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ESBT 하나님의 통치 성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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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 서문 12

| 감사의 글 14

| 서론: 하나님 나라의 귀환 15

1장 큰 그림: 성경의 북엔드

2장 시작된

3장 하나님

4장 나라의 상실: 에덴동산의 적

5장 하나님

6장 족장

7장 족장 이야기와 하나님 나라, 2부: 저주를 이기는 야곱과 복, 악을 이기는 요셉과 선함

8장 출애굽기–신명기, 1부: 출애굽기와 한 나라의 시작 127

9장 출애굽기–신명기, 2부: 레위기-신명기와 국가 설립 151

10장 전기 선지서: 나라의 성장과 쇠퇴 175

11장 후기 선지서: 한때의 나라이자 미래의 나라

12장 성문서, 1부: 시편과 지혜서-하나님 나라의 기도, 삶, 소망

13장 성문서, 2부: 다니엘-역대기-하나님 나라를 기다림

서론: 하나님 나라의 귀환

하나님의 통치 성경신학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왕의 귀환에 대해 말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생각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참회

하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역사 의 한가운데 첫 번째 오셨고 의와 공의가 실행되는 새 하늘과 새 땅

을 시작하기 위해 역사의 끝에 다시 와서 사명을 완료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복스러운 소망”( 딛 2:13 ) 이라고

불렀으며, 재림은 지난 2천 년 동안 시점에 따라 강조되기도 하고

경시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천 년이 끝날 때는 재림에 대 한 엄청난 기대가 있었으며,1) 두 번째 천 년에서 세 번째 천 년으로

들어가는 여러 시점에는 임박한 종말의 구체적인 날짜를 안다는 주 장으로 연약한 사람들을 노리는 이단 집단들과 사람들이 넘쳐 났다.2)

1) Tom Holland, Millennium: The End of the World and the Forging of Christendom (New York: Little, Brown, 2011). 특히 “왕의 귀환”이라는 제 목의 첫 번째 장을 보라.

2) John M. Court, Approaching the Apocalypse:A Short History of Christian Millenarianism (London: Bloomsbury Academic, 2008). 복음주의 저

서론: 하나님 나라의 귀환 15

그러나 포로기 이후와 AD 1세기에 유대인들이 사용한 “왕의 귀

환”이라는 문구는 다윗의 귀환, 더 정확하게는 다윗의 후손이 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이해에 따르면 다윗은 후손을 얻게 되며, 그의

후손은 세상을 다스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원수를 굴복시키며, 입김

으로 원수들을 멸하고 의인들을 신원할 것이다.3)

그러나 내가 “왕의 귀환”이라는 문구를 사용하는 방식은 조금 다

르다. 나는 이 문구가 성경 전체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성경은 전능하신 왕이 우주를 창조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왕은 인간을 피조 세계의 부왕으로 만들고 그의 피조 세계를 다스

리게 하셨다. 인간은 자신들의 주권자에게 영광을 돌리는 방식으로

세상을 다스려야 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들로서 하

나님의 통치를 하나님의 광활한 피조 세계로 확장하고 하나님의 영

광을 위해 세상을 다스리는 사명을 받은 왕적 대리자들이다. 또 다

른 이미지를 사용해 보면, 인간은 모든 피조물이 창조자에게 위대

한 노래를 부르게 인도하는 제사장들이다.

시편 148편에서는 모든 피조물이 여호와를 찬양한다. 찬양하는

순서를 보면 하늘과 천사들부터 시작하며, 별과 해와 달과 같은 하

늘의 무생물에서 바다의 생물과 육지의 짐승을 포함하는 땅으로 확

자들의 저술도 참고하라. Hal Lindsey, The Late Great Planet Earth (Grand Rapids, MI: Zondervan, 1970); Tim LaHaye and Jerry B. Jenkins, Left Behind:A Novel of the Earth’s Last Days (Wheaton, IL: Tyndale House, 1998).

3) 마이클 스네얼리는 시편 5권에 대한 훌륭한 단행본에서 이 점을 통찰력 있게 언 급한다. Michael Snearly, The Return of the King: Messianic Expectation in Book V of the Psalter (New York: Bloomsbury, 2015).

하나님의 통치 성경신학

장하고 인간에 이른다. 인간은 왕들과 고관들과 남자들과 여자들과

노인과 아이들을 포함한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백성이 등장한다. 제임스 루터 메이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해와 달, 하늘과 물, 폭풍과 산, 동물과 새는 어떻게 찬양하라

는 명령에 응답하는가? 이것들은 어떻게 찬양의 의무를 다할 수

있을까? 이 표현을 시적인 장치라는 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

만, 이는 찬양하는 기쁨에 함의된 신학적 진지함을 놓치고 만다.

아마도 5-6절과 8절에 해답의 실마리가 있을 것이다. 하늘의 빛 과 궁창과 물은 여호와의 명령에 따른 작품이며, 여호와의 능력

으로 원래의 위치와 목적을 유지할 수 있다. 광풍은 광풍이 되어

야 여호와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된다.4)

이스라엘은 마지막에 언급된다. 이스라엘만이 여호와의 존귀한

이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피조물이 내는 무언의 소

리를 표현하는 목소리를 받았다……여호와의 백성은 찬양을 통해

나머지 피조물을 대신해 온 우주의 진리인 여호와의 이름을 말 한다.”5) 따라서 인간은 나머지 피조물에 대해 중개적인 역할을 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 피조물의 중간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므로 왕이 고 제사장이다.

4) James Luther Mays, Psalms, Interpretation (Louisville, KY: John Knox, 1994), 445.

5) Mays, Psalms, 445.

서론: 하나님 나라의 귀환 17

인간은 왕 같은 제사장 직분을 받았다. 이 사상은 출애굽기 19장

5-6절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부르심과 일치하고 창세기 1장이 제사

장적 관심을 가진 저자의 글이라는 개념과 잘 어울리며, 성경과 고

대 세계에서 성전이 우주의 축소판이자 신의 임재를 현시하는 장

소라는 개념에도 들어 있다.

이 사상은 성경의 여러 본문에도 나타난다. 이사야는 지상의 왕

웃시야가 죽은 후 성전에서 환상을 보았다. 이사야가 보고 있는 하

늘의 왕은 찬송하는 천상의 존재들에 둘러싸여 있고 성전에 가득한

왕의 복장으로 보좌에 앉아 계신다. 하나님의 옷자락으로 가득한

소우주( 땅에 있는 성전 ) 는 천상의 존재들이 찬송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대우주( 피조 세계의 성전 ) 의 놀라운 유비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

에 충만하도다”( 사 6:3 ). 이 광경은 우주의 진정한 왕이 보좌에 앉아

계시는 장면이므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환상이다!

이 찬양과 비슷한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이 천둥 번개에서와 “영

광”을 외치는 “그의 성전에서”( 시 29:9 )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는 순

간에 나타난다. 스랍 천사들이 거룩한 찬송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이 문맥에서 성전은 세계를 가리킨다. 두 경우 모두 왕이신 여호와

의 좌정하심과 세상에 흐르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한다( 시 29:10 ).

사실 이런 찬송은 땅에 대한 하나님의 미래 통치를 노래할 때도 마

찬가지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의 피조물은 하나님의 왕권을 노 래한다. 더 이상 물리적 성소에서 예배자들이 찬송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우주적 성전에 있는 자들이 외쳐야 한다.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중에 거주하는 자는 다 외

칠지어다 여호와 앞에서 큰 물은 박수할지어다 산악이 함께 즐

겁게 노래할지어다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로다 그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이 책의 제목을 『왕의 귀환』 ( 원제는 『하나님 나라의 귀환』이다-편집자

주 ) 으로 정한 이유는 이 제목이 성경의 이야기를 간결한 문구로 담

아낼 수 있는 데 있다. 인간은 주권자를 대신해 피조물을 다스리는

왕의 소명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반역하고 자신들을 위

해 살기로 결심하고는 세상을 어두운, 뱀과 같은 주인의 통치 아래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인간은 폭군이 되었고 그들이 관계하는

피조물과 환경을 폭압하고 파괴했다. 세상은 여호와의 영광 대신

폭력과 죄와 죽음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창 6:5-6, 11-12 ). 동시에 하

나님 곧 전능하신 왕은 한 사람을 통해 피조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의

로운 통치를 회복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이 약속을 위해 어둠의 주

와 죄와 죽음을 물리치며, 평화와 정의가 지배하고 사자가 어린양

과 함께 누워 있는 세상, 어린아이가 독사와 장난치고 독사에게 독

이 없는 세상을 세우실 것이다( 창 3:15; 사 11:1-10; 65:17-25 ). 이사야서

의 본문들은 창조의 시작과 그때 펼쳐진 에덴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이 본문들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의 원

래 의도를 반영할 뿐 아니라 원래 의도를 능가함을 알린다. 성경의

서론: 하나님 나라의 귀환 19

서사는 “대 구출 작전”이며,6) 세상은 하나님 나라의 귀환과 하나님

나라의 의로운 상속자들, 즉 영광과 영예로 왕관을 쓴 인간을 기다

리고 있다!

토의를 위한 질문

1.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거룩한 성전으로 생각한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바뀌는가?

2. 자연환경, 천연자원의 사용, 동물 처우와 관련된 여러분의 관점 에 대한 실제 적용 사례는 무엇인가?

3. 영국 시인 조지 허버트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들로 서 찬양하기를 거부한다면 “즉시 엄청난 죄를 짓는” 것이라고 썼다( “섭리” ).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는가?

6) Sandra L. Richter, TheEpicofEden:AChristianEntryintotheOldTestament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08, 『에덴에서 새 에덴까지』,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3), 137.

성경의 북엔드

성경은 다양한 책들의 묶음인데도 놀랍게도 일관된 이야기로 구

성된다. 우리는 다양한 묶음에 일관된 이야기가 나타나는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1) 이미 초대 교회에 성경 이야기의 줄거리라는 개념

이 있었으며, 이 개념은 “신앙의 유비”로 불린다. 이레네오는 어떻

게 이단들이 성경을 자신들의 필요에 맞게 재구성하여 왕 대신 여

우나 개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지 말했다.2) 책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책의 시작과 마지막을 연구하는 방법이다. 책의 시작은 무

대를 설정하고 주요 주제를 소개하며, 책의 마지막은 이야기를 마

무리하는 역할을 한다. 성경에서 처음 몇 장은 성경의 서론뿐 아

1) W. Edward Glenny and Darian R. Lockett, eds., Canon Formation: Tracing the Role of Sub-collections in the Biblical Canon (London: T&T Clark, 2023).

2) 이레네오, 『이단 반박』, 1:8.

니라 세상의 서론을 알려 주며, 성경의 마지막 두 장은 성경과 세상

의 결론을 알려 준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성경에는 세상과 이야

기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어떤 학자들은 성경이 온 세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3)

성경의 처음 몇 장에는 초월적인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 묘사

된다. 세상은 생명과 아름다움의 세상이고 거칠고 경이로운 세상이

며, 하나님은 피조물을 다스리는 통치자들로 인간을 세상에 두

셨다( 창 1:26-28 ). 인간은 땅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였다. 하

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들로서 피조물에게는 하나님을 대표하고 하

나님께는 피조물을 대표하는 제사장과 같았다. 인간은 중보자의 역

할을 맡았다.

성경의 마지막 책에서 예수는 땅에 있는 왕들의 통치자로서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나라로 삼고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게 하고 땅

에서 통치하게 하신다( 계 1:6; 5:10 ). 새 하늘과 새 땅이 마침내 도래하

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며, 옛 성전의 대제사장

처럼 각자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을 갖게 될 것이다( 계 22:3-5 ). 기독

교 성경의 마지막 장들은 성경의 시작을 강조하는데, 이는 성경의

마지막이 단지 시작의 반복이 아니라 끝의 우월성을 보여 주기 위

해서다. 성경의 마지막은 단순히 성경의 시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놀랍고 새로운 출발이다. 몇몇 학자들은 창세기 1-3장에

3) Craig G. Bartholomew and Michael W. Goheen, The True Story of the Whole World:Finding Your Place in the Biblical Drama (Grand Rapids, MI: Brazos, 2009).

하나님의 통치 성경신학

있는 성경 이야기의 시작과 요한계시록 21-22장에 있는 성경 이야

기의 절정에 나타나는 일치성을 강조한다.4) 그러나 성경 이야기의

시작과 마지막 사이에는 비참한 상황이 전개되며, 이런 상황은 마

지막과 시작의 근본적인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성경 이야기의

마지막은 시작을 명확하게 암시할 뿐 아니라, 시작과 마지막 사이

에 있는 위험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바다의 창조

(창 1:2, 9-10)

인간의 죽음이 없음

(창 1:31; 2:17)

고통과 눈물이 없음

(창 1:1-2:25)

해와 달의 창조

(창 1:14-19)

사납고 요동칠 때가

많은 바다(참고. 시 93편) 바다가 없음(계 21:1)

죽음이 만연함 죽음이 없음(계 21:4)

고통과 눈물

고통과 눈물이 없음 (계 21:4)

태양과 달이 있음 해와 달이 없음 (계 21:23)

4) W. J. Dumbrell, The End of the Beginning: Revelation 21–22 and the Old Testament (Eugene, OR: Wipf and Stock, 2001); Bruce K. Waltke, An Old Testament Theology: An Exegetical, Canonical, and Thematic Approach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7, 『구약신학』,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2), 169.

시작

창세기 1-2장

어둠이 깊으며(창 1:2),

어둠이 제한됨(창 1:3-5)

생명의 강과 생명나무 (창 2:8-14)

중간

창세기 3장-

요한계시록 20장

(제한된) 어둠과 영적

어둠이 만연함

(물과 에덴동산의 이미지 가 있는) 성막 / 성전

저주가 없음(창 2:17) (성막/성전 외에는)

저주가 어디든 있음

죄가 없음(창 2:17) (성막/성전 외에는)

죄가 어디든 있음

하나님의 통치(창 1-2장) 성막/성전과 언약 외에는

하나님이 통치가 없음

하나님의 형상과 공동

통치자인 인간

(창 1:26-28)

뒤틀린 형상의 담지자들,

하나님의 형상으로 속량

을 받는 인간

마지막

요한계시록 21-22장

어둠이 없음(계 21:25)

생명의 강과 생명나무 (계 22:1-4)

저주가 없음(계 22:3)

죄가 없음

하나님의 통치 (성전이 없음)

형상의 담지자들, 공동 통치자들인 인간 (계 22:4)

표는 성경의 시작에서 옛 창조인 하늘과 땅을 묘사하고 성경의 마

지막에서 하늘과 땅의 새 창조를 묘사한다. 인간은 성경의 시작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다스리고 끝에서도 다스린다. “하나님의 형상”

이라는 문구 자체는 요한계시록 22장 4절에서 사람들에게 사용되지

는 않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함을 의미하기 위해 그들

의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고 묘사되며, 사람들은 영원히 통치

한다.5) 성경의 시작과 마지막에는 죄와 죽음, 고통과 눈물이 없다.

5) 또한 대제사장은 유일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이마에 새겼으므로 사람들은 대제 사장을 상징하기도 한다(출 28:36-38).

창세기에서 시작된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는 마침내 하나님의

형상들을 통해 더 영광스러운 방식으로 땅에서 실현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주요 부분, 즉 시작과 마지막 사이의 긴 ‘중간’에는

끔찍한 무언가, 즉 비참한 재앙이 일어났다. 세상은 어둠과 죽음의

장소가 되고 말았다. 성경의 일부 본문은 이 시기를 죽음과 죄의 시

대로 묘사한다( 전 1-12장; 롬 5:12-17 ). 모든 것이 좋았던 세상( 창 1:31 ) 은

폭력으로 가득 찬 곳이 되었다( 창 6:5-7, 11-12; 8:21 ). 한때 하나님의 영

으로 살았던 인간은 이제 허물과 죄로 죽었으며, 악한 정욕과 욕망

으로 사로잡는 어둠의 주에게 이끌려 간다( 엡 2:1-3 ).

창조, 타락, 회복

많은 학자는 창조, 타락, 회복을 표현하거나 6) 비슷한 의미로 하나

님의 위대한 구원 계획을 표현하기7) 위해 알파벳 U자 형태를 사용 해 성경의 메시지를 도식화한다.

소설가 프레드릭 비크너의 말을 빌리면,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

하시고, 세상은 길을 잃고, 하나님은 자신이 세상을 창조했을 때의 영광으로 회복시키시려 한다.”8) 따라서 “종말론은 시원론 ( 始原論

6) Northrop Frye, The Great Code: The Bible and Literature (Toronto: University of Toronto Press, 2006), 190-219.

7) Sandra L. Richter, TheEpicofEden:AChristianEntryintotheOldTestament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08, 『에덴에서 새 에덴까지』,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3).

8) Frederick Buechner, The Clown in the Belfry: Writings on Faith and Fiction (San Francisco: HarperSanFrancisco, 1992), 44.

1장 ┃ 큰 그림: 성경의 북엔드 25

[protology] ) 과 같다.”9) 즉 마지막은 시작과 같다. 그러나 성경의 끝에

묘사되는 두 번째 세상은 첫 창조보다 우월하다. 두 번째 세상에는

바다가 없으며, 어둠이 없으며, 하나의 생명나무가 아니라 많은 생

명나무가 있으며, 의미심장하게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창조는 첫 번째 창조보다 더 웅장한 창조다. 따라

서 성경의 메시지는 U자 모양이 아니라 체크 표시로 그려야 하며,

두 번째 선을 첫 번째 선보다 더 높게 그려야 한다.

그림 1.1. 전통적으로 이해되는 U자 형태의 성경 메시지

시작과 마지막에 대한 묘사에서 중요한 점 중 하나는 붕괴 이전

의 첫 번째 세상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대신해 세상을 다스리도록 창 조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은 하나님의 왕권이 실행되는 곳이 었다. 세상은 하나님 나라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야 하는 곳이었다.

9) Jon D. Levenson, “The Temple and the World,” The Journal of Religion 64 (1984): 298.

하나님의 통치 성경신학

마지막에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다스릴 것이다. 그림 1.2. 성경 메시지에

또한 ‘중간’은 시작과 마지막의 모습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내는 장소로 만들어진 성막과 성전은

축소된 형태의 작은 세계였고 우주를 상징했다.10) 아브라함의 소명

에도 이와 비슷한 요지가 나타난다.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언젠가

는 온 세상이 복을 받고 회복될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씨 곧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시는 언약들은 거룩한 나라와 제사장 나라를

세우며, 온 세상의 미래, 즉 하나님의 통치 아래 다시 모이게 될 세

상의 미래를 엿볼 수 있게 한다.

10) 예를 들어, 창 1:1-2:3에 기록된 세상 창조와 출애굽기 25-31장, 35-40장 에 묘사된 성막 창조의 유사점을 참고하라. Stephen G. Dempster, Dominion and Dynasty: A Biblical Theology of The Hebrew Bible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03, 『NSBT 하나님 나라 관점으로 읽는 구약신 학』,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2), 102-103.

따라서 성경 이야기의 ‘중간’에는 마지막의 시작, 즉 비극에서 영

광스러운 미래로 향하는 길이 열린다. 성경에 묘사되는 이 길은 곧

장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니라, 길고 구불구불한 길과 같아 옆으

로 휘어지고 뒤로 물러나 다른 방향으로 지그재그로 돌아 다시 전

진한다.

책을 읽을 때는 시작 부분부터 읽는 방법이 가장 좋다. 이야기의

시작은 흔히 책을 이해할 수 있는 핵심적인 틀을 보여 준다. 플롯의

주요 인물, 주요 장면, 주요 요소는 이야기의 전개를 위한 핵심으로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 나타난다. 성경도 마찬가지다. 성경의 서사에

등장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을 반대하고 인간을 반

대하는 원수, 즉 성경의 서사에 등장하는 핵심 배역들이 책의 시작

부분에 소개된다. 이 드라마가 펼쳐지는 무대는 땅이다.

토의를 위한 질문

1. 시작과 중간과 마지막으로 구성된 이야기로 성경을 읽는 방식이

당신이 성경을 이해할 때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가?

2. 예수는 당시의 일부 종교 지도자들이 율법의 세부 사항( 가장 작은

식물에 부과되는 십일조, 정의, 자비, 믿음 ) 을 모두 같은 수준으로 대하는 태도를 비판하셨다. 성경을 통으로 된 이야기, 즉 큰 그림으로 이

해하는 방식이 이런 오류를 바로잡는 데 어떤 도움이 될까?

시작된 나라

창세기와 왕권

성경의 시작은 토라이며 다섯 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

기 ) 이 토라를 구성한다.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 창세기 12장부

터 신명기 34장까지 두 부분으로 토라를 나눌 수도 있다. 첫 번째

부분은 흔히 태고사로 불리고 두 번째 부분은 민족사로 불릴 수

있다. 태고사는 창조와 타락, 그리고 창세기 10장에 기록된 나라들

의 목록에 등장하는 모든 민족과 같이 보편적인 관심을 다룬다. 민

족사는 한 가문과 그 가문이 이스라엘 민족으로 발전하고 성장하는 과정에 집중한다. 태고사에 나타나는 보편적 문제와 저주는 민족사

에 반복된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사명은 창세기 1-2장에서 시작된

것이고 창세기 3장에서 무너진 하나님 나라를 다시 세우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라이트가 적절하게 설명한 것처럼,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이스라엘을 부르셨다.”1)

태초에

창세기의 시작은 인간의 후손과 혈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계보

의 형식으로 구성된다. 성경에서 계보를 기록한 목적 중 하나는 단

순히 조상을 찾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표를 찾아가는

것이다. 창세기의 계보에는 기본적으로 창세기 2장 4절에서 시작하

는 열 개의 줄기가 있으며, 각 줄기는 이전 단락( 창 2:4; 5:1; 6:9; 10:1; 11:10, 27; 25:12, 19; 36:1; 37:2 ) 에서 나온다.2)

창세기의 시작 부분인 1장 1절-2장 3절은 서문과 같다. 앞으로

다룰 주요 주제들을 소개하고 뮤지컬 공연의 서막과 같다. 시작 단

락은 수준 높은 산문체의 서사를 특징으로 하며, 시 형태의 산문, 즉

서문과 같다. 대칭적인 구조와 섬세한 단어 구사로 창세기와 성경

전체를 장엄하게 시작한다. 모든 단어가 중요하다.3) 숫자 7을 사용

하는 흐름이 강조된다. 예를 들어, 첫 구절은 일곱 개의 단어로 구성

되며, 창조는 7일 동안 이루어지며, 하나님은 일곱 차례 창조의 선

함을 보시며( 창 1:4, 10, 12, 18, 21, 25, 31 ), 하나님의 칭호는 서른다섯 번

1) Christopher J. H. Wright, The Mission of God: Unlocking the Bible’s Grand Narrative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6), 263.

2) 창 36:9에는 에서의 족보가 추가된다.

3) “여기에는 우연히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모든 단어가 주의 깊고 신중하고 정확 하게 의도된 것이 분명하다.” Gerhard von Rad, Genesis: A Commentary (Philadelphia: Westminster John Knox, 1973), 47.

하나님의 통치 성경신학

등장하며, 서른다섯 개의 단어로 일곱째 날의 사건들을 묘사하며,

일곱째 날의 사건들은 일곱 개의 단어로 구성된 세 문장으로 표현

된다( 창 2:2와 창 2:3의 첫 번째 부분 ). 이렇게 일곱을 예전적인 형식의 본

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며, 창조를 가리키는 단어를 열

번 반복하고( 창 1:3, 6, 9, 11, 14, 20, 24, 26, 28, 29 ), 창조의 절정인 하나님

의 형상을 언급하고 결론부에 “안식일”을 언급하는 것도 마찬가 지다.

하나님의 우주 창조는 7일간의 노동 행위로 묘사된다. 세상은 피

조물의 번영을 위해 창조되었으며, 인간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피

조물을 다스린다. 본문은 우주의 창조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어둠에

싸인 물의 심연으로 묘사된 형체 없는 물질에서 질서와 조화의 장

소가 된 땅으로 초점을 이동한다. 창조는 두 번의 3일로 이루어

진다. 먼저 거주지가 만들어지고 그다음 거주자들로 채워지는 방식

이다. 처음 3일( 첫날부터 셋째 날 ) 은 빛, 위의 물과 아래의 물을 분리하

는 하늘, 아래 물에서 만들어지고 식물로 가득한 육지로 구성

된다( 창 1:3-13 ). 두 번째 3일(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 ) 은 이런 거주지의 거

주자들을 묘사한다. 해와 달은 빛의 영역을 다스리며, 조류는 하늘

을 날고 물고기는 물에 살며, 짐승과 인간은 땅 위에 살고 인간이

전체를 다스린다( 창 1:14-31 ).

태초에는 어둠과 물만 존재한 사실은 중요하다. 이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영역이며, 어둠과 물은 둘 다 창조에 보존된다. 어둠은 빛에 서 분리되며, 빛과 어둠이 번갈아 나타나는 낮과 밤의 반복으로 보

존된다. 그다음 물은 바다와 대양으로 분리된다. 물이 물러나 마른

땅이 드러나고 미래의 식물과 동물과 인간이 살 수 있는 공간이 마

련된다. 어둠과 물은 모두 제어되며, 태초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

며, 빛과 땅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한다. 어떤 의미에서

하루하루는 처음 창조를 상기시킨다.

창조, 즉위, 인간의 지배

하지만 세상에 대해 고려해야 할 세 가지 중요한 요점이 있다. 첫

째, 창조의 기록은 모두 창조주의 주권적 권능을 반영한다. 하나님

말씀은 무엇과 비교될 수 없고 주권적이다. 명령이 내려지고 응답

이 뒤따르는 순서가 나타난다. 고대 근동의 창조 기사들에서 창조

는 즉위식을 의미했다.4) 성경에 있는 창조 본문들도 이 점을 강조 한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

서 능력의 옷을 입으시며 띠를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흔

들리지 아니하는도다”( 시 93:1 ).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시 95:3-5 ). 창조는 하나님

의 통치 행위다.5)

4) Moshe Weinfeld, “Sabbath, Temple and the Enthronement of the Lord,” in Mélanges Bibliques et Orientaux En l’honneur de M.Henri Cazelles, ed. A. Caquot and M. Delcor (Kevelaer: Butzon und Bercker, 1981), 501-512.

5) John Gray, The Biblical Doctrine of the Reign of God (Edinburgh: T&T

둘째, 하나님은 7일 동안 수많은 피조물을 창조하셨으나 창조의

절정은 여섯째 날의 인간이다. 인간 창조와 다른 피조물 창조의 주

요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다른 모든 짐승은 한꺼번에 창조

되었으나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 둘째로 하나님이 인간

을 창조하시기 전에 의미심장한 멈춤 현상이 나타나므로 인간의 창

조는 독특하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기 전에 생각하고 숙

고하시는 것과 같다. 폰 라트가 설명한 것처럼, 인간이 창조되기 전

피조물의 경우에는 거리를 두고 창조가 진행되고 피조물과 피조물

의 환경 사이에 결속이 생기게 된다. 피조물은 단순한 명령과 결과

의 순서에 따라 땅이나 바다에서 나오는 방식이다. 그러나 인간은

“위에서, 하나님에게서, 매우 즉각적으로” 창조된다. “하나님은 다

른 창조보다 더 친밀하고 열정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6) 셋째로

인간 이전의 모든 피조물은 땅이나 물에서 나와 그 종류대로 창조

되었으나 인간은 하나님의 종류로,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되었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으므로, 다

른 피조물에 대한 인간의 관계는 하나님에 대한 관계와 다르다. 인

간은 피조물을 다스리고 하나님을 친밀한 관계로 대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 주는 용어는 형상과 모양

이다. 이전에는 두 단어가 기본적으로 동의어로 성경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신학적 어휘라고 생각했다. 최근에 BC 9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아카드어와 아람어로 새겨진 비문이 시리아 북부에서 발 Clark, 1979), 48.

6) Von Rad, Genesis, 57.

견되었는데, 비문에서 두 용어는 서로 다른 의미를 나타낸다. 이 비

문은 하다드-이티라는7) 이름을 가진 통치자의 대형 동상 앞뒤에 새

겨져 있으며, 그가 특정 지역을 통치했음을 알린다. 그의 형상은 그

의 통치권을 알리고 그의 모양은 그의 신에 대한 그의 경의를 알

린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외적으로는 자신의 형상을 통해 세상을

향해 말하고, 내적으로는 자신의 모양을 통해 신을 향한다.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두 단어가 의미상 중첩되기는 하지만 ( 하나님

의 모양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 순종하는 종으로서 하나님을 대신해 ( 하나

님의 형상으로 세상을 향해 ) 세상을 통치하고 다스린다는 의미는 통찰력

을 준다. 다시 말해, “인간은 교제를 통해 하나님을 대면하듯이 이

제는 통치를 통해 세상을 대면할 수 있다.”8)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인간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을 대

면하지 않으면 인간들의 통치는 왜곡된 통치가 될 것이기 때문

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대신해 세상을 다스리도록 부름을 받으므로, 인

간에게는 왕적인 차원이 분명히 있다. 우리는 인간이 특별한 역할

을 통해 모든 피조물에 대한 신적 통치를 실행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피터 젠트리와 스티븐 웰럼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고대 근

동의 개념에 대해 바로 이런 결론을 도출한다.

7) W. Randall Garr, “‘Image’ and ‘Likeness’ in the Inscription from Tell Fakhariyeh,” IsraelExplorationJournal 50 (2000): 227-234.

8) 나는 창세기 1-2장에 대한 미출간 논문에서 제이콥 리밍(Jacob Leeming)이 주 장한 내용을 사용한다.

하나님의 통치 성경신학

요약해 보면 BC 15세기 고대 근동의 문화와 언어에서 “신의

형상”이라는 용어는 (1) 통치권과, (2) 아들 됨이라는 두 가지 주요 개념을 포함했을 것이다. 왕은 신의 형상이었다. 이는 왕이

신의 아들로 신을 대하고 신을 위한 통치자로서 세상을 대했기

때문이다.9)

창세기 1장의 세 번째 중요한 특징은 죽음 또는 저주가 없다는 것

이다. 동물의 포식이 있었을 수도 있으나 본문은 이에 대해 침묵

한다( 참고. 시 104:20-21 ). 모든 것이 좋았으며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에

맞았다.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좋았다”라는 단

어가 일곱 번 반복되고 마지막에는 “심히 좋았더라”( 창 1:31 ) 라는 강

력한 평가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 장을 마치기 전에 형상 그리고/또는 모양이라는 용어가 인간

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 다른 두 본문과 창세기 1장에 나타난 인간

의 역할을 반영하는 시편의 한 본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창세기

5장 1-3절은 창세기 1장 26절을 반복한다. 창세기 1장 26절은 하

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으로 인간을 창조했음을 묘사하 기 위해 형상과 모양이라는 두 용어를 사용한다. 여기서 두 용어는

서로 다른 전치사와 함께 역순으로 나타나며, 이는 의미의 중첩을

9) Peter Gentry and Steven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A Biblical-Theological Understanding of the Covenants, 2nd ed. (Wheaton, IL: Crossway, 2018), 192; Catherine McDowell, The Image of God in the Garden of Eden (Winona Lake, IN: Eisenbrauns, 2015), 117-177.

암시한다.

표 2.1. 창세기 1장과 창세기 5장에 나타난 형상과 모양 창세기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베찰메누’) 우리의 모양대로(‘키

드무테누’)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5: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비

드무토’)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케

찰모’)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핵심은 아담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자신의 모양을 닮은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 본문은 형상이 전수됨을 알린다. “아들은 아버

지와 비슷하다”라는 영어 문구는 이런 의미를 잘 담아낸다. 이는 자

녀가 부모와 “판박이다” 또는 부모 “그대로다”라는 영어 표현과 비

슷하다. 비슷한 외모는 비슷한 성품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들은 세

상을 마주할 때 아버지의 형상을 세상에 보여 주며, 자신을 마주할

때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어떻게 이해하든, 어떤 의미에서는 자

녀가 살아 있는 한, 아버지는 죽은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형상은 계

속 살아 있다. 아들이 아버지의 외모뿐 아니라 아버지의 성품도 드

러낸다면 아버지의 형상을 세상에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게 된다.

물론 아들이 아버지의 성품을 드러내는 부분은 아들과 아버지의 관

계성에 달려 있다. 형상에 대한 또 다른 예는 홍수 이후를 다루는 창세기 9장 6절에

있다. 하나님은 인류의 만연한 폭력을 제한하는 법을 시행해 살인

의 범죄에 대해서는 사형을 제정하신다.10) 이제 인간은 음식을 위해

서는 짐승 왕국의 짐승을 책임성 있게 죽일 수는 있으나 동물의 피

를 먹지는 말아야 한다( 창 9:1-5 ). 어떤 의미에서 짐승의 고기는 인간

의 것이다. 인간은 짐승을 지배할 수 있으나 생명의 원천인 피를 지

배할 수는 없다. 피는 하나님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서로

를 죽이는 것이 금지되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간이 다른 인간의 피를 흘린다면 살인자의 피

를 흘려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창

9:6 ). 이 구절에 모양이 아니라 형상이라는 구체적인 단어가 사용된

것은 흥미롭다. 아마도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째,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통치권의 소유자들과 통치자들로 세상에 하

나님을 나타낸다. 살인은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침해다. 둘째, 하나

님의 대리인, 하나님의 통치자에게만 다른 인간에게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있다. 따라서 ‘데무트’( “모양” ) 는 이곳에 사용되지 않는다. 이

용어는 통치의 개념보다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 즉 친교를 강조하기 때문이다.11)

두 본문은 하나님과 인간의 강한 유대감을 뒷받침한다. 이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비슷하며,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의 혈연적

유대감과 거의 유사하다. 사실상 창조주와 그의 형상 사이의 유대

10) P. J. Harland, The Value of Human Life: A Study of the Story of the Flood (Leiden: Brill Academic, 1996).

11) 이 용어는 피(‘담’)를 자주 언급하는 데서 암시될 수 있는데, 피는 히브리어로 모양(‘데무트’)이라는 단어의 발음과 비슷하다.

감은 친족 관계의 문제이며, 살인 피해자의 친척은 살인에 대한 복

수를 할 의무가 있다. 하나님은 친족 관계에 있는 구속자이시다! 12)

시편 8편은 본질적으로 창세기 1장 26-28절의 주석으로 몇 가지

특징을 강조한다. 첫째, 시편 8편은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과 하늘

에 나타남을 노래하고 특히 인간이 이 계시의 핵심을 강조하는 찬

송이다.

시편 기자는 먼저 하늘 위에 펼쳐진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고

나서 시선을 땅으로 옮겨 어린아이의 옹알이에서 영광의 계시를

본다. 가장 연약한 상태의 사람인 어린아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

러내고 하나님은 어린아이의 연약함을 사용해 대적들을 잠잠하게

하신다( 시 8:2 ). 하늘에서 땅으로 이어지는 두 번째 연에서 시편 기

자는 광대한 하늘을 보며 경이로움을 표현한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

니”( 시 8:3 ).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광대한 계획에서 한낱 바람에 날

리는 먼지에 불과한 하찮은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관심을

생각하며, 연속되는 수사학적 질문의 형식으로 하나님을 찬송한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 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 8:4 ). 시편 기자는 우주에서 자신의 하

찮음에 눌리기보다는 창세기 1장의 계시에 반응한다. 말하자면 하

12) Catherine L. McDowell, The Image of God in the Garden of Eden:The Creation of Humankind in Genesis 2:5–3:24 in Light of the mīs pî, pīt pî, and wpt-r Rituals of Mesopotamia and Ancient Egypt, Siphrut 15 (Winona Lake, IN: Eisenbrauns, 2015), 120-123.

나님은 그를 하나님보다 ( 문자 그대로 ) 조금 못하게 만드셨다( 시 8:5 ).

이 표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 은 초자연적 존재인 천사들을 가리킬

수도 있으나,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지칭

할 것이다. 어떤 학자는 이 문구를 인류가 “하나님의 조금”을 결여

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13) 하나님의 영광, 즉 하나님 이름의

최고 현시는 천지의 경이로움이 아니라 만물의 대리 통치자인 인간

창조에 나타난다. 인간에게 부여된 왕의 지위는 왕과 관련된 용어

로 강조된다.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시 8:5 ). 왕이 즉위

한 결과는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이며, 이는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으니”로 해석된다( 시 8:6 ). 본문은 분명히

통치의 언어와 이미지를 담고 있다. 고대 세계에서 왕들은 적대적

인 적들을 자신들의 발아래 두는 것으로 자주 묘사되기 때문이다.14)

따라서 기본적으로 이 본문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공중의 새와 땅의

동물과 바다의 물고기를 다스리라는 명령을 내리신 창세기 1장

26-28절의 주석이다. 시편 기자는 짐승에 대한 인간의 포괄적인 통치를 묘사하기 위해 형용사 “모든”을 반복하고 접속사 “또한”을

사용한다( 시 8:7-9 ). 일곱째 날은 창세기에서는 창조 이야기의 결론이다. 일곱째 날이

13) J. J. Stewart Perowne, The Book of Psalms, 4th ed. (London: George Bell and Sons, 1878), 155.

14) 파라오의 적을 상징하는 아홉 개의 활을 발아래에 놓는 이집트 예술과 도상학 에서 아홉 개의 활을 참고하라. 다음도 보라. Othmar Keel, The Symbolism of the Biblical World:Ancient Near Eastern Iconography and the Book of Psalms (Winona Lake, IN: Eisenbrauns, 1997), 48-60.

창세기 2장 2-3절에 세 번 언급되는 것처럼, 일곱째 날은 하나님의

수고가 끝났음을 특히 강조한다. 일곱째 날은 다른 날들과 구별

된다. 하나님이 유일하게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고 거룩하게 하셨

기 때문이다. 일곱째 날은 “아침과 저녁”이라는 표현이 없는 날이므

로 유일하게 결론이 언급되지 않은 날이다. 고대 근동의 자료에서

창조의 목적은 신이 자신의 신전에 즉위하는 것이었다.15) 일곱째 날

은 하나님의 “안식”을 가만히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광대한 성전인

피조 세계를 살피는 보좌에 좌정하시는 의미로 강조한다. 하나님은

창조 작업을 마치고 자신의 형상을 성전에 두셨으며, 이제 역사에

대한 인간의 통치가 시작될 수 있었다.16)

창세기, 토라, 구약, 전체 성경의 서문이 보여 주는 것처럼, 하나님

은 세상을 통치하는 왕으로서 인간을 자신의 왕적 형상을 지닌 존

재로 세상에 두시고 하나님을 대신해 선한 피조 세계를 다스리게

하셨다. 인간이 해야 할 하나님 나라의 일은 많은데, 하나님의 형상

으로 세상을 채워야 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

15) Weinfeld, “Sabbath, Temple and the Enthronement of the Lord.” 다음 내용도 보라. “창세기의 서문에서 창조주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 후 휴식을 취 하는 일꾼으로 묘사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손수 궁전을 짓고 보좌에 앉는 왕으로 묘사된다.” Meredith G. Kline, God,Heaven and Har Magedon:A Covenantal Tale of Cosmos and Telos (Eugene, OR: Wipf and Stock, 2006), 38.

16) J. Richard Middleton, “Creation Founded in Love: Breaking Rhetorical Expectations in Genesis 1:1–2:3,” in Sacred Text, Secular Times: The Hebrew Bible in the Modern World, ed. Leonard J. Greenspoon and Bryan F. LeBeau, Studies in Jewish Civilization 10 (Omaha, NE: Creighton University Press, 2000), 47-85, 특히 65.

해 피조물을 다스려야 한다. 이는 위대한 시작이다.

토의를 위한 질문

1. 현대 서구 문화에는 정체성의 위기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

한 이미지와 중요한 인물이 되는 것에 몰두한다. 창세기에 나타 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인간의 자기 이해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

을까?

2. 예수의 사역에서 사물과 비교해 사람의 가치를 해석하신 방식을

살펴보라( 마 6:25-34; 눅 12:4-7 ). 예수께서 이렇게 해석하신 근거는 무엇인가?

3. 다른 사람들이나 당신 자신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로

보는 다섯 가지 함의를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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