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NTT 마가복음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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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읽은 책 가운데 아마 가장 훌륭하고 가장 짧은 마가복음 신학일

것이다. 오르의 책이 독특한 것은 오르가 베드로뿐만 아니라 바울까지 검토하

는 가운데 마가복음의 지위를 어떻게 인정하는지에 있다. 마가가 복음서를 저

술했을 때 베드로와 바울은 이미 마가복음에 나타난 복음의 내용을 전파하고

있었다. 마가는 유대인의 메시아를 능가하는 이 위대한 영웅 이야기를 더 완전 하게 기술한다. 이 위대한 영웅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패트릭 슈라이너

미드웨스턴 침례 신학교 신약학 및 성경신학 조교수 『시각적으로 보는 신약의 주제와 구조』, 『NTT 사도행전 신학』, 『SSBT 하나님 나라 성경신학』의 저자

피터 오르는 독자에게 마가복음을 성경신학적으로 풍성하게 다룬 결과물을 제

공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며 종 되신 왕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요청한다. 오르는 통찰력 있게 마가복음을 ‘복음의 시작’이라고 부르며, 예수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기록과 바울 및 베드로의 사도적 복음 전파 사이의 역사적

이며 신학적인 연결점을 그려 낸다. 이 책은 마가복음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모 든 사람이 본질적인 것을 이해하게 해 준다.

-브라이언 탭

베들레헴 대학 및 신학교 학장 겸 성경신학 교수

피터 오르는 마가복음 신학에 대한 간략하고 접근 가능하며 통찰력 있는 연구

결과를 제공한다. 오르는 이 책에서 마가가 강조하는 것,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조하고, 독자에게 마가복음과 사도 바울의 서신서 사이에 있는 연결

점을 보라고 요청한다. 이 책은 학자와 일반

독자에게도 더 깊은 이해와 공감 을 갖고 마가복음을 읽고 또 읽을 수 있게 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가이 워터스 잭슨 리폼드 신학교 학장 겸 신약학 제임스 베어드 석좌교수

┃목차┃

┃ 시리즈 서문 7 ┃ 서문 9 ┃ 약어표 12 서론 ┃ 복음의 시작: 배경 이야기로서 마가복음 15 1장 신적 정체성: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33 2장 계시: 기록되고, 선포되고, 받아들여짐 71 3장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예수와 새로운 창조 103 4장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예수를 통한 구원 131 5장 나를 따르라: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 161 6장 모세가 명한 것: 예수, 율법, 하나님 백성 189 7장 죽으심과 장사됨과 부활하심: 예수의 죽음과 부활 219 맺음말 ┃ 복음의 결말 253 ┃ 추천 도서 목록 257

┃ 시리즈 서문 ┃

신약 성경 각 권의 큰 관념을 다룬 책은 매우 드물다. 독자는 성경

사전, 일부 주석, 신약 신학 책에서 간략히 이런 내용을 찾아볼 수

있겠으나, 이런 책은 다른 정보로 가득 차 있고 신약 성경 각 책 자

체의 신학을 밝히는 일에 전념하지 않는다. 신약 성경신학의 다양

한 주제에 집중하는 전문 작업은 종종 좁은 초점을 갖고 있고, 이를

테면 마태복음이나 히브리서의 가르침의 어떤 국면을 그 책 나머지

부분의 신학과 분리시켜 다룬다.

신약 성경신학 시리즈는 성경 연구자에게 신약 성경 각 책이나

책들의 특수한 가르침을 적당히 책으로 읽을 수 있는 정도의 분량

으로 다룬 작품을 제공함으로써 이 간격을 메우려 애쓴다. 이 시리

즈는 성경신학의 관점에 따라 본문에 접근한다. 이 시리즈는 본문

시리즈 서문 7

의 역사적 및 문학적 측면에 적당한 주의를 기울이지만, 주요 초점 은 성경의 포괄적 이야기와 그리스도 중심 초점을 시야에서 놓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세상과의 관계에 대해 신약 성경 각 책 자체의 가르침을 제공하는 것에 있다. 이런 성경신학은 성경적인 강해 설교에 근본적으로 중요하고, 주경신학, 조직신학,

기독교 윤리에 대한 정보도 제공한다.

20권의 이 시리즈는 복음주의 관점에 따라 신학 주제들을 포괄적

이고 학문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고찰한다. 이 시리즈는

신학생, 설교자, 관심 있는 평신도에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

를 들어, 목사는 강해 설교 시리즈를 준비할 때 유익한 주석을 건전

하게 제공하는 책은 찾을 수 있겠으나, 신약 성경 각 책의 종합적

가르침을 충족시켜 줄 만한 책은 거의 찾지 못할 것이다. 이 시리즈

는 설교와 성경 공부 준비에 유용할 뿐 아니라, 대학과 신학교에서

주석 수업 교재로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시리즈가 그리

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헌신을 끌어내는 데 공헌하기를 바라고 기도한다.

피터 오르의 책, 『NTT 마가복음 신학』은 예수에 대한 마가의 간

결하고 활기찬 역사적 사건 기술 기저에 성경의 모든 부분, 특히 구

약 성경과 바울 및 베드로의 글과 연결되는 심오한 신학이 자리 잡

고 있음을 입증한다. 마가에게 역사적 자료의 원천이 베드로였다면, 신학적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바울이었다. 피터 오르에 따르면, 마가는 “복음의 시작”을 보여 주고, 예수의 삶과 사역 및 사도의 복

음 전파 사이에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연결점을 구축한다. 마가복음

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이자 종 된 왕이신 예수를 따르라고 요 청한다. 이 예수께서 오랫동안 고대했던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신

분이며, 이 예수의 죽음은 우리가 모방해야 할 본보기이자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 행위이기 때문이다.

토머스 슈라이너·브라이언 로스너

8 마가복음 신학

┃ 서문 ┃ 이 책은 마가복음의 주요 주제 가운데 일부를 담아내기 위한 내 노력의 결과물이다. 가장 짧고 가장 이른 시기에 쓰인 복음서로서

마가복음은 우리에게 새롭게 구성된 예수에 대한 기록을 제시하며

이야기가 신속하게 전개되는 예수에 대한 서술을 보여 준다. 하지

만 나는 마가복음이 단순히 홀로 동떨어진 작품을 저술한 것이 아

님을 ( 이 점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 발견했다. 마가는 구약 성경의 풍성한

자료를 가져올 뿐 아니라, 의식적으로 신약 성경의 다른 목소리

에( 특히 바울과 베드로에게 ) 주의를 기울이면서 마가복음을 저술한다.

처음 기록된 복음서로서 마가복음은 신약 성경에 있어 핵심이 되

며, 실제로는 성경 전체에 핵심이 되는데, 이는 구약 성경과 신약 성

경의 목소리가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을 중심에 두고 나누

는 대화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이 마가복음에 더 흥미를

갖고 더 중요하게는

서문 9
예수에 대해 더 흥미를 갖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바란다. 이 책을 저술하는 동안 도움과 지지를 베푼 많은 사람에게 깊은 사의를 보낸다. 우선 가장 중요하게는 무어 신학교의 이사회에 진
되기를

심으로 감사한다. 이사회는 내가 이 책을 저술할 수 있도록 6개월의

연구 기간을 허락해 주었다. 내 친구이자 동료이며 신학교의 학장

인 마크 톰슨에게도 감사한다. 마크 톰슨은 내가 이런 방식으로 내

연구 기간을 사용하도록 격려해 주었다.

토머스 슈라이너와 브라이언 로스너에게도 감사한 것은 내가 이

시리즈에 기여할 수 있도록 청해 주었고, 내가 이 책을 저술했던 기

간에 나를 격려해 주었다. 크로스웨이 출판사의 모든 관계자에게도

감사하며, 특히 크리스 코완은 자신의 편집 실력을 통해 이 책의 수

준을 대단히 높여 주었다.

무어 신학교의 교수진 가운데 내 동료들은 이 책을 저술했던 프

로젝트 기간에 다른 방식으로 놀랍게 나를 지원했다. 나는 특히 신

약학 분과의 내 친구들이자 동료들인 크리스 콘어스, 필립 컨, 윌 티

미스, 리오넬 위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필립은 대단히 훌

륭한 친구이자 동료이며 분과장이면서도 이에 더해 경건하고 주의

깊은 가르침에 있어 환상적인 본을 보여 주었다. 우리가 함께 가르

치는 수업 가운데 필립의 강의에 참여해 필립의 강의를 들을 수 있

어 기뻤다. 사이먼 길험, 체이스 쿤, 폴 그리몬드에게도 우정을 보여

주며 종종 격려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

수많은 사람이 매우 친절하게도 이 책의 일부분을 읽었거나 다른

방식으로 이 책이 출간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제프 애니, 조엘

애트우드, 케이스 힐, 애덤 우드, 필립 컨은 이 책에 대한 상세한 피

드백을 주었는데, 이에 대해 특별히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올 세인트 피터샴에 위치한 가족 같은 선한 교회 공동체에게도

10 마가복음 신학

감사한다. 이 책을 저술했던 기간에 다른 방식들로 나를 격려하고

지원했던 수많은 친구의 수고도 인정한다. 벤과 세라 그레이, 러스

와 에이메 그린터, 루크와 애너 잭슨, 폴과 캐럴라인 리치, 로스와

메건 워커 등 이 친구들로 말미암아 나는 하나님께 매우 감사드

린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이 책을 저술하면서, 닫힌 국경 때문에

영국에 사시던 부모님 필립과 케이, 여동생 수재나와 더욱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우리가 곧 서로 만나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엠 당신에게도 항상 그런 것처럼 모든 것에서 매우 고맙게 생각하오.

마지막으로 화살통에 가득한 화살 같은 네 아들에게 이 책을

는 내려놓고 너희 방을 정돈해라 ).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피터 오르

시드니, 2021년

서문 11
헌 정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너희 모두를 사랑한다. 너희가 항
상 마가복음의 예수를 믿고 따르며 사랑하기를 바란다( 이제 전자기기

서론 복음의 시작

배경 이야기로서 마가복음

마가복음은 “시작”이라는 말로 책이 시작된다. 마가복음을 여는

첫 어구는 “복음의 시작[‘아르케’]”이다. 동사가 없는 이 구절은 그

자체로 이 마가복음의 책 제목으로서 역할을 한다.1) 마가는 예수에

대해 선포하는 복음의 시작이나 기원 또는 배경 이야기를 기록

했다.2)

마가복음을 읽는 1세기의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읽어야 할 책이

아니라 들어야 할 메시지로 이해했을 것이다. 이것이 마가복음 전

1) 이 주장에 대한 상세한 변호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M. Eugene Boring, “Mark 1:1–15 and the Beginning of the Gospel,” Semeia 52 (1991): 43–81.

2) 나는 이 복음서를 마가 또는 요한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저술했다는 전통적인 입장을 취한다(예를 들어 행 12:12; 15:39에 언급되었다). 이 주제들에 대한 훌륭한 연구로서 다음을 보라. Eckhard J. Schnabel, Mark: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TNTC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17), 7–12.

서론 ┃ 복음의 시작 15

체에 마가가 “복음”( ‘유앙겔리온’ )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막

1:14, 15; 8:35; 10:29; 13:10; 14:9 ) . 항상 이 메시지는 선포되고 들린다.

마가가 마가복음을 기록한 후에 마가복음은 “복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복음”이라는 단어에 대해 서로 연관되면서도

또한

구분되는 두 가지의 이해가 생겨났다( 예를 들어, 예수의 생애에 대한 책으

로서 복음과, 예수에 대해 선포되는 메시지로서 복음을 말한다 ). 그러나 마가가

기록하는 바와 같이 복음은 오직 선포된 메시지로서 알려졌다. 이

제 마가는 마가복음을 읽는 독자들에게 시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들이 들었던 선포된 복음에 대한 구체화되고 상

세한 배경 이야기다.

복음에 대한 배경 이야기로서 마가복음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신약 성경에서 중요한 두 사도와의 관계 안에서 마가복음을

생각하게 한다. 이 두 사도는 바로 베드로와 바울이다. 단순하게 말

해, 베드로가 마가에게 마가복음의 역사적 출처라면, 바울은 마가에

게 마가복음의 신학적 대화 상대다.

베드로: 마가복음의 역사적 출처

전통적으로 누가복음이 바울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 마가복음은 베드로와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세비우스는 자신의 『교회사』에서 “파피아스의 현존하는 다섯 권

마가복음 신학

16

의 책”에 대해 논의한다( 파피아스는 2세기의 히에라폴리스의 주교다 ). 3) 한곳

에서 유세비우스는 파피아스가 마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을 다

음과 같이 인용한다. “베드로의 해석자가 된 마가는 그리스도가 말

씀하고 행한 것에 대해 베드로가 기억하고 있던 내용을 순서대로는

아니지만 정확하게 기록했다.”4) 이 인용구는 상당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단지 마가와 베드로 사이에 있었던 이른 시기의 분명한 연관 관계에 대해서만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파피아스 이후에 리옹의 주교였던 이레네오는 또한 어떻게 복음

서들이 저술되었는지에 대해 기록했다. 이레네오는 다음과 같이 말

한다. “베드로의 제자이자 해석자인 마가는 또한 베드로가 설교한

내용들을 기록함으로써 복음서를 우리에게 전달했다. 바울의 동료

인 누가는 또한 바울이 설교한 복음을 책에 기록했다.”5) 여기서 우

3) 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Books 1–5, trans. Kirsopp Lake, LCL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26), 3.39.1.

4) 앞의 책, 3.39.15.

5) Irenaeus, Against Heresies 3.1.1., in The Apostolic Fathers, Justin Marytyr, Irenaeus; vol. 1 in Ante-Nicene Fathers, ed. Alexander Roberts, James Donaldson, and A. Cleveland Coxe, trans. Alexander Roberts and William Rambaut (Buffalo, NY: Christian Literature, 1885), http://www.newadvent.org, rev. and ed. Kevin Knight for New Advent.

서론
┃ 복음의 시작 17
리는 다시 마가가 “베드로의 해석자”로 소개되고 누가가 바울과 관 련된다는 점을 알게 된다. 마가복음이 그 자체로 베드로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가리키는 대목들도 있다. 마가복음의 처음과 끝은 수미상관으로서 제자 베드

로로 시작하고( 막 1:16 ) 제자 베드로로 끝난다( 막 16:7 ). 6) 리처드 보컴

은 이 점이 고대의 문학적 장치로서 마가복음이 의존하고 있는 증

인이 베드로임을 가리킬 것이라고 주장한다.7) 다른 세부 사항들도

마찬가지로 베드로를 강조하고 있다. 즉 마가복음 1장 16절에서 시

몬 베드로에 대한 이중적인 언급과 같은 경우( 예수께서 “시몬과 시몬의

형제 안드레”를 보셨다 ) 와 마가복음 16장 7절에서 베드로의 이름을 포

함시킨 점과 같은 경우(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말하라” ) 가 있다.8)

마가복음에서 베드로는 확실히 가장 중요한 제자이고, 마태복음

이나 누가복음에서보다 마가복음에서 ( 비율적으로 ) 훨씬 더 많이 언 급된다. 마가복음의 곳곳에서 베드로는 주목받는 제자다. 아마 마가 복음 8장 31-38절에서

6) Richard Bauckham, Jesus and the Eyewitnesses: The Gospels as Eyewitness Testimony, 2nd ed. (Grand Rapids, MI: Eerdmans, 2017), 124–125.

7) 앞의 책, 132-145.

8) Michael Bird, “Mark: Interpreter of Peter and Disciple of Paul,” in Paul and the Gospels: Christologies, Conflicts and Convergences, ed. Michael F. Bird and Joel Willits, LNTS 411 (London: T&T Clark, 2011), 35.

9) Bauckham, Jesus and the Eyewitnesses, 126.

10) Finn Damgaard, “Persecution and Denial—Paradigmatic Apostolic Portrayals in Paul and Mark,” in Mark and Paul: Comparative Essays Part II: For and Against Pauline Influence on Mark, ed. Eve-Marie Becker, Troels Engberg-Pedersen, and Mogens Mü ller, BZNW 199

마가복음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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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예수와 대화하는 장면이 가장 뚜 렷하게 이런 점을 보여 줄 것이다( 참고. 막 9:5; 10:28; 11:21; 14:29, 37, 54–72 ). 9) 나아가 마가가 자주 “다른 인물들이 보고 듣는 내용들을 기록 한다면……기억하는 행동은 유일하게 베드로만 하고 있다.”10) 마가

복음 11장 21절에서 베드로는 예수께서 저주하셨던 무화과나무를

기억한다. 또한 마가복음 14장 72절에서 베드로는 스스로 예수를

부인할 것을 예수께서 예언하셨던 점을 기억한다. 베드로의 시각을

강조하는 이런 특징들과 또 다른 특징들은 마가가 일차적으로 베드

로의 렌즈와 시각을 통해 마가복음을 기술하고 있다는 점을 암시

한다.11)

이런 견해에 대해 가능성 있는 한 가지 반론은 마가가 종종 베드

로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묘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베드로

에 대한 묘사가 복합적이며 확실하게 전적으로 부정적이지는 않다

는 점을 볼 것이다. 어떤 경우든 마가복음을 처음 읽는 독자들은 베

드로가 최종적으로 변화를 경험했으며 마가복음 자체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 막 16:7 )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을 알았을 것이다.

이런 특징들 가운데 어떤 것도 마가복음에 대한 베드로의 영향을

반박할 만한 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파피아스와 이레네오

의 증거와 함께 이런 증거들은 베드로와 마가복음 사이의 개연성

있는 연관 관계를 가리킨다. 마가는 베드로의 시각에서 마가복음을

기록한 것처럼 보인다.

(Berlin: De Gruyter, 2014), 297.

11) Bauckham, Jesus and the Eyewitnesses, 155–182.

서론 ┃ 복음의 시작 19

바울: 마가복음의 신학적 대화 상대

마가복음과 베드로 사이의 이런 밀접한 관계에 주목한 나머지

19세기까지 마가복음과 바울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어떤 연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19세기에 이르러 독일의 학

자인 구스타프 폴크마르가 마가복음과 바울의 관계에 대한 두 권의

단행본을 출간했다.12) 폴크마르는 마가복음이 본질적으로 바울에

대한 하나의 알레고리적인 방어였다고 주장했다. 폴크마르는 마가

복음 안의 예수는 바울을 대표하고 예수의 가족은 야고보가 이끌고

있던 예루살렘 교회를 상징하며 바리새인들은 바울의 대적자들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폴크마르의 주장은 1923년에 출간된 한 단행본에서 마틴 베르

너가 광범위하게 반박했다.13) 결과적으로 바울과 마가복음 사이의

관계는 주기적으로 학계에서 다루어졌지만, 학문적으로 이 문제에

관심이 집중된 것은 바로 2000년에 조엘 마커스가 한

12) Gustav Volkmar, Die Religion Jesu (Leipzig: Brockhaus, 1857); Gustav Volkmar, Die Evangelien oder Marcus und die Synopsis der kanonischen und ausserkanonischen Evangelien nach demältesten Text mit historisch-exegetischem Commentar (Leipzig: Fuess, 1870).

13) Martin Werner, Der Einfluss paulinischer Theologie im Markusevangelium: eine Studie zur neutestamentlichen Theologie, BZNW 1 (Giessen: Töpelmann, 1923).

14) Joel Marcus, “Mark—Interpreter of Paul,” NTS 46 (2000): 473–487.

마가복음 신학

20
연구에 작은 부흥을 촉발했다. 또한 우리가 학문적인 합의
소논문을
간했을 때였다.14) 마커스의 논문은 바울에 대한 마가복음의 의존성 이라는

점이다. “복음”이라는 단어는 마태복음에 네 번 등장하고( 마

4:23; 9:35; 24:14; 26:13 ), 사도행전에는 두 번 등장하고( 행 15:7; 20:24 ),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15) 마가복음에서

“복음”이라는 단어가 일곱 번 등장하는 것은16) 바울 서신 외에 신

약 성경에서 가장 많이 “복음”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이다( 신약 성

경의 다른 곳에서는 “복음”이라는 단어가 딱 두 번 등장하는데, 벧전 4:17과 계 14:6에

서 나타난다 ). 신약 성경에서 이

시작”이라는 어구는 심지어 바울에게서도 발견되는데, 바

울은 빌립보 교회로 하여금 “복음의 시초에”( ‘엔 아르케 투 유앙겔리우’, 빌 4:15 ) 있었던 바울과의 동역자 관계를 기억하게 한다.17)

마가복음과 바울 사이의 강력한 유사점들은 단지 “복음”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 점에서만 발견될 뿐 아니라, 또한 마가복음과

바울이 “복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방식들 안에서도 발견된다.

15) 누가는 자주 ‘유앙겔리조’라는 동사를 사용한다.

16) “복음”이라는 단어가 막 16:15에서 여덟 번째로 나타나지만, 나는 이 경우는 제외했다. 막 16:9-20이 원문에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17) 여기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복음과 관계를 맺었던 그 시작에 대 해 가리키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G. Walter Hansen, The Letter to the Philippians, PNTC (Grand Rapids, MI: Eerdmans, 2009), 318.

서론 ┃ 복음의 시작 21
에 대해 말할 수 있다면, 이제는 마가가 바울의 신학적 영향 아래
받는 것으로 보인다.
각각 “복음”( ‘유앙겔리온’ )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마가복음을 저술했다는 점이 지지를
바울과 마가복음 사이의 가장 명확한 연결점 가운데 한 가지는 바울과 마가복음이
“복음”이라는 단어는 특히 바울의 단 어이자 마가의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마가가 마가복음을 시작하는 “복음의

바울은 “복음”이라는 단어를 수식어들 없이 언급하는 경향이 있다

( 예. 롬 1:16; 10:16; 고전 4:15 ) 18) 마가복음 1장 1절과 1장 14절을 제외하

고 마가 역시 “복음”이라는 단어를 어떤 수식어들도 없이 사용하는

데, 이는 수식어들과 함께 “복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

는 마태와는 대조적이다( 예. 마 4:23; 9:35; 24:14의 “천국 복음” )

바울에게 있어 복음은 다음의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절에서 보이

는 것처럼 두 단계로 표현되는 하나의 “단편적 사건들에 대한 기

술”일 수 있다.19) “우리가 [1]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2] 다시 살아

나심을 믿을진대.” 또는 복음은 다음의 고린도전서 15장 3-8절에서

와 같이 여러 사건들로 표현될 수 있다. “[1] 그리스도께서……죽으

시고 [2]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3] 다시 살아나사……[4] 보이 셨느니라.” 마가복음의 저술 이유 중 하나는 “바울이 처음에 구두로

전한 복음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된 장문의 단편적 사건들에

대한 기술로 바꾸려는 것”처럼 보인다.20) 바울과 마가복음은 부가적인 신학적 확신들을

18) Willi Marxsen, Mark the Evangelist: Studies on the Redaction History of the Gospel, trans. James Boyce, Donald Juel, William Poehlmann, and Roy A. Harrisville (Nashville: Abingdon, 1969), 127.

19) Margaret Mitchell, “Mark, the Long-Form Pauline εὐαγγέλιον,” in Modern and Ancient Literary Criticism of the Gospels:Continuing the Debate on Gospel Genre(s), ed. R. M. Calhoun, D. P. Moessner, and T. Nicklas, WUNT 451 (Tübingen: Mohr Siebeck, 2020), 211.

20) 앞의 책.

마가복음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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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공유한다. 나 는 뒤의 장들에서 이런 확신들에 대해 다루겠다. 하지만 여기서 나 는 다음의 사항들을 언급할 수 있다. 바로 자연적으로 십자가를 이

해하는 일에 있어 백성의 무능력( 참고. 막 8:31-33과 고전 1:18 ), 율법, 특

히 음식법에 대한 태도( 참고. 막 7:18-19와 롬 14:20 ),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있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일시적인 우선권과 그 이후에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 참고. 막 7:26-27과 롬 1:16 ), 예수와 로마 사이의

계( 참고. 막 12:17과 롬 13:1 ) 다.21)

그러나 마커스에게 있어 바울과 마가복음이 공유하고 있는 십

자가에 대한 이해는 이 둘 사이의 가장 명확한 유사점이다. 마가복

음과 바울 모두에게 있어 예수의 죽음은 구원을 가져올 뿐 아니라

하나의 “묵시론적 사건”이다. 다시 말해, 다른 방식으로는 알려질

수 없었던 것을 계시하는 사건이다.22)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

서 묵시론적 용어들로 십자가에 대해 말한다( 예. 고전 2:7의 “은밀한 가운

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곧 감추어졌던 것”으로서 십자가 ). 마가는 십자가 사

건을 기술할 때에 예수의 죽음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묵시론적

들을 강조한다( 특히 막 15:33의 어둠과 막 15:38의 성소 휘장의 찢어짐 ). 백부

장이 예수의

죽음의 순간에( 막 15:39 ) 마가복음의

22)

23)

서론 ┃ 복음의 시작 23

현상
정체성을
아들로 이해할 때, 정확히 말해 예
이야기는 “묵시론적 계시” 의 순간으로 절정에 이른다.
마가복음과 바울 사이의 이런 유사점들은 중요하다. 마커스가 말 한 것처럼 “다른 복음서들은 마가복음이 한 가지 목표를 향하는 것 21) 더 많은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Mar Pérez i Díaz, Mark, A Pauline Theologian, WUNT 2.521
übingen:
하나님의
수의
23)
(T
Mohr Siebeck, 2020), 45–190.
Marcus,
“Mark—Interpreter of Paul,” 479.
앞의 책, 480.

처럼 그렇게 십자가에 집중하지 않는다. 다른 복음서들은 또한 이

렇게 하나님의 능력을 묵시론적으로 제시한 점이 완전히 인간의 연

약함의 영역에서 일어났다는 마가의 강조점을 동일한 정도로 공유

하지 않는다.”24) 마커스는 십자가에서 일어난 사건으로서 사람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최초의 고백을 유일하게 기술

하는 복음서가 마가복음이라는 점에 주목한다.25) 마가복음과 바울의 로마서 사이에는 특정한 연결점이 있을 수

있다. 학자들은 ( 피할 수 없이! ) 마가가 복음서를 저술한 장소에 대해

논쟁하지만, 마가가 로마에서 복음서를 저술했다는 주장은 훌륭하

게 입증될 수 있다.26) 예를 들어, 신약 성경 안에서 18번 등장하는

라틴어의 사용 중 10번이( 다시 말해, 라틴어에서 빌려 온 단어들을 헬라어로 음

역한 경우가 ) 마가복음에서 발견된다는 점이 주목을 받았다( 예. 막 6:37;

12:15; 14:5의 ‘데나리온’, 막 15:16의 ‘브라이도리온’ )

Brian J. Incigneri, The Gospel to the Romans: The Setting and Rhetoric of Mark’s Gospel, BIS (Leiden: Brill, 2003).

27) Michael P. Theophilus, “The Roman Connection: Paul and Mark,” in Paul and Mark:Comparative Essays Part I:Two Authors at the Beginnings of Christianity, ed. Oda Wischmeyer, David C. Sim, and Ian J. Elmer, BZNW 198 (Berlin: De Gruyter, 2014), 50.

신학

24 마가복음
. 이것은 “당시 시대의 다른 헬라어 문헌들보다 더 높은 빈도수다.”27) “라틴어 사용이 지배적으 로 일어날 가장 개연성 있는 장소는 로마로서, 여기서는 라틴어와
앞의 책,
앞의 책, 483. 참고. 마
눅 1:32, 35; 요 1:49. 26) 이 주장에 대한 더 포괄적인 논증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24)
482. 25)
16:16;

헬라어가 당시에 다른 어느 곳보다 더 빈번하게 혼용되었다.”28)

마가가 로마에서 복음서를 저술했다면( 나는 단지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이 점을 언급하고 있다 ), 로마서의 시작

부분의 “복음”에 대한 두 가지

묘사가( 롬 1:9의 “그의 아들의 복음”과 롬 1:1의 “하나님의 복음” ) 마가복음의

시작 부분의 “복음”에

대한 묘사들과( 막 1:1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

도의 복음”과 막 1:14의 “하나님의 복음” ) 일치한다는 점을 주목하는 일은 흥미롭다.

마가복음은 신학적인 강조점들에 있어 바울과, 특히 바울의 로마

서와 강력한 유사점들이 있다. 이 말은 다른 신약 성경 저자들과는

유사점들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마가와 바울이 서로 공유

하고 있는 신학적 강조점들은 마가와 바울 둘 사이에 더 밀접한 관

련성이 있음을 암시한다.

베드로와 바울을 생각하며 마가복음 읽기 : 배경 이야기로서 마가복음

마이클 버드는 마가복음을

서론 ┃ 복음의 시작 25

베드로에게만 줄 세우는 것이나 바울 에게만 줄 세우는 것이 마가복음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것임을 잘 보여 주었다. 실제로 신약 성경은 마가복음을 베드로와도 연결시키 고( 벧전 5:13 ) 바울과도 연결시키고 있다( 예. 행 12:25; 골 4:10; 딤후 4:11; 빌 1:24 ). 마이클 버드는 마가복음이 베드로와 바울의 영향을 모두 반영 28) Incigneri, The Gospel to the Romans, 102.

하며 “바울의 선포에 바탕이 되는 복음 사건들의 이야기를 형성한

베드로의 증언으로서” 가장 잘 이해된다고 주장한다.29)

이런 내용은 우리가 마가복음을 읽을 때에 어떻게 도움이 될까?

우선 이런 내용은 우리로 하여금 마가가 역사이면서 동시에 신학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마가는 예수께서 말씀하시며

행하셨던 일들에 대한 역사적 이야기를 저술하고 있다. 마가는 자

신이 눈으로 직접 본 증인은 아니었지만,30) 마가복음에 기록된 사건

들이 있었던 거의 전체 기간에 예수와 함께 있었던 주요한 증인 가 운데 한 명과 대화하면서 마가복음을 기록한다. 동시에 마가는 그

마가가

마가복음의 내용의 순서와 관련해, 또한 마가복음의 내용 안에 무

엇을 포함시키고 무엇을 제외시키는지와 관련해 선택을 했다는 점

이 나타난다. 마가의 이런 선택들은 신학적인 이유들에 근거해 이

루어진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예수에 대한 진리를 백성이 반복적으

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을 읽을 때, 마가는 예수께서 사람

들의 눈을 열어 주지 않으시면( 예수는 막 8:22-26에서 사람들의 눈을 극적으

로 열어 주신다 ), 사람들이 예수께서 누구신지에 대한 진리를 이해할

신학

26 마가복음
있는
런 일이 실제 있었는지에 대해 단지 ‘순수한 역사’를 기록하고
것이 아니다. 마가복음과 다른 복음서들을 비교해 보면,
수 없다는 신학적 요점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있는 주요한 신학적 주제들 가운데 일부
Bird, “Mark:
of
32. 30) 막 14:51-52에서 벗은 몸으로 도망하는 청년이 마가를 가리킨다는 주장은 아 주 흥미롭지만 개연성은 없다.
이 책은 마가복음 안에
29)
Interpreter of Peter and Disciple
Paul,”

를 찾아낸다. 그래서 특히 바울과의 연결점은 우리가 마가복음을

읽을 때에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복음서들이 우리가 갖고 있

는 신약 성경 안에서 처음에 등장하지만( 복음서들이 당시의 가장 초기의

사건들을 기술하기 때문이다 ), 바울의 서신들이 처음으로 널리 전해졌던

기독교 문헌들이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은 유용하다( 데살로니가전서가

아마도 가장 처음 기록되었을 것이다 ). 31) 그런데 마가와 바울이 모두 복음

에 대해 기록하고 있지만, 마가와 바울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복음

에 대해 기록한다. 바울은 자신이 편지를 쓰고 있는 교회들을 위해

복음의 중요성을 밝히고 있고, 마가는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 안에

서 발견되는 것으로서 복음의 시작을, 즉 배경 이야기를 제시한다.

마가는 이미 알려지고 이해된 복음이라는 맥락 안에서, 특히 바울

이 복음에 대해 설교했던 형식으로 마가복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

래서 우리는 마가 자신의 용어들로 곧 “복음의 시작”이라고 마가가

마가복음에 제목을 붙인 것을 통해 마가복음을 읽을 수 있고, 또한

읽어야 하지만, 마가는 의도적으로 이미 알려지고 설교된 복음과

대화하면서 마가복음을 읽으라고 독자들에게 요청하고 있다. 이것

은 마가가 반드시 마가복음 앞부분에 바울의 로마서 내용을 똑같이

기록하고 있다는 주장은 아니다( 이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 오히려

이것은 마가가 ( 특히 ) 우리가 보는 대로 바울의 서신들 안에서 표현

된 바울의 기독교의 형태와 대화하면서 마가복음을 기록하고 있다

서론 ┃ 복음의 시작
27
31) 복음서들은 그 자체로 초기에 기록된 자료들을 이용하고 있을 테지만, 이 초 기의 자료들이 널리 전해졌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이 초기의 자료들은 단지 복음서들 안에 발견된 형태로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는 주장이다.

마가와 바울 사이의 이런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수많은 함의가

있다. 첫째, 우리는 마가가 소개하는 모든 개념이 가장 완전한 설명

을 얻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점을 마가가 복음

을 가리키고 있는 점에서도 본다. 내가 주목했던 것처럼 복음은 1장

1절에서 소개되고 이 외에도 마가복음 안에서 여섯 차례 언급

된다( 막 1:14, 15; 8:35; 10:29; 13:10; 14:9 ). 하지만 복음은 그 어느 곳에서

도 정의되지 않는다. 마가는 마가복음을 읽는 독자들이 복음의 내

용을( 예수에 대해 선포된 메시지에 대한 )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

고 그 복음의 메시지에 대한 기초적인 주석을 제공한다. 마가는 두 번이나 복음이 널리 선포된다는 점을 언급한다( 막 13:10의 “만국”, 막

14:9의 “온 천하” ). 마가는 이 일이 이미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맥락에서

마가복음을 기록하고 있다.

둘째, 마가복음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쓰였다. 이 점은 그리스도

인이 아닌 사람이 마가복음을 읽을 수 없으며 복음을 이해하게 될

수 없다는 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명백하게 마가복음 안에는 ( 역사

를 통해 어떤 의심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 불신자를 믿음으로 이끌 수 있

는 충분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것이 마가가 기본적인 복음

메시지를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마가복음을 저술했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누가복음 안에서 유사점을 보는데, 누가복음은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 데오빌로가 실제 인물이든 그냥 지칭된

인물이든 상관없이 ) 으로 하여금 이 그리스도인이 이미 배운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고 기록되었다( 눅 1:4 ).

마가복음 신학

28

셋째, 마가가 스스로 의식적으로 바울과 대화하면서 마가복음을

저술한 것으로서 마가복음을 이해하는 것은 해석에 있어 다른 점들

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성경 안의 이야기 부분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 어려운 점 가운데 하나는 때

때로 저자가 어떤 이유에서 특정한 한 이야기를 포함시켰는지를 알

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저자는 어떤 신학적 주장을 밝히

고 있는 것인가? ( 특히 ) 바울과 대화하는 것으로서 마가복음을 이해

하는 것은 마가복음에서 밝히고 있는 신학적 주장이 종종 바울과

유사점을 가질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기준점을 제시한다.

넷째, 마가복음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방향으로, 즉 우

리가 바울의 서신들을 읽을 때에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 우리는 바

울이 제시하는 신학적 요점들이 예수의 생애에 기초하여 기술되었

음을 본다. 이것은 단지 바울의 신학적 요점들이 참됨을 확고히 할

뿐 아니라(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자신의 역할을 신실하게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 우리로 하여금 바울의 신학적 요점들이 입증되고 실행되

는 것을 보게 한다.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서 바울은 다

음과 같이 기록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

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

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

이라.” 우리는 마가복음에서 이런 현실이 실제 일어나는 것을 보는

데, 마가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에 대한 진리를 이해하는 일에 지

속적으로 실패한다.

마가복음을 복음에 대한 배경 이야기로서 생각하는 것은 C. S. 루

서론 ┃ 복음의 시작 29

이스의 저술들에서도 불완전한 유사점을 발견한다. 내가 ‘불완전한’

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와 같은 비유들이 쉽게 통제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가복음과 로마서 사이의 관계를 『마법사의 조

카』와 이보다 더 유명한 『사자와 마녀와 옷장』 사이의 관계와 약간

유사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유용할 것이다.32) 더 유명한 이 『사자

와 마녀와 옷장』이 처음으로 쓰였다. 『마법사의 조카』는 5년 뒤에

쓰였지만( 그 사이에 세 권의 책이 쓰였다 ),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 포함

된 이야기 이전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들려준다. 이 책들은 각각이

놀라운 소설 작품으로 별도로 존재하지만, 이 두 권의 책을 모두 읽

는 독자들은 전체 이야기 전개를 더 다채롭고 더 풍성하고 더 완전

하게 이해하게 된다.33)

마가는 “복음의 시작”을 들려주려고, 즉 예수를 선포하는 메시지

에 대한 배경 이야기를 제시하려고 복음서를 기록한다. “복음의 시

작”이라는 제목은 또한 마가복음의 마지막을 예상하게 한다. 여자

들이 몹시 놀라 빈 무덤에서 도망치고 “무서워하여”

32) C. S. Lewis, 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 (London: Geoffrey Bles, 1950); C. S. Lewis, The Magician’s Nephew (London: Bodley Head, 1955).

신학

30
마가복음
아무에게도 아 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 것으로 마가복음이 끝난다는 점은 잘 알려 져 있다( 막 16:8 ). 34)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등장하지 않고, 마가복음은
33) 나는 나니아 연대기를 어떤 순서로 읽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매우 격렬한 논쟁에 참여하기는 거부한다! 34) 헬라어 본문은 마지막 단어가 “왜냐하면”(‘가르’)이라는 단어로 끝나기에 훨 씬 더 부자연스럽다. 이런 부자연스러움 때문에 일부 사본에서는 다수의 더 긴 결말들이 발견될 수 있지만, 원문에 이런 결말들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개

실망스러운 방식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복음의 시작”

으로서 마가복음의 정체성은 이런 결말의 부자연스러움과 어울

린다. 마가는 복음이 알려져 있다는 맥락에서, 두려움 때문에 도망

친 여자들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복음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맥락에서 마가복음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마가는 마가복음을 읽는

독자들이 복음의 선포에 계속 관련될 것임을 암시하는 격려와 함께

마가복음을 기록하고 있다. 마가복음의 부자연스러운 결말은 “마가

복음이 단지 좋은 소식들의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을 반영하는데, “이는 예수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며 우리는 마가가 끝낸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계속하기 때문이다.”35)

예수의 생애에 대한 일관성 있는 별도의 이야기로서 마가복음에

접근하는 방식은 옳다. 마가복음은 그 자체로 전적으로 의미 있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단지 바울과의 대화 안에서만 마가복음을 연

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또한 우리가 다루는 다양한 주제에 대

해 마가 자신이 말하는 바에 집중할 것이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기

록된 최초의 복음서로서 우리에게 “복음의 시작”을 들려줄

35) Joel Marcus, Mark 8–16: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AB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2009), 1096.

서론 ┃ 복음의 시작
31
때에 신 약 성경 나머지와( 또한 우리가 보겠지만 구약 성경과 ) 대화하면서 마가복 음을 읽도록 우리에게 요청한다. 연성이 없어
보인다.

1장 신적 정체성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마가가 복음의 기원을 설명하려고 마가복음을 기록하고 있지만, 마가의 중심 초점은 예수께 있다. 이는 복음이 예수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1) 그래서 마가복음에 대해 연구하는 이 책은 실제로 예수

에 대한 책이 될 것이다! 나는 이번 장에서 관심의 폭을 더 좁혀 예

수의 정체성에 대한 두 가지 측면에 집중하겠다. 바로 (1) 예수께

사용된 호칭들과, (2) 어떻게 예수의 기적들이 예수의 신적 정체성

을 드러내는지에 집중하겠다. 이번 장에서 다루는 내용들 사이에

겹치는 부분이 있을 것인데, 이는 일부 호칭들이 예수의 신적 정체

1) 우리는 막 1:1의 ‘유앙겔리온 예수 크리스투’라는 헬라어 표현을 주어를 가리

키는 소유격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하시는 복

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막 1:14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

포하신다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앞서 주장했던 바와 같이 막 1:1이 제

목의 역할을 한다는 점은 마가복음이 예수께서 선포하셨던 복음의 시작보다는

오히려 예수에 대한 복음의 시작을 기술하고 있다는 생각과 더 잘 어울린다.

33

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에 대해 말할 내용은 더 많다.

마가가 예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해 더 많이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

서 이번 장이 예수께 초점을 맞춘다 해도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은 예

수께서 누구이신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기초로 삼아 더 많은 내 용을 다룰 것이다.

예수의 호칭들 이 항목에서 나는 예수의 호칭들을 살펴보겠다. 이미 이 호칭들에

대해 호칭 하나씩마다 연구서들이 단행본으로 저술되었다. 그래서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은 각각의 호칭이 예수에 대한 마가

의 묘사에 가져다주는 주요한 개요들을 간략히 다루는 것이다.

마가복음에서 예수께 사용된 호칭들은

봄으로써 시작하고( 막 1:1 ), 2)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하는 베드로를 중심으로 하고( 8:29 ), ( 어느 정도

않는

2) 막 1:1의 “하나님의 아들이” 원문에 있는지에 대해 일부 학자는 상당한 의구심 을 표명한다. 이는 매우 의미

신학

34
마가복음
분명히 중요한데, 이는 마가
마가복음의 주요 등장인물인 예수를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들”로
) 예수께서 “하나님의
고백하는 로마 백부장의 고백에서 절정에 달하기 때
( 15:39 ). 확실히 예수에 대한 마가의 시각은 호칭들에 대한 하 나의 연구로 축소될 수 없다. 하지만 이 호칭들에 관심을 두지
복음이
고백
아들”이시라고
문이다
있는 일부 초기의 사본들에 이 표현이 없기 때문 이다. 이 책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이 표현이 원문에 포함되어 있다는 입장을 취 한다. 이 표현이 원문에 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한 간략한 논증에 대해서는 다음 을 보라. Robert A. Guelich, Mark 1–8:26 , WBC (Dallas: Word, 1989), 6.

것은 예수의 인격에 대한 풍성한 정보의 한 층을 간과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

“그리스도”( 헬라어로 ‘크리스토스’, 히브리어로 ‘메시아’ ) 가 마가복음에서

가장 흔한 호칭이 아닐지라도 마가복음 1장 1절에서 이 호칭이 사

용되었다는 점은 마가복음 8장 29절에서 베드로가 이 “그리스

도”라는 호칭을 자신의 고백의 중심으로 사용했던 것처럼, 마가가

예수를 제시하는 근본적인 방식이 바로 이 “그리스도”라는 호칭임

을 나타내는 것 같다. 마가복음 안에 세 곳에서 예수는 비록 약간 완곡한 방식으로지만 스스로를 가리키려고 이 “그리스도”라는 호

칭을 사용하신다. 마가복음 9장 14절에서 예수는 제자들을 가리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이라고 말씀하신다. 마가복음 12장 35절

에서 예수는 그리스도가 단순히 다윗의 “자손”인 것인지를 물으

신다. 마가복음 13장 21절에서 예수는 사람들이 제자들에게 그리스

도가 왔다고 말할지라도 속임을 받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경고하

신다. “그리스도”라는 호칭이 마지막 두 번 사용된 경우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들이 이 호칭을 예수에 대한 재판과 십자가 사건에서 사

용한다. 마가복음 14장 61절에서 대제사장은 예수께서 “찬송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인지를 예수께

1장 ┃ 신적 정체성 35
묻고, 예수는 “내가 그니라”( 막 14:62 ) 고 대답하신다. 마가복음 15장 32절에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은 예수를 모욕하는데,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내 려와 자신들로 하여금 믿게 해 보라고 요구한다.

이 마지막의 경우에 “그리스도”와 “이스라엘의 왕”은 동일시

된다. 구약 성경에서 제사장들과 ( 예. 출 28:41 ) 선지자들이 ( 예. 왕상

19:16 ) 기름 부음을 받았을지라도

‘메시아’라는 용어는 1세기 유대교

의 세계에서 역시 기름 부음을 받은 왕들을 가리켰다( 예. 삼상 15:1 ). 3)

탁월한 메시아에 대한 기대는( 삼상 2:35를 보라 )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대적들을 무찌르고 열방을 통치할 기름 부음을 받은 왕에 대한 기

대였다( 시 2:2 ). 1세기에 메시아적인 표현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4)

한 가지 특정한 문제에 대해 말한다. 바로 “누가 그 책무를 담당하

는지를, 그리고 누가 그 책무를 담당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3) M. Eugene Boring, Mark: A Commentary, NTL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2006), 249.

4) Joshua W. Jipp, The Messianic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Eerdmans, 2020), 75가

5) Matthew V. Novenson, The Grammar of Messianism:An Ancient Jewish Political Idiom and Its User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7), 272.

6) Christian Habicht, “Messianic Elements in the Pre-Christian GrecoRoman World,” in Toward the Millennium:Messianic Expectations from the Bible to Waco, ed. Peter Shäfer and Mark R. Cohen, Studies in the History of Religions 77 (Leiden: Brill, 1988), 47. Novenson, Grammar, 272에서 인용.

36 마가복음
신학
문 제다.5) 이 용어가 독특하게 유대교적이고 기독교적일지라도, “페르 시아인들과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과 다른 민족 사람들은” 앞으로 와서 “새롭고 더 나은 질서를 출범시킬”6) 아주 특별한 지도자들에
다음과 같이 언급하는 것과 같다. “‘메시 아’에 대해, 또는 메시아적 표현이라는 것에 대해 단일한 의미는 존재하지 않 는다.”

대한 “자신들만의 표현 방식을 갖고 있었다.”7)

그러나 십자가에 죽으실 분으로 그리스도를 제시하고 있는 점에

서 마가는 이제까지 들어 보지 못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로 고난

을 받는 메시아 또는 그리스도다. 이런 메시아 또는 그리스도는 유

대교 내부 또는 유대교 외부에 있던 승리를 거두며 온 나라를 정복

하는 왕에 대한 기대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베드로가 예수를

짖은 것도 고난을 받는 메시아의 부적절함을 반영한다( 막 8:31-32 )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십자가에

그 기원을 예수 자신의 생애와 가

르침 안에 발견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로서 예수의 정체성은 우리가 바울과 마가 사이

에 차이점을 보게 되는 한 가지 측면이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이

런 정체성을 스스로에게 돌리는 것을 주저하는 반면, 바울의 서신

들에서 이런 정체성은 바울이 예수를 가리키는 데 있어 단연코 가

장 흔하게 사용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예수께서 두 번이나 자신이

선호하는 호칭인 “인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심으로써

7) Novenson, Grammar, 272.

1장 ┃ 신적 정체성 37
.
못 박힌 그리스도라는 개념은 “유 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었다( 고전 1:23 ).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에 초점을 맞 춘 바울의 복음은( 고전 2:2 ) 그래서
“그리스도”라
62
는 칭호를 해석하고 계시다는 점을 보게 될 것이다( 막 8:29-31; 14:61-
). 인자는 (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처럼 ) 1세기의 사람들이 상당한
기대감을 부여한 호칭이 아니었다. 그래서 예수는 인자라는 호칭을

사용하심으로써 “그리스도”라는 칭호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오해와

흥분 없이 자신에 대해 더욱 쉽게 말씀할 수 있으셨다.

이 점은 마가복음의 역사적 의도를 강조하고 우리로

하여금

마가가 단순히 신학을 기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기억하게 한다.

십자가와 부활 이전의 예수에 대한 기록에서 마가는 예수께서 인

자라는 표현을 선호하심으로써 이렇게 도움이 되지 않는 기대들을

“하나님의 아들”이 마가복음에서 핵심적인 호칭

이라고 주장한다.8) 하나님은 스스로 예수의 세례 자리에서( 1:1 ) 및

변화산 사건에서( 9:7 ) 예수를 자신의 아들로 확인하신다. 또한 ( 초자

연적인 지식을 소유했다고 간주되는 ) 악한 영들은9) 두 번이나 예수를 하나

님의 아들로 언급한다( 3:11; 5:7 ). 나아가 마가복음의 시작과( 1:1, 11 ) 중

8) 다음을 보라. Adam Winn, Reading Mark’s Christology Under Caesar: Jesus the Messiah and Roman Imperial Ideology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18), 53.

9) 앞의 책.

38 마가복음 신학
임박한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강조하기를 원하셨음을 보
무시하고
준다.
관점에서 기술하면서 적절하게 예수를 그 리스도로 언급한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예수의 높아지신 상태를 더 욱 보편적으로 말하는 칭호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 에 못 박히신 것”이라는 바울의 표현은 이 그리스도라는 호칭이 일 반인들이 기대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준다. 하나님의 아들 많은 학자들은
바울은 부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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