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NICOT 창세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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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ot

nicot

on the old testament

NICOT 주석 시리즈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구약이라는 험준한 산맥을 횡단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도와 왔습니다. 최고의 구약 주석으로 자리매김한 NICOT는 신 학자, 목사, 랍비, 신학생을 아우르는 폭넓은 독자층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창세기 Ⅱ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nicot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NICOT 시리즈의 모든 주석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하는 복음주의의 입장 을 견지하면서 학문적인 탁월함과 신앙적인 적용을 함께 추구하고 있습니다. 서론에서 는 저자, 기록 시기, 기록 목적, 구조, 신학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본문에서는 히브리어 원문에 대한 저자의 사역과 본문에 대한 세밀한 주석을 제시합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 님의 음성을 새롭게 듣고자 하는 독자들은 이 주석 시리즈가 구약이라는 낯선 세계로

지은이 빅터 해밀턴(Victor P. Hamilton) 브랜다이스 대학교에서 지중해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Ph. D.)를 받았고, 애즈베리 신학교에서 37년

빅터 해밀턴 지음

떠나는 여정에 도움을 주는 신실하고 신뢰할 만한 안내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간 구약학을 가르치면서 오경 연구에 몰두했다. 해밀턴은 고대 근동의 문화와 언어에 대한 풍부한 지 서 개론』, 『출애굽기 주석』 등이 있다.

옮긴이 임요한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했고, 남아공에 있는 프레토리아 대학교에서 구약학 박사학위(Ph. D.) 를 받았다. 『구약 주해와 텍스트 언어학』을 저술했고, 『한 권으로 읽는 조나단 에드워즈 신학』, 『구 약과 신약의 관계』(이상 부흥과개혁사) 등을 번역했다.

임 | 요한 옮김

식을 토대로 이번 NICOT 시리즈의 창세기 주석을 저술했으며, 그 밖의 저술로는 『오경 개론』, 『역사

창세기Ⅱ Genesis 18~50 빅터 해밀턴 지음 | 임요한 옮김

ISBN 978-89-6092-534-2 978-89-6092-335-5(세트)

www.rnrbook.com

값 48,000원


창세기 II

목차 ■ 저자 서문 │ 12 ■ 약어 소개 │ 14

II. 아브라함 이야기(18:1~25:18) | 22 G. 여호와의 소돔 방문(18:1~33) • 22 1. 주인 아브라함(18:1~15) • 22 2. 중재자 아브라함(18:16~33) • 36 H.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19:1~38) • 52 1. 주인과 보호자로서의 롯(19:1~11) • 52 2. 롯과 사위(19:12~14) • 64 3. 롯이 소돔에서 출발하다(19:15~22) • 67 4. 소돔 심판의 날(19:23~29) • 71 5. 롯과 롯의 딸들(19:30~38) • 76 I. 그랄에서의 아브라함과 사라(20:1~18) • 85 1. 사라: 아내인가 누이인가?(20:1~7) • 85 2. 비난받는 아브라함(20:8~18) • 93 J. 이삭과 이스마엘(21:1~34) • 102 1. 이삭 출생(21:1~7) • 102 2. 하갈과 이스마엘 추방(21:8~21) • 106 3. 우물에 대한 갈등(21:22~34) • 119 K. 이삭을 묶음(22:1~24) • 132 1.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다(22:1~19) • 132 2. 나홀의 가족(22:20~24) • 155 L. 아브라함의 가족 장지 구입(23:1~20) • 163 1. 사라의 죽음(23:1~9) • 163 2. 아브라함과 에브론(23:10~20) •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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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이삭을 위한 아내 찾기(24:1~67) • 178 1. 아브라함이 종에게 지시하다(24:1~9) • 178 2. 종이 리브가를 만나다(24:10~27) • 184 3. 종이 라반을 만나다(24:28~49) • 193 4. 종과 리브가가 떠나다(24:50~61) • 200 5. 리브가가 이삭을 만나다(24:62~67) • 205 N. 아브라함 사이클의 결말(25:1~18) • 210 1. 아브라함의 죽음(25:1~11) • 210 2. 이스마엘의 죽음과 그의 아들들(25:12~18) • 216

III. 이삭/야곱 사이클(25:19~36:43) | 222 A. 에서와 야곱의 출생(25:19~26) • 222 B. 에서가 장자권을 포기하다(25:27~34) • 230 C. 이삭과 아비멜렉(26:1~35) • 241 1. 음식과 진리의 기근(26:1~11) • 241 2. 다툼에 이른 질투(26:12~22) • 252 3. 이삭과 아비멜렉 사이의 맹세(26:23~33) • 256 4. 에서의 헷 사람 아내(26:34~35) • 265 D. 야곱이 속임수로 축복을 받다(27:1~45) • 267 1.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기 위해 준비하다(27:1~5a) • 267 2. 리브가가 야곱에게 이삭을 속이도록 부추기다(27:5b~17) • 270 3. 야곱이 이삭을 속이다(27:18~29) • 274 4. 에서가 아버지의 축복을 구하다(27:30~40) • 280 5. 리브가가 야곱에게 도망가라고 재촉하다(27:41~45) •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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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II

E.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다(27:46~28:22) • 291 1. 떠난 야곱과 삐뚤어진 에서(27:46~28:9) • 291 2.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다(28:10~22) • 296 F. 야곱이 라반과 라헬을 만나다(29:1~35) • 314 1. 야곱이 하란에 도착하다(29:1~8) • 314 2. 야곱이 라헬과 라반을 만나다(29:9~14) • 317 3. 야곱이 라헬을 위해 7년을 섬기다(29:15~20) • 321 4. 야곱이 라반에게 속다(29:21~30) • 324 5. 야곱이 레아에게서 낳은 네 아들(29:31~35) • 330 G. 야곱이 자녀들과 양떼를 얻다(30:1~43) • 335 1. 야곱이 빌하에게서 낳은 자녀들(30:1~8) • 335 2. 야곱이 실바에게서 낳은 자녀들(30:9~13) • 339 3. 레아가 야곱에게 자녀를 더 낳다(30:14~21) • 340 4. 라헬이 요셉을 낳다(30:22~24) • 344 5. 야곱의 소유가 불어나다(30:25~43) • 346 H. 야곱이 라반에게서 도주하다(31:1~54) • 354 1. 야곱과 그의 아내들이 라반을 떠나기로 결심하다(31:1~16) • 354 2. 야곱이 라반의 집을 떠나 도주하다(31:17~21) • 360 3. 라반이 야곱과 그 일행을 따라잡다(31:22~35) • 367 4. 야곱의 변명(31:36~42) • 376 5. 언약 협상(31:43~54) •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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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인간과 하나님의 만남(31:55~32:32[히. 32:1~33]) • 391 1. 마하나임에서의 천사와 만남(31:55~32:2[히. 32:1~3]) • 391 2. 야곱이 에서를 만날 준비를 하다(32:3~12[히. 32:4~13]) • 393 3. 에서를 만나러 가다(32:13~21[히. 32:14~22]) • 400 4. 브니엘에서의 야곱(32:22~32[히. 32:23~33]) • 403 J. 야곱이 에서와 화해하다(33:1~20) • 418 K. 디나가 부끄러운 일을 당하다(34:1~31) • 432 1. 디나가 욕보다(34:1~7) • 432 2. 하몰과 세겜이 주장하다(34:8~12) • 439 3. 야곱의 아들들이 제안하다(34:13~17) • 443 4. 세겜의 남자들이 할례를 받다(34:18~24) • 446 5. 야곱의 아들들이 보복하다(34:25~31) • 450 L. 세겜에서 벧엘을 거쳐 마므레까지(35:1~29) • 457 1. 신상을 묻다(35:1~4) • 457 2. 야곱이 벧엘에 도착하다(35:5~8) • 461 3. 야곱은 진정으로 이스라엘이다(35:9~15) • 464 4. 출생과 죽음, 그리고 근친상간(35:16~22a) • 468 5. 야곱의 가족(35:22b~29) • 474 M. 에서 족속과 에돔 족속(36:1~43) • 478 1. 에서의 직계 가족(36:1~8) • 478 2. 에서의 아들과 손자들(36:9~14) • 481 3. 에서에게서 나온 부족들(36:15~19) • 484 4. 세일의 계보(36:20~30) • 486 5. 에돔 왕들(36:31~39) • 488 6. 에서의 종족들(36:40~43) • 491 7


창세기 II

IV. 요셉 이야기(37:1~50:26) | 494 A. 요셉이 노예로 팔리다(37:1~36) • 494 1. 요셉이 형제들과 충돌하다(37:1~11) • 494 2. 요셉이 형제들을 찾으러 가다(37:12~17) • 504 3. 형들이 요셉을 죽이기로 모의하다(37:18~24) • 507 4. 요셉이 애굽으로 향하는 상인에게 팔리다(37:25~30) • 512 5. 야곱이 속다(37:31~36) • 518 B. 유다와 다말(38:1~30) • 524 1. 자녀 없는 과부 다말(38:1~11) • 524 2. 다말이 유다를 속이다(38:12~19) • 533 3. 다말이 혐의를 벗다(38:20~26) • 541 4. 베레스와 세라의 출생(38:27~30) • 549 C. 보디발 집에서의 요셉(39:1~23) • 554 1. 보디발 집을 책임지는 요셉(39:1~6) • 554 2. 요셉이 보디발 아내의 구애를 거부하다(39:7~12) • 560 3. 요셉이 강간 미수로 고발당하다(39:13~18) • 565 4. 요셉이 감옥에 갇히다(39:19~23) • 569 D. 요셉이 동료 죄수들의 꿈을 해석하다(40:1~23) • 574 1. 곤경에 처한 바로의 종들(40:1~8) • 574 2. 술 맡은 관원장의 꿈과 꿈 해석(40:9~15) • 578 3. 떡 굽는 관원장의 꿈과 꿈 해석(40:16~23) •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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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요셉이 애굽에서 고위직을 차지하다(41:1~57) • 586 1. 바로의 두 꿈(41:1~8) • 586 2.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다(41:9~13) • 591 3. 요셉을 바로 앞에 데려오다(41:14~16) • 593 4. 바로가 그의 꿈을 이야기하다(41:17~24) • 595 5.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하다(41:25~32) • 598 6. 요셉이 바로에게 하는 조언(41:33~36) • 602 7. 요셉이 총리가 되다(41:37~46) • 604 8. 풍년과 흉년(41:47~57) • 614 F. 요셉의 형들이 애굽으로 오다(42:1~38) • 620 1. 야곱이 열 아들을 애굽으로 보내다(42:1~5) • 620 2. 요셉과의 첫 대면(42:6~17) • 623 3. 형들이 떠나고 시므온이 남다(42:18~26) • 631 4. 아들들이 야곱에게 돌아가다(42:27~38) • 638 G. 형제들이 베냐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오다(43:1~34) • 648 1. 아버지와 아들들의 불화(43:1~10) • 648 2. 베냐민이 떠나도록 이스라엘이 허락하다(43:11~14) • 654 3. 형제들이 애굽으로 돌아오다(43:15~25) • 658 4. 요셉과 베냐민이 만나다(43:26~34) • 664 H. 베냐민: 도둑?(44:1~34) • 670 1. 요셉의 은잔을 베냐민의 자루에 넣다(44:1~5) • 670 2. 은잔을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하다(44:6~17) • 673 3. 유다가 베냐민을 위해 호소하다(44:18~34) • 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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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II

I. 요셉이 자신을 형제들에게 드러내다(45:1~28) • 688 1.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45:1~8) • 688 2. 요셉이 야곱에게 전하는 메시지(45:9~15) • 696 3. 바로가 요셉의 초대를 승인하다(45:16~20) • 700 4. 형제들이 야곱에게 돌아가다(45:21~28) • 703 J. 야곱과 그의 가족이 애굽에 정착하다(46:1~34) • 707 1. 야곱이 가나안을 떠나 애굽을 향하다(46:1~7) • 707 2. 야곱의 확대된 가족(46:8~27) • 713 3. 야곱과 요셉이 만나다(46:28~34) • 720 K. 야곱과 바로가 지주가 되다(47:1~26) • 726 1. 바로가 요셉의 다섯 형제를 만나다(47:1~6) • 726 2. 바로가 야곱을 만나다(47:7~12) • 731 3. 요셉의 농경 계획(47:13~26) • 736 L. 야곱이 아들과 손자들을 축복하다(47:27~48:22) • 745 1. 요셉에게 하는 야곱의 마지막 요청(47:27~31) • 745 2. 요셉이 병든 아버지를 방문하다(48:1~7) • 750 3. 야곱 앞의 에브라임과 므낫세(48:8~16) • 756 4. 야곱이 요셉의 교정을 거부하다(48:17~22) • 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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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야곱의 유언(49:1~33) • 771 1. 르우벤(49:1~4) • 771 2. 시므온과 레위(49:5~7) • 775 3. 유다(49:8~12) • 780 4. 스불론(49:13) • 790 5. 잇사갈(49:14~15) • 792 6. 단(49:16~18) • 796 7. 갓(49:19) • 800 8. 아셀(49:20) • 801 9. 납달리(49:21) • 803 10. 요셉(49:22~26) • 806 11. 베냐민(49:27) • 815 12. 야곱의 마지막 지시(49:28~33) • 816 N. 야곱과 요셉의 죽음(50:1~26) • 819 1. 요셉이 야곱의 죽음을 애도하다(50:1~6) • 819 2. 요셉이 가나안에 아버지를 장사하다(50:7~14) • 823 3. 역경 속에서도 승리하는 하나님의 뜻(50:15~21) • 829 4. 요셉의 죽음(50:22~26) • 839 ■ 참고문헌 │ 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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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II

┃ 저자 서문 ┃

금세기의 전형적인 설교학자이자 성직자 중 한 명인 고 폴 리스( Dr. Rees )

Paul

박사는 왕성하고 유창한 작가로서 한때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글 쓰는 것을 더 좋아하십니까?”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예, 저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저는 글쓰기를 마친 것을 더 좋아합니다.” 나는 그의 의견에 공감한다. 몇 년 전 이 주석 작업을 수락했을 때, 나는 이것이 길어질 것이고 완성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릴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 제 나는 글쓰기를 마쳤다. 시작했고, 진전이 있었고, 이제 끝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원고를 완성하기란 불가능했 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편집장 R. K. 해리슨 박사님께 감사드린다. 이 제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가 저 위에서 이 주석을 만족스럽게 봐 주길 바란다. 다른 출판사들뿐 아니라 이 NICOT 시리즈에 기여하는 우리 모두는 가장 최근의 성서학에 참여함에 그의 열정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 다. 그는 엉성하고 시시한 것을 적대시했다. 나는 또한 이곳 켄터키주 윌모어시에 있는 애즈베리 신학교 도서관 직원 들에게 큰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 대학 도서관에서 찾을 수 없는 자 료들을 이 도서관에서 찾아서 보여 주었다. 그들은 나를 도와주려고 여러 번 참고문헌 자료실의 미로 속을 동행했다. 이 창세기 주석의 상권과 마찬가지로, 나의 편집장은 개리 리( Gary Lee ) 였 다. 그는 나의 치명적인 실수를 잡아낼 수 있을 만큼 철저하고, 전문적이며 12


총명했으며, 내 원고와 창의적이고 꼼꼼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을 만큼 고무 적이었다. 내가 보낸 주석을 철저히 조사한 것에, 그리고 그의 제안과 권고 에 감사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 사랑하는 아내 셜리( Shirley ) 의 지속적인 지지와 격려 에 다시 한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내는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 할 수 있게” 쓰도록 나를 여전히 부추기며 계속해서 내 옆을 지켰다. 아내 는 1권 대부분과 2권의 더 많은 부분을 “산업계의 모델 T”로 불리는 내 구 형 애플 IIe 컴퓨터로 타이핑했다. 학자와 비학자의 조언을 반영한 이 주석을 우리 주님이 축복하셔서 이 주 석이 그분의 말씀과 또 말씀을 넘어 그분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구로 사용 되길 바란다. 빅터 P. 해밀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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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II

G. 여호와의 소돔 방문 ( 18:1~33 ) 1. 주인 아브라함 ( 18:1~15 ) 18: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 에 앉아 있다가 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1)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

이르되 내 주여 2)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 지 마시옵고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3) 아래에서 쉬소서 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Yahweh appeared to him by the terebinths of Mamre; he was sitting at the opening of the tent as the day grew hotter. 2 He looked up and spotted three men standing beside him. Upon seeing them he rushed from the opening of the tent to meet them, and bowed to the ground. 3 He said: “My lord, if I have found favor in your eyes, please do not pass by your servant. 4 Let a bit of water be fetched so that you may bathe your feet and rest yourselves under the tree. 5 I will get a morsel of bread so that you can be refreshed. After that you may go 1

1 ) 신적인 존재가 인간에게 다시 나타남을 표현하려고 ‘나차브 알’을 조합한 것에 대해 다음을 참 고하라. 창 28:13; 암 7:7; 9:1. 신현과 관련된 ‘나차브 베’는 다음을 보라. 민 22:23, 31; 시 82:1; 119:89. 비슷한 맥락에서 연관된 동사 ‘야차브’(히트파엘로만)는 다음을 보라. 출 34:5; 민 22:22; 삼상 3:10. ‘나차브’(니팔)는 다음을 보라. 출 33:21, 34:2; 신 29:10(히. 9절). ‘야차브’(히트파엘) 는 다음을 보라. 출 14:13, 19:17; 신 31:14; 수 24:1; 시 2:2. 2 ) 여기서 마소라 본문은 ‘아도나이’(주님)로 되어 있으며, 이는 처음부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하나

님으로 인식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나의 번역 “내 주님”은 본문을 ‘아도니’로 읽는다. 아브라함 은 방문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발을 위한 물을,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을 주었을 것 같지 않다. 또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이렇게 일찍 인식하는 해석은, 이 내러티브에서 아브라함 에게 하나님의 정체를 점차적으로 계시하는 개념과는 충돌될 것이다(10, 13, 17~22절). 다음의 긴 설명을 보라, Speiser, Genesis, p. 129. 스파이저(Speiser)는 아브라함이 어떤 방법을 통해 셋 가운데 하나를 인도자로 확인하고 3절에서 그 인도자에게 말했다고 제안함으로써, 3절의 단수와 4~5절의 복수를 조화시킨다.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4절 이후에서 나머지 둘을 포함했다. 또한 아브 라함이 셋 모두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모음을 ‘아도나이’(주님들)로 읽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하 려면 나머지 절에서 “네 눈”, “지나가지 마소서” 그리고 “네 종”을 단수(MT처럼)에서 복수(사마리 아 오경이 한 것처럼)로 바꿔야 할 것이다. 3 ) ‘에츠’는 구약에서 대략 320회 나오는데, 대부분의 경우 70인역은 ‘질론’으로 번역한다. ‘에츠’를 ‘덴드론’으로 번역하는 일부 경우(여기, 8절, 23:17; 민 13:21; 그리고 약 12회 더), 큰 나무를 의 미한다. B. Paradise, “Food for Thought: The Septuagint Translation of Genesis 1:11~12,” in A Word in Season: Essays in Honour of William McKane, ed. J. D. Martin and P. R. Davies, JSOTSup 42 (Sheffield: JSOT, 1986), p. 194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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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아브라함 이야기(18:1~25:18) G. 여호와의 소돔 방문 ( 18:1~33 ) 1. 주인 아브라함 ( 18:1~15 )

마음을 상쾌하게4) 하신 후에 지나가소 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 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

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 5) 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6) 그 들이 먹으니라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7)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

on — now that you have come by your servant.” They answered: “Very well, do as you have spoken.” 6 Abraham went quickly back to the tent to Sarah. “Hurry,” he said, “three seahs of fine flour, knead and make cakes.” 7 And Abraham ran to the flock, and took a tender and choice calf, gave it to the young man, and he quickly prepared it. 8 He then took curds and milk, and the calf which he had prepared, and placed these before them. He was standing by them under the tree while they ate. 9 “Where is your wife Sarah?” they asked. “In the tent,” he replied. 10 One (of them) said: “At this time next year I will surely return to you, and by then Sarah your wife shall have a son.” Sarah had been eavesdropping at the

4 ) 동사 ‘사아드’는 “(음식으로) 기운 나게 하다”를 의미한다. 삿 19:5, 8; 삼하 24:15(기운 나게 하는 시간, 저녁 시간)를 보라. 왕상 13:7; 시 104:15. 5 ) 스아는 밀가루와 곡물을 위한 측정 단위다(삼상 25:18; 왕상 18:32; 왕하 7:1, 16, 18). 정확한 크기

는 분명하지 않다. 부셸의 1/10에서 1/3까지 제안하거나(IDB, 4:834~35), 약 7~12쿼트로 제안한 다(ISBE, 4:1050~51). 6 ) 또는 “그 자신이 그들을 기다렸다/기다리고 있었다.” 7 ) 여기서와 14절에 나오는 ‘카에트 하야’(“사는 동안”, “사는 시기에”?)의 정확한 의미는, 모두 가 가까운 미래 어느 시간을 가리킨다고 동의하지만, 임신 기간 즉 9개월을 가리키는지(Skinner, Genesis , p. 301을 보라. 또한 A. B. Ehrlich, Randglossen zur hebräischen Bibel [Leipzig: Hinrichs, 1908], 1:72를 보라. 엘리치[Ehrlich]는 “태아가 태어나는 데 필요한 시간”이라고 규정 한다) 의문의 여지가 있다. “내년 이 시간”이라는 번역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내년”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아카드어 표현 ‘아나 바라트’( 직역하면 “삶에”[to life])에서 발견된다. R. Yaron, “KAʽETH ḤAYYAH AND KOH LEḤAY,” VT 12 (1962) 500~501; O. Loretz, “kʽtḥyh—‘wie jetzt ums Jahr’ Gen 18,10,” Bib 43 (1962) 75~78을 보라. ‘하야’가 형용사라면, 관사가 없다는 것은 이상하다. 따라서 야론(Yaron)은 ‘하야’를 ‘에트’의 속성이 아닌 명사로 읽는다(“내년 이맘 때”). 드라이버 (G. R. Driver, “A Lost Colloquialism in the Old Testament,” JTS 8 [1957] 272 n. 2)는 ‘하야’ 가 형용사든 분사든 ‘하야’ 앞에 관사를 생략하는 것은 옳다고 지적하는데, 왜냐하면 이것이 묘사 하는 별칭일 뿐 아니라, 서술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드라이버는 창 37:2; 시 94:3; 렘 16:16; 겔 34:13; 학 1:3을 인용한다. 참고, GKC, § 118u; BDB, p. 312a; O. Margalith, “More Samson Legends,” VT 36 (1986) 397 n. 2; idem, “Some Aspects of Terms Denoting Time in the Bible”(히브리어), Beth Mikra 89~90 (1982) 198~200. “내년 이맘때”라는 번역은 분명하게 “내 년 이때 즈음에”를 의미하는 17:21의 ‘바샤나 하아헤레트’라는 병행 구절이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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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II

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8) 사라 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

었고9)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 졌는지라10)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11)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12) 내 주인도 늙었으니13) 내 게 무슨 즐거움이14)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 거늘 어떻게15)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

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 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opening of the tent which was just behind him. 11 Abraham and Sarah were elderly, advanced in days; Sarah had reached menopause. 12 Sarah laughed inwardly, saying: “Now that I am worn out, shall I experience pleasure, even though my husband is old?” 13 Yahweh said to Abraham: “Why did Sarah laugh, saying: ‘Will I indeed really give birth even though I am old?’ 14 Is anything too demanding for Yahweh? At the appointed time I will return to you, at this time next year, and for Sarah there will be a son.” 15 Because she was afraid, Sarah lied,

8 ) ‘베히네’를 시간 관련 의미로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D. J. McCarthy, “The Uses of wᵉhinnēh in Biblical Hebrew,” Bib 61 (1980) 337을 보라. 9 ) “나이가 많아”(날이 가다)라는 구절에 대해 다음을 보라. 창, 24:1; 수 13:1, 23:1; 왕상 1:1.

날은 사람이 통과해서 지나가는 무언가로 간주된다. S. J. DeVries, Yesterday, Today and Tomorrow(Grand Rapids: Eerdmans, 1975), p. 44 n. 60 참고. 분사를 사용한 것은, 나이 드는 과정이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가리키며, 사라가 아직은 아이를 낳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11절의 다음 구절(“생리가 끊어졌는지라”)은 이 가능성을 배제한다. 10 ) 직역하면 “사라에게 여자(로서?)의 길이 멈췄다.” ‘오라흐 카나쉼’에서 문제가 되는 ‘카’는 성경 히브리어에서 구문 k의 예로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 F. Andersen, “A Short Note on Construct k in Hebrew,” Bib 50 (1969) 69를 보라. 11 ) 히브리어 ‘이츠하크 사라 베키르바’에 대해 다음을 참고하라, UT, 75:I:12~13. ’il yẓḥ q bm lb wygmś bm kbd, “엘이 그의 마음에 웃었고, 그의 속에서 기뻤다.” 다음을 보라. H. L. Ginsberg, “Baʽluand his Brethren,” JPOS 16 (1936) 140 n. 3. 다음을 또한 보라. M. Niehoff, “Do Biblical Characters Talk to Themselves? Narrative Modes of Representing Inner Speech in Early Biblical Fiction,” JBL 111 (1992) 583~85. 12 ) “노쇠하다”를 가리키는 동사 ‘발라’는, 신 8:4과 29:5(히. 4절)에 이스라엘이 광야를 건널 때 낡 지 않는 옷과 신발을 언급하는 데서 다시 나온다. 이 단어는 여자를 가리킬 때 (형용사 형태로) 한 번만 더 사용된다. 겔 23:43은 나이가 들거나 간음으로 녹초가 된 여자를 언급한다. 13 ) 직역하면 “그리고.” 여기와 13절에서 ‘바브’는 양보절을 소개하며, 이는 “~일지라도”로 번역될 수 있다. GKC, § 141e를 보라. 14 ) “즐거움”(에드나)을 가리키는 단어는 감각적이며 성적인 즐거움의 강한 어감을 지닌다. BDB, p. 726b를 보라. 또한 이 단어는 태고적 동산, 에덴, “기쁨의 동산”과 연결된다. 15 ) 긴즈버그(H. L. Ginsberg, The Legend of King Keret [New Haven: 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1946], pp. 42, 44)는 ‘아프’가 구약에서 질문을 가리키는 예로 창 18:13, 23, 24과 암 2:11b을 인용한다. 그러나 각 경우에 ‘아프’는 의문사 ‘헤’에 의해 준비되는데, 이는 ‘아 프’ 자체가 의문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BDB, p. 65a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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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아브라함 이야기(18:1~25:18) G. 여호와의 소돔 방문 ( 18:1~33 ) 1. 주인 아브라함 ( 18:1~15 )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 니라

16)

네가 웃었느니라

saying, “I did not laugh.” But he said, “No, you laughed.”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은 이삭이 앞으로 태어날 것이라고 미리 통보받는 다. 이것은 여호와와 그분의 수행원이 소돔의 상황을 조사하려고 거기로 여 행하는 동안 일어난다. 아브라함은 18장에서 두 가지 완전히 다른 역할로 나온다. 18장의 전반부에서 아브라함은 최대한 존중하며 방문자를 대접하 는 예의 바르고 경의를 표하는 주인이다. 18장의 후반부에서 그는 소돔을 위해 여호와 앞에 호소하는 솔직한 중재자로 나온다. 또한 아브라함이 방문 자들을 어떻게 대접했는지( 18장 ) 와 소돔 사람들이 동일하게 대표자를 어떻 게 대접했는지( 19장 ) 가 분명하게 대조된다. 1절 이전 계시를 마칠 때,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의 시야에서 사라지셨

다( 17:22 ). 아브라함이 이제 뜨거운 날에 마므레 상수리 나무가 위치한 장막 에서 쉬고 있을 때, 여호와께서는 다시 나타나신다.17 ) 여호와께서 가장 뜨 거운 시점에 아브라함에게 방문하신 것 ( 참고,

삼상 11:11; 삼하 4:5 ) 은,

시원할 때

동산에 있는 아담을 “방문”한 것과 대조된다( 3:8을 보라 ). 2절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자신 앞에 있는 “사람 셋”을 본다.18 ) 그러나 우

16 ) 부정을 의미하는 ‘로 키’라는 표현은, 여기와 19:2, 42:12; 삼상 8:19; 왕상 3:22에서 발견된다. 호 프만(Y. Hoffmann)이 성경 히브리어에서 ‘로’를 독립절로 사용해서는 절대 부정을 표현할 수 없 고 ‘로’에는 추가 단어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것 같다(“Did Amos regard himself as a nāḇī’?” VT 27 [1977] 209~10). 여기서 부정적 진술 다음에 긍정적인 진술을 소개하는 역접의

요소가 있다. 즉 “아니다(15a절에서의 네 부정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너는 분명 웃었다.” 다 음을 보라. Z. Zevit, “Expressing denial in Biblical Hebrew and in Mishnaic Hebrew, and in Amos,” VT 29 (1979) 505~8과 p. 508 n. 6. 17 ) 마므레의 “테레빈 나무/상수리나무”를 언급하는 다른 곳은 다음과 같다. 13:18, 14:13. 이 두 구 절은 이 장소를 아브라함이 거주하는 장소로 지목한다. 14:13에서 아브라함은 마므레에서 간담 을 서늘하게 하는 소식(롯이 사로잡혔음)을 갖고 방문한 사람을 맞이한다. 18:1ff에서 아브라함 은 기쁜 소식(사라가 곧 아이를 낳을 것이다)을 가지고 온 신적인 방문객을 맞이한다. 13:18이 마므레를 예배 장소로 언급하는 유일한 본문이다. 23:17에서는 마므레가 족장들과 아내들이 장 사된 막벨라 굴 옆에 위치한다고 한다. 구약은 창세기 이외에 마므레를 언급하지 않는다. 드보(R. de Vaux)는 마므레를 성경 이후에서 언급하는 것을 인용한 후, 나머지 구약에서 이 장소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마므레에서 번성했던 혼합주의적 의식에 대해 정통주의 여호와 신앙이 부끄럽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제안한다(Ancient Israel, 2:292~93). 제롬이 히브리어 ‘엘론’(테레빈 나무, 상수리나무)을 ‘콘발리스’(12:6, 13:18, 14:13, 18:1)와 ‘발리스’(신 11:30; 삿 4:11), “평원, 골짜 기”라고 번역한 것은 Targ. mysr에서도 예상됨을 주목하라. 18 ) 직역하면 “그가 눈을 들어 본즉…….” “눈을 들다”라는 관용구에 대해 다음을 보라. S. C. Reif, “A root to look up? A study of the Hebrew nś’ ʽn,” in Congress Volume: Salamanca, 1983, ed. J. A Emerton, VTSup 36 (Leiden: Brill, 1985), pp. 230~44. 라이프(Rief)는 “nś’ ʽn구절에서 보는 요소와 관련된 의식적인 지적 결정이 있다. 이것이 시각적 이해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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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II

리에게는 분명하지 않은 이유에서, 아브라함은 다음 절에서 한 사람에게만 말을 건넨다. 과연 이 부분의 흥미로운 특징은 단수에서 복수로 계속 바뀐 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2절에서 세 명, 3절에서 모두 단수, 4절에서 2인칭 복수, 5절에서 다시 2인칭 복수, 9절에서 복수, 10~15절에서 단수, 16절에 서 복수, 17~21절에서 단수, 22절에서 복수로 시작하지만 단수로 끝나며, 22b~33절에서 단수다.19 ) 마찬가지로 19장에서도 복수에서 단수로 바뀌거나 사자에서 하나님으로 바뀐다. 소돔에서 롯이 “내 주여”( 아도나이 ) 라고 부른 두 사자가 롯을 방문한 다.20 ) 몇 절 뒤( 17절 ), “그 사람들이( 사자들, 롯의 ‘아도나이’ ) 그들을( 롯과 그의 가족 ) 밖 으로 이끌어 낸 후 이르되 …… ”21 ) 라고 하고, 그 다음으로 18절에서 “롯이 그들에게( 사자들 ) 이르되 내 주여( 단수, 아도나이 ) 그리 마옵소서”가 이어진다. 하나님과 그분의 사자 사이에 동일하게 바뀌는 현상은, 21장 17절( 사자가 하나님과 구분됨 ) 과

18장( 사자가 하나님과 동일시됨 ) 에서 발견된다. 사자와 하나님 사

이에 역동적으로 바뀌는 가장 긴 예가 사사기 6장 7~24절에서나온다. 기드 온에게 인사하는 사자는 여호와와 구분된다 ( 6:12 ). 기드온은 그에게 “주 여”( 아도니 ) 라고 부른다( 6:13 ). 그러나 14절부터 계속 사자와 하나님은 동일하 다. 사실 6장 15절에서 기드온은 그분에게 “내 주여”( ‘아도나이’, 하나님에게만 사용 하는 형태 ) 라고

부른다. 6장 20절에서 “주”는 다시 “하나님의 사자”가 된다( 특

히 22절을 보라 ).

23절 이후에서 사자는 다시 한 번 주가 된다. 마지막으로 삼손

의 어머니를 방문한 신적인 존재는 사사기 13장에서 줄곧 다양하게 “하나 님의 사람”과 “여호와의 사자”로 확인된다. 마노아는 자기 목숨을 두려워 하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라고 말 하기 때문이다( 삿 13:22 ).22 ) 학자들은 창세기 18장에서 복수와 단수로 자주 바뀌는 현상을 여러 방법 적한다(p. 243). 그 다음에 그는 창 18:2, 4를 예로 언급한다. 복수 19 ) 단수 1절 2절 3절 4~9절 10~15절 16절 17~21절 22a절 22b~33절 20 ) 18:3에 아브라함이 “내 주여”(아도나이)라고 한 것과는 대조된다. 21 ) 70인역, 불가타, 페쉬타는 “그들이 말했다”로 읽는다. 하지만, 마소라 본문은 단수 형태로 되어 있으며, 나는 18:10에서처럼 단수로 “(그들 가운데) 하나가 말했다”라는 번역을 제안한다. 22 ) 다음을 보라. M. Takahashi, “An Oriental’s Approach to the Problems of Angelology,” ZAW 78 (1966) 3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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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아브라함 이야기(18:1~25:18) G. 여호와의 소돔 방문 ( 18:1~33 ) 1. 주인 아브라함 ( 18:1~15 )

으로 설명했다. 어떤 이는 이야기의 두 가지 변형된 것이 엉켰다고 제안하 기도 한다. 한 학자는 세 명이 아브라함에게 방문한 것을 강조했다. 다른 학 자는 한 사자가 아브라함에게 방문한 것을 강조했다.23 ) 스파이저 ( E. Speiser ) 는

A.

두 번째를 제안했는데( 각주 2번에서의 언급을 보라 ), 때로 아브라함이 집

단을 부르고 때로는 한 인도자만 부른다고 함으로써 단수와 복수를 조화시 킨다. 존슨( A. R. Johnson ) 은 19장 1, 15절이 아브라함을 방문한 세 명 가운데 둘을 ‘말라킴’( 사자 ) 이라고 언급함을 지적하면서, 창세기 18장이 이스라엘 족속의 하나님이라는 개념에서 하나와 다수 사이에 주저한다는 또 다른 예 를 제공한다는 의견을 제기했다.24 ) ‘엘로힘’은 하나이면서 동시에 하나 이 상이며, 이 개념 위에 신약의 삼위일체 교리가 세워진다. 창세기 18장의 사건 진행은 전형적인 히브리어 내러티브 문체로 기록된 다. 저자는 먼저 저자 자신의 관점에서 일어난 일을 묘사한다( 1절 ). 그 다음 으로 저자는 이야기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자가 어떻게 발견했는지를 계속 서술한다( 2절

이후 ).

똑같은 진행이 19장에서도 발견된다. 또한 우리는 모세

가 하나님을 만난 후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난 사건을 비교할 수 있다 ( 출 34:29 ).

결국에는 모세 자신이 이 광채를 알아차렸다. 저자와 독자는 호렙에

서 떨기나무가 왜 불타는지 알고 있다( 출 3:2 ). 하지만 모세는 즉각적으로 불 타는 떨기나무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저자와 독자는 욥이 왜 고통을 겪는지 알지만( 욥 1장 ), 욥은 모른다. 방문객을 “셋”으로 단순하게 묘사한 게 흥미를 끈다. 이들의 형태나 모습 을 묘사하려고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나 둘 또는 셋 이상과 대조적으로 세 명의 방문객의 중요성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다. 다 음 장인 19장에서 세 명은 실제로 여호와와 그분의 사자 둘이다.25 ) 하지만 이 정보는 19장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창세기 18장이 그들을 “사람들”이라 고 부른 것 이외에 방문객의 정체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은, 사실은 의도 적일 수 있다. “모호함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숨겨짐, 하나님의 계시의 확고

23 ) Westermann, Genesis, 2:278. 24 ) A. R. Johnson, The One and the Many in the Israelite Conception of God (Cardiff: University of Wales, 1961), pp. 30~31. 25 ) 베스터만(Westermann Genesis, 2:275~76)은 이전 주석가들이 오비디우스(Ovid, Fasti 5.494ff)

의 이 구절을 인용했다는 사실에 유의한다. 여기서 아이가 없는 히리에우스(Hyrieus)를 세 신(제 우스, 포세이돈, 헤르메스)이 방문하며 히리에우스와 식사한다. 하지만 베스터만(Westermann) 은 이것이 창세기 18장의 자료가 아니거나 심지어 적절한 병행 내용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 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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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II

함, 믿는 모두에게 공개된 불가능의 가능성에 대해 상기함으로써, 우리가 매일 관계하는 이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우리에게 말하는 이야기의 방식이 다.”26 ) 우리가 듣는 것은 그들이 언급하는 말이 전부다. 그들이 “서 있는지 라”로 묘사된다는 사실 ( 하나님이 3:10; 암 7:7, 9:1 ) 은

“서 있는”[니차브]에 대해 다음을 참고하라, 창 28:13; 삼상

서 있는 인간의 형태를 암시하지만 입증하지는 않는다. 구

약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모양을 취하실 수도 있고 인간에게 이런 모양으로 보이게 자신을 드러내실 수도 있다. 실제로 하나님이 형태를 띠고 나타나실 때, 인간 형태는 하나님이 취하시는 특징적인 형태다.27 ) 이것은 아브라함 사이클의 한 신현인데, 이 사이클에서 여호와께서는 자 신의 다른 이들과 함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다. 옛 기독교 해석가는 2절 의 숫자 “셋”을 포착해, 이들을 삼위일체와 동일시한다. 분명히 이런 진술 은 본문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여 읽은 것이며, 본문 자체가 제시하지 않 는 해석을 본문에 강요하는 것이다. 3~5절 여기서는 아브라함이 주인으로서 배려함을 강조한다. 아브라함의

행동은 손님에게 물을 주어 그들이 발을 씻도록 하며28 ) 안식하게 하고 음 식을 주는 것을 포함한다. 손님들이 “상쾌하게” 된 후 ( 5절 ), 이들은 계속 여 행할 수 있다. 이런 환대는 고대 근동 세계에서 이상하지 않다. 실제로 환대 하지 않는 게 이상하고 혼란스러운 것이다. 주인은 자기 손님이 자기 지붕 아래 머무르는 한, 손님의 필요와 안전에 책임을 진다. 이 관습으로 말미암 아 다음 장에서 롯이 방문객을 대접해야 할 차례가 됐을 때, 롯의 행동을 이 해할 수 있다.29 ) 이전 경우 아브라함 자신이 방문객이었을 때, 그는 애굽 사람들에게서 환대를 받지 못했다( 12:10~20 ). 26 ) W. M. Alston, Jr., “Genesis 18:1~11,” Int 42 (1988) 400. 27 ) 다음을 보라. J. Barr, “Theophany and anthropomorphism in the Old Testament,” in Congress Volume: Oxford, 1959, VTSup 7 (Leiden: Brill, 1960), p. 32; S. Terrien, The Elusive Presence: Toward a New Biblical Theology(New York: Harper & Row, 1978), pp. 79~81. 28 ) 손님에게 물을 주어 발을 씻도록 하는 다른 예는 다음을 참고하라, 창 19:2, 24:32, 43:24;

삿 19:21; 삼상 25:41; 삼하 11:8. 각 경우 삼상 25:41을 제외하고, 주인은 단지 물을 주고 손 님이 자신의 발을 씻는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과 연결시키는 것은 다음을 보 라. A. J. Hultgren, “The Johannine Foot-washing (13:1~11) as Symbol of Eschatological Hospitality,” NTS 28 (1982) 539~46. 29 ) 시 23편의 중심에서 최소한 후반부에 이 환대법이 작용한다.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과 마찬 가지로, 시 23편에서 하나님은 행동하신다. 하나님이 집주인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이 마련하신 식탁에 앉는다. 반면에 무기력한 적은 바라보기만 한다. 이와 같이 시 23편은 하나님을 목자와 집 주인으로 묘사한다. 두 비유는 다른 사람에게 물질적인 필요를 제공하고 집주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 대상(양/자신의 식탁에 앉은 자들)을 보호하는 개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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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아브라함 이야기(18:1~25:18) G. 여호와의 소돔 방문 ( 18:1~33 ) 1. 주인 아브라함 ( 18:1~15 )

방문객들은 계속해서 은폐한다. 이들은 “네 말대로 그리하라”라는 아브 라함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방문객들은 먹는다. 여호와와 그분의 사자는 자 신의 신분을 형제들에게 속인 요셉과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에게서 자신들 의 정체를 숨기신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부지 중에 천사를 대접”했는지 알 지 못한다( 히 13:2 ). 어떤 주석가들은 하나님이 음식을 드신다는 개념에서 부지 중에 천사에 게 식사를 대접한다는 개념으로 야훼 기자가 약화시킨 이야기로 18장 1~15절을 이해하는데, 이 정도로 이야기를 끌고 갈 필요는 없다.30 ) 오히려 먹는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자신 앞에 서 있는 자를 모르게 하나님이 허용 하신다는 것이다. 구약 사상에서 하나님은 희생 제물의 기쁘게 하는 향을 들이마시시지만, 희생 제물을 드시지는 않는다. 분명히 여호와께서 여행자 로 가장할 때만, 음식을 드신다는 사실은 의미가 없지는 않다( 18:8, 19:3 ).31 ) 이스라엘은 예외지만,32 ) 음식 희생 제물을 신들에게 바친다는 개념은 고 대 지중해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특히 우가릿 문헌은 자녀 없는 부부나 아 버지가 불임을 완화하려는 희망에서 신들에게 음식을 바친다는 예를 제공 한다. 케레트 서사시에서 케레트는 자신의 아내가 상속자를 낳기 전에 아내 를 잃었다. 케레트는 엘에게 아내를 되찾도록 도와 달라고 간청하는데, 이 는 아내를 통해 혈통을 이을 자녀를 갖기 위해서다. 엘이 케레트에게 지시 한 내용의 일부가 다음과 같다. “둘 다 어린 새끼로 ( 당신의 손으로 ) ( 당신의 )

양을 취하라

빵 덩어리를

새 희생 제물을 가져오라 포도주를 은잔에서 부어라 금잔에서 꿀을 부어라 탑 꼭대기까지 오르라

30 ) 다음을 보라. W. Eichrodt,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 tr. J. A. Baker, OTL, 2 vols. (Philadelphia: Westminster, 1961~1967), 1:144. 31 ) 다음을 보라. Y. Kaufmann, The Religion of Israel , tr. and ed. M. Greenberg (New York:

Schocken, repr. 1972), p. 70n. 32 ) 다음을 보라. W. Herrmann, “Götterspeise und Göttertrank in Ugarit und Israel,” ZAW 72 (1960) 205~16; P. A. H. de Boer, “An Aspect of Sacrifice. I. Divine Bread,” in Studies in the

Religion of Ancient Israel, VTSup 23 (Leiden: Brill, 1972), pp. 2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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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II

벽 갓길로 오르라 당신의 손을 하늘을 향해 뻗으라. 토르 당신의 아버지 엘에게 희생 제물을 바친다 당신의 희생 제물로 바알을 내려오게 하라 다곤의 아들을 음식으로!”33 )

내러티브의 후반부에서 엘은 “손에 있는 잔과 오른쪽에 있는 술잔”, 즉 포도주 잔( 케레트가 제공한 ) 으로 케레트를 축복한다. 다른 우가릿 문헌인 아크하트 서사시에서 아크하트의 아버지인 다 넬 ( Danel ) 과 어머니 다나타이 ( Danatay ) 는 신 고타르-와-하시스 ( Kothar-waḪasis ) 가

자신의 아들 아크하트에게 준 활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려고 축제를

연다. 그래서 라피우의 사람 다넬 곧 하르남의 사람, 영웅이 일어선다 참으로 그는 앉는다 문을 닫을 때 문지방에 있는 고관 아래 그는 과부의 사건을 재판한다 고아의 소송을 판결한다 자신의 눈을 들 때 수천 에이커까지 많은 신들의 술을 그는 인식한다 그는 고타르가 가는 것을 염탐한다. 그는 하시스의 길을 염탐한다. 보라 그가 활을 가져온다 보라 그가 아크를 가져온다 그래서 라피우의 사람 다넬 곧 하르남의 사람, 영웅이 ……

33 ) C. H. Gordon(번역), Ugarit and Minoan Crete (New York: Norton, 1966), p.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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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아브라함 이야기(18:1~25:18) G. 여호와의 소돔 방문 ( 18:1~33 ) 1. 주인 아브라함 ( 18:1~15 )

아내에게 크게 외친다 “들으라, 다나타이여! 양떼에서 양을 준비하라 고타르와 하시스 영혼을 위해 손재주가 많은 자의 식욕을 위해 신들을 먹이고 마시게 하라 신들에게 섬기고 명예롭게 하라” 다나타이가 경청한다 그녀는 양떼에서 양을 준비한다 …… 그래서 다나타이는 신들을 먹이고 마시게 한다 그녀는 신들을 섬기고 영예롭게 한다 …… 고타르는 자신의 장막으로 떠난다 재주 있는 자는 자신의 장막으로 떠난다.34 )

이제, 인간들( 케레트,

다넬, 다나타이 ) 이

신들에게( 엘,

고타르-와-하시스 )

음식을 제

공하는 행동과 아브라함이 창세기 18장에서 하는 행동을 비교하기는 어렵 다. 첫째, 아브라함은 우가릿 서사시의 인간들처럼 세 방문객의 진정한 정 체를 알지 못한다. 둘째, 사라는 여전히 자녀가 없으며, 이 주제가 곧 내러 티브에 나타나겠지만, 이런 상황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이 행동하게 됐다 고 암시하는 바가 없다. 아브라함은 신사이자 관대한 집주인으로 행동한다. 그는 의식 행위에 참여하지 않으며, 그에게는 어떤 숨겨진 의도도 없다. 6~8절 사라는 “고운 가루 세 스아”를 사용하여, 음식으로 “떡”을 제공할

것이다. 사무엘상 25장 18절은 아비가일이 다윗과 그의 무리에게 곡식 다 섯 스아로 충분한 음식을 제공했다고 말한다.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제단 주변에 판 도랑은 열두 양동이로 채워졌는데, 이 도랑은 씨앗 두 스아를 담

34 ) 같은 책, pp. 124~26. P. Xella(“L’épisode de Dnil et Kothar[KTU 1.17(=CTA 17) v 1~31] et Gen. xviii 1~16,” VT 28 [1978] 483~88)는 2 Aqhat V:2ff.와 창 18:1~16에서 다음과 같이 여덟 가지 병행 내용을 지적한다. (1) 아브라함과 다넬 둘 다 앉아 있다. (2)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신 적 존재가 출현한다. (3) 환대가 있고, 이는 받아들여진다. (4) 남자가 아내에게 음식을 준비하라 고 주문한다. (5) 그 주문을 즉각적으로 실행한다. (6) 신적 존재는 먹고 쉰다. (7) 환대는 보상된 다(활, 아들). (8) 신적 존재가 떠난다. 아비슈르(Y. Abishur, “The Story of the Angels’ Visit to Abraham[Gen. 18:1~16] and its Parallel in Ugaritic Literature[2 Aqhat v:4~31],” Beth Mikra

32 [1986/87] 168~77[히브리어])는 두 기사 사이에 다섯 가지 병행 내용을 지적한다. 두 기사에 서 “눈을 들어 보다”라는 관용구를 사용한 것을 제외하고 모두 셀라(Xella)의 이전 기사에서 관 찰된 내용이다. 이런 병행 내용들은 창 18:1~16이 자료들을 통합한 결과가 아니라 통일된 단락 이라는 견해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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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II

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왕상 18:32 ). 이 두 언급에서 사라의 세 스아는 충분한 양이며, 세 방문객과 사라와 아브라함이 먹을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많은 빵 을 아마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아브라함의 넘치는 환대는 계속된다. 아브라함은 “기름지고 좋은 송아 지” 고기와 함께 “엉긴 젖과 우유”( 고기의 맛을 내고 갈증을 줄이기 위한 부식 ) 를 제공 한다. 대접하는 다른 장면에서 주인은 “염소 새끼”를 제공하는 데 만족한 다( 창 27:9; 삿 6:19, 13:15 ).35 ) 아브라함이 “송아지”를 제공한다는 사실은 그의 상 대적으로 부유함과 사회적인 위치를 보여주거나, 최상으로 자기 손님에게 주고자 하는 그의 바람을 보여 준다. 아브라함은 셋과 함께 식사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은 셋이 먹는 동안에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라 고 한다. 아브라함은 주인인 동시에 웨이터이다. 9절 사라도 식탁 주변에 동참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옆에 서 있지만 사

라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라는 여전히 장막 안에 있다. 아마도 여성이 남 성과 같이 먹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중에 라헬은 장막에 있고 “생리”( 직역하면

“여자의 방법”[‘데레크 나심’] )

때문에 아버지에게 일어서서 전체 장

막을 찾도록 할 수 없다고 항변한다 ( 31:35 ). 사라 역시 장막에 있지만, 사라 에게는 “생리”( 문자 그대로 ‘오라흐 카나쉼’ ) 가 멈춰 있었다( 18:11 ). 독자는 방문객이 아브라함의 결혼과 그 이상을 알고 아내의 이름을 안다 는 사실에 대해 놀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내러티브에서는 아브라함이 아내 를 그들에게 소개했거나 심지어 아내에 대해 말했다는 흔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놀라움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아마도 해설 자는 사라가 누구인지 아는 세 사람과 그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아브 라함을 의도적으로 대조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방문자의 질문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와 이전에 하나님 이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4:9 ) 라고 하신 질문을 비교할 수 있다. 아 브라함의 반응은 가인보다는 더 공손하다. 10절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약속한 모든 이전 약속은, 모호하고 불충분했

다( 예,

15:4, 17:16 ).

이제 여기서 더욱 구체적으로 알린다. “내년 이맘때” 사라

는 아이를 가질 것이다. 이제 가능성이 구체적이 된다. “네게로 돌아오리니”라는 구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두가 분명한 것은

35 ) 고기의 주요 자원인 작은 가축, 특히 염소를 다른 곳에서 언급하는 것에 대해 다음을 참고하라, 창 38:17, 20; 삼상 10:3, 16:20.

32


II. 아브라함 이야기(18:1~25:18) G. 여호와의 소돔 방문 ( 18:1~33 ) 1. 주인 아브라함 ( 18:1~15 )

아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다시 함께 하심은, 사라가 이삭을 임신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창세기 21장 1절은 이 약속을 다음과 같이 다시 거론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 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구약의 많은 본문은 하나님을 주어로 하 여 ‘슈브’를 사용하며, 은혜를 베풀고자 돌아오신다는 개념을 의미한다.36 ) 11절 아이를 낳음에 대한 아브라함의 이전 항변은 자신의 문제( 15:4 ) 나 자

신들의 많은 나이( 17:17 ) 에 초점을 두었다. 이런 항변은 아브라함의 직접 담 화에도 나왔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자는 해설자다. 해설자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가 많고 “사라는 생리가 끊어졌는” 사실을 안다. 이 구절은 사 라의 나이 많은 상태를 강조한다. 사라는 나이가 많을 뿐 아니라 생리가 멈 춘 지점에 있다. 이 절과 이어지는 두 곳이 어근 ‘자칸’을 세 번이나 사용해, 아브라함과 사라의 나이를 특별히 강조한다. 해설자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늙었고”( ‘제케님’,

11절 ) 라고

하는데, 이는 사라가 아브라함 ( ‘자켄’,

12절 ) 과

신( ‘자칸티’, 13절 ) 에 대해 지적한 사항이다. 해설자는 단순히 생물학적인 사실 을 진술한다. 해설자는 아브라함이 한 것처럼, 그리고 또 사라가 곧 그럴 것 처럼 웃음을 터뜨리지 않고, 여담으로 자신의 유머 감각과 의심을 이야기에 주입한다. 스턴버그가 언급했듯이, “부모의 나이에 대해 삽입된 어구에서 그( 12절, 해설자 ) 는 방문객의 예상에 대한 사라의 웃음을 최선을 다해 그럴듯 하게 꾸민다. 즉 사라의 의심이 더욱 자연스러울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초 자연적인 예지를 더 강렬하게 느낀다.”37 ) 12절 사라가 놀람을 표현한 것은그 남편만큼 회의적이지는 않다. 최소한

사라는 웃으면서 엎드리지는 않는다. 사라는 방문객이 아브라함에게 자신 이 임신할 것이라고 알린 사실을 듣고서, 그녀의 반응은 생각에 잠겨 회상 하는 것이다. 어려운 현실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이런 즐거움이 가능하다고 상상할 수 없다.38 ) 13절 사라는 익명의 방문객이 남편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엿들었다. 이제 36 ) 여기와 다시 14절; 대하 30:6; 슥 1:3; 말 3:7(모두가 전치사 ‘엘’이 따른다); 시 6:4(히. 5절), 80:14(히. 15절); 사 63:17; 렘 12:15; 욜 2:14; 욘 3:9(모두가 전치사 ‘엘’이 없다). 37 ) M. Sternberg, The Poetics of Biblical Narrative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1985), p.

91. 38 ) 나의 번역 “내가 즐거움을 경험할까”는 다소 특이하게 ‘카탈’ 형태(하예타)를 미래로 번역한다. 어떤 학자는 이 구절을 “내가 노쇠한 후에 내가 성적인 즐거움을 가지겠는가?”라고 번역한다 (R. B. Coote and D. R. Ord, The Bible’s First History[Philadelphia: Fortress, 1989], pp. 118, 125). GKC, § 106n는 창 18:12의 ‘하예타’를 “분명하게 임박하며 따라서 화자의 생각에 이미 실 현된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과거를 사용한 예로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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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II

반전이 일어났다. 곧 방문객은 사라가 혼잣말로 하는 것을 엿듣는다. 여기 서 화자는 “여호와”이신 것으로 확인된다. 이 사실로 말미암아 그는 어떻게 사라의 이름을 알았으며, 사라가 속으로 웃었고 아마도 혼자 중얼거렸을지 라도 어떻게 사라의 말을 매우 분명하게 들었는지가 설명된다. 여호와께서는 이런 반응에 대해, “사라가 왜 웃으며”라는 남편의 발언을 통해 사라를 꾸짖으신다. 사라에게 직접 말하지 않는다. 게다가 “내가 늙었 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라고 사라의 말을 해석해 인용하는 표현에서 도 드러나듯이, 여호와께서는 사라가 “즐거움”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매 우 잘 아신다. 이것이 바로 사라가 염두에 둔 것이지만, 정확하게 사라가 말 한 방식은 아니다. 사라는 자신의 나이와 남편의 나이가 많음에 주목했 다( 12절 ). 여호와께서는 사라가 자신의 늙은 나이에 주목하도록 하신다. 여 호와께서는 신중하게 백세 된 아브라함을 언급하는 것을 피하신다. 왜냐하 면 아마도 남자는 이런 나이에도 아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사라가 의심한 것을 꾸짖으시면서, 아브라함의 의심에 대 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시지 않는다는 점은 이상해 보일 수 있다. 우리는 이 전에 18장 10b절과 17장 19절에서 함께 아브라함이 이삭의 임신을 사라에 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언급했었다. 사라는 이를 ( 18:10b ) 매우 우연히 듣는다. 아마도 사라에게 향한 비난은, 아브라함이 이삭에 대해 사 라와 소식을 공유했지만 사라는 여전히 고집스럽게 믿지 않았다는 것을 가 리키는 듯하다. 사라는 자신의 남편에게 설득당하지 않았다.39 ) 아니면 아 마도 스파이저의 견해를 따라, 우리는 ‘차하크’를 불신의 웃음이 아니라 “미소”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 17:17 해설을 보라 ). 14절 여기서 여호와 자신은 사라에게 돌아오시겠다고 약속한다. 사라가

웃고 신뢰하지 않음을 보임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는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라는 질문을 하신다.40 ) 이것은 아브라함도 사라도 대 39 ) 다음을 보라. Kidner, Genesis, p. 132. 40 ) 브루그만(W. Brueggemann)은 창 18:14에서 시작해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가능성/불가능 성 주제의 궤적을 추적한다. W. Brueggemann, “‘Impossibility’ and Epistemology in the Faith Tradition of Abraham and Sarah(Gen. 18,1~15),” ZAW 94 (1982) 615~34. 또한 다음을 보라.

Brueggemann, Genesis, pp. 159~62. 히브리어 어근 ‘파알’(여기서는 “능하지 못한”으로 번역) 에 포함된 모든 어감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R. Albertz, THAT, 2:413~20. BDB, p. 810b는 창 18:14를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하기 어려운”, ‘파라’를 의미하는 예로 인용한다. 많은 경우 동 사는 “어렵다”가 아니라 “놀랍다”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18:14a를 “여호와에게 너무 놀라운 일 이겠느냐?”로 번역할 수 있다. 그러나 “놀랍다”를 의미하는 거의 모든 ‘파라’의 경우 니팔 분사와 히필 동사에 한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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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아브라함 이야기(18:1~25:18) G. 여호와의 소돔 방문 ( 18:1~33 ) 1. 주인 아브라함 ( 18:1~15 )

답하려고 시도하지 않거나 시도할 기회가 없는 질문이다. 손님의 첫 질문은 사라를 가리켰다. 그의 둘째 질문은 자신을 가리킨다. 18장의 후반부에서 아브라함이 자신에게 수사적으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25절 ) 라고 물을 때, 여호와께서는 질문자의 역할에서 응 답자의 역할로 바뀐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질문을 하신 것은, 족장 부부가 자신들의 희망 없는 상황과 제한된 수단에 대해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넘어 무 한한 하나님의 공급으로 바뀌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사라의 불신이 하나님 의 약속을 폐기하거나 우회하거나 늦추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하라. 사라가 임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의 여부에 상관없이, 사라는 여전히 임신할 것 이다. 이런 확실함을 강화하고자, 본문은 14절에서 10절의 ‘카레트 하야’( 내 년 이맘때 ) 를

반복할 뿐 아니라 ‘라모에드’, “기한이 이를 때에”를 덧붙인다.

15절 “사라가 두려워서.”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은 비이성적이고 보통 하

지 않는 일을 하게 된다. 아담은 하나님이 두려워 숨었다. 아브라함은 애굽 인들이 자기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두려워 속였다. 이제 사라는 하나님의 약 속이 진실인지 문제를 제기했고 신적인 방문객을 성가시게 했기 때문에 두 렵다. 그러므로 사라는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거짓말한다. 둘째 죄는 처음 죄( 불신 ) 를 덮으려고 저질렀다( 거짓말 ). 사라는 1~15절에서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15절 ) 라고 한 번만 소리 내어 말하고, 속으로 한 번 말한다( 12절 ). 오직 한 번 사라는 “아니라 네가 웃 었느니라”라고 듣는다. 대화는 갑자기 멈춘다. 아브라함은 여호와와 사라의 대화에 어떤 기여도 하지 않는다. 여호와께서는 이런 언급으로 마무리하심 으로써, 사라가 아이를 곧 임신할 것이라고 알린 사실에 대해 웃은 것을 빨 리 잊지 않도록 한다. 실제로 여호와께서는 사라에게 “아이 이름의 숨겨진 암시”를 제공하신다.41 )

41 ) Westermann, Genesis, 2: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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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II

F. 야곱이 라반과 라헬을 만나다 ( 29:1~35 ) 1. 야곱이 하란에 도착하다 ( 29:1~8 ) 1

야곱이 길을 떠나1)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2

본즉2)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양 떼에게 물을 먹임이라 3) 큰4) 돌로 우물 아귀를 덮었다가 3

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귀

에서 돌을 옮기고 그 양 떼에게 물을 먹 이고는 우물 아귀 그 자리에 다시 그 돌 을 덮더라 4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하란에 서6) 왔노라 5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

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이르되

After resuming his journey, Jacob reached the land of the Easterners. 2 There in front of him he spotted a well in the field, and three flocks of sheep huddled beside it, for from that well the flocks were watered. The stone covering the well’s mouth was enormous. 3 When the shepherds 5) converged they, together, could roll the stone away from the well’s mouth and water the sheep; then they would reposition the stone over the well’s mouth in its usual place. 4 Jacob said to them: “My brothers, from where do you come?” “From Haran we are,” they replied. 5 Then he asked them: “Do you know Laban son of Nahor?” “We do,” they re1

1 ) 직역하면 “그의 발을 들었다.” 에를리히(A. B. Ehrlich, Randglossen zur Hebrä ischen Bibel [1901; repr. Hildesheim: Olms, 1968], 1:52)는 관용적인 단어 조합으로 된 ‘나사’의 예를 제공하 는데, 이에 대해 그는 “실행하다”(in Aktion setzen)라는 의미를 주장한다. 2 ) 직역하면 “그가 보았다. 그리고 보라 우물이었다.” 이는 ‘라아’+‘히네’ 구절의 예다. 이런 구절에

‘히네’를 삽입하는 것은, “보이는 ‘시야’를 정지시키는 카메라 셔터와 마찬가지로 행동한다”(W. M. Clark, “The Righteousness of Noah,” VT 21 [1971] 268). 3 ) ‘야슈쿠’는 비인칭으로 사용되며 수동과 동등한, 동사의 3인칭 복수의 예다. 다음을 보라. GKC, § 144f. 4 ) ‘게달라’(거대한)는 한정 용법(NAB, NEB의 “큰 돌”처럼)일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정관사가 없 기 때문이다. 사마리아 오경은 “돌”에서 정관사를 삭제해 “거대한 돌”이라고 읽는다. 5 ) 마소라 본문은 여기와 다시 8절에서 “양떼(하아다림)”를 읽는다. “목자들”(‘하로임’, 개역개정: “떼”)이라는 읽기는 3절과 8절의 사마리아 오경 역본과 8절의 70인역에서 왔다. 이렇게 읽는 장 점은 다음 절에서 “그들에게”의 지시어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베갈랄루’를 수동으로 사용된 3인 칭 복수 비인칭으로 읽으면, 이전 절에서 ‘야슈쿠’와 마찬가지로, 마소라 본문을 유지할 수 있다. (다음을 보라. Westermann, Genesis, 2:461. “모든 양떼가 거기에 모였을 때, 그들이 돌을 옮기고 …… 양에게 물을 먹인다.” MT를 거부하지 않고서 베스터만은 “목자들”이 동사의 주어라고 여긴 다.) 어떤 경우든 3절의 네 동사는 반복상(相)(반복되는 행동을 시사하는 동사 형태)으로 이해돼야 한다. 참고, H. Y. Priebatsch, “Der Weg des semitischen Perfekts,” UF 10 (1978) 343. 6 ) 반응하는 절에서 술어 확인에 대해 다음을 보라. Andersen, Hebrew Verbless Clause in the Pentateuch, pp. 21, 122 n.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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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이삭/야곱 사이클(25:19~36:43) F. 야곱이 라반과 라헬을 만나다 ( 29:1~35 ) 1. 야곱이 하란에 도착하다 ( 29:1~8 )

아노라7) 6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

냐 이르되 평안하니라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7

야곱이 이르되 해가 아직 높은즉 가

축 모일 때가 아니니8) 양에게 물을 먹 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 8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

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

plied. 6 “Is he well?” he inquired. “Yes, he is,” they answered, “and here comes Rachel his daughter with the sheep.” 7 Then he said: “It is still broad daylight. It is not yet time to gather in the animals. Water the sheep and go on pasturing them.” 8 “We cannot,” they replied, “until all the shepherds have converged to roll away the stone from the front of the well; only then can we water the sheep.”

1절 나홀의 고향이 “동방 사람” 사이에 있다고 묘사된 것은, ‘베네 케

뎀’( 직역하면 “동쪽의 아들들” ) 이 북부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있는 아람 사람들을 가리킬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성경 다른 곳( 사 11:14 ) 에서 같은 용어는 서쪽과 남서쪽에 접한 적, 즉 블레셋 족속과는 대조적으로 동쪽이나 남쪽과 남동쪽 에 접한 이스라엘의 적을 가리킨다. 사사기 6장 3, 33절, 7장 12절에서 이 표현은 미디안 사람들과 아말렉 사람들( 구분되는 제삼의 집단이 아니라 ) 에 대해 사 용하는 요약의 동격이다. 에스겔 25장 4, 10절에서 “동방 사람”은 암논과 모압에 흩어져 있는 사막 집단을 대표한다. 또한 열왕기상 4장 30절 ( 히. 5:10 ),

욥기 1장 3절, 예레미야 49장 28절을 참고하라. 구약에서 다른 어떤

책보다 창세기는 중요한 방향으로 동쪽을 강조한다 ( 3:24, 25:6을 보라 ).

4:16, 10:30, 11:2, 13:11,

창세기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심판( 4:16 ), 허무함( 11:2, 13:11 ),

소원해짐( 25:6 ) 의 맥락에서다. 똑같은 것이 야곱에게도 해당한다.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번민으로 가득하고 이상과는 멀어진다. 야곱이 서쪽으로 이

7 ) “히브리어는 ‘예’(yes)라는 단어가 없으므로, 질문을 긍정적인 용어로 다시 진술함으로써만 긍정 을 표현할 수 있다”(Speiser, Genesis, p. 222). 또한 다음을 보라. GKC, § 150n. 이 관용구는 6절 에 목자의 반응에도 나온다. 아마도 “히브리어는 ‘예’를 가리키는 단어가 없다”라고 말하는 대신에 성경 히브리어는 엄밀하게 “예”라고 말하는 방법이 없다고 하는 게 더욱 정확할 것이다. 또한 다음 을 보라. E. L. Greenstein, “The Syntax of Saying ‘Yes’ in Biblical Hebrew,” JANES 19 (1989)

51~59, 특히 pp. 52, 54. 그린스타인(Greenstein)은 아카드어 역시 “예”를 적절한 문법 형태로 전 환하면서 질문의 동사를 응답자가 반복함으로써 전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린스타인은 길가메 시 서사시(XII:153)에서 길가메시와 엔키두 사이의 대화를 인용한다. Q: ‘샤 에티마슈 파키다 라 이슈 타무르?’ A: ‘아타마르.’ Q: “그 누구도 돌보지 않는 영혼을 가진 자를 보았는가?” A: “나는 보았다.” 8 ) G. E. Whitney, “Lō’ (‘not’) as ‘Not yet’ in the Hebrew Bible,” HS 29 (1988) 44~45.

315


창세기 II

동하면서야 비로소( 즉 가나안으로 돌아옴 ) 평화가 온다. 이와 같이 “동방”에 대한 언급은 일반적인 언급이며 유동적이다. 하란은 분명히 가나안의 동쪽보다 훨씬 북쪽이지만, 여전히 유프라테스 강의 동쪽이다. 2~3절 야곱은 들에서 우물을 보는데,9 ) 그 우물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다. 우물 위에 큰 돌이 있다. “수조와 또한 우물은 넓고 두꺼운 평평한 돌로 덮여 있으며, 이 돌에는 중앙에 구멍이 있고 이 구멍은 다시 무거운 돌로 덮였으며, 이 돌을 치우려면 두 세 사람이 필요한데, 특별한 때에만 옮겼다.”10 ) 가까운 내러티브에서 돌( 에벤 ) 은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전 내러티브에서 야곱의 머리에 있던 돌( 28:11 ) 은 하나님 앞에 기념하는 기둥으 로 세워진다( 28:18 ). 이 내러티브에서는 우물가의 돌은 야곱이 라헬을 만나 는 수단이 된다. 4~6절이 세 절은 하나님이 최근에 야곱에게 한 약속, 곧 “내가 너와 함

께 있어”( 28:15 ) 를 성취하는 예를 제공한다. 왜냐하면 본문은 야곱이 방랑할 때 섭리 가운데 야곱을 인도하는 것으로 읽혀야 하기 때문이다. 야곱이 라 반을 잘 아는 사람들을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룻이 보아스 밭에서 이삭 줍기를 한 것이 우연이 아닌 것과 같다. 게다가 겉으로 보기에 우연인 것 같 은 야곱과 라헬의 만남도 운이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가 평안하냐”( 히. ‘하샬롬 로’, 직역하면 “그에게 평화가 있는가?” ) 는 야곱이 물은 세 질문 가운데 세 번째다. 이전 내러티브에서 야곱은 자신의 ‘샬롬’에 관심이 있었다( 28:21 ). 여기서 야곱의 관심은 삼촌의 ‘샬롬’을 향한다. 우리는 단어 ‘샬롬’을 성경 다른 곳에서 전달하는 모든 뉘앙스를 대입해 읽을 필요는 없 다.11 ) 야곱이 목자들에게 라반의 ‘샬롬’을 묻는 것은, 단순히 라반이 잘 지 내는지에 대해 정중하게 묻는 것뿐이다. 창세기 43장 26절 이후 몇 절과 비 교할 수 있는데, 여기서 요셉은 형제의 ‘샬롬’을 물으며, 다음으로 형제에게 아버지에 대해 묻는다. 두 경우 29장과 43장에서 A가 C에게서 B의 ‘샬롬’ 을 묻는다.12 )

9 ) 창 24장의 우물은 “성 밖”(24:11)에 있다. 창 29장의 우물이 “들에” 있다고 강조하는 것은, 야곱과 라반이 대면한 환경을 제공하는데, 이 환경은 “양과 소를 돌보는 경제와 윤리에 집중하면서 유목 활동의 배경에서 펼쳐질” 것이다(Alter, Art of Biblical Narrative, p. 55). 10 ) 다음에서 인용됨, S. R. Driver, Genesis, p. 269. 11 ) 다음을 보라. W. Brueggemann, Biblical Reflections on Shalom: Living Toward a Vision

(Philadelphia: United Church, 1976). 12 ) ‘샤알 레샬롬’(인사하다)이라는 표현에 대해 다음을 참고하라, 창 43:27; 출 18:7; 삿 18:15; 삼

316


III. 이삭/야곱 사이클(25:19~36:43) F. 야곱이 라반과 라헬을 만나다 ( 29:1~35 ) 2. 야곱이 라헬과 라반을 만나다 ( 29:9~14 )

아브라함의 종이 처음 우물가에서 사라를 만났을 때( 24:15ff ) 더 길고 공식 적인 대화인 창세기 24장과 다르게, 야곱이 목자들과 우물곁에서 만난 사 건은 짧은 질문과 대답을 교환하는 것이 특징이다. 즉 4절은 첫 질문과 첫 응답, 5절은 둘째 질문과 둘째 응답, 6절은 셋째 질문과 셋째 응답으로 되 어 있다. 알터에 따르면, 이런 형식은 “활발하게 움직이고, 속이고 대면하는 야곱의 빠른 속도의 이야기에 대한 적절한 서곡”이다.13 ) 7~8절 야곱은 라헬에게 즉각적인 관심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의 관심은

오히려 양에게 있다. 야곱의 판단에, 양들을 너무 일찍 우리에 두었으며, 결 과적으로 목자들은 마땅히 일해야 할 만큼 열심히 일하거나 오래 일하고 있지는 않았다. 야곱은 “다시 일하라”고 재촉한다. 이것은 우물가에 라헬과 만 몇 분이라도 같이 있으려는 희망에서 야곱이 핑계를 댄 것일 수도 있 다.14 ) 원치 않은 일행들인 목자들을 제거하라!

2. 야곱이 라헬과 라반을 만나다 ( 29:9~14 ) 9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15) 라헬

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16)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17) 10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

과 그의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 우 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 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11

13 ) 14 ) 15 ) 16 )

17 )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 내어

While he was still speaking with them, Rachel came on the scene with her father’s sheep, for she was a shepherdess. 10 As soon as Jacob saw Rachel, the daughter of his uncle Laban, with the sheep of his uncle Laban, he went up, rolled away the stone from the well’s mouth, and watered the sheep of his uncle Laban. 9

상 10:4, 17:22, 25:5, 30:21; 삼하 8:10, 11:7; 대상 18:10. 다음을 보라. D. J. Harris, The Biblical Concept of Peace (Grand Rapids: Baker, 1970), p. 75; H. H. Schmid, Šālô m “Frieden” im Alten Orient und im Alten Testament , Stuttgarter Bibelstudien 51 (Stuttgart: Katholisches Bibelwerk, 1971), pp. 47~48. Alter, Art of Biblical Narrative, p. 55. 다음을 보라. von Rad, Genesis, p. 288는 베노 제이콥(Benno Jacob)을 언급한다. 또한 다음을 보라. Sarna, Genesis, p. 202. 첫 행동이 여전히 둘째 행동에서 계속되는 사실을 강조하는 분사 용법에 대해(항상 ‘베’로 소개 됨) 다음을 보라. GKC, § 116u. 9절의 ‘바아’ 여성 완료 동사는 6절의 ‘바아’ 여성 분사와 구분돼야 한다. 왜냐하면 ‘보’의 3인칭 여성 완료와 여성 분사가 동일하게 쓰였기 때문이다. 분사 ‘메다베르’와 ‘베라헬 바아’를 따르기 때문에, 9절의 ‘바아’는 완료임이 틀림없다. 다음에서 인용된 예를 보라, GKC, § 116u. 70인역은 “그의 아버지의 양의”를 덧붙인다.

317


창세기 II

12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

이요19)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버지에게 알리매 13

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

20)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

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 하매 14

Then Jacob kissed Rachel and wept aloud. 12 Jacob told her that he was her father’s relative, Rebekah’s son; and at that she ran to tell her father. 13 When Laban heard the report about Jacob, his sister’s son, he ran out to meet him; he embraced him, and kissed him, and led him into his house. He shared with Laban everything that had happened. 14 Laban said to him: “Indeed, you are my bone and my flesh.” And he stayed with him for an entire month. 11

울며18)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

이로다 21)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 와 함께 거주하더니

야곱이 라헬 및 라반과 처음 만난 것은,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와 만난 것 ( 24:10~33 ) 과 여러 면에서 비슷하고, 또 모세가 이드로의 딸들과 만난 것( 출

2:15~21 ) 과도

비슷하다. (1) 주인공( 또는

대표자 ) 은

먼 땅으로 간다. (2)

그는 우물가에서 멈춘다. (3) 소녀( 또는 소녀들 ) 또한 물을 길으러 그 우물가 로 온다. (4) 주인공은 그들에게 또는 소녀가 주인공에게 물을 길어 준다. (5) 소녀( 또는 소녀들 ) 는 집에 돌아가 만난 사실을 형제나 아버지에게 보고한 다. (6) 남자는 소녀의 집으로 인도된다. (7) 이어서 우물가의 남자( 또는 그가 대표하는 사람 ) 와

우물가의 소녀( 또는 소녀들 가운데 하나 ) 가 결혼한다.22 ) 두 창세기

이야기는 낯선 땅이 사실은 아버지( 또는 그의 조상들 ) 의 땅이며, 게다가 물을 길 으러 온 소녀는 신랑이 될 사람의 사촌이거나 사촌의 딸이라는 병행 내용 을 포함한다. 9~10절 야곱은 목자들이 개별적으로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것을 한다.

18 ) 직역하면 “그의 목소리를 높여 울었다.” 다음을 보라. 27:38. 19 ) 명사절의 명사를 따르는 대명사의 의미에 대해 다음을 보라. J. Hoftijzer, “The Nominal Clause Reconsidered,” VT 23 (1973) 488~89. 20 ) 70인역은 마소라 본문의 ‘셰마’ 대신에 분명히 히. ‘솀’을 반영하는 ‘오노마’로 읽는다. 21 ) 왓슨(W. G. E. Watson, “Some Additional Wordpairs,” in Ascribe to the Lord , Fest. P. C.

Craigie, ed. L. Eslinger and G. Taylor, JSOTSup 67 (Sheffield: JSOT, 1988), pp. 185~87)는 다음에서 연어(連語) ’ṣm wbśr가 항상 대명사 접미어와 함께 나온다고 지적한다. 창 29:14; 삿 9:2; 삼하 5:1, 19:13, 14; 대상 11:1; 시 102:6. 그리고 다음에서 ’ṣm//bśr가 나오는 것을 지적한 다. 창 2:23; 욥 2:5, 4:14~15; 겔 24:4; 잠 14:30; 애 3:4; 미 3:2~3. 순서에 상관없이 이 표현은 왓슨에 따르면 친족(창 2:23), 음식(출 12:46), 또는 사람의 육체적인 몸(욥 33:21)을 가리킨다. 22 ) 다음을 보라. Culley, Studies in the Structure of Hebrew Narrative, pp. 4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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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이삭/야곱 사이클(25:19~36:43) F. 야곱이 라반과 라헬을 만나다 ( 29:1~35 ) 2. 야곱이 라헬과 라반을 만나다 ( 29:9~14 )

그는 대단한 힘으로 우물 구멍에서 돌을 옮겨놓는다. 야곱이 혼자 돌을 옮길 수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이전에 한 약속 곧 “네가 너와 함께 있”( 28:15 ) 기 때문임이 틀림없다.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 하신다는 실재는 야곱에게 굉장 한 육체적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이는 이전에도 하지 못했고 다시는 하지 못할 일이다. 야곱은 이 때만 삼손처럼 행한다. 블레셋 사람들 이 삼손 당시 호기심을 가졌던 것과 같이( 삿 16장 ), 이 지점에서 목자들의 호 기심이 자극됐을 것이다. 왜냐하면 9절은 야곱이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을 목 자들이 목격했다고 분명히 언급하기 때문이다. 라헬이 도착한 후 목자들은 갑작스럽게 나간다. 야곱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단순히 행동할 뿐이다. 야곱의 어머 니 리브가는 무엇을 해야 할지 거기서 말해주지 않았다. 이제 야곱은 홀로 해야 한다. 홀로 있을 때, 야곱은 분명히 수동적인 자세를 떨쳐버리고 상황 의 주인이 된다. 더 이상 어머니의 그림자에 있지 않고 목자의 관심을 받는 다. 이런 책임이 그의 과거의 일부였던 것 같다. 에서는 사냥할 수 있지만, 야곱은 길들인 동물을 책임질 것이다. “그의 외삼촌.” 10절에서 세 번 라반을 ‘하이 이모’( 직역하면 “그의 어머니의 오라 버니” ) 라고 4절 ) 로

묘사한다. 야곱은 이전에 우물 주변 목자들을 “내 형제”( 아하이,

언급했다. 야곱은 자신을 라헬에게 그의 아버지의 “친척”( ‘아히 아비하’,

직역하면 “그의 아버지의 형제[개역개정: 생질]”, 12절 ) 이라고

소개한다. 라반은 곧 야곱을

자신의 “친척”( ‘아히 아타’, 직역하면 “네가 내 형제[개역개정: “생질”]이니라”, 15절 ) 이라고 언 급한다. 여기 번역( “형제”, “친척” ) 에서 반영된 대로, ‘아흐’는 여러 의미를 지닐 수 있지만,23 ) 이 단락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이 흥미롭다. 왜냐하면 이야 기는 다른 형제( 에서 ) 를 피해왔지만 또 다른 “형제”( 라반 ) 를 얻을 한 형제( 야 곱)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내러티브를 읽는 현대 독자에게 야곱

이 라반을 “그의 어머니의 형제”라고 세 번 언급하는 것은, 서투르고 불필 요한 것 같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가족이라고 과도하게 언급함이 동기를 의미하는 경우”의 좋은 예다.24 ) 야곱은 가족의 어머니 측에 하던 대 로 반응하는데, 이는 야곱이 이삭에게서 축복을 얻을 때 어머니에게 받은

23 ) 다음을 보라. H. Ringgren, “’āch,” TDOT, 1:188~93. 24 ) Sternberg, Poetics of Biblical Narrative, p. 538 n. 15. 또한 다음을 보라. R. A. Oden, Jr., The Bible Without Theology (San Francisco: Harper & Row, 1987), p. 124. 오든(Oden)은 이 절 에서 세 번 라반을 야곱의 외삼촌으로 언급하는 것은, 야곱과 라반의 친한 관계를 강조한다고 지 적한다. 이는 많은 전통적인 내러티브에서 중요한 관계다.

319


창세기 II

이전 도움과 야곱이 하란에 있는 어머니의 형제에게로 도망해야 한다는 어 머니의 주장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27:43 ). 11절 야곱이 크게 운 후 라헬에게 입 맞춘 장면은, 현대 서구 독자에게는

이상하다는 인상을 준다. 라헬은 왜 야곱이 우는지 묻지 않고, 야곱은 라헬 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야곱의 울음은 그가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쳤 기 때문일 것이다. 야곱은 이제 옳은 장소에 있고, 옳은 사람을 만났다. 하나 님의 섭리적인 인도함이 다시 분명해진다. 이전에 똑같은 표현( 직역하면 “그의 목소리를 높여 울었다” ) 이

에서에게 사용됐다( 27:38 ). 그러나 에서의 울음은 슬픔과

실망에서 온 반면에, 야곱의 울음은 감사를 나타낸다. 이것은 성경 내러티브 에서 여자에게 입 맞춘 남자의 드문 예에 속한다. 구약에서 입맞춤( 인사나 축복 의 표시 ) 은

보통 두 남자와 관련 된다. 남자가 여자에게 입 맞추는 것에 대해,

창세기 31장 28절과 31장 55절 ( 히.

32:1; “라반과 그의 딸들” ) ,

열왕기상 19장

20절( 엘리사의 그의 어머니 ), 아가 1장 2절( 사랑하는 자와 그의 연인 ) 을 보라.25 ) 12~13절 라헬은 아버지 라반에게 야곱의 도착 소식을 알리며, 이것은 야

곱과 라반을 함께 모이게 한다. 라반은 야곱보다 더 숨기지 않는다. 야곱은 라헬에게 입맞춤을 한다( ‘바이샤크’, 칼 ). 반면에 라반은 야곱을 “안고” “입 맞 춘다”( ‘바예나셰크’, 피엘 ).26 ) 14절 라반이 야곱에게 건넨 유일하게 기록된 말은 “너는 참으로 내 혈육

이로다”이다. 이 표현은 창세기 2장 23절에 처음 나오고 다시 사사기 9장 2절, 사무엘하 5장 1절( =대상

11:1 ),

사무엘하 19장 13절에 나오는 공식이다.

이 본문 각각은 이 공식으로 혈연일 가능성을 포함하지만, 더 큰 맥락은 상 호 언약 맹세도 관련됨을 시사한다. 라반은 가족의 연관성을 축하할 뿐 아 니라 이른 단계이기는 하지만 조카와 삼촌 사이의 연대를 세우고 있다. 물 론 라반은 머리가 되고 야곱은 손아래 동반자가 될 것이다.27 ) 1~14절에서 드물게 나오는 대화는 대개 야곱과 목자들( 4~9a절 ) 사이의 대 화다. 야곱과 라헬은 직접 화법으로 서로 말하지 않고, 라헬과 라반도, 야곱

25 ) 잠 7:13에서 이것은 바뀐다. 거기서 이것은 그의 집에 헤매어 들어온 남자에게 입 맞추는 의인화 된 “어리석은 여자”(Dame Folly)다. 26 ) ‘나샤크’의 피엘의 다른 예는 창 31:28, 31:55(히. 32:1), 45:15에 있다. 첫 두 본문에서 라반은 아

마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이해하면서, 딸에게 마지막 헤어질 때 입 맞춘다. 45:15에서 요셉은 형제들에게 입 맞추고, 자신이 누구인지 밝힌 직후 그들과 함께 운다. 두 상황은 감정으로 가득하다. 27 ) D. Daube and R. Yaron, “Jacob’s Reception by Laban,” JSS 1 (1956) 60~61; W. Brueggemann, “Of the Same Flesh and Bone (Gn 2,23a)” CBQ 32 (1970) 537~38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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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이삭/야곱 사이클(25:19~36:43) F. 야곱이 라반과 라헬을 만나다 ( 29:1~35 ) 3. 야곱이 라헬을 위해 7년을 섬기다 ( 29:15~20 )

과 라반도 직접 화법으로 서로 말하지 않는다. 라반 자신의 말은 거의 없 다( 히브리어로 네 단어 ).28 ) 몇 단어 말하지 않지만, 열정은 넘친다. 라헬이 라반에 게 말하러 “달려가”( 히. ‘루츠’ ) 고, 라반은 야곱을 만나러 “달려왔다”( 히. ‘루츠’ ). 14절에서 야곱이 라반과 한 달을 머물렀다고 마무리하는 언급은, 나중에 야곱이 라반과 20년을 머물렀다고 언급하는 것과 충돌되지 않는다( 31:41 ).29 ) 14b절은 야곱이 한 달 후 가나안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 달이 지나고 라반이 야곱에게 품삯을 지불함으로써, 야곱의 지위 가 조정되고, 단지 친척이라고 해서 공짜로 라반을 위해 일하지 않아야 한 다고 라반이 제안했음을 가리킬 뿐이다.30 )

3. 야곱이 라헬을 위해 7년을 섬기다 ( 29:15~20 ) 15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32) 내 일을 하겠 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16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

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33) 18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

Laban then said to him, “Because 31) you are my relative, does that mean you should serve me for nothing? Tell me what your wage should be.” 16 Now Laban had two daughters; the older was called Leah, the younger Rachel. 17 Leah had tender eyes, but Rachel was 15

28 ) 나는 포켈만(Fokkelman)의 해석(Narrative Art in Genesis, p. 126)에 동의할 수 없다. 포켈만은 라반이 말한 ‘아크’가 “너는 풍요로움을 가져오지 않았구나. 그러나 너는 내 살이요 피다”라고 해 서 강조의 불변화사가 아니라 실망의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다음을 보라. Andersen, Sentence in

Biblical Hebrew, p. 177. 29 ) Noth, History of Pentateuchal Traditions, pp. 88~89가 주장하는 대로. 30 ) 다음을 보라. R. N. Whybray, The Making of the Pentateuch, JSOTSup 53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1987), p. 194. 31 ) ‘하키’에 대해 나의 27:36 해설을 보라; 참고, R. Gordis, The Word and the Book (New York: Ktav, 1976), p. 164 n. 9. 고르디스(Gordis)는 ‘하키’를 의문사와 접속사로 번역한다. “네가 내 게 공짜로 섬긴 것은 네가 내 형제기 때문인가?” 참고, A. Schoors, “The Particle kî,” OTS 21 (1981) 260. 32 ) ‘히남’(무료로, 개역개정: “그저”)은 동사 ‘하난’(호의를 보이다, 은혜를 베풀다) 및 명사 ‘헨’(호 의, 은혜)과 연결된다. 라반은 야곱이 삼촌에게 단지 호의로 일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은혜”와 “거저” 사이의 똑같은 연관성은 “무료로”(gratis, gratuitously)와 같은 단어에서 찾을 수 있다. 33 ) 형용사 어구 구성을 술어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다음을 보라. T. Muraoka, “The status constructus of adjectives in Biblical Hebrew,” VT 27 (1977) 380 n. 15. 구성 요소가 병행구 로 같이 나오는 단어 쌍을 구성하는 ‘토아르’와 ‘마레’에 대해 다음을 보라. Y. Avishur, Stylistic Studies of Word-Pairs in Biblical and Ancient Semitic Languages, AOAT 210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1984), pp. 215, 219, 644, 730.

321


창세기 II

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 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19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 께 있으라 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

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shapely and attractive. 18 Jacob loved Rachel, and thus responded: “I will serve you seven years for Rachel your younger daughter.” 19 Laban replied: “It is better to give her to you rather than to an outsider. Stay with me.” 20 So Jacob served for Rachel seven years, yet they seemed to him but a few days because of his love for her.

15절 라반은 야곱이 라헬과 결혼할 수 있다고 간접적으로 말한 “후에” 언

니보다 동생이 먼저 결혼하는 것은 관습이 아니라고 야곱에게 알린다. 여기 서 라반은 야곱에게 일에 대한 보수를 제안하지만, 이때는 야곱이 한 달을 일한 후이다( 14절 ). 다우베와 야론( D. Daube and R. Yaron ) 은 이 절의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34 ) 이들은 15절이 “어찌 네가 일을 하겠느냐”는 질문 후에, “네가 내 생질”이 라는 주장으로 구성되지 않는다고 제안했다. 오히려 두 질문 (1) “네가 내 친척인가?”와 (2) “어찌 네가 일을 하겠느냐 …… ?”로 구성된다. 다우베와 야론은 첫 질문이 “너는 내 친척이 아니다”를 의미한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라반은 야곱과 가족의 유대를 끊고 있으며, 따라서 야곱을 이제 품삯을 받 을 수 있는 삯꾼으로 격하시킨다. 히브리어 ‘하키’는 적절한 질문( 즉 질문자가 대답을 모른다, 삼하 9:1 ) 을

소개하거나, 수사적 질문( 즉 질문자는 질문에 대해 답을 매우 확신

한다. 욥 6:22[아니오]; 삼하 23:19[예] ) 을

소개하는 듯하다.35 ) 창세기 29장 15절은 라

반의 질문은 긍정의 대답을 요구하면서( 27:36에서처럼 ), 두 번째 범주에 들어맞 는 것 같다. 나는 다우베와 야론에 반대하며, 라반은 야곱이 친척으로서 임 금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논증할 것이다. 그러나 라반의 활발한 성격을 고려할 때, 그는 이런 세부 사항을 철회하고 심지어 야곱에 게 자신의 품삯을 정하라고까지 하면서, 야곱에게 노동에 대해 적절하게 보 상할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야곱과 라반의 조카-삼촌 관계는, 고용주와 고용인 관계에 밀리게 되고, 관계의 우위를 라반이 점하게 된다. 16~17절 야곱은 금전적 보상에 관심이 없다. 야곱이 정말 바라는 것은 라

34 ) 다음을 보라. D. Daube and R. Yaron, JSS 1 (1956) 61~62; Sarna, Genesis, p. 203. 35 ) 다음을 보라. GKC, § 150d,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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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이삭/야곱 사이클(25:19~36:43) F. 야곱이 라반과 라헬을 만나다 ( 29:1~35 ) 3. 야곱이 라헬을 위해 7년을 섬기다 ( 29:15~20 )

헬과의 결혼이다. 라반은 두 딸 레아와 라헬이 있다. 하나는 “언니”( 하게돌 라 ) 고,

하나는 “아우”( 하케타나 ) 다. 이 가족은 야곱과 잘 어울린다. 왜냐하면

야곱은 동생( 하카탄 ) 이고 에서는 형( ‘하가돌’,

27:15, 4 ) 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동

생( 카탄 ) 이 아우( 케타나 ) 에게 사랑에 빠진다. 야곱과 축복 사이에 형 에서가 있었던 것처럼 여기서는 야곱과 그의 사랑 사이에 언니가 있다. “레아의 시력이 약하다”라는 전통적인 번역( RSV,

NIV; 참고, NEB, JB ) 은

재조

사할 필요가 있다. 형용사 ‘라크’는 몇 곳에서만, 특히 창세기 33장 13절( “연 약한” 자녀들 ) 과

“약한”

36 )

신명기 20장 8절 ( ‘야레’[두려워서]와

병행을 이루는 “마음이 허약한” ) 에서

을 의미한다. 종종 부드러운( 양떼, 창 18:7 ), 온화한( 왕의 통치, 삼하 3:39 ),

부드러운( 말, 잠 15:1; 욥 41:3[히. 40:27] ), 허약한( 여자, 신 28:56; 사 47:1 ), 어린( 미숙한 소년, 대상 22:5, 29:1; 대하 13:7 )

것을 묘사한다. 마지막 세 언급에서 ‘라크’는 ‘나아

르’( 미숙한 소년 ) 와 병행을 이룬다. 아브라함의 종과 리브가가 연루된 이전 이야기에서 만남 처음부터 리브 가의 아름다움에 주목했다( 24:16 ). 대화가 있기 전에 리브가의 매력을 주목 한다. 여기서는 상황이 바뀐다. 야곱과 라헬 사이에 대화가 있고 ( 12절 ), 다음 으로 레아와 라헬을 소개하며, 라헬의 아름다움에 주목한다. 이런 형국은 라헬의 아름다움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야곱이 라헬에게 끌렸다는 것을 강 조한다. 야곱은 아브라함의 종처럼 하나님 앞에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 았다. 야곱은 라헬의 육체적 외모에 끌린다.37 ) 18절 여기에 첫 눈에 반하는 사랑의 예가 있다 ( 참고,

막 10:21 ).

본문은 라헬

도 그를 사랑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야곱은 이전에 같은 목적으로 똑같은 곳에 10마리의 낙타와 선물을 가지 고 온 야곱의 할아버지의 종과 다르게, 빈손으로 도착한다. 따라서 야곱은 신부 값을 지불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줄 게 하나도 없었다. 대신에 야 곱은 라반을 위해 7년을 봉사하기로 기꺼이 맹세한다.38 ) 여기서 이때 라반의 이전 질문 “네가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 아바

36 ) “약한”을 의미하는 히브리어를 이해하고, 이스라엘의 족장과 여족장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그 어 떤 것도 말하지 않는 관습을 따라, Gen. Rabbah 70:16는 ‘라크’를 “사랑스러운”(y’yn)으로 번 역한다. 게다가 레아가 언니로서 형 에서와 결혼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울어서 레아의 눈이 “약하다”고 덧붙인다. 37 ) 참고, Alter, Art of Biblical Narrative, p. 56. 알터(Alter)는 리브가의 객관적인 정체성에 속하는

아름다움과 “야곱이 특별히 라헬에게 애착하는 원인”으로서의 라헬의 아름다움을 대조시킨다. 38 ) 다윗이 미갈과의 결혼을 위해 사울에게 블레셋 사람의 포피 백개를 바치는 것은 신부 값을 대신 하는 예다(삼상 18:21~25).

323


창세기 II

드 ) ? ”( 15절 ) 에

대해 야곱이 대답한다. 야곱은 라헬을 위해 7년을 “섬길” 것이

라고 말하고( 18절 ), 7년을 “섬겼다”( 20절 ). 이전 야곱 내러티브에서 야곱은 이 동사의 주어가 아니라 목적어로 지목됐다( 25:23 ). 섬김은 야곱이

( 에서에게서 )

받아야 할 것이었다. 이제 ‘아바드’의 목적어는 ‘아바드’의 주어가 된다. 야 곱은 왜 “7년”을 섬기기로 정했는지 이유가 없다. 그러나 야곱은 집에 서둘 러 갈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왜 그래야 하는가? 불필요하게 일찍 에 서와 만나는 것을 왜 서두르겠는가? 에서가 가능한 한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9절 자신의 아들이 누구와 결혼할지 이삭이 관심을 가진 것처럼 ( 28:2 ), 라

반은 자기 딸이 누구와 결혼할지에 대해 관심을 가졌거나 최소한 그렇게 보인다. 라헬에게 자기 의견을 묻지 않는다. 그의 아버지가 남편이 될 사람 에게 딸을 “준다.” 39 ) 라반이 “라헬을 네게 주는 것이 나으니”가 아니라 “그를 네게 주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하는 것은,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따라서 라반은 앞으로 속이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 20절 히브리 내러티브는 야곱이 7년을 섬긴 것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

지 않는다. 야곱에게 7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갔는가만 언급한다. 7년이 “며 칠” 같았을 듯하다( 야밈 아하딤 ). 리브가는 야곱에게 라반과 “며칠”( 27:44 ) 머물 라고 말할 때 똑같은 히브리어 표현을 사용했다. 시간은 야곱에게 항상 그 렇게 빨리 지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나중에 야곱이 에서를 만날 준비를 할 때, 분명 며칠이 7년 같이 느껴질 것이다.

4. 야곱이 라반에게 속다 ( 29:21~30 ) 21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40)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22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23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24

라반이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Then Jacob said to Laban: “Let me have my wife, for my time is completed, that I may go in to her.” 22 Laban gathered all the local people and put on a feast. 23 At nightfall he took Leah his daughter and brought her to Jacob, and he went in 21

39 ) 참고, 결혼 의식에서 하는 말인 “누가 이 남자에게 이 여자를 줬는가?” 40 ) ‘하바’는 감탄사(“이제” 11:3, 4, 7) 역할을 하거나, 목적격과 함께 ‘야하브’(주다)의 명령(30:1, 47:15) 역할을 할 것이다. ‘하바’가 여기서 감탄사라면 야곱은 라반에 “이제 그렇다면 내 아내다” 라고 말한다.

324


III. 이삭/야곱 사이클(25:19~36:43) F. 야곱이 라반과 라헬을 만나다 ( 29:1~35 ) 4. 야곱이 라반에게 속다 ( 29:21~30 )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41) 25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42) 라반 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 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43)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44) 어찌됨이니 이까 26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 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 하는 바이라 27 이를 위하여 칠 일을45) 채우라 우리 가 그도 네게 주리니46)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28 야곱이 그대로 하여47) 그 칠 일을 채 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to her. 24 Laban gave her Zilpah his maid to be Leah his daughter’s maid. 25 Morning came, and there was Leah! Jacob said to Laban: “What have you done to me? Was it not for Rachel I served you? Why did you trick me?” 26 Laban replied: “It is not customary in our place to marry off a younger daughter before the firstborn. 27 Finish up the bridal week of this one, and the other as well will be given to you, in return for another seven years of service with me.” 28 Jacob consented. He finished the bridal week for Leah, 48) and then Laban gave

41 ) 24절과 29, 20절에서 대명사 접미어와 분명하게 불필요한 표현 사용에 대해 다음을 보라. J. Blau, “Redundant Pronominal Suffixes Denoting Intrinsic Possession,” JANES 11 (1979) 34 n. 14. 이와 같이 24절은 직역하면 “라반이 그(레아)에게 자신의 시녀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를 줬다”라고 읽는다. 28절은 “그리고 라반은 야곱에게 그의 딸 라헬을 (개별 구문 구성을 이루는 ‘로 레이샤’) 줬다. 그에게 아내로”라고 읽는다. 29절은 “그리고 라반은 그의 딸 라헬에게 그의 종 빌하를 줬다. 그에게 시녀로”라고 읽는다. 42 ) 블라우(J. Blau, “Adverbia als psychologische und grammatische Subjekte/Praedikate im

Bibelhebraeisch,” VT 9 [1959] 134 n. 2)는 ‘베히네 히브 레아’가 부사구 문장이며, 보통 이 문 장의 주어는 ‘하야’라고 말한다. 43 ) 스파이저(Speiser, Genesis, p. 225)는 29:19에서 전치사구(라반의 말에), “나와 함께 머물다”, ‘임마디’는 “내 권위 아래”를 제안한다고 지적한다. 해설자는 라반이 야곱에게 말할 때 ‘임마디’ 를 다시(27절) 사용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 25절에서 야곱 자신은 ‘임마크’라는 구절을 사용한 다. 이제 성경 히브리어는 1인칭을 제외하고는 어떤 접미사가 붙은 ‘임마크’도 입증하지 않는다. 그러나 라반이 ‘임미’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야곱이 하지 않은 어떤 봉사를 라반이 마음에 두고 있었음을 시사할 수 있다(즉 야곱은 라반과 함께가 아니라 라반 아래 일할 것이다). 44 ) 25:20에서 라반은 “아람 사람”(하아라미)이라고 불린다. 여기서 야곱은 “왜 당신이 나를 속였는 가”(리미타니)라고 말한다. 자음 r-m-m와 관련된 단어들은 라반의 민족 배경 및 야곱을 속이는 것과 연관 있다. ‘야아코브’(야곱)가 ‘아케브’(발꿈치)라면 ‘아라미’는 ‘리마’(속임수)에 능한 자다. 45 ) 직역하면 “이를 위해 7(일? 년?)의 기간을 채워라.” 46 ) ‘니테나’는 칼의 1인칭 복수 권유형(다음을 보라. S. Mandelkern, Veteris Testamenti Concordantiae [Tel Aviv: Schocken, 1971], p. 784, col. 3)이나 니팔의 3인칭 여성 완료로 읽 을 수 있다. ‘에트’가 있다고 해서 동사를 니팔로 읽는 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창세기에서 수동 동사의 주어에 ‘에트’가 있는 예가 있기 때문이다(4:18, 17:5, 21:5, 27:42). 많 은 고대 역본(70인역, 사마리아 오경, 불가타, 페쉬타)은 1인칭 단수, 즉 “그리고 내가 줄 것이다” 로 읽는다. 47 ) 직역하면 “그리고 야곱이 그렇게 했다.” 48 ) 나는 고유명사 레아를 여기에 삽입하고, 의미를 위해 라반을 다음 절에 삽입했다. 히브리어는 단 지 “그가 이것의 신부 주간을 마쳤고, 그가 그에게 라헬을 줬다”라고 한다.

325


창세기 II

주고 29

라반이 또 그의 여종 빌하를 그의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49)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him Rachel his daughter to be his wife. 29 And Laban gave Rachel his daughter Bilhah his maid to be her maid. 30 He then went in to Rachel also; besides, he loved Rachel, not Leah. He remained seven additional years in Laban’s service.

21절 독자는 야곱이 라헬을 “당신의 딸”보다는 “내 아내”라고 부르는 것

에 다소 놀랄 수 있다. 야곱과 라헬의 관계는 신약에 요셉과 마리아의 관계 와 비슷함이 틀림없다. 둘은 아내와 남편이지만 결혼은 아직 육체적으로 완 성되지 않았다.50 ) 이는 야곱이 라반에게 하는 말에서 분명하다. 야곱은 “내 가 그를 내 아내로 맞이하도록 내가 라헬을 갖도록 해달라”고 말하지 않는 다. 야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즉 그와 성관계를 하겠나이다. 야곱이 표현한 희망은 결 혼이 아니라 결혼 직후의 성관계다. 라반이 라헬을 야곱에게 “주는” 것에 대해 야곱이 ‘하바’를 사용하고, 라 반은 ‘나탄’을 사용한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감탄사 기능( “이제 그렇다면 내 아내” ) 을 할 수도 있는 ‘하바’를 사용함으로써, 야곱의 말 은 요청 이상으로 요구까지 의미할 수 있다. 22절 라반이 야곱에게 반응한 데 대한 어떤 기록도 없다. 침묵은 분명히

라반에게 불길한 계획이 있음을 가리킨다. 라반이 “좋다. 내가 네게 그를 주겠다”라고 말했더라면, 라반의 계략은 처음부터 실패했을 것이다. 그래서 말로 약속하는 대신 라반은 야곱을 무시하고 결혼 축제를 위해 마을 사람 들을 모은다. 23~25절 라반은 축제 후 라헬이 아니라 레아를 야곱에게 데리고 가고,

둘은 밤에 성적 친밀감을 즐긴다. 아침이 돼서야 야곱은 밤의 상대가 누구 인지 알아차린다. 한때는 속이는 주체였으나 야곱은 이제 속임을 당하는 대 상이 된다. 속임수를 쓰던 자가 속임수로 희생자가 된다. 야곱 자신이 한때

49 ) ‘세누아’가 절대로 “덜 사랑받았다”를 의미할 수 없기에, 전통적인 번역인 “그가 레아보다 그를 더 사랑했다”가 오로지 다음 절인 레아가 “사랑받지 못했다”(세누아)에 근거한 것이라면, 전통적 인 번역은 설득력이 없다. ‘밀레아’에서 전치사 ‘민’은 비교의 의미가 아니라 배제의 의미로 사용 된다. 다음을 보라. Fokkelmann, Narrative Art in Genesis, p. 129 n. 10. 50 ) 약혼한 아내의 법적 문제에 대해 다음을 보라. 신 20:17, 22: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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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이삭/야곱 사이클(25:19~36:43) F. 야곱이 라반과 라헬을 만나다 ( 29:1~35 ) 4. 야곱이 라반에게 속다 ( 29:21~30 )

사용했던 똑같은 방법에 당했다는 사실에서 응당한 처벌이 더욱 신랄하다. 야곱은 이삭 앞에서 에서인 척했다. 레아는 야곱 옆에서 레아인 척한다. 야 곱의 계략이 형인 것처럼 하는 것이었지만, 레아의 계략은 동생인 것처럼 하는 것이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인 대로 자신이 속는다. 이 이야기는 많은 이슈를 제기한다. 레아는 아버지가 야곱의 침대로 이끄 는 데 대해 어떻게 느낄까? 레아는 자발적으로 대체자 역할을 받아들이는 가? 이 사건은 레아 자신의 명성에 무슨 영향을 미치는가? 레아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치부된 데 만족하는가? 라반이 여종을 레아에게 준 사 실( 24절 ) 은, 레아가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시사한 다. 즉 라반은 결혼 때에 딸에게 선물을 주는 관습을 따른다.51 ) 어떤 의미에서 라반이 실바를 레아의 여종으로 줬다는 언급은, 이 사건의 드라마에 어떤 것도 기여하지 않는 듯하다. 다시 말해서 내러티브는 21~ 23절부터 곧장 25절까지 부드럽게 진행한다 ( 24절을

건너뛰고 ).

이런 식으로

23절 끝에서 야곱은 의심하지 않고 레아에게 들어가는데, 25절 시작에서 놀랄 일이 드러난다. 이것은 24절이 나중에 추가됐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52 ) 끼어들기는 했지만, 24절은 야곱이 이 계략에 반응하는 것과 관 련된 긴장을 해설자가 고조시키는 지연 장치의 역할을 한다.53 ) 가장 분명한 질문은 어떻게 라반이 이 속임수를 성사시킬 수 있었는가하 는 것이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레아를 잘 가렸다는 설명( 신부는 원래 그랬다. 참 고, 24:65 ) 과

밤에 결혼 방이 완전히 어두웠다는 설명에 만족했다.54 ) 아마도

눈이 멀 정도로 사랑에 사로잡혀 야곱은 신분을 숨긴 레아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 설명은 옳지만 완전하지는 않다. 가린 것과 어둠은 분명 그 자체 로 레아와 그의 목소리를 숨기기에 충분하지 않다. 이 제안은 요세푸스가 야곱은 “포도주와 어둠 때문에 현혹됐다”고 이미 제안했을 만큼 오래 됐다.55 ) 여기가 창세기에서 ‘체이라’( 더

어린 ) 과

‘베키

라’( 첫째 ) 를 함께 사용한 두 번째 경우다. 똑같은 용어가 롯의 두 딸을 묘사

51 ) 신부가 가족에게서 선물을 받는 다른 예로 다음을 참고하라. 옷니엘과 결혼하고서 갈렙의 딸은 아버지에게 샘물을 달라고 요구했다(수 15:19; 삿 1:15). 그리고 바로는 게셀을 지참금으로 딸에 게 줬다(왕상 9:16). 52 ) 반대 의견, Westermann, Genesis, 2:467. 53 ) Sarna, Genesis, p. 205; Sternberg, Poetics of Biblical Narrative, p. 243. 54 ) 예, R. Patai, Sex and Family in the Bible and the Middle East (Garden City, NY: Doubleday,

1959), pp. 64~65. 55 ) Josephus Ant. 1.19.6 (§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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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II

하는 데 사용됐다. 두 딸도 아버지를 속였고, 아버지를 취하게 하고서 아버 지와 성관계를 했다.56 ) 여기 창세기 29장에서도 “더 어린” 딸과 “첫째” 딸 이 있으며, 다시 취하는 내용이 이야기에 등장한다. 왜냐하면 라반의 속임 수는 “축제”( ‘샤타’[마시다]에서 나온 ‘미슈테’ ) 즉 마시는 연회 뒤에 오기 때문이다. 26절 일이 있고 나서야, 당황한 야곱이 라반에게 항의했을 때, 라반은 자

신이 야곱을 속인 것을 합리화한다. 라반은 밧단아람에서 언니보다 동생과 먼저 결혼하는 것은 풍습이 아니라고 야곱에게 알린다. 가나안에서 야곱은 첫째를 차지할 수 있을지 몰라도, 라반의 고향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라반이 법적으로 옳다 하더라도 왜 라반은 축제 전에 이 풍습을 야곱에게 알리지 않았는가? 알렸다면 여기서 일어날 흥분을 막지 않았을까? 라반이 야곱의 항의에 실제로 놀랐을 수 있는가? 라반은 절차상의 이유로 야곱이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먼저 레아와 결혼한 다음에야 라헬을 줄 수 있다 고 믿는가? 라반이 자신과 자신이 바꿔치기 한 것을 정당화하려고 사용한 표현이,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니라”( 로

예아세 켄 ) 인

것을 주목하

라. 이 표현은 사회 구조를 위협하는 풍습을 심각하게 어긴다고 언급하는 것이며, 비난에 가깝다. 이와 같이 아비멜렉은 이 구절을 아브라함이 자신 을 속인 후 그에게 사용한다( 20:9 ). 마찬가지로 야곱의 아들들은 여동생이 당한 소식을 듣고서 이 구절을 사용한다( 34:7 ). 다윗의 딸 다말은 이복동생 암논에게 이 표현의 의미를 호소함으로써 설득하려 했다( 삼하 13:12 ).57 ) 라반은 야곱에게 자신의 행동 방침을 설명할 때, 해설자가 이전에 한 것 처럼( 16절 ) 두 자매를 구분하기 위해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해 설자는 레아가 ‘하게돌라’( “더 나이든”, 직역하면 “더 큰” ) 라고 표현하고, 라헬은 ‘하 케타나’( “더 어린”, 직역하면 “더 작은” ) 라고 표현한다. 라반은 레아가 ‘하베키라’( 첫 째 ) 라고

표현하고, 라헬은 ‘하체이라’( 더

어린 ) 라고

표현한다. 해설자는 라반

이 선택한 단어로 말미암아, 29장을 25장과 27장 특히 25장과 연결시킬 수 있다. 25장에서 더 어린( 차이르, 25:23 ) 야곱은 첫째( 라브, 25:23; 가돌, 27:15 ) 에서에 게서 장자권 ( 베코라 ) 을 빼앗았다. 형 ( ‘가돌’이었던 ) 을 탈취한 ‘차이르’ 야곱은

56 ) 다음을 보라. J. A. Diamond, “The deception of Jacob: a new perspective on an ancient solution to the problem,” VT 34 (1984) 211~13; C. Carmichael, Women, Law and the Genesis Traditions (Edinburgh: University of Edinburgh, 1979), p. 99 n. 22. 57 ) 둘 다 ‘로 예아센 켄’이라는 구절을 사용할 뿐 아니라 야곱의 아들들과 다말이 이런 금지 행위를 ‘네바라’, “신성모독”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창 34:7과 삼하 13:12는 병행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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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이삭/야곱 사이클(25:19~36:43) F. 야곱이 라반과 라헬을 만나다 ( 29:1~35 ) 4. 야곱이 라반에게 속다 ( 29:21~30 )

‘케타나’/‘체이라’인 동생과 결혼하기를 원했다. 대신에 라반은 야곱이 이 소망을 억눌러야 한다고 설명하고, 야곱에게 자신의 ‘게돌라’/‘베키라’인 언니를 준다. 27절 이 절은 라반의 전략이 축제의 첫 밤에 일어났음을 분명히 한다.58 )

이것은 야곱이 “이( 레아 ) 를 위해 7일을 채우라”고 라반이 제안한 데서 암시 된다. 라반은 자신의 계획을 이행하기 위해 축제 끝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라반의 행동은 신속했다. 라반에게는 한 사람이 두 자매와 동시에 결혼하는 게 문제되지 않았다. 그리고 족장 내러티브에서도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후대 성경 법은 이런 관습을 비판하는데( 레

18:18 ),

따라서 이것은 야곱과 그의 아내에 대한 족장

전승이 레위기보다 시대가 앞선다는 것을 가리킨다.59 ) 28~30절 야곱은 더 이상 항의하지 않는다. 그는 라헬과 결혼하려면 7년

을 더 섬겨야 한다는 라반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신부 주간 끝에 라헬이 야 곱에게 허락된다. 이것은 라반이 신뢰한다는 행위다. 야곱이 라반의 지붕 아래 7년과 한 주간 있은 후 라헬과 달아나겠는가? 괴로운 상황에서 한 약 속에 야곱이 헌신하도록 보증하는 데 무엇이 있겠는가? 라반이 딸을 바꿨 기 때문에 라반에게 고용되는 기간이 두 배로 늘어나고 야곱에게 큰 고통 을 일으킬지라도 ( 그리고

아마도 라헬에게도 마찬가지로 ),

야곱이 오랫동안 라반에게

자기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야곱의 성격을 증명한다. 20절과 30절 사이에 14년이 지나간다. 즉 라헬 이전의 7년과 라헬 이후 의 7년이 지나간다. 29장 31절 이후( 야곱의 자녀들의 출생 ) 와 29장 30절( 야곱이 라 반에게 7년 더 섬김 ) 이

같은 시기에 일어난 이야기로 읽지 않는다면, 본질적으로

이 긴 기간에 대해 어떤 것도 기록되지 않는다. 사실 이것이 더 그럴듯한 읽 기다. 그럼에도 29장 31절 이후가 29장 30절과 이어진다고 읽는 것은 불가 능하지 않다. 31절은 라헬이 결혼 첫해만이 아니라 오랜 기간 임신할 수 없 었다고 제시한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 레아는 분명히 7년 동안 불임인 것은 아니었다. 구애의 7년에 대해 아무 것도 언급되지 않는다. 아마도 결혼의

58 ) 공을 들인 축제의 7일간을 다른 곳에서 언급하는 것에 대해 다음을 보라. 삿 14:12~18; 왕상 8:65~66; 에 1:5. 세 본문 가운데 처음 본문은 결혼 축제(삼손의)와 관련된다. 59 ) 오든(R. A. Oden, Jr., The Bible Without Theology [San Francisco: Harper & Row, 1987),

pp. 110ff)은 오직 성경 전승의 역사적 성장만 고려하는 성경 주석가들에게 이런 “잘못된” 결혼 이 성경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의 여부를 묻지 않고서 이런 답변을 한 데 대해 비판한다. 그러나 오든(Oden)은 사촌의 결혼이 만연한 관습이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계속 하면서, 여기서의 이슈, 즉 자신의 사촌 둘과 동시에 결혼한 남자를 다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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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II

첫 7년은 험악했을 것인데, 왜냐하면 야곱은 자신의 애정을 라헬과 레아 사 이에 공평하게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야곱은 분명하게 라헬과 사랑에 빠 졌다. 라반이 이 사건에서 야곱이라면, 야곱은 각각 한 아들을 다른 아들보 다 더 사랑했던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같이 되고 있다( 25:28 ). 부모의 편애 는 이제 결혼 생활의 편애로 대체된다. 부모의 편애는 이삭의 가족에서 마 찰로 이어졌다. 결혼 생활의 편애는 야곱의 가족에 마찰을 일으킬 것인가?

5. 야곱이 레아에게서 낳은 네 아들 ( 29:31~35 ) 31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

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60)

라헬

은 자녀가 없었더라 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

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 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33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

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 을62)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 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34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

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 고 그의 이름을63) 레위라 하였으며

When Yahweh saw that Leah was unloved, he opened her womb, while Rachel remained barren. 32 Leah conceived and gave birth to a son whom she named Reuben; for she said: “It means 61) Yahweh has seen my distress; it means my husband will love me!” 33 Again she conceived and gave birth to a son. She said: “Now that Yahweh has heard that I was unloved, he has given me also this one.” So she named him Simeon. 34 Again she conceived and gave birth to a son. She said: “Certainly now my husband will attach himself to me, since I have borne him three sons.” Thus he was named Levi. 35 Again she conceived and gave birth 31

60 ) 아비슈르(Y. Avishur, “Studies in Stylistic Features Common to the Phoenician Inscriptions and the Bible,” UF 8 [1976] 14)는 31, 32절의 ‘바이프타흐 에트 라흐마 …… 바텔레드 벤’과 페니키아 문헌(KAI, 27.22)의 lyptḥ [rḥ]my wtld, “그가 출생하도록 태를 열어주소서” 사이에 병 행 내용이 있음을 보여 준다. 61 ) 이 절에서 마지막 두 ‘키’는 아마도 원인(~ 때문에)과 강조(반드시)가 아니라 설명이나 낭독(그

것은 …… 을 의미한다, 그것은 …… 을 의미한다) 역할을 할 것이다. 33절의 처음 ‘키’에 대해서 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다. 다음을 보라. B. Childs, The Book of Exodus, OTL (Philadelphia: Westminster, 1974), p. 312; Speiser, Genesis, p. 230; A. Schoors, “The Particle kî,” OTS 21 (1981) 256~58. 62 ) 명사절 ‘세누아 아노키’는 “나는 사랑받지 못했다”나 “나는 사랑받지 못한다”라고 번역될 수 있다. 63 ) 70인역, 사마리아 오경, 팔레스타인 탈굼의 일부 버전은 마소라 본문의 3인칭 남성, ‘카라’(그가 불렀다)와 다르게 3인칭 여성 ‘티크라’로 읽는다. 나는 마소라 본문의 ‘카라’를 선호하며,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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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이삭/야곱 사이클(25:19~36:43) F. 야곱이 라반과 라헬을 만나다 ( 29:1~35 ) 5. 야곱이 레아에게서 낳은 네 아들 ( 29:3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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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

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to a son. She said: “This time I will praise Yahweh.” Thus she named him Judah. Then she ceased bearing.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31절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벧엘에서 말씀하신 이후로, 이곳은 여호와의

활동이 처음 언급된 곳이다. 야곱은 벧엘을 넘어 하란까지 갔으며, 목자들, 라헬, 라반을 만났고, 레아 및 라헬과 결혼했으며, 장인을 위해 7년을 일했 다. 여호와께서는 벧엘에 계단 가까이 뒤에 남아 계셨는가? 반대로 야곱이 이동을 계속할 때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대로 ( 28:15 ), 야곱 과 함께 가셨다. 하나님은 최소한 7년 동안 이야기에 관여하지 않으셨다. 여호와께서는 이제 7년과 한 주 후, 그리고 두 결혼 이후, 하나의 당황스러 운 사건 후, 장면에 다시 등장하신다.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목격하는 자는 라반이 아니라 여호와다. 히브 리어 단어는 ‘세누아’로, 직역하면 “미워했다”를 의미한다.64 ) 이전 절은 미 워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했다. “야곱은 레아가 아니라 라헬을 사랑했다”( 개역개정: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 신명기 21장 15절과 마태복 음 6장 24절에서처럼 “미워하다”는 여기서 사용된다. ‘세누아’를 사용한 것 도 히브리어로 한 단어, 특히 동사가 “그 행동뿐 아니라 반대의 행동을 생 략하거나 막는 것을 묘사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65 ) 여호와께서는 야곱과 에서의 경우 첫째보다 둘째( 즉 성공할 것 같지 않은 자 ) 를 선택하셨으므로, 이제 여호와께서는 사랑받는 라헬보다 사랑받지 못하는 레아( 즉 성공할 것 같지 않은 자 ) 를 선택하신다. 여호와께서는 미움 받는 자 레아 가 먼저 어머니가 되도록 하신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태를 여신 둘째 경우 이며, 첫째 경우는 아비멜렉 왕국에서 블레셋 여인들의 태였다 ( 20:17~18 ). “태”( 레헴 ) 의 세 자음 가운데 첫 두 자음과 “라헬”( 라헬 ) 이 똑같다는 사실에

와 수동으로 번역되는 능동 완료로 이해한다. 이 현상에 대해 다음을 보라. H. C. Brichto, “Kin, Cult, Land and Afterlife—A Biblical Complex,” HUCA 44 (1973) 15. 64 ) 신 21:15~17(“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의 율법을 공식적으로 표현할 때,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두 아내, 즉 하나는 사랑받고 하 나는 사랑받지 않는 것을 다룬 전승을 사용한 것에 대해 다음을 보라. C. Carmichael, The Laws of Deuteronomy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1974), pp. 58~62. 65 ) 다음을 보라. R. Gordis, “Some Hitherto Unrecognized Meanings of the Verb SHUB,” JBL 52 (1933) 153~54.

331


창세기 II

서 약간의 역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열린 것은 라헬의 ‘레헴’이 아니라 레아의 ‘레헴’이다. 31절은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그의 태를 여셨으나”라고 말한다. 야곱은 분명히 이 절들에서 열거된 레아의 네 아들의 아버지이지만, 31~35절에 임 신 행위 어디에서도 그는 언급되지 않는다. 야곱은 레아를 사랑하지 않았지 만, 둘이 결혼 한 후 이혼하려고 시도하지도 않았다( 참고, 신 22:13ff, 아내와 성관계 후 아내를 싫어하고 헤어지고 싶은 남편에 대한 법 ).

아마도 이혼은 야곱에게 선택 사항도 아

니었을 것이다. 만약 선택 사항이었더라면, 라반이 라헬 대신에 레아로 바꾼 것은, 야곱이 단순히 레아와 이혼한다면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야곱 이 말로 항의하는 것 이상을 한다면 야곱은 라헬도 잃었을 수 있다. 32절 레아가 임신한 때가 야곱이 라반 아래 두 번째 7년을 섬기고 있는

때와 비슷한 시기라고 여기면, 우리는 이 7년 가운데 첫 4년에 레아가 자녀 를 낳았다고 이해할 수 있다. 레아는 라헬의 곡선미의 몸의 가지지 않았을 지 모르지만, 라헬은 레아의 다산의 태를 가지지 않았다. 한 사람이 가진 것 이 다른 사람에게는 없다. 한 자매는 자녀가 없고 다른 자매는 자녀를 낳는 다. 흥미롭게도 레아는 라헬의 몸을 시기하지 않지만 라헬은 레아의 태를 시기한다( 다음을 보라. 30:1 ). 사실 야곱이 라헬을 위해 라반에게 더 섬기기로 동 의한 7년이, 그가 레아에게서 낳은 일곱 자녀( 아들 여섯과 딸 하나 ) 와 병행을 이 루는 것은 우연일 수 없다. 야곱이 라헬을 위해 7년을 섬길 때 레아는 7년 동안 매년 한 아이를 낳았다. 레아의 첫 아들은 “르우벤”이다. 레아는 분명히 르우벤의 유명한 어원이 나 민족의 어원을 제공하는 두 절을 사용해 언어유희를 표현한다. “여호와 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히. ‘라아 YHWH 베오니’ ) 에서 약간 떨어진 자음 들 r-b-n을 찾을 수 있다.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히. ‘예에하바니’ ) 라 는 구절에서 자음 순서 b-n이 르우벤의 자음 순서 b-n과 같다고 할 수 있 다. “르우벤”( 히. 다 ) !”

66 )

‘레우벤’ )

자체는 완벽하게 의미가 통한다. “보라 아들 ( 이

이를 고려할 때 르우벤이 태어난 후 레아가 말한 구절은, 어원적 설

명이 아니라 레아가 단언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레아 진술의 첫 부분, 곧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는 옳 다. 똑같은 명사가 하갈의 상황, 즉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

66 ) 야곱의 아들들의 직역의 의미와 해석된 의미에 대해 다음을 보라. M. Calloway, Sing, O Barren One: A Study in Comparative Midrash, SBLDS 91 (Atlanta: Scholars, 1986), p.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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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이삭/야곱 사이클(25:19~36:43) F. 야곱이 라반과 라헬을 만나다 ( 29:1~35 ) 5. 야곱이 레아에게서 낳은 네 아들 ( 29:31~35 )

라”( 16:11 ) 에 사용됐다. 두 경우 한 아내/첩( 레아/하갈 ) 은 다른 아내( 라헬/사라 ) 에 예속되는 역할을 한다. 여호와께서 곤경에 관여하신 결과, 예속된 여인들이 자녀를 낳는다. 두 경우 자녀에게 붙인 이름은 자녀의 이름에 있는 동사를 강조하는 구절이 뒤따른다. 여호와께서 “돌보셨으니”, 여호와께서 “들으셨 음이니라.” 레아가 말한 둘째 구절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는 정확 하지 않다. 레아는 임신이 배우자가 지원하고 사랑하는 보증이 아니라는 것 을 깨닫는다. 르우벤의 출생은 한 가지 면에서 다음 세 출생과는 다르다. 다른 세 출생 에서 레아가 진술한 후, 이름이 자녀에게 부여된다. 르우벤의 경우 레아가 진술하기 전에 이름이 부여된다.67 ) 이것이 르우벤을 장자로 강조하는 방법 인가? 여기서 첫째( 레아 ) 는 첫째( 르우벤 ) 를 낳고 있다. 33절 둘째 아들의 이름 “시므온”( 히. 마’ ) 와

‘쉬몬’ ) 은

동사 “들으셨으므로”( 히.

‘샤

연결된다. 르우벤의 출생과 마찬가지로 시므온의 출생은 유쾌하지 못

한 경험과 연결되며, 이 유쾌하지 못함을 행복하게 조정하는 것이 따른다. 레아가 자녀 이름을 지을 때, 그는 불쾌한 상황이 아니라 이 상황을 이기시 는 여호와께 초점을 둔다. 레아는 첫 아이 이름을 “내 고통”이라고 짓지 않 으며, 둘째 아이를 “사랑받지 못한 자”라고 짓지도 않는다. 첫째( 31절 ), 여호와께서는 레아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보셨다.” 이제 레 아는 여호와께서 자신이 사랑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라고 말한다. 누구 에게 들었는가? 아니면 “듣다”는 “주의하다, 조치를 취하다”를 의미하는가? 32절의 “사랑”( 아하브 ) 과 33절의 “사랑 받지 못함”( 세누아 ) 사이에 분명한 대조 가 있다. 르우벤의 출생은 야곱이 레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바꾸지 못했 다. 야곱이 자녀들 이름을 짓는 데 어떤 역할도 하지 않은 것은 흥미롭다. 34절 레아는 셋째 아들을 “레위”( 히.

‘레비’ ) 라고

이름 짓는데, 왜냐하면 레

67 ) 롱(B. O. Long, Problem of Etiological Narrative)과 피히트너(J. Fichtner, “Die etymologische Atiologie in der Namengebung der geschichtlichen Bucher des Alten Testaments,” VT 6 [1956] 372~96)는 이름이 원인 설명을 앞서는 것(형식 I)과 이름이 원인 설명을 따르는 것(형식 II)을 구분한다. 29:31~35에서 모든 원인 설명은 다음과 같이 형식 I이다. (1) 동사 ‘카라’에 바브 전환사를 앞에 붙임으로써 역사적 시제로 이름 짓기의 행위가 이야기된다. (2) 첨부하는 동사 형 태가 있는 어원론적 설명이 이름 짓기 자체 뒤에 따른다. 이와 같이 32절은 (1) “그리고 그가 그 에게 이름을 지었다”(바티크라), (2) “그가 말했기 때문이다”(키 아메라)가 있다. 33~35절과 32 절을 구분하는 것은 33~35절에는 이름을 위한 동기를 제공하는 짧은 진술(예, 33절: “여호와께 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이 (1)을 앞서고, 언어유희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33절 과 34절은 형식 II의 원인 설명을 소개하는 문구인 ‘알 켄’이 있으므로, 형식 II에 가깝다(이에 대 해 다음을 보라. Long, Problem of Etiological Narrative, pp. 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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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ot

nicot

on the old testament

NICOT 주석 시리즈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구약이라는 험준한 산맥을 횡단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도와 왔습니다. 최고의 구약 주석으로 자리매김한 NICOT는 신 학자, 목사, 랍비, 신학생을 아우르는 폭넓은 독자층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창세기 Ⅱ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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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NICOT 시리즈의 모든 주석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하는 복음주의의 입장 을 견지하면서 학문적인 탁월함과 신앙적인 적용을 함께 추구하고 있습니다. 서론에서 는 저자, 기록 시기, 기록 목적, 구조, 신학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본문에서는 히브리어 원문에 대한 저자의 사역과 본문에 대한 세밀한 주석을 제시합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 님의 음성을 새롭게 듣고자 하는 독자들은 이 주석 시리즈가 구약이라는 낯선 세계로

지은이 빅터 해밀턴(Victor P. Hamilton) 브랜다이스 대학교에서 지중해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Ph. D.)를 받았고, 애즈베리 신학교에서 37년

빅터 해밀턴 지음

떠나는 여정에 도움을 주는 신실하고 신뢰할 만한 안내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간 구약학을 가르치면서 오경 연구에 몰두했다. 해밀턴은 고대 근동의 문화와 언어에 대한 풍부한 지 서 개론』, 『출애굽기 주석』 등이 있다.

옮긴이 임요한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했고, 남아공에 있는 프레토리아 대학교에서 구약학 박사학위(Ph. D.) 를 받았다. 『구약 주해와 텍스트 언어학』을 저술했고, 『한 권으로 읽는 조나단 에드워즈 신학』, 『구 약과 신약의 관계』(이상 부흥과개혁사) 등을 번역했다.

임 | 요한 옮김

식을 토대로 이번 NICOT 시리즈의 창세기 주석을 저술했으며, 그 밖의 저술로는 『오경 개론』, 『역사

창세기Ⅱ Genesis 18~50 빅터 해밀턴 지음 | 임요한 옮김

ISBN 978-89-6092-534-2 978-89-6092-335-5(세트)

www.rnrbook.com

값 4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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