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BT
NSBT 성경신학 시리즈 New Studies in Biblical Theology
욥기 성경신학
구약 욥기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본문 하나가 여호와의 두 번째 말씀 가운데 나온
에릭 오틀런드 지음 | 김희정 옮김 | 298쪽 | 20,000원
다(욥 40-41장). 등장인물뿐 아니라 독자도 여호와가 말씀하시기를 오랫동안 기
이스라엘 역사 성경신학
다렸으나, 이 말씀은 전통적으로 하마와 악어(베헤못과 리워야단)를 상세히 묘사
크리스 브루노 외 2인 지음 | 전광규 옮김 | 307쪽 | 18,000원
한 것으로 해석되는 데 그쳤다.
이사야서 성경신학
에릭 오틀런드는 베헤못과 리워야단이 우주적 혼돈과 악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
앤드루 애버네시 지음 | 신윤수 옮김 | 323쪽 | 18,000원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초자연적인 해석이 욥기 주해뿐만 아니라 욥이
욥기 성경신학
NSBT
살았던 중동의 맥락에도 더 어울린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해석해야 현대 독자가
약속의 땅 성경신학 오렌 마틴 지음 | 전광규 옮김 | 248쪽 | 14,000원
욥기의 화자가 의도한 만족스러운 절정을 음미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하나님
NSBT
N e w S t u d ie s in B ibl i c a l T he olo g y
지은이
(Eric Ortlund)
욥기 성경신학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구약 성경에 대한 사랑에 빠졌고,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박사 논문을 썼다. 오크힐 대학에 오기 전에는 캐나다 브라이어크레스트 대학과 신 학교에서 10년 동안 가르쳤다. 오크힐 대학에서 히브리어 와 구약 성경을 가르치며, 특히 이사야, 시편을 가르치고 히브리어 초급반을 지도하는 데 기쁨을 느낀다. 이사야와 욥기를 주로 연구하며, 특히 이 두 책이 그리스도인의 제 자도에 깊이를 더하고 기독교 사역을 충실하게 만드는 것 에 크게 관심을 두고 있다. ESV 성경 해설 주석 시리즈의
은 베헤못과 리워야단을 묘사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욥의 불평을 정면
다니엘서 성경신학
으로 다루면서, 욥에게 하나님이 자신의 피조물 가운데 풀려난 악을 욥보다 더 잘
제임스 해밀턴 지음 | 김귀탁 옮김 | 336쪽 | 18,000원
파악하고 있으며, 악을 통제하고 있고, 언젠가 악을 파괴할 것이라고 말한다.
요한계시록 성경신학
“최근 몇 년 동안 욥기 연구가 넘쳐났는데, 이 책과 같은 연구 내용은 전혀 없었
브라이언 탭 지음 | 김귀탁 옮김 | 372쪽 | 20,000원
다. 대부분의 연구는 하나님이 욥의 질문에 직접 답하기를 거부하신다는 점을 중
하나님의 악의 세력 리워야단 정복
폴 윌리엄슨 지음 | 김귀탁 옮김 | 296쪽 | 16,000원
할례 성경신학
“절망적인 소망 가운데 수고: 전도서가 그리스도인에게
다. 하나님이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하시므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다. 그러나 에릭 오틀런드는 욥기를 이렇게 해석하면 다른 본문 여러 군데를 잘못
욥의 처음 반응과 두 번째 반응의 차이, 리워야단의 의미 등의 요소들을 주의 깊
레위기 성경신학
게 살피며 욥기가 여러 사람이 생각하듯 열린 결말을 가진 책이 아니며 욥의 근본
L. 마이클 모랄레스 지음 | 신윤수 옮김 | 470쪽 | 26,000원
적 대답에 대한 견고한 토대를 제공하는 책이라고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D. A. 카슨
옮긴이
God’s defeat of evil in the book of Job 에릭 오틀런드 지음 김희정 옮김
칼 디닉 지음 | 김귀탁 옮김 | 356쪽 | 20,000원
주는 격려”가 대표작이다.
Piercing Leviathan
온을 펼치시고 눈 저장고를 조절하시며 악어를 만드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읽기 쉽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두 번에 걸친 하나님의 담화, 하나님의 담화에 대한
에스더와 말라기 주석이 곧 출간될 예정이며, Themelios 에 실린 “고난받는 자를 위한 욥기의 다섯 가지 진리”와
요하게 다룬다. 이 해석에 따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늘에 오리
죽음과 내세 성경신학
에릭 오틀런드
김희정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SFU)에서 언어학을 전공 했고 캐나다 리전트 대학에서 수학했다. 아세아 연합신학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현 재는 밴쿠버 지구촌교회에서 청소년부를 섬기고 있다. 역
에릭 오틀런드 지음 김희정 옮김
서로는 『로이드 존스를 말하다』, 『태초의 첫째 아담에서 종말의 둘째 아담 그리스도까지』, 『잃어버린 기독교의 보 물 교리문답 교육』, 『미친 듯이 바쁜』, 『만화로 보는 진화
안드레아스 쾨스텐베르거 지음 | 전광규 옮김 | 276쪽 |
론 비판』, 『성경신학이란 무엇인가』(이상 부흥과개혁사) 등
14,000원
시리즈 편집 D. A. 카슨
하나님 나라 관점으로 읽는 구약신학 스티븐 뎀프스터 지음 | 박성창 옮김 | 320쪽 | 16,000원 ISBN 978-89-6092-718-6 ISBN 978-89-6092-430-7 (세트)
www.rnrbook.com 값 20,000원
이 있다.
| 목차 |
| 시리즈 서문
6
| 저자 서문
8
| 약어
11
1장 서론과 문제 진술
15
욥기의 문제점 | 신화에 대한 한마디
2장 욥의 비극(1-2장)과 친구들과의 논쟁 실패(3-37장)
29
욥의 온전함, 고발자의 질문, 그리고 큰 대가를 치른 욥의 경배(욥 1-2장) | 욥과 친구들의 논쟁: 첫 번째 라운드(4-14장) | 논쟁 첫 라운드에 대한 숙고 (4-14장) | 논쟁 두 번째 라운드(15-21장) | 논쟁 세 번째 라운드(22-27장) | 얻기 불가능한 지혜(28장)와 욥의 마지막 무죄 주장(29-31장) | 엘리후(32-37 장) | 욥과 친구들 사이의 논쟁 평가
3장 여호와의 첫 번째 말씀과 여호와의 창조 세계 통치 (욥 38:1-40:5)
103
“그때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38:1): 여호와의 서론 | 여호와가 욥 에게 도전하며 말씀을 시작하심(38:2-3) | 땅의 기초를 놓은 자가 누구냐 (38:4-7) | 수사적 질문과 어조의 문제 | 높은 파도를 “강보에 싸심”(38:8-11) | 일출이 갖는 도덕적 의미(38:12-15) | 우주의 여러 곳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 (38:16-38)과 그 안에 사는 동물들(38:38-39:30) | 인간의 한계, 하나님의 선 하심과 계속되는 악의 존재: 여호와의 첫 번째 담화가 욥에게 주는 의미 | 여호 와의 첫 번째 담화에 대한 또 다른 중요한 해석 | 욥의 반응(40:1-5): 욥은 만 족했는가, 독자는 만족했는가
4장 여호와의 두 번째 말씀과 리워야단을 물리치심 (욥 40:6-41:34)
165
“네가 내 공의를 깨뜨리려 하느냐”(40:6-8) | 전사 하나님의 준비(40:9-14) | 베헤못: ‘초강력 짐승’(40:15-24) | 리워야단: 구불구불 도망가는 뱀(41:1-34) | 베헤못과 리워야단에 대한 가능한 해석들 | 베헤못과 리워야단이 초자연적 혼 돈과 악을 상징한다는 증거 | 여호와의 두 번째 담화가 주는 소망과 위로 | 욥 에게 하신 하나님의 두 번째 말씀이 갖는 한계
5장 욥의 회복과 신정론의 문제(42장)
241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의 두 번째 대답(42:1-6) | 욥의 회복 (42:7-17) | 욥기와 신정론의 문제 | 고난과 악의 문제에 대한 욥기의 독특한 기여
6장 요약과 결론
| 참고문헌
289
285
시리즈 서문
“성경신학의 새 연구”( NSBT ) 는 성경신학 분과의 핵심 쟁점을 다루 는 단행본으로 이루어진 시리즈다. 이 시리즈에 들어 있는 책은 다음 세 영역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에 초점을 맞춘다. (1) 다른 분과( 예를 들 어 역사신학, 석의, 조직신학, 역사 비평, 이야기 신학 ) 와의
관계를 포함하여 성경신
학이 갖는 성격과 지위, (2) 특정한 성경 저자 또는 성경 문헌에 대 한 사유 구조의 표현과 설명, (3) 성경 전체 또는 일부를 관통하는 성경적 주제에 대한 묘사. 무엇보다 이 단행본들은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성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움을 주려는 창의적 시도다. 이 시리즈는 교육하고 덕을 세우는 동시에 현재의 문헌과 상호 소통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 향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지성과 감성 이 단절되어서는 안 된다. 이 시리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합쳐 놓으 신 것을 나누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주해는 최고의 학술 문헌과 상호 소통하지만, 본문은 음역된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사용하고 전 문용어의 사용은 가급적 피하려 한다. 이 시리즈의 책들은 고백적 복 음주의의 틀 안에서 집필되고 있지만, 관련 문헌을 철저하게 조사하 려는 시도를 언제나 보여 준다.
6
욥기 성경신학
최근 몇 년 동안 욥기 연구가 넘쳐났는데, 이 책과 같은 연구 내용 은 전혀 없었다. 대부분의 연구는 하나님이 욥의 질문에 직접 답하기 를 거부하신다는 점을 중요하게 다룬다. 이 해석에 따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늘에 오리온을 펼치시고 눈 저장고를 조 절하시며 악어를 만드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하시므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 러나 에릭 오틀런드는 욥기를 이렇게 해석하면 다른 본문 여러 군데 를 잘못 읽기 쉽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두 번에 걸친 하나님의 담화, 하나님의 담화에 대한 욥의 처음 반응과 두 번째 반응의 차이, 리워 야단의 의미 등의 요소들을 주의 깊게 살피며 욥기가 여러 사람이 생각하듯 열린 결말을 가진 책이 아니며 욥의 근본적 대답에 대한 견고한 토대를 제공하는 책이라고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D. A. 카슨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
시리즈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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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문
박사 학위를 마친 후 주님이 은혜 가운데 내게 가르칠 기회를 열어 주셨을 당시, 나는 지혜서에 노출된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나 는 브라이어크레스트 대학과 신학대학원에서 매년, 때로는 한 번 이 상씩 지혜서를 가르치게 되었다. 정경 중에서도 지혜서 부분과 친숙 해지기 위해 나는 조금 서둘러야 했다. 나는 이 일을 즐기려 했고 실 제로 그랬다. 그런데 예기하지 않게도 나는 잠언과 욥기, 전도서가 목회와 매우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잠언이 혀로 짓 는 죄와 지혜롭지 않은 말( 북미 교회의 심각한 문제 ) 에 대해 샅샅이 살피는 방식에 놀랐고, 전도서가 어떻게 우리가 하는 일의 가치를 그 일이 초래하는 가시적인 결과( 이것은 너무 금방 사라진다 ) 와 분리하며, 땅에서의 우리 삶의 가치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는지를 보며 놀랐다. 욥기 역시 우리 삶과 깊은 관련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더 슬픈 이 유에서 그렇다. 바로 욥기의 이야기가 현실에 너무 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끔찍한 고난을 받게 허락하시는 그리스도인이 많은데 이 고난은 사실 그들이 지은 과거나 현재의 어떤 죄와도,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장과도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인다. 혼란스러움은 고통을
8
욥기 성경신학
심화시킬 뿐이다. 하나님은 왜 이러시는가? 하나님은 나에게 화가 나셨는가? 하나님이 나에게 하라고 하셨는데 내가 잘못 이해한 게 있는가? 아니면……내가 하나님을 잘못 알았나? 하나님은 내가 생각 한 분과 다른가?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 모든 게 바로 욥의 질문이 었다. 하지만 이런 질문들은 설명할 수 없는 고난 중에 있는 그리스 도인에게는 욥기를 읽어 보았든 아니든 반드시 생기게 마련이다. 첫 번째 발견에 이어 두 번째 알게 된 사실은 이것이다. 욥기를 이 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통찰력 있는 주석이 잠언이나 전도서보다 훨 씬 적다는 점( 내 의견이며 최소한 현시점에서는 그렇다 ) 이다. 책 서문에 참고문헌 을 많이 나열하지 않아야 함을 잘 알고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 잠언 이나 전도서에 대해서는 학문적 수준과 실천적 수준에서 모두 뛰어 난 주석들이 있다.1) 그러나 욥기에 대한 현대의 주석들은 많긴 하나, 내가 조건 없이 마음 놓고 추천할 만한 것들은 적다.2) 어떤 주석은 단순히 설득력이 없으며 어떤 주석은 이단적이기까지 하다. 여호와 가 욥에게 하신 말씀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책 전체에 산재해 있다. 이런 부족함을 메꾸는 데 도움이 되고자 이 책을 겸허히 내놓는 바다. 나는 욥기를 주해적으로는 신중 하게, 신학적으로는 정통교리에 맞게 해석하며 욥처럼 고난 가운데 주 예수께 신실함을 지키며 어찌하면 하나님을 찾을 수 있을까 소망 하는(욥 23:3) 독자들을 계속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2012년 가을에 브라이어크레스트에서 가르쳤던 욥기 고 급반 토론 수업에서 출발했다. 나는 이 책이 나오기까지의 여정을 함 께 해 준 이 반의 ‘열심히 공부한 진실한’ 학생들에게 깊은 감사를 1) 잠언에 있어 뛰어난 주석은 Waltke 2004, 2005 and Fox 2000, 2009이다. 전도서에서는
Fox 1999 and Seow 1997 주석이 뛰어나다. Gibson 2016은 내가 읽어 본 실천적 전도서 해설에 있어 으뜸이다. 2) 그러나 Ash(2014)와 Hartley(1988)는 다른 주석과 달리 특히 읽어 볼 가치가 있다.
저자 서문
9
표한다. 특히 이들은 내 일정이 꽉 차는 바람에 유일하게 남았던 오 후 4-6시에 수업을 들어야 했다( 허기진 배로 욥기와 씨름해야 한다고 상상해 보라 ). 또한, 내가 욥기를 더 잘 이해하게 도와준 브라이어크레스트 대학과 ( 내가 가르치는 )
오크 힐 대학의 학생들과 동료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일
일이 언급하기엔 너무 많지만, 모든 한 분 한 분께 감사한다. 편집을 도와준
( 그리고 내 새 친구라 믿는 )
엘도 바르쿠이젠에게 진심으로 감사
한다. 그는 원고가 책으로 출판될 수 있게 지치지 않고 즐거운 마음 으로 애써 주었는데 이에 깊이 감사한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내 에린에게 감사한다. 에린은 원고 교정을 도와 내가 부끄러운 실수를 면하게 도와주었다. 여보, 고마워요. 주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고난을 인내하고 견디는 일에 이 책 이 기쁜 용기를 더하도록 하나님이 이 책을 사용하시고 모든 하나님 의 성도들이 욥처럼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말하게 되길 바란다. 에릭 오틀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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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성경신학
1장
서론과 문제 진술
욥기 전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욥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담 화를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달려 있다.1)
리워야단 해당 본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 부분은 하나님이 욥에게 하셔야 할 말씀의 절정이자 요 약판이다.2)
책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회오리바람 하나님 말씀 본문은 이 를 다루는 글마다 해석이 다양해 독자들은 같은 본문인데도 다른 인상을 받는다.3)
1) Rendtorff 1986: 252. 2) Newsom 2003: 250. 3) Greenstein 1999: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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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의 문제점 욥기는 정경 전체에서도 가장 어려운 책의 하나로 여기기에 충분 하지만, 이 책이 주는 어려움은 종류가 다르다. 예를 들어 어떤 독자 들은 책 도입부에서 여호와가 욥이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하 나님이 주신 선물만을 사랑하는지 시험하기 위해 자녀들의 죽음을 허락하는 것을 보며 도덕적으로 석연하지 않게 느낄 수 있다( 1:9를 보라 ).
또 어떤 이들은 욥 자녀들의 죽음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사탄과
의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치르는 대가로 가치가 있는지 냉소적으로 질문하기도 한다. 3-37장에 나오는 욥과 친구들과의 논쟁에서 독자 들은 또 다른 문제를 만난다. 간결하고 쉬운 이야기 형식에서 아주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시 형식으로 본문이 바뀌기 때문이다. 다 행히 논쟁의 기본 진행 방향은 명료하다. 친구들은 욥이 고백하지 않 은 죄가 있으므로 그 벌로 고난 받아 마땅하다고 욥에게 주장함으로 써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일관적으로 변호하지만, 욥은 자신이 죄 가 없음을 알면서도 죄인으로 심판하신 하나님이 부당하다고 주장 한다. 하지만 동시에 욥은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으며 하나님과 화해 하길 간절히 바란다. 일반적 논쟁의 개요는 이처럼 분명하지만, 논쟁 본문에는 주해, 본문, 철학에 관련된 많은 곤란한 문제가 들어 있으 며 전혀 이해되지 않는 짧은 구절도 여럿 들어 있다. 38-41장에서 여호와가 욥에서 말씀하실 때 독자들은 안도의 한숨 을 쉰다. 반복적이고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논쟁이 끝나고 이제 하나님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실 것 같아서다. 하지만 38장 1절-40장 2절과 40장 6절-41장 34절에 나오는 여호와의 두 번의 말씀은 욥과 친구들의 논쟁을 달구는 문제에 대해 분명 직접 답하지는 않는다. 하 나님은 첫 번째 말씀에서 욥에게 창조 세계와 그 안에 서식하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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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성경신학
양한 동물을 보여 주신다. 그러나 욥의 고통에 대해서나 고통을 허락 한 하나님을 향한 욥의 이의제기에 대해선 어떤 명쾌한 대답도 하지 않으신다. 게다가 두 번째 말씀에선 베헤못과 리워야단이 왜 이렇게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바와 같이 이 두 피조물이 하마와 악어라면, 도대체 어떤 면에서 이 말씀은 욥 에게 만족스러운 대답이 될 수 있는가? 버나드 쇼는 빈정거리며 “부 당하게 고난 받는다고 불평할 때 ‘너는 하마를 만들 수 있느냐?’는 전혀 할 대답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4) 하지만 여호와의 두 번째 말씀에 대한 욥의 반응을 보고 그 반응이 하나님의 첫 번째 말씀 때 그가 보였던 반응과 얼마나 다 른지를 깨달으면 당혹감은 더 깊어지기만 한다. 즉, 40장 3-5절에 나 온 욥의 첫 번째 반응은 순종적이지만 좀 차갑고 형식적으로 보였던 데 반해 두 번째 반응에서 욥은 자신을 매우 낮추어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말하며 거리낌 없이 경배한다.5) 또한 혼란스 러운 점은 여호와가 38-41장에서 자신에 대해선 거의 아무 말도 직 접 하지 않으시는데도, 욥은 하나님께 답하며 베헤못과 리워야단에 대한 통찰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 대한 통찰을 얻었다고 말한다. 38-41장의 복잡한 시에서 욥은 어떤 추론을 했기에 그렇게 변하게 되었는가? 지치지 않고 하나님을 비판하던 욥은 여호와의 성품과 행 동에 대한 어떤 획기적 새로움을 발견했기에 갑자기 경외감에 휩싸 여 하나님을 경배하게 된 것일까? 다른 질문들도 생긴다. 만약 베헤 못과 리워야단이 단지 두 가지 더 추가된 일반적인 동물이라면, 여호 와의 두 번째 말씀은 하나님의 세상 속에 있는 여러 동물을 이미 묘 4) Walton 2012: 397에서 인용. 5) 다르게 명시되지 않은 한 번역은 ESV를 따랐다. 42장에 나온 욥의 말이 갖는 정확한 의미,
특히 6절에 대한 의미는 논쟁이 되고 있다. 위에 말한 것은 이 책 5장 앞부분에서 주장한 해석을 예상하게 해 준다.
1장 서론과 문제 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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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 첫 번째 말씀과 어떻게 다른가? 또 하마와 악어의 신체적 특징 을 묘사하는 것이 두 번째 말씀 처음에 언급되는 주제인 하나님의 공의( 40:8 ) 와 관련해 어떻게 만족할 만한 답이 되는가? 욥기를 읽는 현대 서구 독자들은 만족할 만한 해결책이 나오기를 기대했던 지점 에서 이야기가 절정에 도달하지 않고 하강한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욥기의 결말이 주는 어려움은 욥기 전체를 이해하는 데 매우 큰 영 향을 미치며, 결과적으로 구약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만물 통치 및 끊임없는 고통과 악의 존재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어떤 학자들은 욥기가 악의 문제에 대해 모호하고 불만족스 럽게 답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부당함을 입증한다고 주장하며 욥기 를 ‘반 신정론’이라 확대 해석하기도 한다.6) 이 주장이 옳다면 성경 에서 극심한 고난에 대해 가장 극적이고 두드러지게 논의한 부분이 결국은 악의 문제에 대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 되고 만다. 욥기가 오히려 악의 문제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게 옳다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아주 해로운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다. 이 책은 위에 요약한 욥기의 어려움이나 독자들이 수년간 욥기를 읽으며 갖게 된 수많은 질문( 엘리후의 조언은 욥에게 도움이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 욥의 아내는 왜 이야기 다른 곳에는 언급되지 않는가 등 ) 을
모두 다루진 않을 것이다.
3-37장의 난해한 시에 대해서는 욥기 시의 전문적 본문 비평, 철학 적, 주해적 문제에 대해 잘 안내해 주는 주석이 몇몇 있다.7) 또한, 1-2장은 읽을 때 불편함이 있지만, 우리가 1-2장에서 금방 배우게
6) 제임스 크렌쇼와 에드워드 그린슈타인이 이 결론을 가장 강력히 주장한다. 이들의 다른 작
품들은 이 책 여러 지점에서 논의하겠다. 7) Seow 2013 and Clines 1989, 2011는 이를 다룬 뛰어난 작품이라 할 만하다.
18
욥기 성경신학
되는 것은 하나님이 때로 성도들에게 참혹한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 유다. 즉, 고난은 관계의 진실 여부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욥 이 정말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잘 살려고 그냥 가짜로 하나님께 아첨했는지를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중요한 것 은 욥기 1-2장이 여호와를 아는 것이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자기 자녀들을 아는 가치도 뛰어넘는다는 점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2장의 경우와는 반대로 여호와의 담화에 대한 해 석의 문제는 현대 주석가들을 끈질기게 괴롭혀 왔으며 이 책이 집중 해 다룰 문제이기도 하다. 여러 주석이 일반적으로 3-37장의 논쟁 진행을 같은 방식으로 따르지만( 매우 난해한 구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 여호 와의 두 번의 말씀에 대해서는 그 해석이 매우 다르고 서로 맞지도 않는데 대부분은 주해적, 신학적으로 만족스럽지 않다. 그 이유는 이 해석들이 베헤못과 리워야단 묘사가 하나님의 정의를 변호하고 있 음을 설명하지 못하고( 40:8 ) 어떻게 이 변호가 욥의 저항적 비판을 굴 복의 경배로 바꾸는지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본 책은 베헤못 과 리워야단이 우주적 혼돈과 악의 상징이라 주장함으로써, 이와 같 은 해석적 난관에 답하려 한다. 나는 여호와가 욥이 처했던 문화적 틀 안에서 고대 근동과 구약 성경에 흔하게 등장하는 상징들을 사용 해 자신이 자신의 창조 세계에서 작용하고 있는 혼돈을 욥이 알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다고 욥에게 말씀하고 계시며, 언젠 가 이것을 무찌를 것이라 약속하고 계시는 것이라고 주장할 것 이다( 41:7-8 ).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 세계에 산재한 악의 크기와 악함 을 욥보다 훨씬 더 잘 알고 계신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 괴물을 처단 할 날이 오고 있다. 하나님은 욥에게 시련을 허락한 이유를 설명하지 도 사과하지도 않은 채, 리워야단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암묵적으로 요구하신다. 즉, 이렇게 악에게 제한적이긴 하지만 어느
1장 서론과 문제 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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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 실제적인 영향력을 허락하신, 하지만 영원하게 허락하지는 않 으신, 하나님의 통치 방식을 신뢰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때 로는 끔찍한 고난을 허락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창조 세계를 다스리 는 것의 정당성을 변호하신다( 40:8 ). 이에 욥은 하나님께 경배한다. 나는 베헤못과 리워야단을 우주적 악의 상징으로 해석하면 주해 적, 목회적으로 큰 유익이 있다고 생각한다. 욥기가 제기하는 시급한 문제에 대해 만족할 해답을 주고 알 수 없는 고난 한가운데서도 기 쁨으로 소망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공해 주니 말이다. 그 러나 이런 입장을 주장하는 이는 소수다. 여러 주석이나 유명 작품들 은, 고백적 관점에서 썼는지 아닌지 상관없이, 여호와가 욥에게 이렇 게 자세히 묘사하시는 두 생명체를 하마와 악어로 이해하는 게 가장 자연스럽고 확실하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해석이 다수인 상황에서 본 책은 다음의 계획에 따라 베헤못과 리워야단에 대한 소 수의 반대 의견을 제시하려 한다. 나는 3-37장의 욥과 친구들의 논 쟁뿐 아니라 1-2장의 욥의 고난에 대한 더 큰 배경( 매우 비극적이고 모순적 이나 욥은 이에 대해 전혀 모른다 ) 을
요약하는 장으로 이 책을 시작할 것이다.
이 요약은 중요한데 이는 38-41장에 나오는 여호와의 대답이 그의 창조 세계 운영 원칙에 대한 일반적이거나 변하지 않는 변호가 아 니라, 욥이 논쟁에서 그에게 제기한 비판만을 구체적으로 다룬 대답 이기 때문이다. 3장과 4장에선 여호와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대답을 각각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38장 1절부터 40장 2절에 나온 하나님 의 담화를 사람들은 두 번째 말씀보다 보통 더 잘 이해하나, 이것도 매우 다양한 해석을 낳는데( 이중 어떤 이는 하나님이 악하다고 결론 내린다 ), 이 점 도 살펴볼 것이다. 4장에서는 40장 6절부터 41장 34절에 나온 여호 와의 두 번째 담화 및 베헤못과 리워야단에 대한 다양한 해석에 집 중하며, 베헤못과 리워야단이 초자연적 혼돈과 악의 상징임을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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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것이다. 5장과 마지막 장에서는 42장 1-6절에 나온 욥의 대답과 42장 7-17절에 나온 그의 회복이 갖는 의미를 다룰 것이다. 욥기 42장은 물론 리워야단 담화 후에 나오며 리워야단 담화는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42장에 와서야 신정론의 문제가 특히 두드러지게 부각된다. 위에서 언급했듯, 일부 주석가들은 욥기가 악 의 문제에 대해 모호하게 답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부당한 고난을 방치한다고 말하는 부정적인 책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이런 해석 가운데 하나님의 담화 본문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하나님의 담화 에 대한 욥의 반응을 자세히 읽어 보는 것도 특히 아주 중요하다. 따라서 고난과 악, 이것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에 대해 이 책이 말하려는 바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하나님의 담화와 욥의 반 응을 욥기 42장과 관련해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 이 작업은 욥기 42장을 회의론적이며 ‘반 신정론’으로 읽는 것이 여러 지점에서 주 해적으로 맞지 않음을 입증해 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그렇다고 욥기를 성경에서 신정론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책으로 생각하라는 말 도 아니다. 만약 신정론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악을 용인하고( 또는 용인 하거나 )
이끄시는 하나님에 대한 정당화로 정의하거나, 하나님의 선한
목적 속에서의 악과 고난의 역할에 대한 설명으로 정의한다면, 욥기 는 오직 제한적이고 약간 모순적 방식에서만 신정론을 말한다. 1-2장에 드러난 천상 회의라는 큰 범주의 장면을 통해서만 독자는 왜 하나님이 이렇게 상상하기도 힘든 고난을 가장 고난이 합당하지 않은 자에게 허락하시는지 알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욥에게 왜 고 난을 허락하셨는지 아무 설명도 없으시고, 이 고통을 욥에게 허락하 시기로 한 결정이 정당한지 입증하지도 않으신다. 그 결과 욥기를 ‘반 신정론’으로는 절대 읽을 수 없다 해도 확실한 신정론으로 보기 도 어렵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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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낙담되는 결론같이 보일 수 있다. 독자들은 악의 문제에 대해 성경에서 가장 분명히 다루는 이 책이 고난 속에서도 신실함을 지키 려는 하나님 백성에게 딱히 별 답을 주지 못할까 봐 일찍부터 걱정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놀랍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나는 욥기가 독자 들에게 엄격한 의미에서 신정론이 아니라 해도, 예기하지 못한 고난 속에서 기쁘고 용감하게 인내하게 하는 엄청난 자원을 제공한다고 믿는다. 사실 내 느낌에 만약 욥기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방식을 정당화하거나 설명한다는 의미에서의 신정론에 더 깔끔하게 들어맞 았다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기쁨과 용기로 성장하는 데 오히려 방해되었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나는 욥기가 악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정경 속에서 독특함을 주장할 것이다. 물론 욥기는 고난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성경의 다른 책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욥기 는 고난에 대해 독특한 내용을 말하고 독특한 격려를 준다. 따라서 이 책의 목적은 주해적으로 정확하게, 풍부한 목회적 함의들을 염두 에 두며, 이 독특한 관점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 관점을 확보하려면 욥기를 체계적이면서도 천천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결코 쉬 운 작업이 아니다. 욥기 저자가 거의 의도적으로 독자를 피곤하고 힘 들게 할 목적으로 책을 쓴 것처럼 보일 정도니 말이다. 그래도 욥이 시련 끝에 받은 기쁨과 위로를 맛보려면, 이 기나긴 책 한 장 한 장의 여정을 그와 함께 하는 수밖에 없다.
신화에 대한 한마디 누구나 욥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신화’라는 단어를 접하 게 된다. 베헤못과 리워야단이라는 괴물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는 데 절대 이 주제를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사실 신화적 언어의 문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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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명체들이 나오기 전부터 나오는데, 이는 이 책의 시에서 종종 우주적 실체를 ‘신화적’이라고 보기에 적합한 상징적 언어들로 묘사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한 예는 28장의 지혜 시인데, 이 시가 가장 외부에 있는 실체에 상상적으로 도달하려는 방식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20-23절 ). 욥이 처음 저주할 때 창조 세계에 임하기 바라는 초 자연적인 어둠도 그 한 예다( 3:1-8 ). 문제는 ‘신화’나 ‘신화적’이라는 영어 단어가 종종 명백하게 거짓이거나 어리석은 것을 가리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영감을 받아 기록된 성경책을 연구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단어를 최 대한 덜 사용하려 한다. 하지만 이 책이 종종 ‘신화적’이라고 묘사되 는 주제들을 다루므로, 신화 및 신화와 성경과의 관계에 대해 한두 마디 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시작 부분에서 강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신화가, 그 단어의 가장 적절하고 미묘한 의미를 생각할 때, 혼돈과 질서의 우주적 실체 를 말해 주는 상징적 이야기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신 화는 심오하고 근본적인 현실과 하늘과 땅 사이의 원형적 관계에 대 한 것으로서, 이들은 인간 존재의 질서를 잡아 주지만 직접 말로 표 현하기엔 어려워 보통 상징을 통해 표현된다.8) 이 정의에 따르면 남 자와 여자가 하나님과 함께 거닐며 하나님의 불멸성을 공유했던 태 초의 에덴동산, 우리는 죄로 잃어버렸지만, 언약과 구약 성경의 성전 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원 상태로 복귀시키려 했던 이 태초의 에덴 동산은 ‘신화적’이다. 이는 에덴동산이 믿기 힘든 허구라서가 아니라
8) 고대 세계 신화와 이것의 성경 속의 등장에 대해 어떻게 신화를 정확히 정의하고 해석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런 문제에 대해 학계에서 논의된 내용은 무엇인지에 대한 훨씬 더 많은 논의를 여기서 제공할 수 있었지만, 이 점이 욥기의 베헤못과 리워야단을 해석하는 데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는 Ortlund 2010:5-63과 n.10 아래 인용된 작품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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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인간의 삶과 죽음, 죄와 속죄, 하나님과의 분리와 하나님께 돌아옴과 같은 가장 기본적이며 원시적인 문제, 오직 하나님이 답하 실 수 있는 인간의 깊은 갈망을 깨우는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처럼 신화에 대해 내릴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정의를 내림에 있어, 우 리는 고대 유대인들이 현대 영어권 사람들과는 다르게 신화적 사실 과 역사적 사실을 상호 배제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음을 반드시 알아 야 한다. 고대 유대인의 관점에서는 신들의 간섭과 우주적 혼돈과 질 서의 문제가 실제의 삶과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들에 지장을 주고 영 향을 미쳤다. ‘신화’와 ‘역사’를 구분하는 것은 현대적 생각일 뿐, 고 대 저자들에게는 아주 생소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 신학에서는 일 반적으로 이처럼 신화와 역사를 구분했다. 그래서 고대 근동의 글은 확실히 신화로 분류되고, 반대로 구약 성경은 역사로 묘사된 것이다. 그러나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역사적 사건을 신화적 방 식으로 묘사한 경우가 매우 많아 이런 구분은 적절하지 않으며 받아 들이는 사람도 거의 없다.9) 고대 유대인들은 신화와 역사를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구약 성경과 주변 문화 의 글들이 아주 많이 관련되어 있어서, 우리가 ‘신화적’이라 여겨 무 시하는 것과 사실적인 것을 성경 저자들은 철저히 구분하지 않았다 고 여기는 것이 타당하다. 여기서 ‘신화적’이라 함은 질서를 세우고 혼돈과 어둠, 부정과 죽음을 파괴하기 위해 하나님 편에서 하시는 우 주적 행동을 말한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신화에 대한 학문적 글에서는 일상적 영 어에서 의미하는 바와 아주 다르게 이 단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말 하기 위해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신화’는 유치하거나 믿기 불가 9) 이에 대해 Albrektson 1967은 고전적 작품으로 구약 성경이 어떻게 그 문화, 종교적 배경
과 관련되어 있는지에 대해 성경 신학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변환점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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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한 사상이나 이야기를 하기 위한 범주가 아니라, 고대 사람들이 하 늘과 땅의 원형적 관계, 즉 어떻게 현재 사물의 질서가 생겼고 이것 이 위협받을 때 어떻게 보존되고 보호되는지를 생각하고 상징적으 로 이야기하는 데 도움을 주는 범주였다.10) 이 정의에 따르면 욥기의 일부 요소들은 ‘신화적’이며 전혀 비역사적이거나 유치하거나 우스 꽝스럽지 않다. 그러므로 욥기나 구약 성경의 일부를 ‘신화적’이라 한다 해도, 이것이 하나님 말씀의 절대적 진실성과 역사성을 의심스 럽게 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신화’라는 단어에 대한 이런 미묘한 차이를 말하는 이유는 성경을 고대 근동에서 나온 그저 또 하나의 인간 종교의 산물로 축소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성경이 고대 이방 신화나 우상적 문서와 다를 바 없음을 암시하기 위한 것도 전혀 아니다. 사실 고대 근동 문서를 연 구해 보면 그것과 구약 성경 사이에 유사점보다는 많은 차이가 있음 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여호와가 바알처럼 하늘에서 우렛소리를 내 시며( 시 18:13 )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기도 하시지만( 시 104:3 ), 그는 바 알의 한계를 훨씬 능가해 죽음을 무찌르기까지 하신다( 사 25:6-9 ). 이 것은 바알이 절대 할 수 없던 일이었다.11) 마르텐 폴은 구약 성경과 고대 근동 신화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잘 이해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 10) 신화와 신화의 성경과의 관계를 논한 최고의 학문적 작품은 Doty 1986과 Forsyth 1987,
Fishbane 2003, Csapo 2005다. 엄밀히 따지면 서로 다른 의미의 ‘혼돈’과 ‘악’이라는 단 어를(예를 들면 창 1:2의 어둠과 물은 나쁘진 않으나 무질서하고 소출이 없다. 즉 혼돈 가 운데 있다) 나는 대략 동의어로 사용할 것이라는 말 외에는 이 주제에 대해 현 논쟁에서 는 더 깊이 다룰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욥기를 논할 때 혼돈과 악을 동일시하는 것이 좋은 데, 이는 욥이 겪는 부당한 고난과 이를 초래했다고 그가 생각하는 하나님이 때로 혼란스 러운 방식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예. 7:12; 9:5-10). 다시 말해 욥기는 도덕적인 악과 우주적 혼돈을 매우 자주 연관지어 말한다. 11) 바알 서사시 5번, 6번 판을 보면 바알과 모트(죽음)가 싸우나 승자 없이 끝나고, 그때 샤 프쉬(태양신)가 끼어들어 모트에게 굴복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왕국을 잃게 될 것이라고 협박하며 설득한다. 폭풍우의 신으로 생명을 가져오는 바알은 절대 죽음을 결정적으로 무찌르지 못하는데, 이는 여호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바알 서사시 이 부분의 번역을 보려면 COS 1.86, pp. 265-273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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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명해 주는데, 이는 도움이 된다. 구약의 유일신론은 용과 바다를 신으로 여기는 믿음과 전혀 양 립하지 않지만, 이들이 고대 세계에서 종종 동물의 형태로 묘사 되는 악의 세력을 나타낸다는 점은 비슷하다.12)
이 점은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런 논의는 개념적으로는 유용할 수 있으나, 고대 이스라 엘인들에게 깊게 와 닿았을 내용을 생동감 없이 추상적으로 표현하 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우리 선조들이 여호와가 시온에서 부르짖자( 정말 부르짖으심이다! ) 하늘과 땅이 흔들렸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욜 3:16 ), 또는 자신들을 위해 하늘을 덮은 영광 가운데 언약 의 하나님이 전투에 나가시고( 합 3:3 ), 열방을 무찌르고 큰 물의 파도 를 밟으시자( 10-15절 ) 산들이 고통 속에 흔들리고 해와 달은 그 처소에 서 멈추었다는 사실을 읽을 때, 정말 그들은 목 뒷덜미의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척추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지 않았을까? 이 본문들은 우 리를 구원하기 위해 개입하시지만,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상 징으로만 나타낼 수 있는 초월적인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 주고 하나 님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써진 것이다. 비유를 들면, 나니아 연대기를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을 기억해 보라. 이 책이 한 경건한 케임브리지 대학교수의 상상력에서 나온 그야말로 소설임을 잘 알지만, 이 책이 어떤 거대한 진리, 정말로 말로 표현하기엔 정말 아름답고 “금보다 더 금 같은”13) 어떤 것을 알려 주고 있다고 느낀 12) Paul 1997: 779. 존 월턴은 구약 성경의 우주론이 종종 고대 근동에서 발견되는 우주론과
비슷하거나 완전 같지만, 구약 성경이 묘사하는 하나님은 고대 근동의 신들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말하면서 이 둘의 또 다른 차이점을 잘 알려 준다(Walton 2009를 보라). 13) Lewis 1946: 22. 이 구절은 고대 그리스의 여류 시인 사포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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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분명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니아는 그저 만들어진 이 야기일 뿐인 데 반해, 하나님의 전투에 대해 그토록 극적으로 말하는 성경 본문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성경이며, 따라서 우리에게 하나님 의 실재를 보여 준다. 이는 우리가 거센 물결을 기습해 제압하시는 하나님을 표현하는 시를 읽을 때, 지성과 상상력 모두를 사용해 읽어 야 함을 말하며, 또한 이 본문의 저자가 독자를 가르칠 뿐 아니라, 감 동을 주기 위해 쓴 글임을 기억하며 올바로 읽어야 함을 말한다. 이 점은 우리가 욥기를 연구하는 데 있어 특히 유의미하다. 욥기는 죽을 운명의 한 인간과 전능자의 만남에 대한 가장 긴 묘사로 마무리되는 책으로서, 이 만남 속에서 하나님은 폭풍 가운데 나타나 상처 입은 자기 종에게 말씀하신다( 38:1 ). 우리는 구약 성경 틀 안에서 폭풍이 갖 는 의미를 조심스럽고 신중한 태도로 주해하면서도, 구약 성경의 시 에서 폭풍은 무언가를 연상시키는 힘이 있다는 점, 폭풍 속에 나타나 신 여호와가 묘사하시는 우주의 위대함, 그리고 그 속에 몰래 숨어 살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하지만 잠시만 허락하신 악한 세력을 절 대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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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욥의 비극(1-2장)과 친구들과의 논쟁 실패(3-37장)
욥에게 하신 여호와의 대답이 갖는 의미와 아름다움을 잘 이해하 기 위해서는 욥이 처음 겪은 비극을 모든 차원에서( 1-2장 ) 이해해야 하며, 욥과 친구들이 욥의 고난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는 데 실패했 음을( 3-37장 ) 이해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두 번에 걸친 여호와의 담화의 목적은 자신의 방침을 일반적으로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당함에 대한 욥의 저항 및 친구들의 ( 암묵적으로 드러 나는 )
지나치게 단순한 신학에 구체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욥기 전체의 문맥을 잘 파악해야만 여호와가 욥에게, 그리고 이후의 욥기 독자들에게 하시려는 말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욥의 온전함, 고발자의 질문, 그리고 큰 대가를 치른 욥의 경배(욥 1-2장) 욥이 사는 곳과 그의 이름이 언급된 후, 우리가 맨 먼저 욥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영적 자질, 즉 그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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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 1:1 ) 였다는 점이다. 필요할 때마다 공 개적으로 자기의 죄를 고백했다고 욥이 나중에 말하는 점에 미루어 볼 때 ( 31:33-34 ), 이것은 욥에게 완벽히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 가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했다는 것임을 가리킨다. 욥의 삶에서 하나 님과 차단되어 죄가 지배적인 곳은 어디도 없다. 그는 ‘완전히 무장 된’ 성인이며 하나님을 향한 그의 충성심은 ‘온전’하고 불완전하지 않다. 욥에 속한 지혜서에서 “하나님을 경외함”은 하나님과 좋은 관 계에 있음을 줄여 나타내는 말이다( 잠 1:7; 2:5; 14:27; 전 12:13; 신 10:12-16에서 하 나님을 경외함은 그를 사랑하고 섬기며 순종함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
크리스토퍼 애쉬가
이를 적절히 설명하는데, 욥은 안과 밖이 같은 사람이었다.1) 욥은 하 나님과 좋은 관계를 갖는 데 필요한 모든 자질을 나타낸다. 그 결과 욥은 구약 성경 지혜서가 약속하는 모든 복( 2-3절 ), 즉 활기 넘치는 가족( 참고. 시 128:1-4 ) 2)도, 큰 부와 명예( 참고. 잠 8:18 ) 도 받는다. 우리 는 욥의 가족이 행복하게 계속 만나는 등 그의 가정생활이 훌륭함도 알 수 있다( 4절 ). 그뿐 아니라 욥은 매우 양심적인 부모였는데, 하나님 께 제사를 드림으로써 가능한 죄의 위험에서부터 자녀들을 지키라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수단을 잘 이용했다. 욥은 복을 받는 동안에 도 하나님을 저주할 수 있는 어두운 것이 인간의 마음에 있다는 것과 제사만이 죄를 없앨 수 있음을 이해했다.3) “모든 게 다 괜찮도록 확실 히 짚고 넘어가는 이 경건한 부모”는 “이 행복한 장면을 완성시 킨다.”4) 신명기나 잠언 같은 책이 매우 분명히 가르치는 응보의 원리 는 1절 이후 이어지는 2-5절에도 확실히 드러난다.5) 욥은 자기가 심 1) Ash 2014: 31. 2) 욥 자녀의 수인 일곱과 셋은 단순히 그 가족의 크기가 아니라 그 질을 보여 주는데, 구약에
서 일곱(더 폭넓게 말하면 3과 10도)은 완전함과 완벽함을 나타낸다. 3) Ash 2014: 35. 4) Andersen 1976: 80. 5) 욥은 물론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이름은 이스라엘 이름이 아니고 그의 고향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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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성경신학
은 것을 거둔다( 갈 6:7 ). 하나님은 욥의 신실함과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 에게 자기와 영적으로 친밀한 교제를 허락하실 뿐 아니라( 욥 29:2-3을 보라 ), 지상에서 받는 선물, 이차적 선물을 엄청나게 후히 주신다.
하지만 욥이 모르는 사이에 그의 심오한 경건함과 그에 따른 복이 하늘 높은 곳에서 주목받는다. 다음으로 우리가 보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왕이신 하나님께 정기 보고를 하는 장면이다( 6절 ). 고발자 도 그 중에 있다( 6절에 나온 표현은 고발자가 다른 하나님의 초자연적 신하들과 동급이지만 이들과는 약간 구별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즉 이들과 같이 있으나 이들 중 하나는 아니다 ).6)
그
스는 분명 에돔 안 또는 그 근처에 있었다(렘 25:20; 애 4:21을 보라). 또한, 욥이 구속사에 서 매우 이른 시기, 신명기와 잠언이 기록되기 전에 살았다는 암시가 있다. 예를 들어 그가 140년이나 장수한 것(42:16), 제사장 없이 제사드린 것(1:5), 그가 하나님을 부를 때 태곳 적 이름인 샤다이라고 부르는 것(본문 비평적으로 의심되는 12:9를 제외하고 이 책의 등 장인물들은 한 번도 언약의 이름인 여호와를 언급하지 않는다. 욥이 구속사 매우 이른 시 기에 살았다는 증거를 더 알고 싶다면 Waltke 2004:927, n.1을 보라)이 그것이다. 이는 욥 기를 신명기와 잠언과 연결해 논의할 때 약간의 충돌을 일으키는데, 그 이유는 신명기와 욥기가 욥이 살았을 때 아직 기록되지 않은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때 신명기와 잠언이 있었다 해도 이스라엘 출신이 아닌 욥이 어떻게 이 책들을 접할 수 있었겠는가? 욥 의 이야기가 구약의 다른 신학적 주제들과 연결되는 방식은 단순히 하나님이 자신을 찾는 자들 모두를 차별 없이 대하신다는 사실에 대한 예를 제시하는 데 있을 수 있다(참고. 행 17:27; 롬 2:6-11; 욥이 우상을 모두 버렸다는 사실을 기억하라[욥 31:24-28]). 이 외에도 불순종하면 벌 받고 포로로 끌려갈 것이며, 순종하면 회복되고 복 받을 것이라는 신명기적 사고가 나온 성경 외의 문서가 있다(예를 들어 Kitchen 2003: 310-312를 보라). 아마도 욥은 자기가 살았던 시대 이후에 기록된 성경책이 없이도 이 원칙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동시대 사람들이 섬겼던 거짓 신들을 그가 버린 것이다. 6) 나는 위에서 사탄 대신 “고발자”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이 히브리어 단어가 고대 이 스라엘 청중이 가졌던 뉘앙스를 더 잘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정 명사 ‘하사탄’은 고유 명 사가 아니라 그의 역할을 묘사한다. 성경 히브리어에서 이름은 정관사를 취하지 않으며 동 사 사탄은 다른 곳에서 인간이 일반적으로 하는 고소를 말하고(시 38:20; 109:4) 민 22:22, 32에서는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을 대적하는 모습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욥기 초반부에 나오는 이 등장인물이 신약 성경에서 사탄으로 나오는 인물 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참고. 계 12:9). 그러나 우리는 이 책을 처음 접했던 이들이 하사 탄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반드시 제대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어떤 기독교 주석가들은 욥 기 1-2장에 나오는 고발자와 사탄이 전혀 연관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지혜롭지 않다. 예를 들어 존 월턴은 고발자의 질문이 단지 “잠재적으로 질문할 만한 정책과 결정을 조사함으로써 일반 선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이해하면서 이 질문에 전혀 악한 것 이 없다고 본다(2012: 66; 월턴은 여기서 “고발자”보다 “도전자”라 말하길 선호한다). 그 러나 이는 불필요하게 존재를 늘리는 결과를 낳는다. 왜냐하면 이렇게 되면 두 명의 천상 존재가 생기는데, 이들은 같은 이름을 가지고 똑같이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을 고발하나,
2장 욥의 비극(1-2장)과 친구들과의 논쟁 실패(3-3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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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왕이신 하나님께 좀 모호한 내용의( 7절 ) 보고를 한다. 그러자 여 호와가 먼저 모범적 종인 욥을 지목하신다( 8절 ). 분명 누군가 고발에 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는 욥일 것이다. 여기서 세 가지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첫째, 6-12절에 나오는 여 호와와 고발자의 대화는 절대 우연히 일어난, 무의미한 생각의 교환 이 아니다. 해설자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으로서 열 왕기상 22장이나 이사야 6장, 요한계시록 4-5장 같은 다른 본문에도 나오는 알현실을 묘사해 준다. 이곳은 왕이신 여호와의 모임이며 어 떻게 세상을 통치할 것인지 결정해 발표하고 그 방식을 정하는 장 소다. 패트릭 밀러는 “세상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이 천상 회의 의 책무이기에 억울한 고난을 탐구하는 이 책이 하나님의 천상 회의 에서 일어나는 두 가지 주요 장면을 보여 주며 시작하는 것은 놀랍 지 않다”고 통찰력 있게 지적한다.7) 욥이 모르는 사이 그가 미래에 겪을 내용 전부가, 창조 세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정책이 드러나는 방식으로 결정되려 한다. 욥의 고난은 한 개인으로 받는 고난을 훨씬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욥의 이야기가 펼쳐지게 될 도화지가 더없이 넓은 것이다. 둘째, 우리는 해설자가 1절부터 보증하는 욥의 훌륭함에 대해 여호 와가 반복해 말씀하시며, “그와 같은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8절 ) 라는 말씀을 추가하신다는 사실을 놓쳐선 안 된다. 이는 매우 충격적인데 그 이유는 이 구절이 보통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 적용되는 말이기 때문이다.8) 이는 정말 대단한 칭찬이다. 게다가 욥을 “나의 종”이라 하나는 악하고 다른 하나는 분명 그렇지 않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발자가 욥의 생명은 해하지 말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는 점과(2:6), 욥이 첫 번째 시험을 그렇게 아름답 게 합격한 데(2:2)에 대해 그가 아무 말도 안 했다는 사실은 고발자의 동기가 악함을 암시 하고, 그가 ‘일반 선’을 촉진하는 자로 보기 어렵게 만든다. 7) Miller 2000: 439. 8) 예를 들어 왕상 8:23; 시 35:10; 71:19; 86:8-9; 렘 10:6-7; 미 7:18을 보라. 이런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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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는 것은 아브라함( 창 26:24 ) 이나 모세( 출 14:31 ), 다윗( 삼하 7:5 ) 과 함께 그가 특권을 갖고 있었음을 말한다.9) 여호와가 욥을 매우 높이 평가 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3-37장의 논쟁을 읽을 때 꼭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욥과 그의 친구들 모두 욥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고( 잘못, 하지만 이해할 만하게 )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욥의 죄 때문에 그렇고 욥은 하나님이 비논리적 폭군이라 그렇다고, 각기 다른 이유를 가지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해설자는 시작부터 우리 에게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실제로는 하나님이 욥을 엄청 자랑스럽 게 여기신다고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존 월턴은 이와 관련해 다음 과 같이 예리하게 지적한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께 억울하게 벌 받고 있다고 상상하며 전능자에게 법적인 이의를 제기하지만, 사실 어떤 점에서는 하나님과 창조 세계를 향한 그의 정책이 고발되고 있는 것 이며, 욥이 이 일에 있어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변호하는 주요 증 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10) 셋째, 욥기에 나오는 모든 고통이 하나님이 이 질문을 하지 않았어 도 일어났었을까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여호와가 욥을 먼저 언급하여 고발자의 관심을 유도하기 전까지는 사탄이 절대 욥 을 비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욥을 그 상황에 있게 하시고, 자신의 주권으로, 자신의 선한 목적을 위해 욥을 그 모든 고난에 처 하게 하셨다는 것일까? 사실이 무엇이든, 이전에 간결하게 답했던 사탄은 이제 9절부터 “욥이 까닭 없이( 또는 ‘대가 없이’ ) 하나님을 경외합니까?”라고 물으며 그
묘사된 인간으로는 사울(삼상 10:24; 하지만 여기서는 사울의 도덕적 온전함보다는 신체 적 특징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솔로몬(왕상 3:12), 히스기야(왕하 18:5), 요시야(왕 하 23:35)가 유일하다. 9) Habel 1985: 90. 10) Walton 2008: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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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신랄하게 고발하기 시작한다. 여기 암시된 대답은 분명 ‘아니다’ 이다. 욥이( 사탄에 따르면 ) 자기가 즐기고 있는 삶, 겉으로 보기에 완벽한 삶을 지속하기 위해 거짓으로 경건한 삶을 살며, 속으로는 경멸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참아 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선물은 사랑하나 선물을 주신 이는 싫어한다는 것이다. 고발자가 암시하는 바는 욥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머물려는 유일한 동기를 빼앗으면 하나님에 대한 진짜 감정이 드러날 것이고, 욥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완전히 끝 내 버릴 거라는 것이다. 구약 성경 안에서 ‘저주’는 단순히 험한 말을 내뱉음을 의미하지 않고 어떤 이나 물건을 혐오함, 어떤 이나 사물을 우주의 쓰레기 더미로 취급함, 어떤 이나 사물이 혐오와 경멸의 대상 밖에 되지 않는다고 여김을 의미한다. 사탄은 욥에게서 부수적 복을 빼앗으면 그가 곧 하나님을 포기할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런 고발은 당연히 부당하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신실한 사랑을 표하는 피조물에게 복 외의 것으로 응답하신다면 참으로 이상할 것 이다. (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셔야 하는가? 침묵하시고 모른 척해야 하는가? 아니면 충성 에 고통으로 답하셔야 하는가? )
만약 하나님이 이상한 방식으로 응답하셨다
면, 사탄은 거의 틀림없이 그 방식을 비난했을 것이다. 사탄이 욥의 온전함에서 아무 혐의도 찾지 못하자 욥의 온전함 자체를 문제삼는 것 역시 주목해 보라.11) 그러나 마이클 폭스가 지적하듯 응보의 원칙 은 그 자체로 정당하지만, 이것이 하나님께 대항해 사용될 수 있다. 욥과 하나님은 어쩌면 “한마음으로 서로 뇌물과 보상을 주고받고 있 었는지” 모른단 말이다.12) 모순적이지만 이 관계의 진실성을 증명할 유일한 방법은 “정의를 일부 보류”하는 것으로서13) 욥이 회개하지
11) Murphy 1996: 36. 12) Fox 2005: 360. 13) 앞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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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은 죄인으로 취급되게 하는 것이다. 분명 그는 그런 자가 아닌데도 말이다. 조건 없는 충성을 가능하게 하시고자 하나님이 일시적으로 “자신의 정의를 위반하시는” 것이다. “설명하기 힘든 고난에도 하나 님의 경륜 안에서는 역할이 있는데, 바로 진정한 경건함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이다.”14) 이제 겨우 이 길고 복잡한 책의 아홉 구절을 다뤘지만 이미 중심에 거의 다다랐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 자체에 목적 을 두고서 그를 사랑, 경외하는가? 아니면 즐거운 삶을 누리는 것과 같이 다른 지상에서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수단으로 사용하는가? 궁극적으로 얻는 전부가 하나님만이라 해도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 를 맺겠는가?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쌓이는 이차적 복을 정말로 이차적이며 없어도 될 만한 것으로 여길 수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지나치게 이기적인가? 이 질문은 정말 대단히 중요한데 이는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과의 관계만이 오로지 우리를 구원하는 관계 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보다 덜한 것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멸망시킬 욕정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 이다. 또한, 우리가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면 하나님을 증오할 위험 을 감수하겠다는 말이다.”15)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무한한 가치의 존재를 자기도 모르는 새로운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 으로 취급함으로써 그를 모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각 신자는 구약 성경의 성도들이 받았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는 아니지만, 자신 의 믿음을 통해 죄사함과 영생 외의 이차적인 유익을 얻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러한 복과 이 복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우리 마음의 참된
14) 앞의 책. 362-363. 이 말은 욥기의 주요 논쟁점을 표현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되면서도 간
결하나 함축적인 말인데 우리는 후에 이 인용을 다시 다룰 것이다. 15) Merton 198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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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를 누가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겠는가? 잘못된 것에 지나치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는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의사 에게 두려운 전화를 받거나 자녀 중 한 명이 병원에 있어야만 비로 소 하나님에 대한 우리 사랑의 진정성을 알게 된다. 욥은 물론 평범 한 사람이 아니다. 그의 경건과 고난 모두에 극단적인 면이 있다. 그 러나 크리스토퍼 애쉬가 잘 말했듯, 하나님이 욥을 대하셨던 방식과 다르게 새 언약 자녀들을 대하시리라고 기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우 리의 고난이 욥의 고난처럼 극단적이지 않다 해도 말이다.16) C. S. 루이스는 아내를 잃는 고통을 겪고서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 의 진정한 마음의 상태를 발견하고 받았던 충격을 강렬하게 표현 한다. 그는 당연히 욥기를 염두에 두고 있진 않았지만, 고발자가 1장 9절에서 던졌던 질문의 의미의 본질에 다가가며 그는 이렇게 적는다. 그 일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에게, 상상이 아니라 현실에 서 일어났을 때 이는 분명 다르다.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도 큰 차이가 나야 할까? 아니다. 가진 믿음이 진짜였고 다른 사람의 슬 픔에 대해 가졌던 염려가 진짜 염려였던 사람에겐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는 너무 명백하다. 만약 우리 집이 바람 한 방에 무너 졌다면 그것은 카드로 만들어진 집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건 들을 감안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상상이다……‘질병’, ‘고 통’, ‘죽음’, ‘외로움’이라는 라벨이 붙은, 아무 해를 주지 못하는 게임 속의 말을 가지고 노는 상상 속의 믿음인 것이다. 나는 잡고 있던 줄에 내가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문제가 생겨 그 줄 이 과연 내 무게를 견뎌 낼지 아닐지가 중요해지게 되니 그게 아 님을 깨달았다. 이 여부가 이제 중요해지니, 내가 그 줄에 의존하 16) Ash 2014: 21,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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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았음을 알게 된 것이다. 브리지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내게 반드시 게임에 돈을 걸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게임에 심각하 게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말이다. 믿음도 분명 이와 같다…… 당신은 잃을 것이 끔찍이 많아지기 전까지는, 단지 게임의 말이 나 몇 푼 정도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돈이 걸린 게임을 하기 전까 지는,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진지한지 절대 알 수 없다. 잃을 것 이 그만큼 많지 않으면 그저 말로만 하는 생각과 관념적이기만 한 믿음을 흔들 수 없다. 적어도 나 같은 사람에겐 그럴 것이다. 정말로 깨달으려면 된통 당해 봐야 한다. 지독한 괴로움만이 진 리를 드러낼 것이다. 지독한 괴로움 아래서만 사람들은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17)
어떤 이는 전지하신 여호와가 스가랴 3장 1절에서 그러셨듯 그냥 이 지점에서 사탄을 꾸짖으셔야 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하나님이 욥 의 생명을 빼앗지 못하게 제한하는 것은 고발자가 위선적임을 암시 한다. 사탄의 참된 관심사는 욥을 고발해 시험하는 게 아니라 오직 파괴하는 데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여호와는 욥이 하나님을 포기해 야 할 모든 세상적 이유를 제공해 줄 그런 시련을 진행하라고 허락 하신다( 12절 ). 하지만 독자는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사랑하는 남녀 사이의 사랑의 맹세는, 그 사랑이 아무리 진실하다 해도, 이 커플이 하나님 앞에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사랑하 겠다고 서약하기 전까지는 보증되지 않는다. 이처럼 하나님도 때로 우리가 건강하고 안전할 때 하나님 앞에 쉽게 말로 한 사랑과 충성 의 서약이 큰 상실을 경험할 때도 똑같은지 확인하기 위해 서약을 17) Lewis 1976: 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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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는 상황 속에 우리를 두시기도 한다. 어떤 말은 언제까지나 이론으 로만 남아 있을 수는 없다. 욥이 모든 것을 잃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데는 더 깊은 이유가 있다. 끔찍한 고통 속에 확인되는 값진 진실성은 우리 안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질을 증명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모든 것을 뛰어넘는 가치가 있는 분으로 만들며,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확 증하고 우리를 그 관계에 결속시킨다. 약혼한 커플의 관계가 결혼 서 약을 한 후에는 겉으로 달라지듯, 그리스도인과 하나님의 관계도 우 리에게 주신 그 어떤 부수적인 복을 빼앗아 가셔도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 자신만을 위해 눈물 젖은 예배를 드릴 때 그 진실성이 나타 난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단순히 이론적인 믿음에서 하나님과의 진실함 속으로 성장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모든 것을 초월하는 가치라고 말하는 가정적 진술 너머의 실제 상황에 하나님 이 우리를 처하게 하지 않으신다면, 어떻게 우리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고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나님만 위해, 하나님만 영원히 즐거워하며 살아가야 할 영생을 우리가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킬 수 있으실까? 욥이 당한 것 같은 고난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는 달리 천국을 위한 준비다. 천국에서는 모든 부수적인 복이 다 떨어져 나가게 되니 말이다. 이에 대해 크리스토퍼 애쉬는 다음과 같 이 말한다. 사탄은 그의 모든 악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는 데 필요한 일을 한다. 어떤 심오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온 우주에 공개적으로 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 즉 하나님이 인간 의 경배를 받기 합당하시며 이 경배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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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야 한다.18)
이런 관점에서 여호와는 우리에게 ‘끔찍한 위엄’을 부여하는 방식 으로 “자신에 대한 진리를 입증하시려 인간들을 사용하신다.”19) 욥은 금방 ‘끔찍한 위엄’을 받는다. 고발자가 여호와 앞에서 물러 가고( 12절 ), 이제 욥의 부와( 14-16절 ) 종들과( 17절 ) 자녀들이( 18-19절 ) 계획 대로 착착 사라진다. 2-3절에 나열된 것 전부가 사라진 것이다. 우리 는 고발자가 인간 중재자( 15절의
스바 사람 ) 를
사용하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일하기도 한다( 16절의 “하나님의 불”을 다른 이들은 하나님이 직접 보낸 불이라고 잘 못 가정하는데 이해할 만하다20) ) 는
사실을 보게 된다. 여기서 강조해야 할 중
요한 점은 구약 성경의 신학적 틀에서 보면, 14-19절에서 욥이 잃은 것들이 하나님이 욥의 죄에 대해 내린 벌이고( 신 28장; 잠 3:33 ), 그의 은 밀하고 심각한 죄에 대한 심판과 같이 보였을 수 있다는 점이다. 독 자들은 욥이 비극을 당하는 이유가 이와 전혀 다름을 이미 잘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욥의 대답은 숭고한 만큼 가슴 아프기도 하다. 욥은 자신의 슬픔을 억누르지 않으며( 20절 ), 고발자의 시험을 분명히 통과했음을 보여 주 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찬송한다( 21절 ). 욥이 살면서 받은 모든 복은 그가 무덤까지 가져가서 누리지는 못할 ( “여호와가 주신” ) 선물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또한, 하나님은 선물들을 가져가신다 해서 선물을 주실 때보다 덜 찬양받을 분이 아니다. 그렇다. 분명 하나님에 대한 욥의 사랑과 충성은 부수적인 복과 전혀 관련이 없다. 욥에게 있어 하나님 이 주신 모든 이차적인 복은 부수적인 것, 순전히 선물이요, 하나님 18) Ash 2014: 44. 19) Waltke 2007: 932. 20) 참고. 왕하 1:10-14에 나온 엘리야의 적을 심판하려고 내리신 “하늘에서 내린 불” 또는
대하 7:1에 나온 제물을 사르는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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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보다 아래 있는 것이다. 해설자가 이 점을 강조하진 않지만, 사 탄이 예상한 것과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는 일은 주목할 만하다. 하 나님은 자신이 가장 아끼시는 종 욥에게서 공개적으로 싫어한다는 말을 듣는 수치를 당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욥은 고난이 다가오자 더 깊이 하나님을 축복한다. 하나님은 저주받지 않고 대신 값지고 고통 스러우며 심오하게 아름다운 방식으로 축복을 받으신다. 하나님의 주권적 인도하심 가운데 고발자가 표출한 적의와 악은 그가 의도한 바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다. 하나님에게서 욥을 떼어 놓기 위한 충 격적 경험들 속에서 욥은 오히려 더 깊이 하나님을 예배하게 된다. 이후 나올 논의에 앞서 우리가 또 주목해야 할 점은 1장 21절에 나 오는 욥의 찬양에 욥의 신학과 친구들의 신학 사이의 중요한 차이가 담겨 있다는 점이다. 욥은 복을 순전히 선물로 생각하지만, 친구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우리가 제공한 섬김에 대한 보상으로 말하는 듯하다. 이 점은 이후에 더 자세히 논의하겠다. 1장의 마지막 절은 욥이 자기의 비극의 궁극적인 근원을 하나님으 로 돌릴 때, 그가 어떤 부적절한 말도 하지 않았음을 짧고 분명히 말 해 준다. 비록 욥을 직접 치신 분은 하나님이 아니지만 말이다( 22절; 해 설자는 42:11에서 다시 한번 고난의 근원에 대해 똑같이 말할 것이다 ).
1장에 드러나는 하
나님의 섭리는 미묘하다. 하나님의 통치는 최고 위치에 있으며 그를 견줄 자가 없어서 고발자조차도 하나님의 방침을 기다리며 이에 순 종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상에서 효력을 미치는 힘은 하나님 의 것만이 아니다. 한편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전부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신다. 실제로 여호와가 욥에게 나타나시 는 38장을 보면 욥의 고난에 대해 고발자를 비난하심으로써 책임을 전가하지 않으시지 않는가? 이와 동시에 하나님은 모든 악에 대한 직접적, 효율적 원인이 아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닫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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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다. 다른 영적 존재들도 일하고 있다.”21) 2장에 가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천상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한 번 더 보게 된다( 1절 ). 이상하게도 고발자는 욥의 값진 경배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는다( 2절 ). 상상할 수 없는 상실 속에서도 욥이 보인 비 범한 진실성을 여호와가 언급하실 때까지는 말이다( 3절 ).22) 그러나 고 발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첫 번째 시험은 욥을 철저히 살 피지 못했다며 욥을 더 교묘하게 공격한다. 욥이 여전히 하나님을 싫 어하고, 자기 목숨을 지키려고 이 사실을 속이고 있다며 말이다 ( 4-5절 ).
이에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욥을 계속 고난 가운데 인
도하시고 고발자가 욥을 거의 죽음에 가까이 데려가게 허락하심으 로( 6절 ) 답하신다. 욥기 안에 종말론이 잘 발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21) Waltke 2007: 932. 22) 고발자가 “이유 없이 욥을 무너뜨리라고” 자신을 “선동했다”는 여호와의 말씀은 문제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사탄이 자신을 실수하도록 조종하게 놔두셨다는 말인가? 다른 답으 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선동하다”(‘수트’)라는 동사는 누군가가 잘못되거나 지혜롭지 않은 일을 하게 꾀어낸다는 뜻에 사용될 수 있지만(예. 신 13:7; 왕하 18:32; 렘 43:3), 또한 누군가가 어떤 행동을 취하게 한다는 더 중립적인 의미나(수 15:18; 사 1:14) 누군가를 죄에서 나오게 촉구한다는 의미로(욥 36:16) 사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 동사 를 ‘촉구한다’라는 뜻으로 번역하면 주해적으로 정당하면서도 하나님이 속거나 조종된다 는 의미를 갖지 않게 된다. 둘째, “이유 없이”라는 부사(‘힌남’, 1:9부터 반복된다)의 여러 의미는 이 구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담화 뒤에 더욱 긍정적인 의도가 숨어 있음을 말해 준다. 이 단어는 “값없이”(예. 민 11:5)나 “헛되이”(잠 1:17), 또는 “이유 없이, 무고 히”(시 35:7, 19; HALOT 334를 보라)라는 의미가 될 수 있다. 1:9에서의 이 단어는 첫 번째 정의의 범주 안에 들고, 이와 달리 2:3에서는 세 번째 정의의 범주에 속한다(Rowley 1983: 31, 34). 다시 말해 여호와는 사탄의 고발에 자신의 종이 완전히 무죄라고, 욥은 절 대 그런 비난을 받을 수 없다고 변호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을 멸망시키 지 않고 복주길 원한다고 말하고 계시며(Fox 2005: 359), 욥이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았 으므로 사탄의 관점에서 이 시험은 실패했다고 말하고 계신다. “이 시험은 욥에 대한 사 탄의 고발이 ‘이유 없이’ 일어났으며 아무 내재된 가치도 없고, 욥이 ‘이유 없이’ 하나님 을 경외했음을 증명했다. 즉 욥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찬 순결한 마음으로 하나 님을 신뢰했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유익 때문에 신뢰하지 않았다는 말이다”(Hartley 1988: 80).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의미에서 욥의 고난이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일어 났다는 말은 아니다. 사탄의 고발은 아무 가치가 없지만, 하나님이 이를 허용하신 데는 더 깊은 이유가 있다(shields 2010: 268-269). 그러므로 3절의 마지막 단어는 역설적 의 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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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이 죽을 순 없다. 이 시험은 이번 삶 안에서 해결되어야만 한다. 동 시에 사탄의 고발이 근거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욥은 거의 죽음 문턱 까지 가 봐야 한다. 독자는 이즈음에서 욥에게 빼앗을 것이 하나도 없 음을 알아채야 한다. 욥의 죽음 없이 세 번째 시험은 없다.23) 1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욥과 친구들은 이 두 번째 고난의 물결을 단순한 불운이 아닌 죄에 대한 심판으로 해석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욥의 피부에 난 종기( ‘쉐힌’, 7절 ) 를 가리키는 단어가 상대적으로 드물 게 사용되긴 하나, 신명기 28장 27, 35절에서 믿음 없는 이스라엘 사 람들이 겪게 될 질병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24) 따라서 욥과 친구들 의 관점에서 보면 이 병은 하나님의 진노의 증거인 것이다. 사실 그 들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이 욥의 생명을 취하실 것처럼 보였을 것 이다. 욥이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은 일( 8절 ) 이 고대 의료 행위였는 지 슬픔의 표현이었는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재 가운데 앉은 것은 분명 수치와 비통함을 나타낸다( 삼하 102:10; 사 61:3 ).
13:19; 에 4:1; 시
비참하게도 욥이 가장 낮은 위치에 처하게 된 바로 그
때, 욥의 아내는 모든 것을 빼앗아 간 하나님께 왜 계속 신실하냐고 물으며 그를 배신한다( 9절 ). 하나님이 계속 아프게 하는데도 왜 계속 하나님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9절에 대한 2장 3절의 답은( 욥은 여전히 자신의 신실함을 ‘굳게 지키고’ 있는 것이다 )
같은 구절에 숨어 있는 정반대의 목
적을 보여 준다. 그 말은, 여호와는 욥의 변하지 않는 신실함을 인정 하시는데, 욥의 아내는 이와 같은 이유로 그를 비난한다는 것이다. 욥의 아내는 욥이 이미 합격한 시험에 걸려 넘어지고 있다. 아내와는 극명히 대조되는 모습으로 욥은 1장에서 감동적으로 보 여 주었던 것과 같이 분명하게 두 번째 시험도 통과한다. 아내에게 23) Ash 2014: 53. 24) 그 외에는 출 9:9-11; 레 13:18-20; 왕하 20:7; 사 38:2에만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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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성경신학
NSBT
NSBT 성경신학 시리즈 New Studies in Biblical Theology
욥기 성경신학
구약 욥기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본문 하나가 여호와의 두 번째 말씀 가운데 나온
에릭 오틀런드 지음 | 김희정 옮김 | 298쪽 | 20,000원
다(욥 40-41장). 등장인물뿐 아니라 독자도 여호와가 말씀하시기를 오랫동안 기
이스라엘 역사 성경신학
다렸으나, 이 말씀은 전통적으로 하마와 악어(베헤못과 리워야단)를 상세히 묘사
크리스 브루노 외 2인 지음 | 전광규 옮김 | 307쪽 | 18,000원
한 것으로 해석되는 데 그쳤다.
이사야서 성경신학
에릭 오틀런드는 베헤못과 리워야단이 우주적 혼돈과 악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
앤드루 애버네시 지음 | 신윤수 옮김 | 323쪽 | 18,000원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초자연적인 해석이 욥기 주해뿐만 아니라 욥이
욥기 성경신학
NSBT
살았던 중동의 맥락에도 더 어울린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해석해야 현대 독자가
약속의 땅 성경신학 오렌 마틴 지음 | 전광규 옮김 | 248쪽 | 14,000원
욥기의 화자가 의도한 만족스러운 절정을 음미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하나님
NSBT
N e w S t u d ie s in B ibl i c a l T he olo g y
지은이
(Eric Ortlund)
욥기 성경신학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구약 성경에 대한 사랑에 빠졌고,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박사 논문을 썼다. 오크힐 대학에 오기 전에는 캐나다 브라이어크레스트 대학과 신 학교에서 10년 동안 가르쳤다. 오크힐 대학에서 히브리어 와 구약 성경을 가르치며, 특히 이사야, 시편을 가르치고 히브리어 초급반을 지도하는 데 기쁨을 느낀다. 이사야와 욥기를 주로 연구하며, 특히 이 두 책이 그리스도인의 제 자도에 깊이를 더하고 기독교 사역을 충실하게 만드는 것 에 크게 관심을 두고 있다. ESV 성경 해설 주석 시리즈의
은 베헤못과 리워야단을 묘사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욥의 불평을 정면
다니엘서 성경신학
으로 다루면서, 욥에게 하나님이 자신의 피조물 가운데 풀려난 악을 욥보다 더 잘
제임스 해밀턴 지음 | 김귀탁 옮김 | 336쪽 | 18,000원
파악하고 있으며, 악을 통제하고 있고, 언젠가 악을 파괴할 것이라고 말한다.
요한계시록 성경신학
“최근 몇 년 동안 욥기 연구가 넘쳐났는데, 이 책과 같은 연구 내용은 전혀 없었
브라이언 탭 지음 | 김귀탁 옮김 | 372쪽 | 20,000원
다. 대부분의 연구는 하나님이 욥의 질문에 직접 답하기를 거부하신다는 점을 중
하나님의 악의 세력 리워야단 정복
폴 윌리엄슨 지음 | 김귀탁 옮김 | 296쪽 | 16,000원
할례 성경신학
“절망적인 소망 가운데 수고: 전도서가 그리스도인에게
다. 하나님이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하시므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다. 그러나 에릭 오틀런드는 욥기를 이렇게 해석하면 다른 본문 여러 군데를 잘못
욥의 처음 반응과 두 번째 반응의 차이, 리워야단의 의미 등의 요소들을 주의 깊
레위기 성경신학
게 살피며 욥기가 여러 사람이 생각하듯 열린 결말을 가진 책이 아니며 욥의 근본
L. 마이클 모랄레스 지음 | 신윤수 옮김 | 470쪽 | 26,000원
적 대답에 대한 견고한 토대를 제공하는 책이라고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D. A. 카슨
옮긴이
God’s defeat of evil in the book of Job 에릭 오틀런드 지음 김희정 옮김
칼 디닉 지음 | 김귀탁 옮김 | 356쪽 | 20,000원
주는 격려”가 대표작이다.
Piercing Leviathan
온을 펼치시고 눈 저장고를 조절하시며 악어를 만드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읽기 쉽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두 번에 걸친 하나님의 담화, 하나님의 담화에 대한
에스더와 말라기 주석이 곧 출간될 예정이며, Themelios 에 실린 “고난받는 자를 위한 욥기의 다섯 가지 진리”와
요하게 다룬다. 이 해석에 따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늘에 오리
죽음과 내세 성경신학
에릭 오틀런드
김희정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SFU)에서 언어학을 전공 했고 캐나다 리전트 대학에서 수학했다. 아세아 연합신학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현 재는 밴쿠버 지구촌교회에서 청소년부를 섬기고 있다. 역
에릭 오틀런드 지음 김희정 옮김
서로는 『로이드 존스를 말하다』, 『태초의 첫째 아담에서 종말의 둘째 아담 그리스도까지』, 『잃어버린 기독교의 보 물 교리문답 교육』, 『미친 듯이 바쁜』, 『만화로 보는 진화
안드레아스 쾨스텐베르거 지음 | 전광규 옮김 | 276쪽 |
론 비판』, 『성경신학이란 무엇인가』(이상 부흥과개혁사) 등
14,000원
시리즈 편집 D. A. 카슨
하나님 나라 관점으로 읽는 구약신학 스티븐 뎀프스터 지음 | 박성창 옮김 | 320쪽 | 16,000원 ISBN 978-89-6092-718-6 ISBN 978-89-6092-430-7 (세트)
www.rnrbook.com 값 20,000원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