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인간 존재의 일부가 된 이후로, 하나님은 죽음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인생의 진정한 시작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여러 전달자와 수단을 통
해) 제시하셨다. 창세기부터 선지서와 신약에 이르는 모든 자료를 바탕으로, 제
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신자에게 장기적으로 최악의 시나리오가 어두
운 전망이 아니라 만고불멸의 생명임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요약하면 이 책은 소망의 책이다. 스콧 솔스
크라이스트 장로교회 담임 목사, 『아름다운 사람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의 저자
나는 어떤 주제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방식과 관련된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책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제프 브래넌이 쓴 『부활 성경신학: 죽음 이후 생명
에 대한 소망』도 이런 책이다. 이 책은 백과사전적이고(여러분이 부활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모든 것) 성경적이며(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여정)
딱딱하지 않으면서 학문적이다. 그런데 더 좋은 점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사실에 기초한 소망으로 가득하다는 것인데, 이 소망은 세상과 교회를 위한 소
망인 동시에,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개인적인 소망이기도 하다. 여러
분이 절망적인 시간으로 느껴지는 상황 속에서 좋은 소식을 찾고 있다면 이 책
을 읽으라. 이 책도 부활 자체가 그렇듯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스티브 브라운 작가, 신학교 교수, 키 라이프 네트워크 방송 진행자
제프 브래넌 박사는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을 믿습니다’라는 기독교 신앙고백
을 위한 성경적 토대를 광범위하게 설명한다. 브래넌은 구약 전반에 걸쳐 생명, 죽음, 부활이라는 주제의 발전을 조사한다. 또한 신약이 이 주제들이 어떻게 그
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에 나타날 보편적 부활에서 이루어
진다고 선포하는지도 검토한다. 브래넌의 연구 방식은 성경학자와 고무된 일
반 신자 모두에게 유익할 것이다. 이 책은 우리 모두에게 훌륭한 선물이다.
리처드 프랫 주니어 서드 밀레니엄 미니스트리스 회장
부활 생명에 대한 제프 브래넌의 논의는 스스로 약속한 부활 성경신학을 충분
히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성경과 구속사 전반에 걸쳐 부활의 소망을 조사한다.
이 풍부한 연구는 단순히 성경에서 부활의 개별 사례들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창조와 구속이라는 더 큰 주제 속에서 부활을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공정하게
평가한다. 이 책은 이생과 내세 모두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새 생명의
진정한 소망을 불러일으킨다. 참신하고 설득력 있는 작품이다.
팔머 로버트슨
컨수메이션 미니스트리스 상임 이사
시리즈 서문
‘성경신학의 필수 연구’( THE ESSENTIAL STUDIES IN BIBLICAL THEOLOGY ) 는 D. A. 카슨이 편집하고 높이 평가받는 ‘성경신학의 새로운 연
구’( NSBT ) 시리즈를 본뜬 것이다. NSBT와 마찬가지로 이 시리즈는
성경신학의 다양한 가닥을 풀어내는 데 전념한다. 성경신학 분야는
최근 급격하게 성장해 왔으며 약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성
경신학의 중심에는 성경에서 밝히듯이,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전개
되는 특성이 있다.
성경신학에 대한 책이 아주 많이 쏟아져 나오는데 또 다른 시리
즈를 만들어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ESBT는
성경의 거대한 이야기의 근본적이거나 ‘필수적인’ 넓은 주제에 집
중한다. 간결하게 말해, ESBT의 목표는 성경의 중심 되는 성경신학
주제들을 탐구하는 것이다. 현존하는 여러 성경신학 시리즈는 일반
적으로 권수가 한정되어 있지 않은 반면, ESBT는 열 권 정도로 제
한할 것이다. 전체 시리즈를 한정함에 따라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
터 범위가 정해져 있다. 각 주제가 계획되어 있고 각 권이 자체의
장점에만 의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ESBT 프로젝트는 전체로서
시리즈 서문 7
기능한다. 개별적인 책들은 서로 연동하며, 종합하여 완전하고 응집
된 하나의 단위를 형성한다.
이 시리즈의 또 다른 독특한 차원은 구속사의 전체 범위에 걸쳐
성경신학을 확고하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각 권은 창세기 1-3장에
서 요한계시록 21-22장까지 성경 전체를 통해 특정한 주제를 추적
하며, 그리스도의 인격 및 신약 교회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밋밋한’ 성경신학을 피하기 위해 이 책은 어떻게 신약이 신선하거
나 예기하기 않은 방식으로 각 주제를 전개하는가에 주의를 기울
인다. 예를 들면, 신약은 ‘하나님 나라’와 ‘메시아’의 본질을 새롭게
조명한다. 한 쌍을 이루는 이 주제들은 구약에 뿌리가 있고 구약에
서 탐구되기는 하지만, 둘 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통해 독특한 방식
으로 흘러간다. 성경신학은 구약의 주제들이 신약과 어떻게 연속성
과 불연속성을 갖는가를 포함해야 한다.
이 시리즈의 독자는 신학 입문자와 교회 지도자, 일반 신자를 포 함한다. ESBT는 성경의 핵심적인 성경신학 주제에 접근할 수 있게
해 주는 입문서로 계획된 것이다. 이 시리즈는 성경신학의 암석을
낱낱이 파헤치고 성경의 세부 사안을 탐구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니다. 각 권은 의도적으로 간략하게 되어 있으며, 독자에게 특정
한 주제를 소개하는 초급 독본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책들은 또한
각 성경신학 주제를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역, 세계관에 적용하려고
노력한다. 좋은 성경신학은 마음을 따스하게 하며,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경배에서 자라 가도록 자극한다.
벤저민 글래드
8 부활 성경신학
저자 서문
이 책은 부활이라는 주제에 대한 나의 성찰과 연구의 결실이다.
이 주제에 대한 내 관심은 많은 기독교인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로 죽으신 사실의 중요성은 말할 수 있어도 예수께서 죽
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사실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는
신학교 교수의 말을 들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제법 많은 시간이
지날 때까지 나는 부활에 대한 연구를 공식적으로 시작하지 못했지
만, 그 시점부터 부활이라는 이 주제와 예수의 부활이 갖는 중요성
을 성찰하기 시작했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성찰로 시작한 것이 구약의 부활 연구로 이
어졌고 마침내 부활 성경신학으로 바뀌었다. 나는 이 주제를 본격
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몇 가지를 확신하게 되었다. 첫째, 부
활은 성경에서 본질적이고 중심적인 교리다. 둘째, 부활 소망은 창
조와 구속의 다른 모든 주제나 교리와 불가분하게 결부되어
저자 서문 9
제자도를 위한 부활의 중심성과 중요성을 인식하기를 소원하고 기
도한다. ESBT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과 일맥상통하게, 이 책에서 염두에
두는 목표도 부활의 소망을 성경과 구속사 전반에 걸쳐, 다시 말해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 조사하는 것이다. 내 목표는
이 책이 성경에서 부활 교리가 펼쳐지는 방식에 대한 진지한 성찰
을 나타내서 목회자와 학자가 유익을 얻을 뿐 아니라, 모든 기독교
인도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대체로 이 책은 부활
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나의 연구와 성찰의 결실을 나타
낸다. 나는 유사한 점을 강조한 학자들을 여러 곳에서 인용하고 그 들과 소통하지만,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의존하는 곳은 매우 드물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하려는 목표에 부합하기 위해, 별다른 언급이 없으면 성경 본문은 NIV ( 2011년판 ) 에서 인용한다.
진공 상태에서 완성되는 책은 결코 없는데, 나도 이 책이 결실하
기까지 도와준 사람들에게 크게 감사한다. 내 아내 제니퍼와 내 아
들 콜린은 이 책의 초고를 가장 먼저 읽고 의견을 제공하고 격려해
주었다. 나는 또한 초고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해 의견을 제공해 준
친구와 동료에게도 감사한다. 조 마틴, 홀리 케리, O. 팔머 로버트
슨, 리처드 프랫, 톰 윌슨, 스테파니 모턴은 모두 이 책이 더 나아지
고 명확해질 수 있는 방식에 대해 소중한 통찰을 제공했다. 나는 지
난 10년간의 우정에
10 부활 성경신학
하나님은 나에게 놀라운 가족으로 풍성하게 복을 베푸셨다. 나는
이 책을 완성하는 데 시간을 내도록 기꺼이 허락해 준 가족의 희생
과 지원에 감사한다. 제니퍼와 우리 아이들( 콜린, 드루, 에번, 케이트 ) 은
참으로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과의 관계와는 별도로 나에게 주신 가
장 커다란 복이다. 나는 제니퍼가 믿음, 자녀, 인생의 이 모험에 참
여하도록 나를 선택해 주어서 정말 고맙다. 콜린, 드루, 에번, 케이
트는 즐거움, 기분전환, 모험, 유머의 끝없는 원천이다. 이들의 아버
지가 되고 이들의 삶의 일부가 되는 것은 참으로 복이 아닐 수 없다.
끝으로, 나는 우리 주와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영원토록 감사
하는데, 그리스도의 부활은 나 자신의 부활을 보증한다. 죽었다가
영원히 살아 계시는 분,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 계 1:18 ) 만
이 영원한 부활 생명의 소망을 주실 수 있다.
저자 서문 11
서론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생명이 있어요. 아무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의 줄이 있어요.
- 버디 앤 줄리 밀러많은 티셔츠, 커피잔, 다양한 액세서리에 ‘인생은 좋은 것’( Life is Good ) 이라는 표현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매력적인 좌
우명은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의 이름이기도 한데, 인생의 흥분, 경
이로움, 열정을 포착한다. ‘친구와 가족과 함께 하는 즐거운 시간, 산에서 즐기는 하이킹, 해변의 산책, 새로운 모험의 흥분.’ 이런 경
험들은 이 좌우명의 정신을 포착하는데, 우리는 인생이 참으로
좋다는 사실에 동의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거의 모든 사람은 인간의
목적이 ‘생명’과 결부되어 있음을 어느 정도 인식한다.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죽음 이후 생명의 경험에 대한 종교적 신념부터 젊음의
원천에 대한 추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영생을 얻으려 노
력해 왔다. 심지어 현대 문화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언젠가 과학적
발전을 통해 모종의 불멸을 이룰 수 있으리라고 주장한다. 이 모든
부활 성경신학
사실은 인간이 생명을 위해 창조되었음을 사람들이 어느 정도 인식
한다는 관념을 강화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이 좋은 시간 외에도 깨진 관계, 심적 고통, 재
정난, 고통, 그리고 가장 두드러지게 죽음으로 가득하다는 사실도
안다. 이런 어려움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모든 것이 다 올바른
것이 아니며 인생이 ‘좋지 않을’ 때도 있으며 젊음의 원천에서나 과
학적 발전을 통한 불멸의 추구가 헛된 소망임을 우리에게 상기시
킨다. 우리가 모두 경험하는 이런 긴장의 원인은 성경에 나와 있다. 하나님은 선한 세상을 창조하셨으나, 죄가 창조 질서를 어지럽혀서
타락으로 이어졌는데 이 타락에는 고난과 죽음이 포함된다.
성경신학에서는 성경 이야기를 창조( 창 1–2장 ), 타락( 창 3장 ), 구
속( 창 3:15에서 계 22:21까지[개혁파 관점에서는 이 부분을 다시 구속과 완성 개념으
로 나눈다-편집자 주 ) 이라는 성경 속 세 가지 주요 진행을 통해 이해하
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나님은 창세기 1–2장에서 창조의 여러 부
분을 “좋다”라고 거듭 말씀하신 뒤에, 창조가 “매우 좋다”라고 말함
으로써 자기의 모든 창조 활동을 긍정하신다( 창 1:31 ). 그러나 창조
직후에 아담과 하와의 죄와 실패는 타락으로 이어진다. 타락 뒤에
도 선의 자취가 하나님의 창조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분명하지
만, 모든 인간이 죄로 타락한 상태며 심지어 모든 창조도 타락의 영
향을 경험한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짓밟을 것이라는 복음과 자기 약속을 처음 선포함으로써 구 속 계획을 시작하신다. 대단히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
이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천 년에 걸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펼쳐지는 구속 계획이 창세기 3장 15절부터 요한계
시록 22장 21절까지 이어지는 성경 이야기다.
성경의 이야기에서 생명, 죽음, 부활이라는 주제는 창조, 타락, 구
속이라는 성경적·신학적 범주에 상응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
하시고 인간에게 생명을 주신다.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죽음에
서 죄의 결과를 경험한다. 그러나 좋은 소식( 이례적인 소식! ) 은 하나님
이 자기의 구속 계획에서 죽음을 이기고 자기 백성에게 구원을 베
풀기로 약속하신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자기 백성을 위한 부활을 포함한다. 내가 부활이라는 용어로 의미하
는 것은 자기 백성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시고 새 창조에서 육
체적이고 영광스러운 영생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행동이다.1) 이
부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구원은 죄에서
구해 내는 과정을 틀림없이 포함하는데, 육체적 부활과 새 창조에
서 누리는 새 생명도 수반한다. 하나님은 생명을 위해 우리를 창조 하셨고, 죽음은 죄와 타락의 결과며,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죽음 이
후의 생명 곧 부활을 수반한다. 참으로 영생의 소망은 하나님의 구
속 계획에서 매우 본질적이어서, 바울은 영생이 심지어 창조 이전
부터 약속되었다고 말한다( 딛 1:1-3 ). 좋은 소식은 하나님이 예수의
부활을 통해 및 최종적으로 믿음으로 예수와 연합한 자들의 부활을
1) 이 정의를 통해 나는 성경에 나오는 ‘부활’이라는 용어가 이 의미에만 한정된다
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다른 사실(예를 들어, 신자가 현재 누리고 있는 영적 부활[롬 6:13; 엡 2:1-5])을 가리키기 위해 부활의 언어를 종종 사용한다.
그보다 이 정의를 통해 나는 하나님이 자기의 구속 계획에서 염두에 두시는 부
활 목적의 최종 성취를 강조한다.
14 부활 성경신학
두 가지 깨달음 때문에 촉발되었다. 첫째, 나는 예수의 부활 신학을
분명히 표현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신학교의 첫 학기에 수강한 신 학 개론 수업에서, 교수님은 다음과 같은 취지로 질문하셨다. “대다
수 기독교인은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질
문을 받으면 사려 깊고 성경적인 대답을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어
요. 그런데 ‘그리스도의
분 간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갖는 중요성
은 논의할 수 있었으나, 그리스도의 부활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서
는 거의 말할 수 없었다.2)
둘째, 나는 구원과 영생에 대한 이해가 빈약했다. 물론 나는 내가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선포되어야 하며, 그리스도
의 사역이 구원의 유일한 근거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영생으
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생에 대한 이해 는 부족했다. N. T. 라이트는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에서, “어
떤 사람은 전통적으로 묘사된 천국( 구름 위에 앉아 늘 하프를 연주하는 모
습 ) 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따분해 보이고 천국을 믿지 않거나 천국에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다”라고 주장한다.3) 인정하기 부끄러
운데 이 견해는 내 견해와 아주 가까웠다.
케니 체스니의
을
Richard B. Gaffin Jr., Resurrection and Redemption: A Study in Paul’s Soteriology (Phillipsburg, NJ: P&R, 1987), 11.
Steven D. Matthewson, Risen: 50 Reasons Why the Resurrection Changed Everything (Grand Rapids, MI: Baker Books, 2013), 12; Adrian
Warnock, RaisedwithChrist:HowtheResurrectionChangesEverything (Wheaton, IL: Crossway, 2010), 59-62.
3) N. T. Wright, Surprised by Hope:Rethinking Heaven,the Resurrection, and the Mission of the Church (New York: HarperOne, 2008), 20.
부활 성경신학
럼 영원에 대한 아주 전형적인 오해를 보여 준다. 체스니는 “모든
사람이 천국에 가고 싶어 해요”라고 노래하지만, 아무도 천국에 대
해 유별나게 열광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 견해에 따르
면, 천국과 영원은 구름 속에 거처가 있고 날개를 갖고 주위를 날 아다니며 후광이 있는 것이다. 이 노래가 묘사하는 대로, 이런 삶의
모습이 대안적인 장소보다 더 나은 것은 틀림없으나 확실히 흥분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며 어쩌면 우리가 이생에서 경험하고 싶은 일
보다 더 낫지 않을 것이다. 영원에 대한 내 견해도 이 노래의 생각
과 일치했다. 그래서 나도 지옥보다는 천국에 가고 싶은 것이 분명
하지만, 이 땅에서 경험하고 싶은 모든 일 때문에 천국에 곧장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영생이 구름 위에서 누리는 비물질적 존재라는 견
해가 기독교인 사이에 너무나 팽배해 있다. 이뿐 아니라, 라이트가
지적하는 대로, 기독교인은 심지어 부활에 대해 말할 때도 종종 “죽
음 이후의 삶”이나 단지 “천국에 가는 것”의 동의어인 단어를 종종
사용한다.4) 신자가 성경에서 부활과 영생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알
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생에 대한 성경적 소망과 성경적
견해는 새 창조인데, 하나님은 이 새 창조에서 하늘을 땅으로 이끄
셔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다. 영원에 대한 성경적 이상에서는 하
나님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신자를 다시 살리실 것이
며, 신자는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물리적인 몸의 부활에 참여
4) Wright, SurprisedbyHope, xii.
할 것이다. 신자가 경험하게 될 몸의 부활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
서 본질적인 부분이다. 신자는 하나님이 하도록 창조하신 일을 영
원히 할 것인데, 이 일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섬기고 새 창조를
다스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이런 성경적 이상을
깨달았을 때, 나는 이제 이것이 내가 열광할 수 있는 영원이라고 혼
자서 생각했다.
이 두 가지 관심사, 곧 예수의 부활 신학과 신자의 최종 부활 신학
은 부활이라는 주제에 대한 내 흥미의 원동력이 되었다.5)
이 책의 초점과 목적
내 여행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신자의 미래 부활이 갖는 중요성에
대한 성찰로 시작했으나, 구약의 부활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고 최
종적으로 부활 성경신학으로 바뀌었다. 이 책에서 염두에 두는 목
적은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에 이르는 모든 성경에서 부
활의 주제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나는 부활 소망이 어떻게
설명할 것이다. 나는 또한 성
경적 부활 소망이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모든 창조 목적, 특히 하나
님과의 관계, 하나님 앞에서의 삶,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창조 에 대한 인간의 통치와 불가분하게 결부되어 있음을 보일 것이다. 5) 앞으로 살펴볼 것처럼, 이 두 주제는 무관하지 않은데 성경에서는 예수의 부활과
부활 성경신학
이 연구는 적어도 세 가지 이유에서 중요하다. 첫째, 부활 교리는
적어도 교회의 가르침에서는 속죄 교리보다 관심을 훨씬 적게 받 았다. 이 결과로 많은 신자는 부활 신학을 명료하게 표현할 수 없다.
둘째, 부활을 주제로 삼는 대다수 연구는 본질적으로 변증과 관련 이 있어서 예수의 역사적 부활을 논증한다.6) 변증학도 매우 중요하
지만, 예수의 부활에 대한 변호는 이 책의 초점이 아니다. 그보다 나
는 성경의 진실성, 성경 이야기의 역사성, 예수의 부활의 역사성을
상정하고 전제로 삼을 것이다. 셋째, 부활을 주제로 삼는 연구는 종
종 성경의 특정 부분이나 구절, 특히 바울 서신에만 초점을 맞
춘다.7) 그러므로 부활에 대한 주제적 논의나 변증적 논의에 비추어
보면, 부활 교리가 성경에서 어떻게 발전되고 펼쳐지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마도 때늦은 감이 있을 것이다.
ESBT 시리즈에 부합하기 위해, 이 연구를 다른 연구와 구별하는
6)
John Stott, Basic Christianity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8), 62-79; N. T. Wright, The Resurrection of the Son of God (Minneapolis: Fortress, 2003); Wright, Surprised by Hope, 53-76; Michael R. Licona, The Resurrection of Jesus: A New Historiographical Approach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10); Gary R. Habermas and Michael R. Licona, The CasefortheResurrectionofJesus (Grand Rapids, MI: Kregel, 2004).
7) 바울 사상에 나타난
주제로 다루는 연구의 예는 다음을 보라. Gaffin, Resurrection and Redemption; Geerhardus Vos, The Pauline Eschatology (1930; repr., Phillipsburg, NJ: P&R, 1994), 특히 136-225. 브랜던 크로의 다음 작품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부활의 주제를 철저히 연구한다. Brandon D. Crowe, The Hope of Israel: The Resurrection of Christ in the Acts of theApostles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20).
서론
하려는 내 논점이다.8) 이 접근법을 사용해 부활을 명시적으로 가르
치거나 더 미묘하게 암시하는 구절들을 조사하는 것 외에도, 나는
성경에 나타나는 생명과 죽음의 진행도 강조할 것인데, 이것은 하
나님의 창조 목적을 하나님의 구속 계획과 연관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뿐 아니라, 나는 부활 소망이 동떨어진 교리가 아니라 성경
의 다른 주제나 교리 ( 이를테면,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의 현존, 하나님
나라 ) 와 어떻게 밀접하게 연관되는지도 설명할 것이다.9) 단서를 붙
이면, 이 책에서 내가 명시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은 부활의 긍정 적 또는 구속적 측면 곧 신자의 부활이다. 성경은 신자와 불신자
이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지만( 예
로 다음을 보라. 단 12:1-2; 요 5:29-30; 행 24:15 ), 내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신자의 부활이다.
8) 나는 성경 전반에 걸쳐 부활이라는 주제를 조사할 것이지만, 이 책은 부활에 대 한 포괄적 연구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 연구의 범위는 부활 교리와 관련된 모든 구절과 본문을 논의하는 과정을 허용하지 않았다. 부활을 더 포괄적으로 다루는
연구는 다음을 보라. Wright, Resurrection; G. K. Beale, A New Testament
Biblical Theology: The Unfolding of the Old Testament in the New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11, 『신약성경신학』,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3), 특히 8–11장.
9) 이 책은 대체로 성경에서 부활에 대해 연구한 내 성과를 나타낸다. 나는 내가 조
나서 그레고리 빌의
『신약성경신학』을 읽었는데, 빌도 부활과 다른 성경적·신학적 주제들, 특히 하
나님 나라와의 밀접한 관계에 주목한다는 사실을 알고 기뻤다. 나는 부활 및 다
른 성경적·신학적 주제와의 관계를 더 전문적으로 연구한 작품으로 빌의 책을
기꺼이 추천한다. 브랜던 크로도 자신의 책 Hope of Israel에서 사도행전에 나
타난 부활과 하나님 나라와의 연관성에 주목한다.
부활 성경신학
부활의 중요성
부활은 종종 등한시되기는 하지만 성경적 세계관에서 대단히 중
요하다.10) “예수께서 다시 사셨다”라는 어구는 신약에서 및 예수께
서 부활하신 이후에 교회 생활에서 중심적인 신앙고백이다. 우리는
주의 날을 기념하는 일이 주간의 마지막 날에서 예수께서 다시 살
아나신 날인 주간의 첫째 날로 바뀐 사실의 중요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11) 고린도전서 15장 1-8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제일 중요하며 이 복음이 예수의 역사적 죽음과 부활과 밀접한 관
련이 있다고 말한다. 몇 절 뒤에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
도 헛것이며……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주장
한다( 고전 15:14, 17 ). 예수의 부활이 없으면 죄 용서도 없다. 예수의 부
활이 없으면 구원도 없다. 로마서 4장 25절에서 바울은 예수께서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10) 다음을 보라. Paul Beasley-Murray, The Message of the Resurrection: Christ Is Risen!, The Bible Speaks Today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0). 비슬리-머리는
주장한다(20).
11) 다음을 보라. Wright, Resurrection, 579-580.
부활 교리는 또한 독특한 것이기도 하다. 변증가들은 기독교 세계
관을 다른 종교나 철학의 세계관과 구별할 때, 종종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근본적 차이점을 지적한다. 한 예로, 사람들은 기독교의 구
원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은혜로 말미암으며 믿음을 통해 이루어
지지만( 엡 2:8-10을 보라 ) , 다른 종교의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나 선
행( 또는 적어도 은혜와 선행의 혼합 ) 으로 말미암는다고 강조한다. 존 프레
임은 우리가 유대교-기독교의 세계관에서만 인격적이고 절대적인
하나님을 발견한다는 사실을 또 하나의 구별된 특징으로 지적
한다.12)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하나님이 최고 주권자이지만 또한 하
나님의 본질, 행동, 관계에서 인격적이시다.
이와 비슷하게, 부활 교리는 적어도 두 가지 중요한 점에서 기독
교를 다른 종교와 구별한다. 첫째, 기독교에서만 ‘창시자’나 주요 스
승이 더 이상 무덤에 있지 않다. 다른 모든 종교의 창시자는 죽어
무덤에 묻혔다. 거의 모든 경우에 이런 창시자가 부활했다는 주장
도 없다. 그렇지만 성경적 세계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더 이상
죽은 상태로 계시지 않는다. 예수는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아 많은
사람에게 나타나셨는데,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
서 일으킴을 받으신 사실에 대해 단호하다. 둘째, N. T. 라이트가 설
명하는 대로, 부활 교리는 유대교와 기독교 사상에 독특하다. 많은
종교가 죽음 이후에 비물질적 존재를 옹호할지 모르나, 우리는 유
12) 다음을 보라. John M. Frame, Systematic Theology: An Introduction to Christian Belief (Phillipsburg, NJ: P&R, 2013, 『존 프레임의 조직신학』, 부흥
과개혁사 역간, 2017), 38-39.
부활 성경신학
대교-기독교 세계관에서만 죽음 이후에 영원한 육체적 생명의 소
망과 함께 죽음의 번복으로서의 부활 교리를 발견한다.13) 따라서 부
활은 기독교 신앙에 없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성경적 세계관에 독
특한 것이기도 하다. 끝으로, 예수의 부활은 제자도를 위해 지극히 중요하다. 이 사실
은 예수의 첫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
되시기 전에 예수를 버리고, 심지어 예수를 부인했던 베드로와 다
른 사도들은 소심하고 두려워하던 제자였으나,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에 담대하고 용기 있는 제자로 바뀌었다. 참으로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핍박의 위협에도 기꺼이 담대하게 말하며, 심지어 그리스
도를 위해 죽기까지 각오한다.14) 제자들이 보여 준 담대함은 부활
교리 곧 예수의 부활 및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의 미래
부활과 틀림없이 관련이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점을 다음처럼
( 히 11:35 ). 기독교 인은 부활 소망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위해 고난 받고 심지어 죽을
13) 다음을 보라. Wright, Resurrection, 32-84; Wright, Surprised by Hope, 35-40. 라이트는 가능성 있는 유일한 예외가
다 음에 나타나는 라이트의 논의를 보라. Resurrection, 124-128.
14) 예를 들어, 베드로와 요한이 더 이상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거나 가르치지 말라
는 유대 지도자들의 요구에 따르기를 거부한 것과(행 4:1-22), 스데반이 사도행
전 7장에서 공회 앞에서 했던 연설이 스데반의 죽음과 직결된 것을 보라. 사도
행전 12장에서 야고보 사도는 헤롯왕의 손에 처형된다. 이뿐 아니라, 교회사에
서 우리는 사도들의 전부 또는 거의 전부가 예수를 위한 순교자였던 사실을 알
고 있다.
수도 있다. 예수의 부활과 예수를 따르는 사람의 미래 부활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15)
성경적 세계관에서 죽음은 하나님의 원수인 동시에 인류의 원
수다( 예로 고전 15:26을 보라 ). 태초에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뱀은 도둑
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 오는 도둑이기도 하다( 요 10:10 ). 요
한복음 11장에 기록된 나사로의 죽음 이야기는 죽음에 대한 하나님
의 관점과 감정을 예시한다. 예수는 현장에 도착하셔서 마리아와 마
르다의 슬픔을 목격하시고 자기 친구 나사로의 죽음이라는 현실과
대면하실 때 감정적이시다. 우리 대다수는 예수의 슬픔에 친숙한데,
이 슬픔은 성경에서 가장 짧은 절에 반영되어 있다. “예수께서 눈물
을 흘리시더라”( 요 11:35 ). 이 순간에 예수는 죽음, 죄의 고통, 죽음의
끔찍한 현실에 수반하는 비탄에 대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신다.
그러나 나사로 이야기는 종종 우리가 떠올리지 못하는 예수의 또
다른 감정을 강조하는데, 그것은 바로 분노다. 성경학자들은 요한복
음 11장 33절과 11장 38절에서 “비통히 여기다”라는 어구가 분노
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수께서 죽음에 분노하시다”라
는 논설에서, J. 스콧 듀발은
다음을 보라. Warnock, Raised with Christ; Matthewson, Risen; Timothy Keller, Hope in Times of Fear: The Resurrection and the Meaning of Easter (New York: Viking, 2021); Sam Allberry, Lifted:Experiencingthe Resurrection Life (Phillipsburg, NJ: P&R, 2010); Wright, Surprised by Hope
24 부활 성경신학
계신다. 예수는 죄, 고난, 질병, 그리고 무엇보다 죽음에 분노하신다.
예수는 자신이 매우 깊이 사랑한 사람들을 상하게 하는 이 악의 권
세에 격노하신다”라고 말한다.16)
예수는 죽음에 분노하신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자기 목적에
대한 예수의 분명한 설명은 주목할 만하다. “내가 온 것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죽음은 하나님의 원
수다. 그래서 하나님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괴로워하시며 죽음에 대
해 슬퍼하시며 죽음에 분노하신다. 참으로 생명을 주시려는 예수의
목적은 예수의 사역에 대단히 본질적이어서, 예수는 죄와 사망이라
는 이 대적을 이기기 위해 기꺼이 죽음을 맛보신다.
N. T. 라이트는 “죽음은 압제자의 마지막 무기인데, 많은 오해에
도 불구하고 부활의 요지는 죽음이 패배했다는 것”이라고 주장
한다.17) 나는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에서 오비완 케노비가 다스
베이더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이길 수 없
어, 다스. 당신이 나를 쳐서 쓰러뜨린다면, 나는 당신이 도저히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질 거야.” 물론 이 예를 사용하면 큰 역설이
따르는데, 오비완 케노비의 사후 경험은 일종의 비물질적
16) J. Scott Duvall, “Jesus Gets Angry at Death: John 11:38,” in Devotions on the Greek New Testament: 52 Reflections to Inspire and Instruct, ed. J. Scott Duvall and Verlyn D. Verbrugg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2), 47.
17) Wright, SurprisedbyHope, 50.
더 큰 사후 소망이 있음을 강조한다.
더 성경적인 예시로 돌아가, 요한계시록은 핍박과 죽음의 위협 속 에 있는 하나님 백성에게 소망을 주는데,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킴을 받으셔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계
1:17-18 ). 사탄은 하나님 백성의 대적으로서, 신자에게 “분노하고” 신
자를 공격할 때 미혹과 ( 심지어 죽음에 이르는 ) 핍박을 활용한다( 계 12:12를 보라 ). 그러면 신자는 어떻게 이 대적을 이길 수 있을까?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계 12:11).
신자는 놀라운 부활 소망 덕분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준비
가 되어 있다.
버디 앤 줄리 밀러는 자신들의 노래 “레이첼”에서 “아무도 빼앗 을 수 없는 생명이 있어요. 아무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의 줄이 있어
요”라고 노래한다.18) 이 가사는
“Rachel,” track 10 on Buddy and Julie Miller, Buddy &Julie Miller, Craft Recordings, 2001.
부활 성경신학
창조와 생명
모든 사람이 세상을 지배하고 싶어 해요. - 티어스 포 피어스 -
“처음부터 시작해요……그리고 마지막까지 계속하세요.”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왕이 토끼에게 했던 이 충고가 성경신
학을 위해서도 좋은 충고라고 생각한다. 창세기 1장에서 부활에 대
한 연구를 시작하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창조
이야기는 성경적인 부활 소망을 위한 신학적 토대가 된다.
잠시 다음 질문을 생각하면서 시작하자. 하나님은 왜 인간을 창조
하셨을까?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은 무엇
이었을까? 이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다. 많은 종교
와 철학 체계에는 가장 근본적인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없으나, 성
경은 분명한 답변을 준다. 나는 창세기 1–2장의 중심이 되고 이 책
의 목적에 꼭 필요한 진리를 숙고함으로써 시작할 텐데, 이 진리는
하나님이 생명을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 뒤에 나는
창조 이야기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의도하신 세 가지 목적을
추가로 확인하고, 이 목적들이 생명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목적과
어떤 방식으로 밀접하게 연관되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을 위해 인간을 창조하신다
성경에 나오는 가장 첫 번째 말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창 1:1 ) 는 하나님이 창조의 창시자와 생명의 창시자라는
놀라운 사실을 증언한다. 여호와는 “혼돈하고” “공허한” 창조를 마
주하실 때( 창 1:2 ), 창조의 엿새 동안 형태와 내용을 줌으로써 대응하
신다. 하나님은 여섯째 날에 인간을 창조의 면류관으로 창조하신다.
창세기 2장 7절에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라는
말씀을 읽는다. 영원하신 분이요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땅의 흙으로 친히 만드신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신다. 하나님은
창조의 창시자로 “생명을 주시며” 생명 없는 것에서 생명을 낳으
신다. 이뿐 아니라,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하나님의 행동
은 생명을 일으키는 일에서 하나님의 영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 책
의 주제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이 생명을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다
고 인식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세 가지의 추가적 창조 목적은 생명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목적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하나님은 자신과의 관계를 위해 인간을 창조하신다(생명의 근거). 대단
히 친숙해서 그 중요성을 잊을 때도 있지만, 하나님이 자신과 관계
를 갖게 하려고 인간을 창조하신 사실은 매우 놀랍다. 하나님의 삼 위일체적 성격은 관계와 사랑이 하나님의 본질 자체라는 사실을 드
러낸다.1)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창 1:26-27 ) 관계적이
며 하나님과 관계를 갖기 위해 창조된다.2) 초대 교회의 신학자 아우
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유명한 진수로 이 진리를 포착했다.
1) 다음에서 논의하는 내용을 보라. Timothy Keller, The Reason for God: Belief in an Age of Skepticism, rev. ed. (New York: Penguin, 2018), 223-226.
2) 이 책의 초점은 아니지만, 창세기의 처음 장들도 하나님이 자신과의 관계에 덧붙
인간을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갖도록 창조하셨음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은 여
러 경우에 자기의 창조 사역을 “좋다”라고 선포하셨고 창조 사역의 마지막에는
“심히 좋다”라고 선포하셨지만, 창 2:18에서는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
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이 구절에서
강조하는 것이 결혼 관계더라도, 하나님이 인간을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갖도록
구상하셨음을 보여 준다.
3) Augustine, Confessions, book 1, article 1.
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
창조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인간과 관계하시는 조건을 정하신다.
언약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는 않아도, 많은 학자는 언약의 기본 요
소가 창조 이야기에 분명히 나온다고 인식한다.4) 팔머 로버트슨은
창조에서 하나님이 노동, 가족, 안식이라는 기본적인 삶의 규례를
확립하신다고 지적한다.5) 창세기 1–2장은 여호와가 아담과 하와
및 이후의 모든 인류와 관계를 맺으시고 이 관계를 좌우하심을 분
명히 한다. 기본적인 삶의 규례 외에도, 하나님은 자신과의 올바른 관계를 위
한 조건도 정하셔서 이 관계와 결부된 생명-죽음의 결과를 강조하
신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주시는 복과 경고에서,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창
2:16-17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
령에 불순종하면, 그 결과는 아담에게 죽음이 될 것이다. 양자택일
에 따라,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순종하는 것에 대해 암묵
적으로 약속된다. 창세기 2장 15-17절에서 우리는 아담과 하와에게
생명이 순종에 대해 약속되고 죽음이 불순종에 대해 약속된다고 추
론할 수 있다.6) 이 분석을 바탕으로 두 가지 핵심 요점을 놓쳐서는
4) 예로 다음을 보라. O. Palmer Robertson, Covenants:God’s Way with His People (Suwanee, GA: Great Commission Publications, 1987), 13-21.
5) Robertson, Covenants, 13-19.
6) 많은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는 이 합의를 행위 언약으로 부른다. 예로 다음을
보라.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7.2.
부활 성경신학
안 되는데, 하나는 하나님이 자신과의 관계를 위해 인간을 창조하
셨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와 결
부되고 여기서 비롯되는 결과라는 점이다.
하나님은 자기 앞에서 살게 하려고 인간을 창조하신다(생명의 장소). 나
는 대학원 연구의 일환으로 3년 반 동안 스코틀랜드 애버딘에서 거
주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놀라운 건축물과 풍부한 역사 외에도, 애버딘은 도시 전체에 수많은 공원과 녹지가 있다. 우리 가족이 살
던 곳에서 몇 분만 걸어가면 도심의 바로 외곽에 왕립 식물원이 있
었다. 28헥타르가 넘는 지역에 조경, 수목, 식물, 화초, 연못, 개울, 보도 등으로 꾸며진 식물원은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식물원을 거닐
거나 오리에게 먹이를 주거나 소풍을 즐기거나 잔디밭에서 쉬거나
식물원의 전망 좋은 곳에서 에든버러성의 전망에 감탄하거나 간에, 식물원을 찾는 일은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외출 중 하나였다.
이런 식물원에 발을 들이는 사람은 누구나 이곳이 아름다움과 생명
의 장소임을 안다.
창세기 1–2장은 중요한 진리를 드러내는데, 곧 생명이 장소와 관
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생명은 하나님의 현존이
나타나는 장소와 관련이 있다. 창조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이라는 놀라울 만큼 살기 좋은 장소를 주신다.
나는 에든버러에 있는 식물원의 생명과 아름다움에 늘 깜짝 놀랐지
만, 이 식물원도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선물로 주신 에덴동산
과는 결코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성경은 에
덴을 수목( 창 2:8-9 ), 강( 창 2:10-14 ), 먹을 것( 창 2:9 ) 이 가득한 ‘생명,
아름다움, 활력’의 장소로 묘사한다. 이뿐 아니라, 창세기의 처음 장
들은 에덴이 하나님의 성전-정원 또는 하나님의 지상 처소를 상징
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창세기 3장 8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셨다”라는 말씀을 읽는다. 이 어구의
정확한 의미와 용법에 상관없이, 여기에 함축된 의미는 에덴이 ‘하
나님이 아담과 하와와 함께 거하신 장소를 상징했다’는 것이다.7) 더
욱이 학자들은 창세기 2장 15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
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니라” ) 에서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
게 동산에서 일하도록 지시하신 대목과 하나님이
인정한다.8) 창세기의 처음 장들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관계가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거
었음을 강조한다.
이 논의와 관련해서 가장 의미심장한 사실은 에덴동산의 중앙에
생명나무가 있다는 것이다( 창 2:9 ). 생명나무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 및 이들의 후손이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과 수
나는 창조 기사에서 아담과 하와를 실질적이고 역사적인 인물로 이해한다. 아담
은 성경에서 많은 계보에 나오며(예로 다음을 보라. 창 5:1-5; 대상 1:1; 눅 3:38), 또한 롬 5:12-21과 고전 15:21-23에서는 “마지막 사람” 또는 “마지막 아담”(곧 예수)과 대조되는 “첫 사람”을 나타낸다.
8) 다음을 보라. G. K. Beale and Mitchell Kim, God Dwells Among Us: A Biblical Theology of the Temple, Essential Studies in Biblical Theology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21, 『성전으로 읽는 성경 이야기』, 부 흥과개혁사 역간, 2016), 12-15.
부활 성경신학
단을
제공하신다. 물론 에덴동산의 중앙에는 아마도 생명나무 근처
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을 것이다( 창 2:9 ). 순종의 시험에
서,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제외한 동산의 모든 나
무의 열매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다. 창조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놀라울 정도로 살기 좋은 장소를 그들에
게 주셨으며 영생을 얻을 기회를 주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창조
이야기는 인간을 위한 또 하나의 깜짝 놀라운 목적을 드러내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앞에서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고 인간을 만 드신다는 것이다.9)
하나님은 자기의 대리 통치자로 섬김으로써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
려고 인간을 창조하신다(인생의 목적).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서 바울
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
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말한다. 이 권면을 통해 바울은 인간의 목적
을 적절하게 요약하는데, 곧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와 유지자로서, 영원하고 무한한 분
으로서, 거룩하시며 의로우시며 선하시며 은혜로우시며 사랑하시
며 공의로우신 유일한 분으로서, 모든 찬양과 영광을 받기에 합당
하시다. 하나님은 완전히 영광스러우시며 모든 찬양과
에
9) 성전,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관념을 탁월하게 다루는
구는 다음을 보라. Beale and Kim, God Dwells Among Us; G. K. Beale, The Temple and the Church’s Mission: A Biblical Theology of the Dwelling Place of God, New Studies in Biblical Theology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04).
하고 하나님을 높이도록 부름을 받는다.
성경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권면하는 구절로 가득 차 있다.
몇 가지 경우만 살펴보아도 우리는 여호와의 이름이 영광을 받아야
하며( 시 115:1 ), 열방이 여호와를 섬기고 여호와께 영광을 돌릴 것이
며( 시 86:9 ) ,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고 부름을 받으
며( 사 43:5-7 ), 땅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것이 하나님의 계획
이며( 합 2:14 ), 신자의 선행이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이끌어야 하며( 마 5:16 ), 하나님이 모든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심( 계 4:11 ) 을 알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은 “인간의 최고 목적
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서 “인간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10) 위에서 제시한 소수의 예는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작성 자들이 이것을 인간의 목적으로 인식한 것이 정당함을 보여 준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서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
여 하라는 바울의 권면은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잘 서술
한다.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 목적은 창조 이야기에서 분명
히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부활 성경신학
근동에서 형상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해설하면서, “신의 형상이
된다는 것은 왕이 신의 영광을 반영하는 것을 의미했다”라고 언급
한다.11) 우리가 고대 근동의 문화와 크게 떨어져 있으나, 우리의 현
대 문화도 형상의 중요성을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받아들이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는 앨라배마 축구팀을 응원하는
것이다. 터스클루사의 브라이언트-데니 경기장 바깥에는 내셔널 챔
피언십을 승리로 이끈 앨라배마 축구팀 감독들의 조각상이 있다. 월리스 웨이드, 프랭크 토머스, 폴 “베어” 브라이언트, 진 스톨링스,
닉 새번의 조각상은 이런 감독들의 기념비인데, 축구에서 이들이
이룬 업적에 대해 이들의 명예를 기리는 역할을 한다. 심지어 21세
기 서구 문화에서도 형상은 중요하다. 현대 문화에서 대학 축구팀
감독의 조각상도 그렇다면, 고대 근동과 성경 문화에서는 얼마나
더 그랬을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곧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다시 하나님께
로 돌리기 위해 창조된다.
창조 이야기는 또한 하나님이 자기의 대리 통치자로 섬김으로써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려고 인간을 자기 형상으로 창조하셨음
을 보여 준다.12) 창세기 1장 26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11) G. K. Beale, A New Testament Biblical Theology:The Unfolding of the Old Testament in the New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11, 『신약성경신학』,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3), 31.
12) 존 프레임은 다음처럼 말하면서 비슷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창 1:26-28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의 궁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