은 이 자료에 들어 있다. 한편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강조하는

포함되어 있다. 곧 예수의 탄생을 수리아 지역의 총독이었던 구레뇨의 인구

네 가지 추가적인 비유들은 아마도 마태복음에 들어 있는 비유들과 겹치는 것

조사와 연결시키는 것, 드다가 사람들은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킨 사건, 몇몇

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는 이 비유들을 새롭게 조명한다. 곧 예수의 제자

의 비유들과 말씀들의 진정성, 이적 사건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 예수의 재판

는 예수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신실해야 한다 (잔혹한 청지기, 12:39~46). 예수가 베

과정에 대한 묘사, 예수의 부활 사건에 대한 상세한 설명, 설교의 내용을 충실

푸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해서 기뻐해야 한다 (큰 잔치, 14:15~24). 하나님께

히 전달하는 것, 초대 교회가 일치를 이루는 것에 대한 묘사, 베드로와 고넬료

다시 돌아온 사람에 대해서 기뻐해야 한다 (잃어버린 양, 15:1~7). 또한 하나님의 선

의 만남과 관련된 특별한 설명, 최초의 예루살렘 공의회에 대한 언급 및 바울

하심을 믿으며, 하나님이 맡겨 주신 것을 신실하게 돌보며 활용해야 한다 (므나

에 대한 묘사다. 이 세부 사항들에 대한 검토는 개별적으로 엄밀하게 이루어

의 비유, 19:11~27).

져야 한다. 학자들은 이와 같은 사항들에 대해서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릴 것이

이와 같이 누가복음의 보다 광범위한 주제들과 누가의 목회적

인 관심이 오직 누가복음에만 들어 있는 이 네 가지 비유들에서 나타난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관계. 누가복음에서 자료들이 사용된 것에 대해서

기 때문에, 각 사항에 대한 증거 자료를 제시하는 것이 매우 복합적인 문제이

고찰하면서, 우리는 누가가 자신의 이어지는 저서 곧 사도행전을 기대하며,

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차이점은 이 사항들에 대한 학자

자신의 복음서의 내용을 구성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누가복음이 사도행

들의 철학적인 세계관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전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머리말이 반복되어 나타난다는 점에서도 입증된다 (눅 1:1~4; 행 1:1).

사실상 고대의 다른 저서들의 머리말을 연상시켜 주는 표현으

그럼에도 누가가 자료들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면밀하게 검토해 보면, 누 가가 저술한 것이 전반적으로 믿을 만하다는 것이 입증된다 ( Marshall

1970:

로서 (요세푸스,『아피온 반박』1.1 §1), 사도행전의 머리말은 누가복음을 회상시켜 준

21~76).

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서로 평행을 이루는 주요한 주제들도 두 책들이

명에 대해서 자세하게 살펴보면, 누가가 자료들을 매우 신중하게 또한 믿을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증거해 준다 (Maddox 1982: 9~12). 예수가 치유 사역

만하게 다룬다는 것이 드러난다 (Hengel

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베드로와 바울도 치유 사역을 한다. 예수는 반

가는 가장 훌륭한 고대의 역사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또한 누가는 역사가

드시 예루살렘을 향해서 가야만 한다. 반면에 바울은 반드시 로마까지 가야

로서 자신의 역할을 가장 잘 이해했던 고대의 역사가들 가운데 한 명이다 (투키

한다. 예수가 적대자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스데반

디데스와 폴리비오스에 대한 포나라[Fornara 1983: 142~168]의 평가를 참고하라).

도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예수가 하늘로 올라간 사건도 두 책들을 밀접하게

학자들은“누가는 신학자인가, 아니면 역사가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연결시켜 준다 (눅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내용이 서로 얼

이 질문은 역사와 관련된 것에 보다 낮은 지위를 부여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

마나 광범위하게 평행을 이루는지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Talbert

다. 이와 같은 질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은 누가가 자신의 자료를 매우 신중하

1974).

두 책들 사이에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내용에 대해서 각각 세밀하게 평

게 다룬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자료상의 증거를 과소평가한다. 하지만 누가는

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의심할 여지없이, 누가는 예수의 시대와 제자들의

사건들에 대해서 매우 신중하게 다루고 있다. 따라서 누가는 사건들에 대한

시대 사이에서 여러 사항들이 서로 평행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

이야기들을 스스로 지어낸 것이 아니다.

24:49~53; 행 1:1~11).

또한 누가복음 및 사도행전에서 언급되는 사건들의 배경과 관습과 지 1980: vii, 3~49, Hemer 1989).

따라서 누

한편 어떤

여 주려고 시도한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이야기와 신학은 서로 연결되어

그러나 이 말은 누가가 어떤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서 자료를 다시 배열하

있다. 신약 시대의 교회가 세워지고 확장되어 간 것에 대해서 알려면, 우리는

지도 않고, 사건들을 자기 자신의 표현으로 요약하지도 않으며, 어떤 내용을

반드시 예수와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해야만 한다.

전승에서 이끌어 내어 자기 자신의 강조점들을 제시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하

역사가로서의 누가. 누가가 자료들을 사용하는 것을 살펴볼 때, 또 한 가지

는 것이 아니다. 누가의 자료들과 누가의 자료들에 대한 배열과 관련해 위에

특징이 나타난다. 곧 누가는 자신의 자료들을 매우 신중하게 다룬다는 점이

서 제시한 목록들을 연구해 보면, 이와 같은 특성들이 나타난다. 누가가 제시

다.“누가는 어떤 역사가인가?”라는 질문과 관련하여, 많은 논쟁이 빚어졌다.

하는 설교들은 어떤 내용을 알려 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을 요약하고 선포

많은 학자들은 누가가 자신의 자료들을 신학적이며 (Goulder

1989, Haenchen

하기도 한다. 누가는 자신이 묘사하는 사건들을 예리하게 평가하는 사람이

또는 사회적인 이유들을 위해서 매우 자유롭게 다룬다고

다. 누가는 역사뿐만 아니라, 또한 신학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누가는

이해한다. 학자들이 면밀하게 살펴보는 사항들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

단순히 사건들을 발생 순서와 가르침에 따라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1971, Dibelius 1956),

34

다. 한편으로 그 차이점은 그 당시와 오늘날 사이에 시간적인 간격이 놓여 있

35


누가복음 1

서론

핵심 가르침은 이 자료에 들어 있다. 한편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강조하는

포함되어 있다. 곧 예수의 탄생을 수리아 지역의 총독이었던 구레뇨의 인구

네 가지 추가적인 비유들은 아마도 마태복음에 들어 있는 비유들과 겹치는 것

조사와 연결시키는 것, 드다가 사람들은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킨 사건, 몇몇

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는 이 비유들을 새롭게 조명한다. 곧 예수의 제자

의 비유들과 말씀들의 진정성, 이적 사건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 예수의 재판

는 예수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신실해야 한다 (잔혹한 청지기, 12:39~46). 예수가 베

과정에 대한 묘사, 예수의 부활 사건에 대한 상세한 설명, 설교의 내용을 충실

푸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해서 기뻐해야 한다 (큰 잔치, 14:15~24). 하나님께

히 전달하는 것, 초대 교회가 일치를 이루는 것에 대한 묘사, 베드로와 고넬료

다시 돌아온 사람에 대해서 기뻐해야 한다 (잃어버린 양, 15:1~7). 또한 하나님의 선

의 만남과 관련된 특별한 설명, 최초의 예루살렘 공의회에 대한 언급 및 바울

하심을 믿으며, 하나님이 맡겨 주신 것을 신실하게 돌보며 활용해야 한다 (므나

에 대한 묘사다. 이 세부 사항들에 대한 검토는 개별적으로 엄밀하게 이루어

의 비유, 19:11~27).

져야 한다. 학자들은 이와 같은 사항들에 대해서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릴 것이

이와 같이 누가복음의 보다 광범위한 주제들과 누가의 목회적

인 관심이 오직 누가복음에만 들어 있는 이 네 가지 비유들에서 나타난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관계. 누가복음에서 자료들이 사용된 것에 대해서

기 때문에, 각 사항에 대한 증거 자료를 제시하는 것이 매우 복합적인 문제이

고찰하면서, 우리는 누가가 자신의 이어지는 저서 곧 사도행전을 기대하며,

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차이점은 이 사항들에 대한 학자

자신의 복음서의 내용을 구성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누가복음이 사도행

들의 철학적인 세계관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전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머리말이 반복되어 나타난다는 점에서도 입증된다 (눅 1:1~4; 행 1:1).

사실상 고대의 다른 저서들의 머리말을 연상시켜 주는 표현으

그럼에도 누가가 자료들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면밀하게 검토해 보면, 누 가가 저술한 것이 전반적으로 믿을 만하다는 것이 입증된다 ( Marshall

1970:

로서 (요세푸스,『아피온 반박』1.1 §1), 사도행전의 머리말은 누가복음을 회상시켜 준

21~76).

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서로 평행을 이루는 주요한 주제들도 두 책들이

명에 대해서 자세하게 살펴보면, 누가가 자료들을 매우 신중하게 또한 믿을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증거해 준다 (Maddox 1982: 9~12). 예수가 치유 사역

만하게 다룬다는 것이 드러난다 (Hengel

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베드로와 바울도 치유 사역을 한다. 예수는 반

가는 가장 훌륭한 고대의 역사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또한 누가는 역사가

드시 예루살렘을 향해서 가야만 한다. 반면에 바울은 반드시 로마까지 가야

로서 자신의 역할을 가장 잘 이해했던 고대의 역사가들 가운데 한 명이다 (투키

한다. 예수가 적대자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스데반

디데스와 폴리비오스에 대한 포나라[Fornara 1983: 142~168]의 평가를 참고하라).

도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예수가 하늘로 올라간 사건도 두 책들을 밀접하게

학자들은“누가는 신학자인가, 아니면 역사가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연결시켜 준다 (눅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내용이 서로 얼

이 질문은 역사와 관련된 것에 보다 낮은 지위를 부여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

마나 광범위하게 평행을 이루는지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Talbert

다. 이와 같은 질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은 누가가 자신의 자료를 매우 신중하

1974).

두 책들 사이에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내용에 대해서 각각 세밀하게 평

게 다룬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자료상의 증거를 과소평가한다. 하지만 누가는

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의심할 여지없이, 누가는 예수의 시대와 제자들의

사건들에 대해서 매우 신중하게 다루고 있다. 따라서 누가는 사건들에 대한

시대 사이에서 여러 사항들이 서로 평행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

이야기들을 스스로 지어낸 것이 아니다.

24:49~53; 행 1:1~11).

또한 누가복음 및 사도행전에서 언급되는 사건들의 배경과 관습과 지 1980: vii, 3~49, Hemer 1989).

따라서 누

한편 어떤

여 주려고 시도한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이야기와 신학은 서로 연결되어

그러나 이 말은 누가가 어떤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서 자료를 다시 배열하

있다. 신약 시대의 교회가 세워지고 확장되어 간 것에 대해서 알려면, 우리는

지도 않고, 사건들을 자기 자신의 표현으로 요약하지도 않으며, 어떤 내용을

반드시 예수와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해야만 한다.

전승에서 이끌어 내어 자기 자신의 강조점들을 제시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하

역사가로서의 누가. 누가가 자료들을 사용하는 것을 살펴볼 때, 또 한 가지

는 것이 아니다. 누가의 자료들과 누가의 자료들에 대한 배열과 관련해 위에

특징이 나타난다. 곧 누가는 자신의 자료들을 매우 신중하게 다룬다는 점이

서 제시한 목록들을 연구해 보면, 이와 같은 특성들이 나타난다. 누가가 제시

다.“누가는 어떤 역사가인가?”라는 질문과 관련하여, 많은 논쟁이 빚어졌다.

하는 설교들은 어떤 내용을 알려 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을 요약하고 선포

많은 학자들은 누가가 자신의 자료들을 신학적이며 (Goulder

1989, Haenchen

하기도 한다. 누가는 자신이 묘사하는 사건들을 예리하게 평가하는 사람이

또는 사회적인 이유들을 위해서 매우 자유롭게 다룬다고

다. 누가는 역사뿐만 아니라, 또한 신학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누가는

이해한다. 학자들이 면밀하게 살펴보는 사항들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

단순히 사건들을 발생 순서와 가르침에 따라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1971, Dibelius 1956),

34

다. 한편으로 그 차이점은 그 당시와 오늘날 사이에 시간적인 간격이 놓여 있

35


누가복음 1

서론

사건들의 주제별 및 신학적인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누가는 신학자와 목

관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회자로서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누가가 글을 써 나가야 하는 방향은 앞서 일

누가는 단지 데오빌로라는 인물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

어난 역사에 의해서 이미 정해져 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목회적, 신

은 아닐 것이다. 또한 누가는 로마 관리인 데오빌로가 기독교를 합법적인 종

학적, 역사적인 요소를 과소평가하는 사람은 누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깊이

교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기독교에 대한 설명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저술한 것

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누가는 바울과 복음 전파에 대한 자신의 단순한 메시 지를 변호하기 위해서 쓴 것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누가복음은 법적이며

(3) 누가의 저술 목적 및 독자들과 수신인

정치적인 사항에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복음 전파 이외

데오빌로가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 아니면 그리스도인이 되어 가는

에도 누가는 매우 많은 이슈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선교

과정에 있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빚어졌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작 의도

와 누가가 제시하는 관점 때문에, 바울은 사도행전의 후반부에서 중요한 인물

에 대해서 많은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참조, Maddox 1982: 20~22).

로 소개되는 것이다. 누가복음 1장 3~4절은 데오빌로가 이미 몇 가지 가르침 을 받았다고 암시해 준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다음 사항들에 대해서

(1) 왜 예수가 다시 오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Conzelmann 1960: 95~234).

세부적으로 언급된다. 곧 제자들의 신실한 자세,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 예

(2) 기독교에 대한 변증서다 (Haenchen 1971: 100~102).

수가 다시 오는 것에 대한 견고한 소망이다. 이 사항들은 새로운 공동체와 자

(3) 바울에 대해서 로마 정부에게 변호하는 것이다 (Mattill 1975).

신의 관계에 대해서 회의를 품고 있는 어떤 이방인을 연상시켜 준다. 사회적

(4) 바울에 대해서 신앙 공동체에게 변호하는 것이다 (Jervell 1972: 17).

으로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 이방인들이 새로운 공동체에 포함되

(5) 영지주의를 논박하기 위해서 쓴 것이다 (Talbert 1978: 13~15).

는 것, 초대 교회가 사람들에게서 거부를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이와 같

(6) 복음 전파를 위해서 쓴 것이다 (O’Neill 1970: 172~185).

은 배경을 넌지시 알려 준다.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에 제시되는 많은 윤리적

(7)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에 대한 메시지를 확인시켜 주려는 것이다 (Van

인 권면도 이와 같은 접근 방법을 암시해 준다. 아마도 데오빌로는 높은 지위 에 있던 인물이었을 것이다 (눅 1:3). 데오빌로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교회와 관

Unnik 1960, Marshall 1978: 35~36, O’ Toole 1984: 17).

(8)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서 변증하는 신정론의 성 격을 지니고 있다 (Tiede 1980: 27~28).

련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데오빌로는 자신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 성되어 있으며, 또한 많은 박해를 받고 있던 이 새로운 공동체에 진정으로 속

(9)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사회학적으로 정당화하며, 또한 새로운 공동체

해 있는지에 대해서 회의를 품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복음서를 통해 누가

가 로마 정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변호하는 것이다 (Esler

는 데오빌로에게 예수의 생애에 대해서 소개해 준다. 자신의 복음서를 통해

1987:

210~219.‘ 변증적인 역사서’ 라는 스털링[Sterling 1992]의 주장은 이 견해에 가깝다).

누가는 하나님이 예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어떻게 일하셨는지, 또한 예수가

(10) 유대교와 화목을 이루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

소망에 대해서 어떻게 선포했는지를 알게 해 준다. 또한 비록 유대인들 가운

해서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은 유대교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보여

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된다는 것을 거부하

주려는 것이다 (Brawley 1987: 155~159).

지만, 누가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의 약속들에 대해

(11) 유대인들을 반대하는 문서이며, 또한 유대인들에 대한 전적인 거부를 드러내는 문서다 (J. T. Sanders 1987).

서 변호하고자 한다 (이 점과 관련해 누가는 롬 9~11장에 언급된 바울의 관점과 비슷한 입장을 지니고 있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도 복음의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전달

하고자 한다. 그래서 데오빌로가 예수에 대한 믿음을 신실하게 지키며, 헌신

36

이와 같이 누가의 저작 목적에 대해서 많은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이 견해들

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하려는 것이다. 또한 심지어 유대인들이 예수와 새로

가운데서, 구원 역사와 관련된 하나님의 역할과 하나님의 새로운 공동체에 관

운 공동체를 거부하는 한가운데서도, 데오빌로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장

심을 기울이는 것이 누가복음의 전체 내용의 핵심적인 관점을 가장 잘 반영하

차 예수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기대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에게 나오

는 것 같다 (7~10견해). 오직 누가복음에만 고유한 자료에 대한 개관과 마찬가지

기 이전에, 데오빌로가 이른바‘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이었을 가능성이

로, 또한 누가복음의 구조와 신학을 면밀하게 검토해 보면, 이와 같은 핵심

매우 높다. 이것은 누가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구약 성경을 광범위하게 37


누가복음 1

서론

사건들의 주제별 및 신학적인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누가는 신학자와 목

관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회자로서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누가가 글을 써 나가야 하는 방향은 앞서 일

누가는 단지 데오빌로라는 인물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

어난 역사에 의해서 이미 정해져 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목회적, 신

은 아닐 것이다. 또한 누가는 로마 관리인 데오빌로가 기독교를 합법적인 종

학적, 역사적인 요소를 과소평가하는 사람은 누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깊이

교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기독교에 대한 설명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저술한 것

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누가는 바울과 복음 전파에 대한 자신의 단순한 메시 지를 변호하기 위해서 쓴 것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누가복음은 법적이며

(3) 누가의 저술 목적 및 독자들과 수신인

정치적인 사항에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복음 전파 이외

데오빌로가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 아니면 그리스도인이 되어 가는

에도 누가는 매우 많은 이슈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선교

과정에 있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빚어졌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작 의도

와 누가가 제시하는 관점 때문에, 바울은 사도행전의 후반부에서 중요한 인물

에 대해서 많은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참조, Maddox 1982: 20~22).

로 소개되는 것이다. 누가복음 1장 3~4절은 데오빌로가 이미 몇 가지 가르침 을 받았다고 암시해 준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다음 사항들에 대해서

(1) 왜 예수가 다시 오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Conzelmann 1960: 95~234).

세부적으로 언급된다. 곧 제자들의 신실한 자세,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 예

(2) 기독교에 대한 변증서다 (Haenchen 1971: 100~102).

수가 다시 오는 것에 대한 견고한 소망이다. 이 사항들은 새로운 공동체와 자

(3) 바울에 대해서 로마 정부에게 변호하는 것이다 (Mattill 1975).

신의 관계에 대해서 회의를 품고 있는 어떤 이방인을 연상시켜 준다. 사회적

(4) 바울에 대해서 신앙 공동체에게 변호하는 것이다 (Jervell 1972: 17).

으로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 이방인들이 새로운 공동체에 포함되

(5) 영지주의를 논박하기 위해서 쓴 것이다 (Talbert 1978: 13~15).

는 것, 초대 교회가 사람들에게서 거부를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이와 같

(6) 복음 전파를 위해서 쓴 것이다 (O’Neill 1970: 172~185).

은 배경을 넌지시 알려 준다.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에 제시되는 많은 윤리적

(7)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에 대한 메시지를 확인시켜 주려는 것이다 (Van

인 권면도 이와 같은 접근 방법을 암시해 준다. 아마도 데오빌로는 높은 지위 에 있던 인물이었을 것이다 (눅 1:3). 데오빌로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교회와 관

Unnik 1960, Marshall 1978: 35~36, O’ Toole 1984: 17).

(8)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서 변증하는 신정론의 성 격을 지니고 있다 (Tiede 1980: 27~28).

련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데오빌로는 자신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 성되어 있으며, 또한 많은 박해를 받고 있던 이 새로운 공동체에 진정으로 속

(9)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사회학적으로 정당화하며, 또한 새로운 공동체

해 있는지에 대해서 회의를 품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복음서를 통해 누가

가 로마 정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변호하는 것이다 (Esler

는 데오빌로에게 예수의 생애에 대해서 소개해 준다. 자신의 복음서를 통해

1987:

210~219.‘ 변증적인 역사서’ 라는 스털링[Sterling 1992]의 주장은 이 견해에 가깝다).

누가는 하나님이 예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어떻게 일하셨는지, 또한 예수가

(10) 유대교와 화목을 이루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

소망에 대해서 어떻게 선포했는지를 알게 해 준다. 또한 비록 유대인들 가운

해서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은 유대교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보여

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된다는 것을 거부하

주려는 것이다 (Brawley 1987: 155~159).

지만, 누가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의 약속들에 대해

(11) 유대인들을 반대하는 문서이며, 또한 유대인들에 대한 전적인 거부를 드러내는 문서다 (J. T. Sanders 1987).

서 변호하고자 한다 (이 점과 관련해 누가는 롬 9~11장에 언급된 바울의 관점과 비슷한 입장을 지니고 있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도 복음의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전달

하고자 한다. 그래서 데오빌로가 예수에 대한 믿음을 신실하게 지키며, 헌신

36

이와 같이 누가의 저작 목적에 대해서 많은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이 견해들

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하려는 것이다. 또한 심지어 유대인들이 예수와 새로

가운데서, 구원 역사와 관련된 하나님의 역할과 하나님의 새로운 공동체에 관

운 공동체를 거부하는 한가운데서도, 데오빌로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장

심을 기울이는 것이 누가복음의 전체 내용의 핵심적인 관점을 가장 잘 반영하

차 예수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기대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에게 나오

는 것 같다 (7~10견해). 오직 누가복음에만 고유한 자료에 대한 개관과 마찬가지

기 이전에, 데오빌로가 이른바‘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이었을 가능성이

로, 또한 누가복음의 구조와 신학을 면밀하게 검토해 보면, 이와 같은 핵심

매우 높다. 이것은 누가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구약 성경을 광범위하게 37


누가복음 1

서론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잘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누가가 사

다른 문서들 (예, 클레멘스1서[주후 95년]와 이그나티우스[주후 117년]) 의 분위기와 상당히

도행전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

다르다 (참조, Ellis 1974: 55).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이 늦은 연대에 기록되었다면,

실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행 10:2, 22, 35, 13:16, 26, 43, 50, 17:4,

사도행전뿐만 아니라 또한 누가복음이 바울의 편지들을 전적으로 무시하지

17, 18:7).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클레멘스1서 5.6~7은 사도행전 26장을, 2.1은 사

그러나 누가는 오직 데오빌로 한 사람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와

도행전 20장 35절을, 또한 18.1은 사도행전 13장 22절을 언급할 가능성이 충

같은 긴장감을 느끼고 있던 모든 사람을 위해서 쓴 것이다. 원래 유대인들로

분히 있다. 이 언급은 이와 같이 늦은 기록 연대를 지지하지 않는다. 나아가

부터 시작된 운동에 소외감을 느끼고 있던 어떤 이방인은 누가가 제공하는 확

이 언급은 누가복음의 가장 늦은 기록 연대를 2세기 중반에서 90년대 중반으

실한 정보를 통해서 유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

로 제한해 준다.

한 복음에 많은 유대인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나, 또는 많은 이방인들

많은 학자들은 예루살렘의 멸망 이후, 대체로 주후 80~90년 사이를 누가복

이 복음에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을 경험하면서 고민하고 있던 어떤 유대인 (또는

음의 기록 연대로 제시한다.7) 이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근거들을 제시한다.

유대 그리스도인) 은

하나님이 그 일을 인도하시며 또한 하나님이 자신의 새로운

(1) 누가복음은 마가복음 이후에 저술되었다고 주장된다. 그리고 마가복음은

일에 동참하도록 이스라엘을 다양한 방법으로 초대하신다고 이해할 수 있었

주후 60년대에 저술되었다. (2) 바울이 중심인물로 묘사되기에는 시간이 필

을 것이다. 기독교는 유대교와 부딪히게 되었다. 이것은 기독교의 새로운 운

요하다. (3) 에베소 교회와 같은 교회들의 모습은 90년대 중반에 일어난 도미

동이 자신을 유대교로부터 의식적으로 분리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 아니었

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사건 이전의 시기를 필요로 한다. (4) 예루살렘 성의 포

다.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유대교의 거부와 박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로 분

위와 예루살렘 성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누가복음에 수록된 예수의 종말

리되게 되었던 것이다. 이 거부는 사도행전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론적인 가르침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이 시기는 주후

그 씨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예수를 거부한 데서 이미 자라나고 있었다. 누

70년 이후이다. (5) 어떤 학자들은 누가복음의 신학은 후대의 것이며, 심지어

가복음 9~13장과 22~23장에서 그 점에 대해서 신중하고 자세하게 묘사된다.

‘초기 가톨릭적인 특징’ (early catholic) 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누가는 이 새로운 신앙 공동체가 세워지고, 또한 널리 확장되어 갈 것이라고

이 견해들 가운데 세 가지는 별로 주목할 만하지 못하다. 바울이 중심인물

넌지시 알려 준다. 왜냐하면 예수가 그렇게 될 것이라고 전파했기 때문이다

로 등장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별로 없다. 바울의 편지들

(눅 4:16~30, 5:30~32, 19:10, 24:44~47).

과 사도행전은 바울이 초대 교회 안에서 중심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알려

또한 하나님이 그와 같이 인도하셨기 때문

준다. 교회 안에는 바울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 때문에 논란이 빚

이다 (행 10:34~43, 15:1~21, 22:6~11, 26:15~20).

어지기도 했다. 바울의 편지들은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교회 안에서 매우 신

(4) 누가복음의 기록 연대

속하게 존중받게 되었다는 것을 밝혀 준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야고보처럼

누가복음의 기록 연대에 대해서 논쟁이 빚어져 왔다. 하지만 기록 연대를

될 수 없었겠는가? 아직 로마 정부의 공식적인 박해를 받지 않았던 교회의 모

제한시켜 주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다. 예를 들면 한편으로 가장 이른 기록 연

습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재위 기간: 주후 81~96년) 이전의 어떤 시기나, 또는 네로

대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마지막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의 한두 해일 것이다. 이 사건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여 재판을 받기 위해서 감금되어 있는 상황) 은 아마도 주후 62

황제의 박해 연도 (주후 64년; Tacitus, Annals 15.44) 이전 및 이후의 어떤 시기에도 적합하다. 누가복음 및 사도행전에 대한‘초기 - 가톨릭주의’논쟁은 여전히

년에 일어났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레나이우스의 저서『 ( 이단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누가의 신학이‘후기의’신학을 반영하는 것인지는 결

3.15.1) 에는

반박』3.13.3,

몇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언급이 들어 있다. 따라서 이론상으로 가능

한 가장 늦은 기록 연대는 주후 170년경일 것이다.

코 분명하지 않다 (Marshall 1970: 81~83, 212~215). 그 밖의 두 가지 견해들에 대해서 보다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누가

어떤 학자들은 누가복음을 마르키온, 요세푸스, 순교자 유스티니아누스 및

복음이 마가복음을 따르고 있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있다 (심지어 가장 먼저 기록된

위(僞)클레멘스 문서의 자료와 비교했다. 이 비교에 근거해 이 학자들은 누가복 음의 기록 연대로서 주후 2세기 초반에서 중반을 제시했다 (Knox O’ Neill 1970: 19, Townsend 1984: 47~58).

38

1942: 110, 120,

하지만 사도행전의 분위기는 이 시대의

7 ) Fitzmyer 1981: 55~57, F. F. Bruce 1988: 6~13(사도행전의 기록 연대), Bovon 1989: 23, ..

Kummel 1975: 151, Danker 1988: 17~18, Tiede 1980: 1~18, 70, Maddox 1982: 6~9, Esler 1987: 27~29, C. A. Evans 1990: 2, C. F. Evans 1990: 14, L. Johnson 1991: 2~3. 39


누가복음 1

서론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잘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누가가 사

다른 문서들 (예, 클레멘스1서[주후 95년]와 이그나티우스[주후 117년]) 의 분위기와 상당히

도행전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

다르다 (참조, Ellis 1974: 55).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이 늦은 연대에 기록되었다면,

실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행 10:2, 22, 35, 13:16, 26, 43, 50, 17:4,

사도행전뿐만 아니라 또한 누가복음이 바울의 편지들을 전적으로 무시하지

17, 18:7).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클레멘스1서 5.6~7은 사도행전 26장을, 2.1은 사

그러나 누가는 오직 데오빌로 한 사람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와

도행전 20장 35절을, 또한 18.1은 사도행전 13장 22절을 언급할 가능성이 충

같은 긴장감을 느끼고 있던 모든 사람을 위해서 쓴 것이다. 원래 유대인들로

분히 있다. 이 언급은 이와 같이 늦은 기록 연대를 지지하지 않는다. 나아가

부터 시작된 운동에 소외감을 느끼고 있던 어떤 이방인은 누가가 제공하는 확

이 언급은 누가복음의 가장 늦은 기록 연대를 2세기 중반에서 90년대 중반으

실한 정보를 통해서 유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

로 제한해 준다.

한 복음에 많은 유대인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나, 또는 많은 이방인들

많은 학자들은 예루살렘의 멸망 이후, 대체로 주후 80~90년 사이를 누가복

이 복음에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을 경험하면서 고민하고 있던 어떤 유대인 (또는

음의 기록 연대로 제시한다.7) 이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근거들을 제시한다.

유대 그리스도인) 은

하나님이 그 일을 인도하시며 또한 하나님이 자신의 새로운

(1) 누가복음은 마가복음 이후에 저술되었다고 주장된다. 그리고 마가복음은

일에 동참하도록 이스라엘을 다양한 방법으로 초대하신다고 이해할 수 있었

주후 60년대에 저술되었다. (2) 바울이 중심인물로 묘사되기에는 시간이 필

을 것이다. 기독교는 유대교와 부딪히게 되었다. 이것은 기독교의 새로운 운

요하다. (3) 에베소 교회와 같은 교회들의 모습은 90년대 중반에 일어난 도미

동이 자신을 유대교로부터 의식적으로 분리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 아니었

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사건 이전의 시기를 필요로 한다. (4) 예루살렘 성의 포

다.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유대교의 거부와 박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로 분

위와 예루살렘 성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누가복음에 수록된 예수의 종말

리되게 되었던 것이다. 이 거부는 사도행전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론적인 가르침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이 시기는 주후

그 씨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예수를 거부한 데서 이미 자라나고 있었다. 누

70년 이후이다. (5) 어떤 학자들은 누가복음의 신학은 후대의 것이며, 심지어

가복음 9~13장과 22~23장에서 그 점에 대해서 신중하고 자세하게 묘사된다.

‘초기 가톨릭적인 특징’ (early catholic) 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누가는 이 새로운 신앙 공동체가 세워지고, 또한 널리 확장되어 갈 것이라고

이 견해들 가운데 세 가지는 별로 주목할 만하지 못하다. 바울이 중심인물

넌지시 알려 준다. 왜냐하면 예수가 그렇게 될 것이라고 전파했기 때문이다

로 등장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별로 없다. 바울의 편지들

(눅 4:16~30, 5:30~32, 19:10, 24:44~47).

과 사도행전은 바울이 초대 교회 안에서 중심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알려

또한 하나님이 그와 같이 인도하셨기 때문

준다. 교회 안에는 바울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 때문에 논란이 빚

이다 (행 10:34~43, 15:1~21, 22:6~11, 26:15~20).

어지기도 했다. 바울의 편지들은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교회 안에서 매우 신

(4) 누가복음의 기록 연대

속하게 존중받게 되었다는 것을 밝혀 준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야고보처럼

누가복음의 기록 연대에 대해서 논쟁이 빚어져 왔다. 하지만 기록 연대를

될 수 없었겠는가? 아직 로마 정부의 공식적인 박해를 받지 않았던 교회의 모

제한시켜 주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다. 예를 들면 한편으로 가장 이른 기록 연

습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재위 기간: 주후 81~96년) 이전의 어떤 시기나, 또는 네로

대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마지막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의 한두 해일 것이다. 이 사건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여 재판을 받기 위해서 감금되어 있는 상황) 은 아마도 주후 62

황제의 박해 연도 (주후 64년; Tacitus, Annals 15.44) 이전 및 이후의 어떤 시기에도 적합하다. 누가복음 및 사도행전에 대한‘초기 - 가톨릭주의’논쟁은 여전히

년에 일어났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레나이우스의 저서『 ( 이단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누가의 신학이‘후기의’신학을 반영하는 것인지는 결

3.15.1) 에는

반박』3.13.3,

몇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언급이 들어 있다. 따라서 이론상으로 가능

한 가장 늦은 기록 연대는 주후 170년경일 것이다.

코 분명하지 않다 (Marshall 1970: 81~83, 212~215). 그 밖의 두 가지 견해들에 대해서 보다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누가

어떤 학자들은 누가복음을 마르키온, 요세푸스, 순교자 유스티니아누스 및

복음이 마가복음을 따르고 있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있다 (심지어 가장 먼저 기록된

위(僞)클레멘스 문서의 자료와 비교했다. 이 비교에 근거해 이 학자들은 누가복 음의 기록 연대로서 주후 2세기 초반에서 중반을 제시했다 (Knox O’ Neill 1970: 19, Townsend 1984: 47~58).

38

1942: 110, 120,

하지만 사도행전의 분위기는 이 시대의

7 ) Fitzmyer 1981: 55~57, F. F. Bruce 1988: 6~13(사도행전의 기록 연대), Bovon 1989: 23, ..

Kummel 1975: 151, Danker 1988: 17~18, Tiede 1980: 1~18, 70, Maddox 1982: 6~9, Esler 1987: 27~29, C. A. Evans 1990: 2, C. F. Evans 1990: 14, L. Johnson 1991: 2~3. 39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누가는 복음서에 대한 이야기를 세 가지 주요 단락으로 소개한다. 첫째 단 락 (1:1~4) 은 머리말로서, 고대의 다른 저서들의 머리말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이 머리말은 누가의 저서를 뒷받침하는 기본적인 특징에 대해서 말한다. 누가 복음에 소개되는 이야기는 이전에 다른 사람들이 기록한 자료와 목격자가 전 해 준 것에 근거하여 주의 깊게 쓰인 것이다. 더욱이 누가는 모든 사건들을 맨 처음부터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그러고 나서 이제 누가는 이 이야기를 소개하 고자 한다. 이 이야기를 통해 누가는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확 실하게 알려 주려는 것이다.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해서 소개한다. 이 단락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II. 사역 준비: 하나님에 의해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음(3:1~4:13)

서 다루어지는 다양한 주제들을 미리 알려 주는 신학적인 서곡과 같은 역할을

III. 갈릴리 지역에서의 사역: 예수가 자신을 계시함(4:14~9:50)

한다. 이 단락에서 누가는 하나님이 오래전에 약속하신 것들이 이제 곧 성취

둘째 단락 (1:5~2:40) 은 매우 길지만, 정교하게 짜여 있다. 이 단락에서 누가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나아가 누가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 가운데 등장하는 두 핵심 인물들을 소개한다. 곧, 세례 요한과 예수다. 한편 누가복음 1~2장에 서 제시되는 모든 내용은 예수가 세례 요한보다 뛰어난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세례 요한은 잉태하지 못하던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러나 예수는 성 령이 일으키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처녀에게서 태어나셨다. 요한은 하나님 앞 에서 위대한 자이며,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다. 그러나 예수는 세례 요한 보다 더욱 위대한 분이시다. 왜냐하면 예수는 바로 다윗의 자손으로서, 약속 된 메시아이시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의 구원이 이르렀다. 그래서 구원과 관련된 많은 사건들이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하늘과 땅의 수많은 증인들이 이 사건들에 대해서 증거할 것이다. 셋째 단락 (2:41~52) 은 1장 5절~2장 40절에서 소개되는 예수의“어린 아기 시절에 대한 자료”와 곧바로 이어져 있다. 그러나 이 단락은 둘째 단락과는 분명하게 구별된다. 그리고 이 단락은 자신에 대한 예수의 증거를 소개해 준 다. 곧, 이 단락에서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2:41~52). 이 당시, 예수는 십대 소년이었다. 따라서 이 단락은 예수의 어린 아기 시절의 자료 (둘째 단락) 에 단순 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라고 이해하면 안 된다. 오히려 이 셋째 단락은 누가복 음의 신학적인 서곡을 마무리하는 부분이다. 이 서곡을 마무리하는 곡조로서 87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누가는 복음서에 대한 이야기를 세 가지 주요 단락으로 소개한다. 첫째 단 락 (1:1~4) 은 머리말로서, 고대의 다른 저서들의 머리말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이 머리말은 누가의 저서를 뒷받침하는 기본적인 특징에 대해서 말한다. 누가 복음에 소개되는 이야기는 이전에 다른 사람들이 기록한 자료와 목격자가 전 해 준 것에 근거하여 주의 깊게 쓰인 것이다. 더욱이 누가는 모든 사건들을 맨 처음부터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그러고 나서 이제 누가는 이 이야기를 소개하 고자 한다. 이 이야기를 통해 누가는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확 실하게 알려 주려는 것이다.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해서 소개한다. 이 단락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II. 사역 준비: 하나님에 의해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음(3:1~4:13)

서 다루어지는 다양한 주제들을 미리 알려 주는 신학적인 서곡과 같은 역할을

III. 갈릴리 지역에서의 사역: 예수가 자신을 계시함(4:14~9:50)

한다. 이 단락에서 누가는 하나님이 오래전에 약속하신 것들이 이제 곧 성취

둘째 단락 (1:5~2:40) 은 매우 길지만, 정교하게 짜여 있다. 이 단락에서 누가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나아가 누가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 가운데 등장하는 두 핵심 인물들을 소개한다. 곧, 세례 요한과 예수다. 한편 누가복음 1~2장에 서 제시되는 모든 내용은 예수가 세례 요한보다 뛰어난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세례 요한은 잉태하지 못하던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러나 예수는 성 령이 일으키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처녀에게서 태어나셨다. 요한은 하나님 앞 에서 위대한 자이며,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다. 그러나 예수는 세례 요한 보다 더욱 위대한 분이시다. 왜냐하면 예수는 바로 다윗의 자손으로서, 약속 된 메시아이시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의 구원이 이르렀다. 그래서 구원과 관련된 많은 사건들이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하늘과 땅의 수많은 증인들이 이 사건들에 대해서 증거할 것이다. 셋째 단락 (2:41~52) 은 1장 5절~2장 40절에서 소개되는 예수의“어린 아기 시절에 대한 자료”와 곧바로 이어져 있다. 그러나 이 단락은 둘째 단락과는 분명하게 구별된다. 그리고 이 단락은 자신에 대한 예수의 증거를 소개해 준 다. 곧, 이 단락에서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2:41~52). 이 당시, 예수는 십대 소년이었다. 따라서 이 단락은 예수의 어린 아기 시절의 자료 (둘째 단락) 에 단순 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라고 이해하면 안 된다. 오히려 이 셋째 단락은 누가복 음의 신학적인 서곡을 마무리하는 부분이다. 이 서곡을 마무리하는 곡조로서 87


누가복음 1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예수는 자신의 목소리를 울려 퍼지게 한다. 여기서 누가복음의 이야기는 예수

누가복음 1장과 2장에 언급되는 장소들

를 무대의 중앙에 서게 한다. 2장 41절까지 다른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서 말

베들레헴

2:4, 15

광야

1:80

갈릴리

1:26, 2:4, 39

유대 산골

1:39, 65

했다. 이 마지막 단락에서 이제 예수는 자신과 자신이 지닌 권위에 대해서 소 개하고 있다 (2:49). 누가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묘사하는 것 (1:1~4) 으로부터 출발했다. 마 침내 이 단원의 마지막 부분에서 누가는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소명을 계시하 시는 예수의 음성을 들려주고 있다. 이 단원에서는 하나님의 약속들이 성취되 고 있다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지고 있다. 따라서 이 단원 (1:1~2:52) 의 중심 주 제는 기독론이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다는 사실은 이스라 엘과 관련되어 묘사되었다. 그래서 예수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가 이스

유대

1:39, 65, 2:4(1:5의“유대” 는 아마도 유대인의 땅을 가리킬 것이다)

나사렛

1:26, 2:4, 39, 51

빈 들(쿰란)

(1:80)

수리아

2:2

수리아 (시리아)

단지 암시되기만 한 장소들에 대한 본문은 괄호로 표기되었음

라엘을 구원할 것이라고 소망하고 있다. 과연 예수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 이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이라는 경계를 넘어 이방인들에게 이르기까지, 예수 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이다.

갈릴리 나사렛

광야

예루살렘

유대 산골

빈들(쿰란) 베들레헴

유대

88

89


누가복음 1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예수는 자신의 목소리를 울려 퍼지게 한다. 여기서 누가복음의 이야기는 예수

누가복음 1장과 2장에 언급되는 장소들

를 무대의 중앙에 서게 한다. 2장 41절까지 다른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서 말

베들레헴

2:4, 15

광야

1:80

갈릴리

1:26, 2:4, 39

유대 산골

1:39, 65

했다. 이 마지막 단락에서 이제 예수는 자신과 자신이 지닌 권위에 대해서 소 개하고 있다 (2:49). 누가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묘사하는 것 (1:1~4) 으로부터 출발했다. 마 침내 이 단원의 마지막 부분에서 누가는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소명을 계시하 시는 예수의 음성을 들려주고 있다. 이 단원에서는 하나님의 약속들이 성취되 고 있다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지고 있다. 따라서 이 단원 (1:1~2:52) 의 중심 주 제는 기독론이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다는 사실은 이스라 엘과 관련되어 묘사되었다. 그래서 예수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가 이스

유대

1:39, 65, 2:4(1:5의“유대” 는 아마도 유대인의 땅을 가리킬 것이다)

나사렛

1:26, 2:4, 39, 51

빈 들(쿰란)

(1:80)

수리아

2:2

수리아 (시리아)

단지 암시되기만 한 장소들에 대한 본문은 괄호로 표기되었음

라엘을 구원할 것이라고 소망하고 있다. 과연 예수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 이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이라는 경계를 넘어 이방인들에게 이르기까지, 예수 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이다.

갈릴리 나사렛

광야

예루살렘

유대 산골

빈들(쿰란) 베들레헴

유대

88

89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고대의 다른 저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누가는 머리말과 더불어 자신의 복음 서를 시작하고 있다. 이 단락의 헬라어 원문은 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누 가는 자신의 복음서가 과거로부터 전해져 온 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누가는 이 복음서의 독자들이 자신들이 배운 것을 보다 확실하게 알게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1장 1절에서 누가는 자신이 물려받은 전승에 대해 서 말한다 (개역개정판 한글 성경 1:1은‘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라고 번역되어 있다. 그 리고‘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는 구절은 1:2에 들어 있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에는 이 구절[ ‘폴로이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 (1:1~2:52)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 (1:1~4) B. 예수의 어린 아이 시절에 대한 이야기: 선구자 세례 요한과 약속의 성 취 (1:5~2:40) C. 예수가 자신에 대한 이해를 계시함 (2:41~52)

에페케이레센 아나탁사스다이’ ]이 1:1에 포함되어 있다-역자 주).

그 다음 1장 2절에서 누가

는 사건들에 대한 목격자들과 말씀을 전파했던 하나님의 일꾼들로부터 이 전 승이 비롯되었다고 밝혀 준다. 1장 3절은 헬라어 원문에서 주문장이다. 곧, 주 어와 본동사가 들어 있다 ( e¡doxe kajmoi/, 에독세 카모이, 그리고 나도 ~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 했다).

1장 3절에서 누가는 자신이 이 복음서를 어떻게 썼는지를 설명한다. 마

지막으로 1장 4절은 누가복음의 저술 목적을 밝혀 준다. 곧, 예수와 관련된 사 건들에 대해 누가는 누가복음에서 분명하게 언급된 독자 데오빌로에게 확실 한 지식을 전달하고자 한다는 것을 밝힌다. 데오빌로는 이 사건들에 대해서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를 전달 받게 될 데오빌로가 다음 사실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기를 바란다. 곧, 예수는 바로 하나님의 약속들의 성취 그 자체라는 것이다. 맨 처음부터 하나님의 역 사하심에 주목하도록 하기 위해 1장 1절은 이루어진 사건들에 대해서 언급한 다. 이 복음서를 저술한 누가의 수고를 통해 커다란 도움을 받은 대상은 오직 데오빌로 한 사람만이 아니다. 역사가 이 사실에 대해서 증명해 준다. 다시 말 해 교회도 또한 이 복음서를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이다. 누가복음 1장 1~4절의 헬라어 문장 구조는 길다. 그렇지만 이 헬라어 문장은 종속절과 주절이 서로 균형을 이루는 복합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곧, 1 장 1~2절은 종속절 (~했으므로, 때문에) 로 되어 있다. 그리고 1장 3~4절은 주절‘나 ( 464, BDR § 464.4를 참고하라). 도……좋은 줄 알았노니’ ) 이다 (BDF §

BDF는 종속절과 주절이

어떻게 평행을 이루고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 2절의‘많은’ 이라는 명사 주격은 3절의‘나도’ (일인칭 대명사 여격) 와 평행을 이룬다. 또한 2절의‘내력을 저 술하려고’ 는 3절의‘각하에게 써 보내는’ 과 평행 구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2 절의‘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는 4절의‘알고 있는 91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고대의 다른 저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누가는 머리말과 더불어 자신의 복음 서를 시작하고 있다. 이 단락의 헬라어 원문은 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누 가는 자신의 복음서가 과거로부터 전해져 온 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누가는 이 복음서의 독자들이 자신들이 배운 것을 보다 확실하게 알게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1장 1절에서 누가는 자신이 물려받은 전승에 대해 서 말한다 (개역개정판 한글 성경 1:1은‘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라고 번역되어 있다. 그 리고‘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는 구절은 1:2에 들어 있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에는 이 구절[ ‘폴로이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 (1:1~2:52)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 (1:1~4) B. 예수의 어린 아이 시절에 대한 이야기: 선구자 세례 요한과 약속의 성 취 (1:5~2:40) C. 예수가 자신에 대한 이해를 계시함 (2:41~52)

에페케이레센 아나탁사스다이’ ]이 1:1에 포함되어 있다-역자 주).

그 다음 1장 2절에서 누가

는 사건들에 대한 목격자들과 말씀을 전파했던 하나님의 일꾼들로부터 이 전 승이 비롯되었다고 밝혀 준다. 1장 3절은 헬라어 원문에서 주문장이다. 곧, 주 어와 본동사가 들어 있다 ( e¡doxe kajmoi/, 에독세 카모이, 그리고 나도 ~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 했다).

1장 3절에서 누가는 자신이 이 복음서를 어떻게 썼는지를 설명한다. 마

지막으로 1장 4절은 누가복음의 저술 목적을 밝혀 준다. 곧, 예수와 관련된 사 건들에 대해 누가는 누가복음에서 분명하게 언급된 독자 데오빌로에게 확실 한 지식을 전달하고자 한다는 것을 밝힌다. 데오빌로는 이 사건들에 대해서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를 전달 받게 될 데오빌로가 다음 사실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기를 바란다. 곧, 예수는 바로 하나님의 약속들의 성취 그 자체라는 것이다. 맨 처음부터 하나님의 역 사하심에 주목하도록 하기 위해 1장 1절은 이루어진 사건들에 대해서 언급한 다. 이 복음서를 저술한 누가의 수고를 통해 커다란 도움을 받은 대상은 오직 데오빌로 한 사람만이 아니다. 역사가 이 사실에 대해서 증명해 준다. 다시 말 해 교회도 또한 이 복음서를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이다. 누가복음 1장 1~4절의 헬라어 문장 구조는 길다. 그렇지만 이 헬라어 문장은 종속절과 주절이 서로 균형을 이루는 복합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곧, 1 장 1~2절은 종속절 (~했으므로, 때문에) 로 되어 있다. 그리고 1장 3~4절은 주절‘나 ( 464, BDR § 464.4를 참고하라). 도……좋은 줄 알았노니’ ) 이다 (BDF §

BDF는 종속절과 주절이

어떻게 평행을 이루고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 2절의‘많은’ 이라는 명사 주격은 3절의‘나도’ (일인칭 대명사 여격) 와 평행을 이룬다. 또한 2절의‘내력을 저 술하려고’ 는 3절의‘각하에게 써 보내는’ 과 평행 구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2 절의‘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는 4절의‘알고 있는 91


누가복음 1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 과 연결되어 있다. 한편 셋째 단락의 평행 구조는

무지를 바로잡고자 하며, 또한 진리를 알기를 갈망하는 이들을 가르치고자 한

첫째 및 둘째 단락의 평행 구조만큼 분명하지는 않다 (헬라어 문장 구조가 평행을 이

다.아리스테아스의 편지의 프롤로그에서 요세푸스는 자신이 기억해야 할 중

루는 있는 것과 관련하여, 행 15:24~25를 참조하라).

대한 사건들에 대한“믿을 만한”설명을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Letter of Aristeas

티데 (Tiede,

1988: 33)는

BDF의 제안

을 따르면서, 주절과 종속절이 어떻게 평행을 이루고 있는지에 대해서 주목

1, 6).

한다. 결론적으로 누가복음 1장 1~4절은 다음과 같은 평행 구조로 이루어져

통과 유산을 바깥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고 말한다.

있다.

그리고 집회서의 머리말에서 저자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혜와 학문의 전

또한 고대 헬라 문헌에도 이와 같은 머리말과 비슷한 글들이 나타난다. 사 모사타의 루키아노스 (주후

a‘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헬라어 원문에서, 1:1a)

53~55) 에서

125~180년) 는『어떻게

역사를 서술할 것인가』(pp.

자신은 웅변가들과는 달리 청중이 경청하도록 호소하지 않을 것

이라고 주장한다. 루키아노스는 자신의 책 앞부분에서 역사가의 유일한 과제

‘ b 내력을 저술하려고’ (헬라어 원문에서, 1:1b) ‘목격자와 c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1:2) a´‘나도……좋은 줄 알았노니’ (헬라어 원문에서, 1:3a) b´‘데오빌로 각하에게 그대로 써 보내는 것이’ (헬라어 원문에서, 1:3b) c´‘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1:4)

는 진실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pp, 츠마이어 (Fitzmyer

1981: 16) 는

39~40, Tiede 1988: 34).

그리고 피

고대 사람들은 사실과 꾸며낸 이야기를 구별할

줄 알았다고 언급한다. 고대 헬라 저자들의 저술 목적은 마카베오2서와 다른 유대의 역사가 및 신학자들의 저술 목적과 비슷했다. 루키아노스는 다음과 같 이 주장한다.“만약 언급된 것 그 자체가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이라면, 분명

이와 같이 서로 균형을 이루는 문장 구조는 미적인 멋을 더해 준다. 그리고

히 사람들의 주의를 끌 것이다.”이 고대 저술가들이 글을 쓰는 목적은 사실을

이 복음서의 머리말에서, 누가가 평행 구조를 사용한 것은 고대의 헬라 및 로

분명하게 밝히고, 원인들을 자세하게 설명하며 주요 사건들에 대한 개요를 제

마의 저자들이 머리말을 썼던 관행을 따른 것이다.

시하는 것이다. 누가도 비슷한 목적을 갖고, 자신의 복음서를 썼다.

고대 문헌들 가운데 누가복음의 머리말과 비슷하게 쓰인 것들이 있다. 곧,

1986: 60~63) 는

누가가 전형적인“고대의 학문적인”틀

헬라 및 유대교의 저서들 가운데 몇 가지 비슷한 머리말이 발견된다 (Wiefel

안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1) 이것은 누가를 고대의 헬라, 로마

1988: 38 n. 1).

마카베오2서 2장 19~31절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머리말을 발견

문학의“중간 정도의 수준”에 놓는 것이다. 알렉산더의 견해에 따르면, 이와

할 수 있다. 마카베오2서의 저자는 키레네 사람 야손이라는 선임자를 언급한

같은 작품은 전승을 존중하며 자료들을 사용하지만, 전승의 내용을 편집하여

다. 그러고 나서 이 저자는 야손이 자세하게 써 놓은 이야기를 요약해 한 권의

새롭게 저술한다고 한다. 스털링 (Sterling

새로운 책으로 만들고자 하는 자신의 목적을 설명한다 (2:25). 나아가 마카베오

즘의 영향을 받은 다른 유대 저서들과 마찬가지로, 누가 - 행전은 변증학적인

1서와 2서의 저자는 자신의 저술 작업을 이미 지어진 집을 사생화로 아름답게

특성을 지닌 역사 문헌이라고 주장한다. 곧, 누가는 헬라 문화 안에서 교회의

장식하는 것에 비유한다 (2:29). 역사적인 사실들을 설명하는 것을 통해 이 저

위치에 대해서 정의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또한 누가는 교회의 기원이 하나님

자는 독자들에게 흥미를 주고, 또한 유익을 제공하기를 원한다 (2:25). 또한 우

의 약속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설명하려고 시도한다는 것이다. 헹엘 (Hengel

리는 요세푸스의『유대 고대사』(1

1980: 49) 은

of Aristeas 1~8) 를

proem § § 1~4) 와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Letter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외경 집회서에도 머리말이

들어 있다. 집회서의 머리말에서 저자도 책을 펴내는 이유를 설명한다.

1992: 311~389) 은

요세푸스나 헬레니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기독교의 역사는“교회를 위해서 합리적인

수단에 근거해서 증명하려고”(곧,

변증을 위한 순수한 목적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믿음에 기초한 이해로 초대하기 위해”기록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누가

요세푸스는 자신이 직접 가담했던 사건들을 설명해 주어서, 사람들에게 중

가 저술한 역사 문헌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요한 사건들에 대해서 알려 주려고 한다고 말한다. 또한『아피온 반박』(1.1

역사와 신학을, 또는 이성에 기초한 합리성과 믿음에 근거한 설득을 지나칠

§ § 1~5) 의

머리말에서 요세푸스는“매우 존경하는 에파프로디투스”에게 헌정사

를 쓴다. 이 헌정사에서 요세푸스는 자신이 제시하는 증거들이 믿을 만하다고 평가한다. 또한 요세푸스는 거짓을 퍼뜨려서 진리를 훼손하는 사람들의 잘못 을 지적하기 위해서 이 반박서를 쓴다고 밝힌다. 그래서 요세푸스는 사람들의 92

알렉산더 (Alexander

1 ) 보봉(Bovon 1989: 30 n. 1)은 누가의 머리말과 고대의 서문들을 비교하는 것은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언급한다. 보봉은 G. 라페리우스와 J. J. 베트슈타인이 이와 같은 비교를 시 도했다고 한다. 또한 에번스(C. F. Evans 1990: 116~119)도 이와 같은“과학적인 머리말들”을 두세 가지 인용한다. 93


누가복음 1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 과 연결되어 있다. 한편 셋째 단락의 평행 구조는

무지를 바로잡고자 하며, 또한 진리를 알기를 갈망하는 이들을 가르치고자 한

첫째 및 둘째 단락의 평행 구조만큼 분명하지는 않다 (헬라어 문장 구조가 평행을 이

다.아리스테아스의 편지의 프롤로그에서 요세푸스는 자신이 기억해야 할 중

루는 있는 것과 관련하여, 행 15:24~25를 참조하라).

대한 사건들에 대한“믿을 만한”설명을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Letter of Aristeas

티데 (Tiede,

1988: 33)는

BDF의 제안

을 따르면서, 주절과 종속절이 어떻게 평행을 이루고 있는지에 대해서 주목

1, 6).

한다. 결론적으로 누가복음 1장 1~4절은 다음과 같은 평행 구조로 이루어져

통과 유산을 바깥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고 말한다.

있다.

그리고 집회서의 머리말에서 저자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혜와 학문의 전

또한 고대 헬라 문헌에도 이와 같은 머리말과 비슷한 글들이 나타난다. 사 모사타의 루키아노스 (주후

a‘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헬라어 원문에서, 1:1a)

53~55) 에서

125~180년) 는『어떻게

역사를 서술할 것인가』(pp.

자신은 웅변가들과는 달리 청중이 경청하도록 호소하지 않을 것

이라고 주장한다. 루키아노스는 자신의 책 앞부분에서 역사가의 유일한 과제

‘ b 내력을 저술하려고’ (헬라어 원문에서, 1:1b) ‘목격자와 c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1:2) a´‘나도……좋은 줄 알았노니’ (헬라어 원문에서, 1:3a) b´‘데오빌로 각하에게 그대로 써 보내는 것이’ (헬라어 원문에서, 1:3b) c´‘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1:4)

는 진실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pp, 츠마이어 (Fitzmyer

1981: 16) 는

39~40, Tiede 1988: 34).

그리고 피

고대 사람들은 사실과 꾸며낸 이야기를 구별할

줄 알았다고 언급한다. 고대 헬라 저자들의 저술 목적은 마카베오2서와 다른 유대의 역사가 및 신학자들의 저술 목적과 비슷했다. 루키아노스는 다음과 같 이 주장한다.“만약 언급된 것 그 자체가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이라면, 분명

이와 같이 서로 균형을 이루는 문장 구조는 미적인 멋을 더해 준다. 그리고

히 사람들의 주의를 끌 것이다.”이 고대 저술가들이 글을 쓰는 목적은 사실을

이 복음서의 머리말에서, 누가가 평행 구조를 사용한 것은 고대의 헬라 및 로

분명하게 밝히고, 원인들을 자세하게 설명하며 주요 사건들에 대한 개요를 제

마의 저자들이 머리말을 썼던 관행을 따른 것이다.

시하는 것이다. 누가도 비슷한 목적을 갖고, 자신의 복음서를 썼다.

고대 문헌들 가운데 누가복음의 머리말과 비슷하게 쓰인 것들이 있다. 곧,

1986: 60~63) 는

누가가 전형적인“고대의 학문적인”틀

헬라 및 유대교의 저서들 가운데 몇 가지 비슷한 머리말이 발견된다 (Wiefel

안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1) 이것은 누가를 고대의 헬라, 로마

1988: 38 n. 1).

마카베오2서 2장 19~31절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머리말을 발견

문학의“중간 정도의 수준”에 놓는 것이다. 알렉산더의 견해에 따르면, 이와

할 수 있다. 마카베오2서의 저자는 키레네 사람 야손이라는 선임자를 언급한

같은 작품은 전승을 존중하며 자료들을 사용하지만, 전승의 내용을 편집하여

다. 그러고 나서 이 저자는 야손이 자세하게 써 놓은 이야기를 요약해 한 권의

새롭게 저술한다고 한다. 스털링 (Sterling

새로운 책으로 만들고자 하는 자신의 목적을 설명한다 (2:25). 나아가 마카베오

즘의 영향을 받은 다른 유대 저서들과 마찬가지로, 누가 - 행전은 변증학적인

1서와 2서의 저자는 자신의 저술 작업을 이미 지어진 집을 사생화로 아름답게

특성을 지닌 역사 문헌이라고 주장한다. 곧, 누가는 헬라 문화 안에서 교회의

장식하는 것에 비유한다 (2:29). 역사적인 사실들을 설명하는 것을 통해 이 저

위치에 대해서 정의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또한 누가는 교회의 기원이 하나님

자는 독자들에게 흥미를 주고, 또한 유익을 제공하기를 원한다 (2:25). 또한 우

의 약속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설명하려고 시도한다는 것이다. 헹엘 (Hengel

리는 요세푸스의『유대 고대사』(1

1980: 49) 은

of Aristeas 1~8) 를

proem § § 1~4) 와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Letter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외경 집회서에도 머리말이

들어 있다. 집회서의 머리말에서 저자도 책을 펴내는 이유를 설명한다.

1992: 311~389) 은

요세푸스나 헬레니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기독교의 역사는“교회를 위해서 합리적인

수단에 근거해서 증명하려고”(곧,

변증을 위한 순수한 목적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믿음에 기초한 이해로 초대하기 위해”기록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누가

요세푸스는 자신이 직접 가담했던 사건들을 설명해 주어서, 사람들에게 중

가 저술한 역사 문헌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요한 사건들에 대해서 알려 주려고 한다고 말한다. 또한『아피온 반박』(1.1

역사와 신학을, 또는 이성에 기초한 합리성과 믿음에 근거한 설득을 지나칠

§ § 1~5) 의

머리말에서 요세푸스는“매우 존경하는 에파프로디투스”에게 헌정사

를 쓴다. 이 헌정사에서 요세푸스는 자신이 제시하는 증거들이 믿을 만하다고 평가한다. 또한 요세푸스는 거짓을 퍼뜨려서 진리를 훼손하는 사람들의 잘못 을 지적하기 위해서 이 반박서를 쓴다고 밝힌다. 그래서 요세푸스는 사람들의 92

알렉산더 (Alexander

1 ) 보봉(Bovon 1989: 30 n. 1)은 누가의 머리말과 고대의 서문들을 비교하는 것은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언급한다. 보봉은 G. 라페리우스와 J. J. 베트슈타인이 이와 같은 비교를 시 도했다고 한다. 또한 에번스(C. F. Evans 1990: 116~119)도 이와 같은“과학적인 머리말들”을 두세 가지 인용한다. 93


누가복음 1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정도로 엄격하게 분리하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분명하지 않다. 누가가 말하고자 하는 자료는 입으로 전해진 것일 수도 있고,

고대 헬라 문화에서는 역사를 서술하는 작업에 대해서 여러 가지 단어들이 사용되었다.‘프쉬카고기아’ ( yucagwgi/a,

또는 기록된 문서를 가리킬 수도 있다. 아니면 이 두 가지를 모두 언급할 수도

헬라어 명사는 다소 경멸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 1장 3절이 알려 주듯이, 분명한 점은 이전부터 있었던

적인 뜻으로 사용될 수 있는 헬라어 동사‘프쉬카고게오’ ( yucagwge/w, 길을 잃게

자료들의 분량이 상당히 길다는 것이다. 또한 누가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하다, 또는 속이다. LSJ 2026 § II) 와

내용은 이 자료들과 비슷하게 길다는 것이다 (Tannehill

설득) 라는

관련되어 있다.‘ 프쉬카고기아’ 는 어떤 작가들

1986: 10).‘써

보내는’

이 자신의 저술 목적을 언급할 때 사용되었다. 반면에 다른 작가들은 이 목적

(1:3)이라는 누가의 표현은 이 자료들이 기록된 문서라는 것을 암시해 준다.

을 채택하는 것을 거부한다. 또 다른 용어는‘휘포므네마’ ( uJpo/mnhma

그렇지만 그 자료들이 문서로 되어 있다고 분명하게 입증해 주지는 않는다.

기록, 기억,

2)

주해, 또는 비망록. LSJ 1889 § II.4) 다.

세 번째 단어는‘히스토리아’ ( iJstori/a, 탐색, 조

이와 같이 누가는 이 복음서를 저술한 목적에 대해서 설명한다. 또한 누가

사, 정보, 이야기, 역사. LSJ 842 § II) 다.

그러나 자신의 저서를 규정하기 위해 누가는

는 자신의 복음서와 비슷한 것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 단어들 가운데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누가가 사용한 단어는‘디에게

그리고 누가는 다른 사항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누가는 이루어진 사실들에

시스’ ( dih/ghsiß, 이야기 방식으로 된 설명) 다 (BAGD 195, BAA 392, LSJ 427은 이 명사의 동사

대한 전승이 목격자들의 증거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누가는

..

형에 대해서‘묘사하다’ 라는 의미로 폭넓게 정의한다. 그리고 Buchsel, TDNT 2:908은‘자세하게 설

자신이 사건들에 대해서 신중하게 숙고한 결과에 기초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명하다’ 라고 정의한다).

라고 밝힌다. 그리고 누가는 이 사건들에 대해서 주의 깊게 연구했다고 말한

..

단순히‘이야기’ 를

다. 사실상 누가복음에는 이야기가 처음부터 상세하게 전개된다. 자신의 저서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단어는 미완성의 형태로 되어 있는 어떤 문

들을 통해 누가는 의미심장한 공헌을 했다. 왜냐하면 누가는 이 복음서를 매

학 작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또한 이와 같은 작품은 오늘날의 양

우 신중하게 저술했을 뿐만 아니라 이 복음서에 이어서 또한 사도행전을 집필

식 비평에서 다루고 있는 개별적이며 분리된 전승들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가는 예수를 통해서 성취된 복음의 이야기를 교회가

다.‘ 디에게시스’ 라는 단어와 관련하여, 뷕셀은 누가가 개별적인 단락보다 긴

세워지고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와 연결시켜 주고 있다.

뷕셀 (Buchsel,

TDNT 2:909) 은‘디에게시스’ ( dih/ghsiß ) 가

자료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뷕셀은 성경 이외의 문헌에서 이

누가복음 1장 1~4절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

단어가 사용된 예들에 대해서 언급한다 (Buchsel, TDNT 2:909 n. 3). 어떤 문헌은 입으로 전달되는 이야기에 대해서 말한다. 또 다른 문헌은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이나, 또는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설명을 언급한다. 곧, 집회서 6장 35절 (구 전),

9장 15절 (구전), 22장 6절 (구전), 27장 11절, 13절(구전), 38장 25절(구전), 39장

2절(유명한

사람들의 말) 이다.

카베오2서 2장 32절(기록된

그리고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8, 322 (기록된 문서),

6장 17절(역사적인

문서),

사건에 대한 설명) 이다.

리델의

1. 누가복음에 앞서서 존재하던 자료들 (눅 1:1~2) a. 다른 보고서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 (눅 1:1. 개역개정판 한글 성경에는 1:2에 번역됨)

b. 이 보고서들의 출처: 사도들을 포함한 목격자들 (1:2) 2. 누가복음의 저술에 대해서 (1:3~4)

헬라어 사전 (LSJ) 은‘디에게시스’ 가 사용된 다른 문헌을 덧붙여 말한다. 곧,

a. 누가복음의 저술 방법 (1:3)

플라톤의『국가론』392D와『파이드로스』246A다. 또한 우리는 70인역 하박

b. 누가복음의 저술 목적 (1:4)

국 2장 6절 (구전) 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신약 성경에서‘디에게오마 이’ ( dihge/omai ) 는 구전이나 기록된 문서를 모두 언급한다. 마가복음 5장 16절

누가는 자신이 이 복음서의 내용을 정확하게 기술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과 9장 9절, 누가복음 8장 39절과 9장 10절, 사도행전 8장 33절과 9장 27절 및

그래서 누가는 독자들에게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게 하려는

12장 17절은 구전을 가리킨다. 반면에 히브리서 11장 32절은 기록된 문서를 언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밝힌다. 누가는 이 복음서를 기록하는 데 세심한

급한다. 누가복음 1장 1절의‘디에게시스’ 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주의를 기울인다. 이 점은 이 복음서의 저술 목적을 반영하는 것이다. 비록 이미 다른 사람들이 누가복음과 비슷한 이야기를 저술했지만, 복음서의 내용

2 )‘ 휘포므네마’ 는 때때로 아직 가다듬지 않은 자료들을 가리킨다. 다음 책을 보라. Lucian, How

to Write History, pp. 47~48 94

을 추가하면서, 누가는 예수의 사역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려고 시도한 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데오빌로를 비롯하여 95


누가복음 1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정도로 엄격하게 분리하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분명하지 않다. 누가가 말하고자 하는 자료는 입으로 전해진 것일 수도 있고,

고대 헬라 문화에서는 역사를 서술하는 작업에 대해서 여러 가지 단어들이 사용되었다.‘프쉬카고기아’ ( yucagwgi/a,

또는 기록된 문서를 가리킬 수도 있다. 아니면 이 두 가지를 모두 언급할 수도

헬라어 명사는 다소 경멸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 1장 3절이 알려 주듯이, 분명한 점은 이전부터 있었던

적인 뜻으로 사용될 수 있는 헬라어 동사‘프쉬카고게오’ ( yucagwge/w, 길을 잃게

자료들의 분량이 상당히 길다는 것이다. 또한 누가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하다, 또는 속이다. LSJ 2026 § II) 와

내용은 이 자료들과 비슷하게 길다는 것이다 (Tannehill

설득) 라는

관련되어 있다.‘ 프쉬카고기아’ 는 어떤 작가들

1986: 10).‘써

보내는’

이 자신의 저술 목적을 언급할 때 사용되었다. 반면에 다른 작가들은 이 목적

(1:3)이라는 누가의 표현은 이 자료들이 기록된 문서라는 것을 암시해 준다.

을 채택하는 것을 거부한다. 또 다른 용어는‘휘포므네마’ ( uJpo/mnhma

그렇지만 그 자료들이 문서로 되어 있다고 분명하게 입증해 주지는 않는다.

기록, 기억,

2)

주해, 또는 비망록. LSJ 1889 § II.4) 다.

세 번째 단어는‘히스토리아’ ( iJstori/a, 탐색, 조

이와 같이 누가는 이 복음서를 저술한 목적에 대해서 설명한다. 또한 누가

사, 정보, 이야기, 역사. LSJ 842 § II) 다.

그러나 자신의 저서를 규정하기 위해 누가는

는 자신의 복음서와 비슷한 것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 단어들 가운데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누가가 사용한 단어는‘디에게

그리고 누가는 다른 사항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누가는 이루어진 사실들에

시스’ ( dih/ghsiß, 이야기 방식으로 된 설명) 다 (BAGD 195, BAA 392, LSJ 427은 이 명사의 동사

대한 전승이 목격자들의 증거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누가는

..

형에 대해서‘묘사하다’ 라는 의미로 폭넓게 정의한다. 그리고 Buchsel, TDNT 2:908은‘자세하게 설

자신이 사건들에 대해서 신중하게 숙고한 결과에 기초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명하다’ 라고 정의한다).

라고 밝힌다. 그리고 누가는 이 사건들에 대해서 주의 깊게 연구했다고 말한

..

단순히‘이야기’ 를

다. 사실상 누가복음에는 이야기가 처음부터 상세하게 전개된다. 자신의 저서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단어는 미완성의 형태로 되어 있는 어떤 문

들을 통해 누가는 의미심장한 공헌을 했다. 왜냐하면 누가는 이 복음서를 매

학 작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또한 이와 같은 작품은 오늘날의 양

우 신중하게 저술했을 뿐만 아니라 이 복음서에 이어서 또한 사도행전을 집필

식 비평에서 다루고 있는 개별적이며 분리된 전승들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가는 예수를 통해서 성취된 복음의 이야기를 교회가

다.‘ 디에게시스’ 라는 단어와 관련하여, 뷕셀은 누가가 개별적인 단락보다 긴

세워지고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와 연결시켜 주고 있다.

뷕셀 (Buchsel,

TDNT 2:909) 은‘디에게시스’ ( dih/ghsiß ) 가

자료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뷕셀은 성경 이외의 문헌에서 이

누가복음 1장 1~4절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

단어가 사용된 예들에 대해서 언급한다 (Buchsel, TDNT 2:909 n. 3). 어떤 문헌은 입으로 전달되는 이야기에 대해서 말한다. 또 다른 문헌은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이나, 또는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설명을 언급한다. 곧, 집회서 6장 35절 (구 전),

9장 15절 (구전), 22장 6절 (구전), 27장 11절, 13절(구전), 38장 25절(구전), 39장

2절(유명한

사람들의 말) 이다.

카베오2서 2장 32절(기록된

그리고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8, 322 (기록된 문서),

6장 17절(역사적인

문서),

사건에 대한 설명) 이다.

리델의

1. 누가복음에 앞서서 존재하던 자료들 (눅 1:1~2) a. 다른 보고서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 (눅 1:1. 개역개정판 한글 성경에는 1:2에 번역됨)

b. 이 보고서들의 출처: 사도들을 포함한 목격자들 (1:2) 2. 누가복음의 저술에 대해서 (1:3~4)

헬라어 사전 (LSJ) 은‘디에게시스’ 가 사용된 다른 문헌을 덧붙여 말한다. 곧,

a. 누가복음의 저술 방법 (1:3)

플라톤의『국가론』392D와『파이드로스』246A다. 또한 우리는 70인역 하박

b. 누가복음의 저술 목적 (1:4)

국 2장 6절 (구전) 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신약 성경에서‘디에게오마 이’ ( dihge/omai ) 는 구전이나 기록된 문서를 모두 언급한다. 마가복음 5장 16절

누가는 자신이 이 복음서의 내용을 정확하게 기술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과 9장 9절, 누가복음 8장 39절과 9장 10절, 사도행전 8장 33절과 9장 27절 및

그래서 누가는 독자들에게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게 하려는

12장 17절은 구전을 가리킨다. 반면에 히브리서 11장 32절은 기록된 문서를 언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밝힌다. 누가는 이 복음서를 기록하는 데 세심한

급한다. 누가복음 1장 1절의‘디에게시스’ 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주의를 기울인다. 이 점은 이 복음서의 저술 목적을 반영하는 것이다. 비록 이미 다른 사람들이 누가복음과 비슷한 이야기를 저술했지만, 복음서의 내용

2 )‘ 휘포므네마’ 는 때때로 아직 가다듬지 않은 자료들을 가리킨다. 다음 책을 보라. Lucian, How

to Write History, pp. 47~48 94

을 추가하면서, 누가는 예수의 사역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려고 시도한 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데오빌로를 비롯하여 95


누가복음 1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데오빌로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에서는‘에페이데페르’ 가 머리말에 사용된 경우가 없다. 그러나 고대 문헌들

누가복음에는 그 이상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이 사건들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의 머리말에‘에페이데페르’ 가 사용되는 것은 흔했다. 마셜 (Marshall

계획과 관심이 놓여 있다. 곧, 하나님은 자기 백성 및 약속과 계획을 결코 포

과 슈나이더 (Schneider 1977a: 38) 는 이 단어가 지닌 인과 관계적인 의미를 지지

기하시지 않는다.

한다.

1978: 41)

그러므로 누가는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맨 처음으로 쓰는 사람이 아니다. 2 절의‘많은’ ( polloi/,/ ‘ 폴로이’ ) 이라는 표현은 이전에 기록된 자료들이나, 입으로

│ 주해 및 설명 │

전해진 자료들, 아니면 두 가지 모두를 가리킨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1 2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

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 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 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 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 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 이로라

1┌

lnasmuch as many have undertaken to compile an account of the things that have been fulfilled among us, 2 even as those who were from the beginning eyewitnesses and servants of the Word delivered to us, 3 it seemed good also to me , having followed all things carefully from the beginning, to write an orderly account for you, most excellent Theophilus, 4 that you might know certainty concerning the things about which you were instructed. ┌

‘많은’ 이라는 표현이 적어도 누가복음이나 Q 문서(독일어의‘자료’[Quelle]에서 유 래됨) 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Q 문서는 학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포

함하고 있는 것으로 가정하는 어떤 자료 또는 자료들이다. 많은 학자들은 누 가와 마태가 모두 이 자료를 사용했다고 추측한다. Q 문서가 실제로 존재했 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대체로 복음서들 가운데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쓰 였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다른 학자들은 마태복음이 누가복음에 앞서서 존재 하던 자료라고 믿는다. 이 학자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Q 문서가 있었다고 가 정하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복음서들의 저작 순서와 관 련해 그리스바흐나 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가설을 따르는 학자들은 마태복음 이 가장 먼저 쓰였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바흐,

요한 야콥: Johann Jakob Griesbach,

1745~1812년. 독일의 신약학자로서 1775년부터 은퇴할 때까지 예나 대학교의 신약학 교수였다-역자 주).

그리스바흐는 마태복음, 누가복음, 마가복음의 순서로 쓰였다고 주장했

1. 누가복음에 앞서서 존재하던 자료들(1:1~2) a. 다른 보고서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1:1)

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의 차례대로 저술되었다

[ 1:1 ] 누가복음은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누가는 예수가 행한 일들

38) 를

고 추측했다. 그러나 피츠마이어 (Fitzmyer

1981: 91) 와

슈나이더 (Schneider

1977a:

비롯하여, 대부분의 학자들은‘네 자료설’ 을 주장한다. 곧, 마가복음이

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다른 자료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언급한

맨 먼저 기록되었으며, Q 문서를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L이라고 불리는 오직

다.‘ 에페이데페르’ ( ejpeidh/per, ~이므로, ~이기 때문에) 라는 접속사는 대체로 주절

누가만 사용한 특별한 자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네 자료설에서 네 번

의 행위와 인과 관계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BDF §456.3. 개역개정판 한글 성경에는‘붓 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2절]로 번역되어 있어서,‘ ~이기 때문에’ 라는 접속사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반

째 자료는 M이라고 불리는 특별 자료다. 오직 마태복음을 저술한 사람만이 M 이라는 자료를 이용했다고 한다. 한편 케어드 (Caird 1963: 23~27) 는 원 (原) - 누가

영되어 있지 않다-역자 주).

이전에 다른 사람들이 기록한 보고서들은 누가가 이 복

복음 가설을 주장한다. 다시 말해 누가복음이 저술되던 후기에 마가복음이 참

음서를 저술하는 데 기초 자료로 사용되었다. 고대의 작가들은 자신들이 저술

고 자료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마가복음이 누가복음에

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작품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를 좋아

미친 영향은 작다고 한다.4)

했다.

‘에페케이레산’ ( ejpecei/ rhsan, 착수했다, 또는 시도했다, 개역개정판 한글 성경: [붓을] 든)

누가복음의 머리말과 비슷한 것은 다른 고대 문헌들에서도 발견된다. 피츠

이라는 동사는 누가보다 먼저 저술한 사람들의 저술 작업을 가리킨다. 여기서

마이어는 다음과 같은 예들을 언급한다. 곧, 요세푸스의『유대 전쟁기』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이라는 표현은 기록된 문서를 암시할 가능성이

1.proem. 6 §17과 필론의『가이우스에게 보내는 사절단』25 §164다.3) 70인역 4 ) 이 이슈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면, 이 주석서의 서론 부분에서“자료들” 을 참고하라. 또한“특 3 ) 앞에서 언급한 머리말 § I.A를 참고하라. 또한 Fitzmyer 1981: 290~291을 참조하라.

96

별 해설 4”를 참고하라. 그리고 McKnight 1991b와 Stein 1987을 참고하라. 97


누가복음 1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데오빌로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에서는‘에페이데페르’ 가 머리말에 사용된 경우가 없다. 그러나 고대 문헌들

누가복음에는 그 이상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이 사건들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의 머리말에‘에페이데페르’ 가 사용되는 것은 흔했다. 마셜 (Marshall

계획과 관심이 놓여 있다. 곧, 하나님은 자기 백성 및 약속과 계획을 결코 포

과 슈나이더 (Schneider 1977a: 38) 는 이 단어가 지닌 인과 관계적인 의미를 지지

기하시지 않는다.

한다.

1978: 41)

그러므로 누가는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맨 처음으로 쓰는 사람이 아니다. 2 절의‘많은’ ( polloi/,/ ‘ 폴로이’ ) 이라는 표현은 이전에 기록된 자료들이나, 입으로

│ 주해 및 설명 │

전해진 자료들, 아니면 두 가지 모두를 가리킨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1 2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

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 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 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 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 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 이로라

1┌

lnasmuch as many have undertaken to compile an account of the things that have been fulfilled among us, 2 even as those who were from the beginning eyewitnesses and servants of the Word delivered to us, 3 it seemed good also to me , having followed all things carefully from the beginning, to write an orderly account for you, most excellent Theophilus, 4 that you might know certainty concerning the things about which you were instructed. ┌

‘많은’ 이라는 표현이 적어도 누가복음이나 Q 문서(독일어의‘자료’[Quelle]에서 유 래됨) 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Q 문서는 학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포

함하고 있는 것으로 가정하는 어떤 자료 또는 자료들이다. 많은 학자들은 누 가와 마태가 모두 이 자료를 사용했다고 추측한다. Q 문서가 실제로 존재했 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대체로 복음서들 가운데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쓰 였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다른 학자들은 마태복음이 누가복음에 앞서서 존재 하던 자료라고 믿는다. 이 학자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Q 문서가 있었다고 가 정하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복음서들의 저작 순서와 관 련해 그리스바흐나 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가설을 따르는 학자들은 마태복음 이 가장 먼저 쓰였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바흐,

요한 야콥: Johann Jakob Griesbach,

1745~1812년. 독일의 신약학자로서 1775년부터 은퇴할 때까지 예나 대학교의 신약학 교수였다-역자 주).

그리스바흐는 마태복음, 누가복음, 마가복음의 순서로 쓰였다고 주장했

1. 누가복음에 앞서서 존재하던 자료들(1:1~2) a. 다른 보고서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1:1)

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의 차례대로 저술되었다

[ 1:1 ] 누가복음은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누가는 예수가 행한 일들

38) 를

고 추측했다. 그러나 피츠마이어 (Fitzmyer

1981: 91) 와

슈나이더 (Schneider

1977a:

비롯하여, 대부분의 학자들은‘네 자료설’ 을 주장한다. 곧, 마가복음이

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다른 자료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언급한

맨 먼저 기록되었으며, Q 문서를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L이라고 불리는 오직

다.‘ 에페이데페르’ ( ejpeidh/per, ~이므로, ~이기 때문에) 라는 접속사는 대체로 주절

누가만 사용한 특별한 자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네 자료설에서 네 번

의 행위와 인과 관계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BDF §456.3. 개역개정판 한글 성경에는‘붓 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2절]로 번역되어 있어서,‘ ~이기 때문에’ 라는 접속사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반

째 자료는 M이라고 불리는 특별 자료다. 오직 마태복음을 저술한 사람만이 M 이라는 자료를 이용했다고 한다. 한편 케어드 (Caird 1963: 23~27) 는 원 (原) - 누가

영되어 있지 않다-역자 주).

이전에 다른 사람들이 기록한 보고서들은 누가가 이 복

복음 가설을 주장한다. 다시 말해 누가복음이 저술되던 후기에 마가복음이 참

음서를 저술하는 데 기초 자료로 사용되었다. 고대의 작가들은 자신들이 저술

고 자료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마가복음이 누가복음에

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작품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를 좋아

미친 영향은 작다고 한다.4)

했다.

‘에페케이레산’ ( ejpecei/ rhsan, 착수했다, 또는 시도했다, 개역개정판 한글 성경: [붓을] 든)

누가복음의 머리말과 비슷한 것은 다른 고대 문헌들에서도 발견된다. 피츠

이라는 동사는 누가보다 먼저 저술한 사람들의 저술 작업을 가리킨다. 여기서

마이어는 다음과 같은 예들을 언급한다. 곧, 요세푸스의『유대 전쟁기』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이라는 표현은 기록된 문서를 암시할 가능성이

1.proem. 6 §17과 필론의『가이우스에게 보내는 사절단』25 §164다.3) 70인역 4 ) 이 이슈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면, 이 주석서의 서론 부분에서“자료들” 을 참고하라. 또한“특 3 ) 앞에서 언급한 머리말 § I.A를 참고하라. 또한 Fitzmyer 1981: 290~291을 참조하라.

96

별 해설 4”를 참고하라. 그리고 McKnight 1991b와 Stein 1987을 참고하라. 97


누가복음 1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높다. 반면에‘전하여 준’ 이라는 표현은 체계적으로 정리된 구전을 가리킬

행전 9장 29절과 19장 13절은 이 동사가 신약 성경에서 다른 의미로도 사용된

것이다. 따라서 누가는 이미 기록된 자료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

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보여 준다. 곧, 이 구절들에서 이 동사는 다소 부정적인

다. 그렇지만 기록된 자료에만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 여기서‘에피케이레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복음 1장 3절의‘카모이’ ( kajmoi/,

오’ ( ejpiceire/w ) 라는 동사와 관련해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곧,

리고 나도) 가

이 동사는 자료들에 대해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평가도 하지 않는 중립적

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이들]’ 이라는 표현에는 댕커 (Danker 1988: 24) 가 제안

인 뜻을 지니고 있는가? 아니면 자료들에 대해서 다소 경멸하는 의미를 지니

하는 것과 같이 이들의 저작들을 평가 절하하려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다. 댕

고 있는가? 이전에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저술한 사람들은 그 내용을 제대로

커 (Danker 1988: 24) 는 이 그룹 안에 이단에 속한 이들이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

전달했는가? 누가복음의 머리말에서 이 동사는 중립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

성이 있다고 추측한다.8) 누가복음 1장 3절에서 언급된 저작 목적과 더불어,

다. 그리고 이 동사는 어떤 사건에 대해서 보고하는 것을 가리킨다 (BAGD 304,

이 이야기들 (내력) 을 사도들이 전해 준 증언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은 누가가

BAA 617, Cadbury 1922a: 493).

이 이야기들을 대체로 좋은 관점에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1:2).

3절의‘카모이’ ( kajmoi/,

그리고 나도) 는

누가 자신도

자기보다 앞서 저술한 사람들의 대열에 가담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 Leaney 5)

1958: 77, Marshall 1978: 42, Creed 1930: 3, Plummer 1896: 4).

한편 누가가 스스로

이 문제점에 대한 결정적인 열쇠를 제공해 준다. 그러므로‘[내력

누가는 이전에 저술된 이야기들을 사건들이 일어난‘순서대로 배열한 이야 기’ ( aj n ata/ x asqai

dih/ghsin , 아나탁사스다이 디에게신 ) 라고

부른다. 피츠마이어

자세하게 연구했다고 강조하는 것에 근거해 피츠마이어 (Fitzmyer 1981: 291~292)

(Fitzmyer 1981: 292) 는‘디에게시스’ ( dih/ghsiß, 이야기, 설명, 보고서) 의

는 누가가 예수에 대한 이야기에 여전히 덧붙여져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미를 자세히 다룬다. 그러면서 이 명사는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고 주장한다. 나아가 클로스터만 (Klostermann

라고 한다.9) 그러므로‘아나탁사스다이’ 는 순서대로 쓰인 이야기 또는 보고서

1929: 2) 은‘카모이’ 라는

표현에

비판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판단한다.

를 가리킨다 (BAGD

61, BAA 122).

한편 델링 (Delling,

사전적인 의

TDNT 8:32~33) 은

이 명사가

그러나 또 다른 요인이 이 논의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왜냐하면 누가

입으로 전해 들은 것을 손으로 쓴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 만약 이 견해를 받아

복음은 유일하게 사도행전이라는 후속편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는 예

들인다면, 누가는 여기서 오직 기록된 문서만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수에 대한 이야기를 이후에 펼쳐지는 교회 역사와 연결시킨다. 예수의 사역과

과연 그러한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런데‘아나타소마이’ ( ajnata/ssomai ) 라는

관련해 누가는 다른 복음서들에 소개된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덧붙인다.

동사는 구전 또는 기록된 이야기를 모두 가리킬 수 있다. 따라서 이 단어의 용

또한 누가복음에는 교회가 세워져 가는 것에 대한 논의가 포함되어 있다 (복음서

례에 비추어 볼 때, 누가가 여기서 단지 기록된 이야기만을 가리킨다는 견해

의 내용 가운데 L 자료에는 삼분의 일 이상의 고유한 내용이 들어 있다).

는 타당하지 않다.10) 그리고 고대 역사가들은 다양한 종류의 이야기를 가리키

이와 같이 누가는 자신

의 자료에 고유한 내용을 덧붙이는 작업을 했다. 그렇지만 누가는 많은 수고를

는 전문 용어로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11)

들여서 자신보다 먼저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저술한 이들을 평가 절하하지 않 는다.6) MM 250~251에 제시된 공통적인 용례를 살펴볼 때, 우리는‘에페케이 레산’ 이라는 동사에 중립적인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7) 그런데 사도 5 ) 델링(TDNT 8:32~33, 특별히 n. 3)은 이 동사가 누가보다 먼저 저술한 사람들을 비난하는 어

조를 띠고 있지 않다고 분명하게 밝힌다. 평행 구문으로서, 델링은 주전 1세기의 역사가 디오 도루스 시클루스(Diodorus Siculus, 1.1.1~3)의 글에서 인용한다. 이 부분 이외에 콘첼만 (TDNT 9:596)은 동일한 저서에서 1.2.7과 1.4.4~5를 덧붙인다. 6 )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또한 누가복음의 머리말이 두 작 품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옹호하는 입장을 알려면, Maddox 1982: 4~6, Sterling 1992: 341~345을 보라. 스털링은 어떤 비판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비판은“억제되었다.”고 주장하면서, 해당 부분에서 균형 잡힌 논의를 제시한다. 7 ) 캐드버리(Cadbury 1922a: 494)는‘에피케이레오’ ( ejpiceire/w )라는 동사가 사용된 본문들의 목록을 제시한다. 어떤 본문들에서는 이 동사의 의미가 가치중립적이다. 반면에 다른 본문들 에서 이 동사는 경멸하는 뜻으로 쓰였다. 따라서 언제나 그렇듯이, 전후 문맥이‘에피케이레 98

오’ 의 적합한 의미를 결정해 준다. 8 ) 보봉(Bovon 1989: 34)은 사도행전에서‘에피케이레오’동사가 분명히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

었다고 인정한다. 그렇지만 누가복음의 머리말에서 이 동사를 사용하면서, 누가는 먼저 이야 기를 쓴 사람들에 대한“신중한”평가를 내린다고 보봉은 주장한다. 9 ) 또한 이 주석서의 서론 § I.A에 제시된 논의를 참고하라. 10 ) 구전된 또는 기록된 이야기로서‘디에게시스’ ( dih/ghsiß )에 대해서 보다 상세하게 알려면, 이 주석서의 서론에서 §I.A 및 TDNT 2:909를 참조하라. TDNT 에서 뷕셀은 이 단어의 용례에 대 해서 훌륭하게 요약해 준다. 우리가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은 Polybius 5.31.4에 들어 있는 평 행 구절이다. 11 ) Van Unnik 1979: 40~42, 특별히 n. 23을 참고하라. 반 운닉은 Lucian, How to Write History 47~48에서‘아나타소마이’ ( ajnata/ssomai)가 사용된 예를 언급한다. 또한 Van Unnik 1973을 참조하라.‘아나타소마이’ 라는 동사가 머리말에서‘에피케이레오’(ejpiceire/w)와 같은 동사 와 함께 사용될 때, 이 동사는 기록된 보고서, 또는 잘 정리된 보고서를 암시한다. 한편 뒤 플 레시스(Du Plessis 1974: 262~263)는 기록된 이야기들을 지지한다. 누가복음의 머리말에서 도, 십중팔구 기록된 이야기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누가가 기록된 이야기들 이외 99


누가복음 1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높다. 반면에‘전하여 준’ 이라는 표현은 체계적으로 정리된 구전을 가리킬

행전 9장 29절과 19장 13절은 이 동사가 신약 성경에서 다른 의미로도 사용된

것이다. 따라서 누가는 이미 기록된 자료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

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보여 준다. 곧, 이 구절들에서 이 동사는 다소 부정적인

다. 그렇지만 기록된 자료에만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 여기서‘에피케이레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복음 1장 3절의‘카모이’ ( kajmoi/,

오’ ( ejpiceire/w ) 라는 동사와 관련해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곧,

리고 나도) 가

이 동사는 자료들에 대해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평가도 하지 않는 중립적

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이들]’ 이라는 표현에는 댕커 (Danker 1988: 24) 가 제안

인 뜻을 지니고 있는가? 아니면 자료들에 대해서 다소 경멸하는 의미를 지니

하는 것과 같이 이들의 저작들을 평가 절하하려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다. 댕

고 있는가? 이전에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저술한 사람들은 그 내용을 제대로

커 (Danker 1988: 24) 는 이 그룹 안에 이단에 속한 이들이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

전달했는가? 누가복음의 머리말에서 이 동사는 중립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

성이 있다고 추측한다.8) 누가복음 1장 3절에서 언급된 저작 목적과 더불어,

다. 그리고 이 동사는 어떤 사건에 대해서 보고하는 것을 가리킨다 (BAGD 304,

이 이야기들 (내력) 을 사도들이 전해 준 증언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은 누가가

BAA 617, Cadbury 1922a: 493).

이 이야기들을 대체로 좋은 관점에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1:2).

3절의‘카모이’ ( kajmoi/,

그리고 나도) 는

누가 자신도

자기보다 앞서 저술한 사람들의 대열에 가담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 Leaney 5)

1958: 77, Marshall 1978: 42, Creed 1930: 3, Plummer 1896: 4).

한편 누가가 스스로

이 문제점에 대한 결정적인 열쇠를 제공해 준다. 그러므로‘[내력

누가는 이전에 저술된 이야기들을 사건들이 일어난‘순서대로 배열한 이야 기’ ( aj n ata/ x asqai

dih/ghsin , 아나탁사스다이 디에게신 ) 라고

부른다. 피츠마이어

자세하게 연구했다고 강조하는 것에 근거해 피츠마이어 (Fitzmyer 1981: 291~292)

(Fitzmyer 1981: 292) 는‘디에게시스’ ( dih/ghsiß, 이야기, 설명, 보고서) 의

는 누가가 예수에 대한 이야기에 여전히 덧붙여져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미를 자세히 다룬다. 그러면서 이 명사는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고 주장한다. 나아가 클로스터만 (Klostermann

라고 한다.9) 그러므로‘아나탁사스다이’ 는 순서대로 쓰인 이야기 또는 보고서

1929: 2) 은‘카모이’ 라는

표현에

비판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판단한다.

를 가리킨다 (BAGD

61, BAA 122).

한편 델링 (Delling,

사전적인 의

TDNT 8:32~33) 은

이 명사가

그러나 또 다른 요인이 이 논의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왜냐하면 누가

입으로 전해 들은 것을 손으로 쓴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 만약 이 견해를 받아

복음은 유일하게 사도행전이라는 후속편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는 예

들인다면, 누가는 여기서 오직 기록된 문서만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수에 대한 이야기를 이후에 펼쳐지는 교회 역사와 연결시킨다. 예수의 사역과

과연 그러한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런데‘아나타소마이’ ( ajnata/ssomai ) 라는

관련해 누가는 다른 복음서들에 소개된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덧붙인다.

동사는 구전 또는 기록된 이야기를 모두 가리킬 수 있다. 따라서 이 단어의 용

또한 누가복음에는 교회가 세워져 가는 것에 대한 논의가 포함되어 있다 (복음서

례에 비추어 볼 때, 누가가 여기서 단지 기록된 이야기만을 가리킨다는 견해

의 내용 가운데 L 자료에는 삼분의 일 이상의 고유한 내용이 들어 있다).

는 타당하지 않다.10) 그리고 고대 역사가들은 다양한 종류의 이야기를 가리키

이와 같이 누가는 자신

의 자료에 고유한 내용을 덧붙이는 작업을 했다. 그렇지만 누가는 많은 수고를

는 전문 용어로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11)

들여서 자신보다 먼저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저술한 이들을 평가 절하하지 않 는다.6) MM 250~251에 제시된 공통적인 용례를 살펴볼 때, 우리는‘에페케이 레산’ 이라는 동사에 중립적인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7) 그런데 사도 5 ) 델링(TDNT 8:32~33, 특별히 n. 3)은 이 동사가 누가보다 먼저 저술한 사람들을 비난하는 어

조를 띠고 있지 않다고 분명하게 밝힌다. 평행 구문으로서, 델링은 주전 1세기의 역사가 디오 도루스 시클루스(Diodorus Siculus, 1.1.1~3)의 글에서 인용한다. 이 부분 이외에 콘첼만 (TDNT 9:596)은 동일한 저서에서 1.2.7과 1.4.4~5를 덧붙인다. 6 )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또한 누가복음의 머리말이 두 작 품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옹호하는 입장을 알려면, Maddox 1982: 4~6, Sterling 1992: 341~345을 보라. 스털링은 어떤 비판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비판은“억제되었다.”고 주장하면서, 해당 부분에서 균형 잡힌 논의를 제시한다. 7 ) 캐드버리(Cadbury 1922a: 494)는‘에피케이레오’ ( ejpiceire/w )라는 동사가 사용된 본문들의 목록을 제시한다. 어떤 본문들에서는 이 동사의 의미가 가치중립적이다. 반면에 다른 본문들 에서 이 동사는 경멸하는 뜻으로 쓰였다. 따라서 언제나 그렇듯이, 전후 문맥이‘에피케이레 98

오’ 의 적합한 의미를 결정해 준다. 8 ) 보봉(Bovon 1989: 34)은 사도행전에서‘에피케이레오’동사가 분명히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

었다고 인정한다. 그렇지만 누가복음의 머리말에서 이 동사를 사용하면서, 누가는 먼저 이야 기를 쓴 사람들에 대한“신중한”평가를 내린다고 보봉은 주장한다. 9 ) 또한 이 주석서의 서론 § I.A에 제시된 논의를 참고하라. 10 ) 구전된 또는 기록된 이야기로서‘디에게시스’ ( dih/ghsiß )에 대해서 보다 상세하게 알려면, 이 주석서의 서론에서 §I.A 및 TDNT 2:909를 참조하라. TDNT 에서 뷕셀은 이 단어의 용례에 대 해서 훌륭하게 요약해 준다. 우리가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은 Polybius 5.31.4에 들어 있는 평 행 구절이다. 11 ) Van Unnik 1979: 40~42, 특별히 n. 23을 참고하라. 반 운닉은 Lucian, How to Write History 47~48에서‘아나타소마이’ ( ajnata/ssomai)가 사용된 예를 언급한다. 또한 Van Unnik 1973을 참조하라.‘아나타소마이’ 라는 동사가 머리말에서‘에피케이레오’(ejpiceire/w)와 같은 동사 와 함께 사용될 때, 이 동사는 기록된 보고서, 또는 잘 정리된 보고서를 암시한다. 한편 뒤 플 레시스(Du Plessis 1974: 262~263)는 기록된 이야기들을 지지한다. 누가복음의 머리말에서 도, 십중팔구 기록된 이야기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누가가 기록된 이야기들 이외 99


누가복음 1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그런데 누가복음 1장 2절에서 언급되는 전해진 이야기는 단순히 기록되어

최초의 사람들만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렇지만 마셜 (Marshall

1978: 41) 과

마찬

있는 일련의 사건들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이 사건들 (이루어진 사실들) 은 특별한

가지로, 피츠마이어는‘우리 중에’ 라는 표현이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

성격을 지니고 있다. 1장 1절의‘페리 톤 페플레로포레메논 엔 헤민 프라그마

사에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그 범위를 넓혀서 이해한다. 피

톤’ ( peri/

츠마이어의 이해는 옳다. 나아가 딜런 (Dillon

twv n peplhroforhme/nwn ejn hJmivn pragma/twn ) 이라는

구문은‘우리 가운

1978: 271 n. 115) 은

다음과 같이 주

데서 이루어진 사건들 ’ (사실들) 을 뜻한다.‘플레로포레오’ ( plhrofore/w) 가 무엇

장한다. 딜런은‘우리 중에’ 라는 표현이 원래의 사건들로부터 그 후에 일어난

을 뜻하는지에 대해서 다양한 논의가 제기되었다 (Fitzmyer

이 동사

모든 사건들 때문에 믿게 된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

또는 사건들에 대해서‘확신

한다 (왜냐하면 현재완료 분사는 이 언급이 보다 긴 시간을 가리킨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딜

하다’ (Rengstorf 1968: 14) 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사건들이‘이루어졌다’ 는

런은‘이루어졌다’ 라는 현재완료 시제가 예수와 관련된 원래의 사건들을 목

는 사건들이‘완성되었다’ 는 것을 뜻하는가? 13)

12)

1981: 293).

여기서‘플레로포레오’ 라는 동사가 세 번째 의미로 사용되

격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포함할 수 있다고 올바르게 지적한다. 이 사건들을

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왜냐하면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에

통해 과거와 누가 당시의 신자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이 사

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자주 강조하기 때문이다 (1:20,

건들의 중요성을 공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영향을 미친 역사적인 토대가 누

것을 뜻하는가?

57, 2:6,

(이미 이루어진 것들) 은 21~22, 4:21, 9:31, 21:22, 24, 24:44~47).‘ 페플레로포레메논’

가의 두 저서들의 주제를 이루고 있다.

재완료 수동태 분사다. 곧, 이 현재완료 분사는‘신학적’수동태로서, 하나님 의 행위에 대해서 암시한다 (Marshall 1978: 41). 과거에 이루어진 이 사건들은 현

b. 이 보고서들의 출처: 사도들을 포함한 목격자들(1:2)

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곧, 예 수의 삶과 죽음 및 부활 사건은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누가는

[ 1:2 ] 이제 누가는 이 보고서들의 궁극적인 출처에 대해서 밝힌다. 이전의

자신의 두 번째 책에서 이 영향으로 말미암은 직접적인 결과 가운데 한 가지

보고서들과 비교해 볼 때, 2절의‘카도스’ ( kaqw/ß,

에 대해서, 곧 교회의 탄생과 성장에 대해서 소개할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누

가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전해졌는지를 알려 준다

가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로 올라가셨지만, 또한 예수는 이 세상에서 계

(Fitzmyer 1981: 294, BDF § 453).

속해서 일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행 1:1~5).

을 만하다고 강조해 준다. 곧, 이 이야기들은 사건들을 직접 본 사람들과 말씀

~와 똑같이) 라는

접속사는 누

이 접속사는 이야기들이 기초하고 있는 근거가 믿

하나님이 행하신 이 사건들은 단지 어떤 한 구석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1장

의 일꾼 된 사람들이 전해 준 것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1장 2절에서 자료의 출

1절의‘엔 헤민’ ( ejn hJmivn ) 은 이 사건들이‘우리 중에’ (가운데서) 이루어졌다고 묘

처와 관련된 두 단계의 과정이 묘사되었다. 그러나 두 단계의 출처가 지니고

사한다.‘ 우리’ 라는 일인칭 대명사는 적어도 구원 역사가 시작되고 이루어지

있는 특성은 자료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보증한다. 2절에서 누가는 여전

는 것을 직접 본 신자들을, 곧‘첫 세대’ 를 가리킨다. 피츠마이어 (Fitzmyer 1981:

히 자신의 복음서에 앞서 기록된 이야기들에 대해서 논의한다. 반면에 누가는

293~294) 와

자신의 복음서에 대해서는 1장 3~4절에서 언급한다.

리니 (Leaney 1958: 77) 는 여기서‘우리 중에’ 라는 표현이 이 사건들

을 목격한 사람들을 언급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리니는 이 표현을 보다 한

예수와 관련된 전승의 궁극적인 출처는 다음 두 가지 용어로 묘사되었다.

정된 의미로 이해한다. 곧, 리니는‘우리’ 라는 대명사가 이 사건들을 목격한

곧,‘ 아우톱타이’ ( aujto/ptai, 증인들) 와‘휘페레타이 ’ ( uJphre/tai, 일꾼들 또는 종들) 다. 이 단어들은 이 전승이 맨 처음 입으로 전해진 단계에 대해서 분명하게 언급

에 다른 것들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고 우리가 단언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누가복음의 머리말에서 특별히 다양한 자료들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12 ) 캐드버리(Cadbury 1922a: 495~496)는‘완성되었다’ 는 뜻으로 이해한다. RSV와 NASB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번역되어 있다.“The things (which have been) accomplished.”Neu .. Luther와 Zurcher Bibel 에서도 비슷하게 번역되어 있다. 13 ) Fitzmyer 1981: 293, Marshall 1978: 41, Schweizer 1984: 11, Du Plessis 1974: 263~264, Sterling 1992: 334, L. Johnson 1991: 27. NIV 및 NKJV:“things that/which have been fulfilled.” .. Einheitsubersetzung은 우리 가운데 일어나고 성취된 사건들( “was sich unter uns ereignet .. und erfullt hat” )이라고 번역했다. 곧, 첫 번째와 세 번째의 의미를 결합시켰다. 100

한다. 신약 성경에서‘아우톱테스’( aujto/pthß, 증인) 라는 단어는 오직 이곳에만 사용되었다. 자신들이 직접 보았던 예수를 전파하는 것을 통해 이 일꾼들은 예수 운동에 가담했던 것이다.14) 14 ) Rengstorf, TDNT 8:543, Michaelis, TDNT 5:348, 373. 누가는 후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이들을‘증인’ 이라고 부른다(눅 24:44~48; 행 1:8). 고대의 역사가들에게 이와 같은 증인들은 매우 중요했다. 다음 책들을 참고하라. Thucydides 1.22.2, 요세푸스,『아피온 반박』1.10 §55, Lucian, How to Write History 4에 들어 있는 풍자시. 또한 Du Plessis 1974: 265를 참조하라. 101


누가복음 1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그런데 누가복음 1장 2절에서 언급되는 전해진 이야기는 단순히 기록되어

최초의 사람들만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렇지만 마셜 (Marshall

1978: 41) 과

마찬

있는 일련의 사건들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이 사건들 (이루어진 사실들) 은 특별한

가지로, 피츠마이어는‘우리 중에’ 라는 표현이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

성격을 지니고 있다. 1장 1절의‘페리 톤 페플레로포레메논 엔 헤민 프라그마

사에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그 범위를 넓혀서 이해한다. 피

톤’ ( peri/

츠마이어의 이해는 옳다. 나아가 딜런 (Dillon

twv n peplhroforhme/nwn ejn hJmivn pragma/twn ) 이라는

구문은‘우리 가운

1978: 271 n. 115) 은

다음과 같이 주

데서 이루어진 사건들 ’ (사실들) 을 뜻한다.‘플레로포레오’ ( plhrofore/w) 가 무엇

장한다. 딜런은‘우리 중에’ 라는 표현이 원래의 사건들로부터 그 후에 일어난

을 뜻하는지에 대해서 다양한 논의가 제기되었다 (Fitzmyer

이 동사

모든 사건들 때문에 믿게 된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

또는 사건들에 대해서‘확신

한다 (왜냐하면 현재완료 분사는 이 언급이 보다 긴 시간을 가리킨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딜

하다’ (Rengstorf 1968: 14) 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사건들이‘이루어졌다’ 는

런은‘이루어졌다’ 라는 현재완료 시제가 예수와 관련된 원래의 사건들을 목

는 사건들이‘완성되었다’ 는 것을 뜻하는가? 13)

12)

1981: 293).

여기서‘플레로포레오’ 라는 동사가 세 번째 의미로 사용되

격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포함할 수 있다고 올바르게 지적한다. 이 사건들을

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왜냐하면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에

통해 과거와 누가 당시의 신자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이 사

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자주 강조하기 때문이다 (1:20,

건들의 중요성을 공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영향을 미친 역사적인 토대가 누

것을 뜻하는가?

57, 2:6,

(이미 이루어진 것들) 은 21~22, 4:21, 9:31, 21:22, 24, 24:44~47).‘ 페플레로포레메논’

가의 두 저서들의 주제를 이루고 있다.

재완료 수동태 분사다. 곧, 이 현재완료 분사는‘신학적’수동태로서, 하나님 의 행위에 대해서 암시한다 (Marshall 1978: 41). 과거에 이루어진 이 사건들은 현

b. 이 보고서들의 출처: 사도들을 포함한 목격자들(1:2)

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곧, 예 수의 삶과 죽음 및 부활 사건은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누가는

[ 1:2 ] 이제 누가는 이 보고서들의 궁극적인 출처에 대해서 밝힌다. 이전의

자신의 두 번째 책에서 이 영향으로 말미암은 직접적인 결과 가운데 한 가지

보고서들과 비교해 볼 때, 2절의‘카도스’ ( kaqw/ß,

에 대해서, 곧 교회의 탄생과 성장에 대해서 소개할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누

가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전해졌는지를 알려 준다

가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로 올라가셨지만, 또한 예수는 이 세상에서 계

(Fitzmyer 1981: 294, BDF § 453).

속해서 일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행 1:1~5).

을 만하다고 강조해 준다. 곧, 이 이야기들은 사건들을 직접 본 사람들과 말씀

~와 똑같이) 라는

접속사는 누

이 접속사는 이야기들이 기초하고 있는 근거가 믿

하나님이 행하신 이 사건들은 단지 어떤 한 구석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1장

의 일꾼 된 사람들이 전해 준 것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1장 2절에서 자료의 출

1절의‘엔 헤민’ ( ejn hJmivn ) 은 이 사건들이‘우리 중에’ (가운데서) 이루어졌다고 묘

처와 관련된 두 단계의 과정이 묘사되었다. 그러나 두 단계의 출처가 지니고

사한다.‘ 우리’ 라는 일인칭 대명사는 적어도 구원 역사가 시작되고 이루어지

있는 특성은 자료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보증한다. 2절에서 누가는 여전

는 것을 직접 본 신자들을, 곧‘첫 세대’ 를 가리킨다. 피츠마이어 (Fitzmyer 1981:

히 자신의 복음서에 앞서 기록된 이야기들에 대해서 논의한다. 반면에 누가는

293~294) 와

자신의 복음서에 대해서는 1장 3~4절에서 언급한다.

리니 (Leaney 1958: 77) 는 여기서‘우리 중에’ 라는 표현이 이 사건들

을 목격한 사람들을 언급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리니는 이 표현을 보다 한

예수와 관련된 전승의 궁극적인 출처는 다음 두 가지 용어로 묘사되었다.

정된 의미로 이해한다. 곧, 리니는‘우리’ 라는 대명사가 이 사건들을 목격한

곧,‘ 아우톱타이’ ( aujto/ptai, 증인들) 와‘휘페레타이 ’ ( uJphre/tai, 일꾼들 또는 종들) 다. 이 단어들은 이 전승이 맨 처음 입으로 전해진 단계에 대해서 분명하게 언급

에 다른 것들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고 우리가 단언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누가복음의 머리말에서 특별히 다양한 자료들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12 ) 캐드버리(Cadbury 1922a: 495~496)는‘완성되었다’ 는 뜻으로 이해한다. RSV와 NASB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번역되어 있다.“The things (which have been) accomplished.”Neu .. Luther와 Zurcher Bibel 에서도 비슷하게 번역되어 있다. 13 ) Fitzmyer 1981: 293, Marshall 1978: 41, Schweizer 1984: 11, Du Plessis 1974: 263~264, Sterling 1992: 334, L. Johnson 1991: 27. NIV 및 NKJV:“things that/which have been fulfilled.” .. Einheitsubersetzung은 우리 가운데 일어나고 성취된 사건들( “was sich unter uns ereignet .. und erfullt hat” )이라고 번역했다. 곧, 첫 번째와 세 번째의 의미를 결합시켰다. 100

한다. 신약 성경에서‘아우톱테스’( aujto/pthß, 증인) 라는 단어는 오직 이곳에만 사용되었다. 자신들이 직접 보았던 예수를 전파하는 것을 통해 이 일꾼들은 예수 운동에 가담했던 것이다.14) 14 ) Rengstorf, TDNT 8:543, Michaelis, TDNT 5:348, 373. 누가는 후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이들을‘증인’ 이라고 부른다(눅 24:44~48; 행 1:8). 고대의 역사가들에게 이와 같은 증인들은 매우 중요했다. 다음 책들을 참고하라. Thucydides 1.22.2, 요세푸스,『아피온 반박』1.10 §55, Lucian, How to Write History 4에 들어 있는 풍자시. 또한 Du Plessis 1974: 265를 참조하라. 101


누가복음 1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헬라어의 배열 순서를 살펴볼 때, 피츠마이어 (Fitzmyer

1981: 294) 는

한 그룹

이 두 가지 역할을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곧,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았던 증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서 말씀을 증거했다. ‘파레도산 헤민’ ( pare/dosan

hJmivn,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이

가리키는 것처럼, 하

인들이 말씀의 일꾼들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놀랜드 (Nolland 1987: 7) 도 피츠마

나님의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전파되었고, 또한 전달되었다.‘ 파라디도미’ (pa-

이어와 같은 입장이다. 정관사 복수 남성형 ( oiJ,

radi/dwmi ) 는

호이) 이

하나밖에 사용되지 않

았다는 점과 뒤에 나오는 현재 분사‘게노메노이’ ( geno/menoi , 다) 는

공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다.17) 누가복음 1장

~이 되었다, ~이었

2절에 따르면, 어떤 사람들은 말씀의 사역자들이 전해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

이 견해를 지지한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에서 목격자들과 일꾼들이 된

했다. 여기서 전해 주었다는 것은 사도들이 전해 준 것 (사도들의 전승) 을 가리킬

사람들이 모두 명사 복수형으로 사용된 점은 이 견해를 분명하게 지지하지 않 는다. 왜냐하면 헬라어 문법에서 그랜빌 - 샤프 법칙은 복수로 이루어진 구문

교회의 후세대에게, 곧 누가가 살고 있던 당시의 사람들에게도 전해졌다는 것

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랜빌 샤프[1735~1813년]는 영국의 평신도 성경 연구가다.

을 언급한다. 나아가 여기서‘목격자’ 라는 용어는 단순히 문학적인 측면에서

샤프는“신약 성경의 헬라어 원문의 정관사 용법” 이라는 글을 썼다. 또한 샤프는 노예 제도를 폐지할

관용적인 표현 이상을 의미한다. 캐드버리(Cadbury

것을 주장한 것으로도 유명하다-역자 주).

피츠마이어 (Fitzmyer 1981: 294) 는 이 언급은 사

것이다 (Creed

크리드 (Creed

1930: 4).

그리고 1장 1절의‘우리’ 라는 표현은 이 전승이 초대

1930: 4) 는

1922a: 497) 의

견해에 맞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어떤 사람이 자신의 말이 목

도들이 된 제자들을 가리킨다고 제안한다. 이 증인들은 처음부터 ( ajp aj rj chvß, 아

격자의 진술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이 전하는

예수의 사역을 목격한 사람들이다. 곧,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

이야기를 믿을 만하다고 인정해 줄 것을 기대한다.”이와 같은 의도에서 사도

프 아르케스)

은 다음, 예수가 곧바로 자신의 사역을 시작했을 때부터다 ( 행 10:37~41).

1:21~22,

그러므로 여기서 한 그룹이 교회 역사의 두 단계에서 활동을 한 것

들이 전해 준 자료는 기록되어 보존되었다. 그리고 그 자료는 모든 시대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으로 언급되고 있다. 곧, 이들은 직접 보았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사람들에게 전했다.15) 피츠마이어 (Fitzmyer

1981: 294) 는

누가가 3세대의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한

다. 왜냐하면 누가의 앞에는 (1) 처음부터 있었던 사람들과 (2) 말씀의 일꾼 들이 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굴더 (Goulder

1989: 201) 도

2. 누가의 공헌(1:3~4) a. 누가의 저술 방법(1:3) [ 1:3 ] 누가복음 1장 3절에는 주절이 포함되어 있다. 3절에서 누가는 자신

이 이 복음서를 저술하는 관점을 밝히고 있다.‘에독세 카모이’ ( e¡doxe 18)

kajmoi/ )

은 견해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만약 목격자들과 일꾼들이 동일한 사람들을

는‘나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를 의미한다.

가리킨다면, 누가는 최초의 그룹의 직접적인 후대일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애에 대해서 저술한 사람들의 대열에 가담하고자 한다. 예수의 생애에 대해서

비록 누가가 2세대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누가는 전승 과정을 다음 세 단계로

설명하기 위해 어떤 이들은 누가보다 앞서 사도들의 전승에서 자료를 끌어왔

묘사하고 있다. (1) 사건들을 경험했다. (2) 사건들과 관련하여 증인들이 전

다. 예수의 생애에 대한 설명과 관련해 누가는 자신도 무엇인가 기여할 것이

승을 형성했다. (3) 이 전승을 기록하고 사건들에 대해서 숙고했다. 엘리 (Ellie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누가는 이미 기록되어 전해진 것에 필요한 내용을

1974: 65) 는

덧붙이기를 원했다는 데에 대부분의 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 Schneider

누가를 3세대에 속하는 인물로 보지 않고, 오히려 2세대에 속하는

인물로 이해한다. 엘리의 견해가 보다 더 정확하다. ‘말씀’ 은 예수에 대한 메시지와 신적인 권능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가리킨 다 (Luce

1933: 82). 16)

니고 있다.

하나님의 권위 있는 메시지로서 선포된 말씀은 권능을 지

1977a: 39, Fitzmyer 1981: 296, Dillon 1981: 207~208).

누가 자신도 예수의 생

그러므로 누가가 자신의 저술

을 자신의 선임자들의 저술과 비교하려 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1장 3절에 있는 19) ‘카이’ ( kai/ ) 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말씀의 일꾼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17 ) 고전 11:2, 23, 15:3; 막 7:13; 유 3절. Fitzmyer 1981: 296. 이 동사의 부정과거 형태에 대해 다

15 ) Ellis 1974: 65. 보다 자세하게 알려면, 다음 책을 참고하라. Dillon 1978: 270~271, 특별히 n.

114를 참조하라. 딜런의 책 제목은 From Eye -Witnesses to Ministers of the Word 다. 이 제목 은 목격자들과 일꾼들이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16 ) 이 주제를 입증하는 예들로서, 누가복음 전체를 통해 리니(Leaney 1958: 77)는 예수와 사도 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언급한다. 참조, 눅 4:22, 6:17; 행 2:36~37, 4:13~14. 102

음 사전을 참조하라. BDF §95.1. 18 ) 우리는‘에독세 카모이’ (ej d/ oxe kajmoi/)와 평행을 이루는 표현을 행 15:22, 25, 28에서 발견할

수 있다. 19 )‘ 카모이’ ( kajmoi /) 는‘카이’ ( kai )/ 와‘모이’ ( moi)의 축약형이다.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그리

고 나에게도’및‘또한 나에게도’ 를 뜻한다. 103


누가복음 1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헬라어의 배열 순서를 살펴볼 때, 피츠마이어 (Fitzmyer

1981: 294) 는

한 그룹

이 두 가지 역할을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곧,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았던 증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서 말씀을 증거했다. ‘파레도산 헤민’ ( pare/dosan

hJmivn,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이

가리키는 것처럼, 하

인들이 말씀의 일꾼들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놀랜드 (Nolland 1987: 7) 도 피츠마

나님의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전파되었고, 또한 전달되었다.‘ 파라디도미’ (pa-

이어와 같은 입장이다. 정관사 복수 남성형 ( oiJ,

radi/dwmi ) 는

호이) 이

하나밖에 사용되지 않

았다는 점과 뒤에 나오는 현재 분사‘게노메노이’ ( geno/menoi , 다) 는

공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다.17) 누가복음 1장

~이 되었다, ~이었

2절에 따르면, 어떤 사람들은 말씀의 사역자들이 전해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

이 견해를 지지한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에서 목격자들과 일꾼들이 된

했다. 여기서 전해 주었다는 것은 사도들이 전해 준 것 (사도들의 전승) 을 가리킬

사람들이 모두 명사 복수형으로 사용된 점은 이 견해를 분명하게 지지하지 않 는다. 왜냐하면 헬라어 문법에서 그랜빌 - 샤프 법칙은 복수로 이루어진 구문

교회의 후세대에게, 곧 누가가 살고 있던 당시의 사람들에게도 전해졌다는 것

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랜빌 샤프[1735~1813년]는 영국의 평신도 성경 연구가다.

을 언급한다. 나아가 여기서‘목격자’ 라는 용어는 단순히 문학적인 측면에서

샤프는“신약 성경의 헬라어 원문의 정관사 용법” 이라는 글을 썼다. 또한 샤프는 노예 제도를 폐지할

관용적인 표현 이상을 의미한다. 캐드버리(Cadbury

것을 주장한 것으로도 유명하다-역자 주).

피츠마이어 (Fitzmyer 1981: 294) 는 이 언급은 사

것이다 (Creed

크리드 (Creed

1930: 4).

그리고 1장 1절의‘우리’ 라는 표현은 이 전승이 초대

1930: 4) 는

1922a: 497) 의

견해에 맞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어떤 사람이 자신의 말이 목

도들이 된 제자들을 가리킨다고 제안한다. 이 증인들은 처음부터 ( ajp aj rj chvß, 아

격자의 진술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이 전하는

예수의 사역을 목격한 사람들이다. 곧,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

이야기를 믿을 만하다고 인정해 줄 것을 기대한다.”이와 같은 의도에서 사도

프 아르케스)

은 다음, 예수가 곧바로 자신의 사역을 시작했을 때부터다 ( 행 10:37~41).

1:21~22,

그러므로 여기서 한 그룹이 교회 역사의 두 단계에서 활동을 한 것

들이 전해 준 자료는 기록되어 보존되었다. 그리고 그 자료는 모든 시대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으로 언급되고 있다. 곧, 이들은 직접 보았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사람들에게 전했다.15) 피츠마이어 (Fitzmyer

1981: 294) 는

누가가 3세대의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한

다. 왜냐하면 누가의 앞에는 (1) 처음부터 있었던 사람들과 (2) 말씀의 일꾼 들이 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굴더 (Goulder

1989: 201) 도

2. 누가의 공헌(1:3~4) a. 누가의 저술 방법(1:3) [ 1:3 ] 누가복음 1장 3절에는 주절이 포함되어 있다. 3절에서 누가는 자신

이 이 복음서를 저술하는 관점을 밝히고 있다.‘에독세 카모이’ ( e¡doxe 18)

kajmoi/ )

은 견해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만약 목격자들과 일꾼들이 동일한 사람들을

는‘나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를 의미한다.

가리킨다면, 누가는 최초의 그룹의 직접적인 후대일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애에 대해서 저술한 사람들의 대열에 가담하고자 한다. 예수의 생애에 대해서

비록 누가가 2세대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누가는 전승 과정을 다음 세 단계로

설명하기 위해 어떤 이들은 누가보다 앞서 사도들의 전승에서 자료를 끌어왔

묘사하고 있다. (1) 사건들을 경험했다. (2) 사건들과 관련하여 증인들이 전

다. 예수의 생애에 대한 설명과 관련해 누가는 자신도 무엇인가 기여할 것이

승을 형성했다. (3) 이 전승을 기록하고 사건들에 대해서 숙고했다. 엘리 (Ellie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누가는 이미 기록되어 전해진 것에 필요한 내용을

1974: 65) 는

덧붙이기를 원했다는 데에 대부분의 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 Schneider

누가를 3세대에 속하는 인물로 보지 않고, 오히려 2세대에 속하는

인물로 이해한다. 엘리의 견해가 보다 더 정확하다. ‘말씀’ 은 예수에 대한 메시지와 신적인 권능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가리킨 다 (Luce

1933: 82). 16)

니고 있다.

하나님의 권위 있는 메시지로서 선포된 말씀은 권능을 지

1977a: 39, Fitzmyer 1981: 296, Dillon 1981: 207~208).

누가 자신도 예수의 생

그러므로 누가가 자신의 저술

을 자신의 선임자들의 저술과 비교하려 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1장 3절에 있는 19) ‘카이’ ( kai/ ) 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말씀의 일꾼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17 ) 고전 11:2, 23, 15:3; 막 7:13; 유 3절. Fitzmyer 1981: 296. 이 동사의 부정과거 형태에 대해 다

15 ) Ellis 1974: 65. 보다 자세하게 알려면, 다음 책을 참고하라. Dillon 1978: 270~271, 특별히 n.

114를 참조하라. 딜런의 책 제목은 From Eye -Witnesses to Ministers of the Word 다. 이 제목 은 목격자들과 일꾼들이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16 ) 이 주제를 입증하는 예들로서, 누가복음 전체를 통해 리니(Leaney 1958: 77)는 예수와 사도 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언급한다. 참조, 눅 4:22, 6:17; 행 2:36~37, 4:13~14. 102

음 사전을 참조하라. BDF §95.1. 18 ) 우리는‘에독세 카모이’ (ej d/ oxe kajmoi/)와 평행을 이루는 표현을 행 15:22, 25, 28에서 발견할

수 있다. 19 )‘ 카모이’ ( kajmoi /) 는‘카이’ ( kai )/ 와‘모이’ ( moi)의 축약형이다.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그리

고 나에게도’및‘또한 나에게도’ 를 뜻한다. 103


누가복음 1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누가는 1장 3절에서 자신의 저술이 지닌 네 가지 특성을 언급한다. 그렇지만

행헨은 두 번째 견해를 강력하게 지지한다. 행헨은 요세푸스의 저서에도

3절에서 두세 가지 용어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와 관련해서 논란

‘조사하다’ 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행헨은 캐드버리

이 빚어지고 있다. 첫 번째 핵심 단어는‘파레콜루데코티’ ( parhkolouqhko/ti )

의 해석이 누가복음의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22) 사실상 요세푸스

다.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바짝 붙어서 뒤따라갔다’ 는 것을 뜻한다. 이 동사

는‘따라가다’ 라는 의미로 이 동사를 사용하지만, 손으로 붙잡으려고 따라가

가 지닌 기본적인 의미는‘뒤따라가다’ 이다. 그러나 이 문맥에서 이 동사가

는 것을 뜻한다. 곧, 어떤 이야기 또는 사건들을 이해하기 위해 그 이야기 또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Fitzmyer

1981:

는 사건들을 추적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누가가‘파라콜루데오’ 라는 동사

여섯 가지 가능한 답변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 동사의 의미와 관련된

를 사용한 것이 요세푸스가 사용한 것과 평행을 이룬다면, 누가는 자신이 사

논쟁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1)‘ 파레콜루데코티’ 는‘어떤 사건들의 전

건들에 대해서 주의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모든 사건들을

개 과정을 면밀하게 추적하는 것’ 을 뜻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동사는‘어떤

직접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가는 사건들에 대해서 세밀하게 조사해 본다

296).

20)

움직임 (운동) 을 따라가는 것’ 을 의미한다.

이 견해를 따른다면 이 동사는 무

는 의미가 암시되어 있는 것이다.

엇에 대해서 자세하게 조사하는 대신에, 오히려 그것에 관심을 갖거나 또는

그리고 행헨은 계속해서‘자세히’ (3절) 라는 단어를 개인이 직접 관련된 것

그것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따라가는 것을 뜻한다. (2) 이 동사는 지난날에

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캐드버리가 이해하고 있는 의미에서‘파레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조사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21) (3) 몇몇

콜루데코티’ ( parhkolouqhko/ti ) 를‘아크리보스’ ( ajkribwv ß,

의 교회 교부들은 이 동사를 다른 관점에서 이해한다. 곧, 이 교부들은‘파라

에 연결시킬 때, 결과적으로 이런 해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또한‘아노덴’

콜루데코티’ 가 사도들을 따르는 자로서 누가의 역할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주

( a¡nwqen, 위로부터 또는 처음부터) 은‘오랜

장한다. 이 교부들은 이 단어가‘동행하는 것’ 을 의미한다고 한다. 따라서 첫

가 정의하는 것이 타당하려면,‘아노덴’ 이라는 형용사형 부사는‘오랫동안’

번째 의미에 가깝기는 하지만, 이 단어는 첫 번째 의미가 의도하는 것 이상으

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23) 그런데 누가는 사건들을 스스로 목격한 사람이 아

로 누가가 더욱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한다 (Irenaeus,

니다. 따라서 오직 주의 깊게 조사하는 것을 통해서만, 누가는 사건들을‘추적

Against Heresies 3.10, 순교자 유스티누스,『트리포와의 대화』103).

할’수 있는 것이다.24)

만약 이 단어를 세 번

째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면, 우리는 왜 누가가 자신이 목격자들의 증거에 의

그리고 로버트슨 (Robertson

정확하게 또는 자세하게)

세월 동안’ 을 뜻하지 않는다. 캐드버리

1923~1924) 도

이 논쟁에 참여한다. 전후 문맥을

존하고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호소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할 것

살펴보면, 로버트슨은‘파레콜루데코티’ 라는 단어로부터‘조사하다’ (미루어 살

이다. 왜냐하면 세 번째의 견해에 의하면, 누가 자신도 목격자에 포함되어야

피다) 는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누가는 자신이 직접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

티’ 는 현재완료 분사 형태로서, 이 단어는 이 복음서를 기록하기에 앞서 누가

그렇게 불분명하게 표현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가 사건들을‘뒤따라갔다’ 는 것을, 곧 연구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25)

의미를 얻게 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동사형 명사‘파레콜루데코

20 ) 캐드버리(Cadbury 1956~1957)는 이와 같이 주장한다. 캐드버리는‘자세히 조사하다’ 라는

의미가 고대 헬라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음 학자들도 같은 견해를 지니고 있 다. Popes 1923~1924: 70~71, Luce 1933: 82, Maddox 1982: 4~5, RSV. 자신의 이전 논문에 근 거해 캐드버리는 이와 같이 주장한다. 이 논문에서 캐드버리는 이 동사가 여섯 가지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말한다. 21 ) 대부분은 학자들은 이 해석을 지지한다. 이들 가운데는 다음 학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Fitzmyer 1981: 297, Creed 1930: 4~5, Ellis 1974: 66, Schweizer 1984: 12, Marshall 1978: 43, Kittel, TDNT 1:215~216. 키텔은 Polybius 3.32.2를 인용한다. 요세푸스,『아피온 반박』1.10 §53 및『유대 고대사』65 §357. 그러나 캐드버리(Cadbury 1922a: 501~502)는 이 단어가 여기 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의미를 지녔을 가능성에 대해서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한다. 반면에 다 음 번역 성경들에는 두 번째의 의미가 반영되어 있다. 곧, NIV, NASB, Neu Luther, .. Einheitsubersetzung이다. 한편 NKJV와 KJV에는‘완전한 이해’ 라고 번역되어 있다. 이 번역 은 모든 번역 가운데 이전의 저술들을 가장 긍정적으로 강조하지만 본문의 동사가 실제로 의 도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제시한다. 104

22 ) 요세푸스,『아피온 반박』1.10. § 53 및 1.23 §218, Haenchen 1961. 23 ) Cadbury 1922a: 504. 캐드버리는‘아크리보스’ 를‘그랍사이’ ( gra/yai)와 연결한다. 이와 같

은 연결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지지하면서, 캐드버리는 헬라어의 구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고 시도한다. 따라서 캐드버리의 견해에 의하면,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를 주의 깊게 기록했다 고 한다. 그렇지만 크리드(Creed 1930: 5)가 분명하게 밝히듯이, 단어들이 이와 같은 순서대 로 연결되는 것은 문법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24 ) Plummer 1896: 4를 보라. 플러머는‘파라콜루데오’ ( parakolouqe/w, 뒤따르다)가 여기서 이 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지지한다. BAGD 619 §3은 다른 고대 문헌들을 인용한다. 그리 고 BAA 64를 보라. 이 문헌들 중에는 이미 언급한 요세푸스의 저서가 포함되어 있다. 요세푸 스,『아피온 반박』1.10 §53, 1.23 §218. Du Plessis 1974: 267을 참조하라. 25 ) 로버트슨은 누가가 사건들 중에서 어떤 사건들을 직접 보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눅 1:1~2의 표현은 누가복음에 기록된 사건들 가운데 몇몇 사건들을 누가가 스스로 목격했다는 로버트슨 의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반면에 사도행전의‘우리’부분은 이것과는 다른 문제다. 105


누가복음 1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누가는 1장 3절에서 자신의 저술이 지닌 네 가지 특성을 언급한다. 그렇지만

행헨은 두 번째 견해를 강력하게 지지한다. 행헨은 요세푸스의 저서에도

3절에서 두세 가지 용어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와 관련해서 논란

‘조사하다’ 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행헨은 캐드버리

이 빚어지고 있다. 첫 번째 핵심 단어는‘파레콜루데코티’ ( parhkolouqhko/ti )

의 해석이 누가복음의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22) 사실상 요세푸스

다.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바짝 붙어서 뒤따라갔다’ 는 것을 뜻한다. 이 동사

는‘따라가다’ 라는 의미로 이 동사를 사용하지만, 손으로 붙잡으려고 따라가

가 지닌 기본적인 의미는‘뒤따라가다’ 이다. 그러나 이 문맥에서 이 동사가

는 것을 뜻한다. 곧, 어떤 이야기 또는 사건들을 이해하기 위해 그 이야기 또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Fitzmyer

1981:

는 사건들을 추적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누가가‘파라콜루데오’ 라는 동사

여섯 가지 가능한 답변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 동사의 의미와 관련된

를 사용한 것이 요세푸스가 사용한 것과 평행을 이룬다면, 누가는 자신이 사

논쟁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1)‘ 파레콜루데코티’ 는‘어떤 사건들의 전

건들에 대해서 주의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모든 사건들을

개 과정을 면밀하게 추적하는 것’ 을 뜻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동사는‘어떤

직접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가는 사건들에 대해서 세밀하게 조사해 본다

296).

20)

움직임 (운동) 을 따라가는 것’ 을 의미한다.

이 견해를 따른다면 이 동사는 무

는 의미가 암시되어 있는 것이다.

엇에 대해서 자세하게 조사하는 대신에, 오히려 그것에 관심을 갖거나 또는

그리고 행헨은 계속해서‘자세히’ (3절) 라는 단어를 개인이 직접 관련된 것

그것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따라가는 것을 뜻한다. (2) 이 동사는 지난날에

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캐드버리가 이해하고 있는 의미에서‘파레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조사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21) (3) 몇몇

콜루데코티’ ( parhkolouqhko/ti ) 를‘아크리보스’ ( ajkribwv ß,

의 교회 교부들은 이 동사를 다른 관점에서 이해한다. 곧, 이 교부들은‘파라

에 연결시킬 때, 결과적으로 이런 해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또한‘아노덴’

콜루데코티’ 가 사도들을 따르는 자로서 누가의 역할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주

( a¡nwqen, 위로부터 또는 처음부터) 은‘오랜

장한다. 이 교부들은 이 단어가‘동행하는 것’ 을 의미한다고 한다. 따라서 첫

가 정의하는 것이 타당하려면,‘아노덴’ 이라는 형용사형 부사는‘오랫동안’

번째 의미에 가깝기는 하지만, 이 단어는 첫 번째 의미가 의도하는 것 이상으

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23) 그런데 누가는 사건들을 스스로 목격한 사람이 아

로 누가가 더욱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한다 (Irenaeus,

니다. 따라서 오직 주의 깊게 조사하는 것을 통해서만, 누가는 사건들을‘추적

Against Heresies 3.10, 순교자 유스티누스,『트리포와의 대화』103).

할’수 있는 것이다.24)

만약 이 단어를 세 번

째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면, 우리는 왜 누가가 자신이 목격자들의 증거에 의

그리고 로버트슨 (Robertson

정확하게 또는 자세하게)

세월 동안’ 을 뜻하지 않는다. 캐드버리

1923~1924) 도

이 논쟁에 참여한다. 전후 문맥을

존하고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호소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할 것

살펴보면, 로버트슨은‘파레콜루데코티’ 라는 단어로부터‘조사하다’ (미루어 살

이다. 왜냐하면 세 번째의 견해에 의하면, 누가 자신도 목격자에 포함되어야

피다) 는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누가는 자신이 직접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

티’ 는 현재완료 분사 형태로서, 이 단어는 이 복음서를 기록하기에 앞서 누가

그렇게 불분명하게 표현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가 사건들을‘뒤따라갔다’ 는 것을, 곧 연구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25)

의미를 얻게 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동사형 명사‘파레콜루데코

20 ) 캐드버리(Cadbury 1956~1957)는 이와 같이 주장한다. 캐드버리는‘자세히 조사하다’ 라는

의미가 고대 헬라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음 학자들도 같은 견해를 지니고 있 다. Popes 1923~1924: 70~71, Luce 1933: 82, Maddox 1982: 4~5, RSV. 자신의 이전 논문에 근 거해 캐드버리는 이와 같이 주장한다. 이 논문에서 캐드버리는 이 동사가 여섯 가지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말한다. 21 ) 대부분은 학자들은 이 해석을 지지한다. 이들 가운데는 다음 학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Fitzmyer 1981: 297, Creed 1930: 4~5, Ellis 1974: 66, Schweizer 1984: 12, Marshall 1978: 43, Kittel, TDNT 1:215~216. 키텔은 Polybius 3.32.2를 인용한다. 요세푸스,『아피온 반박』1.10 §53 및『유대 고대사』65 §357. 그러나 캐드버리(Cadbury 1922a: 501~502)는 이 단어가 여기 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의미를 지녔을 가능성에 대해서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한다. 반면에 다 음 번역 성경들에는 두 번째의 의미가 반영되어 있다. 곧, NIV, NASB, Neu Luther, .. Einheitsubersetzung이다. 한편 NKJV와 KJV에는‘완전한 이해’ 라고 번역되어 있다. 이 번역 은 모든 번역 가운데 이전의 저술들을 가장 긍정적으로 강조하지만 본문의 동사가 실제로 의 도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제시한다. 104

22 ) 요세푸스,『아피온 반박』1.10. § 53 및 1.23 §218, Haenchen 1961. 23 ) Cadbury 1922a: 504. 캐드버리는‘아크리보스’ 를‘그랍사이’ ( gra/yai)와 연결한다. 이와 같

은 연결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지지하면서, 캐드버리는 헬라어의 구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고 시도한다. 따라서 캐드버리의 견해에 의하면,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를 주의 깊게 기록했다 고 한다. 그렇지만 크리드(Creed 1930: 5)가 분명하게 밝히듯이, 단어들이 이와 같은 순서대 로 연결되는 것은 문법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24 ) Plummer 1896: 4를 보라. 플러머는‘파라콜루데오’ ( parakolouqe/w, 뒤따르다)가 여기서 이 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지지한다. BAGD 619 §3은 다른 고대 문헌들을 인용한다. 그리 고 BAA 64를 보라. 이 문헌들 중에는 이미 언급한 요세푸스의 저서가 포함되어 있다. 요세푸 스,『아피온 반박』1.10 §53, 1.23 §218. Du Plessis 1974: 267을 참조하라. 25 ) 로버트슨은 누가가 사건들 중에서 어떤 사건들을 직접 보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눅 1:1~2의 표현은 누가복음에 기록된 사건들 가운데 몇몇 사건들을 누가가 스스로 목격했다는 로버트슨 의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반면에 사도행전의‘우리’부분은 이것과는 다른 문제다. 105


누가복음 1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따라서 누가는 스스로 조사한 것에 근거해서 자신의 복음서를 저술했다고 분

세례 요한이 활동한 이후, 예수는 비로소 자신의 사역을 시작한다. 그러나 하

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나님의 약속이 성취된다는 주제는 세례 요한이 이 땅에 태어나는 사건으로부

헬라어 원문에서 1장 3절의 두 번째 묘사는 누가의 조사 범위와 관련되어

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 시절에 대해서 새로운 자료를 제시하면서,

있다. 곧,‘ 아노덴 파신 아크리보스’ ( a¡nwqen pavsin ajkribwv ß, 처음부터 모든 것[사건

누가는 자신이 교회에게 예수님과 관련된 보다 많은 정보를 알려 주는 데 기

들]을 정확하게) 라는

여하고 있다고 이해했을 것이다.

구문에서 과연‘아노덴’ 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26)

있는지와 관련되어 있다.‘아노덴’ 이라는 형용사형 부사는‘처음부터’ 또 27)

‘모든 것’ ( pavsin, 파신, 문자적으로는‘모든 것에 대해서’ ) 이라는 단어는 누가의 저술

는‘오랫동안’ 을 의미할 수 있다. 만약‘오랫동안’ 이라는 의미를 선택한다

이 지닌 세 번째의 특성을 나타낸다. 이 명사는 누가가 연구한 것을 언급한다.

면, 누가가 오랜 세월 동안 사건들에 대해서 연구했다는 것을 뜻한다. 누가가

누가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주의 깊게 조사해 보고, 또한 사건들의 근원으로 거

이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근거해 우리는 둘 중에 한 가지 의미를 선택

슬러 올라갔다. 뿐만 아니라 누가는 모든 것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다. 여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복음 1장 3절의‘아노덴’ 은 1장 2절의‘아프 아르케

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곧,‘ 파신’ 은 남성 복수형인가? 그렇다면 누가가

스’( ajp j

함께 사용되었다. 그리고 사도행전 26장 4~5절에도

모든 자료들을 연구했다는 것을 뜻한다. 아니면‘파신’ 은 중성 복수형인가?

이 표현이 나타난다. 그런데 사도행전 26장 5절에 사용된‘아노덴’ 은‘처음부

이 경우에, 누가는 모든 사건들에 대해서 연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Fitzmyer

ajrchvß, 처음부터) 와

28)

터’ 라는 의미를 지지한다.

만약‘아노덴’ 이 여기서‘오랫동안’ 을 의미한다

1981: 297).

피츠마이어는 후자의 해석을 지지한다. 만약‘아프 아르케스’ (ajp j

면, 그 뒤에 나오는‘자세히 미루어 살폈다’ (연구했다) 라는 표현을 다소 불필요

ajpchvß ) 라는

한 것으로 만들 것이다. 그러므로‘아노덴’ 이라는 단어를 통해 누가는 최초의

가리킨다면,‘ 파신’ 도 사건들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

사건들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맨 처음부터’ 라는 시간적인 측면과 관련해서

할 것이다. 그런데 피츠마이어 (Fitzmyer

언급하는 것이다.

인 전승으로 이해하지만, 반면에‘파신’ 을 사건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

표현이 어린 아이 시절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 사건들을 1981: 297) 는‘아프

아르케스’ 를 사도적

피츠마이어 (Fitzmyer 1981: 298) 는‘아르케’ ( ajrch/ ) 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질

다면, 이것은 서로 조화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수의 탄생 사건까지

문을 제기한다. 여기서‘아르케’ 는 세례 요한과 예수의 탄생을 가리키는가?

거슬러 올라가면서, 누가는 자신이 모든 사건들에 대해서 세밀하게 살펴보았

아니면 사도적인 전승의 시작을 언급하는가? 피츠마이어는 후자라고 이해한

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Klostermann

다. 하지만 피츠마이어는 이 이해에 대한 명백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

있었다. 이 사실을 고려할 때, 누가가 사건들에 대해서 세밀하게 조사할 수 있

러나 전자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Schneider 1977a: 39, Plummer

었다고 추측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누가를 단지 도서관에만 틀어박

1896: 4, Creed 1930: 5).

누가는 어린 아이 시절에 대한 자료에서 하나님의 약속

혀서 연구했던 학생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특별히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예수의 생애에서 이 시기와 관련해 오

서, 고대 세계에서 기록된 문서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따라서 누가는 다양

직 누가만이 전해 주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이 점을 간파한다면, 누

한 방법으로 진지하게 탐구하던 학생이었다. 입으로 전해진 것이든지, 또는 기

가가 자신의 복음서의 이야기를 예수의 어린 아이 시절과 관련된 이야기로

록된 것이든지, 누가는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조사해 보았던 것이다.

부터 시작하려고 한다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1929: 3).

누가는 교회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아크리보스’ ( ajkribwv ß ) 라는 형용사형 부사는 누가의 연구가 지닌 네 번째 특성에 대해서 묘사해 준다. 이 단어는 누가가 어떻게 저술했는지 설명해 준

..

26 ) 대부분의 학자들은‘처음부터’ 라는 의미로 이해한다. 또한 뷕셀(Buchsel, TDNT 1:378)도 마

찬가지다. 그리고 다음 번역 성경들에서도 이 의미로 번역되었다. NKJV(“from the very .. .. first” ), NIV, NASB, Neu Luther, Zurcher Bibel, Einheitsubersetzung. 27 ) 다음 학자들은‘오랫동안’ 으로 이해한다. 캐드버리(Cadbury 1922a: 502~503), 마셜(Marshall 1978: 42). 또한 NRSV에는 각주에 이 의미가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다음 사전들에는 선택이 가능한 의미로서 언급되었다. BAGD 77 §2, BAA 153 §2a. 28 ) Luce 1933: 82~83. 비록 행 26:5에서‘아노덴’ 을‘오랫동안’ 의 의미로 해석한다고 할지라도, 이 표현은 행 26:4의‘아프 아르케스’ 와 연결되어 있다.‘ 아프 아르케스’ 라는 표현은 바울의 사역에서 최초의 시점을 가리킨다. 106

다.29) 누가는 자료를‘자세히’살펴보았다고 한다. 어떤 주석자들은 이 표현 이 자료에 대한 누가의 조사 방법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료를 정 리해서 기록한 방법 (이 경우에 이 형용사형 부사는‘ 붓을 들다’[gra/yai, 그랍사이, 쓰다]를 수 식함) 에

대해 묘사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의 문장 구조를

29 ) 요세푸스도 이 단어를 사용하며 자신의 저서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좋아했다. 요세푸스,

『아피온 반박』1.10 §53,『유대 전쟁기』1.proem. 6 §17, Du Plessis 1974: 268 n. 50. 107


누가복음 1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따라서 누가는 스스로 조사한 것에 근거해서 자신의 복음서를 저술했다고 분

세례 요한이 활동한 이후, 예수는 비로소 자신의 사역을 시작한다. 그러나 하

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나님의 약속이 성취된다는 주제는 세례 요한이 이 땅에 태어나는 사건으로부

헬라어 원문에서 1장 3절의 두 번째 묘사는 누가의 조사 범위와 관련되어

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 시절에 대해서 새로운 자료를 제시하면서,

있다. 곧,‘ 아노덴 파신 아크리보스’ ( a¡nwqen pavsin ajkribwv ß, 처음부터 모든 것[사건

누가는 자신이 교회에게 예수님과 관련된 보다 많은 정보를 알려 주는 데 기

들]을 정확하게) 라는

여하고 있다고 이해했을 것이다.

구문에서 과연‘아노덴’ 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26)

있는지와 관련되어 있다.‘아노덴’ 이라는 형용사형 부사는‘처음부터’ 또 27)

‘모든 것’ ( pavsin, 파신, 문자적으로는‘모든 것에 대해서’ ) 이라는 단어는 누가의 저술

는‘오랫동안’ 을 의미할 수 있다. 만약‘오랫동안’ 이라는 의미를 선택한다

이 지닌 세 번째의 특성을 나타낸다. 이 명사는 누가가 연구한 것을 언급한다.

면, 누가가 오랜 세월 동안 사건들에 대해서 연구했다는 것을 뜻한다. 누가가

누가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주의 깊게 조사해 보고, 또한 사건들의 근원으로 거

이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근거해 우리는 둘 중에 한 가지 의미를 선택

슬러 올라갔다. 뿐만 아니라 누가는 모든 것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다. 여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복음 1장 3절의‘아노덴’ 은 1장 2절의‘아프 아르케

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곧,‘ 파신’ 은 남성 복수형인가? 그렇다면 누가가

스’( ajp j

함께 사용되었다. 그리고 사도행전 26장 4~5절에도

모든 자료들을 연구했다는 것을 뜻한다. 아니면‘파신’ 은 중성 복수형인가?

이 표현이 나타난다. 그런데 사도행전 26장 5절에 사용된‘아노덴’ 은‘처음부

이 경우에, 누가는 모든 사건들에 대해서 연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Fitzmyer

ajrchvß, 처음부터) 와

28)

터’ 라는 의미를 지지한다.

만약‘아노덴’ 이 여기서‘오랫동안’ 을 의미한다

1981: 297).

피츠마이어는 후자의 해석을 지지한다. 만약‘아프 아르케스’ (ajp j

면, 그 뒤에 나오는‘자세히 미루어 살폈다’ (연구했다) 라는 표현을 다소 불필요

ajpchvß ) 라는

한 것으로 만들 것이다. 그러므로‘아노덴’ 이라는 단어를 통해 누가는 최초의

가리킨다면,‘ 파신’ 도 사건들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

사건들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맨 처음부터’ 라는 시간적인 측면과 관련해서

할 것이다. 그런데 피츠마이어 (Fitzmyer

언급하는 것이다.

인 전승으로 이해하지만, 반면에‘파신’ 을 사건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

표현이 어린 아이 시절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 사건들을 1981: 297) 는‘아프

아르케스’ 를 사도적

피츠마이어 (Fitzmyer 1981: 298) 는‘아르케’ ( ajrch/ ) 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질

다면, 이것은 서로 조화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수의 탄생 사건까지

문을 제기한다. 여기서‘아르케’ 는 세례 요한과 예수의 탄생을 가리키는가?

거슬러 올라가면서, 누가는 자신이 모든 사건들에 대해서 세밀하게 살펴보았

아니면 사도적인 전승의 시작을 언급하는가? 피츠마이어는 후자라고 이해한

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Klostermann

다. 하지만 피츠마이어는 이 이해에 대한 명백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

있었다. 이 사실을 고려할 때, 누가가 사건들에 대해서 세밀하게 조사할 수 있

러나 전자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Schneider 1977a: 39, Plummer

었다고 추측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누가를 단지 도서관에만 틀어박

1896: 4, Creed 1930: 5).

누가는 어린 아이 시절에 대한 자료에서 하나님의 약속

혀서 연구했던 학생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특별히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예수의 생애에서 이 시기와 관련해 오

서, 고대 세계에서 기록된 문서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따라서 누가는 다양

직 누가만이 전해 주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이 점을 간파한다면, 누

한 방법으로 진지하게 탐구하던 학생이었다. 입으로 전해진 것이든지, 또는 기

가가 자신의 복음서의 이야기를 예수의 어린 아이 시절과 관련된 이야기로

록된 것이든지, 누가는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조사해 보았던 것이다.

부터 시작하려고 한다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1929: 3).

누가는 교회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아크리보스’ ( ajkribwv ß ) 라는 형용사형 부사는 누가의 연구가 지닌 네 번째 특성에 대해서 묘사해 준다. 이 단어는 누가가 어떻게 저술했는지 설명해 준

..

26 ) 대부분의 학자들은‘처음부터’ 라는 의미로 이해한다. 또한 뷕셀(Buchsel, TDNT 1:378)도 마

찬가지다. 그리고 다음 번역 성경들에서도 이 의미로 번역되었다. NKJV(“from the very .. .. first” ), NIV, NASB, Neu Luther, Zurcher Bibel, Einheitsubersetzung. 27 ) 다음 학자들은‘오랫동안’ 으로 이해한다. 캐드버리(Cadbury 1922a: 502~503), 마셜(Marshall 1978: 42). 또한 NRSV에는 각주에 이 의미가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다음 사전들에는 선택이 가능한 의미로서 언급되었다. BAGD 77 §2, BAA 153 §2a. 28 ) Luce 1933: 82~83. 비록 행 26:5에서‘아노덴’ 을‘오랫동안’ 의 의미로 해석한다고 할지라도, 이 표현은 행 26:4의‘아프 아르케스’ 와 연결되어 있다.‘ 아프 아르케스’ 라는 표현은 바울의 사역에서 최초의 시점을 가리킨다. 106

다.29) 누가는 자료를‘자세히’살펴보았다고 한다. 어떤 주석자들은 이 표현 이 자료에 대한 누가의 조사 방법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료를 정 리해서 기록한 방법 (이 경우에 이 형용사형 부사는‘ 붓을 들다’[gra/yai, 그랍사이, 쓰다]를 수 식함) 에

대해 묘사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의 문장 구조를

29 ) 요세푸스도 이 단어를 사용하며 자신의 저서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좋아했다. 요세푸스,

『아피온 반박』1.10 §53,『유대 전쟁기』1.proem. 6 §17, Du Plessis 1974: 268 n. 50. 107


누가복음 1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살펴볼 때, 이 견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따라서 누가는 자료에 대해서 주의

배열했다. 또한 눅 4:1~13에서 예수가 시험받은 순서는 마태복음에 제시된 것과 다르다. 그리고 헤롯에

깊고 철저하게 살펴보았다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누가는 예수

의해서 세례 요한이 감옥에 들어가게 된 기사는 눅 3:19~20에 수록되어 있다).

의 탄생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연구했다.

들과 다른 사건들에 대한 배열 순서를 살펴볼 때, 누가는 자신이 전하고자 하

이와 같은 사건

soi gra/yai ) 라는

는 이야기를 연대 순서대로 정확하게 기록한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 점에

표현과 연결시킨다.‘카덱세스 소이 그랍사이’ 는‘당신에게 순서 (차례) 대로

대해서 내가 누가복음 서론 부분에서 다루었듯이, 누가는 대체로 연대기적인

쓰다’ 라는 의미다. 그런데‘카덱세스’ ( kaqexhvß ) 라는 형용사형 부사가 어떤 단

순서를 따르고 있다.

누가는 자신의 시도를‘카덱세스 소이 그랍사이’ (kaqexhvß

어를 수식하는지와 관련해서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이 단어는 누가의 연구

그리고 누가는 자신의 자료를 지역별로 배열했다. 누가가 전하는 이야기는

방법을 언급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 단어는‘파레콜루데코티’( parhkolou-

갈릴리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이어

qhko/ti ) 와

연결된다. 이 의미는 자료들에 대해 차례대로 연구했다는 것이다.

진다. 그리고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으로부터, 이 이야기는 마침내 로마에 이

아니면 이 단어는 누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성격에 대해서 말하는가? 만약

르기까지 연결된다. 이와 같은 지리적인 배열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

이 해석이 옳다면, 이 단어는‘그랍사이’ ( gra/yai ) 를 수식한다. 그렇다면 이 뜻

하면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사역은 이와 같은 지리적인

은‘당신을 위해서 차례대로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이다. 누가복음의 머

순서를 따라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으로부터 로

리말이 지닌 평행 구조는 두 번째 해석을 지지한다. 곧,‘ 카덱세스’ 는 데오빌

마에 이르기까지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해 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로를 위해서 누가가 자신의 복음서를 쓰고자 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측면을 분명하게 강조하면서, 누가는 자신의 자료를 정리하여 배열한 것이다.

30)

것이다.

또한 누가는 구원사적인 순서대로 자료를 배열했다. 누가는 자신의 저서를

다시 말해 누가는 이 사건들에 대해서 차례대로 썼다.

그렇다면‘카덱세스’ (차례대로) 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 순서는

통해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구원이 전개되어 가는 것을 보여 준다. 이 과정

1978: 43, Plummer 1896:

은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된다. 그리고 신앙에 대한 가장 대표

(2)“문학적이며 체계적인 설명”을 말하는 것인가 (Fitzmyer 1981: 298~299)?

적인 선포자인 바울을 통해 이 구원 운동은 광범위하게 진행되어 간다. 또한

피츠마이어는 사도행전 11장 4절을 인용한다. (3)“구원사적인 전개 과정”을

구원은 이스라엘에서 시작하여, 이방인에게도 이르게 된다. 구원에 대한 이야

언급하는가 (Schneider

1974:

기는 누가복음의 어린 아이 시절에 대한 자료에 들어 있는 약속으로부터 예수

(5)“어떤 연속적인 사건들”을 가리키는가 (Volker 1973~1974)? (6) 누

와 교회를 통해 성취되어 가는 것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해

(1)“광범위한 연대기적인 것”을 가리키는가 (Marshall 5)?

194~196)?

1977b)?

(4)“어떤 완벽한 설명”을 뜻하는가 (Klein ..

..

가복음의 머리말에 뒤따르는 설명을 언급하는가 (Kurzinger 간격이 없는 설명을 언급하는가 (Mussner 1975)?

1974)?

아니면 (7)

31)

서 약속과 성취라는 이중 구조로 이해하는 것은 콘첼만이 삼중 구조 (약속, 예수, 교회) 로

구분하는 것보다는 더욱 커다란 장점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콘첼만

누가가 저술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검토해 보아야만, 우리는 이 질

이 예수의 시대와 교회의 시대를 매우 두드러지게 구분하는 것처럼, 과연 누

문에 올바로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세 가지 견해들은 나름대로 장점을

가도 두 시대를 명확하게 구별하는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니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견해만으로는 답변이 충분하지 않다. 누가가 설

점과 관련하여, 마셜의 논의를 참조하라 (Marshall 1970: 77~83, Bock 1994c). 그러

명하는 이야기는 광범위하게 연대기적으로 진행된다. 그렇지만 누가는 자료

므로 누가가 자신의 저서에서 자료를 배열한 것은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아

를 자기 나름대로 다시 배열했다 (예, 누가는 막 6:1∼6의 내용을 자신의 복음서 4:16~30에

야 한다.32) 한마디로 말하자면, 누가는 구원 역사에 대해서 연대기적으로 또 한 지리적으로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30 ) Fitzmyer 1981: 298. 만약 다른 견해를 따른다면, 피츠마이어는‘소이’ (soi) 로 시작되는 평행

구문은 지나치게 짧다고 올바르게 지적한다. 거의 모든 번역 성경들은‘카덱세스’ 를‘그랍사 이’ 와 연결시켜서 번역한다. 31 ) 슈나이더(Schneider 1977b)는 자신의 논문에서 네 번째 견해로부터 일곱 번째 견해까지에 대해서 평가하고 논박한다. 그리고 네 번째 견해는 설명이 완전하다고 말하지만, 일곱 번째 견해는 설명이 철저하다고 암시한다는 것 이외에, 이 두 견해 사이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구별 하기는 어렵다. 딜런(Dillon 1981: 218~223)은 슈나이더의 주장(견해 3)에 동의한다. 그러면 서 딜런은 다섯 번째의 견해의 내용도 세 번째의 견해에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108

슈나이더 (Schneider 1977b) 는 누가의 저서가 구원사적인 초점을 지니고 있다고 올바르게 지적한다. 그렇지만 누가는 모든 사건들을 단순하게 연결시키지 않는 다. 오히려 누가는 약속이 이미 성취되었다는 사실이 앞으로 성취될 약속도 반 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증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 곧, 복음은 온 세상으로

32 ) 티데(Tiede 1988: 37)는 루키아노스가 역사가의 저서를 예술 조각품과 비교한 것을 언급한다.

109


누가복음 1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살펴볼 때, 이 견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따라서 누가는 자료에 대해서 주의

배열했다. 또한 눅 4:1~13에서 예수가 시험받은 순서는 마태복음에 제시된 것과 다르다. 그리고 헤롯에

깊고 철저하게 살펴보았다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누가는 예수

의해서 세례 요한이 감옥에 들어가게 된 기사는 눅 3:19~20에 수록되어 있다).

의 탄생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연구했다.

들과 다른 사건들에 대한 배열 순서를 살펴볼 때, 누가는 자신이 전하고자 하

이와 같은 사건

soi gra/yai ) 라는

는 이야기를 연대 순서대로 정확하게 기록한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 점에

표현과 연결시킨다.‘카덱세스 소이 그랍사이’ 는‘당신에게 순서 (차례) 대로

대해서 내가 누가복음 서론 부분에서 다루었듯이, 누가는 대체로 연대기적인

쓰다’ 라는 의미다. 그런데‘카덱세스’ ( kaqexhvß ) 라는 형용사형 부사가 어떤 단

순서를 따르고 있다.

누가는 자신의 시도를‘카덱세스 소이 그랍사이’ (kaqexhvß

어를 수식하는지와 관련해서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이 단어는 누가의 연구

그리고 누가는 자신의 자료를 지역별로 배열했다. 누가가 전하는 이야기는

방법을 언급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 단어는‘파레콜루데코티’( parhkolou-

갈릴리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이어

qhko/ti ) 와

연결된다. 이 의미는 자료들에 대해 차례대로 연구했다는 것이다.

진다. 그리고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으로부터, 이 이야기는 마침내 로마에 이

아니면 이 단어는 누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성격에 대해서 말하는가? 만약

르기까지 연결된다. 이와 같은 지리적인 배열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

이 해석이 옳다면, 이 단어는‘그랍사이’ ( gra/yai ) 를 수식한다. 그렇다면 이 뜻

하면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사역은 이와 같은 지리적인

은‘당신을 위해서 차례대로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이다. 누가복음의 머

순서를 따라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으로부터 로

리말이 지닌 평행 구조는 두 번째 해석을 지지한다. 곧,‘ 카덱세스’ 는 데오빌

마에 이르기까지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해 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로를 위해서 누가가 자신의 복음서를 쓰고자 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측면을 분명하게 강조하면서, 누가는 자신의 자료를 정리하여 배열한 것이다.

30)

것이다.

또한 누가는 구원사적인 순서대로 자료를 배열했다. 누가는 자신의 저서를

다시 말해 누가는 이 사건들에 대해서 차례대로 썼다.

그렇다면‘카덱세스’ (차례대로) 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 순서는

통해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구원이 전개되어 가는 것을 보여 준다. 이 과정

1978: 43, Plummer 1896:

은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된다. 그리고 신앙에 대한 가장 대표

(2)“문학적이며 체계적인 설명”을 말하는 것인가 (Fitzmyer 1981: 298~299)?

적인 선포자인 바울을 통해 이 구원 운동은 광범위하게 진행되어 간다. 또한

피츠마이어는 사도행전 11장 4절을 인용한다. (3)“구원사적인 전개 과정”을

구원은 이스라엘에서 시작하여, 이방인에게도 이르게 된다. 구원에 대한 이야

언급하는가 (Schneider

1974:

기는 누가복음의 어린 아이 시절에 대한 자료에 들어 있는 약속으로부터 예수

(5)“어떤 연속적인 사건들”을 가리키는가 (Volker 1973~1974)? (6) 누

와 교회를 통해 성취되어 가는 것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해

(1)“광범위한 연대기적인 것”을 가리키는가 (Marshall 5)?

194~196)?

1977b)?

(4)“어떤 완벽한 설명”을 뜻하는가 (Klein ..

..

가복음의 머리말에 뒤따르는 설명을 언급하는가 (Kurzinger 간격이 없는 설명을 언급하는가 (Mussner 1975)?

1974)?

아니면 (7)

31)

서 약속과 성취라는 이중 구조로 이해하는 것은 콘첼만이 삼중 구조 (약속, 예수, 교회) 로

구분하는 것보다는 더욱 커다란 장점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콘첼만

누가가 저술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검토해 보아야만, 우리는 이 질

이 예수의 시대와 교회의 시대를 매우 두드러지게 구분하는 것처럼, 과연 누

문에 올바로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세 가지 견해들은 나름대로 장점을

가도 두 시대를 명확하게 구별하는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니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견해만으로는 답변이 충분하지 않다. 누가가 설

점과 관련하여, 마셜의 논의를 참조하라 (Marshall 1970: 77~83, Bock 1994c). 그러

명하는 이야기는 광범위하게 연대기적으로 진행된다. 그렇지만 누가는 자료

므로 누가가 자신의 저서에서 자료를 배열한 것은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아

를 자기 나름대로 다시 배열했다 (예, 누가는 막 6:1∼6의 내용을 자신의 복음서 4:16~30에

야 한다.32) 한마디로 말하자면, 누가는 구원 역사에 대해서 연대기적으로 또 한 지리적으로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30 ) Fitzmyer 1981: 298. 만약 다른 견해를 따른다면, 피츠마이어는‘소이’ (soi) 로 시작되는 평행

구문은 지나치게 짧다고 올바르게 지적한다. 거의 모든 번역 성경들은‘카덱세스’ 를‘그랍사 이’ 와 연결시켜서 번역한다. 31 ) 슈나이더(Schneider 1977b)는 자신의 논문에서 네 번째 견해로부터 일곱 번째 견해까지에 대해서 평가하고 논박한다. 그리고 네 번째 견해는 설명이 완전하다고 말하지만, 일곱 번째 견해는 설명이 철저하다고 암시한다는 것 이외에, 이 두 견해 사이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구별 하기는 어렵다. 딜런(Dillon 1981: 218~223)은 슈나이더의 주장(견해 3)에 동의한다. 그러면 서 딜런은 다섯 번째의 견해의 내용도 세 번째의 견해에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108

슈나이더 (Schneider 1977b) 는 누가의 저서가 구원사적인 초점을 지니고 있다고 올바르게 지적한다. 그렇지만 누가는 모든 사건들을 단순하게 연결시키지 않는 다. 오히려 누가는 약속이 이미 성취되었다는 사실이 앞으로 성취될 약속도 반 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증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 곧, 복음은 온 세상으로

32 ) 티데(Tiede 1988: 37)는 루키아노스가 역사가의 저서를 예술 조각품과 비교한 것을 언급한다.

109


누가복음 1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전파될 것이며, 또한 예수는 다시 오실 것이다. 이 구원 역사의 개념이‘차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이어도 같은 입장이다 (Beyer,

대로’ (1:3) 언급되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슈나이더는 특별히 사도행전 3장

이 논점은 설득력이 약하다. 사실상 누가복음의 머리말은 어떤 형식을 갖추고

TDNT 3:639).

그렇지만

17~24절과 11장 4절에 주목한다. 사실상 슈나이더는 누가의 관심사에서 중요

있다. 왜냐하면 일종의 문학적인 특성을 지닌 것으로서, 누가는 의도적으로

한 부분을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전체 맥락 속에서

이 머리말을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높은 지위에 있는 어떤 사람을 암시하는

누가복음 1장 4절을 살펴볼 때, 슈나이더가 미래에 이루어질 사건들에만 초점

것 이외에, 이 인사말을 통해 누가는 독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가리키지 않

을 맞추는 것은 누가의 관심사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다. 반면에 누가는

는다. 자신의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누가는 확실한 지식을 전달하려는,

또한 기독론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나아가 누가는 이방인을 위한 선교와

또는 알고 있는 바를 보다 확실하게 하고자 하는 목표를 지니고 있다 (1:4의‘아

이방인들도 구원의 대상에 포함된다는 것을 상세하게 언급한다.

스팔레이안’ [ajsfa/leian]에 대한 주해를 참조하라).

그리고 이 복음서를 일종의 변증서로

그 다음‘크라티스테 데오필레’ ( kra/tiste Qeo/file, 대단히 존귀하신 데오필레여) 라

규정하는 것은 이 작품의 성격을 가장 훌륭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

는 표현과 더불어 이 책의 수신인이 언급된다. 과연 데오빌로가 어떤 인물인

하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내용은 예수에 대해서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예

지, 또한 데오빌로가 그리스도인인지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수를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예수의 가르침과 교회의 가르침을 요

어떤 학자들은 이 이름이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서,‘ 경건한 그리스도

약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데오빌로는 이미 이 가르침에 대해서 들

인들’ 을 뜻한다고 한다. 왜냐하면‘데오필로스’ ( Qeo/filoß ) 라는 명사는 문자

어서 알고 있다 (1:4). 따라서 누가의 목표는 보다 확실하게 가르치고 권면하려

적으로‘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를 뜻하기 때문이다. 플러머는 스스로 확신하

는 것이다. 만약 이 견해가 옳다면, 아마도 누가는 새 신자이거나 또는 신앙을

지는 않지만, 이와 같은 견해를 제시한다 (Plummer

그렇지만‘크라티

굳세게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에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한편 헬라인이나

호격 형용사와 함께‘데오필레’ 라는 이름

유대인 모두 데오빌로라는 이름을 사용했었다. 그러므로 이 이름 자체는 어떤

스테’( kra/tiste , 대단히

존귀하신) 라는

1896: 5).

을 부르는 것에 근거하여 판단할 때,‘데오필로스’ 는 대단히 높은 지위에 있 33)

는 어떤 특정한 인물을 가리킬 것이다 (행 23:26, 24:3, 26:25).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에 대해서 밝혀 주지 않는다 (Fitzmyer

1981: 299).

이 인사말은 데오

러나 데오빌로의 사회적 지위와 또한 사도행전에서 누가가 이방 선교에 대해

빌로가 누가의 후원자이거나, 또는 누가의 저서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자를 암

서 상당히 강조한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아마도 데오빌로는 이방인일 것이

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엘리스가 이와 같이 추측한다 (Ellis 1974: 66). 그렇지만

다. 사도행전에 유대교와 관련된 자료가 많이 들어 있고, 유대인이 이방인과

이 견해가 옳은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데오빌로

교제하는 것이 여러 번 언급되는 것에 근거할 때, 데오빌로는 이전에 유대교

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와 관련해 마셜 (Marshall

1963:

에 호의적인 관심을 갖고 있던 하나님을 공경하는 이방인이었을 가능성이 있

다양한 전승과 추측에 대해서 언급

다 (이 주석서의 서론에 있는“누가의 저술 목적 및 독자들과 수신인”을 참조하라). 비록 누가가

이 주석서의 서론에 있는“누가의 저술 목적 및 독자들과 수신인” 을 참조하라. 그리고

데오빌로에게 자신의 저서를 헌정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은 누가가 오직 데오

44),

피츠마이어 (Fitzmyer

한다 (또한

1981: 299~300) 는

1978: 43),

케어드 (Caird

Pseudo-Clement, Recognitions 10. 71을 참고하라).

빌로만을 위해서 저술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른 고대의 작가들도

데오빌로는 신자인가? 아니면 복음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불신자인가? 이 질

개인들에게 자신의 저서들을 헌정했다. 하지만 이 작가들은 자신들이 보다 광

문은 1장 4절, 특별히‘카테케데스’ ( kathch/qhß, 당신은 가르침을 받았다, 또는 당신은 정

범위한 독자들을 대상으로 삼고 글을 쓴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요세푸

보를 제공받았다) 라는

스,『아피온 반박』1.1 § § 1~5).

단어와 관련되어 있다. 케어드 (Caird 1963: 44) 는 데오빌로가

불신자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신자를 가리키기에는 누가의 헌정사가 지나 치게 형식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누가의 저서는 변증서적인 성격을 지니고

b. 누가의 저술 목적(1:4)

33 ) 이 표현은 정중한 인사법이다. BDF § 60.2를 참조하라. 그렇지만 이 표현은 데오빌로가 반드

[ 1:4 ] 누가는 데오빌로가 자신이 제시하는 자료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깨

시 높은 지위에 있다는 것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다음 책을 참고하라. Bovon 1989: 39 n. 64. 또한 Theophrastus, Characters 5를 참고하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테오프라스토스는 이와 같은 인사가“단순히 아첨하는 말”이라고 언급한다. 그렇지만 이와 같이 부르면서, 누 가는 분명히 자신의 존경심을 표현하고 있다. 110

닫기를 원한다.34) 여기서 깨닫기를 원하는 것은‘아스팔레이안’ ( ajsfa/leian ) 에 34 ) 우리는‘에피그노스’ ( ejpignwˆvß, 당신이 정확하게 알기를 원한다)를 이와 같은 의미로 이해해 111


누가복음 1

I. 누가복음의 머리말 및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한 소개(1:1~2:52) A. 머리말: 누가가 이전의 자료들에 근거해 주의 깊게 저술함(1:1~4)

전파될 것이며, 또한 예수는 다시 오실 것이다. 이 구원 역사의 개념이‘차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이어도 같은 입장이다 (Beyer,

대로’ (1:3) 언급되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슈나이더는 특별히 사도행전 3장

이 논점은 설득력이 약하다. 사실상 누가복음의 머리말은 어떤 형식을 갖추고

TDNT 3:639).

그렇지만

17~24절과 11장 4절에 주목한다. 사실상 슈나이더는 누가의 관심사에서 중요

있다. 왜냐하면 일종의 문학적인 특성을 지닌 것으로서, 누가는 의도적으로

한 부분을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전체 맥락 속에서

이 머리말을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높은 지위에 있는 어떤 사람을 암시하는

누가복음 1장 4절을 살펴볼 때, 슈나이더가 미래에 이루어질 사건들에만 초점

것 이외에, 이 인사말을 통해 누가는 독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가리키지 않

을 맞추는 것은 누가의 관심사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다. 반면에 누가는

는다. 자신의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누가는 확실한 지식을 전달하려는,

또한 기독론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나아가 누가는 이방인을 위한 선교와

또는 알고 있는 바를 보다 확실하게 하고자 하는 목표를 지니고 있다 (1:4의‘아

이방인들도 구원의 대상에 포함된다는 것을 상세하게 언급한다.

스팔레이안’ [ajsfa/leian]에 대한 주해를 참조하라).

그리고 이 복음서를 일종의 변증서로

그 다음‘크라티스테 데오필레’ ( kra/tiste Qeo/file, 대단히 존귀하신 데오필레여) 라

규정하는 것은 이 작품의 성격을 가장 훌륭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

는 표현과 더불어 이 책의 수신인이 언급된다. 과연 데오빌로가 어떤 인물인

하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내용은 예수에 대해서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예

지, 또한 데오빌로가 그리스도인인지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수를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예수의 가르침과 교회의 가르침을 요

어떤 학자들은 이 이름이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서,‘ 경건한 그리스도

약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데오빌로는 이미 이 가르침에 대해서 들

인들’ 을 뜻한다고 한다. 왜냐하면‘데오필로스’ ( Qeo/filoß ) 라는 명사는 문자

어서 알고 있다 (1:4). 따라서 누가의 목표는 보다 확실하게 가르치고 권면하려

적으로‘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를 뜻하기 때문이다. 플러머는 스스로 확신하

는 것이다. 만약 이 견해가 옳다면, 아마도 누가는 새 신자이거나 또는 신앙을

지는 않지만, 이와 같은 견해를 제시한다 (Plummer

그렇지만‘크라티

굳세게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에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한편 헬라인이나

호격 형용사와 함께‘데오필레’ 라는 이름

유대인 모두 데오빌로라는 이름을 사용했었다. 그러므로 이 이름 자체는 어떤

스테’( kra/tiste , 대단히

존귀하신) 라는

1896: 5).

을 부르는 것에 근거하여 판단할 때,‘데오필로스’ 는 대단히 높은 지위에 있 33)

는 어떤 특정한 인물을 가리킬 것이다 (행 23:26, 24:3, 26:25).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에 대해서 밝혀 주지 않는다 (Fitzmyer

1981: 299).

이 인사말은 데오

러나 데오빌로의 사회적 지위와 또한 사도행전에서 누가가 이방 선교에 대해

빌로가 누가의 후원자이거나, 또는 누가의 저서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자를 암

서 상당히 강조한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아마도 데오빌로는 이방인일 것이

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엘리스가 이와 같이 추측한다 (Ellis 1974: 66). 그렇지만

다. 사도행전에 유대교와 관련된 자료가 많이 들어 있고, 유대인이 이방인과

이 견해가 옳은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데오빌로

교제하는 것이 여러 번 언급되는 것에 근거할 때, 데오빌로는 이전에 유대교

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와 관련해 마셜 (Marshall

1963:

에 호의적인 관심을 갖고 있던 하나님을 공경하는 이방인이었을 가능성이 있

다양한 전승과 추측에 대해서 언급

다 (이 주석서의 서론에 있는“누가의 저술 목적 및 독자들과 수신인”을 참조하라). 비록 누가가

이 주석서의 서론에 있는“누가의 저술 목적 및 독자들과 수신인” 을 참조하라. 그리고

데오빌로에게 자신의 저서를 헌정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은 누가가 오직 데오

44),

피츠마이어 (Fitzmyer

한다 (또한

1981: 299~300) 는

1978: 43),

케어드 (Caird

Pseudo-Clement, Recognitions 10. 71을 참고하라).

빌로만을 위해서 저술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른 고대의 작가들도

데오빌로는 신자인가? 아니면 복음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불신자인가? 이 질

개인들에게 자신의 저서들을 헌정했다. 하지만 이 작가들은 자신들이 보다 광

문은 1장 4절, 특별히‘카테케데스’ ( kathch/qhß, 당신은 가르침을 받았다, 또는 당신은 정

범위한 독자들을 대상으로 삼고 글을 쓴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요세푸

보를 제공받았다) 라는

스,『아피온 반박』1.1 § § 1~5).

단어와 관련되어 있다. 케어드 (Caird 1963: 44) 는 데오빌로가

불신자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신자를 가리키기에는 누가의 헌정사가 지나 치게 형식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누가의 저서는 변증서적인 성격을 지니고

b. 누가의 저술 목적(1:4)

33 ) 이 표현은 정중한 인사법이다. BDF § 60.2를 참조하라. 그렇지만 이 표현은 데오빌로가 반드

[ 1:4 ] 누가는 데오빌로가 자신이 제시하는 자료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깨

시 높은 지위에 있다는 것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다음 책을 참고하라. Bovon 1989: 39 n. 64. 또한 Theophrastus, Characters 5를 참고하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테오프라스토스는 이와 같은 인사가“단순히 아첨하는 말”이라고 언급한다. 그렇지만 이와 같이 부르면서, 누 가는 분명히 자신의 존경심을 표현하고 있다. 110

닫기를 원한다.34) 여기서 깨닫기를 원하는 것은‘아스팔레이안’ ( ajsfa/leian ) 에 34 ) 우리는‘에피그노스’ ( ejpignwˆvß, 당신이 정확하게 알기를 원한다)를 이와 같은 의미로 이해해 111


BECNT 시리즈에 대한 추천의 글 베이커 신약 주석은 신약 성경의 원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자들이 헬라어 본문에 대한 세밀한 주석적 설명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독자와 친밀한 주석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 I. 하워드 마셜, 애버딘 대학교

나는 이 주석서를 집필하면서, 머릿속에 한 가지 비유를 떠올리곤 했다. 곧‘여행 안내자’ 에 대한 비유다. 어떤 사람이 높은 산에 위치한 유적지를 올라갈 때, 거대한 도시를 관광 할 때, 또는 어떤 아름답고 웅장한 교회를 방문할 때, 여행 안내자가 인도하는 경우가 있 다. 이 여행 안내자는 방문객에게 길을 안내해 준다. 그리고 관광하고자 하는 장소에 도착 하면, 그곳의 역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이전에 그 장소를 보고 나서 말한 것이나, 경험한 것에 대해서 소개해 준다. 그래서 관광객이 그 관광 장소 에 대한 세부 사항을 잘 인식하고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나는 이 주석서를 쓰면서, 바로 이와 같은 역할을 하려고 시도했다. 내가 주요한 목표로 삼는 것은 다음과 같다. 곧, 누가 복음의 본문에 대해서 논의하면서, 그 내용을 마가복음 및 마태복음의 내용과 비교하는 것이다. 이것 이외에도 나는 누가복음에 대한 많은 학자들의 다양한 관점들에 대해서 다 루려고 노력했다. 그 학자들의 어깨 너머로 무엇인가 의미 있거나 중요한 것을 바라볼 때 마다, 나는 그것에 대해서 충실하게 언급하려고 시도했다.

- 저자 서문 중에서 지음

대럴 벅( Darrell L. Bock)

대럴 벅은 애버딘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댈러스 신학교의 신약 연구 교수로 가르치고 있 다. 대럴 벅은 다수의 책의 저자이자 편집자인데, 대표작으로는 Blasphemy and Exaltation in Judaism

and the Final Examination of Jesus,『누가복음-NIV 적용 주석』 ,『복음서를 통해 본 예수』등이 있다.

옮김

대럴 벅 지음 신지철 옮김

신지철

총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트리어 대학교 고전문헌학부에서 수학했으며 뮌헨 대학교 개신교 신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입문』 (이상 부흥과개혁사) 등이 있다. 현재 베리타스 성경연구원 원장 및 부흥과개혁사 의 전문 번역 위원으로 섬기고 있다.

대럴 벅

지음 신지철 옮김

학부에서 신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아가페출판사 편집장을 역임했으며『오픈 성경』및『열린 성경』 (아가 페출판사)의 기획, 편집, 집필 등을 주관했다. 번역서로는『왜 우리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사랑하는가』 , ISBN 978-89-6092-323- 2 ISBN 978-89-6092-258-7(세트) www.rnrbook.com 값 5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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