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슈라이너 지음 ┃ 김귀탁 옮김 요한계시록 신학 들음의 기쁨
성경의 마지막 책이자 절정의 책에 대해 믿을 만한 안내서를 고대하는 신자와 목사와 학생은 토머스 슈라이너의 이 요한계시록 책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신학』은 성경에서 가장 어렵다고 알려진 책의 본문과 만나도록 독 자를 준비시킨다. 이 만남은 일반적으로 성경의 근본적인 중심 주제에 더 초점 을 맞춘다. 하나님 백성은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에게 기꺼이 들을 뿐 아니라, 특히 고난 속에서 언젠가 하나님의 참된 임재 속에서 살게 될 날에 대한 확실 한 소망을 계속 견지하는 한편,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와 지속적인 신실하심에 대해 기쁨을 누린다. ‘톨레 레게’(Tolle lege). 들고 읽으라. -에크하르트 슈나벨 고든콘웰 신학교의 신약학 마리아 프렌치 록펠러 석좌교수, 『선교사 바울』 (Paul the Missionary ) 의 저자 교회는 항상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를 필요로 했으나 지금은 어느 때보다 더 절 실하게 필요로 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이가 요한계시록을 혼란스럽고 심지 어는 겁먹게 하는 책으로 여긴다. 신약 성경을 주의 깊게 연구하는 일에 평생 을 바친 학자 토머스 슈라이너에게 들어가라. 『요한계시록 신학』에서 슈라이너 는 특출한 능력을 발휘해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를 명확하고 흥미롭고 매력적인 방식으로 개관함으로써 독자에게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슈라이너의 설명은 균형적이고 사려 깊다. 이 중요한 성경책의 핵심 메시지를 확실히 이해하고 있 음을 보여 준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몇 가지 사소한 사실에 대해 저자에 게 동조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누구든 저자가 각기 다른 견해를 따스하고 공 정하게 설명하는 것, 특히 요한계시록의 중심 진리를 제시하는 것에 대해 감사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고, 이 책을 오늘날 교회에 없어서는 안 될 안내서로 만든다. -S. M. 보 캘리포니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명예 신약 교수
토머스 슈라이너는 요한계시록을 명료하고 균형적으로 개관했다. 작은 공로가 아니다! 슈라이너는 요한계시록을 다룰 때 최고의 현대 학문에 의존하지만, 지 나친 학문적 논쟁으로 독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슈라이너는 자신의 신념 을 분명히 드러내지만, 자신이 동조하지 않는 자에게 자애롭고, 다루는 본문이 까다로울 때는 그런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만큼 정직하다. 요한계시록을 이해 하기 바라는 자는 슈라이너의 설명에서 큰 유익을 얻을 것이다. -숀 맥도너 고든콘웰 신학교의 신약 교수, 『밧모섬에서의 하나님』 ( YHWH at Patmos ) 의 저자
┃목차┃ ┃ 시리즈 서문 7 ┃ 저자 서문 9 ┃ 약어표 11 서론 묵시로 계시된 진리 13 1장 땅에 거하는 자들의 귀머거리 상태 33 2장 성도는 듣고 주의하라 55 3장 하나님이 보좌에서 다스리신다는 선언 85 4장 사자와 어린양의 복음 135 5장 성령의 증언 191 6장 복에 대한 약속과 새 창조 203 7장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림 219 맺음말 245
시리즈 서문 7 ┃ 시리즈 서문 ┃ 신약 성경 각 권의 큰 관념을 다룬 책은 매우 드물다. 독자는 성경 사전, 일부 주석, 신약 신학 책에서 간략히 이런 내용을 찾아볼 수 있겠으나, 이런 책은 다른 정보로 가득 차 있고 신약 성경 각 책 자 체의 신학을 밝히는 일에 전념하지 않는다. 신약 성경신학의 다양 한 주제에 집중하는 전문 작업은 종종 좁은 초점을 갖고 있고, 이를 테면 마태복음이나 히브리서의 가르침의 어떤 국면을 그 책 나머지 부분의 신학과 분리시켜 다룬다. 신약 성경신학 시리즈는 성경 연구자에게 신약 성경 각 책이나 책들의 특수한 가르침을 적당히 책으로 읽을 수 있는 정도의 분량 으로 다룬 작품을 제공함으로써 이 간격을 메우려 애쓴다. 이 시리 즈는 성경신학의 관점에 따라 본문에 접근한다. 이 시리즈는 본문 의 역사적 및 문학적 측면에 적당한 주의를 기울이지만, 주요 초점 은 성경의 포괄적 이야기와 그리스도 중심 초점을 시야에서 놓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세상과의 관계에 대해 신약 성경 각 책 자체의 가르침을 제공하는 것에 있다. 이런 성경신학은 성경적인 강해 설교에 근본적으로 중요하고, 주경신학, 조직신학, 기독교 윤리에 대한 정보도 제공한다.
8 요한계시록 신학 20권의 이 시리즈는 복음주의 관점에 따라 신학 주제들을 포괄적 이고 학문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고찰한다. 이 시리즈는 신학생, 설교자, 관심 있는 평신도에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 를 들어 목사는 강해 설교 시리즈를 준비할 때 유익한 주석을 건전 하게 제공하는 책은 찾을 수 있겠으나, 신약 성경 각 책의 종합적 가르침을 충족시켜 줄 만한 책은 거의 찾지 못할 것이다. 이 시리즈 는 설교와 성경 공부 준비에 유용할 뿐 아니라, 대학과 신학교에서 주석 수업 교재로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시리즈가 그리 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헌신을 끌어내는 데 공헌하기를 바라고 기도한다. 토머스 슈라이너의 요한계시록 작품 『요한계시록 신학』은 신약 성경에서 가장 난해한 책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절박한 임무를 기꺼 이 감당한다. 요한계시록은 특히 역사적 배경을 판단하고 묵시적 심상을 파악하는 데 있어 굉장히 큰 해석적 도전을 던져 준다. 슈라 이너의 이 책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성경 예언의 절정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도록 독자를 이끄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잔혹한 폭력과 냉혹한 충돌이 난무하는 우리 시대에 요한계시록은 위로와 격려와 소망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선포한다. 요한계시록은 우리가 사는 세 상의 실상을 드러내고 초월적 실재를 흘끗 들여다본다. 슈라이너에 따르면 요한계시록을 듣는 기쁨은 예수의 부르심을 주의하고, 성령 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이 자신의 보좌에서 다스리신다는 확신을 갖는 것으로 구성된다. 토머스 슈라이너, 브라이언 로스너
저자 서문 9 ┃ 저자 서문 ┃ 2020년 8월에 무어 대학 강좌 초청을 받았을 때, 요한계시록의 신 학에 대한 이 작은 책을 저술하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베이커 주석 의 요한계시록 주석을 쓰고 있다. 또 크로스웨이 출판사( 2018년 ) 가 출간한 ESV 강해 주석의 짧은 요한계시록 주석도 썼다. 2019년에 고든콘웰 신학교에서 열린 복음주의 신학회의 북동부 지역 모임에 서 본서의 내용 일부를 시험삼아 발표했다. 그때 회원들에게 받은 피드백과 그 기간에 자기 집에 묵게 해 준 에크하르트와 바바라 슈 나벨 부부가 보여 준 관대한 후의에 감사를 드린다. 또한 2019년 8월에는 캘리포니아주, 온타리오에 있는 게이트웨이 신학교에서 이 강의를 하게 되었고, 거기서도 참석자와의 교류와 반응을 통해 많 은 것을 배웠다. 특별히 게이트웨이 신학교에 나를 초대해 준 존 테 일러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고 그를 더 잘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섭리로 무어 대학에서는 결국 강의를 하지 못하게 되 었다. 코비드-19의 방해를 받았고, 따라서 내 여행도 취소되었다. 나는 이전에 무어 대학에 있었고, 그들과 다시 함께 할 수 없게 된 사실에 실망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우리는 지금 죄 많은 세상 에서 살고 있고, 그럼에도 하나님이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스리고
10 요한계시록 신학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 인 파괴력에 대해 생각하면 무어 대학에서 강의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은 사소한 아쉬움에 불과하다. 어쨌든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에 대한 경이로운 환상, 사자와 어린양로서의 예수에 대한 아 름다운 묘사, 성령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것을 아는 데서 나오는 확신을 갖고 요한계시록의 신학을 숙고한 것은 얼마나 즐거 운 일일까! 우리 대적은 무자비하고 증오로 가득 차 있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대적보다 훨씬 크시다. 우리는 인내하도록 부르심 을 받고 타협을 거부해야 한다. 하나님이 악에 굴복하는 자를 심판 하고, 가장 큰 기쁨을 갖고 자기를 계속 신뢰하는 자에게 상을 주 겠다고 약속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것이다( 계 22:4 ). 내가 지도하는 박사 과정의 학생 가운데 하나로, 내 대신 참고 자료를 검토하고 내가 요청한 자료를 보내 준 코이 스틸 4세에게 감 사를 전한다. 그로 말미암아 나는 작업할 때 시간을 많이 절약했다! 또한 크로스웨이 출판사의 저스틴 테일러와 데인 오틀런드에게도 매우 감사하다. 나는 그들이 이 책을 어떻게 생각할지 몰랐으나 이 책을 출판하고 싶어 했고, 그것이 내게는 아주 큰 힘이 되었다. 그들 은 신약 성경 전체에 대해 비슷한 책을 시리즈로 출판할 것을 제안 했고, 나는 브라이언 로스너와 함께 이 시리즈의 편집자로 참여하 는 영예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세련된 편집과 유익한 제안으로 도 움을 준 데이비드 바싱거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이로 말미암아 이 책은 더 좋은 책이 되었다. 2020년 4월 1일 토머스 슈라이너
13 서론 묵시로 계시된 진리 요한계시록은 독자를 매료시키면서 동시에 쫓아낸다. 요한계시록 은 우리의 상상을 사로잡는 묵시적 환상으로 기이한 새 세상을 소 개하므로 독자를 매료시킨다. 우리는 모두 ‘삶의 어떤 차원은 우리 를 넘어선다는 것 곧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비밀들이 있다는 것’ 을 느끼고,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도 록 초대함으로써 이런 세상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우리는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세상이 어떻게 끝날지 궁금하게 여긴다. 요한 계시록은 세상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계시하고, 장차 임할 새 세상의 일원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말해 준다. 동시에 요한계시록은 내용 전체의 의미가 의아하기 때 문에,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 절망하기 때 문에 우리를 쫓아낸다. 마르틴 루터는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를 분 명히 가르치거나 계시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면서 이런 감정을 느
14 요한계시록 신학 꼈다.1)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G. K. 체 스터턴은 다음과 같이 유머러스하게 예증한다. “복음 전도자 요한 은 자신의 환상에서 희한한 괴물을 많이 보았지만, 자신의 책의 주 석자들만큼 사나운 괴물은 보지 못했다.”2) 아마 우리도 요한계시록 을 사변적으로 이상하게 해석하면 요한계시록에서 쫓겨날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일부 내용은 미래에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일에 대 해 놀라울 정도로 세부적인 지도를 제공한다. 여기서 내 주장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요한계시록의 메시 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선과 악 사이에 큰 충돌이 있고, 기독교 신앙은 1세기 당시와 똑같이 공격을 받고 있다.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통해 아주 악한 시대에도 하나님 은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저버리지 아니 하셨다는 것, 선이 최종적으로 승리하고 득세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환기시킨다. 악이 횡행하고 기독교 신앙이 공격을 받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악이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지 않은 것에 대 해 희망과 확신을 필요로 하고, 요한계시록은 새 세상이 오고 있다 는 것, 새 창조가 임하리라는 것,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하나님은 공정하고 거룩하고 의로우시고, 하나 님과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 동시에 우리 1) Werner Georg Kü mmel, The New Testament: The History of the Investigation of Its Problems, trans. S. McLean Gilmour and Howard C. Kee (Nashville: Abingdon, 1972), 26에서 인용함. 2) G. K. Chesterton, Orthodoxy (New York: John Lane, 1909), 29.
서론 ┃ 묵시로 계시된 진리 15 는 요한계시록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역사의 중심 또 는 역사의 토대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악이 패배한 것은 그리스 도가 이루신 일 때문이다. 악에 대한 승리는 심판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유대 지파의 사자의 고난을 통해 곧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통해 이루어졌다. 신자는 바벨론에서, 다시 말해 세상 정부가 굶주 린 야수같이 교회를 찢어 놓는 세계에서 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요한은 우리는 그리스도 가까이에 있어야 하고, 악과 타협해서는 안 되며, 끝까지 견디고, 최후의 상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요 한계시록은 미래에 대한 예언 표가 아니고 예수의 제자가 되라는 부르심이다. 요한은 우리에게 신실하고 열매 맺는 자가 되라고 말 하고, 결국은 모든 것이 잘될 것이므로 우리는 절망에 빠져서는 안 된다. 요한계시록의 신학을 탐구하기 전에 요한계시록의 역사적 배경 과 요한계시록에서 확인하는 문학 장르에 대해 간략히 설명할 필 요가 있다. 우리는 옛날 책( 현대의 책도 마찬가지다! ) 을 읽을 때 책의 저 술에 수반된 상황을 아는 것이 유익하고, 그래야 책을 그 역사적 배 경 속에 둘 수 있다. 아울러 작품의 장르를 파악할 때도 도움이 된다. 요한계시록은 이야기, 시, 서신 또는 다른 어떤 장르인가? 시 나 속담을 서신처럼 읽으면 내용을 잘못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러 므로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를 살펴보기 전에 상황을 설명할 필요가 있고, 그런 다음 이후 장들에서 요한계시록의 신학을 설명해야 한다.
16 요한계시록 신학 역사적 배경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모호한 역사적 배경에 부딪히게 된다. 학자들의 다양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요한계시록 자체 속에는, 우리가 네로 ( 재위 AD 54-68년 ) 나 도미티아누스 ( 재위 AD 81-96년 ) 나 트라야누스( 재위 AD 98-117년 ) 나 또는 다른 어떤 황제를 생각하든 간 에, 특정 황제 아래에서의 삶을 명확하게 암시하는 내용이 들어 있 지 않다. 이런 모호한 상황은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어느 특정 시기 나 특정 황제의 활동에 엄밀히 결부시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을 함축한다. 분명히 요한계시록은 한 특정 시기에 기록되어 소아 시아의 교회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럴지라도 특정 연대를 단정할 만 한 명확한 증거는 없다. 그렇다고 특정 연대를 단정하는 시도를 반 대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나는 후기 연대설을 곧 찬성할 것이다. 그 리고 후기 연대를 적용해 여기저기서 제공된 해석들을 기꺼이 확인 해 볼 것이다. 여기서 요점은 특정 연대를 요구하는 해석을 받아들 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 상황이 불명확한 경우에 우리가 이끌어 낼 수 있는 중요한 해석학적 결론이다. 특정 역사적 배경을 요구하는 해석은 어쨌든 검증이 불가능한 요한계시록을 이 해할 때 억지를 강요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요한계시록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특수한 역사적 재구성에 끼워 맞추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연대를 선택한다면 도미티아누스( 재위 AD 81-96년 ) 통 치 기간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레네오는 2세기 말에 이 문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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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묵시로 계시된 진리 17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그리스도의 이름과 관련해 어떤 적극적 진술을 제시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적그리 스도의 이름을 명확히 제시하는 일이 필수적이었다면 역시 그 계시를 본 그가 말했을 테니 말이다. 그것은 아주 오래 전 이 아니라 거의 우리 세대인 도미티아누스의 통치가 끝날 즈 음에 보였다.3) 이레네오의 말의 의미는 논란이 있다. 이레네오의 말은 도미티아 누스 시대를 명백히 지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은 도미티아누스가 황제였을 때,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썼음을 암시한다.4) 요한계시록이 AD 70년 이전에 기록되었다고 주장되면 “보였다”는 동사의 주어가 “그”( 즉 요한 ) 였을 수 있었다. 이것이 사 실이면 이레네오는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때를 명시하는 것이 아 니라, 요한 자신이 마지막으로 보인 때를 기록하는 것이다. 이런 해 석이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요한을 동사의 주어로 보는 것은 너무 3) 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trans. Kirsopp Lake, LCL 153, 265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92–1994), 5.8.6에서 인용 함. 3.18.3도 보라. 4) G. K. Beale,
Book of Revelation: A Commentary on
Greek Text, NIGTC (Grand Rapids, MI: Eerdmans, 1999), 19–20. 다음은 이와 반대다.
L.
Jr., Before Jerusalem Fell: Dating the Book of Revelation, rev. ed. (Powder Springs, GA: American Vision, 1998).
18 요한계시록 신학 어색하고,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계시가 주어라면 구문이 더 자연 스럽게 이해된다. 여기서 인용된 번역은 “그것”을 주어로 보충하면 이 해석을 밑받침한다. 따라서 최초의 외적 증거는 도미티아누스 통치 기간에 기록되었다는 연대설을 지지한다. 어떤 경우에는 전승 자체가 명확하지 않기는 해도 초기 전승에서 우리가 얻어 내는 나머지 증거는 후기 연대를 지지하는 것 같다. 알 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약 AD 155-215년 ) 는 요한은 “폭군이 죽은 뒤 에” 밧모섬에서 돌아왔다고 지적한다.5) 여기서 말하는 폭군은 아마 네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클레멘스는 초기 연대를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전승은 우리에게 다른 방향을 지시하므로, 클레멘스가 염두에 둔 폭군이 도미티아누스인 것도 가능해 보인다. 이런 결론을 지지하며 유세비우스는 당시의 황제를 도미티아누스 로 간주하고,6) 이것은 이레네오에 대한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과 일 치한다. 빅토리누스도 요한계시록을 도미티아누스 통치 기간까지 추적한다. 요한은 이 계시를 보았을 때 도미티아누스 황제에게 광산 으로 유배당해 밧모섬에 갇혀 있었다. 요한은 밧모섬에서 요 한계시록을 쓴 것 같다. 이미 노인이 된 요한은 자신의 고난 5) Clement of Alexandria, The Rich Man’s Salvation, 42, in The Exhortation to the Greeks; The Rich Man’s Salvation; and To the Newly Baptized, trans. G. W. Butterworth, LCL 92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19). 6) 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3.23.1.
서론 ┃ 묵시로 계시된 진리 19 이 끝나면 지복 속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미 티아누스가 죽임을 당하자 그의 모든 계획은 무효가 되었다. 그러므로 요한은 광산에서 풀려나 이후로 주님에게서 받은 계시를 널리 전했다.7) 히에로니무스( AD 340-420년 ) 도 같은 시기 배경을 옹호한다. “네로 이후로 14년이 되던 해에 도미티아누스가 2차 박해를 일으키자 요 한은 밧모섬으로 추방되었고, 거기서 요한계시록을 썼다.”8) 전승은 요한계시록의 후기 연대설을 만장일치로 단정했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물론 이레네오가 잘못 생각했고, 이후 자료는 이레네오에 게 의존했으며, 요한계시록이 언제 기록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직접 적 지식이 없었다고 보는 것도 가능하다.9) 어쨌든 기독교 역사 초기 저술가들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고, 어떤 경우에 그들은 분명히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구체적 인 기록 연대를 제시할 수 없다는 문제에 다시 직면한다. 전승이 잘 못이라면 요한계시록은 AD 60년과 100년 사이 어느 한 시점에 기 7) Victorinus of Petovium, Commentary on the Apocalypse, 10.3, in Latin Commentaries on Revelation, ed. and trans. William C. Weinrich, ACT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11), 13–14. 8) Jerome, Lives of Illustrious Men, 9, in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of the Christian Church, 2nd ser., ed. Philip Schaff and Henry Wace (Grand Rapids, MI: Eerdmans, 1969), 3:364. 9) 참고. Craig R. Koester, Revelation: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AB 38A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2014), 66–67.
20 요한계시록 신학 록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요한계시록의 기록 연대에 대해 이레네오가 정확하다는 판단에 마음이 쏠린다. 어쨌든 이레네오는 폴리카르포스를 알았고, 폴리카르포스는 요한 을 알았으며, 따라서 전승은 명확한 계승 노선을 갖고 있다. 그렇다 해도 우리가 확실성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요약하 면 내적 증거는 요한계시록의 기록 연대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외적 증거는 믿을 만하다고 가정하면, 도미티아누스가 황제였을 때 요한계시록이 기록되었음을 암시한다. 장르 학자들은 요한계시록의 장르에 대해 종종 논쟁을 벌였고, 묵시적 장르가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동시에 학자들은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 편의 편지와 요한계시록의 예언으로서의 성격도 주 목했다. 다시 말하면 요한계시록은 서신, 예언, 묵시 장르가 결합되 어 있다. 보컴은 올바르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요한계시록은 상당한 주의와 기교로 작성된 문학 작품 이다. 우리는 요한이 특별한 환상을 경험한 것을 추호도 의심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의 환상 경험을 재생하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계시의 의미를 전달할 의도를 갖고 긴 반성 과정을 거쳐 철저한 문학적 창작을 통해 저술함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