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편집장 서문 │ 11
■ 저자 서문 │ 13
■ 약어 소개 │ 16
서론 19
Ⅰ. 저자 │
24
A. 저자 문제 분석 • 24
B. 제2 바울의 저술로서의 에베소서 • 26
1. 신학 • 26
2. 문체 • 30
3. 역사적 환경 • 32
4. 에베소서와 골로새서 간의 관계 • 35
C. 고대 사회에서의 위서 • 39
D. 진짜인가 위조인가 • 43
E. 고대 사회에서 필사자와 편지 쓰기 • 47
F. 위서 바울과 에베소서에 대한 결론 • 49
II. 수신자 │ 50
A. “에베소에”라는 말이 빠진 것에 대한 본문 증거 • 51
B. 증거에 대한 평가 • 53
III. 에베소서를 쓴 계기 │ 57
IV. 에베소서의 목적 │ 60
V. 1세기 에베소 │ 62
A. 아데미 숭배 • 62
B. 황제 숭배 • 65
C. 에베소의 마술과 권세들 • 69
D. 에베소의 유대교 • 71
E. 에베소와 바울의 방문(사도행전 19장) • 73
VI. 에베소서의 연대와 출처 │ 75
A. 에베소 • 75
B. 로마 • 78
VII. 에베소서 구조 │ 79
A. 편지 분석 • 79
B. 서신서 개요 • 84
VIII. 주석의 개요 │ 86
IX. 에베소서의 신학 │ 88
A. 바울의 구약 사용 • 89
B. 기독론인가 신학인가? • 91
C. 성부 하나님 • 96
D. 성령 하나님 • 97
목차
E. 주 예수 그리스도 • 98
1.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 98
2. 그리스도 • 99
3. 주 • 100
4. 우리의 화평이신 그리스도 • 101
F. 에베소서에 나오는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말 • 102
G. 에베소서에 나오는 교회 • 104
H. 복음의 비밀과 교회 • 107
X. 바울에 대한 새 관점과 에베소서 │ 108
본문과 주석 113
I. 바울의 서두 문안(1:1-2) │ 114
II. 복음의 신학적 해설(1:3-3:21) │ 121
A. 찬송과 기도(1:3-23) • 121
1.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함(1:3-14) • 121
1:3-14의 주제 개요 • 127
a. 성부에 의해 양자 됨(1:3-6) • 128
b. 성자에 의해 속량됨(1:7-12) • 145
c. 성령에 의해 인 치심을 받음(1:13-14) • 155
2. 그리스도가 만물을 다스리는 것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 (1:15-23) • 158
a. 에베소인들을 위한 기도(1:15-19) • 161
b.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고 높이심(1:20-23) • 169
B. 그의 은혜의 풍성하심(2:1-22) • 189
1.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을 구한다(2:1-10) • 190
a. 현세에 인간이 처한 곤경(2:1-3) • 194
b.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을 위해 하신 행동 (2:4-7) • 202
c.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2:8-10) • 210
2.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강이시다(2:11-22) • 228
a. 하나님과 멀리 있는 이방인(2:11-13) • 233
b. 그리스도가 한 새 사람을 지으심(2:14-18) • 240
c. 그리스도가 그의 교회를 지으심(2:19-22) • 257
C. 구원의 비밀이 계시됨(3:1-21) • 263
1. 계시된 비밀에 대한 여담(3:1-13) • 264
a. 비밀에 대한 바울의 통찰(3:1-5) • 268
b. 이방인이 그리스도에 참여하는 것의 비밀(3:6-7) • 277
c. 이방인들의 영광을 위한 바울의 고난(3:8-13) • 281
2.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서 터가 굳어지게 해달라는 기도 (3:14-21) • 294
a. 바울은 모든 사람의 아버지께 기도함(3:14-15) • 296
b.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위해 기도함(3:16-19) • 299
c. 바울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림(3:20-21) • 307
III. 거룩한 삶을 살라는 권고(4:1-6:20) │ 310
A. 너희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4:1-32) • 314
1. 한 성령, 한 주, 한 아버지 안에서 하나 됨(4:1-6) • 316
2. 그리스도가 교회에 주신 선물(4:7-16) • 330
a. 그리스도가 올라가셨고 내려오심(4:7-10) • 331
b. 그리스도의 몸이 충만하게 자람(4:11-16) • 342
3. 새 사람을 입으라(4:17-24) • 358
4.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진리를 말하라(4:25-32) • 372
B. 그리스도가 행하신 것처럼 행하라(5:1-21) • 392
1. 하나님의 본을 따르라(5:1-2) • 392
2.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얻으라(5:3-6) • 401
3. 어둠과 빛(5:7-14) • 416
4.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5:15-21) • 427
C. 가정 규범(5:21-6:9) • 445
1. 아내와 남편(5:21-33) • 445
a. 아내에게 주는 교훈(5:21-24) • 447
b. 남편에게 주는 교훈(5:25-33) • 457
2. 자녀와 부모(6:1-4) • 474
3. 종과 상전(6:5-9) • 488
D. 하나님의 전신갑주(6:10-20) • 514
1. 주 안에서 강건하라(6:10-13) • 517
2.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6:14-17) • 524
3.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6:18-20) • 539
보충 해설 목차
보충 해설: 에베소서 1장 3-14절과 서신서의 관계 • 126
보충 해설: “그리스도 안에” • 132
보충 해설: ‘케팔레’의 의미 • 179
보충 해설: 고대 사회에서 “몸” 비유 • 184
보충 해설: 기독교적 반유대교 • 225
보충 해설: 대체론 • 250
보충 해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잡힘 • 270
보충 해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또는 “그리스도의 신실함” • 289
보충 해설: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하나님을 본받으라 • 398
보충 해설: 고대 사회의 가정 규범 • 437
보충 해설: 상호성의 원리 • 470
보충 해설: 그리스-로마 사회의 어린아이들 • 478
보충 해설: 노예 제도와 오늘날의 가정 규범 해석 • 488
보충 해설: 고대 사회의 노예제 • 495
보충 해설: 바울서신에 나오는 군사 이미지와 비유 • 536
┃저자 서문┃
에베소서는 내가 초대 교회 여성, 고대 사회 가정생활, 유대인과 이방인
의 관계 등에 대해 연구할 때 풍성한 자료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이 서신
전체를 연구해서 그 신학과 신앙 생활에 대한 전망을 탐구해 보라는 초대
를 매우 기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두 가지 때문에 망설였다. 첫째, 이 책
은 20세기 성경연구를 형성한 탁월한 학자 F. F. 브루스의 책을 부분적으로
“대체할” 것이다. 내가 과연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둘째, 이 서신서 저
자와 청중을 둘러싼 많은 문제, 방대한 이차 문헌, 복잡하고 열띤 논쟁의 주
제인 “가정 규범” 같은 이런 중대한 현실은 만만치 않은 도전이 되었다. 하
지만 이 서신서의 문학 세계에 들어갔을 때, 이 서신서의 신학적 주장을 탐
구했을 때나 구원에 대한 이 서신서의 광대한 시각을 숙고했을 때 이 깊은
우물의 물을 마실 기회를 얻게 된 것에 대단히 감사하게 되었다.
이 서신서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은 주석 본론을 쓴
이후로 보류할 생각으로 이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많은 해석 문
제가 저자를 사도 바울이라고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헬라어 본문을 자세히 해석하면서 저자 문제를 함께
탐구하는 것으로 접근 방식을 바꿨다. 바울이 저자라는 나의 결론은 이 서
신서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나의 평가를 형성한다. 이 주석 내내 바울의 다
른 서신을
자의 수가 늘어나고 있을 때다. 그리고 바울이 그리스-로마의 여러 도시에
서 선교 활동을 하던 역사적 배경을 제시하느라 사도행전을 참고했다.
하지만 바울이 이 서신서를 책임진 사람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만이 도전
의 유일한 부분은 아니었다. 두 번째 관련된 질문도 표면화되었다. 즉 바울
이 에베소서를 쓴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이 서신서에는 고린도 서
신 같은 극적 요소 또는 갈라디아서 같은 정서적 요소는 빠져 있지만, 우주
적 현세적 차원에서 풍성하게 전개되는 구원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말을 강조한다. 이것은 바울이 몸인 교회를 창조한, 그리 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묘사하고 기념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다.
NIV ( 2011 ) 번역을 사용했으며, 몇몇 경우 이 번역본의 해석적 결정에 대해 논평했다. 성경 본문의 한 측면에 대해 상세히 말하기 위해 수많은 여담, 본 문에서 나온 신학적 궤적, 또는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 요약 등도 넣 었다. 독자에게 신학적, 역사적, 문학적 조망에 대한 지도를 제공해서, 독 자가 에베소서의 풍성한 지형도를 자신들의 교회 공동체 안에서 탐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선임 편집자 트레버 톰프슨의 탁월한 편집 작업 및 효율적인 진행 능력에 감사한다. 이 작업 내내 조엘 그린이 편집자로서 감독을 해 주어 큰 도움을 받았다. 조엘의 지혜로운 조언은 성경 본문에 대한 분석에 깊이를 더해 주 었으며, 나의 주장에 대한 조엘의 정확한 비판은 이 연구서를 한층 강력하 게 만들어 주었다. 이 시리즈의 골로새서 및 빌레몬서 저자인 스콧 맥나이
트의 격려가 없었다면 끝까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스콧이 나와 이 작
업에 대해 보여 준 확고한 믿음은 이 연구를 끝까지 완수해 내는 데 매우 필요했던 동기를 유발했다. 일리노이주 휘턴 대학 신약학 교수 신분으로 이
작업을 시작했다. 휘턴에서는 바울서신의 일부로서 에베소서를 자주 가르
칠 기회가 있었다. 휘턴 대학 학생들과 주고받은 교감은 나의 견해를 넓혀
주고 다듬어 주었으며, 그 학생들의 통찰은 큰 도움이 되었다. 인문학 및 신
학과 임시 학장직을 수행하면서 계속 이 책을 썼다. 휘턴 공동체에, 특히 동 료 마이클 그레이브스, 키스 존슨, 에이미 필러, 조지 칼란치스 등에게 감사 한다. 그들은 내가 시도 때도 없이 던지는 질문에 답해 주고, 내내 격려해
주었다. 이 작업이 상당히 이루어진 후에
리 다이크스, 제니 윌슨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부모님과 아이들에게 격려받는 복도 누렸다. 무엇보다 이 주석을 쓰는 동
안 남편이 보여 준 사랑과 격려에 감사한다. 짐 코힉, 나와 아이들에게 그리
스도의 겸손한 마음, 아버지의 경건한 사랑, 범사에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려는 열정의 모범을 보여 준 것에 감사한다.
어린 시절부터 마리아 시슬리 맥타나간과의 우정을 소중히 간직해 왔다. 마리아의 부모님은 내게 이모, 삼촌이나 다름없으며, 마리아는 내게 사촌, 심지어 자매처럼 가까운 사이다. 내가 이 주석을 쓰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자녀가 졸업하고 결혼하고 독립해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리아는 나에 게 언제나 유머와 미소를 곁들인 무한한 지지와 풍성한 사랑을 보여 주 었다. 마리아의 지지와 함께, 나의 오빠 크리스토퍼 해리슨은 인생의 변화 와 성장을 겪는 거친 바다에서 안전 장치가 되어 주었다. 마리아와 크리스 모두 에베소서 4장 2절의 삶을 살며 나의 삶에서 그들이 보여 준 증거에 영 원토록 감사한다. 이 책은 그들에게 바친다.
서론
에베소서는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에 대해 묘사하면서 천상의 높이까지 솟아올랐다가 잠시 숨을 고르고 1세기에 흔히 있던 가정 및 공동체 관계를
다룬다. 이 서신서는 성부 하나님, 주 그리스도, 성령의 위치 및 신자들의 위치를 정하는 우주의 공간적 지도를 제공한다. 에베소서는 세상이 창조되
기 전에 시작된 계획을 서술하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속량하시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서 새 백성을 창조하시는 이야기로 이어지며, 하나님 및
다른 신자들과의 영원한 친교를 약속한다. 이 서신서는 유대인과 이방인
이라는 두 인간 집단 이야기를 다루는데, 그들의 명칭은 그들과 하나님과의
거리에 의해 정해지며 그들은 경건한 자들 아니면 우상숭배자들이라는 특
징을 지닌다. 내러티브의 절정은 하나님의 비밀, 곧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설립하시는 메시아 ( 5:5 ) 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 메시아는 하나님을
위해 죄인을 속량하시며, 그분 안에서 새 백성, 그리스도의 몸을 창조하
신다. 그 이야기에는 두 장이 더 남아 있다. 끝에서 두 번째 장은 현재의 교
회가 기록하고 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역사에 의해 성숙하고 변화되기
때문이다. 이 장은 두 차원에서 일어난다. 능력과 권세가 있는 영적 영역 및
상업과 결혼과 가정이라는 현세적 세계, 곧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실존에
서 일어나는 일이다. 악은 권세와 영향력을 차지하려 다툰다. 하지만
에베소서
이 서신서의 논증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역사적 전개를 길게 요약하는 말로 시작한다. 그 계획의 목표는 거룩하고
흠 없는 양자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들은 태생적으로는 유대인도 있고
이방인도 있다. 1장은 이어서 그 구원 계획이 또한 악의 세력에 대한 승리
계획이라고 말하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라는 이미지를 소개한다. 2장은 이방인이 하나님의 가족에 포함되는 것을 두 시점에서 주목한다. 첫째, 이
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우리의 화
평”( 2:14 ) 이신 그리스도가 그들을 가까이 오게 하사 새 인류를 창조하신다.
이 새 가족은 또한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데, 그 성전은 성령이 사 시는 곳이다. 이 시점에서, 바울은 3장에서 잠시 본 주제에서 벗어나 구원
계획에서 자신의 역할을 설명한다. 자신이 구원의 비밀을 선포하도록 은혜
를 받은 자라는 것이다. 바울은 이어서 긴 권고 부분으로 넘어가기 전에, 기 도와 송영을 말한다.
이 마지막 세 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식과 성숙을 다루는
놀라운 이미지를 몇 개 제시한다. 첫째, 바울은 교회의 하나 됨과 그리스
도가 교회에 주신 선물들을 통한 교회의 성장을 고취한다. 다음으로 바울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 그리스도를 옷 입는 것, 진리가
가득하고 의로운 삶을 사는 것에 대해 말한다. 신자들은 악하고 상처가 되
는 말을 하지 않도록 자기 혀를 지켜야 하며 신자의 공동체 생활을 향상해
야 한다. 바울은 5장에서도 계속 이런 맥락에서 말하면서, 사랑과 빛 가운
데 행하는
통해 다루어진다. 이 서신서의 결론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그들 에게 해를 끼치려 하는 영적 세력에 맞서 굳게 서라고 호소한다.
우리는 이 서신서의 내용을 “직설법/명령법”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이다. 처음 세 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가 누구인지 묘사하고, 서신서 후 반부는 이 증거가 함축하는 것과 그로 인해 파생된 결과들을 제시한다. 처
음 세 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거두신 결정적 승리의 우주적 실상
및 우주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역사를 해설하고, 후반
부는 어둠이 통치하는 마지막 날 동안 굳게 서는 데 필요한 적절한 행동을
다룬다. 처음 세 장은 어떻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유대인이 이방인과
함께 한 가족을 이루는지 설명한다. 이 새롭고 연합된 인류는 이제 거룩한
삶을 살도록,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 함께 성숙하고 성장하도록
명령받는다. 이 서신서 구조에 대한 이러한 묘사에는 많은 진리가 담겨 있
긴 하지만, 문법적 구조에 기초해서 신학적 패러다임을 형성하는 것은 오해
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1 ) 바울의 논증은 구원 역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실
상이라는 요소를 그리스도와 교제를
저자
에베소서에 나오는 신학적 진술은 곳곳에서 엄청나게 장엄하기는 하지 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대다수의 수신자는 1세기 후반에 살고 있던
이교도로 그리스도와 복음 메시지를 따르기로 회심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서신서의 대상인 새로 형성된 공동체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로 구성된 다른 공동체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바울이 과연
이 서신서를 썼는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이 엉킨 실타래
를 푸는 일에는 추정을 분리해 내고 고대 사회에서 저자의 의미가 무엇인
지 설명하는 것이 포함된다. 먼저 우리가 어떻게 이 점에 도달했는지 재빨
리 검토해 보겠다. A. 저자 문제 분석
오늘날의 신약 연구에서, 에베소서는 종종 제2 바울 문헌, 또는 “논란이
되는” 서신서 중 하나로 여겨진다.2 ) 이에 반해 ‘하우푸트브리페’ ( Hauptbriefe )
또는 “진짜” 바울서신에는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를 넣는다. 바
울은 필사자의 도움을 받아 이 서신서를 직접 썼다 ( 필사자의 역할에 대해서는 뒤에
2 ) Hoehner, 9–20은 279명의 학자와 그들의 연구 390개를 열거하는 표를 제시하며, 1960년에 이르 기까지 더 많은 학자가 바울이 저자라는 것을 지지했으며 1970-1990년 사이에만 58%의 학자들이
바울이 저자라는 것을 부인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서 더 다루겠다 ).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 빌레몬서는 보통 진짜 바울이 쓴
것으로 판정된다.3 ) 골로새서와 데살로니가후서 저자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에베소서와 목회서신은 바울이 쓰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상당히 있다.
18세기 후반 바우어는 에베소서가 진짜 바울의 저술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부분적으로는 초대 교회에 대한 그의 전반적 이론으로 인해 유발
된 의심이다.4 ) 이 재구성은 교회 안에 두 당파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베드
로와 그의 유대적 기독교 대 이방 기독교를 대표하는 바울이라는 것이다.
보다 최근에는 케제만, 린데만, 콘첼만 같은 독일 개신교 학자가 에베소서
를 “2세기 기독교의 ‘가톨릭주의’를 향한 제2의 바울적 발전”의 증거라고 보았다. “그들은 에베소서가 보편적 교회와 사도들로부터 사역이 계승되는 것을 강조했으며, 또한 그 서신서는 종말론적 기대를 잃어버렸다고
했다.”5 ) 현재 일부 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 또는 묵시적 견해 같은 핵심 교리들이 바울의 메시지를 집약적으로 보 여 준다고 연역적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말이나 주제가 나오
지 않는 서신서들이 바울의 저술인지에 대해 논란을 벌인다. 게다가 그들은
에베소서의 문체와 문법이 진짜 바울의 저술로 받아들여지는 서신서들과
너무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런 반대들은 표준적 “바울”을 에베소서를 판단
하는 측량자라고 추정한다. 이런 복잡한 조망을 다루기 위해, 먼저 에베소서를 제2 바울의 글로 분류
3 ) Bart Ehrman, Forged: Writing in the Name of God—Why the Bible’s Authors Are Not Who We Think They Are (New York: HarperOne, 2011), 92–93에는
4 ) Ferdinand Christian Baur, Paul the Apostle of Jesus Christ: His Life and Works, His Epistles and Teachings (reprinted Peabody, MA: Hendrickson, 2003 [German original: Paulus, der Apostel Jesu Christi, 1845]. 튀빙겐학파의 창시자인 바우어는 로마서뿐 아니라, 고린도전후서와
갈라디아서도 진짜 바울의 서신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헤겔의 변증법을 초대 교회를 이해하는 기
준으로 사용하면서, 베드로의 지도하에 있던 교회의 유대파와 바울의 인도를 받던 이방인 교회를
뚜렷이 구분할 것을 주장했다. 바우어의 반유대교는 그의 이론에 충만히 퍼져 있다. 그의 주석 263
에서 나온 다음과 같은 인용문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다. “그들의 유대주의적 입장이 그처럼 협소
한 이유는 단지 그들이 자연적으로는 낮은 상태의 종교적 인식에서 더 높고 더 자유로운 인식으로
스스로 올라갈 능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5 ) Muddiman, 14. Conzelmann; Andreas Lindemann, Die Aufhebung der Zeit: Geschichtsverständnis und Eschatologie im Epheserbrief, Studien zum Neuen Testament 12 (Gütersloh: Gütersloher Verlagshaus, 1975); E. Käsemann, “Epheserbrief,” in Religion in Geschichte und Gegenwart, ed. Kurt Galling, 3rd ed. (Tübingen: Mohr Siebeck, 1958), 2:517–520을 보라.
하는 구체적 논증들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고 그에 대한 반론들을 제시하 겠다. 둘째, 종종 논란이 되는 서신서에 붙여지는 호칭인 위서의 범주에 대 해 서술해 보겠다. 이 고대 문서 범주에 속하는 본문들은 그 문서에 저자라 고 나오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기록한 것이었다. 위서는 독자를 속이
점에서 위조와 뚜렷이 다 르다. 이에 반해 위조된 문서는 이득을 얻기 위해 독자를 속인다. 그 이론은
속임수라는 요소를 제쳐놓음으로, 위서가 초대 교회 내에서 용인되었다고 말한다. 고대의 증거를 살펴보면 “위서”라는 호칭이 에베소서를 가장 잘 묘 사하는 말인지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 분류가 맞지 않는다면 ( 그리고
나는 그것이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에베소서가 바울의 다른 서신과 다른 점들을 어떻게 해야 가장 설명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필사자의 임무를 살펴보고, 에베소서 내의 그런 독특한 속성을 설명하기 위해 바울의
공저자의 역할을 살펴볼 것이다.6 )
B. 제2 바울의 저술로서의 에베소서
에베소서가 제2 바울의 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네 개의 기본적인
판단 기준을 사용한다. (1) 신학, (2) 문법, 어휘, 구문, (3) 역사적 상황, (4) 골로새서와의 관계 등이다. 그 비바울 본문의 저자는 바울의 제자 중 한 명 으로, 새로운 시대를 위해 사도의 가르침을 계속 이어 간다는 것이다. 에베
소서는 회람 편지였거나 바울의 글 모음을 소개하는 첨부 편지였을 것 이다.7 )
1. 신학 첫 번째 논증은 에베소서의 신학적 내용이 바울의 것으로 인정되는 서신
서들에 표현된 신학과 너무 거리가 멀어서 에베소서는 비바울적인 것으로
6 ) 바울이 저자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에는 Barth, 36–50; Thielman(『BECNT 에베소서』, 부흥과개혁 사 역간, 2020), 1–5; Arnold, 46–50; Bruce, 240; and Hoehner, 2–61 등이 있다. 7 ) 에베소서를 동봉 편지로 주장하는 입장은 E. J. Goodspeed, The Key to Ephesian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6), xii–xiv가 있다. 회람 서신 이론은 J. B. Lightfoot, Biblical Essays (London: Macmillan, 1893; reprinted Grand Rapids: Baker, 1979), 392–393; Bruce, 249–250이 주장했다. 반론으로는 Perkins, 17–19를 보라.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율법의 행위
와 대조되는 이신칭의를 강조한다. 하지만 에베소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받는 구원을 말하며 ( 2:5, 8 ), “율법의”라는 추가 어구 없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2:9 ) 라고 한 번 언급한다. 로마서, 갈라디아서, 고린도서는
십자가가 죄 사함의 토대라는 것을 강조하는 반면, 에베소서는 십자가가 유 대인과 이방인을 그리스도 안에서 결합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진짜 바
울이 쓴 네 서신은 구원이 미래에 성취될 것을 말하지만, 에베소서는 지금
현재 구원이 성취된 것을 강조한다 ( 2:5-6 ).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화목을 강조한다. 우주적 교회에 대한 에베소서의 묘사
는 고린도서와 빌립보서에서 강조하는 지역 회중과 대조된다. 이것은 공통 으로 사용되는 “비밀”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데, 그 말은 에베소서에서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면서 독특하게 발전한다.8 ) 마지막으로 에베소서에 나오는 가정 규범은 고린도 전서 7장에 나오는 독신으로 살라는 바울의 명령과 결정적으로 상충된다.9 )
하지만 에베소서가 바울의 신학적 경계선 바깥에 있다는 개별 논증에 대
해서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바울이 그의 서신서에서 사용하
는 “비밀”이라는 말의 용법은 이스라엘의 마음이 완악해지고 이방인이 포
함된 것에 대한 묘사 ( 롬 11:25-26 ) 로부터, 하나님의 지혜로서의 십자가 ( 고전 2:1, 7 ), 바울의 설교와 동의어로 사용된 것 ( 고전 4:1; 골 4:3-4 ), 몸의 부활 때 일어나
는 변화 ( 고전 15:51 ), 하나님의 지혜로서의 그리스도 자신 ( 골 1:27 ), 신자들의 영
광의 소망 ( 2:2 ) 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비밀”이라는 말의 이런 광범위한
용법에 더하여, 바울이 이 말을 에베소서에서 사도의 가르침과 동의어
로 ( 6:19 ) 그리고 이방인이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에 포함되는 것을
요약하는 말로 ( 3:3-9 ) 사용한 것을 포함할 수도
것과 비슷하다 ( 롬 16:25-26 ). 나의 요점은 논란의 여지 없는 바 울의 서신서 안에서 “비밀”이라는 말이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8 ) M. Erse, “Die Vorzüge Israels in Röm. 9,4f. und Eph. 2,12,” TheologischeZeitschrift 31 (1975): 211–222는 바울이 저자라는 견해에 반대한다. 이 서신서가 이스라엘의 독특성과 특이성을 교회 로 전환하기 때문이다.
9 ) Perkins, 20-32는 에베소서와 논란의 여지 없이 바울의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서신 간의 차이를 탁 월하게 요약한다.
보여 주며, 에베소서에서 그 말의 용법은 그런 관습적 의미밖에 없다는 것 이다.10 )
또 다른 예를 들면, 바울은 고린도서 시작 부분에서 보편적 교회를 대상 으로 말하며 그들이 한 성령으로 세례 받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 고전 1:2; 12:7-14 ).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에게 나눠 주신 영적 은사가 각 지역 공동체
일어난다고 말하지 않는다. 실로 각 지역 집단에 사도가 있을 가능성
은 매우 작을 것이다 ( 고전 12:27-31 ).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는 신자들이 아
브라함의 자녀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것은 지역 회중 너머로 확장되는 이미
지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의 마무리 축복에서 교회를 “하나님의 이스라엘”
이라고 부른다 ( 6:16 ). 요약하면 지역 교회와 보편 교회는 바울의 서신에서
나란히 존재한다. 둘 다 함께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바울의 이해를 표현하 는 것이다.
에베소서가 실현된 또는 지나치게 실현된 종말론을 표현한다는 비난에 대해서는 바울이 고린도인에게 말한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 라는 단언을 가리키고 싶다. 그것은 이사야 49장 8절을 암시하는 말로
지금 그 말이 바울의 사역에서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바울은 로마인에게
그들이 의롭다 함을 받았으며 또한 영화롭게 되었다고 단언한다 ( 롬 8:30 ). 이 말은 에베소서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모습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은혜로 구
원받은 신자들이 이제 높임 받으신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있는 것을 강조
한다 ( 엡 2:5-6 ).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영혼이 육체 없이 한동안 존재한다는 의미로 “벌거벗었다”라고 말하고 ( 5:2-4 ), 고린도전서에서는 나팔 소리와 함
께 육체의 부활을 축하하는 ( 15:52 ) 등 논란의 여지 없는 서신에서 융통성을
발휘한다.11 ) 바르트는 에베소서 안에 나오는 아직 끼워 넣지 않은 모퉁잇돌
인 그리스도 ( 2:20-22 ),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향해 자라가는 몸 ( 교회; 4:15-16 ) 등
을 종말론적 요소로 본다.12 )
10 ) Sigurd Grindheim, “A Deutero-Pauline Mystery? Ecclesiology in Colossians and Ephesians,” in Paul and Pseudepigraphy, ed. Stanley E. Porter and Gregory P. Fewster, Pauline Studies 8 (Leiden: Brill, 2013), 173은 “골로새서와 에베소서는 후대에
11 ) E. Randolph Richards, “Will the Real Author Please Stand Up?,” in Come Let Us Reason: New Essays in Christian Apologetics, ed. Paul Copan and William Lane Craig (Nashville: B&H Academic, 2012), 116n13을 보라.
12 ) Markus Barth, ThePeopleofGod, JSNTSup 5 (Sheffield: JSOT Press, 1983), 47; rev. English ed. of Paulus—ApostatoderApostel (Regensburg: Pustet, 1997).
데살로니가 서신에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 사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 고전 1:30; 또한 엡 4:24; 5:9; 6:14도 보라 ). 하지만
적절한 역할 및 관련된
관심사, 이를테면 신자와 불신자 간의 결혼 및 독신 생활이 권할 만한 것 인가 등과 같은 문제에 대한 고린도인의 질문에 대답한다. 이런 관심사 중
어느 것도 에베소서에서는 표면화되지 않는다. 그 대신 에베소서는 공동체
내에서의 연합과 하나 됨을 증진한다. 결혼은 그런 연합의 한 예다. 그것은
창세기에 대한 그리고 창세기에서 결혼한 부부를 “한 몸”이라고 선포하는
것에 대한 바울의 성찰에서 볼 수 있다 ( 5:25-33 ). 그렇다면 고린도전서에서
처녀로 사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그들의 구체적인 질문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서신서 장르는 구체적인 질문을 겨냥하는 것과, 광범위하
고 일반적인 정보를 제시하는 것 모두에 능하다.
우리는 또한 에베소서와 논란의 여지 없는 바울서신 간의 유사점을 보아
야 한다. 여기에는 구약 인용문과 암시를 사용하는 것, 이와 결합해서 이
스라엘의 성경에 제시된 구원에 대한 옛 내러티브에 대한 강조 등이 포함 된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강조, 죄 사함을 받을 필요성, 그리스도의 죽음
과 부활을 통한 그리스도 안의 온전한 구속 등은 교회에 대한 이 서신서의
논의의 기초를 이룬다. 또한 몸 또는 그리스도의 성전으로서의 교회는 소위 진짜 바울의 서신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융통성 있는 이미지다. 에베소서는 로마서와
에베소서
전 6:9; 갈 5:21; 엡 5:5 ), 성도의 기업 ( 롬 4:13-14; 갈 3:29-4:7; 엡 1:14 ), 몸 또는 성전으로
서의 교회 ( 롬 12:4-5; 고전 3:16; 12:12-27; 고후 6;16; 엡 1:22-23; 2:15, 21; 5:30 ) 등과 같은 중 요한 주제도 마찬가지로 서신서 곳곳에 나온다. 요약하면, 에베소서와 논란
의 여지 없는 바울서신 간의 신학적 변화는 종류나 정도 면에서 논란의 여
지 없는 바울의 서신 사이에서 발견되는 변화와 다를 바 없다.
2. 문체
두 번째 범주는 에베소서의 문학적 특성에 초점을 맞춘다. 에베소서가 바
울의 저작이 아니라는 논증은 이 서신서의 서언과 추신은 일반적인 바울의
유형을 따르지만, 편지 본론은 신학 논문 또는 “서신 형태의 설교”14 ) 라고 하는 편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이 서신에는 여러 개의 종속절로 구성된 긴
문장이 매우 많다. 예를 들어, 에베소서 1장 3-14절은 헬라어로는 한 개의
문장이다 ( 또한 1:15-23; 2:1-7; 3:1-7; 4:11-16; 6:14-20을 보라 ). 동의어가 널리 사용된 것, 소유격 문구가 널리 사용된 것, 과도한 대구법, 확대 부연 등이 이 서신서
문체의 특징이다. 이것은 바울서신 특유의 활기찬 속도와 비교해 본문의 속
도가 좀 처지게 만든다. 서신서 내내 문법적으로 모호한 점이 나오는데, 그 것은 주석에서 다룰 것이다.15 ) 우리는 “하늘의 영역에서”( 1:3, 20; 2:6; 3:10; 6:12 )
등과 같은 독특한 문구를 보게 되는데, 그 문구는 일반적으로는 “하늘에
서”( 고후 5:1; 빌 3:20; 또한 골 1:16, 20도 보라 ) 라고 표현되는 말이다.
바울이 사용하는 단어를 본문에 나오는 전통적 자료 및 인용문과 구분하
고 바울서신이 특수한 경우를 위한 것이라는 본질을 고려한다면, 통계학적
또는 문체 분석적 분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통계학적 접
근법은 또한 충분히 큰 표본을 가지고 작업해야 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우프트브리페’ ( Hauptbrief ) 가 이 판단 기준을 충족시키지 않는다는 것에 동 의한다. 앤서니 케니는 ‘하팍스 레고메나’ ( hapax legomena: 단 한 서신에서만 사용된
단어 ) 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접속사 ( “그리고”와 “그러나” 등의 ) 와 저자의 문체를
14 ) Roy R. Jeal, Integrating Theology and Ethics in Ephesians: The Ethos of Communication, Studies in Bible and Early Christianity 43 (Lewiston, NY: Mellon, 2000), 39, 43–51. 질은 이
렇게 쓴다. “에베소서는 4-6장에서 독특한 권고적 관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설교’에 부합한다.
하지만 그것이 요구하는 행동과 1-3장에서 그것이 담고 있는 신학적 개념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
지는 않는다”(50-51). 또한 논증 요약으로 Lincoln, xxxiv-xl을 보라.
15 ) Thielman, 6은 몇 가지 어휘의 모호함을 열거한다. 그것은 특히 에베소서 1-2장에서 나온 것 이다.
나타낼 만한 종속절에 초점을 맞춘다.16 ) 케니는 바울이 쓴 것으로 여겨지
는 열세 개의 서신서는 모두 큰 다양성과 공통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결
론 내린다. 로마서, 빌립보서, 디모데후서 등 공동 발신인 없이 쓴 편지는
종종 바울 사상의 중심으로 여겨지는 것에 가장 가까웠다. 에베소서는 그
범위에서 중간쯤 있다. 고린도전서는 이 중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아마 이는 공동 발신인인 소스데네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에베소서를 갈라
디아서와 비교해 볼 때 결과는 놀랍다. 각 서신서는 같은 수의 ‘하팍스 레고
메나’를 담고 있다.17 ) 문체 분석 자료와 함께, 이의 없이 바울의 저작으로
받아들여지는 편지에도 긴 문장 ( 고전 1:4-8; 빌 1:3-7 ) 과 모호한 문법과 구문 ( 롬 5:12-18; 고후 2:12-7:7 ) 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18 ) 고대 저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고 변호할 때 전통적 자료에 의지 했다. 예를 들어, 바울은 고린도인에게 부활에 대해 가르칠 때 복음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이고 간결한 요약을 제시한다 ( 고전 15:1-8; 또한 롬 10:9; 빌 2:6-11도 보라 ). 저자들은 또한 자기 대적들의 입장을 인용할 수도 있다. 바울은 몇 군 데에서 그렇게 한다 ( 예를 들어, 고전 6:12; 10:23 ). 신약 저자들은 성경에 의지했다.
때로는 성경을 직접 인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암시하고 반영하기도 한 것 이다. 고대 저자들은 자신들의 저술을 재사용하고 다른 용도에 맞게 고쳐서 썼다. 그것은 키케로의 글 몇 군데에서 입증된다.19 ) 우리는 에베소서에서
이런 경우들이 나오는 것을 본다. 바울은 아마 찬송가 ( 5:14 ) 와 고백 ( 4:4-6 ) 을 인용하면서
보이겠지만, 그것을 저작
16 ) Anthony Kenny, A Stylometric Study of the New Testament (Oxford: Clarendon, 1986), 99–100. 또한 Armin Baum, “Semantic Variation within the Corpus Paulinum: Linguistic Considerations Concerning the Richer Vocabulary of the Pastoral Epistles,” TyndaleBulletin 59 (2008): 271–292도 보라.
17 ) Hoehner, 24. 에베소서에서는 2,429 단어 중 41개, 갈라디아서에서는 2,220 단어 중 35개(31개 는 고유명사가 없다)다. 갈라디아서에서만 바울은 “이 악한 세대” 또는 “성령의 열매”를 말하거
나 “예수의 흔적”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런 독특한 문구들은 바울의 저작권 논쟁에 인용되지 않
는다(갈 1:4; 5:22; 6:17).
18 ) Thielman, 11.
19 ) 키케로,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12.4.1; 10.28.1; 또한 이그나티우스, 『빌라델비아인에게 보내는
편지』, 11.2: “드로아의 형제들은 그들의 사랑으로 기억되기 바란다. 바로 여기서 나는 부루스의
배려를 통해 이 편지를 보낸다. 부루스는 명예로운 추천장으로, 에베소인과 서머나인이 나와 함
께 가도록 보낸 사람이다.”; 『서머나인에게 보내는 편지』, 12.1: “드로아의 형제들은 애정으로 너 희에게 기억되기 바란다. 바로 여기서 나는 부루스의 배려를 통해 이 편지를 보낸다. 부루스는
너희 형제 에베소인과
함께 가도록 위임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보라. 일반적
Richards, “Will the Real Author Please Stand Up?”, 123을 보라.
에베소서
권 문제를 결정하는 자료로 여겨서는 안 된다.
3.
역사적
환경
바울의 저작권에 대한 세 번째 일반적 불평은 바울이 썼다고 보기에는 에 베소서가 기록된 역사적 상황이 너무 모호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임
박한 위기도 없고, 구체적인 여행 계획도 없으며, 특정 인물에 대한 문안도
없다. 거짓 선생에 대한 경고도 없고, 회중의 질문에 대한 답도 없다. 사도
행전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하지만 ( 행 19:810 ), 이 서신서는 바울을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
울에 대해 “들은” 사람에게 말한다. 이 서신서는 복음으로 회심한 일반적인
이방인 집단을 대상으로 하지만, 유대인 신자가 아마 지역 회중 안에 상당
히 많이 있는데도, 유대인 신자에게는 말하지 않는다.20 ) 이 교회는 유대인
과 이방인 간의 긴장을 보여 주기보다는 통합된 공동체처럼 보인다.
하지만 구체적인 역사적 정보가 없는 것 또는 교회의 상황에 대한 막연함
은 이의 없이 바울의 서신으로 받아들여지는 로마서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로마서의 진술된 목적은 바울을 로마 신자에게 소개하는 것인데, 그
것을 위해 열다섯 장의 치밀한 신학이 있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에베
소서와 마찬가지로, 로마서도 그 메시지를 실제적 표현에 적용하기 전에 복
음에 대해 광범위하게 설명한다. 이방인이 하나님의 가족에 포함된다는 바
울의 강조는 바울의 이사야서 해석 및 종말론적 견해에 의지하면서, 가까이
있는 사람과 멀리 있는 사람이 그 선지자의 환상을 성취하면서 결합된다는
이미지를 강조한다. 이런 강조점은 지역적 또는 보편적 범주에 잘 들어맞지
는 않으며, 선지자적이고 종말론적인 범주에 더 잘 맞는다. 그리고 마지막
두 범주는 전형적인 바울의 강조점이다. 우리는 또한 에베소서에서 강조된
유대인과 이방인의 하나 됨이 말하자면 현장에서 이루어졌다고 결론 내려
서도 안 된다. 그 본문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이룬 역사의 결과를 가
리킨다. 죄 사함과 함께 우리는 한 새 사람으로 연합된다 ( 1:7; 2:15 ). 게다가 이 서신서가 적어도 네 영역에서 바울의 상황을 말하면서, 서신서 안에서 역사적 특이성을 볼 수 있다. 첫째,
20 ) Campbell, Framing Paul, 310, 337. 그는 “에베소서”가 골 4:16에서 라오디게아인이 언급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적 영향을 다룬다. 아데미는 에베소의 종교적 풍경을 문자 그대로 지배하
고 있었다. 아데미 신전에는 많은 순례자가 모여들었으며, 그 도시는 이 여
신과 깊숙이 동화되어 있었다.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모든 정사와 권세 위에
그리스도의 우월하심을 강조한 것은 아데미 신도의 주장에 정면으로 대응
하는 것이다.21 ) 게다가 황제 숭배는 그 도시가 소아시아에 있는 인근 도시
가운데서 영향력을 다툴 때 엄청나게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 숭배는 황제
가족을 신들의 임명을 받은 합당한 지도자로 승격시켰다. 에베소서에 나오
는 바울의 답변은 만물이 그리스도의 발 아래 있으며 그리스도가 모든 권
세에 영원히 승리하셨음을 강조한다 ( 1:21-22 ) 22 )
둘째, 바울은 사슬에 매여 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사도 바울이 고린도
인과 빌립보인에게 말한 것처럼 투옥 생활을 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 고후 11:23-28; 빌 1:13; 또한 골 4:3; 몬 1, 9절도 보라 ). 어떤 사람은 바울의 사
슬에 대한 언급이 위서에 진실성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중심 사상이라고 주장한다.23 ) 나는 이런 생각은 위서 저자의 동기가 바울에게 경의를 표하 는 것이었다는 입장과 조화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슬에 매여” 있다는
문구가 표현하는 것은 단지 바울의 발언이 아니라, 순교자로서 바울의 증 거다.24 ) 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문학 장치로서 앞으로 순교자가 될 수도 있는 큰 명예를 스스로 떠안겠는가? 또 다른 이론은 투옥이라는 주제가 로
마 제국 앞에서 반대 담론을 제공한다고 추측한다. 바울의 정체성과 교회의
정체성은 예수가 로마의 손에 죽으시고 후에 부활하신 것에 의지하고 있
었다. 사회적 기억은 현재의 필요를 다루기 위해 공유된 과거와 미래를 만
들어 냄으로써 형성된다. 개인의 전기들은 서로 얽혀서 공동의 기억이 된다. 그리고 이 과거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의식 및 도덕적 행동
을 통해 활성화된다.25 ) 사슬에 대한 언급은 위서 저자가 교회의 정체성을
21 ) Thileman, 20. 아데미에 대해 상세한 내용은 서론의 62-65쪽을 보라.
22 ) Thielman, 21-23.
23 ) Lincoln은 이렇게 쓴다. “분명 바울의 이름으로 글을 쓰고 있는 어떤 사람은 잠시 논지를 벗어나
그들을 위해 고난받는 사도 바울의 사역에 대해 언급함으로 독자의 호의와 신뢰를 증진시키는 것 으로 추정된다”(xliv). 내 생각에는 “추정된다”라는 말은 “눈속임당한다”라는 말과 거의 차이가
없다. Fowl, 15n15도 보라.
24 ) Richard J. Cassidy, Paul in Chains: Roman Imprisonment and the Letters of St. Paul(New York: Crossroad, 2001), 87–89.
25 ) Harry O. Maier, Picturing Paul in Empire: Imperial Image, Text, and Persuasion in Colossians, Ephesians, and the Pastoral Epistles (London: T&T Clark, 2013), 64–66은
셋째, 사도행전에 기초해 볼 때 에베소인은 바울을 “알았을” 것 같은데, 바울은 그들이 바울에 대해 “들었다”라고
볼 때 믿기 어 려운 말처럼 보인다.26 ) 그렇지만 바울이 약 7년 동안 그 도시를 멀리 떠나 있었고, 그중 4년을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아마 바울은 자신이 회중의 대다수를 안다고 확신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에 베소 도시 자체에 몇 개의 가정 교회가 있어, 그중 일부는 바울의 사역과 연 관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사도행전으로부터 우리는 에베소에 아볼로가 가 르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 집단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18:24-26 ). 바울
은 에베소를 방문했을 때, 요한의 세례만 아는 신자를 만났다. 그것은 그들 이 유대인이었음을 시사한다 ( 19:1-7 ). 27 ) 바울은 회당에서 설교했으며, 그러 고는 시장에서 가르치기 위해 동료 신자와 함께 떠났다 ( 19:8-10 ). 아볼로가 인도하는 무리가 회당에 남아 있었는지 아니면 떠났지만 바울의 무리에 합 류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28 ) 마찬가지로, 바울은 고린도에서 생겨난
서너 당파에 대해 말한다. 한 당파는 아볼로를 자기네 지도자라고 주장했
고, 또 다른 당파는 바울을 지도자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아볼로와 바울은 서로 불화하지 않았다 ( 고전 3:6; 16:12 ). 에베소에는 주로 유대인 교회 또는 이 방인 교회로 구분되는 몇 개의 가정 교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 교회들은 서
로 접촉이 거의 없었지만 서로에 대해 원한을 품지 않았다. 바울의 서신은
의 죽음과 부활과 보좌에 앉으심에 의해 확립된 것으로, 현재 계속해서 자아를 죽임으로써 활성 화되는 과거다(3.5)”(66). 26 ) 바울이 3차 선교 여행 전에 이 편지를 썼다면, 이 문제는 사라진다. Campbell, FramingPaul, 329 는 에베소서(라오디게아서)와 골로새서는 AD 50-52년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고대 교회 인 물인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는 에베소서는 바울이 에베소를 방문하기 전에 기록되었다고 주장
한다. Thielman, 16n29를 보라.
27 ) 이 열두 사람이 아볼로에게 제자훈련을 받았을 것 같지는 않다. Paul Trebilco, The Early Christians in Ephesus from Paul to Ignatius (Grand Rapids: Eerdmans, 2007; Tübingen: Mohr Siebeck, 2004), 122를 보라.
28 ) Trebilco, EarlyChristiansinEphesus, 153.
이 집단에게 하나의 실체인 그리스도의 몸, 교회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상기
시킬 것이다.
마지막으로, 에베소서 2장 11-22절이 하나로 통합된 유대인과 이방인 공
동체를 입증하며, 그래서 바울 이후 세대를 나타낸다는 주장에 대한 나의
두 가지 반응은 이것이다. 첫째, 2세기 초 교회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
되는 좋은 예를 보여 주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랍비 중심의 유대교가 일
어나고 이방인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예수를 따르던 유대인 공동체가 서서
히 사라졌을 가능성이 더 많다.29 ) 둘째, 바울은 2장 11-22절에서 그리스도
의 구속에 비추어 사실인 것을
에베소
공동체는 분명 모든 것에서 하나로 통합되어 있지는 않다. 바울은 성령 안 에서 하나 되는 것과 평안의 매는 줄을 지키려 애쓰는 것에 대해 말하기 때 문이다 ( 4:3 ) .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도 비슷한 논증을 펼친다. 유대인과 헬라인, 종과 자유자, 남자와 여자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것 이다. 이 주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말한다. 교회는
성령 안에서 그리고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고 있는 자유 안에서 행 해야 하는데도 그런 것이다 ( 갈 5:1, 16 ). 30 )
4. 에베소서와 골로새서 간의 관계
바울의 저작권에 대한 마지막 에베소서와 골로새서 간의 복잡한 관계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에베소서가 골로새서와 비슷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
은 에베소서 저자가 이 편지를 쓰려고 골로새서 내용을 빌려 왔다고 생각 한다. 사실을 살펴보면 감탄할 정도다. 골로새서에 나오는 용어의 34%가
에베소서에 나온다 ( 에베소서에
29 ) Lynn H. Cohick, “Jews and Christians,” in The Routledge Companion to Early Christian Thought, ed. D. Jeffrey Bingham (New York: Routledge, 2010), 68
30 ) Michael J. Gorman, Becoming the Gospel: Paul, Participation, and Mission (Grand Rapids: Eerdmans, 2015), 184는 엡 2:14에 대해 해설한다. “이것은 복음의 ‘직설법’(하나님이 하신 것, 현재 존재하는 것)이다. 그 직설법은 그 안에 ‘명령법’(이제 해야 하는 것)을 담고 있다. 31 ) Lincoln, xlviii. 그는 많은 유사점에 대해 유용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제시한다(xlviii-lviii). 예를 들
어, 엡 4:1-2와 골 3:12; 엡 5:19-6:9와 골 3:16-25.
에베소서
서 저자가 독자들이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의 유사성을 인지하고 사도 바울
이 두 서신서를 모두 썼다고 결론 내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32 ) 더구나 그 두 서신서는 전반적 문체와 주제가 비슷하다. 예를 들
어, 수신자들은 “성도들”뿐만 아니라 “신실한 자들”로도 불린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이런 묘사가 함께 사용된 곳은 없다. 또한 골로새서 ( 1:15-20 ) 에서
우주적 그리스도를 높인 것에서 볼 수 있는 그리스도의 특성은 에베소
서 ( 1:20-23 ) 에서 드려진 감사에서도 매우 비슷하게 나온다. 마지막으로, 두 서신서 모두 문장이 길고 복잡하다. 더구나 다소 역설적이게도, 에베소서가 골로새서와 다른 점은 그것이 바울의 명의를 위조한 저술임을 주장하는 근
거 역할을 한다. 에베소서 저자는 새로운 어휘 ( “하늘의 장소”와 “화목하다” ) 를 쓰거 나 또는 같은 용어를 새로운 용도로 쓴다. 그래도 빌려 왔다고 주장되는 것 에서는 일관된 유형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33 )
골로새서와 에베소서 간의 중복은 다른 어느 곳보다 가정 규범에서 가장 명확하게 나타난다. 이 두 서신서에 나오는 가정 규범을 보면 많은 어휘가 문자 그대로 똑같지는 않아도 매우 비슷하다.34 ) 골로새서와 유사한 점에는
가정 규범에 앞서 나오는 권고 부분 및 세 쌍의 순서를 배열하는 기본 틀이 포함된다는 점이 있다.35 ) 이와 대조적으로, 베드로전서는 먼저 종에게 말 하지만 주인은 언급하지 않으며, 그다음에 아내/남편에게 말하고, 부모/자
식에 대해서는 살피지 않는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는 종과 주인에 대해 상세한 논의가 나오지만, 에베소서는 결혼에 대한 부분을 대단히 확장해서 말한다. 에베소서를 위서라고 주장하는 기본 논지는 에베소서 저자가 골로
새서의 틀에 입각해서 가정 규범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독자들은 에베소서 안에서 신학적 강조와 권고적
32 ) Muddiman, 8. 그는 또 한 가지 대안을 말한다. 바울 또는 어떤 필사자가 두 서신서를 다 썼다는 것이다. 그 두 서신서는 동시에 기록되고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33 ) Muddiman, 10은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의 관계가 직접 문학적으로 의존하는 관계며 언제나 모
든 경우에 에베소서가 골로새서에 의지한다는 것은 절대 최근 학자들이 추정하는 것만큼 명확하
지 않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어서 에베소서가 골로새서에 의지한다고 보는 사람들은 에베소서
는 또한 다른 바울서신에도 의지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자기들의 주장을 보강한다고 말한다. 그들
의 접근법은 “어떤 곳에서는 에베소서가 골로새서보다 더 바울적인 것처럼 보인다”라는 역설적 결과를 가져온다.
34 ) James P. Hering, The Colossian and Ephesian Haustafeln in Theological Contexts: An Analysis of Their Origins, Relationships, and Message (New York: Peter Lang, 2007), 154는
“두 형태 간에
비평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편집비평 방식이 나타내듯 차이점 역시 교훈적이다. 골로새서는
그리스도가 공경과 순종을 받기에 합당한 머리시며 최고의 주인이시라는
것과,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종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섬
겨야 한다고 역설하기 위해 종의 역할은 복종하는 것이라는 일반적 이해를 이용한다. 그러고는 주인이 자기 종을 지배할 권리를 없애 버림으로, 이 계
층 구조를 뒤집어 버린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 가르침을 그대로 간직하
며, 이 서신서의 중심 사상인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에 대한 예시로 결혼 에 대해 광범위한
면서 ( 5:23, 24, 25, 29, 32; 6:5, 6 ) “그리스도에
순종하는 것이 이 가정 규범을 해석
하는 렌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36 ) 바울은 남편에게 주어진 자기 아내 를 괴롭게 하지 말라는 부정적 비난 ( 골 3:19 ) 을 없애고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
는 광범위하고도 긍정적인 명령으로 대신한다 ( 엡 5:25-33 ). 바울은 아내의 복 종을 교회의 복종과 연결하여 아내가 모든 신자에게 역할 모델이 되게 한다.
골로새서와 비슷하다 해서 에베소서가 바울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기록 되었다는 결론 내릴 필요는 없다. 몇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두 서신서 마 무리 부분에 나오는 완전히 똑같은 몇 줄은 필사자가 일반적으로 시간과 자료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라 편지 배달자의 묘사를 그대로 복사한 것 이라고 설명하면 간단하다. 또한 왜 골로새서에 나오는 서너 명 중에서 두 기고의 이름을 옮겨 적어 놓았는가? 이 사람은 다른 서신서에서는
이를테면 우주적 그리스도에 대한 시적 묘사 ( 골 1:15-20 ) 같
36 ) Hering, Colossian and Ephesian Haustafeln, 155는 이렇게 말한다. “저자는 그리스도를
스도를 향한 독특하고 의도적인 명령 규정 방식을 설정한다.”
그리
37 ) C. Leslie Mitton, TheEpistletotheEphesians:ItsAuthorship,Origin,andPurpose (Oxford: Clarendon, 1951; reprinted Eugene, OR: Wipf & Stock, 2002),
에베소서
은 것은 고수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둘째, 비교들은 종종 일반적이다.38 ) 구
조들은 일률적으로 되어 있지 않다. 에베소서에는 두 번째 기도가 포함되어 있고 ( 3:14-19 )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 ( 골 1;15-20 ) 은 빼놓지만 우리의 평강이신
그리스도는 말하기 때문이다 ( 2:14-18 ). 가장 뚜렷한 것으로, 에베소서는 골로
새서의 중심 논증 ( 2:1-3:4 ) 은 뺐으며 가정 규범은 대폭 확대했다. 이 차이점 들로 인해서 일부는 에베소서 저자 역시 논란의 여지 없는 바울의 서신에
서 내용을 끌어온 것이라고 주장하게 되었다.39 ) 하지만 이런 입장은 명백
히 바울이 쓴 골로새서보다 에베소서가 더 바울의 글처럼 보인다는 장애에 직면한다.40 )
셋째, 유사점과 차이점이 에베소서가 골로새서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지는 않는다. 어떤 것이 더 먼저인지를 증명할 본질적인 또는 공평한 방법은 없다. 에베소서가 골로새서의 모델 역할을 한다는 견고 한 논증을 주장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41 ) 두 서신서가 전통적 이고, 교의와 예배 의식을 나타내는 말을 사용하며, 한 저자가 비슷한 시기 에 기록된 두 서신에서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말을 반복할 수도 있다는 가 능성을 생각해 볼 때 상황은 더 미묘해진다. 전통과 예배 의식의 구전적 특 징을 갖고 있다는 점은 이 두 서신이 어떻게 비슷한 언어를 공유하면서도
광범위하게 축자적인 표현을 보이지 않는지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마 바울이 필사자와 함께 작업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청중에게 설교하는 뉘앙 스가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42 ) 링컨은 후대의 저자가 바울의 골로새서에 기초해서 에베소서를 썼다고 주장하면서, 이 저자가 “자신의 출처 자료에
38 ) Muddiman, vii(9-10도 보라)은 추정된 유사점들을 비교해 보면 “놀랄 만한 다양성”을 나타낸다
고, 그리고 “같은 기본적 개념을 매우 다른 말씨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곳곳에서
골로새서는 더 정돈된 또는 더 환기하는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거의 매번 에베소서 표현이 더
낫다”라고 제대로 결론 내린다. 그는 이어서 정경 에베소서는 바울이 에베소 감옥에서 라오디게
아인들에게 쓴 이전 편지의 단편을 기반으로, 바울이 로마에서 보낸 편지를 만들어 낸 편집자가
추가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내가 보기에는 설득력이 없다(298).
39 ) Lincoln, lvi–lviii.
40 ) Muddiman, 10.
41 ) Muddleman, 9. Campbell, Framing Paul, 318-23은 에베소서(그가 골 4:16에서 언급된 “라오
디게아인들에게 보낸 편지”라고 여기는) 초안이 먼저 기록되었는데 그다음에
요구한 것이었다. Lincoln, 1은 “훨씬 명백한 가설은 골로새서가 에베소서의 기초 역할을
것”이라고 진술한다. Ernest Best, “Who Used Whom? The Relationship of Ephesians and Colossians,” NTS 43 (1997): 72–96은 에베소서가 먼저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42 ) Roberts, 8.
푹 빠져서 그것이 그의 사고방식의 일부가 될 정도였다”43 ) 고 결론 내린다.
유사점과 미묘한 차이점이 한 저자의 신학적 범주를 나타낸다고 결론 내리
는 것이 더 낫다.44 )
C. 고대 사회에서의 위서
바울이 에베소서를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에베소
서와 논란의 여지 없는 바울의 서신 사이의 차이를 고대의 위서에 속하는
편지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45 ) 위서란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저자 아닌 다
른 누군가가 쓴 저술을 말한다. 이에 반해, “익명”이라는 말은 저자의 이름
이 본문에 첨부되어 있지 않은 것을 말한다. 고대에 원래 익명으로 되어 있
던 어떤 본문은 후에 유력한 사상가의 것으로 여겨졌다. 위서 편지는 그 저
자를 플라톤이나 디오게네스 같은 과거의 유력한 인물, 위대한 선생이나 철
학자라고 주장한다.46 ) 이런 편지들은 새 청중 앞에서 그 인물의 가르침에 경의를 표했다. 이런 편지들은 일반적으로 한 개인을 대상으로 기록되었다.
그 개인 역시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이런 편지들에는 역사적 세부 사항이 포함되었다. 아마 오락적 가치가 더 커지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47 ) 그
들은 독자가 고대 유명인의 선행을 열심히 배우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개인의 세부 사항을 통합시키면서, 그 유명 인물을 모방할 것을 강조 했다.48 ) 이 편지들은 그 철학자들의 주요 저술과 함께 읽을 수 있을 것
43 ) Lincoln, lv.
44 ) Scot McKnight, Colossians, NICNT (Grand Rapids: Eerdmans, 2018, 『NICNT 골로새서』, 부흥 과개혁사 역간, 2022), 17도 같은 결론에 이른다.
45 ) Cohick, 19-24.
46 ) 위서(pseudepigraphy)는 가공의 저자 이름, 아호를 첨부하는 필명 사용(pseudonymity)과 구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은 매리 앤 에번스(Mary Anne Evans)의 필명
이다.
47 ) Patricia A. Rosenmeyer, Ancient Epistolary Fictions: The Letter in Greek Literatur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1), 198–199는 이렇게 쓴다. “그래서 필명을 사
용해서 편지를 쓰는 사람의 목표는 뼈대만 있는 어떤 사람의 전기를 가지고 흥미진진한 인생 이
야기로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는 학자이자 창의적 예술가로, 전통의 범주를 규정하기 위해
역사 자료를 연구하고, 자신의 상상력을 이용해서 창의적이고 극적으로 그 전통을 상세히 설명
한다.” Thielman, 1은 그런 모음집을 “무해한 허구”라고 본다. 48 ) Maier, PicturingPaulinEmpire, 32는 에베소서를 “일종의 서신적 의인법”으로 칭하는데 그것은
“진정성, 위조, 은폐 등에 대한 대체로 시대착오적인 논쟁을 피하는 데 도움을 준다”라고 본다.
저자는 자신이 전하려는 내용으로 청중에게 말하면서 바울인 “체하기” 때문이다.
에베소서
이다. 이 편지들은 낱권이 아니라 모음으로 회람되었다. AD 1세기와 2세기
에 나온 위서 편지의 증거는 많은 편지가 학교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시사한다.
피타고라스의 저술이 위서의 한 예다. 이 BC 6세기 철학자는 별로 글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피타고라스의 저술 중 많은 것은 그의 제자들의 그의
이상을 기록했기 때문에 남아 있다. AD 2세기 신플라톤 철학자 포르피리오
스는 피타고라스의 것으로 여겨지는 280개의 저술 중 200개는 피타고라스
의 학생들이 자기 선생의 이름으로 낸 것이며, 80개는 그 철학자가 직접 쓴
것이라고 설명한다. 포르피리오스는 그 280개의 저술을 모두 피타고라스의
것이라고 기꺼이 분류한다.49 ) AD 4세기 본문인 『바울과 세네카의 편지들』
은 여흥을 위해50 ) 또는 바울을 당시의 존경할 만한 철학자와 연결함으로
바울의 지위를 높이고 그럼으로써 세네카의 명성을 기독교 집단 내에서 확
보하기 위해 쓴 기독교 위서 저술의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51 ) 이 문학
적 범주의 핵심에 있는 것은 이 편지들이 속이는 것이 아니었다는 현대의
확신이다.52 )
하지만 1세기 또는 2세기에 어떤 사람이 키케로나 세네카의 이름으로 글
을 썼다면 위조라는 비난이 제기될 것이다. 그 사람은 분명 위대한 연설자
와 철학자를 팔아 이익을 얻거나, 그들의 사상을 잘못 전함으로써 그들의
명성을 파괴하려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D 2세기 의사 갈레노스는 자
신의 저술을 위조해서 나온 글을 공공연히 비난했다. 갈레노스는 어느 서점
에서 자기 책 한 권이 진짜 자기가 쓴 책인지를 놓고 벌어진 토론을 자세히
49 ) Armin Baum, “Content and Form: Authorship Attribution and Pseudonymity in Ancient Speeches, Letters, Lectures, and Translations: A Rejoinder to Bart Ehrman,”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36.2 (2017): 393은 포르피리오스가 자신은 학생들이 자기 선생의 말을 편집
하는 것이 적법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결론 내린다. “포르피리오스는 이 편집된 책 들이 피타고라스의 정확한 말을 포함하는 경우에만 진정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50 ) Thielman, 2는 이렇게 주장한다. “그것들이 서신 교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 서신들이
진짜 저자의 것이 아니라 덕을 세우는 위조 작품이라는 것을 나타내려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51 ) Bart Ehrman, Forgery and Counter-forgery: The Use of Literary Deceit in Early Christian Polemic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3), 527은 이 편지들이 히에로니무스 같은
52 ) F. C. Baur는 Die sogenannten Pastoralbriefe des Apostels Paulus aufs neue kritisch untersucht (Stuttgart: Cotta, 1835)에서
Speyer, Die literarische FälschungimheidnischenundchristlichenAltertum:EinVersuchihrerDeutung,Handbuch der Altertumswissenschaft (Munich: Beck, 1971)는
바울의 서두 문안(1:1-2)
1 Paul, an apostle of Christ Jesus by the will of God,
To God’s holy people in Ephesus, the faithful in Christ Jesus:
2 Grace and peace to you from God our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1절 바울은 늘 해 오던 대로 자신이 발신인이라고 밝히는 말로 이 편지를
시작한다.2 ) 고대 편지는 통상 그렇게 시작했으며 이어서 수신자에게 하는
문안 인사가 나왔다.3 ) 바울은 자신을 사도라고 밝힌다. 그것은 “바울”이라
는 이름과 동격인 주격 명사다 ( 또한 롬 1:1; 고전 1:1; 갈 1:1을 보라 ). “사도”라는 용어 1 ) 이 주석에서 각 단원 첫 머리에 게재한 성경 본문은 한글 개역개정과 영어 NIV(2011판)다. 그 외
에는 되도록 저자의 논지에 맞게 옮겼으며 개역개정과의 차이를 표기하였다. 성경 장절수는 한글
성경이 기준이며 대괄호로 병기한 장절수는 별도의 언급이 없는 한 70인역의 장절수다(옮긴이).
2 ) “바울”은 로마와 라틴의 성 또는 가족 이름이다(헬라어로 ‘파울로스’, 라틴어로 ‘파울루스’). 그리
고 사울은 아마 그의 부족명(‘수페르노멘’), 또는 별명일 것이다. 바울은 셈어 이름인 ‘샤울’을
라어로 ‘사울로스’로 음역한 것이다. Stephen B. Chapman, “Saul/Paul: Onomastics, Typology, and Christian Scripture,” in The Word Leaps the Gap: Essays on Scripture and Theology in Honor of Richard B. Hays, ed. J. Ross Wagner et al. (Grand Rapids: Eerdmans, 2008), 220을
는 다른 사람에게 보냄을 받았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이 경우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의 보냄을 받았다고 밝힌다.4 ) 바울은 이렇게 보냄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덧붙인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
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이라는 문구는 고린도전서 1장 1절, 골로새서
1장 1절, 디모데후서 1장 1절에 정확하게 반영되어 있다.5 ) 바울은 그의 사 도직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고 보며, 이 편지 도처에서 하나님의 뜻을 깊
이 그리고 폭넓게 반영할 것이다.6 ) 바울은 열두 사도를 포함한 다른 사도
를 알았다 ( 고전 15:7; 갈 1:17; 19 ) . 7 ) 바울은 에베소인에게 편지를 쓰면서, “사 도”라는 말을 여기서만 사용한다. 이 서신서 다른 곳에서 바울은 그의 투옥
상태를 말하는 용어를 더 선호한다 ( 엡 3:1; 4:1; 6:20 ). 바울은 이 서신서 다른 곳 에서 “사도”라는 말을 사용할 때, 교회 안에서 기본적 지도력을 제공하는 사람이라는 일반적 의미로 말한다 ( 2:20; 3:5; 4:11 ).
바울은 사도행전에서 두 번 사도라고 나오며 ( 14:4, 14 ) 자신을 우리 주 예수
를 본 사도라고 부른다 ( 고전 9:1 ). 바울은 자신을 사도 중 가장 작은 자로 분 류한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기 전에 교회를 핍박했기 때문이다 ( 15:8 ). 바울
은 자신이 이방인에게 보냄을 받는다고 단언한다 ( 갈 1:16; 2:7 ). 그리고 에베소 서에도 이방인에 대해 이와 비슷한 강조가 나온다. “사도”라는 명사는 주로 하나님께 보냄을 받은 사람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된다. 하지만 그 용어는
또한 회중에 의해 사명을 띠고 보냄 받은 사람을 말하기도 한다 ( 고후 8:23; 빌 2:25 ).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을 사도라고 묘사한다 ( 3:1 ). 바울은 자신의 사
도직이 시련과
1:1; 살후 1:1; 몬 1절 ) 또는 실루아노/실라 ( 살전 1:1; 살후 1:1 ) 의
4 ) ‘아포스톨로스’(ἀπόστολος)는 BDAG 122; P. W. Barnett, “Apostle,” DPL 45–51; Hans Dieter Betz, “Apostle,” ABD 1:309–311을 보라. Morris, 10은 일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순서(약
18번 나옴)보다는 그리스도 예수라는 순서(약 73번 나옴)가 더 많이 나온다고 말한다. 그 외에도
본문상의 증거로는 결정하기 어려운 약 24번의 추가 본문이 있다.
5 ) Παῦλος ἀπόστολος Χριστοῦ Ἰησοῦ διὰ θελήματος θεοῦ, ‘파울로스 아포스톨로스 크리스투 이에 수 디아 델레마토스 데우.’
6 ) Barth, 65는 에베소서에는 요한복음을 제외하고는 신약의 다른 어떤 책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언급이 더 많이 나온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서 “‘하나님의 결정’은 살아 계시고, 인격적이고, 지혜
롭고, 권능이 많으신 분의 행동과 표현을 묘사한다”라고 말한다.
7 ) P. W. Barnett, “Apostle,” DPL 45–51은 그 용어에 대한 철저한 개관을 제시한다. 복음서에 나오
는 열두 사도를 제외하고, 신약에서 사도라고 나오는 다른 사람들은 바나바(행 14:4, 14), 안드로
니고와 유니아(롬 16:7), 그리고 어쩌면 디모데와 실루아노(살전 2:6)가 포함된다.
바울이 로마서를 쓴 목적은 자신을 그 도시에 소
개하려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인을 방문하지도 않았고 그 교회가 시작될 때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울이 공동 발신인을 포함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9 ) 하지만 그런 환경은 에베소서에
맞지 않는다. 바울은 에베소에 있었던 적이 있고 거기에서 교회를 세우고
성장시키는 일에 관여했기 때문이다.10 ) 바울이 쓴 갈라디아서는 그의 사도
적 부르심과 권위에 대한 공격을 다룬다. 아마 그 때문에 바울은 특정공동
발신인의 이름을 쓰지 않을 것이다. 또한 아마 바울은 그 편지에서 자기의
사역과 권위의 범위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자신과 함께하는 집단을 언급할
것이다. 에베소서의 경우, 회중에 대한 바울의 권위는 확실한 것처럼 보 인다. 당혹스러움과 혼란을 가져온 것은 그의 투옥이다 ( 3:13 ). 결국 침묵 논 법은 불확실하며, 내가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디모데의 이름만 나올 것
이라 예상할 수 있다는 것뿐이다. 로마서와 마찬가지로, 에베소서도 논문
같은 특징을 지녔으며 신학적 개념을 전개하는 데 특별히 초점을 맞춘다.
그런 강조점이 공동 발신인을 배제하는 결정을 내리는 몇 가지 요소였을
것이다.
바울은 그가 성도 또는 거룩한 자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 편지를 보내며
나아가 그들을 신실하다고 묘사한다.11 ) 두 개의 실사 형용사가 하나의 관사
를 공유하는데 그것은 그 두 용어가 하나의 집단을 나타낸다는 것을 보여 준다.12 )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성도”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은 바울서
신 도처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며 ( 롬 1:7; 고전 1:2; 고후 1:1; 빌 1:1; 골 1:2 ) 에베소서도
8 ) Best, 97-98은 디모데의 이름이 없는 것은 에베소서 저자가 골로새서를 베꼈다는 이론을 약화 한다고 말한다.
9 ) Lincoln, 5는 이렇게 주장하며 이것을 에베소인에게 보낸 편지가 바울의 저작이 아니라는 또 다른 증거로 인용한다. 에베소인은 바울이 잘 알았던 회중이기 때문이다.
10 ) Campbell, Framing Paul, 318–319, 325는 이 편지가 라오디게아인에게 쓴 것이며 그가 고린도 전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로마서를 쓰기 전인 AD 50년에 작성되었다고 제안한다.
11 ) ‘하기오스’(ἅγιος)는 BDAG 11 (2dβ); S. E. Porter, “Holiness, Sanctification,” DPL 397–402를 보라. ‘피스토스’(πιστός)는 BDAG 821 (2); L. Morris, “Faith,” DPL 285–291; Dieter Lührmann, “Faith (NT),” ABD 2:749–758; John Reumann, “Faith,” EDB 453–454를 보라. 12 ) Larkin, 2는 이렇게 설명한다. “‘카이’(καί)로 연결된 두 개의 복수 항목 중 첫 번째 앞에 관 사가 나오지만 두 번째 앞에는 나오지 않는 것은 두 집단이 똑같은 집단임을 나타낸다.” 또한
Hoehner, 142도 보라.
도처에서 반복된다 ( 1:15; 3:8, 18; 4:12; 6:18 ).
지닌다. 하나 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따라 살도록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
는다 ( 출 22:31; 레 11:45; 시 34:9; 단 7:18-27 ). 이 용어는 신성한 목적을 위해 구별
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성전 공간이 불경한 또는 세속적인 활동이 아니라 종교적 의식을 위해 보존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 엡 2:21을 보라 )
바울은 “신실한 자들”인 신자들에게 문안한다 ( 골 1:12도 보라 ). 강조되는 점
은 신뢰할 만한 개인인 신자의 성품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의 자세다. 신뢰
할 만한 성품의 예로, 바울은 에베소서 끝에서 두기고를 신실한 ( 개역개정. “진실
한” ) 사람이라고 칭찬한다 ( 6:21 ). 여기 문안 인사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강조한다. 바울과 에베소인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 에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이 주제는 바울의 서신서 도처에 나오
고 여기서도 바울의 권고를 구체화할 것이다. 그 융통성 있는 문구는 때로
는 믿음의 공동체에 포함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또 어떤 때는 구원의 매개
수단을 나타낸다.14 )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 몸 ( 1:22-23 ) 의 일부인 사람들
은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선한 일을 행하도록 구비된다 ( 2:10 ).
이 절의 어휘는 복잡하지 않지만, 구문과 문법은 그렇지 않다. 여기에는
보어 없이 “있다” 동사의 분사가 나오기 때문이다. 핵심적인 초기 자료에는
“에베소에”라는 말이 빠져 있다.15 ) 가장 이른 시기의 자료를 보면 본문은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들”이라고 되어 있다. 장소가 원본
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추정한다면, 그 말은 “또한”( ‘카이’ ) 신실한 성도들
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16 ) 하지만 이렇게 되면 분사가 중복되며 어
떤 성도는 신실하지 않다는 암시일 수도 있다.17 ) 더 가능성이 작은 것은 원
래 문서에 의도적으로 빈칸을 남겨 놓아 편지 읽는 사람인 두기고가 그 칸
을 채워 넣게
13 ) Morris, 11.
14 ) McDonald, 32. 그 문구에 대한
보라.
15 ) 상세한 논의로는 서론을 보라.
16 ) Lincoln, 1-2.
17 ) Muddiman, 60.
하는
헬레니즘 문안
대신한다.22 ) 바울은 문안 인사에서
예상되는 동사 형태 ( ‘카이레인’ ) 보다 은혜 ( ‘카리스’ ) 에 대해 말하면서 언어유희
를 한다. 바울은 “너희에게”라는 복수 대명사로 이 은혜와 평강을 모든 에
베소인에게 표하며, 그런 은혜와 평강을 베푸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강조한다.23 )
“은혜”와 “평강”은 바울의 문안 인사에서 빠짐없이 나오는 반면, 이 용어 들은 또한 그다음 장에서 바울이 하나님의 구속 이야기를 검토하면서 중대 한 역할을 한다.24 ) 헬라어에서 ‘카리스’라는 용어는 은혜, 은총, 선물을 의 미할 수 있으며,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선물 ( 개역개정. “은사” ) 이라고 말한다 ( 고후 9:15 ). 바울은 하나님이 바울을 복음의
일꾼으로 세우셨을 때 그에게 특정한 은혜를 선물로 주셨다고 ( 엡 3:2, 7 ) 그리 고 그리스도가 각 신자에게 선물을 주셔서 그들이 회중의 전반적 건강에
이바지하게 하셨다고 ( 4:7, 29 ) 말한다. 바울은 신자가 은혜로 구원받는다
고 ( 2:5, 8 ) 그리고 그리스도가 신자의 평강 ( 개역개정. “화평” ) 이시라고 말
18 ) Lincoln, 3. Muddiman, 61은 이 이론이 약한 이유를 몇 가지 든다. 거기에는 갈라디아서, 베드
로전서, 야고보서, 아마도 요한1서 등과 같이 회람용 편지를 받는 공동체를 밝히는 관행도 포함
된다.
19 ) Thielman(『BECNT 에베소서』, 부흥과개혁사 역간, 2020), 14-16.
20 ) Arnold, 20은 “‘에베소에’라는 말을 포함하는 것은 수많은 알렉산드리아 증거뿐 아니라 서부 사
본 및 비잔틴 사본이 만장일치로 지지한”이라고 말한다. Thielman, 15-16도 보라. 게다가 그것
을 본문에서 빼놓은 세 개의 초기 증거(B À P46)는 “에베소인들에게”라는 말을 표제에 포함시
킨다.
21 ) ‘카리스’(χάρις)는 BDAG 1079 (2c); A. B. Luter Jr., “Grace,” DPL 372–374; Gary Steven Shogren, “Grace (NT),” ABD 2:1086–1088을 보라. ‘에이레네’(εἰρήνη)는 BDAG 287–288 (2a); S. E. Porter, “Peace, Reconciliation,” DPL 695–699를 보라.
22 ) 약 1:1은 전형적인 헬레니즘 동사인 ‘카이레인’(χαίρειν)을 사용한다.
23 ) 바울이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 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냄에 따라, 기원법으로 된
“있다” 동사가 암시되어 있다.
24 ) Arnold, 70은 바울의 서신서에서 “은혜”라는 용어가 95번 나온다고 말한다.
서두 문안(1:1-2)
한다 ( 2:14 ). 에베소 회중의 대다수를 구성하던 이방인에 대한 바울의 메시지
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의 죄를 용서하셨으며 그들을 새로운 가족, 그리스도의 몸으로 들어오게 하셨다는 좋은 소식이 었다. 그 좋은 소식은 회중 가운데 있던 유대인에게도 적용되며, 그 새로운
실재는 이제 하나 됨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함에서 자라가야 한다.25 ) 신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를 바라는 바울의 소망이 소위 자기
의나 공로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유대교 또는 유대의 종교적 관행이나 태도와 암암리에 대조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26 ) 바울에게 은혜는 그리스도의 속량하시는 역사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사람의 사회적 가치나
인종적 배경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27 )
바울은 화평의 개념을 발전시켜서 그리스도 자신 및 그분의 죽음과 부활
에 대한 언급을 포함한다. 2장 14절에서 바울은 분리되어 있던 것, 즉 유대
인 공동체와 이방인 공동체를 하나로 만드는 창조의 힘을 설명하면서 그리 스도를 우리의 “화평”으로 소개한다. 바울은 자신의 메시지를 화평의 복음 이라고 그리고 신자가 이생의 투쟁을 하게 준비시키는 복음이라고 ( 6:15 ) 묘 사한다. 그리스도이신 화평은 공동체 안에서 양육이 잘 되어야 한다 ( 4:3 ). 이 서신서는 하나님의 메시아가 화평을 가져온다고 말하는 구약 본문을 반영 한다. 이사야서에서는 평강의 왕 ( 9:6[9:5] ) 에 대해 말하며, 최초의 신자는 이
방인에게 화평을 가져오시는 왕에 대한 스가랴의 묘사에 의지했다 ( 슥 9:9-10; 마 21:4-5; 요 12:14-16 ). 유대교 용어인 샬롬은 평강에 대한 전통적인 바람을 전
달하는데, 그것은 바울의 용법을 보강해 줄 수 있다. 그 평강은 전쟁이 없는
것 이상의
의해 성취되는 우주적 화
목의 실상 및 세상이 앞으로 될 수 있는 것을 둘 다 반영하게끔 화평과 하
25 ) Barclay, Paul and the Gift, 1은 선물인 은혜라는 개념을 탐구하며 “학자들은 이제 칭의에 대한
그의 신학 및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율법의 행위’ 간의 유명한 대조를 포함해서 바울의 신
학은 이 이방인 선교에서 선교를 위해 말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공통적으로 말
한다”라고 바르게 해설한다. 바클레이는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교회 내의 해석 역사에서, 그리
고 현대 인류학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선물이라는 개념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 추적한다.
26 ) 서론의 108-111쪽에 나오는 “바울에 대한 새 관점”을 보라. Barclay, Paul and the Gift, 6은 정
확하게 이렇게 진술한다. “은혜는 제2성전 유대교에서 모든 곳에 있지만 모든 곳에서 같지는
않다.”
27 ) 선물로서의 은혜라는 개념은 2:8-10에서 전개된다.
28 ) Morris, 13은 샬롬이 전쟁이나 다툼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멋진 어떤 것, 곧 온전하게
충만한 하나님의 복이 존재함”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나 됨을 구현해야”29 ) 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은혜와 평강을 주시는 분을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 스도”라고 밝힌다 ( 6:23-24도 보라 ) 30 ) 바울은 각 족속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기도하며 ( 3:14-15 ) 에베소인을 위한 기도에서 하나님을 영광의 아버지라고
말한다 ( 1:17 ). 바울은 하나님이 만유의 아버지며 ( 4:6 ) 믿음의 공동체의 아버지
시라고 ( 5:20 ) 단언한다. “아버지”라는 용어는 바울 시대에 정치적 함축을 지
녔다. 황제는 나라의 아버지 ( ‘파테르 파트리에’ ) 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31 )
황제는 아버지로서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가 쓴 글의 이야기에 잘 나와 있다. AD 79년에 베수비오산이 분화해서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을 엄청나
황폐화시켰다. 수에토니우스는 티투스황제의 관대한 반응을 묘사한다.
“이 많은 큰 재난에서 그는 단지 황제의 관심뿐 아니라 아버지의 뛰어난 사
랑을 보여 주었다”32 ) 라는 것이다. 바울의 메시지는 로마 황제가 베푼 은혜
를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베푸신 은혜와 암암리에 대조한다. 하나님은 또한
4장 13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지칭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시다 ( 1:3 ). 바울은 여기서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며, 앞 절에서 그리
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는 것에 대해 말한다. 헬라어 ‘크리스토스’는 히브리
어의 “기름부음 받은 자” 또는 “메시아”를 나타낸다.33 )
29 ) Lau, Politics of Peace, 3 하기 때문이다. 30 ) Schüssler Fiorenza, 2는 어떤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여자 위에 남자, 종 위에 주
인) “아버지”와 “주”라는 남성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는 1:3에 대해 남녀 를 포괄하는 용어로 번역할 것을 제시한다. 아버지를 “부모”로, 주를 “지도자”로 번역하는 것 이다(5).
31 ) 『신격 아우구스투스 업적록』, 35. 32 ) 수에토니우스, 『티투스』, 8.3; 인용문은 Lau, Politics of Peace, 132에서 나옴. 33 )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는 BDAG 1091; B. Witherington III, “Christ,” DPL 95–100; Marinus de Jonge, “Christ,” ABD 1:914–921을 보라.
복음의 신학적 해설(1:3-3:21)
A. 찬송과 기도(1:3-23)
1.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함(1:3-14)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
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
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
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
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
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
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
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
시는 바
3 Praise be to the God and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who has blessed us in the heavenly realms with every spiritual blessing in Christ. 4 For he chose us in him before the creation of the world to be holy and blameless in his sight. In love 5 he predestined us for adoption to sonship through Jesus Christ, in accordance with his pleasure and will—6 to the praise of his glorious grace, which he has freely given us in the One he loves. 7 In him we have redemption though his blood, the forgiveness of sins, in accordance with the riches of God’s grace 8 that he lavished on us. With all wisdom and understanding, 9 he made known to us the mystery of his will
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
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
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
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
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
이라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according to his good pleasure, which he purposed in Christ, 10 to be put into effect when the times reach their fulfillment—to bring unity to all things in heaven and on earth under Christ. 11 In him we were also chosen, having been predestined according to the plan of him who works out everything in conformity with the purpose of his will, 12 in order that we, who were the first to put our hope in Christ, might be for the praise of his glory. 13 And you also were included in Christ when you heard the message of truth, the gospel of your salvation. When you believed, you were marked in him with a seal, the promised Holy Spirit, 14 who is a deposit guaranteeing our inheritance until the redemption of those who are God’s possession—to the praise of his glory.
바울은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명확한 명령으로 에베소서 메시지를 시작 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모든 복으로 신자에게 복 주시는 분이라고 선포 한다. 이 본문 나머지 부분은 신자에게 복을 주시며 모든 찬양을 받기에 합 당하신 하나님을 설명하고 칭송한다. 흥미롭게도, 바울은 이 긴 찬송 또는
축복을 1장 15절에서 시작하는 감사 앞에 둔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는
더 짧기는 해도 찬송으로 시작하지만 ( 고후 1:3-7; 벧전 1:3-9도 보라 ), 일반적으로
감사로 편지를 시작한다. 우리는 바울이 이런 긴 찬사를 쓰기로 한 이유를 알기 위해 본문을 면밀히 탐구해 볼 필요가 있다.1 ) 여기서 표현하는 하나님의 특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없지만, 학자들은 이 본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이론을 제시한다. 이것은 송가인가?2 ) 이것은 세례 의식에서 사용되는가? 이것은 유대의 축복 또는
1 ) Lincoln, 19: “찬송은 통상 바울서신에서 서론적 감사가 담당하는 기능을 한다. 편지 본론에 나오 는 주제의 많은 부분을 요약 형태로 알리거나 발표하는 것이다.”
2 ) Lincoln, 12-14는 몇몇 논증을 개관하며 본문의 “말과 문체가 분명히 다른 어떤 실체를 분리해 낼
수 있기에는 처음 세 장 나머지 부분과 너무 비슷하다”(14)라고 정확히 지적한다.
II. 복음의 신학적 해설(1:3-3:21)
A. 찬송과 기도(1:3-23)
1.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함(1:3-14)
‘브라카’ 자료에 비추어 읽어야 하는가?3 ) 헬라의 시가 본문의 더 나은 배 경인가? 이 모든 견해는 각각 옹호하는 자가 있지만, 어떤 견해도 절대다수
의 지지를 받는다고 주장할 수 없다. 이 본문이 찬송가였다거나, 전례문에
속했다거나, 헬라어 운율을 반영한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바울이 유대인이
었다는 것에 비추어 볼 때, 그의 하나님 찬양은 구약의 정서 및 바울 당시
일반적이었던 유대인의 관행을 반영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4 ) 하지만 그 축
복은 명확히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그것이 하나님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바울의 시각을 형성한다. 그렇다면 그 긴 문장은 자신의 교회
에 활력을 주고 가르치시는 하나님에 대한 바울의 주의 깊은, 하지만 자연
히 터득한 찬양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 두 가지 강조점, 곧 신
학 ( 성부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 ) 과 교회론은 에베소인에게 보내는 바울의 메 시지 나머지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추가로 바울은 에베소서 전체에서 우주
에 대해, 만물의 통일을 향해 움직이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과 우주의 관계
에 대한 그의 강조를 상세히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 인과 이방인이 하나 되는 것이 여기서 암시되어 있다. 그것은 서신서 내에
서 상세히 전개될 것이다.5 ) 이 부분은 헬라어로는 문장 하나다. 이 문장은 202단어로 되어 있으며 신
약에서 218 단어로 된 골로새서 1장 19-20절에 이어 두 번째로 긴 문장
이다.6 ) 이 문장은 에베소서에서 가장 긴 문장이지만, 바울은 에베소인에게
말할 때 추가로 서너 개의 긴 문장을 포함시킨다 ( 1:15-23; 3:2-13; 4:1-6, 11-16을
보라 ). 7 ) 여러 개의 절로 된 바울의 방대한
문장의 다른 요소에 종속되지 않은 유일한 정형 동사다. 관계절
은 바울의 논증을 형성한다. 바울이 그의 논증을 전개하기 위해 세 번 관계
3 ) Lincoln, 10에 나오는 예들에는 왕상 8:15, 56; 시 41:13; 72:18-19; 89:52; 106:48이 포함된다. 그
는 1QS 11:15; 1QH 5:20; 10:14; 11:27–33; 16:8을 포함한 사해 두루마리를 가리킨다.
4 ) 사가랴의 찬양도 보라(눅 1:67-79).
5 ) MacDonald, 206.
6 ) Hoehner, 153과 Larkin, 4. MacDonald, 197은 그것을 가장 긴 문장이라고 밝힌다.
7 ) 이것은 일반적으로 명령법을 포함하며(예를 들어, 4:4-6, 28, 29, 30, 31절) 일반적으로 에베소서
4-6장에서 볼 수 있는 간결하고 짧은 문장과 대조를 이룬다.
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1장 6절에서 바울은 이 은혜를 “우리에게 거저 주
시는”이라고 말하고, 1장 8절에서는 그 은혜가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라
고 설명한다. 한편 1장 9절에서 바울은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
에서” 알리신 하나님의 선한 뜻을 말한다.
분사는 문장의 핵심 요소다. 분사는 정형 동사에 의존하는데, 이 경우에
이 문장의 주동사인 “택했다”( 1:4 ) 는 동사다. 분사는 하나님의 행동을 인도
하는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강조한다. 바울은 하나님을 “우리를 복 주셨
고”( 1:3-4 ) “양자 됨을 위해 우리를 예정하셨고”( 1:5-8 ) 그분의 뜻을 “우리에
게 알리셨고”( 1:9-14 ) 그래서 모든 찬송과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라고
묘사한다.8 ) 바울은 1장 11절에서 1장 5절에 나왔던 “예정했다”는 분사를
반복하는데, 두 구절 모두에서 양자 됨과 기업이라는 주제를 강조한다. 1장
11-14절에 나오는 수동 분사는 신자가 예정되었다는 것, 듣고 믿었다는
것, 그래서 성령의 인 치심을 받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스도를 언급하는 “그 안에서”라는 네 개의 전치사구 ( 1:7, 11, 13 두 번 ) 는
긴 문장의 내적 틀을 제시하며 바울의 보강 논증을 나타낸다.9 ) 에베소서
1장 7-10절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신자가 구속을 받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은 그들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나타내는 증거다.
하지만 이 구속은 하나님의 전반적인 계획의 일부일 뿐이다. 그 계획은 그
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통일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에베소서 1장 1112절은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바울의 말 ( 1:5 ) 에 암시된 기업이라는 말을 다시 다룬다. 그러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신자에게 기업을 주셨고
그들의 결국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존재가 되도록 정하셨다고 말 한다.10 ) 세 번째와 네 번째로 나오는 “그 안에서”라는 말 ( 1:13-14 ) 은 합해서
8 ) Schlier, 39-40은 1:4-10이 핵심 동사(1:4에 나오는 “택하다”, 1:6에 나오는 “복 주다”, 1:8에 나 오는 “넘치게 하다”)를 기초로 세 연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Lincoln, 14는 슐라이어의 이론이 그 연을 “[1:6에서] 부자연스럽게 나누며 관계절과 그 선행사의 밀접한 연관을 깨놓는다”라고 지적 한다. 9 ) 또 다른 중요한 문학적 요소는 전치사다. 바울은 그다음에 쌍을 이루어 나오는 구절인 1:3-4, 5-6, 7-8, 9-10, 11-12절(1:4에 나오는 ‘카도스’[καθώς]를 포함해서)에서 ‘카타’(κατά, “에 따라”)를 사용한다. 이 부분에서 ‘카타’를 동사와 함께 살펴볼 때, 우리는 원인적 강조(“때문에” 또는 “하므 로”) 또는 비교적 의미(“에 따라”) 또는 두 뉘앙스를 다 보게 된다. 예를 들어, 1:5에서 ‘카타’는 하
나님이 그분의 뜻에 “따라”(개역개정. “뜻대로”) 신자를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하셨음을 나타낸다.
마지막 두 절(13-14절)에는 이 전치사가 없다. 10 ) Arnold 76은 본문을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며, “첫 번째 부분(1:4-6)과 세 번째 부분(1:1112)은 서로 대응을 이루며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택하고 예정하신 것과 관련해서 하나님에 대한
바울의 찬양에 대해 비슷한 이유를 부여한다”라고 주장한다.
II. 복음의 신학적 해설(1:3-3:21)
A. 찬송과 기도(1:3-23)
1.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함(1:3-14)
에베소인이 복음 메시지를 믿은 것과 그들의 기업을 나타내시고 보증하시
는 성령의 인 치심에 대한 바울의 주장을 나타낸다.
이 본문의 구조에 대한 또 다른 접근법은 중복과 반복에 초점을 맞
춘다.11 ) 문구, 용어, 동의어가 율동적으로 나오며 “노래와도 같은 효과”12 )
를 낳는다. 바울은 핵심 문구를 세 번 제시한다. 그것은 “그의 은혜의 영광
을 찬송하게”( 1:6 ) 라는 말과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그의 영광을 찬송하
게”( 1:12, 14 ) 라는 말이다. 첫 번째 부분은 하나님 아버지의 행동에 초점을 맞
추며 ( 1:3-6 ) , 두 번째 부분은 성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말하
고 ( 1:7-12 ), 마지막 부분은 성령이 신자들에게 인 치시는 것을 강조한다 ( 1:1314 ). 이런 서술은 바울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강조한다는 점을
포착하지만, 성부의 활동과 성자의 활동이 분리되어 있음을 시사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바울은 그 활동들이 뒤섞여 조화를 이루면서 구원과 만물의
하나 됨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강조한다. 바울은 두 구절을 제외한 모든 구절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하거나 그리스도를 언급하는 대명사를 사용한다.
우리는 세 부분을 구분할 수 있긴 하지만 ( 1:3-6, 7-12, 13-14 ), 바울이 이 부분 사이에 개념적 연결을 만들어 이들을 연결한 것 역시 분명하다. 유형을 구 분하고 초점을 밝혀낼 수 있는가? 아마 그에 대한 대답은 시간과 공간에 대 한 바울의 근원적인 내러티브 강조점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은 시간, 보다 구체적으로는 세상이 시작되기 전의 시간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 작한다. 바울은 현재 시대로 옮겨와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속량으로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 및 하나님의 가족으
로 입양되는 것을 강조한다.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되신 역사적 순
간에 대한 언급이다. 이제 때가 차매 나타난 비밀 ( 1:9 ) 은 아직 온전히 실현
11 ) 예를 들어, 1:5와 1:11에서 “예정된”(προορίζω , ‘프로오리조’)이라는 분사가 반복되는 것
을 보라. 바울은 1:5에서는 “은혜”(χάρις , ‘카리스’)라는 명사를, 그리고 1:6에서는 동족 동
사 “은혜를 주었다, 복 주었다”(χαριτόω , ‘카리토오’)를 사용하며, 1:7에서는 명사를 반복
한다. 그는 1:5, 9, 11에서 “그의 기뻐하심대로/따라”(κατὰ τὴν εὐδοκίαν τοῦ θελήματος
αὐτοῦ, ‘카타 텐 유도키안 투 벨레마토스 아우투’)라는 문구를 세 번 반복하며, 1:7, 14에서 “속
량”(ἀπολύτρωσις , ‘아폴뤼트로시스’)이라는 말을 두 번 반복한다. 바울은 1:11에서 “기업이
되다 또는 선택하다”(κληρόω, ‘클레로오’)라는 동사를 그리고 1:14에서는 동족 명사 ‘클레로노
미아’(κληρονομία)를 사용한다. 마찬가지로 그는 1:9에서 “꾀하다”(προτίθημι, ‘프로티데미’; 개
역개정. “예정하다”)와 1:11에서 동종 명사 “계획”(πρόθεσις, ‘프로데시스’)을 사용한다. 12 ) Lincoln, 12. 그는 종속(한 구절이 다른 구절에 종속) 연구를 근거로 문체가 헬레니즘 유대교 를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이 절들은 히브리어 시문이나 전례 문헌처럼 평행 배치 또는 이행 연 구(parallelismusmembrorum)로 배치되지 않았다”라고 한다.
에베소서
되지 않았으며, 그래서 기업은 성령이 신자를 인 치시는 것으로 보증된다.
바울은 하나님이 시간 속에서, 심지어 시간을 넘어, 시간이 존재하기 전
에 역사하시는 것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야기식 구조를 형성한다. 연대의
전후 관계는 몇 가지 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첫째, 바울은 하나님의 선한
뜻/의도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신자가 경험하는 것, 즉 시간 이전에, 배 후에, 아래, 위에 있다고 확증한다. 둘째, 그것은 구원을 과거와 현재와 미
래의 측면에서 이해하도록 허용한다. 그 측면은 그리스도의 피가 십자가에
뿌려졌다는 역사적 실상, 이방인이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에 포함된
것, 성령 안에 있는 생명, 그리스도가 확보하시고 성령의 인 치심으로 확증
된 미래의 기업 등이다. 셋째, 그것은 과거에 있었고, 현재에 있고, 앞으로
올 것이고 언제나 있는 영광, 곧 하나님의 영광을 선언한다.
바울은 이 본문을 통해 시간을 추적하는 것 외에, 또한 공간에 대해서도
말한다. 1장 10절에서 바울은 모든 곳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요약되고 통일되리라고 단언한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그리 스도 안에서 결합된다는 것이다. 신자들의 구속, 죄 사함, 기업은 이렇게 그
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요약되는 것을 얼핏 보게 해 준다. 이 장 뒷부분에
서 바울은 만물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강조할 것이며 ( 1:20-22 ) , 3장 6-11절에서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결합하는 그리스도의 구속 범위를
강조한다. 그것은 영적 능력과 권세를 두렵게 하고 놀라게 하는 위업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라는 명령을 반복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서 만물이 이렇게 마지막으로 통일되는 것 때문이다.
보충 해설: 에베소서 1장 3-14절과 서신서의 관계
이 문장은 유별나게 길며 또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하기 때문에, 우리
는 그 문장이 이 편지 나머지 부분에서 지니는 영향력을 생각해 보게 된다.
여섯 장에서 하나님의 구속 드라마가 펼쳐지면서 몇 가지 주제와 용어가 중대한 역할을 담당한다.
첫째, 바울은 하나님의 신성을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밝
히고 ( 1:3 ) 성령에 대해
II. 복음의 신학적 해설(1:3-3:21)
A. 찬송과 기도(1:3-23)
1.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함(1:3-14)
를 세우고 양육하며, 만물이 완성에 이르기까지 신자를 보전하는지 보여
준다. 예를 들어, 바울은 신자가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에 의해 성부께 나아
감을 얻는 것에 대해 말하며 ( 2:18 ) 신자가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는다는 진
리를 반복한다 ( 1:13; 4:30 ). 둘째, 이와 관련된 것으로 바울은 이 부분에서 신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에 대해 광범위하게 말하며, 그림 단어들로
이 묘사를 전개한다. 이를테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사람을 옷을 입는 것 으로 ( 4:24 ) 그리고 한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으로 ( 2:14-15 ) 묘사하는
교회를 하나님의 권속으로 ( 2:19 ), 몸으로 ( 4:16, 25; 5:23, 30 ),
것으 로 ( 2:12-13 ) 점차 발전적으로 묘사할 때 핵심 역할을 한다. 게다가 하나님은
인종 집단 ( 유대인과 이방인 ) 을 한 언약 공동체로
모든 족속의 아버지로 ( 3:14-15; 4:6 ) 신자는 하나님의 자녀로 ( 5:1, 8 ) 묘사된다.
넷째, 바울은 그가 이 서신 도처에서 전개하는 “비밀”이라는 용어를 사용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행동을 이제 나타난 “비밀”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바울이 알리도록 위임받은 비밀, 하늘 영역의 통치자에게 ( 3:9-10 ) 그리고 그
리스도와 연합한 신자에게 ( 5:32 ) 하나님의 지혜를 강조하는 비밀이다. 에베소서 1장 3-14절은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바울의 광범위한 성찰의 기반을 제시한다. 특히 속량, 신자가 지금 살아야 하는 삶, 그리고 미래에
대한 각 신자의 확실한 소망 등과 관련된 성찰이다. 바울의 찬양 태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속량과 죄 사함을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가 신자들에게 넘치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의 비밀을 알리셨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 뜻을 계획하셨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
되게 하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택하심을 받았다
하나님은 그의 뜻을 따라 계획을 세우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도록 하신다
그리스도 안에 우리는 포함되었다
성령은 구원의 인으로 신자들을 인 치신다 성령은 신자들의 기업을 보증하신다
그의 영광을 찬송하도록
a. 성부에 의해 양자 됨(1:3-6)
바울이 보기에 하나님이 정하신 속량 계획의 위대함은 신자에게 구체적
인 파급 효과를 지닌다. 바울은 하나님이 신자를 택하신 두 가지 방식을 묘 사한다. 먼저,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이 되기 위해 택하
심을 받았다 ( 1:4 ). 둘째, 하나님은 신자를 아들 또는 자녀로 삼기 위해 예정
하심으로 택하셨다 ( 1:5 ). 바울은 그것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 즉 그리스
도 안에서 신자에게 복 주시는 것과 연관시킨다 ( 1:6 ). 이 본문 구조는 찬양의
말로 둘러싸여 있는 것으로 그려 볼 수 있다. 1장 3절에서 바울은 “찬송하
리로다”라고 단언하며, 그다음에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를 언급한다. 그러고 나서 1장 6절에서 바울은 또 다른 명사를 사용하는데, 그것은 더 큰 단위에서 두 번 더 사용될 절, 즉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
게 하려는 것”( 또한 1:12, 14를 보라 ) 이라는 절에서 “찬송”이라고 번역된 명 사다.13 ) 찬송은 하나님이 택하시는 행동에 뿌리를 둔다. 바울은 그 택하심
이 언제 이루어졌는지, 그 택하심이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그 택하심이 무
엇을 이루었는지, 그 택하심이 어떻게 하나님의 선한 뜻을 반영하는지에 대 해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하나님의 택하심은 세상이 생겨나기 전에
13 ) 1:6의 문구는 ‘에이스 에파이논 독세스 테스 카리토스 아우투’(εἰς ἔπαινον δόξης τῆς χάριτος αὐτοῦ)라고 되어 있다.
II. 복음의 신학적 해설(1:3-3:21)
A. 찬송과 기도(1:3-23)
1.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함(1:3-14)
이루어졌다. 그리스도는 그 택하심의 실행이 가능하게 만든 방편이다 또는
그 관계를 이루셨다. 바울이 말하듯이, 그 택하심은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
있도록 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 택하심은 거룩하고, 흠
없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양자가 된 ( 되어야 하는 ) 신자를 만들
어 냈다. 그 택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를 반영한다. 하나님은 그 은혜로 신자
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이 택하심에는 모든 신령한 복이 포함되며 그것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요약될 수 있다.
3절 바울은 하나님이 비교할 수 없는 복으로 신자에게 복 주셨기 때문에 신자가 하나님 아버지를 “숭배한다”라고 또는 찬송한다고 말한다.14 ) 바울
은 하나님이 모든 신령한 “복”으로 신자들을 “복 주시는” 분이라고 덧붙일
때 동족 분사와 명사를 사용해서 이 개념을 확장한다. 심지어 영어에서는
“복 주다”와 “복”이 반복되는 것이 지닌 강력한 설득력을 느낀다. 바울은
신자를 거룩하고 흠 없게 하기 위해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 들과 딸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택하심에 초점을 맞춤으로 그의 주장을 확장 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바로 그렇게 엄청난 은혜라고 단언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알려져야 한다고 명
시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들이시라는 의미며, 바울은 4장 13절에
서 바로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강조되는 점은 신자의 주님이시며
메시아이신 예수님이다 ( 다음도 보라. 롬 15:6; 고후 1:3; 벧전 1:3 ). 하나님은 “하나님 그
리고 아버지”( 개역개정. “하나님 곧 아버지” ) 라고 묘사된다. 바울이 말하는 “그리
고”라는 접속사는 무엇을 의도하는가? “그리고”라는 말이 두 개의 단수 명
사를 연결하는 이 구문 ( 첫 번째 명사에는 관사가 있다 ) 은 두 번째 명사가 첫 번째
14 ) 바울은 동사적 형용사 ‘율로게토스’(εὐλογητός )로 하나님이 찬송받는다고 단언한다(BDAG 408). Hoehner, 163은 신약에서 이 용어가 하나님만을 말하며 절대 인간을 말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바울은 이어서 하나님이 신자에게 복 주신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분사 형태의 동족
동사 ‘율로게사스’(εὐλογήσας)(BDAG 407-408)를 사용한다. 그 분사는 실사로 이해할 수 있으
며, 그로써 바울은 그 용어를 해당 절의 주명사/주어로 강조하고 하나님의 인격 또는 성품의 핵
심 요소가 복 주시는 분이라는 점을 나타낼 것이다. 또는 그 분사는 한정 용법이 될 수도 있다. 그
런 경우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의 복 주시는 행동을 강조했을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인격을 두
드러지게 복 주시는 분으로 한정하는가? 아니면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복 주시고(1:3), 예정하시고(1:5), 나타내시는(1:9) 등의 일을 하시는 분에게 초점을 맞추고자 하
는가? 전자 쪽에 더 무게가 실린다. 바울이 다른 두 경우(1:5, 9)와는 달리, 1:3에 나오는 분사 앞
에 관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게다가 바울은 그다음 절에서 하나님의 행동을 묘사하기
위해 정형 동사 “그가 택하셨다”를 사용한다.
에베소서
명사를 더 상세히 묘사한다는 것을 나타낸다.15 )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밝힌다. 바울은 이 문구로 신성에 대한 복합적 이해를 나타
낸다. 바울은 하나님이 언제나 아버지였으며, 함축적으로 언제나 아들이 있
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아버지가 아니었던
때는 한 번도 없으며, 아들이 안 계셨던 때도 한 번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
는 “우리 주”로 규정되고, 그것은 구약에서 하나님에 대해 사용되는 호칭이
었지만, 여기서는 메시아 예수에게 적용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주”라는 호칭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고린도인에게 “한 하나님 곧 아버
지”와 “한 주 예수 그리스도”( 고전 8:6 ) 가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바울은 신
자가 아버지의 아들과 딸이 되게 하셨다고 단언하면서 이 신학적 실상의
직접적인 결과를 말한다 ( 엡 1:5 ).
그분 자신이 복된 분이신 하나님은 신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
모든 신령한 복을 부으심으로 이것을 나타낸다. 바울은 하나님의 복을 묘사 하면서 “신령한”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것을 바울이 물질적
복을 거부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바울이 역설하는 것은 우주 적 복이다. 그 복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만큼이나 무제한적이라는 것 이다. 그 복은 시간 이전에 계시며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으시는 분이 주 신다. 그 복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된 관계와 관련되어 있다. 덧붙여, 바울은 “신령한”이라는 말로 아마 이 복을 손에 넣 을 수 있게 해 주는 성령의 역사를 암시할 것이다 ( 또한 1:13-14; 골 1:9; 3:16도
보라 ). 16 ) 바울은 에베소서 5장 18-29절에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과
서로 신령한 노래를 하는 것에 대해 말할 때 이 점을 더 명백하게 말한다. 교회의 신령한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다. 하나
님의 성품은 바로 그 자체가 복을 주시며,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을 찬송해
야 한다.
15 ) Daniel B. Wallace, Greek Grammar: Beyond the Basics; An Exegetical Syntax of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Zondervan, 1996), 270–274, 735에 나오는 그랜빌 샤프의 법칙을
보라.
16 ) MacDonald, 197은 이렇게 말한다. “신약에서 보통 그렇듯이, ‘신령한’(‘프뉴마티코스’)이라는
형용사의 사용은 하나님의 복에서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말한다.”
II. 복음의 신학적 해설(1:3-3:21)
A. 찬송과 기도(1:3-23)
1.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함(1:3-14)
에베소서에만 나오는 색다른 문구가 여기서 처음 나온다. 그것은 “하늘
그 문구는 한 번은
신자들이 일으키심을 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앉는 것을
강조하며 ( 2:6 ), 두 번은 하늘에 살며 지금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
속 계획을 아는 ( 3:10 ) 하지만 하나님의 신실한 추종자를 해치려고 적극적으
로 애쓰는 ( 6:12 ) 하늘에 거하는 영적 세력을 강조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 문
구는 지상의 장소와 하늘의 장소를 구분한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뒷받침하는 하나님의 능력 및 영원하심과 관련된 더 광범위한 비유
적 의미를 지닌다.17 ) 악한 세력 또한 하늘에 살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통해 그곳에 우리가 그분과 함께 있을 장소를 확보해 놓 으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복을 베푸신다. 그 문구는 구속, 부활, 앞으 로 올 세상에 대한 바울의 상상력을 지배한다. “그리스도 안에”라는 문구는
복 주시는 분인 하나님을 묘사하는 세 개의 전치사구 중 세 번째다.18 ) 바울
은 “그리스도 안에”라는 문구 및 이와 비슷한 문구를 그의 서신서에서 광범
위하게 사용한다. 게다가 이 문구는 이 서신서에서 많은 힘든 일을 한다.19 )
기본적인 신학적 의미는 동화, 통합, 참여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
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20 ) 바울은 그리스도의 구속 역사의 객관적 성
질, 또는 신자가 그 구원에서 공유하는 주관적 경험, 또는 그리스도의 추종 자에게 의무로 지워지는 윤리적 명령 등을 암시할 수 있을 것이다.21 ) 문맥
17 ) MacDonald, 196은 “지역적 의미: 하늘 영역 또는 장소”라고 본다. 또한 Lincoln, 20을 보라. 그
는 그 문구가 “영적 복의 영역을 지칭한다”라고 주장한다. Arnold, 78은 하늘의 것들이 “악한 영
적 권능이 사는 영역일 뿐 아니라 신자가 지금 다가갈 수 있는 신령한 복의 영역”이라고 설명
한다.
18 ) Arnold, 78.
19 ) Hoehner, 173-174는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과 그와 유사한 말들이 나오는 모든 경우를 나열하
는데, 총 39번이다. Lincoln, 21은 그 문구가 이 본문에서만 11번 나온다고 말한다.
20 ) Constantine R. Campbell, Paul and Union with Christ: An Exegetical and Theological Study (Grand Rapids: Zondervan, 2012)는 바울의 자료에 나오는 이 문구에 대한 탁월한 논의를 제시
한다. 21 ) 게다가, 전치사 ‘엔’(ἐν)은 상당히 융통성이 있으며, 신약에서 대단히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그 의
미는 문맥에 따라 좌우되는데, 그로 인해 “그리스도 안에”라는 바울의 문구가 무슨 의미인지 결
정하기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그 전치사는 장소적, 수단적, 또는 영역적 함축을 지닌다. 영역적
의미는 영향력 또는 통제의 영역, 그리스도가 신자에게 미치는 개인적 영향에 초점을 맞춘다. 공
간적/장소적 의미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장소를 말함으로써 “어디”라는 질문에 답한다(2:6).
Hoehner, 171-172와 Thielman, 47은 여기 1:3에서 바울은 그 영역 안에 구원이 있는 분인 그리
스도 안에 통합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영역적 뉘앙스와 결합된 장소적 의미를 사용한다고 제
안한다. 수단적 용법은 어떤 것이 성취되는 방식이나 수단, 즉 “그리스도로 말미암아”(1:3)를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